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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5 제95회 가합진형금옥토(假合眞形擒玉兔) · 진음귀정회령원(眞陰歸正會靈元)

각설하고 당승이 시름에 잠긴 채 국왕을 따라 후궁으로 들어서니, 북과 풍악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고 이윽고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찔러왔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 못하였다. 손행자는 남몰래 흐뭇해하며 비로관 꼭대기에 딱 달라붙어 신령한 빛을 굴리고 불 같은 눈을 크게 떠 살펴보니, 두 줄로 늘어선 채녀들이 꽃봉오리 같은 선궁처럼 늘어서 있어 비단 휘장의 봄바람보다 훨씬 뛰어났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몸가짐이 아리따워 나풀거리고 살결은 옥 같고 얼음 같구나. 쌍쌍이 고와 초나라 여인을 능가하고 짝을 지은 미모는 서시를 이기네. 구름처럼 높이 틀어 올린 상투에 채색 봉황이 날아오르고, 가늘게 그린 눈썹에 먼 산의 낮은 봉우리가 아스라이 드러나누나. 생황과 피리가 섞여 울리고 퉁소와 북이 잇따라 불리니 궁과 상과 각과 치와 우의 음이 오르내림이 가지런하구나. 맑은 노래와 묘한 춤은 늘 사랑스럽고, 비단 섬돌과 꽃무더기의 빛깔마다 즐겁기만 하네. 손행자는 스승이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차며 탄복하여 말했다. “훌륭한 승려시여! 훌륭한 승려시여! 비단 수풀에 몸을 두어도 마음엔 애착이 없고, 옥 같은 자갈을 밟으면서도 뜻이 미혹되지 않는구나.”

잠시 뒤 황후와 여러 후빈이 공주를 에워싸고 치작궁에서 나와 함께 영접하며 저마다 입을 모아 아뢰었다.

“상감마마 만세, 만만세옵나이다!” 그 소리에 놀란 장로는 벌벌 떨며 몸둘 바를 알지 못하였다. 손행자는 벌써 속내를 알아차리고 공주 정수리 위로 요사한 기운이 조금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으나 그것이 그리 흉악하지는 않았다. 서둘러 귓가로 다가가며 불러 말했다. “스승님, 저 공주는 가짜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가짜라면 어찌 저것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한단 말이냐?” 손행자가 말했다. “법신을 내어 이 자리에서 잡아 버리면 그만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안 되느니라! 안 되느니라! 임금님의 수레를 놀라게 할까 두렵구나. 군왕과 왕비가 물러간 뒤에 다시 법력을 쓰는 게 좋으리라.” 그 손행자는 평생이 급한 성미라 어찌 기다리겠는가. 큰 소리로 꾸짖으며 본모습을 드러내고 달려들어 공주를 붙들고 욕하며 말했다. “이 몹쓸 짐승아! 네가 이곳에서 거짓을 참으로 만들어 이만큼 향락을 누렸으면 넉넉할 터인데도 마음이 아직 모자라 우리 스승님까지 속여 참된 양기를 깨뜨리고 네 음탕한 욕심을 채우려 하느냐!” 놀란 국왕은 넋이 나간 채 멍해졌고 후비들은 넘어지고 기며 궁아와 채녀들은 동쪽으로 숨고 서쪽으로 피해 저마다 목숨만 보살폈다. 참으로 흡사하였다. 봄바람이 일렁이니 가을 기운이 쓸쓸하구나. 봄바람 일렁이어 동산을 지나니 온갖 꽃이 흔들리고, 가을 기운 쓸쓸히 정원에 드니 만 잎새가 흩날린다. 모란은 꺾여 난간 아래 비스듬히 쓰러졌고 작약은 비뚤어져 울타리 곁에 엎드렸네. 못가의 부용은 어지러이 흔들리고 섬돌 위의 국화술은 흩어져 쌓였구나. 해당화는 힘없이 티끌에 엎어지고 장미는 향기를 품은 채 시골길에 누웠네. 봄바람은 부들과 연꽃을 꺾어 놓고 겨울눈은 매화의 여린 꽃술을 비뚤이 눌렀구나. 석류 꽃잎은 안뜰 동서에 어지러이 떨어지고, 언덕 버들의 가지는 황궁 남북에 비스듬히 드리웠네. 좋은 꽃이 밤새 비바람의 광란을 당하니, 무수히 남은 붉은 꽃이 땅에 비단을 깔았구나. 삼장은 갈수록 떨려 국왕을 껴안고 그저 외쳤다. “폐하, 놀라지 마옵소서! 놀라지 마옵소서! 이것은 저의 어리석은 제자가 법력을 부려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이옵니다.”

각설하고 그 요정은 일이 여의치 않음을 보고 손을 뿌리쳐 벗어나더니 옷을 벗어 젖히고 머리를 흔들어 비녀와 귀고리 따위를 떨어뜨리고는, 곧 어화원 토지묘로 달려가 절구 모양의 짧은 몽둥이 한 자루를 꺼내 급히 돌아서 손행자를 마구 내리쳤다. 손행자가 곧 뒤따라가 쇠몽둥이를 들어 정면으로 맞받으니, 둘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화원에서 싸우다가 이윽고 큰 신통력을 드러내어 저마다 구름과 안개를 타고 허공에서 맞붙었다. 이 한바탕 싸움이란. 금테 두른 쇠몽둥이는 명성이 자자하건만, 절구통 같은 짧은 몽둥이는 알아보는 이가 없도다. 하나는 참된 경전을 구하러 이 땅에 이르렀고, 하나는 기이한 꽃을 사랑하여 자취를 머물게 하였네. 그 요물은 오래전부터 당나라 성승을 알고 있어 원기를 나누어 합하고자 하였고, 지난해에는 진짜 공주를 납치해 두고 사람 몸으로 변해 귀히 여기며 아꼈네. 오늘 대성을 만나 요사한 기운을 들켰으니 목숨을 건지려 참과 거짓을 가리누나. 짧은 몽둥이는 흉을 부려 정수리를 겨누어 내려치고, 쇠몽둥이는 위풍을 떨쳐 낯을 향해 후려치네. 떠들썩하고 시끄럽게 서로 버티니 구름과 안개가 하늘을 덮어 흰 해조차 가리우누나. 두 놈이 허공에서 죽기를 걸고 겨루자 도성 안 백성이 모두 두려워하고 조정의 뭇 관리도 간이 콩알만 해졌다. 당승은 국왕을 부축하며 그저 외쳤다.

“놀라지 마옵소서! 중전마마와 여러 분께 두려워 마시라 청해 주시옵소서. 폐하의 공주는 참된 모습을 거짓으로 꾸며 낸 자이옵니다. 제 제자가 저놈을 잡아 내고 나면 좋고 나쁨을 분명히 알게 되시옵니다.” 담이 큰 비빈들이 그 옷과 비녀와 귀고리를 황후에게 보이며 말했다. “이는 공주가 입던 옷이요 쓰던 장신구이옵니다. 그것을 모두 벗어 던진 채 알몸으로 저 중놈과 하늘에서 싸우고 있으니 필시 요사한 짐승이옵니다.” 그때에야 국왕과 후빈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았거니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그 요정은 대성과 반나절을 겨루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손행자가 몽둥이를 공중에 던져 올리며 한 소리 “변해라!” 하고 외치니,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며 백이 천이 되어 반 하늘이 뱀이 기어다니고 구렁이가 뒤엉키는 듯 어지럽게 요사한 놈을 내리쳤다. 요물은 겁이 나 몸을 한 번 비켜 푸른 바람으로 변해 푸른 창공으로 달아나 버렸다. 손행자는 주문을 외어 쇠몽둥이를 하나로 거두고 상서로운 빛을 타고 곧장 뒤쫓았다. 서천문에 가까워지니 깃발이 번쩍이며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손행자가 목청을 돋우어 크게 외쳤다. “천문을 지키는 자들아! 저 요괴를 막아라, 놈을 달아나게 두지 말라!” 참으로 그 천문 위에는 호국천왕이 방과 류와 구와 필 네 대원수를 거느리고 병기를 펼쳐 길을 막고 있었다. 요사한 놈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급히 머리를 돌려 죽기를 각오하고 짧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다시 손행자에게 맞섰다. 이 대성이 온 힘을 다해 쇠몽둥이를 굴리며 자세히 맞받아 살펴보니, 그 짧은 몽둥이는 한쪽 끝은 굵고 한쪽 끝은 가늘어 마치 봄철에 쓰는 절구의 공이처럼 생겼다. 큰 소리로 호령하며 꾸짖어 말했다. “이 몹쓸 짐승아! 네가 든 것이 무슨 병기이기에 감히 이 늙은 손오공과 맞서려 드느냐! 어서 빨리 항복하라, 이 몽둥이 한 방에 네 정수리를 부수지 않도록 하여라!” 그 요사한 놈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는 내 병기를 알지 못하는구나! 내 말을 들어 보아라. 선근은 한 덩이 양지고기 같은 옥이니 갈고 닦아 형상을 이룬 지 몇 해인지 헤아릴 수 없도다. 혼돈이 열릴 적에 내가 이미 얻었고, 홍몽이 갈라지던 판에 내가 앞섰느니라. 근원이 인간 세상의 물건과 비할 바 아니요,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 위에 있느니라. 한몸의 금빛이 네 모습에 화합하고 오행의 상서로운 기운이 삼원에 합하였네. 나를 따라 섬궁 안에 오래 살며 계수나무 궁전 곁에서 벗하였노라. 꽃을 사랑하다 세상 경계에 눈을 두었기에 천축국에 와 선녀를 사칭하였네. 그대와 함께 즐기려는 것 딴 뜻이 없고 당승과 짝하여 묵은 인연을 마치려 함이로다. 그런데 너는 어찌 마음을 속여 좋은 짝을 깨뜨리고 죽기로 덤벼들어 포악을 부리느냐! 이런 병기는 이름이 크니 네 금테 몽둥이보다도 크도다. 광한궁에서 약을 찧는 절구공이라 한 번 사람을 치면 목숨이 샘으로 돌아가느니라!” 손행자가 듣고 껄껄거리며 냉소하여 말했다. “좋은 몹쓸 짐승이로구나! 네가 이미 섬궁 안에 살면서도 이 늙은 손오공의 수단을 모른단 말이냐? 네가 감히 이곳에서 둘러대며 버티려 드느냐?”
“어서 빨리 본모습을 드러내어 항복하라, 네 목숨은 살려 주마!” 그 요괴가 말했다. “나는 너를 알아보았노라.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필마온이지. 마땅히 너에게 양보할 터이로되, 남의 혼사를 깨뜨리는 것은 부모를 죽인 원수와 같으니 이 사정이 달갑지 않아 하늘을 속이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필마온 너를 때리려 하노라!” 그 대성이 무엇보다 성을 내는 것은 필마온 세 글자였다. 이 말을 듣자 가슴에서 큰 분노가 치밀어 쇠몽둥이를 들어 정면을 후려쳤다. 그 요사한 놈이 절구공이를 굴려 맞받으며 서천문 앞에서 이를 갈며 맞붙었다. 이 한바탕이란. 금테 몽둥이와 도약저, 두 가지 신선의 병기는 참으로 겨룰 만하구나. 저쪽은 혼인을 맺으러 인간 세상에 내려왔고 이쪽은 당승을 모시려 이곳에 이르렀네. 본래 국왕이 점잖지 못해 꽃을 사랑하다 요물을 불러들였네. 그 탓에 오늘 쓰라리게 다투며 양쪽이 다 고집을 부리누나. 부딪치고 들이받으며 승부를 걸고, 날카로운 말과 독설을 주고받네. 절구공이의 영웅됨이 세상에 드물거늘 쇠몽둥이의 신위로운 위풍이 도리어 더 아름답구나. 맑디맑은 금빛이 천문을 비추고 곱디고운 채색 안개가 땅끝까지 이어지네. 오가며 십여 합을 겨루니 요사한 놈의 힘이 약해져 당해 낼 길이 없구나.

그 요정은 또 손행자와 십여 합을 겨루다가 그의 몽둥이 세가 빈틈없이 몰아치는 것을 보고는 이기기 어렵다 여겨 헛되이 절구공이를 한 번 던지고는 몸을 한 번 흔들어 만 갈래 금빛을 일으키며 정남쪽으로 패주하였다. 대성이 뒤를 이어 추격하니 어느덧 큰 산 하나에 이르렀는데, 요정은 금빛을 거두고 산굴 속으로 파고들어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그는 또 놈이 몸을 숨겨 나라로 돌아가 당승을 몰래 해칠까 두려워 그 산의 생김새를 눈에 익혀 두고 구름머리를 돌려 곧장 나라 안으로 되돌아왔다.

이때는 이미 신시가 되어 있었다. 그 국왕이 바들바들 떨며 삼장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저 외쳤다. “성스러운 스님이시여, 저를 구해 주시옵소서!” 여러 후빈과 황후도 몹시 당황해하는데 그때 대성이 구름 속에서 내려오며 외쳤다. “스승님, 제가 왔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거기 서라. 성스러운 용안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내가 묻겠다. 가짜 공주 일이 과연 어찌 되었느냐?” 손행자가 치작궁 밖에 서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말했다. “가짜 공주는 요사한 놈이옵니다. 처음에 저놈과 반나절을 겨루었는데 저놈이 저를 당해 내지 못하고 한 줄기 푸른 바람으로 변해 천문 위로 곧장 달아나기에, 제가 천신들에게 소리쳐 막게 하였나이다. 저놈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저와 열 합 남짓 겨루다가 또 금빛으로 변해 정남쪽 산 하나로 패주하였사옵니다. 제가 급히 그 산까지 뒤쫓았으나 찾을 곳이 없어, 저놈이 이리로 와 스승님을 해칠까 두려워 특별히 되돌아왔나이다.” 국왕이 이 말을 듣고 당승을 붙잡으며 물었다. “가짜 공주가 요사한 놈이라면 나의 진짜 공주는 어디에 있단 말이오?” 손행자가 곧 대답하여 말했다. “제가 가짜 공주를 잡아 내면 폐하의 진짜 공주는 저절로 돌아오시옵니다.” 그 후비들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움을 풀며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 절하고 간청하여 말했다. “바라옵건대 성스러운 스님께서 우리 진짜 공주를 구해 오시어 밝음과 어둠을 갈라 주옵소서. 그리되면 반드시 후히 보답하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이곳은 우리가 이야기할 자리가 아니옵니다. 청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저의 스승님과 함께 궁을 나와 편전으로 오시고, 중전마마 이하는 저마다 각자의 궁으로 돌아가시옵소서. 저의 사제 저팔계와 사오정을 불러 스승님을 보호하게 하시면 저는 요괴를 항복받으러 나서기 좋사옵니다. 하나는 안과 밖을 갈라 두는 것이요 둘은 저의 근심을 덜기 위함이니, 삼가 분명히 가려 내어 저의 한바탕 정성과 힘을 보이옵니다.” 국왕이 그 말을 좇아 거듭 고마워하며 당승과 손을 잡고 궁을 나와 편전에 이르렀고 뭇 후비는 저마다 궁으로 돌아갔다. 한편으론 소찬을 차리라 명하고 한편으론 저팔계와 사오정을 청하니 잠깐 사이에 두 사람이 벌써 당도하였다. 손행자가 앞일을 낱낱이 일러 주고는 두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스승을 보호하라 분부하였다. 이 대성이 근두운을 타고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니, 편전 앞 뭇 관리가 하나같이 하늘을 우러러 절을 올렸거니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손대성이 곧장 정남쪽 그 산으로 가서 뒤졌다. 알고 보니 그 요사한 놈은 싸움에 져 이 산에 닿아 굴 속으로 파고든 뒤 문을 돌로 막아 버리고는 겁에 질린 채 숨어 나오지 않았다. 손행자가 한참 찾았으나 아무 기척도 없자 마음이 초조하고 성이 나 결을 쥐고 진언을 외워 그 산의 토지와 산신을 불러내어 심문하였다. 잠시 뒤 두 신이 나타나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알지 못하옵니다, 알지 못하옵니다. 알았다면 멀리까지 마중 나갔사오리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손행자가 말했다. “너희를 때리지는 않겠다. 내 묻겠으니 이 산의 이름은 무엇이더냐?”

이곳에 요괴가 몇이나 있느냐? 있는 그대로 말하면 너희 죄를 용서해 주겠다.” 두 신이 아뢰었다. “대성이시여, 이 산은 모영산이라 하옵니다. 산에는 토끼 굴이 세 곳 있을 뿐이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요괴라곤 없사옵니다. 다섯 고리가 두른 복지이옵니다. 대성이 요괴를 찾으시려거든 서천으로 가는 길에나 있을 것이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이 서천의 천축국에 이르러 보니 그 국왕의 공주 하나가 요괴에게 붙잡혀 거친 들에 버려졌고, 그놈이 공주 모습으로 변해 국왕을 속여 채루를 꾸미고 수놓은 공을 던지며 부마를 맞으려 하였느니라.

내가 당승을 모시고 그 누각 아래에 이르렀는데 그놈이 일부러 당승을 맞혀 짝을 삼고 참된 양기를 유인하여 빼앗으려 하였느니라.

내가 그것을 간파하고 궁중에서 몸을 드러내어 잡으려 하였더니 그놈이 옷과 장신구를 벗어 던지고 도약저라 하는 짧은 몽둥이를 들어 나와 반나절 겨루다가 푸른 바람이 되어 달아났느니라. 이 늙은 손오공에게 쫓겨 서천문에 이르러 다시 열 합 남짓 싸웠는데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고 또다시 금빛으로 변해 이곳까지 달아났거늘 어찌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두 신이 이 말을 듣고 곧 손행자를 이끌고 세 굴을 찾기 시작하였다. 산기슭 굴 곁을 살펴보니 풀 속의 토끼 몇 마리가 놀라 달아날 뿐이었다. 맨 꼭대기 굴을 살펴보니 큰 돌 두 개가 굴 입구를 막고 있었다. 토지가 아뢰었다. “이번 필시 요사한 놈이 급하게 파고든 곳이옵니다.” 손행자가 곧 쇠몽둥이로 그 돌을 걷어내자 그 요사한 놈이 과연 그 안에 숨어 있다가,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뛰어나오며 약 절구공이를 들어 내리쳤다. 손행자가 쇠몽둥이를 들어올려 받아 막으니 놀란 산신은 뒷걸음질 치고 토지는 급히 달아났다. 그 요사한 놈은 중얼중얼 투덜거리며 산신과 토지를 욕하여 말했다.
“누가 너희더러 그놈을 이리로 이끌어 찾아오게 하였느냐!” 그놈은 버티며 쇠몽둥이를 맞받아 싸우면서 물러나 허공으로 내달렸다. 그야말로 위급한 판이었는데 그나마 날마저 저물어 갔다. 이 손행자는 독기를 띠며 독한 수를 써 단번에 몽둥이로 때려 죽이고 싶었으나, 문득 구소 높은 푸른 하늘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성이여, 손을 멈추게! 손을 멈추게! 몽둥이 아래 목숨을 살려 두게!” 손행자가 고개를 돌려 보니 이는 곧 태음성군이었으니, 뒤에 상아선자를 거느리고 채색 구름을 타고 눈앞에 내려와 있었다. 놀란 손행자가 쇠몽둥이를 거두고 몸을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 “노태음이시여, 어디서 오시는 길이옵니까? 이 늙은 손오공이 피신할 줄 모르고 실례하였나이다.” 태음성군이 말했다. “그대와 맞서 싸운 이 요사한 놈은 내 광한궁에서 검은 서리의 신선 약을 찧는 옥토이니라. 저놈이 사사로이 옥 관문과 금 자물쇠를 열고 궁을 빠져나온 지 이제 한 해니라. 내 헤아리니 저놈에게 지금 목숨을 잃을 재앙이 닥쳤기에 특별히 그 목숨을 건지러 왔노라. 바라건대 대성이여, 이 몸의 체면을 보아 저놈을 용서해 주게.” 손행자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그놈이 도약저를 부릴 줄 아는 까닭이 있었구려! 알고 보니 한 마리 옥토였구나!

노태음께서는 알지 못하시옵니다. 저놈이 천축국 국왕의 공주를 납치해 숨겨 두고는 거짓을 참된 형상에 합하여 우리 성스러운 스승님의 참된 양기를 깨뜨리려 하였사옵니다. 그 정상과 그 죄가 어찌 달갑겠나이까! 어찌 가벼이 용서하여 그냥 보내실 수 있겠나이까?” 태음성군이 말했다. “그대도 알지 못하노라. 그 국왕의 공주도 범인이 아니니라. 본래 섬궁 가운데 있던 소아였느니라. 십팔 년 전에 공주가 옥토를 한 번 때린 적이 있는데, 그 일로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며 하계로 내려왔노라. 한 점 영혼의 빛이 국왕의 정궁 황후 뱃속에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느니라. 이 옥토가 한 번 맞은 원한을 품고 지난해 광한궁을 빠져나와 소아를 거친 들에 내버렸느니라. 다만 당승과 짝하려 든 것은 잘못이니 이 죄는 참으로 벗어날 길이 없도다. 다행히 그대가 마음을 써서 참과 거짓을 알아보았고 그대 스승에게도 상처가 없었느니라. 간절히 바라노니 내 체면을 보아 그 죄를 용서해 주게. 내 저놈을 거두어 가리라.”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한 인과가 있다면 이 늙은 손오공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겠나이다. 다만 대성군께서 옥토를 거두어 가시면 그 국왕이 믿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감히 번거로움을 끼치옵건대 태음성군께서 여러 선녀와 함께 옥토를 그곳으로 끌고 가 국왕 앞에서 분명히 증명해 주시옵소서. 하나는 이 늙은 손오공의 수단을 드러내는 것이요 둘은 그 소아가 내려온 연유를 밝히는 것이니, 그런 뒤 국왕으로 하여금 소아 공주의 몸을 거두어 오게 하시면 보답의 뜻이 드러나리이다.” 태음성군이 그 말을 믿고 손가락으로 요사한 놈을 가리키며 호령하여 말했다. “이 몹쓸 짐승아, 어서 참됨으로 돌아와 함께 오너라!” 옥토가 한 번 데굴데굴 구르자 본모습이 드러났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언청이에 뾰족한 이빨이요, 긴 귀에 성긴 수염이로다. 몸을 웅크리니 한 덩이 털이 옥 같고 발을 펴니 천 산을 달릴 제 굽이 나는 듯하구나. 곧은 코에 기름기 늘어져 서리꽃에 흰 가루 채운 듯 보드랍고, 붉게 비친 두 눈은 눈 위에 연지 찍은 듯 곱구나. 땅에 엎드리니 새하얀 한 무더기 흰 비단이요, 허리를 펴니 새하얀 한 벌 은실이로다. 몇 번이고 맑은 이슬 핥고 옥 같은 하늘 밝아 오니, 불로장생 약 찧는 옥 절구공이 기이하구나.

대성이 이를 보고 기뻐하며 구름빛을 밟고 인도하매 태음성군이 여러 상아선자를 거느리고 옥토를 데리고 천축국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마침 황혼이라 달이 오르는 것을 보며 성 가에 이르니 초루 위의 북 소리가 들려왔다. 그 국왕과 당승은 아직 편전 안에 있고 저팔계와 사오정과 뭇 관리가 모두 섬돌 아래에서 막 조회를 파하려 하는데, 문득 정남쪽 하늘에 한 조각 채색 노을이 대낮처럼 환히 빛났다. 무리가 고개를 들어 보는데 또 손대성이 목청을 돋우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천축국 폐하시여, 폐하의 황후와 후빈들을 나오게 하여 보시옵소서. 이 보당 아래 계신 이는 월궁의 태음성군이시오, 양쪽에 계신 선녀들은 달 속의 상아들이옵니다. 그리고 이 옥토야말로 댁의 가짜 공주니, 지금 참모습을 드러내었나이다.” 그 국왕이 급히 황후와 후빈, 궁아와 채녀들을 불러 모아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리게 하고는, 저 자신도 당승과 뭇 관리와 함께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며 절하였다. 도성 안 집집마다 향안을 차리지 않은 이가 하나도 없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염불을 외었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 저팔계가 욕심이 동하여 참지 못하고 허공으로 뛰어올라 예상선자를 껴안으며 말했다. “누님, 나와 그대는 옛날부터 아는 사이 아니오? 나와 함께 가서 좀 놀아 봅시다.” 손행자가 달려가 저팔계를 붙잡아 뺨을 두 대 치며 욕하여 말했다. “이 촌스럽고 몰염치한 멍청아! 이게 어떤 곳인데 감히 음심을 품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그저 한담하며 시름을 풀면서 노는 것뿐이오!” 그 태음성군이 선당을 돌리라 명하고 여러 상아와 함께 옥토를 거두어 곧장 월궁으로 올라가 버렸다.

손행자가 저팔계를 아래로 끌어당겨 땅에 떨어뜨렸다. 이 국왕은 편전에서 손행자에게 고마워하고는 또 앞의 내력을 물으며 말했다. “신승의 큰 법력으로 가짜 공주를 잡아 주시어 몹시 감사하오. 짐의 진짜 공주는 도대체 어느 곳에 있단 말이오?” 손행자가 말했다. “폐하의 그 진짜 공주도 범인의 몸이 아니옵니다. 바로 월궁의 소아선자이옵니다. 십팔 년 전에 그 선녀가 옥토를 한 번 때린 일로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며 하계로 내려와 폐하의 정궁 뱃속에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사옵니다. 그 옥토가 옛 원한을 품고 있다가 지난해에 옥 관문과 금 자물쇠를 몰래 열고 내려와 소아를 거친 들판에 버리고는 제가 변신하여 폐하를 속였사옵니다. 이러한 인과는 태음성군께서 친히 제게 일러 주신 것이옵니다. 오늘 가짜를 물리쳤으니 내일 어가를 모시고 참된 이를 찾으러 가시옵소서.” 국왕이 이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이 부끄럽고 황망하여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치지 못하며 말했다. “내 딸! 나는 어려서 보위에 올라 성문조차 나가 본 적이 없거늘, 어디로 가서 너를 찾으란 말이냐!”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폐하의 공주는 지금 급고 포금사에서 미친 체하고 있나이다. 오늘은 우선들 흩어져 쉬시고, 날이 밝으면 진짜 공주를 데려다 드리겠나이다.”

뭇 관리가 또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전하, 부디 마음을 넓게 가지시옵소서. 이 몇 분의 신승께서는 구름을 타고 안개를 밟으시는 신불이시오니 반드시 지나간 일과 앞일의 연유를 아실 것이옵니다. 내일 신승 네 분께 번거로움을 끼쳐 함께 가서 찾게 하시면 곧 자세한 내력을 아시게 되시옵니다.” 국왕이 그 말을 좇아 유춘정으로 모셔 가 재를 올리고 편히 쉬게 하였다. 이때는 이미 이경에 가까웠으니, 참으로 그러하였다. 놋쇠 시계 똑똑히 떨어지고 달빛 밝으며, 금 방울 딩동거리는 소리를 바람이 실어 가누나. 두견새 울어 봄이 반 가니, 진 꽃 갈 곳 없어 삼경이 가까웠구나. 어원엔 그네 그림자 쓸쓸하고, 푸른 하늘엔 은하수 비스듬히 걸렸네. 세 시장 여섯 거리에 나그네 끊기고, 하늘 가득 별들이 밤을 밝히누나. 그날 밤 저마다 잠자리에 들었거니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날 밤 국왕은 요사한 기운이 물러가자 갑자기 정신이 솟아올라, 오경 삼점에 다시 나와 조회에 임하였다.

조회를 마치고 당승 사부를 청해 공주 찾을 일을 의논하라 명하였다. 장로가 곧 따라와 예를 올리고 대성 세 사람도 함께 인사를 드렸다. 국왕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어제 공주 아이에 관해 아뢰었거니와 감히 신승들께 한 번 찾아 구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빈승이 동쪽에서 오다가 날이 저물어 급고 포금사란 절을 보고 들어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였더니, 다행히 그 절 승려들이 후히 대접해 주었사옵니다. 그날 저녁 재를 마치고 달빛을 밟으며 한가로이 걷다가 포금의 옛 동산에 이르러 그 터를 둘러보는데, 문득 슬피 우는 소리가 귀에 들렸나이다. 그 연유를 물으니 본사에 백 살이 넘은 노승 하나가 있어 좌우를 물리치고 자세히 그 내력을 일러 주었사옵니다. 이르기를 ‘그 우는 소리는 지난해 늦봄의 일이었소. 내 성품을 밝히며 달을 대하는데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더니 비원하는 소리가 들려왔소. 자리에서 내려와 동산 터로 가 살펴보니 한 여자였소. 그 까닭을 물으니 그 여자가 이르되, 나는 천축국 국왕의 공주이오. 밤에 달을 구경하고 꽃을 즐기다가 바람에 불려 이곳까지 왔소, 하였소.’ 그 노승이 사람의 예법을 잘 알아 곧 공주를 외따른 방에 가두어 두고, 본사의 난폭한 승려가 더럽힐까 염려하여 다만 요괴를 내가 가두었다고만 일렀사옵니다. 공주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낮에 헛소리를 하며 차와 밥을 얻어먹고, 밤이 깊어 아무 없을 때는 부모를 생각하며 슬피 울었사옵니다. 그 노승도 나라에 와 몇 차례 들어 보았건만 공주가 궁에서 무탈한 것을 보고는 감히 소리 높여 아뢰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다 내 제자에게 신통력이 있음을 보고 그 노승이 천 번 만 번 부탁하며 빈승에게 알아보라 하였나이다. 뜻밖에도 저놈이 본래 섬궁의 옥토가 요귀가 되어 거짓을 참된 형상에 합해 공주 모습으로 변하였고, 게다가 제 참된 양기를 깨뜨리려 하였사옵니다. 다행히 제 제자가 위풍을 떨쳐 참과 거짓을 알아보았으니 이제 저놈은 태음성군이 거두어 갔사옵니다. 어진 공주는 지금 포금사에서 미친 체하고 있나이다.” 국왕이 이 자세한 사연을 듣고 목청을 높여 통곡하였다. 이내 삼궁육원이 놀라 앞의 내력을 물어 왔으니 통곡하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한참 뒤에 국왕이 또 물었다.

“포금사는 도성에서 얼마나 멀리 있단 말이오?” 삼장이 말했다. “예순 리 길밖에 되지 않사옵니다.” 국왕이 곧 전지하였다.

“동궁과 서궁은 전각을 지키고 조정을 맡은 태사가 나라를 지키도록 하라. 짐이 정궁 황후와 뭇 관리, 네 분의 신승을 거느리고 그 절로 가 공주를 데려오겠노라.”

곧 수레를 갖추어 일행이 조정에서 나섰다. 보라, 그 손행자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허리를 한 번 비틀더니 먼저 절에 당도하였다. 승려들이 황급히 꿇어앉아 맞으며 말했다. “영감님께서 가실 때는 여러 분과 걸어 가셨거늘 오늘은 어찌 하늘에서 내려오셨사옵니까?”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 그 늙은 스승이 어디 계시더냐? 어서 그이를 모셔 나오게 하여 향안을 차리고 어가를 맞이하여라. 천축국 국왕과 황후, 뭇 관리와 우리 스승님이 다 오셨느니라.” 승려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하면서도 곧 노승을 모셔 나오게 하니, 노승은 손행자를 보자 엎드려 절하며 물었다. “영감님, 공주 일은 어찌 되었사옵니까?” 손행자가 가짜 공주가 수놓은 공을 던져 당승과 짝하려 한 일과 쫓고 잡으며 겨룬 일, 그리고 태음성군이 옥토를 거두어 간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그 노승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절을 하자 손행자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절은 마시라, 절은 마시라. 어서 어가 맞을 채비를 하시라.” 그제야 승려들은 뒤방에 가둔 것이 여자임을 알고 하나하나 놀라고 기뻐하며 향안을 차려 산문 밖에 늘어놓고 가사를 입고 종과 북을 두드리며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어가가 벌써 당도하였으니, 참으로 그러하였다. 어지러이 흩날리는 상서로운 노을이 하늘에 향기를 가득 메우니, 한 채의 거친 산이 문득 상서로움에 싸였구나. 무지개 흘러 천 년간 강과 바다를 맑히고, 번개 감돌아 봄을 길게 이어 우와 탕을 능가하누나. 초목이 은혜를 입어 고운 빛을 더하고 들꽃은 윤택을 얻어 남은 향기를 품었구나. 예로부터 장자가 남긴 자취더니, 이제 밝은 임금이 보배로운 집에 내리시니 기쁘도다. 국왕이 산문 밖에 이르니 승려들이 가지런히 엎드려 맞이하여 절하는데 그 가운데 손행자가 서 있었다. 국왕이 말했다. “신승께서는 어찌 먼저 이르셨소?”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이 허리를 조금 비틀었더니 금세 왔거늘, 당신들은 어찌 반나절이나 걸었소?” 그 뒤를 이어 당승 일행이 모두 당도하였다. 장로가 어가를 인도해 뒤쪽 방 곁에 이르니 그 공주는 여전히 미친 체하고 있었다. 노승이 꿇어앉아 가리키며 아뢰었다. “이 방 안이 바로 지난해 바람에 불려 온 공주마마이옵니다.”

국왕이 곧 문을 열라 명하였다. 이내 쇠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자 국왕과 황후가 공주를 알아보았다. 더러운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고생하는 내 딸아! 네가 어찌 이런 고초를 겪으며 이곳에서 죄받고 있느냐!” 참으로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정은 남다르기에 세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크게 울었다. 한바탕 운 뒤에 이별의 회포를 다 나누고 나서 곧 향기로운 물을 가져오라 명하여 공주에게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혀 수레에 태워 나라로 돌아왔다.

손행자가 또 국왕에게 두 손을 모아 읍하며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이 아뢸 일이 하나 더 있사옵니다.” 국왕이 답례하며 말했다. “신승께서 분부하실 일이 있다면 짐이 곧 따르겠소.” 손행자가 말했다. “이 산은 이름이 백각산이옵니다. 요즈음 지네가 정이 되어 밤마다 사람을 해쳐 오가는 나그네가 몹시 불편하옵니다. 제가 헤아리건대 지네는 오직 닭만이 항복받을 수 있으니, 아주 큰 수탉 천 마리를 가려 산에다 풀어 놓아 이 독충을 없애시옵소서.

그리고 이 산의 이름도 고쳐 놓으시옵소서. 봉하는 글월 한 통을 내려 이 절이 공주를 모셔 길러 준 은혜에 보답하는 셈으로 삼으시면 되옵니다.” 국왕이 몹시 기뻐하며 승낙하고 곧 관리를 도성에 보내 닭을 가져오게 하는 한편 산 이름을 보화산으로 고치고 공부에 재료를 마련하여 중수한 뒤 봉호를 내려 “칙건 보화산 급고 포금사”라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 노승을 “보국승관”에 봉하여 영원히 세습하게 하고 녹봉 서른여섯 섬을 내렸다. 승려들이 은혜에 감사하고 어가를 배웅하여 조정으로 돌아왔다. 공주가 궁에 들어가 모두와 만나 보고는 연회를 베풀어 시름을 풀고 기쁨을 축하하였다. 황후와 모자가 다시 머리를 맞대고 한자리에 모였으며 국왕과 신하들도 함께 기뻐하며 밤새 잔치를 즐겼거니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튿날 아침 국왕이 전지하여 단청을 불러 신승 네 분의 모습을 그려 화이루에 모시고, 또 공주에게 새 단장을 갖추어 편전에 나와 당승 사부에게 구해 준 은혜를 갚게 하였다. 절을 마치고 당승이 국왕에게 작별을 고하며 서쪽으로 떠나려 하였으나 그 국왕이 어찌 보내 주려 하겠는가. 큰 잔치를 베풀어 닷새 엿새를 연달아 먹고 마시니 그야말로 그 멍청이만 신이 나서 배를 늘어놓고 실컷 먹었다. 국왕은 그들이 부처 향한 마음이 간절해 머물지 않음을 보고 금과 은 이백 덩이와 보배를 한 접시씩 가져다 바쳤으나 사부와 제자들은 털끝만큼도 받지 않았다. 난가를 갖추어 늙은 스승님을 수레에 오르게 하고 관리를 보내 멀리 배웅하게 하니 후비와 신민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하였다. 앞길에 이르러서는 또 승려들이 꿇어앉아 배웅하느라 서로 헤어지기를 아쉬워하였다. 손행자가 배웅 나온 자들이 돌아가려 하지 않자 결을 쥐고 손방향에 입으로 선기를 불어 어두운 바람을 일으켜 그들의 눈을 가리고서야 비로소 몸을 빼 떠날 수 있었다. 참으로 그러하였으니,

은혜 물결에 씻겨 본성을 되찾고, 금 바다 벗어나 참된 공을 깨달았도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