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당승이 요괴에게 이끌려 굴 밖으로 나오니, 사오정이 앞으로 다가서서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나오셨사온데, 형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팔계가 말했다. “형님에게는 꾀가 있으니, 틀림없이 스승님과 바꾸어 내보내려는 게요.” 삼장이 손가락으로 요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 형님은 저 요괴의 뱃속에 있느니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더럽고도 지독하구나! 뱃속에 들어가서 무얼 한단 말이오? 어서 나오시오!” 행자가 그 속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입을 벌려라. 내가 나가마!” 그 요괴는 참으로 입을 크게 벌렸다. 행자는 몸을 아주 작게 줄여 목구멍 속에 숨은 채 있다가, 이제 막 나오려다가 또 요괴가 무례하게 덤벼들어 물어뜯을까 두려워서, 곧 쇠몽둥이를 꺼내어 신선한 입김 한 번 불어넣고 “변하여라!” 하고 외쳤다.
그 몽둥이는 대추씨만 한 못으로 변하여 그 요괴의 윗잇몸을 받쳐 버티게 하였고, 행자는 몸을 한 번 솟구쳐 입 밖으로 뛰어나오면서 쇠몽둥이도 손을 따라 끌어내고는, 허리를 한 번 굽혀 본래의 법상으로 돌아와 몽둥이를 들어 올려 곧바로 내리쳤다. 그 요괴도 손을 따라 보검 두 자루를 꺼내어 쨍그랑거리게 받아 막았다. 두 놈은 산마루에서 이처럼 훌륭한 겨룸을 벌였도다.
검 두 자루 날아들어 면전을 막고, 금고봉 솟아올라 머리를 내리치는구나. 하나는 하늘이 낸 원숭이 족속이요 심원의 몸이요, 다른 하나는 땅이 낸 정령이요 차녀의 해골이로다. 그 둘은 미움이 가슴에 치밀어, 기쁨 속에서 원한이 생겨 큰 판을 벌이는구나. 저쪽은 원양을 취하여 배필을 삼고, 이쪽은 순음을 쳐서 성태를 맺으려 하는구나. 몽둥이 들자 하늘에 찬 안개 자욱하고, 검 맞받자 온 땅에 검은 티끌 일어나는구나. 장로가 여래를 배알하려 하니, 원한으로 서로 다투어 큰 재주 드러내는구나. 물과 불 어울리지 못해 모도 손상되고, 음과 양 합하기 어려워 각기 갈라지는구나. 두 집안이 오래 싸우니 땅이 움직이고 산이 흔들리며 초목이 부러지는구나.
팔계는 그들이 겨루는 것을 보고 입으로는 중얼중얼 불평을 늘어놓으며 도리어 행자를 원망하여, 몸을 돌려 사오정에게 말했다.
“동생이여, 형님이 쓸데없이 질질 끄는구나! 방금 전에는 저 요괴 뱃속에 있었으니, 주먹을 휘둘러 뱃속을 온통 붉게 한 방 먹이고 배를 찢고 기어 나왔더라면 일이 끝났을 것을, 어찌하여 또 그 입으로 나와서 요괴와 싸운단 말이오? 저렇게까지 기승을 부리게 두다니!” 사오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그러나 형님께서 깊은 굴 속에서 스승님을 구해 내시고 도리어 또 요괴와 싸우시니, 우선 스승님께서는 홀로 앉아 계시라 청하고, 그대와 내가 각자 병기를 들고 큰형님을 도와 요괴를 쳐부수러 갑시다.” 팔계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아니! 저놈에게는 신통력이 있지만 우리는 미치지 못하오.” 사오정이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오. 비록 미치지 못한다 해도 방귀를 뀌어 바람을 보태는 격이지.” 그 멍청이는 일시에 흥이 나서 쇠스랑을 뽑아 들고 “가자!” 하고 외쳤다. 그 둘은 스승님을 돌보지 않고 한꺼번에 바람을 타고 뒤쫓아가서, 쇠스랑을 휘두르고 보장을 써서 요괴를 향해 마구 내리쳤다. 그 요괴는 행자 하나와 싸우는 것도 이미 버거웠거늘, 또 그 둘을 보고서야 어찌 대적하겠는가. 급히 고개를 돌려 몸을 빼어 달아났다. 행자가 호통쳤다. “동생들아, 뒤쫓아라!” 그 요괴는 그들이 바짝 뒤쫓아오는 것을 보고, 곧 오른발에 신은 꽃신을 벗어 신선한 입김 한 번 불어넣고 주문을 외운 뒤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그것이 곧 자기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두 자루 검을 휘두르며 덤벼들게 하고, 자기 몸을 한 번 흔들어 맑은 바람 한 줄기로 화하여 곧장 돌아갔다. 이번에도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어 목숨만 건져 돌아간 것이거니와, 어찌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을 알았으랴!
이 또한 삼장의 재난의 별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탓이었다. 그 요괴는 굴 문 앞 패루 아래에 이르러, 당승이 거기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 한 번에 껴안고 짐을 빼앗았으며, 고삐를 끊어 버리고는 사람과 말을 아울러 도로 채어 들어갔으니, 이 얘기는 여기에서 그친다.
한편 팔계는 빈틈을 노려 쇠스랑으로 요괴를 쳐서 땅에 떨어뜨렸는데, 그것은 꽃신 한 짝이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이 두 멍청이들아! 스승님이나 지켜보고 있었으면 그만이지, 누가 너희더러 와서 무슨 공을 돕라 하였느냐!” 팔계가 말했다. “사오정, 어떠하오! 내가 오지 말자고 하지 않았소. 이 원숭이는 좋기는 한데 좀 머리가 돈 모양이오. 우리가 대신 요괴를 항복받았더니 도리어 원망만 사게 되었소!” 행자가 말했다. “거기에서 요괴를 항복받았단 말이냐? 그 요괴가 어제 나와 싸울 때 신 버리기 계교를 써서 속인 것이다. 너희가 가 버린 사이에 스승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알 수 없으니, 우리가 어서 가서 보자!” 세 사람이 급히 돌아와 보니, 과연 스승님은 보이지 않았고 짐과 백마까지 아울러 자취가 없었다. 놀란 팔계는 이쪽저쪽으로 마구 뛰어다니고 사오정은 앞뒤로 찾아다녔으며, 손대성 또한 마음이 타고 성이 치밀었다. 찾아 헤매고 있는데, 길가에 고삐 반 토막이 비스듬히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한 번에 집어 들고는 눈물을 참지 못하여 소리 높여 외쳤다. “스승님이시여!
“내가 떠날 적에는 사람과 말에게 작별을 고했거늘, 돌아와 보니 이 고삐만 보이는구나!” 이는 바로 저 안장을 보면 준마가 생각나고, 눈물을 떨구면 친한 이가 그립다는 것이었다. 팔계는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하늘을 우러러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행자가 꾸짖었다. “이 멍청한 놈아! 또 흩어지자는 소리를 하려느냐!” 팔계가 또 웃으며 말했다. “형님, 그런 뜻이 아니오. 스승님은 틀림없이 또 요괴에게 채여 굴 속으로 들어가셨을 것이오. 속담에 이르기를 일이란 세 번이 되어야 이루어진다 하였으니, 형님은 굴에 두 번 들어가셨으니 한 번만 더 들어가시면 틀림없이 스승님을 구해 내실 것이오.” 행자가 눈물을 닦고 말했다. “그러하마.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형세가 나를 용납하지 않는구나. 내가 다시 들어가마. 너희 둘은 짐과 말이 없어졌으니 그것을 걱정하지 말고, 굴 어귀를 잘 지키고 있거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곧 몸을 돌려 안으로 뛰어들며 변화를 부리지 않고 본래의 법상으로 나아갔으니, 참으로 이러하였다. 괴이하고 별난 뺨에 마음은 굳세고, 어려서부터 괴물이 되어 신력이 장대하구나. 높고 낮은 얼굴은 말안장을 닮았고, 눈에서는 불빛처럼 금빛 광채를 뿜는구나. 온몸의 털은 강철 바늘처럼 억세고, 호랑이 가죽 치마를 두르니 밝은 꽃무늬가 소리 나게 펄럭이는구나. 하늘로 올라가면 만 갈래 구름을 흩어 날리고, 바다로 내려가면 천 겹 물결을 뒤섞어 일으키는구나. 당년에 힘을 믿고 천왕을 때려 십만 팔천 장수를 물리쳤으며, 벼슬은 대성에 봉해진 아름다운 원숭이 정령이요, 손에는 금고봉을 익숙하게 부리는구나. 오늘 서천에서 능력을 마음껏 드러내며, 다시 굴 속으로 들어와 삼장을 돕는구나. 보라, 그가 구름 빛을 멈추고 곧장 요괴의 집 바깥에 이르러 보니, 문루의 문이 닫혀 있었다.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한 번에 열어젖히고는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 안은 고요하기만 하고 사람의 자취라고는 없었으며, 동쪽 회랑 아래에도 당승은 보이지 않았고, 정자 위의 탁자와 의자며 곳곳의 살림살이도 하나 없었다. 알고 보니 그의 굴은 둘레가 삼백여 리나 되어 요괴의 소굴이 매우 많았다. 지난번에 당승을 여기에 채어 두었다가 행자에게 들켰으므로, 이번에는 행자가 또 찾아올까 두려워 그 자리에서 이사해 버렸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노한 행자는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소리 높여 외쳤다. “스승님이시여! 그대는 재수 없는 기운이 굳어져 만들어진 당삼장이요, 재앙이 주조해 낸 경을 구하는 중이로구나! 아! 이 길은 이미 익숙하게 다녀왔거늘, 어찌하여 계시지 않으십니까? 늙은 손오공더러 어디에서 찾으라 하십니까!” 이렇게 소리치며 성이 치밀어 오를 때, 홀연히 향 연기 한 줄기가 코를 찌르듯 풍겨 왔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 향 연기는 뒤쪽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니, 아마도 뒤편에 계신 모양이로구나.” 걸음을 재촉하여 쇠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뒤를 등진 방 세 칸이 보이고, 뒤쪽 벽에 가까이에는 용이 입을 벌린 문양을 새겨 칠을 한 공탁이 하나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금을 흘려 붙인 듯한 큰 향로가 있어 향로 안에서 향 연기가 그윽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큼지막한 금빛 글씨로 쓴 위패 하나가 모셔져 있었는데, 위패에는 “존부 이천왕지위”라 쓰여 있었고, 조금 아래쪽에는 “존형 나타 삼태자위”라 쓰여 있었다.
행자는 그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기뻐서, 요괴를 찾거나 당승을 수색하러 들지도 않고 쇠몽둥이를 수놓는 바늘만 하게 비틀어 귀 속에 찔러 넣고는, 손을 펴서 그 위패와 향로를 아울러 집어 들고 구름 빛을 되돌려 곧장 문 밖으로 나왔다. 굴 어귀에 이르러서는 히히 하고 하하거리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팔계와 사오정이 그 소리를 듣고 굴 어귀를 지키다가 행자를 마주 나와 말했다. “형님이 이토록 기뻐하시는 걸 보니, 스승님을 구해 내신 모양이지요?”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구하러 갈 것 없이, 이 위패더러 사람을 내놓으라 하면 그만이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 위패는 요괴도 아니요 말을 할 줄도 모르는데, 어찌 그것더러 사람을 내놓으라 한단 말이오?” 행자가 그것을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희가 보아라!” 사오정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위에는 “존부 이천왕지위”, “존형 나타 삼태자위”라 쓰여 있었다. 사오정이 말했다. “이는 무슨 뜻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는 그 요괴의 집에서 모셔 놓은 것이로다. 내가 그가 사는 곳으로 쳐들어가 보았더니, 사람의 자취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이 위패뿐이었느니라. 필시 이천왕의 딸이요 삼태자의 누이동생일 터인데, 속세를 그리워하여 하계로 내려와 요사한 짓을 꾸미며 우리 스승님을 채어 간 것이로구나. 그에게 사람을 내놓으라 하지 않고 누구에게 내놓으라 하겠느냐? 너희 둘은 우선 여기에서 지키고 있어라. 늙은 손오공이 이 위패를 쥐고 곧장 천상으로 올라가 옥제 앞에 소장을 올려, 천왕 부자더러 스승님을 도로 내놓으라 하겠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속담에 이르기를 남을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고발하면 제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얻는다 하였으니, 모름지기 이치가 바르게 서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법이오. 하물며 임금께 올리는 소장인들 어찌 함부로 올릴 수 있겠소? 우선 나에게 말해 보시오, 어떻게 그를 고발하려는 것이오?”
“소장에는 어떻게 쓰려 하시오? 우선 나에게 읽어 보시오.” 행자가 말했다. “고발하는 사람은 손오공이옵고, 나이는 첩에 적혀 있사오며, 동쪽 땅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중 당삼장의 제자이옵니다. 가짜 요괴가 사람을 채어 가둔 일로 고발하옵니다. 지금 탁탑천왕 이정과 그 아들 나타 태자가 규문을 삼가지 못하여 친딸을 빠져나가게 하여, 아래 세상 함공산 무저동에서 요사한 것으로 변하게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을 미혹하고 해치고 있사옵니다. 이제 우리 스승님을 굽고 깊은 곳에 채어 가두어 찾을 길이 아득하옵니다. 고발하지 않으면, 그 부자가 어질지 못하여 딸을 놓아두고 정령이 되어 뭇 사람을 해치게 둔 셈이 되옵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윤허하시고, 그들을 잡아 오게 하시어 요사한 것을 거두고 스승님을 구하시며, 그 죄를 밝히어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더없이 은혜로우리이다. 이에 이처럼 고발하옵니다.”
팔계와 사오정이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형님, 고발하는 것이 이치에 맞으니 틀림없이 이길 것이오. 모름지기 일찍 오시오. 조금이라도 늦으면 요괴가 스승님의 목숨을 해칠까 두렵소.” 행자가 말했다. “내가 빠르다! 내가 빠르다! 아무리 오래 걸려야 밥이 익을 동안이요, 아무리 짧아야 차가 끓을 동안이면 돌아오마.”
훌륭한 대성이로다. 그 위패와 향로를 쥐고 몸을 한 번 솟구쳐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곧장 남천문 밖에 이르렀다. 이때 문을 지키고 있던 대력천왕과 호국천왕이 행자를 보고는 하나같이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어, 감히 막아서지 못하고 그를 들여보냈다. 통명전 아래에 이르자 장, 갈, 허, 구 네 분의 대천사가 마주 나와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성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행자가 말했다. “소장이 있으니, 두 사람을 고발하려 하오.” 천사가 놀라며 말했다. “이 무뢰한이 누구를 고발하려는지 모르겠구나.” 하는 수 없이 그를 영소전 아래로 이끌어 들어가 아뢰었다. 은혜로운 명으로 들어오라 하시자, 행자는 위패와 향로를 내려놓고 위를 향해 예를 마친 뒤 소장을 올렸다. 갈선옹이 받아 어안에 펼쳐 놓았다. 옥제가 처음부터 훑어보고는 이러한 이러한 사연임을 알고는, 곧 원래의 소장에 성지로 비답하여 서방 장경 태백금성을 불러, 성지를 받들어 운루궁으로 가서 탁탑이천왕을 불러 알현하라 명하였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아뢰었다. “천주께서는 잘 단속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사단이 생기겠나이다.” 옥제가 또 분부했다. “원고도 함께 가거라.” 행자가 말했다. “늙은 손오공도 가란 말씀이옵니까?”
네 천사가 말했다. “만세께서 이미 뜻을 내리셨으니, 그대는 금성과 함께 가거라.” 행자는 참으로 금성을 따라 구름을 타고 일찍 운루궁에 이르렀다. 원래 그곳은 천왕의 집이었으니, 이름하여 운루궁이라 하였다. 금성이 궁문 앞에 동자 하나가 시립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동자는 금성을 알아보고는 곧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태백금성 나으리께서 오셨나이다.” 천왕이 곧 나와 맞이하였고, 또 금성이 성지를 받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곧 향을 사르라 명하였다. 몸을 돌려보니 또 행자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천왕은 곧 또 노기를 띠었다. 그대는 그가 어찌하여 노기를 띠었는지 아는가?
당년에 행자가 천궁을 크게 어지럽힐 때, 옥제는 일찍이 천왕을 항마대원수에 봉하고 나타 태자를 삼단해회의 신에 봉하여, 천병을 거느리고 행자를 거두어 항복받으라 하였으나 여러 차례 싸워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오백 년 전에 싸움에서 패한 원한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 그를 언짢게 여기는 터라, 이 때문에 노기를 띤 것이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노장경이여, 그대가 받들고 온 것이 무슨 성지요?” 금성이 말했다. “손대성이 그대를 고발한 소장이오.” 그 천왕은 본래 번민하고 있던 터라 “고발”이라는 말을 듣자 더욱 우레 같은 크나큰 노기를 발하며 말했다. “그가 나를 무어라 고발한단 말이요?” 금성이 말했다. “가짜 요괴가 사람을 채어 가두었다는 일로 그대를 고발하였소. 그대가 향을 사른 뒤에 직접 펼쳐 읽어 보시오.” 그 천왕은 성이 머리끝까지 나서 향안을 차려 놓고 하늘을 우러러 사례하였다. 절을 마치고 성지를 펼쳐 보니, 원래가 이러한 이러한 것이요 이러하고 저러한 것이었다. 분이 치민 그는 손으로 향안을 치며 말했다. “이 원숭이 놈! 나를 잘못 고발하였구나!” 금성이 말했다. “우선 노기를 거두시오. 지금 위패와 향로가 어전에 있어 증거가 되고 있으니, 그대의 친딸이라 하였소.” 천왕이 말했다. “내게는 아들이 셋과 딸이 하나 있을 뿐이오. 큰아들 이름은 금타이라, 여래를 받들어 모시며 앞쪽 부서의 호법이 되어 있고, 둘째 아들 이름은 목타이라, 남해에서 관세음보살을 따라 제자가 되어 있으며, 셋째 아들은 이름이 나타이라, 내 곁에서 아침저녁으로 조회를 따라 임금을 호위하고 있소. 딸 하나는 나이가 이제 일곱 살이요 이름은 정영이라, 인간 세상 물정조차 아직 깨우치지 못하였거늘, 어찌 요괴가 될 수 있단 말이오!
믿지 못하겠거든 데려다가 그대가 직접 보시오. 이 원숭이 놈이 참으로 무례하구나! 내가 하늘의 원훈으로서 먼저 베고 나중에 아뢸 수 있는 직책을 받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계의 보잘것없는 백성이라 한들 함부로 모함하여 고발하게 둘 수는 없는 법이오. 율에 이르기를 무고한 자는 죄를 세 등이나 더한다 하였소.” 그리고 수하를 불렀다. “박요색으로 이 원숭이 놈을 묶어라!” 뜰 아래에는 거령신과 어두장과 약차웅수가 늘어서 있었는데, 일제히 앞으로 달려들어 행자를 묶었다. 금성이 말했다. “이천왕이여, 화를 부르지 마시오! 나는 어전에서 그와 함께 성지를 받들어 그대의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오. 그대의 밧줄이 꽤 무거우니, 자칫 그를 묶어 상하게 하면 일이 커질 것이오.” 천왕이 말했다. “금성이여, 저토록 거짓을 꾸며 고발하여 어지럽히는 자를 어찌 용납할 수 있겠소! 그대는 우선 앉아 있으시오. 내가 참요도를 가져다가 이 원숭이 놈의 목을 벤 뒤에, 그대와 함께 임금을 알현하고 성지를 돌리겠소!” 금성이 그가 칼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떨리고 간담이 서늘해져, 행자에게 말했다. “그대가 일을 그르쳤소. 임금께 올리는 소장인들 어찌 가볍게 고발할 수 있는 것이오? 그대도 실상을 알아보지 않고 이렇게 함부로 굴다가 목숨을 잃게 되면 어찌한단 말이오?” 행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싱글거리며 말했다. “노관아, 걱정 마시오. 아무 탈 없을 것이오. 늙은 손오공의 장사란 본래 이렇게 하는 법이라, 반드시 먼저 지고 나서 이기는 것이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왕이 칼을 휘둘러 행자의 머리를 향해 곧바로 내리쳤다. 그런데 미리 삼태자가 앞으로 달려나와 참요검으로 그 칼을 받쳐 막으며 외쳤다. “부왕이시여, 노기를 거두시옵소서.” 천왕은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다. 아!
아버지가 아들이 칼로 제 칼을 막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호통쳐 물리쳐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단 말인가? 원래 천왕이 이 아들을 낳았을 때에, 아이의 왼손바닥에는 “나” 자가 있고 오른손바닥에는 “타” 자가 있었으므로 이름을 나타라 하였다. 이 태자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바다로 내려가 몸을 씻다가 화를 불러일으켜, 수정궁을 짓밟아 무너뜨리고 교룡을 붙잡아 힘줄을 뽑아 띠를 삼으려 하였다. 천왕은 뒷날의 화근이 두려워 그를 죽이려 하였다. 나타는 분노하여 칼을 쥐고 살을 베어 어머니께, 뼈를 발라 아버지께 돌려드려 부모의 정혈을 모두 갚고, 한 점의 영혼만으로 곧장 서방 극락세계로 가 부처님께 호소하였다. 부처님께서 마침 뭇 보살에게 경을 강설하고 계실 때에, 당번과 보개 사이에서 누군가 “살려 주시옵소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처님께서 혜안으로 살펴보시고는 나타의 혼임을 아시고, 곧 푸른 연근으로 뼈를 삼고 연잎으로 옷을 삼아 주시고는 죽은 이를 살려 되돌리는 진언을 외우시니, 나타는 마침내 목숨을 얻었다. 신력을 부려 구십여 개 동굴의 요마를 법으로 항복받을 만큼 신통이 광대해지자, 훗날에는 천왕을 죽여 저 뼈를 발랐던 원한을 갚으려 하였다. 천왕은 어찌할 수 없어 우리 부처님 여래께 가서 구원을 청하였다. 여래께서는 화합을 으뜸으로 여기시어 영롱하고 투명한 사리자와 여의로 된 황금보탑을 내려 주셨는데, 그 탑에는 층층마다 부처가 있어 눈부시게 빛났다. 나타를 불러 부처를 아버지로 삼게 하여 원한의 매듭을 풀어 주셨다. 그러므로 탁탑이천왕이라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은 집에서 한가히 지내느라 그 탑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 나타가 원한을 갚으려 할까 두려웠으므로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던 것이다. 곧 손을 돌려 탑좌 위에서 황금보탑을 집어 들고는 손에 받쳐 든 채 나타에게 물었다. “얘야, 네가 칼로 내 칼을 막아서니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나타는 칼을 버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부왕이시여, 하계에 딸이 하나 있사옵니다.” 천왕이 말했다. “얘야, 나는 너희 남매 넷만 낳았거늘, 거기에 또 딸이 하나 있다는 말이냐?” 나타가 말했다. “부왕께서는 잊으셨사옵니다. 그 딸은 본래 요괴이옵고 삼백 년 전에 괴물이 되어, 영산에서 여래의 향화보촉을 훔쳐 먹었사옵니다. 여래께서는 저와 부왕께 천병을 거느리게 하시어 그를 붙잡게 하셨사옵니다. 붙잡았을 때에는 마땅히 때려 죽여야 하였으나, 여래께서 분부하시기를, 물을 모아 고기를 기르면서도 끝내 낚지 않고, 깊은 산에서 사슴을 기르면서 장수하기를 바란다 하시어, 그때에 그의 목숨을 살려 주셨사옵니다. 이 은혜를 마음에 쌓아 부왕을 아버지로 받들어 절하고, 저를 오라비로 받들어 절하여, 아래 세상에 위패를 차려 놓고 향불을 받들어 모셨사옵니다. 뜻하지 않게 그가 또 정령이 되어 당승을 해치려 하였는데, 손행자에게 소굴을 샅샅이 뒤져 위패를 빼앗기고는, 그것을 명분 삼아 임금께 소장을 올리게 되었사옵니다.
이는 의형제를 맺은 은혜로운 딸이옵고, 제 친동기인 친누이동생은 아니옵니다.”
천왕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얘야, 내가 참으로 잊었구나.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태자가 말했다. “그에게는 이름이 세 개이옵니다.
본래 태어난 내력으로는 금비백모 쥐 요괴라 불렀사옵고, 향화보촉을 훔친 까닭에 이름을 고쳐 반절관음이라 불렀사오며, 이제 하계로 내려보내어 살려 주었으므로 또 고쳐서 지용부인이라 하옵니다.”
천왕은 그제야 깨닫고 보탑을 내려놓고는, 친히 행자를 묶은 것을 풀려 하였다. 행자는 곧 심술을 부리며 말했다. “감히 누가 나를 풀려 하느냐! 차라리 밧줄을 매인 채로 임금께 들려 가야 늙은 손오공의 송사가 이기는 것이니라!” 놀란 천왕은 손에 힘이 빠지고 태자는 할 말이 없었으며, 뭇 가장은 움츠러들어 물러났다. 그 대성은 구르며 떼를 써서, 오직 천왕이 임금을 알현하러 가기만을 요구하였다. 천왕은 도리가 없어 금성에게 사정을 봐 달라 애원하였다. 금성이 말했다. “옛사람이 모든 일은 너그럽게 하라 하였소. 그대가 일을 너무 급히 서둘러 그를 묶고 또 죽이려 하였소.
이 원숭이는 유명한 무뢰한이오. 그대가 이제 나더러 어찌하란 말이오! 그대의 아드님이 말한 대로 따져 보면, 은혜로운 딸이요 친딸은 아니라 하나, 늦게 맺은 친족이라 의리가 무거우니, 어떻게 변론하든 그대에게도 죄명이 하나 생길 것이오.” 천왕이 말했다. “노성이여, 어떻게 사정을 봐 주어야 죄가 없겠소?” 금성이 말했다.
“나도 그대들을 화해시키고 싶지만, 달리 말할 실마리가 없소.” 천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그를 조안하여 벼슬을 내리자고 아뢰었던 일을 말해 보시오. 그러면 그도 그만둘 것이오.” 참으로 금성이 앞으로 나서서 손으로 행자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대성이여, 내 낯을 보아서 밧줄이나 풀고 임금을 알현하러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노관아, 풀 것 없소. 나는 구르는 법을 아니, 그냥 구르고 굴러서라도 갈 것이오.” 금성이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는 정말 정이 없구나. 내가 옛날에 그대에게 은의를 베푼 적이 있거늘, 이런 조그만 일로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나에게 무슨 은의를 베풀었단 말이오?” 금성이 말했다. “그대가 일찍이 화과산에서 괴물로 지내며 범을 굴복시키고 용을 항복받고, 죽은 자의 명부를 억지로 지워 버리고, 뭇 요괴를 모아 크게 기승을 부릴 때에, 하늘에서 그대를 잡으려 하였으나, 이 늙은이가 힘껏 아뢰어 조안의 성지를 내리게 하여 그대를 천상으로 불러 올려 필마온 벼슬을 내리게 하였소. 그대가 옥제의 선주를 마신 뒤에 또 조안할 적에도, 이 늙은이가 힘껏 아뢰어 제천대성에 봉하게 하였소. 그대가 또 본분을 지키지 않고 복숭아를 훔치고 술을 훔치며 노군의 단약을 훔치는 등 이러하고 저러한 일을 벌인 끝에야 비로소 멸함도 없고 남도 없는 몸이 되었소. 내가 아니었더라면 그대가 어찌 오늘에 이를 수 있었겠소?” 행자가 말했다. “옛사람의 말이 참 좋구나. 죽어서는 늙은이와 한 무덤을 쓰지 말라 하였으니, 남의 허물을 들추는 재주가 깨끗하게나 있구려! 나라고 해야 필마온을 지내고 천궁을 어지럽힌 것뿐이오. 다시 무슨 큰일이 있었단 말이오? 좋아, 좋아, 그대 노인장의 낯을 보아서, 그가 스스로 풀게나 하겠소.”
천왕은 그제야 감히 앞으로 나서서 결박을 풀고, 행자에게 옷을 갖추어 입고 윗자리에 앉아 달라 청한 뒤에, 하나하나 앞으로 나와 예를 올렸다. 행자가 금성을 향하여 말했다. “노관아, 어떠하오? 내가 먼저 지고 나서 이긴다 하였지. 장사란 본래 이렇게 하는 것이오. 어서 그를 재촉하여 임금을 알현하러 갑시다. 내 스승님을 그르치지 말란 말이오.” 금성이 말했다. “서두르지 마시오. 이만큼 애를 썼으니 차나 한 잔 마시고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그의 차를 마시고 그의 뇌물을 받아 죄인을 놓아 보내며 성지를 가볍게 여기면, 그대가 무슨 죄를 얻겠소?” 금성이 말했다. “차는 안 마신다! 차는 안 마신다! 나까지 이렇게 억지를 쓰게 만드는구나! 이천왕,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천왕이야 어찌 감히 가려 하였겠는가. 없는 말을 있는 말처럼 지어내고 심술을 부려 입으로 함부로 지껄이면 어찌 그와 변론할 수 있으랴. 하는 수 없이 또 금성에게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금성이 말했다. “내게 할 말이 한마디 있으니, 그대는 내 말을 따르겠소?” 행자가 말했다. “밧줄로 묶고 칼로 내 목을 베려 한 일도 내가 그대의 낯을 보아 넘겼거늘, 무슨 말이 더 남았단 말이오? 말해 보시오! 말해 보시오! 말이 좋으면 그대를 따르겠고, 말이 좋지 않으면 탓하지 마시오.” 금성이 말했다. “하룻동안의 송사가 열흘의 매질이라 하였소. 그대가 소장을 올려 요괴가 천왕의 딸이라 하였으나 천왕은 아니라 하니, 그대 둘이 어전에서 변론만 되풀이하여 끝이 나지 않을 것이오. 내가 말하건대, 하늘의 하루는 하계에서 곧 일 년이오. 그 일 년 사이에 그 요괴가 스승님을 굴 속에 가두어 두고, 혼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들을 낳기라도 한다면 작은 중 하나쯤은 낳았을 터인데, 큰일을 그르치지 않겠소?” 행자가 고개를 숙여 생각했다. “옳소! 내가 팔계와 사오정을 떠날 적에는 아무리 늦어야 밥이 익을 동안이라 하였거늘, 지금 벌써 이만큼 끌었으니 늦지 않았단 말이오? 노관아, 그대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으니, 이 성지는 어떻게 돌리면 되겠소?”
금성이 말했다. “이천왕더러 병사를 점검하여 그대와 함께 내려가 요괴를 항복받게 하고, 나는 가서 성지를 돌리겠소.”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어떻게 돌리겠단 말이오?” 금성이 말했다. “나는 원고는 도망쳤고 피고는 잡아 올릴 것 없다 하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소! 내야 그대의 정을 본 것뿐인데, 그대는 도리어 내가 도망쳤다 하다니! 그더러 남천문 밖에서 병사를 점검하여 나를 기다리라 하고, 나는 곧 그대와 함께 성지를 돌리고 소장을 바치러 가겠소.” 천왕이 두려워하며 말했다. “그가 이렇게 가 버린 뒤에 무슨 말을 지어 낸다면, 이는 신하가 임금을 배반하는 일이 되지 않소.”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늙은 손오공을 어떤 사람으로 여기느냐? 나 또한 대장부로다! 한마디가 이미 입에서 나갔으면 네 마리 말이 달려가도 쫓아잡을 수 없는 법인데, 어찌 또 더러운 말로 그대를 들이받겠느냐?” 천왕은 곧 행자에게 사례하고, 행자는 금성과 함께 성지를 돌리러 갔다. 천왕은 본부의 천병을 점검하여 곧장 남천문 밖으로 나왔다. 금성이 행자와 함께 옥제를 알현하여 아뢰었다. “당승을 가둔 자는 금비백모 쥐가 정령이 된 것으로, 천왕 부자의 위패를 거짓으로 차려 놓았사옵니다. 천왕이 이를 알고는 이미 병사를 점검하여 요괴를 거두러 갔사오니, 천존께서는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옥제는 이미 이 사정을 아시고는 하늘의 은혜를 내리시어 묻지 않으셨다. 행자가 곧 구름 빛을 되돌려 남천문 밖에 이르니, 천왕과 태자가 천병을 벌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 신장들이여, 바람이 굼실굼실 불고 안개가 자욱하게 이는 가운데 대성을 맞이하여 일제히 구름을 내려놓으니, 어느새 함공산에 당도하였다.
팔계와 사오정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천병과 행자가 오는 것이 보였다. 멍청이는 천왕을 맞아 나서며 예를 갖추어 말했다. “폐를 끼쳤소! 폐를 끼쳤소!” 천왕이 말했다. “천봉원수여, 그대는 모르는 일이오. 우리 부자가 그 요괴에게 향 한 자루를 받은 탓으로 요괴가 무례를 부려 그대의 스승님을 가두게 되었으니, 늦게 온 것을 탓하지 마시오. 이 산이 바로 함공산이란 말이오? 그러나 그의 굴 문이 어느 쪽을 향해 열렸는지는 알 수가 없구려.” 행자가 말했다.
“이 길은 내가 이미 익숙하게 다닌 길이오. 다만 이 굴을 무저동이라 하는데, 둘레가 삼백여 리요 요괴의 소굴이 매우 많소. 지난번에는 우리 스승님이 저 물방울 무늬 둘 달린 문루 안에 계셨는데, 이번에는 고요하기만 하고 귀신 그림자조차 없으니, 또 어디로 이사하였는지 알 수가 없소.” 천왕이 말했다. “그놈이 온갖 계교를 다 부린다 한들, 하늘의 그물과 땅의 올가미를 벗어나기 어렵도다. 굴 문 앞에 이르면 방도를 정하리라.” 모두 함께 걸었다. 아, 십여 리쯤 가니 곧 그 큰 바위 곁에 이르렀다. 행자가 항아리 입만 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바로 그곳이오.” 천왕이 말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야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으랴! 누가 앞장서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가 앞장서마.” 삼태자가 말했다. “나는 성지를 받들어 요괴를 항복받으러 왔으니, 내가 앞장서겠소.” 그 멍청이가 덜렁 나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선두는 이 늙은 돼지가 서야지!” 천왕이 말했다. “떠들 필요 없소. 내가 나누어 배치하는 대로만 하시오. 손대성과 태자가 병장들을 거느리고 아래로 내려가고, 우리 셋은 어귀를 지켜 안에서 호응하고 밖에서 합세하는 형세를 만들어, 저 요괴가 오를 하늘도 없고 들어갈 땅도 없게 만든 뒤에야 비로소 내 솜씨를 좀 보이겠소.” 뭇 사람이 일제히 “예.” 하고 대답하였다.
보라, 그 행자와 삼태자는 병장들을 거느리고 굴 속으로 단숨에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구름 빛을 일으켜 번쩍번쩍하며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과연 훌륭한 굴이로구나. 여전히 해와 달이라는 두 바퀴가 비추고, 그와 같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천이로다. 구슬 못과 옥 우물에서 따스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더욱 부러울 것들이 많구나. 다닥다닥 붉은 누각과 그림 같은 정자, 높디높은 붉은 벽과 푸른 밭이로다. 봄의 버들과 가을의 연꽃이여, 참으로 보기 드문 동천이로구나. 어느새 구름 빛을 멈추고 곧장 요괴의 옛 집에 이르렀다. 문마다 닥치는 대로 샅샅이 뒤지며 고함을 치고, 한 겹을 지나 또 한 겹, 한 곳을 지나 또 한 곳을 훑어, 삼백 리 땅의 풀까지 모조리 밟아 버렸으나, 어디 요괴가 보이더냐? 어디 삼장이 보이더냐?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이 짐승은 틀림없이 일찍이 이 굴을 빠져나가 멀리 가 버린 게지.” 그러나 동남쪽의 컴컴한 구석에, 아래로 내려다보면 또 작은 굴이 하나 있는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굴 속에는 작은 문이 하나 달리고, 낮은 집이 한 채 있으며, 화분에 몇 가지 꽃을 심고 처마 곁에 대나무 몇 대를 붙여 두었는데, 검은 기운이 자욱하고 그윽한 향기가 감도는 곳에 늙은 요괴가 삼장을 채어다 옮겨 놓고 억지로 혼례를 치르려 하며, 행자가 다시는 찾지 못하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요괴의 목숨이 이제 마땅히 끊어질 때가 되었으니, 그 작은 요괴들이 안에서 하나같이 재잘재잘 지껄이며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중에 담이 좀 큰 놈 하나가 목을 빼고 굴 밖을 슬쩍 내다보다가, 그만 천병 하나와 정면으로 부딪쳐 “여기 있소!” 하고 크게 소리쳤다. 행자가 성이 치밀어 금고봉을 비틀어 쥐고 단숨에 쳐들어갔는데, 그 안은 좁고 작아서 요괴 한 떼가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었다. 삼태자가 천병을 일으켜 일제히 몰려들자, 그놈들이 어디로 피하겠는가. 행자는 당승과 저 용마와 저 짐을 찾아내었다. 그 늙은 요괴는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깨닫고는, 나타 태자만 바라보며 머리를 조아려 목숨을 빌었다. 태자가 말했다.
“이는 옥제의 성지로 너를 잡으러 온 것이니,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로다. 우리 부자가 다만 향 한 자루를 받은 탓으로, 하마터면 중이 나무를 끌고 가 절을 지어 놓은 격이 될 뻔하였구나!” 그리고 소리쳐 외쳤다. “천병이여, 박요색을 내려 그 요괴들을 모조리 묶어라!” 늙은 요괴도 그쯤의 고초는 면하지 못하였다. 구름 빛을 되돌려 일제히 굴 밖으로 나왔다. 행자는 입으로 히히 하하거리고 있었다. 천왕이 굴 어귀를 열어젖히고 행자를 맞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대의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구려.” 행자가 말했다. “고맙소! 고맙소!” 그리고는 삼장을 이끌어 천왕에게 절을 올려 사례하고, 그다음으로 태자에게도 절을 올렸다. 사오정과 팔계는 다만 그 늙은 요괴를 잘게 찢어 버리려 하였으나, 천왕이 말했다. “그는 옥제의 성지를 받들어 잡은 것이니 함부로 할 수 없소. 우리는 또 가서 성지를 돌려야 하오.” 한편으로는 천왕과 삼태자가 천병과 신장을 거느리고 요괴를 압송하여 천조에 아뢰고 처분을 기다렸으며, 한편으로는 행자가 당승을 모시고 사오정이 짐을 거두며 팔계가 말을 끌어 당승을 말에 태우고 함께 큰길에 올랐다.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실로를 끊어 금빛 바다를 말리고, 옥 자물쇠를 열어 새장에서 나오는구나.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