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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제41회 심원조화패(心猿遭火敗) · 목모피마금(木母被魔擒)

선악을 한때 잊어버리면 영화와 쇠락이 모두 마음에 걸리지 않고, 어두움과 밝음이 숨고 드러나며 뜨고 가라앉는 것도 분수에 맡긴 채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신다. 정신이 고요하면 맑게 가라앉아 늘 적막하거니와, 캄캄하게 어두워지면 곧 마귀가 침범하느니라. 오행이 어긋나면 참선의 숲이 무너지고, 바람이 일면 반드시 추위가 혹독하리라.

말하자면, 그 손오공 대성이 팔계를 데리고 사승과 헤어져 고송간을 건너뛰어 곧장 그 괴이한 바위절벽 앞에 이르렀는데, 과연 한 채의 동부가 있어 참으로 그 경치가 범상치 않았다.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수레를 돌리는 옛길은 그윽하고도 고요한데, 바람과 달조차 검은 학이 희롱하는 소리를 듣는구나. 흰 구름 사이로 비쳐 나와 온 들판에 빛이 가득하고, 흐르는 물이 다리를 건너니 신선의 흥취가 절로 일어난다. 원숭이 울고 새 우는 가운데 꽃과 나무가 기이하고, 칡넝쿨과 돌계단에는 지초와 난초가 더욱 빼어나구나. 푸름이 흔들리는 벼랑과 골짜기에 연기와 노을이 흩어지고, 비취빛 물든 송림과 대숲이 채색 봉황을 불러 모은다. 멀리 늘어선 봉우리는 병풍을 꽂아 세운 듯하고, 산이 마주 서고 시냇물이 감돌았으니 참된 신선의 굴이로다. 곤륜의 지맥이 일으킨 용이니, 분수 있고 인연 있는 자라야 비로소 그 복을 누리느니라.

문 앞에 가까이 이르러 보니 한 개의 비석이 서 있고 그 위에 여덟 자의 큰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바로 ‘호산 고송간 화운동’이었다. 그 건너편에는 한 무리의 작은 요괴들이 창을 돌리고 검을 춤추며 공중에서 뛰놀고 있었다. 손오공 대성이 큰 소리로 고함쳐 말했다. “이놈들아, 어서 일찍 가서 동주에게 알리라. 우리 당승 스승님을 모셔 내보내라 하여라. 그래야 너희 이 굴 요정들의 목숨을 살리리라! 입에서 아니라는 반 마디라도 튀어나오면, 내 곧 너희 산장을 뒤집어엎고 너희 동부를 짓밟아 평평하게 만들어 놓으리라!” 그 작은 요괴들이 이 말을 듣고는 황급히 몸을 돌려 저마다 굴 속으로 되돌아가 두 짝의 돌문을 굳게 닫고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일이 났사옵니다!”

말하자면, 그 요괴는 삼장법사를 굴 안으로 끌고 들어간 뒤 옷을 벗기고 두 손과 두 발을 한데 묶어 뒤뜰에 결박해 두고, 작은 요괴들에게 깨끗한 물을 길어다 씻게 한 다음 찜통에 올려 쪄 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급히 ‘큰일 났다’는 보고 소리를 듣고는 씻기는 일을 잠시 멈추고 앞뜰로 나서며 물었다. “무슨 큰일이냐?” 작은 요괴가 아뢰었다. “털부숭이 얼굴에 뇌공 같은 부리를 한 중이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중 하나를 데리고 문 앞에 와서 당승 스승님을 내놓으라 하고 있사옵니다. 만일 입에서 아니라는 말 반 마디라도 나오면 곧 산장을 뒤엎고 동부를 짓밟아 버리겠다고 하옵니다.” 마왕이 빙그레 냉소하며 말했다. “저것은 손행자와 저팔계로구나. 그래도 찾아오는 솜씨는 있느니라. 그가 제 스승을 잡아다 놓았으니 산중턱에서 여기까지가 백오십 리나 되거늘, 어찌 그리 문 앞으로 찾아왔단 말이냐?” 그리고 명했다. “이놈들아, 수레를 맡은 자들아, 수레를 끌어 내라!” 그 무리 가운데 몇몇 작은 요괴가 나서서 다섯 채의 작은 수레를 밀어 내고 앞문을 열어젖혔다. 팔계가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이 요정이 우리를 겁내어 수레를 밀어내고 저쪽으로 짐을 옮기는 모양이오.” 행자가 말했다. “아니다. 저놈들이 어디에 갖다 놓는지 먼저 두고 보자.” 보니 그 작은 요괴들이 수레를 금, 목, 수, 화, 토의 자리에 맞춰 배치하고는 다섯이 곁을 지키고 다섯은 안으로 들어가 통보하였다. 그 마왕이 물었다. “준비되었느냐?” 대답이 아뢰었다. “준비되었사옵니다.” 명했다. “창을 가져오너라!” 무기를 맡은 그 무리의 작은 요괴들 가운데 둘이 나서서 한 길 여덟 자나 되는 화첨창 한 자루를 메고 나와 요왕에게 건네주었다. 요왕은 창을 휘두르며 성큼성큼 걸음을 떼었는데, 갑옷이라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다만 허리에 고운 비단으로 수놓은 전투 치마 한 폭을 두르고는 맨발로 문 앞을 향해 걸어 나왔다. 행자와 팔계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괴물의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얼굴은 분을 바른 듯 서너 푼쯤 희고, 입술은 주사를 입힌 듯 풍채가 뛰어나구나. 귀밑머리는 검푸른 구름을 틀어 올려 쪽빛 물감도 부럽지 않고, 눈썹은 초승달을 갈라 놓은 듯 칼로 오려낸 것만 같구나. 치마에는 용과 봉황이 교묘하게 수놓였고, 체격은 나타보다도 더 살이 올랐구나. 두 손으로 창을 비껴 쥐니 위풍이 늠름하고, 상서로운 빛이 몸을 감싸며 문을 나서는구나. 고함소리는 봄철 천둥이 울부짖는 듯하고, 튀어나온 눈은 번개가 번쩍이듯 사납구나. 이 마왕의 참 성씨를 알고자 하느냐, 천고에 이름을 떨치는 그는 이름이 홍해아라 불리느니라.

그 홍해아 요괴가 문을 나서자마자 크게 외쳐 말했다. “어떤 놈이 감히 내 앞에서 떠드느냐!”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웃으며 말했다. “어진 조카야, 헛된 재주를 부리지 마라. 네가 오늘 아침 산길 곁에서 소나무 끝에 높이 매달려 있으면서 그 야위고 병든 누런 아이로 둔갑하여 내 스승님을 속였느니라. 내가 호의로 너를 등에 업어 주었더니, 너는 바람을 일으켜 내 스승님을 훔쳐 날라 왔구나. 네가 이제 또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내 어찌 너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어서 빨리 내 스승님을 모셔 내보내라. 괜히 얼굴을 붉히고 정을 저버리지 말아라. 그러다 네 아버님이 알게 되면 내 늙은 원숭이가 나이 많은 것을 믿고 어린것을 억눌렀다고 꾸짖을까 두렵구나. 체면도 서지 않으리라.”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노하여 “이, 악!” 하고 꾸짖으며 말했다. “이 천한 원숭이 놈아! 내가 너와 무슨 정이 있단 말이냐? 네가 여기서 입을 놀려 헛소리를 지껄이며 무슨 경문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냐? 누가 네 어진 조카란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여보게, 네가 모르는구나. 예전에 내가 네 아버님과 형제를 맺었을 적에는 너는 아직 세상 어디에도 없었느니라.” 그 요괴가 말했다. “이 원숭이 놈이 점점 더 헛소리를 하는구나! 네가 어디 사람이고 내가 어디 사람인데, 어찌 내 아비와 형제가 되었다는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나는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은 제천대성 손오공이니라. 내가 아직 천궁을 뒤집어 놓기 전에 해가 뉘이는 곳 하늘 끝과 땅 끝을 두루 다니며 사대부주 중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느니라. 그 무렵 나는 오직 호걸을 사모하였는데, 네 아버님 되는 우마왕을 평천대성이라 불렀고 내 늙은 원숭이와 결의하여 일곱 형제가 되었으니 그를 형님으로 삼았고, 또 교마왕이 있어 복해대성이라 불렀으니 둘째 형이 되었고, 또 대붕마왕이 있어 혼천대성이라 불렀으니 셋째 형이 되었고, 또 사니왕이 있어 이산대성이라 불렀으니 넷째 형이 되었고, 또 미후왕이 있어 통풍대성이라 불렀으니 다섯째 형이 되었고, 또 흘융왕이 있어 구신대성이라 불렀으니 여섯째 형이 되었으며, 오직 나 늙은 원숭이만 몸집이 작아 제천대성이라 불렸으나 서열은 일곱째였느니라. 우리 늙은 형제들이 그 무렵 함께 어울려 놀던 때에는 너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느니라!”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 어찌 곧이 들으려 하겠는가. 화첨창을 들어 곧 찔러 왔다. 행자는 마침 솜씨 있는 자답게 서두르지 않고 몸놀림 하나를 더 부려 창끝을 피해서는 쇠몽둥이를 휘둘러 꾸짖으며 말했다. “이 어린 짐승 같으니라고, 분수를 모르는구나! 내 몽둥이를 받아라!” 그 요정 또한 몸놀림을 부려 쇠몽둥이를 비켜 가며 말했다. “이 천한 원숭이 놈아, 시세를 모르는구나! 내 창을 받아라!” 그 둘은 인정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일제히 얼굴을 붉히며 저마다 신통을 부려 구름 끝으로 뛰어올랐으니, 그 싸움 실로 볼 만하였다. 행자의 명성은 크고 마왕의 수단은 강하구나. 하나는 금고봉을 비스듬히 치켜들었고, 하나는 화첨창을 곧추 세웠구나. 안개를 토해 삼계를 가리고, 구름을 뿜어 사방을 비추누나. 하늘 가득 살기가 서려 사나운 고함이 울려 퍼지니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는구나. 말에는 사양이 없고 정과 뜻은 서로 어긋나누나. 저 하나는 마음을 속여 예의를 잃었고, 이 하나는 얼굴을 고쳐 강상을 저버렸구나. 몽둥이를 버티니 위풍이 길어지고, 창이 날아오니 야성이 사납구나. 하나는 혼원한 참된 대성이요, 하나는 바른 과를 얻을 선재 동자이니라. 둘이 힘을 다해 승부를 다투는 까닭은 오직 당승이 법왕께 예배하기 위해서이니라.

그 요마와 손오공 대성이 스무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저팔계가 곁에서 그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요정이 비록 패하여 항복하지는 않았으나 다만 가리고 막고 비껴낼 뿐이라 공격하여 죽일 힘은 조금도 없었고, 행자가 비록 그를 이기지는 못하였으나 몽둥이 솜씨가 정묘하고 강하여 오가는 몽둥이가 늘 그 요정의 머리 위에 있으면서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팔계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큰일이로구나. 행자가 날래고 공교로우니 어느새 틈을 하나 만들어 저 요마를 그 속으로 파고들게 한 뒤 쇠몽둥이 한 방에 후려쳐 쓰러뜨리면, 내 공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보라, 그가 정신을 가다듬고 아홉 갈퀴 창을 들어 공중에서 요정을 향해 머리 위로 내려찍었다. 그 요괴는 보고 깜짝 놀라 급히 창을 끌어당겨 진영을 버리고 패주하였다. 행자가 팔계에게 호령했다. “쫓아라! 쫓아라!”

둘이 그의 굴 문 앞까지 쫓아가 보니, 요정이 한 손으로 화첨창을 들고 가운데 놓인 작은 수레 한 채 위에 서서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먹을 쥐고 제 코를 두 번 쳤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이 뻔뻔하게 생떼를 쓰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네 코를 쳐서 피를 좀 흘려다가 얼굴을 붉게 칠하고는 어디 가서 우리를 고발하려느냐?” 그 요마는 두 번 주먹질을 하고 주문 하나를 외우더니 입에서는 불을 뿜어내고 콧구멍에서는 짙은 연기가 솟구쳤다. 눈을 깜박이는 새 불꽃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그 다섯 수레 위에서도 붉은 불빛이 용솟음쳤다. 몇 번을 연달아 뿜어내자 붉고 붉은 큰 불길이 허공을 태웠는데, 한 채의 화운동이 그 불길에 온통 뒤덮여 참으로 하늘을 태우고 땅을 달구는 형국이었다.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형님, 큰일 났소! 저 불 속으로 뛰어들면 살아나기를 바랄 수 없소. 늙은 돼지를 통째로 삶은 요리로 만들어 향신료까지 얹어 저놈이 실컷 먹으려는 것이오! 빨리 갑시다! 빨리 갑시다!” 가자며 입을 놀리자 그는 행자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시냇물을 건너 달아났다. 이 행자는 신통이 광대하여 불을 피하는 주술을 손에 쥐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그 요괴를 찾았다. 그 요괴는 행자가 오는 것을 보고 다시 몇 번 불을 뿜었는데, 그 불이 앞보다 더욱 셌다. 훌륭한 불이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허공을 가득 채워 태우고, 으리으리한 불기운이 온 땅을 붉게 물들이누나. 마치 불 수레가 위아래로 날아다니는 듯하고, 숯 부스러기가 동서로 춤추는 것만 같구나. 이 불은 수인이 나무를 비벼 얻은 불도 아니요, 노자가 단약을 달군 불도 아니며, 하늘의 불도 아니요 들의 불도 아니니, 바로 요마가 수행하여 참된 삼매의 불을 이룬 것이니라. 다섯 수레는 오행에 맞추었고, 오행이 생하고 변화하여 불을 달여 낸 것이니라. 간목은 간의 기운이 심장의 불을 왕성하도록 돕고, 심장의 불은 비장의 흙을 편안하게 하며, 비장의 흙은 금을 낳고 금은 물로 화하며 물은 나무를 자라게 하니 두루 신령이 통하누나. 낳고 낳으며 변하고 변화하는 것이 모두 불에서 비롯되고, 불이 긴 하늘에 가득하니 만물이 번영하느니라. 요사한 무리가 오래도록 깨달아 삼매를 부르니, 길이 서방 첫째 자리에 자리하리라.

행자는 그 불길이 치솟아 요괴를 찾을 수 없었고 굴 문 앞의 길조차 보이지 않자 몸을 빼어 불 속에서 뛰어나왔다. 그 요정이 문 앞에서 그것을 똑똑히 보고 있다가 행자가 간 것을 보고서야 불 도구를 거두고 요괴 무리를 거느려 굴 안으로 돌아가 돌문을 닫아걸고 승리를 거둔 줄로 여기고는, 작은 놈들에게 명하여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울리며 즐거워하였으니,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자.

말하자면, 행자가 고송간을 건너뛰어 구름을 내려놓으니 저팔계와 사승이 소나무 숲 속에서 또랑또랑하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팔계를 꾸짖었다. “이 멍청한 놈아, 사람 구실을 전혀 못 하는구나! 네가 요괴의 불을 두려워하여 패주하고 제 목숨만 살려 달아나면서, 이 늙은 원숭이를 홀로 버려두었구나. 다행히 내게 재주가 조금 있었기에 망정이지!”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형님은 그 요괴에게 딱 잡히셨소. 과연 시세를 모르셨단 말이오. 옛사람이 이르기를, 시세를 아는 자를 준걸이라 부른다 하였소. 저 요정은 형님과 친척이라 하지 않는데 형님이 억지로 친척을 자처하시고, 이미 겨루기까지 하였는데 그런 무정한 불을 뿜어 대거늘 달아나지도 않고 오히려 싸움을 더 벌이려 하시다니요!” 행자가 말했다. “저 괴물의 수단이 나와 견주어 어떠하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만 못하오.” “창법은 나와 견주어 어떠하냐?” 팔계가 말했다. “그것도 형님만 못하오. 늙은 돼지가 그놈이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보고 형님을 돕느라 갈퀴로 한 방 내려쳤더니, 뜻밖에도 그놈이 장난을 받아들이지 않고 곧 진영을 버리고 패주하더니, 천리가 없이 불을 뿜어 대었소.” 행자가 말했다. “바로 네가 오지 말았어야 했다. 내 그놈과 몇 합만 더 겨루다가 요령을 부려 몽둥이로 한 방을 훔쳐 낼 참이었는데, 그것이 좋지 않았겠느냐?”

그 둘이 서로 제 할 말만 하며 요괴의 수단과 불의 독기를 논하는 동안, 사승은 소나무 뿌리에 기대어 멍하니 웃고만 있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아우야, 너는 무엇이 우스우냐? 네게 무슨 훌륭한 수단이 있어 그 요마를 잡고 저 불 진을 부수겠다는 것이냐?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니라. 늘 하는 말에, 털이 모여야 털뭉치를 이룬다 하였느니라. 네가 요마를 잡고 스승님을 구한다면 그것 또한 네 큰 공적이 되리라.” 사승이 말했다. “내게도 별다른 수단이 없고 요괴를 항복시킬 수도 없소. 내가 웃는 것은 너희 둘이 다 함께 허둥대고 있기 때문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어찌 허둥댄다는 말이냐?” 사승이 말했다. “저 요정은 수단이 형님만 못하고 창법이 형님만 못하나, 다만 불 기세가 조금 더할 뿐이라 이기지 못하는 것이오. 제 생각대로 상생상극으로 그놈을 잡으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우 말이 옳구나. 과연 우리가 허둥대며 이 일을 잊고 있었도다. 상생상극의 이치로 따지자면 모름지기 물로 불을 누르는 법이니, 어디선가 물을 좀 구해다 이 요사한 불에 끼얹어 끄면 스승님을 구하지 않겠느냐?” 사승이 말했다. “바로 그렇소. 머뭇거릴 것 없소.” 행자가 말했다. “너희 둘은 여기 있으면서 그놈과 싸움을 걸지 마라. 이 늙은 원숭이가 동양 대해로 가서 용병을 청해 물을 좀 가져와 요사한 불을 끄고 저 몹쓸 놈을 잡으리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안심하고 가십시오.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구름을 타고 이곳을 떠나 잠깐 사이에 동양 대해에 이르렀으나, 바다 경치를 구경할 마음은 없었기에 물을 밀어내는 법을 써서 파도를 갈랐다. 한창 가고 있는데 순라 나온 바다 야차 하나와 마주쳤는데, 그가 손오공 대성을 알아보고 급히 수정궁으로 달려 돌아가 그 늙은 용왕에게 알렸다. 오광이 곧 용자와 용손, 새우 병졸과 게 졸개들을 거느리고 일제히 문 밖으로 나와 맞으며 안으로 모셔 앉기를 청했다. 자리를 정하고 인사를 마친 뒤 차를 올리려 하니 행자가 말했다.

“수고롭게 차를 드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부탁이 있어 왔나이다. 내가 스승님이신 당승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산 고송간 화운동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 홍해아라는 요정이 있어 스스로 성영대왕이라 일컫는 자가 우리 스승님을 낚아 갔사옵니다. 이 늙은 원숭이가 굴 가를 찾아가 그놈과 싸웠더니 그놈이 불을 뿜어 내어 우리가 당해 낼 수 없었사옵니다. 물이 불을 누를 수 있다 생각하고 특별히 그대에게 물을 좀 구하러 왔사오니, 나와 함께 가서 큰비 한바탕을 내려 그 요사한 불을 끄시고 당승의 이 재난을 건져 주시옵소서.” 그 용왕이 말했다. “대성께서 잘못 짚으셨나이다. 비를 내리고자 하신다면 저에게 물으러 오실 일이 아니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사해의 용왕이니 비와 은택을 맡아 주관할 터인데, 그대에게 묻지 않고 누구에게 묻겠소?” 용왕이 말했다. “제가 비를 주관하기는 하오나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나이다. 모름지기 옥황상제의 칙지를 받아 어느 지방에 몇 자 몇 치를 내리라 분부하시고, 어느 시각에 시작하여 어느 시각에 그칠지까지 정하신 다음, 또 삼관이 붓을 들고 태을이 문서를 옮기며 뇌공과 전모, 풍백과 운동에게까지 령을 내려야 하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용은 구름이 없으면 가지 못한다 하였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바람과 구름, 우레와 번개는 필요 없사옵니다. 다만 물을 조금 얻어 불을 끄고자 하옵니다.” 용왕이 말했다.

“대성께서 바람과 구름, 우레와 번개를 쓰지 않으신다 하여도 저 혼자만으로는 힘을 보탤 수 없사옵니다. 저의 아우들을 시켜 함께 대성을 돕게 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아우들은 어디 있소?” 용왕이 말했다. “남해 용왕 오흠, 북해 용왕 오윤, 서해 용왕 오순이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내가 세 바다를 다시 돌아야 하니, 차라리 상계로 올라가 옥황상제의 칙지를 청하는 편이 낫겠소.” 용왕이 말했다. “대성께서 가실 것 없사옵니다. 이곳에서 쇠북과 금종을 울리면 그들이 저절로 순식간에 이르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늙은 용왕이여, 어서 종과 북을 치시오.”

잠깐 사이에 삼해 용왕이 모여들어 물었다. “형님이여, 무슨 일로 아우들을 부르셨소?” 오광이 말했다. “손오공 대성이 여기 계시어 비를 빌려 요괴를 항복시키는 일을 돕고자 하신다.” 세 아우가 곧 인도되어 들어가 인사를 마치자 행자가 물을 빌리러 온 사정을 자세히 말했는데, 여러 신들이 저마다 기꺼이 따르며 곧 군사를 점고하니,

상어는 날래어 선두 부대가 되고, 입이 큰 호어는 선봉에 섰구나. 잉어 원수는 파도를 뒤집으며 뛰놀고, 붕어 제독은 안개를 토하며 바람을 뿜누나. 청어 태위는 동쪽에서 초병을 몰고, 백어 도시는 서쪽 길에서 출정을 재촉하누나. 붉은 눈 말랑은 남쪽에서 춤을 추고, 검은 갑옷 장군은 북쪽으로 내리 치누나.

황어 파총은 중군에서 나팔을 잡고, 오방의 병졸들은 곳곳이 영웅이로다. 종횡으로 기교를 부리는 자라는 추밀, 묘하고 깊은 계책을 헤아리는 거북이 재상이로다. 꾀 있고 지혜로운 악어 승상, 변화 많고 재주 많은 자라 총융이로다. 옆으로 기어 다니는 게 병사는 긴 칼을 휘두르고, 곧장 뛰어오르는 새우 할멈은 억센 활을 당기누나. 메기 외랑은 문서 장부를 살펴 점검하고, 용병을 점고하여 파도 가운데서 떠나 나오는구나.

시에 이르기를, 사해 용왕은 기꺼이 공을 돕고 제천대성의 청에 함께 좇누나. 오직 삼장이 길 위에서 재난을 만난 까닭에, 물을 빌려 앞으로 나아가 붉은 불을 끄는 것이로다.

그 행자가 용병을 거느리고 오래지 않아 호산 고송간 위에 일찍이 당도했다. 행자가 말했다. “오씨 곤옥들이여,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소. 이곳은 요마의 소굴이니 그대들은 우선 공중에 머물며 얼굴을 내밀지 마시오. 이 늙은 원숭이가 그놈과 한판 겨뤄 보리다. 내가 이기면 여러분께서 나서서 잡으실 것 없고, 내가 지더라도 여러분께서 진을 도우실 것도 없소. 다만 그놈이 불을 뿜을 때에야 내 부름을 듣고 일제히 비를 뿜어 주시오.” 용왕들이 모두 그 명령대로 따랐다.

행자가 곧 구름을 내려놓고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팔계와 사승을 만나 “아우들!” 하고 불렀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참 빨리 오셨소! 용왕을 모셔 오셨소?” 행자가 말했다. “모두들 왔느니라.

너희 둘은 모름지기 조심하여라. 비가 크게 내릴 터이니 행장이 젖지 않게 하여라. 이 늙은 원숭이가 그놈과 싸우러 가마.”

사승이 말했다. “형님께서는 안심하고 가십시오. 저희가 잘 알아서 하겠소.” 행자가 시냇물을 건너 문 앞에 이르러 “문 열어라!” 하고 외쳤다. 그 작은 요괴들이 또 달려가 아뢰었다. “손행자가 또 왔사옵니다.” 홍해아가 고개를 들어 웃으며 말했다. “저 원숭이 놈이 불 속에서도 타죽지 않았나 보구나. 그래서 또 온 것이로다. 이번에는 결단코 그놈을 봐주지 말고, 반드시 가죽이 타고 살이 문드러지도록 태워 놓은 뒤에야 그만두리라!” 급히 몸을 솟구치며 긴 창을 비껴 들고는 명했다. “이놈들아, 불 수레를 밀어 내라!” 그가 문 앞으로 나서서 행자에게 말했다. “네가 또 와서 무엇 하려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 스승님을 내놓아라.” 그 요괴가 말했다. “이 원숭이 놈아, 사정 봐주는 줄도 모르는구나. 저 당승은 네 스승이 되고 나에게는 안주가 되느니라. 네가 아직도 그를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냐. 꿈도 꾸지 마라, 꿈도 꾸지 말아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몹시 분노하여 금고봉을 빼어 들고 머리 위로 내리쳤다. 그 요정은 화첨창을 써서 급히 받아 막았다. 이번 겨룸은 앞번과는 달랐으니, 그 싸움 실로 볼 만하였다. 노기 치솟는 요마로다, 화가 급해진 원숭이 왕 장수로다. 이 하나는 오직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을 살리려 하고, 저 하나는 당승을 잡아먹으려 하누나. 마음이 변하니 정이 없어지고 정이 멀어지니 의리도 사라졌구나. 이쪽은 붙잡아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싶고, 저쪽은 끌어다 생으로 장에 찍어 먹고 싶어 하니, 참으로 영웅답고 과연 사나우며 장하구나. 몽둥이가 날아오면 창이 받아 승부를 겨루고, 창이 나가면 몽둥이가 맞받아 위아래를 다투누나. 손을 들어 스무 차례를 겨루었으나 양편 솜씨가 한가지로구나. 그 요왕이 행자와 스무 합을 싸워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는 창을 헛되이 한 번 흔들어 슬쩍 몸을 빼어 주먹을 쥐고는 다시 코를 두 번 때리고 곧 불을 뿜어 내었다. 문 앞 수레들 위에서는 불꽃이 솟구치고, 입과 눈에서는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손오공 대성이 고개를 돌려 외쳐 말했다. “용왕은 어디 계시오?” 그 용왕 형제들이 여러 수족을 거느리고 요정의 불빛을 향해 비를 뿜어 내니, 훌륭한 비로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사르르 내리고 빽빽이 자욱한데, 사르르 내림은 하늘 끝에서 별이 떨어지는 듯하고, 빽빽이 자욱함은 바다 어귀가 거꾸로 매달려 물결이 구르는 듯하구나. 처음에는 주먹만 하던 것이 점차 독에서 퍼붓고 동이에서 쏟아지듯 하누나. 온 땅에 흘러내려 오리 머리꼭지 같은 녹색을 적시고, 높은 산을 씻어 내어 부처 머리 같은 푸름을 드러내누나. 도랑과 골짜기의 물은 천 길이나 되는 옥을 날리고, 시냇물의 물결은 만 가닥 은을 불려 내누나. 세 갈래 길목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아홉 굽이 시냇물이 차츰 평평해지는구나. 이것은 당승이 재난을 만나 신룡이 돕는 것이니,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다 아래로 쏟아 붓는 것이로다.

그 빗줄기가 굵고 가늘기야 어떠하든 저 요정의 불기운을 잦아들게 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용왕의 사사로운 비는 범속한 불이나 끼얹어 끌 따름이요, 요정의 삼매진화를 어찌 끌 수 있으랴. 마치 불 위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 뿌리면 뿌릴수록 더욱 타올랐다. 대성이 말했다. “내 주술을 쥐고 불 속으로 뛰어들 테다!” 쇠몽둥이를 휘둘러 요괴를 찾아 후려치려 하였다. 그 요괴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연기 한 모금을 얼굴을 향해 확 뿜어 냈다. 행자가 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눈앞이 캄캄하여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원래 이 대성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연기를 두려워하였느니라. 당년에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았을 적에 노군의 팔괘로 속에 들어가 한바탕 단련을 겪었는데, 다행히 그 손방위에 몸을 붙여 타버리지 않았으나 바람이 연기를 휘저어 오는 바람에 연기에 찌들어 화안금정이 되었으니, 그런 까닭으로 오늘날까지도 다만 연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니라. 그 요괴가 또 한 모금 뿜어 대니 행자가 견디지 못하고 구름을 타고 달아났다. 그 요왕은 다시 불 도구를 거두어 굴 속으로 돌아갔다.

이 대성은 온몸이 불과 연기에 휩싸여 화끈 달아오르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곧장 시냇물 속으로 몸을 던져 불을 끄려 하였다. 그러나 찬물에 갑자기 눌리는 바람에 불기운이 심장으로 치고 올라와 삼혼이 몸을 빠져나갔으니, 가련하게도 기운은 가슴에 막히고 목과 혀는 차갑게 식었으며 넋이 흩어져 남은 목숨마저 잃고 말았다! 놀란 사해 용왕이 반공중에서 비를 거두며 큰소리로 외쳤다. “천봉원수! 권렴장군! 숲 속에 숨어 있지 말고 나와 너희 형님을 찾아라!”

팔계와 사승이 제 성호를 불러 주는 소리를 듣고 급히 말을 풀고 짐을 메고 숲을 벗어나 달려왔는데, 진흙탕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냇물을 따라 찾아가 보니 윗물결이 넘실거리는 급류 속에서 사람 하나가 흘러내려 오고 있었다. 사승이 그것을 보고 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어 건져 올려 언덕에 안아 놓고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손오공 대성의 몸이었다. 아! 보라, 그가 팔다리를 오그린 채 펴지 못하고 온몸이 위아래 할 것 없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사승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했다. “형님! 억만 년을 늙지 않고 장생할 분이 오늘 원통하게도 도중에 요절한 사람이 되었구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야, 울지 마라. 이 원숭이 놈이 죽은 체하며 우리를 겁주는 것이오. 네가 한번 만져 보아라, 가슴에 아직 온기가 조금이라도 있느냐?” 사승이 말했다. “온몸이 다 차가워졌는데 온기가 조금 있다 한들 그것이 어찌 살아난단 말이오?” 팔계가 말했다. “그놈에게 칠십이 가지 변화가 있으면 칠십두 개의 목숨이 있는 법이오. 네가 발을 잡아라. 내가 손을 써 보마.” 과연 사승이 발을 잡고 팔계가 머리를 받쳐 들자 그를 곧게 펴고 아래쪽 발을 들어 올려 무릎을 꿇고 앉혀 놓았다. 팔계가 두 손을 비비어 따뜻하게 한 뒤 그의 칠규를 틀어막고 안마 선법 하나를 썼다. 원래 그 행자는 찬물에 눌려 기운이 단전에서 막혀 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다행히 팔계가 눌러 주고 문지르고 비벼 준 덕분에 잠깐 사이에 기운이 삼관을 뚫고 명당을 돌아 구멍을 열어젖히고는 “스승님이시여!” 하고 외쳤다. 사승이 말했다. “형님, 형님은 살아서도 스승님이요 죽어서도 입에 담으시는구려. 어서 깨어나십시오. 우리가 여기 있소.” 행자가 눈을 뜨며 말했다. “아우들이 여기 있느냐? 이 늙은 원숭이가 크게 당했구나!”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 방금 전에 혼절하셨는데요. 이 늙은 돼지가 구해 내지 않았으면 벌써 끝장이 났소. 어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십시오!” 행자가 그제야 몸을 일으켜 하늘을 우러러 말했다. “오씨 형제들은 어디 계시오?” 그 사해 용왕이 반공중에서 대답했다. “소룡이 여기서 대령하고 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우선 돌아가시고, 다른 날 다시 사례하리다.” 용왕이 수족을 거느리고 쓸쓸히 돌아갔으니,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자.

사승이 행자를 부축하여 함께 소나무 숲 아래로 나아가 앉았다. 조금 있자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을 고르니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어 다시 불렀다. “스승님이시여! 생각하건대 당년에 대당을 떠나올 적에, 바위 앞에서 저를 구해 주시어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셨지요. 세 산과 여섯 물을 지나며 마장에 부딪치고, 만 가지 고생과 천 가지 어려움에 애간장이 베이는 듯하였소. 발우를 들고 아침에는 후하고 박한 대로 따라먹고, 참선하며 저물면 혹 숲이나 마을에서 묵었지요. 한 마음으로 공과를 이루기를 바랐더니, 오늘 어찌 이리도 아프게 다칠 줄 알았으리오!” 사승이 말했다. “형님, 우선 근심을 거두시고 우리가 빨리 계책을 세워 어디엔가 가서 군사를 청해 도움을 받아 스승님을 구해 내도록 합시다.” 행자가 말했다. “어디 가서 구원을 청한단 말이냐?” 사승이 말했다. “당초에 보살께서 우리에게 당승을 보호하라 분부하시며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응하고 땅을 부르면 땅이 응할 것이라 허락하셨소. 어디로 가서 구원을 청하시렵니까?” 행자가 말했다. “생각하건대 이 늙은 원숭이가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았을 때에 그 신병들이 모두 나를 당해 내지 못하였소. 이 요정은 신통이 작지 않으니 모름지기 나보다 솜씨가 좀 더한 자라야 그놈을 항복시킬 수 있으리다. 천신은 힘이 미치지 못하고 지살도 어렵거니와, 이 요마를 잡으려면 모름지기 관음보살을 청해 모셔 와야 하리라. 그러나 내 살갗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저려 근두운을 탈 수 없으니 어찌 청하러 간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무슨 분부이든 내게 내리시면 제가 가서 청하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다. 네가 가도록 하여라. 보살을 뵙거든 부디 올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숙여 절만 올려라. 그가 물으시거든 너는 지명과 요괴의 이름을 아뢰고, 다시 스승님의 일을 여쭈어라. 그가 오시겠다면 틀림없이 괴물을 잡아 주시리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곧 구름을 타고 남쪽을 향해 떠났다.

말하자면, 그 요왕이 굴 속에서 기뻐하며 말했다. “이놈들아, 손행자가 큰코다치고 갔느니라. 이번 한판으로 그놈을 죽이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크게 기절하게는 하였느니라. 어, 그놈이 다시 구원병을 청하러 갈까 두렵구나. 어서 문을 열어라. 내가 나가 그놈이 누구를 청하러 가는지 살펴보리라.” 여러 요괴가 문을 열자 요정이 곧 공중으로 뛰어올라 두루 살펴보니 팔계가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요정은 남쪽에는 다른 곳이 없을 터이니 틀림없이 관음보살을 모시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급히 구름을 내려 말했다. “이놈들아, 내 가죽 주머니를 찾아내어라. 오래도록 쓰지 않아 입구 끈이 튼튼하지 않을 터이니 새 끈 하나로 바꿔 달아 두 번째 문 아래에 두어라. 내 팔계를 속여 데려와 그 주머니에 집어넣고 푹 삶아 버린 뒤 너희를 후하게 대접하리라.” 원래 그 요정에게는 뜻대로 쓰는 여의 가죽 주머니가 있었다. 여러 작은 요괴가 그것을 꺼내어 입구 끈을 갈아 동굴 문 안에 놓아 두었으니,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자.

말하자면, 그 요왕은 오래도록 이곳에 살아 그 주변이 모두 익숙한 유람지였으므로 어느 길이 남해로 가는 지름길이고 어느 길이 먼 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 지름길로 구름을 한 번 타니 어느새 팔계를 앞질러 벼랑바위 위에 단정히 앉아서는 가짜 관세음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팔계를 기다렸다. 그 멍청한 놈이 구름을 타고 가다가 홀연히 보살을 바라보았으니, 그가 어찌 참과 거짓을 분별하리요. 이것이 바로 형상을 보면 부처를 짓는다는 것이로다. 멍청이는 구름을 멈추고 내려와 절하며 말했다. “보살이시여, 제자 저오능이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요정이 말했다. “너는 당승을 보호하여 경을 구하러 가지 않고 나를 만나 무슨 일이냐?” 팔계가 아뢰었다. “제자가 스승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도중에 호산 고송간 화운동에 이르렀는데, 그곳 홍해아라는 요정이 우리 스승님을 낚아 갔나이다. 저와 형님들이 그의 문을 찾아가 싸웠으나 그놈이 불을 뿜는 재주가 있어 첫 번째 판에는 이기지 못하였고, 두 번째 판에는 용왕을 청하여 비를 돕게 하였으나 그 불조차 끌 수 없었나이다.

형님이 그놈에게 타격을 입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제가 보살을 모시러 왔사오니, 바라건대 자비를 내리시어 우리 스승님의 이 재난을 건져 주시옵소서!” 요정이 말했다. “저 화운동 동주는 남을 해치는 자가 아니니, 틀림없이 너희가 그를 거슬렀을 것이다.” 팔계가 말했다. “제가 그를 거스른 것이 아니라 형님 오공이 그를 거스렸나이다. 그놈이 어린아이로 변하여 나무에 매달려 우리 스승님을 시험하였나이다. 스승님께서 인자한 마음이 크시어 제가 내려 주라 하시고 형님에게 업어 한참을 가라 하셨나이다. 그런데 형님이 그놈을 한 번 내동댕이치자 그놈이 바람을 일으켜 스승님을 낚아 갔나이다.” 요정이 말했다. “일어서라. 나를 따라 그 굴로 들어가 동주를 만나 보자. 내가 너를 위하여 인정을 베풀 터이니, 네가 사례하며 절 한 번 올리고 스승님을 청해 내어 오도록 하마.” 팔계가 말했다. “보살이시여, 스승님을 돌려주시겠다면 그에게 큰절 한 번 올리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나이다.” 요왕이 말했다. “따라오너라.”

그 멍청이는 좋고 나쁨도 가리지 않고 그를 따라 곧장 옛길로 되돌아갔으니, 남양 바다로 간 것이 아니라 그대로 화운동으로 달려가 순식간에 문 앞에 이르렀다. 요정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너는 의심하지 마라. 저놈은 내 옛 친구이니 들어오너라.” 멍청하는 할 수 없이 걸음을 옮겨 문으로 들어섰다. 여러 요괴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팔계를 거꾸러뜨려 붙잡아 가죽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입구 끈을 단단히 묶어 들보 위에 높이 매달았다. 요정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한가운데 앉아 말했다. “저팔계야, 네게 무슨 재주가 있다고 감히 당승을 보호하여 경을 구하러 가며 감히 보살을 청하여 나를 항복시키려 하였느냐! 너는 두 눈을 크게 뜨고서도 나를 성영대왕으로 알아보지 못하였느니라. 이제 너를 잡아 사흘닷새쯤 매달아 두었다가 푹 쪄서 작은 요괴들에게 상으로 내리리니, 잠시 안주로 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주머니 속에서 욕하며 말했다. “이 몹쓸 괴물 같으니라고! 몹시 무례하구나! 네가 온갖 꾀로 나를 속여 잡아먹으려 하니, 너희 하나하나가 머리가 부어오르는 천온에 걸려 죽는 꼴을 보리라!” 멍청이는 욕하고 또 욕하며 떠들고 또 떠들었으나,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자.

말하자면, 손오공 대성과 사승이 함께 앉아 있는데 불현듯 비린내 나는 바람 한 줄기가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재채기를 한 번 하며 말했다. “좋지 않다! 좋지 않다! 이 바람은 흉이 많고 길이 적으니, 저팔계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사승이 말했다. “그가 길을 잘못 들면 남에게 물어보면 될 것 아니오?” 행자가 말했다. “틀림없이 요괴를 만났구나.” 사승이 말했다. “요괴를 만났다면 그가 달아나지 못할 리가 있소?” 행자가 말했다. “큰일이로구나. 네가 여기 앉아 지키고 있어라. 내 시냇물을 건너가 알아보고 오마.” 사승이 말했다. “형님께서는 허리가 아프신 터에 그놈의 손에 또 걸리실까 걱정되니 제가 가겠소.” 행자가 말했다. “너는 일을 해내지 못한다. 나를 가게 하여라.”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쇠몽둥이를 쥐고 시냇물을 건너 화운동 앞에 이르러 “이 몹쓸 요괴!” 하고 외쳤다.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또 급히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손행자가 또 문 앞에서 외치고 있사옵니다!” 그 요왕이 잡아들이라 명하니 그 무리의 작은 요괴들이 창과 칼을 들고 에워싸며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곧 문을 열고는 모두들 말했다. “잡아라! 잡아라!” 행자는 과연 지쳐 있던 터라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몸을 길옆으로 들이밀고 주문을 외우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소금 무늬 보따리 하나로 변하였다. 작은 요괴들이 그것을 보고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손행자가 겁을 먹었나 보옵니다. ‘잡아라’ 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놀란 나머지 보따리를 버리고는 달아났사옵니다.” 요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 보따리에는 값나가는 물건도 없을 터이니, 아무리 봐야 중의 해진 장삼과 낡은 모자일 뿐이다. 들여와 뜯어 빨아 헝겊 조각이나 만들자.” 작은 요괴 하나가 과연 그 보따리를 등에 지고 들어갔으니, 그것이 행자가 변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행자가 속으로 말했다. “잘되었다! 이 소금 무늬 보따리를 등에 지고 들어가는구나!” 그 요정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문 안에 내동댕이쳤다.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거짓 속에 또 거짓이요 헛됨 가운데 다시 헛됨이니라. 곧 털 한 가닥을 뽑아 입으로 선기운을 불어넣어 보따리와 똑같은 것으로 변하게 하고, 그의 진짜 몸은 또 파리 한 마리로 변하여 문지도리에 붙었다. 그런데 팔계가 어디선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목소리가 분명치 않기가 마치 병든 돼지 같았다. 행자가 윙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 찾아보니, 그가 가죽 주머니 속에 매달려 있었다. 행자가 가죽 주머니에 붙어 있으니 그가 악담을 퍼부으며 요괴가 어떻고 요괴가 저쩌니 하고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어찌 관음보살로 변하여 나를 속여 데려다 이곳에 매달아 놓고는 도리어 나를 먹겠다 하느냐! 어느 날 우리 형님이 제천대성의 한없는 법력을 크게 떨치면, 산에 가득한 요괴들이 단숨에 사로잡히리라! 가죽 주머니 풀어 나를 꺼내라. 갈퀴로 천 번을 찍어야 내 속이 시원하리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 멍청이가 주머니 속에서 답답한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도 기를 꺾지 않는구나. 이 늙은 원숭이가 반드시 저 요괴를 잡아야 하리라. 그리하지 않으면 어찌 이 원한을 씻을 수 있으랴!’ 막 팔계를 구해 낼 궁리를 하려는데, 그때 그 요왕이 “육건장은 어디 있느냐?” 하고 불렀다. 그때 여섯 작은 요괴가 있었으니 그의 마음을 아는 정령들로서 건장으로 봉해졌으며 저마다 이름이 있었다. 하나는 운리무라 하고, 하나는 무리운이라 하며, 하나는 급여화라 하고, 하나는 쾌여풍이라 하며, 하나는 흥홍흔이라 하고, 하나는 흔흥흥이라 하였다. 육건장이 앞으로 나서 무릎을 꿇자 요왕이 말했다. “너희는 노대왕 가를 알고 있느냐?” 육건장이 아뢰었다. “알고 있사옵니다.” 요왕이 말했다. “너희는 별처럼 밤을 달려 가 노대왕을 모셔 오라. 내가 이곳에서 당승을 삶아 그에게 바쳐 수명을 천 년이나 늘려 주겠다 하여라.” 여섯 요괴가 명을 받고는 저마다 서로 이끌고 당기며 문 밖으로 나갔다. 행자가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머니에서 내려 날아 그 여섯 요괴를 따라붙어 굴을 빠져나갔다.

결국 어찌하여 모셔 오는지는 알 길이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