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당삼장은 원양을 굳게 지켜 붉은 꽃의 고통스러운 올가미에서 벗어나, 행자를 따라 서쪽으로 길을 나아갔다. 어느덧 여름철이 되어 마침 훈훈한 남풍이 처음 일고 매화비가 가늘게 내리니, 참으로 좋은 경치였다. 우거진 녹음은 빽빽한데 바람은 가벼워 제비가 새끼를 이끈다. 새로 핀 연꽃은 못 위에서 뒤집히고, 늘씬한 대나무는 점점 무성해진다. 향기로운 풀은 하늘에 닿도록 푸르고, 산꽃은 땅에 가득 깔렸다. 시냇가의 부들은 칼을 꽂아 세운 듯하고, 석류의 붉은 불꽃은 길 떠나는 이의 그림을 북돋운다. 산과 들의 빛깔은 한 폭의 그림 같고, 바람에 이는 풀 냄새는 나그네의 옷깃을 적신다. 스승과 제자 네 사람은 땡볕의 더위를 견디며 묵묵히 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문득 길가에 두 줄로 늘어선 높은 버드나무가 보이고, 그 버드나무 그늘 속에서 한 노파가 오른쪽에 어린아이 하나를 끼고 걸어 나와 당승을 향해 크게 외쳤다. “스님, 더 이상 가지 말라. 어서 말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돌아가거라. 서쪽으로 들어가면 모두 죽을 길이니라.” 삼장은 깜짝 놀라 말에서 뛰어내려 합장하며 물었다.
“노보살이여, 옛사람이 이르기를 바다가 넓으니 물고기가 뛰놀고, 하늘이 텅 비었으니 새가 날아다닌다 하였거늘, 어찌 서쪽으로 나아가면 길이 없다 하시나이까?” 그 노파가 손으로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오륙 리쯤 가면 멸법국이니라. 그 나라는 본래 이름난 곳이거늘 이제는 법을 멸하는 땅이 되었느니라. 그 나라 왕은 전생의 어느 세상에서 원한을 맺었는데 금생에 까닭 없이 죄를 짓고 있느니라. 밤낮으로 승려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 그 마음이 이미 굳어 버렸느니라. 이태 전에 하늘에 큰 원을 세워 승려 만 명을 죽이기로 하였는데, 이 두 해 동안 차례차례 이름 없는 승려 구천구백구십육 명을 죽였으니, 이제 이름 있는 승려 넷만 기다려 만 명을 채워 원만을 이루려 하느니라. 너희가 가서 성 안에 들어가면 모두 목숨을 바치는 왕보살이 되느니라!” 삼장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노보살이여, 깊으신 정의를 감사하고 또 감사하옵니다! 다만 여쭙건대 성에 들어가지 않고 돌아갈 편한 길이 있사온지요. 저 가난한 중이 그리로 돌아가겠나이다.” 그 노파가 웃으며 말했다.
“돌아갈 수 없느니라, 돌아갈 수 없느니라. 날 줄 아는 자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느니라.” 팔계가 곁에서 입을 놀리며 말했다. “할머니, 헛소리 마시오. 우리도 다 날 줄 아오.” 행자의 불꽃 같은 눈은 참으로 좋고 나쁨을 알아보았으니, 노파가 끼고 있던 아이는 본래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였다. 그는 속으로 그제야 깨달으며, 우리가 어려운 고비에 이르렀으니 보살께서 몸소 길을 막아 알려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행자가 황급히 몸을 던져 절하며 외쳤다. “보살이시여, 제자가 영접이 늦었나이다! 늦었나이다!” 보살이 한 송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가볍게 떠오르니, 당장로는 놀라 발붙일 곳을 잃고 그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팔계와 사오정도 황급히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절했다. 잠시 사이에 상서로운 구름은 아스라이 멀어져 곧장 남해로 돌아갔다. 행자가 일어나 스승을 부축하며 말했다. “일어나시옵소서. 보살께서는 이미 보산으로 돌아가셨나이다.” 삼장이 일어나며 말했다. “오공아, 네가 보살인 줄 알았다면 어찌하여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께서 아직 말씀이 끝나지도 않으셨는데 내가 곧 절을 올렸거늘, 어찌 일찍이 아니라 하시나이까?” 팔계와 사오정이 행자에게 말했다. “보살께서 가르쳐 주신 덕분에 앞쪽이 틀림없이 멸법국이고 승려를 죽인다 하니, 우리는 어찌하면 좋겠소?”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겁낼 것 없다! 우리는 전에도 독한 마귀와 사나운 요괴, 범의 굴과 용의 못을 만났어도 조금도 다치지 않았거늘, 여기는 한 나라의 범인일 뿐이니 무서울 것이 무엇이냐? 요괴는 도술을 부려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였건만, 이 나라 사람들은 맨손으로 우리를 어찌하겠느냐? 다만 이곳이 머물 곳이 아닐 뿐이다. 날이 저물어 가니, 시골 사람들로서 성에 장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자들이 우리가 중인 것을 보고 소문을 퍼뜨리면 편치 않다. 스승을 모시고 큰길에서 벗어나 외진 곳을 찾아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 삼장이 참으로 그 말대로 하니, 일행이 모두 길에서 비켜 나와 한 구덩이 아래에 앉았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들, 너희 둘이 스승을 잘 모시고 있거라. 내가 변신하여 그 성 안을 가 보고 외진 길을 찾아 밤새 지나가겠다.” 삼장이 당부했다. “제자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저 나라 왕이 승려를 원수처럼 여기니 왕법이 용납하지 않을 터, 모름지기 조심하거라! 만일 황제의 군사에게 붙잡히면 내가 너를 구할 방도가 없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염려 마시옵소서! 염려 마시옵소서! 제게 방도가 있나이다.”
훌륭한 대성이여, 말을 마치고 몸을 한 번 솟구쳐 휘파람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기이하도다. 위에서는 줄이 당기지 않고 아래에서는 막대가 받치지 않았는데, 부모는 한결같이 같은데 그놈만 뼈가 가볍구나. 구름 속에 우뚝 서서 아래를 굽어보니 성 안은 기쁜 기운이 넘실대고 상서로운 빛이 넘쳤다. 행자가 말했다. “좋은 곳이로구나, 어찌하여 법을 멸한단 말인가?” 한참 보고 있으니 점점 날이 어두워지면서 또 이런 광경이 보였다. 십자 거리의 등불은 찬란하고, 구중전에서는 향내 자욱한 가운데 종이 울린다. 일곱 점의 밝은 별이 푸른 은하를 비추고, 팔방의 나그네가 발걸음을 푼다. 육군영에서는 희미하게 뿔나팔 소리가 막 불려 나오고, 오고루에서는 똑똑똑 물시계가 막 떨어진다. 사방에 밤안개는 아득하고, 세 저잣거리의 찬 연기는 자욱하다. 두둥실 부부는 수놓은 발 안으로 돌아가고, 한 바퀴 밝은 달이 동쪽 하늘에 오른다. 저잣거리의 인기척은 점차 잦아들고, 성루 위의 깃발은 바람에 부드럽게 나부낀다. 행자가 생각했다. “내가 내려가 거리에서 길을 살펴보자. 그런데 이런 몰골로 사람을 만나면 틀림없이 중이라 할 터이니, 내가 변신을 해야겠다.” 결을 쥐고 진언을 외우며 몸을 흔들어 변하니, 등불로 날아드는 나방이 되었다.
몸은 가늘고 날개는 얇아 가볍고 날렵하며, 등불을 끄고 촛불로 날아들어 빛을 좇는다. 본래의 면목이 화하여 생겨났으니 썩은 풀 속에서 영험하도다. 늘 불꽃을 사랑하여 불길에 닿으니 바삐 날아 돌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자줏빛 옷과 향기로운 날개로 흐르는 반딧불을 쫓으니, 밤이 깊어 바람 잦아듦을 가장 즐긴다. 보라, 그가 펄펄 날아 육가삼시로 향한다. 빙빙 돌며 날다가 잠시 기와 위에 앉았다가, 이내 다시 날개를 펴고 골목의 어둠을 헤쳐 나간다. 처마 곁을 지나고 집 모퉁이에 다가서는데, 바로 그때 문득 모퉁이가 굽은 곳의 한 무리 집이 보이고, 그 집 문 앞에 등롱이 걸려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 집은 정월 대보름을 지내는가? 어찌 줄줄이 등을 다 켜 놓았을까?” 날개를 빳빳이 펴고 가까이 날아가 자세히 보니, 한가운데 있는 집의 네모난 등롱에는 장사하러 다니는 나그네를 묵게 한다는 여섯 글자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또 왕소이의 여관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행자는 비로소 음식점을 하는 집임을 알았다. 또 머리를 내밀어 들여다보니 여덟아홉 명이 저녁을 먹고는 옷을 헐렁하게 하고 두건을 벗고 손발을 씻은 뒤 저마다 침상에 올라 잠들고 있었다. 행자가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스승께서 지나가실 수 있겠구나.” 그가 어찌 지나갈 수 있음을 알았겠는가? 좋지 않은 마음을 일으켜, 그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옷과 두건을 훔쳐 속인으로 변장하여 성에 들어가려 한 것이었다.
아, 이토록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구나!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왕소이가 앞으로 나서며 분부했다. “여러분, 조심하시구려. 내 집은 군자와 소인이 다르니, 제각기 옷과 행장을 모두 조심하시오.” 밖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어찌 조심하지 않겠는가? 또 주인의 분부를 듣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들이 모두 일어나며 말했다. “주인장의 말씀이 옳소. 우리 길 가는 사람은 고단하니, 잠이 들어 깨지 못하는 바람에 잃어버릴까 두렵거든. 이 옷과 두건과 보따리를 모두 안으로 거두어 두고, 날이 밝으려 할 때 우리에게 건네 주어 길을 떠나게 하구려.” 그 왕소이는 참으로 그 옷가지들을 모조리 자기 방으로 옮겨 갔다. 보고 있던 행자는 속이 타들어 갔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 잠자리만 노려보았다. 행자가 성급하게 날개를 펴고 안으로 날아들어 가 두건 걸이에 붙었다. 또 왕소이가 문 앞으로 가서 등롱을 내리고, 걸쇠를 내리고 문과 창을 닫은 뒤에야 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누웠다. 그 왕소이에게는 늙은 아내가 있어 아이 둘을 데리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와와 떠들어대며 좀처럼 잠들지 않았다. 그 노파는 또 해진 옷 한 벌을 꺼내 등불을 가까이 당겨 놓고 한 땀 한 땀 꿰매고 기웠는데, 밤이 깊어도 자려 하지 않았다. 행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파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손을 쓰자니 스승을 지체시키지 않겠는가?” 또 밤이 깊어 성문이 닫힐까 두려워, 참지 못하고 날아 내려가 등불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참으로 몸을 불꽃에 던지고 이마를 그을리며 목숨을 건 것이니, 그 등불은 이미 꺼져 버렸다. 그가 또 몸을 흔들어 변하니 쥐가 되어, 찍찍 깨갱거리며 두어 번 울고는 뛰어내려와 옷과 두건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노파가 당황하며 말했다. “영감!
큰일 났소! 밤쥐가 도깨비가 되었단 말이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또 수단을 부려 문을 막아 서서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왕소이, 네 아내의 헛소리를 듣지 말라. 나는 밤쥐가 도깨비가 된 것이 아니다. 밝은 사람은 남몰래 일을 하지 않는 법, 나는 제천대성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당승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자다. 너희 왕이 무도하여 승려를 함부로 죽이므로 특별히 이 의관을 빌려 내 스승을 꾸미는 것이니, 성을 지나가고 나면 곧 돌려주겠다. 네가 만일 떠들어 사람을 모으면 내 도리어 너를 겁주어야 하리니, 조용히 누워 있거라.” 그 왕소이가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났는데, 캄캄한 밤에 다급한 사람이라 바지를 웃저고리로 잘못 집어 들고는 왼쪽으로 입어도 입혀지지 않고 오른쪽으로 꿰어도 꿰어지지 않았다.
그 대성이 섭법을 써서 벌써 구름을 타고 나가 몸을 뒤집어, 길 아래 구덩이 곁으로 곧장 왔다. 삼장은 별빛과 달빛이 밝은 가운데 몸을 내밀어 바라보다가 행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입을 열어 불렀다. “제자야, 멸법국을 지나갈 수 있겠느냐?” 행자가 앞으로 나와 옷가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승이여, 멸법국을 지나가자면 중 노릇을 할 수 없나이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누구를 희롱하시오? 중 노릇을 안 하는 것도 쉬우니, 반년만 머리를 깎지 않으면 털이 자라나오.” 행자가 말했다. “반년을 어찌 기다리느냐! 지금 당장 모두 속인이 되어야 한다!” 그 멍청한 놈이 당황하며 말했다. “형님 말씀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소. 우리가 지금 모두 중인데 당장 속인이 되자니 어찌 두건을 쓰겠소? 머리가 이렇게 번들번들한데 두건을 걸칠 곳이 있어야지요. 가를 동여매도 정수리를 거둘 끈이 없지 않소.” 삼장이 꾸짖었다. “농담하지 말고 정사나 하라! 끝내 어찌된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이여, 이 성은 내가 이미 살펴보았나이다. 왕이 무도하여 승려를 죽이기는 하나 도리어 참된 천자라 성 위에 상서로운 빛과 기쁜 기운이 있나이다. 성 안의 거리도 내가 알고, 이곳의 사투리도 내가 알아 말할 수 있나이다. 그러니 입을 열어도 남들이 의심할 틈이 없나이다. 조금 전 음식점에서 이 옷과 두건을 빌렸으니, 우리가 속인으로 변장하여 성에 들어가 하루 묵고, 사경천에 일어나 주인에게 공양을 차리게 하옵소서. 오경 때까지 버티다가 성문을 따라 나가 큰길로 서쪽으로 달아나면, 누가 만나 붙잡더라도 변명하기 좋사오니, 다만 상국에서 황제가 보낸 사신이라 하면 멸법왕도 감히 막지 못하고 우리를 보내 줄 것이외다.” 사오정이 말했다. “사형의 방도가 가장 옳사오니 그대로 하옵시다.” 장로는 참으로 어쩔 수 없어 한숨을 내쉬며 가사를 벗고 승모를 벗어던지고는 속인의 옷을 입고 두건을 썼다. 손으로 머리를 몇 번이나 쓸어 보며 볼멘소리로 중이 속인 행세를 하게 되었구나 하고 탄식했다. 사오정도 갈아입었다. 팔계는 머리가 커서 두건을 쓸 수 없자, 행자가 바늘과 실을 가져다 두건을 찢어 두 개를 하나로 꿰매어 그의 머리에 걸쳐 주고, 너른 옷을 골라 입혔다. 그런 다음 행자도 한 벌로 갈아입고는 말했다. “여러분, 이번 길에서는 스승과 제자라는 네 글자를 거두어 두시오.” 팔계가 말했다. “그 네 글자를 빼면 어떻게 부르리까?” 행자가 말했다. “모두 형제로 부르시오. 스승은 당대관이라 하고, 너는 주삼관이라 하고, 사오정은 사사관이라 하고, 나는 손이관이라 하시오. 주막에 들어가거든 너희는 절대 입을 열지 말고 나 혼자만 대답하게 하시오. 무슨 장사를 하느냐고 물으면 말 장수라 하시오. 이 백마를 본보기로 삼아 우리가 열 형제인데 우리 넷이 먼저 와서 여관을 빌려 말을 팔겠다 하시오. 그러면 주인이 틀림없이 우리를 잘 대접할 터이니 실컷 먹고 나서, 떠날 때에 내가 기와 조각을 주워 은덩이로 변하게 해서 고맙다고 주고 길을 가면 되오.” 장로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네 사람이 부지런히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저쪽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태평한 경계라 초경이 되어도 아직 문을 닫지 않아 곧장 들어가 왕소이의 여관 앞까지 이르렀는데, 안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는 “내 두건이 없어졌소!” 하고, 어떤 이는 “내 옷이 없어졌소!” 하였다. 행자는 모르는 체하며 그들을 이끌고 비스듬한 맞은편 집으로 가서 묵었다. 그 집은 아직 등롱을 거두지 않았으므로 곧 문 가까이 가서 불렀다. “주인장, 묵을 빈방이 있소이까?” 그 안에서 어떤 부인이 대답했다. “있고말고, 있사옵니다. 나리들, 위층으로 올라오시옵소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내 하나가 와서 말을 끌었다. 행자가 말을 넘겨주어 안으로 끌고 들어가게 하고는 스승을 이끌고 등불 그림자 뒤로 해서 곧장 위층 문으로 올라갔다. 그 위층에는 마련된 탁자와 의자가 있어 창살을 열어젖히고 달빛을 받으며 나란히 앉았다. 창밖으로는 저잣거리의 등불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고, 아래층에서는 아직 그릇 부딪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이가 등을 켜 가지고 오자 행자가 문을 막고 한입에 후 불어 끄며 말했다. “이런 달빛에 등은 필요 없소.” 그 사람이 막 내려가는데 또 계집종 하나가 맑은 차 네 그릇을 가져왔다. 행자가 받아 들자 아래층에서 또 부인 하나가 올라왔는데, 쉰일고여덟쯤 되어 보이는 모습으로 곧장 위층에 올라와 곁에 서서 물었다. “여러분, 어디서 오셨소이까? 무슨 보화를 지니셨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우리는 북쪽에서 왔는데, 굵은 말이 몇 필 있소.” 그 부인이 말했다. “말 장수 치고는 아직 젊으시구려.”
행자가 말했다. “이분이 당대관이고, 이분이 주삼관이고, 이분이 사사관이고, 저야말로 손이관이오.”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성이 다 다르구려.” 행자가 말했다. “바로 성이 다른 이들이 함께 사는 것이오. 우리가 모두 열 형제인데 우리 넷이 먼저 여관을 빌려 불을 쬐러 왔소. 나머지 여섯은 성 밖에서 묵고 있는데 말 한 떼를 끌고 있어서 날이 늦어 성에 들어오기 어려웠소. 우리가 방을 빌리면 내일 아침에 모두 들어와서, 말을 팔고 나서야 돌아갈 것이오.” 그 부인이 말했다. “한 떼가 몇 필이나 되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큰 것 작은 것 백 필 남짓인데, 모두 내 이 말만 한 몸집이오. 다만 털빛이 같지 않을 뿐이오.”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손이관 나리는 참으로 객강객기로구려. 일찍이 내 집에 오셨으니 망정이지, 다른 집에서는 감히 모시지 못했을 것이오. 내 집은 뜰이 넓고 구유가 갖추어져 있고 꼴도 넉넉하니, 몇 백 필이라도 다 기를 수 있소. 물 긷는 이와 꼴 썰 이도 있으니 나리들께서는 마음 놓고 주무시기만 하시오. 다만 한 가지, 내 집이 여기서 여관을 오래 하여 변변잖은 이름이 있소. 일찍이 세상을 떠난 내 남편의 성이 조이오. 그래서 내 가게를 조과부점이라 하오. 내 가게에서는 세 가지로 손님을 대접하오. 이제 먼저 소인이 되고 나중에 군자가 되어, 먼저 방값을 정한 뒤에 셈을 하기로 하지요.” 행자가 말했다. “옳은 말이오. 댁에서는 어느 세 가지로 대접하오? 속담에 이르기를, 물건은 높고 낮음에 세 가지 값이 있으나 손님은 멀고 가까움에 한결같이 본다 하였거늘, 어찌 세 가지로 대접한다 하시오? 내게 한번 말해 보시오.” 조과부가 말했다. “내 집은 상, 중, 하 세 가지요. 상등 것은 다섯 가지 과일과 다섯 가지 채소의 연회에, 사선의 사탕으로 장식한 상을 두 사람에 하나씩 놓고, 젊은 계집아이를 불러와 노래하고 함께 자게 하니, 한 사람에 은 오 돈씩이오. 방값도 그 안에 들어 있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싸구려! 내 고향에서는 은 오 돈으로는 계집아이를 부르기에도 부족하오.” 과부가 또 말했다. “중등 것은 합반탁에 과일과 뜨거운 술뿐이오. 술을 따라 스스로 알아서 술령 놀이를 하고, 계집아이는 쓰지 않으니 한 사람에 은 두 돈이오.” 행자가 말했다. “더욱 싸구려! 하등 것은 어떠하오?” 부인이 말했다. “존귀한 손님 앞에서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말해도 무방하니 우리가 알맞은 것을 골라 하겠소.” 부인이 말했다.
“하등 것은 시중드는 이가 없고 솥에 편한 밥이 있으니 먹고 싶은 대로 퍼먹는 것이오. 상을 따로 차리지도 않고 술도 따로 내지 않소. 배가 부르면 짚을 가져다 땅에 자리를 깔고 편한 곳에서 자고, 날이 밝으면 밥값이나 몇 푼 주시오. 절대로 다투지 않소.” 팔계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횡재로구나, 횡재로구나! 내 장사가 왔구나! 내가 솥을 지켜보다가 밥을 배부르게 먹고 부엌 앞에서 자 버려야겠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 무슨 소리냐! 너와 내가 강호에서 어디서 은 몇 냥을 벌지 못했더냐! 상등 것으로 차려 오라 하시오.” 그 부인이 몹시 기뻐하며 곧 외쳤다. “좋은 차를 내오라 하고, 부엌에서는 빨리 음식을 장만하라.” 그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바삐 외쳤다.
“닭 잡고 거위 잡고, 절인 것을 삶아 반찬을 만들어라. 국도 진하게 끓이고 안주도 푸짐하게 차려라.” 또 외쳤다. “돼지 잡고 양 잡아라. 오늘 다 못 쓰면 내일이라도 쓸 수 있다. 좋은 술을 내오고, 흰쌀로 밥을 짓고 흰 밀가루로 떡을 밀어라.” 삼장이 위층에서 이 소리를 듣고 말했다.
“손이관, 어찌하면 좋겠느냐? 저이가 닭과 거위를 잡고 돼지와 양을 잡아서 만약 가져온다면 우리는 모두 장재인데 누가 감히 먹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게 방도가 있소.” 그리고 층문 곁으로 가서 발을 구르며 말했다.
“조마마, 이리 올라오시오.” 그 마마가 올라오며 말했다. “이관 나리, 무슨 분부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오늘은 살생하지 마시오. 우리가 오늘 재계를 하오.” 과부가 놀라며 말했다. “나리들은 장재이오이까, 월재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둘 다 아니오. 우리는 경신재라 하오. 오늘이 바로 경신일이라 하늘에 서약하고 마땅히 재를 지내야 하니, 삼경만 지나면 신유가 되어 재가 풀리는 것이오. 내일 살생하시오. 지금은 채소 음식을 좀 장만해 오시오. 값은 틀림없이 상등 값대로 올려 드리리다.” 그 부인이 더욱 기뻐하며 뛰어 내려가 일렀다. “잡지 말라! 잡지 말라! 목이버섯과 말린 죽순, 두부, 면근을 가져오고, 뜰에서 푸성귀를 뽑아 당면국을 만들고, 발효시킨 밀가루로 찐빵을 쪄라. 그리고 흰쌀밥을 짓고 향기로운 차를 끓여라.” 아!
부엌을 맡은 요리사들은 모두 날마다 익숙하게 하던 솜씨라, 칼질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장만을 마쳐 위층에 차려 놓았다. 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선 사탕과 과자가 있어 네 사람이 마음껏 즐겼다. 또 물었다.
“소주를 드시겠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당대관만 쓰지 않고 우리도 몇 잔 하겠소.” 과부가 또 따뜻한 술 한 병을 가져왔는데, 그 세 사람이 막 잔에 따르려는데 문득 빵빵 하는 널빤지 소리가 들렸다. 행자가 말했다.
“마마, 아래에서 무슨 그릇이 넘어졌소이까?” 과부가 말했다. “아니오. 내 작은 농장의 일꾼 몇이 소작료로 쌀을 가져오다가 늦어져서 아래에서 재웠소. 손님이 오셨는데 부릴 사람이 없어 그들을 시켜 가마를 메고 뜰로 가서 젊은 계집아이를 모셔 와 손님을 모시게 하려 했더니, 가마 채가 마루 널빤지를 들이받은 소리인 모양이오.”
행자가 말했다. “일찍 말씀하시지 그랬소이까. 어서 데려오지 마시오. 하나는 재계하는 날이기 때문이고, 둘은 형제들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오. 아예 내일 들어오면 집마다 기생 하나씩을 불러 댁에서 놀다가, 말을 팔고 길을 떠나는 것이 좋겠소.” 과부가 말했다. “착한 분들이오, 착한 분들이오! 화기도 잃지 않고 정신도 기르시니 말이오.” 그리고 일렀다.
“가마를 들여놓아라, 데려오지 말고.” 네 사람은 술과 밥을 먹고 그릇을 거두자 모두 흩어졌다.
삼장이 행자의 귀밑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어디서 자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바로 이 위층에서 자지요.” 삼장이 말했다. “편치 않소. 우리가 모두 고단하니, 자다가 이 집 사람이 다시 와서 치우다가 우리가 모자를 굴려 대머리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중인 줄 알아 소란을 피우면 어찌하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옳소!” 하고는 층 앞으로 가서 발을 굴렀다. 과부가 또 올라오며 말했다. “손관인께서 또 무슨 분부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어디서 자오?” 부인이 말했다. “위층이 자기 좋소. 모기도 없고 남풍도 불고 창을 크게 열어 놓아 자기에 아주 좋소.” 행자가 말했다. “잘 수 없소. 내 이 주삼관은 한습기가 좀 있고, 사사관은 어깨바람이 좀 있고, 당대형은 꼭 어두운 곳에서 자야 하고, 나도 눈이 부셔 견디지 못하오. 이곳은 잘 곳이 못 되오.” 그 마마가 아래로 내려가 가게 탁자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 그에게 딸이 있어 아이를 안고 가까이 와서 말했다. “어머니, 속담에 이르기를, 열흘을 여울가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 아홉 여울을 건넌다 하였소. 지금은 더운 철이라 장사가 없더라도 가을이 되면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장사가 있을 터인데, 무엇을 한숨 쉬시오?” 부인이 말했다. “얘야, 장사가 없어 걱정하는 게 아니란다. 장사란 것이 오면 하는 것이고 가면 그만인 것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오늘 저녁 가게를 거둘 무렵, 초경 무렵에 말 장수 네 사람이 와서 방을 빌리며 상등 대접을 원했단다. 은 몇 돈을 벌어 볼 참이었더니 그들이 재를 먹는 바람에 돈을 벌 수가 없어서 한숨을 쉰단다.” 딸이 말했다. “그들이 밥을 이미 먹었으니 다른 집으로 가기도 어렵겠지요. 내일 고기와 술을 차리면 되는데 어찌 돈을 벌 수 없소이까?” 부인이 또 말했다. “그들은 다 병이 있어 바람을 무서워하고 빛을 부끄러워하여 모두 어두운 곳에서 자겠다지 않느냐. 집안이란 게 다 얇은 기와를 얹은 집뿐인데, 어디서 어두운 곳을 찾겠느냐? 차라리 밥 한 끼를 주어 먹이고 다른 집으로 가게 하는 게 낫겠다.” 딸이 말했다. “어머니, 우리 집에 어두운 곳이 있고 바람도 없으니 아주 좋소, 아주 좋소.” 부인이 말했다. “어디란 말이냐?” 딸이 말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 큰 궤짝 하나를 만들었소. 귀한 물건을 담아 두려고 튼튼한 나무로 짠 것이라 쇠못까지 단단히 박혔소. 그 궤는 너비가 네 자, 길이가 일곱 자, 높이가 석 자쯤 되어 안에 예닐곱 명은 잘 수 있소. 그들을 궤 속에 가서 자게 하지요.” 부인이 말했다.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내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마. 손관인, 제 집은 초라하여 어두운 곳은 없고 큰 궤짝 하나뿐이라 바람도 새지 않고 빛도 새지 않는데, 궤 속에 가서 주무시겠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그리고 일꾼 몇을 시켜 궤를 메어 내오고 뚜껑을 열어 그들을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했다. 행자가 스승을 이끌고 사오정이 짐을 들고 등불 그림자 뒤를 따라 곧장 궤 곁으로 갔다. 팔계는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배부터 집어넣으며 먼저 궤 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사오정이 행리를 넣고 당승을 부축하여 들어가게 한 뒤 사오정도 안으로 들어갔다. 행자가 말했다. “내 말은 어디 있소?” 곁에서 시중들던 이가 말했다. “말은 뒷방에 매어 두고 꼴을 먹고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끌어 오시오. 구유도 가져다 궤에 바짝 붙여 매어 두시오.” 그런 다음에야 들어가며 외쳤다. “조마마, 뚜껑을 덮고 빗장을 꽂고 자물쇠를 채우시오. 그리고 어디가 빛이 새는지 보시고 종이로 좀 발라 주시오. 내일 일찍 와서 열어 주시오.” 과부가 말했다. “너무 조심스러우시구려!” 이리하여 저마다 문을 닫고 자러 갔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그 넷이 궤 속에 들어갔는데, 가련하도다! 하나는 두건을 처음 써서이고, 둘은 날씨가 더워서이며, 또 기가 막혀 바람이 조금도 통하지 않으니, 그들은 모두 두건을 벗고 옷을 벗었다. 부채도 없어 승모로 펄펄 부채질할 뿐이었다.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숨은 턱에 닿을 듯 막혔다. 네가 나를 밀치고 내가 너를 비비대며 이경이 되어서야 모두 잠이 들었다. 오직 행자만은 일부러 사고를 칠 생각이라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손을 뻗어 팔계의 다리를 한번 꼬집었다. 그 멍청한 놈이 발을 움츠리며 입으로는 응응거리면서 말했다. “자자고! 고단한데 무슨 마음으로 손을 꼬집고 발을 만지며 장난이냐?” 행자가 거짓말을 꾸며 말했다. “우리 본전이 오천 냥이고, 앞서 말을 팔아 삼천 냥을 벌었으니, 지금 두 보따리에 사천 냥이 있고, 이 말 떼를 팔면 또 삼천 냥이니, 원금에 이익 하나가 붙어 넉넉하다! 넉넉하다!” 팔계는 자려는 사람이라 어찌 대답하겠는가. 그런데 이 여관의 심부름꾼과 물 긷는 이와 불 때는 이가 본래 도둑패와 한통속이라, 행자가 은을 많이 가졌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몇이 슬그머니 나가서 도둑 스무 명 넘게를 끌어 모아, 횃불을 들고 몽둥이를 잡고 말 장수들을 털러 왔다. 문을 부수고 들어오니 조과부 모녀는 부들부들 떨며 방문을 닫아걸고 밖에서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린 아이는 놀라 울음을 터뜨렸고, 어미는 그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채 숨을 죽였다. 알고 보니 그 도둑들은 여관의 살림살이를 원하지 않고 손님만 찾았다. 위층에 올라가도 흔적이 없어 횃불을 들고 사방을 비추어 보니, 뜰 한가운데 큰 궤짝 하나가 있고 궤 다리에 백마 한 필이 매여 있으며 궤 뚜껑은 굳게 잠겨 뒤집어도 꼼짝하지 않았다. 도둑들이 말했다. “강호를 떠도는 사람들은 다 수단이 있는 법, 이 궤가 육중하고 무거운 걸 보니 틀림없이 행낭과 재물이 안에 잠겨 있소. 우리가 말을 훔치고 궤를 메고 성 밖으로 나가 열어 나눠 가지면 좋지 않소?” 그 도둑들이 과연 밧줄과 상여 채를 구해다 궤를 메고 곧장 걸어가니 껄렁껄렁 흔들렸다. 팔계가 깨어나며 말했다. “형님, 잡시다. 무엇을 흔드오?” 행자가 말했다. “말하지 말라! 아무도 안 흔든다.” 삼장과 사오정도 홀연 깨어나며 말했다. “누가 우리를 메고 가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떠들지 말라, 떠들지 말라! 메고 가게 두어라! 서천까지 메고 가면 걷지 않아도 되니 좋지 않으냐.”
그 도둑들은 손에 넣고도 서쪽으로 가지 않고 도리어 성 동쪽으로 메고 가서, 문을 지키던 군사를 죽이고 성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곧 육가삼시가 소란해지고, 각 점포의 화갑과 인부들이 모두 순성총병과 동성병마사에 보고했다. 그 총병과 병마는 자기 소관의 일이라 곧 인마와 궁병을 점검하여 성 밖으로 나가 도둑을 쫓았다. 도둑들은 관군의 기세가 크자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큰 궤를 내려놓고 백마를 버린 채 제각기 풀숲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관군은 도둑을 반 명도 잡지 못하고 다만 궤를 빼앗고 말을 잡아 승리하여 돌아왔다. 총병이 등불 아래에서 그 말을 보니, 좋은 말이었다.
갈기는 은실을 나눈 듯하고 꼬리는 옥 조각을 늘어뜨린 듯하다. 팔준이며 용구를 무엇이라 하리오, 숙상과 관단을 능가하도다. 천금으로 뼈를 사고 만 리를 바람을 쫓는다. 산에 오를 때마다 푸른 구름과 어우러지고, 달을 향해 울부짖음은 흰 눈처럼 고르구나. 참으로 교룡이 바다 섬을 떠난 듯하고, 인간 세상에 옥기린이 있어 기쁘도다.
총병관은 자기 말은 타지 않고 이 백마에 올라 군사를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며 연신 훌륭한 준마라며 칭찬을 멈추지 않았는데, 궤짝을 총부로 메어 가게 하고 병마와 함께 봉함 종이를 써서 봉한 뒤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고, 날이 밝으면 아뢰어 황제의 뜻을 받들어 처리하기로 했다. 관군은 흩어졌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당장로가 궤 안에서 행자를 원망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새끼, 나를 죽이려는구나!
바깥이었으면 남에게 붙잡혀 멸법국 왕에게 보내진다 해도 변명할 여지가 있거늘, 이제 궤 속에 갇혀 도둑에게 빼앗겼다가 또 관군에게 빼앗겨 내일 왕을 만나면 그대로 목을 내밀어 죽음을 청하게 되니, 그 만 명의 수를 채워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밖에 사람이 있소! 궤를 열고 꺼내면 묶이거나 매달리게 될 터이니, 좀 참으시오. 묶이고 매달리는 것을 면하는 셈이오. 내일 그 어리석은 임금을 만나면 내게 대답할 방도가 있으니 터럭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리다. 안심하고 좀 주무시오.” 삼경이 되자 사방이 고요해져 개 짖는 소리마저 끊겼다. 그때 행자가 수단을 부려 봉을 꺼내고 신선한 기운을 한입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세 갈래 머리를 가진 송곳으로 변했다. 궤 다리 곁을 두세 번 쑤셔 구멍 하나를 뚫었다. 송곳을 거두고 몸을 흔들어 변하니 땅강아지가 되어 기어 나가 본래 몸을 드러내고 구름을 밟고 황궁 문 밖으로 곧장 들어갔다. 그 왕이 깊이 잠든 사이, 그가 큰 분신보회신법을 써서 왼팔의 털을 모두 뽑아 신선한 기운을 한입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모두 작은 행자로 변했다. 오른팔의 털도 모두 뽑아 신선한 기운을 한입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모두 졸음벌레로 변했다. “옴” 자 진언을 한 번 외워 당방토지에게 명하여 무리를 이끌고 황궁 내원과 오부 육부, 각 아문의 크고 작은 관리의 집 안에 두루 흩뿌리게 하니, 품계와 직책이 있는 자는 모두 졸음벌레 하나씩을 받아 저마다 깊이 잠들어 몸을 뒤척이지 못했다. 또 금고봉을 손에 쥐고 한번 무게를 재어 보고 흔들어 대며 “보배야,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천백 개의 삭발칼로 변했다. 그가 하나를 들고 작은 행자들에게도 하나씩 들려 황궁 내원과 오부 육부, 각 아문으로 가서 머리를 깎게 했다. 작은 행자들은 칼을 들고 방마다 드나들며 자는 이의 머리털을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밀어 버렸다. 아! 이것이야말로, 법왕이 법을 멸하니 법이 무궁하고, 법은 건곤을 꿰뚫어 큰 도가 통한다. 온갖 법이 인연을 따라 한 몸으로 돌아가니, 삼승의 묘한 모습이 본래 같구나. 옥궤를 뚫어 소식을 밝히고, 금빛 털을 흩뿌려 가리움을 깨뜨린다. 법왕이 정과를 이루게 하리니,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오고 감이 공하도다. 이 밤중에 삭발을 마치고 주문을 외워 토지신들을 물러가게 한 뒤 몸을 한 번 털자 두 팔의 털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삭발칼을 모두 모아 참된 것으로 뭉치니, 다시 본성을 되찾아 한 자루 금고봉이 작게 줄어든 모습으로 거두어져 귀 속에 감추어졌다. 다시 몸을 뒤집어 땅강아지가 되어 궤 안으로 기어 들어가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당승과 함께 곤경을 지켰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황궁 내원의 궁아와 채녀들이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없어졌다. 궁을 드나드는 크고 작은 환관들도 머리카락이 없어져, 한꺼번에 몰려와 침궁 밖으로 가서 음악을 연주하여 잠을 깨우며 눈물을 머금고 감히 말을 전하지 못했다. 조금 뒤에 삼궁의 황후가 깨어나서도 머리카락이 없어진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거울을 들어 비추어 보았으나 비취 빗질할 터럭은 털끝만큼도 없었으므로, 급히 등불을 옮겨 용상 아래를 살펴보니 비단 이불 속에 중 한 명이 자고 있었다. 황후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어 그만 왕을 깨우고 말았다. 왕이 급히 눈을 떠서 황후의 머리가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 황급히 일어나며 말했다. “황후여, 그대가 어찌 이리 되었소?” 황후가 말했다. “주공께서도 그러하시옵니다.” 그 황제가 머리를 만져 보고는 놀라 혼이 빠져나갈 지경으로 말했다. “짐이 어찌된 일이냐!” 한창 당황하고 있는데, 육원의 빈비와 궁아 채녀, 크고 작은 환관들이 모두 민머리를 한 채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주공, 우리가 중이 되었나이다!” 왕이 이를 보고 눈에 눈물을 담으며 말했다. “짐이 승려를 해친 탓이로다.” 그리고 전지하여 분부했다. “너희는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 문무 여러 신하가 나라가 바르지 못하다고 비방할까 두렵다. 모두 전각에 올라 조회를 여는 것이 좋겠다.”
각설하고 오부 육부와 모든 아문의 크고 작은 관리들은 날이 밝기도 전에 왕을 알현하고 궁궐에 절하러 가야 했다. 그런데 이 밤중에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없어져, 저마다 표를 써서 이 일을 아뢰었다. 다만 이런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조용히 채찍이 세 번 울려 황제를 깨우니, 표를 올려 임금의 머리가 깎인 까닭을 아뢰는구나.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