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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7 제37회 귀왕야알당삼장(鬼王夜謁唐三藏) · 오공신화인영아(悟空神化引嬰兒)

말하자면, 삼장법사가 보림사 선방 안에 앉아 등불 아래에서 한참 동안 《양황수참》을 외우고 또 한참 동안 《공작진경》을 살펴보다가, 삼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경본을 주머니에 싸 넣고 일어나 자려 하였다.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퍼덕퍼덕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사르르 하는 거센 바람 한 줄기가 휩쓸며 불어닥쳤다.

그 장로는 등불이 꺼질까 두려워 황급히 편삼 소매로 불을 가렸으나, 등불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하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때 피로까지 몰려와 경안에 엎드려 깜박 졸았는데, 비록 눈은 감겨 몽롱하나 마음은 여전히 또렷하여, 귓가에는 창밖에서 음풍이 스치는 소리가 가늘게 울려 들려왔다.

좋은 바람이로다. 참으로 싸락싸락 스산하고 펄펄 나부끼는구나. 싸락싸락 지는 낙엽을 날리고, 펄펄 떠가는 구름을 말아 올린다. 하늘 가득한 별자리가 모두 흐릿해지고, 온 땅의 티끌과 모래가 한껏 흩날린다. 한바탕은 사납고 한바탕은 순하니, 순할 적에는 송죽이 맑은 가락을 두드리고 사나울 적에는 강호의 물결이 흐려진다. 불어 대니 산새는 깃들 곳을 잃고 목이 메어 울고, 바다 고기는 붙일 데 없어 펄쩍펄쩍 뛰는구나. 동서 관각의 문과 창이 떨어져 나가고, 앞뒤 행랑에서는 귀신이 놀라 우짖는다. 불전의 화병은 불려 땅에 떨어지고, 유리등이 흔들려 지혜의 등불이 흐릿해진다. 향로가 기울어져 향재가 사방으로 튀고, 촛대가 비뚤어져 촛불이 옆으로 기운다. 당번과 보개가 모두 흔들려 꺾이고, 종루와 고각은 뿌리째 뒤흔들린다.

그 장로가 어렴풋한 꿈속에서 바람 소리가 한차례 지나가는 것을 듣고 있는데, 선당 밖에서 희미하게 “스승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홀연히 고개를 들어 꿈속에서 바라보니, 문밖에 한 사내가 서 있었는데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흘러내리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입으로는 쉬지 않고 “스승님! 스승님!” 하고 불렀다. 삼장법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너는 도깨비나 요망한 귀신, 신괴나 요사한 마귀가 아니냐? 어찌 깊은 밤에 이리로 와 나를 희롱하려느냐? 나는 탐욕과 성냄을 품은 무리가 아니니라. 나는 본래 광명정대한 승려로서, 동토 대당의 뜻을 받들어 서천으로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자니라. 내 수하에 세 제자가 있는데, 모두 항룡복호의 영웅호걸이요 괴물을 쓸고 마귀를 없애는 장사들이니라. 그들이 너를 보기만 하면 시체를 부수고 뼈를 가루로 만들어 미진으로 변하게 하리라. 이는 내 큰 자비의 뜻이요 방편의 마음이니, 너는 일찍 몸을 숨겨 멀리 달아나고 내 선문에는 발을 들이지 말라.” 그 사람이 선당에 기대어 서서 말했다. “스승님, 저는 요마귀괴도 아니옵고 망량이나 사신도 아니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네가 그런 무리가 아니라면, 깊은 밤에 이곳에 와서는 무엇을 하려느냐?”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눈을 들어 저를 한번 보아 주옵소서.” 장로가 과연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바라보니, 아! 그의 머리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충천관을 쓰고, 허리에는 벽옥대를 두르고, 몸에는 날아오르는 용과 춤추는 봉황을 수놓은 적황포를 걸치고, 발에는 구름 무늬를 수놓은 신을 신었으며, 손에는 별을 늘어세운 백옥규를 쥐고 있었다. 얼굴은 동악장생제를 닮았고, 몸매는 문창개화군을 방불케 하였다. 삼장법사가 이를 보고 크게 놀라 안색이 변하여, 급히 몸을 굽히고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어느 조정의 폐하이시니이까? 앉으소서.” 손을 뻗어 급히 부축하려 하였으나 허공만 움켜쥐었고, 몸을 돌려 도로 앉아 다시 보니 여전히 그 사람이었다. 장로가 물었다. “폐하, 어느 곳의 황왕이시며 어느 나라의 제주이시니이까? 나라가 편치 못하여 참소하는 신하에게 학대를 받고 한밤중에 이곳으로 도망쳐 오신 것이 분명하옵니다. 무슨 말씀이든 내게 들려주옵소서.” 그제야 그 사람은 뺨에 눈물을 떨구며 옛일을 털어놓고, 눈썹에 시름을 모으며 지난 인연을 하소연하여 말했다.

“스승님, 제 집은 정서쪽에 있사옵고, 이곳에서 불과 사십 리가량 떨어져 있나이다. 그쪽에 한 성지가 있으니, 바로 나라를 일으킨 터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곳을 무슨 지명이라 하오?”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께 숨기지 않고 아뢰올 것이옵니다. 짐이 그때 가업을 세우며 나라 이름을 오계국이라 고친 곳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께서 이토록 놀라 계시니,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나이까?”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이곳은 오 년 전에 하늘이 가뭄을 내려 풀씨조차 싹을 틔우지 못하고 백성이 모두 굶어 죽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나이다.”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해 말했다. “폐하,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가 바르면 천심이 순한다 하였느니라. 필경 폐하께서 만민을 어여삐 여기지 않으신 탓이니, 이미 흉년을 만났거늘 어찌 도성을 버리고 몸을 피하려 하시나이까?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제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쳐 오늘의 선을 다시 일으키며, 억울하게 법에 걸린 사람들을 놓아 주소서. 그리하면 저절로 천심이 화합하여 비와 바람이 순조로우리라.” 그 사람이 말했다. “나라 안의 곳간은 텅 비고 돈과 양식이 바닥나, 문무 양반이 녹봉을 받지 못하고 과인의 수라에도 고기가 없사옵니다. 우왕이 물을 다스린 일을 본받아 만민과 함께 고락을 나누고, 목욕재계하며 밤낮으로 분향하여 기도하였나이다. 그렇게 삼 년을 하였으나 겨우 강이 마르고 우물이 말라 버렸을 뿐이옵니다. 온 나라가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 홀연히 종남산에서 전진 도사 하나가 찾아왔는데,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며 돌을 금으로 바꿀 줄 아는 자이옵니다. 먼저 문무 여러 관원을 만나고 뒤에 짐을 만났기에, 즉시 그를 단에 올려 기도하게 하였더니 과연 응험이 있어, 영패가 울리는 곳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큰비가 쏟아졌나이다. 과인은 석 자 비면 넉넉하려니 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오래 가물어서는 적시기 어렵다 하여 두 치를 더 내렸나이다. 짐이 그의 의로움을 기특히 여겨 팔배를 교환하고 형제로 칭하였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는 폐하께 천만 가지 경사가 겹친 일이옵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경사가 어디서 온단 말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전진이 이런 재주를 지녔거늘, 비가 필요하면 비를 내리게 하고 금이 필요하면 금을 만들게 하면 그만일 터인데, 무엇이 모자라 도성을 떠나 이리로 오셨나이까?” 그 사람이 말했다. “짐이 그와 함께 자고 먹은 것은 겨우 이 년뿐이었나이다. 그러다 양춘의 좋은 철을 만나 붉은 살구와 고운 복숭아가 꽃을 피우고 꽃술을 터뜨리니, 집집의 사녀며 곳곳의 왕손들이 모두 봄놀이를 나섰나이다. 그 무렵 문무는 관아로 돌아가고 빈비는 깊은 궁원으로 물러갔나이다. 짐이 그 전진과 손을 잡고 천천히 어화원으로 거닐다가 팔각유리정 우물가에 이르렀는데, 그가 무슨 물건을 집어 던졌는지 우물 속에서 만 갈래 금빛이 번쩍였나이다. 무슨 보배가 있다며 짐을 우물가로 꾀어 낸 뒤, 그자가 갑자기 흉심을 품고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과인을 우물 속으로 밀어 넣고는, 돌판으로 우물 입구를 덮고 그 위에 흙을 쌓아 파초 한 그루를 옮겨 심었나이다. 가련하옵니다, 저는 이미 죽은 지 삼 년이 되었사옵고, 우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원통한 귀신이옵니다!”

삼장법사가 귀신이라 일컫는 말을 듣고 놀라 근육이 풀리고 힘이 빠지며 머리털이 곤두섰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어 그에게 물었다. “폐하, 하시는 말씀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사옵니다. 이미 죽은 지 삼 년이라 하시는데, 그 문무 여러 관원과 삼궁의 황후가 조회마다 편전에서 알현을 받으면서도 어찌 폐하를 찾지 않았단 말이오?”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그자의 재주를 말하자면 과연 세상에 드물 정도이옵니다! 짐을 해친 뒤 그 자리에서 화원 안에서 몸을 한번 흔들어 짐의 모습으로 변했는데, 터럭 하나 차이가 없사옵니다. 지금은 내 강산을 차지하고 내 국토를 남몰래 침범하였나이다. 내 양반 문무와 사백의 조관, 삼궁의 황후와 육원의 빈비까지 모두 그자의 것이 되고 말았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 참으로 유약하시오.” 그 사람이 말했다. “무엇이 유약하단 말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 그 괴물에게도 그런 신통이 있어 폐하의 모습으로 변하고 폐하의 건곤을 침범하였으되, 문무는 알아보지 못하고 후비는 깨닫지 못하니 오직 폐하만이 죽은 사정을 밝히 아시오. 어찌하여 음사의 염왕에게 갖추어 고발하여 원통한 사정을 하소연하지 않으셨나이까?” 그 사람이 말했다. “그자는 신통이 광대하고 관리들과 정분이 두터워, 도성황이 늘 그와 술자리를 함께하고 해용왕이 모두 그와 인척이며, 동악천제는 그의 좋은 벗이요 십대 염라는 그의 의형제이옵니다. 이러하니 내가 아뢸 문이 없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 음사에서 그를 고발할 힘이 없거늘, 내가 있는 양세간에는 무엇 하러 오셨나이까?”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저 같은 원혼이 어찌 감히 스승님의 문전에 오를 수 있사옵니까? 산문 앞에는 호법제천과 육정육갑, 오방게제와 사치공조, 그리고 열여덟 분의 호교가람이 안마를 바싹 따라 모시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방금 야유신이 신풍 한 차례를 일으켜 저를 이 안으로 보내 주었나이다. 그가 일러 주기를 내 삼 년 수재가 이제 끝날 때가 되었으니 스승님을 배알하러 오라 하였나이다. 또 스승님 수하에 제천대성이라는 큰 제자가 있어 괴물을 베고 마귀를 항복받는 데 능하다 하였나이다. 이제 지극한 마음으로 뵙고 간절히 청하옵나니, 부디 내 나라에 오셔서 요마를 잡아 주시고 사정과 바름을 밝혀 주옵소서. 짐은 마땅히 결초함환의 정성으로 스승님의 은혜를 갚으리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 이렇게 오신 것은 내 제자를 청하여 그 요괴를 없애 달라고 하려는 것이오?” 그 사람이 말했다. “옳소! 옳소!” 삼장법사가 말했다. “내 제자는 다른 일에는 서툴지만 요괴를 항복받고 괴물을 잡는 일이라면 그에게 꼭 들어맞는 일이니라. 폐하, 그에게 괴물을 잡게 하는 것은 좋으나 이치상 행하기 어려울까 두렵도다.” 그 사람이 말했다. “어찌 행하기 어렵단 말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괴물이 신통이 광대하여 폐하와 똑같이 변하였고, 온 조정의 문무가 하나같이 말도 화하고 마음도 순하며, 삼궁의 비빈이 하나같이 뜻이 맞고 정이 통하니, 내 제자가 재주가 있다 한들 감히 가볍게 무기를 쓰지는 못하리라. 만일 여러 관원에게 잡혀 우리더러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고 나라를 멸한다 하여 대역죄를 물어 성중에 가두어 버린다면,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니를 새기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뇨?”

그 사람이 말했다. “내 조정에는 아직 사람이 있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참 잘되었소! 참 잘되었소! 필시 한 대의 친왕이나 시장이 어딘가를 지키러 보내진 것이로구려.” 그 사람이 말했다. “아니옵니다. 내 본궁에 태자가 하나 있사오니, 내가 친히 낳아 세운 저장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태자는 필시 요마에게 쫓겨난 것이로구려?” 그 사람이 말했다. “아니옵니다. 태자는 금란전 위와 오봉루 가운데에서 학사와 더불어 글을 강론하기도 하고 전진과 함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나이다. 그런데 그 뒤 삼 년 동안 태자가 황궁에 들어오지 못하게 금하여 모후와 만나지도 못하게 하였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이오?” 그 사람이 말했다. “이는 요괴가 부린 계책이옵니다. 모자가 서로 만나 한가로운 가운데 길고 짧음을 논하다가 소식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한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둘이 얼굴을 맞대지 못하게 하여 그자가 길이길이 앉아 있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의 재액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 하나 나와 서로 비슷하구려. 그때 내 아버지는 수적에게 목숨을 잃고 내 어머니는 수적에게 욕을 당하였으며, 석 달이 지나 나를 낳았느니라. 나는 물속에서 목숨을 건졌고, 다행히 금산사의 은사께서 거두어 길러 주어 사람이 되었느니라. 내 어릴 적 부모가 없던 일을 떠올리면, 이곳의 그 태자가 부모를 잃은 사정이 부끄럽고 딱하기 그지없구려!” 또 물었다. “조정에 태자가 있다 한들 내가 어찌 그를 만날 수 있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어찌 만나지 못하겠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는 요마에게 얽매여 한 몸에서 난 어미조차 만나지 못하거늘, 나 같은 중이야 무슨 수로 만나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태자는 내일 아침 조정을 나올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물었다. “조정을 나와 무엇을 한단 말이오?” 그 사람이 말했다. “내일 아침 삼천 인마를 거느리고 매와 개를 부려 성 밖으로 사냥을 나올 터이니, 스승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만나실 수 있사옵니다. 만나거든 제 말을 그에게 일러 주옵소서. 그러면 그도 믿게 되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는 본래 육안범태라 요마에게 홀려 편전에 있는데, 어느 날인들 몇 차례나 부왕을 부르지 않으리오? 그런 그가 어찌 내 말을 믿으려 하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그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면, 표적 하나를 스승님께 남겨 두리이다.” 삼장법사가 물었다. “어떤 물건이오?” 그 사람이 손에 쥐고 있던 금상백옥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물건이 표적이 될 수 있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물건이 어떠하오?” 그 사람이 말했다. “전진이 내 모습으로 변한 뒤로 다만 이 보배만은 변하지 못하였나이다. 그가 궁중에 들어와서는 기우하던 전진이 이 규를 가로채어 달아났다 하였고, 그 뒤 삼 년이 되도록 이 물건이 없사옵니다. 내 태자가 이를 보거든 물건을 보고 사람을 그리워하여 이 원수를 반드시 갚으려 할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좋소, 내가 맡아 두고 제자에게 분부하여 처치하게 하리다. 그런데 어디서 기다리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나도 감히 기다리지 못하옵니다. 이대로 가서 야유신에게 다시 신풍 한 차례를 부탁하여 나를 황궁 내원으로 보내 달라 하고, 내 정궁 황후에게 꿈 하나를 내려 모자가 뜻을 합하게 하고 사부와 제자들도 한마음이 되게 하리이다.” 삼장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해 말했다. “가 보시오.”

그 원혼이 머리를 조아려 작별하고 걸음을 옮겨 배웅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며 한차례 나동그라졌다. 그 바람에 삼장법사가 놀라 깨어났으니, 실로 남가일몽이었도다. 황망히 흐릿한 등잔을 마주하고 다급히 불렀다. “제자야! 제자야!” 팔계가 잠에서 깨어 말했다. “무슨 토지, 토지요? 내가 호한 노릇을 하던 때에는 오로지 사람을 잡아먹으며 세월을 보내고 고기반찬을 실컷 즐겼으니 참으로 즐거웠거늘, 하필 당신이 출가하는 바람에 우리더러 당신을 보호하며 길을 뛰라 하였지! 처음에는 그저 중이나 하자더니, 이제 와서는 종으로 부려 낮에는 보따리를 지고 말을 끌고, 밤에는 요강을 들고 발을 덥혀 주라 하니! 이 깊은 밤에 자지도 않고 또 제자를 불러 무엇 하려는 게요?”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내가 방금 상에 엎드려 졸다가 괴상한 꿈을 꾸었노라.” 행자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스승님, 꿈은 생각에서 오느니라. 스승님은 산에도 오르기 전에 요괴를 먼저 두려워하고, 또 뇌음사까지 길이 멀어 당도하지 못할까 걱정하며, 장안을 그리워하여 어느 날에나 돌아갈지 모르니, 생각이 많아 꿈도 많으니라. 이 늙은 원숭이처럼 한결같은 참마음으로 서방의 부처님을 뵙고자 하는 자에게는 꿈 하나 스며들 틈이 없느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내가 꾼 이 꿈은 고향을 그리는 꿈이 아니니라. 방금 눈을 감자 광풍 한 차례가 지나가는 사이 선방 문밖에 한 조정의 황제가 나타났는데, 스스로 오계국왕이라 일컬으며 온몸이 물에 젖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하였노라.” 하며 꿈속의 말을 하나하나 행자에게 이야기하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더 말할 것도 없소. 그가 와서 스승님께 꿈을 부탁한 것은 분명 이 늙은 원숭이에게 장사 한 건을 맡긴 것이니라. 필시 어디선가 요괴가 왕위를 빼앗고 나라를 노리고 있으니, 내가 가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 주리라. 그 요마야 내 몽둥이가 닿는 곳마다 곧 성공을 보리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그 괴물이 신통이 광대하다 하더구나.” 행자가 말했다. “광대한 게 무에 대수요! 이 늙은 원숭이가 온 줄 일찍 알면 달아날 곳조차 없으리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또 표적으로 남긴 보배가 하나 있다고 기억하노라.” 팔계가 대답했다. “스승님, 헛된 집착을 마옵소서. 꿈 하나 꾼 것을 가지고 어찌 줄곧 참말로만 여기시나이까?” 사승이 말했다. “곧은 이의 곧음을 믿지 말고, 어진 이의 어질지 못함을 모름지기 경계하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불을 켜고 문을 열어 보면 그만이옵니다.” 행자가 과연 문을 열고 모두 함께 살펴보니, 별과 달빛 아래 섬돌 처마 위에 참으로 금상백옥규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팔계가 앞으로 다가가 집어 들며 말했다. “형님, 이게 무슨 물건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는 국왕이 손에 쥐던 보배로 이름을 옥규라 하느니라. 스승님, 이 물건이 있으니 그 일이 참말인 듯하옵니다. 내일 요괴를 잡는 일은 모두 이 늙은 원숭이에게 맡기시되, 다만 스승님께서 세 가지로 재화가 낮으셔야 하리라.” 팔계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꿈 하나 꾼 것을 가지고 또 그에게 일러바치셨소. 저 원숭이가 사람을 골려 먹는 일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소? 벌써 스승님더러 세 가지로 재화가 낮다 하지 않소.”

삼장법사가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 세 가지가 무엇이냐?” 행자가 말했다. “내일 스승님께서는 물동이를 이시고, 욕을 보시며, 재앙을 당하셔야 하리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한 가지만 되어도 어려운 일인데, 세 가지야 어찌 견디시겠소?” 당승은 총명한 장로인지라 물었다. “제자야, 이 세 일을 어찌 말하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구태여 말할 것도 없소. 내가 먼저 스승님께 물건 두 개를 드리리다.”

과연 좋은 대성이라, 터럭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를 한 입 불고 “변해라!” 하고 외치니, 붉은 금칠을 한 함 하나로 변하였다. 백옥규를 그 속에 담아 두고 말했다. “스승님, 이 물건을 손에 받쳐 들고 날이 밝거든 금란가사를 걸치고 정전에 앉아 경을 외우고 계시오. 나는 그 성지가 어떤 곳인지 가 보고 오리다. 과연 요괴라면 때려 죽여 이곳에서 공적을 세우리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괜히 화를 불러들이지 않으리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옳소! 옳소!” 행자가 말했다. “그 태자가 성을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참으로 꿈대로 성 밖으로 나온다면 내가 반드시 그를 끌어다 스승님을 뵙게 하리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나를 만나거든 어찌 맞아 대답하란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그가 이를 때에 내가 먼저 알리리다. 스승님께서는 그 함 뚜껑을 조금 열어 두시고, 나는 두 치쯤 되는 작은 중으로 변해 함 속으로 들어가리니, 스승님께서는 나까지 함께 손에 받쳐 드시오. 그 태자가 절에 들어오면 반드시 부처님께 예배할 터인데, 그가 무슨 절을 하든 아랑곳하지 마시오. 스승님께서 몸도 움직이지 않으시니 틀림없이 잡아들이라 할 것이오. 그때는 잡혀 내려가며 때리는 대로 맡기시고, 묶는 대로 맡기시고, 죽이는 대로 맡기시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아! 그의 군령이 엄한데 참으로 나를 죽여 버리면 어찌 좋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시오, 내가 있지 않소? 위급한 고비에 이르면 내가 자연히 스승님을 보호하리다. 그가 물어 보거든 동토의 흠차로서 서천으로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며 보배를 바치러 가는 중이라 하시오. 그가 무슨 보배가 있느냐 물으면 금란가사를 들어 한바탕 일러 주며 이르기를, ‘이는 세 번째 보배요, 그 위로 첫째와 둘째 좋은 물건이 더 있느니라’ 하시오. 또 무엇이든 물을 때마다 이 함 속에 보배가 하나 있어 위로 오백 년, 아래로 오백 년, 가운데로 오백 년, 모두 천오백 년의 지나간 일과 앞으로 올 일을 낱낱이 안다 하시고는 이 늙은 원숭이를 꺼내 주시오. 내가 그 꿈속의 말을 태자에게 일러 주리다. 그가 믿으려 한다면 곧 가서 그 요마를 잡아 주리니, 하나는 그 부왕의 원수를 갚는 일이요, 둘은 우리가 명절을 세우는 일이니라. 그가 믿지 않거든 다시 백옥규를 내어 보이시오. 다만 그가 나이 어려 아직 알아보지 못할까 염려될 뿐이오.”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자야, 이 계책이 참으로 묘하구나! 그런데 보배 하나는 금란가사요 하나는 백옥규라 하였거늘, 네가 변한 보배는 무슨 이름이라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입제화라 하면 되리다.” 삼장법사가 그 말대로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사부와 제자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으니, 머리를 끄덕여 부상에서 해를 불러 내고 입김을 뿜어 하늘 가득한 별을 흩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래지 않아 동쪽 하늘이 훤히 밝아왔다. 행자가 또 팔계와 사승에게 분부하여 두 사람에게 일렀다.

“중들을 어지럽히며 밖으로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 내가 성공한 뒤에 너희와 함께 가리라.” 이에 당승과 작별하고 휘파람을 불며 한 차례 공중으로 뛰어올라 불눈을 크게 뜨고 서쪽을 바라보니, 과연 성지 하나가 보였다. 어찌하여 볼 수 있었느냐 하면, 앞서 그 성지가 절에서 사십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하였으니, 높은 곳에 오르면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행자가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또 괴이한 안개와 근심 어린 구름이 자욱하고 요사한 바람과 원한 어린 기운이 어지러이 서려 있었다. 행자가 공중에서 감탄하며 말했다. “참된 임금이 보좌에 오르면 저절로 상서로운 빛과 오색 구름이 있으려니와, 요괴가 용위를 침범한 탓에 검은 기운이 치솟아 금문을 잠갔구나.” 행자가 이렇게 감탄하고 있는데, 홀연히 포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또 동문이 열리는 곳에서 인마 한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참으로 사냥 나온 군사들이라, 과연 기세가 사나웠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새벽에 금성 동쪽을 나와 나누어 낮은 풀숲을 에워싸는데, 채색 깃발이 펼쳐져 햇빛에 비치고 백마가 달리며 바람을 맞는다. 악어 가죽 북이 둥둥 울리고 표창이 마주 부딪치며, 매를 받든 군사는 맹렬하고 개를 끈 장수는 날래고 늠름하다. 화포 소리가 하늘을 진동하고 끈끈이 장대가 햇빛에 붉게 비친다. 사람마다 쇠뇌 화살을 겨누고 저마다 조각한 활을 차고, 산비탈 아래에 그물을 치며 좁은 길 가운데 밧줄을 깐다. 벼락 같은 고함 소리 한 번에 천 기병이 맹수를 에워싸니, 교활한 토끼는 몸을 보전하기 어렵고 영리한 노루도 지혜가 다한다. 여우는 목숨이 다할 팔자요 사슴도 죽음을 면치 못하며, 산꿩은 날아 달아나기 어렵고 들닭이 어찌 흉을 피하리오. 그들은 모두 산을 차지하여 맹수를 잡고 수풀을 부수며 나는 벌레를 쏘려 하는구나.

그 사람들이 성을 나와 동쪽 교외로 흩어져 걸음을 옮기는데, 오래지 않아 이십 리쯤 되는 높은 밭 지대에 이르렀다. 또 중군 영채 안에 작은 장수 하나가 보였는데,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을 걸치고 배에는 꽃무늬 띠를 열여덟 단으로 동여맸으며, 손에는 청봉보검을 쥐고 황표마를 타고 허리에는 팽팽히 당긴 활을 찼다. 참으로 은은한 군왕의 상이며 늠름한 제주의 용모요, 규모가 범상한 무리가 아니며 거동에 참된 용이 드러났다. 행자가 공중에서 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저놈이 바로 황제의 태자로구나. 내 한번 놀려 보리다.” 과연 좋은 대성이라, 구름머리를 내려 군중 태자의 말 앞으로 뛰어들어 몸을 한번 흔들어 흰 토끼 한 마리로 변해서는 태자의 말 앞에서 마구 뛰어다녔다. 태자가 보고 마음이 흡족하여 화살을 집어 들고 활시위가 팽팽하도록 활을 당겨 쏘니, 화살 하나가 그 토끼에 정통으로 명중하였다. 이는 본래 그 대성이 일부러 맞아 준 것이니, 눈은 빠르고 손은 날래어 그 화살촉을 와락 잡아쥐고 깃 장식만 앞쪽에 떨어뜨린 뒤 발을 놓아 달아났다. 태자는 화살이 옥토끼에 맞은 것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홀로 앞장서서 쫓아왔다. 말이 달리는 것이 빠르면 행자는 바람처럼 달리고,

말이 달리는 것이 더디면 행자는 천천히 걸어 언제나 그 앞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렇게 한참씩 달려 태자를 보림사 산문 아래로 꾀어 온 행자가 본모습을 드러내니, 토끼는 보이지 않고 다만 화살 한 대가 문지방에 꽂혀 있었다. 곧바로 안으로 뛰어들어가 당승을 보고 말했다. “스승님, 왔소! 왔소!” 그러고는 또 한번 변하여 두 치 남짓한 작은 중으로 변해 붉은 함 속으로 들어갔다.

말하자면, 그 태자가 산문 앞까지 쫓아와 보니 흰 토끼는 보이지 않고 다만 문지방에 조각 깃 화살 한 대가 꽂혀 있었다. 태자가 크게 놀라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괴이하도다! 괴이하도다! 분명히 내 화살이 옥토끼에 맞았거늘 옥토끼는 보이지 않고 화살만 여기 있단 말인가! 해가 오래되어 정괴가 되었나 보다.” 화살을 뽑아 들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산문 위에 큰 글자 다섯이 씌어 있었으니 칙건보림사였다.

태자가 말했다. “이제 알겠노라. 지난해 무렵 내 부왕께서 금란전에서 관원을 보내 이 중들에게 금과 비단을 내려 불전과 불상을 수리하게 하신 일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오늘 이곳에 이르렀구나. 참으로 도원을 지나다 중과 이야기를 나누니 뜬 인생에 반나절 한가로움을 얻는다 하였거늘, 내 들어가 한번 돌아보리라.”

그 태자가 말에서 내려 막 들어가려는데, 호가하는 관장과 삼천 인마가 뒤따라와 떼를 지어 몰려들며 모두 산문 안으로 들어갔다. 놀란 본사 중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맞이하여 정전 가운데로 모셔 들여 불상에 참배하게 하였다. 막 고개를 들어 두루 둘러보며 회랑을 거닐며 경치를 즐기려 하는데, 홀연히 한가운데에 중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태자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중이 무례하도다! 내가 오늘 반조란가를 거느리고 산에 들어오는데, 비록 지의로 통지하지 않아 멀리까지 마중 나오지 않은 것은 탓할 수 없다 하나, 이제 군마가 문에 이르렀거든 일어나는 것이 마땅하거늘 어찌 아직도 앉아 움직이지 않는단 말인고!” 그러고는 외쳤다. “잡아 내려라!” 잡으라는 소리가 떨어지자 양쪽 교위가 일제히 손을 대어 당승을 끌어내리고 급히 밧줄을 풀어 묶으려 하였다. 행자가 함 속에서 묵묵히 주문을 외워 분부했다. “호법제천과 육정육갑은 들으라. 내가 이제 법을 세워 요괴를 항복받으려 하는데 이 태자가 알지 못하고 밧줄로 내 스승님을 묶으려 하니, 너희는 즉시 보호하라. 만일 참으로 묶이게 되면 너희 모두 죄가 있으리라!” 그 대성이 은밀히 분부하니 누가 감히 따르지 않으리오. 곧 삼장법사를 굳게 보호하여, 어떤 이들은 그의 민머리를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으니 마치 담장 하나가 가로막아 몸을 붙일 수 없었다. 태자가 말했다. “너는 어느 곳에서 와서 이런 은신법을 써서 나를 속이느냐!” 삼장법사가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빈승에게는 은신법이 없사옵니다. 저는 동토의 당승으로서 뇌음사에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며 보배를 바치러 가는 중이옵니다.” 태자가 말했다. “너희 동토는 비록 중원이라 하나 가난하기가 비할 데 없을 터인데 무슨 보배가 있단 말이오? 내게 일러 보아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내 몸에 걸친 이 가사가 세 번째 보배이옵니다. 그 위로 첫째와 둘째로 더 좋은 물건이 있사옵니다!” 태자가 말했다. “너의 그 옷은 한쪽은 몸을 가리고 한쪽은 팔을 드러냈으니 값이 얼마나 된다기에 감히 보배라 칭하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가사는 비록 온몸을 가리지는 못하나 시 몇 구절이 있사옵니다. 시에 이르기를, 불의는 한쪽 어깨를 드러냈으니 논할 것도 없거니와 그 속에 진여를 감추어 세속의 티끌을 벗었도다. 만 갈래 실과 천 개의 바늘로 정과를 이루고 아홉 구슬 여덟 보배가 원신을 모았도다. 선녀와 성녀가 공손히 지어 바쳐 선승에게 남기시니 더러운 몸을 씻어 맑히는구나. 임금을 뵙고도 맞지 않음은 차라리 그럴 수 있거니와, 네 아비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어찌 사람이라 하리오!”
태자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에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건방진 중이 허튼소리를 하는구나! 너의 그 반쪽짜리 옷을 가지고 입이 놀고 혀가 유창하다는 것만 믿어 좋다고 뽐내고 강하다고 자랑하느냐. 내 아비의 원수가 어디에서 갚히지 못했단 말이오? 내게 일러 보아라.”

삼장법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두 손을 모으고 물었다.

“전하, 사람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 몇 가지 은혜를 입사옵니까?” 태자가 말했다. “네 가지 은혜가 있느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이오?” 태자가 말했다. “천지가 덮어 실어 주는 은혜와 해와 달이 비추어 주는 은혜, 국왕의 물과 흙의 은혜, 부모가 길러 주는 은혜니라.” 삼장법사가 웃으며 말했다. “전하의 말씀에 잘못이 있사옵니다. 사람에게는 다만 천지가 덮어 실어 주고 해와 달이 비추어 주며 국왕의 물과 흙이 있을 뿐이거늘, 어디서 부모가 길러 주는 은혜가 온단 말이오?” 태자가 노하여 말했다. “중이란 놀고먹으며 머리를 깎고 임금을 거스르는 무리로다! 사람이 부모의 길러 줌을 받지 못하면 몸이 어디에서 왔단 말이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전하, 빈승은 알지 못하옵니다. 다만 이 붉은 함 속에 입제화라는 보배가 하나 있사온데, 위로 오백 년과 가운데 오백 년과 아래 오백 년, 모두 천오백 년의 지나간 일과 앞으로 올 일을 안다 하옵니다. 곧 부모가 길러 준 은혜가 없다는 사정도 알 터이니, 빈승더러 이곳에서 오래도록 기다리라 하였나이다.”

태자가 그 말을 듣고 분부했다. “가져오너라, 내 보리라.” 삼장법사가 함 뚜껑을 열어 젖히자 행자가 뛰어 나와 뒤뚱뒤뚱 하며 양쪽으로 마구 돌아다녔다. 태자가 말했다. “이 좁쌀만 한 것이 무엇을 알 수 있단 말이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작다고 얕잡힌 것이 못마땅하여 곧 신통을 부려 허리를 한번 쭉 펴니, 석 자 서너 치쯤 자라났다. 군사들이 놀라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자라니 며칠 지나지 않아 하늘을 뚫고 나가겠구나.” 행자는 본래 몸집에 이르러서는 더 자라지 않았다. 그제야 태자가 물었다. “입제화야, 이 늙은 중이 너는 앞으로 올 일과 지나간 일의 길흉을 안다 하더니, 너에게 점치는 거북이 있느냐? 시초풀로 점을 칠 것이냐? 책의 구절에 의지해 남의 화복을 판단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터럭만큼도 쓰지 않소. 오직 석 자 혀에 전적으로 의지하니 만사가 다 알려 있느니라.” 태자가 말했다. “이놈이 또 헛소리를 하누나. 예로부터 《주역》이라는 책이 지극히 현묘하여 천하의 길흉을 모두 판단해 사람으로 하여금 피하고 나아갈 바를 알게 하니, 그러므로 거북으로 점치고 시초풀로 점을 치는 것이니라. 네 말을 들어 보건대 무슨 이치에 근거하여 망령되이 화복을 말하고 인심을 선동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전하, 우선 서두르지 마옵소서. 내가 일러 드리리다. 전하는 본래 오계국왕의 태자이시니, 그곳은 오 년 전 해가 가물어 만민이 고초를 겪고 임금과 신하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나이다. 비 한 점 내리지 않을 무렵 종남산에서 도사 하나가 왔는데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며 돌을 금으로 바꾸는 데 능하였나이다. 임금이 인정이 넘치도록 그를 아껴 형제의 예를 갖추어 사귀었으니 이런 일이 있었소?” 태자가 말했다. “있었소, 있었소, 있었소! 그대 어서 더 말해 보아라.” 행자가 말했다. “그 뒤 삼 년째에는 전진이 보이지 않으니, 과인을 칭하는 자는 누구란 말이오?” 태자가 말했다.

“과연 전진이라는 자가 있어 부왕께서 그와 형제의 예를 갖추어 먹을 때도 함께 먹고 잘 때도 함께 잤나이다. 삼 년 전 어화원에서 경치를 즐기다가 그자가 신풍 한 차례를 일으켜 부왕의 손에 있던 금상백옥규를 종남산으로 거두어 갔는데, 지금까지도 부왕께서는 그를 그리워하시느니라. 그를 볼 수 없게 되자 즐기던 마음이 사라져 화원을 굳게 닫아 둔 지 이미 삼 년이 되었나이다. 그런즉 황제 노릇을 하는 이가 내 부왕이 아니고 누구란 말이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비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태자가 다시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다만 비웃기만 하였다. 태자가 노하여 말했다. “이놈이 마땅히 말할 터인데 말하지 않고 어찌 이리 비웃느냐?” 행자가 또 말했다.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소! 다만 좌우에 사람이 많아 말할 자리가 못 되오.” 태자가 그의 말에 까닭이 있음을 알고 포신을 한번 펼쳐 보이며 군사들에게 잠시 물러나라 하였다. 수레와 말 위의 관장이 급히 명을 전하여 삼천 인마를 모두 문 밖으로 나가 주둔하게 하였다. 이때 전각 위에는 사람이 없어 태자가 위쪽에 앉고 장로가 앞쪽에 섰으며 왼편 곁에 행자가 섰다. 본사의 중들이 모두 물러간 뒤에야 행자가 바른낯으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전하, 바람을 타고 가 버린 이가 전하를 낳아 주신 부왕이시오. 지금 보좌에 앉아 있는 이는 기우하던 그 전진이옵니다.” 태자가 말했다. “허튼소리! 허튼소리! 내 부왕께서는 전진이 떠난 뒤로 비와 바람이 순조롭고 나라가 태평하며 백성이 편안하시니라. 네 말대로라면 내 부왕이 아니란 말이로다. 내가 나이 어려서 너를 용서하거니와, 내 부왕께서 네 이런 말을 들으시거든 잡아다가 만단으로 찢으실 것이니라!” 하며 행자를 꾸짖어 쫓아 내렸다. 행자가 당승에게 말했다. “어떻소? 내가 그가 믿지 않으리라 하였거늘 과연, 과연 그렇소! 이제 그 보배를 내어 주고 관문을 바꾸어 서방으로 가 버립시다.” 삼장법사가 곧 붉은 함을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받아 들고 몸을 한번 떨자 그 함은 홀연히 사라졌으니, 본래 그의 터럭이 변한 것을 몸에 도로 거두어 들인 것이었다. 그러고는 백옥규를 두 손으로 받쳐 태자에게 올렸다.

태자가 보고 말했다. “좋은 중이로다! 좋은 중이로다! 네가 오 년 전에는 본래 전진으로서 우리 집의 보배를 속여 갔거늘, 이제 와서는 중으로 분장하고 와서 바치려 드누나!” 그러고는 외쳤다. “잡아라!” 명령이 한 번 떨어지자 놀란 장로가 황급히 행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필마온 같은 놈! 헛된 화만 끌어다 날더러 물게 하는구나!”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모두 가로막고 말했다. “떠들지 마시오! 바람이 새어 나가게 마오! 나는 입제화라 하지 않소. 따로 참이름이 있느니라.” 태자가 노하여 말했다. “이리 올라오너라! 네 참이름을 물어 법사로 보내 죄를 정하리라!” 행자가 말했다. “나는 저 장로의 큰 제자로 이름을 오공이라 하고 손행자라 부르느니라. 내 스승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다가 어젯밤 이곳에 이르러 묵게 되었노라. 내 스승님이 밤에 경권을 읽으시다가 삼경 무렵 꿈을 꾸었는데, 꿈에 전하의 부왕께서 나타나 말하기를, 자신이 그 전진에게 속아 해를 입고 어화원 팔각유리정 우물 속에 밀려 들어갔으며 전진이 그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하였느니라. 온 조정 관원이 알지 못하고 전하께서도 나이 어려 분간하지 못하니, 전하를 궁에 들지 못하게 하고 화원을 닫아 둔 것은 대개 소식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서였느니라. 전하의 부왕께서 오늘 밤 특별히 나를 청해 마귀를 항복받아 달라 하였거늘, 나는 요사한 무리인지 아닌지 몰라 공중에서 살펴보니 과연 요정이더라. 막 손을 써서 잡으려 하는데 뜻하지 않게 전하께서 성 밖으로 사냥을 나오셨소. 전하의 화살에 맞은 옥토끼가 바로 이 늙은 원숭이었소. 이 늙은 원숭이가 전하를 절까지 끌어들여 스승님을 뵙고 이 속마음을 털어놓았으니 낱낱의 말이 다 참이니라. 전하께서 이미 백옥규를 알아보셨거늘 어찌하여 길러 주신 은정을 생각지 않고 친의 원수를 갚지 않으시려 하오?” 그 태자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참담해져 남몰래 상심하며 말했다. “이 말을 믿지 않자니 그에게는 서너 할의 참됨이 있고,

믿자니 어찌 전각 위에 뵈는 이가 내 부왕이란 말인가?” 이는 참으로 진퇴양난이라 마음이 입에 묻고 세 번 생각하며 참아 입이 마음에 묻는 격이었다. 행자가 그가 의심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 또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전하, 마음을 의심하지 마옵소서. 전하께서는 수레를 본국으로 돌리시어 국모께 한마디 물어 보시옵소서. 부부의 은애하는 정이 삼 년 전과 견주어 어떠한지 보시옵소서. 이 한 마디 물음으로써 참과 거짓을 알 수 있사옵니다.” 그 태자가 마음을 돌려 말했다. “옳소!

내 어미에게 가서 물어보고 오리라.” 태자가 몸을 일으켜 백옥규를 소매에 감추고 곧 걸음을 옮기려 하자 행자가 붙잡으며 말했다. “전하의 이 인마가 모두 돌아가면 소식이 새어 나가 내가 어찌 성공하겠소? 전하께서는 홀로 말을 타고 성에 들어가시되, 이름을 떨치며 뽐내지 마시고 정양문으로 들어가지 마옵시며, 모름지기 후재문으로 들어가시옵소서. 궁중에서 어머니를 뵙거든 절대로 큰소리치지 마시고 모름지기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씀하옵소서. 그 괴물이 신통이 광대하여 한때라도 소식이 새어 나가면 모자의 목숨을 모두 보전하기 어렵사옵니다.” 태자가 삼가 그 가르침을 좇아 산문을 나서며 장관에게 분부했다. “이곳에 굳건히 진을 치고 있으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 내 볼일이 하나 있으니 내가 갔다 오거든 함께 성에 들어가리라.” 그의 모습 이러하였다.

지휘하며 호령해 군사를 주둔시키고, 말에 올라 나는 듯이 곧 성으로 돌아간다.

이번에 가서 국모를 만나 무슨 말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