말하자면, 싸움에 패하고 남은 오십 명의 작은 요괴들이 찢어진 깃발과 깨진 북 따위를 들고 굴 속으로 뛰어 들어가며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호선봉이 그 털북숭이 얼굴을 한 중을 당해 내지 못하고 동쪽 산비탈 아래로 쫓겨 내려갔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그 말을 듣고는 몹시 번민하였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계책을 궁리하고 있는데, 또 앞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달려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호선봉이 그 털북숭이 얼굴을 한 중에게 맞아 죽었사옵니다. 시체를 문 어귀에 끌어다 놓고서는 그 중이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걸고 있사옵니다.” 그 늙은 요괴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번민하며 말했다. “이놈이 참으로 무지하구나! 나는 아직 그의 스승을 잡아먹지도 않았거늘, 도리어 그놈이 내 집 선봉을 쳐 죽이다니, 분하도다! 분하여라!” 그리고는 소리쳐 외쳤다. “갑옷과 투구를 가져오너라. 나도 다만 손행자라는 자의 소문만 들었을 뿐이니, 내가 친히 나가서 아홉 머리에 여덟 꼬리라는 중이 어떤 놈인지 보고서, 그놈을 잡아들여 내 호선봉의 목숨과 맞바꾸리라.” 뭇 작은 요괴들이 급히 갑옷과 투구를 메고 나왔다. 늙은 요괴는 몸을 단단히 갖추고서 쇠로 만든 세 갈래 삼지창 한 자루를 움켜쥐고는, 요괴 무리를 거느리고 자기 굴을 뛰쳐나왔다. 그 대성은 문 밖에 우뚝 서 있다가 요괴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참으로 용맹스럽다고 여겼다. 그가 몸을 어떻게 차렸는지 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금빛 투구는 해를 흔들고 금빛 갑옷은 빛을 엉기는데, 투구 위에 나부끼는 술은 산꿩의 꼬리요 갑옷을 덮은 비단 포는 옅은 거위 노른자 빛이로다. 갑옷을 조이는 띠에는 용이 서려 채색이 눈부시고, 가슴을 지키는 거울은 눈을 두른 듯 찬란하네. 사슴 가죽 신발은 괴화나무 꽃물로 물을 들였고, 비단 앞치마는 버들잎 같은 솜털로 장식했도다. 손에 쥔 세 갈래 강철 창은 예리하니, 당년에 모습을 드러낸 저 성스러운 낭군에게 뒤지지 않는도다.
그 늙은 요괴가 문을 나서며 언성을 높여 외쳤다. “어느 놈이 손행자냐?” 이 행자는 호랑이 요괴의 가죽 부대를 발로 밟고 여의한 쇠 몽둥이를 손에 쥐고서 대답했다. “네 외할아버지 손오공이 여기 있느니라! 어서 내 스승님을 모셔 내보내라!” 그 요괴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행자의 몸집은 초라하고 얼굴은 파리하여 키가 네 자에도 미치지 못했으므로, 웃으며 말했다. “가련하구나! 가련하여라! 나는 그저 당해 낼 수 없는 호걸인 줄 알았더니, 원래 이런 해골 같은 병든 귀신이었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아, 네가 참으로 눈썰미가 없구나! 네 외할아버지가 비록 작다마는, 네가 내 머리를 향해 창 자루로 한 번 쳐 준다면 곧 석 자는 자라리라.” 그 요괴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머리를 단단히 하고 내 한 자루를 받아라.” 대성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요괴가 과연 한 번 내리치자, 그가 허리를 한번 굽히니 족히 석 자가 자라나 한 장 남짓한 길이가 되었다. 그 요괴는 놀라 강철 창을 눌러 잡으며 호통쳤다. “손행자, 네가 어찌하여 이 몸을 지키는 변화법을 가지고 내 문 앞에서 부리느냐! 헛된 재주 부리지 말고 올라오너라, 내 너와 재주를 겨루어 보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아! 속담에 이르기를, 정을 남기려 하거든 손을 들지 말고 손을 들었거든 정을 남기지 말라 하였느니라. 네 외할아버지의 손놀림은 무거우니, 네가 이 몽둥이 한 방을 견디지 못할까 두렵구나!” 그 요괴는 변명할 겨를도 주지 않고 강철 창을 돌려 쥐고는 행자의 가슴을 향해 찔러 왔다. 이 대성은 능한 자는 서두르지 않고 서두르는 자는 능하지 않다고 하였거늘, 쇠 몽둥이를 휘둘러 오룡이 땅을 스치는 자세를 쓰며 강철 창을 쳐내고는, 또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두 사람이 그 황풍령 동굴 어귀에서 벌인 이 한바탕 통쾌한 싸움은 이러하였다. 요괴 왕은 노기를 발하고 대성은 위풍을 떨치니, 요괴 왕은 노기를 발하여 행자를 잡아 선봉의 원수를 갚으려 하고, 대성은 위풍을 떨쳐 요물을 사로잡아 장로를 구해 내려 하도다. 창이 날아오면 몽둥이가 받쳐 내고 몽둥이가 가면 창이 맞서며, 하나는 산을 누른 도총수요 하나는 법을 지키는 원숭이 왕이라. 처음에는 티끌 위에서 싸우더니 나중에는 둘 다 하늘 한가운데로 솟아올랐도다. 강철 창은 끝이 밝고 날카로우며 여의한 몽둥이는 몸이 검고 고리는 황금빛이로다. 찔린 자는 혼이 명부로 돌아가고 맞은 자는 반드시 염라대왕을 대면하리라. 오로지 손놀림이 빠르고 눈썰미가 밝은 데 힘입으니, 모름지기 힘이 세고 몸이 강해야 하느니라. 양쪽이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잊은 채 싸우니, 어느 쪽이 평안하고 어느 쪽이 다칠지 알 수 없도다!
그 늙은 요괴와 대성이 서른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이 행자는 공을 세워 보이고 싶어 몸 밖에 몸을 내는 신분신의 재주를 부렸다. 제 몸의 털을 한 웅큼 뜯어내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 가루로 만든 뒤, 하늘을 향해 한 번 내뿜으며 “변해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백 명이 넘는 행자로 변했는데, 모두 똑같은 차림새에 저마다 쇠 몽둥이를 한 자루씩 들고서 그 요괴를 공중에서 빙 둘러 포위하였다. 그 요괴는 겁이 나서 또한 같은 재주를 부렸다. 급히 고개를 돌려 손 방위를 향해 입을 세 번 크게 벌리고는, 휘익 하고 한 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러자 갑자기 누런 바람 한 줄기가 허공에서 일어났다. 좋은 바람이로다! 참으로 맹렬하였다.
싸늘하고 쌩쌩해 천지가 변하고, 그림자도 형체도 없는 누런 모래가 휘몰아치네. 숲을 꿰뚫고 고개를 꺾어 솔과 매화를 쓰러뜨리고, 흙을 날려 산마루를 무너뜨리도다. 황하 물결은 뒤집혀 바닥까지 흐려지고, 상수는 솟구쳐 물결을 뒤집네. 푸른 하늘이 진동해 두우궁이 흔들리고, 하마터면 삼라전을 쓰러뜨릴 뻔하였도다. 오백 나한은 하늘이 떠나가라 떠들고, 팔대 금강은 일제히 소란을 피우네. 문수의 푸른 털 사자는 달아나고, 보현의 흰 코끼리도 찾을 길이 없도다. 진무의 거북과 뱀은 무리를 잃고, 재동의 노새는 안장까지 날려 보내네. 장사꾼은 하늘에 빌며 울부짖고, 사공은 온갖 소원을 빌며 절하도다. 물안개 속 목숨은 파도 속에 흐르고, 명리에 매인 남은 목숨은 물 따라 끝나네. 신선의 산과 동천은 깜깜하고, 바다 위 봉래섬은 어둑어둑 빛을 잃었도다. 태상노군도 단약 굽는 화로를 돌볼 겨를이 없고, 수성노인은 용수부채를 거두어 들였네. 왕모가 반도 잔치로 가는 길인데, 한 줄기 바람에 치마허리 팔찌가 끊어지고, 이랑은 관주성을 잃고 헤매며, 나타는 갑 속의 칼을 꺼내기 어렵도다. 천왕은 손바닥의 탑이 보이지 않고, 노반은 금머리 송곳을 떨어뜨렸네. 뢰음사의 보배 궁궐은 세 층이 무너지고, 조주의 돌다리는 두 토막이 끊어졌도다. 붉은 해는 흔들려 빛을 잃고, 하늘의 별자리가 모두 어지럽네. 남산의 새는 북산으로 날고, 동호의 물은 서호로 넘쳐흐르도다. 수컷과 암컷은 짝이 흩어져 부르지 못하고, 어미와 새끼는 떨어져 불러 보기 어렵네. 용왕은 바다를 뒤져 야차를 찾고, 뢰공은 사방에서 번개를 찾으며, 십대 염왕은 판관을 찾고, 지부의 우두는 마면을 쫓도다. 이 바람은 보타산까지 불어가 관음의 경전 한 권을 말아 올렸네. 흰 연꽃은 바닷가로 날려 가고, 보살의 열두 뜰이 모조리 쓰러졌도다. 반고 이래로 바람을 보아 왔으나, 이 바람처럼 사납게 분 적은 없었도다. 후루룩 콰르릉, 천지가 터져 갈라지지 않은 것이 위태로우니, 만 리 강산이 모두 떨고 있도다!
그 요괴가 이토록 사나운 광풍을 부리자 손오공의 털로 변했던 작은 행자들은 반공중으로 날려 올라가 마치 물레바퀴처럼 빙빙 돌기만 하였으니, 몽둥이를 휘두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몸을 어찌 가누겠는가. 다급해진 행자가 털을 한 번 털어 몸에 거두어들이고는, 홀로 쇠 몽둥이를 들어 나아가 내리치려 하였으나, 또 그 요괴가 얼굴을 향해 누런 바람 한 입을 내뿜어 두 눈의 불꽃 같은 금안을 꼭 감기게 하였으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쇠 몽둥이를 부릴 수 없어 드디어 싸움에 패하여 물러나 왔다. 그 요괴가 바람을 거두고 굴로 돌아간 사정은 이쯤에서 그치겠다.
말하자면, 저팔계는 누런 바람이 크게 일어 천지가 빛을 잃는 것을 보고 말을 끌고 짐을 지킨 채 산골짜기에 엎드려 있었다. 감히 눈을 뜨지도 못하고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입으로는 쉬지 않고 부처님을 부르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또한 행자가 이겼는지 졌는지, 스승님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걱정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새 바람이 가라앉고 하늘이 개었다. 고개를 들어 굴 문 앞을 바라보니 병기도 보이지 않고 징과 북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멍청이는 감히 그 문으로 올라가지도 못했거니와 말과 행장을 지킬 사람도 없어 참으로 진퇴양난이요, 마음이 몹시 불안하기만 하였다. 근심하는데 문득 손오공이 서쪽에서 외치며 오는 소리가 들려 왔으므로, 그제야 몸을 일으켜 마주 나아가며 말했다. “형님, 바람이 어찌 이리도 크옵니까! 형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이옵니까?” 행자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맹렬하다! 맹렬해! 이 늙은 원숭이가 사람이 된 이래로 이런 큰 바람은 본 적이 없다. 그 늙은 요괴가 세 갈래 강철 창 한 자루를 들어 이 늙은 원숭이에게 싸움을 걸어 왔다. 서른 합 넘게 싸웠는데, 이 늙은 원숭이가 몸 밖에 몸을 내는 재주로 그놈을 둘러싸고 두들기니, 그놈이 다급해진 나머지 이 바람을 일으킨 것이니라. 과연 흉악하여 나를 서 있지도 못하게 불어 대는 바람에, 재주를 거두고 바람을 뚫고 도망쳐 나왔다. 흥, 좋은 바람이로다! 흥, 좋은 바람이로다! 이 늙은 원숭이도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릴 줄 알지만, 이 요괴의 바람만큼 사나운 것은 본 적이 없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 요괴의 무예는 어떠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볼 만하더라. 창법도 제법 반듯하고 나와 서른 합을 호각으로 겨루었느니라. 다만 바람이 사나워서 그놈을 이겨 내기 어렵구나.” 팔계가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스승님을 어떻게 구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을 구하는 일은 잠시 미루자. 이곳에 안과 의원이 있는지 모르겠으니, 그에게 내 눈을 좀 고쳐야겠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눈이 어찌 되었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내가 그 요괴가 내뿜는 바람 한 입을 뒤집어썼는데, 눈알이 쑤시고 아팠느니라. 이제 와서는 찬 눈물이 줄줄 흐르는구나.”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 깊은 산중에 날마저 저물었으니 안과 의원은커녕 잘 곳조차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잘 곳은 어렵지 않다. 내 헤아리건대 그 요괴는 아직 스승님을 해치지는 못하리라. 우리가 큰길로 올라가 인가를 찾아 하룻밤 묵고, 내일 밝거든 다시 와서 요괴를 항복받자.” 팔계가 말했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옵니다.”
그는 곧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산골짜기를 벗어나 큰길 어귀로 올라섰다. 이때 점점 황혼이 짙어 가는데, 길 남쪽 산비탈 아래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보니 한 채의 농가였는데, 희미하게나마 등불이 비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길이 있건 없건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헤치며 걸어 그 집 문 앞에 이르렀다. 그곳 풍경이 이러하였으니, 자줏빛 지초는 무성하고 흰 돌은 푸르스름하네. 지초 무성한 곳에 푸른 풀이 많고, 흰 돌 사이에 이끼가 반쯤 덮였도다. 몇 점의 반딧불이 반짝이고, 한 숲의 들나무는 빽빽이 늘어섰네. 향기로운 난초는 그윽하고, 연한 대나무는 새로 심어졌도다. 맑은 샘은 굽은 계곡을 흐르고, 늙은 잣나무는 깊은 벼랑에 기대었네. 땅이 외져 나그네의 발길이 끊겼으니, 문 앞에는 들꽃만이 피어 있을 뿐이로다. 그 두 사람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외쳤다. “문 열어 주시오, 문 좀 열어 주시오!”
그곳에는 한 늙은이가 젊은 농부 몇 명을 거느리고 쇠스랑과 갈고리, 빗자루를 들고 일제히 나오며 물었다. “무슨 사람이오? 대체 무슨 사람이오?” 행자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우리는 동쪽 큰 당나라 성스러운 스님의 제자들이오. 서쪽으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전을 구하러 가는 길에 이 산을 지나다 황풍대왕에게 스승님을 빼앗겼는데, 아직 구해 내지 못했소. 날이 이미 어두워졌으니 특별히 댁을 찾아와 하룻밤 신세를 빌리고자 하오. 부디 편의를 봐 주시오.” 그 늙은이가 답례하며 말했다. “잘못 맞이했소이다, 잘못 맞이했소이다. 이곳은 구름만 많고 사람은 드문 곳이라, 방금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혹 여우나 호랑이, 산중 도적 같은 무리일까 두려워하였소이다. 이 때문에 어리석은 하인들이 무례를 범하였사온데, 두 분 장로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나이다. 어서 들어오소서, 어서 들어오소서.” 그 형제들은 말을 끌고 짐을 멘 채 안으로 들어가 안쪽에 이르러 말을 매고 짐을 내려놓고는, 그 집 주인 늙은이에게 절하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또 머리 흰 늙은 종이 나와 차를 올리고, 차를 마친 뒤 깨밥 몇 그릇을 내왔다. 밥을 마치자 자리를 펴고 쉬라 하였는데, 행자가 말했다. “잠은 자지 않아도 좋사오나, 감히 여쭙건대 이곳에 안약 파는 곳이 있소이까?” 그 늙은이가 말했다. “어느 장로께서 눈이 편찮으시단 말씀이오?”
행자가 말했다. “어르신께 숨기지 않고 아뢰거니와, 우리 출가한 사람은 본래 병이 없어 눈이 아픈 줄도 모르고 지냈소.” 그 늙은이가 말했다. “눈이 아프지 않다면서 어찌하여 약을 찾으시오?”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오늘 황풍령 동굴 어귀에서 스승님을 구하려다 그 요괴가 내뿜는 바람 한 입을 뒤집어썼는데, 그 바람이 내 눈알을 쑤시고 아프게 하였소. 이제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이 때문에 안약을 찾는 것이오.” 그 늙은이가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이 장로는 나이가 어리신데 어찌하여 거짓말을 하시오? 저 황풍대성의 바람이 가장 맹렬하오. 그의 바람은 무슨 봄바람 가을바람이나 솔바람 대나무 바람, 또 그 동서남북의 바람과는 견줄 수가 없소.” 팔계가 말했다.
“필시 머리를 꿰뚫는 바람, 양의 귀 바람, 큰 마비 바람, 편두통 바람 같은 것이 아니옵니까?” 그 늙은이가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그것을 삼매신풍이라 하오.” 행자가 말했다. “어찌 그리 알 수 있소이까?” 그 늙은이가 말했다. “그 바람은 능히 천지를 어둡게 불어 대고, 귀신까지 근심하게 잘 휩쓸며, 바위를 쪼개고 벼랑을 무너뜨리도록 사납고, 사람에게 불면 목숨이 곧 끊어지오. 그대들이 만일 그의 바람을 뒤집어썼다면 어찌 살아남기를 바라시겠소! 다만 신선이라야만 무사할 수 있소.” 행자가 말했다. “과연 그러하오! 과연 그러하오! 우리가 비록 신선은 아니나 신선도 내 후배쯤 되니 이 목숨이 급히 끊어지지는 않겠소만, 다만 내 눈알을 쑤시고 아프게 하였소!” 그 늙은이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대들도 내력이 있는 사람이오. 내 누추한 곳에는 안약을 파는 이가 없소만, 이 늙은이도 바람을 맞으면 찬 눈물이 나는 증세가 있어서 일찍이 신이한 사람을 만나 처방 하나를 전해 받았는데, 이름을 삼화구자고라 하니 온갖 풍증으로 인한 눈병을 다 고칠 수 있소.”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읍하며 말했다. “바라건대 조금만 얻어서 발라 보고 싶소, 발라 보고 싶소.” 그 늙은이가 승낙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 마노석으로 만든 작은 단지 하나를 가져 나와 마개를 뽑고서, 옥으로 만든 비녀 끝으로 조금 찍어 행자의 눈에 발라 주며, 눈을 뜨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혀 자면 내일 아침이면 곧 나으리라고 일렀다. 다 바르고 나서는 돌단지를 거두고 하인들을 거느려 안으로 물러갔다. 팔계가 보따리를 풀고 이불을 펴며 행자에게 자리를 잡으라고 청했다. 행자는 눈을 감은 채 손을 더듬거렸는데,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의 지팡이는 어디 있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이 게걸스러운 멍청이 같은 놈! 네가 나를 장님으로 만들어 놀려 먹으려 드는구나!” 그 멍청이는 껄껄거리며 속으로 웃고는 잠이 들었다. 행자는 자리에 앉아 신공을 돌리다가 삼경이 지나서야 비로소 누워 잠들었다.
어느덧 오경이 되어 날이 밝아 오는데, 행자가 얼굴을 쓱쓱 문지르고 눈을 뜨며 말했다. “과연 좋은 약이로다! 평소보다 백 배나 더 밝구나!” 그런데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니, 아! 그곳에 무슨 집이며 창문이 있단 말인가, 다만 늙은 홰나무와 높은 버드나무만 보일 뿐이었고, 형제들은 모두 푸른 잔디 위에서 자고 있었다. 그때 팔계가 깨어나며 말했다. “형님, 무슨 소리를 하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네 눈을 뜨고 좀 보아라.” 그 멍청이가 고개를 들어 보니 인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므로, 놀라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내 말은 어디 있소?” 행자가 말했다. “나무에 매어 둔 것이 바로 그것 아니냐?” “행장은 어디 있소?” 행자가 말했다. “네 머리맡에 놓인 것이 바로 그것 아니냐?” 팔계가 말했다. “이 집 사람들이 참으로 꾀가 많구려. 이사를 가면서 어찌 우리를 한마디 불러 주지 않았단 말이오? 이 늙은 돼지에게 알려만 주었어도 차와 과일을 대접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필시 호적을 피해 숨는 처지라 이장이 알까 두려워 밤을 틈타 이사한 모양이오. 아이고! 우리도 참으로 깊이 잤구려! 어찌 집을 헐 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단 말이오?” 행자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멍청아, 함부로 떠들지 마라. 저 나무에 붙어 있는 저것이 무슨 종이 쪽지인지 좀 보아라.” 팔계가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떼어 보니, 그 위에는 네 구절의 게송이 적혀 있었으니 이러하였다.
장가에 사는 이 속된 사람의 집이 아니니, 호법 가람이 점화해 지은 초막이로다. 그대에게 신묘한 약을 주어 눈의 통증을 고쳤으니, 마음을 다해 요괴를 항복받고 망설이지 말라.
행자가 말했다. “이 강포한 신들이, 용마를 바꾼 이래로 줄곧 점호하지 않았더니 도리어 또 와서 헛된 재주를 부리는구나!” 팔계가 말했다. “형님, 잘난 척하지 마시오. 그들이 어찌 형님의 점호에 복종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이 호교가람과 육정육갑, 오방게제, 사직공조라는 신들은 보살의 법지를 받들어 은밀히 우리 스승님을 보호하는 자들이니라. 그때 이름을 올린 뒤로 다만 이내 동생이 생긴 탓에 그들을 쓸 일이 없었으므로 점호하지 않았을 뿐이지.”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들이 법지를 받들어 은밀히 스승님을 보호하니 몸을 드러내 나타날 수 없는 까닭에 신선의 장원을 점화한 것이옵니다. 형님, 그들을 탓하지 마옵소서. 어제도 그 덕분에 형님의 눈에 약을 발랐고, 또 그 덕분에 우리가 공양 한 끼를 얻어먹었으니 이 또한 마음을 다한 것이라 하겠사옵니다. 형님, 그들을 원망하지 마시고 우리가 어서 스승님을 구하러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의 말이 옳구나. 이곳에서 저 황풍령 동굴 어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너는 몸을 움직이지 말고 숲 속에서 말을 보고 짐을 지키며 있어라. 이 늙은 원숭이가 동굴로 들어가 스승님의 소재가 어떠한지 알아보고 나서, 그놈과 다시 싸우겠다.” 팔계가 말했다. “바로 그렇게 하옵소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한 소식이나 알아보사옵소서. 만일 스승님이 돌아가셨다면 각자 갈 곳을 찾아 일을 도모하면 되고, 아직 살아 계시다면 우리가 온 힘을 다해야 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나는 가겠다!”
그가 몸을 한 번 솟구쳐 곧장 그 굴 문 어귀에 이르렀는데, 문은 아직 닫힌 채 잠들어 있었다. 행자는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요괴를 놀라게 하지도 않은 채, 결을 쥐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한 번 흔들어 변신하니 알록달록한 다리의 모기 한 마리가 되었는데, 참으로 자그마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어수선하게 떠도는 자그마한 몸에 날카로운 주둥이요, 윙윙거리는 가느다란 소리가 우레 같구나.
규방의 비단 장막 속으로 능히 잘도 드나드니, 한여름의 따뜻한 기운을 몹시 사랑하도다. 다만 연기로 쫓고 부채로 후려치는 것이 두렵고, 등불의 환한 빛을 유난히 아끼네. 가볍고 작으면서도 파고들기가 몹시 날래니, 요괴의 굴 속으로 날아들어가도다. 그런데 문을 지키고 있던 작은 요괴가 곯아떨어져 코를 골며 자고 있었으므로, 행자가 그 얼굴 위로 날아가 한 입 쏘았다. 그 작은 요괴는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서 말했다. “어머나! 어찌 이리 큰 모기냐! 한 입에 커다란 혹을 물고 일어났잖아!” 그리고 홀연히 눈을 뜨며 말했다. “날이 밝았구나.”
또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두 번째 문이 열렸다. 행자가 윙윙거리며 날아 들어가 보니, 그 늙은 요괴가 각 문초소에 삼가 조심하라고 분부하고, 한편으로는 병기를 손질하며 말하고 있었다. “어제 그 바람이 손행자를 불어 죽이지 못했을까 두렵도다. 그놈이 오늘은 반드시 다시 올 터이니, 오거든 기어이 그 목숨을 끊어 놓으리라.”
행자는 그 말을 듣고 또 그 청당을 지나쳐 곧장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문 하나가 몹시 단단히 닫혀 있어서, 행자가 문 틈을 따라 기어들어가 보니 원래는 커다란 빈 뜰이었고, 그쪽 정풍장 기둥에 삼장법사가 밧줄로 칭칭 동여매인 채 묶여 있었다. 그 스님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마음속으로 오직 오공과 오능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들이 다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행자는 날개를 멈추고 그의 민머리 위에 내려앉아 “스승님” 하고 불렀다. 그 장로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말했다. “오공아, 내가 그리워 죽겠구나! 네가 어디서 나를 부르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저는 스승님 머리 위에 있사옵니다.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마시옵소서, 번뇌도 거두시옵소서. 저희가 기어이 요괴를 잡아야만 스승님의 목숨을 구해 낼 수 있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제자야, 언제나 요괴를 잡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을 잡아간 그 호랑이 요괴는 이미 팔계가 쳐 죽였사옵니다. 다만 늙은 요괴의 바람 기세가 맹렬할 뿐이옵니다. 헤아려 보건대 오늘 안으로 기어이 그놈을 잡을 것이오니, 마음을 놓으시고 울지 마옵소서. 저는 가겠나이다.”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윙윙거리며 앞쪽으로 날아가니, 그 늙은 요괴가 위쪽에 앉아 각 길목의 두목들을 점호하고 있었다. 또 굴 앞에서 한 작은 요괴가 영자기라는 깃발을 휘둘러 보이고는 청당으로 뛰어 올라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소인이 산을 순찰하러 막 문을 나서는데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중 하나가 숲 속에 앉아 있사옵니다. 제가 조금 빨리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그놈에게 잡힐 뻔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어제 그 털북숭이 얼굴의 중은 보이지 않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손행자가 보이지 않으니 필시 바람에 불려 죽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디 가서 구원병을 청하러 간 것이로다!” 뭇 요괴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만일 정말로 그를 불어 죽였다면 우리의 큰 행운이옵니다만, 혹 죽이지 못하여 그가 신병을 좀 청해 온다면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늙은 요괴가 말했다. “그놈이 무섭기나 하냐, 무슨 신병이 두렵단 말이냐! 내 바람의 기세를 능히 잡아 누를 자는 영길보살이 오는 것뿐이니, 그 나머지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되느니라!” 행자가 대들보 위에서 그 한마디를 듣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 몸을 빼어 날아 나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숲 속에 이르러 “동생아!” 하고 불렀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형님은 어디를 다녀오셨사옵니까? 방금 영자기를 든 요괴 하나가 있었는데 제가 쫓아버렸사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네 덕이다! 네 덕이로다! 이 늙은 원숭이가 모기로 변해 그 굴에 들어가 스승님을 살펴보니, 스승님이 정풍장 기둥에 묶인 채 울고 계시더라. 이 늙은 원숭이가 울지 말라고 분부하고, 또 대들보 위로 날아가 잠깐 듣고 있었느니라. 그 영자기를 든 자가 헐떡거리며 들어가 아뢰되, 다만 너에게 쫓겼을 뿐 나는 보지 못했다 하더라. 늙은 요괴가 이리저리 짐작하며 제멋대로 말하기를, 이 늙은 원숭이는 바람에 불려 죽었다 하고, 또 신병을 청하러 갔다 하더라. 그런데 그가 스스로 한 사람을 불어 놓았으니, 참으로 묘하다! 참으로 묘하구나!” 팔계가 말했다. “그가 불어 놓은 이가 누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그놈이 무슨 신병이 무섭냐, 그 누가 내 바람 기세를 능히 잡아 누르겠느냐고 하면서, 다만 영길보살이 오는 것뿐이라 하더라. 그러나 영길이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구나.”
바로 그렇게 의논하고 있는데 큰길 옆에서 늙은 영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가 어떤 모습인지 보니 이러하였다. 몸이 튼튼해 지팡이도 짚지 않고, 얼음 같은 수염과 눈 같은 귀밑머리가 덥수룩하네. 금빛 꽃이 눈부셔 뜻이 아득하고, 마른 뼈와 쇠한 힘줄은 도리어 억세도다. 등 굽히고 고개 숙인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짙은 눈썹에 붉은 얼굴은 어린아이 같구나. 그 생김새를 사람들이 칭송하니, 마치 수성노인이 동천에서 나오는 듯하도다. 팔계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사형이여, 속담에 이르기를 산 아래 길을 알려거든 오고 가는 이에게 물으라 하였사옵니다. 형님이 앞으로 나가 한마디 물어보시면 어떠하옵니까?” 과연 그 대성은 쇠 몽둥이를 감추고 옷자락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가 말했다. “노인장, 인사드리옵니다.” 그 늙은이는 대답하는 듯 마는 듯 답례하며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온 중이오? 이 황량한 들판에서 무슨 일이오?” 행자가 말했다. “우리는 경전을 구하러 가는 중들이오. 어제 이곳에서 스승님을 잃었는데, 특별히 노인장께 한마디 여쭙고자 하오. 영길보살이 어디 사시옵니까?” 그 늙은이가 말했다. “영길은 정남쪽에 있소. 거기까지 아직 이천 리가 남았소. 거기 산 하나가 있는데 이름을 소수미산이라 하오. 산중에 도량이 있으니 보살이 경을 강론하는 선원이오. 그대들이 그의 경을 받으러 가는 길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의 경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오. 내 그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소.” 그 늙은이가 손으로 남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염창 같은 좁은 길이 바로 그 길이오.” 그 말에 속아 손오공이 고개를 돌려 길을 보는 사이에, 그 영감은 맑은 바람으로 변해 조용히 사라졌는데, 다만 길가에 종이 쪽지 한 장이 떨어져 있었고 그 위에 네 구절의 게송이 적혀 있었으니 이러하였다. “제천대성께 올려 들려 드리노니, 이 늙은이는 바로 이장경이로다. 수미산에는 비룡장이 있으니, 영길이 당년에 부처의 병기를 받았느니라.” 행자가 그 쪽지를 집어 들고 몸을 돌려 길로 내려왔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우리 요즘 운수가 바닥났사옵니다. 이 이틀 동안 낮에 귀신을 보았사옵니다! 바람으로 변해 사라진 저 늙은이는 누구옵니까?” 행자가 그 쪽지를 팔계에게 건네주었고, 팔계가 읽고 나서 말했다. “이장경이 누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서방 태백금성의 이름이니라.” 팔계는 놀라 허공을 향해 절하며 말했다. “은인이시여! 은인이시여! 이 늙은 돼지가 만일 금성이 옥황상제께 아뢰어 윤허받은 덕을 입지 않았다면, 목숨이 무엇으로 변했을지도 모를 일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너도 은혜를 알 줄 아는구나. 그러나 나서지 말고 이 숲 깊은 곳에 숨어 행장과 말을 조심스레 지켜라. 이 늙은 원숭이가 수미산을 찾아 보살을 모셔 오마.” 팔계가 말했다. “알았사옵니다! 알았사옵니다! 형님은 다만 어서 앞으로 가시옵소서! 이 늙은 돼지는 거북의 법을 배웠사온데, 머리를 움츠릴 때면 우선 움츠리는 법이지옵니다.”
손오공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근두운을 타고 정남쪽을 향해 곧장 올라가니 과연 빠르고도 빨랐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삼천 리를 지나고, 허리를 한번 비트는 사이에 팔백 리가 넘는 길을 달렸다. 잠시 뒤에 높은 산 하나가 보이는데, 산허리쯤에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오르고 상서로운 기운이 자욱하였으며, 산골짜기에는 과연 선원 한 채가 있었다. 종과 경쇠 소리가 그윽하게 울려 퍼리고, 향 연기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대성이 곧장 문 앞에 이르니 목에 염주를 걸고 입으로 불경을 외는 도인 하나가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도인이여, 인사드리오.” 그 도인이 몸을 굽혀 답례하며 말했다. “어디서 오신 나리시오?” 행자가 말했다. “이곳이 영길보살이 경을 강론하시는 곳이오이까?” 도인이 말했다. “이곳이 바로 그러하옵니다. 무슨 말씀이 있으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번거롭겠소만 노인장께서 전해 주시기를 청하오. 나는 동쪽 큰 당나라 황제의 의동생이신 삼장법사의 제자로서, 제천대성 손오공 행자라 하오. 지금 일이 하나 있어서 보살을 뵙고자 하오.”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나리, 글자도 많고 말씀도 많아 나는 다 외울 수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당승의 제자 손오공이 왔다고만 말하시오.” 도인이 그 말대로 강당으로 올라가 전하니, 그 보살이 곧 가사를 입고 향을 돋우며 마중 나왔다.
이 대성이 걸음을 옮겨 문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니, 온 방이 비단으로 장식되고 온 집안이 위엄에 차 있었다. 뭇 제자들이 일제히 《법화경》을 외고, 늙은 반수는 금으로 부은 경쇠를 가볍게 두드렸다. 부처님 앞에 올린 공양은 모두 신선의 과일과 꽃이요, 안상에 차린 것은 모두 채소로 만든 음식이었다. 찬란한 보배 촛불은 가닥가닥 금빛 불꽃이 무지개를 쏘고, 그윽한 참된 향은 줄기줄기 옥빛 연기가 채색 안개를 날려 보냈다. 바로 그곳은 강론을 마치고 마음이 한가로워진 뒤에야 비로소 선정에 드는 곳이니, 흰 구름이 조각조각 소나무 가지를 감돌고, 지혜의 칼을 고요히 거두니 마두가 끊어지며, 반야바라의 훌륭한 모임이 높도다. 그 보살이 옷을 여미고 나와 맞이하니, 행자가 당에 올라 손님 자리에 앉았고, 보살은 차를 내오라고 명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차는 사양하겠나이다. 다만 내 스승님이 황풍산에서 난을 만났사옵니다. 특별히 보살께서 큰 법력을 베푸시어 요괴를 항복받고 스승님을 구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보살이 말했다. “나는 여래의 법령을 받들어 이곳에서 황풍괴를 감시하느니라. 여래께서 나에게 정풍단 한 알과 비룡보장 한 자루를 하사하셨도다. 당시 내가 그를 잡아 목숨을 살려 주고, 몸을 숨겨 산으로 돌아가 살생도 죄도 짓지 말라 방면하였거늘, 그가 오늘 그대의 스승을 해치려 하여 법령을 어겼으니 이는 나의 죄이로다.” 그 보살이 행자를 붙잡아 공양을 차려 함께 이야기하려 하였으나 행자가 간곡히 사양하므로, 보살은 곧 비룡장을 가지고 대성과 함께 구름을 타고 떠났다. 오래지 않아 황풍산에 이르렀다. 보살이 말했다. “대성이여, 이 요괴는 나를 조금 두려워하느니라. 나는 구름 속에 가만히 머물 터이니, 그대가 내려가 싸움을 걸어 그놈을 밖으로 꾀어내면 내가 법력을 베풀기 좋으리라.” 행자가 그 말대로 구름머리를 내려놓고는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쇠 몽둥이를 뽑아 들어 그 굴 문을 박살 내며 외쳤다. “요괴야, 내 스승님을 도로 내놓아라!”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들이 놀라 급히 안으로 전하였다. 그 요괴가 말했다. “이 망할 원숭이가 참으로 무례하구나! 선히 항복하지 않고 도리어 내 문을 부수다니! 이번에 나가면 신풍을 부려 기어이 불어 죽이고야 말리라!” 그는 전처럼 갑옷을 갖추고 손에 강철 삼지창을 쥐고 또 문 밖으로 나와, 행자를 보자 말도 없이 창을 들어 가슴을 향해 찔러 왔다. 대성이 몸을 옆으로 비켜 피하고는 몽둥이를 들어 맞받아쳤다. 몇 합이 되지 않아 그 요괴가 고개를 돌려 손 방위를 향해 입을 벌려 바람을 부르려 하는데, 그때 반공중에서 영길보살이 비룡보장을 내려 던지며 무슨 주문을 외었는지, 그것이 여덟 발톱의 금빛 용이 되어 두 앞발을 벌려 단번에 요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잡아 두세 번 내동댕이쳐 산바위 벼랑에 내리치니 본래 모습이 드러났는데, 바로 누런 털의 족제비였다. 행자가 달려들어 몽둥이를 들어 내리치려 하자 보살이 막으며 말했다. “대성이여, 그의 목숨을 상하게 말라. 나는 그를 데리고 여래를 뵈러 가야 하느니라.” 그리고 행자에게 말했다. “그는 본래 영산 기슭에서 도를 얻은 쥐인데, 유리 잔의 맑은 기름을 훔쳐 등불이 어두워지자 금강이 잡을까 두려워 달아났고, 이곳에 와서 정을 이루어 요괴 노릇을 하였느니라. 여래께서 그를 비추어 보고 죽을 죄는 아니라 하여 나에게 감시를 맡기셨거늘, 그가 살생하며 죄를 짓는 통에 영산으로 데려갔었도다. 이제 또 대성을 거스르고 당승을 해쳤으니, 내가 그를 데리고 여래를 뵙고 죄를 바로잡아야 이 공적으로 삼을 수 있느니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보살에게 사례하였다. 보살이 서쪽으로 돌아간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치겠다.
말하자면, 저팔계는 그 숲 속에서 한창 행자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산비탈 아래에서 “오능 동생아,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오너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멍청이는 그 소리가 행자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리고 급히 행장을 수습하여 숲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행자를 만나 말했다. “형님, 일을 어찌 하셨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영길보살을 모셔 와서 비룡장으로 요괴를 잡았는데, 원래 누런 털 족제비가 정을 이룬 것이었소. 보살이 그놈을 데리고 영산으로 가서 여래를 뵙고 온다오. 나와 너는 굴에 들어가 스승님을 구하자꾸나.” 그 멍청이는 그제야 환희에 넘쳐 기뻐하였다.
두 사람은 안으로 뛰어들어가 그 굴에 있던 교활한 토끼와 여우 요괴, 사향 노루와 뿔 달린 사슴 따위를 모조리 찾아내어, 갈고리 달린 쇠스랑과 쇠 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때려 죽였다. 그런 뒤 뒤뜰로 가 스승님께 절을 올리고 구해 냈다. 스승님이 문을 나서며 물었다. “너희 둘이 어떻게 요괴를 잡았으며, 무슨 수로 나를 구해 낸 것이냐?” 행자가 영길보살을 모셔 와 요괴를 항복받은 사정을 빠짐없이 아뢰니, 스승님은 고마움을 다 표할 길이 없었다. 그 형제들은 굴 속에 있던 채소류를 모아 차와 밥을 좀 차려 먹고 나서야 비로소 문을 나서 큰길을 찾아 서쪽으로 향해 갔다.
결국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