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영근육잉원류출(靈根育孕源流出) · 심성수지대도생(心性修持大道生) 시에 이르기를, 혼돈이 아직 나뉘지 않아 천지가 어지러웠고, 아득하고 아득하여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반고가 혼몽을 깨뜨린 뒤로부터, 개벽이 이로써 맑음과 흐림을 나누었다. 덮고 실어 뭇 생명을 기르니 지극한 어짊을 우러르고, 만물을 밝혀 내니 모두 선을 이루었다. 조화와 회원의 공을 알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서유석액전》을 보아야 하리라. 대개 천지의 수에는 십이만 구천육백 세가 하나의 원이 된다. 한 원을 나누어 열두 회로 만드니, 이는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열두 지지이다. 매 회는 일만 팔백 세다. 또 하루를 논하자면, 자시에 양기가 솟고 축시에 닭이 울며, 인시에는 빛이 통하지 않고 묘시에 해가 뜬다. 진시는 아침밥을 먹은 뒤요 사시는 차례차례 자리를 잡으며, 정오에는 해가 하늘 한가운데 있고 미시에는 서쪽으로 기운다. 신시는 오후 늦은 때요 해는 유시에 지며, 술시는 황혼이고 해시는 사람이 잠드는 때이다. 큰 수에 견주면 술회의 끝에 천지가 어둡고 흐려져 만물이 막힌다. 다시 오천사백 세가 지나 해회의 처음과 교차하면 어둠이 드리우고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도 만물도 사라지니, 이를 혼돈이라 한다. 또 오천사백 세가 지나 해회가 끝나고 곧음이 다하여 처음이 다시 일어나 자회에 가까워지면 점차 다시 밝아진다. 소강절이 “동지는 자의 반이요, 하늘의 마음은 옮겨감이 없도다. 한 줄기 양기가 처음 움직이는 곳, 만물이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로다.”라고 말했다. 이에 하늘이 비로소 뿌리를 가진다. 다시 오천사백 세가 지나 바로 자회에 이르면 가볍고 맑은 것이 위로 떠올라 해가 있고 달이 있고 별이 있고 진이 있다. 해와 달과 별과 진을 사상이라 한다. 그러므로 하늘은 자회에 열렸다 이른다. 또 오천사백 세를 지나 자회가 끝나고 축회에 가까워지면 점차 굳고 단단해진다. 《주역》에 이르기를,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지극하도다 곤원이여! 만물이 이로써 생겨나니 이에 하늘을 따라 받드네.” 말했다. 이에 땅이 비로소 엉겨 굳는다. 다시 오천사백 세가 지나 바로 축회에 이르면 무겁고 흐린 것이 아래로 엉겨 물과 불과 산과 돌과 흙이 있다. 이를 오형이라 한다. 그러므로 땅은 축회에 열렸다 이른다. 또 오천사백 세를 지나 축회가 끝나고 인회의 처음에 만물이 피어난다. 책력에 이르기를,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올라가며, 하늘과 땅이 어울려 뭇 만물이 모두 생겨난다.” 말했다. 이에 하늘은 맑고 땅은 상쾌하며 음과 양이 어울린다. 다시 오천사백 세가 지나 바로 인회에 이르러 사람과 짐승과 새가 생기니, 바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 하여 삼재가 자리를 정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인회에 생겨났다 이른다. 반고가 천지를 열고 삼황이 세상을 다스리고 오제가 인륜을 정함을 말미암아, 세계가 마침내 사대부주로 나뉘었으니, 동승신주, 서우하주, 남섬부주, 북구로주이다. 이 책은 다만 동승신주만을 이야기한다. 바다 밖에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을 오래국이라 한다. 나라는 큰 바다에 가깝고, 바다 가운데 한 좌의 산이 있으니 화과산이라 부른다. 이 산은 열 주의 조상 되는 산맥이며 세 섬의 내룡이니, 맑음과 흐림이 열린 때로부터 서고 혼몽이 나뉜 뒤에 이루어졌다. 참으로 좋은 산이로다! 이를 증명하는 부가 있으니, 부에 이르기를, 형세는 넓은 바다를 진압하고 위엄은 아름다운 바다를 편안케 한다. 형세가 넓은 바다를 진압하니 조수가 솟아 은산을 이루고 물고기가 굴로 들어가며, 위엄이 아름다운 바다를 편안케 하니 파도가 뒤집혀 눈 물결이 되고 신기루가 못을 떠난다. 나무와 불의 방위에 높이 쌓였고 동해의 자리에 높은 봉우리가 치솟았다. 붉은 절벽과 괴석, 깎아지른 벽과 기이한 봉우리. 붉은 절벽 위에는 채색 봉황이 짝지어 울고, 깎아지른 벽 앞에는 기린이 홀로 누웠다. 봉우리에서는 때때로 금계가 울고 돌 굴에서는 늘 용이 드나든다. 숲에는 오래 사는 사슴과 신선 여우가 있고 나무 위에는 신령한 새와 검은 학이 있다. 아름다운 풀과 기이한 꽃은 시들지 않고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봄이다. 선도 복숭아는 늘 열매를 맺고 긴 대나무는 늘 구름을 머금는다. 한 줄기 골짜기에는 등나무가 빽빽하고 사방 언덕에는 풀빛이 새롭다. 바로 뭇 시내가 모이는 곳의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며, 만겁이 지나도 옮기지 않는 대지의 뿌리이다. 그 산 꼭대기에 한 개의 신선한 돌이 있었다. 그 돌은 높이가 삼 장 육 척 오 촌이요 둘레가 이 장 사 척이었다. 삼 장 육 척 오 촌의 높이는 하늘을 한 바퀴 도는 삼백육십오 도에 맞추었고, 이 장 사 척의 둘레는 역법의 이십사 절기에 맞추었다. 위에는 아홉 개의 구멍과 여덟 개의 구멍이 있어 구궁과 팔괘에 맞추었다. 사면에는 나무가 없어 그늘을 가리지 못하였으나 좌우에는 도리어 영지와 난초가 서로 짝을 이루었다. 대개 개벽 이래로 이 돌은 매양 하늘의 참됨과 땅의 빼어남, 해의 정기와 달의 빛을 받아, 느낀 지 이미 오래되어 마침내 신령하게 통하는 뜻을 지녔다. 그 안에 신선한 태를 기르더니 하루는 갑자기 갈라져 한 개의 돌알을 낳으니 둥근 공만 하였다. 바람을 만나 화하여 한 마리 돌원숭이가 되었는데 오관이 모두 갖추어지고 사지가 온전하였다. 이에 기는 법과 걷는 법을 배우고 사방을 향해 절하였다. 눈에서 두 줄기 황금빛을 뿜어 북두의 별자리를 향해 뻗쳤다. 높은 하늘의 성스럽고 크게 자비로운 옥황대천존 현궁고상제가 놀라, 금궐운궁 영소보전의 보좌에 앉아 신선과 신하를 모았는데, 황금빛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을 보고 즉시 천리안과 순풍이에게 명하여 남천문을 열고 살펴보게 하였다. 두 장수가 과연 명을 받들어 문 밖에 나가 진실로 보고 밝게 들었다. 잠시 후 돌아와 아뢰기를, “신이 명을 받들어 그 황금빛이 비치는 곳을 살펴보니, 곧 동승신주 바다 동쪽 오래소국의 경계에 한 좌의 화과산이 있고, 산 위에 한 개의 신선한 돌이 있으며, 돌이 알을 낳아 바람을 만나 화하여 한 마리 돌원숭이가 되어 그곳에서 사방을 향해 절하고, 눈에서 황금빛을 뿜어 북두의 별자리를 향해 뻗쳤나이다. 지금은 물과 먹을 것을 먹어 황금빛이 장차 잠잠해지려 하나이다.” 아뢰었다. 옥제가 은혜와 자비를 내리며 “아래쪽의 물건은 곧 천지의 정화가 낳은 것이니 기이하게 여길 것이 못 된다.”라고 말했다. 그 원숭이는 산속에서 걸을 줄 알고 뛸 줄 알며, 풀과 나무를 먹고 산골 물을 마시고 산꽃을 따고 나무 열매를 찾았다. 이리와 벌레를 벗 삼고 범과 표범을 무리로 삼으며 노루와 사슴을 친구로 삼고 원숭이와 친하였다. 밤에는 돌 벼랑 아래에서 자고 아침에는 봉우리 굴 속에서 놀았다. 참으로 산속에는 갑자가 없어 추위가 다하여도 해가 가는 줄 모른다 한 그대로였다. 하루는 날씨가 무더워 뭇 원숭이와 함께 더위를 피해 모두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장난을 쳤다. 그 모습을 보라, 하나하나가 이러하였다. 나무에 오르고 가지를 붙잡으며 꽃을 따고 열매를 찾는다. 공기돌을 던지고 조약돌 장난을 치며 모래 구덩이를 뛰고 보탑을 쌓으며, 잠자리를 쫓고 나방을 잡고, 하늘에 절하고 보살에게 절한다. 칡덩굴을 당겨 풀모자를 엮고, 이를 잡아 물고 또 꼬집으며, 털옷을 매만지고 손톱을 다듬는다. 서로 기대는 이, 비비는 이, 미는 이, 누르는 이, 당기는 이, 끄는 이 있으니, 푸른 소나무 숲 아래에서 마음대로 장난하고 푸른 물 산골 물가에서 멋대로 씻는다. 한 무리 원숭이가 한참을 놀다가 그 산골 물로 가서 목욕을 하였다. 그 물이 내달아 흐르는 것을 보니 참으로 굴러가는 수박처럼 솟구쳐 튀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새에게는 새의 말이 있고 짐승에게는 짐승의 말이 있다.” 말했다. 뭇 원숭이가 모두 말하기를, “이 물이 어디서 온 물인지 알 수 없구나. 우리 오늘 한가하여 할 일도 없으니, 산골 물가를 따라 위로 올라가 근원을 찾아보고 놀다 오자!” 하고 한바탕 소리치니, 모두 남자를 끌고 여자를 데리고 형제를 부르며 한꺼번에 달려와 산골을 따라 산을 올라 마침내 물이 근원이 되는 곳에 이르니, 이는 한 줄기 폭포가 나는 샘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러하였다. 한 줄기 흰 무지개가 일어나고 천 길 눈 물결이 날아오른다. 바닷바람이 불어도 끊어지지 않고 강 위의 달이 비추어도 오히려 의지한다. 찬 기운이 푸른 산봉우리를 가르고 남은 물줄기가 푸른 산자락을 적신다. 졸졸 흐르는 것을 폭포라 이름하니 참으로 드리운 발처럼 보인다. 뭇 원숭이가 손뼉을 치며 칭송하여 “좋은 물이로다! 좋은 물이로다! 이곳은 멀리 산기슭 아래와 통하고 큰 바다의 물결과 곧바로 이어져 있구나.”라고 말했다. 또 “누구든 재주가 있어 이 안으로 뚫고 들어가 근원을 찾아 나오면서 몸을 상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우리는 곧 그를 임금으로 받들리라.”라고 말했다. 세 번 연달아 외치니, 홀연 잡다한 무리 가운데서 한 마리 돌원숭이가 뛰어나와 소리에 응하여 크게 “내가 들어가겠다! 내가 들어가겠다!”라고 외쳤다. 과연 좋은 원숭이로다! 또한 그였으니, 오늘 아름다운 이름이 드러나고 때가 오니 큰 운수가 통한다. 인연이 있어 이 땅에 머무니 왕이 보내어 선궁으로 들어가네. 그가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리더니 한 번 솟구쳐 곧장 폭포 샘 속으로 뛰어들었다. 홀연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그 안에는 물도 물결도 없이 밝고 환한 한 개의 다리가 있었다. 그는 몸을 멈추고 정신을 가다듬어 다시 자세히 보니 이는 한 개의 철판다리였다. 다리 아래의 물은 돌 구멍 사이로 솟구쳐 통하며 거꾸로 드리워 흘러나가 다리 문을 가리고 막았다. 다시 허리를 굽혀 다리 머리에 올라가 걷고 또 보니 마치 인가가 사는 곳과 같아 참으로 좋은 곳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러하였다. 푸른 이끼는 남빛으로 쌓이고 흰 구름은 옥을 띄우며 빛이 조각조각 연기와 노을을 흔든다. 빈 창과 고요한 방, 미끄러운 걸상과 널빤지에 꽃이 피어난다. 젖빛 굴에는 용의 구슬이 기대어 걸려 있고 굽이굽이 온 땅에 기이한 꽃이 가득하다. 솥과 부뚜막은 벼랑 곁에 불 탄 자국이 남아 있고 술동이와 술잔은 상에 기대어 안주 찌꺼기가 보인다. 돌걸상과 돌침대는 참으로 사랑스럽고 돌 대야와 돌 그릇은 더욱 자랑할 만하다. 또 한 대 두 대 긴 대나무와 세 점 다섯 점 매화가 있다. 몇 그루 푸른 소나무는 늘 비를 머금어 흡사 한 집안처럼 보인다. 한참을 보다가 다리 가운데로 뛰어넘어 좌우를 살펴보니 한가운데에 한 개의 돌비석이 있었다. 비석 위에는 한 줄의 해서체 큰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화과산 복지, 수렴동 동천이라 하였다. 돌원숭이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급히 몸을 빼어 밖으로 걸어 나가, 다시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려 물 밖으로 뛰어나와 두어 번 하하 웃으며 “큰 조화로다! 큰 조화로다!”라고 말했다. 뭇 원숭이가 그를 둘러싸고 “안이 어떠하냐? 물은 얼마나 깊더냐?”라고 물었다. 돌원숭이가 “물이 없다! 물이 없다! 알고 보니 한 개의 철판다리였다. 다리 저쪽에는 하늘이 짓고 땅이 세운 살림이 하나 있다.”라고 말했다. 뭇 원숭이가 “어떻게 그것이 살림인 줄 아느냐?”라고 말했다. 돌원숭이가 웃으며 “이 물줄기는 다리 아래에서 돌다리를 뚫고 솟구쳐 거꾸로 드리워 내려와 문을 가리고 막고 있는 것이다. 다리 곁에는 꽃이 있고 나무가 있으니 곧 한 채의 돌집이다. 집 안에는 돌 구덩이, 돌 부뚜막, 돌 그릇, 돌 대야, 돌 침대, 돌 걸상이 있다. 가운데 돌비석 위에는 화과산 복지, 수렴동 동천이라 새겨져 있다. 참으로 우리가 몸을 붙일 곳이다. 그 안이 넓어 천백 명의 늙은이와 아이를 수용할 수 있다. 우리 모두 들어가 살면 하늘의 기운을 받는 고생을 면하리라. 이 안은, “바람이 불면 피할 곳이 있고 비가 오면 몸을 두기 좋다. 서리와 눈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우렛소리는 영영 들리지 않는다. 연기와 노을이 늘 비추고 상서로움이 늘 김이 되어 피어오른다. 소나무와 대나무는 해마다 빼어나고 기이한 꽃은 날마다 새롭다.” 뭇 원숭이가 듣고는 하나같이 기뻐하였다. 모두 “네가 먼저 가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가라, 들어가!”라고 외쳤다. 돌원숭이는 또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려 안으로 뛰어들며 “모두 나를 따라 들어오너라! 들어와!” 하고 외쳤다. 그 원숭이들 중 담대한 자는 모두 뛰어들어 갔고, 겁 많은 자는 머리를 내밀고 목을 움츠리며 귀를 긁고 뺨을 문지르며 큰 소리로 외치다가 한참을 어정거리다가 역시 모두 들어갔다. 다리 머리를 뛰어넘자 대야를 빼앗고 그릇을 다투며 부뚜막을 차지하고 침대를 다투어 이리저리 옮기니, 원숭이의 성질이 완악하여 조용한 때가 없었고 옮기다가 힘이 빠지고 정신이 피곤해진 뒤에야 그쳤다. 돌원숭이가 위에 단정히 앉아 “여러분이여,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 옳음을 알지 못한다 말했다. 너희가 방금 재주가 있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몸을 상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곧 그를 임금으로 받들리라 하였다. 내가 지금 들어왔다 나가고 나갔다 들어와, 이 한 개의 동천을 찾아 여러분이 편히 잠들고 안온하게 자기며 각기 집을 이룬 복을 누리게 하였으니, 어찌 나를 임금으로 받들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뭇 원숭이가 그 말을 듣고는 곧 몸을 굽혀 엎드려 어기지 않았다. 하나하나 나이 순서대로 차례를 세워 위를 향해 절하고 예를 올리며 모두 천세대왕이라 일컬었다. 이로부터 돌원숭이는 높이 임금 자리에 올라 돌 자를 감추고 마침내 미후왕이라 일컬어졌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세 양기가 서로 어울려 뭇 생명을 낳으니, 신선한 돌의 태가 해와 달의 정기를 머금었도다. 알을 빌려 원숭이로 화하여 큰 도를 완성하고, 남의 이름을 빌려 단을 이루었도다. 안으로 보아도 알지 못함은 형상이 없기 때문이요, 밖으로 합하여 밝게 앎은 형체가 있기 때문이라. 역대의 사람마다 모두 이에 속하니, 왕이라 일컫고 성이라 일컬어 마음대로 가로지르도다. 미후왕이 한 무리의 긴팔원숭이와 마카크원숭이와 말원숭이 따위를 거느리고 임금과 신하와 보좌와 사자의 직분을 나누어 맡기고, 아침에는 화과산에서 놀고 저녁에는 수렴동에서 잤다. 뜻이 서로 맞고 정이 통하여 나는 새의 무리에 들지 않고 달리는 짐승의 무리를 따르지 않으며 홀로 임금이 되어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봄에는 온갖 꽃을 따서 음식으로 삼고, 여름에는 여러 열매를 찾아 생계를 삼는다. 가을에는 토란과 밤을 거두어 계절을 잇고, 겨울에는 황정을 찾아 세월을 보낸다. 미후왕이 천진한 즐거움을 누린 지 어느덧 삼백 년에서 오백 년이나 되었다. 하루는 뭇 원숭이와 기쁜 잔치를 벌이던 중에 홀연 근심이 일어나 눈물을 떨어뜨렸다. 뭇 원숭이가 황급히 둘러서서 절하며 “대왕께서는 무엇 때문에 근심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내가 비록 기쁜 때에 있으나 한 점 먼 걱정이 있기에 이 때문에 근심한다.”라고 말했다. 뭇 원숭이가 또 웃으며 “대왕께서는 참으로 만족할 줄 모르시나이다! 우리는 날마다 즐겁게 모이며 신선한 산과 복된 땅, 옛 굴과 신주의 땅에 있으면서 기린의 지배를 받지 않고 봉황의 관리도 받지 않으며 인간 임금의 자리가 속박하는 바도 받지 않아 자유자재하니 이는 한량없는 복이옵니다. 무엇 때문에 먼 걱정으로 근심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오늘날 비록 인간 임금의 법률에 속하지 않고 짐승의 위엄에 복종하지 않으나, 장차 나이 들어 피가 쇠하면 어둠 속에서 염라대왕이 우리를 관리하게 될 것이다. 하루아침에 몸이 죽는다면 어찌 세상 속에 헛되이 태어나 하늘과 인간 사이에 오래 머물지 못함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뭇 원숭이가 이 말을 듣고는 하나하나 얼굴을 가리고 슬프게 울며 모두 무상함을 걱정하였다. 그 반열 가운데서 홀연 한 마리 등이 온통 흰 원숭이가 뛰어나와 사나운 소리로 크게 “대왕께서 만약 이처럼 먼 걱정을 하신다면 참으로 이른바 도심이 열린 것이옵니다! 지금 오충 가운데 오직 세 가지 종류만이 염라대왕이 관리하는 바에 복종하지 않나이다.”라고 외쳤다. 원숭이 왕이 “네가 아는 그 세 가지가 무엇이냐?”라고 말했다. 원숭이가 “곧 부처와 신선과 신성이니, 윤회를 피하여 나지도 죽지도 않고 천지와 산천과 더불어 수명을 같이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이 세 가지는 어디에 사느냐?”라고 말했다. 원숭이가 “그들은 다만 염부세계 가운데, 옛 굴과 신선한 산속에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이 말을 듣고 만심환희하여 “내일 곧 너희를 하직하고 산을 내려가 구름처럼 바닷가까지 유랑하고 하늘 끝까지 멀리 건너가, 반드시 이 세 가지를 찾아 늙지 않고 오래 사는 법을 배워 늘 염라대왕의 재난을 피하리라.”라고 말했다. 아, 이 한마디 말이 곧 윤회의 그물을 뛰어넘게 하여 제천대성을 이루게 하였다. 뭇 원숭이가 손뼉을 치며 칭송하여 모두 “좋도다! 좋도다! 우리는 내일 고개를 넘고 산에 올라 널리 과일을 찾아 큰 잔치를 베풀어 대왕을 전송하리라.”라고 말했다. 이튿날 뭇 원숭이가 과연 가서 선도 복숭아를 따고 기이한 열매를 따며 산약을 캐고 황정을 파내고, 영지와 난초와 향기로운 혜초와 아름다운 풀과 기이한 꽃을 갖가지로 조각조각 가지런히 마련하여, 돌걸상과 돌상을 펴 놓고 신선한 술과 안주를 벌여 놓았다. 그 모습을 보니 이러하였다. 황금 알 구슬 탄알 같은 섣달 앵두는 빛이 참으로 달고, 붉게 터져 누렇게 살찐 익은 매실은 맛이 향기롭고 시다. 신선한 용안은 살이 달고 껍질이 얇고 불 같은 여지는 씨가 작고 속이 붉다. 능금의 푸른 열매는 가지째 바치고 비파의 누런 봉오리는 잎을 달고 받쳐 들었다. 토끼머리 배와 닭심장 대추는 갈증을 없애고 번뇌를 없애며 술기운까지 깨뜨린다. 향기로운 복숭아와 무르익은 살구는 달콤하여 옥같이 맑은 액과 구슬 같은 음료와 같고, 아삭한 자두와 양매는 시큼하여 기름진 치즈와 같다. 붉은 속에 검은 씨가 박힌 익은 수박, 네 쪽으로 갈라진 누런 껍질의 큰 감. 석류를 쪼개면 주사 알갱이가 나타나 불꽃 같은 구슬이 되고 토란과 밤을 갈라 열면 단단한 살덩이가 황금 마노가 된다. 호두와 은행은 차에 곁들일 만하고 야자와 포도는 술을 담글 수 있다. 개암과 잣과 비자와 능금나무 열매가 쟁반에 가득 담기고 귤과 사탕수수와 광귤과 등자가 상에 가득 놓였다. 익게 구운 산약, 푹 삶은 황정. 빻아 부순 복령과 의이인을 돌솥에 약한 불로 천천히 끓여 죽을 만든다. 인간 세상에 비록 진귀한 맛이 있다 한들 어찌 산속 원숭이의 즐거움보다 편안하겠는가? 뭇 원숭이가 미후왕을 높여 윗자리에 앉히고 각기 나이 순서대로 아래쪽에 줄을 지어 서서, 하나하나 차례로 앞에 나아가 술을 올리고 꽃을 올리고 과일을 올리며 하루 종일 실컷 마셨다. 이튿날 미후왕이 일찍 일어나 명하여 “아이들아, 나를 위하여 마른 소나무를 꺾어 와 뗏목을 엮고 대나무 장대를 가져다 삿대로 삼으며 과일 따위를 좀 챙겨라. 나는 떠나려 한다.”라고 말했다. 과연 홀로 뗏목에 올라 힘껏 밀어내니 하늘하늘 떠다니다가 곧장 큰 바다 물결 속으로 향하여 하늘바람을 타고 남섬부주 땅 경계로 건너왔다. 이번에 떠난 길이 바로 이러하였다. 하늘이 낳은 신선한 원숭이 도행이 높아, 산을 떠나 뗏목을 타고 하늘바람을 탔도다. 바다를 건너고 바다를 지나 신선의 도를 찾아, 뜻을 세우고 마음을 가라앉혀 큰 공을 세우리라. 나눔과 인연이 있으니 속된 소원을 쉬고, 근심도 걱정도 없이 원룡을 만나리라. 헤아리건대 반드시 지음을 만나, 근원을 밝혀 만법이 통하리라. 또한 그의 운수가 이르고 때가 와서 뗏목에 오른 뒤로 연일 동남풍이 세차게 불어 그를 서북쪽 언덕 앞까지 보내니, 곧 남섬부주 땅 경계였다. 삿대를 쥐고 물을 헤아려 보다가 우연히 얕은 물을 만나 뗏목을 버리고 언덕에 뛰어올랐다.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고기를 잡고 기러기를 쏘고 조개를 캐고 소금을 일구는 것을 보았다. 그가 가까이 나아가 재주를 부려 짐승 같은 무서운 흉내를 내며,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하니 바구니를 버리고 그물을 던지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달아나지 못하는 자 하나를 붙잡아 그의 옷을 벗겨 사람처럼 몸에 걸치고는 흔들흔들 걸어 고을을 지나고 주와 부를 지나며 저잣거리에서 사람의 예를 배우고 사람의 말을 배웠다. 아침에는 먹고 밤에는 자며 한마음으로 부처와 신선과 신성의 도를 물어 오래 살고 늙지 않는 방도를 찾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름과 이익을 위한 무리일 뿐 다시 하나도 몸과 목숨을 위하는 자가 없음을 보았다. 바로 이러하였다. 이름을 다투고 이익을 빼앗는 일 언제나 그칠꼬?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니 자유롭지 못하구나! 나귀와 노새를 타면서도 준마를 생각하고, 벼슬이 재상에 이르러도 왕후를 바라본다. 다만 의식 걱정에 허덕이며 애써 수고로울 뿐, 어찌 염라대왕이 곧 잡아가심을 두려워하는가? 자식에게 이어주고 손자에게 음덕을 주어 부귀를 꾀할 뿐, 다시 하나도 고개를 돌이키려는 이가 없구나! 원숭이 왕이 신선의 도를 찾아 물었으나 인연이 없어 만나지 못하였다. 남섬부주에 있으면서 긴 성을 지나고 작은 고을을 유람하기를 어느덧 팔구 년 남짓이었다. 홀연 서쪽 큰 바다에 이르렀는데, 그는 바다 밖에 반드시 신선이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홀로 전과 같이 뗏목을 만들어 다시 서해를 건너 마침내 서우하주 땅 경계에 이르렀다. 언덕에 올라 두루 찾은 지 오래되던 어느 때, 홀연 한 좌의 높은 산이 수려하고 숲과 산기슭이 그윽하고 깊은 것을 보았다. 그는 이리와 벌레도 두려워하지 않고 범과 표범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산꼭대기에 올라 살펴보았다. 과연 좋은 산이로다.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천 봉우리가 창을 늘어놓은 듯하고 만 길 벼랑이 병풍을 펼친 듯하다. 해가 비치니 산안개가 가볍게 푸름을 잠그고, 비가 그치니 검푸른 빛이 차갑게 푸름을 머금는다. 마른 등나무가 늙은 나무를 감고 옛 나루가 그윽한 길을 경계 짓는다. 기이한 꽃과 상서로운 풀, 긴 대나무와 높은 소나무. 긴 대나무와 높은 소나무는 만 년을 늘 푸르러 복된 땅을 능가하고, 기이한 꽃과 상서로운 풀은 사시사철 시들지 않아 봉래와 영주에 견줄 만하다. 그윽한 새의 울음이 가까이 들리고 샘물 소리가 맑게 흐른다. 겹겹의 골짜기에는 영지와 난초가 둘렸고 곳곳의 험한 벼랑에는 이끼가 자란다. 기복하는 산봉우리의 용맥이 좋으니 반드시 높은 사람이 이름을 숨기고 있으리라. 보고 있던 중에 홀연 숲 깊은 곳에서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걸음을 재촉해 숲속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이니 알고 보니 노래하는 소리였다. 노래에 이르기를, “바둑을 구경하다 도끼 자루가 썩었네, 나무 베는 소리 정정 울리고, 구름 가 산골 어귀를 천천히 걷네. 땔나무를 팔아 술을 사서 미친 듯 웃으며 스스로 정을 즐기네. 푸른 길에 가을 하늘 높고, 달을 마주하고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우니 한잠 자고 나니 날이 밝네. 옛 숲을 알아보고 벼랑에 올라 고개를 넘어, 도끼를 들고 마른 등나무를 끊네. “바둑을 구경하다 도끼 자루가 썩었네, 나무 베는 소리 정정 울리고 구름 가 산골 어귀를 천천히 걷네. 땔나무를 팔아 술을 사서 미친 듯 웃으며 스스로 정을 즐기네. 푸른 길에 가을 하늘 높아 달을 마주하고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우니 한잠 자고 나니 날이 밝네. 옛 숲을 알아보고 벼랑에 올라 고개를 넘어 도끼를 들고 마른 등나무를 끊네. 거두어 한 짐을 지어 저자거리에서 노래하며 가서 쌀 세 되와 바꾸네. 조금도 다투고 겨루는 일 없이 시세는 늘 한결같네. 꾀와 잔재주를 부릴 줄 모르고 영광도 치욕도 없이 담박하게 목숨을 이어가네. 서로 만나는 곳에는 신선이 아니면 도인이라, 조용히 앉아 《황정경》을 강론하네.” 미후왕이 이 말을 듣고 만심환희하여 “신선이 알고 보니 여기에 숨어 있었구나!” 하고, 황급히 안으로 뛰어들어 자세히 보니 이는 한 나무꾼으로 그곳에서 도끼를 들어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그 차림새를 보니 예사롭지 않았다. 머리에는 대삿갓을 썼으니 이는 새로 돋은 죽순이 막 벗은 껍질이요, 몸에는 베옷을 걸쳤으니 이는 목화를 잣아 만든 실이요, 허리에는 둥근 띠를 둘렀으니 이는 늙은 누에가 토한 실이요, 발에는 짚신을 신었으니 이는 마른 사초를 엮어 만든 것이었다. 손에는 강철 도끼를 쥐고 어깨에는 삼밧줄을 메었으며 소나무를 당기고 마른 나무를 쪼개니, 어찌 이 나무꾼의 솜씨에 견주랴. 원숭이 왕이 가까이 나아가 “늙은 신선님이시여! 제자가 인사 올리나이다.”라고 외쳤다. 나무꾼이 황급히 도끼를 내던지고 몸을 돌려 예를 갖추어 “못 당할 말씀이옵니다! 저 같은 어리석은 사내는 의식조차 온전하지 못한데 어찌 감히 신선 두 글자를 당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네가 신선이 아니라면 어찌 신선의 말을 하느냐?”라고 말했다. 나무꾼이 “제가 무슨 신선의 말을 하였습니까?”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내가 방금 숲 가에 이르렀을 때 네가 말하기를, 서로 만나는 곳에는 신선이 아니면 도인이라, 조용히 앉아 《황정경》을 강론하네, 하는 것을 들었다. 《황정경》은 도덕의 참된 말씀이니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라고 말했다. 나무꾼이 웃으며 “실로 숨기지 않으리니, 이 노래의 이름은 만정방이라 하며 한 신선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옵니다. 그 신선은 나의 집과 이웃해 있나이다. 그가 나의 집안일이 수고롭고 날마다 번민하는 것을 보고, 번민할 때면 곧 이 노래를 읊으라 가르쳐 주었으니 하나는 마음을 풀기 위함이요 둘은 곤함을 풀기 위함이옵니다. 내가 방금 부족한 점이 있어 생각하다가 이 때문에 읊었는데 뜻밖에 그대가 들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네 집이 이미 신선과 이웃해 있다면 어찌 그를 따라 수행하지 않느냐? 늙지 않는 방도를 배운다면 좋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나무꾼이 “저는 한평생 목숨이 괴롭나이다. 어려서 부모의 양육을 받아 여덟아홉 살에 사람 일을 알았는데 불행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홀로 수절하셨나이다. 형제자매도 없이 저 혼자뿐이라 어쩔 수 없이 아침저녁으로 모시고 있나이다. 지금 어머니가 늙으셨으니 감히 떠나지 못하나이다. 게다가 전원이 황폐하여 의식이 부족하므로 다만 땔나무 두 짐을 베어 저잣거리로 지고 가 몇 문의 돈으로 팔아 몇 되의 쌀을 사서 스스로 밥을 짓고 차와 밥을 마련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나이다. 그러므로 수행할 수가 없나이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네 말을 근거로 보건대 곧 효도를 행하는 군자이니 앞으로 반드시 좋은 보람이 있으리라. 다만 나에게 그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켜 주기 바란다. 찾아뵙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나무꾼이 “멀지 않나이다. 이 산을 영대방촌산이라 하나이다. 산속에 한 좌의 사월삼성동이 있나이다. 그 굴 속에 한 신선이 있으니 이름을 수보리조사라 하나이다. 그 조사에게서 나간 제자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지금도 삼사십 명이 그를 따라 수행하고 있나이다. 그대는 저 작은 길을 따라 남쪽으로 칠팔 리쯤 가면 곧 그의 집이옵니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손으로 나무꾼을 붙잡아 “노형이여, 그대가 나와 함께 가 주게. 좋은 보람을 얻는다면 결코 그대가 가리켜 준 은혜를 잊지 않겠네.”라고 말했다. 나무꾼이 “이 사내야, 참으로 사정을 모르는구나. 내가 방금 이렇게 말하였는데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가령 내가 너와 함께 간다면 어찌 나의 생업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늙은 어머니는 누가 봉양하겠느냐? 나는 나무를 베어야 하니 너 혼자 가라, 혼자 가라!”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은 그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하직하였다. 깊은 숲을 나와 길을 찾아 올라 한 산비탈을 넘으니 약 칠팔 리쯤 되어 과연 한 좌의 굴이 바라보였다. 몸을 곧추 세워 살펴보니 참으로 좋은 곳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연기와 노을이 채색을 흩고 해와 달이 빛을 흔든다. 천 그루의 늙은 잣나무, 만 마디의 긴 대나무. 천 그루 늙은 잣나무는 비를 머금어 반쯤 하늘에 푸르스름하고 만 마디 긴 대나무는 연기를 머금어 온 골짜기가 푸르다. 문 밖에는 기이한 꽃이 비단을 펼친 듯하고 다리 곁에는 아름다운 풀이 향기를 뿜는다. 돌벼랑은 우뚝 솟아 푸른 이끼가 촉촉하고 매달린 벽은 높이 펼쳐져 푸른 이끼가 길게 자랐다. 때때로 신선한 학이 우는 소리를 듣고 늘 봉황이 나는 것을 본다. 신선한 학이 울 때에는 그 소리가 아홉 못에 진동하고 하늘까지 멀리 퍼지며, 봉황이 날아오를 때에는 깃털의 오색이 채색 구름처럼 빛난다. 검은 원숭이와 흰 사슴이 따라 숨었다 나타나고 황금 사자와 옥 코끼리가 마음대로 다닌다. 자세히 보건대 영험하고 복된 땅이 참으로 천당에 견줄 만하다! 또 그 굴 문이 굳게 닫혀 고요하고 아득하여 사람의 자취가 없음을 보았다. 홀연 고개를 돌리니 벼랑 위에 한 개의 돌비석이 서 있는데 높이가 삼 장 남짓이요 너비가 팔 척 남짓이며, 위에 한 줄의 열 개 큰 글자가 있으니 곧 영대방촌산, 사월삼성동이었다. 미후왕이 십분 기뻐하며 “이곳 사람들은 과연 질박하구나. 과연 이 산과 이 굴이 있구나.”라고 말했다. 한참을 살펴보았으나 감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우선 가서 소나무 가지 끝으로 뛰어올라 솔방울을 따 먹으며 장난을 쳤다. 조금 지나 문득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굴 문이 열리는 곳에서 안으로부터 한 명의 선동이 걸어 나왔는데, 참으로 풍채가 빼어나고 용모가 맑고 기이하여 예사로운 속인과 달랐다. 그 모습을 보니, 상투를 두 가닥 실로 묶었고, 넓은 도포 두 소매에 바람이 든다. 얼굴과 몸이 스스로 남과 다르고, 마음과 모습이 함께 비어 있도다. 세상 밖의 오래 사는 나그네요, 산속의 영원히 장수하는 동자로다. 한 티끌도 전혀 물들지 않으니, 세월이 마음대로 뒤집히도다. 그 동자가 문을 나서며 크게 “무슨 사람이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가?”라고 외쳤다. 원숭이 왕이 펄쩍 나무에서 뛰어내려 앞으로 나아가 몸을 굽히며 “선동이여, 나는 도를 찾고 신선을 배우는 제자이니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우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선동이 웃으며 “네가 도를 찾는 자냐?”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그렇사옵니다.”라고 말했다. 동자가 “우리 스승님께서 막 잠자리에서 내려와 단에 올라 도를 강론하시는데, 아직 까닭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나가서 문을 열라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바깥에 수행하는 자가 왔으니 가서 맞이하라, 하셨다. 아마도 바로 너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웃으며 “저이옵니다, 저이옵니다.”라고 말했다. 동자가 “너는 나를 따라 들어오라.”라고 말했다. 이 원숭이 왕이 옷을 여미고 단정히 하여 동자를 따라 곧장 동천 깊은 곳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한 층 한 층 깊은 누각과 아름다운 다락, 한 채 한 채 구슬 궁궐과 조개 궁궐이 있어 그 고요한 방과 그윽한 거처를 다 말할 수 없었으며 마침내 요대 아래에 이르렀다. 그 보리조사가 단 위에 단정히 앉아 계시고 양쪽에는 서른 명의 작은 신선이 단 아래에 모시고 선 것을 보았다. 과연 이러하였다. 크게 깨달은 금선의 때 묻지 않은 모습, 서방의 묘한 상이요 조사 보리시며, 나지도 죽지도 않는 삼삼한 수행, 기운을 온전히 하고 정신을 온전히 한 만만한 자비로다. 공적하고 자연하여 변화를 따르고, 진여의 본성대로 마음껏 행하시며, 하늘과 수명을 같이하는 장엄한 몸, 겁을 겪으며 마음을 밝힌 대법사로다. 미후왕이 한 번 보고는 몸을 뒤집어 엎드려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 것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입으로는 다만 “사부님! 사부님! 제자가 지극한 마음으로 예를 올리나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예를 올리나이다!”라고 말했다. 조사가 “너는 어느 지방 사람이냐? 우선 고향과 이름을 분명히 말한 뒤에 다시 절하라.”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제자는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 수렴동 사람이옵니다.”라고 말했다. 조사가 꾸짖어 명하기를, “쫓아내라! 그는 본래 거짓을 부리고 헛것을 휘두르는 무리이니 어디서 무슨 도과를 닦겠느냐!” 말했다. 원숭이 왕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기를 그치지 않으며 “제자는 정직한 말이니 결코 거짓이 없나이다.”라고 말했다. 조사가 “네가 이미 정직하다면 어찌 동승신주라 하느냐? 그곳은 이곳까지 두 겹의 큰 바다와 한 좌의 남섬부주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어떻게 이곳에 이를 수 있었느냐?”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머리를 조아리며 “제자가 바다를 건너고 바다를 지나 경계에 올라 사방을 유랑한 지 십여 년의 세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곳을 찾았나이다.”라고 말했다. 조사가 “이미 차츰 걸어서 왔다니 그만두겠다. 너의 성이 무엇이냐?”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또 “저는 성이 없나이다. 사람이 나를 꾸짖어도 성내지 않고 때려도 노하지 않으며 다만 예를 갖추어 사과할 뿐이옵니다. 한평생 성이 없나이다.”라고 말했다. 조사가 “그 성이 아니다. 네 부모의 본래 성이 무엇이냐?”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저는 부모도 없나이다.”라고 말했다. 조사가 “부모가 없다면 나무에서 났겠구나?”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제가 비록 나무에서 난 것은 아니나 돌 속에서 자랐나이다. 다만 기억하기를 화과산 위에 한 개의 신선한 돌이 있었는데 그해 돌이 깨지자 제가 태어났나이다.”라고 말했다. 조사가 듣고는 남몰래 기뻐하며 “그런즉 천지가 낳은 것이로다. 일어나 걸어 보아라, 내가 보겠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몸을 솟구쳐 뛰어오르더니 절뚝절뚝 두어 번 걸었다. 조사가 웃으며 “네 몸뚱이는 비록 더럽고 추하나 솔방울을 먹는 원숭이 같구나. 내가 네 몸을 따라 성을 하나 취하겠으니 뜻은 너를 후라 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후 자에서 짐승을 뜻하는 변을 떼면 곧 고월이 된다. 고는 늙음이요 월은 음이다. 늙은 음은 낳아 기를 수 없으니 너를 손이라 성하게 함이 좋겠다. 손 자에서 짐승 변을 떼면 곧 자계가 된다. 자는 사내아이요 계는 어린 것이라는 뜻이니 참으로 어린아이의 본뜻에 맞는다. 너를 손이라 성하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듣고는 만심환희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좋사옵니다! 좋사옵니다! 좋사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성을 알았나이다. 바라건대 사부님께서 자비를 베푸소서! 이미 성이 있으니 다시 이름 하나를 내려 주시면 부르기에 좋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조사가 “우리 문중에는 열두 글자가 있어 이름을 나누어 짓는데 네게 이르러서는 열 번째 작은 제자가 된다.”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그 열두 글자가 무엇입니까?”라고 말했다. 조사가 “곧 광, 대, 지, 혜, 진, 여, 성, 해, 영, 오, 원, 각의 열두 글자이다. 네 차례에 이르러 바로 오 자에 해당한다. 너에게 법명을 지어 손오공이라 함이 좋겠느냐?”라고 말했다. 원숭이 왕이 웃으며 “좋사옵니다! 좋사옵니다! 좋사옵니다! 오늘부터 곧 손오공이라 부르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러하였다. 혼몽이 처음 열렸을 때 본래 성이 없었으니, 완고한 공을 깨뜨리려면 모름지기 공을 깨달아야 하네. 결국 그 뒤에 무슨 도과를 닦게 되었는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회 오철보리진묘리(悟徹菩提眞妙理) · 단마귀본합원신(斷魔歸本合元神) 말하자면, 미후왕은 성명을 얻자 기뻐 어쩔 줄 몰라 뛰놀며 보리조사 앞에 나아가 예를 올리고 감사를 아뢰었다. 조사는 곧 대중을 시켜 손오공을 이문 밖으로 데리고 나가, 물을 뿌리고 땅을 쓸며 응대하는 법과 나아가고 물러서며 몸을 두르는 예절을 가르치게 하였다. 뭇 신선들은 분부를 받들어 나갔다. 오공은 문 밖에 이르러 다시 사형들에게 절을 올리고 행랑채 사이에 잠잘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튿날부터 그는 사형들과 말씨와 예절을 배우고 경을 강론하고 도를 논하며 글자를 익히고 향을 사르니 날마다 이러하였다. 한가할 때에는 땅을 쓸고 동산을 매며 꽃을 기르고 나무를 다듬고, 땔나무를 찾아 불을 지피고 물을 길어 나르고 죽을 이고 날랐다. 쓰는 물건 가운데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동굴 속에서 어느덧 육칠 년이 흘렀다. 하루는 조사가 단에 올라 높이 앉아 뭇 신선을 불러 모으고 대도를 열어 강설하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천상의 꽃이 어지러이 흩날리고, 땅에서는 금빛 연꽃이 솟아나네. 묘하게 삼승의 가르침을 펼치시니, 정묘하고 미세한 만법이 모두 갖추어졌도다. 천천히 먼지떨이를 흔들며 주옥 같은 말씀을 토해 내니, 그 울림이 우레를 진동시켜 구천을 뒤흔드네. 한때는 도를 설하고 한때는 선을 강하시니, 삼교가 서로 어울림이 본래 그러하도다. 한 글자를 열어 밝히니 정성을 다해 귀의하는 이치요, 무생의 성품을 깨닫는 현묘함을 가리켜 인도하시네. 손오공은 곁에서 강설을 듣다가, 기쁨에 귀를 긁고 뺨을 만지며 눈썹은 꽃처럼 피고 눈은 웃음에 접혔다. 참지 못하고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었다. 문득 조사에게 들키자, 조사가 손오공을 불러 말했다. “네가 반열 가운데 있으면서 어찌하여 미친 듯 뛰고 춤추며 내 강설을 듣지 않느냐?” 오공이 아뢰었다. “제자는 정성으로 강설을 듣다가 늙은 스승님의 묘한 음성을 들은 곳에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부지런히 이처럼 뛰노는 모습을 지었으니, 바라건대 스승님께서는 제자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조사가 말했다. “네가 이미 묘한 음성을 알아들었으니, 내가 한 가지 묻겠다. 네가 동굴에 이른 지 얼마나 되었느냐?” 오공이 아뢰었다. “제자는 본래 몽매하여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부뚜막 아래에 불이 없을 때면 늘 산 뒤로 땔나무를 하러 갔는데, 거기 한 산에 좋은 복숭아나무가 있어 제가 그곳에서 일곱 번 배부르게 복숭아를 먹은 것만 기억한다.” 조사가 말했다. “그 산의 이름은 난도산이라 한다. 네가 일곱 번을 먹었으니 아마 일곱 해가 되었을 것이다. 너는 이제 나에게서 무슨 도를 배우고자 하느냐?” 오공이 아뢰었다. “다만 높으신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르겠으니, 조금이라도 도의 기운이 있는 것이라면 제자는 곧 배우겠다.” 조사가 말했다. “‘도’ 자 문중에는 삼백육십의 방문이 있으니, 방문마다 모두 정과가 있다. 네가 어느 한 문을 배울지 모르겠구나.” 오공이 말했다. “높으신 스승님의 뜻에 따르겠으니, 제자는 마음을 다 기울여 따르겠다.” 조사가 말했다. “내가 너에게 ‘술’ 자 문중의 도를 하나 가르쳐 주면 어떻겠느냐?” 오공이 말했다. “술 문의 도란 무엇을 하는 것이냐?” 조사가 말했다. “술 자 문중이란, 곧 신선을 청해 강신하게 하고, 점을 치고 시초를 세어, 길함으로 나아가고 흉함을 피하는 이치를 아는 것 따위이다.” 오공이 말했다. “이와 같은 것으로 장생을 얻을 수 있느냐?” 조사가 말했다. “못 한다! 못 한다!” 오공이 말했다. “안 배우겠다! 안 배우겠다!” 조사가 말했다. “너에게 ‘정’ 자 문중의 도를 가르치면 어떻겠느냐?” 오공이 말했다. “정 자 문중이란 무슨 정과냐?” 조사가 말했다. “이는 곧 곡식을 끊고 오곡을 지키며, 청정무위하고, 참선하고 좌선하며, 말을 삼가고 재계하며, 혹은 잠으로 하는 공부, 혹은 서서 하는 공부를 하고, 아울러 입정하고 좌관하는 따위이다.” 오공이 말했다. “이런 것도 능히 장생할 수 있느냐?” 조사가 말했다. “또한 가마머리의 흙벽돌과 같다.” 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도 참으로 좀 나무라시는구나. 자꾸 제가 은어를 모른다고만 하시니, 어찌하여 ‘가마머리의 흙벽돌’이라 하느냐?” 조사가 말했다. “마치 가마머리에서 벽돌과 기와의 흙벽돌을 만든 것과 같아, 비록 이미 형체는 이루었으나 아직 물과 불로 단련을 거치지 못하였으니, 하루아침에 큰비가 퍼부으면 반드시 무너지고 말리라.” 오공이 말했다. “그것도 또한 오래가지 못하겠구나. 안 배우겠다! 안 배우겠다!” 조사가 말했다. “너에게 ‘동’ 자 문중의 도를 가르치면 어떻겠느냐?” 오공이 말했다. “동 문의 도란 또 어떠한 것이냐?” 조사가 말했다. “이는 함이 있고 지음이 있어, 음을 취해 양을 보충하고, 활을 당기고 쇠뇌를 밟으며, 배꼽을 문지르고 기를 돌리고, 처방으로 약을 달이고, 띠풀을 태우고 솥을 두드리며, 홍연을 먹고 추석을 단련하며, 아울러 부인의 젖을 먹는 따위이다.” 오공이 말했다. “이와 같은 것으로도 장생을 얻을 수 있느냐?” 조사가 말했다. “이로써 장생을 구하는 것은 또한 ‘물속의 달을 건지는’ 것과 같다.”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께서 또 그런 말씀을 하시는구나! 어찌하여 ‘물속의 달을 건진다’고 하느냐?” 조사가 말했다. “달은 높은 하늘에 있고 물속에는 그 그림자가 있으니, 비록 눈으로 보이지만 다만 건져 만질 곳이 없어 끝내 헛되이 빈손이 될 뿐이다.” 오공이 말했다. “그것도 안 배우겠다! 안 배우겠다!” 조사가 이 말을 듣고 “뚝!” 하고 소리를 지르며 높은 단에서 뛰어내려 손에 계척을 들고 손오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원숭이 놈아, 이것도 안 배우고 저것도 안 배우니 도대체 어쩌려고 하느냐?” 앞으로 나아가 손오공의 머리를 세 번 때리고, 두 손을 등 뒤로 잡기고 안으로 들어가 중문을 닫아 버린 뒤 뭇 대중을 버려 두고 가 버렸다. 강설을 듣던 무리들은 놀라 겁에 질려 모두 손오공을 원망하며 말했다. “이 못된 원숭이야, 몹시도 무례하구나! 스승님께서 너에게 도법을 전해 주시려는데 어찌 배우지 않고 말대꾸를 하느냐? 이번에 그를 거스른 뒤로는 어느 때에나 나오실지 알 수 없구나!” 이때 무리들은 모두 그를 원망하고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였다. 오공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다만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있었다. 원래 그 원숭이 왕은 이미 접시 속의 수수께끼를 깨뜨려 마음속에 새겨 두었으므로 뭇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참고 견디며 말이 없었던 것이다. 조사가 그를 세 번 때린 것은 그로 하여금 삼경 시각에 마음을 두게 하려 함이었고, 두 손을 등 뒤로 잡기고 들어가 중문을 닫은 것은 그로 하여금 뒷문으로 나아가 은밀한 곳에서 도를 전해 주시려 함이었다. 그날 오공은 뭇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기며 삼성동 앞에서 하늘빛을 바라보며 저녁이 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황혼이 되자 뭇 사람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으나, 눈을 거짓으로 감고 숨을 고르며 정신을 간직하였다. 산중에는 또 시각을 알려 주는 물시계도 없어 때를 알 수 없었으므로, 다만 자기 혼자 콧구멍으로 드나드는 숨을 고르게 조절하였다. 자시 무렵에 이르러 가만가만 일어나 옷을 걸치고, 앞문을 몰래 열고 뭇 사람들을 피해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바로 그러하였다. 달은 밝고 이슬은 차가우며, 팔극은 아득히 티끌 하나 없구나. 깊은 숲엔 그윽한 새 잠들었고, 샘머리엔 물이 졸졸 흐르누나. 날아다니는 반딧불은 그림자를 흩뜨리고, 지나가는 기러기는 구름에 글자를 새기네. 바로 삼경의 시각이니, 마땅히 도의 참됨을 물을 때로다. 그가 옛 길을 따라 뒷문 밖에 이르러 보니, 그 문이 반쯤 열려 있고 반쯤 닫혀 있었다. 오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늙은 스승님께서 과연 나에게 도를 전해 주실 생각을 두셨기에 이렇게 문을 열어 두셨구나.” 이내 발을 끌며 가까이 나아가 몸을 비스듬히 하고 문 안으로 들어가, 곧 조사의 잠자리 아래에 이르렀다. 조사가 몸을 웅크리고 안쪽을 향해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오공은 감히 놀라게 하지 못하고, 이내 평상 앞에 꿇어앉았다. 그 조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나 두 발을 펴고 입속으로 스스로 읊조렸다.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도는 가장 현묘하니, 금단을 등한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지인을 만나 묘결을 전해 받지 못하면, 헛되이 말만 하다 입이 마르고 혀끝이 타리라!” 오공이 소리 나는 대로 불렀다. “스승님, 제자가 여기서 꿇어앉아 오래 기다렸다.” 조사가 그 소리가 오공인 것을 듣고, 곧 일어나 옷을 걸치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꾸짖어 말했다. “이 원숭이 놈! 네가 앞쪽에 가서 자지 않고 어찌하여 내 뒤쪽에 왔느냐?”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께서 어제 단 앞에서 뭇 사람들 앞에 허락하시어, 제자로 하여금 삼경 시각에 뒷문으로 들어와 도의 이치를 전해 주시라 하셨기에, 이렇게 큰 담력을 내어 곧 노야의 평상 아래에 절한 것이다.” 조사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마음속으로 은근히 생각하였다. “이놈은 과연 하늘과 땅이 낳은 존재로구나! 그렇지 않다면 어찌 내 접시 속의 은밀한 수수께끼를 깨뜨릴 수 있었겠는가?” 오공이 말했다. “여기에는 다른 귀를 가진 이가 없이 오직 제자 한 사람뿐이니, 바라건대 스승님께서는 크게 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장생의 도를 전해 주시기를 바란다. 영원히 은혜를 잊지 않겠다!” 조사가 말했다. “네게 이제 인연이 있고 나 또한 말하기를 즐기니, 이미 접시 속의 은밀한 수수께끼를 알아냈은즉 앞으로 나아오라.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에게 장생의 묘한 도를 전해 주리라.” 오공은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귀를 씻어 마음을 다하며 평상 아래에 꿇어앉았다. 조사가 이르셨다. “현밀을 원만히 통한 참 묘결이여, 목숨을 아끼어 닦으니 다른 말이 없도다. 모두가 다 정과 기와 신일 뿐이니, 삼가 굳게 감추어 새어 나가지 말라. 새어 나가지 말라, 몸속에 감추라, 네가 나의 전함을 받으면 도는 스스로 창성하리라. 구결을 기억해 두면 이로움이 많으니, 삿된 욕망을 물리치면 청량함을 얻으리라. 청량함을 얻으면 빛이 교결하니, 좋기는 단대에 올라 밝은 달을 감상함이라. 달에는 옥토끼가 숨고 해에는 금까마귀가 숨으니, 절로 거북과 뱀이 서로 얽혀 맺어지리라. 서로 얽혀 맺어지면 성명이 견고하니, 도리어 불속에서 금련을 심을 수 있으리라. 오행을 모아 쌓아 거꾸로 쓰면, 공이 완성됨에 따라 부처도 되고 신선도 되리라.” 이때 근원을 말하여 깨뜨려 주시니, 오공은 마음이 영묘해지고 복이 이르렀다. 그 구결을 또렷이또렷이 기억하고, 조사께 절을 올려 깊은 은혜에 사례한 뒤, 곧 뒷문으로 나가 살펴보았다. 다만 동쪽 하늘빛이 조금 희끄무레하게 풀리고, 서쪽 길에는 금빛이 크게 밝게 드러남을 보았다. 옛 길을 따라 앞문으로 돌아가 가만히 밀어 열고 들어가, 본래 자던 자리에 앉아 일부러 잠자리를 흔들어 소리를 내며 말했다. “날이 밝았다! 날이 밝았다! 일어나라!” 그 뭇 사람들은 아직 한창 자고 있어, 오공이 이미 좋은 일을 얻은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날 일어나 어울려 지내며 은근히 도를 지키고, 자시 전과 오시 후에 스스로 숨을 조절하였다. 그러고도 벌써 삼 년이 지나 조사가 다시 보좌에 올라 뭇 사람에게 법을 설하였다. 공안과 비유를 말하고 겉모습과 껍데기를 논하였다. 홀연히 물었다. “오공은 어디 있느냐?” 오공이 나아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제자가 있다.” 조사가 말했다. “너는 요즘 무슨 도를 닦아 왔느냐?” 오공이 말했다. “제자는 근래 법성이 자못 통하고 근원 또한 점차 견고해졌다.” 조사가 말했다. “네가 이미 법성에 통하고 근원을 깨달았으니, 다만 ‘삼재의 재앙’을 방비하라.” 오공이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은 잘못되었다. 제가 일찍이 들으니 도가 높고 덕이 융성하면 하늘과 수명을 같이하고 물과 불이 이미 사귀면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 하였는데, 어찌 ‘삼재의 재앙’이 있느냐?” 조사가 말했다. “이는 특별한 도이니 하늘과 땅의 조화를 빼앗고 해와 달의 현묘한 기틀을 침범한다. 단이 이루어진 뒤에는 귀신도 용납하기 어려워한다. 비록 얼굴과 수명을 더할 수 있으나 오백 년 뒤에 이르면 하늘이 우레 재앙을 내려 너를 치리니, 모름지기 성품을 보고 마음을 밝혀 미리 피해야 한다. 피하면 수명이 하늘과 같지만 피하지 못하면 목숨이 끊기리라. 다시 오백 년 뒤에는 하늘이 화재를 내려 너를 태우리라. 이 불은 하늘의 불도 범인의 불도 아니며 ‘음화’라 부른다. 자기 몸의 용천혈 아래에서 타오르기 시작하여 곧 니원궁을 꿰뚫어 오장이 재가 되고 사지가 썩어 천 년의 고행이 모두 헛된 것이 되리라. 다시 오백 년이 지나면 또 풍재를 내려 너를 불리라. 이 바람은 동서남북의 바람도 아니요 부드럽게 불어오는 금풍과 삭풍도 아니며 꽃과 버들, 소나무와 대나무를 흔드는 바람도 아니고 ‘비풍’이라 부른다. 정수리 숫구멍에서 육부로 들어가 단전을 지나 구규를 꿰뚫으면 뼈와 살이 삭아 흩어져 그 몸이 스스로 풀리리라. 그러므로 모두 피해야 하는 것이다.” 오공이 그 말을 듣고 털이 곤두서고 등골이 서늘해져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며 말했다. “바라건대 노야께서는 불쌍히 여기시어 삼재를 피하는 법을 전해 주시기를 바란다. 감히 은혜를 잊지 않겠다.” 조사가 말했다. “이 또한 어렵지 않으나 네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않기에 전해 줄 수 없구나.” 오공이 말했다. “저도 머리는 둥글어 하늘을 이고 발은 모나게 땅을 밟으며 똑같이 구규와 사지와 오장육부가 있는데, 어찌 사람과 다르다고 하시느냐?” 조사가 말했다. “네가 비록 사람을 닮았으나 사람보다 뺨이 적다.” 원래 그 원숭이는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에 들어간 뺨과 뾰족한 입을 하고 있었다. 오공이 손을 내밀어 만져 보고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셈이 틀리셨다! 제가 뺨은 적으나 사람보다 이 볼주머니가 더 있으니 그것으로 메울 수 있다.” 조사가 말했다. “그렇다면야 좋다. 너는 어느 한 가지를 배우겠느냐? 한 가지는 천강의 수로 삼십육 가지 변화가 있고, 한 가지는 지살의 수로 칠십이 가지 변화가 있다.” 오공이 말했다. “제자는 많은 쪽을 붙잡고 싶으니 지살의 변화를 배우겠다.” 조사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앞으로 나아오라. 구결을 전해 주리라.” 이내 귀에 입을 대고 낮게 말하니 어떤 묘한 법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원숭이 왕은 한 구멍이 통하면 백 구멍이 통하는 자라, 그때 구결을 익히고 스스로 닦고 단련하여 칠십이 가지 변화를 모두 배워 이루었다. 문득 하루는 조사가 뭇 문인과 함께 삼성동 앞에서 저녁 경치를 즐기며 놀았다. 조사가 말했다. “오공아, 일은 이루어졌느냐?” 오공이 말했다. “스승님의 넓은 은혜를 많이 입어, 제자는 공과가 완비되어 이미 노을을 타고 하늘로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조사가 말했다. “네가 한번 날아 올라 나에게 보여라.” 오공이 재주를 부려 몸을 솟구치고 연달아 재주넘기를 하여 땅에서 오륙 장이나 떨어져 구름과 노을을 밟고 한 끼 밥 지을 만한 시간쯤 갔으나 왕복이 삼 리도 못 되어 눈앞에 내려와 두 손을 마주 잡고 말했다. “스승님, 이것이 곧 날아오르고 구름을 타는 것이다.” 조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구름을 타는 것으로 셀 수 없고 다만 기어오르는 구름일 뿐이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신선은 아침에 북해에서 놀고 저녁에 창오에 이른다’ 하였다. 너처럼 반나절에 삼 리도 못 가니 기어오르는 구름조차 셀 수 없구나!” 오공이 말했다. “어찌하여 ‘아침에 북해에서 놀고 저녁에 창오에 이른다’고 하시느냐?” 조사가 말했다. “무릇 구름을 타는 이들은 아침에 북해에서 출발해 동해와 서해와 남해를 두루 돌고 다시 창오로 돌아오니, 창오란 곧 북해 영릉 지방을 이르는 말이다. 사해 밖을 하루에 모두 유람하여야 비로소 구름을 탄다고 할 수 있다.” 오공이 말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렵다! 참으로 어렵다!” 조사가 말했다. “세상에 어려운 일이란 없고 다만 마음먹은 사람이 두려울 뿐이다.” 오공이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아뢰었다. “스승님, ‘사람을 위하려면 끝까지 위하여야 한다’ 하셨으니 아예 크게 자비를 베푸시어 이 구름 타는 법도 한꺼번에 저에게 전해 주시기를 바란다. 결코 은혜를 잊지 않겠다.” 조사가 말했다. “모든 신선이 구름을 탈 때는 발을 구르며 일어나는데 너는 그렇지 않다. 네가 가는 것을 보니 연달아 재주를 넘어야 겨우 뛰어올랐다. 내가 이제 네 자세에 맞추어 너에게 ‘근두운’을 전해 주겠다.” 오공이 다시 예배하며 청하자 조사가 구결을 전해 주며 말했다. “이 구름은 결인을 쥐고 진언을 외우며 주먹을 굳게 쥐고 몸을 한 번 떨쳐 뛰어오르면, 한 번 재주넘기에 곧 십만 팔천 리 길이 간다!” 뭇 사람들이 듣고 저마다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오공은 참으로 운이 좋구나! 이 법을 익히면 남의 집 파발꾼이 되어 문서를 보내고 보고서를 전하더라도 어디를 가든 밥벌이를 찾을 수 있겠구나!” 스승과 제자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각기 동부로 돌아갔다. 그날 밤 오공은 정신을 운용하고 법을 단련하여 근두운을 익혔다. 날마다 거리낌도 속박도 없이 자재하고 소요하니, 이 또한 장생의 아름다움이었다. 하루는 봄이 돌아가고 여름이 이르렀을 때, 뭇 사람들이 모두 소나무 아래에서 모여 오래도록 강론하였다. 뭇 사람들이 말했다. “오공아, 너는 어느 세상에 닦아 온 인연인가? 며칠 전 스승님께서 귀에 입을 대고 낮게 말하여 네게 전해 주신 삼재를 피하는 변화의 법은 다 익혔느냐?” 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 형님들에게 숨기지 않겠다. 하나는 스승님의 전수 덕이요, 둘째는 내가 밤낮으로 부지런했던 덕이니, 그 몇 가지는 모두 익혔다.” 뭇 사람들이 말했다. “이 좋은 때를 타서 네가 한번 시험 삼아 부려 보아라. 우리들이 좀 보자.” 오공이 그 말을 듣고 정신을 떨쳐, 재주를 뽐내며 말했다. “여러 사형님들은 제목을 하나 내라. 나보고 무엇으로 변하라 하시겠는가?” 뭇 사람들이 말했다. “그럼 소나무 한 그루로 변해 보아라.” 오공이 결인을 쥐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곧 소나무 한 그루가 되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무성하여 연기를 머금고 사시를 꿰뚫으며, 구름을 넘어 곧 치솟아 곧은 자태를 빼어나게 드러내네. 조금도 요망한 원숭이의 모습은 없고, 온통 서리를 겪고 눈을 견딘 가지뿐이로다. 뭇 사람들이 보고는 손뼉을 치며 와하하 크게 웃었다. 모두 말했다. “좋은 원숭이로다! 좋은 원숭이로다!” 부지중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우니, 조사가 놀라 깨어났다. 조사가 급히 지팡이를 끌고 문 밖으로 나와 물었다. “무슨 사람이 여기서 떠드느냐?” 뭇 사람들이 부름을 듣고 당황하여 몸가짐을 바로잡고 옷을 정돈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오공도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무리 속에 섞여 말했다. “존엄하신 스승님께 아룬다. 저희가 여기서 모여 강론하였을 뿐 다른 성씨가 떠든 것은 없다.” 조사가 노하여 꾸짖으며 말했다. “너희가 큰 소리로 부르짖으니 도무지 수행하는 사람의 체모가 아니로구나! 수행하는 사람은 입을 열면 정기가 흩어지고 혀가 움직이면 시비가 생기는 법이다. 어찌하여 여기서 떠들고 웃었느냐?” 뭇 사람들이 말했다. “감히 스승님을 속이지 못한다. 방금 손오공이 변화를 부리며 장난을 하였다. 그에게 소나무 한 그루로 변해 보라 하였더니 과연 소나무가 되었기에 제자들이 모두 칭찬하고 갈채를 보내다가 소리를 높여 스승님을 놀라게 하였으니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조사가 말했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그리고 부르며 말했다. “오공아, 이리 오라! 무슨 정신을 부리고 무슨 소나무로 변하였느냐? 이런 재주를 어찌 사람들 앞에서 뽐내도 좋으냐? 가령 네가 남이 가진 것을 보면 그에게 배우기를 구하지 않겠느냐? 남이 네게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너에게 구할 것이다. 네가 재앙을 두려워하여 전해 주려 한다면 전해 주어야 하고, 전해 주지 않으면 반드시 해를 더할 것이니 네 목숨 또한 보전할 수 없게 되리라.” 오공이 머리를 조아려 말했다. “바라건대 스승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조사가 말했다. “나도 너를 벌하지는 않겠다. 다만 너는 가거라.” 오공이 이 말을 듣고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제자에게 어디로 가라 하시는 것이냐?” 조사가 말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에 따라 곧 거기로 돌아가면 된다.” 오공이 문득 깨달아 말했다. “저는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 수렴동에서 왔다.” 조사가 말했다. “네 빨리 돌아가 목숨을 온전히 하라. 이곳에 있으면 결단코 안 된다!” 오공이 죄를 받들어 아뢰었다. “스승님께 아룬다. 저도 집을 떠난 지 이십 년이 되었다. 비록 옛 자손들을 돌아보고 싶으나 스승님의 은혜를 아직 갚지 못하였음을 생각하여 감히 떠나지 못하겠다.” 조사가 말했다. “무슨 은혜와 의리가 있겠느냐? 네가 다만 재앙을 일으키지 않고 나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오공은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보고, 다만 절을 올려 하직하고 뭇 사람들과 작별하였다. 조사가 말했다. “네가 이번에 가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을 일으키리라. 네가 아무리 재앙을 일으키고 흉악한 짓을 하더라도, 내 제자라 말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네가 반 마디 글자라도 말하면 내가 곧 알리라. 이 원숭이 놈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갈아, 영혼을 구유의 땅에 내쳐 만겁토록 몸을 뒤집지 못하게 하리라!” 오공이 말했다. “결코 감히 스승님의 한 글자도 꺼내지 않고, 다만 제가 스스로 익혔다고만 말하겠다.” 오공이 사례하고 곧 몸을 빼어 결인을 쥐고 연달아 재주를 넘어 근두운을 솟구쳐, 곧 동해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아, 일찍이 화과산 수렴동을 보았다. 미후왕은 스스로 즐거움을 알고, 남몰래 스스로 읊조렸다. “떠날 때는 범인의 뼈와 범인의 태가 무거웠더니, 도를 얻으니 몸도 가볍고 몸뚱이도 가볍구나. 온 세상에 뜻을 세우려는 이 하나도 없으나, 뜻을 세워 현묘함을 닦으면 현묘함은 절로 밝아지리라. 그때 바다를 건널 적엔 물결이 험하여 나아가기 어려웠으나, 오늘 왕복은 쉽게 다녀오누나. 이별의 당부하는 말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는데, 어찌 알았으랴 눈 깜짝할 사이에 동해를 보게 될 줄을.” 오공이 구름머리를 눌러 화과산에 이르렀다. 길을 찾아 걸어가는데 홀연히 학이 울고 원숭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학의 울음은 하늘 끝까지 치솟고 원숭이의 울음은 슬프고 간절하여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이에 입을 열어 불렀다. “얘들아, 내가 왔느니라!” 그 벼랑 아래 돌단 곁과 화초 사이와 수목 속에서 크고 작은 원숭이들이 천천만만이 뛰어나와 미후왕을 둘러싸고 머리를 조아리며 불렀다. “대왕님, 참으로 마음이 넓으시구나! 어찌 한 번 가시고 이렇게 오래 계시느냐? 우리를 모두 이곳에 버려 두시니 대왕님을 바라보기가 목마르고 굶주린 듯하였다! 근래에 한 요마가 이곳에서 우리를 괴롭히며 억지로 수렴동 부지를 차지하려 하였다. 그래서 저희는 죽음을 버리고 삶을 잊은 채 그와 다투었다. 그동안 그 놈에게 살림 도구를 빼앗기고 많은 자손이 사로잡혀 밤낮으로 잠도 자지 못하고 집안을 지켜 왔다. 다행히 대왕님께서 오셨다! 다시 한 해라도 더 오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산동굴까지 남에게 넘겨 주었을 것이다!” 오공이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말했다. “어떤 요마가 감히 무례하게 굴었느냐! 네가 자세히 말하여라. 내가 찾아가 원수를 갚겠다.” 뭇 원숭이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왕님께 아룬다. 그 놈은 스스로 혼세마왕이라 부르며, 바로 북쪽 아래에 살고 있다.” 오공이 말했다. “여기서 그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 뭇 원숭이가 말했다. “그가 올 때는 구름을 타고, 갈 때는 안개를 타며, 혹은 바람 혹은 비요, 혹은 번개 혹은 우레라, 저희는 길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오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두려워 말고 그저 놀고 있어라. 내가 찾아갔다 오겠다!”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몸을 한 번 솟구쳐 뛰어올라, 내내 재주를 넘어 곧 북쪽 아래에 이르러 살펴보니, 한 높은 산이 보이는데 참으로 십분 험준하였다. 좋은 산이여. 붓끝 같은 봉우리 우뚝 서고 굽이진 시내는 깊구나. 붓끝 봉우리 하늘을 꿰뚫고 굽이진 시내는 땅의 문에 통하누나. 두 벼랑의 꽃과 나무는 기이함을 다투고 몇 곳의 소나무와 대나무는 푸름을 겨루네. 왼쪽엔 용이 길들여졌고 오른쪽엔 호랑이가 엎드려 있네. 이따금 쇠로 만든 소가 밭을 갈고 늘 금화 같은 씨앗을 심누나. 그윽한 새는 간드러지게 울고 붉은 봉황은 해를 향해 서 있네. 돌은 울퉁불퉁하고 물결은 맑아, 괴상하고 기이하며 참으로 험악하구나. 세상에 이름난 산이 무수히 많아 꽃이 피고 지며 무성한들 또 얼마인가. 어찌 이 경치가 길이 존재하여 여덟 절기와 사시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음과 견줄 수 있으랴. 참으로 삼계의 감원산이요 오행을 기르는 수장동이로다! 미후왕이 잠자코 경치를 바라보는데 홀연히 누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산을 내려가 찾아보니 그 험한 벼랑 앞이 바로 수장동이었다. 동굴 문 밖에 몇몇 작은 요괴가 춤을 추고 있다가 오공을 보고는 달아났다. 오공이 말했다. “가지 마라! 네 입에 담긴 말을 빌려 내 마음속 일을 전하겠다. 나는 정남쪽 화과산 수렴동의 동주다. 너희 집의 어떤 혼세조마가 거듭 내 자손을 업신여겼으니 내가 특히 찾아와 그와 한번 높낮이를 겨루고자 한다!” 그 작은 요괴가 듣고 급히 동굴로 뛰어들어 보고하였다. “대왕님! 재앙이 났다!” 마왕이 말했다. “무슨 재앙이란 말이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동굴 밖에 원숭이 놈 하나가 화과산 수렴동의 동주라 자칭하며, 대왕님께서 거듭 그 자손을 업신여기셨기에 특별히 찾아와 한번 높낮이를 겨루려 한다고 하였다.” 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늘 그 원숭이 요괴들에게 들으니 그들에게 대왕이 하나 있는데 출가하여 수행하러 갔다 하더니, 아마 이번에 온 모양이구나. 너희가 그를 보니 어떻게 차리고 무슨 기계를 가졌더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별다른 기계가 없고 머리는 벗겨져 있으며 붉은 옷 한 벌을 입고 누런 띠를 두르고 발에는 검은 신을 신었는데,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니요 도사나 신선 같지도 않으며 맨손으로 문 밖에서 떠들고 있다.” 마왕이 듣고 말했다. “내 갑주와 병기를 가져오라!” 그 작은 요괴가 즉시 가져왔다. 마왕이 갑주를 걸치고 칼을 손에 쥐고 뭇 요괴와 함께 문을 나서더니 소리를 높여 불렀다. “어느 놈이 수렴동의 동주냐?” 오공이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니 그 마왕은 이러하였다. 머리에는 검은 금 투구를 썼는데 해를 받아 빛나고, 몸에는 검은 비단 도포를 걸쳤는데 바람을 맞아 펄럭이네. 아래로는 검은 쇠 갑옷을 입고 가죽끈을 단단히 조였으며, 발에는 무늬 놓은 신을 신어 위엄이 마치 상장군 같구나. 허리는 열 아름이나 넓고 키는 석 장이며, 손에는 칼 한 자루를 쥐었는데 날이 몹시도 밝구나. 혼세마라 일컬어지니, 당당하고도 흉악한 모습이로다. 원숭이 왕이 꾸짖어 말했다. “이 못된 마귀가 이렇게 눈이 크고도 늙은 손을 보지 못하느냐!” 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네 몸은 사 척도 못 되고 나이도 삼십도 못 되었으며 손에 병기도 없는데, 어찌 이렇게 대담하게 미쳐 날뛰며 나를 찾아와 무슨 높낮이를 겨루겠다는 것이냐?” 오공이 꾸짖어 말했다. “이 못된 마귀야, 원래 눈이 없구나! 네가 나를 작다고 여기지만 크게 되기는 어렵지 않다. 네가 나에게 병기가 없다고 여기지만 내 두 손은 하늘가의 달을 걸어 잡는다! 겁내지 말고 다만 늙은 손의 주먹 한 방을 맞아 보아라!” 몸을 솟구쳐 뛰어올라 얼굴을 향해 때렸다. 마왕이 손을 내밀어 막으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납작하고 작은데 내가 이렇게 크고 길다. 네가 주먹을 쓰려 하고 내가 칼을 쓰려 하는데, 칼을 쓰면 너를 죽일 것이요 남의 웃음거리가 될 테니, 내 칼을 내려놓고 너와 주먹질 한 판을 겨뤄 보겠다.” 오공이 말했다. “말이 옳다. 좋은 사내로다! 덤벼라!” 마왕이 자세를 풀고 때리니 오공이 파고들어 부딪치고 맞섰다. 둘은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며 한번 부딪치고 한번 마주쳤다. 원래 긴 주먹은 헛되이 크고 짧고 뭉친 주먹은 견고한 법이라, 마왕은 오공에게 갈비를 찔리고 사타구니를 들이받히고 몇 군데 힘줄 마디를 얻어맞아 아팠다. 그가 몸을 피해 널빤지처럼 큰 강철 칼을 집어 오공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다. 오공이 급히 몸을 빼니 그는 헛되이 내리쳤다. 오공이 그가 흉맹한 것을 보고 몸 밖에 몸을 두는 법을 써서 털 한 줌을 뽑아 입속에 넣고 씹어 허공에 뿜으며 “변!” 하고 부르니, 곧 삼이백 마리 작은 원숭이로 변해 사방을 에워쌌다. 원래 사람이 신선의 몸을 얻어 정신을 내어 변화하면 모르는 방위가 없게 된다. 이 원숭이 왕은 도를 깨달은 뒤로 몸에 팔만 사천의 털이 있어 뿌리마다 능히 변하여 사물에 응함이 마음을 따랐다. 그 작은 원숭이들은 눈치가 빠르고 잘 뛰어 칼이 와도 맞지 않고 창이 가도 상하지 않았다. 보라, 그들이 앞뒤로 뛰며 파고들어 마왕을 둘러싸고 안는 자는 안고 당기는 자는 당기며 사타구니로 파고들고 발을 잡으며, 차고 때리고 털을 뽑고 눈을 후비고 코를 비틀며 마침내 한 덩어리로 뭉쳐 버렸다. 이에 오공이 가서 그의 칼을 빼앗아 들고 작은 원숭이들을 헤치고 정수리를 한 번 내리쳐 두 토막을 내었다. 무리를 거느리고 동굴로 쳐들어가 크고 작은 요괴들을 모조리 쓸어 없앴다. 이내 털을 떨쳐 몸에 거두어들였다. 또 몸에 거두어지지 않는 것들이 보였으니, 곧 그 마왕이 수렴동에서 사로잡아 온 작은 원숭이들이었다. 오공이 말했다. “너희는 어찌하여 이곳에 왔느냐?” 삼오십 마리쯤 되는 그들이 모두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저희는 대왕님께서 도를 닦으러 가신 뒤 이 두 해 동안 그에게 붙들려 다투다가 모두 잡아 왔다. 저것은 우리 동굴의 살림 도구가 아니냐? 돌 대야와 돌 그릇도 모두 이 놈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오공이 말했다. “이미 우리 살림 도구라면 모두 바깥으로 옮겨 내라.” 이어 동굴 안에 불을 질러 그 수장동을 바싹 태워 마르게 하고 모두 하나로 돌아가게 하였다. 뭇 원숭이에게 말했다. “너희는 나를 따라 돌아가자.” 뭇 원숭이가 말했다. “대왕님, 저희가 올 때는 다만 귓가에 바람 소리만 들렸고 허허롭게 이곳에 이르렀을 뿐이라 다시 길도 알지 못하는데, 이제 어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오공이 말했다. “이것은 그가 부린 술법이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내가 이제 한 구멍이 통하면 백 구멍이 통하니 나도 부릴 줄 안다. 너희는 모두 눈을 감고 두려워하지 말라!”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주문을 한 번 외우고 광풍 한 줄기를 일으켜 구름머리에서 내려왔다. 부르며 말했다. “얘들아, 눈을 떠라.” 뭇 원숭이들이 발로 땅을 밟아 보니 고향임을 알아보고 저마다 기뻐하며 모두 동굴 문 옛 길로 달려갔다. 동굴에 있던 뭇 원숭이들도 일제히 몰려와 함께 들어가 반을 나누고 나이 차례를 정하고 원숭이 왕에게 예배하였다.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맞이하고 축하하며 마귀를 항복시키고 자손을 구한 일을 여쭈었다. 오공이 자세히 한 번 이야기하니 뭇 원숭이들이 칭송을 마지않으며 말했다. “대왕님께서 그 먼 곳에 가셔서 뜻밖에도 이런 수단을 배워 오셨다!” 오공이 또 말했다. “내가 그해 너희와 이별하고 물결을 따라 흘러 동쪽 큰 바다를 넘어 곧 남섬부주에 이르러 사람의 모습을 배우고, 이 옷을 걸치고 이 신을 신고 흔들흔들 거리며 구름처럼 팔 년 남짓을 유람하였으나 다시 도를 얻지 못하였다. 또 서쪽 큰 바다를 건너 서우하주 지경에 이르러 오래도록 찾아 물었으나, 다행히 한 노조사를 만나 나에게 하늘과 수명을 같이하는 참 공과와 죽지 않고 장생하는 큰 법문을 전해 주셨다.” 뭇 원숭이들이 축하하며 모두 말했다. “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일이로다!” 오공이 또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또 한 가지 기쁜 일은 내 이 한 문중에 모두 성씨가 있게 되었다.” 뭇 원숭이들이 말했다. “대왕님의 성은 무엇이냐?” 오공이 말했다. “나는 이제 성이 손씨요 법명은 오공이다.” 뭇 원숭이들이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여 말했다. “대왕님은 늙은 손이시요, 우리는 모두 둘째 손, 셋째 손, 작은 손, 어린 손이며 온 집안의 손이요 온 나라의 손이요 한 둥지의 손이다!” 모두 와서 늙은 손을 받들어 큰 동이와 작은 사발로 야자술과 포도주를, 신선의 꽃과 신선의 과일을 내왔으니 참으로 온 집안이 즐거웠다! 아! 한 성씨를 꿰뚫어 몸이 근본으로 돌아갔으니, 다만 영화롭게 신선의 명부로 옮겨질 날을 기다릴 뿐이로다. 결국 그 결말이 어떠할지, 이 세계에 머무는 시종이 어떠할지 알 수 없도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회 사해천산개공복(四海千山皆拱伏) · 구유십류진제명(九幽十類盡除名) 말하자면, 미후왕은 고향으로 영광스럽게 돌아온 뒤 스스로 혼세마왕을 토벌하고 큰 칼 한 자루를 빼앗았다. 그는 날마다 무예를 조련하며, 작은 원숭이들에게 대나무를 베어 창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칼을 만들게 하였으며, 깃발을 만들어 세우고 호각을 불게 하였고, 한 걸음 나아가고 한 걸음 물러서는 진퇴의 법과 진을 치고 막사를 세우는 일을 가르치며 한참 동안 즐겁게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조용히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우리가 이곳에서 이렇게 놀다 보면 장난이 진짜가 되어, 혹 인간의 왕을 놀라게 하거나, 혹 새의 왕이나 짐승의 왕이 이 일을 침범할 구실로 여기어, 우리가 병사를 조련하여 반역을 도모한다고 하며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온다면, 너희는 모두가 대나무 창에 나무 칼이니 어떻게 적을 맞서겠느냐? 모름지기 날카로운 검과 창이라야 마땅하겠는데, 지금 어찌하면 좋겠느냐?” 뭇 원숭이들은 이 말을 듣고 저마다 놀라며 두려워하여 말했다. “대왕의 견해는 참으로 원대하시나이다. 다만 병기를 가져올 곳이 없사옵니다.” 바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네 마리 늙은 원숭이가 앞으로 나섰으니, 그중 둘은 적구마후요 둘은 통배원후였는데, 앞에 나아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날카로운 병기를 만들고자 하시면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어찌 쉬운 줄 아느냐?” 네 원숭이가 말했다. “우리 이 산에서 동쪽으로 가면 물이 이백 리나 펼쳐져 있사온데, 그쪽이 바로 오래국 경계이옵니다. 그 나라 안에 왕위가 있고 온 성 안에 군민이 무수하니, 반드시 금은동철을 다루는 장인이 있사오리다. 대왕께서 그리로 가시어 혹 사들이거나 혹 만들어 병기를 얻으시어 저희를 가르쳐 조련하시고 산을 지키신다면, 진실로 이른바 태평을 오래도록 보전하는 기틀이 되오리이다.” 오공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흡족하여 기뻐하며 말했다. “너희는 이곳에서 놀고 있거라, 내가 다녀오리라.”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그는 급히 근두운을 타고 올라 순식간에 이백 리 물길을 건넜다. 과연 그쪽에 성 하나가 있었으니, 여섯 거리의 큰길과 세 곳의 저잣거리에 만 호의 집과 천 개의 문이 늘어서 있고, 오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밝은 하늘 아래 환한 대낮에 분주히 다니고 있었다. 오공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곳에는 틀림없이 이미 만들어 놓은 병기가 있을 것이다. 내려가서 몇 가지를 사는 것도 좋지만, 차라리 신통력을 부려 몇 가지를 찾아오는 편이 낫겠다.” 그러고는 곧 손가락으로 결을 맺고 주문을 외우며 입을 오므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셔 후 하고 불어 내니, 곧바로 한바탕 바람이 일어나 모래를 날리고 돌을 굴렸으니 참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구름이 일어나는 곳에서 천지를 뒤흔들고, 검은 안개와 자욱한 흙구름이 대지를 어둡게 덮었네. 강과 바다 물결이 뒤집히니 물고기와 게가 두려워하고, 산과 숲 나무가 부러지니 호랑이와 이리가 달아나네. 갖가지 장사에는 상인이 없고, 온갖 생업에는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네. 전각 위의 임금은 안으로 돌아가고, 섬돌 앞의 문무백관은 관청으로 물러가네. 천 년의 보좌가 모두 쓰러지고, 오봉의 높은 누각도 뿌리째 흔들리네. 바람이 일어난 곳에서 그 오래국의 군왕이 놀라 흩어지고, 세 거리와 여섯 저잣거리가 모두 당황하여 문을 닫고 창을 걸어 감히 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오공은 그제야 구름을 낮추어 내려와 곧장 조정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병기관과 무기고를 찾아 문짝을 열고 살펴보니, 그 안에 무수한 병기가 있었다. 칼, 창, 검, 극, 도끼, 월, 창, 낫, 채찍, 파, 과, 간, 활, 쇠뇌, 갈래창, 모가 하나같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자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나 혼자서 얼마나 가져갈 수 있겠느냐? 분신법을 부려 옮겨 오는 편이 좋겠다.”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곧 털 한 움큼을 뽑아 입에 넣고 씹어서 밖으로 뿜어 내며 주문을 외우고 소리쳤다. “변!” 그러자 천백 마리의 작은 원숭이로 변하여 저마다 어지러이 옮기고 다투어 빼앗으니, 힘센 놈은 다섯에서 일곱 가지를 가져가고 힘없는 놈은 두세 가지를 가져가서, 남김없이 모두 싹 쓸어 갔다. 그리고는 곧장 구름을 밟고 섭법을 부려 다시 광풍을 불러일으켜 작은 원숭이들을 거느리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말하자면, 그 화과산의 크고 작은 원숭이들은 바로 그 동굴 문 밖에서 놀고 있다가 홀연히 바람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공중에 가지런하지도 않고 끝도 없이 넓은 원숭이 요괴들이 가득하여, 놀란 나머지 어지러이 달아나고 이리저리 숨었다. 얼마 뒤에 미후왕이 구름을 낮추어 내려와 구름과 안개를 거두고 몸을 한 번 털어 털을 거두어들인 다음, 병기를 산 앞에 어지러이 쌓아 놓고 외쳤다. “작은 것들아! 다 와서 병기를 받아라!” 뭇 원숭이들이 살펴보니 오공만이 평평한 들판에 홀로 서 있었으므로, 모두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고 그 까닭을 물었다. 오공은 앞서 광풍을 부리고 병기를 옮겨 온 모든 일을 한 차례 털어놓았다. 뭇 원숭이들은 치하를 마친 뒤 모두 달려가 칼을 빼앗고 검을 다투며, 도끼를 움켜쥐고 창을 다투며, 활을 당기고 쇠뇌를 쥐며 떠들썩하게 하루 종일 놀았다. 이튿날에도 여전히 진을 배치하였다. 오공이 뭇 원숭이를 모아 세어 보니 모두 사만 칠천여 마리에 이르렀다. 일찍이 온 산의 괴물들을 놀라게 하였으니, 모두 이리, 뭇 벌레, 호랑이, 표범, 고라니, 노루, 여우, 살쾡이, 오소리, 담비, 사자, 코끼리, 산예, 성성이, 곰, 사슴, 멧돼지, 산소, 영양, 청사, 교아, 신오 따위였다. 갖가지 요괴 왕들이 모두 일흔두 동굴에 이르렀는데, 다들 와서 원숭이 왕을 존장으로 모시고 절을 올렸다. 해마다 공물을 바치고 사시에 점호를 받았으며, 어떤 이는 진을 따라 조련하고 어떤 이는 절기에 따라 군량을 거두니, 가지런하고 정연하여 화과산 한 좌를 마치 쇠통과 금성처럼 만들었다. 각 갈래의 요괴 왕들은 또 금북을 바치고 채색 깃발을 바치고 갑옷과 투구를 바치는 이들이 있어 분분하고 떠들썩하였으며, 날마다 집집이 무예를 익히고 군사를 일으켰다. 미후왕이 기뻐하고 있을 때, 홀연히 뭇 원숭이를 향하여 말했다. “너희는 활과 쇠뇌에 익숙하고 병기에 정통하지만, 이 나의 칼 한 자루는 몹시 투박하여 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네 늙은 원숭이가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곧 신선이시니, 속세의 병기로는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다만 대왕께서 물속으로도 가실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오공이 말했다. “나는 도를 깨달은 뒤로 칠십이 가지 지살 변화의 공을 얻었고, 근두운에는 지극히 큰 신통력이 있으며, 몸을 숨기고 모습을 감추는 데 능하고 법을 일으키고 법을 거두는 데 능하다. 하늘에 오르는 데 길이 있고 땅에 들어가는 데 문이 있으며, 해와 달을 밟아도 그림자가 없고 쇠와 돌을 지나도 거리낌이 없으며, 물에 빠져도 빠지지 않고 불에 타도 타지 않는다. 어느 곳인들 가지 못하겠느냐?” 네 원숭이가 말했다. “대왕께서 이미 이러한 신통력을 지니셨사온데, 우리 이 철판교 아래의 물이 동해 용궁으로 통하옵니다. 대왕께서 기꺼이 내려가시어 늙은 용왕을 찾아 무슨 병기든 하나 청하신다면 어찌 마음에 들지 않겠나이까?” 오공이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내 다녀오리라.”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그는 다리 머리로 뛰어올라 폐수법을 부리고 결을 맺은 뒤, 철썩 하고 물결 속으로 뛰어들어 물길을 갈라 지나 곧장 동쪽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 바로 나아가고 있을 때 홀연히 순해하는 야차 하나가 나타나 길을 막고 물었다. “저 물을 밀며 오는 자여, 너는 무슨 신성인가? 분명히 말하라, 통보하고 맞이하게 하겠다.” 오공이 말했다. “나는 화과산에서 하늘로부터 난 성인 손오공이다. 너희 늙은 용왕의 가까운 이웃인데 어찌 알아보지 못하느냐?” 그 야차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수정궁으로 돌아가 전하여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바깥에 화과산에서 하늘로부터 난 성인 손오공이라는 자가 있어 스스로 대왕의 가까운 이웃이라 일컫고 곧 궁에 이를 것이옵니다.” 동해용왕 오광이 곧 급히 일어나 용자와 용손, 새우 병사와 게 장수들을 거느리고 궁을 나와 맞이하며 말했다. “상선께서는 들어오소서, 들어오소서.” 마침내 궁 안에 이르러 서로 보고 윗자리에 앉아 차를 올린 뒤 물었다. “상선께서는 언제 도를 얻으시고 무슨 선술을 받으셨나이까?” 오공이 말했다. “나는 이 몸을 낳은 뒤로 출가하여 수행하여 불생불멸의 몸을 얻었다. 근래에 자손을 가르쳐 조련하고 산과 동굴을 지키는데 병기 한 가지가 없어 어찌할 수 없었는데, 오래전부터 어진 이웃이 요지의 궁궐에서 즐거움을 누린다 함을 들었으니 반드시 남는 신기한 병기가 있을 것이므로, 특별히 와서 하나를 청하는 것이다.” 용왕은 이 말을 듣고 물리치기 어려워 곧 궐도사에게 명하여 큰 칼 한 자루를 내어 바치게 하였다. 오공이 말했다. “나 늙은 손은 칼을 쓰지 못하니 청하건대 다른 것을 하나 내려주소서.” 용왕은 또 파대위에게 명하여 선 역사를 거느리고 아홉 갈래 창 하나를 메고 나오게 하였다. 오공이 뛰어내려 손에 받아 한 차례 휘둘러 보고는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볍다! 가볍다! 가볍다! 또 손에 맞지 않으니 다시 하나 내려주소서.” 용왕이 웃으며 말했다. “상선께서는 살펴보지 않으시는군요. 이 창은 무게가 삼천육백 근이나 되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손에 맞지 않는다! 손에 맞지 않는다!” 용왕은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 또 변제독과 리총병에게 명하여 화간방천극 한 자루를 메고 나오게 하였으니, 그 극의 무게는 칠천이백 근이었다. 오공이 그것을 보고 앞으로 달려가 손에 받아 몇 가지 자세를 취하고 두어 가지 초식을 풀어 본 뒤 가운데에 꽂으며 말했다. “역시 가볍다! 가볍다! 가볍다!” 늙은 용왕이 더욱 두려워하여 말했다. “상선이시여, 우리 궁중에는 이 극 하나만이 무거울 뿐, 다시는 아무런 병기가 없사옵니다.” 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시름겨운 바다의 용왕에게는 보물이 없다’ 하였다. 그대 다시 가서 찾아보라.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하나하나 값을 치르겠다.” 용왕이 말했다. “정말로 다시는 없사옵니다.” 바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뒤에서 용할머니와 용딸이 번득 나서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 성인을 보건대 결코 보통이 아니옵니다. 우리 이 바다 창고 가운데에 있는 저 한 조각 하늘 강 밑바닥을 정하던 신진한 쇠가 요 며칠 사이 서광이 찬란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자욱하니, 아마도 마땅히 나타날 때가 되어 이 성인을 만난 것이 아니겠나이까?” 용왕이 말했다. “그것은 큰 우임금이 물을 다스리던 때에 강과 바다의 깊고 얕음을 정하던 정자로, 한 조각 신쇠일 뿐이니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용할머니가 말했다. “쓸모가 있고 없고는 상관하지 마시고, 우선 그에게 주어 어떻게 고치든 마음대로 하게 하시고 궁문 밖으로 내보내면 그만이옵니다.” 늙은 용왕은 그 말대로 오공에게 모두 다 일렀다. 오공이 말했다. “내어다 보게 하라.” 용왕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메어낼 수도 없고 들어 올릴 수도 없사오니 상선께서 친히 가서 보셔야 하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어디에 있느냐? 나를 인도하라.” 용왕이 과연 인도하여 바다 창고 가운데에 이르렀는데, 홀연히 황금빛이 만 갈래로 뻗치고 있었다. 용왕이 가리키며 말했다. “저 빛을 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옵니다.” 오공이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앞에 나아가 한 번 더듬어 보니, 이는 쇠기둥 하나로 대략 말 한 말통만큼 굵고 두 길 남짓 길었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 두 손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너무 굵고 너무 길구나! 조금 더 짧고 가늘어야 쓸 수 있겠다.” 말을 마치자 그 보배는 몇 자나 짧아지고 한 아름이나 가늘어졌다. 오공이 또 한 번 들어 보고 말했다. “더 가늘면 더 좋겠다!” 그 보배는 정말로 또 몇 푼이나 가늘어졌다. 오공이 몹시 기뻐하며 바다 창고에서 꺼내어 살펴보니, 원래 양쪽 끝에 두 개의 금테가 있고 가운데는 한 토막 검은 쇠였으며, 테에 바짝 붙어 한 줄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름하여 ‘여의금고봉’이라 하고 무게는 만 삼천오백 근이었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기뻐하며 생각하였다. “틀림없이 이 보배는 사람 뜻을 따르는구나!” 걸으면서도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외며 손으로 저울질하며 말했다. “더 짧고 가늘면 더 묘하겠다!” 밖으로 꺼내니 길이가 겨우 두 길이고 굵기가 사발 아가리만 하였다. 그가 신통력을 부리는 것을 보라, 초식을 풀어 놓고 수정궁 안을 빙빙 돌며 휘두르니, 늙은 용왕은 간이 떨리고 넋이 날아갈 듯하였고, 작은 용자들은 혼이 흩어지고 넋이 달아났으며, 거북과 자라와 큰자라와 악어는 모두 목을 움츠리고 물고기와 새우와 큰거북과 게는 다 머리를 감추었다. 오공이 보배를 손에 쥐고 수정궁 전각 위에 앉아 용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진 이웃의 두터운 정에 감사하네.” 용왕이 말했다. “감히 그럴 수 없사옵니다, 감히 그럴 수 없사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이 쇠는 비록 쓰기 좋지만 아직 한 가지 할 말이 있네.” 용왕이 말했다. “상선께 무슨 하실 말씀이 더 있으시옵니까?” 오공이 말했다. “그때 이 쇠가 없었다면 그만이었겠지만, 지금 손에 이미 이것을 쥐고 있으니 몸에 걸칠 옷이 어울리지 않아 어찌할 수 없구나. 그대 이곳에 만약 갑주가 있거든 아예 한 벌 내게 주게. 한꺼번에 사례하겠네.” 용왕이 말했다. “이것은 정말로 없사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한 손님은 두 주인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다’ 하였네. 만약 없다면 나도 결코 이 문을 나가지 않겠네.” 용왕이 말했다. “번거롭지만 상선께서 다시 다른 바다로 가시면 혹 있을지도 모르옵니다.” 오공이 또 말했다. “‘세 집을 다니는 것보다 한 집에 앉는 것이 낫다’ 하였네. 천만번 청하니 한 벌만 주게.” 용왕이 말했다. “정말로 없사옵니다. 만약 있다면 마땅히 받들어 올리겠나이다.” 오공이 말했다. “정말로 없다면 그대와 이 쇠를 한번 시험해 보겠네!” 용왕이 당황하여 말했다. “상선이시여, 부디 손을 대지 마소서! 부디 손을 대지 마소서! 제 아우 되는 이에게 있는지 좀 보아 있으면 한 벌 보내 드리겠나이다.” 오공이 말했다. “아우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용왕이 말했다. “제 아우는 남해용왕 오흠, 북해용왕 오순, 서해용왕 오윤이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나 늙은 손은 가지 않겠네! 가지 않겠네! 속담에 이르기를 ‘외상으로 석 냥을 받는 것보다 당장 두 냥을 받는 것이 낫다’ 하였으니, 그대가 높든 낮든 적당히 한 벌 보내 주기만 바라겠네.” 늙은 용이 말했다. “상선께서 가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우리 이곳에 쇠북 하나와 금종 하나가 있어 무슨 긴급한 일이 있으면 북을 쳐 소리를 내고 종을 쳐 울리면 아우들이 즉시 이르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가서 북을 치고 종을 울려라!” 정말로 그 타장이 가서 종을 치고 별수가 와서 북을 쳤다. 얼마 뒤 종소리와 북소리가 울리자 과연 그 세 바다의 용왕이 놀라 깨어나 잠시 만에 이르렀고, 한꺼번에 바깥에서 만났다. 오흠이 말했다. “형님, 무슨 긴한 일이 있어 북을 치고 종을 울리셨나이까?” 늙은 용이 말했다. “아우여! 말하기 어렵구나! 화과산이라는 곳에 어떤 하늘로부터 난 성인이라는 자가 있어 아침에 와서 나를 이웃이라 부르더니, 뒤에 와서는 병기 한 가지를 청하였네. 강철 창을 바치니 작다 하고 화극을 바치니 가볍다 하였지. 하늘 강 밑바닥을 정하던 신진한 쇠 한 조각을 스스로 꺼내어 몇 가지 초식을 풀어 보이더니, 지금 궁 안에 앉아 또 무슨 갑주를 달라 하네. 내게는 없기에 종을 울리고 북을 쳐 아우들을 부른 것이네. 너희에게 무슨 갑주가 있거든 한 벌 보내어 그를 문 밖으로 내보내고 말자.” 오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우리 형제가 군사를 일으켜 그를 잡아야겠구나!” 늙은 용이 말했다. “잡는 소리는 말게! 그 쇠는 조금만 스쳐도 죽고 조금만 부딪혀도 죽으며, 살짝 닿아도 살갗이 찢어지고 조금만 스쳐도 힘줄이 끊어진다네!” 서해용왕 오윤이 말했다. “둘째 형님은 그와 손을 대지 마소서. 우선 갑주 한 벌을 마련해 주어 그를 문 밖으로 내보내고, 표문을 갖추어 하늘에 아뢰면 하늘이 스스로 그를 벌하오리다.” 북해용왕 오순이 말했다. “말이 옳소. 우리 이곳에 연실 보운리 한 켤레가 있소.” 서해용왕 오윤이 말했다. “나는 쇄자 황금갑 한 벌을 가져왔소.” 남해용왕 오흠이 말했다. “나에게는 봉시 자금관 하나가 있소.” 늙은 용이 크게 기뻐하며 그들을 수정궁으로 인도하여 서로 보고 이에 받들어 올렸다. 오공은 금관과 금갑과 운리를 그렇게 차려입고 여의봉을 휘두르며 한길로 쳐 나가며 뭇 용에게 말했다. “시끄러웠네! 시끄러웠네!” 사해의 용왕들은 몹시 불평하며 한편으로는 표문을 올려 아뢸 일을 의논하였으나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 원숭이 왕을 보라. 그는 물길을 갈라 지나 곧장 철판교 머리로 돌아와 뛰어올랐는데, 네 마리 늙은 원숭이가 뭇 원숭이를 거느리고 모두 다리 곁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홀연히 오공이 물결 밖으로 뛰어나오는 것을 보니, 몸에는 물기 한 점도 없이 금빛으로 찬란하여 다리 위로 걸어 올라왔다. 뭇 원숭이들은 놀라 한꺼번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왕이시여, 참으로 화려하시옵니다! 참으로 화려하시옵니다!” 오공은 얼굴에 봄바람이 가득하여 높이 보좌에 올라 쇠몽둥이를 가운데에 세웠다. 그 원숭이들은 좋고 나쁨을 알지 못하고 모두 와서 그 보배를 잡아 보았으나, 마치 잠자리가 쇠나무를 흔드는 것 같아 털끝만큼도 흔들지 못하였다. 저마다 손가락을 물고 혀를 내밀며 말했다. “할아버지시여! 이렇게 무거운 것을 어찌 가져오셨나이까!” 오공이 앞으로 나아가 손을 펴 한 번에 움켜 올리고 뭇 원숭이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물건에는 저마다 주인이 있는 법이다. 이 보배는 바다 창고에 진압되어 있은 지 어찌 수천 년인지 알 수 없는데, 마침 올해에 빛을 발하였다. 용왕은 다만 검은 쇠 한 조각으로 여기고는 하늘 강 밑바닥을 진압하는 신진한 보배라 불렀다. 그놈들은 모두 메어 올리지도 못하여 나더러 친히 가서 가져오라 하였다. 그때 이 보배는 길이가 두 길 남짓하고 굵기가 말통만 하였는데, 내가 한 번 움켜쥐며 크다고 여기자 곧 훨씬 작아졌고, 다시 작게 하라 하자 또 훨씬 작아졌으며, 다시 작게 하라 하자 또 훨씬 작아졌다. 급히 하늘빛에 비추어 보니 위에 한 줄의 글자가 있으니 바로 ‘여의금고봉, 일만 삼천오백 근’이었다. 너희는 모두 물러서라, 내가 다시 한 번 변하게 하는 것을 보아라.” 그가 그 보배를 손안에서 저울질하며 외쳤다. “작아져라! 작아져라! 작아져라!” 그러자 즉시 작아져 수놓은 바늘과 같아져 귀 안에 넣어 감출 수 있었다. 뭇 원숭이들이 놀라 소리쳤다. “대왕이시여! 다시 꺼내어 놀아 보소서!” 원숭이 왕이 정말로 귀에서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외쳤다. “커져라! 커져라! 커져라!” 그러자 즉시 다시 말통만큼 굵어지고 두 길 길이가 되었다. 그가 기뻐하는 지경에 이르러 다리 위로 뛰어올라 동굴 밖으로 나가, 보배를 손에 움켜쥐고 법천상지의 신통력을 부려 허리를 한 번 굽히며 소리쳤다. “길어져라!” 그러자 그는 높이가 만 길이나 자랐으니, 머리는 태산 같고 허리는 높은 산 같으며 눈은 번개 같고 입은 피 사발 같으며 이빨은 검과 창 같았다. 손에 든 그 몽둥이는 위로 삼십삼천에 닿고 아래로 십팔층 지옥에 이르렀으며, 범과 표범과 이리와 뭇 짐승과 온 산의 뭇 괴물과 일흔두 동굴의 요괴 왕들을 모두 놀라게 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예배하며 부들부들 떨며 넋이 흩어지고 혼이 날아갔다. 잠깐 사이에 법상을 거두고 보배를 다시 수놓은 바늘처럼 변하게 하여 귀 안에 감추고 다시 동굴로 돌아갔다. 각 동굴의 요괴 왕들은 당황하여 모두 와서 참배하고 하례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크게 깃발을 펼치고 북을 울리며 구리 징을 크게 울렸다. 진귀한 온갖 맛있는 음식을 널리 차리고 야자 즙과 포도주를 가득 따라 뭇 원숭이와 한참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 그러고는 또 이전처럼 가르쳐 조련하였다. 원숭이 왕은 그 네 마리 늙은 원숭이를 건장한 장수로 봉하고, 두 마리 적구마후를 마원수와 유원수라 부르고, 두 마리 통배원후를 붕장군과 파장군이라 불렀다. 진을 치고 막사를 세우는 일과 상과 벌을 주는 모든 일을 모두 네 건장한 장수에게 맡겨 유지하게 하였다. 그는 마음을 놓고 날마다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몰며 사해를 유유히 돌아다니고 천 산에서 즐기었다. 무예를 베풀며 영웅을 두루 찾아보고 신통력을 부리며 어진 벗을 널리 사귀었다. 이때에 또 일곱 형제를 맺었으니, 바로 우마왕, 교마왕, 붕마왕, 사타왕, 미후왕, 우융왕이며, 자기 미후왕까지 일곱이었다. 날마다 글을 논하고 무예를 이야기하며 술잔을 돌리고 노래하고 춤추며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니 즐겁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는 그 만 리의 먼 길을 다만 안방 길처럼 여겼으니, 이른바 머리를 끄덕이면 곧장 삼천 리를 지나고 허리를 비틀면 팔백여 리의 길이라 하였다. 하루는 본 동굴에서 네 건장한 장수에게 분부하여 잔치를 베풀어 여섯 왕을 청하여 술을 마시게 하고, 소를 잡고 말을 도살하여 하늘에 제사하고 땅에 제를 올렸으며, 뭇 괴물들에게 춤추고 노래하게 하니 모두가 몹시 취하도록 마셨다. 여섯 왕을 배웅한 뒤 또 크고 작은 두목들에게 상을 내리고 위로하였고, 철판교 곁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깐 사이에 잠이 들었다. 네 건장한 장수는 뭇 원숭이를 거느리고 둘러싸 지키며 감히 큰 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다만 그 미후왕이 잠든 사이에 두 사람이 문서 한 장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위에 ‘손오공’ 석 자가 있었다. 그들이 몸 가까이 다가와 말릴 틈도 주지 않고 줄을 씌워 미후왕의 넋을 잡아끌어 갔으며, 비틀거리며 곧장 한 성의 성 밖에 이르렀다. 원숭이 왕은 점차 술이 깨는 것을 느꼈고, 홀연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성 위에 쇠패 하나가 있고 패 위에 세 큰 글자가 있으니 바로 ‘유명계’였다. 미후왕은 문득 깨달아 말했다. “유명계는 바로 염라대왕이 사는 곳인데 어찌하여 이곳에 왔는가?” 그 두 사람이 말했다. “그대는 이제 양의 수명이 다하여 마땅히 죽어야 하므로 우리 두 사람이 문서를 받들고 그대를 잡아 온 것이오.” 원숭이 왕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나 늙은 손은 삼계 밖을 벗어났고 오행 가운데에 있지 않아 이미 그들의 관할에 복종하지 않는데, 어찌 어리석게도 또 감히 와서 나를 잡아가려 하는가?” 그 두 사람은 저승 사자였는데, 그저 잡아당기고 끌어대며 기어이 그를 끌고 들어가려 하였다. 그 원숭이 왕은 성미가 나서 귀에서 보배를 뽑아내어 한 번 흔드니 사발만큼 굵어졌고, 손을 조금 들어 그 두 저승 사자를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스스로 그 줄을 풀고 손을 놓아 몽둥이를 둘러메고 성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 소에 놀란 소머리 귀신은 동쪽으로 숨고 서쪽으로 감추며, 말머리 귀신은 남쪽으로 달리고 북쪽으로 뛰었고, 뭇 귀졸들은 삼라전으로 달려 올라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일났사옵니다! 큰일났사옵니다! 바깥에 털 난 얼굴의 뇌공 하나가 쳐들어오고 있사옵니다!” 그 열 대의 명왕들은 당황하여 급히 옷을 갖추고 나와 보니, 그 생김새가 흉악하므로 곧 반열을 늘어서고 소리 높여 외쳤다. “상선께서는 이름을 남기소서! 상선께서는 이름을 남기소서!” 원숭이 왕이 말했다. “그대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사람을 보내 나를 잡아가려 하였느냐?” 열 왕이 말했다. “감히 그럴 수 없사옵니다! 감히 그럴 수 없사옵니다! 아마도 사람을 보낸 것이 잘못되었나이다.” 원숭이 왕이 말했다. “나는 본래 화과산 수렴동에서 하늘로부터 난 성인 손오공이다. 너희는 무슨 관직에 있는 자들인가?” 열 왕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저희는 음간의 천자 열 대 명왕이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어서 이름을 대라, 매를 면하게 하겠다!” 열 왕이 말했다. “저희는 진광왕, 초강왕, 송제왕, 오관왕, 염라왕, 평등왕, 태산왕, 도시왕, 변성왕, 전륜왕이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너희가 이미 왕위에 올랐다면 곧 영험하고 감응하는 무리일진대 어찌 좋고 나쁨을 알지 못하느냐? 나 늙은 손은 신선을 닦아 도를 이루어 하늘과 수명이 가지런하고 삼계 밖으로 초월하여 올라갔으며 오행 가운데에서 뛰어나왔는데, 어찌하여 사람을 시켜 나를 잡아가게 하였느냐?” 열 왕이 말했다. “상선께서는 노를 푸소서. 온 천하에 이름이 같고 성이 같은 자가 많으니, 아마도 그 저승 사자가 잘못 다닌 것이 아니옵니까?” 오공이 말했다. “헛소리 마라! 헛소리 마라! 옛말에 이르기를 ‘관리 잘못은 있어도 사람 잘못은 없다’ 하였다. 어서 생사부를 가져다 내게 보이라!” 열 왕이 이 말을 듣고 곧 전각에 올라 살펴보게 하였다. 오공은 여의봉을 쥐고 곧장 삼라전 위로 올라가 한가운데 남쪽을 향해 앉았다. 열 왕은 곧 문서를 맡은 판관에게 명하여 문서를 내어 살피게 하였다. 그 판관은 감히 게을리하지 못하고 곧 사방으로 가서 대여섯 권의 문서와 열 종류의 장부를 받들어 내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나충, 모충, 우충, 곤충, 인개 따위에는 모두 그 이름이 없었다. 또 원숭이 무리에 이르러 보니, 원래 이 원숭이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여 사람 이름에 들지 않고, 나충과 비슷하여 나라 경계에 있지 않으며, 짐승과 비슷하여 기린의 관할에 복종하지 않고, 나는 새와 비슷하여 봉황의 통제를 받지 않으므로 따로 장부 하나가 있었다. 오공이 친히 펼쳐 보니, 혼 자 천삼백오십 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손오공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하늘로부터 난 석후로서 마땅히 수명이 삼백사십이 세이며 잘 죽는다고 하였다. 오공이 말했다. “나는 수명이 얼마인지 기억하지 않겠으니 다만 이름을 지워 버리면 그만이다! 붓을 가져오라!” 그 판관이 당황하여 붓을 받들고 먹을 흠뻑 묻혔다. 오공이 장부를 받아 원숭이 무리 가운데 이름이 있는 것은 모조리 다 지워 버렸다. 장부를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셈이 끝났다! 셈이 끝났다! 이제는 너희 관할에 복종하지 않겠다!” 한길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유명계를 쳐 나갔다. 그 열 왕은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모두 취운궁으로 가서 지장왕보살께 함께 절하고 표문을 올려 하늘에 아뢸 일을 상의하였으니,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이 원숭이 왕이 성 안을 쳐 나오다가 홀연히 풀 매듭에 걸려 넘어져 비틀거리다가 갑자기 깨어나니, 바로 남가일몽이었다. 이제야 기지개를 켜려 하는데 네 건장한 장수와 뭇 원숭이들이 소리 높여 부르는 것이 들렸다. “대왕이시여, 술을 얼마나 마셨기에 이 밤을 내내 자고도 아직 깨어나지 않으시나이까?” 오공이 말했다. “자는 것은 그만두고, 내 꿈에 두 사람이 와서 나를 잡아 유명계 성문 밖까지 데려갔기에 그제야 깨어나 신통력을 부려 곧장 삼라전까지 고함치며 가서 그 열 왕과 다투고 우리의 생사부를 보았는데, 우리 무리 가운데 이름이 있는 것은 모두 내가 지워 버렸으니, 이제는 그놈들의 관할에 복종하지 않겠다.” 뭇 원숭이들은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치하하였다. 이로부터 산의 원숭이들은 모두 늙지 않게 되었으니, 저승에 이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미후왕이 앞의 일을 다 말하자 네 건장한 장수가 각 동굴의 요괴 왕들에게 알렸고, 모두 와서 하례하였다. 며칠 되지 않아 여섯 의형제가 또 와서 절하고 하례하였으며, 이름을 지운 까닭을 듣고는 또 저마다 기뻐하여 날마다 모여 즐겼으니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이제 그 높은 하늘의 성인이며 큰 자비를 베푸는 어진 이인 옥황대천존 현궁고상제를 아뢰자면, 하루는 금궐운궁 영소보전에 어좌를 펴고 앉아 문무 신선들을 모아 조회를 열었는데, 홀연히 구홍제 진인이 아뢰었다. “만세, 통명전 밖에 동해용왕 오광이 표문을 올렸사오니 천존의 조칙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옥황이 조서를 내렸다. “불러들이라.” 오광이 영소전 아래로 불려 이르러 예배를 마치자, 곁에 있던 인도하여 아뢰는 선동이 표문을 받들어 올렸다. 옥황이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표문에 이르기를, “물의 근원인 하계 동승신주 동해의 작은 용인 신 오광이 삼가 대천성주 현궁고상제군께 아룁니다. 근래 화과산에서 나고 수렴동에 사는 요선 손오공이라는 자가 있어, 저를 업신여겨 수궁에 억지로 앉고 병기를 달라며 법을 베풀고 위세를 부렸으며, 갑주를 요구하며 흉악함을 부리고 기세를 펼쳤사옵니다. 물의 무리를 놀라게 하고 상하게 하였으며 거북과 악어를 놀라 달아나게 하였사옵니다. 남해의 용은 부들부들 떨었고, 서해의 용은 처량하고 참혹하였으며, 북해의 용은 머리를 움츠리고 항복하였사옵니다. 신 오광은 몸을 펴고 엎드려 절하며 신진한 쇠몽둥이와 봉시의 금관과 그 쇄자갑과 보운리를 바치고 예를 갖추어 내보냈사오나, 그는 여전히 무예를 부리고 신통력을 나타내며 다만 ‘시끄럽다! 시끄럽다!’ 할 뿐이었사옵니다. 과연 적수가 없어 제어하기 매우 어렵사오니, 신이 이제 아뢰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재결하소서. 간절히 천병을 청하오니 이 요괴를 거두어, 바다와 산이 맑고 편안하며 물의 근원인 수부가 태평하게 하소서. 삼가 아룁니다.” 성제께서 다 보시고 조서를 내렸다. “용신은 바다로 돌아가게 하라, 짐이 곧 장수를 보내어 잡아오리라.” 늙은 용왕은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물러갔다. 그 아래에서 또 갈선옹 천사가 아뢰었다. “만세, 명부의 진광왕이 유명교주 지장왕보살의 표문을 받들고 올렸사옵니다.” 곁에 있던 전언옥녀가 표문을 받들어 올리니, 옥황이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표문에 이르기를, “유명의 경계는 바로 땅의 음관이옵니다. 하늘에는 신이 있고 땅에는 귀신이 있어 음과 양이 바퀴를 돌리고, 새에는 삶이 있고 짐승에는 죽음이 있어 암수가 되풀이되옵니다. 낳고 낳으며 변화하고 변화하여 여자를 잉태하고 남자를 이루니, 이는 자연의 이치라 바꿀 수 없는 것이옵니다. 이제 화과산 수렴동에서 하늘로부터 난 요원 손오공이 있어 제멋대로 흉악함을 부리고 잡으러 부름에 복종하지 않으며, 신통력을 부려 구유의 귀신 사자를 때려 없애고, 세력을 믿고 열 대의 자비로운 왕을 놀라게 하고 상하게 하였사옵니다. 삼라를 크게 어지럽히고 억지로 이름과 호를 지웠사오니, 이로 인해 원숭이 무리에는 단속이 없고 원숭이 짐승은 수명이 길어지며 적멸하여 윤회하지 않아 저마다 생사가 없게 되었사옵니다. 빈승이 표문을 갖추어 천위를 더럽히오니, 엎드려 청하건대 신병을 보내어 이 요괴를 거두어 항복시키고 음양을 정리하여 지부를 길이 편안하게 하소서. 삼가 아룁니다.” 옥황이 다 보시고 조서를 내렸다. “명부의 임금은 지부로 돌아가게 하라, 짐이 곧 장수를 보내어 잡아오리라.” 진광왕도 또한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물러갔다. 대천존이 뭇 문무 신선을 불러 물었다. “이 요원은 몇 년에 생겨나 어느 대에 태어났기에 이처럼 도가 있는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열에서 천리안과 순풍이가 번득 나서서 말했다. “이 원숭이는 삼백 년 전에 하늘로부터 난 석후이옵니다. 그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사오나, 이 몇 년 사이 어느 곳에서 수련하여 신선이 되어 용을 항복시키고 범을 굴복시키며 억지로 사부의 이름을 지운 줄을 알지 못하옵니다.” 옥제가 말했다. “어느 길의 신장을 보내어 하계로 내려가 거두어 항복시키겠느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열에서 태백장경성이 번득 나서서 머리를 숙여 아뢰었다. “상성께서는 삼계 가운데 구규를 지닌 자라면 모두 신선을 닦을 수 있사옵니다. 다만 이 원숭이는 하늘과 땅이 길러 이룬 몸이며 해와 달이 잉태한 몸으로, 그도 또한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이슬을 마시고 노을을 먹었사오니, 이제 이미 선도를 닦아 이루어 용을 항복시키고 범을 굴복시키는 능력이 있다면 사람과 무슨 다름이 있겠나이까? 신이 폐하께 아룁니다. 교화하고 살려내신 자비로운 은혜를 생각하시어 한 통의 초안 성지를 내리시어, 그를 상계로 불러 올려 크고 작은 관직 하나를 내리시고 그 이름을 명부에 올리시어 이곳에 묶어 두시면, 천명을 받든다면 뒤에 다시 승진시키고 상을 주시고, 천명을 어긴다면 이에 잡아오시면 되옵니다. 하나는 뭇 무리를 움직여 군사를 수고롭게 하지 않는 것이요, 둘은 신선을 거두는 데 도가 있는 것이옵니다.” 옥제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경의 아뢴 대로 하라.” 곧 문곡성관에게 조서를 닦게 하고 태백금성으로 하여금 초안하게 하였다. 금성이 조서를 받들고 남천문 밖으로 나가 상서로운 구름을 낮추어 곧장 화과산 수렴동에 이르렀다. 뭇 작은 원숭이들에게 말했다. “나는 하늘이 보낸 천사로서 여기에 성지가 있으니 너희 대왕을 상계로 청하러 왔다. 어서 알려라!” 동굴 밖의 작은 원숭이가 한 겹 한 겹 동굴 깊은 곳까지 전하여 말했다. “대왕이시여, 바깥에 한 노인이 있어 문서 한 뭉치를 등에 지고 있사온데, 하늘에서 보낸 천사라 자칭하며 성지로 대왕을 청하옵니다.” 미후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내 이 며칠 사이 마침 하늘에 올라 한번 둘러볼까 생각하던 차에 마침 천사가 와서 청하는구나.” 부르짖었다. “어서 모셔 들이라!” 원숭이 왕은 급히 의관을 갖추고 문 밖에서 맞이하였다. 금성은 곧장 가운데로 들어가 남쪽을 향해 서서 말했다. “나는 서방의 태백금성으로, 옥제의 초안 성지를 받들고 하계에 내려와 그대를 청하여 하늘에 올라 선록을 받들게 하는 것이다.” 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노성께서 강림하심에 감사하오.” 그리고 명하였다. “작은 것들아! 잔치를 베풀어 잘 대접하라.” 금성이 말했다. “성지가 몸에 있으니 감히 오래 머물 수 없겠소. 대왕과 함께 가시지요. 영화롭게 옮기신 뒤에 다시 천천히 이야기하시지요.” 오공이 말했다. “왕림하여 주셨는데 헛되이 보내오! 헛되이 보내오!” 곧 네 건장한 장수를 불러 분부하였다. “삼가 자손을 가르쳐 조련하라. 내가 하늘에 올라 길을 좀 살펴보고 마땅히 너희를 데리고 올라가 함께 살겠다.” 네 건장한 장수가 명을 받들었다. 이 원숭이 왕이 금성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올라 허공 위로 솟으니, 바로 이러하였다. 높이 뛰어올라 상품 천선의 자리에 오르고, 이름이 구름 반열의 보록 가운데에 드네. 결국 무슨 관작을 내릴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회 관봉필마심하족(官封弼馬心何足) · 명주제천의미녕(名註齊天意未寧) 그 태백금성과 미후왕은 함께 동천 깊은 곳에서 나와 나란히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원래 오공의 근두운은 남들과 달라서 몹시 빨랐으므로, 그는 금성을 뒤로 멀찌감치 따돌려 놓고 먼저 남천문 밖에 이르렀다. 구름을 거두고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증장천왕이 방, 유, 구, 필, 등, 신, 장, 도 여덟 장수를 거느리고 한길의 대력천정들을 이끌고 창과 칼과 검과 극을 들고 하늘 문을 막아서며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원숭이 왕이 말했다. “이 금성 영감은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로구나! 이미 늙은 손을 청해 놓고는 어찌 사람들에게 칼과 창을 들려 길을 막게 하는가?” 그가 떠들고 있는 사이에 금성이 홀연히 도착하였다. 오공은 그와 얼굴을 맞대자 곧바로 독기를 내며 말했다. “이 영감은 어찌하여 나를 속이는가? 옥황상제의 초안 조서를 받들어 청하러 왔다고 하더니, 어찌 이 무리들에게 천문을 막게 하여 늙은 손을 들여보내지 않는가?” 금성이 웃으며 말했다. “대왕은 노여움을 거두소. 대왕은 일찍이 이 천당에 온 적이 없고 또 이름도 없으며, 뭇 천정들도 대왕과는 본래 서로 알지 못하니, 그들이 어찌 감히 대왕을 함부로 들여보내겠소? 이제 천존을 뵙고 선록을 받고 관명을 기록한 뒤에는 앞으로 대왕이 나고 드는 것을 누가 다시 막겠소?” 오공이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좋다, 나는 들어가지 않겠다.” 금성이 다시 손으로 그의 옷을 붙들며 말했다. “나와 함께 들어가야 하오.” 천문에 가까이 이르자 금성이 높은 소리로 외쳤다. “저 천문의 천장들과 크고 작은 아전과 병졸들은 길을 열라. 이는 하계의 선인이니, 내가 옥황상제의 성지를 받들어 그를 불러 온 것이다.” 그제야 증장천왕과 뭇 천정들이 모두 병기를 거두고 물러나 피하였다. 원숭이 왕은 비로소 그의 말을 믿었다. 그는 금성과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가 두루 살펴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처음 상계에 올라 천당에 막 들어섰다. 황금빛 광채 만 갈래가 붉은 무지개를 굴리고, 상서로운 기운 천 줄기가 자줏빛 안개를 뿜어냈다. 바라보니 그 남천문은 푸르고 깊숙하여 유리로 지어졌고, 환하게 빛나며 보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양쪽에는 수십 명의 진천원수가 늘어서 있어 하나같이 대들보를 받치고 기둥에 기대어 도끼를 쥐고 깃발을 들었고, 사방 아래로는 십수 명의 금갑 신인들이 벌여 서서 저마다 극을 들고 채찍을 걸고 칼을 잡고 검을 짚고 있었다. 바깥쪽은 그런대로 볼 만하였으나, 안으로 들어서자 놀라웠다. 안쪽 벽 가에는 큰 기둥 몇 개가 서 있는데, 기둥에는 금비늘이 해를 비추는 붉은 수염 용이 감겨 있었고, 또 긴 다리 몇 개가 있는데 그 다리 위에는 채색 깃털을 펼치고 허공을 나는 붉은 볏 봉황이 맴돌고 있었다. 밝은 노을이 환히 비쳐 하늘빛을 비추고, 푸른 안개가 자욱하여 북두의 입구를 가렸다. 이 하늘에는 서른세 채의 천궁이 있으니, 바로 견운궁, 비사궁, 오명궁, 태양궁, 화락궁 등이며, 궁마다 용마루에 금을 삼킨 진수 짐승이 앉아 있었고, 또 일흔두 겹의 보배 전각이 있으니, 바로 조회전, 능허전, 보광전, 천왕전, 영관전 등이며, 전각마다 기둥에 옥기린이 늘어서 있었다. 수성대 위에는 천 년 만 년 시들지 않는 이름난 꽃이 있었고, 약을 달이는 화로 곁에는 만 년토록 늘 푸른 상서로운 풀이 있었다. 또 조성루 앞에 이르니, 붉은 비단 옷에는 별빛이 찬란하고, 부용관에는 금과 옥이 휘황찬란하였다. 옥비녀와 구슬 신발에 자줏빛 인끈과 금 도장이었다. 금 종을 치면 삼조의 신들이 표문을 붉은 섬돌에 올리고, 하늘 북이 울리면 만 성인이 왕을 조회하여 옥황상제를 뵈었다. 또 그 영소보전에 이르니, 금 못이 옥 문을 모으고 채색 봉황이 붉은 문에서 춤추었다. 겹겹의 복도와 굽은 회랑은 곳곳이 정교하고 환하였고, 세 겹 처마와 사방으로 모인 지붕에는 층층이 용과 봉황이 날아올랐다. 그 위에는 자줏빛이 우뚝하고 환하게 빛나며 동그랗고 눈부시게 빛나는 큰 금 조롱박 지붕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천비들이 부채를 늘어뜨려 들고 옥녀들이 선녀의 수건을 받들고 있었다. 사나운 얼굴로 조회를 맡은 천장들이요, 기개가 드높은 호가의 선경들이었다. 한가운데 유리 쟁반 안에는 겹겹이 쌓인 태을단이 많이 놓여 있었고, 마노 병에는 굽이굽이 휜 산호나무 몇 가지가 꽂혀 있었다. 바로 하늘 궁궐에는 진기한 물건이 가지가지로 있고, 세상에는 그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금궐과 은난과 자부가 나란하고, 기화와 요초에 경파까지 있다. 왕을 조회하는 옥토끼가 단 곁을 지나고, 성인을 뵈는 금오가 바닥에 닿도록 날아든다. 원숭이 왕은 천경에 올 인연이 있어, 인간 세상의 한 점 진흙에도 떨어지지 않으리라. 태백금성은 미후왕을 이끌고 영소전 밖에 이르렀다. 조서를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어전에 나아가 위를 향해 절하고 예를 올렸다. 오공은 몸을 곧게 펴고 곁에 서서 조례도 하지 않은 채 다만 귀를 기울여 금성이 아뢰는 말을 들었다. 금성이 아뢰었다. “신이 성지를 받들어 이미 요선을 불러 왔나이다.” 옥황상제가 발을 드리우고 물었다. “어느 자가 요선인고?” 오공은 그제야 몸을 굽혀 대답하였다. “늙은 손이 바로 그자이오.” 뭇 선경들이 모두 크게 놀라 얼굴빛을 잃고 말했다. “이 들원숭이 같으니! 어찌 엎드려 절하고 뵙지도 않고 감히 이렇게 대답하여 ‘늙은 손이 바로 그자이오’ 하는가! 죽어 마땅하다! 죽어 마땅하다!” 옥황상제가 조서를 내렸다. “저 손오공은 하계의 요선으로, 처음 사람 몸을 얻어 조회의 예를 알지 못하니, 우선 그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라.” 뭇 선경들이 소리쳤다.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그제야 원숭이 왕이 위를 향해 큰 읍을 하고 소리 높여 예를 갖추었다. 옥황상제가 문선과 무선의 선경들을 불러, 어느 곳에 어떤 관직이 모자라는지 살펴 손오공을 그 자리에 제수하라 하였다. 곁에서 무곡성군이 몸을 돌려 나서서 아뢰었다. “천궁의 각 궁과 각 전, 각 방과 각처에 모두 관원이 모자람이 없사오니, 다만 어마감에 정당 관리 하나가 비어 있사옵니다.” 옥황상제가 조서를 내렸다. “그를 곧 ‘필마온’으로 제수하라.” 뭇 신하들이 은혜에 감사하다 소리치매, 그도 다만 위를 향해 큰 읍을 할 뿐이었다. 옥황상제는 또 목덕성관을 시켜 그를 어마감으로 보내 부임하게 하였다. 그때 원숭이 왕은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목덕성관과 함께 곧바로 부임지로 갔다. 일이 끝나자 목덕성관은 궁으로 돌아갔다. 그는 감 안에서 감승과 감부와 전부와 역사 등 크고 작은 관리들을 모아 이 감의 사무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는데, 다만 천마 천 필이 있을 뿐이었다. 그 말들은 바로 화류와 기기, 녹이와 섬리, 용매와 자연, 협익과 숙상, 결제와 은갈, 요뇨와 비황, 도도와 번우, 적토와 초광, 유휘와 미경, 등무와 승황, 추풍과 절지, 비번과 분소, 일표와 적전, 동작과 부운, 총롱과 호랄, 절진과 자린, 사극과 대완, 팔준과 구일, 천리와 절군이었다. 이 같은 준마들은 하나하나가 바람에 울부짖고 번개를 쫓으며 정신이 장쾌하였고, 안개를 밟고 구름에 올라 기운과 힘이 길렀다. 원숭이 왕은 문서를 펼쳐 보고 말의 수를 하나하나 점검하여 밝혀 두었다. 이 감의 전부는 말먹이와 꼴을 거두어 마련하는 일을 맡았고, 역사 관원은 말을 씻기고 꼴을 베고 물을 먹이고 먹이를 삶는 일을 맡았으며, 감승과 감부는 곁에서 도와 일을 독촉하였다. 필마온은 밤낮으로 자지 않고 말을 길러 주었다. 낮에 말을 놀리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밤에는 살피기를 더욱 부지런히 하여 말이 잠든 것이 있으면 쫓아 일으켜 풀을 먹이고, 달아난 것이 있으면 붙잡아 여물통에 매어 두었다. 그 천마들은 그를 보면 귀를 늘어뜨리고 발굽을 모았으며, 오히려 살이 찌고 기름져 통통하게 길러졌다. 어느덧 보름 남짓이 지났다. 하루는 한가한 틈을 타서 감의 관리들이 모두 술자리를 마련하였으니, 하나는 그를 맞이하는 것이요, 하나는 그를 축하하는 것이었다. 즐겁게 마시던 중에 원숭이 왕이 홀연히 잔을 멈추고 물었다. “내 이 ‘필마온’이란 것은 무슨 관함인가?” 뭇 사람들이 말했다. “관명이 바로 이것이옵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이 벼슬은 몇 품인가?” 뭇 사람들이 말했다. “품계가 없사옵니다.” 원숭이 왕이 말했다. “품이 없다면 크기가 지극한 모양이로구나.” 뭇 사람들이 말했다. “크지 않사옵니다, 크지 않사옵니다. 다만 ‘미입류’라 부를 뿐이옵니다.” 원숭이 왕이 말했다. “어찌하여 ‘미입류’라 부르는가?” 뭇 사람들이 말했다. “끝 등이옵니다. 이런 벼슬아치는 가장 낮고 가장 작아서, 다만 남의 말을 돌보게 할 뿐이옵니다. 당존께서 부임하신 뒤 이렇게 부지런히 하여 말을 살찌게 기르셔도 다만 ‘잘한다’는 말 한마디를 들을 뿐이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여위면 또한 꾸지람을 보게 되옵니다. 다시 몹시 상하게 하면 벌금을 물리고 죄를 묻기까지 하옵니다.” 원숭이 왕은 이 말을 듣고 어느새 마음속에서 불이 일어나 이를 갈며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렇게 늙은 손을 업신여기는가! 늙은 손은 저 화과산에서 왕이라 일컫고 조상이라 일컬었는데, 어찌 나를 속여 와서 그를 위해 말을 기르게 하는가? 말을 기르는 일이란 젊은 후배나 하는 천한 역일이니, 어찌 나를 대접하는 도리이겠는가? 하지 않겠다! 하지 않겠다! 나는 가겠다!” 그가 홀라당 소리를 내며 공안을 밀어 넘어뜨리고, 귀 속에서 보배를 꺼내어 한 번 흔드니 사발만큼 굵어졌다. 그는 온갖 초식을 펼치며 곧장 어마감을 때려 부수고 나가 남천문에 이르렀다. 뭇 천정들은 그가 선록을 받아 필마온이 되었음을 알고 있어 감히 막지 못하고 그를 보내어 천문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잠시 후 구름머리를 누르고 내려와 화과산 위로 돌아왔다. 바라보니 네 건장한 장수와 각 동의 요왕들이 그곳에서 병졸을 조련하고 있었다. 원숭이 왕이 엄한 소리로 높이 외쳤다. “작은 것들아! 늙은 손이 왔다!” 원숭이 떼가 모두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그를 맞아 동천 깊은 곳으로 들어가, 원숭이 왕을 높이 보좌에 오르게 하고는 한쪽에서 술자리를 마련하여 맞이하며 모두 말했다. “대왕께 축하드리나이다. 상계에 십여 년 다녀오셨으니 필시 뜻을 이루어 영광스럽게 돌아오셨으리이다.” 원숭이 왕이 말했다. “나는 겨우 보름 남짓이었는데 어찌 십여 년이 있겠는가?” 뭇 원숭이들이 말했다. “대왕께서는 하늘에 계셔서 시각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시나이다. 하늘의 하루가 곧 하계의 일 년이옵니다. 청하옵건대 대왕께서는 무슨 관직에 계셨나이까?” 원숭이 왕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말하기 어렵다! 말하기 어렵다! 살아서 사람을 죽게 부끄럽게 하는구나! 저 옥황상제는 사람을 쓸 줄 모른다. 그가 늙은 손의 이 같은 모양을 보고는 나를 무슨 ‘필마온’이란 것으로 봉하였으니, 알고 보니 그를 위해 말을 기르는 것이요 미입류 품계 같은 것이었다.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에는 알지 못하고 다만 어마감 안에서 놀았을 뿐이다. 오늘 동료들에게 물어 보고서야 비로소 이처럼 천하다는 것을 알았다. 늙은 손은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잔칫상을 밀어 넘어뜨리고 관함을 받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내려온 것이다.” 뭇 원숭이들이 말했다. “잘 오셨나이다! 잘 오셨나이다! 대왕께서는 이 복된 땅 동천의 곳에서 왕이 되시어 얼마나 존귀하고 즐거우시온데, 어찌 기꺼이 가서 그를 위해 마부 노릇을 하시려 하시겠나이까?” 그러고는 분부하였다. “작은 것들아! 어서 술을 마련하여 대왕의 답답한 속을 풀어 드려라.” 즐겁게 술을 마시며 모여 있던 중에 누군가 와서 알렸다. “대왕님, 문 밖에 외뿔 귀왕 둘이 대왕님을 뵙고자 하나이다.” 원숭이 왕이 말했다. “들여보내라.” 그 귀왕들은 옷을 가다듬고 동굴 안으로 달려들어와 몸을 굽혀 절하였다. 미후왕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나를 보러 온 것은 무슨 일인가?” 귀왕들이 말했다. “오래전부터 대왕께서 어진 이를 부른다는 말을 들었으나 만날 길이 없었나이다. 이제 대왕께서 천록을 받으시고 뜻을 이루어 영광스럽게 돌아오셨음을 보고, 특별히 붉은 누런 빛깔의 도포 한 벌을 바쳐 대왕의 경사를 축하하고자 하나이다. 저희 비천한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거두어 주신다면 또한 개와 말의 수고로움이라도 바치고자 하나이다.” 원숭이 왕이 크게 기뻐하여 그 붉은 누런 도포를 꺼내 입으니, 뭇 무리들이 기뻐하며 반열을 갖추어 조배하였다. 그는 곧 그 귀왕을 전부총독선봉으로 봉하였다. 귀왕이 은혜에 감사하기를 마치고 다시 아뢰었다. “대왕께서 하늘에 오래 계셨으니 무슨 관직을 받으셨나이까?” 원숭이 왕이 말했다. “옥황상제는 어진 이를 가볍게 여겨 나를 무슨 ‘필마온’이란 것으로 봉하였다!” 귀왕이 이 말을 듣고 다시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이 같은 신통을 지니셨는데 어찌 그를 위해 말을 기르시나이까? 그냥 ‘제천대성’을 하시면 무엇이 불가하겠나이까?” 원숭이 왕은 이 말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연달아 몇 번 “좋다! 좋다! 좋다!” 하고 외쳤다. 그리고 네 건장한 장수에게 분부하였다. “곧 나를 위해 깃발을 만들어라. 깃발 위에 ‘제천대성’ 네 큰 글자를 써서 장대를 세워 걸어 두라. 이제부터는 다만 나를 제천대성이라 부르고 다시 대왕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라. 또한 각 동의 요왕들에게도 전하여 한결같이 알게 하라.” 이 일은 여기서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말하자면, 그 옥황상제가 이튿날 조회를 열었는데, 장천사가 어마감의 감승과 감부를 이끌고 붉은 섬돌 아래에서 절하며 아뢰었다. “만세, 새로 제수된 필마온 손오공이 벼슬이 작음을 싫어하여 어제 하늘 궁궐을 배반하고 내려갔나이다.” 말하고 있는 사이에 또 남천문 밖에서 증장천왕이 뭇 천정을 거느리고 와서 역시 아뢰었다. “필마온이 무슨 까닭인지 천문을 나가 버렸나이다.” 옥황상제가 이 말을 듣고 곧 조서를 내렸다. “두 갈래의 신원들로 하여금 각각 본직으로 돌아가게 하고, 짐이 천병을 보내어 이 괴물을 잡아 오겠다.” 반열 가운데서 탁탑 이천왕과 나타 삼태자가 뛰어나와 반열을 넘어 아뢰었다. “만세, 미신들이 재주가 없사오나 청하옵건대 조서를 내리시어 이 요괴를 항복시키게 하소서.” 옥황상제가 크게 기뻐하여 곧 탁탑천왕 이정을 항마대원수로, 나타 삼태자를 삼단해회대신으로 봉하고 즉시 군사를 일으켜 하계로 내려가게 하였다. 이천왕과 나타는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물러나 곧장 본궁에 이르러 삼군을 소집하고 뭇 두목을 거느렸다. 거령신을 선봉으로, 어두장을 뒤를 지키는 자로, 약차장을 군사를 독촉하는 자로 삼았다. 한순간에 남천문 밖으로 나와 곧장 화과산에 이르렀다. 평평하고 양지바른 곳을 골라 영채를 세우고 명을 전하여 거령신에게 싸움을 걸게 하였다. 거령신이 명을 받아 갑주를 단정히 갖추고 선화부를 둘러메고 수렴동 밖에 이르렀다. 바라보니 작은 동굴 문 밖에 많은 요마들이 있었는데, 모두 이리와 벌레와 호랑이와 표범 같은 무리로서 어지러이 창을 돌리고 검을 추며 그곳에서 뛰어오르며 싸우고 울부짖고 있었다. 거령신이 소리쳐 꾸짖었다. “이 못된 짐승들아! 어서 가서 필마온에게 알려라. 나는 상천의 대장으로 옥황상제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와서 항복시키려 하니, 그를 시켜 어서 나와 항복을 받게 하여 너희가 모두 상하여 죽는 일이 없게 하라.” 그 괴물들은 분주히 달려가 동굴 안에 전하여 알렸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원숭이 왕이 물었다. “무슨 큰일인가?” 뭇 요괴들이 말했다. “문 밖에 천장 하나가 있어 입으로 대성의 관함을 일컬으며 말하기를, 옥황상제의 성지를 받들어 이곳에 와서 항복시키려 하니 어서 나와 항복을 받아 우리의 목숨을 상하지 않게 하라 하였나이다.” 원숭이 왕이 이 말을 듣고 분부하였다. “내 갑주를 가져오라!” 그는 자금관을 쓰고 황금갑을 입고 보운신을 신고 손에 여의금고봉을 쥐고 뭇 무리를 거느리고 문을 나서 진세를 벌였다. 거령신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니, 참으로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몸에는 금빛 갑주를 걸쳤는데 반짝반짝 빛나고, 머리에는 금관을 썼는데 그 광채가 어른어른 비치네. 손에는 금고봉 한 자루를 높이 치켜들었고, 발에는 구름 신을 밟았으니 모두가 서로 잘 어울리네. 한 쌍의 괴이한 눈은 밝은 별과 같고, 두 귀는 어깨를 지나며 또 단단하구나. 몸을 곧게 펴면 그 재주 변화가 많고, 목소리는 우렁차기가 종과 경쇠 같구나. 뾰족한 주둥이에 드러난 이빨은 필마온이요, 마음은 높아 제천대성이 되려 하누나. 거령신이 엄한 소리로 높이 외쳤다. “이 못된 원숭이야! 너는 나를 아느냐?” 대성이 그 말을 듣고 급히 물었다. “너는 어느 길의 털 많은 신이냐? 늙은 손은 너를 만난 적이 없으니 어서 이름을 대라.” 거령신이 말했다. “이 마음을 속이는 원숭이 같으니!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는구나! 나는 높고 위대한 신령인 탁탑 이천왕 부하의 선봉, 거령천장이다! 이제 옥황상제의 성지를 받들어 이곳에 와서 너를 항복시키려 한다. 네 어서 갑주를 벗고 천은에 귀순하여 이 산 가득한 짐승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게 하라. 만약 반 개의 ‘아니오’라는 말이라도 한다면, 너를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리라!” 원숭이 왕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말했다. “못된 털 신아, 큰소리 치지 말고 긴 혀를 놀리지 말라! 나는 본래 한 방망이로 너를 때려 죽이려 하였으나, 보내어 소식을 전할 자가 없을까 걱정되어 다만 네 목숨을 남겨 두는 것이다. 어서 하늘로 돌아가 옥황에게 말하라. 그는 어찌하여 어진 이를 등용하지 않는가! 늙은 손에게는 다함없는 재주가 있는데 어찌 나를 시켜 그를 위해 말을 기르게 하는가? 너는 내 이 깃발 위의 글자를 보라. 만약 이 글자대로 벼슬을 올려 준다면 나는 칼과 병기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자연히 천지가 맑고 편안하리라. 만약 그때까지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영소보전까지 쳐 올라가 그가 용상에 편히 앉아 있지도 못하게 하리라!” 거령신은 이 말을 듣고 급히 눈을 부릅뜨고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니, 과연 문 밖에 높은 장대 하나가 세워져 있고 그 장대 위에 깃발 한 면이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 ‘제천대성’ 네 큰 글자가 적혀 있었다. 거령신이 냉소를 세 번 내뱉으며 말했다. “이 못된 원숭이가 이처럼 인사치레도 모르고 감히 무례하게 굴며 제천대성이 되려 하는구나! 얌전히 내 도끼 한 번을 맞아라!” 그는 머리를 향해 곧바로 내리찍었다. 그 원숭이 왕은 바로 능한 자라 당황하지 않고 금고봉을 들어 손에 맞추어 맞받았다. 이 한바탕 싸움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봉은 이름이 여의요, 도끼는 이름이 선화라. 그 둘이 처음 만나 서로의 깊고 얕음을 알지 못하고, 도끼와 방망이가 좌우로 엇갈리누나. 하나는 신묘함을 감추고, 하나는 입을 크게 벌려 자랑한다. 법을 부리자 구름을 뿜고 안개를 토하며, 손을 펼치자 흙을 뿌리고 모래를 날린다. 천장의 신통은 도가 있으나, 원숭이 왕의 변화는 실로 끝이 없구나. 방망이를 들면 용이 물에서 노는 듯하고, 도끼가 오면 봉황이 꽃을 뚫고 나는 듯하다. 거령의 이름과 명망은 천하에 퍼졌으나, 알고 보니 본래 그 재주가 그에게 미치지 못하더라. 대성이 가볍게 쇠방망이를 한 번 돌리니, 머리에 한 대 맞자 온몸이 저리구나. 거령신은 끝내 그를 막아 내지 못하였다. 원숭이 왕이 머리를 향해 방망이를 내리치자, 그는 당황하여 도끼로 막아 냈는데,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 자루가 두 동강이 났다. 그는 급히 몸을 빼어 진을 무너뜨리고 목숨을 건져 달아났다. 원숭이 왕이 웃으며 말했다. “고름 주머니 같으니! 고름 주머니 같으니! 내가 이미 너를 봐주었으니 어서 가서 소식을 전하라! 어서 가서 소식을 전하라!” 거령신은 영문으로 돌아와 곧장 탁탑천왕을 뵙고 황급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필마온은 과연 신통이 광대하옵니다! 말장이 그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진을 무너뜨려 돌아와 죄를 청하나이다.” 이천왕이 노하여 말했다. “이놈이 내 예기를 꺾었으니 끌어내어 베라!” 곁에서 나타 태자가 나서서 절하며 아뢰었다. “부왕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소서. 우선 거령의 죄를 용서하시고 아이로 하여금 한 번 출진하게 하시면 깊고 얕음을 알게 되리이다.” 천왕이 간언을 듣고 우선 그를 영으로 돌려보내어 죄를 기다리며 일을 맡게 하였다. 나타 태자는 갑주를 단정히 갖추고 영채를 뛰어나와 수렴동 밖으로 달려갔다. 그때 오공이 막 군사를 거두려 나오다가 나타가 용맹하게 오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좋은 태자로다. 쌍상투가 겨우 정수리를 덮고, 드리운 머리털은 아직 어깨를 가리지 못하였네. 신기하고 기묘하며 민첩하고 영리하고, 골격이 빼어나고 더욱 맑고 곱구나. 참으로 하늘의 기린 아들이요, 과연 연하의 채색 봉황 선인이로다. 용의 핏줄이니 자연히 속된 모습이 아니요, 묘한 나이에 정말로 속세와 같지 않구나. 몸에는 여섯 가지 신기한 무기를 지녔고, 날아오르고 변화함이 넓고도 끝이 없도다. 이제 옥황의 금구 조서를 받들어, 삼단해회의 호를 내리셨도다. 오공이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너는 누구 집 아이이며, 내 문 가까이 뛰어들어 무슨 일을 하려는가?” 나타가 소리쳐 꾸짖었다. “못된 요원숭이야! 어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나는 탁탑천왕의 삼태자 나타다. 이제 옥황의 흠차를 받들어 이곳에 와서 너를 잡으려 한다.” 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작은 태자야, 네 젖니도 아직 빠지지 않았고 태아의 털도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어찌 감히 이 같은 큰소리를 하는가? 내 우선 네 목숨을 남겨 두고 때리지 않겠다. 너는 다만 내 깃발 위에 무슨 글자가 있는지 보고 올라가 옥황께 아뢰어라. 이 같은 관함을 준다면 다시 무리를 움직일 필요도 없이 나는 스스로 귀의하겠다. 만약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반드시 영소보전까지 쳐 올라가겠다.” 나타가 머리를 들어 바라본 곳에 ‘제천대성’ 네 글자가 있었다. 나타가 말했다. “이 요원숭이가 무슨 큰 신통이 있다고 감히 이런 명호를 일컫는가! 두려워하지 마라! 내 칼 한 번을 맞아라!” 오공이 말했다. “나는 그저 서서 움직이지 않겠으니 네 마음대로 몇 칼 베어 보아라.” 그 나타는 분노하여 크게 한 번 외치고 “변!” 하고 불렀다. 곧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로 변하여 사납게 여섯 가지 병기를 들었으니, 바로 참요검, 간요도, 박요삭, 항요저, 수구아, 화륜아였다. 그는 어지러이 얼굴을 향해 때려 왔다. 오공이 그것을 보고 마음이 놀라 말했다. “이 작은 아이도 제법 수단을 부릴 줄 아는구나! 무례하지 말라, 내 신통을 보아라!” 좋은 대성이여, “변!” 하고 외치자 그도 세 머리 여섯 팔로 변하였다. 금고봉을 한 번 흔드니 역시 세 개로 변하였고, 여섯 손이 세 개의 방망이를 쥐고 막아 냈다. 이 싸움은 참으로 땅이 흔들리고 산이 요동하였으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여섯 팔의 나타 태자와 천생 아름다운 석후왕이 서로 만나니 참으로 대적이요, 바로 근원이 같은 흐름을 만났도다. 저쪽은 명을 받들어 하계에 내려왔고, 이쪽은 마음을 속여 두우를 어지럽힌다. 참요보검은 날이 빠르고, 간요도는 사나워 귀신도 근심한다. 박요삭은 나는 이무기 같고, 항요대저는 이리 머리 같구나. 화륜아는 번개를 잡아당겨 활활 타오르고, 오고 가며 수구아를 굴린다. 대성의 세 자루 여의봉은 앞을 막고 뒤를 가리며 기모를 운용한다. 애써 몇 합을 겨루어도 높고 낮음이 없으니, 태자의 마음은 그치려 하지 않는다. 그 여섯 가지 병기를 많이 변화시켜 백천만억으로 머리를 향해 던진다. 원숭이 왕은 두려워하지 않고 껄껄 웃으며, 쇠방망이를 뒤집으며 스스로 책략을 운용한다. 하나로 천을 만들고 천으로 만을 만드니, 하늘 가득 어지러이 춤추어 나는 용과 견주리라. 각 동의 요왕들은 놀라 문을 닫고, 온 산의 귀괴는 모두 머리를 감추었다. 신병의 노여움에 구름이 참담하고, 금고봉 소리 써써 울린다. 저쪽에서는 천정들이 함성을 질러 사람마다 두려워하고, 이쪽에서는 원숭이 괴물이 깃발을 흔들어 낱낱이 근심한다. 독기를 내어 두 집이 함께 용맹을 겨루니, 어느 쪽이 굳세고 어느 쪽이 부드러운지 알 수 없구나. 삼태자와 오공은 각각 신위를 펼쳐 서른 합을 겨루었다. 그 태자의 여섯 가지 병기는 천천만만으로 변하고, 손오공의 금고봉은 만만천천으로 변하였다. 반쯤 하늘에서 비점과 유성 같았으나 승부가 나뉘지 않았다. 원래 오공은 손이 빠르고 눈이 밝았으므로, 그 혼란한 때에 그는 털 한 오라기를 뽑아 “변!” 하고 외치니 곧 그의 본모습으로 변하여 손에 방망이를 쥐고 나타를 상대하여 겨루었다. 그의 진짜 몸은 홀연히 뛰어올라 나타의 머리 뒤로 다가가 왼쪽 팔뚝에 방망이를 한 번 내리쳤다. 나타는 막 법을 부리던 중에 방망이 끝의 바람 소리를 듣고 급히 피하려 하였으나 미처 손을 쓸 수 없어 그에게 한 대 얻어맞고 아픔을 이기며 달아났다. 그는 법을 거두고 여섯 가지 병기를 예전처럼 몸에 거두어 넣고 진을 무너뜨려 돌아갔다. 그 진 위에서 이천왕이 이미 일찍 보았으므로 급히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움을 돕고자 하였다. 어느새 태자가 홀연히 눈앞에 이르러 떨리는 목소리로 알렸다. “부왕! 필마온은 참으로 재주가 있사옵니다! 아이가 이만한 법력으로도 그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이미 그에게 팔뚝을 다쳤나이다.” 천왕이 크게 놀라 얼굴빛을 잃고 말했다. “이놈이 그런 신통을 지녔으니 어찌 이기겠는가?” 태자가 말했다. “그의 동굴 문 밖에 장대 하나에 깃발이 걸려 있고 그 위에 ‘제천대성’ 네 글자가 적혀 있는데, 입으로 자랑하며 옥황께서 곧 그를 제천대성으로 봉하시면 모든 일이 그치겠으나 만약 이 명호가 아니면 반드시 영소보전까지 쳐 올라가겠다고 하였나이다!” 천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우선 그와 맞서지 말고, 우선 상계로 올라가 이 말을 돌아가 아뢰고 다시 천병을 더 보내어 이놈을 에워 잡는 것이 늦지 않겠다.” 태자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싸울 수 없었으므로 천왕과 함께 하늘로 돌아가 아뢰었다. 이 일은 여기서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너는 저 원숭이 왕이 승리를 얻어 산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라. 그 칠십이 동의 요왕과 그 여섯 형제가 모두 와서 경사를 축하하였다. 동천 복지에서 마시고 즐김이 비할 데 없었다. 그는 여섯 형제에게 말했다. “아우가 이미 제천대성이라 일컬었으니 형님들도 또한 대성으로 일컬어도 좋겠다.” 그중 우마왕이 홀연히 높은 소리로 외쳤다. “현제의 말이 이치에 맞으니 나는 곧 평천대성이라 일컫겠다.” 교마왕이 말했다. “나는 복해대성이라 일컫겠다.” 붕마왕이 말했다. “나는 혼천대성이라 일컫겠다.” 사타왕이 말했다. “나는 이산대성이라 일컫겠다.” 미후왕이 말했다. “나는 통풍대성이라 일컫겠다.” 우융왕이 말했다. “나는 구신대성이라 일컫겠다.” 이때 일곱 대성이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일컬어 명호를 지어 하루를 마음껏 즐기다가 각각 흩어져 돌아갔다. 말하자면, 그 이천왕과 삼태자가 뭇 장수를 이끌고 곧장 영소전에 이르렀다. 그들이 아뢰었다. “신들이 성지를 받들어 하계에 출사하여 요선 손오공을 항복시키려 하였으나, 그의 신통이 광대할 줄은 생각지 못하여 이기지 못하였사오니, 여전히 만세께서 병사를 더 보내어 토벌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요원숭이 하나의 재주가 얼마나 되기에 또 병사를 더 보내려 하는고?” 태자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만세께서 신의 죽을 죄를 용서하소서! 그 요원숭이는 쇠방망이 한 자루를 부려 먼저 거령신을 무너뜨리고 또 신의 팔뚝을 다쳤나이다. 동굴 문 밖에 장대 하나를 세우고 그 위에 ‘제천대성’ 네 글자를 썼으며, 이 관직을 봉해 주면 곧 병사를 그치고 와서 항복하겠으나 만약 이 벼슬이 아니면 영소보전까지 쳐 올라가겠다고 하였나이다.” 옥황상제가 이 말을 듣고 놀라며 말했다. “이 요원숭이가 어찌 감히 이처럼 광망한고! 뭇 장수로 하여금 즉시 그를 베게 하라.” 말하고 있는 사이에 반열 가운데서 또 태백금성이 나서서 아뢰었다. “그 요원숭이는 다만 말만 낼 줄 알고 크고 작음을 알지 못하나이다. 병사를 더하여 그와 다투고자 하신다면 잠시도 항복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군사를 수고롭게 할 것이옵니다. 만세께서 크게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어 다시 초안 조서를 내리시고 그를 제천대성으로 삼게 하심만 못하옵니다. 다만 그에게 빈 관함을 더하여 벼슬은 있으나 녹은 없게 하시면 그만이옵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어찌하여 ‘유관무록’이라 부르는고?” 금성이 말했다. “이름은 제천대성이되 다만 그에게 맡을 일도 주지 않고 봉록도 주지 않으며, 우선 천지 사이에 길러 두고 그의 삿된 마음을 거두어 광망한 마음을 내지 않게 하면 천지가 편안하고 해우가 맑고 고요해질 것이옵니다.” 옥황상제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경이 아뢴 대로 따르라.” 곧 조서를 내리게 하고 여전히 금성으로 하여금 데리고 가게 하였다. 금성은 다시 남천문을 나서 곧장 화과산 수렴동 밖에 이르러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전과 달라 위풍이 늠름하고 살기가 자욱하였으며, 갖가지 요정이 없는 종류가 없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검을 잡고 창을 쥐고 칼을 들고 지팡이를 놀리며 그곳에서 울부짖고 뛰어올랐다. 금성을 한 번 보자 모두 앞으로 나아가 손을 대려 하였다. 금성이 말했다. “저 뭇 두목들은 이리 오라! 너희가 가서 너희 대성에게 알리라. 나는 상제께서 보내신 천사로서 성지가 여기 있으니 그를 청하는 것이다.” 뭇 요괴들이 곧 달려 들어가 알렸다. “밖에 한 노인이 있는데, 그가 스스로 상계의 천사라 하며 조서가 있으니 청한다 하였나이다.” 오공이 말했다. “잘 왔다! 잘 왔다! 아마도 지난번에 왔던 그 태백금성일 것이다. 그때 나를 상계로 청하였을 적에 비록 관작은 보잘것없었으나 또한 하늘을 한 번 걸어 보았으니 천문 안팎의 길을 알고 있다. 이번에 또 왔으니 반드시 좋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는 뭇 두목에게 분부하여 깃발과 북을 크게 벌이고 대오를 갖추어 맞이하게 하였다. 대성은 곧 원숭이 떼를 거느리고 관을 쓰고 갑을 입고 그 갑 위에 붉은 누런 도포를 걸치고 발에 구름 신을 신고 급히 동굴 문을 나와 몸을 굽혀 예를 갖추며 높이 외쳤다. “노성께서는 들어오소서. 나의 맞이하지 못한 죄를 용서하소서.” 금성은 종종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곧장 동굴 안에 들어가 남쪽을 향해 서서 말했다. “이제 대성께 알리오. 지난번 대성께서 관이 작음을 싫어하시어 어마감을 피해 떠나셨을 때, 마침 이 감의 크고 작은 관리들이 옥황상제께 아뢰었소. 옥황상제께서 조서를 내리기를 ‘무릇 관을 제수함에는 모두 낮은 데서 높은 데로 나아가는 법인데 어찌하여 작음을 싫어하는고’ 하셨소. 곧 이천왕이 나타를 거느리고 하계로 내려가 싸웠으나 대성의 신통을 알지 못하여 패배를 당하고 하늘로 돌아가 아뢰기를 ‘대성이 장대 하나에 깃발을 세우고 제천대성이 되려 한다’ 하였소. 뭇 무장들이 오히려 얼버무리려 하였으나 이 늙은이가 힘써 대성을 위하여 죄를 무릅쓰고 아뢰어 군사를 일으키는 일을 면하고 대왕께서 선록을 받으시도록 청하였으니, 옥황상제께서 아뢴 대로 윤허하셨소. 이 때문에 청하러 온 것이오.” 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도 수고롭게 하였고 이제 또 사랑을 입었으니 매우 고맙다! 매우 고맙다! 다만 하늘에 이 ‘제천대성’이라는 관함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금성이 말했다. “이 늙은이가 이 관함으로 아뢰어 윤허를 받은 뒤에야 감히 조서를 받들고 왔소. 만약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다만 이 늙은이에게 죄를 물으시면 그만이오.” 오공은 크게 기뻐하여 간절히 머물러 술을 대접하려 하였으나 금성이 응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금성과 함께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남천문 밖에 이르렀다. 그곳 천정과 천장들이 모두 손을 모아 맞이하였다. 그들은 곧장 영소전 아래로 들어갔다. 금성이 절하며 아뢰었다. “신이 조서를 받들어 필마온 손오공을 불러 왔나이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그 손오공은 이리 오라. 이제 너를 ‘제천대성’으로 삼으라 하니, 관품이 지극하도다. 다만 결코 함부로 굴지 말라.” 이 원숭이 또한 다만 위를 향해 큰 읍을 하고 은혜에 감사하다 소리하였다. 옥황상제는 곧 공사 맡은 관리인 장과 노 두 반에게 명하여 반도원 오른쪽에 제천대성부 한 채를 세우고, 그 부 안에 두 관청을 두게 하였으니, 하나는 이름이 안정사요 하나는 영신사였다. 관청마다 모두 선리들이 있어 좌우에서 받들었다. 또 오두성군을 시켜 오공을 보내어 부임하게 하고, 밖으로 어주 두 병과 금화 열 송이를 내리며 그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히 하고 뜻을 정하여 다시는 함부로 굴지 말게 하였다. 그 원숭이 왕은 이를 받들어 시행하여 그날로 오두성군과 함께 부에 이르러 술병을 열고 뭇 무리와 함께 다 마셨다. 성관을 본궁으로 돌려보낸 뒤에야 그는 비로소 마음이 흡족하고 뜻이 가득하여 기뻐 땅이 즐겁고 하늘이 환하여 천궁에서 즐기며 아무 걸림이 없었다. 바로 이러하였다. 선명은 길이 장생록에 기록되고, 윤회에 떨어지지 않고 만고에 전하리라. 결국 그 뒤가 어떠할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회 난반도대성투단(亂蟠桃大聖偷丹) · 반천궁제신착괴(反天宮諸神捉怪) 말하자면, 제천대성은 결국 요망한 원숭이일 뿐이라, 벼슬의 품계와 종질도 알지 못하였고 녹봉의 높낮이도 따지지 않았으며, 다만 이름이 기록된 것만으로 족하였다. 그 제천부 아래 두 관사의 선리들은 아침저녁으로 그를 모셨는데, 그들은 다만 낮에 세 끼를 먹고 밤에 한 평상에서 잠들 줄만 알았으며, 일에 얽매임이 없어 자유자재하였다. 한가한 때에는 벗을 만나 궁궐을 거닐고, 벗을 사귀어 의를 맺었다. 삼청을 보면 ‘노’ 자를 일컬었고, 사제를 만나면 ‘폐하’라 불렀다. 구요성과 오방장과 이십팔수와 사대천왕과 십이원진과 오방오로와 보천성상과 하한의 뭇 신들과는 모두 다만 형제로 대접하여 서로 호칭하였다. 오늘은 동쪽으로 놀고 내일은 서쪽으로 거닐며, 구름이 가고 구름이 오니 행적이 일정하지 않았다. 어느 날 옥황상제가 아침 조회를 열었는데, 반열 가운데서 허정양 진인이 나서서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지금 제천대성이 하는 일 없이 한가로이 노닐며 하늘의 뭇 성수들과 어울려,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벗이라 부르고 있나이다. 훗날 한가한 틈에 무슨 일을 저지를까 염려되오니, 그에게 일 하나를 맡겨 관리하게 하시면 다른 탈이 생기지 않을까 하나이다.” 옥황상제가 그 말을 듣고 즉시 조서를 내렸다. 그 원숭이 왕이 기뻐하며 달려와 말했다. “폐하, 늙은 손을 부르신 것은 무슨 승진과 상을 내리시려는 것인가?” 옥황상제가 말했다. “짐이 보니 네 몸이 한가하여 하는 일이 없으니, 너에게 직분 하나를 주겠다. 네 우선 그 반도원을 맡아 관리하며 아침저녁으로 각별히 마음을 쓰라.” 대성이 기뻐하며 은혜에 감사하고, 위를 향해 읍하고 물러났다. 그는 몹시 바빠서도 기다리지 못하고 곧바로 반도원 안으로 들어가 이모저모 살펴보았다. 이 동산에는 토지신 하나가 있어 그를 막아서며 물었다. “대성께서는 어디로 가시나이까?” 대성이 말했다. “나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반도원을 대신 맡게 되었으니, 이제 와서 살펴보는 것이다.” 그 토지신이 황급히 예를 갖추고 곧바로 그 한 떼의 나무를 파는 역사와 물을 나르는 역사와 복숭아나무를 가꾸는 역사와 청소하는 역사를 불러 모두 와서 대성께 머리를 조아리게 한 뒤, 그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곱고도 환하며, 알알이 그루그루로다. 곱고 환한 꽃은 나무에 가득하고, 알알이 맺힌 열매는 가지를 눌렀다. 열매가 가지 끝을 누르니 비단 탄알을 드리운 듯하고, 꽃이 나무에 가득하니 연지가 모여든 듯하였다. 때로 피고 때로 열려 천 년 만에 익으며, 여름도 겨울도 없이 만 년을 더디게 기다렸다. 먼저 익은 것은 붉은 얼굴로 취한 듯하고, 아직 생것은 꼭지를 단 채 푸른 껍질을 하고 있었다. 안개를 머금은 살결은 푸른빛을 띠고, 해를 받아 붉은 자태를 드러냈다. 나무 아래에는 기이한 꽃과 남다른 풀이 있어 사철 시들지 않고 빛깔이 가지런하였으며, 좌우에는 누대와 관사가 늘어섰고, 하늘을 감도는 곳마다 늘 구름과 무지개가 덮여 있었다. 이는 현도의 속된 씨앗이 아니라, 요지의 왕모가 친히 가꾸신 것이었다. 대성이 오래도록 구경하고 놀다가 토지신에게 물었다. “이 나무는 모두 몇 그루인가?” 토지신이 말했다. “삼천육백 그루가 있나이다. 앞쪽 천이백 그루는 꽃이 작고 열매도 작아 삼천 년에 한 번 익는데, 사람이 먹으면 신선이 되어 도를 깨닫고 몸이 튼튼해지며 가벼워지나이다. 가운데 천이백 그루는 꽃이 겹겹이고 열매가 달아 육천 년에 한 번 익는데, 사람이 먹으면 노을을 타고 날아올라 장생불로하나이다. 뒤쪽 천이백 그루는 무늬가 자줏빛이고 씨가 노란빛이라 구천 년에 한 번 익는데, 사람이 먹으면 천지와 수명을 함께하고 해와 달과 나이를 같이하나이다.” 대성이 이 말을 듣고 기쁨이 한이 없어, 그날로 그루 수를 낱낱이 밝히고 정자와 누각을 점검한 뒤 부중으로 돌아갔다. 이 뒤로부터 사오 일에 한 번씩 구경하고 놀았으며, 벗도 사귀지 않고 다른 데로도 놀러 가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늙은 나무 가지 끝에 복숭아가 대부분 익은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하나를 따서 새 맛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 동산의 토지신과 역사들, 그리고 제천부의 선리들이 바싹 따라붙어 있어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다. 그는 홀연히 꾀 하나를 생각해 내고 말했다. “너희는 우선 문 밖에서 기다리라. 나는 이 정자 위에서 잠깐 쉬겠다.” 그 뭇 신선들이 과연 물러갔다. 그 원숭이 왕이 관을 벗고 옷을 걸친 뒤 큰 나무에 올라가, 푹 익은 큰 복숭아를 골라 많이 따서 나뭇가지 위에서 마음대로 실컷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 뒤에는 뛰어내려 관을 꽂고 옷을 걸치고는 뭇 시종들을 불러 부중으로 돌아갔다. 이삼 일이 지나자 그는 또 가서 꾀를 부려 복숭아를 훔쳐 마음껏 먹었다. 어느 날 왕모낭랑이 잔치를 베풀어 보각을 크게 열고 요지에서 ‘반도승회’를 열려 하시어, 곧 붉은 옷 선녀와 흰 옷 선녀와 푸른 옷 선녀와 검은 옷 선녀와 자줏빛 옷 선녀와 누런 옷 선녀와 초록 옷 선녀를 시켜 각각 꽃바구니를 이고 반도원에 가서 복숭아를 따 잔치를 준비하게 하셨다. 칠의선녀가 곧장 동산 문 앞에 이르니, 반도원의 토지신과 역사들, 그리고 제천부 두 관사의 선리들이 모두 그곳에서 문을 지키고 있었다. 선녀들이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우리들은 왕모의 유지를 받들어 이곳에 와서 복숭아를 가져다 잔치를 베풀려 하오.” 토지신이 말했다. “선녀님들은 잠시 멈추소서. 올해는 지난해와 같지 않사오니, 옥황상제께서 제천대성을 지명하여 이곳을 감독하게 하셨으니, 반드시 대성께 알려 아뢴 뒤에야 감히 동산을 열 수 있나이다.” 선녀들이 말했다. “대성은 어디에 있는가?” 토지신이 말했다. “대성은 동산 안에 있는데, 곤하여 스스로 정자 위에서 잠들었나이다.” 선녀들이 말했다. “그러하다면 그를 찾아가자. 지체할 수 없다.” 토지신이 곧 그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꽃 정자에 이르러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고, 정자에는 다만 옷과 관만 있을 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사방을 모두 찾아보았으나 찾을 곳이 없었다. 알고 보니 대성은 한동안 놀다가 복숭아 몇 개를 먹고는 두 치 길이의 작은 사람으로 변하여, 그 큰 나무 꼭대기의 짙은 잎 아래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칠의선녀가 말했다. “우리들은 성지를 받들어 왔는데 대성을 찾지 못하였으니, 어찌 감히 빈손으로 돌아가겠는가?” 곁에 있던 선리 하나가 말했다. “선녀님들은 이미 성지를 받들어 오셨으니 주저하실 것 없나이다. 우리 대성은 한가로이 노니는 데 익숙하시니, 아마도 동산을 나가 벗을 만나러 가셨을 것이옵니다. 선녀님들은 우선 가서 복숭아를 따소서. 우리가 대신 아뢰어 드리겠나이다.” 그 선녀들은 그 말대로 나무숲 아래로 들어가 복숭아를 땄다. 먼저 앞쪽 나무에서 두 바구니를 땄고, 또 가운데 나무에서 세 바구니를 땄다. 뒤쪽 나무에 이르러 따려 하니, 그 나무에는 꽃과 열매가 드문드문하고 다만 잔털이 붙은 꼭지와 푸른 껍질뿐인 것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알고 보니 익은 것은 모두 원숭이 왕이 먹어 버린 것이었다. 칠선녀가 이쪽저쪽을 살펴보니, 남쪽 가지 위에 다만 하나의 반은 붉고 반은 흰 복숭아가 있었다. 푸른 옷 선녀가 손으로 가지를 당겨 내리자 붉은 옷 선녀가 따고는 그 가지를 위로 놓아 주었다. 알고 보니 그 대성은 변화하여 바로 이 가지 위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에게 놀라 깨어난 것이었다. 대성이 곧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귀 속에서 여의봉을 뽑아 내어 한 번 흔드니 사발만큼 굵어졌으며, 꾸짖는 소리를 내어 말했다. “너는 어느 지방의 괴물이기에 감히 대담하게 내 복숭아를 훔쳐 따는가!” 그 칠선녀는 놀라 어쩔 줄 몰라 일제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성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소서. 저희는 요괴가 아니오며, 왕모낭랑께서 보내신 칠의선녀로서 선도를 따다 보각을 크게 열고 ‘반도승회’를 베풀려 온 것이옵니다. 방금 이곳에 이르러 먼저 이 동산의 토지신 등 신들을 만나 대성을 찾았으나 보지 못하였나이다. 저희는 왕모의 유지가 늦어질까 두려워 대성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이곳에서 복숭아를 땄사오니, 부디 널리 용서하여 주소서.” 대성이 이 말을 듣고 노여움을 풀어 기쁨으로 바꾸며 말했다. “선녀님들은 일어나시오. 왕모가 각을 열고 잔치를 베푸는데 누구를 청하는가?” 선녀들이 말했다. “지난 잔치에는 본래 옛 규례가 있사온데, 서천의 불로와 보살과 나한, 남방의 남극관음, 동방의 숭은성제, 십주삼도의 선옹, 북방의 북극현령, 중앙의 황극황각대선을 청하오니, 이들이 바로 오방오로이옵니다. 또 오두성군과 상팔동의 삼청과 사제와 태을천선 등 무리, 중팔동의 옥황과 구루와 해악의 신선, 하팔동의 유명교주와 주세지선이 있사오며, 각 궁과 각 전의 크고 작은 존신들이 모두 함께 반도잔치에 나아가나이다.”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청하는가?” 선녀들이 말했다. “듣지 못하였나이다.” 대성이 말했다. “나는 바로 제천대성이다. 늙은 손을 청하여 높은 자리에 앉힌들 무엇이 불가하겠는가?” 선녀들이 말했다. “이는 지난 잔치의 규례일 뿐이오니, 이번 잔치가 어떠할지는 알지 못하나이다.” 대성이 말했다. “그 말도 옳다. 너희를 탓할 것이 없다. 너희는 우선 거기 서 있으라. 늙은 손이 먼저 가서 소식을 알아보고, 나를 청하는지 청하지 않는지 보겠다.”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그는 주문을 결하고 진언을 한 번 외운 뒤 뭇 선녀를 향해 말했다. “서라! 서라! 서라!” 이것은 본래 정신법이라, 그 칠의선녀를 하나하나 눈을 멍하니 뜨고 흰 눈알을 한 채 모두 복숭아나무 아래에 서 있게 하였다. 대성은 상서로운 구름 한 조각을 타고 동산 밖으로 뛰어나와 곧장 요지로 가는 길로 달려갔다. 바로 가고 있는데, 저쪽을 바라보니. 하늘 가득 상서로운 기운은 빛이 흔들리고, 오색 상서로운 구름은 날아도 끊이지 않았다. 흰 학의 울음소리는 구고에 진동하고, 자줏빛 영지는 빛깔이 빼어나 천 잎으로 나뉘었네. 그 가운데 한 분의 신선이 나타났으니, 생김새는 타고난 듯 풍채가 남달랐다. 신령이 무지개를 춤추듯 하늘을 흔들고, 허리에는 보록을 드리웠으니 나고 죽음이 없도다. 이름은 적각대라선이라, 특별히 반도 더수절에 나아가려는 것이었다. 그 적각대선이 얼굴을 맞대고 대성을 만나자, 대성은 고개를 숙여 꾀를 정하고 참된 신선을 속여 넘기려 하였다. 그는 몰래 잔치에 가려 하였으므로 도리어 물었다. “노도께서는 어디로 가시는가?” 대선이 말했다. “왕모가 나를 부르셨기에 반도잔치에 가려 하오.” 대성이 말했다. “노도께서는 알지 못하시는군요. 옥황상제께서는 늙은 손의 근두운이 빠르다 하여 늙은 손에게 명하여 다섯 길로 여러 어른들을 청하게 하셨는데, 먼저 통명전 아래에 이르러 예를 익힌 뒤에야 잔치에 가도록 하라 하셨나이다.” 대선은 광명정대한 사람이라 그의 거짓말을 참으로 여기고 말했다. “평소에는 요지에서 예를 익히고 은혜에 감사하였는데, 어찌 먼저 통명전에 가서 예를 익힌 뒤에야 요지에 가서 잔치에 참석한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그는 상서로운 구름을 돌려 곧장 통명전으로 향해 갔다. 대성은 구름을 타고 진언을 한 번 외우고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곧 적각대선의 모습으로 변하여 요지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보각에 이르러 구름머리를 누르고 가볍게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을 바라보니. 구슬 같은 향기가 감돌고 상서로운 기운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요대에는 채색이 펼쳐졌고 보각에는 자욱한 기운이 퍼졌다. 봉황이 날아오르고 난새가 솟구르니 그 모습 아득하고, 금빛 꽃과 옥빛 꽃받침의 그림자가 떠올랐다 잠겼다. 위에는 아홉 마리 봉황의 붉은 노을 병풍과 여덟 보배 자줏빛 무지개 걸상이 놓여 있었고, 오색으로 금을 그린 상과 천 송이 꽃을 담은 벽옥 화분이 있었다. 상 위에는 용의 간과 봉황의 골수, 곰의 발바닥과 성성이의 입술이 있었다. 진귀한 음식 백 가지가 가지가지 아름답고, 기이한 과일과 좋은 안주가 빛깔마다 새로웠다. 그곳은 가지런히 잘 차려져 있었으나 아직 신선은 오지 않았다. 이 대성이 점쳐 보아도 다 보지 못할 즈음, 홀연히 한 줄기 술 향기가 코를 찔렀다. 홀연히 고개를 돌리니, 오른쪽 벽 긴 회랑 아래에 몇몇 술을 빚는 선관과 지게미를 만지는 역사가, 몇몇 물을 나르는 도인과 불을 때는 동자를 거느리고 그곳에서 항아리를 씻고 독을 닦으며 이미 옥액과 경장, 향기로운 술과 좋은 술을 빚어 놓고 있었다. 대성은 입가에 침이 흐르는 것을 막지 못하여 곧 가서 마시려 하였으나, 그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있어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곧 신통을 부려 털 몇 가닥을 뽑아 입에 넣고 씹어 부순 뒤 뿜어 내고 진언을 외워 “변하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곧 몇 마리의 졸음벌레로 변하여 뭇 사람의 얼굴로 달려갔다. 보라, 그 무리들은 손이 풀리고 머리가 숙여지며 눈썹을 감고 눈을 감은 채 맡은 일을 내버리고 모두 졸기 시작하였다. 대성은 그제야 백 가지 맛과 여덟 가지 진귀한 음식, 좋은 안주와 기이한 물품을 얼마쯤 챙겨 긴 회랑 안으로 들어가, 독에 기대고 항아리에 붙어 마음껏 실컷 마셨다. 한참을 실컷 마시니, 몹시 취하여 술에 곯았다. 그는 스스로 가늠하며 말했다. “큰일이다! 큰일이다! 조금 더 지나면 청한 손님이 오실 터인데, 나를 나무라지 않겠는가? 하루아침에 붙잡히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일찍 부중으로 돌아가 자는 것만 못하겠다.”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그는 비틀비틀 취한 기세를 빌려 마음대로 마구 내달렸는데, 얼마 지나자 길을 잘못 들었다. 제천부가 아니라 도솔천궁이었다. 그를 보자 그는 문득 깨달아 말했다. “도솔궁은 삼십삼천 위에 있으니 이한천 태상노군의 처소인데, 어찌 잘못하여 이곳에 왔는가? — 그래도 좋다! 그래도 좋다! 그동안 이 노인을 보러 오려 하였으나 오지 못하였으니, 이제 이 남은 걸음으로 그를 한 번 찾아뵈어도 좋겠다.” 그는 곧 옷을 가다듬고 밀고 들어갔으나 그곳에는 노군이 보이지 않았고 사방에 사람의 자취가 없었다. 알고 보니 그 노군은 연등고불과 함께 삼층 높은 누각의 주릉단대 위에서 도를 강론하고 있었고, 뭇 선동과 선장과 선관과 선리가 모두 좌우에 모시고 서서 강론을 듣고 있었다. 이 대성은 곧장 단방 안까지 이르렀으나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다만 단솥 곁 화로에 불이 있는 것을 보았다. 화로 좌우에는 다섯 개의 조롱박이 놓여 있었는데, 조롱박 안에는 모두 정련된 금단이 들어 있었다. 대성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 물건은 신선가의 지극한 보배라. 늙은 손은 도를 깨달은 이래 안팎이 같다는 이치를 알아차렸으니 나도 금단 얼마를 얻어 도움을 받고자 하였으나 집에 이르러서는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 인연이 있어 또 이 물건을 만났으니 노자가 없는 틈에 내가 몇 알을 먹어 새 맛을 보겠다.” 그는 곧 그 조롱박을 모두 쏟아 내어 모조리 먹어 버렸는데, 마치 볶은 콩을 먹는 것과 같았다. 얼마 지나자 단이 배를 채우고 술이 깨어, 그는 다시 스스로 헤아려 말했다. “큰일이다! 큰일이다! 이 화는 하늘보다도 크다. 만약 옥황상제의 귀에 들어가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 가자! 가자! 가자! 하계로 내려가 왕이 되는 것만 못하겠다!” 그는 곧 도솔궁에서 달려 나와 옛길로 가지 않고 서천문을 통해 은신법을 부려 달아났다. 곧 구름머리를 누르고 화과산 경계로 돌아왔다. 바라보니 깃발이 번쩍이고 창과 극이 빛나고 있었으니, 알고 보니 사건장과 칠십이 동의 요왕들이 그곳에서 무예를 익히고 있었다. 대성이 높이 외쳤다. “작은 것들아! 내가 왔다!” 뭇 괴물들이 병기를 내버리고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성께서는 참으로 마음이 넓으시옵니다! 저희를 오래도록 내버려 두고 돌아보지 않으셨나이다!” 대성이 말했다.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말하면서 걸어 곧장 동천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사건장이 청소하고 쉴 자리를 마련하여 머리를 조아려 예를 마치자, 모두 말했다. “대성께서 하늘에 계신 이 백십 년 동안 실로 무슨 벼슬을 받으셨나이까?”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겨우 반년 남짓인데, 어찌 백십 년이라 하는가?” 건장들이 말했다. “하늘의 하루가 곧 하계의 일 년이옵니다.” 대성이 말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옥황상제께서 나를 아껴 과연 ‘제천대성’으로 봉하시고, 제천부 한 채를 세우고 또 안정과 영신 두 관사를 두어 관사마다 선리를 두어 시위하게 하셨다. 그 뒤에 내가 하는 일이 없다고 보시고는 나를 시켜 반도원을 맡아 보게 하셨다. 최근에 왕모낭랑이 ‘반도대회’를 베푸셨는데 나를 청하지 않으시기에, 나는 그 청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요지에 가서 그의 선품과 선주를 모두 훔쳐 먹었다. 요지에서 나와 비틀거리다 잘못 노군의 궁궐에 들어가, 또 그의 다섯 조롱박 금단도 훔쳐 먹었다. 다만 옥황상제께서 죄를 물을까 두려워 이제 막 천문을 나온 것이다.” 뭇 괴물들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곧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맞이하고, 야자술을 돌그릇에 가득 부어 올렸다. 대성이 한 모금 마시고는 곧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찡그리고 말했다. “맛이 없다! 맛이 없다!” 붕과 파 두 장수가 말했다. “대성께서 천궁에서 선주와 선식을 드셨으니 야자술이 입에 달지 않으신 것이옵니다. 옛말에 ‘좋든 싫든 고향의 물’이라 하였나이다.” 대성이 말했다. “너희야말로 ‘가깝든 멀든 고향 사람’이로구나. 내가 오늘 아침 요지에서 실컷 마실 때에 그 긴 회랑 아래에 많은 병과 항아리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모두 그 옥액과 경장이었다. 너희는 아직 맛보지 못하였다. 내가 다시 가서 그 몇 병을 훔쳐 오겠으니, 너희는 각각 반 잔씩만 마셔도 하나하나 장생불로하리라.” 뭇 원숭이들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대성은 곧 동굴 문을 나서 다시 한 번 근두운을 돌려 은신법을 부리고 곧장 반도회가 열린 곳에 이르렀다. 요지 궁궐로 들어가니, 그 술을 빚고 지게미를 만지고 물을 나르고 불을 때던 몇 사람이 아직 코를 골며 자고 있어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큰 것을 좌우 겨드랑이에 둘씩 끼고 두 손으로 둘을 들어 곧 구름머리를 돌려 돌아와, 뭇 원숭이와 동굴 안에서 만나 ‘선주회’를 열고 각각 몇 잔씩 마시며 즐거워한 것은 여기서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말하자면, 그 칠의선녀는 대성의 정신법을 받은 뒤 한 주천이 지나서야 비로소 풀릴 수 있었다. 그들은 각각 꽃바구니를 들고 돌아가 왕모에게 아뢰었다. “제천대성이 법술을 부려 저희를 묶어 두었기에 이렇게 늦게 왔나이다.” 왕모가 물었다. “너희는 반도를 얼마나 땄느냐?” 선녀들이 말했다. “작은 복숭아 두 바구니와 중간 복숭아 세 바구니뿐이옵니다. 뒤쪽에 이르니 큰 복숭아는 반 개도 없사오니, 생각건대 모두 대성이 훔쳐 먹은 듯하옵니다. 또 찾고 있는 사이에 뜻밖에도 대성이 걸어 나와 난폭하게 때리며 또 잔치에 누구를 청하는지 물었나이다. 저희가 지난 잔치의 일을 한 차례 말씀드렸더니, 그가 저희를 정신법으로 묶어 두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사오며, 이제야 겨우 풀려 돌아왔나이다.” 왕모가 이 말을 들으시고 곧 옥황상제를 뵈러 가 그 앞의 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그 술을 빚던 한 떼의 사람들이 선관들과 함께 와서 아뢰었다.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사오나 ‘반도대회’를 어지럽히고 옥액과 경장을 훔쳐 마셨으며, 그 팔진과 백 가지 맛도 모두 훔쳐 먹었나이다.” 또 네 명의 대천사가 와서 아뢰었다. “태상도조께서 오셨나이다.” 옥황상제가 곧 왕모와 함께 나가 맞이하였다. 노군이 조례를 마치고 말했다. “노도의 궁중에서 ‘구전금단’ 얼마를 정련하여 폐하의 ‘단원대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도적에게 훔쳐 갔기에 특별히 폐하께 아뢰어 알리려 하였소.” 옥황상제가 이 아룀을 받고 두려워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제천부의 선리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손대성이 맡은 직분을 지키지 않고 어제부터 나가 놀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사오며,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나이다.” 옥황상제는 의심과 근심을 더하였다. 그때 적각대선이 또 머리를 조아려 위에 아뢰었다. “신은 왕모의 조서를 받들어 어제 잔치에 나아가려다가 우연히 제천대성을 만났사온데, 신에게 만세께서 뜻을 내리시어 그로 하여금 신 등을 청하여 먼저 통명전에 가서 예를 익힌 뒤에 잔치에 가게 하라 하셨다 하였나이다. 신이 그 말대로 곧 통명전 밖으로 돌아갔으나 만세의 용거와 봉련을 보지 못하였기에 또 급히 이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나이다.” 옥황상제는 더욱 크게 놀라 말했다. “이 놈이 성지를 거짓 전하여 어진 경을 속였으니, 어서 규찰영관을 시켜 이 놈의 자취를 수색하게 하라!” 영관이 성지를 받들어 곧 전각을 나가 두루 수색하여 자세한 사정을 모두 알아냈다. 돌아와 아뢰었다. “천궁을 어지럽힌 자는 바로 제천대성이옵니다.” 그리고는 앞의 일을 한 차례 낱낱이 아뢰었다.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였다. 곧 사대천왕을 보내고 이천왕과 나타태자를 함께하게 하여, 이십팔수와 구요성관과 십이원진과 오방게제와 사치공조와 동서성두와 남북이신과 오악사독과 보천성상을 점검하여 모두 십만 천병을 이끌고 십팔 가닥의 천라지망을 펼쳐 하계로 내려가 화과산을 포위하고 반드시 그 놈을 사로잡아 다스리게 하였다. 뭇 신들이 즉시 군사를 일으켜 천궁을 떠났다. 이들이 떠나니,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누런 바람이 자욱이 불어 하늘을 가려 어두워지고, 자줏빛 안개가 피어올라 땅을 덮어 어두컴컴하였다. 다만 요망한 원숭이가 상제를 업신여긴 까닭에 뭇 성인이 속세로 내려오게 되었도다. 사대천왕과 오방게제라. 사대천왕은 권세를 총괄하고, 오방게제는 많은 병사를 조율하였다. 탑을 든 이정은 중군에서 호령을 맡고, 사나운 나타는 전부의 선봉이 되었다. 나후성은 앞장서 검점하고 계도성은 뒤따르며 우뚝하였으며, 태음성은 정신이 드높고 태양성은 밝게 비추었다. 오행성은 유난히 호걸이요, 구요성은 다투기를 가장 좋아하였다. 원진성은 자오묘유로 하나하나가 큰 힘을 지닌 천정이었다. 오온과 오악은 동서로 벌여 섰고, 육정과 육갑은 좌우로 행군하였다. 사독의 용신은 위아래로 나뉘었고, 이십팔수는 빽빽하게 겹겹이 늘어섰다. 각항저방은 총령이 되었고, 규루위묘는 뒤집기를 익혔으며, 두우여허위실벽과 심미기성은 하나하나 능하였고, 정귀류성장익진은 창을 돌리고 검을 추며 위령을 드러냈다. 구름을 멈추고 안개를 내리며 속세에 임하여, 화과산 앞에 영채를 세웠다. 시에 이르기를, 하늘이 낳은 원숭이 왕은 변화가 많아, 단도 훔치고 술도 훔치며 산속 둥지에서 즐겼도다. 다만 반도회를 어지럽힌 까닭에, 십만 천병이 그물을 펼쳤도다. 그때 이천왕이 명을 내려 뭇 천병에게 영채를 세우게 하고, 그 화과산을 물 한 방울도 새지 않게 에워쌌다. 위아래로 십팔 가닥의 천라지망을 펼치고, 먼저 구요의 사나운 별들을 보내 싸움에 나서게 하였다. 구요성이 곧 군사를 이끌고 곧장 동굴 밖에 이르니, 그 동굴 밖에서 크고 작은 원숭이 떼가 뛰어오르며 장난치는 것이 보였다. 성관이 엄한 소리로 높이 외쳤다. “이 작은 요괴야! 네 대성은 어디 있느냐? 우리는 상계에서 보낸 천신으로, 이곳에 와서 반역한 네 대성을 항복시키려 한다. 그를 시켜 어서 와서 항복하게 하라. 만약 반 개의 ‘아니오’라는 말이라도 한다면 너희를 모조리 죽이리라!” 그 작은 요괴가 황급히 달려 들어가 알렸다. “대성, 큰일 났나이다! 큰일 났나이다! 밖에 아홉 명의 흉악한 신이 있어 입으로 상계에서 온 천신이라 일컬으며 대성을 항복시키려 하나이다.” 그 대성은 마침 칠십이 동의 요왕과 사건장과 함께 선주를 나누어 마시고 있었는데, 이 보고를 듣고도 태연히 상대하지 않으며 말했다.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면 그만, 문 앞의 옳고 그름은 상관하지 말라!”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또 한 떼의 작은 요괴가 뛰어와 말했다. “그 아홉 흉신이 악담과 욕설을 퍼부으며 문 앞에서 싸움을 걸고 있나이다!”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상대하지 말라. ‘시와 술로 오늘의 즐거움을 도모하고, 공명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묻지 말라.’”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떼의 작은 요괴가 와서 알렸다. “대왕님! 그 아홉 흉신이 이미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나이다!” 대성이 노하여 말했다. “이 못된 털 신들, 심히 무례하구나! 본래 그들과 시비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찌 문 앞까지 찾아와 나를 업신여기는가?” 그는 곧 외뿔귀왕에게 명하여 칠십이 동의 요왕을 거느리고 진을 나서게 하고, 늙은 손은 사건장을 거느리고 뒤를 따랐다. 그 귀왕이 급히 요병을 이끌고 문을 나가 적을 맞이하였으나, 구요의 사나운 별들이 일제히 덮쳐 죽이니 철판교 머리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였다. 떠들고 있는 사이에 대성이 이르렀다. 그는 “길을 열라!” 하고 한마디 외치고는 쇠방망이를 뽑아 한 번 흔드니 사발만큼 굵고 한 길 두 자 길이가 되었으며, 자세를 풀어 치고 나왔다. 구요성 중에 누가 감히 맞서겠는가, 순식간에 쳐서 물리쳤다. 그 구요성이 진세를 갖추고 서서 말했다. “이 죽고 사는 것도 모르는 필마온 같으니! 네가 십악의 죄를 지었으니, 먼저 복숭아를 훔치고 뒤에 술을 훔쳤으며, 반도대회를 어지럽히고 또 노군의 선단을 훔쳤으며, 또 어주를 훔쳐 이곳에 와서 즐기고 있다. 네가 죄 위에 죄를 더하였으니 어찌 알지 못하는가?”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이 몇 가지 일은 실로 있다! 실로 있다! 그런데 이제 너는 어쩌겠는가?” 구요성이 말했다. “나는 옥황상제의 금지를 받들어 무리를 이끌고 이곳에 와서 너를 항복시키려 하니, 어서 속히 귀의하라! 이 뭇 생령들이 목숨을 바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이 산을 짓밟아 평평하게 만들고 이 동굴을 뒤집어엎으리라!” 대성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생각건대 너희 못된 털 신들에게 무슨 법력이 있기에 감히 망령된 말을 하는가. 가지 말라, 늙은 손의 방망이 한 대를 받아라!” 이 구요성이 일제히 뛰어올랐다. 그 미후왕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금고봉을 휘둘러 좌로 막고 우로 막으며 그 구요성을 싸워 힘줄이 풀리고 기운이 빠지게 하니, 하나하나 병기를 거꾸로 끌고 진을 무너뜨려 달아나 급히 중군 장막 아래로 들어가 탑을 든 천왕에게 말했다. “그 원숭이 왕은 과연 몹시 사납나이다! 저희가 그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진을 무너뜨려 왔나이다.” 이천왕이 곧 사대천왕과 이십팔수를 조율하여 한길로 군사를 내어 싸우게 하였다. 대성도 태연히 두려워하지 않고 외뿔귀왕과 칠십이 동의 요왕과 네 건장한 장수를 불러 동굴 문 밖에서 진세를 이루었다. 보라, 이 혼전은 참으로 놀라웠다. 찬 바람이 쌩쌩 불고 괴이한 안개가 어둑어둑하였다. 저쪽에는 깃발이 채색을 날리고 이쪽에는 창과 극이 빛을 내었다. 자욱이 밝은 투구는 해를 비추니 하늘을 찌르는 은 경쇠 같고, 겹겹이 빛나는 갑주는 바위 벼랑에 쌓였으니 땅을 누르는 빙산 같았다. 큰 방패칼은 구름을 날리고 번개를 잡으며, 닥나무 흰 창은 안개를 건너고 구름을 꿰뚫었다. 네모 하늘 창과 범눈 채찍은 삼밭처럼 벌여 섰고, 청동 검과 사명 삽은 빽빽한 나무처럼 진을 이루었다. 굽은 활과 단단한 쇠뇌와 독수리 깃 화살, 짧은 몽둥이와 뱀 창은 넋을 앗아 갔다. 대성의 여의봉 한 자루는 이리저리 뒤집히며 천신과 싸웠다. 싸움은 그리하여 하늘에는 새도 지나지 못하고 산속에는 호랑이와 이리가 달렸다. 모래를 날리고 돌을 굴리니 천지가 어두워지고, 흙을 뿌리고 먼지를 날리니 우주가 어두컴컴하였다. 다만 둥둥 쿵쿵 천지를 놀라게 하는 소리만 들렸고, 위엄이 넘실넘실 귀신을 진동시켰다. 이 한바탕 싸움은 진시에 진을 벌인 이래 어지러이 싸워 해가 서산에 지도록 이어졌다. 그 외뿔귀왕과 칠십이 동의 요괴들은 모조리 뭇 천신에게 사로잡혀 갔고, 다만 사건장과 그 원숭이 떼만이 달아나 수렴동 밑바닥 깊숙이 숨었다. 이 대성은 방망이 한 자루로 사대천신과 탑을 든 이정과 나타태자를 막아 모두 공중에 있었는데, 한참을 싸우다가 대성이 날이 저무는 것을 보고 곧 털 한 줌을 뽑아 입에 넣고 씹어 뿜어 내며 “변하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곧 천백 명의 대성으로 변하여 모두 금고봉을 휘둘러 나타태자를 물리치고 다섯 천왕을 쳐부수었다. 대성이 승리를 거두고 털을 거두어들인 뒤 급히 몸을 돌려 동굴로 돌아왔는데, 이윽고 철판교 머리에서 네 건장한 장수가 뭇 무리를 거느리고 머리를 조아려 그 대성을 맞이하며 목메어 크게 세 번 울고 또 흐흐 하하 크게 세 번 웃었다. 대성이 말했다. “너희는 나를 보고 어찌 울다가 또 웃는가?” 네 건장한 장수가 말했다. “오늘 아침 무리와 장수들을 이끌고 천왕과 교전하였는데, 칠십이 동의 요왕과 외뿔귀왕이 모두 뭇 신에게 사로잡혔사오니 저희는 목숨을 건져 달아났기에 마땅히 울어야 하옵니다. 이제 대성께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셨고 상한 곳이 없으시니 마땅히 웃어야 하옵니다.” 대성이 말했다. “승패는 병가의 떳떳한 일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만 명을 죽이면 스스로 삼천을 잃는다’ 하였다. 더구나 사로잡혀 간 두목들은 호랑이와 표범과 이리와 벌레와 오소리와 노루와 여우와 낙타 같은 무리이니, 나와 같은 종류는 하나도 상하지 않았는데 어찌 번뇌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은 비록 내가 분신법을 부려 쳐서 물리쳤으나, 다시 우리 산기슭에 영채를 세울 것이다. 우리는 우선 굳게 지키며 배부르게 한 끼 먹고 마음 놓고 자며 정신을 기르자. 날이 밝으면 내가 큰 신통을 부려 이 천장들을 사로잡아 뭇 무리의 원수를 갚는 것을 보아라.” 네 장수와 뭇 원숭이가 야자술을 몇 사발 마시고 마음 놓고 잠든 것은 여기서 접어 두기로 하자. 그 사대천왕이 군사를 거두어 싸움을 그치자 뭇 사람들이 각각 공을 보고하였다. 호랑이와 표범을 사로잡은 자도 있고, 사자와 코끼리를 사로잡은 자도 있으며, 이리와 벌레와 여우와 낙타를 사로잡은 자도 있었으나, 원숭이 요정은 하나도 잡지 못하였다. 그때 과연 다시 수레 영채를 세우고 큰 진을 치고, 공을 세운 장수들을 상으로 위로하고 천라지망의 병사들에게 분부하여, 저마다 방울을 들고 호령을 외치며 화과산을 에워싸고 오직 내일 아침의 큰 싸움만을 기다렸다. 각자 명을 받들어 곳곳을 삼가 지켰다.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요망한 원숭이가 난을 일으켜 천지를 놀라게 하니, 그물을 펼치고 덫을 쳐 밤낮으로 지켰도다. 결국 날이 밝은 뒤 어떻게 다스렸을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회 관음부회문원인(觀音赴會問原因) · 소성시위항대성(小聖施威降大聖) 말하자면, 하늘의 신장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대성이 편안히 쉬고 있는 일은 잠시 미루어 두고, 남해 보타락가산의 대자대비 구고구난 영감관세음보살의 일을 말하겠다. 보살은 왕모낭랑의 청을 받아 반도대회에 나아간 이래로, 큰 제자 혜안행자와 함께 보각요지에 올랐다. 그런데 그곳은 몹시 황량하고 쓸쓸하였으며, 잔치 자리는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비록 몇 분의 천선이 있었으나 아무도 자리에 앉지 아니한 채, 모두 그곳에서 어지럽게 떠들며 의논하고 있었다. 보살이 뭇 신선과 서로 만나 인사를 마치자, 뭇 신선이 앞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자세히 아뢰었다. 보살이 말했다. “성대한 잔치도 없고 또 술잔도 돌리지 않으니, 그대들은 빈승을 따라 함께 옥황상제를 뵈러 가도록 하라.” 뭇 신선이 기쁜 얼굴로 따라갔다. 통명전 앞에 이르니, 이미 사대천사와 적각대선 등 무리가 모두 이곳에 와 있었는데, 보살을 맞이하며 곧 옥황상제께서 번민하시어 천병을 조발하여 요괴를 잡으려 하셨으나 아직 돌아오지 못한 까닭을 말하였다. 보살이 말했다. “나는 옥황상제를 뵙고자 하니, 번거롭게 여기지 마시고 전하여 아뢰어 주기 바란다.” 천사 구홍제가 곧 영소보전에 들어가 아뢰어 선입을 명받았다. 그때 마침 태상노군이 위에 있고 왕모낭랑이 뒤에 있었다. 보살이 뭇 신선을 이끌고 함께 안으로 들어가 옥황상제와 예를 마치고, 다시 노군과 왕모를 뵙고 각기 자리에 앉았다. 보살이 곧 물었다. “반도성회는 어떻게 되었나이까?” 옥황상제가 말했다. “해마다 잔치를 열어 청하면 즐겁고 기뻤는데, 올해는 요망한 원숭이가 난을 일으켰으니 참으로 헛되이 청한 셈이로다.” 보살이 말했다. “요망한 원숭이는 본래 어디서 나온 것이옵니까?” 옥황상제가 말했다. “요망한 원숭이는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의 돌알에서 화하여 태어난 것이라. 그때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니 금빛 광채가 뻗어 올라 북두의 궁궐을 뚫을 듯하였다. 처음에는 마음에 두지 않았으나 뒤이어 정기를 이루어 용을 항복시키고 범을 굴복시켰으며, 스스로 죽은 자의 명부에서 이름을 지웠도다. 그때 마침 용왕과 염라대왕이 아뢰어 올렸도다. 짐이 그를 잡고자 하였는데, 이때 장경성이 아뢰었다. ‘삼계 사이에서 구규를 지닌 자는 모두 신선이 될 수 있나이다.’ 짐이 곧 교화를 베풀어 어진 이를 길러, 그를 상계로 불러들여 어마감의 필마온 벼슬에 봉하였도다. 그런데 그 녀석이 벼슬이 작음을 싫어하여 천궁을 배반하였다. 이에 곧 이천왕과 나타태자를 보내어 잡아 항복시키게 하고, 다시 조서를 내려 위무하여 상계로 불러들여 ‘제천대성’이라는 벼슬을 봉하였으나 다만 벼슬만 있고 녹봉은 없었다. 그가 맡아 관리할 일이 없어 동으로 놀고 서로 거닐며 돌아다녔도다. 짐이 또 다른 탈이 생길까 염려하여 그에게 반도원을 대신 관리하게 하였더니, 그가 또 법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늙은 나무의 큰 복숭아를 모조리 훔쳐 먹었다. 잔치를 베풀 때에 이르러 그는 녹봉 없는 자라 청하지 아니하였더니, 그가 곧 꾀를 내어 적각대선을 속여 넘기고는 스스로 그 모습으로 변하여 잔치에 들어가, 선가의 음식과 선가의 술을 모조리 훔쳐 먹고, 또 노군의 선단을 훔치고 또 어주를 얼마쯤 훔쳐다가 본산의 뭇 원숭이와 함께 즐겼도다. 짐이 마음으로 이 때문에 번민하여 십만 천병을 조발하고 천라지망을 쳐서 잡아 굴복시키려 하였으나, 하루가 지나도록 회보가 없으니 승패를 알 수 없구나.” 보살이 이 말을 듣고 곧 혜안행자에게 명하여 말했다. “너는 어서 천궁을 내려가 화과산에 이르러 군의 형편이 어떠한지 살펴보라. 만일 적을 만나 싸우게 되거든 곧 가서 한몫 도와 공을 세우되, 반드시 실지대로 돌아와 아뢰어라.” 혜안행자가 옷과 치마를 바로 정돈하고 쇠몽둥이 하나를 쥐고 구름을 타고 궐을 떠나 곧장 산 앞에 이르렀다. 그 천라지망이 빽빽하고 겹겹이 쳐져 있으며, 각 영문에서 방울을 들고 호령을 외우며 그 산을 물 샐 틈 없이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혜안이 걸음을 멈추고 외쳤다. “영문을 지키는 천정들은, 번거롭지만 나를 전하여 알려 주기 바란다. 나는 이천왕의 둘째 태자 목차요, 남해 관음의 큰 제자 혜안이며, 특별히 군의 형편을 살피러 왔다.” 그 영채 안의 오악 신병이 곧 원문 안으로 전하여 들어갔다. 이윽고 허일서와 묘일계와 성일마와 방일토가 그 말을 중군 장막 아래로 전하였다. 이천왕이 영기를 내려 천라지망을 열고 그를 들여보내라 하였다. 이때 동방이 비로소 밝았다. 혜안이 영기를 따라 들어가 사대천왕과 이천왕을 보고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치자 이천왕이 말했다. “아이야, 너는 어디서 왔느냐?” 혜안이 아뢰었다. “어리석은 아들은 보살을 따라 반도회에 갔사온데, 보살께서 승회가 황량하고 요지가 적막함을 보시고 뭇 신선과 어리석은 아들을 이끌고 옥황상제를 뵈러 가셨나이다. 옥황상제께서 부왕 이하가 하계로 내려가 요망한 원숭이를 잡은 일을 자세히 말씀하시며, 하루가 지나도록 회보가 없어 승패를 알 수 없다 하시기에, 보살께서 어리석은 아들에게 명하여 이곳에 이르러 실상을 살피게 하셨나이다.” 이천왕이 말했다. “어제 이곳에 이르러 영을 세우고 진을 쳤는데, 구요성에게 명하여 싸움을 걸게 하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크게 신통을 부려 구요성이 모두 패하여 달아났도다. 그 뒤 우리가 친히 병사를 이끌고 나아갔더니 그 녀석도 또한 진세를 펼쳤다. 우리 십만 천병이 그와 저녁까지 어지럽게 싸웠으나 그가 분신법을 부려 우리를 물리쳤다. 병사를 거두어 살펴보니 다만 이리와 벌레와 범과 표범 따위만 몇 마리 잡았을 뿐, 요망한 원숭이는 반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오늘도 아직 나가 싸우지 않았다.” 말을 마치지 못하였는데, 홀연히 원문 밖에서 누군가 와서 알렸다. “그 대성이 원숭이 정령 한 무리를 이끌고 밖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나이다.” 사대천왕과 이천왕과 태자가 바로 출병을 의논하고 있었다. 목차가 말했다. “부왕이시여, 어리석은 아들이 보살의 분부를 입어 내려와 소식을 살피라 하셨사온데, 싸움이 있거든 가서 한몫 도우라 하셨나이다. 이제 재주는 없사오나 가고자 하오니, 그가 어찌 큰 대성인지 보게 하소서!” 천왕이 말했다. “아이야, 네가 보살을 따라 수행한 지 여러 해이니 필시 어느 정도 신통이 있으리라. 부디 마음을 단단히 먹거라.” 과연 좋은 태자로다. 두 손으로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수놓은 옷을 한 번 여미고, 원문을 뛰어나가 크게 외쳤다. “누가 제천대성인가?” 대성이 여의봉을 꼿꼿이 세우고 소리쳐 응하였다. “노손이 바로 그다. 너는 어떤 자이기에 감히 나에게 묻는가?” 목차가 말했다. “나는 이천왕의 둘째 태자 목차요, 지금 관음보살 보좌 앞에서 제자로서 불교를 수호하고 있으니, 법명은 혜안이라 하느니라.” 대성이 말했다. “네가 남해에서 수행하지 않고 어찌 이곳에 와서 나를 보려 하는가?” 목차가 말했다. “나는 사부의 명을 입고 군의 형편을 살피러 왔는데, 네가 이처럼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보고 특별히 너를 잡으러 왔노라!” 대성이 말했다. “네가 감히 그런 큰소리를 치는가! 잠시도 달아나지 마라! 노손의 이 몽둥이를 맞아 보아라!” 목차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쇠몽둥이를 들어 마주 받았다. 그 두 사람이 저 반산 중턱 원문 밖에 서서 겨루니, 이 싸움 참으로 좋도다. 몽둥이가 몽둥이를 마주하나 쇠는 각기 다르고, 병사가 비록 병사와 마주하나 사람은 서로 다르도다. 하나는 태을산선으로 대성이라 불리고, 하나는 관음의 제자로 정원룡이로다. 온 쇠몽둥이는 천 번 두드려 만든 것이요, 육정육갑이 신통한 공을 부렸도다. 여의봉은 천하를 정한 물건이요, 바다를 진압하는 신진으로 법력이 크도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참으로 맞수라, 오고 가는 초식이 실로 무궁하도다. 이쪽의 진수몽둥이는 만천 가지 사나움으로 허리를 감고 줄을 꿰듯 빠르기가 바람 같고, 저쪽의 협창봉은 헛됨이 없어 좌로 막고 우로 가리니 어찌 서로 용납하리오. 저쪽 진에는 깃발이 번쩍번쩍하고, 이쪽 진에는 북소리 둥둥 울린다. 만 명의 천장이 둥글게 에워싸고, 한 굴의 요망한 원숭이가 무리지어 모였도다. 괴이한 안개와 근심스러운 구름이 지부에 가득하고, 이리 연기와 살기 어린 기운이 천궁을 쏘아 올린다. 어제 아침의 혼전은 오히려 괜찮았으나, 오늘의 다툼은 더욱더 사나웁도다. 원숭이 왕의 참된 본사를 부러워할 만하니, 목차는 다시 패하여 또 살아 달아났도다. 이 대성이 혜안과 싸운 지 오륙십 합에 이르자, 혜안의 팔뚝이 시리고 저려 적을 맞이할 수 없어 헛되이 한 번 몽둥이를 흔들어 보이고 진을 무너뜨려 달아났다. 대성도 또한 원숭이 병사를 거두어 동문 밖에 진을 치고 머물렀다. 그런데 천왕의 영문 밖에서는 크고 작은 천병들이 태자를 맞아들여 큰길을 비켜 주었고, 태자는 곧장 원문에 들어가 사천왕과 이탁탑과 나타를 보고는 숨을 헐떡이며 아직 숨이 가라앉지 않은 채 말했다. “좋은 대성이로다! 좋은 대성이로다! 참으로 신통이 광대하도다! 아이가 싸워 이기지 못하고 또 진을 무너뜨려 돌아왔나이다!” 이천왕이 이를 보고 마음이 놀라워 곧 표문을 써서 도움을 청하게 하고, 대력귀왕과 목차태자를 보내어 하늘에 올라 아뢰게 하였다. 두 사람은 그때 감히 머물지 못하고 천라지망을 뚫고 나가 상서로운 구름을 일으켰다. 잠깐 사이에 곧장 통명전 아래에 이르러 사대천사를 보고, 인도되어 영소보전에 이르러 표장을 올렸다. 혜안이 또 보살을 뵙고 예를 갖추었다. 보살이 말했다. “네가 살펴본 것이 어떠하냐?” 혜안이 아뢰었다. “처음 명을 받들고 화과산에 이르러 천라지망의 문을 열게 하고 아버님을 뵈었사온데, 사부께서 보내신 뜻을 아뢰었나이다. 부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제 그 원숭이 왕과 한바탕 싸웠으나 다만 그 범과 표범과 사자와 코끼리 따위만 잡았을 뿐, 원숭이 정령은 하나도 잡지 못하였다.’ 하셨나이다. 바로 이야기하는 중에 그가 또 싸움을 청하기에, 제자가 쇠몽둥이를 들어 그와 오륙십 합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진을 무너뜨려 영으로 돌아왔나이다. 아버님께서 이 때문에 대력귀왕과 제자를 함께 상계로 보내어 도움을 청하게 하셨나이다.” 보살이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말하자면, 옥황상제가 표장을 뜯어 보시니 도움을 청하는 말이 있었으므로 웃으며 말했다. “가증스러운 이 원숭이 놈이 무슨 큰 수단이 있다고 감히 십만 천병을 당해 내려 하는고! 이천왕이 또 도움을 청해 왔으니, 어느 길의 신병으로 하여금 돕게 할꼬?” 말이 끝나기 전에 관음이 두 손을 모으고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넓히소서. 빈승이 한 신을 천거하오니 이 원숭이를 잡을 수 있나이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천거하는 자가 어떤 신인고?” 보살이 말했다. “바로 폐하의 조카인 현성 이랑진군이옵니다. 지금 관주 관강어귀에 살면서 하방의 향화를 받고 있나이다. 그는 옛적에 일찍이 여섯 요괴를 힘으로 베었고, 또 매산 형제와 장막 앞 천이백 초두신이 있사오니 신통이 광대하옵니다. 다만 그는 조발은 들으나 선소는 듣지 아니하오니, 폐하께서 조병의 뜻을 내리시어 그로 하여금 힘을 돕게 하시면 곧 잡을 수 있나이다.” 옥황상제가 이 말을 듣고 곧 조병의 뜻을 전하여 대력귀왕을 보내어 조서를 가지고 가게 하였다. 그 귀왕이 조서를 받들고 곧 구름을 일으켜 곧장 관강어귀에 이르렀다.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바로 진군의 사당에 이르렀다. 이미 문을 지키는 귀판이 있어 안으로 전하여 알렸다. “밖에 천사가 있어 조서를 받들고 왔나이다.” 이랑이 곧 뭇 형제와 함께 문을 나와 조서를 맞이하고, 향을 사르고 조서를 펼쳐 읽었다. 그 위에 이르기를, “화과산의 요망한 원숭이 제천대성이 난을 일으켰다. 궁중에서 복숭아를 훔치고 술을 훔치고 단약을 훔쳐 반도대회를 어지럽혔으므로, 지금 십만 천병과 십팔 가닥 천라지망으로 산을 에워싸 잡아 굴복시키려 하였으나 아직 이기지 못하였다. 이제 특별히 어진 조카와 의로운 형제들을 조발하여 곧 화과산에 나아가 힘을 도와 토벌하게 하노니, 성공한 뒤에는 높이 승진시키고 거듭 상을 내리리라.” 진군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천사는 청하여 돌아가시게. 나는 마땅히 곧 가서 칼을 뽑아 도울 것이오.” 귀왕이 돌아가 아뢴 일은 여기서 말하지 않으리라. 이 진군이 곧 매산의 여섯 형제를 불렀으니, 바로 강, 장, 요, 이 네 태위와 곽신, 직건 두 장군이라. 그들을 전각 앞에 모아 놓고 말했다. “방금 옥황상제께서 우리들을 화과산으로 조발하여 요망한 원숭이를 잡아 항복받게 하셨으니, 함께 가도록 하자.” 뭇 형제가 모두 기뻐하며 가고자 하였다. 이에 곧 본부의 신병을 점검하고, 매와 개를 끌고 쇠뇌를 걸고 활을 당기며, 사나운 광풍을 일으켜 순식간에 동쪽 큰 바다를 건너 곧장 화과산에 이르렀다. 그 천라지망이 빽빽하고 겹겹이 쳐져 있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에 외쳤다. “천라지망을 친 신장들은 들어라. 나는 이랑현성진군으로, 옥황상제의 조발을 입어 요망한 원숭이를 잡으러 온 자이니, 어서 영문을 열어 길을 터 주어라.” 얼마 지나지 않아 각 신이 한 겹 한 겹 전하여 들였다. 사대천왕과 이천왕이 모두 원문을 나와 맞이하고, 서로 인사를 마친 뒤 승패의 일을 물었다. 천왕이 위의 일을 하나하나 자세히 진술하였다. 진군이 웃으며 말했다. “소성이 이곳에 왔으니 반드시 그와 한바탕 변화를 겨루어야 하겠소. 여러 공은 천라지망을 위쪽에는 덮지 말고 다만 사방을 빽빽하게만 하여, 나로 하여금 겨루게 하시오. 만일 내가 그에게 지거든 여러 공이 도울 필요 없이 나에게 형제들이 있어 받쳐 줄 것이오. 만일 내가 그를 이기거든 여러 공이 결박할 필요 없이 나에게 형제들이 있어 손을 쓸 것이오. 다만 탁탑천왕은 나와 함께 조요경을 들어 공중에 머물러 서시오. 그가 한때 진을 무너뜨려 다른 곳으로 달아날까 두려우니, 반드시 나를 위하여 밝게 비추어 그를 놓치지 마시오.” 천왕이 각기 사방을 나누어 지키고, 뭇 천병이 각기 늘어서서 진을 친 뒤였다. 이 진군이 네 태위와 두 장군을 거느리고 자신까지 아울러 일곱 형제가 영을 나가 싸움을 걸었다. 뭇 장수에게 분부하여 영채를 굳게 지키고 매와 개를 온전히 거두게 하였다. 뭇 초두신이 영을 받들자, 진군은 그 수렴동 밖에 이르러 그 한 무리 원숭이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반룡진세를 펼친 것을 보았다. 중군에는 한 가닥 깃발이 서 있었는데, 그 위에 ‘제천대성’ 네 글자가 씌어 있었다. 진군이 말했다. “저 발칙한 원숭이가 어찌 하늘과 가지런한 직책을 일컬을 수 있단 말인가?” 매산의 여섯 아우가 말했다. “잠시 감탄은 그치고 싸움을 청하러 갑시다.” 그 영문 어귀의 작은 원숭이가 진군을 보고 급히 달려가 알렸다. 그 원숭이 왕이 곧 여의금고봉을 잡아당겨 쥐고, 황금 갑옷을 정돈하고, 보운리를 신고, 자금관을 한 번 눌러 바로잡고는 영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급히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니, 그 진군의 생김새가 과연 청기하고 차림새가 또 수려하였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용모는 청수하고 모습은 당당하며, 두 귀는 어깨에 늘어지고 눈에는 광채가 있도다. 머리에는 삼산비봉모를 쓰고, 몸에는 한 벌 연한 누른빛 도포를 걸쳤도다. 금실로 수놓은 신발에 반룡 버선을 받쳤고, 옥대에는 둥근 꽃과 팔보 장식을 갖추었도다. 허리에는 초승달 모양의 탄궁을 차고, 손에는 세 끝 두 날 창을 쥐었도다. 도끼로 도산을 쪼개 일찍이 어머니를 구하였고, 탄환으로 종라의 두 봉황을 쏘아 떨어뜨렸도다. 힘으로 여덟 요괴를 베어 소문이 멀리 났고, 의로 매산의 일곱 성인과 짝을 맺었도다. 마음이 높아 천가의 친척을 인정하지 않고, 성품이 오만하여 신으로 돌아가 관강에 살도다. 적성 소혜 영령성으로, 나타남이 끝이 없어 이랑이라 일컫도다. 대성이 이를 보고 히죽히죽 웃으며 금고봉을 잡아당겨 쥐고 크게 외쳤다. “너는 어느 곳의 어린 장수이기에 감히 큰 담력으로 이곳에 와서 싸움을 거는가?” 진군이 꾸짖어 말했다. “이 녀석은 눈은 있고 구슬은 없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나는 옥황상제의 외조카로, 칙봉 소혜영왕 이랑이니라. 지금 상의 명을 입고 이곳에 이르러 천궁을 배반한 네 필마온 원숭이를 잡으려 하는데, 네가 아직 죽고 사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대성이 말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옥황상제의 누이동생이 속세를 그리워하여 하계로 내려가 양군과 짝을 맺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일찍이 도끼로 도산을 쪼갠 자가 바로 너인가? 내가 너를 몇 마디 꾸짖으려 하였으나 무슨 원한이 없고, 네게 몽둥이를 한 번 때리려 하였으나 네 목숨이 아까울 뿐이다. 너 이 어린 낭군 같은 소배는 어서어서 돌아가서 너희 사대천왕을 불러 오너라.” 진군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말했다. “발칙한 원숭이! 무례하지 마라! 내 칼을 맞아라!” 대성이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하고 재빨리 금고봉을 들어 마주 받았다. 그 두 사람의 이 싸움 참으로 사납도다. 소혜 이랑신과 제천 손대성이 서로 만났으니, 이쪽은 마음이 높아 적을 업신여기는 미후왕이요, 저쪽은 얼굴이 생소하나 참된 동량을 굴복시키는 자로다. 두 사람이 처음 서로 만나니 저마다 온 힘을 다해 겨루려 하도다. 지금까지 얕고 깊음을 알지 못하였으나, 오늘에야 비로소 가볍고 무거움을 알았도다. 쇠몽둥이는 나는 용에 견줄 만하고, 신의 날은 춤추는 봉황 같도다. 왼쪽을 막고 오른쪽을 공격하며, 앞에서 맞이하고 뒤에서 비추도다. 이 진에서는 매산의 여섯 아우가 위세를 돕고, 저 진에서는 마류의 네 장수가 군령을 전하도다.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니 저마다 마음을 같이하고, 고함치고 징을 두드려 모두 흥을 돋우도다. 두 사람의 강한 칼에는 서로 틈을 엿보는 지혜가 있어, 한 번 오고 한 번 가는 데 실오라기 틈도 없도다. 금고봉은 바다 속의 보배라, 변화하고 날아올라 능히 이길 수 있도다. 만일 몸이 느리다면 목숨이 마땅히 끊어질 것이요, 다만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곧 곤경에 빠지리라. 진군이 대성과 싸운 지 삼백여 합에 이르렀으나 승패를 알 수 없었다. 그 진군이 신위를 크게 떨치고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여, 키가 만 길이나 되는 몸이 되었다. 두 손으로 세 끝 두 날 신의 날을 들어 올리니, 마치 화산 정상의 봉우리 같았으며, 푸른 얼굴에 뾰족한 어금니, 붉은 머리털로 사납게 대성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이 대성도 또한 신통을 부려 이랑의 몸뚱이와 같아지고 얼굴도 한가지로 변하여, 여의금고봉 하나를 들어 올리니 그것이 곧 곤륜산 정상에서 하늘을 받치는 기둥 같았으며, 이랑신을 막아 버렸다. 그 광경에 저 마류 원수는 벌벌 떨어 깃발을 흔들지 못하였고, 붕과 파 두 장수는 겁에 질려 칼과 검을 쓰지 못하였다. 이 진에서는 강, 장, 요, 이, 곽신, 직건이 호령을 전하여 초두신을 풀어 놓아, 저 수렴동 밖을 향해 매와 개를 놓고 쇠뇌를 걸고 활을 당겨 일제히 덮쳐 죽였다. 가련하도다, 요망한 원숭이의 네 건장한 장수를 흩어 버리고 영험한 요괴 이삼천을 사로잡았으니! 그 원숭이들은 창을 버리고 갑옷을 내던지며 검을 팽개치고 창을 버렸다. 달아나는 자는 달아나고 부르짖는 자는 부르짖으며, 산에 오르는 자는 산에 오르고 굴로 돌아가는 자는 굴로 돌아갔다. 마치 밤고양이가 잠든 새를 놀라게 한 듯, 하늘 가득 별이 흩어지듯 하였다. 뭇 형제가 승리를 거둔 일은 여기서 말하지 않으리라. 말하자면, 진군이 대성과 함께 법천상지의 규모로 변하여 싸우고 있는데, 대성이 홀연히 본영의 요망한 원숭이들이 놀라 흩어진 것을 보고 스스로 마음이 황급하여져 법상을 거두고 몽둥이를 뽑아 몸을 빼어 달아났다. 진군이 그가 진을 무너뜨려 달아나는 것을 보고 큰 걸음으로 뒤쫓아 가며 말했다. “어디로 가느냐? 어서 항복하면 네 목숨을 살려 주리라!” 대성은 싸움에 미련을 두지 않고 오직 힘껏 달렸다. 동굴 어귀에 거의 이르렀을 때 마침 강, 장, 요, 이 네 태위와 곽신, 직건 두 장군을 만났는데, 그들이 일제히 무리를 거느리고 막아서며 말했다. “발칙한 원숭이! 어디로 가느냐!” 대성이 손발이 황급하여진지라, 금고봉을 비녀처럼 만들어 귀 속에 감추고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여 참새가 되어 나무 끝에 붙어 앉았다. 그 여섯 형제가 허둥지둥 앞뒤로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자,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이 원숭이 정령을 놓쳤구나! 이 원숭이 정령을 놓쳤구나!” 바로 떠드는 중에 진군이 이르러 물었다. “형제들아, 어느 곳까지 쫓아가서 보이지 않더냐?” 뭇 신이 말했다. “방금 여기에 에워쌌는데 곧 보이지 않았나이다.” 이랑이 봉황의 눈을 둥글게 뜨고 살펴보니, 대성이 참새로 변하여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는 곧 법상을 거두고 신의 날을 내버리고 탄궁을 풀어 내리고는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여 새매가 되었다. 날개를 펼쳐 훨훨 날아가 덮쳐 때리려 하였다. 대성이 이를 보고 사르르 날개를 쳐 날아올라 한 마리 큰 가마우지가 되어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랑이 보고 급히 깃털을 떨치고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여 큰 바다학이 되어 구름 속으로 솟아올라 쪼아 대었다. 대성이 또 몸을 아래로 누르며 시내 속으로 들어가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랑이 시내 가에 이르러 종적을 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몰래 생각했다. “이 원숭이 녀석이 필시 물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틀림없이 물고기나 새우 따위로 변하였으리라. 내가 다시 한 번 변하여 그를 잡으리라.” 과연 한 번 변하여 물고기를 사냥하는 어응이 되어 아래로 흐르는 물결 위에 둥둥 떠서 잠시 기다렸다. 그 대성이 물고기로 변하여 물을 따라 바르게 헤엄치고 있는데, 홀연히 한 마리 나는 새를 보니, 푸른 솔개 같으나 깃이 푸르지 않고, 왜가리 같으나 정수리에 벼슬이 없고, 늙은 황새 같으나 다리가 붉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랑이 변하여 나를 기다리는 것이로구나!” 하고 급히 머리를 돌려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아났다. 이랑이 보고 말했다. “물보라를 일으키는 물고기가 잉어 같으나 꼬리가 붉지 않고, 쏘가리 같으나 비늘 무늬가 보이지 않고, 가물치 같으나 머리에 별이 없고, 방어 같으나 아가미에 바늘이 없구나. 그런데 어찌 나를 보자마자 돌아가는고? 필시 그 원숭이가 변한 것이리라.” 쫓아올라 사르르 부리로 한 번 쪼았다. 그 대성이 곧 물속에서 뛰어나와 한 번 변하여 물뱀이 되어 언덕 가까이 헤엄쳐 풀 속으로 들어갔다. 이랑이 그를 쪼지 못하였는데, 그가 물소리를 내며 뱀 한 마리가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대성인 줄 알아차리고는 급히 몸을 돌려 또 한 마리 붉은 벼슬을 이고 수놓은 회색 학이 되어, 긴 부리를 내밀었는데 뾰족한 쇠집게와 같았으며, 곧장 이 물뱀을 먹으려 하였다. 물뱀이 한 번 뛰어오르더니 또 한 마리 꽃느시가 되어, 멍청하고 외로운 모양으로 여뀌 난 물가에 서 있었다. 이랑이 그가 천한 것으로 변한 것을 보고, 꽃느시는 새 가운데 가장 천하고 가장 음란한 것이라 난조와 봉황과 매와 까마귀를 가리지 않고 모두와 짝을 맺는지라, 이 때문에 곁에 다가가 감싸지 않고 곧 본래의 몸을 나타내어 걸어가 탄궁을 가져다 가득 당겨, 탄환 하나로 그를 쳐서 휘청거리게 하였다. 그 대성이 그 틈을 타서 산벼랑 아래로 굴러 내려가 엎드려 또 변하여 한 채의 토지묘가 되었는데, 입을 크게 벌린 것이 마치 사당 문 같고, 이빨은 문짝으로 변하고, 혀는 보살로 변하고, 눈은 창살로 변하였다. 다만 꼬리만은 수습하기가 좋지 않아 뒤에 세워 깃대 하나로 변하였다. 진군이 벼랑 아래에 이르러 보니, 때려 넘어뜨린 느시는 없고 다만 작은 사당 하나만 있었다. 급히 봉황의 눈을 뜨고 자세히 살펴보니, 깃대가 뒤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이로구나! 그가 지금 또 그곳에서 나를 속이고 있도다. 나도 사당을 본 적이 있으나, 깃대 하나가 뒤에 세워져 있는 것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 틀림없이 이 짐승이 요술을 부리는 것이로다! 그가 나를 속여 들어오게 하면 곧 한 입에 물어뜯으리라. 내 어찌 들어가겠는가? 내가 주먹을 뽑아 먼저 창살을 부수고, 다음에 문짝을 걷어차리라!” 대성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놀라워 말했다. “사납구나! 사납구나! 문짝은 내 이빨이요, 창살은 내 눈이로다. 만일 이빨을 때리고 눈을 부순다면 어찌하면 좋으리오?” 그러고는 불쑥 범처럼 한 번 뛰어올라 또 공중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진군이 앞뒤로 어지럽게 쫓아다니는데, 네 태위와 두 장군이 일제히 몰려와 말했다. “형님, 대성을 잡았습니까?” 진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 원숭이가 방금 사당으로 변하여 나를 속였도다. 내가 막 그의 창살을 부수고 문짝을 걷어차려 하였는데, 그가 한 번 뛰어오르더니 또 아득히 종적이 없구나. 괴이하도다! 괴이하도다!” 뭇 사람이 모두 어리둥절하여 사방을 바라보았으나 다시 형체도 그림자도 없었다. 진군이 말했다. “형제들은 이곳에서 지키고 순찰하여라. 내가 올라가서 그를 찾으리라.” 곧 몸을 솟구쳐 구름을 타고 반공중에 올랐다. 그 이천왕이 조요경을 높이 들고 나타와 함께 구름 끝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진군이 말했다. “천왕이시여, 그 원숭이 왕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천왕이 말했다. “올라오지 않았소. 내가 여기에서 그를 비추고 있소.” 진군이 그 변화를 겨루고 신통을 부리고 뭇 원숭이를 잡은 일을 다 말한 뒤 말했다. “그가 사당으로 변하였는데, 막 때리려 하니 곧 가 버렸나이다.” 이천왕이 이 말을 듣고 또 조요경으로 사방을 한 번 비추고 나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진군이여, 어서 가시오! 어서 가시오! 그 원숭이가 은신법을 부려 영의 에움을 빠져나가 당신의 관강어귀로 갔소.” 이랑이 듣고 곧 신의 날을 챙겨 관강어귀로 되돌아가 쫓았다. 말하자면, 그 대성이 이미 관강어귀에 이르러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여 이랑 할아버지의 모습이 되고, 구름머리를 눌러 내려 곧장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귀판들은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하나 머리를 조아려 맞이하였다. 그가 가운데에 앉아 향화를 점검하여 살펴보니, 이호가 절하여 돌려보낸 삼생 제물과, 장룡이 맹세한 복을 비는 일과, 조갑이 아들을 구한 문서와, 전병이 병을 고쳐 달라 청한 좋은 서원이 보였다. 바로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알렸다. “또 한 분 할아버지가 오셨나이다.” 뭇 귀판이 급히 살펴보고는 모두 마음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진군이 말했다. “제천대성이라는 자가 있어 방금 이곳에 오지 않았느냐?” 뭇 귀판이 말했다. “어떤 대성인지 보지 못하였나이다. 다만 한 분 할아버지가 안에서 점검하고 계실 뿐이옵니다.” 진군이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대성이 그를 보고 본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낭군은 떠들지 마라. 사당은 이미 손씨의 것이 되었다.” 이 진군이 곧 세 끝 두 날 신의 날을 들어 얼굴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 원숭이 왕이 몸을 피하는 법을 써서 신의 날을 피하고, 그 수화침을 뽑아내어 한 번 흔드니 사발만큼 굵어졌으며, 앞으로 달려나가 마주 받았다. 두 사람이 와글와글 떠들며 사당 문을 뛰쳐나와, 반은 안개요 반은 구름 속에서 가면서 싸우고, 다시 화과산까지 싸우며 갔다. 그 사대천왕 등 무리는 놀라서 방비를 더욱 굳게 하였다. 그 강, 장 태위 등이 진군을 맞이하여 합심하고 힘을 다해 그 미후왕을 에워쌌던 일은 여기서 말하지 않으리라. 이야기는 이러하다. 대력귀왕이 이미 진군과 여섯 형제를 조발하여 병사를 이끌고 요마를 잡으러 간 뒤에, 곧 상계로 올라가 아뢰었다. 옥황상제가 관음보살과 왕모와 아울러 뭇 선경들과 함께 영소전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말했다. “이랑이 이미 가서 싸우는데, 하루가 지나도록 아직 회보가 없구나.” 관음이 두 손을 모으고 아뢰었다. “빈승이 폐하께 청하오니 도조와 함께 남천문 밖으로 나가시어 직접 실상을 살펴보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옥황상제가 말했다. “그 말이 이치에 맞도다.” 곧 거동을 갖추어 도조와 관음과 왕모와 뭇 선경과 함께 남천문에 이르렀다. 이미 몇몇 천정과 역사가 맞이하여 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니, 뭇 천정이 그물을 펼쳐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고, 이천왕과 나타가 조요경을 들어 공중에 서 있었으며, 진군이 대성을 가운데 에워싸고 어지럽게 겨루고 있었다. 보살이 입을 열어 노군에게 말했다. “빈승이 천거한 이랑신이 어떠하옵니까? 과연 신통이 있어 이미 그 대성을 에워싸 가두었사오나 다만 아직 잡지는 못하였나이다. 빈승이 이제 그를 한몫 도와 반드시 잡게 하겠나이다.” 노군이 말했다. “보살은 무슨 병기를 쓰시려 하시는고? 어떻게 도우시려는고?” 보살이 말했다. “내가 그 정병과 버들을 던져 내려 저 원숭이의 머리를 때리겠나이다. 곧 죽이지 못하더라도 한 번 넘어뜨려, 이랑 소성이 가서 잡기 좋게 하겠나이다.” 노군이 말했다. “그대의 병은 자기 그릇이라, 맞기만 하면 좋겠으나, 만일 그의 머리를 맞히지 못하고 그의 쇠몽둥이에 부딪치면 부서지지 않겠는가? 그대는 잠시 손을 대지 말라. 이 늙은이가 그를 한몫 도우리라.” 보살이 말했다. “그대는 무슨 병기가 있는고?” 노군이 말했다. “있고, 있고, 있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왼쪽 팔뚝에서 한 개의 고리를 빼어 내며 말했다. “이 병기는 곤강을 두드려 단련한 것인데, 내가 환단으로 점을 찍어 길러 한 몸의 영기를 기르니, 능히 변화를 잘하고 물과 불도 침범하지 못하며, 또 여러 물건을 옭아맬 수 있도다. 하나는 ‘금강탁’이라 하고 또 하나는 ‘금강투’라 하도다. 그해 함관을 지나며 호인을 교화하여 부처로 만들 때 매우 이에 힘입었도다. 아침저녁으로 가장 몸을 지키기에 좋도다. 내가 던져 내려 그를 한 번 때리리라.” 말을 마치고 하늘 문 위에서 아래로 한 번 내던졌는데, 뚝뚝 굴러 곧장 화과산 영채 안에 떨어져 마침 원숭이 왕의 머리 위에 한 번 맞았다. 원숭이 왕은 다만 일곱 성인과 함께 애써 싸우느라 하늘에서 이 병기가 떨어지는 줄을 알지 못하였는데, 정수리를 맞아 발을 바로 디디지 못하고 한 번 넘어졌다. 기어 일어나 달아나려 하였으나, 이랑 할아버지의 가는 개가 쫓아와 종아리 뒤를 향해 한 입 물고 또 한 번 끌어 넘어뜨렸다. 그가 땅에 쓰러져 누워 꾸짖어 말했다. “이 망할 놈! 네가 집안을 망치러 다니지 않고 어찌 와서 노손을 물어뜯는고!” 급히 몸을 뒤집으려 하였으나 일어나지 못하고, 일곱 성인에게 일제히 눌려 붙들렸으며, 곧 새끼줄로 결박하고 갈고리 칼로 비파뼈를 꿰뚫어 다시는 변화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노군이 금강탁을 거두고 옥황상제를 청하여 관음과 왕모와 뭇 신선들과 함께 모두 영소전으로 돌아갔다. 이 아래 사대천왕과 이천왕 여러 신들은 병사를 거두고 영채를 뽑아, 앞으로 나아가 소성에게 축하하며 말했다. “이는 소성의 공이로다!” 소성이 말했다. “이는 천존의 큰 복과 뭇 신의 위엄이니, 내게 무슨 공이 있겠는가?” 강, 장, 요, 이가 말했다. “형님은 여러 말 마시고, 우선 이 녀석을 압송하여 상계로 올라가 옥황상제를 뵙고 명을 청하여 처분하도록 합시다.” 진군이 말했다. “어진 아우들아, 너희는 아직 하늘의 녹봉을 받지 못하였으니 옥황상제를 뵐 수 없다. 천갑신병에게 압송하게 하고, 나는 천왕 등과 함께 상계로 올라가 명을 아뢰리라. 너희는 무리를 거느리고 이곳에서 산을 수색하여라. 수색을 다 마친 뒤에는 다시 관구로 돌아가거라. 내가 상을 청하고 공을 논한 뒤에 돌아와 함께 즐기리라.” 네 태위와 두 장군이 그 말을 따라 영을 받들었다. 이 진군이 뭇 사람과 함께 곧 구름머리를 타고 개선가를 부르며 승리를 거두어 천조에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명전 밖에 이르렀다. 천사가 아뢰었다. “사대천왕 등 무리가 이미 요망한 원숭이 제천대성을 잡았사오니, 이곳에 와서 선지를 기다리고 있나이다.” 옥황상제가 뜻을 전하여 곧 대력귀왕과 천정 등 무리에게 명하여 참요대로 압송하여 이 녀석의 시체를 토막토막 베게 하였다. 오! 바로 이러하였다. 속여 속인 죄로 이제 형벌의 고통을 당하니, 영웅의 기개도 이때에 함께 쉬어지리라. 결국 그 원숭이 왕의 목숨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회 팔괘로중도대성(八卦爐中逃大聖) · 오행산하정심원(五行山下定心猿) 부귀와 공명은 전생의 인연으로 이미 정해진 것이니, 사람으로서 결코 마음을 속이지 말라. 마음을 속이면 하늘도 돕지 않아 온갖 일이 어긋나고 근심만이 쌓이리라. 정대하고 광명하면 충량한 선과가 더욱 깊어지나니, 조금만 교만 방자하여도 하늘은 곧 벌을 더하시고, 눈앞에 복이 닥치지 않음은 다만 때를 기다림이라. 동군에게 묻노니, 어찌하여 지금 재앙이 이처럼 서로 침범하는고. 다만 마음이 높아 끝없는 것을 도모하고 상하를 분별하지 않아 규잠을 마구 어지럽혔기 때문이라. 말하자면, 제천대성이 뭇 천병에게 앞뒤로 끌려 참요대 아래로 가 항요주에 단단히 결박되었으나, 칼로 베고 도끼로 찍고 창으로 찌르고 검으로 긁어도 그 몸을 조금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남두성이 힘써 명하여 화부의 뭇 신에게 불을 놓아 장작처럼 태우게 하였으나 또한 태워지지 않았다. 또 뇌부의 뭇 신에게 명하여 우레 부스러기로 못을 박듯 사방에서 때리게 하였으나, 더욱 한 털끝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그때 대력귀왕이 뭇 신과 함께 아뢰었다. “만세, 이 대성이 어디서 이 몸을 지키는 법을 배웠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신 등이 칼로 베고 도끼로 찍으며 우레로 때리고 불로 태웠으나 한 털끝도 상하게 하지 못하옵니다.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옥황상제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이 녀석이 이러하고, 이러하니 어찌 처치한단 말인가?” 태상노군이 곧 아뢰었다. “그 원숭이는 반도를 먹고 어주를 마셨으며 또 선단을 도둑질하였나이다. 노도의 다섯 호리병 속의 단은 익은 것도 있고 생것도 있사온데, 그가 그것을 모조리 배 속에 먹어 넣었사옵니다. 삼매의 불을 운용하여 한 덩어리로 구워 냈으므로 온몸이 온전히 금강 같은 몸을 이루어 급히는 상하게 할 수 없나이다. 노도가 그를 데려다 ‘팔괘로’ 안에 넣고 문무의 불로 천천히 단련함만 같지 못하옵니다. 나의 단을 정련해 내면 그의 몸은 스스로 재가 되리이다.” 옥황상제가 이 말을 듣고 곧 육정과 육갑에게 명하여 그를 결박에서 풀어 노군에게 넘겨주게 하였다. 노군이 전지를 받들고 물러간 뒤, 한편으로는 이랑현성진군을 불러 금화 백 송이와 어주 백 병, 환단 백 알, 그리고 진기한 보물과 밝은 구슬, 비단과 수놓은 물건들을 상으로 내려 의형제와 함께 나누어 가지라 하였다. 진군이 은혜에 사례하고 관강구로 돌아간 일은 잠시 미루어 두겠다. 그 노군이 도솔궁에 이르러 대성의 밧줄을 풀고, 비파뼈를 꿰었던 기구도 빼내고, 그를 팔괘로 안으로 밀어 넣은 뒤, 화로를 지키는 도인과 불을 떠받치는 동자에게 명하여 불을 부채질해 일으켜 단련하게 하였다. 본래 그 화로는 건, 감, 간, 진, 손, 리, 곤, 태의 팔괘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가 곧 몸을 ‘손궁’ 자리 아래로 파고들었다. 손은 곧 바람이니, 바람이 있으면 불이 없다. 다만 바람이 연기를 휘저어 일으켜 두 눈을 붉게 그슬리게 하여 늙은 눈병을 앓는 꼴이 되었으므로, ‘화안금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참으로 세월이 빠르고 빠르아 어느덧 칠칠 사십구 일이 지나니, 노군의 불후가 온전히 갖추어졌다. 문득 하루는 화로를 열고 단을 꺼내려 하였다. 그 대성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눈물을 흘리며 문지르고 있었는데, 화로 머리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홱 눈을 떠 광명을 보자 참지 못하고 몸을 솟구쳐 단로를 뛰어나왔다. 후라 하는 소리와 함께 팔괘로를 걷어차 넘어뜨리고 밖으로 나아갔다. 불을 떠받치던 자와 화로를 지키던 자, 그리고 정갑의 무리가 크게 놀라 달려들어 그를 붙잡으려 하였으나, 그에게 하나하나 쓰러져 마치 간질 앓는 흰 이마의 호랑이 같고 미친 외뿔 용 같았다. 노군이 뒤쫓아가 한 번 움켜잡으려다 그에게 한 번 휘둘려 거꾸로 곤두박질하여, 몸을 빼어 달아났다. 곧 귀 속에서 여의봉을 뽑아내어 바람을 맞닥뜨려 한 번 흔들자 사발만 한 굵기가 되어, 여전히 손에 쥐고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은 채 다시 천궁을 크게 어지럽혔다. 구요성을 쳐서 문을 닫고 집을 닫게 하고, 사천왕을 형체도 없이 만들어 버렸다. 과연 좋은 원숭이 요정이로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혼원의 몸 바르게 선천에 합하니, 만겁 천번을 겪어도 다만 자연이라. 아득한 무위는 혼연히 태을이요,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아 초현이라 일컬어지네. 화로 속에서 오래 단련된 것은 납이나 수은이 아니요, 물 밖의 장생은 본래 이 신선이라. 변화가 무궁하여 다시 변화하니, 삼귀와 오계는 아예 말하지 말라. 또 시에 이르기를, 한 점 신령한 광명이 태허를 꿰뚫으니, 그 지팡이도 또한 그러하다.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여 사람의 쓰임을 따르며, 가로로 세로로 놓여도 말고 펴임에 맡기네. 또 시에 이르기를, 원숭이의 도체는 사람의 마음에 짝하니, 마음이 곧 원숭이라 그 뜻 깊도다. 대성이 하늘과 가지런함은 거짓된 논이 아니요, 벼슬 ‘필마’를 봉한 것은 참으로 지음이로다. 말과 원숭이가 합하여 마음과 뜻을 이루니, 단단히 묶고 굳게 매어 밖에서 찾지 말라. 만상이 진리에 돌아감은 한 이치를 따름이요, 여래와 함께 계합하여 쌍림에 머무네. 이번에는 원숭이 왕이 상하를 가리지 않고 철봉을 휘둘러 동을 치고 서를 막으니, 다시 어느 신도 감히 막아설 수 없었다. 그 기세가 마치 사나운 불길이 하늘을 사르는 듯하고, 성난 파도가 산을 뒤엎는 듯하였다. 마침내 통명전 안, 영소전 밖까지 쳐들어갔다. 다행히 우성진군의 좌사인 왕영관이 전각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대성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보고 금편을 뽑아들고 가까이 나아가 막아서며 말했다. “망할 원숭이야, 어디로 가느냐! 내가 여기 있으니 결코 날뛰지 말라!” 이 대성은 사정을 말할 것도 없이 봉을 들어 바로 후려쳤다. 그 영관이 편을 들어 맞이하였다. 두 사람이 영소전 앞에서 한데 어우러져 한바탕 싸웠으니, 과연 잘 싸운다. 붉은 충담과 충량은 명예가 크고, 하늘을 속이고 윗사람을 기만함은 성명을 망치나니, 하나는 낮고 하나는 좋아 다행히 서로 버티니, 호걸과 영웅이 함께 겨루는도다. 철봉은 사납고 금편은 빠르니, 정직하고 사사로움이 없는데 어찌 참으랴? 이는 태을뇌성응화존이요, 저는 제천대성 원숭이 요괴라. 금편과 철봉 두 집안의 재주는 모두 신궁과 선인의 기계라. 오늘 영소보전에서 위풍을 떨치니, 각기 웅재를 펼침이 참으로 사랑스럽도다. 하나는 마음을 속여 두우궁을 빼앗으려 하고, 하나는 힘을 다해 현성계를 바로잡으려 하네. 애써 다투어 양보하지 않고 신통을 드러내나, 편과 봉이 오가도 승부가 없도다. 둥글둥글하고 빛나고 빛나, 예로부터 늘 존재하여도 사람이 어찌 배우랴?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어찌 빠지랴? 광명한 한 알의 마니주여, 검극과 도창도 상하게 하지 못하네.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으니, 눈앞의 선악이 그에 따라 지어지도다. 선할 때에는 부처가 되고 신선이 되며, 악한 곳에서는 털을 쓰고 뿔을 달았네. 무궁한 변화로 천궁을 어지럽히니, 뇌장과 신병이 잡을 수 없도다. 그때 뭇 신이 대성을 한곳에 몰아넣었으나 몸에 가까이할 수 없어, 어지럽게 고함치며 어지럽게 싸우니, 이윽고 옥황상제마저 놀라게 하였다. 마침내 전지를 내려 유혁영관과 익성진군에게 서방으로 가서 부처님을 청하여 항복시키게 하였다. 그 두 성인이 전지를 받들고 곧장 영산 승경 뇌음보찰 앞에 이르러, 사대금강과 팔보살에게 예를 마친 뒤 곧 번거롭게 전하여 아뢰기를 청하였다. 뭇 신이 뒤따라 보련대 아래에 이르러 아뢰어 알리니, 여래가 불러 청하였다. 두 성인이 부처님께 세 번 절하고 대 아래에 모시어 섰다. 여래가 물었다. “옥황상제께서는 무슨 일로 두 성인을 번거롭게 이곳에 내려보내셨는고?” 두 성인이 곧 아뢰었다. “지난번 화과산에서 한 원숭이가 태어나 그곳에서 신통을 부리고 뭇 원숭이를 모아 세계를 어지럽혔나이다. 옥황상제께서 초안의 전지를 내리시어 ‘필마온’에 봉하셨으나, 그는 벼슬이 작다 여겨 배반하고 떠나갔나이다. 마땅히 이천왕과 나타태자를 보내어 잡게 하셨으나 붙잡지 못하시고, 다시 그를 초안하여 ‘제천대성’에 봉하셨으나 처음에는 벼슬만 있고 녹은 없었나이다. 그에게 반도원을 대신 관리하게 하시니 그가 곧 복숭아를 훔쳤고, 또 요지에 가서 안주를 훔치고 술을 훔쳐 큰 잔치를 어지럽혔으며, 술 기운을 빌려 또 몰래 도솔궁에 들어가 노군의 선단을 훔치고 천궁을 배반하여 나갔나이다. 옥황상제께서 다시 십만 천병을 보내셨으나 또한 항복시키지 못하셨나이다. 뒤에 관세음보살이 이랑진군과 그의 의형제를 천거하여 함께 뒤쫓아 죽이게 하였으나, 그는 변화가 많고 갈피가 없어 어찌할 수 없었사온데, 노군이 금강탁을 던져 무겁게 맞히신 덕분에 이랑이 비로소 붙잡을 수 있었나이다. 어전으로 압송하니 곧 목을 베라 명하셨으나, 칼로 베고 도끼로 찍고 불로 태우고 우레로 쳐도 모두 상하게 하지 못하였으므로, 노군이 아뢰어 허락을 받고 데려가 불로 단련하였나이다. 사십구 일 만에 솥을 여니, 그가 또 팔괘로를 뛰어나와 천정을 물리치고 곧장 통명전 안, 영소전 밖으로 들어갔나이다. 우성진군의 좌사 왕영관에게 가로막혀 애써 싸웠고, 또 삼십육 원의 뇌장을 조발하여 그를 핵심에 가두었으나 끝내 가까이할 수 없었나이다. 일이 긴급하므로 옥황상제께서 특별히 여래를 청하여 어가를 구원하게 하신 것이옵니다.” 여래가 그 조서를 듣고 곧 뭇 보살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이곳 법당에 편안히 앉아 선정의 자리를 어지럽히지 말라. 내가 마를 단련하고 어가를 구하러 갔다 오리라.” 여래가 곧 아나와 가섭 두 존자를 불러 함께 따르게 하고, 뇌음을 떠나 곧장 영소문 밖에 이르렀다. 문득 함성이 귀를 진동함을 들으니, 이는 삼십육 원의 뇌장이 대성을 에워싸 가둔 소리였다. 불조가 법지를 전하였다. “뇌장으로 하여금 창과 칼을 멈추고 진영을 풀어 그 대성을 나오게 하라. 내가 그에게 무슨 법력이 있는지 물으리라.” 뭇 장수가 과연 물러났다. 대성도 법상을 거두고 본래의 몸을 드러내어 가까이 나아가, 노기가 등등하여 엄한 소리로 높이 외쳤다. “너는 어느 지방의 선사이기에 감히 와서 칼과 병사를 멈추게 하고 나에게 묻느냐?” 여래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서방 극락세계 석가모니 존자요, 남무아미타불이라. 지금 네가 미친 듯 거칠게 굴며 거듭 천궁을 배반한다 함을 들었는데, 어느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어느 해에 도를 얻었는지, 어찌하여 이처럼 포학한지 알지 못하겠노라.” 대성이 말했다. “나는 본래, 천지가 낳은 신령하고 혼연한 신선이요, 화과산 속의 한 늙은 원숭이라. 수렴동에서 가업을 이루었고, 벗을 찾아 스승을 뵙고 태현을 깨달았네. 장생의 법을 얼마나 많이 단련하였는지, 배워 온 변화는 넓고도 끝이 없네. 다만 인간 세상이 땅이 좁다 여겨, 마음을 굳게 세워 요천에 살고자 하였네. 영소보전은 그가 오래 차지할 곳이 아니요, 역대의 인간 왕에게도 나누어 전해지는 몫이 있네. 강한 자가 높은 자가 되니 마땅히 나에게 양보해야 하고, 영웅이라면 바로 이 자리에서 앞서려 하네.” 불조가 그 말을 듣고 껄껄 하고 냉소하며 말했다. “너 같은 녀석은 원숭이가 정을 이룬 것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감히 마음을 속여 옥황상제의 존위를 빼앗으려 하느냐? 그분은 어려서부터 수도하여 모진 천칠백오십 겁을 겪으셨느니라. 매 겁마다 십이만 구천 육백 년이 걸리니, 네가 셈해 보라. 그가 얼마나 많은 햇수를 지나야 비로소 이 무극대도를 누릴 수 있겠느냐? 너는 처음 세상에 나온 짐승인데, 어찌 이러한 큰소리를 내느냐! 사람 자식답지 못하구나! 사람 자식답지 못하구나! 네 수명이 깎일지니라! 어서 귀의하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자칫 독한 손에 걸려 목숨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끊길까 두려우니, 네 본래의 면목이 아깝구나!” 대성이 말했다. “그가 비록 나이가 많고 수도가 오래되었다 한들, 마땅히 오래도록 이 자리를 차지할 것은 아니니라. 옛말에 이르기를 ‘황제는 돌아가며 하는 것이니, 내년엔 우리 집에 온다.’ 하였느니라. 다만 그를 옮겨 가게 하여 천궁을 나에게 양보하게 하면 그만이니라. 만일 아직도 양보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어지럽혀 영원히 청평하지 못하게 하리라!” 불조가 말했다. “네가 생장과 변화의 법을 제외하고 또 무슨 능력이 있기에 감히 천궁의 승경을 차지하려 하느냐?” 대성이 말했다. “나의 수단은 많고 많으니라! 나에게는 칠십이 가지 변화가 있고, 만겁을 지나도 늙지 않고 장생하느니라. 근두운을 몰 줄 알아 한 번 솟구치면 십만 팔천 리를 가느니라. 어찌 천위에 앉지 못하겠느냐?” 불조가 말했다. “내가 너와 한 가지 내기를 하겠다. 네가 만일 재주가 있어 한 번 근두운으로 이 내 오른손바닥을 벗어나 뛰어나가면 네가 이긴 것으로 하여, 다시는 칼과 병사로 애써 다투지 않게 하고, 곧 옥황상제를 청하여 서방에 가 살게 하고 천궁을 너에게 주겠노라. 만일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면 너는 다시 하계로 내려가 요괴로 있으면서 몇 겁을 더 닦은 뒤에 다시 와서 다투어라.” 그 대성이 말을 듣고 몰래 웃으며 말했다. “이 여래는 참으로 어리석기도 하구나! 나 노손은 한 번 근두운을 몰면 십만 팔천 리를 가는데, 그의 손바닥은 둘레가 한 자도 못 되니 어찌 뛰어나가지 못하겠느냐?” 곧 소리를 내어 말했다. “그렇게 말하였으니, 네가 주장을 세울 수 있겠느냐?” 불조가 말했다. “세울 수 있고말고!” 이에 오른손을 펼치니 연잎만 한 크기였다. 그 대성이 여의봉을 거두고 신위를 떨쳐 몸을 솟구쳐 부처님 손바닥 가운데에 섰다가 소리쳤다. “나 간다!” 보라, 그가 한 길의 구름 빛을 타고 그림자도 형체도 없이 사라져 갔다. 불조가 혜안으로 살펴보니, 그 원숭이 왕이 마치 바람개비처럼 쉬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대성이 가다가 문득 다섯 개의 살빛 붉은 기둥이 푸른 기운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말했다. “이곳이 바로 끝장이로구나. 이번에 돌아가면 여래가 증인이 되어 영소전은 틀림없이 내가 앉으리라.” 또 생각하며 말했다. “잠깐, 내가 표적을 좀 남겨 두어야 여래와 말하기가 좋겠구나.” 이에 털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를 불고 “변!” 하고 외치니, 한 자루의 짙은 먹을 찍은 쌍호필이 되었다. 그 가운데 기둥 위에 큰 글씨 한 줄을 써 넣었다. “제천대성, 이곳에 와서 노닐다.” 다 쓴 뒤 털을 거두었다. 또 점잖지 못하게도 첫째 기둥 밑에 오줌을 한 바탕 누었다. 그리고는 근두운을 돌려 곧장 본래 자리로 돌아와 여래의 손바닥 위에 서서 말했다. “나는 이미 갔다가 지금 돌아왔다. 네가 옥황상제에게 천궁을 나에게 양보하게 하여라.” 여래가 꾸짖어 말했다. “이 오줌 싸는 원숭이 녀석아! 너는 내 손바닥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였느니라!” 대성이 말했다. “너는 알지 못한다. 내가 하늘 끝까지 가서 다섯 개의 살빛 붉은 기둥이 푸른 기운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에 표적을 남겼으니, 네가 감히 나와 함께 가서 보겠느냐?” 여래가 말했다. “갈 것 없이 네가 다만 고개를 숙여 보아라.” 그 대성이 화안금정을 둥글게 부릅뜨고 고개를 숙여 보니, 원래 불조의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 “제천대성, 이곳에 와서 노닐다.”라고 써 있었고, 엄지손가락이 갈라진 틈에는 아직도 원숭이 오줌의 누린내가 남아 있었다. 대성이 크게 놀라 말했다.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내가 이 글자를 하늘을 받치는 기둥 위에 썼는데 어찌 그의 손가락 위에 있는가? 설마 미리 아는 술법이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결코 믿지 않겠다! 믿지 못하겠다! 내가 다시 갔다 오리라!” 좋은 대성이여, 급히 몸을 솟구쳐 다시 뛰어나가려 하였으나, 불조가 손바닥을 뒤집어 한 번 쳐서 이 원숭이 왕을 서천문 밖으로 밀어내고, 다섯 손가락을 금, 목, 수, 화, 토의 다섯 개의 이어진 산으로 변화시켜 이름을 ‘오행산’이라 하고는 가볍게 그를 눌러 가두었다. 뭇 뇌신과 아나, 가섭이 하나하나 합장하고 찬양하여 말했다. “훌륭하시다! 훌륭하시다! 그해 알에서 화하여 사람이 되었고, 뜻을 세워 수행하여 과연 도가 참되었네. 만겁을 옮기지 않고 승경에 살았으나, 하루아침에 변하여 정신이 흩어졌네. 하늘을 속이고 윗사람을 기만하며 높은 자리를 탐하였고, 성인을 업신여기고 단을 훔쳐 큰 인륜을 어지럽혔네. 악이 가득 차 이제 응보를 받았으니, 어느 날에야 몸을 뒤집을는지 알지 못하겠네.” 여래불조가 요망한 원숭이를 섬멸하고, 곧 아나와 가섭을 불러 함께 서방 극락세계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때 천봉과 천우가 급히 영소보전에서 나와 말했다. “여래께서는 잠시 기다려 주소서. 우리 주인께서 대가를 갖추어 오시나이다.” 불조가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우러러보았다. 잠시 후 과연 팔경난여와 구광보개가 나타나고, 현가와 묘악이 울려 퍼지며 무량한 신의 글귀가 읊조려지고, 보화가 흩날리고 진향이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부처님 앞에 이르러 사례하여 말했다. “큰 법력으로 요사한 무리를 거두어 섬멸하여 주신 데 깊이 감사하옵니다. 바라건대 여래께서는 하루만 머무르시어, 뭇 신선을 청하여 한 자리 잔치를 베풀어 사례하고자 하옵니다.” 여래가 감히 어기지 못하고 곧 합장하여 사례하며 말했다. “노승은 대천존의 선명을 받들고 이곳에 왔을 뿐이옵니다. 무슨 법력이 있겠나이까? 다 천존과 뭇 신의 큰 복이옵니다. 어찌 감히 사례를 받으리이까?” 옥황상제가 전지를 내려, 곧 운부의 뭇 신에게 명하여 나누어 가서 삼청과 사어, 오로, 육사, 칠원, 팔극, 구요, 십도, 그리고 천 명의 진인과 만 명의 성인을 청해 이곳에 와서 함께 부처님의 은혜에 사례하게 하였다. 또 사대천사와 구천선녀에게 명하여 옥경금궐과 태현보궁, 동양옥관을 크게 열게 하고, 여래를 청하여 칠보영대 위 높은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리고 각 반의 자리를 조설하고 용의 간과 봉의 골수, 옥액과 반도를 차려 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옥청원시천존과 상청영보천존, 태청도덕천존, 오승진군, 오두성군, 삼관사성, 구요진군, 좌보와 우필, 천왕과 나타, 그리고 현허의 모든 영통한 이들이 짝을 지은 정기와 쌍을 이룬 번개를 거느리고, 모두 밝은 구슬과 진기한 보물, 수과와 기이한 꽃을 받들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절하며 바치고 말했다. “여래의 무량한 법력으로 요망한 원숭이를 거두어 항복시킨 것에 감복하옵니다. 대천존께서 잔치를 베푸시어 우리들을 불러 모두 와서 사례하게 하셨사오니, 청하옵건대 여래께서 이 모임에 이름을 하나 세워 주시옵소서.” 여래가 뭇 신의 부탁을 받들어 말했다. “지금 이름을 세우고자 하니, ‘안천대회’라 함이 좋겠노라.” 뭇 신선과 어른들이 입을 모아 모두 말했다. “좋은 ‘안천대회’로다! 좋은 ‘안천대회’로다!” 말을 마치자 각기 자리에 앉아 잔을 돌리고 술잔을 전하며, 꽃을 꽂고 비파를 타니, 과연 좋은 잔치였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반도를 베푼 잔치는 원숭이가 어지럽혔으나, 안천대회는 반도보다 낫도다. 용의 깃발과 난새의 수레에는 상서로운 빛이 자욱하고, 보배로운 의장과 당번에는 서기가 흩날리네. 선인의 음악과 현묘한 노래는 음운이 아름답고, 봉황의 퉁소와 옥 피리는 울림이 높도다. 아름다운 향내가 감돌고 뭇 신선이 모였으니, 우주가 청평하여 성조를 하례하네. 뭇 신선이 모두 흐뭇하게 기뻐하며 모였는데, 이때 왕모낭랑이 한 무리의 선자와 선아, 아름다운 여인과 미녀들을 이끌고 하늘하늘 춤추며 부처님 앞으로 나아와 예를 올리고 말했다. “앞서 요망한 원숭이에게 반도 잔치를 어지럽혔사온데, 이제 여래의 큰 법력으로 완악한 원숭이를 사슬로 묶어 주신 덕에 ‘안천대회’를 기쁘게 열게 되었사옵니다. 사례할 물건이 없사오니, 제가 손을 깨끗이 씻고 친히 딴 큰 반도 몇 알을 바치옵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반은 붉고 반은 푸르러 달콤한 향을 뿜으며, 고운 선인의 뿌리는 만 년을 자랐네. 무릉원 위에 심은 것들은 우습구나, 어찌 천부보다 더 기이하고 굳세랴! 자줏빛 무늬는 연하고 고와 세상에 드물고, 연노란 씨는 맑고 달아 세상에 짝이 없네. 수명을 늘리고 나이를 더하며 몸까지 바꾸니, 인연 있는 자가 먹으면 스스로 범상치 않도다. 불조가 합장하여 왕모에게 사례를 마쳤다. 왕모가 또 선희와 선자에게 노래하게 하고 춤추게 하니, 잔치 가득한 뭇 신선이 또 모두 칭송하고 감탄하였다. 바로 이러하였다. 아득한 하늘 향기가 자리에 가득하고, 어지러이 선인의 꽃술과 꽃이 흩날리네. 옥경금궐의 큰 영화여, 진기한 물품과 기이한 보배는 값이 없도다. 짝지어 하늘과 수명을 같이하고, 쌍쌍이 만겁을 더하네. 뽕밭이 바다가 되어도 마음대로 변하게 두나니, 그들은 스스로 놀라지도 않도다. 왕모가 막 선희와 선자에게 노래와 춤을 시키고 술잔과 술패가 서로 오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또 들려오는 것이 있었다. 한 줄기 기이한 향기가 코를 스치니, 집 안 가득한 별과 성수들이 놀라도다. 천선과 불조가 잔을 멈추고, 저마다 머리를 들어 눈으로 맞이하여 기다리네. 하늘 가운데에 한 노인이 나타나니, 손에는 영지와 어지러운 수를 받들었네. 호리병에는 만 년의 단을 감추어 간직하고, 보배로운 명부에는 천 년의 수명이 적혀 있네. 동굴 속의 천지에서 마음대로 자유롭고, 호리병 속의 해와 달도 이루어지는 대로 따르네. 사해를 노닐며 청한을 즐기고, 십주에 한가로이 흩어져도 모여드는 것을 용납하네. 일찍이 반도 잔치에 가 몇 번이나 취하였으나, 깨어 보면 밝은 달은 여전하네. 긴 머리에 큰 귀와 짧은 몸뚱이로, 남극의 방향에서 늙은 장수라 일컬어지네. 수성이 또 이르렀다. 옥황상제를 뵙고 예를 마친 뒤 다시 여래를 뵙고 사례를 아뢰었다. “처음에 그 요망한 원숭이가 노군에게 이끌려 도솔궁에서 단련된다 함을 듣고 반드시 평안해지리라 여겼사온데, 뜻밖에 그가 또 배반하여 나왔나이다. 여래께서 이 괴물을 잘 항복시키셨으므로 잔치를 베풀어 사례하게 되었사온데, 이에 소문을 듣고 달려왔나이다. 달리 바칠 물건이 없사오니, 특별히 자지와 요초, 푸른 연근과 금단을 갖추어 올리나이다.” 시에 이르기를, 푸른 연근과 금단을 석가께 바치니, 여래의 만수는 항하의 모래 같도다. 청평하고 길이 즐거운 삼승의 비단이요, 강태하고 장생하는 구품의 꽃이로다. 무상문 가운데 참된 법왕이요, 색공의 하늘 위에서는 선인의 집이라. 건곤대지가 모두 조사라 일컫고, 장육금신의 복과 수명은 끝이 없도다. 여래가 흔쾌히 받고 사례하였다. 수성이 자리를 얻어 앉아 여전히 잔을 돌리고 술잔을 전하는데, 이때 적각대선이 또 이르렀다. 옥황상제 앞에 나아가 이마를 조아려 예를 마친 뒤, 다시 불조에게 사례하여 말했다. “법력을 깊이 느꼈사오니 요망한 원숭이를 항복시키셨나이다. 공경을 표할 물건이 없사오니, 특별히 교리 두 알과 화조 몇 알을 갖추어 바치나이다.” 시에 이르기를, 대선은 맨발로 대추와 배를 향기롭게 바치니, 미타께 공경히 올려 수명이 길어지도다. 칠보연대는 산처럼 든든하고, 천금의 꽃자리는 비단처럼 꾸며졌네. 수명이 천지와 같다는 말이 틀리지 않고, 복이 큰 물결에 비한다는 말이 어찌 미친 말이랴. 복과 수명이 기약대로임이 참으로 그러하니, 청한하고 극락한 저 서방이로다. 여래가 또 사례를 하였다. 아나와 가섭을 불러 각기 바친 물건들을 하나하나 거두어들인 뒤에야 옥황상제 앞에 나아가 잔치에 사례하였다. 뭇 이가 저마다 술에 취해 있는데, 이때 한 순시영관이 와서 아뢰었다. “그 대성이 머리를 내밀었나이다.” 불조가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소매 속에서 다만 첩자 한 장을 꺼내니, 그 위에 여섯 글자의 금빛 글자가 있었다. “옴, 마, 니, 팔, 미, 훔.” 그것을 아나에게 건네며 그 산꼭대기에 붙이라 하였다. 이 존자가 곧 첩자를 받들고 천문을 나가 그 오행산 꼭대기에 이르러, 네모난 돌 하나에 단단히 붙였다. 그 산은 곧 뿌리를 내리고 틈이 맞닿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기운을 부릴 수 있었으며, 손이 밖으로 기어 나와 흔들고 버틸 수 있었다. 아나가 돌아와 아뢰었다. “이미 첩자를 붙였나이다.” 여래가 곧 옥황상제와 뭇 신에게 하직하고, 두 존자와 함께 천문 밖으로 나간 뒤, 또 한 번 자비심을 일으켜 진언과 주문을 외워, 오행산에 한 분의 토지신을 불러오고 오방갈제와 함께 이 산에 머물러 감시하며 가두게 하였다. 다만 그가 배고플 때에는 쇠알을 주어 먹게 하고, 목마를 때에는 녹인 구리 즙을 주어 마시게 하였다. 그의 재앙과 허물이 가득 차는 날이 되면 절로 그를 구할 이가 있으리라. 바로 이러하였다. 요망한 원숭이가 큰 담으로 천궁을 배반하였으나, 도리어 여래의 손에 굴복하여 항복하였네. 목마르면 녹인 구리를 마시며 세월을 견디고, 배고프면 쇠알을 먹으며 시절을 보내네. 하늘의 재앙으로 괴로이 곤궁하여 모진 시련을 겪고, 인간사는 처량하나 목숨이 긴 것을 기뻐하네. 만일 영웅이 다시 몸을 펴게 된다면, 훗날 부처를 받들어 서방으로 오르리라. 또 시에 이르기를, 굴복시키며 호강을 부려 큰일을 일으켰고, 용을 항복시키고 범을 굴복시켜 교묘한 재주를 부렸네. 복숭아를 훔치고 술을 훔쳐 천부를 노닐었으며, 녹을 받고 은혜를 입어 옥경에 있었네. 악이 가득 차 몸이 곤궁에 빠졌으나, 선근이 끊이지 않아 기운이 다시 오르네. 과연 여래의 손을 벗어나게 된다면, 다만 당나라에 성승이 나오기를 기다리라. 결국 어느 해 어느 달에 재앙이 가득 차게 될지는 알지 못하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회 아불조경전극락(我佛造經傳極樂) · 관음봉지상장안(觀音奉旨上長安) 선문의 관문을 시험 삼아 묻건대, 참구한 이 수없이 많았으나 끝내 헛되이 늙어 버렸도다.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고 눈을 쌓아 양식을 삼았으니, 얼마나 많은 젊은이를 미혹하게 하였던고? 털 하나로 큰 바다를 삼키고 겨자씨가 수미산을 받아들이니, 금빛 두타가 미소를 지었도다. 깨달을 때에는 십지와 삼승을 뛰어넘고, 막혔을 때에는 사생과 육도를 맴도는구나. 뉘라서 절망의 벼랑 앞, 그늘 없는 나무 아래에서 두견이 한 번 우는 봄 새벽을 들었으랴? 조계의 길은 험하고 취령의 구름은 깊으니, 이곳에서 옛 벗의 소식은 아득하도다. 천 길 얼음 벼랑에 다섯 잎 연꽃이 피어나고, 옛 전각에는 발이 드리워 향이 피어오르도다. 그때에 근원과 흐름을 꿰뚫어 깨치면 곧 용왕의 삼보를 보리라. 이 한 편의 사는 이름이 《소무만》이라. 이야기는 이러하다. 우리 부처 여래께서 옥황상제를 하직하고 뇌음보찰로 돌아오시니, 그 삼천 제불과 오백 아라, 팔대 금강, 무변한 보살들이 하나하나 당번과 보개를 들고 진기한 보배와 신선 꽃을 받들어 영산 선경 사라쌍림 아래에 벌여 서서 맞이하더라. 여래께서 상서로운 구름을 멈추시고 뭇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매우 깊은 반야로 삼계를 두루 살펴보았다. 근본의 성품은 결국 적멸하여 허공의 모습과 같아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라. 사나운 원숭이를 항복시킨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이를 생사의 시초라 하고 법상 또한 이와 같으니라.” 말씀을 마치시고 사리의 빛을 놓으시니, 온 하늘에 흰 무지개 마흔두 줄이 남북으로 통하여 이어졌다. 대중이 이를 보고 몸을 돌이켜 예배하였다. 잠시 후 경사로운 구름과 채색 안개가 모여들어 상품 연대로 올라가시어 단정히 앉으시니, 그 삼천 제불과 오백 나한, 팔금강, 사보살이 합장하고 앞으로 나아가 예를 마친 뒤 물었다. “천궁을 소란하게 하고 반도를 어지럽힌 자는 무엇입니까?” 여래께서 말했다. “그놈은 바로 화과산에서 난 한 요괴 원숭이로, 죄악이 하늘에 사무쳐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었느니라. 온 하늘의 신장들이 모두 항복시키지 못하였고, 비록 이랑이 붙잡고 노군이 불로 단련하였으나 또한 조금도 상하게 할 수 없었느니라. 내가 갈 때에 그는 뇌장의 한가운데에서 위엄을 떨치고 무예를 뽐내며 정신을 자랑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병기를 멈추게 하고 그 내력을 물으니, 그가 자신에게는 신통이 있어 변화를 부릴 줄 알고 또 근두운을 타고 한 번에 십만 팔천 리를 간다고 뽐내었느니라. 내가 그와 내기를 한 판 벌였으나 그는 내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한 손으로 붙잡아 오행산으로 가리켜 변화시켜 그를 그곳에 눌러 봉하였느니라. 옥황상제께서 금궐 요궁을 크게 열고 나를 청하여 상석에 앉히시고 ‘안천대회’를 열어 나를 치하하셨으므로 그제야 어가를 하직하고 돌아왔노라.” 대중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한껏 칭송하였다. 사례를 마치고 각기 반을 나누어 물러가 각자 맡은 일을 잡고 함께 천진을 즐겼으니, 과연 이러하였다. 상서로운 기운이 천축에 가득하고, 무지갯빛이 세존을 둘렀도다. 서방에서 제일이라 일컫고, 모습 없는 법왕의 문이로다! 항상 검은 원숭이가 과일을 바치고 사슴이 꽃을 물며, 푸른 난새가 춤추고 채색 봉황이 울며, 신령한 거북이 장수를 받들고 신선 학이 영지를 물어 오도다. 정토 기원을 편안히 누리고 용궁 법계를 마음껏 누리도다. 날마다 꽃이 피고 때마다 과일이 익으며, 고요함을 익혀 진리에 돌아가고 참선하여 정과를 이루도다. 멸하지도 나지도 않고, 늘지도 줄지도 않도다. 연하가 아득하여 오고 가는 대로 따르고, 추위와 더위가 침범하지 못하여 세월도 헤아리지 않도다. 시에 이르기를, 가고 오는 것이 자재하여 마음대로 유유히 노니니, 두려움도 없고 근심도 없도다. 극락의 마당 안은 모두가 평탄하고, 대천의 곳에는 봄가을도 없도다. 부처님께서 영산 대뇌음보찰에 한 달을 지내시던 어느 날, 뭇 부처와 아라와 게제, 보살과 금강, 비구승과 비구니 등 대중을 불러 모으시고 말씀하셨다. “사나운 원숭이를 항복시켜 하늘을 편안케 한 이후로 이곳에서는 세월을 알지 못하나니, 헤아려 보건대 인간 세상에서는 반천 년이 지났을 것이니라. 지금이 마침 초가을 보름이니, 내게 한 보배 동이가 있어 온갖 꽃과 천 가지 진기한 과일 등을 갖추어 두었으니, 법중과 함께 이 ‘우란분회’를 함께 누리면 어떻겠느냐?” 뭇 대중이 하나하나 합장하고 부처께 세 번 절하여 예를 올리고 그 뜻을 받들어 알았다. 여래께서 곧 보배 동이 안의 꽃과 과일과 물품을 아나에게 받들어 나르게 하시고 가섭에게 나누어 베풀게 하시니, 대중이 감격하였다. 각기 시를 바쳐 사례를 드렸다. 복의 시에 이르기를, 복은 성스러운 빛으로 성품의 존전을 비추고, 복은 미심을 받아들여 멀수록 더욱 이어지도다. 복의 덕은 끝이 없어 땅과 함께 오래가고, 복의 인연은 경사가 있어 하늘과 이어지도다. 복의 밭은 널리 심어 해마다 무성하고, 복의 바다는 넓고 깊어 해마다 굳건하도다. 복이 건곤에 가득하니 복의 그늘이 많고, 복이 한량없이 더해져 길이 두루 완전하도다. 녹의 시에 이르기를, 녹은 산처럼 무거워 채색 봉황이 울고, 녹은 때를 따라 태평하여 장경성을 바라보도다. 녹은 만 곡을 더하니 몸이 건강하고, 녹은 천 종을 누리니 또한 태평하도다. 녹의 봉록은 하늘과 같아 길이 굳건하고, 녹의 이름은 바다 같아 더욱 맑도다. 녹의 생각은 멀리 이어져 우러름이 많고, 녹의 작위는 끝이 없어 만국이 영화롭도다. 수의 시에 이르기를, 수성성이 채색을 바쳐 여래를 대하니, 수의 영역에 광채가 이로부터 열리도다. 수의 과일이 쟁반에 가득하여 상서로운 기운이 피어오르고, 수의 꽃을 새로 따서 연대에 꽂도다. 수의 시는 맑고 우아하여 기묘함이 많고, 수의 곡은 음을 조율하여 아름다운 재주를 따르도다. 수명은 길게 늘어나 해와 달과 같고, 수는 산과 바다 같아 더욱 유유하도다. 뭇 보살이 바침을 마치고 이에 여래께 청하여 근본을 밝히시고 근원과 흐름을 가리켜 풀어 주시기를 청하니, 그 여래께서 착한 입을 조금 여시고 대법을 펴내시며 정도를 드높여 선양하시니, 말씀하신 것은 삼승의 묘전이며 오온의 장엄이었다. 다만 보니 그때 천룡이 함께 둘러싸고 꽃비가 어지러이 내리더라. 바로 이러하였다. “선의 마음이 천 강의 달을 밝게 비추고, 참된 성품이 만 리의 하늘을 머금도다.” 여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뭇 대중에게 돌아 말씀하셨다. “내가 사대부주를 살펴보니 중생의 선악이 각 방향이 같지 않으니라. 동승신주는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예우하며 마음이 상쾌하고 기운이 평온하니라. 북거로주는 비록 살생을 좋아하나 다만 입에 풀칠하기 위함이라 성품이 졸렬하고 정이 흐르나 함부로 짓밟는 일은 많지 않으니라. 내 서우하주는 탐하지 않고 죽이지 않으며 기운을 기르고 영을 감추어 비록 상진은 없으나 사람마다 수를 누리느니라. 그러나 저 남첨부주는 음탕을 탐하고 재앙을 즐기며 많이 죽이고 많이 다투니, 바로 이른바 입과 혀의 흉한 마당이며 시비의 악한 바다라. 내게 지금 삼장 진경이 있어 사람을 권하여 착함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느니라.” 뭇 보살이 이 말을 듣고 합장하여 귀의하고 부처 앞으로 향해 물었다. “여래께 어떤 삼장 진경이 있사오니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법일장이 있어 하늘을 말하고, 론일장이 있어 땅을 말하며, 경일장이 있어 귀신을 제도하니, 삼장을 합하여 모두 삼십오부요, 만 오천백사십사 권이니라. 이는 진리를 닦는 길이며 정도의 문이니라. 내가 이를 동쪽 땅에 보내고자 하나, 저쪽 중생이 어리석어 진언을 훼방하고 내 법문의 요지를 알지 못하며 유가의 정종을 게을리하니 어찌할 수 없구나. 어찌하면 법력이 있는 자 하나를 얻어 동쪽 땅에 가서 착한 신자 하나를 찾아, 그로 하여금 천 산을 괴로이 지나고 만 물을 멀리 건너 내게 와 진경을 구하게 하고, 동쪽 땅에 길이 전하여 그 중생을 권하게 할꼬? 이는 곧 산같이 큰 복연이며 바다같이 깊은 선경이니, 누가 기꺼이 한 번 다녀오겠느냐?” 이때에 관음보살이 있어 연대 가까이 나아가 부처께 세 번 절하고 아뢰었다. “제자는 재주가 없사오나 동쪽 땅에 올라가 경전을 취해 올 사람 하나를 찾고자 하나이다.” 뭇 대중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보살은 이러하였다. 이치는 사덕을 온전히 갖추고 지혜는 금빛 몸에 가득하도다. 영락에는 주옥과 취옥이 드리우고 향환에는 보배 광채가 맺혔도다. 검은 구름 같은 머리는 교묘히 겹쳐 반룡의 상투를 짓고, 수놓은 띠는 가볍게 나부껴 채색 봉황의 깃을 펼치도다. 푸른 옥 단추에 흰 비단 도포는 상서로운 빛이 감싸고, 비단 융단 치마에 금 낙락은 서기로운 기운이 가리우도다. 눈썹은 작은 달 같고 눈은 쌍별 같도다. 옥 같은 얼굴에는 천생 기쁨이 깃들고 붉은 입술에는 한 점 붉음이 있도다. 정병의 감로는 해마다 가득하고 비스듬히 꽂은 수양버들은 해마다 푸르도다. 팔난을 풀어 뭇 중생을 제도하니 대자대비하도다. 그러므로 태산을 진압하고 남해에 머물러 고통을 구하고 소리를 찾아 만번 불리면 만번 응하고 천 성인이 천 영험이로다. 난초 같은 마음은 자죽을 기뻐하고 혜초 같은 성품은 향등을 사랑하도다. 그는 낙가산 위의 자비로운 주인이요, 조음동 안의 살아 있는 관음이로다. 여래께서 이를 보시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다른 이는 또한 갈 수 없느니라. 모름지기 관음 존자가 신통이 광대해야만 가겠느니라.” 보살이 말했다. “제자가 이번에 동쪽 땅으로 가는데, 무슨 말씀을 분부하시겠나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이번에 가서는 길과 도를 밟아 살펴야 하며, 하늘 높은 곳에서 다니는 것은 허락하지 않느니라. 모름지기 반은 구름이요 반은 안개로 다녀야 하느니라. 눈으로 산수를 지나며 정성껏 노정의 멀고 가까운 수를 기록하고, 그 경전을 취할 사람에게 당부하라. 다만 착한 신자가 가기 어려울까 두려우니, 내 그대에게 다섯 가지 보배를 주겠노라.” 이에 곧 아나와 가섭에게 명하여 비단으로 짠 가사 한 벌과 아홉 고리가 달린 석장 하나를 꺼내 오게 하시고,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이 가사와 석장은 그 경전을 취할 사람에게 주어 몸소 쓰게 하라. 만일 굳은 마음으로 이곳에 오고자 하면 내 가사를 입어 윤회에 떨어지지 않고, 내 석장을 지녀 독한 해를 만나지 않으리라.” 이 보살이 귀의하여 절하고 받드니, 여래께서 또 세 개의 고리를 취하여 보살에게 건네며 말씀하셨다. “이 보배를 ‘긴고아’라 부르나니, 비록 모양이 같은 셋이나 다만 쓰임은 각각 다르니라. 내게 금과 긴과 금 세 글자의 주문 세 편이 있느니라. 만일 가는 길에 신통이 광대한 요마를 만나거든, 그대는 모름지기 그를 권하여 착함을 배우게 하고 그 경전을 취할 사람을 따라 제자가 되게 하라. 그가 만일 복종하여 부림을 받지 않거든 이 고리를 그의 머리에 씌우면 절로 살에 파고들어 뿌리를 내리리라. 각각 쓰이는 바에 따라 주문을 한 번 외우면 눈이 부풀고 머리가 아파 뇌문이 다 갈라질 것이니, 반드시 그를 내 문중에 들게 하리라.” 그 보살이 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이에 곧 혜안행자를 불러 함께 가게 하니, 그 혜안은 천 근이나 되는 쇠몽둥이 하나를 써서 보살의 좌우에서 마귀를 항복시키는 힘센 장사 노릇을 하였다. 보살이 마침내 비단 가사를 한 보따리로 싸서 그에게 지우고, 보살은 금고리를 감추고 석장을 쥐고 곧장 영산을 내려갔다. 이번에 가면 장차 이런 일이 있으리라. 불자의 돌아올 원이 다시 돌아오리니, 금선장로가 전단향을 싸도다. 그 보살이 산기슭에 이르니 옥진관의 금정대선이 관문 앞에서 맞아들여 보살께 차를 청하였다. 보살이 감히 오래 머물지 못하고 대선에게 말했다. “이제 여래의 법지를 받들어 동쪽 땅에 올라가 경전을 취할 사람을 찾으러 가나이다.” 대선이 말했다. “경전을 취할 사람은 어느 때쯤 이르겠습니까?” 보살이 말했다. “아직 정하지 못하였으나, 대략 두세 해 사이에 혹 이곳에 이를 수 있으리라.” 마침내 대선을 하직하고 반은 구름이요 반은 안개로 노정을 대략 기록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만 리를 서로 찾아 스스로 말하지 않으나, 도리어 누가 뜻을 얻기 어렵다 이르는고? 사람을 구함이 홀연히 이처럼 온전하다면, 이는 내 평생 어찌 우연이겠는가? 도를 전함에 방도가 있어 이 말을 이루었고, 설명함에 믿음이 없으면 또한 헛되이 전하리라. 원하건대 간과 담을 기울여 아는 이를 찾으리니, 앞머리에 반드시 인연이 있으리라 생각하노라. 사제 두 사람이 걷던 중 홀연히 약수 삼천을 보니, 이는 유사하의 경계였다. 보살이 말했다. “제자여, 이곳은 참으로 가기 어렵구나. 경전을 취할 사람은 탁한 뼈에 범부의 태이니 어찌 건너갈 수 있겠느냐?” 혜안이 말했다. “사부님, 이 강이 얼마나 멀리 뻗었는지 보소서.” 그 보살이 구름을 멈추고 걸음을 멈추고 살펴볼 때에, 다만 보이더라. 동쪽으로는 사막과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여러 오랑캐 땅에 닿았으며, 남쪽으로는 오과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달달과 통하더라. 곧장 지나는 것이 팔백 리나 되고 위아래로는 천만 리가 멀더라. 물결은 마치 땅이 뒤집히는 듯 흐르고 파도는 산이 등을 솟구치는 듯 굴렀도다. 넘실넘실 넓고 아득하고 망망하니, 십 리 밖에서도 만 길의 큰 물소리를 듣도다. 신선의 뗏목도 이곳에 이르기 어렵고 연잎도 뜨지 못하도다. 마른 풀과 비낀 햇살이 굽은 물가에 흐르고, 누런 구름 그림자가 해를 가려 긴 둑을 어둡게 하도다. 그곳에 어찌 객상이 왕래하였으며, 어찌 어부 노인이 의지하여 살았으랴? 평평한 모래벌에 기러기 떨어지지 않고 먼 언덕에서 원숭이가 울도다. 다만 붉은 여뀌꽃이 무성하여 경치를 아는 듯하고, 흰 마름 향기 가늘어 마음대로 휘늘어졌도다. 보살이 바야흐로 살펴보는데, 문득 그 강 가운데서 철썩 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며 물결 속에서 한 요마가 뛰어나오니, 몹시 흉악하였다. 그 생김새는 이러하였다. 푸르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 재수 없는 빛깔의 얼굴이며 길지도 짧지도 않은 맨발의 힘줄진 몸이로다. 눈빛이 번쩍이니 마치 아궁이 밑의 두 등불 같고, 입아귀가 갈라져 벌어지니 마치 백정 집의 화로 같도다. 어금니는 칼날을 받쳐 세웠고 붉은 머리는 어지러이 헝클어졌도다. 한 번 꾸짖는 소리는 우레의 포효 같고 두 발이 내닫는 모양은 구르는 바람 같도다. 그 괴물이 손에 보배 지팡이 하나를 쥐고 물가에 올라와 곧 보살을 붙잡으려 하였으나, 혜안이 쇠몽둥이를 빼어 막아서며 소리쳐 꾸짖었다. “가지 말라!” 그 괴물이 곧 지팡이를 굳게 쥐고 맞아들었다. 두 사람이 유사하 가에서 이 한바탕 사나운 싸움을 벌이니, 실로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목타의 쇠몽둥이는 법을 수호하여 신통을 드러내고, 괴물의 항요 지팡이는 힘써 영웅을 뽐내도다. 두 마리 은빛 이무기가 강가에서 춤추고, 한 쌍의 신장이 언덕 위에서 부딪치도다. 저쪽은 위엄으로 유사를 진압하여 재주를 베풀고, 이쪽은 힘으로 관음을 보호하여 큰 공을 세우도다. 저쪽은 물결을 뒤집고 파도를 뛰어오르고, 이쪽은 안개를 토하고 구름을 뿜도다. 물결을 뒤집고 파도를 뛰어오르니 천지가 어둡고, 안개를 토하고 구름을 뿜으니 해와 달이 어둡도다. 저 항요 지팡이는 마치 산에서 나온 백호 같고, 이 쇠몽둥이는 곧 길에 엎드린 황룡 같도다. 저쪽이 휘두르면 뱀을 찾고 풀을 헤치며, 이쪽이 던지면 새매를 잡고 소나무를 가르도다. 싸움은 어둡고 아득하여 별이 찬란하고, 안개가 자욱하여 천지가 흐릿하도다. 저쪽은 오래 유사에 살아 그만큼 사납고, 이쪽은 처음 영산을 나와 첫 공을 세우도다. 두 사람이 오가며 수십 합을 싸워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다. 그 괴물이 쇠몽둥이를 막아 세우고 말했다. “너는 어느 곳의 중이기에 감히 와서 나와 겨루느냐?” 목타가 말했다. “나는 탁탑천왕의 둘째 태자 목타 혜안행자로, 지금 우리 사부를 보호하여 동쪽 땅에 가서 경전을 취할 사람을 찾으러 가는 중이다. 너는 무슨 괴물이기에 감히 큰 담으로 길을 막느냐?” 그 괴물이 그제야 문득 깨달아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네가 남해 관음을 따라 자죽림에서 수행하였으니, 네가 어찌하여 이곳에 왔느냐?” 목타가 말했다. “저 언덕 위에 계신 이가 바로 우리 사부이시다.” 괴물이 이 말을 듣고 연달아 승낙하며 보배 지팡이를 거두고 목타에게 붙잡혀 가서 관음을 보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였다. 고하여 말했다. “보살님, 제 죄를 용서하시고 제가 아뢰게 하소서. 저는 요사한 무리가 아니오라 영소전 아래에서 어거를 모시던 권렴대장이옵니다. 다만 반도회에서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렸기에 옥황상제께서 저를 팔백 대 때리고 하계로 쫓아내어 이와 같은 모습이 되었나이다. 또 칠 일에 한 번씩 나는 칼을 보내어 제 가슴과 옆구리를 백여 번 찌르고서야 돌아가게 하셨으므로 이같이 고통스럽나이다. 어찌할 수 없이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서너 날마다 파도를 나와 지나는 사람을 찾아 먹었나이다. 뜻밖에 오늘 무지하여 대자보살을 충돌하였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네가 하늘에서 죄를 지어 이미 쫓겨났거늘, 이제 또 이처럼 생명을 상하게 하니, 바로 이른바 죄 위에 죄를 더함이라. 내가 이제 부처의 법지를 받들어 동쪽 땅에 올라가 경전을 취할 사람을 찾으려 하니, 네 어찌 내 문에 들어와 착한 과보에 귀의하여 그 경전을 취할 사람을 따라 제자가 되어 서쪽 하늘에 올라 부처께 예하고 경전을 구하지 않겠느냐? 내 나는 칼이 와서 너를 찌르지 못하게 하리라. 그때에 공을 이루어 죄를 면하고 네 본직을 회복하리니, 마음이 어떠하냐?” 그 괴물이 말했다. “저는 정도에 귀의하고자 하나이다.” 또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보살님, 저는 이곳에서 사람을 무수히 먹었사오며, 전에도 몇 차례 경전을 취하러 온 사람이 있었으나 모두 저에게 먹혔나이다. 무릇 먹은 사람의 머리는 유사에 던져지면 마침내 물 밑으로 가라앉았나이다. 이 물은 거위 털도 뜨지 못하나이다. 다만 아홉 경전취득인의 해골만은 물 위에 떠서 다시는 가라앉지 않았나이다. 저는 이를 기이한 물건으로 여겨 줄로 한곳에 꿰어 두고 한가할 때 꺼내 가지고 놀았나이다. 이제 가시는데 경전을 취할 사람이 이곳에 이르지 못한다면 도리어 제 앞길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오니이까?” 보살이 말했다. “어찌 이르지 못할 이치가 있겠느냐? 네 그 해골들을 목에 걸고 경전을 취할 사람을 기다리라, 절로 쓸 곳이 있으리라.” 괴물이 말했다. “그러하오면 원하건대 가르침을 받들겠나이다.” 보살이 그제야 그에게 정수리를 만져 계를 주고 모래를 가리켜 성을 삼으니 곧 성이 사가 되었고, 법명을 지어 사오정이라 하였다. 그때에 사문에 들어 보살을 강 건너까지 보내고, 그는 마음을 씻고 생각을 씻어 다시는 생명을 상하게 하지 않고 오직 경전을 취할 사람만을 기다렸다. 보살이 그와 작별하고 목타와 함께 곧장 동쪽 땅으로 달렸다. 여러 날을 간 뒤에 또 한 높은 산을 보니, 산 위에 사나운 기운이 뒤덮여 걸어 올라갈 수 없었다. 바야흐로 구름을 타고 산을 넘으려 할 때에, 뜻하지 않게 미친 바람이 일어나는 곳에서 또 한 요마가 뛰어나왔다. 그 생김새가 또한 매우 흉험하였다. 연꽃잎을 만 지붕처럼 얹은 드리운 주둥이에, 귀는 부들 부채 같아 금빛 눈동자가 드러났도다. 어금니는 날카롭기가 강철 줄 같고, 긴 주둥이를 벌리니 화로 같도다. 금 투구를 뺨 가죽끈에 단단히 매고, 갑옷을 묶은 비단 끈은 이무기가 비늘을 벗은 듯하도다. 손에는 정파를 쥐어 용이 발톱을 내미는 듯하고, 허리에는 활을 차니 달이 열 번 돈 듯하도다. 늠름한 위풍은 태세를 능멸하고, 우뚝한 기상은 천신을 누르도다. 그가 달려들어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보살을 향해 정파를 들어 내리치니, 목타행자가 막아서며 크게 한 소리 꾸짖었다. “이 요망한 괴물아, 무례하지 말라! 몽둥이를 보라!” 요마가 말했다. “이 중은 죽고 사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정파를 보라!” 두 사람이 산 아래에서 부딪치고 맞서며 이기고 지기를 겨루니, 실로 좋은 싸움이었다. 요마는 흉맹하고 혜안은 위엄 있다. 쇠몽둥이는 심장을 갈라 찌르고, 정파는 얼굴을 마주해 맞이하도다. 흙을 날리고 먼지를 일으키니 천지가 어둡고, 모래를 뿌리고 돌을 날리니 귀신이 놀라도다. 아홉 이빨 정파는 빛나고 쌍고리는 울리며, 한 가닥 몽둥이는 검푸르게 두 손에서 날아 오르도다. 이쪽은 천왕의 태자요 저쪽은 원수의 정령이로다. 하나는 보타에서 법을 수호하고 하나는 산속 굴에서 요정이 되었도다. 이번 만남에서 높고 낮음을 다투니, 어느 쪽이 지고 어느 쪽이 이기는지 알지 못하리라. 두 사람이 한창 싸울 때에 관세음이 반쯤 하늘에서 연꽃을 던져 정파와 몽둥이를 갈라놓았다. 괴물이 이를 보고 마음이 놀라 곧 물었다. “너는 어디 중이기에 감히 무슨 ‘눈앞의 꽃’ 같은 술법으로 나를 속이느냐?” 목타가 말했다. “이 눈먼 범부 같은 놈아! 나는 남해보살의 제자다. 이것은 우리 사부께서 던지신 연꽃인데 너는 그것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그 괴물이 말했다. “남해보살이라면 삼재를 쓸고 팔난을 구하는 관음보살을 이르는 것이냐?” 목타가 말했다. “그분이 아니고 누구겠느냐?” 괴물이 정파를 내던지고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며 말했다. “형님, 보살께서는 어디에 계시오니까? 번거롭게 하오니 저를 인도하여 뵙게 하여 주소서.” 목타가 얼굴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아닌가?” 괴물이 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보살님, 죄를 용서하소서! 죄를 용서하소서!” 관음이 구름머리를 누르고 앞으로 나아와 물었다. “너는 어디서 정령이 된 들돼지이며 어느 땅에서 괴이한 늙은 돼지가 되어 감히 이곳에서 나를 막느냐?” 그 괴물이 말했다. “저는 들돼지도 아니고 늙은 돼지도 아니옵니다. 저는 본래 천하의 천봉원수이옵니다. 다만 술에 취하여 항아를 희롱하였기에 옥황상제께서 저를 이천 번 몽둥이로 때리고 속세로 쫓아내셨나이다. 한 줄기 참된 성품이 마침내 남의 몸을 빼앗아 환생하려 하였으나, 뜻밖에 길을 잘못 들어 암퇘지 태 속에 들어가 이와 같은 모습이 되었나이다. 이에 제가 암퇘지를 물어 죽이고 뭇 돼지를 때려 죽여 이곳에서 산터를 차지하고 사람을 먹으며 나날을 보냈나이다. 뜻밖에 보살님을 만났으니, 바라건대 구원하여 주소서, 구원하여 주소서.” 보살이 말했다. “이 산을 무엇이라 부르느냐?” 괴물이 말했다. “복릉산이라 부르나이다. 산중에 한 굴이 있어 운잔동이라 부르나이다. 굴 안에 본래 난이자라는 이가 있었나이다. 그가 저에게 얼마간 무예가 있는 것을 보고 저를 불러 집안의 어른으로 삼고 또 ‘도치문’이라 불렀나이다. 일 년이 되지 않아 그가 죽었고 한 굴의 재산이 모두 제게 돌아왔나이다. 이곳에 산 지 오래되어 날이 깊었으나 몸을 봉양할 일이 없어 다만 본래대로 사람을 먹으며 나날을 보냈나이다. 바라건대 보살님께서 죄를 용서하소서.” 보살이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앞길이 있으려거든 앞길 없는 일을 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네가 이미 상계에서 법을 어겼거늘 이제 또 흉한 마음을 고치지 않고 생명을 상하게 하여 업을 지으니, 이는 두 죄를 아울러 벌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괴물이 말했다. “앞길! 앞길! 당신 말대로 하자면 나를 바람을 마시며 살라고 하시는 것이오. 흔히 이르기를 ‘관법을 좇으면 맞아 죽고 불법을 좇으면 굶어 죽는다’ 하였소. 가겠소! 가겠소! 차라리 지나는 사람 하나를 붙잡아 기름지게 그놈의 것을 먹고 말겠소! 두 죄니 세 죄니 천 죄니 만 죄니 무슨 상관이오!” 보살이 말했다. “‘사람에게 착한 원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그를 따르느니라.’ 네 만일 정도에 귀의하고자 하면 절로 몸을 기를 곳이 있으리라. 세상에 오곡이 있어 능히 주림을 구제할 수 있거늘 어찌하여 사람을 먹으며 나날을 보내느냐?” 괴물이 말을 듣고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하였다. 보살을 향해 예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정도를 따르고자 하나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하였사오니 어찌하오니까!” 보살이 말했다. “내가 부처의 법지를 받들어 동쪽 땅에 올라가 경전을 취할 사람을 찾으려 하니, 네 그를 따라 제자가 되어 서쪽 하늘에 한 번 다녀와 공으로 죄를 갚으면 반드시 너를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그 괴물이 입 가득히 말했다. “따르겠나이다! 따르겠나이다!” 보살이 그제야 그에게 정수리를 만져 계를 주고 몸을 가리켜 성을 삼으니 곧 성이 저가 되었고, 그를 위해 법명을 지어 저오능이라 하였다. 이에 명을 받들어 정도로 돌아가 재계를 지키고 채소만 먹으며 오혼과 삼염을 끊고 오직 그 경전을 취할 사람만을 기다렸다. 보살이 곧 목타와 함께 오능에게 작별을 고하고 반쯤 구름과 안개를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는데, 바로 걷던 중에 문득 하늘 가운데 한 마리 옥룡이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보살이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너는 무슨 용이기에 이곳에서 죄를 받느냐?” 그 용이 말했다. “저는 서해용왕 오윤의 아들이옵니다. 다만 전각 위의 명주 구슬을 불질러 태웠기에 제 부왕이 천정에 표를 올려 패역을 고하였나이다. 오제께서 저를 하늘 가운데 매달아 삼백 대를 때리시고 머지않아 주륙하려 하시나이다. 바라건대 보살님께서 구해 주소서, 구해 주소서.” 관음이 이 말을 듣고 곧 목타와 함께 남천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구천사와 장천사 두 사람이 맞이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나이까?” 보살이 말했다. “빈승이 옥제를 한 번 뵙고자 하나이다.” 두 천사가 곧 급히 아뢰니, 옥제께서 마침내 전에서 내려와 맞이하셨다. 보살이 앞으로 나아가 예를 마치고 말했다. “빈승이 부처의 법지를 받들어 동쪽 땅에 올라가 경전을 취할 사람을 찾던 중 길에서 죄지은 용이 매달린 것을 만났사오니, 특별히 와서 아룁니다. 그 목숨을 살려 주시고 빈승에게 내려 주시어 그로 하여금 경전을 취할 사람과 짝하여 발이 되게 하소서.” 옥제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곧 조서를 내려 사면하시고 천장을 시켜 풀어 주어 보살에게 보내셨다. 보살이 은혜에 사례하고 나오니, 이 작은 용이 머리를 조아려 살려 준 은혜에 사례하고 보살의 부림을 따랐다. 보살이 그를 깊은 산골 물가에 보내어 다만 경전을 취할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흰 말로 변하여 서쪽으로 가 공을 세우게 하니, 작은 용이 명을 받들어 몸을 감추었으니 그 뒤의 일은 이만 두고 이르지 않으리라. 보살이 목타행자를 데리고 이 산을 지나 또 동쪽 땅으로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문득 금빛 광채 만 줄기와 상서로운 기운 천 가닥을 보았다. 목타가 말했다. “사부님, 저 빛을 놓는 곳이 바로 오행산이옵니다. 여래의 ‘압첩’이 거기 있는 것이 보이옵니다.” 보살이 말했다. “이곳은 바로 그 반도회를 소란하게 하고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제천대성으로, 지금 이곳에 눌려 있느니라.” 목타가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사제가 함께 산에 올라 첩자를 보니, 이는 ‘옴, 마, 니, 발, 미, 훔’ 여섯 글자의 진언이었다. 보살이 보고 나서 탄식하기를 마지않으며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시에 이르기를, 가히 탄식하노라, 요원숭이가 공을 받들지 않아 그해에 광망하게 영웅을 뽐냈도다. 마음을 속여 반도회를 어지럽히고 큰 담으로 도솔궁을 사사로이 드나들었도다. 십만 군중에 적수가 없고 구중 하늘에 위풍이 있었도다. 스스로 우리 부처 여래에게 갇힌 이후, 어느 날에 펴고 뻗쳐 다시 공을 드러내리오! 사제가 바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 일찍이 그 대성이 놀랐다. 대성이 산기슭 아래에서 크게 외쳤다. “누가 산 위에서 시를 읊어 내 흉을 드러내는고?” 보살이 이 말을 듣고 곧 산을 내려가 찾으니, 그 돌벼랑 아래에 토지와 산신, 대성을 감시하는 천장들이 모두 와서 보살을 배알하고 그 대성 앞으로 인도하였다. 살펴보니 그는 원래 돌 상자 가운데 눌려 있어 입은 말할 수 있으나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보살이 말했다. “성손아, 네가 나를 아느냐?” 대성이 불눈금정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외쳤다. “제가 어찌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겠나이까. 당신은 참으로 저 남해 보타 낙가산에서 고통을 구하고 어려움을 구제하는 대자대비 나무관세음보살이시옵니다. 돌보아 주심을 받드나이다! 돌보아 주심을 받드나이다! 저는 이곳에서 하루가 일 년 같사오나 저를 아는 이 하나도 와서 저를 보아 주지 않았나이다.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이까?” 보살이 말했다. “나는 부처의 법지를 받들어 동쪽 땅에 올라가 경전을 취할 사람을 찾던 중 이곳을 지나므로 특별히 남은 걸음을 두어 너를 보러 왔느니라.” 대성이 말했다. “여래께서 나를 속여 이 산에 눌러 봉하신 지 오백여 년이 되었으나 몸을 펼 수 없으니, 바라건대 보살님께서 방편을 조금 베푸시어 이 늙은 손을 구해 주소서!” 보살이 말했다. “너는 죄업이 더욱 깊으니, 너를 구해 내면 또 화를 낼까 두렵다. 도리어 좋지 않으리라.” 대성이 말했다. “저는 이미 뉘우칠 줄 아나이다. 원하건대 대자비께서 문로 하나를 가리켜 주소서, 기꺼이 수행하고자 하나이다.” 이에야 바로 이러하였다. 사람의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천지가 다 알도다. 선악에 과보가 없다면 건곤에 반드시 사사로움이 있으리라. 그 보살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가득 기뻐하며 대성에게 말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 말을 착하게 내면 천 리 밖에서도 응하고, 그 말을 착하지 않게 내면 천 리 밖에서도 어긋난다’ 하였느니라. 네 이미 이런 마음이 있으니, 내가 동쪽 땅 대당국에 이르러 경전을 취할 사람 하나를 찾거든 그로 하여금 너를 구하게 하리라. 네 그를 따라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들고 내 불문에 들어 다시 정도를 닦으면 어떻겠느냐?” 대성이 소리소리 말했다. “가겠나이다! 가겠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이미 착한 과가 있으니 내 너에게 법명을 지어 주리라.” 대성이 말했다. “저는 이미 이름이 있사오니 손오공이라 하나이다.” 보살이 또 기뻐하며 말했다. “내 앞서도 두 사람이 항복해 돌아왔으니 바로 ‘오’ 자 항렬이라. 네 이제 또한 ‘오’ 자이니 그들과 서로 맞아 매우 좋고 매우 좋구나. 그렇다면 굳이 당부할 것도 없으니 나는 가겠다.” 그 대성이 성품을 보고 마음을 밝혀 불교에 돌아갔고, 이 보살은 정을 머물고 뜻을 두어 장차 신장을 두루 찾으리라. 그가 목타와 이곳을 떠나 줄곧 동쪽으로 와서 하루가 못 되어 장안 대당국에 이르렀다. 안개를 거두고 구름을 걷고 사제는 두 명의 옴이 많은 떠돌이 중으로 변하여 장안성 안으로 들어갔으나 날이 저무는 줄도 깨닫지 못하였다. 큰 저잣거리 곁에 이르러 토지묘 하나를 보고 두 사람이 곧장 들어가니, 그 토지를 놀라게 하여 마음이 어지럽고 귀병들은 간이 떨렸다. 보살인 줄 알고 머리를 조아려 맞아들였다. 그 토지가 또 급히 달려가 성황과 사령, 그리고 장안성 안 모든 묘의 신들에게 알리니, 모두 와서 참견하고 말했다. “보살님, 뭇 신이 늦게 맞이한 죄를 용서하소서.” 보살이 말했다. “너희는 소식을 누설하지 말라. 내가 부처의 법지를 받들어 특별히 이곳에 와 경전을 취할 사람을 찾느니라. 네 묘우를 빌려 며칠 임시로 머물다가 참된 중을 찾으면 곧 돌아가리라.” 뭇 신이 각기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 토지는 성황묘로 쫓겨 가 잠시 머물렀으며, 그 사제는 참된 모습을 감추었다. 결국 그 경전을 취할 사람을 찾아내었는지는 알지 못하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회 진광예부임봉재(陳光蕊赴任逢災) · 강류승복수보본(江流僧復讎報本) 말하자면 섬서의 큰 나라 장안성은 역대 제왕들이 도읍을 세운 땅이다. 주와 진, 한 이래로 세 고을에는 꽃이 비단 같고 여덟 줄기 물이 성을 돌아 흐르니, 참으로 이름난 고장이었다. 그때는 대당 태종 황제께서 등극하시어 연호를 정관으로 고치신 지 이미 십삼 년이 되던 해로, 해는 기사년이었다. 천하가 태평하여 팔방이 공물을 바치고 사해가 신하를 칭하였다. 어느 날 문득 태종께서 어좌에 오르시어 문무 백관을 모으시고 조배의 예를 마치시니, 위징 승상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었다. “지금 천하가 태평하고 팔방이 고요하오니, 마땅히 옛 법에 따라 선발장을 열어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 모으고 인재를 발탁하여 교화와 다스림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태종께서 말씀하셨다. “어진 경의 아룀이 이치에 맞는다.” 이에 어진 이를 부르는 방문을 내려 천하에 반포하시니, 각 부와 주와 현에서 군인과 백성을 가리지 않고 다만 글을 읽는 유생으로 문의가 명창하고 삼장에 정통한 자가 있거든 장안으로 나아가 응시하라는 것이었다. 이 방문이 해주 지방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성이 진이고 이름이 악이며 자가 광예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이 방문을 보고 곧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장씨에게 말했다. “조정에서 황방을 내려 남성을 열고 현명한 재주를 뽑으라 하셨사오니, 아이가 나아가 응시하고자 하나이다. 혹시라도 한 벼슬 반 직책을 얻어 어버이를 드러내고 이름을 드높이며 아내를 봉하고 자식을 음서로 덮어 집안을 빛낸다면 바로 아이의 뜻이옵니다. 이에 특별히 어머니께 아뢰고 떠나고자 하나이다.” 장씨가 말했다. “내 아들은 글을 읽는 사람이니, ‘어려서 배우고 장성하여 행한다’ 하였으니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다만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는 모름지기 조심하여야 하고, 벼슬을 얻거든 일찍 돌아오너라.” 광예는 곧 집안 종에게 행장을 수습하게 하고 즉시 어머니께 절하여 하직한 뒤 길을 재촉하여 나아갔다. 장안에 이르니 마침 선발장이 크게 열려 있었으므로 광예는 곧장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을 마치고 중선되었으며, 조정에서 삼책을 대하니 당왕께서 어필로 친히 장원을 내리시고 말을 타고 사흘 동안 거리를 돌게 하셨다. 뜻하지 않게 놀며 가다가 승상 은개산의 문 앞에 이르렀는데, 승상에게는 딸이 하나 있어 이름은 온교라 하고 또 만당교라 하였으며, 아직 혼인을 정하지 못한 채 마침 높이 채색 누각을 세우고 수구를 던져 사위를 점치고 있었다. 마침 진광예가 누 아래를 지나가는데, 아가씨가 광예의 인재가 빼어남을 한 번 보고 신과 장원임을 알아차리자 마음속으로 몹시 기뻐하여 곧 수구를 내던졌는데 마침 광예의 오사모를 맞히었다. 홀연 생황과 피리의 가늘고 고운 풍악 소리가 들리더니, 십여 명의 시비와 첩이 누에서 내려와 광예의 말머리를 붙들고 장원을 맞아 승상부로 들어가 혼인을 치르게 하였다. 그 승상과 부인이 즉시 당에 나와 빈례를 맡은 사람을 불러 예를 찬양하게 하고 아가씨를 광예에게 짝지어 주었다. 하늘과 땅에 절하고 부부가 서로 절을 마친 뒤 다시 장인과 장모께 절하였다. 승상이 분부하여 술자리를 베풀게 하니 온 밤을 즐겁게 마셨다. 두 사람은 함께 흰 손을 잡고 함께 난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오경 삼점에 태종께서 금란보전에 어좌를 펴시니 문무 백관이 조정으로 달려갔다. 태종께서 물으셨다. “신과 장원 진광예에게 응당 무슨 벼슬을 내려야 하겠느냐?” 위징 승상이 아뢰었다. “신이 소속 주군을 살펴보니 강주에 벼슬 자리가 비어 있사오니, 우리 주상께서 그에게 이 직책을 내리시기를 청하나이다.” 태종께서 곧 강주주로 임명하시고 즉시 행장을 수습하여 길을 떠나되 기한을 그르치지 말라 하셨다. 광예는 은혜에 사례하고 조정을 나와 승상부로 돌아가 아내와 의논한 뒤 장인과 장모께 절하여 하직하고 아내와 함께 강주로 부임길에 올랐다. 장안을 떠나 길에 오르니 때마침 늦봄 날씨라 부드러운 바람이 버들을 푸르게 불고 가는 비가 꽃을 붉게 적셨다. 광예는 곧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함께 어머니 장씨께 교배의 예를 올렸다. 장씨가 말했다. “내 아들을 축하하노라, 또 장가까지 들어 돌아왔구나.” 광예가 말했다. “아이가 어머니의 복록에 힘입어 외람되이 장원에 뽑히고 어명으로 거리 돌기를 하사받았사온데, 승상 은부 문 앞을 지나다 수구 던지기를 만나 마침 맞았으므로 승상께서 곧 아가씨를 아이에게 사위로 맞아 주셨나이다. 조정에서 아이를 강주주로 제수하시었으므로 이제 어머니를 모시러 왔사오니 함께 부임길에 오르고자 하나이다.” 장씨가 크게 기뻐하며 행장을 수습하였다. 길에서 여러 날을 가서 만화점 유소이의 집에 이르러 머물렀는데, 장씨의 몸에 갑자기 병이 났다. 장씨가 광예에게 말했다. “내 몸이 편치 않으니 우선 점방에서 이틀 쉬며 조리한 뒤에 가자.” 광예가 분부를 따랐다. 이튿날 아침 점방 문 앞에 어떤 사람이 금빛 잉어를 들고 팔러 온 것을 보고 광예는 곧 한 꿰미의 돈을 주고 사서 어머니께 삶아 드리려 하였는데, 그 잉어가 눈을 번뜩번뜩 깜빡이는지라 광예가 놀라며 말했다. “듣자하니 물고기와 뱀이 눈을 깜빡이면 반드시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라 하였소!” 이에 어부에게 물었다. “이 물고기는 어디서 잡았소?” 어부가 말했다. “부에서 십오 리 떨어진 홍강 안에서 잡았사옵니다.” 광예는 곧 그 물고기를 홍강에 보내 놓아주었다. 점방으로 돌아와 어머니께 이 일을 알리니 장씨가 말했다. “방생은 좋은 일이니 내 마음이 매우 기쁘구나.” 광예가 말했다. “이 점방에 이미 사흘을 묵었사오나 어명의 기한이 급박하오니, 아이는 내일 길을 떠나고자 하나이다. 어머니의 몸은 어떠하신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장씨가 말했다. “내 몸이 괴로우니 이때 길이 뜨거워 병을 더할까 두렵구나. 네가 여기서 방 한 칸을 빌려 나를 잠시 머물게 하고 노자 얼마를 여기 두라. 너희 두 사람은 먼저 부임지로 가 있고 가을이 서늘해지거든 나를 데리러 오너라.” 광예는 아내와 의논하여 곧 집을 빌리고 어머니께 노자를 드린 뒤 아내와 함께 절하여 하직하고 떠났다. 길이 험하고 괴로웠으나 새벽에 걷고 밤에 묵으며 어느덧 홍강도 나루에 이르렀다. 다만 뱃사공 유홍과 이표 두 사람이 배를 저어 언덕에 닿아 맞이하는 것이 보였다. 이 또한 광예가 전생에 마땅히 이런 재난을 겪어야 할 운수여서 이 원수와 마주친 것이었다. 광예가 집안 종에게 행장을 배에 옮기라 하고 부부가 막 가지런히 배에 오르려 할 때, 그 유홍이 눈을 부릅뜨고 은 아가씨를 보니 얼굴은 보름달 같고 눈은 가을 물결 같으며 입은 앵두 같고 허리는 푸른 버들 같아, 참으로 이러하였다. 물고기가 가라앉고 기러기가 떨어지는 용모요, 달이 숨고 꽃이 부끄러워하는 자태였다. 이에 갑자기 이리 같은 마음을 일으켜 곧 이표와 모의하고 배를 인적 없는 곳으로 저어 간 뒤 밤이 고요한 삼경을 기다려 먼저 집안 종을 죽이고 다음으로 광예를 때려 죽여 그 시체를 모두 물속에 밀어 넣어 버렸다. 아가씨는 그가 남편을 때려 죽인 것을 보고 몸을 물로 던지려 하니, 유홍이 한 팔로 껴안으며 말했다. “네가 나를 따르면 만사가 그칠 것이요! 만일 따르지 않으면 한 칼에 둘로 끊으리라!” 그 아가씨는 생각해도 방도가 없어 마지못해 그때 응낙하여 유홍을 따랐다. 그 도적은 배를 남쪽 언덕으로 건너가 배를 이표에게 맡겨 스스로 관리하게 하고, 자기는 광예의 의관을 껴입고 관인을 지니고 아가씨와 함께 강주로 부임해 갔다. 말하자면 유홍이 죽인 집안 종의 시체는 물을 따라 흘러갔으나, 오직 진광예의 시체만은 물 밑에 가라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홍강 어귀를 순찰하던 야차가 이를 보고 별이 튀듯 달려 용궁에 알렸는데, 마침 용왕께서 전각에 오르셨으므로 야차가 아뢰었다. “오늘 홍강 어귀에서 어떤 사람인지 모르나 글 읽는 선비 하나를 때려 죽여 시체를 물 밑에 버렸나이다.” 용왕께서 시체를 걷어 오라 하시어 앞에 놓고 자세히 살펴보시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바로 나를 구한 은인이거늘 어찌하여 남에게 모살을 당하였는고? 옛말에 이르기를 은혜는 은혜로 갚으라 하였느니라. 내가 오늘 모름지기 그의 목숨을 구하여 지난날의 은혜를 갚아야 하리라.” 이에 곧 첩문 한 통을 써서 야차를 보내 홍주 성황과 토지에게 곧장 투하하게 하여 수재의 혼백을 데려와 그의 목숨을 구하려 하셨다. 성황과 토지가 곧 작은 귀신을 불러 진광예의 혼백을 야차에게 넘겨주니, 야차가 혼백을 데리고 수정궁에 이르러 용왕께 배알하고 아뢰었다. 용왕께서 물으셨다. “너 이 선비는 성이 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이냐? 어느 고을 사람이며 무슨 일로 이곳에 이르러 남에게 맞아 죽었느냐?” 광예가 예를 올리며 말했다. “소생은 진악이라 하고 자는 광예이며 해주 홍농현 사람이옵니다. 외람되이 신과 장원에 뽑히고 분에 넘치게 강주주를 제수받아 아내와 함께 부임길에 올라 강가에 이르러 배에 올랐사온데, 뜻하지 않게 사공 유홍이 내 아내를 탐하여 도모하고 저를 때려 죽여 시체를 버렸사오니, 바라건대 대왕께서 저를 한 번 구해 주소서!” 용왕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러하였구나. 선생, 네가 앞서 놓아준 금빛 잉어가 바로 나였다. 네가 나를 구한 은인이거늘 네가 지금 어려움을 겪는데 내가 어찌 구하지 않을 이치가 있겠느냐?” 이에 곧 광예의 시신을 한쪽에 안치하시고 입안에 정안주 한 알을 물려 손상되지 않게 하시어 훗날 환혼하여 원수 갚기 좋게 하셨다. 또 말씀하셨다. “네 진혼은 이제 잠시 내 수부에서 도령 노릇을 하라.” 광예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사례하니, 용왕께서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셨으니 이는 이만 두고 이르지 않으리라. 말하자면 은 아가씨는 유 도적을 몹시 원망하여 그 살을 먹고 그 가죽 위에서 자고 싶을 지경이었으나, 다만 몸에 태기가 있어 남녀를 알 수 없었으므로 부득이 마지못해 그를 따랐다. 눈을 한두 번 깜빡이는 사이에 어느덧 강주에 이르렀다. 아전과 서리, 문지기와 하인이 모두 와서 맞이하였다. 소속 관리들이 공당에 잔치를 베풀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홍이 말했다. “제가 이곳에 이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여러 공의 큰 힘으로 도와주신 덕분이옵니다.” 소속 관리들이 아뢰었다. “당존께서는 장원으로서 높은 재주를 지니셨으니 자연히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시고 송사는 간략하며 형벌은 맑으실 것이옵니다. 저희 같은 소속이 모두 의지하고 있사오니 어찌 지나치게 겸손하시나이까?” 공식 잔치가 끝나자 사람들은 각기 흩어졌다. 세월은 빨랐다. 어느 날 유홍이 공사로 멀리 나가자 아가씨는 관아에서 시어머니와 남편을 생각하며 꽃정자 위에서 탄식하다가, 홀연 몸이 나른하고 배가 아프며 어지러워 땅에 쓰러진 사이에 어느덧 아이 하나를 낳았다. 귓가에 어떤 이가 당부하였다. “만당교야, 내 당부를 들으라. 나는 남극성군으로 관음보살의 법지를 받들어 특별히 이 아이를 네게 보내는 것이니, 뒤에 성명이 멀리 드높아져 예사롭지 않으리라. 유 도적이 돌아오면 반드시 이 아이를 해칠 것이니 너는 마음을 다하여 보호하라. 네 남편은 이미 용왕의 구원을 받았으니 뒷날 부부가 서로 만나고 자식과 어미가 다시 모여 원한을 씻고 원수를 갚을 날이 있으리라. 내 말을 삼가 기억하고 어서 깨어나라, 어서 깨어나라!” 말을 마치고 곧 떠났다. 아가씨가 깨어나니 한 구절 한 구절이 기억났다. 아이를 안고 있었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홀연 유홍이 돌아와 이 아이를 한 번 보자 곧 물에 빠뜨려 죽이려 하니, 아가씨가 말했다. “오늘은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내일 강 가운데로 버리도록 하겠사옵니다.” 다행히 이튿날 아침 유홍에게 갑자기 긴급한 공사가 생겨 멀리 나갔다. 아가씨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아이가 도적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목숨이 위태하리라! 차라리 일찍 강 가운데로 버려 그 죽고 삶을 하늘에 맡기는 것만 못하리라. 혹시 하늘이 불쌍히 여기시어 누가 구하여 이 아이를 거두어 기른다면 뒷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다만 알아보기 어려울까 두려워 곧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혈서 한 장을 써서 아비와 어미의 성명과 내력을 갖추어 자세히 적었고, 또 이 아이의 왼발 새끼발가락 하나를 입으로 깨물어 끊어 표적으로 삼았다. 몸에 붙은 속적삼 한 벌을 가져다 이 아이를 싸고는 틈을 타서 안고 관아 문을 나섰다. 다행히 관아가 강에서 멀지 않았으므로 아가씨는 강가에 이르러 한바탕 크게 울었다. 막 버리려 할 때 홀연 강 언덕 옆에서 널빤지 한 조각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아가씨는 곧 하늘을 향해 절하며 빌고 이 아이를 널빤지 위에 눕히고 띠로 묶고 혈서를 가슴에 매단 뒤 강 가운데로 밀어 넣어 어디로 가든 맡기었다. 아가씨는 눈물을 머금고 관아로 돌아갔으니 이는 이만 두고 이르지 않으리라. 말하자면 이 아이는 널빤지 위에서 물을 따라 흘러가 마침내 금산사 아래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 금산사의 장로는 법명 화상이라 하는데, 진리를 닦고 도를 깨달아 이미 무생의 묘결을 얻은 이였다. 마침 좌선하며 참선하던 중 홀연 어린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잠시 마음이 움직여 급히 강가에 나가 살펴보니, 물가 옆 널빤지 위에 한 젖먹이가 누워 있는지라 장로가 황급히 구해 일으켰다. 품속의 혈서를 보고서야 내력을 알았으므로 젖이름을 지어 강류라 하고 남에게 부탁하여 기르게 하였으며, 혈서는 단단히 거두어 감추었다. 세월은 화살 같고 해와 달은 북처럼 빨라 어느덧 강류의 나이 열여덟이 되었다. 장로는 곧 그를 시켜 머리를 깎고 수행하게 하고 법명을 취하여 현장이라 하였으며, 정수리를 만져 계를 주고 굳은 마음으로 도를 닦게 하였다. 어느 날 늦봄 날씨에 뭇사람이 함께 소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경을 강하고 참선하며 오묘한 이치를 이야기하였는데, 그 술과 고기를 먹는 중이 마침 현장에게 논파되었다. 그 중이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이 업보 짐승 같은 놈아, 성명도 알지 못하고 부모도 알지 못하면서 아직도 이곳에서 무슨 짓을 부리는고!” 현장이 그에게 이런 말을 들은 뒤 절로 들어가 스승 앞에 꿇어앉아 눈물을 두 줄로 흘리며 말했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 나서 음양을 받들고 오행을 의지하며 모두 아비가 낳고 어미가 기르는 것이온데, 어찌 사람으로 세상에 살면서 부모가 없는 자가 있사오리까?” 몇 번이고 애처롭게 아뢰며 부모의 성명을 물었다. 장로가 말했다. “네가 진실로 부모를 찾고자 한다면 나를 따라 방장으로 들어오라.” 현장이 곧 방장까지 따라갔다. 장로가 높은 들보 위에 이르러 작은 상자 하나를 내려 열고 혈서 한 장과 속적삼 한 벌을 꺼내 현장에게 주었다. 현장이 혈서를 펼쳐 읽고서야 비로소 부모의 성명과 원한의 사연을 자세히 알았다. 현장이 다 읽고 나서 어느덧 땅에 쓰러져 울며 말했다. “부모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사옵니까? 십팔 년 동안 나를 낳은 부모를 알지 못하였는데 오늘에야 어머니가 계심을 알았사옵니다. 이 몸이 스승님께서 건져 기르지 않으셨다면 어찌 오늘이 있겠사옵니까? 원하건대 제자가 가서 어머니를 찾아 뵌 뒤 향분을 머리에 이고 전각을 다시 세워 스승님의 깊은 은혜에 보답하게 하소서!” 스승이 말했다. “네가 어머니를 찾으러 가려거든 이 혈서와 속적삼을 가지고 가되 다만 탁발하는 중으로 행세하여 강주 관아로 곧장 가야만 네 어머니를 만날 수 있으리라.” 현장이 스승의 말을 받들어 곧 탁발하는 중이 되어 강주로 곧장 갔다. 마침 유홍에게 일이 있어 밖에 나갔으므로, 이 또한 하늘이 그 모자를 만나게 한 것이라 현장은 곧 관아 문 앞에 이르러 탁발하였다. 그 은 아가씨는 본래 밤에 한 꿈을 꾸었는데 달이 이지러졌다가 다시 둥글어지는 꿈을 꾸고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내 시어머니는 소식도 알 수 없고 내 남편은 이 도적에게 모살되었으며 내 아이는 강 가운데 버려졌으니, 혹시 누가 거두어 기른다면 헤아려 보건대 십팔 세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하늘이 서로 만나게 하였는지도 알 수 없구나.’ 마침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홀연 관아 앞에서 어떤 이가 경을 외며 잇달아 탁발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아가씨는 또 틈을 타 나와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현장이 대답하였다. “빈승은 바로 금산사 법명 장로의 제자이옵니다.” 아가씨가 말했다. “네가 이미 금산사 장로의 제자라면.” 이에 관아 안으로 불러들여 현장에게 재를 대접하였다. 자세히 그 거동과 말투를 보니 남편과 흡사한지라, 아가씨는 따라온 시비를 물리쳐 보내고 물었다. “너 이 작은 스승은 어려서 출가하였느냐, 중년에 출가하였느냐? 성이 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이며 부모가 있느냐?” 현장이 대답하였다. “저도 어려서 출가한 것도 아니고 중년에 출가한 것도 아니옵니다. 말씀드리자면 원한이 하늘처럼 크고 원수가 바다처럼 깊나이다! 제 아비는 남에게 모살되었고 제 어미는 도적에게 빼앗겼나이다. 제 스승 법명 장로께서 저를 강주 관아 안에서 어머니를 찾으라 하셨나이다.” 아가씨가 물었다. “네 어미의 성이 무엇이냐?” 현장이 말했다. “제 어미는 성이 은이고 이름은 온교라 하오며, 제 아비는 성이 진이고 이름은 광예라 하오며, 제 어릴 적 이름은 강류라 하고 법명은 현장이라 하나이다.” 아가씨가 말했다. “온교가 바로 나다. 그러나 네게 지금 무슨 증거가 있느냐?” 현장이 자기 어머니라는 말을 듣고 두 무릎을 꿇고 애처롭게 크게 울었다. “제 어머니께서 믿지 않으신다면 혈서와 속적삼이 증거로 있사옵니다!” 온교가 받아 한 번 보니 과연 진짜인지라 모자가 서로 껴안고 울며 곧 불렀다. “내 아들아, 어서 가라!” 현장이 말했다. “십팔 년 동안 나를 낳은 부모를 알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어머니를 뵈었사온데, 아이가 어찌 차마 떠나겠사옵니까?” 아가씨가 말했다. “내 아들아, 너는 불같이 빨리 몸을 빼어 가라! 유 도적이 돌아오면 반드시 네 목숨을 해칠 것이다. 내일 내가 거짓으로 병을 핑계하고 지난해에 일찍이 중 신발 백 켤레를 시주하기로 서원하였다고만 말하고 네 절에 와서 원을 갚으리라. 그때에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으리라.” 현장이 그 말대로 절하며 하직하였다. 말하자면 아가씨는 아들을 본 뒤로 마음속이 한편으로 근심스럽고 한편으로 기뻤는데, 어느 날 문득 병을 핑계하고 차와 밥을 먹지 않은 채 침상에 누웠다. 유홍이 관아로 돌아와 그 까닭을 묻자 아가씨가 말했다. “제가 어릴 때 일찍이 한 서원을 세워 중 신발 백 켤레를 시주하기로 하였사옵니다. 지난 닷새 전에 한 중을 꿈꾸었는데 손에 예리한 칼을 들고 중 신발을 달라 하기에 몸이 편치 않았사옵니다.” 유홍이 말했다. “이런 작은 일을 어찌 일찍 말하지 않았소?” 이에 곧 당에 올라 왕좌아와 이우아에게 분부하였다. “강주성 안 백성은 집집마다 중 신발 한 켤레씩을 마련하여 닷새 안으로 바치게 하라.” 백성들이 모두 분부대로 마련하여 다 바쳤다. 아가씨가 유홍에게 말했다. “중 신발을 다 지었으니 이곳에 무슨 절이 있어 원을 갚으러 가면 좋겠사옵니까?” 유홍이 말했다. “이 강주에 금산사와 초산사가 있으니 어느 절로 가든 네 마음대로 하라.” 아가씨가 말했다. “오래전부터 금산사가 좋은 절이라 들었사오니 저는 금산사로 가겠사옵니다.” 유홍이 곧 왕과 이 두 아전을 불러 배를 마련하게 하였다. 아가씨가 심복을 데리고 함께 배에 오르니 뱃사공이 배를 저어 떼어 금산사를 향해 갔다. 말하자면 현장이 절로 돌아와 법명 장로를 뵙고 앞의 일을 한바탕 말하니 장로가 매우 기뻐하였다. 이튿날 한 시비가 먼저 이르러 부인이 절에 와서 원을 갚는다고 하였다. 뭇 중이 모두 절 밖에 나가 맞이하였다. 아가씨는 곧장 절 문에 들어가 보살께 예를 올리고 크게 재를 베풀며 시비를 불러 중 신발과 여름 버선을 쟁반에 담게 하였다. 법당에 이르러 아가씨는 다시 마음의 향을 사르고 예배한 뒤 법명 장로로 하여금 뭇 중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현장이 뭇 중이 흩어져 법당에 다시 아무도 없음을 보고는 곧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았다. 아가씨가 그를 시켜 신발과 버선을 벗겨 보고자 하니, 그 왼발에 과연 새끼발가락 하나가 없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다시 서로 껴안고 울며 장로의 기르신 은혜에 절하여 사례하였다. 법명이 말했다. “너희 모자가 이제 서로 만났으니 간사한 도적이 알까 두렵구나. 속히 몸을 빼어 돌아가 재앙을 면하라.” 아가씨가 말했다. “내 아들아, 내 너에게 향고리 하나를 주리니 곧 홍주 서북쪽 지방으로 가라. 대략 천오백 리 되는 길인데 그곳에 만화점이 있고 그때 시어머니 장씨를 그곳에 두고 왔으니 그분이 바로 네 아비를 낳은 어머니다. 내 다시 편지 한 통을 써서 네게 주리니 곧 당왕의 황성 안 금전 왼쪽에 있는 은개산 승상의 집으로 가라. 그곳이 바로 너를 낳은 어미의 친정이다. 네 내 편지를 외조부께 드리고 외조부로 하여금 당왕께 아뢰어 인마를 거느리고 이 도적을 사로잡아 죽여 아비의 원수를 갚게 하라. 그때에야 늙은 이 몸을 구해 낼 수 있으리라. 나는 지금 오래 머물 수 없으니 진실로 도적놈이 내가 늦게 돌아간다 하고 괴이하게 여길까 두렵구나.” 이에 곧 절을 나와 배에 올라 떠났다. 현장이 울면서 절로 돌아와 스승께 아뢰고 즉시 절하여 하직한 뒤 홍주로 곧장 갔다. 만화점에 이르러 그 주인 유소이에게 물었다. “옛날 강주의 진 객관에게 어머니 한 분이 계셔서 그대의 점방에 머물렀다 하는데 지금은 잘 계신가?” 유소이가 말했다. “그분은 본래 내 점방에 계셨사옵니다. 나중에 눈이 어두워지시고 삼사 년 동안 점방 삯도 갚지 못하셨는데, 지금은 남문 어귀의 헐어진 기와 가마 속에서 날마다 거리로 나가 동냥하며 지내고 있사옵니다. 그 객관은 한 번 간 뒤 오래도록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사옵니다.” 현장이 듣고 나서 즉시 남문 어귀 헐어진 기와 가마로 물어 찾아가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가 말했다. “네 목소리가 내 아들 진광예와 같구나.” 현장이 말했다. “저는 진광예가 아니옵니다. 저는 진광예의 아들이옵니다. 온교 아가씨가 제 어미이옵니다.” 할머니가 말했다. “네 아비와 어미는 어찌하여 오지 않느냐?” 현장이 말했다. “제 아비는 강도에게 맞아 죽었고 제 어미는 강도에게 빼앗겨 아내가 되었사옵니다.” 할머니가 말했다. “네가 어떻게 알아서 나를 찾아왔느냐?” 현장이 말했다. “제 어미가 저를 시켜 할머니를 찾으라 하셨사옵니다. 제 어미의 편지가 여기 있고 향고리 한 짝도 있사옵니다.” 그 할머니가 편지와 향고리를 받아 들고 소리 내어 크게 울며 말했다. “내 아들이 공명을 위하여 이곳에 이르렀거늘, 나는 그가 의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은 줄만 알았지 그가 남에게 모살된 줄은 어찌 알았으랴! 또 다행히 하늘이 불쌍히 여기시어 내 아들의 뒤를 끊지 않으셨으니 오늘 손자가 나를 찾아왔구나.” 현장이 물었다. “할머니의 눈은 어찌하여 모두 어두워지셨사옵니까?” 할머니가 말했다. “내가 네 아비를 생각하며 종일 기다렸으나 그가 오지 않았으므로 그리하여 울어서 두 눈이 모두 어두워졌구나.” 현장이 곧 꿇어앉아 하늘을 향해 빌며 말했다. “현장이 열여덟 살로서 부모의 원수를 갚지 못함을 생각하나이다. 오늘 어미의 명을 받들어 할머니를 찾아왔사오니, 하늘이 제자의 정성을 불쌍히 살피신다면 제 할머니의 두 눈을 다시 밝게 하소서!” 빌기를 마치고 곧 혀끝으로 할머니의 눈을 핥았다. 잠깐 사이에 두 눈이 핥아져 열려 처음과 같아졌다. 할머니가 작은 중을 보며 말했다. “네가 과연 내 손자구나! 내 아들 광예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구나!” 할머니는 또 기쁘고 또 슬펐다. 현장은 곧 할머니를 모시고 가마 문을 나와 유소이의 점방으로 돌아가 방 삯 얼마를 내고 방 한 칸을 빌려 할머니를 거처하게 하였으며, 또 노자를 할머니께 드리며 말했다. “저는 이번에 가서 한 달 남짓이면 돌아오겠사옵니다.” 곧 할머니께 하직하고 곧장 경성으로 갔다. 황성 동쪽 거리의 은 승상부를 찾아 문지기에게 말했다. “소승은 친척으로서 상공을 뵈러 왔사옵니다.” 문지기가 승상께 아뢰니 승상이 말했다. “나는 중과는 아무 친척도 없다.” 부인이 말했다. “제가 어젯밤 꿈에 우리 딸 만당교가 집에 돌아오는 꿈을 꾸었으니, 혹시 사위가 편지를 보내온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승상이 곧 작은 중을 청하여 청당으로 오게 하였다. 작은 중은 승상과 부인을 보고 땅에 엎드려 울며 절하고는 품속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승상께 드렸다. 승상이 뜯어 처음부터 다 읽고 나서 소리 내어 크게 울었다. 부인이 물었다. “상공, 무슨 일이 있사오니이까?” 승상이 말했다. “이 중은 나와 당신의 외조카다. 사위 진광예는 도적에게 모살되었고 만당교는 도적에게 강제로 빼앗겨 아내가 되었다.” 부인이 듣고 나서 또한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승상이 말했다. “부인은 걱정하지 마시오. 내일 조정에 들어가 주상께 아뢰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반드시 사위의 원수를 갚겠소.” 이튿날 승상이 조정에 들어가 당왕께 아뢰었다. “지금 신의 사위인 장원 진광예가 가솔을 거느리고 강주로 부임하러 갔다가 뱃사공 유홍에게 맞아 죽고 딸을 빼앗겨 아내로 삼혔사오며, 그자가 신의 사위를 사칭하여 여러 해 동안 벼슬을 하였사오니, 일이 괴이한 변고에 속하나이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즉시 인마를 내어 적도를 소탕하게 하소서.” 당왕께서 아룀을 보시고 크게 노하시어 곧 어림군 육만을 내시고 은 승상에게 군사를 감독하여 나아가게 하셨다. 승상이 어지를 받들어 조정을 나와 곧장 교장에 이르러 군사를 점검하고 강주로 곧장 진군하였다. 새벽에 걷고 밤에 묵으며 별이 지고 새가 날듯 어느덧 강주에 이르렀다. 은 승상의 병마가 모두 북쪽 언덕에 진영을 세웠다. 별이 총총한 밤에 금패를 내려 강주 동지와 주판 두 사람을 불러들이니, 승상이 그들에게 이 일을 알리고 군사를 이끌어 도와 함께 강을 건너 가게 하였다. 날이 아직 밝지 않았는데 유홍의 관아를 포위하였다. 유홍이 바로 꿈속에 있을 때 화포 소리 한 번 울리고 징과 북이 일제히 울리며 뭇 군사가 관아로 들이닥치니, 유홍이 미처 어찌할 겨를도 없이 이내 사로잡혔다. 승상이 군령을 내려 유홍 등 일당 죄인을 결박하여 법장으로 끌고 가게 하고, 뭇 군사는 모두 성 밖에 진을 치게 하였다. 승상이 곧장 관아 안 정청에 들어가 앉아 아가씨를 청하여 나와 서로 만나려 하였다. 아가씨는 나가려다 아비를 뵙기가 부끄러워 곧 목을 매려 하였다. 현장이 이를 듣고 급히 달려가 어머니를 구해 풀고는 두 무릎을 꿇고 어머니께 말했다. “아이가 외조부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에 이르러 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하였사온데, 오늘 도적을 이미 사로잡았거늘 어머니께서는 어찌하여 도리어 죽을 길을 찾으시나이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아이가 어찌 살아 있을 수 있겠사옵니까?” 승상도 또한 관아에 들어와 달래어 풀었다. 아가씨가 말했다. “제가 듣건대 부인은 한 남편을 따라 끝을 맺는다 하였사옵니다. 남편이 이미 도적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통분하온데 어찌 부끄러운 낯으로 도적을 따를 수 있겠사옵니까? 다만 유복자가 몸에 있었으므로 부끄러움을 참고 목숨을 훔쳐 살았사온데, 이제 다행히 아이가 이미 장성하였고 또 늙은 아버지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원수를 갚으러 오신 것을 보았사오니, 딸 된 몸으로 무슨 낯으로 서로 뵙겠사옵니까! 오직 한 번 죽어 남편에게 보답할 뿐이옵니다!” 승상이 말했다. “이는 내 딸이 성함과 쇠함에 따라 절개를 바꾼 것이 아니라 모두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니 어찌 부끄러움이라 하겠느냐!” 부녀가 서로 껴안고 울며, 현장도 또한 애처롭게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승상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은 우선 걱정을 놓아두라. 내가 지금 이미 원수 도적을 사로잡았으니 가서 처결하고 오겠다.” 이에 곧 일어나 법장에 이르니, 마침 강주 동지도 초병을 보내어 물도적 이표를 사로잡아 압송해 왔다. 승상이 크게 기뻐하며 곧 군졸을 시켜 유홍과 이표를 끌어내어 각각 백 대의 큰 몽둥이를 때리고 공초를 받아 지난해 진광예를 모의하여 죽인 사연을 자백하게 하였다. 먼저 이표를 나무 당나귀에 못 박아 저잣거리로 끌고 가 천 칼로 살을 도려내고 목을 베어 사람들에게 보였으며, 유홍을 홍강도 나루의 지난해 진광예를 때려 죽인 곳으로 끌고 갔다. 승상과 아가씨와 현장 세 사람이 친히 강가에 이르러 허공을 향해 제를 올리고 살아 있는 유홍의 심장과 간을 도려내어 광예에게 제사하고 제문 한 통을 불살랐다. 세 사람이 강을 바라보며 크게 통곡하니 일찍이 수부를 놀라게 하였다. 바다를 순찰하던 야차가 있어 제문을 용왕께 올렸다. 용왕께서 다 보시고 곧 자라 원수를 보내어 광예를 청해 오게 하시고 말씀하셨다. “선생, 경사스럽구나! 경사스럽도다! 지금 선생의 부인과 공자와 장인이 모두 강가에서 너를 제사하고 있으니, 내 이제 너를 보내어 환혼하게 하리라. 또 여의주 한 알과 주반주 두 알, 교초 열 필, 명주와 옥대 한 벌을 받들어 주리라. 네 오늘 부부와 자식과 어미가 서로 만날 수 있으리라.” 광예가 몇 번이고 절하며 사례하였다. 용왕께서 곧 야차에게 명하여 광예의 시신을 강 어귀로 내보내 환혼하게 하시니 야차가 명을 받들고 떠났다. 말하자면 은 아가씨가 남편을 위해 한바탕 울며 제사하고 또 몸을 물에 던져 죽고자 하니, 현장이 놀라 목숨을 걸고 붙들었다. 황급한 판에 홀연 물 위로 시신 하나가 떠와 강 언덕 가까이 닿는 것이 보였다. 아가씨가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살펴보니 남편의 시신임을 알아보고는 더욱 소리 내어 울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뭇사람이 모두 와서 구경하는데, 광예가 주먹을 펴고 발을 뻗으며 몸을 점점 움직이더니 홀연 기어 일어나 앉는지라 뭇사람이 놀람을 이기지 못하였다. 광예가 눈을 뜨니 은 아가씨와 장인 은 승상과 작은 중이 모두 곁에서 울고 있었다. 광예가 말했다. “너희는 어찌하여 이곳에 있느냐?” 아가씨가 말했다. “그대가 도적에게 맞아 죽었기에 그 뒤에 제가 이 아이를 낳았사온데, 다행히 금산사 장로를 만나 길러 장성하게 하고 저를 찾아와 서로 만나게 하였사옵니다. 제가 그를 시켜 외조부를 찾게 하니 아버지께서 이를 아시고 조정에 아뢰어 군사를 거느리고 이곳에 이르러 도적을 사로잡았사옵니다. 방금 살아 있는 심장과 간을 도려내어 허공을 향해 제 남편에게 제사하였사온데, 남편이 어찌하여 또 환혼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광예가 말했다. “모두 내가 그대와 옛날 만화점에 있을 때 그 금빛 잉어를 사서 놓아준 까닭이다. 그 잉어가 바로 이곳의 용왕일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나중에 역적이 나를 물속에 밀어 넣었을 때 온전히 그가 나를 구해 주었고, 방금 또 나에게 환혼을 내려 주고 보물을 주었으니 모두 몸에 지니고 있노라. 더욱이 그대가 이 아들을 낳았고 또 장인이 나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실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참으로 고생이 다하고 단물이 오니 이보다 큰 기쁨이 없구나!” 뭇 관리가 이를 듣고 모두 와서 축하하였다. 승상이 곧 술자리를 베풀라 하여 소속 관리들에게 사례하고 그날로 군마를 돌려 돌아왔다. 만화점에 이르러 승상이 진을 치라 명하였다. 광예는 곧 현장과 함께 유가 점방으로 가서 할머니를 찾았다. 그 할머니는 그날 밤 한 꿈을 꾸었는데 마른 나무에 꽃이 피는 꿈을 꾸고 집 뒤에서 까치가 자주 시끄럽게 우는 것을 보고는 생각하였다. ‘혹시 내 손자가 오는 것이 아닐까?’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점방 문 밖으로 광예 부자가 함께 이르는 것이 보였다. 작은 중이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이 바로 저희 할머니가 아니십니까?” 광예가 늙은 어머니를 보고 급히 달려가 엎드려 절하였다. 모자가 서로 껴안고 한바탕 통곡하고 앞의 일을 한바탕 이야기하였다. 소이에게 점방 삯을 계산해 주고 길을 떠나 경성으로 돌아왔다. 승상부에 들어가 광예가 아가씨와 할머니와 현장과 함께 모두 와서 부인을 뵈었다. 부인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집안 종에게 분부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어 경하하였다. 승상이 말했다. “오늘 이 잔치는 이름을 ‘단원회’라 하면 좋겠다.” 참으로 온 집안이 화락하였다. 이튿날 조회에 당왕께서 전각에 오르시니 은 승상이 반열에 나와 앞뒤의 일을 자세히 아뢰고 아울러 광예의 재주가 크게 쓰일 만함을 천거하였다. 당왕께서 아룀을 윤허하시고 곧 진악을 학사로 승진시켜 조정을 따라 정사를 다스리게 하셨다. 현장은 뜻을 세워 선을 닦고자 하였으므로 홍복사에 보내어 수행하게 하였다. 훗날 은 아가씨는 결국 태연히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현장은 스스로 금산사에 이르러 법명 장로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그 뒤의 일이 어떠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0회 노룡왕졸계범천조(老龍王拙計犯天條) · 위승상유서탁명리(魏丞相遺書託冥吏) 시에 이르기를, 도성의 큰 나라는 실로 볼 만하다. 여덟 줄기 물이 두루 흘러 네 산을 둘렀다. 얼마나 많은 제왕이 이곳에서 일어났던고, 예로부터 천하가 장안을 일컬었다. 여기서는 섬서의 큰 나라 장안성을 말하고자 한다. 장안은 역대 제왕이 도읍을 세운 땅이다. 주와 진, 한 이래로 세 고을에는 꽃이 비단 같고 여덟 줄기 물이 성을 둘러 흘렀으며, 서른여섯 길의 꽃버들 골목과 일흔두 채의 관현악 누각이 있었다. 화이의 지도 위에서 보면 천하에서 가장 으뜸가는 곳이니 참으로 기이하고 빼어난 땅이라 하겠다. 지금은 대당 태종 문황제께서 등극하시어 연호를 용집 정관으로 고치셨으니, 이때는 이미 즉위하신 지 십삼 년이 되던 해로 해는 기사년이었다. 그 어전에 나라를 안정시키던 영웅호걸과 강토를 다투던 걸출한 선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자. 말하자면, 장안성 밖 경하 언덕에 두 현인이 있었으니, 하나는 어옹으로 이름은 장초라 하고 하나는 초자로 이름은 이정이라 했다. 이 두 사람은 과거에 오르지 못한 진사요 글자를 아는 산인이었다. 어느 날 장안성 안에서 땔나무를 팔고 광주리 속의 잉어를 판 뒤 함께 주점에 들어가 반쯤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저마다 한 병씩 들고 경하 언덕을 따라 천천히 걸어 돌아왔다. 장초가 말했다. “이형, 내가 생각건대 이름을 다투는 자는 이름 때문에 몸을 잃고, 이익을 빼앗는 자는 이익 때문에 목숨을 잃으며, 작위를 받은 자는 범을 안고 잠을 자고 은총을 입은 자는 뱀을 소매에 넣고 다닌다. 헤아려 보건대 우리가 물이 빼어나고 산이 푸른 곳에서 소요자재하며 담박함을 달게 여기고 인연 따라 지내는 것만 못하다.” 이정이 말했다. “장형의 말이 이치에 맞다. 그대의 빼어난 물은 내 푸른 산만 못하다.” 장초가 말했다. “그대의 푸른 산은 내 빼어난 물만 못하다. 이를 증명하는 《접련화》 한 수가 있으니, 사에 이르기를, 물안개 만 리에 조각배 작고, 홀로 외로운 돛대에 기대니 서시의 소리 감돌다. 근심 씻고 마음 닦으니 명리도 적어, 한가로이 여뀌 이삭과 갈대풀을 잡다. 몇 점 갈매기 즐거이 말할 만하니, 버들 언덕 갈대 물굽이에 처자 함께 웃다. 한잠 평안히 자니 풍랑도 아리땁고 영화도 욕됨도 번뇌도 없다.” 이정이 말했다. “그대의 빼어난 물은 내 푸른 산만 못하다. 이에도 《접련화》 한 수가 있어 증명하니, 사에 이르기를, 구름 숲에 솔꽃 가득하고, 묵묵히 꾀꼬리 소리 들으니 교묘한 혀가 피리 소리 고르는 듯하다. 붉음은 여위고 푸름은 살찐 봄이 따뜻하더니 홀연 여름이 이르러 광음이 돌아가다. 가을이 와서 쉽게 바뀌니 노란 국화 향기를 즐길 만하고, 빠른 혹독한 겨울은 손가락으로 집듯 하니 사계절을 소요하며 아무도 간섭하지 않다.” 어옹이 말했다. “그대의 푸른 산은 내 빼어난 물만 못하다. 좋은 물건을 누리니 《자고천》 한 수가 있어 증명한다. 신선 고향의 구름과 물은 족히 생애를 이루니 노를 젓고 배를 가로누이면 곧 집이다. 살아 있는 비늘을 갈라 끓이고 푸른 자라를 삶으며 자색 게를 찌고 붉은 새우를 삶다. 푸른 갈대순, 물마름 싹, 마름 열매와 개구리밥은 더욱 자랑할 만하다. 어린 연근과 늙은 연밥에 미나리 잎은 연하고 자고와 줄풀과 조영화도 있다.” 초부가 말했다. “그대의 빼어난 물은 내 푸른 산만 못하다. 좋은 물건을 누리니 이 역시 《자고천》 한 수가 있어 증명한다.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 하늘가에 닿았고 풀집과 띠오두막은 내 집이다. 절인 닭과 거위는 게와 자라보다 낫고 노루와 수퇘지, 토끼와 사슴은 물고기와 새우보다 낫다. 향춘 잎, 누런 멀구슬나무 싹, 죽순과 산차는 더욱 자랑할 만하다. 자색 오얏과 붉은 복숭아, 매실과 살구가 익고 단 배와 신 대추, 목서꽃이 있다.” 어옹이 말했다. “그대의 푸른 산은 참으로 내 빼어난 물만 못하다. 《천선자》 한 수가 있으니, 한 잎 조각배는 머무는 곳을 따라가고 만 겹 물안개에도 두려움이 없다. 낚싯바늘 드리우고 그물 던져 싱싱한 비늘 잡으니 장도 없고 기름도 없건만 홀로 맛이 있다. 늙은 아내와 어린 자식이 둥글게 모이다. 고기가 많으면 장안 저자에 팔아 향기로운 막걸리로 바꾸어 취하도록 마시다. 도롱이를 이불 삼아 가을 강에 누우니 코 고는 소리 드르렁드르렁 근심 걱정이 없다. 인간의 영화와 귀함을 탐하지 않다.” 초자가 말했다. “그대의 빼어난 물은 내 푸른 산만 못하다. 이에도 《천선자》 한 수가 있으니, 띠집 서까래 몇 개를 산 아래 세웠으니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와 난초가 참으로 사랑스럽다. 숲을 뚫고 고개를 넘어 마른 땔나무를 찾으니 아무도 괴이히 여기지 않고 나를 따라 사 가다. 적든 많든 세상 형편에 맡기노라. 돈을 얻어 술을 사니 마음대로 즐겁고 질그릇 사발과 자기 종지는 유난히 자유롭다. 술에 취하여 소나무 그늘에 누우니 걸림도 없고 이해도 없으며 인간의 흥망을 돌보지 않다.” 어옹이 말했다. “이형, 그대 산속의 생업은 내 물 위의 생업처럼 즐겁지 못하다. 《서강월》 한 수가 있어 증명한다. 붉은 여뀌꽃 무성하여 달을 비추고 누런 갈대 잎 어지러이 바람에 흔들리다. 푸른 하늘 맑고 멀어 초강은 비었고 끌어 흔드니 한 못의 별이 움직이다. 그물에 든 큰 고기는 떼를 이루고 바늘을 문 작은 쏘가리는 무더기로 모이다. 얻어 삶고 끓이니 맛이 진하고 강호를 웃으며 노닐며 떠들썩하다.” 초부가 말했다. “장형, 그대 물 위의 생업은 내 산속의 생업처럼 즐겁지 못하다. 이에도 《서강월》이 있어 증명한다. 시든 잎과 마른 등나무가 길에 가득하고 부러진 끝의 늙은 대나무가 산에 넘치다. 겨우살이와 칡덩굴이 어지러이 얽혀 오르니 꺾어 거두고 새끼를 꼬아 짐을 지다. 벌레 먹어 속이 빈 느릅나무와 버들, 바람에 부러진 소나무와 녹나무라. 베어 쌓아 겨울 추위를 대비하니 술과 바꾸고 돈과 바꾸는 것 모두 내 마음대로라.” 어옹이 말했다. “그대 산속도 견줄 만하지만 내 빼어난 물의 그윽하고 우아함만 못하다. 《임강선》 한 수가 있어 증명한다. 조수가 빠지자 곧 외로운 배를 옮겨 가고 깊은 밤 노를 멈추니 노래가 돌아오다. 도롱이에 남은 달이 매우 그윽하니 잠든 갈매기 놀라 일어나지 않고 하늘가에 채색 구름이 열리다. 곤하여 갈대 모래톱에 누우니 아무 일도 없고 해가 세 발짝 올라도 오히려 버티다. 마음대로 스스로 배치하니 조정의 신하가 추위에 어가를 기다리는 것과 어찌 나의 넓은 마음에 견주랴?” 초부가 말했다. “그대 빼어난 물의 그윽함은 내 푸른 산의 더욱 그윽함만 못하다. 이에도 《임강선》이 있어 증명한다. 푸른 길에 가을이 높아 도끼를 끌고 가고 저녁 서늘함에 짐을 메고 돌아오다. 들꽃을 귀밑머리에 꽂으니 더욱 기이하다. 구름 헤치고 길을 찾아 나서고 달을 기다려 문을 열라 부르다. 어린 자식과 산속 아내가 기뻐 웃으며 맞이하고 풀 침대와 나무 베개에 기대어 버티다. 배를 찌고 기장을 지어 차려 내니 독에 새로 익은 술이 있어 참으로 그윽한 회포를 장하게 하다!” 어옹이 말했다. “이것은 모두 우리 두 사람의 생업이요 몸을 봉양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대에게는 내 한가한 때의 좋음이 없으니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한가로이 하늘가에 백학 나는 것을 보며 시내 가에 배를 세우고 푸른 사립문을 닫다. 돛대에 기대어 자식에게 낚싯줄 꼬는 법 가르치고 노를 멈추고 아내와 함께 그물을 널어 말리다. 성품이 안정되니 물결 잔잔함을 알고 몸이 편안하니 절로 바람 가벼움을 느끼다. 푸른 도롱이와 삿갓을 때에 따라 걸치니 조정의 자색 인끈 옷보다 낫다.” 초부가 말했다. “그대의 한가한 때 내 한가한 때만 못하다. 이에도 시가 있어 증명하니, 시에 이르기를, 한가로이 아득히 흰 구름 나는 것을 보며 홀로 띠오두막에 앉아 대 사립문을 닫다. 일이 없으면 아이를 가르쳐 책을 읽게 하고 때로 손님을 마주하여 바둑을 둘러싸다. 기쁘면 지팡이 짚고 꽃다운 길에서 노래하고 흥이 오르면 거문고 메고 푸른 산에 오르다. 짚신과 삼 끈에 거친 베 이불이니 마음 넓음이 비단옷보다 낫다.” 장초가 말했다. “이정, 우리 두 사람은 참으로 은근히 읊조리며 서로 어울릴 만하니 단판과 금술잔은 필요치 않다. 흩어 말한 글귀는 드물다 할 것이 없으니 이제 각기 몇 구를 이어 붙여 우리 어초의 이야기가 어떠한지 보자.” 이정이 말했다. “장형의 말이 가장 묘하니 형께서 먼저 읊어 주소서.” “배는 푸른 물안개에 멈추고 집은 깊은 산 들판에 있다. 시내 다리 봄물 불음을 사랑하고 바위 봉우리 새벽 구름을 가엾여 하다. 용문의 생잉어 때때로 끓이고 벌레 먹은 마른 나무 날마다 지피다. 낚시와 그물로 늙은이를 봉양하고 짐 지기와 새끼 꼬기로 한평생을 마치다. 작은 배에 누워 나는 기러기 보고 풀길에 기대어 우는 기러기 듣다. 말과 혀의 싸움판에 내 몫 없고 옳고 그름의 바다에 자취 적다. 시내 가에 말린 그물은 비단 같고 돌 위에 간 도끼는 칼날 같다. 가을 달 환할 때 홀로 낚시하고 봄 산 고요할 때 아무도 못 만나다. 고기 많으면 술로 바꾸어 아내와 마시고 땔나무 남으면 한 병 사서 자식과 모이다. 스스로 노래하고 술 따르며 방탕하게 놀고 길게 노래하고 탄식하며 미친 바람에 몸을 맡기노라. 형을 부르고 아우를 불러 뱃사공 벗을 청하고 벗을 이끌고 친구 데려 들늙은이를 모으다. 술자리 놀이에 손을 맞추어 잔을 자주 건네고 패를 뜯고 글자를 풀어 잔을 돌리다. 새우 삶고 게 끓여 아침마다 즐겁고 오리 볶고 닭 삶아 날마다 넉넉하다. 어리석은 아낙이 차를 달이고 산속 아내가 밥 짓는 뜻이 조용하다. 새벽에는 지팡이 들고 물결 헤치고 해가 뜨면 땔나무 지고 큰 길을 지나가다. 비 온 뒤에는 도롱이 걸치고 살아 있는 잉어 잡고 바람 앞에서 도끼 놀려 마른 소나무 베다. 자취를 감추고 세상을 피해 어리석은 체 꾸미며 성을 숨기고 이름을 감춘 채 벙어리 귀머거리로 지내다.” 장초가 말했다. “이형, 내가 막 월례를 무릅쓰고 먼저 첫 구를 일으켰으니 이제 형께 이르러서도 먼저 한 연을 일으키시면 소제도 마땅히 이어 가겠다. “바람과 달에 거짓 미친 산야의 사내, 강호에 뜻을 부린 늙은 나그네. 맑고 한가함이 분수에 맞아 소쇄함을 따르고 말과 혀에 들리지 않으니 태평함을 기뻐하다. 달밤에는 띠집에 누이고 날 어두우면 띠 도롱이로 덮다. 소나무와 매화 벗을 맺고 갈매기와 백로와 맹세하다. 명리에는 계산 없고 창칼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다. 때에 따라 향기로운 술 한 잔 마시고 날을 보내며 세 끼에 들나물 국을 먹다. 두 뭇 땔나무로 생계를 삼고 한 대 낚싯줄로 생업을 삼다. 한가로이 아이를 불러 강철 도끼를 갈게 하고 조용히 어리석은 아이를 불러 헌 그물을 깁게 하다. 봄이 오면 버들 푸름을 좋아하고 때가 풀리면 갈대 푸름을 기뻐하다. 여름에는 새 대나무를 다듬고 유월에는 어린 마름을 따다. 서리 내리면 살진 닭을 잡고 중양절에는 살진 게를 삶다. 겨울이 오면 해가 올라도 깊이 잠들고 삼복에는 하늘이 높아 찌지 않다. 여덟 명절에는 산속에서 성품대로 놀고 사계절에는 호수에서 정을 풀어 놓다. 땔나무를 캐니 신선의 흥이 있고 낚시를 드리우니 세속의 모습이 없다. 문 밖에는 들꽃이 곱게 피고 뱃머리에는 푸른 물결이 평평하다. 몸이 편안하니 삼공의 자리를 말하지 않고 성품이 안정되니 십 리의 성보다 낫다. 십 리의 높은 성은 변경 지키는 명령을 근심하고 삼공의 드러난 자리는 선포 소리를 듣다. 산을 즐기고 물을 즐김은 참으로 드무니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며 신명께 감사하다.” 그 두 사람은 각기 글귀를 말하고 서로 시구를 이어 붙이다가 갈라지는 길목에서 몸을 굽혀 작별했다. 장초가 말했다. “이형, 가는 길에 몸조심하시게! 산에 오를 때는 범을 조심하시게. 만약 흉험이 있다면 내일 저자 거리에 옛 벗이 하나 줄어드는 셈이겠지!” 이정이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녀석 게으르고 막무가내구나! 좋은 벗은 생사까지 대신한다는데, 어찌 나를 저주하는가? 내가 만약 범을 만나 해를 입는다면, 그대는 반드시 물결을 만나 배가 뒤집히리라!” 장초가 말했다. “나는 영원히 배가 뒤집히는 일이 없을 것이네.” 이정이 말했다.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는 풍운이 있고 사람에게는 잠깐의 화복이 있다. 어찌 무사하다고 장담하는가?” 장초가 말했다. “이형, 그대는 그렇게 말하지만 아직 요량이 없네. 내 생업만 못하면 요량이 있어 결코 이런 일을 만나지 않으리.” 이정이 말했다. “그대의 물 위 생업은 지극히 흉하고 험하여 어둡고 은밀하기만 한데 무슨 요량이 있겠는가?” 장초가 말했다. “그대는 알지 못하는구려. 이 장안성 안 서문 거리에 점을 파는 선생이 있는데 내가 날마다 그에게 금빛 잉어 한 마리를 보내면 그가 곧 소매 속에서 한 괘를 전해 주어, 방위에 따라 백 번 던져 백 번 맞춘다네. 오늘도 괘를 사러 갔더니 그가 나에게 경하 물굽이 동쪽에서 그물을 치고 서쪽 언덕에서 낚시를 던지라 하였는데, 반드시 만선으로 고기와 새우를 싣고 돌아오게 하였네. 내일 성에 올라 돈을 만들어 술을 사고, 다시 노형과 서로 만나 이야기하세.” 두 사람은 이로써 작별했다. 이러함이 바로 길에서 하는 말이 풀숲 속에 사람이 있는 격이었다. 이 경하 수부에 물을 순찰하는 야차 하나가 있었는데, 백 번 던져 백 번 맞춘다는 말을 듣고 급히 수정궁으로 돌아가 황망히 용왕에게 아뢰었다. “화사하였사옵니다! 화사하였사옵니다!” 용왕이 물었다. “무슨 화사가 있단 말이냐?” 야차가 아뢰었다. “소신이 물을 순찰하러 강가에 이르렀사온데, 두 어부와 초부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사옵니다. 헤어질 때 하는 말이 심히 무서웠사옵니다. 그 어옹이 말하기를, 장안성 안 서문 거리에 점을 파는 선생이 하나 있는데 셈이 가장 정확하다 하였사옵니다. 그가 날마다 잉어 한 마리를 보내면 선생이 곧 소매 속에서 한 괘를 전해 주어 백 번 던져 백 번 맞게 한다 하였사옵니다. 만약 이처럼 정확한 셈을 따른다면, 물고기 족속을 마음껏 잡아들이지 않겠사옵니까? 무엇으로 수부의 위용을 장하게 하고, 무엇으로 물결을 뛰어넘고 파도를 일으켜 대왕의 위력을 돕겠사옵니까?” 용왕이 몹시 노하여 급히 칼을 챙겨 장안성으로 올라가 그 점 파는 자를 베어 없애려 했다. 그때 옆에서 용의 아들과 손자, 새우와 게 신하, 시어 군사와 쏘가리 소경과 잉어 태재가 나서 한꺼번에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잠시 노여움을 거두소서. 옛말에 이르기를, 귀를 지나간 말은 믿어서는 안 된다 하였사옵니다. 대왕께서 이번에 가시면 반드시 구름이 따르고 반드시 비가 도울 것이니, 장안의 백성들이 놀라 하늘에서 꾸짖을까 두렵사옵니다. 대왕께서는 숨고 드러남을 헤아리기 어렵고 변화에 일정한 법이 없으시니, 한 선비로 변하여 장안성 안에 들어가 한 차례 살펴보소서. 이런 무리가 있다면 베어 없애도 늦지 않사옵고, 만약 이런 무리가 없다면 어찌 함부로 남을 해치겠사옵니까?” 용왕이 그 아룀을 따르기로 하고 보검을 버리고 구름과 비도 일으키지 않은 채 언덕 위로 올라가,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여 흰 옷 입은 선비가 되었으니 그 모습 실로 풍채가 영걸하고 골짜기를 솟구쳐 하늘에 닿을 듯했다. 걸음걸이는 단정하고 규범을 따랐으며, 말은 공자와 맹자를 따르고 예절은 주나라 문왕의 제도를 본떴다. 몸에는 옥빛 비단 옷을 걸쳤고 머리에는 소요 일자건을 썼다. 길에 올라 구름걸음으로 걸음을 떼어 곧장 장안성 서문 큰 거리에 이르렀다. 그곳에 한 무리의 사람이 빽빽이 모여 북적북적하며 떠들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큰소리로 고담준론하며 말했다. “용에 속한 사람은 본명이고 범에 속한 사람은 서로 부딪친다. 인과 진, 사와 해는 비록 합국이라 일컫지만, 두려운 것은 날이 세군을 범하는 것이다.” 용왕이 이 말을 듣고 그곳이 바로 점을 파는 곳임을 알아차리고, 앞으로 나아가 사람들을 헤치고 안을 들여다보니, 이러하였다. 사방 벽에는 구슬이 늘어서고 온 집안에는 비단이 수놓아져 있었다. 오리 모양 향로에는 향이 끊이지 않고, 자기 병에는 물이 어찌나 맑던지. 양쪽에는 왕유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고, 자리 위에는 높이 귀곡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단계의 벼루와 금빛 연기 먹이 흰 털 큰 붓과 서로 짝을 이루고, 화주림의 책과 곽박의 산법이 태정의 새 경문과 삼가 짝을 맞추었다. 육효에 익숙하고 팔괘에 정통하며, 능히 천지의 이치를 알고 귀신의 뜻을 잘 헤아렸다. 한 소반 위에 자와 오의 자리가 정연히 벌여 있고, 배 속 가득히 별자리가 맑게 늘어서 있었다. 그 모습 실로 그 장래의 일과 지나간 일을 달거울처럼 꿰뚫어 보고, 몇 집이 흥하고 몇 집이 망할지를 신명처럼 비추어 내었다. 흉함을 알고 길함을 정하며, 죽음을 판단하고 삶을 말했다. 입을 열어 담론하면 바람과 비가 빠르고, 붓을 대어 쓰면 귀신이 놀랐다. 간판에는 글자가 있어 이름과 성을 적었으니, 신산 선생 원수성이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는 당조에서 흠천감 태정을 지낸 원천강의 작은아버지, 바로 원수성이었다. 그 선생은 용모가 기이하고 의용이 수려하여 큰 나라에 이름을 드높이고 장안에서 산법이 으뜸이었다. 용왕이 문으로 들어와 선생과 서로 만나 보았다. 예를 마치자 선생이 용을 윗자리에 청하고 동자가 차를 올렸다. 선생이 물었다. “공께서 오셔서 무엇을 물으시려 합니까?” 용왕이 말했다. “하늘의 흐림과 갬을 점쳐 주소서.” 선생이 곧 소매 속에서 한 괘를 전하여 판단하여 말했다. “구름이 산꼭대기를 감추고 안개가 숲 끝을 덮으리라. 만약 비의 은택을 점친다면 정히 밝은 날 아침에 있으리라.” 용이 말했다. “내일 어느 시각에 비가 오며 비의 양은 몇 자 몇 치인가?” 선생이 말했다. “내일 진시에 구름을 펼치고, 사시에 우레를 일으키고, 오시에 비를 내리고, 미시에 비가 그치며, 모두 물 세 자 세 치 영 마흔여덟 점을 얻으리라.” 용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은 장난으로 할 것이 아니다. 만약 내일 비가 있어 그대가 판단한 시각과 수량과 같다면 내가 괘값 오십 냥을 보내 사례하겠다. 만약 비가 없거나 혹은 시각과 수량을 어긴다면, 나는 그대에게 실로 말하겠다. 반드시 그대의 체면을 때려부수고 그대의 간판을 찢어 버리며, 즉시 장안에서 쫓아내어 이곳에서 뭇사람을 미혹하게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선생이 기뻐하며 대답했다. “이 일은 한결같이 그대 마음대로 하시라. 가시게, 가시게. 내일 비가 온 뒤에 다시 만나 뵙지.” 용왕이 하직하고 장안을 나와 수부로 돌아왔다. 크고 작은 물 신들이 맞이하고 물었다. “대왕께서 그 점 파는 자를 살펴보신 일은 어떠하셨습니까?” 용왕이 말했다. “있었다, 있었다, 있었다! 입만 놀려 남의 청을 받아넘기는 선생 하나였다. 내가 그에게 언제 비가 오느냐고 물으니 그가 내일 비가 온다 하였고, 무슨 시각이며 무슨 비의 수량이냐고 물으니 진시에 구름을 펼치고 사시에 우레를 일으키고 오시에 비를 내리고 미시에 비가 그치며 물 세 자 세 치 영 마흔여덟 점을 얻으리라 했다. 내가 그와 내기를 걸었으니, 만약 그 말과 같다면 그에게 사례금 오십 냥을 보내고, 만약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그의 체면을 때려부수고 그를 쫓아내어 장안에서 뭇사람을 미혹하게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뭇 물 족속이 웃으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여덟 강의 도총관이시요 비를 맡은 큰 용신이시니, 비가 있고 없음은 오직 대왕만이 아십니다. 그가 어찌 감히 이처럼 함부로 말하겠습니까? 그 점 파는 자는 반드시 졌사옵니다! 반드시 졌사옵니다!” 이때 용의 아들과 손자와 그 물고기와 게 신하들이 막 이 일을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득 허공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경하 용왕은 칙지를 받으라.” 뭇 무리가 머리를 들어 올려 보니, 금빛 옷을 입은 역사 하나가 손에 옥황상제의 칙지를 받들고 곧장 수부로 내려오고 있었다. 용왕이 놀라 옷을 정돈하고 단정히 한 뒤 향을 사르고 칙지를 받았다. 금빛 옷을 입은 역사는 허공으로 돌아가 버렸다. 용왕이 은혜에 사례하고 봉함을 뜯어 보니, 그 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칙명으로 여덟 강의 총관을 삼아 우레를 몰고 번개를 잡아끌게 하노니, 내일 아침 비의 은택을 베풀어 장안성을 두루 구제하라.” 칙지에 적힌 시각과 수량은 그 선생이 판단한 것과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그 용왕은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질 만큼 놀랐다. 잠시 뒤 정신이 돌아오자 뭇 물 족속에게 말했다. “속세에 이런 신령한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하늘을 꿰뚫고 땅을 통달하는구나. 그에게 지지 않을 수 없겠다!” 시어 군사가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그를 이기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사옵니까? 소신에게 작은 계책이 있으니, 반드시 그 녀석의 입을 막아 드리겠사옵니다.” 용왕이 계책을 물으니 군사가 말했다. “비 내리는 시각을 어기고 점수를 조금 줄이면, 바로 그 녀석이 괘를 판단한 것이 들어맞지 않는 것이니, 어찌 그를 이기지 못하겠사옵니까? 그때에 간판을 부수고 그를 쫓아내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사옵니까?” 용왕이 그가 아룬 대로 따르니,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다음 날 용왕은 바람신과 우레신, 구름 동자와 번개 어미를 거느리고 장안성 구천 허공 위에 이르렀다. 사시까지 미루어 그제야 구름을 펼치고 오시에 우레를 일으키고 미시에 비를 내리고 신시에 비를 그쳤으나, 세 자 영 마흔 점을 얻었으니 한 시각을 고치고 세 치 여덟 점을 덜어 낸 것이었다. 비가 그친 뒤에야 뭇 장수를 풀어 군사를 거두게 했다. 구름 머리를 눌러 내려와 흰 옷 입은 선비로 변하여 서문 안 큰 거리로 가, 원수성의 점집에 뛰어들어 말릴 겨를도 없이 간판과 붓과 벼루를 부수어 버렸다. 그 선생은 의자에 앉은 채 태연히 움직이지 않았다. 곧 용왕이 문짝을 둘러메고 때리며 욕했다. “이 망령되이 화복을 말하는 요망한 놈, 뭇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못된 녀석! 네 괘는 영험하지 않고 네 말은 미친 듯 어긋났다! 오늘 비 내리는 시각과 점수가 맞지 않았는데 네가 어찌 뻔뻔하게 높이 앉아 있는가? 어서 물러가라, 네 죽을 죄를 용서해 주겠다!” 원수성은 털끝만큼도 두려워하지 않고 얼굴을 들어 하늘을 향해 냉소하며 말했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에게는 죽을 죄가 없으나 오히려 그대에게 죽을 죄가 있을 것이 걱정이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나만은 속이기 어렵다. 나는 그대를 알아본다. 그대는 선비가 아니라 바로 경하 용왕이다. 그대는 옥황상제의 칙지를 어기고 시각을 고치고 점수를 덜어 내어 천조를 범했다. 그대는 참룡대 위에서 한 칼을 면하기 어려울 터인데 어찌 이곳에서 나를 욕하는가?” 용왕이 듣고 마음이 놀라고 간이 떨리며 털이 곤두섰다. 급히 문짝을 내려놓고 옷을 정돈해 예를 갖추고 선생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선생님은 괴이하게 여기지 마소서. 앞서 한 말은 장난이었사오니, 어찌 이것이 진짜가 되어 천조를 범하게 될 줄 알았겠사옵니까?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저를 한 번만 구해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어서도 선생님을 놓아 보내지 않겠사옵니다.” 원수성이 말했다. “내가 그대를 구할 수는 없고 살 길 하나를 가리켜 그대가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다.” 용이 말했다.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 선생이 말했다. “그대는 내일 오시 삼각에 인조관 위징에게 가서 참형을 받아야 한다. 그대가 목숨을 얻고자 한다면 급히 지금의 당 태종 황제께 고하여야 한다. 위징은 당 왕의 어가 아래 승상이니 그에게 인정을 구하면 무사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용왕이 이 말을 듣고 눈물을 머금고 절하며 하직하고 떠나갔다. 붉은 해가 서쪽으로 지고 태음성이 떠올랐는데, 이러하였다. 안개가 산을 자욱하게 덮어 돌아가는 까마귀도 지치고, 먼 길 가는 나그네는 여관으로 드는구나. 나루터에 새로 온 기러기 모래톱에 깃들고 은하수가 나타났다. 더할 시각을 재촉하니 외로운 마을 등불은 불꽃이 없다. 바람이 향로 연기를 흔들어 도관을 맑게 하고 나비 꿈속의 사람은 보이지 않다. 달이 옮겨 꽃 그림자가 난간에 오르고 별빛이 어지럽다. 물시계 소리가 바뀌니 깊은 밤이 반이나 지났다. 이 경하 용왕은 수부로 돌아가지 않고 허공에 머물러 있다가 자시 무렵을 기다려 구름 머리를 거두고 안개 뿔을 걷어 들이고 곧장 황궁 문 앞으로 갔다. 이때 당 왕은 꿈에 궁문 밖으로 나와 달빛 아래 꽃 그늘을 거닐고 있었는데, 홀연 용왕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나아가 무릎을 꿇고 절하며 외쳤다. “폐하, 저를 구해 주소서! 저를 구해 주소서!” 태종이 말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짐이 마땅히 그대를 구해 주겠다.” 용왕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진짜 용이시고 신은 업보의 용이옵니다. 신이 천조를 범하였으므로 폐하의 어진 신하 인조관 위징에게 참형을 받아야 하기에 이렇게 와서 절하며 빌게 되었사오니,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저를 한 번만 구해 주소서!” 태종이 말했다. “이미 위징이 참형을 맡았다 하니 짐이 그대를 구해 줄 수 있겠다. 마음을 놓고 가라.” 용왕이 기뻐하며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고 떠나갔다. 말하자면 태종은 꿈에서 깬 뒤에도 그 일이 마음에 걸렸다. 이윽고 오고 삼점이 되자 태종이 조정을 열어 두 반열의 문무 백관을 모았다. 이러하였다. 안개가 봉궐을 감싸고 향기가 용루에 가득하며, 빛이 흔들려 붉은 병풍이 움직이고 구름이 푸른 깃발을 쓸며 흐르다. 군신이 뜻을 맞춤이 요순과 같고 예악의 위엄은 한과 주에 가까우며, 시신의 등불과 궁녀의 부채가 짝지어 빛나고 공작 병풍과 기린 전각이 곳곳에서 빛을 띄우다. 산이 만세를 부르고 화산이 천추를 축원하다. 정편이 세 번 울리니 의관을 갖춘 이들이 면류관을 향해 절하다. 궁꽃이 찬란하여 하늘 향기가 스며들고 둑 버들이 부드러워 어악이 노래하다. 진주 발과 비취 발은 금 갈고리로 높이 걸리고 용봉 부채와 산하 부채는 보배 수레를 머무르게 하다. 문관은 빼어나고 무장은 기세가 오르며, 어도에는 높고 낮음이 나뉘고 붉은 섬돌에는 품급의 반열이 늘어섰다. 금 인장과 자색 인끈을 차고 세 마리 코끼리를 탄 이들이여, 땅이 오래고 하늘이 길어 만만 년토록 하소서. 뭇 신하가 조하를 마치고 각기 반열을 나누었다. 당 왕이 봉의 눈과 용의 눈동자를 굴려 하나하나 살펴보니, 문관 중에는 방현령, 두여회, 서세적, 허경종, 왕규 등이 있고 무관 중에는 마삼보, 단지현, 은개산, 정교금, 유홍기, 호경덕, 진숙보 등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위의가 단정하고 엄숙하였으나 위징 승상만은 보이지 않았다. 당 왕이 서세적을 전전으로 불러 말했다. “짐이 밤에 괴이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한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절하며 스스로 경하 용왕이라 일컬으며, 천조를 범하여 인조관 위징에게 참형을 받아야 하니 과인을 찾아와 구해 달라 청하였기에 짐이 이미 허락하였노라. 오늘 반열에 유독 위징만 보이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인가?” 세적이 대답하여 말했다. “이 꿈은 반드시 들어맞을 것이옵니다. 잠시 뒤 위징이 조정에 나오면 폐하께서는 그를 문 밖으로 내보내지 마소서. 이 하루만 지나면 꿈속의 용을 구할 수 있사옵니다.” 당 왕이 크게 기뻐하여 곧 명을 내려 당직 관리에게 위징을 조정으로 부르게 했다. 말하자면 위징 승상은 집에 있으면서 밤에 하늘의 조짐을 살피고 보배 향을 사르고 있었는데, 문득 구천에서 학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는 하늘에서 선사를 보내어 옥황상제의 금지를 받들어 그에게 오시 삼각에 꿈속에서 경하 늙은 용을 베게 한 것이었다. 이 승상이 하늘의 은혜에 사례하고 재계하고 목욕한 뒤 집 안에서 지혜의 검을 시험하고 원신을 운용하였으므로 조정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당직 관리가 명을 받들어 와 부르는 것을 보자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감히 임금의 명을 더디게 어길 수 없어, 부랴부랴 옷을 정돈하고 허리띠를 매어 함께 조정에 들어가 어전에서 머리를 조아려 죄를 청했다. 당 왕이 말했다. “경의 죄를 용서한다.” 그때 뭇 신하가 아직 물러나지 않았으므로 곧 발을 걷고 조회를 파하게 했다. 위징만을 홀로 남겨 금란전으로 불러 올리고 편전으로 들이니, 먼저 나라를 안정시키는 방책과 계책을 담론하게 했다. 사시 끝 오시 초 무렵에 이르자 궁인에게 명하여 큰 바둑판을 가져오게 하고 말했다. “짐이 어진 경과 한 판 겨루어 보겠노라.” 뭇 빈비가 따라 바둑판을 가져다 어안에 펼쳐 놓았다. 위징이 은혜에 사례하고 당 왕과 마주 앉아 바둑을 두었다. 한 수씩 놓으며 진세를 펼쳐 나가니 바로 《난가경》에 이른 바와 같았다. 바둑 두는 도리는 엄격하고 신중함을 귀하게 여긴다. 높은 사람은 배꼽에 두고 낮은 사람은 변에 두며 중간 사람은 귀에 두니, 이는 바둑 두는 집안의 떳떳한 법이다. 법에 이르기를, “차라리 한 점을 잃을지언정 한 선수를 잃지 말라. 왼쪽을 치면 오른쪽을 살피고 뒤를 공격하면 앞을 돌아보라. 먼저인 듯하면서 뒤가 있고 뒤인 듯하면서 먼저가 있다. 둘 다 살아 있으면 끊지 말고 모두 살아 있으면 잇지 말라. 넓다고 너무 성기게 하지 말고 빽빽하다고 너무 답답하게 하지 말라. 살기를 도모하며 점에 미련을 두기보다는 버리고 이기는 것만 못하며, 홀로 가기보다는 굳게 지켜 스스로 메우는 것만 못하다. 저쪽이 많고 이쪽이 적으면 먼저 살 길을 도모하고 이쪽이 많고 저쪽이 적으면 힘써 그 형세를 펼쳐라. 잘 이기는 자는 다투지 않고 잘 진을 치는 자는 싸우지 않으며 잘 싸우는 자는 지지 않고 잘 지는 자는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바둑은 처음에는 정도로 맞서고 끝에는 기묘함으로 이긴다. 적이 무사한데 스스로 메우는 것은 끊으려는 뜻이 있고 작은 것을 버리는 것은 큰 것을 도모하려는 마음이며, 아무렇게나 두는 자는 꾀가 없고 생각 없이 응수하는 자는 패배의 길이다. 《시》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마치 골짜기에 임한 듯하라’ 하였으니 바로 이를 이른 것이다.” 시에 이르기를, 바둑판은 땅이 되고 바둑돌은 하늘이 되니, 빛깔은 음양에 따라 조화가 온전하다. 헤아리기 어렵고 변화에 통하는 경지까지 두어 내려가면, 그날의 난가 신선을 웃으며 자랑하리라. 군신 두 사람이 바둑을 마주 두다가 오시 삼각에 이르렀는데, 한 판의 잔국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위징이 홀연히 책상 가에 엎드려 드르렁드르렁 졸기 시작했다. 태종이 웃으며 말했다. “어진 경은 참으로 사직을 떠받드는 마음이 수고롭고 강산을 세운 힘이 지쳤기에 나도 모르게 졸음이 온 것이다.” 태종은 그가 자도록 내버려 두고 다시 부르지 않았다. 얼마 뒤 위징이 깨어나 땅에 엎드려 말했다. “신은 만 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신은 만 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방금 어지럽고 곤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사오니,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신의 임금을 업신여긴 죄를 용서하소서!” 태종이 말했다. “경에게 무슨 업신여긴 죄가 있겠는가? 어서 일어나고 잔국을 쓸어 치우고 경과 함께 새로 다시 두자.” 위징이 은혜에 사례하고 막 바둑돌을 손에 쥐었는데, 문득 조정 문 밖에서 크게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진숙보와 서무공 등이 피가 뚝뚝 흐르는 용의 머리를 들고 와 황제 앞에 던지며 아뢰었다. “폐하, 바다가 얕아지고 강이 마른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있사오나 이 같은 괴이한 일은 듣지 못하였사옵니다.” 태종이 위징과 함께 일어나 말했다. “이 물건은 어디서 온 것인가?” 숙보와 무공이 말했다. “천보랑 남쪽 십자 거리에서 구름 끝으로부터 이 용의 머리가 떨어졌사오니 미신이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었사옵니다.” 당 왕이 놀라 위징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위징이 몸을 돌려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는 신이 방금 꿈에서 벤 것이옵니다.” 당 왕이 크게 놀라 말했다. “어진 경이 졸고 있을 때에는 몸을 움직이거나 손을 놀리는 것도 보지 못하였고 칼도 없었는데 어찌 이 용을 벨 수 있었는가?” 위징이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신의 몸은 임금 앞에 있었사오나 꿈은 폐하를 떠났사옵니다. 몸이 임금 앞에서 잔국을 마주할 때에는 눈을 감고 흐릿하였사오나, 꿈이 폐하를 떠나 상서로운 구름을 탔을 때에는 정신을 떨쳐 일어났사옵니다. 그 용은 참룡대 위에서 천병에게 결박되어 있었사옵니다. 곧 신이 말하기를, ‘그대는 천조를 범하였으니 마땅히 죽을 죄에 해당한다. 나는 천명을 받들어 그대의 남은 목숨을 베노라’ 하였사옵니다. 용이 애처로움을 듣고 발톱을 거두고 비늘을 접어 달게 죽음을 받았사오며, 신이 정신을 떨쳐 옷자락을 걷고 걸음을 옮겨 서릿발 같은 칼날을 높이 들었사옵니다. 서걱 소리와 함께 칼이 지나가며 용의 머리가 허공에 떨어졌사옵니다.” 태종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에 슬픔과 기쁨이 뒤섞였다. 기쁜 것은 위징이 좋은 신하임을 칭찬하게 되어 조정에 이런 호걸이 있으니 강산이 어찌 안정되지 않을까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요, 슬픈 것은 꿈속에서 일찍이 용을 구해 주겠다 허락하였는데 뜻밖에도 마침내 베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고 명을 내려 숙보로 하여금 용의 머리를 저잣거리에 내걸어 장안 백성에게 알리게 했다. 위징에게 상을 내리고 뭇 신하는 물러갔다. 그날 저녁 궁으로 돌아와 마음은 근심스럽고 답답했다. 꿈속의 그 용이 울며 애처롭게 살기를 빌었건만 어찌 무상함을 알았겠으며 이 환난을 면하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했다.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니 점차 혼백이 피곤하고 몸이 편치 않음을 느꼈다. 그날 밤 이경 무렵 궁문 밖에서 곡소리가 들려 태종은 더욱 놀라고 두려워했다. 어렴풋이 잠든 사이에 그 경하 용왕이 피가 뚝뚝 흐르는 머리 하나를 손에 들고 높이 외치는 것이 보였다. “당 태종! 내 목숨을 돌려다오! 내 목숨을 돌려다오! 그대는 어젯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나를 구해 주겠다 약속하였는데 어찌 날이 밝자 도리어 인조관을 불러 나를 베게 하였는가? 나오라! 나오라! 내 그대와 함께 염라대왕 앞에 가서 시비를 가리자!” 그가 태종을 붙잡고 떠들며 놓아 주지 않았다. 태종은 입을 다물고 말하기 어려워 온몸에 땀이 흐를 뿐이었다. 어찌할 수 없을 때 문득 정남쪽에서 향기로운 구름이 어리고 채색 안개가 흩날리더니 한 여진인이 나아와 버들가지를 한 번 흔들었다. 그러자 그 머리 없는 용은 슬피 울며 곧바로 서북쪽으로 사라져 갔다. 이는 관음보살이 부처의 뜻을 받들어 동토로 올라와 경전을 구할 사람을 찾던 중 장안성 도토지묘에 머물고 있었는데 밤에 귀신이 울고 신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와서 업보의 용을 꾸짖어 물리치고 황제를 구해 낸 것이었다. 그 용은 곧장 명부 지옥으로 가서 자세히 고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두기로 하자. 말하자면 태종은 정신이 돌아오자 “귀신이 있다! 귀신이 있다!” 하고 부르짖었다. 그 삼궁의 황후와 육원의 빈비와 가까이 모시는 태감들이 놀라 벌벌 떨며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고 삼점이 되자 온 조정의 문무 백관이 조정 문 밖에서 조회를 기다렸다. 날이 밝았는데도 임금이 나오지 않자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해가 세 발짝이나 올랐을 때에야 명이 나왔다. “짐의 마음이 편치 않으니 뭇 신하는 조회를 면하게 하라.” 닷새나 엿새가 지나자 뭇 신하가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모두 문을 두드려 임금을 뵙고 문안드리려 하였는데 태후가 명을 내려 의관을 궁으로 불러 약을 쓰게 했다. 뭇사람이 조정 문에서 소식을 기다렸다. 얼마 뒤 의관이 나오자 뭇사람이 무슨 병이냐고 물었다. 의관이 말했다. “황상의 맥이 바르지 못하여 비고 빠르며 미친 말로 귀신을 본다 하십니다. 진맥해 보니 열 번 뛰어 한 번 쉬고 오장에 기운이 없으니 아마도 돌아가심이 닷새 안에 있을까 두렵사옵니다.” 뭇 신하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얼굴빛을 잃었다. 이렇게 놀라고 두려워하는 사이에 태후의 명이 있어 서무공과 호국공과 위지공을 불러 뵙게 했다. 세 공이 명을 받들어 급히 분궁루 아래로 들어갔다. 절을 마치자 태종이 정색하고 억지로 말했다. “어진 경들, 과인은 열아홉 살에 군사를 거느리고 남을 정벌하고 북을 치며 동을 막고 서를 제거하며 여러 해를 괴롭게 겪었으나 한 점의 사악한 것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날 도리어 귀신을 본다니!” 위지공이 말했다. “강산을 세울 때 사람을 무수히 죽였으니 어찌 귀신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태종이 말했다. “경은 믿지 않는구나. 짐의 이 침궁 문 밖은 밤이 들면 곧 벽돌을 던지고 기와를 흔들며 귀신이 부르짖으니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낮이라면 오히려 괜찮지만 어두운 밤에는 견디기 어렵구나.” 숙보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오늘 밤 신이 경덕과 함께 궁문을 지키며 무슨 사악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사옵니다.” 태종이 그 아룀을 윤허했다. 무공이 은혜에 사례하고 물러나갔다. 그날 날이 저물자 각기 갑주를 가져다가 두 사람은 투구와 갑옷을 정연히 갖추고 금과와 도끼를 들고 궁문 밖을 지켰다. 좋은 장수라! 어떻게 차려입었는지 보라. 머리에는 금 투구를 썼는데 빛이 번쩍번쩍하고 몸에는 갑옷을 걸쳤는데 용의 비늘 같다. 가슴을 지키는 보배 거울은 상서로운 구름을 흔들고 사자 허리띠는 단단히 조였으며 수놓은 띠는 채색 노을처럼 새롭다. 이쪽은 봉황 눈으로 하늘을 향해 별자리를 두렵게 하고 저쪽은 둥근 눈동자로 번개를 비추어 달빛이 뜨다. 그들은 영웅호걸이요 옛 공신이었으나 천 년토록 호위라 일컫고 만고에 문신이 되었다. 두 장수가 문 곁에 시립하였는데 하룻밤이 지나도록 한 점의 사악한 것도 보지 못했다. 그날 밤 태종은 궁 안에서 편안히 자고 아무 일도 없었으며 날이 새자 두 장수를 불러 거듭 상을 주며 말했다. “짐이 병을 얻은 뒤로 여러 날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오늘 밤은 두 장수의 위세를 힘입어 매우 편안했다. 경들은 잠시 나가 쉬고 저녁에 다시 호위하라.” 두 장수가 은혜에 사례하고 물러나갔다. 이렇게 두세 밤을 지키니 모두 편안하였으나 어선이 줄고 병은 도리어 더 무거워졌다. 태종이 두 장수의 수고를 차마 견디지 못하여 다시 숙보와 경덕, 두여회와 방현령 등 제공을 궁으로 불러 분부하여 말했다. “이틀 동안 짐이 비록 편안하기는 하였으나 진 장수와 호 장수 두 사람이 밤새도록 수고로움을 겪게 했다. 짐이 솜씨 좋은 화가를 불러 두 장수의 진짜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그들의 수고를 덜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뭇 신하가 곧 명을 따라 초상을 잘 그리는 사람 둘을 골라 호공과 진공 두 사람에게 이전처럼 갑주를 갖추게 하고 그대로 그려 문에 붙이니 밤에도 곧 아무 일이 없었다. 이렇게 이틀 사흘이 지나자 후재문에서 벽돌과 기와가 떵떵거리며 어지러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날이 새자 급히 뭇 신하를 불러 말했다. “여러 날 앞문은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는데 오늘 밤에는 뒷문이 울리니 이는 과인을 놀라 죽이려는 것이 아니냐!” 무공이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앞문이 편치 않았을 때에는 경덕과 숙보가 호위하였사오니 뒷문이 편치 않으면 마땅히 위징으로 하여금 호위하게 하여야 하옵니다.” 태종이 그 아룀을 윤허하고 위징을 불러 오늘 밤 후문을 지키게 했다. 위징이 명을 받들어 그날 밤 단정히 차려입고 그 용을 벤 보검을 들고 후재문 앞에 시립하였으니 참으로 좋은 영웅이다! 그가 어떻게 차려입었는지 보라. 익힌 명주로 만든 푸른 두건으로 이마를 싸매고 비단 도포와 옥 허리띠가 허리에 드리웠으며 바람을 막는 겉옷 소매에 서릿빛이 흩날리니 그 신의 모습은 누에 나방을 눌렀다. 발에는 검은 장화를 신고 앉은 자리에서도 꺾일 듯하며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쥐어 흉악하고 사납다. 두 눈을 둥글게 부릅뜨고 사방을 살피니 어느 사악한 신이 감히 다가오겠는가? 하룻밤이 밝도록 귀신도 없었다. 비록 앞뒤 문에 아무 일이 없었으나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어느 날 태후가 명을 내려 뭇 신하를 불러 장례 뒤의 일을 의논하게 했다. 태종이 서무공을 불러 나라의 큰일을 분부하고 촉한의 주군 유비가 고아를 부탁하던 뜻을 본뜨라고 당부했다. 말을 마치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옆에서 위징이 나서서 용의 옷자락을 손으로 붙잡고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신에게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반드시 폐하께서 장생하시도록 보장하겠사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병세가 이미 고황에 들었고 목숨이 장차 위태로우니 어찌 보전할 수 있겠는가?” 위징이 말했다. “신에게 편지 한 통이 있사오니 폐하께 올려 명부로 가지고 가서 풍도판관 최각에게 부치소서.” 태종이 말했다. “최각은 누구인가?” 위징이 말했다. “최각은 태상 선황제 어가 앞의 신하로 먼저 자주 현령을 받고 뒤에 예부 시랑으로 승진하였사옵니다. 생전에 신과 팔배지교를 맺어 서로 아는 정이 매우 두터웠사옵니다. 지금 이미 죽어 음사에서 생사를 맡은 문서를 관장하는 풍도판관이 되었사오며 꿈속에서 늘 신과 서로 만나 뵙곤 하였사옵니다. 이번에 가서 이 편지를 그에게 부치면 신의 하찮은 정을 생각하여 반드시 폐하를 돌려보내 줄 것이옵니다. 반드시 혼백을 양세로 돌아오게 하고 용안을 도성으로 돌려 모시게 하겠사옵니다.” 태종이 이 말을 듣고 손에 받아 소매 속에 넣고는 마침내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다. 그 삼궁육원과 황후 빈비, 시장과 태자, 두 반열의 문무가 모두 곡을 하고 상복을 입었으며 백호전 위에 재궁을 모셔 두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두기로 하자.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1회 유지부태종환혼(遊地府太宗還魂) · 진과과유전속배(進瓜果劉全續配) 시에 이르기를, 백 년의 광음은 흐르는 물과 같고, 한평생의 사업은 물 위에 뜬 거품과 같도다. 어제는 얼굴에 복숭아꽃 같은 빛이 어렸더니 오늘은 머리 곁에 눈송이가 떠도는구나. 흰개미의 진영이 흩어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허깨비임을 알고, 두견새 울음 간절하니 머리를 돌이킬 것을 생각하게 되도다. 예로부터 남몰래 쌓은 음덕이 능히 수명을 늘리나니, 착한 일은 가엾이 여겨 달라고 구하지 않아도 하늘이 스스로 두루 돌보느니라. 말하자면, 태종은 아득하고 망연한 가운데 혼령이 그대로 오봉루 앞으로 나왔는데, 어림군의 군마가 대가를 모시고 조정을 나서 사냥을 나가기를 청하였다. 태종은 기꺼이 그 말을 따라 흐릿하게 떠나갔다. 한참을 가니 사람도 말도 자취를 감추었다. 홀로 남아 황량한 들판과 풀숲 사이를 거닐었다. 마침 길을 찾기 어려울 때에 저쪽에서 한 사람이 높은 소리로 부르짖었다. “대당 황제시여, 이리로 오소서! 이리로 오소서!” 태종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그 사람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머리에는 검은 사모를 이고 허리에는 서각대를 둘렀도다. 사모에는 부드러운 띠가 나부끼고 서각대에는 금으로 상감한 장식이 드러나며, 손에는 상아 홀을 높이 들어 상서로운 구름이 어리고 몸에는 비단 도포를 걸쳐 상서로운 빛이 은은히 숨었도다. 발에는 분을 바른 밑창의 신 한 켤레를 신고 구름을 디디며 안개를 재촉하고, 품에는 한 권의 생사부를 품었으니 존망을 이미 정하여 두었도다. 살쩍은 어지러이 부풀어 귀 위에 나부끼고 수염은 나래치며 뺨 곁을 둘렀도다. 예전에는 당나라의 재상이었으나 이제는 안건을 맡아 염라대왕을 모시는 몸이로다. 태종이 그쪽으로 걸어가니, 그는 길가에 꿇어 엎드려 절하며 입으로 아뢰었다. “폐하, 신이 멀리 맞이하지 못한 실수를 용서하소서!” 태종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무슨 일로 와서 절하며 맞이하는가?” 그 사람이 말했다. “미천한 신은 반 달 전에 삼라전에서 경하의 귀룡이 폐하께서 구해 주시겠다 약속하시고 도리어 죽이셨다는 까닭을 고발하는 것을 보았사온데, 제일전 진광대왕께서 곧 귀사를 보내어 폐하를 재촉하여 청해 오게 하시며 삼조에서 대질하여 사안을 가리려 하셨사옵니다. 신이 이미 그 일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곳에 와서 기다려 맞이한 것이옵니다. 뜻밖에도 오늘 늦게 왔사오니 바라옵건대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태종이 말했다. “그대의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인가? 무슨 관직에 있는가?” 그 사람이 말했다. “미천한 신은 살아 있을 적에 양간에서 선군의 어가 앞을 모시며 자주 현령이 되었고 뒤에 예부 시랑에 올랐사오며 성은 최요 이름은 각이옵니다. 지금은 음사에 있사오나 풍도 장안 판관의 직을 받았사옵니다.” 태종이 크게 기뻐하여 곧 앞으로 나아가 어수로 황급히 부축하며 말했다. “선생은 먼 길에 수고가 많았소. 짐의 어가 앞의 위징이 편지 한 통을 써서 바로 선생께 부치려 하였는데 마침 여기서 만났구려.” 판관이 은혜에 사례하고 편지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태종이 곧 소매 속에서 꺼내어 건네주었다. 최각이 절하여 받들고 봉함을 뜯어 보니, 그 편지에 이르기를, “사랑을 입은 아우 위징은 머리를 조아려 큰 도안 계형 최 노선생 합하께 글을 올리옵니다. 옛적에 서로 사귀던 일을 생각하오니 얼굴과 음성이 눈앞에 있는 듯하옵니다. 홀연 몇 해가 지나도록 맑은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사옵니다. 늘 다만 명절을 만나면 나물과 제물을 갖추어 받들어 제사하였사오나 향을 받으셨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또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꿈속에 임하여 보여 주셨기에 비로소 우리 형장 대인이 높이 옮기셨음을 알았사옵니다. 어찌하오리까, 음과 양이 막히고 하늘과 땅이 각기 한쪽이라 얼굴을 마주 뵙지 못하옵니다. 이제 우리 태종 문황제께서 홀연히 돌아가셨사오니 헤아리건대 삼조에서 대질할 때에 반드시 형장을 만나 뵙게 될 것이옵니다. 만 번 바라옵건대 옛 사귐의 정을 돌아보시어 방편을 조금 베푸시어 우리 폐하를 양세로 돌려보내 주신다면 참으로 애틋한 일이 되겠사옵니다. 다시 사례하는 글을 올리려 하옵니다. 다 하지 못하옵니다.” 그 판관이 편지를 다 보고는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여 말했다. “위 인조가 지난번 꿈에서 늙은 용을 벤 일을 신이 이미 일찍 알고 있었사오며 몹시 칭찬을 마지않았사옵니다. 또 그가 아침저녁으로 신의 자손을 돌보아 주었사오니, 오늘 이미 편지가 왔으니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미천한 신이 반드시 폐하를 모시고 양세로 돌아가 다시 옥궐에 오르시게 하겠사옵니다.” 태종이 사례하였다.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하는데 저쪽에서 청색 옷 입은 동자 한 쌍이 당번과 보개를 들고 크게 부르짖었다. “염라대왕께서 청하시옵니다, 청하시옵니다.” 태종이 최판관과 두 동자를 따라 걸음을 옮기니 홀연 한 성이 보였는데, 성문 위에 큰 패가 걸려 있고 그 위에 유명지부 귀문관이라 하는 일곱 개의 큰 금빛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 청의가 당번을 흔들어 태종을 인도하여 그대로 성 안으로 들어가 거리를 따라 갔다. 그 거리 곁에 선주 이연과 선형 이건성과 죽은 아우 이원길이 있어 앞으로 나아와 말했다. “세민이 왔구나! 세민이 왔구나!” 그 이건성과 이원길이 곧 달려들어 붙잡아 때리며 목숨을 갚으라고 요구하였다. 태종이 피하려 하였으나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붙들렸다. 다행히 최판관이 청색 얼굴에 어금니가 뾰족한 귀사를 불러 그들을 꾸짖어 물리쳤으므로 태종이 그제야 몸을 벗어나 갈 수 있었다. 몇 리를 가지 않아 푸른 기와의 누대 하나가 보였는데 참으로 장려하였다. 이러하였다. 아득히 만 겹의 채색 노을이 쌓였고 어렴풋이 천 줄기 붉은 안개가 나타났도다. 반짝이는 처마에는 괴이한 짐승의 머리가 날아오르고 빛나는 기와는 원앙 조각을 겹쳐 놓았도다. 문에는 여러 줄의 붉은 금 못을 박았고 문지방에는 한 줄기 흰 옥을 가로로 놓았도다. 창문은 빛에 가까워 새벽 안개를 놓아 보내고 발과 창은 밝게 빛나 붉은 번개를 꿰뚫도다. 누대는 높이 솟아 푸른 하늘에 닿고 행랑은 나란히 늘어서 보배로운 뜰과 이어졌도다. 짐승 모양 향로의 향구름이 어의를 엄습하고 붉은 사의 등불이 궁선을 밝히도다. 왼쪽에는 사나운 소머리 귀신이 벌여 섰고 오른쪽에는 험상궂은 말머리 귀신이 늘어섰도다. 죽은 이를 맞고 귀신을 보내며 금패를 돌리고 혼백을 부르고 넋을 부르며 흰 비단을 드리웠도다. 이름하여 음사의 총회문이라 하고 아래로는 염라 노인의 삼라전이라 하도다. 태종이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옥고리 소리가 딸랑딸랑 울리고 신선 향기가 기이하였으며 바깥에 두 쌍의 등불 든 이가 있고 뒤에는 십대 염왕이 섬돌을 내려와 이르렀다. 그 십왕은 진광왕, 초강왕, 송제왕, 오관왕, 염라왕, 평등왕, 태산왕, 도시왕, 변성왕, 전륜왕이었다. 십왕이 삼라보전에 나와 몸을 굽히고 허리를 굽혀 태종을 맞이하였다. 태종이 겸손히 낮추어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니, 십왕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양간의 인왕이시고 저희는 음간의 귀왕이오니 분수로 당연한 것이거늘 어찌 사양하시는가?” 태종이 말했다. “짐이 휘하에 죄를 지었거늘 어찌 감히 음양과 인귀의 도리를 논하겠소?” 사양하기를 마지않았다. 태종이 앞으로 나아가 그대로 삼라전 위로 들어가 십왕과 예를 마치고 주인과 손님으로 나누어 앉았다. 약 한 식경쯤 지나 진광왕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아뢰었다. “경하의 귀룡이 폐하께서 구해 주시겠다 하시고 도리어 죽이셨다고 고발하였사오니 어찌 된 일이옵니까?” 태종이 말했다. “짐이 일찍이 꿈에 늙은 용이 와서 살려 달라 구하기에 실로 탈이 없게 하겠다고 허락하였소. 뜻밖에도 그가 죄를 지어 형벌을 받아 마땅하여 짐의 인조관 위징이 목을 베어야 했기에 짐이 위징을 전각에 불러 바둑을 두게 하였사오나 꿈속에서 한 번에 베어 버린 줄은 몰랐소. 이는 그 인조관이 신기함을 부린 것이요 또 그 용왕이 죄를 지어 마땅히 죽어야 했던 것이니 어찌 짐의 허물이겠소?” 십왕이 엎드려 예를 갖추며 말했다. “그 용이 태어나기 전에 남두성의 사부에 이미 인조관의 손에 죽어야 한다고 정하여 두었으니 저희가 일찍이 알았사옵니다. 다만 그가 이곳에서 따지며 반드시 폐하께서 오시어 삼조에서 대질하기를 요구하였으므로 저희가 그를 윤장으로 보내 환생하게 하였사옵니다. 이제 또 폐하를 수고롭게 내려오시게 하였으니 바라옵건대 재촉한 죄를 용서하소서.” 말을 마치자 생사부를 맡은 판관에게 명하여 말했다. “급히 문서를 가져와 폐하의 양수와 천록이 얼마나 되는지 보라.” 최판관이 급히 사방으로 달려가 천하 만국의 국왕 천록 총부를 검열하니, 남섬부주 대당 태종 황제는 정관 십삼 년으로 정하여져 있었다. 최판관이 놀라 짙은 먹과 큰 붓을 가져다 ‘십삼’의 ‘일’ 자 위에 두 획을 더 그어 ‘삼십삼’으로 만들고는 문서를 올렸다. 십왕이 훑어보니 태종의 이름 아래에 삼십삼 년으로 적혀 있었다. 염라왕이 놀라 물었다. “폐하께서 즉위하신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태종이 말했다. “짐이 즉위한 지 이제 십삼 년이 되었소.” 염라왕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근심하지 마소서. 아직 이십 년의 양수가 남아 있사옵니다. 이미 대질한 사안이 명백하여졌으니 청하건대 본바탕으로 돌아가 양세로 돌아가소서.” 태종이 몸을 굽혀 사례하였다. 십염왕이 최판관과 주태위를 보내어 태종을 모시고 환혼하게 하였다. 태종이 삼라전을 나서며 또 손을 들어 십왕에게 물었다. “짐의 궁중의 늙은이와 젊은이는 평안한지 어떠하오?” 십왕이 말했다. “모두 평안하오나 다만 황제의 누이만은 수명이 길지 못할까 두렵사옵니다.” 태종이 또 두 번 절하여 아뢰었다. “짐이 양세로 돌아가면 사례할 물건이 없사오니 다만 과일로 답하겠사옵니다.” 십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우리 이곳에는 동과와 서과가 자못 있사오나 다만 남과가 모자라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짐이 돌아가 즉시 보내 드리겠소, 즉시 보내 드리겠소.” 이로부터 서로 읍하고 작별하였다. 그 태위가 인혼번을 들고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최판관이 뒤에서 태종을 보호하며 그대로 유사를 나왔다. 태종이 눈을 들어 보니 예전에 오던 길이 아니었다. 판관에게 물었다. “이 길은 틀린 것 같소?” 판관이 말했다. “틀리지 않았사옵니다. 음사에서는 이러하여 가는 길은 있어도 오는 길은 없사옵니다. 이제 폐하를 전륜장으로부터 나가시게 하려 하오니, 하나는 지부를 두루 구경하게 하려 함이요 하나는 환생하여 다시 태어나시게 하려 함이옵니다.” 태종이 마지못해 두 사람을 따라 인도하는 길로 나아갔다. 그대로 몇 리를 가니 홀연 높은 산 하나가 나타났는데, 음침한 구름이 땅에 드리우고 검은 안개가 하늘을 가리었다. 태종이 말했다. “최 선생, 저쪽은 무슨 산이오?” 판관이 말했다. “유명 배음산이옵니다.” 태종이 두려워 떨며 말했다. “짐이 어찌 지나갈 수 있겠소?” 판관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신들이 인도하겠사옵니다.” 태종이 벌벌 떨며 두 사람을 따라 산바위에 올라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모양은 울퉁불퉁한 곳이 많고 형세는 더욱 험준하도다. 험하기는 촉 땅의 산과 같고 높기는 여산 바위와 같도다. 양세의 이름난 산이 아니요 실로 음사의 험한 땅이로다. 가시덤불이 무더기로 모여 귀신과 괴물을 감추고 돌벼랑은 반짝이며 사악한 마귀를 숨겼도다. 귀 곁에는 짐승과 새 소리 들리지 않고 눈앞에는 오직 귀신과 요괴가 다니는 것만 보이도다. 음산한 바람이 쏴쏴 불고 검은 안개가 자욱하도다. 음산한 바람은 신병이 입에서 내뿜는 연기요 검은 안개는 귀신이 어둠 속에서 뿜어내는 기운이로다. 한번 바라보면 높고 낮음에 아무 경치 없고 좌우를 둘러보면 온통 굶어 죽은 넋뿐이로다. 저곳에는 산도 있고 봉우리도 있고 고개도 있고 동굴도 있고 시내도 있으나, 다만 산에는 풀이 나지 않고 봉우리는 하늘을 찌르지 못하며 고개에는 나그네가 다니지 않고 동굴에는 구름을 머금지 않으며 시내에는 물이 흐르지 않도다. 언덕 앞에는 모두 망량이요 고개 아래는 온통 신마로다. 동굴 속에는 들귀신을 거두어들이고 시내 밑에는 사악한 넋을 숨겼도다. 산 앞뒤로는 소머리와 말머리 귀신이 어지러이 떠들어대고 반쯤 숨긴 채 굶주린 귀신과 다한 넋이 때때로 마주 앉아 울도다. 목숨을 재촉하는 판관은 황급히 명부를 전하고 혼을 뒤쫓는 태위는 고래고래 공문을 재촉하도다. 발 빠른 심부름꾼은 회오리바람처럼 구르고 귀신을 잡아오는 사자는 검은 안개처럼 어지럽도다. 태종은 온전히 그 판관의 보호에 의지하여 음산을 넘었다. 앞으로 나아가며 또 많은 관청을 지났는데, 곳곳마다 슬픈 소리가 귀를 진동하고 흉악한 괴물이 마음을 놀라게 하였다. 태종이 또 말했다. “이곳은 어디인가?” 판관이 말했다. “이곳은 음산 뒤편의 십팔층지옥이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그 십팔층이란 무엇인가?” 판관이 말했다. “그대는 내 말을 들으라. “조근지옥과 유왕지옥과 화갱지옥은 적막하고 고요하며 번뇌롭고 괴로우니, 모두 생전에 지은 천 가지 업보로 죽은 뒤에 와서 죄명을 받는 곳이로다. 풍도지옥과 발설지옥과 박피지옥은 울고불고 애처롭고 참혹하니, 다만 불충불효하여 천리를 상하고 입으로는 부처를 말하면서 마음은 뱀 같았기에 이 문에 떨어진 곳이로다. 마애지옥과 대도지옥과 차붕지옥은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며 입을 닦고 이를 드러내니, 마음을 속여 공정하지 못하고 교묘한 말로 남을 몰래 해친 자들이로다. 한빙지옥과 탈각지옥과 추장지옥은 때 묻은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요 근심스러운 눈썹에 찡그린 눈이니, 모두 큰 말과 작은 저울로 어리석은 이를 속인 탓에 재앙이 몸에 쌓인 자들이로다. 유과지옥과 흑암지옥과 도산지옥은 벌벌 떨며 슬프고 애절하니, 모두 강포하여 착한 이를 업신여긴 탓에 머리를 감추고 목을 움츠린 자들이로다. 혈지지옥과 아비지옥과 칭간지옥은 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드러나며 팔이 부러지고 힘줄이 끊어지니, 재물을 도모하고 목숨을 해치며 짐승을 잡고 생령을 죽인 탓이라 천 년을 떨어져도 풀리지 않고 영원토록 가라앉아 몸을 뒤집지 못하는 곳이로다. 하나하나 단단히 묶이고 노끈으로 동여매여 붉은 머리 귀신과 검은 얼굴 귀신이 긴 창과 짧은 칼을, 소머리 귀신과 말머리 귀신이 쇠 몽둥이와 구리 망치를 들고 오직 때려대니 고통스러운 얼굴에 피가 뚝뚝 흐르며 땅을 부르고 하늘을 불러도 구해 줄 이 없도다. 이른바 인생은 마음을 속이지 말지니 신과 귀신이 밝게 드러나 뉘를 놓아주겠는가? 선과 악은 끝내 갚음이 있으니 다만 이르고 늦음을 다툴 뿐이로다.” 태종이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놀라고 참혹하게 여겼다. 앞으로 나아가 얼마 가지 않아 귀졸 한 무리가 각기 당번을 들고 길가에 꿇어 엎드려 말하였다. “교량 사자가 와서 맞이하옵니다.” 판관이 꾸짖어 물러가라 명하고 앞으로 나아가 태종을 인도하여 금교로 지나갔다. 태종이 또 저쪽에 은교 하나가 있어 충효하고 어질고 착한 무리와 공평하고 정대한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에게도 당번을 들고 인도하는 이가 있었다. 저쪽에 또 다리 하나가 있어 찬 바람이 구르고 핏물결이 넘실거리며 곡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태종이 물었다. “저 다리는 무슨 이름인가?” 판관이 말했다. “폐하, 저것은 내하교라 부르옵니다. 양세에 돌아가시거든 반드시 기록하여 전하소서. 저 다리 아래에는 모두 이러하옵니다. “굽이쳐 흐르는 넓고 넓은 물이요 험준하고 좁고 좁은 길이로다. 엄연히 흰 비단 한 필을 장강에 걸쳐 놓은 듯하고 도리어 화갱이 상계에 떠 있는 듯하도다. 음기가 사람을 핍박하여 추위가 뼈에 스미고 비린 바람이 코를 찔러 그 맛이 마음을 파고드도다. 물결이 뒤집히고 파도가 구르는데 사람을 건네는 배는 없고 맨발에 헝클어진 머리로 드나드는 이는 모두 업보의 귀신뿐이로다. 다리 길이는 몇 리요 너비는 다만 세 뼘이며, 높이는 백 자요 깊이는 천 겹이로다. 위에는 붙잡을 난간이 없고 아래에는 사람을 잡아채는 흉악한 괴물이 있도다. 칼과 차꼬가 몸을 감아 내하의 험한 길로 밀어 올리도다. 그대 보라, 다리 곁 신장은 몹시 흉악하고 강 속 업보의 넋은 참으로 괴로워하도다. 가지가 뻗은 나무 위에는 푸르고 붉고 누르고 자색인 비단옷이 걸려 있고, 벽돌벼랑 앞에는 시부모를 헐뜯고 욕한 음란한 계집이 쭈그리고 앉았도다. 구리 뱀과 쇠 개가 마음대로 다투어 먹으니 영원히 내하에 떨어져 나갈 길이 없도다.” 시에 이르기를, 때때로 귀신의 울음과 신의 부르짖음을 들으니, 핏물이 물결을 흐려 만 길이나 높도다. 수없이 많은 소머리 귀신과 말머리 귀신이 흉악하게 내하교를 지키도다. 한창 이야기하는 사이에 몇몇 교량 사자는 이미 일찍 돌아갔다. 태종의 마음이 또 놀라고 두려워져 머리를 끄덕이며 남몰래 탄식하고 말없이 슬퍼하며 판관과 태위를 따라 내하의 사나운 물과 피로 가득한 고통의 세계를 지났다. 앞으로 나아가 왕사성에 이르렀는데 웅웅거리는 떠드는 소리가 분명히 “이세민이 왔다! 이세민이 왔다!” 하는 소리였다. 태종이 그 부르짖음을 듣고 마음이 놀라고 간이 떨렸다. 허리를 끌고 팔이 부러지고 발은 있으나 머리 없는 귀매 한 무리가 나아와 길을 막았다. 모두가 부르짖었다. “내 목숨을 돌려다오! 내 목숨을 돌려다오!” 태종이 놀라 숨고 피하며 다만 “최 선생, 나를 구하오! 최 선생, 나를 구하오!” 하고 부르짖었다. 판관이 말했다. “폐하, 저들은 모두 예순네 곳의 연진과 일흔두 곳의 초적의 무리와 여러 왕자와 두목의 귀혼이옵니다. 억울하게 죽은 원한의 업보라 거두는 이도 없고 초생하지도 못하며 돈도 노잣돈도 없어 외롭고 궁한 굶주린 귀신들이옵니다. 폐하께서 그들에게 얼마간 돈을 주시면 신이 구해 내겠사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과인은 빈 몸으로 이곳에 왔거늘 어디서 돈을 얻겠소?” 판관이 말했다. “폐하, 양세에 한 사람이 있어 금은 얼마간을 이 음사에 맡겨 두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이름을 내어 계약을 세우시고 소판이 보증을 서면 그의 창고 하나를 빌려 이 굶주린 귀신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지나가실 수 있사옵니다.” 태종이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판관이 말했다. “하남 개봉부 사람이오니 성은 상이요 이름은 량이옵니다. 그가 이곳에 십삼 창고의 금은을 두었사옵니다. 폐하께서 그의 것을 빌려 쓰시고 양세에 돌아가 갚으시면 되옵니다.” 태종이 매우 기뻐하여 기꺼이 이름을 내어 빌리려 하였다. 마침내 판관에게 문서를 세워 금은 한 창고를 빌리고 태위로 하여금 모두 나누어 주게 하였다. 판관이 다시 분부하여 말했다. “이 금은을 그대들은 고루 나누어 쓰고 우리 대당 할아버지를 지나가시게 하라. 그의 양수는 아직 멀다. 내가 십왕의 분부를 받들어 그를 모시고 환혼하게 하여 양세에 가서 ‘수륙대회’를 열어 그대들을 초생시키게 하겠으니 다시는 탈을 일으키지 말라.” 뭇 귀신이 금은을 얻자 모두 공손히 대답하고 물러갔다. 판관이 태위로 하여금 인혼번을 흔들게 하여 태종을 인도하여 왕사성을 벗어나 평평하고 밝은 큰길로 달려가니 하늘하늘 떠돌며 가버렸다. 앞으로 한참을 나아가니 마침내 ‘육도윤회’의 장소에 이르렀는데, 또 구름을 타고 오르는 이는 채색 어깨걸이를 걸쳤고 녹을 받은 이는 허리에 금붕어 장식을 걸쳤으며, 중과 비구니와 도사와 속인과 달리는 짐승과 나는 새와 산도깨비와 물귀신이 물결처럼 그 윤회 아래로 달려가 각기 그 길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당왕이 물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판관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보셨으니 반드시 기록하시어 양세의 사람들에게 전하여 알게 하소서. 이것을 ‘육도윤회’라 부르옵니다. 착한 일을 행한 이는 선도로 승화하여 오르고, 충성을 다한 이는 귀한 도로 초생하며, 효도를 행한 이는 복된 도로 다시 태어나고, 공평한 이는 인간의 도로 돌아가 나며, 덕을 쌓은 이는 부유한 도로 환생하고, 악독한 이는 귀신의 도로 가라앉사옵니다.” 당왕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며 탄식하여 말했다. “착하도다 참으로 착하도다! 착한 일을 지으면 과연 재앙이 없도다! 착한 마음은 늘 간절하고 착한 길은 크게 열렸도다. 악한 생각을 일으키게 하지 말지니 반드시 교활하고 간사함이 적어지리라. 인과응보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신과 귀신에게는 마련된 배치가 있느니라.” 판관이 당왕을 ‘초생 귀도문’까지 바래다주고 절하며 말했다. “폐하, 이곳이 머리를 내미는 곳이옵니다. 소판은 이만 돌아가겠사오니 주태위로 하여금 다시 한 구간을 모시게 하소서.” 당왕이 사례하며 말했다. “선생이 먼 길을 걸어 수고가 많았소.” 판관이 말했다. “폐하께서 양세에 이르시거든 천만번 ‘수륙대회’를 열어 주인 없는 원혼을 초도하시고 결코 잊지 마소서. 만약 음사에 원망하는 소리가 없으면 양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태평의 경사를 누릴 수 있사옵니다. 무릇 온갖 착하지 못한 곳을 하나하나 고치시고 세상 사람에게 착함을 행하라 이르시면 반드시 후대가 길고 강산이 영원히 굳건하도록 해 드리겠사옵니다.” 당왕이 하나하나 그대로 따르고 최판관과 작별한 뒤 주태위를 따라 함께 문으로 들어왔다. 그 태위가 문 안에 안장과 말다래를 갖춘 준마 한 필을 보고 급히 당왕을 청하여 말에 오르게 하고 좌우에서 부축하였다. 말이 화살처럼 달려 위수 강가에 이르렀는데, 물 위에 금빛 잉어 한 쌍이 물결을 뒤집고 뛰어오르며 다투는 것이 보였다. 당왕이 보고 마음이 기뻐 말을 돌려 붙잡고 탐내어 보며 놓지 못하였다. 태위가 말했다. “폐하, 조금 서두르시어 일찍 시각을 맞추어 성으로 들어가소서.” 그 당왕은 다만 탐내어 보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태위가 발을 붙잡아 당기며 크게 부르짖었다. “아직도 가지 않으시고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하고는 철썩 소리를 내며 그를 위하로 밀어 떨어뜨려, 음사를 벗어나 그대로 양세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그 당왕의 어가 아래에 서무공, 진숙보, 호경덕, 단지현, 마삼보, 정교금, 고사렴, 이세적, 방현령, 두여회, 소우, 부혁, 장도원, 장사형, 왕규 등의 두 반열 문무가 있어 모두 동궁 태자와 황후와 빈비와 궁아와 시장을 보호하며 백호전 위에서 곡을 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애조를 반포하여 천하에 효유하고 태자를 받들어 등극시키려고 의논하고 있었다. 이때 위징이 곁에서 말했다. “여러분은 잠시 멈추시오. 안 됩니다! 만약 주와 현을 놀라게 하면 뜻밖의 일이 생길까 두렵소. 우선 하루만 더 기다려 보시오, 우리 주상께서 반드시 환혼하실 것이오.” 아래에서 허경종이 나서며 말했다. “위 승상의 말은 매우 그릇되었소. 예로부터 ‘엎지른 물은 담기 어렵고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였거늘 어찌 이런 헛된 말로 인심을 어지럽히는 것이오, 무슨 도리요!” 위징이 말했다. “허 선생께 숨기지 않겠소. 하관은 어려서 선술을 전수받아 추산함이 가장 밝사오니 반드시 폐하께서 죽지 않으시도록 하겠소.” 한창 이야기할 때, 관 속에서 잇달아 크게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물에 빠뜨려 죽였구나! 나를 물에 빠뜨려 죽였구나!” 문관과 무장은 마음이 황급하고 황후와 빈비는 간이 떨릴 정도로 놀랐다. 하나하나가 이러하였다. 얼굴은 가을 뒤 누렇게 된 뽕잎 같고 허리는 봄 앞의 어린 버들가지 같도다. 태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상장을 붙들고 애도의 예를 다하기 어렵고, 시장은 혼이 날아가 어찌 상관을 쓰고 효의 예를 지키겠는가? 빈비는 발을 헛디디고 채녀는 기울어졌도다. 빈비가 발을 헛디디니 마치 미친 바람이 시든 연꽃을 쓰러뜨린 듯하고, 채녀가 기울어지니 마치 소나기가 연한 연꽃을 비뚜로 몰아친 듯하도다. 뭇 신하는 두려워 벌벌 떨며 뼈가 물러지고 힘줄이 저리도다. 어리석고 멍하니, 백호전 한 채가 마치 들보가 끊어진 다리 같고 곡하는 단이 무너진 절과 같도다. 이때 뭇 궁인은 모두 달아나 누가 감히 영구에 다가가 관을 붙들겠는가. 다행히 정직한 서무공과 이치에 밝고 사나운 위승상과 담력 있는 진경과 몹시 무모한 경덕이 나아와 관을 붙들고 부르짖었다. “폐하께서 마음에 놓지 못할 일이 있으시면 저희에게 이르시고 귀신을 부려 권속을 놀라게 하지 마소서.” 위징이 말했다. “귀신을 부리는 것이 아니오. 이는 폐하께서 환혼하신 것이오. 빨리 연장을 가져오시오!” 관 뚜껑을 열어젖히니 과연 태종이 그 안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직 “나를 물에 빠뜨려 죽였구나! 누가 나를 구해 건졌느냐?” 하고 부르짖고 있었다. 무공 등이 나아와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폐하께서 깨어나셨으니 두려워 마소서. 신들이 모두 이곳에서 어가를 호위하고 있사옵니다.” 당왕이 그제야 눈을 뜨고 말했다. “짐이 방금 몹시 괴로웠소. 음사 악귀를 피하였더니 또 물 위에서 몸을 잃을 재앙을 만났소.” 뭇 신하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두려워 마소서. 무슨 물의 재앙이란 말이오니까?” 당왕이 말했다. “짐이 말을 타고 위수 강가에 이르렀을 때 머리 둘 달린 물고기가 노는 것을 보았는데, 주태위가 마음을 속여 짐을 말에서 밀어 강물에 빠뜨렸으니 하마터면 죽을 뻔하였소.” 위징이 말했다. “폐하의 귀신 기운이 아직 풀리지 않았사옵니다.” 급히 태의원에 명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넋을 진정시키는 탕약을 올리게 하고 또 죽과 음식을 마련하게 하였다. 두어 번 복용하고서야 본바탕으로 돌아와 인사를 알게 되었다. 당왕이 죽은 지 이미 사흘 밤낮이 지나 다시 양세로 돌아와 임금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만고의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던고, 예로부터 여러 세대가 패하고 이루어졌도다. 주와 진과 한과 진에도 기이한 일이 많았으나 누가 당왕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랴? 그날 날빛이 이미 저물자 뭇 신하가 왕께 돌아가 쉬시기를 청하고 각기 흩어졌다. 이튿날 아침 상복을 벗고 채색 옷으로 갈아입으니, 하나같이 붉은 도포에 검은 사모요 하나같이 자색 인끈에 금 인장을 차고 조정 문 밖에서 선소를 기다렸다. 말하자면 태종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넋을 진정시키는 약을 복용하고 여러 번 죽과 국을 들이신 뒤, 뭇 신하에게 부축되어 침실로 들어가 하룻밤 편안히 주무시며 정신을 보양하여 날이 밝아서야 일어나 위의를 떨치셨으니, 그가 어떻게 차려입었는지 보라. 머리에는 하늘을 찌르는 관을 쓰고 몸에는 붉은 누런 도포를 걸쳤도다. 허리에는 남전의 푸른 옥 띠를 띠고 발에는 창업의 근심 없는 신 한 켤레를 신었도다. 용모는 당당하여 당세를 능가하고 위엄은 맹렬하여 오늘을 다시 일으켰도다. 참으로 맑고 평안하며 도가 있는 대당의 왕이요 죽었다가 살아난 이 폐하로다! 당왕이 금란보전에 올라 두 반열의 문무를 모으니, 만세를 부른 뒤 품급에 따라 반열을 나누었다. 전지가 내리기를 “용건이 있는 자는 나와 아뢰고 없는 자는 조회를 파하라.” 하였다. 동쪽 행랑에서 서무공, 위징, 왕규, 두여회, 방현령, 원천강, 이순풍, 허경종 등이 나서고 서쪽 행랑에서 은개산, 유홍기, 마삼보, 단지현, 정교금, 진숙보, 호경덕, 설인귀 등이 나서서, 함께 나아가 백옥 섬돌 앞에 엎드려 아뢰었다. “폐하께서 지난번 조회 때 한 번 꿈을 꾸신 뒤로 어찌 이렇게 오래 깨어나지 않으셨습니까?” 태종이 말했다. “며칠 전 위징의 편지를 받고 짐의 정신이 전각을 나섰는데, 어림군이 짐을 청하여 사냥을 나가게 하였다. 가는데 사람도 말도 자취가 없었고 또 선군 부왕과 선형제가 다투어 떠드는 것을 보았다. 풀기 어려울 때 검은 사모에 검은 도포를 입은 한 사람을 보았으니 바로 판관 최각이었다. 그가 선형제를 꾸짖어 물리치기에 짐이 위징의 편지를 그에게 전해 주었다. 또 청색 옷 입은 이가 당번을 들고 짐을 인도하여 삼라전에 이르러 십대 염왕과 마주 앉게 하였다. 그가 경하의 용이 짐이 구해 주겠다 약속하고 도리어 죽였다고 고발하기에 짐이 앞서 한 말을 하나하나 진술하였다. 그가 이미 삼조에서 대질을 마쳤다 하며 급히 생사 문서를 가져다 짐의 양수를 검사하게 하였다. 최판관이 문서를 올리니 염라왕이 보고 이르기를, 과인에게 천록 삼십삼 년이 있으니 이제 십삼 년을 지났을 뿐이라 아직 이십 년의 양수가 남았다 하며 곧 주태위와 최판관을 보내어 짐을 돌려보내게 하였다. 짐이 십왕과 작별하며 과일을 보내어 은혜에 사례하겠다고 허락하였다. 삼라전을 나선 뒤로는 음사에서 불충불효하고 예의에 어긋나며 곡식을 함부로 버리고 남을 속이고 기만하며 큰 말과 작은 저울을 쓰는 간사한 무리들이 갈리고 찧이고 삶아지고 벗겨지는 형벌을 받는 것이 천만이나 되어도 다 보기에 부족하였다. 또 왕사성을 지나는데 수없는 원혼이 모두 예순네 곳의 연진과 일흔두 곳의 반적의 영혼이라 짐의 길을 막았다. 다행히 최판관이 보증을 서서 하남 상 노인의 금은 한 창고를 빌려 귀혼을 돌려세우고서야 나아갈 수 있었다. 최판관이 짐에게 양세로 돌아가거든 천만번 ‘수륙대회’를 열어 주인 없는 외로운 혼을 초도하라 신신당부하고 작별하였다. ‘육도윤회’ 아래를 나서니 주태위가 짐을 청하여 말에 오르게 하였다. 나는 듯이 위수 강가에 이르렀는데 물 위에 머리 둘 달린 물고기가 노는 것을 보았다. 기뻐할 때에 그가 짐의 발을 붙잡아 물속으로 밀어 넣었고 짐이 그제야 환혼하게 된 것이오.” 뭇 신하가 이 말을 듣고 모두 축하하였으며, 이에 따라 널리 전하여 천하의 각 부와 현 관리들이 표를 올려 경하하였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두기로 하자. 말하자면 태종이 또 전지하여 천하의 죄인을 사면하고 옥중의 중죄수를 조사하게 하였다. 이때 심관이 형부의 교수형과 참수형 죄인을 조사하여 사백여 명을 문서로 올렸다. 태종이 놓아 집으로 돌려보내니, 그들은 부모와 형제에게 절하여 작별하고 재산을 친척과 조카에게 맡기고는 이듬해 오늘 다시 관청에 나아가 마땅히 받을 죄를 받으려 하였다. 뭇 죄수가 은혜에 사례하고 물러갔다. 또 고아를 구휼하는 방문을 내고 궁중의 늙고 어린 채녀를 조사하니 모두 삼천 명이라 전지하여 군에 배속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안팎이 모두 착해졌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큰 나라 당왕의 은덕이 넓어 도가 요순을 지나매 만민이 넉넉하도다. 사형수 사백이 모두 옥을 떠나고 원한을 품은 여자 삼천이 궁에서 놓여 나왔도다. 천하의 많은 관리가 장수를 축원하고 조정의 뭇 재상이 원룡을 하례하도다. 착한 마음 한 생각에 하늘이 응당 도우시리니 복된 음덕은 응당 열일곱 대까지 전하리라. 태종이 이미 궁녀를 놓아 보내고 사형수를 내보낸 뒤에 또 어제 방문을 내어 천하에 두루 전하게 하였다. 그 방문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은 넓고 커서 해와 달이 비추어 살핌이 분명하고, 우주는 너그럽고 넓어 하늘과 땅이 간사한 무리를 용납하지 않느니라. 마음을 부리고 술책을 쓰면 과보는 다만 이생에 있고, 착함을 베풀되 얕게 구하면 복을 얻음을 후세에 말하지 말라. 천 가지 교묘한 꾀는 본분대로 사람답게 사는 것만 못하고, 만 가지 강포한 무리는 인연 따라 검소하게 사는 것만 못하도다. 마음으로 자비를 행한다면 어찌 힘써 경을 읽을 필요가 있으며, 남을 해치려 마음먹는다면 헛되이 여래의 대장경을 읽을 뿐이로다!” 이때로부터 천하에 착한 일을 행하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한쪽에서는 현자를 부르는 방문을 내어 과일을 지부로 바치게 하고, 한쪽에서는 보장고의 금은 한 창고를 악국공 호경덕에게 맡겨 하남 개봉부로 보내 상량을 찾아 빚을 갚게 하였다. 방문이 여러 날 붙어 있었는데, 명을 받들어 과일을 바치려는 현자 하나가 있었으니 균주 사람이었다. 성은 유요 이름은 전이며 집에 만관의 재산이 있었다. 아내 이취련이 문 앞에서 금비녀를 뽑아 중에게 시주한 일로 유전이 그를 꾸짖으며 부도를 따르지 않고 멋대로 규문을 나갔다 하였다. 이씨가 분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어린 두 아이를 남겨 두니 밤낮으로 슬피 울었다. 유전이 또 차마 보지 못하여 목숨을 버리고 집안 인연과 자녀를 버린 채 기꺼이 죽음으로 과일을 바치려 하여 황방을 떼어 당왕을 뵈러 왔다. 왕이 전지하여 그를 금정관으로 보내어 머리 위에 남과 한 쌍을 이고 소매에 노란 돈을 넣고 입에 약을 물게 하였다. 유전이 과연 독약을 먹고 죽으니 한 점의 영혼이 과일을 이고 귀문관 위에 이르렀다. 문을 지키는 귀사가 꾸짖어 말했다. “그대는 무슨 사람이기에 감히 이곳에 오는가?” 유전이 말했다. “저는 대당 태종 황제의 흠차를 받들어 특별히 과일을 십대 염왕께 바치려 온 자이옵니다.” 그 귀사가 기뻐하며 맞이하여 인도하였다. 유전이 삼라보전에 이르러 염왕을 뵙고 과일을 올리며 말했다. “당왕의 전지를 받들어 멀리 과일을 바치오니 십왕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신 은혜에 사례하고자 함이옵니다.” 염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참으로 믿음 있고 덕 있는 태종 황제로다!” 과일을 거두고는 바친 사람의 성명과 어느 지방 사람인지 물었다. 유전이 말했다. “소인은 균주성의 민적이옵니다. 성은 유요 이름은 전이옵니다. 아내 이씨가 목을 매어 죽어 어린 자녀를 남겼으나 돌볼 이가 없사오므로 소인이 기꺼이 집과 자식을 버리고 몸을 바쳐 나라에 보답하고자 특별히 우리 왕께 과일을 바쳐 여러 대왕의 두터운 은혜에 사례하려 한 것이옵니다.” 십왕이 그 말을 듣고 곧 명하여 유전의 아내 이씨를 조사하게 하였다. 귀사가 재빨리 데려다 삼라전 아래에서 유전 부부가 서로 만나게 하였다. 앞서 한 말을 하소연하고 십왕의 용서에 사례하였다. 염왕이 생사부를 검사하여 보니 부부에게 모두 신선에 오르는 수명이 있었다. 급히 귀사를 보내어 돌려보내게 하였다. 귀사가 아뢰었다. “이취련이 음간으로 돌아간 지 오래라 시신이 남아 있지 않으니 그 혼이 어디에 붙겠사옵니까?” 염왕이 말했다. “당 황제의 누이 이옥영이 지금 일찍 죽어야 할 차례이니 너는 그의 시신을 빌려 그를 환혼하게 하라.” 귀사가 명을 받들어 곧 유전 부부를 환혼하게 하고 함께 음사를 나갔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2회 당왕병성수대회(唐王秉誠修大會) · 관음현상화금선(觀音顯像化金蟬) 말하자면, 귀사가 유전 내외와 함께 음사를 나서니 음산한 바람이 빙빙 휘감아 도는 가운데 곧장 장안 대국에 이르러, 유전의 혼령은 금정관 안으로 밀어 넣고 취련의 영혼은 황궁 안의 내원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 마침 옥영 궁주가 꽃그늘 아래 푸른 이끼 위를 천천히 거닐고 있었는데, 귀사가 그 품에 와락 달려들어 땅바닥에 밀어 넘어뜨리고는 그 혼을 산 채로 사로잡았으며, 이취련의 영혼을 옥영의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귀사가 음사로 되돌아간 일은 여기서 잠시 뒤로 미루어 두겠다. 말하자면, 궁원의 시녀들이 옥영이 넘어져 죽은 것을 보고 급히 금란전으로 달려가 삼궁 황후에게 아뢰었다. “궁주마마께서 넘어져 죽으셨나이다!” 황후들이 크게 놀라 곧 태종에게 아뢰었다. 태종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며 탄식하였다. “이 일은 참으로 있을 만한 일이로다. 짐이 일찍이 십대 염군에게 ‘늙은이와 어린이는 모두 편안한가?’ 하고 물었더니, 그가 ‘모두 편안하오나 다만 황제의 누이의 수명이 짧을까 걱정되옵니다’ 하더니, 과연 그 말이 들어맞았구나.” 온 궁궐 사람들이 다투어 와서 슬퍼하였고, 꽃그늘 아래에 이르러 보니 그 궁주에게 거문 숨결이 조금 남아 있었다. 당왕이 말했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그를 놀라게 하지 말라.” 이에 앞으로 나아가 어수로 그 머리를 받쳐 들고 부르짖었다. “누이여, 정신을 차려라, 정신을 차려라!” 궁주가 갑자기 몸을 뒤집으며 외쳤다. “여보, 천천히 가시오, 나를 기다려 주시오!” 태종이 말했다. “누이여, 나와 여러 사람이 여기 있느니라.” 궁주가 머리를 들어 눈을 크게 뜨고 보며 말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감히 나를 붙잡는가?” 태종이 말했다. “너의 황형과 황수이다.” 궁주가 말했다. “내가 어디서 무슨 황형이며 황수를 얻었단 말인가! 내 친정은 이씨이고 내 아명은 이취련이라 부르며, 내 남편은 성이 유요 이름은 전이오. 두 내외는 모두 균주 사람이오. 내가 석 달 전에 금비녀를 뽑아 문 앞에서 스님께 공양을 올렸는데, 내 남편이 내가 함부로 안문을 나갔다 하여 부인의 도리를 따르지 않았다며 몇 마디 꾸짖었소. 그래서 내가 가슴이 막혀 흰 비단 띠로 대들보에 목을 매어 죽었고, 한 쌍의 자녀를 남겨 두었더니 밤낮으로 울었소. 이제 내 남편이 당왕의 흠차를 받아 음사에 가서 과일을 바치자 염왕이 가엾이 여겨 우리 부부를 돌려보내 주었소. 그는 앞서 가고 나는 늦게 와 따라잡지 못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소. 너희는 무례하오! 내 성명도 모르면서 어찌 감히 나를 붙잡는 것이오!” 당왕이 전각에 앉아 있을 때 어가를 모시는 관리가 아뢰었다. “만세, 지금 과일을 바친 유전이 환혼하여 조정 문 밖에서 전지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당왕이 크게 놀라 급히 전지를 내려 유전을 불러들이니, 그가 단지 아래에 엎드렸다. 태종이 물었다. “과일을 바친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유전이 아뢰었다. “신이 과일을 이고 곧장 귀문관에 이르러 삼라전으로 인도되어 십대 염군을 뵙고 과일을 올리며 우리 왕께서 간절히 사례하시는 뜻을 아뢰었사온데, 염군이 매우 기뻐하며 우리 왕께 거듭 절을 올리라 하시고는 ‘참으로 믿음 있고 덕 있는 태종 황제로다!’ 하셨사옵니다.” 당왕이 말했다. “그대는 음사에서 무엇을 보고 왔느냐?” 유전이 아뢰었다. “신은 멀리 가 보지 못하여 별다른 것을 보지 못하였사오며, 다만 염왕이 신에게 고향과 성명을 물었사옵니다. 신이 집을 버리고 자식을 떠나며 아내가 목을 매어 죽은 까닭에 기꺼이 과일을 바치러 왔다는 일을 말씀드렸더니, 그가 급히 귀사를 보내어 신의 아내를 데려와 삼라전 아래에서 만나게 하였사옵니다. 또 사생문부를 검사하여 신 내외에게 모두 신선에 오르는 수명이 있다 하시고 곧 귀사를 보내 돌려보내게 하셨사옵니다. 신이 앞서 가고 아내가 뒤따랐는데 다행히 환혼하였사오나 아내가 어디에 몸을 붙였는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당왕이 놀라 물었다. “그 염왕이 그대 아내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던가?” 유전이 아뢰었다. “염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사오며, 다만 귀사가 ‘이취련이 음간으로 돌아간 지 오래라 시신이 남아 있지 않사옵니다’ 하는 것을 들었사옵니다. 염왕이 말씀하시기를 ‘당 황제의 누이 이옥영이 지금 일찍 죽어야 할 차례이니, 취련으로 하여금 곧 옥영의 시신을 빌려 환혼하게 하라’ 하셨사옵니다. 신은 ‘당 황제의 누이’라는 이가 어느 지방 사람이며 집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여 아직 찾아가 보지도 못하였사옵니다.” 당왕이 아뢰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하여 여러 신하에게 말했다. “짐이 염군과 작별할 때 일찍이 궁중의 일을 물었더니, 그가 늙은이와 어린이가 모두 편안하나 다만 누이의 수명이 짧을까 걱정된다 하더니, 방금 누이 옥영이 꽃그늘 아래에서 넘어져 죽었기에 짐이 급히 부축하여 살펴보니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는 입으로 ‘여보, 천천히 가시오, 나를 좀 기다려 주시오!’ 하고 외치는 것이었느니라. 짐은 그가 넘어져 정신이 혼미하여 함부로 지껄이는 줄 알았도다. 다시 자세히 물으니 그 말이 유전의 말과 꼭 같더라.” 위징이 아뢰었다. “누이의 수명이 우연히 짧아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런 말을 하였으니, 이는 유전의 아내가 시신을 빌려 환혼한 일이옵니다. 이런 일도 있으니 청컨대 궁주를 밖으로 모시어 무슨 말을 하는지 보시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당왕이 말했다. “짐이 방금 태의원에 명하여 약을 올리게 하였으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이에 후궁들에게 명하여 궁 안으로 들어가 청하게 하였다. 그 궁주가 안에서 함부로 소리쳤다. “내가 무슨 약을 먹으란 말이오! 여기가 어찌 내 집이란 말이오! 내 집은 서늘한 기와집인데, 이 누런 병을 앓는 듯한 집이며 야릇하게 꾸민 문짝과는 전혀 다르오! 나를 내보내시오! 나를 내보내시오!” 떠들썩하게 소리치는 판에, 문득 네댓 명의 여관과 두세 명의 태감이 그를 부축하여 곧장 전각 위로 올라왔다. 당왕이 말했다. “그대는 자기 남편을 알아보겠는가?” 옥영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오, 우리 둘은 어려서부터 맺은 결발부처이며 그와 아들딸을 낳아 길렀는데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소?” 당왕이 내관에게 명하여 그를 부축해 내려가게 하였다. 그 궁주가 보전을 내려와 백옥 계단 앞에 이르러 유전을 보고는 한손으로 와락 붙잡으며 말했다. “여보, 당신은 어디로 가시면서 나를 좀 기다려 주지 않았소! 내가 넘어져 쓰러졌는데 저 도리 없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떠들어 대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유전은 그 말은 아내의 말이로되 그 사람은 아내의 얼굴이 아님을 보고 감히 알아보지 못하였다. 당왕이 말했다. “이야말로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은 사람들이 보아도, 산 사람을 잡아 죽은 이를 대신하게 하는 일은 만나기 어렵도다!” 과연 도 있는 군왕답게 곧 누이의 화장 도구와 의복과 머리 장식을 모두 유전에게 내려 마치 혼수처럼 하였다. 또 그에게 영구히 부역을 면제해 주는 어지를 내리고 누이를 데리고 돌아가게 하였다. 그 부부는 곧 계단 앞에서 은혜에 사례하고 기뻐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사람의 나고 죽음은 전생의 인연이라, 길고 짧음이 각기 정한 수명이 있도다. 유전은 과일을 바쳐 양세로 돌아왔고, 이취련은 시신을 빌려 환혼하였도다. 그 두 사람은 군왕에게 하직하고 곧장 균주성 안으로 가서 옛 집안과 자녀가 모두 무사함을 보고, 두 내외가 선한 과보를 드높인 일은 여기서 미루어 두겠다. 말하자면, 그 울지공이 황금과 은 한 창고를 가지고 하남 개봉부로 가서 상량을 찾아보니, 그는 본래 물을 팔아 살아가는 사람으로 아내 장씨와 함께 문 앞에서 검은 사발과 질그릇을 팔았으며, 돈을 벌면 노잣돈에 족한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는 스님께 공양하고 보시하여 금은 지전을 사서 창고에 기록하고 불살랐으므로 이런 선한 과보가 몸에 이르렀다. 양세간에서는 착한 일을 좋아하는 가난한 사내였으나 저승에서는 옥을 쌓고 금을 모은 장자였던 것이다. 울지공이 그 황금과 은을 문 앞에 가져다 놓자 상공과 상파는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질 지경이었으며, 게다가 본부 관리들까지 와서 초가집 밖에 수레와 말이 빽빽이 모이니, 늙은 내외는 어리석고 벙어리처럼 되어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예배할 뿐이었다. 울지공이 말했다. “노인장, 일어나시오. 내가 비록 흠차 관리이기는 하나 우리 왕의 황금과 은을 가지고 와서 그대에게 돌려주는 것이오.” 그가 벌벌 떨며 대답하였다. “소인은 황금과 은을 빌려준 적이 없사온데, 어찌 감히 출처도 분명하지 않은 재물을 받겠사옵니까?” 울지공이 말했다. “나도 그대가 가난한 사내인 줄은 알았소. 다만 그대가 스님께 공양하고 보시하여 금은 지전을 사서 음사에 기록하고 불살랐으니 음사에 그대가 쌓아 둔 돈과 지폐가 있소. 우리 태종 황제께서 사흘 동안 죽었다가 환혼하여 다시 살아나셨는데, 일찍이 그 음사에서 그대의 황금과 은 한 창고를 빌리셨으므로 이제 그 수대로 따져 돌려주는 것이오. 그대는 하나하나 받아 두시오, 그러면 내가 가서 전지를 아뢸 수 있소.” 상량 내외는 하늘을 향해 예배할 뿐 감히 받지 못하며 말했다. “소인이 만약 이 황금과 은을 받는다면 곧 죽음이 앞당겨질 것이옵니다. 비록 종이를 태워 창고에 기록하였다 하나 이는 어둡고 아득한 일이온데, 하물며 만세 황제께서 저승에서 황금과 은을 빌리셨다는 데 무슨 증거가 있겠사옵니까? 소인은 결코 받지 못하겠사옵니다.” 울지공이 말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물건을 빌린 데에는 최판관이 보증을 서 주었으니 증명할 수 있다 하셨소. 그대는 받으시오.” 상량이 말했다. “죽는다 하여도 감히 받지 못하겠사옵니다.” 울지공이 그가 애걸하며 굳이 사양하는 것을 보고 부득이 본을 갖추어 사람을 보내 계주하였다. 태종이 그 본을 보고 상량이 황금과 은을 받지 않음을 알았다. “이는 참으로 착하고 어진 장자로다!” 하고는 곧 전지를 내려 호경덕에게 명하여 그 황금과 은으로 그를 위하여 사원을 수리하고 생사를 세워 스님을 청하여 선한 일을 하게 하시니, 마치 그에게 갚는 것과 같았다. 전지가 이르자 경덕이 대궐을 바라보며 은혜에 사례하고 전지를 선포하니 뭇 사람이 모두 알았다. 이에 그 황금과 은으로 성안의 군민에게 지장이 없는 대지 한 구획을 사들였는데 둘레가 오십 묘나 되어 널찍하였으며, 그 위에 공사를 일으켜 사원을 세워 ‘칙건상국사’라 하였다. 왼쪽에는 상공과 상파의 생사가 있어 비석을 세우고 글자를 새겼으니 그 위에 ‘울지공이 감독하여 지었다’라 적혀 있었다. 지금의 대상국사가 바로 그것이다. 공사가 끝나자 돌아와 계주하였고 태종이 매우 기뻐하였다. 또다시 여러 신하를 모아 방을 붙여 스님을 모집하고 ‘수륙대회’를 열어 명부의 외로운 혼을 천도하게 하였다. 방이 천하에 두루 퍼지자 각지의 관리들이 도가 있는 고승을 추천하여 장안에 올라와 법회를 열게 하였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천하의 많은 스님이 모두 도착하였다. 당왕이 전지를 내려 태사승 부혁에게 고승을 가려 뽑아 불사를 열게 하였다. 부혁이 전지를 듣고 곧 상소를 올려 불교를 멈추게 하고 세상에 부처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 표문에 이르기를, “서역의 법은 군신과 부자의 도리를 없애고 삼도육도로 어리석은 무리를 속여 어지럽히며, 지난 죄를 따지고 장래의 복을 엿보며 입으로 범어를 외워 요행히 죄를 면하려 하옵니다. 또 나고 죽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본래 자연에 근본한 것이오며, 형벌과 은덕과 위엄과 복은 인군에게 매인 것이옵니다. 지금 세속의 무리들이 거짓으로 꾸며 모두 부처로 말미암는다 하옵니다. 오제와 삼왕 이래로 불법이 없었사오나 군주는 밝고 신하는 충성하여 나라의 복이 오래갔사옵니다. 한명제에 이르러서야 오랑캐의 신을 세웠사오나 서역의 승려들이 스스로 그 가르침을 전하였을 뿐이옵니다. 실로 오랑캐가 중국을 범한 것이오니 믿을 것이 못 되옵니다.” 태종이 그 말을 듣고 곧 이 표문을 여러 신하에게 던져 의논하게 하였다. 이때 재상 소우가 반열에서 나와 이마를 땅에 대고 아뢰었다. “불법은 여러 왕조로부터 일어나 선을 넓히고 악을 막으며 가만히 나라를 도왔으니 이치상 폐할 수 없사옵니다. 부처는 성인이시옵니다. 성인이 아닌 자에게는 법이 없사오니 청컨대 엄한 형벌을 내리소서.” 부혁이 논변하기를, 예의 근본은 어버이와 군주를 섬기는 데 있거늘 부처는 어버이를 등지고 집을 나가 필부의 몸으로 천자를 대적하고 대를 이은 몸으로 어버이를 거스른다 하였다. 소우는 빈 뽕나무에서 나지 않았으니 곧 아비 없는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요, 이른바 효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버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소우는 다만 두 손을 모아 말했다. “지옥을 설치한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위한 것이외다.” 태종이 태복경 장도원과 중서령 장사형을 불러 불사를 열어 복을 짓는 일의 응함이 어떠한지 물었다. 두 신하가 대답하였다. “부처는 청정하고 어질고 너그러움에 있으며, 과보는 바르고 부처는 공하옵니다. 주무제가 삼교를 차례로 나누었사온데, 대혜선사는 그윽하고 멀리 비추는 것을 기리셨고, 여러 대의 공양에도 드러나지 않는 바가 없었으며, 오조는 투태하시고 달마는 모습을 나타내셨사옵니다. 예로부터 삼교는 지극히 높아 헐뜯을 수 없고 폐할 수 없다 하였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밝게 재결하소서.” 태종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경들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 다시 무슨 말을 하는 자가 있으면 죄를 주리라.” 이에 위징과 소우와 장도원에게 명하여 모든 부처를 청하고 큰 덕행을 지닌 이를 가려 단주로 삼아 도량을 세우게 하였다. 뭇 사람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은혜에 사례하고 물러갔다. 이때로부터 법률이 나왔으니 스님을 헐뜯거나 부처를 비방하는 자는 그 팔을 끊는다 하였다. 이튿날 세 조신이 뭇 스님을 모아 그 산천단에서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조사하여 가려 뽑았는데, 그중에서 덕행이 있는 고승 한 명을 뽑았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가? 영통한 본명은 금선이라 하였으나 부처의 설법을 마음에 두지 않아 속세로 몸을 옮겨 괴로움을 겪으며 세속에 태어나 그물에 걸렸도다. 투태하여 땅에 떨어지자마자 흉함을 만났고 나오기도 전에 이미 악당을 만났도다. 아버지는 해주의 진 장원이요, 외조부는 당조의 총관으로 조정의 어른이었도다. 태어날 때부터 명에 강물에 빠지는 별을 범하여 물결 따라 넓게 흘러갔도다. 바다 섬 금산에 큰 인연이 있어 천안 화상이 그를 길렀도다. 나이 열여덟에 친어머니를 알아보고 서울로 올라가 외조부를 찾았도다. 총관이 산을 열어 대군을 일으켜 홍주에서 도적을 토벌하였도다. 장원 광예는 하늘의 그물을 벗어나 부자가 서로 만나니 가히 축하할 만하도다. 다시 당금을 뵙고 인군의 은혜를 받아 능연각에 어진 이름이 울렸도다. 은혜로운 벼슬을 사양하고 스님이 되어 홍복의 사문으로서 도를 찾으려 하였도다. 어릴 적 이름은 강물에 떠돌던 옛 부처의 아이요, 법명은 진현장이라 불렀도다. 그날 뭇 사람 앞에서 현장 법사를 천거하였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스님이 되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재를 지키고 계를 받들었다. 외조부는 조정의 총관을 지낸 은개산이었다. 아버지 진광예는 장원에 급제하여 문연전 대학사에 제수되었다. 그는 한마음으로 영화를 탐하지 않고 다만 닦고 지니는 적멸의 도를 좋아하였다. 그 근원을 조사해 보니 좋고 덕행도 높아,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전적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부처의 칭호와 신선의 음률에도 익숙하였다. 그때 세 사람이 그를 어전으로 인도하니 그는 먼지를 날리며 춤추듯 절하였다. 절을 마치고 아뢰었다. “신 소우 등은 성지를 받들어 고승 한 명 진현장을 가려 뽑았사옵니다.” 태종이 그 이름을 듣고 오래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학사 진광예의 아들 현장이냐?” 강물에 떠돌던 아이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신이 바로 그 사람이옵니다.” 태종이 기뻐하며 말했다. “과연 천거한 것이 틀리지 않았도다. 참으로 덕행이 있고 선심이 있는 화상이로다. 짐이 그대에게 좌승강과 우승강과 천하대천도승강의 직을 내리노라.” 현장이 머리를 조아려 은혜에 사례하고 대천의 관작을 받았다. 또 오색으로 금을 짠 가사 한 벌과 비로모 한 개를 내렸다. 그리고 그에게 명하여 마음을 다해 밝은 스님을 예배하고 사리 반수를 차례대로 정하게 하고, 전지를 문서로 작성하여 화생사로 나아가 길한 날 좋은 시각을 가려 경법을 펴게 하였다. 현장이 다시 절하고 전지를 받들고 나와 화생사에 이르러 많은 스님을 모으고 선상을 만들며 공덕을 꾸미고 음악을 정리하였다. 크고 작은 밝은 스님을 모두 천이백 명 가려 뽑아 상중하 세 당에 나누어 배치하였다. 모든 부처 앞의 물건이 다 갖추어지고 낱낱이 차례가 있었다. 그해 구월 초삼일 황도의 좋은 때를 가려 사십구 일 동안의 ‘수륙대회’를 열게 되었다. 이에 곧 표문을 갖추어 아뢰니, 태종과 문무와 국척과 황친이 모두 그 기일에 맞추어 법회에 나아가 향을 집고 설법을 들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용이 모인 정관 십삼년에 왕이 대중을 모아 경을 논하게 하였도다. 도량에서 무량한 법을 펴니 구름과 안개와 빛이 큰 원력의 감실에 올랐도다. 어명으로 은혜를 내려 높은 절을 닦으니 금선자가 껍질을 벗어 서쪽을 적시며 화하였도다. 선한 과보를 널리 베풀어 가라앉은 이를 건지고, 가르침을 받들어 앞뒤로 삼장을 널리 펴게 하였도다. 정관 십삼년, 세차는 기사이며 구월 갑술, 초삼일 계묘의 좋은 시각이었다. 진현장 대천 법사가 천이백 명의 고승을 모아 모두 장안성 화생사에서 여러 품의 묘한 경을 폈다. 그 황제는 조회를 마치고 문무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봉여와 용거를 타고 금란 보전을 떠나 곧장 절로 가서 향을 집었다. 그 어가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 아는가?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하늘 가득한 상서로운 기운이요, 만 갈래 길한 빛이로다. 어진 바람은 가볍게 흔들리고 덕화의 해는 유난히 곱도다. 천 명의 관리가 패옥을 차고 앞뒤로 나뉘며, 오위 군사가 깃발을 늘어놓아 양옆에 섰도다. 금 참외 창을 든 자와 도끼와 큰 창을 받든 자가 짝을 지었고, 붉은 사초와 어로의 향이 자욱하고 당당하도다. 용이 날고 봉이 춤추며 매가 천거되고 독수리가 날개 치도다. 성스러운 천자는 바르고 충의로운 대신은 어질도다. 큰 복은 천 년을 지나 순과 우를 넘고 태평은 만대에 요와 탕에 견주리로다. 또 굽은 자루 양산과 용이 감긴 도포가 빛을 주고받고, 옥 연환과 채색 봉황 부채에 상서로운 안개가 나부끼도다. 주관과 옥대와 자줏빛 인끈과 금 도장이로다. 어가를 호위하는 군사 천 대오와 수레를 부축하는 장수 두 줄이로다. 이 황제는 목욕하고 정성스레 부처를 존경하며 선한 과보에 귀의하여 기쁘게 향을 집었도다. 당왕의 대가가 일찍 절 앞에 이르렀다. 음악과 악기를 그치게 하고 수레에서 내려 여러 신하를 거느리고 부처께 절하고 향을 집었다. 세 바퀴를 돈 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과연 좋은 도량이었다. 보니 이러하였다. 당기와 깃발이 나부끼고 보개가 빛을 날리도다. 당기와 깃발이 나부끼니 공중에 채색 노을이 흔들리고, 보개가 빛을 날리니 해를 비추어 붉은 번개가 꿰뚫도다. 세존의 금빛 상은 늠름하고 나한의 옥 얼굴은 위엄이 늠렬하도다. 병에는 신선의 꽃이 꽂히고 향로에는 단향과 강향을 사르도다. 병에 신선의 꽃이 꽂히니 비단나무가 빛나 보찰에 가득하고, 향로에 단향과 강향을 사르니 향 연기가 자욱하여 맑은 하늘까지 사무치도다. 철마다 새 과일이 붉은 쟁반에 쌓이고 별난 엿과 유과가 채색 상에 수북하도다. 고승이 늘어서서 참경을 외우며 원하건대 외로운 혼을 건져 고난을 벗어나게 하려 하도다. 태종과 문무가 모두 각각 향을 집고 부처의 금신께 절하고 나한을 참배하였다. 또 저 대천도강 진현장 법사가 뭇 스님을 이끌고 당왕을 둘러싸고 절하는 것을 보았다. 예가 끝나자 반을 나누어 각기 선정의 자리에 편안히 앉았다. 법사가 외로운 혼을 건지는 방문을 올려 태종에게 보였다. 그 방문에 이르기를, “지극한 덕은 아득하고 선종은 적멸하도다. 청정하고 영통하여 삼계를 두루 흐르도다. 천변만화하여 음양을 통괄하도다. 체와 용이 진상하여 다함이 없도다. 저 외로운 혼을 보니 깊이 가엾이 여길 만하도다. 이에 태종의 거룩한 명을 받들어 여러 스님을 모아 뽑아 선을 참구하고 법을 강하게 하였도다. 방편의 문을 크게 열고 자비의 배와 노를 널리 저어 고해의 뭇 중생을 두루 건지며, 오래 앓는 병과 육취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도다. 참된 길로 인도하여 널리 혼돈을 누리게 하도다. 움직이고 그침이 없이 순수한 바탕으로 섞여 이루어지도다. 이 좋은 인연을 힘입어 청정한 도읍과 붉은 궐의 상을 받들게 하시고, 우리의 훌륭한 법회를 타고 지옥의 우리를 벗어나 일찍 극락에 올라 마음대로 소요하며 서방을 오가며 자재하게 하소서.” 시에 이르기를, 한 향로의 영원한 수명의 향이요, 몇 권의 초생의 기록이로다. 끝없는 묘한 법을 펴고 가없는 하늘 은혜를 입었도다. 원한과 업장이 다 소멸하고 외로운 혼이 모두 옥을 나왔도다. 원하건대 우리 나라를 지켜 맑고 태평한 만년의 복을 누리게 하소서. 태종이 보고 나서 마음이 흐뭇하였다. 뭇 스님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붉은 정성을 세워 불사에 조금도 게을리하지 말라. 훗날 공이 이루어져 다 갖추어지면 각기 복이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니, 짐이 마땅히 후히 상을 내려 결코 헛수고하게 하지 않으리라.” 그 천이백 명의 스님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였다. 그날 세 번의 재가 끝나자 당왕이 돌아갔다. 칠 일 뒤의 정기 법회를 기다려 다시 향을 청하기로 하였다. 때마침 날빛이 저물어 가니 여러 관리가 모두 물러갔다. 그 저녁이 얼마나 좋았는지 아는가? 그대는 저것을 보라. 만 리 긴 하늘에 어스름한 빛이 지고 돌아가는 갈까마귀 몇 점이 내려와 쉬도다. 온 성에 등불이 켜지고 인적이 고요하니 바로 선승이 선정에 드는 때로다. 하룻밤 저녁 풍경은 여기서 기록하였다. 이튿날 아침 법사가 다시 법좌에 올라 뭇 사람을 모아 경을 외운 일은 미루어 두겠다. 말하자면, 남해 보타산 관세음보살이 여래의 뜻을 받들고 장안성에서 취경할 선한 사람을 찾았으나 날이 오래도록 덕행 있는 이를 만나지 못하였다. 문득 태종이 선한 과보를 드높이며 고승을 가려 대회를 열었다 함을 듣고, 또 단주가 바로 강물에 떠돌던 화상으로 극락에서 내려온 부처의 아들이며 자기손으로 길러 투태시킨 장로임을 보고, 보살은 몹시 기뻐하여 부처가 내린 보배를 받들고 장대거리로 나아가 목타와 함께 팔았다. 그가 무슨 보배인지 아는가? 비단으로 짠 기이한 가사 한 벌과 아홉 고리를 두른 석장이 있었고, 또 금긴금 세 고리도 있었으나 남몰래 감추어 뒷날을 기다렸다. 가사와 석장만 내다 팔았다. 장안성 안에는 뽑히지 못한 어리석은 스님들이 더러 있어 촌스러운 돈푼이나 가졌는데, 보살이 옴과 문드러진 모습으로 헤진 옷을 입고 맨발에 머리를 깎은 채 가사가 곱게 빛을 내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저 문드러진 화상, 네 가사는 얼마에 팔겠느냐?” 보살이 말했다. “가사는 값이 오천 냥이요, 석장은 값이 이천 냥이니라.” 그 어리석은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이 두 문드러진 화상은 미친놈이로다! 이 거친 물건으로 칠천 냥의 은을 받겠다니, 몸에 걸치면 장생불로하고 성불하여 조사가 된다 한들 이런 값은 되지 못하리라! 가져가라! 팔지 못하겠다!” 보살은 더욱 다투지 않고 목타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걸어 동화문 앞에 이르니 마침 재상 소우가 조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 뭇 앞잡이들이 길을 열게 하며 소리쳤다. 보살은 피하지 않고 거리에서 가사를 들고 곧장 재상을 맞이하였다. 재상이 말을 멈추고 살펴보니 가사가 곱게 빛을 내는지라, 부하에게 그 가사를 파는 이의 값을 묻게 하였다. 보살이 말했다. “가사는 오천 냥을 달라 하고 석장은 이천 냥을 달라 하느니라.” 소우가 말하였다. “무슨 좋은 점이 있기에 이렇게 높은 값을 부르시오?” 보살이 말했다. “가사에는 좋은 점도 있고 좋지 않은 점도 있으며, 돈을 받을 곳도 있고 돈을 받지 않을 곳도 있느니라.” 소우가 말하였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소?” 보살이 말했다. “나의 가사를 걸치면 침륜에 들지 않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며 독한 재앙을 만나지 않고 호랑이와 이리의 화를 만나지 않으니 이것이 좋은 점이니라. 그러나 음란을 탐하고 재앙을 즐기는 어리석은 스님, 재를 지키지 않고 계를 지니지 않는 화상, 경을 헐뜯고 부처를 비방하는 범부는 나의 가사를 보기 어려우니 이것이 좋지 않은 점이니라.” 또 물었다. “무엇이 돈을 받고 무엇이 돈을 받지 않는 것이오?” 보살이 말했다. “불법을 따르지 않고 삼보를 공경하지 않으며 억지로 사려는 자에게는 반드시 칠천 냥을 받으리니 이것이 돈을 받는 것이니라. 삼보를 공경하고 선한 일을 보고 함께 기뻐하며 나의 부처에 귀의하여 능히 감당할 자에게는 내가 가사와 석장을 기꺼이 보내어 선한 인연을 맺으리니 이것이 돈을 받지 않는 것이니라.” 소우가 그 말을 듣고 봄빛이 갑절로 더하여 그가 좋은 사람임을 알았다. 곧 말에서 내려 보살과 예를 갖추고 입으로 불렀다. “대법장로시여, 저 소우의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 대당 황제께서는 매우 선을 좋아하시어 조정의 문무가 모두 받들어 행하지 않는 이가 없사옵니다. 지금 ‘수륙대회’를 열고 있사온데, 이 가사가 바로 대천 진현장 법사께 걸치게 할 만하옵니다. 나와 함께 조정에 들어가 폐하를 뵙고 오시지요.” 보살이 기꺼이 따라 걸음을 돌려 곧장 동화문 안으로 들어갔다. 황문관이 이를 아뢰니 전지를 받들어 보전으로 인도되었다. 소우가 두 문드러진 스님을 인도하여 계단 아래에 섰다. 당왕이 물었다. “소우는 무슨 일로 와서 아뢰는가?” 소우가 계단 앞에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동화문 앞을 나서다 우연히 두 스님을 만났사온데 이는 가사와 석장을 파는 이들이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법사 현장이 이 옷을 걸칠 만하옵기에 스님들을 인도하여 뵙게 하였사옵니다.” 태종이 크게 기뻐하며 곧 그 가사의 값이 얼마인지 물었다. 보살과 목타는 계단 아래에 모시고 섰으나 다시 예를 갖추지 않고 가사의 값을 물음에 대답하였다. “가사는 오천 냥이요, 석장은 이천 냥이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그 가사에 무슨 좋은 점이 있기에 이렇게 많은 값이 되는가?” 보살이 말했다. “이 가사는 용이 한 오라기를 걸치면 큰 붕새에게 삼켜지는 재앙을 면하고, 학이 한 가닥을 걸치면 범속을 뛰어넘어 성인이 되는 묘함을 얻느니라. 앉는 곳마다 만 신이 조례하고, 몸을 움직일 적마다 일곱 부처가 몸에 따르느니라. 이 가사는 얼음 누에가 실을 뽑아 만들고 교묘한 장인이 뒤흔들어 실을 이룬 것이니라. 선녀가 짜고 신녀가 베틀로 이루었으며, 네모 다발을 모아 꽃을 수놓아 꿰매고 조각조각 서로 도와 비단을 쌓아 짰느니라. 영롱하게 흩어진 조각으로 장식을 겨루어 꽃을 이루고 빛이 밝고 광채가 떠올라 보배로운 고움을 뿜느니라. 걸치면 온몸에 붉은 안개가 감돌고 벗으면 한 조각 채색 구름이 날아가느니라. 삼천의 문 밖으로 원광이 투과하고 오악의 산 앞에 보배로운 기운이 일어나느니라. 겹겹이 서번련을 박아 넣고 환하게 구슬을 드리워 별자리 모양을 이루었느니라. 네 모퉁이에는 야명주가 있고 꼭대기에는 한 알의 조모록이 있느니라. 비록 온몸을 온전히 비추지는 못하나 생광하는 여덟 보배가 모여 있느니라. 이 가사는 한가할 때는 접어 두고 성인을 만나야 비로소 걸치느니라. 한가할 때 접어 두면 천 겹으로 싸도 무지개가 투과하고, 성인을 만나 걸치면 모든 하늘의 신과 귀신이 놀라 두려워하느니라. 위에는 여의주와 마니주와 벽진주와 정풍주가 있고, 또 붉은 마노와 자줏빛 산호와 야명주와 사리자가 있느니라. 달을 훔쳐 흰빛을 스며들였고 해와 다투어 붉음을 뽐내느니라. 가닥가닥 신선의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고 송이송이 상서로운 빛이 성인을 받드느니라. 신선의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여 천관을 꿰뚫어 비추고 상서로운 빛이 성인을 받들어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느니라. 산천을 비추니 호랑이와 표범이 놀라고 해도를 비추니 물고기와 용이 움직이느니라. 가장자리를 따라 두 줄의 금을 새긴 자물쇠가 있고, 깃을 두드리면 연환이 백옥으로 이어져 있느니라. 시에 이르기를, 삼보가 높고 높아 도를 가히 존중할 만하고 사생육도가 모두 논평되었도다. 마음을 밝혀 인천의 법을 기르는 것을 알고 성품을 보아 지혜의 등불을 능히 전하였도다. 몸을 보호하는 장엄한 금세계요 몸과 마음이 청정하기가 옥호의 얼음 같도다. 부처가 가사를 제정한 뒤로 만 겁에 누가 감히 스님을 끊으랴.” 당왕이 그 보전 위에서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또 물었다. “그 화상, 구환석장에는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보살이 말했다. “나의 이 석장은 바로 저것이니라. 구리로 감싸고 쇠로 만든 아홉 연환에 아홉 마디 신선의 등나무가 영원히 얼굴을 머물게 하도다. 손에 들면 푸른 뼈 여윈 꼴을 보기 싫어하고, 산을 내려갈 때 가볍게 흰 구름을 띠고 돌아오도다. 마하오조는 하늘의 궐을 노닐었고 나복은 어머니를 찾아 지옥의 관문을 부수었도다. 붉은 속세의 티끌 한 점도 물들지 않아 신선한 스님과 함께 옥산에 오르기를 기뻐하도다.” 당왕이 그 말을 듣고 가사를 펼쳐 자세히 보게 하니 과연 좋은 물건이었다. 말했다. “대법장로여, 실로 그대를 속이지 않겠노라. 짐이 이제 선한 가르침을 크게 열어 복의 밭을 널리 심고 있으며, 저 화생사에서 많은 스님을 모아 경법을 펴고 있노라. 그중 큰 덕행을 지닌 이가 있으니 법명은 현장이라 한다. 짐이 그대의 이 두 보배를 사서 그에게 주어 쓰게 하려 하니, 그대는 정말 값을 얼마를 받으려 하는가?” 보살이 그 말을 듣고 목타와 함께 두 손을 모아 귀의하고 부처의 명호를 부르고는 몸을 굽혀 아뢰었다. “덕행이 있다 하시니 빈승이 기꺼이 그에게 보내려 하오며 결코 돈을 받지 않겠사옵니다.” 말을 마치고 몸을 빼어 가려 하였다. 당왕이 급히 소우를 시켜 붙잡게 하고는 몸을 굽혀 보전 위에 서서 물었다. “그대는 본래 가사가 오천 냥, 석장이 이천 냥이라 하더니, 짐이 사려 하는 것을 보고는 돈을 받지 않겠다 하니, 설마 짐이 군주의 자리를 믿고 억지로 그대의 물건을 빼앗으려 한다고 여기는 것이냐? — 결코 그런 이치는 없느니라. 짐이 그대의 본래 값대로 갚아 주리니, 사양하지 말라.” 보살이 손을 들어 말했다. “빈승이 앞서 세운 서원이 있어, 삼보를 공경하고 선한 일을 보고 함께 기뻐하며 나의 부처에 귀의하는 이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기꺼이 보내겠다 하였사옵니다. 이제 폐하께서 밝은 덕으로 선을 그치게 하시고 우리 불문을 공경하시며, 하물며 고승이 덕행을 지녀 대법을 널리 펴시니 마땅히 받들어 올려야 하오며 결코 돈을 받지 않겠사옵니다. 빈승은 원하건대 이 물건을 남겨 두고 하직하고 돌아가겠사옵니다.” 당왕이 그가 이처럼 간절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이에 광록시에 명하여 소찬 잔치를 크게 벌여 사례하게 하였다. 보살이 또 굳이 사양하여 받지 않고 상쾌하게 떠나갔다. 여전히 도토지묘 안에 숨어 지낸 일은 미루어 두겠다. 말하자면, 태종이 한낮의 조회를 열고 위징에게 전지를 받들고 현장을 조정으로 불러들이게 하였다. 그 법사는 마침 뭇 사람을 모아 단에 올라 경을 외우고 게송을 읽고 있었는데, 전지가 있음을 듣고 곧 단에서 내려 옷을 정돈하고 위징과 함께 어가를 뵈러 갔다. 태종이 말했다. “선한 일을 증득하는 데 법사가 수고하였으나 사례할 물건이 없었노라. 아침에 소우가 두 스님을 만났는데, 비단으로 짠 기이한 보배 가사 한 벌과 아홉 고리의 석장 하나를 보내려 하였다. 이제 특별히 법사를 불러 가서 받아 쓰게 하려 하노라.” 현장이 머리를 조아려 은혜에 사례하였다. 태종이 말했다. “법사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걸쳐 입고 짐에게 보여 다오.” 장로가 곧 가사를 펼쳐 몸에 걸치고 석장을 손에 쥐고 계단 앞에 모시고 섰다. 군신이 낱낱이 기뻐하였다. 참으로 여래의 부처의 아들이었다. 그대는 그를 보라. 늠름한 위엄과 아담한 얼굴에 부처의 옷이 몸에 꼭 맞아 마치 재단하여 지은 듯하도다. 빛이 곱게 빛나 건곤에 가득하고 맺힌 채색이 어지러이 우주에 엉기었도다. 환한 명주가 위아래로 늘어서고 겹겹 금실이 앞뒤로 꿰였도다. 도라가 네 면의 비단 가장자리를 이루고 만 가지 기이한 것이 비단 수놓은 것을 깔았도다. 여덟 보배로 장식한 꽃이 단추실을 묶고 금 고리가 깃을 잡아 벨벳 단추를 걸었도다. 부처의 하늘과 크고 작은 것이 높낮이로 늘어서고 별자리의 높고 낮음이 좌우로 나뉘었도다. 현장 법사는 큰 인연이 있어 눈앞의 이 물건을 감당할 만하도다. 흡사 극락의 살아 있는 아라한 같고 서방의 참으로 깨달은 수려함을 능가하도다. 석장이 딩동 울리며 아홉 고리를 다투고, 비로모가 비추어 풍성하기 그지없도다. 참으로 부처의 아들이라 헛되이 전하여진 것이 아니요, 보리보다 나아서 거짓도 틀림도 없도다. 때마침 문무가 계단 앞에서 갈채를 보내니 태종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곧 법사에게 가사를 걸치고 보배 지팡이를 쥐게 하고, 또 두 대오의 의장을 내려 여러 신하에게 조정 문 밖까지 배웅하게 하며, 그에게 큰길에서 행차를 펴고 절로 들어가게 하니 마치 장원에 급제한 사람이 관직을 뽐내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가는 데에 현장이 다시 절하여 은혜에 사례하고 그 큰길에서 우렁차고 요란하게 흔들흔들 걸어갔다. 그대는 저 장안성 안의 행상과 좌상, 공자와 왕손, 묵객과 문인, 큰 남자와 작은 여자가 다투어 구경하며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음을 보라. 모두 말했다. “좋은 법사로다! 참으로 살아 있는 나한이 내려오시고 살아 있는 보살이 속세에 임하신 것이로다.” 현장이 곧장 절에 이르니 스님들이 선상에서 내려와 맞이하였다. 그가 가사를 걸치고 석장을 쥔 것을 한 번 보자 모두 지장왕이 오셨다 하며 각기 귀의하여 좌우에 모셔 섰다. 현장이 전각에 올라 향을 사르고 부처께 예배하고 또 뭇 사람에게 은혜를 감격하여 아뢰기를 마치니 각기 선좌로 돌아갔다. 또 어느새 붉은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해가 지니 안개가 풀과 나무를 감싸고 도성에 종과 북이 비로소 울리도다. 뎅뎅 세 번 울리자 사람의 다님이 끊기고 앞뒤 거리가 고요하도다. 높은 절에는 등불이 휘황하고 외로운 마을은 쓸쓸하여 소리 없도다. 선승이 선정에 들어 남은 경을 다스리니 바로 마를 단련하고 성품을 기르기 알맞도다. 세월이 손가락을 튕기듯 지나 마침내 칠 일째의 정기 법회가 되었다. 현장이 또 표문을 갖추어 당왕에게 향을 청하였다. 이때 선한 명성이 천하에 두루 가득하였다. 태종이 곧 어가를 갖추어 문무 여러 신하와 후비와 국척을 거느리고 일찍 절에 나아갔다. 그 성안의 사람들은 크고 작음과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절에 나아가 설법을 들었다. 그때 보살이 목타에게 말했다. “오늘이 수륙의 정기 법회이니, 한 번의 칠일로 칠칠 사십구 일을 이어 가는 것이 가하리라. 나와 그대는 여러 사람들 틈에 섞여 들자. 첫째는 저 법회가 어떠한지 보고, 둘째는 금선자가 과연 복이 있어 나의 보배를 걸칠 수 있는지 보고, 셋째는 그가 강하는 것이 어느 문의 경법인지도 들어 보자.” 두 사람은 이에 절로 들어갔다. 참으로 인연이 있어 옛 아는 이를 만나게 되었고, 반야는 다시 본래의 도량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절 안에 들어가 살펴보니 참으로 천조 대국의 모습이요 과연 사바보다 나았으며, 기원과 사위국을 능가하고 높은 절과 초제에도 못지않았다. 그 한 줄기의 신선 음악이 맑게 울리고 부처의 명호가 왁자하게 들렸다. 이 보살이 곧장 다보대 곁에 이르니 과연 지혜 밝은 금선자의 모습이었다. 시에 이르기를, 만상이 맑고 밝아 티끌 한 점 없고 대법회에 현장이 높은 대에 앉았도다. 초생의 외로운 혼이 어둠 속에서 이르고 법 듣는 높은 무리가 저자에서 올라왔도다. 물건을 베풀어 기에 응하니 마음의 길이 멀고 나고 죽음이 뜻대로 되어 감춘 문이 열렸도다. 마주 보며 무량한 법을 강하니 늙은이와 어린이가 저마다 기쁜 마음을 놓았도다. 또 시에 이르기를, 인하여 법계의 강당을 노닐다가 서로 아는 이를 만나니 속됨이 같지 않았도다. 눈앞의 천만 가지 일을 다 말하고 또 티끌 같은 겁의 허다한 공을 논하였도다. 법의 구름이 너울너울 뭇 산을 펴고 가르침의 그물이 펼쳐져 온 하늘에 가득하도다. 인생을 점검하여 착한 생각으로 돌아가게 하니, 어지러이 하늘에서 꽃비가 붉게 내리도다. 그 법사가 대 위에서 한동안 《수생도망경》을 외우고 《안방천보전》을 이야기하고 또 《권수공권》을 펴 읽었다. 이 보살이 앞으로 나아가 보배 대를 치며 엄한 소리로 높이 외쳤다. “저 화상, 그대는 소승의 교법만 말할 줄 알고 대승도 말할 줄 아는가?” 현장이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여 몸을 뒤집어 대에서 뛰어내려 보살을 향하여 손을 모으고 말했다. “노사부님, 제자가 우러러 뵙지 못하여 죄가 많사옵니다. 지금까지 뭇 스님을 이끌고 있는 이들이 모두 소승의 교법을 강하였사오니, 대승의 교법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보살이 말했다. “그대의 이 소승 교법은 죽은 이를 건져 초생하게 하지 못하고 다만 세속과 어울려 빛을 감출 뿐이니라. 나에게는 대승불법 삼장이 있어 능히 죽은 이를 건져 하늘에 오르게 하고 능히 어려운 이를 건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능히 무량한 수명의 몸을 닦고 능히 오지도 가지도 않음을 지을 수 있느니라.” 바로 강하고 있는 판에 향을 맡은 순당관이 급히 당왕에게 아뢰었다. “법사가 묘한 법을 강하고 있는데 두 문드러진 떠돌이 스님이 끌어내려 함부로 헛소리를 하였사옵니다.” 왕이 명하여 잡아 오게 하니 많은 사람이 두 스님을 밀어 몰아 뒤의 법당으로 들어왔다. 태종을 뵙고도 그 스님은 손도 들지 않고 절도 않은 채 얼굴을 들어 말했다. “폐하께서 저에게 무슨 일을 물으시는 것이옵니까?” 당왕이 그를 알아보고 말했다. “그대는 며칠 전 가사를 보낸 화상이 아니냐?” 보살이 말했다. “바로 그렇사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그대가 이곳에 와서 설법을 들으려 하였으면 재나 먹고 말 것이지, 어찌 나의 법사와 함부로 이야기하여 경당을 어지럽히고 불사를 그르치는가?” 보살이 말했다. “그대의 법사가 강한 것은 소승 교법이라 죽은 이를 건져 하늘에 오르게 하지 못하느니라. 나에게는 대승불법 삼장이 있어 능히 죽은 이를 건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수명의 몸을 무너지지 않게 할 수 있느니라.” 태종이 얼굴을 바로 하고 기뻐 물었다. “그대의 대승불법은 어디에 있는가?” 보살이 말했다. “큰 서쪽 하늘 천축국 대뢰음사 우리 부처 여래의 처소에 있으니, 능히 백 가지 원한의 매듭을 풀고 능히 뜻밖의 재앙을 소멸하느니라.” 태종이 말했다. “그대는 기억할 수 있는가?” 보살이 말했다. “나는 기억하느니라.” 태종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법사를 시켜 인도하여 올라가게 하고 청컨대 높은 대에 올라 강하게 하라.” 그 보살이 목타를 데리고 높은 대로 날아올라 마침내 상서로운 구름을 밟고 곧장 구천에 이르러 고통을 구제하는 본래의 몸을 나타내니, 정병과 버들가지를 받들었도다. 왼쪽에는 목타 혜안이 있어 몽둥이를 잡고 정신을 떨치도다. 당왕을 기쁘게 하여 하늘을 향해 예배하게 하고, 뭇 문무는 땅에 꿇어 향을 사르도다. 온 절 안의 스님과 비구니와 도사와 속인, 선비와 장인과 상인 가운데 예배하고 빌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었도다. “좋은 보살이시로다! 좋은 보살이시로다!” 이를 증명하는 곡조가 있으니, 그 모습을 보니 이러하였다. 상서로운 안개가 어지러이 흩어지고 길한 빛이 법신을 감싸도다. 구천의 빛나는 은하 속에 여진인이 나타나셨도다. 그 보살은 머리에 금잎 단추에 비취꽃을 깔고 금빛을 내며 예리한 기운을 뿜는 구슬 영락을 이고, 몸에는 엷은 빛깔에 옅게 단장하고 금룡을 감고 채색 봉황이 나는 맺은 소박한 푸른 도포를 입었으며, 가슴에는 달을 향해 밝고 맑은 바람에 춤추며 여러 보배 구슬에 비취옥을 모은 향기로운 패옥을 걸었도다. 허리에는 얼음 누에의 실로 금 테두리를 짜고 채색 구름에 올라 요해를 재촉하는 비단 융치마을 매었도다. 앞에는 또 동쪽 바다를 날고 온 세상을 노니는 은혜를 감사하고 효를 행하는 누런 털 붉은 부리 흰 앵무새를 거느렸도다. 손에는 은혜를 베풀어 세상을 구제하는 보배 병을 받들었고, 병 속에는 푸른 하늘에 뿌리고 큰 악을 흩으며 남은 안개를 쓸어 버리는 버들가지를 꽂았도다. 옥 고리가 수놓은 단추를 꿰고 금 연꽃이 발 아래 깊도다. 삼천에 출입을 허락받았으니, 이라야 바로 고통을 구제하고 어려움을 구제하는 관세음이로다. 당태종을 기쁘게 하여 강산을 잊게 하고, 문무관을 사랑하게 하여 조회의 예를 잃게 하였으며, 많은 사람이 모두 ‘나무관세음보살’을 염송하였다. 태종이 곧 전지를 내려 교묘한 화가에게 보살의 진짜 모습을 그리게 하였다. 전지가 내리자 신과 성인을 그리는 데 안목이 밝은 오도자를 가려 뽑았으니, 이 사람이 바로 훗날 능연각에 공신을 그린 이였다. — 그때 묘한 붓을 펼쳐 진짜 모습을 그려내었다. 그 보살의 상서로운 구름이 점점 멀어져 순식간에 금빛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저 반공중에서 데구루루 한 장의 쪽지가 떨어졌는데, 그 위에 몇 구절의 송자가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송자에 이르기를, “예로 대당 군주께 올리노니 서방에 묘한 글이 있도다. 노정은 십만 팔천 리요, 대승을 받들어 나아가 은근히 청하도다. 이 경을 상국으로 가져오면 능히 귀신을 건져 무리에서 빼내리라. 만약 가기를 원하는 이가 있으면 바른 과보와 금신을 구하리라.” 태종이 송자를 보고 곧 뭇 스님에게 명하였다. “잠시 이 법회를 걷어 두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대승경을 가져오게 한 뒤에 다시 정성을 세워 선한 과보를 거듭 닦으리라.” 뭇 관리가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때 절 안에서 물었다. “누가 짐의 전지를 받들어 서쪽 하늘에 가 부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려 하는가?” 묻기가 끝나기 전에 곁에서 법사가 뛰어나와 황제 앞에 예를 갖추고 말했다. “빈승은 재주가 없사오나 원하건대 개와 말의 수고를 본받아 폐하를 위하여 진경을 구해 오고 우리 왕의 강산이 영원히 견고하기를 빌고자 하옵니다.” 당왕이 크게 기뻐하여 앞으로 나아가 어수로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법사가 과연 이 충성과 어짊을 다할 수 있다면 노정이 멀고 산천을 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니, 짐이 기꺼이 그대와 형제를 맺으리라.” 현장이 머리를 조아려 은혜에 사례하였다. 당왕이 과연 어질고 덕이 있어 곧 그 절의 부처 앞에 가서 현장과 네 번 절을 하고 입으로 ‘어진 아우 성승’이라 불렀다. 현장이 감사함을 다하지 못하여 말했다. “폐하, 빈승이 무슨 덕이며 무슨 재주가 있기에 감히 하늘 은혜를 이처럼 입겠사옵니까? 이번에 한번 떠나면 반드시 몸을 버리고 힘을 다하여 곧장 서쪽 하늘에 이르겠사옵니다. 만약 서쪽 하늘에 이르지 못하고 진경을 얻지 못한다면 죽는다 하여도 감히 나라로 돌아오지 않아 영원히 침륜지옥에 떨어지겠사옵니다.” 이에 곧 부처 앞에서 향을 집어 맹세하였다. 당왕이 매우 기뻐하여 곧 어가를 돌려보내라 명하고 좋은 길일을 가려 문서를 내어 길을 떠나게 하였으며, 이에 어가가 돌아가고 각기 흩어졌다. 현장도 홍복사로 돌아갔다. 본사의 스님과 몇몇 제자가 취경한다는 말을 듣고 다투어 와서 만나 보았다. 이에 물었다. “서쪽 하늘에 가겠다고 서원을 세웠다니 실로 그러하냐?” 현장이 말했다. “실로 그러하다.” 그의 제자가 말했다. “사부님, 일찍이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서쪽 하늘은 길이 멀고 호랑이와 표범과 요괴가 많다 하오니, 가면 돌아오지 못할까 두렵사오며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까 하옵니다.” 현장이 말했다. “나는 이미 큰 서원을 세웠으니 진경을 취하지 못하면 영원히 침륜지옥에 떨어지리라. 대저 왕의 은총을 입었으니 부득이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할 뿐이다. 이번 길은 참으로 아득하여 길흉을 정하기 어렵도다.” 또 말했다. “제자들아, 내가 떠난 뒤에 혹 삼 년이나 이 년, 혹 오 년이나 칠 년 뒤에 저 산문 안의 소나무 가지 끝이 동쪽을 향하는지만 보아라. 그러면 내가 곧 돌아오리라. 그렇지 않으면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뭇 제자가 이 말을 간절히 명심하여 기록하였다. 이튿날 아침, 태종이 조회를 열어 문무를 모으고 취경의 문첩을 써서 통행 보배 인장을 찍었다. 흠천감이 아뢰었다. “오늘은 인전의 길성이 있사오니 먼 길을 떠나기에 마땅하옵니다.” 당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또 황문관이 “어진 아우 법사께서 조정 문 밖에서 전지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이에 곧 보전으로 불러 올려 말했다. “어진 아우여, 오늘이 길을 떠나기에 좋은 날이다. 이것이 통관문첩이다. 짐이 또 자금발우 하나를 주어 가는 길에 재를 얻는 데 쓰게 하노라. 다시 먼 길을 가는 종자 둘과 은으로 꾸민 말 한 필을 주어 먼 길의 발이 되게 하노라. 그대는 이로써 길을 떠나라.” 현장이 크게 기뻐하여 곧 은혜에 사례하고 물건을 받들어 가지고 머무를 뜻이 없었다. 당왕이 어가를 갖추어 여러 신하와 함께 관문 밖까지 전송하니, 홍복사 스님과 제자들이 현장의 여름옷과 겨울옷을 관문 밖에 가져다 놓고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당왕이 이를 보고 먼저 행장과 말을 수습하게 하고, 그런 뒤 관리에게 명하여 술병을 들고 술을 따르게 하였다. 태종이 잔을 들어 또 물었다. “어진 아우의 아호는 무엇이라 부름이 마땅하겠는가?” 현장이 말했다. “빈승은 출가한 사람이라 감히 호를 부르지 못하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그때 보살이 말하기를 서쪽 하늘에 삼장의 경이 있다 하였다. 어진 아우는 경을 가리켜 호를 취하여 ‘삼장’이라 부르는 것이 어떠한가?” 현장이 또 은혜에 사례하고 어주를 받아 들며 말했다. “폐하, 술은 스님의 첫 번째 계율이옵니다. 빈승은 사람이 된 이래 술을 마실 줄 모르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오늘의 이 길은 다른 일과 다르다. 이는 소주이니 다만 이 한 잔만 마셔 짐이 전송하는 뜻을 다하게 하라.” 삼장이 감히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을 받아 들고 막 마시려 할 때, 문득 태종이 머리를 숙여 어수로 한 줌의 티끌을 집어 술에 튀겨 넣는 것을 보았다. 삼장이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태종이 웃으며 말했다. “어진 아우여, 이번에 한번 떠나 서쪽 하늘에 이르면 몇 해 만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 삼장이 말했다. “삼 년 안에 곧장 상국으로 돌아오겠사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날이 오래고 해가 깊으며 산이 멀고 길이 멀도다. 어진 아우는 이 술을 마시라. 차라리 고향의 한 줌 흙을 그리워할지언정 타향의 만 냥 금을 사랑하지 말라.” 삼장이 이에야 티끌을 넣은 뜻을 깨닫고 다시 은혜에 사례하고 다 마신 뒤 하직하고 관문을 나가 떠났다. 당왕도 어가를 돌려 돌아갔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3회 함호혈금성해액(陷虎穴金星解厄) · 쌍차령백흠류승(雙叉嶺伯欽留僧) 시에 이르기를, 대유의 당왕이 칙서를 내려 봉하고 흠차 현장은 선종을 물었도다. 굳은 마음으로 갈고 닦아 용의 굴혈을 찾았으며, 뜻을 다해 닦고 지녀 취봉에 올랐도다. 변방을 멀리 유람하여 몇 나라를 지났는지 모르고, 구름 깊은 산을 앞서 몇 만 겹이나 거듭 넘었도다. 이제부터 수레를 돌려 서쪽으로 향하여 가니, 가르침을 받들어 지니고 마침내 대공을 깨닫게 되리로다. 말하자면, 삼장은 정관 13년 9월 보름 전 사흘에 당왕과 여러 관리들의 배웅을 받으며 장안 성문 밖으로 나섰다. 하루 이틀 말발굽이 잠시도 멈추지 않아 이내 법문사에 이르렀다. 이 절의 주지인 상방 장로가 오백여 명의 승려를 거느리고 양쪽으로 늘어서서 그를 안으로 맞이하여 서로 만나 차를 올렸다. 차를 마신 뒤에는 공양을 들였다. 공양을 마치자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바로 이러하였다. 그림자가 흔들리니 은하수가 가까워지고, 달빛은 밝아 티끌 한 점 없도다. 기러기 소리는 먼 하늘에서 울리고, 다듬잇돌 소리는 서쪽 이웃에서 울리도다. 돌아가는 새는 마른 나무에 깃들고, 선승은 범음을 외우도다. 부들방석 한 평상 위에 앉아 밤이 반쯤 나뉠 때까지 앉아 있도다. 뭇 승려들이 등불 아래에서 불문의 정한 뜻과 서천에 가서 경을 취해 오는 연유를 의논하였다. 어떤 이는 물이 멀고 산이 높다 하였고, 어떤 이는 길에 호랑이와 표범이 많다 하였으며, 어떤 이는 험한 고개와 깎아지른 벼랑을 건너기 어렵다 하였고, 어떤 이는 독한 마귀와 사나운 괴물을 항복시키기 어렵다 하였다. 삼장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며 다만 손가락으로 제 마음을 가리키고 몇 번이나 머리를 끄덕였다. 뭇 승려들이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여 합장하고 청하였다. “법사께서 마음을 가리키시고 머리를 끄덕이신 것은 어인 일이니이까?” 삼장이 대답하였다. “마음이 생기면 가지가지 마귀가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가지가지 마귀가 사라지나이다. 저 제자는 일찍이 화생사에서 부처 앞에 큰 서원을 세웠사오니, 이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이번에 가면 반드시 서천에 이르러 부처를 뵙고 경을 구하여 우리 법륜을 굴리게 하고, 원하건대 성주께서 황도를 길이 굳게 하시기를 바라나이다.” 뭇 승려들이 이 말을 듣고 사람마다 칭송하며 저마다 떠들어 모두 한 소리로 외쳤다. “충심과 붉은 담력의 대천법사님이로다!” 칭찬이 그치지 않았고, 마침내 스승을 청하여 평상에 오르게 하고 편안히 잠들게 하였다. 이윽고 다시 대나무를 두드리니 지는 달이 지고 닭이 울자 새벽 구름이 일었다. 뭇 승려들이 일어나 차와 물과 아침 공양을 마련하였다. 현장이 마침내 가사를 입고 정전에 올라 부처 앞에 예배하고 말했다. “제자 진현장은 서천에 가서 경을 취해 오려 하나이다. 다만 육안이 어리석고 어두워 살아 있는 부처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나이다. 이제 서원을 세우고자 하오니, 길에서 절을 만나면 향을 사르고 부처를 만나면 절하며 탑을 만나면 청소하겠나이다. 원하건대 우리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일찍이 장육금신을 나타내시고 참경을 내려 주시어 동토에 길이 전하게 하소서.” 빌기를 마치고 방장으로 돌아가 공양을 들었다. 공양이 끝나자 두 수행자가 안장과 말을 정돈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삼장이 산문을 나서 뭇 승려에게 하직하였다. 뭇 승려들이 이별을 차마 못하여 십 리나 되는 먼 곳까지 전송하고 눈물을 머금고 돌아갔다. 삼장은 마침내 곧장 서쪽으로 나아갔다. 바로 늦가을 날씨였다. 보니 이러하였다. 두어 마을 나무 잎은 지고 갈대꽃은 부서지고, 몇 그루 단풍버들에 붉은 잎이 떨어지도다. 길에는 안개비 내려 옛 벗 드물고, 누런 국화 곱고 산등성이는 가느다라우며, 물은 차갑고 연잎은 부서져 사람이 수척해지도다. 희고 붉은 여뀌는 서리 하늘의 눈과 같고, 지는 노을과 외로운 오리는 긴 하늘에 떨어지도다. 어렴풋이 어두운 들구름 날아가고, 제비는 가고 기러기는 오는데, 맑고 간드러진 울음소리 밤에 부서지도다. 사도들이 여러 날을 걸어 공주성에 이르렀다. 일찍이 공주성에 속한 관리들과 온갖 사람들이 맞이하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하룻밤을 쉬고 이튿날 아침 성을 나서 나아갔다. 가는 길에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밤에는 자고 새벽에는 길을 갔다. 이삼 일 만에 다시 하주위에 이르렀다. 이곳이 바로 대당의 산하 경계였다. 변방을 지키는 총병과 이 고장의 승려와 도사들이 흠차 어제 법사가 서방에 가서 부처를 뵈러 간다는 말을 듣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이 안으로 맞이하여 공급하고, 승강에게 명하여 복원사로 청하여 쉬게 하였다. 이 절의 승려들이 하나하나 뵙고 저녁 공양을 마련하였다. 공양을 마치자 두 수행자에게 분부하여 말에게 배불리 먹이고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떠나게 하였다. 닭이 막 울 때 수행자를 부르니, 이에 또 절의 승려들이 놀라 차와 국과 공양을 마련하였다. 공양을 마치고 경계를 떠났다. 이 장로는 마음이 급하여 너무 일찍 일어났다. 본래 이때는 가을이 깊은 철이라 닭이 일찍 울었으니, 겨우 사경쯤 되는 시각이었다. 일행 세 사람에 말 한 마리, 모두 네 목숨이 맑은 서리를 맞으며 밝은 달을 바라보고 수십 리를 갔는데, 한 산고개를 만나 어쩔 수 없이 풀을 헤치고 길을 찾았으나 험하고 걸어가기 어렵다는 말을 다할 수 없었고, 또 길을 잘못 들까 걱정되었다. 의심하고 생각하던 사이에 갑자기 발을 헛디뎌 세 사람과 말이 모두 구덩이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삼장은 마음이 어지럽고 수행자들은 간이 떨렸다. 막 두려워하고 있는데 또 그 안에서 울부짖고 높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잡아 오너라! 잡아 오너라!” 보니 사나운 바람이 자욱이 불며 오륙십 명의 요괴가 몰려나와 삼장과 수행자를 끌어올렸다. 이 법사는 벌벌 떨며 몰래 눈을 들어 살펴보니, 위에 앉은 그 마왕이 몹시 흉악하였다. 참으로 이러하였다. 웅장한 위엄에 몸은 늠름하고, 사나운 기운에 모습은 당당하도다. 번갯불 같은 눈은 빛을 뿜고, 우레 같은 소리는 사방을 진동하도다. 톱니 같은 이빨은 입 밖으로 드러나고, 끌로 깎은 이는 뺨 옆에 드러나도다. 비단이 몸을 둘렀고 무늬 반점이 등뼈를 감쌌도다. 강철 같은 수염에는 살이 드물고, 갈고리 같은 발톱은 서리처럼 날카롭도다. 동해의 황공도 두려워하고, 남산의 흰 이마 왕이로다. 삼장은 넋이 날아가고 혼이 흩어질 지경이었으며, 두 수행자는 뼈가 물러지고 힘줄이 저렸다. 마왕이 호령하여 결박하라 하니 뭇 요괴가 일제히 세 사람을 새끼줄로 묶었다. 막 잡아먹을 준비를 하려는데 문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와서 알렸다. “웅산군과 특처사 두 분이 오셨나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앞서 가는 자는 한 흑한이었다.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는가. 웅장하고 호협하여 담량이 많고, 가볍고 건장하나 몸집은 둔중하도다. 물을 건널 때는 사나운 힘을 쓰고, 숲을 달릴 때는 성난 위세를 부리도다. 예로부터 길한 꿈에 부합하더니, 이제 홀로 빼어난 자태를 드러내도다. 푸른 나무를 잘 붙잡아 꺾고, 추위를 알아 철을 잘 알려 주도다. 영험을 드러내는 곳이라 하여 이에 산군이라 부르도다. 또 뒤에 오는 자는 한 뚱뚱한 사내였다.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는가. 높이 솟은 두 뿔이 관처럼 얹혔고, 엄숙하게 어깨와 등을 으쓱하도다. 성품은 푸른 옷을 입어 온당하고, 발걸음은 자못 더디도다. 종문의 이름은 아비를 고라 하고, 본래의 호는 어미를 자라 하도다. 밭을 가는 일에 공이 있어 이에 특처사라 이름하였도다. 이 두 사람이 흔들흔들 걸어 안으로 들어오니, 마왕이 황급히 달려나가 맞이하였다. 웅산군이 말했다. “인장군, 그간 뜻을 얻으셨으니 축하할 만하도다! 축하할 만하도다!” 특처사가 말했다. “인장군의 풍채가 평소보다 뛰어나니 참으로 기쁘도다! 참으로 기쁘도다!” 마왕이 말했다. “두 분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가?” 산군이 말했다. “다만 소박하게 지킬 뿐이로다.” 처사가 말했다. “다만 때에 따라 지낼 뿐이로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마치고 각자 앉아 담소하며 웃었다. 보니 그 수행자들은 결박당한 것이 몹시 아파 슬피 울었다. 그 흑한이 말했다. “이 세 놈은 어디서 왔는가?” 마왕이 말했다. “스스로 문 앞까지 찾아온 놈들이로다.” 처사가 웃으며 말했다. “손님 접대에 쓸 만한가?” 마왕이 말했다. “받들겠소! 받들겠소!” 산군이 말했다. “다 쓸 수는 없으니 그중 둘을 먹고 하나를 남겨 두면 좋겠도다.” 마왕이 그 말을 받아들여 곧 좌우를 불러 두 수행자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도려내어 그 시신을 토막 냈다. 머리와 심장과 간은 두 손님에게 바치고, 사지는 스스로 먹고, 나머지 뼈와 살은 각 요괴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적우적 씹는 소리가 들리니 참으로 호랑이가 양 새끼를 물어뜯는 듯하였다.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한 장로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장안을 처음 떠난 뒤의 첫 번째 고난이었다. 막 두려워하고 당황하던 사이에 점점 동쪽이 밝아 왔고, 그 두 괴물은 날이 밝자 비로소 흩어졌다. 그들이 모두 말했다. “오늘 후하게 대접받았으니, 훗날 정성을 다해 갚겠소.” 그러고서야 무리 지어 물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해가 높이 떠올랐다. 삼장은 정신이 어리부렁하여 동서남북도 분간하지 못하였다.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된 그 판에 문득 한 노인을 보니 지팡이를 짚고 걸어왔다. 앞으로 나아가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리니 새끼줄이 모두 끊어졌다. 마주 보고 입김을 한 번 불어넣자 삼장이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땅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노인장께 감사하옵니다! 빈승의 목숨을 구해 주셨사옵니다!” 노인이 답례하며 말했다. “그대는 일어나라. 무슨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 삼장이 말했다. “빈승의 수행자는 이미 괴물에게 잡아먹혔사오니, 다만 행장과 말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노인이 지팡이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말 한 마리와 보따리 두 개가 있지 않으냐?” 삼장이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제 물건이요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았으므로 마음이 비로소 조금 놓였다.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 이곳은 어떤 곳이며 노인장께서는 어찌하여 이곳에 계시나이까?” 노인이 말했다. “이곳은 쌍차령이니 호랑이와 이리의 소굴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 떨어졌느냐?” 삼장이 말했다. “빈승이 닭이 울 때 하주위 경계를 나섰사온데, 일찍 일어난 것이 뜻밖이라 서리와 이슬을 무릅쓰고 가다가 홀연히 이곳에 떨어졌나이다. 한 마왕을 보니 흉악하고 완고함이 심하옵더니 빈승과 두 수행자를 결박하였나이다. 또 한 흑한이 있으니 스스로 웅산군이라 하고, 한 뚱뚱한 사내가 있으니 스스로 특처사라 하며, 들어와 그 마왕을 인장군이라 불렀나이다. 그 셋이 제 두 수행자를 잡아먹고 날이 밝자 비로소 흩어졌나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제게 어찌 이렇게 큰 인연과 큰 복이 있어 노인장께서 이곳에 오시어 저를 구해 주셨나이까?” 노인이 말했다. “처사라는 자는 들소 정령이고, 산군이라는 자는 곰 정령이며, 인장군이라는 자는 호랑이 정령이다. 좌우의 요괴들은 모두 산 정령과 나무 귀신, 기이한 짐승과 푸른 이리일 뿐이다. 다만 그대의 본성이 본래 밝으므로 그대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그대는 나를 따라오라, 길을 인도하겠다.” 삼장이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여 보따리를 말에 얹고 고삐를 잡고 노인을 따라 마침내 구덩이를 벗어나 큰길로 올라섰다. 그리고 말을 길가 풀숲에 매어 두고 몸을 돌려 그 노인에게 절하며 사례하니, 그 노인이 마침내 한 줄기 맑은 바람으로 변하여 주홍 볏 흰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다. 다만 바람에 펄럭이며 한 장의 쪽지가 남았는데 그 위에 네 구절의 게송이 적혀 있었다. 게송에 이르기를, “나는 서천의 태백성이라, 특별히 와서 그대의 목숨을 구하였노라. 앞으로 가면 절로 신도가 도울 것이니, 어려움을 탓하며 경을 원망하지 말라.” 삼장이 그것을 보고 하늘을 향해 예배하며 말했다. “금성께 감사하옵니다, 이 재난에서 건져 주셨사옵니다.” 예배를 마치고 말을 끌며 홀로 외롭고 쓸쓸히 앞으로 애써 나아갔다. 이 고개 위는 참으로 이러하였다. 차갑게 사락사락 숲에 비 바람 불고, 졸졸 소리 나는 시냇물 아래로 흐르도다. 향기롭게 들꽃이 피어나고, 빽빽이 어지러운 돌이 쌓였도다. 떠들썩하게 사슴과 원숭이가 울고, 떼를 지어 노루와 고라니 뛰도다. 어지럽게 새 소리 많고, 고요히 인적은 없도다. 그 장로는 벌벌 떨려 마음이 편치 않고, 이 말은 힘이 없어 발굽을 들기 어려워하도다. 삼장은 몸을 버리고 목숨을 걸었다. 그 험한 고개 사이로 올라갔다. 반나절을 걸었으나 다시는 인가나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는 배가 고팠고, 둘은 길이 또 평탄하지 않았다. 위급한 그때에 문득 앞에는 두 마리 사나운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뒤에는 여러 마리 긴 뱀이 서려 있는 것이 보였다. 왼쪽에는 독충이 있고 오른쪽에는 기이한 짐승이 있었다. 삼장은 홀몸이라 어찌할 방도가 없어 마침내 몸과 마음을 놓아 버리고 하늘의 명에 맡길 뿐이었다. 또 어찌할 수 없이 그 말은 허리가 물러지고 발굽이 굽어져 똥오줌을 다 지리며 땅에 엎드려 일으켜도 일으키지 못하고 끌어도 끌리지 않았다. 법사는 몸 둘 곳이 없어 괴로워하였으니 참으로 만 갈래 처량하였고,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어찌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그는 재앙을 만났으나 구원도 있었다.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그 판에 문득 독충은 달아나고 요수는 날아 흩어지며 사나운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고 긴 뱀은 모습을 숨기는 것이 보였다. 삼장이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한 사람이 손에 강철 창을 들고 허리에 활과 화살을 걸치고 저 산비탈 앞에서 돌아 나오는데, 과연 훌륭한 사나이였다. 그 모습을 보라. 머리에는 쑥잎 무늬 반점 표범 가죽 모자를 쓰고, 몸에는 양털로 짠 비단 옷을 걸쳤으며, 허리에는 사자 무늬 띠를 두르고, 발에는 고라니 가죽 신을 신었도다. 둥근 눈에 동그란 눈동자는 조객처럼 빛나고, 고리 같은 수염은 어지러이 흩어져 하괴와 같도다. 한 주머니 독약 화살을 걸치고 한 자루 강철을 점찍은 큰 창을 들었도다. 우레 같은 소리에 산짐승의 간이 부서지고, 용맹에 들꿩의 넋이 놀라 흩어지도다. 삼장이 그가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길가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높이 외쳤다. “대왕이시여, 목숨을 살려 주소서! 대왕이시여, 목숨을 살려 주소서!” 그 사내가 앞에 이르러 강철 창을 내려놓고 손으로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장로는 두려워 마라.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이 산속의 사냥꾼으로, 성은 유요 이름은 백흠이며 별호는 진산태보다. 내가 방금 이곳에 온 것은 산짐승 두 마리를 잡아 먹으려 함이었는데 뜻밖에 그대를 만났으니 심히 무례하였노라.”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대당의 어가 아래 흠차로 서천에 가서 부처를 예배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이옵니다. 방금 이곳에 이르렀사온데 이리와 호랑이와 뱀과 독충을 만나 사방으로 둘러싸여 나아가지 못하던 차에 홀연히 태보께서 오시자 뭇 짐승이 모두 달아나 빈승의 목숨을 구해 주셨사오니 감사하옵니다! 감사하옵니다!” 백흠이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오직 이리와 호랑이를 잡아 생계를 삼고 뱀과 독충을 잡아 목숨을 이어 가므로 뭇 짐승이 나를 두려워하여 달아난 것이다. 그대가 이미 당조에서 왔으니 나와 더불어 모두 같은 고향 사람이다. 이곳은 아직 대당의 땅이요 나도 당조의 백성이니, 나와 그대는 황왕의 물과 흙을 함께 먹었으므로 참으로 한 나라의 사람이다. 그대는 두려워 마라, 나를 따라오라. 내 집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고 내일 아침 그대를 길에 올려 보내겠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였다. 백흠에게 사례하고 말을 끌고 뒤따랐다. 산비탈을 넘자 또 후후 하고 바람 소리가 들렸다. 백흠이 말했다. “장로는 가지 말고 이곳에 앉아 계시라. 바람 소리가 나는 곳에는 살쾡이가 오는 것이니, 내가 그것을 잡아 집에 가져가 그대를 대접하겠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또 간이 떨려 감히 발을 떼지 못하였다. 그 태보가 강철 창을 쥐고 성큼성큼 걸어 맞이하여 나아갔다. 보니 한 마리 반점 호랑이가 마주 나타났다. 그가 백흠을 보고 급히 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하였다. 이 태보가 벼락 같은 소리로 꾸짖었다. “이 업보 같은 짐승아! 어디로 가느냐!” 그 호랑이는 쫓기는 것이 급한 것을 보고 몸을 돌려 발톱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이 태보가 세 갈래 창을 들어 맞서니, 삼장은 놀라 풀밭에 물러터져 쓰러졌다. 이 화상이 어미 배를 타고 나온 이래 어찌 이런 흉험한 일을 본 적이 있겠는가. 태보와 그 호랑이가 그 산비탈 아래에서 사람과 호랑이가 서로 버티니 과연 한바탕 좋은 싸움이었다. 보니 이러하였다. 성난 기운이 자욱하고 사나운 바람이 자욱하도다. 성난 기운이 자욱하니 태보는 관을 찌르는 기세로 힘이 넘치고, 사나운 바람이 자욱하니 반점 범은 위세를 부려 붉은 먼지를 뿜도다. 저쪽은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휘두르며, 이쪽은 발을 돌리고 몸을 돌리도다. 세 갈래 창은 하늘을 받들어 해를 가리고, 온갖 무늬 꼬리는 안개를 흔들고 구름을 날리도다. 이쪽은 가슴을 향해 어지러이 찌르고, 저쪽은 얼굴을 마주하고 달려들어 삼키려 하도다. 비껴난 자는 다시 사람의 길에 살아나고, 부딪친 자는 반드시 염군을 만나리로다. 다만 그 반점 범의 으르렁거림과 태보의 고함 소리가 들리도다. 반점 범이 으르렁거리니 산천이 갈라지고 새와 짐승이 놀라고, 태보가 고함치니 천부를 열어 별이 나타나도다. 저쪽은 금빛 눈동자로 성을 내어 부릅뜨고, 이쪽은 담력을 북돋워 노기를 띠도다. 사랑스럽구나, 산을 지키는 유태보여! 칭찬할 만하구나, 땅을 차지한 짐승의 왕이여. 사람과 호랑이가 살길을 탐하여 승부를 다투니, 조금만 방심하면 삼혼을 잃으리로다. 그 두 사람이 한 시진쯤 싸우더니 그 호랑이의 발톱이 느려지고 허리가 풀리는 것이 보였다. 태보가 창을 들어 가슴을 수평으로 찔러 넘어뜨렸으니, 가련하도다, 강철 창끝이 심장과 간을 꿰뚫어 순식간에 피가 땅에 흥건하였다. 귀를 움켜잡고 길 위로 끌어내니, 좋은 사내로다! 숨 한 번 헐떡이지 않고 얼굴빛도 변하지 않은 채 삼장에게 말했다. “조화로다! 조화로다! 이 살쾡이면 장로께서 며칠은 잡수실 수 있겠다.” 삼장이 칭찬을 그치지 못하며 말했다. “태보는 참으로 산신이옵니다!” 백흠이 말했다. “무슨 재주가 있다고 감히 지나친 칭찬을 받겠는가. 이는 장로의 큰 복이다. 가자! 서둘러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좀 삶아 그대를 대접하겠다.” 그가 한 손으로 창을 쥐고 한 손으로 호랑이를 끌며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다. 삼장이 말을 끌고 뒤따라 갔다. 구불구불 산비탈을 넘어가니 문득 한 산장이 보였다. 그 문 앞은 참으로 이러하였다. 하늘을 찌르는 고목과 길을 덮은 거친 덩굴이로다. 만 골짜기 바람과 먼지 차갑고, 천 벼랑 기상이 기이하도다. 한 줄기 들꽃 향이 몸에 스며들고, 몇 대의 그윽한 대나무 푸르러 하늘거리도다. 풀 문루와 울타리 뜰은 그려도 좋고 그려도 좋으며, 돌판 다리와 흰 흙벽은 참으로 즐겁고 참으로 드물도다. 가을 모습은 쓸쓸하고 상쾌한 기운은 높이 외롭도다. 길가에는 누런 잎이 떨어지고 고개 위에는 흰 구름이 떠돌도다. 성긴 숲속에는 산새가 지저귀고, 산장 문밖에는 작은 개가 짖도다. 백흠이 문 앞에 이르러 죽은 호랑이를 내던지고 불렀다. “어린것들, 어디 있느냐?” 보니 서너 명의 하인이 나왔는데 모두 괴상한 모습에 흉악한 상이었다. 앞으로 나와 질질 끌며 그 호랑이를 메고 들어갔다. 백흠이 분부하였다. “서둘러 가죽을 벗기고 마련하여 손님을 대접하라.” 다시 몸을 돌려 삼장을 맞이하여 안으로 들어가 서로 만났다. 삼장이 다시 백흠에게 후한 은혜와 가엾이 여겨 목숨을 구한 일을 절하며 사례하였다. 백흠이 말했다. “같은 고향 사람인데 어찌 사례를 받겠는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친 뒤 한 노파가 한 며느리를 데리고 삼장에게 예를 올렸다. 백흠이 말했다. “이는 저의 어머니와 아내입니다.” 삼장이 말했다. “청컨대 어머님을 윗자리에 앉히시면 빈승이 받들어 절하겠나이다.” 노파가 말했다. “장로는 먼 곳에서 온 손님이니 각자 몸조심하시고 절은 하지 않으셔도 좋사옵니다.” 백흠이 말했다. “어머니, 이분은 당왕의 어가 아래에서 서천에 가서 부처를 뵙고 경을 구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이옵니다. 방금 고갯마루에서 아이를 만났기에 아이가 한 나라의 사람이라 여겨 집에 청하여 말을 쉬게 하고 내일 길에 올려 보내려 하옵니다.” 노파가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좋다! 좋다! 좋다! 그렇다면 그를 청하되 이렇게만 해서는 안 되겠구나. 마침 내일이 네 아비의 기일이니, 장로께 청하여 좋은 일을 좀 하고 경문 한 권을 외우게 한 뒤 모레 그를 보내도록 하자.” 이 유백흠은 비록 호랑이를 잡는 사내요 산을 지키는 태보이지만 효성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어머니의 말을 듣자 곧 향과 종이를 마련하여 삼장을 붙잡아 두려 하였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어린것들이 상과 걸상을 펼쳐 놓고 몇 접시 푹 익은 호랑이 고기를 뜨끈뜨끈하게 그 위에 올렸다. 백흠이 삼장에게 잠시 잡수시라 청하고 따로 밥을 또 마련하겠다 하였다. 삼장이 합장하여 가슴에 대고 말했다. “선재로다! 빈승이 태보께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자면, 어미 배에서 나온 뒤로 곧 중이 되어 고기를 먹는 것은 더욱 알지 못하나이다.” 백흠이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장로, 저의 가난한 집안은 여러 대 이래 채식을 알지 못하옵니다. 혹 죽순이 있으면 캐고 목이버섯을 따고 마른 나물을 찾고 두부를 만들어도 모두 노루와 사슴과 호랑이와 표범의 기름으로 지졌으니, 참으로 채식할 만한 곳이 없구려. 두 개의 아궁이가 있으나 모두 기름이 배어 버렸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도리어 제가 장로를 청한 것이 잘못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태보는 마음을 쓰지 마시고 그냥 잡수시옵소서. 저 빈승은 사흘 닷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참을 수 있사오나 다만 계를 깨뜨리지는 못하겠나이다.” 백흠이 말했다. “혹 굶어 죽으면 어찌하겠습니까?” 삼장이 말했다. “태보의 하늘 같은 은혜를 입어 호랑이와 이리 떼 속에서 구해 내셨으니, 굶어 죽는다 한들 호랑이 밥이 되는 것보다야 낫겠나이다.” 백흠의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외쳤다. “얘야, 장로와 쓸데없이 이야기하지 마라. 나에게 채식할 물건이 있으니 대접할 수 있단다.” 백흠이 말했다. “채식할 물건이 어디서 납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너는 상관하지 마라, 나에게 채식할 것이 있단다.” 이에 며느리를 불러 작은 솥을 내려 불에 올려 기름을 태우고, 솔질하고 또 솔질하며 씻고 또 씻어 다시 아궁이 위에 얹게 하였다. 먼저 끓는 물 반 솥을 붓고 따로 쓰지 않았으며, 또 산느릅나무 잎을 달여 차를 만들고, 이어 누런 좁쌀과 조를 넣어 밥을 지었다. 또 마른 나물을 삶아 익혀 두 그릇에 담아 내어 상 위에 펼쳐 놓았다. 늙은 어머니가 삼장을 마주 보고 말했다. “장로, 공양을 드소서. 이는 늙은 몸과 며느리가 손수 정리한 지극히 깨끗한 차와 밥이옵니다.” 삼장이 내려가 사례하고서야 윗자리에 올라앉았다. 그 백흠은 따로 한 자리를 마련하여 소금도 간장도 없는 호랑이 고기와 사향노루 고기와 이무기 고기와 여우 고기와 토끼 고기, 그리고 잘게 다진 사슴 고기 포를 쟁반과 그릇에 가득 담아 삼장 곁에서 함께 공양을 들었다. 막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려는데 삼장이 합장하고 경을 외우니, 백흠은 놀라 감히 젓가락을 움직이지 못하고 급히 일어나 곁에 서 있었다. 삼장이 몇 구절 외우지 않아 “공양을 들라” 하였다. 백흠이 말했다. “그대는 짧은 경을 외우는 중인가?” 삼장이 말했다. “이것은 경이 아니라 한 권의 재를 여는 주문이옵니다.” 백흠이 말했다. “너희 출가한 사람들은 유달리 따질 것이 많아 밥을 먹을 때도 외우고 또 외우는구나.” 공양을 마치고 그릇을 거두어 치우자 점점 날이 저물었다. 백흠이 삼장을 이끌고 안채를 나서 뒤쪽으로 거닐러 갔다. 복도를 지나니 한 초정이 있었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방 벽에는 강한 활과 단단한 쇠뇌 몇 장이 걸려 있고 화살 몇 통이 꽂혀 있으며, 들보 위에는 핏기 서린 호랑이 가죽 두 장이 걸쳐 있고 벽 밑에는 창과 칼과 갈래와 막대기가 많이 꽂혀 있었으며, 한가운데에는 두 개의 걸상이 놓여 있었다. 백흠이 삼장을 청하여 잠시 앉으라 하였다. 삼장은 이렇게 흉험하고 지저분한 것을 보고 오래 앉지 못하고 마침내 초정을 나왔다. 또 뒤쪽으로 나아가니 한 채의 큰 정원이 있었는데, 총총한 국화 꽃술이 노랗게 쌓이고 나무마다 단풍버들이 붉게 매달린 모습을 다 보아 낼 수 없었다. 또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십여 마리 살찐 사슴과 한 떼의 누런 노루가 달려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사람을 보고도 어리석고 어리뭉실하여 더욱 두려워하지 않았다. 삼장이 말했다. “이 노루와 사슴은 생각건대 태보께서 집에서 기르는 것이옵니까?” 백흠이 말했다. “그대의 장안성 안의 인가에서는 돈 있는 이는 재물과 보배를 모으고 밭 있는 이는 벼와 곡식을 모으지만, 우리처럼 사냥하는 자는 다만 들짐승을 몇 마리 기르며 흐린 날을 대비할 뿐이외다.” 그 두 사람이 이야기하며 한가로이 거닐다가 어느덧 황혼이 되자 다시 앞채로 돌아가 쉬었다. 이튿날 아침 온 집안 노소가 모두 일어나 곧 채식을 마련하여 장로를 대접하고 청하여 경을 펴 외우게 하였다. 이 장로가 손을 씻고 태보와 함께 집 사당 앞에서 향을 사르고 사당에 절한 뒤, 삼장이 비로소 목어를 두드려 소리를 내고 먼저 입의 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을 외우고, 이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신주를 외운 뒤에 《도망경》 한 권을 펼쳐 읽었다. 외우기를 마치자 백흠이 다시 망인을 천도하는 글 한 통을 써 주기를 청하고, 이어 《금강경》과 《관음경》을 펼쳐 읽었다. 하나하나 맑은 소리로 높이 외웠다. 외우기를 마치고 점심 공양을 들었다. 또 《법화경》과 《미타경》을 외워 각각 몇 권을 읽었다. 다시 《공작경》 한 권을 외우고 비추가 업을 씻는 고사를 이야기하였다. 이윽고 또 날이 저물어 온갖 향불을 올리고 뭇 신의 종이 말을 태우고 천도하는 글을 불사른 뒤, 불사가 이미 끝나자 다시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말하자면, 그 백흠의 아비의 영혼은 천도되어 침륜에서 벗어났으므로, 귀혼이 일찍이 동쪽 집안 안에 이르러 온 집안 노소에게 한 꿈을 부탁하며 말했다. “나는 명부에서 고난을 벗어나지 못하여 오랜 세월 윤회에 들지 못하였노라. 이제 다행히 성승을 만나 경권을 외워 주셨으므로 나의 죄업이 소멸되었고, 염왕이 사람을 보내 나를 중화의 복된 땅 장자 집안에 보내어 환생하게 하였노라. 너희는 장로께 잘 사례하고 전송하며 게을리하지 말라, 게을리하지 말라. 나는 가노라.” 이러하니 참으로 만법이 장엄한 데에는 단정코 뜻이 있어, 망인을 천도하여 고난을 여의고 침륜을 벗어나게 하도다. 그 온 집안이 꿈에서 깨어나니 이윽고 다시 해가 동쪽에서 떠올랐다. 백흠의 아내가 말했다. “태보, 내가 어젯밤 꿈에 시아버님이 집에 오시더니, 명부에서 고난을 벗어나지 못하여 오랜 세월 환생하지 못한다 하시고, 이제 다행히 성승께서 경권을 외워 주시어 그 죄업이 소멸되어 염왕이 사람을 보내 중화의 복된 땅 장자 집안에 환생하러 가게 하셨으니 우리더러 그 장로께 잘 사례하고 게을리하지 말라 하시더이다. 그가 말을 마치고 곧장 문을 나서 한가로이 걸어가시기에 우리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붙잡아도 머물지 않으시더니, 깨어 보니 한바탕 꿈이었소.” 백흠이 말했다. “나도 그와 같은 꿈을 꾸었으니 그대와 같소. 우리 일어나 어머니께 말씀드리러 갑시다.” 그 두 내외가 막 가서 말씀드리려는데, 보니 늙은 어머니가 불렀다. “백흠아, 이리 오너라, 너와 할 말이 있다.” 두 사람이 앞에 이르니, 늙은 어머니가 평상에 앉아 말했다. “얘야, 내가 어젯밤 기쁜 꿈을 하나 꾸었는데, 네 아비가 집에 와서 장로의 천도 덕이 크다 하며 이미 죄업이 소멸되어 중화의 복된 땅 장자 집안에 가서 환생하게 되었다 하더구나.” 부부가 모두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저와 며느리도 다 이런 꿈을 꾸었기에 막 와서 아뢰려던 차에 어머니께서 부르시니, 같은 꿈이옵니다.” 이에 온 집안 큰 사람 작은 사람을 다 일으켜 사례할 것을 마련하고 그를 위하여 말과 안장을 정돈하게 한 뒤, 모두 앞에 이르러 절하며 사례하였다. “장로께서 저의 망친을 천도하여 고난을 벗어나 환생하게 하신 일을 감사하옵니다, 다 갚을 수 없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빈승에게 무슨 능함이 있다고 감히 사례를 받겠나이다?” 백흠이 세 사람의 꿈 이야기를 삼장에게 한 차례 풀어 말하니 삼장도 기뻐하였다. 이윽고 채식 공양을 올리고 또 백은 한 냥을 사례로 갖추었다. 삼장은 푼돈도 받지 않았다. 온 집안이 또 간절히 절하며 애걸하였으나 삼장은 마침내 푼돈도 받지 않고 다만 말했다. “그대가 자비를 베풀어 나를 한 구간 전송해 주신 것만으로도 지극한 애정을 충분히 느꼈나이다.” 백흠이 어머니와 아내와 함께 어찌할 수 없어 급히 거친 밀가루 전병 몇 개를 구운 양식으로 만들어 백흠에게 멀리 전송하게 하였다. 삼장이 기뻐하며 받아들였다. 태보는 어머니의 명을 받들고 다시 두세 명의 하인을 불러 각자 사냥 도구를 지니게 하여 함께 큰길로 올랐다. 그 산속의 들풍경과 고개 위의 풍광은 다 보아 낼 수 없었다. 반나절을 걸어가니 문득 맞은편에 한 큰 산이 보였다. 참으로 높이가 푸른 하늘에 닿고 우뚝하고 험준하였다. 삼장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앞에 이르렀다. 그 태보는 이 산에 오르기를 평지처럼 하였다. 한창 산중턱을 걸어가던 중에 백흠이 몸을 돌려 길 아래에 서서 말했다. “장로, 그대는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시오, 나는 이제 하직하고 돌아가겠소.” 삼장이 그 말을 듣고 안장에서 굴러 내려 말했다. “천만에, 감히 태보께 한 구간만 더 전송해 주시기를 청하나이다!” 백흠이 말했다. “장로는 알지 못하는구려. 이 산을 양계산이라 부르는데, 동쪽 절반은 우리 대당이 맡은 땅이고 서쪽 절반은 바로 달단의 땅이오. 저쪽의 이리와 호랑이는 내게 항복하지 않으니 나도 경계를 넘을 수 없소이다. 그대는 스스로 가시오.” 삼장은 마음이 놀라워 손을 벌려 옷을 잡고 소매를 붙잡으며 눈물을 떨구어 이별하기 어려워하였다. 한창 당부하고 절하며 작별하던 그때에 문득 산기슭 아래에서 우레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내 스승님이 오셨다! 내 스승님이 오셨다!” 삼장은 놀라 어리석은 사람처럼 멍하여졌고 백흠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4회 심원귀정(心猿歸正) · 육적무종(六賊無蹤) 시에 이르기를, 부처가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니, 마음과 부처는 예로부터 모두 요긴한 바의 물건이로다. 만일 물건도 없고 마음도 없음을 알면, 이내 진여 법신불이로다. 법신불은 모양이 없으니, 한 알의 둥근 광명이 만상을 머금었도다. 몸 없는 몸이 곧 참몸이요, 모양 없는 모양이 곧 실제의 모양이로다. 빛깔도 아니요 빈 것도 아니요 빈 것이 아님도 아니며, 오지도 않고 향하지도 않고 돌이키지도 않도다. 다름도 같음도 없고 있음도 없음도 없으니, 버리기도 어렵고 취하기도 어렵고 듣고 바라기도 어렵도다. 안팎의 신령한 빛은 어디서나 같으니, 한 부처의 나라가 한 알의 모래 속에 있도다. 한 알의 모래가 대천 세계를 머금었고, 한 몸과 한 마음에 만법이 같도다. 이것을 아는 이는 모름지기 무심의 비결을 깨달아야 하니, 물들지도 않고 걸리지도 않는 것이 청정한 업이로다. 선과 악의 천 가지 끝에 하는 바가 없으면, 이내 나무 석가야로다. 말하자면, 유백흠과 당삼장은 놀라고 두려워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또 “사부님이 오셨소!”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뭇 집안 하인들이 말했다. “이 소리치는 것은 반드시 저 산기슭 돌함 속의 늙은 원숭이일 것이옵니다.” 태보가 말했다. “그놈이다! 그놈이다!” 삼장이 물었다. “무엇이 늙은 원숭이란 말이오?” 태보가 말했다. “이 산은 본래 오행산이라 하였는데, 우리 대당 왕께서 서쪽을 정벌하여 나라를 평정하신 뒤에 이름을 양계산으로 고치셨소. 예전에 어른들이 말하기를, 왕망이 한나라를 빼앗을 때 하늘에서 이 산을 내려 신통한 원숭이 하나를 깔아 눌렀는데, 그놈은 추위와 더위도 두려워하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으며 스스로 토지신이 그를 감시하고 압박하여 배고프면 쇠구슬을 먹이고 목마르면 구리물을 마시게 하였으나 예로부터 지금까지 얼어 죽지도 굶어 죽지도 않았다 하였소. 이 소리치는 것은 틀림없이 그놈일 것이오. 장로는 두려워 마시오. 우리 산을 내려가 한번 봅시다.” 삼장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따라 말을 끌고 산을 내려갔다. 몇 리를 가지 않았는데, 그 돌함 사이에 과연 원숭이 하나가 있어 머리를 내밀고 손을 뻗어 마구 손짓하며 말했다. “사부님, 어찌하여 이제야 오시나이까? 잘 오셨나이다! 잘 오셨나이다! 저를 구해 내주시면 제가 사부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겠나이다!” 이 장로가 앞으로 나아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는가. 뾰족한 부리 같은 입에 오므라든 볼, 금빛 눈동자에 불같은 눈이로다. 머리 위에는 이끼가 수북하게 쌓였고 귀 속에는 담쟁이 덩굴이 자랐도다. 귀밑에는 머리카락은 적고 푸른 풀은 많으며, 턱 아래에는 수염이 없고 푸른 잔디가 났도다. 눈썹 사이에는 흙이 끼고 콧구멍에는 진흙이 박혀 몹시 꼴이 말이 아니며, 손가락은 굵고 손바닥은 두터우며 티끌과 때가 잔뜩 끼었도다. 다행히 눈알은 굴리고 목청과 혀는 소리가 고르도다. 말은 비록 유창하나 몸은 꼼짝할 수 없도다. 바로 오백 년 전의 손대성이니, 오늘날 재난이 다하여 하늘의 그물을 벗어나는도다. 유태보는 과연 담이 커서 앞으로 걸어 나와 그의 귀밑의 풀과 턱 아래의 잔디를 뽑아 주며 물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 원숭이가 말했다. “할 말은 없사오니, 저 사부님을 이리 올라오게 하시어 제가 한번 물어보게 하여 주소서.” 삼장이 말했다. “나에게 무엇을 묻겠느냐?” 그 원숭이가 말했다. “사부님은 동토의 대왕께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라고 보내신 분이 아니신가?” 삼장이 말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니, 어찌하여 묻느냐?” 그 원숭이가 말했다. “저는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소란하게 한 제천대성이옵니다. 다만 윗사람을 속인 죄를 지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저를 이곳에 눌러 두셨나이다. 얼마 전에 관음보살님 한 분이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동토로 경을 구할 사람을 찾으러 가시기에, 제가 그분께 저를 한번 구해 달라고 청하였더니, 그분께서 나에게 다시는 흉악한 짓을 하지 말고 불법에 귀의하여 부지런히 정성을 다해 경을 구하는 이를 보호하며 서방으로 가서 부처님께 절하고 공을 이루면 절로 좋은 일이 있으리라 하고 권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밤낮으로 마음을 졸이고 아침저녁으로 간을 달며 다만 사부님께서 오시어 저를 구해 주시기만을 기다렸나이다. 저는 사부님을 모시고 경을 구하며 사부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흡족하여 기뻐하며 말했다. “네가 비록 이런 착한 마음을 지녔고 또 보살의 가르침을 입어 사문에 들기를 원한다 하나, 다만 나에게는 도끼도 끌도 없으니 어찌 너를 구해 낼 수 있겠느냐?” 그 원숭이가 말했다. “도끼와 끌은 필요 없사옵니다. 사부님께서 다만 구해 주시겠다고만 하시면 제가 절로 나오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내가 스스로 너를 구한다 한들 네가 어찌 나올 수 있겠느냐?” 그 원숭이가 말했다. “이 산꼭대기에는 우리 부처님 여래의 금빛 글자로 된 누름쪽지가 있나이다. 사부님께서 다만 산에 올라가 그 쪽지를 떼어 내시면 제가 곧 나오겠나이다.” 삼장이 그 말을 따라 몸을 돌려 유백흠에게 간청하며 말했다. “태보여, 나와 함께 산에 한번 올라가 줍시다.” 백흠이 말했다.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구려!” 그 원숭이가 높이 소리쳐 말했다. “진짜입니다! 결코 감히 거짓으로 속이지 못하나이다!” 백흠은 어쩔 수 없이 집안 하인들을 불러 말을 끌게 하였다. 그는 삼장을 부축하여 다시 높은 산에 올랐다. 덩굴을 붙잡고 칡을 잡으며 마침내 그 맨 꼭대기에 이르렀는데, 과연 황금빛이 만 갈래로 뻗치고 상서로운 기운이 천 줄기로 서려 있었으며, 네모반듯한 큰 돌 하나가 있어 그 돌 위에 봉투 같은 것이 붙어 있었으니, 바로 ‘옴 마니 반메 훔’ 여섯 글자의 금빛 글자였다. 삼장이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돌을 향하여 그 금빛 글자를 바라보며 몇 번이나 절하고 서쪽을 향해 기도하며 말했다. “제자 진현장은 특별히 칙명을 받들어 경을 구하러 왔사오니, 과연 제자의 인연이 있다면 금빛 글자를 떼어 내어 신통한 원숭이를 구해 내고 함께 영산에서 깨닫게 하소서. 만일 제자의 인연이 없다면 이놈은 흉악하고 완고한 괴물이리니 제자를 속여 농락하여 좋은 일이 되지 못할 것이니, 곧 떼어지지 않게 하소서.” 빌기를 마치고 또 절하였다. 절을 마치고 앞으로 나아가 그 여섯 금빛 글자를 가볍게 떼어 냈다. 이윽고 한 줄기 향기로운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그 누름쪽지를 손채로 낚아채 공중으로 날려 보내며 외쳤다. “나는 대성을 감시하던 자로다. 오늘 그의 재난이 다하였으니, 우리들은 여래께 돌아가 이 봉투를 바치러 가는도다.” 삼장과 백흠 일행은 하늘을 향해 예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곧장 높은 산을 내려가 다시 돌함 옆에 이르러 그 원숭이에게 말했다. “누름쪽지를 떼어 냈으니, 네가 나올 수 있겠느냐?” 그 원숭이가 기뻐하며 외쳤다. “사부님, 조금 물러나 계시옵소서. 제가 나오기 좋게 하여 사부님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 하옵니다.” 백흠이 그 말을 듣고 삼장을 인도하여 일행과 함께 동쪽으로 돌아 곧장 걸어갔다. 오칠 리쯤 갔을 때 또 그 원숭이가 높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더 가시오! 더 가시오!” 삼장이 다시 한참을 가서 산을 내려갔는데, 이윽고 한 번 우렁찬 소리가 나니 참으로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뭇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다. 보니 그 원숭이가 벌써 삼장의 말 앞에 이르러 발가벗은 몸으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사부님, 제가 나왔나이다!” 삼장에게 네 번 절하고 급히 몸을 일으켜 백흠에게 큰 읍을 하며 말했다. “형님께서 저의 사부님을 이곳까지 모셔다 주시느라 수고하셨사오며, 또 형님께서 제 얼굴의 풀을 뽑아 주신 은혜도 입었나이다.” 사례를 마치고는 곧 가서 행장을 수습하고 말의 등에 안장을 얹고 배를 졸라맸다. 그 말은 그를 보자 허리가 풀리고 발굽이 물러져 벌벌 떨며 서 있지 못하였다. 대개 그 원숭이가 본래 필마온이어서 하늘에서 용마를 기르며 보살피던 자였으므로 얼마간 법도가 있었으니, 그런 까닭에 보통 말은 그를 보면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삼장은 그의 마음씀씀이가 실로 착한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보고 참으로 사문 가운데 사람다운 체모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내 불렀다. “제자야, 네 성이 무엇이냐?” 원숭이 왕이 말했다. “저는 성이 손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내가 너에게 법명을 하나 지어 주면 부르기에 좋겠구나.” 원숭이 왕이 말했다. “사부님의 두터운 뜻을 수고롭게 하지 마시옵소서. 저에게 본래 법명이 있어 손오공이라 하나이다.” 삼장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것도 바로 우리 종파에 꼭 맞는구나. 네 모습을 보니 꼭 그 작은 두타 같은데, 내가 다시 너에게 별명을 하나 지어 행자라 부르면 좋겠느냐?” 오공이 말했다. “좋나이다! 좋나이다! 좋나이다!” 이때부터 다시 손행자라 일컬었다. 그 백흠은 손행자가 한마음으로 행장을 수습하여 떠나려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삼장에게 읍하며 말했다. “장로님, 이곳에서 좋은 제자를 얻으셨으니 심히 기쁘옵니다, 심히 기쁘옵니다. 이 사람은 과연 가겠사오니 저는 이만 돌아가겠나이다.” 삼장이 몸을 굽혀 예를 갖추어 사례하며 말했다. “많이 폐를 끼쳤사오니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집에 돌아가시거든 어머님 노부인과 부인께 많이 안부를 전해 주시옵소서. 빈승이 댁에서 많이 폐를 끼쳤사오니 돌아올 때에 찾아뵙고 사례하겠나이다.” 백흠이 답례하니 이에 두 사람은 이렇게 작별하였다. 말하자면, 그 손행자는 삼장을 청하여 말에 오르게 하고 자신은 앞에서 행장을 등에 지고 발가벗은 채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계산을 지났는데, 홀연히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꼬리를 치며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삼장은 말 위에서 마음이 놀랐다. 행자는 길가에서 기뻐하며 말했다. “사부님은 그놈을 두려워 마시옵소서. 그놈은 저에게 옷을 갖다 주는 놈이옵니다.” 행장을 내려놓고 귀 속에서 바늘 하나를 뽑아 바람을 맞으며 한 번 흔들었더니, 원래 사발만 한 굵기의 쇠몽둥이였다. 그가 손에 쥐고 웃으며 말했다. “이 보배야, 오백여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 오늘 꺼내어 옷 한 벌 마련하여 입어 보겠구나.” 그가 걸음을 활짝 벌려 사나운 호랑이를 맞이하며 한마디 외치는 것을 보라. “업보 받을 짐승아! 어디로 가느냐!” 그 호랑이는 몸을 웅크리고 티끌 위에 엎드려 감히 꼼짝도 하지 못하였다. 그가 머리를 향해 몽둥이를 한 번 내리치니, 뇌수가 만 점 복숭아빛으로 튀고 이빨이 몇 알 옥덩이처럼 튀어 나갔다. 그 진현장은 놀라 안장에서 굴러 말에서 떨어져 손가락을 물며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유태보가 지난번에 친 얼룩 호랑이는 그와 반나절이나 싸웠는데, 오늘 손오공은 다투지도 않고 이 호랑이를 한 몽둥이에 산산조각으로 때려 부수니, 바로 ‘강한 가운데 더 강한 이가 있다’는 말이로다!” 행자가 호랑이를 끌고 와 말했다. “사부님, 잠깐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이놈의 옷을 벗겨 입고 걸어가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그놈에게 무슨 옷이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저를 상관 마시옵소서. 제가 절로 처리할 도리가 있나이다.”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잔털을 한 가닥 뽑아 입에 대고 신선의 기운을 한 번 불며 외쳤다. “변하여라!” 그러자 소귀칼 한 자루로 변하였는데, 그 호랑이의 배 위에서 가죽을 갈라 열고 아래로 벗겨 통째로 한 장의 가죽을 벗겨 냈다. 발톱을 잘라 버리고 머리를 베어 내어 네모반듯한 호랑이 가죽 한 폭을 베어 들고 일어나 한번 재어 보며 말했다. “너무 넓구나. 한 폭으로 두 폭을 만들 수 있겠다.” 칼을 가져다 다시 두 폭으로 잘랐다. 한 폭을 걷어 두고 한 폭을 허리에 둘렀으며, 길가에서 칡덩굴 하나를 뜯어 단단히 동여매어 아랫도리를 가리며 말했다. “사부님, 어서 가시옵소서! 어서 가시옵소서! 인가에 이르러 바늘과 실을 좀 빌려 꿰매도 늦지 않겠나이다.” 그가 쇠몽둥이를 한번 비틀어 여전히 바늘처럼 만들어 귀 속에 넣고 행장을 등에 지고 사부님을 청하여 말에 오르게 하였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갔는데, 장로가 말 위에서 물었다. “오공아, 네가 방금 호랑이를 친 쇠몽둥이는 어찌하여 보이지 않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은 아시지 못하나이다. 제 이 몽둥이는 본래 동쪽 큰 바다 용궁에서 얻은 것으로 ‘천하를 진압하는 신진한 쇠’라 부르고, 또 ‘여의금고봉’이라 부르나이다. 그해 천궁을 크게 어지럽혔을 때 이놈의 도움이 몹시 컸나이다. 몸에 지니고 다니며 뜻대로 변화하여 크게 하려면 커지고 작게 하려면 작아지나이다. 방금 수놓는 바늘 모양으로 변하여 귀 속에 넣어 두었사오니 쓸 때에라야 꺼내나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은근히 기뻐하였다. 또 물었다. “아까 그 호랑이가 너를 보고는 어찌하여 꼼짝도 하지 않아 네 마음대로 그를 때리게 하였느냐, 어찌 된 일이냐?” 오공이 말했다. “사부님께 거짓말하지 않사오면, 호랑이 하나뿐이 아니라 용 한 마리라도 나를 보면 감히 무례하지 못하나이다. 이 늙은 손은 자못 용을 항복시키고 호랑이를 굴복시키는 수단과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젓는 신통이 있으며, 얼굴빛을 보고 속을 분별하며 소리를 듣고 이치를 살피나이다. 크게 하면 우주를 헤아리고 작게 하면 털끝보다 작아지며, 변화에 끝이 없고 숨고 드러남을 헤아릴 수 없나이다. 이 호랑이 가죽을 벗기는 것이 무슨 희한한 일이겠나이까? 어렵고 의심스러운 곳에 이르면 제 재주를 펼쳐 보이겠나이다!” 삼장이 이 말을 듣고 더욱 마음을 놓아 근심이 없어져 말을 채찍질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걸어가며 이야기하는 사이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다만 보니 이러하였다. 타오르는 듯한 저녁 햇살이 비껴 되비치고, 하늘 끝 바다 끝으로 돌아가는 구름이 깃드네. 천 산의 새와 참새 소리 자주 잦아들어, 깃들 곳을 찾아 숲으로 떼 지어 드네. 들짐승들은 짝지어 쌍쌍이 굴로 돌아가 무리 지어 모이네. 한 줄기 초승달이 황혼을 가르고, 만 점의 밝은 별이 빛을 둥글게 두르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걸음을 좀 재촉하시옵소서. 날이 저물었나이다. 저쪽에 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인가의 장원일 것이옵니다. 우리 일찍 가서 하룻밤 묵어갑시다.” 삼장이 과연 말을 채찍질하여 곧장 인가로 달려갔다. 장원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다. 행자는 행장을 내팽개치고 앞으로 나아가 외쳤다. “문을 여시오! 문을 여시오!” 그 안에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와 휙 문을 열었는데, 행자의 이렇게 흉악한 모습에 허리에 호랑이 가죽 한 폭을 두른 것이 마치 뇌공의 모양 같음을 보고는 놀라 다리가 풀리고 몸이 저려 넋 나간 소리를 질렀다. “귀신이 왔다! 귀신이 왔다!” 삼장이 앞으로 나아가 붙들며 말했다. “노시주님, 두려워 마시옵소서. 이는 저 빈승의 제자이지 귀신이 아니옵니다.” 노인이 머리를 들어 삼장의 용모가 맑고 기이함을 보고서야 비로소 발을 멈추고 서서 물었다. “그대는 어느 절에서 온 중이며, 이 흉악한 놈을 데리고 내 집 문에 들어오는가?” 삼장이 말했다. “저 빈승은 당나라에서 온 자로 서천으로 가서 부처께 절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이옵니다. 마침 이곳을 지나는데 날이 저물어 특별히 댁에 찾아와 하룻밤 묵어 가고자 하오니, 내일 아침 날이 밝기 전에 떠나겠나이다. 부디 편의를 좀 베풀어 주시옵소서.” 노인이 말했다. “그대는 비록 당나라 사람이라 하나 저 흉악한 놈은 당나라 사람이 아니지.” 오공이 소리를 높여 외쳤다. “이 늙은이는 눈치가 전혀 없구나! 당나라 사람은 내 사부님이요, 나는 그의 제자다! 나는 무슨 ‘엿사람’이나 ‘꿀사람’이 아니라 제천대성이다. 너희 이곳 인가에도 나를 아는 이가 있을 것이요, 나도 너를 본 적이 있다.” 그 노인이 말했다. “네가 어디서 나를 보았다는 말인가?” 오공이 말했다. “네가 어릴 적에 내 앞에서 나뭇가지를 긁어 모으지 않았더냐? 내 얼굴에서 나물을 캐지 않았더냐?” 노인이 말했다. “이놈이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네가 어디 사는데 내가 어디 산단 말인가? 내가 네 앞에서 나뭇가지를 긁고 나물을 캤단 말이냐!” 오공이 말했다. “내 자식이 함부로 지껄이기는!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본래 이 양계산 돌함 속의 대성이다. 다시 한번 잘 알아보아라.” 노인이 그제야 문득 깨달아 말했다. “네가 자못 그와 비슷하구나. 그런데 너는 어떻게 빠져나왔느냐?” 오공이 보살이 착한 일을 권하여 나로 하여금 당삼장을 기다려 쪽지를 떼고 몸을 벗어나게 한 일을 그 노인에게 자세히 한 차례 이야기하였다. 노인이 그제야 엎드려 절하고 당삼장을 안으로 청하여 들이고 이내 늙은 아내와 아들딸을 불러 모두 나와 서로 만나게 하고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사람마다 기뻐하였다. 또 차를 내오게 하였다. 차를 마신 뒤 오공에게 물었다. “대성이여, 그대도 나이가 있으신가?” 오공이 말했다. “네가 올해 몇 살이냐?” 노인이 말했다. “저는 헛되이 백삼십 세를 살았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네 증손의 증손쯤 되겠구나! 이 몸을 낳은 나이가 언제였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하나, 다만 이 산기슭에 있은 지가 이미 오백여 년이 넘었다.” 노인이 말했다. “있소, 있소. 제가 일찍이 할아버지 어른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산은 하늘에서 내려와 신통한 원숭이 하나를 눌러 두었다 하였소. 바로 지금에 이르러 그대가 몸을 벗어났으니, 제가 어릴 적에 그대를 보았을 때는 그대 머리 위에 풀이 있고 얼굴에 진흙이 있어 오히려 두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얼굴에 진흙이 없고 머리 위에 풀이 없으며 다만 좀 여윈 듯하고 허리에는 또 커다란 호랑이 가죽을 둘렀으니, 귀신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온 집안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모두 껄껄 크게 웃었다. 이 노인은 자못 어질어 이내 재를 차리게 하였다. 공양을 마친 뒤 오공이 말했다. “댁의 성은 무엇이오?” 노인이 말했다. “우리 집안은 성이 진이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이내 내려와 두 손을 마주 잡고 말했다. “노시주님, 저 빈승과 같은 성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당나라 성이신데 어찌하여 이 사람과 같은 성이 되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나의 속가도 성이 진이니, 바로 당나라 해주 홍농군 취현장 사람이로다. 나의 법명은 진현장이라 한다. 다만 우리 대당 태종 황제께서 나를 어제 삼장으로 봉하시고 당을 성으로 삼으라 하셨으므로 당승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그 노인은 같은 성이라는 말을 듣고 또 몹시 기뻐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늙은 진씨, 어차피 댁에 폐를 끼쳤으니, 나는 오백여 년 동안 목욕을 하지 못했소. 가서 물을 좀 끓여 우리 스승과 제자를 씻겨 주시오. 떠날 때에 한꺼번에 사례하겠소.” 그 노인이 이내 물을 끓이고 대야를 가져오게 하고 등불을 밝혔다. 스승과 제자가 목욕을 마치고 등불 앞에 앉았다. 행자가 말했다. “늙은 진씨, 또 한 가지 일이 있어 그대에게 폐를 끼치겠소. 바늘과 실을 좀 빌려 주시오.” 그 노인이 말했다. “있소, 있소, 있소.” 이내 아낙에게 명하여 바늘과 실을 가져오게 하여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는 또 눈치가 빨랐다. 사부님이 목욕하며 흰 베로 된 짧고 작은 직철 한 벌을 벗어 아직 입지 않은 것을 보고는 곧 끌어다 몸에 걸쳤으며, 그 호랑이 가죽을 벗어 한곳에 이어 붙여 말얼굴 모양의 접힌 주름을 만들어 허리에 둘렀고 칡줄로 동여매고 사부님 앞에 이르러 말했다. “이 늙은 손이 오늘 이렇게 차려입었으니 어제에 비하여 어떠하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좋구나! 좋구나! 좋구나! 이렇게 해야 비로소 행자 같구나.”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네가 낡고 헐었다고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 직철을 그냥 입어라.” 오공이 읍하며 말했다. “하사해 주심을 받드나이다! 받드나이다!” 그가 또 가서 여물을 찾아 말을 먹였다. 이때에 이르러 각자 할 일을 마치고 스승과 제자와 그 노인도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오공이 일어나 사부님께 길을 떠나시기를 청하였다. 삼장이 옷을 입고 행자에게 침구와 행장을 수습하게 하였다. 막 작별을 고하려는데 그 노인이 일찍이 세숫물과 또 재를 갖추어 내왔다. 공양을 마치고서야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삼장이 말에 올랐고 행자가 길을 인도하였다. 어느덧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밤에는 자고 새벽에는 길을 가는데, 또 초겨울 철을 만났다. 다만 보니 이러하였다. 서릿발이 붉은 잎을 새겨 천 숲이 여위었는데, 고개 위 몇 그루 소나무와 잣나무만 빼어나도다. 피지 않은 매화 꽃술은 그윽한 향기를 흩뿌리고, 따뜻한 낮은 짧고 작은 봄 기운이 감도는데, 국화는 시들고 연꽃은 다하여 산다화만 무성하도다. 찬 다리 옛 나무에서는 가지가 다투어 얽히고, 굽은 시내에선 졸졸 샘물이 흐르며, 엷은 구름은 눈을 뿌릴 듯 하늘에 가득 떠 있도다. 북풍이 갑자기 불어 소매를 잡아 끌고, 저녁으로 갈수록 찬 위세를 사람이 어찌 견디겠는가? 스승과 제자가 한참을 걸어가는데, 홀연히 길가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더니 여섯 사람이 뛰어나왔다. 저마다 긴 창과 짧은 칼, 날카로운 칼날과 강한 활을 들고 크게 한마디 외쳤다. “이 중놈아! 어디로 가느냐! 어서 말과 행장을 남겨 두고 네 목숨만 살려 보내 주겠다!” 삼장은 놀라 넋이 날아가고 혼이 흩어져 말에서 떨어져 말도 못 하였다. 행자가 손으로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사부님은 마음 놓으시옵소서. 조금도 탈이 없나이다. 이놈들은 모두 저희에게 옷과 노잣돈을 갖다 주는 놈들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네가 어쩌면 좀 귀가 먹었느냐? 그놈들은 우리더러 말과 행장을 남기라 하였는데, 네가 도리어 그에게 무슨 옷과 노잣돈을 달라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옷과 행장과 말을 잘 지키고 계시옵소서. 이 늙은 손이 그와 한바탕 겨루어 보고 어떠한지 보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솜씨 좋은 자도 두 주먹을 당하지 못하고 두 주먹은 네 손을 당하지 못한다 하였는데, 저쪽에 여섯 장정이 있고 네게는 이렇게 작고 조그마한 몸 하나뿐이니, 어찌 감히 그와 겨루려 하느냐?” 행자는 본래 담량이 커서 어찌 나누어 설명할 틈이 있겠는가. 앞으로 나아가 두 팔을 가슴 앞에 엇걸고 그 여섯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말했다. “여러분은 무슨 까닭으로 저 빈승의 갈 길을 막으시는 것이오?” 그 사람들이 말했다. “우리는 길을 끊고 다니는 대왕이며 착한 마음을 베푸는 산지기다. 큰 이름이 오래 퍼졌으니 너는 짐작도 못할 것이다. 어서 물건을 남겨 두고 너를 보내 주겠으니, 만일 ‘아니’라는 반 마디라도 한다면 네 몸을 부수고 뼈를 가루로 만들어 주겠다!” 행자가 말했다. “나도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대왕이며 여러 해 묵은 산지기인데, 여러분에게 무슨 큰 이름이 있는지는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 그 사람들이 말했다. “네가 모르니 내가 말하여 들려주마. 하나는 안간희라 하고, 하나는 이청노라 하며, 하나는 비후애라 하고, 하나는 설상사라 하며, 하나는 의견욕이라 하고, 하나는 신본우라 한다.” 오공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여섯 마리의 좀도둑이었구나! 너희는 나 이 출가한 사람이 너희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길을 막으러 왔구나. 그 강탈한 진귀한 보물을 꺼내어 놓아라. 내가 너희와 칠 분으로 똑같이 나누어 주고 용서해 주겠다!” 그 도적들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는 자는 기뻐하고 성내는 자는 성내며,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고 생각하는 자는 생각하며, 욕심내는 자는 욕심내고 근심하는 자는 근심하였다. 그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 마구 떠들며 말했다. “이 중놈이 무례하구나! 네 물건은 아예 하나도 없으면서 도리어 와서 우리에게 물건을 나누자 하는구나!” 그들이 창을 휘두르고 칼을 춤추며 떼를 지어 달려들어 행자를 향해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둥둥 탕탕 소리를 내며 칠팔십 번을 내리쳤다. 오공은 가운데 우뚝 서서 다만 모르는 척하였다. 그 도적들이 말했다. “좋은 중이로다! 참으로 머리가 단단하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럭저럭 견딜 만하도다! 너희도 때리느라 팔이 시렸을 터이니 이제는 이 늙은 손이 바늘 하나를 꺼내 놀아 보겠다.” 그 도적들이 말했다. “이 중은 침 놓는 의원이 변한 놈이로구나. 우리에게는 병도 없는데 무슨 침을 놓는다는 말이냐!” 행자가 손을 뻗어 귀 속에서 수놓는 바늘 하나를 뽑아 바람을 맞아 한 번 흔들었더니, 바로 쇠몽둥이 하나로 사발만 한 굵기였다. 손에 쥐고 말했다. “가면 안 된다! 이 늙은 손도 몽둥이를 한 번 쳐서 솜씨를 시험해 보겠다!” 이 여섯 도적은 놀라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으나, 그가 걸음을 활짝 벌려 빙 둘러 따라가서는 하나하나 모두 때려 죽였다. 그들의 옷을 벗기고 그들의 노잣돈을 빼앗아 싱글벙글 걸어와 말했다. “사부님은 가시옵소서. 그 도적은 이미 이 늙은 손이 모두 쓸어 버렸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네가 몹시 화를 일으켰구나! 그들이 비록 길을 끊는 강도라 하나 관가에 잡아 보내더라도 사형에 이를 죄는 아닐 터인데, 네가 비록 수단이 있다 한들 그저 물리쳐 보내기만 하면 그만이지 어찌 모두 때려 죽였느냐? 이것은 까닭 없이 사람의 목숨을 상하게 한 것이니 어찌 중이 될 수 있겠느냐? 출가한 사람은 ‘땅을 쓸다가도 개미의 목숨 상할까 두려워하고, 부나비를 아껴 등에 비단을 씌운다’ 하였거늘, 네가 어찌 흑백을 가리지 않고 한 차례에 때려 죽이느냐? 자비롭고 착한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구나! 아직 산속이라 아무도 살펴보는 이가 없지만, 만일 성시에 이르러 혹 사람이 잠시 너를 건드리면 너도 또 흉악한 짓을 하여 몽둥이를 잡고 마구 사람을 때려 상하게 할 것이니, 나는 무고한 사람으로 남아 있겠으며 어찌 몸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 오공이 말했다. “사부님, 제가 그놈들을 때려 죽이지 않았다면 그놈들이 도리어 사부님을 때려 죽이려 하였을 것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나 이 출가한 사람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결코 감히 흉악한 짓을 하지 않겠다. 내가 죽는다 한들 이 몸 하나뿐이거니와 네가 그 여섯 사람을 죽였으니 어찌 이치로 따져 말할 수 있겠느냐? 이 일을 만일 관가에 고발한다면 네 아비가 벼슬을 한다 한들 또한 변명하지 못할 것이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 거짓말하지 않사오면, 이 늙은 손은 오백 년 전에 화과산에 웅거하여 왕이라 일컫고 괴물 노릇을 하던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때려 죽였는지 모르나이다. 만일 사부님 말씀대로라면 저는 제천대성이 되지 못하였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다만 네가 거두어 주고 관리하는 이가 없어 인간 세상에서 포악하게 굴고 하늘을 업신여기고 윗사람을 속였기 때문에 이 오백 년 전의 재난을 받은 것이다. 이제 이미 사문에 들었으니 만일 다시 그때처럼 흉악한 짓을 하고 한결같이 생명을 상하게 한다면 서천에 가지도 못하고 중도 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납구나! 너무 사납구나!” 원래 이 원숭이는 한평생 남의 기운을 받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는 삼장이 자꾸만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고 마음속 불을 참지 못하여 말했다. “사부님이 이미 그렇다면 저더러 중도 못 되고 서천에도 못 간다 하시니,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나를 괴롭힐 필요 없이 나는 그냥 돌아가겠나이다!” 그 삼장은 미처 대답도 하지 못하였는데, 그가 성질을 한 번 부려 몸을 솟구치며 한마디 하였다. “이 늙은 손 간다!” 삼장이 급히 머리를 들어 보니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만 휙 하는 소리만 들릴 뿐 동쪽으로 가 버렸다. 그 장로만 외롭고 쓸쓸하게 남아 머리를 끄덕이며 스스로 한숨 쉬고 슬퍼하고 원망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말했다. “이놈! 이렇게 가르침을 받지 않다니! 내가 다만 몇 마디 하였을 뿐인데 어찌하여 그림자도 없이 그냥 돌아가 버리는가? — 그만두자! 그만두자! 그만두자! 또한 내 팔자에 제자를 거두어 식구를 늘릴 인연이 없었던 것이로다! 이제 그를 찾으려 해도 찾을 곳이 없고 부르려 해도 대답이 없으니, 가거나 오거나 마음대로 하여라! 가거나 오거나 마음대로 하여라!” 바로 몸을 버리고 목숨을 다해 서쪽으로 향해 가되,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뜻을 세우라는 것이로다. 그 장로는 어쩔 수 없이 행장을 수습하여 말에 얹고 말은 타지도 않은 채 한 손으로 석장을 짚고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처량하고 쓸쓸히 서쪽으로 나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산길 앞에 나이 많은 노모 하나가 솜옷 한 벌을 받들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솜옷 위에는 꽃모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삼장은 그가 아주 가까이 이르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말을 끌어 오른쪽에 서서 길을 비켜 주었다. 그 노모가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온 장로이기에 이렇게 외롭고 쓸쓸히 홀로 이곳을 가는가?” 삼장이 말했다. “제자는 동토 대당에서 성지를 받들어 서천으로 가서 살아 계신 부처를 뵙고 참경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옵니다.” 노모가 말했다. “서방의 부처는 큰 뇌음사 천축국 경계에 있으니, 이곳에서 가려면 십만 팔천 리 길이 된다. 그대가 이렇게 홀몸에 말 한 마리로 벗도 없고 제자도 없으니 어찌 가겠는가!” 삼장이 말했다. “제자가 며칠 전에 제자 하나를 얻었사온데 성질이 사납고 흉악하여 제가 몇 마디를 하였더니 가르침을 받지 않고 아득히 가 버렸나이다.” 노모가 말했다. “나에게 이 솜베 직철 한 벌과 금을 박은 꽃모자 하나가 있다. 본래 내 아들이 쓰던 것이다. 그가 다만 사흘 동안 중이 되었는데 불행히 명이 짧아 죽었다. 내가 그제야 그의 절에 가서 한바탕 울고 그의 사부에게 하직하고 이 두 벌의 옷과 모자를 가져와 기념으로 삼았도다. 장로여, 그대에게 이미 제자가 있다니 내가 이 옷과 모자를 그대에게 주겠다.” 삼장이 말했다. “노모님의 후한 하사는 받드오나 다만 제 제자가 이미 가 버렸으니 감히 받지 못하겠나이다.” 노모가 말했다. “그가 어디로 갔느냐?” 삼장이 말했다. “제가 휙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는 동쪽으로 갔나이다.” 노모가 말했다.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이 바로 우리 집이니 아무래도 우리 집으로 갔을 것이다. 내게 또 주문 한 편이 있으니 ‘정심진언’이라 하고, 또 ‘긴고아주’라 한다. 너는 남몰래 외워 익혀 마음속 깊이 새겨 두고 다시는 한 사람에게도 누설하지 말라. 내가 가서 그를 따라잡아 다시 와서 그대를 따르게 하고, 그대는 이 옷과 모자를 그에게 입히고 씌우라. 그가 만일 네 부림을 따르지 않거든 네가 남몰래 이 주문을 외우면 그는 다시는 감히 흉악한 짓을 하지 못하고 다시는 감히 가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숙여 절하며 사례하였다. 그 노모는 한 줄기 황금빛으로 변하여 동쪽으로 가 버렸다. 삼장은 그가 관음보살이 이 진언을 전해 준 것임을 마음으로 짐작하고 황급히 흙을 모아 향을 사르고 동쪽을 향해 간절히 예배하였다. 절을 마치고 옷과 모자를 거두어 보따리 속에 감추어 두었다. 그리고 길가에 앉아 그 《정심진언》을 외우고 익혔다. 왔다 갔다 몇 번을 외워 아주 익숙하게 외우고 마음속 깊이 새겨 두었으나 이는 이제 말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그 오공은 사부와 작별하고 한 번의 근두운으로 곧장 동쪽 큰 바다로 돌아갔다. 구름머리를 누르고 물길을 갈라 곧장 수정궁 앞에 이르렀다. 일찍이 용왕이 놀라 나와 맞이하였다. 궁 안으로 맞아들여 앉고 예를 마치자 용왕이 말했다. “근래 대성의 재난이 다하였다 하니 축하드리지 못하였소! 아무래도 다시 선산을 정비하고 옛 동굴로 돌아가시리라 여겼소이다.” 오공이 말했다. “나도 그런 마음이 있었으나 다만 또 중이 되었소.” 용왕이 말했다. “어찌하여 중이 되었소?” 행자가 말했다. “내가 남해 보살의 착한 권유를 입어 정도를 이루라 하시기에 동토의 당승을 따라 서방으로 가서 부처께 절하고 사문에 귀의하였으며 또 행자라 불리게 되었소.” 용왕이 말했다. “이러하니 참으로 축하할 만하오! 축하할 만하오! 이것이야말로 사악함을 고쳐 바른 길로 돌아가고 착한 마음을 징계하여 세운 것이라 하겠소. 이미 그러한데 어찌하여 서쪽으로 가지 않고 다시 동쪽으로 돌아왔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당승이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오. 좀도둑 몇 놈이 길을 끊기에 내가 그놈들을 때려 죽였더니 당승이 자꾸만 잔소리를 하며 나의 잘못을 얼마나 많이 말하던지. 생각해 보시오, 이 늙은 손이 어찌 답답한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오? 그래서 내가 그를 버리고 본산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므로 먼저 와서 그대를 한번 보고 차 한 잔을 청하려 한 것이오.” 용왕이 말했다. “와 주시니 영광이오! 영광이오!” 그때 용자와 용손이 곧 향기로운 차를 받들어 올렸다. 차를 마신 뒤 행자가 머리를 돌려 보니 뒷벽에 ‘이교진리’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이것은 무슨 광경이오?” 용왕이 말했다. “이 일이 대성보다 뒤에 있었으므로 대성은 알지 못하실 것이오. 이것을 ‘이교삼진리’라 하오.” 행자가 말했다. “어찌 ‘삼진리’라 하오?” 용왕이 말했다. “이 신선은 바로 황석공이오. 이 아이는 바로 한나라 때의 장량이오. 석공이 이교 위에 앉아 있다가 홀연히 신발을 다리 아래에 떨어뜨려 이내 장량을 불러 가져오게 하였소. 이 아이가 곧 달려가 가져와 무릎을 꿇고 앞에 바쳤소. 이렇게 세 번을 하였는데도 장량은 털끝만큼도 교만하고 게으른 마음이 없었으므로 석공이 마침내 그의 부지런하고 삼감을 사랑하여 밤에 하늘의 글을 전해 주고 한나라를 돕게 하였소. 훗날 과연 장막 안에서 셈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부를 결정하였소. 천하가 태평해진 뒤에는 벼슬을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 적송자를 따라 노닐며 신선의 도를 깨달아 이루었소. 대성이여, 그대가 만일 당승을 보호하지 않고 부지런히 애쓰지 않으며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끝내는 요사스러운 신선일 뿐이니 정도를 이루기를 바라지 마시오.” 오공이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신음하며 말이 없었다. 용왕이 말했다. “대성은 스스로 판단하시오. 편안함을 도모하다가 앞길을 그르치지 마시오.” 오공이 말했다. “말 많지 마시오. 이 늙은 손이 그냥 가서 그를 보호하겠소.” 용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러하시다면 감히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하겠으니 대성께서는 아침 일찍 자비를 베푸시어 사부와 너무 오래 소원해지지 마시오.” 행자가 그가 재촉하여 가기를 청하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솟구쳐 바다 밖으로 나와 구름을 타고 용왕과 작별하였다. 바로 가는데 남해 보살을 만났다. 보살이 말했다. “손오공아, 네가 어찌하여 가르침을 받지 않고 당승을 보호하지 않으며 이곳에서 무얼 하는가?” 행자는 놀라 구름 끝에서 예를 갖추며 말했다. “지난번 보살님의 좋은 말씀을 입어 과연 당나라 중이 이르러 누름쪽지를 떼고 제 목숨을 구해 주셨으므로 그를 따라 제자가 되었나이다. 그런데 그가 저의 흉악함을 괴이하게 여기기에 제가 그를 한 번 피해 온 것뿐이요 지금 곧 가서 그를 보호하려 하였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일찍 가라. 생각을 그르치지 말라.” 말을 마치자 각자 돌아갔다. 이 행자는 잠깐 사이에 당승이 길가에 답답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사부님! 어찌하여 길을 가지 않으시고 아직도 이곳에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삼장이 머리를 들어 말했다. “너는 어디를 갔다 왔느냐? 나를 가려 해도 감히 가지 못하고 움직이려 해도 감히 움직이지 못하여 이곳에서 그저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저는 동쪽 큰 바다 늙은 용왕의 집에 가서 차를 좀 마시고 왔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출가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 네가 나를 떠난 지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찌 용왕의 집에 가서 차를 마셨다 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 거짓말하지 않사오면, 저는 근두운을 타는 법을 알아 한 번 근두에 십만 팔천 리 길이므로 곧 가고 곧 온 것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내가 말을 조금 무겁게 하였더니 네가 나를 원망하여 성질을 부려 나를 버리고 갔다. 너처럼 본사가 있는 자는 차를 얻어 마시거니와 나처럼 갈 수 없는 자는 이곳에서 그저 굶주림을 참고 있는데 너도 마음이 편치 않구나!”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배고프시면 제가 가서 공양을 좀 빌어 오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공양을 빌리지 마라. 내 보따리 속에 아직 마른 양식이 조금 있으니, 그것은 유태보의 어머니가 준 것이다. 네가 가서 발우를 가져다 물을 좀 구해 오너라. 내가 좀 먹고 길을 가겠다.” 행자가 가서 보따리를 풀었는데, 그 보따리 속에서 거친 밀가루로 만든 구운 떡 몇 개를 보고 꺼내어 사부님께 건네주었다. 또 번들번들 윤이 나는 솜베 직철 한 벌과 금을 박은 꽃모자 하나를 보고 행자가 말했다. “이 옷과 모자는 동토에서 가져오신 것이옵니까?” 삼장이 그저 흘려 대답하였다. “내가 어릴 적에 입고 쓰던 것이다. 이 모자를 쓰면 경을 가르치지 않아도 곧 경을 외우게 되고, 이 옷을 입으면 예를 익히지 않아도 곧 예를 갖추게 된다.” 행자가 말했다. “좋은 사부님, 저에게 주어 입고 쓰게 하시옵소서.” 삼장이 말했다. “다만 길고 짧음이 맞지 않을까 두렵구나. 네가 입을 수 있다면 그냥 입어라.” 행자가 이에 낡은 흰 베 직철을 벗어 버리고 솜베 직철을 입었는데, 그것도 몸에 맞추어 지른 것과 같았고, 또 모자를 머리에 썼다. 삼장이 그가 모자를 쓴 것을 보고는 마른 양식도 먹지 않고 남몰래 그 《긴고아주》를 한 번 외웠다. 행자가 외쳤다. “머리가 아프나이다! 머리가 아프나이다!” 그 사부가 그치지 않고 또 몇 번을 외우니 그 행자는 아파서 뒹굴며 금을 박은 꽃모자를 움켜쥐어 찢었다. 삼장은 또 금고가 끊어질까 두려워 입을 다물고 외우지 않았다. 외우지 않자 그는 곧 아프지 않았다. 손을 뻗어 머리 위를 만져 보니 한 줄기 금실 같은 모양으로 단단히 조여져 있어 빼낼 수도 없고 뜯어 끊을 수도 없이 이미 뿌리를 내린 상태였다. 그가 귀 속에서 바늘을 꺼내 그 고리 속에 찔러 넣고 밖으로 마구 긁어 대었다. 삼장은 또 그가 긁어 끊을까 두려워 입을 열어 다시 외우니 그가 여전히 아파하며 아픔에 곤두박질하고 재주넘기를 하며 귀가 붉어지고 얼굴이 벌게지고 눈이 부풀고 몸이 저렸다. 그 사부가 이런 모습을 보고 또 차마 보다 못하고 아까운 마음이 들어 다시 입을 다물었더니 그의 머리가 또 아프지 않았다. 행자가 말했다. “이 내 머리는 원래 사부님이 나를 저주한 탓이로구나.” 삼장이 말했다. “내가 외운 것은 《긴고아경》인데 어찌 너를 저주하였다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다시 한번 외워 보시옵소서.” 삼장이 정말로 또 외웠다. 행자가 정말로 또 아파하며 다만 외쳤다. “외우지 마시옵소서! 외우지 마시옵소서! 외우기만 하면 제가 아프니 이는 어찌 된 일이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네가 이제 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가르침을 들었나이다!” “네가 다시 무례하지 않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감히 그러지 못하겠나이다!” 그가 입으로는 비록 대답하였으나 마음속에는 아직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었으니, 그 바늘을 한 번 흔들어 사발만 한 굵기로 만들고 당승을 향해 곧 손을 쓰려 하였다. 장로가 놀라 입을 열어 다시 두세 번을 외우니 이 원숭이는 땅에 거꾸러져 쇠몽둥이를 놓치고 손을 들지도 못한 채 다만 외쳤다. “사부님! 제가 알았나이다! 다시는 외우지 마시옵소서! 다시는 외우지 마시옵소서!” 삼장이 말했다. “네가 어찌하여 마음을 속이고 감히 나를 때리려 하였느냐?” 행자가 말했다. “제가 감히 때리려 한 것이 아니옵니다. 제가 사부님께 묻겠사오니 이 법은 누가 사부님께 가르쳐 주셨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아까 한 노모가 전수해 주었다.” 행자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이 노모는 틀림없이 그 관세음이옵니다! 그가 어찌하여 저를 그렇게 괴롭히는 것이옵니까! 제가 남해에 올라가 그를 때려 주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이 법이 그가 나에게 준 것이라면 그는 반드시 먼저 알고 있을 것이다. 네가 만일 그를 찾아가면 그가 외울 때에 네가 죽지 않겠느냐?” 행자는 그 말이 이치에 맞음을 보고 정말로 감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돌이켜 무릎을 꿇고 애걸하며 말했다. “사부님! 이것은 그가 저를 제어하는 법으로 사부님을 따라 서쪽으로 가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저도 가서 그를 건드리지 않겠으니 사부님도 흔한 말로 여기지 마시고 그저 외우시옵소서. 제가 사부님을 보호하기를 원하오니 다시는 물러서거나 뉘우치는 마음이 없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이러하니 나를 모셔 말에 오르게 하여라.” 그 행자가 이에야 마음을 굳혀 정신을 떨쳐 솜베 직철을 한 번 여미고 말의 배를 졸라매고 행장을 수습하여 서쪽으로 나아갔다. 결국 이렇게 떠난 뒤에 또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5회 사반산제신암우(蛇盤山諸神暗佑) · 응수간의마수강(鷹愁澗意馬收韁) 말하자면, 손행자가 삼장법사를 곁에서 모시고 서쪽으로 나아간 지 여러 날이 되었는데, 마침 섣달의 찬 날씨라 북풍이 매섭게 살을 에고 얼음 길은 반들반들 미끄러웠다. 가는 길은 깎아진 절벽의 험하고 굽이진 길이요, 겹겹이 쌓인 고개와 층층이 이어진 험준한 산이었다. 삼장이 말 위에서 멀리 콰르르콰르르 물소리가 귀를 울리는 것을 듣고 머리를 돌려 불렀다. “오공아, 어느 곳에서 저 물소리가 나느냐?” 행자가 말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곳을 사반산 응수간이라 부르옵기에, 틀림없이 저 개울 속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이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이 개울 가에 이르렀고, 삼장은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살펴보았다. 과연 그 모습은 실로 이러하였다. 졸졸 흐르는 찬 줄기 구름을 뚫고 지나가고, 맑고 깊은 푸른 물결 해를 비추어 붉구나. 소리는 밤비를 흔들어 그윽한 골짜기에 울리고, 빛깔은 아침 노을을 뿜어 허공을 눈부시게 하는도다. 천 길 물결 날아오르며 부서진 옥 뿜고, 한 웅덩이 물소리 맑은 바람에 으르렁대는구나. 흘러 만 이랑의 안개 낀 물결로 사라지니, 갈매기와 백로는 서로 잊은 채 낚시꾼을 만나지 못하고 물에 잠기는도다. 사부와 제자 두 사람이 막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개울 한가운데서 꽝 소리가 나더니 용 한 마리 솟구쳐 나와 물결 밀고 파도 뒤집으며 벼랑을 뛰쳐나와 장로를 덮쳤다. 행자는 황급히 행장을 버리고 스승을 안아 말에서 내려놓고는 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그 용은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그의 백마를 안장과 고삐까지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리고는, 도로 물속에 엎드려 자취를 감추었다. 행자는 스승을 높은 언덕에 모셔다 앉히고 돌아와 말을 끌고 짐을 지려 하였으나, 남은 것은 행장 한 짐뿐이요 말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행장 짐을 스승 앞에 놓으며 말했다. “사부님, 저 악룡은 종적을 감추어 보이지도 않사옵고, 다만 제 말을 놀라 달아나게 하였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그러면 어떻게 그 말을 찾을 수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시옵소서, 염려 마시옵소서. 제가 가서 알아보고 오겠나이다.” 그는 휘파람을 길게 불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화안금정으로 손을 이마에 얹어 차양을 만들고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말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구름을 내려놓고 돌아와 아뢰었다. “사부님, 우리 말은 틀림없이 저 용에게 잡아먹혔사옵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다시는 보이지 않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그놈의 입이 얼마나 크기에 저렇게 큰 말을 안장과 고삐까지 모두 삼켰겠느냐? 필경 놀라 고삐가 풀려 저 산골로 달아났을 테니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라.”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제 재주를 모르시는구려. 제 두 눈은 대낮에도 천 리 길의 길흉을 보옵니다. 천 리 안의 잠자리 날개짓도 보거늘, 저 큰 말을 못 보았겠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정말로 그놈이 삼켰다면, 내가 어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느냐! 가련하구나! 이 험하고 먼 천산만수를 어찌 걸어서 갈 수 있단 말이냐!” 이런 말을 하며 그는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행자는 그가 서럽게 우는 것을 보고 성급한 성질을 참지 못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이리 겁 많고 무른 모습을 보이지 마시옵소서! 그저 앉아만 계시옵소서!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가서 그놈을 찾아내어 우리 말을 도로 내놓게 하면 그만이옵니다!” 그러나 삼장은 그의 소매를 붙잡으며 말했다. “제자야, 네가 어디로 그놈을 찾으러 가겠느냐? 그놈이 몰래 숨어 있다가 갑자기 뛰쳐나와 나까지 해치지나 않을까 두렵구나. 그때 가서 사람과 말이 둘 다 죽으면 어찌 좋단 말이냐!” 행자는 이 말을 듣고 더욱 성이 머리끝까지 나서, 우레 같은 소리로 고함쳤다. “사부님께서는 참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시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신다니깐요! 말을 타고는 싶으시고, 또 저를 보내지는 않으시니, 이렇게 행장만 지켜보며 늙도록 앉아 계실 셈이옵니까?” 그가 이를 갈며 소리를 지르고 좀처럼 성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데, 그때 공중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대성은 노하지 마시옵고, 당나라 어제께서는 우시 마시옵소서. 저희는 관음보살의 분부를 받아 온 일행의 신들이옵니다. 특별히 경을 구하러 가는 이를 몰래 보호하러 왔나이다.” 그 장로는 이 말을 듣고 황급히 몸을 굽혀 절을 올렸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몇 명이냐? 이름을 대어 보아라, 내가 점호를 할 수 있도록.” 뭇 신이 말했다. “저희는 육정육갑과 오방게제와 사치공조와 열여덟 분의 호교가람이옵니다. 저희는 각각 차례로 돌아가며 당번을 서고 분부를 기다리고 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오늘은 먼저 누구부터 시작하느냐?” 뭇 게제가 말했다. “정갑과 공조와 가람은 차례로 당번을 드옵니다. 저희 오방게제는 오직 금두게제가 밤낮으로 사부님의 좌우를 떠나지 않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당번이 아닌 자는 물러가고, 육정 신장과 일치공조와 뭇 게제는 남아서 내 사부님을 지켜 주어라. 내가 저 개울 속의 악룡을 찾아가 말을 도로 내놓게 하겠다.” 뭇 신이 그 명령을 따랐다. 삼장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바위 벼랑 위에 앉아 분부했다. “행자야, 조심하여라.” 행자가 말했다. “마음 푹 놓으시옵소서.” 과연 훌륭한 원숭이 왕이로다. 그는 무명 직포 도포를 단단히 동여매고 호랑이 가죽 치마를 걷어 올리고는, 금고 쇠몽둥이를 굳게 쥐고 곧장 개울과 골짜기로 나아갔다. 반은 구름을 타고 반은 안개에 싸인 채 그 물 위에서 높이 외쳤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아, 내 말을 내놓아라! 내 말을 내놓아라!” 그때 그 용은 삼장의 백마를 먹고 개울 바닥 한가운데 엎드려 신령한 기운을 숨기고 성질을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와서 욕하며 말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가슴속에서 치미는 불길을 참을 수 없어 급히 몸을 솟구쳐 파도를 뒤집고 물결을 헤치며 위로 뛰어올라왔다. “어느 놈이 감히 이곳에서 큰소리치며 나를 모욕하느냐?” 행자는 그를 보자 크게 한 번 호통쳤다. “도망가지 마라! 내 말을 내놓아라!” 그리고는 몽둥이를 휘둘러 머리를 내리쳤다. 그 용은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뻗어 덤벼들었다. 그 두 놈은 개울 가에서 한바탕 겨루었는데, 과연 사나운 영웅들이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용은 날카로운 발톱을 뻗고 원숭이는 금고봉을 들어올린다. 저놈은 수염이 흰 옥실처럼 드리웠고 이놈은 눈이 붉은 금빛 등불처럼 번쩍인다. 저놈은 수염 아래 밝은 구슬이 채색 안개를 뿜어내고 이놈은 손 가운데 쇠몽둥이가 미친 바람을 춤추게 한다. 저놈은 부모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업보의 자식이요 이놈은 하늘의 장수를 속인 요괴로다. 그 두 놈은 모두 재난을 만나 갖은 시달림을 당하였으니, 이제 공을 이루려 각기 제 재주를 드러내는구나. 이리저리 오가며 한참을 싸우고 오래도록 빙빙 돌다가, 그 용은 힘이 풀리고 근육이 마비되어 더는 대적할 수 없게 되자, 몸을 한 번 돌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개울 바닥 깊이 숨어들어 다시는 머리를 내밀지 않았다. 원숭이 왕이 욕설을 그치지 않고 퍼부어도 그는 귀먹은 체할 뿐이었다. 행자는 어쩔 도리가 없어 도로 삼장을 만나러 가서 말했다. “사부님, 이 괴물은 제가 욕하여 나오게 하였사옵니다. 그놈이 저와 한참을 겨루다가 싸움을 겁내어 달아났사옵고, 물 한가운데 숨어서 다시는 나오지 않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정말로 그놈이 내 말을 삼켰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좀 보시옵소서! 그놈이 삼키지 않았다면 어찌 기꺼이 나와서 소리를 지르며 저와 맞서려 하였겠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네가 지난번 호랑이를 칠 적에는 항룡복호하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오늘은 그놈을 항복시키지 못하느냐?” 본래 그 원숭이는 남이 자기를 다그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질이었다. 삼장이 이렇게 쏘아붙이는 말을 하자, 그는 곧 신통한 위엄을 떨치며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그런 말씀 마시옵소서! 제가 가서 그놈과 다시 한번 높고 낮음을 겨루어 보겠나이다!” 이 원숭이 왕은 걸음을 크게 내디뎌 개울 가로 뛰어가서는,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젓는 신통력을 부려, 그 맑고 깊기 그지없는 응수간의 물을 아홉 굽이 황하의 물이 넘쳐흐르는 파도처럼 마구 뒤집어 놓았다. 그 악룡은 깊은 개울 속에서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야말로 복은 두 번 내리지 않고 재난은 홀로 오지 않는다더니, 내가 겨우 천조를 어긴 죽음의 재난에서 벗어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여기서 인연을 따라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또 이런 무뢰한 요괴를 만나 나를 해치려 하다니!” 보아라, 그는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나서 남에게 억눌리는 울분을 견디지 못하고 이를 악물고 밖으로 뛰쳐나가 욕했다. “너는 어디서 온 무뢰한 요괴이기에 이토록 나를 업신여기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따지지 말고, 네가 다만 말을 도로 내놓기만 하면 내 너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 그 용이 말했다. “네 말은 내가 이미 뱃속에 삼켰거늘, 어찌 도로 토해 낼 수 있겠느냐! 내놓지 않겠다는데 네가 어쩌겠다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말을 내놓지 않거든 이 몽둥이를 보아라! 다만 너를 때려 죽여 내 말의 목숨을 갚으면 그만이다!” 그 둘은 또 그 산벼랑 아래에서 치열하게 겨루었다. 몇 합이 되지 않아 그 작은 용은 참으로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몸을 한 번 흔들어 물뱀 한 마리로 변하더니, 풀숲 속으로 파고들어 사라졌다. 원숭이 왕은 몽둥이를 쥐고 앞으로 달려가 풀을 헤치며 뱀을 찾았으나, 아무런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초조한 나머지 삼시신이 치받고 일곱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옴’ 자 주문을 한 번 외우니, 그 지방의 토지신과 그곳의 산신이 불려 나와 함께 무릎 꿇고 아뢰었다. “산신과 토지신이 왔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복사뼈를 내밀어 보아라. 각각 몽둥이로 다섯 대씩 맞아 인사를 대신하고, 내 마음을 좀 풀게 해 보아라!” 두 신은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하여 아뢰었다. “대성께서 너그럽게 봐 주시옵소서. 소신의 사정을 아뢰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너희가 무슨 말을 하겠다는 것이냐?” 두 신이 아뢰었다. “대성께서 오랫동안 갇혀 계셨사오니, 소신은 언제 나오실지 알지 못하여 맞이하지 못하였나이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내 너희를 때리지 않겠다. 내가 묻겠다. 응수간에 사는 괴룡은 어느 곳에서 온 놈이냐? 그놈이 어찌하여 내 사부님의 백마를 빼앗아 먹었느냐?” 두 신이 아뢰었다. “대성께서는 본래 사부님이 계시지 않았사옵고, 원래 하늘에도 복종하지 않고 땅에도 복종하지 않는 혼원상진이셨사온데, 어찌 사부님의 말이란 것이 있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그것도 모르는구나. 나는 윗사람을 속인 일 때문에 꼬박 오백 년의 고난을 받았노라. 이제 관음보살의 권선을 입어 당나라 조정의 참된 승려에게 구출되어,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께 절하고 경을 구하게 되었노라. 그런데 이곳을 지나다가 사부님의 백마를 잃었노라.” 두 신이 아뢰었다. “그러하였사옵니다. 이 개울에는 본래 사악한 것이 없사옵고, 다만 깊고 가파르며 넓어서 물빛이 바닥까지 훤히 맑사온데, 까마귀와 까치조차 감히 날아 지나가지 못하옵니다. 물이 맑아 제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고는 같은 무리의 새로 여겨, 흔히 몸을 물속으로 던지곤 하였사오니, 그런 까닭에 이름을 응수간이라 하옵니다. 다만 지난해 관음보살께서 경을 구할 사람을 찾으러 가시다가 옥룡 한 마리를 구하시어 이곳에 두시고, 그 경을 구할 사람을 기다리라고 하시며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분부하셨사옵니다. 그놈은 배고플 때 물가로 올라와 새나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곤 하였사옵니다. 어찌 그리 무지하게 오늘 대성을 거슬렀는지는 알 수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놈이 나와 손을 겨루며 몇 합을 빙빙 돌더니, 다음에는 내가 불러 욕해도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내가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젓는 법술을 하나 부려 그 개울물을 흐려 놓았더니, 그놈이 뛰어올라와 또 다투려 하였다. 내 몽둥이가 무거운 줄을 모르고 막아 내지 못하자, 물뱀 한 마리로 변하여 풀숲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쫓아와 그놈을 찾았으나 자취가 없노라.” 토지신이 아뢰었다. “대성께서는 모르시는 일이옵니다. 이 개울은 천만 개의 구멍이 서로 통해 있사오니, 그런 까닭에 물결이 깊고 아득하옵니다. 아마 이 부근에도 구멍 하나가 있어 그놈이 그 아래로 파고들었을 것이옵니다. 대성께서 노하시어 이곳에서 찾으실 것 없사옵니다. 이놈을 잡으려거든 관세음보살을 모셔 오시면 저절로 항복하옵니다.” 행자는 그 말을 듣고 산신과 토지신을 불러 삼장을 함께 뵙게 한 뒤, 앞의 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삼장이 말했다. “보살을 모시러 가려면 어느 때에야 돌아올 수 있겠느냐? 이 빈승은 배고픔과 추위를 어찌 참겠느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윽한 공중에서 금두게제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성이여, 몸을 움직이실 것 없사옵니다. 소신이 가서 보살을 모셔 오겠나이다.” 행자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폐를 끼치는구나! 폐를 끼치는구나! 어서 가거라! 어서 가거라!” 그 게제는 급히 구름을 타고 곧장 남해로 올라갔다. 행자는 산신과 토지신에게 사부님을 지키라고 분부하고, 일치공조에게는 공양을 구하러 가게 한 뒤, 다시 개울 가를 두루 살피러 갔는데, 그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말하자면, 금두게제는 구름을 한 번 타니 어느새 남해에 이르렀다. 그는 상서로운 빛을 따라 내려가 낙가산 자죽림 속에 이르러, 금갑옷을 입은 제천과 목타 혜안에게 사정을 전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나서 보살을 뵈올 수 있었다. 보살이 말했다. “네가 무슨 일로 왔느냐?” 게제가 아뢰었다. “당나라 승려가 사반산 응수간에서 말을 잃었사옵고, 손대성이 급한 나머지 진퇴양난에 빠졌나이다. 이곳의 토지신에게 물으니 보살께서 그곳에 두신 악룡이 삼켰다 하옵기에, 그 대성이 소신에게 보살을 모셔 가서 이 악룡을 항복시키고 말을 돌려받게 해 달라고 청하라 하였나이다.” 보살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놈은 본래 서해 용왕 오윤의 아들이니라. 그가 전각 위의 밝은 구슬을 태워 버린 죄로 그 아비가 불효라며 천정에 고발하여 사형죄를 지었거늘, 내가 친히 옥황상제를 뵙고 그놈을 청하여 내려와 당나라 승려에게 발이 되어 주게 하였거늘, 그놈이 어찌 도리어 당나라 승려의 말을 먹었단 말이냐? 그런 말이라면 내가 가 보리라.” 보살은 연꽃 대좌에서 내려와 신선의 동굴을 떠나 게제와 함께 상서로운 빛을 타고 남해를 건너왔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설하신 밀다삼장경이요 보살이 착함을 널리 펴니 온 성에 가득하도다. 마하의 묘한 말은 천지에 통하고 반야의 참된 진언은 귀신의 영혼을 건지느니라. 이에 금선이 다시 껍질을 벗게 되고 현장으로 하여금 다시 수행하게 하였도다. 다만 길이 응수간에서 막혔으므로, 용의 아들이 참됨으로 돌아가 말의 형상으로 변하였도다. 그 보살과 게제는 오래지 않아 사반산에 이르렀다. 보살은 반공중에 상서로운 구름을 멈추고 고개 숙여 내려다보니 손행자가 개울 가에서 욕하고 있었다. 보살이 게제를 시켜 그를 불러 오게 하였다. 그 게제는 구름을 내려놓고 삼장에게는 들르지도 않은 채 곧장 개울 가로 가서 행자에게 말했다. “보살께서 오셨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급히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그를 향해 크게 외쳤다. “이 칠불의 스승이요 자비한 교주라는 분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방법을 만들어 나를 해치려 하였느냐!” 보살이 말했다. “이 담 큰 말류야, 촌스럽고 어리석은 적고야! 내가 도리어 거듭거듭 정성을 다하여 경을 구할 사람을 하나 건져 내어, 네 목숨을 구하도록 부탁까지 하였거늘, 너는 어찌 와서 목숨을 살려 준 은혜에 사례하지 않고 도리어 와서 나와 떠들며 다투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나를 잘도 만들어 놓았구려! 그대가 나를 꺼내 놓았거든 자유롭게 놀게나 하였지, 지난번 바다에서 나를 맞아 몇 마디 상처 주는 말로 나로 하여금 온 힘을 다해 당나라 승려를 모시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그 승려에게 꽃무늬 모자를 주어 나를 속여 머리에 쓰고 고생하게 하였느냐? 이 고리를 내 머리에 붙어 자라게 하고, 또 그에게 무슨 긴고아주 한 권을 외우게 하여 그 늙은 중이 자꾸자꾸 외우게 하니, 내 머리가 아프고 또 아팠거늘, 이것이 나를 해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야! 네가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바른 과위를 받지 않거늘, 이렇게 너를 얽어매지 않는다면 너는 또 윗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기만하며 좋고 나쁨을 어찌 알겠느냐! 다시 예전처럼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면 누가 거두어 다스리겠느냐? 모름지기 이처럼 얽매는 굴레가 있어야 네가 내 요가의 문으로 들어오려 하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이 일은 내게 갚을 마장이라 하여 두겠노라.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또 그 죄 지은 악룡을 이곳에 보내어 정을 이루게 하여, 그놈으로 하여금 내 사부님의 말을 먹게 하였느냐? 이는 또 악한 놈을 놓아 악을 행하게 한 것이니, 몹시 착하지 못한 일이로다!” 보살이 말했다. “그 용은 내가 친히 옥황상제께 아뢰어 이곳에 청해 두었느니라. 오직 경을 구하는 사람의 발이 되어 주게 하려 하였느니라. 네가 생각해 보아라, 저 동토에서 온 보통 말이 어찌 이 만수천산을 견디며 어찌 저 영산 불지에 이를 수 있겠느냐? 모름지기 이 용마가 있어야 비로소 갈 수 있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저놈이 나를 이렇게 두려워하며 숨어 나오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보살이 게제를 불러 말했다. “네가 개울 가로 가서 ‘오윤 용왕의 옥룡 삼태자여, 나오너라. 남해 보살이 여기 계시느니라.’ 하고 한 번 외쳐라. 그러면 그놈이 곧 나오느니라.” 그 게제는 과연 개울 가로 가서 두 번 외쳤다. 그 작은 용은 파도를 뒤집고 물결을 뛰어넘어 물 밖으로 뛰어나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고는 구름을 밟고 공중으로 올라와 보살을 향해 절하며 아뢰었다. “지난번에 보살께서 구해 주신 목숨의 은혜를 입사옵고, 이곳에서 오래도록 기다렸사오나, 경을 구하러 오는 사람의 소식은 끝내 듣지 못하였나이다.” 보살이 행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이 경을 구하러 가는 이의 큰 제자가 아니더냐?” 그 작은 용이 보고 말했다. “보살이시여, 이 사람은 저의 원수이옵니다. 어제 제 배가 고파 과연 그의 말을 먹었사옵니다. 그놈은 제 힘을 믿고 저를 힘 빠져 돌아가도록 몰아붙였사옵고, 또 욕하여 저로 하여금 감히 나오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그놈은 더욱 ‘경을 구한다’는 말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가 내 성과 이름을 물어 본 적도 없거늘 내가 어찌 말하였겠느냐?” 그 작은 용이 말했다. “내가 너보고 어디서 온 무뢰한 요괴냐고 묻지 않았더냐? 너는 ‘어디든 무슨 상관이냐! 다만 내 말을 내놓아라!’ 하고 소리치지 않았느냐! 언제 ‘당’ 자 한 마디를 꺼낸 적이 있느냐!” 보살이 말했다. “저 원숭이는 오로지 스스로 강함만 믿거늘 어찌 남을 칭찬하려 하겠느냐? 이번에 앞으로 가면 오히려 네게 귀순하는 자가 있느니라. 만일 물을 때에 먼저 ‘경을 구한다’는 말부터 꺼내어라. 그러면 애쓸 것도 없이 저절로 복종하느니라.” 행자가 기뻐하며 그 가르침을 받들었다. 보살이 앞으로 나아가 그 작은 용의 목 아래 있던 밝은 구슬을 떼어 내고, 버들가지를 감로수에 적셔 그의 몸을 한 번 쓸어 내린 뒤, 신선의 기운을 한 입 불어 넣고 “변하여라!” 하고 크게 외쳤다. 그 용은 곧 본래 그 말의 털과 무늬를 지닌 모습으로 변하였다. 보살이 또 말로 분부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업장을 갚아야 하느니라. 공을 이룬 뒤에는 범용을 뛰어넘어 너에게 금신정과를 돌려주리라.” 그 작은 용은 입에 재갈을 물고 마음으로 그 분부를 받들었다. 보살이 오공에게 그 용을 데리고 삼장을 뵙게 하라고 이르고는 “나는 바다로 돌아가노라.” 하고 말했다. 행자가 보살의 옷을 붙잡고 놓지 않으며 말했다. “저는 가지 않겠나이다! 저는 가지 않겠나이다! 서쪽 길이 이토록 험하고 굽이진데, 이 범승을 보호하며 언제야 도착하겠나이까? 이렇게 여러 번 시달리고 꺾이면 제 목숨도 온전하기 어려우니, 어찌 무슨 공과를 이루겠나이까! 저는 가지 않겠나이다! 저는 가지 않겠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너는 예전에 인도가 되기 전에도 오히려 마음을 다해 수행하려 하였거늘, 네가 오늘 하늘의 재난을 벗어나고서 어찌 도리어 게으름을 피우느냐? 내 문중에서는 적멸로 참됨을 이루나니, 모름지기 믿음과 바른 과위가 있어야 하느니라. 만일 몸을 상하게 하는 괴로운 시련이 있는 곳에 이르면, 내가 너에게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응하고 땅을 부르면 땅이 영험하리라고 허락하노라. 몹시 벗어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나도 친히 와서 너를 구하리라. 이리 오너라, 내가 다시 재주 하나를 더 주겠노라.” 보살은 버드나무 잎사귀를 세 장 따서 행자의 뒤통수에 놓고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세 가닥의 구명 털로 변하였다. 보살이 그에게 일렀다. “만일 어찌할 수 없고 기댈 곳도 없는 때에 이르면, 그때그때 형편에 맞게 변하여 너의 급하고 괴로운 재난을 건질 수 있느니라.” 행자가 이 많은 좋은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대자대비한 보살에게 사례하였다. 그 보살은 향기로운 바람을 두르고 채색 안개를 휘날리며 곧장 보타산으로 돌아갔다. 이 행자가 구름을 내려놓고 그 용마의 갈기를 움켜쥐고 삼장에게 가서 말했다. “사부님, 말이 생겼나이다.” 삼장은 그것을 보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자야, 이 말은 어찌하여 전보다 도리어 살이 오르고 기운이 넘치는 것이냐? 어디에서 찾아낸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아직도 꿈을 꾸고 계시옵니다! 방금 금두게제가 보살을 모셔 왔사옵고, 보살께서 저 개울 속의 용을 우리의 백마로 변하게 하셨나이다. 털과 무늬는 같사오나 다만 안장과 고삐가 없사옵기에, 제가 갈기를 잡아 끌고 온 것이옵니다.” 삼장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보살은 어디에 계시느냐? 내가 가서 절하고 사례를 드려야겠다.” 행자가 말했다. “보살께서는 이제 이미 남해에 이르셨사오니, 더 기다리실 겨를이 없사옵니다.” 삼장은 흙을 한 줌 모아 향을 사르고 남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는 일어나 행자와 함께 짐을 수습하여 나아갔다. 행자는 산신과 토지신을 물러가게 꾸짖고 게제와 공조에게 분부한 뒤, 스승에게 말에 오르시기를 청했다. 삼장이 말했다. “안장과 고삐가 없는 말을 어찌 탈 수 있겠느냐? 우선 배를 찾아 개울을 건넌 뒤에 다시 방도를 꾀하자꾸나.” 행자가 말했다. “이 사부님은 참으로 형편을 모르시는구려! 이 드넓은 황량한 산중에서 배가 어디서 온단 말이옵니까? 이 말은 이곳에 오래 살았사오니 반드시 물의 형편을 알 것이옵니다. 그저 그를 타고 배 삼아 건너가시옵소서.” 삼장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좇아 안장 없는 말에 올라탔고, 행자가 행장을 메었다. 이리하여 개울 가에 이르렀다. 개울 위쪽에서 어떤 늙은 어부가 마른 나무 뗏목을 저어 물결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행자가 보고 손을 들어 부르며 말했다. “이 어부 영감, 이리 오시오. 나는 동토에서 경 구하러 가는 사람이오. 내 사부님이 이곳을 건너지 못하시니 와서 한 번 건네다 주시오.” 어부는 그 말을 듣고 급히 뗏목을 저어 대었다. 행자는 스승에게 말에서 내리시기를 청하고 좌우에서 부축하였다. 삼장이 뗏목에 오르고 말도 끌어 올리고 행장도 가지런히 놓았다. 그 늙은 어부가 뗏목을 저어 나아가니 바람 같고 화살 같아서, 어느새 응수간을 건너 서쪽 언덕에 올랐다. 삼장이 행자에게 보따리를 풀어 당나라의 동전 몇 푼을 꺼내어 어부에게 드리라고 일렀다. 그 늙은 어부는 뗏목을 장대로 한 번 밀어 내며 말했다. “돈은 필요 없소, 필요 없소.” 그리고는 물 한가운데로 아득하고 망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삼장은 몹시 미안해하며 다만 두 손을 모으고 거듭 사례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그리 마음 쓰지 마시옵소서. 사부님은 그를 모르시옵니까? 그는 이 개울의 물의 신이옵니다. 일찍이 와서 저를 맞이하지도 않았사오니 도리어 몽둥이로 한 번 때리려 하였사옵니다. 다만 이제 때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넉넉한 일이옵거늘, 어찌 감히 돈을 받으려 하겠나이까!” 그 스승은 믿는 듯 말자 듯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안장 없는 말에 올라타 행자를 따라 큰길로 서쪽을 향해 갔다. 이야말로 광대한 진여가 저 언덕에 오르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성품을 깨달아 영산에 오르는 일이로다. 스승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느새 붉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하늘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과연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옅은 구름은 어지럽게 흩어지고 산 위의 달은 흐릿하구나. 하늘 가득 서리 빛이 차가움을 낳고 사방의 바람 소리가 몸을 파고드누나. 외로운 새가 날아갈 때 푸른 물가는 넓고, 지는 노을이 밝은 곳에 먼 산은 낮구나. 성긴 숲의 천 그루 나무가 으르렁대고 빈 고개에서 외로운 원숭이가 우누나. 긴 길에는 가는 이의 자취가 보이지 않고, 만 리를 돌아가는 배가 밤속으로 드는구나. 삼장이 말 위에서 멀리 바라보니 문득 길가에 집 한 채가 보였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앞에 인가가 있으니 그곳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내일 아침에 다시 가자꾸나.” 행자가 머리를 들어 살펴보고는 말했다. “사부님, 인가의 저택이 아니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아니라니, 어찌 아니냐?” 행자가 말했다. “인가의 저택이라면 날아가는 물고기나 얹힌 짐승 같은 마루 골이 없어야 하거늘, 저것은 틀림없이 절이나 암자이옵니다.” 사부와 제자가 이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새 문 앞에 이르렀다. 삼장이 말에서 내려 보니, 그 문 위에는 큰 글자 세 자가 있었으니 이를 리사사라 하였다. 드디어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늙은이 하나가 목에 염주를 걸고 두 손 모아 마중 나와 “스승님, 앉으시오.” 하고 불렀다. 삼장이 황급히 답례하고 법전에 올라가 성상을 참배하였다. 그 늙은이는 곧 동자를 불러 차를 올리게 하였다. 차를 마치고 삼장이 그 늙은이에게 물었다. “이 사당을 어찌하여 리사사라 하오?” 늙은이가 말했다. “소인의 고장은 서번 하필국의 경계요. 이 사당 뒤에 한 마을의 사람들이 함께 정성을 모아 이 사당을 세웠소. 리란 한 고을의 땅이요, 사란 한 사의 토지신이오. 봄에 밭 갈고 여름에 김 매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하는 날이면 소와 양과 돼지와 꽃과 과일을 마련해 와서 사신에게 제사 지내며, 사시가 평안하고 오곡이 풍성하며 여섯 가축이 무성하기를 비는 것이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참으로 ‘집을 떠나 삼 리만 가도 다른 고장의 풍습’이라더니, 내 고장 사람들에게는 이런 착한 일이 아주 없소.” 늙은이가 도로 물었다. “스승님의 신선 고향은 어디시오?”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국 사람으로, 칙명을 받들어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께 절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자요. 보방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특별히 성스러운 사당을 찾아와 하룻밤 묵기를 청하오니, 날이 밝으면 곧 떠나겠소.” 그 늙은이는 몹시 기뻐하며 “맞이하지 못하였소.” 하고 몇 차례 말한 뒤, 또 동자를 불러 밥을 차리게 하였다. 삼장이 먹기를 마치고 사례하였다. 행자는 눈이 밝아 그 집 처마 아래 옷 널어 둔 줄을 보고 가서 한 움큼 잡아당겨 끊고 말의 발을 묶었다. 그 늙은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은 어디서 훔쳐 온 것이오?” 행자가 성을 내며 말했다. “이 늙은이, 말을 함부로 하는구려! 우리는 부처님께 절하러 가는 성승이거늘, 어찌 말을 훔치겠느냐!” 그 늙은이가 웃으며 말했다. “훔친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안장과 고삐와 굴레가 없으면서, 와서 내가 옷을 말리는 줄을 끊어 버리시오?” 삼장이 사과하며 말했다. “이 장난꾸러기는 성질이 급할 뿐이오. 말을 매려거든 노인장께 줄을 청하였어야 할 터인데 어찌 남의 옷줄을 끊었단 말이오? 노인장, 노여워 마시오, 노여워 마시오. 이 말은 실로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건대 훔친 것이 아니오. 어제 동쪽에서 와서 응수간에 이르렀을 때에는 본래 타고 온 백마 한 필이 있어 안장과 고삐를 모두 갖추고 있었소. 뜻밖에도 그 개울에 악룡 한 마리가 있어 정을 이루고 있다가, 내 말을 안장과 고삐까지 한 입에 삼켰소. 다행히 내 제자에게 재주가 좀 있고, 또 관음보살께서 개울 가로 오셔서 그 용을 붙잡아 내 원래 타던 백마로 변하게 하여 주셨소. 털과 무늬가 모두 같사오니, 나를 태우고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께 절하게 되었소. 오늘 이 개울을 건넌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노인장의 성스러운 사당에 이르렀사온즉, 아직 안장과 고삐를 마련하지 못하였소.” 그 늙은이가 말했다. “스승님, 노여워 마시오. 이 늙은이는 장난삼아 웃어 본 것뿐인데, 뜻밖에 스승님의 높으신 제자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구려. 나도 젊었을 적에는 시골 돈이 제법 있어 좋은 준마를 타고 다녔소. 다만 여러 해 불운이 겹쳐 상도 당하고 불도 만나, 여기까지 흘러와 갈 곳이 없어져 묘축이 되어 향불을 모시고 있소. 다행히 뒤쪽 마을의 시주집에서 거두어 주는 것으로 근근이 연명하오. 나에게는 아직 안장과 고삐 한 벌이 남아 있소. 평소에 마음으로 아끼던 물건이라, 이토록 가난하게 지내면서도 차마 팔아 버릴 엄두를 내지 못하였소. 방금 스승님 말씀을 들으니 보살께서도 신룡을 구하시어 말로 변하게 하여 태워 가게 하셨거늘, 이 늙은이가 어찌 조금인들 돕지 않겠소이까? 내일 그 안장과 고삐를 가져다 드리고 말 등에 얹어 가시도록 하겠사오니 웃으며 받아 주시오.” 삼장은 그 말을 듣고 사례를 마지않았다. 이윽고 동자가 저녁 공양을 내왔는데, 공양을 마치고 등불을 밝히고 자리를 깔고는 각자 잠이 들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행자가 일어나며 말했다. “사부님, 저 묘축 영감이 어젯밤에 우리에게 안장과 고삐를 주겠다고 하였사옵니다. 그에게 가서 달라고 하시되, 그를 봐주지는 마시옵소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과연 그 늙은이가 안장과 고삐 한 벌과 안장받이와 굴레 따위를 들고 왔는데, 말에 쓰는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행랑 밑에 놓으며 말했다. “스승님, 안장과 고삐를 올리오.” 삼장은 기뻐하며 받아 들고는 행자에게 가져다 말 등에 얹어 어울리는지 보라고 일렀다. 행자가 앞으로 나가 한 가지씩 들어 살펴보니, 과연 훌륭한 물건들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아로새긴 안장은 은빛 별이 반짝이고, 보배로운 등자는 금실이 밝혀 빛을 날리는구나. 안장받이는 여러 겹의 솜과 덮개가 포개졌고, 끄는 고삐는 세 가닥의 자줏빛 명주실이로다. 굴레 머리에는 가죽을 뚫어 새긴 둥근 꽃이 찬란하고, 구름 부채에는 금을 그려 짐승이 춤추는 형상을 하였도다. 고리와 재갈은 갈고 닦은 쇠로 이루어졌고, 양쪽에 드리운 것은 물에 적셔 뭉쳐 놓은 털술이로다. 행자는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그 안장과 고삐를 말 등에 얹어 보니, 마치 재어서 만든 것처럼 꼭 들어맞았다. 삼장이 그 늙은이에게 절하며 사례하자, 그 늙은이는 황급히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황송하오! 황송하오! 어찌 수고롭게 사례까지 하시겠소이까?” 그 늙은이는 더는 만류하지 않고 삼장에게 말에 오르기를 청했다. 그 장로가 문을 나서며 안장을 잡고 말에 올랐다. 행자가 행장을 메었다. 그 늙은이는 소매 속에서 채찍 하나를 꺼내었는데, 가죽 조각을 촘촘히 박은 향기로운 등나무 자루에 호랑이 힘줄 실로 끝을 엮은 것이었다. 그는 길가에서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올리며 말했다. “성승이시여, 나에게는 채찍 하나가 더 있사오니, 이것마저 보시겠소.” 그러자 삼장이 말 위에서 받아 들며 말했다. “많이 베풀어 주셔서 고맙소! 많이 베풀어 주셔서 고맙소!” 막 인사를 마치려 하는데, 어느새 그 늙은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보니 그 리사사가 있던 자리는 텅 빈 공터였다. 다만 반공중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승이여, 몹시 소홀히 대접하였소. 나는 낙가산의 산신과 토지신이오. 보살의 분부를 받아 안장과 고삐를 그대들에게 보내 드린 것이오. 그대들은 힘을 다해 서쪽으로 가되, 한때라도 게을리하지 마시오.” 삼장은 황급히 말에서 굴러 내려 허공을 향해 절하며 말했다. “제자는 육안의 범태라 존귀하신 신의 존안을 알아보지 못하였사오니,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번거롭게 하나 보살께 전해 주시옵소서, 깊이 은혜로운 도움을 입었다고.” 보아라, 그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기를 그 횟수를 헤아릴 수 없이 하였다. 길가에서 그것을 보던 손대성은 배가 터질 듯 웃었고 미후왕은 기쁨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 당승을 붙잡으며 말했다. “사부님, 일어나시옵소서. 그는 이미 멀리 가버렸사옵니다. 사부님의 기도를 들을 수도 없고 사부님이 절하는 것도 보지 못하옵니다. 그저 절만 하고 계시니 어찌하시려는 것이옵니까?” 장로가 말했다. “제자야, 내가 이렇게 절하는데 너는 그에게 한 번 절하지도 않고 곁에 서서 다만 비웃고만 있으니, 무슨 도리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어찌 그것을 모르시옵니까? 저놈처럼 머리는 숨기고 꼬리만 내미는 자는 본디 몽둥이로 한 차례 때려 주어야 마땅하옵니다. 다만 보살의 체면을 보아 때리지 않고 넘어간 것만으로도 넉넉하옵거늘, 그놈이 어찌 감히 내 절을 받으려 하겠나이까? 나는 어릴 적부터 호한으로 지내며 남에게 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였사옵니다. 옥황상제나 태상노군을 뵙더라도 나는 다만 큰 읍을 한 번 할 뿐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천벌받을 소리를 하는구나! 빈말 말고 어서 일어나라, 길을 더디게 만들지 말고.” 그 스승은 그제야 일어나 짐을 수습하고 서쪽으로 떠났다. 이곳에서 떠나 두 달 동안 태평한 길을 걸었는데, 만난 것이라고는 오랑캐 무리와 회회 족속, 그리고 이리와 벌레와 호랑이와 표범뿐이었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 또다시 이른 봄이 되었다. 보니 산과 숲은 비단처럼 푸르고 풀과 나무는 싹을 틔웠으며, 매화꽃은 다 지고 버드나무의 눈이 막 트기 시작하였다. 사부와 제자가 봄빛을 즐기며 걷는데, 또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삼장이 말을 멈추고 멀리 바라보니 산 오목한 곳에 누각과 전각의 그림자가 아득히 자리하고 있었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저기가 어떤 곳인지 좀 보아라.” 행자가 머리를 들어 살펴보고는 말했다. “궁전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절이옵니다. 우리가 조금 서둘러 그곳으로 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도록 하지요.” 삼장이 기꺼이 그 말을 좇아 용마를 놓아 앞으로 달려갔다. 결국 이들이 가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6회 관음원승모보패(觀音院僧謀寶貝) · 흑풍산괴절가사(黑風山怪竊袈裟) 말하자면, 그 사부와 제자 두 사람이 말을 몰아 앞으로 오다가 산문 앞에 이르러 바라보니, 과연 거기에는 절 한 채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어떠한고 하니, 층층이 늘어선 전각이요, 겹겹이 이어진 행랑이로다. 삼산문 밖은 우뚝 솟은 만 갈래 채운이 가렸는데, 오복당 앞은 붉고 고운 천 가닥 안개가 에워싸았구나. 양쪽 길에는 송죽이요, 한 숲에는 잣나무와 측백이라. 두 줄기 송죽은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이 절로 맑고 그윽하며, 한 숲의 회백은 빛깔 또한 있어 기품 있이 자랑스레 자태를 뽐내는구나. 또 보니 종루와 고루가 높이 솟았고 부도탑은 준엄하게 치켜올라 있었다. 참선하는 중은 마음이 안정되었고, 나무에서 우는 새는 소리조차 한가로웠다. 티끌 없이 적막하니 참으로 적막이요, 맑고 비어 도가 있으니 과연 맑고 비었도다. 시에 이르기를, 높은 사찰의 기원은 푸른 굴에 숨어 있고, 초제의 빼어난 경치는 사바세계를 능가하는구나. 과연 정토는 인간 세상에 드물고, 천하 명산은 중들이 대부분 차지하였도다. 장로가 말에서 내리고 행자가 짐을 내려놓았는데, 막 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그 문 안에서 승려 한 무리가 걸어 나왔다. 그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보아라, 머리에는 왼비녀 달린 모자를 쓰고, 몸에는 티끌 없는 옷을 걸쳤구나. 구리 고리 두 개 귀에 드리웠고, 명주 띠가 허리를 둘렀네. 짚신을 신고 걸어오니 걸음이 안정되고, 목어는 손 안에 들렸구나. 입으로는 늘 불호를 외우니, 반야에 모두 귀의하는도다. 삼장이 그들을 보고 문 곁에 공손히 서서 인사를 올리니, 그 중이 황급히 답례하며 웃었다. “미처 알아뵙지 못하였나이다.” 그리고 물었다. “어디서 오셨나이까? 방장으로 드셔 차를 올리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이 승려는 동녘 땅에서 흠차로 나온 자로서, 뇌음사로 올라가 부처님을 배알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이오. 이곳에 이르니 날이 저물어, 높은 절에서 하룻밤을 빌리고자 하오.” 그 중이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드소서, 어서 안으로 드소서.” 삼장은 그제야 행자를 불러 말을 끌고 들어오게 하였다. 그 중은 문득 행자의 얼굴을 보고 조금 겁이 났다. 그래서 물었다. “말을 끄는 저이는 도대체 어떤 물건이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쉿, 쉿! 저 아이는 성미가 급하오. 만일 당신이 무어라고 하는 말을 듣기나 하면 곧 화를 낼 것이오. —저 아이는 내 제자요.” 그 중은 부르르 떨며 손가락을 물고 말했다. “이토록 추하고 괴상한 얼굴을 한 자를 어찌 기꺼이 제자로 삼으시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당신이 알아보지 못하는구려. 추한 것은 추하되 몹시 쓸모가 있소.” 그 중은 하는 수 없이 삼장과 행자를 데리고 산문 안으로 들어갔다. 산문 안에서는 또 정전 현판에 ‘관음선원’ 네 큰 글자가 씌어 있는 것이 보였다. 삼장이 다시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자는 여러 차례 보살님의 성은을 입고도 아직 절하여 사례할 길이 없었사오니, 오늘 이 선원을 만났으니 보살님을 친히 뵙는 것과 같사옵니다. 참으로 좋사오니, 예를 올려 사례하고자 하오.” 그 중이 이 말을 듣고 곧 도인에게 명하여 전각 문을 열게 하고, 삼장을 청해 나와 배례하게 하였다. 행자는 말을 매어 두고 행장을 내려놓은 채 삼장과 함께 전각에 올랐다. 삼장은 등을 펴고 몸을 늘여 가슴을 땅에 붙인 채 금빛 불상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 중은 북을 치러 가고 행자는 종을 치러 갔다. 삼장이 단 앞에 엎드려 온 마음을 다해 축원하였다. 예를 올리고 빌기를 마치자 그 중은 북을 멈추었으나, 행자는 여전히 종 치기를 그치지 않고 어떤 때는 빠르게 어떤 때는 느리게 오래도록 쳤다. 그 도인이 말했다. “예배는 이미 끝났거늘, 어찌 또 종을 치고 있느냐?” 행자가 그제야 종꼬챙이를 내던지며 웃어 말했다. “당신이 어찌 그 속을 알겠소! 내야 ‘하루 중이면 하루 종을 친다’는 것이지.” 이때 그 절 안의 대소 승려와 상하 방 장로들이 모두 놀라 움직였다.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것을 듣고는 일제히 몰려나오며 말했다. “어느 야만인이 여기서 종과 북을 함부로 치느냐?” 행자가 껑충 뛰어나오며 윽 하고 소리쳤다. “이 손외공이 장난삼아 친 것일랑!” 중들은 그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엎치락뒤치락 땅에 엎드려 말했다. “뇌공 할아버님, 살려주소서!” 행자가 말했다. “뇌공은 내 증손자쯤 되느니라! 일어나거라, 일어나거라,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는 동녘 대당에서 온 나으리들이란 말이다.” 중들은 그제야 예를 올렸고, 삼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으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본사 원주가 나서서 청했다. “나으리들께서는 뒤쪽 방장으로 드시어 차를 받으시옵소서.” 이에 말고삐를 풀어 말을 끌고 행장을 들게 하여, 정전을 돌아 곧장 뒤채로 들어가 자리를 정하였다. 그 원주가 차를 올리고 다시 공양을 차렸다. 그러나 아직 날이 훤하였다. 삼장이 사례의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뒤편에서 어린 동자 둘이 늙은 승려 하나를 부축하여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차림새가 어떠한지 보아라, 머리에는 비로방관 하나를 쓰고 꼭대기의 고양이눈돌 보배가 빛났으며, 몸에는 비단 털실로 짠 편삼을 걸치고 비취 깃과 금 테가 번쩍였구나. 한 켤레 승려 신에는 여덟 가지 보물이 촘촘히 박혔고, 한 자루 지팡이에는 구름과 별무늬가 새겨졌다. 얼굴 가득한 주름을 보니 여산의 노모를 닮았고, 한 쌍의 흐릿하고 탁한 눈은 도리어 동해의 용군을 닮았구나. 입이 바람을 막지 못함은 이 빠져서요, 허리가 굽고 등이 휜 것은 힘줄이 오그라들어서로다. 중들이 말했다. “사조님께서 오시나이다.” 삼장이 몸을 굽혀 예를 갖추며 맞이하여 말했다. “노원주시여, 제자가 예를 올리나이다.” 그 늙은 중, 곧 금지장로가 답례하고는 다시 각자 자리를 정해 앉았다. 늙은 중이 말했다. “아까 아이들이 동녘 당나라에서 오신 나으리라 하기에, 나도 이제야 나와 뵙는 것이오.” 삼장이 말했다. “함부로 귀한 산사에 발을 들였사오니 분별 없음을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늙은 중이 말했다. “그런 말씀을, 그런 말씀을.” 그리고 물었다. “나으리, 동녘 땅에서 이곳까지 얼마나 먼 길이시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장안 변경을 벗어나 오천여 리요, 양계산을 넘어 젊은 제자 하나를 거둔 뒤 줄곧 걸어와 서번 합필국을 지나 두 달을 가니 다시 오륙천 리가 되어서야 귀한 곳에 이르렀소.” 늙은 중이 말했다. “그러면 만 리가 넘는 아득한 먼 길이로구려. 이승은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며 산문 밖에도 한 번 나가 본 적이 없으니, 참으로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본다’는 격이라, 썩은 떡갈나무 같은 무리라 하겠소.” 삼장이 다시 물었다. “노원주님의 높은 연세는 얼마나 되시나이까?” 늙은 중이 말했다. “어리석게도 이백칠십 세를 먹었소.”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 늙은이는 내 만 대쯤 되는 후손이로구나!” 삼장이 그를 곁눈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입을 삼가라! 분수를 모르고 남을 모욕하는 짓을 하지 말아라.” 그 중이 곧 물었다. “나으리, 그대는 연세가 얼마나 되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차마 입에 올릴 수 없구려.” 그 늙은 중은 그저 미친 소리 한마디로 여겨 개의치 않았고, 다시 캐묻지도 않고 다만 차를 올리라 일렀다. 어린 행동 하나가 양지옥 쟁반을 내왔는데, 그 위에는 칠보에 금을 두른 찻잔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또 다른 아이 하나는 백동 주전자를 들어 향기로운 차 세 잔을 따라 올렸다. 과연 그 빛깔은 석류 꽃술의 곱기를 능가하고, 그 맛은 계화 향기를 이기는구나. 삼장이 그것을 보고 사랑스러움과 찬탄을 그치지 못하며 말했다. “좋은 물건이로다! 좋은 물건이로다! 참으로 아름다운 음식이요 아름다운 그릇이구려!” 그 늙은 중이 말했다. “눈을 더럽히는구려! 눈을 더럽히는구려! 나으리께서는 천조의 상국에서 오시어 기이한 보물을 두루 보셨을 터인데, 이런 그릇들이 어찌 과찬을 받을 만하오리까? 나으리께서는 윗나라에서 오셨으니 무슨 보배가 있다면 이 승에게 빌려 주시어 한번 구경하게 해주시옵소서.” 삼장이 말했다. “가련하오! 내 동녘 땅에는 보배라 할 만한 것이 없소. 있다 한들 길이 멀고 아득하여 가지고 올 수도 없었소.” 행자가 곁에서 있다가 말했다. “사부님, 제가 앞서 보따리 속에서 본 그 가사가 있었사옵니다. 그것이 어찌 보배가 아니겠나이까? 꺼내어 저이에게 보여 주는 것이 어떠하시옵니까?” 중들은 가사라는 말을 듣고는 하나같이 코웃음을 쳤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어찌 비웃느냐?” 원주가 말했다. “나으리께서 방금 가사를 보배라 하시니 그 말씀이 실로 우습사옵니다. 가사라 하면 저희 같은 무리도 두서너 벌이 아니라 이삼십 벌은 되옵고, 저희 사조님께서야 이곳에서 이백오륙십 년을 중 노릇을 하셨으니 족히 칠팔백 벌은 되나이다!” 그리고 큰소리로 일렀다. “꺼내 와 보아라.” 그 늙은 중도 실은 한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던지라, 도인을 시켜 곳간을 열게 하고 두타에게 궤를 메게 하여 궤 열두 개를 들어내어 뜰 가운데 놓고 자물쇠를 열었다. 양쪽에 옷걸이를 세우고 사방에 줄을 친 다음, 가사를 한 벌씩 털어 펴 걸어 놓고는 삼장에게 와서 보라고 청했다. 과연 온 집 안이 비단 수요 사방 벽이 능라였구나! 행자가 그것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모두 꽃을 박고 비단을 덧대고 수를 놓고 금을 아로새긴 물건들이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거두어라, 거두어라! 이번에는 우리 것도 꺼내 보이자꾸나.” 삼장이 행자를 붙잡고 조용히 말했다. “제자야, 남과 부를 겨루려 하지 말아라. 너와 나는 홑몸으로 이역에 있으니 자칫 잘못될까 두렵구나.” 행자가 말했다. “가사나 한번 보는 것이 무슨 잘못이 되겠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는구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진기하고 완상하는 물건은 탐욕스럽고 간사하며 거짓된 자에게 보이지 말라.’ 하였느니라. 만일 한 번 눈에 띄기만 하면 반드시 그 마음을 움직일 것이요, 그 마음이 움직이고 나면 반드시 꾀를 낼 것이니라. 너는 재앙을 두려워하는 자니, 요구하면 반드시 그 청을 들어 주어도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면 몸을 잃고 목숨을 잃는 일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나니,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시옵소서! 염려 마시옵소서! 모두 이 늙은 원숭이가 도맡겠나이다!” 보아라, 그는 사정을 따질 새도 없이 황급히 달려가 보따리를 풀자마자 벌써 노을 같은 붉은빛이 훅 뿜어져 나왔다. 아직 기름 먹인 종이 두 겹으로 단단히 싸여 있어 그 종이를 벗겨 내고 가사를 꺼내어 털어 펴니, 붉은빛이 온 방에 가득 메우고 오색 기운이 뜰에 넘쳤다. 중들은 그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며 입으로 칭찬하지 않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참으로 좋은 가사로다! 그 위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온갖 교묘하게 밝은 구슬이 드리웠고, 만 가지 드물고 기이한 불가의 보배가 모였구나. 위아래로는 용수염 같은 실이 채색 비단을 깔았고, 사방 둘레는 도라솜으로 비단 테를 두렀네. 몸에 걸치면 망량이 그만 사라지고, 어깨에 두르면 이매가 황천으로 들어가느니라. 하늘 선인이 친히 손수 만들어 주었으니, 참된 중이 아니면 감히 입지 못하리라. 그 늙은 중이 이런 보배를 보고는 과연 간사한 마음이 일었다. 앞으로 걸어나와 삼장 앞에 무릎을 꿇고는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이 승은 참으로 인연이 없나이다!” 삼장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노원사여, 무슨 말씀이기에 그러하시오?” 그가 말했다. “나으리의 이 보배를 방금 펼치셨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고, 늙은 눈이 침침하여 밝게 볼 수가 없으니, 어찌 인연이 없다 하지 않겠나이까!” 삼장이 일렀다. “등불을 밝혀 오너라, 다시 보시게 하여라.” 그 늙은 중이 말했다. “나으리의 보배가 벌써 환히 빛나거늘, 다시 등불을 켜면 도리어 눈이 부셔 자세히 볼 생각조차 할 수 없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면 어찌 보아야 좋겠소?” 늙은 중이 말했다. “나으리께서 너그러운 은혜로 마음을 놓으신다면, 이 승에게 그것을 뒷방으로 가져가게 하시어 밤새 자세히 보게 하시고, 내일 아침에 도로 나으리께 바쳐 서쪽으로 가시게 하는 것이 어떠하시온지 그 높으신 뜻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행자를 원망하며 말했다. “다 네 탓이다! 다 네 탓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 두렵사옵니까? 제가 싸서 그에게 건네주어 가져가 보게 하겠나이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모두 이 늙은 원숭이가 도맡아 수습하겠나이다.” 삼장이 말릴 수가 없어 그는 가사를 늙은 중에게 건네며 말했다. “마음껏 보시오. 다만 내일 아침에는 예전 그대로 나에게 돌려주어야 하니, 조금도 더럽히거나 상하게 하지 말아 주시오.” 늙은 중은 기쁘고 즐거운 나머지 행동에게 가사를 들여가게 하고는, 중들에게 앞쪽 선당을 깨끗이 쓸게 하고 등나무 평상 두 채를 가져다 자리를 깔아 펴고 두 분 나으리를 모셔 주무시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또 내일 아침 이른 공양을 차려 전송하게 하고는 이내 모두 흩어졌다. 사부와 제자는 선당 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었다. 말하자면, 그 중은 가사를 속여 손에 넣자 뒷방으로 가지고 들어가 등불 아래 놓고는 그것을 마주하고 엉엉 소리 내어 통곡하였다. 놀란 본사 승려들은 감히 먼저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어린 행동조차 영문을 몰라 중들에게 달려가 일렀다. “공공께서 이경 무렵까지 우시며 아직도 소리를 그치지 않으십니다.” 그에게는 마음에 두고 아끼는 도손 두 명이 있었는데,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사조님, 어찌 우시나이까?” 늙은 중이 말했다. “내 인연이 없음을 우노라. 삼장의 보배를 볼 수가 없지 않으냐!” 어린 중이 말했다. “공공께서는 연세가 높으셔서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옵니다. 저이의 가사가 당신 앞에 놓여 있으니 풀어 놓고 보기만 하면 그만이거늘, 어찌 그리 통곡하시나이까?” 늙은 중이 말했다. “보는 것이 오래가지 못한단 말이다. 내 금년 이백칠십 세에 헛되이 가사 몇백 벌을 모았으나, 어찌 저이가 가진 저 한 벌을 얻을 수 있겠느냐? 어찌 삼장 같은 이가 될 수 있겠느냐?” 어린 중이 말했다. “사조님께서 잘못 아시었나이다. 삼장이란 고향을 떠나 타향을 전전하며 법을 구해 떠도는 행각승일 뿐이옵니다. 당신은 이토록 연세가 높으시니 누리는 복도 넉넉하실 터인데, 도리어 저이처럼 행각승이 되려 하시니 어째서이옵니까?” 늙은 중이 말했다. “내 비록 집에 앉아 편안히 늙은이의 즐거움을 누리지만, 저이의 저 가사를 입어 보지는 못하는구나. 만일 하루라도 입어 보게 된다면 죽어도 눈을 감을 터인데, —그것이 또한 내가 양세간에 와 중이 된 한평생 아니겠느냐!” 중들이 말했다. “참으로 점잖지 못하십니다! 그대가 저이의 것을 입고자 하신들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이까? 내일 그를 하루 머물게 하면 그대께서도 하루 입으시고, 열흘을 머물게 하면 열흘을 입으시면 그만이옵니다. 어찌 그리 통곡하실 것이 있나이까?” 늙은 중이 말했다. “비록 그를 반 년을 머물게 한들 또한 반 년을 입을 뿐이니, 끝내 기운이 길어지지는 못하느니라. 그가 가려 할 때에는 가게 해줄 수밖에 없거늘, 어찌 길고 오래도록 붙잡아 둘 수 있겠느냐?” 막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작은 중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광지라,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공공, 오래도록 누리시려는 것도 쉬우옵니다.” 늙은 중이 그 말을 듣고 곧 기뻐하며 말했다. “내 아들아, 무슨 훌륭한 꾀가 있느냐?” 광지가 말했다. “저 삼장 두 사람은 길 걷는 사람이라 몹시 고단할 터이니 지금쯤 이미 잠이 들었을 것이옵니다. 우리가 힘센 자 몇을 뽑아 창과 칼을 들고 선당 문을 부수고 들어가 그들을 죽여 시신을 뒷동산에 묻으면 오직 우리 한 집안만 알 터이옵니다. 그런 데다 저이의 흰 말과 행낭까지 빼앗고 그 가사는 남겨 두어 전가의 보물로 삼는다면, 어찌 자손 대대로 오래오래 누릴 계책이 되지 않겠나이까?” 늙은 중이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흐뭇하게 기뻐져 그제야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좋도다! 좋도다! 좋도다! 이 계책이야말로 절묘하구나!” 곧 창과 칼을 챙겨 들었다. 그 가운데 또 작은 중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광모라, 바로 저 광지의 사제였다.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계책은 묘하지 못하옵니다. 그이를 죽이려거든 모름지기 그 동정을 살펴보아야 하옵니다. 저 흰 얼굴은 쉬워 보이나 저 털 난 얼굴은 어려워 보이옵니다. 만에 하나 그이를 죽이지 못한다면 도리어 우리집에 화를 불러들이지 않겠나이까? 칼과 창을 쓰지 않는 방도가 하나 있사오니 그 높으신 뜻이 어떠하신지 모르겠나이다.” 늙은 중이 말했다. “내 아들아, 무슨 방도가 있느냐?” 광모가 말했다. “이 어린 손자의 소견으로는, 이제 동산의 대소 방두들을 불러 모아 사람마다 마른 섶 한 단씩을 가져오게 하고, 저 선당 세 칸을 버린 셈 치고 불을 지르소서. 그리하면 저희가 달아나려 해도 문이 없어 말까지 함께 불에 타 죽을 것이옵니다. 설령 산 앞 산 뒤 사람들이 보았다 한들 저희가 조심하지 않아 불이 나서 우리 선당까지 모조리 태웠다고만 할 뿐이옵니다. 그러면 저 중들이야 어찌 모두 타 죽지 않겠나이까? 게다가 남의 이목을 가리기도 좋사옵니다. 가사가 어찌 우리의 전가의 보물이 되지 않겠나이까?” 그 중들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모두 말했다. “훌륭하오! 훌륭하오! 훌륭하오! 이 계책이 더 묘하오! 더 묘하오!” 드디어 각 방두에게 명하여 섶을 날라 오게 하였다. 아, 이 계책 한 가지가 참으로 장수한 늙은 중의 목숨을 마땅히 다하게 만들고 관음선원을 한 줌 먼지로 만들었도다! 원래 그 절에는 일흔에서 여든 개의 방두가 있고 대소 이백여 명의 중이 있었다. 그날 밤 일제히 달라붙어 섶을 날라다 선당을 앞뒤 좌우 사방으로 통하지 않게 빽빽이 에워싸고 불을 지를 차비를 하였다. 말하자면, 삼장 사부와 제자가 자리를 정하여 편안히 쉬었다. 그러나 그 행자는 영리한 원숭이라 비록 누웠으나 다만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을 단련하며 흐릿하게 뜬 눈으로 깨어 있었다. 홀연히 밖에서 사람이 끊임없이 걷는 소리와 섶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바람 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음에 의심이 일어 말했다. “이 밤중에 고요한데 어찌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날 수 있단 말이냐? 혹여 도적이 우리를 해치려는 것이 아닐까?” 그는 곧 벌떡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 살펴보려니 도리어 사부님을 깨울까 두려웠다. 보아라, 그가 정신을 한껏 부리어 몸을 흔들어 한 차례 변하니 꿀벌 한 마리가 되었다. 참으로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입은 달고 꼬리는 독하며, 허리는 가늘고 몸은 가볍구나. 꽃을 뚫고 버들을 넘나드니 날아감이 화살 같고, 버들개비에 붙고 향기를 찾으니 떨어지는 별 같구나. 작고도 작은 미물이 무게를 능히 짊어지고, 얇고도 얇은 날개가 바람 탈 줄 아는구나. 저절로 서까래 모퉁이 밑을 빠져나가 분명히 살펴보는도다. 보니 그 중들은 이미 섶과 짚을 날라다 선당을 에워싸고 불을 지르는 중이었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과연 우리 사부님의 말씀대로로구나! 저희가 우리 목숨을 해치고 내 가사를 빼앗으려고 이런 독한 마음을 내었구나. 내가 몽둥이를 들어 그들을 치려 하나 가엾게도 한 차례 매질을 견디지 못해 몽땅 때려 죽이면 사부님께서 또 내가 함부로 살생했다고 꾸짖으실 터이지. —됐다, 됐다, 됐다! 저희에게 ‘양을 슬쩍 끌어다 저희 꾀를 그대로 역이용하는’ 수단을 써서 차라리 그들이 편히 살지 못하게 해야겠다!” 과연 좋도다, 그 행자가 한 번 근두를 굴러 남천문 안으로 뛰어오르니, 놀란 방·유·구·필이 몸을 굽히고 마·조·온·관이 허리를 굽히며 모두 말했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천궁을 뒤집어 놓던 그 주인이 또 왔구나!” 행자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예를 갖추지들 말고 놀라지도 마시오. 나는 광목천왕을 찾아온 것이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침 천왕이 일찍이 모습을 나타내어 행자를 마주하며 말했다. “오래간만이구려, 오래간만이구려. 앞서 듣자니 관음보살이 옥황상제를 뵈러 와서 사직공조와 육정육갑과 게제 등을 빌려, 삼장법사가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을 지키게 하고 그대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하더니, 오늘 어찌 한가한 틈이 있어 여기까지 왔느냐?” 행자가 말했다. “만남의 인사는 그만 두시오. 삼장이 길에서 악당들을 만났는데 불을 질러 그를 태워 죽이려 하니 일이 몹시 급박하오. 특별히 그대를 찾아와 피화조를 빌려 그를 한번 구하려 하오. 어서 꺼내 쓰게 해주시오, 곧 도로 올라가야 하오.” 천왕이 말했다. “그대가 잘못 생각했구려. 이미 악당들이 불을 질렀다면 마땅히 물을 빌려 그를 구할 것이지, 어찌 불을 피하는 덮개를 찾느냐?” 행자가 말했다. “당신이 어찌 그 속사정을 알겠소. 물을 빌려 끄면 불이 크게 타오르지 않아 도리어 저들이 바라는 꼴이 되고 마오. 다만 이 덮개를 빌려다 삼장만 다치지 않게 막고, 그 나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죄다 타 버리게 두려 하오. 어서 하시오! 어서 하시오! 이제는 이미 늦었을까 두렵소. 내 아랫일을 그르치지 말아 주시오!” 그 천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는 여전히 이다지도 착하지 못한 마음을 품어 제 일만 돌보고 남은 돌보지 않는구나.” 행자가 말했다. “어서 하시오! 어서 하시오! 입만 놀려 큰일을 그르치지 말아 주시오!” 그 천왕은 빌려주지 않을 수 없어 마침내 덮개를 건네주었다. 행자가 그것을 받아 구름을 내려 곧장 선당 지붕 위에 이르러 삼장법사와 흰 말과 행장을 덮어 감쌌다. 그는 다시 뒤편 늙은 중이 사는 방장 지붕 위로 올라가 앉아 마음을 다해 그 가사를 보호하였다. 그 사람들이 불을 놓는 것을 보고는 도리어 결을 쥐고 주문을 외며 손방위를 향해 한 숨을 길게 들이켜 훅 불어넣으니, 바람 한 줄기가 일어나 그 불길을 더욱 세차게 타오르게 하였다. 훌륭한 불이로다! 훌륭한 불이로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떠한고 하니, 검은 연기가 자욱하고 붉은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검은 연기 자욱하니 긴 하늘에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붉은 불길 활활 타오르니 대지에 빛이 있어 천 리가 붉구나. 처음에는 이글이글 황금 뱀이더니, 차츰 뒤에는 위풍이 당당한 핏빛 준마로다. 남쪽의 세 기운이 영웅을 뽐내고 회록대신이 법력을 베푸는구나. 바짝 마른 섶이 사나운 불길에 타오르니 수인씨가 나무를 비벼 불을 얻었다는 말을 할 것 없고, 기름 문 앞에 고운 불꽃이 흩날리는 것이 노군이 화덕을 열었던 것보다 뛰어나구나. 바로 저 무정하게 일어난 불을 이 유정하게 흉을 부리는 자가 어찌 막으리오. 재앙을 누그러뜨리려 않고 도리어 포악을 돕는구나. 바람이 불기세를 따르니 불꽃이 천 장이나 날아오르고, 불이 바람의 위세를 타니 재가 아홉 겹 구름 밖으로 튀어오르는구나. 펑펑 터져 대니 섣달그믐 폭죽 같고, 펄펄 흩날리니 군중의 대포 소리로다. 불길에 당한 그 자리의 불상도 달아나지 못하고 동쪽 뜰의 가람이 피할 곳이 없구나. 적벽에서 밤에 벌인 혈전보다 낫고 아방궁 안의 불보다 뛰어나도다! 이것이 바로 작은 불씨 한 점이 만 이랑의 논을 태울 수 있다는 것이로다. 잠깐 사이에 바람이 미치듯 휘몰아치고 불길이 세차게 타올라 관음원 한 채가 곳곳이 붉게 물들었다. 보아라, 그 승려들이 궤짝을 들고 함지를 메며 탁자를 빼앗아 들고 솥을 옮기느라 온 뜰에서 하늘에 닿도록 고통을 호소하는구나. 손행자가 뒷편 방장을 지켜 내고 피화조가 앞쪽 선당을 덮었으나, 그 나머지 앞뒤는 불빛이 크게 타올라 참으로 하늘을 비추는 붉은 불꽃이 찬란하고 벽을 꿰뚫는 금빛이 눈부셨도다! 뜻밖에도 불길이 치솟은 그때에 온 산의 짐승과 요괴가 놀라 깨어났다. 이 관음원에서 정남쪽으로 이십 리쯤 떨어진 곳에 흑풍산이 있고, 그 산중에 흑풍동이 있으며, 굴 속에 요정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마침 잠을 깨어 몸을 뒤척이던 참이었다. 창문으로 새어드는 빛을 보고는 그저 날이 샌 줄로만 여겼다. 그런데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정북쪽 아래에서 불빛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요정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어마나! 이는 틀림없이 관음원에 불이 난 것이로구나! 저 중들이 조심성이라니! 내가 가서 한번 구해 주어야겠다.” 과연 훌륭한 요정이라, 구름을 타고 올라 단숨에 연기와 불빛 아래 이르니, 과연 하늘을 찌를 듯한 불길이었다. 앞쪽 전각은 이미 텅 비었고 양쪽 행랑의 불길이 막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뛰어들어가며 물을 길어 오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때 보니 뒷채에는 불이 닿지 않았고 지붕 위에 사람 하나가 앉아 바람을 불어 대고 있었다. 그는 비로소 사정을 알아차리고 급히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다. 방장 한가운데에는 노을 같은 빛과 오색 기운이 이는 듯하고, 탁자 위에 푸른 담요 보따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풀어 보니 금란가사 한 벌이니, 바로 불문의 기이한 보배였다. 이는 참으로 재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리라. 흑웅정은 불도 끄지 않고 물도 외치지 않고 그 가사를 움켜쥔 채, 혼란을 틈타 약탈하듯 구름 걸음을 되돌려 곧장 동산의 굴로 사라져 버렸다. 그 불은 오경이 되어 날이 밝아서야 비로소 꺼졌다. 보아라, 그 중들이 알몸에 가까운 몰골로 울고불고 하며 모두 재더미 속으로 들어가 구리와 쇠를 뒤지고 타다 남은 숯을 헤치고 금은을 털어 내는구나. 어떤 자는 담장 그늘에 삿자리를 씌워 움막을 엮고, 어떤 자는 붉은 담장 밑에 솥을 걸어 밥을 짓고 있었다. 억울하다고 소리치며 함부로 떠들고 마구 어수선하게 소란을 피웠다. 말하자면, 행자가 피화조를 거두어 한 차례 근두로 남천문 위에 올려 보내어 광목천왕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빌려주어 고맙소! 빌려주어 고맙소!” 천왕이 그것을 받아들이며 말했다. “대성께서는 참으로 성실하구려. 나는 그대가 내 보배를 돌려주지 않아 찾을 길이 없게 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렇게 직접 가져다 주는구려.”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어찌 남의 물건을 면전에서 떼어먹는 사람으로 보이오? 이를 일러 ‘빌린 것을 잘 갚으면 다시 빌리기 어렵지 않다.’ 하는 것이오.” 천왕이 말했다. “오래도록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니 궁으로 가 잠시 앉았다 감이 어떠하오?”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는 지난날과 달라 ‘썩은 걸상에 앉아 높은 이야기를 늘어놓을’ 처지가 못 되오. 이제 삼장법사를 모시느라 몸이 한가할 수 없소. 다음에 뵙소! 다음에 뵙소!” 급히 작별하고 구름을 타고 내려오니 또 태양성이 솟아 있었다. 곧장 선당 앞으로 와서는 몸을 흔들어 한 차례 변하여 꿀벌이 되어 날아 들어간 뒤 본모습으로 돌아와 보니, 사부님은 아직 깊이 잠들어 계셨다. 행자가 불렀다. “사부님, 날이 밝았사옵니다. 일어나시지요.” 삼장이 그제야 잠을 깨어 몸을 뒤척이며 말했다. “그러하구나.” 옷을 갖추어 입고 문을 열고 나오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무너진 담장과 붉은 벽만 즐비할 뿐 누각과 전각은 보이지 않았다. 크게 놀라며 말했다. “아니! 어찌하여 전각은 하나도 없단 말이냐? 모두 붉은 담장뿐이니 어찌 된 일이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아직 꿈을 꾸고 계시옵니다! 지난밤에 불이 났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나는 어찌 알지 못하였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선당을 지켰사옵고, 사부님이 깊이 주무시는 것을 보고 일부러 깨우지 않았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네가 선당을 지킬 재주가 있다면, 어찌하여 다른 방의 불은 끄지 않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 아뢰어 알게 하겠나이다. 과연 어제 사부님의 말씀대로 저희가 우리 가사에 눈독을 들이고는 우리를 불태워 죽일 계략을 꾸몄나이다. 만일 이 늙은 원숭이가 눈치채지 못하였다면 지금쯤 모두 재가 되어 버렸을 것이옵니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겁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저희가 불을 지른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저희가 아니고 누구겠사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혹시 너를 소홀히 대접한 탓에 네가 저지른 짓이 아니냐?”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그리 게으르고 못된 자로서 이런 좋지 못한 짓을 하겠나이까? 참으로 참으로 저희 집에서 불을 놓은 것이옵니다. 이 늙은 원숭이는 그 마음이 독한 것을 보고 정말로 불을 끄지 않았사옵고, 다만 조금 바람을 도와 준 것뿐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불이 났으면 마땅히 물을 도와야 할 터인데, 어찌 도리어 바람을 도왔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옛사람이 ‘사람에게 범을 상하게 할 마음이 없으면, 범도 사람을 상하게 할 뜻이 없다.’ 한 것을 아시지 못하옵니까? 사부님께서 불을 일으키지 않으셨으면 내 어찌 바람을 일으켰겠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가사는 어디 있느냐? 혹 불에 타 버린 것은 아니냐?” 행자가 말했다. “일 없사옵니다! 일 없사옵니다! 타지 않았사옵니다! 가사를 두었던 방장에는 불이 붙지 않았나이다.” 삼장이 분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조금이라도 상하거나 손상된 데가 있으면 나는 다만 그 주문을 외고 또 외리니, 너는 죽은 목숨이니라!” 행자가 놀라며 말했다. “사부님, 외지 마시옵소서! 외지 마시옵소서! 가사를 찾아 드리기만 하면 그만이옵니다. 제가 가져와서 길을 떠나게 해주시옵소서.” 삼장이 말을 끌고 행자가 짐을 메고 선당을 나서 곧장 뒤쪽 방장으로 향했다. 말하자면, 그 중들이 한창 슬퍼하고 있는데 홀연히 그 사부와 제자가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오는 것을 보자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져 말했다. “원혼이 목숨을 받으러 왔구나!” 행자가 호통쳤다. “무슨 원혼이 목숨을 받으러 왔단 말이냐? 어서 내 가사를 내놓아라!” 중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할아버님, 살려주소서! 원한에는 원한을 갚을 상대가 있고 빚에는 빚 받을 주인이 있는 법이옵니다. 목숨을 받으려 하신들 우리와는 상관이 없사옵고, 모두 광모와 늙은 중이 꾀를 내어 해하려 한 것이오니 우리에게는 목숨을 묻지 마시옵소서.” 행자가 윽 하고 소리쳤다. “이 죽어 마땅한 짐승 같은 놈들아! 누가 너희에게 목숨을 달라고 했느냐! 다만 가사를 내놓아 내가 길을 가게 하여라!” 그 가운데 담이 큰 중 둘이 말했다. “나으리, 당신들은 선당 안에서 이미 타 죽으셨는데, 이제 와서 가사를 찾으시니 끝내 사람이시오니이까, 귀신이시오니이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악독한 짐승들 같으니! 그곳에 무슨 불이 났단 말이냐? 너희가 앞으로 가 선당을 보고 나서 와서 말하여라!” 중들이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 살펴보니, 선당 바깥의 문과 창틀과 미닫이는 털끝만큼도 그을린 데가 없었다. 사람들이 두려워 몸서리치며, 비로소 삼장은 신통한 승려요 행자는 높은 호법임을 알아차렸다. 모두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는 눈에 동자가 없어 참된 이가 세상에 내려오신 줄을 몰랐나이다! 당신의 가사는 뒤편 방장에 계신 노사조님께 있사옵니다.” 삼장이 무너진 담장과 깨진 벽을 서너 겹이나 지나며 탄식을 그치지 않았다. 방장에는 과연 불이 닿지 않았다. 중들이 안으로 밀려들어가며 외쳤다. “사조님! 삼장은 신인이라 불에 타 죽지도 않았거니와, 이제 도리어 우리집 살림만 해치었나이다! 어서 가사를 꺼내어 저이에게 돌려주고 보내시지요.” 이 금지장로는 가사를 찾지 못한 데다 절의 집채까지 불태운 터라 몹시 번민하고 초조해하던 참이었는데, 이 말을 듣고서 어찌 감히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꾀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나갈 길도 물러설 길도 없게 되자, 그는 걸음을 떼어 허리를 굽힌 채 그 담벽을 향해 있는 힘껏 머리를 들이받았다. 가련타, 그저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러 넋이 흩어졌으니, 목구멍의 기운이 끊어지며 붉은 흙을 물들이는구나!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늙은 중의 성품이 어리석음을 탄식하노니, 인간 세상에서 한갓 장수한 늙은이가 되었구나. 가사를 얻어 먼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으나, 불보가 범상치 않음을 어찌 알았으리오! 오직 쉬움을 길고 오래도록 누릴 방도로 삼으려 하였으니, 반드시 쓸쓸하게 패망의 공만 취하리라. 광지와 광모가 무슨 쓰임이 되었느냐? 남을 해치고 제 이익만 챙기니 한바탕 헛것이로다! 놀란 중들이 울며 말했다. “사조님께서 이미 목숨을 끊으셨는데 가사마저 보이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틀림없이 너희가 훔쳐 숨겨 둔 것이로구나! 모두 나오너라! 이름을 적은 명부를 만들거라. 이 늙은 원숭이가 낱낱이 조사할 터이니!” 그 상하 방의 원주들이 본사의 중과 두타와 행동과 도인을 모조리 적어 명부 두 장을 만들었으니, 대소 인원이 모두 이백삼십 명이었다. 행자는 사부님을 높은 자리에 모시고는 그들이 하나하나 처음부터 이름을 부르게 하여 옷깃을 풀어 헤치게 하고서 낱낱이 몸을 수색하고 분명히 점명까지 마쳤으나, 가사는 끝내 없었다. 또 각 방두가 밖으로 옮겨 갔던 궤짝과 함지 등의 물건을 처음부터 되짚어 샅샅이 뒤졌으나, 거기에도 자취는 없었다. 삼장은 마음이 괴로워 행자를 몹시 원망하면서 윗자리에 앉아 그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행자는 풀썩 땅에 넘어져 머리를 감싸 쥐고 참기 어려운 듯 괴로워하며, 다만 “외지 마시옵소서! 외지 마시옵소서! 가사를 찾아 드리기만 하면 되옵니다!” 하고 애원했다. 그 중들이 이 광경을 보고는 하나하나 벌벌 떨며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말렸고, 삼장이 그제야 입을 다물고 주문을 그쳤다. 행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귀에서 쇠몽둥이를 뽑아 들고 그 중들을 때리려 하였다. 삼장이 호통치며 말렸다. “이 원숭이 녀석! 네 머리가 아프면서도 아직 겁이 나지 않으냐? 그래도 무례를 부리려 하느냐! 손을 놓아라! 사람을 다치게 하지 말아라! 다시 나를 위해 잘 캐물어 보아라!” 중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리고 삼장에게 애원했다. “나으리, 살려주소서! 저희는 참으로 본 적이 없사옵니다. 이 모든 것은 저 늙은 귀신의 잘못이옵니다. 그가 어젯밤에 당신의 가사를 바라보며 깊은 밤이 되도록 울기만 하고 감히 펴 보지도 못하였사옵니다. 생각하건대 오래도록 누리고자 하여 전가의 보물로 삼으려고 꾀를 짜내어 나으리를 불에 태워 죽이려 하였나이다. 불이 일어난 뒤 광풍이 크게 일어 각자 불을 끄고 물건을 옮기는 데만 마음을 쓰느라, 가사가 어디로 갔는지는 더욱 알지 못하옵니다.” 행자가 크게 노하여 방장 안으로 들어가 그 죽은 귀신의 시신을 끌어내어 옷을 벗겨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온몸에 그 보배는 없었다. 방장의 땅을 석 자나 파헤쳐 보았으나 또한 자취조차 없었다. 행자가 한참을 헤아리다가 물었다. “이 근처에 무슨 요괴가 도를 닦아 정이 된 자가 있느냐?” 원주가 말했다. “나으리께서 묻지 않으시면 아실 길이 없사옵니다. 이곳에서 정동남쪽에 흑풍산이 있사옵니다. 흑풍동 안에 흑대왕이란 자가 있사온데, 저희 늙은 귀신이 늘 그와 도를 논하였나이다. 그자가 바로 요정이옵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 산이 여기서 얼마나 떨어졌느냐?” 원주가 말했다. “겨우 이십 리이옵니다. 저기 산머리가 바라보이는 곳이 바로 그곳이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염려 놓으시옵소서. 더 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틀림없이 저 흑풍산 요괴가 훔쳐 갔음이 분명하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그곳이 여기서 이십 리나 떨어져 있는데, 어찌 단정코 그놈이라 할 수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어젯밤 그 불을 보지 못하셨나이까? 빛이 만 리를 치솟고 밝기가 사흘 길을 꿰뚫었사옵니다. 이십 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백 리라도 환히 비추었을 것이옵니다! 틀림없이 그놈이 불빛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것을 보고 그 틈을 타 남몰래 이곳으로 와서는 우리 가사가 보배인 줄 알아보고, 반드시 혼란한 김에 훔쳐 갔을 것이옵니다. 이 늙은 원숭이가 가서 한번 찾아보고 오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네가 가버리면 나는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그 점은 염려 마시옵소서. 어둠 속에서는 스스로 신령이 보호하고 계시옵고, 밝은 데서는 내가 저 중들을 시켜 모시게 하겠나이다.” 곧 중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너희는 몇 사람이 가서 저 늙은 귀신을 묻고, 몇 사람은 내 사부님을 모시며 내 흰 말을 지켜라!” 중들이 분부를 받들었다. 행자가 다시 말했다. “너희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대답해 놓고 내가 가버리면 시중들지 않으려 하지 말아라. 사부님을 모시는 자는 얼굴빛을 화평하고 기쁘게 해야 하고, 흰 말을 기르는 자는 물과 풀을 고루 맞춰 주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틀리는 바가 있으면 이 몽둥이 본보기를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가 몽둥이를 뽑아 들어 불에 탄 벽돌 담장을 향해 퍽 하고 한 번 내리치니, 그 담장이 산산조각이 나며 다시 일고여덟 겹의 담장이 무너져 내렸다. 중들은 그것을 보고 하나하나 뼈가 녹고 몸이 저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떨어뜨려 말했다. “할아버님, 마음 놓고 가시옵소서. 저희가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나으리를 받들어 모시되, 결코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겠나이다!” 과연 훌륭한 손오공이라, 급히 근두운을 타고 곧장 흑풍산으로 올라가 그 가사를 찾으러 갔다. 바로 이것이로다. 금선이 바른 도를 구하여 도성을 떠나고, 석장을 짚고 서쪽으로 향해 푸른 산자락을 넘네. 가는 곳마다 호랑이와 표범과 이리와 벌레가 있건만, 장사꾼과 선비와 나그네는 보기 드물구나. 길에서 이국의 어리석은 중의 시기를 만났으나, 오로지 제천대성의 위엄에 힘입었도다. 불이 일고 바람이 일어 선당이 폐허가 되니, 흑웅이 밤에 금란가사를 훔쳐 갔도다. 결국 이 길을 나서 가사가 있고 없는지, 길흉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7회 손행자대요흑풍산(孫行者大鬧黑風山) · 관세음수복웅비괴(觀世音收伏熊羆怪) 말하자면, 손행자가 한 차례 근두를 굴러 벌떡 일어나 공중으로 뛰어오르니, 관음원의 대소 승려와 두타와 행동과 도인들이 놀라 하나하나 하늘을 우러러 절하며 아뢰었다. "할아버님이시여! 알고 보니 구름 타고 안개 몰던 신성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셨던 것이옵니다! 불길이 상하지 못한 까닭을 이제야 알겠나이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 그 늙은 가죽 벗기는 자가 꾀를 부리고 또 부리더니, 오늘 도리어 제 목숨을 해쳤으니 원통하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여러분, 일어나시구려. 원망할 것 없소. 이번에 가서 가사만 찾으면 만사가 그만이나, 찾지 못할까 두렵소. 내 그 제자는 성미가 몹시 좋지 못하니 여러분의 목숨이 어찌될지 몰라 한 사람도 벗어나지 못할까 염려되오." 중들이 이 말을 듣고는 하나하나 가슴을 졸이며 하늘에 빌고 소원을 올리되, 다만 가사를 찾아 저마다 목숨을 보전하게 해 달라고 빌 뿐이었다. 말하자면, 손대성이 공중에 이르러 허리를 한 번 비틀자 어느새 흑풍산 위에 당도하였다. 구름머리를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훌륭한 산이로구나. 게다가 마침 봄빛이 한창인 계절이라, 보이는 바가 이러하였다. 만 골짜기가 다투어 흐르고, 천 갈래 벼랑이 빼어남을 겨루누나. 새는 울되 사람 보이지 않고, 꽃은 지되 나무는 향기롭도다. 비 갠 하늘은 푸른 벽에 닿아 촉촉하고, 바람 이는 솔숲은 병풍을 펼치누나. 산풀 돋고 들꽃 피니 벼랑이 깎아지른 듯하고, 덩굴 자라고 아름다운 나무 곱게 서니 험한 고개와 평평한 언덕이로다. 그윽한 이를 못 만나니 나무꾼을 어디서 찾으리오. 냇가에 학 두 마리 물을 마시고, 바위 위에 들원숭이 미치듯 뛰노누나. 솟은 소라떼가 먹빛을 늘어세우고, 높이 솟은 푸른 산이 안개 빛을 희롱하는도다. 그 행자가 막 산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홀연히 꽃다운 풀언덕 앞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가만히 발을 옮겨 자취를 감추고 돌 벼랑 아래에 몸을 숨긴 채 눈을 들어 엿보았다. 알고 보니 요마 셋이 땅에 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는데, 윗자리에는 검은 사내 하나, 왼쪽 아래에는 도인 하나, 오른쪽 아래에는 흰옷 입은 선비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높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이야기하는 내용은 화덕을 세우고 노를 안치며, 모래를 뭉치고 수은을 단련하는 것이요, 백설과 황아니라 방문 외도의 이야기였다. 한창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 검은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튿날은 내가 태어난 날이오. 두 분도 한번 와 주시겠소?" 흰옷 입은 선비가 말했다. "해마다 대왕님께 장수를 축하해 드렸거늘, 금년이라고 어찌 오지 않을 리가 있겠소?" 검은 사내가 말했다. "내 어젯밤에 보배 하나를 얻었는데, 이름하여 금란불의라 하오. 그놈이 참으로 훌륭한 완상거리로다. 내일 그것을 장수 선물로 삼아 큰 잔치를 열고 여러 산의 도관을 청해 불의를 축하하려 하는데, '불의회'라 이름하는 것이 어떠하오?"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묘하오! 묘하오! 묘하오! 내일은 먼저 와서 장수를 축하드리고, 이튿날에 다시 와서 잔치에 참여하겠소." 행자가 불의라는 말을 듣고는 틀림없이 자기 보배라고 여겼다. 그는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돌 벼랑 밖으로 뛰어나가며 두 손으로 금고봉을 치켜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도적 요괴 놈들아! 네놈들이 내 가사를 훔쳐다가 무슨 '불의회'를 하려 드느냐! 어서 일찍이 내놓아라!" 그리고 "달아나지 마라!" 하고 호통치며 몽둥이를 휘둘러 머리를 내리치니, 놀란 검은 사내는 바람으로 변해 달아나고 도인은 구름을 타고 사라졌으며, 다만 그 흰옷 입은 선비만이 몽둥이 한 방에 맞아 죽었다. 그것을 끌어다 놓고 살펴보니, 한 마리 흰 꽃무늬 뱀이 요괴가 된 것이었다. 하는 김에 그것을 들어 올려 대여섯 토막으로 찢어 버리고는 곧장 깊은 산으로 들어가 그 검은 사내를 찾았다. 뾰족한 봉우리를 돌고 험한 고개를 지나니, 또 저쪽 가파른 벼랑 앞에 굴 하나가 우뚝 솟아 나왔는데, 보이는 바가 이러하였다. 연기와 노을 아스라이 피어나고, 송백이 울창하구나. 연기와 노을 아스라이 피어나니 고운 빛이 문에 넘치고, 송백이 울창하니 푸른 기운이 집을 두르누나. 다리는 마른 나뭇가지를 딛고 놓였고, 봉우리 꼭대기엔 덩굴이 휘감았도다. 새는 붉은 꽃술을 물고 구름 골짜기로 오고, 사슴은 꽃다운 풀숲을 밟아 돌섬에 오르누나. 문 앞에선 철이 꽃 피움을 재촉하고 바람이 꽃향기 실어 오며, 둑의 푸른 버들엔 꾀꼬리 돌고 물가의 고운 복숭아엔 흰 나비 나네. 비록 거친 들이라 자랑할 수 없으나, 도리어 봉래산 아래 경치를 이기는구나. 행자가 문 앞에 이르러 보니, 또 두 짝의 돌문이 몹시 단단히 닫혀 있었다. 문 위에는 가로로 돌판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또렷하게 여섯 큰 글자가 쓰여 있으니 바로 "흑풍산 흑풍동"이었다. 그가 곧 몽둥이를 휘두르며 "문 열어라!" 하고 소리치니, 그 안에 문을 지키는 작은 요괴가 있어 문을 열고 나오며 물었다. "너는 어떤 자이기에 감히 내 신선 굴을 두드리느냐?" 행자가 욕하며 말했다. "이 죽을 짐승 같으니! 무슨 곳이라고 감히 선굴이라 일컫느냐! '선' 자를 네가 감히 쓴단 말이냐? 어서 들어가 너의 그 검은 사내에게 알리고, 그에게 나으리 가사를 내보내라 하여라. 그러면 너희 한 굴의 목숨을 살려 주마!" 작은 요괴가 급히 안으로 달려가 아뢰었다. "대왕님! '불의회'를 열 수 없게 되었나이다! 문 밖에 털북숭이 얼굴에 뇌공 주둥이를 한 중 하나가 나타나 가사를 찾으러 왔나이다!" 그 검은 사내는 행자에게 꽃다운 풀언덕 앞에서 쫓겨 온 터라, 이제야 문을 닫고 앉아 아직 자리도 편치 못했다. 그런데 또 그 말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놈은 어디서 온 자인지 이토록 무례하여, 감히 내 집 문 앞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는구나!" 그리고는 일렀다. "갑옷을 가져오너라." 곧바로 단단히 무장하고 검은 술 달린 창 한 자루를 집어 들고 문 밖으로 나왔다. 행자가 문 밖에서 쇠몽둥이를 잡고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그 요괴의 생김새가 과연 흉험하였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사발 같은 쇠투구는 칠한 듯 윤이 나고, 오금 갑옷은 눈부시게 찬란하구나. 검은 비단 도포는 바람 막는 소매를 덮고, 검푸른 명주띠는 늘어진 술이 길도다. 손엔 검은 술 창 한 자루 쥐고, 발엔 검은 가죽 신 한 켤레 신었구나. 번쩍이는 금빛 눈이 번개 같으니, 이가 바로 산중의 흑풍왕이로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놈은 참으로 가마를 굽는 자와 다름없고 숯을 다지는 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구나! 필시 이곳에서 숯이나 긁어모으며 살아가는 모양이니, 어찌하여 이토록 온몸이 새까맣단 말이냐?" 그 요괴가 목청을 돋우어 크게 외쳤다. "너는 무슨 중이기에 감히 내게 와서 큰소리를 치느냐?" 행자가 쇠몽둥이를 잡고 앞으로 달려 나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워라! 어서 네 이 외할아버지의 가사를 내놓아라!" 그 요괴가 말했다. "너는 어느 절의 중이냐? 네 가사는 어디에서 잃어버렸기에 감히 내게 와서 내놓으라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 가사는 정북쪽 관음원의 뒤편 방장에 두었었다. 그런데 그 절에 불이 나자, 이놈이 혼란을 틈타 약탈하여 훔쳐다가 '불의회'를 열어 장수를 축하하려 하였으니, 어찌 감히 잡아떼려 하느냐? 어서 내놓아라, 그러면 네 목숨을 살려 주마! 만일 이에서 '아니'라는 글자 반 개가 튀어나오기만 하면, 내가 흑풍산을 밀어 쓰러뜨리고 흑풍동을 평평하게 만들어, 너희 이 굴의 요사한 무리들을 모조리 가루로 갈아 버리리라!"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는 히히 웃으며 냉소를 띠고 말했다. "이 천치 같은 놈아! 알고 보니 어젯밤 그 불을 네가 지른 것이로구나! 네가 그 방장 지붕 위에서 흉악한 짓을 하며 바람을 일으키기에, 내가 가사 한 벌을 집어 온 것인데, 네가 어찌하겠단 말이냐! 너는 어디서 온 자냐?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재주가 얼마나 크기에 감히 그처럼 허풍을 떠느냐!" 행자가 말했다. "너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구나! 내가 바로 대당 상국 임금님의 어제삼장법사의 제자요, 성은 손이요 이름은 오공이니 손행자라 하느니라. 만일 이 늙은 원숭이의 재주를 묻겠다면, 말해 주마. 들으면 너는 넋이 날아가고 혼이 흩어져 당장 눈앞에서 죽으리라!" 그 요괴가 말했다. "나는 너와 만난 적이 없으니, 무슨 재주가 있는지 말해 보아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아들 놈아, 똑바로 서서 자세히 들으라! 나란 놈은," 어릴 적부터 신통한 재주가 뛰어나서, 바람을 따라 변화하며 영웅을 뽐내었느니라. 성품을 기르고 참된 도를 닦아 세월을 견디며, 윤회에서 벗어나 목숨을 건졌도다. 한 점 정성으로 일찍이 도를 찾아, 영대산 위에 올라 약초를 캐었네. 그 산에 늙은 신선 하나가 있어, 나이가 십만 팔천이나 되었느니라. 이 늙은 원숭이가 그이를 스승으로 모시니, 장생하는 길 한 가닥을 가리쳐 주었도다. 그이가 말하기를 몸 안에 단약이 있으니, 밖에서 캐려 애쓰는 것은 헛수고라 하였네. 대품천선결을 전해 받았으나, 근본이 없으면 실로 견디기 어렵더라. 빛을 거두어 안을 비추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앉아, 몸 안의 해와 달이 감과 리를 사귀게 하였도다. 만 가지 일을 생각지 않아 온전히 욕심이 적고, 여섯 감관이 맑아 몸이 굳건하구나. 늙음을 되돌려 젊어지기는 쉽게 얻고, 범속함을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드는 길이 멀지 않도다. 삼 년을 샘 없이 지내어 신선의 몸을 이루니, 속된 무리와 달리 불타는 고통을 겪지 않았네. 시주와 삼도를 두루 노닐고, 바다 끝 하늘가를 한 바퀴 돌았도다. 삼백여 년을 살았으나, 아직 구천으로 올라 날아가지는 못하였네. 바다에 내려가 용을 항복받고 참된 보배를 얻어서, 바야흐로 금고봉 한 자루를 갖게 되었도다. 화과산 앞에서 으뜸 수령이 되고, 수렴동에서 무리 요괴들을 모았네. 옥황상제가 조서를 내려, 나를 제천의 극품 벼슬에 봉하였도다. 몇 차례나 영소전을 크게 뒤집고, 여러 번 서왕모의 반도를 훔쳤네. 천병 십만이 나를 항복시키러 왔는데, 층층이 빽빽이 창과 칼을 늘어세웠도다. 천왕을 물리쳐 상계로 돌려보내고, 나타는 쓰라린 상처를 안고 군사를 이끌고 달아났네. 현성진군이 변화를 잘하였으나, 이 늙은 원숭이도 굳세게 겨루어 호각을 이루었도다. 도조와 관음이 옥황과 함께, 남천문 위에 올라 항복시키는 것을 보았네. 그러나 노군이 한 진을 돕는 바람에, 이랑이 나를 사로잡아 천궁으로 끌고 갔도다. 몸을 항요주에 묶어 두고, 곧 신병에게 명하여 목을 베라 하였네. 칼로 찍고 쇠망치로 두드려도 상하지 않으니, 다시 벼락을 내리고 불을 질러 태우라 하였도다. 이 늙은 원숭이는 실로 재주가 있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노군의 화로 속에 넣어 단련하는데, 육정신화로 천천히 달구어 내었도다. 날이 차자 화로를 열고 내가 뛰어나와, 쇠몽둥이를 들고 하늘을 두르며 달렸네. 가는 곳마다 가로막을 자 없어, 삼십삼천을 한바탕 뒤집었도다. 아미타불 여래께서 법력을 쓰시어, 오행산으로 이 늙은 원숭이의 허리를 눌렀네. 꼬박 오백 년을 눌려 있었으나, 다행히 삼장을 만나 당나라에서 나왔도다. 이제 바른 도에 귀의하여 서쪽으로 가니, 곧 뇌음사로 올라가 부처님의 흰 빛을 뵈오리라. 네가 온 천하와 사해를 두루 돌아다니며 물어보아라, 나는 역대로 이름을 떨친 첫째가는 요괴니라!"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알고 보니 천궁을 뒤집어 놓았다는 그 필마온이냐?" 행자가 가장 분하게 여기는 것은 남들이 자기를 필마온이라 부르는 일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 속에서 큰 노가 치밀었다. 그는 욕하며 외쳤다. "이 도적 요괴 같으니! 가사를 훔쳐 놓고 돌려주기는커녕 이 나으리를 다치게 하려 드느냐! 서지 말라! 몽둥이를 받아라!" 그 검은 사내는 몸을 비켜 긴 창을 쥐고 맞받아 덤벼들었다. 두 편이 벌인 이 한 판의 다툼이 참으로 통쾌하였으니, 여의봉과 검은 술 창이여, 두 사람이 굴 어귀에서 강하기를 겨루는구나. 가슴을 겨누고 얼굴을 쪼개며 찌르고, 팔을 겨냥하고 머리를 향해 상하게 하네. 이쪽은 옆으로 음흉한 몽둥이 솜씨를 뿌리고, 저쪽은 곧바로 급히 세 번 창을 겨누는구나. 백호가 산을 기어오르며 발톱을 뻗치고, 황룡이 길에 엎드려 몸을 돌리느라 바쁘도다. 채색 안개를 뿜고 가는 광채를 토하니, 두 요선을 헤아릴 수 없구나. 하나는 도를 닦아 바루어진 제천대성이요, 하나는 정이 들어 요괴가 된 흑대왕이로다. 이 산속에서 서로 다투는 까닭은, 오직 가사 때문에 제각기 마음이 곱지 않아서니라. 그 요괴가 행자와 열 몇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차츰 붉은 해가 한낮에 걸리자, 그 검은 사내가 창을 들어 쇠몽둥이를 받쳐 막으며 말했다. "손행자, 우리 잠시 군사를 거두자꾸나. 내 밥을 먹고 나서 다시 너와 겨루겠다." 행자가 말했다. "이놈의 요물아, 네가 어찌 사내 대장부라 할 수 있겠느냐? 좋은 사내라면 반나절 만에 밥부터 찾으려 드느냐? 이 늙은 원숭이는 산기슭 아래 꼬박 오백 년을 눌려 있으면서도 국물 한 모금 맛본 적이 없는데 배가 고프더냐? 핑계 말고 내 가사나 내놓아라! 그래야 네가 밥 먹으러 가리라!" 그 요괴는 창을 허공에 휘둘러 보고는 몸을 빼 굴 속으로 들어가 돌문을 닫아걸고 작은 요괴들을 거둔 뒤, 잔치를 차리고 청첩을 써서 여러 산의 마왕들을 청해 경하 잔치를 벌이려 하였다. 말하자면, 행자는 문이 열리지 않으니 도리 없이 관음원으로 돌아왔다. 그 절의 승려들은 이미 늙은 중을 장사 지내고 모두 방장에서 삼장법사를 모시고 있었다. 이른 아침 공양을 마치고 점심 공양까지 차려 놓았는데, 한창 국을 더 붓고 물을 갈아 주고 있는데 행자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중들이 예를 갖추어 맞이하여 방장으로 모셔 들이고, 삼장을 뵙게 하였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네가 왔느냐? 가사는 어찌되었느냐?" 행자가 말했다. "연유를 알아냈사옵니다. 다행히 이 중들을 억울하게 할 뻔하지 않았사옵니다. 알고 보니 저 흑풍산의 요괴가 훔쳐 간 것이었나이다. 이 늙은 원숭이가 남몰래 가서 그놈을 찾아보니, 그놈이 흰옷 입은 선비 하나와 늙은 도인 하나와 함께 저 꽃다운 풀언덕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나이다. 또한 제 입으로 먼저 털어놓는 요물이라, 이튿날이 제가 태어난 날이니 여러 요사한 무리들을 청해 생일을 치르겠다 하고, 어젯밤에 금란불의 한 벌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장수 선물을 삼아 큰 잔치를 베풀어 이름하여 '불의를 경상하는 모임'이라 하겠다 하였나이다. 그래서 이 늙은 원숭이가 달려 나가 몽둥이로 한 방 내리치니 검은 사내는 바람이 되어 달아나고 도인도 사라졌으며, 다만 흰옷 입은 선비만 때려죽였사온데 알고 보니 흰 꽃무늬 뱀이 정이 든 것이었나이다. 내 또 급히 그놈의 굴 어귀까지 쫓아가 나오라고 하여 겨루었사옵니다. 그놈도 이미 자기가 가져갔다고 시인하였나이다. 반나절을 싸웠으되 승부가 나지 않았사옵니다. 그 요괴가 굴로 돌아가서는 밥을 먹겠다며 돌문을 닫아걸고 싸움을 겁내어 나오지 않나이다. 그래서 이 늙은 원숭이가 먼저 스승님께 이 소식을 알리려고 돌아왔사옵니다. 가사가 있는 곳을 이미 알았으니, 그놈이 내놓지 않을까 두렵지 않사옵니다." 중들이 그 말을 듣고는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모두 소리 내어 "나무아미타불!"을 외쳤다. "오늘 행방을 찾아냈으니, 우리들도 이제야 목숨을 건지게 되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기뻐하며 즐거워하기를 그만두어라. 내 아직 손에 넣지 못하였고 스승님도 아직 문을 나서지 못하셨다. 가사를 되찾아 무사히 스승님을 떠나보내야 너희도 편안할 것이니,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이 늙은 원숭이가 어디 호락호락한 상대인 줄 아느냐! 좋은 차와 밥을 내어 내 스승님께 드렸느냐? 좋은 꼴과 여물을 내어 말에게 먹였느냐?" 중들이 모두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러하였나이다! 그러하였나이다! 그러하였나이다! 터럭만큼도 소홀히 하지 않았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네가 간 반나절 동안 나는 벌써 차와 국을 세 번 마셨고 공양도 두 차례 받았다. 이 절 사람들이 감히 나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다만 너는 힘을 다해 가사를 찾아오기만 하여라." 행자가 말했다. "서두르지 마시옵소서! 행방을 알았으니 틀림없이 이놈을 붙잡아 원래 물건을 돌려드리겠나이다. 염려 놓으시옵소서, 염려 놓으시옵소서!" 한창 이야기하는데 그 상방 원주가 또 채소 공양을 차려 손나으리를 청하여 공양을 들게 하였다. 행자는 조금 들고는 다시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또 찾아 나섰다. 가는 도중에 행자가 보니, 작은 요괴 하나가 왼 겨드랑이에 꽃무늬 배나무로 만든 함 하나를 끼고 큰길을 따라 오고 있었다. 행자는 그 함 안에 틀림없이 무슨 편지가 들어 있으리라 짐작하고는 몽둥이를 들어 올려 머리 위로 한 방 내리쳤다. 가련하게도 한 방을 견디지 못하여 고기 떡처럼 뭉개져 버렸다. 행자가 그것을 길가로 끌어다 놓고 함을 열어 보니, 과연 청첩 한 장이었다. 그 청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생 웅비가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리나이다. 크게 덕을 떨치시는 금지 노상인의 단방에 아뢰옵나이다. 여러 차례 은혜를 입었사오니 감격이 깊사옵니다. 어젯밤 그 불의 재난을 바라보고도 구해 드리지 못하였사오나, 선기께서는 필시 다른 해가 없으시려니 믿사옵니다. 이승이 우연히 불의 한 벌을 얻었사오니 아름다운 모임을 열고자 삼가 술상을 차려 맑은 구경을 함께하기를 청하옵니다. 기일이 이르거든 부디 오시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옵소서. 삼가 바라나이다. 이보다 이틀 앞서 올리나이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늙은 가죽 벗기는 자는 죽어도 조금도 억울할 것이 없구나! 알고 보니 그자가 요정과 한패였던 말이다! 그자가 이백칠십 세나 살아남은 까닭을 이제야 알겠구나. 필시 저 요괴가 기운 삼키는 요술을 가르쳐 주어 그런 수명을 누렸을 터이다. 이 늙은 원숭이는 그자의 얼굴을 기억하니 내가 곧 저 중으로 변해 그 굴 속을 한번 가 보리라. 내 그 가사를 어디에 두었는지 보고자 함이니, 만일 손에 넣기만 하면 곧장 가져와 힘을 아낄 수 있겠구나." 과연 훌륭한 대성이라, 주문을 외우며 바람을 맞받아 한 차례 변하니 과연 그 늙은 중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쇠몽둥이를 감추고 성큼성큼 걸어 굴 어귀에 이르러 "문 열어라." 하고 소리쳤다. 그 작은 요괴가 문을 열어 보고는 이런 모습이라 급히 몸을 돌려 안으로 달려가며 아뢰었다. "대왕님, 금지장로가 오셨나이다." 그 요괴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방금 작은 놈을 시켜 청첩을 가지고 가서 청하게 하였는데, 이 시각에는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도 못하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그자가 이처럼 빨리 올 수 있단 말이냐? 필시 작은 놈이 그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로구나. 틀림없이 손행자가 그자를 불러다 가사를 도로 찾으러 온 것이니라. 일을 맡은 자들은 불의를 감추어 두어라, 그자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여라." 행자가 앞문으로 들어서니 뜰 가운데 소나무와 대나무가 푸름을 섞고 복숭아와 자두가 고움을 다투며, 꽃이 포기마다 피고 난초 향기가 무리마다 피어올라 과연 신선이 사는 굴속 경치로다. 둘째 문에는 주련 하나가 걸려 있는데, 쓰인 바가 이러하였다. "깊은 산에 고이 숨으니 속된 근심 없고, 그윽한 선굴에 사니 하늘이 내려주신 참됨을 즐기누나." 행자는 속으로 말했다. "이놈도 티끌을 씻고 속세를 떠나 분수를 아는 요물이로구나." 문 안으로 들어가 앞으로 더 나아가 세 번째 문에 이르니, 모두 그림을 아로새긴 들보와 조각한 서까래요, 밝은 창과 채색을 입힌 문이었다. 그곳에서 보니 그 검은 사내는 검푸른 명주 솜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까치빛 꽃무늬 능라 비풍을 걸쳤으며, 검은 뿔로 꾸민 부드러운 두건을 쓰고 노루가죽 검은 신 한 켤레를 신고 있었다. 행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옷과 두건을 여미고 섬돌을 내려와 맞으며 말했다. "금지 노우여, 여러 날 소원하였소. 앉으시오, 앉으시오." 행자가 예로 맞절을 하였다. 인사를 마치고 앉자 곧 차가 올라왔다. 차를 마치고 나자 요정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방금 작은 편지를 올려 이튿날에 한자리를 함께하자 하였거늘, 어찌하여 노우께서 오늘 벌써 찾아오셨소?" 행자가 말했다. "마침 찾아뵙고자 나오다가 길에서 그 편지를 만났소. '불의의 아름다운 모임'이 있다 하기에 이리 급히 달려왔으니, 한번 보고자 하오." 그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노우께서 잘못 아셨소. 이 가사는 본디 당승의 것이니, 그이가 당신 처소에 머물고 있거늘 어찌 보지 못하셨다가 도리어 내게 와서 보려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이 승이 빌려 왔으나 밤이라 아직 펴 보지 못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대왕께서 가져가셨소. 또 불이 산중을 태워 집안 살림을 잃었고 저 당승의 제자가 또한 용맹하여 어수선한 통에 사방을 찾아도 보이지 않더이다. 알고 보니 대왕의 큰 복으로 거두어 두신 것이라, 이에 특별히 와서 한번 보고자 하였소." 한창 이야기하는데 순찰을 나갔던 작은 요괴 하나가 달려와 아뢰었다. "대왕님! 큰일 났나이다! 청첩을 전하러 갔던 작은 교졸이 손행자에게 큰길 곁에서 맞아 죽었나이다! 그놈이 수단을 부려 금지장로로 변화하여 불의를 속여 빼앗으러 온 것이옵니다!"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말했다. "내 짐작이 옳았구나. 저 장로가 어찌하여 오늘 곧장 왔으며 또 그리 빨리 왔단 말인가. 과연 그놈이었어!" 급히 몸을 날려 창을 집어 들고는 곧장 행자를 찔렀다. 행자가 귀에서 몽둥이를 급히 뽑아 본모습을 드러내어 창끝을 막은 채 가운데 청사에서 뛰어나와 뜰을 지나 앞문 밖까지 싸우며 나갔다. 놀란 굴속 요괴들은 모두 간담이 떨어지고 집 안의 늙은이 젊은이가 온통 넋을 잃었다. 이번 산머리에서 벌인 승부는 지난번보다 더욱 판이 달랐다. 참으로 통쾌한 싸움이었으니, 원숭이 왕은 담이 커 중을 사칭하고, 검은 사내는 영리하여 불의를 감추었구나. 말이 오가는 사이 기회가 묘히 맞고, 때를 따라 변함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도다. 가사는 보려 해도 볼 길 없고, 보배의 그윽한 미묘함이 참으로 오묘하구나. 작은 요괴는 산을 살피고 와 재앙을 아뢰고, 늙은 요괴는 성을 내며 신위를 드러내었네. 몸을 뒤집어 흑풍동을 쳐 나오니, 창과 몽둥이가 겨루어 시비를 가리누나. 몽둥이가 긴 창을 막으니 소리 울리고, 창이 쇠몽둥이를 맞받으니 광채를 뿜는구나. 오공의 변화는 인간에 드물고, 요괴의 신통 또한 세상에 드물도다. 이쪽은 불의로 장수를 축하하려 하나, 저쪽은 가사를 못 얻으면 어찌 순순히 돌아가려 하리오. 이번의 치열한 싸움은 쉽게 헤어질 수 없나니, 산 부처님이 친히 세상에 내려오신다 한들 이 판을 풀어 내지는 못하리라. 그 두 사람은 굴 입구에서 산머리로 싸워 올라가고, 산머리에서 구름 밖으로 싸우며 나갔다. 안개를 토하고 바람을 뿜으며 모래를 날리고 돌을 굴리면서 붉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 요괴가 말했다. "성씨가 손이라는 자야, 잠시 손을 멈추어라. 오늘은 날이 저물어 더 겨룰 수 없다. 가거라, 가거라! 내일 아침에 와서 너와 죽고 삶을 정하겠다." 행자가 외쳤다. "이놈아, 달아나지 말라! 싸우려거든 싸움다워라, 날이 저물었다고 핑계를 대지 말라!" 보아라, 행자가 머리든 얼굴이든 가리지 않고 마구 몽둥이를 휘둘렀으나, 저 검은 사내는 또 맑은 바람이 되어 본 굴로 돌아가 돌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행자는 달리 도리가 없어 관음원으로 돌아왔다. 구름머리를 내려놓고 "스승님!" 하고 불렀다. 그 삼장은 애타게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홀연히 앞에 나타나니 몹시 기뻤다. 그러나 그의 손에 가사가 없는 것을 보고는 또 겁이 났다. 그래서 물었다. "어찌하여 이번에도 아직 가사를 가져오지 못하였느냐?" 행자가 소매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어 삼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스승님, 저 요물과 이 죽은 늙은 가죽 벗기는 자는 본디 벗이었사옵니다. 그자가 작은 요괴 하나를 시켜 이 청첩을 보내어 '불의회'에 오라고 청하였나이다. 그래서 이 늙은 원숭이가 그 작은 요괴를 죽이고 저 늙은 중으로 변해 그 굴로 들어가 차 한 잔을 얻어 마셨사옵니다. 가사를 꺼내어 보자 하였으나 그놈이 내놓으려 하지 않았사옵니다. 한창 앉아 있는데 홀연히 순찰을 도는 자가 있어 소식이 새어 나가자, 그놈이 나와 맞붙어 싸웠나이다. 이렇게 저녁때까지 싸웠으되 우열이 갈리지 않았사옵니다. 그놈이 날이 저문 것을 보고 휙 굴로 되돌아가 돌문을 굳게 닫았나이다. 이 늙은 원숭이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우선 돌아왔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네 재주가 그놈과 견주어 어떠하냐?" 행자가 말했다. "나도 그놈보다 조금 나을 뿐이니, 그저 호각일 뿐이옵니다." 삼장은 그제야 청첩을 보고 나서 그것을 원주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네 스승은 혹 요정이 아니냐?" 그 원주가 황망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으리, 저의 스승님은 사람이옵니다. 다만 저 흑대왕이 사람의 도를 이루어 늘 절에 와서 스승님과 경을 강론하였고, 스승님께 정신을 기르고 기운을 삼키는 술법을 전해 주었기에 벗이라 부르게 되었을 뿐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이 중들에게는 요기가 없소. 그들은 머리가 둥글어 하늘을 이고 발이 모나 땅을 디디고 있으니 다만 이 늙은 원숭이보다 살지고 클 뿐이오, 요정이 아니오. 저 청첩에 '시생 웅비'라 쓰인 것을 보시오. 필시 이놈은 검은 곰이 정이 든 것이오." 삼장이 말했다. "내 옛사람이 '곰과 성성이란 서로 비슷하다.' 한 것을 들었노라. 모두 짐승인데, 그놈이 어찌 정을 이룰 수 있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도 짐승이로되 이제 제천대성이 되었으니 그놈과 무슨 다름이 있겠나이까? 대저 세상 만물은 아홉 구멍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 도를 닦아 신선이 될 수 있사옵니다." 삼장이 또 말했다. "네가 방금 그놈의 재주가 너와 호각이라 하였는데, 그러면 어찌 이겨 내 가사를 도로 가져오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상관 마시옵소서, 상관 마시옵소서. 내게 방도가 있사옵니다." 한창 의논하는데 중들이 저녁 공양을 차려 올려 사부와 제자가 먹게 하였다. 삼장은 등불을 켜라 하고 다시 앞 선당으로 가 잠자리를 정하였다. 중들은 모두 담장에 기대고 벽에 붙어 움막을 엮어 저마다 잠들고, 오직 뒤편 방장만 상하 원주에게 내어 주어 몸을 누이게 하였다. 이때 밤이 고요하니 보이는 바가 이러하였다. 은하수 그림자를 드러내고 옥우에는 티끌이 없구나. 하늘 가득 별이 찬란하고, 물에는 물결이 자취를 거두었도다. 만 가지 소리가 잦아들고, 천 산의 새가 끊겼구나. 냇가의 고깃불은 꺼지고, 탑 위의 불등은 흐릿하도다. 어젯밤에는 중들의 종과 북 소리가 울리더니, 오늘 밤에는 온통 곡소리뿐이로다. 이 밤에 선당에서 묵게 되었다. 삼장은 가사 때문에 걱정이 되어 어찌 편히 잠들 수 있었겠는가. 홀연히 몸을 뒤척이다가 창 밖이 훤해 온 것을 보고 급히 일어나 외쳤다. "오공아, 날이 밝았다. 어서 가사를 찾으러 가거라." 행자가 벌떡 일어났다. 이미 중들이 곁에 서서 더운 물과 음식을 받들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정성을 다해 내 스승님을 모셔라. 이 늙은 원숭이는 가겠다." 삼장이 침상에서 내려와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너는 어디로 가려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 생각에 이 일은 모두 관음보살이 잘못하신 것이오. 그분이 이 선원을 두고 이 고장 사람들의 향불을 받으면서도, 저 요정을 이웃에 살게 두었소. 내가 남해로 가서 그분을 찾아 따져 물어, 친히 오시어 요정에게 가사를 도로 찾아 달라 하겠소." 삼장이 말했다. "네가 그리 가면 언제 돌아오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짧으면 밥을 마치고 올 것이요, 길어야 한낮이면 성사되어 돌아오겠소. 저 중들이 잘 모실 테니, 이 늙은 원숭이는 가겠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벌써 자취가 없었다. 잠시 사이에 남해에 이르렀다. 구름을 멈추고 바라보니, 보이는 바가 이러하였다. 아득한 바다 멀어 물이 하늘에 이어졌구나. 상서로운 빛이 우주를 덮고 좋은 기운이 산천을 비추네. 천 겹 흰 물결이 푸른 하늘에 울부짖고, 만 겹 안개 물결이 대낮을 뒤덮는구나. 물은 사방 들판으로 날고 물결은 둘레를 굴러 흐르도다. 물이 사방 들판으로 날아가니 천둥이 울리고, 물결이 둘레를 굴러 흐르니 벼락이 진동하누나. 물의 기세는 접어 두고 그 한가운데를 보라. 오색이 아스라이 겹친 보배 산이요, 붉고 누렇고 보랏빛 검고 푸른빛이 섞였구나. 관음의 참된 승경을 비로소 보았으니, 이곳이 바로 남해의 낙가산이로다. 과연 좋은 곳이로구나! 산봉우리 높이 솟아 꼭대기가 허공을 꿰뚫었고, 그 가운데 온갖 기이한 꽃과 백 가지 서초가 피었네. 바람은 보배 나무를 흔들고 햇빛은 금연꽃을 비추누나. 관음전 기와는 유리로 덮였고, 조음동 문은 대모로 깔렸구나. 푸른 버들 그늘에서는 앵무가 지절거리고, 자주 대숲 속에서는 공작이 우짖는도다. 무늬진 돌 위에는 호법이 위엄을 갖추었고, 마노 갯벌 앞에는 목차가 늠름하구나. 행자가 그 기이한 경치를 다 둘러볼 겨를 없이 곧장 구름머리를 내려 대숲 아래에 이르렀다. 이미 제천들이 마중을 나와 말했다. "보살께서 여러 신에게 대성께서 선에 귀의하셨다고 크게 자랑하시거늘, 이제 당승을 모시는데 어찌 틈을 내어 여기까지 오셨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당승을 모시고 가다가 길에서 일을 만났사옵니다. 특별히 보살님을 뵙고자 하오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알려 주시옵소서." 제천들이 곧 굴 어귀로 가서 아뢰었다. 보살이 들어오라 하셨다. 행자가 법도를 좇아 걸어 보련대 아래에 이르러 절을 올렸다. 보살이 물었다. "네가 무슨 일로 왔느냐?" 행자가 아뢰었다. "저의 스승님이 길에서 보살님의 선원을 만났사옵니다. 보살님께서는 인간의 향불을 받으시면서도 흑웅정 하나를 그 이웃에 살게 두시어 그놈이 스승님의 가사를 훔쳐 가고 여러 번 달라 하여도 주지 않사옵니다. 이에 특별히 보살님께 그것을 받으러 왔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이 원숭이가 말하는 꼴이 이다지도 버릇이 없구나! 흑웅정이 네 가사를 훔쳤거늘 어찌 내게 와서 찾으려 하느냐? 모두 이 죽일 원숭이가 담이 커서 보배를 자랑삼아 소인배에게 보이고는, 도리어 흉을 부려 바람을 불러 불을 일으켜 내 유운하원을 태워 놓고 나서, 도리어 내게 와서 생떼를 쓰는구나!" 행자가 보살의 이런 말씀을 듣고 그분이 지나간 일과 앞일을 아심을 알고는 황망히 절하며 아뢰었다. "보살님, 제자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과연 그러하옵니다. 다만 저 요물이 가사를 내놓지 않고 스승님은 또 그 주문을 외시려 하니 이 늙은 원숭이가 머리 아픔을 견딜 수 없어 보살님을 찾아뵙나이다. 바라건대 보살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베푸시어 저를 도와 그 요정을 잡고 가사를 되찾아 서쪽으로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살이 말했다. "그 요물은 신통이 많아 너에게도 지지 않느니라. 좋으니라, 내 당승의 낯을 보아 너와 함께 한번 가 보리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은혜에 사례하며 다시 절을 올렸다. 곧 보살께 문밖으로 나오시기를 청하여 함께 상서로운 구름을 타니 어느새 흑풍산에 이르렀다. 구름머리를 내리고 길을 따라 굴을 찾았다. 가는 도중 행자가 보니 저 산비탈 앞에서 도인 하나가 유리 쟁반을 손에 들고 오는데 쟁반 안에 선단 두 알이 담겨 있었다. 곧장 걸어오다 행자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행자가 몽둥이를 뽑아 머리를 내리치니 골이 터져 흐르고 가슴의 피가 솟구쳤다. 보살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 원숭이가 아직도 이처럼 포악을 부리는구나! 그이는 네 가사를 훔치지도 않았고 너와 아는 사이도 아니며 원한도 없거늘 어찌 그를 때려죽였느냐?" 행자가 아뢰었다. "보살님, 그이를 알아보지 못하셨나이다. 그이는 저 흑웅정의 벗이옵니다. 어제 흰옷 입은 선비 하나와 함께 꽃다운 풀언덕 앞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나이다. 이튿날이 흑웅정의 생일이라 그들을 청하여 '불의회'를 연다 하였고, 오늘 그이가 먼저 와서 장수를 축하하고 내일 잔치에 참여한다 하였기에 내가 알아보았나이다. 틀림없이 오늘 저 요괴를 대신하여 장수 선물을 가지고 가는 길이옵니다." 보살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또한 그럴 듯하구나." 그제야 행자가 가서 그 도인을 들어 올려 살펴보니, 한 마리 잿빛 이리였다. 그 곁에 놓인 쟁반 밑바닥에 글자가 새겨 있었으니 "능허자 지음"이라 하였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재수로다! 재수로다! 이 늙은 원숭이도 좋고 보살님도 힘이 드시지 않겠구나. 이 요괴는 스스로 자백한 셈이요, 저 요괴는 오늘 일을 끝장내라 하였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오공아, 그것이 무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보살님, 이 오공에게 한마디 말이 있사오니, 계책을 그대로 이용한다는 것이옵니다. 보살님께서 내 청을 들어주실지 모르겠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말하여 보아라." 행자가 아뢰었다. "보살님, 이 쟁반 가운데 선단 두 알이 있으니 이것이 우리가 저 요마에게 드리는 폐백이 되옵고, 이 쟁반 뒤에 새긴 네 글자, 곧 '능허자 지음'이라 한 것이 우리가 저 요마에게 씌울 죄목이 되나이다. 보살님께서 내 말을 들어주시려 한다면 제가 좋은 꾀를 내어 드릴 터이니, 무기를 쓰실 것도 없고 싸움을 벌이실 것도 없이 요마는 당장 재앙을 만나고 불의는 당장 나타나게 하겠나이다. 보살님께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시려 한다면, 보살님은 서쪽으로 가시고 이 오공은 동쪽으로 가련만, 불의는 빼앗긴 채요 당삼장은 헛되이 될 뿐이니이다." 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 입이 익었구나!" 행자가 말했다. "감히 그러하오나, 그저 꾀 하나이옵니다." 보살이 말했다. "그 꾀가 어떠하냐?" 행자가 말했다. "이 쟁반에 '능허자 지음'이라 새겨져 있으니 이 도인의 이름이 능허자이려니 하옵니다. 보살님, 내 말을 들어주시려 하거든 이 도인으로 변하시옵소서. 나는 이 단약 한 알을 먹고 그것으로 변하되 조금 크게 하겠나이다. 보살님께서는 이 쟁반과 선단 두 알을 받들어 저 요괴에게 장수 축하를 드리러 가시어, 그중 큰 알을 저 요괴에게 권하시옵소서. 저 요괴가 그것을 한 입에 삼키면 이 늙은 원숭이가 그 안에서 일을 꾸미겠나이다. 만일 불의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놈의 창자를 끄집어내어 가사 한 벌을 짜 내겠나이다." 보살은 다른 도리가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여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떠하시옵니까?" 이에 보살이 넓고 크신 자비와 가없는 법력으로 억만 가지 몸을 나투되, 마음으로 뜻을 깨닫고 뜻으로 몸을 이루시어 어렴풋한 사이에 능허선자로 변하셨으니, 학의 깃옷에 선풍 사뜩하고, 나부끼는 자태가 허공을 걷는 듯하구나. 늙은 얼굴은 송백처럼 늙었으나, 빼어난 자태는 예나 지금이나 견줄 데 없도다. 가고 또 가되 머무름 없고, 그러한 가운데 절로 다름이 있구나. 모두 돌아가 한 법에 귀결되니, 다만 사악한 육신이 가릴 뿐이로다. 행자가 보고 말했다. "묘하옵니다! 묘하옵니다! 요정이 보살이시니이까, 보살이 요정이시니이까?" 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오공아, 보살과 요정이란 한결같이 한 생각이니라. 본바탕을 따지자면 모두 없는 것에 속하느니라." 행자가 속으로 크게 깨닫고 몸을 돌려 선단 한 알로 변하였으니, 굴러가는 쟁반 위에 머무름이 없고 둥글고 밝아 방소가 없으며, 셋 셋이 굴루에서 어우러지고 여섯 여섯이 소옹과 겨루며, 기와와 쇠붙이가 황금 불꽃을 일으키고 마니가 대낮에 빛을 내니, 겉으로 드러난 납과 수은을 감히 가벼이 헤아리지 말지어다. 행자가 변한 그 단알은 끝내 조금 더 컸다. 보살이 그것을 알아보시고 유리 쟁반을 들고 곧장 요괴의 굴 어귀에 이르러 살펴보시니, 그곳이 과연 이러하였다. 벼랑 깊고 봉우리 험해 구름이 고개에 피고, 송백 우거진 사이 바람이 숲에 사뜩 불어오누나. 벼랑 깊고 봉우리 험하니 과연 요사한 무리 드나들어 인가 드물고, 송백 우거지니 신선이 숨어 도 닦을 만해 도정도 많도다. 산에 시내 있고 시내에 샘 있어 졸졸 흐르는 물이 거문고를 울리니 귀 씻기 넉넉하고, 벼랑에 사슴 있고 숲에 학 있어 그윽한 선율이 한가로운 봉우리를 울리니 또한 마음을 즐겁게 하누나. 이는 요선이 분수 있어 보리를 내리시고, 넓은 서원 가이없어 측은한 마음을 베푸심이로다. 보살이 그것을 보시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이 요물이 이 굴을 차지하고 있으니 또한 도를 닦은 분수가 있구나." 그리하여 마음속에 이미 자비로운 뜻이 생기었다. 굴 어귀에 이르니 굴을 지키는 작은 요괴들이 모두 아는 체하며 말했다. "능허 선장께서 오셨나이다." 한편으로는 안에 알리고 한편으로는 맞아들였다. 그 요괴는 이미 둘째 문까지 나와 맞으며 말했다. "능허여, 수고롭게도 귀한 걸음을 하셨소. 누추한 내 집이 빛을 얻었구려." 보살이 말했다. "소도가 선단 한 알을 삼가 올리나니 천 년의 장수를 비오." 두 사람이 절을 마치고 앉아 저 어제의 일을 꺼내어 말하였다. 보살은 대답하지 않고 급히 단약 쟁반을 들어 말했다. "대왕이여, 잠시 소도의 변변찮은 정성을 보시옵소서." 그리고 큰 알 하나를 골라 그 요괴에게 밀어 주며 말했다. "대왕의 천 년 장수를 비나이다!" 그 요괴도 알 하나를 밀어 보살에게 건네며 말했다. "능허자와 함께하기를 비노라." 권하기를 마치고 나서 그 요괴가 막 삼키려 하는데, 그 단약이 입김을 따라 곧장 굴러 내려갔다. 행자가 본모습을 드러내며 사평 자세를 취하자 그 요괴는 땅에 구르며 넘어졌다. 보살이 본모습을 나타내시고 요괴에게 불의를 내놓으라 하셨다. 행자는 벌써 코구멍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보살은 또 그 요괴가 무례할까 염려되어 고리 하나를 집어 그 요괴의 머리 위에 던지셨다. 그 요괴가 일어나 창을 들어 찌르려 하니, 행자와 보살은 벌써 공중으로 떠올라 있었고 보살이 진언을 외우시자 그 요괴는 여전히 머리가 아파 창을 내던지고 땅 위에서 마구 뒹굴었다. 허공에서는 미후왕이 웃다가 넘어지고, 땅바닥에서는 흑웅정이 굴러 상하였다. 보살이 말했다. "이 요물아, 네가 이제 귀의하겠느냐?" 그 요괴가 입을 모아 말했다. "원하여 귀의하나이다. 다만 목숨만을 살려 주시옵소서!" 행자는 일이 늦어질까 염려되어 곧장 때려죽이려 하였다. 보살이 급히 만류하며 말했다. "그놈의 목숨을 상하게 하지 말라. 내 그놈을 쓸 곳이 있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이런 요물을 죽이지 않고 도리어 어디에 두고 쓰시려 하시옵니까?" 보살이 말했다. "내 저 낙가산 뒤가 볼 이 없으니, 그놈을 데려다 산 지키는 대신을 삼으려 하노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고난을 구하시는 자비로운 어른이시니, 영혼 하나도 잃지 않으시는구려. 이 늙은 원숭이에게 이런 주문이 있다면 천 번쯤 외어 보련마는, 그리하면 이 많은 검은 곰들을 모두 끝장을 내리라!" 말하자면, 그 요괴가 한참 만에 깨어났으나 아픔을 견디지 못해 땅에 무릎을 꿇고 애걸하며 말했다. "다만 목숨을 살려 주시면 바른 과보에 귀의하겠나이다!" 그제야 보살이 상서로운 빛을 내려 내리시어 그에게 정수리를 어루만지시고 계를 주시며, 긴 창을 잡고 좌우를 따르게 하셨다. 그 흑웅의 한 조각 야심이 오늘에야 가라앉고, 끝없던 완고한 성질이 이때에 이르러 거두어졌다. 보살이 분부하셨다. "오공아, 너는 돌아가거라. 당승을 잘 모시되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꾸미지 말라." 행자가 말했다. "보살님께서 멀리까지 오심을 깊이 감사하옵니다. 제자가 마땅히 배웅하겠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배웅은 사양하노라." 그제야 행자가 가사를 받들고 머리를 조아려 작별하였다. 보살 또한 웅비를 데리고 곧장 큰 바다로 돌아가셨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상서로운 빛 자욱이 금빛 불상에 어리고, 만 갈래 찬란함이 참으로 자랑할 만하구나. 두루 세상을 제도하며 가련히 여기심을 베푸시고, 두루 법계를 살피시어 금연꽃을 나타내시네. 이번에 오신 뜻은 대개 경을 전하심이요, 이 가심에 본디 티끌만 한 흠도 없도다. 요괴를 항복받아 참됨 이루어 큰 바다로 돌아가시니, 불문이 다시 비단 가사를 얻었구나. 결국 그 뒤의 일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8회 관음원당승탈난(觀音院唐僧脫難) · 고노장대성제마(高老莊大聖除魔) 행자가 관음보살에게 작별을 고하고 구름머리를 내려뜨린 뒤, 가사를 향기로운 남목 가지에 걸어 두고 몽둥이를 뽑아 들고 흑풍동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 굴 안에 어찌 작은 요괴 하나쯤 남아 있겠는가. 알고 보니 그들은 보살이 홀연히 나타나 늙은 요괴를 항복시켜 땅바닥을 구르게 하는 것을 보고는 겁에 질려 급히 흩어져 달아났던 것이었다. 행자는 더욱 흉악한 짓을 부려, 그 굴의 몇 겹이나 되는 문마다 마른 섶을 잔뜩 쌓아 올리고서 앞뒤 할 것 없이 한꺼번에 불을 붙였다. 그리하여 흑풍동을 아예 붉은바람굴로 만들어 버리고는 가사를 챙겨 들고 상서로운 광채를 타고 곧장 정북쪽으로 되돌아왔다. 말하자면, 삼장법사는 행자가 좀체 돌아오지 않으니 마음속에 의심이 가득하였다. 보살을 청하러 갔다가 오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행자가 핑계를 대어 달아나 버린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한창 이런저런 억측을 하고 있는데, 반공중에 채색 안개가 찬란하게 빛나더니 행자가 홀연 계단 앞으로 내려앉으며 외쳤다. "스승님, 가사를 가져왔나이다!" 삼장법사가 크게 기뻐하였다. 중들 또한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어 소리쳐 말했다. "살았나이다! 살았나이다! 저희 목숨을 오늘에야 비로소 온전히 건지게 되었나이다!" 삼장이 가사를 받아 들고 말했다. "오공아, 네가 아침에 떠날 때에는 본디 점심 공양을 마칠 무렵에는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였거늘, 어찌하여 이제야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서야 돌아오느냐?" 행자가 보살을 청하여 변화를 부려 요괴를 항복시킨 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는 향로를 차려 놓고 남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나서 말했다. "제자야, 불의도 얻었으니 어서 짐을 꾸려 떠나자꾸나." 행자가 말했다. "서두르지 마시옵소서, 서두르지 마시옵소서. 오늘은 날이 저물어 가니 길을 걸을 때가 못 되나이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나시지요." 중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손나으리 말씀이 옳나이다. 한 가지로는 날이 이미 저물었고, 두 번째로는 저희가 서원을 세운 것이 있어, 이제야 무사히 보배도 되찾았사옵니다. 저희가 서원을 갚고 복을 나눈 뒤에, 내일 아침 서쪽으로 가시는 길을 배웅하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옳소, 옳소." 보아라, 그 중들이란 놈들이 주머니를 털어 불길 속에서 건져 낸 남은 재물을 있는 대로 내놓고는 채식 공양을 차리고, 평안무사하기를 비는 종이를 태우고, 재앙을 풀고 액운을 없애는 경전을 몇 권이나 외웠다. 그날 저녁으로 일이 모두 끝났다. 이튿날 아침에야 말을 솔질하여 꾸미고 행낭을 단단히 싸서 문을 나섰다. 중들은 멀리까지 배웅하고서야 돌아갔다. 행자가 길을 인도하여 나아가니, 바로 그 봄기운이 녹아내리는 계절이었다. 보이는 바가 이러하였다. 풀은 옥빛 준마의 발자국을 부드럽게 받쳐 주고, 버들은 금실을 흔들며 이슬 빛이 새롭구나. 복숭아와 살구는 숲에 가득하여 고움을 다투고, 담쟁이와 칡덩굴은 길을 휘감고 정기를 뿜어내는도다. 모래 둑에 햇살 따스하니 원앙이 잠이 들고, 산골 시냇가에 꽃향기 그윽하니 호랑나비도 길들었구나. 이리하여 가을이 가고 겨울도 다하여 봄이 절반이나 흘렀거니, 어느 해에나 수행이 다 끝나 참된 경전을 얻게 될런지. 사부와 제자가 황량한 길을 닷새에서 이레쯤 걸어가는데, 홀연 어느 날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멀리 한 마을 인가가 바라보였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저쪽에 산장 하나가 가까이 있는 것이 보이느냐? 가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고 내일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 어떠하냐?"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먼저 가서 길흉을 좀 살펴보고 난 뒤에 정하시지요." 스승이 고삐를 쥐어 당겨 백마를 세우고, 그 행자가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대나무 울타리 빽빽하고, 띠풀 지붕 집 겹겹이로다. 하늘을 찌를 듯한 들나무는 문을 마주하여 서 있고, 구불구불 흐르는 시냇물과 돌다리가 집을 비추는구나. 길가의 버들은 푸르러 싱그럽고, 동산 안에 핀 꽃은 향기 그윽하도다. 이때 저녁 노을은 서산으로 가라앉아 곳곳의 산과 숲에서 새들 지저귀고, 저녁 연기는 부엌에서 피어올라 좁다란 오솔길마다 소와 양이 돌아가는도다. 또 보니 배불리 먹은 닭과 돼지는 집 모퉁이에서 잠이 들고, 술에 흠뻑 취한 이웃 늙은이는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는구나. 행자가 살펴보기를 마치고 나서 말했다. "스승님, 가시지요. 틀림없이 좋은 인가가 모여 사는 마을이니, 바로 묵어가기에 알맞사옵니다." 그 장로가 백마를 재촉하여 어느새 거리 어귀에 이르렀다. 그런데 또 한 청년이 보이는데, 머리에는 무명천을 동여매고 몸에는 남색 저고리를 걸쳤으며, 우산을 들고 배낭을 메고 바짓부리를 동여매 바지를 여며 입고는 발에 삼이 달린 짚신 한 켤레를 신고 기세등등하게 거리 밖으로 급히 걸어 나가고 있었다. 행자가 손이 닿는 대로 단번에 붙잡으며 말했다. "어디를 가느냐? 내 너에게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다. 이곳이 무슨 지방이냐?" 그 사내는 그저 악을 쓰며 뿌리치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 동네에 사람이 없단 말이냐? 하필 나에게만 길을 묻느냐!" 행자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시주여, 노하지 마시오. '남에게 편의를 베풀면 제게도 편의가 돌아오는 법'이지 않소. 그대가 내게 지명이나 말해 준들 무슨 해가 되겠소? 나 또한 그대의 근심을 풀어 줄 수 있소." 그 사내는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화가 나서 펄펄 뛰며 말했다. "재수 없는 날이로다! 재수 없는 날! 주인집에서 억울한 분만 한바탕 받고 돌아서는 길에, 이 민머리 중을 또 만나 그놈의 맑은 기운까지 받아야 하다니!" 행자가 말했다. "네게 재주가 있다면 내 손을 쪼개어 벗겨 내고 가든지 마음대로 하여라." 그 사내가 왼쪽으로 비틀고 오른쪽으로 비틀어 보았으나 어찌 비틀려야 말인지, 마치 쇠집게로 꽉 물린 것만 같았다. 화가 난 나머지 배낭을 내동댕이치고 우산을 내팽개치고는 두 손을 빗발치듯 휘둘러 행자를 할퀴려 들었다. 행자는 한 손으로 행장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 그 사내를 밀어 막으며, 그가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닿지 못하게 하였다. 행자는 더욱더 놓아주지 않고 성이 나서 우레처럼 폭발할 듯하였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저기 저 사람이 오지 않느냐? 그 사람에게 다시 물으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그만 붙잡고 있느냐? 놓아주어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은 모르시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았자 재미가 없나이다. 꼭 저자에게 물어야 장사가 되옵니다." 그 사내는 행자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어 말했다. "이곳은 오사장 나라의 경계가 되는 땅이니, 이름하여 고노장이라 하오. 한 마을 사람들 가운데 태반이 고씨 성을 가졌기에 그리하여 고노장이라 부르는 것이오. 나를 놓아 주시오." 행자가 또 말했다. "너의 그런 차림새를 보니 가까운 길을 가는 사람은 아니로구나. 내게 참말로 말하여라. 네가 어디로 가려 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이냐? 그래야 내가 너를 놓아주겠다." 그 사람은 어쩔 도리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실정을 털어놓으며 말했다. "나는 고태공 댁의 하인이니 이름은 고재라 하오. 우리 태공께서는 늦게 본 따님이 하나 계시는데 나이가 스무 살이 되도록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거늘, 삼 년 전에 요정 하나에게 빼앗겼소. 그 요물이 꼬박 삼 년을 사위 노릇을 하였소. 우리 태공께서 못마땅하게 여겨 말씀하시기를, '딸이 요정에게 시집을 갔으니 오래 갈 방도가 아니로다. 하나는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고, 둘은 사돈이 되어 왕래할 이가 없구나' 하시고는, 줄곧 그 요정을 물리치려 하셨소. 그러나 그 요정이 어찌 물러가려 하겠소. 도리어 그 따님을 자기 뒷채에 가두어 둔 지 반 년이나 되어가는데, 다시는 집안 사람과 얼굴을 맞대게 내보내지도 않소. 우리 태공께서 내게 은자 몇 냥을 쥐여 주시며, 법사를 찾아다녀 그 요괴를 잡아 오라 하셨소. 나는 이 동안 잠시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앞뒤로 뛰어다니며 서너 사람을 청해 보았으나, 모두 시원찮은 중들이요 무능한 도사들이라 그 요괴를 항복시키지 못하였소. 조금 전에도 나를 한바탕 꾸짖으시며 일을 할 줄 모른다 하시고, 또 은자 닷 돈을 노자로 주시며 다시 가서 훌륭한 법사를 청해 그놈을 항복시키라 하셨소. 그런데 뜻밖에도 너라는 이 마성이 나타나 붙잡고 늘어져 내 걸음을 그르치니, 이러하여 안팎으로 분만 받는 터이라 내 어쩔 수 없이 너에게 소리를 질렀소. 그런데 네게 또 잡는 솜씨가 있어 내가 너를 당해 낼 수가 없으니, 이에 이 실정을 말하는 것이오. 나를 놓아 주시오." 행자가 말했다. "너에게는 행운이요, 나에게는 일거리가 생겼구나. 이것이야말로 사방이 딱 들어맞는 일이로다. 너는 멀리 갈 필요도 없고 은자를 써 버릴 것도 없다. 우리는 그 시원찮은 중도, 무능한 도사도 아니니, 실로 재주가 있어 요괴를 잡는 데 익숙하니라. 이것이야말로 한편으로는 의원을 돌보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눈병까지 고치는 격이지. 수고롭지만 네가 돌아가 너의 그 주인에게 아뢰어라. 우리는 동쪽 땅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파견된 어제성승으로서,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경전을 구하러 가는 자들이니, 요괴를 항복시키고 괴물을 묶어 두는 데 능하다고 일러 주어라." 고재가 말했다. "나를 그르치지 마시오. 나는 속이 분으로 가득 찬 사람이오. 그대가 나를 잘못 속여 놓고는 재주가 시원찮아 요괴를 잡지 못한다면, 도리어 나까지 끌어들여 분을 당하게 하지 않겠소?" 행자가 말했다. "틀림없이 너를 그르치지 않으리라. 너는 나를 너의 집 대문 앞으로 인도하여라." 그 사람도 달리 묘책이 없어, 배낭을 들고 우산을 집어 든 채 발길을 돌려 그 사부와 제자를 대문 앞까지 인도하고는 말했다. "두 분 장로시여, 잠깐 저 말 올리는 돌 위에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들어가 주인 어르신께 알려 드리겠나이다." 행자가 그제야 손을 놓고 짐을 내려놓고 말을 끌어 당기니, 사부와 제자는 대문 곁에 앉았다 섰다 하며 기다렸다. 그 고재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 곧장 중앙 마루로 걸어가는데, 공교롭게도 고태공과 딱 마주쳤다. 태공이 꾸짖어 말했다. "이 무지막지한 가죽 같은 짐승 같으니, 어찌하여 사람을 찾으러 가지 않고 또 돌아와서는 무얼 하려느냐?" 고재가 배낭과 우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인 어르신께 아뢰옵니다. 소인이 막 거리 어귀를 나서는데 홀연 중 둘을 만났사옵니다. 하나는 말을 타고, 하나는 짐을 지고 있사옵니다. 그이가 나를 붙잡고 놓지 않으며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사옵니다. 내가 거듭 말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그이가 달라붙어 손을 뺄 수가 없었사옵니다. 마침내 주인 어르신의 일을 낱낱이 그에게 말하게 되었사옵니다. 그러자 그이가 몹시 기뻐하며, 우리를 위해 그 요괴를 잡아 주겠다 하옵니다." 고 노인이 물었다. "어디서 온 이들이냐?" 고재가 말했다. "동쪽 땅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파견된 어제성승으로서,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경전을 구하러 간다 하옵니다." 태공이 말했다. "먼 곳에서 온 중이라면 정말로 재주가 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느냐?" 고재가 말했다. "지금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 태공이 급히 옷을 갈아입고 고재와 함께 밖으로 나와 맞이하며, "장로시여!" 하고 불렀다. 삼장이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몸을 돌리니 어느새 그 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 노인은 검은 비단 두건을 쓰고, 파흰빛 촉나라 비단옷을 걸치고, 거친 쇠가죽으로 만든 송아지 가죽 신을 신고, 검푸른 띠를 허리에 둘렀으며, 나와서는 웃는 얼굴로 맞이하며 말했다. "두 분 장로시여, 인사를 올리나이다." 삼장이 답례를 하였으나 행자는 서 있기만 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노인은 행자의 생김새가 흉악하고 못생긴 것을 보고는 감히 그에게 인사를 올리지 못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이 늙은 원숭이에게는 인사를 하지 않으시오?" 그 노인은 다소 겁이 나서 고재를 부르며 말했다. "이 녀석아, 너는 나를 골려 죽일 셈이냐? 집에 이미 못생긴 사위 하나가 있어 쫓아보내지도 못하는 판에, 어찌하여 이 뇌공 같은 자를 또 끌어들여 나를 해치려 드느냐?" 행자가 말했다. "늙은 고 어르신, 그렇게 많은 세월을 헛되이 살아 놓고도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시오! 만일 오로지 생김새로만 사람을 가린다면 틀림없이 잘못 보는 것이오. 이 늙은 원숭이는 못생겼지만 못생긴 대로 재주가 있소. 그대 집을 위하여 요정을 사로잡고 귀신을 잡으며, 그대의 그 사위를 붙잡아 딸을 돌려드리는 것이 곧 좋은 일이어늘, 어찌하여 굳이 생김새를 가지고 자꾸만 말하시오!" 태공은 그 말을 듣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들어오시옵소서" 하고 불렀다. 행자가 청을 받고서야 백마를 끌고 고재에게 행장을 지게 하여 삼장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좋든 싫든 상관없이 말을 탁 트인 마루 기둥에 매어 두고, 윤을 벗긴 옻칠 교의 하나를 끌어다 삼장에게 앉으라 하였다. 또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그 곁에 앉았다. 그 고 노인이 말했다. "이 어린 장로는 제법 격의가 없구려."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나를 반 년만 머물게 해 준다면, 훨씬 더 격의가 없어질 것이오." 자리에 앉자 고 노인이 물었다. "아까 제 하인의 말로는 두 분 장로가 동쪽 땅에서 오셨다 하던데, 그러하시오?" 삼장이 말했다. "그러하오. 가승이 조정의 명을 받들어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경전을 구하러 가는 길에, 마침 귀한 댁을 지나게 되어 특별히 하룻밤을 빌려 묵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려 하오." 고 노인이 말했다. "두 분이 본디 하룻밤 묵으러 오신 것이라면서, 어찌하여 요괴를 잡을 수 있다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묵으러 온 김에 요괴 몇 놈을 잡아 장난이나 해 보려는 것이오. 여쭙건대 댁에는 요괴가 얼마나 있소?" 고 노인이 말했다. "하늘이여! 어찌 그놈들을 감당이나 하겠소이까! 이 괴상한 사위 하나만 해도 그놈에게 시달려 넋이 나갈 지경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 요괴의 내력과, 재주가 얼마나 큰지 처음부터 차례차례 내게 말해 보시오. 내 그대를 위하여 그놈을 잡아 주리다." 고 노인이 말했다. "우리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귀신이니 도깨비니 하는 요사한 무리나, 사악한 마귀가 날뛰며 피해를 끼친 일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소. 다만 이 늙은이가 불행히도 아들을 두지 못하고 딸만 셋을 낳았을 뿐이오. 큰아이는 이름이 향란이요, 둘째는 옥란이며, 셋째는 취란이오. 그 가운데 두 아이는 어려서 이 마을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고, 오직 막내만은 사위를 맞아들여 나와 한집에서 살림하며, 늙어서 의지할 사위가 되어 문호를 떠받치고 일을 하며 부역까지 대도록 하려 하였소. 그런데 뜻밖에도 삼 년 전에 한 사내가 나타났는데, 생김새는 제법 반듯하였소. 그가 말하기를 복릉산에 사는 사람인데 성은 저씨요, 위로는 부모가 없고 아래로는 형제가 없으니 남의 집에 사위로 들어가고 싶다 하였소. 이 늙은이가 보니 이토록 뿌리도 없고 거치적거릴 것도 없는 사람이라 그를 사위로 맞아들였소. 처음 문을 들어섰을 적에는 제법 부지런하였소. 밭을 갈고 흙을 고르되 소와 농기구를 쓰지 않았고, 벼를 거두어들이되 낫이나 몽둥이를 쓰지 않았소. 해가 지면 갔다가 날이 밝으면 돌아오니, 실로 좋았소. 다만 한 가지, 얼굴을 바꾸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소." 행자가 말했다. "어찌 바뀐단 말이오?" 고 노인이 말했다. "처음 왔을 때는 검고 살진 사내였는데, 나중에는 긴 주둥이에 큰 귀를 달고 있는 멍청이로 변하였소. 또 뒤통수에는 갈기 털이 한 줄로 늘어져 있고, 몸은 거칠어서 보기만 해도 두려우며, 머리와 얼굴 생김새가 꼭 돼지 같았소. 그런데 먹성 또한 몹시 커서, 한 끼에 서 되에서 다섯 되쯤 되는 쌀밥을 먹고, 아침 간식도 백 개나 되는 구운 떡을 먹어야 배가 찼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채소와 곡식만 먹는다는 것이오. 만일 고기와 술까지 먹는다면, 이 늙은이의 이 가업이며 논밭이며 하는 것들이 반 년도 되지 않아 바닥이 나고 말 것이오!" 삼장이 말했다. "그만큼 일을 하니 그만큼 먹는 것이지요." 고 노인이 말했다. "먹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오. 그놈은 이제 바람을 부리는 재주까지 있어, 구름을 타고 안개 속을 오가며 돌을 굴리고 모래를 날려, 내 집안은 물론이고 이웃 사람들까지 모두 편히 살 수가 없소. 또 그 취란이를 뒷채에 가두어 두어 반 년이 넘도록 얼굴 한 번 보지 못하였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소. 이런 까닭에 그놈이 요괴임을 알고, 법사를 청해 그놈을 쫓아내고 또 쫓아내려 하는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게 무슨 어려운 일이오? 노인장, 염려 놓으시오. 오늘 밤에 틀림없이 그놈을 붙잡아 파혼 문서를 쓰게 하고 따님을 돌려드리리다. 어떠시오?" 고 노인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놈을 사위로 맞은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소만, 내 맑은 이름을 얼마나 더럽히고 내 친척들을 얼마나 멀어지게 하였는지 모르오. 다만 그놈을 잡기만 한다면 무슨 문서가 필요하겠소? 그냥 수고스럽더라도 뿌리째 뽑아 주시오." 행자가 말했다. "쉽소! 쉽소! 날이 어두워질 때면 좋고 나쁨이 저절로 드러날 것이오." 노인이 몹시 기뻐하여 비로소 탁자와 의자를 닦아 펴고 채식 공양을 차려 놓으라 일렀다. 공양을 마치고 날이 저물어 갈 무렵 노인이 물었다. "무슨 병기가 필요하시오? 사람은 몇이나 데리고 가시겠소?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병기는 내게 있소." 노인이 말했다. "두 분이 가진 것이라고는 그 지팡이 하나뿐이니, 그 지팡이로 어찌 요괴를 때리겠소?" 행자가 곧 귓속에서 수를 놓은 바늘 하나를 꺼내어 손가락에 쥐고, 바람을 맞받으며 한 번 흔들어 보이니 어느새 사발만큼 굵은 금고봉 하나가 되었다. 행자가 고 노인을 향하여 말했다. "이 몽둥이가 보이시오? 그대 집의 병기와 견주어 어떠하오? 이걸로 그 요물을 때릴 수 있겠소?" 고 노인이 또 물었다. "병기가 있다 하니, 사람을 데리고 가시겠소?" 행자가 말했다. "나는 사람이 필요 없소. 다만 나이가 높고 덕이 있는 노인 몇 분만 모셔, 내 스승님과 한가로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해 주시오. 그래야 내가 스승님을 모셔 두고 훌쩍 떠날 수 있소. 내가 그 요괴를 잡아다가 여러 사람 앞에서 자백을 받아내어, 그대를 위하여 뿌리째 뽑아 주리다." 그 노인이 곧 하인을 불러 친척과 벗 몇 사람을 청하게 하였다. 이윽고 모두 모여들어 인사가 끝나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편안히 앉아 계시옵소서. 이 늙은 원숭이는 잠시 다녀오겠나이다." 보아라, 그가 쇠몽둥이를 움켜쥐고 고 노인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나를 뒷채로 안내하여 요괴가 사는 곳을 좀 보게 해 주시오." 고 노인이 마침내 그를 뒷채 대문 앞으로 안내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어서 열쇠를 가져오시오." 고 노인이 말했다. "먼저 좀 보시오. 열쇠로 열 수 있는 문이었다면 애당초 그대를 청하지도 않았을 것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노인장, 나이는 많아도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려. 내 한번 놀려 본 것뿐인데 그대는 참말로 받아들이는구만." 앞으로 걸어 나가 손으로 더듬어 보니, 알고 보니 쇳물을 부어 굳혀 만든 자물쇠였다. 화가 치민 나머지 금고봉으로 한 번 쑤시니 문짝이 열리고 안은 칠흑같이 캄캄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고 노인장, 그대 따님을 한 번 불러 보시오. 그 아이가 안에 있는지 알아보게." 그 노인이 간신히 담력을 내어 불렀다. "셋째 아가야!" 그 딸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듣고서야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로 한마디 대답하였다. "아버님, 저 여기 있사옵니다." 행자가 금빛 눈을 번쩍이며 어둠 속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모습이 어떠하였겠는가? 보이는 바가 이러하였다. 구름 같은 머리채는 흐트러져 쌓였으되 빗질 한 번 하지 않았고, 옥 같은 얼굴은 씻지 않아 티끌이 묻어 있구나. 한결같은 난초 같은 마음은 예전 그대로인데, 열할이나 되던 고운 자태는 기울어 버렸도다. 앵두 같은 입술에는 기운과 혈색이 전혀 없고, 허리는 구부정하게 축 늘어졌구나. 근심에 찌푸린 눈썹은 빛깔이 옅어지고, 바싹 여윈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낮기만 하구나. 그녀가 걸어 나와 고 노인을 보고는 단번에 붙들고 머리를 껴안고 크게 울었다. 행자가 말했다. "우선 울지 마시오! 우선 울지 말라 하오! 내 묻겠소, 요괴는 어디로 갔소?" 그 여자가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사옵니다. 요즈음은 날이 밝으면 가버리고 밤이 되어야 돌아오옵니다. 구름 속 안개 속을 오가니 어디로 갔다 오는지 알 길이 없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놈을 쫓아내려 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그놈도 늘 경계를 하고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저물어 와서는 새벽에 가곤 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더 말할 것 없소. 노인장, 그대는 따님을 앞채로 데리고 가서 느긋하게 그간의 회포를 푸시오. 그리고 이 늙은 원숭이가 여기서 그놈을 기다리게 해 주시오. 그놈이 오지 않는다면 원망하지 마시오. 그놈이 오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잡초를 베고 뿌리까지 잘라 버려 주리다." 그 고 노인은 기뻐하며 딸을 데리고 앞채로 갔다. 행자는 신통력을 부려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꼭 그 여자와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 방 안에 홀로 앉아 그 요괴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니, 참으로 돌을 굴리고 모래를 날리는 바람이었다. 훌륭한 바람이여, 처음에는 살랑살랑 일렁이더니, 나중에는 아득하고 막막하구나. 살랑살랑 일렁이니 천지가 커지고, 아득하고 막막하니 가로막히는 것이 없도다. 꽃을 뜯고 버들을 꺾음은 삼대를 쓸어 넘기듯 하고, 나무를 넘기고 숲을 부숨은 나물을 뽑듯 하구나.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저어 귀신도 근심하고, 바위를 쪼개고 산을 무너뜨려 천지도 놀라는도다. 꽃을 문 사슴은 오던 자취를 잃고, 열매를 따던 원숭이는 밖에서 길을 잃었구나. 일곱 층 철탑은 부처님의 머리를 범하고, 여덟 면의 깃발은 보배 덮개를 상하게 하누나. 금빛 대들보와 옥빛 기둥은 뿌리째 흔들리고, 지붕 위의 기와는 제비처럼 날아가는도다. 노를 든 사공은 서원을 빌고, 배를 띄우며 급히 돼지와 양을 바쳐 제사를 지내누나. 그 고장의 토지신은 사당을 버리고 달아나고, 사해의 용왕은 윗전을 향해 절을 올리는도다. 바닷가에서는 야차의 배가 부딪혀 부서지고, 장성은 절반이 무너져 내렸구나. 그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반공중에서 요괴 하나가 내려오니 과연 흉하게 생겼다. 검은 얼굴에 짧은 털이 돋아 있고 긴 주둥이에 큰 귀를 달고 있었으며, 푸른지 남색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베로 만든 장삼을 걸치고 꽃무늬 수건을 허리에 둘렀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원래 이런 장사였단 말이로구나!" 훌륭한 행자라, 그를 마중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은 채 침상에 누워 병을 핑계 대며, 입으로는 끙끙거리는 앓는 소리를 끊임없이 내었다. 그 요괴는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지 못하고 방 안으로 들어와 단번에 껴안고는 입을 맞추려 하였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이 늙은 원숭이를 희롱하러 드는구나!" 곧 잡는 솜씨를 부려 그 요괴의 긴 주둥이를 받쳐 쥐고, 이를 두고 작게 넘기기라 하느니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침상 아래로 내동댕이쳤다. 그 요괴가 기어 일어나 침상 가장자리를 짚으며 말했다. "누나, 그대는 어찌하여 오늘은 나를 조금 원망하는 기색이오? 아마 내가 늦게 와서 그러는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원망하지 않소! 원망하지 않는다 하오!" 그 요괴가 말했다. "원망하지 않는다면서,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한 번 넘겨 버리시오?"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 그리 속이 좁아서 들어오자마자 나를 껴안고 입을 맞추려 하시오? 내가 오늘은 몸이 좀 불편하오. 평소에 몸이 괜찮을 때라면 일어나 문을 열어 그대를 기다렸을 것이오. 그대는 옷을 벗고부터 주무시오." 그 요괴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참으로 옷을 벗으려 하였다. 행자가 벌떡 일어나 뒷간 통 위에 앉았다. 그 요괴는 여전히 침상으로 돌아와 손을 한 번 더듬어 보았으나 사람이 잡히지 않자 불렀다. "누나, 어디로 가셨소? 어서 옷을 벗고 주무시오."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먼저 주무시오. 내 볼일을 좀 보고 오리다." 그 요괴는 과연 먼저 옷을 벗고 침상에 올라갔다. 행자가 홀연 한숨을 내쉬며 "팔자가 낮아졌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였다. 그 요괴가 말했다. "무엇이 걱정이오? 팔자가 어찌 낮아졌단 말이오? 내가 그대 집에 들어온 뒤로 차와 밥을 좀 먹기는 하였으나, 결코 공으로 얻어먹지는 않았소. 나 또한 그대 집을 위하여 마당을 쓸고 도랑을 파며, 벽돌을 나르고 기와를 옮기며, 흙을 다지고 담을 쌓으며, 밭을 갈고 흙을 고르며, 보리를 심고 모내기를 하여 가업을 일으키고 집안을 세웠소. 이제 그대 몸에 걸친 비단과 머리에 꽂은 금이며, 사철 내내 즐기는 꽃과 과일, 여덟 절기에 끓이고 볶는 채소까지 모두 갖추었거늘, 그대에게 무슨 마음에 차지 않는 구석이 있어 이리 짧게 탄식하며 팔자가 낮아졌다느니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오. 오늘 우리 부모님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벽돌과 기와를 던져 대며, 나를 몹시 때리고 욕을 하셨소." 그 요괴가 말했다. "어찌하여 그대를 그리 때리고 욕을 하시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분들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대와 부부가 되었는데 그대는 그분들 문하의 사위이면서도 예절이라곤 조금도 없다 하셨소. 이토록 못생긴 주둥이를 한 사람이, 처남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친척들 앞에도 나서지 못하는 데다, 그대가 구름을 타고 안개 속을 오가니 도대체 어느 집안 사람이며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그분들의 맑은 덕을 더럽히고 집안의 풍습을 더럽힌다 하셨소. 이런 까닭에 이토록 때리고 꾸짖으시니, 그리하여 근심이 되는 것이오." 그 요괴가 말했다. "내가 비록 조금 못생기기는 하였으나, 잘생기고자 한다면 또한 어려울 것 없소. 내가 처음 왔을 때 그분과 미리 이야기를 하였고, 그분이 기꺼이 받아들이셨기에 나를 사위로 맞은 것이오. 그런데 오늘 어찌하여 또 그런 말이 나왔단 말이오! 내 집은 복릉산 운잔동에 있소. 나는 생김새를 따라 성을 삼았기에 성이 저씨요, 관명은 저강렬이라 하오. 그분이 다시 와서 그대에게 묻거든, 그대는 이 말을 그대로 전하게나." 행자가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그 요물도 참으로 솔직하구나. 형벌을 가할 필요도 없이 제 입으로 이토록 분명하게 자백을 하다니. 이제 근거지와 성명을 알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그놈을 붙잡으리라." 행자가 말했다. "그분이 법사를 청해다가 그대를 잡으려 한다 하오." 그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자시오! 자시오! 그이를 상관하지도 마시오! 나에게는 천강수만큼이나 많은 변화와 아홉 갈래 쇠스랑이 있거늘, 무슨 법사며 중이며 도사가 두렵단 말이오? 설령 그대 아버지가 정성을 다하여 구천의 탕마조사를 내려오시게 청한다 한들, 나도 일찍이 그이와 안면이 있으니 그이도 나를 어찌하지 못하오." 행자가 말했다. "그분이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았다는 손씨 성의 제천대성을 청해다가 그대를 잡으려 한다 하오." 그 요괴는 그 이름자 하나를 듣자 곧 삼 할쯤 겁이 나서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가는 수밖에 없구려. 이제 두 사람이 부부 노릇은 못 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곧장 가려 하시오?" 그 요괴가 말했다. "그대는 모르시오. 그 천궁을 뒤집어 놓았다는 필마온은 재주가 있어, 내가 그를 당해 내지 못하여 명성을 떨어뜨리고 꼴이 말이 아니게 될까 두렵소." 말을 마치고 옷을 걸치고 문을 열고는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행자에게 단번에 붙잡히고 말았다. 행자가 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자 본래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호통치며 말했다. "이 요괴 같으니,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고개를 들어 내가 누구인지 보아라!" 그 요괴가 눈을 돌려 행자를 보니, 이를 드러내고 입을 찢긴 데다 불꽃 같은 눈과 털북숭이 얼굴을 하고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뇌공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놀란 나머지 손발에 힘이 풀려 찌익 소리와 함께 옷을 찢고 광풍으로 변해 달아났다. 행자가 급히 앞으로 나서며 쇠몽둥이를 뽑아 들어 바람을 향해 한 방 내리쳤다. 그 요괴는 만 갈래 붉은 불빛으로 변해 곧장 자기 산으로 돌아갔다. 행자가 구름을 타고 그 뒤를 따라오며 외쳤다. "어디로 달아나느냐! 네가 하늘로 오르면 나는 두우궁까지 쫓아가리라! 네가 땅으로 들어가면 나는 억울한 죽음의 지옥 끝까지 뒤쫓으리라!" 아아! 결국 이렇게 쫓아가서 어느 곳에 이르게 될지, 승부가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9회 운잔동오공수팔계(雲棧洞悟空收八戒) · 부도산현장수심경(浮屠山玄奘受心經) 말하자면, 그 요괴의 붉은 불빛이 앞서 달아나고 이 대성의 채색 노을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한창 달아나는 가운데 홀연히 높은 산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 요괴는 붉은 빛을 한데 뭉쳐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뒤 굴 속으로 쳐들어가더니, 아홉 갈래 쇠스랑 한 자루를 꺼내 들고서 맞서 싸우려 나왔다. 행자가 한바탕 호통치며 말했다. "이 무엄한 요괴야! 너는 어디서 온 사악한 마귀냐? 어찌 이 늙은 원숭이의 이름을 아느냐? 무슨 재주가 있는지 낱낱이 불어라, 그리하면 네 목숨은 살려 주마!" 그 요괴가 말했다. "너야말로 내 수단을 알지 못하는구나! 앞으로 나와 발을 단단히 딛고 서 보아라, 내 너에게 일러 주마. 나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둔하고 어리석어, 한가로움을 탐하고 게으름을 사랑하여 쉴 줄을 몰랐노라. 성을 기르고 참됨을 닦은 적이 없이, 혼돈에 마음을 미혹한 채 해와 달만 끓여 왔노라. 그런데 홀연 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신선을 만나, 곧 자리에 앉아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었네. 그이가 내게 마음을 돌려 범속한 데 떨어지지 말라 권하며, 생명을 해쳐 가없는 죄업을 짓지 말라 일렀네. 수명이 다하여 목숨이 끝나는 날이 오면, 여덟 재난과 세 길에서 뉘우쳐도 입이 닳도록 후회하리라. 그 말에 뜻이 돌아 수행하려 하고, 마음이 돌아 묘한 비결을 구하였네. 인연이 있어 그 자리에서 스승으로 모시고 절을 올리니, 하늘의 관문과 땅의 궁궐을 가리켜 주었네. 아홉 번 돌려 빚는 대환단을 전해 받아, 밤낮으로 공부를 하되 쉴 새가 없었노라. 위로는 정수리의 이환궁에 이르고, 아래로는 발바닥의 용천혈에 이르렀네. 신수를 두루 흘려 화지에 들게 하고, 단전을 보하여 따스히 데웠노라. 영아와 사녀가 음양을 배합하고, 납과 수은이 서로 어우러져 해와 달을 나누었네. 이룡과 감호를 조화시키고, 영귀가 금오의 피를 남김없이 빨아들였노라. 삼화가 정수리에 모여 근본을 얻고, 오기가 으뜸에 모여 환히 뚫렸네. 공이 둥글고 행이 차니 날아 올라, 천선들이 짝지어 마중을 나왔노라. 발아래 환하게 채색 구름이 일어나니, 몸은 가볍고 기운은 건강하여 금궐로 조회하러 갔네. 옥황상제가 잔치를 베풀어 뭇 신선을 모으시고, 품계를 나누어 반열을 세웠노라. 칙명으로 원수에 봉해져 천하를 맡아 다스리고, 수군을 총독하는 헌절이라 불렸네. 왕모가 반도 잔치를 열어 요지에서 뭇 손님을 청하시니, 나는 술에 취하여 정신이 아득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주정을 부렸노라. 기세를 뽐내며 광한궁으로 쳐들어가니, 풍류 있는 선녀가 나와서 맞이하였네. 그 고운 얼굴이 넋을 빼앗는지라, 옛 범심이 좀체 사라지지 않았노라. 위아래도 잊고 존비를 잃은 채, 항아를 붙잡고 동침하기를 청하였네. 거듭 거듭 따르지 않으니, 동으로 숨고 서로 피해 내 마음만 상하였노라. 색을 좇는 담력이 하늘만큼 커져 외치는 소리가 우레 같으니, 하늘 관문의 궁궐을 무너뜨릴 뻔하였네. 규찰영관이 옥황상제께 아뢰니, 그날로 내 팔자가 사나워졌노라. 광한궁을 에워싸 바람조차 통하지 않게 하니, 나갈 문도 물러날 문도 없었노라. 뭇 신에게 붙잡히고서도 술기운이 가슴에 남아 조금도 겁내지 않았노라. 영소전에 압송되어 옥황상제를 뵈니, 법대로 죄를 물어 처형이 마땅하다 하였네. 태백이금성의 덕으로, 그가 반열에서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친히 아뢰었노라. 형을 고쳐 이천 방망이로 때리니, 살이 터지고 가죽이 벌어져 뼈가 부러질 지경이었네. 목숨은 건졌으나 쫓겨나 천관을 나와, 복릉산 아래에서 가업을 일구었노라. 내가 죄가 있어 잘못하여 태를 빌려 세상에 태어났으니, 속세의 이름은 저강렬이라 불렀노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놈아, 너는 본래 천봉수신이 하계로 내려온 자로구나. 그러하니 어찌 이 늙은 원숭이의 이름을 알고 있음을 괴이하게 여기랴." 그 요괴가 입을 열어 말했다. "흥! 너야말로 윗전을 속인 필마온이로구나! 그해에 네가 그 화를 저지를 적에 얼마나 많은 우리를 끌어들여 해를 입혔는지 모르거늘, 오늘 또 여기까지 와서 남을 업신여기려 드느냐! 무례하게 굴지 마라! 이 늙은 돼지의 쇠스랑을 받아라!" 행자가 어찌 사정을 보아 주었겠는가. 몽둥이를 들어 머리를 내리쳤다. 두 놈은 산중턱에서 캄캄한 밤에 한바탕 겨루었다. 훌륭한 싸움이로다. 행자의 금빛 눈은 번개 같고, 요마의 둥근 눈은 은빛 꽃 같구나. 이 하나는 입으로 채색 안개를 뿜고, 저 하나는 기운으로 붉은 노을을 토하는도다. 붉은 노을을 토하니 어두운 곳이 밝아지고, 채색 안개를 뿜으니 밤이 찬란하게 빛나는구나. 금고봉과 아홉 갈래 쇠스랑, 두 영웅이 참으로 자랑할 만하구나. 하나는 대성이 범세에 내려온 이요, 하나는 원수가 하늘 가에서 강림한 자로다. 저놈은 위의를 잃어 괴물이 되었고, 이놈은 다행히 고난을 벗어나 승가에 절을 올렸구나. 쇠스랑이 나아감은 용이 발톱을 뻗는 듯하고, 몽둥이가 맞받음은 봉황이 꽃 사이를 꿰는 듯하구나. 저놈은 "남의 혼사를 깨뜨림은 아비를 죽이는 것 같다!" 하였고, 이놈은 "어린 여자를 겁탈하였으니 마땅히 잡아야 한다!" 하였네. 쓸데없는 말, 어지러운 떠듦 속에 몽둥이와 쇠스랑이 오가며 서로 받쳐 내는구나. 이리하여 싸움이 날이 밝아오는 데까지 이르자, 그 요정은 두 팔이 저리고 얼얼함을 느꼈구나. 그 두 놈은 이경 무렵부터 동쪽 하늘이 희어질 때까지 줄곧 싸웠다. 그 요괴는 더는 당해 내지 못하여 진을 버리고 달아나며, 다시 광풍으로 변해 굴로 돌아가 문을 닫아걸고는 다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행자가 그 굴 문 밖을 살펴보니 돌로 세운 비석 하나가 있었는데, 그 위에 "운잔동"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행자는 요괴가 나오지 않고 하늘마저 밝아 오자 속으로 생각하였다. '스승님께서 기다리실 터이니 우선 돌아가 스승님을 한 번 뵙고, 다시 와서 이 요괴를 잡아도 늦지 않으리라.' 이에 구름을 밟고 살짝 몸을 띄우니 어느새 고노장에 당도하였다. 말하자면, 삼장법사는 그 여러 노인들과 함께 옛일과 오늘의 일을 논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한창 행자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데, 뜰 안에 홀연 행자가 내려서 있었다. 행자는 쇠몽둥이를 거두어 감추고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마루로 올라가며 외쳤다. "스승님, 소자가 돌아왔나이다!" 여러 노인이 깜짝 놀라 일제히 절하며 "수고가 많으십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하였다. 삼장법사가 물었다. "오공아, 너는 하룻밤을 다녀왔으니, 요괴는 어디서 잡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그 요괴는 범간의 사악한 귀신도 아니옵고, 산간의 괴상한 짐승도 아니옵니다. 본디 천봉원수가 범세에 내려온 자이온데, 다만 잘못하여 태를 빌려 태어난 까닭에 주둥이와 얼굴이 들돼지 모양을 하였사오나, 실로 성령은 오히려 그대로 남아 있사옵니다. 그놈이 말하기를 생김새를 따라 성을 삼아 저강렬이라 불린다 하였사옵니다. 이 늙은 원숭이가 뒷채에서 몽둥이를 뽑아 들고 곧장 내리치니, 그놈이 광풍 한 줄기로 변하여 달아났사옵니다. 바람을 향해 몽둥이를 내리치자 그놈은 불빛으로 변해 본산의 굴로 돌아가, 아홉 갈래 쇠스랑을 꺼내 들고 이 늙은 원숭이와 밤새 싸웠사옵니다. 방금 하늘이 밝아오려 할 무렵 그놈이 싸움을 겁내어 달아나더니 굴 문을 단단히 닫아걸고 나오지 않았사옵니다. 그 문을 부수고 그놈과 승부를 가릴 참이었사오나, 스승님께서 기다리실까 염려되어 먼저 소식을 전하러 왔사옵니다." 말을 마치자 그 고 노인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장로시여, 어찌할 도리가 없나이다. 그놈을 쫓아내시기는 하였사오나, 장로께서 가신 뒤 또 찾아온다면 어찌한단 말이옵니까? 수고스러우시더라도 붙잡아 뿌리를 뽑아 주시옵소서, 그래야 뒷근심이 없사옵니다. 이 늙은이가 감히 소홀히 할 수야 없사오니,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나이다. 이 집 재물과 논밭을 친척들 앞에서 문서를 써 장로님과 나누어 갖겠나이다. 다만 부디 잡초를 베고 뿌리를 뽑아, 우리 고씨 가문의 맑은 덕을 더럽히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영감은 분수를 모르는구려. 그 요괴도 내게 이르기를, 제가 비록 먹성이 크나 그대 집의 차와 밥을 좀 먹었을 뿐, 그대 집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다 하였소. 이 몇 해 불려 놓은 집안 재물이 모두 그놈의 힘이었소. 그놈이 공연히 얻어먹기만 한 것도 아니거늘, 그대는 어찌 그놈을 쫓아내려 하시오? 그놈의 말로는 하늘의 신이 하계로 내려와 그대 대신 집안일을 한 자이오, 일찍이 그대의 딸을 해친 적도 없소. 이런 사위라면 문벌도 어울리고 가문을 더럽히거나 행실을 욕되게 한 것도 아니니, 그냥 두는 것이 옳을 것이오." 고 노인이 말했다. "장로시여, 풍속을 해치지는 않는다 하나 명성이 좋지 못하옵니다. 사람들이 툭하면 이르기를, '고씨 집안에 요괴 사위 하나를 들였다!' 하오니, 이 말을 어찌 감당한단 말이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네가 이미 그놈과 한바탕 겨루었으니, 이참에 아주 끝을 내어 주어야 처음과 끝이 분명하리라." 행자가 말했다. "소자가 방금 그놈을 시험삼아 놀려 본 것뿐이옵니다. 이제 가면 틀림없이 잡아다 보여 드리겠나이다. 우선 근심 마시옵소서." 그리고는 외쳤다. "고 노인장, 그대는 내 스승님을 잘 모셔 주시오, 나는 가보겠소." 말을 마치자 그는 그림자도 없이 뛰어올라 그 산의 굴 어귀에 이르러, 쇠몽둥이를 마구 휘둘러 두 짝의 문을 부수고는 욕하며 말했다. "이 쌀겨나 처묵는 멍청한 놈아, 어서 나와 이 늙은 원숭이와 겨루어 보자!" 그 요괴는 헐떡이며 굴 속에서 자고 있었다. 문 부서지는 소리와 욕하는 소리가 들리니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쇠스랑을 끌고 정신을 가다듬어 뛰어나오며 사납게 욕했다. "이 필마온 같은 놈, 참으로 게으르고 무례하구나! 너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내 큰 대문을 부수어 버리느냐? 네가 어디 가서 법조문이나 좀 보고 오너라. 남의 대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간 자는 잡범으로 사죄에 해당한다 하였느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내가 대문을 부순 것은 변명할 여지가 있거니와, 너처럼 남의 여자를 억지로 차지하고 중매와 증인도 없고 차와 술의 예물조차 없는 자는 진범으로 참형이 마땅하니라!" 그 요괴가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고, 이 늙은 돼지의 쇠스랑을 보아라!" 행자가 몽둥이로 받쳐 막으며 말했다. "네 그 쇠스랑이 고 노인 댁에서 밭 갈고 채소 심던 연장이냐? 좋을 것이 있다고 두렵단 말이냐!" 그 요괴가 말했다. "네가 잘못 알아보았구나! 이 쇠스랑이 어찌 범간의 물건이겠느냐? 내 말을 좀 들어 보아라. 단련한 신령한 얼음 쇠를 갈고 다듬어 만드니 그 빛이 밝고 깨끗하구나. 노군이 친히 망치를 잡고 형혹이 몸소 숯을 보탰노라. 오방 오제가 마음을 쓰고 육정육갑이 애를 썼구나. 아홉 개 옥 이빨을 이루고 쌍 고리 금 잎을 부어 만들었네. 몸은 육요를 단장하고 오성을 세우며, 형체는 사시와 팔절을 따랐구나. 짧고 긺과 위아래로 천지를 정하고, 좌우 음양으로 해와 달을 나누었네. 육효 신장이 천조를 따르고 팔괘 성신이 북두를 따라 섰구나. 이름은 상보손금파라 하여, 옥황상제께 올려져 단궐을 지키게 하였네. 내가 대라선을 이루니 장생하는 몸을 길렀노라. 칙명으로 원수에 봉해져 천봉이라 불리며, 쇠스랑을 어절로 하사받았네. 들면 불꽃과 광채가 함께하고, 내리치면 사나운 바람에 서설이 날리는구나. 천조 신장이 모두 놀라고 지부의 염라도 간담이 서늘하구나.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러한 병기가 있으며, 세상에 다시 이런 쇠가 있으랴. 몸에 지녀 마음대로 변화하고, 뜻대로 뒤집고 오름은 구결을 따르네. 함께 지낸 여러 해 한 번도 떠난 적 없고, 나를 따른 몇 해 하루도 헤어진 적 없구나. 낮에 세 끼를 먹을 때도 내치지 않고, 밤에 잘 때도 곁에서 떼지 않았네. 차고 반도 잔치에도 가고, 데리고 제궐에 조회하러도 갔노라. 모두 술을 믿고 흉악한 짓을 부린 탓이요, 오로지 센 힘만 믿고 주정을 부린 탓이로다. 하늘이 나를 폄하여 속세로 내리니, 내려와서는 죄업을 다 지었네. 돌굴에서 마음이 사악해 사람을 먹었고, 고노장에서 정이 즐거워 혼인을 맺었노라. 이 쇠스랑은 바다에선 용과 악어의 굴을 뒤엎고, 산에선 호랑이와 이리의 굴을 부수느니라. 갖가지 병기야 우선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직 내 이 쇠스랑이 가장 예리하구나. 맞서 이기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며, 겨루어 공을 세움은 말할 것도 없구나. 네 구리 머리 쇠 골수 온몸의 강철이 무서울쏘냐, 내 쇠스랑이 닿으면 넋이 사라지고 신기가 새리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쇠몽둥이를 거두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입으로만 떠들지 마라! 이 머리를 내밀 터이니 네가 한번 내리쳐 보아라, 넋이 사라지고 신기가 빠지는지 두고 보자." 그 요괴는 참으로 쇠스랑을 들어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쇠스랑 불꽃이 타올랐으되 머리털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하였다. 놀라 손이 저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소리가 터졌다. "단단한 머리로다! 단단한 머리!" 행자가 말했다. "너는 또 모르는구나. 이 늙은 원숭이는 천궁을 뒤집어 놓은 탓에 선단을 훔치고 반도를 도둑질하고 임금의 술을 빼먹다가, 소성이랑에게 사로잡혀 두우궁 앞으로 압송되었느니라. 뭇 천신이 도끼로 찍고 방망이로 두드리고, 칼로 베고 검으로 찌르고, 불로 태우고 벼락으로 쳐도 터럭만큼도 상하지 않았노라. 또 태상노군이 나를 팔괘로에 넣고 신령한 불로 단련하니, 화안금정과 구리 머리 쇠 팔이 되었느니라. 믿지 않거든 몇 번 더 내리쳐 보아라, 아픈지 어떠한지 두고 보자." 그 요괴가 말했다. "이 원숭이 같은 놈, 네가 천궁을 뒤집을 때는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 수렴동에 살았거늘, 오래도록 소문을 못 들었는데 네가 어찌 이곳까지 와 문전에서 나를 업신여기느냐? 내 장인이 너를 청해 온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네 장인은 나를 청한 적이 없느니라. 이 늙은 원숭이가 사악함을 고쳐 바른길로 돌아서며 도를 버리고 승을 따라, 동쪽 대당 천자 폐하의 의동생이신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전을 구하는 길이었느니라. 고노장을 지나다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고 노인이 이야기 끝에 나를 청해 제 딸을 구해 달라 하고, 바로 너 쌀겨 처묵는 놈을 잡아 달라 하였느니라!" 그 요괴는 이 말을 듣자마자 쇠스랑을 내던지고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그 경전을 구하러 가는 분이 어디 계시옵니까? 수고스럽더라도 그대가 인도하여 한번 뵙게 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네가 그분을 뵙자는 것은 어째서냐?" 그 요괴가 말했다. "소인은 본래 관세음보살께서 권선하신 까닭에 그분의 계행을 받고, 이곳에서 재를 지내며 채식을 하고 있사옵니다. 그분이 나를 일러 경전 구하러 가는 이를 따라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전을 구하여, 공로로 죄를 갚고 정과를 얻으라 하셨사옵니다. 그분을 기다리라 하셨는데 몇 해가 되도록 소식이 없었사옵니다. 오늘 그대가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면, 어찌 일찍이 경전 구하는 일은 말하지 않고 흉악한 힘만 믿고 문전까지 쳐들어와 나를 때렸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너는 속임수로 내 마음을 무르게 하여 빠져나갈 꾀를 부리지 마라. 참으로 당승을 모시겠다는 뜻에 조금도 거짓이 없다면, 네가 하늘을 향해 맹세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데리고 내 스승님을 뵙게 하겠다." 그 요괴는 퍽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 절구질하듯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미타불, 나무불이시여! 소인이 참된 마음이 아니라면 천조를 범하여 몸이 만 조각 나는 벌을 받게 하옵소서!" 행자는 그가 맹세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러하겠다면 네가 불을 붙여 네 사는 곳을 태워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를 데리고 가겠다." 그 요괴는 참으로 갈대와 가시덤불을 끌어다 불을 붙여, 운잔동을 깨진 기와 가마로 만들었다. 그리고 행자에게 말했다. "소인은 이제 아무런 미련도 없사옵니다, 그대가 어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네 쇠스랑을 내게 주어라." 그 요괴는 곧 쇠스랑을 행자에게 건넸다. 행자는 또 터럭 하나를 뽑아 신선의 기운을 불어넣고 "변하여라!" 외치니, 그것이 세 가닥으로 꼰 삼베 밧줄로 변하였다. 행자가 다가가서 그의 두 손을 등 뒤로 묶어 버렸다. 그 요괴는 참으로 두 손을 등 뒤로 돌린 채 행자가 묶는 대로 내맡겼다. 행자는 또 그의 귀를 잡아 끌며 소리쳤다. "어서 가자! 어서 가자!" 그 요괴가 말했다. "좀 살살 하시옵소서! 그대의 손이 무거워 내 귀밑이 아프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살살 할 수 없다! 너를 봐줄 수 없다! 속담에 '순한 돼지도 사납게 잡는다' 하였느니라. 내 스승님을 뵙고 참된 마음이 밝혀져야 너를 풀어 주겠다." 그 두 놈은 반은 구름을 타고 반은 안개 속을 걸어 곧장 고노장으로 되돌아왔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쇠의 성질은 강하여 능히 나무를 이기나니, 마음의 원숭이가 나무 용을 항복시켜 데려오는구나. 쇠가 나무를 좇아 순해지니 모두 하나가 되고, 나무가 쇠의 어짐을 그리워하니 늘 힘을 발휘하는도다. 하나는 주인이요 하나는 손님이니 사이가 끊어짐이 없고, 세 번 사귀고 세 번 합하니 그윽하고 묘한 이치가 있구나. 성품과 정이 함께 기뻐하여 참된 근원에 모이니, 함께 서쪽으로 나아가 증명하매 그 말이 어긋나지 않으리라. 잠깐 사이에 장원 앞에 이르렀다. 행자는 쇠스랑을 움켜쥐고 그의 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누구신지 보이느냐? 바로 내 스승님이시니라." 고씨 집안의 여러 친척과 고 노인은 행자가 요괴를 두 손 등 뒤로 묶은 채 귀를 잡아 끌고 오는 것을 보고, 저마다 기뻐하며 뜰로 마중 나와 불렀다. "장로시여! 장로시여! 저놈이 바로 우리 집 사위올시다!" 그 요괴는 앞으로 나가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뒤로 한 채 삼장법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스승님, 제자가 영접을 못 하였나이다. 스승님께서 제 장인 댁에 계신 줄 알았더라면 곧 찾아뵙고 절을 올렸을 것이온데, 어찌 또 이런 곡절을 겪었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네가 어찌하여 그를 항복시켜 나에게 절을 올리게 하였느냐?" 행자가 그제야 손을 놓고 쇠스랑 자루를 들어 두드리며 호통쳤다. "이 멍청한 놈아, 네가 어서 말해 보아라!" 그 요괴는 보살께서 권선하신 일의 자초지종을 낱낱이 아뢰었다. 삼장법사가 크게 기뻐하여 일렀다. "고태공, 향안을 하나 가져다 주시오." 고 노인이 급히 향안을 내왔다. 삼장법사는 손을 씻고 향을 사른 뒤 남쪽을 향해 절하며 아뢰었다. "보살님의 거룩하신 은혜를 크게 입었나이다!" 그 몇몇 노인들도 일제히 향을 보태고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치고 삼장법사가 마루에 높이 앉아서야 행자에게 밧줄을 풀라 하였다. 행자가 몸을 부르르 떨며 거두어 들이자 결박이 저절로 풀렸다. 그 요괴는 새로 삼장법사에게 절을 올리고 서쪽으로 따르기를 원하였다. 또 행자에게도 절하여 먼저 제자가 된 이를 형으로 삼아 사형이라 불렀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네가 이미 나의 선한 과보를 좇아 제자가 되고자 하니, 내가 너에게 법명을 하나 지어 주어 아침저녁으로 부르기 쉽게 하리라." 그 요괴가 말했다. "스승님, 소인은 이미 보살님께 마정수계를 받고 법명을 얻었사오니, 저오능이라 하옵니다." 삼장법사가 웃으며 말했다. "좋도다! 좋도다! 너의 사형은 오공이요 너는 오능이니, 실로 우리 법문의 종파에 꼭 들어맞는도다." 오능이 말했다. "스승님, 소인은 보살의 계행을 받아 오훈과 삼염을 끊고 장인 댁에서 채식을 하여 일찍이 입에 대지 않았사옵니다. 오늘 스승님을 뵈었으니 이제 재를 열어도 되겠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안 되느니라! 안 되느니라! 네가 이미 오훈과 삼염을 먹지 않거늘, 내 다시 너에게 별명 하나를 지어 주어 팔계라 부르리라." 그 멍청이는 기쁨에 겨워 말했다. "스승님의 분부를 삼가 받들겠나이다." 이런 까닭으로 또 저팔계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고 노인은 사악함을 떨치고 바른길로 돌아서는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하여, 하인을 시켜 잔치를 차려 당승에게 보답하였다. 팔계가 앞으로 나서서 고 노인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장인어른, 저의 아내를 불러내어 시아버님과 시아주버님들께 인사를 올리게 하는 것이 어떠하시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여, 네가 이미 사문에 들어 중이 되었거늘 이제부터 그 '아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라. 세상에 불가에 머무는 도사는 있어도 불가에 머무는 중이 있더냐? 우선 자리를 정해 앉아 채식 공양이나 하고, 일찍 서천으로 떠나자꾸나." 고 노인이 탁자를 벌여 삼장법사를 윗자리에 모시고, 행자와 팔계는 좌우에, 여러 친척은 아래에 앉았다. 고 노인은 채주 잔을 가득 채워 하늘과 땅에 먼저 올린 뒤 삼장법사에게 드렸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태공께 숨기지 않고 말하거니와, 가승은 모태에서부터 채식하는 몸이라 어려서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노라." 고 노인이 말했다. "스승님께서 청정하심을 알기에 감히 고기를 올리지 못하였나이다. 이 술도 채주이오니 한 잔 드셔도 무방하시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술 또한 감히 쓰지 못하겠노라. 술은 우리 승가의 첫째 계율이니라." 오능이 당황하여 말했다. "스승님, 소인은 재를 지내기는 하였사오나 술은 끊지 못하였사옵니다." 오공이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도 주량이 좁아 한 동이는 못 비우나 술을 끊은 적은 없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너희 형제가 채주를 마시는 것은 괜찮으니라. 다만 취하여 일을 그르침은 허락하지 않겠노라." 이에 두 사람이 첫 잔을 받았다. 각자 본래대로 앉아 채식 공양이 차려졌는데, 그 잔과 그릇의 성대함이며 음식의 풍성함은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잔치를 마치자 고 노인은 붉은 옻칠 쟁반에 헐어진 금은 이백 냥을 담아 세 장로께 노자로 드리고, 면포 편삼 세 벌을 겉옷으로 올렸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우리는 걸식하는 행각승이라 마을마다 밥을 빌고 곳마다 공양을 구하는 몸이거늘, 어찌 금은과 재물을 받겠노라?" 행자가 앞으로 나서서 손을 펴 한 웅큼을 움켜쥐고 불렀다. "고재야, 어제 네가 내 스승님을 인도하느라 수고하였고, 오늘 제자 하나를 얻었으되 너에게 줄 물건이 없구나. 이 헐어진 금은을 노자 삼아 짚신이나 사 신어라. 뒤에 요괴가 나타나거든 나에게 일을 더 맡겨 다오, 그때 또 고마움을 표시하리라." 고재가 받아 들고 머리를 조아리며 상을 주심에 감사하였다. 고 노인이 또 말했다. "금은은 받지 않으시려 하시니 부디 이 거친 옷이나 웃으며 받아 주시옵소서, 그것이나마 정성을 표하는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또 말했다. "나는 출가한 몸이라 터럭만큼이나마 뇌물을 받으면 천 겁을 수행해도 갚기 어렵느니라. 다만 자리에서 남은 떡과 과일이나 싸서 마른 양식으로 삼는 것으로 족하노라." 팔계가 곁에서 나서며 말했다. "스승님, 사형, 두 분이 받지 않으시는 것은 그만이옵니다마는, 소인은 그 집에서 몇 해를 사위 노릇을 하였사오니 발붙인 삯만 치더라도 석 삼 섬은 되어야 옳사옵니다. — 장인어른, 제 장삼은 어젯밤 사형에게 찢겼사오니 청색 비단 가사 한 벌을 주시옵소서. 신도 터졌사오니 새 신 한 켤레를 주시옵소서." 고 노인은 그 말을 듣고 주지 않을 수 없어 새 신 한 켤레를 사 오고 편삼 한 벌을 내어 헌 옷과 바꾸게 하였다. 팔계는 몸을 흔들흔들하며 고 노인에게 큰절을 올리고 아뢰었다. "장모님과 큰이모, 둘째이모와 이모부, 외삼촌 내외 등 여러 친척 어른께 올리는 말씀이옵니다. 저는 오늘 중이 되러 가는 길이라 일일이 찾아뵙고 작별 인사를 올릴 겨를이 없사오니 섭섭하게 여기지 마시옵소서. 장인어른, 제 아내를 부디 잘 돌보아 주시옵소서. 우리가 경전을 얻지 못하고 돌아오면 환속하여 옛날처럼 그대의 사위가 되어 살림할지도 모르옵니다." 행자가 호통치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헛된 소리를 입에 담지 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헛된 소리가 아니옵니다. 한때 차질이 생기면 중 노릇도 그르치고 아내 얻는 일도 그르쳐 양쪽이 다 허탕을 치지 않겠사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고, 우리 일찍 길을 떠나자꾸나." 이에 행장 한 짐을 꾸려 팔계가 메고, 흰 말에 안장을 얹어 삼장법사가 타며, 행자는 쇠몽둥이를 메고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다. 일행 세 사람은 고 노인과 여러 친척에게 작별하고 서쪽으로 떠났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땅에 가득한 안개와 노을, 나무 빛이 높고, 당나라의 불자는 괴로움과 수고가 많구나. 주리면 한 발우에 천 집의 밥을 먹고, 추우면 천 바늘 깁은 납의 한 벌을 걸치는도다. 뜻의 말을 가슴 속에서 방탕하게 놓아두지 말고, 마음의 원숭이가 괴팍스러워 울부짖게 하지 말라. 정이 화합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온갖 인연이 어우러지나니, 달이 금빛 꽃 위에 가득 찰 때가 곧 털을 깎는 때이니라. 세 사람이 서쪽으로 나아간 지 한 달이 편안하고 안온하게 흘렀다. 오사장의 경계를 지나가는데, 홀연 고개를 들어 보니 높은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삼장법사가 채찍을 멈추고 말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오공아, 오능아, 앞에 산이 높으니 모름지기 조심하고 또 조심하리라." 팔계가 말했다. "염려할 것 없사옵니다. 이 산은 부도산이라 불리오니, 산중에 오소선사 한 분이 있어 이곳에서 수행하고 있사옵니다. 이 늙은 돼지도 일찍이 그분을 만나 뵈었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분에게 무슨 재주가 있더냐?" 팔계가 말했다. "그분도 제법 도행이 있사옵니다. 일찍이 나를 권하여 자기를 따라 수행하라 하였으나, 내가 가지 않았을 뿐이옵니다." 사부와 제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오래지 않아 산 위에 당도하였다. 좋은 산이로다! 보이는 바가 이러하였다. 산 남쪽에는 푸른 소나무와 옥빛 향나무가 있고, 산 북쪽에는 푸른 버들과 붉은 복숭아꽃이 있구나. 떠들썩하게 산새들이 서로 지저귀고, 훨훨 날며 신선의 학들이 함께 날아가는도다. 향기 그윽하여 온갖 꽃이 천 가지 빛깔이요, 푸르름이 아른아른하여 잡초 만 가지가 기이하구나. 골짜기 아래에는 도도하게 흐르는 푸른 물이 있고, 벼랑 앞에는 송이송이 피어오르는 상서로운 구름이 있구나. 참으로 그 경치 실로 이러하였으니, 매우 그윽하고 우아한 곳이언마는 고요하기만 하고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구나. 그 스승님이 말 위에서 멀리 바라보니 향나무와 측백 앞에 땔감과 풀로 엮은 보금자리 하나가 있었다. 왼쪽엔 사슴이 꽃을 물고 오른쪽엔 산 원숭이가 과일을 바치며, 나무 꼭대기엔 푸른 난새와 채색 봉황이 함께 울고 검은 학과 금계가 모여 있었다. 팔계가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계신 분이 오소선사가 아니옵니까!" 삼장법사가 말에 채찍을 가하여 곧장 나무 아래로 나아갔다. 말하자면, 선사께서는 세 사람이 오는 것을 보시고 곧 보금자리에서 나와 나무 아래로 뛰어내리셨다. 삼장법사가 말에서 내려 절을 올리니, 그 선사께서 손을 들어 부축하며 말씀하셨다. "성스러운 스님께서는 일어나시옵소서. 영접을 못 하였노라, 영접을 못 하였노라." 팔계가 말했다. "노선사여, 인사를 올리나이다." 선사께서 놀라며 물으셨다. "그대는 복릉산의 저강렬이로되, 어찌 이러한 큰 인연이 있어 성스러운 스님과 동행하게 되었느냐?" 팔계가 말했다. "관세음보살께서 권선하신 은혜를 입어 그분을 따라 제자가 되기를 원하였사옵니다."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며 이르셨다. "좋도다, 좋도다, 좋도다!" 그리고는 행자를 가리키며 물으셨다. "이분은 누구시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 선사께서는 그를 어떻게 알아보시고 도리어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느냐?"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아이는 나의 큰제자 손오공이옵니다." 선사께서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예의가 부족하였노라, 예의가 부족하였노라." 삼장법사가 다시 절을 올리고 서천 대뇌음사가 어디쯤 있는지 여쭈었다.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멀도다! 멀도다! 다만 길에 호랑이와 표범이 많아 가기가 어렵노라." 삼장법사가 정중히 뜻을 표하며 다시 여쭈었다. "길이 과연 얼마나 멀겠나이까?"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길이 비록 멀지만 마침내 도착하는 날이 있으리라. 다만 마장을 없애기 어렵노라. 내게 《다심경》 한 권이 있으니, 무릇 쉰네 구절이요 모두 이백칠십 자니라. 만일 마장이 있는 곳을 만나거든 다만 이 경을 외우면 스스로 해를 입지 않으리라." 삼장법사가 땅에 엎드려 간절히 청하니 선사께서 입으로 외워 전하셨다. 경에 이르기를,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에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일체의 고통과 재액을 건너게 하였느니라. 사리자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라. 수상행식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습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 안계도 없고 내지 의식계도 없느니라.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내지 늙음과 죽음도 없고 또한 늙음과 죽음이 다함도 없느니라. 고집멸도도 없고 지혜도 없으며 또한 얻음도 없느니라. 얻은 바가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으며, 전도된 망상을 멀리 여의어 구경의 열반에 이르느니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큰 신비한 주문이요, 큰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요,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능히 일체의 고통을 없애나니 참되고 헛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주를 설하노니, 곧 주문을 말하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 사바하!'라 하였느니라." 이때 당나라 법사는 본래 근원이 있는지라, 《다심경》을 한 번 귀로 듣고 곧 기억하여, 오늘날까지 세상에 전하여지고 있느니라. 이는 참됨을 닦는 총경이요, 부처를 이루는 으뜸 문이니라. 선사께서 경문을 전하시고 구름 빛을 밟아 오소로 오르려 하시는데, 삼장법사가 다시 붙잡고 간청하여 서쪽 노정의 자세한 내막을 묻고자 하였다. 그 선사께서 웃으며 이르셨다. "길이 가기 어렵지는 않으니, 내 분부를 한번 들어 보아라. 천 개의 산과 천 줄기의 물이 깊고, 안개와 마귀가 많은 곳이로다. 접천애를 만나거든 마음 놓고 두려워 말며, 마이암에 이르거든 발을 비스듬히 디뎌라. 흑송림을 삼가 조심하여라, 요망한 여우가 길을 자주 끊느니라. 정령은 나라 성에 가득하고 마왕은 산에 넘치게 사느니라. 호랑이는 관청의 당에 앉아 있고, 푸른 이리는 주부가 되었구나. 사자와 코끼리는 모두 왕을 일컫고 호랑이와 표범은 모두 벼슬을 하느니라. 들돼지는 짐을 메고, 물괴물은 앞에서 만나리라. 해묵은 늙은 돌원숭이는 그곳에서 분노를 품고 있나니, 그대는 그 아는 이를 물어보아라, 그가 서쪽으로 가는 길을 아느니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냉소하며 말했다. "우리가 갈 터이니 그에게 물을 것도 없거니와, 나에게 물어 보시오." 삼장법사는 오히려 그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선사께서 금빛 광채로 화하시어 곧장 오소로 올라가셨다. 장로가 우러러 절하며 감사하였다. 행자는 크게 노하여 쇠몽둥이를 들어 위를 향해 마구 찔렀으나, 연꽃 만 송이가 피고 상서로운 안개가 천 겹을 에워쌀 뿐이었다. 행자가 바다를 뒤집고 강을 휘젓는 힘을 지녔들, 오소의 넝쿨 한 가닥을 잡아당길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삼장법사가 그것을 보고 행자를 붙잡으며 말했다. "오공아, 이토록 훌륭한 보살이신데 네가 어찌 그의 보금자리를 찔러 대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가 내 형제 둘을 한바탕 욕하고 가 버렸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분이 서천으로 가는 길을 일러 주셨거늘, 어찌 너를 욕하셨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은 어찌 그것을 아시겠나이까? 그가 이른 '들돼지는 짐을 메고'는 팔계를 욕한 것이옵고 '해묵은 늙은 돌원숭이'는 이 늙은 원숭이를 욕한 것이옵니다. 스승님은 어찌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시나이까?" 팔계가 말했다. "사형,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이 선사님은 지나간 일과 앞일도 아시는 분이옵니다. 그분이 이른 '물괴물은 앞에서 만나리라'는 말씀이 과연 맞을지는 알 수 없사옵니다. 그만 놓아 드리시옵소서." 행자는 연꽃과 상서로운 안개가 보금자리를 에워싼 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스승님께 말에 오르시라 청하여 산을 내려가 서쪽으로 향하였다. 그 한 번 감에, 참으로 인간 세상의 맑은 복은 적어지게 하고, 산속의 재앙과 마귀는 많아지게 하리라. 아아! 결국 앞길의 자세한 형편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0회 황풍령당승유난(黃風嶺唐僧有難) · 반산중팔계쟁선(半山中八戒爭先) 게송에 이르기를, 법은 본디 마음에서 생겨나거니와 도로 마음에서 멸하느니라. 생하고 멸함이 모두 누구로 말미암는가, 그대 스스로 분별해 보라. 이미 다 제 마음이거늘 무엇에 남의 말을 쓰리오. 다만 쓰디쓴 공부를 내려 쇠 속에서 피를 짜내면 그뿐이니라. 부드러운 노끈을 코에 꿰고 허공에 매듭을 단단히 묶어, 무위의 나무에 매어 두어 그놈이 미쳐 날뛰지 못하게 하라. 도둑을 제 자식으로 삼지 말라, 마음과 법이 모두 끊어지리라. 그놈이 나를 속이게 두지 말고 주먹 한 방으로 먼저 꿰뚫어 버려라. 마음이 드러나도 또한 마음이 없고, 법이 드러나도 법은 그치느니라. 사람과 소가 서로 보이지 않을 때, 푸른 하늘은 빛이 맑고 밝으며 가을 달처럼 둥글어서, 저것과 이것을 나누기 어렵도다. 이 게송은 바로 현장법사가 《다심경》을 환히 깨우쳐 문호를 활짝 열어 젖힌 뒤에 지은 것이었다. 그 장로는 늘 외우고 늘 마음에 품고 있었으므로, 한 점 신령한 빛이 저절로 환히 뚫려 나왔다. 말하자면, 그 일행 세 사람은 길에서 바람을 먹고 물가에서 자며, 달을 띠고 별을 두른 채 가는 동안 어느새 여름의 무더운 계절에 이르렀다. 그곳 풍경이 이러하였으니, 꽃은 다 지고 나비는 정다운 사랑을 나눌 곳이 없으며, 나무는 높아져 매미는 소리 높이 울어 대더라. 들누에가 고치를 짓고 불타는 듯한 석류가 고와지는데, 못 안에는 새 연꽃이 고개를 내미는구나. 그날 한창 길을 가는데 홀연히 날이 저물었고, 산길 옆으로 한 채의 농가가 보였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저것을 보아라. '해는 서산에 지며 불거울을 감추고, 달은 동해에서 솟아 얼음 수레바퀴를 드러내는구나.' 다행히 길가에 인가가 있으니, 우리가 저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내일 다시 가자꾸나." 팔계가 말했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이 늙은 돼지도 배가 좀 고프옵니다. 인가로 가서 공양이나 좀 빌어먹고 기운을 내어야 행장을 멜 수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이 집 생각만 하는 귀신 같은 놈! 집을 떠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불평이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형님처럼 바람이나 마시고 연기나 들이켜는 분은 저와 같지 않사옵니다. 소인이 스승님을 따른 이 며칠 동안 늘 배가 반만 찼사온데, 형님이 그걸 아시옵니까?"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오능아, 네가 만일 집 생각이 너무 무겁다면 출가한 사람이 아니니, 차라리 돌아가는 게 좋겠다." 그 멍청이는 깜짝 놀라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스승님, 사형의 말을 듣지 마시옵소서. 그이는 남을 모함하기를 잘하옵니다. 소인은 아무런 불평도 한 적이 없사온데, 그이가 도리어 소인이 불평한다 하옵니다. 소인은 속이 곧은 바보라서, 그저 배가 고프니 인가를 찾아 공양을 빌어먹으면 좋겠다 하였을 뿐이온데, 그이가 도리어 소인을 집 생각만 하는 귀신이라 욕하였사옵니다. 스승님, 소인은 보살님의 계행을 받았사옵고, 또 스승님의 자비까지 입었사오니, 기꺼이 스승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려 하옵니다. 맹세코 물러서거나 후회하지 않겠나이다. 이를 일러 '괴로움을 원망하지 않고 수행한다' 하옵니다. 어찌 출가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시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선 일어나거라." 그 멍청이는 몸을 솟구쳐 벌떡 일어나더니, 입으로는 줄곧 중얼중얼 투덜거리며 행장을 메고, 하는 수 없이 마음을 굳게 다잡은 채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어느새 길가 인가의 대문 앞에 당도하였다. 삼장법사가 말에서 내리니 행자가 고삐를 받아 쥐고, 팔계가 행장을 내려놓고, 세 사람 모두 푸른 나무 그늘 아래 우뚝 서 있었다. 삼장법사는 아홉 고리 달린 석장을 짚고, 등넝쿨과 대오리로 엮어 만든 삿갓을 바로 눌러쓰고는 먼저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한 노인이 대나무 평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입으로는 나직나직하게 염불을 외우고 있었다. 삼장법사는 감히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조용히 한마디 불렀다. "시주여, 문안을 올리나이다." 그 노인은 벌떡 일어나 급히 옷깃을 여미고는 문 밖으로 나와 답례하며 말했다. "장로시여, 마중을 못 나갔사옵니다. 어느 곳에서 오시는 길이옵니까? 이 초라한 집에 무슨 일로 오셨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빈승은 동쪽 대당의 중이옵니다. 성지를 받들어 뇌음사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전을 구하는 길이옵니다. 마침 귀한 고을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었기에, 댁에 하룻밤 신세를 지고자 하나이다. 부디 편의를 보아 주시옵소서." 그 노인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가실 수 없사옵니다. 서천은 경전을 구하기 어렵사옵니다. 경전을 구하려거든 동천으로 가시옵소서." 삼장법사는 입으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깊이 생각에 잠겼다. '보살님께서는 서쪽으로 가라 하셨거늘, 어찌 이 노인은 동쪽으로 가라 하는가? 동쪽에 무슨 경전이 있단 말인가?' 부끄러워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이나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행자는 본디 성질이 사납고 거칠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 영감장, 나이가 그리 많으면서도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구려. 우리 출가한 사람이 먼 곳에서 와 하룻밤 신세를 빌겠다는데, 도리어 이런 김 빠지는 말로 겁을 주려 드오. 설령 댁이 비좁아 잘 곳이 없다 한들, 우리가 나무 아래에서 앉아 하룻밤을 지내면 그만이니, 결코 댁을 번거롭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 노인은 삼장법사의 소매를 붙잡으며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은 도리어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데, 스승님의 그 제자는 낯짝은 삿갓처럼 뾰족하고 턱은 삐쭉 내밀었고 입은 벼락 신장의 주둥이요 두 눈은 벌겋고, 꼭 폐병에 걸린 마귀처럼 생겼거늘, 어찌 도리어 이 늙은이를 모욕한단 말이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영감은 참으로 눈썰미가 없구려! 잘생긴 자라야 보기에는 좋으나 먹을 것은 못 된다 하였느니라. 이 늙은 원숭이는 비록 작으나 제법 단단하여, 가죽 안에 근육이 뭉쳐 있느니라." 그 노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필시 재주가 좀 있겠구려." 행자가 말했다. "감히 자랑은 못 하겠으나, 그럭저럭 볼 만은 하느니라." 노인이 말했다. "그대 집이 어디며, 무슨 일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소?"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는 본적이 동승신주 바다 동쪽 오래국 화과산 수렴동이니라. 어릴 적부터 요괴 노릇을 배워 이름을 오공이라 하였고, 재주를 믿고서 제천대성 벼슬을 얻어냈느니라. 하늘의 녹을 받지 않으려다 천궁을 크게 뒤집어놓는 바람에 재앙을 불러들였거니와, 이제는 재난을 벗고 화를 삭여 사문으로 돌아서서, 앞으로 정과를 구하며 이 대당 천자 폐하의 스승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한바탕 다녀오려 하느니라. 산이 높고 길이 험하며 물이 넓고 물결이 사나운들 무엇이 두렵겠느냐! 이 늙은 원숭이는 요괴도 잡을 줄 알고 마귀도 항복받을 줄 아느니라. 호랑이를 굴복시키고 용을 사로잡으며, 하늘을 차고 우물을 뒤집는 재주도 대강은 아느니라. 만일 댁에 기왓장이 날아들고 솥이 울고 대문이 저절로 열리는 일이 있거든, 이 늙은 원숭이가 능히 진압해 드리리라." 그 노인은 이 긴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원래 동냥이나 하러 다니는 말 잘하는 중이로구려." 행자가 말했다. "영감의 아들이나 말 잘하는 놈이오! 이 늙은 원숭이는 요즈음 스승님을 따라 길을 걷느라 고단해서 말조차 하기 귀찮은 판이오." 그 노인이 말했다. "고단하지 않고 말하기 귀찮지 않다면, 살아생전 귀가 터지도록 시끄러워 죽을 판이구려! 그대가 그런 재주를 지녔으니 서천도 갈 만하오, 갈 만하오. 그대 일행이 몇 명이오? 초가로 들어와 묵도록 하시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노시주께서 꾸짖지 않으신 은혜를 깊이 입었나이다. 저희 일행은 세 사람이옵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 나머지 한 사람은 어디 있소?" 행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영감은 눈이 침침한 모양이구려, 저 푸른 그늘 아래 서 있는 이가 그 사람이 아니오?" 노인은 참으로 눈이 침침하였던지라 홀연히 고개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팔계의 그 생김새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한 걸음마다 넘어지며 집 안으로 마구 달아나면서, "문 닫아라! 문 닫아라! 요괴가 왔다!" 하고 외쳤다. 행자가 달려가 붙잡으며 말했다. "영감, 겁내지 마시오. 그는 요괴가 아니오, 내 사제요." 노인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하나같이 하나보다 더 못생긴 중들이로구려!"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노인장, 생김새만 보고 사람을 헤아리면 크게 잘못 보는 것이오. 우리는 못생겼으나 제각기 쓸모는 있소." 그 노인이 대문 앞에서 세 중과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마을 남쪽에서 젊은이 둘이 늙은 할멈 한 사람과 어린 아이 서너 명을 데리고, 옷을 걷어 올리고 맨발로 모내기를 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흰 말 한 필과 행장 한 짐이 자기 집 대문 앞에 놓여 있고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것을 보고는 내력조차 알지 못한 채 한꺼번에 몰려와 물었다. "무엇 하는 분들이오?" 팔계가 머리를 돌리며 귀를 몇 번 흔들고 긴 주둥이를 한 번 쑥 내밀자, 그 사람들은 깜짝 놀라 이리 넘어지고 저리 자빠지며 우왕좌왕 엎치락뒤치락하였다. 삼장법사가 당황하여 입이 닳도록 외쳤다. "겁내지 마시오! 겁내지 마시오!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오, 경전을 구하러 가는 중일 뿐이오." 그제야 그 노인이 문 밖으로 나와 할멈을 부축하며 말했다. "할멈, 일어나시오, 너무 놀라지 마시오. 이 스승님은 대당에서 오신 분이오. 다만 제자들의 낯이 좀 못생겼을 뿐이나, 산은 험해도 사람은 착하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갑시다." 그 할멈이 노인의 팔을 붙잡고, 두 젊은이는 자식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삼장법사는 그 집 대문 누각 안 대나무 평상에 앉아 원망하듯 말했다. "제자들이여, 너희 둘은 생김새도 추하고 말씨도 거칠어서, 이 집 사람들을 겁에 질려 넋이 나가게 만들었으니, 모두 내 몸을 대신해 죄를 짓는 셈이로구나!"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께 숨기지 않고 아뢰옵건대, 이 늙은 돼지는 스승님을 따른 뒤로 제법 잘생겨졌사옵니다. 예전에 고노장에 다니던 때처럼 주둥이를 앞으로 쑥 내밀고 귀를 양쪽으로 흔들었더라면, 늘 스무세 명쯤은 겁을 먹어 넋이 나갔을 것이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함부로 떠들지 말고 그 추한 꼴이나 좀 거두어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의 그 말을 좀 보아라. 생김새는 타고나는 것인데, 네가 어찌 거두라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저 쇠스랑 같은 주둥이를 품속에 찔러 넣고 밖으로 내놓지 말며, 저 부채 같은 귀는 뒤로 착 붙이고 흔들지 말게, 그것이 곧 거두는 것이니라." 그 팔계는 참으로 주둥이를 품에 찔러 넣고 귀를 뒤로 붙인 채 머리를 숙이고 좌우에 서 있었다. 행자는 행장을 문 안으로 들여놓고 흰 말을 말뚝에 매어 두었다. 그제야 그 노인이 젊은이 하나를 데리고 나무 쟁반에 맑은 차 세 잔을 받쳐 들고 나와 올렸다. 차를 마시고 나자 노인은 다시 공양을 차리라 분부하였다. 그 젊은이는 구멍이 뚫리고 옻칠도 벗겨진 낡은 탁자 한 장을 가져오고, 머리가 부러지고 다리가 꺾인 걸상 두 개를 들어 뜰 가운데 놓고는 세 사람을 시원한 곳에 앉도록 청하였다. 삼장법사가 그제야 물었다. "노시주, 성함이 어떻게 되시옵니까?" 노인이 말했다. "소인은 왕가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물었다. "자제분은 몇 분이시옵니까?" 노인이 말했다. "어린 자식이 둘이오며 어린 손주가 셋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경사스러운 일이옵니다, 경사스러운 일이옵니다." 또 물었다. "연세가 얼마나 되시옵니까?" 노인이 말했다. "어리석게 예순한 해를 살았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환갑을 다시 맞은 것이오." 삼장법사가 다시 물었다. "노시주, 처음에 서천 경전을 구하기 어렵다 하신 것은 어찌된 일이옵니까?" 노인이 말했다. "경전이 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길이 험하고 가기 어려운 것이오. 이곳에서 서쪽으로 삼십 리쯤 가면 팔백 리 황풍령이라는 산이 하나 있사옵니다. 그 산에는 요괴가 매우 많사옵니다. 그러니 구하기 어렵다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옵니다. 다만 이 젊은 장로께서 재주가 많다 하시니 가실 만은 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시오! 염려 마시오! 이 늙은 원숭이와 내 사제가 있으니, 무슨 요괴라도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느니라." 한창 말하는데 다시 아들이 밥을 가져와 탁자에 차려 놓고 "공양을 드시옵소서" 하고 말했다. 삼장법사는 두 손을 모아 공양 경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팔계는 벌써 한 그릇을 꿀꺽 비웠다. 장로가 경 몇 구절을 아직 다 외우지 못한 사이에 그 멍청이는 또 세 그릇을 먹어 치웠다. 행자가 말했다. "이 쌀겨나 처묵는 놈! 굶은 귀신을 만난 모양이구나!" 그 왕 노인도 사정을 아는지라, 그가 먹는 것이 빠른 것을 보고 말했다. "이 장로는 몹시 시장하신 모양이오, 어서 밥을 더 갖고 오너라." 그 멍청이는 참으로 뱃골이 컸다. 고개도 들지 않고 줄곧 열 그릇쯤을 먹어 치웠다. 삼장법사와 행자는 둘이서 두 그릇도 채 먹지 못하였다. 멍청이는 멈출 줄 모르고 여전히 먹고 있었다. 왕 노인이 말했다. "갑자기 차린 것이라 반찬이 없사옵니다. 억지로 더 권하지는 못하오나, 부디 한 젓가락만 더 드시옵소서." 삼장법사와 행자가 함께 말했다. "넉넉하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영감은 무슨 투덜거림이오, 누가 영감과 점이나 친답니까. 오효니 육효니 하는 소리는 그만하고, 밥이 있으면 그저 더 갖고 오기나 하시오." 그 멍청이는 한바탕 먹어서 그 집 식구들의 밥을 모조리 비워 버리고서도, 아직 반밖에 배가 차지 않았다고만 하였다. 그런 뒤에야 그릇을 거두고, 대문 누각 아래에 대나무 평상과 널판자로 잠자리를 마련하여 누웠다. 이튿날 날이 밝자 행자는 말을 챙기러 가고 팔계는 행장을 정비하였으며, 왕 노인은 또 할멈을 시켜 다과와 국물을 좀 차려 대접하게 하였다. 세 사람이 비로소 감사 인사를 올리고 길을 떠나려 하니 노인이 말했다. "가시는 길에 만일 무슨 일을 당하시거든, 부디 이 초가로 도로 오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영감, 쓸데없는 소리는 마시오. 우리 출가한 사람은 되돌아가는 길은 걷지 않느니라." 이에 말을 몰고 행장을 메고 서쪽으로 길을 나섰다. 아아! 이렇게 떠나니 과연 서역으로 통하는 좋은 길은 없고, 사악한 마귀가 큰 재앙을 내릴 뿐이로다. 세 사람이 앞으로 나아간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과연 높은 산 하나를 만났다. 그 험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삼장법사가 말을 몰아 벼랑 끝에 이르러 안장 발걸이를 비스듬히 걸친 채 바라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높은 것은 산이요 험준한 것은 고개며, 깎아지른 것은 벼랑이요 깊은 것은 골짜기니라. 소리 내는 것은 샘물이요 싱싱한 것은 꽃이로다. 저 산이 높은가 하니 꼭대기가 푸른 하늘에 닿았고, 이 계곡이 깊은가 하니 바닥이 저승이 보이는구나. 산 앞에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흰 구름과 우뚝우뚝 솟아오른 괴상한 바위가 있더라. 천 길, 만 길이나 되어 넋을 쥐어짜는 벼랑은 다 말로 다할 수 없구나. 벼랑 뒤에는 구불구불 용을 감춘 굴이 있고, 굴 속에는 똑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바위가 있더라. 또 뿔이 갈라진 사슴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멍청하게 사람을 바라보는 노루가 우두커니 서 있으며, 붉은 비늘 이무기가 꿈틀꿈틀 기어가고, 흰 얼굴 원숭이가 까불까불 장난을 치는구나. 저녁에는 산을 넘어 굴을 찾는 호랑이가 있고, 새벽에는 물결을 뒤집으며 나오는 용이 있어, 굴 문을 쾅쾅 두드리듯 요란하게 울리더라. 풀숲의 새들은 푸드득 날아오르고, 숲 속의 짐승들은 우르르 몰려 달아나더라. 홀연히 이리와 벌레 떼가 지나가니, 사람의 간담이 덜컹덜컹 놀라는구나. 참으로 굴소리가 울리고 메아리쳐, 굴이 온 산을 뒤흔드는 듯하더라. 푸른 산빛이 천 길 옥을 물들여 내고, 비단 같은 푸른 안개가 수만 무더기의 연기를 덮고 있더라. 그 스승님은 은빛 준마의 고삐를 늦추어 천천히 몰고, 손대성은 구름을 멈추어 느긋하게 걸으며, 저오능은 행장을 어깨에 메고 느릿느릿 걸었다. 한창 그 산을 바라보는데 홀연히 회오리바람 한 줄기가 크게 일어났다.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놀라며 말했다. "오공아, 바람이 일어났구나!" 행자가 말했다. "바람이 무에 그리 두렵다고 하시나이까! 이는 하늘이 사철로 불게 하는 기운일 뿐이오니, 무엇이 두렵다 하시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바람은 몹시 사악하여, 저 하늘의 바람과는 같지 않구나." 행자가 말했다. "어찌 하늘의 바람과 같지 않다 하시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바람을 보아라. 높고높고 넓고넓으며 휘익휘익 휘몰아치고, 아득하고 망망하여 푸른 하늘에서 나오는구나. 고개를 넘을 때는 천 그루 나무가 울부짖는 소리만 들리고, 숲으로 들어서자 온갖 대나무가 흔들리는 모습만 보이는구나. 물가에서는 버드나무가 뿌리째 흔들리고, 동산에서는 꽃이 잎을 단 채 날려 가더라. 그물을 거둔 고기배는 모두 밧줄을 단단히 매고, 돛을 내린 나그네 배는 닻을 던져 두었구나. 길 위의 나그네는 길을 잃고 헤매고, 산속의 나무꾼은 짐을 메기 어렵더라. 신선의 과일 숲에서는 원숭이가 흩어지고, 기이한 꽃 숲에서는 사슴이 달아나는구나. 벼랑 앞의 향나무와 잣나무는 그루마다 쓰러지고, 계곡 아래의 소나무와 대나무는 잎마다 시드는구나. 흙을 날리고 먼지를 일으켜 모래가 펑펑 튀고,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저어 물결이 철썽철썽 이는구나.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행자의 팔을 움켜쥐고 말했다. "사형, 바람이 몹시 크옵니다! 우리가 잠시 피해 있는 것이 깨끗하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는 쓸모가 없구나! 바람이 세다고 피하기만 하다가, 만일 요정과 정면으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찌한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색을 피하기를 원수를 피하듯 하고, 바람 피하기를 화살 피하듯 하라'는 말을 못 들으셨사옵니까! 우리가 잠시 피한다 한들 남에게 손해를 끼칠 것도 없지 않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우선 말을 말게, 이 늙은 원숭이가 저 바람을 한 웅큼 잡아다가 냄새를 맡아 보겠느니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사형이 또 허풍을 떠시는구려, 바람을 어찌 잡아다 냄새를 맡는단 말이옵니까! 설령 잡아 온다 한들 벌써 빠져나가 버렸을 것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아우는 모르는구나, 이 늙은 원숭이에게는 '바람 잡는 법'이 있느니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바람의 머리를 먼저 보내고 그 바람의 꼬리를 움켜잡아 한 번 냄새를 맡아 보니 비릿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과연 좋은 바람이 아니로구나! 이 바람의 냄새는 호랑이 바람이 아니요, 틀림없이 요괴의 바람이니라. 단단히 수상한 데가 있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산비탈 아래에서 꼬리를 휘두르고 발굽을 구르며 얼룩무늬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삼장법사가 놀라 조각낸 안장에 앉아 있지 못하고 뼁뀅이를 하며 흰 말에서 굴러떨어져 길가에 비스듬히 쓰러졌으니, 참으로 넋이 날아가고 혼이 흩어질 지경이었다. 팔계는 행장을 내동댕이치고 아홉 갈래 쇠스랑을 뽑아 들고는, 행자가 앞에 나서는 것도 기다리지 않은 채 큰소리로 한바탕 호통쳤다. "이 악축아, 어디로 달아나느냐!" 그리고는 달려들어 정면으로 내리쳤다. 그 호랑이는 꼿꼿하게 두 발로 일어서더니 앞왼발을 들어 제 가슴팍을 움켜쥐고 아래로 쭉 긁어 내리자, 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가죽이 벗겨지며 길가에 우뚝 서 있었다. 그 흉악한 생김새를 좀 보아라! 아아, 그 모습이 이러하였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벌거벗은 몸뚱이요, 뻘건 다리와 굽은 발톱이로다. 불길처럼 이는 두 귀밑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뻣뻣하게 솟은 두 눈썹은 치켜 올라갔구나. 하얗게 번쩍이는 강철 어금니 네 개와,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눈동자 한 쌍이로다. 기백이 드높이 큰 소리로 포효하고, 늠름한 기세로 사납게 고함을 지르더라. 그 호랑이가 외쳤다. "천천히 오너라! 천천히 오너라! 내 패거리는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황풍대왕 휘하의 길잡이 선봉이니라. 지금 대왕의 엄명을 받들어 산에서 순찰하며 범부 몇 명을 잡아다 안주를 삼으려 하노라. 너는 어디서 온 중이기에 감히 병기를 휘둘러 나를 다치게 하느냐?" 팔계가 욕하며 말했다. "이 악축 같은 놈,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우리는 길을 지나가는 범부가 아니라 동쪽 대당 천자 폐하의 의동생이신 삼장법사의 제자이니, 성지를 받들어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전을 구하는 사람이로다. 네가 어서 다른 곳으로 멀리 피하여 큰길을 비켜라. 내 스승님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네 목숨은 살려 주마. 만일 전처럼 날뛴다면 쇠스랑이 닿는 곳에 용서가 없으리라!" 그 요정은 변명할 겨를도 주지 않고 급히 발을 옮겨 자세를 하나 취하더니 팔계의 얼굴을 향해 움켜쥐려 달려들었다. 이 팔계는 급히 몸을 피하며 쇠스랑을 휘둘러 내리쳤다. 그 요괴는 손에 병기가 없으므로 고개를 숙인 채 달아나고, 팔계가 그 뒤를 따라갔다. 그 요괴는 산비탈 아래 어지러운 돌무더기 속에 이르러 붉은 구리 칼 두 자루를 꺼내 급히 휘두르며 몸을 돌려 맞서 나왔다. 둘은 그 비탈 앞에서 오가며 부딪치고 들이받으며 한바탕 겨루었다. 그동안 손행자는 삼장법사를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스승님, 겁내지 마시옵소서. 우선 앉아 계시옵소서. 이 늙은 원숭이가 가서 팔계를 도와 그 요괴를 때려눕히고 길을 떠나도록 하겠나이다." 삼장법사가 그제야 몸을 일으켜 앉아 부들부들 떨며 입으로 《다심경》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행자가 쇠몽둥이를 뽑아 들고 "잡아라!" 하고 고함쳤다. 이때 팔계가 정신을 가다듬어 기운을 떨치니 그 요괴가 진을 버리고 패하여 물러났다. 행자가 말했다. "놈을 놓아주지 말라! 반드시 따라잡아야 하느니라!" 두 사람은 쇠스랑을 휘두르고 쇠몽둥이를 들어 산 아래로 쫓아 내려갔다. 그 요괴는 손발이 허둥거려 '금선탈각의 계교'를 부려 한 바퀴 굴렀는데,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니 여전히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였다. 행자와 팔계가 어찌 놓아주려 하였으랴, 그 호랑이를 쫓으며 반드시 뿌리를 뽑으려 하였다. 그 요괴는 그들이 바싹 따라붙은 것을 보고 다시 제 가슴팍을 움켜쥐고 가죽을 벗어 내어 그 와호석 위에 덮어 씌운 뒤, 참몸을 빼내어 광풍 한 줄기로 변해 곧장 길목으로 돌아갔다. 길목에서 스승님이 한창 《다심경》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놈이 단번에 움켜쥐고는 긴 바람을 타고 채어 가 버렸다. 가련하도다, 그 삼장법사여! 강물에 떠내려가던 팔자에 마찰이 많기로 정해졌거늘, 적멸의 문에서 공행이 어렵기만 하구나. 그 요괴는 삼장법사를 굴 어귀까지 채어 와 광풍을 누그러뜨리고 문을 지키는 자에게 말했다. "네가 들어가 대왕께 아뢰어라, 길잡이 호랑이 선봉이 중 하나를 잡아 문 밖에서 명령을 기다린다고." 그 굴 주인이 명령을 내려 그를 들어오게 하였다. 그 호랑이 선봉은 허리에 붉은 구리 칼 두 자루를 차고 두 손으로 삼장법사를 받쳐 들고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으며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소장이 재주 없사오나 대왕의 분부를 입어 산으로 순찰을 나갔다가 홀연히 중 하나를 만났사옵니다. 그는 동쪽 대당 천자 폐하의 의동생이신 삼장법사로서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전을 구하는 이온데, 소장이 잡아다 바치오니 한 끼 안주나마 되옵니다." 그 굴 주인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내 앞서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들었노라. 삼장법사는 대당에서 성지를 받들어 경전을 구하는 신령한 승려요, 그 수하에 제자 하나가 있어 이름을 손행자라 하거늘 신통이 광대하고 지력이 높고 강하다 하더라. 네가 어찌 그를 잡아올 수 있었느냐?" 선봉이 아뢰었다. "그에게는 제자가 둘이옵니다. 먼저 온 자는 아홉 이빨 달린 쇠스랑을 쓰는데 주둥이가 길고 귀가 크옵고, 또 하나는 금테 두른 쇠몽둥이를 쓰는데 붉은 눈에 금빛 눈동자를 지녔사옵니다. 막 소장을 쫓아 겨루고 있을 때 소장이 '금선탈각'의 계교를 부려 몸을 빼 틈을 얻어 이 중을 잡아 왔사오니, 대왕께 바쳐 한 끼의 정성이나마 표하옵니다." 굴 주인이 말했다. "우선 그를 먹지는 마라." 선봉이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먹을 것을 보고도 먹지 않음을 일러 '열궐'이라 하옵니다." 굴 주인이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그를 먹는 것은 대수롭지 않으나, 다만 그의 두 제자가 찾아와 떠들어 댈까 두렵거니와, 그것은 온편한 일이 못 되느니라. 우선 그를 뒷동산 정풍말뚝에 묶어 두고 사나흘을 기다려 보자. 그 두 놈이 와서 훼방을 놓지 않으면 그때는 한편으로 그 몸이 깨끗해지기를 바랄 수 있고, 또 입씨름을 벌일 일도 없으니,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 삶든지 찌든지, 굽든지 볶든지 천천히 마음 편히 즐겨도 늦지 않으리라." 선봉이 크게 기뻐하며 아뢰었다. "대왕의 깊고 먼 헤아림이 참으로 옳사옵니다." 그리고 외쳤다. "어린 놈들아, 데리고 가거라." 곁에서 결박꾼 일고여덟 명이 몰려나와 삼장법사를 끌고 가니, 마치 매가 제비와 참새를 낚아채듯 새끼줄로 얽어매고 동여매었다. 이는 참으로 팔자 사나운 강류가 행자를 그리워하고, 재난을 만난 신령한 승려가 오능을 생각하는구나. 삼장법사가 탄식하며 말했다. "제자들이여! 너희가 어느 산에서 요괴를 잡고 어디서 마귀를 항복받고 있는지도 모르겠거늘, 나는 마두에게 잡혀 와 이런 독한 해를 당하였으니, 어느 때에나 다시 만날 수 있으랴! 아아 괴롭구나! 너희가 조금만 일찍 온다면 내 목숨을 건질 수 있으려니와, 너무 늦어 버린다면 단연코 보전할 수 없으리라!" 한편으로 탄식하고 한편으로는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한편 행자와 팔계는 그 호랑이를 산비탈 아래로 쫓아갔는데, 그 호랑이가 달리다가 쓰러져 벼랑 앞에 엎드려 있었다. 행자가 몽둥이를 들어 힘껏 한 번 내리치니 도리어 제 손이 저려 왔다. 팔계가 다시 쇠스랑으로 한 번 찌르자 이번에는 쇠스랑 이빨이 튕겨 올라왔다. 알고 보니 그것은 호랑이 가죽 한 장이 와호석을 덮고 있던 것이었다. 행자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그놈의 계교에 걸려들었구나!" 팔계가 말했다. "무슨 계교에 걸려들었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것을 '금선탈각의 계교'라 하느니라. 그놈이 호랑이 가죽을 여기에 덮어 두고 제놈은 달아났느니라. 우리가 어서 돌아가 스승님을 살펴보자, 독한 손길을 당하셨을지도 모르느니라." 두 사람이 급히 되돌아왔으나 벌써 삼장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행자가 우레 같은 소리로 크게 외쳤다. "어찌하면 좋으냐! 스승님이 이미 그놈에게 잡혀 갔구나!" 팔계는 곧 말을 끌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했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이제 어디로 가서 찾는단 말이오!" 행자가 고개를 쳐들고 펄쩍 뛰며 말했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한번 울면 예기가 꺾이느니라. 어차피 이 산 안에 있을 터이니, 우리가 찾아보자꾸나." 두 사람은 참으로 산 속으로 뛰어들어 고개를 넘고 등성이를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 돌벼랑 아래에서 굴 하나가 우뚝 솟아 나왔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과연 흉험하였다. 그 모습이 이러하였으니, 겹겹이 쌓인 봉우리와 구불구불 옛길이로다. 푸른 소나무와 비취 대나무가 아스라이 서 있고, 녹음 짙은 버들과 푸른 오동이 바람에 나부끼는구나. 벼랑 앞에는 괴상한 바위가 쌍쌍이 서 있고, 숲 속에는 그윽한 새들이 짝지어 노닐더라. 계곡물은 멀리 흘러 돌벽을 들이치고, 산샘물은 가늘게 떨어져 모래둑을 적시는구나. 들구름이 조각조각 떠 있고, 요지의 풀이 무성하게 우거졌더라. 요사한 여우와 영리한 토끼가 어지럽게 북실거리며 오가고, 뿔 달린 사슴과 사향 노루가 함께 용을 겨루더라. 쪼개진 벼랑에는 만 년 된 등나무가 비스듬히 걸려 있고, 깊은 골짜기에는 천 년 된 잣나무가 반쯤 매달려 있구나. 우뚝우뚝 높이 솟아 화악을 능가하고, 꽃 지고 새 우는 풍경이 천태산을 능가하는구나. 행자가 말했다. "아우여, 너는 행장을 바람을 감춘 산등성이 움푹한 곳에 내려놓고 말을 풀어 놓은 뒤, 고개를 내밀지 말게. 이 늙은 원숭이가 그 굴 어귀로 가서 그놈과 겨루어 보겠느니라. 반드시 요정부터 잡아야 스승님을 구할 수 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분부하지 않으셔도 아옵니다. 어서 가시옵소서." 행자가 장삼을 여미고 호랑이 가죽 치마를 동여매고 몽둥이를 뽑아 들고는 그 굴 문 앞으로 쳐들어갔다. 문 위에 큰 글자 여섯 자가 있었으니 바로 "황풍령 황풍동"이었다. 행자는 글자 발 모양으로 두 발을 벌리고 우뚝 서서 몽둥이를 움켜쥔 채 큰소리로 외쳤다. "요괴야! 어서 내 스승님을 내보내라, 그래야 네 보금자리를 뒤집어엎고 네 사는 곳을 짓밟아 평평하게 만드는 일이 없으리라!" 그 어린 요괴들이 이 말을 듣고 하나같이 겁을 먹어 부들부들 떨며 안으로 뛰어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일 났사옵니다!" 그 황풍괴가 한창 앉아 있다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어린 요괴가 아뢰었다. "굴 문 밖에 벼락 신장 주둥이에 털북숭이 얼굴을 한 중 하나가 왔사옵니다. 손에 무척 굵은 쇠몽둥이를 들고서 제 스승님을 내놓으라 하옵니다!" 그 굴 주인이 놀라 당황하여 즉시 호랑이 선봉을 불러 말했다. "내가 너에게 산을 순찰하라 하였거늘, 산소와 들돼지와 살진 사슴과 털북숭이 양이나 잡아올 것이지, 어찌 그 당승을 잡아 왔느냐! 이제 그의 제자까지 여기 와서 떠들게 하였으니, 어찌 처리한단 말이냐?" 선봉이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마음 편히 안심하시고 베개를 높이 하시옵소서. 소장이 재주 없사오나 어린 요괴 병졸 오십 명을 거느리고 나가 그 무엇이라는 손행자를 잡아다 곁들여 먹겠나이다." 굴 주인이 말했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두목을 제하고도 어린 병졸이 오륙백 명이나 되니, 네 마음대로 골라 몇 명이든 데리고 가라. 다만 그 행자를 잡아 내기만 한다면, 우리가 마음 편히 그 중의 살점 한 점을 먹을 수 있으리니, 기꺼이 너와 의형제를 맺으리라. 그러나 그를 잡지 못하고 도리어 너만 다칠까 두렵거니와, 그때는 나를 원망하지 말라." 호랑이 요괴가 말했다. "안심하시오! 안심하시오! 내가 가보겠소." 참으로 정예 어린 요괴 오십 명을 뽑아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붉은 구리 칼 두 자루를 차고 문을 박차고 나와 사나운 소리로 크게 외쳤다. "너는 어디서 온 원숭이 중이냐? 감히 이곳에서 큰소리로 떠들며 무얼 하려느냐?" 행자가 욕하며 말했다. "이 가죽 벗길 짐승 같은 놈! 네가 무슨 탈각법을 부려 내 스승님을 채어 갔거늘, 도리어 내게 무얼 묻느냐! 어서 스승님을 잘 모셔 내보내라, 그러면 네 목숨은 살려 주겠느니라!" 호랑이 요괴가 말했다. "네 스승님은 내가 잡아다 우리 대왕의 반찬으로 삼으려 하느니라. 네가 분수를 알거든 돌아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까지 잡아 한꺼번에 곁들여 먹으리니, '하나를 사고 하나를 덤으로 얻는다'는 격이 아니겠느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분노하였다. 으드득으드득 강철 어금니를 갈며, 데굴데굴 붉은 눈을 부릅뜨고 쇠몽둥이를 뽑아 들고 호통쳤다. "네 재주가 얼마나 크기에 그런 큰소리를 내느냐! 달아나지 마라! 몽둥이를 받아라!" 그 선봉은 급히 칼을 들어 받쳐 막았다. 이 한바탕 싸움은 참으로 만만치 않아, 둘이 저마다 위력을 드러내었다. 훌륭한 싸움이로다. 그 요괴는 참된 거위 알이요, 오공은 거위 알만 한 돌이로다. 붉은 구리 칼이 미후왕을 받쳐 막으니, 알을 포개어 돌을 치는 격이로구나. 까치가 어찌 봉황과 다투며, 비둘기가 감히 매와 솔개에게 맞서랴. 그 요괴는 바람을 뿜어 재가 산에 가득하고, 오공은 안개를 토해 구름이 해를 가리는구나. 오간 지 서너세 합이 되기도 전에 선봉은 허리가 풀려 힘이 하나도 없더라. 몸을 돌려 패하여 달아나 목숨을 건지려 하였으나, 오공이 죽을 힘으로 몰아붙이는구나. 그 호랑이 요괴가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그놈이 본래 굴 주인 앞에서 큰소리를 친 터라 굴로 돌아가지 못하고 산비탈 위로 곧장 달아나 목숨을 건지려 하였다. 행자가 어찌 놓아주었으랴, 몽둥이를 움켜쥔 채 줄기차게 쫓아가며 휘이잉 휘이잉 고함을 쳐 대니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바람을 감춘 산등성이 움푹한 곳까지 이르렀다. 고개를 들어 보니 팔계가 거기서 말을 풀어 놓고 있었다. 팔계가 홀연 휘이잉 하는 고함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보니, 행자에게 패하여 쫓기는 호랑이 요괴였다. 팔계는 말을 내버려 두고 쇠스랑을 들어 비스듬히 머리를 겨누어 한 번 찔렀다. 가련하도다, 그 선봉이여! 몸을 빼내어 노란 그물에서 벗어나려 하였거늘, 어찌 물고기 덮는 사냥꾼을 또 만날 줄 알았으랴. 팔계의 쇠스랑 한 방에 아홉 개 구멍이 뚫려 붉은 피가 솟구치고, 머리통의 골수가 모조리 흘러 말라 버렸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서너 해 전에 정종으로 돌아와, 재를 지내고 채식하며 진공을 깨우쳤노라. 정성으로 당나라 삼장법사를 모시려 하니, 사문에 든 처음에 이 공을 세우는구나. 그 멍청이는 한 발로 그놈의 등허리를 짓밟고 두 손으로 쇠스랑을 휘둘러 다시 찔렀다. 행자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아우여,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니라! 그놈이 어린 요괴 몇십 명을 거느리고 감히 이 늙은 원숭이와 겨루려 하였거늘, 내게 패하고 나서는 굴로 달아가지 않고 도리어 이리로 달려와 죽을 길을 찾는구나. 네가 받아 주었으니 다행이니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또 달아났을 것이니라." 팔계가 말했다. "바람을 부려 스승님을 채어 간 놈이 바로 그놈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의 행방을 그놈에게 물어 보았소?" 행자가 말했다. "이 요괴가 스승님을 굴 속에 가두어 두고 저 무슨 대왕이라는 놈의 반찬으로 삼으려 하였느니라. 이 늙은 원숭이가 화가 나서 그놈과 여기까지 싸우며 쫓아왔는데, 네가 목숨을 거두게 하였구나. 아우여, 이 공로는 네 것으로 치리라. 너는 말과 행장을 지키고 있어라. 내가 이 죽은 요괴를 끌고 가서 다시 굴 어귀로 가 도전하겠느니라. 모름지기 그 늙은 요괴를 잡아야 스승님을 구할 수 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말씀이 옳사옵니다. 가시옵소서, 가시옵소서. 만일 그 늙은 요괴를 패배시켜 쫓아오시거든 또 이리로 몰고 오시옵소서, 이 늙은 돼지가 길을 막아 놈을 죽이겠사옵니다." 훌륭한 행자로다. 한 손에 쇠몽둥이를 들고 한 손으로 죽은 호랑이를 끌어당겨 곧장 그 굴 어귀로 나아갔다. 바로 이러하였으니, 법사가 재난을 만나 요괴를 만났거늘, 정과 성품이 서로 어우러져 어지러운 마귀를 항복받는구나. 결국 이렇게 가서 요괴를 항복받고 당승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1회 호법설장류대성(護法設莊留大聖) · 수미영길정풍마(須彌靈吉定風魔) 말하자면, 싸움에 패하고 남은 오십 명의 작은 요괴들이 찢어진 깃발과 깨진 북 따위를 들고 굴 속으로 뛰어 들어가며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호선봉이 그 털북숭이 얼굴을 한 중을 당해 내지 못하고 동쪽 산비탈 아래로 쫓겨 내려갔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그 말을 듣고는 몹시 번민하였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계책을 궁리하고 있는데, 또 앞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달려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호선봉이 그 털북숭이 얼굴을 한 중에게 맞아 죽었사옵니다. 시체를 문 어귀에 끌어다 놓고서는 그 중이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걸고 있사옵니다.” 그 늙은 요괴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번민하며 말했다. “이놈이 참으로 무지하구나! 나는 아직 그의 스승을 잡아먹지도 않았거늘, 도리어 그놈이 내 집 선봉을 쳐 죽이다니, 분하도다! 분하여라!” 그리고는 소리쳐 외쳤다. “갑옷과 투구를 가져오너라. 나도 다만 손행자라는 자의 소문만 들었을 뿐이니, 내가 친히 나가서 아홉 머리에 여덟 꼬리라는 중이 어떤 놈인지 보고서, 그놈을 잡아들여 내 호선봉의 목숨과 맞바꾸리라.” 뭇 작은 요괴들이 급히 갑옷과 투구를 메고 나왔다. 늙은 요괴는 몸을 단단히 갖추고서 쇠로 만든 세 갈래 삼지창 한 자루를 움켜쥐고는, 요괴 무리를 거느리고 자기 굴을 뛰쳐나왔다. 그 대성은 문 밖에 우뚝 서 있다가 요괴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참으로 용맹스럽다고 여겼다. 그가 몸을 어떻게 차렸는지 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금빛 투구는 해를 흔들고 금빛 갑옷은 빛을 엉기는데, 투구 위에 나부끼는 술은 산꿩의 꼬리요 갑옷을 덮은 비단 포는 옅은 거위 노른자 빛이로다. 갑옷을 조이는 띠에는 용이 서려 채색이 눈부시고, 가슴을 지키는 거울은 눈을 두른 듯 찬란하네. 사슴 가죽 신발은 괴화나무 꽃물로 물을 들였고, 비단 앞치마는 버들잎 같은 솜털로 장식했도다. 손에 쥔 세 갈래 강철 창은 예리하니, 당년에 모습을 드러낸 저 성스러운 낭군에게 뒤지지 않는도다. 그 늙은 요괴가 문을 나서며 언성을 높여 외쳤다. “어느 놈이 손행자냐?” 이 행자는 호랑이 요괴의 가죽 부대를 발로 밟고 여의한 쇠 몽둥이를 손에 쥐고서 대답했다. “네 외할아버지 손오공이 여기 있느니라! 어서 내 스승님을 모셔 내보내라!” 그 요괴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행자의 몸집은 초라하고 얼굴은 파리하여 키가 네 자에도 미치지 못했으므로, 웃으며 말했다. “가련하구나! 가련하여라! 나는 그저 당해 낼 수 없는 호걸인 줄 알았더니, 원래 이런 해골 같은 병든 귀신이었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아, 네가 참으로 눈썰미가 없구나! 네 외할아버지가 비록 작다마는, 네가 내 머리를 향해 창 자루로 한 번 쳐 준다면 곧 석 자는 자라리라.” 그 요괴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머리를 단단히 하고 내 한 자루를 받아라.” 대성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요괴가 과연 한 번 내리치자, 그가 허리를 한번 굽히니 족히 석 자가 자라나 한 장 남짓한 길이가 되었다. 그 요괴는 놀라 강철 창을 눌러 잡으며 호통쳤다. “손행자, 네가 어찌하여 이 몸을 지키는 변화법을 가지고 내 문 앞에서 부리느냐! 헛된 재주 부리지 말고 올라오너라, 내 너와 재주를 겨루어 보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아! 속담에 이르기를, 정을 남기려 하거든 손을 들지 말고 손을 들었거든 정을 남기지 말라 하였느니라. 네 외할아버지의 손놀림은 무거우니, 네가 이 몽둥이 한 방을 견디지 못할까 두렵구나!” 그 요괴는 변명할 겨를도 주지 않고 강철 창을 돌려 쥐고는 행자의 가슴을 향해 찔러 왔다. 이 대성은 능한 자는 서두르지 않고 서두르는 자는 능하지 않다고 하였거늘, 쇠 몽둥이를 휘둘러 오룡이 땅을 스치는 자세를 쓰며 강철 창을 쳐내고는, 또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두 사람이 그 황풍령 동굴 어귀에서 벌인 이 한바탕 통쾌한 싸움은 이러하였다. 요괴 왕은 노기를 발하고 대성은 위풍을 떨치니, 요괴 왕은 노기를 발하여 행자를 잡아 선봉의 원수를 갚으려 하고, 대성은 위풍을 떨쳐 요물을 사로잡아 장로를 구해 내려 하도다. 창이 날아오면 몽둥이가 받쳐 내고 몽둥이가 가면 창이 맞서며, 하나는 산을 누른 도총수요 하나는 법을 지키는 원숭이 왕이라. 처음에는 티끌 위에서 싸우더니 나중에는 둘 다 하늘 한가운데로 솟아올랐도다. 강철 창은 끝이 밝고 날카로우며 여의한 몽둥이는 몸이 검고 고리는 황금빛이로다. 찔린 자는 혼이 명부로 돌아가고 맞은 자는 반드시 염라대왕을 대면하리라. 오로지 손놀림이 빠르고 눈썰미가 밝은 데 힘입으니, 모름지기 힘이 세고 몸이 강해야 하느니라. 양쪽이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잊은 채 싸우니, 어느 쪽이 평안하고 어느 쪽이 다칠지 알 수 없도다! 그 늙은 요괴와 대성이 서른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이 행자는 공을 세워 보이고 싶어 몸 밖에 몸을 내는 신분신의 재주를 부렸다. 제 몸의 털을 한 웅큼 뜯어내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 가루로 만든 뒤, 하늘을 향해 한 번 내뿜으며 “변해라!” 하고 외쳤다. 그러자 백 명이 넘는 행자로 변했는데, 모두 똑같은 차림새에 저마다 쇠 몽둥이를 한 자루씩 들고서 그 요괴를 공중에서 빙 둘러 포위하였다. 그 요괴는 겁이 나서 또한 같은 재주를 부렸다. 급히 고개를 돌려 손 방위를 향해 입을 세 번 크게 벌리고는, 휘익 하고 한 숨을 길게 내뿜었다. 그러자 갑자기 누런 바람 한 줄기가 허공에서 일어났다. 좋은 바람이로다! 참으로 맹렬하였다. 싸늘하고 쌩쌩해 천지가 변하고, 그림자도 형체도 없는 누런 모래가 휘몰아치네. 숲을 꿰뚫고 고개를 꺾어 솔과 매화를 쓰러뜨리고, 흙을 날려 산마루를 무너뜨리도다. 황하 물결은 뒤집혀 바닥까지 흐려지고, 상수는 솟구쳐 물결을 뒤집네. 푸른 하늘이 진동해 두우궁이 흔들리고, 하마터면 삼라전을 쓰러뜨릴 뻔하였도다. 오백 나한은 하늘이 떠나가라 떠들고, 팔대 금강은 일제히 소란을 피우네. 문수의 푸른 털 사자는 달아나고, 보현의 흰 코끼리도 찾을 길이 없도다. 진무의 거북과 뱀은 무리를 잃고, 재동의 노새는 안장까지 날려 보내네. 장사꾼은 하늘에 빌며 울부짖고, 사공은 온갖 소원을 빌며 절하도다. 물안개 속 목숨은 파도 속에 흐르고, 명리에 매인 남은 목숨은 물 따라 끝나네. 신선의 산과 동천은 깜깜하고, 바다 위 봉래섬은 어둑어둑 빛을 잃었도다. 태상노군도 단약 굽는 화로를 돌볼 겨를이 없고, 수성노인은 용수부채를 거두어 들였네. 왕모가 반도 잔치로 가는 길인데, 한 줄기 바람에 치마허리 팔찌가 끊어지고, 이랑은 관주성을 잃고 헤매며, 나타는 갑 속의 칼을 꺼내기 어렵도다. 천왕은 손바닥의 탑이 보이지 않고, 노반은 금머리 송곳을 떨어뜨렸네. 뢰음사의 보배 궁궐은 세 층이 무너지고, 조주의 돌다리는 두 토막이 끊어졌도다. 붉은 해는 흔들려 빛을 잃고, 하늘의 별자리가 모두 어지럽네. 남산의 새는 북산으로 날고, 동호의 물은 서호로 넘쳐흐르도다. 수컷과 암컷은 짝이 흩어져 부르지 못하고, 어미와 새끼는 떨어져 불러 보기 어렵네. 용왕은 바다를 뒤져 야차를 찾고, 뢰공은 사방에서 번개를 찾으며, 십대 염왕은 판관을 찾고, 지부의 우두는 마면을 쫓도다. 이 바람은 보타산까지 불어가 관음의 경전 한 권을 말아 올렸네. 흰 연꽃은 바닷가로 날려 가고, 보살의 열두 뜰이 모조리 쓰러졌도다. 반고 이래로 바람을 보아 왔으나, 이 바람처럼 사납게 분 적은 없었도다. 후루룩 콰르릉, 천지가 터져 갈라지지 않은 것이 위태로우니, 만 리 강산이 모두 떨고 있도다! 그 요괴가 이토록 사나운 광풍을 부리자 손오공의 털로 변했던 작은 행자들은 반공중으로 날려 올라가 마치 물레바퀴처럼 빙빙 돌기만 하였으니, 몽둥이를 휘두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몸을 어찌 가누겠는가. 다급해진 행자가 털을 한 번 털어 몸에 거두어들이고는, 홀로 쇠 몽둥이를 들어 나아가 내리치려 하였으나, 또 그 요괴가 얼굴을 향해 누런 바람 한 입을 내뿜어 두 눈의 불꽃 같은 금안을 꼭 감기게 하였으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쇠 몽둥이를 부릴 수 없어 드디어 싸움에 패하여 물러나 왔다. 그 요괴가 바람을 거두고 굴로 돌아간 사정은 이쯤에서 그치겠다. 말하자면, 저팔계는 누런 바람이 크게 일어 천지가 빛을 잃는 것을 보고 말을 끌고 짐을 지킨 채 산골짜기에 엎드려 있었다. 감히 눈을 뜨지도 못하고 감히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입으로는 쉬지 않고 부처님을 부르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또한 행자가 이겼는지 졌는지, 스승님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걱정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새 바람이 가라앉고 하늘이 개었다. 고개를 들어 굴 문 앞을 바라보니 병기도 보이지 않고 징과 북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멍청이는 감히 그 문으로 올라가지도 못했거니와 말과 행장을 지킬 사람도 없어 참으로 진퇴양난이요, 마음이 몹시 불안하기만 하였다. 근심하는데 문득 손오공이 서쪽에서 외치며 오는 소리가 들려 왔으므로, 그제야 몸을 일으켜 마주 나아가며 말했다. “형님, 바람이 어찌 이리도 크옵니까! 형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이옵니까?” 행자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맹렬하다! 맹렬해! 이 늙은 원숭이가 사람이 된 이래로 이런 큰 바람은 본 적이 없다. 그 늙은 요괴가 세 갈래 강철 창 한 자루를 들어 이 늙은 원숭이에게 싸움을 걸어 왔다. 서른 합 넘게 싸웠는데, 이 늙은 원숭이가 몸 밖에 몸을 내는 재주로 그놈을 둘러싸고 두들기니, 그놈이 다급해진 나머지 이 바람을 일으킨 것이니라. 과연 흉악하여 나를 서 있지도 못하게 불어 대는 바람에, 재주를 거두고 바람을 뚫고 도망쳐 나왔다. 흥, 좋은 바람이로다! 흥, 좋은 바람이로다! 이 늙은 원숭이도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릴 줄 알지만, 이 요괴의 바람만큼 사나운 것은 본 적이 없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 요괴의 무예는 어떠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볼 만하더라. 창법도 제법 반듯하고 나와 서른 합을 호각으로 겨루었느니라. 다만 바람이 사나워서 그놈을 이겨 내기 어렵구나.” 팔계가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스승님을 어떻게 구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을 구하는 일은 잠시 미루자. 이곳에 안과 의원이 있는지 모르겠으니, 그에게 내 눈을 좀 고쳐야겠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눈이 어찌 되었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내가 그 요괴가 내뿜는 바람 한 입을 뒤집어썼는데, 눈알이 쑤시고 아팠느니라. 이제 와서는 찬 눈물이 줄줄 흐르는구나.”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 깊은 산중에 날마저 저물었으니 안과 의원은커녕 잘 곳조차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잘 곳은 어렵지 않다. 내 헤아리건대 그 요괴는 아직 스승님을 해치지는 못하리라. 우리가 큰길로 올라가 인가를 찾아 하룻밤 묵고, 내일 밝거든 다시 와서 요괴를 항복받자.” 팔계가 말했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옵니다.” 그는 곧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산골짜기를 벗어나 큰길 어귀로 올라섰다. 이때 점점 황혼이 짙어 가는데, 길 남쪽 산비탈 아래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보니 한 채의 농가였는데, 희미하게나마 등불이 비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길이 있건 없건 아랑곳하지 않고 풀을 헤치며 걸어 그 집 문 앞에 이르렀다. 그곳 풍경이 이러하였으니, 자줏빛 지초는 무성하고 흰 돌은 푸르스름하네. 지초 무성한 곳에 푸른 풀이 많고, 흰 돌 사이에 이끼가 반쯤 덮였도다. 몇 점의 반딧불이 반짝이고, 한 숲의 들나무는 빽빽이 늘어섰네. 향기로운 난초는 그윽하고, 연한 대나무는 새로 심어졌도다. 맑은 샘은 굽은 계곡을 흐르고, 늙은 잣나무는 깊은 벼랑에 기대었네. 땅이 외져 나그네의 발길이 끊겼으니, 문 앞에는 들꽃만이 피어 있을 뿐이로다. 그 두 사람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외쳤다. “문 열어 주시오, 문 좀 열어 주시오!” 그곳에는 한 늙은이가 젊은 농부 몇 명을 거느리고 쇠스랑과 갈고리, 빗자루를 들고 일제히 나오며 물었다. “무슨 사람이오? 대체 무슨 사람이오?” 행자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우리는 동쪽 큰 당나라 성스러운 스님의 제자들이오. 서쪽으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전을 구하러 가는 길에 이 산을 지나다 황풍대왕에게 스승님을 빼앗겼는데, 아직 구해 내지 못했소. 날이 이미 어두워졌으니 특별히 댁을 찾아와 하룻밤 신세를 빌리고자 하오. 부디 편의를 봐 주시오.” 그 늙은이가 답례하며 말했다. “잘못 맞이했소이다, 잘못 맞이했소이다. 이곳은 구름만 많고 사람은 드문 곳이라, 방금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혹 여우나 호랑이, 산중 도적 같은 무리일까 두려워하였소이다. 이 때문에 어리석은 하인들이 무례를 범하였사온데, 두 분 장로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나이다. 어서 들어오소서, 어서 들어오소서.” 그 형제들은 말을 끌고 짐을 멘 채 안으로 들어가 안쪽에 이르러 말을 매고 짐을 내려놓고는, 그 집 주인 늙은이에게 절하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또 머리 흰 늙은 종이 나와 차를 올리고, 차를 마친 뒤 깨밥 몇 그릇을 내왔다. 밥을 마치자 자리를 펴고 쉬라 하였는데, 행자가 말했다. “잠은 자지 않아도 좋사오나, 감히 여쭙건대 이곳에 안약 파는 곳이 있소이까?” 그 늙은이가 말했다. “어느 장로께서 눈이 편찮으시단 말씀이오?” 행자가 말했다. “어르신께 숨기지 않고 아뢰거니와, 우리 출가한 사람은 본래 병이 없어 눈이 아픈 줄도 모르고 지냈소.” 그 늙은이가 말했다. “눈이 아프지 않다면서 어찌하여 약을 찾으시오?”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오늘 황풍령 동굴 어귀에서 스승님을 구하려다 그 요괴가 내뿜는 바람 한 입을 뒤집어썼는데, 그 바람이 내 눈알을 쑤시고 아프게 하였소. 이제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이 때문에 안약을 찾는 것이오.” 그 늙은이가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이 장로는 나이가 어리신데 어찌하여 거짓말을 하시오? 저 황풍대성의 바람이 가장 맹렬하오. 그의 바람은 무슨 봄바람 가을바람이나 솔바람 대나무 바람, 또 그 동서남북의 바람과는 견줄 수가 없소.” 팔계가 말했다. “필시 머리를 꿰뚫는 바람, 양의 귀 바람, 큰 마비 바람, 편두통 바람 같은 것이 아니옵니까?” 그 늙은이가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그것을 삼매신풍이라 하오.” 행자가 말했다. “어찌 그리 알 수 있소이까?” 그 늙은이가 말했다. “그 바람은 능히 천지를 어둡게 불어 대고, 귀신까지 근심하게 잘 휩쓸며, 바위를 쪼개고 벼랑을 무너뜨리도록 사납고, 사람에게 불면 목숨이 곧 끊어지오. 그대들이 만일 그의 바람을 뒤집어썼다면 어찌 살아남기를 바라시겠소! 다만 신선이라야만 무사할 수 있소.” 행자가 말했다. “과연 그러하오! 과연 그러하오! 우리가 비록 신선은 아니나 신선도 내 후배쯤 되니 이 목숨이 급히 끊어지지는 않겠소만, 다만 내 눈알을 쑤시고 아프게 하였소!” 그 늙은이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대들도 내력이 있는 사람이오. 내 누추한 곳에는 안약을 파는 이가 없소만, 이 늙은이도 바람을 맞으면 찬 눈물이 나는 증세가 있어서 일찍이 신이한 사람을 만나 처방 하나를 전해 받았는데, 이름을 삼화구자고라 하니 온갖 풍증으로 인한 눈병을 다 고칠 수 있소.”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읍하며 말했다. “바라건대 조금만 얻어서 발라 보고 싶소, 발라 보고 싶소.” 그 늙은이가 승낙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 마노석으로 만든 작은 단지 하나를 가져 나와 마개를 뽑고서, 옥으로 만든 비녀 끝으로 조금 찍어 행자의 눈에 발라 주며, 눈을 뜨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혀 자면 내일 아침이면 곧 나으리라고 일렀다. 다 바르고 나서는 돌단지를 거두고 하인들을 거느려 안으로 물러갔다. 팔계가 보따리를 풀고 이불을 펴며 행자에게 자리를 잡으라고 청했다. 행자는 눈을 감은 채 손을 더듬거렸는데,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의 지팡이는 어디 있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이 게걸스러운 멍청이 같은 놈! 네가 나를 장님으로 만들어 놀려 먹으려 드는구나!” 그 멍청이는 껄껄거리며 속으로 웃고는 잠이 들었다. 행자는 자리에 앉아 신공을 돌리다가 삼경이 지나서야 비로소 누워 잠들었다. 어느덧 오경이 되어 날이 밝아 오는데, 행자가 얼굴을 쓱쓱 문지르고 눈을 뜨며 말했다. “과연 좋은 약이로다! 평소보다 백 배나 더 밝구나!” 그런데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니, 아! 그곳에 무슨 집이며 창문이 있단 말인가, 다만 늙은 홰나무와 높은 버드나무만 보일 뿐이었고, 형제들은 모두 푸른 잔디 위에서 자고 있었다. 그때 팔계가 깨어나며 말했다. “형님, 무슨 소리를 하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네 눈을 뜨고 좀 보아라.” 그 멍청이가 고개를 들어 보니 인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므로, 놀라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내 말은 어디 있소?” 행자가 말했다. “나무에 매어 둔 것이 바로 그것 아니냐?” “행장은 어디 있소?” 행자가 말했다. “네 머리맡에 놓인 것이 바로 그것 아니냐?” 팔계가 말했다. “이 집 사람들이 참으로 꾀가 많구려. 이사를 가면서 어찌 우리를 한마디 불러 주지 않았단 말이오? 이 늙은 돼지에게 알려만 주었어도 차와 과일을 대접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필시 호적을 피해 숨는 처지라 이장이 알까 두려워 밤을 틈타 이사한 모양이오. 아이고! 우리도 참으로 깊이 잤구려! 어찌 집을 헐 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단 말이오?” 행자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멍청아, 함부로 떠들지 마라. 저 나무에 붙어 있는 저것이 무슨 종이 쪽지인지 좀 보아라.” 팔계가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떼어 보니, 그 위에는 네 구절의 게송이 적혀 있었으니 이러하였다. 장가에 사는 이 속된 사람의 집이 아니니, 호법 가람이 점화해 지은 초막이로다. 그대에게 신묘한 약을 주어 눈의 통증을 고쳤으니, 마음을 다해 요괴를 항복받고 망설이지 말라. 행자가 말했다. “이 강포한 신들이, 용마를 바꾼 이래로 줄곧 점호하지 않았더니 도리어 또 와서 헛된 재주를 부리는구나!” 팔계가 말했다. “형님, 잘난 척하지 마시오. 그들이 어찌 형님의 점호에 복종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너는 아직 모르는구나. 이 호교가람과 육정육갑, 오방게제, 사직공조라는 신들은 보살의 법지를 받들어 은밀히 우리 스승님을 보호하는 자들이니라. 그때 이름을 올린 뒤로 다만 이내 동생이 생긴 탓에 그들을 쓸 일이 없었으므로 점호하지 않았을 뿐이지.”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들이 법지를 받들어 은밀히 스승님을 보호하니 몸을 드러내 나타날 수 없는 까닭에 신선의 장원을 점화한 것이옵니다. 형님, 그들을 탓하지 마옵소서. 어제도 그 덕분에 형님의 눈에 약을 발랐고, 또 그 덕분에 우리가 공양 한 끼를 얻어먹었으니 이 또한 마음을 다한 것이라 하겠사옵니다. 형님, 그들을 원망하지 마시고 우리가 어서 스승님을 구하러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의 말이 옳구나. 이곳에서 저 황풍령 동굴 어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너는 몸을 움직이지 말고 숲 속에서 말을 보고 짐을 지키며 있어라. 이 늙은 원숭이가 동굴로 들어가 스승님의 소재가 어떠한지 알아보고 나서, 그놈과 다시 싸우겠다.” 팔계가 말했다. “바로 그렇게 하옵소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실한 소식이나 알아보사옵소서. 만일 스승님이 돌아가셨다면 각자 갈 곳을 찾아 일을 도모하면 되고, 아직 살아 계시다면 우리가 온 힘을 다해야 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나는 가겠다!” 그가 몸을 한 번 솟구쳐 곧장 그 굴 문 어귀에 이르렀는데, 문은 아직 닫힌 채 잠들어 있었다. 행자는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요괴를 놀라게 하지도 않은 채, 결을 쥐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한 번 흔들어 변신하니 알록달록한 다리의 모기 한 마리가 되었는데, 참으로 자그마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어수선하게 떠도는 자그마한 몸에 날카로운 주둥이요, 윙윙거리는 가느다란 소리가 우레 같구나. 규방의 비단 장막 속으로 능히 잘도 드나드니, 한여름의 따뜻한 기운을 몹시 사랑하도다. 다만 연기로 쫓고 부채로 후려치는 것이 두렵고, 등불의 환한 빛을 유난히 아끼네. 가볍고 작으면서도 파고들기가 몹시 날래니, 요괴의 굴 속으로 날아들어가도다. 그런데 문을 지키고 있던 작은 요괴가 곯아떨어져 코를 골며 자고 있었으므로, 행자가 그 얼굴 위로 날아가 한 입 쏘았다. 그 작은 요괴는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서 말했다. “어머나! 어찌 이리 큰 모기냐! 한 입에 커다란 혹을 물고 일어났잖아!” 그리고 홀연히 눈을 뜨며 말했다. “날이 밝았구나.” 또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두 번째 문이 열렸다. 행자가 윙윙거리며 날아 들어가 보니, 그 늙은 요괴가 각 문초소에 삼가 조심하라고 분부하고, 한편으로는 병기를 손질하며 말하고 있었다. “어제 그 바람이 손행자를 불어 죽이지 못했을까 두렵도다. 그놈이 오늘은 반드시 다시 올 터이니, 오거든 기어이 그 목숨을 끊어 놓으리라.” 행자는 그 말을 듣고 또 그 청당을 지나쳐 곧장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문 하나가 몹시 단단히 닫혀 있어서, 행자가 문 틈을 따라 기어들어가 보니 원래는 커다란 빈 뜰이었고, 그쪽 정풍장 기둥에 삼장법사가 밧줄로 칭칭 동여매인 채 묶여 있었다. 그 스님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마음속으로 오직 오공과 오능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들이 다 어디 있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행자는 날개를 멈추고 그의 민머리 위에 내려앉아 “스승님” 하고 불렀다. 그 장로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말했다. “오공아, 내가 그리워 죽겠구나! 네가 어디서 나를 부르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저는 스승님 머리 위에 있사옵니다.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마시옵소서, 번뇌도 거두시옵소서. 저희가 기어이 요괴를 잡아야만 스승님의 목숨을 구해 낼 수 있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제자야, 언제나 요괴를 잡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을 잡아간 그 호랑이 요괴는 이미 팔계가 쳐 죽였사옵니다. 다만 늙은 요괴의 바람 기세가 맹렬할 뿐이옵니다. 헤아려 보건대 오늘 안으로 기어이 그놈을 잡을 것이오니, 마음을 놓으시고 울지 마옵소서. 저는 가겠나이다.”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윙윙거리며 앞쪽으로 날아가니, 그 늙은 요괴가 위쪽에 앉아 각 길목의 두목들을 점호하고 있었다. 또 굴 앞에서 한 작은 요괴가 영자기라는 깃발을 휘둘러 보이고는 청당으로 뛰어 올라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소인이 산을 순찰하러 막 문을 나서는데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중 하나가 숲 속에 앉아 있사옵니다. 제가 조금 빨리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그놈에게 잡힐 뻔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어제 그 털북숭이 얼굴의 중은 보이지 않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손행자가 보이지 않으니 필시 바람에 불려 죽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디 가서 구원병을 청하러 간 것이로다!” 뭇 요괴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만일 정말로 그를 불어 죽였다면 우리의 큰 행운이옵니다만, 혹 죽이지 못하여 그가 신병을 좀 청해 온다면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늙은 요괴가 말했다. “그놈이 무섭기나 하냐, 무슨 신병이 두렵단 말이냐! 내 바람의 기세를 능히 잡아 누를 자는 영길보살이 오는 것뿐이니, 그 나머지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되느니라!” 행자가 대들보 위에서 그 한마디를 듣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 몸을 빼어 날아 나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숲 속에 이르러 “동생아!” 하고 불렀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형님은 어디를 다녀오셨사옵니까? 방금 영자기를 든 요괴 하나가 있었는데 제가 쫓아버렸사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네 덕이다! 네 덕이로다! 이 늙은 원숭이가 모기로 변해 그 굴에 들어가 스승님을 살펴보니, 스승님이 정풍장 기둥에 묶인 채 울고 계시더라. 이 늙은 원숭이가 울지 말라고 분부하고, 또 대들보 위로 날아가 잠깐 듣고 있었느니라. 그 영자기를 든 자가 헐떡거리며 들어가 아뢰되, 다만 너에게 쫓겼을 뿐 나는 보지 못했다 하더라. 늙은 요괴가 이리저리 짐작하며 제멋대로 말하기를, 이 늙은 원숭이는 바람에 불려 죽었다 하고, 또 신병을 청하러 갔다 하더라. 그런데 그가 스스로 한 사람을 불어 놓았으니, 참으로 묘하다! 참으로 묘하구나!” 팔계가 말했다. “그가 불어 놓은 이가 누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그놈이 무슨 신병이 무섭냐, 그 누가 내 바람 기세를 능히 잡아 누르겠느냐고 하면서, 다만 영길보살이 오는 것뿐이라 하더라. 그러나 영길이 어디 사는지는 모르겠구나.” 바로 그렇게 의논하고 있는데 큰길 옆에서 늙은 영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가 어떤 모습인지 보니 이러하였다. 몸이 튼튼해 지팡이도 짚지 않고, 얼음 같은 수염과 눈 같은 귀밑머리가 덥수룩하네. 금빛 꽃이 눈부셔 뜻이 아득하고, 마른 뼈와 쇠한 힘줄은 도리어 억세도다. 등 굽히고 고개 숙인 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짙은 눈썹에 붉은 얼굴은 어린아이 같구나. 그 생김새를 사람들이 칭송하니, 마치 수성노인이 동천에서 나오는 듯하도다. 팔계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사형이여, 속담에 이르기를 산 아래 길을 알려거든 오고 가는 이에게 물으라 하였사옵니다. 형님이 앞으로 나가 한마디 물어보시면 어떠하옵니까?” 과연 그 대성은 쇠 몽둥이를 감추고 옷자락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가 말했다. “노인장, 인사드리옵니다.” 그 늙은이는 대답하는 듯 마는 듯 답례하며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온 중이오? 이 황량한 들판에서 무슨 일이오?” 행자가 말했다. “우리는 경전을 구하러 가는 중들이오. 어제 이곳에서 스승님을 잃었는데, 특별히 노인장께 한마디 여쭙고자 하오. 영길보살이 어디 사시옵니까?” 그 늙은이가 말했다. “영길은 정남쪽에 있소. 거기까지 아직 이천 리가 남았소. 거기 산 하나가 있는데 이름을 소수미산이라 하오. 산중에 도량이 있으니 보살이 경을 강론하는 선원이오. 그대들이 그의 경을 받으러 가는 길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의 경을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오. 내 그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소.” 그 늙은이가 손으로 남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염창 같은 좁은 길이 바로 그 길이오.” 그 말에 속아 손오공이 고개를 돌려 길을 보는 사이에, 그 영감은 맑은 바람으로 변해 조용히 사라졌는데, 다만 길가에 종이 쪽지 한 장이 떨어져 있었고 그 위에 네 구절의 게송이 적혀 있었으니 이러하였다. “제천대성께 올려 들려 드리노니, 이 늙은이는 바로 이장경이로다. 수미산에는 비룡장이 있으니, 영길이 당년에 부처의 병기를 받았느니라.” 행자가 그 쪽지를 집어 들고 몸을 돌려 길로 내려왔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우리 요즘 운수가 바닥났사옵니다. 이 이틀 동안 낮에 귀신을 보았사옵니다! 바람으로 변해 사라진 저 늙은이는 누구옵니까?” 행자가 그 쪽지를 팔계에게 건네주었고, 팔계가 읽고 나서 말했다. “이장경이 누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서방 태백금성의 이름이니라.” 팔계는 놀라 허공을 향해 절하며 말했다. “은인이시여! 은인이시여! 이 늙은 돼지가 만일 금성이 옥황상제께 아뢰어 윤허받은 덕을 입지 않았다면, 목숨이 무엇으로 변했을지도 모를 일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너도 은혜를 알 줄 아는구나. 그러나 나서지 말고 이 숲 깊은 곳에 숨어 행장과 말을 조심스레 지켜라. 이 늙은 원숭이가 수미산을 찾아 보살을 모셔 오마.” 팔계가 말했다. “알았사옵니다! 알았사옵니다! 형님은 다만 어서 앞으로 가시옵소서! 이 늙은 돼지는 거북의 법을 배웠사온데, 머리를 움츠릴 때면 우선 움츠리는 법이지옵니다.” 손오공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근두운을 타고 정남쪽을 향해 곧장 올라가니 과연 빠르고도 빨랐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삼천 리를 지나고, 허리를 한번 비트는 사이에 팔백 리가 넘는 길을 달렸다. 잠시 뒤에 높은 산 하나가 보이는데, 산허리쯤에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오르고 상서로운 기운이 자욱하였으며, 산골짜기에는 과연 선원 한 채가 있었다. 종과 경쇠 소리가 그윽하게 울려 퍼리고, 향 연기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대성이 곧장 문 앞에 이르니 목에 염주를 걸고 입으로 불경을 외는 도인 하나가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도인이여, 인사드리오.” 그 도인이 몸을 굽혀 답례하며 말했다. “어디서 오신 나리시오?” 행자가 말했다. “이곳이 영길보살이 경을 강론하시는 곳이오이까?” 도인이 말했다. “이곳이 바로 그러하옵니다. 무슨 말씀이 있으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번거롭겠소만 노인장께서 전해 주시기를 청하오. 나는 동쪽 큰 당나라 황제의 의동생이신 삼장법사의 제자로서, 제천대성 손오공 행자라 하오. 지금 일이 하나 있어서 보살을 뵙고자 하오.”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나리, 글자도 많고 말씀도 많아 나는 다 외울 수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당승의 제자 손오공이 왔다고만 말하시오.” 도인이 그 말대로 강당으로 올라가 전하니, 그 보살이 곧 가사를 입고 향을 돋우며 마중 나왔다. 이 대성이 걸음을 옮겨 문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니, 온 방이 비단으로 장식되고 온 집안이 위엄에 차 있었다. 뭇 제자들이 일제히 《법화경》을 외고, 늙은 반수는 금으로 부은 경쇠를 가볍게 두드렸다. 부처님 앞에 올린 공양은 모두 신선의 과일과 꽃이요, 안상에 차린 것은 모두 채소로 만든 음식이었다. 찬란한 보배 촛불은 가닥가닥 금빛 불꽃이 무지개를 쏘고, 그윽한 참된 향은 줄기줄기 옥빛 연기가 채색 안개를 날려 보냈다. 바로 그곳은 강론을 마치고 마음이 한가로워진 뒤에야 비로소 선정에 드는 곳이니, 흰 구름이 조각조각 소나무 가지를 감돌고, 지혜의 칼을 고요히 거두니 마두가 끊어지며, 반야바라의 훌륭한 모임이 높도다. 그 보살이 옷을 여미고 나와 맞이하니, 행자가 당에 올라 손님 자리에 앉았고, 보살은 차를 내오라고 명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차는 사양하겠나이다. 다만 내 스승님이 황풍산에서 난을 만났사옵니다. 특별히 보살께서 큰 법력을 베푸시어 요괴를 항복받고 스승님을 구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보살이 말했다. “나는 여래의 법령을 받들어 이곳에서 황풍괴를 감시하느니라. 여래께서 나에게 정풍단 한 알과 비룡보장 한 자루를 하사하셨도다. 당시 내가 그를 잡아 목숨을 살려 주고, 몸을 숨겨 산으로 돌아가 살생도 죄도 짓지 말라 방면하였거늘, 그가 오늘 그대의 스승을 해치려 하여 법령을 어겼으니 이는 나의 죄이로다.” 그 보살이 행자를 붙잡아 공양을 차려 함께 이야기하려 하였으나 행자가 간곡히 사양하므로, 보살은 곧 비룡장을 가지고 대성과 함께 구름을 타고 떠났다. 오래지 않아 황풍산에 이르렀다. 보살이 말했다. “대성이여, 이 요괴는 나를 조금 두려워하느니라. 나는 구름 속에 가만히 머물 터이니, 그대가 내려가 싸움을 걸어 그놈을 밖으로 꾀어내면 내가 법력을 베풀기 좋으리라.” 행자가 그 말대로 구름머리를 내려놓고는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쇠 몽둥이를 뽑아 들어 그 굴 문을 박살 내며 외쳤다. “요괴야, 내 스승님을 도로 내놓아라!”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들이 놀라 급히 안으로 전하였다. 그 요괴가 말했다. “이 망할 원숭이가 참으로 무례하구나! 선히 항복하지 않고 도리어 내 문을 부수다니! 이번에 나가면 신풍을 부려 기어이 불어 죽이고야 말리라!” 그는 전처럼 갑옷을 갖추고 손에 강철 삼지창을 쥐고 또 문 밖으로 나와, 행자를 보자 말도 없이 창을 들어 가슴을 향해 찔러 왔다. 대성이 몸을 옆으로 비켜 피하고는 몽둥이를 들어 맞받아쳤다. 몇 합이 되지 않아 그 요괴가 고개를 돌려 손 방위를 향해 입을 벌려 바람을 부르려 하는데, 그때 반공중에서 영길보살이 비룡보장을 내려 던지며 무슨 주문을 외었는지, 그것이 여덟 발톱의 금빛 용이 되어 두 앞발을 벌려 단번에 요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잡아 두세 번 내동댕이쳐 산바위 벼랑에 내리치니 본래 모습이 드러났는데, 바로 누런 털의 족제비였다. 행자가 달려들어 몽둥이를 들어 내리치려 하자 보살이 막으며 말했다. “대성이여, 그의 목숨을 상하게 말라. 나는 그를 데리고 여래를 뵈러 가야 하느니라.” 그리고 행자에게 말했다. “그는 본래 영산 기슭에서 도를 얻은 쥐인데, 유리 잔의 맑은 기름을 훔쳐 등불이 어두워지자 금강이 잡을까 두려워 달아났고, 이곳에 와서 정을 이루어 요괴 노릇을 하였느니라. 여래께서 그를 비추어 보고 죽을 죄는 아니라 하여 나에게 감시를 맡기셨거늘, 그가 살생하며 죄를 짓는 통에 영산으로 데려갔었도다. 이제 또 대성을 거스르고 당승을 해쳤으니, 내가 그를 데리고 여래를 뵙고 죄를 바로잡아야 이 공적으로 삼을 수 있느니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보살에게 사례하였다. 보살이 서쪽으로 돌아간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치겠다. 말하자면, 저팔계는 그 숲 속에서 한창 행자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산비탈 아래에서 “오능 동생아,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오너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멍청이는 그 소리가 행자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리고 급히 행장을 수습하여 숲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행자를 만나 말했다. “형님, 일을 어찌 하셨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영길보살을 모셔 와서 비룡장으로 요괴를 잡았는데, 원래 누런 털 족제비가 정을 이룬 것이었소. 보살이 그놈을 데리고 영산으로 가서 여래를 뵙고 온다오. 나와 너는 굴에 들어가 스승님을 구하자꾸나.” 그 멍청이는 그제야 환희에 넘쳐 기뻐하였다. 두 사람은 안으로 뛰어들어가 그 굴에 있던 교활한 토끼와 여우 요괴, 사향 노루와 뿔 달린 사슴 따위를 모조리 찾아내어, 갈고리 달린 쇠스랑과 쇠 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때려 죽였다. 그런 뒤 뒤뜰로 가 스승님께 절을 올리고 구해 냈다. 스승님이 문을 나서며 물었다. “너희 둘이 어떻게 요괴를 잡았으며, 무슨 수로 나를 구해 낸 것이냐?” 행자가 영길보살을 모셔 와 요괴를 항복받은 사정을 빠짐없이 아뢰니, 스승님은 고마움을 다 표할 길이 없었다. 그 형제들은 굴 속에 있던 채소류를 모아 차와 밥을 좀 차려 먹고 나서야 비로소 문을 나서 큰길을 찾아 서쪽으로 향해 갔다. 결국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2회 팔계대전류사하(八戒大戰流沙河) · 목차봉법수오정(木叉奉法收悟淨) 말하자면, 삼장법사와 제자 세 사람은 재난을 벗어나 앞으로 나아왔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팔백 리 황풍령을 지나갔는데, 서쪽으로 들어서니 훤히 트인 평지였다. 세월이 빨라 여름을 지내고 가을을 겪는 사이, 찬 매미가 시든 버드나무에서 울고 큰 불별이 서쪽으로 기우는 것도 보았다. 한창 길을 가는데 큰 물줄기 하나가 사나운 물결을 이루며 흙탕물이 넘실거리고 파도가 치솟고 있었다.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다급히 외쳤다. "제자들아, 저 앞의 물길이 넓은데 어찌 배 한 척 지나다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우리가 어디로 건너간단 말이냐?" 팔계가 보고 말했다. "과연 큰 물결이옵니다. 배가 없어서는 건널 길이 없사옵니다." 행자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손을 이마에 얹어 햇빛을 가리고 내려다보더니 놀라며 말했다. "스승님, 참으로 어렵사옵니다! 이 강은 이 늙은 원숭이가 가는 것으로 치자면 허리나 한번 비틀면 훌쩍 건너갈 수 있사옵니다. 그러나 스승님으로 치자면 천 번을 건너려 해도 어렵고 만 년을 가려 해도 어려운 길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내가 바라보니 아득하여 끝이 없구나. 얼마나 넓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곧장 건너면 팔백 리가량 되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은 어찌 그 거리를 아셨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아우한테 숨기지 않고 말하겠느니라. 이 늙은 원숭이의 두 눈은 대낮에도 천 리 길의 길흉을 보느니라. 방금 허공에서 살펴보니, 이 강은 위아래로 얼마나 먼지 알 수 없으나 건너는 너비만은 팔백 리는 되더라." 장로는 근심하며 한탄하다가 말머리를 돌렸는데, 물가에 석비 하나가 서 있었다. 세 사람이 다가가 살펴보니 전서체로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바로 유사하요, 비석 배에는 작은 해서체로 네 줄이 적혀 있었는데 이러하였다. "팔백 리 유사하의 경계요, 삼천 길 약수의 깊이라. 기러기 털조차 떠오르지 못하고, 갈대꽃은 바닥으로 가라앉으리라." 그때 물결이 철썩 하고 크게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물속에서 요정 하나가 솟아 나왔는데 몹시 흉악하고 추악하였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머리에는 붉은 불꽃 같은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고, 두 눈은 등불처럼 번쩍이더라. 검지도 푸르지도 않은 쪽빛 얼굴이요, 천둥 같고 북 같은 목소리는 늙은 용의 울음이로다. 몸에는 거위털 빛 누런 망토를 걸쳤고, 허리에는 두 겹 꼬아 감은 흰 등나무를 둘렀더라. 목 아래에는 해골 아홉 개를 매달았고, 손에 쥔 보배 지팡이는 위풍이 당당하였다. 그 요물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물가로 달려 올라와 곧장 삼장법사를 낚아채려 하였다. 행자가 황급히 스승님을 안아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벗어났다. 팔계는 행장을 내려놓고 쇠스랑을 뽑아 들고 요정을 향해 내리쳤으나, 그 요물은 보배 지팡이로 막아 냈다. 두 사람은 유사하 강변에서 저마다 영웅을 뽐내었다. 이 한바탕의 멋진 겨룸이여. 아홉 갈래 쇠스랑과 요항장 지팡이가, 두 사람이 강변에서 맞붙었구나. 이는 총독 대천봉이요, 저는 귀양 온 권렴대장이로다. 옛적에 영소전에서 만난 적이 있거늘, 오늘은 사나운 힘을 겨루는구나. 이쪽은 용의 발톱을 더듬듯 쇠스랑을 뻗고, 저쪽은 코끼리 어금니를 갈듯 지팡이로 받쳐 막네. 크게 사평 자세로 벌리고는, 바람을 거슬러 창을 들이대듯 파고든다. 이놈은 머리도 얼굴도 가리지 않고 긁어 대고, 저놈은 빈틈도 없이 내리친다. 하나는 유사하 경계를 차지하고 사람을 먹는 요정이요, 하나는 가르침을 받들어 수행하는 장수로다. 두 사람은 이리저리 오가며 스무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그 대성은 삼장법사를 보호하며 말을 끌고 행장을 지키고 서 있다가, 팔계가 그 요물과 싸우는 것을 보자 이를 갈고 주먹을 부르쥐었다. 참지 못하고 달려가 그놈을 치려 몽둥이를 뽑아 들며 말했다. "스승님, 앉아 계시옵소서, 겁내지 마시옵소서. 이 늙은 원숭이가 가서 그놈과 좀 놀아 보고 오겠나이다." 스승님이 만류하였으나 붙잡지 못했다. 그는 입을 쑥 불어 휘파람을 불더니 앞으로 뛰어갔다. 그 요물과 팔계는 한창 신나게 싸우고 있어 떼어 놓기 어려웠는데, 행자가 철봉을 휘둘러 그 요물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요물은 황급히 몸을 돌려 유사하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팔계는 성이 나서 뛰며 말했다. "형님! 누가 형님을 오라 했단 말이옵니까! 그 요물의 손이 점점 느려져 내 쇠스랑을 막기 어려웠사옵니다. 서너 합만 더 했으면 그놈을 사로잡았을 것이옵니다! 그놈이 형님의 흉험함을 보고 싸움에 져서 달아났사온데, 이를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야, 속이지 않고 말하겠느니라. 황풍괴를 항복받고 산에서 내려온 뒤로 한 달 남짓 몽둥이를 휘둘러 본 적이 없느니라. 네가 그놈과 신나게 싸우는 것을 보니 발바닥이 근질거려 견딜 수 없어, 그만 뛰어올라와 한바탕 놀아 본 것뿐이니라. 그런데 그 요물이 장난을 알아보지 못하고 달아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느냐."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다가 돌아와 삼장법사를 뵈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요괴를 잡았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 요괴는 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패하여 물속으로 파고들어 갔느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들아, 이 요물은 오래도록 이곳에 살았으니 물의 깊고 얕음을 알 것이로되, 이처럼 끝없는 약수에 배와 노까지 없다면 물의 성질을 아는 자를 얻어 인도하게 해야 하겠구나." 행자가 말했다. "바로 그렇게 말해야 하느니라. 속담에 붉은 것을 가까이하면 붉어지고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 하였느니라. 그 요물이 여기 있으니 물의 성질을 틀림없이 아느니라. 우리가 이제 그놈을 사로잡거든 우선 때려 죽이지 말고, 다만 스승님을 모시고 강을 건너게 한 뒤 다시 방도를 의논하자꾸나." 팔계가 말했다. "형님, 망설이지 마시옵소서. 형님이 먼저 가서 그놈을 잡으시옵소서. 이 늙은 돼지가 스승님을 지키겠사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야, 이 일만은 내가 감히 자랑할 수 없느니라. 물속 일은 이 늙은 원숭이가 그리 능숙하지 못하니라. 빈몸으로 걷는다 해도 도술의 결을 쥐고 물을 피하는 주문을 외워야만 걸을 수 있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물고기나 새우나 게나 자라 따위로 변신해야만 내가 갈 수 있느니라. 재주를 겨루는 것으로 치자면 높은 산이건 구름 속이건, 무슨 기이한 일이라도 이 늙은 원숭이는 다 하느니라. 다만 물속 장사는 좀 버겁구나." 팔계가 말했다. "이 늙은 돼지는 옛적에 천하를 총독하며 팔만 수군을 거느렸사온즉 도리어 물의 성질을 좀 알게 되었사옵니다. 다만 그 물속에 처자식이나 늙은이 어린이 같은 족속이 있어 칠대 팔대의 친척이 모조리 달려들면 내가 당해 내지 못하여 자칫 붙잡혀 갈까 두렵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네가 물속으로 들어가 그놈과 싸우거든 오래 붙어 있지 말고, 지는 것은 허하되 이기는 것은 허락하지 말며, 그놈을 밖으로 끌어내거라. 그러면 이 늙은 원숭이가 손을 보태 주겠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내가 가겠나이다." 가겠다는 소리를 남기고는 푸른 비단 장삼을 벗어 던지고 신발도 벗어 놓은 뒤, 두 손으로 쇠스랑을 휘둘러 물길을 헤치며 그 옛날의 낡은 재주를 부렸다. 물결을 뛰어넘고 파도를 뒤집으며 쑥 뛰어들어 곧장 물 밑바닥에 이르러 앞으로 곧장 나아갔다. 말하자면, 그 요물은 싸움에 져서 돌아와 이제야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또 누군가 물을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홀연히 몸을 일으켜 살펴보니 팔계가 쇠스랑을 들고 물을 밀며 오고 있었다. 그 요물은 지팡이를 들어 정면에서 크게 외쳤다. "이 중놈아, 어디로 달아나느냐! 정신 차리고 내 지팡이를 받아라!" 팔계가 쇠스랑으로 막으며 말했다. "너는 무슨 요정이기에 감히 이곳에서 길을 막느냐?" 그 요물이 말했다. "너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구나. 나는 요마귀괴가 아니요, 성씨도 없고 이름도 없는 놈도 아니니라." 팔계가 말했다. "네가 사악한 요괴나 귀신이 아니라면 어찌 이곳에서 생명을 해치느냐? 네 성명이 무엇인지 실토하거라. 그러면 내가 네 목숨을 살려 주겠다." 그 요물이 말했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기운이 장하여, 건곤 만 리를 두루 유랑하였노라. 영웅으로 천하에 위명을 떨치고, 호걸로 인가의 본보기가 되었노라. 만국 구주를 마음대로 다니고, 오호 사해가 내 부딪침을 따랐노라. 도를 배우려 하늘 가에 떠돌고, 스승을 찾으려 넓은 땅을 노닐었노라. 의발을 삼가 몸에 지니고, 날마다 마음을 놓지 않았노라. 땅을 따라 구름처럼 노닐기를 수십 차례, 곳곳을 한가로이 걷기를 백여 차례. 마침내 참된 사람을 만나 큰 도의 금빛 광명을 열었노라. 먼저 영아와 사녀를 거두고, 뒤에 목모와 금공을 놓았노라. 명당 신수는 화지로 들고, 중루 간화는 심장으로 갔노라. 삼천의 공이 차니 천안을 배알하고, 뜻을 모아 명화향에 조례하였노라. 옥황상제께서 벼슬을 더하시어 권렴대장에 봉하셨노라. 남천문 안에서 내가 으뜸이요, 영소전 앞에서 내가 윗자리였노라. 허리에는 호랑이 머리 패를 걸쳤고, 손에는 요항장 지팡이를 쥐었노라. 머리의 금투구는 햇빛에 번쩍이고, 걸친 갑옷은 노을처럼 빛났노라. 가마를 호위할 때 내가 앞에 섰고, 조정에 드나들 때 내가 윗자리였노라. 다만 왕모님이 반도를 내리시어 요지에서 잔치를 열고 장수들을 초대하셨을 때, 실수로 옥유리를 깨뜨리는 바람에 천신들이 혼비백산하였노라. 옥황께서 곧 성을 내시어, 조정을 맡은 좌보상을 명하셨노라. 관을 벗기고 갑옷을 벗기고 관직을 거두어, 이 몸을 사형장으로 밀어 내라 하셨노라. 맨발의 대천선이 은혜를 베풀어, 반열을 넘어 나를 놓아 달라 아뢰었노라. 죽음을 면하고 형벌은 받지 않았으나, 유사하 동쪽 언덕으로 귀양 왔노라. 배부르면 이 산속에 누워 자고, 배고프면 파도를 뒤집어 먹을 찾았노라. 나무꾼은 나를 만나면 목숨이 없고, 고기잡이 영감은 나를 보면 몸이 죽었노라. 오가며 사람을 많이 먹고, 거듭거듭 짐승을 해쳐 병을 퍼뜨렸노라. 네가 감히 내 문 앞으로 왔으니, 오늘 내 뱃속이 바라는 바가 있노라. 거칠어 먹을 만하지 않다 말하지 말라, 잡아다가 다져 젓갈을 담가 먹으리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욕하며 말했다. "이 무례한 놈아, 눈썰미라고는 조금도 없구나! 이 늙은 돼지는 아직 쥐어짜면 물거품이 나올 판인데, 네가 어찌 감히 나를 거칠다 하고 다져서 젓갈을 담그겠다 하느냐! 보아하니 너는 나를 묵은 돼지고기 덩어리로 여기는 모양이로구나. 버릇없이 굴지 말라! 네 조상의 이 쇠스랑을 받아라!" 그 요물은 쇠스랑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봉점두라 하는 재주를 부려 고개를 숙여 피했다. 둘은 물속에서 싸우며 수면으로 올라와 저마다 파도를 밟고 물결을 탔다. 이 겨룸은 지난번과 같지 않았다. 보아라, 저 모습이. 권렴대장이요 천봉 원수로다, 저마다 신통을 드러내니 사랑스럽구나. 저놈은 보배 지팡이를 머리 위로 휘두르고, 이놈은 아홉 갈래 쇠스랑을 빠르게 휘두르는구나. 물결을 넘으니 산천이 진동하고, 파도를 미니 세상이 캄캄해지는구나. 흉악하기는 태성이 깃발을 받는 듯, 사납기는 상문이 보개를 드는 듯하더라. 이놈은 붉은 마음 늠름하여 삼장법사를 보호하고, 저놈은 죄가 넘쳐 물괴가 되었구나. 쇠스랑 한 번 긁으면 아홉 줄 자국 남고, 지팡이에 맞을 때는 혼백이 흩어지는구나. 힘을 다해 맞서고 마음을 다해 겨루려 하더라. 따져 보면 오직 경을 구하는 사람 때문이니, 성난 기운이 하늘을 찔러 참지 못하는구나. 그 통에 잉어와 숭어와 붕어가 비늘을 잃고 거북과 자라가 등껍질을 다쳤구나. 붉은 새우와 자주빛 게는 목숨을 잃고, 수부의 여러 신이 위를 향해 절하더라. 물결이 뒤집히고 파도가 구르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 해와 달이 빛을 잃고 천지가 어두워졌구나. 두 사람은 꼬박 두 시진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는 구리 대야가 쇠비를 만난 것이요, 옥 경쇠가 금종을 마주한 격이었다. 말하자면, 그 대성은 삼장법사를 곁에서 보호하며 좌우에 서서, 애가 타게 두 사람이 물 위에서 다투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으니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때 팔계가 쇠스랑을 헛되이 휘둘러 거짓으로 지는 체하고, 머리를 돌려 동쪽 언덕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요물이 뒤를 따라 쫓아와 물가에 다다랐을 때, 행자는 더 참지 못하고 스승님을 남겨 둔 채 철봉을 뽑아 강변으로 뛰어가 요정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요물은 감히 맞서지 못하고 휙 소리를 내며 또다시 강 속으로 파고들었다. 팔계가 떠들며 말했다. "이 필마온 같은 놈, 참으로 급한 원숭이로구나! 좀 더 천천히 하시지 그랬소. 내가 그놈을 꾀어 높은 곳까지 오게 한 뒤에 형님이 강변을 막아 그놈이 되돌아가지 못하게 하면, 그놈을 사로잡지 않았겠소이까! 그놈이 이렇게 들어가 버렸으니 어느 때나 다시 나오려 하겠소이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아, 떠들지 말라! 떠들지 말라! 우선 스승님께 돌아가 뵙자꾸나." 팔계는 행자와 함께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삼장법사를 뵈었다. 삼장법사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제자들아, 수고가 많았구나." 팔계가 말했다. "수고는 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요정을 항복받아 스승님을 모시고 강을 건너게 해 드리는 것만이 온전한 계책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너희가 방금 요정과 싸운 형편이 어떠하더냐?" 팔계가 말했다. "그 요정의 재주는 이 늙은 돼지와 대적할 만한 상대였사옵니다. 한창 싸우는 중에 거짓으로 패하는 재주를 부리니 언덕 위까지 쫓아왔사옵니다. 그런데 사형이 몽둥이를 치켜든 것을 보고 그놈은 달아나 버렸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마음을 놓으시옵소서, 조급해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이제 날도 저물었사온즉 우선 이 벼랑 아래에 앉아 계시옵소서. 이 늙은 원숭이가 가서 공양을 좀 빌려 오겠나이다. 스승님께서 잡수시고 주무신 뒤에 내일 다시 방도를 찾으면 되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어서 갔다 어서 오시옵소서." 행자가 급히 구름을 타고 뛰어올라 정북쪽 아래 인가로 가 바리때 하나에 소찬 공양을 받아 와 스승님께 올렸다. 스승님은 그가 몹시 빨리 돌아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오공아, 우리가 공양을 빌려 온 그 집 사람에게 강을 건널 계책을 물어보는 것이, 이 요물과 다투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집은 몹시 멀리 있느니라! 거리가 오칠천 리나 되는 길이니라. 그 사람들이 어찌 물의 성질을 알겠느냐? 그들에게 물어 보아 무슨 이득이 있겠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또 거짓말을 하시는구려. 오칠천 리 길을 어찌 그리 빨리 갔다 오셨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 알겠느냐, 이 늙은 원숭이의 근두운은 한 번 뛰면 십만 팔천 리를 가느니라. 이처럼 오칠천 리쯤 되는 길은 머리나 두 번 끄덕이고 허리나 한 번 굽히면 곧 왕복이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리 쉽다면 스승님을 업고서 그저 머리나 끄덕이고 허리나 굽혀 뛰어넘어가면 그만이옵니다. 어찌 애써 그놈과 싸우려만 하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너는 구름을 탈 줄 모르느냐? 네가 스승님을 업고 건너가면 되지 않느냐?"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은 뼈와 살이 범인의 태라 태산처럼 무거우옵니다. 내가 구름을 탄다 한들 어찌 그 무게를 감당하겠사옵니까? 반드시 형님의 근두운이라야 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내 근두운도 좋기는 하나 구름을 타는 것일 뿐이니, 다만 가는 거리가 좀 더 멀 뿐이니라. 네가 업지 못한다면 내가 어찌 업고 가겠느냐? 예로부터 이르기를 태산을 보내는 것은 겨자씨처럼 가볍고, 범부를 데려가는 것은 속세에서 벗기 어렵다 하였느니라. 저 무도한 마귀와 독한 요물에게 섭법을 쓰고 바람을 일으켜 끌어당기는 재주를 쓴다면, 질질 끌며 땅 위로만 갈 뿐 공중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느니라. 그러한 법이라면 이 늙은 원숭이도 쓸 줄 알고 부릴 줄 아느니라. 또 그 은신법이며 축지법도 이 늙은 원숭이는 낱낱이 다 아느니라. 다만 스승님께서는 이역의 나라를 두루 겪어야 하시기에 고해를 초월할 수 없어 한 걸음도 옮기기 어려운 것이니라. 나와 너는 다만 곁에서 모시는 이가 되어 스승님의 몸과 목숨을 지킬 뿐이니라. 그 괴로움을 대신할 수도 없고, 경을 가져올 수도 없느니라. 설령 능력이 있어 먼저 가 부처님을 뵌다 한들, 그 부처님께서도 기꺼이 경을 우리에게 주시지는 않으리라. 이를 일러 쉽게 얻으려 하면 도리어 하찮게 본다 하느니라." 그 멍청이는 그 말을 듣고 예예 하고 받들어 들었다. 마침내 나물 없는 소식 공양을 좀 먹고, 사부와 제자들은 유사하 동쪽 벼랑 아래에서 묵었다. 이튿날 아침,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오늘은 어찌 처리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별다른 방도가 있느니라? 도로 팔계가 물속으로 내려가야 하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은 깨끗하게 빠져나가려 하시며 나만 물속으로 들여보내시는구려."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이번에는 내가 다시 급하게 굴지 않겠느니라. 다만 네가 그놈을 위로 끌어올리게 하고, 내가 강언덕을 막아 그놈이 돌아가지 못하게 하여 기어이 그놈을 사로잡겠느니라." 훌륭한 팔계로다. 얼굴을 쓱쓱 문지르고 정신을 가다듬어 쇠스랑을 쥐고 강언덕으로 가서 물길을 헤치며 또 그 소굴 아래로 내려갔다. 그 요물은 막 잠에서 깨어났는데 물을 헤치는 소리가 들리자 급히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팔계가 쇠스랑을 들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뛰어나와 길을 막으며 호통쳤다. "천천히 오너라! 천천히 오너라! 내 지팡이를 받아라!" 팔계가 쇠스랑을 들어 막으며 말했다. "너는 무슨 상여 지팡이기에 네 조상에게 지팡이나 받으라 하느냐!" 그 요물이 말했다. "이놈아, 네가 참으로 모르는구나! 내 이 보배 지팡이는 본래 명성이 크니, 달 속 사라나무에서 나온 것이니라. 오강이 가지 하나를 찍어 내고, 노반이 공을 들여 만들었느니라. 속에는 금 심지 한 줄기가 박히고, 겉에는 구슬실이 만 갈래 감겨 있느니라. 이름하여 보배 지팡이라, 요정을 항복받기 잘하고 영소전을 길이 진압하느니라. 대장군 벼슬을 받은 까닭에 옥황께서 내게 지니라 하사하셨느니라. 길게도 짧게도 내 마음대로요, 가늘게도 굵게도 내 뜻에 달렸느니라. 가마를 호위하여 반도 잔치에 참석하였고, 조정을 따라 상계에 머물렀느니라. 전각을 지킬 적에 여러 성인이 찾아왔고, 발을 걷을 적에 여러 신선이 절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신령한 성질을 길러 낸 신병이니, 인간 세상의 범용한 무기가 아니니라. 천문에서 쫓겨난 뒤로는 바다 밖을 마음대로 노닐었느니라. 감히 뻔뻔하게 자랑하는 것이 아니니, 천하의 창과 칼이 겨룰 수 없느니라. 너의 그 녹슨 못 달린 쇠스랑을 보아라, 밭이나 갈고 나물이나 캐는 데나 어울리는구나!"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이 매 맞아 마땅한 놈아! 무슨 나물 캐느니 하는 소리는 접어 두어라. 한 번쯤 스치기만 해도 고약 붙일 곳 없이 아홉 개 구멍에서 한꺼번에 피를 흘리게 해 주마! 설령 죽지 않는다 한들 늙어 가는 파상풍쟁이가 될 뿐이니라!" 그 요물은 자세를 풀고 물 밑에서 팔계와 함께 여전히 수면으로 싸우며 올라왔다. 이번 겨룸은 지난번보다 과연 더 달랐다. 보아라, 저 모습이. 보배 지팡이를 휘두르고 쇠스랑을 내리치니, 말이 통하지 않아 권속이 아니로구나. 목모가 도규를 극하는 바람에 양편이 부딪쳐 싸웠느니라. 승부도 되풀이함도 없이 파도를 뒤집고 물결을 휘저으며 화목하지 못하는구나. 이놈의 성난 기운을 어찌 참아 담겠느냐? 저놈의 상한 마음을 어찌 욕됨을 견디게 하겠느냐. 쇠스랑이 날아오면 지팡이로 막으며 영웅을 뽐내고, 물은 끓고 모래는 흘러 몹시 사나워지는구나. 기운이 늠름하고 부산하게 움직이니, 삼장법사가 서역으로 가는 까닭이 크도다. 쇠스랑은 흉악하고 보배 지팡이는 능숙하기 그지없구나. 이놈은 잡아당겨 언덕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저놈은 움켜잡아 물속에 처박으려 하더라. 소리는 벼락처럼 울려 물고기와 용을 놀라게 하고, 구름은 어두워지고 하늘은 캄캄해져 귀신조차 굴복하는구나. 이 한바탕은 오락가락 서른 합을 싸워도 강약이 드러나지 않았다. 팔계가 또 거짓으로 지는 계책을 써서 쇠스랑을 끌고 달아났다. 그 요물이 또 뒤를 따라 파도를 안고 물결을 움켜쥐어 벼랑까지 이르렀다. 팔계가 욕하며 말했다. "이 무도한 요괴 같은 놈! 올라오너라! 이 높은 곳은 발이 땅에 닿아 때리기 알맞으니라!" 그 요물이 욕하며 말했다. "이놈아, 네가 나를 위로 꾀어 올려놓고는 또 그 조수를 부르려 하는구나. 네가 내려오너라, 물속에서 겨루자." 알고 보니 그 요물은 영리해져서, 다시는 물가로 올라오려 하지 않고 강언덕에서 팔계와 다투었다. 말하자면, 행자는 그놈이 물가로 올라오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이 타고 성미가 폭발하여 당장이라도 잡아 오고 싶었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그저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그놈에게 굶주린 매가 먹이를 쪼는 법을 보여 주겠나이다." 근두운을 타고 허공으로 뛰어올라 휙 내려앉아 그 요물을 움켜잡으려 하였다. 그 요물은 팔계와 떠들며 다투고 있었는데 홀연히 바람 소리가 들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행자가 구름에서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는 지팡이를 거두고는 머리부터 물속으로 곤두박질쳐 자취를 감추고 아득히 사라졌다. 행자가 물가에 서서 팔계에게 말했다. "아우야, 이 요물도 요령이 생겨 미끄러워졌구나. 다시는 물가로 올라오려 하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으냐?" 팔계가 말했다. "어렵소! 어렵소! 어렵소! 그놈을 이기지 못하겠소! 젖먹이의 힘까지 다 쓴다 한들 겨우 손을 비길 뿐이오." 행자가 말했다. "우선 스승님께 가 뵙자꾸나." 두 사람은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삼장법사를 뵙고 잡기 어렵다는 사정을 아뢰었다. 그 장로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말했다. "이토록 어렵고 험하니 어찌해야 건널 수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이 요물은 깊이 물 밑에 숨었으니 참으로 다루기 어렵사옵니다. 팔계야, 너는 다만 이곳에서 스승님을 보필하고, 다시는 그놈과 싸우지 말거라. 이 늙은 원숭이가 남해에 한번 다녀오겠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남해에 가서 무슨 일을 하시려 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이 경을 구하는 일은 본디 관음보살께서 맡으신 것이요, 우리를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도 관음보살이시니라. 오늘 유사하에서 길이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 그분을 모셔 오지 않고서 어찌 처리하겠느냐? 내가 가서 그분을 청해 오는 것이, 이 요정과 싸우는 것보다 낫지 않으냐?" 팔계가 말했다. "옳소, 옳소. 사형, 가시거든 부디 저를 대신하여 한마디 전해 주시옵소서. 지난날 가르침을 많이 받았사옵니다 하고."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보살을 청하러 가는 것이라면 조금도 망설일 것 없이 어서 갔다 오너라." 행자가 곧 근두운을 타고 남해로 올라갔다. 아아!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보타산 경계가 바라보였다. 잠시 뒤 근두운에서 내려 자죽림 밖에 이르렀는데, 이십사로 제천이 나와 맞으며 말하는 것이 보였다. "대성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 스승님께서 난을 만났사옵니다. 특별히 보살님을 뵈려 왔느니라." 제천이 말했다. "앉아 계시옵소서, 아뢰고 오겠사옵니다." 그날 당번을 맡은 제천이 곧 조음동 입구로 가서 아뢰었다. "손오공이 일이 있어 알현하러 왔나이다." 보살께서는 마침 구슬 받든 용녀와 보련지 가에서 난간에 기대어 꽃을 구경하고 계셨는데, 그 아룀을 들으시고 곧 운암을 돌아 문을 열고 불러들이라 하셨다. 대성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귀의하여 참배하였고, 보살께서 물으셨다. "너는 어찌하여 삼장법사를 모시지 않고, 무슨 일로 또 나를 보러 왔느냐?" 행자가 아뢰었다. "보살님, 제 스승님께서는 지난번 고노장에서 제자 하나를 더 거두었사온데 이름을 저팔계라 하옵니다. 보살님께서 또 법명을 내리시어 오능이라 하셨사옵니다. 황풍령을 지나 이제 팔백 리 유사하에 이르렀사온데, 약수 삼천이라 스승님께서는 건너시기 어렵사옵니다. 강 속에 또 요괴 하나가 있어 무예가 고강하옵니다. 오능이가 물 위에서 세 차례나 크게 싸워 주었사오나 다만 이기지 못하여 그놈에게 가로막혀 강을 건널 수 없사옵니다. 이에 특별히 보살님께 아뢰오니 굽어 살피시어 자비를 베푸시어, 스승님을 한번 건네 주시옵소서."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이 원숭아, 또 스스로 잘난 체하며, 삼장법사를 모신다는 말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저희는 다만 그놈을 잡아 스승님을 모시고 강을 건너게 하려 하였사옵니다. 물속 일은 제가 정밀하게 부릴 수 없사옵고, 다만 오능이가 그 소굴을 찾아가 말을 걸었사온데, 아마도 경을 구하는 일을 말하지 않은 모양이옵니다."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그 유사하의 요괴는 바로 권렴대장이 범으로 내려온 자니라. 그도 내가 권화한 선신이라, 경을 구하는 무리를 보호하라 일렀느니라. 네가 만일 동토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라 말한다면, 그놈은 결코 너와 다투지 않고 단연코 귀순하리라." 행자가 말했다. "그 요물은 이제 싸움을 겁내어 물가로 올라오려 하지 않고, 다만 물속에 자취를 감추고 있사옵니다. 어찌하면 그놈을 귀순시킬 수 있사옵니까? 제 스승님께서는 어찌 약수를 건너시겠나이까?" 보살께서 곧 혜안을 불러 소매 속에서 붉은 호리병 하나를 꺼내며 분부하셨다. "너는 이 호리병을 가지고 손오공과 함께 유사하 물 위로 가서 그저 오정이라 부르면 그놈이 나올 것이니라. 먼저 그놈을 인도하여 삼장법사께 귀의하게 한 뒤, 그놈의 아홉 해골을 한곳에 꿰어 구궁을 따라 벌려 놓고 이 호리병을 가운데 놓으면 곧 법선 한 척이 되어 삼장법사를 유사하 경계를 건너게 하리라." 혜안은 그 말씀을 듣고 스승의 명을 삼가 받들어, 대성과 함께 호리병을 받들고 조음동을 나서며 법지를 받들어 자죽림에 작별을 고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오행이 어울려 천진에 합하니, 예전의 옛 주인을 알아보는구나. 자신을 단련하여 기초를 세움이 묘한 쓰임이 되고, 사정과 바름을 분별하여 근원을 보는구나. 금이 성질로 돌아와 도로 같은 무리가 되고, 나무가 정을 구하여 함께 도로 빠져드느니라. 두 흙이 공을 온전히 이루어 적막해지고, 수화를 조화시켜 티끌 하나 남지 않느니라. 두 사람은 오래지 않아 구름을 내려 유사하 강변에 당도했다. 저팔계는 그가 목차행자임을 알아보고 스승님을 모시고 앞으로 나아가 맞이하였다. 그 목차는 삼장법사와 예를 마친 뒤 또 팔계와 만났다. 팔계가 말했다. "지난번에 존자의 지시를 입어 보살님을 뵈올 수 있었사옵니다. 이 늙은 돼지는 과연 법교를 받들어 기쁘게 사문에 절을 올렸사옵니다. 그동안 길에서 바삐 달리느라 인사를 올릴 겨를이 없었사오니, 용서하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우선 오래간만의 회포는 풀지 말고, 우리가 그놈을 불러 보러 가자꾸나." 삼장법사가 말했다. "누구를 부른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보살님을 뵙고 지난일을 낱낱이 아뢰었사옵니다. 보살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유사하의 요괴는 권렴대장이 범으로 내려온 자인데, 하늘에서 죄를 지어 이 강에 떨어져 본모습을 잊고 요괴가 되었다 하셨사옵니다. 그놈은 일찍이 보살님의 권화를 받아 스승님을 따라 서천으로 가기를 원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을 구하는 일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토록 애써 다투었사옵니다. 보살님께서 이제 목차를 보내시어 이 호리병을 주시며, 이놈과 법선을 만들어 스승님을 건네 주라 하셨사옵니다."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거듭 절을 올리며 목차에게 예를 갖추어 말했다. "부디 존자께서 속히 한번 다녀와 주시옵소서." 그 목차가 호리병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반은 구름 반은 안개를 타고 곧장 유사하 물 위에 이르러,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오정아! 오정아! 경을 구하는 사람이 여기 온 지 오래거늘, 네가 어찌 아직 귀순하지 않느냐!" 말하자면, 그 요물은 원숭이 왕을 두려워하여 물 밑으로 돌아가 소굴에서 쉬고 있었는데, 다만 제 법명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관음보살님이심을 알아차렸다. 또 경을 구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는 도끼와 참형도 두렵지 않아 급히 파도를 뒤집으며 머리를 내밀었고, 또 그가 목차행자임을 알아보았다. 보아라, 그가 방긋 웃으며 앞으로 나아가 예를 올리며 말하는구나. "존자께서 오시는 줄 모르고 맞이하지 못했사옵니다. 보살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옵니까?" 목차가 말했다. "내 스승님께서는 오시지 않으셨고, 나를 먼저 보내어 일찍이 삼장법사를 따라 제자가 되라 분부하셨느니라. 네 목에 걸린 해골과 이 호리병을 구궁을 따라 한 척의 법선으로 엮어, 그분을 이 약수 건너편으로 모시라 하셨느니라." 오정이 말했다. "경을 구하는 사람은 어디 계시옵니까?" 목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동쪽 언덕에 앉아 계신 분이 아니냐?" 오정이 팔계를 보고 말했다. "저놈은 어디서 온 무도한 물건인지, 나와 이틀이나 줄곧 싸웠사온데, 어느 때인들 경을 구한다는 말 한마디를 한 적이 있었사옵니까?" 또 행자를 보고 말했다. "이 주인장은 그놈의 조수로서 몹시 사나옵니다. 나는 가지 않겠사옵니다." 목차가 말했다. "저이는 저팔계요, 이이는 손행자이니, 모두 삼장법사의 제자요 모두 보살님의 권화를 받은 자니라. 그들을 무엇이 두렵겠느냐? 우선 나와 함께 삼장법사를 뵈러 가자꾸나." 그제야 오정은 보배 지팡이를 거두고 누런 비단 장삼을 바르게 여미고는 물가로 뛰어 올라와 삼장법사 앞에 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스승님, 제자에게는 눈은 있어도 눈동자가 없사옵니다. 스승님의 존용을 알아보지 못하고 크게 충돌하였사오니,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팔계가 말했다. "이 겁쟁이 같은 놈, 어찌하여 일찍 귀의하지 않고 다만 나와 싸우려만 하였느냐! 그게 무슨 소리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야, 그를 탓하지 말게. 도리어 우리가 경을 구하는 일과 성명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니라." 장로가 말했다. "네가 참으로 정성스럽게 내 가르침에 귀의하겠느냐?" 오정이 말했다. "제자는 지난번에 보살님의 교화를 입어, 강을 가리켜 성을 삼으시고 법명을 지어 주시어 사오정이라 불렀사옵니다. 어찌 스승님을 따르지 않을 리가 있사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고 부르며 "오공아, 계도를 가져와 그의 머리를 깎아 주어라." 대성이 그 말대로 곧 계도를 가져다 그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또 와서 삼장법사에게 절을 올리고, 행자와 팔계에게 절을 하여 대소를 나누었다. 삼장법사는 그가 예를 갖추는 것이 중의 가풍과 같음을 보고 그에게 또 사화상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목차가 말했다. "이미 가르침을 받들었으니 번거로운 인사는 필요 없느니라. 어서 법선을 만들어 보자꾸나." 그 오정은 감히 게을리하지 못하고 곧 목에 걸린 해골을 내려놓아 노끈으로 구궁을 따라 엮고, 보살님의 호리병을 가운데 놓은 뒤 스승님께 내려오시기를 청했다. 그 장로가 마침내 법선에 올라 앉았는데, 과연 가벼운 배처럼 안온하였다. 왼쪽에는 팔계가 부축하고, 오른쪽에는 오정이 받쳐 들었으며, 손행자는 뒤에서 용마를 끌고 반은 구름 반은 안개를 타고 따르고, 머리 위에는 목차가 호위하였으니, 스승님은 훌쩍 떠서 유사하 경계를 안온하게 건너고 물결은 잔잔하고 바람은 평온하게 약수를 지나셨다. 참으로 나는 듯 화살 같아서 오래지 않아 몸은 저 언덕에 올라 큰 물결을 벗어났다. 또 진흙을 끌고 물을 묻히는 일도 없어 다행히 발은 마르고 손은 보송보송하였으며, 사부와 제자들이 땅을 굳게 밟았다. 그 목차는 상서로운 구름을 누르고 호리병을 거두었는데, 그 해골이 한순간에 아홉 갈래 음풍으로 흩어져 조용히 사라졌다. 삼장법사는 목차에게 절을 올려 감사하고 보살님께도 머리를 조아렸다. 바로 이러하였다. 목차는 동양해로 돌아가고, 삼장법사는 말에 올라 서쪽으로 향하였다. 결국 언제 바른 과를 얻어 경을 구할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3회 삼장불망본(三藏不忘本) · 사성시선심(四聖試禪心) 시에 이르기를, "법을 받들어 서쪽으로 오니 가는 길은 멀고 아득한데, 가을바람 휘휘 불어 서리꽃을 떨어뜨리는구나. 사나운 원숭이는 굳게 매어 두었으니 그 밧줄을 풀지 말며, 거친 말은 고삐를 부지런히 당길지언정 채찍을 더하지는 말라. 목모와 금공은 본래 스스로 어우러지고, 황파와 적자 또한 본래 다름이 없느니라. 쇠로 된 탄환을 깨물어 열면 참된 소식이 드러나니, 반야바라밀을 따라 저 언덕의 집에 이르리라." 이번 회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경전을 얻으러 가는 도리는 한 몸으로 근본을 힘쓰는 도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스승과 제자 넷은 참된 여여를 환히 깨닫고 티끌의 자물쇠를 단박에 열어 젖혀, 스스로 성해와 유사의 흐름에서 뛰어나와 아무런 걸림도 없이 곧장 큰길을 따라 서쪽으로 왔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을 두루 지나고, 들풀과 한가로운 꽃을 아무리 보아도 다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참으로 세월은 빠르니 어느덧 가을도 아홉 달, 단풍잎은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국화는 늦바람을 견디는구나. 늙은 매미는 점점 게을리 울고, 시름에 잠긴 귀뚜라미는 근심이 끝이 없다. 연잎은 비단 부채처럼 찢어지고, 향기로운 감은 금빛 탄환처럼 송이송이 맺혔네. 가련하다, 몇 줄의 기러기여, 점점이 멀리 허공에 줄을 늘어놓았구나. 한창 길을 가는데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들아, 이제 날이 또 저물었으니 어디로 가서 묵은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잘못 말씀하셨사옵니다. 출가한 이는 바람을 먹고 물에서 자며, 달을 베개로 서리를 이불로 삼는 법이옵니다. 가는 곳마다 집이 되는 것을, 또 어디서 묵느냐고 물으시니 어찌된 일이옵니까?"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형님은 걷는 것이 가볍고 편한 줄만 아시지, 남이 무거운 짐에 짓눌리는 것은 어찌 아시옵니까? 유사하를 건넌 뒤로 줄곧 산을 넘고 고개를 넘느라 무거운 짐을 지고 왔사온데 참으로 견디기 어렵사옵니다! 모름지기 인가를 찾아 하나는 차와 밥을 좀 얻어먹고, 둘은 정신을 좀 추슬러야 옳은 도리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멍청아, 네 그런 말을 보니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 모양이구나. 아직도 고로장에서처럼 게으름에 기대어 복을 구하지 않던 안일을 누리려는 게지마는, 그렇게는 되지 않으리라. "바른 사문의 도를 받들었거든 모름지기 고생과 괴로움을 겪어야 비로소 제자 노릇을 할 수 있느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 행장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너와 사승이 생긴 뒤로는 나는 메어 본 적이 없으니 그 무게를 어찌 알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 수자나 좀 헤아려 보시옵소서. 누런 등나무 쪽 넷이요, 길고 짧은 밧줄 여덟이옵니다. 또 비를 막으려고 털보를 서너 겹 씌워야 하옵니다. 멜대는 미끄러울까 두려워 양쪽 끝에 못을 박았고, 구리를 두르고 쇠를 단련해 아홉 고리를 단 지팡이에, 대오리와 등나무로 친 커다란 도롱이까지 있사옵니다. 이처럼 많은 행장을 이 늙은 돼지가 홀로 날마다 메고 걷느라 죽을 지경이온데, 형님은 스승님을 따라 제자 노릇을 하시고 나를 머슴으로 부리시니 그게 옳사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멍청아, 누구한테 하는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한테 하는 말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면 나한테 잘못 말했구나. 이 늙은 원숭이는 스승님의 좋고 나쁨만 맡고, 너와 사승은 행장과 말을 맡는 법이니라.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였다가는 정강이에 먼저 굵은 몽둥이 한 바탕이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때린다는 말씀은 마시옵소서. 때리는 것은 힘으로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옵니다. 나는 형님의 높고 오만한 성미를 아옵니다. 형님은 틀림없이 메려 하지 않으실 테지만, 스승님이 타시는 말은 그리 크고 살지고 기운이 넘치옵니다. 늙은 중 한 사람만 태우시니 그 말에 몇 짐이라도 지우시면 형제의 정이 아니겠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네가 그걸 말이라 하느냐! 그는 범속한 말이 아니니라. 본래 서해용왕 오윤의 아들이요, 이름을 용마삼태자라 하느니라. 다만 제멋대로 불을 놓아 전각의 밝은 구슬을 태운 탓에, 그 아비가 불효하다며 고발하여 천조를 범하는 몸이 되었느니라. 관음보살의 은혜로 목숨을 건졌고, 그는 응수도간에서 오래도록 스승님을 기다렸느니라. 또 보살이 몸소 오신 덕에 비늘을 벗기고 뿔을 잘라 내며 목 아래 구슬을 떼어 내고서야 비로소 이 말이 되었으니, 스승님을 태우고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예를 올리기를 원하느니라. 이는 모두가 각자의 공덕이니 네가 그를 끌어들여서는 안 되느니라." 그 말을 들은 사승이 말했다. "형님, 참으로 용이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용이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옛사람의 말을 들으니, '용은 구름을 뿜고 안개를 내쉬며 흙을 뿌리고 모래를 날린다. 산을 끌어당기고 고개를 굽히는 수단이 있으며,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젓는 신통이 있다'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놈은 오늘 이리 느릿느릿 걷기만 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네가 그놈을 빨리 가게 하고 싶거든, 내가 빨리 가는 꼴을 너에게 보여 주마."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여의봉을 한번 쥐어 비틀자 온갖 채색 구름이 솟아났다. 그 말은 몽둥이를 드는 것을 보자 얻어맞을까 두려워 네 발굽이 번개처럼 급해져 휙 달려 나갔다. 스승님은 손에 힘이 풀려 고삐를 당겨 붙들 수 없었고, 그놈의 사나운 성질대로 산비탈을 내달리게 하였다. 한참이나 달리다가 겨우 큰 걸음을 늦추어 걷기 시작하였다. 스승님이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솔숲 그늘 한 떨기에 몇 채의 집이 들어 있었는데 참으로 웅장하고 훌륭하였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문에는 푸른 측백이 드리웠고, 집은 청산에 바짝 붙었구나. 몇 그루 소나무는 하늘거리고, 몇 대의 대나무는 빼곤하네. 울타리 가의 들국화는 서리를 머금어 곱고, 다리 곁의 그윽한 난초는 물에 비쳐 붉구나. 흙벽은 희게 바르고, 담장은 벽돌로 둘렀네. 높은 집은 장대하고 으리으리하며, 큰 가옥은 맑고 편안하구나. 소도 양도 닭도 개도 보이지 않으니, 가을걷이를 마쳐 농사일이 한가한 모양이로다. 스승님이 고삐를 누르고 천천히 둘러보는데, 오공과 아우들이 이제야 당도하였다. 오정이 말했다. "스승님,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셨사옵니까?" 장로가 꾸짖으며 말했다. "오공 이 망할 원숭이가 말을 놀라게 하였구나. 다행히 내가 그래도 잘 타고 있었던 덕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나를 꾸짖지 마시옵소서. 모두 저팔계가 말이 느리다고 하기에 그놈을 재촉한 것뿐이옵니다." 멍청이는 말을 쫓느라 급히 걸은 탓에 숨을 헐떡이며 입으로 중얼중얼 투덜거렸다. "죽겠네! 죽겠네! 배는 고프고 허리는 힘이 풀렸는데 짐은 무겁고 메고 오를 수 없는 판에, 또 나를 시켜 말까지 쫓아다니게 하다니!" 장로가 말했다. "제자야, 저쪽을 좀 보아라. 저기 저택이 하나 있으니 우리가 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면 좋겠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급히 고개를 들어 두루 살펴보니, 과연 저 허공에 경사스러운 구름이 덮이고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였다. 필시 부처나 신선이 점화한 곳임을 알아차렸으나, 그는 감히 천기를 누설할 수 없어 다만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우리 신세를 지러 갑시다." 장로가 급히 말에서 내려 보니 문루 하나가 있었으니, 연꽃을 드리운 코끼리 코 모양에 단청을 올리고 들보를 조각한 집이었다. 사승이 짐을 내려놓고, 팔계가 말을 끌며 말했다. "이 집은 보통을 넘어서는 부유한 집이옵니다." 행자가 곧장 들어가려 하자 삼장법사가 말했다. "안 되느니라. 너와 나는 출가한 몸이니 저마다 혐의를 피해야 하거늘,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느니라. 우선 그 집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려 예로써 하룻밤 묵기를 청한 뒤에야 들어갈 수 있느니라." 팔계가 말을 매어 놓고 담장 밑에 비스듬히 기대니, 삼장법사는 돌북 위에 앉고 행자와 사승은 기단 가장자리에 앉았다. 오래도록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행자는 성미가 급하여 몸을 일으켜 뛰어 들어가 안을 살펴보니, 남쪽을 향한 큰 청이 세 칸 있고 발은 높이 걷어 올려져 있었다. 병풍 문 위에는 수산복해를 그린 가로 폭 그림 한 폭이 걸려 있고, 양쪽 금칠한 기둥에는 큰 붉은 종이에 쓴 춘련 한 폭이 붙어 있었는데, 그 위에 적힌 글은 이러하였다. 가는 버드나무 가지가 평교의 저녁에 흩날리고, 향기로운 매화에 점점이 내린 눈이 작은 뜰에 봄을 알리는구나. 한가운데에는 광을 죽인 칠흑 향탁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위에 옛 청동 짐승 모양 향로가 놓여 있었다. 그 앞에 교의 여섯 개가 놓여 있고, 양쪽 산머리에는 사계절을 그린 걸개 병풍이 걸려 있었다. 행자가 몰래 엿보고 있는데, 갑자기 뒤문 안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늙은 듯 늙지 않은 부인 하나가 걸어 나와 교태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사람이기에 감히 내 과부의 문을 함부로 들어오느뇨?" 대성이 깜짝 놀라 연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소승은 동토 대당에서 왔사옵니다. 황제의 명을 받들어 서방으로 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경전을 구하러 가는 길이옵니다. 일행이 넷이옵니다. 보배로운 곳을 지나다 날이 이미 저물었사옵니다. 특별히 노보살의 댁을 찾아와 하룻밤 묵기를 청하옵니다." 그 부인이 웃는 낯으로 맞으며 말했다. "장로시여, 그 세 분은 어디 계시느뇨? 어서 모셔 오너라." 행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스승님, 들어오시옵소서." 삼장법사가 팔계와 사승과 함께 말을 끌고 짐을 메고 들어갔다. 그 부인이 청으로 나와 맞이하는 것이 보였다. 팔계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슬쩍 훔쳐보았는데, 그 여인의 차림새가 어떠했는지 보라. 금실을 짠 관록 빛 모시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엷은 홍색 배자를 걸쳤으며, 채색을 매듭지은 아황 비단 치마를 두르고 그 아래로 높은 굽 꽃신이 비치는구나. 유행하는 쪽진 머리에 검은 사개를 덮었으니 두 빛깔 용을 휘감은 머리채와 어울리고, 궁중식 상아 빗에 붉은 비취가 번쩍이며 두 가닥 붉은 금비녀를 비스듬히 꽂았네. 구름 같은 귀밑머리는 반쯤 희여 봉황의 날개를 펴는 듯하고, 귀고리에는 보배 구슬이 나란히 드리웠구나. 연지와 분을 바르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답고, 그 풍류는 오히려 젊은 시절 그대로로다. 그 부인은 세 사람을 보자 더욱 기뻐하며 예로 청하여 청방으로 들어가게 하고, 하나하나 인사를 마친 뒤 각자 자리를 정해 앉아 차를 대접하였다. 병풍 뒤에서 홀연 쌍동머리에 실을 드리운 여종 하나가 나타나 금쟁반과 백옥 잔을 받쳐 들고 나왔는데, 향기로운 차는 따뜻한 기운을 내뿜고 기이한 과일은 그윽한 향기를 흩날렸다. 그 여종은 채색 소매를 걷어 올려 봄 죽순 같은 가늘고 긴 손가락을 드러내고, 옥잔을 받쳐 들어 차를 올리며 그들에게 하나하나 절을 하였다. 차를 마치니 또 공양을 차리라 분부하였다. 삼장법사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노보살이시여, 성함이 어떠하시옵니까? 이곳은 어느 지명이옵니까?" 부인이 말했다. "이곳은 서우하주 땅이니라. 소부인은 친정 성이 가가이요, 시집 성이 막이니라. 어려서 불행히도 시부모를 일찍 여의고, 남편과 함께 조상의 업을 지켜 왔느니라. 집안 재산이 만금이요, 좋은 논밭이 천 경이니라. 부부는 명에 자식이 없어 딸아이 셋만 낳았느니라. 재작년에 크게 불행하여 남편마저 여의었으니, 소부인은 과부가 되어 금년으로 상복을 벗었느니라. 텅 비게 남은 논밭과 집안 산업을 물려줄 친족이 하나도 없어, 다만 나와 딸들이 이어받았느니라.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가자니 또한 집안 살림을 버리기 어렵구나. 마침 장로께서 내려오시니 스승과 제자 넷이신 듯하니라. 소부인 모녀가 넷이요, 산에 앉아 사위를 맞고자 하니 네 분이 꼭 들어맞는구나. 높으신 뜻이 어떠하신지 모르겠노라."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귀먹은 체 벙어리인 체하며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힌 채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부인이 말했다. "이 집에는 수전이 삼백여 경이요, 한전이 삼백여 경이며, 산과 과수원이 삼백여 경이니라. 누런 물소가 일천여 마리요, 노새와 말은 떼를 이루며 돼지와 양은 셀 수 없느니라. 동서남북에 장원과 목장이 모두 예순에서 일흔 곳이니라. 집안에는 팔구 년을 두고 써도 다 못 쓸 곡식이 있고, 십 년을 두고 입어도 다 못 입을 능라가 있으며,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금은이 있으니 비단 휘장에 봄을 감춘다 한들 무엇이 부러우랴. 금비녀를 두 줄로 꽂은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대 사도들이 만일 마음을 돌이켜 초라한 이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온다면, 편안하고 자유롭게 영화를 누릴 것이니, 서쪽으로 가며 고생하는 것만 못하겠느냐?" 그러나 삼장법사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부인이 말했다. "나는 정해년 삼월 초사흘 유시에 태어났느니라. 죽은 남편은 나보다 세 살이 많았고, 나는 금년 마흔다섯이니라. 큰딸은 이름이 진진이요 금년 스무 살이며, 둘째는 애애라 하여 금년 열여덟이요, 세째 딸은 련련이라 하여 금년 열여섯이니, 모두 아직 혼처가 정해지지 않았느니라. 소부인은 못생겼으나 다행히 딸들에게는 제법 용색이 있고, 바느질과 길쌈도 못 하는 것이 없느니라. 선친에게 아들이 없어 그들을 아들처럼 기르며, 어릴 적에 유가의 책도 좀 읽혔더니 시를 짓고 대구를 맞추는 것도 다 아느니라. 산장에 산다고는 하나 그리 천박한 부류는 아니니, 장로 여러분께 짝할 만하리라 생각하느니라. 마음을 열어 머리를 기르고 이 집의 가장이 되어 준다면, 비단을 입고 능라를 걸치니 질그릇 바리때와 검은 승복, 눈빛 신과 구름 삿갓보다 훨씬 낫지 않으리오!" 삼장법사는 윗자리에 앉아 천둥에 놀란 아이처럼, 비에 젖은 두꺼비처럼 멍하니 앉아 흰자위를 뒤집은 채 몸을 뒤로 젖히고 있을 뿐이었다. 저팔계는 이런 부귀와 이런 미색을 듣자마자 마음이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의자에 앉아서는 마치 바늘로 엉덩이를 찌르는 듯이 이쪽으로 비틀 저쪽으로 비틀 하며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 스승님의 소매를 한 번 잡아당기며 말했다. "스승님! 이 부인이 말씀을 올리는데 어찌하여 못 본 체만 하시옵니까? 좋도록 대답이나 한 마디 하시는 것이 옳지 않사옵니까?" 스승님이 홀연 고개를 들고 "이크!" 하고 소리치며 팔계를 물리쳤다. "이놈아! 우리는 출가한 사람이거늘, 어찌 부귀에 마음을 움직이고 미색에 뜻을 두어 무슨 도리를 이루겠느냐!" 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가련하구나! 가련하여라! 출가한 이에게 무슨 좋음이 있느뇨?" 삼장법사가 말했다. "여보살이시여, 그대는 세속에 사는 몸이온데 무슨 좋음이 있사옵니까?" 그 부인이 말했다. "장로여, 앉으시라. 내 세속 사람이 누리는 좋은 점을 그대에게 들려주마. 어찌 그러한지 보이느냐?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봄에는 방승을 마름질하여 새 능라를 입고, 여름에는 가벼운 사를 갈아입고 푸른 연꽃을 감상하네. 가을에는 새로 빚은 향기로운 찹쌀술이 있고, 겨울에는 따뜻한 누각에서 얼굴 붉게 취하느니라. 사시사철 누리는 것이 하나하나 다 있고, 여덟 절기의 진귀한 음식도 가지가지 많구나. 비단을 깔고 능라를 편 화촉의 밤이여, 발우를 들고 미타를 예배하며 걷는 길보다 나으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여보살이시여, 그대는 세속에서 영화를 누리고 부귀를 받으며, 입을 것이 있고 먹을 것이 있어 자녀가 둥글게 모였으니 과연 좋사옵니다. 그러나 나처럼 출가한 사람에게도 또한 한 가닥 좋은 점이 있사옵니다. 어찌 그러한지 보이시겠사옵니까?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출가하여 뜻을 세움은 본래 예사롭지 않으니, 옛날의 은애당을 밀어 넘기고, 밖의 물건으로 쓸데없는 입과 혀를 낳지 않으며, 몸 안에는 스스로 좋은 음양이 있느니라." "공을 마치고 행을 채워 금궐에 조회하고, 성품을 보고 마음을 밝혀 고향으로 돌아가나니, 집에 있으면서 피와 고기를 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늙어서는 썩은 가죽 부대로 떨어지고 마느니라." 그 부인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며 말했다. "이 파렴치한 중이 무례하구나! 내가 그대가 동토에서 멀리 왔음을 보아 준다면 모를까, 마땅히 꾸짖어 내쫓았으리라. 나는 도리어 참된 마음과 진실한 뜻으로 집안의 살림을 들어 너희를 데릴사위로 삼으려 하거늘, 너는 도리어 말로 나를 상하게 하는구나. 네가 계를 받고 원을 세워 영원히 환속하지 않는다 한들, 네 아래 사람 하나쯤은 내 집에서도 맞을 수 있느니라. 너는 어찌하여 이리도 법에 얽매이느냐?" 삼장법사는 부인이 성내는 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공손하고 부드럽게 불렀다. "오공아, 네가 여기 있거라." 행자가 말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일을 할 줄 모르나이다. 팔계를 여기 있게 하옵소서." 팔계가 말했다. "형님, 남을 골탕 먹이지 마시옵소서. 모두 함께 길게 의논합시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너희 둘이 못 하겠다면 오정을 여기 있게 하겠다." 사승이 말했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제자는 보살의 권화를 입어 계행을 받고 스승님을 기다렸사옵니다. 스승님께서 거두어 주신 뒤로 또 가르침을 받았사옵니다. 스승님을 따른 지 두 달도 되지 않았고 반 푼의 공덕도 쌓지 못하였사온데, 어찌 감히 이런 부귀를 탐하겠사옵니까!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천으로 가겠사옵니다. 결코 이런 마음 속이는 일은 하지 않겠나이다." 그 부인은 그들이 사양하며 마다하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돌려 병풍 안으로 들어가며, 쾅 하고 쪽문을 닫아 버렸다. 스승과 제자들은 바깥에 버려진 채 차도 밥도 끊겼고, 다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저팔계는 속이 타들어 가며 삼장법사를 원망하여 말했다. "스승님은 일을 너무도 모르시옵니다. 말을 모조리 막아 버리셨사옵니다. 좋도록 여지를 좀 남겨 두시고 얼버무려 대답하시어 그 집의 공양이나 얻어먹고, 오늘 밤이나마 한밤의 즐거움을 누리시면 될 것을, 내일 허락하느냐 마느냐는 우리에게 달린 일이옵니다. 이렇게 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니 우리가 찬 재와 식은 부뚜막으로 하룻밤을 어찌 지내옵니까!" 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님, 그 집에 가서 사위가 되시지요." 팔계가 말했다. "아우야, 나를 골탕 먹이지 마라. 길게 의논하자." 행자가 말했다. "의논은 무슨 의논이냐? 네가 그러겠다면 스승님과 그 부인을 사돈으로 삼고, 너는 처가로 들어가는 사위가 되어라. 그 집은 이처럼 재물과 보배가 있으니 틀림없이 혼수까지 얹어 주며 친척을 모아 잔치를 벌일 것이니, 우리도 좀 덕을 보리라. 네가 여기서 환속하면 두 가지가 다 아름답지 않으냐?" 팔계가 말했다. "말이야 그렇게 할 수 있사옵니다만, 내가 속세를 벗었다가 또 속세로 돌아가니 아내를 두고 다시 아내를 얻는 격이옵니다." 사승이 말했다. "둘째 형님에게 형수가 있었단 말이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너는 그를 아직 모르는구나. 그는 본래 오사장 고로아장 고태공의 사위였느니라. 이 늙은 원숭이에게 항복을 받은 뒤에 보살의 계행을 받았으나 하는 수 없이 내가 그를 붙잡아 중이 되게 하였느니라. 그리하여 옛 아내를 버리고 스승님을 따라 서쪽으로 가 부처님께 예를 올리게 되었느니라. 헤어진 지 오래되어 그 짓이 다시 생각났던 모양인데, 방금 이 짓을 듣고 보니 끊어졌던 마음이 다시 일어났구나. 멍청아, 너 이 집안의 사위가 되어라. 다만 이 늙은 원숭이에게 절을 몇 번 더 하면, 내가 너를 고발하지는 않으련다." 그 멍청이가 말했다. "허튼 소리! 허튼 소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어찌 이 늙은 돼지만 망신을 시키느냐? 속담에 '중은 색 가운데 굶주린 귀신'이라 하였느니라. 그 누가 그러지 않으랴? 모두 이렇게 꾸물거리며 점잔을 빼느라 좋은 일을 모조리 깨뜨리고 있구나. 이제 차물조차 구경하지 못하고 등불도 돌보는 이가 없으니, 이 밤을 견뎌 낸다 한들 저 말이 내일은 사람을 태우고 또 길을 걸어야 하거늘, 이 밤까지 굶긴다면 가죽이나 벗길 판이니라. 너희는 앉아 있거라. 이 늙은 돼지가 가서 말을 풀어 놓고 오마." 그 멍청이는 성급하게 고삐를 풀고 말을 끌고 나갔다. 행자가 말했다. "사승아, 너는 스승님을 모시고 여기 앉아 있거라. 이 늙은 원숭이가 그놈을 따라가 어디로 말을 풀러 가는지 보겠느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가서 보는 것은 좋으되, 다만 그를 놀려 대기만 해서는 안 되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알고 있사옵니다." 이 대성이 청방을 나서자 몸을 한번 흔들어 변신하여 붉은 잠자리로 둔갑하고는 앞문을 날아 나가 팔계를 따라잡았다. 그 멍청이는 말을 끌고 가면서 풀이 있는 곳에서도 풀을 뜯어 먹게 하지 않고, "덥, 덥, 츠, 츠" 소리를 내며 말을 재촉하여 뒷문 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그 부인이 세 딸을 데리고 뒷문 밖에 한가로이 서서 국화를 보며 놀고 있었다. 모녀가 팔계가 오는 것을 보자 세 딸은 휙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부인은 문 앞에 우뚝 서서 말했다. "어린 장로는 어디로 가느뇨?" 이 멍청이는 고삐를 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어머니! 저는 말을 풀러 왔나이다." 그 부인이 말했다. "네 스승은 너무 약삭빠르구나. 내 집에 사위로 들어오면, 걸식하는 중이 되어 서쪽 길을 헤매는 것보다 낫지 않으랴?"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당나라 임금의 뜻을 받들었사오니 감히 임금의 명을 어기지 못하여 이 일을 하려 하지 않사옵니다. 방금 앞청에서 모두 나를 골탕 먹였사옵니다만, 나 또한 위아래가 다 어려워 다만 어머니께서 내 주둥이가 길고 귀가 크다고 싫어하실까 두렵사옵니다." 그 부인이 말했다. "나는 싫어하지 않느니라. 다만 집안에 가장이 없어 하나를 맞는 것은 도리어 괜찮으련만, 작은딸이 좀 못생겼다고 싫어할까 염려되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어머니, 따님께 잘 일러 주시옵소서. 이리 까다롭게 사위를 고르지 말라고 하시옵소서. 내가 보건대 저 당승은 인물이 준수하나 실은 쓸모가 없사옵니다. 나는 못생겼으나 못생긴 대로 몇 마디 자랑하는 말이 있사옵니다." 부인이 말했다. "무엇이라 하려느냐?" 팔계가 말했다. "내 인물은 못생겼으나 부지런하여 공이 있나이다. 천 경의 땅을 말하자면 소를 부려 갈 것도 없사옵니다. 쇠스랑 한번 휘두르면 씨를 뿌려 제때에 싹이 나옵니다. 비가 없으면 비를 빌 수 있고, 바람이 없어도 바람을 부를 수 있나이다. 집이 낮다 하시면 두세 층을 더 올리면 되옵니다. 땅이 쓸리지 않았으면 쓸어 드리고, 도랑이 막혔으면 뚫어 드리리다. 살림의 크고 작은 온갖 일이며, 하늘을 차고 우물을 뒤집는 일까지 내가 다 할 수 있나이다." 그 부인이 말했다. "살림을 그만큼 해 낼 수 있다면, 다시 네 스승과 의논하여 보아라. 거북할 것이 없거든 너를 사위로 맞으마." 팔계가 말했다. "의논할 것 없사옵니다. 그이는 내 친부모도 아니시오니, 하느냐 마느냐는 다 내게 달렸나이다." 부인이 말했다. "좋다, 좋다. 내 작은딸에게 말해 보마." 부인이 휙 안으로 들어가며 쾅 하고 뒷문을 닫는 것이 보였다. 팔계는 말을 풀지도 않고 앞으로 끌고 왔다. 어찌 알았으랴, 손대성이 이미 하나하나 다 알고 있었다. 그는 날개를 돌려 날아와 본모습으로 나타나 먼저 당승을 보고 말했다. "스승님, 오능이 말을 끌고 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말을 끌지 않으면 날뛰어 달아날까 걱정이로구나." 행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그 부인과 팔계가 주고받은 밀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바탕 이야기하였다. 삼장법사는 믿는 듯 믿지 않는 듯하였다. 잠시 뒤 멍청이가 말을 끌고 와 매어 두는 것이 보이자 장로가 말했다. "말을 풀었느냐?" 팔계가 말했다. "좋은 풀이 없어 풀어 놓을 곳이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풀어 놓을 곳이 없다면 끌어 둘 곳은 있느냐?" 멍청이는 그 말을 듣고 제 비밀이 새어 나갔음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목을 비틀며 입을 내밀고 눈썹을 찌푸린 채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쪽문이 열리더니 붉은 등 두 쌍과 술병 든 이 하나가 보이고, 향기로운 구름이 자욱하고 패옥이 쟁쟁 울리는 가운데 그 부인이 세 딸을 데리고 걸어 나와 진진과 애애와 련련을 불러 경을 구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절을 올리라 하였다. 그 처녀들은 청 가운데에 나란히 서서 윗쪽을 향해 절을 올렸다. 과연 아리따운 모습이었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하나하나 눈썹은 푸른빛을 그었고, 분칠한 얼굴에는 봄이 어려 있구나. 요염함은 나라를 기울일 미색이요, 요조함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꽃비녀는 다정한 태도를 드러내고, 수놓은 띠는 바람에 날려 속세를 벗어났구나. 반쯤 웃음을 머금은 곳에는 앵두가 벌어지고, 천천히 걸어갈 때에는 난사향이 뿜어지네. 머리에는 주옥이 가득하여 수많은 보배 비녀가 떨리고, 온몸에는 그윽한 향기가 어려 꽃이 금실로 촘촘히 수놓였구나. 초나라 미녀의 고운 얼굴이며 서자의 고운 자태를 무슨 말로 논하리오? 참으로 구천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하고, 달 속 항아가 광한궁에서 나온 듯하구나! 삼장법사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고, 손대성은 못 본 체하였으며, 사승은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그런데 저팔계를 보라. 눈은 한곳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음심은 어지러이 일며 색을 탐하는 담력은 제멋대로였다. 몸을 비틀거리며 슬그머니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녀께서 내려오시느라 수고로우시옵니다. 어머니, 누나들을 모시고 가시옵소서." 그 세 처녀는 병풍 안으로 들어가며 사등잔 한 쌍을 남겨 두었다. 부인이 말했다. "장로 네 분이여, 마음을 두실 뜻이 있거든 내 딸에게 어느 분을 짝지우시겠느뇨?" 오정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의논을 마쳤사옵니다. 저 돼지 성을 가진 이를 문하에 데릴사위로 들이시옵소서." 팔계가 말했다. "아우야, 나를 골탕 먹이지 마라. 다시 모두의 뜻을 따라 의논하자." 행자가 말했다. "또 무슨 의논이냐? 너는 이미 뒷문 앞에서 말을 맞추어 단단히 정해 놓고 '어머니'까지 다 불렀거늘, 다시 무슨 의논이 있느냐? 스승님이 사돈이 되고 이 늙은이가 여자 사돈이 되며, 이 늙은 원숭이가 혼인을 보증하고 사승이 중매를 서마. 굳이 책력을 살펴볼 것도 없이 오늘이 바로 하늘이 내린 상서롭고 길한 날이니, 너는 스승님께 절을 하고 들어가 사위가 되어라." 팔계가 말했다. "안 되네! 안 되네! 어디 감히 이런 짓을 하겠나!" 행자가 말했다. "멍청아, 감추려 들지 마라. 네 그 입으로 '어머니'를 얼마나 불렀느냐? 무슨 안 되기는 또 무엇이 안 되느냐? 어서 승낙하고 우리에게도 잔치술을 얻어먹게 하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니라." 그는 한 손으로 팔계의 멱살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부인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사돈어멈, 사위를 데리고 들어가시지요." 그 멍청이는 발을 주춤주춤 내딛으며 어디론가 가려 하였다. 그 부인은 곧 동자를 불렀다. "탁자와 의자를 닦고 저녁 공양을 차려 사돈 세 분을 대접하라. 나는 사위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마." 한편으로는 또 주방 일꾼에게 분부하여 잔치를 베풀고 내일 아침에 친척을 만나게 하였다. 그 동자들은 명을 받고 물러갔다. 세 사람은 공양을 먹고 급히 자리를 깔아 모두 객사에서 묵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두겠다. 말하자면, 저팔계는 장모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는데, 한 겹 한 겹 방이 얼마나 많은지,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문지방에 발이 걸리기만 하였다. 멍청이가 말했다. "어머니, 좀 천천히 가시옵소서. 나는 이 안의 길이 낯설어요니 좀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 부인이 말했다. "이곳은 모두 창고와 곳간과 방아간인데, 아직 부엌 쪽에도 이르지 못하였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집이 참으로 크구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모퉁이를 돌고 돌아 또 한참을 걸어서야 비로소 안채 방에 이르렀다. 그 부인이 말했다. "사위야, 네 사형이 오늘이 하늘이 내린 상서롭고 길한 날이라 하여 너를 데리고 들어오라 하였느니라. 다만 갑작스러운 터라 음양을 보는 이를 청하지 못하였으니, 절을 올리고 휘장을 치는 예를 갖추지 못하니 네가 윗쪽을 향해 여덟 번 절을 하거라." 팔계가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 말씀이 옳사옵니다. 어머니께서 윗자리에 앉으시옵소서. 내가 절을 몇 번 올려 절을 올리는 예도 되고 사돈께 감사하는 예도 되니,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면 일이 절약되지 않사옵니까?" 그 장모가 웃으며 말했다. "좋다, 좋다. 과연 일을 줄일 줄 아는 살림꾼 사위로구나. 내 앉아 있을 터이니 네가 절하여라." 오호라! 온 집 안에 은촛불이 휘황한데, 이 멍청이는 윗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나서 말했다. "어머니, 어느 누나를 나에게 짝지워 주시겠나이까?" 그 장모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 어려움이니라. 큰딸을 너에게 주자니 둘째가 섭섭해할 것이요, 둘째를 너에게 주자니 셋째가 섭섭해할 것이며, 셋째를 너에게 주자니 또 큰딸이 섭섭해할 터이니, 끝내 망설이며 정하지 못하였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어머니, 서로 다툴까 두려우시거든 모두 나에게 주시옵소서. 떠들썩하게 다투어 집안 법을 어지럽히는 것보다 낫지 않사옵니까?" 그 장모가 말했다. "어찌 그런 이치가 있느냐! 네가 한몸으로 내 딸 셋을 다 차지하겠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누가 세 방네 처 첩이 없사옵니까? 몇이 더 된다 한들 사위인 내가 웃으며 받아들이겠나이다. 나는 어릴 적에 밤을 견디는 법도 배웠사오니, 틀림없이 하나하나 기쁘게 모시겠나이다." 그 부인이 말했다. "안 되느니라! 안 되느니라! 내게 손수건 한 장이 있으니 그것을 머리에 이고 얼굴을 가린 채 천혼 맞추기를 하여라. 내 딸들이 네 앞을 지나가게 할 터이니, 네가 손을 뻗어 잡아 넘어뜨리는 그 아이를 네게 짝지워 주마." 멍청이는 말을 따라 손수건을 받아 머리에 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어리석어 본디 연유를 알지 못하니, 색의 칼이 몸을 상하게 하고 그윽이 스스로 그치느니라. 예로부터 주공의 예가 있음을 믿어 왔거늘, 오늘 신랑은 머리에 가리개를 썼구나. 그 멍청이는 머리를 단단히 동여맸다. 그러고는 말했다. "어머니, 누나들을 나오라 하시옵소서." 그 장모가 불렀다. "진진, 애애, 련련, 모두 나와 천혼 맞추기를 하여라. 너희 사위에게 짝지워 줄 터이니." 그러자 패옥 소리가 쟁쟁 울리고 난사향이 향기롭게 퍼지며 선녀들이 오가는 듯한데, 그 멍청이는 정말로 손을 뻗어 사람을 움켜쥐려 하였다. 양쪽으로 마구 휘저어 보았으나 왼쪽으로도 잡히지 않고 오른쪽으로도 잡히지 않았다. 오락가락하는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으나 하나쯤 잡아 보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다. 동쪽으로 휘저으면 기둥을 껴안고, 서쪽으로 휘저으면 널벽을 더듬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어지러워 서 있지도 못하고 자꾸만 넘어졌다. 앞으로 나가면 문짝을 차고 뒤로 물러나면 벽돌담에 부딪쳤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넘어져 입술은 부었고 이마는 퍼렇게 멍이 들었다. 멍청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헐떡거리며 말했다. "어머니! 따님들이 이리도 약삭빠르니 하나도 잡지 못하였사옵니다.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어찌하면 좋단 말이옵니까!" 그 부인이 그의 가리개를 벗겨 주며 말했다. "사위야, 내 딸들이 약삭빠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모두 서로 양보하며 너를 사위로 맞지 않으려 하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어머니, 그들이 나를 맞지 않으려 한다면 어머니께서 나를 맞아 주시옵소서." 그 부인이 말했다. "이런 사위 같으니라고! 위아래도 없이 장모까지 탐내다니! 내 이 세 딸은 마음씨가 가장 영특하여 저마다 진주를 박은 비단 적삼을 한 벌씩 지었느니라. 네가 그중 어느 아이의 것을 입을 수 있으면 바로 그 아이를 너에게 주마." 팔계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세 벌을 다 가져오시옵소서. 내가 입어 보아 모두 맞거든 모두를 다 사위로 삼으라 하시옵소서." 그 부인은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 벌만 꺼내어 팔계에게 건네주었다. 그 멍청이는 푸른 비단 장삼을 벗어 놓고 적삼을 받아 몸에 걸쳤으나 아직 띠를 매기도 전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넘어졌다. 알고 보니 여러 가닥의 밧줄이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그 멍청이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 사람들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말하자면, 삼장법사와 행자와 사승은 한숨 자고 나서 어느새 동쪽 하늘이 밝아 오는 것을 보았다. 홀연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그 큰 집도 높은 청도 없었고 단청을 올리고 들보를 조각한 집도 아니었으며, 하나하나가 모두 솔과 측백나무 숲 속에 누워 있었다. 장로는 깜짝 놀라 급히 행자를 불렀고, 사승이 말했다. "형님, 큰일이옵니다! 큰일이옵니다! 우리가 귀신을 만났사옵니다!" 손대성은 속으로 알면서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장로가 말했다. "우리가 어디에 누워 있는지 좀 보아라!" 행자가 말했다. "이 솔숲 아래에서 누운 것은 오히려 유쾌하옵니다만, 저 멍청이가 어디서 고생하고 있을지 모르겠사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누가 고생을 한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그 집의 모녀들이 어디의 보살인지는 모르나 이곳에서 우리에게 모습을 나타내어 보이셨다가 한밤중에 가 버리신 모양이옵니다. 다만 저팔계만 고생을 하는구려."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렸는데, 또 저 뒤편 늙은 측백나무 위에 무엇이 펄럭이며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사승이 급히 가서 가져다 스승님께 보여 드리니, 여덟 구절의 송자였는데 이러하였다. "여산노모는 범심을 일으키지 않았건만, 남해의 보살이 산에서 내려오기를 청하였도다. 보현과 문수 또한 모두 객이 되어, 아리따운 여인으로 화하여 숲 속에 있느니라. 성스러운 승려는 덕이 있어 오히려 속됨이 없거늘, 팔계는 선이 없어 더욱 범속하도다. 이제부터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름지기 잘못을 고치라. 만일 게을리하고 소홀히 하면 길이 어려우리라!" 장로와 행자와 사승이 이 송자를 소리 내어 읽고 있는데, 숲 깊은 곳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죄어 죽이겠사옵니다! 나를 좀 구해 주시옵소서! 다음에는 다시는 감히 그러지 않겠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저 외치는 것이 오능이냐?" 사승이 말했다. "바로 그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그를 거들떠보지도 말고 우리 가자." 삼장법사가 말했다. "저 멍청이는 마음이 어리석고 완고하나 다만 한결같이 우직할 뿐이요, 또한 제법 힘이 있어 행장을 멜 수 있느니라. 당초 보살의 뜻을 헤아려 그를 구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자. 이후로는 다시는 감히 그러지 않으리라." 그 사화상은 자리를 걷어 행장을 수습하였고, 손대성은 고삐를 풀어 말을 끌고 당승을 인도하여 숲으로 들어가 찾아보았다. 오호라! 바로 이것이로다. 바른 길을 따라 닦고 지킴에는 모름지기 삼가야 하나니, 애욕을 쓸어 버리면 스스로 참된 데로 돌아가리라. 결국 그 멍청이의 길흉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4회 만수산대선류고우(萬壽山大仙留故友) · 오장관행자절인삼(五莊觀行者竊人蔘) 말하자면, 그 세 사람이 숲을 꿰뚫고 안으로 들어서니, 저 멍청이가 나무에 묶인 채 소리를 내어 울부짖으며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사위로다! 이토록 때가 늦도록 아직 일어나 장인께 인사도 올리지 않고, 스승님께 가서 기쁜 소식을 아뢰지도 않은 채, 여기서 재주를 부리며 놀고 있단 말이냐! —에잇! 네 어미는 어디 있느냐? 네 아내는 어디 있느냐? 포박되어 매달리고 얻어맞는 사위로다는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그 멍청이는 그가 와서 면박을 주는 바람에 부끄러움을 머금고 이를 꽉 악물며 아픔을 참느라 감히 울부짖지도 못하였다. 사승이 그 꼴을 보고 참으로 차마 견디지 못해 행장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 밧줄을 풀어 구해 내었다. 멍청이는 그들 앞에서 다만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올릴 뿐이었으니, 실로 부끄러워 견디기 어려워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서강월》이 있으니, 색욕은 몸을 해치는 칼이니 그것을 탐하면 반드시 재앙을 만난다. 열여섯 살 가인은 고운 단장이 아름다워도 야차보다 더욱 사납고 억세구나. 오직 하나의 근본만이 있을 뿐, 다시는 자그마한 이익도 주머니에 보태지 않는다. 자본을 잘 거두어 간직하고 굳게 지켜 방탕에 빠지지 말라. 행자가 물었다. "너는 그 보살들을 알아보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나는 이미 기절하여 정신이 아득하고 눈앞이 어지러웠는데, 누구인들 알아보겠소?" 행자가 그 간찰을 저팔계에게 건네주니, 저팔계는 그것이 게송인 줄 보고 나서 더욱 부끄러워하였다.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께 이런 좋은 복이 있소! 네 분의 보살님이 감동하시어 몸소 오셔서 혼례까지 맺어 주셨으니!" 저팔계가 말했다. "동생들아,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말아라. 사람 구실 못할 짓이오! 이제부터는 다시는 감히 망령되이 굴지 않겠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수고롭더라도 다만 어깨를 비비고 짐을 누르며 스승님을 따라 서역까지 가겠노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렇게 말해야 비로소 옳으니라." 행자가 드디어 스승님을 모시고 큰길에 올랐다. 길에서 바람을 먹고 물가에서 잠을 자며 한참을 가다 보니, 문득 높은 산 하나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삼장법사가 말고삐를 당기고 채찍을 멈추며 말했다. "제자야, 앞에 산이 하나 보이니 모름지기 조심해야 하느니라. 요마가 떼를 써서 우리 일행을 해칠까 두렵구나." 행자가 말했다. "말 앞에 우리 세 사람이 있는데 무슨 요마가 무섭다 하시옵니까?" 이에 장로는 마음을 놓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저 산을 보니 참으로 좋은 산이었다. 높은 산은 우뚝 솟아 그지없고, 큰 기세는 꿋꿋이 솟구쳤구나. 뿌리는 곤륜의 산맥에 닿아 있고, 꼭대기는 하늘 한가운데를 어루만지네. 흰 학은 늘 찾아와 측백나무에 깃들고, 검은 원숭이는 때때로 칡넝쿨에 매달렸구나. 해는 갠 숲에 비쳐 겹겹이 천 가닥 붉은 안개가 감돌고, 바람은 그늘진 골짜기에서 일어 만 갈래 채색 구름이 훨훨 날아가네. 그윽한 새들은 푸른 대숲에서 어지러이 울고, 비단 닭은 들꽃 사이에서 다 함께 울어댄다. 저 천년봉과 오복봉, 부용봉이 보이니 우뚝우뚝 늠름하게 가느다란 빛을 내뿜고, 만세석과 호아석, 삼첨석은 불쑥불쑥 반짝이며 상서로운 기운을 일으킨다. 벼랑 앞에는 풀이 곱게 피어나고, 고개 위에는 매화 향기 그윽하네. 가시덤불은 빽빽이 우거지고, 지초와 난초는 맑고 담담하구나. 깊은 숲에는 매와 봉황이 천 마리 새를 모아 두고, 옛 굴에는 기린이만 마리 짐승을 다스린다. 골짜기 물은 정이 있어 구불구불 여러 번 둘러 흐르고, 봉우리는 끊이지 않고 겹겹이 쌓여 스스로 둘러 있구나. 또 저 푸른 회화나무와 무늬진 대나무, 푸른 소나무는 천 년을 두고 고운 자태를 겨루듯 서 있고, 흰 오얏꽃과 붉은 복숭아꽃, 푸른 버들은 불타오르듯 봄의 화려함을 다툰다. 용은 길게 울고 호랑이는 포효하며, 학은 춤추고 원숭이는 우네. 큰 사슴은 꽃 사이에서 나오고, 푸른 난새는 해를 마주하여 운다. 이는 신선이 사는 산이요 참된 복지이니, 봉래의 낭원도 다만 이러할 뿐이로다. 또 산머리에는 꽃이 피고 지는 경치가 어우러지고, 고개 위 봉우리에는 구름이 갔다 오는구나.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기뻐하며 말했다. "제자야, 내가 서쪽으로 오면서 수많은 산과 물을 겪었으나 모두 험하고 깎아지른 듯한 곳들뿐이었고, 이 산처럼 좋은 경치는 일찍이 없었으니 과연 그윽한 정취가 남다르구나. 만약 뇌음사가 가까이 있다면 우리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홀수레를 차려 세존을 뵙기 좋으련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멀었소! 아직 멀었소! 가기는커녕 도저히 이를 수 없소!" 사승이 말했다. "형님, 우리가 뇌음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멀었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십만 팔천 리요. 열 토막 가운데 아직 한 토막도 가지 못했소."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몇 해를 걸어야 도착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이 길을 너희 두 아우더러 가라면 열흘이면 갈 수 있겠고, 내가 걷는다면 하루에도 쉰 번은 다녀오고도 해가 남거니와, 스승님이 걸으신다면 꿈도 꾸지 마시오! 꿈도 꾸지 마시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네가 보기에 언제쯤이나 가 닿을 수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어려서 늙도록 걷고 다시 늙어서 어려져 그렇게 천 번을 되풀이해도 어렵사옵니다. 다만 스승님께서 성품을 밝히고 뜻이 정성스러우시다면, 생각마다 머리를 돌리는 그 자리가 곧 영산이옵니다." 사승이 말했다. "형님, 이곳이 비록 뇌음사는 아니라 하나 이 경치를 보니 반드시 훌륭한 분이 머무시리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 말이 옳구나. 여기에는 결코 요사한 기운이 없으니, 틀림없이 성스러운 스님이나 신선 무리가 사는 고장이로다. 우리가 천천히 구경하며 가자." 이 이야기는 접어 둔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이 산의 이름은 만수산이라 하고, 산속에는 도관이 하나 있으니 이름이 오장관이며, 그 관 안에는 신선 한 분이 계시니 도호는 진원자요, 별호는 여세동군이었다. 그 관에서 나는 기이한 보배가 하나 있었으니, 혼돈이 처음 갈라지고 홍몽이 비로소 나뉘어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았을 무렵에 이 신령한 뿌리가 이루어졌다. 천하의 사대부주를 두루 헤아려 보아도 오직 서우하주의 오장관에서만 이것이 나니, 이름을 초환단이라 하고 또 인삼과라 하였다. 삼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삼천 년에 한 번 열매가 맺히며, 다시 삼천 년이 지나야 비로소 익으니, 짧게 잡아도 만 년이 되어야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만 년이 되어야 고작 서른 개의 열매만 맺히는데, 그 열매의 생김새는 사흘이 채 되지 않은 젖먹이와 같아서 팔다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고 오관이 두루 갖추어져 있었다. 인연이 있는 사람이 그 열매를 한 번 맡기만 해도 삼백육십 년을 살고, 하나를 먹으면 사만 칠천 년을 살았다. 이날 진원대선은 원시천존의 간찰을 받아 상청천 미라궁에 올라가 혼원도과를 강론하는 자리에 초청을 받았다. 대선 문하에서 배출한 산선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거니와, 지금도 사십팔 명의 제자가 남아 있어 모두 도를 얻은 도사들이었다. 이날 마흔여섯 명을 거느리고 상계로 강론을 들으러 가면서, 가장 어린 두 명을 남겨 집을 지키게 하였으니 하나는 이름이 청풍이요, 하나는 명월이었다. 청풍은 겨우 천삼백이십 살이요, 명월은 이제 막 천이백 살이 되었다. 진원자가 두 동자에게 분부하며 말했다. "대천존의 간찰을 어길 수 없어 미라궁에 가서 강론을 들어야 하니, 너희 둘은 집에서 조심하라. 머지않아 옛 벗 하나가 이곳을 지나갈 터인데 그를 소홀히 대접해서는 안 되느니라. 내 인삼과를 두 개 따서 그에게 먹어 보이라. 다만 옛날의 정을 잠시 표하는 것이니라." 두 동자가 말했다. "스승님의 옛 벗이 누구시온지 저희에게 일러 주시옵소서. 잘 접대하겠나이다." 대선이 말했다. "그는 동토 대당의 조정 아래 있는 성스러운 스님이니 도호가 삼장이요, 지금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경전을 구하는 중이니라." 두 동자가 웃으며 말했다. "공자께서 이르시기를 '도가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하셨사옵니다. 저희는 태을현문이온데 어찌 저 중과 무슨 아는 사이가 되겠나이까!" 대선이 말했다. "너희가 그것을 어찌 알겠느냐. 그 중은 금선자가 전생하여 태어난 몸이요, 서방의 성스러운 노인이신 여래부처님의 두 번째 제자니라. 오백 년 전에 내가 그와 난분회에서 서로 알게 되었느니라. 그가 일찍이 친히 차를 내어 권하였고 불자들이 나를 공경하였으니, 그러므로 옛 벗이 되는 것이니라." 두 선동이 그 말을 듣고 스승의 명을 삼가 받들었다. 대선은 떠나면서 다시 간곡히 신신당부하며 말했다. "내 그 열매는 수가 정해져 있으니 그에게 두 개만 주고 더 많이 쓰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청풍이 말했다. "동산 문을 열었을 적에 여러 사람이 함께 두 개를 먹었사옵니다. 스물여덟 개가 나무에 그대로 있사오니 감히 더 쓰지는 않겠나이다." 대선이 말했다. "삼장법사가 비록 옛 벗이로되 그 수하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지나 않을까 방비를 갖추어야 하느니라. 그가 알고 놀라지 않도록 하라." 두 동자가 명을 받들고 나서, 대선은 여러 제자를 거느리고 훨훨 날아올라 곧장 천계를 향하였다. 말하자면, 삼장법사 일행 네 사람이 산에서 두루 노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솔숲 한 떨기 사이로 누각이 몇 층인가 솟아 있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저기가 무슨 곳인지 좀 보아라." 행자가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저곳은 도관이 아니면 틀림없이 사찰이옵니다. 우리가 좀 더 걸어가 그쪽에 닿아 보면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리이다." 오래지 않아 문 앞에 이르러 살펴보니 소나무 언덕은 쓸쓸하고 차분하며, 대나무 오솔길은 맑고 그윽하였다. 오가는 흰 학은 떠가는 구름을 배웅하고, 오르내리는 원숭이는 때때로 과일을 바쳤다. 문 앞에는 연못이 넓어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돌은 갈라져 이끼 꽃이 돋아났다. 궁전은 빽빽이 늘어서 자미성처럼 높고, 누대는 아득하여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듯하였다. 참으로 복된 땅이요 신령한 구역이었으니 봉래의 구름 굴이라 할 만하였다. 맑고 텅 비니 인간의 일이 드물고, 고요하니 도심이 저절로 일어났다. 파란새는 늘 서왕모의 소식을 전하고, 자줏빛 난새는 항상 노군의 경전을 전해 주었다. 저 우뚝한 도덕의 풍모를 아무리 보아도 다 보지 못할 터이니, 과연 아득한 신선의 거처였다. 삼장법사가 안장에서 내려 말에서 내리니, 또 산문 왼편에 비석 하나가 서 있었는데 비석에 큰 글자 열 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만수산복지, 오장관동천"이었다. 장로가 말했다. "제자야, 참으로 도관 한 채로구나." 사승이 말했다. "스승님, 이 경치가 밝고 화려하온즉 관 안에 반드시 훌륭한 분이 살고 계실 것이옵니다. 우리가 들어가 보자옵니다. 만일 수행이 이루어져 동쪽으로 돌아갈 때 이곳이 또한 한 경치가 되리이다." 행자가 말했다. "잘 말했구나." 마침내 모두 함께 안으로 들어가니, 또 두 번째 문 위에 춘련 한 쌍이 붙어 있었다. "늙지 않고 오래 사는 신선의 집이요, 하늘과 더불어 같은 수를 누리는 도인의 집이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도사가 큰소리치며 사람을 겁주는구나. 내 늙은 원숭이가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았을 적에, 태상노군의 문 앞에서도 일찍이 이런 말을 본 적이 없노라." 저팔계가 말했다. "아무튼 상관 말고 들어가세, 들어가. 혹 저 도사에게 덕행이 조금이나마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두 번째 문 안에 이르러 보니, 그 안에서 두 어린 동자가 급히 급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차림새가 어떠한지 보라. 뼈가 맑고 정신은 상쾌하니 얼굴빛이 고왔고, 정수리에는 쌍상투를 얹고 짧은 머리가 헝클어졌네. 도포는 저절로 옷깃에 안개를 두르고, 깃옷은 유달리 소매에 바람을 날렸다. 고리 띠는 단단히 용두 매듭으로 졸라맸고, 짚신은 누에고치 솜을 가볍게 감았구나. 풍채가 보통과 달라 범속한 무리가 아니니, 바로 저 청풍과 명월 두 선동이로다. 그 동자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어 나와 맞이하며 말했다. "노스승님, 멀리 오시는데 미처 나가 맞이하지 못했나이다. 부디 앉으시옵소서." 장로가 기뻐하여 두 동자와 함께 정전에 올라가 두루 살펴보았다. 본래 남쪽을 향한 다섯 칸의 큰 전각이었으니,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운 꽃무늬 조각 격자창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 선동이 격자창을 밀어 젖히고는 삼장법사에게 전각으로 들기를 청하니, 안쪽 벽 한가운데에 오색으로 장식한 "천지" 두 글자가 걸려 있었고, 주칠하여 조각한 향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탁자 위에는 황금 향로와 병이 한 벌 놓여 있고, 향로 곁에는 향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삼장법사가 앞으로 나아가 왼손으로 향을 집어 향로에 꽂고 세 바퀴 돌며 예배를 올렸다. 예배를 마치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선동아, 너희 오장관은 참으로 서방의 신선 세계이거늘, 어찌하여 삼청과 사제, 그리고 라천의 여러 신령을 모시지 않고 다만 '천지' 두 글자에만 향불을 올리느냐?" 동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 숨기지 않고 아뢰오리다. 이 두 글자 가운데 위의 것은 예로 보아 오히려 마땅하옵니다마는, 아래의 것은 도리어 저희의 향불을 받기에 부족하옵니다. 이는 저희 스승님께서 겸양하여 꾸며 내신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겸양하여 꾸며 내었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동자가 말했다. "삼청은 저희 스승님의 벗이시오, 사제는 저희 스승님의 옛 친구이옵니다. 구요는 저희 스승님의 후배요, 원진은 저희 스승님의 아랫자리 손님이옵니다." 그 말을 들은 행자는 참지 못하고 그만 웃음을 터뜨려 나동그라질 지경이었다.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무엇이 그리 우습소?" 행자가 말했다. "늙은 원숭이만 귀신 장난을 잘한다더니, 알고 보니 이 도동이 허풍을 잘 꾸며 내는구나!" 삼장법사가 물었다. "그대 스승님은 지금 어디 계시느냐?" 동자가 말했다. "저희 스승님께서는 원시천존께서 간찰을 내리시어 상청천 미라궁에 초청을 받아 혼원도과의 강론을 들으러 가셨사옵니다. 지금 집에 계시지 않나이다." 그 말을 들은 행자는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한마디 호통쳤다. "이 건방진 도동 같으니라구!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주제에 네가 누구 앞에서 귀신 장난을 부리며 무슨 헛된 격식을 차리느냐! 저 미라궁에 누가 태을천선이기에 너희 같은 소 발굽 따위를 불러 무슨 강론을 하느냐!" 삼장법사는 그가 성을 내는 것을 보고 그 동자가 말을 받아 화가 붙어 싸움이 벌어질까 두려워 서둘러 말했다. "오공아, 우선 다투지 마라. 우리가 들어왔다가 곧 나가 버리면 정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느니라. 속담에 '왜가리는 왜가리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였거늘, 저희 스승님이 계시지 않은데 남의 집을 어지럽혀 무엇 하겠느냐? 너는 산문 앞에 가서 말을 풀어 놓고, 사승은 행장을 지키며, 팔계더러는 보따리를 풀게 하여라. 쌀과 양식을 좀 꺼내 그네 솥과 부뚜막을 빌려 한 끼 밥을 지어 먹고, 떠날 때가 되면 섶값으로 몇 푼이나 드리면 그만이니라. 저마다 맡은 일을 따라 하고, 나는 여기서 좀 쉬게 해 다오. 밥을 마치고 나면 곧 길을 떠나자." 그 세 사람은 과연 저마다 맡은 일을 따라 흩어졌다. 그 명월과 청풍은 속으로 아무리 칭찬해도 다하지 못하며 저희끼리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중이로다! 과연 서방의 성스러운 이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하니 참된 원기가 흐려지지 않았구나.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당승을 후히 접대하고 인삼과를 따다가 그에게 먹이라 하시며 옛 정을 표하게 하셨고, 또 그 수하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방비하라 이르셨느니라. 과연 저 세 사람의 몰골은 사납고 완고하며 성질은 거칠었으니, 다행히 곧 그들을 따로 떼어 놓았다. 만일 곁에 붙어 있었다면 인삼과와 상면이나 하였으랴." 청풍이 말했다. "동생아, 저 중이 과연 스승님의 옛 벗인지 아직 알 길이 없으니, 물어나 보자. 잘못되어서는 안 되느니라." 두 동자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여쭙나이다. 스승님께서는 대당에서 서천으로 경전을 구하러 가시는 당삼장이시오니까?" 장로가 답례하며 말했다. "빈승이 바로 그 사람이오. 선동은 어찌하여 내 보잘것없는 이름을 아느냐?" 동자가 말했다. "저희 스승님께서 떠나시며 제자더러 멀리까지 나가 마중하라 분부하셨사옵니다. 그런데 수레 행차가 갑작스러워 영접하지 못했나이다. 스승님께서는 앉으시옵소서. 제자가 차를 달여 올리겠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감당할 수 없는 대접이오." 명월이 급히 자기 방으로 돌아가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떠다 장로에게 올렸다. 차를 다 마시고 나자 청풍이 말했다. "동생아, 스승님의 명을 어겨서는 안 되니, 너와 내가 가서 열매를 따 오자." 두 동자가 삼장법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함께 방으로 들어가, 하나는 금격자를 들고 하나는 단판을 들었으며, 또 비단 수건을 하나 더 가져다 쟁반 밑에 받치고는 곧장 인삼과 동산 안으로 갔다. 청풍이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 금격자로 열매를 두드리고, 명월은 나무 아래에서 단판을 받쳐 들고 기다렸다. 잠시 뒤 열매 두 개가 두드려져 쟁반에 떨어져 담기니, 곧장 앞 전각으로 가져가 받들어 올리며 말했다. "당나라 스승님, 저희 오장관은 땅이 궁벽하고 산이 거칠어 바칠 만한 물건이 없사옵니다. 변변찮은 토산물로 소과 두 개를 올리오니, 잠시 갈증이나 푸시는 데 쓰시옵소서." 그 장로는 그것을 보고 부들부들 떨며 석 자나 물러서서 말했다. "착하고도 착하도다! 올해가 풍년이요 오곡이 익었다마는, 어찌 이 도관에서 흉년이 들어 사람을 잡아먹는단 말이오? 이것은 사흘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거늘, 어찌 그것으로 내 갈증을 풀라 하오?" 청풍이 속으로 말했다. "저 중은 말썽의 판과 시비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뒹굴어 눈에는 살점이 붙고 마음은 범속해졌으니, 우리 신선 집안의 기이한 보배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명월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스승님, 이 물건은 인삼과라 하오니 하나 드셔도 아무 탈이 없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허튼소리! 허튼소리! 저 어린아이의 부모가 잉태하여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겠기에 이제 겨우 낳아 사흘도 되지 않은 것을, 어찌 가져다 과일로 삼단 말이오?" 청풍이 말했다. "참으로 나무에 열린 것이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망령된 소리! 망령된 소리! 나무에서 또 어떻게 사람이 열려 나온단 말이오? 물러 가거라, 차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로다!" 그 두 동자는 갖은 사양을 하며 끝내 먹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쟁반을 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 열매는 또한 기이하여 오래 두지 못하는 터라, 오래 두면 곧 굳어 버려 먹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방에 이르러 한 사람이 하나씩 평상 가에 앉아 그저 실컷 먹어 대기 시작하였다. 아!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구나! 저 도사들이 쓰는 방과 저 부엌은 바짝 붙어 이웃해 있어서, 이쪽에서 조용히 나누는 말이 저쪽에 곧바로 들렸다. 저팔계가 마침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다가, 앞서 금격자를 가져오고 단판을 든다는 말을 듣고는 벌써 마음을 두고 있었는데, 또 당승이 그것이 인삼과인 줄 알아보지 못하여 방으로 가져가 저희끼리 먹는다는 말을 듣자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하나를 얻어 새 맛이나 좀 보랴!" 그러나 제 몸이 무겁고 둔하여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으니, 다만 행자가 오기를 기다려 그와 의논할 작정이었다. 그는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려는 마음도 없이, 때때로 머리를 내밀고 기웃거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행자가 말을 끌고 와서는 회화나무에 매어 두고 곧장 뒤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멍청이가 손을 마구 흔들며 외쳤다. "이리 오시오! 이리 오란 말이오!" 행자가 몸을 돌려 부엌 문 앞에 이르러 말했다. "멍청아, 네가 무얼 그리 떠드느냐? 밥이 모자란 모양이구나. 우선 늙은 중이 배부르게 먹게 두고, 우리가 앞의 큰 인가에 가서 다시 동냥해 먹기로 하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들어오시오. 밥이 적어서가 아니오. 이 도관에 보배가 하나 있는데 형님은 아시오?" 행자가 말했다. "무슨 보배냐?"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말해 준대도 형님은 본 적이 없을 것이오. 갖다 준대도 형님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이가 늙은 원숭이를 놀리는구나. 늙은 원숭이는 오백 년 전에 신선의 도를 찾는답시고 바다 끝 하늘 가를 두루 떠돌았느니라. 그런데 무엇인들 보지 못한 것이 있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인삼과를 본 적이 있으시오?" 행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것은 참으로 본 적이 없구나. 다만 늘 사람들에게서 인삼과가 바로 초환단이라서 사람이 먹으면 몹시 수명을 늘린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여기 있소. 저 동자들이 두 개를 가져다 스승님께 드렸건만 그 늙은 중이 알아보지 못하고 사흘이 안 된 아이라고 하여 감히 먹지 않았소. 저 동자들이 몹시 버릇없어, 스승님이 안 드신다면 우리더러 주는 게 옳거늘 도리어 우리를 속이고 조금 전 이 옆방에서 한 사람이 하나씩 우적우적 씹어 먹어 버렸으니 속이 타서 입에 물이 괴는구려. —어떻게 하면 하나를 얻어 새 맛이나 보겠소? 생각하건대 형님은 좀 민첩하시니 그 동산에 가서 몇 개 훔쳐다 맛이나 보면 어떠시오?" 행자가 말했다. "그까짓 것쯤이야 쉽지. 늙은 원숭이가 가면 손을 대는 대로 잡아 오겠노라." 급히 몸을 빼어 앞으로 곧장 걸어가려 하자 저팔계가 와락 붙들며 말했다. "형님, 내가 들으니 저들이 이 방에서 무슨 금격자를 가져다 친다고 하더이다. 모름지기 일을 단단히 마무리하고 바람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내 알고 있노라, 내 알고 있노라." 그 대성이 은신법 하나를 부려 몸을 감추고 도사들의 방으로 슬쩍 들어가 살펴보니, 그 두 도동은 열매를 먹고 나서 전각에 올라가 당승과 이야기하느라 방에 없었다. 행자가 사방을 둘러보며 무슨 금격자가 있는지 찾았는데, 다만 창살에 붉은 쇠붙이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길이가 두 자쯤 되고 굵기가 손가락만 하였으며, 아래쪽은 마늘 대가리처럼 뭉툭한 끝이 달렸고 위쪽에는 구멍이 있어 그 속에 푸른 털 끈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그가 속으로 말했다. "필시 바로 이 물건이 금격자라 하는 것이로구나." 그는 그것을 내려 도방에서 나와 곧장 뒤쪽으로 들어가 두 짝의 문을 밀어 젖히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아니! 저것은 뜰이로구나!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붉은 난간과 보배로운 계단이요, 굽이굽이 쌓은 돌이 산을 이루었네. 기이한 꽃은 고운 햇살과 고움을 다투고, 비취빛 대나무는 푸른 하늘과 푸름을 겨룬다. 유배정 밖으로 한 굽이 푸른 버들은 연기를 끌어다 놓은 듯하고, 달을 구경하는 대 앞에는 몇 떨기 높은 소나무가 쪽물을 끼얹은 듯하네. 붉고 화려한 것은 비단 둥지 같은 석류요, 푸르고 싱그러운 것은 수놓은 방석 같은 풀이로다. 파랗고 보송보송한 것은 벽사란, 아스라이 흔들리는 것은 시냇물에 임하였네. 붉은 계수나무는 금빛 우물과 오동나무에 비치고, 비단결 같은 회화나무는 붉은 난간과 옥 섬돌 곁에 섰네. 붉기도 하고 희기도 한 겹꽃 복숭아가 있고, 향기롭고도 누런 아홉 가을 국화가 있구나. 해당화 시렁은 모란정에 비치고, 무궁화 대는 작약 밭과 서로 이어졌네. 서리를 업신여기는 군자죽과 눈을 능멸하는 대부송을 아무리 보아도 다 볼 수 없구나. 또 저 학의 마을과 사슴의 집이 있으며, 모난 못과 둥근 연못이 있는데 샘물은 옥 부스러기를 흘리고 땅에는 꽃받침마다 금을 쌓았네. 북풍이 스치면 매화꽃 희게 터지고, 봄이 오면 해당화가 붉은 점을 찍는구나. 참으로 이른바 인간 세상의 제일가는 신선 경치요, 서방의 으뜸인 꽃동산이로다. 행자가 아무리 보아도 다 보지 못하고 있는데, 또 문 하나가 보여 밀어 젖히고 바라보니 저것은 채소밭이었다. 사계절 채소를 두루 심었으니, 시금치와 미나리와 청경채와 생강과 이끼라. 죽순과 참마와 오이와 박과 줄풀 순이요, 파와 마늘과 고수와 부추와 염교라. 상추와 쑥갓과 쓴나물과 표주박과 가지도 모름지기 심어 두었네. 순무와 무는 양 머리처럼 흙에 묻었고, 붉은 비름과 푸른 배추와 자줏빛 갓이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 도사 또한 제 손으로 심어 제가 먹는 도사로구나." 채소밭을 지나니 또 문 하나가 보여 밀어 젖히고 바라보았다. —아니! 한가운데에 큰 나무 한 그루가 보였는데, 참으로 푸른 가지에는 향기가 그득하고 짙푸른 잎이 울창하였으며, 그 잎은 파초처럼 생겼고 곧장 위로 천 자나 솟아 있었으며 뿌리 밑동의 둘레가 일곱 여덟 장이나 되었다. 행자가 나무에 기대어 위를 쳐다보니 남쪽을 향한 가지에 인삼과 하나가 드러나 보였는데 참으로 젖먹이 같았다. 알고 보니 엉덩이 끝에 꼭지가 있어 그 꼭지로 가지 끝에 매달린 채 팔다리를 함부로 움직이고 머리를 끄덕이며 흔들었으니, 바람이 스치는 곳마다 소리가 나는 듯하였다. 행자가 기뻐하며 속으로 칭찬하여 말했다. "좋은 물건이로구나! 과연 보기 드물어라! 과연 보기 드물어라!" 그는 나무에 기대었다가 휙 소리를 내며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 원숭이는 본래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훔치는 일에 제일가는 솜씨를 지녔거늘, 그가 금격자로 한 번 두드리자 그 열매가 퍽 하고 떨어졌다. 그는 따라 뛰어내려 찾았으나 조용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사방의 풀숲을 뒤져 찾아보아도 종내 흔적이 없었다. 행자가 말했다. "이상하구나! 이상해! 생각건대 발이 달린 놈이라 걸어 다니는 모양인데, 걸어간들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였을 터이다. 내 알았다. 틀림없이 정원의 토지신이 늙은 원숭이가 열매 훔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거두어 간 것이로구나." 그는 곧 손가락으로 결을 쥐고 "옴" 자 주문을 외워 정원의 토지신을 불러내니, 토지신이 앞에 나타나 행자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대성께서 소신을 부르셨사오니 무슨 분부이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너는 늙은 원숭이가 천하에 이름난 도둑 두목인 줄 모르느냐. 내가 예전에 반도를 훔치고 어주를 훔쳐 마시며 영단을 훔쳤어도 일찍이 감히 나와 나누어 쓰자고 나서는 자가 없었거늘, 어찌하여 오늘은 열매 하나를 훔치는데 네가 내 몫을 가로채어 갔단 말이냐! 이 열매는 나무에 열린 것이니 하늘을 지나가는 새라도 몫이 있어야 하거늘, 늙은 원숭이가 하나 먹는들 무슨 큰 해가 되겠느냐? 어찌하여 막 떨어뜨리자마자 네가 걷어 갔단 말이냐?" 토지신이 말했다. "대성께서는 소신을 잘못 꾸짖으시나이다. 이 보배는 본래 지선의 물건이옵니다. 소신은 귀선일 뿐이온데 어찌 감히 가져가겠나이까. 맡아 보는 것조차 복이 없어 하지 못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네가 가져가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떨어뜨리자마자 보이지 않느냐?" 토지신이 말했다. "대성께서는 이 보배가 수명을 늘린다는 것만 아시고 그 내력을 아시지 못하시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무슨 내력이 있다는 말이냐?" 토지신이 말했다. "이 보배는 삼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삼천 년에 한 번 열매가 맺히며, 다시 삼천 년이 지나야 비로소 익사옵니다. 짧게 잡아도 만 년에 서른 개밖에 열리지 않사옵니다. 인연 있는 이가 한 번 맡으면 삼백육십 년을 살고 하나를 먹으면 사만 칠천 년을 사옵니다. 그러나 이는 다만 오행과 서로 꺼리는 바가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오행과 꺼린다는 것이냐?" 토지신이 말했다. "이 열매는 쇠를 만나면 떨어지고, 나무를 만나면 말라 죽으며, 물을 만나면 녹아 버리고, 불을 만나면 타 버리고, 흙을 만나면 속으로 들어가나이다. 칠 때는 모름지기 쇠붙이를 써야 떨어져 내리옵니다. 떨어뜨린 뒤에는 쟁반에 비단 수건을 깔아 받쳐야만 하옵니다. 조금이라도 나무 그릇에 닿으면 말라 버려 먹은들 수명을 늘리지 못하옵니다. 먹을 때는 모름지기 사기그릇에 맑은 물로 녹여서 먹어야 하옵니다. 불을 만나면 곧 타 버려 쓸모가 없사옵니다. 흙을 만나면 들어간다는 것은, 대성께서 조금 전 땅 위로 떨어뜨리시자 그것이 곧 흙 속으로 파고들어 간 것이옵니다. 이 흙은 사만 칠천 년이 되었으니 강철 송곳으로 뚫어도 조금도 뚫리지 않사옵니다. 무쇠보다도 서너 푼이나 더 단단하옵니다. 사람이 만약 먹으면 그 때문에 장생하옵니다. 대성께서 믿지 못하시거든 이 땅을 한번 내리쳐 보시옵소서." 행자가 곧 여의금고봉을 빼어 한번 찍어 내리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몽둥이가 튕겨 올라왔으나 흙 위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행자가 말했다. "과연! 과연! 내 이 몽둥이는 돌을 때리면 가루로 부서뜨리고 무쇠에 부딪쳐도 자국을 남기거늘, 어찌하여 이번 한 번에는 조금도 상처를 내지 못하느냐? 그런 말이라면 내가 너를 잘못 꾸짖었구나. 너는 돌아가거라." 그 토지신은 곧 자기 사당으로 돌아갔다. 대성에게는 꾀가 있었다. 나무에 올라가 한 손으로는 격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비단 장삼의 옷자락을 걷어 올려 주머니처럼 만들어 받아 두었다가, 가지를 타고 잎을 헤치며 열매 세 개를 쳐서 옷자락 속에 담고는 나무에서 내려와 곧장 앞으로 나아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저팔계가 웃으며 물었다. "형님, 있소?" 행자가 말했다.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늙은 원숭이에게는 손을 대면 곧 잡히느니라. 이 열매는 사승을 빼놓지도 말고 그를 한번 불러라." 저팔계가 곧 손짓하여 불렀다. "오정아, 이리 오너라." 사승이 행장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형님, 저를 부르시니 무슨 일이시옵니까?" 행자가 옷자락 주머니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동생아, 이것이 무슨 물건인지 좀 보아라." 사승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인삼과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참 잘도 아는구나! 너는 어디에서 그것을 먹어 본 적이 있느냐?" 사승이 말했다. "소제는 비록 먹어 본 적은 없사오나, 예전에 권렴대장으로 있을 때 난여를 모시고 반도연회에 참석하였사옵니다. 그때 해외의 여러 신선이 이 열매를 서왕모께 장수를 축원하며 올리는 것을 본 일이 있사옵니다. 보기는 보았어도 일찍이 먹어 보지는 못하였사옵니다. 형님, 저에게도 조금 맛을 보게 해 주시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형제끼니 한 사람에 하나씩이니라." 그 세 사람은 열매 세 개를 저마다 나누어 먹었다. 저팔계는 밥통이 크고 입도 커서, 하나는 동자들이 먹는 소리를 듣고부터 벌써 군침이 꿈틀거렸거늘 막상 열매를 보자 집어 들고는 입을 크게 벌려 꿀꺽 삼켜 버리고 나서 도리어 눈을 희번덕이며 행자와 사승에게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너희 둘이 먹은 것이 무엇이냐?" 사승이 말했다. "인삼과이오." 저팔계가 말했다. "무슨 맛이냐?" 행자가 말했다. "오정아, 상대하지 마라! 네가 도리어 먼저 먹어 놓고 누구에게 묻는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먹기가 좀 바빴더니 형님들처럼 오물오물 씹어 무슨 맛인지 음미하지 못하였소. 씨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삼켜 버렸단 말이오. 형님, 사람을 도와주려면 끝까지 도와주시오. 이미 이 군침을 돋워 놓았으니 다시 하나를 구해 오면 늙은 돼지가 곱씹어 먹겠소."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너는 참으로 분수를 모르는구나. 이 물건은 저 쌀밥이나 밀가루 음식과는 달라서 닥치는 대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처럼 만 년에 서른 개밖에 열리지 않거늘 우리가 이것 하나를 먹은 것도 인연이 지극히 깊은 것이니 예사가 아니니라. 그만두자, 그만! 넉넉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그 금격자를 창구멍으로 몰래 도사들의 방 안에 던져 넣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멍청이는 줄곧 중얼중얼 투덜거리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그 두 도동이 다시 차를 가져다 올리려고 방으로 들어오다가 저팔계가 아직도 "인삼과를 먹어도 시원치 않으니 하나만 더 얻어먹어야 속이 풀리겠다"고 떠드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청풍이 듣고 마음에 의심을 품으며 말했다. "명월아, 저 긴 주둥이 중이 '인삼과를 하나만 더 먹어야겠다'고 하는 말을 들으셨느냐? 스승님께서 떠나시며 당부하시기를 그 수하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게 방비하라 하셨는데, 혹 저들이 우리 보배를 훔쳐 먹은 것은 아닐까?" 명월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형님, 큰일이오! 큰일이오! 금격자가 어찌하여 땅에 떨어져 있단 말이오! 우리 동산에 가서 한번 보세!" 그 둘은 급히 급히 달려가 보니 과연 정원 문이 열려 있었다. 청풍이 말했다. "이 문은 내가 닫아 둔 것인데 어찌하여 열렸단 말이냐?" 또 급히 정원을 돌아 나가니 채소밭 문도 열려 있었다. 서둘러 인삼과 동산으로 들어가 나무에 기대어 위를 올려다보며 수를 헤아려 보았더니, 이리 뒤져 저리 뒤져 세어 보아도 겨우 스물두 개뿐이었다. 명월이 말했다. "너는 셈을 할 줄 아느냐?" 청풍이 말했다. "내가 하겠노라. 네가 말해 보아라." 명월이 말했다. "본래 열매는 서른 개였소. 스승님께서 동산을 여셨을 때 두 개를 나누어 먹어 스물여덟 개가 남았고, 조금 전 당승에게 먹으라 두 개를 땄으니 스물여섯 개가 되어야 하거늘, 지금은 겨우 스물두 개뿐이니 네 개가 모자라지 않소? 말할 것도 없이 틀림없이 저 무리 악당이 훔쳐 간 것이오. 우리 당승에게 가서 욕이나 하세." 둘은 동산 문을 나와 곧장 전각으로 올라와 당승을 가리키며 앞이니 뒤니 하면서 온갖 더러운 말과 험한 욕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퍼부었고, 도둑이니 쥐새끼니, 냄새나고 누추니 하며 속이 상한 대로 마구 떠들어 댔다. 당승이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말했다. "선동들아, 너희가 떠드는 것이 무어냐? 좀 가라앉아라. 할 말이 있거든 천천히 말해도 좋거늘, 어찌하여 되지도 않는 말을 함부로 하느냐?" 청풍이 말했다. "당신 귀가 먹었소?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단 말이오? 당신이 인삼과를 훔쳐 먹었거늘 어찌 내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오?" 당승이 말했다. "인삼과가 생긴 것이 어떠하단 말이냐?" 명월이 말했다. "조금 전 가져다 당신에게 먹으라 하였을 때 젖먹이 같다고 하지 않았소?" 당승이 말했다. "아미타불! 그 물건을 한번 보자마자 나는 간담이 서늘하였거늘, 도리어 감히 훔쳐 먹었겠소! 군침이 도는 병이 들었다 한들 감히 도둑질을 하지는 않소. 남을 잘못 의심하지 마오." 청풍이 말했다. "당신이 먹지 않았다 한들 당신 수하 사람들이 훔쳐 먹었을 것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말 또한 일리가 있구나. 우선 떠들지 말고 내가 저들을 물어 보리다. 과연 훔쳐 먹었다면 그대들에게 물어 내게 하리다." 명월이 말했다. "물어 내라고! 돈이 있다 한들 어디 가서 사 온단 말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돈이 있어도 살 곳이 없다 하나, 속담에 '인의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다' 하였거늘, 그대들에게 절이라도 하여 사과하게 하면 그만이니라. —아직 저들인지 아닌지도 모르지 않소." 명월이 말했다. "어찌 저들이 아니겠소? 저들이 저기서 나누어 가진 것이 고르지 못하다고 아직도 떠들고 있소." 삼장법사가 소리쳐 불렀다. "제자들아, 다들 이리 오너라." 사승이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큰일이오! 일이 드러났소! 스승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어린 도동들이 마구 욕을 하고 있으니, 지난일의 소문이 새어 나간 것이지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행자가 말했다. "사람 잡아먹을 부끄러움이로다! 이까짓 것 먹고 마시는 일이려니, 말을 꺼내면 우리가 군것질을 한 것이 드러나니 다만 시인하지 말라." 저팔계가 말했다. "옳소, 옳소. 속여 넘기세." 그 세 사람은 할 수 없이 부엌에서 나와 전각으로 올라갔다. 아! 결국 그들에게 어떻게 잡아뗄지는 모르겠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5회 진원선감착취경승(鎭元仙趕捉取經僧) · 손행자대료오장관(孫行者大鬧五莊觀) 말하자면, 그 형제 세 사람이 전각 위로 올라가 스승님께 아뢰었다. “밥이 거의 다 익었다 하기에 저희를 부르신 까닭이 무엇이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밥을 묻는 것이 아니니라. 이 도관에는 인삼과라는 것이 있어 아이와 같은 생김새를 한 것인데, 너희 가운데 어느 놈이 그것을 훔쳐 먹었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저는 솔직한 사람이라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사옵니다.” 청풍이 말했다. “웃는 저놈이 바로 그놈이올시다! 웃는 저놈이 바로 그놈이올시다!” 행자가 호통을 치며 말했다. “내가 원래 타고난 것이 이런 웃는 얼굴이거늘, 너희가 무슨 과일을 잃어버렸다고 하여 내가 웃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드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성을 거두어라. 우리는 출가한 몸이니 거짓말을 하지 말고, 양심을 속이는 음식도 입에 대지 말지니라. 참으로 그의 것을 먹었다면 그에게 예를 갖추어 사과하면 그만이거늘, 무엇 때문에 이다지도 발뺌하려 드느냐?” 행자는 스승님의 말씀에 이치가 있음을 알고서 마침내 사실대로 털어놓으며 말했다. “스승님,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옵니다. 저팔계가 옆방에서 그 두 도동이 무슨 인삼과를 먹는 이야기를 엿들었나이다. 그놈이 자기도 한 개쯤 새로 맛을 보고 싶다 하여, 저더러 가서 세 개를 따 오라 하였사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가 한 사람씩 하나씩 나누어 먹었나이다. 이제 먹을 것은 이미 먹었으니 장차 어찌하고자 하시옵니까?” 명월이 말했다. “우리 과일 네 개를 훔쳐 놓고도 저 중이 도둑이 아니라고 우기다니!” 저팔계가 말했다. “아미타불! 네 개를 훔쳤다면서 어찌하여 세 개만 내어놓고 나누었단 말이냐? 미리부터 한 개를 슬쩍 빼돌릴 궁리를 하였구나!” 그 멍청이는 도리어 큰 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두 선동이 캐물어 사실임을 알아내자 더욱 거세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 바람에 대성은 강철 같은 어금니를 뼈그럭거리며 물고 불꽃 같은 눈을 부릅뜨고는, 여의봉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또 참고 또 참다가 말했다. “이 도동 녀석들이 이토록 가증스럽구나. 면전에서 사람을 때리는 정도라면 그만이거니와, 이런 모욕을 당했으니 내 그놈들에게 아주 뒤끝 없는 계책을 하나 선물하여, 모두 함께 입에도 대지 못하게 만들어 주리라!” 과연 좋은 행자로다, 뒷머리의 털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운을 불어넣고 “변하여라!” 외치니, 가짜 행자로 변하여 삼장법사를 따라붙어 오능, 오정과 함께 도동들의 욕설을 견디며 참아 내게 하였다. 그의 진신은 영혼을 빠져나가 구름을 타고 훌쩍 뛰어올라 곧장 인삼과 동산으로 가서, 여의봉을 빼어 들고 나무를 향해 펑펑 한 방 내리치고는, 산을 밀고 고개를 옮기는 신력으로 나무를 밀어 넘어뜨렸다. 가련하게도 잎은 떨어지고 가지는 갈라지며 뿌리는 흙 밖으로 솟구쳤으니, 도인의 초환단이 끊어져 버렸다! 대성이 나무를 넘어뜨리고서 가지 위에서 과일을 찾아보았으나, 어디 반 개나 있겠는가? 본래 이 보물은 쇠붙이를 만나면 떨어지는 법인데, 그의 봉 끝이 금으로 감싼 물건이요, 철 또한 다섯 가지 쇠붙이에 속하는 것이라 두드리면 진동하여 떨어졌고, 떨어진 뒤에는 흙을 만나 스며들어 버리니, 위에는 과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좋다! 좋다! 좋다! 모두 흩어져 불이나 꺼져라!” 그는 쇠몽둥이를 거두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 털을 한 번 털어 자기 몸에 거두어들였다. 그 사람들은 모두 육안의 범인이라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선동들이 한참이나 욕을 퍼붓고 나자 청풍이 말했다. “명월아, 이 중들은 참으로 참을성이 많구나. 우리가 닭을 꾸짖듯이 이 한참 동안 욕설을 퍼부었건만 통 대답 한마디가 없으니, 필시 그들이 훔쳐 먹지 않았을 것이로다. 혹 나무가 높고 잎이 무성하여 헤아림이 분명하지 않았을 터이니, 그들을 헛되이 욕하지 말자. 너와 내가 다시 가서 조사해 보자꾸나.” 명월이 말했다. “그 말이 옳소.” 그 둘은 과연 또 동산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다만 나무는 넘어져 있고 가지는 갈라져 있으며, 과일은커녕 떨어진 잎조차 보이지 않았다. 놀란 청풍은 다리에 힘이 풀려 나동그라졌고, 명월은 허리가 녹아내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두 사람은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졌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삼장법사가 서쪽으로 만수산에 이르렀건만, 오공이 초환단을 끊어 버렸구나. 가지는 갈라지고 잎은 떨어져 신선의 뿌리가 드러났으니, 명월과 청풍은 간담이 서늘하구나. 그 둘은 땅바닥에 쓰러져 넋이 나간 듯 말을 뒤섞으며 다만 외쳐 댔다.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우리 오장관의 단두를 망쳐 놓고 우리 신선 가문의 혈통을 끊어 놓았으니, 스승님이 돌아오시면 우리 둘이 무슨 낯으로 여쭙겠느냐?” 명월이 말했다. “사형님, 떠들지 마소서. 우리 우선 의관을 바로 하고 이 중들을 놀라게 하지 맙시다. 이런 짓을 한 자는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저 털북숭이 얼굴에 뢰공 같은 부리를 한 그놈이올시다. 그놈이 영혼을 빠져나가게 하는 술법을 부려 우리 보물을 망쳐 놓았단 말이옵니다. 만일 그놈과 따져 묻는다면 그놈은 필시 발뺌할 것이요, 다투다 보면 곧 손을 맞잡고 치고받게 될 것이옵니다. 사형님, 우리 둘이 어찌 그 넷을 당해 내겠나이까? 차라리 그들을 한번 속여 보는 것이 나으리이다. 과일이 줄지 않았고 우리가 잘못 세었다고만 말하고, 도리어 그들에게 잘못을 빌어 버립시다. 그들의 밥은 이미 익었으니, 그들이 밥 먹을 때에 반찬을 조금 더 보태 주시옵소서. 그들이 한 사람씩 공기를 들고 있으면 사형님은 문 왼쪽에, 저는 문 오른쪽에 서 있다가,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리고 자물쇠로 채워 이 여러 겹의 문을 모두 잠가 두고 놓아 보내지 맙시다. 스승님이 돌아오시거든 그분 뜻대로 처분하시게 하시옵소서. 그 중이 또한 스승님의 옛 벗이니, 스승님이 용서하셔도 그것은 스승님의 인정이요, 용서하지 않으셔도 우리는 도둑을 붙잡아 둔 셈이 되니, 대체로 우리 죄는 면할 수 있을 것이올시다.” 청풍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옳소! 옳소!” 그 둘은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로 기쁜 빛을 얼굴에 띠어 갖추어, 뒷동산에서 곧장 전각 위로 올라와 당승에게 허리를 굽히고 몸을 조아리며 말했다. “스승님, 아까 저희 말이 거칠고 속되어 몹시 무례하였사오니, 괴이쩍게 여기지 마소서, 괴이쩍게 여기지 마소서.” 삼장법사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청풍이 말했다. “과일은 줄지 않았사옵니다. 다만 나무가 높고 잎이 무성하여 분명히 보지 못하였을 뿐이옵니다. 방금 다시 가서 세어 보니 처음 그 수효 그대로이옵니다.” 그러자 저팔계가 남의 말꼬리를 잡아 비틀며 큰소리로 말했다. “이 도동 녀석, 나이 어려 분별도 없으면서 함부로 욕설을 퍼붓고, 입을 놀려 남을 저주하며, 우리를 헛되이 도둑으로 몰았단 말이냐! 사람 구실도 못할 놈 같으니라!” 행자는 마음속으로는 훤히 알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아무 말도 않았다. 다만 속으로 가만히 이렇게 생각했다. “거짓말이로다! 거짓말이로다! 과일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거늘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필시 죽은 이를 살려 되돌리는 법이 있는 모양이구나.”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밥을 퍼 오너라. 우리가 먹고 나서 길을 떠나자꾸나.” 그러자 저팔계가 밥을 퍼러 가고 사승이 탁자와 의자를 바로 놓았다. 두 동자는 부리나케 반찬을 가져왔으니, 장에 절인 오이, 장에 절인 가지, 술지게미에 버무린 무, 초에 담근 강낭콩, 소금에 절인 토란, 데쳐 낸 갓 따위를 일곱 접시 여덟 접쯤 차려 사부와 제자들에게 밥을 먹게 하였다. 또 좋은 차 한 주전자와 찻잔 두 개를 가져다 좌우에서 시중을 들었다. 그 사부와 제자 네 사람이 막 공기를 들려는 순간, 이 동자들이 한쪽에 한 명씩 서 있다가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리고는 두 개의 쇠고리가 달린 동자물쇠 하나를 꽂아 잠가 버렸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이 도동아, 네가 잘못 알고 있구나. 너희 고장 풍속은 좋지도 않아, 도대체 어찌하여 문을 닫아걸고 안에서 밥을 먹느냐?” 명월이 말했다. “그러하오, 그러하오. 어쨌든 밥이나 든든히 먹고 나서 문을 열어 주겠소.” 청풍이 욕설을 퍼부으며 말했다. “이놈아, 이 탐욕스럽고 남의 것을 훔쳐 먹는 머리 깎인 도둑놈 같으니! 네가 내 선과를 훔쳐 먹었으니 이미 남의 밭과 동산의 과일을 제멋대로 먹은 죄를 뒤집어써도 마땅하거늘, 도리어 내 신선 나무까지 밀어 넘어뜨리고 우리 오장관의 신선 뿌리를 망쳐 놓고서도 아직 변명이나 하려 드느냐! 네놈이 서역에 이르러 부처님의 존안을 뵐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요람을 등 뒤로 흔들며 다시 환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는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마음속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 무거워졌다. 그 동자는 앞산문과 둘째 산문에 모두 자물쇠를 채워 놓고는, 또 정전 문 앞으로 와서 악한 말과 모진 말로 도둑이니 도둑이니 하며,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퍼붓다가야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마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당승이 행자를 원망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아, 번번이 사고만 치는구나! 네가 그의 과일을 훔쳐 먹었으면 그의 분풀이를 좀 받아 주고 욕을 몇 마디 듣는 것으로 그칠 일이지, 어찌하여 또 그의 나무까지 밀어 넘어뜨렸단 말이냐! 이런 사정으로 말하자면 고소장을 올리게 되면 네 애비가 벼슬을 한다 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걱정 마시옵소서. 저 동자들이 모두 잠자러 갔으니, 그들이 깊이 잠이 들기만 기다렸다가 우리가 밤을 이어 길을 떠나면 되옵니다.” 사승이 말했다. “형님, 여러 겹의 문이 모두 자물쇠로 잠겼고 단단히 닫혀 있는데 어찌 나갈 수 있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상관 말게! 상관 말게! 내게는 내 방식이 있으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재주 없는 게 걱정이지, 재주 있는 게 무어 걱정이냐! 너는 변신해 무슨 벌레나 거머리가 되어 창살 구멍으로 훌훨 날아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변신 못하는 우리만 남아 남의 죄를 뒤집어쓸 신세로다!” 당승이 말했다. “저놈이 그런 짓을 꾸며 우리를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면, 내가 옛 경문을 외울 터인데 그놈이 어찌 견디어 내겠느냐!”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는 근심스러우면서도 웃음을 띠며 말했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오? 저는 불교에 《능엄경》과 《법화경》, 《공작경》과 《관음경》, 그리고 《금강경》 같은 경전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 무슨 옛 경문이라는 것을 들어 본 적은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너는 모르는구나. 내 정수리에 쓰고 있는 이 고삐가 바로 관음보살님이 우리 스승님께 내려 주신 것이니라. 스승님이 나를 꾀어 쓰게 하셨는데, 뿌리를 내린 것처럼 되어 벗겨 낼 엄두도 낼 수 없거늘, 이름 하여 《긴고아주》라 하고 또 《긴고아경》이라 하느니라. 스승님이 외우신다는 옛 경문이 바로 이것이니라. 다만 그것을 외우기 시작하면 내 머리가 아파 오니, 이런 법이 있어 나를 괴롭히시는 것이니라. 스승님, 외우지 마시옵소서. 제가 결코 스승님을 저버리지 않고 모두 함께 나가게 하오리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하늘은 어두워지고, 어느새 동쪽 하늘에 달이 솟아올랐다. 행자가 말했다. “이때는 온갖 소리가 잦아들고 얼음바퀴 같은 달이 환히 비치니, 바로 떠나기에 알맞구나.”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헛소리 말게. 문이란 문은 모두 잠겨 닫혔는데 어디로 나간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 재주를 똑똑히 보게!” 과연 좋은 행자로다, 여의봉을 손에 쥐고 자물쇠를 여는 법술을 하나 써서 문을 향해 한 번 가리키니, 다만 턱 하고 소리 한 번이 들리더니 여러 겹 문의 쇠고리가 모두 떨어져 나가며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짝이 활짝 열렸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재주로다! 대장장이를 불러다 쇠줄을 쪼아 내게 한들 또한 이렇게 시원스럽지는 못하리라!” 행자가 말했다. “이런 문쯤이야 무엇이 대단하냐! 남천문이라도 한 번 가리키면 열리느니라.” 그리고 스승님을 모시고 문을 나서 말에 오르게 하니, 저팔계가 짐을 메고 사승이 말고삐를 잡아 챙긴 채 곧장 서쪽 길로 나아갔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우선 천천히 가 있어라. 내 저 두 동자가 한 달쯤 푹 자도록 돌보아 주고 가리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그들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되느니라. 그리하면 또 재물을 얻고 사람을 다치게 한 죄가 되는 것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저도 아옵니다.” 행자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그 동자들이 자고 있는 방문 밖으로 갔다. 그의 허리에는 졸음벌레가 들어 있었으니, 본래 동천문에서 증장천왕과 내기를 하다가 따 온 것이었다. 그것을 두 마리 꺼내어 창 구멍으로 튕겨 넣으니, 곧장 그 동자들의 얼굴에 날아가 붙었고, 그들은 코를 골며 깊이 잠이 들어 깨어날 가망이 없었다. 그제야 그는 구름을 타는 걸음을 재촉하여 삼장법사를 따라잡고, 큰길을 따라 줄곧 서쪽으로 내달았다. 이 밤새 말발굽을 쉬지 않고 달려 다만 날이 밝을 때까지 이르렀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이 나를 죽이는구나! 네 입 때문에 나까지 덤터기를 쓰고 하룻밤을 꼬박 못 잤단 말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저 원망만 하지 마시옵소서. 날이 밝았으니 스승님은 우선 이 길가 숲 속에서 대강 쉬시며 기력을 보태신 뒤에 다시 가시지요.” 그 장로는 하는 수 없이 말에서 내려 소나무 밑동에 기대어 잠시 참선 자리를 삼아 앉았고, 사승은 짐을 내려놓고 졸았으며, 저팔계는 돌을 베고 누워 잠이 들었다. 손대성만은 별다른 심정이 있는지, 보라, 그가 나무 위로 뛰어올라 가지를 잡고 흔들며 장난을 치고 있지 않은가. 네 사람이 쉬고 있는 동안의 일은 이쯤 해 두겠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대선은 원시궁에서 모임이 파한 뒤 무리의 작은 신선들을 거느리고 도솔궁을 벗어나, 곧장 요지의 하늘에서 내려와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내려앉으니, 어느새 만수산 오장관의 문 앞에 이르러 있었다. 살펴보니 다만 관문이 크게 열려 있고 땅이 깨끗이 쓸려 있었다. 대선이 말했다. “청풍과 명월이 제법 쓸 만하구나. 평소라면 해가 석 장이나 높이 떠도 허리 한 번 펴지 않더니, 오늘 우리가 없는 사이에 도리어 일찍 일어나 문을 열고 마당을 쓸었구나.” 무리의 작은 신선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전각 위에 이르러 보니 향불의 불씨는 온데간데없고 사람의 자취도 모두 사라졌으며, 명월과 청풍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리의 신선들이 말했다. “그 둘은 우리가 없는 틈을 타서 물건을 챙겨 달아난 모양이올시다.” 대선이 말했다. “어찌 그런 이치가 있겠느냐! 신선을 닦는 사람이 감히 이런 나쁜 마음을 품은 일을 저지를 리가 없느니라. 필시 어젯밤에 문을 닫는 것을 잊고 가서 잠이 들었으니, 오늘 아침에도 아직 깨지 못한 것이로다.” 무리의 신선들이 그들의 방문 앞에 가서 보니, 참으로 방문이 닫혀 있고 그 안에서 코를 골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쪽에서 문을 두드리며 마구 불렀으나 어찌 깨워 낼 수 있겠는가? 무리의 신선들이 문짝을 들어 젖히고 침상에서 끌어내렸으나, 또한 그저 깨지 않을 뿐이었다. 대선이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선동들이로구나! 신선이 된 사람은 정기가 넘쳐 다시는 잠을 생각하지 않거늘, 어찌하여 이토록 피곤하단 말이냐? 혹 누가 그들에게 장난을 쳐 놓은 것이 아니냐? 어서 물을 가져오너라.” 한 동자가 급히 물 반 잔을 떠다 올렸다. 대선이 주문을 외우고는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어 그들의 얼굴에 뿜으니, 곧 잠의 마귀가 풀려 나갔다. 두 사람이 바야흐로 깨어나 홀연 눈을 비비며 얼굴을 쓸고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알아보건대 선사이신 여세동군과 선형들이었다. 놀란 청풍이 머리를 조아리고 명월이 머리를 땅에 대고 절하며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스승님의 옛 벗이라던 자들이 본래 동쪽에서 온 중들로서, 한 무리의 강도였사옵니다. 몹시 사납고 포악하였나이다!” 대선이 웃으며 말했다. “놀라지 말고 차분히 말해 보아라.” 청풍이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지난날 스승님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과연 동쪽 땅에서 온 당승 일행이 왔사옵니다. 모두 네 명의 중에 말까지 합쳐 다섯이었나이다. 제자가 감히 스승님의 분부를 어길 수 없어 온 까닭을 물어 보고서 인삼과 두 개를 따다 올렸사옵니다. 그 장로는 속된 눈과 어리석은 마음이라 우리 신선 가문의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였나이다. 그것을 사흘이 채 안 된 갓난아이라 하시며 거듭 잡수시지 않으시기에, 제자가 하나씩 먹어 버렸사옵니다. 그런데 그의 수하에 세 제자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손씨 성을 가진 자가 있어 이름을 오공 행자라 하였사옵니다. 그가 먼저 과일 네 개를 훔쳐 먹었나이다. 제자들이 그에게 가서 따져 물으며 사실대로 몇 마디 하였더니, 그는 용납하지 않고 몰래 영혼을 빠져나가게 하는 수단을 부렸사옵니다. 괴롭나이다!” 두 동자가 이 대목에 이르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였다. 무리의 신선들이 말했다. “그 중이 너희를 때리기라도 하였단 말이냐?” 명월이 말했다. “때리지는 않았사옵니다. 다만 우리 인삼과수를 때려 넘어뜨렸을 뿐이옵니다.” 대선이 그 말을 듣고도 조금도 성을 내지 않으며 말했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너희는 저 손씨 성을 가진 자가 또한 태을산선으로서 일찍이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적이 있고 신통이 광대하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이미 보물을 쓰러뜨렸거든 너희가 그 중들을 알아보겠느냐?” 청풍이 말했다. “모두 알아보옵니다.” 대선이 말했다. “알아본다면 모두 나를 따라오너라. 무리 제자들은 모두 형구를 챙겨 놓고 내가 돌아와 그를 칠 때를 기다려라.” 무리의 신선들이 분부를 받들었다. 대선이 명월과 청풍과 함께 상서로운 빛을 타고 올라 삼장법사를 뒤쫓으니, 잠깐 사이에 이미 천 리를 가 버렸다. 대선이 구름 위에서 서쪽을 바라보아도 당승이 보이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니 도리어 구백 리나 더 지나쳐 버렸다. 본래 그 장로는 밤새 말발굽을 쉬지 않고 달려 고작 백이십 리 길을 갔을 뿐인데, 대선의 구름은 한 번 솟구치는 것에 구백 리나 지나쳐 버린 것이었다. 선동이 말했다. “스승님, 저 길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이가 당승이옵니다.” 대선이 말했다. “나도 이미 보았다. 너희 둘은 돌아가 밧줄을 마련해 두어라. 내가 몸소 그를 잡으러 가마.” 청풍이 먼저 돌아간 일은 이쯤 해 두겠다. 그 대선이 구름을 내려놓고 몸을 한 번 흔들어 변신하니, 걸어 다니는 전진 도인으로 변하였다. 그가 어떤 모습인가 하면, 기운 옷은 헝겊 조각을 백 군데나 기워 붙인 도포 한 벌이요, 두른 것은 여공이 매는 끈 한 가닥이었다. 손에는 사슴 꼬리로 만든 먼지떨이개를 흔들고, 어고라는 북을 가볍게 두드렸다. 세 귀 달린 짚신을 발에 꿰고, 구양건으로 머리를 둘렀다. 바람이 소매에 가득 부니 옷자락이 펄럭이고, 입으로는 《월아고》를 흥얼거렸다. 곧장 나무 아래로 와서 당승을 향해 크게 외치며 말했다. “장로시여, 빈도가 인사를 올리나이다.” 그 장로가 황급히 몸을 굽혀 답례하며 말했다. “실례하였소이다! 실례하였소이다!” 대선이 물었다. “장로께서는 어느 지방에서 오시는 길이오? 어찌하여 길 한가운데서 좌선을 하고 계시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빈승은 동쪽 땅 대당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라는 분부를 받고 가는 자이옵니다. 이곳을 지나다가 잠시 한숨 쉬어 가는 것일 뿐이옵니다.” 대선이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장로께서 동쪽에서 오시다가 황량한 산을 지나오신 적이 있으시옵니까?” 장로가 말했다. “선궁이 어느 보배로운 산인지 알지 못하겠소이다.” 대선이 말했다. “만수산 오장관이 바로 빈도가 기거하는 곳이올시다.” 행자가 그 말을 듣자, 마음속에 담아 둔 것이 있는 사람이라 황급히 나서서 대답하며 말했다. “지나지 않았소! 지나지 않았소! 우리는 윗길로만 걸어왔을 뿐이오.” 그 대선이 행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으며 말했다. “이놈의 건방진 원숭이 같으니! 네가 누구를 속이려 드느냐? 너는 내 도관에 들어와 내 인삼과수를 때려 넘어뜨리고는, 밤을 이어 여기까지 달아나 와 놓고도 아직 자백하지 않고 무얼 그리 감추려 드느냐? 도망치지 마라! 어서 일찍 내 나무를 돌려주러 가자!” 그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 노여움이 치밀어, 쇠몽둥이를 빼어 들고 사정을 따질 겨를도 없이 대선을 향해 머리 위로 내리쳤다. 대선이 몸을 옆으로 비켜 피하더니 상서로운 빛을 밟고 곧장 허공으로 올라갔다. 행자도 구름을 타고 급히 뒤쫓아 올라갔다. 대선이 허공 한가운데서 본모습을 드러내었으니, 그가 어떻게 차려입었는가 하면, 머리에는 자금관을 쓰고 근심 없는 학창의를 걸쳤다. 발에는 신을 꿰고 허리에는 비단 띠를 둘렀다. 몸은 동자 같고 얼굴은 미인과 같았다. 턱 밑에는 수염 세 가닥이 날리고 귀밑에는 까마귀 깃 같은 머리칼이 겹겹이 내려왔다. 행자를 맞이하되 병기는 없고, 다만 옥으로 만든 먼지떨이개 하나를 손에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 행자는 높낮이도 가리지 않고 몽둥이를 마구 휘둘러 댔다. 대선은 옥으로 만든 먼지떨이개로 왼쪽을 막고 오른쪽을 가리며 그의 두세 합을 견디어 내더니, 소매 속에 천지를 담는 수단을 하나 써서, 구름 위에서 도포 소매를 바람을 받아 가볍게 한 번 펼치니, 쓱 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다가와 네 중과 말까지 한 소매에 통째로 뒤집어 담아 버렸다. 저팔계가 말했다. “큰일 났다! 우리가 모두 자루 속에 담겨 버렸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멍청아, 자루가 아니라 우리가 그의 옷소매 속에 갇혀 버린 것이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그까짓 것쯤이야 걱정할 것 없지. 내가 쇠스랑으로 한바탕 찍어 구멍을 내고 밑으로 빠져나가 버린 뒤, 그저 그가 부주의하여 단단히 담지 못해 우리가 빠져 떨어졌다고 하면 그만이로다.” 그 멍청이가 쇠스랑을 마구 찍어 보았으나 어디 찍혀 들어가겠는가? 손으로 만져 보면 비록 부드러운 것 같아도, 찍어 보면 쇠보다도 더 단단하였다. 그 대선이 상서로운 구름을 돌려 곧장 오장관으로 내려앉아 자리에 앉더니 제자들에게 밧줄을 가져오라 일렀다. 무리의 작은 신선들이 하나하나 시중을 들었다. 보라, 그가 소매 속에서 꼭두각시 인형을 집어내듯 하나씩 꺼내는 것이었다. 당승을 꺼내어 정전 처마 기둥에 결박하고, 또 그의 세 제자를 꺼내어 기둥 하나마다 한 사람씩 묶어 두었으며, 말도 끌어내어 뜰 아래 매어 두고 여물을 주고, 행랑은 처마 밑에 내던져 두었다. 또 말했다. “제자들아, 이 중은 출가한 사람이니 칼과 창을 쓸 수 없고 쇠도끼를 더할 수도 없느니라. 우선 가죽 채찍을 가져다가 한바탕 때려 내 인삼과의 분풀이를 하게 하여라!” 무리의 신선들이 즉시 채찍 하나를 가져왔으니, 그것은 무슨 소가죽이나 양가죽, 노루가죽이나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 용의 가죽으로 만든 칠성채찍으로서 물에 담가 두었던 것이었다. 힘센 작은 신선 하나에게 채찍을 쥐게 하니 그가 말했다. “스승님, 먼저 어느 놈을 칠까 하옵니까?” 대선이 말했다. “당삼장이 어른 노릇을 하면서 예를 갖추지 못하였으니 먼저 그를 치거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 그 늙은 중은 매를 견디지 못하리라. 만일 한바탕 채찍질에 상해 버린다면 그것은 내가 지은 업이 아니겠느냐?” 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말했다. “선생님이 잘못하셨소. 과일을 훔친 것도 나요, 과일을 먹은 것도 나요, 나무를 밀어 넘어뜨린 것도 나인데, 어찌하여 나를 먼저 치지 않고 그를 치려 하시옵니까?” 대선이 웃으며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가 말이 몹시 드세구나. 그럼 이렇게 하여 먼저 그를 쳐라.” 작은 신선이 물었다. “몇 대나 칠까 하옵니까?” 대선이 말했다. “과일 수효대로 서른 대를 쳐라.” 그 작은 신선이 채찍을 휘둘러 곧장 때리기 시작하였다. 행자는 신선 가문의 법력이 클까 두려워 두 눈을 부릅뜨고 어디를 치는지 지켜보았다. 본래 다리를 치는 것이었다. 행자가 허리를 비틀며 “변하여라!” 외치니, 두 다리가 무쇠 다리로 변하였으니 어디 한번 쳐 보라는 것이었다. 그 작은 신선이 한 대 한 대 서른 대를 때리고 나니, 하늘은 벌써 한낮을 지나 오후로 기울어 있었다. 대선이 또 분부하며 말했다. “당삼장이 훈계를 엄히 하지 못하여 제자를 놓아 두고 제멋대로 날뛰게 한 죄도 마땅히 쳐야 하느니라.” 그 신선이 또 채찍을 휘둘러 때리려 하자 행자가 말했다. “선생님이 또 잘못하셨소. 과일을 훔칠 때에 우리 스승님은 알지 못하셨소. 그는 전각 위에서 그대의 두 동자와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이는 우리 형제들이 저지른 짓이오. 훈계를 엄히 하지 못한 죄가 있다 한들 제가 제자로서 마땅히 대신 맞아야 하니, 다시 나를 치시옵소서.” 대선이 웃으며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는 비록 교활하고 완고하기는 하나 도리어 효심이란 것이 조금은 있구나. 그렇다면 또 그를 쳐라.” 작은 신선이 또 서른 대를 때렸다. 행자가 고개를 숙여 두 다리를 들여다보니, 두 다리가 밝은 거울처럼 온통 반들반들하게 때려져 있었으나 조금도 아프거나 가려운 줄을 알지 못하였다. 이때 하늘이 어두워지려 하자 대선이 말했다. “우선 채찍을 물에 담가 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그를 고문하여 치게 하라.” 작은 신선이 우선 채찍을 거두어 물에 담그고는 저마다 방으로 돌아갔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모두 잠자리에 든 일은 이쯤 해 두겠다. 그 장로가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세 제자를 원망하여 말했다. “너희가 재난을 일으켜 놓고는 도리어 나를 이곳에 끌어들여 죄를 받게 하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행자가 말했다. “우선 원망은 접어 두시옵소서. 매를 맞아도 먼저 나를 칠 터이니 스승님은 아직 맞은 일도 없거늘, 도리어 한탄만 하시고들 있단 말이옵니까?” 당승이 말했다. “비록 매를 맞지는 않았어도 묶여 있는 몸이 아프구나.” 사승이 말했다. “스승님, 여기 묶인 채로 함께 곁들여 있는 사람도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모두 떠들지 말게. 잠시 있다가 길을 떠나세.”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또 헛된 수작을 부리시는구려. 여기는 삼으로 꼰 밧줄에 물까지 뿜어 단단히 동여매어 있는걸, 전각에 갇혀 있을 때처럼 형님이 자물쇠 여는 법술을 부려 문을 열고 나가는 수가 어디 있소!” 행자가 말했다. “자랑하는 말이 아니니라. 저 삼 가닥으로 꼰 밧줄에 물을 뿜었다 한들, 사발만 한 굵기의 종려나무 밧줄이라도 다만 가을바람으로 여길 뿐이니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어느새 온갖 소리가 잦아들었으니, 바로 하늘 거리마저 인적이 끊긴 한밤이었다. 과연 좋은 행자로다, 몸을 조금 작게 하여 포승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스승님, 가시지요!” 사승이 놀라며 말했다. “형님, 우리도 좀 살려 주시오!” 행자가 말했다. “조용히! 조용히!” 그는 삼장법사를 풀어 주고 저팔계와 사승을 내려놓았으며, 가사를 여며 입고 말에 안장을 얹어 매고, 처마 밑에서 행랑을 챙겨 들고는 함께 관문을 나섰다. 또 저팔계에게 일렀다. “너는 저 언덕 가의 버드나무 넉 그루를 베어 오너라.” 저팔계가 말했다. “그것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쓸 데가 있으니 어서 빨리 가져오너라!” 그 멍청이가 제법 힘이 있는지라 가 보니, 주둥이로 한 그루씩 들이받아 넉 그루를 넘어뜨리고는 한 아름에 안아 와 버렸다. 행자가 가지 끝을 꺾어 버리고 형제 두 사람과 함께 다시 안으로 들어가, 원래의 밧줄을 그대로 기둥에 다시 매어 두었다. 그 대성이 주문을 외우고 혀끝을 깨물어 피를 나무에 뿜으며 “변하여라!” 외치니, 한 그루는 장로로 변하고 한 그루는 자기 자신으로 변하며, 나머지 두 그루는 사승과 저팔계로 변하였다. 모두 얼굴빛이 똑같고 생김새가 조금도 다르지 않아, 물어 보면 대답하고 이름을 부르면 응답하였다. 그 둘은 그제야 발걸음을 떼어 스승님을 따라잡았다. 이 밤도 여전히 말발굽을 쉬지 않고 오장관을 벗어나 달아났다. 다만 날이 밝을 때까지 걸어가는데, 그 장로가 말 위에서 비틀거리며 졸고 있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외치며 말했다. “스승님이 형편없구려! 출가한 사람이 어찌 이토록 고단하시단 말이옵니까? 내가야 천 밤을 잠자지 않아도 피곤한 줄을 모르거늘. 우선 말에서 내리시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스승님을 비웃지 않게, 산비탈 아래 바람을 막고 기운이 모이는 곳에 잠시 숨어 쉬었다가 갑시다.” 그 사부와 제자가 길에서 잠시 머무는 이야기는 이쯤 해 두겠다. 한편 그 대선은 날이 밝자 일어나 아침 공양을 마치고 전각으로 나와 채찍을 가져오라 일렀다. “오늘은 마땅히 당삼장을 칠 차례다.” 그 작은 신선이 채찍을 휘두르며 당승을 향해 말했다. “너를 친다.” 저 버드나무 또한 응답하여 말했다. “쳐 보시오.” 펑펑 서른 대를 때렸다. 채찍을 돌려 저팔계에게 대고 말했다. “너를 친다.” 저 버드나무 또한 응답하여 말했다. “쳐 보시오.” 사승을 칠 때에도 또한 “쳐 보시오.” 하고 응답하였다. 행자를 칠 때에 이르러서는, 그 행자가 길 위에서 문득 몸서리를 한 번 치며 말했다. “큰일 났다!” 삼장법사가 물었다. “무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제가 버드나무 넉 그루를 우리 사부와 제자 네 사람으로 변신시켜 두었는데, 그저 어제 나를 두 차례나 때렸으니 오늘은 때리지 않으려니 하였나이다. 그런데 또 내 분신을 때리고 있으니, 이 때문에 제 진신이 몸서리를 치는 것이오니 어서 법술을 거두어야겠나이다.” 그 행자가 황급히 주문을 외워 법술을 거두었다. 보라, 그 도동들이 겁에 질려 가죽채찍을 내던지고 달려가 아뢰었다. “스승님이시여, 맨 처음 때린 것은 대당의 중이었사옵니다마는, 이번에 때린 것은 모두 버드나무 둥치였나이다!” 대선이 그 말을 듣고 히히 웃음을 터뜨리며 칭찬을 마지않아 말했다. “손행자란 놈은 참으로 훌륭한 원숭이 왕이로구나! 일찍이 그가 천궁을 크게 어지럽혔을 적에 땅그물과 하늘그물을 쳐 놓고도 그를 잡아 두지 못하였다더니, 과연 그런 이치가 있는 것이로다. 네가 달아난 것쯤이야 그만이라 하자마는, 어찌하여 버드나무를 여기 묶어 두고 이름을 속여 대신하게 하였느냐?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니, 쫓아가자!” 그 대선이 쫓자 소리가 떨어지자 구름을 타고 올라 서쪽을 바라보니, 다만 저 중이 짐을 메고 말을 채찍질하여 한창 길을 가고 있었다. 대선이 구름을 낮추어 외치며 말했다. “손행자! 어디로 달아나려 드느냐! 내 인삼과수를 돌려내라!” 저팔계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망했다! 원수가 또 쫓아왔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우선 착한 마음씨는 접어 두시옵소서. 우리에게 조금 사나운 짓을 하게 하여 단번에 그를 해치워 버리고 몸을 빼어 갑시다.” 당승이 그 말을 듣고 부들부들 떨며 미처 대답도 하지 못하였는데, 사승이 보장을 빼어 들고 저팔계가 쇠스랑을 치켜들고 대성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 대선을 허공 한가운데 포위하고 마구 때리고 찍어 댔다. 이 사나운 싸움을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오공은 진원선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여세동군의 오묘함이 더욱 현묘하구나. 세 가지 신병이 맹렬함을 떨치건만, 먼지떨이개 하나는 스스로 펄럭이는구나. 왼쪽을 막고 오른쪽을 가리며 오고 감을 따르고, 뒤를 받치고 앞을 맞으며 돌고 도는 대로 맡기는구나. 밤이 가고 아침이 와도 몸을 빼기 어려우니, 머물러 지체하다 어느 날에야 서천에 이르리오! 그 형제 세 사람이 저마다 신병을 들어 일제히 쳐부수는데, 그 대선은 다만 파리채 하나로 막아 낼 뿐이었다. 반 시진도 되지 않아 그가 도포 소매를 한 번 펼치니, 또다시 네 중과 말 한 필과 행랑까지 한 소매에 통째로 담아 버렸다. 구름을 되돌려 또 도관 안으로 들어갔다. 무리의 신선들이 맞이하고 선사가 전각에 앉자, 또 소매 속에서 하나씩 꺼내어 당승을 섬돌 아래 낮은 회화나무에 묶고, 저팔계와 사승을 양쪽 나무에 하나씩 묶었으며, 행자는 넘어뜨려 묶어 두었다. 행자가 말했다. “필시 심문을 하려는 모양이로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박이 끝나자, 긴 베 열 필을 가져오라 일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팔계야! 이 선생님이 인심이 좋으셔서 베를 내어 우리에게 웃옷을 해 주려 하시는구나! —아끼는 김에 승복이나 한 벌쯤으로 줄이시지.” 그 작은 신선이 집에서 짠 베를 내어 왔다. 대선이 말했다. “당삼장과 저팔계와 사승을 모두 베로 싸 버려라!” 무리의 신선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 싸 버렸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다! 좋다! 좋다! 산 채로 염을 하여 관에 넣는구나!” 잠시 뒤에 동여매기가 모두 끝났다. 또 옻을 가져오라 일렀다. 무리의 신선들이 즉시 스스로 거두어 스스로 말린 생칠과 숙칠을 가져다가, 그 세 사람의 온몸을 베로 싼 위에 옻을 칠하고는 머리와 얼굴만 밖으로 남겨 두었다. 저팔계가 말했다. “선생님, 위쪽은 그려려니와 다만 아래쪽에 구멍을 남겨 두시옵소서. 우리가 용변을 보아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 대선이 또 큰 솥을 내어 오라 일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팔계야, 횡재로구나! 솥을 내오는 걸 보니 밥을 끓여 우리에게 먹이려는 모양이로구나.” 저팔계가 말했다. “그것도 괜찮지. 우리에게 밥이나 좀 먹게 하여 배부르게 죽은 귀신이 되면 보기에도 좋지 않겠느냐.” 무리의 신선들이 과연 큰 솥 하나를 내어다 섬돌 아래에 걸쳐 놓았다. 대선이 마른 장작을 쌓아 세우고 맹렬한 불을 지피라 하고는 분부하였다. “맑은 기름을 솥에 가득 퍼 올려 펄펄 끓게 한 뒤, 손행자를 기름솥에 넣어 한번 데쳐 내어 내 인삼과수의 원수를 갚으리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했다. “바로 내 마음에 드는 일이로구나. 요즈음 목욕을 못하여 피부가 좀 까슬까슬하고 가려웠는데, 잘됐다 하여도 한번 푹 담가 보니 은혜에 깊이 감사하노라.” 잠깐 사이에 그 기름솥이 끓어오르려 하였다. 대성이 또 마음을 쓰며 그의 신선 법술이 헤아리기 어렵고 기름솥 속에서는 손을 쓸 수 없을까 염려하여, 급히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니, 다만 저 단 아래 동쪽에는 해시계대가 하나 서 있고 서쪽에는 돌사자 하나가 있었다. 행자가 몸을 한 번 날려 서쪽으로 굴러가 혀끝을 깨물어 돌사자에게 피를 한 입 뿜으며 “변하여라!” 외치니, 그 돌사자가 자기 본모습으로 변하여 또한 그와 같이 한 덩이로 동여매어졌다. 그리고 그는 원신을 빠져나가 구름 위로 솟아올라 고개를 숙이고 도사들을 내려다보았다. 다만 저 작은 신선이 아뢰는 것이 보였다. “스승님, 기름솥이 끓어 넘치도록 다 끓었나이다.” 대선이 “손행자를 들어다 넣어라!” 하고 일렀다. 선동 넷이 들어 보았으나 들어 올리지 못하고, 여덟이 와도 들어 올리지 못하였으며, 또 넷을 더 보태어도 들어 올리지 못하였다. 무리의 신선들이 말했다. “이 원숭이는 흙을 그리워하여 옮기기 어렵구나. 작기는 작아도 도리어 단단하단 말이로다.” 하는 수 없이 스무 명의 작은 신선을 시켜 들어 올리게 하여 솥을 향해 내동댕이치니, 펑 하는 소리 한 번이 나며 끓는 기름 방울이 튀어 올라, 그 작은 도사들의 얼굴에 물집이 몇 개씩이나 데어 돋아 버렸다! 다만 불을 때던 작은 동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솥이 샌다! 솥이 샌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름이 모조리 새어 나가고 솥바닥이 깨져 버렸으니, 본래 돌사자 한 마리가 그 안에 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대선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 놈이 참으로 무례하구나! 면전에서 손을 써 놓게 하다니! 네가 달아난 것쯤이야 그만이라 치자마는, 어찌하여 또 내 부엌을 박살내었느냐? 이 건방진 원숭이는 잡으려 해도 헛되이 잡을 수가 없거니와, 잡는다 한들 또한 모래를 뭉치고 수은을 가지고 노는 격이요, 그림자를 잡고 바람을 붙잡는 격이로다. —됐다! 됐다! 됐다! 그놈을 놓아 주자. 우선 당삼장을 풀어 내고 새 솥으로 바꾸어 그를 한번 데쳐 내어 인삼과수의 원수를 갚는 것으로 하자.” 그 작은 신선이 정말로 손을 놀려 베와 옻을 벗겨 내기 시작하였다. 행자가 허공 한가운데서 그 말을 분명히 들었다. 그가 생각하기를, “스승님은 형편이 없으시니 저 기름솥에 들어가면 한 번 끓으면 죽고 두 번 끓으면 타 버릴 터인데, 서너다섯 번 끓게 되면 그는 흐물흐물하게 문드러진 중이 되어 버릴 것이다! 내가 가서 그를 구해 내야겠다.” 하였다.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구름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베와 옻을 벗겨 내지 마시옵소서. 내가 기름솥에 들어가겠나이다.” 그 대선이 놀라며 욕하여 말했다. “이 원숭이 놈 같으니! 어찌하여 수단을 부려 내 부엌을 박살내었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나를 만났으면 부엌이 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나도 본래 그대의 기름 국물과 기름물의 은혜를 좀 입으려 하였으나, 다만 대소변이 급하였소. 만일 솥 안에서 방귀를 뀌었다가는 그대의 끓인 기름을 더럽혀 반찬을 무치어 먹기에 좋지 않을 터이니, 이제 대소변을 말끔히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솥에 들어갈 만하오. 내 스승님을 데치지 말고 나를 데치시옵소서.” 그 대선이 그 말을 듣고 히히 비웃으며 전각 밖으로 걸어 나와 한 손으로 행자를 움켜쥐었다. 결국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끝내 어떻게 몸을 빼어 낼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6회 손오공삼도구방(孫悟空三島求方) · 관세음감천활수(觀世音甘泉活樹) 시에 이르기를, 세상을 살아가려면 마음 위에 칼날을 얹은 글자를 품어야 하고, 몸을 닦는 이는 짧은 마디 자를 곁에 둔 글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 흔히 이르기를 칼날을 품은 저 글자가 삶의 이치라 하였으니, 모름지기 서너 번 생각하여 노여움과 속임을 경계할지니라. 높은 선비는 다투지 않음을 예로부터 전해 왔고, 성인은 덕을 품어 그 시대를 이었느니라. 강한 자 위에 더 강한 무리가 있나니, 따지고 보면 끝내 텅 빈 것과 그릇된 것으로 돌아간다. 말하자면, 그 진원대선이 손으로 행자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도 너의 재주를 알고 있고, 나도 너의 명성을 익히 들었느니라. 다만 네가 이번에는 이치를 넘어 네 마음을 속였으니, 아무리 몸을 비틀어 본들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느니라. 내가 너와 서천까지 가서 너의 그 부처님을 뵙더라도 인삼과수는 내게 돌려주지 않을 수 없느니라. 너는 신통을 부려 볼 생각을 말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선생은 참으로 속이 좁구나! 나무를 살리려 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단 말이오! 진작 그런 말씀을 하셨더라면 다툼을 덜지 않았겠소?” 대선이 말했다. “다투지 않고서야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우리 스승님을 풀어 주시옵소서. 제가 살아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돌려드리면 어떠하옵니까?” 대선이 말했다. “네게 그런 신통이 있어 나무를 고쳐 살릴 수 있다면, 내가 너와 여덟 번 절을 주고받으며 형제를 맺으리라.” 행자가 말했다. “대수롭지 않사옵니다. 그들을 놓아주시옵소서. 틀림없이 살아 있는 나무를 돌려드리겠나이다.” 대선은 그가 달아날 수 없으리라 헤아리고 곧 삼장법사와 저팔계와 사승을 풀어 주라 명하였다. 사승이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저 형님이 무슨 꾀를 부리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무슨 꾀냐! 이것은 면전에서 남의 인정이나 챙기는 꾀라 불리는 것이로구나! 나무가 죽었거늘 어찌 다시 고쳐 살릴 수 있단 말이냐?” “그는 겉만 번드르하게 꾸며 보기 좋게 해 놓고는, 나무를 고칠 방도를 구하러 간다 핑계를 대어 홀홀단신 몸이나 빼어 달아나 버릴 터이니, 그대와 나를 어찌 돌아보겠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는 결코 우리를 버려 두고 가지 않을 것이니라. 우리가 그에게 어디로 의원을 찾으러 갈지 물어보자꾸나.” 그리고는 불러 말했다. “오공아, 네가 어떻게 그 선장을 속여 우리를 풀려 내었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는 참된 말만 하였거늘 어찌 그를 속였단 말이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너는 어느 곳으로 가서 방도를 구하려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방도는 바다에서 온다 하였나이다. 이제 나는 동양 대해로 올라가 세 섬과 열 곳 선경을 두루 돌며 신선 영감과 성스러운 노인을 찾아뵙고, 죽은 이를 살려 되돌리는 법 하나를 구하리니, 틀림없이 그의 나무를 고쳐 살리겠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언제쯤 돌아올 수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흘이면 넉넉하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네 말대로 하여 사흘의 기한을 주겠노라. 사흘 안에 오면 그만이거니와, 사흘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면 내가 그 경문을 외우겠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보라, 그가 호랑이 가죽 치마를 여미고 문을 나서 대선에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마음을 놓으시오. 나는 곧 갔다 오겠소. 그대는 내 스승님을 잘 모셔야 하니, 날마다 세 번의 차와 여섯 번의 밥을 빠뜨리지 말게 하시오.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이 늙은 원숭이가 돌아와 그대와 셈을 가릴 터인데, 먼저 그대의 가마솥 바닥을 부숴 버리겠소. 옷이 더러워지거든 빨아서 깨끗이 해 주시오. 얼굴빛이 조금이라도 누렇게 뜨면 용납하지 않겠고, 조금이라도 야위면 문을 나서지 않겠소.” 그 대선이 말했다. “가라, 가라. 그가 굶주리게 하지는 않으리라.”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급히 근두구름을 타고 오장관과 작별하여 곧장 동양 대해로 올라갔다. 번개를 잡아당기는 듯하고 별똥별처럼 빠르니, 어느새 봉래선경에 이르렀다. 구름머리를 누르고 살펴보니 참으로 좋은 곳이로구나!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넓은 땅 신선 고장에 성스러운 무리 줄지어 앉았고, 봉래는 갈라졌다 합쳐지며 물결을 누르는구나. 옥 누대 그림자는 하늘 한가운데 차가움을 적셔 들고, 큰 궁궐의 빛은 바다 위 높이 떠오르네. 다섯 빛깔 노을은 옥피리 소리를 머금었고, 아홉 하늘의 별과 달은 금 자라를 비추누나. 서쪽 연못의 왕모가 늘 이곳에 와 세 신선의 장수를 빌며 복숭아를 여러 차례 올렸더란다. 그 행자는 신선 경치를 다 볼 수 없어 곧장 봉래로 들어갔다. 걸어가는데, 백운동 바깥 소나무 그늘 아래에 세 늙은이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 국을 곁에서 보는 이는 수성이요, 대국하는 이는 복성과 록성이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늙은 동생들이여, 인사하노라.” 삼성이 바둑판을 밀어 치우고 답례하며 말했다. “대성은 어디서 오는 길이오?” 행자가 말했다. “여러분을 찾아와 함께 놀고자 하오.” 수성이 말했다. “내 듣건대 대성께서는 도를 버리고 불법을 좇아 목숨을 걸고 당승을 보호하며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신다 하였거늘, 나날이 험한 산길을 달리느라 어느 틈에 한가로움이 있기에 도리어 놀러 오셨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여러분께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거니와, 이 늙은 원숭이는 서쪽으로 가는 길에서 조금 막히는 일을 만났사옵니다. 그래서 작은 일 하나를 청하러 왔사오니, 들어 주시겠는지 알 수가 없나이다.” 복성이 말했다. “어느 지방에서 무슨 일로 막혔단 말이오? 분명히 일러 주시오. 내 알맞게 처결해 드리리다.” 행자가 말했다. “만수산 오장관을 지나다가 막혔사옵니다.” 세 노인이 놀라며 말했다. “오장관은 진원대선의 선궁이로다. 너는 혹 그의 인삼과를 훔쳐 먹은 게 아니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훔쳐 먹은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하단 말이오?” 세 노인이 말했다. “이 원숭이 같은 놈, 분별이 없구나. 그 과일은 냄새만 한 번 맡아도 삼백예순 해를 살고, 하나를 먹으면 사만 칠천 년을 사느니라. 이름하여 만수초환단이라 하거늘, 우리의 도는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느니라! 그는 그것을 얻기가 쉬워 곧 하늘과 나란히 장수할 수 있거늘, 우리는 정기를 기르고 기운을 단련하며 정신을 간직하고, 용과 호랑이를 조화시키며 감을 잡아 이로움을 채우느라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모르느니라. 네가 어찌 그의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단 말이냐? 천하에 오직 이 한 가지 신령한 뿌리뿐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신령한 뿌리! 신령한 뿌리! 나는 이미 그 뿌리를 끊어 버렸다오!” 세 노인이 놀라며 말했다. “어찌하여 뿌리를 끊었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지난날 그의 도관에 있을 때 대선은 집에 없고 어린 동자 둘만 있어 우리 스승님을 접대하며 인삼과 두 개를 올렸사옵니다. 우리 스승님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시고 사흘이 안 된 갓난아이라 하시며 거듭 잡수지 않으셨사옵니다. 그 동자가 도로 가져가 먹고는 우리에게는 권하지도 않았사옵니다. 그래서 이 늙은 원숭이가 세 개를 훔쳐 우리 삼형제가 나누어 먹었사옵니다. 그 동자들이 분별없이 도둑이니 뭐니 하며 욕설을 퍼부었사옵니다. 이 늙은 원숭이가 노하여 그의 나무를 몽둥이로 내리쳐 넘어뜨리니, 나무 위에는 과일이 하나도 없고 가지는 갈라지며 잎은 떨어지고 뿌리는 솟구치고 가지는 상하여 이미 말라 죽었사옵니다. 뜻밖에도 그 동자들이 우리를 가두었거늘, 이 늙은 원숭이가 자물쇠를 비틀어 따고 달아났사옵니다. 이튿날 새벽에 그 선생이 뒤쫓아 왔는데, 문답하는 사이에 말이 맞지 않아 마침내 그와 겨루게 되었사옵니다. 그가 몸을 한 번 흔들며 도포 소매를 펼치더니, 소매 하나로 우리를 모두 휩싸 버렸사옵니다. 노끈으로 묶고 채찍으로 두들겨 하루를 꼬박 맞았사옵니다. 그날 밤에 또 달아났으나 그가 따라잡아 또다시 휩싸 넣었사옵니다. 그는 몸에 쇳조각 하나 지니지 않았으되 다만 그 불자루 하나로 막아 내거늘, 우리 형제의 세 가지 병기로는 그를 때릴 엄두조차 낼 수 없었사옵니다.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우리 스승님과 두 사제를 베로 싸서 굴리고는 나를 기름 가마에 처넣으려 하였사옵니다. 내가 또 몸을 빼는 재주를 부려 달아나며 그의 가마를 박살 내 버렸사옵니다. 그가 나를 붙잡아 둘 수 없음을 보고는 나를 몹시 두려워하였사옵니다. 그래서 내가 그와 좋게 이야기하여 스승님과 사제들을 놓아 달라 하고, 나무를 고쳐 살려 주기로 약속하니 양편이 비로소 편안해졌사옵니다. 나는 방도가 바다에서 온다 함을 생각하고 선경을 두루 돌아 세 분 늙은 동생을 찾아왔사오니, 나무를 고치는 방도가 있다면 하나만 전해 주시어 급히 당승을 고통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삼성이 그 말을 듣고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같은 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저 진원자는 지선의 조상이요, 우리는 신선의 으뜸이니라. 네가 비록 천선이 되었다 하나 아직은 태을의 산수에 속하여 참된 무리에 들지 못하였거늘, 네가 어찌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대성이 길짐승과 날짐승, 벌레와 비늘 가진 것들을 때려 죽인 것이라면 우리의 기장 알갱이만 한 단약 하나로 살려 낼 수 있거니와, 저 인삼과는 신선 나무의 뿌리이니 어찌 고친단 말이냐? 방도가 없다, 방도가 없다.” 행자는 그 말을 듣고 두 눈썹이 산봉우리처럼 잠기고 이마에는 천 갈래 주름이 잡혔다. 복성이 말했다. “대성이여, 이곳에 방도가 없으면 다른 곳에 있으련만 어찌 벌써 근심을 만드느냐?” 행자가 말했다. “방도가 없으면 다른 곳을 찾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오. 바다 끝과 하늘 가를 두루 돌고 서른여섯 하늘을 꿰뚫어 본들 작은 일이거니와, 다만 내 스승 당승 장로는 법이 엄하고 도량이 좁아 사흘의 기한만 주었소. 사흘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그가 곧 그 《긴고아주》를 외우려 할 것이오.” 삼성이 웃으며 말했다. “좋다! 좋다! 좋다! 이런 법으로 너를 옭아매지 않는다면 너는 또 하늘을 뚫고 올라갈 것이로구나.” 수성이 말했다. “대성은 마음을 놓으시오. 근심할 것 없소. 그 대선이 비록 윗세대라 하나 우리와도 안면이 있느니라. 하나는 오래 헤어져 문안을 드리지 못한 것이요, 또 하나는 대성의 인정이니라. 이제 우리 세 사람이 함께 가서 그를 찾아뵙고 그대의 사정을 전하여, 저 당승이 《긴고아주》를 외우지 않게 하리다. 사흘이건 닷새건 그대가 방도를 구하여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한 뒤에야 우리가 물러나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고맙소! 고맙소! 그럼 세 분 늙은 동생은 어서 길을 떠나 주시오. 나는 가보겠소.” 대성이 삼성에게 작별을 고하는 일은 이쯤 해 두겠다. 말하자면, 이 삼성이 상서로운 빛을 타고 곧장 오장관으로 왔다. 도관의 모든 이들이 홀연 긴 하늘에서 학 우는 소리를 들었으니, 세 노인이 강림한 것이었다. 보라, 그 모습이 이러하였으니, 하늘 가득 상서로운 빛이 모여들고, 은하수에는 향내가 그윽이 흩날린다. 천 갈래 채색 안개는 깃옷을 감싸고, 한 송이 가벼운 구름은 신선의 발을 받쳐 들었네. 청란은 날아가고 붉은 봉황은 춤추니, 소매가 이끄는 향기로운 바람이 온 땅을 휩쓴다. 지팡이에 용이 매달려 기쁜 웃음이 피고, 흰 수염은 옥처럼 드리워 가슴 앞을 쓸어 내리네. 아이 같은 얼굴에 기쁨이 넘쳐 근심 없고, 늠름한 몸에 위풍이 당당하니 복이 많구나. 별 헤아리는 산가지를 쥐고 바다 위 집에 더하니, 허리에는 표주박과 보배 부적을 찼네. 만 기년과 천 순을 복과 장수가 이어지고, 열 곳 선경과 세 신선 섬을 인연 따라 머무누나. 늘 세상에 내려와 온갖 상서를 보내고, 사람에게 백 가지 복을 더한다. 천지를 아우르니 복과 녹이 영화롭고, 복과 장수 끝없음을 오늘 기쁘게 얻었구나. 세 노인이 상서를 타고 대선을 알현하니, 복된 집안의 온화한 기운이 다함이 없더라. 그 선동이 보고는 급히 달려가 아뢰었다. “스승님, 바다 위 삼성이 오셨사옵니다.” 진원자는 마침 당승 사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보고를 듣고 곧 섬돌을 내려와 맞이하였다. 저팔계가 수성을 보고는 다가가 붙잡으며 웃고 말했다. “이 고기 머리 같은 늙은이 같으니라구! 오래간만인데 그래도 이렇게 털털하구나. 갓조차 하나 쓰고 오지 않았네.” 자기 승려 모자 하나를 가져다가 탁 소리가 나게 그의 머리에 씌우고, 손뼉을 치며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좋다! 좋다! 좋다! 참으로 갓을 더하고 녹을 받는 격이로구나!” 수성이 모자를 내동댕이치며 욕하여 말했다.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구! 분별이 없구나!” 저팔계가 말했다. “내가 멍청한 놈이 아니라, 너희야말로 참된 종놈이로구나!” 복성이 말했다. “네가 도리어 멍청한 놈이거늘 감히 남을 종이라 욕한단 말이냐!” 저팔계가 또 웃으며 말했다. “남의 집 종이 아니라면, 좋게 말해서 장수를 더하고 복을 더하며 녹을 더한다 하지 않느냐?” 삼장법사가 저팔계를 호통쳐 물러가게 하고는 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삼성에게 절을 올렸다. 삼성은 후배의 예로 대선을 뵙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정해지자 록성이 말했다. “우리는 줄곧 존안을 오래 뵙지 못하여 공경을 잃었나이다. 이제 손대성이 선산을 어지럽힌 일로 찾아와 뵙게 되었나이다.” 대선이 말했다. “손행자를 봉래로 간 것인가?” 수성이 말했다. “그러하오. 대선의 단목을 상하게 한 까닭에 그가 우리에게 와서 방도를 구하였거늘 우리에게는 방도가 없어 그가 또 다른 곳으로 갔나이다. 다만 성스러운 중의 사흘 기한을 어길까 염려되어 《긴고아주》를 외우려 할 터이오. 우리가 온 것은 하나는 찾아뵙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기한을 넉넉히 청하기 위함이오.”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는 연달아 대답하며 말했다. “외우지 않겠나이다, 외우지 않겠나이다.” 막 이야기하는데 저팔계가 또 뛰어 들어와 복성을 붙잡고 과일을 달라 조르며, 그의 소매 속을 마구 더듬고 허리춤을 마구 쓸며 옷을 들추어 수색하였다. 삼장법사가 웃으며 말했다. “저 팔계는 무슨 버릇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버릇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일러 번번이 복이라 하느니라.” 삼장법사가 또 꾸짖어 나가라 명하자 그 멍청이는 밖으로 쫓겨 나가면서 복성을 노려보며 눈을 한 번도 돌리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복성이 말했다. “멍청한 놈! 내가 어디서 너를 성나게 하였기에 너는 이토록 나를 미워하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일러 고개 돌려 복을 바라본다 하느니라.” 그 멍청이가 문을 나서니, 어떤 어린 동자가 차숟가락 네 개를 들고 망치와 과일을 찾아 차를 준비하려 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그가 한 움큼 빼앗아 전각으로 뛰어 올라가 작은 경쇠를 마구 두드리며 이쪽저쪽에서 장난을 쳤다. 대선이 말했다. “이 중은 갈수록 예의가 없구나!”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일러 네 철이 모두 경사롭다 하는 것이니라.” 이야기는 이러하다. 저팔계가 익살을 부리며 얽혀 있는 동안, 행자는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봉래를 떠나 어느새 방장선산에 이르렀다. 이 산은 참으로 좋은 곳이니,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방장산은 우뚝 솟아 별천지를 이루고, 태원궁에는 신선들이 모여든다. 자줏빛 누대의 빛은 삼청의 길을 비추고, 꽃과 나무 향기는 다섯 빛깔 연기 위에 떠오른다. 금봉은 꽃술 궁궐에 깃들고, 옥 같은 진액을 그 누가 굳이 기름진 밭에 부었던가. 푸른 복숭아와 자줏빛 오얏이 새로 익어, 또 신선의 만 년을 믿고 바꾸어 주는구나. 그 행자는 구름머리를 내려놓고 경치를 즐길 마음 없이 걷는데, 문득 향기로운 바람이 그윽하고 검은 학이 울며 저쪽에 어떤 신선이 있었다. 그 모습은 이러하였으니, 하늘 가득 만 갈래 노을빛이 나타나고, 채색 안개가 흩날리며 빛이 끊이지 않는다. 붉은 봉황은 꽃을 물어 더욱 곱고, 청란은 날아 춤추며 소리도 고와라. 복은 동해와 같고 장수는 산과 같으며, 얼굴은 어린아이 같고 몸은 건강하구나. 병 속에는 동천의 불로단을 감추었고, 허리에는 해와 견줄 장생의 전서를 찼네. 인간 세상에 여러 번 내려와 상서를 내리고, 몇 차례 재앙의 서원을 지워 주었도다. 무제가 일찍이 불러 수명을 더해 주었고, 요지의 반도연회마다 참석하였네. 중생을 교화하여 속세의 인연을 벗기고, 큰 도를 열어 보이매 밝기가 번개 같도다. 바다를 건너 천 년을 빌어 주기도 하였고, 늘 영산에 가 부처님을 참배하였네. 성스러운 호는 동화대제군이요, 노을 구름 속 첫째가는 신선의 짝이로다. 손행자가 마주 나아가며 외쳤다. “제군이시여, 인사하옵니다.” 그 제군이 황망히 답례하며 말했다. “대성이여, 미처 맞이하지 못하였소. 황량한 거처로 들어가 차를 들겠소.” 그리고는 행자와 손을 잡고 함께 들어갔다. 과연 조개껍데기로 꾸민 선궁이요, 요지의 경각은 다 볼 수 없었다. 막 앉아 차를 기다리는데, 비취 병풍 뒤에서 동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의 차림새가 어떠한가: 도복을 입어 노을이 어리고 반짝이며, 허리에는 비단 띠를 두르매 빛이 어지러이 흩어진다. 머리에는 북두칠성 그린 윤건을 썼고, 발에는 짚신을 신고 선산을 노닌다. 원기를 단련하고 본 껍데기를 벗어, 공행이 이루어지매 뜻대로 즐겁구나. 정기와 신의 근원을 꿰뚫어 보고, 주인을 알아보매 그릇됨이 없네. 이름을 피한 오늘 장수가 끝이 없으니, 갑자의 주천도 그를 가두지 못한다. 회랑을 돌아 보배 누각에 오르매, 하늘의 반도를 세 번이나 어루만졌네. 향기로운 구름이 비취 병풍에서 피어나니, 이 작은 신선이 바로 동방삭이로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도둑놈이 여기 있구나! 제군의 처소에 복숭아가 없거늘 네가 훔쳐 먹었구나!” 동방삭이 윗사람에게 예를 올리며 대답하여 말했다. “늙은 도둑이여, 너는 여기 와서 어찌하려느냐? 내 스승의 처소에 선단이 없거늘 네가 훔쳐 먹었지.” 제군이 외치며 말했다. “만청아, 함부로 말하지 말고 차를 가져오너라.” 만청은 본래 동방삭의 도호이거늘, 그가 급히 안으로 들어가 찻잔 두 개를 가져왔다. 차를 다 마시자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이곳에 온 것은 한 가지 일을 청하려 함이옵니다. 허락해 주시겠는지 모르겠나이다.” 제군이 말했다. “무슨 일인가? 마땅히 가르침을 받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요즘 당승을 보호하여 서쪽으로 가다가 만수산 오장관을 지나게 되었사옵니다. 그곳의 어린 동자가 무례하게 구는 통에 제가 한때 노하여 그의 인삼과수를 넘어뜨렸사옵니다. 그로 말미암아 길이 막혀 당승이 몸을 빼지 못하고 있사오니, 특별히 높은 곳을 찾아와 방도 하나를 내려 주시어 고치게 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부디 너그럽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제군이 말했다. “이 원숭이 같은 놈,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사고를 치는구나. 저 오장관의 진원자는 성호가 여세동군이요 지선의 조상이니라. 네가 어찌 그를 거슬렀단 말이냐? 그의 인삼과수는 곧 초환단이니라. 네가 훔쳐 먹은 것만으로도 이미 죄가 있거늘, 도리어 나무까지 넘어뜨렸으니 그가 어찌 순순히 그만두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우리가 달아났다가 그에게 따라잡혔는데, 우리를 마치 손수건 한 장쯤으로 여기어 소매 하나로 모두 휩싸 넣어 버렸사옵니다. 그 바람에 속이 상하여 할 수 없이 그에게 방도를 구해 고쳐 주겠노라 약속하였사오니, 이렇게 찾아와 간청하옵니다.” 제군이 말했다. “내게 구전태을환단 한 알이 있으나, 다만 세상의 살아 있는 것들을 고칠 뿐이요 나무는 고치지 못하느니라. 나무는 흙과 목재의 신령이라 하늘이 적시고 땅이 윤택케 하는 것이니라. 범인의 과일나무라면 고쳐 낼 수도 있거니와, 이 만수산은 선천의 복지요, 오장관은 하주의 동천이며, 인삼과는 또한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질 때 생긴 신령한 뿌리이거늘 어찌 고칠 수 있겠느냐! 방도가 없다! 방도가 없다!” 행자가 말했다. “방도가 없다면 이 늙은 원숭이는 작별하겠나이다.” 제군이 다시 붙잡아 옥액 한 잔을 올리려 하자 행자가 말했다. “급히 구할 일이 시급하옵니다. 오래 머무를 수 없사옵니다.” 구름을 타고 다시 영주해도에 이르렀다. 또한 좋은 곳이로구나.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구슬 나무는 영롱하게 자줏빛 연기를 비추고, 영주의 궁궐은 모든 하늘에 닿아 있네. 푸른 산과 맑은 물에 기이한 꽃이 곱고, 옥 같은 진액과 쇠처럼 단단한 바위로다. 다섯 빛깔 푸른 닭은 바다 위 해를 보고 울고, 천 년 묵은 붉은 봉황은 붉은 연기를 마신다. 세상 사람들은 병 속의 경치를 알지 못하거니와, 형상 밖의 봄빛은 억만 년이로다. 그 대성이 영주에 이르러 보니, 붉은 절벽과 구슬 나무 아래에 희디흰 머리칼과 수염을 한 무리와, 아이 같은 얼굴에 학 같은 귀밑머리를 한 신선들이 있어 바둑을 두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웃고 노래하였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으니, 상서로운 구름에 빛이 가득하고, 서운한 기운에 향기가 떠오른다. 채색 난새는 동굴 어귀에서 울고, 검은 학은 산머리에서 춤춘다. 푸른 연근과 물 복숭아를 안주로 삼고, 교리와 화조로 천 년의 장수를 누리네. 하나하나 붉은 조서에는 들리지 않으나 신선의 부적에는 이름이 올라 있으니, 소요하며 물결 따라 떠돌고, 한가로이 맑고 그윽함에 맡기누나. 주천의 갑자도 가두어 둘 수 없고, 큰 땅의 천지에서도 자유로울 뿐이라. 과일을 바치는 검은 원숭이는 쌍쌍이 따르매 사랑스럽고, 꽃을 무는 백록은 짝지어 엎드려 정이 깊구나. 그 노인들이 흥겹게 즐기고 있는데, 이 행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나도 데리고 놀면 어떠냐!” 뭇 신선들이 그를 보고는 급히 걸음을 다그쳐 맞았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인삼과수의 신령한 뿌리가 꺾이매 대성이 신선을 찾아 묘한 비결을 구하러 왔도다. 붉은 노을이 아스라이 보배 숲에서 피어오르니, 영주의 아홉 노인이 나와 맞이하누나. 행자는 그들이 구로임을 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늙은 형제들이여, 한가롭구려!” 구로가 말했다. “대성이 지난날 마음을 바르게 지녀 천궁을 어지럽히지 않았다면 우리보다 더 한가로웠을 것이오. 이제는 좋게 되었구려. 그대가 참됨으로 돌아가 서쪽으로 부처님을 배알한다 들었거늘, 어느 틈을 내어 여기까지 왔단 말이오?” 행자가 나무를 고치고 방도를 구하는 사정을 낱낱이 늘어놓았다. 구로 또한 크게 놀라며 말했다. “너는 참으로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구나! 사고를! 우리에게는 참으로 방도가 없노라.” 행자가 말했다. “방도가 없다면 이만 작별하겠나이다.” 구로가 또 그를 붙잡고 좋은 술과 푸른 연근을 들라 하였으나, 행자는 한사코 앉지 않고 서서 술 한 잔을 마시고 연근 한 조각을 먹은 채 급히 영주를 떠나 곧장 동양 대해로 되돌아왔다. 어느새 낙가산이 멀지 않음을 보고 구름머리를 내려 곧장 보타암에 이르니, 관음보살이 자죽림에서 모든 하늘의 대신들과 목타와 용녀에게 경을 강론하고 법을 설하셨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바다 임금의 성은 높고 상서로운 기운이 짙으니, 다시 보매 기이한 일이 끝이 없구나. 모름지기 알지어니, 아스라이 천 가지 밖에 있는 것도 모두 희미한 한 품계 가운데서 나왔느니라. 네 성인은 가르침을 받는 그때 정과를 이루고, 여섯 범부는 듣고 난 뒤 새장에서 벗어났도다. 소림에는 따로 참된 맛이 있어, 꽃과 과일의 향기가 나무에 가득 붉게 피었네. 그 보살은 행자가 오는 것을 벌써 보시고 곧 수산대신에게 나가 맞이하라 명하셨다. 그 대신이 숲을 나와 외쳤다. “손오공, 어디 가는 길이냐?” 행자가 고개를 들어 호통쳤다. “이 웅비 같은 놈! 내가 네가 함부로 부를 오공이냐? 처음에 이 늙은 원숭이가 너를 살려 주지 않았더라면 너는 벌써 흑풍산의 시체 귀신이 되었으리라. 오늘 보살을 따라 선과를 받아 이 신선 산에 살며 늘 법의 가르침을 듣거늘, 너는 나를 나으리 한 번쯤 부르지 못하느냐?” 그 흑웅은 참으로 정과를 얻어 보살의 처소에서 보타를 지키며 대신이라 불리게 되었으니, 이 또한 행자 덕이었다. 그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대성이여, 옛사람이 이르기를 군자는 옛 허물을 생각지 않는다 하였거늘, 굳이 그것을 꺼내어 무엇 하시렵니까! 보살께서 나를 보내어 그대를 맞이하라 하셨나이다.” 이 행자는 태도를 바로 하고 공경을 다하여 대신과 함께 자죽림 안으로 들어가 보살께 절을 올렸다.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오공아, 당승이 어디까지 갔느냐?” 행자가 말했다. “서우하주 만수산에 이르렀사옵니다.”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그 만수산에는 오장관이 있느니라. 진원대선을 너는 만나 보았느냐?” 행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바로 오장관에서 제가 진원대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인삼과수를 훼손하고 그를 거슬렀사옵니다. 그러자 그가 우리 스승님을 붙잡아 두어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사옵니다.” 그 보살께서는 속속들이 아시거늘 꾸짖으셨다. “이 파렴치한 원숭이 같으니라! 분별이 없구나! 그의 인삼과수는 하늘이 열리고 땅이 갈라질 때 생긴 신령한 뿌리요, 진원자는 지선의 조상이니 나조차 그를 세 푼쯤 양보하거늘, 네가 어찌 감히 그의 나무를 상하게 하였느냐!” 행자가 다시 절하며 말했다. “제자가 참으로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날 그가 집에 없고 선동 둘만이 우리를 접대하였사옵니다. 저팔계가 그에게 과일이 있음을 알고 하나를 맛보려 하기에, 제자가 그만 세 개를 훔쳐 형제들이 나누어 먹었사옵니다. 그 동자가 알아차리고는 우리를 욕하거늘 제가 노하여 마침내 그의 나무를 넘어뜨렸사옵니다. 그가 이튿날 돌아와 뒤쫓아 우리를 소매 하나로 휩싸고 노끈으로 묶고 채찍으로 때리며 하루를 두들겼사옵니다. 우리가 그날 밤에 달아났으나 또 따라잡혀 지난번처럼 휩싸였사옵니다. 두세 차례 그리되었으니 벗어나기 어려워, 이미 그에게 나무를 고쳐 주기로 허락하였사옵니다. 그래서 방금 바다로 나가 방도를 구하려 세 섬을 두루 돌았으나 뭇 신선들이 모두 재주가 없다 하였사옵니다. 제자가 이에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올리고 보살님께 여쭈오니, 굽어 살피시어 자비를 베푸시고 방도 하나를 내려 주시어 당승을 구하여 속히 서쪽으로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일찍 나를 찾아오지 않고 도리어 섬으로 올라가 찾아다녔느냐?” 행자가 이 말씀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재수가 좋구나! 재수가 좋구나! 보살님께는 틀림없이 방도가 있으시리라!” 그가 또 앞으로 나아가 청하였다.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내 이 옥정병 바닥의 감로수는 신선 나무와 신령한 싹을 고쳐 내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전에 시험해 보신 적이 있으시옵니까?”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시험해 본 적이 있느니라.” 행자가 물었다. “어떠한 경험이시옵니까?”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지난날 태상노군이 나와 내기를 한 적이 있느니라. 그가 내 버들가지를 뽑아 단약 굽는 화덕에 넣고 바싹 말려 도로 가져다 주었느니라. 내가 그것을 받아 병에 꽂아 두었더니 하룻밤 낮 만에 다시 푸른 가지와 싱싱한 잎을 되찾아 예전과 같아졌느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재수가 좋사옵니다! 참으로 재수가 좋사옵니다! 불에 마른 것도 능히 살려 내시니, 하물며 넘어뜨린 것이야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이까!” 보살께서 대중에게 분부하셨다. “숲을 지켜라. 나는 갔다 오겠노라.” 그리고는 손에 정병을 받쳐 들고 흰 앵무가 앞서서 지저귀며 손대성이 뒤를 따랐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옥 같은 터럭과 금빛 형상은 세상이 논하기 어렵고, 자비로 고통을 구하시는 높은 분이시로다. 지나간 겁에 무구불을 만나, 오늘에 이르러 유위신을 이루었느니라. 몇 생을 욕망의 바다에서 맑은 물결을 일으켰고, 한 조각 마음 밭에는 티끌 하나 끊겼도다. 감로는 오래도록 참된 묘법을 겪었으니, 보배 나무가 길이 봄을 누리게 하리라. 말하자면, 그 도관의 대선과 세 노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홀연 손대성이 구름머리를 내려놓으며 외쳤다. “보살님께서 오셨다! 어서 맞이하여라, 어서 맞이하여라!” 놀란 삼성과 진원자, 그리고 삼장법사 사부와 제자가 일제히 보전으로 나가 맞이하였다. 보살께서 상서로운 구름을 멈추시고 먼저 진원자에게 인사를 나누시고 뒤에 삼성에게 예를 갖추셨다. 예가 끝나자 윗자리에 앉으셨고, 섬돌 앞에서 행자가 당승과 저팔계와 사승을 이끌어 절을 올렸다. 그 도관의 모든 신선들도 와서 절을 올렸다. 행자가 말했다. “대선은 망설일 것 없이 향안을 차려 보살님께 청하여 그대의 무슨 과일나무를 고쳐 주시게 하시오.” 대선이 몸을 굽혀 사례하며 말했다. “보잘것없는 일이거늘 어찌 감히 보살님께서 내려오시는 수고를 끼치겠나이까?”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당승은 나의 제자이니라. 손오공이 선생을 거슬렀으니 마땅히 보배 나무를 배상해야 하느니라.” 세 노인이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겸양할 것 없나이다. 보살님께 청하여 모두 동산으로 가서 보시게 합시다.” 그 대선이 곧 향안을 차리고 뒷동산을 쓸라 명한 뒤, 보살님께 먼저 가시기를 청하고 세 노인이 뒤를 따랐다. 삼장법사 사부와 제자와 본관의 신선들이 모두 동산에 이르러 살펴보니, 그 나무가 땅에 넘어져 있고 흙은 갈라져 뿌리가 드러났으며 잎은 떨어지고 가지는 말라 있었다. 보살께서 부르셨다. “오공아, 손을 내밀어라.” 행자가 왼손을 펴 보였다. 보살께서 버들가지를 병 속의 감로수에 적셔 행자의 손바닥에 죽은 이를 살려 되돌리는 부적 글자를 하나 그리시고는, 그것을 나무뿌리 아래에 두되 물이 솟는 것을 한도로 삼으라 하셨다. 그 행자가 주먹을 쥔 채 나무뿌리 밑으로 찔러 넣자 잠깐 사이에 맑은 샘물 한 웅덩이가 솟았다.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그 물은 오행의 그릇을 범해서는 안 되느니라. 모름지기 옥표로 퍼 내어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위에서부터 부으면, 절로 뿌리와 껍질이 맞붙고 잎이 자라며 싹이 돋고 가지가 푸르러지며 과일이 맺히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어린 도사들아, 어서 옥표를 가져오너라.” 진원자가 말했다. “빈도의 황량한 산에는 옥표가 없고 옥 찻잔과 옥 술잔만 있사오니, 쓸 수 있겠나이까?”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옥그릇으로 물을 뜰 수 있는 것이라면 그만이니, 가져다 보아라.” 대선이 곧 어린 동자에게 명해 찻잔 서른 개쯤과 술잔 마흔에서 쉰 개쯤을 가져오게 하고 나무뿌리 아래의 맑은 샘물을 퍼 냈다. 행자와 저팔계와 사승이 나무를 들어 올려 반듯이 세우고 흙을 북돋아 덮은 뒤, 옥그릇에 담긴 단물을 한 사발씩 받들어 보살께 올렸다. 보살께서 버들가지로 고루 뿌리시며 입으로는 또 경문과 주문을 외우셨다. 오래지 않아 퍼 낸 물을 다 뿌리자, 보라, 그 나무가 과연 예전처럼 푸른 가지와 싱싱한 잎이 무성하여 그늘이 자욱하며, 그 위에 인삼과가 스물세 개나 달려 있었다. 청풍과 명월 두 동자가 말했다. “지난날 과일이 사라졌을 때에는 아무리 세어도 스물두 개뿐이었거늘, 오늘 되살아나니 어찌 또 하나가 늘었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야 사람의 마음을 보는 법이니라. 지난날 이 늙은 원숭이는 세 개만 훔쳤거늘, 그 하나가 땅에 떨어졌으니 토지신이 이 보배는 흙을 만나면 스며든다 하였느니라. 저팔계는 내가 한 개를 빼돌렸다 떠들어 소문이 퍼져 버렸거늘, 이제야 밝히 알게 되었구나.” 보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방금 오행의 그릇을 쓰지 않은 것은 이 물건이 오행과 서로 꺼림을 알기 때문이니라.” 그 대선이 몹시 기뻐하며 급히 금격자를 가져오라 명하고 과일 열 개를 따 내어, 보살님과 세 노인을 청하여 다시 보전으로 돌아가시게 하였으니, 하나는 수고에 감사함이요 또 하나는 인삼과 잔치를 벌이기 위함이었다. 뭇 작은 신선들이 곧 탁자와 의자를 벌여 놓고 붉은 쟁반을 차려, 보살을 위의 정석에 모시고 세 노인은 왼쪽, 당승은 오른쪽, 진원자는 앞자리에서 곁들이며 한 사람씩 하나를 먹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만수산 속의 옛 동천이여, 인삼과는 한 번 익는 데 구천 년이로다. 신령한 뿌리가 드러나매 싹과 가지가 상하였으나, 감로가 불려 주니 과일과 잎이 온전하구나. 세 노인은 기쁘게 만나 모두 옛 인연이요, 네 중은 다행히 만났으니 전생의 연분이로다. 이제부터 인삼과를 먹은 이들은 모두 장생불로의 신선이 되리라. 이때 보살과 세 노인이 각각 하나씩 드셨고, 당승은 비로소 이것이 신선 가문의 보배임을 알고 또한 하나를 먹었으며, 오공 세 사람도 각각 하나씩 먹고, 진원자가 하나를 곁들였으며, 본관의 신선 무리가 하나를 나누어 먹었다. 행자가 보살께 사례하고 보타암으로 돌아가신 뒤에 삼성을 배웅하여 곧장 봉래섬으로 돌려보냈다. 진원자는 또 채소와 술을 차려 행자와 형제를 맺었다. 이를 두고 때리지 않으면 서로 알지 못한다 하였거니와, 두 집안이 한집안이 되었구나. 사부와 제자 넷이 기뻐하며 날이 저물어 쉬었다. 그 장로를 두고 이르기를, 인연이 있어 초환단을 먹었거니와, 장수하려는 이는 괴로이 요괴의 재난을 견디는구나. 결국 이튿날에 어떻게 작별할지는 모르겠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7회 시마삼희당삼장(屍魔三戱唐三藏) · 성승한축미후왕(聖僧恨逐美猴王) 말하자면, 삼장법사 사도는 이튿날 날이 밝자 짐을 꾸려 길을 나섰다. 그 진원자와 행자가 형제를 맺은 터라 두 사람의 정이 서로 맞아떨어져 도무지 놓아 주려 하지 않고, 또 음식을 차려 대접하며 닷새나 엿새를 줄곧 머물게 하였다. 그 장로는 초환단을 복용한 뒤로는 참으로 탈태환골한 듯 정신이 맑고 몸이 건강하였다. 그러나 그는 경을 구하려는 마음이 무거워 어찌 오래 머물러 있으려 하겠는가. 달리 도리가 없자 드디어 길을 떠났다. 사도가 작별하고 길에 오르니 이내 험준한 높은 산 하나가 보였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들아, 앞에 산이 험준하니 말이 나아가지 못할까 염려되거든, 모두 모름지기 조심하고 또 조심하거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마음을 놓으시옵소서. 저희가 자연히 알아서 하겠나이다.”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그가 말 앞에서 봉을 가로로 메고 산길을 헤치며 높은 벼랑으로 올라갔다. 바라보아도 다 볼 수 없었으니, 봉우리와 바위는 겹겹이 포개지고, 계곡과 골짜기는 굽이굽이 둘러 있었다. 호랑이와 이리는 떼를 지어 달리고, 노루와 사슴은 무리를 이루어 걸어갔다. 헤아릴 수 없는 고라니와 멧돼지가 바글바글 모여들고, 산 가득 여우와 토끼가 떼를 지어 모여 있었다. 천 척이나 되는 큰 구렁이와 만 장이나 되는 긴 뱀이 있거늘, 큰 구렁이는 근심 어린 안개를 뿜고 긴 뱀은 괴이한 바람을 토해 냈다. 길가에는 가시덤불이 얽히고설켜 늘어졌고, 고개 위에는 소나무와 녹나무가 빼어나게 고왔다. 으름덩굴과 담쟁이는 눈에 가득하고, 향기로운 풀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그림자는 창명의 북쪽에 떨어지고, 구름이 걷히매 북두의 자루는 남쪽을 가리켰다. 만고토록 늘 원기를 머금어 늙었으니, 천 봉우리가 우뚝 늘어서매 햇빛조차 차가웠다. 그 장로는 말 위에서 마음이 놀랐거늘, 손대성이 재주를 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크게 한번 포효하니, 놀란 이리와 벌레들이 넘어져 흩어지고 호랑이와 표범이 달아나 버렸다. 사도들이 이 산으로 들어가 바위가 험하게 솟은 곳에 이르렀을 때 삼장법사가 말했다. “오공아, 나는 오늘 배가 고프구나. 네가 어디로 가서 공양을 좀 빌려 오겠느냐?” 행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스승님께서 어찌 그리 밝지 못하시옵니까? 이런 산중턱에서 앞으로는 마을이 없고 뒤로는 주막이 없사오니, 돈이 있어도 살 곳이 없거늘 어느 곳으로 가서 공양을 찾으라 하시옵니까?” 삼장법사는 마음이 언짢아 입으로 꾸짖어 말했다. “이 원숭이 같은 놈! 네가 양계산에서 여래에게 돌 상자 속에 눌려 입으로는 말을 할 수 있어도 발로는 걸을 수 없었을 때를 생각해 보아라. 내가 너의 목숨을 구해 주고 정수리에 손을 얹어 계를 받게 하여 내 제자로 삼았거늘, 어찌 힘쓰려 하지 않고 늘 게으른 마음만 품고 있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제자도 또한 꽤 부지런하옵거늘 어느 때에 게을렀사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네가 부지런하다면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공양을 빌려 오지 않느냐? 내가 배가 고픈데 어찌 걸어갈 수 있겠느냐? 게다가 이곳은 산의 기운과 탁한 독기가 서려 있거늘 어찌 뢰음사에 오를 수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시옵소서. 말씀을 조금만 하시옵소서. 저는 스승님의 높고 오만하신 성품을 아옵니다.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곧 그 주문을 외우시려 할 터이오니, 말에서 내려 편안히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어디에 인가가 있는 곳을 찾아 공양을 빌려 오겠나이다.” 행자가 몸을 한 번 솟구쳐 구름 속으로 뛰어올라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가련하게도 서쪽 길은 몹시 적막하여 마을이나 성채는커녕 인가조차 없었으니, 참으로 나무는 흔히 만나되 인적은 드문 곳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니 정남쪽에 높은 산 하나가 있고, 그 산의 양지쪽에 새빨간 점들이 한 무리 있었다. 행자가 구름머리를 내려누르며 말했다. “스승님, 먹을 것이 있사옵니다.” 그 장로가 무슨 물건인지 묻자 행자가 말했다. “이곳에는 밥을 빌릴 인가가 없사옵니다. 저 남쪽 산에 붉은 것이 한 무리 있사온데, 틀림없이 잘 익은 산복숭아이겠사옵니다. 제가 가서 몇 알 따다가 스승님의 요기를 채워 드리겠나이다.” 삼장법사가 기뻐하며 말했다. “출가인이 복숭아나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니라. 어서 가거라!” 행자가 발우를 들고 상서로운 빛을 일으켰다. 보라, 그가 근두구름을 펄럭이며 찬 기운이 쌩쌩 스치는 가운데 잠깐 사이에 남산으로 달려갔으니, 복숭아를 따는 일은 이쯤 해 두겠다. 말하자면, 속담에 이르기를 산이 높으면 반드시 괴물이 있고 고개가 험하면 정괴가 생긴다 하였다. 과연 이 산에 요괴 하나가 있었거늘, 손대성이 떠날 때 그 요괴를 놀라 움직이게 하였다. 그 요괴는 구름 속에서 음풍을 밟으며 장로가 땅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참을 수 없이 기뻐하며 말했다. “재수로다! 재수로다! 몇 해 동안 사람들이 모두 동토의 당나라 중이 대승의 경을 구하러 온다 하였거니와, 그는 본래 금선자의 화신이요 열 세상 동안 도를 닦은 본바탕이라니, 누구든 그의 살점 한 조각을 먹으면 장수하고 장생한다더니, 참으로 오늘에야 이르렀구나!” 그 요괴가 앞으로 나서며 그를 붙잡으려 하다가 보니, 장로의 좌우에서 두 원의 대장이 호위하고 있어 감히 몸을 가까이하지 못하였다. 그가 말한 두 원의 대장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저팔계와 사승이었다. 저팔계와 사승이 비록 큰 재주는 없다 하나 저팔계는 천봉원수요 사승은 권렴대장이니, 그들의 위엄 있는 기운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던 까닭에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였다. 요괴가 말했다. “잠깐 그를 한번 놀려 보고 무슨 말이 나오는지 보자.” 과연 좋은 요괴로다, 음풍을 멈추고 산의 움푹한 곳에서 몸을 한 번 흔들어 변신하니, 달 같은 얼굴과 꽃 같은 자태를 지닌 처녀로 변하였다. 그 눈썹은 맑고 눈은 수려하며 이는 희고 입술은 붉음을 다 말할 수 없거니와, 왼손에는 푸른 사기 단지를 들고 오른손에는 녹색 자기 병을 들고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곧장 당승을 향해 달려갔다. 성스러운 중이 산바위 위에서 말을 쉬게 하는데, 문득 치마를 입은 여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비취 소매가 가볍게 흔들리매 옥 같은 손가락을 감싸고, 비단 치마가 비스듬히 끌리매 작은 발이 드러나는구나. 땀이 분칠한 얼굴에 흐르니 꽃이 이슬을 머금은 듯하고, 티끌이 아미를 스치니 버들이 연기에 싸인 듯하더라.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는 사이에, 어느새 곁으로 다가왔다. 삼장법사가 보고는 불러 말했다. “팔계야, 사승아, 오공이 방금 이곳은 광야라 사람이 없다 하였거늘, 너희 보아라, 저기 사람 하나가 걸어 나오지 않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사승과 함께 앉아 계시오. 이 늙은 돼지가 가서 좀 보고 오겠다.” 그 멍청이는 쇠갈퀴를 내려놓고 장삼을 여미며 몸을 흔들흔들거리고 점잖은 체하며 곧장 마주 나아갔다. 참으로 멀리서 보면 분명치 않으나 가까이서 보면 뚜렷하였다. 그 여자의 생김새는 이러하였으니, 얼음 같은 살결에 옥 같은 뼈가 감추어 있고, 옷깃 사이로 부드러운 가슴이 드러난다. 버들 눈썹에는 푸른 눈썹먹이 쌓였고, 살구 같은 눈에서는 은빛 별이 반짝인다. 달 같은 용모는 아리땁고, 타고난 성정은 맑으며, 몸은 제비가 버들 속에 숨은 듯하고, 목소리는 꾀꼬리가 숲에서 우는 듯하구나. 반쯤 핀 해당화는 새벽 해를 머금었고, 막 피어난 작약은 봄볕을 희롱하는구나. 그 저팔계는 그 여자가 곱게 생긴 것을 보고 멍청이가 범심을 일으켜 참지 못하고 함부로 말을 걸며 외쳤다. “여보살님,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손에 들고 계신 것은 무슨 물건이오?” 분명히 요괴이거늘 그는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여자가 연달아 대답하여 말했다. “장로시여, 이 푸른 단지에는 향기로운 쌀밥이 있고, 녹색 병에는 볶은 면근이 들어 있사옵니다. 이곳에 온 것은 다른 까닭이 없사옵고, 서원을 갚으려고 중에게 공양하러 왔사옵니다.”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한없이 기뻐 급히 몸을 돌려 돼지가 미친 듯 달려가듯 뛰어가 삼장법사에게 알리며 말했다. “스승님! 길한 사람은 하늘이 갚아 주는구나! 스승님이 배가 고프다 하여 형님더러 공양을 빌려 오라 하셨거늘, 그 원숭이 녀석이 어디로 복숭아를 따러 간다며 놀러 갔는지 모르겠다.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속이 좀 쓰리고 아래가 묵직해지기도 하지. 보시오, 저기 중에게 공양하러 오는 이가 오지 않소?” 당승이 믿지 않으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이 헛소리를 늘어놓는구나! 우리가 이토록 걸어오는 동안 착한 사람 하나도 만나지 못하였거늘, 중에게 공양할 이가 어디서 온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저기 오지 않소?” 삼장법사는 보자마자 황급히 몸을 일으켜 가슴에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여보살님, 댁은 어디에 계시오? 어떤 집안이시오? 무슨 서원이 있어 이곳에 와서 중에게 공양하려 하시오?” 분명히 요정이거늘 그 장로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요정은 당승이 자기 내력을 묻는 것을 보고 즉석에서 거짓 정을 꾸며내어 감언이설로 속여 넘기려 말했다. “스승님, 이 산은 뱀도 되돌아가고 짐승도 두려워한다는 백호령이라 하옵니다. 바로 서쪽 아래가 저의 집이옵니다. 저의 부모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경을 읽고 선을 좋아하시어 널리 사방 원근의 중들에게 공양을 베푸시옵니다. 다만 자식이 없어 복을 빌며 복을 짓다가 저를 낳았사옵니다. 문벌을 끌어올리고자 남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였사오나, 늙어서 의지할 곳이 없을까 염려되어 저에게 사위 하나를 들여 봉양과 상을 맡기었사옵니다.”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여보살님, 그대의 말씀은 잘못되었소. 성경에 이르기를 부모가 살아 계시면 멀리 가지 않고, 가게 되면 반드시 방향이 있다 하였거늘, 그대는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또 사위까지 들였사온데 서원이 있다면 그대의 남자에게 갚으라 하면 그만이거늘, 어찌하여 몸소 산을 걸어 다니시오? 게다가 모실 하인 하나도 없지 않소? 이는 부도를 지키지 않는 것이오.” 그 여자는 싱긋이 웃으며 교태로운 말을 황급히 보태어 말했다. “스승님, 저의 남편은 산 북쪽 움푹한 곳에서 일꾼 몇을 데리고 밭을 매고 있사옵니다. 이것은 제가 끓인 점심이옵고, 그 사람들에게 갖다 주는 것이옵니다. 다만 한창 바쁜 오육월이라 부릴 사람이 없고 부모님께서도 연로하시어 제가 몸소 갖다 드리는 것이옵니다. 문득 세 분이 먼 곳에서 오시는 것을 만나옵고, 부모님께서 선을 좋아하심을 생각하여 이 밥을 중에게 공양하려 하옵니다.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정성껏 바치고자 하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착하도다! 착하도다! 내게 제자가 있어 과일을 따러 갔으니 곧 돌아올 터인즉 나는 감히 먹을 수 없소. 만일 이 중이 그대의 밥을 먹었다가 그대의 남편이 알고 그대를 꾸짖는다면 그것은 가난한 중의 죄가 되지 않겠소?” 그 여자는 당승이 먹으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얼굴 가득 봄빛을 띠며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저의 부모님이 중에게 공양하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옵니다. 저의 남편은 더욱 착한 사람이라 평생 다리를 놓고 길을 보수하며 노인을 아끼고 가난한 이를 불쌍히 여기기를 좋아하옵니다. 이 밥을 스승님께 드려 드셨다 하는 말을 듣기만 하여도 그는 저와 부부 정이 남다르옵니다.” 삼장법사가 그래도 먹지 않자 곁에서 저팔계의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 멍청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 입으로 투덜거리며 말했다. “천하의 중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내 이 늙은 중처럼 우유부단한 이는 일찍이 없었소! 차려 놓은 밥을 사양하며 먹지 않고, 그저 원숭이 놈이 오기만 기다려서 나누어 먹으려 한단 말이오!” 그는 사양할 틈도 주지 않고 주둥이로 단지를 들이받아 넘어뜨리고는 곧 입을 대려 하였다. 그때 행자가 남산 꼭대기에서 복숭아 몇 알을 따 발우에 담아 근두구름으로 훌쩍 되돌아왔다. 화안금정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그 여자가 요괴임을 알아보았다. 발우를 내려놓고 쇠몽둥이를 뽑아 들고는 정면을 향해 곧바로 내리쳤다. 놀란 장로가 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오공아! 네가 달려와서 누구를 때리려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 앞에 있는 이 여자를 착한 사람으로 여기지 마시옵소서. 그는 요괴라 스승님을 속이려는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 지난날에는 오히려 안목이 좀 있더니 오늘은 어찌 함부로 말하느냐! 이 여보살이 이런 착한 마음으로 이 밥을 우리에게 공양하려 하거늘, 네가 어찌 그를 요괴라 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어찌 알아보시겠나이까! 이 늙은 원숭이가 수렴동에서 요마로 있을 적에 사람의 고기를 먹고 싶으면 바로 이렇게 하였사옵니다. 금은으로 변하기도 하고 마을이나 누대로 변하기도 하며, 취한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고 여색으로 변하기도 하였사옵니다. 그 가운데 어리석은 자가 있어 나를 사랑하게 되면 그를 굴 속으로 홀려 데려가 마음 내키는 대로 찌거나 삶아 먹었사옵니다. 다 먹지 못하면 말려 두어 흐린 날을 대비하기도 하였사옵니다! 스승님, 제가 늦게 왔다면 스승님은 틀림없이 그의 올가미에 빠져 독수를 당하셨을 것이옵니다!” 그 당승은 어찌 믿으려 하겠는가. 다만 착한 사람이라 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저는 스승님의 마음을 아옵니다. 스승님께서 그의 그런 용모를 보시고 필시 범심을 일으키셨나이다. 만일 정말 그런 뜻이 있으시다면 팔계에게 나무 몇 그루를 베어 오라 하시고 사승에게 풀을 좀 구해 오라 하시옵소서. 저는 목수가 되어 이곳에 움막 하나를 지어 드리겠나이다. 스승님께서 그와 방을 이루어 일을 성사시키시면 우리 모두 흩어지는 것이니, 그것이 한 사업이 아니겠나이까? 하필 또 험한 길을 걸어 무슨 경을 구하러 가시려 하시나이까!” 그 장로는 본래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라 그의 그런 말을 어찌 견디겠는가. 부끄러워 민머리가 귀까지 붉어졌다. 삼장법사가 부끄러워하는 사이에 행자가 또 성질을 내어 쇠몽둥이를 뽑아 들고 요괴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그 괴물에게는 재주가 좀 있어 해시법을 부렸거늘, 행자의 몽둥이가 내려오는 것을 보자 정신을 떨쳐 미리 달아나 버리고 가짜 시신 하나를 땅에 쓰러뜨려 놓았다. 놀란 장로가 부들부들 떨며 입으로 중얼거려 말했다. “이 원숭이는 참으로 무례하구나! 거듭 타이르되 듣지 않고 까닭 없이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구나!”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노여워 마시옵소서. 우선 이 단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시옵소서.” 사승이 장로를 부축하여 가까이 가서 보니, 어찌 향기로운 쌀밥이겠는가. 꼬리를 끄는 긴 구더기 한 단지요, 면근도 아니요 몇 마리의 청개구리와 두꺼비가 온 땅에 어지러이 뛰고 있었다. 장로가 그제야 서푼이나마 믿게 되었거늘, 저팔계가 분하여 견디지 못하고 곁에서 여덟 푼이나 참소하며 말했다. “스승님, 이 여자를 말씀드리자면 그는 이 고장 농가의 아낙이오. 밭으로 밥을 나르다가 길에서 우리를 만났거늘 어찌 그를 요괴라 씌우겠소? 형님의 몽둥이가 무거우니 달려와 시험 삼아 한 번 쳐 보았다가 뜻하지 않게 쳐죽이고 말았소. 스승님께서 《긴고아주》를 외우실까 두려워 고의로 장안법을 부려 이런 물건으로 변하게 하여 스승님의 눈을 가리고 주문을 외우지 못하게 한 것이오.” 삼장법사는 이 한마디로 드디어 재수 없는 때를 만났다. 과연 그 멍청이의 부추김을 믿고 손으로 결을 잡고 입으로 주문을 외우니 행자가 외쳤다. “머리가 아프옵니다! 머리가 아프옵니다! 외우지 마시옵소서! 외우지 마시옵소서! 하실 말씀이 있거든 하시옵소서.” 당승이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냐! 출가인은 때때로 남을 편하게 해 주려 하고 생각마다 착한 마음을 떠나지 않나니, 땅을 쓸면서도 땅강아지의 목숨을 상할까 두려워하고 나방을 아껴 등에 거즈를 씌운다. 너는 어찌하여 걸음마다 흉악을 부려 죄 없는 이 사람을 쳐죽이느냐? 그리하여 경을 가져온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너는 돌아가거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어디로 돌아가라 하시옵니까?” 당승이 말했다. “나는 너를 제자로 두지 않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저를 제자로 두지 않으시면 서천으로 가는 길을 이루지 못하실까 두렵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내 목숨은 하늘에 있거늘 그 요괴에게 찌어 먹힐 팔자라면 삶아 먹힌다 한들 어찌 셈이 다르랴.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나의 수명을 구할 수 있단 말이냐? 어서 돌아가거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제가 돌아가는 것은 그만이옵니다만, 다만 스승님의 은혜를 갚지 못하였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내가 너에게 무슨 은혜가 있단 말이냐?” 그 대성이 그 말을 듣고 황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는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탓에 몸을 상하는 재앙을 불러들여 우리 부처님께 양계산에 눌렸사옵니다. 다행히 관음보살께서 저에게 계행을 받게 하시고 다행히 스승님께서 제 몸을 구해 벗어나게 하셨사옵니다. 스승님과 함께 서천으로 오르지 않는다면 은혜를 알고도 갚지 않아 군자가 못 됨을 드러내어 만고천추에 욕되는 이름이 될 것이옵니다.” 본래 이 당승은 자비로운 성스러운 중이라 행자가 애걸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돌려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번 한 번만 용서하겠노라. 다시는 무례를 부리지 말라. 만약 전처럼 악을 행하면 이 주문을 거꾸로 스무 번을 외우리라!” 행자가 말했다. “서른 번이라도 스승님께서 하실 대로 하시옵소서. 다만 저는 사람을 때리지 않겠나이다.” 그리고 나서야 당승을 모시고 말에 오르게 하고 또 따온 복숭아를 받들어 올렸다. 당승은 말 위에서 몇 알을 먹고 우선 요기를 채웠다. 말하자면, 그 요괴는 목숨을 건져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본래 행자의 그 몽둥이 한 방은 요괴를 쳐죽이지 못하였으니, 요괴가 신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그는 구름 속에서 이를 갈며 속으로 행자를 원망하여 말했다. “몇 해 동안 그의 재주를 입으로만 전해 들었거늘, 오늘 과연 그 말이 헛되지 않구나. 저 당승은 이미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밥을 먹으려 하였는데, 그가 고개를 숙여 한 번 냄새만 맡았더라면 내가 한 움큼 움켜쥐어 내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을. 뜻밖에도 그가 달려오는 바람에 내 이 꾀가 깨져 버리고, 또 하마터면 그의 몽둥이에 한 방 맞을 뻔하였구나. 이 중을 놓아준다면 참으로 헛수고가 될 터이니, 내가 다시 내려가 그를 한번 놀려 보리라.” 과연 좋은 요괴로다, 음운을 내려놓고 앞쪽 산비탈 아래에서 몸을 한 번 흔들어 변신하니, 여든이 다 된 노파로 변하였다. 손에는 굽은 머리의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에 한 소리씩 울며 걸어왔다. 저팔계가 보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스승님! 큰일 났소! 저 할멈이 사람을 찾으러 오오!” 당승이 말했다. “누구를 찾는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쳐죽인 이가 틀림없이 그의 딸이오. 이 할멈은 틀림없이 그 어미가 찾아온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아우여, 헛소리 말라! 그 여자는 열여덟 살인데 이 노파는 여든이니, 어찌 예순이 넘어 해산을 하였단 말이냐? 틀림없이 가짜이니 이 늙은 원숭이가 가서 보고 오리라.” 과연 좋은 행자로다, 걸음을 재촉하여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 괴물의 모습은 이러하였으니, 가짜로 늙은 할멈으로 변하였는데 두 귀밑머리는 얼음과 눈 같고, 걷는 걸음은 느릿느릿하며 발걸음은 힘없이 떨린다. 여윈 몸은 바싹 말랐고, 얼굴은 시든 배춧잎 같구나. 광대뼈는 위로 솟았고, 입술은 아래로 처졌다. 늙은이는 젊은 시절과 같지 않아, 얼굴 가득 연잎 주름뿐이로다. 행자는 그가 요괴임을 알아보고 아무 말도 없이 몽둥이를 들어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요괴는 몽둥이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다시 정신을 떨쳐 원신을 빠져나가게 하고 참몸을 벗어나 달아나며, 가짜 시신 하나를 또다시 산길 아래에 쓰러뜨려 놓았다. 당승은 보자마자 놀라 말에서 떨어져 길가에 누웠다. 다른 말은 없이 다만 《긴고아주》를 거꾸로 스무 번을 꽉 채워 외웠다. 가련하게도 행자의 머리는 잘록한 허리의 표주박처럼 조여 들어 몹시 아파 견디지 못하고 굴러와 애걸하며 말했다. “스승님, 외우지 마시옵소서! 하실 말씀이 있거든 하시옵소서!” 당승이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냐! 출가인은 착한 말을 귀담아들어 지옥에 떨어지지 않나니, 내가 이토록 너를 타이르거늘 너는 어찌 다만 흉악만 부리느냐? 죄 없는 사람을 하나 쳐죽이고 또 하나를 쳐죽였으니, 이것을 어찌 설명하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는 요괴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이 원숭이 놈이 헛소리를 하는구나! 어찌 그리 많은 요괴가 있단 말이냐! 너는 선을 좇을 마음은 없고 악을 지을 뜻만 있는 자이니, 너는 가거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또 저더러 가라 하시니, 돌아가기야 돌아가겠사옵니다만, 다만 한 가지 들어맞지 않는 것이 있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무엇이 들어맞지 않는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형님은 스승님과 행장을 나누려 하오. 스승님을 따라 몇 해를 중 노릇 하였거늘 빈손으로 돌아갈 수야 없지 않소? 보따리 속의 낡은 적삼이라든가 해진 모자 같은 것 두어 개만 나누어 주시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분을 참지 못해 펄쩍 뛰며 말했다. “이 뾰족한 주둥이를 한 멍청한 놈 같으니라구! 이 늙은 원숭이는 한결같이 사문의 가르침을 받들어 조금도 시기하는 마음이나 탐내는 마음이 없거늘, 어찌 행장을 나누자 하겠느냐?” 당승이 말했다. “네가 시기도 탐냄도 없다면 어찌하여 가지 않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 속이지 않고 말씀드리거니와, 이 늙은 원숭이는 오백 년 전 화과산 수렴동에 살며 크게 영웅을 떨치던 때에 일흔두 동굴의 사특한 마귀를 항복받아 거느렸사옵니다. 수하에는 사만 칠천의 무리 괴물이 있었고, 머리에는 자금관을 썼고, 몸에는 자황포를 걸쳤고, 허리에는 남전대를 둘렀고, 발에는 보운리를 신었고, 손에는 여의금고봉을 쥐었사오니 참으로 사람 구실도 하였사옵니다. 열반의 죄를 건져 머리를 깎고 바른 사문을 받든 뒤로 스승님을 따라 제자가 되어 이 금고를 내 머리에 얹게 하였사온데, 돌아간다면 고향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사옵니다. 스승님께서 진실로 저를 필요 없다고 여기신다면 저 《송고아주》를 한 번 외우시어 이 고리를 풀어 스승님께 건네 주시옵소서. 다른 사람의 머리에 씌우시면 저는 즐겁고 편하겠나이다. 그것이 스승님을 따른 한때의 인정이 아니겠나이까. 설마 이만한 인정조차 없사옵니까?” 당승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오공아, 그때 보살께서 은밀히 《긴고아주》 한 권을 주신 것뿐이었거늘, 무슨 송고아주는 없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송고아주》가 없다시면 저를 데리고 다시 가시옵소서.” 장로는 또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우선 일어나거라. 내가 이번 한 번만 더 용서하겠노라. 그러나 다시는 흉악을 부리지 말라.” 행자가 말했다. “다시는 감히 그러지 않겠나이다, 다시는 감히 그러지 않겠나이다.” 또 스승님을 모시고 말에 오르게 하고 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말하자면, 그 요괴는 본래 행자의 두 번째 몽둥이에도 쳐죽지 않았다. 그 괴물은 반공중에서 칭찬을 그치지 못하며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원숭이 왕이로구나, 참으로 눈이 있구나! 내가 저렇게 변하여 갔건만 그가 도리어 나를 알아보았구나. 이 중들은 걸음이 빠르니 이 산을 지나 서쪽으로 마흔 리만 내려가면 내가 다스리는 곳이 아니게 된다. 만일 다른 곳의 요마가 움켜 간다면 남의 입만 찢어지게 웃게 하고 내 마음만 부서지게 할 터이니, 내가 다시 내려가 그를 한번 놀려 보리라.” 과연 좋은 요괴로다, 음풍을 타고 산비탈 아래에서 몸을 한 번 흔들어 변신하니 늙은 영감으로 변하였다. 참으로 그러하였으니, 흰 머리는 팽조 같고 검은 수염은 수성과 견주며, 귀에서는 옥경이 울리고 눈에서는 금성이 번쩍인다. 손에는 용두 지팡이를 짚고, 몸에는 학창의를 가볍게 걸쳤으며, 염주를 손에 쥐고 입으로는 나무경을 외우누나. 당승이 말 위에서 보고 마음이 기뻐 말했다. “아미타불! 서방은 참으로 복된 땅이로구나! 저 영감은 길도 제대로 걸어오지 못하면서 그 와중에도 경을 외우는구나.”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칭찬하지 마시오. 저 영감이 재앙의 뿌리요.” 당승이 말했다. “어찌하여 재앙의 뿌리란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행자가 그의 딸을 쳐죽이고 또 그의 노파를 쳐죽였으니, 이 영감이 바로 그 늙은이가 찾아온 것이오. 우리가 그의 품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스승님은 목숨을 갚아 사죄가 될 것이오. 이 늙은 돼지는 종범이 되어 충군을 당하고, 사승은 호령한 죄로 파발역에 배치될 것이오. 그 행자는 둔법을 부려 달아나 버릴 터이니, 우리 세 놈이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고생하지 않겠소?” 행자가 듣고 말했다. “이 멍청한 놈이 이토록 헛소리를 하니 스승님을 놀라게 하지 않겠느냐? 이 늙은 원숭이가 다시 가서 보겠노라.” 그는 몽둥이를 몸에 숨기고 앞으로 걸어나가 괴물을 마주하며 외쳤다. “늙은 영감이여,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어찌하여 길을 걸으면서 경을 외우시오?” 그 요괴는 저울의 기준점을 잘못 헤아려 손대성도 보통 인물로 여기고 대답하여 말했다. “장로시여, 이 늙은이는 대대로 이곳에 살아왔사옵니다. 평생 선을 좋아하여 중에게 공양하고 경을 보며 불을 염하였사옵니다. 팔자에 아들이 없어 딸 하나만 낳았사옵고 사위를 들였사옵니다. 오늘 아침 밭으로 밥을 나르다가 호랑이 아가리를 만난 모양이옵니다. 늙은 아내가 먼저 찾으러 왔으나 돌아가지도 않았고 행방을 전혀 알 수 없어 이 늙은이가 특별히 찾아보러 왔사옵니다. 정말로 그의 목숨이 다쳤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사오니, 그의 해골을 거두어 무덤에 장사 지내려 하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호랑이를 부리는 조상이거늘, 네가 어찌 소매 속에 귀신을 넣어 와서 나를 속이려 하느냐? 너는 남들은 속였어도 나는 속이지 못하느니라! 나는 네가 요괴임을 알아보았노라!” 그 요괴는 놀라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행자가 몽둥이를 뽑아 들고 속으로 헤아려 말했다. “그를 치지 않는다면 그가 도리어 바람을 일으키는 꼴이 될 터이요, 그를 치자니 스승님께서 그 주문을 외우실까 두렵구나.” 또 생각하기를 “쳐죽이지 않으면 그가 한 틈을 타 스승님을 움켜 갈 터이니, 그때 또 심력을 다해 구하러 다니지 않겠느냐? 치는 것이 옳다! 한 방에 쳐죽여 놓고 스승님이 그 주문을 외우시면, 속담에 이르기를 호랑이도 독하되 제 새끼는 먹지 않는다 하였거늘, 내 교묘한 말과 능청스러운 입놀림으로 그를 한번 달래면 그만일 터이다.”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주문을 외워 당방 토지와 본처 산신을 불러 말했다. “이 요괴가 세 번이나 와서 내 스승님을 희롱하거늘 이번에는 그를 쳐죽이려 하노라. 너희는 반공중에서 나와 함께 증인이 되어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여러 신들이 명령을 듣고 누가 감히 따르지 않으랴. 모두 구름 속에서 호응하였다. 그 대성이 몽둥이를 들어올리는 순간 요마를 쳐 쓰러뜨리니 비로소 영광이 끊어졌다. 그 당승은 말 위에서 또 놀라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지 못하였다. 저팔계가 곁에서 또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행자로구나! 바람이 났구나! 반나절 길을 걸었을 뿐인데 도리어 세 사람이나 쳐죽였구나!” 당승이 막 주문을 외우려 하는데 행자가 급히 말 앞으로 달려가 외쳤다. “스승님, 외우지 마시옵소서! 외우지 마시옵소서! 우선 그의 모양을 보시옵소서.” 그것은 한 무더기의 흰 해골이었다. 당승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오공아, 이 사람은 방금 죽었거늘 어찌 곧 한 무더기 해골로 변하였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는 영혼을 숨겨 괴이를 부리는 강시라, 이곳에서 사람을 미혹하고 근본을 무너뜨렸사옵니다. 제가 쳐죽이자 그가 본모습을 드러내었사옵니다. 그의 등뼈 위에 한 줄의 글자가 있사온데 백골부인이라 하였사옵니다.” 당승은 그 말을 듣고 그제야 믿는 듯하였거늘, 저팔계가 곁에서 참소하는 것을 어찌 막으랴. “스승님, 그의 손이 무겁고 몽둥이가 흉악하여 사람을 쳐죽여 놓고는 스승님이 그 주문을 외우실까 두려워 고의로 이런 모양으로 변하여 스승님의 눈을 가린 것이오!” 당승은 과연 귀가 얇아 또 그의 말을 믿고 곧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행자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길가에 무릎을 꿇고 다만 외쳤다. “외우지 마시옵소서! 외우지 마시옵소서! 하실 말씀이 있거든 어서 하시옵소서!” 당승이 말했다. “원숭이 놈아! 무슨 할 말이 더 있단 말이냐! 출가인이 선을 행함은 봄 동산의 풀과 같아 그 자람은 보이지 않으나 날로 더함이 있고, 악을 행하는 자는 칼 가는 숫돌과 같아 그 닳음은 보이지 않으나 날로 줄어드느니라. 네가 이 황량한 들판에서 줄곧 세 사람을 쳐죽였으나 아직 고발하는 이도 없고 맞서는 이도 없거니와, 만일 도시로 들어가 인가가 모여든 곳에서 네가 그 상여 앞의 몽둥이를 들고 한때 분별을 잃고 사람을 마구 때려 큰 화를 불러들이면 나더러 어찌 벗어나라 하겠느냐? 너는 돌아가거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저를 잘못 꾸짖으시나이다. 이놈은 분명 요마라 실로 스승님을 해칠 마음을 품었사옵니다. 제가 도리어 그를 쳐죽여 스승님을 위하여 해를 제거하였거늘, 스승님께서는 알아보지 못하시고 도리어 그 멍청이의 참소와 냉담한 말을 믿으시어 거듭 저를 쫓으시나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일이란 세 번을 넘지 않는다 하였사옵니다. 제가 가지 않는다면 참으로 비열하고 파렴치한 놈이 될 것이옵니다. 가겠나이다, 가겠나이다! 가기야 가겠사오나 다만 스승님의 수하에 사람이 없사옵니다.” 당승이 노하여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가 갈수록 무례하구나! 보아하니 너만 사람이고 저 오능과 오정은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그 대성은 그 두 사람이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자마자 서글픈 마음을 참을 수 없어 당승에게 말했다. “고통스럽나이다! 스승님께서 그때 장안을 나오실 적에는 유백흠이 길을 배웅하였사옵고, 양계산에 이르러서는 저를 구해 내어 스승님께 절하고 제자로 받들게 하였사옵니다. 저는 옛 동굴을 꿰뚫고 깊은 숲에 들어가 마귀를 사로잡고 괴이를 잡았사옵고, 팔계를 거두고 사승을 얻었사오며 온갖 고생을 다 겪었사옵니다. 오늘 밝은 이를 속여 어리석은 부리심을 쓰시며 다만 저더러 돌아가라 하시니, 이것이야말로 새가 다하면 활을 감추고 토끼가 죽으면 개를 삶는 격이옵니다! 그만두겠나이다, 그만두겠나이다, 그만두겠나이다! 다만 저 《긴고아주》가 남아 있는 것이 근심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내가 다시는 외우지 않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그것은 장담하기 어렵사옵니다. 만일 저 독한 요마의 고난 속에 빠져 몸을 빼지 못하고 팔계와 사승도 스승님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때에 저를 떠올리시면 참지 못하고 또 주문을 외우실 터이옵니다. 십만 리 밖이라도 제 머리는 아플 것이옵니다. 다시 스승님을 뵈러 온다면 차라리 이런 뜻을 두지 않겠나이다.” 당승은 그가 자꾸 말을 늘어놓자 노여움이 더해져 안장에서 굴러 내려와 사승에게 보따리에서 종이와 붓을 꺼내라 하고, 곧 시냇물에서 물을 길어 돌 위에 먹을 갈아 쫓아내는 글 한 장을 써서 행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원숭이 놈아! 이것을 증표로 삼거라. 다시는 너를 제자로 두지 않겠노라! 만일 다시 너와 만난다면 내가 아비지옥에 떨어지리라!” 행자가 황급히 그 글을 받아들며 말했다. “스승님, 맹세까지 하시지 마시옵소서. 이 늙은 원숭이가 가겠나이다.” 그는 글을 접어 소매 속에 간직하고는 다시 당승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스승님, 저 또한 스승님을 따른 한때가 있사옵고, 또 보살의 가르침을 입었사옵니다. 오늘 도중에 그만두어 공을 이루지 못하였사오니, 스승님께서는 앉으시옵소서. 제 절 한 번을 받아 주시면 저도 마음 놓고 떠나겠나이다.” 당승은 몸을 돌려 쳐다보지도 않고 입으로 중얼거리며 말했다. “나는 착한 중이니, 너 같은 못된 놈의 절은 받지 않겠노라!” 대성이 그가 쳐다보지 않음을 알고 또 신외법을 부려 뒷머리의 터럭 세 가닥을 뽑아 입으로 선기 한 번 불고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행자 셋이 생겨나 본래 몸까지 넷이 되어 사방에서 스승님을 에워싸고 절을 올렸다. 그 장로는 좌우로 피할 수 없어 마지못해 한 절을 받았다. 대성이 벌떡 일어나 몸을 한 번 털어 터럭을 거두어들이고는 또 사승에게 분부하여 말했다. “어진 아우여, 너는 착한 사람이로되 다만 팔계의 참언과 참소를 경계하도록 마음을 쓰거라. 도중에도 더욱 조심하라. 만일 어느 때 요괴가 스승님을 붙잡는다면 너는 이 늙은 원숭이가 그의 큰 제자라 하여라. 서방의 털 괴물들은 내 재주를 들으면 감히 내 스승님을 해치지 못하리라.” 당승이 말했다. “나는 착한 중이니 너 같은 못된 놈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겠노라. 어서 돌아가거라.” 그 대성은 장로가 두세 차례 거듭하여도 마음을 돌릴 뜻이 없음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떠났다. 보라, 그의 모습이 이러하였으니,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조아려 장로에게 작별하며, 슬픔을 품고 마음을 남겨 사승에게 당부하는구나. 머리를 숙여 비탈 앞의 풀을 헤치고, 두 발로 땅 위의 덩굴을 밟아 넘긴다. 하늘에 오르고 땅에 내림이 수레바퀴 돌듯 하고,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음이 첫째가는 재주로다. 잠깐 사이에 그림자가 보이지 않더니 삽시간에 옛 길을 되돌아간다. 보라, 그가 분을 참고 스승님에게 작별한 뒤 근두구름을 타고 곧장 화과산 수렴동으로 돌아갔다. 홀로 처량하고 처연한데, 문득 물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울렸거늘, 대성이 반공중에서 살펴보니 그것은 동양 대해의 조수가 일어나는 소리였다. 그것을 보고는 또 당승을 떠올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구름을 멈추고 걸음을 멈추어 오래도록 있다가 떠났다. 결국 이렇게 떠난 뒤 일이 어찌 뒤바뀔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8회 화과산군요취의(花果山群妖聚義) · 흑송림삼장봉마(黑松林三藏逢魔) 말하자면, 그 대성은 비록 삼장법사에게 쫓겨났으나 오히려 그를 그리워하며 탄식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일찍이 동양 대해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내가 이 길을 지나가지 않은 지 어언 오백 년이로구나!” 보라, 저 바닷물이 이러하였다. 안개 낀 물결은 넘실거리고 큰 파도는 유유하구나. 안개 낀 물결 넘실거려 은하수에 닿았고, 큰 파도 유유하여 땅의 맥에 통하는구나. 밀물이 밀려오면 세차게 솟구치고, 물은 굽이진 포구를 적시는구나. 밀물이 밀려와 세차게 솟구침은 마치 봄날 우레가 세 차례 포효하는 듯하고, 물이 포구를 감아 적심은 도리어 미친 바람이 한여름을 휩쓰는 듯하구나. 용을 타는 복 많은 노인도 오가며 반드시 눈썹을 찌푸리고, 학을 탄 선동도 거듭하여 과연 근심을 안고 지나가는구나. 가까운 언덕에는 마을도 없고, 물가에는 고기잡이배도 드물구나. 파도는 천 년 쌓인 눈을 말아 올리고, 바람은 유월에 가을을 일으키는구나. 들새는 제멋대로 드나들고 모래 위 새는 마음대로 떠오르고 가라앉으니, 눈앞에는 낚시꾼 하나 없고 귓가에는 갈매기 소리만 들리는구나. 바다 밑에서 노니는 고기는 즐겁건만, 하늘 가를 지나가는 기러기는 시름에 잠겼구나. 그 행자가 몸을 한 번 솟구쳐 동양 대해를 뛰어넘자 어느새 화과산에 이르렀다. 구름머리를 누르고 내려앉아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저 산에는 꽃과 풀이 모두 사라지고 안개와 노을이 모조리 끊어졌으며, 봉우리와 바위는 무너져 내리고 숲의 나무는 타서 말라 있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아느냐? 이는 그가 천궁을 어지럽힌 죄로 윗세계로 잡혀 올라간 뒤, 이 산이 현성 이랑신이 매산 칠형제를 거느리고 불을 놓아 태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대성은 더욱 처참한 심정이 되었으니, 무너진 산과 쇠락한 경치를 읊은 고풍 한 편이 증거가 되거늘, 고풍에 이르기를, 선산을 돌아보니 두 줄기 눈물이 흐르고, 산을 마주하니 처참하여 더욱 상심하는구나. 그때는 산만 상하지 않았다 여겼거늘, 오늘에야 땅이 상했음을 알겠구나. 미워하노라, 이랑이 나를 멸한 것을! 성내노라, 저 소성이 사람을 업신여긴 것을! 흉악하게 굴어 네 선영의 무덤을 파헤치고, 죄 없는 네 조상의 묘터를 부수었구나. 하늘 가득한 노을과 안개는 모두 흩어져 사라지고, 땅을 덮은 바람과 구름은 모조리 옅어졌구나. 동쪽 고개에서는 얼룩 호랑이의 포효가 들리지 않고, 서쪽 산에는 흰 원숭이의 울음이 어디 보이랴. 북쪽 시내에는 여우와 토끼의 자취가 없고, 남쪽 골짜기에는 노루와 멧돼지의 그림자조차 남지 않았구나. 푸른 돌은 타서 천 조각 흙이 되고, 푸른 모래는 변하여 한 무더기 진흙이 되었구나. 굴 밖의 큰 소나무는 모두 쓰러져 기대 있고, 벼랑 앞의 푸른 잣나무는 모조리 드물어졌구나. 참나무와 삼나무, 느티나무와 향나무, 밤나무와 단풍나무는 모두 타 버리고, 복숭아와 살구, 자두와 매화, 배와 대추는 끝장이 났구나. 뽕나무가 끊기고 산뽕이 없어져 어찌 누에를 기르며, 버들이 드물고 대나무가 적어 새가 깃들기 어렵구나. 봉우리 위의 기묘한 돌은 먼지가 되었고, 골짜기 바닥의 샘은 말라 온통 풀만 남았구나. 벼랑 앞의 검은 흙에는 지초와 난초가 없고, 길가의 붉은 진흙에는 등나무와 으름덩굴이 얽혀 있구나. 지난날 날던 새는 어느 곳으로 날아갔으며, 그때 뛰던 짐승은 어느 산으로 갔단 말이냐? 표범은 구렁이의 사나움을 꺼려 무너진 곳을 피하고, 학은 뱀을 만나 되돌아간 쇠락한 사이로다. 아마도 지난날 악한 마음을 품어 행한 탓에, 이제 눈앞의 어려움을 받는 것이리라. 그 대성이 한창 비통해하고 있는데, 문득 저 향기로운 풀 언덕 앞과 가시덤불 움푹 팬 곳에서 소리 한 번이 울리며 일고여덟 마리의 작은 원숭이가 뛰어나와 한꺼번에 앞으로 몰려들어 둘러싸고 머리를 조아리며 크게 외쳤다. “대성 할아버지! 오늘 집에 오셨나이까?” 미후왕이 말했다. “너희는 어찌하여 놀지도 않고 장난치지도 않으며, 하나같이 자취를 감추었느냐? 내가 온 지 한참 되었건만 너희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 원숭이 무리가 그 말을 듣고는 하나하나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대성께서 윗세계로 잡혀 가신 뒤로 우리는 사냥꾼의 고초를 겪었사옵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사옵니다! 저들의 강한 쇠뇌와 센 활, 누런 매와 사나운 개, 그물과 덫, 창과 갈고리를 어찌 당해 내겠사옵니까. 그러므로 저마다 목숨을 아껴 감히 머리를 내어 놀지 못하고, 다만 굴 속 깊이 숨고 보금자리 멀리 피하여, 배가 고프면 언덕 앞에 나가 풀을 훔쳐 먹고, 목이 마르면 시내 아래로 내려가 맑은 샘물을 빨아마셨사옵니다. 방금 대성 할아버지의 음성을 듣고서 특별히 와서 뵈옵나니, 부디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 대성이 이 말을 듣고는 더욱 처참해져서 물었다. “너희는 아직 이 산에 얼마나 남아 있느냐?” 원숭이 무리가 말했다. “늙은 놈과 어린 놈을 합쳐야 겨우 천 명쯤 되옵니다.” 대성이 말했다. “내가 그때 사만 칠천의 무리를 거느렸거늘,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 원숭이 무리가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가신 뒤로 이 산은 이랑보살이 불을 질러 절반 넘게 태워 죽였사옵니다. 우리는 우물 속에 쪼그리고 앉고, 시내 속으로 파고들고, 철판교 밑에 숨어서 목숨을 건졌사옵니다. 불이 꺼지고 연기가 사라져 나와 보니, 과일도 없어 먹고살 길이 막막하여 살아남기 어려웠고, 다른 곳으로 또 절반이 떠나갔사옵니다. 남은 우리 절반은 고생을 견디며 산속에 살았사옵니다만, 이 두 해 동안 또 사냥꾼들에게 절반을 빼앗겼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저들이 너희를 빼앗아 가서 무얼 하느냐?” 원숭이 무리가 말했다. “이 사냥꾼들이란 놈들이야말로 원망스럽사옵니다! 저들은 우리 가운데 화살에 맞고 창에 찔린 놈, 독에 중독되어 맞아 죽은 놈을 잡아다가 가죗을 벗기고 뼈를 발라내어, 간장에 삶고 초에 찌고 기름에 지지고 소금에 볶아 반찬으로 삼아 먹었사옵니다. 혹시라도 그물에 걸리고 덫에 걸려 산 채로 잡힌 놈은, 굴렁쇠를 뛰어넘고 재주를 넘고 물구나무를 서는 짓을 시키며, 저잣거리에서 징을 치고 북을 두드려 별별 짓을 다하며 놀았사옵니다.” 대성이 이 말을 듣고는 더욱 크게 노하여 말했다. “굴 안에 누가 일을 맡고 있느냐?” 무리가 말했다. “마류라는 두 원수와 분파라는 두 장군이 다스리고 있사옵니다.” 대성이 말했다. “너희가 가서 그들에게 알려 내가 왔음을 고하라.” 그 소요들이 문 안으로 뛰어들어가 아뢰었다. “대성 할아버지께서 집에 오셨나이다.” 그 마류와 분파가 보고를 듣고는 급히 문을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맞아들여 굴로 들어갔다. 대성이 가운데 앉고 무리들이 앞에 줄지어 절을 올리며 아뢰었다. “대성 할아버지, 요즘 듣자오니 목숨을 건지시어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신다 하옵니다. 어찌하여 서쪽으로 가지는 않으시고 본산으로 돌아오셨나이까?” 대성이 말했다. “어린 놈들아, 너희는 모르는구나. 저 당삼장은 어짊과 어리석음을 분별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그를 위하여 길 위에서 요괴를 잡고 마귀를 사로잡느라 평생의 재주를 다 쏟았거늘, 몇 차례나 요정을 때려 죽였더니, 도리어 나더러 흉악하게 굴며 악을 행한다 하고는 나를 제자로 삼지 않겠다며 쫓아내어, 쫓아낸 문서를 써서 증거로 삼고는 영원히 쓰지 않겠다 하였느니라.” 원숭이들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말했다. “천행이로다! 천행이로다! 무슨 중질을 한단 말이냐. 어서 집으로 와서 우리와 몇 해를 함께 놀아 보시구려!” 그리고 외쳤다. “어서 야자술을 마련하여 할아버지의 노고를 위로하라.” 대성이 말했다. “술은 잠시 마시지 말라. 내가 묻겠노라. 저 사냥꾼들이 언제 내 산에 한 차례 오느냐?” 마류가 말했다. “대성이여, 무슨 때고 가릴 것 없이 날마다 이곳에서 들볶고 있나이다.” 대성이 말했다. “저들이 어찌하여 오늘은 오지 않느냐?” 마류가 말했다. “오려고 보는 판이옵니다.” 대성이 분부하였다. “어린 놈들아, 모두 나가서 산 위에서 불에 타 바스러진 돌조각을 날라다 쌓아 두어라. 서른 개쯤 한 무더기로 하든 쉰 개에서 예순 개쯤 한 무더기로 하든 쌓아 두면 내게 쓸 곳이 있느니라.” 그 작은 원숭이들은 한 통속이라, 하나하나 하늘로 뛰고 땅을 찌르며 마구 날라다 여러 무더기를 쌓았다. 대성이 보고는 일렀다. “어린 놈들아, 모두 굴 안으로 숨거라. 이 늙은 원숭이가 법술을 부리게 하여라.” 그 대성이 산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니, 저 남쪽 절반에서 북이 둥둥 울리고 징이 땡땡 울리며, 번쩍하고 천여 명의 인마가 나타나 모두 매와 개를 거느리고 칼과 창을 들고 있었다. 원숭이 왕이 자세히 보니 저 사람들이 몹시 흉험하게 몰려왔다. 과연 장부로다, 참으로 용맹하구나!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여우 가죽으로 어깨와 정수리를 덮고, 비단으로 허리와 가슴을 감쌌구나. 주머니에는 이리 이빨 화살을 꽂고, 허리에는 보배 조각 활을 걸었구나. 사람은 산을 뒤지는 호랑이 같고, 말은 골짜기를 뛰는 용 같구나. 무리 지어 개를 끌고, 팔 가득 매를 얹었구나. 가시 광주리에 화포를 메고, 바다의 푸른 매를 데리고 있구나. 끈끈이 장대는 백여 짐이요, 토끼 작살은 천 자루이로다. 소 머리 같은 길막이 그물과, 염라의 올가미 밧줄을 들고는 일제히 마구 고함치며 하늘의 별처럼 흩어져 퍼지는구나. 대성이 저들이 자기 산으로 포진하여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에 크게 노하여, 손으로는 결을 쥐고 입으로는 주문을 외며, 저 손방향 땅을 향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켜 후 하고 불어 보내니 곧 한바탕 미친 바람이 일어났다. 과연 좋은 바람이로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흙먼지를 일으키고 흙을 흩뿌리며, 나무를 쓰러뜨리고 숲을 부수는구나. 바다 물결은 산처럼 솟구치고, 흐린 파도가 만 겹으로 밀려드는구나. 하늘과 땅은 캄캄하게 흔들리고, 해와 달은 어둑어둑 가라앉는구나. 한바탕에 소나무를 흔듦은 호랑이의 포효 같고, 문득 대숲으로 스며듦은 용의 신음 같구나. 온갖 구멍이 성내어 울부짖으니 하늘이 기운을 내뿜고, 모래는 날고 돌은 굴러 어지러이 사람을 다치는구나. 대성이 이 큰 바람을 일으키자 저 돌조각들이 바람을 타고 마구 날아 흩날리며 춤을 추니, 가련하게도 저 천여 인마가 하나하나 돌에 맞아 오두가 산산이 부서지고, 모래가 날려 해마까지 모두 상하였구나. 인삼과 관계는 고개 앞에서 분주하고, 피는 주사를 물들인 땅 위에 번졌구나. 부자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렵고, 빈랑은 어찌 고향을 찾으랴. 주검은 가벼운 가루처럼 산마루에 누웠고, 홍랑자는 집에서 기다리는구나.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사람은 죽고 말도 죽었거늘 어찌 집으로 돌아가랴. 들의 귀신과 외로운 넋이 삼처럼 어지럽구나. 가련하구나, 용기를 떨치던 영웅 장수들이여, 어짊과 어리석음도 가리지 못한 채 피로 모래를 물들였구나. 대성이 구름머리를 누르고 내려앉아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말했다. “천행이로다! 천행이로다! 삼장법사에게 귀순하여 중이 된 뒤로 그이는 늘 나를 타이르기를, 천 일 동안 선을 행해도 선이 오히려 부족하고, 하루 악을 행하면 악이 저절로 남는다 하였느니라. 참으로 그런 말이 있었지! 내가 그를 따라 요정 몇 놈을 때려 죽였더니, 그이는 나더러 흉악하게 굴었다며 나무랐거늘, 오늘 집에 와서는 도리어 이 많은 사냥꾼을 해치워 버렸구나.” 그리고 외쳤다. “어린 놈들아, 나오너라!” 저 원숭이 무리는 미친 바람이 지나간 뒤 대성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하나하나 뛰어 나왔다. 대성이 말했다. “너희는 남산 아래로 가서 맞아 죽은 사냥꾼들의 옷을 벗겨다가 피자국을 씻어 입고 추위를 가리도록 하여라. 죽은 사람의 시신은 모두 저 만 길 깊은 못에 밀어 넣고, 죽어 쓰러진 말은 끌어다 가죗을 벗겨 신을 만들어 신고, 고기는 절여 두고 천천히 먹어라. 저 활과 화살, 창과 칼은 너희가 무예를 익히는 데 쓰고, 그 여러 가지 깃발은 거두어 내가 쓰리라.” 원숭이들이 하나하나 분부를 받들었다. 그 대성은 깃발을 뜯어 빨아 모두 이어 한 폭의 여러 빛깔 꽃 깃발을 만들고, 그 위에 ‘화과산을 다시 일으키고 수렴동을 다시 정비한 제천대성’ 열네 자를 써서 장대를 세우고 깃발을 굴 밖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날마다 마귀를 불러 모으고 짐승을 모아 풀을 쌓고 양식을 비축하며, 중이란 두 자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의 인정은 또한 크고 수단 또한 높아서, 곧 사해의 용왕에게로 가 감로와 신선의 물을 얼마쯤 빌려 산을 씻어 푸르게 하였다. 앞에는 느릅나무와 버들을 심고 뒤에는 소나무와 녹나무를 심고, 복숭아와 자두, 대추와 매화 없는 것이 없으니, 소요하여 자재하고 즐겁게 살며 편안히 깃들었으니 이쯤 해 두겠다. 말하자면, 삼장법사는 의심 많은 성정을 믿고 마음의 원숭이를 놓아 보내고는 안장을 잡고 말에 올랐으니, 저팔계가 앞에서 길을 열고 사승이 행장을 메고 서쪽으로 갔다. 백호령을 지나자 홀연 한 줄기의 숲 언덕이 보였으니, 참으로 칡덩굴이 얽히고 감기며, 잣나무 푸르고 소나무 푸르렀다. 삼장법사가 불렀다. “제자들아, 산길이 험하고 굽어 몹시 걷기 어렵구나. 더구나 소나무 숲이 빽빽하고 나무가 겹겹이 늘어섰으니 모름지기 조심하라. 요사한 것과 요괴 짐승이 있을까 두렵구나.” 보라, 저 바보가 정신을 떨쳐 일으키며 사승에게 말을 끌게 하고, 자기는 쇠스랑으로 길을 열며 삼장법사를 이끌고 곧장 소나무 숲 속으로 들어갔다. 한창 가는데, 그 장로가 말을 멈추며 말했다. “팔계야, 나는 오늘 참으로 배가 고프구나. 어디서 공양밥을 좀 찾아 내게 먹이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말에서 내리시어 여기서 기다리옵소서. 이 늙은 저팔계가 가서 찾아오겠나이다.” 장로가 말에서 내리자 사승이 짐을 내려놓고 바리때를 꺼내어 저팔계에게 건네주었다. 저팔계가 말했다. “나는 가보겠나이다.” 장로가 물었다. “어디로 가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상관하지 마옵소서. 내 이번에 얼음을 뚫어 불을 얻어 공양을 찾아오고, 눈을 눌러 기름을 짜 밥을 마련해 오겠나이다.” 보라, 그가 소나무 숲을 나와 서쪽으로 십여 리를 갔어도 사람 사는 집 하나 만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이리와 호랑이만 있고 인가 없는 곳이었다. 그 바보는 걷느라 힘이 들어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행자가 살아 있던 지난날에는 늙은 중이 원하는 것이면 곧 있었거늘, 오늘 내 차례가 되니 참으로 이르기를 살림을 맡아야 땔감과 쌀값을 알고 자식을 길러야 부모의 은혜를 안다 하였거늘, 공평하게도 갈 곳이 없구나.” 그러면서 또 걷자니 졸음이 밀려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지금 곧장 돌아가서 늙은 중에게 공양할 곳이 없었다 하면, 그도 내가 이토록 많은 길을 걸었다고는 믿지 않을 터이다. 모름지기 두어 시진쯤 더 어슬렁거린 뒤에야 말을 전할 수 있겠구나. 좋아, 좋아. 잠시 이 풀숲에 누워 자자.” 그 바보는 곧 머리를 풀숲에 처박고 누웠거늘, 당장에는 어슴푸레하다가 곧 일어날 셈이었으되, 걷느라 고생한 사람이 머리를 내려놓자마자 줄곧 드르렁드르렁 잠이 들 줄이야. 먼저 저팔계가 이곳에서 자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말하자면, 장로는 그 숲 속에서 귀가 뜨겁고 눈이 뛰며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아, 급히 몸을 돌려 사승을 부르며 말했다. “오능이 공양을 구하러 갔는데 어찌 이 늦은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느냐?” 사승이 말했다. “스승님, 아직도 모르시옵니까? 그는 서쪽 지방에 공양하는 집이 많다는 것을 보았고, 배가 또 크니 스승님을 돌보겠사옵니까? 배불리 먹고 나서야 올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러하구나. 혹여 그가 거기서 공양 먹는 데만 탐닉한다면 우리가 어디서 그를 만나겠느냐? 날이 저물어 가니 이곳은 묵을 만한 곳이 못 되니, 모름지기 머물 곳을 찾아야 하겠다.” 사승이 말했다. “염려 마옵소서, 스승님. 우선 여기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가서 그를 찾아오겠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러하구나, 그러하구나. 공양이 있건 없건 그만이니, 다만 묵을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니라.” 사승이 보장을 집어 들고 곧장 소나무 숲을 나와 저팔계를 찾으러 갔다. 장로가 숲 속에 홀로 앉아 있자니 몹시 답답하고 나른하여,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벌떡 일어나 행장을 한곳에 모으고 말을 나무에 매어 두고, 쓰고 있던 삿갓을 벗어 들고 석장을 꽂아 세워 둔 뒤, 승복을 여미고는 그윽한 숲을 천천히 걸어 잠시나마 답답함을 풀었다. 그 장로는 들풀과 산꽃을 두루 둘러보았으나 둥지로 돌아가는 새들의 지저귐은 들을 수 없었다. 원래 그 숲 속은 모두 풀이 깊고 길이 좁은 곳이거늘, 다만 그의 마음이 어수선하여 길을 잘못 들었다. 하나는 답답함을 풀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저팔계와 사승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뜻밖에도 그 두 사람은 곧장 서쪽 길로 간 반면, 장로는 한참을 돌다가 도리어 남쪽으로 향해 갔다. 소나무 숲을 나와 홀연 고개를 드니, 저쪽에 금빛이 번쩍이고 채색 기운이 무성하게 솟아올라 자세히 보니, 본래 탑 하나인데 금빛 꼭대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는 서쪽으로 지는 햇빛이 금빛 꼭대기에 비쳐 밝게 빛나는 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내 제자는 인연이 없구나! 동쪽 땅을 떠나며 절을 만나면 향을 사르고 부처를 보면 부처에게 절하며 탑을 만나면 탑을 쓸겠다고 서원하였거늘. 저 빛나는 것이 한 채 금빛 탑이 아니냐? 어찌하여 그 길로 가지 않았단 말이냐? 탑 아래에는 반드시 사찰이 있고 절 안에는 반드시 승려가 있을 터이니, 잠시 내가 가 보자. 이 행장과 백마는 이곳에 사람이 다니지 않을 터이니 아무 탈이 없으리라. 거기에 편리한 곳이 있거든 제자들이 오거든 함께 머물기를 청하자.” 아! 장로에게 재수 없는 때가 닥쳐왔다. 보라, 그가 발을 떼어 탑 곁으로 곧장 갔으니, 저곳의 모습이 이러하였으니, 석벽은 높이가 만 길이요, 산은 커서 푸른 하늘에 닿았구나. 뿌리는 두터운 땅에 이어졌고, 봉우리는 높은 하늘에 꽂혔구나. 양쪽의 잡목은 수천 그루요, 앞뒤로 덩굴이 백여 리를 감았구나. 꽃은 풀 끝에 비치고 바람에 그림자가 있으며, 물은 구름 속 샘으로 흐르고 달에는 뿌리가 없구나. 쓰러진 나무는 깊은 골짜기를 가로질러 걸쳤고, 마른 덩굴은 빛나는 봉우리에 얽혀 매달렸구나. 돌다리 아래로는 맑은 샘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대좌 위에는 환한 흰 분칠이 빛나는구나. 멀리 보면 마치 삼도의 천당 같고, 가까이 보면 봉래의 빼어난 경치 같구나. 향기로운 소나무와 자줏빛 대나무가 산 시내를 두르고, 까치와 원숭이가 험준한 고개를 넘나드는구나. 굴 문 밖에는 오고 가는 짐승이 줄을 이루고, 수풀 속에는 드나드는 날짐승이 무리를 이루었구나. 파아란 향초가 곱게 자라고, 울긋불긋한 들꽃이 피었구나. 이곳은 분명 사악한 곳이거늘, 그 장로가 재수 없이 들이닥쳤구나. 그 장로가 발을 들어 앞으로 나아가 막 탑문 아래에 이르렀는데, 저 안에 무늬 있는 대나무 발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가 성큼 문을 들어서며 발을 걷어 올리고 안으로 들어가 홀연 고개를 드니, 저 돌침대 위에 요마 하나가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그대는 그가 어떤 모습인지 아느냐? 푸른 쪽빛 얼굴에 흰 사니이며, 커다란 입이 벌어져 있구나. 양쪽의 헝클어진 귀밑털은 모두 연지 물을 들인 듯하고, 서너 가닥 자줏빛 콧수염과 구레나룻은 여지가 싹을 늘어놓은 듯하구나. 앵무새 부리 같은 코가 불쑥 솟았고, 샛별 같은 두 눈이 또렷이 빛나는구나. 두 주먹은 중의 바리때만 하고, 한 쌍의 푸른 발은 벼랑의 그루터기처럼 갈라졌구나. 옅은 누런 도포를 비스듬히 걸쳤으니, 비단 가사를 능가하는구나. 든 칼 한 자루는 정광이 번쩍이고, 베고 누운 돌 한 덩이는 곱고 윤택하여 티가 없구나. 그 또한 일찍이 소요를 늘어놓아 개미 진을 치기도 하였고, 그 또한 일찍이 늙은 요괴가 벌집처럼 앉아 다스리기도 하였으니, 보라 그 위풍이 늠름하여 모두들 큰 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구나. 그 또한 일찍이 달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였고, 그 또한 일찍이 두 겨드랑이에 바람을 일으켜 찻잔을 비웠으니, 보라 그 신통이 드넓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천애를 두루 노닐었구나. 거친 숲에는 새들이 떠들고, 깊은 덤불에는 용과 뱀이 깃들었구나. 선녀가 밭을 갈아 백옥을 길러 내고, 도인이 불을 다스려 단사를 기르는구나. 작은 굴 문은 비록 저 무간지옥에 이르지는 못하되, 억센 요괴는 바로 그 우두야차로구나. 그 장로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놀라 뒷걸음질을 치며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두 다리가 탁 풀려 급히 몸을 빼어 달아났다. 막 몸을 돌리는 순간, 저 요마의 영성은 참으로 강대하여, 금빛 귀신 눈 한 쌍을 부릅뜨고 외쳤다. “어린 놈들아, 너희는 문밖이 어떤 사람인지 보아라!” 소요 하나가 머리를 내밀어 문밖을 바라보니, 민머리의 장로였다. 급히 안으로 달려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밖에 중이 하나 있사옵니다. 둥근 머리에 큰 얼굴,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졌고, 살결은 연하고 보드라우며 가죽은 곱고 여리옵니다. 참으로 훌륭한 중이옵니다!”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것을 두고 뱀 머리 위의 파리라 하느니, 절로 굴러 들어온 의식이로다. 너희 어린 놈들아, 급히 달려가 잡아 오너라. 내가 여기서 후히 상을 내리리라!” 그 소요들이 벌떼처럼 일제히 몰려들었다. 삼장법사가 이를 보고는 마음이 화살처럼 급하고 두 발이 나는 듯하다 하나, 끝내 마음은 놀라고 담력은 떨리며 다리는 풀리고 발은 저려 왔거늘, 더구나 산길은 험하고 숲은 깊고 날은 저물어 발걸음이 어찌 옮겨지겠느냐? 그 소요들에게 들려 그대로 옮겨졌으니, 바로 이러하였다. 용이 얕은 물에서 노닐다 새우에게 놀림당하고, 호랑이가 평원에 떨어져 개에게 업신여김을 받는구나. 비록 좋은 일에 마장이 많다 하나, 누가 당승이 서쪽으로 가던 때와 같으랴? 보라, 저 소요들이 장로를 메어다 저 대나무 발 밖에 내려놓고는 기뻐하며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중을 잡아 왔나이다.” 그 늙은 요괴도 슬쩍 눈을 들어 살펴보니, 삼장법사의 머리 위로 용모가 늠름하여 과연 훌륭한 중이었다.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토록 훌륭한 중이라면 반드시 윗세계 인물일 터이니 결코 예삿일이 아니로다. 만약 위풍을 보이지 않으면 그가 어찌 기꺼이 항복하려 하겠느냐?” 그리하여 갑자기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듯, 붉은 수염이 곤두서고 핏발 선 머리카락이 하늘을 향하며 두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뜨인 채 크게 한 소리로 호통쳤다. “그 중을 데리고 들어오너라!” 요괴들이 모두 큰 소리로 “예!” 하고 대답하더니, 삼장법사를 향해 안으로 그저 밀어 넣었다. 이는 낮은 처마 밑에 있는데 감히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으랴. 삼장법사는 두 손을 모아 그에게 예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요괴가 말했다. “너는 어느 곳의 중이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어서 밝혀 말하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저는 본래 당나라의 승인이옵니다. 대당 황제의 칙명을 받들어 서방으로 경게를 구하러 가는 길이옵니다. 귀산을 지나다 특별히 탑 아래에 이르러 성인을 뵙고자 하였사옵니다만, 뜻밖에도 위엄을 놀라게 하였사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서방에 가 경을 얻어 동쪽 땅으로 돌아가면 높은 명성을 길이 남기겠나이다.”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는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 말이 윗나라 인물이라더니 과연 너로구나. 마침 너를 먹으려 하던 참인데 아주 잘 왔도다! 잘 왔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만 놓쳐 버릴 뻔하였느니라! 너는 본래 내 입의 먹이니 절로 굴러들어 왔거늘, 놓아도 갈 수 없고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느니라!” 그리고 소요들에게 외쳤다. “저 중을 잡아다 묶어라!” 과연 그 소요들이 일제히 몰려들어 장로를 노끈과 밧줄로 옭아매어 저 정혼 말뚝에 묶어 두었다. 늙은 요괴가 칼을 들고 또 물었다. “중이여, 너희 일행이 몇 명이냐? 설마 혼자서 감히 서천에 오르려 하였단 말이냐?” 삼장법사가 그가 칼을 든 것을 보고는 또 솔직히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에게는 제자가 둘 있사옵니다. 저팔계와 사화상이라 하옵니다. 모두 소나무 숲으로 공양을 구하러 나갔사옵니다. 그리고 행장 한 짐과 백마 한 필이 있사옵니다. 모두 소나무 숲에 놓여 있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또 횡재로다! 제자 둘에 너까지 셋, 말까지 넷이니 한 끼 먹기에 넉넉하구나!” 소요가 말했다. “우리가 가서 잡아 오겠나이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나가지 말고 앞문을 닫아라. 그 둘이 공양을 구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스승을 찾을 터이고, 찾지 못하면 반드시 내 문 앞으로 찾아올 것이니라. 속담에 이르기를 문 앞으로 들어온 장사가 하기 쉽다 하였느니라. 천천히 기다리다가 잡으리라.” 소요들이 앞문을 닫았다. 먼저 삼장법사가 재난을 만난 이야기는 하지 말자. 말하자면, 사승은 숲을 나와 저팔계를 찾아 십여 리쯤 갔으나 마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가 높은 언덕 위에 서서 한창 둘러보는데, 문득 풀 속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보장으로 깊은 풀을 헤치고 보니, 그 바보가 안에서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사승이 귀를 잡아당겨서야 겨우 깨우며 말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스승님이 공양을 구하라 하셨거늘, 누가 여기서 자라고 허락하였단 말이냐?” 그 바보가 멍청하게 잠에서 깨어나며 말했다. “동생아, 지금이 어느 때쯤이냐?” 사승이 말했다. “어서 일어나라! 스승님께서는 공양이 있건 없건 그만이라 하시고, 너와 나에게 묵을 곳을 찾아 오라 하셨느니라.” 바보는 멍청한 채로 바리때를 들고 쇠스랑을 비껴 잡고 사승과 곧장 되돌아왔다. 숲에 이르러 보니 스승님이 보이지 않았다. 사승이 원망하며 말했다. “모두 이 바보가 공양을 구하지 않은 탓이니, 틀림없이 요정이 스승님을 잡아간 것이로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동생아, 헛소리 말라. 저 숲은 맑고 아름다운 곳이니 결코 요정이 있을 리 없다. 아마 늙은 중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어디 경치나 구경하러 간 것이로다. 우리가 찾으러 가자.”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말을 끌고 짐을 메며, 도포와 석장을 거두어 가지고 소나무 숲을 나와 스승님을 찾았다. 이번에도 당승은 죽을 때가 아니었다. 그 둘이 한참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데, 홀연 바로 남쪽 아래에서 금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저팔계가 말했다. “동생아, 복 있는 사람은 그저 복이 있구나. 보라, 스승님이 저 집으로 가셨느니라. 저 빛나는 것은 탑이거늘, 누가 감히 스승님을 소홀히 대하겠느냐? 틀림없이 공양밥을 차려 놓고 스승님을 모셔 대접할 것이니, 우리도 어서 걸음을 옮겨 따라가 공양을 좀 먹자꾸나.” 사승이 말했다. “형님, 길흉을 단정할 수 없사옵니다. 우리 우선 가서 봅시다.” 두 사람이 기세 좋게 문 앞에 이르렀는데, 아! 문이 닫혀 있었다. 저 문 위에 가로로 흰 옥돌 판이 붙어 있고, 그 위에 큰 글자 여섯 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완자산 파월동’이었다. 사승이 말했다. “형님, 이는 절이 아니라 요정의 동굴이옵니다. 우리 스승님이 여기 계시다 해도 만나 뵙기 어려우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동생아, 겁내지 말라. 너는 말을 매어 두고 행장을 지키며 있거라. 내가 가서 소식을 물어보마.” 그 바보가 쇠스랑을 치켜들고 앞으로 나서며 크게 외쳤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그 굴 안에는 문을 지키는 소요가 있어 문을 열었는데, 홀연 그 둘의 모습을 보고는 급히 몸을 돌려 안으로 달려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장사가 왔나이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어디서 온 장사냐?” 소요가 말했다. “굴 문 밖에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중과, 재수 없는 빛깔의 중이 와서 문을 두드리옵니다!” 늙은 요괴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저팔계와 사승이 찾아온 것이로다! 오호, 저놈들도 찾을 줄 아는구나! 어찌하여 내 문 앞까지 찾아왔단 말이냐? 저놈들 얼굴이 흉악하거늘, 모름지기 소홀히 대하지 말라.” 그리고 외쳤다. “갑옷을 가져오너라!” 소요들이 메어 오자 곧 갖추어 입고는 칼을 손에 쥐고 곧장 문을 나섰다. 말하자면, 저팔계와 사승이 문 앞에서 한창 기다리는데, 요마가 몹시 흉험하게 다가왔다. 그대는 그가 어떻게 차렸는지 아느냐? 푸른 얼굴에 붉은 수염, 붉은 머리카락이 날리고, 황금 갑옷이 밝게 빛나는구나. 배를 감싸고 허리를 받친 거북돌 띠요, 가슴을 조이고 갑옷을 동여맨 구름 띠로다. 한가로이 산 앞에 서면 바람이 으르렁대고, 바다 밖을 노닐면 파도가 넘실거리는구나. 한 쌍의 쪽빛 근육진 손이 혼을 쫓고 목숨을 빼앗는 칼을 굳게 쥐었구나. 이 자의 이름과 성을 알고자 한다면, 소문에 떨치는 두 자가 황포이니라. 그 황포 늙은 요괴가 문을 나서며 곧 물었다. “너희는 어느 곳의 중이기에 내 문 앞에서 고함치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이놈아,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내가 네 상전이로다! 나는 대당에서 서천으로 가라고 파견된 사람이로다! 내 스승님은 그 폐하의 의동생이신 삼장법사이시다. 그이가 네 집에 있다면 어서 일찍 보내라. 내 쇠스랑으로 찍어 들어가는 수고를 덜도록 하여라!” 그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당승이 내 집에 있느니라. 나도 그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거늘, 사람고기 만두를 좀 차려 주었느니라. 너희도 들어와서 하나 먹어 보렷느냐?” 이 바보가 진심으로 들어가려 하자 사승이 와락 붙잡으며 말했다. “형님, 저놈이 형님을 속이는 것이옵니다. 형님이 언제부터 사람고기를 드셨사옵니까?” 그 바보가 그제야 깨닫고 쇠스랑을 뽑아 들어 요괴의 얼굴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 요괴가 몸을 비켜 피하며 강철 칼을 급히 들어 맞받았다. 둘이 모두 신통을 드러내며 구름머리를 타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서로 싸웠다. 사승은 행장과 백마를 내버려 두고 보장을 들어 급히 거들어 공격했다. 이때 두 사나운 중과 하나의 맹렬한 요마가 구름 속에서 벌인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은 바로 이러하였다. 지팡이가 솟구치면 칼이 맞받고, 쇠스랑이 날아오면 칼이 막아 내는구나. 한 장수 요마가 위세를 부리고, 두 신승이 변화를 드러내누나. 아홉 이빨 쇠스랑은 참으로 영웅이요, 요괴를 항복받는 일 또한 참으로 사납고 위세 있구나. 앞뒤 가릴 것 없이 좌우에서 일제히 덤벼드나, 저 황포는 공공연히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보라, 그가 담근 강철 칼이 은처럼 번쩍이니, 그 신통 또한 실로 광대하구나. 싸움은 온 하늘에 안개가 감기고 구름이 어리며, 산허리에서는 벼랑이 무너지고 고개가 쩡쩡 울릴 지경이구나. 하나는 명성을 위하여 어찌 그만두려 하며, 하나는 스승님을 위하여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그 셋이 반공중에서 오가며 수십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저마다 목숨이 걸린 일이라, 실로 풀어 내기 어렵고 나누기 어려웠다. 결국 당승을 어떻게 구해 낼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29회 탈난강류래국토(脫難江流來國土) · 승은팔계전산림(承恩八戒轉山林) 시에 이르기를, 망상은 억지로 없애려 한다고 사라지지 않고, 진여는 어찌 구태여 바라야 하리오. 본래의 자성은 부처님 앞에서 닦는 것이니, 미혹과 깨달음이 어찌 앞뒤에 자리하리오. 깨달으면 찰나에 바르게 이루어지고, 미혹하면 만 겁의 흐름에 가라앉느니라. 만일 한 생각으로 참된 수행에 합할 수 있다면, 항하사의 모래알 같은 죄의 때도 남김없이 멸하리라. 말하자면, 저팔계와 사승이 괴물과 서른 합을 겨루었건만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어찌하여 승부가 갈리지 않았느냐 하면, 재주를 겨룬다면 두 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스무 명이 나선다 해도 그 요괴를 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삼장법사의 목숨이 죽을 운명이 아니었으므로, 어둠 속에서 호법신기들이 그를 지켜 주고 있었고, 허공에는 또 육정육갑과 오방게제와 사치공조와 열여덟 호교가람이 있어 저팔계와 사승을 돕고 있었다. 한편 그 장로는 굴 속에서 슬피 울며 제자들을 생각하다가 눈물 흘리며 말했다. “오능아, 네가 어느 마을에서 선한 벗을 만나 시주받는 공양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지 알 수 없구나! 오정아, 너는 또 어디에서 그를 찾고 있는지, 만날 수나 있겠느냐? 내가 요괴를 만나 이곳에서 재난을 당하고 있음을 어찌 알겠느냐! 어느 때에나 너희를 만나 큰 재난에서 벗어나 일찍 영산으로 갈 수 있으랴!” 장로가 슬피 울며 근심하고 있는데, 문득 굴 안에서 어떤 부인이 걸어 나와 정혼 말뚝을 짚고서 불렀다. “장로여, 그대는 어디서 왔기에 그에게 이렇게 묶여 있느냐?” 장로가 그 말을 듣고 눈물 젖은 눈으로 가만히 그 부인을 살펴보니 서른 살가량 되어 보였다. 이에 말했다. “여보살이시여, 더 물으실 것 없소. 나는 이미 죽을 몸이 되어 그대의 집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오. 잡아먹으려거든 어서 잡아먹으시오. 무엇을 또 물으신단 말이오?” 그 부인이 말했다. “나는 사람을 잡아먹는 이가 아니니라. 내 집은 이곳에서 서쪽으로 내려가 삼백여 리 되는 곳에 있느니라. 그곳에 보상국이라 불리는 성이 있느니라. 나는 그 나라 국왕의 세째 공주이며, 젖먹이 적 이름은 백화수라 하느니라. 십삼 년 전 팔월 보름날 밤에 달을 구경하다가 이 요괴가 일으킨 사나운 바람에 이리로 낚이듯 끌려 와, 그와 십삼 년을 부부로 지내었느니라. 이곳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며 조정에는 소식조차 끊겼으니, 내 부모를 그리워해도 만나 뵐 수가 없느니라. 그대는 어디서 오다가 그에게 붙들렸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소승은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파견된 자이오. 한가롭게 거닐다가 뜻하지 않게 이곳까지 잘못 들어왔소. 이제 내 두 제자까지 붙잡아 함께 쪄 먹으려 하는 모양이오.” 그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장로여, 마음을 놓으시오. 그대가 경을 구하러 가는 이라면 내가 그대를 구할 수 있느니라. 저 보상국은 그대가 서쪽으로 가는 큰길 위에 있느니라. 내 부모에게 편지 한 장을 전해 준다면, 내가 그로 하여금 그대를 용서하게 하리라.” 삼장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보살이시여, 소승의 목숨을 구해 주신다면 기꺼이 편지를 전하는 이가 되겠나이다.” 공주가 급히 뒤로 돌아가 곧 집으로 보내는 편지 한 장을 써서 단단히 봉한 뒤, 말뚝 앞으로 가 삼장법사를 풀어 주고 편지를 건네주었다. 삼장법사가 풀려나 편지를 두 손에 받들고 말했다. “여보살이시여, 목숨을 살려 주신 은혜 깊이 감사하옵니다. 소승이 이대로 가며 귀한 곳을 지나면 틀림없이 국왕 전하께 전하겠나이다. 다만 세월이 오래 흘러 그대의 부모가 서로 알아보려 하지 않으면 어찌하오리까? 부디 소승이 거짓말을 하였다고 괴이하게 여기지 마옵소서.” 공주가 말했다. “상관없느니라. 내 부왕은 아들이 없고 나와 자매 셋만 두셨으니, 이 편지를 보시면 틀림없이 알아보려 하시리라.” 삼장법사는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소매에 단단히 넣고 공주에게 사례한 뒤 밖으로 나가려 하다가, 공주에게 붙들렸다. 공주가 말했다. “앞문으로는 나갈 수 없느니라! 크고 작은 요정들이 모두 문 밖에서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북을 치고 징을 울려 대왕을 돕고 있으니, 그대의 제자들과 싸우고 있느니라. 그대는 뒤문으로 가시오. 만일 대왕이 붙잡는다면 심문이라도 해 보겠지만, 작은 요정에게 붙들리면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산 채로 그대의 목숨을 해칠까 두렵느니라. 내가 그의 앞으로 가서 편의를 봐 주겠노라. 만일 대왕이 그대를 놓아준다면, 그대의 제자가 분부를 받아 그대를 찾아 함께 가게 될 것이니라.”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리며 삼가 분부대로 하겠노라 하고는, 공주에게 작별하고 뒤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감히 제 스스로 나서지 못하고 가시덤불 속에 몸을 숨겼다. 한편 공주 마마는 교묘한 꾀를 내어 급히 앞으로 나아가 문 밖으로 나와 크고 작은 요정 무리를 헤치고 보니, 쨍그랑쨍그랑 병기가 어지럽게 울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알고 보니 저팔계와 사승이 그 괴물과 반공중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 공주가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쳤다. “황포랑!” 요왕은 공주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곧 저팔계와 사승을 버려두고 구름머리를 내려앉히며 강철 칼을 움켜쥔 채 공주의 팔을 잡고 말했다. “여보, 무슨 할 말이 있소?” 공주가 말했다. “낭군이시여, 나는 방금 비단 휘장 안에서 자고 있었는데 꿈속에서 문득 금빛 갑옷을 입은 신인을 보았느니라.” 요마가 말했다. “그 금갑 신인이 누구냐? 내 문에 와서 어쩌자는 것이냐?” 공주가 말했다. “내가 어렸을 적에 궁중에서 신에게 남몰래 서원을 하나 세웠느니라. 어진 낭군 부마를 맞이하게 된다면 이름난 산에 올라 신선의 도관을 참배하고 중들에게 공양하며 보시를 베풀겠다고 하였느니라. 그대와 짝을 이룬 이래 부부가 즐겁게 지내느라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일을 꺼낸 적이 없느니라. 그 금갑 신인이 서원을 받으러 와서 나를 크게 불러 깨웠는데, 알고 보니 남가일몽이었느니라.” 그래서 급히 얼굴을 가다듬고 낭군에게 이 일을 아뢰러 왔는데, 뜻하지 않게 그 말뚝에 중 하나가 묶여 있더이다. 부디 낭군께서는 자비로이 내 청을 보아 그 중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다만 나를 위해 중에게 공양하고 서원을 갚는 셈으로 여겨 주시옵소서. 낭군께서 들어주시겠는지 모르겠나이다.” 그 괴물이 말했다. “여보, 그대는 쓸데없이 마음을 쓰는구려! 대수로운 일이 무엇이란 말이오. 내가 사람을 잡아먹으려 한들 어디서 몇 명쯤 건져 먹지 못하겠소? 이까짓 중 하나야 어디 가든 놓아주면 그만이지.” 공주가 말했다. “낭군이시여, 그를 뒤문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요마가 말했다. “참으로 성가시구려. 놓아주면 그만이지, 무슨 뒤문이니 앞문이니 따질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그리고는 강철 칼을 움켜쥐고 크게 외쳤다. “저팔계, 이리 오너라. 내가 너를 두려워하여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니라. 내 아내의 체면을 보아 너의 스승을 용서하는 것이니라. 어서 뒤문 어귀로 가서 그를 찾아 서쪽으로 떠나거라. 다시 내 경계를 범한다면 결단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저팔계와 사승은 이 말을 듣고 귀문관에서 풀려 돌아온 것처럼 곧바로 말을 끌고 짐을 메며 쥐새끼처럼 도망치듯 걸어, 파월동 뒤문 밖으로 돌아가서 “스승님!” 하고 불렀다. 장로는 그 소리를 알아듣고 가시덤불 속에서 대답하였다. 사승이 풀숲을 헤치고 스승을 부축하여 급히 말에 올라탔다. 이곳에서 모진 푸른 얼굴 귀신에게 걸릴 뻔하였으나, 다행히도 정성 어린 백화수가 있었도다. 큰 자라가 금빛 낚싯바늘에서 벗어나니, 꼬리 흔들고 머리 저으며 물결 따라 노니는구나. 저팔계가 앞에서 길을 이끌고 사승이 뒤를 따라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큰길에 올랐다. 보라, 그 둘은 웅얼웅얼 투덜거리고 원망하며 갔고, 삼장법사는 그저 중재만 하였다. 저녁을 만나면 먼저 숙소를 찾고 닭이 울면 일찍 하늘을 살폈다. 한 코스 한 코스, 긴 정자 짧은 정자를 지나며 어느새 이백구십구 리를 걸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훌륭한 성이 나타났으니, 바로 보상국이었다. 참으로 좋은 곳이로다. 구름은 아득하고 길은 멀고도 멀구나. 땅은 천 리 밖이건만 경치는 여느 곳과 다름없이 풍요롭도다. 상서로운 안개와 길한 연기가 둘러 덮었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어우러져 흔들리는구나. 우뚝우뚝 솟은 먼 산은 큰 그림 한 폭을 펼쳐 놓았고, 졸졸 흐르는 물은 옥구슬을 부딪쳐 흩뿌리는구나. 밭갈이하는 논밭은 두루 이어졌고, 먹을거리 되는 빽빽한 향초와 새싹이 돋아났도다. 낚시하는 몇 가구는 세 골짜기의 굽이에 자리하고, 나무꾼의 한 짐은 두 봉우리의 산초를 실었구나. 외성은 외성이요 내성은 내성이니 금탕처럼 굳건하고, 집은 집이요 호는 호이니 저마다 한가로움을 겨루는구나. 아홉 겹의 높은 누각은 궁전 같고, 만 장의 층층 대는 깃발처럼 우뚝하구나. 태극전과 화개전과 소향전과 관문전과 선정전과 연영전이 있어, 전마다 옥 섬돌과 금 계단에 문관의 관과 무관의 모자가 즐비하게 늘어섰고, 대명궁과 소양궁과 장락궁과 화청궁과 건장궁과 미앙궁이 있어, 궁마다 종과 북과 피리와 생황이 규중의 원망과 봄의 시름을 흩뿌리는구나. 금원에는 이슬 머금은 꽃이 고운 얼굴을 곱게 분장하고, 어구에는 바람에 버들이 가는 허리를 춤추는구나. 큰길 위에는 관을 쓰고 띠를 매고 늠름하고 의젓한 얼굴로 다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탄 이도 있고, 그윽하고 궁벽한 곳에는 활을 들고 화살을 끼고 안개를 헤치며 두 마리 독수리를 꿰는 이도 있구나. 꽃과 버들의 골목, 피리와 거문고의 누각이니, 봄바람이 낙양교에도 뒤지지 않는구나. 경을 구하러 가는 장로는 고개 돌려 대당을 바라보니 간담이 찢어지고, 스승을 모시는 제자는 작은 역참에서 어깨를 쉬니 꿈결 같은 넋이 스러지는구나. 보상국의 경치는 다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스승과 제자 세 사람은 행장과 말을 추슬러 관청의 역참에 머물렀다. 삼장법사가 걸어서 조정 문 밖에 이르러 각문대사에게 말했다. “당나라에서 온 중이 특별히 폐하를 알현하고 문첩을 바꾸고자 왔사오니, 청하건대 전하여 아뢰어 주시옵소서.” 그 황문주사관이 황급히 백옥 섬돌 앞으로 걸어가 아뢰었다. “만세, 당나라에 고승이 있어 폐하를 알현하고 문첩을 바꾸고자 하나이다.” 국왕은 당나라가 큰 나라임을 듣고, 게다가 방외의 성스러운 중이라 하니 마음이 몹시 기뻐 즉시 청을 허락하고 불렀다. “그를 불러 들이라!” 삼장법사를 금계단으로 불러 올려, 절을 올리고 만세를 부르는 예가 끝났다. 양쪽의 문무 여러 관원이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상국의 인물은 예악이 이토록 온화하고 의젓하구나!” 국왕이 말했다. “장로여, 그대는 내 나라에 무슨 일로 왔느냐?” 삼장법사가 아뢰었다. “소승은 당나라 석가의 제자로, 천자의 칙지를 받들어 서방으로 경을 구하러 가옵니다. 본래 문첩을 받들고 있사오니, 폐하의 상국에 이르러 마땅히 바꾸어야 하옵니다. 그리하여 분별없이 용안을 놀라게 하였나이다.” 국왕이 말했다. “당나라 천자의 문첩이 있다면 올려다 보게 하라.” 삼장법사가 두 손으로 받들어 올려 어안 위에 펼쳐 놓았다. 문첩에는 이러하였다. “남섬부주 대당국, 천명을 받들어 운을 이어가는 당나라 천자가 문첩을 행하노라. 생각건대 짐은 덕이 옅거늘 큰 기업을 이어받아 신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며, 깊은 물가에 임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 아침저녁으로 두려워하노라. 앞서 경하의 늙은 용을 구하지 못하여 황천후제에게 견책을 받아 삼혼칠백이 홀연히 음사로 가 무상객이 되었노라. 양의 수명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므로 명군이 은혜를 베풀어 돌려보내어 살아나게 하였기에, 널리 선한 모임을 베풀고 망자를 천도하는 도량을 지었노라. 고통을 구하시는 관세음보살이 금빛 몸을 드러내어, 서방에 부처와 경이 있어 유망한 이와 외로운 혼을 건져 초탈하게 할 수 있음을 가리켜 주시니, 특별히 법사 현장을 시켜 먼 곳의 천 개 산을 지나며 경의 게송을 구하게 하였노라. 만일 서쪽 여러 나라에 이르거든 선한 인연을 없애지 말고 이 문첩에 따라 통행하게 하라. 이에 문첩을 내노라. 대당 정관 십삼 년 가을 길일, 어전 문첩.” 위에는 보인 아홉 개가 찍혀 있었다. 국왕은 그것을 보고 자기 나라의 옥새를 가져다 화압을 하고 삼장법사에게 건네주었다. 삼장법사가 은혜에 사례하고 문첩을 거두어들인 뒤 다시 아뢰었다. “소승은 하나는 문첩을 바꾸러 왔사옵고, 둘은 폐하께 집에서 보낸 편지를 전하러 왔나이다.” 국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무슨 편지냐?” 삼장법사가 아뢰었다. “폐하의 세째 공주 마마가 완자산파월동의 황포 요괴에게 낚이듯 끌려갔사옵니다. 소승이 우연히 그분을 만났사옵기에 편지를 전하러 왔나이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두 눈에 눈물을 가득 흘리며 말했다. “십삼 년 전에 공주가 사라진 이래, 두 반의 문무 관원도 얼마나 많이 폄퇴시켰는지 모르고 궁 안팎의 크고 작은 시녀와 내시도 얼마나 많이 때려 죽였는지 모르겠느니라. 다만 황궁을 걸어 나가 길을 잃어 찾을 곳이 없다 하였고, 성 안의 백성 집들도 무수히 샅샅이 캐물었건만 더욱 소식이 없었느니라. 어찌 요괴가 낚아 갔음을 알았으랴! 오늘에야 비로소 이 말을 들었으니, 이에 비통하여 눈물을 흘리느니라.” 삼장법사가 소매에서 편지를 꺼내 올렸다. 국왕이 받아들고 평안 두 글자가 적힌 것을 보니 손이 더욱 힘없이 풀려 편지를 뜯을 수 없었다. 이에 한림원 대학사를 불러 올려 편지를 읽으라 명하였다. 대학사가 즉시 전각에 올라갔다. 전각 앞에는 문무 여러 관원이, 전각 뒤에는 후비와 궁녀들이 모두 귀를 기울여 편지를 들으려 하였다. 대학사가 봉함을 뜯어 크게 읽었는데, 거기에는 이러하였다. “불효녀 백화수가 머리를 조아리고 백 번 절을 올리나이다. 큰 덕을 지니신 부왕 만세의 용봉전 앞에, 그리고 세 궁의 모후 전하 소양궁 아래와 온 조정의 문무 어진 경들의 자리에도 올리나이다. 어리석은 딸은 다행히 모후의 궁에 몸을 의탁하여 자식을 기르시는 온갖 노고에 감격하였사오나, 힘을 다해 얼굴빛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을 다해 효도를 받들지 못하였나이다. 십삼 년 전 팔월 보름날 좋은 밤 아름다운 시각에, 부왕의 은혜로운 분부로 각 궁에서 잔치를 베풀고 달빛을 완상하며 맑은 밤의 성대한 모임을 함께 즐기게 되었나이다. 한창 즐거워하는 사이에 문득 한 줄기 향기로운 바람이 일며 금빛 눈에 푸른 얼굴, 푸른 머리털의 마왕이 나타나 이몸을 붙잡아 상서로운 빛을 타고 곧장 인적 없는 산중 빈 들로 데려갔나이다. 분간할 새도 없이 그 요괴가 힘을 믿고 억지로 아내로 삼았나이다. 이리하여 할 수 없이 십삼 년을 견디며 요괴의 아이 둘을 낳았사오니, 모두 요마의 씨이옵니다. 이를 논하자면 참으로 인륜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해치는 일이라, 편지를 전해 더럽히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오나, 다만 이몸이 죽은 뒤에야 분명히 드러나지 못할까 두렵나이다. 원망을 품고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던 차에 뜻하지 않게 당나라의 성승도 마왕에게 붙들려 왔나이다. 이에 이몸이 눈물을 떨구며 편지를 써서 감히 놓아 보내고, 특별히 이 종이 조각을 부탁하여 작은 마음을 표하나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부왕께서 굽어 살피시어 상장들을 보내시어 속히 완자산파월동에 이르러 황포괴를 사로잡으시고, 이몸을 구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크나큰 은혜로 여기겠나이다. 졸필로 예를 갖추지 못하였사오니, 뵙거든 자세히 아뢰겠나이다. 불효녀 백화수가 다시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나이다.” 대학사가 집에서 보낸 편지를 다 읽자 국왕이 크게 통곡하고 세 궁이 눈물을 떨구었으며 문무가 비통해하였다. 앞뒤의 모든 이가 슬퍼하고 그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국왕이 한참을 울고 나서 두 반의 문무에게 물었다. “누가 감히 군사를 일으키고 장수를 거느려 과인을 위해 요마를 사로잡고 내 백화 공주를 구하겠느냐?” 몇 번이나 거듭 물었으나 감히 대답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으니, 참으로 나무로 깎아 만든 무장이요 흙으로 빚어 놓은 문관이었다. 국왕은 마음에 번뇌가 일어 눈물이 솟는 샘물 같았다. 그러자 여러 관원이 일제히 엎드려 아뢰었다. “폐하, 우선 번뇌를 거두시옵소서. 공주를 잃은 지 지금 십삼 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다가, 우연히 당나라 성승을 만나 편지를 부쳐 왔다 하나이다. 참인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사옵니다. 게다가 신 등은 모두 범인이요 범마라, 병서와 무략을 익혀 진을 치고 영을 세워 나라에 침범당할 근심이 없게 할 뿐이옵니다. 저 요정은 구름을 타고 안개 속을 오가는 무리라, 그와 마주 대면할 수도 없사오니 어찌 정벌하여 구하겠나이까? 생각건대 동토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이는 상국의 성승이옵니다. 이 중은 도가 높아 용과 호랑이도 복종하고 덕이 무거워 귀신도 흠모하오니, 틀림없이 요괴를 항복받는 술법이 있을 것이옵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시비를 말하러 오는 이가 곧 시비의 당사자라 하였나이다. 이 장로를 청하여 요사한 무리를 항복받고 공주를 구하게 하심이 거의 만전의 계책이 되겠나이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급히 고개를 돌려 삼장법사에게 청하였다. “장로여, 만일 재주가 있어 법력을 펴 요마를 잡고 내 아이를 구해 조정으로 돌아오게 한다면, 서방에 올라가 부처를 뵐 필요도 없느니라. 머리털을 기르고 머리를 남겨 두어, 짐이 그대와 형제를 맺고 함께 용상에 앉아 부귀를 함께 누리면 어떠하냐?” 삼장법사가 황망히 아뢰었다. “소승은 염불은 대강 알고 있사오나, 실로 요괴를 항복받을 줄은 모르나이다.” 국왕이 말했다. “요괴를 항복받을 줄 모른다면 어찌 감히 서천에 올라가 부처를 뵈려 하느냐?” 장로는 더 숨길 수 없어 두 제자를 말하여 아뢰었다. “폐하, 소승 혼자서는 실로 이곳까지 오기 어려웠사옵니다. 소승에게는 제자가 둘 있사온데,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 데 능하여 소승을 보호해 이곳까지 왔나이다.” 국왕이 괴이하게 여기며 말했다. “이 중은 참으로 이치에 어긋나는구나. 제자가 있다면 어찌 그들과 함께 들어와 짐을 뵙지 않았느냐? 조정에 왔더라면 마음에 드는 상이 없다고 한들, 분수에 맞는 공양은 반드시 있었으리라.” 삼장법사가 아뢰었다. “소승의 그 제자들이 추하옵니다. 감히 제 멋대로 조정에 들어올 수 없었사옵니다. 다만 폐하의 용체를 놀라게 하여 상하게 할까 두려웠나이다.” 국왕이 웃으며 말했다. “보아라, 이 중이 하는 말이, 설마 짐이 그들을 두려워해야 한단 말이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감히 아뢰옵니다. 내 큰 제자는 성이 저씨요 법명이 오능팔계인데, 길게 튀어나온 주둥이에 드러난 엄니, 뻣뻣한 갈기와 부채 같은 귀를 지녔고 몸이 굵고 배가 크며 걸으면 바람을 일으키옵니다. 둘째 제자는 성이 사씨요 법명이 오정이온데, 키가 한 장 두 자요 팔의 너비가 석 자이며, 얼굴은 쪽빛 물감 같고 입은 피 웅덩이 같고 눈빛은 번쩍이며 이빨은 못을 늘어놓은 듯하옵니다. 그들이 모두 이러한 모습이옵기에 감히 데리고 조정에 들어올 수 없었나이다.” 국왕이 말했다. “그대가 이미 그렇게 일러두었거늘, 과인이 그들이 무엇이 두렵겠느냐? 불러 들이라.” 그리고는 금패를 관역으로 보내 청하게 하였다. 그 멍청이는 청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 사승에게 말했다. “동생, 자네도 이제 편지를 전하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제야 편지 전한 덕을 보는구먼. 아마 스승님이 편지를 올리니 국왕이 편지 전한 이를 소홀히 대할 수 없다 하여 틀림없이 잔치를 차려 대접하려는 게지. 스승님의 식성이 변변찮으니 우리를 아끼는 마음으로 우리 이름을 들어 주었을 테고, 그래서 금패를 보내 청하러 온 게야. 다 함께 한 끼 얻어먹고 내일 길을 떠나면 좋겠구먼.” 사승이 말했다. “형님, 무슨 까닭인지 알겠소. 우리 우선 가 봅시다.” 드디어 행장과 말을 모두 역승에게 맡기고 저마다 몸에 지닌 병기를 갖추고 금패를 따라 조정에 들어갔다. 어느새 백옥 섬돌 앞에 이르러 좌우에 서서 위를 향해 읍을 한 뒤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문무 여러 관원은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어 모두 말했다. “이 두 중은 얼굴이 추한 것은 그렇다 쳐도, 너무나 거칠고 속되구나! 어찌 우리 임금님을 뵙고도 절을 하지 않고, 읍을 마치고는 몸을 펴고 꼿꼿이 서 있단 말인가. 괴이하고도 괴이하구나!”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여러분,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시오. 우리는 본래 이런 모양이오. 처음 보면 과연 좀 추하게 보이겠지만, 좀 더 오래 보고 있으면 견딜 만할 것이오.” 국왕은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보고 이미 놀란 마음이었는데, 그 멍청이가 말까지 하는 것을 듣자 더욱 담이 떨려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용상에서 굴러떨어졌다. 다행히 곁에서 모시는 관원이 부축하여 일으켰다. 당황한 삼장법사가 전각 앞에 꿇어앉아 머리를 끊임없이 조아리며 아뢰었다. “폐하, 소승은 만 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제자가 추하여 감히 조현하지 못한다 하였사오니 용체를 상하게 할까 두려웠는데, 과연 폐하의 행차를 놀라게 하였나이다.” 국왕이 벌벌 떨며 가까이 다가와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장로여, 그대가 미리 말해 준 덕이로다. 만일 말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그들을 보았다면, 과인은 틀림없이 놀라 죽었으리라!” 국왕이 한참이나 마음을 가라앉힌 뒤 물었다. “저 장로, 사 장로, 어느 분이 요괴를 항복받는 데 능하오?” 그 멍청이는 좋고 나쁨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답했다. “이 늙은 돼지가 항복받을 줄 아오.” 국왕이 말했다. “어찌 항복받는단 말이오?” 저팔계가 말했다. “나는 천봉원수였소. 천조를 어긴 죄로 하계에 떨어졌다가 다행히 지금은 바르게 돌아와 중이 되었소. 동토에서 이곳으로 온 이래 요괴를 항복받는 데 첫째 가는 이는 바로 나요.” 국왕이 말했다. “하늘의 장수가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면 반드시 변화에도 능할 것이오.” 저팔계가 말했다. “천만에요, 천만에요. 그저 그럭저럭 변화 몇 가지는 알고 있소.” 국왕이 말했다. “한번 시험 삼아 하나 변해 보이오.” 저팔계가 말했다. “제목을 내어 주시오. 본보기에 따라 변해야지요.” 국왕이 말했다. “큰 것으로 하나 변해 보시오.” 저팔계도 서른여섯 가지 변화가 있었으므로, 계단 앞에서 재주를 뽐내려 손가락으로 결을 쥐고 주문을 외우며 “커져라!”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허리를 한번 굽히자 팔구 장이나 길어졌으니, 마치 길을 여는 신장 같았다. 두 반의 문무는 벌벌 떨고 온 나라의 군신은 멍하니 넋을 잃었다. 그때 진전장군이 물었다. “장로여, 이렇게 키가 커지면 반드시 어디쯤까지 자라야 끝이 나겠소?” 그 멍청이가 또 어리석은 말을 내놓았다. “바람을 보아야지요. 동풍이라면 그럭저럭 괜찮고 서풍도 견딜 만하지만, 남풍이 불어온다면 푸른 하늘에다 큰 구멍을 뚫어 놓을 것이오!” 국왕이 크게 놀라 말했다. “신통을 거두시오. 변화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겠소.” 저팔계가 몸을 한번 웅크리자 다시 본모습이 되어 계단 앞에 모시고 섰다. 국왕이 또 물었다. “장로여, 이번에 가서 무슨 병기로 그와 싸우겠소?” 저팔계가 허리에서 파를 뽑아 보이며 말했다. “이 늙은 돼지가 쓰는 것은 구치파요.” 국왕이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체면을 구기는구려! 내게는 편과 간, 과와 추, 칼과 창, 월과 도끼, 검과 극, 모와 낫이 넉넉하니, 그대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한 가지 가져가시오. 그 파가 무슨 병기가 된단 말이오?” 저팔계가 말했다. “폐하께서 모르시는구려. 나의 이 파는 비록 투박하게 보이나 실로 어려서부터 몸에 지니고 다니는 병기요. 천하의 수부에서 원수로 있을 적에 팔만 수병을 다스렸는데, 온통 이 파의 힘에 힘입은 것이오. 이제 인간 세상에 내려와 내 스승님을 보호하며, 산을 만나면 호랑이와 이리의 소굴을 부수고 물을 만나면 용과 신의 굴을 뒤엎는 것이 모두 이 파 덕이오.” 국왕이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마음으로 믿었다. 곧 구빈비자에게 명하였다. “짐이 친히 쓰는 어주를 병째 그대로 가져오너라. 우선 장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전송하는 뜻으로 하리라.” 잔에 가득 채워 저팔계에게 올리며 말했다. “장로여, 이 한 잔은 그대의 수고를 위로하는 뜻이오. 요마를 잡고 내 딸을 구해 오면 큰 잔치로 보답하고 천금으로 중하게 사례하리라.” 그 멍청이가 잔을 받아 쥐었는데, 생김새는 비록 거칠어도 행동은 도리어 점잖았다. 삼장법사를 향해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스승님, 이 술은 본래 스승님부터 드셔야 하옵니다만, 임금님이 내게 내리신 것이니 감히 어길 수 없사옵니다. 이 늙은 돼지가 먼저 마셔 흥을 돋운 뒤에 요괴를 잡으러 가겠나이다.” 그 멍청이가 단숨에 비우고 나서 한 잔을 따라 스승님께 올렸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너희 형제들이 마셔라.” 사승이 앞으로 나서서 받았다. 저팔계가 발아래 구름을 일으켜 곧장 허공으로 올라갔다. 국왕이 보고 말했다. “저 장로는 또 등운도 하는구나!” 멍청이가 떠나자 사승도 술을 단숨에 비우고 말했다. “스승님! 저 황포괴가 스승님을 붙잡았을 적에 저희 둘이 그와 싸웠으나 간신히 호각이었사옵니다. 이제 둘째 형님이 홀로 가셨으니 그를 이기지 못할까 두렵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옳은 말이로다. 제자야, 네가 가서 그를 돕도록 하여라.” 사승이 그 말을 듣고 구름을 타고 뛰어올라갔다. 국왕이 당황하여 삼장법사를 붙잡으며 말했다. “장로여, 그대는 잠시 과인과 함께 앉아 있으시오. 그대마저 구름을 타고 가지는 말란 말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가련하고 가련하도다! 나는 반 걸음도 갈 수 없소!” 이때 두 사람이 전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일은 이쯤에서 접어두겠다. 한편 사승이 저팔계를 따라잡으며 말했다. “형님, 제가 왔사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동생, 네가 어쩌러 왔느냐?” 사승이 말했다. “스승님이 저더러 형님을 돕고 오라 하셨사옵니다.” 저팔계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옳은 말이다, 잘 왔구나. 우리 둘이 힘을 다하고 마음을 모아 저 괴물을 잡으러 가자. 비록 대단치는 않더라도 이 나라에서 우리 이름을 떨쳐 보는 것이지.” 보라, 그들이, 자욱한 상서로운 빛으로 국경을 작별하고, 피어오르는 길한 기운이 도성을 나서는구나. 임금의 뜻을 받들어 산속 굴로 오니, 힘을 다하고 마음을 모아 요괴의 영혼을 잡으려 하는구나. 그 둘은 오래지 않아 굴 어귀에 이르러 구름머리를 내려앉혔다. 저팔계가 파를 뽑아 파월동의 문을 향해 힘껏 내리찍어, 그 돌문에 됫박만한 구멍을 하나 뚫어 놓았다. 문을 지키던 작은 요정이 놀라 문을 열고 그 둘인 것을 보고 급히 달려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 큰일 났사옵니다! 저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중과 저 재수 없는 얼굴의 중이 또 와서 문을 모조리 부숴 놓았사옵니다!” 그 괴물이 놀라며 말했다. “이놈들은 그래도 저팔계와 사화상 둘이로구나. 내가 그들의 스승을 용서했거늘 어찌 감히 또 와서 내 문을 때려 부수느냐!” 작은 요정이 말했다. “무슨 물건을 잊고 와서 가지러 온 게지요.” 늙은 요괴가 꾸짖듯 소리쳤다. “허튼소리 마라! 물건을 잊었다고 감히 문을 부수며 쳐들어오겠느냐? 필시 까닭이 있을 터이다!” 급히 갑옷을 갖춰 입고 강철 칼을 움켜쥐고 걸어 나오며 물었다. “이 중들아, 내가 이미 너희 스승을 용서했거늘, 어찌 감히 또 와서 내 문을 때려 부수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이 못된 요괴야, 잘도 해먹었구나!” 늙은 요마가 말했다. “무슨 일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네가 보상국의 세째 공주를 속여 굴 안으로 데려다 힘을 믿고 억지로 아내로 삼아 십삼 년이나 살았으니, 이제 그를 돌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국왕의 뜻을 받들어 특별히 너를 잡으러 왔노라. 어서 들어가 스스로 밧줄로 묶어 나오너라. 그래야 이 늙은 돼지가 손을 쓰는 일을 면할 게 아니냐!” 늙은 요괴가 그 말을 듣고 몹시 노하였다. 보라, 그는 이를 뽀드득 갈며 굳센 이빨을 소리 내어 물었고, 눈을 휘둥그렇게 둥글게 부릅뜨며, 기백을 떨쳐 칼을 들어 올리고, 붉은 기운을 띤 채 마구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저팔계가 몸을 비켜 피하며 구치파를 휘둘러 정면으로 받아쳤고, 뒤이어 사승이 보장을 들어 달려들어 함께 쳤다. 산마루에서 벌어진 이번 겨룸은 지난번과 달랐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말이 어긋나고 그릇되니 남의 노여움을 사고, 뜻이 독하고 정이 상하니 성난 기운이 솟는구나. 이 마왕은 큰 강철 칼로 머리를 향해 내리치고, 저팔계는 아홉 이빨 파로 맞은편에서 받아친다. 사오정은 보장을 휘둘러 던지고, 저 마왕은 신기한 병기를 막아 낸다. 사나운 괴물 하나와 신승 둘이 오가며 몹시 치열하게 겨룬다. 이쪽에서 말한다. “네가 나라를 속였으니 예로 죽을죄를 받아 마땅하다!” 저쪽에서 말한다. “네가 쓸데없는 일로 남의 일에 나서서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쪽에서 말한다. “네가 공주를 강제로 아내로 삼아 나라의 체면을 상하게 했다!” 저쪽에서 말한다. “네 상관이 아니니 쓸데없이 다투지 말라!” 헤아려 보면 오직 편지를 전했기 때문에 중과 요마가 둘 다 편치 못하게 되었구나. 그들이 산비탈 앞에서 여덟아홉 합을 싸우자 저팔계가 점차 버티지 못하게 되어 파를 들기 어려워하고 기력이 모자라게 되었다. 어찌하여 이토록 그를 당해 내지 못하였느냐 하면, 처음 싸웠을 적에는 호법 여러 신이 삼장법사가 굴에 있으므로 저팔계와 사승을 몰래 도와주어 겨우 호각을 이루었거니와, 이때는 여러 신이 모두 보상국에서 삼장법사를 지키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이 대적하기 어려웠다. 그 멍청이가 말했다. “사승아, 네가 우선 나서서 그와 싸우고 있어라. 이 늙은 돼지는 잠깐 볼일을 좀 보고 오겠다.” 그는 사승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쑥 미끄러져 들어가 쑥과 덩굴과 가시덤불과 칡덩굴 속으로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마구 파고들어, 머리 가죽이 긁히고 얼굴이 찔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데굴데굴 굴러 누워 버렸다. 다시는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만 귀 한쪽만 남겨 두고 저쪽의 싸움 소리를 들었다. 그 괴물은 저팔계가 달아난 것을 보고 사승에게 달려들었다. 사승이 미처 손을 쓰지 못해 그 괴물에게 단번에 붙잡혀 굴 안으로 끌려갔고, 작은 요정들이 사승의 두 손과 두 발을 한데 모아 단단히 묶어 버렸다. 결국 그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0회 사마침정법(邪魔侵正法) · 의마억심원(意馬憶心猿) 말하자면, 그 요괴는 사승을 단단히 묶어 두고서도 그를 죽이려 들지도 않았고, 때린 적도 없거니와 욕설 한마디조차 퍼붓지 않았다. 다만 강철 칼을 집어 쥔 채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당승은 상국에서 온 인물이니 예의와 도리를 반드시 알 터인데, 내가 그의 목숨을 살려 두었다고 해서 도리어 그 제자들이 와서 나를 잡아가게 한단 말이냐? 아아, 필시 내 집사람이 저 나라로 무슨 편지를 보내어 바람이 새어 나간 게로구나! 내 가서 그 여편네를 한번 캐물어 보리라.” 그 요괴는 문득 사나운 성질을 일으켜 공주를 죽이려 하였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공주는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어 막 화장을 마치고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오는데, 그 요괴가 눈을 부릅뜨고 미간을 찌푸린 채 이를 갈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주는 도리어 웃는 낯을 지으며 맞이하여 물었다. “낭군께서는 무슨 일로 그토록 근심스러워하시니이까?” 그 요괴가 호통치듯 한마디 내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개 같은 마음을 품은 천한 계집아야, 인륜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구나! 내 처음에 너를 여기 데려온 뒤로 반 마디 잔소리도 한 적이 없었노라. 네가 입는 비단이건 머리에 꽂는 금이건, 없는 물건이 있으면 내가 나가서 구해 왔고, 사철 내내 호강을 누리며 날마다 정을 두터이 하였거늘, 너는 어찌 오직 네 부모만 생각하고 부부간의 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단 말이냐?” 공주가 그 말을 듣고는 놀라 땅에 꿇어 엎드리며 말했다. “낭군이여, 그대는 어찌하여 오늘에야 이별의 말씀을 꺼내시나이까?” 그 요괴가 말했다. “이별하는 것이 내 쪽인 줄 아느냐, 바로 네 쪽이니라! 내가 저 당승을 잡아다가 맛있게 먹을 셈으로 계산해 두었거늘, 너는 어찌 내게 먼저 일러 주지도 않고 그를 놓아 보냈느냐? 필시 네가 남몰래 편지를 써서 그에게 대신 전해 부치게 한 것이로구나. 그렇지 않다면 어찌 두 중이 또 우리 집 문 앞까지 쳐들어 와서 너를 돌려보내라 하였겠느냐? 이것이 네가 저지른 짓이 아니란 말이냐?” 공주가 말했다. “낭군이여, 그대는 나를 잘못 꾸짖으시는 것이니라. 내게 무슨 편지가 갔단 말이니이까?” 늙은 요괴가 말했다. “네가 아직도 입이 센 모양이로구나! 지금 여기 잡아 둔 상대가 있거늘 그것이 증거가 아니란 말이냐?” 공주가 물었다. “그게 누구니이까?” 늙은 요괴가 말했다. “당승의 둘째 제자 사화상이니라.” 원래 사람은 사경에 이르러서도 누구나 죽음을 시인하려 하지 않는 법이라, 공주도 하는 수 없이 억지를 부릴 따름이었다. 공주가 말했다. “낭군이여, 우선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제가 그대와 함께 가서 그에게 한마디 물어 보겠나이다. 과연 편지가 있었다면 저를 때려 죽이셔도 저는 달게 받으리이다. 그러나 만일 편지가 없다면 이 몸을 헛되이 죽이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 요괴는 그 말을 듣고도 사정을 따질 겨를 없이, 키만 한 커다란 쪽빛 손을 휘둘러 벌리며 금지옥엽인 공주의 머리칼을 한 움큼 움켜쥐고는 공주를 앞으로 끌어당겨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강철 칼을 쥔 채 사승을 심문하러 나서며 호통치듯 외쳤다. “사화상! 너희 둘이 감히 멋대로 우리 집 문 앞에 쳐들어 왔으니, 필시 이 여자가 저 나라에 편지를 보내어 임금이 너희를 시킨 것이로구나?” 사승은 그곳에 묶인 채로 요정이 몹시 사나운 기세로 공주를 땅에 내동댕이치고 칼을 들어 죽이려 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분명히 그 여자가 편지를 보내어 우리 스승님을 구한 것이니, 이는 더없이 큰 은혜로다. 내가 만일 한마디로 털어놓는다면 그가 공주를 죽일 터이니, 이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 아니겠느냐? 됐다, 됐다, 됐다! 이 늙은 사승이 스승님을 한평생 모셨으나 털끝만큼의 공로도 보답한 적이 없거니와, 오늘 이렇게 묶인 몸이 되었으니 이 목숨으로 스승님의 은혜나 갚으리라.” 사승이 마침내 큰소리로 호통쳤다. “이 요괴여, 무례하게 굴지 말라! 그 여자에게 무슨 편지가 왔단 말이냐? 너는 이토록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며 그 목숨을 해치려 하는구나! 우리가 여기 와서 너에게 공주를 내놓으라 한 데에는 까닭이 있나이다. 다만 네가 우리 스승님을 굴속에 잡아 두었기에 우리 스승님이 공주의 모습과 거동을 보셨나이다. 보상국에 이르러 통행 문서를 바꿔 쓰게 되었을 때, 그 임금이 공주의 얼굴을 그려 두고 이리저리 찾아 묻던 차에 공주의 모습을 내보이며 우리 스승님께 길을 가는 동안에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나이다. 우리 스승님이 마침내 공주의 일을 이야기하시매 임금은 그제야 자기 자식인 줄 알고 우리에게 어주를 내리시고는 우리를 시켜 너를 잡아 공주를 궁으로 돌려보내라 하셨나이다. 이 사정은 참되거니와 무슨 편지가 있었단 말이냐? 네가 죽이려거든 이 늙은 사승이나 죽이라. 죄 없는 사람을 헛되이 해쳐서는 아니 되나니, 크게 천리를 어기는 것이니라.” 그 요괴는 사승이 말하는 것이 늠름하고 당당함을 보고는 칼을 내던지고 두 손으로 공주를 일으켜 안으며 말했다. “내가 한때 조잡하게 굴어 모욕한 것이 많았구나. 탓하지 말라, 탓하지 말라.” 그리고는 공주의 검은 머리칼을 걷어 올려 보배 쪽진 머리를 바로잡아 주고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얼굴빛을 환히 풀며 달래어 안으로 들여보냈다. 또 윗자리에 모셔 앉히고 예를 갖추어 사과하였다. 공주는 본디 여자라 물처럼 마음이 흔들리는 법이거늘, 그 요괴가 잘못을 빌며 공손히 구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돌려 이렇게 말했다. “낭군이여, 그대가 부부간의 은애를 생각하신다면 저 사승의 밧줄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 주시옵소서.” 늙은 요괴가 그 말을 듣고는 즉시 졸개들에게 명하여 사승의 밧줄을 풀고 그곳에 쇠사슬로 묶어 두게 하였다. 사승은 묶인 것이 풀려 쇠사슬에 매인 것을 보고 일어서며 속으로 몰래 기뻐하여 생각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남에게 편의를 베풀면 제게도 편의가 돌아온다 하였거늘, 내가 그 여자에게 편의를 베풀지 않았다면 그가 어찌 나를 좀 느슨하게 풀어 주라 하였겠느냐?” 그 늙은 요괴는 또 주연을 차리게 하여 공주에게 사례하고 놀란 가슴을 달래게 하였다. 술이 반쯤 취해 갈 무렵, 늙은 요괴는 홀연 또 산뜻하고 화려한 옷 한 벌로 갈아입고 보검 한 자루를 꺼내 허리에 찼다. 그리고 손을 돌려 공주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집사람, 너는 집에 남아 술을 마시며 두 아이를 보살피고, 사화상을 놓아주지 말라. 저 당승이 그 나라에 있는 틈을 타서 나도 서둘러 가서 인척이나 맺어 보리라.” 공주가 물었다. “무슨 인척을 맺으려 하시나이까?” 늙은 요괴가 말했다. “네 아버지 임금을 맺으리라. 내가 그의 부마요, 그가 나의 장인이거늘 어찌 가서 인사를 드리지 않겠느냐?” 공주가 말했다. “그대는 가실 수 없나이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어찌 갈 수 없단 말이냐?” 공주가 말했다. “내 아버지 임금은 말발굽과 칼날로 힘겹게 다투어 얻은 강산이 아니옵니다. 본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사직이니라. 어려서 태자로 즉위하신 터라 성문 밖으로 멀리 나가 본 적도 없거니와 그대 같은 사나운 사내를 본 일이 없나이다. 그대의 얼굴 생김새가 이토록 추악하니 만일 그를 뵙게 되면 놀라게 할까 두렵거니와 도리어 아름답지 못할 터이니, 차라리 가서 인사 드리지 않는 편이 훨씬 좋으니이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그리 말한다면 내 잘생긴 사내로 변해 가면 될 게 아니냐.” 공주가 말했다. “한번 변해 보시어 내게 보여 주시옵소서.” 과연 괴물이라, 그는 주연 자리에서 몸을 한번 흔들어 잘생기고 곱상한 사내로 변하였거늘,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생김새는 우아하고 체격은 늠름하며, 말씨는 관가의 격조를 담았고 거동은 한창 나이의 풍채로구나. 재주는 자건이 시를 짓는 것보다 쉽고, 얼굴은 반안이 과일을 던져 받던 풍류를 가볍게 넘는구나. 머리에는 까치 꼬리 모양의 관을 썼으니 검은 구름이 누워 엎드렸고, 몸에는 옥처럼 고운 비단 겉옷을 걸쳤으니 넓은 소매가 바람에 나부끼네. 발에는 꽃무늬 접힌 검은 장화를 신었고, 허리에는 난새 띠를 둘렀으니 빛이 환하구나. 풍채와 정신이 참으로 기이한 남자요, 골을 솟구치고 늠름하게 솟아오른 아름답고 준수한 영웅이로다. 공주가 보고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요괴가 웃으며 물었다. “집사람, 변한 것이 훌륭하냐?” 공주가 말했다. “잘 변했느니라! 잘 변했느니라! 그대가 이렇게 조정에 들어가시면 내 아버지 임금은 친척이라 하여 외면하지 않으실 터이니, 반드시 문무 여러 관원에게 명하여 그대를 붙들어 연회를 베풀게 하시리라. 술자리 도중에 천 번 만 번 삼가고 조심하여 원래의 얼굴을 드러내어 정체를 들키거나 소문이 새어 나가 사나운 꼴을 보이지 않도록 하시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점잖지 못하니이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분부하지 않아도 내 알아서 하리라.” 보라, 그가 구름머리를 타고 어느새 보상국에 이르러 구름빛을 내려놓고 조정 문 밖으로 걸어가 각문대사에게 말했다. “셋째 부마가 특별히 알현하러 왔으니 청하건대 임금께 아뢰어 주시오.” 황문주사관이 백옥 섬돌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만세, 셋째 부마가 알현하러 왔사옵니다. 지금 조정 문 밖에서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 임금이 마침 삼장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셋째 부마라는 말을 듣고는 여러 관원에게 물었다. “과인에게는 부마가 둘뿐인데 어찌 또 셋째 부마가 있단 말이냐?” 여러 관원이 아뢰었다. “셋째 부마라 하니 필시 요괴가 온 것이옵니다.” 임금이 물었다. “그를 불러 들이는 것이 좋겠느냐?” 그 장로가 놀란 마음으로 아뢰었다. “폐하, 요정이라는 자는 정통하지 않으면 영험하지 않나이다. 그는 과거와 미래를 알며 구름을 타고 안개를 넘나들 수 있사옵니다. 불러도 저절로 들어올 것이요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올 터이니, 차라리 불러 들이시는 편이 오히려 입다툼을 덜으시옵니다.” 임금이 그 청을 받아들여 불러들이라 명하매 요괴가 금계로 불려 올라왔거늘, 그는 여느 신하와 다름없이 춤추며 만세를 부르는 예법을 행하였다. 여러 관원은 그가 준수하고 곱게 생긴 것을 보고는 감히 그를 요괴라 여기지 못하였으니, 그들은 모두 육안과 범태를 지닌 이들이라 도리어 그를 좋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 임금은 그가 골을 솟구쳐 하늘에 닿을 듯한 풍채임을 보고 세상을 구할 동량이 될 인물이라 생각하며 물었다. “부마, 그대의 집은 어디에 있으며 어느 지방 사람이냐? 언제 내 공주와 짝을 이루었기에 이제야 인사를 오느냐?” 그 늙은 요괴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주공, 신은 성 동쪽 완자산 파월장 사람이옵니다.” 임금이 물었다. “그대의 산이 이곳에서 얼마나 멀기에 그리 되었느냐?” 늙은 요괴가 아뢰었다. “멀지 않사옵니다. 삼백 리뿐이옵니다.” 임금이 물었다. “삼백 리 길이라면 내 공주가 어찌 그곳에 이르러 그대와 짝을 이루었단 말이냐?” 그 요괴는 교묘한 말과 꾸민 정으로 거짓을 참되게 포장하여 아뢰었다. “주공, 미신은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 타기를 즐겨 사냥으로 살아왔나이다. 십삼 년 전에 집의 종 수십 명을 거느리고 매를 날리고 개를 몰아 사냥을 나갔는데, 홀연 얼룩무늬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여자 하나를 등에 태운 채 산비탈 아래로 걸어 내려가는 것이 보였사옵니다. 이에 미신이 활을 당겨 화살 한 대를 쏘아 그 사나운 호랑이를 쏘아 넘어뜨리고, 여자를 본장으로 데려다 온수와 따뜻한 탕으로 깨우아 그 목숨을 구하였나이다. 그래서 그 여자가 어느 집 사람이냐고 물었사온데 그는 공주란 두 자를 일절 말하지 않았사옵니다. 만일 일찍이 만세의 셋째 공주라 하였다면 어찌 감히 마음을 속여 제멋대로 짝을 이루었사오리이까. 마땅히 금전에 올려 크고작은 벼슬 하나를 받아 몸을 빛내었을 것이옵니다. 다만 그가 백성의 딸이라 하였기에 미신의 장소에 머물게 되었사온데, 여자는 곱고 사내는 재주가 있어 서로 즐거이 따르는지라 이렇게 여러 해를 함께 지내게 되었나이다. 당시에 짝을 이룬 뒤 그 호랑이를 잡아 친척들을 청하려 하였사온데 공주마마께서 우선 죽이지 말라 하셨사옵니다. 그 죽이지 말라 하신 까닭이 몇 마디 말씀으로 매우 잘 이르셨거늘, 이르시기를 하늘에 맡기고 땅에 맡겨 부부가 되었으니 중매도 없고 증인도 없이 혼인을 맺었다 하였나이다. 전생에 붉은 노끈이 이미 발을 묶었거늘 오늘 호랑이를 중매인으로 삼는다 하였사옵니다. 신이 그 말씀을 좇아 호랑이의 사슬을 풀어 그 목숨을 살려 주었나이다. 그 호랑이는 화살에 상처를 입은 채 발굽을 달리고 꼬리를 저으며 달아났사옵니다. 뜻밖에도 그놈이 목숨을 건진 뒤 저 산속에서 몇 해를 닦아 몸을 단련하여 정기가 되어서는 오로지 사람을 홀리고 해치는 짓만 하였사옵니다. 신이 듣건대 지난날에도 경을 구하러 오는 이들이 몇 차례 있었는데 모두 대당에서 온 당승이라 하였사오니, 필시 이 호랑이가 당승을 해치고 그의 문인을 얻어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의 모습으로 변하여 오늘 조정에서 주공을 속이고 있사옵니다. 주공이시여, 저 수놓은 방석 위에 앉아 있는 자가 바로 십삼 년 전 공주를 등에 태웠던 사나운 호랑이옵니다. 참된 경 구하는 사람이 아니옵니다!” 보라, 저 물 같은 임금은 어리석은 육안으로 요정을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그의 한바탕 거짓말을 참된 것으로 여겨 물었다. “어진 부마여, 그대는 어찌 이 중이 공주를 태웠던 호랑이인 줄 아느냐?” 그 요괴가 아뢰었다. “주공, 신은 산속에서 호랑이를 잡아먹고 호랑이 가죽을 입으며 그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났사오니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나이까.” 임금이 말했다. “그대가 알아본다면 그에게 본모습을 드러내 보이라.” 괴물이 아뢰었다. “맑은 물 반 잔만 빌려 주시옵소서. 신이 곧 그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하겠나이다.” 임금이 관원에게 명하여 물을 가져다 부마에게 건네게 하였다. 그 요괴가 물을 손에 받아 쥐고 몸을 일으켜 앞으로 걸어 나가며 검은 눈으로 몸을 묶는 법을 쓰고 주문을 외운 뒤, 한 입 물고 있던 물을 당승을 향해 확 뿜으며 “변하라!” 하고 외쳤다. 그 장로의 참몸은 전각 위에 숨겨 두고 참으로 얼룩무늬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로 변하였다. 이때 임금과 신하들이 한눈으로 바라보니 그 호랑이의 생김새가 이러하였으니, 흰 이마에 둥근 머리요 얼룩덜룩한 몸에 번개 같은 눈이며, 네 발굽은 꼿꼿하고 늠름하며 스무 발톱은 갈고리처럼 굽었으되 날카롭구나. 톱니 같은 이가 입을 감싸고 뾰족한 귀가 눈썹에 닿았네. 사낙고 흉악한 꼴이 큰 고양이 같고 맹렬하고 위풍 당당함이 누런 송아지 같구나. 뻣뻣한 수염은 곧게 꽂은 은빛 막대요, 돋친 혀가 불같이 날름거리며 사나운 기운을 뿜는다. 과연 사나운 얼룩 호랑이라,매섭게 몰아치는 위풍이 보전을 흔드누나. 임금이 그것을 보자 넋이 흩어지고 혼이 날아갔으며, 놀란 여러 관원이 모두 달아나 숨었다. 담력이 큰 무장 몇이 장군과 교위를 거느리고 한꺼번에 달려들어 온갖 병기로 마구 내리쳤거늘, 이 판에 당승이 목숨을 건질 팔자가 아니었다면 스무 명의 중일지라도 고기 장으로 부서졌으리라. 이때 마침 정갑과 갈제, 공조와 호교의 여러 신이 반공중에 숨어 보호하고 있었으므로그 병기로는 그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여러 신하가 땅거미가 질 때까지 떠들썩하게 달려들어 그 호랑이를 산 채로 잡아 쇠밧줄로 묶고 철우리에 넣어 조방 안에 두었다. 그 임금이 마침내 어지를 내려 광록시에 명하여 큰 연회를 베풀어 부마가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하게 하였으니, 그렇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저 중에게 해를 입을 뻔하였다. 그날 밤 여러 신하가 조정을 파하고 요마는 은안전으로 들어갔다. 또 궁아와 채녀 열여덟을 뽑아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고 춤추게 하여 요마가 술을 마시며 즐기도록 하였다. 그 괴물은 윗자리에 홀로 앉았고 좌우에 늘어선 이는 모두 고운 살결과 아리따운 자태를 지닌 이들이거늘, 보라 그가 누리는 즐거움이여. 술이 이경에 이르도록 마셔 취기가 올라오자 참지 못하고 제멋대로 굴기 시작하여 벌떡 일어나 크게 한번 웃고는 본모습을 드러내며 갑자기 사나운 마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키만 한 커다란 손을 뻗쳐 비파 타던 여자 하나를 움켜 잡아 끌어당겨 우두둑 하고 머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놀란 열일곱 궁아가 목숨을 걸고 앞뒤로 마구 달아나 숨으니 보라 그 꼴이여. 궁아는 겁에 질리고 채녀는 놀라 바쁘구나. 궁아의 겁먹음은 마치 비에 맞은 부용이 밤비에 잠긴 듯하고, 채녀의 놀람은 바람에 흔들리는 작약이 봄바람에 춤추는 듯하네. 비파를 부수어대며 목숨을 돌보고 거문고에 넘어져 상처를 입으며 도망하느라, 문을 나서면서 남과 북을 가릴 겨를 없고 전각을 떠나며 서와 동을 살필 틈 없구나. 옥 같은 얼굴이 깨어지고 고운 자태가 상하니 사람마다 목숨을 걸고 달아나며 저마다 남은 삶을 쫓아 흩어진다. 그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도 감히 소리쳐 알리지 못하고 밤이 깊어 감히 임금을 놀라게 하지도 못한 채 모두 낮은 담장 처마 밑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는데, 이쯤 해 두겠다. 말하자면, 그 괴물이 위에 앉아 스스로 술을 따르고 스스로 잔을 기울이며 한 잔 마실 때마다 사람을 끌어당겨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두 입 베어 물었다. 그가 안에서 그리 즐기는 동안 바깥 사람들은 모두 “당승이 호랑이 정이다!” 하고 떠들어 댔거늘, 함부로 퍼뜨리고 함부로 떠드는 소란이 금정관역까지 번졌다. 이때 역 안에는 사람이 없고 다만 흰 말만이 구유에서 풀과 사료를 먹고 있었다. 그는 본디 서해 작은 용왕이거늘 천조를 어겨 뿔이 잘리고 비늘이 벗겨져 흰 말로 변하여 당승을 태우고 서쪽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이었다. 홀연 사람들이 당승이 호랑이 정이라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 스승님은 분명 좋은 분이신데 필시 요괴에게 홀려 호랑이 정으로 변하셨으니 스승님이 해를 입으셨구나.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큰 사형은 떠난 지 오래되었거니와 저팔계와 사승 또한 소식이 없구나!” 그는 이경이 될 때까지 견디어 만물이 소리 없는 때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내가 지금 당승을 구하지 않는다면 이 공과는 끝장이로다! 끝장이로다!” 그는 참지 못하고 고삐를 끊어 버리고 안장과 굴레를 털어 느슨하게 한 뒤 급히 몸을 일으켜 바삐 변화를 드러내어 다시 용으로 화하였다. 그리고 검은 구름을 타고 곧장 구천 높은 허공으로 올라가 바라보니,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삼장은 서쪽으로 와 세존을 배알하거늘, 길 가운데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사나운 요기 있었네. 오늘 밤 호랑이로 변한 재앙에서 벗어나기 어렵거늘, 흰 말이 고삐를 늘어뜨리고 주인을 건지누나. 작은 용왕이 반공중에서 바라보니 은안전 안이 등불과 촛불로 휘황찬란하였다. 본디 그 여덟 개의 만당홍에 여덟 자루 촛불이 켜져 있었던 것이다. 구름머리를 낮추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 요마가 홀로 위에 앉아 억지로 술을 마시며 사람의 고기를 먹고 있었다. 작은 용이 웃으며 말했다. “이놈은 형편없구나! 발바닥을 드러내고 바람을 새어 나가게 하여 놓고는 저울추를 짓밟듯 사람을 잡아먹고 있으니 제법 늘어난 놈이로구나! 다만 내 스승님의 행방이 어떠한지 알 길이 없거늘 도리어 이 무뢰한 요괴를 만났구나. 우선 내 가서 그를 한번 놀려 보리라. 손에 넣기만 한다면 요정을 붙잡은 뒤에 스승님을 구해도 늦지 않으리라.” 과연 훌륭한 용왕이라, 그가 몸을 한번 흔들어 궁아 하나로 변하였거늘, 참으로 몸은 가볍고 용모는 아리따웠다. 바삐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가 요마에게 만복을 비는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부마님이시여, 제 목숨을 해치지 마시옵소서. 제가 대신 술잔을 받들러 왔나이다.” 그 요괴가 말했다. “술을 따라 보라.” 작은 용이 주전자를 받아 들고 그의 잔에 술을 따르매 술이 잔보다 서너 푼이나 높이 솟아올랐으되 조금도 넘치지 않았으니, 이는 작은 용이 부린 물을 누르는 법이었다. 그 요괴는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여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너에게 이런 재주가 있단 말이냐!” 작은 용이 아뢰었다. “아직 몇 푼은 더 높이 따를 수 있사옵니다.” 그 요괴가 말했다. “더 따라라! 더 따라라!” 그가 주전자를 들어 마구 따르니 술이 마구 솟아올라 마치 열세 층 보탑처럼 뾰족하고 꽉 찬 채 조금도 넘치지 않았다. 그 괴물이 입을 내밀어 한 잔을 마시고는 시체를 끌어당겨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노래할 줄 아느냐?” 작은 용이 아뢰었다. “조금은 아는 체하옵니다.” 가락과 운을 따라 작은 곡 하나를 부르고는 또 한 잔을 올렸다. 그 요괴가 말했다. “춤은 출 줄 아느냐?” 작은 용이 아뢰었다. “이 또한 조금은 아는 체하옵니다만, 다만 맨손이라 춤이 보기 좋지 않사옵니다.” 그 요괴가 옷을 걷어 올리고 허리에 찬 보검을 풀어 칼집에서 뽑아 작은 용에게 건넸다. 작은 용이 칼을 받아 들고는 마음을 먹고 주연 앞에서 위로 셋 아래로 넷, 왼쪽 다섯 오른쪽 여섯으로 화려한 칼법을 펼쳐 보였다. 그 요괴가 눈이 휘둥그레져 바라보는데, 작은 용이 화려한 글자를 던져 버리고는 요정을 향해 칼을 한 번 내리쳤다. 과연 훌륭한 괴물이라, 몸을 옆으로 비켜 피하고는 황급히 손발을 놀려 만당홍 하나를 들어 보검을 막아 냈다. 그 만당홍은 본디 무른 쇠로 만들어진 것이라 자루까지 합쳐 팔구십 근이나 되었다. 둘이 은안전을 나서자 작은 용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구름머리를 타서는 반공중에서 그 요마와 맞붙어 싸웠다. 이 한 판, 어둠 속에서 참으로 잘도 싸웠거늘 어찌 보이느냐. 저 하나는 완자산에서 생겨난 괴물이요, 이 하나는 서양 바다에서 벌을 받아 내려온 참된 용이로다. 하나는 털끝 같은 빛을 뿜으매 흰 번개를 내뿜는 듯하고, 하나는 날카로운 기운을 일으키매 붉은 구름이 터지는 듯하구나. 하나는 흰 상아 늙은 코끼리처럼 인간 세상을 걷는 듯하고, 하나는 금발톱 살쾡이처럼 하계로 날아내린 듯하네. 하나는 하늘을 받드는 옥 기둥이요, 하나는 바다를 걸친 금 대들보로다. 은빛 용이 날아 춤추고 누런 귀신이 뒤집히며 펄쩍이는데, 좌우로 오가는 보검이 게으름이 없고 만당홍 또한 오가며 쉬지 않는구나. 그 둘이 구름 끝에서 여덟 아홉 합을 싸우매 작은 용은 손이 늘어지고 힘줄이 저리며, 늙은 요마는 몸이 튼튼하고 기운이 셌다. 작은 용이 당해 내지 못하고 칼을 날려 그 요괴를 내리치니 요괴에게는 칼을 받는 법이 있어 한 손으로 보검을 받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만당홍을 내던지며 내리쳤거늘, 작은 용이 미처 손을 쓰지 못해 뒷다리를 한 방 얻어맞고는 황급히 구름머리를 내려놓았으니, 어수하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작은 용이 머리부터 물속으로 뛰어들자 그 요마가 뒤쫓아 왔으나 그를 찾지 못하고는 보검을 쥐고 만당홍을 들어 은안전으로 올라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였거늘, 이쯤 해 두겠다. 말하자면, 그 작은 용은 물 밑에 숨어 있다가 반 시진이 지나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제야 이를 악물고 다리의 통증을 참으며 튀어 올라가 검은 구름을 밟고 곧장 관역으로 돌아와 다시 예전의 말로 변하여 구유 아래에 엎드렸다. 가련하게도 온몸이 물에 젖고 다리에는 상처가 있었거늘, 그때의 형편이 이러하였으니, 뜻의 말과 마음의 원숭이가 모두 흩어져 잃고, 금공과 목모가 다 시들어 버렸네. 황파는 상하여 멀리 갈라지고, 도의는 엷어졌거늘 어찌 이루리오! 또한 삼장법사가 재앙을 만나고 작은 용이 싸움에 패한 일은 이쯤 접어 두겠거니와, 이야기는 이러하다. 저 저팔계는 사승과 헤어진 뒤 곧장 풀숲 속에 처박혀 돼지가 뒹군 웅덩이 하나를 파고는 그 잠을 한밤중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깨어나고 보니 또 어디인지 알 수 없어 눈을 비비고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귀를 기울여 들어 보니, 아아! 바로 그 산이 깊어 개 짖는 소리 없고 들이 넓어 닭 우는 소리 드물구나. 그가 별과 북두가 옮겨간 것을 보고 아마도 삼경 무렵이려니 하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내가 돌아가 사승을 구하려 하나 참으로 외줄은 실이 되지 못하고 외손은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로구나. 됐다! 됐다! 됐다! 내 우선 성 안으로 들어가 스승님을 뵙고 임금께 아뢰어 허락을 받은 뒤 날래고 용맹한 군사 몇을 뽑아 데리고 내일 사승을 구하러 오리라.” 그 멍청이는 급히 구름머리를 타고 곧장 성 안으로 되돌아와 반나절도 못 되어 관역에 이르렀다. 이때는 인적이 고요하고 달빛만 밝거늘 두 행랑 아래를 찾아보아도 스승님이 보이지 않고 다만 흰 말이 그쪽에서 자고 있었으니,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있고 뒷다리에는 접시만 한 푸른 자국이 있었다. 저팔계가 놀라며 말했다. “재수가 두 겹으로 없구나! 이 망할 놈이 걸어 다닌 적도 없거늘 어찌 몸에 땀이 나고 다리에 푸른 자국이 있단 말이냐? 필시 악한이 스승님을 약탈하며 말을 때려 상하게 한 게로구나.” 그 흰 말은 저팔계인 줄 알아보고는 홀연 사람의 말을 뱉으며 “사형!” 하고 불렀다. 이 멍청이는 놀라 엎어졌다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아나려 하였으나 그 말이 몸을 쭉 뻗어 검은 승복을 한 입 물어뜯으며 말했다. “형이여, 나를 두려워 말게.” 저팔계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아우야, 너는 어찌하여 오늘에야 말을 하느냐? 네가 입을 열면 필시 큰 불상사가 있는 법이니라.” 작은 용이 말했다. “너는 스승님이 위험에 빠지신 줄 아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나는 모른다.” 작은 용이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너와 사승이 황제 앞에서 재주를 부려 요마를 쓰러뜨리고 공을 세워 상을 받으려 하였거늘, 뜻밖에도 요마의 재주가 커서 너희 재주가 미치지 못해 그를 당해 내지 못하였다. 그래도 한 사람쯤 돌아와 소식을 전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도리어 소식조차 없구나. 그 요정이 잘생긴 문인으로 변하여 조정에 쳐들어가 황제와 인척을 맺고는 우리 스승님을 얼룩무늬 사나운 호랑이로 만들어 버렸거늘, 지금 여러 신하에게 붙잡혀 조방의 철우리 안에 갇혀 있느니라. 내가 이런 고통을 듣자마자 마치 칼로 에이는 듯하였다. 너희 이틀 동안이나 소식이 없거늘 혹시라도 그가 목숨을 해칠까 두려워 용의 몸으로 화하여 구하러 갈밖에 없었으나, 조정에 이르러서도 스승님을 찾지 못하였느니라. 은안전 바깥에 이르러 요정을 만났거늘 내가 또 궁아의 모습으로 변하여 그 괴물을 속였다. 그 요괴가 내게 칼춤을 보여 달라 하므로 마음을 먹고 그를 한 번 내리쳤으나 일찍이 그가 몸을 빼는 바람에 두 손으로 만당홍을 들어 나를 싸움에서 이겼다. 내가 또 칼을 날려 내리치니 그가 또 칼을 받아 쥐고는 만당홍을 내리던져 내 뒷다리를 한 방 때렸느니라. 그러므로 어수하 속으로 뛰어들어 겨우 목숨을 건졌거늘, 다리의 푸른 자국이 바로 그 만당홍에 맞은 것이니라.”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참으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 작은 용이 말했다. “내가 너를 속일 리가 있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너는 버티고 일어날 수 있겠느냐?” 작은 용이 말했다. “내가 버티고 일어난다면 어쩌려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네가 버티고 일어날 수 있다면 바다로 내려가 버리라. 짐은 이 늙은 돼지가 메고 고로장으로 가서 다시 사위 노릇이나 하겠다.” 작은 용이 그 말을 듣고는 그의 장삼을 한 입 물어뜯고는 좀체 놓으려 하지 않으며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리며 말했다. “사형이여! 부디 게으른 마음을 내지 말아 주게!” 저팔계가 말했다. “게으름을 부리지 않으면 어쩌란 말이냐? 사승 아우는 이미 그에게 붙잡혔거늘 나는 그를 당해 낼 수 없으니, 이때 흩어지지 않고 무엇을 기다린단 말이냐?” 작은 용이 한참을 잠자코 생각하다가 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형이여, 흩어지자는 말은 말아 주게. 스승님을 구하려거든 그대는 다만 사람 하나를 청하러 가게.” 저팔계가 말했다. “누구를 청하란 말이냐?” 작은 용이 말했다. “그대는 서둘러 구름을 타고 화과산으로 올라가 큰 사형 손행자를 청해 오게. 그에게는 아직 요정을 항복받을 큰 법력이 있으니 틀림없이 스승님을 구하고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진 원수까지 갚아 주리라.” 저팔계가 말했다. “아우야, 다른 사람을 청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저 원숭이는 나와 좀 사이가 좋지 않느니라. 지난번 백호령에서 저 백골부인을 때려 죽였을 때, 그가 나를 원망하기를 스승님께 《긴고아주》를 외우라고 부추겼다 하더니, 나는 그저 장난으로 여겼거늘 뜻밖에도 그 늙은 중이 참으로 외워 대며 그를 쫓아 보내 버렸느니라. 그가 얼마나 나를 미워할지 모르거늘 그가 결코 오려 하지 않을 것이니라.만일 말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 곡장하는 몽둥이는 또 무거우니, 만일 분별 없이 몇 방 얻어맞는다면 내가 어찌 살아남겠느냐?” 작은 용이 말했다. “그는 결코 그대를 때리지 않느니라. 그는 인정과 의리가 있는 원숭이 왕이니라. 그를 만나거든 우선 스승님이 위험에 빠지셨다는 말은 하지 말고 다만 스승님이 그대를 그리워하신다 하여 그를 꾀어 데려오게. 이곳에 와서 이런 정황을 보면 그가 필시 분개하여 틀림없이 그 요정과 겨루려 할 것이니, 반드시 그 요정을 붙잡아 내 스승님을 구해 내리라.” 저팔계가 말했다. “좋다, 좋다. 네가 이토록 정성을 다하거늘 내가 가지 않는다면 내가 정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겠구나. 내 이번에 가서 과연 행자가 오려 한다면 그와 함께 오리라. 그가 오지 않으려 한다면 너도 나를 기대하지 말라, 나도 오지 않겠다.” 작은 용이 말했다. “가게, 가게. 틀림없이 그가 올 것이니라.” 참으로 그 멍청이는 쇠스랑을 챙기고 장삼을 여며 입고는 벌떡 일어나 구름을 밟고 곧장 동쪽으로 왔다. 이번에는 또한 당승에게 목숨이 있는 팔자라, 그 멍청이가 마침 순풍을 만나 두 귀를 활짝 펴니 마치 돛을 단 배와 같아서 어느새 동양대해를 건너 구름머리를 내려놓았다. 어느덧 해가 솟아오르거늘 그는 산으로 들어가 길을 찾았다. 한창 가는데 홀연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팔계가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행자가 산등성이 오목한 곳에 무리 지은 요괴들을 모아 놓고 있는 참이었다. 그는 돌 벼랑 하나 위에 앉아 있고 앞에는 원숭이가 천이백여 마리나 차례대로 줄을 지어 반을 편성한 채 입으로 “만세! 대성 할아버지!” 하고 외치고 있었다. 저팔계가 말했다. “참으로 잘들 즐기는구나, 참으로 잘들 즐기는구나! 그가 중이 되기를 마다하고 굳이 집으로 오려 한 까닭이 있구나! 이런 좋은 점이 있으리라고야, 이다지 큰 가업을 거느리고 또 이만큼 많은 작은 원숭이가 모셔 주다니! 만일 이 늙은 돼지에게 이런 산장이 있다면 나도 무슨 중이 되겠느냐.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반드시 그를 한번 만나 보아야겠다.” 그 멍청이는 그를 좀 두려워하여 감히 드러내 놓고 만나려 하지 못하고서 풀 우거진 벼랑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천이백에서 삼백 마리 되는 원숭이들 한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 그 원숭이들을 따라 절을 올렸다. 뜻밖에도 손대성은 높이 앉아 있는 데다 눈썰미까지 좋아 그를 훤히 보았거늘 물었다. “저 반열 가운데 함부로 절하는 저 오랑캐는 어디서 온 놈이냐? 끌어 올려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작은 원숭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저팔계를 밀어 올려 땅에 엎어 놓았다. 행자가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오랑캐냐?” 저팔계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감히 여쭙건대, 오랑캐가 아니오라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 대성 휘하의 원숭이 무리는 모두 한결같은 모습이거늘, 너의 주둥이는 특별하게 생겼고 생김새가 좀 괴상하니 필시 다른 데서 온 요마로구나. 다른 데서 온 놈이라면 내 휘하에 들려거든 먼저 이력서와 명함을 올리고 이름을 보고하여라. 그래야 내 너를 여기 남겨 반열에 따라 점호할 수 있느니라. 내 너를 남겨 두지 않을 터인데 네가 감히 여기서 함부로 절을 하느냐!” 저팔계가 고개를 숙이고 주둥이를 내밀며 말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런 낯짝을 내보이는구나! 내가 너와 형제로 몇 해를 지냈거늘 도리어 못 알아보는 척하며 무슨 오랑캐니 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들어 보아라.” 그 멍청이가 주둥이를 위로 쳐들며 말했다. “보란 말이오! 너는 나를 못 알아보아도 이 주둥이는 알아보겠지!” 행자가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저팔계로구나.” 그는 한마디 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그렇소! 그렇소! 내가 바로 저팔계요!” 그는 또 속으로 생각하였다. “알아보았으니 이야기하기 좋구나.” 행자가 물었다. “너는 당승을 따라 경을 구하러 가지 않고 어찌 여기 왔느냐? 필시 네가 스승님을 거슬러 스승님도 너를 쫓아보낸 게 아니냐? 무슨 폄서가 있거든 가져오너라, 내 보겠다.” 저팔계가 말했다. “거스른 적도 없고 그에게 무슨 폄서도 없으며 나를 쫓은 적도 없소.” 행자가 말했다. “폄서도 없고 너를 쫓지도 않았다면 네가 내게 어찌 왔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이 그대를 그리워하시어 나를 보내어 청하라 하셨소.” 행자가 말했다. “그가 나를 청할 리도 없고 그가 나를 그리워할 리도 없느니라. 그는 그날 하늘을 향해 맹세하고 친필로 폄서를 썼거늘 어찌 또 나를 그리워하고 또 너를 멀리 보내어 나를 청하게 한단 말이냐? 나는 단연코 갈 수 없다.” 저팔계가 그 자리에서 거짓말을 꾸며 내며 황급히 말했다. “참으로 그리워하시오! 참으로 그리워하신다니까!” 행자가 물었다. “그가 어찌 나를 그리워한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이 말 위에서 가시다가 제자를 부르셨거늘 나는 듣지 못하고 사승은 귀가 먹었다 핑계하였소. 그러자 스승님이 그대를 떠올리시며 우리들은 시원찮다 하시고, 그대야말로 총명하고 영리한 사람이라 늘 부르면 대답하고 하나 물으면 열을 답한다 하셨소. 이런 까닭으로 그대를 그리워하시어 특별히 나를 보내어 청하라 하셨으니, 부디 한번 가 보시오. 하나는 그대를 바라시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요, 또 하나는 내가 멀리 온 뜻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벼랑에서 뛰어내려 손으로 저팔계를 부축하며 말했다. “현제야, 먼 길 오느라 수고하였구나. 우선 나와 함께 놀다 가자.” 저팔계가 말했다. “형이여, 이곳은 길이 머오니 스승님이 기다리시다가 늦어질까 두렵거늘 나는 놀지 않겠소.” 행자가 말했다. “너 또한 여기까지 온 김에 내 산의 경치가 어떤지 한번 보아라.” 그 멍청이는 감히 완강히 사양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 걸었다. 둘이 손을 잡고 서로 부축하며 여러 작은 요괴가 뒤따라 화과산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과연 좋은 산이로다! 저 대성이 집으로 돌아온 뒤 이 며칠 사이에 거두어 정리하여 옛 모습 그대로 새롭게 꾸며 놓았거늘, 보라 저 산이여. 푸르기는 옥을 깎아 세운 듯하고 높기는 구름에 닿을 듯하네. 둘레에는 범이 웅크리고 용이 서린 형세요, 사방에는 원숭이 울음과 학 울음이 많구나. 아침에는 구름이 산마루를 덮어 감싸고 저녁에는 해가 숲 사이에 걸려 있네. 흐르는 물은 졸졸거리며 옥 패옥을 울리고, 골짜기 샘물은 똑똑 떨어지며 요지금을 타는구나. 산 앞에는 깎아지른 봉우리와 벼랑이 솟았고, 산 뒤에는 꽃과 나무가 무성하구나. 위로는 옥녀가 머리 감던 동이에 닿았고 아래로는 천하에서 갈라진 물줄기를 잇네. 천지가 맺은 수려함이 봉래를 능가하고, 탁하고 맑은 기운이 길러 낸 참된 동부로구나. 그림 솜씨 좋은 붓으로도 그리기 어렵고, 선녀가 하늘의 기밀을 알아도 묘사하지 못하리라. 영롱한 기이한 바위, 바위는 영롱하니 영롱함이 고개 마루에서 채색을 맺었네. 햇빛이 흔들리매 천 가닥 자줏빛 고움이 움직이고, 상서로운 기운이 흔들리매 만 갈래 붉은 노을이 일렁인다. 동천복지가 인간 세상에 있거늘 온 산에 새 나무와 새 꽃이로다. 저팔계가 아무리 보아도 다 볼 수 없어 기쁨이 가득하여 말했다. “형이여, 좋은 곳이오! 과연 천하 제일의 명산이로구나!” 행자가 물었다. “현제야, 이곳에서 살아 볼 만하겠느냐?”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사형이 하시는 말씀 보시오. 보산은 동천복지인데 어찌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말을 쓰시오?” 둘이 한참을 담소하다가 산을 내려오는데, 길가에 작은 원숭이 몇 마리가 자줏빛 윤기 나는 포도와 향기로운 배와 대추, 누렇게 영근 비파, 붉고 고운 양매를 받쳐 들고 길가에 꿇어앉아 외쳤다. “대성 할아버지, 아침 진지를 드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돼지 아우는 밥통이 커서 과일로 진지를 삼는 법이 없느니라. 좋다, 좋다. 변변찮다 탓하지 말고 대충 몇 개 집어 군것질이나 하자.” 저팔계가 말했다. “내 비록 밥통이 크다 하나 또한 고장에 들어가면 그 고장 법을 따르는 법이오. 가져오시오, 가져오시오. 나도 몇 개 집어 새 것으로 맛을 보겠소.” 둘이 과일을 먹는 사이에 차츰 해가 높이 떠올랐다. 그 멍청이는 당승을 구하는 일이 늦어질까 두려워 자꾸만 재촉하며 말했다. “형이여, 스승님이 그곳에서 나와 그대를 기다리고 계시오. 그대와 나, 어서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현제야, 청하노니 수렴동으로 가서 한번 놀아 보게.” 저팔계가 완강히 사양하여 말했다. “노형의 후의는 매우 감사하오나 스승님이 오래 기다리시니 수고롭게 동굴까지 들어갈 것 없소.”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오래 붙들어 두지 않겠노라. 여기서 바로 작별하자.” 저팔계가 물었다. “형이여, 그대는 가지 않겠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이냐? 나는 이곳에서 하늘도 거두지 않고 땅도 관여하지 않으니 자유롭고 편안하거늘, 이리 즐기지 않고 무슨 중이 되겠느냐? 나는 가지 않겠다, 너나 가거라. 다만 당승에게 이리 전하여라. 이미 쫓아내 놓고서 다시는 나를 생각지 말라 하였노라.” 멍청이가 그 말을 듣고는 감히 완강히 다그치지 못하였으니, 다만 그의 성질을 자극하여 당장 몽둥이로 몇 방 얻어맞을까 두려워서였다. 하는 수 없이 연신 대답하며 작별을 고하고 길을 찾아 떠났다. 행자는 그가 가는 것을 보고는 곧 날래고 약은 작은 원숭이 둘을 뽑아 저팔계의 뒤를 밟아 무슨 말을 하는지 듣게 하였다. 참으로 그 멍청이는 산을 내려와 서너 리도 못 가서 뒤를 돌아 행자를 가리키며 입으로 욕하였다. “이 원숭이 같은 놈, 중은 안 되고 도리어 요괴가 되었구나! 이 원숭이 새끼야, 내가 선뜻 청하러 왔거늘 그는 가지 않는다! 네가 가지 않으면 그만이로구나!” 몇 걸음 걸을 때마다 또 몇 마디씩 욕을 퍼부었다. 그 작은 원숭이 둘이 급히 달려 돌아와 보고하였다. “대성 할아버지, 저 저팔계가 매우 성실하지 못하옵니다. 조금 걸을 때마다 몇 마디씩 욕을 하옵니다.” 행자가 크게 노하여 외쳤다. “잡아 오너라!” 그 원숭이 무리가 온 땅을 날아가듯 뒤쫓아 저팔계를 들어 엎어 놓고는 갈기를 움켜쥐고 귀를 잡아당기며 꼬리를 잡아끌고 털을 쥐어뜯어 다시 끌고 돌아갔다. 결국 어떻게 다스릴지, 목숨의 사생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1회 저팔계의격후왕(豬八戒義激猴王) · 손행자지강요괴(孫行者智降妖怪) 의로운 정은 형제의 우애로 맺어지고, 법은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갔도다. 금이 순순히 따르고 목이 길들여져 바른 열매를 이루었으니, 마음의 원숭이와 나무의 어미가 붉은 알약에서 하나가 되었도다. 함께 지극한 즐거움의 세계에 오르고, 함께 둘 아닌 법문으로 왔도다. 경전이란 수행의 모든 길이요, 부처는 바로 제 자신의 원신과 짝하느니라. 형과 아우가 만나 세 가지 맹약을 이루고, 요괴와 마왕의 빛깔이 오행에 응하였도다. 여섯 가지 문이 즐거워하는 바를 잘라 버리고 곧 큰 뇌음사로 나아가리라. 말하자면, 그 바보 녀석이 원숭이 한 무리에게 붙잡히었다. 원숭이들은 그를 어깨에 메고 잡아당기며 걷어차고 끌어당겨 입고 있던 장삼 한 벌을 찢어 놓았다. 저팔계는 입으로 시시콜콜 중얼거리며 혼잣말로 이렇게 읊었다. “망했다! 망했다! 이번에 가면 틀림없이 얻어맞아 죽을 판이로구나!” 오래지 않아 동굴 어귀에 이르렀다. 그 대성은 바위 벼랑 위에 앉아서 꾸짖었다. “이 겨만 처먹은 못난 놈! 네가 갔으면 그만이거늘 어찌하여 나를 욕했느냐?” 저팔계가 땅에 꿇어앉아 아뢰었다. “형님, 저는 형님을 욕하지 않았나이다. 만일 욕을 했다면 제 혀뿌리가 썩어 문드러질 것이옵니다. 저는 그저 형님께서 가지 않으시니 제가 스승님께 가서 아뢰겠노라고 하였을 뿐이옵니다. 어찌 감히 형님을 욕할 수 있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네가 어찌 나를 속여 넘길 수 있겠느냐? 내가 이 왼 귀를 위로 잡아당기면 서른세 겹 하늘 사람들의 말소리를 알아듣고, 이 오른 귀를 아래로 잡아당기면 열 대의 염라대왕이 판관과 장부를 결산하는 것까지 알아듣는다. 네가 길을 걸으면서 나를 욕했는데, 내가 어찌 듣지 못했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저는 형님께서 도둑의 머리에 쥐의 눈을 하고 계셔서, 틀림없이 무슨 물건으로 변해 저를 따라오며 엿들으셨으려니 짐작했나이다.” 행자가 소리쳤다. “녀석들, 굵은 몽둥이를 골라 오너라! 먼저 스무 대를 복사뼈에 얹어 만남의 인사를 하고, 다시 스무 대를 등에 꽃으로 피운 뒤에야, 내가 쇠몽둥이를 들어 이 녀석을 배웅해 주겠다!” 저팔계가 깜짝 놀라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형님, 부디 스승님의 낯을 보시어 저를 살려 주시옵소서!” 행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보건대 그 스승님은 참으로 어질고 의로운 분이시구나! 짐승 붙이 하나 기를 줄 모르면서 말이야.” 저팔계가 다시 말했다. “형님, 스승님의 낯을 보아 주시려 않으시거든, 바다 위 관음보살님의 낯을 보시어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관음보살 이야기가 나오자 마음이 서너 할쯤 풀려 이렇게 말했다. “아우야, 그렇게 말한다면 내 너를 때리지는 않으마. 그러나 너는 솔직히 털어놓고 나를 속이지 말아라. 저 당나라 스님이 어디에서 난을 만났기에 네가 여기까지 와서 나를 꾀어 내려 하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별다른 어려움은 없나이다. 다만 진실로 형님이 그리웠을 뿐이옵니다.” 행자가 꾸짖었다. “이 매 맞아 마땅한 못난 놈! 네가 어찌 아직도 능청을 떠느냐? 이 늙은 손은 몸은 수렴동으로 돌아왔으되 마음은 경을 얻으러 가는 중을 좇고 있느니라. 저 스승님은 걸음마다 어려움이 있고 곳곳마다 재앙을 만날 터이니, 어서 일찍 내게 일러 주어라. 그래야 매를 면하리라!” 저팔계가 이 말을 듣고는 머리를 조아려 아뢰었다. “형님, 본래 형님을 속여 두고 가서 청하려 하였는데, 뜻밖에도 형님께서 이다지도 영험하시니 매만은 용서하시옵고 저를 일으켜 주시어 말씀드리게 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그러마, 일어나서 말해라.” 원숭이들이 손을 놓자 그 바보 녀석이 벌떡 일어나서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행자가 말했다. “네가 무엇을 두리번거리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어느 길이 트였는지 보는 것이오. 달아나기 좋게 말이오.” 행자가 입을 열었다. “네가 어디까지 달아난단 말이냐? 사흘을 먼저 가게 해 준다 한들, 이 늙은 손에게는 능히 너를 되돌려 세울 재주가 있느니라! 어서 빨리 말해라. 이대로 내 성깔을 돋우면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을 속일 생각은 없나이다. 형님께서 돌아가신 뒤 저는 사승과 함께 스승님을 모시고 앞으로 가다가 검은 소나무 숲 하나를 보았나이다. 스승님께서 말에서 내리시어 저에게 밥을 동냥해 오라 하셨나이다. 제가 멀찍이 가 보았으나 인가라곤 하나도 없었고, 몹시 힘이 들었던지라 풀숲에 누워 조금 잠이 들었나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사승이 스승님 곁을 떠나 저를 찾아왔나이다. 형님도 아시다시피 스승님께서는 가만히 앉아 계시는 성미가 못 되셔서 홀로 숲속을 걸으며 경치를 즐기셨나이다. 숲을 나오시니 황금 탑 하나가 빛을 내고 있었는데, 스승님께서는 그것을 절인 줄로만 여기셨나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탑 아래 황포라는 요괴가 있어서 스승님께서 그놈에게 붙잡히고 말았나이다. 그 뒤 저와 사승이 되돌아와 찾아보았으나 흰 말과 짐 보따리만 보일 뿐 스승님은 보이지 않았나이다. 하는 수 없이 동굴 어귀까지 찾아가 그 요괴와 맞붙어 싸웠나이다. 스승님께서 동굴에 계실 때 다행히 구원의 별 하나를 만났는데, 그분은 본래 보상국 임금님의 셋째 공주로 그 요괴에게 납치되어 온 분이었나이다. 그분이 집으로 보내는 편지 한 통을 써서 스승님께 부탁해 전하게 하였고, 그 덕분에 사정이 잘 되어 스승님께서 풀려나셨나이다. 나라에 이르러 편지를 올리니 그 임금께서 곧장 스승님께 요괴를 항복받고 공주를 데려오시라 청하였나이다. 형님, 아시지 않으시옵니까. 그 늙은 중이 어찌 요괴를 항복시킬 수 있었겠나이까? 저희 둘이 다시 가서 싸웠으나 그 요괴의 신통이 광대하여 사승마저 잡아 가 버렸고, 저는 싸움에 져서 달아나 풀숲에 엎드려 숨었나이다. 그 요괴는 준수한 선비로 변신해 조정에 들어가 임금님과 친척이라 사칭하고는 스승님을 호랑이로 만들어 버렸나이다. 또 백룡마가 밤에 용의 몸을 드러내어 스승님을 찾으러 나섰다가 도리어 스승님은 만나지 못하고 은안전에서 술을 마시던 그 요괴와 마주쳤나이다. 백룡마는 궁녀 하나로 변해 그 요괴에게 술을 권하며 칼춤을 추다가 기회를 타 그놈을 내리치려 하였으나, 도리어 그놈이 휘두른 만당홍에 앞다리를 맞아 상하고 말았나이다. 바로 그 백룡마가 저더러 형님을 모셔 오라 하였나이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사형은 인자하고 의로운 군자이니, 군자는 옛 원한을 마음에 두지 않는 법이라, 틀림없이 스승님의 이 한 가지 난을 구하러 오실 것이오'라 하였나이다. 형님, 부디 하루를 스승으로 모셨으면 평생을 아비로 모신다는 그 정을 헤아리시어, 만 번이고 청하오니 그를 한 번 건져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이 어리석은 녀석! 내가 작별할 때 거듭거듭 당부하며 말하기를 '만일 요마가 스승님을 붙잡거든 너는 늙은 손이 그의 큰 제자라 하라'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찌하여 나를 말하지 않았느냐?” 저팔계는 속으로 깊이 생각했다. '부탁해 오는 것보다 자극하는 것이 낫다. 내 한번 자극해 보자.' 그리고 입을 열었다. “형님, 형님을 말하지 않은 편이 오히려 나았사옵니다. 형님을 말한 까닭에 그놈이 더욱 버릇없이 굴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 되었다는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제가 그놈에게 이르기를 '요정아, 버릇없이 굴지 말고 우리 스승님을 해치지 마라! 내게는 손행자라는 큰 사형이 계시다. 그분은 신통이 광대하여 능히 요괴를 항복시키시나니, 그분이 오시면 너는 죽어도 시신 둘 곳이 없을 것이다!' 하였나이다. 그러자 그 요괴는 이 말을 듣고 더욱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나이다. '무슨 손행자 따위냐, 내가 그놈이 두렵더냐? 그놈이 오거든 가죽을 벗기고 힘줄을 뽑고 뼈를 씹고 심장을 먹어 주겠다! 원숭이가 여위었다 한들 내가 그놈을 다져서 기름에 튀겨 먹으리라!'” 행자가 이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귀를 긁고 뺨을 문지르며 성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펄쩍펄쩍 뛰었다. “어느 놈이 감히 이토록 나를 욕한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저 황포괴가 이렇게 욕을 퍼부었기에 제가 그대로 형님께 들려 드린 것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일어나거라. 내가 가지 못할 까닭이 없느니라. 요괴가 감히 나를 욕했으니 나 역시 그놈을 항복시키지 않을 수 없구나. 내 너와 함께 가리라. 이 늙은 손은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혔을 적에, 온 하늘의 신장들이 나를 보면 낱낱이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어 입으로는 대성이라 불렀느니라. 이 요괴가 무례하게도 면전은 물론 뒤에서까지 나를 욕하다니! 이번에 가서 그놈을 단단히 붙잡아 시신을 만 갈래로 찢어 나를 욕한 원한을 갚으리라! 원수를 갚고 나면 곧장 돌아오마.”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바로 그말이옵니다. 형님께서는 다만 가서 그 요괴를 잡아 원수를 갚으시고 나면, 그때 오시고 아니 오시는 것은 형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 원숭이가 비로소 벼랑에서 뛰어내려 동굴 안으로 들어가 요괴의 옷을 벗어 던지고, 비단 장삼을 가지런히 여미고 호랑이 가죽 치마를 단단히 동여매고는 쇠몽둥이를 들고 곧장 문 밖으로 나왔다. 원숭이 떼가 놀라며 길을 막고 말했다. “대성 할아버지, 어디로 가시려 하시나이까? 우리도 데려가서 몇 해라도 즐겁게 놀게 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녀석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당나라 스님을 모시는 이 일은, 하늘 위에서 땅 아래까지 모두가 손오공을 당나라 스님의 제자로 알고 있느니라. 스승님께서 나를 쫓아 돌려보내신 것이 아니라, 집에 와서 둘러보며 편히 놀라고 나를 집으로 보내주신 것이니라. 그러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는 모두 가업을 삼가 지키고, 철 따라 버들을 꽂고 소나무를 심어 결코 게을리하지 말아라. 나는 다시 가서 당나라 스님을 모시고 경을 얻어 동쪽 땅으로 돌아갈 터이니라. 공을 이루고 나면 다시 돌아와 너희와 함께 하늘이 준 즐거움을 누리리라.” 원숭이들이 저마다 명을 받들었다. 그 대성이 비로소 저팔계와 손을 맞잡고 구름을 타고 동굴을 떠나 동쪽 큰 바다를 건너 서쪽 언덕에 이르러 구름빛을 멈추고 불렀다. “아우야, 너는 잠시 여기서 천천히 가거라. 내 바다로 내려가 몸을 씻고 오마.” 저팔계가 말했다. “바삐 갈 길인데 무슨 몸을 씻는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 알겠느냐. 내가 돌아온 뒤 며칠 사이에 몸에 요괴의 기운이 좀 배었느니라. 스승님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나를 꺼리실까 염려되느니라.” 저팔계는 이때에 이르러서야 행자가 한결같이 진심이며 다른 뜻이 없음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잠시 뒤 씻기를 마치고 다시 구름을 타고 서쪽으로 나아가는데, 저 황금 탑이 빛을 내고 있었다. 저팔계가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기가 황포괴의 집이 아니오? 사승도 그놈의 집에 있소.” 행자가 말했다. “너는 공중에 있고, 내가 내려가 저 문 앞이 어떤지 살펴보마. 그래야 요괴와 맞붙어 싸우기 좋으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가지 마시오. 요괴는 집에 없소.” 행자가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느니라.”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상서로운 빛을 내려앉혀 곧장 동굴 문 밖에 이르러 살펴보니, 아이 둘이 그곳에서 구부러진 몽둥이를 휘두르며 털공을 치고 구멍을 다투며 놀고 있었다. 하나는 열 살쯤 되어 보이고, 다른 하나는 여덟아홉 살쯤 되어 보였다. 한창 놀고 있는데 행자가 달려들어 갔으니, 그 아이가 장씨네 집 아이건 이씨네 집 아이건 가리지 않고 정수리에 남겨 둔 머리카락 뭉치를 움켜쥐어 번쩍 들어 옮겨 놓았다. 그 아이들은 깜짝 놀라 입으로는 욕설과 울음을 섞어 마구 외쳐 댔는데, 그 소리가 파월동의 작은 요괴들을 놀라게 하여 급히 공주에게 달려가 아뢰었다. “마님, 누군지 모를 자가 두 도련님을 낚아챘사옵니다!” 알고 보니 그 두 아이는 공주가 그 요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었다. 공주는 이 말을 듣고 황급히 동굴 문 밖으로 걸어 나왔는데, 행자가 두 아이를 번쩍 들어 높은 벼랑 위에 서서 아래로 내동댕이칠 듯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공주가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이 사람아, 나는 그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거늘 어찌하여 내 아들을 낚아챘느냐? 그 아이 아비가 대단히 사나운 자라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결코 그대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오? 나는 저 당나라 스님의 큰 제자 손오공 행자니라. 나의 사제 사승이 그대의 동굴에 있으니, 그대가 가서 그를 풀어 주면 내 이 두 아이를 그대에게 돌려주리라. 이처럼 둘과 하나를 바꾸는 것도 그대에게 유리한 장사 아니겠소?” 그 공주는 이 말을 듣고 급히 안으로 달려가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 몇을 물리치고는 친히 손을 놀려 사승의 결박을 풀어 주었다. 사승이 말했다. “공주마마, 저를 풀어 주지 마시옵소서. 그대의 요괴가 집에 돌아와 사람을 내놓으라 하면 그대까지 화를 입을까 두렵사옵니다.” 공주가 말했다. “장로시여, 그대는 나의 은인이옵니다. 그대가 내 가정 편지를 밝히 변론해 주어 내 목숨을 건져 주었으니, 나 또한 마음을 써서 그대를 놓아 주려 하였나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동굴 문 밖에 그대의 큰 사형 손오공이 와서 나더러 그대를 놓아 주라 하였나이다.” 아아! 그 사승은 손오공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마자 마치 제호를 머리에 붓고 감로가 마음을 적시는 듯하였으며, 얼굴에는 천성이 기뻐하는 빛이 어려오고 가슴에는 온통 봄기운이 가득 찼다. 사람 하나 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마치 한 조각 금과 옥을 주운 것만 같았다. 보라, 그가 장삼 소매를 털어 내고 문 밖으로 걸어 나와 행자에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형님, 형님은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셨나이다! 만 번이고 청하오니 저를 한 번 구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사승 녀석! 스승님이 《긴고아주》를 외우실 때 네가 한마디 거들어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그저 입만 놀리며 폼이나 잡았지! 스승님을 모시려면 어찌하여 서천으로 가는 길을 가지 않고 여기 웅크리고 있느냐?” 사승이 말했다. “형님, 그런 일은 더 말씀하지 마시옵소서. 군자는 이미 지나간 일을 따지지 않는 법이옵니다. 저희는 패군의 장수라 용맹을 말할 수 없나이다. 부디 저를 구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이리 올라오너라.” 그제야 사승이 몸을 솟구쳐 바위 벼랑으로 뛰어올랐다. 말하자면, 저팔계가 공중에 멈춰 서 있다가 사승이 동굴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곧 구름머리를 내려앉히며 소리쳤다. “사승 아우, 마음을 굳게 먹어라! 마음을 굳게 먹어!” 사승이 몸을 일으켜 말했다. “둘째 형님, 어디서 오셨소?” 저팔계가 말했다. “내 어제 싸움에 져서 밤에 성 안으로 들어갔더니 흰 말을 만났소. 그 말에게서 스승님이 황포의 술법에 걸려 호랑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소. 그 흰 말이 나와 의논 끝에 형님을 모셔 오라 하였지.” 행자가 말했다. “바보야, 그만 긴 인사나 늘어놓고 이 두 아이를 너희 둘이 안고 먼저 그 보상성으로 들어가 그 요괴를 자극해 데려오너라. 나는 여기서 그놈을 때리리라.” 사승이 말했다. “형님, 어떻게 그놈을 자극하란 말씀이오?” 행자가 말했다. “너희 둘이 구름을 타고 금란전 위에 서서 좋고 나쁠 것 따지지 말고 그 아이들을 흰 옥 계단 앞에다 내동댕이쳐라. 누가 너희가 누구냐고 물으면 너희는 황포 요정의 아들인데 우리 둘이 잡아 왔다고 하여라. 그 요괴가 그 소리를 들으면 틀림없이 되돌아올 터이니, 나는 성 안으로 들어가 그놈과 싸울 필요가 없느니라. 만일 성 위에서 맞붙어 싸우면 반드시 구름을 뿜고 안개를 토하며 흙을 날리고 먼지를 일으켜 그 조정과 여러 관원과 백성들을 놀라게 하여 모두 불안하게 만들 것이니라.”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은 무슨 일만 벌이면 우리를 골려 먹소.” 행자가 말했다. “어째서 너희를 골려 먹는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이 두 아이는 형님이 잡아 온 뒤 이미 겁을 집어먹어 이제 목소리까지 잠겼소. 조금만 더 지나면 틀림없이 죽고 말 것이오. 우리가 그 아이들을 아래로 던져 고기 반죽처럼 만들어 놓으면 그 요괴가 달려들어 우리를 그냥 놓아 주겠소? 틀림없이 우리 둘에게 목숨으로 갚으라 할 것이오. 그리되면 형님만 깨끗하지 않소? 목격자조차 형님은 없을 터이니, 곧 우리를 골려 먹는 것 아니오?” 행자가 말했다. “그놈이 너희를 붙잡거든 너희 둘은 그놈과 싸우며 여기로 끌고 오너라. 이곳은 싸움터가 넓으니 내가 여기서 기다리며 그놈을 때리리라.” 사승이 말했다. “옳소, 옳소. 큰 형님 말씀이 이치에 맞소. 우리 가 봅시다.” 그 둘이 그제야 위풍을 믿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행자가 곧 바위 벼랑 아래로 뛰어내려 그 탑 문 아래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 공주가 말했다. “이 중놈, 믿음과 의리라곤 하나도 없구나! 네 사제를 놓아 주면 내 아이를 돌려주겠다 하였거늘, 어찌하여 네 사제는 풀려가고 내 아이는 도로 붙잡아 둔 채 도리어 내 문 앞에 와서 무엇 하려 하느냐?” 행자가 웃음을 띠며 말했다. “공주는 노여워 마시오. 그대가 이곳에 온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그대의 아들을 데리고 외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이오.” 공주가 말했다. “중이여, 버릇없이 굴지 마시오. 내 그 황포 낭군은 다른 무리와는 다르다오. 그대가 내 아이를 놀라게 한다면 그분께서 놀란 가슴을 가라앉혀 주실 것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공주여,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서 무엇을 하면 죄를 짓는 것이오?” 공주가 말했다. “나는 아오.”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여자인데 무엇을 안다는 것이오?” 공주가 말했다. “내 어려서 궁중에 있을 적에 부모님께 훈계를 받았나이다. 옛 책에 이르기를, 다섯 가지 형벌의 갈래가 삼천 가지나 되지만 그 죄는 불효보다 큰 것이 없다 하였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대야말로 바로 불효한 사람이오. 대저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도다. 가여우신 우리 부모님, 나를 낳으시느라 애를 쓰셨도다! 그러므로 효는 온갖 행실의 근원이요 모든 선의 근본이거늘, 어찌하여 몸을 요괴의 곁에 두고 더욱이나 부모를 생각조차 않는 것이오? 불효의 죄를 면할 수 있겠소?” 공주가 이 바른말을 듣고 한참이나 귀가 붉어지고 얼굴이 달아올라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리고 그만 입을 놀려 이렇게 말했다. “장로의 말씀이 지극히 옳나이다. 내 어찌 부모를 생각하지 않으리이까. 다만 이 요괴가 나를 속여 이곳으로 데려온 뒤 법령은 삼엄하고 내 걸음은 어려우며, 길은 멀고 산은 험하여 아무도 소식을 전할 이가 없나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으나 도리어 부모님께서 내가 달아난 줄 의심하실까 두려워 일이 끝내 밝혀지지 않을까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어찌할 수 없이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 왔으니, 참으로 천지간의 큰 죄인이옵니다!” 말을 마치자 눈물이 샘물처럼 솟구쳤다. 행자가 말했다. “공주는 슬퍼하지 마시오. 저팔계가 일러 주기를 그대에게 편지 한 통이 있어 내 스승님의 목숨을 건졌다 하였고, 그 편지에도 부모를 그리는 뜻이 있다 하였소. 이 늙은 손이 온 터이니 틀림없이 그대를 위해 요괴를 잡아 조정으로 데려가 임금님을 뵙게 하고, 다시 좋은 배필을 구해 부모님을 늙도록 모시게 하리다. 그대의 뜻은 어떠하오?” 공주가 말했다. “중이여, 죽을 짓을 하지 마시오. 어제 그대의 두 사제가 그리 호걸이라면서도 내 황포 낭군을 이겨 본 적이 없소. “그대는 그저 힘줄만 많고 뼈는 적은 여윈 귀신 같아 게 한 마리 같기도 하여 뼈가 모두 겉으로 나와 있소. 무슨 재주가 있다고 감히 요마를 잡겠다는 말을 하시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본래 눈이 없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속담에 이르기를, 오줌보는 크나 무게가 없고 저울추는 작으나 천 근을 누른다 하였느니라. 저들의 겉모습은 헛되이 클 뿐 쓸모가 없어 걸으면 바람을 받고 옷을 입으면 헝겊만 축내며 불을 붙이면 속이 비고 문을 이고 가면 허리가 휘며 밥만 축낼 뿐 아무 공이 없느니라. 이 늙은 손은 작기는 작으나 힘줄이 알차니라.” 그 공주가 말했다. “참으로 재주가 있으시오?” 행자가 말했다. “내 재주는 그대가 본 적도 없을 터이니, 능히 요괴를 항복시키고 귀신을 굴복시키느니라.” 공주가 말했다. “그대는 나를 그르치게 하지 마시오.” 행자가 말했다. “결코 그대를 그르치지 않으리라.” 공주가 말했다. “그대가 요괴를 항복시키고 귀신을 굴복시킨다니, 이제 그놈을 어찌 잡겠다는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잠시 피해 있으오. 내 앞에 있으면 그놈이 왔을 때 손을 쓰기가 거북하니, 그대가 그놈과 정이 두터워 차마 그놈을 놓지 못할까 염려되느니라.” 공주가 말했다. “내 어찌 그놈을 차마 놓지 못하리이까. 이곳에 머문 것은 부득이해서였을 뿐이외다!”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그놈과 십삼 년을 부부로 지냈거늘 어찌 정이 없겠느냐. 내가 그놈을 보거든 장난 삼아 겨루지 않으리라. 몽둥이 하나는 곧 몽둥이 하나요 주먹 하나는 곧 주먹 하나로 그놈을 쓰러뜨려야 그대를 모시고 조정에 돌아가 임금님을 뵈올 수 있느니라.” 그 공주는 과연 행자의 말대로 한적한 곳으로 가 몸을 숨겼으니, 그녀의 인연도 이제 다할 때가 되어 대성을 만난 것이었다. 그 원숭이 왕은 공주를 숨겨 두고는 몸을 한 번 흔들어 공주와 꼭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동굴 안으로 되돌아가 오로지 그 요괴만을 기다렸다. 말하자면, 저팔계와 사승이 두 아이를 보상국으로 데리고 가 흰 옥 계단 앞에다 내동댕이쳤다. 가여운 아이들은 고기 떡처럼 뭉개져 붉은 피가 솟구치고 뼈며 살이 산산이 부서졌다. 깜짝 놀란 온 조정의 여러 관원이 달려와 아뢰었다. “큰일 났사옵니다! 큰일 났사옵니다! 하늘에서 사람 두 명이 떨어져 내려왔나이다!” 저팔계가 목청을 돋우어 크게 외쳤다. “저 아이들은 황포 요정의 자식들로, 이 늙은 돼지와 사승 아우가 잡아 온 것이오!” 그 요괴는 아직 은안전에 있었는데, 어젯밤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잠결에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몸을 뒤척이며 머리를 들어 올려 바라보니, 저 구름 끝에서 저팔계와 사승 두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요괴는 속으로 이렇게 헤아렸다. '저팔계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사승은 내가 집에 묶어 두었거늘 저놈이 어떻게 빠져나갔단 말인가? 내 아내가 어찌하여 저놈을 놓아 주었단 말인가? 내 아이들이 어찌하여 저놈들의 손에 들어갔단 말인가? 이는 필시 저팔계가 나를 끌어내어 싸우지 못하도록 이런 계책으로 나를 묶어 두려는 것이다. 내가 이 올가미에 환히 걸려들어 저놈과 맞붙는다면, 아, 그러나 내 몸은 아직 술기운이 도는 터다! 만일 저 돼지의 갈고리에라도 찍힌다면 이 위풍은 꺾이고 저 요령은 들켜 버릴 터이니, 우선 집에 돌아가 내 아들이 내 아들이 맞는지 아닌지부터 확인하고서 다시 저놈과 말을 주고받아도 늦지 않으리라.' 좋은 요괴로다. 그는 임금께 인사도 올리지 않고 산과 숲을 돌아 곧장 동굴로 가서 소식을 캐었다. 이 무렵 조정에서는 이미 그가 요괴임을 알고 있었다. 실은 그가 밤에 궁녀 하나를 잡아먹었는데, 목숨을 건져 달아난 열일곱 명이 새벽 오경에 임금님께 아뢰어 그가 이러저러하였다고 고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인사도 없이 사라졌으므로 더욱 그가 요괴임을 알게 되었다. 그 임금님이 곧 여러 관원에게 가짜 호랑이를 지켜 보라 명하였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그 요괴는 곧장 동굴 어귀로 되돌아왔다. 행자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그를 속일 꾀를 내어 눈을 한번 꿈쩍하더니 눈물이 소낙비처럼 뚝뚝 떨어졌다. 그는 이리 뒹굴고 저리 넘어지며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동굴 안에서 목청이 터져라 통곡하였다. 그 요괴가 어찌 단번에 알아보겠느냐. 앞으로 다가가 그를 껴안으며 말했다. “여보, 무슨 일로 그리 속을 썩이오?” 그 대성이 지어 낸 거짓말과 꾸며 낸 허튼소리를 눈물이 글썽한 채 아뢰었다. “낭군이여! 늘 하는 말에 남자는 아내가 없으면 재물에 주인이 없고, 여자는 지아비가 없으면 몸이 빈 것이라 하였소! 당신께서 어제 조정에 들어가 친척이라 하시고는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으셨소? 오늘 아침 저팔계가 사승을 빼앗아 가고는 두 아이마저 빼앗아 갔는데, 내가 애원하여도 끝내 놓아 주지 않았소. 저놈이 말하기를 조정으로 데려가 외할아버지를 뵙게 하겠다 하였소. 오래도록 아이들이 보이지 않으니 이제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고, 당신마저도 집에 오시지 않으니 내 어찌 차마 견디겠소? “그러므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소리 내어 울었사옵니다.” 그 요괴는 이 말을 듣고 가슴속에서 큰 노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 “정말로 내 아들이냐?”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오. 저팔계에게 빼앗겼사옵니다.” 그 요마는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며 입을 열었다. “망했다! 망했다! 내 아이가 저놈들에게 던져져 죽었구나! 이미 살려 낼 수 없도다! 이제 그 중놈을 잡아다 내 아이의 목숨을 갚아 원수를 갚을 뿐이로구나! 여보, 그대는 우선 울음을 그치고 지금 속이 어떠한지 말해 보오. 어서 한번 고쳐 보시오.” 행자가 말했다. “별일 아니외다. 다만 아이들이 아까워 울다 보니 가슴이 좀 아프옵니다.” 요마가 말했다. “염려 마시오. 그대가 일어나시오. 내게 보배 하나가 있으니 그대의 아픈 곳에 한번 문지르기만 하면 아프지 않을 것이오. 다만 조심하시오. 엄지손가락으로 튕기지는 마오. 만일 엄지손가락으로 튕긴다면 내 본모습이 드러나 버린단 말이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은근히 웃었다. '이 미련한 요괴가 도리어 순박하여 형벌을 쓰지도 않았는데 제 입으로 자백하는구나. 저놈이 보배를 꺼내거든 내 한번 튕겨 보아 어떤 요괴인지 알아보리라.' 그 요괴는 행자의 손을 이끌고 곧장 동굴 깊숙하고 은밀한 곳으로 갔다. 그리고 입에서 보배 하나를 토해 내었는데 달걀만 한 크기로, 바로 영롱한 사리자 내단이었다. 행자가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생각했다. '좋은 물건이로구나!' “이 물건은 얼마나 많은 좌선 공부를 겪고 몇 해의 시련을 견디며 몇 번이나 암수를 배합하여 이 한 알의 내단 사리를 이루어 냈는지 알 수 없구나. 오늘 크게 인연이 닿아 이 늙은 손을 만났도다.” 그 원숭이는 그것을 손에 쥐고 보니 아픈 곳이란 애초에 없었건만 일부러 한 번 쓸어 보고는 손가락으로 툭 튕겨 냈다. 그 요괴는 놀라며 덥석 빼앗으려 들었다. 생각해 보라, 그 원숭이가 얼마나 날쌘지 그 보배를 단숨에 들이켜 배 속으로 삼켜 버렸다. 그 요마는 주먹을 움켜쥐고 내리치려 하였으나 행자가 한 손으로 막아 내고는 얼굴을 한번 쓸어 본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요괴야! 버릇없이 굴지 마라! 우선 내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아보아라!” 그 요괴가 이를 보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아니! 여보, 그대가 어찌하여 이런 낯짝을 내미시오?” 행자가 꾸짖었다. “이 미련한 요괴 같으니라고! 누가 네 아내냐? 네 조상조차 알아보지 못하느냐?” 그 요괴는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어 말했다. “내가 그대를 조금은 아는 듯하오.” 행자가 말했다. “내 우선 너를 때리지는 않으마, 다시 잘 알아보아라.” 그 요괴가 말했다. “낯이 익기는 하나 당장은 성명이 떠오르지 않는구려. 그대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서 왔소? 내 아내를 어디에 갈무리해 두고 내 집에 와서 내 보배를 속여 빼앗으려 하다니, 참으로 무례하고도 밉소!” 행자가 말했다. “너는 정말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나는 당나라 스님의 큰 제자로 손오공 행자라 하느니라. 내가 바로 너의 오백 년 전 옛 조상이니라!” 그 요괴가 말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소! 그런 말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내가 당나라 스님을 잡았을 때 그에게는 제자가 둘뿐이라 저팔계와 사승이라 하였거늘, 어디서 손가라는 자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단 말이오? 그대는 어디서 온 괴물이기에 이리로 와서 나를 속이려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나는 그들 둘과 함께 오지 않았다. 우리 스승님께서 이 늙은 손이 요괴를 때려 잡기를 일삼아 죽이고 상하게 한 일이 너무 많다 하여, 자비롭고 착한 분이시라 나를 쫓아 돌려보내셨으므로 그들과 한길로 함께 걷지 않았느니라. 네가 내 조상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구나.” 그 요괴가 말했다. “그대는 사내답지 못하구려! 이미 스승에게 쫓겨난 몸이면서 무슨 낯으로 다시 사람을 만나러 왔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 미련한 요괴야, 하루를 스승으로 모시면 평생을 아비로 섬기는 법이고, 부자지간에는 하룻밤을 넘기는 원수가 없는 것이니라! 네가 내 스승을 해쳤으니 내 어찌 구하러 오지 않겠느냐? 스승을 해친 것은 그러려니 하겠거니와, 앞에서나 뒤에서나 나를 욕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요괴가 말했다. “내 어느 때 그대를 욕했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저팔계가 한 말이다.” 그 요괴가 말했다. “그대는 저팔계의 말을 믿지 마시오. 그 저팔계는 주둥이가 뾰족하여 아낙네의 혀놀림을 흉내 내는 재주가 있소. 어찌 그놈의 말을 그대로 들으시오?” 행자가 말했다.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자. 다만 이 늙은 손이 오늘 네 집에 왔으니 너는 먼 길에서 온 손님을 너무도 박대하는구나. 비록 술과 안주로 대접하지는 못하더라도 머리 하나쯤이야 없는 것이 아니니, 어서 목을 내밀어라. 이 늙은 손이 몽둥이로 한 방 때려 차나 대접하리라!” 그 요괴는 때리겠다는 말을 듣고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손행자여, 그대는 계산이 잘못되었소! 때리겠다면 마땅히 내 뒤를 따라 이리로 들어오지 말았어야 하거늘. 내게는 크고 작은 요괴 무리가 백 명은 넘게 남아 있으니, 그대가 온몸이 손이라 한들 내 문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헛소리 마라! 백이나 열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몇천, 몇만이라 한들 낱낱이 밝혀 내어 때리면 그만이니라. 내 몽둥이는 헛되이 휘두르는 법이 없고, 네놈의 뿌리를 끊고 자취를 없애 주리라!” 그 요괴는 이 말을 듣고 급히 호령을 내려 산 앞산 뒤의 요괴 무리와 동굴 안팎의 여러 괴물을 모두 불러 모아 저마다 무기를 들고 서너 겹의 문을 빈틈없이 막아서며 통과시키지 않았다. 행자가 이를 보고 온 마음이 즐거워 두 손으로 몽둥이를 비틀며 큰 소리로 외쳤다. “변하여라!” 그러자 그는 세 머리 여섯 팔이 되었고, 금고봉을 한 번 흔들어 금고봉 세 자루로 만들었다. 보라, 그가 여섯 손으로 몽둥이 세 자루를 휘두르며 내리쳐 가니, 꼭 호랑이가 양 떼 속에 뛰어들고 매가 닭장에 내려앉은 듯하였다. 가여운 저 작은 요괴들은 스치면 머리가 가루처럼 부서지고 닿으면 피가 물처럼 흘렀다! 그는 오가며 가로 세로로 휘저어 마치 사람 없는 곳을 지나가듯 하였다. 이제 늙은 요괴 하나만 남게 되자 그가 문 밖으로 뛰쳐나와 꾸짖었다. “이 건방진 원숭이야, 참으로 무례하구나! 어찌 남의 집 문전에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 행자가 급히 고개를 돌려 손짓하며 불렀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너를 때려 눕혀야 공이 서느니라!” 그 괴물은 보검을 치켜들고 머리를 향해 내리쳤고, 훌륭한 행자는 쇠몽둥이를 빼어 들어 정면으로 맞받았다. 이 한바탕 싸움은 저 산꼭대기에서 반쯤 구름에 싸이고 반쯤 안개에 젖은 채 벌어졌다. 대성의 신통이 크고 요마의 재주가 높았도다. 이쪽은 금빛 몽둥이를 비스듬히 휘두르고 저쪽은 강철 칼을 비껴 치켜들었도다. 아득히 칼이 솟구치니 밝은 노을이 번쩍이고, 가볍게 몽둥이가 받쳐 내니 채운 날리는구나. 오가며 머리를 지키느라 여러 차례 뒤척이고, 거듭 온몸을 몇 겹이나 돌렸도다. 하나는 바람 따라 낯빛을 바꾸고, 다른 하나는 선 채로 몸을 흔드는구나. 저쪽은 불의 눈을 크게 뜨고 원숭이 팔을 뻗고, 이쪽은 금빛 눈동자를 번쩍이며 호랑이 허리를 굽히는구나. 네가 오고 내가 가며 칼끝이 맞부딪치니, 칼과 몽둥이가 서로 양보하지 않는구나. 원숭이 왕의 쇠몽둥이는 삼략을 따르고, 괴물의 강철 칼은 육도를 좇는구나. 하나는 재주를 부리는 데 익어 마왕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법력을 널리 펴 당나라 스님을 지키는구나. 사나운 원숭이 왕은 더욱 사나워지고, 영웅다운 괴물은 더욱 영웅다워지는구나. 죽고 삶을 돌보지 않고 허공에서 치고받으니, 모두 당나라 스님이 부처께 예배하러 가는 길이로다. 그 둘이 쉰에서 예순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행자가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며 생각했다. '이 맹랑한 요괴의 그 칼이 이 늙은 손의 이 몽둥이를 능히 버텨 내는구나. 내 한번 빈틈을 보이며 그놈이 알아차리는지 보리라.' 훌륭한 원숭이 왕이로다. 두 손으로 몽둥이를 치켜들고 높은 곳에서 말을 살피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 요괴는 계략인 줄 모르고 틈이 보이자 보검을 휘두르며 곧장 아래쪽 세 갈래를 향해 달려들어 내리쳤다. 그러나 행자가 급히 크고 평평한 자세로 돌아서며 그 칼을 걷어 낸 뒤, 다시 나뭇잎 아래 복숭아를 훔치는 자세로 요정의 정수리를 향해 몽둥이를 내리쳤다. 그랬더니 그놈은 그림자도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급히 몽둥이를 거두어 살펴보니 요괴가 보이지 않았다. 행자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얘야, 이놈이 견디지 못하고 맞자마자 사라져 버렸구나. 정말로 때려 죽였다면 아무리 그렇다 한들 고름과 피가 조금은 있어야 할 터인데, 어찌 터럭만큼의 자취도 없단 말이냐? 달아난 게로구나.” 급히 몸을 날려 구름 속으로 올라가 살펴보아도 사방이 조용할 뿐 아무 동정도 없었다. “이 늙은 손의 두 눈은 어디라 할 것 없이 한번 훑으면 다 보이거늘, 어찌 이리도 날래게 달아났단 말이냐? 알았다. 그 요괴가 나를 조금 안다고 하였으니, 필시 범속한 요괴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정일 것이로다.” 그 대성은 그만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쇠몽둥이를 움켜쥔 채 한 차례 근두운으로 곧장 남천문 위로 솟아올랐다. 깜짝 놀란 방·유·구·필과 장·도·등·신 등의 무리가 양쪽에서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춘 채 감히 막아서지 못하여, 그가 천문을 쳐부수듯 들어가 통명전 아래까지 이르게 하였다. 일찍이 장·갈·허·구 네 천사가 나서서 물었다. “대성은 어디서 오셨소?” 행자가 말했다. “당나라 스님을 모시고 보상국에 이르렀더니 요마 하나가 나라의 딸을 속이고 우리 스승을 해치기에, 이 늙은 손이 그놈과 겨루었노라. 한창 싸우는데 그 요괴가 사라졌느니라. 생각하건대 그 요괴는 범속한 요괴가 아니라 하늘의 정일 것이니, 특별히 어느 곳에서 무슨 요신이 달아났는지 조사하러 왔노라.” 천사가 이 말을 듣고 곧 영소전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명을 받아 조사해 보니 구요성관과 십이원진,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두, 하한군진, 오악사독, 온 하늘의 신성들이 모두 하늘에 있었고, 감히 자리를 떠난 자는 하나도 없었다. 또 저 두우궁 밖의 이십팔수를 살펴보니, 거꾸로 헤아려 보아도 스물일곱 자리뿐이라 그중 유독 규성이 빠져 있었다. 천사가 돌아가 아뢰었다. “규목랑이 하계로 내려갔나이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얼마나 오래도록 하늘에 없었느냐?” 천사가 말했다. “네 차례 점호에 빠졌사옵니다. 사흘마다 한 번 점호를 하니 이제 열사흘이 되었나이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하늘의 열사흘은 하계에서 이미 십삼 년이니라.” 곧 그 본부에 명하여 그놈을 상계로 거두어 오라 하였다. 그 스물일곱 별자리의 관리들이 명을 받들어 천문을 나서서 저마다 주문을 외우니 규성이 놀라 움직였다. 그대는 그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아느냐? 그는 본래 손대성이 천궁을 어지럽힐 때 얻어맞고 겁을 집어먹은 신장이라, 저 산골짜기로 몸을 피해 재앙을 모면하고 있었는데, 물기운이 요괴의 구름을 감추어 주었으므로 아무도 그를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 본부 별자리의 관리들이 주문을 외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감히 머리를 내밀고 무리를 따라 상계로 올라갔다. 그러나 대성이 천문을 막아서며 때리려 하였는데, 다행히 여러 별이 만류하여 그를 옥황상제 앞으로 압송해 갔다. 그 요괴는 허리에서 금패를 꺼내어 전각 아래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죄를 받았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규목랑아, 상계에는 끝없는 빼어난 경치가 있거늘 그것을 누리지 않고 사사로이 한 지방으로 내려갔으니 어찌된 일이냐?” 규수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만수무강하소서. 신의 사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저 보상국 임금님의 공주는 범인이 아니옵니다. 그 아이는 본래 피향전에서 향을 모시던 옥녀인데, 신과 사통하고자 하였사옵니다. 신이 천궁의 빼어난 경치를 더럽힐까 두려워하였더니, 그 아이가 속세를 그리워하며 먼저 하계로 내려가 황궁 안뜰에 몸을 의탁하였나이다. 이에 신이 앞서의 기약을 저버리지 못하여 요마로 변해 명산을 차지하고 그녀를 동굴로 납치하여 십삼 년을 부부로 지냈나이다. 한 모금 마시고 한 알 쪼는 것조차 모두 앞서 정해진 것이라, 이제 손대성이 이곳에 이르러 공을 이루었나이다.” 옥황상제가 이 말을 듣고 금패를 거두어들이며 그를 도솔궁으로 좌천시켜 태상노군을 모시고 불을 지피게 하였으되, 녹은 그대로 주고 부역을 명하여 공이 있으면 복직시키고 공이 없으면 다시 죄를 더하라 하였다. 행자는 옥황상제가 이렇게 처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흐뭇하여 위를 향해 큰 절을 올리고는 여러 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 폐를 끼쳤소.” 천사가 웃으며 말했다. “저 원숭이는 여전히 이다지도 촌스럽구나. 제가 나서서 요괴 신을 거두어 주었건만 오히려 하늘의 은혜에 사례는 않고 그저 인사나 하고 물러가는구나.” 옥황상제가 말했다. “그에게 탈이 없고 하늘이 태평하니 그만하면 다행이니라.” 그 대성이 상서로운 빛을 내려앉혀 곧장 완자산 파월동으로 되돌아가 공주를 찾아내어, 속세를 그리워하며 하계로 내려갔던 사연과 요괴를 거두어 간 말을 바야흐로 차근히 아뢰고 있는데, 공중에서 저팔계와 사승이 목청을 높여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형, 요괴가 있거든 우리가 때릴 수 있게 몇 마리 남겨 두시오!” 행자가 말했다. “요괴는 이미 모조리 없애 버렸느니라.” 사승이 말했다. “요괴를 모조리 없앴다면 아무 거리낄 것도 없으니 공주를 모시고 조정으로 들어갑시다. 눈을 뜨지 마시오. 형제들이 땅을 줄이는 법을 쓰리다.” 그 공주는 귓속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성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세 사람이 공주를 금란전 위로 모시고 올라가니, 공주는 아버지 임금님과 어머니 왕비께 절을 올리고 자매들과 상봉하였으며 여러 관원이 모두 와서 인사를 드렸다. 그 공주가 이윽고 아뢰었다. “손장로의 끝없는 법력 덕분에 황포괴를 항복시키고 이 몸이 나라로 돌아왔나이다.” 그 임금이 물었다. “황포가 무슨 요괴냐?” 행자가 말했다. “폐하의 부마는 상계의 규성이옵고, 폐하의 따님은 향을 모시던 옥녀인데 속세를 그리워하여 인간 세상에 내려오셨으니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옵니다. 모두 전생의 인연으로 이러한 혼인의 인연이 있게 된 것이외다. 그 요괴는 이 늙은 손이 천궁에 올라가 옥황상제께 아뢰었더니, 옥황상제께서 살펴보시고 네 차례 점호에 빠져 하계에서 열사흘을 지냈다 하시니 곧 십삼 년이옵니다. 대저 하늘의 하루가 하계의 일 년이기 때문이외다. 이어 그 본부의 별자리를 시켜 상계로 거두어 도솔궁으로 좌천시켜 공을 세우게 하였사옵고, 이 늙은 손이 폐하의 따님을 구해 온 것이로소이다.” 그 임금이 행자의 은덕에 사례하고는 너희 스승을 보러 가거라 하고 이르렀다. 그들 세 사람이 곧장 보전에서 내려와 여러 관원과 함께 조정의 방으로 가니 철제 우리를 끌어내어 가짜 호랑이의 쇠사슬을 풀어 주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호랑이었으나 오직 행자가 보기에는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그 스승님은 요술에 눌려 걸을 수 없었고, 마음은 밝으나 다만 입과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은 훌륭한 중이셨거늘 어찌하여 이런 흉측한 꼴이 되셨나이까? 스승님께서 내가 흉악하게 군다 하여 나를 쫓아 보내시고, 한마음으로 선을 향하겠다 하시더니 어찌 하루아침에 이런 낯짝이 되셨나이까?”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스승님을 좀 살려 주시구려. 그저 단점만 자꾸 들추어 내시지 마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너는 늘 부추기기만 하였으니 그의 총애하는 훌륭한 제자로다. 네가 스승님을 구하지 못하면서 또 어찌 이 늙은 손을 찾았느냐? 본디 너와 약속하기를, 요괴를 항복시키고 나를 욕한 원수를 갚으면 곧 돌아가겠다 하지 않았더냐?” 사승이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으며 말했다. “형님, 옛 사람이 이르기를 중의 낯을 보려 말고 부처의 낯을 보라 하였나이다. 형님께서 이미 여기까지 오셨으니 만 번이고 청하오니 그를 한번 구해 주시옵소서. 만일 저희가 구할 수 있었다면 감히 이리 멀리까지 와서 청을 드리지는 못하였을 것이옵니다.” 행자가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내 어찌 구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어서 물을 가져오너라.” 저팔계가 별처럼 날아가 역관으로 가서 행장과 말을 가져오며 자금발우를 꺼내어 물을 반 그릇 담아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물을 받아 들고 진언을 외운 뒤 호랑이의 정수리를 향해 입에 문 물을 확 뿜어 대니 요술이 물러가고 호랑이의 기운이 풀렸다. 장로가 본모습을 되찾고 마음을 가라앉혀 눈을 떠 보니 그제야 행자임을 알아보고는 덥석 붙잡으며 말했다. “오공아! 너는 어디서 온 것이냐?” 사승이 곁에 모시고 서서 행자를 청해 요괴를 항복시키고 공주를 구하며 호랑이의 기운을 풀고 조정으로 돌아간 일까지 낱낱이 아뢰었다. 삼장법사는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 못하며 말했다. “어진 제자야, 네 덕분이로다! 네 덕분이로다! 이번 길에 일찍 서방에 이르러 곧장 동쪽 땅으로 돌아가 당나라 임금님께 아뢰면 너의 공이 제일이로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말씀 마시오, 마시어요! 다만 그 주문만 외우지 않으신다면 자애로운 후의만으로도 넉넉하외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다시 그 사부에게 사례하며 채식 연회를 차리고 동쪽 누각을 크게 열었다. 그 사도가 황은을 입고 임금께 하직하여 서쪽으로 떠나니, 임금이 또 여러 관원을 거느리고 멀리까지 배웅하였다. 그 참모습은 실로 이러하였다. 임금은 보전으로 돌아가 강산을 굳게 다지고, 중은 뇌음사로 가서 부처님을 뵙는구나. 결국 이 뒤에 또 무슨 일이 있으며, 어느 때에 서천에 이를지는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2회 평정산공조전신(平頂山功曹傳信) · 연화동목모봉재(蓮花洞木母逢災) 말하자면, 삼장법사가 손행자를 도로 얻은 뒤에 사부와 제자들은 한마음 한몸이 되어 함께 서천을 향해 나아갔다. 보상국에서 공주를 구해 내고 임금과 신하들이 성 서쪽까지 배웅해 나온 이래로, 길을 따라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밤이면 묵고 새벽이면 떠난 사연은 다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마침 삼춘의 좋은 철을 만났으니, 그 무렵의 경치는 이러하였다. 산들바람이 불어 버들의 푸름이 실처럼 가늘게 늘어지고, 아름다운 경치는 시로 읊기에 가장 알맞구나. 철은 새들의 지저귐을 재촉하고 따스한 기운이 꽃을 피워, 온 땅에 꽃향기 그윽하다. 해당화 핀 뜰에 쌍쌍이 제비가 날아드니, 참으로 봄을 감상할 좋은 때로다. 붉은 먼지 이는 자줏빛 길에 비단옷 차림이 오가고 거문고와 피리 소리 울리며, 풀을 꺾어 겨루고 술잔을 돌리는구나. 사부와 제자들이 경치를 즐기며 가고 있는데, 문득 한 줄기 산맥이 길을 막아섰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들은 정신을 차려라. 앞에 높은 산이 나타났으니, 범이나 이리가 길을 막을까 두렵도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출가한 사람이 속가의 말씀을 하지 마옵소서. 스승님은 그 오소화상의 《심경》에 이르기를,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어야 비로소 두려움이 없으며, 뒤바뀐 생각과 헛된 꿈을 멀리 여읜다 한 말씀을 기억하시지 않나이까. 다만 마음 위에 낀 때를 쓸어 버리고 귓가에 묻은 먼지를 씻어 낼 뿐이옵니다. 고생 중의 고생을 겪지 않고서야 어찌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되겠나이까. 스승님은 근심을 일으키지 마옵소서. 이 늙은 원숭이가 곁에 있는 한,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탈 없을 터이니, 범이나 이리가 무에 대수롭사옵니까!” 장로가 말고삐를 당겨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 그해 황제의 분부를 받들어 장안을 떠날 적에는, 오직 서쪽으로 와 부처님의 존안을 뵙고자 하였느니라. 사리국에서는 금빛 코끼리가 채색을 띠고, 부도탑 안에서는 옥 같은 터럭이 얼룩지게 빛나며, 천하에 이름 없는 물을 다 찾아 헤매고, 인간 세상의 닿기 어려운 산을 두루 겪었느니라.” “아득히 겹겹이 이는 물안개와 파도여, 언제나 이 몸이 한가로울 수 있으리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몸이 한가롭고자 하시니 무에 어려운 일이옵니까. 공을 이룬 뒤에는 온갖 인연이 모두 그치고 모든 법이 다 텅 비어, 그때는 저절로 그리되니, 그것이 곧 몸이 한가로운 것이 아니옵니까?” 장로는 그 말을 듣고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고삐를 늦추어 은빛 준마를 재촉하고, 고삐를 거두어 옥 같은 용마를 몰았다. 사부와 제자들이 산 위로 올라서니 몹시 험준하였다. 참으로 우뚝 솟은 좋은 산이라,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우뚝우뚝 솟은 험한 고개요, 날카롭게 깎인 뾰족한 봉우리로다. 굽이굽이 깊은 계곡 아래, 외롭고 준엄한 가파른 벼랑 언저리라. 굽이굽이 깊은 계곡 아래서는 콸콸거리며 물장구치던 구렁이가 몸을 뒤치는 소리만 들리고, 외롭고 준엄한 벼랑 언저리에서는 깎아지른 숲에서 나온 호랑이가 꼬리를 휘두르는 모습만 보이는구나. 위를 올려다보면 산마루가 불쑥 솟아 푸른 하늘을 꿰뚫고, 눈을 돌려 굽어보면 골짜기 아래가 깊고 침침하여 푸른 하늘 가에 닿았구나. 높은 곳으로 오를 적에는 사다리 같고 걸상 같으며, 낮은 곳으로 내려갈 적에는 도랑 같고 구덩이 같도다. 참으로 괴상한 봉우리며 고개요, 과연 줄줄이 뾰족한 깎아지른 벼랑이라. 봉우리 고개 위에서는 약 캐는 이가 갈 길을 헤아리며 걷기를 두려워하고, 깎아지른 벼랑 앞에서는 땔감 하는 이가 한 걸음도 떼기 어렵도다. 멧양과 들말이 어지러이 북처럼 뛰어다니고, 영리한 토끼와 산소가 진을 친 듯 흩어져 있구나. 산이 높아 해를 가리고 별자리를 가리며, 때로 요물 짐승과 푸른 이리를 만나느니라. 풀 우거진 길이 아득하여 말을 몰기 어렵거늘, 어찌해야 뇌음사에 이르러 부처님을 뵙겠는가. 장로가 말을 세우고 산을 바라보니, 참으로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저 푸른 풀 언덕 위에 나무꾼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차림새가 어떠하였는가 하면, 머리에는 낡은 남빛 모직 삿갓을 쓰고, 몸에는 털 달린 검은 승복을 걸쳰다. 낡은 남빛 모직 삿갓은 연기를 가리고 햇살을 덮으니 참으로 진기하고, 털 달린 검은 승복은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게 하니 참으로 보기 드물구나. 손에 든 강철 도끼는 날카롭게 갈아 번쩍이고, 마른 땔감을 베어 단단히 묶어 두었구나. 지게 끝에 실린 봄빛은 그윽하여 사계절 내내 화기애애하고, 몸 밖의 한가로운 정취는 늘 세 별처럼 담담하구나. 늙도록 다만 분수에 맞게 살아가니, 무슨 영광과 치욕이 잠시라도 이 산과 관계하리오. 그 나무꾼이 언덕 앞에서 썩은 땔감을 베고 있다가, 홀연히 장로가 동쪽에서 오는 것을 만났다. 나뭇가지를 놓고 도끼를 거둔 채 숲 밖으로 나와, 걸음을 서둘러 몸을 돌바위 위로 올려놓고는 장로를 향해 목청을 돋우어 크게 외쳤다. “서쪽으로 가시는 장로시여! 잠시 걸음을 멈추옵소서. 제가 아뢸 말씀이 있나이다. 이 산에는 독한 마귀와 사나운 요괴 한 무리가 있어, 동에서 서로 오가는 사람만 골라 잡아먹사옵니다.” 장로가 그 말을 듣고 혼백이 날아가 흩어지는 듯하여, 부들부들 떨며 조각 안장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급히 고개를 돌려 제자들을 다급히 불렀다. “너희는 저 나무꾼이 이 산에 독한 마귀와 사나운 요괴가 있다고 알리는 말을 들었느냐. 누가 감히 가서 자세히 한번 물어보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마음을 놓으옵소서. 이 늙은 원숭이가 가서 그 사람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어오겠나이다.”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걸음을 크게 떼어 곧장 산으로 올라와 나무꾼을 향해 “형님” 하고 부르며 인사를 올렸다. 나무꾼이 답례하며 말했다. “장로시여, 무슨 까닭으로 이곳에 오셨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형님께 숨길 것 없이 아뢰옵니다. 우리는 동토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보내진 사람들이옵니다. 저 말 위에 계신 분이 바로 제 스승님이신데, 겁이 좀 많으십니다. 마침 형님의 가르침을 받아 무슨 독한 마귀와 사나운 요괴가 있다 하시기에, 제가 와서 한마디 여쭙는 것이옵니다. 그 마귀는 몇 해 묵은 마귀며, 그 요괴는 몇 해 묵은 요괴란 말이오? 노련한 장인이오, 아니면 아직 어린 놈이오? 번거로우시겠으나 형님께서 솔직히 말씀해 주시면, 내가 산신과 토지신에게 부쳐 그놈을 이곳에서 떠나보내도록 하겠소.” 나무꾼이 그 말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원래 미친 중이로구려.” 행자가 말했다. “나는 미치지 않았소. 이건 참말이오.” 나무꾼이 말했다. “참말이라 하시니, 어찌 감히 그놈을 내보내겠다는 말씀을 하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그놈의 위풍만 돋워 주면서, 함부로 지껄이며 길을 막고 소식을 전하니, 혹 그놈과 친척이 아니시오? 친척이 아니라면 반드시 이웃일 것이요, 이웃이 아니라면 반드시 친구일 것이오.” 나무꾼이 웃으며 말했다. “이 미친 괴상한 중아,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구나. 나는 도리어 좋은 뜻으로 특별히 너희에게 알려 주어, 길을 갈 때 아침저녁으로 방비하라 한 것인데, 너희가 도리어 내 탓으로 돌리는구나. 내가 요마의 소재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접어 두겠다만, 안다 한들 네가 감히 그놈을 어찌 내보내겠으며, 어디로 압송하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하늘의 마귀라면 옥황상제께 압송하고, 땅의 마귀라면 토부에 압송하며, 서쪽의 것은 부처께 돌리고 동쪽의 것은 성인께 돌리느니라. 북쪽의 것은 진무께 압송하고 남쪽의 것은 화덕께 압송하며, 교룡 정이라면 바다의 주인께, 귀신이라면 염라대왕께 압송하나니, 저마다 맡은 곳과 방향이 있느니라. 이 늙은 원숭이는 가는 곳마다 아는 이가 많으니, 문서 한 장을 띄워 그놈을 밤새워 압송해 달아나게 하느니라.” 그 나무꾼이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껄껄거리며 비웃어 말했다. “이 미친 괴상한 중아, 아마 방외를 떠돌며 부적을 쓰고 물에 주문을 외는 법술을 배웠을 터인데, 그런 것으로는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 귀신을 묶을 수 있을 뿐, 이처럼 사나운 독한 요괴는 아직 만나 보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행자가 말했다. “무엇을 보니 그토록 사납고 독하다 하시옵니까?” 나무꾼이 말했다. “이 산은 지나가는 길이 육백 리쯤 되는데, 이름을 평정산이라 하오. 산속에 굴 하나가 있어 이름을 연화동이라 하느니라. 굴 속에 요괴 두목이 둘 있는데, 그놈들이 그림을 그리고 형상을 그려 놓고 중을 잡으려 하며, 이름을 적고 성을 찾아다니며 당승을 먹으려 한단다. 너희가 다른 데서 온 것이라면 그나마 낫거니와, 당 자 하나만 건드려도 갈 생각을 아주 접어야 하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바로 당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오.” 나무꾼이 말했다. “그놈들이 바로 너희를 먹으려 하는 것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좋은 일이로구나! 좋은 일이로구나! 다만 그놈들이 어떻게 먹는지는 모르겠구려.” 나무꾼이 말했다. “그놈들이 어떻게 먹기를 바라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머리부터 먹는다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거니와, 발부터 먹는다면 곤란하오.” 나무꾼이 말했다. “머리부터 먹으면 어찌된단 말이오? 발부터 먹으면 어찌된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형님은 아직 그런 일을 겪어 보지 못하였구려. 머리부터 먹는다면 그놈이 한 입에 머리를 물어뜯어 나는 벌써 죽은 뒤니, 그 뒤에 어떻게 지지고 볶고 삶고 끓이든 나는 아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발부터 먹는다면 그놈이 발목을 갉아먹고 장딴지를 씹어 먹어 허리뼈에 이르기까지 나는 채 죽지 못하고 있을 터이니, 이것이 어찌 조각조각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겠소? 이 때문에 곤란한 것이오.” 나무꾼이 말했다. “중이여, 그놈들에게 그렇게 많은 공력이 있겠소? 그저 너희를 붙잡아 우리에 묶어 통째로 쪄 먹을 뿐이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더 좋소! 더 좋소! 아프지는 않을 터이니 다만 답답한 기분만 조금 겪을 뿐이오.” 나무꾼이 말했다. “중이여, 말장난하지 마시오. 그 요괴는 몸에 다섯 가지 보물을 지니고 있어 신통이 매우 크고 넓으니라. 하늘을 받치는 옥 기둥이나 바다를 가로지르는 금대들보라 하더라도, 당나라 중을 모시고 지나가려면 정신을 몇 번쯤은 잃어야 하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몇 번이나 혼절한단 말이오?” 나무꾼이 말했다. “서너 번쯤은 혼절해야 하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대수롭지 않소. 대수롭지 않소. 우리는 한 해에 늘 칠팔백 번씩 혼절하니, 이 서너 번쯤이야 혼절하기 쉽고, 혼절 한번 하고 나면 그만이오.” 과연 좋은 대성이라,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오직 한마음으로 당승을 지키려 하였다. 나무꾼을 뿌리치고 걸음을 돌려 곧장 산비탈 말 머리 앞으로 가서 말했다. “스승님, 별일 없사옵니다. 요괴 몇 놈이 있기는 하오나, 이곳 사람들이 겁이 많아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는 것뿐이옵니다. 이 몸만 있사옵니다. 그놈들이 무에 대수롭사옵니까? 가십시다! 가십시다!” 장로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놓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참 가는데, 어느새 저 나무꾼이 보이지 않았다. 장로가 말했다. “소식을 전하던 저 나무꾼은 어찌하여 보이지 않느냐?” 팔계가 말했다. “우리가 팔자가 사나워 대낮 귀신을 만났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숲 속으로 들어가 땔감을 찾으러 갔는지도 모르오. 제가 가서 보고 오겠나이다.” 과연 좋은 대성이라, 화안금정을 부릅뜨고 산이며 고개를 넘어 두루 살펴보았으나, 자취조차 없었다. 홀연히 고개를 들어 구름 속을 보니, 바로 일치공조였다. 그는 곧 구름을 타고 뒤쫓아가 털 달린 귀신을 몇 마디 꾸짖었다. “너는 할 말이 있거든 어찌하여 와서 곧장 말하지 않고, 굳이 그렇게 몸을 바꾸어 이 늙은 원숭이를 속이느냐?” 그 공조가 놀라 예를 올리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소식을 늦게 전하였나이다. 용서하옵소서, 용서하옵소서. 그 요괴는 과연 신통이 광대하고 변화가 다단하옵니다. 대성께서 재주를 부리시고 신기한 꾀를 움직이시어 스승님을 삼가 지키옵소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시면 서천길은 아예 갈 생각을 마옵소서.”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공조를 꾸짖어 물러가게 한 뒤 마음속 깊이 새기고, 구름머리를 누르고 곧장 산 위로 내려왔다. 보니 장로와 팔계와 사승이 서로 모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공조의 말을 스승님께 사실대로 고하면, 스승님은 일을 감당하지 못하시고 틀림없이 우실 터이다.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머리를 처박은 채 모시고 간다면, 속담에 이르기를 갈대밭에 처음 들어서면 깊고 옅음을 알지 못한다 하였거늘, 만일 요마에게 붙잡혀 가기라도 한다면 도로 이 늙은 원숭이가 애를 써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팔계를 좀 거들어 보자. 먼저 그놈을 내세워 저 요괴와 한바탕 붙어 보게 하리라. 만일 그놈을 이겨 낸다면 그놈의 공로로 쳐 주고, 만일 재주가 없어 요괴에게 잡혀 간다면 이 늙은 원숭이가 가서 구해 내도 늦지 않으니, 내 재주를 드러내고 이름을 날리기에도 좋지 않은가.’ 스스로 이렇게 헤아리고 나서 마음에 물어 말했다. ‘다만 팔계가 게으름을 피우며 기꺼이 나서려 하지 않을까 두렵고, 스승님은 또한 약점을 감싸 주시니, 이 늙은 원숭이가 그놈을 좀 옭아매야겠구나.’ 과연 좋은 대성이라, 보라, 그가 거짓 꾀를 부려 눈을 한번 비비더니 눈물을 조금 짜내고는 스승님을 마주하여 앞으로 곧장 걸어갔다. 팔계가 이를 보고 황급히 외쳤다. “사승아, 짐을 내려놓고 행장을 꺼내라. 우리 둘이 나누어 가지자!” 사승이 말했다. “둘째 형님, 나누어 어찌하시렵니까?” 팔계가 말했다. “나누어 가지자고! 너는 유사하로 돌아가 도로 요괴가 되고, 늙은 돼지는 고로장으로 내려가 아내나 기다리자. 흰 말을 팔아 관 하나를 사서 스승님 장사를 치러 드리고, 우리 모두 흩어져 제각기 헤어지는 게 낫지, 그래도 서천으로 가겠느냐?” 장로가 말 위에서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한창 길을 가는데 어찌 또 헛된 소리를 하느냐?” 팔계가 말했다. “네 자식이나 헛소리를 하지! 손행자가 저기서 울면서 오는 것이 보이지 않으시옵니까? 그 사람은 하늘을 뚫고 땅을 파며, 도끼에 찍히고 불에 타고 기름 가마에 들어가도 두려워하지 않는 호걸이온데, 이제 근심 투구를 쓰고 눈물 그렁그렁하여 울면서 오니, 틀림없이 저 산이 험준하고 요괴가 흉악하기 때문이옵니다. 우리처럼 연약한 사람들이야 어찌 갈 수 있사옵니까?” 장로가 말했다. “너는 우선 헛소리를 그치고, 내가 그에게 한마디 물어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 그리고 물었다. “오공아, 무슨 말이든 면전에서 의논하면 될 터인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번민하느냐? 이처럼 우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나를 겁주려는 것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방금 소식을 전하던 자는 일치공조였나이다. 그가 요정이 흉악하여 이곳은 가기 어렵다 하였사옵니다. 과연 산이 높고 길이 험하여 나아갈 수 없사오니, 다른 날에 다시 가시옵소서.” 장로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움과 놀람에 사로잡혀 그의 호랑이 가죽 치마를 붙잡으며 말했다. “제자야, 우리는 세 갈래 길 가운데 이미 한 갈래 반을 걸어왔거늘, 어찌하여 물러나겠다는 말을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제가 정성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옵니다마는, 다만 마귀는 많고 힘은 약하며 형세가 외로울까 두렵사옵니다. 비록 쇠덩이라 한들 풀무에 들어가면 못 몇 개나 뽑아 낼 수 있사옵니까?” 장로가 말했다. “제자야, 네 말도 옳도다. 과연 혼자서는 어렵느니라. 병서에 이르기를, 적은 무리는 많은 무리를 당해 낼 수 없다 하였느니라. 내게는 아직 팔계와 사승이 있으니 모두 내 제자라. 네가 마음대로 부려 쓰되, 호위하는 장수나 돕는 일꾼으로 삼아 힘을 합하고 마음을 모아 산길을 쓸어 깨끗이 하고 나를 이끌어 산을 넘어가게 한다면, 도로 모두 바른 과위를 얻는 것이 아니겠느냐?” 행자의 이 한바탕 연기가 장로의 이 몇 마디를 끌어내자, 그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이 산을 넘으려면 저팔계가 제가 이르는 두 가지 일을 들어 주어야만 겨우 서너 푼은 건너갈 수 있사옵니다. 만일 제 말을 듣지 않아 제 손을 대신할 수 없다면 반 푼도 건너갈 생각을 마옵소서.” 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가지 않으시려거든 흩어져 버립시다. 나를 끌어들이지 마시오.” 장로가 말했다. “제자야, 우선 네 형에게 물어 그가 너에게 무슨 일을 시키는지 보아라.” 멍청이가 정말로 행자에게 가서 말했다. “형님, 저에게 무슨 일을 시키시렵니까?” 행자가 말했다. “첫째는 스승님을 보살피는 것이요, 둘째는 산을 순찰하러 가는 것이다.”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을 보살피는 것은 앉아 있는 일이오, 산을 순찰하러 가는 것은 걷는 일이오. 그런즉 앉았다가 걷고 걷었다가 앉으란 말이오? 두 곳을 어찌 다 돌볼 수 있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두 가지를 아울러 하라는 것이 아니오. 다만 한 가지만 맡으면 그만이오.” 팔계가 또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럴듯한 계산이오. 다만 스승님을 보살피는 것이 어떠하며 산을 순찰하는 것이 어떠한지 먼저 내게 이야기해 주시오. 내가 형편에 맞는 것을 골라 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을 보살피는 일은 이러하오. 스승님께서 용변을 보시거든 곁에서 모시고, 스승님께서 길을 가시거든 부축하고, 스승님께서 공양을 하시려거든 공양을 빌어 오는 것이오. 그가 조금이라도 배고프시면 너는 매를 맞을 것이요, 얼굴빛이 조금이라도 누렇게 뜨면 너는 매를 맞을 것이며, 몸이 조금이라도 야위면 너는 매를 맞을 것이니라.”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이건 어렵소! 어렵소! 어렵소! 곁에서 모시고 부축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사옵니다. 몸에 붙어 업고 다니라 해도 오히려 쉬우옵니다마는, 만일 나를 시골로 내려보내 공양을 빌어 오라 하신다면, 이 서천 길에서 사람들은 내가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인 줄 모르고 다만 산속에서 나온 덜 자란 씩씩한 돼지로만 여길 터이니, 여러 사람이 떼로 몰려와 쇠스랑과 빗자루로 늙은 돼지를 에워싸 넘어뜨리고 집으로 끌고 가 잡아서는 절여 두고 설을 쇨 것이니, 이것은 참으로 재앙을 만나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그러면 산을 순찰하러 가거라.” 팔계가 말했다. “산을 순찰하는 것은 또 어떠하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이 산으로 들어가 요괴가 몇 놈인지, 무슨 산인지, 무슨 굴인지 알아보아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오.” 팔계가 말했다. “그까짓 것쯤이야 어렵지 않소. 늙은 돼지가 산을 순찰하러 가겠소.” 그 멍청이는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쇠스랑을 꼬나 쥐고는 씩씩한 기세로 깊은 산으로 들어가며, 당당한 기백으로 큰길을 향해 달려 나갔다. 행자가 곁에서 참지 못하고 히히히 비웃었다. 장로가 꾸짖었다. “이 괘씸한 원숭아! 동생들에게 조금도 사랑하고 가여이 여기는 마음이 없고, 늘 시기하는 마음만 품고 있구나. 너는 이런 꾀를 부리고 교묘한 말과 고운 낯빛으로 그놈을 산 순찰하러 가게 꾀어 놓고는, 여기서 또 그놈을 비웃는 것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그놈을 비웃는 것이 아니옵니다. 제 웃음에는 까닭이 있사옵니다. 보시옵소서, 저팔계가 이번에 가면 틀림없이 산을 순찰하지도 않고 감히 요괴를 보려 하지도 않을 터이니, 어디론가 가서 한참을 숨어 있다가 거짓말 하나를 지어내어 우리를 속일 것이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네가 어찌 그리 안다는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제가 그놈을 그렇게 헤아렸사옵니다. 믿지 못하시겠거든 제가 따라가 보고 또 그 말을 들어 보겠나이다. 한편으로는 그놈의 재주를 거들어 요괴를 항복받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놈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정성이 있는지 살펴보겠나이다.” 장로가 말했다. “좋다, 좋고말고, 좋다. 그러나 너는 그놈을 놀려먹지 말아라.” 행자가 대답하고는 곧장 산비탈을 따라잡아 올라가 몸을 흔들어 변하니, 매미 같은 벌레 한 마리로 변하였다. 참으로 가볍고 기묘하게 변하였으니, 보라,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날개는 얇아 바람에 춤추되 힘을 쓰지 않고, 허리는 가늘고 작아 바늘 같구나. 부들을 꿰고 풀을 스쳐 꽃그늘을 지나니, 그 빠르기가 별똥별보다도 더하구나. 두 눈은 맑게 반짝이고, 목소리는 아득히 잦아들었는데, 곤충 무리 가운데 그보다 작은 것 없건만, 가늘고 우아한 몸짓에 꾀가 깊도다. 여러 번 한가로운 날 그윽한 숲에서 쉬니, 온몸이 아예 보이지 않아 눈이 천 개라도 찾아낼 수 없구나. 앵 하고 한 번 날개를 저올려 팔계를 따라잡아, 그의 귀 뒤편 갈기 밑둥에 달라붙었다. 그 멍청이는 줄곧 길만 걸을 뿐, 몸에 사람이 붙은 줄을 어찌 알겠는가. 칠팔 리쯤 가다가 쇠스랑을 내동댕이치고는 고개를 돌려 당승을 향해 손짓 발짓 해 가며 욕을 퍼부었다. “이 물렁물렁한 늙은 중이며, 남을 골려 먹는 필마온이며, 얼굴만 순한 사승이여! 너희는 모두 그곳에서 한가롭게 지내면서 나를 시켜 길이나 닦게 하는구나! 모두 경을 구하러 가며 바른 과위를 바라건만, 유독 나만 시켜 무슨 산을 순찰하러 가라 한단 말이냐! 하하하! 요괴가 있는 줄 알면 피해서 조금 가면 그만이지, 아직 절반도 못 가서 도리어 나를 시켜 그놈을 찾게 하니,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있느냐! 나는 어디 가서 잠이나 자다가, 한숨 자고 돌아가 얼렁뚱땅 대답하기를 산을 순찰하고 왔다 하면 그만이지.” 그 멍청이는 한때 요행을 바라며 쇠스랑을 끌고 또 걸었다. 산속 오목한 곳에 붉은 풀 언덕이 굽이져 있는 것이 보이자, 그는 곧장 그 속으로 파고들어 쇠스랑으로 땅바닥을 쓸어 자리를 펴고는 데굴데굴 누워 허리를 한번 쭉 펴며 말했다. “유쾌하구나! 저 필마온이라도 내 이만큼 자유롭지는 못할 터인데!” 원래 행자가 그의 귀 밑에서 한마디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으므로, 참지 못하고 날아올라 그를 또 한번 골려 주려 하였다. 다시 몸을 흔들어 변하니 딱따구리 한 마리가 되었는데, 보라,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쇠 같은 부리는 뾰족하고 붉게 윤이 나며, 비취 깃은 곱고 환하게 빛나는구나. 쌍발톱은 강철이라 못처럼 날카로우니, 배가 고프다고 한들 숲이 고요함에 무슨 상관이랴. 썩고 문드러진 마른 나무를 가장 사랑하고, 외롭게 늙은 나무는 도리어 싫어하는구나. 둥근 눈에 꼬리를 쳐들고 성질이 날렵하니, 나무 쪼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을 만하구나. 그 벌레는 크지도 작지도 않아 저울에 달면 겨우 서너 냥쯤 나갈 터인데, 붉은 구리 부리와 검은 쇠 다리를 하고는 휘익 하고 한 번 날개를 저어 내려앉았다. 팔계가 머리를 떨어뜨리고 곤히 잠들어 있는데, 그놈이 입술을 겨누어 꽉 하고 한 번 쪼았다. 멍청이는 놀라 벌떡 일어나며 입으로 마구 외쳤다. “요괴다! 요괴다! 창으로 나를 한 번 찔렀어! 입이 이렇게 아프다니!” 손을 뻗어 더듬어 보니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재수 없는 일이로구나! 나는 무슨 경사스러운 일도 없는데, 어찌하여 입술에 홍색을 걸었단 말이냐?” 그는 피 묻은 손을 들여다보며 입으로 중얼중얼거리고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요괴는 없는데, 어찌 나를 한 번 찔렀단 말이냐?” 홀연히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딱따구리 한 마리가 허공에서 날고 있었다. 멍청이가 이를 갈며 욕했다. “이 놈의 망할 것! 필마온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렇다 쳐도, 너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알겠다, 저놈은 틀림없이 나를 사람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내 입을 검게 썩고 문드러진 나무 토막으로 여겨 그 속에 벌레가 생겼다 여기고 벌레를 찾아먹으려 나를 이렇게 쪼았을 터이지. 내 입을 품에 감추고 자야겠다.” 멍청이는 데굴데굴 도로 누웠다. 행자가 또 날아와 귀 밑을 한 번 더 쪼았다. 멍청이는 놀라 일어나며 말했다. “이 놈의 망할 것, 참으로 성가시게 굴기는! 아마 여기가 저놈의 보금자리여서 알을 품고 새끼를 치는데, 내가 차지할까 두려워 이러는 모양이지. 됐다! 됐다! 됐어! 여기서 자지 말자!” 쇠스랑을 끌고 붉은 풀 언덕을 곧장 나와 길을 찾아 다시 걸었다. 이에 손오공은 기뻐 견디지 못하고 미후왕은 웃음을 터뜨렸다.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한 놈은 두 눈을 크게 뜨고서도 한집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과연 좋은 대성이라, 몸을 흔들어 다시 변하여 도로 매미 같은 벌레가 되어 그의 귀 뒤에 붙어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멍청이는 깊은 산으로 들어가 또 사오 리쯤 걸었는데, 산속 오목한 곳에 식탁만 한 네모반듯한 푸른 돌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멍청이는 쇠스랑을 내려놓고 돌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예를 갖추었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이! 돌이 사람도 아니요, 말을 하지도 못하고 답례할 줄도 모르는데, 절을 올리다니, 이건 완전히 어리석은 짓이로구나.” 원래 멍청이는 그 돌을 당승과 사승과 행자 세 사람으로 여기고 그들을 향해 미리 연습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내가 이대로 돌아가 스승님을 뵙고, 요괴가 있느냐 물으시면 있다 하자. 무슨 산이냐 물으시면, 내가 진흙으로 빚었다거나 흙으로 만들었다거나, 주석으로 부었다거나 구리로 주조했다거나, 밀가루로 쪘다거나 종이로 바랐다거나 붓으로 그렸다 한다면, 그들은 나를 어리석다 여길 터인데 이런 말까지 보태면 더욱 어리석어 보일 것이니, 나는 다만 돌산이라 하자. 무슨 굴이냐 물으시면 또한 돌굴이라 하자. 무슨 문이냐 물으시면 못을 박은 쇠잎 문이라 하고, 안이 얼마나 깊으냐 물으시면 들어가면 세 겹이라 하자. 만일 더 캐물어 문에 못이 몇 개냐 물으면, 늙은 돼지가 마음이 급해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자. 여기까지 지어 놓으면 그만이니, 저 필마온을 속여 넘기자!” 멍청이는 이야기를 꾸며 놓고 쇠스랑을 끌며 본래 길로 곧장 돌아왔으나, 행자가 귀 뒤에서 하나하나 빠짐없이 듣고 있음을 어찌 알았으랴. 행자가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곧 두 날개를 저어 먼저 돌아가 본모습으로 스승님을 뵈었다. 스승님이 말했다. “오공아, 너는 왔는데 오능은 어찌 돌아오지 않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놈은 저기서 거짓말을 짓고 있사옵니다. 곧 올 것이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저놈의 두 귀가 눈을 덮었으니 어리석고 둔한 사람이라, 그놈이 무슨 거짓말을 짓겠느냐? 또 네가 무슨 허튼 소리를 지어 내어 그놈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은 다만 이렇게 약점만 감싸 주시옵니다. 이것은 대질할 증거가 있는 말이옵니다.” 그리고 그놈이 풀숲에 파고들어 잠들고, 딱따구리에 쪼여 깨어나며, 돌을 향해 절을 올리고, 무슨 돌산이니 돌굴이니 쇠잎 문이니 요정이니 하는 말을 지어 낸 사정을 미리 이야기해 두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멍청이가 걸어오는데, 그 거짓말을 잊을까 두려워 고개를 숙이고 입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행자가 한마디 호통을 치며 말했다. “멍청아! 무얼 중얼거리느냐?” 팔계가 귀를 치켜올리고 살펴보며 말했다. “내가 목적지에 도착했지!” 멍청이가 앞으로 나아가 꿇어앉자 장로가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제자야, 수고하였도다.” 팔계가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길을 걷는 이나 산을 오르는 이나 무엇보다 고생이 심하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요괴가 있더냐?” 팔계가 말했다. “요괴가 있사옵니다! 요괴가 있사옵니다! 요괴가 한 무리나 되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그놈들이 너를 어떻게 보내 주더냐?” 팔계가 말했다. “그놈들이 나를 돼지 조상님, 돼지 외할아버지라 부르며 국수 국과 채식 음식을 차려 한 끼 먹이고는, 깃발과 북을 늘어놓고 우리를 배웅하여 산을 넘겨 보내 주겠다 하였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풀숲에서 잠들었으니 꿈속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냐?” 멍청이가 그 말을 듣고 겁에 질려 키가 석 치나 줄어들며 말했다. “할아버지시여! 내가 잔 것을 그놈이 어찌 알았단 말이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멱살을 잡아챙겼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너에게 물을 것이 있다.” 멍청이는 또 당황하여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묻는 것은 그렇다 치고, 잡아당기기야 어찌된 일이오?” 행자가 말했다. “무슨 산이더냐?” 팔계가 말했다. “돌산이오.” “무슨 굴이냐?” “돌굴이오.” “무슨 문이냐?” “못을 박은 쇠잎 문이오.” “안이 얼마나 깊으냐?” “들어가면 세 겹이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더 말할 것 없다. 뒷부분은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으니, 스승님께서 믿지 않으실까 하여 내가 대신 말해 주마.” 팔계가 말했다. “이 망할 놈! 너는 가지도 않았으면서 그걸 어찌 알고 대신 말한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문에 못이 몇 개냐 물으면, 늙은 돼지가 마음이 급해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자, 그랬지? 옳으냐?” 멍청이는 황급히 꿇어앉았다. 행자가 말했다. “돌을 향해 절을 올리며 우리 세 사람으로 여겨 놓고 그에게 한 마디 묻고 한 마디 대답하였지? 옳으냐? 또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지어 놓고 저 필마온을 속여 넘기자 하였지? 옳으냐?” 멍청이는 다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형님, 제가 산을 순찰하러 갈 때 형님이 따라와서 들으신 것이오이까?” 행자가 꾸짖었다. “이 겨나 처먹는 멍청한 놈아! 이토록 중요한 곳에서 너를 시켜 산을 순찰하러 가게 하였거늘, 너는 도리어 가서 잠을 자다니! 딱따구리가 쪼아 깨우지 않았더라면 너는 아직도 거기서 자고 있을 터인데, 깨어나서는 또 이런 큰 거짓말을 지어 내니 큰일을 그르치지 않았느냐? 어서 발목을 내밀어라, 몽둥이 다섯 대를 쳐서 마음에 새겨 주마!”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그 몽둥이는 무거워 살짝 스치기만 해도 가죽이 벗겨지고 한 번 휘둘러도 힘줄이 다치는데, 다섯 대를 맞으면 아주 죽고 말았지!” 행자가 말했다. “매 맞기가 두렵거든 어찌하여 거짓말을 하였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이시여, 이번 한 번뿐이오니 다음부터는 다시는 감히 그러지 않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한 번이라면 몽둥이 세 대만 치마.” 팔계가 말했다. “할아버지시여, 반 대도 견디지 못하오이다!” 멍청이는 어쩔 도리가 없어 스승님을 붙잡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저를 위해 한마디 좋게 말씀해 주시옵소서.” 장로가 말했다. “오공이 네가 거짓말을 지었다 하여도 나는 믿지 않았더니, 이제 과연 그러하니 실로 매를 맞아 마땅하도다. 그러나 지금 산을 넘는 데 부릴 사람이 모자라니, 오공아, 너는 우선 그놈을 용서하고 산을 넘은 뒤에 치도록 하여라.” 행자가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을 큰 효라 부른다 하였나이다. 스승님께서 치지 말라 하시니 내가 우선 너를 용서하마. 너는 다시 가서 산을 순찰하라. 만일 또 거짓말을 하여 일을 그르친다면, 이번에는 한 대도 용서하지 않으리라!” 멍청이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나 큰길로 달려나가 다시 갔다. 보라, 그는 의심이 나면 귀신을 만들어 내어, 걸음마다 행자가 변하여 자기를 따라오는 것만 의심하였으므로, 무슨 물건이든 보면 곧 행자라 의심하였다. 칠팔 리를 걸어가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산비탈을 달려 지나갔다. 그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쇠스랑을 치켜들며 말했다. “형님이 거짓말하는지 들으러 오셨지? 이번엔 짓지 않았소.” 또 가고 있는데, 산바람이 몹시 사나워 휘어 하는 소리와 함께 마른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앞으로 굴러왔다. 그는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형님이시여! 이게 무슨 일이오! 거짓말을 짓지 않겠다 한 마디 했을 뿐인데, 또 무슨 나무로 변해 사람을 치는 것이오!” 또 앞으로 걸어가니, 목이 흰 늙은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깍깍 하고 몇 번이나 잇달아 울었다. 그가 또 말했다. “형님, 부끄럽지도 않소! 부끄럽지도 않아! 짓지 않는다면 짓지 않는다 하였거늘, 자꾸만 까마귀로 변해 무엇 하려는 것이오? 들으러 온 것이오?” 원래 이번에는 행자가 그를 따라가지도 않았거늘, 그는 제 스스로 놀라고 제 스스로 이상히 여기며 함부로 의심하고 함부로 짐작하였으므로, 가는 곳마다 행자가 자기를 따라붙어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멍청이가 놀라고 의심하는 사정은 이쯤에서 접어 두자.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산을 평정산이라 하고, 그 굴을 연화동이라 하였다. 굴 속에 요괴 둘이 있었으니, 하나는 금각대왕이라 불리고 다른 하나는 은각대왕이라 불렸다. 금각이 바른 자리에 앉아 은각에게 말했다. “아우야,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산을 순찰하지 않았느냐?” 은각이 말했다. “보름쯤 되었느니라.” 금각이 말했다. “아우야, 오늘은 나와 함께 순찰이나 다녀오너라.” 은각이 말했다. “오늘 순찰은 어찌된 일이니이까?” 금각이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근래에 들으니 동토 당나라에서 폐하의 의동생인 당승을 서방으로 보내 부처님께 절을 올리게 하였는데, 일행이 넷이라 손행자와 저팔계와 사승이라 하고, 말까지 합쳐 모두 다섯이라 하느니라. 너는 그들이 있는 곳을 살펴 나를 위해 그들을 잡아 오너라.” 은각이 말했다. “우리가 사람을 먹자면 어디서 몇 놈인들 건지지 못하리오? 저 중들이 어디까지 가든 그냥 가게 두시구려.” 금각이 말했다. “너는 모르느니라. 내가 그해 천계에서 나올 적에 일찍이 사람들의 말을 들었느니라. 당승은 금선장로가 속세에 내려온 몸이요, 열 세대를 수행한 좋은 사람이라, 한 점의 원양도 새어 나가지 않았으니, 그 살을 먹는 자는 수명이 늘어나 장생하느니라.” 은각이 말했다. “그의 살을 먹기만 하면 수명이 늘어나 장생한다면, 우리가 무슨 좌선을 하고 무슨 공을 세우며, 무슨 용과 호랑이를 단련하고 무슨 암수를 배합하리이까? 그저 그를 먹으러 가야 하거늘, 내가 가서 그를 잡아 오리이다.” 금각이 말했다. “아우야, 너는 성급하니 서두르지 말라. 네가 문을 나서서 좋든 나쁘든 보이는 대로 중을 잡아 온다면, 만약 당승이 아니라면 헛일이 아니겠느냐? 나는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여 일찍이 그 사부와 제자를 그림자로 그리고 형상을 그려 두었으니, 네가 가져가거라. 다만 중을 만나거든 이것으로 대조하여 보아라.” 또 누가 무슨 이름인지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은각이 그림을 얻고 이름을 알자 곧 굴을 나서 작은 요괴 서른 명을 뽑아 산 위로 순찰을 나왔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팔계의 운이 사나워 한창 길을 가는데, 그만 요괴 무리와 딱 마주쳐 길을 막으며 말했다. “저기 오는 것이 무슨 사람이냐?” 멍청이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귀를 치켜올리고 보니 요마들이었다. 그는 당황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이라 하면 그놈들이 나를 낚아챌 터이니, 그저 길 가는 사람이라 하자.’ 작은 요괴가 보고하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길 가는 사람이옵니다.” 그 서른 명의 작은 요괴 가운데에는 아는 놈도 있고 모르는 놈도 있었으며, 곁에서 거들어 말하는 놈도 있어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 중은 이 그림 속의 저팔계와 닮았사옵니다.” 영정을 걸어 놓으라 하자, 팔계가 보고 크게 놀라 말했다. “요즈음 정신이 없더니 원래 그놈이 내 영정을 그려 보냈구나!” 작은 요괴가 창으로 걸어 들고, 은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흰 말을 탄 이가 당승이요, 이 털 난 얼굴의 이가 손행자니라.” 팔계가 듣고 말했다. “성황님이시여, 저만 빼주시면 그만이오니, 돼지 머리와 세 가지 제물을 올리고 맑은 제사를 스물네 차례나 올리리다.” 입으로 중얼거리며 줄곧 서원을 하였다. 그 요괴가 또 말했다. “이 검고 긴 이가 사승이요, 이 주둥이가 길고 귀가 큰 이가 저팔계니라.” 멍청이는 자기를 가리키는 말을 듣고 당황하여 주둥이를 품에 감추어 숨겼다. 그 요괴가 불렀다. “중이여, 주둥이를 내밀어라!” 팔계가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앓는 병이라 내밀 수가 없소.” 그 요괴가 작은 요괴에게 갈고리로 끄집어내라 하였다. 팔계가 당황하여 주둥이를 내밀며 말했다. “쩨쩨하게 굴기는, 이것 아니오? 보려거든 그냥 보시오, 무얼 걸어 당긴단 말이오?” 그 요괴는 그가 팔계임을 알아보고 보도를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서며 곧장 내리쳤다. 이 멍청이는 쇠스랑을 들어 막아 내며 말했다. “이놈아, 무례하게 굴지 말아라! 내 스랑을 받아라!” 그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이 중은 중이 된 지 오래지 않은 자로구나.” 팔계가 말했다. “착한 아들이로구나! 영리하기도 하여라! 너는 어찌하여 이 영감이 중이 된 지 오래지 않은 줄을 아느냐?” 그 요괴가 말했다. “네가 이 스랑을 다룰 줄 아니, 틀림없이 남의 밭에서 땅을 파다가 이 스랑을 훔쳐 왔을 터이로구나.” 팔계가 말했다. “이놈아, 네가 어찌 이 영감의 스랑을 알아보겠느냐. 내 것은 땅 파는 스랑과는 다르니, 곧 이러하니라. 큰 이빨을 부어 만들매 용의 발톱 같고, 스며든 금으로 단장하매 범의 형상 같구나. 적을 맞아 차가운 바람을 뿌리고, 서로 버티면 불꽃이 솟는도다. 당승을 대신하여 장애를 없애고, 서천 길에서 요정을 잡느니라. 휘두르면 노을이 해와 달을 가리고, 들어올리면 어두운 구름이 별빛을 흐리도다. 태산을 무너뜨리면 범도 두려워하고, 바다를 뒤집으면 늙은 용도 놀라느니라. 네 요괴가 재주 있다 한들, 스랑 한 번에 아홉 개의 피 구멍이 뚫리리라!” 그 요괴가 이 말을 듣고 어찌 양보하려 들겠는가. 칠성검을 들어 온갖 솜씨를 펼치며 팔계와 한 번 오고 한 번 가며 산속에서 겨루기를 스무 합이 되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팔계가 성을 내어 죽기를 무릅쓰고 맞받아 나갔다. 그 요괴는 그가 귀를 치켜올리고 끈적한 침을 뿜으며 쇠스랑을 휘두르고 입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꼴을 보고 또한 적잖이 두려워하여, 곧 고개를 돌려 작은 요괴들을 불러 일제히 달려들게 하였다. 하나가 하나를 상대할 때라면 실로 그럭저럭 버틸 만하였으나, 그는 작은 요괴들이 일제히 덤벼드는 것을 보고 손발이 허둥거려 막아 낼 수가 없어, 싸움에 져서 고개를 돌려 도망쳤다. 그런데 길이 평평하지 않은 것을 미처 자세히 살피지 못하여, 홀연히 덩굴에 발이 걸려 휘청 비틀거렸다. 간신히 일어나 걸어가는데, 또 작은 요괴 하나가 땅에 엎드려 있다가 발뒤꿈치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푹 엎어져 개가 똥을 먹는 꼴이 되었다. 요괴 무리가 달려들어 누르고, 갈기를 움켜쥐고 귀를 잡아당기며, 발을 잡아끌고 꼬리를 붙들어 메고 들어 올려 굴 속으로 사로잡아 갔다. 아아! 바로 이러하니라. 한 몸에 이는 마귀의 기운은 없애기 어렵고, 온갖 재앙은 한번 생기면 물리치기 쉽지 않도다. 결국 저팔계의 목숨이 어찌될지는 알 길이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3회 외도미진성(外道迷眞性) · 원신조본심(元神助本心) 말하자면, 그 요괴가 저팔계를 굴속으로 잡아 끌고 들어가며 말했다. “형님, 하나를 잡아 왔나이다.” 금각대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리 가져오너라, 내가 보리라.” 은각대왕이 말했다. “이놈이 아니옵니까?” 금각대왕이 말했다. “아우여, 잘못 잡았도다. 이 중은 쓸모가 없느니라.” 저팔계가 얼른 경전을 챙겨 들고는 말했다. “대왕이시여, 쓸모없는 중이오니 놓아 보내 주옵소서. 사람 구실도 못할 놈을 붙들어 두어 무엇 하시옵니까!” 은각대왕이 말했다. “형님, 놓지 마옵소서. 비록 쓸모는 없다 하나이다. 그래도 삼장법사와 한패거리라 이름을 저팔계라 하옵니다. 저놈을 우선 뒤편 맑은 물 못에 담가 두어 털을 뺀 뒤에 소금에 절이고 볕에 말렸다가, 날이 궂은 날 술안주로 삼으면 되옵니다.”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재수 없는 날이로다! 절인 고기 장수 요괴를 만났구나!” 작은 요괴들이 저팔계를 들어 올려 안으로 메고 가 물속에 내동댕이친 일은 여기서 더 말하지 않기로 하자. 말하자면, 삼장법사가 비탈 앞에 앉아 있는데 귀가 뜨겁고 눈이 떨리며 몸이 편치 않아서 불러 말했다. “오공아! 어찌하여 오능이 이번에 산을 순라하러 간 지 오래도록 오지 않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아직 그놈의 속을 모르시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놈에게 무슨 속이 있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이시여, 이 산에 만일 요괴가 있다면 그놈은 반 걸음도 가기 어려워 틀림없이 허풍을 떨며 달려 돌아와 저에게 알렸을 것이옵니다. 아마 요괴가 없고 길이 평안하니 곧장 가 버린 모양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만일 참으로 가 버렸다면 어디서 서로 만나겠느냐? 이곳은 산야가 텅 비고 넓은 곳이라 저 여관과 저잣거리, 성과 우물 사이와는 같지 않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염려 마옵소서. 우선 말에 오르시옵소서. 그 멍청이는 좀 게으른 데가 있어 틀림없이 늦게 걸을 것이옵니다. 사부님께서 말을 좀 재촉하시면 우리가 틀림없이 그놈을 따라잡고 함께 가게 되옵니다.” 참으로 삼장법사가 말에 오르고 사승이 짐을 메니, 행자가 앞에서 길을 인도하며 산으로 올라갔다. 말하자면, 그 늙은 요괴가 또 은각대왕을 불러 말했다. “아우여, 네가 이미 저팔계를 잡았으니 틀림없이 삼장법사도 있느니라. 다시 산을 순라하러 가거라, 결코 그를 놓쳐 보내지 말지니라.” 은각대왕이 말했다. “곧 가겠나이다, 곧 가겠나이다.” 보라, 그가 급히 작은 요괴 쉰 명을 불러 모아 산으로 올라가 순라를 도는데, 막 가는 곳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아득히 피어오르고 서기가 빙빙 감도는 것이 보였다. 은각대왕이 말했다. “삼장법사가 온다.” 요괴들이 말했다. “삼장법사가 어디 있사옵니까?” 은각대왕이 말했다. “착한 사람의 머리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정수리를 비추고, 악한 사람의 머리 위에는 검은 기운이 하늘을 찌르느니라. 저 삼장법사는 본래 금선장로가 범간에 내려온 몸이요, 열 세생을 수행한 착한 사람이라 이런 구름이 아득히 감도는 것이니라.” 요괴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데, 은각대왕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지 않으냐?” 그러자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오싹 몸서리를 쳤다. 또 한 번 가리키자 또 몸서리를 쳤다. 줄곧 세 번을 가리키자 그도 줄곧 세 번 몸서리를 치며 마음이 불안하여 말했다. “제자들아, 내가 어찌하여 몸서리를 치느냐?” 사승이 말했다. “몸서리를 치는 것을 보니 상한 음식으로 병이 난 모양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허튼 소리 마오. 사부님께서 이 깊은 산 험한 고개를 걸으시니 필경 조심하는 마음에 헛놀람이 생긴 것이오. 겁내지 마옵소서! 겁내지 마옵소서! 노손이 몽둥이를 휘둘러 한바탕 놀람을 눌러 드리리다.” 과연 좋은 행자로다, 몽둥이를 펴 들고 말 앞에서 재주를 몇 가지 뽐내는데, 위로 셋 아래로 넷, 왼쪽으로 다섯 오른쪽으로 여섯, 모두 육도삼략의 법대로 신통을 부렸다. 그 장로가 말 위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세상에 드물고 인간에 다시없는 솜씨였다. 길을 헤치며 곧장 앞으로 나아가니, 자칫하면 저 요괴를 놀라 넘어뜨릴 뻔하였다. 그 요괴가 산꼭대기에서 이를 보고는 넋이 날아가고 혼백이 흩어져 홀랑 소리를 내어 말했다. “몇 해 동안 손행자의 명성을 들었더니, 오늘에야 그 말이 헛되지 않고 참되다는 것을 알겠구나.” 요괴들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어찌하여 남의 사기를 북돋우고 제 위풍을 꺾으시옵니까? 누구를 칭찬하시옵니까?” 은각대왕이 말했다. “손행자는 신통이 광대하니 저 삼장법사를 먹지 못하리라.” 요괴들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 재주가 없으시거든 우리 가운데 몇을 보내어 큰 대왕께 알리고, 본동의 큰 병사 작은 병사를 불러모아 진세를 벌여 놓고 힘을 합쳐 마음을 모으라 하옵소서. 그가 어디로 도망가리까!” 은각대왕이 말했다. “너희는 저놈의 쇠몽둥이를 보지 못했다. 만 명이 덤벼도 당해 낼 수 없는 용맹이 있어, 우리 굴에 겨우 사오백 병사뿐인데 어찌 저 몽둥이 한 방을 견디겠느냐?” 요괴들이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삼장법사를 먹지 못하겠거든, 저팔계를 잘못 잡아 온 것이 아니옵니까? 이제 도로 보내 주옵소서.” 은각대왕이 말했다. “잡은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니요, 보내는 것 또한 함부로 보낼 수 없느니라. 삼장법사는 마침내 먹어야 할 몸이나 다만 눈앞에서는 아직 그럴 수 없느니라.” 요괴들이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몇 해를 더 기다리란 말씀이옵니까?” 은각대왕이 말했다. “몇 해까지 갈 것도 없느니라. 내가 보건대 저 삼장법사는 오직 선하게 꾀할 수 있을 뿐, 악하게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만일 세력을 믿고 그를 잡으려 하면 냄새도 맡지 못하리라. 오직 선으로 그를 감동시켜 그 마음을 내 마음과 서로 맞게 만들고, 그런 뒤에 선 가운데서 계책을 내어 도모할 수 있느니라.” 요괴들이 말했다. “대왕께서 계책을 정하여 그를 잡으실 때 저희를 쓰시겠나이까?” 은각대왕이 말했다. “너희는 다들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가되, 결코 대왕께 알리지 말라. 만일 그를 놀라게 하면 반드시 기밀이 새어 나가 내 계책이 망하리라. 나에게는 스스로 신통변화가 있어 그를 잡을 수 있느니라.” 요괴들이 흩어져 가고, 그가 홀로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 길가에서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늙은 도사가 되었는데, 그 차림이 어떠하였는가? 보라,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별관은 번쩍이고 학 같은 머리털은 헝클어졌으며, 깃옷에는 수놓은 띠를 두르고 구름 신에는 누런 종려를 달았구나. 정신은 맑고 눈은 밝아 신선의 손님과 같고, 몸은 건강하고 거동은 가벼워 장수한 노인과 같구나. 청우도사를 운운할 것 무엇 있으리오, 소권선생보다도 훌륭하구나. 거짓 모습을 꾸며 참모습과 같게 하고, 헛된 정을 빚어 참된 정과 같게 하였구나. 그는 큰길 가에서 다리가 부러진 도사로 꾸미고는 발에 피를 흥건히 흘리며, 입으로는 끙끙거리면서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하고 외쳐 대었다. 말하자면, 이 삼장법사가 손대성과 사승을 믿고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막 가는 곳에서 “사부님, 사람 살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삼장법사가 듣고 말했다. “착하고 착하도다! 이 광야의 산중에는 사방에 마을이나 집이 없거늘 무슨 사람이 부르짖는 것인고? 필경 호랑이나 표범, 이리나 벌레에 놀라 넘어진 모양이로다.” 이 장로가 준마의 고삐를 돌려 부르며 말했다. “재난을 당한 이가 누구냐? 나오너라.” 이 요괴가 풀숲에서 기어 나와 장로의 말 앞에서 마구 땅에 머리를 조아렸다.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보니 그는 도사인 데다 나이 또한 높아 몹시 마음이 쓰여서, 급히 말에서 내려 부축하며 말했다.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그 요괴가 말했다. “아파! 아파! 아파!” 손을 놓고 보니 그의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삼장법사가 놀라 물었다. “선생이여, 그대는 어디서 오는 길이오? 어찌하여 존귀한 발을 다쳤소?” 그 요괴가 교묘한 말을 꾸미고 거짓 정을 꾸며 대며 말했다. “사부님이시여, 이 산에서 서쪽으로 가면 맑고 그윽한 도관이 하나 있는데, 소도는 그 관의 도사로소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대는 본관에서 향불을 모시고 경법을 익히지 않고 어찌하여 이곳을 한가로이 걷고 있소?” 그 마귀가 말했다. “지난날 산 남쪽 시주집에서 도중을 청하여 별을 빌고 복을 나누어 주는데 늦어졌소이다. 사도 둘이 함께 길을 가는데 깊은 길목에 이르러 갑자기 얼룩무늬 사나운 호랑이를 만났사옵니다. 그놈이 내 제자를 물어 갔사옵니다. 빈도는 벌벌 떨며 목숨을 걸고 달아나다가 어지러운 돌 비탈에 넘어져 다리를 다쳤사옵니다. 돌아갈 길은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오늘 크나큰 천연을 만나 사부님을 뵈었사오니, 바라옵건대 사부님께서 크게 자비를 베푸시어 제 목숨을 구하옵소서. 만일 관에 이르게 되면 몸을 저당 잡히고 목숨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깊은 은혜를 두텁게 갚사옵니다.”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참된 줄로 여겨 말했다. “선생이여, 그대와 나는 다 같은 목숨을 가진 사람이오. 나는 중이요 그대는 도사라 의관은 비록 다르나 수행하는 이치는 같소. 내가 그대를 구하지 않는다면 출가한 무리가 아니오. 구하기는 구하려니와 그대는 걸을 수 없지 않소?” 그 요괴가 말했다. “일어서지도 못하옵니다. 어찌 걸어가겠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러면 그러자. 나는 아직 걸을 수 있으니 말을 그대에게 내어 주어 한 구비를 타고 가서, 그대의 도관에 이르면 말을 내게 돌려주오.” 그 요괴가 말했다. “사부님이시여, 두터운 정에 감사하옵니다만, 다만 다리와 사타구니를 다쳐 말을 탈 수 없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옳소.” 그리고 사화상을 불러 말했다. “네가 행리를 내 말에 얹어라. 네가 그를 한 구비 업고 가거라.” 사승이 말했다. “제가 업겠나이다.” 그 요괴가 급히 고개를 돌려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사부님이시여, 저는 저 사나운 호랑이에 놀라 겁이 났사옵니다. 이 재수 없는 낯빛을 한 스승을 보니 더욱 놀라고 두려워 그에게 업히고 싶지 않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불러 말했다. “오공아, 네가 업어라.” 행자가 연달아 대답하며 말했다. “제가 업겠나이다! 제가 업겠나이다!” 그 요괴는 곧 행자만을 점찍어 순순히 그에게 업히려 하며 다시는 말이 없었다.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이 눈 없는 늙은 도사 같으니! 제가 업는 것이 싫고 도리어 그에게 업히려 하다니. 그가 사부님이 안 계실 때 세모난 바위 위에서 힘줄을 모조리 끊어 버릴 텐데!” 행자가 업고는 입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천하의 못된 마귀야, 어찌 감히 내게 덤벼드느냐? 너도 노손이 몇 해나 묵은 사람인지 물어 보아라! 이런 귀신 같은 거짓말은 삼장법사나 속일 수 있거늘 어찌 또 나를 속이려 드느냐? 나는 네가 이 산속의 괴물임을 알고 있다. 내 사부님을 먹으려는 모양이지. 내 사부님은 또한 범상한 인물이 아니니 네가 먹을 수 있겠느냐! 네가 그를 먹으려거든 노손에게도 절반 이상은 떼어 주어야 옳으리라.” 그 마귀가 행자가 입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말했다. “사부님이시여, 저는 좋은 집안의 자손으로 도사가 되었사옵니다. 오늘 불행히도 호랑과 이리의 재앙을 만났사옵니다. 저는 요괴가 아니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네가 호랑과 이리를 두려워한다면 어찌하여 《북두경》을 외우지 않느냐?” 삼장법사가 막 말에 오르다가 이 말을 듣고 꾸짖어 말했다. “이 못된 원숭이 같으니! 사람 하나를 구하는 것이 일곱 층 부도를 쌓는 것보다 나으니라. 네가 그를 좀 업는 것으로 그만이지 무슨 북두경이니 남두경이니 하고 말이 많으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놈은 복이 있구나! 내 사부님은 자비하고 착한 일을 좋아하는 분이시지만, 또 겉은 좋고 속은 울퉁불퉁한 데가 있으시니라. 내가 그대를 업지 않으려 하면 사부님께서 나를 꾸짖으실 터이지.” 업기는 업으려니와 마땅히 그대와 분명히 말해 두겠다. 만일 대소변을 누거든 먼저 내게 알려라. 만일 등에 줄줄 흘려 내리면 지린내가 견딜 수 없고 내 옷을 더럽히리니, 빨아 줄 사람도 없지 않으냐.” 그 요괴가 말했다. “내가 이만큼 늙은 나이인데 어찌 그대의 말뜻을 모르겠나이까?” 행자가 그를 끌어 일으켜 등에 업은 채 장로와 사승과 함께 큰길을 따라 서쪽으로 갔다. 그 산의 높고 낮아 고르지 못한 곳에서는 행자가 마음을 쓰며 천천히 걸어서 당승을 앞서 가게 하였다. 삼오 리도 못 가서 사부님과 사승은 산골짜기로 내려가 행자가 바라보이지 않게 되니, 행자가 속으로 원망하여 말했다. “사부님도 이렇게 나이가 많으시면서 일을 전혀 모르시는구나. 이런 먼 길은 빈몸으로도 손이 무겁다고 여겨 내던지고 싶을 판인데, 또 나에게 이 요괴를 업으라고 하시다니! 그가 요괴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좋은 사람이라 한들 이만한 나이면 죽어도 싸거늘, 내던져 죽여 버리면 그만이지 그를 업고 무엇 하리오?” 이 대성이 막 내던져 버릴 궁리를 하는데, 그 요괴가 이를 알아차렸다. 그는 또 산을 부릴 줄 알았으므로 산을 옮기고 바다를 뒤집는 법술을 써서, 행자의 등 위에서 결을 짓고 진언을 외워 수미산 하나를 공중에 불러다가 머리 위로 내리눌렀다. 이 대성이 놀라서 머리를 비켜 보니 왼쪽 어깨 등에 눌렸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아, 네가 무슨 무거운 몸 법술을 써서 노손을 누르느냐? 이것쯤은 겁나지 않으나 다만 짐을 바로 메는 것은 좋고 한쪽으로 메는 것은 견디기 어렵구나.” 그 마귀가 말했다. “산 하나로는 그를 누를 수 없구나!” 그리고 또 주문을 외워 아미산을 공중에 불러다가 눌렀다. 행자가 또 머리를 비켜 보니 오른쪽 어깨 등에 눌렸다. 보라, 그가 큰 산 둘을 메고는 별처럼 날아 사부님을 뒤쫓는구나! 그 마귀가 이를 보고는 온몸에 땀이 나고 온몸에서 진이 솟아 말했다. “그놈이 산을 멜 줄 알다니!”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진언을 외워 태산을 공중에 불러다가 머리 위로 내리눌렀다. 그 대성은 힘이 풀리고 힘줄이 저리어, 그 태산을 내리누르는 법에 걸려 들고 말았다. 삼시신이 놀라 튀어 오르고 일곱 구멍에서 붉은 것을 뿜을 지경이었다. 과연 훌륭한 요마로다, 신통을 부려 행자를 눌러 놓고는 곧 긴 바람을 타고 달려가 당삼장을 뒤쫓아, 구름 끝에서 손을 뻗어 말 위의 사람을 움켜쥐려 하였다. 놀란 사승이 행리를 내던지고 항요봉을 뽑아 들어 정면에서 막아 냈다. 그 요마가 칠성검 한 자루를 들어 맞은편에서 맞받았다.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이란. 칠성검이여, 항요장이여, 온갖 금빛이 비쳐 번쩍이는구나. 저놈의 부릅뜬 눈은 흑살신처럼 사납고, 이놈의 무쇠 낯은 참으로 권렴장이로다. 저 요괴가 산 앞에서 크게 재주를 떨며 한마음으로 당삼장을 잡으려 하고, 이놈은 힘을 다해 참된 스님을 지키며 한마음으로 죽을지언정 놓지 않으리라. 그 둘이 구름을 뿜고 안개를 내뿜어 천궁을 비추고, 흙을 날리고 먼지를 일으켜 북두의 별자리를 가리우네. 싸움은 붉은 해 한 바퀴가 빛을 잃고, 대지와 건곤이 아득히 어두워졌구나. 여덟아홉 차례 오가며 버티더니 뜻밖에도 사화상이 패하고 말았다. 그 마귀가 몹시 사나워 보검 한 자루로 유성 같은 재주를 굴려 덮쳐 오니, 사승은 연약하여 당해 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 달아나려 하였다. 그가 미리 보장을 눌러 막고 큰 손을 벌려 사승을 움켜쥐어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는, 오른손으로 말 위의 삼장법사를 집어 들고 발끝으로 행리를 걸어 걸치고는 입을 벌려 말갈기를 물고 섭법을 부려 그들을 한바탕 바람에 연화동으로 모조리 잡아 갔다. 그리고는 소리를 높여 외쳤다. “형님! 이 중들을 모조리 잡아 왔소!” 금각대왕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리 가져오너라, 내가 보리라.” 은각대왕이 말했다. “이놈들이 아니옵니까?” 금각대왕이 말했다. “어진 아우여, 또 잘못 잡아 왔도다.” 은각대왕이 말했다. “당승을 잡아 오라 하지 않았사옵니까?” 금각대왕이 말했다. “당승인 것은 당승이로되, 다만 저 재주 있는 손행자를 아직 잡지 못하였느니라. 모름지기 그를 잡아야 당승을 먹을 수 있느니라. 만일 그를 잡지 못하였다면 그의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 저 원숭이 왕은 신통이 광대하고 변화가 많은지라, 우리가 그의 사부를 먹는다면 그가 어찌 가만히 있겠느냐? 그 문 앞에 와서 떠들어 대면 편안할 날이 없으리라.” 은각대왕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 형님께서도 사람을 너무 잘 띄워 주시는구려. 형님께서 칭찬하신 대로라면 하늘에도 드물고 땅에도 없을 터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저 이만저만할 뿐 별다른 재주가 없사옵니다.” 금각대왕이 말했다. “네가 그를 잡았단 말이냐?” 은각대왕이 말했다. “그는 이미 제가 부린 큰 산 셋에 눌려 산 아래에서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당승과 사화상을 말과 행리까지 모조리 섭법으로 불러 온 것이옵니다.” 그 늙은 요괴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하여 기뻐하며 말했다. “좋은 팔자로다! 좋은 팔자로다! 이놈을 잡아 두니 당승이야말로 우리 입의 먹이로구나.” 그리고 작은 요괴들을 불러 말했다. “어서 술을 차려 오너라. 우선 너희 두 대왕께 공을 세운 잔을 한 잔 올리리라.” 은각대왕이 말했다. “형님, 우선 술은 마시지 마옵소서. 아이들을 시켜 저팔계를 물에서 건져 매달아 두게 하옵소서.” 드디어 저팔계를 동쪽 회랑에 매달고, 사승을 서쪽에 매달고, 당승을 가운데 매달고, 백마는 구유에 보내고 행리는 안으로 거두어 들였다. 금각대왕이 웃으며 말했다. “어진 아우의 훌륭한 솜씨로다! 두 번에 중 셋을 잡았구나. 그러나 손행자는 산에 눌려 있다 하나 모름지기 법을 써서 그를 잡아다 함께 쪄야 옳지 않겠느냐?” 은각대왕이 말했다. “형님께서는 앉으시옵소서. 만일 손행자를 잡으려 하시거든 우리가 몸소 나설 것 없이 작은 요괴 둘에게 보물 두 개를 주어 그를 담아 오게 하면 되옵니다.” 금각대왕이 말했다. “무슨 보물을 가지고 가게 한단 말이냐?” 은각대왕이 말했다. “제 자금홍호로와 형님의 양지옥정병을 주면 되옵니다.” 금각대왕이 보물을 꺼내며 말했다. “그중 누구를 보내겠느냐?” 은각대왕이 말했다. “정세귀와 영리충 두 놈을 보내면 되옵니다.” 그리고 분부하여 말했다. “너희 둘은 이 보물을 가지고 높은 산 꼭대기로 곧장 가서, 밑바닥은 하늘을 향하고 입구는 땅을 향하게 한 뒤에 손행자 하고 한 번 불러라! 그가 대답하면 이미 그 속에 담긴 것이니, 곧 태상노군급급여율령봉칙이라 쓴 부적을 붙이면 그는 한시삼각에 고름이 되고 말리라.” 두 작은 요괴가 머리를 조아리고 보물을 받아 들고 행자를 잡으러 나간 일은 여기서 더 말하지 않기로 하자. 말하자면, 그 대성이 마귀의 법술에 눌려 산기슭 아래에 갇혀 있는데, 고초를 만나니 삼장법사가 생각나고 재앙을 만나니 성스러운 스님이 그리워져서 소리를 높여 불렀다. “사부님이시여! 생각하옵건대 그때 사부님께서 양계산에 오시어 누르는 부적을 떼어 내니 노손이 큰 난을 벗어나 사문의 가르침을 받들고, 보살께서 법지를 내려 주신 은혜로 사부님과 함께 살고 함께 닦으며, 같은 인연 같은 모습으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에 이르러 요마의 장애를 만나 또 그놈이 부린 산에 눌렸사옵니다. 가련하옵니다! 가련하옵니다! 사부님께서 죽으심은 마땅한 일이옵니다만, 다만 사승과 저팔계와 저 작은 용이 말이 된 한바탕의 일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 이것이야말로 나무가 크면 바람을 불러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사람이 이름이 높으면 그 이름이 사람을 잃게 한다는 것이옵니다!” 탄식을 마치자 구슬 같은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이에 산신과 토지와 오방게제 신중이 놀라 모여들어, 금두게제가 말했다. “이 산은 누구의 것이냐?” 토지가 말했다. “저희의 것이옵니다.” “네 산 아래에 눌린 자가 누구냐?” 토지가 말했다. “누구인지 모르옵니다.” 게제가 말했다. “너희는 본래 모르는구나. 이리 눌린 자는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제천대성 손오공 행자이니라. 이제 바른 과보에 귀의하여 당승을 따라 제자가 되었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산을 요마에게 빌려 주어 그를 누르게 하였느냐? 너희는 죽었느니라. 그가 훗날 몸을 빼어 나오거든 어찌 너희를 용서하겠느냐! 가볍게 끝난다 하여도 토지는 귀양을 갈 것이요, 산신도 군적에 오를 것이며, 우리도 큰 불응의 죄를 받으리라.” 그 산신과 토지가 그제야 두려워하며 말했다. “진실로 알지 못하였나이다, 알지 못하였나이다. 다만 저 마귀가 산을 부리는 주문을 외우는 소리를 듣고 우리가 산을 옮겨 온 것뿐이옵니다. 누가 손대성인 줄 알았사옵니까?” 게제가 말했다. “너희는 우선 두려워 말라. 율에 이르기를 알지 못한 자는 죄를 묻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와 꾀를 내어 그를 풀어 주리니, 그가 손을 놀려 너희를 때리게 하지 말라.” 토지가 말했다. “그야 이치에 맞지 않소이다. 풀어 놓고 또 때린단 말이오?” 게제가 말했다. “너희는 모르는구나. 그에게는 여의금고봉이란 것이 있어 몹시 사나우니, 맞으면 죽고 스치면 다치는지라. 한 번 부딪치면 힘줄이 끊기고 한 번 스치면 가죽이 무너지느니라!” 그 토지와 산신이 마음속에 두려움을 품고 오방게제와 의논한 뒤에 세 산문 밖으로 나와 불렀다. “대성이시여! 산신과 토지와 오방게제가 뵙고자 왔나이다.”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호랑이가 여위어도 웅심은 남아 있다더니, 저절로 기상이 늠름하고 목소리가 또렷또렷하여 말했다. “나를 만나 무슨 일이냐?” 토지가 말했다. “대성께 아뢰옵나이다. 산을 물려 드리고 대성께서 나오시옵소서. 소신의 불공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산을 물리면 너희를 때리지 않겠다.” 그리고 “일어나라!” 하고 호령하니 마치 관청에서 풀어 주는 것과 같았다. 그 신중이 진언과 주문을 외워 산을 도로 본래 자리로 돌려보내고 행자를 일어나게 하였다. 행자가 벌떡 일어나 흙을 털고 치마를 여미고 귀 뒤에서 몽둥이를 뽑아 들고는 산신과 토지를 불러 말했다. “모두 복숭아뼈를 내밀어라. 저마다 먼저 두 대씩 맞아서 노손의 답답함을 풀어 주어라!” 신중이 크게 놀라 말했다. “방금 대성께서 이미 분부하시어 저희의 죄를 용서하신다 하였거늘, 어찌 나오시자마자 말을 바꾸어 때리려 하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훌륭한 토지로다! 훌륭한 산신이로다! 너희는 노손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요괴를 두려워하는구나!” 토지가 말했다. “저 마귀는 신통이 광대하고 법술이 높고 세어서 진언과 주문을 외워 저희를 그 굴속으로 불러들여 하루에 하나씩 차례로 당직을 서게 하옵니다!” 행자가 당직이란 두 글자를 듣고는 마음이 놀라며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외쳤다. “창천이여! 창천이여! 저 혼돈이 처음 갈라지고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던 때에 화과산이 나를 낳았고, 나도 일찍이 밝은 스승을 두루 찾아다니며 장생의 비결을 전수받았노라. 생각하건대 나는 바람 따라 변화하고 호랑이를 굴복시키고 용을 항복받으며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고 대성이라 이름을 떨치면서도, 산신과 토지를 속으로 업신여겨 부려 본 일이 없거늘, 오늘 이 요마가 무례하게도 어찌 감히 산신과 토지를 노비라 불러 제게 차례로 당직을 서게 하느냐? 하늘이여! 노손을 내셨거늘 어찌하여 또 이런 무리를 내셨나이까?” 그 대성이 막 감탄하고 있는 사이에, 산골짜기에서 불꽃 같은 노을빛이 타오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행자가 말했다. “산신과 토지여, 너희가 이 굴에서 당직을 선다면 저 빛을 내는 것이 무슨 물건이냐?” 토지가 말했다. “저것은 요마의 보물이 빛을 내는 것이옵니다. 필시 요정이 보물을 가지고 그대를 항복받으러 온 모양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이거야 참 재미있는 일이로구나! 내 그대에게 묻겠다. 그 굴에는 어떤 사람이 그와 서로 왕래하느냐?” 토지가 말했다. “그는 단약을 불에 달이고 약을 만드는 것을 사랑하고, 전진도인을 기뻐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기에 그가 늙은 도사로 변하여 내 사부님을 속여 갔구나. 그렇다면 너희는 맞을 것을 잠시 적어 두고 돌아가거라. 노손이 직접 그를 잡으리라.” 그 신중이 모두 공중으로 날아 흩어졌다. 이 대성이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늙은 진인이 되었다. 그대는 그 차림이 어떠하였는가 하겠거니와, 이러하였으니. 머리에는 꽈배기 상투를 두 갈래로 틀고, 몸에는 온갖 헝겊을 기워 만든 도포를 걸쳤구나. 손에는 물고기 북채를 두드리고, 허리에는 여공의 띠를 둘렀구나. 큰길 아래에 비스듬히 기대어 작은 요마만을 기다리는데, 잠깐 사이에 요괴가 이르렀으니 원숭이 왕이 남몰래 꾀를 부리는구나. 얼마 안 되어 그 두 작은 요괴가 당도하였다. 행자가 금고봉을 뻗어 놓으니 그 요괴가 미처 방비하지 못하여 발이 걸려 푹 넘어졌다. 일어나서야 행자를 보고는 입으로 소리치며 말했다. “염병할! 염병할! 우리 대왕께서 그대 같은 행인을 공경하지 않으셨다면 곧 견주어 보았을 터인데.”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무엇을 견준단 말이오? 도인이 도인을 만났으니 모두 한집안이지.” 그 요괴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여기 누워 있다가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였소?” 행자가 말했다. “어린 도동이 이 늙은 도인을 만나면 한 번 넘어져 면회돈을 내는 법이지.” 그 요괴가 말했다. “우리 대왕의 면회돈은 몇 냥 은자면 그만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한 번 넘어지는 것으로 면회돈을 삼으시오? 그대는 다른 고향의 풍습을 가진 자로 이곳 도사가 결코 아니오.” 행자가 말했다. “참으로 아니오. 나는 봉래산에서 왔소.” 그 요괴가 말했다. “봉래산은 바다 가운데 신선의 경계라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신선이 아니라면 누가 신선이란 말이오?” 그 요괴가 노기를 거두고 기뻐하며 앞으로 나서 말했다. “늙은 신선이시여, 늙은 신선이시여! 저희는 범인의 눈과 무딘 태를 가져 알아보지 못하고 말로 충돌하였사오니 괘념치 마옵소서, 괘념치 마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내가 너희를 괘념치 않겠다. 상언에 이르기를 신선의 몸은 범인의 땅을 밟지 않는다 하였거늘, 너희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내가 오늘 너희 산에 온 것은 신선이 되어 도를 깨우칠 착한 사람 하나를 건지려 함이니라. 누가 나를 따라가려느냐?” 정세귀가 말했다. “사부님, 저야말로 따라 가겠나이다.” 영리충이 말했다. “사부님, 제가 따라 가겠나이다.” 행자가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너희 두 사람은 어디서 오는 길이냐?” 그 요괴가 말했다. “연화동에서 왔사옵니다.” “어디로 가려는 길이냐?” 그 요괴가 말했다. “우리 대왕의 교명을 받아 손행자를 잡으러 가는 길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 누구를 잡으러 가느냐?” 그 요괴가 또 말했다. “손행자를 잡으러 가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당승을 따라 경을 구하러 가는 그 손행자를 말이냐?” 그 요괴가 말했다. “그렇소이다, 그렇소이다. 그대도 그를 아시오?” 행자가 말했다. “그 원숭이는 좀 버릇이 없느니라. 내가 그를 아는데, 나도 그가 좀 미워서 너희와 함께 그를 잡으러 가리라. 너희를 돕는 셈이지.” 그 요괴가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 도우실 것 없사옵니다. 우리 두 대왕께서 법술을 부려 큰 산 셋을 옮겨 그를 산 아래에 눌러 놓아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저희 둘에게 보물을 주어 그를 담아 오라 하셨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무슨 보물이냐?” 정세귀가 말했다. “제 것은 붉은 호리병이옵니다. 그의 것은 양지옥정병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어떻게 그를 담는단 말이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이 보물의 밑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입구를 땅으로 향하게 한 뒤에 그를 한 번 부르옵니다. 그가 대답하면 그 속에 담기는 것이니, 태상노군급급여율령봉칙이라 쓴 부적 한 장을 붙이면 그는 한시삼각에 고름이 되고 마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놀라며 말했다. “사납구나! 사납구나! 그때 일직공조가 소식을 전하며 보물이 다섯이라 하였는데, 이것이 둘이니 남은 셋은 또 무슨 물건인지 모르겠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 그 보물을 내게 좀 빌려 주시오.” 그 작은 요괴들이 무슨 비결인들 알겠는가. 소매 속에서 보물 두 개를 꺼내어 두 손으로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보고는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좋은 물건이로다! 좋은 물건이로다! 내가 꼬리를 한 번 휘둘러 휙 뛰어올라 가 버리면, 노손에게 갖다 바치는 셈이 되리라.” 그러나 또 이내 생각하였다. “좋지 않다! 좋지 않다! 빼앗기는 빼앗을 수 있으나 노손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니, 이를 대낮의 강탈이라 하느니라.” 그리고는 도로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너희는 아직 내 보물을 보지 못하였구나.” 그 요괴가 말했다. “사부님께는 무슨 보물이 있사옵니까? 저희 범인에게도 빌려 주시어 재앙을 누르게 해 주옵소서.”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손을 뻗어 꼬리의 털 하나를 뽑아 비비적거리고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한 자 일곱 치 길이의 커다란 자금홍호로로 변하였다. 그것을 허리춤에서 꺼내 보이며 말했다. “내 호리병을 보겠느냐?” 그 영리충이 손에 받아 들고 살펴보며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의 이 호리병은 크고 길어 모양새도 있고 보기 좋사옵니다만, 다만 쓸모가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쓸모가 없단 말이오?” 그 요괴가 말했다. “저희 이 두 보물은 저마다 천 명을 담을 수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의 사람을 담는 것이야 무엇이 대단하냐? 내 이 호리병은 하늘까지도 그 속에 담는다!” 그 요괴가 말했다. “그러면 하늘을 담을 수 있단 말씀이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참으로 하늘을 담느니라.” 그 요괴가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오리까? 우리에게 담아 보이셔야 믿사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믿지 못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하늘이 나를 성내게 하면 한 달 사이에도 예닐곱 번씩 담아 두고, 나를 성내게 하지 않으면 반년을 담지 않는 수도 있느니라.” 영리충이 말했다. “형님, 하늘을 담는 보물이니 그와 바꾸십시다.” 정세귀가 말했다. “저이의 하늘 담는 것을 어찌 내 사람 담는 것과 바꾸려 하겠소?” 영리충이 말했다. “만일 바꾸지 않으려 하거든 이 정병을 덧붙여 주면 되지 않소?” 행자가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호리병을 호리병과 바꾸고 덤으로 정병까지 붙이니, 하나로 둘을 바꾸는 셈이라 참으로 잘 들어맞는도다!” 그리고 앞으로 나서서 그 영리충을 붙잡고 말했다. “하늘을 담는다면 바꿀 수 있겠느냐?” 그 요괴가 말했다. “하늘만 담는다면 바꾸겠소이다. 바꾸지 않으면 내가 그대의 아들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러면 그러자, 그러자. 내가 너희에게 담아 보이리라.” 과연 훌륭한 대성이여, 고개를 숙여 결을 짓고 주문을 외워 일유신과 야유신과 오방게제신을 불러 말했다. “곧 가서 옥황상제께 아뢰어라. 노손이 바른 과보에 귀의하여 당승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데, 길이 높은 산에 막히고 스승이 고액을 만났노라. 요마의 보물을 꾀어 바꾸고자 하니, 만 번 절하여 아뢰옵건대 하늘을 반 시진 동안 닫아 담을 수 있게 노손에게 빌려 주시어 공을 이루게 하옵소서. 만일 반 마디라도 허락지 않으시면 곧 영소전으로 올라가 칼과 병기를 일으키리라!” 그 일유신이 곧장 남천문 안 영소전 아래로 가서 옥황상제께 앞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이 몹쓸 원숭이 놈이 말이 되는 대로 내뱉는구나. 지난번에 관음이 와서 그를 놓아 주어 당승을 보호하게 하였고, 짐이 여기서 또 오방게제와 사직공조를 보내어 차례로 호위하게 하였거늘, 이제 또 하늘을 빌려 담겠다니 하늘을 담을 수 있단 말이냐?” 담을 수 없다 말하자 그 반열에서 나타삼태자가 나서며 아뢰었다. “만세, 하늘도 담을 수 있사옵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하늘을 어떻게 담는단 말이냐?” 나타가 말했다. “혼돈이 처음 갈라진 이래로 가볍고 맑은 것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은 땅이 되었사옵니다. 하늘은 한 덩이의 맑은 기운이 요천의 궁궐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니 이치로 논하자면 참으로 담기 어렵사옵니다. 다만 손행자가 당승을 모시고 서쪽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것은 참으로 태산 같은 복연이요 바다 같은 선경이라 하겠사오니, 오늘 마땅히 그가 공을 이루도록 도와야 하옵니다.” 옥황상제가 말했다. “경은 무엇으로 돕겠느냐?” 나타가 말했다. “지의를 내리시어 북천문으로 가서 진무에게 검은 독수리 깃발을 빌려 남천문 위에서 한 번 펴게 하시어, 해와 달과 별을 가리우게 하옵소서. 마주 서도 사람이 보이지 않고 흰 것을 잡아도 검은 것이 보이지 않으리니, 그 요괴를 속여 다만 하늘을 담았다고만 말하게 하여 행자가 공을 이루게 하옵소서.” 옥황상제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경이 아뢴 대로 하리라.” 그 태자가 지의를 받들어 북천문으로 가서 진무를 만나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였다. 그 조사가 곧 깃발을 태자에게 넘겨주었다. 미리 유신이 급히 대성의 귓전으로 내려와 말했다. “나타 태자가 공을 돕으러 왔나이다.” 행자가 얼굴을 들어 바라보니 상서로운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이고 참으로 신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작은 요괴들에게 말했다. “하늘을 담겠다.” 작은 요괴가 말했다. “담으려거든 어서 담으시오. 자꾸 꾸물거리며 무슨 짓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방금 신을 부르고 주문을 외운 참이로다.” 그 작은 요괴들이 모두 눈을 부릅뜨고 그가 어떻게 하늘을 담는지 보려 하였다. 이 행자가 가짜 호리병 하나를 위로 던져 올렸다. 생각해 보라, 이것은 털 하나가 변한 것인들 얼마나 무겁겠느냐? 산꼭대기의 바람에 불려 가서 펄펄 날리며 널널히 흔들리기를 족히 반 시진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떨어졌다. 그때 남천문 위에서 나타 태자가 검은 기를 파르르 펼쳐 해와 달과 별을 모조리 가리워 버렸으니, 참으로 건곤을 먹으로 물들인 듯하고 우주를 쪽빛으로 단장한 듯하였다. 두 작은 요괴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방금 말할 때만 해도 한낮이었거늘 어찌하여 벌써 황혼이 되었소?” 행자가 말했다. “하늘을 이미 담았으니 때를 가릴 수 없다. 어찌 황혼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또 어찌하여 이다지도 캄캄하오?” 행자가 말했다. “해와 달과 별이 모두 그 속에 담겼으니 밖에는 빛이 없다. 어찌 캄캄하지 않겠느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어느 쪽에서 말씀하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내가 너희 앞에 있지 않으냐?” 작은 요괴가 손을 뻗어 더듬으며 말했다. “말소리만 들릴 뿐 낯은 보이지 않사옵니다. 사부님, 이곳이 어느 곳이옵니까?” 행자가 다시 그를 속여 말했다. “발을 움직이지 말라. 이곳은 발해 바닷가이니라. 만일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칠팔 일이 되어도 바닥에 닿지 못하리라!” 작은 요괴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됐소! 됐소! 됐소! 하늘을 도로 놓으시오. 우리는 이렇게 담는 줄 알았소이다. 한참을 더 끌다가 바다에 떨어지면 집에 돌아가지 못하오!”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그들이 참으로 믿는 것을 보고 다시 주문을 외워 태자를 놀라게 하여 기를 걷어 올리게 하니, 어느새 햇빛이 한낮을 가리키고 있었다. 작은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묘하오! 묘하오! 이런 좋은 보물을 바꾸지 않는다면 참으로 집안을 이을 아들이 아니라 하리다!” 그 정세귀가 호리병을 내놓고 영리충이 정병을 꺼내어 한꺼번에 행자에게 건네주니, 행자는 가짜 호리병을 그 요괴에게 건네주었다. 행자는 보물을 바꾼 뒤에 또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였다. 배꼽 아래에서 털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 한 번을 불어 동전 하나로 변하게 하고는 불러 말했다. “어린 도동아, 이 돈을 가지고 종이 한 장을 사 오너라.” 작은 요괴가 말했다. “무엇에 쓰시려 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내가 너희와 합동문서를 쓰리라. 너희가 사람을 담는 보물 두 개를 내 하늘을 담는 보물 하나와 바꾸었으니, 훗날 마음이 고르지 못하여 세월이 오래 흐른 뒤에 무슨 후회가 생기면 불편하리라. 그러므로 이것을 써서 저마다 나누어 가지고 증거로 삼는 것이니라.” 작은 요괴가 말했다. “이곳에는 붓도 먹도 없거늘 무슨 문서를 쓰시겠소? 우리와 저마다 맹세나 하십시다.” 행자가 말했다. “어떻게 맹세한단 말이오?” 작은 요괴가 말했다. “저희의 사람을 담는 보물 두 개를 사부님의 하늘을 담는 보물 하나와 덧붙여 바꾸었사오니, 만일 후회하는 이가 있으면 일 년 내내 온갖 전염병을 앓으리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만일 후회한다면 너희와 같이 사계절 내내 병을 앓으리라.” 맹세를 마치고 몸을 한 번 솟구쳐 꼬리를 한 번 치켜들고는 남천문 앞으로 뛰어올라, 나타 태자에게 깃발을 휘둘러 도와준 공을 사례하였다. 태자는 궁으로 돌아가 지의를 바치고 깃발을 진무에게 돌려보낸 일은 여기서 더 말하지 않기로 하자. 이 행자는 창공 한가운데 우뚝 서서 저 작은 요괴를 바라보았다. 결국 어찌 처리될지는 알 길이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4회 마왕교산곤심원(魔王巧算困心猿) · 대성등나편보패(大聖騰那騙寶貝) 말하자면, 그 두 작은 요괴는 가짜 호로를 손에 쥐고 서로 다투어 보며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홀연히 고개를 드니 행자가 온데간데없었다. 영리충이 말했다. “형이여, 신선께서도 거짓말을 하시옵니다. 보물을 바꾸어 주면 우리를 건져 성선이 되게 하시겠다 하시고는, 어찌하여 인사 한마디 없이 가 버리셨나이까?” 정세귀가 말했다. “우리가 챙긴 실속이 훨씬 크옵니다. 그이께서 감히 홀연히 가 버리실 수 있사오리까? 호로를 이리 가져오시옵소서. 제가 하늘을 담아 보며 시험이나 해 보겠나이다.” 과연 그놈이 호로를 위로 던져 올리자 퍽 하고 곧장 떨어져 내렸다. 영리충이 황급히 말했다. “어찌 담지를 않사옵니까! 담지를 않사옵니다! 혹 손행자가 신선으로 변하여 가짜 호로로 우리의 진짜 보물을 바꾸어 간 것 아니오이까?” 정세귀가 말했다. “허튼소리를 마옵소서! 손행자는 저 세 봉우리 산에 눌려 있사온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겠나이까? 이리 가져오시옵소서. 제가 그 주문 몇 마디를 외워 담아 보겠나이다.” 이 요괴도 호로를 허공을 향해 던져 올리며 입으로 외웠다. “만약 반 마디라도 불응하거든 곧 영소전으로 올라가 칼날을 휘두르게 하소서!” 다 외우기도 전에 퍽 하고 또 떨어져 내렸다. 두 요괴가 말했다. “담지를 않는구나! 담지를 않아! 틀림없이 이것은 가짜로다!” 한창 떠들어 대는데, 손대성이 반 허공에서 그 소리를 낱낱이 듣고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오래 끌다가 요긴한 대목에서 기밀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 몸을 한번 떨치며 호로로 변했던 털을 거두어 제 몸에 붙이니, 그 두 요괴는 두 손이 다 텅 비고 말았다. 정세귀가 말했다. “아우여, 호로를 이리 내놓아라.” 영리충이 말했다. “형이 쥐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하늘이시여! 어찌 보이지 않사옵니까?” 둘 다 땅바닥을 마구 더듬고 풀숲을 함부로 뒤지며, 소매 속을 훑고 허리춤을 더듬어 보았으나, 그곳에 어찌 있으랴. 두 요괴는 겁에 질려 멍하니 넋을 잃고 말했다. “어찌하면 좋사오리까! 어찌하면 좋사오리까! 그때 대왕께서 보물을 우리에게 맡기시며 손행자를 잡아 오라 분부하셨거늘, 이제 행자는 잡지도 못하고 보물마저 잃어버렸으니, 우리가 어찌 감히 가서 아뢰겠나이까? 이번 매질에는 틀림없이 그 자리에서 맞아 죽고 말았나이다! 어찌하면 좋사오리까! 어찌하면 좋사오리까!” 영리충이 말했다. “우리 달아납시다.” 정세귀가 말했다. “어디로 달아나겠나이까?” 영리충이 말했다. “어디든 달아나기나 하옵시다. 도로 돌아가 보물이 없어졌다 아뢰면 단연코 목숨을 내놓는 셈이옵니다.” 정세귀가 말했다. “달아나지 말고 도로 돌아갑시다. 이대왕께서 평소에 너를 남달리 아끼시니, 내 한마디 변명을 네게 얹어 두마. 그이께서 너그럽게 넘겨 주시면 목숨을 건질 터이고, 변명이 통하지 않아 맞아 죽더라도 이곳에서 죽는 것이니, 양쪽이 다 헛되지 않도록 하자꾸나. 가세, 가세!” 그 요괴는 의논을 마치고 발길을 돌려 산으로 되돌아갔다. 행자가 반 허공에서 그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다시 몸을 흔들어 변하여 파리 한 마리가 되어 날아 내려가 작은 요괴들의 뒤를 따랐다. 그대는 묻거니와, 이미 파리로 변했으니 그 보물을 어디에 두었단 말인가? 길가에 내버려 두거나 풀숲에 숨겨 두었다가 남의 눈에 띄어 가져가게 된다면, 수고만 하고 공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오히려 몸에 지니고 있었다. 몸에 지녔다 하지만 파리가 콩알만 한 크기인데 어찌 담아 둘 수 있단 말인가? 원래 그의 보물은 그의 금고봉과 같아서 여의불보라 불리거니와, 몸에 따라 변화하여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으므로 몸 위에라도 얼마든지 담을 수 있었다. 그는 앵 하고 소리를 내며 날아 내려가 그 요괴들을 바짝 따라붙어, 얼마 지나지 않아 굴 속에 이르렀다. 보니 그 두 마왕이 거기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작은 요괴들이 우러러 꿇어앉자, 행자는 그 문설주 위에 딱 붙어 귀를 기울이며 엿들었다. 작은 요괴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그 둘째 마왕이 곧 잔을 멈추며 말했다. “너희가 왔느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왔나이다.” 또 물었다. “손행자를 잡았느냐?” 작은 요괴는 머리를 조아릴 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늙은 마왕이 다시 물어도 또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머리를 조아릴 따름이었다. 거듭거듭 캐묻자, 작은 요괴가 땅에 엎드려 말했다. “이 미천한 것의 만 번 죽을 죄를 용서하옵소서! 이 미천한 것의 만 번 죽을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희는 보물을 쥐고 산 중턱쯤까지 갔다가, 홀연히 봉래산에서 온 신선 한 분을 만났사옵니다. 그분이 우리더러 어디로 가느냐 물으시기에, 저희가 손행자를 잡으러 간다 하였더니, 그 신선께서 손행자라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이 또한 그를 미워하시며 우리를 돕겠다 하셨나이다. 저희가 그분께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닌데, 도리어 보물로 사람을 담는 사정을 그분께 말씀드리고 말았사옵니다. 그 신선께서도 호로 하나를 지니셨는데 하늘을 담는 데 능하시다 하옵니다. 저희도 헛된 욕심과 집안을 일으켜 보려는 마음에서, 그분의 것은 하늘을 담고 저희의 것은 사람을 담으니 서로 바꾸자 하였나이다. 본래 호로와 호로를 맞바꾸기로 하였는데, 영리충이 양지옥정병까지 덧붙여 드렸사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선의 물건은 범인의 손을 견디지 못하여, 막 시험하여 보는 참에 사람까지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나이다. 부디 이 미천한 것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늙은 마왕이 그 말을 듣고 우레처럼 성을 내며 말했다. “망했다! 망했다! 이것은 손행자가 신선으로 변장하여 속여 빼앗아 간 것이로다! 저 원숭이 놈은 신통이 광대하여 가는 곳마다 아는 이가 많으니, 어느 털 달린 신이 그놈을 풀어 주었는지 도로 보물까지 속여 갔구나!” 둘째 마왕이 말했다. “형님, 노여움을 거두소서. 참으로 저 원숭이 놈이 몹시 무례하구나. 재주가 있어 달아난들 그만이거늘, 어찌하여 또 보물까지 속여 갔단 말이오? 제게 그놈을 잡을 재주가 없다면, 영원히 서방 길에서 요괴 노릇을 하지 않으리라!” 늙은 마왕이 말했다. “어떻게 그놈을 잡겠느냐?” 둘째 마왕이 말했다. “우리에게 보물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두 가지를 잃었어도 아직 세 가지가 남았으니, 기어이 그놈을 잡아 내고야 말리라.” 늙은 마왕이 말했다. “그 세 가지가 무엇이냐?” 둘째 마왕이 말했다. “칠성검과 파초선은 제 몸에 지니고 있거니와, 그 황금승 한 가닥은 압룡산 압룡동에 계신 늙은 어머님께서 맡아 두고 계시느니라. 이제 작은 요괴 두 놈을 보내 어머님을 모셔 와 삼장법사의 고기를 잡수시게 하고, 아울러 황금승을 가져오라 하여 손행자를 잡게 하리다.” 늙은 마왕이 말했다. “그럼 누구를 보내겠느냐?” 둘째 마왕이 말했다. “이런 쓸모없는 놈들을 보낼 수 있으리오!” 그리고 정세귀와 영리충을 한 차례 호통쳐 몰아냈다. 두 놈이 말했다. “재수로구나! 재수로구나! 매도 맞지 않고 욕도 먹지 않고 도리어 살아났도다.” 둘째 마왕이 말했다. “늘 곁에서 모시는 시중꾼 파산호와 의해룡을 이리 불러오너라.” 두 놈이 꿇어앉자 둘째 마왕이 분부했다. “너희는 삼가도록 하여라.” 둘 다 대답했다. “삼가겠나이다.” “또한 조심하도록 하여라.” 둘 다 대답했다. “조심하겠나이다.” 또 물었다. “너희는 늙은 할머니 댁을 아느냐?” 또 둘 다 대답했다. “아옵니다.” “너희가 이미 알거든 어서 빨리 떠나거라. 늙은 할머니 계신 곳에 이르거든 두루 문안을 올리고, 삼장법사의 고기를 청하노라 전하고, 아울러 황금승을 가져오라 일러 두어라, 손행자를 잡는 데 쓰려 함이니라.” 두 요괴가 분부를 받고 급히 길을 나섰으나, 어찌 그 행자가 곁에서 하나하나 낱낱이 엿듣고 있음을 알았으랴. 그는 날개를 펴고 날아가 파산호를 따라잡아 그 몸에 딱 달라붙었다. 두세 리쯤 가다가 곧 두 놈을 때려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두 놈을 때려 죽이는 것이 무에 어려우랴마는, 그 할머니 곁에 그 황금승이 있고 또 어디 사는지도 모르니, 우선 물어나 보고 나서 때리리라.’ 과연 좋은 행자라, 앵 하고 소리를 내며 작은 요괴에게서 떨어져 나와, 저쪽을 백 걸음쯤 먼저 가게 한 뒤에 다시 몸을 흔들어 변하여 이번에는 작은 요괴 하나로 변했으니, 여우 가죽 모자를 쓰고 호랑이 가죽 치마를 거꾸로 걷어 올려 동여매고는 따라붙어 말했다. “길 가는 이시여, 나를 좀 기다려 주시옵소서.” 그 의해룡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디서 온 이오?” 행자가 말했다. “어이구 형이여, 한집안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시오?” 작은 요괴가 말했다. “우리 집에는 너란 놈이 없소.” 행자가 말했다. “어찌 내가 없단 말이오? 다시 잘 알아보시오.” 작은 요괴가 말했다. “낯이 설고도 설어, 본 적이 없소.” 행자가 말했다. “옳소, 너희는 나를 만난 적이 없지. 나는 딴 조에 속한 사람이라오.” 작은 요괴가 말했다. “딴 조의 장교시여, 과연 뵌 적이 없소. 그런데 그대는 어디로 가는 길이오?” 행자가 말했다. “대왕께서 너희 둘을 보내 늙은 할머니를 모셔 와 삼장법사의 고기를 잡수시게 하라 하시고, 아울러 황금승을 가져오라 하여 손행자를 잡으려 하시는데, 너희 둘이 걸음이 느려 혹 장난에 빠져 정사를 그르칠까 염려되셔서, 나를 또 보내 너희를 재촉하라 하셨소.” 행자가 그 일의 속내를 찌르듯 말하자 작은 요괴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행자를 진짜로 한집안 사람이라 여겨 부지런히 앞을 향해 내달렸다. 한 번에 팔구 리를 더 달렸다. 행자가 말했다. “너무 빨리 가는구려. 우리가 집에서 얼마나 떨어졌소?” 작은 요괴가 말했다. “십오육 리쯤 되었소.” 행자가 말했다. “아직 얼마나 남았소?” 의해룡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검은 숲 속이오.” 행자가 고개를 들어 보니 한 줄기 검은 숲이 멀지 않았으므로, 그 늙은 요괴가 숲 안팎에 있으리라 짐작하고는 걸음을 멈추어 작은 요괴를 먼저 앞서 걷게 한 뒤, 곧 쇠몽둥이를 꺼내어 앞으로 다가서며 발뒤꿈치를 한 번 쓸어 후렸다. 가련하게도 너무나 맥을 못 쓰고 그 두 작은 요괴는 삽시간에 고기 반죽 한 덩이가 되었거늘, 그 다리를 끌어 길가 깊은 풀숲 속에 감추어 두었다. 그리고 곧 털 한 가닥을 뽑아 입김 한 번 불어 “변해라!” 하니 파산호 하나가 되거늘, 제 몸은 도로 의해룡으로 변하여 두 작은 요괴 행세를 하고 곧장 그 압룡동으로 늙은 할머니를 모시러 갔다. 이를 일러 일흔두 가지 변화의 신통이 크고, 사물을 바꾸어 내는 수단이 높다 하느니라. 서너 걸음에 숲 속으로 뛰어들어 찾아보니, 돌문 두 짝이 반쯤 열려 있었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 마지못해 크게 한 번 외쳤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이에 문을 지키던 여자 요괴 하나가 놀라 그 반쪽 문을 열며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온 이냐?” 행자가 말했다. “저는 평정산 연화동에서 늙은 할머니를 모시러 온 사자외다.” 그 여자 요괴가 말했다. “들어가시오.” 두 번째 문 아래 이르러 머리를 굽히고 안을 들여다보니, 한가운데 높은 자리에 노파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대 묻거니와 그 노파의 모습이 어떠하던가?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흰 귀밑머리는 헝클어져 솜처럼 부풀었고, 눈동자는 별빛처럼 환히 빛나며, 피부는 붉고 윤기가 돌되 주름이 많고, 이는 드문드문 빠졌으나 기운은 씩씩하였다. 얼굴은 서리 속에 시들어 가는 국화의 빛깔 같고, 몸매는 비 갠 뒤의 늙은 소나무의 모습 같았다. 머리에는 흰 명주로 땋아 모은 수건을 둘렀고, 귀에는 보석을 박은 금 귀고리를 드리웠구나. 손대성이 이를 보고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둘째 문 밖에서 낯을 가린 채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며 우는데, 그대는 묻거니와 그가 어찌하여 울었단 말인가? 설마 그 늙은 요괴가 두려웠단 말인가? 두렵다고 한들 곧 울 것은 아니거니와, 하물며 먼저 그의 보물을 꾀어 내고 또 그의 작은 요괴까지 때려 죽였거늘,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울었단 말인가? 그가 예전에 아홉 솥 기름 가마에 들어가 닷새나 이레쯤 튀겨졌어도 눈물 한 방울 흘려 본 적이 없었으되, 다만 삼장법사이 경을 구하러 가는 고초를 떠올리자 창자가 끊어지는 듯 아파 눈물을 터뜨려 크게 운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이미 재주를 드러내어 작은 요괴로 변해 이 늙은 요괴를 모시러 왔으니, 똑바로 서서 말만 하는 이치는 없고 반드시 그에게 절을 올려야 하리라. 내가 사람 구실을 하며 호걸 노릇을 한 몸이로되, 절을 올린 이는 오직 세 사람뿐이었느니라. 서천에서는 부처님께 절을 올렸고, 남해에서는 관음께 절을 올렸으며, 양계산에서는 스승님이 나를 건져 주셨기에 그분께 네 번 절을 올렸느니라. 그 스승님을 위하여 여섯 잎의 간과 폐를 부수듯 애쓰고, 세 가닥 털에 일곱 구멍 난 마음을 다 썼거늘, 경 한 권이 값이 얼마나 된다고 오늘은 나를 시켜 이 요괴에게 절을 올리게 하단 말인가. 그러나 꿇어 절하지 않으면 반드시 기밀이 새어 나가리라.’ 괴로워라! 헤아려 보면 다만 스승님이 갇혀 계신 탓에 나로 하여금 남에게 치욕을 당하게 하는구나!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안으로 뛰어들어가 우러러 꿇어앉으며 말했다. “할머니께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그 요괴가 말했다. “내 아들아, 일어나거라.” 행자가 속으로 말했다. ‘좋다! 좋다! 좋구나! 부르는 목소리가 어찌나 야무진지!’ 그 늙은 요괴가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이냐?” 행자가 말했다. “평정산 연화동이옵니다. 두 대왕의 분부를 입어 할머니를 모시러 왔사오니 삼장법사의 고기를 잡수시게 하라 하시고, 황금승을 가져오라 하시어 손행자를 잡으려 하시나이다.” 그 늙은 요괴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효성스럽기 그지없는 내 아들이로구나!” 그리고 곧 가마를 내오라 하였다. 행자가 속으로 말했다. ‘내 아들이라니! 요괴 주제에 가마까지 타는구나!’ 뒷방에서 여자 요괴 둘이 곧 향기로운 등나무 가마 한 채를 메고 나와 문 밖에 내려놓고, 푸른 명주로 휘장을 둘러 쳤다. 늙은 요괴가 몸을 일으켜 굴 밖으로 나와 가마에 앉으니, 뒤이어 어린 여자 요괴 몇이 화장 도구를 받들고, 거울걸이를 받쳐 들고, 수건을 들어 올리고, 향 합을 받쳐 들고 좌우를 모시며 따랐다. 그 늙은 요괴가 말했다. “너희는 어쩌려고 따라오느냐? 내가 내 아들 있는 곳으로 가는데, 어찌 그곳에 시중들 사람이 없을까 걱정되더냐? 너희까지 가서 공을 팔며 수다를 떨고자 함이냐? 모두 도로 돌아가거라! 문이나 닫고 집을 지켜라!” 그 어린 요괴 몇이 과연 모두 돌아가고, 가마 멜 자 둘만 남았다. 늙은 요괴가 물었다. “이리 심부름 온 녀석들의 이름이 무엇이냐?” 행자가 황급히 대답했다. “저쪽은 파산호라 하고, 저는 의해룡이라 하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너희 둘이 앞서 가며 길을 트러 가거라.” 행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참 재수 없는 일이구나! 경은 구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남의 마부 노릇을 하러 왔으니!’ 그러나 감히 맞서 버틸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서 길을 인도하며 큰소리로 네 번이나 길을 비키라 외쳤다. 오륙 리쯤 가자 그는 바위 절벽 위에 주저앉아 가마 메는 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들이 이르자 행자가 말했다. “좀 쉬어 가면 어떻겠소? 어깨가 눌려 아프구려.” 가마꾼들이 무슨 속셈인들 알겠는가. 곧 가마를 내려놓았다. 행자는 가마 뒤에서 가슴의 털 한 가닥을 뽑아 커다란 떡 하나로 변하게 하여 그것을 안고 베어 물었다. 가마꾼이 말했다. “장교시여, 무엇을 드시기에 그리 맛깔스러워 보이시오?” 행자가 말했다. “차마 말하기 부끄럽구려. 먼 길을 걸어 할머니를 모시러 오는데 상으로 받은 것도 없어 배가 고프오. 원래 가지고 온 건량이니 좀 먹고 나서 가세.” 가마꾼이 말했다. “우리에게도 좀 나누어 주시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리들 오시오, 모두 한집안 사람인데 무에 그런 계산이 필요하오?” 그 어린 요괴는 좋고 나쁨을 가릴 줄 모르고 행자를 둘러싸며 그 건량을 나누어 달라 하다가, 행자가 몽둥이를 뽑아 들어 머리를 내리쓸자 맞닿은 녀석 하나는 흐물흐물 뭉개졌다. 또 살짝 스친 녀석 하나는 죽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끙끙거렸다. 그 늙은 요괴가 신음 소리를 듣고 가마 안에서 머리를 내밀어 내다보는데, 행자가 가마 앞으로 뛰어올라 정수리를 향해 몽둥이를 한 번 내리치자 구멍 하나가 뚫리며 골수가 터져 흐르고 붉은 피가 솟구쳤다. 가마 밖으로 끌어내어 살펴보니 본래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구미호 한 마리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몹쓸 짐승 같으니! 무어라 늙은 할머니를 부르느냐! 네가 늙은 할머니라 불리거든, 마땅히 이 늙은 원숭이를 태조 할아버님이라 불러야 옳으리라!”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그 시체에게서 황금승을 뒤져 내어 소매 속에 감추며 기뻐 말했다. “저 무엄한 마왕이 무슨 재주가 있다 한들, 이제 이 세 가지 보물은 이미 성이 손이 되었구나!” 그리고 다시 털 두 가닥을 뽑아 파산호와 의해룡으로 변하게 하고, 또 두 가닥을 뽑아 가마꾼 둘로 변하게 하였으며, 제 몸은 늙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하여 가마에 앉았다. 가마를 메게 하고 곧장 오던 길을 되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화동 어귀에 이르자, 털이 변한 어린 요괴들이 모두 앞장서서 말했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안에서 문을 지키던 어린 요괴가 문을 열며 말했다. “파산호와 의해룡이 왔느냐?” 그 털이 변한 자가 말했다. “왔느니라.” “너희가 모셔 온 할머니는 어디 계시느냐?” 그 털이 변한 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가마 안에 계신 이가 아니시냐?” 어린 요괴가 말했다. “너희는 우선 기다려라. 내가 먼저 들어가 아뢰마.” 그리고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할머니께서 오셨나이다.” 두 마왕이 그 말을 듣고 곧 향을 피우는 상을 차려 맞이하라 명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기뻐 말했다. ‘재수로구나! 드디어 내가 사람 대접을 받을 차례가 되었구나! 내가 먼저 어린 요괴로 변해 늙은 요괴를 모시러 가서는 그에게 큰절 한 번을 올렸거니와, 이번에는 내가 늙은 요괴로 변하여 그놈의 어머니가 되었으니 틀림없이 네 번 절하는 예를 받으리라. 비록 대단치는 않다 해도 그 두 번의 절만은 두루 챙기는 셈이로다!’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가마에서 내려 옷을 털고 그 네 가닥의 털을 거두어 몸에 붙였다. 문을 지키던 어린 요괴가 빈 가마를 메고 문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에 그는 천천히 뒤를 따라 걸었는데, 그 몸짓이 가냘프고 조심스럽기가 아양 떠는 듯하고 허리를 꼬는 꼴이 늙은 요괴의 거동 그대로여서, 그대로 스스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또 보니 크고 작은 요괴 무리가 모두 나와 꿇어앉아 맞이하고, 북과 피리와 퉁소가 한바탕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박산로에서는 향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는 정청 한가운데로 올라가 남쪽을 등지고 앉으니, 두 마왕이 두 무릎을 꿇고 우러러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어머님, 아들이 절을 올리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내 아들아, 일어나거라.” 말하자면, 저팔계가 대들보에 매달린 채 하하 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사승이 말했다. “둘째 형님도 참 별나시옵니다! 매달려 계시다가 웃음이 나오시다니요!” 팔계가 말했다. “아우여, 내 웃음에도 까닭이 있노라.” 사승이 말했다. “무슨 까닭이오이까?” 팔계가 말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오시어 곧 쪄 잡수시려는 줄로만 알았더니, 알고 보니 할머니가 아니라 옛 사람이 온 것이었네.” 사승이 말했다. “무슨 옛 사람이란 말씀이오이까?”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필마온이 왔네.” 사승이 말했다. “어찌 그 사람인 줄 아시었나이까?” 팔계가 말했다. “허리를 굽히고는 나더러 내 아들아 일어나라 하는데, 그 뒤쪽으로 원숭이 꼬리가 쳐들렸더란 말이네. 내가 너보다 높이 매달려 있으니 똑똑히 보았노라.” 사승이 말했다. “우선 말을 삼가고 저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십시다.” 팔계가 말했다. “옳소, 옳소.” 그 손대성이 한가운데 앉아 물었다. “내 아들아, 나를 청하여 온 무슨 일이 있느냐?” 그 마왕이 말했다. 그 마왕이 말했다. “어머님, 그동안 아들들이 예를 소홀히 하여 효도를 올리지 못하였나이다. 오늘 아침 이 어리석은 형제가 동토의 삼장법사을 잡아 왔사오나 감히 함부로 먹을 수 없어, 어머님을 모셔 와 먼저 올리오니 잘 쪄서 잡수시고 수명을 늘리소서.” 행자가 말했다. “내 아들아, 삼장법사의 고기는 내가 먹고 싶지 않구나. 다만 저팔계의 귀가 몹시 맛이 좋다 하니, 잘라 내어 요리하여 내 술안주로 삼으면 좋겠노라.” 그 저팔계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여 말했다. “재수 없는 녀석 같으니!” “네가 내 귀를 잘라 먹으러 온 것이냐! 내 큰소리로 외치면 남의 귀에 거슬릴 터인데!” 아, 이 멍청이의 사정을 꿰뚫는 한마디가 원숭이 왕의 변화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때 마침 산을 순찰하던 어린 요괴 몇과 문을 지키던 요괴 무리가 일제히 밀려 들어오며 다급히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일났나이다! 손행자가 할머니를 때려 죽이고 그 할머니로 변장하여 왔나이다!” 마왕이 그 말을 듣고 어찌 변명할 새가 있으랴. 칠성검을 뽑아 빼어들고 행자의 낯을 향해 내리쳤다.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몸을 한번 흔들어 흩어지니 굴 안에 붉은 기운이 가득한가 싶더니 이미 먼저 빠져나가고 없었다. 이런 수단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거니와, 이는 곧 모이면 형체가 되고 흩어지면 기운이 되는 이치라 하겠다. 그 바람에 늙은 마왕은 혼백이 흩어질 듯 질겁을 하였고, 요괴 무리는 저마다 손가락을 물며 머리를 저었다. 늙은 마왕이 말했다. “아우여, 삼장법사과 사승과 팔계와 흰 말과 짐보따리를 모두 저 손행자에게 도로 보내 주어, 시비의 문을 닫아 버리자꾸나.” 둘째 마왕이 말했다. “형님,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제가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들여 이 계책을 부려 저 중들을 모조리 끌어다 놓았는데, 이제 형님께서 손행자의 속임수와 궤계를 그리 두려워하여 모두 도로 보내 주자 하시니, 이는 참으로 칼을 두려워하고 검을 피하는 자의 짓이요, 어찌 대장부가 할 일이리이까?” “우선 앉으시어 걱정을 거두소서. 제가 듣자니 손행자의 신통이 광대하다 하였거니와, 저는 그와 한 번 마주쳤을 뿐 아직 겨루어 보지는 못하였나이다. 갑옷을 가져오너라. 제가 그놈을 찾아 세 합을 겨루어 보리다. 만약 세 합에 그놈이 저를 이기지 못한다면 삼장법사은 여전히 우리의 먹이니라. 그러나 세 번 싸워도 제가 이기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삼장법사을 보내 주어도 늦지 않으리다.” 늙은 마왕이 말했다. “어진 아우의 말이 옳도다.” 그리고 분부했다. “갑옷을 가져오너라.” 요괴 무리가 갑옷을 메고 나오자 둘째 마왕이 단단히 차려입고 보검을 쥐고 문 밖으로 나가 크게 불렀다. “손행자야! 네가 어디로 달아났느냐?” 이때 대성은 이미 구름 속에 있다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급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다름 아닌 그 둘째 마왕이었다. 보라, 그가 어찌 차려입었는가? 머리에 쓴 봉황 투구는 섣달 눈을 업신여기고, 몸에 걸친 갑옷은 쇳빛이 번쩍이며, 허리에 두른 띠는 이무기의 힘줄이요, 흰 가죽 신목에는 매화 주름이 잡혔구나. 얼굴은 관구의 살아 있는 진군과 같고, 모습은 거령과 조금도 다를 바 없으며, 칠성검을 두 손에 받쳐 쥐었으니 성난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 위풍이 늠름하구나. 둘째 마왕이 크게 외쳤다. “손행자야! 어서 내 보물과 내 어머니를 도로 내놓아라. 그러면 네 삼장법사은 경을 구하러 가도록 살려 주리라!” 대성이 참지 못하고 욕하며 말했다. “이 무엄한 괴물아, 네 손외할아버지를 잘못 알아보는구나! 어서 빨리 내 스승님과 사제들과 흰 말과 짐보따리를 도로 내놓고, 노잣돈까지 넉넉히 챙겨 서쪽 길로 가게 하여라. 만약 이 사이로 반 마디라도 싫다는 소리가 새어 나오면, 네가 스스로 새끼줄이나 꼬아 쓰거라, 네 할아버지가 손을 댈 필요도 없도록.” 둘째 마왕이 그 말을 듣고 급히 구름을 타고 허공으로 뛰어올라 보검을 휘둘러 찌르니, 행자가 쇠몽둥이를 빼어들고 맞받아 나갔다. 두 사람이 반 허공에서 벌인 이 한판의 싸움은 참으로 볼 만하였으니, 바둑에서 적수를 만나고 장수가 좋은 인재를 만난 격이라. 바둑에서 적수를 만나면 흥취를 감추기 어렵고, 장수가 좋은 인재를 만나면 힘을 쓸 만하거늘, 저 두 신장이 맞부딪친 꼴이 마치 남산의 호랑이 싸움이요 북해의 용 다툼이로다. 용이 다투는 자리에서는 비늘 갑옷이 빛을 내고, 호랑이가 싸우는 판에서는 발톱과 이빨이 어지러이 떨어지는구나. 발톱과 이빨이 어지러이 떨어지매 은 갈고리가 흩어지고, 비늘 갑옷이 빛을 내매 쇠 비늘이 버티어 선다. 이쪽은 뒤척이고 뒤척이며 온갖 재주를 부리고, 저쪽은 오고 가며 털끝만큼도 한가한 틈이 없구나. 금고봉은 정수리에서 겨우 세 푼을 사이에 두었고, 칠성검은 명치를 노리되 한 치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다투는구나. 저쪽의 위풍은 북두성을 옥죄어 서늘하게 하고, 이쪽의 성난 기운은 우레와 번개보다도 더 험악하구나. 두 사람은 서른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행자가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생각했다. ‘이 무엄한 요괴가 그래도 이 늙은 원숭이의 쇠몽둥이를 버텨 내는구나! 내가 이미 그놈의 보물 세 가지를 얻었거늘, 이렇게까지 애써 그놈과 치고받는 것은 내 공력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냐? 차라리 호로나 정병을 꺼내 그놈을 담아 버리는 편이 훨씬 좋겠구나.’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아니다! 아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물건은 주인을 따른다 하였거늘, 만일 내가 불러도 그놈이 대답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선 황금승을 써서 머리부터 옭아매자.’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한 손으로는 몽둥이를 놀려 그의 보검을 버티어 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승을 들어 올려 던지며 쏴악 하고 소리가 나도록 그 마왕을 단단히 옭아매었다. 원래 그 마왕에게는 《긴승주》가 있고 《송승주》가 있었으니, 남을 옭아맸을 적에는 《긴승주》를 외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 편을 옭아맸을 적에는 《송승주》를 외워 몸을 다치지 않게 하였다. 그놈은 이것이 제집 물건임을 알아차리고 곧 《송승주》를 외워 승을 느슨하게 하여 빠져나오더니, 도리어 행자를 향해 집어 던져 대성을 단번에 옭아매었다. 대성이 막 《수신법》을 써서 몸을 빼내려 하는데, 그 마왕이 《긴승주》를 외워 바짝 조이는 바람에 어찌 빠져나갈 수 있으랴. 승이 목 아래까지 미끄러져 내려가니 본래 금 고리 하나가 목을 감아 옥죈 셈이었다. 그 요괴가 승을 한 번 잡아당겨 끌어내리고는, 민머리를 향해 보검으로 일고여덟 번을 내리쳤으나 행자의 두피는 조금도 붉어지지 않았다. 그 마왕이 말했다. “이 원숭이야, 네 머리가 이다지도 단단하니 내 너를 베지 않겠다. 우선 데리고 돌아가 다시 때리리라. 내 그 두 가지 보물을 어서 도로 내놓아라!” 행자가 말했다. “내가 너의 무슨 보물을 가졌기에 네가 내게 달라 하느냐?” 그 마왕이 행자의 몸을 샅샅이 뒤져 그 호로와 정병을 모두 찾아내고는, 다시 승으로 끌어 묶어 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며 말했다. “형님, 잡아 왔소.” 늙은 마왕이 말했다. “누구를 잡아 왔느냐?” 둘째 마왕이 말했다. “손행자요. 이리 와 보십시오, 이리 와 보시란 말이오.” 늙은 마왕이 얼핏 보고 행자인 줄 알아차리더니, 얼굴 가득 기쁨을 띠며 말했다. “바로 저놈이다! 저놈이다! 저놈을 긴 승으로 기둥에 단단히 매어 두고 구경이나 하자꾸나!” 과연 행자를 묶어 두고는 두 마왕이 뒷당으로 들어가 술을 마셨다. 그 대성이 기둥 밑에서 비비적거리며 움직이다가 홀연히 팔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 멍청이가 대들보에 매달린 채 하하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여, 귀는 못 잡수시게 되었소!”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아, 매달려 있으니 마음이 편하냐? 내 이제 곧 나가거든 틀림없이 너희를 구해 내리라.” 팔계가 말했다.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군! 부끄러운 줄을 몰라! 제 몸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남을 구하겠다니, 됐네, 됐어! 사부와 제자들이 한자리에서 도로 죽어야 저승에 가서 길이나 묻지!” 행자가 말했다. “허튼소리 말아라! 두고 보아라, 내가 나가는 꼴을.” 팔계가 말했다. “어디 어떻게 나가는지 두고 보겠소.” 그 대성이 입으로는 팔계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눈으로는 그 요괴들을 흘금흘금 살피고 있었다. 보니 그들이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어린 요괴 몇이 쟁반과 잔을 들고 주전자를 잡고 술을 따르며 쉬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통에 경계가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그는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곧 신통을 부렸다. 몽둥이를 슬쩍 빼내어 신선한 기운을 한 번 불며 “변해라!” 하니 순강으로 만든 줄 하나가 되거늘, 목에 걸린 그 고리를 잡아당겨 서너 번 갈아내어 두 토막을 내고, 갈아 낸 자리를 벌리고 빠져나와서는 털 한 가닥을 뽑아 가짜 몸뚱이로 변하게 하여 그 자리에 매어 두었다. 참몸은 몸을 한번 흔들어 어린 요괴 하나로 변하여 곁에 서 있었다. 팔계가 또 대들보 위에서 소리쳤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매달린 것은 가짜요, 묶어 둔 것이 진짜란 말이오!” 늙은 마왕이 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저 저팔계가 떠드는 것이 무슨 소리냐?” 행자는 이미 어린 요괴로 변한 몸으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팔계가 손행자더러 변화하여 달아나라 부추기는데, 그놈이 달아나려 하지 않으니 저러고 떠드는 것이옵니다.” 둘째 마왕이 말했다. “저팔계가 순박하다더니, 알고 보니 이다지도 순박하지 않구나! 주둥이가 많으니 몽둥이 스무 대는 맞아 마땅하리라!” 이 행자가 곧 몽둥이 하나를 가져다가 때리려 하니, 팔계가 말했다. “살살 때리시오. 조금이라도 세게 때리면 내가 또 소리를 지를 터인데, 나는 그대인 줄 아오!”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변화한 것도 다 너희를 위해서인데, 너는 어찌하여 도리어 기밀을 누설하느냐? 이 굴의 요괴들은 모두 알아보지 못하거늘, 어찌하여 유독 너만 알아보는 것이냐?” 팔계가 말했다. “당신이 얼굴은 바꾸었어도 엉덩이는 아직 바꾸지 않았소. 저 엉덩이에 두 군데 붉은 자국이 그대로 있지 않소? 그래서 내가 당신인 줄 알아보았소.” 행자는 그대로 뒤편으로 가 부엌을 기웃거리다가 솥바닥에 손을 대어 그을음을 한 움큼 묻혀 내어 두 볼기를 시커멓게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앞쪽으로 걸어 나갔다. 팔계가 이를 보고 또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가 어디로 가서 한참을 뒹굴다 왔는지, 엉덩이를 검게 만들고 왔소.” 행자는 여전히 그 곁에 서 있다가 그 보물을 훔칠 궁리를 하였으니, 참으로 눈치가 남달랐다. 그는 청으로 올라가 그 요괴에게 슬쩍 다가서며 발짓까지 해 가며 청을 올렸다. “대왕이시여, 저 손행자가 기둥에 묶인 채 이리 비비고 저리 비벼대어 저 금승을 닳게 해칠까 염려되옵니다. 좀 굵고 튼튼한 승으로 갈아매는 것이 좋겠나이다.” 늙은 마왕이 말했다. “그 말이 옳도다.” 그리고 곧 허리춤에 두른 사만대를 풀어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그 띠를 받아 가짜 행자를 묶어 두고는 그 승을 갈아 내어 똬리째 차곡차곡 소매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털 한 가닥을 뽑아 신선한 기운을 한 번 불어넣어 가짜 황금승 하나로 변하게 하고는, 두 손으로 공손히 그 요괴에게 바쳤다. 그 요괴는 술에 빠져 자세히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받아 두었다. 이를 일러 대성이 몸을 바꾸며 재주를 부려, 털로 도로 황금승을 바꾸어 냈다 하느니라. 이 보물을 손에 넣자 급히 몸을 돌려 문 밖으로 뛰어나가 본모습을 드러내고는 크게 외쳤다. “요괴들아!” 그 문을 지키던 어린 요괴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이곳에서 큰소리를 치시오?” 행자가 말했다. “어서 빨리 들어가 저 무엄한 마왕에게 자행손이 왔다고 아뢰어라.” 그 어린 요괴가 그대로 달려가 아뢰니, 늙은 마왕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손행자를 잡아 두었거늘, 어찌하여 또 자행손이 있단 말이냐?” 둘째 마왕이 말했다. “형님, 그것이 무에 두렵사옵니까? 보물은 모두 제 손에 있사오니, 제가 그 자금홍호로를 들고 나가 그놈을 담아 오리다.” 늙은 마왕이 말했다. “아우야, 조심하라.” 둘째 마왕이 호로를 들고 산문을 나서다가 홀연히 손행자와 꼭 닮았으되 다만 조금 작달막한 자를 보고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놈이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손행자의 아우요. 네가 내 형을 잡아 갔다 하기에, 너와 시비를 가리러 온 것이오.” 둘째 마왕이 말했다. “내가 잡아 굴 속에 가두어 두었느니라. 네가 이제 왔으니 필시 싸움을 걸려 하겠으나, 나는 너와 병기를 겨루지 않으리라. 다만 내 너를 한 번 불러 보리니, 네가 감히 대답하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네가 천 번을 부른대도 내 만 번을 대답하리라!” 그 마왕이 보물을 들고 허공으로 뛰어올라 밑바닥은 하늘을 향하게 하고 주둥이는 땅을 향하게 한 뒤에야 “자행손!” 하고 외쳤다. 행자는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대답하는 순간 곧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터이지.’ 그 마왕이 말했다. “어찌하여 대답하지 않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 귀가 좀 먹었는지 들리지 않는구나. 크게 불러라.” 그 요괴가 또 “자행손!” 하고 불렀다. 행자가 아래에서 손가락을 꼽아 한번 헤아려 보고는 생각했다. ‘내 참이름은 손행자요, 지어 낸 거짓이름이 자행손이니, 참이름이라면 담을 수 있어도 거짓이름이야 어찌 담겠는가.’ 그러나 그만 참지 못하고 한마디 대답하고 말았더니, 휙 하고 그 호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봉인까지 발라졌다. 원래 그 보물은 이름의 참과 거짓을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대답하는 기운을 스치기만 하면 곧 담아 가는 물건이었다. 대성이 호로 속에 들어가니 온통 칠흑같이 캄캄하였는데, 머리를 들어 위로 떠받쳐 보아도 조금도 밀려 올라가지 않고 도리어 답답하게 막혀 있으므로, 그제야 가슴이 타들어 가며 애가 타 생각했다. ‘그때 내가 산 위에서 저 두 작은 요괴를 만났을 적에, 그놈들이 내게 일러 주기를 호로든 정병이든 사람을 그 속에 담고 나면 잠시면 고름이 되어 버린다 하였거늘, 이제 혹 나를 녹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한편 마음속으로 다시 생각했다. ‘괜찮다! 나를 녹일 수 없다! 이 늙은 원숭이는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았다가 태상노군의 팔괘로 속에 들어가 마흔아흐레를 단련받아, 금으로 된 심장과 간이며 은으로 된 폐부, 쇠 같은 머리와 등, 불 같은 눈을 익혔거늘, 그런 잠깐 동안에 어찌 나를 녹일 수 있으랴? 우선 그놈을 따라 들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두고 보자!’ 둘째 마왕이 그것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형님, 잡아 왔소.” 늙은 마왕이 말했다. “누구를 잡았느냐?” 둘째 마왕이 말했다. “자행손이오. 내가 호로 속에 담아 두었소.” 늙은 마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어진 아우여, 어서 앉으라. 그대로 두고 흔들어 소리가 날 때에야 봉인을 떼어 보세.” 행자가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 몸이 이만한데 어찌 흔들자마자 소리가 나겠느냐? 온통 묽은 물이 되어야 소리가 날 터이지. 오줌을 한 바가지 누어 볼까? 그놈이 흔들어 소리가 나면 틀림없이 봉인을 떼고 뚜껑을 열 터이니, 그 빈틈을 타 도망치면 그만이지.’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아니다, 아니다! 오줌이라면 소리가 나겠지만 이 장삼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냐? 그놈들이 흔들어 볼 적에 침을 모아 입안에서 굴려 희리호리 소리를 내어 그놈을 속여 뚜껑을 열게 한 뒤, 이 늙은 원숭이가 달아나면 그만이지.’ 대성이 준비를 갖추었으나 그 요괴는 술에 빠져 흔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성이 그놈을 속여 흔들어 보게 하려고 법술을 조금 부려, 홀연히 크게 외쳤다. “하늘이여, 복숭아뼈까지 녹아 버렸구나!” 그러나 그 마왕은 흔들지 않았다. 대성이 또 외쳤다. “어머니! 허리뼈까지 다 녹아 버렸단 말이오!” 늙은 마왕이 말했다. “허리까지 녹았다면 다 녹아 버린 것이니, 봉인을 떼고 들여다보세.” 그 대성이 이 말을 듣고 곧 털 한 가닥을 뽑아 “변해라!” 하니 반 토막의 몸뚱이가 되어 호로 밑바닥에 놓이고, 참몸은 매미보다도 작은 벌레로 변하여 그 호로의 주둥이 언저리에 딱 붙었다. 둘째 마왕이 봉인을 떼어 들여다보는 사이에 대성은 벌써 밖으로 날아나가 한 번 데굴 구르고는 도로 의해룡으로 변하였다. 의해룡은 본래 늙은 할머니를 모시러 갔던 그 어린 요괴이거늘, 그놈으로 변한 뒤 곁에 가 서 있었다. 그 늙은 마왕이 호로 주둥이를 잡고 안을 들여다보니 반 토막 몸뚱이가 꿈틀거리고 있었으므로, 참인지 거짓인지 가리지도 못하고 황급히 소리쳤다. “아우야, 덮어라! 덮어라! 아직 다 녹지 않았느니라!” 둘째 마왕이 그대로 도로 봉인을 붙였다. 대성이 곁에서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 늙은 원숭이가 벌써 여기 있다는 것을 저놈들은 아직 모르는구나!’ 그 늙은 마왕이 주전자를 들어 잔에 술을 가득 따라서는 앞으로 다가서며 두 손으로 둘째 마왕에게 건네고 말했다. “어진 아우여, 내 그대에게 잔 하나를 올리리다.” 둘째 마왕이 말했다. “형님, 우리가 이미 이만큼 마셨거늘, 또 무슨 잔을 올리시렵니까?” 늙은 마왕이 말했다. “그대가 삼장법사과 팔계와 사승을 잡은 것은 그렇다 치고, 또 손행자를 옭아매고 자행손까지 담았으니, 이런 공로라면 마땅히 잔을 몇 잔이라도 더 올려야 하느니라.” 둘째 마왕은 형이 공손히 권하는데 어찌 감히 받지 않으랴마는, 한 손에 호로를 받쳐 들고 있어 다른 손으로 잔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호로를 의해룡에게 건네고 두 손으로 잔을 받았으니, 그 의해룡이 바로 손행자가 변한 몸인 줄을 어찌 알았으랴. 보라, 그가 호로를 받쳐 들고 정성껏 모시는구나. 둘째 마왕이 술을 받아 마시고 이번에는 도로 한 잔 올리려 하자, 늙은 마왕이 말했다. “회주는 필요 없네, 내 이 자리에서 그대와 함께 한 잔 하리다.” 두 사람은 이러니저러니 하며 서로 예를 다투었다. 행자가 호로를 이고 서서 눈을 떼지 않고 두 사람이 좌우로 잔을 주고받는 꼴을 살피니, 아무런 계산도 없었다. 그는 그 틈을 타 호로를 옷소매 속에 쑤셔 넣고, 털 한 가닥을 뽑아 가짜 호로를 만들어 조금도 다름없이 두 손에 받쳐 들었다. 그 마왕이 한참 동안 잔을 주고받고 나서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살피지 않고 호로를 와락 받아 쥐더니, 제각기 제자리로 올라가 편안히 앉아 다시 술을 나누었다. 손대성이 몸을 빼어 물러나 그 보물을 손에 쥐고 나서,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이 마왕이 무슨 재주가 있다 한들, 결국 호로는 도로 성이 손이로구나!” 결국 뒤에 어떻게 꾀를 부려 스승님을 구하고 요괴를 멸할지 이것만은 알 길이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5회 외도시위기정성(外道施威欺正性) · 심원획보복사마(心猿獲寶伏邪魔) “본성이 원만하고 밝으면 도는 절로 통하나니, 몸을 뒤쳐 그물에서 뛰어나왔도다. 변화를 닦아 이룸이 쉽지 않고, 장생을 단련함이 어찌 범속한 것과 같으리오. 맑음과 탁함이 몇 차례나 운을 따라 돌고, 여러 겁을 헤쳐 열어 동서에 맡겼도다. 억만 년을 소요하여도 헤아림이 없으니, 한 점 신령한 빛이 길이 허공에 머무는구나.” 이 시는 손대성이 깨달은 도의 묘함과 은연중 들어맞았다. 그는 그 요마의 참된 보물을 얻어 소매 속에 감추고는 기뻐하며 말했다. “망할 요마가 애써 나를 잡으려 하였으니, 참으로 물속에서 달을 건지려는 격이로다. 이 늙은 원숭이가 너를 잡으려 든다면 불 위에서 얼음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으리라.” 호로를 감춘 채 남몰래 문 밖으로 빠져나가 본모습을 드러내고는 목청을 돋우어 크게 외쳤다. “정괴야, 문 열어라!” 곁에 있던 작은 요괴가 말했다. “너는 또 누구기에 감히 와서 고래고래 외치느냐?” 행자가 말했다. “어서 너희 늙은 망할 요마에게 알려라. 나는 행자손이로다.” 그 작은 요괴가 급히 안으로 달려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문 밖에 무슨 행자손이라는 자가 왔사옵니다.” 큰 요마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현제여, 일이 잘못되었도다! 그놈이 한 무리를 몰고 달려들었구나! 황금승에는 손행자가 묶여 있고, 호로 속에는 자행손이 담겨 있는데, 어찌하여 또 무슨 행자손이 있다는 말이냐? 아마도 그놈의 형제들이 모두 온 모양이로다.” 둘째 요마가 말했다. “형장이여, 마음을 놓으라. 내 이 호로는 천 명도 담을 수 있느니라. 방금 자행손 하나를 담았을 뿐인데, 무슨 행자손인들 두려우리오. 내가 나가 보았으면, 아울러 한꺼번에 담아 오리라.” 큰 요마가 말했다. “아우는 조심하라.” 보라, 그 둘째 요마는 가짜 호로를 들고 지난번과 다름없이 기세등등하고 의기양양하게 문 밖으로 걸어 나와 크게 외쳤다. “너는 어디 사람이기에 감히 이곳에서 고래고래 외치느냐?” 행자가 말했다.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집은 화과산에 있고, 본관은 수렴동이로다. 천궁을 어지럽힌 까닭에 오랫동안 다툼을 그만두었노라. 이제 다행히 재앙을 벗어나 도를 버리고 승려를 따라 쓰이니, 가르침을 받들어 뇌음사로 올라가 경을 구하여 바른 깨달음으로 돌아가려 하노라. 들판의 망할 요마를 만나 도리어 신통을 부리니, 내 대당의 스님을 돌려다오. 서쪽으로 올라가 부처님 성인을 뵙게 말이다. 양쪽이 전쟁을 그치고 각자 편안한 경계를 지키거라. 이 늙은 원숭이의 속을 긁어, 늙은 목숨을 상하게 하지 말라!” 그 요마가 말했다. “너는 우선 이리 오너라. 나는 너와 싸우지는 않으리라. 다만 내가 너를 한 번 부르면, 네가 감히 대답하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대답하마. 내가 너를 부르면, 너는 대답하겠느냐?” 그 요마가 말했다. “내가 너를 부르는 것은, 내게 사람을 담을 수 있는 보배 호로가 있기 때문이니라. 네가 나를 부른들 무슨 물건이 있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나에게도 호로 하나가 있노라.” 그 요마가 말했다. “있다면 꺼내어 내게 보이라.” 행자가 곧 소매 속에서 호로를 꺼내며 말했다. “망할 요마야, 보아라!” 한 번 흔들어 보이고는 도로 소매 속에 감추었으니, 그놈이 와서 빼앗을까 두려워서였다. 그 요마는 이를 보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저놈의 호로는 어디서 났단 말이냐? 어찌 내 것과 꼭 같단 말이냐? 한 덩굴에서 열린 것이라 한들, 크기가 다르고 바르고 기울음이 같지 않을 터인데, 어찌하여 터럭만큼도 다름이 없단 말이냐?” 그리하여 그놈이 얼굴빛을 고치며 불렀다. “행자손아, 네 호로는 어디서 났느냐?” 행자는 참으로 내력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말을 받아 곧 그놈에게 한마디 물었다. “네 호로는 어디서 났느냐?” 그 요마는 그것이 계략인 줄은 모르고 다만 진실한 말인 줄로만 여겨, 내력을 처음부터 털어놓으며 말했다. “내 이 호로는 혼돈이 처음 갈라지고 하늘이 열리고 땅이 트일 적에, 태상노군이신 한 분의 늙은 조상께서 여와의 이름으로 화하여 나타나 돌을 달구어 하늘을 기우시고, 널리 염부세계를 구하셨느니라. 하늘을 기우시다가 건궁의 결 지경에 이르러, 곤륜산 기슭에 한 가닥 신령한 덩굴이 있고 그 덩굴에 이 자금홍호로가 달린 것을 보셨으니, 그것이 곧 노군께서 남기신 것으로 오늘날에 이른 것이니라.” 대성이 그 말을 듣고는 그놈의 말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 “내 호로도 바로 거기서 난 것이로다.” 요마의 두목이 말했다. “어찌 그것을 알 수 있단 말이냐?” 대성이 말했다. “맑음과 탁함이 처음 열릴 적에, 하늘은 서북이 차지 못하고 땅은 동남이 차지 못하였느니라. 태상노군이신 도조께서 여와로 화하여 나타나 하늘의 이지러짐을 온전히 메우시고, 곤륜산 기슭에 이르렀을 때 신령한 덩굴 하나가 있고 그 덩굴에 호로 두 개가 열렸느니라. 내가 얻은 것이 수놈이요, 네 것은 암놈이로다.” 그 괴물이 말했다. “수놈이니 암놈이니 말지 말고, 다만 사람을 담을 수 있으면 그것이 좋은 보배니라.” 대성이 말했다. “네 말도 옳도다. 그럼 내가 너에게 먼저 담도록 양보하마.” 그 괴물이 몹시 기뻐하며 급히 몸을 솟구쳐 공중으로 뛰어올라 호로를 들고는 “행자손!” 하고 한 번 불렀다. 대성이 듣고는 숨도 쉬지 않고 여덟아홉 번을 줄줄이 대답하였으나, 끝내 담겨 가지 않았다. 그 요마가 내려와서는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늘이여! 세상 인정만은 변하지 않는다 하였거늘! 이런 보배도 서방님을 두려워하여, 암놈이 수놈을 보고는 감히 담지 못하는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선 거두어라. 이번에는 이 늙은 원숭이가 너를 부를 차례다.” 급히 근두운을 타고 뛰어올라, 호로의 밑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주둥이를 땅으로 향하게 하여 요마를 겨누고는 “은각대왕!” 하고 불렀다. 그 괴물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다만 한마디 대답하였는데, 순식간에 그 속에 담겨 버렸다. 행자가 “태상노군께서 급급여율령으로 받들어 명하노라”는 부적을 붙여 놓고는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내 아들아, 네가 오늘은 새것도 맛보는구나!” 그는 구름을 내려놓고 호로를 들고서, 오직 스승을 구하려는 생각뿐으로 다시 연화동 어귀를 향해 갔다. 그 산은 온통 울퉁불퉁하여 평탄치 못한 길이었고, 하물며 그는 본래 안짱다리였으므로 절뚝절뚝 걸어가는 바람에 호로가 흔들려 속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대는 어찌하여 소리가 났는지 아는가? 본래 손대성은 단련을 겪은 몸이라 급히 녹일 수가 없었으나, 그 요괴는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몰 줄 안다 한들 다만 법술일 뿐이고 대체로 범태를 벗지 못하였으므로, 보배 속에 들어가자마자 녹아 버린 것이었다. 행자는 그놈이 벌써 녹았으리라고는 여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내 아들아, 오줌을 누는지, 양치질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이는 이 늙은 원숭이가 해 본 장사이니라. 이레나 여드레가 지나 묽은 국물이 될 때까지는 나도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지 않으리라. 무엇이 그리 급한가? 무슨 대수로운 일이란 말이냐? 내가 나온 것이 얼마나 쉬웠는지를 생각하면, 천 년을 두고 보지 않는 것이 마땅하련만!” 그가 호로를 들고 말을 하면서도 어느새 동굴 어귀에 이르렀다. 호로를 흔들어 보니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가 말했다. “이것은 점을 치는 통에서 나는 소리와 같으니, 도리어 점을 치기 좋구나. 이 늙은 원숭이가 한 번 점을 쳐서, 스승님이 언제나 문을 나서실 수 있을지 보자.” 보라, 그는 손으로는 쉬지 않고 흔들며, 입으로는 쉬지 않고 외웠다. “주역의 문왕이시여, 공자 성인이시여, 도화녀 선생이시여, 귀곡자 선생이시여.” 그 동굴 안의 작은 요괴들이 이를 보고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일 났사옵니다! 행자손이 둘째 대왕 할아버지를 호로에 담아 놓고 점을 치고 있사옵니다!” 그 큰 요마가 이 말을 듣고 혼백이 날아가 흩어지고 뼈가 연해져 힘줄이 저릿하여, 털썩 땅에 엎어진 채 목을 놓고 크게 울며 말했다. “현제여! 나는 너와 함께 몰래 상계를 떠나, 번갈아 속세에 의탁하여, 함께 영화를 누리고 길이 산굴의 주인이 되기를 바랐노라. 어찌 이 중놈 때문에 너의 목숨을 잃고, 나의 수족의 정을 끊게 될 줄이야 알았으리오!” 온 동굴의 요괴 무리가 일제히 통곡하였다. 저팔계가 대들보에 매달린 채 그들의 한 식구가 일제히 우는 소리를 듣다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요정이여, 우선 울음을 그치고 이 늙은 돼지의 말을 들어 보시오. 먼저 온 손행자, 다음에 온 자행손, 뒤에 온 행자손은 세 글자를 되풀이한 것일 뿐, 모두 내 사형 한 사람이오. 그는 일흔두 가지 변화가 있어 몸을 날려 들어와 보물을 훔치고 아우님을 담아 갔소. 아우님은 이미 죽었사오니, 이다지도 상가를 차릴 것 없소. 어서 솥과 부뚜막을 깨끗이 씻고, 향버섯과 표고버섯, 찻잎과 죽순, 두부와 밀글루텐, 목이버섯과 채소를 좀 장만하여, 우리 사부와 제자들을 내려오게 하여, 그대 아우님을 위해 수생경 한 권을 외워 주게 하시오.” 그 큰 요마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말했다. “저팔계가 성실하다고만 하였더니, 원래 몹시 성실하지 못한 놈이로다! 도리어 농담을 지어 나를 비웃는구나!” 그리고 작은 요괴들에게 명하였다. “우선 애도를 그치고, 저팔계를 내려다가 푹 무르게 쪄라. 내가 배불리 먹은 뒤에, 손행자를 잡으러 가서 원수를 갚으리라.” 사승이 팔계를 원망하며 말했다. “잘들 하였구려! 내가 말을 많이 하지 말라 하였거늘, 말 많은 자가 먼저 쪄서 먹히게 되었나이다!” 그 멍청이도 더러는 두려운 기색이 있었다. 곁에 있던 작은 요괴 하나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팔계는 찌기 어렵사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아미타불! 어느 형님이 음덕을 쌓으시는 것이오? 과연 찌기 어렵사옵니다.” 또 다른 요괴 하나가 말했다. “가죽을 벗기면 찌기 좋사옵니다.”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찌기 좋소! 찌기 좋소! 가죽과 뼈가 비록 거칠어도, 국물이 끓으면 곧 무르니, 외양간에서 기른 놈이오, 외양간에서 기른 놈이오!” 바로 떠들고 있는데, 앞문 밖의 작은 요괴 하나가 아뢰었다. “행자손이 또 문 앞에 와서 욕을 하고 있사옵니다!” 그 큰 요마가 또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놈이 우리에게 사람이 없다 여겨 얕보는구나!” 그가 명하였다. “아이들아, 우선 저팔계를 전처럼 도로 매달아 놓고, 보물이 몇 개나 남았는지 조사하여라.” 집사를 맡은 작은 요괴가 아뢰었다. “동굴에 아직 보물 세 개가 남아 있사옵니다.” 큰 요마가 물었다. “그 세 개가 무엇이냐?” 집사가 아뢰었다. “칠성검과 파초선, 그리고 양지옥정병이 남아 있사옵니다.” 큰 요마가 말했다. “그 병은 쓸모가 없느니라. 본래 사람을 불러 대답하면 담기는 것인데, 도리어 주문을 그 손행자에게 가르쳐 주어, 제 친아우를 담아 가게 하였노라. 그것은 쓰지 말고 집에 두어라. 어서 검과 부채를 가져오너라.” 그 집사가 곧 두 보물을 큰 요마에게 바쳤다. 큰 요마는 파초선을 뒷목의 옷깃에 꽂고 칠성검을 손에 쥐고는, 또 크고 작은 요괴 무리를 불러 모았는데 삼백 명이 넘었다. 그들에게 하나하나 창을 쥐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밧줄을 정비하고 칼을 돌리게 하였다. 이 큰 요마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걸치고, 그 위에 붉게 타오르는 비단 도포를 덮었다. 요괴 무리가 진을 치고 나가 손대성을 잡으려 하였다. 그 손대성은 벌써 둘째 요마가 호로 속에서 녹아 버린 줄을 알고서, 그것을 단단히 묶어 매어 허리에 차고, 손에는 여의금고봉을 쥐고 싸울 준비를 하였다. 보라, 그 늙은 요괴가 붉은 기를 펄럭이며 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 차림새가 어떠하였는가 하면 이러하였다. 머리의 투구 술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허리의 띠는 아침노을처럼 선명하도다. 몸에 입은 갑옷은 용의 비늘을 쌓은 듯하고, 그 위에 걸친 붉은 도포는 맹렬한 불이 타는 듯하도다. 둥근 눈을 부릅뜨면 번개가 번쩍이고, 강철 수염이 날리면 어지러운 연기가 흩날리는구나. 칠성보검을 가볍게 손에 쥐고, 파초선을 어깨에 반쯤 가리었도다. 걸음은 바다와 산을 떠나는 흐르는 구름 같고, 목소리는 산천을 뒤흔드는 벼락 같구나. 위풍이 늠름하여 하늘의 장수도 업신여기고, 성을 내어 요괴 무리를 이끌고 굴 앞으로 나왔도다. 그 큰 요마가 급히 작은 요괴들에게 진세를 벌이라고 명하고는 욕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놈아, 몹시 무례하도다! 내 아우를 해치고 내 수족을 상하게 하니, 참으로 가증스럽도다!” 행자가 욕하며 말했다. “이 죽을 괴물아! 너는 요정 하나의 목숨을 아끼면서, 내 스승님과 사제, 말까지 넷이나 되는 산 목숨을 까닭 없이 동굴에 매달아 놓았으니, 내 마음이 어찌 참으며, 이치와 인정이 어찌 달가우랴! 어서 내보내어 내게 돌려주고, 노잣돈을 넉넉히 보태어, 기쁘게 이 늙은 원숭이를 떠나보내거라. 그리하면 이 늙은 요괴의 개 목숨까지도 살려 주리라!” 그 괴물이 어찌 변명을 용납하랴. 보검을 들어 머리 위로 내리쳤고, 이 대성이 쇠몽둥이를 들어 맞받아쳤다. 이 한바탕 싸움은 동굴 문 밖에서 실로 통쾌하였도다! 여의금고봉과 칠성검이 서로 부딪쳐 노을빛이 번개처럼 번쩍이고, 아스라이 이는 냉기가 사람을 차게 몰아치며, 널리 퍼진 어두운 구름이 고개와 둑을 가리는구나. 저쪽은 모두 수족의 정 때문에 조금도 선하게 놓아 주지 않고, 이쪽은 오직 경을 구하는 중 때문에 터럭만큼도 늦춤을 용납하지 않도다. 두 집안이 저마다 같은 원한을 품고, 두 곳이 언제나 노여움과 원망을 품었구나. 다만 싸우기를 하늘과 땅이 어두워 귀신이 놀랄 만큼 하였으니, 해는 흐리고 연기는 자욱하여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듯하였도다. 이쪽은 이를 갈며 옥못을 갈고, 저쪽은 눈을 부릅뜨며 금빛 불꽃을 날리는구나. 한 번 오고 한 번 가며 영웅을 뽐내고, 몽둥이와 검이 쉬지 않고 뒤집히는구나. 이 큰 요마가 대성과 스무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자, 그가 검 끝으로 한 번 가리키며 “작은 요괴들아, 다 함께 오너라!” 하고 외쳤다. 그 삼백여 정예가 일제히 몰려들어 행자를 가운데 포위하였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몽둥이 하나로 왼쪽으로 돌격하고 오른쪽으로 치받으며, 뒤를 막고 앞을 가리었다. 그 작은 요괴들도 모두 재주가 있어 치면 칠수록 달라붙어, 마치 솜뭉치가 몸을 감는 듯이 허리를 껴안고 다리를 잡아당기며, 물러설 줄을 몰랐다. 대성이 당황하여 곧 신외신법을 써서, 왼쪽 옆구리의 터럭을 한 웅큼 뽑아 잘게 씹어 뿜으며 “변하여라!” 하고 외쳤다. 한 올 한 올이 모두 행자로 변하였다. 보라, 그는 큰 놈은 몽둥이를 휘두르고, 작은 놈은 주먹을 돌리며, 더 작은 놈은 손댈 곳이 없어져 복사뼈를 껴안고 힘줄을 씹어 물었다. 그 작은 요괴들을 별이 떨어지고 구름이 흩어지듯 때려부수자, 그들이 일제히 소리쳐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일이 틀렸사옵니다! 어렵사옵니다, 참으로 어렵사옵니다! 온 땅과 산에 가득한 것이 모두 손행자이옵니다!” 이 신외법에 요괴 무리가 물러나고, 큰 요마만이 가운데 포위된 채 남아, 동으로 내달리고 서로 내달려도 나갈 문이 없었다. 그 요마가 당황하여 왼손에 보검을 쥐고 오른손을 목 뒤로 뻗어 파초선을 꺼내더니, 동남쪽 병정화를 향하여, 바로 이궁을 마주하고, 훌라 하며 부채 한 번 내리부치니, 보라, 그 땅바닥에서 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본래 이러한 보배는 아무 까닭 없이도 불을 부쳐 내는 것이었다. 그 괴물은 참으로 무정하여, 줄줄이 일고여덟 번을 부치니, 하늘을 덥히고 땅을 달구어 맹렬한 불이 치솟았다. 불이란 실로 이러하였다. 그 불은 하늘의 불이 아니요, 화로 속의 불도 아니며, 산마루의 불도 아니요, 부뚜막 밑의 불도 아니니, 바로 오행 가운데서 절로 뽑아 낸 한 점 신령한 빛의 불이로다. 이 부채도 범간에 흔히 있는 물건이 아니요, 인공으로 만들어 낸 물건도 아니니, 개벽 이래 혼돈 속에서 이루어진 진귀한 보배이로다. 이 부채로 이 불을 부치니, 환하게 타오르는 것이 번개가 붉은 비단을 찢는 듯하고, 작열하며 빛나는 것이 노을이 자주빛 비단을 날리는 듯하도다. 푸른 연기 한 가닥조차 없이, 온 산이 붉은 불꽃뿐이니, 고개 위의 소나무는 불 붙은 나무로 뒤바뀌고, 벼랑 앞의 잣나무는 등롱이 되었구나. 굴 속의 짐승은 목숨을 아껴 서로 부딪치며 동서로 내달리고, 숲 속의 날짐승은 깃털을 아껴 높이 날아 멀리 오르는구나. 이 신령한 불이 허공에 휘날려 타오르니, 돌이 문드러지고 시내가 말라 온 땅이 붉구나! 대성이 이 사나운 불을 보고서도 심장이 놀라고 담이 떨려 “큰일 났도다! 내 본신은 그려려니와, 터럭은 쓸모가 없으니, 한 번 이 불 속에 떨어지면 어찌 참으로 터럭을 태우듯 쉽지 않으랴!” 하고 말했다. 몸을 한 번 떨쳐 터럭을 거두어들여, 다만 한 올만 가짜 몸으로 변하게 하여 불을 피해 재앙을 벗어나고, 그의 진신은 피화결을 외우며 근두운을 타고 뛰어올라, 큰 불 속에서 벗어나 곧장 연화동 속으로 달려갔으니, 스승을 구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급히 문 앞에 이르러 구름을 내려놓고 보니, 동굴 문 밖에 백여 명의 작은 요괴가 모두 머리가 깨지고 발이 부러진 채 살점이 터지고 가죽이 찢겨 있었는데, 본래 모두 그의 분신법에 다친 자들로서 여기에서 끙끙 앓으며 아픔을 참고 서 있었다. 대성이 이를 보고 사나운 성질을 누르지 못하여, 쇠몽둥이를 휘둘러 길을 따라 때리며 들어갔다. 가련하게도, 사람 몸을 이루려고 애써 닦은 공덕이 꺼져, 도로 한 덩이 낡은 가죽과 터럭이 되고 말았구나! 그 대성이 작은 요괴들을 모조리 때려 없애고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가 스승을 풀어 드리려 하는데, 안쪽에 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을 보고는 손이 허둥대고 발이 바빠지며 말했다. “망했다! 망했다! 이 불이 뒤문에서부터 타올라 오니, 이 늙은 원숭이가 스승님을 구하기 어렵게 되었도다!” 바로 두려워하고 있을 때, 자세히 살펴보니, 아! 본래 불빛이 아니라 한 줄기 금빛이었다. 그가 마음을 가다듬고 안쪽을 들여다보니, 양지옥정병이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좋은 보배로다! 이 병자는 일찍이 저 작은 요괴가 산 위에서 들고 다니며 빛을 내던 것인데, 이 늙은 원숭이가 얻었다가 그 요괴가 도로 찾아간 줄 알았더니, 오늘 여기에 숨겨져 있으면서 본래 빛을 내는구나.” 보라, 그가 이 병을 훔쳐 들고 기뻐 어쩔 줄 모르면서도, 우선 스승을 구하지 않고 급히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나갔다. 막 문을 나서는데, 그 요마가 보검을 들고 부채를 쥐고서 남쪽에서 오고 있었다. 손대성이 피할 틈이 없어, 그 큰 요마가 검을 들어 머리 위로 내리치는 것을 그대로 당하였다. 대성이 급히 근두운을 타고 뛰어올라, 그림자도 흔적도 없이 달아났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그 요괴가 문 앞에 이르러 보니, 시체가 땅에 가득 널브러져 있었는데 모두 그의 수하 요정들이었다. 그는 놀라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며 목을 놓고 크게 울었다. “괴롭도다! 아프도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가증스럽도다, 원숭이는 약고 말은 사나워, 신령한 태를 옮겨 의탁하여 속세에 내려왔도다. 오직 그릇된 생각 때문에 하늘 궁궐을 떠났다가, 마침내 몸을 잊고 이 산에 떨어졌구나. 기러기가 무리를 잃고 정이 간절하고, 요괴 군사가 족속이 끊겨 눈물이 줄줄 흐르는구나. 언제나 죄업이 차서 허물의 사슬을 열고, 근본으로 돌아가 임금의 관문에 오를꼬. 그 큰 요마가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한 걸음에 한 번씩 울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세간과 살림살이는 모두 그대로인데 다만 적막할 뿐,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없었고, 슬픔이 북받쳐 더욱 처량하였다. 홀로 동굴 안에 앉아 석안 위에 몸을 엎드리고, 보검을 비스듬히 안변에 기대어 놓고, 부채를 어깨 뒤에 꽂은 채, 멍하니 잠이 들고 말았으니, 이는 바로 사람이 기쁜 일을 만나면 정신이 상쾌하고, 근심이 마음에 오르면 졸음이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손대성이 근두운을 돌려 산 앞에 서서, 스승을 구하려는 생각으로 그 정병을 허리에 단단히 매고 곧장 동굴 어귀로 가서 살펴보았다. 문 두 짝이 열려 있고, 적막하여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으므로, 곧 가만히 발을 옮겨 안쪽으로 숨어 들어갔다. 보니 그 요마는 석안에 비스듬히 기대어 곤드레만드레 잠들어 있었고, 파초선은 어깻옷에서 빠져나와 뒤통수를 반쯤 덮고 있었으며, 칠성검은 여전히 안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그가 가만히 앞으로 걸어가 부채를 뽑아 들고는 급히 몸을 돌려 휙 소리를 내며 달려 나갔다. 그런데 이 부채 자루가 그 요괴의 머리털을 긁는 바람에 그놈이 일찍 잠이 깨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손행자가 훔쳐 가는 중이었으므로, 급히 서둘러 검을 잡고 쫓아왔다. 그 대성은 벌써 문 앞으로 뛰어나가 부채를 허리에 차고, 두 손으로 쇠몽둥이를 휘둘러 그 요마와 맞서 싸웠다. 이 한바탕 싸움도 실로 통쾌하였도다. 노하여 성이 난 망할 요마 왕이여, 성난 머리털이 관을 뚫을 기세로다. 움켜잡아 통째로 삼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워, 마음속의 분을 풀 길이 없구나. 악을 쓰며 원숭이를 꾸짖었다. “네 이놈이 제법 사람을 희롱하는구나! 내 수하를 여러 명이나 죽이고, 도로 보물을 훔쳐 가다니! 이번 판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리니, 반드시 살고 죽음을 가리리라!” 대성이 요마를 꾸짖었다. “너는 참으로 분별이 없구나! 제자가 스승과 겨루려 하니, 쌓아 올린 알이 어찌 돌을 쳐서 깨뜨리겠느냐?” 보검이 오고 철봉이 가니, 두 집안이 서로 더욱 인의를 남기지 않도다. 한 번 뒤집고 두 번 되풀이하며 승부를 걸고, 세 번 돌고 네 번 되돌며 무예를 부리는구나. 이는 경을 구하는 중이 영산에 올라 부처님의 자리를 참배하려는 까닭이니, 그로 말미암아 금과 화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오행이 어지러이 흩어져 화합하는 기운을 상하게 하였도다. 위엄을 떨치고 무용을 빛내며 신통을 드러내고, 돌을 날리고 모래를 휘날리며 재주를 부리는구나. 서로 맞붙어 싸우는 사이 차츰 해가 저물어 가니, 요마의 두목이 힘이 꺾여 먼저 물러났다. 그 큰 요마는 대성과 서른 마흔 합을 싸웠는데, 하늘이 어두워지자 더는 당해 내지 못하고 패하여 진영에서 물러나, 곧장 서남쪽을 향해 압룡동으로 달아나 버렸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에 대성이 구름을 내려놓고 연화동 안으로 들어가서, 삼장법사와 팔계, 사화상을 풀어 주었다. 그 세 사람이 재앙과 위험에서 벗어나고 나서 행자에게 고마워하며 물었다. “요마는 어디로 갔느냐?” 행자가 말했다. “둘째 요마는 이미 호로에 담겼사오니, 아마 이즈음에는 녹아 버렸을 것이옵니다. 큰 요마는 방금 한바탕 싸움에 패하여 서남쪽 압룡산으로 가 버렸사옵니다. 온 동굴의 작은 요괴들은 이 늙은 원숭이의 분신법에 절반이 맞아 죽었고, 그중 패하여 돌아온 무리도 이 늙은 원숭이가 모조리 죽여 버린 뒤에야 비로소 이곳에 들어와 그대들을 풀어 드릴 수 있었나이다.” 삼장법사가 이루 다 고마워하며 말했다. “제자야, 네가 고생을 많이 하였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과연 고생이었사옵니다. 그대들은 다만 매달려서 아픔을 겪었을 뿐이오나, 이 늙은 원숭이는 발을 멈춘 적이 없사옵니다. 급히 문서를 전하는 역참의 군사보다도 더 심하여, 안팎을 되풀이하며 쉬지 않고 뛰어다녔나이다. 그놈의 보물을 훔쳤기에 비로소 요마를 물리칠 수 있었사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사형, 그 호로를 꺼내어 우리에게 좀 보이시오. 아마 둘째 요마는 이미 녹아 버렸을 것이오.” 대성이 먼저 정병을 풀어 놓고, 또 황금승과 부채를 꺼낸 뒤에, 호로를 손에 들고 말했다. “보지들 마오, 보지들 마오! 그놈이 먼저 이 늙은 원숭이를 담았을 적에, 이 늙은 원숭이가 양치질을 하는 척하여 뚜껑을 열게 꾀어 내고서야 비로소 빠져나왔노라. 우리가 절대로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하니, 그놈도 요술을 부려 달아날까 두렵도다.” 사부와 제자들이 기뻐 어쩔 줄 모르며, 그 동굴에 있는 쌀과 밀가루, 채소를 찾아내어 솥과 부뚜막을 씻고 닦아, 채식 공양을 차려 먹고 배불리 한 끼를 들었다. 그리고 동굴 안에서 편히 잠자리에 들었으니, 밤새 아무 일도 없었고, 어느덧 다시 새벽이 밝았다. 말하자면, 그 큰 요마는 곧장 압룡산으로 달려가 크고 작은 여자 요괴들을 모아 놓고, 어미를 때려 죽이고 아우를 호로에 담기며 요괴 군사를 멸하고 보물을 훔쳐 속아 빼앗긴 사연을 낱낱이 말하였다. 여자 요괴들이 일제히 크게 통곡하였다. 한참도록 슬퍼하다가 그가 말했다. “너희는 우선 슬픔을 그치라. 내 곁에 아직 이 칠성검이 있느니라. 내가 너희 여자 군사들과 함께 압룡산 뒤로 가서, 외가 친척을 빌려 오게 하여, 기어이 그 손행자를 잡아 원수를 갚으리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 밖의 작은 요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산 뒤의 늙은 외숙 할아버지가 군사 여러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사옵니다.” 큰 요마가 그 말을 듣고 급히 소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굽혀 맞이하였다. 본래 그 늙은 외숙은 그 어미의 아우로서 이름을 호아칠대왕이라 하였는데, 산을 지키던 요괴 군사가 그의 누이가 손행자에게 맞아 죽고, 누이의 모습으로 거짓 변신하여 외조카의 보물을 훔쳐 갔으며, 연일 평정산에서 맞서 싸우고 있다고 알려 온 것을 듣고서, 자기 동굴의 요괴 군사 이백여 명을 거느리고 특별히 원군으로 왔으므로, 그리하여 먼저 누이의 집에 들러 소식을 물으러 온 것이었다. 막 문에 들어서니 큰 요마가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이 보였고, 두 사람은 크게 통곡하였다. 한참을 울고 난 뒤 큰 요마가 절을 올리며 지난 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그 아칠이 크게 노하여, 곧 큰 요마에게 상복을 갈아입히고 보검을 들게 하며, 여자 요괴들을 모조리 불러 모아 한곳으로 합친 뒤, 구름과 바람을 타고 곧장 동북쪽으로 내달려왔다. 이 대성이 사승에게 아침 공양을 준비하여 먹고 길을 떠나게 하였는데, 홀연 바람 소리가 들려 문 밖으로 나가 보니, 한 무리의 요괴 군사가 서남쪽에서 오고 있었다. 행자가 크게 놀라 급히 몸을 돌려 팔계를 다급히 불렀다. “아우야, 요정이 또 구원병을 청하러 왔도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놀라서 낯빛이 변하며 말했다. “제자야, 이 지경이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마음을 놓으옵소서! 마음을 놓으옵소서! 그 보물을 모두 가져다 내게 주옵소서.” 대성이 호로와 정병을 허리에 매고, 황금승을 소매 속에 감추고, 파초선을 어깨 뒤에 꽂고, 두 손에 쇠몽둥이를 쥐고서, 사승에게는 스승을 지켜 동굴 안에 편히 앉아 있게 하고, 팔계에게는 구치파를 들게 하여 함께 동굴 밖으로 나가 맞서게 하였다. 그 괴물이 진세를 벌였는데, 맨 앞에 있는 것이 아칠대왕이었다. 그는 옥같이 흰 얼굴에 긴 수염, 강철 같은 눈썸과 칼 같은 귀를 지녔으며, 머리에는 금사슬 투구를 쓰고, 몸에는 사슬 갑옷을 입고, 손에는 방천극을 들고서 목청을 높여 욕하였다. “이 간 큰 망할 원숭이 놈아! 어찌 감히 이토록 사람을 업신여기느냐! 보물을 훔치고, 권속을 다치게 하고, 신병을 죽여 놓고도, 또 감히 오래도록 동부를 차지하고 있다니! 어서들 하나하나 목을 내밀어 죽음을 받고, 내 누이 집안의 원한을 씻어라!” 행자가 욕하며 말했다. “이 죽을 털뭉치 놈들아, 네 손외할아버지의 수단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달아나지 말라! 내 몽둥이 한 방을 받아라!” 그 괴물이 몸을 옆으로 피하며 방천극으로 얼굴을 향해 찔러 왔다. 두 사람이 산마루에서 한 번 오고 한 번 가며 서너 합을 싸웠는데, 그 괴물이 힘이 풀려 패하여 진영에서 도망쳤다. 행자가 쫓아가는데 그 큰 요마가 가로막아, 또 세 합을 겨루었다. 그런데 그 호아칠이 도로 돌아와 공격하는 것이 보였다. 이쪽에서 팔계가 보고 급히 구치파를 뽑아 들어 막았다. 하나가 하나를 막아내며 한참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자, 그 큰 요마가 한 번 크게 외쳤고, 요괴 군사들이 일제히 포위해 왔다. 말하자면, 그 삼장이 연화동 안에 앉아 있다가 땅을 울리는 함성을 듣고 말했다. “사화상아, 네가 나가서 네 사형이 이기고 지는지 살펴보아라.” 사승이 과연 항요장을 들고 나가 한 번 크게 외치며 뛰어나가서 요괴 무리를 물리쳤다. 아칠이 형세가 불리함을 보고 고개를 돌려 달아나는데, 팔계가 따라가서 등 뒤에 한 번 찍으니, 아홉 군데에서 선혈이 솟구쳐 나왔다. 가련하게도 한 점 신령한 성품이 저승길로 달려갔다. 급히 끌어다가 옷을 벗겨 보고 보니, 본래 이것도 여우 정이었다. 그 큰 요마가 외숙이 다친 것을 보고는 행자를 버려두고 보검을 들어 팔계를 내리쳤고, 팔계가갈퀴로 받아 막았다. 바로 서로 겨루고 있을 때, 사승이 가까이 달려들어와 몽둥이를 들어 내리치니, 그 요괴가 당해 내지 못하고 구름과 바람을 타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팔계와 사승이 바짝 뒤를 쫓았다. 대성이 이를 보고 급히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정병을 풀어 큰 요마를 덮어 씌우고서 “금각대왕!” 하고 불렀다. 그 괴물은 제편의 패잔병인 작은 요괴가 부르는 줄로만 여겨, 고개를 돌려 한마디 대답하였는데, 휙 소리와 함께 그 속에 담겨 들어갔다. 행자가 “태상노군께서 급급여율령으로 받들어 명하노라”는 부적을 붙였다. 보라, 그 칠성검이 티끌 위로 떨어져, 이것도 행자의 차지가 되었다. 팔계가 마주 나오며 말했다. “형님, 보검은 얻었는데 요괴는 어디 있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끝났소, 끝났소! 이미 내 이 병 속에 담겼노라.” 사승이 그 말을 듣고 팔계와 함께 몹시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요사스러운 것들을 모조리 쓸어 깨끗이 하고 동굴로 돌아와, 삼장에게 기쁜 소식을 아뢰었다. “산이 이미 깨끗해지고 요괴는 이미 없어졌사옵니다. 스승님, 말에 오르시어 길을 떠나시옵소서.” 삼장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사부와 제자들이 아침 공양을 들고 행장과 말을 수습하여, 서쪽을 향해 길을 찾아 나섰다. 한창 가고 있는데, 문득 길가에서 장님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앞으로 걸어 나와 삼장의 말고삐를 붙잡고 말했다. “중이여, 어디로 가느냐? 내 보물을 돌려다오!” 팔계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망했다! 이는 늙은 요괴가 보물을 찾으러 온 것이오!” 행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본래 태상노군이신 이노군이었다. 그는 놀라 가까이 나아가 예를 올리며 말했다. “늙은 어르신, 어디 가시는 길이오?” 그 늙은 조상이 급히 옥국보좌로 올라가 구소의 허공에 서서 불렀다. “손행자야, 내 보물을 돌려다오.” 대성이 공중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무슨 보물이오?” 노군이 말했다. “호로는 내가 단약을 담던 것이요, 정병은 내가 물을 담던 것이며, 보검은 내가 요마를 단련하던 것이요, 부채는 내가 불을 부치던 것이며, 밧줄은 내가 도포를 동이는 띠였느니라. 그 두 요괴는 하나가 내 금로를 보던 동자요, 하나가 내 은로를 보던 동자이니라. 다만 그놈들이 내 보물을 훔쳐 하계로 내려가 버려, 찾을 길이 없던 차에, 네가 이제 잡아 주었으니 공로를 얻었도다.” 대성이 말했다. “이 늙은 어르신은 참으로 무례하시오. 식구들을 제멋대로 놓아 요사스러운 짓을 하게 하였으니, 단속을 엄히 하지 못한 죄명을 물어야 마땅하오.” 노군이 말했다. “내 일이 아니니라. 사람을 그릇 원망하지 말라. 이는 해상의 보살이 내게 세 번이나 빌려 달라고 청하여, 그들을 이곳에 보내어 요마로 태어나게 하고, 너희 사부와 제자가 서쪽으로 참된 마음을 품고 가는지 살펴보게 한 것이니라.” 대성이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이 보살도 참으로 몹시 게으르고 괘씸하구나! 그때 이 늙은 원숭이를 풀어 주어 삼장을 모시고 서쪽으로 경을 구하러 가라 하였을 적에, 내가 길이 험하고 가기 어렵다 하였더니, 그가 위급한 곳에서는 몸소 와서 구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느니라. 그런데 이제 도리어 요사스러운 놈들을 시켜 해를 끼치고 있으니,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매 그 보살은 평생토록 남편이 없어야 마땅하도다! 늙은 어르신이 몸소 오시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주지 않았으리라. 그대가 그리 말하니, 가져가시오.” 그 노군이 보물 다섯 가지를 거두어 들이고, 호로와 정병의 뚜껑을 열어 두 가닥의 신령한 기운을 쏟아 내어, 손가락으로 한 번 가리키니, 도로 금과 은의 두 동자가 되어 좌우를 모시고 따랐다. 보라, 그곳에 노을빛이 만 갈래로 뻗치는구나. 아! 아스라이 함께 도솔원으로 돌아가고, 한가로이 곧장 대라천으로 올라가는구나. 결국 이 뒤에 또 무슨 일이 있으며, 손대성이 어찌 삼장법사를 보호하고 언제 서천에 이를지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6회 심원정처제연복(心猿正處諸緣伏) · 벽파방문견월명(劈破傍門見月明) 말하자면, 손행자가 구름머리를 누르고 내려와 스승님께 보살이 동자를 빌려 쓰시고 노군이 보물을 거두어 간 사연을 낱낱이 아뢰었다. 삼장법사는 거듭 감사를 드리고 나서 마음을 굳게 먹어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걸고 서쪽으로 나아갈 뜻을 세운 뒤, 안장을 끌어당겨 말에 올랐다. 저팔계가 행장을 메고 사승이 말머리를 거두며 손행자가 쇠몽둥이를 쥐고 길을 헤쳐 나아가니, 사부와 제자들은 곧장 높은 산을 내려가 전진하였다. 물가에서 자고 바람 맞으며 먹고, 서리를 뒤집어쓰고 이슬을 무릅쓰는 고생은 다 이루 말할 수 없다. 한참을 걸어가니 또 앞에 산 하나가 길을 막아섰다.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크게 외쳤다. “제자들아, 저기 산세가 높고 험하니 모름지기 조심하여 방비하라. 또 요마가 몸을 해칠까 두렵도다.” 손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헛된 생각을 마옵소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지키시면 저절로 탈이 없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서천이 어찌하여 이다지도 가기 어렵단 말이냐? 내 기억으로는 장안성을 떠나온 뒤 길 위에서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며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드는 사이 사오 년이 지났거늘, 어찌 아직도 이르지 못하는고?” 손오공이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일러도다! 일러도다! 아직 대문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였사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거짓말 마시오. 인간 세상에 그리 큰 대문이 있단 말이오?” 손오공이 말했다. “동생아, 우리는 아직 대청마루 안에서 빙빙 돌고 있사옵니다!”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 큰소리쳐 나를 겁주지 마시오. 어디 그런 큰 대청이 있단 말이오? 그런 큰 대들보는 사려 해도 팔 데가 없을 것이오.” 손오공이 말했다. “동생아, 이 늙은 원숭이가 보기에 저 푸른 하늘을 기와로 삼고 해와 달을 창살로 삼으며 사산오악을 대들보와 기둥으로 삼는다면, 천지가 마치 한 칸 트인 대청과 같을 것이니라!”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됐소! 됐소! 우리는 그저 잠시 돌다가 도로 돌아갑시다.” 손오공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 그저 이 늙은 원숭이만 따라 걸으시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쇠몽둥이를 비스듬히 메고 당승을 이끌어 산길을 헤치며 곧장 전진하였다. 그 장로가 말 위에서 멀리 바라보니 과연 훌륭한 산의 경치라,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산마루는 우뚝 솟아 북두칠성 자루에 닿을 듯하고, 나뭇가지 끝은 아스라이 구름 하늘에 이어졌구나. 푸른 안개 쌓인 속에서는 때때로 골짜기 어귀에서 원숭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어지러운 녹음 속에서는 늘 소나무 사이에서 학이 울어 대는구나. 바람을 휘파람 불며 산의 요괴가 시냇가에 서서 나무꾼을 희롱하고, 도를 이룬 여우가 벼랑 가에 앉아 사냥꾼을 놀래키는구나. 좋은 산이로다! 저 여덟 면의 우뚝한 벼랑과 사방의 험준함을 보라. 괴상하게 늙은 소나무는 푸른 일산을 휘감고, 마르고 부러진 고목에는 칡넝쿨이 걸렸구나. 샘물은 날아 흘러 찬 기운이 사람의 터럭을 파고들어 차갑고, 봉우리는 우뚝 솟아 맑은 바람이 눈을 쏘아 혼백을 놀라게 하는구나. 때로 큰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고, 늘 산새가 울어 대는구나. 고라니와 사슴이 떼를 지어 가시덤불을 헤치며 오가며 뛰놀고, 노루와 토끼가 무리를 지어 들의 먹이를 찾아 앞뒤로 내달리는구나. 풀 언덕에 멈춰 서서 한번 둘러보아도 나그네는 아무도 없고, 깊고 움푹한 곳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모두 승냥이와 이리뿐이로다. 응당 부처님이 수행하실 곳이 아니요, 온통 날짐승과 길짐승의 터전이구나. 그 장로는 부들부들 떨며 깊은 산으로 들어가니 마음이 처량하여 말고삐를 거두고 불렀다. “오공아! 내 익지로 산에 올라 맹세한 이래로 왕불유행이 성 밖까지 배웅하여 내보냈느니라. 길 위에서 삼릉자를 만나고 도중에 마두령을 재촉하여 달렸느니라. 비탈을 찾고 계곡을 돌아 형개를 구하며, 고개를 넘고 산에 올라 복령을 배알하였느니라. 방기한 이 몸은 죽력과 같기만 하니, 회향은 어느 날에야 조정을 배알하리오?” 손대성이 그 말을 듣고 껄껄거리며 빙긋이 웃어 말했다. “스승님, 염려 마옵소서. 조금도 애태우지 마옵시고 우선 마음을 놓고 나아가시옵소서. 공이 다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스승님께 돌려드리겠나이다.” 사부와 제자들이 산경치를 즐기며 발길 가는 대로 걷는데, 어느새 붉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졌다. 참으로 이러하였다. 십 리나 되는 긴 정자에는 오가는 나그네 없고, 구중천 위에는 별이 드러나는구나. 여덟 강의 배들은 모두 포구로 들어오고, 칠천 개의 고을이 모두 문을 닫는구나. 육궁과 오부의 관리들은 관아로 돌아가고, 사해와 삼강에서는 낚싯줄을 거두는구나. 두 누각 위에서 종과 북이 울리고, 한 바퀴 밝은 달이 온 천지를 가득 채우는구나. 그 장로가 말 위에서 멀리 바라보니, 저 산이 움푹한 곳에 누각이 첩첩이 솟고 전각이 겹겹이 들어서 있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들아, 이제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 다행히 저쪽에 누각이 멀지 않으니, 아마도 암자나 도관이나 절일 것이니라. 우리 모두 그리로 가서 하룻밤 묵고 내일 다시 가자꾸나.” 손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말씀이 옳사옵니다. 서두르지 마옵소서. 제가 먼저 가서 좋은지 나쁜지 살펴보겠나이다.” 그 대성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산문 하나였다.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팔자 모양 벽돌담에 붉은 분을 바르고 양쪽 문 위에는 금못을 박았구나. 첩첩한 누각은 고갯마루에 숨고 층층의 궁궐은 산속에 감추었구나. 만불각은 여래전과 마주하고 조양루는 대웅문에 응하는구나. 일곱 층 탑은 구름과 안개를 머금어 재우고, 세 분 부처님의 신령이 영광을 드러내는구나. 문수대는 가람사와 마주하고 미륵전은 대자청에 기대었구나. 산을 바라보는 누각 밖으로 푸른빛이 춤추고, 허공을 걷는 듯한 누각 위로 자줏빛 구름이 피어나는구나. 소나무 관문과 대나무 뜰은 정답게 푸르고, 방장과 선당은 곳곳이 맑구나. 아취 있고 그윽하여 즐거운 일을 바치고, 줄줄이 이어져 길마다 기쁘게 맞이하는구나. 참선하는 곳에는 선승이 강론하고 음악을 펴는 방에는 악기가 많이 울리는구나. 묘고대 위에는 담화가 떨어지고 설법단 앞에는 패엽이 돋아나는구나. 숲이 삼보의 땅을 가리고 산이 범왕궁을 에워싼 바로 그곳이로다. 쪽벽에는 등불 연기가 번쩍이고 한 줄기 향내 안개가 몽롱한구나. 손대성이 구름머리를 누르고 내려와 삼장법사에게 아뢰었다. “스승님, 과연 절이 하나 있사옵니다. 묵기에 알맞사오니 우리 가십시다.” 그 장로는 말고삐를 늦추어 곧장 앞으로 나아가 산문 밖에 이르렀다. 손오공이 말했다. “스승님, 이 절은 무슨 절이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내 말발굽이 이제야 멈추고 발끝이 등자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무슨 절이냐고 묻다니, 참으로 분별이 없구나!” 손오공이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어려서부터 중이 되시어 모름지기 유학의 책을 강론하셨을 터이고 그제야 경전의 법을 펴시어 문리라면 모두 통하시며, 그런 뒤에 당왕의 은혜를 입으셨사옵니다. 문 위에 저토록 큰 글씨가 붙어 있거늘 어찌 알아보지 못하시옵니까?” 장로가 꾸짖어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 놈아! 말이 무지하구나! 내가 막 서쪽을 향해 말을 재촉하는데 저 햇빛이 눈부시게 비추는 바람에, 문에 글씨가 있기는 하나 또 먼지와 때에 가려 흐릿하여 보지 못하였느니라.” 손오공이 그 말을 듣고 허리를 한번 쭉 펴더니 두 길 남짓하게 키가 커져서는 손으로 먼지를 쓸어 내며 말했다. “스승님, 보시옵소서.” 위에는 큰 글씨 다섯 자가 있었으니 바로 칙건 보림사였다. 손오공이 법신을 거두며 말했다. “스승님, 이 절에는 누가 들어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시겠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내가 들어가겠느니라. 너희는 얼굴이 추하고 말이 거칠며 성미가 강하고 기개가 높아, 만약 이곳 중들을 거슬러 하룻밤 묵기를 허락받지 못한다면 도리어 일이 좋지 않게 되느니라.” 손오공이 말했다. “그러하옵시다면 스승님께서 들어가시옵소서. 더 말씀 없으시면 되나이다.” 그 장로는 석장을 내려놓고 두건을 벗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곧장 산문으로 들어갔다. 양쪽 붉은 칠을 한 난간 안에 금강 한 쌍이 높이 앉아 있었는데, 빚어 만든 위의가 사납고 추하였다.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하나는 쇠 같은 얼굴에 강철 수염이 산 사람의 얼굴 같고, 하나는 성난 눈썹에 둥근 눈이 영롱한 듯하구나. 왼쪽의 주먹은 불거져 생쇠 같고 오른쪽의 손바닥은 울퉁불퉁하여 붉은 구리를 능가하는구나. 금빛 갑옷은 고리로 이어져 찬란하게 빛나고, 밝은 투구에 수놓은 띠가 바람에 나부끼는구나. 서방에는 참으로 부처님을 모신 곳이 많아, 돌 솥 가운데 향불이 붉게 타오르는구나. 삼장법사가 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길게 탄식하여 말했다. “내 동토에도 만일 누가 진흙으로 이런 큰 보살을 빚어 향을 사르며 공양한다면, 내 제자는 서천으로 가지도 않았으련만!” 한창 탄식하는 사이에 다시 두 번째 산문 안으로 들어가니 사대천왕의 상이 있었으니, 바로 지국과 다문과 증장과 광목이라, 동북서남에 따라 바람이 고르고 비가 순하다는 뜻을 맡고 있었다. 두 번째 문 안으로 들어서니 또 늙은 소나무 네 그루가 있어 나무마다 푸른 일산이 무성하게 펼쳐져 우산 모양 같았는데, 홀연히 고개를 드니 바로 대웅보전이었다. 그 장로는 합장하고 귀의하여 몸을 펴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치고 일어나 불단을 돌아 뒷문 아래 이르니, 또 거꾸로 앉은 관음보살이 남해를 널리 건너시는 상이 있었다. 그 벽 위에는 모두 훌륭한 장인이 빚어 만든 새우와 물고기와 게와 자라가 머리를 내밀고 꼬리를 드러낸 채 바다의 물결과 조수를 뛰어넘으며 장난치는 모습이었다. 장로가 또 서너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 수천수만 번 탄식하며 말했다. “가련하도다! 비늘과 갑옷을 지닌 중생들은 모두 부처님께 절하거늘, 사람이 되어서는 어찌 기꺼이 수행하지 않는고!” 한창 감탄하는 사이에 세 번째 문 안에서 도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 도인은 홀연히 삼장법사의 용모가 드물게 훌륭하고 풍채가 범상치 않음을 보고 급히 걸음을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 예를 올리며 말했다. “스승님은 어디서 오셨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는 동토 대당 황제의 분부를 받들어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을 구하러 파견된 사람이오. 이제 보방에 이르렀으나 날이 저물어가니 하룻밤 묵기를 청하노라.” 그 도인이 말했다. “스승님, 노하지 마옵소서. 제가 감히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옵니다. 저는 이곳에서 마당을 쓸고 종을 치며 잡일을 도맡는 도인이옵니다. 안에 절 살림을 맡아 보시는 늙은 스승님이 계시니 제가 들어가 한마디 아뢰겠나이다. 그분이 스승님을 모시라 하시면 제가 나와 정중히 모셔 오겠고, 모시지 말라 하시면 저는 감히 지체할 수 없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를 끼쳤구려.” 그 도인은 급히 방장으로 가 아뢰었다. “노야, 밖에 사람 하나가 왔나이다.” 그 승관은 곧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비로모를 바로 눌러 쓰고 가사를 걸친 뒤 급히 문을 열어 마중 나가 도인에게 물었다. “어디서 온 사람이냐?” 도인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정전 뒤쪽에 사람이 있지 않사옵니까?” 그 삼장법사는 머리를 드러낸 채 스물다섯 조각으로 기운 달마의를 입고, 발에는 진흙과 물을 끌어들이는 달공신을 신은 채 비스듬히 뒷문 어귀에 기대어 있었다. 승관이 이를 보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도인아, 매를 덜 맞고 싶거든 정신 차려라! 너는 내가 승관인 줄 모르느냐? 오직 성 안에서 사대부가 향을 사르러 올 때에라야 내가 나가 마중하는 법인데, 이런 중을 두고 어찌 허풍이 많고 실속이 적은 말로 나를 불러내어 마중하게 하느냐! 저 꼴을 보아하니 성실한 자가 아니요, 방외를 떠도는 중일 터인데 오늘 날이 저물었으니 묵으러 온 모양이로구나. 우리 방장에서 어찌 그가 떠들며 방해하는 것을 용납하겠느냐! 앞쪽 행랑 아래에 가 쪼그리고 앉으라 하고, 나에게 보고는 웬 말이냐!” 그리고는 몸을 돌려 들어가 버렸다. 장로가 그 말을 듣고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했다. “가련하도다! 가련하도다! 이야말로 사람이 고향을 떠나면 천해진다더니! 내 제자는 어렸을 적부터 출가하여 중이 되었거니와, 일찍이 참회를 하면서 고기를 먹으며 나쁜 마음을 낸 적도 없고, 경을 보면서 노여움을 품어 선심을 상하게 한 적도 없느니라. 또한 기와를 던지고 벽돌을 내던져 불전을 상하게 한 적도 없고, 나한의 얼굴에서 진금을 벗겨 낸 적도 없느니라. 아! 가련하도다! 어느 세상에서 천지를 거슬러 상하게 하였기에 나로 하여금 금생에 늘 좋지 못한 사람만 만나게 하는고! 중이여, 너희가 우리를 재워 주지 않는 것은 그만이라 하더라도, 어찌 또 그런 무뢰한 소리를 하여 우리더러 앞 행랑 아래에 가 쪼그리고 앉으라 하느냐? 이 말을 행자에게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말이 나가 그 원숭이 놈이 들어온다면 쇠몽둥이 한바탕에 정강이뼈를 모조리 부러뜨리고 말 것이로다!” 장로가 말했다. “됐다, 됐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은 예악을 앞세운다 하였느니라. 내 안에 들어가 그에게 한마디 물어보아 뜻이 어떠한지 보자.” 그 스승님은 발자취를 따라 그를 좇아 방장 문 안으로 들어가니, 저 승관이 옷을 벗은 채 씩씩거리며 앉아 있었는데, 경을 외는지 아니면 남의 집 법사에 쓸 글을 쓰는지 알 수 없었으며, 탁자 위에는 종이뭉치가 쌓여 있었다. 당승은 감히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뜰 가운데 서서 허리를 굽히고 크게 불렀다. “노원주시여, 제자가 문안을 올리나이다!” 그 중은 그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하였으며, 마지못해 답례를 하며 말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는 동토 대당 황제의 분부를 받들어 서천으로 가 살아 계신 부처님께 절하고 경을 구하러 파견된 사람이오. 보방을 지나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묵기를 청하노라. 내일 날이 밝기도 전에 곧 떠날 것이니, 부디 노원주께서 편의를 봐 주시구려.” 그 승관이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네가 그 당삼장이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감히 그러하옵니다. 제자가 바로 그 사람이옵니다.” 승관이 말했다. “네가 이미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면서 어찌 길조차 갈 줄을 모르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는 일찍이 귀한 곳의 길을 걸어 본 적이 없나이다.” 그가 말했다. “정서쪽으로 사오 리쯤 가면 삼십 리점이라는 곳이 있어, 그곳에 밥 파는 집이 있어 묵기가 편하니라. 이곳은 불편하여 너희처럼 먼 데서 온 중을 머물게 할 수 없다.” 삼장법사가 합장하며 말했다. “원주시여, 옛사람이 이르기를 암자와 도관과 절은 모두 우리 방외 사람의 객관이라, 산문만 보아도 쌀 서 말 몫이 나온다 하였거늘, 어찌 나를 머물게 하지 않으시니 그 무슨 까닭이옵니까?” 승관이 성난 소리로 외쳤다. “이 떠돌이 중놈아, 참으로 입이 기름지고 혀가 능청스럽구나!” 삼장법사가 말했다. “무엇이 입이 기름지고 혀가 능청스럽다는 것이옵니까?” 승관이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호랑이가 성 안에 들어오면 집집이 모두 문을 닫는다 하였느니라. 비록 사람을 물지는 않아도 지난날에 이름을 더럽혔느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어찌하여 지난날에 이름을 더럽혔단 말이오?” 그가 말했다. “지난해에 몇 무리의 행각승이 산문 어귀에 와 앉았는데, 내가 그들의 살림이 가난하여 하나같이 옷은 해지고 신은 없으며 머리는 드러나고 발은 벗은 것을 보고, 그 누추함을 가련히 여겨 곧 방장으로 모셔 들여 윗자리에 앉히었느니라. 공양을 갖추어 대접하고 또 헌 옷을 한 벌씩 빌려 주어 며칠을 머물게 하였거늘, 어찌 알았으랴, 그들이 편하고 한가로운 의식만 탐내어 떠날 생각은 아주 하지 않고 칠팔 년을 머물렀느니라. 머무는 것은 그만이라 하더라도, 또 많은 공평치 못한 일을 저질렀느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무슨 공평치 못한 일이 있었나이까?” 승관이 말했다. “내 말을 들어 보시오. 한가할 적에는 담을 따라 기와를 던지고, 답답하면 벽에서 못을 뽑아 내는구나. 추운 날에는 불을 쬔다며 창살을 꺾고, 더운 여름에는 문을 끌어다 길을 막는구나. 번포를 찢어 발싸개를 만들고, 아향을 훔쳐다 무청과 바꾸며, 늘 유리등을 들어 기름을 쏟고는 사발과 솥을 빼앗아 겨루기를 다투는구나.”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가련하도다! 내 제자가 어찌 그런 등뼈 없는 중이겠는가.’ 울고 싶었으나 절의 늙은 중이 비웃을까 두려워, 다만 남몰래 옷자락을 당겨 눈물을 닦고 분을 삭이며 소리를 죽인 채 급히 걸어 나가 세 제자를 만났다. 그 행자가 스승님의 얼굴에 노기가 서린 것을 보고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스승님, 절의 중이 스승님을 때렸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때리지는 않았느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틀림없이 때렸을 것이오. 아니라면 어찌 아직도 울먹이는 소리가 나시옵니까?” 그 행자가 말했다. “욕을 하였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욕도 하지 않았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때리지도 않고 욕도 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괴로워하시니 어찌된 일이옵니까? 혹 고향을 그리워하시는 것이오?” 당승이 말했다. “제자야, 이곳이 편치 않다고 하더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도사가 있는 곳이오?” 당승이 성을 내며 말했다. “도관에라야 도사가 있지, 절에는 다만 중이 있을 뿐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은 일을 감당하지 못하시오. 중이라면 곧 우리와 같은 무리이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이미 부처님의 모임 아래 있으면 모두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 하였거늘, 스승님은 우선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들어가 보겠나이다.” 과연 좋은 행자로다. 정수리의 금고를 한번 눌러 매만지고 허리 치마를 동여맨 뒤 쇠몽둥이를 쥐고 곧장 대웅보전으로 올라가, 저 세 분의 불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본디 흙으로 빚고 금으로 입힌 가짜 형상이거늘, 그 안에 어찌 감응이 없겠느냐! 이 늙은 원숭이가 대당의 성스러운 중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참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오늘 밤 이곳에 와 묵으려 하니 일찍 나서서 이름을 대거라! 만일 우리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면 몽둥이 한바탕으로 금빛 몸을 부수어, 너희로 하여금 본래의 흙과 진흙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이 대성이 앞에서 이를 갈며 성을 내어 함부로 떠들고 있는데, 저녁 향을 사르는 도인 하나가 향 몇 자루에 불을 붙여 부처님 앞 향로에 꽂으러 오다가, 행자가 “엣!” 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놀라 넘어졌다. 일어나 그 얼굴을 보고는 또 한 번 넘어져, 겁에 질려 데굴데굴 구르며 방장으로 달려 들어가 아뢰었다. “노야! 밖에 중 하나가 왔나이다!” “이 도인 놈들이 모두 매를 덜 맞았구나! 그이는 앞 행랑 아래에 가 쪼그리고 앉으라 하였거늘 또 무슨 보고냐! 다시 말하면 매 스무 대다!” 도인이 말했다. “노야, 이번 중은 저번 중과는 다르옵니다. 생김새가 사납고 사나우며 등뼈가 없사옵니다.” 승관이 말했다. “어떤 모양이냐?” 도인이 말했다. “둥근 눈에 처진 귀요, 얼굴 가득 터럭이 나 있고 입은 벼락을 치는 귀신의 주둥이 같사옵니다. 손에 몽둥이 하나를 쥐고 이를 갈며 성을 내어 사람을 때리려 찾고 있사옵니다.” 승관이 말했다. “내가 나가 보겠다.” 그가 곧 문을 여니 행자가 밀고 들어오는데, 참으로 추하게 생겼다. 울퉁불퉁한 광대뼈에 눈은 두 개가 누렇고 이마는 튀어나왔으며, 송곳니는 바깥으로 자라나서 마치 게과에 속한 것처럼 살은 안에 있고 뼈는 밖에 있었다. 그 늙은 중은 놀라 방장 문을 닫아 버렸다. 행자가 뒤쫓아가 “쾅” 하고 문짝을 부수며 말했다. “일찍 깨끗한 방 일천 칸을 쓸어 놓아라. 이 늙은 원숭이가 자겠다!” 승관이 방 안에 숨어 도인에게 말했다. “그가 추하게 생긴 것이 이상하더니, 원래는 큰소리를 치느라 억지로 지어 낸 저런 꼴이로구나. 여기 방장과 불전과 종고루와 양쪽 행랑을 모두 합쳐도 삼백 칸이 되지 않거늘, 저놈은 일천 칸을 쓸어 자겠다니 어디서 그런 칸수를 가져온단 말이냐?” 도인이 말했다. “스승님, 저도 간이 떨어질 만큼 놀란 사람이옵니다. 어떻게든 대답이나 하시옵소서.” 그 승관이 부들부들 떨며 크게 외쳤다. “묵으러 오신 장로시여, 이 작은 황산은 불편하오니 감히 모실 수 없사옵니다. 다른 곳으로 가 묵으시옵소서.” 행자가 몽둥이를 동이만 한 굵기로 만들어 똑바로 뜰 가운데 세워 놓고 말했다. “중이여, 불편하면 네가 이사 나가거라!” 승관이 말했다.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살아온 절이니, 사공이 사부에게 물려주고 사부가 우리에게 물려주었으며, 우리는 자손에게 오래도록 이어 주어야 하거늘, 저이는 어디서 온 무슨 짓인지 알 수 없건만 덮어놓고 우리더러 이사하란 말이오?” 도인이 말했다. “노야, 정 사정이 여의치 않사오니 이사 나가는 수밖에 없나이다. 장대가 문을 부수고 들어왔사옵니다.” 승관이 말했다. “헛소리 마라! 우리 늙은이 젊은이 합쳐 사오백 명이나 되는 중이 어디로 이사 간단 말이냐? 이사 나간다 한들 묵을 곳도 없지 않으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중이여, 옮길 곳이 없다면 하나가 나와 몽둥이 맛을 보아라!” 늙은 중이 외쳤다. “도인아, 네가 나가 나 대신 몽둥이 맛을 보고 오너라.” 그 도인이 당황하여 말했다. “할아버지나 맙소사! 저렇게 큰 장대를 피하려 제가 몽둥이 맛을 보란 말이옵니까?” 늙은 중이 말했다. “군사를 기르기를 천일이요, 쓰기는 하루라 하였거늘, 네가 어찌 나가지 않느냐?” 도인이 말했다. “저 장대야 맞는다고 말할 것도 없거니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눌려 고기죽이 되고 말 것이옵니다!” 늙은 중이 말했다. “눌린다는 말도 마라. 뜰 가운데 세워 두었으니 밤에 길을 걷다 잊고 부딪치면 이마에 큰 구멍이 뚫릴 것이니라!” 도인이 말했다. “스승님, 그렇게 무거운 줄 아시면서 어찌 제더러 나가 무슨 몽둥이 맛을 보라 하시옵니까?” 그들이 저희끼리 안에서 말다툼을 벌이자 행자가 듣고 말했다.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자들이로구나. 만일 몽둥이 한 방에 하나를 때려 죽인다면 스승님이 또 나더러 흉악한 짓을 한다고 꾸짖으실 터이니, 다른 무엇을 하나 때려 보이리라.” 홀연히 고개를 드니 방장 문 밖에 돌사자 하나가 있어, 곧 몽둥이를 들어 “쾅” 소리가 나게 한 방 갈겨 산산조각을 내었다. 그 중이 창구멍으로 이를 보고는 뼈가 풀리고 힘줄이 마비되어 황급히 침상 밑으로 기어들고, 도인은 솥 아궁이 속으로 파고들며 입으로 끊임없이 외쳤다. “노야님, 몽둥이가 무겁고 무겁나이다! 견딜 수 없나이다! 편의를 봐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중이여, 나는 너를 때리지 않겠다. 내 묻겠노니, 이 절에 중이 몇이나 있느냐?” 승관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앞뒤로 이백팔십오 개의 방이 있고, 도첩을 가진 중이 모두 오백 명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어서 가서 그 오백 명의 중을 모두 반듯하게 점호하여 긴 옷을 차려입고 나가, 내 당나라 스승님을 모셔 오너라. 그러면 너를 때리지 않겠다.” 승관이 말했다. “노야님, 때리지만 않으신다면 업어서라도 모셔 오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일찍 가거라!” 승관이 외쳤다. “도인아, 간이 떨어졌다고 말하지 마라. 염통이 터졌다 한들 어서 가서 사람들을 불러 당승 노야님을 모셔 오너라.” 그 도인은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 문을 부수지 못하여 뒤쪽 개구멍으로 기어 나가 곧장 정전으로 가서, 동쪽에서 북을 치고 서쪽에서 종을 쳤다. 종과 북이 한꺼번에 울리자 양쪽 행랑의 대소 승중이 놀라 전각으로 올라와 물었다. “이렇게 이른데 아직 저녁도 지나지 않았거늘, 무슨 일로 종을 치고 북을 치느냐?” 도인이 말했다. “어서 옷을 갈아입고 늙은 스승님을 따라 줄을 서서 산문 밖으로 나가 당나라에서 오신 노야님을 맞이하시오.” 그 중들은 참으로 반듯하게 줄을 서서 문 밖으로 나가 맞이하였다. 어떤 이는 가사를 걸치고 어떤 이는 편삼을 입었으며, 없는 이는 일구종 직철을 걸쳤고, 몹시 가난하여 긴 옷이 없는 이는 허리치마 두 폭을 이어 걸쳤다. 행자가 이를 보고 말했다. “중이여, 너희가 입은 것은 무슨 옷이냐?” 중들은 그가 흉악하게 생긴 것을 보고 말했다. “노야님, 때리지 마옵소서. 말씀드리겠나이다. 이것은 우리 성 안에서 시주받은 베인데, 이곳에는 재봉이 없어 저희가 손수 지어 한 겹으로 꿰맨 궁색한 옷이라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며 중들을 몰아 산문 밖으로 나가 꿇어앉게 하였다. 그 승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크게 외쳤다. “당나라 노야님, 방장으로 들어오시어 앉으시옵소서.” 저팔계가 이를 보고 말했다. “스승님은 몹시 무기력하시옵니다. 들어가실 적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입에 기름병을 매달았더니만, 형님은 어찌 그리 재주가 있어 저들을 꿇어앉혀 맞이하게 하였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예를 모르는구나! 속담에 이르기를 귀신도 사나운 사람을 두려워한다 하였느니라.” 당승은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는 것을 보고 몹시 마음이 편치 않아 앞으로 나서며 불렀다. “여러분, 일어나시오.” 중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노야님, 노야님의 제자께 편의를 봐 달라 말씀만 하시고 장대를 휘두르지만 않으신다면 한 달을 꿇어앉아 있사오려다.” 당승이 불렀다. “오공아, 그들을 때리지 마라.” 행자가 말했다. “때리지는 않았나이다. 때렸더라면 이때쯤 이미 뿌리가 끊어졌을 것이옵니다.” 그 중들이야말로 일어나, 말 끄는 이는 말을 끌고 짐 지는 이는 짐을 지며 당승을 메고 저팔계를 업고 사승을 부축하여, 일제히 산문 안으로 들어가 뒤쪽 방장에 이르러 차례로 앉았다. 중들이 또 절을 올리자 삼장법사가 말했다. “원주여, 일어나시오. 다시는 예를 갖추어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나와 그대는 모두 불문의 제자이오.” 승관이 말했다. “노야님은 상국의 칙사이신데, 소승이 마중을 소홀히 하였나이다. 이제 황산에 이르셨으나 속된 눈으로 존귀한 용모를 알아보지 못하고 노야님과 우연히 만나 뵈었나이다. 감히 여쭙겠나이다. 노정에서 채식을 하시옵니까, 육식을 하시옵니까? 저희가 밥을 장만해야 하겠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채식을 하노라.” 승관이 말했다. “제자여, 이 노야님은 육식을 즐기시는구나.” 행자가 말했다. “우리도 채식을 하노라. 모두 태에서 나올 때부터 채식이니라.” 그 중이 말했다. “노야님, 이처럼 사나운 장정도 채식을 하신단 말이옵니까!” 담력이 큰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또 물었다. “노야님께서 채식을 하신다니, 쌀을 얼마나 지어야 넉넉히 드시겠나이까?” 저팔계가 말했다. “인색한 중놈아! 무얼 묻느냐! 한 집에서 쌀 한 섬씩 지어라.” 그 중들은 모두 놀라 가마와 부뚜막을 씻고 방마다 차와 밥을 장만하며, 밝은 등불을 높이 들고 책상과 의자를 벌여 놓고 당승을 대접하였다. 사부와 제자들이 모두 저녁 공양을 마치자 중들이 그릇을 거두었다. 삼장법사가 감사하며 말했다. “노원주시여, 보산을 번거롭게 하였나이다.” 승관이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소홀하였사옵니다, 소홀하였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우리 사부와 제자들은 어디서 자면 되겠소?” 승관이 말했다. “노야님, 서두르지 마옵소서. 소승이 마땅히 처리하겠나이다.” 그리고 도인을 불렀다. “저쪽에 부릴 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느냐?” 도인이 말했다. “스승님, 있나이다.” 승관이 분부했다. “너희 가운데 둘은 가서 여물을 장만하여 당나라 노야님의 말을 먹이고, 몇은 앞으로 가 선당 세 칸을 깨끗이 쓸고 침상과 장막을 펴 놓아, 어서 노야님을 모셔 주무시게 하여라.” 그 도인들이 분부를 듣고 제각기 정비를 마친 뒤 당나라 노야님께 와서 주무시기를 청하였다. 사부와 제자들은 말을 끌고 짐을 지고 방장에서 나와 선당 문 어귀에 이르러 보니, 안에는 등불이 환하게 밝혀 있고 양쪽 칸에 등나무 침상 네 개가 펼쳐져 있었다. 행자가 이를 보고 여물을 장만하던 도인을 불러 여물을 옮겨다 선당 안에 놓고 흰 말을 매어 둔 뒤 도인들을 모두 나가게 하였다. 삼장법사가 가운데 앉으니, 등불 아래 양쪽으로 오백 명의 중이 줄줄이 서서 모시고 있으며 감히 곁을 떠나지 못하였다. 삼장법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러분, 돌아가시오. 내 편안히 자고 싶구려.” 중들은 결코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승관이 앞으로 나서 대중에게 분부했다. “노야님을 모셔 주무시게 한 뒤에 돌아가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것으로 이미 주무시게 된 것이니 모두 돌아가시오.” 중들이야말로 감히 흩어져 갔다. 당승이 걸음을 옮겨 문 밖으로 나가 소변을 보는데, 밝은 달이 하늘 한가운데 걸려 있었다. 그가 불렀다. “제자들아.” 행자와 저팔계와 사승이 모두 나와 곁에 서 있었다. 이에 그 달빛이 맑고 깨끗하며 옥 같은 누각이 깊고 그윽함에 감동하여, 참으로 한 바퀴 달이 높이 비추니 온 땅이 환하였거늘, 달을 마주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을 품고 옛 풍의 긴 시 한 수를 입으로 읊었다. 시에 이르기를, “밝은 혼이 하늘에 걸려 보옥 거울이 매달린 듯하고, 산과 강이 그림자를 흔들어 십분이나 온전하구나. 옥으로 꾸민 누각에는 맑은 빛이 가득하고, 얼음 거울과 은쟁반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구나. 만 리 밖 이 시간에 함께 환하게 밝고, 일 년 중 오늘 밤이 가장 환하고 선명하구나. 마치 서리 덮은 떡이 바다를 떠나온 듯하고, 얼음 바퀴가 푸른 하늘에 걸린 듯하구나. 별관의 찬 창가에는 외로운 나그네 시름겹고, 산촌의 들집에는 늙은이가 잠들었구나. 한나라 궁궐에 처음 이르러 가을 귀밑머리에 놀라고, 진나라 누각에 막 이르러 저녁 화장대를 재촉하는구나. 유량은 시를 남겨 진나라 사적에 전하고, 원굉은 잠 못 이루어 강 위로 배를 띄웠구나. 빛은 술잔 위에 떠 차가워 힘이 없고, 맑은 기운은 뜰 가운데 비쳐 신선이 굳세게 하는구나. 곳곳의 창가에서는 백설을 읊고, 집집의 뜰에서는 얼음 거문고를 타는구나. 오늘 밤 산사에서 조용히 완상하거니와, 어느 날에나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리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나서 대답했다. “스승님이시여, 스승님은 다만 달빛의 광채만 아시고 마음에 고향을 품고 계실 뿐, 달 속에 담긴 뜻이야말로 선천 법상의 법도임을 알지 못하시나이다. 달이 삼십 일에 이르면 양혼의 쇠가 다 흩어지고 음백의 물이 바퀴에 가득 차므로, 온통 검어 빛이 없나니 이를 회라 하느니라. 이때 해와 서로 사귀어 회와 삭 이틀 사이에 양광을 감응하여 잉태하느니라. 초사흘에 이르면 첫 양이 나타나고 초파일에 둘째 양이 생겨, 백 가운데 혼이 절반이 되어 그 평평함이 노끈 같으므로 이를 상현이라 하느니라. 오늘 보름에 이르러 세 양이 갖추어지므로 온전히 둥글어지니 이를 망이라 하느니라. 열엿새에 이르러 첫 음이 생기고 스무이튿날에 둘째 음이 생겨, 이때 혼 가운데 백이 절반이 되어 그 평평함이 노끈 같으므로 이를 하현이라 하느니라. 삼십 일에 이르러 세 음이 갖추어지니 또한 마땅히 회가 되느니라. 이것이 바로 선천에서 채취하여 단련하는 뜻이니라. 우리가 만약 이팔을 온양하여 구구의 공을 이룬다면, 그때는 부처 뵙기도 쉽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도 쉬우리라. 시에 이르기를, 앞 현의 뒤요 뒤 현의 앞이니, 약의 맛이 평평하고 기상이 온전하도다. 캐어 돌아와 화로에서 단련하니, 뜻을 다한 공과가 곧 서천이니라.” 그 장로가 그 말을 듣고 일시에 깨달아 참된 말씀을 환히 알아차리고는 마음 가득 기뻐하며 오공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사승이 곁에서 웃으며 말했다. “형님의 말씀이 옳기는 하오나, 다만 현 앞은 양에 속하고 현 뒤는 음에 속하며, 음 가운데 양이 절반이니 물의 쇠를 얻는다 하셨을 뿐이옵니다. 물과 불이 서로 섞여 저마다 인연이 있고, 온전히 흙 어미의 배합에 맡겨 그리됨은 더 말하지 않으셨나이다. 세 집이 함께 모여 다툼이 없으니, 물은 긴 강에 있고 달은 하늘에 있나이다.” 그 장로가 그 말을 듣고 또한 막힌 것이 트였다. 바로 이러하니 이치를 밝히면 한 구멍이 열려 천 구멍이 통하고, 무생을 깨뜨려 말하면 곧 신선이니라. 저팔계가 앞으로 나서 장로의 옷을 붙잡으며 말했다. “스승님, 쓸데없는 이야기 듣지 마시고 잠자리를 망치지 마옵소서. 이 달이라는 것이여, 이지러진 지 오래지 않아 또 둥글어지니, 내가 태어나 온전치 못한 것과 같구나. 밥 먹을 적에는 내 배가 크다고 흉을 보고, 사발을 들 때는 또 침이 묻었다 하느니라. 저희들은 영리하여 복을 닦아 왔거니와, 나는 어리석고 우둔하여 인연만 쌓았구나. 내 말씀은 스승님이 경을 얻어 삼도의 업을 갚고 나면,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저으며 곧장 하늘로 오르리라는 것이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됐다, 제자들아. 걸어오느라 수고하였으니 먼저 가서 자거라. 내 이 경전 한 권을 펴고 외우고 나서 자리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잘못 생각하셨나이다. 스승님은 어려서부터 출가하여 중이 되셨으니 어릴 적 경문 가운데 어느 권인들 익숙하지 않으시옵니까? 또 당왕의 뜻을 받들어 서천으로 올라가 부처님을 뵙고 대승의 참된 경전을 구하러 가시는 터인데, 이제 공은 이루어지지 않고 부처님은 뵙지 못하였으며 경은 얻지 못하였거늘, 스승님이 외우신다는 것은 어느 경이옵니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내가 장안을 떠나온 이래 아침마다 험한 길을 걷고 날마다 분주히 달려왔으니, 어릴 적 경문이 아마 낯설어졌을 것이니라. 다행히 오늘 밤이 한가하니 나더러 다시 익혀 보게 하여라.” 행자가 말했다. “그리 말씀하시니 우리가 먼저 자러 가겠나이다.” 그 세 사람은 저마다 등나무 침상 하나씩으로 가 누웠다. 장로는 선당 문을 닫고 은촛대의 심지를 높이 돋우며 경본을 펴 놓고 묵묵히 읽었다. 바로 이러하였다. 누각 위에 첫 북소리 울리니 인가의 연기 잦아들고, 들포구 고깃배의 불이 꺼지는 때로다. 결국 그 장로가 어떻게 절을 떠나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7회 귀왕야알당삼장(鬼王夜謁唐三藏) · 오공신화인영아(悟空神化引嬰兒) 말하자면, 삼장법사가 보림사 선방 안에 앉아 등불 아래에서 한참 동안 《양황수참》을 외우고 또 한참 동안 《공작진경》을 살펴보다가, 삼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경본을 주머니에 싸 넣고 일어나 자려 하였다.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퍼덕퍼덕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사르르 하는 거센 바람 한 줄기가 휩쓸며 불어닥쳤다. 그 장로는 등불이 꺼질까 두려워 황급히 편삼 소매로 불을 가렸으나, 등불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하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때 피로까지 몰려와 경안에 엎드려 깜박 졸았는데, 비록 눈은 감겨 몽롱하나 마음은 여전히 또렷하여, 귓가에는 창밖에서 음풍이 스치는 소리가 가늘게 울려 들려왔다. 좋은 바람이로다. 참으로 싸락싸락 스산하고 펄펄 나부끼는구나. 싸락싸락 지는 낙엽을 날리고, 펄펄 떠가는 구름을 말아 올린다. 하늘 가득한 별자리가 모두 흐릿해지고, 온 땅의 티끌과 모래가 한껏 흩날린다. 한바탕은 사납고 한바탕은 순하니, 순할 적에는 송죽이 맑은 가락을 두드리고 사나울 적에는 강호의 물결이 흐려진다. 불어 대니 산새는 깃들 곳을 잃고 목이 메어 울고, 바다 고기는 붙일 데 없어 펄쩍펄쩍 뛰는구나. 동서 관각의 문과 창이 떨어져 나가고, 앞뒤 행랑에서는 귀신이 놀라 우짖는다. 불전의 화병은 불려 땅에 떨어지고, 유리등이 흔들려 지혜의 등불이 흐릿해진다. 향로가 기울어져 향재가 사방으로 튀고, 촛대가 비뚤어져 촛불이 옆으로 기운다. 당번과 보개가 모두 흔들려 꺾이고, 종루와 고각은 뿌리째 뒤흔들린다. 그 장로가 어렴풋한 꿈속에서 바람 소리가 한차례 지나가는 것을 듣고 있는데, 선당 밖에서 희미하게 “스승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홀연히 고개를 들어 꿈속에서 바라보니, 문밖에 한 사내가 서 있었는데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흘러내리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입으로는 쉬지 않고 “스승님! 스승님!” 하고 불렀다. 삼장법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너는 도깨비나 요망한 귀신, 신괴나 요사한 마귀가 아니냐? 어찌 깊은 밤에 이리로 와 나를 희롱하려느냐? 나는 탐욕과 성냄을 품은 무리가 아니니라. 나는 본래 광명정대한 승려로서, 동토 대당의 뜻을 받들어 서천으로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자니라. 내 수하에 세 제자가 있는데, 모두 항룡복호의 영웅호걸이요 괴물을 쓸고 마귀를 없애는 장사들이니라. 그들이 너를 보기만 하면 시체를 부수고 뼈를 가루로 만들어 미진으로 변하게 하리라. 이는 내 큰 자비의 뜻이요 방편의 마음이니, 너는 일찍 몸을 숨겨 멀리 달아나고 내 선문에는 발을 들이지 말라.” 그 사람이 선당에 기대어 서서 말했다. “스승님, 저는 요마귀괴도 아니옵고 망량이나 사신도 아니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네가 그런 무리가 아니라면, 깊은 밤에 이곳에 와서는 무엇을 하려느냐?”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눈을 들어 저를 한번 보아 주옵소서.” 장로가 과연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바라보니, 아! 그의 머리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충천관을 쓰고, 허리에는 벽옥대를 두르고, 몸에는 날아오르는 용과 춤추는 봉황을 수놓은 적황포를 걸치고, 발에는 구름 무늬를 수놓은 신을 신었으며, 손에는 별을 늘어세운 백옥규를 쥐고 있었다. 얼굴은 동악장생제를 닮았고, 몸매는 문창개화군을 방불케 하였다. 삼장법사가 이를 보고 크게 놀라 안색이 변하여, 급히 몸을 굽히고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어느 조정의 폐하이시니이까? 앉으소서.” 손을 뻗어 급히 부축하려 하였으나 허공만 움켜쥐었고, 몸을 돌려 도로 앉아 다시 보니 여전히 그 사람이었다. 장로가 물었다. “폐하, 어느 곳의 황왕이시며 어느 나라의 제주이시니이까? 나라가 편치 못하여 참소하는 신하에게 학대를 받고 한밤중에 이곳으로 도망쳐 오신 것이 분명하옵니다. 무슨 말씀이든 내게 들려주옵소서.” 그제야 그 사람은 뺨에 눈물을 떨구며 옛일을 털어놓고, 눈썹에 시름을 모으며 지난 인연을 하소연하여 말했다. “스승님, 제 집은 정서쪽에 있사옵고, 이곳에서 불과 사십 리가량 떨어져 있나이다. 그쪽에 한 성지가 있으니, 바로 나라를 일으킨 터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곳을 무슨 지명이라 하오?”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께 숨기지 않고 아뢰올 것이옵니다. 짐이 그때 가업을 세우며 나라 이름을 오계국이라 고친 곳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께서 이토록 놀라 계시니,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시게 되었나이까?”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이곳은 오 년 전에 하늘이 가뭄을 내려 풀씨조차 싹을 틔우지 못하고 백성이 모두 굶어 죽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나이다.”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해 말했다. “폐하,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가 바르면 천심이 순한다 하였느니라. 필경 폐하께서 만민을 어여삐 여기지 않으신 탓이니, 이미 흉년을 만났거늘 어찌 도성을 버리고 몸을 피하려 하시나이까?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제하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쳐 오늘의 선을 다시 일으키며, 억울하게 법에 걸린 사람들을 놓아 주소서. 그리하면 저절로 천심이 화합하여 비와 바람이 순조로우리라.” 그 사람이 말했다. “나라 안의 곳간은 텅 비고 돈과 양식이 바닥나, 문무 양반이 녹봉을 받지 못하고 과인의 수라에도 고기가 없사옵니다. 우왕이 물을 다스린 일을 본받아 만민과 함께 고락을 나누고, 목욕재계하며 밤낮으로 분향하여 기도하였나이다. 그렇게 삼 년을 하였으나 겨우 강이 마르고 우물이 말라 버렸을 뿐이옵니다. 온 나라가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 홀연히 종남산에서 전진 도사 하나가 찾아왔는데,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며 돌을 금으로 바꿀 줄 아는 자이옵니다. 먼저 문무 여러 관원을 만나고 뒤에 짐을 만났기에, 즉시 그를 단에 올려 기도하게 하였더니 과연 응험이 있어, 영패가 울리는 곳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큰비가 쏟아졌나이다. 과인은 석 자 비면 넉넉하려니 하였더니, 그가 말하기를 오래 가물어서는 적시기 어렵다 하여 두 치를 더 내렸나이다. 짐이 그의 의로움을 기특히 여겨 팔배를 교환하고 형제로 칭하였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는 폐하께 천만 가지 경사가 겹친 일이옵니다.” 그 사람이 말했다. “경사가 어디서 온단 말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전진이 이런 재주를 지녔거늘, 비가 필요하면 비를 내리게 하고 금이 필요하면 금을 만들게 하면 그만일 터인데, 무엇이 모자라 도성을 떠나 이리로 오셨나이까?” 그 사람이 말했다. “짐이 그와 함께 자고 먹은 것은 겨우 이 년뿐이었나이다. 그러다 양춘의 좋은 철을 만나 붉은 살구와 고운 복숭아가 꽃을 피우고 꽃술을 터뜨리니, 집집의 사녀며 곳곳의 왕손들이 모두 봄놀이를 나섰나이다. 그 무렵 문무는 관아로 돌아가고 빈비는 깊은 궁원으로 물러갔나이다. 짐이 그 전진과 손을 잡고 천천히 어화원으로 거닐다가 팔각유리정 우물가에 이르렀는데, 그가 무슨 물건을 집어 던졌는지 우물 속에서 만 갈래 금빛이 번쩍였나이다. 무슨 보배가 있다며 짐을 우물가로 꾀어 낸 뒤, 그자가 갑자기 흉심을 품고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과인을 우물 속으로 밀어 넣고는, 돌판으로 우물 입구를 덮고 그 위에 흙을 쌓아 파초 한 그루를 옮겨 심었나이다. 가련하옵니다, 저는 이미 죽은 지 삼 년이 되었사옵고, 우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원통한 귀신이옵니다!” 삼장법사가 귀신이라 일컫는 말을 듣고 놀라 근육이 풀리고 힘이 빠지며 머리털이 곤두섰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어 그에게 물었다. “폐하, 하시는 말씀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사옵니다. 이미 죽은 지 삼 년이라 하시는데, 그 문무 여러 관원과 삼궁의 황후가 조회마다 편전에서 알현을 받으면서도 어찌 폐하를 찾지 않았단 말이오?”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그자의 재주를 말하자면 과연 세상에 드물 정도이옵니다! 짐을 해친 뒤 그 자리에서 화원 안에서 몸을 한번 흔들어 짐의 모습으로 변했는데, 터럭 하나 차이가 없사옵니다. 지금은 내 강산을 차지하고 내 국토를 남몰래 침범하였나이다. 내 양반 문무와 사백의 조관, 삼궁의 황후와 육원의 빈비까지 모두 그자의 것이 되고 말았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 참으로 유약하시오.” 그 사람이 말했다. “무엇이 유약하단 말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 그 괴물에게도 그런 신통이 있어 폐하의 모습으로 변하고 폐하의 건곤을 침범하였으되, 문무는 알아보지 못하고 후비는 깨닫지 못하니 오직 폐하만이 죽은 사정을 밝히 아시오. 어찌하여 음사의 염왕에게 갖추어 고발하여 원통한 사정을 하소연하지 않으셨나이까?” 그 사람이 말했다. “그자는 신통이 광대하고 관리들과 정분이 두터워, 도성황이 늘 그와 술자리를 함께하고 해용왕이 모두 그와 인척이며, 동악천제는 그의 좋은 벗이요 십대 염라는 그의 의형제이옵니다. 이러하니 내가 아뢸 문이 없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 음사에서 그를 고발할 힘이 없거늘, 내가 있는 양세간에는 무엇 하러 오셨나이까?” 그 사람이 말했다. “스승님, 저 같은 원혼이 어찌 감히 스승님의 문전에 오를 수 있사옵니까? 산문 앞에는 호법제천과 육정육갑, 오방게제와 사치공조, 그리고 열여덟 분의 호교가람이 안마를 바싹 따라 모시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방금 야유신이 신풍 한 차례를 일으켜 저를 이 안으로 보내 주었나이다. 그가 일러 주기를 내 삼 년 수재가 이제 끝날 때가 되었으니 스승님을 배알하러 오라 하였나이다. 또 스승님 수하에 제천대성이라는 큰 제자가 있어 괴물을 베고 마귀를 항복받는 데 능하다 하였나이다. 이제 지극한 마음으로 뵙고 간절히 청하옵나니, 부디 내 나라에 오셔서 요마를 잡아 주시고 사정과 바름을 밝혀 주옵소서. 짐은 마땅히 결초함환의 정성으로 스승님의 은혜를 갚으리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 이렇게 오신 것은 내 제자를 청하여 그 요괴를 없애 달라고 하려는 것이오?” 그 사람이 말했다. “옳소! 옳소!” 삼장법사가 말했다. “내 제자는 다른 일에는 서툴지만 요괴를 항복받고 괴물을 잡는 일이라면 그에게 꼭 들어맞는 일이니라. 폐하, 그에게 괴물을 잡게 하는 것은 좋으나 이치상 행하기 어려울까 두렵도다.” 그 사람이 말했다. “어찌 행하기 어렵단 말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괴물이 신통이 광대하여 폐하와 똑같이 변하였고, 온 조정의 문무가 하나같이 말도 화하고 마음도 순하며, 삼궁의 비빈이 하나같이 뜻이 맞고 정이 통하니, 내 제자가 재주가 있다 한들 감히 가볍게 무기를 쓰지는 못하리라. 만일 여러 관원에게 잡혀 우리더러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고 나라를 멸한다 하여 대역죄를 물어 성중에 가두어 버린다면,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니를 새기는 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뇨?” 그 사람이 말했다. “내 조정에는 아직 사람이 있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참 잘되었소! 참 잘되었소! 필시 한 대의 친왕이나 시장이 어딘가를 지키러 보내진 것이로구려.” 그 사람이 말했다. “아니옵니다. 내 본궁에 태자가 하나 있사오니, 내가 친히 낳아 세운 저장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태자는 필시 요마에게 쫓겨난 것이로구려?” 그 사람이 말했다. “아니옵니다. 태자는 금란전 위와 오봉루 가운데에서 학사와 더불어 글을 강론하기도 하고 전진과 함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나이다. 그런데 그 뒤 삼 년 동안 태자가 황궁에 들어오지 못하게 금하여 모후와 만나지도 못하게 하였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것은 무슨 까닭이오?” 그 사람이 말했다. “이는 요괴가 부린 계책이옵니다. 모자가 서로 만나 한가로운 가운데 길고 짧음을 논하다가 소식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한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둘이 얼굴을 맞대지 못하게 하여 그자가 길이길이 앉아 있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폐하의 재액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 하나 나와 서로 비슷하구려. 그때 내 아버지는 수적에게 목숨을 잃고 내 어머니는 수적에게 욕을 당하였으며, 석 달이 지나 나를 낳았느니라. 나는 물속에서 목숨을 건졌고, 다행히 금산사의 은사께서 거두어 길러 주어 사람이 되었느니라. 내 어릴 적 부모가 없던 일을 떠올리면, 이곳의 그 태자가 부모를 잃은 사정이 부끄럽고 딱하기 그지없구려!” 또 물었다. “조정에 태자가 있다 한들 내가 어찌 그를 만날 수 있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어찌 만나지 못하겠나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는 요마에게 얽매여 한 몸에서 난 어미조차 만나지 못하거늘, 나 같은 중이야 무슨 수로 만나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태자는 내일 아침 조정을 나올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물었다. “조정을 나와 무엇을 한단 말이오?” 그 사람이 말했다. “내일 아침 삼천 인마를 거느리고 매와 개를 부려 성 밖으로 사냥을 나올 터이니, 스승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만나실 수 있사옵니다. 만나거든 제 말을 그에게 일러 주옵소서. 그러면 그도 믿게 되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는 본래 육안범태라 요마에게 홀려 편전에 있는데, 어느 날인들 몇 차례나 부왕을 부르지 않으리오? 그런 그가 어찌 내 말을 믿으려 하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그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면, 표적 하나를 스승님께 남겨 두리이다.” 삼장법사가 물었다. “어떤 물건이오?” 그 사람이 손에 쥐고 있던 금상백옥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물건이 표적이 될 수 있사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물건이 어떠하오?” 그 사람이 말했다. “전진이 내 모습으로 변한 뒤로 다만 이 보배만은 변하지 못하였나이다. 그가 궁중에 들어와서는 기우하던 전진이 이 규를 가로채어 달아났다 하였고, 그 뒤 삼 년이 되도록 이 물건이 없사옵니다. 내 태자가 이를 보거든 물건을 보고 사람을 그리워하여 이 원수를 반드시 갚으려 할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좋소, 내가 맡아 두고 제자에게 분부하여 처치하게 하리다. 그런데 어디서 기다리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나도 감히 기다리지 못하옵니다. 이대로 가서 야유신에게 다시 신풍 한 차례를 부탁하여 나를 황궁 내원으로 보내 달라 하고, 내 정궁 황후에게 꿈 하나를 내려 모자가 뜻을 합하게 하고 사부와 제자들도 한마음이 되게 하리이다.” 삼장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해 말했다. “가 보시오.” 그 원혼이 머리를 조아려 작별하고 걸음을 옮겨 배웅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며 한차례 나동그라졌다. 그 바람에 삼장법사가 놀라 깨어났으니, 실로 남가일몽이었도다. 황망히 흐릿한 등잔을 마주하고 다급히 불렀다. “제자야! 제자야!” 팔계가 잠에서 깨어 말했다. “무슨 토지, 토지요? 내가 호한 노릇을 하던 때에는 오로지 사람을 잡아먹으며 세월을 보내고 고기반찬을 실컷 즐겼으니 참으로 즐거웠거늘, 하필 당신이 출가하는 바람에 우리더러 당신을 보호하며 길을 뛰라 하였지! 처음에는 그저 중이나 하자더니, 이제 와서는 종으로 부려 낮에는 보따리를 지고 말을 끌고, 밤에는 요강을 들고 발을 덥혀 주라 하니! 이 깊은 밤에 자지도 않고 또 제자를 불러 무엇 하려는 게요?”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내가 방금 상에 엎드려 졸다가 괴상한 꿈을 꾸었노라.” 행자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스승님, 꿈은 생각에서 오느니라. 스승님은 산에도 오르기 전에 요괴를 먼저 두려워하고, 또 뇌음사까지 길이 멀어 당도하지 못할까 걱정하며, 장안을 그리워하여 어느 날에나 돌아갈지 모르니, 생각이 많아 꿈도 많으니라. 이 늙은 원숭이처럼 한결같은 참마음으로 서방의 부처님을 뵙고자 하는 자에게는 꿈 하나 스며들 틈이 없느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내가 꾼 이 꿈은 고향을 그리는 꿈이 아니니라. 방금 눈을 감자 광풍 한 차례가 지나가는 사이 선방 문밖에 한 조정의 황제가 나타났는데, 스스로 오계국왕이라 일컬으며 온몸이 물에 젖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하였노라.” 하며 꿈속의 말을 하나하나 행자에게 이야기하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더 말할 것도 없소. 그가 와서 스승님께 꿈을 부탁한 것은 분명 이 늙은 원숭이에게 장사 한 건을 맡긴 것이니라. 필시 어디선가 요괴가 왕위를 빼앗고 나라를 노리고 있으니, 내가 가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 주리라. 그 요마야 내 몽둥이가 닿는 곳마다 곧 성공을 보리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그 괴물이 신통이 광대하다 하더구나.” 행자가 말했다. “광대한 게 무에 대수요! 이 늙은 원숭이가 온 줄 일찍 알면 달아날 곳조차 없으리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또 표적으로 남긴 보배가 하나 있다고 기억하노라.” 팔계가 대답했다. “스승님, 헛된 집착을 마옵소서. 꿈 하나 꾼 것을 가지고 어찌 줄곧 참말로만 여기시나이까?” 사승이 말했다. “곧은 이의 곧음을 믿지 말고, 어진 이의 어질지 못함을 모름지기 경계하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불을 켜고 문을 열어 보면 그만이옵니다.” 행자가 과연 문을 열고 모두 함께 살펴보니, 별과 달빛 아래 섬돌 처마 위에 참으로 금상백옥규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팔계가 앞으로 다가가 집어 들며 말했다. “형님, 이게 무슨 물건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는 국왕이 손에 쥐던 보배로 이름을 옥규라 하느니라. 스승님, 이 물건이 있으니 그 일이 참말인 듯하옵니다. 내일 요괴를 잡는 일은 모두 이 늙은 원숭이에게 맡기시되, 다만 스승님께서 세 가지로 재화가 낮으셔야 하리라.” 팔계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꿈 하나 꾼 것을 가지고 또 그에게 일러바치셨소. 저 원숭이가 사람을 골려 먹는 일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소? 벌써 스승님더러 세 가지로 재화가 낮다 하지 않소.” 삼장법사가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 세 가지가 무엇이냐?” 행자가 말했다. “내일 스승님께서는 물동이를 이시고, 욕을 보시며, 재앙을 당하셔야 하리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한 가지만 되어도 어려운 일인데, 세 가지야 어찌 견디시겠소?” 당승은 총명한 장로인지라 물었다. “제자야, 이 세 일을 어찌 말하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구태여 말할 것도 없소. 내가 먼저 스승님께 물건 두 개를 드리리다.” 과연 좋은 대성이라, 터럭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를 한 입 불고 “변해라!” 하고 외치니, 붉은 금칠을 한 함 하나로 변하였다. 백옥규를 그 속에 담아 두고 말했다. “스승님, 이 물건을 손에 받쳐 들고 날이 밝거든 금란가사를 걸치고 정전에 앉아 경을 외우고 계시오. 나는 그 성지가 어떤 곳인지 가 보고 오리다. 과연 요괴라면 때려 죽여 이곳에서 공적을 세우리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괜히 화를 불러들이지 않으리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옳소! 옳소!” 행자가 말했다. “그 태자가 성을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참으로 꿈대로 성 밖으로 나온다면 내가 반드시 그를 끌어다 스승님을 뵙게 하리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나를 만나거든 어찌 맞아 대답하란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그가 이를 때에 내가 먼저 알리리다. 스승님께서는 그 함 뚜껑을 조금 열어 두시고, 나는 두 치쯤 되는 작은 중으로 변해 함 속으로 들어가리니, 스승님께서는 나까지 함께 손에 받쳐 드시오. 그 태자가 절에 들어오면 반드시 부처님께 예배할 터인데, 그가 무슨 절을 하든 아랑곳하지 마시오. 스승님께서 몸도 움직이지 않으시니 틀림없이 잡아들이라 할 것이오. 그때는 잡혀 내려가며 때리는 대로 맡기시고, 묶는 대로 맡기시고, 죽이는 대로 맡기시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아! 그의 군령이 엄한데 참으로 나를 죽여 버리면 어찌 좋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시오, 내가 있지 않소? 위급한 고비에 이르면 내가 자연히 스승님을 보호하리다. 그가 물어 보거든 동토의 흠차로서 서천으로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며 보배를 바치러 가는 중이라 하시오. 그가 무슨 보배가 있느냐 물으면 금란가사를 들어 한바탕 일러 주며 이르기를, ‘이는 세 번째 보배요, 그 위로 첫째와 둘째 좋은 물건이 더 있느니라’ 하시오. 또 무엇이든 물을 때마다 이 함 속에 보배가 하나 있어 위로 오백 년, 아래로 오백 년, 가운데로 오백 년, 모두 천오백 년의 지나간 일과 앞으로 올 일을 낱낱이 안다 하시고는 이 늙은 원숭이를 꺼내 주시오. 내가 그 꿈속의 말을 태자에게 일러 주리다. 그가 믿으려 한다면 곧 가서 그 요마를 잡아 주리니, 하나는 그 부왕의 원수를 갚는 일이요, 둘은 우리가 명절을 세우는 일이니라. 그가 믿지 않거든 다시 백옥규를 내어 보이시오. 다만 그가 나이 어려 아직 알아보지 못할까 염려될 뿐이오.”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자야, 이 계책이 참으로 묘하구나! 그런데 보배 하나는 금란가사요 하나는 백옥규라 하였거늘, 네가 변한 보배는 무슨 이름이라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입제화라 하면 되리다.” 삼장법사가 그 말대로 마음속에 새겨 두었다. 사부와 제자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으니, 머리를 끄덕여 부상에서 해를 불러 내고 입김을 뿜어 하늘 가득한 별을 흩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래지 않아 동쪽 하늘이 훤히 밝아왔다. 행자가 또 팔계와 사승에게 분부하여 두 사람에게 일렀다. “중들을 어지럽히며 밖으로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 내가 성공한 뒤에 너희와 함께 가리라.” 이에 당승과 작별하고 휘파람을 불며 한 차례 공중으로 뛰어올라 불눈을 크게 뜨고 서쪽을 바라보니, 과연 성지 하나가 보였다. 어찌하여 볼 수 있었느냐 하면, 앞서 그 성지가 절에서 사십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하였으니, 높은 곳에 오르면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행자가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또 괴이한 안개와 근심 어린 구름이 자욱하고 요사한 바람과 원한 어린 기운이 어지러이 서려 있었다. 행자가 공중에서 감탄하며 말했다. “참된 임금이 보좌에 오르면 저절로 상서로운 빛과 오색 구름이 있으려니와, 요괴가 용위를 침범한 탓에 검은 기운이 치솟아 금문을 잠갔구나.” 행자가 이렇게 감탄하고 있는데, 홀연히 포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또 동문이 열리는 곳에서 인마 한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참으로 사냥 나온 군사들이라, 과연 기세가 사나웠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새벽에 금성 동쪽을 나와 나누어 낮은 풀숲을 에워싸는데, 채색 깃발이 펼쳐져 햇빛에 비치고 백마가 달리며 바람을 맞는다. 악어 가죽 북이 둥둥 울리고 표창이 마주 부딪치며, 매를 받든 군사는 맹렬하고 개를 끈 장수는 날래고 늠름하다. 화포 소리가 하늘을 진동하고 끈끈이 장대가 햇빛에 붉게 비친다. 사람마다 쇠뇌 화살을 겨누고 저마다 조각한 활을 차고, 산비탈 아래에 그물을 치며 좁은 길 가운데 밧줄을 깐다. 벼락 같은 고함 소리 한 번에 천 기병이 맹수를 에워싸니, 교활한 토끼는 몸을 보전하기 어렵고 영리한 노루도 지혜가 다한다. 여우는 목숨이 다할 팔자요 사슴도 죽음을 면치 못하며, 산꿩은 날아 달아나기 어렵고 들닭이 어찌 흉을 피하리오. 그들은 모두 산을 차지하여 맹수를 잡고 수풀을 부수며 나는 벌레를 쏘려 하는구나. 그 사람들이 성을 나와 동쪽 교외로 흩어져 걸음을 옮기는데, 오래지 않아 이십 리쯤 되는 높은 밭 지대에 이르렀다. 또 중군 영채 안에 작은 장수 하나가 보였는데,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을 걸치고 배에는 꽃무늬 띠를 열여덟 단으로 동여맸으며, 손에는 청봉보검을 쥐고 황표마를 타고 허리에는 팽팽히 당긴 활을 찼다. 참으로 은은한 군왕의 상이며 늠름한 제주의 용모요, 규모가 범상한 무리가 아니며 거동에 참된 용이 드러났다. 행자가 공중에서 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저놈이 바로 황제의 태자로구나. 내 한번 놀려 보리다.” 과연 좋은 대성이라, 구름머리를 내려 군중 태자의 말 앞으로 뛰어들어 몸을 한번 흔들어 흰 토끼 한 마리로 변해서는 태자의 말 앞에서 마구 뛰어다녔다. 태자가 보고 마음이 흡족하여 화살을 집어 들고 활시위가 팽팽하도록 활을 당겨 쏘니, 화살 하나가 그 토끼에 정통으로 명중하였다. 이는 본래 그 대성이 일부러 맞아 준 것이니, 눈은 빠르고 손은 날래어 그 화살촉을 와락 잡아쥐고 깃 장식만 앞쪽에 떨어뜨린 뒤 발을 놓아 달아났다. 태자는 화살이 옥토끼에 맞은 것을 보고 말머리를 돌려 홀로 앞장서서 쫓아왔다. 말이 달리는 것이 빠르면 행자는 바람처럼 달리고, 말이 달리는 것이 더디면 행자는 천천히 걸어 언제나 그 앞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렇게 한참씩 달려 태자를 보림사 산문 아래로 꾀어 온 행자가 본모습을 드러내니, 토끼는 보이지 않고 다만 화살 한 대가 문지방에 꽂혀 있었다. 곧바로 안으로 뛰어들어가 당승을 보고 말했다. “스승님, 왔소! 왔소!” 그러고는 또 한번 변하여 두 치 남짓한 작은 중으로 변해 붉은 함 속으로 들어갔다. 말하자면, 그 태자가 산문 앞까지 쫓아와 보니 흰 토끼는 보이지 않고 다만 문지방에 조각 깃 화살 한 대가 꽂혀 있었다. 태자가 크게 놀라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괴이하도다! 괴이하도다! 분명히 내 화살이 옥토끼에 맞았거늘 옥토끼는 보이지 않고 화살만 여기 있단 말인가! 해가 오래되어 정괴가 되었나 보다.” 화살을 뽑아 들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산문 위에 큰 글자 다섯이 씌어 있었으니 칙건보림사였다. 태자가 말했다. “이제 알겠노라. 지난해 무렵 내 부왕께서 금란전에서 관원을 보내 이 중들에게 금과 비단을 내려 불전과 불상을 수리하게 하신 일이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오늘 이곳에 이르렀구나. 참으로 도원을 지나다 중과 이야기를 나누니 뜬 인생에 반나절 한가로움을 얻는다 하였거늘, 내 들어가 한번 돌아보리라.” 그 태자가 말에서 내려 막 들어가려는데, 호가하는 관장과 삼천 인마가 뒤따라와 떼를 지어 몰려들며 모두 산문 안으로 들어갔다. 놀란 본사 중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맞이하여 정전 가운데로 모셔 들여 불상에 참배하게 하였다. 막 고개를 들어 두루 둘러보며 회랑을 거닐며 경치를 즐기려 하는데, 홀연히 한가운데에 중 하나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태자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중이 무례하도다! 내가 오늘 반조란가를 거느리고 산에 들어오는데, 비록 지의로 통지하지 않아 멀리까지 마중 나오지 않은 것은 탓할 수 없다 하나, 이제 군마가 문에 이르렀거든 일어나는 것이 마땅하거늘 어찌 아직도 앉아 움직이지 않는단 말인고!” 그러고는 외쳤다. “잡아 내려라!” 잡으라는 소리가 떨어지자 양쪽 교위가 일제히 손을 대어 당승을 끌어내리고 급히 밧줄을 풀어 묶으려 하였다. 행자가 함 속에서 묵묵히 주문을 외워 분부했다. “호법제천과 육정육갑은 들으라. 내가 이제 법을 세워 요괴를 항복받으려 하는데 이 태자가 알지 못하고 밧줄로 내 스승님을 묶으려 하니, 너희는 즉시 보호하라. 만일 참으로 묶이게 되면 너희 모두 죄가 있으리라!” 그 대성이 은밀히 분부하니 누가 감히 따르지 않으리오. 곧 삼장법사를 굳게 보호하여, 어떤 이들은 그의 민머리를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으니 마치 담장 하나가 가로막아 몸을 붙일 수 없었다. 태자가 말했다. “너는 어느 곳에서 와서 이런 은신법을 써서 나를 속이느냐!” 삼장법사가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빈승에게는 은신법이 없사옵니다. 저는 동토의 당승으로서 뇌음사에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며 보배를 바치러 가는 중이옵니다.” 태자가 말했다. “너희 동토는 비록 중원이라 하나 가난하기가 비할 데 없을 터인데 무슨 보배가 있단 말이오? 내게 일러 보아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내 몸에 걸친 이 가사가 세 번째 보배이옵니다. 그 위로 첫째와 둘째로 더 좋은 물건이 있사옵니다!” 태자가 말했다. “너의 그 옷은 한쪽은 몸을 가리고 한쪽은 팔을 드러냈으니 값이 얼마나 된다기에 감히 보배라 칭하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 가사는 비록 온몸을 가리지는 못하나 시 몇 구절이 있사옵니다. 시에 이르기를, 불의는 한쪽 어깨를 드러냈으니 논할 것도 없거니와 그 속에 진여를 감추어 세속의 티끌을 벗었도다. 만 갈래 실과 천 개의 바늘로 정과를 이루고 아홉 구슬 여덟 보배가 원신을 모았도다. 선녀와 성녀가 공손히 지어 바쳐 선승에게 남기시니 더러운 몸을 씻어 맑히는구나. 임금을 뵙고도 맞지 않음은 차라리 그럴 수 있거니와, 네 아비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어찌 사람이라 하리오!” 태자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에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건방진 중이 허튼소리를 하는구나! 너의 그 반쪽짜리 옷을 가지고 입이 놀고 혀가 유창하다는 것만 믿어 좋다고 뽐내고 강하다고 자랑하느냐. 내 아비의 원수가 어디에서 갚히지 못했단 말이오? 내게 일러 보아라.” 삼장법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두 손을 모으고 물었다. “전하, 사람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 몇 가지 은혜를 입사옵니까?” 태자가 말했다. “네 가지 은혜가 있느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이오?” 태자가 말했다. “천지가 덮어 실어 주는 은혜와 해와 달이 비추어 주는 은혜, 국왕의 물과 흙의 은혜, 부모가 길러 주는 은혜니라.” 삼장법사가 웃으며 말했다. “전하의 말씀에 잘못이 있사옵니다. 사람에게는 다만 천지가 덮어 실어 주고 해와 달이 비추어 주며 국왕의 물과 흙이 있을 뿐이거늘, 어디서 부모가 길러 주는 은혜가 온단 말이오?” 태자가 노하여 말했다. “중이란 놀고먹으며 머리를 깎고 임금을 거스르는 무리로다! 사람이 부모의 길러 줌을 받지 못하면 몸이 어디에서 왔단 말이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전하, 빈승은 알지 못하옵니다. 다만 이 붉은 함 속에 입제화라는 보배가 하나 있사온데, 위로 오백 년과 가운데 오백 년과 아래 오백 년, 모두 천오백 년의 지나간 일과 앞으로 올 일을 안다 하옵니다. 곧 부모가 길러 준 은혜가 없다는 사정도 알 터이니, 빈승더러 이곳에서 오래도록 기다리라 하였나이다.” 태자가 그 말을 듣고 분부했다. “가져오너라, 내 보리라.” 삼장법사가 함 뚜껑을 열어 젖히자 행자가 뛰어 나와 뒤뚱뒤뚱 하며 양쪽으로 마구 돌아다녔다. 태자가 말했다. “이 좁쌀만 한 것이 무엇을 알 수 있단 말이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작다고 얕잡힌 것이 못마땅하여 곧 신통을 부려 허리를 한번 쭉 펴니, 석 자 서너 치쯤 자라났다. 군사들이 놀라며 말했다. “이렇게 빨리 자라니 며칠 지나지 않아 하늘을 뚫고 나가겠구나.” 행자는 본래 몸집에 이르러서는 더 자라지 않았다. 그제야 태자가 물었다. “입제화야, 이 늙은 중이 너는 앞으로 올 일과 지나간 일의 길흉을 안다 하더니, 너에게 점치는 거북이 있느냐? 시초풀로 점을 칠 것이냐? 책의 구절에 의지해 남의 화복을 판단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터럭만큼도 쓰지 않소. 오직 석 자 혀에 전적으로 의지하니 만사가 다 알려 있느니라.” 태자가 말했다. “이놈이 또 헛소리를 하누나. 예로부터 《주역》이라는 책이 지극히 현묘하여 천하의 길흉을 모두 판단해 사람으로 하여금 피하고 나아갈 바를 알게 하니, 그러므로 거북으로 점치고 시초풀로 점을 치는 것이니라. 네 말을 들어 보건대 무슨 이치에 근거하여 망령되이 화복을 말하고 인심을 선동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전하, 우선 서두르지 마옵소서. 내가 일러 드리리다. 전하는 본래 오계국왕의 태자이시니, 그곳은 오 년 전 해가 가물어 만민이 고초를 겪고 임금과 신하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였나이다. 비 한 점 내리지 않을 무렵 종남산에서 도사 하나가 왔는데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며 돌을 금으로 바꾸는 데 능하였나이다. 임금이 인정이 넘치도록 그를 아껴 형제의 예를 갖추어 사귀었으니 이런 일이 있었소?” 태자가 말했다. “있었소, 있었소, 있었소! 그대 어서 더 말해 보아라.” 행자가 말했다. “그 뒤 삼 년째에는 전진이 보이지 않으니, 과인을 칭하는 자는 누구란 말이오?” 태자가 말했다. “과연 전진이라는 자가 있어 부왕께서 그와 형제의 예를 갖추어 먹을 때도 함께 먹고 잘 때도 함께 잤나이다. 삼 년 전 어화원에서 경치를 즐기다가 그자가 신풍 한 차례를 일으켜 부왕의 손에 있던 금상백옥규를 종남산으로 거두어 갔는데, 지금까지도 부왕께서는 그를 그리워하시느니라. 그를 볼 수 없게 되자 즐기던 마음이 사라져 화원을 굳게 닫아 둔 지 이미 삼 년이 되었나이다. 그런즉 황제 노릇을 하는 이가 내 부왕이 아니고 누구란 말이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비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태자가 다시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다만 비웃기만 하였다. 태자가 노하여 말했다. “이놈이 마땅히 말할 터인데 말하지 않고 어찌 이리 비웃느냐?” 행자가 또 말했다.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소! 다만 좌우에 사람이 많아 말할 자리가 못 되오.” 태자가 그의 말에 까닭이 있음을 알고 포신을 한번 펼쳐 보이며 군사들에게 잠시 물러나라 하였다. 수레와 말 위의 관장이 급히 명을 전하여 삼천 인마를 모두 문 밖으로 나가 주둔하게 하였다. 이때 전각 위에는 사람이 없어 태자가 위쪽에 앉고 장로가 앞쪽에 섰으며 왼편 곁에 행자가 섰다. 본사의 중들이 모두 물러간 뒤에야 행자가 바른낯으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전하, 바람을 타고 가 버린 이가 전하를 낳아 주신 부왕이시오. 지금 보좌에 앉아 있는 이는 기우하던 그 전진이옵니다.” 태자가 말했다. “허튼소리! 허튼소리! 내 부왕께서는 전진이 떠난 뒤로 비와 바람이 순조롭고 나라가 태평하며 백성이 편안하시니라. 네 말대로라면 내 부왕이 아니란 말이로다. 내가 나이 어려서 너를 용서하거니와, 내 부왕께서 네 이런 말을 들으시거든 잡아다가 만단으로 찢으실 것이니라!” 하며 행자를 꾸짖어 쫓아 내렸다. 행자가 당승에게 말했다. “어떻소? 내가 그가 믿지 않으리라 하였거늘 과연, 과연 그렇소! 이제 그 보배를 내어 주고 관문을 바꾸어 서방으로 가 버립시다.” 삼장법사가 곧 붉은 함을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받아 들고 몸을 한번 떨자 그 함은 홀연히 사라졌으니, 본래 그의 터럭이 변한 것을 몸에 도로 거두어 들인 것이었다. 그러고는 백옥규를 두 손으로 받쳐 태자에게 올렸다. 태자가 보고 말했다. “좋은 중이로다! 좋은 중이로다! 네가 오 년 전에는 본래 전진으로서 우리 집의 보배를 속여 갔거늘, 이제 와서는 중으로 분장하고 와서 바치려 드누나!” 그러고는 외쳤다. “잡아라!” 명령이 한 번 떨어지자 놀란 장로가 황급히 행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필마온 같은 놈! 헛된 화만 끌어다 날더러 물게 하는구나!”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모두 가로막고 말했다. “떠들지 마시오! 바람이 새어 나가게 마오! 나는 입제화라 하지 않소. 따로 참이름이 있느니라.” 태자가 노하여 말했다. “이리 올라오너라! 네 참이름을 물어 법사로 보내 죄를 정하리라!” 행자가 말했다. “나는 저 장로의 큰 제자로 이름을 오공이라 하고 손행자라 부르느니라. 내 스승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다가 어젯밤 이곳에 이르러 묵게 되었노라. 내 스승님이 밤에 경권을 읽으시다가 삼경 무렵 꿈을 꾸었는데, 꿈에 전하의 부왕께서 나타나 말하기를, 자신이 그 전진에게 속아 해를 입고 어화원 팔각유리정 우물 속에 밀려 들어갔으며 전진이 그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하였느니라. 온 조정 관원이 알지 못하고 전하께서도 나이 어려 분간하지 못하니, 전하를 궁에 들지 못하게 하고 화원을 닫아 둔 것은 대개 소식이 새어 나갈까 두려워서였느니라. 전하의 부왕께서 오늘 밤 특별히 나를 청해 마귀를 항복받아 달라 하였거늘, 나는 요사한 무리인지 아닌지 몰라 공중에서 살펴보니 과연 요정이더라. 막 손을 써서 잡으려 하는데 뜻하지 않게 전하께서 성 밖으로 사냥을 나오셨소. 전하의 화살에 맞은 옥토끼가 바로 이 늙은 원숭이었소. 이 늙은 원숭이가 전하를 절까지 끌어들여 스승님을 뵙고 이 속마음을 털어놓았으니 낱낱의 말이 다 참이니라. 전하께서 이미 백옥규를 알아보셨거늘 어찌하여 길러 주신 은정을 생각지 않고 친의 원수를 갚지 않으시려 하오?” 그 태자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참담해져 남몰래 상심하며 말했다. “이 말을 믿지 않자니 그에게는 서너 할의 참됨이 있고, 믿자니 어찌 전각 위에 뵈는 이가 내 부왕이란 말인가?” 이는 참으로 진퇴양난이라 마음이 입에 묻고 세 번 생각하며 참아 입이 마음에 묻는 격이었다. 행자가 그가 의심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 또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전하, 마음을 의심하지 마옵소서. 전하께서는 수레를 본국으로 돌리시어 국모께 한마디 물어 보시옵소서. 부부의 은애하는 정이 삼 년 전과 견주어 어떠한지 보시옵소서. 이 한 마디 물음으로써 참과 거짓을 알 수 있사옵니다.” 그 태자가 마음을 돌려 말했다. “옳소! 내 어미에게 가서 물어보고 오리라.” 태자가 몸을 일으켜 백옥규를 소매에 감추고 곧 걸음을 옮기려 하자 행자가 붙잡으며 말했다. “전하의 이 인마가 모두 돌아가면 소식이 새어 나가 내가 어찌 성공하겠소? 전하께서는 홀로 말을 타고 성에 들어가시되, 이름을 떨치며 뽐내지 마시고 정양문으로 들어가지 마옵시며, 모름지기 후재문으로 들어가시옵소서. 궁중에서 어머니를 뵙거든 절대로 큰소리치지 마시고 모름지기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씀하옵소서. 그 괴물이 신통이 광대하여 한때라도 소식이 새어 나가면 모자의 목숨을 모두 보전하기 어렵사옵니다.” 태자가 삼가 그 가르침을 좇아 산문을 나서며 장관에게 분부했다. “이곳에 굳건히 진을 치고 있으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 내 볼일이 하나 있으니 내가 갔다 오거든 함께 성에 들어가리라.” 그의 모습 이러하였다. 지휘하며 호령해 군사를 주둔시키고, 말에 올라 나는 듯이 곧 성으로 돌아간다. 이번에 가서 국모를 만나 무슨 말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8회 영아문모지사정(嬰兒問母知邪正) · 금목참현견가진(金木參玄見假眞) 임금을 만나거든 다만 태어난 인연만 말하라, 그리하면 곧 여래의 법회에 모인 사람이 되리라. 한 생각 고요히 속세의 부처를 관조하니, 시방에서 함께 위신이 내려오는 것을 보는구나. 오늘의 참된 밝은 임금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해의 친어머니에게 물어볼지니라. 세상에 일찍이 보지 못한 별다른 것이 있으니,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꽃이 새로이 피어나는구나. 말하자면, 그 오계국 왕의 태자는 대성과 헤어진 뒤 오래지 않아 성 안으로 돌아왔다. 과연 조정의 문으로 달려가지 않았고, 감히 선지를 전하여 알리지도 못한 채 곧바로 후재문 앞에 이르렀는데, 그곳에는 몇몇 태감이 서서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태자가 오는 것을 보고는 감히 막아 세우지 못하고 그를 들여보내 주었다. 훌륭한 태자로다, 말에 박차를 가하여 안으로 돌진해 들어가더니, 홀연히 금향정 아래에 이르렀다. 바라보니 그 정궁 낭낭이 금향정 위에 앉아 있고, 양쪽에는 수십 명의 빈비가 부채를 들고 시립해 있었으며, 그 낭낭은 조각한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대는 그가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는지 아는가? 원래 그녀도 사경시에 한바탕 꿈을 꾸었는데, 절반은 기억하고 절반은 흐릿하여 깊이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이 태자가 말에서 내려 정자 아래에 꿇어앉으며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 낭낭은 억지로 환한 얼굴을 지으며 “아이야, 기쁘구나! 기쁘구나! 이태 남짝 동안 앞전에서 너의 부왕과 함께 강론하느라 서로 만나지 못해 내 몹시 그리워하였느니라. 오늘 어찌 틈을 내어 나를 한번 보러 왔느냐? 참으로 만 가지 기쁨이로다! 참으로 만 가지 기쁨이로다! 아이야, 너는 어찌하여 목소리가 처연하느냐? 너의 부왕께서 나이가 높으시니, 어느 날 용이 푸른 바다로 돌아가고 봉황이 붉은 하늘로 돌아가면 네가 곧 제위를 이어받을 터인데, 무슨 불편한 일이 있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태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어머니, 제가 여쭙겠나이다. 즉위하여 용좌에 오른 이가 누구이옵니까? 과인을 일컫는 이가 과연 누구이옵니까?”라고 아뢰었다. 낭낭이 그 말을 듣고 “이 아이가 미쳤구나! 황제 노릇을 하는 이는 너의 부왕이신데, 네가 어찌 그런 것을 묻느냐?”라고 말했다. 태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어머니께서 자식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감히 여쭙겠나이다. 용서하지 않으시면 감히 여쭙지 못하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낭낭이 “모자지간에 무슨 죄가 있겠느냐? 용서하마, 용서하마, 어서 어서 말하여 보아라.”라고 말했다. 태자가 말했다. “어머니, 제가 여쭙겠나이다. 삼 년 전 부부 궁중의 일과 그 뒤 삼 년의 은애가 같은지 다른지 어떠하옵니까?” 낭낭이 그 말을 듣고는 넋이 흩어지는 듯 놀라며 급히 정자에서 내려와 그를 안아 올려 품에 꼭 껴안고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했다. “아이야! 나는 너와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오늘 궁에 와서 그런 것을 묻느냐?” 태자가 성을 내며 “어머니, 하실 말씀이 있거든 일찍 말해 주시옵소서. 말하지 않으시면 큰일을 그르치게 되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그제야 낭낭이 좌우를 물러가게 하고, 눈물 젖은 눈으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 일은, 아이야, 네가 묻지 않았더라면 나도 구천 아래에 가서야 밝히게 될 뻔하였느니라. 이미 물었으니 내 말을 들어 보아라. 삼 년 전에는 따뜻하고도 따뜻하더니, 삼 년 뒤에는 얼음처럼 차갑구나. 베갯머리에서 간절히 말을 물으니, 그는 늙고 쇠하여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 태자가 그 말을 듣고는 손을 뿌리치고 몸을 빼내어 안장을 끌어당겨 말에 올랐다. 그 낭낭이 와락 붙잡으며 “아이야, 무슨 일이 있어 말을 다 하지도 않고 가려 하느냐?”라고 말했다. 태자가 그 앞에 꿇어앉아 “어머니,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나이다! 오늘 아침 조회에서 칙명을 받들어 매와 개를 거느리고 성 밖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동쪽 땅에서 오신 경전을 구하러 가는 성스러운 승려를 우연히 만났사옵니다. 그 큰 제자가 바로 손행자라는 자인데, 요괴를 항복받는 데 매우 능하옵니다. 알고 보니 저의 부왕께서는 어화원 팔보유리정 안에서 돌아가셨고, 이 전진이라는 자가 가짜로 부왕으로 변하여 용위를 빼앗았사옵니다. 오늘 밤 삼경에 부왕께서 꿈을 빌려와 그 성스러운 승려를 청하여 성에 와 괴물을 잡으라 하셨사옵니다. 아이는 감히 온전히 믿지 못하여 특별히 어머니께 여쭈러 왔는데, 어머니께서 방금 이런 말씀을 하시니 틀림없이 요정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낭낭이 “아이야, 외인의 말을 네가 어찌 곧이곧대로 믿느냐?”라고 말했다. 태자가 “아이도 아직 참이라고 인정하지는 못하겠사옵니다. 부왕께서 표기를 남겨 그에게 주셨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낭낭이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물으니, 태자가 소매 속에서 그 금상백옥규를 꺼내어 낭낭에게 건네주었다. 그 낭낭은 그것이 그때 국왕의 보물임을 알아보고는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며 “주공! 당신은 어찌하여 삼 년이나 죽어 계시면서 나를 보러 오지 않고, 먼저 성스러운 승려를 만나고서야 나중에 나를 보러 오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다. 태자가 “어머니, 이 말씀은 어찌 된 말씀이옵니까?”라고 아뢰었다. 낭낭이 말했다. “아이야, 나도 사경 무렵에 한바탕 꿈을 꾸었느니라. 꿈에 네 부왕께서 물에 흠뻑 젖은 채 내 앞에 서서, 친히 당신이 죽었다고 말하며 귀신의 혼이 되어 당승을 청하여 가짜 황제를 항복받고 전신을 구해 달라고 절을 하였느니라. 기억하기로는 이러한 말이었으나, 다만 절반은 분명하지 않아 바로 여기서 의심하고 있던 차에, 어찌 오늘 네가 또 이런 말을 하고 또 보물을 꺼내 보일 줄 알았겠느냐. 내 우선 거두어 두겠으니, 너는 가서 그 성스러운 승려를 청하여 급히 일을 처리하여라. 과연 요사한 기운을 쓸어 버리고 사특함과 정도를 밝혀내어, 네 부왕의 길러 주신 은혜를 갚도록 하여라.” 태자가 급히 말에 올라 후재문으로 나와 성을 벗어났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조아려 어머니께 하직하고, 슬픔을 품고 머리를 숙여 당승에게로 돌아가는구나. 오래지 않아 성문을 나서 곧장 보림사 산문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다. 여러 군사들이 태자를 맞이하였고, 또 붉은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태자가 군사들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명을 내리고는, 혼자서 산문으로 들어가 의관을 가다듬고 행자를 청하여 절을 올렸다. 바라보니 그 원숭이 왕이 정전에서 흔들흔들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그 태자가 두 무릎을 꿇으며 “스승님, 제가 왔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서 그를 부축하며 “일어나시오. 그대가 성 안에 가서 누구에게나 물었소?”라고 말했다. 태자가 “어머니께 여쭈었나이다.”라고 아뢰고는 앞서 있었던 말을 모조리 한 번 이야기했다. 행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토록 차갑다면, 무슨 차가운 것의 변신인 듯하도다. 염려 마라! 염려 마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쓸어 버려 주리라. 다만 오늘은 늦었으니 일을 벌이기가 좋지 않도다. 그대 먼저 돌아가 보고, 내일 아침에 내가 가리라.” 태자가 땅에 꿇어 절을 올리며 “스승님, 저는 이곳에서 모시고 있다가 내일 스승님과 한길로 함께 가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말했다. “좋지 않도다! 좋지 않도다! 만일 그대와 함께 성에 들어가면 저 괴물이 의심을 품어, 내가 그대를 만난 것이 아니라 그대가 나를 청한 것이라 하여 도리어 그가 그대를 원망하게 되지 않겠느냐?” 태자가 “제가 이제 성에 들어가도 그가 저를 원망하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그대를 어찌 원망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태자가 말했다. “저는 아침 조회에서 명을 받들어 여러 사람과 말, 매와 개를 거느리고 성을 나섰는데, 오늘 하루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사옵니다. 어찌 임금님을 뵈올 수 있겠나이까? 만일 무능한 죄를 물어 옥에 가두어 버린다면, 스승님께서 내일 성에 들어가실 때 무엇을 의지하시겠나이까? 하물며 그 반부 중에는 아는 사람 하나도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이게 대수롭겠느냐! 그대가 일찍 말해 주었더라면, 벌써 구해 두어 기다리게 하지 않았겠느냐?”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보라, 그가 태자 앞에서 재주 하나를 드러내는데, 몸을 한번 솟구쳐 구름 속으로 뛰어올라 주술을 외우며 “옴남정법계”라는 진언을 한 번 외우니, 산신과 토지신이 불려 나와 반공중에서 예를 올리며 “대성이시여, 신령을 부르시옵기에 무슨 분부이신지 여쭙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말했다. “내가 당승을 보호하여 여기까지 왔는데, 사특한 마귀를 잡으려 하노라. 그러나 저 태자가 사냥에서 아무것도 잡지 못하여 감히 조정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형편이로다. 너희에게 인정 한 가지를 구하노니, 어서 노루와 사슴과 토끼, 들짐승과 날짐승을 각자 얼마씩 찾아내어 그를 돌려보내게 하여라.” 산신과 토지신이 그 말을 듣고 어찌 감히 명을 받들지 않겠는가. 그들은 또 각각 얼마나 필요한지를 물었다. 대성이 말했다. “얼마든 상관없으니, 얼마쯤 가져오면 그만이다.” 그 여러 신들이 곧 그 지방의 음병에게 명하여 짐승을 모으는 음풍을 한바탕 일으키게 하니, 꿩과 산치, 뿔 달린 사슴과 살진 노루, 여우와 오소리와 너구리와 토끼, 호랑이와 표범과 이리와 벌레 따위를 잡아들였는데 모두 천 마리가 넘었다. 그들을 행자에게 바치니, 행자가 말했다. “내게는 필요 없으니, 너희가 그들의 힘줄을 모두 묶어 사십 리 길의 양쪽 길가에 벌여 놓아라. 그 사람들로 하여금 매와 개를 놓지 않고서도 잡아 성으로 돌아가게 하여, 너희의 공으로 쳐 주마.” 여러 신들이 그 말을 좇아 음풍을 거두고 좌우에 벌여 놓았다. 행자가 비로소 구름을 내려앉히고 태자에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돌아가시옵소서. 길 위에 이미 짐승이 있으니 그대가 거두어 가시오.” 태자는 그가 반공중에서 이런 신통을 부리는 것을 보고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랴. 다만 머리를 조아려 하직 인사를 올리고 산문을 나서서 군사들에게 성으로 돌아가라고 명을 내렸다. 바라보니 길가에 과연 무수한 들짐승이 있었고, 군사들은 매와 개를 놓지 않았는데도 하나하나 손으로 잡으며 환호성을 외치되, 모두들 천세 전하의 홍복이라 말하였으니, 어찌 이것이 원숭이의 신공인 줄 알았으랴. 들어 보아라, 개선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들이 일제히 성으로 돌아가는구나. 이 행자가 삼장을 지키고 있으니, 그 절의 중들이 그들이 태자와 이토록 가깝게 지내는 것을 보고 어찌 공경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또 재공을 마련하여 당승을 대접하고서, 여전히 선당에서 쉬게 하였다. 거의 초경 무렵이 되었는데, 행자는 마음에 일이 있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가 벌떡 일어나 당승의 침상 앞으로 가서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이때 장로는 아직 잠들지 않았는데, 행자가 깜짝 놀랄 짓을 벌이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잠든 척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행자가 그의 민머리를 더듬어 마구 흔들며 “스승님은 어찌 주무셨나이까?”라고 말했다. 당승이 성을 내며 말했다. “이 장난꾸러기야! 이 밤중에 아직도 자지 않고 무슨 고함이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일이 하나 있어 스승님과 의논을 좀 하려 하나이다.” 장로가 “무슨 일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제가 낮에 그 태자에게 큰소리를 쳤나이다. 제 재주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어서, 저 요정 하나를 잡는 것이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이 손을 뻗어 곧 잡아 올 수 있다고 하였나이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아 생각해 보니 조금 어려운 구석이 있사옵니다.” 당승이 “네가 어렵다 하니, 그냥 잡지 말자꾸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잡기는 여전히 잡아야 하오나, 다만 이치에 맞지 않는 구석이 있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당승이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이 헛소리를 하는구나! 요정이 인군의 자리를 빼앗았는데, 어찌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다만 경을 외우고 부처님께 절하며, 좌선하고 참선하는 일만 아시니, 어찌 소하의 율법을 보셨나이까? 상투적인 말에 도적을 잡으려면 장물을 잡으라 하였나이다. 저 괴물이 삼 년이나 황제 노릇을 하였으나, 아직 발각될 만한 실수도 내지 않았고 풍문도 새지 않았사옵니다. 그는 삼궁의 비빈들과 함께 잠자리를 하고, 또 양반 문무 백관과 함께 즐기고 있사옵니다. 제가 능력이 있어 그를 붙잡는다 한들, 죄명을 정하기가 쉽지 않사옵니다.” 당승이 “어찌하여 죄를 정하기가 쉽지 않으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그가 입 없는 표주박이라 한들, 그대와 함께 몇 번쯤 굴러 보이려 할 것이옵니다. 그는 감히 이르기를, 나는 오계국의 국왕인데 무슨 하늘을 거스른 일이 있기에 네가 나를 잡으려 하느냐 할 것이니, 무슨 증거를 내어 그와 따져 다투시렵니까?” 당승이 “네 마음대로 처결하려무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제 계책은 이미 서 있사옵니다. 다만 어르신께서 걸리시는데, 조금 편드시는 구석이 있사옵니다.” 당승이 “내가 어찌 편드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팔계가 미련하게 생겼는데, 어르신께서 그를 조금 편드시나이다.”라고 아뢰었다. 당승이 “내가 어찌 그를 편드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어르신께서 그를 편들지 않으신다면, 이제 담력을 좀 키우시어 사승과 함께 이곳에만 계시옵소서. 저와 팔계가 이 틈을 타 먼저 그 오계국 성 안으로 들어가 어화원을 찾아내어 유리정을 열고, 그 황제의 시신을 건져 올려 우리 보따리에 싸 두겠나이다. 내일 성에 들어가서는 문첩을 바꾸는 일은 아랑곳하지 말고, 저 괴물을 보거든 몽둥이를 뽑아 곧 때리겠나이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거든 시신을 내보이며, 네가 죽인 자가 바로 이 사람이라 하겠나이다. 그리고 태자를 올라오게 하여 부친을 곡하게 하고, 황후를 나오게 하여 남편을 알아보게 하며, 문무 여러 관원이 임금을 뵙게 한 뒤에, 저와 형제들이 손을 쓰겠나이다. 이래야 상대가 있는 송사를 벌이기 쉬운 법이옵니다.” 당승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기뻐하며 “다만 팔계가 가려 하지 않을까 두렵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찌하여? 내가 어르신께서 편드신다 하였는데, 어르신께서는 어찌 그가 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나이까? 어르신께서는 다만 제가 불렀을 때 대답하지 않으셨듯이 하시면, 반 시진이면 끝나나이다! 제가 이번에 가서 저 썩지 않는 석 자 혀에 맡겨 보겠나이다. 저팔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저구계라 한들, 그를 데리고 가게 할 능력이 있사옵니다.” 당승이 “그러하마, 네 마음대로 그를 불러 보아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을 떠나 곧장 팔계의 침상 곁으로 가서 “팔계! 팔계!”라고 불렀다. 그 멍청이는 길을 걸어 피곤한 사람이라, 머리를 떨어뜨리고는 그저 코를 골고 있었으니, 어찌 불러 깨울 수 있겠는가? 행자가 귀를 잡아당기고 갈기를 움켜쥐고 그를 한 번 잡아당겨 일으키며 “팔계.”라고 불렀다. 그 멍청이는 여전히 멍하니 버둥거렸는데, 행자가 다시 한 번 부르니 멍청이가 말했다. “잠이나 자자꾸나, 장난하지 마라! 내일 길을 가야 하느니라!” 행자가 “장난이 아니라, 장사 하나가 있어 너와 함께 하러 가려 한다.”라고 말했다. 팔계가 “무슨 장사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너는 그 태자의 말을 들었느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나는 만나지도 못하였고 들은 말도 없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그 태자가 나에게 일러 주기를, 저 요정에게는 만 명이 당해 내지 못할 용맹을 지닌 보물이 있다 하더라. 우리가 내일 조정에 들어가면 그와 다투어 싸우게 될 터인데, 만일 저 괴물이 그 보물을 쥐고 우리를 항복받아 넘어뜨린다면 도리어 좋지 않은 꼴이 되지 않겠느냐? 내 생각에 남을 이기지 못할 바에는 먼저 손을 쓰는 것만 못하니, 내가 너와 함께 가서 그것을 훔쳐 오면 좋지 않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저를 속여 도둑질을 시키려 하시는구려. 이 장사라면 저도 가겠사옵니다. 정말로 든든히 거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저도 형님과 분명히 따져 두겠사옵니다. 보물을 훔치고 요정을 항복받은 뒤에, 그 좀스럽게 보물을 나누는 일은 저는 견디지 못하겠사옵니다. 보물은 제가 가지겠나이다.” 행자가 “네가 무엇에 쓰려느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말했다. “저는 형네처럼 약삭빠르고 말을 잘하여 사람들 앞에서 공양을 얻어 내지 못하옵니다. 저는 몸도 둔하고 말도 거칠며 경을 외울 줄도 모르옵니다. 훗날 도움이 없고 살아갈 길이 막막해지는 곳에 이르면, 그것으로 공양을 바꾸어 먹으면 되지 않겠나이까!” 행자가 “내는 다만 명예를 바랄 뿐, 무슨 보물을 바라겠느냐? 너에게 주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는 모두 자기에게 준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하여 벌떡 일어나 옷을 걸치고는 행자와 함께 길을 나섰다. 이는 실로 이러하였다. 맑은 술이 사람의 얼굴을 붉히고, 황금이 도심을 움직이는구나. 두 사람이 살며시 문을 열고 삼장을 피해 상서로운 빛을 타고 곧장 그 성을 향해 달려갔다. 오래지 않아 도착하여 구름을 내려앉히니, 망루 위에서 막 두 번째 북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이경이 되었구나.” 팔계가 말했다. “좋다! 좋다! 사람들은 모두 첫잠에 깊이 빠져 있느니라!” 두 사람은 정양문으로 가지 않고 곧장 후재문 앞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야경을 알리는 북과 방울 소리가 들렸다. 행자가 “아우야, 앞뒤 문이 모두 삼엄하니 어찌 들어갈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어디서 도둑이 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보았느냐? 담을 넘어가면 그만이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좇아 몸을 한번 솟구쳐 겹겹이 둘러싼 성벽 위로 뛰어오르니, 팔계도 뛰어올라갔다. 두 사람이 몰래 안으로 들어가 문로를 찾아내어 곧장 그 어화원을 찾아갔다. 가는 도중에 바라보니 처마가 삼 층인 희고 깔끔한 문루가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큰 글자 셋이 별과 달의 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으니, 바로 어화원이었다. 행자가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몇 겹의 봉인이 붙어 있고, 자물쇠가 녹슬어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행자가 곧 팔계에게 손을 쓰라 명하니, 그 멍청이가 쇠갈퀴를 뽑아 힘껏 한 번 찍어 문을 산산이 부수어 버렸다. 행자가 먼저 발을 들어 안으로 들어서더니, 참지 못하고 펄쩍 뛰어오르며 크게 소리를 지르니, 팔계가 깜짝 놀라 앞으로 나서서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형님, 저를 죽일 셈이시오! 어디서 도둑이 이렇게 떠들어 대며 고함을 치는 것을 보았소! 사람들을 깨워 우리를 붙잡아 관가로 넘기면 사형죄는 면한다 해도 본적지로 압송되어 변방에 충군되오!”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너는 내가 어찌하여 급해졌는지 모르는구나. 이것을 보아라. ‘채색으로 그린 조각 난간은 어지럽고, 보배로 꾸민 정자와 누각은 기울었구나. 사초 언덕과 여뀌 물가는 모두 먼지에 묻혔고, 작약과 도미는 모두 시들었네. 말리와 장미는 향이 어둑하고, 모란과 백합은 헛되이 피었구나. 부용과 무궁화 자리마다 풀만 무성하고, 기이한 꽃들은 흙에 덮여 망가졌네. 기묘한 돌과 산봉우리는 모두 무너졌고, 못물은 말라 물고기는 쇠했구나. 푸른 소나무와 자줏빛 대나무는 마른 섶 같고, 길 가득히 쑥과 개망초가 빽빽하네. 단계와 벽도는 가지가 꺾였고, 해당화와 탕체는 뿌리가 비뚤어졌구나. 다리 머리 굽은 오솔길에 푸른 이끼가 끼었으니, 쓸쓸하고 적막한 화원의 경계로다!’” 팔계가 “그것을 두고 어찌 탄식하시오? 어서 우리 장사나 하러 갑시다!”라고 말했다. 행자는 비록 감개가 일었으나 유심히 당승의 꿈을 떠올려 보니, 파초수 아래가 바로 우물이라 하였다. 가는 도중에 과연 한 그루의 파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여러 화목과 달랐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한 가지 영묘한 싹이 뛰어나니, 하늘이 낸 본성이 텅 비었구나. 가지마다 종이 한 장을 뽑아 내고, 잎마다 꽃다운 송이를 말았네. 푸른 실 같은 가는 가지 천 가닥에, 붉은 마음 한 점이 붉구나. 처량하여 밤비를 근심하고, 초췌하여 가을바람을 두려워하네. 기르고 자라게 하는 것은 원정의 힘이요, 가꾸는 것은 조화의 공이로다. 편지를 봉하여 묘한 쓰임을 이루고, 휘둘러 뿜어 기이한 공을 지녔구나. 봉황의 깃이 어찌 이와 같으랴, 난새의 꼬리만 아주 닮았네. 엷은 이슬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옅은 안개가 담담히 감도는구나. 푸른 그늘이 창호를 가리고, 비취 그림자가 발 위에 오르네. 기러기가 깃들게도 않고, 옥총을 매어 두기에도 어렵구나. 서리 내리는 하늘에 형상은 마르고 초췌하며, 달밤에 빛은 흐릿하네. 겨우 더위를 식힐 만하고, 따가운 햇볕을 가리기에 알맞구나. 복숭아와 자두의 고운 빛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며, 분칠한 담 동쪽에 쓸쓸히 서 있구나.’ 행자가 “팔계야, 손을 쓰자! 보물이 파초수 아래 묻혀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가 두 손으로 갈퀴를 들어 올려 파초를 찍어 넘어뜨린 뒤, 주둥이로 한 번 파헤쳐 서너 자쯤 깊이 파 내려가니 돌판 하나가 덮고 있었다. 멍청이가 기뻐하며 말했다. “형님! 횡재했소! 과연 보물이 있는데 돌판 하나가 덮고 있소! 항아리에 담겨 있는지 궤짝에 들어 있는지 모르겠소!” 행자가 “그것을 들어 보아라.”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가 과연 다시 주둥이로 한 번 파헤쳐 열어 보니, 거기서 붉은 노을빛이 찬란하고 흰 기운이 환히 빛나고 있었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횡재로다! 횡재로다! 보물이 빛을 뿜고 있구나!” 그가 다시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아! 그것은 본래 별과 달의 빛이 우물 속 물에 비쳐 반짝이는 것이었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형님은 일을 하시면서도 늘 한 가지는 남겨 두시는구려.” 행자가 “내가 무엇을 남겨 두었다는 말이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말했다. “이것은 우물이오. 형님이 절에서 우물 속에 보물이 있다고 일찍 말씀하셨다면, 내가 보따리를 묶는 노끈 두 가닥을 가져왔을 것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늙은 돼지를 내려보냈을 것 아니오? 이제 빈손인데, 이 안의 물건을 어찌 내려갔다 올라올 수 있단 말이오?” 행자가 “네가 내려가겠느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내려가긴 내려가야 하는데, 다만 밧줄이 없구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옷을 벗어라, 내가 수단을 써 주마.”라고 말했다. 팔계가 “무슨 좋은 옷이 있단 말이오? 이 장삼만 벗으면 그만이오.”라고 말했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여의봉을 꺼내어 양쪽을 한 번 잡아당기며 “길어라!” 하고 외우니 족히 칠팔 장이나 길어졌다. 그가 일렀다. “팔계야, 네가 한쪽 끝을 껴안아라. 그대를 우물 속으로 내려보내 주마.” 팔계가 말했다. “형님, 내려보내긴 내려보내시되, 물가에 닿으면 곧 멈추셔야 하오.” 행자가 “내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가 쇠몽둥이를 껴안고 있으니, 행자가 그를 가볍게 들어 올려 아래로 내려보냈다. 오래지 않아 물가에 닿자 팔계가 “물에 닿았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몽둥이를 아래로 한 번 눌러 버렸다. 그 멍청이는 퐁당 소리를 내며 머리까지 물속에 잠겼다가 쇠몽둥이를 놓치고는 물에 떠서 입으로 푸푸거리며 소리쳤다. “이 천벌받을 놈! 물에 닿으면 놓지 말라 했더니, 그는 곧 나를 한 번 눌러 버렸구나!” 행자가 몽둥이를 들어 올리며 웃어 말했다. “아우야, 보물이 있느냐?” 팔계가 “무슨 보물을 보았소? 그저 우물물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보물은 물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느니라. 네가 내려가서 더듬어 보아라.”라고 말했다. 멍청이는 참으로 물의 성질을 잘 알고 있어 곧 물속으로 잠수하여 푹 내려갔는데, 아! 그 우물 바닥이 몹시 깊었다. 그가 다시 한 번 힘껏 잠수해 내려가다가 홀연히 눈을 떠 보니, 패루 하나가 있었는데 그 위에 수정궁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팔계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망했다! 망했다! 길을 잘못 들어섰구나! 바다로 내려와 버렸단 말이냐! 바다에는 수정궁이 있다지만, 우물에 어찌 그런 것이 있단 말이냐?” 원래 팔계는 이것이 정용왕의 수정궁인 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팔계가 막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이에, 어느새 물을 순시하던 야차 하나가 문을 열고 그의 모습을 보고는 급히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대왕이시여, 큰일 났사옵니다! 우물 위에서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중이 떨어져 내려왔사옵니다! 벌거벗은 몸에 옷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도 아직 죽지 않고 억지로 말을 하고 있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정용왕이 홀연히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는 천봉원수께서 오신 것이로다. 어젯밤 야유신이 상제의 칙지를 받들어 오계국 왕의 혼령을 데려가 당승을 뵙고 제천대성을 청하여 요괴를 항복받게 하였느니라. 이는 제천대성과 천봉원수께서 오신 것이니, 그를 소홀히 대접해서는 안 되거늘, 어서 모셔 오너라.” 그 용왕이 의관을 정돈하고 여러 수족을 거느리고 문 밖으로 나와 큰 소리로 외치며 “천봉원수시여, 안으로 들어오시어 앉으옵소서.”라고 말했다. 팔계는 그제야 기뻐하며 “원래 아는 사람이었구나.”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는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고 곧장 수정궁 안으로 들어갔는데, 실로 위아래도 모르는 몸이라 벌거벗은 채로 곧 윗자리에 앉아 버렸다. 용왕이 “원수시여, 근자에 원수께서 목숨을 건지시고 불교에 귀의하여 당승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신다 들었사옵니다. 어찌하여 이곳에 이르셨나이까?”라고 말했다. 팔계가 말했다. “바로 그 일로 왔소이다. 우리 사형 손오공이 몹시 문안을 부탁한다 하며, 나를 보내어 무슨 보물을 내놓으라고 물어 오라 하였소.” 용왕이 말했다. “가련한 일이옵니다. 이곳에서 어찌 보물을 얻겠나이까? 저 강과 하, 회수와 제수의 용왕들과는 달리 날아오르고 변화하는 재주가 있어야 보물도 있는 법이옵니다. 저는 오래도록 이곳에 갇혀 해와 달조차 늘 보지 못하옵니다. 보물이 과연 어디서 오겠나이까?” 팔계가 “사양하지 말고 있으면 내놓으시오.”라고 말했다. 용왕이 말했다. “있기는 한 가지 보물이 있사옵니다만, 다만 내어 놓을 수가 없사옵니다. 원수께서 친히 와서 보시기나 하옵소서, 어떠하시옵니까?” 팔계가 “좋소 좋아! 마땅히 보아 두어야 하오.”라고 말했다. 그 용왕이 앞서 가고 이 멍청이가 뒤따라 수정궁 전각을 돌아 지나니, 행랑 아래에 육 자쯤 되는 긴 몸뚱이가 가로로 누워 있었다. 용왕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원수시여, 저쪽이 바로 보물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팔계가 앞으로 다가가 보니, 아! 그것은 본래 죽은 황제였는데, 하늘을 찌를 듯한 관을 쓰고, 자줏빛 누런 곤룡포를 입고, 근심 없는 신을 신고, 남전대를 띠고서, 그쪽에 뻣뻣하게 누워 있었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어려워! 어려워! 보물이라 할 수 없소! 이 늙은 돼지가 산에서 요괴로 있을 적에는 이런 물건을 늘 밥으로 삼았소. 본 것이 얼마나 많은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먹은 것도 셀 수 없을 만큼 먹었는데, 어디 그것을 무슨 보물이라 부른단 말이오!” 용왕이 말했다. “원수께서는 본래 모르시는구려. 그는 본래 오계국 왕의 시신이옵니다. 우물에 들어온 이래 내가 정안주로 그를 고정시켜 두어 상하지 않았사옵니다. 원수께서 그를 업고 나가 제천대성을 뵙기를 허락하신다면, 혹여 죽은 이를 살려 낼 뜻이 있다 하면, 보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원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다 있사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그리 말한다면, 내가 그를 업고 나가 주지요. 다만 장사 지내는 돈을 얼마나 주겠소?” 용왕이 “실로 돈이 없소이다.”라고 말했다. 팔계가 “공짜로 사람을 부릴 셈이오? 정말로 돈이 없다면 업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용왕이 “업지 않으시려거든, 가시옵소서.”라고 말했다. 팔계가 곧 가 버렸다. 용왕이 힘센 야차 둘을 시켜 시신을 들어 내어 수정궁 문 밖으로 내다가 그쪽에 내동댕이치고, 벽수주를 거두어 내자 곧 물소리가 났다. 팔계가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수정궁 문은 보이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것은 그 황제의 시신이었다. 그는 다리가 풀리고 힘줄이 저려 물 위로 솟구쳐 올라 우물 벽을 붙잡고 “사형! 몽둥이를 내려 나를 좀 구해 주오!”라고 외쳤다. 행자가 “보물이 있느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말했다. “거기 무슨 보물이 있소! 다만 물 밑에 정용왕이 하나 있어서 나더러 죽은 사람을 업으라 하였소. 내가 업지 않으니 그는 나를 문 밖으로 내보내고는 곧 그 수정궁이 보이지 않게 되었소. 다만 그 시신만 만져졌는데, 겁이 나서 손에 힘이 풀리고 힘줄이 저려 움직일 수가 없단 말이오! 형님! 어떻게든 나를 좀 구해 주오!” 행자가 “그것이 바로 보물인데, 어찌 업고 올라오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그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내가 그를 어찌 업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네가 업지 않으면, 나는 돌아가마.”라고 말했다. 팔계가 “어디로 돌아간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나는 절로 돌아가 스승님과 함께 자러 가마.” 팔계가 “그럼 나는 가지 않는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네가 기어올라올 수 있으면 데려가 주마. 기어올라오지 못하면 그만이다.”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어찌 기어올라갈 수 있단 말이오! 생각해 보시오, 성벽도 오르기 어려운데, 이 우물은 배가 크고 입구가 작으며 벽은 깎아지른 듯한 둘레 담이오. 또 몇 년째 물을 길지 않은 우물이라 둘레에 온통 이끼가 자라 있어 몹시 미끄럽단 말이오. 어찌 기어오르란 말이오? 형님, 형제간의 정을 저버리지 말고, 내가 업고 올라갈 테니 기다려 주시오.” 행자가 “그것이 옳도다. 어서 어서 업고 올라오너라. 내가 너와 함께 돌아가서 자마.”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가 다시 한 번 잠수하여 푹 내려가 시신을 더듬어 찾아 끌어당겨 등에 지고 물 위로 솟구쳐 올라와 우물 벽을 붙잡으며 “형님, 업고 올라왔소.”라고 말했다. 그 행자가 눈을 부릅뜨고 보니 참으로 등에 지고 있었다. 그제야 여의금고봉을 우물 바닥으로 내리니, 성이 난 그 멍청이는 입을 벌려 쇠몽둥이를 물었고, 행자에게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팔계가 시신을 내려놓고는 옷을 주워 걸쳤다. 행자가 보니 그 황제의 용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행자가 “아우야, 이 사람이 죽은 지 삼 년인데 어찌 아직 얼굴이 상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형님은 모르시는구려. 정용왕이 내게 말하기를, 그가 정안주를 써서 고정시켜 두어 시신이 상하지 않았다 하였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횡재로다! 횡재로다! 하나는 그의 원한이 아직 갚히지 않았기 때문이요, 둘은 우리가 성공할 때가 된 것이니라. 아우야, 어서 그를 업고 가자꾸나.”라고 말했다. 팔계가 “어디로 업고 간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업고 가서 스승님을 뵙자.”라고 말했다. 팔계가 입으로 중얼거렸다. “어찌된 일인가! 어찌된 일인가! 잘 자고 있던 사람을 이 원숭이 놈이 감언이설로 꾀어 무슨 장사를 하자더니, 이제는 이런 일을 벌여 나더러 시신을 업으란 말이냐! 그를 지고 가노라면 더러운 고인 물이 뚝뚝 떨어져 옷을 더럽힐 터인데, 빨아 줄 사람도 없단 말이오. 위에 헝겊 조각 몇 개를 덧댄 것이 흐린 날이면 축축해지는데, 어찌 입을 수 있단 말이오?” 행자가 “너는 그냥 지고 가기만 하여라. 절에 이르면 내가 너에게 옷을 바꾸어 주마.”라고 말했다. 팔계가 “부끄럽지도 않소! 형님 입을 옷도 없으면서 남의 옷을 바꾸어 준다니!” 행자가 “그렇게 말장난만 부릴 터이면 업지 말아라!”라고 말했다. 팔계가 “업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그럼 복사뼈를 내밀어라, 스무 방망이를 때려 주마!”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형님, 그 몽둥이는 무거우니 스무 대를 맞으면 나도 이 황제처럼 되고 말겠소.” 행자가 “매를 두려워하거든, 일찍 업고 길을 가거라!”라고 말했다. 팔계는 과연 매를 두려워하여 못마땅한 듯 시신을 끌어당겨 등에 지고는, 발을 끌며 동산을 나서 곧장 걸어갔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주술을 외우고 주문 한 마디를 읊은 뒤, 손 방위를 향해 한숨을 들이마셔 내뿜으니 그것이 곧 한바탕 광풍이 되어, 팔계를 황궁 안뜰 밖으로 들어 올려 성을 벗어나게 하고는 바람을 거두었다. 두 사람이 땅에 내려앉아 천천히 걸어오는데, 그 멍청이는 마음속으로 몰래 분을 삭이며 행자에게 원한을 갚을 궁리를 하였다. “이 원숭이 놈이 나를 골려 먹었으니, 나도 절에 가서 그 놈을 골려 먹어야겠다. 스승님께 부추겨 그가 능히 살려 낼 수 있다 하게 하자. 살려 내지 못하면 스승님께 《긴고아주》를 외우시게 하여, 이 원숭이 놈의 골수를 짜 내게 해야 내 마음이 통쾌하겠구나!” 그는 길을 걸으며 거듭거듭 생각했다. “좋지 않다! 좋지 않다! 그에게 사람을 살리라 하면 오히려 쉬우니, 그가 염라대왕네 집에 가서 혼령을 얻어 오면 곧 살려 낼 터이다. 저승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고, 이 승간에서 곧 살려 내라 해야 이 수가 좋겠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산문 앞에 이르렀다. 그들은 곧장 안으로 들어가 시신을 그 선당 문 앞에 내동댕이치고 “스승님, 일어나셔서 이것을 보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그 당승은 잠이 오지 않아 사승과 함께 행자가 팔계를 꾀어 데리고 간 지 오래인데도 돌아오지 않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홀연히 그가 와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급히 몸을 일으키며 “제자야, 무엇을 보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말했다. “행자의 외할아버지를 이 늙은 돼지더러 지고 오라 하였소이다.” 행자가 “이 밥통 같은 멍청이야! 내게 무슨 외할아버지가 있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팔계가 “형님, 형님의 외할아버지가 아니라면 어찌 이 늙은 돼지더러 그를 지고 오라 하였소? 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도 모르오!”라고 말했다. 그 당승과 사승이 문을 열고 보니, 그 황제의 얼굴은 변하지 않고 산 사람과 같았다. 장로가 홀연히 처연하게 말했다. “폐하시여, 그대는 어느 세상의 원수인지를 모른 채 금생에 그를 만나 은밀히 몸을 잃고, 처자를 버려 문무 백관이 알지 못하고 여러 관원이 깨닫지 못하게 되었구려! 가련하다, 그대의 처자가 어리석어 누가 향을 사르고 차를 올리는 것을 보았단 말이오?” 그는 홀연히 소리를 놓아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그가 죽은 것이 스승님과 무슨 상관이 있사옵니까? 또 스승님의 조상도 아니신데 어찌 그를 두고 우시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출가한 사람은 자비가 근본이요 방편이 문이니라. 너는 어찌 그리도 마음이 굳센고?” 팔계가 말했다. “마음이 굳센 것이 아니옵니다. 사형이 나에게 말하기를, 그가 능히 살려 낼 수 있다 하였사옵니다. 만일 살려 내지 못한다면 나도 그를 지고 오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그 장로는 본래 주견이 없는 사람이라, 그 멍청이에게 흔들려 곧바로 불렀다. “오공아, 과연 능히 이 황제를 살려 낼 수 있다면, 이는 한 목숨을 구하는 것이 칠급부도를 쌓는 것보다 나은 일이니라. 우리도 영산에 가 부처님께 절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으리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어찌하여 이 멍청이의 허튼소리를 믿으시나이까! 사람이 죽으면 삼칠이나 오칠, 칠칠일을 다 채워 양간의 죄과를 다 받고 나면 곧 윤회하여 가 버리옵니다. 지금 이미 죽은 지 삼 년이니, 어찌 구할 수 있사옵니까!” 삼장이 그 말을 듣고 “그러하구나.”라고 말했다. 팔계가 원한을 품은 채 그치지 않고 말했다. “스승님, 그에게 속지 마시옵소서. 그는 머리에 병이 좀 있사옵니다. 스승님께서는 그저 그 주문만 외우시옵소서. 틀림없이 산 사람 하나를 스승님께 돌려드릴 것이옵니다.” 참으로 당승이 곧 《긴고아주》를 외우니, 그 원숭이는 눈이 부어오르고 머리가 아팠다. 결국 어찌하여 살려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39회 일립금단천상득(一粒金丹天上得) · 삼년고주세간생(三年故主世間生)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손오공은 머리가 아파 견디기 어려워 애걸하며 말했다. "사부님, 외우지 마소서! 외우지 마소서! 저더러 고쳐 보게 하소서!" 장로가 물었다. "어떻게 고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저승에 내려가 염라대왕 댁에 그의 혼령이 있는지 조사하여 데려다가 그를 구하는 길밖에는 없나이다." 팔계가 말했다. "사부님, 저놈 말을 믿지 마소서. 저놈은 애당초 저승에 가지 않고도 양세상에서 곧 살려 낼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 솜씨를 보이라는 것이옵니다." 그 장로는 그릇된 말을 곧이듣고 또 《긴고아주》를 외우니, 행자가 놀라 입이 닳도록 승낙하며 말했다. "양세상에서 고치겠나이다! 양세상에서 고치겠나이다!" 팔계가 말했다. "그만두지 마소서! 그저 외우소서! 그저 외우소서!" 행자가 꾸짖었다. "이 어리석고 미련한 놈아, 사부님을 부추겨 나를 주문으로 괴롭히는구나!" 팔계는 웃다가 나동그라지며 말했다. "형님! 형님! 형은 나를 골려 줄 줄만 알지, 나도 형을 골려 줄 줄은 모르는구나!"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외우지 마소서! 외우지 마소서! 이 늙은 손오공이 양세상에서 고쳐 보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양세상에서 어찌 고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제가 지금 근두운을 타고 남천문 안으로 뛰어들어, 두우궁에도 들지 않고 영소전에도 들지 않고, 곧장 삼십삼천 위에 있는 이한천궁 도솔원 안으로 가서 태상노군을 만나 그의 구전환혼단 한 알을 구해 오면, 틀림없이 그를 살려 낼 수 있나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어서 가서 속히 돌아오너라." 행자가 말했다. "지금이 삼경 무렵이온데 갔다 오면 훤히 날이 밝겠나이다. 다만 이 사람이 여기에 누워 있으니 쓸쓸하고 적막하여 보기에 꼴이 되지 않사옵니다. 상을 치르는 사람이 곁에서 그를 보며 곡을 해 주어야만 비로소 좋사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원숭이는 필경 나더러 곡을 하라는 소리로구나." 행자가 말했다. "네가 울지 않을까 두렵구나! 네가 곡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고쳐 낼 수 없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형님은 형님대로 가시고, 나는 나대로 곡이나 하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곡에도 몇 가지가 있느니라. 입이 마른 채로 소리쳐 부르짖는 것을 호라 하고, 억지로 눈물을 짜 내는 것을 도라 하느니라. 눈물이 있어야 하고 또 애틋한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호도통곡이라 이를 수 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내가 먼저 본을 보여 주마. 잘들 보시게." 그는 어디서 종이쪽지 하나를 뜯어다 비벼서 꼰 심지처럼 만들어 콧구멍을 두어 번 쑤시더니 재채기를 몇 번 하였는데, 보라,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콧물이 질질 흐르는 가운데 곡을 시작하니, 입에서는 줄곧 중얼거리며 갖은 것을 늘어놓는데, 참으로 사람이 죽은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애끓도록 슬픈 대목에 이르자 당나라 장로마저 눈물을 떨구며 마음이 저렸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렇게 애통해하면 되고 소리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 멍청한 놈이 나를 떠나보내고 나서 곡을 그만두더라도, 나는 여전히 듣고 있느니라! 이렇게 곡을 하면 그만이지만, 조금이라도 소리를 멈추면 정녕 복사뼈를 스무 대를 때려 주리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가시오, 가시오! 나는 이 곡을 한번 시작하면 이틀은 울 수 있소." 사승이 그가 늘어놓는 것을 보고 향 몇 자루를 찾아다 태워 바치니,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 좋아! 온 집안 식구가 다 정성이 있으니, 이 늙은 손오공도 공을 들일 수 있겠구나."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이때는 한밤중이었는데, 사부와 사제 세 사람에게 작별하고 근두운을 타고 곧장 남천문 안으로 들어가니, 과연 영소보전에도 인사하지 않고 저 두우천궁에도 오르지 않은 채, 한 줄기 구름빛을 따라 삼십삼천 이한천 도솔궁 안으로 곧장 이르렀다. 문에 들어서니 과연 태상노군이 바로 저 단방 가운데 앉아 여러 선동과 더불어 파초선을 들어 불을 부치며 단을 단련하고 있었다. 그가 행자가 오는 것을 보자 곧 단을 지키는 동자에게 분부하였다. "각별히 조심하라. 단을 훔치는 도둑이 또 왔느니라." 행자가 절을 올리며 웃어 말했다. "영감님, 이렇게 점잖지 못하시기는, 나를 어찌 그리 경계하시오? 나는 이제 그런 짓을 하지 않소." 노군이 말했다. "너 그 원숭이는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며 내 영단을 셀 수도 없이 훔쳐 먹었느니라. 그래서 소성 이랑에게 붙잡혀 상계로 올려져 내 단로 속에서 사십구 일을 단련되었는데, 숯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느니라. 네가 이제 요행히 벗어나 불과에 귀의하여 당승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면서, 지난번 평정산에서 마귀를 항복시킬 때에는 꾀를 부려 내 보배를 내놓지 않았거늘, 오늘 또 와서 무엇을 하려느냐?" 행자가 말했다. "지난번 일은 이 늙은 손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영감님의 그 보배 다섯 가지를 그 자리에서 도로 갖다 드렸거늘, 도리어 의심하며 나를 나무라시는 것이오?" 노군이 말했다. "너는 갈 길이나 가지 않고 내 궁에 숨어드니 어찌된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헤어진 뒤로 서쪽으로 한 지방을 지났는데 이름이 오계국이오. 그 나라 임금이 요괴 하나가 도사로 꾸민 자에게 바람을 불고 비를 내리게 하여 은밀히 해를 입었는데, 그 요괴가 임금의 모습으로 변하여 지금 금란전에 앉아 있소. 우리 사부님이 밤에 보림사에 앉아 경을 보시는데, 그 나라 임금의 혼백이 우리 스승께 참배하며 이 늙은 손에게 간청하여 그 요괴를 항복시키고 사특함과 바름을 가려 달라 하였소. 이 늙은 손이 증거가 없을까 싶어 아우 팔계와 함께 밤에 동산으로 들어가 정원을 헤집고 묻어 둔 곳을 찾아보니 바로 팔보유리정 속이라, 그 시신을 건져 올렸더니 얼굴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소. 절에 이르러 우리 스승을 뵈옵고 그이가 자비를 베풀어 이 늙은 손에게 구해 내라 하시되, 저승에 가서 넋을 찾아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시고 다만 양세상에서 치료하라 하셨소. 생각해도 다시 살려 낼 방도가 없어 특별히 찾아와 뵈오니, 바라건대 도조께서 굽어 살피시어 구전환혼단 천 알만 빌려 주시어 이 늙은 손이 그를 건져 내게 하소서." 노군이 말했다. "이 원숭이놈 헛소리도 분수가 있지! 무슨 천 알, 이천 알! 밥으로 먹으려 드느냐! 어디 흙덩이를 파다가 뭉쳐 만든다기에 그리 쉽단 말이냐? 쯧, 어서 꺼져라! 없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백 알이나 열 알 남짓이면 좋겠나이다." 노군이 말했다. "그것도 없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열 알가량이면 좋겠나이다." 노군이 성을 내며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 참으로 끈덕지구나! 없다, 없다! 나가라, 나가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없다시니, 다른 곳에 가서 구해 보겠나이다." 노군이 호통쳤다. "꺼져라! 꺼져라! 꺼져라!" 이 대성은 발길을 돌려 앞을 향해 곧장 걸어 나갔다. 노군은 문득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원숭이는 게으르면서도 약아, 간다면서 곧 가는 것을 보니 도로 몰래 기어들어 훔칠까 두렵구나." 곧 선동에게 불러 세우게 하고 말했다. "이 원숭이야, 손과 발이 가만있지를 못하는구나. 내 이 환혼단 한 알을 너에게 주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영감님, 이미 이 늙은 손의 솜씨를 아셨으니 어서 금단을 꺼내어 나와 사육으로나마 나누시지요. 그래야 도리어 영감님께 복이 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가죽 바가지 하나를 선물로 드려 한 번에 긁어 모조리 비워 버리겠소." 그 노조가 표주박을 가져다 밑바닥을 거꾸로 뒤집어 금단 한 알을 쏟아 내어 행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니라. 가져가거라, 가져가거라! 너에게 이 한 알을 주어 저 임금을 살려 내거든, 다만 네 공덕으로만 여기도록 하여라." 행자가 받아들고 말했다. "잠깐 서두르지 마시오. 내가 맛을 좀 보아 가짜인지 아닌지 알아보겠소. 자칫하면 그에게 속을까 싶소." 그러고는 퍼뜩 입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 노조가 깜짝 놀라 달려들어 붙잡으며 정수리 가죽을 움켜쥐고 주먹을 불끈 쥐고는 욕하며 말했다. "이 미련한 원숭이놈, 삼켜 버린다면 당장 쳐 죽이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꼴 좀 보소! 쩨쩨하기도 하시구려! 누가 그것을 먹는답디까? 값이 얼마나 한다고, 헛것은 많고 실속은 적은 것이 여기 그대로 있지 않소?" 원래 그 원숭이는 턱 밑에 주머니가 있었는데, 그 금단을 그 주머니에 물고 있던 것을 노조가 꼬집어 쥐고 말했다. "가거라! 가거라! 다시는 이리 와서 치근덕거리지 말라!" 이 대성은 그제야 노조에게 인사를 올리고 도솔천궁을 나왔다. 보라, 그는 천 줄기 상서로운 기운에 실려 요궐을 떠나고 만 갈래 길한 구름을 타고 속세로 내려와, 잠깐 사이에 남천문을 내려와 동쪽 땅에 닿으니 어느새 저기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구름머리를 누르고 보림사 산문 밖에 곧장 이르러 보니 팔계가 아직도 곡을 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득 가까이 나아가 불렀다. "사부님!" 삼장이 기뻐하며 말했다. "오공이 왔느냐, 단약은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있나이다." 팔계가 말했다. "어찌 없겠소마는, 훔쳐서라도 남의 집 것을 좀 얻어왔겠지!"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야, 너는 비켜라. 이제는 네가 쓸 데 없다. 눈물이나 훔치고 딴 데 가서 곡이나 하여라." 그리고 분부했다. "사화상, 물을 좀 떠 오너라." 사승이 급히 뒤뜰 우물로 갔는데, 거기에는 두레박이 달려 있어 손쉽게 물을 길을 수 있었다. 곧 바리때에 반 그릇 되는 물을 떠다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물을 받아 입에서 단을 뱉어내어 그 임금의 입술 사이에 넣고 두 손으로 이를 벌린 뒤, 맑은 물 한 모금으로 그 금단을 씻어 넘겨 뱃속으로 흘려 보냈다. 반 시진쯤 지나자 그의 뱃속에서 부글부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래도 몸은 꼼짝할 수 없었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제 금단을 써도 살려 내지 못하니, 이 늙은 손을 속이 끓여 죽이실 셈이시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어찌 살아나지 않을 이치가 있겠느냐. 이토록 오래 죽어 있던 시신이 어찌 물을 삼킬 수 있겠느냐. 이것이 바로 금단의 신선한 힘이니라. 금단이 뱃속에 들어가자 곧 창자가 울었으니, 창자가 운다는 것은 혈맥이 화합하여 움직인다는 뜻이로되, 기운이 끊어져 몸을 펴지 못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우물 속에 삼 년이나 잠겨 있었으니 무쇠라도 녹이 슬었을 터, 다만 원기가 바닥나 끊어졌을 뿐이니, 누군가 숨 한 번 불어넣어 주면 곧 나으리라."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곧 숨을 불어넣으려 하자 삼장이 와락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도 오공더러 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 사부에게는 나름대로 분명한 까닭이 있었다. 원래 저팔계는 어렸을 적부터 살생을 일삼고 악업을 지으며 사람을 잡아먹고 살아왔으니 입에서 나오는 것이 탁한 기운이요, 오직 행자만이 어려서부터 수행하여 솔잎을 씹고 잣나무 껍질을 뜯으며 복숭아와 과일을 먹고 살아왔으니 한입 맑은 기운이었다. 이 대성이 앞으로 나서더니 뇌공 같은 그 입을 임금의 입술에 대고 훅 하고 한 숨을 불어넣어 목구멍으로 들이보내고, 중루를 지나 명당에서 굽이쳐 곧장 단전에 이르게 한 뒤, 다시 용천에서 거꾸로 올려 니원궁에 닿게 하였다. 훠익 하고 큰소리가 나더니 그 군왕의 기운이 모이고 정신이 돌아왔다. 몸을 뒤척이며 주먹을 휘두르고 다리를 굽혔다 펴더니 "사부님!" 하고 한마디 외쳤다. 그리고 두 무릎을 먼지 난 땅에 꿇고 아뢰었다. "어젯밤에는 귀신이 되어 찾아뵈었거늘, 뜻밖에도 오늘 아침 날이 밝자 양세상으로 정신이 돌아왔나이다!" 삼장이 황급히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폐하, 이는 이 늙은 중의 일이 아니옵니다. 먼저 제 제자에게 고마움을 표하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늘 하는 말에 집에 주인이 둘일 수 없다 하였으니, 받으실 만한 절 한 번 받으신다 해서 손해 보실 것 없나이다." 삼장은 몹시 마음이 쓰였으나 그 임금을 부축하여 일으켜 함께 선당으로 들어가니, 임금은 다시 팔계와 행자와 사승에게도 인사를 올리고서야 비로소 자리에 앉았다. 그때 본절의 승려들이 아침 공양을 차려 바치려 하는데, 문득 저 물에 젖은 임금을 보고는 하나같이 놀라며 모두 의심스러운 눈으로 수군거렸다. 손행자가 뛰어나오며 말했다. "거기 스님들, 그리 놀라고 의심하지 마시오. 이는 본디 오계국의 임금이시니 곧 그대들의 참된 군주시라. 삼 년 전에 괴물에게 목숨을 잃으셨는데 이 늙은 손이 오늘 밤 살려 내었으니, 이제 그 성으로 들어가 사특함과 바름을 가려 내려 하오. 공양이 마련되었거든 내어 오시오. 우리가 먹고 길을 떠나야 하겠소." 스님들이 곧 더운 물을 올려 얼굴을 씻게 하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 임금의 붉은 황포를 벗기고는 본절의 승관이 내어 온 베로 만든 장삼 두 벌을 입혔고, 옥띠를 풀어 버리고 누런 명주실로 꼰 띠 한 줄을 매어 주었으며, 근심 없는 신이라 불리는 그 신발을 벗기고는 헌 승려 신발 한 켤레를 신겨 주었다. 그제야 모두 함께 아침 공양을 먹고 말안장을 얹었다. 행자가 물었다. "팔계야, 네 짐이 얼마나 무겁더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 짐은 날마다 지고 다니면서도 도리어 얼마나 무거운지는 모르겠소." 행자가 말했다. "그 한 짐을 둘로 나누어 한 짐은 네가 지고 한 짐은 이 임금에게 지우거라. 그리고 일찍 성 안으로 들어가 일을 보아야 하겠다." 팔계가 기뻐하며 말했다. "횡재로구나! 횡재야! 그때 그를 업어 오느라고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살려 놓고 보니 원래 대신 짐을 질 사람이었구나!" 그 멍청이는 곧 요령을 부려 짐을 나누고 절에서 멜대 하나를 가져다, 가벼운 쪽은 자기가 메고 무거운 쪽은 그 임금에게 메게 하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 그렇게 차려입고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걸으시니 섭섭하시지 않으시옵니까?" 그 임금이 황망히 무릎을 꿇으며 아뢰었다. "스승님, 스승님은 소인을 다시 낳아 주신 부모나 다름없사옵니다. 짐을 지는 것쯤이야 말할 것도 없사옵고, 채찍을 쥐고 등자를 받드는 일이라도 기꺼이 하여 스승님을 모시고 서천까지 함께 가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폐하께서 서천에 가실 것까지는 없사옵니다. 내게는 속에 품은 까닭이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사십 리만 지고 성에 들어가시면 되옵니다. 요괴를 잡고 나면 폐하께서는 도로 폐하의 임금 노릇을 하시고, 우리 또한 우리의 경전을 구하러 가면 그만이옵니다." 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런 말씀이라면 그는 사십 리만 지면 그만이고, 나 이 늙은 저팔계는 그대로 머슴이로구나!"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헛소리 말고 일찍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여라." 과연 팔계가 그 임금을 이끌고 앞서가고, 사승이 사부님의 말에 오르시도록 모시고 행자가 뒤를 따르니, 본절의 오백 명 승려가 가지런히 정돈하여 곱고 고운 음악을 불고 치며 모두 산문 밖까지 배웅을 나왔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님들은 멀리 배웅하지 마시오. 관가 사람이 알아차려 내 일이 새어 나가면 도리어 좋지 않소. 어서들 돌아가시오! 어서 돌아가란 말이오! 다만 저 임금의 옷과 관대를 깨끗이 정돈하여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성 안으로 보내 주시오. 내 봉록이며 하사품을 좀 구하여 은혜를 갚겠소." 승려들이 분부대로 모두 돌아갔다. 행자가 큰 걸음으로 앞서가 사부님을 따라잡아 곧장 나아가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서쪽 방에는 진리를 찾을 묘한 비결이 있어 금과 목이 화합하여 도리어 정신을 단련하는구나. 단모는 헛되이 어리석은 꿈을 품었고 영아는 늘 쓸모없는 몸을 한탄하노라. 모름지기 우물 밑에서 밝은 임금을 구하고 다시 하늘 궁궐에 올라 노군께 절을 올려야 하느니라. 색과 공을 깨달아 본성으로 돌아가니, 참으로 부처가 인연 있는 사람을 건지는 것이로다. 사부와 제자들이 길 위에서 반나절도 되지 않아 어느덧 성곽이 가까이 바라보이자,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저 앞이 아마 오계국이로구나."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우리가 서둘러 성 안으로 들어가 일을 봅시다." 그 사부와 제자들이 성 안으로 들어서니 저잣거리에는 사람들의 차림새가 가지런하고 풍경이 떠들썩하며 흥청거렸는데, 어느덧 봉황 누각과 용의 전각이 눈에 들어오니 몹시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바다 건너의 궁누각은 윗나라와 같고 인간 세상의 노래와 춤은 옛 당나라와 같구나. 꽃은 보선을 맞이하여 붉은 구름이 감돌고 햇살은 곱디고운 옷에 비치어 비취 안개가 빛나는구나. 공작 병풍이 열리며 향기로운 기운이 피어나고 진주 발이 걷히자 채색 깃발이 펼쳐지는구나. 태평한 광경이 참으로 축하할 만하니, 조용히 늘어선 여러 관원이 올릴 상소 한 장 없구나. 삼장이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제자들아, 우리가 곧장 조정으로 들어가 관문을 바꾸어 치자. 괜히 저 관아에 들러 일을 벌이는 수고를 덜게 되지 않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우리 형제가 모두 들어가지요. 사람이 많아야 말하기도 좋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다 함께 들어가되, 상스러운 말을 함부로 뱉지 말고 먼저 임금과 신하의 예를 갖춘 연후에 이야기를 꺼내도록 하여라." 행자가 말했다. "임금과 신하의 예를 행하려면 곧 절을 올려야 하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그러하니라. 다섯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큰 예를 행해야 하느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아직 미흡하시옵니다. 그에게 예를 갖춘다면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일이옵니다. 저를 먼저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나이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거든 저더러 대답하게 해 주시옵고, 제가 절을 하면 그대들도 절을 하시고 제가 쭈그리고 앉으면 그대들도 쭈그리고 앉으시옵소서." 보라, 저 재앙을 부르는 원숭이 왕이 조정 문으로 사람을 이끌고 가 각문대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동토 대당 황제의 명을 받들고 서천으로 올라가 부처께 절하고 진경을 구하러 온 자들이오. 이제 이곳에 이르러 관문을 바꾸고자 하니, 대감께서 전달해 주시면 착한 인연을 그르치지 않는 길이 되리다." 그 황문관이 곧 단문으로 들어가 붉은 섬돌 아래에 꿇어 아뢰었다. "조정 문 밖에 승려 다섯이 있사온데, 동토 당나라 황제가 특별히 보낸 자로서 서천에 올라 부처께 절하고 진경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 하나이다. 이제 이곳에 이르러 관문을 바꾸고자 하오나 감히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밖에서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 마왕이 곧 들어오라 명하였다. 당승은 조정 문 안으로 함께 들어가고 저 환생한 국주도 뒤를 따랐다. 가는 내내 뺨을 타고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속으로 탄식하였다. "가련하다! 놋 말 같은 나의 강산과 쇠로 에워싼 사직을, 누가 알았으랴, 저놈이 은밀히 빼앗아 차지하였구나!" 행자가 말했다. "폐하, 부디 슬퍼하지 마시옵소서. 소문이 새어 나갈까 염려되옵니다. 이 몽둥이가 내 귀 속에서 펄쩍거리고 있사오니, 이제는 기어이 공을 보여야 하겠나이다. 틀림없이 요마를 때려 죽이고 사악한 것들을 쓸어 버리면 이 강산도 오래지 않아 폐하께 돌아오리이다." 그 군왕은 감히 말을 어기지 못하고 옷자락을 잡아당겨 눈물을 훔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살아난 몸으로 금란전 아래에 곧장 이르렀다. 또 저 좌우 두 줄로 늘어선 문무와 사백 명의 조관이 하나같이 위엄 있고 단정하며 엄숙하고 용모가 늠름하였다. 이 행자가 당승을 이끌고 백옥 계단 앞에 서서 몸을 꼿꼿이 펴고 움직이지 않으니, 섬돌 아래 여러 관원이 두려워하며 말했다. "저 중은 몹시 어리석고 혼탁하구나! 어찌 우리 임금을 뵙고도 절을 올리지 않고, 또한 입을 열어 축원 한마디도 올리지 않는단 말인가? 인사조차 않다니, 참으로 간이 크고 무례한 놈이로다!"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 마왕이 입을 열어 묻는 소리가 들렸다. "저 중은 어느 지방에서 온 자냐?" 행자가 거만하게 대답했다. "나는 남섬부주 동토 대당국 황제의 명을 받들고 서역 천축국 대뇌음사로 가서 살아 계신 부처께 절하고 진경을 구하러 온 자로라. 이제 이 지방에 이르러 헛되이 지나칠 수 없어 특별히 통관문첩을 바꾸러 왔노라." 그 마왕이 이 말을 듣고 속으로 화가 치밀어 말했다. "네 동토가 대수냐! 나는 네 조정에 조공도 바치지 않고 너희 나라와 통교도 하지 않거늘, 네가 어찌 나를 대하고서 맞절의 예를 쓰며 참배하지 않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동토는 예로부터 일컬어 천조라 하고 오래도록 윗나라라 불렸거늘, 너희는 곧 아랫땅 변방이니라. 예로부터 이르기를, 윗나라 황제는 아비요 임금이 되고 아랫나라 황제는 신하요 자식이 된다 하였느니라. 너는 도리어 나를 마중하지도 않았거늘 도리어 감히 절을 올리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어오느냐?" 그 마왕이 크게 노하여 문무관에게 분부했다. "저 거친 중을 붙잡아 내치라!" "잡아라!" 하는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보라, 여러 관원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이 행자가 큰소리로 호통치고 손가락 하나를 내저으며 외쳤다. "오지 마라!" 그 한 번 가리킴에 정신법이 걸려 여러 관원이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으니, 참으로 교위는 섬돌 앞의 나무 인형 같고 장군은 전각 위의 흙 사람 같았다. 그 마왕이 그가 문무 여러 관원을 묶어 버린 것을 보고 급히 몸을 날려 용상에서 뛰어내리며 친히 붙잡으려 하였다. 원숭이 왕이 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하였다. "좋다! 바로 이 늙은 손의 뜻에 맞는구나. 저렇게 나서 주니 쇳물로 부어 만든 머리라도 내 몽둥이에 닿기만 하면 구멍을 내 주리라!" 막 몸을 움직이려는데 뜻밖에도 곁에서 구원의 별 하나가 나타났다. 그대는 누구라 생각하는가? 이는 바로 오계국 왕의 태자라, 급히 앞으로 나서며 저 마왕의 조복을 붙잡고 면전에 꿇어 아뢰었다. "부왕, 노여움을 거두소서." 요정이 물었다. "아이야, 무슨 말이냐?" 태자가 아뢰었다. "부왕께 아뢰나이다. 삼 년 전에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동토 당나라 황제의 명을 받든 성스러운 승려가 서천으로 부처께 절하고 진경을 구하러 간다 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오늘에야 저희 나라에 이르렀나이다. 부왕께서는 성품이 위엄 있고 매서우시니, 이 중을 붙잡아 참수하시면 뒷날 대당이 이 소식을 듣고 틀림없이 진노할까 두렵나이다. 저 이세민을 한번 헤아려 보시옵소서. 스스로 왕위에 올라 강산을 통일하고도 마음이 아직 채워지지 않아 바다 건너 정벌까지 일으킨 사람이옵니다. 만일 우리 임금이 그의 의동생 되는 성승을 해쳤다는 것을 알면, 틀림없이 군사를 일으키고 말을 몰아 우리 임금과 맞서 싸우러 올 것이옵니다. 그런데 병사는 적고 장수는 보잘것없으니, 그때에 이르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사오리까. 부왕께서는 이 아이가 아뢰는 대로 하시어, 우선 저 중 넷의 내력을 똑똑히 캐물으시고 먼저 임금의 어가에 참배하지 않은 죄목부터 정하신 연후에 죄를 묻으셔도 늦지 않사옵니다." 이 한바탕은 본디 태자가 조심하는 마음으로 당승이 혹여 해를 입을까 두려워 일부러 요마를 붙들어 둔 것이었으니, 행자가 그 자리에서 몽둥이를 들고 때릴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그 마왕이 과연 그 말을 믿고 용상 앞에 서서 큰 소리로 호통쳤다. "저 중은 언제 동토를 떠났느냐? 당나라 임금이 무슨 일로 너더러 경을 구하러 가라 하였느냐?" 행자가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우리 사부님은 당나라 임금의 의동생이시니 호를 삼장이라 하느니라. 당나라 임금의 수하에 위징이라는 승상이 있었는데 천조의 법을 받들어 꿈결에 경하의 늙은 용을 베었느니라. 대당 임금이 꿈에 저승을 두루 돌아보고 다시 살아난 뒤에 큰 수륙도량을 열어 원혼과 업귀를 널리 천도하였느니라. 그때 우리 사부님이 경문을 펼치고 넓게 자비를 베푸시는데, 문득 남해 관세음보살이 가르침을 내려 서녘으로 오라 하였느니라. 우리 사부님이 크게 서원을 세우고 기꺼운 마음으로 나라에 보답하고자 충성을 다하니, 당나라 임금이 문첩을 내려 주시었느니라. 그때가 바로 대당 정관 십삼 년 구월 보름 사흘 전이었느니라. 동토를 떠나 양계산에 이르러 나를 거두어 큰 제자를 삼으시니 성은 손이요 이름은 오공, 호는 행자라 하고, 또 오사국 경계 고가장에 이르러 둘째 제자를 거두시니 성은 저요 이름은 오능, 호는 팔계라 하며, 유사하 경계에서 셋째 제자를 거두시니 성은 사요 이름은 오정이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앞서 날 칙명으로 세운 보림사에서 짐을 지는 행동 도인 하나를 새로이 거두었느니라." 마왕이 그 말을 듣고는 당승을 샅샅이 뒤져 볼 방도가 없으니 꾀를 부려 행자를 캐묻기로 하고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저 중아, 너는 처음에 홑몸으로 동토를 떠났다가 네 놈을 거두었다 하니, 저 중 셋은 그려러니 하더라도 이 도인은 용납할 수 없다. 저 행동이 틀림없이 훔쳐 데려온 놈이로다. 그놈 이름이 무엇이냐? 도첩이 있느냐 없느냐? 그놈을 끌어올려 자백을 받아라." 그 임금이 겁에 질려 벌벌 떨며 말했다. "스승님! 저는 어찌 자백을 하오리까?" 손행자가 그를 꼬집으며 말했다. "겁내지 마시오. 내가 대신 자백하겠소." 훌륭한 대성이로다, 걸음을 재촉하여 앞으로 나서며 괴물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폐하, 이 늙은 도인은 벙어리라 입으로 말을 못 하는 데다 귀까지 좀 먹었나이다. 다만 어려서 서천을 다녀온 적이 있어 길을 아는지라, 그가 겪어 온 내력과 근본을 제가 모두 알고 있사오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제가 대신 자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왕이 말했다. "어서 그대로 대신 자백하여라. 스스로 죄를 뒤집어쓰지 않도록." 행자가 말했다. "자백하옵나니 저 행동은 나이 또한 이미 늙었사옵고 어리석고 귀먹고 벙어리에 집안마저 망가졌나이다. 본래 이 고장 사람이었으나 오 년 전에 집안이 망하였나이다. 하늘에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이 메말라 죽게 되니, 임금과 백성이 모두 재계를 올렸나이다. 향을 사르고 목욕재계하여 하늘에 빌었건만 만 리에 구름 한 점 없었나이다. 백성의 굶주림이 거꾸로 매달린 듯하더니, 종남산에서 홀연 전진괴가 내려왔나이다. 바람을 불고 비를 내려 신통을 떨치더니, 그 뒤로 남몰래 임금의 목숨을 해쳤나이다. 정원 우물 속에 밀어 넣고 음험하게 임금의 자리를 빼앗으니 아무도 풀어 낼 이가 없었나이다. 다행히 내가 와서 큰 공을 세워 기사회생시키고 걸림이 없게 하였나이다. 원하여 귀의하여 행동이 되고 중들과 함께 서쪽 경계로 가려 하옵니다. 임금으로 변한 도인이 가짜요, 이 도인이 도리어 참된 임금이옵니다." 그 마왕은 금란전 위에서 이 한바탕 말을 듣고 가슴속에서 사슴이 뛰놀고 얼굴에 붉은 구름이 이는 듯하여 급히 몸을 빼어 달아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손에 든 병기가 없어 고개를 돌려 보니, 전각을 지키는 장군 하나가 허리에 보도를 차고 있는데 행자의 정신법에 걸려 빳빳하게 미친 듯 벙어리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가 다가서서 그 보도를 빼앗아 쥐고는 곧 구름머리를 타고 허공을 향해 달아났다. 사승은 벼락같이 성이 나서 펄펄 뛰고 저팔계는 목청을 높여 외치며 행자가 성급한 원숭이라며 원망했다. "좀 천천히 말했더라면 그를 붙들어 두었을 터인데! 이제 구름을 타고 달아났으니 어디로 가서 찾는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형제들아, 떠들지 마라. 우리가 저 태자를 내려오게 하여 아비에게 절을 올리고, 빈후를 나오게 하여 남편에게 절을 올리게 하자." 그러고는 주문을 외워 정신법을 풀고 "여러 관원을 깨어나 임금께 절을 올리게 하여야 참된 황제인 줄 알고 지난 사정을 털어놓게 될 터, 그리하여 분명히 가려진 뒤에 내가 가서 그놈을 찾으리라"라고 말했다. 훌륭한 대성이로다, 팔계와 사승에게 분부했다. "저 임금과 신하와 부자와 빈후와 우리 사부님을 잘 지켜라!" "간다" 하는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형체와 그림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구소운 속으로 뛰어올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살피며 저 마왕을 찾았다. 보니 저 짐승이 과연 목숨을 건져 살아 동북쪽을 향해 곧장 달아나고 있었다. 행자가 바짝 뒤쫓아가며 호통쳤다. "이 괴물아, 어딜 가느냐! 이 늙은 손이 왔노라!" 그 마왕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도를 뽑아 들고 크게 외쳤다. "손행자, 너 참으로 얄미운 놈이로구나! 내가 남의 제위를 차지하는 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기에, 네가 뜬금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어 내 비밀을 누설하느냐!" 행자가 껄껄거리며 웃어 말했다. "이 간 큰 괴물 같으니라고! 황제를 네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단 말이냐? 네가 이미 나를 이 늙은 손인 줄 알았다면 멀리 달아났어야 옳거늘, 어찌 도리어 우리 사부님을 못살게 굴며 무슨 자백이니 하는 것을 받으려 하였느냐! 조금 전 그 자백이 옳으냐 그르냐? 달아나지 마라! 장한 놈이라면 이 늙은 손의 몽둥이를 받아라!" 그 마왕이 몸을 비켜 피하며 보도를 휘둘러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두 사람이 손을 맞대고 벌인 이 한바탕 사나운 싸움은 참으로 이러하였다. 원숭이 왕이 사납고 마왕이 강하여, 칼을 받고 몽둥이를 버티며 감히 맞서는구나. 온 하늘의 구름과 안개가 삼계를 어지럽히니, 오직 조정에 임금을 세우려는 까닭이로다. 두 사람이 몇 합을 겨루자 그 요마는 원숭이 왕을 당해 내지 못하고 급히 고개를 돌려 다시 온 길로 성 안으로 뛰어들어, 백옥 섬돌 앞 좌우 문무관 무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몸을 흔들어 변하니 곧 당삼장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 나란히 손을 잡고 섬돌 앞에 서 있었다. 이 대성이 뒤쫓아가며 몽둥이를 들어 치려 하니 저 괴물이 말했다. "제자야, 때지 마라. 나다!" 급히 몽둥이를 들어 저 당승을 치려 하니 이번에도 또 말했다. "제자야, 때지 마라. 나다!" 똑같은 당승이 둘이니 참으로 분별하기 어려웠다. "만일 몽둥이 한 방에 요괴가 변한 당승을 때려 죽인다면 이것 또한 공이 되려니와, 만에 하나 몽둥이 한 방에 나의 참된 사부님을 때려 죽인다면 그 일을 어찌 좋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손을 멈추고 팔계와 사승을 불러 물었다. "그중 어느 놈이 괴물이고 어느 분이 내 사부님이냐? 내게 가리켜 주어라. 내가 그놈을 치겠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반공중에서 치고 떠드는 동안 나는 잠깐 눈을 팔았는데 두 분의 사부님이 보이더구려. 누가 참이고 누가 가짜인지 나도 모르겠소."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손가락으로 결을 짚고 주문을 외어 호법제천과 육정육갑과 오방게제와 사치공조와 열여덟 분의 호가가람과 당방토지와 본경산신을 불러 말했다. "이 늙은 손이 여기까지 와 요괴를 항복시키려 하는데 요마가 우리 사부님으로 변하여 기운과 형체가 똑같으니 참으로 분별하기 어렵구나. 너희가 은밀히 알아서 사부님을 전각 위로 모시고 올라가게 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요마를 잡으리라." 원래 저 요괴는 구름과 안개를 잘 타는지라 행자의 말을 듣고 급히 손을 놓고 금란보전으로 뛰어올랐다. 이 행자가 몽둥이를 들어 당승을 향해 곧장 내리쳤다. 가련하다! 저 여러 신을 불러내지 않았더라면 이 한 방에 당승이 이천 명이라도 고기장이가 되었으리라! 다행히 여러 신이 쇠몽둥이를 받아 붙들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저 괴물은 구름을 탈 줄 아니까 벌써 전각 위로 올라갔나이다." 행자가 전각 위로 쫓아 올라가니 그놈은 도로 뛰어 내려와 당승을 붙들고 사람 무리 속에서 또 한바탕 뒤섞였으니, 여전히 알아보기 어려웠다. 행자는 속이 상한 데다 곁에서 팔계가 비웃는 것을 보고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 괴상한 놈아, 어찌된 짓이냐? 이제 사부님이 둘이나 되었으니 네가 불러도 대답을 듣고 모실 사람도 있게 되었다고 그리 신이 나느냐!"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나더러 멍청하다 하시지만 형님이 나보다 더 멍청하시구려! 사부님을 알아보지 못하거들랑 무엇 하러 애써 힘을 쓰시겠소? 형님은 두통을 좀 참으시고 우리 사부님더러 그 주문을 외우시게 하시오. 나와 사승이 각각 한 분씩 부축하여 서서 들으면, 외우지 못하는 쪽이 틀림없이 요괴일 터이니 그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네가 오히려 나았구나. 옳다, 그 주문은 단 세 사람만 기억하고 있느니라. 본디 우리 부처 여래께서 마음속에서 내신 것을 관세음보살에게 전하시고, 보살이 또 우리 사부님께 전하셨으니 다른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느니라. 좋아, 사부님, 외워 주시옵소서." 과연 그 당승이 외우기 시작하였다. 그 마왕이야 어찌 알았으랴, 입으로 되는 대로 웅얼거릴 뿐이었다. 팔계가 말했다. "이렇게 웅얼거리는 놈이 바로 요괴로구나!" 그가 손을 놓고 갈고랑이를 들어 곧장 내리찍었다. 그 마왕이 몸을 날려 뛰어올라 구름머리를 밟고 달아났다. 훌륭한 팔계로다, 큰 소리로 호통치며 구름머리를 타고 뒤를 쫓으니, 사승이 황급히 당승을 내버려 둔 채 보장을 뽑아 들고 치러 달려들었고, 당승은 그제야 주문 외기를 멈추었다. 손대성은 두통을 참으며 쇠몽둥이를 움켜쥐고 허공에서 뒤쫓았다. 아! 이 한바탕에 사나운 중 셋이 건달 요마 하나를 에워쌌다. 그 마왕이 팔계와 사승의 갈고랑이와 보장에 좌우로 막혀 공격을 받게 되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다시 나서서 면전에서 치려 하면 저놈이 나를 좀 두려워하는 눈치니 달아날까 염려되는구나. 이 늙은 손이 좀 더 높이 뛰어올라 저놈에게 마늘 찧듯 내리찍어 단단히 끝장을 내 주리라." 이 대성이 상서로운 빛을 타고 구소에 올라 이제 막 결정적인 일격을 내리려는데, 문득 동북쪽 저 한 송이 채색 구름 속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들렸다. "손오공, 잠시 손을 놓아라!" 행자가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문수보살이었다. 급히 몽둥이를 거두고 앞으로 나아가 절을 올리며 말했다. "보살님, 어디로 가시는 길이시옵니까?" 문수가 말했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이 요괴를 거두러 왔느니라." 행자가 고마워하며 말했다. "번거로우시게 하였나이다." 그 보살이 소매 속에서 조요경을 꺼내어 그 괴물의 본모습을 비추어 붙들어 두었다. 행자가 그제야 팔계와 사승을 불러 함께 보살을 뵙게 하였다. 그리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니 그 마왕의 생김새가 몹시 흉악하였다. 눈은 유리잔 같고 머리는 단련하는 솥만 하며, 온몸은 삼복의 쪽빛이요 네 발톱은 늦가을의 서리로다. 축 늘어진 두 귀와 비자루처럼 긴 꼬리 하나, 푸른 털에서 예리한 기운이 일고 붉은 눈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오는구나. 넓적한 이빨은 옥판을 늘어놓았고 둥근 수염은 억센 창을 세웠구나. 거울 속에서 참모습을 살펴보니, 본래 문수의 사자왕 하나였더라. 행자가 말했다. "보살님, 이는 보살님이 타고 다니시는 청모사자가 아니시옵니까? 어찌하여 걸어 내려와 정이 되었는데도 거두어들이지 않으셨나이까?" 보살이 말했다. "오공아, 그는 달아난 것이 아니니라. 그는 부처의 명을 받고 온 자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이 짐승이 정이 되어 제위를 빼앗고서도 도리어 부처의 명을 받아 왔다 하시니, 이 늙은 손이 당승을 모시고 고생하는 것쯤이야 응당 칙서 몇 장쯤은 받아야 할 노릇이옵니다!" 보살이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애당초 이 오계국 임금은 착한 일을 좋아하고 승려에게 공양을 올리는 사람이라, 부처께서 나를 보내어 그를 서녘으로 인도하여 일찍 금신나한의 과위를 증득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에 본모습으로는 만날 수 없어 범승으로 변하여 그에게 공양을 좀 청하였더니, 내가 몇 마디 말로 그를 시험하자 그는 내가 좋은 사람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나를 끈으로 묶어 저 어수하에 던져 사흘 밤낮을 물에 담가 두었느니라. 다행히 육갑금신이 나를 구하여 서녘으로 돌아가니 내가 여래께 아뢰었고, 여래께서 이 괴물을 시켜 이곳으로 내려가게 하여 그를 우물에 밀어넣고 삼 년을 담가 두어 나의 사흘 물난의 원한을 갚게 하셨느니라. 한 모금 마시고 한 알 쪼는 것도 모두 전생에 정해진 것이라, 이제 너희가 이곳에 와 공을 이루었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보살님은 저 무슨 한 모금 한 알 하는 사사로운 원한은 갚으셨다 하려니와, 저 괴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는지는 아시옵니까?" 보살이 말했다. "사람을 해치지는 않았느니라. 그가 온 뒤로 이 삼 년 동안 바람이 순하고 비가 순하여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였거늘, 무슨 해친 사람이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진실로 그러하시옵니다마는, 다만 삼궁의 낭낭들이 그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며 몸을 더럽혔으니, 강상과 윤리를 얼마나 무너뜨렸는데 도리어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하시옵니까?" 보살이 말했다. "더럽힐 수 없었느니라. 그는 거세한 사자이니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손을 뻗어 한번 만져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 요정은 참으로 '술 안 마시는 술취한 코'로구나, 헛되이 그 이름만 뒤집어썼어!"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거두어 가시옵소서. 보살님께서 친히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결단코 그놈의 목숨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그 보살이 주문을 외우며 호통쳤다. "축생아, 어서 바른 도리로 돌아오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그 마왕이 그제야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보살이 연꽃을 펼쳐 요마를 덮어 두고 그 등에 올라타고는 상서로운 빛을 밟으며 행자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아! 곧장 오대산 위로 돌아가 보련좌 아래에서 경을 논하는 것을 들으리라. 결국 저 당승과 제자들이 어찌하여 성을 빠져나갔는지는 모르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0회 영아희화선심란(嬰兒戱化禪心亂) · 원마도귀목모공(猿馬刀歸木母空) 각설하고 그 손대성 형제 세 사람은 구름을 내려뜨려 조정 안으로 곧장 들어갔는데,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태자가 몇 떼로 나뉘어 절하며 은혜를 사례하였다. 행자는 보살이 마귀를 항복받고 괴물을 거두어들인 그 한 마디 사연을 임금과 신하들에게 낱낱이 아뢰어 들렸더니, 저마다 머리를 조아려 절하기를 마지않았다. 모두들 기뻐하며 하례를 나누는 즈음에, 또 황문관이 와서 아뢰는 소리가 들렸다. “주공이시여, 밖에 또 승려 네 분이 왔나이다.” 팔계가 놀라며 말했다. “형님, 요괴가 술법을 부려 문수보살을 거짓으로 꾸며 우리를 속여 놓고는, 또다시 승려로 변해 우리와 지혜를 겨루러 온 것 아니오? ” 행자가 말했다. “어찌 그런 이치가 있겠느냐!” 즉시 명하여 안으로 불러들여 보게 하였다. 무리지어 있던 문무백관이 명령을 전하여 그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행자가 살펴보니, 바로 그 보림사 승려들로서, 하늘을 찌를 듯한 충천관과 푸른 옥 띠인 벽옥대, 자황포, 무우리를 받들고 들어오는 참이었다. 행자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참 잘 왔도다! 잘 왔도다!” 그리고는 먼저 도인을 불러 앞으로 오게 하여, 머리에 둘렀던 두건을 벗기고 충천관을 씌우며, 베옷을 벗기고 자황포를 입히고, 띠를 풀고 벽옥대를 매 주고, 승려 신발을 벗기고 무우리를 신겼다. 태자에게 흰 옥홀인 백옥규를 내오게 하여 그 손에 쥐어 주고는, 곧 전각에 올라 외로운 임금이라 일컫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예로부터 이르기를 ‘조정은 하루라도 임금이 없어서는 아니 된다’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 황제가 어찌 앉으려 들겠는가, 울면서 섬돌 한가운데 꿇어앉아 아뢰었다. “소신은 이미 죽은 지 삼 년이옵니다. 이제 사부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사온데, 어찌 또 감히 망령되이 스스로 임금이라 일컫겠나이까. 저 승려 한 분을 임금으로 모시옵소서. 소신은 처자를 거느리고 성 밖으로 나가 백성이나 되기를 원할 뿐이옵니다.” 그 삼장법사 또한 어찌 받아들이겠는가, 오로지 부처께 절하고 경을 구하려는 마음뿐이었다. 다시 행자에게 청하니,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께 숨기지 않고 말하건대, 이 늙은 손오공이 임금 하기를 기꺼이 하려 들었다면 천하 만국 구주의 임금을 모조리 다 해보았을 것이오. 다만 우리가 승려로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 이다지도 느긋하고 산만하오. 만일 임금이 된다면 머리와 상투를 길러야 하고, 해 저문 뒤에도 잠들지 못하고 새벽 북이 울려도 눈을 붙이지 못하며, 변방의 급보를 들으면 마음이 편치 못하고, 재난과 흉년을 보면 근심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오. 우리가 어찌 그런 일에 익숙해지겠소? 그대는 그대의 임금을 계속하시오, 나는 내 승려나 하며 공덕을 닦으러 가겠소.” 그 국왕이 극구 사양하는 것을 물리치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보전에 올라 남쪽을 향해 임금이라 일컫고 천하에 큰 사면령을 내렸으며, 보림사 승려들에게 봉록을 내려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서야 동쪽 누각을 열어 삼장법사를 잔치로 대접하고, 한편으로는 칙명을 내려 화공을 불러들여 당나라 사부와 제자 네 사람의 기쁜 초상을 그려 금란전에 모셔 두었다. 그 사부와 제자들은 나라를 안정시켜 놓고는 오래 머물려 하지 않고, 왕에게 하직을 고하고 서쪽으로 떠나려 하였다. 그 황제는 삼궁의 비빈들과 태자,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나라를 지키는 보물과 금은, 비단 등을 사부에게 바쳐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그 삼장법사는 털끝만큼도 받지 않고, 다만 관문만 바꾸어 오공 등에게 말에 안장을 얹어 빨리 떠나라고 재촉하였다. 그 국왕이 몹시 마음이 쓰여, 임금의 행차인 조란가를 정비하여 삼장법사를 윗자리에 모시게 하고 양 무리의 문무백관이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으며, 자신은 삼궁의 비빈과 태자, 온 가족이 수레의 바퀴통을 받들고 굴리며 성곽 밖까지 전송하고서야 용련에서 내려 여러 사람과 작별하였다. 국왕이 말했다. “사부님이시여, 서천에서 경을 얻어 돌아오시는 날에는 반드시 과인의 경내에 한 번 들러 주옵소서.”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는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 황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여러 신하와 함께 돌아갔다. 그 당나라 승려 일행 네 사람은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큰길에 올라, 마음은 오로지 영산을 향해 절하러 가는 데만 두었다. 마침 가을이 다하고 겨울이 시작되는 때라, 바라보니 서리가 붉은 잎을 시들게 하여 숲마다 파리해졌고, 비가 누런 기장을 익혀 곳곳마다 가득하였다. 햇볕이 따뜻하여 고개 위 매화가 새벽빛 속에 피어났고, 바람이 산의 대나무를 흔들어 찬 소리를 일으켰다. 사부와 제자들이 오계국을 떠나 밤이면 묵고 새벽이면 길을 가기를 보름하고도 남짓 하였을 때, 홀연 또 한 자리 높은 산이 보였는데, 참으로 하늘을 스치고 해를 가로막을 만하였다. 삼장법사는 말 위에서 가슴이 철렁하여 급히 고삐를 당기며 행자를 불렀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무슨 분부이옵니이까?” 삼장법사가 말했다. “너희 보아라, 앞에 또 큰 산과 험한 고개가 있으니, 모름지기 세심히 살피고 방비하여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또 사악한 것이 와서 나를 해칠까 두렵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저 길이나 가옵소서, 다시는 마음을 쓰지 마옵소서. 이 늙은 손이 스스로 막아 낼 것이오니다.” 그 장로는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넓게 먹고 채찍을 가하여 말을 몰아 산 바위 아래 다다랐는데, 과연 그 또한 몹시 험준하였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높지 않으랴마는 꼭대기가 푸른 하늘에 닿았고, 깊지 않으랴마는 골짜기 속이 저승과 같았다. 산 앞에는 뭉게뭉게 솟는 흰 구름과 꿈틀꿈틀 이는 검은 안개가 늘 보였다. 붉은 매화와 푸른 대나무, 푸른 잣나무와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졌다. 산 뒤에는 천만 길이나 되는 넋을 옥죄는 영대가 있고, 그 대 뒤에는 기이하고 괴상하게 마귀를 감춘 굴이 있으며, 굴 속에는 똑똑똑똑 물방울 떨어지는 샘이 있고, 그 샘 아래에는 또 구불구불 흐르는 물골이 있었다. 또 하늘을 뛰고 땅을 찌르며 과일을 바치는 원숭이가 보이고, 뿔이 갈래갈래 갈라진 사슴, 멍청히 사람을 바라보는 노루가 있었다. 저물면 산을 넘어 굴을 찾는 호랑이요, 새벽을 기다려 물결을 뒤집으며 나오는 용이었다. 굴 문에 올라서니 쿵 하고 소리가 나고, 날짐승은 놀라 펄럭 날아오르며, 숲 속의 짐승은 우르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이런 짐승과 새 떼를 보니 사람의 간담이 덜컹덜컹 서늘해졌다. 누각이 무너지면 굴이요 굴이 무너지면 누각이라, 굴과 누각이 마땅히 무너지면 그곳이 신선의 경지로다. 푸른 돌은 천 덩이의 옥으로 물들고, 푸른 비단 휘장은 만 무더기의 연기를 덮었다. 사부와 제자들이 이에 질겁하고 있는데, 또 산이 움푹 팬 곳에 붉은 구름 한 송이가 보였으니, 곧장 구소의 허공으로 솟아올라 한 덩어리의 불기운을 뭉쳐 놓았다. 행자가 크게 놀라 앞으로 다가가 삼장법사의 발을 잡아채어 말에서 밀어 내리며 외쳤다. “형제들, 가지들 말아라, 요괴가 왔도다!” 놀란 팔계가 급히 정파를 뽑아들고, 사승이 바쁘게 보장을 휘둘러 삼장법사를 가운데 에워싸 지켰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각설하고 그 붉은 빛 속의 자는 참으로 요괴였다. 그는 몇 해 전에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동토 당나라의 승려가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데, 이는 금선장로가 환생한 몸이요, 열 대를 수행한 착한 사람이라. 그의 살점 한 조각을 먹는 자는 목숨이 길어져 천지와 더불어 함께한다.” 그는 아침마다 산속에서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오늘에야 당도하였다. 그가 반공중에서 바야흐로 내려다보고 있자니, 제자 셋이 말 위의 당승을 에워싸 지키며 저마다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정령이 칭찬을 마지않으며 말했다. “훌륭한 승려로다! 내 방금 흰 얼굴의 뚱뚱한 승려가 말을 타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참으로 그 당나라의 성스런 승려이로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 명의 못생긴 승려에게 둘러싸여 보호를 받고 있는고! 저마다 주먹을 내뻗고 소매를 걷으며 병기를 들고 있으니, 필시 누군가와 싸우려는 듯하구나. 아아! 어떤 눈 밝은 자가 나를 알아차린 것인지 모르겠구나. 저 모양이라면 당승의 고기를 얻어 먹을 생각은 접어야 하겠구나.” 한참을 깊이 생각하며, 마음으로 마음에 물어 스스로 의논하였다. “세력을 믿고 사로잡으려 한다면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이요, 혹 선한 체하여 그를 미혹한다면 도리어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그의 마음을 미혹시켜 놓고, 내가 그 선함 속에 기회를 만들어 단연코 잡으리라. 우선 내려가 그를 한번 희롱해 보자.” 좋은 요괴여, 곧 붉은 빛을 흩고 구름을 내려앉혀 그 산비탈로 가서 몸을 흔들어 변하니, 일곱 살 난 동자로 변하였는데, 벌거벗은 몸에 옷 한 점 없었고 삼끈으로 손발을 묶인 채 소나무 가지 끝에 높이 매달려서는, 입으로는 그저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하고 외치고 있었다. 각설하고 그 손대성이 홀연 고개를 들어 다시 보니, 붉은 구름은 흩어지고 불기운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에 외쳤다. “사부님, 말에 오르시어 길을 가옵소서.” 당승이 말했다. “너는 요괴가 왔다고 해 놓고는, 어찌 또 감히 길을 가자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 방금 붉은 구름 한 송이가 땅에서 일어나 허공에서 한 덩어리의 불기운으로 뭉치는 것을 보았으니, 단연코 요괴였사옵니다. 이제 붉은 구름이 흩어진 것을 보니, 길을 지나가는 요괴라 사람을 감히 해치지 못하는 모양이니, 우리가 가 봅시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사형 말씀은 언제나 그럴싸하오. 요괴한테 또 무슨 지나가는 것이 있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네가 어찌 알겠느냐. 만일 그 산 그 굴의 마왕이 잔치를 베풀어 여러 산 여러 굴의 정령들을 초청하여 모이게 한다면, 동서남북 네 길의 정령이 모두 모이러 올 것이니, 그런 까닭으로 그는 잔치에만 마음이 있고 사람을 해칠 뜻이 없는 것이니라. 이를 두고 지나가는 요괴라 하는 것이니라.”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도 반은 믿고 반은 못 믿는 듯하였으나, 하는 수 없이 안장에 몸을 얹고 길을 따라 산으로 나아갔다. 한창 가고 있는데, 홀연 “살려 주시오!” 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장로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제자야, 이 산중 한가운데서 대체 어디서 무슨 사람이 부르는 것이냐?”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부님, 그저 길이나 가옵소서. 무슨 사람 메는 가마니, 노새 가마니, 밝은 가마니, 잠자는 가마니니 하고 얽매이지 마옵소서. 이런 곳에 가마가 있다 한들 아무도 사부님을 메어 줄 사람이 없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메고 드는 가마가 아니라, 부르짖는 부름이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알고 있사오니,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 말고 우선이나 걸읍시다.” 삼장법사가 그 말을 좇아 채찍을 가하여 말을 몰아 다시 나아갔는데, 한 리도 못 가서 또 “살려 주시오!” 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장로가 말했다. “제자야, 이 부르는 소리는 귀신이나 요사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귀신이나 요사한 것이라면 소리를 낼 뿐 메아리가 없느니라. 네가 들어 보아라, 그가 한 번 부르고 또 한 번 부르니, 필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로다. 우리가 가서 그를 한번 구해 주자꾸나.”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오늘은 이 자비심을 잠시 거두어 두옵소서. 이 산을 지나간 뒤에 다시 자비를 베푸셔도 늦지 않사옵니다. 이곳은 흉한 일이 많고 길한 일이 적사옵니다. 사부님께서는 풀에 기대고 나무에 붙는다는 말을 아시옵니이까? 무릇 물건이면 요정이 될 수 있사오나, 여러 가지야 그러려니 해도 오직 한 가지 구렁이만은, 오래고 깊은 세월을 수행하여 요사한 정기가 되면 능히 사람의 아명을 알아내는 재주가 있사옵니다. 그가 풀숲이나 산 움푹한 곳에서 사람을 한 번 부를 적에, 사람이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이려니와, 한 번 대답하면 그 사람의 원신을 채어 가고, 그날 밤 따라와 단연코 사람의 목숨을 해치느니라. 어서 갑시다! 어서 갑시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벗어나거든 신명께 사례하라 하였고, 절대로 그 소리를 들으면 아니 되느니라.” 장로는 하는 수 없이 그의 말을 좇아 다시 채찍을 가하여 말을 재촉하여 가는데, 행자가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건방진 요괴가 어디 있는지, 그저 부르고 또 부르는구나. 내 그에게 아침과 저녁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묘유성법을 써서 둘이 서로 얼굴을 못 보게 하리라.” 훌륭한 대성이여, 사승을 불러 앞으로 오게 하여 말했다. “말을 붙잡고 천천히 걸어가거라. 이 늙은 손이 잠깐 용변을 보고 가마.” 보아라, 그가 당승을 몇 걸음 먼저 가게 한 뒤에, 주문을 외우고 산을 옮기며 땅을 줄이는 법을 써서, 여의금고봉을 뒤로 한 번 가리키니, 사부와 제자는 이 봉우리를 지나 앞으로 가 버리고 그 괴물은 뒤에 남겨 두었으며, 그는 다시 걸음을 크게 열어 당승을 따라잡아 줄곧 산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삼장법사가 또 산 등 뒤에서 “살려 주시오!”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장로가 말했다. “제자야, 저 어려움에 빠진 사람은 인연이 몹시 없어 우리를 만나지 못한 모양이로다. 우리가 그를 지나쳐 왔는데, 너 들어 보아라, 그가 산 뒤에서 부르고 있지 않으냐.” 팔계가 말했다. “있기는 아직 산 앞에 있사오나, 다만 이제는 바람이 바뀌었을 뿐이오.” 행자가 말했다. “바람이 바뀌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 우선이나 걸어가자.” 이에 마침내 모두 말이 없었고, 한 걸음에 이 산을 넘어버렸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거니와,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친다. 각설하고 그 요괴는 산비탈에서 서너 번을 연달아 불렀건만, 인적은 더욱 없었다. 그가 속으로 헤아려 말했다. “내가 여기서 당승을 기다리는데, 그가 떨어진 거리가 삼 리가 못 되는 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이 한참 동안 아직 오지 않는고? 필시 지름길로 내려간 모양이다.” 그가 몸을 한 번 떨고 밧줄을 벗어 던지고, 다시 붉은 빛을 띄워 위로 올라가 살펴보았다. 뜻하지 않게 손대성이 얼굴을 들어 되돌아보다가 그것이 요괴인 줄 알아차리고는, 또 당승의 발을 움켜쥐고 말에서 밀어 내리며 말했다. “형제들, 조심하여라! 조심하여라! 저 요괴가 또 왔도다!” 놀란 팔계와 사승이 저마다 병기를 들고 당승을 다시 가운데 에워싸 지켰다. 그 정령이 이를 보고 반공중에서 칭찬을 마지않으며 말했다. “훌륭한 승려로다! 내 방금 흰 얼굴의 승려가 말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또 그 세 사람에게 감추어졌는고? 이번에 가서 대면하면 알게 되리라. 먼저 저 눈 밝은 자를 넘어뜨린 뒤에야 비로소 당승을 잡을 수 있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헛되이 꾀를 써도 물건을 얻기 어렵고, 부질없이 정력만 허비하여 모두 헛됨이 되리라.” 그리고는 또 구름을 내려앉혀, 지난번과 똑같이 변하여 소나무 산머리에 높이 매달려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반 리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각설하고 그 손대성이 고개를 들어 다시 보니, 붉은 구름이 또 흩어졌으므로, 다시 사부님께 말에 오르시라 청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너는 요괴가 또 왔다고 해 놓고는, 어찌하여 또 길을 가자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것도 지나가는 요괴라,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옵니다.” 장로가 또 노기를 품으며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가 나를 몹시 희롱하는구나! 마땅히 요마가 있는 곳에서는 일이 없다고 하고, 이렇듯 평온한 곳에서 또 나를 겁주어, 수시로 무슨 요괴가 있다고 떠드는구나. 헛것은 많고 실상은 적으면서도, 경중을 가리지 않고 나의 발을 잡아채어 말에서 내동댕이쳐 놓고는, 이제 와서 지나가는 요괴라는 둥 어쩌니 하는구나. 가령 나를 떨어뜨려 다치게 한다면 또한 섭섭한 일이 아니겠느냐! 이러고도, 이러고도!”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노하지 마옵소서. 만일 사부님의 손발을 다치게 했다면 도리어 고치기 쉬우려니와, 만일 요괴에게 채여 간다면 어느 곳에 가서 찾으시려 하옵니이까?” 삼장법사가 크게 노하여 으르렁거리며 긴고아주를 외우려 하였으나, 사승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말에 올라 다시 길을 갔다. 아직 자리에 앉아 안정을 찾기도 전에, 또 “사부님, 살려 주시오!”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장로가 고개를 들어 보니, 과연 어린 아이 하나가 벌거벗은 몸으로 나무 위에 매달려 있었다.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어 세우고는 행자를 꾸짖어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가 어찌 저리도 무엄하고 게으르냐! 조금도 착하고 어진 마음이 없이, 마음마다 그저 제멋대로 굴며 흉악한 짓만 하려 하는구나! 내가 그토록 부르는 것이 사람의 소리라 하였거늘, 그는 천 마디 만 마디로 그저 요괴라 떠들더니, 너희 보아라, 저 나무에 매달린 것이 사람이 아니더냐?” 대성이 사부님이 노하여 덮치는 것을 보고, 또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았으니, 한편으로는 손을 쓸 수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긴고아주를 외울까 두려워, 고개를 숙인 채 감히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고 당승을 나무 아래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 장로가 채찍 끝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너는 어느 집 아이냐? 무슨 일로 여기에 매달려 있느냐? 나에게 말해 보아라, 그러면 너를 구해 주마.” 아아! 분명히 그는 요정이요, 그렇게 변한 것인데, 그 사부님은 바로 육안의 범태라 능히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요마가 그가 자세히 묻는 것을 보고는 더욱 거짓을 꾸며, 눈에 눈물을 머금고 외쳤다. “사부님이시여, 산 서쪽으로 가면 고송간이라는 시내가 있고, 그 시내 건너에 한 마을이 있사온데, 저는 그곳 사람이옵니다. 저의 증조할아버지는 성이 홍이옵고, 다만 금은을 널리 쌓아 집안 재산이 억만이나 되어,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홍백만이었나이다. 늙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되어, 집안 재산은 제 아비에게 넘어왔나이다. 근래에 인심이 사치하여 집안 재산이 점점 줄어들자, 이름을 고쳐 홍십만이라 하였사온데, 오로지 사방의 호걸들과 사귀며 금은을 꾸어 주고 이자를 얻으려 하였나이다. 어찌 알았으리이까, 저 무뢰한들이 꾀를 써서 속여 가 버려 원금도 이자도 돌아오지 않았나이다. 제 아비가 굳은 맹세를 하여 단 한 푼도 꾸어 주지 않겠다 하였나이다. 그러자 금은을 꾸었던 자들이 몸은 가난하고 꾀가 없어지자 흉당을 이루어, 횃불을 들고 몽둥이를 잡고 대낮에 우리 집을 쳐들어와, 재물과 비단을 남김없이 약탈하고 제 아비를 죽였나이다. 그리고 제 어미가 얼굴이 곱다 하여 끌고 가서 무슨 압채부인을 삼았나이다. 그때 절에, 제 어미는 저를 차마 버리지 못하여 저를 품에 안고, 슬피 울며 부들부들 떨면서 도적을 따라왔사온데, 뜻밖에도 이 산중에 이르러 또 저를 죽이려 하였나이다. 다행히 제 어미가 애원하여 칼끝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사오나, 도리어 밧줄로 저를 나무에 매달아 놓고는 다만 얼어 죽고 굶어 죽으라 하였나이다. 저 도적들은 제 어미를 어디로 끌고 갔는지 알 수 없나이다. 저는 여기에 매달린 지 이미 사흘 낮 사흘 밤이옵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나이다. 어느 세상에서 공덕을 쌓았는지, 금생에 사부님을 만났사오니, 만일 크나큰 자비를 베푸시어 제 목숨을 구해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온다면, 몸을 저당 잡히고 목숨을 팔아서라도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나이다. 누런 모래가 얼굴을 덮는 날이 온다 한들 감히 잊지 못하올 것입니다.”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참된 줄로 여겨, 팔계에게 밧줄을 풀어 그를 내려 주라 하였다. 그 멍청한 자 또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곧장 앞으로 나서려 하는데, 행자가 곁에서 참지 못하고 한마디 호통을 쳤다. “이 건방진 것아! 너를 알아보는 자가 여기 있느니라! 줄곧 허공에다 헛것을 꾸며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려 들지 말아라! 네가 집안 재산을 약탈당하고 아비는 도적에게 상하고 어미는 남에게 끌려갔다면, 너를 구해다가 누구에게 넘겨주겠느냐? 네가 무슨 물건으로 나에게 사례하겠느냐? 이 거짓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도다!” 그 괴물이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 겁이 나서, 대성이 능한 자임을 알고 몰래 그를 마음에 새겨 두었으며, 또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떨구어 말했다. “사부님, 비록 제 부모는 헛되이 죽고 집안 재산은 모조리 없어졌사오나, 아직 움직이지 않은 전답이 좀 있사옵고, 친척들은 모두 살아 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너에게 무슨 친척이 있느냐?” 요괴가 말했다. “제 외갓집은 산 남쪽에 있사옵고, 고모는 고개 북쪽에 사옵니다. 시내 어귀의 이씨네 넷째는 제 이모부이옵고, 숲 속의 홍씨네 셋째는 제 족백이옵니다. 또 당숙과 당형이 모두 본가 마을 좌우에 사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 주시어 마을에 이르러 여러 친척을 만나시게 되거든, 사부님의 구원하신 은혜를 하나하나 여러 사람에게 말씀드리고, 전답을 좀 저당 잡히고 팔아서 후하게 사례하리이다.” 팔계가 그 말을 듣고 행자를 받아 쳐들며 말했다. “형님, 이렇게 어린 아이를 놓고 그대는 어찌 그리 캐묻기만 하시오! 그의 말이 옳지 않소이까. 도적들이 약탈한 것은 그저 떠돌이 재산이니, 설마 집과 전답까지 약탈해 가겠소이까? 그의 친척들에게 말만 하면, 우리가 아무리 먹성이 크다 한들 그의 전답 열 이랑 값을 다 먹어 치우지는 못할 것이오. 그를 내려 주시오.” 그 멍청한 자는 그저 먹을 것만 생각하고 무슨 좋고 나쁨을 따질 줄 몰라, 들고 있던 칼로 밧줄을 찔러 끊고 괴물을 내려놓았다. 그 괴물은 당승의 말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저 머리를 조아렸다. 장로의 마음이 자애로워져 외쳤다. “아이야, 네가 말에 올라라, 내가 너를 데려가마.” 그 괴물이 말했다. “사부님이시여, 저는 손발이 다 매달려 저렸사옵고 허리와 골반이 아프옵니다. 또한 시골 사람이라 말 타는 데 익지 않았사옵니다.” 당승이 팔계에게 업으라 하니, 그 요괴가 한번 곁눈질하며 말했다. “사부님, 제 피부가 다 얼어 터졌사온데, 감히 이 사부님께 업히려 하지 않사옵니다. 그분은 입이 길고 귀가 크시며 뒤통수의 갈기가 억세어 저를 찔러 아프게 하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그러면 사승에게 업히도록 하여라.” 그 괴물도 한번 곁눈질하며 말했다. “사부님, 저 도적들이 우리 집을 털러 왔을 적에 하나같이 얼굴에다 분칠을 하고 가짜 수염을 달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있었나이다. 저는 그들에게 겁을 잔뜩 집어먹었사온데, 이렇게 상이 사나운 얼굴을 하신 사부님을 뵈오니 더욱 넋이 나가 버렸사옵니다. 그분께 업히는 것도 감히 원하지 않사옵니다.” 당승이 손행자에게 업으라 하니, 행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업마! 내가 업마!” 그 괴물은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순순히 행자에게 업히려 하였다. 행자가 그를 길가로 끌어다 한번 들어 보니, 겨우 삼 근에 열 냥쯤 나갈 만큼 가벼웠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건방진 괴물아, 오늘은 죽을 팔자로구나, 어찌 이 늙은 손 앞에서 헛것을 부리느냐! 나는 네가 바로 그 물건인 줄 알고 있느니라.” 요괴가 말했다. “사부님, 저는 좋은 집안의 자식이옵니다. 불행히 이 큰 난을 만났사온데, 제가 어찌 무슨 그 물건이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네가 좋은 집안의 자식이라면, 어찌하여 뼈가 이다지도 가볍단 말이냐?” 요괴가 말했다. “제 골격이 작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너는 올해 몇 살이냐?” 그 괴물이 말했다. “일곱 살이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한 살에 한 근씩만 자랐어도 일곱 근은 되어야 할 터인데, 너는 어찌하여 네 근도 되지 않느냐?” 그 괴물이 말했다. “저는 어려서 젖을 떼지 못하였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면 좋다, 내가 너를 업고 가마. 만일 오줌을 누거나 똥을 싸거든 꼭 나에게 일러라.” 삼장법사가 이에 팔계와 사승을 거느리고 앞서 가고, 행자가 아이를 등에 업고 뒤를 따르니, 일행이 곧장 서쪽으로 향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도덕이 높으면 마장도 높아, 선기는 본래 고요하건만 고요함이 도리어 요괴를 낳는다. 심군은 정직하여 중도를 행하고, 목모는 어리석고 완고하여 밖으로 내달린다. 의마는 말이 없으나 애욕을 품고, 황파는 말이 없어도 스스로 근심에 타는구나. 객사가 뜻을 얻어 헛되이 기뻐하나, 필경에는 바른 곳으로 돌아가 사라지리라.” 손대성이 요마를 업고는 마음속으로 당승을 원망하였다. “사부님은 고생을 모르시는구나. 이토록 험준한 산길을 빈몸으로도 걷기 어려운데, 도리어 이 늙은 손에게 사람을 지고 가라 하시니, 이놈이 요괴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좋은 사람이라 한들 그는 부모를 잃었으니 그를 누구에게 데려다주란 말인가. 차라리 내동댕이쳐 죽여 버리는 것이 낫겠다.” 그 괴물은 벌써 알아차리고는 곧 신통을 부려, 사방에서 숨을 네 번 들이마셔 행자의 등에 불어넣으니, 등에 진 것이 무게 천 근이나 되는 듯하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아들아, 네가 몸을 무겁게 하는 법을 써서 내 상전을 누르려 하는구나!” 그 괴물이 그 말을 듣고 대성이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곧 시체를 풀어 놓고 원신을 빠져나가게 하여 껑충 뛰어올라 구소의 허공에 우뚝 서니, 행자의 등에 진 것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원숭이 왕이 노를 내어 그를 움켜잡아 길가의 억센 돌 위에다 질척하고 내동댕이치니, 시신은 고기 전병처럼 넓적하게 뭉개졌다. 오히려 그가 또 무례할까 염려하여, 아예 팔다리를 잡아당겨 길 양쪽에 내던져 모조리 가루가 되게 하였다. 그 물건은 허공에서 환히 내려다보다가, 가슴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참지 못하여 말했다. “이 원숭이 승려는 몹시 무엄하구나! 내가 요마로서 네 사부를 해치려 한다 하더라도, 아직 내가 어떻게 손을 대는지 보지도 못하였거늘, 너는 어찌하여 나를 이토록 상하게 하느냐! 다행히 내가 계책이 있어 몸을 빠져나와 달아났거니와, 그렇지 않았다면 까닭 없이 목숨을 잃었으리라. 이때를 놓치고 당승을 잡지 않는다면, 다시 한 차례 넘겨주었다가는 도리어 그가 머물러 꾀만 키우게 하리라.” 좋은 괴물이여, 곧 반공중에서 회오리바람을 한바탕 일으키니, 휘이익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을 굴리고 모래를 날리며 참으로 흉악하고 사나웠다. 훌륭한 바람이여. 성난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물과 구름에서 비린내를 풍기고, 검은 기운이 무럭무럭 솟아 해와 달의 밝음을 가렸다. 고개의 나무는 뿌리째 모조리 뽑히고, 들매화는 줄기까지 모두 꺾여 누웠다. 누런 모래가 눈을 가려 사람이 걷기 어렵고, 괴석이 부서져 길이 어찌 평탄하리오. 굴러가고 뭉쳐져 평지가 캄캄해지니, 온 산의 짐승과 새가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바람이 몰아쳐 삼장법사는 말 위에 버티지 못하고, 팔계는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못하며, 사승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렸다. 손대성이 괴물이 바람을 부리는 줄 알아차리고 급히 걸음을 옮겨 쫓아갈 제, 그 괴물은 벌써 바람머리를 타고 당승을 채어 달아나 버려, 자취도 그림자도 없이 어느 곳으로 채어 갔는지 알 수 없어 찾을 길이 없었다. 잠시 뒤에 바람 소리가 잦아들고 햇빛이 밝아졌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보니, 흰 용마가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내어 울고, 행장 짐은 길 아래 내동댕이쳐져 있었으며, 팔계는 벼랑 아래 엎드려 신음하고, 사승은 비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부르짖고 있었다. 행자가 외쳤다. “팔계야!” 그 멍청한 자가 행자의 소리인 줄 알아듣고 고개를 들어 보니, 사나운 바람은 이미 잦아들어 있었으므로 기어 일어나 행자의 옷을 붙잡으며 말했다. “형님, 바람이 얼마나 사나웠는지 아시오!” 사승도 나서며 말했다. “형님, 이것은 회오리바람이었소.” 그리고 물었다. “사부님은 어디 계시오?” 팔계가 말했다. “바람이 몹시 세게 불어 우리는 모두 머리를 감추고 눈을 가리며 저마다 바람을 피하였소. 사부님도 말 위에 엎드려 계셨소.” 행자가 말했다. “그럼 이제는 어디로 가신 것이냐?” 사승이 말했다. “등잔심지로 만든 분이라, 한바탕 바람에 휩쓸려 가신 모양이오.” 행자가 말했다. “형제들, 우리는 이제부터 흩어져야 하겠다!” 팔계가 말했다. “옳소, 일찍 흩어져 저마다 갈 길을 찾는 것이 얼마나 좋겠소. 저 서천 가는 길은 끝이 없건만, 어느 때에 다 당하겠소!” 사승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온몸이 저려 말했다. “사형, 그대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우리는 전생에 죄가 있어 관세음보살의 권화를 입고,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계를 받고 법명을 고쳐 불과에 귀의하여, 원하여 당승을 보호하고 서방으로 올라가 부처께 절하고 경을 구하여 공으로 죄를 갚기로 하였소. 오늘 이곳에 이르러 한꺼번에 모두 그만두자니, 저마다 갈 길을 찾자는 그런 말씀을 내놓으시다니, 어찌 보살의 선한 과보를 어기고 자기 덕행을 망치며, 남의 비웃음을 사서 우리에게 유종의 미가 없다는 말을 듣게 하려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동생, 네 말도 옳다. 그러나 사부님이 남의 말을 듣지 않으시니 어찌하겠느냐. 내 이 화안금정은 좋고 나쁜 것을 환히 알아보는데, 방금 이 바람은 저 나무에 매달렸던 아이가 부린 것이니라. 나는 그가 요정인 줄 알아보았으나 너희는 알아보지 못하고, 사부님도 알아보지 못하여 좋은 집안의 자식인 줄로 여기시고 나에게 업고 가라 하셨느니라. 이 늙은 손이 꾀를 내어 그를 골려 주려 하자, 그는 몸을 무겁게 하는 법을 써서 나를 눌렀느니라. 내가 그를 산산이 부수어 버렸더니, 그는 시체를 푸는 법을 또 쓴 모양이요,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우리 사부님을 채어 간 것이니라. 그런 까닭에 사부님이 매양 내 말을 듣지 않으시는 것이 원망스러워, 내 마음이 게을러지고 재가 되어 저마다 흩어지자 하였느니라. 현제가 이토록 정성이 있다 하니, 이 늙은 손을 진퇴양난에 빠뜨리는구나. 팔계야, 너는 도대체 어찌하려느냐?” 팔계가 말했다. “내 방금 실수로 함부로 몇 마디 내뱉었소. 실은 흩어져서도 아니 되오. 형님,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사제의 말을 믿고 그 요괴를 찾아 사부님을 구하러 갑시다.” 행자가 노기를 거두고 기뻐하며 말했다. “형제들, 다시 한마음으로 뭉치자꾸나. 행장과 말을 거두어 산에 올라 괴물을 찾아 사부님을 구하러 가자.” 세 사람이 칡을 붙잡고 덩굴을 당기며 비탈을 찾고 시내를 돌아 오륙십 리쯤 지나갔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그 산에는 날짐승과 들짐승이 하나도 없으며 늙은 잣나무와 큰 소나무만 흔히 보였다. 손대성이 몹시 마음이 조급해져 몸을 한 번 솟구쳐 험한 봉우리 꼭대기로 뛰어올라, 한마디 “변하여라!” 하고 외치며 세 머리 여섯 팔로 변하였으니,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던 그 본 모습이었다. 여의금고봉을 한번 휘둘러 세 개의 금고봉으로 만들어서는, 펑펑 쾅쾅 동쪽으로 한 줄기 내리치고 서쪽으로 한 줄기 내리치며 양쪽으로 쉬지 않고 마구 내리쳤다. 팔계가 이를 보고 말했다. “사승, 큰일 났네. 사형이 사부님을 찾지 못하자 화가 나서 미친 바람이 난 것이야.” 그 행자가 한참을 내리치자 한 무리의 가난한 신들이 튀어나왔는데, 모두 조각 하나를 걸치고 조각 하나를 드리운 차림에, 속바지는 샅이 없고 겉바지는 통이 없는 것들이라, 산 앞에 무릎을 꿇고 외쳤다. “대성이시여, 산신토지가 뵈옵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이토록 많은 산신토지가 있느냐?” 뭇 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성께 아뢰옵니다. 이 산은 육백 리를 뚫고 솟은 송곳이라 하여 호산이라 불리옵니다. 저희는 십 리마다 산신 하나, 십 리마다 토지 하나씩 있어, 모두 서른 명의 산신과 서른 명의 토지이옵니다. 어제 대성께서 오신다는 말을 들었사오나 한꺼번에 모이지 못하여 영접이 늦었사옵니다. 그 바람에 대성께서 노하셨사오니, 부디 죄를 용서하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우선 너희 죄는 용서하마. 내가 묻겠다, 이 산에 요괴가 몇이나 있느냐?” 뭇 신이 말했다. “할아버지시여, 요괴는 하나뿐이옵니다마는 우리 머리통이 닳도록 들볶아 놓았사옵니다. 우리로 하여금 향도 모자라고 종이도 없으며 피와 제물이 아주 끊어지게 만들어, 하나같이 입는 것은 몸을 가리지 못하고 먹는 것은 입에 채우지 못하옵니다. 그 판에 요괴가 얼마나 더 있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그 요괴가 산 앞에 사느냐, 산 뒤에 사느냐?” 뭇 신이 말했다. “그는 산 앞에도 산 뒤에도 있지 않사옵니다. 이 산중에 한 시내가 있사온데 고송간이라 하옵고, 그 시내 가에 한 굴이 있사온데 화운동이라 하옵니다. 그 굴속에 마왕 하나가 있사온데 신통이 광대하여, 늘 우리 산신토지를 잡아다가 불을 때고 문을 지키게 하며, 밤이면 그를 위하여 방울을 들고 다니며 도둑을 살피게 하옵니다. 작은 요괴들은 또 무슨 상례전을 달라고 조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음귀의 신선이거늘 무슨 돈이 있느냐?” 뭇 신이 말했다. “바로 그에게 줄 돈이 없사옵기에, 하는 수 없이 산 노루와 들사슴을 몇 마리 잡아다가 아침저녁으로 요괴 떼에게 대접하옵니다. 만일 바칠 물건이 없으면 와서 사당을 헐고 옷을 벗겨 가며, 우리가 편히 살 수 없도록 휘저어 놓사옵니다! 부디 대성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 괴물을 쳐 없애시어 산 위의 생령을 구해 주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너희가 그의 절제를 받고 늘 그의 굴 아래 있으니, 그가 어디 요괴이며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겠느냐?” 뭇 신이 말했다. “그를 말씀드리면 대성께서도 아실는지 모르옵니다. 그는 우마왕의 아들이옵고 나찰녀가 낳았사옵니다. 일찍이 화염산에서 삼백 년을 수행하여 삼매진화를 이루어, 또한 신통이 광대하옵니다. 우마왕이 그를 보내어 호산을 지키게 하였사온데, 젖먹이 때의 이름을 홍해아라 하옵고 호는 성영대왕이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하여, 토지와 산신을 물러가라 호통치고는 본 모습으로 돌아와 봉우리에서 뛰어내려 팔계와 사승에게 말했다. “형제들, 마음을 놓아라, 다시는 걱정할 것 없느니라. 사부님은 결코 해를 입지 않으실 것이니, 그 요괴는 이 늙은 손과 친척이니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거짓말 마시오. 형님은 동승신주에 있고 그는 이 서우하주에 있사온데, 길이 아득히 멀고 온갖 물과 천 겹의 산이 가로막혀 있으며 바다도 두 줄기가 있거늘, 어찌 형님과 친척이 되겠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방금 이 무리는 모두 이 고장의 토지와 산신이니라. 내가 그들에게 요괴의 내력을 물었더니, 그가 우마왕의 아들이요 나찰녀가 낳았으며, 이름을 홍해아라 하고 호는 성영대왕이라 하였느니라. 생각하건대 이 늙은 손이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던 때에 천하의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대지의 호걸을 찾아 사귀었는데, 그 우마왕이 일찍이 이 늙은 손과 일곱 의형제를 맺었느니라. 대개 마왕이 대여섯이었건만 오직 이 늙은 손만이 몸집이 작게 태어난 까닭에, 우마왕을 큰형이라 불렀느니라. 이 요괴는 우마왕의 아들이니 내가 그 아비와 서로 아는 사이고, 따져 보자면 오히려 그의 늙은 숙부가 되는 터인데 그가 어찌 감히 내 사부님을 해치겠느냐? 우리 서둘러 가자꾸나.”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 속담에 이르기를 삼 년을 문턱을 넘지 않으면 친척도 친척이 아니라 하였소. 형님은 그와 오륙백 년을 헤어져 지냈고, 술잔을 주고받은 적도 없거니와 절에 초대한 적도 없사온데, 그가 어찌 형님과 무슨 친척을 인정하겠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그리 사람을 헤아리느냐! 속담에 이르기를, 한 잎의 부평초도 큰 바다로 돌아가고, 사람이 되어서야 어찌 서로 만나지 못할 곳이 있으랴 하였느니라. 설령 그가 친척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좋게 말해 내 사부님을 해치지는 않으리라. 그가 술자리에 붙잡아 두기를 바라지는 않거니와, 필시 온전한 당승을 내게 돌려주리라.” 세 형제가 저마다 정성을 다하여 흰 말을 끌고, 말 위에는 행장을 싣고, 큰길을 찾아 곧장 나아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백여 리쯤을 가니, 홀연 소나무 숲 하나가 보이는데, 숲 속에 구불구불한 시내가 있고 그 시내 아래로는 푸르고 맑은 살아 있는 물이 흘러내렸으며, 그 시내 끝머리에 돌판 다리 하나가 있어 저쪽 굴집으로 통하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 저쪽에 돌벼랑이 낭낭하게 솟은 것이 보이느냐, 필시 요괴의 사는 곳이로다. 우리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누가 행장과 말을 지키고 서 있을 터이며, 누가 기꺼이 나를 따라 건너가 요괴를 항복받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 늙은 저팔계는 앉아 있는 성미가 못 되오. 내가 형님을 따라가겠소.” 행자가 말했다. “좋다! 좋다!” 그리고 사승에게 일렀다. “말과 행장을 모두 숲 깊은 곳에 숨겨 두고 조심하여 지키고 있거라. 우리 두 사람이 문을 찾아가 사부님을 찾을 터이니.” 그 사승이 명을 좇고, 팔계가 행자를 따라 저마다 병기를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바로 이러하였다. 아직 단련되지 않은 영아의 사악한 불이 이기니, 심원과 목모가 함께 부축하는도다. 결국 이번 길이 길흉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1회 심원조화패(心猿遭火敗) · 목모피마금(木母被魔擒) 선악을 한때 잊어버리면 영화와 쇠락이 모두 마음에 걸리지 않고, 어두움과 밝음이 숨고 드러나며 뜨고 가라앉는 것도 분수에 맡긴 채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신다. 정신이 고요하면 맑게 가라앉아 늘 적막하거니와, 캄캄하게 어두워지면 곧 마귀가 침범하느니라. 오행이 어긋나면 참선의 숲이 무너지고, 바람이 일면 반드시 추위가 혹독하리라. 말하자면, 그 손오공 대성이 팔계를 데리고 사승과 헤어져 고송간을 건너뛰어 곧장 그 괴이한 바위절벽 앞에 이르렀는데, 과연 한 채의 동부가 있어 참으로 그 경치가 범상치 않았다.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수레를 돌리는 옛길은 그윽하고도 고요한데, 바람과 달조차 검은 학이 희롱하는 소리를 듣는구나. 흰 구름 사이로 비쳐 나와 온 들판에 빛이 가득하고, 흐르는 물이 다리를 건너니 신선의 흥취가 절로 일어난다. 원숭이 울고 새 우는 가운데 꽃과 나무가 기이하고, 칡넝쿨과 돌계단에는 지초와 난초가 더욱 빼어나구나. 푸름이 흔들리는 벼랑과 골짜기에 연기와 노을이 흩어지고, 비취빛 물든 송림과 대숲이 채색 봉황을 불러 모은다. 멀리 늘어선 봉우리는 병풍을 꽂아 세운 듯하고, 산이 마주 서고 시냇물이 감돌았으니 참된 신선의 굴이로다. 곤륜의 지맥이 일으킨 용이니, 분수 있고 인연 있는 자라야 비로소 그 복을 누리느니라. 문 앞에 가까이 이르러 보니 한 개의 비석이 서 있고 그 위에 여덟 자의 큰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바로 ‘호산 고송간 화운동’이었다. 그 건너편에는 한 무리의 작은 요괴들이 창을 돌리고 검을 춤추며 공중에서 뛰놀고 있었다. 손오공 대성이 큰 소리로 고함쳐 말했다. “이놈들아, 어서 일찍 가서 동주에게 알리라. 우리 당승 스승님을 모셔 내보내라 하여라. 그래야 너희 이 굴 요정들의 목숨을 살리리라! 입에서 아니라는 반 마디라도 튀어나오면, 내 곧 너희 산장을 뒤집어엎고 너희 동부를 짓밟아 평평하게 만들어 놓으리라!” 그 작은 요괴들이 이 말을 듣고는 황급히 몸을 돌려 저마다 굴 속으로 되돌아가 두 짝의 돌문을 굳게 닫고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일이 났사옵니다!” 말하자면, 그 요괴는 삼장법사를 굴 안으로 끌고 들어간 뒤 옷을 벗기고 두 손과 두 발을 한데 묶어 뒤뜰에 결박해 두고, 작은 요괴들에게 깨끗한 물을 길어다 씻게 한 다음 찜통에 올려 쪄 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급히 ‘큰일 났다’는 보고 소리를 듣고는 씻기는 일을 잠시 멈추고 앞뜰로 나서며 물었다. “무슨 큰일이냐?” 작은 요괴가 아뢰었다. “털부숭이 얼굴에 뇌공 같은 부리를 한 중이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중 하나를 데리고 문 앞에 와서 당승 스승님을 내놓으라 하고 있사옵니다. 만일 입에서 아니라는 말 반 마디라도 나오면 곧 산장을 뒤엎고 동부를 짓밟아 버리겠다고 하옵니다.” 마왕이 빙그레 냉소하며 말했다. “저것은 손행자와 저팔계로구나. 그래도 찾아오는 솜씨는 있느니라. 그가 제 스승을 잡아다 놓았으니 산중턱에서 여기까지가 백오십 리나 되거늘, 어찌 그리 문 앞으로 찾아왔단 말이냐?” 그리고 명했다. “이놈들아, 수레를 맡은 자들아, 수레를 끌어 내라!” 그 무리 가운데 몇몇 작은 요괴가 나서서 다섯 채의 작은 수레를 밀어 내고 앞문을 열어젖혔다. 팔계가 그것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이 요정이 우리를 겁내어 수레를 밀어내고 저쪽으로 짐을 옮기는 모양이오.” 행자가 말했다. “아니다. 저놈들이 어디에 갖다 놓는지 먼저 두고 보자.” 보니 그 작은 요괴들이 수레를 금, 목, 수, 화, 토의 자리에 맞춰 배치하고는 다섯이 곁을 지키고 다섯은 안으로 들어가 통보하였다. 그 마왕이 물었다. “준비되었느냐?” 대답이 아뢰었다. “준비되었사옵니다.” 명했다. “창을 가져오너라!” 무기를 맡은 그 무리의 작은 요괴들 가운데 둘이 나서서 한 길 여덟 자나 되는 화첨창 한 자루를 메고 나와 요왕에게 건네주었다. 요왕은 창을 휘두르며 성큼성큼 걸음을 떼었는데, 갑옷이라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다만 허리에 고운 비단으로 수놓은 전투 치마 한 폭을 두르고는 맨발로 문 앞을 향해 걸어 나왔다. 행자와 팔계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괴물의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얼굴은 분을 바른 듯 서너 푼쯤 희고, 입술은 주사를 입힌 듯 풍채가 뛰어나구나. 귀밑머리는 검푸른 구름을 틀어 올려 쪽빛 물감도 부럽지 않고, 눈썹은 초승달을 갈라 놓은 듯 칼로 오려낸 것만 같구나. 치마에는 용과 봉황이 교묘하게 수놓였고, 체격은 나타보다도 더 살이 올랐구나. 두 손으로 창을 비껴 쥐니 위풍이 늠름하고, 상서로운 빛이 몸을 감싸며 문을 나서는구나. 고함소리는 봄철 천둥이 울부짖는 듯하고, 튀어나온 눈은 번개가 번쩍이듯 사납구나. 이 마왕의 참 성씨를 알고자 하느냐, 천고에 이름을 떨치는 그는 이름이 홍해아라 불리느니라. 그 홍해아 요괴가 문을 나서자마자 크게 외쳐 말했다. “어떤 놈이 감히 내 앞에서 떠드느냐!”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웃으며 말했다. “어진 조카야, 헛된 재주를 부리지 마라. 네가 오늘 아침 산길 곁에서 소나무 끝에 높이 매달려 있으면서 그 야위고 병든 누런 아이로 둔갑하여 내 스승님을 속였느니라. 내가 호의로 너를 등에 업어 주었더니, 너는 바람을 일으켜 내 스승님을 훔쳐 날라 왔구나. 네가 이제 또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내 어찌 너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어서 빨리 내 스승님을 모셔 내보내라. 괜히 얼굴을 붉히고 정을 저버리지 말아라. 그러다 네 아버님이 알게 되면 내 늙은 원숭이가 나이 많은 것을 믿고 어린것을 억눌렀다고 꾸짖을까 두렵구나. 체면도 서지 않으리라.”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노하여 “이, 악!” 하고 꾸짖으며 말했다. “이 천한 원숭이 놈아! 내가 너와 무슨 정이 있단 말이냐? 네가 여기서 입을 놀려 헛소리를 지껄이며 무슨 경문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냐? 누가 네 어진 조카란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여보게, 네가 모르는구나. 예전에 내가 네 아버님과 형제를 맺었을 적에는 너는 아직 세상 어디에도 없었느니라.” 그 요괴가 말했다. “이 원숭이 놈이 점점 더 헛소리를 하는구나! 네가 어디 사람이고 내가 어디 사람인데, 어찌 내 아비와 형제가 되었다는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나는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은 제천대성 손오공이니라. 내가 아직 천궁을 뒤집어 놓기 전에 해가 뉘이는 곳 하늘 끝과 땅 끝을 두루 다니며 사대부주 중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느니라. 그 무렵 나는 오직 호걸을 사모하였는데, 네 아버님 되는 우마왕을 평천대성이라 불렀고 내 늙은 원숭이와 결의하여 일곱 형제가 되었으니 그를 형님으로 삼았고, 또 교마왕이 있어 복해대성이라 불렀으니 둘째 형이 되었고, 또 대붕마왕이 있어 혼천대성이라 불렀으니 셋째 형이 되었고, 또 사니왕이 있어 이산대성이라 불렀으니 넷째 형이 되었고, 또 미후왕이 있어 통풍대성이라 불렀으니 다섯째 형이 되었고, 또 흘융왕이 있어 구신대성이라 불렀으니 여섯째 형이 되었으며, 오직 나 늙은 원숭이만 몸집이 작아 제천대성이라 불렸으나 서열은 일곱째였느니라. 우리 늙은 형제들이 그 무렵 함께 어울려 놀던 때에는 너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느니라!”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 어찌 곧이 들으려 하겠는가. 화첨창을 들어 곧 찔러 왔다. 행자는 마침 솜씨 있는 자답게 서두르지 않고 몸놀림 하나를 더 부려 창끝을 피해서는 쇠몽둥이를 휘둘러 꾸짖으며 말했다. “이 어린 짐승 같으니라고, 분수를 모르는구나! 내 몽둥이를 받아라!” 그 요정 또한 몸놀림을 부려 쇠몽둥이를 비켜 가며 말했다. “이 천한 원숭이 놈아, 시세를 모르는구나! 내 창을 받아라!” 그 둘은 인정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일제히 얼굴을 붉히며 저마다 신통을 부려 구름 끝으로 뛰어올랐으니, 그 싸움 실로 볼 만하였다. 행자의 명성은 크고 마왕의 수단은 강하구나. 하나는 금고봉을 비스듬히 치켜들었고, 하나는 화첨창을 곧추 세웠구나. 안개를 토해 삼계를 가리고, 구름을 뿜어 사방을 비추누나. 하늘 가득 살기가 서려 사나운 고함이 울려 퍼지니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는구나. 말에는 사양이 없고 정과 뜻은 서로 어긋나누나. 저 하나는 마음을 속여 예의를 잃었고, 이 하나는 얼굴을 고쳐 강상을 저버렸구나. 몽둥이를 버티니 위풍이 길어지고, 창이 날아오니 야성이 사납구나. 하나는 혼원한 참된 대성이요, 하나는 바른 과를 얻을 선재 동자이니라. 둘이 힘을 다해 승부를 다투는 까닭은 오직 당승이 법왕께 예배하기 위해서이니라. 그 요마와 손오공 대성이 스무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저팔계가 곁에서 그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요정이 비록 패하여 항복하지는 않았으나 다만 가리고 막고 비껴낼 뿐이라 공격하여 죽일 힘은 조금도 없었고, 행자가 비록 그를 이기지는 못하였으나 몽둥이 솜씨가 정묘하고 강하여 오가는 몽둥이가 늘 그 요정의 머리 위에 있으면서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팔계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큰일이로구나. 행자가 날래고 공교로우니 어느새 틈을 하나 만들어 저 요마를 그 속으로 파고들게 한 뒤 쇠몽둥이 한 방에 후려쳐 쓰러뜨리면, 내 공로는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보라, 그가 정신을 가다듬고 아홉 갈퀴 창을 들어 공중에서 요정을 향해 머리 위로 내려찍었다. 그 요괴는 보고 깜짝 놀라 급히 창을 끌어당겨 진영을 버리고 패주하였다. 행자가 팔계에게 호령했다. “쫓아라! 쫓아라!” 둘이 그의 굴 문 앞까지 쫓아가 보니, 요정이 한 손으로 화첨창을 들고 가운데 놓인 작은 수레 한 채 위에 서서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먹을 쥐고 제 코를 두 번 쳤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이 뻔뻔하게 생떼를 쓰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네 코를 쳐서 피를 좀 흘려다가 얼굴을 붉게 칠하고는 어디 가서 우리를 고발하려느냐?” 그 요마는 두 번 주먹질을 하고 주문 하나를 외우더니 입에서는 불을 뿜어내고 콧구멍에서는 짙은 연기가 솟구쳤다. 눈을 깜박이는 새 불꽃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그 다섯 수레 위에서도 붉은 불빛이 용솟음쳤다. 몇 번을 연달아 뿜어내자 붉고 붉은 큰 불길이 허공을 태웠는데, 한 채의 화운동이 그 불길에 온통 뒤덮여 참으로 하늘을 태우고 땅을 달구는 형국이었다.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형님, 큰일 났소! 저 불 속으로 뛰어들면 살아나기를 바랄 수 없소. 늙은 돼지를 통째로 삶은 요리로 만들어 향신료까지 얹어 저놈이 실컷 먹으려는 것이오! 빨리 갑시다! 빨리 갑시다!” 가자며 입을 놀리자 그는 행자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시냇물을 건너 달아났다. 이 행자는 신통이 광대하여 불을 피하는 주술을 손에 쥐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그 요괴를 찾았다. 그 요괴는 행자가 오는 것을 보고 다시 몇 번 불을 뿜었는데, 그 불이 앞보다 더욱 셌다. 훌륭한 불이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허공을 가득 채워 태우고, 으리으리한 불기운이 온 땅을 붉게 물들이누나. 마치 불 수레가 위아래로 날아다니는 듯하고, 숯 부스러기가 동서로 춤추는 것만 같구나. 이 불은 수인이 나무를 비벼 얻은 불도 아니요, 노자가 단약을 달군 불도 아니며, 하늘의 불도 아니요 들의 불도 아니니, 바로 요마가 수행하여 참된 삼매의 불을 이룬 것이니라. 다섯 수레는 오행에 맞추었고, 오행이 생하고 변화하여 불을 달여 낸 것이니라. 간목은 간의 기운이 심장의 불을 왕성하도록 돕고, 심장의 불은 비장의 흙을 편안하게 하며, 비장의 흙은 금을 낳고 금은 물로 화하며 물은 나무를 자라게 하니 두루 신령이 통하누나. 낳고 낳으며 변하고 변화하는 것이 모두 불에서 비롯되고, 불이 긴 하늘에 가득하니 만물이 번영하느니라. 요사한 무리가 오래도록 깨달아 삼매를 부르니, 길이 서방 첫째 자리에 자리하리라. 행자는 그 불길이 치솟아 요괴를 찾을 수 없었고 굴 문 앞의 길조차 보이지 않자 몸을 빼어 불 속에서 뛰어나왔다. 그 요정이 문 앞에서 그것을 똑똑히 보고 있다가 행자가 간 것을 보고서야 불 도구를 거두고 요괴 무리를 거느려 굴 안으로 돌아가 돌문을 닫아걸고 승리를 거둔 줄로 여기고는, 작은 놈들에게 명하여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울리며 즐거워하였으니,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자. 말하자면, 행자가 고송간을 건너뛰어 구름을 내려놓으니 저팔계와 사승이 소나무 숲 속에서 또랑또랑하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팔계를 꾸짖었다. “이 멍청한 놈아, 사람 구실을 전혀 못 하는구나! 네가 요괴의 불을 두려워하여 패주하고 제 목숨만 살려 달아나면서, 이 늙은 원숭이를 홀로 버려두었구나. 다행히 내게 재주가 조금 있었기에 망정이지!”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형님은 그 요괴에게 딱 잡히셨소. 과연 시세를 모르셨단 말이오. 옛사람이 이르기를, 시세를 아는 자를 준걸이라 부른다 하였소. 저 요정은 형님과 친척이라 하지 않는데 형님이 억지로 친척을 자처하시고, 이미 겨루기까지 하였는데 그런 무정한 불을 뿜어 대거늘 달아나지도 않고 오히려 싸움을 더 벌이려 하시다니요!” 행자가 말했다. “저 괴물의 수단이 나와 견주어 어떠하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만 못하오.” “창법은 나와 견주어 어떠하냐?” 팔계가 말했다. “그것도 형님만 못하오. 늙은 돼지가 그놈이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보고 형님을 돕느라 갈퀴로 한 방 내려쳤더니, 뜻밖에도 그놈이 장난을 받아들이지 않고 곧 진영을 버리고 패주하더니, 천리가 없이 불을 뿜어 대었소.” 행자가 말했다. “바로 네가 오지 말았어야 했다. 내 그놈과 몇 합만 더 겨루다가 요령을 부려 몽둥이로 한 방을 훔쳐 낼 참이었는데, 그것이 좋지 않았겠느냐?” 그 둘이 서로 제 할 말만 하며 요괴의 수단과 불의 독기를 논하는 동안, 사승은 소나무 뿌리에 기대어 멍하니 웃고만 있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아우야, 너는 무엇이 우스우냐? 네게 무슨 훌륭한 수단이 있어 그 요마를 잡고 저 불 진을 부수겠다는 것이냐?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니라. 늘 하는 말에, 털이 모여야 털뭉치를 이룬다 하였느니라. 네가 요마를 잡고 스승님을 구한다면 그것 또한 네 큰 공적이 되리라.” 사승이 말했다. “내게도 별다른 수단이 없고 요괴를 항복시킬 수도 없소. 내가 웃는 것은 너희 둘이 다 함께 허둥대고 있기 때문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어찌 허둥댄다는 말이냐?” 사승이 말했다. “저 요정은 수단이 형님만 못하고 창법이 형님만 못하나, 다만 불 기세가 조금 더할 뿐이라 이기지 못하는 것이오. 제 생각대로 상생상극으로 그놈을 잡으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우 말이 옳구나. 과연 우리가 허둥대며 이 일을 잊고 있었도다. 상생상극의 이치로 따지자면 모름지기 물로 불을 누르는 법이니, 어디선가 물을 좀 구해다 이 요사한 불에 끼얹어 끄면 스승님을 구하지 않겠느냐?” 사승이 말했다. “바로 그렇소. 머뭇거릴 것 없소.” 행자가 말했다. “너희 둘은 여기 있으면서 그놈과 싸움을 걸지 마라. 이 늙은 원숭이가 동양 대해로 가서 용병을 청해 물을 좀 가져와 요사한 불을 끄고 저 몹쓸 놈을 잡으리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안심하고 가십시오.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구름을 타고 이곳을 떠나 잠깐 사이에 동양 대해에 이르렀으나, 바다 경치를 구경할 마음은 없었기에 물을 밀어내는 법을 써서 파도를 갈랐다. 한창 가고 있는데 순라 나온 바다 야차 하나와 마주쳤는데, 그가 손오공 대성을 알아보고 급히 수정궁으로 달려 돌아가 그 늙은 용왕에게 알렸다. 오광이 곧 용자와 용손, 새우 병졸과 게 졸개들을 거느리고 일제히 문 밖으로 나와 맞으며 안으로 모셔 앉기를 청했다. 자리를 정하고 인사를 마친 뒤 차를 올리려 하니 행자가 말했다. “수고롭게 차를 드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부탁이 있어 왔나이다. 내가 스승님이신 당승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산 고송간 화운동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 홍해아라는 요정이 있어 스스로 성영대왕이라 일컫는 자가 우리 스승님을 낚아 갔사옵니다. 이 늙은 원숭이가 굴 가를 찾아가 그놈과 싸웠더니 그놈이 불을 뿜어 내어 우리가 당해 낼 수 없었사옵니다. 물이 불을 누를 수 있다 생각하고 특별히 그대에게 물을 좀 구하러 왔사오니, 나와 함께 가서 큰비 한바탕을 내려 그 요사한 불을 끄시고 당승의 이 재난을 건져 주시옵소서.” 그 용왕이 말했다. “대성께서 잘못 짚으셨나이다. 비를 내리고자 하신다면 저에게 물으러 오실 일이 아니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사해의 용왕이니 비와 은택을 맡아 주관할 터인데, 그대에게 묻지 않고 누구에게 묻겠소?” 용왕이 말했다. “제가 비를 주관하기는 하오나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나이다. 모름지기 옥황상제의 칙지를 받아 어느 지방에 몇 자 몇 치를 내리라 분부하시고, 어느 시각에 시작하여 어느 시각에 그칠지까지 정하신 다음, 또 삼관이 붓을 들고 태을이 문서를 옮기며 뇌공과 전모, 풍백과 운동에게까지 령을 내려야 하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용은 구름이 없으면 가지 못한다 하였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바람과 구름, 우레와 번개는 필요 없사옵니다. 다만 물을 조금 얻어 불을 끄고자 하옵니다.” 용왕이 말했다. “대성께서 바람과 구름, 우레와 번개를 쓰지 않으신다 하여도 저 혼자만으로는 힘을 보탤 수 없사옵니다. 저의 아우들을 시켜 함께 대성을 돕게 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아우들은 어디 있소?” 용왕이 말했다. “남해 용왕 오흠, 북해 용왕 오윤, 서해 용왕 오순이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내가 세 바다를 다시 돌아야 하니, 차라리 상계로 올라가 옥황상제의 칙지를 청하는 편이 낫겠소.” 용왕이 말했다. “대성께서 가실 것 없사옵니다. 이곳에서 쇠북과 금종을 울리면 그들이 저절로 순식간에 이르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늙은 용왕이여, 어서 종과 북을 치시오.” 잠깐 사이에 삼해 용왕이 모여들어 물었다. “형님이여, 무슨 일로 아우들을 부르셨소?” 오광이 말했다. “손오공 대성이 여기 계시어 비를 빌려 요괴를 항복시키는 일을 돕고자 하신다.” 세 아우가 곧 인도되어 들어가 인사를 마치자 행자가 물을 빌리러 온 사정을 자세히 말했는데, 여러 신들이 저마다 기꺼이 따르며 곧 군사를 점고하니, 상어는 날래어 선두 부대가 되고, 입이 큰 호어는 선봉에 섰구나. 잉어 원수는 파도를 뒤집으며 뛰놀고, 붕어 제독은 안개를 토하며 바람을 뿜누나. 청어 태위는 동쪽에서 초병을 몰고, 백어 도시는 서쪽 길에서 출정을 재촉하누나. 붉은 눈 말랑은 남쪽에서 춤을 추고, 검은 갑옷 장군은 북쪽으로 내리 치누나. 황어 파총은 중군에서 나팔을 잡고, 오방의 병졸들은 곳곳이 영웅이로다. 종횡으로 기교를 부리는 자라는 추밀, 묘하고 깊은 계책을 헤아리는 거북이 재상이로다. 꾀 있고 지혜로운 악어 승상, 변화 많고 재주 많은 자라 총융이로다. 옆으로 기어 다니는 게 병사는 긴 칼을 휘두르고, 곧장 뛰어오르는 새우 할멈은 억센 활을 당기누나. 메기 외랑은 문서 장부를 살펴 점검하고, 용병을 점고하여 파도 가운데서 떠나 나오는구나. 시에 이르기를, 사해 용왕은 기꺼이 공을 돕고 제천대성의 청에 함께 좇누나. 오직 삼장이 길 위에서 재난을 만난 까닭에, 물을 빌려 앞으로 나아가 붉은 불을 끄는 것이로다. 그 행자가 용병을 거느리고 오래지 않아 호산 고송간 위에 일찍이 당도했다. 행자가 말했다. “오씨 곤옥들이여,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소. 이곳은 요마의 소굴이니 그대들은 우선 공중에 머물며 얼굴을 내밀지 마시오. 이 늙은 원숭이가 그놈과 한판 겨뤄 보리다. 내가 이기면 여러분께서 나서서 잡으실 것 없고, 내가 지더라도 여러분께서 진을 도우실 것도 없소. 다만 그놈이 불을 뿜을 때에야 내 부름을 듣고 일제히 비를 뿜어 주시오.” 용왕들이 모두 그 명령대로 따랐다. 행자가 곧 구름을 내려놓고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팔계와 사승을 만나 “아우들!” 하고 불렀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참 빨리 오셨소! 용왕을 모셔 오셨소?” 행자가 말했다. “모두들 왔느니라. 너희 둘은 모름지기 조심하여라. 비가 크게 내릴 터이니 행장이 젖지 않게 하여라. 이 늙은 원숭이가 그놈과 싸우러 가마.” 사승이 말했다. “형님께서는 안심하고 가십시오. 저희가 잘 알아서 하겠소.” 행자가 시냇물을 건너 문 앞에 이르러 “문 열어라!” 하고 외쳤다. 그 작은 요괴들이 또 달려가 아뢰었다. “손행자가 또 왔사옵니다.” 홍해아가 고개를 들어 웃으며 말했다. “저 원숭이 놈이 불 속에서도 타죽지 않았나 보구나. 그래서 또 온 것이로다. 이번에는 결단코 그놈을 봐주지 말고, 반드시 가죽이 타고 살이 문드러지도록 태워 놓은 뒤에야 그만두리라!” 급히 몸을 솟구치며 긴 창을 비껴 들고는 명했다. “이놈들아, 불 수레를 밀어 내라!” 그가 문 앞으로 나서서 행자에게 말했다. “네가 또 와서 무엇 하려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 스승님을 내놓아라.” 그 요괴가 말했다. “이 원숭이 놈아, 사정 봐주는 줄도 모르는구나. 저 당승은 네 스승이 되고 나에게는 안주가 되느니라. 네가 아직도 그를 데려갈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냐. 꿈도 꾸지 마라, 꿈도 꾸지 말아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몹시 분노하여 금고봉을 빼어 들고 머리 위로 내리쳤다. 그 요정은 화첨창을 써서 급히 받아 막았다. 이번 겨룸은 앞번과는 달랐으니, 그 싸움 실로 볼 만하였다. 노기 치솟는 요마로다, 화가 급해진 원숭이 왕 장수로다. 이 하나는 오직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을 살리려 하고, 저 하나는 당승을 잡아먹으려 하누나. 마음이 변하니 정이 없어지고 정이 멀어지니 의리도 사라졌구나. 이쪽은 붙잡아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싶고, 저쪽은 끌어다 생으로 장에 찍어 먹고 싶어 하니, 참으로 영웅답고 과연 사나우며 장하구나. 몽둥이가 날아오면 창이 받아 승부를 겨루고, 창이 나가면 몽둥이가 맞받아 위아래를 다투누나. 손을 들어 스무 차례를 겨루었으나 양편 솜씨가 한가지로구나. 그 요왕이 행자와 스무 합을 싸워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는 창을 헛되이 한 번 흔들어 슬쩍 몸을 빼어 주먹을 쥐고는 다시 코를 두 번 때리고 곧 불을 뿜어 내었다. 문 앞 수레들 위에서는 불꽃이 솟구치고, 입과 눈에서는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손오공 대성이 고개를 돌려 외쳐 말했다. “용왕은 어디 계시오?” 그 용왕 형제들이 여러 수족을 거느리고 요정의 불빛을 향해 비를 뿜어 내니, 훌륭한 비로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사르르 내리고 빽빽이 자욱한데, 사르르 내림은 하늘 끝에서 별이 떨어지는 듯하고, 빽빽이 자욱함은 바다 어귀가 거꾸로 매달려 물결이 구르는 듯하구나. 처음에는 주먹만 하던 것이 점차 독에서 퍼붓고 동이에서 쏟아지듯 하누나. 온 땅에 흘러내려 오리 머리꼭지 같은 녹색을 적시고, 높은 산을 씻어 내어 부처 머리 같은 푸름을 드러내누나. 도랑과 골짜기의 물은 천 길이나 되는 옥을 날리고, 시냇물의 물결은 만 가닥 은을 불려 내누나. 세 갈래 길목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아홉 굽이 시냇물이 차츰 평평해지는구나. 이것은 당승이 재난을 만나 신룡이 돕는 것이니,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다 아래로 쏟아 붓는 것이로다. 그 빗줄기가 굵고 가늘기야 어떠하든 저 요정의 불기운을 잦아들게 할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용왕의 사사로운 비는 범속한 불이나 끼얹어 끌 따름이요, 요정의 삼매진화를 어찌 끌 수 있으랴. 마치 불 위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 뿌리면 뿌릴수록 더욱 타올랐다. 대성이 말했다. “내 주술을 쥐고 불 속으로 뛰어들 테다!” 쇠몽둥이를 휘둘러 요괴를 찾아 후려치려 하였다. 그 요괴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연기 한 모금을 얼굴을 향해 확 뿜어 냈다. 행자가 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눈앞이 캄캄하여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원래 이 대성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연기를 두려워하였느니라. 당년에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았을 적에 노군의 팔괘로 속에 들어가 한바탕 단련을 겪었는데, 다행히 그 손방위에 몸을 붙여 타버리지 않았으나 바람이 연기를 휘저어 오는 바람에 연기에 찌들어 화안금정이 되었으니, 그런 까닭으로 오늘날까지도 다만 연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니라. 그 요괴가 또 한 모금 뿜어 대니 행자가 견디지 못하고 구름을 타고 달아났다. 그 요왕은 다시 불 도구를 거두어 굴 속으로 돌아갔다. 이 대성은 온몸이 불과 연기에 휩싸여 화끈 달아오르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곧장 시냇물 속으로 몸을 던져 불을 끄려 하였다. 그러나 찬물에 갑자기 눌리는 바람에 불기운이 심장으로 치고 올라와 삼혼이 몸을 빠져나갔으니, 가련하게도 기운은 가슴에 막히고 목과 혀는 차갑게 식었으며 넋이 흩어져 남은 목숨마저 잃고 말았다! 놀란 사해 용왕이 반공중에서 비를 거두며 큰소리로 외쳤다. “천봉원수! 권렴장군! 숲 속에 숨어 있지 말고 나와 너희 형님을 찾아라!” 팔계와 사승이 제 성호를 불러 주는 소리를 듣고 급히 말을 풀고 짐을 메고 숲을 벗어나 달려왔는데, 진흙탕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냇물을 따라 찾아가 보니 윗물결이 넘실거리는 급류 속에서 사람 하나가 흘러내려 오고 있었다. 사승이 그것을 보고 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어 건져 올려 언덕에 안아 놓고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손오공 대성의 몸이었다. 아! 보라, 그가 팔다리를 오그린 채 펴지 못하고 온몸이 위아래 할 것 없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사승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했다. “형님! 억만 년을 늙지 않고 장생할 분이 오늘 원통하게도 도중에 요절한 사람이 되었구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야, 울지 마라. 이 원숭이 놈이 죽은 체하며 우리를 겁주는 것이오. 네가 한번 만져 보아라, 가슴에 아직 온기가 조금이라도 있느냐?” 사승이 말했다. “온몸이 다 차가워졌는데 온기가 조금 있다 한들 그것이 어찌 살아난단 말이오?” 팔계가 말했다. “그놈에게 칠십이 가지 변화가 있으면 칠십두 개의 목숨이 있는 법이오. 네가 발을 잡아라. 내가 손을 써 보마.” 과연 사승이 발을 잡고 팔계가 머리를 받쳐 들자 그를 곧게 펴고 아래쪽 발을 들어 올려 무릎을 꿇고 앉혀 놓았다. 팔계가 두 손을 비비어 따뜻하게 한 뒤 그의 칠규를 틀어막고 안마 선법 하나를 썼다. 원래 그 행자는 찬물에 눌려 기운이 단전에서 막혀 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다행히 팔계가 눌러 주고 문지르고 비벼 준 덕분에 잠깐 사이에 기운이 삼관을 뚫고 명당을 돌아 구멍을 열어젖히고는 “스승님이시여!” 하고 외쳤다. 사승이 말했다. “형님, 형님은 살아서도 스승님이요 죽어서도 입에 담으시는구려. 어서 깨어나십시오. 우리가 여기 있소.” 행자가 눈을 뜨며 말했다. “아우들이 여기 있느냐? 이 늙은 원숭이가 크게 당했구나!”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 방금 전에 혼절하셨는데요. 이 늙은 돼지가 구해 내지 않았으면 벌써 끝장이 났소. 어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십시오!” 행자가 그제야 몸을 일으켜 하늘을 우러러 말했다. “오씨 형제들은 어디 계시오?” 그 사해 용왕이 반공중에서 대답했다. “소룡이 여기서 대령하고 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으나 공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우선 돌아가시고, 다른 날 다시 사례하리다.” 용왕이 수족을 거느리고 쓸쓸히 돌아갔으니,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자. 사승이 행자를 부축하여 함께 소나무 숲 아래로 나아가 앉았다. 조금 있자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을 고르니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어 다시 불렀다. “스승님이시여! 생각하건대 당년에 대당을 떠나올 적에, 바위 앞에서 저를 구해 주시어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셨지요. 세 산과 여섯 물을 지나며 마장에 부딪치고, 만 가지 고생과 천 가지 어려움에 애간장이 베이는 듯하였소. 발우를 들고 아침에는 후하고 박한 대로 따라먹고, 참선하며 저물면 혹 숲이나 마을에서 묵었지요. 한 마음으로 공과를 이루기를 바랐더니, 오늘 어찌 이리도 아프게 다칠 줄 알았으리오!” 사승이 말했다. “형님, 우선 근심을 거두시고 우리가 빨리 계책을 세워 어디엔가 가서 군사를 청해 도움을 받아 스승님을 구해 내도록 합시다.” 행자가 말했다. “어디 가서 구원을 청한단 말이냐?” 사승이 말했다. “당초에 보살께서 우리에게 당승을 보호하라 분부하시며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응하고 땅을 부르면 땅이 응할 것이라 허락하셨소. 어디로 가서 구원을 청하시렵니까?” 행자가 말했다. “생각하건대 이 늙은 원숭이가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았을 때에 그 신병들이 모두 나를 당해 내지 못하였소. 이 요정은 신통이 작지 않으니 모름지기 나보다 솜씨가 좀 더한 자라야 그놈을 항복시킬 수 있으리다. 천신은 힘이 미치지 못하고 지살도 어렵거니와, 이 요마를 잡으려면 모름지기 관음보살을 청해 모셔 와야 하리라. 그러나 내 살갗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저려 근두운을 탈 수 없으니 어찌 청하러 간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무슨 분부이든 내게 내리시면 제가 가서 청하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다. 네가 가도록 하여라. 보살을 뵙거든 부디 올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숙여 절만 올려라. 그가 물으시거든 너는 지명과 요괴의 이름을 아뢰고, 다시 스승님의 일을 여쭈어라. 그가 오시겠다면 틀림없이 괴물을 잡아 주시리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곧 구름을 타고 남쪽을 향해 떠났다. 말하자면, 그 요왕이 굴 속에서 기뻐하며 말했다. “이놈들아, 손행자가 큰코다치고 갔느니라. 이번 한판으로 그놈을 죽이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크게 기절하게는 하였느니라. 어, 그놈이 다시 구원병을 청하러 갈까 두렵구나. 어서 문을 열어라. 내가 나가 그놈이 누구를 청하러 가는지 살펴보리라.” 여러 요괴가 문을 열자 요정이 곧 공중으로 뛰어올라 두루 살펴보니 팔계가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요정은 남쪽에는 다른 곳이 없을 터이니 틀림없이 관음보살을 모시러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급히 구름을 내려 말했다. “이놈들아, 내 가죽 주머니를 찾아내어라. 오래도록 쓰지 않아 입구 끈이 튼튼하지 않을 터이니 새 끈 하나로 바꿔 달아 두 번째 문 아래에 두어라. 내 팔계를 속여 데려와 그 주머니에 집어넣고 푹 삶아 버린 뒤 너희를 후하게 대접하리라.” 원래 그 요정에게는 뜻대로 쓰는 여의 가죽 주머니가 있었다. 여러 작은 요괴가 그것을 꺼내어 입구 끈을 갈아 동굴 문 안에 놓아 두었으니,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자. 말하자면, 그 요왕은 오래도록 이곳에 살아 그 주변이 모두 익숙한 유람지였으므로 어느 길이 남해로 가는 지름길이고 어느 길이 먼 길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 지름길로 구름을 한 번 타니 어느새 팔계를 앞질러 벼랑바위 위에 단정히 앉아서는 가짜 관세음보살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팔계를 기다렸다. 그 멍청한 놈이 구름을 타고 가다가 홀연히 보살을 바라보았으니, 그가 어찌 참과 거짓을 분별하리요. 이것이 바로 형상을 보면 부처를 짓는다는 것이로다. 멍청이는 구름을 멈추고 내려와 절하며 말했다. “보살이시여, 제자 저오능이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요정이 말했다. “너는 당승을 보호하여 경을 구하러 가지 않고 나를 만나 무슨 일이냐?” 팔계가 아뢰었다. “제자가 스승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도중에 호산 고송간 화운동에 이르렀는데, 그곳 홍해아라는 요정이 우리 스승님을 낚아 갔나이다. 저와 형님들이 그의 문을 찾아가 싸웠으나 그놈이 불을 뿜는 재주가 있어 첫 번째 판에는 이기지 못하였고, 두 번째 판에는 용왕을 청하여 비를 돕게 하였으나 그 불조차 끌 수 없었나이다. 형님이 그놈에게 타격을 입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제가 보살을 모시러 왔사오니, 바라건대 자비를 내리시어 우리 스승님의 이 재난을 건져 주시옵소서!” 요정이 말했다. “저 화운동 동주는 남을 해치는 자가 아니니, 틀림없이 너희가 그를 거슬렀을 것이다.” 팔계가 말했다. “제가 그를 거스른 것이 아니라 형님 오공이 그를 거스렸나이다. 그놈이 어린아이로 변하여 나무에 매달려 우리 스승님을 시험하였나이다. 스승님께서 인자한 마음이 크시어 제가 내려 주라 하시고 형님에게 업어 한참을 가라 하셨나이다. 그런데 형님이 그놈을 한 번 내동댕이치자 그놈이 바람을 일으켜 스승님을 낚아 갔나이다.” 요정이 말했다. “일어서라. 나를 따라 그 굴로 들어가 동주를 만나 보자. 내가 너를 위하여 인정을 베풀 터이니, 네가 사례하며 절 한 번 올리고 스승님을 청해 내어 오도록 하마.” 팔계가 말했다. “보살이시여, 스승님을 돌려주시겠다면 그에게 큰절 한 번 올리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나이다.” 요왕이 말했다. “따라오너라.” 그 멍청이는 좋고 나쁨도 가리지 않고 그를 따라 곧장 옛길로 되돌아갔으니, 남양 바다로 간 것이 아니라 그대로 화운동으로 달려가 순식간에 문 앞에 이르렀다. 요정이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너는 의심하지 마라. 저놈은 내 옛 친구이니 들어오너라.” 멍청하는 할 수 없이 걸음을 옮겨 문으로 들어섰다. 여러 요괴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팔계를 거꾸러뜨려 붙잡아 가죽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입구 끈을 단단히 묶어 들보 위에 높이 매달았다. 요정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한가운데 앉아 말했다. “저팔계야, 네게 무슨 재주가 있다고 감히 당승을 보호하여 경을 구하러 가며 감히 보살을 청하여 나를 항복시키려 하였느냐! 너는 두 눈을 크게 뜨고서도 나를 성영대왕으로 알아보지 못하였느니라. 이제 너를 잡아 사흘닷새쯤 매달아 두었다가 푹 쪄서 작은 요괴들에게 상으로 내리리니, 잠시 안주로 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주머니 속에서 욕하며 말했다. “이 몹쓸 괴물 같으니라고! 몹시 무례하구나! 네가 온갖 꾀로 나를 속여 잡아먹으려 하니, 너희 하나하나가 머리가 부어오르는 천온에 걸려 죽는 꼴을 보리라!” 멍청이는 욕하고 또 욕하며 떠들고 또 떠들었으나,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자. 말하자면, 손오공 대성과 사승이 함께 앉아 있는데 불현듯 비린내 나는 바람 한 줄기가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재채기를 한 번 하며 말했다. “좋지 않다! 좋지 않다! 이 바람은 흉이 많고 길이 적으니, 저팔계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사승이 말했다. “그가 길을 잘못 들면 남에게 물어보면 될 것 아니오?” 행자가 말했다. “틀림없이 요괴를 만났구나.” 사승이 말했다. “요괴를 만났다면 그가 달아나지 못할 리가 있소?” 행자가 말했다. “큰일이로구나. 네가 여기 앉아 지키고 있어라. 내 시냇물을 건너가 알아보고 오마.” 사승이 말했다. “형님께서는 허리가 아프신 터에 그놈의 손에 또 걸리실까 걱정되니 제가 가겠소.” 행자가 말했다. “너는 일을 해내지 못한다. 나를 가게 하여라.”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쇠몽둥이를 쥐고 시냇물을 건너 화운동 앞에 이르러 “이 몹쓸 요괴!” 하고 외쳤다.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또 급히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손행자가 또 문 앞에서 외치고 있사옵니다!” 그 요왕이 잡아들이라 명하니 그 무리의 작은 요괴들이 창과 칼을 들고 에워싸며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곧 문을 열고는 모두들 말했다. “잡아라! 잡아라!” 행자는 과연 지쳐 있던 터라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몸을 길옆으로 들이밀고 주문을 외우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소금 무늬 보따리 하나로 변하였다. 작은 요괴들이 그것을 보고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손행자가 겁을 먹었나 보옵니다. ‘잡아라’ 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놀란 나머지 보따리를 버리고는 달아났사옵니다.” 요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 보따리에는 값나가는 물건도 없을 터이니, 아무리 봐야 중의 해진 장삼과 낡은 모자일 뿐이다. 들여와 뜯어 빨아 헝겊 조각이나 만들자.” 작은 요괴 하나가 과연 그 보따리를 등에 지고 들어갔으니, 그것이 행자가 변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행자가 속으로 말했다. “잘되었다! 이 소금 무늬 보따리를 등에 지고 들어가는구나!” 그 요정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문 안에 내동댕이쳤다.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거짓 속에 또 거짓이요 헛됨 가운데 다시 헛됨이니라. 곧 털 한 가닥을 뽑아 입으로 선기운을 불어넣어 보따리와 똑같은 것으로 변하게 하고, 그의 진짜 몸은 또 파리 한 마리로 변하여 문지도리에 붙었다. 그런데 팔계가 어디선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목소리가 분명치 않기가 마치 병든 돼지 같았다. 행자가 윙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 찾아보니, 그가 가죽 주머니 속에 매달려 있었다. 행자가 가죽 주머니에 붙어 있으니 그가 악담을 퍼부으며 요괴가 어떻고 요괴가 저쩌니 하고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어찌 관음보살로 변하여 나를 속여 데려다 이곳에 매달아 놓고는 도리어 나를 먹겠다 하느냐! 어느 날 우리 형님이 제천대성의 한없는 법력을 크게 떨치면, 산에 가득한 요괴들이 단숨에 사로잡히리라! 가죽 주머니 풀어 나를 꺼내라. 갈퀴로 천 번을 찍어야 내 속이 시원하리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 멍청이가 주머니 속에서 답답한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도 기를 꺾지 않는구나. 이 늙은 원숭이가 반드시 저 요괴를 잡아야 하리라. 그리하지 않으면 어찌 이 원한을 씻을 수 있으랴!’ 막 팔계를 구해 낼 궁리를 하려는데, 그때 그 요왕이 “육건장은 어디 있느냐?” 하고 불렀다. 그때 여섯 작은 요괴가 있었으니 그의 마음을 아는 정령들로서 건장으로 봉해졌으며 저마다 이름이 있었다. 하나는 운리무라 하고, 하나는 무리운이라 하며, 하나는 급여화라 하고, 하나는 쾌여풍이라 하며, 하나는 흥홍흔이라 하고, 하나는 흔흥흥이라 하였다. 육건장이 앞으로 나서 무릎을 꿇자 요왕이 말했다. “너희는 노대왕 가를 알고 있느냐?” 육건장이 아뢰었다. “알고 있사옵니다.” 요왕이 말했다. “너희는 별처럼 밤을 달려 가 노대왕을 모셔 오라. 내가 이곳에서 당승을 삶아 그에게 바쳐 수명을 천 년이나 늘려 주겠다 하여라.” 여섯 요괴가 명을 받고는 저마다 서로 이끌고 당기며 문 밖으로 나갔다. 행자가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머니에서 내려 날아 그 여섯 요괴를 따라붙어 굴을 빠져나갔다. 결국 어찌하여 모셔 오는지는 알 길이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2회 대성은근배남해(大聖慇懃拜南海) · 관음자선박홍해(觀音慈善縛紅孩) 말하자면, 그 여섯 장수가 동굴 문을 나서 곧장 서남쪽을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갔다. 행자가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저놈들이 늙은 대왕을 모셔다 내 스승님을 잡수시게 하려 하는구나. 그 늙은 대왕은 틀림없이 우마왕이로다. 내가 예전에 그를 만났을 적에는 참으로 뜻이 맞고 정이 통해 사귐이 매우 두터웠는데, 이제 내가 바른 도로 돌아왔어도 그는 여전히 사악한 마귀로구나.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였으나 그 생김새는 아직 기억하고 있으니, 이번에 내가 우마왕으로 둔갑하여 그놈을 한번 속여 보고 과연 어떨지 두고 보리라.”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그는 여섯 작은 요괴를 피해 날개를 펴고 앞으로 날아가 그들과 십여 리쯤 되는 거리를 두고서, 몸을 한 번 흔들어 우마왕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털 몇 가닥을 뽑아 “변해라!” 하고 외우니 곧장 작은 요괴 몇몇이 되었다. 그는 산골짜기 속에서 매를 팔에 얹고 개를 끌며 쇠뇌를 당기고 활을 겨누어 사냥꾼 행색을 하고는 그 여섯 장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리가 서로 밀고 당기며 가다가 홀연히 우마왕이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흥홍흔과 흔홍흥이 와락 엎드려 절하며 “늙은 대왕 할아범이 여기 계시구나!”라고 말했다. 운리무와 무리운, 급여화와 쾌여풍은 모두 범인의 육안이라, 어찌 참과 거짓을 알아보랴. 그들도 함께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할아범! 저희는 화운동 성영대왕이 보낸 몸이오니, 늙은 대왕 할아범을 모시러 가서 당승의 고기를 잡수시고 수명을 천 년이나 늘리시라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구실을 삼아 대답했다. “얘들아, 일어나라.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마.” 작은 요괴가 머리를 조아리며 “할아범, 사정을 봐주시어 저택에 들르실 것 없사옵니다. 길이 멀고도 머니 저희 대왕께 꾸지람을 들을까 두렵사오니 곧장 모셔 가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착한 내 새끼들, 좋다 좋다. 앞에서 길을 열어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마.”라고 말했다. 여섯 괴물이 정신을 가다듬어 앞에서 길을 외치며 나아가고 대성이 그 뒤를 따랐다. 오래지 않아 그곳에 당도했다. 쾌여풍과 급여화가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 “대왕, 늙은 대왕 할아범이 오셨소.”라고 아뢰었다. 요괴 왕이 기뻐하며 “너희가 참으로 쓸 만하구나, 어찌 이리도 빨리 왔느냐.”라고 말했다. 곧 “두목들은 대오를 벌리고 깃발을 세워 북을 울리며 늙은 대왕 할아범을 맞이하라.”라고 명령하였다. 온 동굴의 무리 요괴가 분부를 좇아 가지런히 늘어서 밖으로 나갔다. 이 행자는 기세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어 매와 개를 부리던 털을 도로 거두어들인 뒤, 큰 걸음을 내딛어 곧장 문 안으로 들어가 남쪽 한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홍해아가 앞에 꿇어앉아 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부왕, 아이가 절을 올리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아이는 예를 차리지 말라.”라고 말하니, 그 요괴 왕이 네 번 큰절을 올리고 나서 아랫자리에 섰다. 행자가 “내 아들아, 나를 청한 것이 무슨 일이냐?”라고 물으니 요괴 왕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아이의 재주가 보잘것없사오나 어제 사람 하나를 잡았느니라. 바로 동토 대당의 승려이니라. 늘 남에게서 들으니 그는 열 세상 동안 수행을 쌓은 사람이라, 누구든 그 살 한 점을 먹으면 봉래산과 영주산의 늙지 않는 신선처럼 장수한다 하느니라. 어리석은 이 아이가 감히 혼자 먹을 수 없어 특별히 부왕을 모셔 와 함께 당승의 고기를 즐기시고 수명을 천 년이나 늘리시려 하였느니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내 아들아, 그 당승이 누구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 아들아, 혹시 손행자의 스승이냐?”라고 물으니 요괴 왕이 “바로 그러하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손을 내젓고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는 건드리지 말라! 건드리지 말라! 다른 이라면 건드려도 좋으련만 손행자야말로 그런 사람이니라. 내 어진 사위야, 너는 그를 만나 본 적이 없느냐? 그 원숭이는 신통이 광대하고 변화가 무궁하니라. 일찍이 천궁을 크게 뒤집어 놓아 옥황상제가 십만 천병을 보내고 천라지망을 펼쳤어도 끝내 그를 잡지 못하였느니라. 네가 어찌 감히 그의 스승을 먹으려 하느냐! 어서 내보내어 그에게 돌려주고 그 원숭이를 자극하지 말라. 그가 네가 스승을 먹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너와 싸우러 오지도 않으리라. 다만 그 여의금고봉으로 산허리에 구멍을 하나 뚫어 산까지 두 손으로 퍼 갈 것이니라. 내 아들아, 그리되면 네가 어디 가 몸을 붙이겠으며, 나는 늙어 누구에게 의지하란 말이냐!” 요괴 왕이 말했다. “부왕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남의 기운을 북돋우고 이 아이의 위풍을 꺾으시려 하시나이까. 그 손행자에게는 형제가 모두 셋이라 당승을 모시고 내 산 중턱에 이르렀는데, 내가 변화 하나를 부려 그의 스승을 움켜잡았느니라. 그가 저팔계와 함께 내 문 앞을 찾아와 무슨 인척이라니 사귀던 사이라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기에, 이 아이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그와 몇 합을 겨루었으나 그저 그럭저럭이었고 뛰어난 수는 보이지 않더라. 그때 저팔계가 곁에서 끼어들어 돕려 하기에 이 아이가 삼매진화를 토해 한바탕 불에 태워 물리쳤느니라. 놀란 그들이 사해용왕을 청해 비를 내리게 하였으나 내 삼매진화를 끌 수 없었고, 도리어 그가 잠시 정신을 잃는 지경에 빠져 황급히 저팔계를 시켜 남해의 관음보살을 청하러 가게 하였느니라. 이 아이가 관음으로 변해 저팔계를 속여 데려다가 여의 주머니에 매달아 두고 작은 아이들과 함께 쪄 먹으려 하였느니라. 그 행자가 오늘 아침 또 내 문 앞에 와서 고함을 치기에 분부하여 그를 잡으라 하였더니, 놀란 그가 보따리를 버리고 달아났느니라. 그래서 부왕을 모셔 와 당승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시게 하려 하였나이다. 그런 뒤에야 쪄서 올리시면 수명이 길어져 늙지 않으시리라.” 행자가 웃으며 “내 어진 사위야, 너는 삼매진화로 그를 이겼다는 것만 알았지 그에게 일흔두 가지 변화가 있는 줄은 모르는구나!”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그가 어떻게 변한들 나는 알아보리라. 아무렴 감히 내 문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 아들아, 네가 비록 알아보기는 하나 그는 크게는 변하지 않느니라. 낭항이나 코끼리처럼 변한다면 네 문으로 들어오지 못할 터이니, 작게 변하면 네가 알아보기 어려우리라.”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말했다. “그가 아무리 작게 변한들 내 이곳 문마다 사오 명의 작은 요괴가 지키고 있거늘 그놈이 어찌 들어올 수 있으리오!”행자가 “너는 모르는구나, 그는 파리와 모기와 벼룩이 될 수도 있고 꿀벌과 나비와 매미 따위가 될 수도 있느니라. 또한 내 모습으로 변할 줄도 아는데 네가 어디 그를 알아보겠느냐?” 요괴 왕이 “걱정 마시라. 그놈이 쇠 담력에 구리 심장이라 한들 감히 내 문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내 어진 사위에게 훌륭한 수단이 있어 참으로 그를 당해 낼 만하니, 그래야 나를 청해 당승의 고기를 먹이려 하는 것이로되, 안타깝게도 나는 오늘 당장에는 먹지 않겠노라.” 요괴 왕이 “어찌하여 잡수시지 않으시나이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내가 요즘 늙고 보니 네 어미가 늘 선한 일을 좀 하라 권하느니라. 생각해 보아도 선을 베풀 만한 것이 없어 우선 재계나 하려 하노라.”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부왕께서 올리시는 재가 긴 재이신지 달 재이신지 모르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긴 재도 아니요, 달 재도 아니니라. 이를 뇌재라 하느니라. 다만 한 달에 나흘뿐이니라.”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어느 나흘이니이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초엿새와 신일이 서로 만나는 나흘이니라. 오늘이 바로 신유일이거늘, 하나는 마땅히 재를 올릴 날이요, 둘째는 유일에는 손님을 만나지 않는 법이라. “그러니 내일을 기다렸다가 내가 친히 그를 씻어 쪄서 너희와 함께 즐기리라.” 그 요괴 왕이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부왕은 평소 사람을 잡아먹고 살아 천 년이 넘도록 사셨거늘, 어찌 이제 와서 재를 올리려 하시는가? 애초에 악을 많이 저지르셨으니 서너 날 재를 올린들 무슨 공덕이 거기서 쌓이겠느냐! 이 말은 거짓이로다, 수상하다! 수상하다!” 그는 곧 몸을 빼어 둘째 문 밖으로 나가 여섯 장수를 불러 물었다. “너희는 그 늙은 대왕을 어디서 모셔 왔느냐?” 작은 요괴들이 “중도에서 모셔 왔소.”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내 말이 옳지, 어찌 그리 빨리 왔느냐. 집에 들르지도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작은 요괴들이 “예, 들르지 않았소.”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큰일 났구나! 가짜를 당하였도다! 이분은 늙은 대왕이 아니니라!”라고 말했다. 작은 요괴들이 모두 꿇어앉아 “대왕, 친아버지를 어찌 알아보지 못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말했다. “생김새와 거동은 모두 닮았으나 말이 닮지 않았으니, 필경 가짜를 만나 남에게 손해를 볼까 두렵노라. 너희는 모두 조심하라. 칼을 쓰는 놈은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들고, 창을 쓰는 놈은 창날을 갈아 번쩍이게 하며, 몽둥이를 쓰는 놈은 몽둥이를 잡고, 밧줄을 쓰는 놈은 밧줄을 챙겨라. 내가 다시 들어가 물어 그의 대답이 어떠한지 보리라. 과연 늙은 대왕이시라면 오늘 안 드셔도, 내일 안 드셔도, 한 달이 늦어진들 무슨 해가 있으리오! 그러나 만일 말이 맞지 않으면 내가 콧소리를 한 번 내는 것을 신호로 너희가 일제히 달려들라.” 무리 마귀들이 저마다 분부를 받들었다. 이 요괴 왕이 몸을 돌려 다시 안으로 들어와 행자 앞에서 또 절을 올렸다. 행자가 “아들아, 집안에서 늘 차리는 예는 없는 법이니 절은 필요 없다마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대로 말해 보아라.”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땅에 엎드려 말했다. “어리석은 이 아이가 하나는 당승의 고기를 올려 잡수시라고 모셔 온 것이옵니다만, 둘째는 여쭐 말씀이 있사옵니다. 지난번에 한가롭게 상서로운 빛을 타고 구소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가 홀연히 조연도령 장 선생을 만났나이다.” 행자가 “천사를 지내는 장도령이란 말이냐?”라고 물으니 요괴 왕이 “바로 그분이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무슨 말을 하시더냐?”라고 물었다. 요괴 왕이 “그분이 이 아이의 오관이 반듯하고 삼정이 고른 것을 보시고는 몇 해 몇 달 며칠 어느 시각에 세상에 나왔는지 물었나이다. 아이가 어려서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였나이다. 선생께서는 자평술에 통달하시어 오성을 헤아려 주시려 하였기에, 이번에 부왕을 모신 김에 바로 이것을 여쭙고자 하였나이다. 다음에 다시 그분을 만나거든 정성껏 점괘를 부탁드리려 하였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위에 앉은 채로 속으로 비웃었다. “참으로 요상한 요괴로구나! 내가 불과에 귀의하여 당 스승님을 모신 뒤로 가는 길에 요괴도 몇 마리 잡았건만 이놈처럼 캐묻기를 잘하는 놈은 없었느니라. 집안 형편이 어떠니 쌀이 모자라니 땔감이 없느니 하는 말을 물었다면 내 마음대로 지어 대답할 수도 있으련만, 이제 내게 태어난 해와 달과 날을 물으니 내가 어찌 알겠느냐!” 과연 훌륭한 원숭이 왕이로다, 그는 또한 몹시 재치가 있어 위풍당당하게 한가운데 앉아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고, 도리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흐뭇하게 말했다. “어진 사위야, 일어나라. 내가 늙어 요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상했더니, 너의 태어난 시각을 그만 잊어버렸노라. 내일 집에 돌아가 네 어미에게 물어보면 알리라.” 요괴 왕이 “부왕께서는 나의 여덟 글자를 늘 입에 달고 계시며 하늘과 더불어 늙지 않는 수명이라 하셨거늘, 어찌 하루아침에 잊으시나이까! 그런 이치가 어디 있나이까! 필시 가짜이니라!”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콧소리를 한 번 내니 무리 요괴가 창과 칼을 들고 몰려들어 행자의 머리와 얼굴을 가리지 않고 찔러 왔다. 이 대성이 여의금고봉으로 받아 막고 본모습을 드러내어 요괴에게 “어진 사위야, 너는 참으로 무례하구나. 어느 아들이 아비를 때리더냐?”라고 말했다. 그 요괴 왕은 낯이 온통 붉어져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행자가 금빛 광채로 변하여 그의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작은 요괴가 “대왕, 손행자가 도망쳤소.”라고 말했다. 요괴 왕이 “됐다 됐다! 가게 두어라! 이번에 내가 그놈에게 크게 당하였구나! 문이나 닫아걸아라. 그놈과 말을 섞지 말고 당승이나 씻어 쪄 먹는 수밖에.” 말하자면, 그 행자가 쇠몽둥이를 메고 껄껄 웃으며 시냇가 저쪽에서 돌아왔다. 사승이 그 소리를 듣고 급히 숲에서 나와 마주 나서며 “형님, 반나절 만에야 돌아오시는데 어찌 그리 흐뭇하게 웃으시나이까? 아마 스승님을 구해 오신 모양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아우야, 스승님을 구해 내지는 못하였으나 오히려 우위를 잡고 왔노라.”라고 말했다. 사승이 “무슨 우위이옵니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알고 보니 저팔계가 그 괴물이 관음으로 변해 꾀어 온 자라, 지금 가죽 부대 안에 매달려 있더라. 내가 방도를 꾀어 구하려 하는데, 뜻밖에도 그놈이 여섯 장수를 시켜 늙은 대왕을 모셔 와 스승님의 고기를 먹으려 하였느니라. 내가 그 늙은 대왕이 필시 우마왕이라 여겨 곧 그의 모습으로 변해 그 틈에 끼어들어 가운데 자리에 앉았노라. 그놈이 부왕이라 부르면 나는 대답하였고, 그놈이 머리를 조아리면 나는 그대로 받았으니 참으로 통쾌하였노라! 과연 우위를 잡았노라!”라고 말했다. 사승이 “형님, 그깟 작은 재미만 취하시다가는 스승님의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우려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걱정 마라, 내가 보살을 모셔 오마.”라고 말했다. 사승이 “형님은 아직 허리가 아프시지 않사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제는 아프지 않노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사람에게 경사가 있으면 정신이 상쾌하다 하였느니라. 너는 짐과 말이나 잘 지켜보고 있어라, 내 갔다 오마.”라고 말했다. 사승이 “형님께서 원수를 만드셨으니 그놈이 스승님을 해칠까 두렵사옵니다. 부디 어서 가시고 어서 오셔야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가 빨리 다녀오리니 밥 한 끼 먹을 동안이면 돌아오리라.”라고 말했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승을 떠나 근두운을 타고 곧장 남해로 향했다. 반공중에서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보타산의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뒤 구름을 내려앉혀 낙가 벼랑 위에 이르러 예를 갖추어 걷고 있는데, 이십사로 제천이 마주 나서며 “대성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예를 마치고 “보살님을 뵙고자 하노라.”라고 말했다. 제천이 “잠시 기다리시라, 통보할 틈을 주게.”라고 말했다. 이때 귀자모 제천이 조음동 밖으로 나와 “보살님께 아뢰나이다. 손오공이 특별히 와서 뵙기를 청하나이다.”라고 아뢰었다. 보살이 보고를 듣고 곧 들어오라 명하였다. 대성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목숨을 바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가다듬어 곧장 안으로 들어가 보살을 보고 몸을 던져 큰절을 올렸다. 보살이 “오공아, 너는 금선자를 모시고 서방으로 경을 구하러 가지 않고 어찌하여 여기 왔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보살님께 아뢰나이다. 제자가 당승을 보호하고 가다가 호산 고송간 화운동이라는 곳에 이르렀사옵니다. 그곳에 홍해아라는 요괴가 있어 스스로 성영대왕이라 일컫는데 저의 스승님을 낚아챘사옵니다. 제자가 저오능과 함께 그의 문 앞을 찾아가 겨루었으나 그놈이 삼매진화를 놓아 우리가 이기지 못하고 스승님을 구해 내지 못하였나이다. 급히 동양 대해로 올라가 사해용왕을 모셔 비를 내리게 하였으나 역시 불을 이기지 못하여 제자들이 모두 연기에 그슬려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그놈의 불이 삼매진화요, 신통이 광대하다면서 어찌하여 용왕은 청하고 나를 청하러 오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본래 오려 하였사오나 제자가 연기에 그슬려 구름을 탈 수 없어 저팔계를 시켜 보살님을 모셔 오게 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저오능은 오지 않았느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러하옵니다. 보산에 이르기도 전에 그 요괴가 보살의 모습으로 변해 저팔계를 속여 동굴 안으로 끌어들여, 지금 가죽 부대에 매달아 두고 그마저 쪄 먹으려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 망할 요괴가 감히 내 모습으로 변하다니!”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분을 이기지 못하여 한마디 내뱉으며 손에 들고 있던 보주 정병을 바다 한가운데로 풍덩 던져 버렸다. 깜짝 놀란 행자는 머리카락까지 오싹하여 곧 일어나 아래쪽에 공손히 서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보살님은 성깔이 꺾이지 않으셔서 내가 한 말이 거슬려 덕행을 더럽힌다 여기시고는 정병을 집어던지시는구나. 아깝도다! 아깝도다! 아셨더라면 차라리 내게 주시지, 그것이 보통 큰일이 아니련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다 한가운데서 물결이 뒤집히며 솟구치더니 정병 하나가 나왔으니, 알고 보니 괴물 하나가 그것을 등에 지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행자가 그 정병을 진 괴물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니 실로 이러하였다. 그 뿌리와 근원을 더듬어 보면 방니라 일컫나니, 물 밑에서 빛을 더하여 홀로 위엄을 드러내는구나. 세상에 숨어 지내며 천지의 성정을 능히 알고, 편안히 머무르며 귀신의 기묘함을 환히 아는구나. 몸을 움츠리면 머리도 꼬리도 감추어지거니와, 발을 뻗어 걸으면 나는 듯이 빠르구나. 문왕이 괘를 그어 일찍이 점을 쳤으니, 늘 뜰과 누대에 받아들여져 복희를 모셨구나. 구름과 용이 스며 나와 온갖 고움을 뽐내고, 물을 불러 파도를 밀며 바람을 일으키는구나. 줄줄이 금실을 꿰어 갑옷을 엮고, 점점이 박힌 무늬로 채색 대모를 꾸며 놓았구나. 구궁팔괘를 수놓은 도포를 걸치고, 흩어진 조각을 펴 덮어 푸른 비단옷을 입었구나. 살아서는 용맹을 즐겨 용왕의 총애를 받았고, 죽어서는 도로 부처님의 비석을 지고 나오는구나. 이 물건의 이름과 성을 알고자 하느냐, 바람을 일으키고 물결을 부리는 고약한 늙은 거북이니라. 그 거북이 정병을 지고 벼랑가로 기어 올라와 보살을 향해 스물네 번 머리를 끄덕였으니, 이는 스물네 번 절을 대신함이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원래 병을 지키는 놈이로구나. 병이 보이지 않으니 보살께 달라고 조르는 모양이지.” 보살이 “오공아, 네가 아래에서 무슨 말을 하느냐?”라고 물었다. 행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병을 이리 가져오너라.”라고 분부했다. 이 행자가 곧 병을 들려 하였으나, 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잠자리가 돌기둥을 흔드는 격이니 어찌 반 푼어치나 옮겨 놓으랴. 행자가 앞으로 나가 꿇어앉아 “보살님, 제자는 들 수가 없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이 원숭이 녀석,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더니 병 하나도 들지 못하면서 어찌 요괴를 항복받고 괴물을 묶으려 하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보살님께 속이지 않고 아뢰나이다. 평소에는 들 수 있었으나 오늘은 들 수가 없사옵니다. 아마도 그 요괴에게 손해를 입어 힘줄의 기운이 약해진 모양이옵니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평소에는 빈 병이거니와, 이제는 내가 정병을 바다에 던졌더니 그 짧은 사이에 삼강오호와 팔해사독, 시내와 연못과 샘과 동굴 사이를 두루 돌아 그 안에 바닷물 한 바다를 빌려 담았느니라. 네게 어찌 바다를 받쳐 들 만한 힘이 있겠느냐? 이 때문에 들 수 없는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두 손을 모으고 “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보살이 앞으로 걸어 나가 오른손으로 정병을 가볍게 들어 올려 왼쪽 손바닥에 받쳐 들었다. 그러자 그 거북이 머리를 몇 번 끄덕이더니 물속으로 잠수해 가 버렸다. 행자가 “원래 밥벌이로 병이나 지키는 멍청한 놈이로구나!”라고 말했다. 보살이 자리를 잡고 앉아 말했다. “오공아, 내 이 병 속의 감로수물은 저 용왕의 사사로운 비와는 달라 저 요괴의 삼매진화를 끌 수 있느니라. 그런데 네게 들려 가라 하면 너는 들 수가 없고, 선재용녀를 데려가라 하면 너는 또 마음이 곧지 못하여 오로지 남을 속이는 데만 능하니라. 네가 내 용녀가 곱고 정병 또한 보물인 것을 보고 혹여 속여 갔다면, 내가 어디 그대를 찾아다닐 겨를이 있겠느냐? 그러니 무슨 물건이라도 저당으로 두고 가거라.” 행자가 “애달프다! 보살님께서 이다지도 마음을 쓰시니 말씀이옵니다만, 제자는 사문의 가르침을 받든 이래로 줄곧 그런 짓을 하지 않았나이다. 저당을 두라 하시니 무슨 물건을 두겠나이까? 지금 내 몸에 걸친 이 무명 장삼 또한 그대께서 내려 주신 것이옵고, 이 호랑이 가죽 치마가 동전 몇 푼이나 되겠나이까? 이 쇠몽둥이는 아침저녁으로 몸을 지켜야 하옵니다. 다만 머리 위의 이 고아는 금으로 된 것이옵니다만 그대께서 꾀를 부려 내 머리에 자라 붙게 하여 벗을 길이 없사옵니다. 이제 저당을 원하신다면 이 고아를 저당으로 드리겠나이다. 그대께서 고아를 푸는 주문을 외워 이것을 벗겨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무엇으로 저당을 삼으리이까?” 보살이 “너는 참으로 태평하구나! 나는 네 옷도, 쇠몽둥이도, 금 고아도 필요 없으니, 다만 네 목 뒤에 난 구명호모 한 가닥을 뽑아 내게 저당으로 주어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호모 또한 그대께서 주신 것이옵니다. 그러나 한 가닥을 뽑으면 떼를 흩어 버려 다시는 내 목숨을 구할 수 없게 되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꾸짖었다. “이 원숭이 녀석! 너는 털끝 하나도 뽑지 않으면서 내 선재를 내놓기를 바라느냐.” 행자가 웃으며 “보살님, 그대께서도 의심이 많으시오. 중의 낯을 보지 말고 부처의 낯을 보라 하였사오니, 부디 저의 스승님이 겪는 이 한 재앙만은 건져 주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그 보살이 한가롭고 흐뭇한 걸음으로 연화대에서 내려와 향기로운 구름을 밟고 바위 언덕으로 올랐다. 이는 오직 성스러운 승려가 재앙을 만났기 때문이니, 요괴를 항복받아 구해 오고자 함이로다. 손대성은 몹시 기뻐하며 관음을 모시고 조음선동을 나왔다. 제천 대신들이 모두 보타 바위 위에 늘어섰다. 보살이 “오공아, 바다를 건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몸을 굽히며 “보살님께서 먼저 가시옵소서.”라고 말했다. 보살이 “네가 먼저 건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제자는 감히 보살님 앞에서 재주를 부릴 수 없나이다. 근두운을 타려면 몸을 드러내야 하온데, 보살님께서 불경하다 꾸짖으실까 두렵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그 말을 듣고 곧 선재용녀를 시켜 연화 연못으로 가 연꽃잎 한 조각을 떼어다 바위 아래 물 위에 띄우게 한 뒤 행자에게 일렀다. “너는 저 연꽃잎 위로 올라타라, 내가 너를 건네주마.” 행자가 그것을 보고 “보살님, 이 꽃잎은 가볍고도 얇은데 어찌 나를 실을 수 있겠나이까! 자칫 뒤집혀 물에 빠지면 호랑이 가죽 치마를 적시지 않겠나이까? 물에 젖어 기운이 빠지면 날이 추워진 뒤에 어찌 입겠나이까!”라고 말했다. 보살이 꾸짖으며 “일단 올라가나 보아라!”라고 말했다. 행자는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목숨을 내걸고 뛰어올랐다. 과연 처음에는 작고 가벼워 보이더니 그 위에 올라가니 바닷배보다 서너 푼이나 더 컸다. 행자가 기뻐하며 “보살님, 저를 실을 수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싣는다면 어찌 건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러나 상앗대와 노와 돛과 돛대가 없으니 어찌 건너갈 수 있겠나이까?”라고 말했다. 보살이 “필요 없느니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입김을 한 번 불어 그것을 밀어 내고 당겨 모으더니, 다시 힘껏 입김 한 번을 불어 남양 고해를 지나게 하여 피안에 오르게 하였다. 행자가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웃으며 “이 보살님은 신통을 뽐내어 나를 이리 불러 대고 저리 호령하면서도 조금도 힘드신 기색이 없으시구나!”라고 말했다. 그 보살은 모든 제천에게 저마다 신선의 경계를 지키라 분부하고 선재용녀에게는 동굴 문을 닫으라 이른 뒤, 몸소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보타 바위를 떠나 저쪽으로 가서 “혜안은 어디 있느냐?”라고 불렀다. 혜안은 곧 탁탑 이천왕의 둘째 태자로 속명을 목차라 하였으니, 보살이 친히 가르침을 내린 제자로서 늘 곁을 떠나지 않아 호법 혜안행자라 불렸다. 그가 곧 보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시립하였다. 보살이 “네가 빨리 상계로 올라가 네 부왕을 뵙고 천강도를 한 벌 빌려 오너라.”라고 말했다. 혜안이 “스승님께서는 몇 자루나 쓰시렵니까?”라고 물었다. 보살이 “한 벌이 모두 필요하니라.”라고 말했다. 혜안이 분부를 받고 곧 구름을 타고 남천문으로 들어가 운루궁전에 이르러 부왕을 뵙고 절을 올렸다. 천왕이 그를 보고 “아이야,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다. 목차가 “스승님께서는 손오공이 청하여 요괴를 항복받으러 오셨사오니, 아이가 부왕께 문안을 올리고 천강도를 잠시 빌려 달라 아뢰라 하셨나이다.”라고 말했다. 천왕이 곧 나타를 불러 서른여섯 자루의 칼을 가져다 목차에게 건네주라 하였다. 목차가 나타에게 “아우야, 돌아가거든 어머니께 문안을 잘 올려라. 내 일이 급하니 칼을 전한 뒤에 다시 가서 절을 올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바삐 작별하고 상서로운 빛을 내려앉혀 곧장 남해로 가서 그 칼을 두 손으로 받들어 보살에게 올렸다. 보살이 그것을 손에 받아 쥐고는 허공으로 던지며 주문을 한 번 외우니, 그 칼이 천 잎 연꽃 자리로 변하였다. 보살이 몸을 날려 그 위로 올라가 한가운데 단정히 앉았다. 행자가 곁에서 속으로 비웃었다. “이 보살님은 쓰기를 아끼시어 연화 연못에 오색 보배 연화대가 있건만 아까워 가져오지 않고 도리어 남에게 빌려다 쓰시는구나.” 보살이 “오공아, 말을 삼가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함께 구름을 타고 바다 위를 떠났다. 흰 앵무새가 날개를 펴고 앞서 날고, 손대성과 혜안이 그 뒤를 따랐다. 잠시 뒤 산봉우리 하나가 바라보이자 행자가 “이 산이 바로 호산이옵니다. 이곳에서 저 요괴의 문 앞까지는 사백여 리쯤 될 것이옵니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그 말을 듣고 곧 상서로운 구름을 멈추라 분부하고는 그 산꼭대기에서 “옴” 자 주문을 한 번 외웠다. 그러자 산 왼편과 오른편에서 많은 신과 귀신이 걸어 나왔으니, 그들은 바로 이 산의 토지신 무리로서 보살의 보배 연꽃 자리 아래로 나아와 머리를 조아렸다. 보살이 “너희는 모두 놀라지 말라, 내 이제 이 마왕을 사로잡으러 왔노라. 너희는 나를 위하여 이 둘레를 깨끗이 쓸어 삼백 리 안팎의 땅에 살아 있는 것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하라. 굴 속의 새끼 짐승과 구멍 속의 애벌레까지 모두 산꼭대기로 옮겨다 편안히 살게 하여라.”라고 분부했다. 여러 신이 그 말을 좇아 물러갔다. 잠시 뒤에 다시 와서 일이 끝났음을 아뢰니, 보살이 “이제 깨끗해졌으니 모두 각자의 사당으로 돌아가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병을 거꾸러뜨려 콸콸 물을 쏟아 내니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산머리를 덮고 돌벽을 뚫어젖히니, 산머리를 덮은 것은 바다의 기세 같고 돌벽을 뚫어젖힌 것은 큰 바다로구나. 검은 안개가 하늘에 차오르니 온통 물기운이요, 푸른 물결이 해를 비추니 찬 기운이 어리는구나. 벼랑마다 옥빛 물결이 넘실거리고 바다 가득 금빛 연꽃이 피어나는구나. 보살이 요마의 법을 크게 펴시며, 소매 속에서 몸을 붙들어 매는 선정을 꺼내시네. 낙가의 신선 경계가 되어 버리니 참으로 남해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구나. 빼어난 부들이 돋아나고 우담화가 연하며, 향기로운 풀이 펼쳐지고 패엽이 싱그럽구나. 자줏빛 대나무 몇 대에는 앵무새가 깃들고, 푸른 소나무 몇 떨기에서는 자고새가 떠드는구나. 첩첩이 이는 파도가 사방 들판에 이어지고, 다만 바람 소리만 요란한데 물이 하늘에 닿았구나. 손대성이 그것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참으로 대자대비한 보살이로구나! 나에게 이런 법력이 있다면 병을 산에다 거꾸러뜨리고야 말 터인데, 무슨 짐승이며 벌레 따위를 아끼겠느냐!” 보살이 “오공아, 손을 내밀어라.”라고 불렀다. 행자가 황급히 소매를 걷고 왼손을 내밀었다. 보살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감로수에 적셔 그의 손바닥에 미혹할 글자 한 자를 써 주며 일렀다. “주먹을 꽉 쥐고 어서 가서 저 요괴에게 싸움을 걸어라. 지는 것은 허락하되 이기는 것은 허락하지 않노라. 네가 져서 내 앞으로 달아나 오거든 내게 그를 거둘 법력이 있느니라.” 행자가 분부를 받고 구름빛을 돌려 곧장 동굴 어귀에 이르러, 한 손은 주먹을 쥐고 한 손은 몽둥이를 들고 크게 외쳤다. “요괴야, 문을 열어라!” 그 작은 요괴들이 다시 들어가 “손행자가 또 왔소!”라고 아뢰었다. 요괴 왕이 “문을 단단히 닫아라! 상대하지 말라!”라고 분부했다. 행자가 소리쳤다. “착한 아들아! 네 애비를 문밖에 내몰고도 아직 문을 열지 않느냐!” 작은 요괴들이 또 들어가 “손행자가 그러한 말을 퍼부었소!”라고 아뢰었다. 요괴 왕은 다만 “상대하지 말라!”라고 명할 뿐이었다. 행자가 두 번이나 불렀으나 문을 열지 않자 크게 화가 나 쇠몽둥이를 들어 단번에 문에 구멍 하나를 뚫어 버렸다. 놀란 작은 요괴들이 넘어질 듯 달려 들어가며 “손행자가 문을 부수었소!”라고 아뢰었다. 요괴 왕이 여러 차례 보고를 받다가 앞문이 부서졌다는 말까지 듣고는 급히 몸을 날려 밖으로 뛰어나와 긴 창을 비껴 들고 행자를 욕하며 “이 원숭이 녀석, 사리를 아주 모르는구나! 내가 너에게 조금 이득을 보게 해 주었더니 아직 성이 차지 않아 도리어 나를 업신여기러 왔느냐! 내 문을 부수었으니 네 죄목이 무엇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 아들아, 네가 애비를 문밖으로 내쫓았으니 네 죄목은 무엇이냐?”라고 말했다. 그 요괴 왕이 부끄러움과 분노로 긴 창을 비껴 들어 가슴을 찔러 왔고, 이 행자는 쇠몽둥이를 들어 받아 막으며 되받았다. 한바탕 손이 얽혀 사오 합을 겨루더니 행자가 주먹을 움켜쥔 채 몽둥이를 끌고 져서 물러났다. 그 요괴 왕이 산 앞에 서서 “나는 당승을 씻어 쪄 먹으러 가련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착한 아들아, 하늘이 너를 굽어보고 계시느니라! 어서 오너라!”라고 말했다. 그 요괴는 이 말을 듣고 더욱 성이 나 괴성을 한 번 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어 창을 비껴 들고 또 찔러 왔다. 이 행자가 몽둥이를 휘둘러 몇 합을 더 겨루다가 또 패하여 달아났다. 그 요괴 왕이 욕하며 “원숭이야, 너는 전에는 이삼십 합을 겨룰 실력이었거늘, 어찌 이제 한창 싸우다가 곧장 달아나려 하느냐, 무슨 까닭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어진 사위야, 네 애비가 네가 불을 놓을까 두렵구나.”라고 말했다. 요괴가 “불을 놓지 않으리라, 네가 올라오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불을 놓지 않겠다면 좀 비켜라, 호협한 사내라면 남의 집 문 앞에서 사람을 때리지 않는 법이니라.”라고 말했다. 그 요괴는 속임수인 줄 모르고 참으로 창을 들어 또 쫓아왔다. 행자가 몽둥이를 끌고 주먹을 펴니 그 요괴 왕은 넋이 나가 그저 뒤쫓기만 하였다. 앞서 달리는 것은 별이 하늘을 건너가는 듯하고, 뒤를 쫓는 것은 쇠뇌에서 벗어난 화살 같았다. 오래지 않아 저 보살이 바라보였다. 행자가 “요괴야, 내가 너를 두려워하니 나를 살려 다오. 네가 이제 남해 관음보살이 계신 곳까지 쫓아왔으면서 어찌하여 돌아가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 요괴 왕은 믿지 않고 이를 악물고 그저 뒤를 쫓았다. 행자가 몸을 한 번 흔들어 그 보살의 신령한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렸다. 이 요괴는 행자가 사라진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눈을 부릅뜨고 보살에게 “네가 손행자가 청해 온 구원병이냐?”라고 말했다. 보살은 대답하지 않았다. 요괴 왕이 긴 창을 비틀어 쥐고 호통치며 “이놈! 네가 손행자가 청해 온 구원병이냐?”라고 소리쳤다. 보살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요괴가 보살의 가슴을 향해 창을 한 번 찌르자 그 보살이 금빛 광채로 변해 곧장 구소 높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행자가 따라붙으며 “보살님, 그대께서 나를 몹시 업신여기시나이다! 저 요괴가 거듭거듭 물었거늘 어찌하여 귀먹은 체 벙어리 체 하시고 감히 대답 한마디 않으시다가, 그놈의 창 한 번에 찔려 쫓기시고는 그 연화대마저 내버리셨나이까!”라고 말했다. 보살은 다만 “말을 삼가라, 그놈이 또 어찌하는지 보자.”라고 명하였다. 이때 행자와 목차는 함께 공중에 있어 나란히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요괴가 히히거리며 냉소하여 말했다. “이 망할 원숭이 녀석, 나를 잘못 알아보았구나! 그는 내 성영을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는구나. 몇 차례 나를 이기지 못하더니 이번에는 무슨 쓸모없는 보살을 청해 왔는데, 내 창 한 번에 찔려 형체도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보배 연화대마저 내버렸으니, 내가 올라가 한번 앉아 보련다.” 과연 훌륭한 요괴로다, 그는 보살을 흉내 내어 두 손과 두 발을 포개고 그 한가운데 앉았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좋다! 좋다! 좋다! 연화대를 남에게 주었구나!”라고 말했다. 보살이 “오공아, 네가 또 무슨 말을 하느냐?”라고 물었다. 행자가 “무슨 말이냐 하시옵니까? 무슨 말이냐 하시옵니까? 연화대를 남에게 주었노라! 그 요괴가 궁둥이 밑에 깔고 앉았으니 그대께서 다시 찾으시려 하시옵니까?”라고 말했다. 보살이 “바로 그가 앉기를 바라는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놈의 몸집이 작고 아담하여 그대보다도 더 안정되게 앉았구나.”라고 말했다. 보살이 “말을 삼가고 내 법력을 보아라.”라고 부르며 버드나무 가지를 아래로 겨누고 “물러가라!” 하고 한마디 외쳤다. 그러자 연화대의 꽃과 채색이 모두 사라지고 상서로운 빛이 온통 흩어지더니, 알고 보니 그 요괴 왕은 칼끝 위에 앉아 있었다. 보살이 곧 목차에게 “항요저를 들어 칼자루를 마구 내리쳐라.”라고 분부했다. 그 목차가 구름을 내려앉히고 항마저를 들어 담을 다지듯 천백여 차례나 내리쳤다. 그 요괴는 두 다리를 꿰뚫려 칼끝이 솟아 나오고 피가 내를 이루어 흐르며 살갗이 갈라졌다. 과연 훌륭한 괴물이로다, 보라, 그는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우선 긴 창을 내버리고 두 손으로 칼을 마구 뽑아 냈다. 행자가 “보살님, 저 괴물은 아픔도 두렵잖게 여기고 도리어 칼을 뽑고 있사옵니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그것을 보고 목차를 불러 올려 “우선 그의 목숨까지는 해치지 말라.”라고 이른 뒤, 다시 버드나무 가지를 드리우고 “옴” 자 주문을 한 번 외우니 그 천강도가 모두 거꾸로 난 갈고리로 변하여 이리의 이빨처럼 빠지지 않게 되었다. 그제야 그 요괴가 당황하여 칼끝을 붙잡고 고통스럽게 애원하며 “보살님, 제자에게 눈은 있으되 눈동자가 없어 그대의 광대하신 법력을 알아보지 못하였나이다. 천 번 비나이다, 자비를 내리시어 제 목숨만 살려 주시옵소서! 다시는 포악을 믿지 않고 기꺼이 법문에 들어 계행을 받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그 말을 듣고 두 행자와 흰 앵무새와 함께 금빛 광채를 낮추어 요괴 앞에 이르러 “네가 내 계행을 받겠느냐?”라고 물었다. 요괴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떨어뜨리고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계행을 받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내 문하에 들겠느냐?”라고 물으니 요괴 왕이 “참으로 목숨을 살려 주신다면 법문에 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그러하다면 내 너의 정수리를 어루만져 계를 내리겠노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매 속에서 금으로 만든 삭도 하나를 꺼내어 앞으로 다가가 그 괴물의 정수리를 가르며 몇 차례 깎아, 태산이 머리를 누르는 모양으로 깎고 정수리 세 군데에 머리채를 남겨 세 개의 땋은 상투를 틀어 올렸다. 행자가 곁에서 웃으며 “이 요괴는 재수가 참으로 없구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것이 무슨 물건을 닮았는지 모르겠도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네가 이제 내 계를 받았으니 나 또한 너를 박대하지 않으리니, 너를 선재동자라 부르는 것이 어떠하냐?”라고 말했다. 그 요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를 받들고는 오직 목숨을 살려 주시기만 바랐다. 보살이 손가락으로 한 번 가리키며 “물러가라!” 하고 외치니 쨍그랑 소리와 함께 천강도가 모두 티끌 속으로 떨어져 나갔으나 그 동자의 몸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보살이 “혜안아, 너는 그 칼을 천궁에 올려다 네 부왕께 돌려드리고 나를 마중 나오지 말라. 먼저 보타 바위로 가서 여러 제천과 함께 모여 기다리고 있어라.”라고 불렀다. 그 목차가 분부를 받들어 칼을 상계로 올려 보내고 바다로 돌아온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말하자면, 그 동자는 들성이 고정되지 않아 다리 아프던 곳이 아프지 않고 엉덩이 터졌던 곳도 터지지 않았으며 머리에는 세 개의 땋은 상투가 얹혀 있었다. 그는 걸어가 긴 창을 집어 들고 보살을 향해 “무슨 참된 법력이 있어 나를 항복받았단 말이냐! 알고 보니 남의 눈을 가리는 술법이었구나! 무슨 계를 받겠느냐, 창 받아라!”라고 외치며 보살의 얼굴을 향해 찔러 왔다. 분이 치민 행자가 쇠몽둥이를 휘둘러 때리려 하자 보살이 “때리지 말라, 내게 벌할 방도가 있느니라.”라고 말렸다. 그리고 다시 소매 속에서 금 고아 하나를 꺼내어 일렀다. “이 보물은 본래 우리 부처님이신 여래께서 동토로 경을 구하러 갈 사람을 찾으라 하시며 내게 주신 세 개의 고아이니라. 긴고아는 이미 네게 씌웠고, 금고아로는 산을 지키는 대신을 거두었으며, 이 금고아는 아직 차마 아무에게도 내주지 않았거늘, 이제 이 괴물이 무례한 것을 보니 그에게 주겠노라.” 과연 훌륭한 보살이로다, 그 고아를 바람에 한 번 흔들어 “변해라!” 하고 외우니 곧장 다섯 개의 고아로 변하였다. 그것을 동자의 몸을 향해 던지며 “붙어라!” 하고 호령하니, 하나는 그의 머리 위에 씌워지고 둘은 그의 왼손과 오른손에, 또 둘은 그의 왼발과 오른발에 씌워졌다. 보살이 “오공아, 좀 비켜 서 있거라, 내가 《금고아주》를 외우련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놀라며 “보살님, 뵙기를 청하여 요괴를 항복받으러 오셨거늘 어찌 도리어 저를 주문으로 옥죄시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보살이 “이 주문은 너를 옥죄는 《긴고아주》가 아니라 저 동자를 옥죄는 《금고아주》이니라.”라고 말했다. 그제야 행자가 마음을 놓고 곁에 바짝 붙어 그가 주문을 외우는 소리를 들었다. 보살이 손가락으로 결을 잡고 묵묵히 몇 차례 외우니 그 요괴가 귀를 비비고 뺨을 문지르며 네 발을 움츠리고 뒹굴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한마디 주문이 온 사계에 두루 통하니, 광대하고 그지없는 법력이 깊도다. 결국 그 동자가 어떻게 귀의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3회 흑하요얼금승거(黑河妖孽擒僧去) · 서양용자착타회(西洋龍子捉鼉回) 말하자면, 그 보살이 여러 차례 주문을 외우고서야 비로소 입을 다물었는데, 그 요정은 더는 아프지 않았다. 또 제정신이 들어 일어나 살펴보니 목덜미와 손발에 모두 금고가 씌워져 있어 조여드는 통증이 심하였다. 급히 그 고리를 벗겨 보려 하였으나 털끝만큼도 빠져나갈 기미가 없었으니, 이 보물은 이미 살에 닿는 대로 뿌리를 내려 문지를수록 더욱 아팠다. 행자가 웃으며 “내 사랑스러운 것아, 보살께서 네가 크지 못할까 염려하시어 목걸이와 팔찌를 씌워 주셨노라.”라고 말했다. 그 동자가 이 말을 듣고는 다시 번뇌가 일어 그 자리에서 창을 들어 올려 행자를 향해 마구 찔러 댔다. 행자가 급히 몸을 피해 보살 등 뒤에 서서는 “주문을 외우시오! 주문을 외우시오!”라고 외쳤다. 그 보살이 버드나무 가지에 감로를 한 점 찍어 뿌리며 “합하여라!” 하고 부르짖자, 보라, 그가 창을 내던지고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합장하고는 다시는 펼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관음비틀기라는 것이 남아 있으니 바로 이 뜻이니라. 그 동자는 손을 펼 수도 없고 창을 잡을 수도 없게 되자 비로소 법력이 깊고 미묘함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보살이 진언을 외우며 정병을 기울여 그 바닷물을 도로 거두어들이니 반 점도 남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행자에게 “오공아, 이 요정은 이미 항복받았노라. 다만 들뜬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내가 그에게 한 걸음마다 한 절씩 하도록 하여 낙가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법을 거두리라. 너는 어서 빨리 굴 속으로 가서 네 스승님을 구하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몸을 돌려 머리를 조아리며 “보살께서 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로우셨나이다. 제자가 한 길쯤 배웅하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보살이 “배웅은 필요 없노라. 도리어 네 스승님의 목숨을 그르칠까 염려되느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절을 올리고 하직하였다. 그 요정은 일찍이 바른 과보로 돌아가 쉰세 번 절을 올리며 관음에게 참배하였으니, 선보살이 동자를 거두어들인 일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사승은 숲 속에 오래 앉아 행자가 오기만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행리를 말 등에 얹고 한 손으로 요괴를 항복받는 보장을 쥐고 또 한 손으로 고삐를 잡은 채 솔숲을 나와 남쪽을 바라보았다. 보라, 행자가 기뻐하는 얼굴로 오고 있었다. 사승이 마주 나가며 “형님, 보살을 모셔 오신다면서 어찌 이제야 오시옵니까! 저는 속이 타 죽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너는 아직도 꿈을 꾸는구나. 내가 이미 보살을 모셔 와 요괴를 항복받았노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보살의 법력을 낱낱이 한 번 이야기하니 사승이 몹시 기뻐하며 “스승님을 구하러 갑시다!”라고 말했다. 그 두 사람이 비로소 시내를 뛰어넘어 문 앞에 이르러 말을 매어 두고 병기를 들어 일제히 굴 속으로 쳐들어가 요괴 무리를 모조리 쓸어 버리고 가죽 자루를 풀어 저팔계를 꺼내 주었다. 그 멍청이가 행자에게 고마워하며 “형님, 그 요정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가서 갈퀴로 몇 번 찍어 성을 풀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우선 스승님부터 찾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세 사람이 곧장 뒤편으로 가니, 보라, 스승이 벌거벗은 채 뜰 가운데 묶여 울고 있었다. 사승이 황급히 밧줄을 풀고 행자가 곧 옷을 가져다 입히니, 세 사람이 그 앞에 꿇어앉아 “스승님, 고생이 많으셨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삼장이 고마워하며 “어진 제자들아, 너희를 많이 수고롭게 하였구나. 어찌하여 요마를 항복받았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또 보살을 청하고 동자를 거둔 말을 낱낱이 한 번 이야기하였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는 급히 꿇어앉아 남쪽을 향해 절을 올렸다. 행자가 “그에게 감사하실 것 없나이다. 도리어 우리가 그와 복을 지어 동자 하나를 거둔 셈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지금 동자가 관음에게 절하여 쉰세 번 참배하고 참배마다 부처를 뵙는다 하는 것이 곧 이것이니라. 행자가 사승에게 굴 안의 보물을 거두고 또 곡식을 찾아 공양을 마련하여 스승님을 대접하라 하였다. 그 장로가 목숨을 건진 것은 온전히 손대성의 덕이요, 참된 경을 얻는 것 또한 오직 미후정에 달려 있었다. 스승과 제자들이 굴에서 나와 안장을 붙잡고 말에 올라 큰길을 찾아, 한결같은 뜻으로 서쪽을 향해 갔다. 한 달 남짓을 가다가 홀연 물소리가 귀를 울리는 것이 들리니 삼장이 크게 놀라며 “제자들아, 또 어디에서 나는 물소리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이 늙은 스승님은 너무도 의심이 많아 승려 노릇을 못하시겠구려. 우리 네 사람이 함께 가는데 그대만 무슨 물소리를 들으셨단 말이오? 그 《다심경》을 또 잊으셨소?”라고 말했다. 당승이 “다심경은 부도산 오소선사가 입으로 전해 준 것으로 모두 쉰네 구절에 이백일흔 자니라. 내 그때 귀로 전해 받아 지금까지 늘 외우고 있는데, 네가 내가 어느 구절을 잊었다는 말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늙은 스승님, 그대는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 없나니’ 하는 구절을 잊으셨소. 우리 출가인은 눈으로 색을 보지 않고 귀로 소리를 듣지 않으며 코로 향기를 맡지 않고 혀로 맛을 보지 않으며 몸으로 추위와 더위를 알지 못하고 뜻으로 망상을 품지 않나니, 이렇게 하는 것을 여섯 도둑을 물리친다 하오. 그런데 그대는 지금 경을 구하려 하면서 생각마다 마음을 두어, 요마를 두려워하여 몸을 버리려 하지 않고 공양을 먹으려 혀를 움직이며 향기롭고 단 것을 좋아하여 코를 씰룩거리고 소리를 들으면 귀가 놀라며 사물을 보면 눈이 그곳에 얽매여, 이 여섯 도둑이 어지러이 몰려들게 하니 어찌 서천에 가 부처님을 뵐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말없이 깊이 생각에 잠겨 “제자야, 내 한번 옛적에 성군과 이별한 이래 밤낮으로 분주히 힘썼노라. 짚신은 산마루의 안개를 밟아 해졌고, 대나무 삿갓은 고개 위의 구름을 헤치었노라. 밤이 고요한데 원숭이 우는 소리 참으로 탄식할 만하고, 달이 밝은데 새 우는 소리는 차마 들을 수 없구나. 어느 때에 삼삼행이 채워져 여래의 묘한 법문을 얻으랴?”라고 말했다. 행자가 다 듣고 나서 참지 못하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어 “이 스승님은 원래 고향 생각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는구려! 그 삼삼행을 채우려는 것이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단 말이오! 흔히 이르기를, 공이 이르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법이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고개를 돌리며 “형님, 이처럼 마장이 사납게 높다면 천 년을 걸어간다 한들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사승이 “둘째 형님, 그대는 나와 마찬가지로 입이 둔하고 말솜씨가 없으니 형님의 성미를 건드리지 마시오. 다만 어깨를 맞대고 짐을 메고 갈 뿐이니, 마침내 성공하는 날이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스승과 제자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말발굽은 바삐 움직였는데, 앞에 검은 물이 하늘을 덮은 듯한 강 하나가 나타나 말이 나아갈 수 없었다. 네 사람이 물가에 멈춰 서서 자세히 바라보니, 실로 이러하였다. 겹겹의 짙은 물결이요, 켜켜의 흐린 파도로다. 겹겹의 짙은 물결은 검은 장마를 뒤집고, 켜켜의 흐린 파도는 흑기름을 말아 올리는구나. 가까이 보아도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고, 멀리 바라보아도 나무의 형체를 찾기 어렵도다. 굴러 흐르는 것은 온 땅의 먹이요, 넘실대는 것은 천 리의 재로다. 물거품 떠오르는 모습은 쌓인 숯 같고, 물꽃 날리는 모습은 뒤집힌 석탄 같구나. 소와 양은 마시지 않고 까마귀와 까치는 날지 못하네. 소와 양이 마시지 않는 것은 깊고 검음이 싫어서요, 까마귀와 까치가 날지 못하는 것은 아득하고 넓음이 두려워서니라. 다만 언덕 위의 갈대와 마름만이 절기를 알고, 물가의 꽃과 풀만이 푸름을 다투는구나. 호수와 강은 천하에 있고, 시내와 못과 굴 또한 세상에 많거늘, 사람이 살면 누구나 서로 만날 곳이 있으련만, 누가 서쪽의 흑수하를 보았으랴! 당승이 말에서 내리며 “제자들아, 이 물이 어찌 이토록 흐리고 검으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말했다. “어느 집에서 쪽물 독을 쏟았나 보오.” 사승이 “아니오, 어느 집에서 벼루를 씻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너희는 어서 함부로 짐작하여 떠들지 말고 스승님을 건너시게 할 방도를 마련하라.”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이 강을 이 늙은 돼지가 건너가는 것은 어렵지 않소. 구름을 타거나 물을 짊어지고 가거나, 밥 한 그릇 먹을 사이도 안 되어 건너갈 것이오.”라고 말했다. 사승이 “이 늙은 사승에게 맡기셔도 구름을 타고 물을 밟아 잠깐이면 건너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우리는 쉽지만 스승님이 어려우시니라.”라고 말했다. 삼장이 “제자들아, 이 강이 얼마나 넓으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대략 십 리쯤은 넓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삼장이 말했다. “너희 세 사람이 의논하여 누가 나를 업고 건너가게 하여라.” 행자가 “저팔계가 업겠소.”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업는 것은 좋지 않소. 업고 구름을 탄다면 석 자도 땅에서 떨어지지 못할 것이니, 흔히 이르기를 범인을 등에 지면 무게가 언덕과 산 같다 하였소. 업고 물을 짊어진다면 도리어 나까지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오.”라고 말했다. 스승과 제자들이 강가에서 의논하고 있는데, 보라, 상류 쪽에서 어떤 사람이 작은 배 한 척을 저어 내려오고 있었다. 당승이 기뻐하며 “제자들아, 배가 왔구나. 불러 우리를 건네 달라 하자.”라고 말했다. 사승이 소리를 높여 크게 “배 젓는 이여, 사람을 건네 주시오! 사람을 건네 주시오!”라고 외쳤다. 배 위의 사람이 “나는 나룻배가 아니오, 어찌 사람을 건네 주겠소?”라고 말했다. 사승이 “하늘 아래와 인간 세상에서 남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으뜸이오. 그대가 비록 나룻배가 아니라 해도 우리는 늘 와서 폐를 끼치는 이들이 아니오. 우리는 동토에서 황제의 명을 받들어 경을 구하러 가는 불제자이니, 부디 편의를 봐 주어 우리를 건네 주면 고맙게 여기겠소.”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그 말을 듣고는 배를 언덕 가까이 저어 와 노를 붙잡은 채 “스승님, 제 배는 작고 그대들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모두 건네 드리겠나이까?”라고 말했다. 삼장이 가까이 가서 보니 그 배는 본래 나무 한 토막을 파서 만든 것으로 가운데 칸이 하나뿐이어서 겨우 두 사람이 앉을 만하였다. 삼장이 “어찌하면 좋겠느냐?”라고 말했다. 사승이 “그렇다면 두 번에 나누어 건너시지요.”라고 아뢰었다. 저팔계가 꾀를 부려 게으름을 피우며 요행을 챙기려 하고는 “오정, 그대와 큰형님은 이쪽에서 행리와 말을 지켜 주시오. 내가 스승님을 모시고 먼저 건너간 뒤에 다시 와서 말을 건네겠소. 큰형님은 뛰어서 건너가시라 하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말이 옳구나.”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가 당승을 부축하고 사공이 배를 떠밀어 노를 들어 물살을 가르니 곧장 나아갔다. 막 강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홀연 요란한 소리 한바탕이 들리며 물결이 휘감기고 파도가 뒤집혀 하늘을 가리고 눈을 어지럽혔다. 그 광풍이 몹시 사나왔으니, 실로 좋은 바람이로다. 허공에 한 조각 포연이 일어나고, 강 한가운데 천 겹의 검은 물결이 높구나. 양쪽 언덕의 모래가 날려 햇빛을 가리고, 사방의 나무가 쓰러져 하늘이 진동하며 울부짖는다.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저어 용신도 두려워하고, 흙을 날리고 먼지를 일으켜 화목이 시드네. 휘익 휘익 소리는 봄 우레의 포효 같고, 사납게 몰아치는 기세는 굶주린 호랑이의 울부짖음 같구나. 게와 자라와 물고기와 새우가 위를 향해 절하고, 나는 짐승과 달리는 짐승은 보금자리를 잃는다. 오호의 뱃사공은 모두 재앙을 만나고, 사해 사람들의 목숨도 온전치 못하네. 시냇가의 늙은 어부는 낚시를 잡기 어렵고, 강물의 사공은 어찌 삿대를 저으랴. 기와가 벗겨지고 벽돌이 뒤집혀 집이 무너지며,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려 태산이 흔들리는구나. 이 광풍은 본래 그 배 젓던 자가 일으킨 것이니, 그는 본디 흑수하에 사는 괴물이었다. 보라, 그 당승과 저팔계가 배째로 물속에 잠겨 그림자도 형체도 없어졌으니, 어느 곳으로 끌려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언덕 위에서 사승과 행자가 마음이 다급해졌다. 행자가 “어찌하면 좋으냐? 늙은 스승님은 걸음마다 재앙을 만나 겨우 마장에서 벗어나 이만큼 평안하더니, 또 흑수하의 액운을 만났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배가 뒤집힌 게 아닌지 우리가 아래쪽으로 내려가 찾아보십시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배가 뒤집힌 게 아니오. 배가 뒤집혔다면 팔계는 물을 아니 반드시 스승님을 모시고 물을 짊어진 채 나왔을 것이오. 내가 보니 아까 그 배 젓던 자가 어딘가 수상쩍었는데, 틀림없이 그놈이 바람을 일으켜 스승님을 물속으로 끌어 내려간 것이오.”라고 말했다. 사승이 그 말을 듣고 “형님은 어찌 일찍 말씀하지 않으셨나이까. 형님은 말과 행리를 지켜 주시옵소서. 제가 물속으로 내려가 찾아보고 오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이 물빛이 정상이 아니니 네가 갈 수 없을까 염려되는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이 물이 제가 살던 유사하와 어떠하옵니까? 갈 수 있나이다! 갈 수 있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과연 훌륭한 중이로다. 편삼을 벗고 손발을 단단히 동여맨 뒤 요괴를 항복받는 보장을 휘두르며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물길을 가르고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참 가는데 홀연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승이 옆으로 몸을 숨겨 몰래 눈을 돌려 바라보니 저쪽에 정자와 누대가 하나 있었는데, 누대 문 위에 가로로 여덟 큰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바로 ‘형양곡 흑수하신부’였다. 또 그 괴물이 위에 앉아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간 수고가 많았노라. 오늘에야 비로소 물건을 얻었구나. 이 중은 열 세상 동안 수행한 좋은 사람이니, 그의 살 한 점만 먹어도 장생불로하는 사람이 되느니라. 나는 그를 기다린 지도 오래되었거늘, 오늘 아침에야 내 뜻을 저버리지 않게 되었도다.” 그리고는 “작은 놈들아! 어서 쇠우리를 꺼내어 이 중 둘을 통째로 찌고, 내 글을 갖추어 둘째 외숙부님을 모셔 오너라. 그분의 생신을 미리 축하하리라.”라고 일렀다. 사승이 그 말을 듣고 가슴에서 치솟는 불을 참지 못하여 보장을 뽑아 문을 마구 두드리며 입으로 욕했다. “이 더러운 괴물아, 어서 내 당승 스승님과 팔계 형님을 내보내라!” 문 안의 요사한 무리들이 놀라 급히 달려가 “큰일 났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늙은 괴물이 “무슨 큰일이냐?”라고 물었다. 작은 요괴가 “밖에 죽은 기색의 얼굴을 한 중이 하나 있어 앞문을 두드리며 욕을 하고 사람을 내놓으라 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괴물이 그 말을 듣고는 곧 갑옷을 가져오라 하였다. 작은 요괴들이 갑옷을 메고 나오니 늙은 요괴가 단단히 갖추어 입고 손에 대나무 마디 같은 강철 편을 들고 문 밖으로 걸어 나왔는데, 참으로 사납고 포악한 모습이었다. 보라,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네모진 얼굴에 둥근 눈은 노을빛처럼 밝고, 말린 입술의 큰 입은 피를 담은 동이처럼 붉구나. 몇 가닥 철사 같은 드문 수염이 흔들리고, 두 귀밑머리는 붉은 주사빛으로 헝클어졌네. 형상은 영험을 드러낸 참된 태세 같고, 모습은 성을 낸 사나운 뇌공 같구나. 몸에 걸친 무쇠 갑옷은 꽃무늬가 찬란하고, 머리에 쓴 금 투구는 박아 넣은 보석이 짙구나. 대나무 마디 강철 편을 손에 쥐고, 걸을 때면 굴러가듯 광풍을 끄느니라. 태어나 본래 물속의 것이었거늘, 본류를 벗어나 변화하여 사나워졌구나. 요사의 참된 성명을 묻거든, 전생에는 소타룡이라 불렀느니라. 그 괴물이 “어느 놈이 여기서 내 문을 두드리느냐!”라고 호통쳤다. 사승이 말했다. “이 무지한 더러운 괴물 같으니! 네가 어찌 요술을 부려 사공으로 변하여 배를 몰아 내 스승님을 낚아챘느냐? 어서 일찍 돌려보내면 네 목숨을 살려 주마!” 그 괴물이 껄껄 웃으며 “이 중은 죽고 사는 것도 모르는구나! 네 스승은 내가 잡았노라. 이제 찌어서 사람을 청할 참이니라! 네가 올라와 나와 승부를 겨루어 보자! 세 합에 나를 당해 낸다면 네 스승을 돌려주마. 세 합에 당해 내지 못한다면 너까지 한꺼번에 쪄 먹고 서천으로 갈 생각도 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사승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보장을 휘둘러 머리를 향해 곧 내리쳤다. 그 괴물이 강철 편을 들어 급히 막아 맞섰다. 두 사람이 물 밑에서 벌인 이 한바탕의 좋은 싸움은 이러하였다. 요괴를 항복받는 보장과 대나무 마디 편, 두 사람이 성을 내며 앞을 다투누나. 하나는 흑수하의 천 년 묵은 괴물이요, 하나는 영소전 밖의 옛 신선이로다. 저놈은 삼장의 살을 탐내어 먹으려 하고, 이놈은 당승의 목숨을 가련히 여겨 지키려 하네. 모두 물 밑으로 내려와 서로 다투니 저마다 공을 이루려 하여 양쪽 다 물러서지 않는구나. 싸우는 통에 새우와 물고기들은 짝지어 머리를 흔들며 피하고, 게와 자라는 쌍으로 머리를 움츠려 숨는다. 수부의 요괴 무리가 일제히 북을 두드리고 문 앞의 무리들이 어지러이 떠드는 소리만 들리네. 과연 훌륭한 사문의 참된 오정이로다, 홀로 몸으로 힘을 떨치며 위세를 펴는구나! 물결을 넘고 파도를 뒤집어도 승부가 없고, 편이 막고 장이 받치는 두 손이 서로 얽혀 있구나. 따져 보면 오직 당승 한 분을 위함이니, 참된 경을 얻어 부처님께 절하려 함이로다. 그 두 사람이 서른 합을 싸웠으나 높고 낮음이 드러나지 않았다. 사승이 속으로 “이 괴물은 내 상대이니 헛되이 이기지 못하겠구나. 그를 밖으로 끌어내어 형님이 치게 하리라.”라고 생각했다. 이 사승이 거짓으로 자세 하나를 던져 보이고는 보장을 끌며 달아났다. 그 요정은 더는 쫓아오지 않으며 “가거라, 나는 너와 싸우지 않으리라. 나는 글을 갖추어 손님을 청하러 가리라.”라고 말했다. 사승이 성이 나서 헐떡이며 물 밖으로 뛰어나와 행자를 보고 “형님, 이 괴물이 무례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네가 물속에 들어간 지 한참이 되어서야 나왔구나. 정녕 무슨 요사한 놈이냐? 스승님을 찾아뵈었느냐?”라고 물었다. 사승이 “이 안에 정자와 누대가 하나 있는데 누대 문 위에 가로로 여덟 큰 글자가 쓰여 있사옵니다. ‘형양곡 흑수하신부’라 하옵니다. 제가 옆에 숨어 그가 안에서 말하는 것을 들으니, 작은 놈들에게 쇠우리를 씻으라 하고는 스승님과 팔계를 찐 뒤에 그의 외숙부님을 모셔 와 생신을 미리 축하하려 하였사옵니다. 제가 화가 치밀어 문을 두드렸더니 그 괴물이 대나무 마디 강철 편 하나를 들고 나와 이 반나절을 저와 싸웠사옵니다. 서른 합쯤 되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사옵니다. 제가 거짓으로 지는 체하며 그를 끌어내어 형님이 거들게 하려 하였사온데, 그 괴물이 몹시 약아 쫓아오지 않고 도로 글을 갖추어 손님을 청하려 하였사옵니다. 그리하여 제가 올라왔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무슨 요사한 놈인지 모르겠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그 생김새가 큰 자라 같사옵니다. 아니라면 타룡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말했다. “그의 외숙부님이 누구인지 모르겠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라, 아래쪽 물굽이에서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와 멀리서 꿇어앉으며 “대성이시여, 흑수하의 하신이 머리를 조아리나이다.”라고 불렀다. 행자가 “너는 그 배 젓던 요괴가 아니냐? 또 나를 속이려 하느냐?”라고 말했다. 그 노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떨구어 “대성이시여, 저는 요사한 놈이 아니옵니다. 저는 이 강 안의 참된 신이옵니다. 그 요정이 지난해 오월에 서양 바다에서 큰 조류를 타고 이곳으로 와 저와 싸웠사옵니다. 제가 나이 들고 몸이 쇠하여 그를 당해 낼 수 없었는데, 제가 앉아 있던 그 형양곡 흑수하신부를 빼앗아 차지하고 살며 또 제 수족을 많이 해쳤사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바다로 가 그를 고발하였사옵니다. 알고 보니 서해용왕이 그의 외숙부이옵니다. 그는 제 소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가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살라 하였사옵니다. 제가 상천에 아뢰고자 하나 신령이 미미하고 직첩이 낮아 옥황상제를 뵐 수가 없사옵니다. 이제 대성께서 오셨다 하여 특별히 참배하러 와 목숨을 맡기오니, 부디 대성께서 저를 위하여 힘을 쓰시어 원한을 갚아 주시옵소서!”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면 사해용왕이 모두 죄가 있어야 하겠구나. 그가 지금 내 스승님과 사제를 낚아챈 뒤 찌어서 그의 외숙부님을 청해 생신을 미리 축하하겠다 하였으니, 나도 막 그를 잡으려 하던 참인데 네가 소식을 전해 주어 다행이로다. 그렇다면 너는 이곳에서 사승과 함께 지키고 있거라. 내가 바다로 가 먼저 그 용왕을 잡아다 이 괴물을 잡게 하리라.”라고 말했다. 하신이 “대성의 크신 은혜를 깊이 감사하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곧 구름을 타고 서양 대해로 곧장 가서 근두운을 내리고 물을 피하는 주술을 외워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 한참 가는데 검은 물고기 정 하나가 온통 금으로 된 청첩함을 받쳐 들고 아래쪽에서 화살처럼 북처럼 솟아 올라오다가 행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행자가 철봉을 뽑아 정수리를 내리치니, 가련하게도 곧 뇌수가 터져 나오고 뺨뼈가 벌어지며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물 위로 떠올랐다. 그가 함을 열어 보니 안에 간찰 한 장이 들어 있었는데 그 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리석은 조카 타결이 머리를 조아려 백 번 절하고 둘째 외숙부님 어른의 받드신 자리에 올리나이다. 그간 은혜를 입어 감사하고 또 감사하옵니다. 이제 두 가지 물건을 얻었사온데 동토의 승려로서 실로 세상에 드문 물건이옵니다. 조카는 감히 스스로 쓰지 못하고, 외숙부님의 성탄이 가까우심을 생각하여 변변치 못한 잔치를 베풀어 천수를 미리 축하하옵니다. 부디 어서 빨리 행차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이 자백서를 먼저 내게 바치는구나!” 행자가 간찰을 소매에 넣고 앞으로 다시 나아갔다. 오래지 않아 바다를 살피던 야차 하나가 행자를 보고 급히 몸을 돌려 수정궁으로 달려 올라가 “대왕이시여, 제천대성 손할아버지께서 오셨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용왕 오순이 곧 여러 수족을 거느리고 궁을 나와 마중하며 “대성이시여, 작은 궁에 들어가 잠깐 앉으시어 차를 드시옵소서.”라고 말했다. 행자가 “나는 아직 그대의 차도 마시지 않았는데 그대가 도리어 먼저 내 술을 마셨구나!”라고 말했다. 용왕이 웃으며 “대성께서 줄곧 불문에 귀의하시어 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으시는데, 어느 때에 저를 청해 술을 마시셨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대가 술을 마시러 가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술을 마신 죄명 하나를 저질렀소.”라고 말했다. 오순이 크게 놀라며 “소룡에게 무슨 죄가 있나이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소매 속에서 간찰을 꺼내 용왕에게 건네주었다. 용왕이 그것을 보고는 넋이 날아가 흩어지는 듯하여 황급히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용서하시옵소서! 그놈은 제 누이의 아홉째 아들이옵니다. 매부가 비와 바람을 그르쳐 비의 양을 줄인 탓에 천조에서 칙지를 내려 인조관 위징 승상이 꿈속에서 그를 베었사옵니다. 누이가 몸을 둘 곳이 없어 소룡이 그를 데려다 이곳에서 은혜로 길러 어른이 되게 하였사옵니다. 재작년에 불행히 누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놈만은 거처할 곳이 없어 제가 흑수하에서 성품을 기르고 참됨을 닦으라 하였사옵니다. 뜻밖에 그놈이 이런 악업을 지었으니, 소룡이 곧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아 오게 하겠나이다.” 행자가 “그대의 누이에게 모두 몇 명의 어진 아들이 있소?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소?”라고 말했다. 용왕이 “누이에게 아홉 아들이 있사옵니다. 그 여덟은 모두 착하옵니다. 첫째 소황룡은 지금 회독에 살고, 둘째 소려룡은 제독에 있으며, 셋째 청배룡은 강독을 차지하였고, 넷째 적염룡은 하독을 지키며, 다섯째 도로룡은 부처님을 위하여 종을 치고, 여섯째 온수룡은 신관과 함께 마루를 지키며, 일곱째 경중룡은 옥황상제를 위하여 하늘을 떠받치는 화표를 지키고, 여덟째 신룡은 큰 형님 댁에서 태악을 받치고 있사옵니다. 이 아홉째 타룡은 나이가 어려 맡은 일이 없어 지난해에야 흑수하에 살며 성품을 기르게 하였사옵니다. 이름이 알려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 부르려 하였는데, 뜻밖에 그놈이 제 명을 어기고 대성을 거슬렀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그대 누이의 남편은 몇 명이오?”라고 말했다. 오순이 “남편은 하나뿐이옵니다. 바로 경하용왕이옵니다. 지난해 이미 참수를 당하였고 누이는 이곳에서 홀로 지내다가 재작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한 남편 한 아내가 어찌 이런 잡종 여럿을 낳았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오순이 “이것이 바로 이른바 용이 아홉 종류를 낳으니 아홉 종류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나는 방금 마음이 번민하여 간찰을 증거로 삼아 천정에 올려 아뢰어, 그대와 한통속이 되어 요술을 부리고 사람을 약탈한 죄를 묻으려 하였소. 그대의 말에 따르면 그놈이 가르침을 어긴 것이니 이번만은 그대를 용서하리다. 하나는 그대 형제의 체면을 보아서요, 둘은 그놈이 어리고 무지한 탓이라 그대도 자세히 알지 못한 것이오. 그대는 어서 사람을 보내어 잡아 오게 하여 내 스승님을 구하시오! 그 뒤에 다시 처리하리다.”라고 말했다. 오순이 곧 태자 마앙을 불러 “어서 새우와 물고기 장정 오백을 점검하여 작은 타룡을 잡아 와 죄를 묻게 하라!”라고 명하고, 한편으로는 주석을 마련하여 대성에게 사례하려 하였다. 행자가 “용왕은 다시 마음을 쓰지 마시오. 이미 용서하기로 말이 났으면 그만이지 어찌 또 술자리를 차린단 말이오? 나는 이제 그대의 아드님과 함께 돌아가야 하겠소. 하나는 늙은 스승님께서 재앙을 만나신 때문이요, 둘은 내 사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오.”라고 말했다. 그 늙은 용왕이 간곡히 만류하였으나 붙잡아 둘 수 없었고, 또 용녀가 차를 받쳐 올리는지라 행자가 서서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마시고 늙은 용왕에게 하직한 뒤 마앙과 함께 병사를 거느리고 서해를 떠났다. 어느새 흑수하에 이르자 행자가 “어진 태자여, 잘 잡아 두시오. 나는 언덕으로 올라가겠소.”라고 말했다. 마앙이 “대성이시여, 마음을 놓으시옵소서. 소룡자가 그를 잡아 올려 먼저 대성을 뵙고 그의 죄명을 다스린 뒤에 스승님을 모셔 올리고 나서야 감히 바다로 데리고 돌아가 저의 부친을 뵙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기꺼이 하직하고 물을 피하는 주술을 외워 물결을 박차고 나와 동쪽 언덕에 이르렀다. 사승과 그 하신이 마주 나와 “형님, 가실 때는 허공으로 가시더니 어찌 돌아오실 때는 강 안에서 나오시나이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물고기 정을 때려 죽이고 간찰을 얻고 용왕을 만나 태자와 함께 병사를 거느리고 온 일을 낱낱이 한 번 이야기하였다. 사승이 몹시 기뻐하였다. 모두 물가에 서서 스승님을 맞이할 때를 기다렸으니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마앙태자가 병사 하나를 먼저 그의 수부 문 앞으로 보내어 요괴에게 알리며 말했다. “서해 늙은 용왕의 태자 마앙이 오셨느니라.” 그 괴물이 앉아 있다가 홀연 마앙이 온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의심하며 “내가 검은 물고기 정을 보내어 간찰을 올려 둘째 외숙부님을 청하였는데 이토록 오래도록 회답이 없거늘, 어찌 외숙부님은 오시지 않고 사촌 형님이 오신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라, 강을 순시하던 작은 요괴가 또 와서 “대왕이시여, 강 안에 병사 한 무리가 수부 서쪽에 진을 쳤는데 기치에 ‘서해 저군 마앙소수’라 쓰여 있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요괴가 “이 사촌 형도 참으로 건방지구나. 아마도 외숙부님이 오시지 못하니 그를 잔치에 대신 오라 하였겠지. 잔치에 온다면서 어찌 또 병사를 거느리고 군사를 수고롭게 한단 말이냐? 아! 그 사이에 무슨 연고가 있을까 두렵도다.”라고 말했다. “작은 놈들아, 내 갑옷과 강철 편을 준비하여라. 자칫 변고가 생길까 두렵으니 내가 잠깐 나가 그를 맞아 무슨 일인지 보리라.”라고 일렀다. 여러 요괴가 명을 받고 하나하나 손바닥을 비비고 주먹을 갈며 준비하였다. 이 타룡이 문을 나서니, 참으로 해병 한 무리가 오른쪽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원정의 깃발은 수놓은 띠를 날리고, 채색 그린 창은 밝은 노을처럼 늘어섰구나. 보검은 빛을 엉기고, 긴 창에는 꽃술이 꽃처럼 감겼네. 활은 굽어 달처럼 작고, 화살은 꽂혀 승냥이의 이빨 같구나. 큰 칼은 번쩍번쩍 빛나고, 짧은 몽둥이는 모질게 억세구나. 고래와 자라에 가리비와 조개요, 게와 자라에 물고기와 새우로다. 크고 작은 것이 가지런히 늘어서니 창과 방패가 삼처럼 빽빽하구나. 원수의 명령이 아니거늘 누가 감히 어지러이 떠들어 대랴! 타룡 괴물이 그것을 보고는 그 진문 앞으로 곧장 가서 소리를 높여 크게 “큰 사촌 형님, 아우가 여기서 두 손 모아 기다리며 청하나이다.”라고 외쳤다. 진영을 순시하던 소라 하나가 급히 중군의 장막으로 가 “천세 전하께 아뢰옵니다. 밖에 타룡이 청한다 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태자가 머리 위의 금 투구를 한번 눌러 쓰고 허리의 보대를 한번 조여 매고 손에 세모난 철간 하나를 들고 발을 떼어 진 밖으로 달려 나가며 “네가 나를 청하여서 어찌하겠느냐?”라고 말했다. 타룡이 예를 갖추어 “아우가 오늘 아침 간찰을 올려 외숙부님을 청하였사옵니다. 아마도 외숙부님께서 물리치시고 사촌 형님을 보내신 듯하옵니다. 형님께서 잔치에 오셨거늘 어찌 또 군사를 수고롭게 하시며 수부로 들어오지 않고 여기 진을 치시고 갑옷을 입고 병사를 거느리셨나이까?”라고 아뢰었다. 태자가 “네가 외숙부님을 청하여 무엇을 하려느냐?”라고 말했다. 요괴가 “아우가 줄곧 은혜를 입어 이곳에 살면서 오래도록 존안을 뵙지 못해 효도를 다하지 못하였나이다. 어제 동토의 승려 하나를 잡았사온데 그가 열 세상 동안 수행한 본체라 사람이 먹으면 수명을 늘릴 수 있다 하옵니다. 외숙부님께서 보신 뒤에 쇠우리에 올려 찌어 외숙부님의 생신을 미리 축하하려 하였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태자가 꾸짖으며 “이놈이 몹시 어리석구나! 그대는 그 승려가 누구인 줄이나 아느냐?”라고 말했다. 요괴가 “그는 당나라에서 온 승려로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태자가 “너는 그가 당승인 줄만 알고 그의 수하 제자가 사나운 줄은 모르는구나.”라고 말했다. 요괴가 말했다. “그에게는 입이 긴 중이 하나 있어 저팔계라 하옵니다. 나도 그를 잡아 두었사온데 당승과 함께 쪄 먹으려 하였나이다. 또 제자 하나가 있어 사승이라 하옵니다. 그는 검은 사나이로 죽은 기색의 얼굴에 보장 하나를 쓰는데, 어제 이 문 밖에서 나에게 스승님을 내놓으라 하였사옵니다. 내가 하병을 거느리고 나가 강철 편으로 한바탕 쳐서 그가 진을 버리고 달아나게 하였사온데, 그리 사나운 줄은 모르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태자가 “네가 알지 못하는구나! 그에게는 큰 제자가 또 하나 있느니라.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상방 태을금선 제천대성이니라. 지금 당승을 보호하여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을 구하게 되었고, 보타암의 대자대비 관음보살이 권선하여 그 이름을 고쳐 손오공 행자라 부르게 하였느니라. 네가 어찌 할 일 없이 이런 화를 불러들였느냐? 그가 또 내 바다에서 네가 보낸 사람을 만나 청첩을 빼앗고는 곧장 수정궁으로 들어와 내 부자를 쥐어짜며 요사한 무리와 결탁하여 사람을 약탈한 죄를 씌우고 있느니라. 네가 어서 당승과 팔계를 강변으로 모셔 올려 손대성께 돌려보내거라. 내가 그에게 사례를 하여 너의 목숨을 온전히 건지도록 하리라. 반 마디라도 어긴다면 온전히 살아 이곳에 머물 생각을 하지 말라!” 그 타룡 괴물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크게 노하여 “나는 너와 친고종 사촌이거늘 네가 도리어 남을 두둔하느냐? 네 말대로 한다면 당승을 내보내라 하겠거늘, 천지간에 어찌 그런 쉬운 일이 있단 말이냐! 그대는 그를 두려워하거니와 나라고 어찌 그를 두려워하겠느냐? 그에게 재주가 있어 감히 내 수부 문 앞으로 와 나와 세 합을 겨룬다면 내가 그의 스승을 돌려주리라. 만일 나를 당해 내지 못한다면 그까지 잡아다 한꺼번에 쪄 먹고, 무슨 친척도 없이 손님도 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는 작은 놈들에게 노래하고 춤추게 하며, 내가 위에 앉아 편안히 그놈을 먹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태자가 그 말을 듣고 입을 열어 꾸짖었다. “이 사악한 놈이 참으로 버릇이 없구나! 손대성과 너를 맞붙게 할 것도 없거니와, 너는 감히 나와 겨룰 테냐?” 그 괴물이 “호걸 노릇을 하려는데 겨루기가 무에 두렵느냐!” 하고는 “갑옷을 가져오라!”라고 일렀다. 소리 한 번 지르자 작은 요괴들이 좌우로 따르며 갑옷을 올리고 강철 편을 받쳐 들었다. 그 두 사람이 얼굴을 바꾸고 저마다 영웅을 뽐내며 호령을 전하니 일제히 북을 두드렸다. 이 한바탕은 사승과 다투던 것과는 매우 달랐으니, 보라,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정기와 기치가 찬란히 빛나고 창과 극이 빛을 흔드누나. 이쪽에서는 진영이 흩어지고 저쪽에서는 문이 활짝 열렸구나. 마앙태자는 금간을 들고 타룡 괴물은 편을 휘둘러 급히 막아 받네. 포성 한 번에 하병이 사나워지고, 징소리 세 번에 해병이 미쳐 날뛰는구나. 새우는 새우와 다투고 게는 게와 싸운다. 고래와 자라는 붉은 잉어를 삼키고, 붕어와 농어는 누런 메기를 일으키네. 상어와 숭어는 전어와 고등어를 잡아먹어 달아나게 하고, 굴은 맛조개를 붙잡아 가리비와 조개를 당황게 하며, 가시고기의 가시는 쇠몽둥이처럼 단단하고, 침치의 바늘은 칼날처럼 날카롭구나. 광어는 흰 뱀장어를 쫓고 농어는 검은 병어를 잡는구나. 한 강의 물 괴물이 높고 낮음을 다투고, 두 곳의 용병이 강하고 약함을 정하는구나. 오래도록 섞여 싸우니 파도가 구르고, 마앙태자는 금강을 능가하는구나. 고함 소리와 함께 금간이 정수리 위로 무겁게 내려오니, 요사한 타룡을 사로잡아 괴물의 왕으로 삼는구나. 이 태자가 세모난 철간으로 허점 하나를 내보이니 그 요정은 거짓인 줄 모르고 파고들었다. 태자가 재주 하나를 쓰며 그 요정의 오른팔을 간으로 한 번 쳐 비틀거리게 하고는 앞으로 달려들어 발로 한 번 차니 땅에 넘어졌다. 여러 해병이 일제히 달려들어 넘어뜨려 붙잡고 밧줄로 두 손을 뒤로 묶고 쇠사슬로 비파골을 꿰어 언덕 위로 끌고 올라와 손행자 앞에 압송하며 “대성이시여, 소룡자가 요타를 잡았사옵니다. 대성께서 처결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사승과 함께 그것을 보고 “이놈아, 네가 명령을 어겼구나. 네 외숙부님은 본래 너에게 이곳에 살며 성품을 기르고 몸을 보존하라 하였고, 네 이름이 이루어지는 날에 다른 곳으로 옮겨 쓰리라 하였느니라. 네가 어찌 수신의 집을 강제로 차지하고 세력을 믿고 행패를 부리며 마음을 속이고 윗사람을 속여 요술을 부려 내 스승님과 사제를 속였느냐? 내 너를 이 몽둥이로 한 번 치고 싶으나, 내 이 몽둥이가 몹시 무거워 조금만 쳐도 목숨을 끊고 말리라. 내 스승님을 어디에 두었느냐?”라고 말했다. 그 괴물이 머리를 조아리기를 그치지 않으며 “대성이시여, 소타는 대성의 크신 이름을 알지 못하고 방금 사촌 형님을 거슬러 힘을 믿고 이치를 어겼다가 사촌 형님에게 잡혔나이다. 이제 대성을 뵈옵고 대성의 죽이지 않으시는 은혜를 입었사오니 감사가 끝이 없나이다. 대성의 스승님은 아직 그 수부 안에 묶여 있사옵니다. 부디 대성께서 제 쇠사슬을 풀어 주시고 제 손을 놓아 주시옵소서. 제가 강으로 가 그를 모셔 오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마앙이 곁에서 “대성이시여, 이놈은 거역하는 괴물이옵니다. 몹시 간사하온데 놓아 주면 악한 마음을 품을까 두렵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사승이 “제가 그곳을 아옵니다. 제가 스승님을 찾으러 가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그 두 사람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수부 문 앞에 이르니 그곳의 문짝이 활짝 열려 있었고 작은 병졸 하나도 없었다. 정자 누대 안으로 곧장 들어가니 당승과 팔계가 벌거벗은 채 그곳에 묶여 있었다. 사승이 급히 스승님의 결박을 풀고 하신도 따라 팔계의 결박을 풀어, 저마다 하나씩 업고 물 위로 나와 언덕으로 갔다. 저팔계가 그 요정이 곁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갈퀴를 뽑아 달려들어 찍으며 입으로 욕했다. “이 사악한 짐승아! 이제는 나를 먹지 않겠느냐?” 행자가 붙잡으며 “아우야, 우선 죽을 죄만은 용서해 두자꾸나. 오순 어른 부자의 정을 보아서라.”라고 말했다. 마앙이 예를 갖추어 “대성이시여, 소룡자는 오래 머물 수 없사옵니다. 이미 대성의 스승님을 구하였사오니 제가 이놈을 데리고 저의 부친을 뵙겠나이다. 대성께서 그의 죽을 죄를 용서하신다 한들 저의 부친은 결코 산 채로 두는 벌은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반드시 처분이 있은 뒤에 다시 대성께 회답하고 사죄하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그러하오거든 그를 데리고 가시오. 부친께 잘 전해 주시오. 훗날 직접 찾아뵙고 사례하겠소.”라고 말했다. 그 태자가 요타를 압송하며 물속으로 들어가 해병을 거느리고 서양 대해로 곧장 돌아갔으니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흑수하신이 행자에게 고마워하며 “대성께서 수부를 도로 찾아 주신 은혜를 크게 입었나이다!”라고 아뢰었다. 당승이 “제자들아, 지금도 여전히 동쪽 언덕이니 이 강을 어찌 건너겠느냐?”라고 말했다. 하신이 “어르신, 염려 마시옵소서. 우선 말에 오르시옵소서. 소신이 길을 열어 어르신을 모시고 강을 건너게 하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그 스승이 비로소 흰 말에 오르고 저팔계가 고삐를 잡고 사승이 행리를 메며 손행자가 좌우에서 부축하는데, 보라, 하신이 물을 막는 법술을 일으켜 상류를 가로막았다. 잠깐 사이에 하류가 말라붙으며 큰길 하나가 열렸다. 스승과 제자들이 서쪽으로 건너가 하신에게 고마워하며 언덕에 올라 길을 떠났다. 이는 실로 이러하였다. 선승이 구원을 받아 서역으로 오고, 땅을 말려 파도 없이 흑하를 건너는구나. 결국 어찌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4회 법신원운봉차력(法身元運逢車力) · 심정요사도척관(心正妖邪度脊關) 시에 이르기를, 경을 구하러 장애를 벗어나 서쪽으로 가노니, 헤아릴 수 없는 명산이 끝없이 이어지는구나. 토끼는 달아나고 까마귀는 날아 밤낮을 재촉하는데, 새는 울고 꽃은 져서 절로 봄가을이 흐르는구나. 눈앞의 미진 속에 삼천 세계가 있고, 석장 머리끝에 사백 주가 매달려 있구나. 물에서 자고 바람을 먹으며 붉은 길을 오르니, 어느 날이 고개를 돌릴 날일지 기약이 없구나. 말하자면, 삼장법사는 다행히 용왕의 아들이 요괴를 항복시키고 흑수하의 하신이 길을 열어 준 덕에 사부와 제자들이 흑수하를 건너 큰길을 찾아 줄곧 서쪽으로 왔다. 참으로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바람을 안고 눈을 무릅쓰며, 달을 이고 별을 두르고 한참을 행해 가니, 어느덧 다시 이른 봄 날씨를 만나 삼양이 운을 돌리고 만물이 빛을 내는 것이 보였다. 삼양이 운을 돌리니 하늘 가득 화창한 빛이 그림을 펼치고, 만물이 빛을 내니 온 땅에 꽃다운 풀이 수놓은 자리를 펼쳐 놓았구나. 매화는 시들어 눈 몇 점 남았는데, 보리는 한 벌판의 구름처럼 불어났구나. 얼음이 차츰 풀리니 산샘물이 흐르고, 싹은 모조리 터져서 불에 탄 자국을 덮었구나. 바로 저 태호가 봄의 기운을 타고 구망이 시령을 다스리니, 꽃향기 머금은 바람은 기운이 따뜻하고 구름은 옅어 햇빛이 새롭구나. 길가의 버드나무는 푸른 눈을 펴고, 기름진 비가 만물을 자라게 하여 온 세상이 봄이로다. 사부와 제자들이 길에서 경치를 구경하며 말을 느긋하게 몰고 가는데, 홀연히 꾸짖듯 외치는 소리 하나가 들려왔으니, 꼭 천만 명이 한꺼번에 함성을 지르는 소리 같았다. 삼장법사는 마음이 두려워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급히 뒤를 돌아보며 “오공, 어디서 저러한 소리가 진동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꼭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지는 듯하옵니다”라고 말했다. 사승이 “천둥이 벼락 치듯 하는 것 같사옵니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도리어 사람들이 외치고 말이 우는 소리로구나”라고 말했다. 손행자가 웃으며 “너희는 모두 알아맞히지 못하는구나. 잠시 멈추어라. 이 늙은 손이 가서 어떠한가 알아보고 오마”라고 말했다.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몸을 한 번 솟구쳐 구름 빛을 밟고 공중으로 치솟아 눈을 부릅뜨고 둘러보니, 멀리 한 성곽이 보였다. 다시 가까이 다가가 굽어보니 도리어 상서로운 빛이 은은할 뿐, 어지러이 이는 흉한 기운은 보이지 않았다. 행자가 속으로 깊이 생각하며 “좋은 곳이로구나! 그런데 어찌하여 소리가 귀를 찢느냐? 저 성 안에는 깃발이 번쩍이는 것도 없고 창과 극이 번득이는 것도 없거니와, 포성이 울리는 것도 아닌데, 어찌 사람과 말이 떠들어 대는 것처럼 소란스러우냐?”라고 말했다. 한창 의아하게 여기는 동안에, 문득 저 성문 밖 모래벌판의 공터에 많은 승려가 빽빽이 모여 그곳에서 수레를 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알고 보니 그들이 모두 힘을 모아 구령을 붙이며 떼를 지어 “대력왕보살”을 외치고 있었으므로, 그 소리가 당승을 놀라게 한 것이었다. 행자가 구름머리를 점점 내려 그곳을 살펴보니 아! 수레에 실린 것은 모두 벽돌과 기와와 목재와 흙벽돌 따위였다. 모래톱에서 위로 오르는 비탈이 몹시 높고, 또 척추를 끼운 듯한 좁은 길과 큰 관문 두 개가 있었으며, 관문 아래의 길은 모두 벼랑처럼 곧추선 절벽이니 저 수레를 어찌 끌어 올릴 수 있으랴. 날씨는 화창하고 따뜻하건만 저 사람들은 옷이 남루하였으니, 그 꼴을 보니 몹시 궁핍해 보였다. 행자가 마음속으로 의심하며 “아마 사찰을 짓고 수리하는 모양이로구나. 이곳이 오곡이 풍년이라 품팔이꾼을 구하지 못하였으니, 저 승려들이 몸소 힘을 쓰는 것이로다”라고 말했다. 미처 짐작을 굳히지 못하고 있는데, 저 성문 안에서 몸을 흐느적거리며 두 젊은 도사가 걸어 나왔다. 그대는 그들의 차림새가 어떠한지 보라, 과연 이러하였다. 머리에는 별관을 쓰고 몸에는 비단을 걸쳤다. 머리에 쓴 별관은 광채가 휘황하고, 몸에 걸친 비단은 채색 노을이 날리는 듯하구나. 발은 구름무늬 신을 신고 허리에는 익은 명주 띠를 둘렀구나. 얼굴은 보름달처럼 총명하고 준수하며, 모습은 옥천의 신선 손님처럼 고와라. 저 승려들은 도사가 오는 것을 보자 하나하나 간담이 서늘해져서 갑절의 힘을 내어 애끓듯 저 수레를 끌었다. 행자가 곧 깨닫고 “이! 필시 저 승려들이 저 도사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로구나. 그렇지 않다면야 어찌 저토록 힘을 다해 끌어당기겠느냐? 내 일찍이 사람의 입에서 서쪽 길 위에 도를 받들고 승려를 멸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틀림없이 이곳이 바로 그곳이로다. 내가 스승께 돌아가 아뢰려 하나 일이 분명치 않아 도리어 그이의 꾸중만 살 터이니, 어찌 이처럼 영리한 자가 참된 소식을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잠시 내려가 분명히 캐물어 본 뒤에라야 스승께 돌아가 여쭐 터이로다”라고 말했다. 그대는 그가 누구에게 가서 묻는다고 여기는가? 훌륭한 대성이 구름머리를 누르고 내려와 군성 아래에 이르더니,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떠돌아다니는 운수전진이 되었다. 왼팔에는 수화 광주리를 걸고 손으로는 어고를 두드리며 입으로는 도정가를 흥얼거렸다. 성문 가까이 다가가 두 도사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몸을 굽히며 예를 갖추어 말했다. “도장이시여, 소도가 인사를 올리나이다.” 그 도사가 답례하며 “선생은 어디서 오셨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제자는 바다 끝을 떠돌고 하늘가에서 방랑하다가, 오늘 아침 이곳에 와서 인심 좋은 집을 찾고자 하옵니다. 두 분 도장께 감히 여쭙나이다. 이 성중에 어느 거리가 도를 숭상하고, 어느 골목이 어진 이를 아낍니까? 소도가 가서 공양이나 빌어먹고자 하옵니다.” 그 도사가 웃으며 “이 선생은 어찌하여 그리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하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무엇이 속을 뒤집는 말이오?”라고 말했다. 도사가 “그대가 공양을 빌어먹겠다니, 그것이 어찌 속을 뒤집는 말이 아니겠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출가인은 빌어먹는 것을 본분으로 삼거늘, 공양을 빌지 않으면 어찌 돈이 있어 사 먹겠소?”라고 말했다. 도사가 웃으며 “그대는 먼 곳에서 온 터라 이 성 안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구려. 이 성에서는 문무 관원들이 도를 좋아하고 부유한 장자들이 어진 이를 아끼며, 대소 남녀가 우리를 보면 절하고 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일 따위는 입에 올릴 것도 아니오. 그보다 으뜸가는 첫째는 만세군왕께서 도를 좋아하고 어진 이를 아끼신다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소도는 한갓 나이 어리고, 또 먼 곳에서 막 온 터라 진실로 알지 못하옵니다. 번거로우시겠으나 두 분 도장께서 이곳의 지명과 군왕께서 도를 좋아하고 어진 이를 아끼시는 내력을 자세히 한 번 말씀해 주시면, 같은 도의 정이 두터우심을 넉넉히 알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도사가 “이 성은 이름을 차지국이라 하는데, 보전 위의 군왕께서 우리와 친척의 인연이 있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아마 도사가 황제가 되었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그가 “아니오. 이는 이십 년 전에 백성이 가뭄을 만나 하늘에는 비 한 점 없고 땅에는 곡식 싹이 끊어졌기 때문이오. 임금과 신하, 백성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집안이 집집마다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호호마다 하늘에 빌어 비를 청하였소. 모두가 거꾸로 매달린 채 목숨을 겨우 버티고 있을 즈음에, 홀연히 하늘에서 세 선장이 내려와 중생을 구원하였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세 선장이 누구시오?”라고 물었다. 도사가 “바로 우리 사부님들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존사의 높은 호는 무엇이오?”라고 물었다. 도사가 말했다. “우리 큰사부님은 호를 호력대선이라 하시고, 둘째 사부님은 록력대선, 셋째 사부님은 양력대선이오.” 행자가 물었다. “세 분 존사께서는 법력이 얼마나 되시오?” 도사가 “우리 사부님들께서는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는 것이 손바닥을 뒤집는 사이요, 물을 가리켜 기름이 되게 하고 돌을 점쳐 금이 되게 하는 것이 몸을 돌리는 것처럼 쉬우시오. 그러기에 이러하신 법력으로 천지의 조화를 빼앗고 별자리의 오묘함을 바꾸실 수 있으니, 임금과 신하가 서로 공경하여 우리와 친족의 인연을 맺으신 것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황제는 참으로 큰 복을 지녔구려. 속담에 재주가 높으면 공경을 움직인다 하였소. 노사부께서 이러한 수단이 있으시니 친족의 인연을 맺으신 것이 실로 그에게 손해가 아니오. 그런데 소도에게 조그마한 인연이나 있어서 저 노사부님을 한 번 뵐 수가 있을런지요”라고 말했다. 도사가 웃으며 “우리 사부님을 뵙고자 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우리 둘은 그분의 가장 가까운 제자요, 사부님께서는 또한 도를 좋아하시고 어진 이를 아끼시어 도라는 말 한 마디만 들으셔도 대문 밖까지 나와 맞이하시오. 우리 둘이 그대를 인도하는 것은 티끌이나 불어내듯 쉬운 일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몸을 깊이 굽혀 큰절을 올리며 “거듭 천거해 주시니 황공하옵니다. 그럼 곧 들어갑시다”라고 말했다. 도사가 “조금만 기다리시오. 그대는 여기 앉아 있고 우리 둘이 공무를 마치고 와서 함께 들어갑시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출가인은 아무런 구속도 없이 자유로운 몸이온데, 무슨 공무가 있소?”라고 말했다. 도사가 손가락으로 저 모래톱 위의 승려들을 가리키며 “저들이 우리 집 일을 하는 자들이오. 혹 게으름이나 피울까 염려되어 우리가 가서 인원이나 점검하고 오겠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도장이시여, 잘못 아셨소!”라고 말했다. “승려와 도사가 모두 같은 출가인이온데, 어찌하여 저들이 우리를 위하여 일을 하고 또한 우리에게 점호를 받는단 말이오?” 도사가 “그대는 모르시오. 지난날 비를 빌 때 승려들은 한쪽에서 불공을 드리고 도사들은 한쪽에서 북두성께 고하였으며, 모두 조정에서 양식을 받아 먹었소. 그런데 저 승려들이란 자들이 쓸모가 없어 헛되이 빈 경만 읽어 대어 아무 일도 이루어 내지 못하였소. 뒤에 우리 사부님께서 오셔서 비와 바람을 불러 내려 도탄에 빠진 만민을 건져 내셨소. 그제야 조정이 노하여 저 승려들이 쓸모없다 하여 그들의 산문을 헐고 불상을 부수고 도첩을 거두며 고향으로 돌려보내지도 않은 채 우리 집에 내려 주어 일이나 하게 하였으니, 마음대로 부리는 종놈과 다름이 없소. 우리 집에서 불을 때는 이도 저들이요, 마당을 쓸고 문을 지키는 이도 저들이오. 뒤편에 살림집이 아직 완비되지 않아서 이 승려들을 시켜 벽돌과 기와를 끌어당기고 목재를 옮겨 집과 처마를 일으키는 중이오. 다만 저들이 장난에 빠져 게으름을 피우며 수레 끌기를 즐겨 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우리 두 사람을 시켜 가서 조사나 하고 오라 한 것이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도사의 소매를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일찍이 인연이 없다고 하였더니, 참으로 인연이 없어 노사부님의 존면을 뵙지 못하게 되었구려!”라고 말했다. 도사가 “어찌하여 뵙지 못한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소도가 방외를 떠도는 것이 하나는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요, 또 하나는 친척을 찾기 위한 것이오”라고 말했다. 도사가 “무슨 친척이 있소?”라고 물었다. 행자가 “나에게 숙부가 하나 있는데 어려서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소. 지난 흉년에 밥을 빌러 바깥으로 나왔는데, 이 몇 해가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소. 내 조상의 은덕을 생각하여 길 가는 김에 일부러 찾아온 것이오. 아마 이런 곳에 붙들려 몸을 빼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소. 내 어찌 그를 찾아 한 번 얼굴을 보아야만 그대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겠소?”라고 말했다. 도사가 “그야 쉬운 일이오. 우리 둘은 여기 앉아 있을 터이니 번거롭더라도 그대가 모래톱으로 가서 대신 한 번 조사해 주시오. 두목들을 세어 오백 명의 수효만 맞으면 그만이니, 그 가운데 누가 그대의 숙부인지 살펴보시오. 과연 있다면 우리가 같은 도의 정분을 보아 그를 놓아 보내고 나서, 그대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면 어떠하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머리를 조아려 거듭 사례하고 긴 읍을 한 번 올리고는 도사와 작별한 뒤 어고를 두드리며 곧장 모래톱 위로 갔다. 쌍관을 지나 척추를 끼운 듯한 좁은 길을 굽어 내려가니, 그 승려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영감님, 저희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나이다. 오백 명에 반 명도 모자라지 않고 모두 여기서 수레를 끌고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속으로 웃으며 “이 승려들은 도사들에게 얻어맞아 겁이 질려서 이런 가짜 도사를 보고도 저토록 벌벌 떠는구나. 진짜 도사라면 이래서는 살아남지도 못하겠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또 손을 저으며 “무릎 꿇지 말고 두려워하지들 마오. 나는 감독하러 온 이가 아니라 친척을 찾으러 왔소”라고 말했다. 승려들은 친척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그를 둥글게 에워싸고 달려들어, 하나하나 얼굴을 내밀고 기침을 하며 소리를 내어 어서 끌려 나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들이 “누가 저 영감님의 친척일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한참 동안 훑어보고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승려들이 “영감님께서는 친척을 알아보지도 못하시면서 어찌 웃으시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가 무엇을 웃는지 아느냐? 너희 승려들이 하나같이 쓸모라곤 없는 것을 웃느니라! 부모가 너를 낳아 놓고서 팔자가 화개성을 범하여 아비를 방해하고 어미를 극하거나, 혹은 자매를 두지 못하는 탓에 너를 내다 버리듯 출가시킨 것인데, 너희는 어찌하여 삼보를 받들지 않고 불법을 공경하지 않으며 경을 보고 참회하러 가지도 않고, 도리어 도사의 품팔이꾼이 되어 종과 계집종처럼 부림을 받느냐?”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영감님, 저희를 부끄럽게 하시는구려! 영감님께서는 바깥에서 오신 분이라 이곳의 형편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시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과연 외방에서 온 터라 진실로 그대들의 이곳에 무슨 무서운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소”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눈물을 흘리며 “이 나라 군왕은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쳐 도가 없으시어, 영감님네 같은 무리를 기뻐하시고 우리 불자들을 미워하시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어찌하여 그러하오?”라고 물었다. 승려들이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는 세 선장이 이곳에 와서 우리를 멸하려고 군왕을 속여 믿게 하여 우리 절을 헐고 도첩을 거두며 고향으로 돌려보내지도 않고 군역에 보태지도 못하게 한 채 저 선장들의 집에 붙여 종으로 부리게 하였으니, 그 고통이 견디기 어렵나이다! 또한 떠돌이 도사가 이곳에 이르면 곧 청하여 임금을 뵙고 상을 받게 하나, 승려가 오면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곧 잡아다가 선장의 집에서 품팔이를 시키나이다.” 행자가 “필시 저 도사들에게 무슨 교묘한 법술이 있어 군왕을 꾀었겠지. 다만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는 것뿐이라면 모두 방문의 작은 법술일 따름이니, 어찌 임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저들은 모래를 뭉치고 수은을 단련하며 좌선을 하고 정신을 갈무리하고 물을 점쳐 기름이 되게 하고 돌을 점쳐 금이 되게 하옵니다. 요즘은 삼청관의 전각을 새로 일으켜 세우고 하늘과 땅을 대하여 밤낮으로 경을 읽고 참회하며 임금께서 만년을 늙지 않으시기를 빌고 있으니, 그 때문에 임금의 마음을 현혹시켰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러하였다면 너희는 모두 달아나 버리면 그만이지”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영감님, 벗어날 수가 없나이다! 저 선장이 임금께 아뢰어 윤허를 받고 우리의 초상화를 그려 사방에 길이 붙여 두었나이다. 이 차지국의 땅이 또한 넓어서 각 부와 주와 현의 시골과 저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승려 그림이 한 장씩 붙어 있고, 그 위에는 임금께서 친히 글을 써 놓으셨나이다. 벼슬이 있는 자가 승려 하나를 잡으면 벼슬이 세 급 뛰어오르고, 벼슬이 없는 자가 승려 하나를 잡으면 곧 은자 오십 냥을 상으로 내리니, 그러므로 벗어날 수가 없나이다. 또한 승려뿐 아니라 상투를 깎은 자나 대머리나 털이 성긴 자도 어려우나이다. 사방에 관원이 많고 일을 캐는 이들이 널려 있어서 어떻게 하여도 빠져나갈 길이 없나이다. 우리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오직 이곳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렇다면 너희는 죽어 버리면 그만이지”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영감님, 죽은 이들도 있나이다. 이곳저곳에서 잡아 온 이와 본래 이곳 승려를 합쳐 모두 이천여 명이 되는데, 이곳까지 와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끓는 솥 같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추위를 참지 못하고 물과 풍토가 맞지 않아 죽은 이가 육칠백이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칠팔백이며, 우리 오백 명만이 죽지 못하고 있나이다.” 행자가 “어찌하여 죽지 못한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승려들이 “목을 매면 줄이 끊어지고, 칼로 목을 그으면 아프지도 않고, 물에 뛰어들면 떠올라 가라앉지 않으며, 약을 먹어도 몸이 편안하여 상하지 않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도리어 복이로구나, 하늘이 너희에게 장수를 내렸구나!” 승려들이 “영감님, 한 글자를 빠뜨리셨나이다. 오래도록 죄를 받는 것이지요! 저희는 하루에 세 끼를 먹는데 현미로 쑨 묽은 죽이옵고, 저녁이면 모래톱 위에서 이슬을 맞으며 누워 자는데, 눈을 감기만 하면 신인이 나타나 옹위해 주나이다.” 행자가 “피로에 지쳐 헛것을 보는 게 아니오?”라고 물었다. 승려들이 “귀신이 아니라 육정육갑과 호교가람이신데, 밤이 되면 곧 와서 지켜 주나이다. 죽으려는 자가 있으면 그를 붙들어 죽지 못하게 하시나이다.” 행자가 “이 신들이야말로 이치에 맞지 않는구먼. 마땅히 너희가 일찍 죽어 일찍 승천하게나 할 것이지, 와서 지키기만 하니 어찌한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그분들이 꿈속에서 우리를 타이르시며 죽음을 찾지 말고 우선 고통을 견디며 동토 대당의 성스러운 승려가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오는 나한을 기다리라 하시나이다. 그분의 수하에 제자가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제천대성이옵니다. 신통이 광대하여 오직 충량한 마음을 품고 인간의 불평한 일을 갚아 주며, 곤궁한 이를 구하고 위태로운 이를 도우며, 외로운 이를 불쌍히 여기고 홀어미를 돌보나이다. 다만 그분이 오셔서 신통을 나타내어 도사들을 멸하면 너희 사문선교를 도로 받들게 되리라 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웃으며 “이 늙은 손에게 수단이 없다고들 하지 마라, 신령한 이들이 미리 벌써 내 이름을 전하고 있구나”라고 말했다. 그는 급히 몸을 빼내어 어고를 두드리고 승려들에게 작별을 고한 뒤 곧장 성문 어귀로 나아가 도사들을 만났다. 그 도사들이 마주 나오며 “선생, 어느 분이 영감님의 친척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오백 명이 모두 나와 친척이오”라고 말했다. 두 도사가 웃으며 “어찌하여 그리 많은 친척이 있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백 명은 내 왼쪽 이웃이요, 백 명은 내 오른쪽 이웃이요, 백 명은 내 아버지 쪽 일가요, 백 명은 내 어머니 쪽 일가요, 백 명은 내 벗들이오. 그대들이 기꺼이 이 오백 명을 모두 놓아 준다면 내 그대들과 함께 들어가려니와, 놓아 주지 않는다면 나는 가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도사가 “그대는 필시 미친 병이 있는 게로구려. 갑자기 헛된 소리를 하는구려. 저 승려들은 임금께서 하사하신 이들이라 한두 명을 놓아 주려 해도 먼저 사부님께 병상을 올리고 난 뒤에 죽상을 보태어 올려야 일이 끝나는 법이오. 어찌 모두 놓아 준단 말이오? 그런 이치는 통하지 않소! 통하지 않소! 또한 우리 집에 부릴 사람이 없어진다는 말은 접어 둔다 해도, 조정에서도 괴이하게 여길 것이오. 그쪽에서는 늘 관리를 보내어 와서 조사하고 혹 임금의 수레가 친히 내려와 점검하기도 하는데, 어찌 감히 놓아 주겠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놓아 주지 않는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도사가 “놓아 주지 않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거푸 세 번이나 물었으나 대답이 같자 성이 치밀어 올라 귓속에서 쇠몽둥이를 꺼내어 바람에 비비니 곧 사발만 한 굵기가 되었고, 한 번 휘두르더니 그 도사의 낯을 향해 후려쳤다. 가련하게도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며 몸이 땅에 넘어지고, 살이 터지고 목이 꺾여 골수가 쏟아졌다! 모래톱 위에 있던 승려들이 멀리서 그가 두 도사를 때려 죽이는 것을 보고 수레를 내팽개치고 달려 올라와 “큰일 났소이다! 큰일 났소이다! 임금의 친척을 때려 죽였소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누가 임금의 친척이오?”라고 물었다. 승려들이 그를 키질하듯 둘러싸고 “그들의 사부님께서는 전각에 오르실 때에도 임금께 절하지 않고 전각에서 내려오실 때에도 주인께 여쭙지 않으며, 조정에서는 늘 국사 형님 선생이라 불리시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 와서 화를 지었소? 그 제자가 나와 일을 감독한 것이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를 때려 죽였단 말이오? 저 선장께서는 그대가 와서 죽였다 하지 않고 다만 이곳에 감독하러 왔다가 우리가 그의 목숨을 해쳤다 하실 터이니, 우리가 어찌 되겠소? 그대와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 사람의 목숨 값을 치르고 나오겠소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여러분 떠들지 마시오. 나는 운수전진이 아니라 그대들을 구하러 온 이오”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그대는 도리어 사람을 때려 죽여 우리를 해치고 짐만 보태었거늘, 어찌 우리를 구하러 온 이란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나는 대당의 성스러운 승려이신 스승님의 제자 손오공 행자이니, 특별히 이곳에 와서 그대들의 목숨을 구하려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아니오! 아니오! 그 영감님은 우리가 알아보고 있소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일찍이 만난 적도 없거늘 어찌 알아본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우리는 꿈속에서 늘 한 노인을 뵈었는데, 스스로 태백금성이라 하시며 늘 우리를 가르쳐 주시되 저 손행자의 모습을 잘못 알아보지 말라 하셨소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가 그대들에게 어떻게 말하던가?”라고 물었다. 승려들이 “그 대성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이마는 튀어나오고 금빛 눈이 번쩍이며, 둥근 머리는 털투성이에 뺨이 없고, 드러난 이와 뾰족한 입은 성깔이 괴팍하며, 모습은 벼락 신보다 기괴하니라. 늘 금테 두른 쇠몽둥이를 써서 일찍이 하늘 궁궐을 쳐부수었으나, 이제는 바르게 귀의하여 승려를 보호하러 와서 오직 인간의 재앙을 구하느니라 하였소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성을 내면서도 기뻤으니, 기쁜 것은 이 늙은 손의 이름을 전해 준 까닭이요, 성난 것은 저 늙은 도둑놈이 천치스럽게도 내 본래 모습까지 이 무리 범인들에게 일러 주었다는 까닭이었다. 그가 갑자기 소리를 내어 “여러분이 나를 손행자로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손행자의 문하생으로 이곳에 와서 사고 치는 재주를 배우러 온 자요. 저기 손행자가 오지 않소?”라고 말했다. 손을 들어 동쪽을 가리키니 승려들이 속아 고개를 돌렸고, 그 틈에 그가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승려들이 그제야 알아보고는 하나하나 엎드려 절하며 “영감님! 저희는 어리석은 범인의 눈이라 영감님께서 몸을 나타내신 줄 몰랐나이다. 바라건대 영감님께서 저희의 원한을 갚아 주시고 재앙을 없애 주시며, 속히 성안으로 들어가 사악한 무리를 항복받고 바른길로 돌리소서!”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대들은 잠시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좌우에서 바짝 따랐다. 그 대성이 곧장 모래톱 위로 가서 신통을 부려 수레를 두 관문 너머로 끌어당기고 척추를 끼운 듯한 좁은 길을 지나게 한 뒤 들어 번쩍 들어올려 산산이 부수어 버리고, 그 벽돌과 기와와 목재들을 모두 비탈 아래로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승려들을 향해 호령하여 “흩어져라! 내 발밑에 붙어 있지 말고 내일 임금을 만나 저 도사들을 멸할 때를 기다려라!”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영감님, 저희는 감히 멀리 가지 못하겠나이다. 관원에게 잡혀 압송되면 도로 매를 맞고 몸값을 물어야 하니, 도리어 재앙이 새로 생기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러하다면 내 그대들에게 호신법을 주겠노라”라고 말했다. 훌륭한 대성이 털 한 웅큼을 뽑아 입에 넣고 잘게 씹더니, 승려 하나하나에게 한 올씩 나누어 주며 모두에게 “이것을 넷째 손가락의 손톱 속에 넣고 주먹을 쥔 채로 길이나 걷거라. 아무도 그대들을 잡지 못하면 그만이려니와, 만약 누군가 그대들을 잡으려 하거든 주먹을 움켜쥐고 제천대성을 한 번 불러라. 내 곧 와서 지켜 주리라.” 승려들이 “영감님, 혹시 너무 멀리 가서 영감님이 보이지 않고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어찌하면 좋사옵니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마음 놓거라. 만 리 밖이라도 무사하도록 보장하리라.” 승려들 가운데 담력이 큰 자가 주먹을 쥐고 살짝 “제천대성!” 하고 불렀다. 그랬더니 눈앞에 번개 다스리는 신 같은 사내 하나가 서서 쇠몽둥이를 들고 있었으니, 천군만마라도 그 곁에 다가설 수 없을 듯하였다. 이때 백여 명이 함께 부르자 족히 백여 명의 대성이 지켜 주었으므로, 승려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영감님! 과연 영험하시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다시 분부하였다. “‘적’ 자를 소리 내어 부르면 도로 거두어 주리라.” 과연 “적!” 하고 부르자 도로 털이 손톱 틈에 들어 있었다. 승려들이 그제야 기뻐하며 살 길을 얻어 일제히 흩어졌다. 행자가 “너무 멀리 달아나지는 말고 성안의 소식을 들으라. 승려를 다시 뽑는 방이 나붙거든 곧 성안으로 들어와 내 털을 돌려주어라.” 오백 명의 승려가 동쪽으로 가는 이, 서쪽으로 가는 이, 걷는 이, 서 있는 이로 사방으로 흩어졌으니, 이만 각설한다. 말하자면, 삼장법사가 길가에서 행자의 회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저팔계에게 말을 이끌어 서쪽으로 가라 하였는데, 길에서 달려가는 승려들을 만났고 성 가까이 이르러서는 행자가 아직 흩어지지 않은 승려 열몇 명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삼장법사가 고삐를 당기며 “오공, 너는 소리 하나 알아보러 간다더니 어찌 그리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승려 열몇 명을 이끌고 삼장법사의 말 앞에서 절을 올리고 지난일을 낱낱이 아뢰었다. 삼장법사가 크게 놀라며 “그러하다면 우리는 어찌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그 승려 열몇 명이 “영감님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손대성 영감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신이니 신통이 광대하시어 반드시 영감님을 무사히 지켜 주시나이다. 저희는 이 성 안에 있는 칙건 지연사의 승려들이옵니다. 이 절은 선왕이신 태조께서 친히 지으신 것이라 그분의 신상이 절 안에 모셔져 있어 헐지 못하였고, 성 안의 절은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헐렸나이다. 저희가 청하오니 빨리 성안으로 들어가 저의 누추한 산사에 머무소서. 내일 아침 조회가 되면 손대성께서 반드시 조처하실 것이니이다.” 행자가 “그대들의 말이 옳소이다. 좋소, 서둘러 성안으로 들어갑시다.” 그 장로가 그제야 말에서 내려 성문 아래에 이르렀는데, 이때는 이미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도개교를 건너 삼층 문 안으로 들어가니, 거리의 사람들이 지연사의 승려가 말을 끌고 짐을 지고 가는 것을 보고 모두 길을 비켜 주었다. 한창 걷고 있는데 산문 앞에 이르렀으니, 저 문 위에 높이 걸린 금박 대편액에는 칙건 지연사라 쓰여 있었다. 승려들이 문을 밀어 열고 금강전을 지나 대웅전의 문을 열었다. 삼장법사가 가사를 꺼내어 걸치고 금빛 불신에 절을 마치고 나서야 방장으로 들어갔다. 승려들이 “절 지키는 이!”라고 불렀다. 늙은 승려가 걸어 나와 행자를 보자 곧절을 올리며 “영감님! 오셨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너는 나를 어느 영감님으로 알고 그리 부르며 절하느냐?”라고 물었다. 그 승려가 “저는 영감님을 제천대성 손 영감님으로 알아뵙니다. 우리는 밤마다 꿈에서 영감님을 뵈었고, 태백금성께서 늘 꿈에 오셔서 당부하시기를 오직 영감님이 오셔야 우리가 목숨을 건지리라 하였나이다. 오늘 과연 존안을 뵈오니 꿈에서와 조금도 다르지 않나이다. 영감님, 일찍 오시기를 천만다행으로 여기나이다! 하루이틀만 늦으셨더라도 우리는 이미 모두 귀신이 되었을 것이니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일어나라 일어나라. 내일이면 분별이 있으리라.” 승려들이 공양을 차려 올렸고 그 사부와 제자들이 그것을 먹고는 방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하룻밤을 편히 잤다. 이경 무렵이었다. 손대성은 마음에 일이 걸려 있어 좀처럼 잠이 들지 못하였다. 문득 어디선가 피리와 북을 치며 울려 오는 소리가 들려오기에 가만히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고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두루 살펴보니, 정남쪽에서 등불과 촛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구름머리를 낮추어 자세히 다시 들여다보니, 과연 이러하였다. 삼청관의 도사들이 별을 비는 재를 올리고 있었다. 과연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신령한 구역의 높은 전각이요, 복된 땅의 참된 법당이라. 신령한 구역의 높은 전각은 우뚝 솟아 봉래산의 경치처럼 장엄하고, 복된 땅의 참된 법당은 은은하여 화락궁처럼 맑고 깨끗하구나. 양쪽에는 도사들이 서서 생황을 불어 대고, 정면에는 높은 법사가 옥결을 받들었구나. 《소재참》을 펼쳐 그 뜻을 풀이하고, 《도덕경》을 펴 놓고 강론하는구나. 몇 차례 먼지를 일으키며 부적을 모두 전하고, 표백을 한 차례 하니 모두 땅에 엎드리는구나. 물에 주문을 걸고 격문을 날리니 촛불이 흔들리며 상계로 솟구치고, 자리를 살피고 북두성을 베풀며 향 연기가 그윽이 맑은 하늘로 스미는구나.제단 위에는 새로 차린 공물이 놓였고, 탁자 위에는 제물이 풍성하구나. 전각의 문 앞에는 누런 비단에 금실로 짠 대련 한 쌍이 걸려 있는데, 스물두 개의 큰 글자가 수놓여 있었으니 이르기를 “비는 순하고 바람은 고르오니, 원하옵나니 천존의 무량하신 법을 축원하나이다. 강물은 맑고 바다는 잔잔하오니, 만세께서 남은 세월을 넉넉히 누리시기를 비나이다.” 행자가 보니 늙은 도사 세 명이 법의를 걸치고 있었는데, 아마 저 호력과 록력과 양력 세 대선이러라. 그 아래에는 칠팔백 명의 흩어진 무리들이 북을 맡고 종을 맡고 향을 시중들고 축문을 읽으며 모두 양쪽에 시립해 있었다. 행자가 속으로 기뻐하며 “내가 내려가 그들과 한바탕 섞여 놀아 보려마는, 가는 실 하나로는 줄을 꼬지 못하고 외손바닥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법이니, 우선 돌아가 팔계와 사승을 거느리고 함께 와서 실컷 놀아 보리라”라고 말했다. 상서로운 구름을 내려앉혀 방장으로 곧장 가니, 팔계와 사승이 발을 마주 댄 채 자고 있었다. 행자가 먼저 오정을 깨우니 사승이 잠이 깨어 “형님,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소?”라고 물었다. 행자가 “너는 우선 일어나거라. 나와 함께 별미를 좀 즐기러 가자”라고 말했다. 사승이 “한밤중 삼경에 입은 바싹 마르고 눈은 침침한데 무슨 별미를 즐긴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성안에 과연 삼청관이라는 곳이 있더라. 관에서는 도사들이 제사를 올리고 있어서 삼청전에 공양거리가 많은데, 만두는 족히 한 말만 하고, 구운 과자는 오륙십 근씩이나 되며, 반찬과 밥이 무수하고 과일 또한 싱싱하니라. 너와 함께 가서 즐기자!” 저팔계는 잠결에 좋은 음식 이야기를 듣고는 곧 잠이 깨어 “형님, 나는 데려가지도 않으시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아우야, 네가 음식을 먹고 싶거든 큰 소리로 떠들어 스승님을 깨우지 말고 모두 나를 따라오너라.” 그 두 사람이 옷을 걸치고는 조용히 문 앞으로 나서서 행자를 따라 구름을 밟고 훌쩍 날아올랐다. 그 멍청이가 등불을 보자마자 곧 손을 대려 하거늘 행자가 붙잡으며 “서두르지 마라. 저들이 흩어진 뒤에야 비로소 내려갈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팔계가 “그제야 경 읽는 흥이 돋아 있는데 어찌 기꺼이 흩어지려 하겠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내가 꾀를 하나 부리면 그들이 곧 흩어지리라.” 훌륭한 대성이니 손가락으로 결을 잡고 주문을 외운 뒤 곤방 쪽에서 한 숨을 들이켜 훅 불어 보내니, 그것이 곧 한바탕 거센 광풍이 되어 삼청전으로 곧장 휘말려 들어가 그곳의 꽃병과 촛대며 사방 벽에 걸어 둔 공덕 그림들을 한꺼번에 쓰러뜨리고, 마침내 등불이 빛을 잃게 하였다. 도사들이 모두 간담이 서늘해 하는데, 호력대선이 “제자들은 잠시 물러나거라. 이 신령한 바람이 지나가며 등불과 향과 꽃을 불어 껐으니, 각자 처소로 돌아가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경문을 몇 권 더 읽어 그 수를 채우도록 하여라”라고 말했다. 도사들이 과연 각각 물러가 버렸다. 이에 행자가 팔계와 사승을 이끌고 구름머리를 내려앉혀 삼청전으로 쳐들어갔다. 그 멍청이는 익은 것인지 생것인지 가리지도 않고 구운 과자를 집어 벌린 입으로 그냥 깨물어 버렸다. 행자가 쇠몽둥이를 뽑아 들고 손 가는 대로 내리치니, 팔계가 손을 움츠리고 피하며 “아직 무슨 맛인지 보지도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때리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보잘것없이 굴지 마라. 우선 예나 갖추고 앉아서 먹자”라고 말했다. 팔계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군! 남의 것을 훔쳐 먹으면서 무슨 예를 갖춘단 말이오! 만일 청하여 데려다 놓았다면 어찌하려 하였소?” 행자가 “이 위에 앉아 계신 분들이 어떤 보살이란 말이오?”라고 물었다. 팔계가 웃으며 “삼청도 알아보지 못하시다니, 그러면 무엇을 보살이라 하시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러면 무엇이 삼청이란 말이오?”라고 물었다. 팔계가 “가운데 계신 이는 원시천존이시오, 왼쪽에 계신 이는 영보도군이시오, 오른쪽에 계신 이는 태상노군이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모두 저러한 모습으로 변하여야 편안히 먹을 수 있겠구나”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가 다급해져서 향긋한 공양 냄새를 맡고 그것을 먹고 싶어져 높은 대로 기어 올라가더니, 주둥이로 노군을 들이받아 밀어 내리며 “늙은 양반, 그대도 앉을 만큼 앉았으니 이번에는 나이 좀 앉아 보자”라고 말했다. 팔계가 태상노군으로 변하고 행자가 원시천존으로 변하며 사승이 영보도군으로 변하여 본래의 상들을 모두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팔계가 큰 만두를 채 가려 하거늘 행자가 “서두르지 마라!”라고 말했다. 팔계가 “형님, 이토록 변하였거늘 먹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란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아우야, 먹는 일은 작은 일이거니와 천기를 누설하는 일이 큰일이니라. 이 성상들을 땅에 밀쳐 두었으니, 혹 일찍 일어난 도사가 종을 치고 땅을 쓸러 오다가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소식이 새어 나가지 않겠느냐? 이것들을 한쪽에다 숨겨 두어라”라고 말했다. 팔계가 “이곳은 길이 낯설어 문도 찾지 못하겠는데 그것을 어디다 숨긴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가 막 들어올 무렵 오른쪽 아래에 작은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서 구린내가 훅 끼치는 것이 필시 오곡이 돌고 도는 곳이더라. 그것을 그리로 갖다 버리고 오너라”라고 말했다. 이 멍청이는 힘이 장사라 뛰어내려가 세 성상을 어깨에 얹어 메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쪽에 이르러 발로 문을 걷어차고 보니 본래 커다란 뒷간이었으므로, 웃으며 “이 필마온 녀석이 참으로 혀를 놀리는 솜씨가 좋구나! 똥구멍에도 법호를 붙여 오곡이 돌고 도는 곳이라니!”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는 성상을 어깨에 멘 채 당장 던져 버리지는 않고 입을 웅얼거리며 빌었다. “삼청이여 삼청이여, 내 말을 들어 보시오. 먼 곳에서 이곳에 와서 으레 요괴를 멸하려 하나 공양을 즐기려 해도 편안히 있을 곳이 없소. 그대들의 자리를 빌려 잠깐 머물게 하시오. 그대들도 오래도록 앉아 있었으니 잠시 똥구멍으로 내려가시오. 평소에는 한없이 누리며 청정한 도사가 되더니, 오늘은 부득이 더러운 것도 맛보며 구린내를 맡는 천존이 되었구려!” 빌기를 마치고는 콰당 하는 소리가 나도록 안으로 집어 던졌는데, 구린 물이 튀어 올라 옷자락 절반을 적셨다. 그는 걸어 올라와 전각으로 들어섰다. 행자가 “잘 숨겨 두었느냐?”라고 물었다. 팔계가 “숨기기는 잘 숨겼소만, 다만 물이 튀어 올라 옷을 더럽히고 구린내가 좀 나니 속이 메스껍지는 마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됐다. 너는 우선 와서 먹어라. 다만 깨끗한 몸으로 문을 나설 수나 있으려는지 모르겠구나.” 그 멍청이는 도로 노군으로 변하였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아 실컷 즐겼으니, 먼저 큰 만두를 먹고 뒤이어 여러 접시의 반찬과 밥과 다과와 화덕에 구운 떡과 기름에 튀긴 것과 찐 과자를 먹었는데, 차니 더우니 따질 것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먹어 댔다. 본래 손행자는 불에 익힌 음식을 별로 먹지 않으므로 과일 몇 개만 집어 먹으며 그 두 사람의 벗이 되어 주었다. 그 한바탕 먹어 치우는 것이 별이 달을 쫓고 바람이 구름을 걷듯 하여 모조리 먹어 비우고 나니, 이제는 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길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고 그곳에서 한담을 나누며 소화나 시키며 놀고 있었다. 아!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본래 저 동쪽 행랑 아래에 어린 도사 하나가 잠자리에 막 누웠다가 홀연히 일어나 “내 손종을 전각에 두고 왔구나. 그것을 잃어버리면 내일 스승님께 꾸중을 듣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함께 자던 이에게 “그대는 그냥 자고 있어라. 내가 가서 찾아오마”라고 말하였다. 급한 나머지 속옷은 입지 않고 다만 저고리 하나만 걸치고는 곧장 대웅전으로 가서 종을 찾았다. 이리저리 더듬거리며 마침내 손종을 찾아 쥐었는데, 막 몸을 돌려 나가려 하니 누군가 숨 쉬는 소리가 들려오므로 그 도사는 겁이 덜컥 났다. 급히 발을 떼어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여지 씨앗을 밟아 푹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손종이 산산이 깨져 버렸다. 저팔계가 참지 못하고 껄껄 웃음을 터뜨리자, 어린 도사는 세 혼이 달아나고 일곱 넋이 되돌아온 듯하여 한 걸음마다 넘어지며 뒷방장 밖에까지 이르러 문을 두드리며 “사공님! 큰일 났사옵니다! 화가 났사옵니다!”라고 소리쳤다. 늙은 도사 세 명은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으므로 곧 문을 열고 “무슨 화가 났단 말이냐?”라고 물었다. 그가 바들바들 떨며 “제자가 손종을 잃어버려 전각에 그것을 찾으러 갔더니, 누군가 껄껄 웃는 소리만 들려 하마터면 혼이 날 뻔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 늙은 도사가 그 말을 듣고 곧 “등을 밝혀 오너라! 무슨 사악한 물건인지 보자꾸나”라고 외쳤다. 명령 한 마디에 양쪽 행랑의 도사들이 놀라 크고 작은 이들이 모두 일어나 불을 밝히고 횃불을 들어 대웅전으로 구경하러 몰려갔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5회 삼청관대성류명(三淸觀大聖留名) · 차지국후왕현법(車遲國猴王顯法) 말하자면, 손대성이 왼손으로 사승을 꼬집고 오른손으로 저팔계를 꼬집자, 두 사람은 곧 알아차리고 높은 자리에 앉아 얼굴을 찌푸린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사들이 등잔불을 밝히고 횃불을 켜들어 앞뒤로 비추어 살피는 것을 내맡긴 채, 세 사람은 마치 진흙으로 빚고 금을 입힌 불상과 다름없는 꼴이었다. 호력대선이 “나쁜 놈이 없거늘 어찌하여 공헌물을 모조리 먹어 치웠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록력대선이 “꼭 사람이 먹은 솜씨로구려. 껍질 있는 것은 껍질을 모조리 벗겼고 씨 있는 것은 씨를 모조리 뱉었거늘, 그러면 어찌하여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양력대선이 “사형께서는 의심 마시오. 아마도 우리가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 이곳에서 밤낮으로 경을 외우고 앞뒤로 글을 올렸으며 또 조정의 이름까지 걸었으니 틀림없이 천존을 놀라 움직였을 것이오. 삼청 할아버님께서 친히 강림하시어 이 공양물을 잡수신 것이 틀림없소. 지금 신선의 무리가 아직 돌아가지 않고 학이 끄는 수레가 이곳에 계시니, 우리가 천존께 절하며 아뢰어 성수와 금단을 얼마쯤 간청하여 폐하께 올린다면 장생하는 길이 되어 우리의 공덕까지 드러나지 않겠소이까?”라고 말했다. 호력대선이 “옳은 말이오”라고 말하고는 명령했다. “제자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경을 외워라! 한편에서는 법의를 가져오너라. 내가 별자리를 밟으며 절하여 빌 터이니.” 그 작은 도사들이 모두 명령을 좇아 두 줄로 늘어서니, 놋쇠 경쇠가 댕그랑 한 번 울리자 모두 함께 《황정도덕진경》 한 권을 외웠다. 호력대선이 법의를 걸치고 옥홀을 받쳐 쥐고 앞을 향하여 춤을 추며 먼지를 일으키다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는 위를 향해 아뢰었다. “황공하옵고 두렵사옵나이다. 머리를 조아려 귀의하옵니다. 신 등은 교를 일으켜 맑고 허한 도를 우러러보나이다. 중들을 멸하여 비루함을 없애고 도를 받들어 빛을 드높였나이다. 칙명으로 보전을 수리하시고 어명으로 궁정을 지으셨나이다. 공양을 널리 차리고 용기를 높이 걸었나이다. 밤새 촛불을 들고 온종일 향을 피우나이다. 한결같은 정성이 위에 닿고 조그마한 공경이 귀의하옵니다. 이제 강림하심을 입었사온데 신선의 수레는 아직 돌아가지 않았나이다. 원하옵나니 금단과 성수를 얼마쯤 내리시어 조정에 올리게 하옵소서. 그리하면 수명이 남산과 같으리이다.”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불안해져 행자에게 조용히 “이건 우리가 잘못한 것이오. 음식을 먹고도 길을 떠나지 않고 이토록 비는 것만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 대답한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다시 한 번 꼬집자 문득 입을 열어 소리쳐 말했다. “후배 소선들이여, 절하며 비는 것을 우선 그만두시오. 우리는 반도연회에서 오는 길이라 금단이며 성수를 가져오지 않았으니, 다음에 다시 와서 내려 주겠소.” 그 도사들이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는 저마다 옷을 떨며 벌벌 떨면서 “할아버님! 살아 계신 천존이 인간 세상에 강림하셨다! 절대로 놓아 보내지 말고 어떻게든 장생하는 법이나 청해 내자!”라고 말했다. 록력대선이 앞으로 나서서 또 절하며 아뢰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머리를 조아리옵고 삼가 단심을 다하옵니다. 미천한 신이 목숨을 바쳐 삼청을 우러러보나이다. 이 경계에 온 이래 도를 일으키고 중들을 몰아내었나이다. 국왕께서 마음으로 기뻐하시어 도문의 어른을 공경하시고, 나천대초를 베풀어 밤을 지새우며 경을 살피나이다. 다행히 천존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성스러운 수레를 내려 뜰에 임하셨나이다. 굽어 살피시고 은혜와 영광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부디 성수를 얼마쯤 남겨 주시어 제자들이 수명을 늘리고 장생하게 하옵소서.” 사승이 행자를 꼬집으며 가만히 “형님, 일이 급하옵니다. 또 빌기 시작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들에게 얼마쯤 주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조용히 “어디 있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너희는 나만 보아라. 나에게 있으면 너희에게도 있는 것이니라.” 그 도사가 피리와 북을 울리기를 마치자 행자가 입을 열어 말했다. “후배 소선들이여, 엎드려 절할 것 없소. 내가 성수를 남겨 주지 않으려 하니 후손이 끊길까 두렵고, 주려 하자니 또한 너무 쉬운 노릇이로구나.” 도사 무리가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천존께서는 제자들이 공경하는 뜻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천 번 간청하오니 부디 얼마쯤 기꺼이 내려 주옵소서. 제자들이 도덕을 널리 펴고 국왕께 아뢰어 온 나라가 도문을 두루 공경하게 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러하다면 그릇을 가져오너라”라고 말했다. 도사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사례했다. 호력대선이 남보다 앞서려는 마음에 큰 독 하나를 메어다 전각에 놓았고, 록력대선은 사기로 만든 동이 하나를 받쳐다 공양 탁자 위에 얹었으며, 양력대선은 꽃병에서 꽃을 빼어 가운데로 옮겨 놓았다. 행자가 “너희는 모두 전각 밖으로 나가 문짝을 닫아 걸어라. 천기를 누설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래야 너희에게 성수를 남겨 줄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도사들이 모두 함께 붉은 섬돌 아래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뒤 전각 문을 닫았다. 그 행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호랑이 가죽 치마를 걷어 올리고 꽃병에 오줌을 가득 누었다. 저팔계가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형님, 내가 형님을 여러 해 동생으로 섬겼지만 이것만큼은 나를 속인 적이 없구려. 내가 방금 음식을 좀 먹어 두었더니 바로 이런 일을 하려는 참이었소”라고 말했다. 그 멍청한 놈이 옷을 걷어 올리더니 콸콸콸, 마치 여량홍의 물이 비탈로 쏟아지듯 사각거리게 사기 동이에 오줌을 가득 누었고, 사승도 독에 반쯤 누었다. 그리고는 도로 옷을 여미고 위에 단정히 앉아 “소선들이여, 성수를 받으시오”라고 말했다. 그 도사들이 문짝을 밀쳐 열고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고 은혜를 사례한 뒤 독을 메어 내가고 병과 동이를 한곳에 모아 놓고 “제자야, 잔 하나를 가져와서 맛을 보자”라고 일렀다. 작은 도사가 곧 찻잔 하나를 가져다 늙은 도사에게 건넸다. 도사가 한 잔을 떠서 입에 털어 넣고는 연신 입술을 닦고 혀를 차며 맛을 보는데, 록력대선이 물었다. “사형, 맛이 좋사옵니까?” 늙은 도사가 입을 삐죽 내밀며 “그다지 맛있지는 않구려. 약간 쉬어서 떫어진 술맛이 나는군”이라고 말했다. 양력대선이 “내가 좀 맛보리다”라고 말하고는 또한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 “약간 돼지 오줌 누린내가 나는구려”라고 말했다. 행자가 위에 앉아 있다가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는 이미 간파당한 줄을 알고 “내가 재주를 하나 부려서 아예 이름이나 남겨 두리라”라고 말하고는 크게 소리쳐 외쳤다. “도호야 도호야, 너희는 참으로 망령된 생각을 하는구나! 어느 삼청이 기꺼이 범인의 터전에 내려오겠느냐? 내 참된 성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대당의 승려 무리는 칙명을 받들어 서쪽으로 가는 길이로다. 좋은 밤에 할 일이 없어 궁궐로 내려왔노라. 공양물을 먹고 한가로이 앉아 실없이 놀다가, 너희가 절하며 비니 무엇으로 답하리오? “거기가 무슨 성수란 말이냐! 너희가 먹은 것은 모두 내가 한 번 누운 오줌이니라!” 그 도사들이 이 말을 듣고는 문을 가로막은 채 일제히 삼지창이며 갈퀴와 빗자루와 기와 조각과 돌을 들어 얼굴 가릴 것 없이 안쪽을 향하여 마구 때려 댔다. 훌륭한 행자로다. 왼손에 사승을 끼고 오른손에 저팔계를 끼고는 문을 박차고 나와서 상서로운 빛을 타고 곧장 지연사의 방장으로 돌아갔다. 스승을 놀라게 할까 염려하여 감히 알리지 않고, 세 사람은 도로 가만히 누워 잤다. 어느덧 새벽 오고 삼점이 되어, 그 국왕이 조회를 열자 문무 양반과 사백 명의 조관이 모여들었으니, 붉은 비단 등불이 환히 빛나고 보정에서는 향연이 자욱이 어리는구나. 이때 당삼장이 잠에서 깨어나 “제자들아 제자들아, 나를 모시고 관문을 교환하러 가자꾸나”라고 불렀다. 행자와 사승과 저팔계가 급히 일어나 옷을 입고 좌우에 모시어 서서 “스승님께 아뢰옵니다. 이 어리석은 임금은 저 도사들을 믿어 도를 일으키고 중들을 멸하니, 혹여 말이 어긋나 관문을 교환해 주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저희가 스승님을 호위하여 조정으로 들어가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크게 기뻐하며 금란가사를 걸쳤다. 행자는 통관문첩을 챙겨 들고, 오정에게는 발우를 받쳐 들게 하고 오능에게는 석장을 쥐게 하였으며, 행낭과 말은 지연사의 승려에게 맡겨 지키게 하고는 곧장 오봉루 앞에 이르러 황문관에게 예를 갖추고 성명을 알린 뒤, 동토 대당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중들이 관문을 교환하려 하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전하여 아뢰어 달라고 말했다. 그 각문대사가 조정 안으로 들어가 금계단에 엎드려 아뢰었다. “밖에 중이 넷이 있사온데, 동토 대당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자들이라 하며 관문을 교환하고자 하나이다. 지금 오봉루 앞에서 어명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국왕이 그 아뢰는 말을 듣고 “이 중들이 죽을 곳을 찾지 못하고 도리어 이곳에 와서 죽을 곳을 찾는구나! 저 순포 관원들은 어찌하여 그들을 잡아다 압송해 오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다. 곁에서 당가의 태사가 몸을 비켜 나오며 아뢰었다. “동토 대당은 바로 남섬부주이옵고 이름을 중화 대국이라 하오니, 이곳에 이르기까지 만 리의 머나먼 길이오며 길에는 요괴가 많사옵니다. 이 중들이 틀림없이 법력이 조금은 있기에 감히 서쪽으로 왔을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중화에서 먼 길을 온 중들을 보아 주시어, 우선 불러다 문첩을 확인하고 놓아 보내 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선연의 뜻을 잃지 않으시리이다.” 국왕이 그 청을 윤허하여 삼장 일행을 금란전 아래로 불러들였다. 사부와 제자들이 섬돌 앞에 줄지어 서서 관문을 두 손에 받들어 국왕에게 올렸다. 국왕이 펼쳐 막 보려 하는데, 또 황문관이 들어와 아뢰었다. “세 분 국사께서 오시나이다.” 국왕이 깜짝 놀라 관문을 거두고 급히 용좌에서 내려와 가까이 모시는 자에게 수놓은 방석을 놓게 하고는 몸을 굽혀 맞이했다. 삼장 일행이 고개를 돌려 보니, 저 대선이 몸을 흐느적거리며 쌍계를 얹고 머리를 헝클어뜨린 어린 동자 둘을 거느리고 안으로 곧장 들어오는데, 양반의 관원들이 등을 굽힌 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가 금란전에 올라가서는 국왕을 대하고도 예를 갖추지 않았다. 그 국왕이 “국사여, 짐이 일찍이 청을 올리지 않았거늘 오늘 어찌 기꺼이 강림하셨소?”라고 말했다. 늙은 도사가 “아뢸 일이 하나 있어서 온 것이오. 저 중 넷은 어느 나라에서 온 자들이오?”라고 말했다. 국왕이 “동토 대당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보낸 자들인데, 이곳에 와서 관문을 교환하려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 세 도사가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는 “내가 그놈들이 달아났다 하였더니, 원래 아직 이곳에 있었구나!”라고 말했다. 국왕이 놀라며 “국사께 무슨 말씀이 있으시오? 그들이 막 성명을 알려 왔거늘 잡아다 국사께 보내어 쓰시게 하려 하였소이다. 다만 당가 태사가 아뢴 말에 이치가 있어, 짐이 먼 길을 온 뜻을 보아 중화의 선연을 끊지 않으려 한 나머지 바야흐로 불러들여 문첩을 확인하던 참이었소. 뜻밖에도 국사께 이런 물음이 있으시니, 아마 저들이 존안을 범하여 죄를 지은 모양이오?”라고 말했다. 도사가 웃으며 “폐하께서는 알지 못하시옵니다. 저들은 어제 온 자들이온데 동문 밖에서 제자 둘을 때려 죽이고 옥에 갇힌 중 오백 명을 놓아 주며 수레를 산산이 부수었고, 밤중에는 관안으로 쳐들어와 삼청의 성상을 부수어 버리고 어명으로 내린 공양을 훔쳐 먹었나이다. 그들이 우리의 눈을 가리우니 우리는 그저 천존께서 강림하신 줄로만 알고, 성수며 금단을 얼마쯤 청하여 폐하께 올려 수명을 늘리고 장생하기를 바랐사온데, 뜻밖에도 저들이 오줌을 조금 흘려 두고 우리를 속였나이다. 우리가 저마다 한 모금씩 마셔 보고 맛을 알아차리고 막 붙잡으려 하였더니 그놈들은 달아났나이다. 그런데 오늘 도리어 이곳에 있으니, 이야말로 원수는 좁은 길에서 만난다 하옵니다!” 그 국왕이 그 말을 듣고 노하여 네 사람을 죽이려 하였다. 손대성이 두 손을 모으고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폐하께서는 잠시 벼락 같은 노여움을 거두시옵고 이 중들이 아뢰는 말을 들어 주옵소서.” 국왕이 “네가 국사를 모욕하였거늘 국사의 말씀에 어찌 그릇됨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가 나더러 어제 성 밖으로 나가 그의 제자 둘을 때려 죽였다 하였사온데, 누가 증인이옵니까? 우리가 우선 억울하나마 시인하여 중 둘이 대신 목숨을 갚게 하시고, 나머지 둘은 놓아 주어 경을 구하게 하옵소서. 또 그가 내가 수레를 부수고 옥에 갇힌 중들을 놓아 주었다 하였사온데, 이 일에도 증인이 없사오니 죽을 죄는 아니라 하옵거니와 중 하나를 시켜 죄를 뒤집어쓰게 하시면 그만이옵니다. 그러나 그가 내더러 삼청을 부수고 관청을 어지럽혔다 하였사온데, 이는 또한 나를 모함하는 것이옵니다”라고 말했다. 국왕이 “어찌하여 모함이라 하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중은 동토 사람이온데 이곳에 막 와서 거리조차 아직 통하지 않사옵거늘, 어찌 밤중에 저들의 관속 일을 알 수 있사옵니까? 오줌을 남겼다면 마땅히 그 자리에서 붙잡았어야 하옵거늘, 이제 와서 이름을 들어 남을 해치려 하시나이까. 천하에 이름을 속이고 성을 빌리는 자가 무수하온데 어찌 곧바로 나라 하시옵니까?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시고 자세히 살펴 주옵소서”라고 말했다. 그 국왕은 본래 어리석고 혼란한지라 행자가 한바탕 말하고 나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한창 의심하고 있는 사이에, 또 황문관이 들어와 아뢰었다. “폐하, 문 밖에 시골 노인 여러 명이 선포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국왕이 “무슨 일이냐?”라고 묻고는 곧 불러들이라고 명했다. 불려와 섬돌 앞에 이른 시골 노인 서른에서 마흔 명쯤이 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만세, 금년 봄 내내 비가 오지 않사오니 여름철 가뭄이 두렵사옵니다. 특별히 아뢰러 왔사오니 저 국사 할아버님께 한바탕 단비를 빌어 달라고 청하시어 널리 백성을 구제하옵소서”라고 말했다. 국왕이 “시골 노인들은 우선 물러가 있으라. 곧 비가 내리리라”라고 말했다. 시골 노인들이 은혜에 사례하고 물러나갔다. 국왕이 “당나라 중들이어, 짐이 도를 받들고 중을 멸하는 까닭을 아느냐? 다만 지난날 비를 빌 때 우리 조정의 중들이 비 한 점도 빌어 내지 못한 탓이니라. 다행히 하늘이 국사를 내려 주시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건져 내셨느니라. 너희가 이제 먼 길을 와서 국사를 모욕하였으니 본래 즉시 죄를 물어야 하거니와 우선은 용서하노라. 감히 우리 국사와 겨루어 비를 빌어 보겠느냐? 만일 한바탕 단비를 빌어 내어 만민을 구제한다면 짐이 곧 너희의 죄명을 용서하고 관문을 교환하여 서쪽으로 보내 주리라. 만일 겨루어 이기지 못하여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너희를 사형장으로 끌어내어 목을 베어 보이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작은 중도 비는 법을 조금은 아옵니다”라고 말했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곧 단장을 쓸게 하는 한편으로 “수레를 갖추어라. 과인이 몸소 오봉루에 올라 구경하리라”라고 명했다. 이에 여러 관원이 수레를 갖추어 잠깐 사이에 임금이 누각에 올라앉았다. 당삼장이 행자와 사승과 저팔계를 데리고 누각 아래에 서 있고, 그 도사 셋은 국왕을 모시어 누각 위에 앉았다. 잠시 뒤에 관원 하나가 말을 달려 와서 아뢰었다. “단장의 여러 물건이 모두 갖추어졌사옵니다. 국사 할아버님께서는 단에 오르옵소서.” 그 호력대선이 몸을 일으켜 두 손을 모으고 국왕에게 하직한 뒤 곧장 누각에서 내려왔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가로막고 “선생은 어디로 가시오?”라고 물었다. 대선이 “단에 올라 비를 빌러 가노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선생도 참으로 제 몸을 무겁게 여기시는구려. 먼 고향에서 온 이 중에게 양보조차 않다니. 좋소, 이야말로 센 용도 땅에 사는 뱀을 누르지 못한다 하였소. 선생이 먼저 가시려거든 모름지기 임금 앞에서 말을 열어 두시오”라고 말했다. 대선이 “무엇을 말하란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나와 선생이 모두 단에 올라 비를 빌면, 그 비가 선생의 것인지 내 것인지 어찌 알며 누구의 공적인지 드러나지도 않지 않소이까?”라고 말했다. 국왕이 위에서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저 작은 중이 말하는 것이 제법 조리가 있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며 “한 배 속에 든 조리를 아직 꺼내지도 않았거늘 무슨 조리란 말이오”라고 말했다. 대선이 말했다. “말할 것 없소. 폐하께서 자연히 아시느니라.” 행자가 “폐하께서 아신다 하나, 내가 먼 곳에서 온 중이라 일찍이 선생과 만난 적이 없사옵니다. 그때 가서 서로 제 것이라 우긴다면 일이 되지 않으니, 모름지기 말을 열어 두어야 일을 할 수 있사옵니다”라고 말했다. 대선이 “이번에 단에 오르면 다만 내 영패를 신호로 삼으시오. 영패 한 번 소리에 바람이 오고, 두 번 소리에 구름이 일어나며, 세 번 소리에 천둥과 번개가 함께 울리고, 네 번 소리에 비가 이르며, 다섯 번 소리에 구름이 흩어지고 비가 그치느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묘하구려! 이 중은 일찍이 본 적이 없소! 자, 가시오! 가시오!”라고 말했다. 대선이 걸음을 떼어 앞으로 나아가고 삼장 일행이 그 뒤를 따라 곧장 단문 밖에 이르렀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곳에 높은 단 하나가 있었으니 높이가 대략 석 장이 넘었다. 단 좌우에는 이십팔수의 기호를 꽂아 두었고, 꼭대기에는 탁자 한 장을 놓았으며 탁자 위에는 향로 하나가 놓여 있어 향연이 자욱하였다. 양쪽에는 촛대 두 개가 있어 그 위의 등촉이 환하게 타오르고, 향로 곁에는 금패 하나가 기대어 있는데 그 패에 새겨진 것은 뇌신의 명호였다. 아래에는 큰 독 다섯 개가 있어 맑은 물을 가득 채웠고, 물 위에는 버들가지가 떠 있었다. 그 버들가지 위에는 무쇠로 만든 패 하나가 받쳐져 있는데, 패에 적힌 것은 뇌정도사의 부적 글자였다. 좌우에는 큰 말뚝 다섯 개가 있고 말뚝에는 오방만뇌사자의 명록이 적혀 있었다. 말뚝마다 도사 둘이 서서 저마다 쇠망치를 들고 말뚝을 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단 뒤쪽에는 많은 도사가 있어 그곳에서 문서를 짓고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종이를 태우는 화로 하나가 놓여 있고, 또 인물 모형 몇 개가 있었으니 모두 부적을 든 사자며 토지찬교의 신들이었다. 그 대선이 안으로 들어가서는 사양조차 없이 곧장 높은 단 위로 올라가 우뚝 섰다. 곁에 있던 작은 도사가 누런 종이에 써 놓은 부적 몇 장과 보검 한 자루를 받쳐다 대선에게 건넸다. 대선이 보검을 쥐고 주문을 한 마디 외우더니 부적 한 장을 촛불 위에서 태워 버렸다. 그 아래에 있던 도사 두세 명이 부적을 든 인물 모형 하나와 문서 한 통을 가져다가 또한 불을 붙여 태웠다. 그 위에서 펑 하고 영패 소리가 한 번 나자, 반공에서 유유히 바람 기운이 불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팔계가 입으로 중얼거렸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이 도사에게 과연 재주가 있구나! 영패가 한 번 울리더니 과연 곧바로 바람이 불어온다!” 행자가 “동생아, 조용히 하여라. 너희는 다시는 나와 말하지 말고 다만 스승님이나 모시고 있어라. 내가 가서 일을 하고 오마”라고 말했다. 훌륭한 대성이로다. 털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운을 불어넣고 “변하라!” 하고 외치니, 그것이 곧 “거짓 행자” 하나로 변하여 삼장법사 곁에 섰다. 그의 참몸은 원신을 빠져나와 반공중으로 달려가 높이 외쳤다. “바람을 맡은 자가 누구냐?” 그 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에 놀란 풍파파가 자루를 움켜쥐고 손이랑이 입을 묶은 끈을 동여매고는 앞으로 나와 예를 올렸다. 행자가 “내가 당나라의 성스러운 승려를 보호하여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차지국을 지나다가 저 요괴 도사와 비 빌기를 겨루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이 늙은 손을 돕지 않고 도리어 저 도사를 돕느냐? 내가 우선 너희를 용서할 터이니 바람을 거두어라. 만일 바람이 조금이라도 있어 저 도사의 수염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는다면 저마다 쇠몽둥이 스무 대씩을 맞으리라!” 풍파파가 “감히 그러지 않겠나이다! 감히 그러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하고는 이내 바람 기운이 조금도 없어졌다. 저팔계가 참지 못하고 마구 떠들어 댔다. “저 선생은 물러나시오! 영패가 울렸거늘 어찌하여 바람 한 점 보이지 않단 말이오? 당신은 내려오고 우리를 올려 보내시오!” 그 도사가 또 영패를 쥐고 부적과 격문을 태우며 퍽 하고 또 한 번 내리치자, 공중에 구름과 안개가 가득 덮이는 것이 보였다. 손대성이 또 머리 위에서 “구름을 펴는 자가 누구냐?”라고 외쳤다. 놀란 추운동자와 포무랑군이 앞으로 나서서 예를 올렸다. 행자가 또 앞의 사연을 한바탕 말하니, 저 구름 동자와 안개 자도 구름과 안개를 거두어들이고 태양성을 내어놓아 환히 빛나게 하였다. 하늘은 만 리가 맑아 구름 한 점 없었다. 저팔계가 웃으며 “이 선생은 이 임금이나 속이고 백성을 얼러 넘길 뿐이라니, 참된 재주라곤 조금도 없구나! 영패가 두 번이나 울렸거늘 어찌하여 또 구름이 이는 것이 보이지 않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그 도사가 마음이 타오르는지라 보검을 비껴 쥐고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주문을 외우고 부적을 태우고는 다시 영패를 한 번 내리쳤다. 반공중의 남천문 안에서 등천군이 뇌공과 전모를 거느리고 허공에 이르러 행자를 마주하여 예를 올렸다. 행자가 또 앞의 사연을 한바탕 말하고 나서 “너희는 어찌 그리 정성스럽게 왔느냐? 무슨 법지냐?”라고 말했다. 천군이 “저 도사의 오뢰법은 참된 것이오. 그가 문서를 발하고 격문을 태워 옥황상제를 놀라게 하였고, 옥황상제께서 뜻을 내리시어 곧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부하로 내려왔소이다. 우리는 명을 받들어 천둥과 번개를 도와 비를 내리러 온 것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러하다면 모두 잠시 멈추어 있다가 이 늙은 손이 일하는 것을 함께 기다리시오”라고 말했다. 과연 천둥도 울지 않고 번개도 번쩍이지 않았다. 그 도사가 더욱 다급해져서 또 향을 더하고 부적을 태우며 주문을 외우고 영패를 내리쳤다. 반공중에 또 사해용왕이 일제히 몰려왔다. 행자가 머리 위에서 “오광! 어디로 가느냐?”라고 호통쳤다. 그 오광과 오순과 오흠과 오윤이 앞으로 나와서 예를 올렸다. 행자가 또 앞의 사연을 한바탕 말하고 나서 “지난번에 수고하였으나 아직 이루지 못하였소. 오늘의 일은 부디 힘을 보태 주기 바라오”라고 말했다. 용왕이 “명을 받들겠나이다! 명을 받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또 오순에게 “지난번에 자제의 덕으로 요괴를 결박하고 스승님을 구하였소”라고 사례했다. 용왕이 “그놈은 아직 바다속에 묶여 있사온데 감히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가 대성께서 처분해 주시기를 청하려 하였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대가 어떻게 처치하든 맡겨 두겠소. 지금은 우선 나를 도와 공 하나를 세우시오. 저 도사의 영패 네 번 소리가 끝났으니 이번에는 이 늙은 손이 내려가 일을 할 차례요. 그러나 나는 부적을 보내고 격문을 태우며 무슨 영패를 치는 법을 모르니, 그대들이 모름지기 나를 도와 주시오”라고 말했다. 등천군이 “대성께서 분부하시는데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나이까! 다만 하나의 호령이 있어야 감히 명을 좇아 움직이겠나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둥과 비가 어지러워져서 대성께서 격식이 없으신 듯 보이리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 몽둥이를 신호로 삼으리라”라고 말했다. 그 뇌공이 크게 놀라며 “할아버님! 우리가 이 몽둥이를 어찌 견디겠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너희를 때리는 것이 아니니라. 다만 내 이 몽둥이가 위를 향하여 한 번 가리키거든 곧 바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그 풍파파와 손이랑이 입을 모아 “곧 바람을 놓겠나이다!”라고 대답했다. “몽둥이가 두 번째로 가리키거든 곧 구름을 펴야 하느니라.” 그 추운동자와 포무랑군이 “곧 구름을 펴겠나이다! 곧 구름을 펴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몽둥이가 세 번째로 가리키거든 곧 천둥이 울고 번개가 번쩍여야 하느니라.” 그 뇌공과 전모가 “분부를 받들겠나이다! 분부를 받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몽둥이가 네 번째로 가리키거든 곧 비를 내려야 하느니라.” 그 용왕이 “명을 받들겠나이다! 명을 받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몽둥이가 다섯 번째로 가리키거든 곧 해가 환히 떠오르고 날이 맑아야 하느니라. 부디 어기지 마시오.” 분부를 마치고 나서 구름머리를 눌러 내려와 털을 한 번 털어 몸에 도로 거두어들였다. 그 사람들은 눈이 범인의 것이라 어찌 알아챘으랴. 행자가 이내 곁에서 큰 소리로 “선생, 수고하셨소. 영패 네 번 소리가 모두 울렸건만 바람과 구름과 천둥과 비가 조금도 없으니 이제 내 차례요”라고 외쳤다. 그 도사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오래 차지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단에서 내려와 그에게 양보하고는 입을 삐죽 내민 채 곧장 누각 위로 올라가 임금을 뵈었다. 행자가 “내 그를 따라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자”라고 말했다. 그때 마침 국왕이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인은 여기에서 귀를 씻고 정성스레 들었거늘, 그대가 있는 곳에서는 영패가 네 번이나 울리도록 바람과 비가 보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오?” 도사가 “오늘 용신들이 모두 집에 없사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목청을 높여 말했다. “폐하, 용신들은 모두 집에 있사옵니다. 다만 이 국사의 법이 영험하지 못하여 청해도 오지 않는 것이옵니다. 이 중이 청해 오는 것을 두고 보시옵소서.” 국왕이 “어서 단에 오르라. 과인은 여기에서 비를 기다리노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분부를 받고 급히 단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삼장법사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스승님, 단으로 올라가시옵소서”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제자야, 나는 비를 비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웃으며 “그가 스승님을 해치려는구려! 만일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섶을 얹어 놓고 불이나 질러 끝장을 내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께서 비를 비는 법은 모르시나 경을 외우는 것은 잘하시니, 내가 스승님을 돕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장로가 비로소 걸음을 옮겨 단에 올라가서 위에 단정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모아 《밀다심경》을 조용히 외웠다. 막 앉아 있는데 홀연히 관원 하나가 말을 달려 와서 물었다. “이 중아, 어찌하여 영패를 치지도 않고 부적과 격문을 태우지도 않느냐?” 행자가 높은 소리로 대답했다. “필요 없소! 필요 없소! 우리는 고요한 공력으로 기도하는 것이오.” 그 관원이 돌아가서 아뢰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접어 둔다. 행자는 스승님이 경문을 다 외우는 것을 듣고 귀 속에서 쇠몽둥이를 꺼내어 바람에 흔들어 보이니, 길이는 열두 자요 굵기는 사발만 하였다. 몽둥이를 허공을 향하여 한 번 가리키자, 그것을 본 풍파파가 급히 가죽 자루를 벌리고 손이랑이 입을 묶었던 끈을 풀어 놓으니, 다만 훠훠 하는 바람 소리가 들리며 온 성 안에서 기와가 벗겨지고 벽돌이 뒤집히며 모래가 날리고 돌이 굴렀다. 보아하니 참으로 좋은 바람이라 예사로운 바람과는 사뭇 달랐으니 과연 이러하였다. 버들을 꺾고 꽃을 상하게 하며, 숲을 꺾어 넘기고 나무를 뽑아 넘어뜨린다. 구중전은 담이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지며, 오봉루는 대들보가 흔들리고 기둥이 뒤흔들린다. 하늘가의 붉은 해는 빛을 잃고 땅 위의 누런 모래는 날개가 돋는다. 연무청 앞에서는 무장이 놀라고 회문각 안에서는 문관이 두려워한다. 삼궁의 분대는 검은 머리가 헝클어지고 육원의 비빈은 보배 쪽이 헝클어진다. 후백의 금관에서는 수놓은 관끈이 떨어지고 재상의 오사모는 날개가 펄럭인다. 당가의 신하는 말이 있어도 감히 아뢰지 못하고 황문은 본을 쥐고도 올릴 길이 없다. 금어와 옥대는 반열을 지키지 못하고 상아홀과 비단 저고리는 품계를 가릴 수가 없다. 채색 누각과 비취 병풍이 모조리 상하고 푸른 창과 붉은 문이 모두 엉망이 된다. 금란전에서는 기와가 날아가고 벽돌이 튀며 금운당에서는 문이 비뚤어지고 문살이 부서진다. 이 광풍이 과연 사나우니 임금과 부자도 서로 만나기 어렵고, 육가삼시에는 사람 그림자 없고 만호천문이 모두 굳게 닫히는구나! 바로 저 광풍이 크게 일어나는 즈음에 손행자가 또 신통을 드러내어 금고봉을 비벼 쥐고 허공을 향하여 또 한 번 가리키니, 과연 이러하였다. 추운동자와 포무랑군이여. 추운동자는 신위를 드러내어 꾸르륵 돌에 부딪치며 하늘을 가리고, 포무랑군은 법력을 베풀어 자욱한 연기가 땅을 덮는다. 아득하여 세 저자가 어두워지고 은은하여 여섯 거리가 캄캄하다. 바람을 타고 바다 위를 떠나며, 비를 따라 곤륜을 벗어난다. 잠깐 사이에 천지를 메우고, 순식간에 세상의 티끌을 가린다. 완연하기가 혼돈과 같아서 봉황루의 문도 보이지 않는다. 이때 어둑한 안개가 몽롱하고 짙은 구름이 자욱하였다. 손행자가 또 금고봉을 한번 비벼 쥐고 허공을 향하여 또 한 번 가리키자, 놀라는구나. 뇌공이 분노를 떨치고 전모가 성을 낸다. 뇌공이 분노를 떨치니 불짐승을 거꾸로 타고 천관을 내려오며, 전모가 성을 내니 금빛 뱀을 마구 휘둘러 두부를 벗어난다. 훠르륵 벼락을 내려 쇠창산을 부수어 버리고, 쫘르륵 붉은 비단이 번쩍이며 동양 바다를 날아 나온다. 훠르르 은은하게 수레 소리가 굴러가고, 번쩍번쩍 벼 이삭이 날린다. 온갖 만물의 정신이 바뀌고 수많은 벌레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임금과 신하가 누각 위에서 놀라고 장사꾼은 소리를 듣고 겁을 먹는다. 그 천둥과 번개가 펑펑 탕탕, 마치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지는 기세라, 온 성 사람들이 집집마다 향을 피우고 종이를 태웠다. 손행자가 크게 외쳤다. “영감 등천군!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기는 관원이며 부모에게 거역하고 효도하지 않는 자식을 잘 살펴서 여러 명 때려 죽여 무리에게 보이시오!” 그 천둥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행자가 또 쇠몽둥이를 위로 한 번 가리키니, 과연 이러하였다. 용이 호령을 내리니 비가 온 천지를 메운다. 기세는 은하수가 하늘의 참호를 쏟아 붓는 듯하고, 빠르기는 구름이 바다 문을 흘러 지나가는 듯하다. 누각머리에서는 똑똑 소리가 들리고 창밖에서는 쏴아 소리가 들린다. 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지고 거리 앞에는 흰 물결이 넘친다. 콸콸 하는 소리는 독에서 퍼내는 듯하고 굴러 내리는 것은 동이로 붓는 듯하다. 외로운 마을은 집이 잠기려 하고 들가의 언덕은 다리를 삼키려 한다. 참으로 뽕밭이 바다로 변하고 삽시간에 육지 언덕에 물결이 굴러온다. 신룡이 이를 빌려 도우니 장강을 들어 올려 아래로 붓는구나. 이 비는 진시에 내리기 시작하여 오시 무렵까지 내려서, 차지성 안팎으로 거리가 모조리 물에 잠겼다. 그 국왕이 “비는 그만이면 되었다! 비는 그만이면 되었다! 너무 많이 오면 도리어 곡식 싹을 상하게 하여 좋지 않다”라고 뜻을 전하였다. 오봉루 아래의 관원이 말을 달려 비를 맞으며 와서 아뢰었다. “성스러운 승려시여, 비가 그만이면 되었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금고봉을 위로 또 한 번 가리키니, 삽시간에 천둥이 거두어지고 바람이 가라앉으며 비가 흩어지고 구름이 걷혔다. 국왕은 마음이 한껏 기뻤고 문무 관원이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하며 “훌륭한 중이로다! 이야말로 센 자 가운데 더 센 자가 있는 것이로구나! 우리 국사께서 비를 비는 것이 영험하기는 하나 날이 개기를 원하면 가는 비가 반나절은 더 내려 맑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이 중은 맑기를 원하자마자 맑아져서 삽시간에 해가 쨍쨍이 떠오르고 만 리에 구름 한 점 없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국왕이 수레를 돌리라 하고 관문을 교환하여 삼장법사를 보내 주려 하였다. 막 옥새를 찍으려 하는데, 또 그 도사 셋이 앞으로 나서며 가로막고 “폐하, 이번 비는 전혀 중의 공이 아니옵니다. 오히려 우리 도문의 힘이옵니다”라고 말했다. 국왕이 “그대들이 방금 용왕이 집에 없어서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였거늘, 그가 올라가서 고요한 공력으로 기도하자 곧 비가 내렸는데, 어찌하여 또 그와 공을 다투느냐? 무슨 까닭이오?”라고 말했다. 호력대선이 “내가 단에 올라가 문서를 발하고 격문을 태우며 영패를 쳤사온데, 저 용왕이 감히 오지 않으리이까? 아마도 다른 곳에서 청하는 바람에 바람과 구름과 천둥과 비의 다섯 관청이 모두 자리를 비웠다가, 내 명령을 듣고 급히 달려오던 길에 마침 내가 내려오고 그가 올라가는 때와 맞물려 이 기회를 만났으니 그리하여 비가 내린 것이옵니다. 뿌리를 따져 헤아리면 오히려 내가 청한 용이 내린 비어늘, 어찌 그것을 그의 공덕으로 셈한단 말이옵니까?” 그 국왕은 어리석고 혼란한지라 이 말을 듣고 또다시 의심이 풀리지 않았다. 행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두 손을 모으고 아뢰었다. “폐하, 이러한 방문의 법술은 공덕이 되지 못하옵고 내 것도 그의 것도 될 수 없사옵니다. 지금 사해용왕이 공중에 있사온데 이 중이 아직 돌려보내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감히 물러가지 못하고 있나이다. 저 국사께서 능히 용왕을 불러 몸을 나타내게 한다면 그것을 그의 공로로 치시옵소서.” 국왕이 크게 기뻐하며 “과인이 스물세 해 동안 임금 노릇을 하였으나 산 용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없노라. 너희 두 집안이 저마다 법력을 드러내어, 중이든 도사이든 불러 낼 수 있는 자가 곧 공이 있는 자요, 불러 내지 못하는 자에게는 죄가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그 도사들이 어찌 그런 재주가 있으랴. 불러 보라 하여도, 그 용왕이 대성이 있는 것을 보고는 감히 머리를 내밀지 못했다. 도사가 “우리는 하지 못하겠소. 그대가 불러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 대성이 얼굴을 들어 허공을 향하고는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오광은 어디 있느냐? 형제들은 모두 원신을 나타내어 보이라!” 그 용왕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급히 본신을 드러냈다. 네 마리 용이 반공중에서 안개를 헤치고 구름을 꿰어 금란전을 향해 날아오르는데, 과연 이러하였다. 날아오르며 모습을 바꾸고 안개를 끼고 구름을 감돈다. 옥 같은 발톱은 갈고리처럼 드리워져 희고, 은빛 비늘은 거울처럼 춤추며 밝다. 수염은 흰 비단이 날리듯 올올이 시원하고, 뿔은 우뚝 솟아 씩씩하고 맑다. 이마는 높이 솟아 있고 둥근 눈은 환하게 빛난다. 숨고 나타남을 헤아릴 수 없고, 날아오름을 평할 수가 없다. 비를 빌면 때를 따라 비를 펴고, 개기를 빌면 곧 날이 맑아진다. 이에야말로 영험하고 성스러운 참된 용의 모습이라, 상서로운 기운이 빛나며 전각과 뜰을 감도는구나. 그 국왕이 전각 위에서 향을 피우고 여러 공경이 섬돌 앞에서 절을 올렸다. 국왕이 “귀한 몸이 강림하시느라 수고하셨소. 돌아가시옵소서. 과인이 다른 날 초제를 올려 사례하리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여러 신들은 저마다 돌아가시오. 이 국왕께서 다른 날 초제를 올려 사례하신다 하오”라고 말했다. 그 용왕은 곧장 바다로 돌아가고 여러 신은 저마다 하늘로 돌아갔다. 이는 곧 이러하였다. 넓고 커서 가없는 참된 묘법이여, 지극한 참됨이 성품을 깨우쳐 방문을 쪼개는구나. 결국 어떻게 사악한 것을 없앴는지는 알 길이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6회 외도롱강기정법(外道弄強欺正法) · 심원현성멸제사(心猿顯聖滅諸邪) 말하자면, 그 국왕은 손행자에게 용을 불러 신통을 부리는 법이 있음을 보고 곧 통행 문서에 옥새를 찍어 삼장법사에게 건네 주며 서쪽 길로 놓아 보내려 하였다. 그 세 도사는 황급히 금란전 위에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으니, 그 황제가 즉시 용좌에서 내려와 옥수로 황망히 부축하며 “국사여, 오늘 이처럼 큰 예를 행하니 무슨 까닭이오?”라고 말했다. 도사가 아뢰기를 “폐하, 저희가 이곳에 이르러 사직을 보필하고 나라를 지켜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를 괴로이 이십 년을 겪어 왔나이다. 그런데 오늘 이 중이 법력을 부려 공로를 가로채 가니 우리의 명성을 더럽혔나이다. 폐하께서 한 차례 비를 두고 살인의 죄를 용서하신다면 저희를 가볍게 여기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우선 그의 통행 문서를 붙잡아 두시옵고, 저희 형제가 그와 다시 한 번 겨루어 보게 하옵소서”라고 아뢰었다. 그 국왕은 참으로 어리석고 어지러워 동쪽에서 말하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에서 말하면 서쪽으로 갔으니, 참으로 통행 문서를 거두어 들이며 “국사여, 그대는 그와 어찌 겨루려 하느냐?”라고 말했다. 호력대선이 “소신은 그와 좌선을 겨루려 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국사여, 그릇되었도다. 저 중은 선교에서 나온 몸이라 반드시 먼저 선의 기틀을 통달하였기에야 감히 성지를 받들어 경을 구하러 왔을 터인데, 그대가 어찌 그와 그것으로 겨루려 하느냐?”라고 말했다. 대선이 “소신의 이 좌선은 보통과 달라 별난 이름이 있사오니 운제현성이라 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무엇을 일러 운제현성이라 하느냐?”라고 물었다. 대선이 “탁자 백 개를 마련하여 쉰 개로 하나의 선대를 만들고 한 장씩 차곡차곡 쌓아 올린 뒤, 손을 짚어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사다리나 걸상을 쓰지도 않으며, 저마다 한 송이 구름을 타고 올라가 대 위에 앉아 약정한 몇 시진 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이를 보니 난처한 구석이 있어 곧 전지를 내려 물었다. “저 중이여, 우리 국사가 너와 운제현성 좌선을 겨루려 하니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잠자코 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팔계가 “형님, 어찌 말씀이 없으십니까?”라고 묻자 행자가 “아우야, 참으로 네게 숨기지 않고 말하마. 하늘을 걷어차고 우물을 뒤집기, 바다를 휘젓고 강을 뒤엎기, 산을 짊어지고 달을 쫓기, 북두성을 바꾸고 별을 옮기기 같은 온갖 묘한 일은 내가 다 해낼 수 있거니와, 목을 베고 머리를 썰기, 배를 가르고 염통을 파내기, 기이하게 몸을 날리는 것도 또한 두렵지 않다. 그러나 좌선을 말한다면 나는 지고 마는 수다. 내게 어찌 앉아 있을 성질이 있겠느냐? 너희가 나를 쇠기둥에 매달아 두어도 나는 위아래로 기어오를 터이니 앉아 있기를 바라지도 말라”라고 말했다. 삼장이 홀연히 입을 열어 “내가 좌선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기뻐하며 “참 좋구나! 참으로 좋구나! “얼마 동안이나 앉아 계실 수 있사옵니까?” 삼장이 “내가 어린 시절에 방외의 선승을 만나 도를 강하는 것을 들었는데, 목숨의 근본 자리에서 성품을 정히 하고 정신을 간직하여 사생의 관문 속에서도 두세 해쯤은 앉아 있을 수 있느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이 두세 해를 앉으시면 우리는 경을 구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옵니다. 많아야 두세 시진을 넘기지 않고 곧 내려오시면 되옵니다”라고 말했다. 삼장이 “제자야, 그러나 올라갈 수가 없느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이 앞으로 나아가 대답하시옵소서. 제가 올려다 드리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장로는 과연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빈승이 좌선을 할 수 있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전지를 내려 선대를 세우라 하였다. 나라에 산을 뒤엎을 만한 힘이 있어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두 개의 대가 금란전 좌우에 세워졌다. 그 호력대선이 전에서 내려가 섬돌 한가운데 서더니 몸을 한 번 솟구쳐 돗자리 구름 한 송이를 밟고 곧장 서쪽 대 위로 올라가 앉았다. 행자는 털 하나를 뽑아 가짜 몸으로 변해서는 팔계와 사승 곁에 서서 아래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오색 상서로운 구름을 일으켜 삼장법사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곧장 동쪽 대 위로 데려다 앉혔다. 그는 또 상서로운 빛을 거두고 초료충으로 변해 팔계의 귓가에 날아가 “아우야, 스승님을 잘 살펴보고 다시는 내 가짜 몸과 말을 섞지 말라”라고 말했다. 그 멍청한 놈이 웃으며 “알겠네! 알겠네!”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록력대선이 수놓은 방석에 앉아 한참을 지켜보았으나 그 둘이 높은 대 위에서 승부가 나지 않자, 이 도사가 제 사형을 돕고자 공을 하나 세우기로 하였다. 곧 뒤통수의 짧은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뭉쳐서 튕겨 올리니 곧장 삼장법사의 머리 위로 날아가 커다란 빈대 한 마리로 변해 장로를 물었다. 그 장로는 처음에는 가려움을 느끼더니 이내 아픔을 느꼈다. 본래 좌선하는 이는 손을 쓰지 못하고 손을 쓰면 진 것으로 치는데, 한순간 아픔을 견디기 어려워 그는 머리를 움츠리고 옷깃에 대고 가려운 곳을 비볐다. 팔계가 “큰일 났네! 스승님이 간질을 일으키셨네”라고 말했다. 사승이 “아니네, 두풍이 도진 게야”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우리 스승님은 뜻이 정직한 군자시라, 좌선을 할 수 있다 하시면 단연코 할 수 있고, 못 한다 하시면 다만 못 하는 것이니라. 군자의 집안에 어찌 그릇됨이 있겠느냐? 너희 둘은 말을 말고 내가 올라가 보마”라고 말했다. 훌륭한 행자여, 앙 하고 날아 삼장법사의 머리 위에 앉아 보니 콩알만한 빈대 한 마리가 스승님을 물고 있었다. 황급히 손으로 잡아 떼어 내고 스승님을 대신하여 긁어 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그 장로는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아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행자가 속으로 ‘중의 머리는 빤빤하여 이 하나 붙일 수 없거늘 어찌 이런 빈대가 있단 말인가? 필시 저 도사가 허황한 술법을 부려 우리 스승님을 해치는구나. 하하! 이대로 두면 승부가 나지 않으니 내 가서 그를 한번 골려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이 행자는 날아가 금전의 짐승 머리 위에 내려앉아 몸을 흔들어 변하니 일곱 치 길이의 지네 한 마리가 되어 곧장 도사의 콧구멍 속을 한 번 찔렀다. 그 도사는 앉아 있지를 못하고 한 바탕 곤두박질하여 아래로 떨어졌으니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는데, 다행히 크고 작은 관리들이 많아 구해 내었다. 국왕이 크게 놀라 즉시 당직 태사에게 명하여 그를 문화전으로 데려가 씻고 단장하게 하였다. 행자가 다시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스승님을 업어 섬돌 앞으로 내려왔으니 이미 장로가 승리한 것이었다. 그 국왕이 다만 놓아 보내라 하자 록력대선이 또 아뢰었다. “폐하, 저의 사형은 본래 어지럼증과 바람병을 앓고 있사온데,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하늘의 바람을 맞아 옛 병이 도졌나이다. 그러니 저 중이 이긴 것이옵니다. 우선 그를 붙잡아 두시옵고 저로 하여금 그와 격판추매를 겨루게 하옵소서.” 국왕이 “무엇을 일러 격판추매라 하느냐?”라고 물었다. 록력이 “빈도에게는 널빤지를 사이에 두고 물건을 아는 법이 있사오니, 저 중이 해낼 수 있는지 보시옵소서. 그가 저를 이기면 그를 나가게 하시옵고, 맞히지 못하거든 폐하께서 죄명을 물어 정하시어 저희 형제의 원한을 씻어 주시옵소서. 이십 년 나라를 보전한 은혜를 더럽히지 마옵소서”라고 아뢰었다. 참으로 그 국왕은 몹시 어리석어 이 참언을 따랐다. 곧 전지를 내려 주홍 칠을 한 궤짝 하나를 내관에게 명하여 전각으로 메어 오게 하고 왕비에게 보물 한 가지를 그 안에 넣어 두라 하였다. 잠시 뒤 메어 내어 백옥 섬돌 앞에 놓고 중과 도사에게 “너희 두 집이 각기 법력을 겨루어 저 궤짝 속에 무슨 보물이 들었는지 알아맞혀 보라”라고 일렀다. 삼장이 “제자야, 궤짝 속의 물건을 어찌 알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상서로운 빛을 거두고 다시 초료충으로 변해 삼장법사의 머리에 붙어 “스승님, 염려 마시옵소서. 제가 가서 보고 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훌륭한 대성이라, 살며시 궤짝 위로 날아가 그 궤짝 다리 밑에 기어붙어 보니 널빤지 틈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 틈으로 기어 들어가 보니 붉은 칠을 한 쟁반 안에 궁중 의복 한 벌이 놓여 있었으니, 바로 산하사직 저고리와 건곤지리 치마였다. 손으로 들어 흔들어 어지럽게 한 뒤 혀끝을 깨물어 피 한 입을 뿜으며 “변해라!” 하고 외치니 곧 해지고 너덜너덜한 장삼 한 벌로 변하였다. 떠나기 전에 또 오줌 한 줄기를 뿌리고는 도로 널빤지 틈으로 기어 나와 삼장법사의 귓가에 날아앉아 “스승님, 그저 해지고 넝마가 된 장삼이라고만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다. 삼장이 “보물을 알아맞히라 하는데, 넝마가 무슨 보물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상관 마시옵고 그저 그것이라 맞히기만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다. 삼장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막 맞히려 하는데, 그 록력대선이 “내가 먼저 맞히겠노라. 저 궤짝 속은 산하사직 저고리와 건곤지리 치마니라”라고 말했다. 삼장이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궤짝 속은 해지고 넝마가 된 장삼이옵니다”라고 말했다. 국왕이 “이 중이 무례하구나! 감히 우리나라에 보물이 없다며 무슨 넝마 장삼을 운운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잡아라!” 하고 외치자 양쪽 반열의 교위들이 곧 손을 쓰려 하였으니, 황급해진 삼장법사가 두 손을 모으고 크게 외쳤다. “폐하, 잠시 빈승을 용서하시옵소서. 궤짝을 열어 본 뒤에나 하시옵소서. 참으로 보물이거든 빈승이 죄를 받겠나이다. 보물이 아니라면 빈승이 원통하지 않겠나이까?” 국왕이 열어 보라 하였다. 당직 관리가 곧 열고 쟁반을 받들어 내어 보니 과연 해지고 넝마가 된 장삼이었다. 국왕이 크게 노하여 “누가 이런 물건을 넣었느냐?”라고 말했다. 용좌 뒤에서 삼궁의 황후가 나서며 “저의 임금님, 이 몸이 친히 산하사직 저고리와 건곤지리 치마를 넣었사온데, 어찌하여 이런 물건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어여쁜 이여, 물러가시오. 과인이 아는 바이오. 궁중에서 쓰는 물건은 비단과 명주, 능라가 아니면 없는 터에 무슨 넝마가 있겠소?” 하고 명하였다. “궤짝을 메어 오너라. 짐이 친히 보물 하나를 숨겨 두고 다시 시험해 보겠노라.” 그 황제가 곧 후궁으로 들어가 어화원의 선도나무에 열린 큰 복숭아 하나를, 사발만 한 크기로 익은 것을 따다가 궤짝 안에 넣고 다시 메어 내려 보내어 알아맞히라 하였다. 삼장이 “제자야, 또 알아맞히라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염려 마시옵소서. 제가 다시 가서 보고 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또 앙 하고 날아가 도로 널빤지 틈으로 기어 들어가 보니 복숭아 하나였으니 바로 그의 마음에 맞았다. 곧 본모습으로 나타나 궤짝 속에 앉아 그 복숭아를 입으로 모조리 파먹어 양쪽 볼까지 깨끗이 먹어 치우고 씨만 그 안에 두었다. 다시 초료충으로 변해 날아 나와 삼장법사의 귓가에 붙어 “스승님, 그저 복숭아 씨라고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다. 장로가 “제자야, 나를 골리지 말아라. 앞서 입이 가벼워 하마터면 형벌을 받을 뻔하였느니라. 이번엔 반드시 보물이라야 할 터인데, 복숭아 씨가 무슨 보물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두려워 마시옵소서. 그저 그를 이기기만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다. 삼장이 막 입을 열려 하는데, 그 양력대선이 “빈도가 먼저 맞히겠노라. 선도 한 개니라”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삼장이 “복숭아가 아니옵니다, 알맹이 없는 복숭아 씨이옵니다”라고 말했다. 그 국왕이 꾸짖어 “짐이 넣은 선도를 어찌 씨라 하느냐? 삼국사가 맞혔도다”라고 말했다. 삼장이 “폐하, 열어 보시면 아시옵니다”라고 아뢰었다. 당직 관리가 또 메어 올려 열고 쟁반을 받들어 내니 과연 씨 하나였으니 껍질과 살이 모조리 없었다. 국왕이 이를 보고 마음이 놀라 말했다. “국사여, 그와 겨루기를 그만두고 그를 가게 하시오. 과인이 친히 숨긴 선도가 이제 겨우 씨 하나만 남았으니 누가 먹어 치운 것이냐? 필시 귀신이 남몰래 돕는 것이로다.” 팔계가 이 말을 듣고 사승과 함께 빙그레 비웃으며 “저 사람이 복숭아를 잘 먹는 묵은 선수인 줄은 아직도 모르는구나!”라고 말했다. 이야기가 한창이었는데, 문득 그 호력대선이 문화전에서 씻고 단장한 뒤 전 앞으로 올라와 아뢰었다. “폐하, 이 중에게는 물건을 옮겨 바꾸는 술법이 있사옵니다. 궤짝을 메어 올리시옵소서. 제가 그 술법을 깨뜨리고 그와 다시 맞히겠나이다.” 국왕이 “국사는 또 무엇을 맞히려 하오?”라고 묻자 호력이 “술법이란 다만 물건이나 바꿀 수 있고 사람의 몸은 바꿀 수 없사옵니다. 이 도동을 그 속에 숨겨 두시면 그가 바꿔치기하지 못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어린 도동이 과연 궤짝 속에 숨겨지고 궤짝 뚜껑을 덮어 아래로 메어 내려가며 “저 중아, 다시 맞혀 보라. 이번 세 번째는 무슨 보물이냐?”라고 일렀다. 삼장이 “또 왔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제가 다시 가서 보고 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앙 하고 또 날아가 그 속으로 기어 들어가 보니 어린 도동 하나였다. 훌륭한 대성이여, 그에게 식견이 있었으니 참으로 몸을 날리는 재주는 천하에 드물고 이처럼 영리함은 세상에 드물도다! 그는 곧 몸을 흔들어 변하여 늙은 도사와 같은 모습이 되어 궤짝 속으로 들어가며 “제자야” 하고 불렀다. 도동이 “스승님, 어디서 오셨나이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나는 둔법을 써서 왔노라”라고 말했다. 도동이 “오신 까닭에 무슨 가르침이 있으시옵니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저 중이 네가 궤짝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느니라. 그가 도동이라 맞히면 또 지지 않겠느냐? 그래서 특별히 너와 의논하러 왔노니, 머리를 깎고 우리가 중이라 맞히자꾸나”라고 말했다. 도동이 “스승님께서 처분하시는 대로 하겠나이다. 다만 우리가 그를 이기기만 하면 되옵니다. 만약 다시 그에게 진다면 명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조정에서 존중하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옳은 말이로다. 얘야, 이리 오너라. 그를 이기면 내가 후하게 상을 주리라”라고 말했다. 여의금고봉을 삭발 칼 하나로 변하게 하고 그 도동을 껴안은 채 입으로 “얘야, 아픔을 참고 소리 내지 말아라. 내가 머리를 깎아 주마”라고 말했다. 잠시 뒤 머리카락을 깎아 내어 한 덩이로 뭉쳐 궤짝 다리의 그늘진 모퉁이에 쑤셔 박고, 칼을 거두고서 그의 빤빤한 머리를 어루만지며 “얘야, 머리는 중 같아졌으나 옷이 어울리지 않는구나. 벗어 보아라, 내가 변하게 해 주마”라고 말했다. 그 도동이 입고 있던 것은 쪽파처럼 연한 흰빛 바탕에 구름 머리 무늬를 꽃수로 놓고 비단으로 테를 두른 학창의 한 벌이었는데, 참으로 벗어 내자 행자가 선기운 한 입을 불며 “변해라!” 하고 외치니 곧 누런 흙빛 장삼 한 벌로 변하여 그에게 입혔다. 또 털 두 개를 뽑아 목탁 하나로 변하게 하여 그의 손에 쥐어 주며 “제자야, 잘 들어 두어라. 다만 도동이라 부르면 절대로 나오지 말고, 중이라 부르거든 네가 궤짝 뚜껑을 밀쳐 열고 목탁을 치며 불경 한 권을 외우고 기어 나오너라. 그래야 성공이니라”라고 말했다. 도동이 “저는 다만 《삼관경》과 《북두경》, 《소재경》만 외울 줄 알고 불가의 경은 외울 줄 모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너는 염불할 줄 아느냐?”라고 물었다. 도동이 “아미타불, 그것쯤이야 누가 못 외우겠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럼 됐다, 됐어. 염불이나 해라, 내가 또 가르칠 수고를 덜겠구나. 꼭 명심해라, 나는 가노라”라고 말했다. 다시 초료충으로 변해 기어 나와 삼장법사의 귓바퀴에 날아앉아 “스승님, 그저 중이라고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다. 삼장이 “이번에는 그가 틀림없이 이기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은 어찌 그리 단정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삼장이 “경에 이르기를 불과 법과 승, 세 가지 보물이 있다 하였느니라. 중도 또한 한 보물이니라”라고 말했다. 이야기가 한창인데 문득 그 호력대선이 “폐하, 세 번째는 도동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아무리 불러도 그 아이는 나오려 하지 않았다. 삼장이 두 손을 모으고 “중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팔계가 있는 힘을 다해 크게 외쳤다. “궤짝 속은 중이로구나!” 그 도동이 홀연 궤짝 뚜껑을 밀쳐 열고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고 기어 나왔다. 기뻐한 것은 양쪽 반열의 문무백관이니 일제히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고, 놀란 것은 그 세 도사들이니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국왕이 “이 중에게는 귀신이 보필하는구나! 어찌 도사가 궤짝에 들어갔다가 중으로 변한단 말이냐? 설령 이발사가 따라 들어갔다 한들 머리나 깎았을 터인데, 어찌 옷까지 몸에 맞고 입으로는 염불까지 한단 말이냐? 국사여! 그를 가게 하시오!”라고 말했다. 호력대선이 “폐하, 어차피 바둑에는 대적수가 있고 장수에게는 좋은 재목이 만나는 법이옵니다. 빈도가 종남산에서 어릴 적에 배운 무예를 가지고 차라리 그와 한번 겨루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무슨 무예란 말이오?”라고 물었다. 호력이 “저희 형제 셋은 모두 신통이 좀 있사옵니다. 목을 베어도 도로 붙일 수 있고, 배를 가르고 염통을 파내도 다시 온전히 자라며, 끓는 기름솥 속에서도 목욕을 할 수 있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크게 놀라 “이 세 가지가 모두 죽음을 찾는 길이로다!”라고 말했다. 호력이 “저희에게 이런 법력이 있기에 감히 이런 큰소리를 내는 것이옵니다. 기어이 그와 승부를 가려야 하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국왕이 외쳤다. “동쪽 땅의 중아, 우리 국사가 너를 놓아 주지 않고 또 너와 목 베기와 배 가르기, 끓는 기름솥 목욕을 겨루려 하노라.” 행자가 마침 초료충으로 변해 오가며 소식을 전하고 있다가 홀연히 이 말을 듣고 곧 털을 거두고 본모습을 드러내어 크게 웃으며 “횡재로다! 횡재로다! 장사가 문 앞에 찾아왔도다!”라고 말했다. 팔계가 “이 세 가지는 모두 목숨을 잃는 일인데 어찌 장사가 문 앞에 왔단 말이냐?”라고 물었다. 행자가 “너는 아직 내 재주를 모르는구나”라고 말했다. 팔계가 “형님, 그저 이런 변화와 몸놀림만으로도 넉넉한데 어찌 또 이런 재주가 있단 말이냐?”라고 물었다. 행자가 “나야, 목을 베어도 말을 하고 팔을 썰어도 사람을 때린다. 다리를 잘라 내도 걸어 다니고, 배를 갈라도 도로 아물어 그 묘함이 절묘하니라. 마치 남의 집에서 만두를 빚듯이 한 번 쥐면 하나가 둥글게 붙는구나. 끓는 기름솥에서 목욕하기는 더욱 쉬워, 그저 더운 물에 때를 씻는 듯할 뿐이니라.” 팔계와 사승이 그 말을 듣고 껄껄 크게 웃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폐하, 소승이 목 베기를 할 수 있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너는 어찌 목 베기를 할 수 있단 말이냐?”라고 물었다. 행자가 “제가 예전에 절에서 수행할 때 일찍이 방외의 선승 하나를 만났는데, 저에게 목 베는 법 하나를 가르쳐 주었사온데 잘 되는지 어떤지 모르겠나이다. 이제 한번 새로 시험해 보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웃으며 “저 중은 어리고 철이 없구나. 목 베기가 어찌 새로 시험할 일이냐? 머리는 육양의 으뜸이니, 베어 내면 곧 죽느니라”라고 말했다. 호력이 “폐하, 바로 그가 저리 하여야만 우리의 분이 풀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그 어리석은 임금이 그 말을 믿고 곧 전지를 내려 사형장을 마련하라 하였다. 전지 한 마디에 곧 우림군 삼천이 조문 밖에 늘어섰다. 국왕이 명하였다. “중이 먼저 가서 목을 베어라.” 행자가 흔쾌히 “제가 먼저 가겠나이다! 제가 먼저 가겠나이다!” 하고 응답하며 두 손을 모으고 크게 외쳤다. “국사여, 대담하게도 먼저 나서는 것을 용서하시옵소서.”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삼장법사가 그를 붙잡으며 “제자야, 조심하여라. 그곳은 장난할 곳이 아니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까짓 것이 무섭단 말이냐! 손을 놓으시오, 내 갔다 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대성이 곧장 사형장 안으로 들어가니 사형 집행인에게 붙잡혀 한 덩이로 묶여 흙무더기 높은 곳에 눌렸다. 다만 “칼을 써라!” 하는 외침 한 소리가 들리더니 휙 하고 머리가 베어 내려졌고, 사형 집행인이 또 발로 한 번 차 버리니 마치 수박이 구르듯 서른 마흔 걸음쯤 굴러갔다. 행자의 목구멍에서는 피가 조금도 나지 않았고, 다만 뱃속에서 “머리야, 오너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수단을 보고 황급해진 록력대선이 곧 주문을 외워 본방의 토지신들에게 명하였다. “저 중의 머리를 붙잡아 두어라. 내가 그 중을 이겨 국왕에게 아뢴 뒤에 너희의 작은 사당을 큰 묘우로 고쳐 짓고, 흙으로 빚은 상을 정금으로 된 몸으로 바꾸어 주리라.” 본래 그 토지신들은 그에게 오뢰법이 있었으므로 그의 부림을 받았던 터라, 은밀히 참으로 행자의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행자가 또 “머리야, 오너라!” 하고 외쳤으나 그 머리는 마치 뿌리가 내린 듯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행자가 마음이 조급해져 주먹을 쥐고 한번 몸을 비틀자 묶였던 줄이 모조리 끊어졌다. 그가 “자라라!” 하고 외치니 휙 하고 목구멍에서 머리 하나가 자라 나왔다. 놀란 것은 그 사형 집행인들이니 저마다 가슴이 철렁하였고, 우림군은 사람마다 간담이 서늘하였다. 그 감참관이 급히 조정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만세, 저 어린 중은 목을 베었는데 또 머리 하나가 자라 나왔나이다.” 팔계가 비웃으며 “사승아, 형님에게 이런 수단이 있는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라고 말했다. 사승이 “형님에게 일흔두 가지 변화가 있으니 일흔두 개의 머리가 있는 게지”라고 말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행자가 걸어와 “스승님” 하고 불렀다. 삼장이 크게 기뻐하며 “제자야, 수고로웠느냐?”라고 물었다. 행자가 “수고롭지는 않고 도리어 재미있었나이다”라고 말했다. 팔계가 “형님, 칼자국에 바를 약이 필요하십니까?”라고 물었다. 행자가 “너희가 만져 보아라, 칼자국이 있느냐?”라고 말했다. 그 멍청한 놈이 손을 뻗어 한번 만져 보고는 멍하니 눈을 크게 뜬 채 웃으며 “묘하구나! 묘하구나! 완전히 자라났을 뿐만 아니라 상처 자국도 조금 없구나!”라고 말했다. 형제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는데, 또 국왕이 통행 문서를 내어 주라며 “너를 사면하여 죄가 없다! 어서 가라! 어서 가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행자가 “통행 문서는 받았사오나 국사께서도 형장에 나가 목을 한 번 베어 보셔야 하옵니다. 이번에는 그가 새로 시험하러 가실 차례외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대국사여, 저 중도 그대를 놓아 주지 않는구료. 그와 겨루어 이기시고, 과인을 겁먹게 하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호력도 하는 수 없이 가야 했으니 몇몇 사형 집행인에게 묶여 땅에 엎어졌고, 번쩍하더니 머리가 베어 내려지고 한 발로 또한 차 버려 서른 걸음 남짓 굴러갔다. 그의 목구멍에서도 피가 나지 않았고 또한 “머리야, 오너라!” 하고 외쳤다. 행자가 곧 털 하나를 뽑아 선기운을 한 입 불며 “변해라!” 하니 누런 개 한 마리로 변해 사형장 한가운데로 달려가 그 도사의 머리를 한 입에 물고는 곧장 어수하 강가로 달려가 버렸으니, 뒤의 일은 잠시 말하지 않겠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도사가 세 번을 불러도 머리가 오지 않으니, 행자의 수단과는 같지 않아 자라 나오지 못하고 목구멍에서 뚝뚝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 가련하게도 비바람을 부르는 법을 헛되이 지녔을 뿐, 어찌 장생하여 바른 신선이 된 이와 견주랴. 잠시 뒤 티끌 속에 쓰러졌는데, 사람들이 보니 머리 없는 누런털 호랑이 한 마리였다. 그 감참관이 또 와서 아뢰었다. “만세, 대국사는 목을 베고 나서 자라 나지 못하고 티끌 속에 죽었나이다. 머리 없는 누런털 호랑이었나이다.” 국왕이 그 아룀을 듣고 크게 놀라 낯빛이 변하여 눈을 깜박이지 않은 채 그 두 도사를 바라보았다. 록력이 일어나며 아뢰었다. “제 사형은 이미 목숨이 다하고 녹이 끊겼나이다. 어찌 누런 호랑이가 되었단 말이옵니까! 이는 모두 저 중이 게을러터진 짓을 하여 눈가림 법을 부려 우리 사형을 짐승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옵니다. 저는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고 기어이 그와 배 가르기와 염통 파내기를 겨루겠나이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려 또 외쳤다. “저 중아, 이국사가 또 너와 겨루려 하노라.” 행자가 “소승은 오래도록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였사온데, 그저께 서쪽으로 오는 길에 갑자기 재가집에서 밥을 권하는 것을 만나 떡을 몇 개 많이 먹었나이다. 요 며칠 배가 아픈 것을 보니 벌레가 생긴 듯하옵니다. 마침 폐하의 칼을 빌려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비위를 씻어 내어야만 서천으로 가 부처님을 뵐 수 있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그를 형장으로 끌고 가라” 하고 명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부축하는 이도 있고 잡아당기는 이도 있었다. 행자가 손을 뿌리치며 “사람이 부축할 것 없소. 내 스스로 걸어 가겠소. 다만 한 가지, 손을 묶지 말아 주시오. 내가 손을 써야 내장을 씻을 수 있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국왕이 전지를 내려 “그의 손을 묶지 말라” 하고 명하였다. 행자가 흐느적흐느적 곧장 사형장으로 가서 몸을 큰 말뚝에 기대고 옷끈을 풀어 배를 드러내었다. 그 사형 집행인이 밧줄 하나를 그의 목에 걸고 또 밧줄 하나로 그의 다리를 묶은 뒤 쇠귀 모양의 짧은 칼 한 자루를 번쩍 들어 배 아래를 한 번 그어 구멍 하나를 뚫었다. 이 행자가 두 손으로 배를 벌리고 창자를 꺼내어 한참 동안 가지런히 정리한 뒤 도로 그 속에 넣고 예전대로 둘둘 말아 넣고는 배를 어루만지며 선기운을 한 입 불고 “자라라!” 하니 예전대로 아물었다. 국왕이 크게 놀라 그의 통행 문서를 두 손에 받들며 “성스러운 스님이여, 서행을 늦추지 말고 이 통행 문서를 가지고 가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통행 문서는 하찮은 것이외다. 이국사께서도 배를 한번 갈라 보시면 어떠하옵니까?”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록력에게 “이 일은 과인과 상관이 없소. 그대가 그와 맞수가 되기를 자청한 것이니 가보시오, 가보시오”라고 말했다. 록력이 “염려 마시옵소서. 제가 그에게 지지는 않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보아라, 그도 또한 손오공처럼 흐느적흐느적 사형장으로 들어가 사형 집행인에게 밧줄을 걸리고 쇠귀 짧은 칼로 휙 소리가 나게 배를 갈랐다. 그도 또한 간과 창자를 꺼내어 손으로 정리하였다. 행자가 곧 털 하나를 뽑아 선기운을 한 입 불며 “변해라!” 하니 굶주린 매 한 마리로 변해 날개와 발톱을 펴고 휙 하고 그의 오장과 심간을 모조리 긁어 채 갔으니, 어느 곳으로 날아가 즐기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도사는 텅 빈 가슴과 터진 배를 지닌 비린내 나는 귀신이 되고, 내장 없고 창자 없는 떠도는 혼이 되었다. 그 사형 집행인이 큰 말뚝을 발로 차 넘기고 시신을 끌어다 보니, 아! 본래 흰털에 뿔 달린 사슴 한 마리였다! 황급해진 그 감참관이 또 와서 아뢰었다. “만세, 이국사는 재수가 없었나이다. 막 배를 가르는 판에 굶주린 매 한 마리가 내장과 간과 창자를 모조리 채어 갔나이다. 그곳에 죽어 있는 것은 본모습이 흰털에 뿔 달린 사슴이었나이다.” 국왕이 겁을 먹으며 “어찌하여 뿔 달린 사슴이란 말이냐?”라고 물었다. 그 양력대선이 또 아뢰었다. “제 사형들이 이미 죽었거늘 어찌 짐승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단 말이옵니까! 이는 모두 저 중이 술법을 부려 우리를 모함하는 것이옵니다. 제가 사형들을 위하여 원수를 갚겠나이다.” 국왕이 “그대에게 무슨 법력으로 그를 이기겠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양력이 “저는 그와 끓는 기름솥에 들어가 목욕하기를 겨루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곧 큰 솥 하나를 가져오라 하여 향기로운 기름을 가득 채우고 그 둘이 겨루어 보라 하였다. 행자가 “잘 보살펴 주셔서 고맙나이다. 소승은 오래도록 목욕을 하지 못하여 요 며칠 피부가 까칠하고 가려웠사온데, 좋든 싫든 한번 들어가 헹구어 보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그 당직 관리가 과연 솥을 놓고 마른 장작을 쌓아 세찬 불을 붙여 기름을 끓게 한 뒤 중에게 먼저 내려가라 하였다. 행자가 두 손을 모으고 “문세로 하시겠나이까, 무세로 하시겠나이까?”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문세는 어떠하며 무세는 어떠하냐?”라고 물었다. 행자가 “문세는 옷을 벗지 않고 이렇게 두 손을 깍지 낀 채 내려가 한 번 굴러서 곧 일어나는 것이니, 옷을 더럽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사옵니다. 기름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진 것이외다. 무세는 옷걸이 하나와 수건 한 장을 가져다 놓고 옷을 벗은 뒤 뛰어 내려가 마음대로 곤두박질을 치고 물구나무를 서며 장난하듯 씻는 것이외다”라고 아뢰었다. 국왕이 양력에게 “그대는 그와 문세로 하겠소, 무세로 하겠소?”라고 물었다. 양력이 “문세는 그의 옷이 약으로 단련되어 기름을 막을까 두렵사옵니다. 무세로 하겠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또 앞으로 나서며 “대담하게도 번번이 먼저 나서는 것을 용서하시옵소서”라고 아뢰었다. 보아라, 그가 베로 된 장삼을 벗고 호랑이 가죽 치마를 훌렁 벗어 던지고 몸을 한 번 솟구쳐 솥 안으로 뛰어들어 물결을 뒤집고 파도를 일으키니, 마치 물에 뜨는 것처럼 장난을 쳤다. 팔계가 이를 보고 손가락을 물며 사승에게 “우리도 이 원숭이를 잘못 보았네! 평소에 시시덕거리는 말로 그를 놀려 먹더니, 어찌 그에게 이런 참된 재주가 있는 줄 알았겠느냐!”라고 말했다. 그 둘이 소곤소곤 칭찬을 마지않았다. 행자가 이를 보고 마음에 의심하며 ‘저 멍청한 놈이 나를 비웃는구나! 참으로 재주 있는 자는 애쓰고 어리석은 자는 한가롭다더니, 내가 이렇게 재롱을 부리는데 저놈은 편안하구나. 내가 저놈을 한번 묶어 두게 하여 겁을 먹는지 보자’라고 생각했다. 한창 목욕을 하던 중에 물보라 하나를 일으켜 기름솥 바닥으로 잠수하여 대추씨만 한 못으로 변해서는 다시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 감참관이 다가와 또 아뢰었다. “만세, 어린 중이 끓는 기름에 삶겨 죽었나이다.” 국왕이 크게 기뻐하여 뼈를 건져 올려 보라 하였다. 사형 집행인이 쇠로 만든 국자 하나를 기름솥 속에서 휘저어 건졌으나, 본래 그 국자의 눈이 성글고 행자가 변한 못이 작았으므로 이리저리 오가는 동안 눈구멍으로 빠져 나가 버려 어찌 건질 수 있었겠는가! 또 아뢰었다. “중은 몸이 보잘것없고 뼈가 여려 모조리 녹아 버렸나이다.” 국왕이 명하였다. “중 셋을 아래로 끌고 가라!” 양쪽의 교위들이 팔계의 얼굴이 사나운 것을 보고 먼저 넘어뜨려 등에 줄을 묶었으니, 황급해진 삼장법사가 크게 외쳤다. “폐하, 잠시 빈승을 용서하시옵소서. 저의 그 제자는 교법에 귀의한 이래로 줄곧 공로가 있었사온데, 오늘 국사를 거스르다 기름솥 속에서 죽었나이다. 그러나 먼저 죽은 이가 신이 된다고 하였으니 이 빈승이 어찌 감히 목숨을 아끼겠나이까! 참으로 천하의 관리가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듯, 폐하께서 신하에게 죽으라 하시면 신하가 어찌 감히 죽지 않겠나이까? 다만 너그러운 은혜를 베푸시어 찬물을 곁들인 밥 반 그릇과 종이말 세 장을 내려 주시옵소서. 기름솥 가에 가서 이 종이 한 무더기를 태우고 저의 사제지간 정을 표하게 하여 주신다면 그때에 가서 죄를 받겠나이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옳은 말이로다. 저 중화의 사람들은 의리가 많도다”라고 말했다. 명하여 미음과 밥, 누런 종이돈을 그에게 주게 하였다. 과연 가져다가 삼장법사에게 건네주었다. 삼장법사가 사승에게 함께 가자 하여 섬돌 아래에 이르니, 몇몇 교위가 팔계의 귀를 잡아끌어 솥 가로 끌고 왔다. 삼장법사가 솥을 향하여 축원하였다. “제자 손오공이여! 계를 받고 선림에 절한 이래로, 나를 지켜 서쪽으로 온 은혜가 깊었구나. 함께 큰 도를 이루기를 바랐거늘, 어찌 오늘 네가 저승으로 갔단 말이냐! 살아서는 다만 경을 구하려는 뜻이었으나, 죽어서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았구나. 만 리를 간 영혼이여 모름지기 기다려라, 유명에서 귀신이 되어 뢰음사로 올라가거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스승님, 그런 식으로 축원하시면 안 되옵니다. 사승아, 네가 대신 미음과 밥을 올려라. 내가 빌겠다”라고 말했다. 그 멍청한 놈이 땅에 묶인 채 성이 나서 헐떡이며 “사고 치는 미친 원숭아, 무식한 필마온! 죽어 마땅한 미친 원숭아, 기름에 삶긴 필마온! 원숭이는 끝장이고 필마온은 뿌리 뽑혔구나!” 손행자가 기름솥 바닥에서 그 멍청한 놈이 마구 욕하는 소리를 듣고 참지 못하여 본모습을 드러내어 벌거벗은 몸으로 기름솥 바닥에 서서 “먹보 멍청이야! 누구를 욕하느냐!”라고 외쳤다. 삼장법사가 이를 보고 “제자야, 나를 놀라 죽이는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형님은 깨끗하게 죽은 척하는 데 도가 텄구나!”라고 말했다. 황급해진 양쪽 반열의 문무백관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만세, 저 중은 죽지 않았나이다. 또 기름솥 속에서 기어 나왔나이다.” 감참관은 조정을 속이는 일이 될까 두려워하며 또 아뢰었다. “죽기는 죽었사오나 다만 날짜가 흉하여 저 어린 중이 와서 혼령을 드러내는 것이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솥에서 뛰어나와 기름때를 닦고 옷을 입고 봉을 뽑아 들고는 감참관을 붙잡아 머리를 내리쳐 고기 덩이로 만들어 버리며 “내가 무슨 혼령을 드러낸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놀란 여러 관리들이 황급히 팔계를 풀어 주고 땅에 엎드려 애걸하였다. “용서하옵소서! 용서하옵소서!” 국왕이 용좌에서 내려 걸어 나왔다. 행자가 전으로 올라가 그를 붙잡으며 “폐하, 가려 하지 마시옵소서. 우선 삼국사께도 기름솥에 내려가 보게 하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그 황제가 부들부들 떨며 “삼국사여, 그대가 짐의 목숨을 구하시오. 어서 솥에 내려가 그 중이 나를 때리지 못하게 하시오”라고 말했다. 양력이 전에서 내려와 행자와 같이 옷을 벗고 기름솥에 뛰어내려 또한 그와 같이 어물어물 목욕을 하였다. 행자가 국왕을 놓아 주고 기름솥 가로 다가가 불을 지피는 이에게 장작을 더하라 하고는, 손을 뻗어 한 번 더듬어 보고, 아! 그 끓던 기름이 모조리 차갑게 식어 있었다. 속으로 ‘내가 씻을 때는 끓도록 뜨거웠는데 그가 씻을 때는 도리어 차갑구나. 내가 알겠다. 이건 어느 용왕이 여기서 그를 지켜 주고 있는 것이로구나’라고 생각했다. 급히 몸을 솟구쳐 공중으로 뛰어올라 “옴” 자 주문을 외워 북해용왕을 불러다 놓고 “이 뿔 달린 지렁이요, 비늘 달린 미꾸라지 같은 놈! 네가 어찌 도사를 도와 냉룡으로 솥바닥을 지켜 그가 신성을 드러내어 나를 이기게 하느냐!”라고 꾸짖었다. 놀란 그 용왕이 연신 예를 올리며 “오순이 감히 돕지 않았나이다. 대성께서는 본래 모르시는구려. 이 못된 짐승이 고행을 한바탕 하여 본 껍질을 벗었사오나 다만 오뢰법만 참되이 받았을 뿐, 나머지는 모두 방문을 밟아 신선의 도로 돌아가기 어렵사옵니다. 이것은 그가 소모산에서 배워 온 대개박이옵니다. 저 두 놈은 이미 대성께서 그 법을 깨뜨려 본모습을 드러내었거니와, 이놈도 또한 그가 스스로 단련한 냉룡이라 다만 세속의 사람들을 속여 장난하는 데나 쓸 만하옵니다. 어찌 대성을 속일 수 있겠나이까! 소룡이 이제 그의 냉룡을 거두어 가면 그의 뼈가 부서지고 가죽이 타서 무슨 수단을 드러내겠나이까”라고 아뢰었다. 행자가 “어서 거두어라, 매 맞기 싫거든!”이라고 말했다. 그 용왕이 회오리바람 한 줄기로 변하여 기름솥 가로 가서 냉룡을 잡아 바다로 데리고 내려갔으니 뒤의 일은 말하지 않겠다. 행자가 내려와 삼장법사와 팔계, 사승과 함께 전 앞에 서서 그 도사가 끓는 기름솥 속에서 발버둥치며 기어 나오지 못하고 미끄러져 한 번 넘어지는 것을 보니, 삽시간에 뼈가 빠지고 가죽이 타고 살이 문드러졌다. 감참관이 또 와서 아뢰었다. “만세, 삼국사가 삶겨 녹아 버렸나이다.” 그 국왕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옥안을 손으로 두드리며 소리 내어 크게 통곡하였다. “사람의 몸 얻기 어렵다더니 과연 어렵구나, 참된 전수를 만나지 못했거든 단약을 벗기지 말지어다. 신을 몰고 물을 주술하는 재주를 헛되이 지녔을 뿐, 목숨을 늘리고 삶을 보전하는 환약은 없구나. 원명이 혼미한데 어찌 열반에 들 것인가, 부질없이 꾀만 부려 목숨이 편치 못하구나. 이토록 가볍게 꺾일 줄을 일찍 알았더라면, 은밀히 먹으며 산에 편안히 사는 것만 같으랴!” 결국 이러하였다. 금을 점으로 만들고 수은을 벗겨 무슨 도움이 되랴, 비를 부르고 바람을 불러도 모두 헛것이로다! 결국 사부와 제자들이 어떻게 버티어 나갈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7회 성승야조통천수(聖僧夜阻通天水) · 금목수자구소동(金木垂慈救小童) 말하자면, 저 군왕은 용상에 몸을 기댄 채 샘물이 솟구치듯 눈물을 흘려, 날이 저물도록 그치지 않고 울고만 있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어찌하여 그토록 어리석고 혼란스러우시오! 보시오, 저 도사들의 주검이 그대로 놓여 있지 않소. 하나는 범이요 하나는 사슴이며, 저 양력이라는 자는 영양이오. 믿지 못하겠거든 뼈를 건져 올려 보시오. 어디 사람의 해골이 저런 모양이겠소? 그들은 본래 도를 이룬 산짐승이라, 한마음으로 여기까지 와서 그대를 해치려 하였으나 그대의 기수가 아직 왕성한 것을 보고 감히 손을 쓰지 못한 것이오. 만약 다시 두 해가 지나 그대의 기수가 쇠잔해지면, 그들이 그대의 목숨을 해치고 그대의 강산을 통째로 저희 차지로 삼았을 것이오. 다행히 우리가 일찍 와서 요사한 무리를 없애고 그대의 목숨을 구하였거늘, 그대는 도리어 무엇을 우느냐? 무엇을 우느냐! 어서 관문을 내어 주고 우리를 보내시오.” 군왕이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문무의 여러 관원이 모두 아뢰었다. “죽은 것들이 과연 흰 사슴과 누런 범이었사옵고, 기름 솥 속에 있던 것도 과연 양의 뼈이었나이다. 성스러운 스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군왕이 말했다. “그러하다면 성스러운 스님께 감사를 드리오. 오늘은 날이 이미 늦었으니 태사더러 우선 성스러운 스님을 지연사로 모시게 하라. 내일 조회를 열거든 동각을 크게 열고, 광록시에 명하여 맑고 정갈한 잔치를 차려 보답하게 하라.” 과연 그들을 절로 보내어 편안히 쉬게 하였다. 이튿날 오경 무렵, 군왕이 조회를 열고 여러 관원을 모아 놓고는 전지를 내렸다. “어서 승려를 모집하는 방문을 내어라. 네 대문과 여러 길거리에 모조리 붙이라.” 한편으로는 잔치를 성대히 차려 놓고, 수레를 몰아 조정을 나와 지연사 문 밖에 이르러 삼장 일행을 청하여 함께 동각으로 들어가 잔치에 나아갔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저 목숨을 건져 낸 승려들이 승려를 모집하는 방문이 내렸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저마다 기뻐하며 모두 성 안으로 들어와 손대성을 찾아다니며, 털을 도로 바치고 은혜에 사례하였다. 이 장로가 잔치를 파하자, 저 군왕은 관문을 바꾸어 주고 황후와 빈비, 양반의 문무 관원과 함께 조정 문 밖까지 나와 전송하였다. 그때 저 승려들이 길가에 꿇어앉아 절을 올리며 입으로 아뢰었다. “제천대성 할아버님! 저희는 모래톱에서 목숨을 건진 승려들이옵니다. 할아버님께서 요망한 무리를 쓸어 버리고 저희를 건져 주셨다는 말을 들었사옵고, 또한 우리 임금께서 방을 내어 승려를 모집하시는 은혜까지 입었사옵니다. 특별히 털을 도로 바치려 왔사오니, 하늘 같은 은혜에 머리 조아려 사례하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너희는 몇 명이나 왔느냐?”라고 말했다. 승려들이 “오백 명이옵니다. 반 명도 모자라지 않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몸을 한 번 떨고는 털을 거두어들인 뒤, 임금과 신하, 승려와 속인을 향해 말했다. “이 승려들은 실로 이 늙은 손이 놓아 준 것이요, 저 수레도 이 늙은 손이 쌍관을 돌리고 척추를 끼운 듯한 길을 지나가며 부숴 버린 것이며, 저 두 요사한 도사도 이 늙은 손이 때려 죽인 것이니라. 오늘 요사한 무리를 멸하고 나서야 비로소 선문에 도가 있음을 알았느니라. 이후로는 다시는 함부로 굴고 함부로 믿지 말지니라. 바라건대 그대는 삼교를 하나로 돌려, 승려도 공경하고 도사도 공경하며 인재를 기르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의 강산이 길이 굳건하리라 보장하겠노라.” 군왕이 그 말을 좇아 감사를 마지않고는 마침내 당승을 성 밖까지 전송하여 보냈다. 이번 길을 나선 것은 오로지 삼장의 경전을 위하여 부지런히 힘쓰고, 일원의 빛을 닦아 밝히고자 함이었다. 새벽에 길을 가고 밤에 머물며, 목마르면 마시고 시장하면 먹으면서 가는 동안, 어느덧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시들어 다시 가을 빛의 날씨가 되었다. 어느 날, 날이 이미 저물자 당승이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며 “제자들아, 오늘 밤은 어디에서 몸을 붙이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 출가인은 저 속가 사람의 말씀을 하지 마옵소서”라고 말했다. 삼장이 “속가 사람은 어떠하며, 출가인은 또 어떠하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속가 사람은 이맘때 따뜻한 자리와 포근한 이불 속에서 품에는 자식을 안고 발치에는 아내를 걸친 채 스스로 편안히 잠을 자는 것이오. 우리 같은 출가인이야 어찌 그럴 수 있겠소! 다만 달을 이고 별을 두르며, 바람을 먹고 물가에서 자야 하니, 길이 있으면 곧 가고 길이 없을 때라야 머무는 것이오.” 저팔계가 “형님, 형님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오. 지금 길이 몹시 험하고 가파른 데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 참으로 걷기가 어렵소. 반드시 묵을 곳을 찾아 한숨 푹 자고 정신을 좀 추슬러야, 내일이라야 짐을 견딜 수 있소. 그렇지 않으면 나를 지쳐 쓰러지게 하는 것 아니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달빛을 타고 한참을 더 가서, 인가가 있는 곳에 닿거든 그때 가서 묵도록 하자.” 사부와 제자들은 어쩔 도리가 없어 그저 행자를 따라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또 얼마 걷지 않아, 도도하게 물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팔계가 “망했다! 길의 끝에 닿았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한 줄기 물이 길을 막고 있사옵니다”라고 말했다. 당승이 “그러면 어찌 건넌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제가 한번 시험해 보아 깊고 얕음이 어떠한지 알아보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삼장이 “오능, 헛된 소리 말아라. 물의 깊고 얕음을 어찌 시험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강돌 하나를 찾아 한가운데로 던져 보면 되옵니다. 만약 물거품이 튀어 오르면 얕은 것이고, 꾸르륵 가라앉으며 소리가 나면 깊은 것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네가 가서 시험해 보아라”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는 길가에서 돌덩이 하나를 더듬어 줍고는 물을 향해 내던졌다. 그러자 꾸르륵 소리가 나며 물고기 비늘 같은 물거품이 일더니, 돌은 물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가 “깊어, 깊어, 깊어! 갈 수 없어!”라고 말했다. 당승이 말했다. “너는 깊고 얕음은 시험해 알아냈지만,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는구나.” 저팔계가 “그것은 모르겠사옵니다, 정말 모르겠사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가 가서 보마”라고 말했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근두운을 타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눈을 고정하고 바라보니, 과연 이러하였다. 넘실넘실 빛이 달을 적시고, 드넓은 그림자가 하늘에 떠 있구나. 신령한 물줄기는 화악산을 삼키고, 긴 물길은 온갖 내를 꿰뚫는구나. 천 겹의 사나운 물결이 구르고, 만 겹의 가파른 파도가 솟구치는구나. 나루 어귀에는 고기잡이 불빛도 없고, 모래밭 머리에는 해오라기만 잠들었구나. 아득하여 온통 바다만 같고, 한 번 둘러보니 더욱 끝이 없구나. 행자가 황급히 구름머리를 거두어 강가로 내려와 말했다. “스승님, 넓사옵니다, 몹시 넓사옵니다! 갈 수가 없사옵니다! 이 늙은 손의 불꽃 같은 눈은 대낮에도 늘 천 리를 내다보고 흉하고 길한 것까지 훤히 아는데, 밤중에도 또한 삼백에서 오백 리는 바라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언덕조차 아예 보이지 않으니, 어찌 그 넓이를 헤아려 정할 수 있겠습니까?” 삼장이 크게 놀라 입이 떨어지지 않다가, 목소리가 메어 간신히 “제자들아,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사승이 “스승님, 우시지 마옵소서. 저기 물가에 서 있는 것을 보시옵소서. 그것이 사람이 아니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아마 그물을 들어 올리는 어부일 터이니, 내가 가서 물어 보고 오겠사옵니다”라고 말했다. 쇠몽둥이를 들고 두세 걸음에 그 앞으로 달려가 살펴보니, 아! 사람이 아니라 돌비석 한 면이었다. 비석에는 전서로 쓴 큰 글자 세 자가 있고, 그 아래 두 줄에 작은 글자 열 자가 있었다. 큰 글자 세 자는 통천하이요, 작은 글자 열 자는 “지나가기 팔백 리, 예로부터 행인 드물다”였다. 행자가 “스승님, 오셔서 한번 보시옵소서”라고 외쳤다. 삼장이 그것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자들아, 내가 지난날 장안을 떠날 때만 해도 서천은 가기 쉽다고 여겼거늘, 어찌 요마가 길을 막고 산과 물이 아득히 멀 줄을 알았으랴!”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스승님, 잠깐 들어 보시옵소서. 어디선가 북과 발 소리가 들리지 않사옵니까? 아마 재를 올리는 집인 듯하옵니다. 우리가 그리로 가서 공양이나 얻어먹고, 나루터를 물어 배나 찾아 내일 건너가시지요”라고 말했다. 삼장이 말 위에서 귀를 기울여 보니 과연 북과 발 소리가 들려왔다. “도가의 악기는 아니요, 분명 우리 승가에서 법회를 여는 것이로구나. 우리도 그리로 가자.” 행자가 앞에서 말을 이끌고 일행이 소리를 따라갔다. 그곳에 무슨 바른길이 있으랴. 높고 낮음도 가리지 않고 모래밭을 가로질러 가니, 한 무리의 인가가 보였는데 헤아려 보니 사오백 집은 되었고, 또한 모두 잘 지어진 집들이었다. 과연 이러하였다. 산을 기대어 길이 통하고, 물가를 끼고 시내가 흐르는구나. 곳곳마다 사립문은 닫혀 있고, 집집마다 대나무 뜰은 굳게 닫혔구나. 모래밭에 잠든 해오라기는 꿈결이 맑고, 버들 밖에서 우는 두견은 목청이 차갑구나. 짧은 피리는 소리 없고, 찬 다듬이질은 가락이 없구나. 붉은 여뀌 가지는 달을 흔들고, 누런 갈대 잎은 바람에 겨루는구나. 밭두렁의 개는 성긴 울타리에서 짖고, 나루터의 늙은 어부는 낚싯배에서 잠들었구나. 등불은 드물고 인가의 연기는 고요한데, 반 허공의 밝은 달은 거울을 매단 듯하구나. 문득 한 줄기 흰 마름 향기가 들려오니, 그것은 서풍이 강 건너에서 보내오는 것이로구나. 삼장이 말에서 내려 보니, 저 길 어귀에 한 집이 있어 문 밖에는 당번 깃대 하나가 세워져 있고, 안에서는 등불과 촛불이 휘황하게 빛나며 향내가 그윽하였다. 삼장이 “오공, 이곳은 저 산모퉁이의 강변과는 확실히 다르구나. 인간 세상의 처마 아래라면 찬 이슬을 가릴 수 있어 마음 놓고 편히 잘 수 있겠다. 너희는 모두 오지 말고, 내가 먼저 저 재공의 문 앞으로 가서 청해 보마. 나를 받아 주겠다면 내가 너희를 부를 터이나, 만약 받아 주지 않거든 너희는 함부로 날뛰지 말아라. 너희의 얼굴과 주둥이가 추악하여, 자칫 사람을 놀라게 하고 화를 불러들여 도리어 머물 곳이 없어질까 두렵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옳은 말씀이옵니다. 스승님께서 먼저 가시옵소서.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장로가 삿갓을 벗어 머리를 드러내고, 장삼을 털어 매만진 뒤 석장을 끌고 곧장 그 집 문 밖으로 다가갔다. 그 문이 반쯤 열려 반쯤 닫혀 있는 것을 보고 삼장은 감히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서 있었다. 조금 서 있는 사이, 안에서 노인 하나가 걸어 나오는데 목에는 염주를 걸치고 입으로는 아미타불을 외며 곧장 와서 문을 닫으려 하였다. 이 장로는 당황하여 두 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노시주시여, 가난한 중이 인사를 올리나이다.” 그 노인이 답례하며 말했다. “이 중이여, 그대는 너무 늦게 왔소.” 삼장이 “무엇을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노인이 “늦게 왔으니 드릴 물건이 없소. 일찍 왔더라면 내 집에서 재를 올리는 중들에게 배불리 밥을 먹이고, 쌀 서 되와 흰 베 한 필, 동전 열 닢을 드렸을 것이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제야 왔소?” 삼장이 몸을 굽히며 “노시주시여, 가난한 중은 공양을 쫓아온 이가 아니옵니다”라고 말했다. 노인이 “공양을 쫓아온 것이 아니라면, 여기 와서 무슨 일이오?”라고 말했다. 삼장이 “저는 동토 대당의 황제께서 서천으로 경을 가지라 명하신 사신이옵니다. 오늘 귀한 곳에 이르렀으나 날이 이미 저물었고, 댁에서 북과 발 소리가 들리기에 특별히 하룻밤 묵어 갈 수 있게 빌려 주시기를 청하러 왔사옵니다. 날이 밝으면 곧 떠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그 노인이 손을 저으며 “중이여,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하였소. 동토 대당에서 내가 사는 이곳까지는 오만 사천 리 길인데, 그대가 이렇게 홀몸으로 어찌 올 수 있었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삼장이 “노시주의 말씀이 지극히 옳사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어린 제자 셋이 있어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며 저를 보호해 준 덕분에 비로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나이다”라고 말했다. 노인이 “제자가 있다면 어찌 함께 오지 않았소?”라고 말하고는 외쳤다. “들어오십시오, 들어오십시오. 내 집에 묵을 곳이 있소.” 삼장이 고개를 돌려 불렀다. “제자들아, 이리로 오너라.” 저 행자는 본래 성미가 급하고 저팔계는 타고나게 거칠며 사승 또한 막무가내라, 세 사람이 스승의 부름을 듣고는 말을 끌고 짐을 멘 채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한바람에 쳐들어갔다. 그 노인이 그것을 보고는 놀라 땅에 넘어지며 입으로는 “요괴가 왔다! 요괴가 왔다!”라고만 외쳤다. 삼장이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며 “시주여, 놀라지 마옵소서. 요괴가 아니라 내 제자들이옵니다”라고 말했다. 노인이 부들부들 떨며 “이리도 훌륭한 스승님이 어찌 이토록 추한 제자들을 두셨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삼장이 “생김새는 비록 볼품없사오나, 도리어 용을 항복시키고 범을 굴복시키며 요망한 것을 잡을 줄 아나이다”라고 말했다. 노인은 반신반의하면서 당승을 부축하고 천천히 걸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저 사나운 세 사람이 청방 안으로 쳐들어가 말을 매어 두고 행장을 내동댕이쳤다. 그 방 안에는 본래 경을 읽던 중 몇 명이 있었는데, 저팔계가 긴 주둥이를 내밀고 고래고래 외쳤다. “이 중들아, 무슨 경을 읽고 있느냐?” 그 중들이 묻는 소리에 홀연 고개를 들어 온 사람들을 바라보니, 입은 길고 귀는 크며 몸은 굵고 어깨는 넓은데, 목소리는 우레가 치는 듯하였다. 행자와 사승의 용모는 더욱 추악하였다. 법당에 있던 중들이란 중들은 겁을 내지 않는 이가 없어, 아사리는 읽던 경을 마저 읽고 반수는 법회를 파하라 하였다. 경쇠와 방울은 돌볼 겨를도 없고 부처님 상마저 내동댕이쳐 둔 채, 일제히 등불을 후 불어 꺼 버리고는 황망히 흩어졌다. 넘어지고 기어가며 문지방을 어찌 넘었으랴. 네 머리 내 머리가 부딪치니, 표주박 시렁이 쓰러진 듯하였다. 맑고 깨끗한 좋은 도량이 도리어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 세 형제는 사람들이 넘어지고 기어가는 꼴을 보고 손뼉을 치며 껄껄 웃어 댔다. 그 중들은 더욱 두려워 머리를 조아리고 서로 부딪치며 저마다 목숨을 부지하느라 모조리 달아나 버렸다. 삼장이 노인을 부축하고 청당에 올라가 보니 등불은 하나도 없고, 세 사람은 히히덕거리며 여전히 웃고 있었다. 당승이 꾸짖었다. “이 망할 것들아, 몹시도 사납구나! 내가 아침마다 가르치고 날마다 당부하였거늘, 옛사람이 이르기를 가르치지 않아도 착한 이는 성인이 아니고 무엇이며, 가르친 뒤에 착한 이는 현인이 아니고 무엇이며, 가르쳐도 착하지 않은 이는 어리석은 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희가 이토록 날뛰니 참으로 지극히 하찮고 지극히 어리석은 부류로구나! 문에 들어서면서 분별도 없이 노시주를 놀라 넘어뜨리고, 경 읽던 중들을 흩어 놓으며 남의 좋은 일을 모두 망쳐 놓았으니, 이것이 내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 아니냐?” 그 말에 그들은 감히 대꾸도 못 하였다. 그제야 노인은 그들이 그의 제자임을 믿고, 황급히 고개를 돌려 예를 올리며 “영감님, 큰일 아닙니다, 큰일 아닙니다. 방금 등불을 끄고 꽃을 거두었으니 불사가 이제 끝나려 하였사옵니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일이 끝났다니, 법회를 마치는 공양을 내어 놓으시오. 우리가 먹고 자겠사옵니다”라고 말했다. 노인이 외쳤다. “등을 밝혀라! 등을 밝혀라!” 집안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크게 놀라며 “방에서 경을 읽는데 향과 촛불이 그리 많은데, 어찌하여 또 등을 밝히라 하시오?”라고 말했다. 몇몇 하인들이 나와 살펴보니 방 안은 캄캄하였다. 곧 횃불과 등롱에 불을 붙여 일제히 몰려왔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저팔계와 사승을 보고는 놀란 나머지 횃불을 내동댕이치고 황급히 몸을 빼어 중문을 닫아 버린 뒤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요괴가 왔다! 요괴가 왔다!” 행자가 횃불을 집어 들어 등과 촛불을 밝히고, 교의 하나를 끌어다 당승을 그 위에 앉히고는 자기 형제들은 양옆에 앉고 그 노인은 앞자리에 앉았다. 막 자리를 정하여 앉아 있는데, 안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또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오며 “어떤 사마한 놈이 캄캄한 밤중에 내 선한 집안에 들어왔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황급히 일어나 병문 뒤로 마중 나가며 “형님, 소리치지 마시오. 사마가 아니라 동토 대당에서 경을 가지러 가는 나한들이오. 제자들의 생김새가 비록 사납지만, 과연 산은 사나워도 사람은 착한 이들이오”라고 말했다. 그제야 그 노인은 지팡이를 내려놓고 그들 네 사람에게 예를 올렸다. 예를 마치고 앞자리에 앉아서는 “차를 내오고, 공상을 차려라”라고 외쳤다. 여러 차례 연달아 외쳤으나 몇몇 하인들은 부들부들 떨며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저팔계가 참지 못하고 “노인장, 그대의 하인들은 어찌하여 이쪽저쪽으로만 왕래하시오?”라고 물었다. 노인이 “저희더러 공상을 받들어다 영감님들을 모시라 하였소”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몇 사람이 모신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노인이 “여덟 사람이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그 여덟 사람이 누구를 모신단 말이오?”라고 물었다. 노인이 “그대들 네 분을 모시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저 흰 얼굴의 스승님은 사람 하나면 족하고, 털북숭이 얼굴에 벼락 맞은 주둥이를 한 이는 사람 둘이면 족하며, 저 죽은 얼굴을 한 이는 여덟 사람이 있어야 하겠고, 나는 스무 사람이 모셔야 겨우 넉넉하겠소”라고 말했다. 노인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아마 그대의 식도가 남보다 크신 모양이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그저 그럭저럭 보아 줄 만하옵니다”라고 말했다. 노인이 “사람은 있소, 사람은 있소”라고 말하고는, 큰아이 작은아이 할 것 없이 서른에서 마흔 명쯤을 불러 내었다. 저 중과 노인이 한마디씩 주고받는 말을 듣고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두려움을 떨치었다. 윗자리에 탁자 하나를 놓아 당승을 상석에 앉히고, 양쪽에 탁자 셋을 벌여 놓아 그 세 사람을 앉히며, 앞쪽 탁자 하나에는 두 노인이 앉았다. 먼저 채소와 과일과 나물을 차려 올리고, 그다음으로는 국수와 밥, 간식과 국수를 말아 놓은 국을 가지런히 차려 놓았다. 당장로가 젓가락을 들어 먼저 《계재경》 한 권을 외웠다. 그 멍청이는 한편으로는 성미가 급하고, 또 한편으로는 몹시 배가 고팠던 터라, 당승의 경이 끝나기를 어찌 기다리겠는가. 붉게 칠한 나무 사발을 집어 들고는 흰쌀밥 한 그릇을 와락 입속으로 털어 넣고 말았다. 곁에 있던 아이가 “이 영감님은 너무 계산이 없구려. 만두도 싸지 않았는데 어찌 밥을 싸 버려 옷을 더럽히지 않았소?”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웃으며 “싼 게 아니라 먹었느니라”라고 말했다. 아이가 “입을 떼지도 않았는데 어찌 먹었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이놈들이 거짓말을 하는구나! 분명히 먹었거늘, 믿지 못하겠거든 다시 먹는 것을 보여 주마.” 아이들이 또 사발을 가져다 한 그릇 가득히 담아 저팔계에게 건넸다. 그 멍청이가 사발을 한번 흔들어 보이더니, 또다시 입속으로 털어 넣고 말았다. 하인들이 그것을 보고 “할아버지라니! 목구멍이 벽돌을 갈아 쌓은 것이오? 참으로 반들반들하고 미끄럽구려!”라고 말했다. 당승의 경 한 권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저팔계는 벌써 대여섯 그릇을 손에 거쳤고, 그런 뒤에야 비로소 함께 젓가락을 들어 일제히 공양을 들었다. 그 멍청이는 쌀밥이건 국수건, 과일이건 간식이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퍼 넣으며, 입으로는 여전히 “밥 더 내오! 밥 더 내오!”라고 외쳐 댔다. 점점 더 가져오는 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행자가 “아우여, 그만 좀 적게 먹어라. 산모퉁이에서 굶주림을 참는 것보다야 낫지 않으냐. 그럭저럭 절반만 배가 차도 된 것 아니냐”라고 외쳤다. 저팔계가 “이 무슨 소리요! 속담에 이르기를 중에게 공양을 올리되 배부르게 하지 못하거든 산 채로 파묻는 것만 못하다 하였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릇을 거두어라, 상대하지 말라!”고 일렀다. 두 노인이 몸을 굽히며 “영감님,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옵니다. 대낮이라면 두렵지 않사오니, 이처럼 배가 큰 장로라도 백 명쯤은 넉넉히 공양할 수 있었사옵니다. 다만 늦은 밤이라 남은 공상을 거두어 들인 뒤라, 국수 한 섬과 쌀밥 다섯 되와 채식 몇 상을 쪄 놓고, 친척과 이웃 몇 분과 여러 중들을 청해 복을 나누려 하였사옵니다. 뜻밖에도 여러분이 오셔서 놀란 중들이 달아나 버리고, 친척과 이웃도 감히 청하지 못한 채 그 수량을 모두 여러분께 올렸나이다. 배가 부르지 않으시거든 다시 쪄 올리라 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다시 쪄 오시오! 다시 쪄 오시오!”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자 그릇과 탁자와 자리를 거두었다. 삼장이 몸을 굽혀 공양에 사례하고서야 “노시주시여,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노인이 “진가이옵니다”라고 말했다. 삼장이 두 손을 모으며 “그러면 이 가난한 중과 같은 종갑니다”라고 말했다. 노인이 “영감님께서도 진가이십니까?”라고 물었다. 삼장이 “그러하옵니다. 속가의 성도 진가이옵니다. 그런데 묻겠나이다, 방금 무슨 재를 올리셨나이까?” 저팔계가 웃으며 “스승님은 어찌하여 그런 것을 물으시나이까! 어찌 모르시겠나이까? 틀림없이 청묘재나 평안재나 요장재쯤이겠지요”라고 말했다. 노인이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라고 말했다. 삼장이 다시 “정녕 무슨 재이옵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이 “예수망재이옵니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웃음을 터뜨리며 “영감님께서는 눈이 너무 어두우시오! 우리는 거짓말로 다리를 놓아 사람을 속이는 대왕이온데, 그대가 어찌 그런 거짓말로 나를 속이려 하시오! 중이 어찌 재사를 알지 못하겠소? 예수기고재와 예수전환재는 있어도, 어디에 예수망재라는 것이 있단 말이오? 그대의 집안에 죽은 이도 없는데 무슨 망재를 올린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기뻐하며 “이 멍청이가 좀 영리해졌구나. 노공공, 그대가 잘못 말씀하신 것이오. 어찌하여 예수망재라 하시오?”라고 말했다. 그 두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그대들이 경을 가지러 가면서 어찌하여 바른길로 가지 않고 이리로 비틀어 들어왔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바른길로 걸었소. 그런데 한 줄기 물이 길을 막아 건널 수가 없었고, 마침 북과 발 소리가 들리기에 특별히 댁을 찾아와 하룻밤을 빌린 것이오”라고 말했다. 노인이 “그대들이 물가에 이르러 무언가 본 것이 있소?”라고 물었다. 행자가 “비석 한 면만 보았을 뿐이오. 위에는 통천하 세 자가 쓰여 있고, 아래에는 ‘지나가기 팔백 리, 예로부터 행인 드물다’ 열 자가 쓰여 있었으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소”라고 말했다. 노인이 “그보다 좀 더 윗물가로 걸어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비석에서 한 리쯤 되는 곳에 영감대왕의 사당이 있거늘, 그대는 보지 못하였소?” 행자가 “보지 못하였소. 공공께서 말씀해 주시오, 무엇을 영감이라 하시오?” 그 두 노인이 일제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영감님이시여! 그 대왕은 이러하니라. 감응하여 한 지방에 사당을 일으키고, 위령이 천 리에 미쳐 백성을 보호하느니라. 해마다 마을에 감로를 내리고, 해마다 촌락에 상서로운 구름을 내리느니라.” 행자가 “단비를 내리고 상서로운 구름을 내린다면 그것 또한 좋은 뜻이거늘, 그대들은 어찌 그토록 상심하여 괴로워하시오?” 그 노인이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한숨을 내쉬고는 “영감님이시여! 은혜가 많아도 오히려 원망이 있고, 자비롭고 은혜로워도 도리어 사람을 해치느니라. 어린 남자와 어린 여자를 잡아먹으려 하니, 밝고 정직한 신이 아니로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어린 남자와 어린 여자를 잡아먹는단 말이오?” 노인이 “그러하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필시 이번에는 그대의 집 차례가 되었소?” 노인이 “올해가 바로 저희 집 차례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는 백 집가량이 모여 사옵니다. 이곳은 차지국 원회현의 관할이오며, 이름을 진가장이라 하옵니다. 이 대왕은 일 년에 한 번씩 제사를 받으시는데, 어린 남자 하나와 어린 여자 하나를 돼지와 양과 제물과 단술과 함께 바쳐야 하옵니다. 그가 한 끼에 잡수시면 우리에게 바람과 비가 순조롭게 하여 주시지만, 제사를 올리지 않으면 곧 내려와 재앙을 내리시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댁에는 자제가 몇이시오?” 노인이 가슴을 치며 “가련하도다! 가련하도다! 무슨 자제를 말하시오,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이 사람은 내 아우이오니 이름을 진청이라 하고, 늙은 나이는 진징이라 하옵니다. 내가 올해 예순셋이오, 아우는 쉰여덟인데, 자식 보기가 몹시 어려웠나이다. 내가 쉰 살이 되도록 아들이 없자 친척들이 첩을 들이라 권하여, 하는 수 없이 방 하나를 들여 딸 하나를 낳았사온데, 올해 겨우 여덟 살이 되었사옵니다. 이름을 일칭금이라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이름값이 대단하구려! 어찌하여 일칭금이라 하시오?” 노인이 “내가 자식을 얻기 어려워 다리를 고치고 길을 보수하며 절을 세우고 탑을 세우고 중에게 공양을 베풀었사오니, 장부 한 권이 있는데 어디에 은 서너 냥을 썼다, 어디에 은 다섯 냥을 썼다 적혀 있사옵니다. 딸을 낳은 해에 살펴보니 마침 황금 서른 근을 써 놓았더이다. 서른 근이 한 저울이 되므로 일칭금이라 불렀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저쪽 아이는 누구의 아들이오?” 노인이 말했다. “내 아우에게 아들이 하나 있사온데, 그 또한 첩의 몸에서 난 자식이옵니다. 올해 일곱 살이 되었사오며, 이름을 진관보라 하였나이다.” 행자가 “어찌하여 그런 이름을 지었소?”라고 물었다. 노인이 말했다. “집에서 관성 할아버님을 모시고 있사온데, 관 할아버님의 신위 아래에서 이 아들을 얻게 되었으므로 이름을 관보라 하였나이다. 우리 형제 둘의 나이를 합치면 백이 해이온데, 겨우 이 두 아이만을 얻었사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사 차례가 저희 집으로 돌아왔사오니 감히 바치지 않을 수가 없나이다. 이 때문에 부자간의 정이 끊기 아깝고 버리기 아까와서, 먼저 아이에게 초생 도량을 열어 준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망재라 한 것이 바로 이것이옵니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이야말로 옛사람이 이르기를, 누런 매실은 떨어지지 않고 푸른 매실이 떨어지니, 늙은 하늘은 유독 자식 없는 이를 해친다 한 그것이로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내가 다시 물어 보마. 노공공, 댁의 재산이 얼마나 되시오?” 두 노인이 “꽤나 있는 편이옵니다. 물논이 사오십 결이요, 밭이 육칠십 결이며, 초장이 팔구십 곳이옵니다. 물소가 이삼백 마리요, 나귀와 말이 서른에서 스무 필쯤 되며, 돼지와 양과 닭과 거위는 셀 수 없사옵니다. 집안에는 다 먹지 못하는 묵은 곡식과 다 입지 못하는 옷도 있사옵니다. 집안의 재산과 산업도 제법 헤아릴 만하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런 가업을 일구었으니, 그대가 아껴 모은 덕이로구나”라고 말했다. 노인이 “어찌하여 내가 아꼈다 하시옵니까?” 행자가 “이만한 재산이 있거늘 어찌하여 친자식을 내어 제사를 지내려 하시오? 은 오십 냥을 기꺼이 내면 어린 남자 하나를 살 수 있고, 은 백 냥을 기꺼이 내면 어린 여자 하나를 살 수 있사온데, 부대 비용을 합쳐도 이백 냥을 넘지 않을 터이니, 그리하여 자기 자식과 후대를 남겨 둘 수 있지 않소? 그것이 좋지 않단 말이오?” 두 노인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영감님, 모르시는 말씀이옵니다. 그 대왕은 영험함이 매우 커서 늘 저희 집안을 드나드시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가 드나든다면, 그대들은 그의 얼굴이 어떠하며 키가 얼마나 되는지 보았소?” 두 노인이 “그의 형체는 보지 못하옵니다. 다만 향기로운 바람 한 줄기를 맡으면 곧 대왕 할아버님께서 오신 줄 알고, 즉시 되에 향을 가득 피워 올리고 늙은이나 젊은이나 바람을 바라보며 절을 올리옵니다. 그분은 저희 집안의 숟가락이 크냐 사발이 작으냐 하는 일까지 모두 알고 계시옵고, 늙은이나 젊은이나 태어난 해와 달까지 모두 기억하시옵니다. 오직 친자식이라야 그분이 받아 잡수시옵니다. 이삼백 냥으로는 살 곳이 없다 말하겠사옵니다마는, 몇천만 냥을 낸다 한들 이와 꼭같이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자식을 어디서 사겠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러하였단 말이오. 좋소, 좋소. 그대의 아들을 데리고 나오시오. 내가 좀 보겠소”라고 말했다. 그 진청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관보를 안아다 방에 있는 등불 앞에 내려놓았다. 어린아이는 죽고 사는 일을 어찌 알겠는가. 두 소매에 과일을 잔뜩 담은 채 깡충깡충 뛰며 노는 동안에도 과일을 먹고 있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가만히 주문을 외우고는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그 관보와 똑같은 모습이 되었다. 두 아이가 손을 잡고 등불 앞에서 춤을 추니, 그 노인은 놀라 황급히 당승 앞에 무릎을 꿇으며 “영감님, 사람 죽일 노릇이옵니다! 사람 죽일 노릇이옵니다! 이 영감님께서 방금 말씀하시더니 어찌 벌써 내 아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셔서, 한 번 불러도 함께 대답하고 함께 걸어갑니까! 우리의 수명을 깎아 먹는 일이옵니다! 본모습을 보이소서! 본모습을 보이소서!”라고 말했다. 행자가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노인이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영감님께서는 본래 이러한 재주가 있으셨사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그대의 아들과 비슷하오?”라고 말했다. 노인이 말했다. “비슷합니다, 비슷합니다, 비슷합니다! 과연 얼굴도 같고 목소리도 같으며, 옷도 같고 키도 같사옵니다.” 행자가 “그대는 아직 자세히 보지 않았소. 저울을 가져다 무게를 달아 보시오. 그 아이와 같은 무게인지 말이오”라고 말했다. 노인이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무게도 같사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정도면 제사를 치를 수 있겠소?” 노인이 “아주 좋사옵니다! 아주 좋사옵니다! 제사를 치를 수 있사옵니다!” 행자가 “내가 이제 이 아이의 목숨을 대신하여 그대 집안의 향사와 후손을 남겨 둘 것이니, 내가 가서 그 대왕의 제사를 받으리라”라고 말했다. 그 진청이 땅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영감님께서 과연 자비로이 대신해 주실 수 있다면, 내가 은 천 냥을 보내어 당 영감님의 서천 노자로 쓰게 하겠나이다.” 행자가 “나에게는 사례하지 않겠소?” 노인이 “그대는 이미 제사를 대신하셨으니, 그대는 없는 몸이 되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어찌하여 없는 몸이 된단 말이오?” 노인이 “그 대왕이 잡수실 것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그가 감히 나를 먹겠단 말이오?” 노인이 “그대를 먹지 않는다면, 필시 비리다고 싫어하실 것이오.” 행자가 웃으며 “천명에 맡기리라. 나를 먹으면 내 목숨이 짧은 것이요, 먹지 않으면 내 복이니라. 내 그대와 함께 제사를 받으러 가리라.” 그 진청은 줄곧 머리를 조아리며 사례하고는 또 은 오백 냥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였다. 오직 진징만은 머리도 조아리지 않고 사례의 말도 없이, 그저 병문에 기대어 서슬퍼 울고 있었다. 행자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앞으로 나가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노인장, 그대가 나에게 약속도 하지 않고 사례도 하지 않으니, 아마 딸을 내어 주기 아까운 모양이오?” 진징이 그제야 무릎을 꿇으며 “아까운 것이옵니다. 영감님의 두터운 은정으로 내 조카를 대신 구해 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넉넉하옵니다마는, 다만 늙은 나에게는 아들이 없고 이 딸 하나뿐이옵니다. 내가 죽은 뒤에도 이 아이가 통곡을 할 터인데, 어찌 내어 주겠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대는 어서 쌀 다섯 되나 되는 밥을 찌고 좋은 채소를 장만하여 내 저 긴 주둥이 스승님께 드리시오. 그리고 그를 그대의 딸로 변하게 하여, 내 동생과 함께 제사를 받으러 가서, 아예 음덕을 하나 쌓아 그대의 아들딸 두 아이의 목숨을 구해 주겠소. 어떠하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속이 크게 놀라 “형님, 재주를 뽐내려고 내가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고 나까지 끌어들이려 하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아우여, 속담에 닭도 공 없는 밥은 먹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너와 내가 문을 들어설 때 후한 공양을 받았거늘, 너는 배가 부르지 않는다며 떠들기까지 하였지 않으냐? 그런데 어찌 남의 근심을 덜어 주지 않으려 하느냐?” 저팔계가 “형님, 형님은 변화를 할 줄 알지만 나는 못한다니까!” 행자가 “너도 서른여섯 가지 변화가 있거늘 어찌 못한단 말이냐?” 당승이 불렀다. “오능, 네 사형의 말이 지극히 옳고 처사가 매우 마땅하니라. 속담에 한 목숨을 구하는 것이 칠 층 부처를 세우는 것보다 낫다 하였느니라. 한편으로는 두터운 정에 보답하는 것이요, 또 한편으로는 음덕을 쌓는 것이니, 더구나 서늘한 밤에 한가하거든 너희 형제가 한바탕 놀고 오너라.” 저팔계가 “스승님 하시는 말씀을 좀 보시오! 나는 산과 나무로 변하고, 돌과 옴 앓는 코끼리로 변하며, 물소와 큰 뚱보 사내로 변하는 것은 그럭저럭 하겠지만, 어린 여자아이로 변하는 것은 몹시 어렵겠다니까.” 행자가 “노인장, 그의 말을 믿지 마시오. 그대의 따님을 안고 나오시오. 내가 보겠소.” 그 진징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일칭금을 안아다 방으로 데리고 나왔다. 온 집안의 처첩이며 큰아이 작은아이 할 것 없이, 늙은이나 젊은이나 안팎을 가리지 않고 모두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고, 다만 아이의 목숨만은 구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 딸아이는 머리에 팔보 구슬이 드리운 꽃비녀 띠를 쓰고, 몸에는 붉은빛이 감도는 누른 저마포 저고리를 입었으며, 그 위에 어두록한 초록 비단에 바둑판 무늬 깃을 단 겉옷을 걸쳤다. 허리에는 큰 붉은 꽃무늬 명주 치마를 두르고, 발에는 두꺼비 머리 모양의 연분홍 저마포 신을 신었으며, 다리에는 금실을 섞어 짠 무릎바지 두 짝을 매었는데, 그 또한 소매에 과일을 담아 먹고 있었다. 행자가 “팔계, 이 아이가 바로 그 여자아이니, 너는 어서 이 아이와 똑같이 변하여라. 우리가 제사를 받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형님, 이토록 작고 곱게 생겼는데 어찌 변한단 말이냐?” 행자가 외쳤다. “어서 하라! 매 맞고 싶으냐!” 저팔계가 겁을 먹고 “형님, 때리지 마오. 내가 변해 보이다”라고 말했다. 이 멍청이가 주문을 외우며 머리를 몇 번 흔들고는 “변하여라!”라고 외쳤다. 과연 머리가 변하여 여자아이의 얼굴과 비슷해지기는 하였으나, 배만 불룩하게 튀어나와 어색하여 닮지 않았다. 행자가 웃으며 “다시 변해 보아라!” 저팔계가 말했다. “마음대로 때리시오! 변하지 않는걸 어찌하겠느냐?” 행자가 “계집아이의 머리에 중의 몸통이란 말이냐? 이렇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것이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네가 강을 펴 보아라.” 행자가 저팔계에게 신선의 기운 한 입을 불어넣자, 과연 그 즉시 몸이 변하여 그 여자아이와 꼭같아졌다. 행자가 일렀다. “두 분 노인장, 그대의 가권과 아들과 딸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시오. 잘못되어서는 안 되오. 한참 뒤에 내 동생과 내가 게으름을 피우며 요행을 부려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도리어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오. 그대는 좋은 과일을 아이에게 먹이고, 울거나 외치게 하지 마시오. 자칫 대왕이 알아차려 바람이 새어 나가면 일이 그르칠 터이니, 우리 두 사람이 가서 한바탕 놀고 오겠소!”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사승에게 당승을 보호하라 일러 두고, 그는 진관보로 변하고 저팔계는 일칭금으로 변하였다. 두 사람이 모두 준비를 마치고서 “어떻게 바친단 말이오? 묶어서 가는 것이오, 결박해서 가는 것이오? 쪄서 가는 것이오, 다져서 가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저팔계가 “형님, 나를 놀리지 마오.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니까”라고 말했다. 노인이 “감히, 감히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다만 붉게 칠한 단목 둘을 써서 두 분을 그 안에 앉히고 탁자 위에 올려 놓은 뒤, 젊은이 둘이 탁자 하나를 메고 그대들을 사당까지 메고 가는 것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좋소, 좋소, 좋소! 쟁반을 가져오시오. 우리가 한번 시험해 보겠소.” 그 노인이 곧 단목 둘을 가져왔고, 행자와 저팔계가 그 위에 앉자 젊은이 넷이 탁자 둘을 메어 뜰 안을 한 바퀴 돌고는 도로 메고 들어와 당 위에 놓았다. 행자가 기뻐하며 “팔계, 이렇게 메어 다니며 노니, 우리도 상에 오르는 중이 되었구나”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메고 가기만 하고 도로 메고 온다면, 양쪽으로 날이 밝도록 메고 다녀도 나는 두렵지 않다. 다만 사당에 메고 가면 곧 먹힐 터인데, 이것은 장난이 아니지!” 행자가 “너는 나만 보고 있거라. 나를 먹으려 할 때 네가 달아나면 그만이지” 저팔계가 “그가 어떻게 먹을지 어찌 아느냐? 만약 어린 남자를 먼저 먹는다면 나는 달아나기 좋겠지만, 어린 여자를 먼저 먹는다면 나는 어찌한단 말이냐?” 노인이 “해마다 제사를 올릴 때면, 이곳에서 담이 큰 이들이 사당 뒤나 제상 밑에 숨어 보았는데, 그가 어린 남자를 먼저 먹고 어린 여자를 나중에 먹는 것을 보았다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천운이다! 천운이다!” 형제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밖에서 징과 북 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등불이 훤히 비추며, 같은 마을 사람들이 앞문을 열어 젖히고 외쳤다. “어린 남자 어린 여자를 내어라!” 이 노인이 울먹이며 우는 사이, 그 젊은이 넷이 두 사람을 메고 나갔다. 두 사람의 목숨이 과연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8회 마롱한풍표대설(魔弄寒風飄大雪) · 승사배불리층빙(僧思拜佛履層冰) 이야기는 이러하다. 진가장의 신도들은 돼지와 양과 제물을 행자와 팔계와 함께 떠들썩하게 영감묘까지 메어다 차려 놓고, 동남과 동녀를 상석에 모셨다. 행자가 머리를 돌려 제상을 살펴보니 향과 꽃과 촛불이 놓여 있고, 정면에는 금빛 글씨로 쓴 위패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영감대왕의 신이라 적혀 있을 뿐 달리 신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도들이 차림을 갖추고는 일제히 위를 향해 절하며 말했다. “대왕 할아버지, 금년 금월 금일 금시에 진가장 제주 진징과 여러 신도들이 비록 나이는 고르지 못하오나 삼가 해마다의 관례를 받들어 동남 한 명 진관보와 동녀 한 명 진일칭금을 바치오며, 돼지와 양과 제물도 수량대로 갖추어 대왕께 올려 잡수시게 하오니, 바람과 비가 고르고 오곡이 풍성하도록 보우하소서.” 축원을 마치고 종이로 만든 말을 태운 뒤 저마다 제 집으로 돌아갔으니, 이만 줄인다. 저팔계는 사람들이 흩어진 것을 보고 행자에게 말했다. “우리 집으로 돌아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네 집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늙은 진가 사람네 집으로 가서 잠이나 자게.”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이가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이미 그들에게 허락했으면 마땅히 그 소원을 들어주어야 옳지.” 팔계가 말했다. “멍청이는 네가 아니면서 나보고 멍청이라니! 그저 속여 한바탕 놀기나 하면 그만이지, 어찌 제사를 지내 준다고 진짜로 덤벼든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헛소리 마라. 사람을 도울 때는 끝까지 도와야 하느니라. 반드시 저 대왕이 와서 먹는 것을 기다려야 처음과 끝이 온전해지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그에게 재앙을 내려 해만 남기느니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문득 훠훠 바람 소리가 들렸다. 팔계가 말했다. “큰일 났다! 바람 소리가 나는 걸 보니 그놈이 오는구나!” 행자는 다만 “말하지 마라, 내가 대답할 테니”라고 외쳤다. 잠시 뒤 묘문 밖으로 요물 하나가 나타났으니, 그 생김새가 어떠했는지 보라. 금빛 갑옷과 금빛 투구는 찬란하기가 새것 같고, 허리에 두른 보대는 붉은 구름을 두르고 있구나. 눈은 저녁에 돋는 밝은 별처럼 고우며, 이는 다시 벌려 놓은 톱니처럼 갈라졌구나. 발아래에는 안개와 노을이 넘실거리고, 몸 곁에는 자욱한 기운이 따스하게 피어오르구나. 걸을 때는 음풍이 줄줄이 불어 차갑고, 서 있는 곳에는 살기가 겹겹이 서려 있구나. 마치 발을 걷어 임금을 모시는 장수 같기도 하고, 절을 지키는 큰 문신 같기도 하구나. 그 요물은 묘문을 막아서고 물었다. “금년에 제사 지내는 집이 어느 집이냐?” 행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물어 주시니 황공하옵니다. 마을 우두머리는 진징과 진청의 집이옵니다.” 그 요물은 대답을 듣고 마음속으로 의심하며 생각했다. ‘이 동남이 담이 크고 말솜씨가 영리하구나. 늘 공양을 받으러 오면 한마디 물으면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물으면 혼이 빠져서 손으로 잡으려 하면 이미 죽은 사람이었는데, 어찌하여 오늘은 이 동남이 능숙하게 대답을 한단 말인가?’ 요물은 함부로 잡으러 오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동남과 동녀의 이름이 무엇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동남은 진관보요, 동녀는 일칭금이오.” 요물이 말했다. “이 제사는 지난해부터의 묵은 규칙이니, 이제 나에게 바쳤으면 내 마땅히 너를 먹어야 하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감히 거역하지 못하오니, 편안히 잡수시옵소서.” 요물은 그 말을 듣고도 또한 손을 쓰지 못하고 문을 막고 호통쳤다. “말대꾸하지 마라! 나는 해마다 먼저 동남을 먹었는데, 금년에는 도리어 먼저 동녀를 먹겠느니라!”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대왕이여, 그냥 예전대로 하시옵소서. 예를 어그러뜨리지는 마옵소서.” 그 요물은 분별할 틈도 주지 않고 손을 놓아 곧장 팔계를 잡으러 들었다. 이 멍청이는 펄쩍 뛰어내려 본모습을 드러내며 구리 빗장을 들고 손을 쳐서 한 번 찍었는데, 요물은 손을 움츠리고 앞으로 달아났다. 그때 쨍 하는 소리가 한 번 났다. 팔계가 말했다. “갑옷을 찍어 부수었구나!” 행자도 본모습을 드러내고 살펴보니, 그것은 얼음 쟁반만한 크기의 비늘 두 쪽이었다. 행자가 “쫓아가자!”라고 소리치자 두 사람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 요물은 잔치에 오느라 병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빈손으로 구름 속에서 물었다. “너희는 어느 곳의 중이기에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속이고, 내 향불을 깨뜨리고 내 명성을 망쳤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 무례한 놈이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우리들은 동토 대당의 성스런 스님 삼장이 황제의 칙명을 받들어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제자들이니라. 어젯밤 진가 사람네 집에서 묵다가 사악한 마귀가 감히 영감이라 칭하며 해마다 동남과 동녀를 요구해 제사를 지낸다는 말을 들었느니라. 우리들이 자비심을 내어 중생을 구하고자 너를 잡으러 왔으니, 이놈아, 어서 사실대로 실토하라! 한 해에 동남과 동녀 둘을 먹는다는데, 네가 이곳에서 몇 해나 대왕을 자칭하며 남녀를 몇 명이나 먹었느냐? 하나하나 따져서 내게 갚아라. 그러면 사형은 면해 주리라!” 그 요물은 이 말을 듣고 곧 달아났는데, 팔계가 다시 구리 빗장으로 찍었으나 맞히지 못했고, 요물은 센 바람 한 줄기로 변하여 통천하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행자가 말했다. “더 쫓아갈 것 없다. 이 요물은 필시 강 속에 사는 것일 터이니, 내일 방법을 꾀해 그를 잡아 스승님을 모시고 강을 건너게 하자.” 팔계는 그 말대로 곧장 묘 안으로 돌아가 돼지와 양과 제물과 술을 상까지 통째로 진가 사람네 집으로 옮겼다. 이때 당나라 장로와 사화상은 진가 형제와 함께 청 가운데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홀연 그 두 사람이 돼지와 양 따위를 모두 뜰 안에 내동댕이치는 것이 보였다. 삼장이 마중 나오며 물었다. “오공아, 제사 일은 어찌 되었느냐?” 행자가 이름을 대며 요물을 쫓아내니 강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는 사정을 이야기하자, 두 노인이 매우 기뻐하며 즉시 방을 치우고 잠자리를 마련해 사부와 제자들이 자도록 청했으니, 이만 줄인다. 말하자면, 그 요물은 목숨을 건져 물속으로 돌아가 궁중에 앉아 묵묵히 말이 없었는데, 물속의 크고 작은 권속들이 물었다. “대왕께서는 해마다 제사를 받으시고 돌아오시면 기뻐하셨는데, 어찌하여 오늘은 근심하시나이까?” 그 요물이 말했다. “예년에는 제사를 받은 뒤에 남은 물건을 좀 가지고 와서 너희에게 나누어 주었거늘, 오늘은 나조차 먹지 못하였다. 운수가 사나워 상대를 잘못 만나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하였느니라.” 여러 수족이 물었다. “대왕, 그 상대가 누구이옵니까?” 그 요물이 말했다. “동토 대당 성스런 스님의 제자로서 서천으로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하러 가는 자인데, 남녀로 변하여 묘 안에 앉아 있더구나. 내가 그놈에게 본모습을 들키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일찍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당삼장은 열 세상을 수행한 착한 사람이라 그의 살 한 점만 먹어도 수명이 늘어나 장생한다 하였느니라. 뜻밖에도 그의 수하에 이런 제자가 있어, 내가 명성을 잃고 향불을 깨뜨렸으니, 삼장을 잡아먹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아마 그리되지 못할 것 같구나.” 그 수족 가운데서 얼룩무늬 옷을 입은 궐파 하나가 나서며 요물에게 극진히 절을 올리고 웃어 말했다. “대왕이여, 삼장을 잡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이까! 다만 잡은 뒤에 저에게 술과 고기를 상으로 주실는지 모르겠나이다.” 그 요물이 말했다. “네가 만약 꾀를 내어 우리가 힘을 합쳐 삼장을 잡는다면, 너와 형제자매를 맺고 함께 자리에 앉아 나누어 먹으리라.” 궐파는 절을 올리고 사례하며 말했다. “대왕께서 바람을 부르고 비를 내리는 신통과 바다를 뒤집고 강을 뒤엎는 세력이 있으심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사옵니다만, 눈을 내리실 줄은 아시는지요?” 그 요물이 말했다. “내릴 줄 안다.” 궐파가 다시 말했다. “눈을 내리실 줄 아신다면, 또한 추위를 만들어 얼음을 얼리실 줄은 아시는지요?” 그 요물이 말했다. “더욱 잘하느니라!” 궐파가 손뼉을 치며 웃어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매우 쉽사옵니다! 매우 쉽사옵니다!” 그 요물이 말했다. “너는 그 매우 쉽다는 공을 내게 설명해 보라.” 궐파가 말했다. “오늘밤 삼경이 되거든 대왕께서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마시옵고 일찍 법을 쓰시어, 찬 바람 한바탕을 일으키시고 큰 눈 한바탕을 내리시어 통천하를 모조리 얼려 놓으소서. 그러고 나서 저희 가운데 변화에 능한 자들을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게 하여 길목에서 배낭을 지고 우산을 들며, 짐을 지고 수레를 밀며 끊임없이 얼음 위를 걷게 하소서. 삼장은 경을 구하려는 마음이 몹시 급하니 사람들이 다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얼음을 밟아 건너려 할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강 한복판에 앉아 계시다가 발소리가 나는 곳에서 얼음을 터뜨리시면, 그의 제자들까지 모두 물속으로 떨어져 한 번에 얻을 수 있사옵니다!” 그 요물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없이 기뻐하며 말했다. “매우 묘하도다! 매우 묘하도다!” 곧 수부에서 나와 긴 허공을 밟으며 바람을 일으키고 눈을 내려 추위를 만들어 얼음을 얼게 하였으니,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당나라 장로와 제자 네 사람이 진가 사람네 집에서 자는데 날이 거의 밝아올 무렵, 사부와 제자들은 이불이 차갑고 베개가 서늘하였다. 팔계는 기침을 하고 몸을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소리쳤다. “사형, 추워 죽겠네!”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아, 참으로 쓸모없는 놈이로구나! 출가한 사람은 추위와 더위가 침범하지 못하는 법인데 어찌 추위를 두려워하느냐?”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과연 춥구나. 보아라, 저 두꺼운 이불에도 온기가 없고, 소매에 손을 넣었는데 얼음을 품은 듯하구나. 시든 잎에는 서리 꽃이 드리워지고 푸른 솔에는 얼음 방울이 걸렸구나. 땅은 추위가 심해 갈라지고 못은 물이 얼어 평평해졌구나. 고깃배에는 노인이 보이지 않으니, 산사에서 어찌 중을 만나랴. 나무꾼은 땔감 적음을 근심하고 귀한 집 자제는 숯이 늘음을 기뻐하는구나. 원정길의 사람은 쇠 같아야 하고 시객의 붓은 마름처럼 굳는구나. 가죽 저고리도 얇다 하고 담비 갖옷도 가볍다 한탄하는구나. 자리 위의 늙은 중은 굳어 버리고 종이 휘장 속 나그네의 넋은 놀라는구나. 수놓은 이불을 겹겹이 덮어도 온몸이 떨려 방울 소리가 나는구나.” 사부와 제자들은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 옷을 입고 문을 열어 보니, 아! 밖이 온통 하얗게 희뿌였으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가 추위를 타는 까닭이 있었구나, 이토록 큰 눈이 내리고 있었으니!” 네 사람이 함께 바라보니, 눈이로다! 과연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붉은 구름이 빽빽이 덮이고 참혹한 안개가 겹겹이 스며들었구나. 붉은 구름이 덮이니 북풍이 매섭게 허공에 울부짖고, 참혹한 안개가 스며드니 큰 눈이 분분히 땅을 덮는구나. 참으로 여섯 귀 꽃이요 조각조각 날리는 옥이로다. 나무마다 구슬을 달고 있구나. 잠깐에 가루가 쌓이고 순식간에 소금이 되었구나. 흰 앵무새는 희음을 잃고 흰 학의 깃털과 같구나. 오와 초의 천 갈래 강물이 불어나고 동남쪽 몇 그루 매화는 짓눌렸구나. 마치 옥 용 삼백만 마리를 물리친 듯, 부서진 비늘과 갑옷이 하늘 가득 날리는 듯하구나. 어디서 동곽의 신을 얻으며 원안이 누워 있고 손강이 눈빛에 글을 읽는 일이 있으랴. 자유의 배와 왕공의 갖옷과 소무가 털옷을 씹는 일도 보이지 않는구나. 다만 몇 집 농가가 은을 쌓은 듯하고 만 리 강산이 옥덩이처럼 뭉쳐 있을 뿐이로다. 눈이로다! 버들개지가 다리를 덮고 배꽃이 집을 덮었구나. 버들개지가 다리를 덮으니 다리 곁 늙은 어부가 도롱이를 걸치고, 배꽃이 집을 덮으니 집 아래 시골 노인이 장작불을 쬐는구나. 나그네는 술 사기 어렵고 하인은 매화를 찾느라 애쓰는구나. 사사소소 나비 날개를 오리고 펄펄 날려 거위 털옷을 마름질하는구나. 둥글게 구르며 바람을 따르고 겹겹이 쌓여 길을 잃게 하는구나. 매서운 추위가 작은 휘장을 꿰뚫고, 쌩쌩한 냉기가 그윽한 휘장을 스며드는구나. 풍년의 상서가 하늘에서 내리니 인간의 좋은 일을 축하할 만하구나. 그 눈은 분분히 흩날리며, 참으로 옥을 오리고 솜을 날리는 듯하였다. 사부와 제자들이 한참을 탄식하며 구경하고 있는데, 진가 사람네 늙은이가 동복 둘을 시켜 길을 쓸게 하고, 또 둘을 시켜 더운 물을 보내어 세수를 하게 하였다. 잠시 뒤에는 끓인 차와 젖떡을 보내고 또 숯불을 옮어다 방 안에 갖추어 놓으니, 사부와 제자들이 함께 앉았다. 장로가 물었다. “늙은 시주여, 귀한 고장의 절후에는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구분이 있소이까?” 진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이 비록 외진 땅이오나 풍속과 인물만 중원과 다를 뿐, 무릇 곡식의 싹과 가축 따위는 모두 같은 하늘과 같은 해 아래 있사오니, 어찌 사계절을 나누지 않을 이치가 있겠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사계절을 나눈다면, 어찌하여 지금부터 이토록 큰 눈이 내리고 이토록 추운 것이오?” 진 노인이 말했다. “이때가 비록 칠월이오나 어제 이미 백로를 지났으니 곧 팔월 절후이옵니다. 이곳은 해마다 팔월이면 서리와 눈이 있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이는 우리 동토와 매우 다르구려. 내 고장에서는 겨울 절기를 지나야 비로소 있소.” 이야기를 나누는데 또 동복이 와서 상을 놓고 죽을 청하였다. 죽을 먹고 난 뒤 눈은 아침보다 더 크게 내려 잠시 뒤 평지에 두 자쯤 쌓였다. 삼장은 마음이 조급해져 눈물을 흘렸다. 진 노인이 말했다. “도령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눈이 깊다고 근심하지 마옵소서. 제 집에 곡식이 몇 섬은 되오니 도령님들을 반평생은 봉양할 수 있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늙은 시주여, 가난한 중의 괴로움을 알지 못하오. 나는 성은을 입어 칙지를 하사받고 황제께서 큰 가마를 갖추어 친히 관문 밖까지 전송하시며, 당왕께서 친히 잔을 들어 전별하시며 어느 때에나 돌아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소. 가난한 중은 산천의 험함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입에 나오는 대로 삼 년이면 경을 구하여 귀국할 수 있다고 아뢰었소. 작별한 뒤 오늘까지 이미 칠팔 년이나 되었으나 아직 부처님 얼굴도 뵙지 못했으니, 황제의 기한을 어길까 두렵고 요마가 흉악할까 두려워 이토록 초조하오. 오늘 인연이 있어 댁에 묵게 되었고 어젯밤 어리석은 제자들이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았사오니, 실로 배 한 척을 구해 강을 건너고자 바랐소. 뜻밖에 하늘이 큰 눈을 내려 길이 막혔으니, 어느 때에야 공을 이루어 고향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구려!” 진 노인이 말했다. “도령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많은 날을 지내 왔는데 어찌 이 며칠이 문제겠나이까? 하늘이 개어 얼음이 녹기를 기다리시면, 늙은이가 집안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반드시 도령님들을 모셔 강을 건너게 하겠나이다.” 그때 한 동복이 또 들어와 아침 공양을 청하였다. 청에 올라가 먹고 나서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점심 공양이 이어 들어왔다. 삼장은 음식이 풍성한 것을 보고 거듭 황송해하며 말했다. “이미 머물러 주시기로 하셨으니 그저 소박한 음식으로 대접하시면 되옵니다.” 진 노인이 말했다. “도령이여, 제사를 대신해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를 입었사오니, 날마다 잔치를 베풀어 대접한다 해도 갚기 어렵사옵니다.” 이윽고 큰 눈이 그치자 곧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진 노인은 삼장이 즐겁지 않아 하는 것을 보고 화원을 치우고 큰 화로에 불을 피워, 눈동굴에 가서 한가롭게 놀며 시름을 풀기를 청하였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저 늙은이는 계산이 없구나! 이삼월 봄이라면 화원을 구경하기 좋으련만, 이런 큰 눈에 또 추운데 무엇을 구경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이는 일을 모르는구나! 눈 경치는 본래 그윽하고 고요하니, 하나는 유람하며 구경하는 것이요, 둘은 스승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니라.” 진 노인이 말했다. “옳소이다, 옳소이다.” 이에 정원으로 모셔 들어가니, 과연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경치는 삼추의 때를 만나고, 풍광은 섣달 같구나. 푸른 소나무에는 옥 꽃술이 맺히고, 시든 버들에는 은빛 꽃이 걸렸구나. 섬돌 아래 옥 이끼에는 가루가 쌓이고 창 앞의 푸른 대는 옥 싹을 내밀었구나. 교묘한 돌산 머리와 물고기 기르는 못 안에, 교묘한 돌산 머리에는 깎아 세운 봉우리가 옥 죽순을 늘어놓았고, 물고기 기르는 못 안에는 맑은 물이 얼음 쟁반을 이루었구나. 물가의 부용은 고운 빛이 옅어지고 언덕 곁의 무궁화는 연한 가지가 늘어졌구나. 가을 해당화는 온통 짓눌리고, 납매 나무는 간신히 새 가지를 내었구나. 모란정과 해류정과 단계정은 정자마다 거위 털이 쌓였고, 마음을 펴는 곳과 손님 대접하는 곳과 흥취를 달래는 곳은 곳곳마다 나비 날개가 덮였구나. 두 울타리의 누런 국화는 흰 비단에 금을 뿌린 듯하고, 몇 그루 단풍은 붉은빛에 흰빛이 섞였구나. 한가한 뜰은 많아도 추워 가기 어렵거니와, 눈동굴의 차가움이 얼음 같음을 보라. 그 안에는 짐승 얼굴에 코끼리 발을 한 구리 화로가 놓여 뜨끈한 숯불이 막 피어오르고, 그 위아래에는 호랑이 가죽을 씌운 옻칠 교의가 놓여 부드럽고 따스한 종이창이 깔려 있구나. 사방 벽에는 명필의 옛 그림 몇 폭이 걸려 있으니, 칠현이 관문을 넘는 그림과 찬 강에서 홀로 낚시하는 그림과 겹겹 솟은 산봉우리에 눈 경치를 그린 그림이요, 소무가 털옷을 씹는 그림과 매화 꺾어 사신을 만나는 그림과 옥 같은 숲과 구슬 같은 나무로 추위의 문장을 쓴 그림이로다. 집이 물가 정자에 가까워 물고기 사기 쉽고 눈에 산길이 묻혀 술 사기 어렵다는 것을 다 말할 수 없구나. 참으로 무릎을 들일 만한 곳이니 무엇 하러 봉래를 찾으랴. 여러 사람이 한참 구경하고는 눈동굴에 앉아 이웃 노인들에게 경을 구하러 가는 일을 이야기하고, 또 향기로운 차를 받아 마셨다. 진 노인이 물었다. “여러 도령들께서는 술을 드실 수 있으시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가난한 중은 마시지 못하오. 어린 제자들이 맑은 술을 몇 잔 정도는 하오.” 진 노인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명했다. “과일과 다과를 가져오고 술을 데워 여러 도령님들의 추위를 녹여 드려라.” 그 동복이 곧 상을 들어 화로 곁에 놓고, 두 이웃 노인과 함께 몇 잔씩 마신 뒤에 그릇을 거두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또 청으로 모셔 가 저녁 공양을 들였는데, 문득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들렸다. “추운 날이로다! 통천하가 얼어붙었어!”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오공아, 강이 얼어붙었으니 우리는 어찌하면 좋겠느냐?” 진 노인이 말했다. “갑자기 추워졌으니, 필시 강가 얕은 물이 언 것이겠지요.” 그 행인이 말했다. “팔백 리가 모두 거울 면처럼 얼었소. 길목에서 사람들이 다니고 있소!” 삼장은 사람들이 다닌다는 말을 듣고 곧 가서 보려 하였다. 진 노인이 말했다. “도령께서는 서두르지 마옵소서.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가서 보시지요.” 이에 이웃 노인들과 작별하고, 또 저녁 공양을 마친 뒤에 여전히 방에서 잤다. 이튿날 날이 새자 팔계가 일어나며 말했다. “사형, 어젯밤엔 더 추웠으니 필시 강이 얼어붙었을 걸세.” 삼장이 문을 향해 하늘에 절하며 말했다. “여러 호교 대신들이여, 제자가 서쪽으로 오며 정성으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산천의 고초를 겪었으되 한마디 원망도 없었나이다. 이제 황천의 도움을 입어 강물이 얼어붙었사오니, 제자가 빈 마음으로 우선 감사하옵고, 경을 얻어 돌아가거든 당나라 황제께 아뢰어 정성을 다해 갚겠나이다.” 절을 마치고는 오정에게 말을 지라 하여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너려 하였다. 진 노인이 또 말했다. “서두르지 마옵소서. 며칠 뒤 눈이 녹고 얼음이 풀리기를 기다리시면, 늙은이가 배를 마련해 모셔 보내겠나이다.” 사승이 말했다. “곧 떠나는 것도 말이 아니옵고 더 머무는 것도 말이 아니옵니다. 입으로만 하는 말은 증거가 없고, 귀로 듣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옵니다. 제가 말을 지고 모실 터이니 스승님께서 친히 가서 보시옵소서.” 진 노인이 말했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그리고 명했다. “얘들아, 어서 가서 우리 말 여섯 필을 지고 오너라! 다만 삼장 도령의 말은 지지 마라.” 곧 하인 여섯이 뒤따르니, 일행이 곧장 강가로 가서 보았다. 참으로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눈은 산처럼 쌓여 솟았고, 구름은 걷히며 새벽이 개었구나. 추위가 굳어 천 봉우리가 파리해지고, 얼음이 얼어 강호가 한결같이 평평해졌구나. 북풍이 매섭고, 미끄러운 얼음이 모가 났구나. 못고기는 빽빽한 물풀에 붙고 들새는 마른 가지를 그리는구나. 변방 밖의 정병들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강가의 사공들은 어금니를 떠는구나. 뱀의 배가 터지고 새의 발이 끊어지니, 과연 얼음산이 천백 척이로구나. 만 골짜기에는 찬 기운이 은을 띄우고, 한 강은 찬 기운에 옥을 담갔구나. 동방에는 굳은 누에가 나오고 북녘에는 쥐굴이 있구나. 왕상이 누워 얼음을 녹이고 광무가 시내를 건너듯, 하루 밤에 시내 다리가 바닥까지 굳었구나. 굽은 못에는 모난 층이 얼고 깊은 못에는 겹겹이 얼었구나. 통천하의 넓은 물은 물결조차 없어져, 밝고 깨끗한 얼음이 육지처럼 펼쳐졌구나. 삼장과 일행이 강가에 이르러 말을 세우고 바라보니, 참으로 길목에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삼장이 물었다. “시주여, 저 사람들은 얼음 위로 어디를 가는 것이오?” 진 노인이 말했다. “강 저쪽은 서량여국이옵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장사꾼이지요. 이쪽의 백 냥어치 물건이 저쪽에 가면 만 냥 값이 되고, 저쪽의 백 냥어치 물건이 이쪽에 와도 만 냥 값이 되옵니다. 이익은 무겁고 밑천은 가벼우므로 사람들이 죽고 사는 것을 돌보지 않고 가는 것이옵니다. 예년에는 대여섯 명이 한 배, 혹은 열몇 명이 한 배로 건너갔사온데, 이제 강길이 얼어붙었으므로 목숨을 걸고 걸어가는 것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세상일에 오직 명리만이 가장 무거운 법이로다. 저들은 이를 위하여 죽음을 잊거늘, 나의 제자가 칙지를 받들어 충성을 다하는 것도 다만 이름을 위한 것이니 그들과 얼마나 다르랴!” 그리고 명했다. “오공아, 어서 시주 댁으로 돌아가 행장을 수습하고 말에 짐을 얹어, 이 얼음층을 타고 일찍 서방으로 가자꾸나.” 행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사승이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속담에 천 일에 천 되의 쌀을 먹었다 하였나이다. 이제 진가 댁에 몸을 의탁하였사오니 며칠만 더 머무르시다가 하늘이 개어 얼음이 녹으면 배를 마련해 건너가시옵소서. 서두르다 보면 잘못이 있을까 두렵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오정아, 어찌 이리 어리석은 소견이냐! 정월이나 이월이라면 하루가 하루보다 따뜻해지니 얼음이 녹기를 기다릴 수 있으련만, 이때는 팔월이라 하루가 하루보다 추워지거늘 어찌 얼음이 풀리기를 바라겠느냐! 그리하다가는 또 반년의 행정을 그르치지 않겠느냐?” 팔계가 말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너희는 잠깐 쓸데없는 말을 그만두고, 내가 얼마나 두꺼운지 시험해 보게 해 다오.”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아, 그저께 밤에는 물을 시험하느라 돌을 던져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얼음이 겹겹이 덮였는데 어찌 시험한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사형은 모르시는구려. 내가 구리 빗장을 들어 한 번 찍어 보게나. 만약 찍어서 깨진다면 얼음이 얇은 것이니 감히 가지 못하고, 찍어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곧 얼음이 두꺼운 것인데 어찌 가지 못한단 말이오?” 삼장이 말했다. “옳다, 그 말이 이치에 맞는구나.” 그 멍청이는 옷을 걷어 올리고 성큼성큼 걸어 강가로 올라가 두 손으로 빗장을 들어 힘껏 한 번 찍었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아홉 개의 흰 자국이 찍히고 손이 저려 올 정도로 아팠다. 멍청이가 웃으며 말했다. “갈 수 있구나! 갈 수 있어! 바닥까지 통째로 얼어붙었단 말이야.” 삼장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모두와 함께 진가 사람네 집으로 돌아가, 다만 행장을 수습하여 떠나라 하였다. 두 노인이 간곡히 만류하였으나 붙잡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마른 양식과 볶은 것을 마련하고, 구운 떡과 만두를 만들어 전송하였다. 온 집안이 절을 올리고, 또 잘게 부순 금과 은을 한 접시 받쳐 들고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도령님들께서 저희 자식을 살려 주신 은혜를 크게 입었사오니, 길에서 드실 한 끼 값으로 조금 바치옵니다.” 삼장은 손을 저으며 고개를 가로젓고 받지 않으며 말했다. “가난한 중은 출가한 몸이라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길에서 감히 꺼내지도 못할 것이오. 다만 동냥하여 끼니를 잇는 것을 본분으로 삼으니, 마른 양식만 받으면 족하오.” 두 노인이 또 거듭 간청하자, 행자가 손가락 끝으로 작은 조각 하나를 집어 무게가 사오 돈쯤 되는 것을 삼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스승님, 시주돈으로만 여기시옵소서. 두 노인의 뜻을 헛되이 저버리지 마옵소서.” 이에 서로 작별하고 곧장 강가 얼음 위로 나아갔는데, 말발굽이 한번 미끄러져 하마터면 삼장이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다. 사승이 말했다. “스승님, 가기 어렵사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잠깐 멈추게! 진 노인께 볏짚을 좀 얻어다 내게 주시오.” 행자가 말했다. “볏짚이 어디에 쓰인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형은 모르시는구려. 볏짚으로 말발굽을 싸야 비로소 미끄럽지 않아 스승님을 떨어뜨리지 않소.” 진 노인은 언덕에서 그 말을 듣고 급히 집 사람을 시켜 볏짚 한 단을 가져오게 하고, 삼장에게 청하여 언덕으로 올라와 말에서 내리게 하였다. 팔계가 짚으로 말발굽을 싼 뒤에야 얼음을 밟아 건너갔다. 진 노인과 강가를 떠나 서너 리쯤 가자, 팔계가 아홉 고리 석장을 삼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스승님, 이것을 말 위에 가로로 잡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이가 간사하구나! 석장은 원래 네가 메는 것인데 어찌 도로 스승님께 들라고 하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은 얼음 위를 걸어 본 적이 없어 모르시는구려. 무릇 얼어붙은 위에는 반드시 얼음 구멍이 있는 법이라, 혹시 그 구멍을 밟아 빠지면, 가로로 걸칠 물건이 없어 꿀꺽 물속으로 떨어져 마치 큰 솥뚜껑을 덮은 것처럼 되거늘, 어떻게 기어올라오겠소! 그리하려면 이렇게 걸쳐 놓아야만 하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 멍청이가 도리어 얼음길을 오래 걸어 본 놈이로구나!’ 과연 모두 그의 말대로 하였다. 장로는 석장을 가로로 메고, 행자는 쇠몽둥이를 가로로 메고, 사승은 요괴를 항복받는 보배 지팡이를 가로로 메고, 팔계는 어깨에 행장을 메고 허리에는 구리 빗장을 찼다. 사부와 제자들은 마음을 놓고 나아가, 줄곧 해가 저물 때까지 걸어가 마른 양식을 좀 먹고는 또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별과 달의 빛으로 얼음 위가 번쩍이고 하얗게 아득한 가운데 그저 달리기만 하였다. 참으로 말발굽이 쉴 새 없어 사부와 제자들은 눈을 붙이지 못하고 하룻밤을 걸었다. 날이 밝자 또 마른 양식을 좀 먹고 서쪽을 향해 다시 나아갔다. 한창 가고 있는데, 문득 얼음 밑에서 펄럭 하는 큰 소리가 한 번 나서 하마터면 백마가 놀라 넘어질 뻔하였다. 삼장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제자들아! 어찌하여 이토록 큰 소리가 나느냐?” 팔계가 말했다. “이 강이 너무나 단단히 얼어붙어 땅얼음이 우는 것이니, 혹시 이 한가운데가 바닥까지 통째로 얼어붙었는지도 모르지요.” 삼장은 그 말을 듣고 놀라면서도 기뻐하여 말을 재촉하여 앞으로 나아갔으니, 서둘러 가는 일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 요물은 수부로 돌아온 이래 여러 정기를 이끌고 얼음 밑에 있다가 오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발굽 소리가 나는 곳에서 그가 밑에서 신통을 부려 와락 얼음을 갈라 놓았다. 손오공은 놀라 허공으로 뛰어올랐으나, 그 백마는 물속으로 떨어지고 세 사람도 모두 빠져버렸다. 그 요물은 삼장을 붙잡아 여러 정기를 이끌고 수부로 돌아가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쳤다. “궐 아우는 어디 있느냐?” 늙은 궐파가 문에 마중 나와 예를 올리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황공하옵니다! 황공하옵니다!” 요물이 말했다. “아우야,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한 번 입에서 나온 말은 네 필 말이 끄는 수레도 따라잡지 못하느니라. 본래 너의 계책을 따라 삼장을 잡으면 너와 형제를 맺으리라 하였거늘, 오늘 과연 묘한 계책이 이루어져 삼장을 잡았으니 어찌 앞서 한 말을 어기겠느냐?” 그리고 명했다. “얘들아, 안상을 들여오고 칼을 갈아라. 이 중의 배를 가르고 염통을 도려내며 가죽을 벗기고 살을 발라내라. 한편으로는 악기를 울려 아우와 함께 먹으며 수명을 늘려 장생하리라.” 궐파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우선 그를 잡수지 마시옵소서. 그 제자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울까 두렵사옵니다. 이틀쯤 참으시어 저놈들이 찾아오지 않게 한 뒤에 배를 가르시고, 대왕께서 상석에 앉으시며 권속들이 둘러 앉아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고 춤추어 올리면, 조용하고 태평하게 잡수실 수 있사오니, 그리하지 않으시렵니까?” 그 요물은 그 말대로 삼장을 궁 뒤에 숨기고, 여섯 자 길이의 돌 상자를 가져다 그 가운데 덮어 놓았으니,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팔계와 사승은 물속에서 행장을 건져 백마 등에 싣고, 물길을 헤치며 물결을 일으켜 물을 짊어지고 나왔는데, 행자가 허공에서 그것을 보고 물었다. “스승님은 어디 계시냐?”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은 이제 성이 진씨요, 이름은 바닥이라오. 지금은 찾을 곳이 없으니 우선 언덕에 올라간 뒤에 방도를 꾀해 봅시다.” 원래 팔계는 본래 천봉원수가 인간에 내려온 자라 예전에 천하의 팔만 수병을 거느렸고, 사화상은 유사하에서 태어난 몸이며, 백마는 본래 서해 용왕의 손자였으므로, 이 까닭에 물의 성질을 알 수 있었다. 대성이 허공에서 길을 인도하니 잠시 뒤에 동쪽 언덕으로 되돌아왔다. 말을 털어 말리고 옷을 추슬러 입은 뒤에 대성이 구름에서 내려와 함께 진가장으로 갔다. 일찍이 어떤 이가 두 노인에게 알렸다. “경을 구하러 가는 도령 네 분이 이제는 세 분만 남아 오셨나이다.” 형제가 급히 문 밖으로 마중 나가 보니, 과연 옷이 아직 젖어 있었다. 두 노인이 말했다. “도령님들, 저희가 그토록 만류하였건만 머물려 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이 지경이 되어야 끝이 났소. 어찌하여 삼장 도령은 보이지 않으시오?” 팔계가 말했다. “삼장이라 부르지 마시구려. 이름을 고쳐 진바닥이라 하게 되었소.” 두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가련하오! 가련하오! 눈이 녹으면 배를 마련해 모셔 보내리라 하였건만 굳이 듣지 않으시고 끝내 목숨을 잃으셨소!” 행자가 말했다. “영감님, 옛사람 걱정은 하지 마시오. 내 스승님은 죽지 않고 장수하실 터이니 내가 아노라. 틀림없이 저 영감대왕이 법술을 부려 계략을 쓴 것이오. 우선 마음을 놓으시고 우리 옷을 빨아 말리고 관문도 말리며, 짚과 사료를 가져다 백마를 먹이시오. 내가 아우들과 저놈을 찾아 스승님을 구출하고 뿌리까지 뽑아버려 댁과 한 마을의 뒷근심을 없애 드리리니, 그래야만 길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오.” 진 노인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없이 기뻐하며 즉시 공양을 차리라 명했다. 세 형제는 배불리 한 끼를 먹고, 말과 행장을 진가에 맡겨 지키게 한 뒤에 저마다 병기를 정비하고 곧장 길가로 나아가 스승을 찾고 요괴를 잡으러 갔다. 바로 이러하였다. 잘못하여 얼음층을 밟아 본성을 상하였으니, 큰 단이 빠져나갔거늘 어찌 온전하랴? 결국 삼장을 어떻게 구해 낼는지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49회 삼장유재침수택(三藏有災沈水宅) · 관음구난현어람(觀音救難現魚籃) 말하자면, 손대성은 저팔계와 사승과 함께 진 노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강변에 이르러 “형제들아, 너희 둘이 의논하여 정해 보아라, 누가 먼저 물속으로 내려가겠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형님, 저희 둘의 재주는 변변치 못하옵니다. 그래도 형님께서 먼저 물속으로 내려가셔야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현명한 아우에게 숨기지 않고 말하마. 산속의 요정이라면 너희가 힘을 쓸 필요가 전혀 없겠지만, 물속의 일은 내가 갈 수가 없느니라. 바다에 내려가고 강을 건널 때에도 나는 반드시 물피하는 결을 쥐고 있거나, 혹은 무슨 물고기나 게의 모습으로 변해야만 갈 수 있느니라. 그렇게 결을 쥐고 있으면 쇠몽둥이를 휘두를 수도 없고 신통도 부릴 수 없으며 요괴도 때릴 수가 없느니라. 나는 오래전부터 너희 둘이 물에 익숙한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에, 너희 둘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사승이 “형님, 저야 가기야 갈 수 있사옵니다만, 물 밑이 어떠한지를 모르겠나이다. 우리 모두 함께 가되 형님께서 무슨 모습으로든 변하시면, 혹은 제가 형님을 업고 물길을 헤치며 요성의 소굴을 찾아낸 뒤 형님께서 먼저 들어가 알아보시지요. 만약 스승님께서 상하지 않으시고 그곳에 계신다면 우리가 힘을 다해 정벌하면 되옵고, 만일 이 괴물이 법술을 부려 스승님을 물에 빠뜨려 죽였거나 요괴에게 잡아먹혔다면 우리가 애써 구할 필요 없이 일찍이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어떠하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현명한 아우의 말이 이치에 맞는구나. 그러면 너희 중 누가 나를 업겠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이 원숭이는 나를 몇 번이나 골려 먹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알고 보니 물을 모르는구나. 내가 그를 업고 한번 골려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는, 그 멍청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형님, 제가 업겠나이다”라고 외쳤다. 행자는 그 속셈을 알아차리고는 오히려 그 계책을 이용하여 “그래, 좋다. 네가 오정보다는 힘이 좀 더 있겠구나”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그를 등에 업었다. 사승이 물길을 헤치니 형제들이 함께 통천하 속으로 들어갔다. 물 밑으로 백십 리쯤 내려갔을 때, 그 멍청이가 행자를 골려 먹으려 하자 행자는 즉시 털 한 가닥을 뽑아 가짜 몸으로 변해 저팔계의 등에 엎드려 있고, 참몸은 돼지 이 한 마리로 변하여 그의 귓속에 바짝 붙어 있었다. 저팔계가 한창 가다가 홀연히 발이 걸려 넘어지는 척하며, 핑계 삼아 행자를 앞으로 내동댕이치고는 풍덩 하고 넘어졌다. 알고 보니 그 가짜 몸은 본디 털로 변한 것이라 곧바로 떠오르며 자취도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사승이 “둘째 형님, 어찌된 일이옵니까? 똑바로 걷지도 않고 진흙 속에 넘어진 것은 그만둔다 해도, 큰형님을 어디로 넘겨버리셨는지 모르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그 원숭이는 넘어짐을 견디지 못하여 한 번 넘어지면 녹아버렸나이다. 형제여, 그의 생사를 돌보지 말고 나와 함께 스승님을 찾으러 갑시다”라고 말했다. 사승이 “안 되옵니다. 그가 있어야 하옵니다. 그는 물을 모른다 해도 우리보다 영리하옵니다. 그가 없으면 나는 형님과 함께 가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저팔계의 귓속에서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오정아! 이 늙은 손이 여기 있다!”라고 외쳤다. 사승이 그 소리를 듣고 웃으며 “망하였구나! 이 멍청이는 죽었구나! 네가 어찌 감히 그를 골려 먹었느냐! 이제 소리는 들려도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황급히 진흙 속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형님, 제가 잘못했나이다. 스승님을 구하여 물가에 오르면 사례를 하겠나이다. 형님께서는 어디서 소리를 내시옵니까? 그림자만 보여 저를 놀라 죽이시는구려! 부디 본모습을 드러내 주시옵소서. 제가 업고 가겠나이다. 다시는 형님을 거스르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네가 아직도 나를 업고 있지 않으냐. 내가 너를 골리지 않을 터이니 어서 가라! 어서 가라!”라고 말했다. 그 멍청이는 중얼중얼 사죄만을 되뇌면서 일어나 사승과 함께 다시 들어갔다. 또 백십 리쯤 가다가 홀연히 고개를 들어 보니 누각 하나가 보였는데, 위에 ‘수원의 저택’이라는 큰 글자 넷이 쓰여 있었다. 사승이 “이곳이 아마 요정이 사는 곳이옵니다. 저희 둘은 실정을 모르니 어찌 문 앞에 올라가 싸움을 걸겠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오정아, 그 문 안팎에 물이 있느냐?”라고 말했다. 사승이 “물은 없사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물이 없다면 너는 좌우에 숨어 있고, 이 늙은 손이 가서 알아보고 오마”라고 말했다. 훌륭한 대성이 저팔계의 귓속에서 기어 나와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긴 다리의 새우 할멈이 되어 두세 번 뛰어 문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부릅뜨고 보니 저 괴물이 위에 앉아 있고 물족 무리가 양쪽에 늘어서 있으며, 반의궐파라는 자가 곁에 앉아 있었는데 모두 당승을 잡아먹을 의논을 하고 있었다. 행자가 마음을 쓰며 양쪽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데, 문득 배가 불룩한 새우 할멈 하나가 걸어와 서쪽 회랑 아래로 곧장 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행자가 그 앞으로 뛰어가 “할멈, 대왕께서 여러 무리와 의논하여 당승을 잡수시려 하신다는데 당승은 어디 있소?”라고 불렀다. 새우 할멈이 “당승은 대왕께서 눈을 내리고 얼음을 얼게 하여 어제 궁 뒤 돌상자 속에 가두어 두었나이다. 내일 그 제자들이 와서 떠들지 않으면 음악을 울리며 잡수실 것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둘러보다가 곧장 궁 뒤로 찾아가 보니 과연 돌상자 하나가 있었는데, 마치 인가의 외양간에 있는 돼지 구유 같기도 하고 인간 세상의 돌 관 하나 같기도 하였으며, 재어 보니 족히 육 척 남짓한 길이였다. 그 위에 엎드려 한참을 듣고 있으니 삼장법사가 그 안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행자가 말없이 귀를 기울여 다시 들으니, 스승님이 이를 갈며 한숨을 내쉬어 “강물에 떠내려간 목숨에 허물이 있어 태어날 때부터 얼마나 많은 수재가 얽혔던가. 모태에서 나올 적에도 파도를 헤치고, 서천의 부처를 배알하러 가다 아득한 연못에 떨어졌구나. 지난번 흑하에서는 몸이 난을 만났고, 오늘은 얼음이 풀려 목숨이 샘으로 돌아가게 생겼구나. 제자들이 올 수 있을지, 참된 경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참지 못하고 “스승님, 수재를 원망하지 마옵소서. 경에 이르기를 흙은 오행의 어미요 물은 오행의 근원이라 하였나이다. 흙이 없으면 자라지 못하고 물이 없으면 크지 못하나이다. 이 늙은 손이 왔나이다!”라고 외쳤다. 삼장법사가 그 소리를 듣고 “제자야, 나를 구하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우선 마음을 놓으옵소서. 우리가 요정을 사로잡으면 스승님을 재난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어서 손을 쓰거라! 하루만 더 지체되면 정말로 답답해 죽겠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일없사옵니다, 일없사옵니다! 저는 가겠나이다!”라고 말하고는 급히 몸을 돌려 밖으로 뛰어나가 문 밖에서 본모습을 드러내고 “팔계야!”라고 불렀다. 그 멍청이와 사승이 다가와 “형님, 어떠하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바로 이 괴물이 스승님을 속였느니라. 스승님께서는 상하지 않으시고 괴물에게 덮여 돌상자 아래 계시느니라. 너희 둘은 어서 싸움을 걸어라, 이 늙은 손이 먼저 물 위로 나가겠다. 잡을 수 있거든 잡고, 잡지 못하거든 거짓으로 진 체하며 그를 물 밖으로 끌어내어 내가 때리게 하여라”라고 말했다. 사승이 “형님께서는 안심하고 먼저 가시옵소서. 저희가 낯빛을 살펴 형편을 헤아리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행자가 물피하는 법을 쥐고 물결을 뚫고 나와 강변에 서서 기다렸다. 보라, 저 저팔계가 사나운 기세로 문 앞까지 쳐들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 고약한 괴물아! 우리 스승님을 내보내라!”라고 외쳤다. 그러자 문 안의 작은 요괴들이 놀라 급히 “대왕이시여, 문 밖에 스승님을 내놓으라는 자가 있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요사가 “이는 틀림없이 저 고약한 중이 왔느니라”라고 말하고는 “어서 갑옷과 병기를 가져오너라!”라고 명하였다. 작은 요괴들이 황급히 가져왔다. 요사가 몸을 단속하고 병기를 손에 쥐고는 곧 문을 열라 명하고 걸어 나왔다. 저팔계와 사승이 좌우에 마주 늘어서서 요사가 어떻게 무장하였는지 보았다. 훌륭한 괴물이로다! 그대는 그를 보라. 머리에는 금 투구를 썼는데 번쩍이고 빛나며, 몸에는 금 갑옷을 걸쳤는데 무지개를 끌어당기는 듯하구나. 허리에는 보배 띠를 둘렀는데 구슬과 비취가 뭉쳐 있고, 발에는 연기 빛 누른 신을 신었는데 모양이 기이하구나. 콧등은 높이 솟아 봉우리처럼 우뚝하고, 이마는 넓고 트여 용의 위의 같구나. 눈빛은 번쩍이고 둥글면서도 사납고, 이빨은 강철 칼날처럼 뾰족하고 가지런하구나. 짧은 머리털은 헝클어져 불꽃을 날리고, 긴 수염은 거침없이 금 송곳을 펴 세웠구나. 입에는 푸르고 연한 물풀 한 가지를 물고, 손에는 아홉 조각 붉은 구리 쇠망치를 들었구나. 문이 열리는 순간 꺄악 하는 소리 한 번이, 늦봄 경칩의 우레처럼 울리는구나. 이러한 형용은 인간 세상에 드무니, 감히 영현대왕의 위엄을 일컫는구나. 요사가 문을 나서니 뒤에 백여 명의 작은 요괴가 따르며 하나하나 창을 휘두르고 검을 춤추게 하여 두 줄로 벌려 섰다. 요사가 저팔계에게 “너는 어느 절의 중이기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와서 떠드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호통치며 “이 매를 맞아도 죽지 않는 고약한 놈 같으니! 네가 그제 밤에 내게 말대꾸를 하더니, 오늘은 어찌 모르는 체하며 도리어 나에게 묻느냐? 나는 본디 동토 대당의 성스러운 승려의 제자로서 서천으로 부처를 배알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자다. 네가 요술을 부려 무엇이든 영감대왕인 체하며 진가장에서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잡아먹으려 하였는데, 내가 본래 진청네 집의 일칭금이거늘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그 요사가 “이 중놈, 참으로 이치가 없구나! 네가 일칭금으로 변하였으니 남의 이름을 속여 갈음한 죄를 지은 것이니라. 나야 도리어 너를 먹지 않았거늘 너에게 손등을 다쳤으니 이미 너를 양보하였느니라. 그런데 네가 어찌 또 내 문을 찾아왔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네가 나를 양보했다면서 어찌하여 또 찬 바람을 일으키고 큰 눈을 내려 억센 얼음을 얼게 하여 우리 스승님을 해하였느냐? 어서 우리 스승님을 내보내라, 그러면 모든 일이 없던 것이 되리라! 이빨에서 아니라는 말 반 마디만 새어 나와도 내 손의 갈퀴를 보아라, 결코 너를 용서치 않겠다!”라고 말했다. 요사가 그 말을 듣고 살짝 비웃으며 “이 중이 긴 혀를 팔며 허풍을 떠는구나. 과연 내가 추위를 부리고 눈을 내려 강을 얼게 하여 네 스승을 끌어갔느니라. 네가 이제 문 앞까지 와서 떠들며 되찾으려 하나, 이번이 지난번과 같지 않을까 두렵도다. 그때는 내가 모임에 가느라 병기를 지니지 않았기에 잘못하여 네게 상하였느니라. 너는 이제 달아날 생각 말고 나와 세 합을 겨루어라. 세 합에 나를 당해 내면 네 스승을 돌려주마, 당해 내지 못하면 너까지 아울러 먹어 버리리라”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착한 아들 같으니! 바로 그렇게 말하라! 갈퀴를 똑똑히 보아라!”라고 말했다. 요사가 “너는 원래 중도에 출가한 중이로구나”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내 아들아, 네가 참으로 영감이 좀 있구나. 어찌 내가 중도에 출가한 줄 알았느냐?”라고 말했다. 요사가 “네가 갈퀴를 쓸 줄 아니 틀림없이 어느 밭에 고용되어 있다가 그곳의 쇠갈퀴를 훔쳐 온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이놈아, 내 이 갈퀴는 땅을 파는 그런 갈퀴가 아니니 보아라. 큰 이빨을 부어 만들어 용의 발톱 같고, 금을 아끼어 장식하니 구렁이의 형상 같구나. 적을 만나면 찬 바람이 흩날리고, 맞서 겨루면 불꽃이 일어나느니라. 성스러운 승려를 위해 괴물을 없앨 수 있고 서방 길에서 요정을 잡을 수 있느니라. 휘두르면 연기 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고, 펼치면 노을빛이 환히 비추느니라. 태산을 찍어 넘기니 천 마리 호랑이가 두려워하고, 대해를 뒤엎으니 만 마리 용이 놀라느니라. 네가 아무리 위령하고 수단이 있다 한들 한 번 찍으면 아홉 개 구멍을 내리라!”라고 말했다. 그 요사가 어디 곧이들으려 하랴. 구리 쇠망치를 들어 정면으로 내리치자 저팔계가 쇠갈퀴로 막아내며 “이 고약한 놈, 너도 원래 중도에 정을 이룬 사마로구나!”라고 말했다. 그 괴물이 “내가 중도에 정을 이룬 것을 네가 어찌 알아보았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네가 구리 쇠망치를 쓸 줄 아니 틀림없이 어느 은장이 집에 고용되어 풀무나 당기다가 기회를 잡아 훔쳐 온 것이로구나”라고 말했다. 요사가 “이는 은을 두드리는 망치가 아니니 보아라. 아홉 조각이 뭉쳐 꽃봉오리를 이루고, 한 자루의 빈 구멍은 만년청이니라. 본디 범간의 물건과는 같지 않아 나온 곳이 신선의 동산에서 이름을 얻었느니라. 푸른 방과 자주 씨는 요지에서 늙었고, 희고 맑은 향기는 푸른 못에서 생겨났느니라. 내가 공을 들여 단련한 터라 강철처럼 굳고 날카로워 영험이 두루 통하느니라. 창과 칼과 검과 극은 모두 당해 낼 수 없고, 도끼와 창과 모 또한 감히 맞서지 못하느니라. 네 갈퀴가 아무리 날카로운 칼날이라 한들 내 망치에 닿기만 하면 튕겨 나가 부러지리라!”라고 말했다. 사승이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다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크게 “이 괴물아, 헛된 말을 그만두어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입으로 하는 말은 증거가 없으니 해 보면 곧 드러난다 하였느니라. 달아나지 말고 내 지팡이를 받아라!”라고 외쳤다. 요사가 망치 자루로 막으며 “너도 중도에 출가한 중이로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어찌 알아보시옵니까?”라고 말했다. 요사가 “네 꼴이 맷돌이나 돌리는 박사 같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어찌하여 제가 맷돌 박사 같사옵니까?”라고 말했다. 요사가 “네가 맷돌 박사가 아니거늘 어찌 밀대를 쓰느냐?”라고 말했다. 사승이 꾸짖으며 “이 죄 많은 놈, 본 적도 없거든 들어 보아라! 이러한 병기는 인간 세상에 드물기에 보장의 이름을 알기 어려우리라. 달 궁궐 그림자 없는 곳에서 나와 사라선목을 쪼고 갈아 만들었느니라. 겉에는 보배를 박아 노을빛이 빛나고, 속에는 금을 뚫어 상서로운 기운이 엉겼느니라. 지난날에는 임금님의 연회를 모셨고, 오늘은 바름을 잡아 당승을 보위하느니라. 서방 길에서는 아는 이가 없어도 상계 궁중에서는 큰 이름이 있느니라. 이름하여 요괴를 항복받는 참된 보장이니, 한 번에 정수리를 부수리라!”라고 말했다. 그 요사는 분변할 틈도 주지 않고 세 사람이 얼굴을 바꾸어 싸웠으니, 이 한 판이 물 밑에서 벌인 훌륭한 싸움이로다. 구리 쇠망치와 보장과 쇠갈퀴로 오능과 오정이 요사와 싸우는구나. 하나는 천봉이 세상에 내려온 것이요, 하나는 상장이 하늘가에서 내려온 것이로다. 저 두 사람이 물괴를 협공하여 위무를 부리고, 이 하나가 홀로 신승을 당해 내니 그 기세 자랑할 만하구나. 분이 있고 인연이 있어 큰 도를 이루고, 서로 낳고 서로 이겨 항사의 이치를 받들었구나. 흙이 물을 이기니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나고, 물이 나무를 낳으니 나무가 왕성하여 꽃이 피는구나. 선법을 참구하여 닦아 한 몸으로 돌아가고, 환단을 달여 세 집을 항복받는구나. 흙은 어미라 금싹을 틔우고, 금은 신수를 낳아 갓난아이를 낳으며, 물은 근본이라 나무의 꽃을 적시니 나무에 찬란한 불꽃 노을이 있구나. 오행을 모아 놓으니 모두 다르기에 그런 까닭에 얼굴을 바꾸어 서로 다투는구나. 보라, 저 구리 쇠망치는 아홉 조각이 환히 빛나 좋고, 보장은 천 가닥 채색 수놓음이 아름답구나. 갈퀴는 음양에 따라 아홉 요를 나누나 해수를 알지 못하여 삼처럼 어지럽게 엉켰구나. 몸을 버리고 목숨을 내던짐은 승려의 재난 때문이요, 죽음을 잊고 삶을 버림은 석가를 위해서니라. 구리 쇠망치가 바삐 내리니 왼쪽으로 보장을 막고 오른쪽으로 갈퀴를 막는구나. 세 사람이 물 밑에서 두 시진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저팔계가 그를 이길 수 없으리라 헤아리고 사승에게 눈짓을 보내니, 두 사람이 거짓으로 지는 체 패한 척하며 병기를 끌고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그 괴물이 “얘들아, 여기 그대로 버티고 있어라. 내가 이놈을 뒤쫓아 사로잡아다 너희와 함께 먹으리라!”라고 명하였다. 보라, 그가 바람에 이는 낙엽처럼, 비에 맞는 시든 꽃처럼 두 사람을 물 위로 몰아내는구나. 저 손대성이 동쪽 강변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강물의 기세만 바라보고 있는데, 홀연히 물결이 뒤집히고 함성이 울려 퍼지며 저팔계가 먼저 강둑으로 뛰어올라 “왔다! 왔다!”라고 말했다. 사승도 강변에 이르러 “왔다! 왔다!”라고 말했다. 그 요사가 뒤따라 “어디로 달아나느냐!”라고 외쳤다. 막 고개를 내미는데 행자가 “몽둥이를 받아라!”라고 호통쳤다. 그 요사가 몸을 피해 빠져나가며 구리 쇠망치로 급히 막아 맞섰다. 하나는 강가에서 물결을 일으키고 하나는 언덕에서 위세를 부렸다. 손을 맞댄 지 세 합도 되지 않아 그 요물이 막아 내지 못하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물속으로 잠기니, 이에 바람이 잦아들고 물결이 가라앉았다. 행자가 높은 언덕으로 돌아와 “형제들아, 수고하였구나”라고 말했다. 사승이 “형님, 이 요정은 물가에서는 형편없는 듯하더니 물 밑에서도 몹시 사납사옵니다! 제가 둘째 형님과 좌우에서 함께 공격하였으나 겨우 호각을 이루었을 뿐이니, 어찌해야 스승님을 구하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더 지체할 것 없다. 그가 스승님을 해칠까 두렵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형님, 제가 이번에 가서 그를 꾀어 낼 터이니 형님께서는 소리를 내지 마시옵소서. 다만 반공중에서 기다리시다가 그가 머리를 내미는 것을 헤아려 마늘 찧듯 내리쳐 정수리에 단단히 한 방을 주시옵소서! 비록 그를 때려 죽이지 못하더라도 아프고 어지러워할 터이니, 그때 이 늙은 저가 달려들어 갈퀴로 한 번 찍어 그의 목숨을 끊어 주겠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옳다! 옳다! 이를 일러 안에서 맞이하고 밖에서 합한다 하느니라. 그래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말하자면, 그 요사가 싸움에서 패하여 목숨을 건져 본가로 돌아오니 여러 요괴가 궁중에까지 맞이하였다. 반의궐파가 앞으로 나서며 “대왕께서는 그 두 중을 어디까지 쫓아가셨나이까?”라고 물었다. 요사가 “저 중들에게 원래 돕는 자가 하나 더 있었느니라. 그 두 놈이 물가로 뛰어 올라가니 저 돕는 자가 쇠몽둥이 하나를 휘둘러 나를 치거늘 내가 몸을 피해 맞섰느니라. 그 몽둥이가 몇 근이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내 구리 쇠망치로는 당해 낼 수가 없어 세 합도 되지 않아 패하여 돌아왔노라”라고 말했다. 반의궐파가 “대왕께서는 그 돕는 자의 생김새를 기억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요사가 “털 난 얼굴에 뇌공 같은 입, 처진 귀와 꺾인 콧등, 불꽃 같은 눈과 금빛 눈동자를 지닌 중이니라”라고 말했다. 반의궐파가 그 말을 듣고 오싹 몸서리를 치며 “대왕이시여! 천만다행으로 사태를 아시어 목숨을 건지셨나이다! 만약 세 합을 더하였더라면 결코 온전히 살아남지 못하였으리이다! 그 중을 저는 아나이다”라고 말했다. 요사가 “그가 누구인 줄 아느냐?”라고 말했다. 반의궐파가 “제가 지난날 동양해 안에서 늙은 용왕이 그의 명성을 말하는 것을 들었사온데, 오백 년 전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혼원일기 상방 태을금선 미후왕 제천대성이옵니다. 지금은 불교에 귀의하여 당승을 보위하며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중인데, 이름을 고쳐 손오공 행자라 하옵니다. 그의 신통이 광대하고 변화가 다단하온데 대왕께서는 어찌 그를 건드리셨나이까! 이제부터 다시는 그와 싸우지 마옵소서”라고 말했다.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 안의 작은 요괴가 달려와 “대왕이시여, 그 두 중이 또 문 앞에 와서 싸움을 걸고 있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요정이 “어진 누이의 견해가 매우 옳도다. 다시는 나가지 말고 그놈들이 어찌하는지 보리라”라고 말하고는 급히 명령을 내려 “얘들아, 문을 단단히 닫아라. 그대가 문 밖에서 아무리 외친다 한들 그저 문을 열지 않을 뿐이니라. 그놈들이 이틀쯤 달라붙어 지치고 맥이 풀려 돌아갈 때면, 우리가 태연히 당승을 즐길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작은 요괴들이 일제히 돌을 날라 흙덩이로 막아 넣고 문을 아주 봉해 버렸다. 저팔계와 사승이 여러 번 외쳐도 나오지 않자 멍청이는 속이 타서 쇠갈퀴로 문을 찍었다. 그 문은 이미 굳게 닫혀 튼튼히 걸려 있어 열 수가 없었는데, 일고여덟 번 찍어 문짝을 깨뜨려 보니 안쪽은 모두 흙과 돌로 천 겹이나 높이 쌓여 있었다. 사승이 이를 보고 “둘째 형님, 이 괴물이 크게 겁을 내어 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니 저와 함께 강언덕으로 올라가 큰형님과 다시 의논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그 말에 따라 곧장 동쪽 강둑으로 돌아갔다. 행자는 반쯤 구름을 타고 반쯤 안개에 싸여 쇠몽둥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요괴가 보이지 않자 곧 구름머리를 내려 강변까지 마중 나가며 “형제들아, 그놈이 어찌하여 올라오지 않더냐?”라고 물었다. 사승이 “그 괴물이 저택 문을 굳게 닫고는 다시는 나와 만나지 않사옵니다. 둘째 형님께서 문짝을 깨뜨려 보니 안쪽이 흙과 돌로 꽉꽉 쌓여 있었나이다. 그런 까닭에 싸울 수가 없어 형님과 의논하러 왔사오니, 무슨 방도로 스승님을 구하시겠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러하니 달리 방도가 없구나. 너희 둘은 강변을 순시하며 그가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여라. 내가 다녀오마”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형님, 어디로 가시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가 보타암으로 올라가 보살님께 이 요괴가 어디서 났으며 성명이 무엇인지 여쭙겠다. 그의 조상이 살던 곳을 찾아내어 그의 가족을 잡고 사방 이웃을 붙잡은 뒤에 와서 요괴를 사로잡고 스승님을 구하리라”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웃으며 “형님, 그리 하자면 너무 번거롭고 시간만 지체되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번거롭지도 않고 지체되지도 않으리라! 내 갔다 오마!”라고 말했다. 훌륭한 대성이 상서로운 빛을 급히 타고 강어귀를 벗어나 곧장 남해로 향했다.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어느덧 낙가산이 멀지 않게 보이기에 구름머리를 낮추어 곧장 보타암 위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이십사로 제천과 수산대신과 목타행자와 선재동자와 봉주용녀가 함께 앞으로 나와 맞이하여 예를 올리며 “대성께서는 어디서 오시옵니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볼 일이 있어 보살님을 뵙고자 하노라”라고 말했다. 여러 신이 “보살님께서는 오늘 아침 동굴을 나서시며 아무도 따르지 말라 하시고 홀로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구경하고 계시옵니다. 대성께서 오늘 반드시 오실 줄 아시고 우리에게 여기서 대성을 기다려 맞이하되 곧바로 뵙게 해서는 안 된다고 분부하셨나이다. 청컨대 취암 앞에서 잠시 앉아 계시옵소서. 보살님께서 나오시면 저절로 조처가 있으실 것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대로 하였으나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선재동자가 앞으로 나와 예를 올리며 “손대성이시여, 지난번에 후의를 입었사온데 다행히 보살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거두어 주셔서 아침저녁으로 좌우를 떠나지 않고 연꽃 대 아래에서 모시고 있사오니 매우 자애로우시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는 그가 홍해아임을 알고 웃으며 “네가 그때는 마업에 마음이 미혹되었으나 오늘은 바른 과위를 얻었으니, 이제야 이 늙은 손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겠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오래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속이 타서 “여러분, 나를 위해 전해 주시오. 늦으면 내 스승의 목숨이 상할까 두렵소”라고 말했다. 제천이 “감히 아뢰지 못하옵니다. 보살님께서 친히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라 분부하셨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는 성급한 터라 어디 기다릴 수 있으랴. 급히 몸을 솟구쳐 안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 아! 이 미후왕은 성급한 데다 남을 놀려 대는 데 능하구나. 제천이 붙들어 두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걸음을 옮겨 깊은 숲으로 들어가 눈을 부릅뜨고 몰래 엿보았다. 멀리 고통을 구하는 존자를 바라보니 삿자리 깔개에 꿇어앉아 계셨다. 나른하게 흐트러져 단장하기를 싫어하시나 용안이 매우 고우시구나. 한 웅큼의 머리칼을 흩어 묶고 영락을 쓰지 않으셨으며, 소박한 남색 장삼을 걸치지 않으시고 몸에 붙는 작은 저고리를 입으셨구나. 허리에는 비단 치마를 두르고 두 발은 맨발이시며, 어깨에 두를 수놓은 띠도 없이 두 팔이 훤히 드러났구나. 옥 같은 손에 강철 칼을 쥐시고 바로 대나무 껍질을 깎고 계셨다. 행자가 이를 보고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살님, 제자 손오공이 지성으로 예를 올리나이다”라고 외쳤다. 보살이 “밖에서 기다리라”라고 이르셨다. 행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보살님, 제 스승님께서 난을 만나 특별히 통천하 요괴의 근원을 여쭙고자 왔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너는 우선 나가거라. 내가 나가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감히 억지를 부리지 못하고 대나무 숲을 걸어 나와 여러 제천에게 “보살님께서 오늘 또 살림을 새로 꾸리시는구려. 어찌하여 연꽃 대에 앉지 않으시고 단장도 하지 않으시며 좋아하지도 않으시고 숲 속에서 대나무를 깎고 계시느냐?”라고 말했다. 제천이 “저희는 알지 못하옵니다. 오늘 아침 동굴을 나서시며 단장도 하지 않으시고 곧 숲 속으로 들어가셨나이다. 또 저희에게 여기서 대성을 기다려 맞이하라 하셨으니 필시 대성의 일 때문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는 어쩔 수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살께서 자죽 바구니 하나를 손에 들고 숲에서 나오시며 “오공아, 내가 너와 함께 당승을 구하러 가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제자가 감히 재촉할 수는 없사오나, 청컨대 보살님께서는 옷을 갖추어 입으시고 연꽃 대에 오르시옵소서”라고 말했다. 보살이 “옷을 입을 것 없다. 그대로 가리라”라고 말했다. 그 보살께서 여러 제천을 남겨 둔 채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솟아가시니 손대성은 하는 수 없이 뒤따랐다. 잠시 뒤에 통천하에 이르렀는데 저팔계와 사승이 보고 “사형이 성급하여 남해에서 어찌 함부로 떠들고 외쳤는지, 단장도 하지 않은 보살님을 떠밀어 모셔 왔구나”라고 말했다.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변에 이르렀다. 두 사람이 엎드려 절하며 “보살님, 저희가 함부로 범하였사오니 죄가 있나이다! 죄가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보살께서 곧 저고리를 묶었던 비단 띠 하나를 풀어 바구니를 단단히 매달고는 그 띠를 잡아 구름을 반쯤 밟은 채 강 가운데로 던져 윗물 쪽으로 끌어당기시며 입으로 주문을 외우셨다. “죽은 것은 가고 산 것은 남아라, 죽은 것은 가고 산 것은 남아라!” 일곱 번을 외우시고 바구니를 들어 올리니, 바구니 속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어 한 마리가 눈을 깜박이고 비늘을 움직이고 있었다. 보살이 부르셨다. “오공아, 어서 물에 내려가 네 스승님을 구하여라.” 행자가 “요사를 잡지도 못하였는데 어찌 스승님을 구하옵니까?”라고 말했다. 보살이 “이 바구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했다. 저팔계와 사승이 절을 올리며 “이 고기가 어찌하여 그러한 수단이 있사옵니까?”라고 여쭈었다. 보살이 “그는 본디 내 연꽃 못에서 기른 금어로 날마다 물 위로 떠올라 경을 들으며 수단을 닦았느니라. 저 아홉 조각 구리 쇠망치는 바로 아직 피지 않은 연꽃 봉오리 하나를 그가 단련하여 병기로 만든 것이니라. 어느 날인가 조수가 넘쳐 흐를 때 이곳으로 흘러왔느니라. 내가 오늘 아침 난간을 잡고 꽃을 보는데 이놈이 나와 절을 하지 않기에 손가락을 꼽아 무늬를 더듬어 보니 그가 여기서 정을 이루어 네 스승을 해치고 있음을 알았느니라. 그런 까닭에 단장할 겨를도 없이 신공을 부려 대바구니 하나를 엮어 그를 사로잡았노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보살님, 그러하시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저희가 진가장의 여러 신도들을 불러 보살님의 금빛 존안을 뵙게 하겠나이다. 한편으로는 은혜를 남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요괴를 거둔 이 일을 알려 범인들이 신심으로 공양하게 하려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보살이 “그러하마. 너는 어서 가서 불러 오너라”라고 말했다. 저팔계와 사승이 함께 마을 앞으로 날듯이 달려가 큰 소리로 “모두 와서 살아 계신 관음보살을 보시오! 모두 와서 살아 계신 관음보살을 보시오!”라고 외쳤다. 온 마을의 노인과 아이, 남자와 여자가 강변으로 몰려와 진흙과 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속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였다. 그 가운데 그림을 잘 그리는 이가 그 모습을 그려 전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어람 관음이 몸을 나타내신 것이었다. 그 길로 보살께서는 남해로 돌아가셨다. 저팔계와 사승이 물길을 헤치고 곧장 수원의 저택으로 가서 스승님을 찾았다. 알고 보니 그 안의 물괴와 물고기 정령들이 모조리 죽어 썩어 있었다. 뒷궁으로 들어가 돌상자를 열어 당승을 업고 물결을 벗어나 여러 사람과 만났다. 진청 형제가 머리를 조아리며 “어르신께서 소인의 만류를 따르지 않으셔서 이토록 고생을 하셨나이다”라고 사례하였다. 행자가 “더 말할 것 없다. 너희 이곳 사람들은 다음 해부터 다시는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느니라. 그 대왕은 이미 뿌리까지 뽑혔으니 다시는 해가 없으리라. 진 노인, 이제야말로 그대를 번거롭게 할 만하니 어서 배 한 척을 구하여 우리를 강 건너 보내 주게”라고 말했다. 진청이 “있나이다! 있나이다! 있나이다!”라고 말하고는 널을 풀어 배를 만들라 명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기꺼이 내어놓지 않는 이가 없었다. 어떤 이는 내가 돛과 뱃천을 사겠다 하고, 어떤 이는 내가 삿대와 노를 마련하겠다 하며, 어떤 이는 내가 밧줄을 내겠다 하고, 어떤 이는 내가 뱃사공을 고용하겠다 하였다. 모두 강변에서 떠들썩하게들 있는데, 문득 강 한가운데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손대성이여, 배를 만들지 말고 남의 재물만 쓰게 하지 마시오. 내가 그대 사부와 제자들을 건너 보내겠나이다.”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하나하나 놀라, 겁이 작은 이들은 집으로 달아나고 겁이 큰 이들은 벌벌 떨면서도 구경하고 있었다. 잠시 뒤 물속에서 괴물 하나가 기어 나왔는데, 그대는 그 생김새가 어떠한지 보라. 모난 머리의 신령한 물건은 범상한 종류가 아니요, 아홉 개의 갈비뼈에 영기 있어 물의 신선이라 불리는구나. 꼬리를 끌어 천 년의 수명을 늘릴 수 있고, 몸을 숨겨 온갖 내의 깊은 못에 조용히 깃드는구나. 물결을 뒤집고 파도를 뛰어넘어 강언덕을 들이치고, 해를 향하고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에 누웠구나. 기운을 기르고 영을 품어 참으로 도가 있어, 여러 해 흰 가루를 덮어쓴 문둥머리 자라로다. 그 노구가 또 “대성이여, 배를 만들지 마시오. 내가 그대 사부와 제자들을 건너 보내겠나이다”라고 외쳤다. 행자가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이 죽일 놈의 짐승 같으니! 곁에 오기만 하면 이 몽둥이로 너를 때려 죽이리라!”라고 말했다. 노구가 “저는 대성의 은혜에 감동하여 자원히 좋은 마음으로 그대 사부와 제자들을 보내려 하거늘, 어찌 도리어 저를 때리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너에게 무슨 은혜를 베풀었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노구가 “대성이여, 그대는 모르시옵니다. 이 물 밑의 수원의 저택은 본래 저의 집이옵니다. 대대로 조상이 전하여 저에게까지 내려왔나이다. 제가 본근을 깨닫고 영기를 길러 이곳에서 수행하느라 조상이 살던 집을 한 번 뒤집어 고쳐 수원의 저택을 세웠나이다. 그 요사는 구 년 전 해일이 일어 파도가 뒤집힐 때 조류의 머리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사나움과 완악함을 믿고 저와 다투었나이다. 그에게 많은 자식을 상하고 많은 권속을 빼앗겼나이다. 제가 그를 당해 내지 못하여 소굴을 빼앗기고 말았나이다. 이제 대성께서 이곳에 오셔서 당승을 구하시고 관음보살을 모셔 와 요기를 쓸어 깨끗이 하시어 괴물을 거두어 가시니 저택을 제게 돌려주셨나이다. 저는 이제 늙은이와 아이들이 모여 다시는 흙을 지고 진흙을 바를 필요 없이 옛 집에 살게 되었나이다. 이 은혜는 언덕과 산처럼 무겁고 바다처럼 깊나이다. 비단 저희만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도 해마다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되어 얼마나 많은 집안의 자녀를 온전히 하였는지 모르나이다. 이는 참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를 얻은 은혜라 하겠나이다. 어찌 감히 보답하지 않겠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쇠몽둥이를 거두고 “네가 진실로 참된 마음이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노구가 “대성의 은덕이 넓고 깊거늘 어찌 감히 거짓을 말하겠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참된 마음이라면 너는 하늘을 향해 맹세하여라”라고 말했다. 그 노구가 붉은 입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맹세하며 “제가 참된 마음으로 당승을 이 통천하 건너 보내지 않는다면 이 몸이 피물이 되리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너 올라오너라, 어서 올라오너라”라고 말했다. 노구가 그제야 강변 가까이 다가와 몸을 한 번 솟구쳐 강언덕으로 기어 올라왔다.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가 보니 둘레가 사 장이나 되는 커다란 흰 등껍질이었다. 행자가 “스승님, 우리가 그의 몸에 올라타고 건너갑시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제자야, 저 겹겹이 언 두꺼운 얼음에서도 오히려 걱정이 많았거늘, 하물며 이 자라의 등은 안온하지 못할까 두렵구나”라고 말했다. 노구가 “스승님께서는 안심하시옵소서. 제가 저 두꺼운 얼음보다 훨씬 안온하옵니다. 조금만 기울어져도 공덕을 이루지 못하리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 무릇 중생이 사람의 말을 할 줄 알면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나이다”라고 말하고는 “형제들아, 어서 말을 끌어 오너라”라고 명하였다. 강변에 이르자 진가장의 노인과 아이, 남자와 여자가 일제히 와서 배웅하며 절을 올렸다. 행자가 말을 흰 자라의 등껍질 위로 끌어올리게 하고 당승은 말의 목 왼쪽에, 사승은 오른쪽에, 저팔계는 말 뒤에, 행자는 말 앞에 서게 하였다. 또 그 자라가 무례할까 염려하여 호랑이 힘줄로 만든 띠를 풀어 노구의 코에 꿰어 당기니 마치 고삐 한 줄 같았다. 그리고 한 발은 등껍질을 밟고 한 발은 머리를 디디고, 한 손은 쇠몽둥이를 쥐고 한 손은 고삐를 잡은 채 “노구야, 천천히 가라. 조금이라도 기울어지면 바로 머리를 한 방이니라!”라고 외쳤다. 노구가 “감히! 감히!”라고 말했다. 그는 네 발을 힘껏 저어 물 위를 평지 걷듯 나아갔다. 사람들이 모두 언덕 위에서 향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쳤으니, 이는 참된 나한이 범계에 내려오시고 살아 계신 보살이 나타나신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절을 올리고서야 돌아갔다. 말하자면, 스승님이 흰 자라를 타고 하루도 되지 않아 팔백 리 통천하를 지나 손발 하나 젖지 않고 언덕에 올랐다. 삼장법사가 언덕에 올라 두 손을 모으고 사례하며 “노구여, 그대를 수고롭게 하였으나 드릴 것이 없구나. 내가 경을 얻어 돌아올 때 갚으마”라고 말했다. 노구가 “스승님의 사례는 사양하옵니다. 제가 듣건대 서천의 부처님께서는 멸함도 없고 남도 없으시어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아신다 하옵니다. 저는 이곳에서 꼬박 천삼백여 년을 수행하였사오니 수명을 늘리고 몸이 가벼워져 사람의 말을 할 줄은 알지만, 다만 본래의 껍데기를 벗지 못하나이다. 부디 스승님께서 서천에 가시거든 부처님께 한 번 여쭈어 주시옵소서. 제가 언제 이 껍데기를 벗고 사람의 몸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흔쾌히 “묻겠다, 물어보마”라고 말했다. 그제야 그 노구가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행자가 당승을 모시어 말에 오르게 하고 저팔계가 행장을 메고 사승이 좌우를 따르니, 사부와 제자들이 큰길을 찾아 줄곧 서쪽으로 달려갔다. 이는 바로 이러한 것이니라. 성스러운 승려가 어명을 받들어 미타를 배알하러 가니, 물은 멀고 산은 아득하여 재난이 많구나. 뜻은 굳고 마음은 정성스러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흰 자라가 등에 업고 통천하를 건너는구나. 결국 이 뒤에 또 얼마나 많은 노정이 남아 있고 또 어떠한 길흉이 있을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0회 정난성종인애욕(情亂性從因愛欲) · 신혼심동우마두(神昏心動遇魔頭) 사에 이르기를, 마음의 밭을 자주자주 쓸고, 티끌 세상의 정을 가늘게 가늘게 걷어 내어, 구렁과 함정이 비로존을 빠뜨리지 않게 하라. 본체가 항상 맑고 깨끗해야만 비로소 태초의 근원을 논할 수 있느니라. 성품의 촛불은 심지를 돋워야 하고 조계의 물결은 숨 쉬는 대로 맡기되, 원숭이와 말이 기운과 소리를 거칠게 내지 말게 하라. 밤낮으로 끊임없이 고르게 숨을 쉬어야만, 비로소 참된 공부가 드러나느니라. 이 한 수의 사는 곡조의 이름이 《남가자》이니, 삼장법사가 통천하의 찬 얼음 재앙을 벗어나 흰 자라의 등을 밟고 저쪽 언덕에 오른 일을 읊은 것이다. 사부와 제자 넷이 서쪽으로 달려가는데 마침 매서운 겨울 풍경을 만났으니, 저 숲의 빛은 아득하여 연기 속에 옅고, 산의 뼈는 우뚝하여 물 밖에서 맑구나. 사부와 제자들이 한창 가고 있는데 홀연히 또 큰 산 하나를 만나 길을 막았으니, 길은 좁고 벼랑은 높으며 돌은 많고 고개는 험하여 사람과 말이 가기 어려웠다.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고삐를 당겨 쥐고서 “제자야” 하고 불렀다. 손행자가 저팔계와 사승을 이끌고 앞에 나아가 곁에 서서 “스승님, 무슨 분부이시옵니까?”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너희는 저 앞의 산이 높은 것을 보아라. 호랑이나 이리가 괴이한 짓을 하고 요물 짐승이 사람을 해칠까 두렵구나. 이번에는 반드시 조심하자”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 마음을 놓으시고 염려하지 마옵소서. 저희 형제 세 사람은 성품이 화합하고 뜻이 하나이옵니다. 바른길로 돌아와 참된 것을 구하며 요괴를 쓸고 요물을 항복받는 법을 부리온데, 무슨 호랑이나 이리, 요물 짐승이 두렵사오리까!”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을 놓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골짜기 어귀에 이르러 말을 재촉하여 벼랑에 오르고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과연 훌륭한 산이로다. 우뚝우뚝 솟았고, 깎아지른 봉우리 높고도 높구나. 우뚝 솟은 산은 하늘을 찌르고, 깎아지른 봉우리는 푸른 허공을 가로막는구나. 괴상한 돌이 어지러이 쌓인 것은 앉은 호랑이 같고, 푸른 소나무가 비스듬히 걸린 것은 나는 용 같구나. 고개 위에서 새가 우는 소리는 고운 가락이 아름답고, 벼랑 앞에 매화가 피어나니 기이한 향기가 짙구나. 골짜기 물은 졸졸 흘러나오며 차갑고, 산마루의 구름은 어둑하여 다가오는 기세가 사납구나. 또 저 펄펄 날리는 눈과 으스스한 바람이 보이고, 주린 호랑이가 산중에서 으르렁거리는구나. 추위에 떠는 까마귀는 나무를 골라도 깃들 곳이 없고, 들사슴은 보금자리를 찾아도 정해진 자취가 없구나. 가는 이가 발을 떼기 어렵고 미간을 찌푸리고 근심 어린 얼굴로 머리를 감싸니 실로 한탄할 만하구나. 사부와 제자 넷이 눈을 무릅쓰고 추위를 헤치며 으스스 떨면서 저 봉우리와 험한 고개를 지나가는데, 멀리 산골짜기 움푹한 곳에 누각과 대가 높이 솟아 있고 집이 맑고 그윽한 것이 보였다.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기뻐하며 “제자야, 이 하루가 또 배가 고프고 춥구나. 다행히 저 산골짜기에 누각과 집이 있으니 틀림없이 농가나 암자나 절일 것이다. 가서 공양을 좀 빌어 먹고 가자”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급히 눈을 부릅뜨고 보니, 저쪽에 흉한 구름이 어렴풋이 서리고 사악한 기운이 자욱하였다. 행자가 머리를 돌려 삼장법사에게 “스승님, 저쪽은 좋은 곳이 아니옵니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누각과 정자가 있는 것이 보이는데, 어찌하여 좋은 곳이 아니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그대는 어찌하여 알지 못하시나이까? 서쪽 길 위에는 요괴와 사악한 마귀가 많사옵니다. 그들은 능히 집과 정자를 점화하여 만들 줄 아오니, 무슨 누각이나 집이나 객관이나 정자라도 모두 가리켜 변화시켜 사람을 속일 수 있나이다. 그대는 용이 아홉 가지를 낳는다는 말을 아시나이까? 그 가운데 신이라 하는 것이 하나 있사온데, 신이 기운을 내뿜으면 누각과 얕은 못처럼 보이나이다. 만일 큰 강에서 정신이 아득해질 때 신이 이러한 형세를 나타내면, 까치나 까마귀가 날아오르다가는 반드시 날개를 접고 내려앉나이다. 그러면 그대가 만 마리든 천 마리든, 모두 그놈이 한 기운에 삼켜 버리나이다. 이 뜻이 사람을 해치는 것이 가장 무거우온데, 저쪽의 기색이 흉하고 사악하오니 결단코 들어가서는 아니 되나이다.” 삼장법사가 “들어갈 수 없다면 나는 참으로 배가 고프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스승님께서 과연 배가 고프시다면 우선 말에서 내리시어 이 평평한 곳에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다른 곳에서 공양을 좀 빌어 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그 말대로 말에서 내렸다. 저팔계가 고삐를 잡고 사승이 행장을 내려놓고는 보따리를 풀어 발우를 꺼내 행자에게 건넸다. 행자가 발우를 손에 받아 쥐고 사승에게 분부하며 “현제여,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스승님을 잘 모시어 이곳에 편히 앉아 계시게 하오. 내가 공양을 빌어 온 뒤에 다시 서쪽으로 가세”라고 말했다. 사승이 받들어 승낙하였다. 행자가 또 삼장법사에게 “스승님, 이곳은 길한 데가 적고 흉한 데가 많사오니, 결단코 몸을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마옵소서. 이 늙은 손이 공양을 빌러 가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당승이 “말이 많을 것 없다. 다만 네가 빨리 갔다 빨리 오기만 하여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몸을 돌려 가려다가 도로 돌아와 “스승님, 그대는 가만히 앉아 있는 성질이 없으시니, 제가 몸을 편안히 하는 법을 하나 드리겠나이다”라고 말했다. 곧 여의봉을 꺼내어 한 번 흔들어 저 평평한 땅 위에 둘레로 동그라미 하나를 그었다. 당승을 그 가운데 앉히고 저팔계와 사승을 좌우에 모시어 세우며 말과 행장을 모두 몸 가까이 두고는 당승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이 늙은 손이 그은 이 동그라미는 저 구리 성 쇠 담보다 튼튼하옵니다. 무슨 표범이건 이리건 벌레건, 요마귀괴물이건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나이다. 다만 너희가 동그라미 밖으로 걸어나가기만 하지 말고 가운데서 편히 앉아 있으면 무사함을 보장하옵니다. 그러나 동그라미를 벗어나면 반드시 독한 손길을 만나나이다. 천만에 천만에! 거듭거듭 당부하옵니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그 말대로 하여 사부와 제자들이 모두 단정히 앉았다. 행자가 비로소 구름머리를 일으켜 마을을 찾아 공양을 빌러 곧장 남쪽으로 가는데, 홀연히 옛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한 곳이 보이니 한 마을의 농가였다. 구름머리를 누르고 내려와 자세히 살펴보니, 다만 이러하였느니라. 눈은 시든 버드나무를 억누르고, 얼음은 네모난 못을 얼어붙게 하였구나. 성긴 대나무는 푸름을 흔들고, 무성한 큰 소나무는 물빛을 머금었구나. 몇 칸의 초가집은 반쯤 은을 두른 듯하고, 외진 작은 다리는 비스듬히 분을 발라 쌓았구나. 울타리 가에 수선화가 살짝 피어나고, 처마 아래로 얼음이 긴 젓가락처럼 매달렸구나. 쌔액쌔액 찬 바람이 기이한 향기를 보내고, 눈이 가득하여 매화 핀 곳이 보이지 않는구나. 행자가 발걸음을 따라 마을의 경치를 구경하는데, 문득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사립문이 열리는 곳에서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손에는 명아주 지팡이를 끌고, 머리에는 양 털 갖옷을 둘렀으며, 몸에는 해진 누더기 옷을 걸치고 발에는 부들로 삼은 신을 신었는데, 지팡이를 짚고 몸을 뒤로 젖히며 하늘을 향해 “서북풍이 일어나니 내일은 맑겠구나”라고 말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쪽에서 작은 개 한 마리가 뛰어나와 행자를 보고 왕왕 짖어 댔다. 그제야 노인이 고개를 돌려 보니 행자가 발우를 받들고 있었다. 행자가 인사를 올리며 “노시주여, 저희 중은 동토 대당에서 서천으로 부처를 뵙고 경을 구하러 가는 황제의 칙사이옵니다. 마침 길이 그대의 고장을 지나게 되었사온데 우리 스승님께서 배가 고프시어 특별히 존귀한 댁을 찾아와 공양을 빌고자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노인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툭툭 치고 “장로여, 우선 공양 빌기를 그만두시오. 그대는 길을 잘못 들었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잘못 들지 않았소”라고 말했다. 노인이 “서천으로 가는 큰길은 저 바른 북쪽 아래에 있소. 여기서 그곳까지는 천 리나 멀거늘, 어찌 큰길을 찾아가지 않고 있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바로 그 바른 북쪽이오. 우리 스승님께서 지금 큰길 위에 단정히 앉아 계시며 내가 공양 빌어 가기를 기다리시오”라고 말했다. 그 노인이 “이 중이 헛소리를 하는구먼. 네 스승이 큰길에서 네가 공양 빌어 오기를 기다린다면, 이처럼 천 리나 먼데 걸어간다 해도 육칠 일은 걸릴 터이고, 되돌아가는 데도 또 육칠 일이 걸릴 터인즉 그대 스승이 굶어 죽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노시주께 숨기지 않고 말하오리다. 나는 스승님을 떠난 지 아직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때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곳에 와 있소. 이제 공양을 빌면 또 점심 공양으로 먹으러 가야 하오”라고 말했다. 노인이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 겁이 나며 “이 중은 귀신이로다! 귀신이야!”라고 말하고, 급히 몸을 빼어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행자가 한 번에 붙잡으며 “시주여, 어디를 가시오? 공양이 있거든 어서 좀 빌어 주시오”라고 말했다. 노인이 “불편하오! 불편해! 다른 집으로 가 보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시주는 참으로 사정을 모르는구려! 그대는 내가 이곳에서 천 리나 멀다고 하였소. 만일 다시 다른 집으로 간다면 또 천 리가 되지 않겠소? 참으로 우리 스승님을 굶겨 죽이는 일이오”라고 말했다. 그 노인이 “진실로 속이지 않고 말하오리다. 우리 집 늙은이와 아이 육칠 식구가 막 쌀 세 되를 일어 솥에 넣었는데 아직 익지도 않았소. 그대는 다른 곳에 가서 좀 돌아다니다가 다시 오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세 집을 돌아다니는 것이 한 집에 앉아 있는 것만 못하다 하였소. 나는 이곳에서 기다리겠소”라고 말했다. 노인이 자꾸 달라붙자 성이 나서 명아주 지팡이를 들어 곧장 때렸다. 행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가 민머리를 향해 일고여덟 번 내리치는 것을 그저 간지러움을 긁어 주는 것으로 여겼다. 노인이 “이건 이마로 받아내는 중이로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노인장, 어떻게 때리시든 지팡이 횟수만 분명히 기억하시오. 지팡이 한 대에 쌀 한 되씩, 천천히 되어 오시오”라고 말했다. 노인이 그 말을 듣고 급히 지팡이를 내던지고는 달려 들어가 문을 닫아 걸고는 “귀신이야! 귀신이야!” 하고만 외쳐 댔다. 급히 문을 닫는 바람에 그 집 식구들이 벌벌 떨며 앞문과 뒷문을 모두 닫아 걸었다. 행자가 그가 문을 닫는 것을 보고 속으로 “이 늙은 도둑놈이 쌀을 일어 솥에 넣었다 하였는데, 그것이 헛말인지 참말인지 알 수 없구나. 속담에 이르기를 도는 어진 이를 교화하고 불법은 어리석은 이를 교화한다 하였으니 이 늙은 손이 들어가 보리라”라고 생각했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주문을 외우고 은신하는 둔법을 부려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솥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며 반 솥의 마른밥이 끓고 있었다. 행자가 발우를 그 속에 처박아 가득히 한 발우를 퍼 담고는 곧 구름을 타고 돌아갔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친다. 말하자면, 당승은 동그라미 안에 앉아 오랫동안 기다렸다. 행자가 돌아오지 않자 몸을 일으켜 서글피 바라보며 “이 원숭이는 어디로 공양을 빌러 갔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곁에서 웃으며 “어디로 놀러 갔는지 어찌 아느냐! 무슨 공양을 빈다고 우리를 여기서 감옥살이를 시키느냐!”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어찌하여 감옥살이라 하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스승님, 그대는 본래 모르시는구나. 옛사람이 땅에 금을 그어 감옥을 삼았거늘, 저놈이 막대로 동그라미를 그어 놓고는 쇠 담 구리 성보다 튼튼하다 하였거늘, 만일 호랑이나 이리, 요물 짐승이 온다면 어찌 그놈을 막아 내겠느냐? 그저 공연히 잡아먹히고 말 일이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오능아, 네 생각에 어찌하면 좋겠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이곳은 바람도 막아 주지 않고 추위도 피하게 하지 못한다. 늙은 돼지의 뜻대로라면 길을 따라 그냥 서쪽으로 가야 한다. 사형이 공양을 빌어 구름을 타고 오면 반드시 빨리 올 터이니 그가 따라오게 하자. 공양이 있거든 먹고 나서 가면 되지 않느냐. 그런데 이렇게 한참 앉아 있으니 발이 몹시 시렵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자 곧 재수 없는 별이 궁에 든 격이 되어, 마침내 그 멍청한 놈의 말을 좇아 모두 동그라미 밖으로 나왔다. 사승이 말을 끌고 저팔계가 짐을 메니 그 장로가 길을 따라 걸어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누각이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알고 보니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집이었다. 문 밖에는 팔 자 모양의 흰 담장이 있고, 거꾸로 매달린 연꽃과 되 모양의 문루 하나가 서 있었으며, 모두 다섯 빛깔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문은 반쯤 열리고 반쯤 닫혀 있었다. 저팔계가 곧 말을 문지방의 북 모양 돌에 매어 두고, 사승이 짐을 내려놓으니, 삼장법사는 바람을 싫어하여 문지방 위에 앉았다. 저팔계가 “스승님, 이곳은 공이나 후작의 저택이거나 재상의 집인가 보옵니다. 앞문 밖에 사람이 없으니 틀림없이 모두 안에서 불을 쬐고 있사올 터, 그대들은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들어가 좀 보고 오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당승이 “조심하여라! 남의 집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 멍청한 놈이 “저도 안다. 바른 선문으로 돌아온 뒤로 이 동안 예절도 좀 배웠으니, 저 시골의 거친 사내들과는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 멍청한 놈이 아홉 갈래 갈퀴를 허리에 찔러 넣고 푸른 비단 도포를 여미어 입고는 점잖은 체하며 문 안으로 들어갔다. 보니 칸이 셋인 큰 대청이었는데, 발과 창이 높이 걷혀 있고 조용하여 사람의 자취가 전혀 없었으며 탁자나 의자, 세간도 없었다. 병풍문을 돌아 안으로 또 들어가니 바로 복도 하나가 있었고, 복도 뒤에 큰 누각이 하나 있었는데 누각 위의 창살이 반쯤 열려 있고 그 너머로 노란 능라 휘장이 어렴풋이 보였다. 멍청한 놈이 “아마 추위를 타는 이가 아직 자고 있나 보구나”라고 말했다. 그는 안과 바깥을 가리지 않고 성큼성큼 누각 위로 걸어 올라가 손으로 휘장을 걷어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 휘청 넘어질 뻔하였다. 알고 보니 저 휘장 안 상아 평상 위에 해골 하나가 희끄무레하게 놓여 있었는데, 두개골은 됫박만 하고 다리뼈는 사오 자나 되었다. 멍청한 놈이 정신을 가다듬고는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해골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하여 말했다. “그대는 어느 대 어느 조의 원수인지, 어느 나라 어느 고을의 대장군인지 알 수 없구나. 당시엔 호걸이 강함을 다투어 이겼건만, 오늘은 처량하게 뼈와 힘줄만 드러났구나. 처자식이 와서 시중드는 일도 보이지 않고, 사졸이 와서 향을 사르는 일을 어찌 만나리오. 이런 꼴을 두고 보니 참으로 한탄할 만하구나. 왕업을 일으킨 패업의 인물이 애석할 뿐이로다.” 저팔계가 한창 감탄하고 있는데, 문득 저 휘장 뒤에서 불빛이 한 번 번쩍였다. 멍청한 놈이 “아마 향불을 모시는 이가 뒤에 있나 보구나”라고 말했다. 급히 걸음을 돌려 휘장을 지나 살펴보니, 그것은 누각을 꿰뚫은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었다. 저쪽에 채색을 칠한 탁자가 하나 있고, 그 탁자 위에 비단과 무명으로 만든 옷 몇 벌이 어지러이 걸쳐 있었다. 멍청한 놈이 들어 보니 바로 금을 수놓은 등저고리 세 벌이었다. 그는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누각에서 가지고 내려와 대청을 나와 곧장 문 밖으로 가서 “스승님, 이곳은 사람 사는 기척이 전혀 없다. 망령의 집이다. 늙은 돼지가 안으로 들어가 높은 누각 위까지 올라갔더니 노란 능라 휘장 안에 해골 무더기가 하나 있었다. 누각을 꿰뚫은 곁에 금을 수놓은 등저고리 세 벌이 있기에 내가 가지고 왔다. 이것도 우리 한 노정의 행운이다. 이때 날씨가 추우니 바로 쓸 곳이 있다. 스승님, 우선 겉옷을 벗으시고 그것을 속에 받쳐 입으시오. 요긴하게 쓰시면 추위를 먹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안 되오! 안 되오! 율법에 이르기를, 공공연히 취하든 남몰래 훔치든 모두 도둑질이라 하였느니라. 만일 누가 알아차리고 우리를 뒤쫓아 관가에 이르면, 단연코 도둑의 죄가 될 것이니, 도로 가져다가 원래 있던 자리에 걸어 두어라! 우리는 여기서 바람을 피해 좀 앉아 있다가 오공이 오거든 길을 가자. 출가인이 이처럼 작은 이익을 탐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다. 닭이나 개조차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만 알 뿐인데 누가 우리를 고발하겠느냐? 무슨 증거가 있단 말이냐? 그냥 주운 것과 다름이 없거늘, 무슨 공취니 절취니 하는 논의가 있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삼장법사가 “네가 함부로 하는구나! 비록 사람은 알지 못한다 하나 하늘이 어찌 덮어 주겠느냐! 현제께서 훈계를 내려 이르시기를,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여도 신의 눈은 번개 같다 하였느니라. 일찍이 도로 갖다 주어라. 예가 아닌 물건을 탐내지 말라”라고 말했다. 그 멍청한 놈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당승을 향해 웃으며 “스승님, 제가 사람이 된 이래로 등저고리도 몇 벌 입어 보았지만, 이처럼 금을 수놓은 것은 본 적이 없다. 그대께서 입지 않으시려거든 늙은 돼지가 한번 입어 보고, 새 옷을 시험하여 등이나 녹여 보겠다. 사형이 오거든 벗어 도로 주고 길을 가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사승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한 벌 입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함께 겉에 입은 도포를 벗고 등저고리를 꿰어 입었다. 막 띠를 조이는데, 어찌된 일인지 서 있지를 못하고 푹 넘어졌다. 알고 보니 이 등저고리는 결박하는 손보다 더하여, 순식간에 그들 두 사람의 두 손을 등 뒤로 꿰어 가슴에 딱 붙게 묶어 버린 것이었다. 급히 당승이 발을 구르며 원망하고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 풀려 하였으나, 어찌 풀 수 있었으랴. 세 사람이 그곳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외치자, 그만 요마의 우두머리를 놀라게 하고 말았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저 누각은 과연 요정이 점화한 것으로, 날마다 이곳에서 사람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요정이 굴 속에 앉아 있는데 문득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급히 문 밖으로 나와 보니 과연 몇 사람이 묶여 있었다. 요마가 곧 작은 요괴들을 불러 함께 그쪽으로 가서는 누각과 집의 형체를 거두고 당승을 부축하여 끌며 백마를 끌고 행장을 메어 저팔계와 사승을 한꺼번에 굴 속으로 잡아갔다. 늙은 요마가 대에 올라 높이 앉고, 작은 요괴들이 당승을 대 가까이로 밀어 무릎 꿇어 엎드리게 하였다. 요마가 물었다. “그대는 어느 곳의 중이냐? 어찌하여 이토록 간이 커서 대낮에 내 옷을 훔치느냐?” 삼장법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뢰었다. “빈승은 동토 대당의 칙사로 서천에 경을 구하러 가는 자이옵니다. 배가 고파 큰 제자를 공양 빌러 보냈사온데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말을 좇지 못하여 잘못 신선의 뜰로 들어가 바람을 피하게 되었나이다. 뜻밖에도 제 두 제자가 작은 이익을 탐내어 이 옷을 꺼내 입었사오나, 빈승은 결단코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사옵고 마땅히 본래 있던 곳에 갖다 주라 일렀나이다.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이것을 입어 등을 녹이겠다 하다가, 뜻하지 않게 대왕의 기회에 걸려 빈승까지 잡혀 왔나이다. 만 번 자비를 베푸시어 제 목숨을 남겨 주시옵소서. 참된 경을 구하여 대왕의 은혜를 길이 새기고, 동토로 돌아가 천고에 전파하겠나이다.” 그 요마가 웃으며 “내가 여기서 사람들의 말을 늘 듣거니와, 당승의 살점 한 조각을 먹으면 백발이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난다 하더니, 다행히 오늘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왔거늘 도리어 너를 살려 주기를 바라느냐! 네 큰 제자의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로 공양을 빌러 갔느냐?”라고 말했다.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곧 입을 열어 자랑하며 “우리 사형은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제천대성 손오공이시다”라고 말했다. 그 요마가 제천대성 손오공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두려워졌으나 입으로는 말하지 않고 속으로 “그놈이 신통이 광대하다는 말을 오래도록 들었는데, 오늘 뜻하지 않게 만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하였다. “작은 놈들아, 당승을 묶고 저 두 놈에게서 보물을 벗겨 내어 끈을 두 개 바꾸어 매어라. 우선 뒤로 옮겨 두어라. 내가 그 큰 제자를 잡아다 한꺼번에 씻어서 찜통에 넣어 쪄 먹기에 좋을 터이다.” 작은 요괴들이 대답 한마디 하고는 세 사람을 모두 묶어 뒤로 옮기고, 백마를 구유에 매어 두고 행장을 방 안으로 옮겼다. 요괴들이 모두 병기를 갈며 행자를 잡아올 준비를 하였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친다. 말하자면, 손행자는 남쪽 마을 사람의 집에서 발우 하나 가득 공양을 거두어 가지고 구름을 타고 옛길로 돌아왔다. 곧장 산비탈의 평평한 곳에 이르러 구름머리를 누르고 내려와 보니, 당승은 이미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으며, 막대로 그어 놓은 동그라미는 그대로 있었으나 사람과 말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뒤돌아 저 누각이 있던 곳을 보니 또한 모두 없어지고 산기슭의 괴상한 돌만 보였다. 행자가 가슴이 철렁하며 “말할 것도 없구나! 그들은 틀림없이 저 독한 손에 걸렸도다!”라고 말했다. 급히 길을 따라 말발굽 자취를 보며 서쪽으로 쫓아갔다. 오륙 리쯤 가는데 한창 서글픈 마음이 들 무렵, 문득 북쪽 비탈 바깥에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니 늙은이 하나가 털옷으로 몸을 덮고 온모로 머리를 가렸으며, 발에는 반쯤 새 것이고 반쯤 낡은 기름신을 신고 손에는 용머리 지팡이를 쥐었는데, 뒤쪽에 어린 동복 하나가 납매화 가지를 꺾어 들고 비탈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왔다. 행자가 발우를 내려놓고 정면으로 마주하여 인사를 올리며 “노공공, 빈승이 인사를 올리옵니다”라고 불렀다. 그 늙은이가 곧 답례하며 “장로는 어디서 오는 길이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저희는 동토에서 와서 서천으로 부처를 뵙고 경을 구하러 가는 사부와 제자 넷이옵니다. 스승님께서 배가 고프시어 특별히 공양을 빌러 가며 그 세 사람을 저 산비탈 평평한 곳에 앉아 기다리라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보이지 않사오니 어느 길로 갔는지 알 수 없나이다. 공공께 감히 여쭙건대 혹시 보셨나이까?”라고 말했다. 노인이 그 말을 듣고 하하, 하고 냉소하며 “너희 세 사람 가운데 입이 길고 귀가 큰 자가 하나 있더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있소! 있소! 있소!”라고 말했다. “또 괴이한 빛깔의 얼굴을 한 자가 있어 백마 한 필을 끌고 흰 얼굴의 뚱뚱한 중 하나를 이끌고 있더냐?” 행자가 “그러하오! 그러하오! 그러하오!”라고 말했다. 늙은이가 “너희는 길을 잘못 들었구나. 그들을 찾지 말고 저마다 목숨이나 돌보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저 흰 얼굴이 제 스승님이옵고, 저 괴상한 놈이 제 사제이옵니다. 제가 그들과 함께 지극한 마음을 내어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터인데, 어찌 그를 찾지 않겠나이까!” 늙은이가 “내가 조금 전 이곳을 지나가다가 그들이 길을 잘못 들어 요마의 입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노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번거로우시겠으나 공공께서 좀 가르쳐 주시옵소서. 어떤 요마이며 어디에 사는지 알려 주시면, 제가 문을 찾아가 그들을 도로 찾아 서천으로 가겠나이다”라고 말했다. 늙은이가 “이 산은 이름을 금두산이라 하고, 산 앞에 금두동이 있느니라. 그 굴 속에 독각시대왕이 있거늘, 그 대왕은 신통이 광대하고 위무가 높고 세니라. 저 세 사람은 이번에 단연코 목숨을 잃었느니라. 그대가 찾으러 간다면 그대마저 보전하기 어려우리니, 가지 않는 것만 못하느니라. 나도 감히 그대를 막지 못하고 감히 붙들지도 못하노니, 다만 그대의 마음속 헤아림에 맡기노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거듭 절하며 사례하고 “공공의 가르침을 많이 입었사옵니다. 제가 어찌 찾지 않을 이치가 있사옵니까!”라고 말하고는 이 공양밥을 그에게 쏟아 주고 빈 발우는 스스로 거두었다. 늙은이가 지팡이를 내려놓고 발우를 받아 동복에게 건네더니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둘이 나란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불렀다. “대성이시여, 소신은 감히 숨기지 못하겠나이다. 저희 둘은 바로 이 산의 산신과 토지신이옵니다. 여기서 대성을 맞이하려 기다리고 있었나이다. 이 공양과 발우는 소신이 거두어 두어 대성께서 몸이 가벼워 법력을 쓰시기 좋게 하겠나이다. 당승을 구하여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한 뒤에 이 공양을 당승께 도로 올리면, 비로소 대성의 지극한 공경과 지극한 효도가 드러나리이다.” 행자가 호통치며 “이 털 달린 귀신놈아, 매 맞을 짓을 하는구나! 내가 온 줄 알면서 어찌 일찍이 맞이하지 않았느냐? 또 이렇게 머리를 숨기고 꼬리를 감추니 무슨 도리냐?”라고 말했다. 토지신이 “대성께서 성급하시와 소신이 감히 함부로 나설 수 없었사옵고, 위엄을 범할까 두려워하였나이다. 그리하여 모습을 숨기고 알려 드렸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노를 풀며 “매는 우선 적어 두겠노라! 발우를 잘 거두어 두어라! 내 저 요정을 잡아 오리라!”라고 말했다. 토지신과 산신이 받들어 따랐다. 이 대성이 범의 힘줄 띠를 동여매고 범가죽 치마를 걷어 올리고 여의봉을 쥐고는 곧장 산 앞으로 달려가 요괴의 굴을 찾았다. 산 벼랑을 돌아가니 어지러운 돌이 반짝거리고 푸른 벼랑 가에 돌문 두 짝이 있었으며, 문 밖에 많은 작은 요괴가 있어 창을 휘두르고 칼을 춤추게 하고 있었다. 참으로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연기와 구름이 상서로움을 엉기고, 이끼가 푸름을 쌓았구나. 층층이 괴상한 돌이 늘어서고 굽이굽이 굽은 길이 휘감았구나. 원숭이 울고 새 우는 풍경이 아름답고, 난새가 날고 봉황이 춤추니 봉래와 영주 같구나. 양지바른 몇 그루 매화는 막 피어나고, 따스함을 희롱하는 천 그루 대나무는 절로 푸르구나. 가파른 벼랑 아래, 깊은 골짜기 속이라, 가파른 벼랑 아래엔 눈이 분을 쌓았고 깊은 골짜기 속엔 물이 얼음이 되었구나. 두 숲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천 년의 빼어남을 지니고, 몇 떨기 동백꽃은 한결같이 붉구나. 이 대성이 다 구경하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문 앞에 이르러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이 작은 요괴들아, 너희는 어서 들어가 너희 굴 주인에게 고하여라. 나는 본래 당나라 성스러운 승려의 제자 제천대성 손오공이니, 어서 내 스승님을 내보내라. 그래야 너희가 목숨을 잃지 않으리라!” 그 무리의 작은 요괴들이 급히 굴 속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앞에 털 난 얼굴에 부리가 굽은 중이 하나 있어 제천대성 손오공이라 일컬으며 스승님을 내놓으라 하옵니다.” 그 마왕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가득 기뻐하며 “바로 그가 오기를 바라던 참이로다! 내가 본궁을 떠나 속세로 내려온 뒤로 일찍이 무예를 시험해 본 적이 없느니라. 오늘 그가 왔으니 반드시 상대가 되리라”라고 말했다. 곧 명하였다. “작은 놈들아! 병기를 꺼내라.” 굴 속의 크고 작은 요마들이 정신을 떨치며 급히 한 길 두 자나 되는 점강창을 메어 내어 늙은 요괴에게 바쳤다. 늙은 요괴가 명령을 전하였다. “작은 놈들아, 각기 정비를 갖추어라. 앞으로 나가는 자는 상을 주고 뒤로 물러나는 자는 목을 베리라!” 요괴들이 명을 받고 늙은 요괴를 따라 문을 박차고 나와 외쳤다. “어느 놈이 손오공이냐?” 행자가 곁에서 몸을 피하며 보니 저 마왕의 생김새가 얼마나 흉하고 추한지, 외뿔이 불쑥 솟았고 두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정수리의 거친 가죽은 불거졌고 귀밑의 검은 살은 윤이 났다. 혀가 길어 때때로 코를 휘젓고 입이 넓어 널쪽니가 누렇다. 털가죽은 쪽빛 물감처럼 푸르고 힘줄은 강철처럼 단단하다. 무소와 견주어도 물에 비치기 어렵고, 코끼리 황소도 묵은 땅을 갈지 못하리라. 달을 보며 헐떡이고 구름을 가는 쓰임은 전혀 없건만, 도리어 하늘을 속이고 땅을 뒤흔드는 강함이 있구나. 두 손은 불에 그을린 힘줄에 쪽빛 물이 들었고, 웅장한 위풍으로 점강창을 곧추 세웠구나. 자세히 이 흉악한 모습을 보니, 시대왕이라 불리는 이름이 헛되지 않구나! 손대성이 앞으로 나서며 “네 외할아버지 손오공이 여기 있느니라! 어서 내 스승님을 도로 내놓아라. 그래야 서로 다치지 않으리라! 반 마디라도 아니 한다면, 내 너를 죽어도 묻힐 땅이 없게 하리라!”라고 말했다. 그 요마가 호통치며 “이 간 큰 제멋대로 원숭이 정놈아! 네게 무슨 수단이 있다고 이런 큰소리를 내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제멋대로 놈아, 너는 일찍이 내 수단을 본 적도 없구나!”라고 말했다. 그 요마가 “네 스승이 내 옷을 훔쳤으니 실로 내가 잡아 두었거늘, 이제 찌어 먹으려 하는 참이로다. 네가 무슨 호한이기에 감히 내 문 앞으로 와서 도로 달라 하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내 스승은 충량하고 정직한 승려이거늘, 어찌 네 무슨 요물의 물건을 훔칠 이치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요마가 “내가 산길 가에 신선의 마을 하나를 점화해 두었거늘, 네 스승이 그 속으로 숨어 들어가 마음에 애욕을 품고 내 금을 수놓은 솜 두른 등저고리 세 벌을 훔쳐 입었느니라. 장물과 증거가 있으므로 내가 그를 잡아 온 것이로다. 네게 과연 수단이 있다면 곧 나와 겨루어 보자. 만일 세 합에 나를 당해 낸다면 네 스승의 목숨을 살려 주리라. 그러나 나를 당해 내지 못한다면, 너를 한길로 저승으로 돌려보내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제멋대로 놈아! 입씨름할 것 없다! 다만 겨루자 하니 바로 이 늙은 손의 뜻에 맞는구나. 올라와라, 내 봉을 받아라!” 그 괴물이 무슨 겨룸을 두려워하랴. 강철 창을 곧추세워 면상으로 맞받아 왔다.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이로다! 그대는 저것을 보라. 여의봉이 들리고 긴 자루 창이 맞서는구나. 여의봉이 들리니 번쩍번쩍 번개가 금빛 뱀을 끌어당기는 듯하고, 긴 자루 창이 맞서니 훤히 빛나며 용이 검은 바다를 떠나는 듯하구나. 저 문 앞의 작은 요괴들은 북을 치며 진세를 벌려 위풍을 돕고, 이쪽의 대성은 공을 베풀어 종횡으로 뛰어난 재주를 부리는구나. 저쪽의 한 자루 창은 정신이 펄펄 나고, 이쪽의 한 개 봉은 무예가 높고 세구나. 참으로 영웅이 영웅 사내를 만났고, 과연 상대가 상대를 만났구나. 저 마왕은 입으로 자줏빛 기운을 뿜어 연기를 감돌리고, 이 대성은 눈에서 광채를 뿜어 수놓은 구름을 맺는구나. 오직 대당의 승려가 어려움을 만났으매, 두 집안이 의리를 저버리고 괴로이 다투는구나. 그들 둘이 서른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마왕이 손오공의 봉법이 정연하여 오고 감에 조금도 빈틈이 없음을 보고 기뻐하며 연달아 소리쳐 칭찬하였다. “훌륭한 원숭이로다! 훌륭한 원숭이로다! 참으로 천궁을 어지럽힌 그 솜씨로구나!” 이 대성도 그의 창법이 어지럽지 않고 오른쪽을 가리고 왼쪽을 막는 품이 법도가 있음을 사랑하여 또한 외쳤다. “훌륭한 요정이로다! 훌륭한 요정이로다! 과연 단약을 훔친 요마의 우두머리로구나!” 두 사람이 또 열 스무 합을 겨루었다. 그 마왕이 창끝을 땅에 찍으며 작은 요괴들에게 일제히 오라 호령하였다. 그 제멋대로 요괴들이 칼을 들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검을 쥐고 창을 돌려 손대성을 가운데 포위하였다. 행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잘 왔다! 잘 왔다! 바로 내 뜻에 맞는다!”라고 외쳤다. 여의봉 하나로 앞을 맞받고 뒤를 버티며 동쪽을 막고 서쪽을 쳐 내니, 그 무리의 요괴들이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행자가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여의봉을 공중으로 던지며 “변하여라!” 하고 외쳤다. 곧 수백 수천 개의 쇠몽둥이로 변하였으니, 나는 뱀과 기는 구렁이가 하늘 가득 어지러이 떨어지는 듯하였다. 그 요정들이 보고는 넋이 흩어지고 혼이 날아가 머리를 감싸고 목을 움츠린 채 모조리 굴 속으로 달아나 목숨을 구하였다. 늙은 마왕이 히히 냉소하며 “저 원숭이 놈아, 무례하게 굴지 말라! 내 수단을 보아라!”라고 말했다. 급히 소매 속에서 번쩍번쩍하고 희끄무레하게 시린 고리 하나를 꺼내어 공중을 향해 던지며 “걸려라!” 하고 외쳤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여의봉을 하나로 거두어 꿰어 갔다. 그리하여 손대성은 맨손이 되어 빈 주먹만 남은 채로 근두운을 굴려 목숨을 건졌다. 저 요마는 승리를 얻어 굴로 돌아가고, 행자는 정신이 아득하여 방책을 잃었으니,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도가 한 자 높으면 마가 한 길 높다 하더니, 성정이 어지럽고 정이 흐려 집을 잘못 찾았구나. 애석하도다, 법신이 앉을 자리가 없으니, 당시에 움직인 생각이 잘못이었도다. 결국 이번 일이 어찌 끝을 맺을지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1회 심원공용천반계(心猿空用千般計) · 수화무공난련마(水火無功難煉魔) 말하자면, 제천대성은 빈손으로 싸움에 져 금두산 뒤로 가 앉았는데, 두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가 소리쳐 말했다. “스승님이시여! 그대와 함께하기를 바라옵나니, 부처님의 은혜는 덕이 있어 화합하여 녹아들고,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났으니 그 뜻이 다함이 없나이다. 함께 머물고 함께 닦으며 함께 해탈하고, 함께 자비하고 함께 염하여 신령한 공을 드러내리라 하였나이다. 같은 인연 같은 형상으로 마음이 참으로 맺히고, 같은 견해 같은 도리로 도가 비로소 통하였거늘, 어찌 이제 와서 지팡이조차 없게 될 줄을 알았사오리까. 빈 주먹 맨발로 어찌 융성하리오!” 대성은 한참 처량해하다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 요괴는 나를 알아보았도다. 내 기억으론 그놈이 진터에서 ‘참으로 천궁을 어지럽힌 무리로다!’ 하고 치켜세우던걸. 그렇다면 결코 범간의 괴물이 아니요, 틀림없이 하늘의 흉성이로다. 속세를 그리워하다 하계로 내려온 모양인데, 또 어디서 내려온 마두인지 알 수 없으니 우선 상계로 올라가 샅샅이 조사해 보아야겠다.” 행자는 이에 제 마음에 물어 스스로 결정하고는, 급히 몸을 뒤집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곧장 남천문 밖에 이르렀다. 홀연히 머리를 들어 보니 광목천왕이 보였는데, 마주 서서 길게 읍하며 “대성께서는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옥황상제를 뵐 일이 있소. 그대는 여기서 무얼 하오?”라고 말했다. 광목이 “오늘은 차례대로 남천문을 순시하는 당번이옵니다”라고 말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마·조·온·관 사대원수가 예를 갖추며 “대성께서 오셨사온데 영접을 못 하였나이다. 차를 대접하겠사오니 잠시 머무시옵소서”라고 말했다. 행자가 “급한 일이 있소”라고 말했다. 드디어 광목과 사대원수에게 작별하고 곧장 남천문 안으로 들어가 영소전 밖에 이르렀는데, 과연 또 장도릉·갈선옹·허정양·구홍제 네 천사와 남두육사와 북두칠원이 모두 전각 앞에서 행자를 맞이하며 한꺼번에 손을 들어 “대성께서는 어찌하여 여기까지 오셨나이까?”라고 말했다. 또 물었다. “당승을 보호하는 공은 다 이루셨사옵니까?” 행자가 “아직 멀었소! 아직 멀었소! 길은 멀고 마구니는 많아 이제 겨우 절반의 공이올시다. 지금 금두산 금두동에 가로막혀 있소. 그 굴에 시 괴물 하나가 있어서 당승 스승님을 굴 속으로 잡아갔소. 이 늙은 손이 문을 찾아가 그놈과 한바탕 겨뤘는데, 그놈은 신통이 광대하여 이 늙은 손의 여의봉까지 빼앗아 갔소. 그 때문에 마왕을 결박할 수가 없소. 상계의 어느 흉성이 속세를 그리워하여 하계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의심되오나, 또 어디서 내려온 마두인지는 알 수가 없소. 이 늙은 손이 그런 까닭에 옥황상제를 찾아와 단속을 엄히 하지 못한 일을 묻고자 하오.” 허정양이 웃으며 “이 원숭이 녀석은 여전히 이다지도 까다롭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까다로운 게 아니오. 이 늙은 손은 평생 이 입이 좀 급한 편이라야 비로소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소”라고 말했다. 장도릉이 “말이 많을 것 없소. 다만 그를 위하여 전달하여 아뢰기만 하면 되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거듭 고맙소! 거듭 고맙소!”라고 말했다. 이에 네 천사가 영소전에 전하여 아뢰고 옥계로 인도하여 뵙게 하였다. 행자가 위를 향해 큰 절을 올리며 “늙은 어르신, 폐를 끼치옵니다! 폐를 끼치옵니다! 이 늙은 손이 당승을 보호하여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이온데, 가는 내내 흉한 일이 많고 길한 일이 적음은 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이제 금두산 금두동에 이르렀사온데 시 괴물 하나가 당승을 굴 속에 가두어 두고, 찌려 하는지 삶으려 하는지 볕에 말리려 하는지 알 수가 없사옵니다. 이 늙은 손이 그놈의 문을 찾아가 싸웠사온데, 그 요괴는 이 늙은 손을 아는 눈치이옵고 신통이 광대하여 이 늙은 손의 여의봉을 빼앗아 갔사오니, 이 때문에 요마를 결박할 길이 없사옵니다. 상천의 흉성이 속세를 그리워하여 하계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의심되옵니다. 이에 이 늙은 손이 특별히 와서 아뢰옵나니, 비옵건대 천존께서는 자비를 굽어 살피시어 흉성을 조사하라는 칙지를 내리시옵고, 군사를 보내어 요마를 거두어 토벌하게 하옵소서. 이 늙은 손은 두려움에 몸을 떨며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그리고는 또 깊이 허리를 굽히며 “이로써 아뢰옵니다”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갈선옹이 웃으며 “원숭이는 어찌하여 앞에서는 거만하고 뒤에서는 공손하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천만에! 천만에! 무슨 앞 거만 뒤 공손이 있사오리까. 이 늙은 손은 이제 봉을 잃고 부릴 것이 없어 그러한 것이오니다.” 그때 옥황천존이 아뢰는 말을 듣고 즉시 가한사에 칙지를 내려 알게 하였다. “이미 손오공이 아뢴 바와 같거든, 모든 하늘의 별자리와 신장들, 각 수의 신왕들 가운데 속세를 그리워하여 하계로 내려간 자가 있는지 없는지 따라 조사하여, 즉시 거듭 아뢰어 시행하고 알리라.” 가한장인진군이 칙지를 받들고 곧 대성과 함께 조사하러 나섰다. 먼저 사천문 문 위의 신왕과 관리들을 조사하고, 다음으로 삼미원 안의 크고 작은 신선들을 조사하였으며, 또 뇌정관의 장수 도·장·신·등과 구·필·방·류를 조사하고, 맨 마지막에야 삼십삼천을 조사하니 하늘마다 스스로 편안하였으며, 또 이십팔수를 조사하니 동칠수는 각·항·저·방·심·미·기요, 서칠수는 두·우·여·허·위·실·벽이며, 남칠수와 북칠수 할 것 없이 수마다 편안하였고, 또 태양과 태음과 수·화·목·금·토 칠정과 나후·계도·자기·월패 사여를 조사하였다.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모두 제자리에 있었고 속세를 그리워하여 하계로 내려간 자는 없었다. 행자가 “그러하오면 이 늙은 손도 저 영소보전에 올라가 옥황대제를 번거롭게 하지 않으리다. 몹시 불편한 일이니 그대는 스스로 칙지를 품고 돌아가시오. 나는 다만 여기서 그대의 회답을 기다리겠소”라고 말했다. 가한장인진군이 그 명을 따랐다. 손행자는 오래도록 기다리다가 흥을 기리는 시를 지어 읊었다. “바람은 맑고 구름은 개어 태평을 즐기며, 신은 고요하고 별은 밝아 상서를 드러내는구나. 은하수는 편안하고 하늘과 땅은 태평하니, 오방과 팔극에 창과 깃발이 누웠구나.” 저 가한사 장인진군은 낱낱이 조사하고는 돌아와 옥황상제께 아뢰었다. “하늘 가득한 별들이 하나도 줄지 않았사옵고, 각 방면의 신장들이 모두 그대로 있사오며, 속세를 그리워하여 하계로 내려간 자는 없사옵니다.” 옥황상제가 그 아룀을 듣고 이르되, “손오공이 몇몇 천장을 가려 뽑아 하계로 내려가 마구니를 잡으라.” 사대천사가 칙지를 받들어 곧 영소보전에서 나와 행자에게 “대성이여, 옥황상제께서 은혜를 넓히시어 천궁에는 속세를 그리워하는 신이 없다 하시옵고, 그대가 몇몇 천장을 가려 뽑아 마구니를 잡으라 하시나이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머리를 숙이고 속으로 생각했다. “하늘의 장수 가운데 이 늙은 손만 못한 이가 많고, 이 늙은 손보다 나은 이가 드물구나. 내가 천궁을 어지럽히던 때를 생각하면 옥황상제가 십만 천병을 보내고 천라지망을 펼쳤건만, 한 장수도 감히 나와 겨뤄 보려 하지 않았지. 그 뒤에 소성 이랑을 불러온 뒤에야 비로소 내 상대가 되었거늘, 이제 저 괴물의 수단은 또 이 늙은 손보다 강하니 어찌 이겨 낼 수 있단 말이냐?” 허정양이 “이때는 이때요 그때는 그때라 크게 다르외다. 속담에 한 물건이 한 물건을 항복받는다 하였거늘, 그대가 어찌 칙지를 어기려 하시오? 다만 그대의 높은 뜻에 맡겨 천장을 가려 쓰시되, 머뭇거려 일을 그르치지 마옵소서”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오면 윗분의 은혜를 깊이 느끼옵니다. 참으로 칙지를 어기기는 어려운 일이옵니다. 한편으로 이 늙은 손이 또 이번 걸음을 헛되이 할 수 없사오니, 정양께 번거롭게 하옵거니와 옥황상제께 여쭙기를, 다만 탑을 든 이천왕과 나타 태자만 내려보내 주시옵소서. 그들에게는 요괴를 항복받는 병기가 몇 가지 있사오니, 우선 하계로 내려가 저 요괴와 한 판 겨뤄 보고 어떻게 되는지 보겠나이다. 과연 그를 잡을 수 있다면 이 늙은 손의 행운이옵고, 잡지 못한다면 그때 다시 방도를 세우겠나이다.” 참으로 그 천사가 옥황상제께 아뢰니, 옥황상제가 곧 이천왕 부자에게 명하여 여러 부서의 천병을 거느리고 행자를 돕게 하였다. 그 천왕이 즉시 칙지를 받들어 행자를 만나러 오니, 행자가 또 천사에게 말했다. “옥황상제께서 천왕을 보내 주신 은혜를 입었사오니 고마움이 다함이 없나이다. 또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거듭 번거롭게 하옵거니와 전하여 아뢰어 주시옵소서. 다만 뇌공 둘을 얻어 쓰게 하시어, 천왕이 싸우는 때에 뇌공이 구름 끝에서 벼락 쐐기를 내려 그 요마의 정수리를 겨누어 박아 죽이게 하옵소서. 참으로 좋은 계책이옵니다.” 천사가 웃으며 “좋소! 좋소! 좋소!”라고 말했다. 천사가 또 옥황상제께 아뢰니, 칙지를 내려 구천부 아래에서 등화와 장번 두 뇌공을 뽑아 천왕과 힘을 합쳐 요괴를 결박하고 재난에서 건지게 하였다. 드디어 천왕과 손대성과 함께 곧장 남천문 밖으로 내려왔다. 삽시간에 이르러 행자가 말했다. “이 산이 바로 금두산이오. 산 가운데 있는 것이 금두동이외다. 여러분께서 의논하여 보시옵고, 누구를 먼저 보내어 싸움을 걸게 하시겠소?” 천왕이 구름머리를 멈추고 천병들을 산 남쪽 비탈 아래에 주둔시키며 말했다. “대성께서도 본래 아시거니와, 제 아이 나타는 일찍이 아흔여섯 굴의 요마를 항복받았고 변화에도 능하며, 몸에는 요괴를 항복받는 병기를 지니고 있사오니, 마땅히 그를 먼저 진에 나가게 해야 하리다.” 행자가 “그러하오면 이 늙은 손이 태자를 인도하여 가겠소”라고 말했다. 그 태자가 위풍을 떨치며 대성과 함께 높은 산으로 뛰어올라 곧장 굴 어귀에 이르렀는데 굴문은 굳게 닫혀 있고 벼랑 아래에는 요괴 한 마리도 없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크게 외쳤다. “이놈 요괴야! 어서 문을 열어라! 우리 스승님을 도로 내놓아라!” 굴 안에서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보고 급히 달려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손행자가 어린 사내아이 하나를 데리고 문 앞에서 싸움을 걸고 있사옵니다.” 그 마왕이 말했다. “이 원숭이는 쇠봉을 내게 빼앗겼으니 빈손으로는 다투기 어려울 터, 아마 구원병을 청하러 갔던 모양이로구나.” 그리고 외쳤다. “병기를 가져오너라!” 마왕이 창을 손에 쥐고 문 밖으로 걸어 나와 살펴보니, 저 어린 사내아이는 생김새가 맑고 기이하며 몹시 늠름하였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옥 같은 얼굴의 고운 자태는 보름달 같고, 붉은 입술 반듯한 입에는 은빛 이가 드러났구나. 눈빛은 번개를 번쩍이고 눈동자는 툭 불거졌으며, 넓은 이마에는 노을이 서리고 쪽 찐 머리채가 얹혔구나. 수놓은 띠는 바람에 날려 채색 불꽃을 흩날리고, 비단 도포는 햇빛을 받아 금빛 꽃을 피우는구나. 고리 달린 띠는 번쩍번쩍 가슴의 거울을 걸쳤고, 보배 갑옷은 휘황찬란하게 전투화를 받치는구나. 몸은 작으나 소리는 우렁차고 장대함이 넘치니, 삼천을 호교하는 사나운 나타로다. 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이천왕의 셋째 아이로 이름을 나타 태자라 하지 않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내 문 앞에 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느냐?” 태자가 말했다. “네 이놈 요마가 난을 일으켜 동토의 성승을 가두어 해쳤으므로, 옥황상제의 금지를 받들어 특별히 너를 잡으러 왔느니라!” 마왕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너는 손오공이 청해 온 게 틀림없도다. 내가 바로 그 성승을 노리는 마두이니라! 헤아려 보건대 너 같은 어린것이 무슨 무예가 있다고 감히 망령된 말을 쏟아 내느냐! 달아나지 말고 내 창을 받아라!” 이 태자가 요참검을 들어 손을 쳐들며 맞섰다. 두 사람이 손을 맞대고 이제야 겨루기 시작하자, 저 대성이 급히 산비탈로 몸을 돌려 외쳤다. “뇌공은 어디 있소? 어서 빨리 가서 그 요마에게 벼락 쐐기를 내려 태자가 항복받는 것을 돕소!” 등화와 장번 두 뇌공이 곧 구름빛을 밟고 이제 막 손을 쓰려 하는데, 보라, 저 태자가 법을 부려 몸을 한 번 변하게 하여 세 머리 여섯 팔이 되어서는 여섯 가지 병기를 손에 쥐고 요마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자 그 마왕도 세 머리 여섯 팔로 변하여 긴 창 세 자루로 막아 냈다. 이 태자가 또 요괴를 항복받는 법력을 부려 여섯 가지 병기를 허공으로 던져 올렸다. 그 여섯 가지 병기가 무엇이냐? 바로 요참검이요 요참도이며, 요박삭이요 항마저이며, 수구와 화륜이었는데, 큰 소리로 한 번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며 백이 천이 되고 천이 만이 되어, 모두 같은 병기가 되어 소나기와 우박처럼 빽빽하게 쏟아져 요마를 향해 날아갔다. 그 마왕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 하얗고 번쩍이는 고리를 꺼내어 허공으로 던져 올리며 “걸려라!” 하고 외쳤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여섯 가지 병기를 모조리 끼워 내려 버리니, 나타 태자는 맨손으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고 마왕은 승리를 거두어 돌아갔다. 등화와 장번 두 뇌공이 허공에서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일찍이 이 몸이 먼저 형세를 살펴보아 벼락 쐐기를 놓지 않았사옵니다. 만일 그놈에게 빼앗겼더라면 어찌 천존을 뵈올 수 있었사오리까?” 두 뇌공이 구름머리를 내려 놓고 태자와 함께 산 남쪽 비탈 아래로 가서 이천왕에게 “요마가 과연 신통이 광대하옵니다!”라고 말했다. 오공이 곁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놈의 신통도 겨우 이만한 것이오. 다만 저 고리가 사나워서 문제요. 무슨 보배인지 알 수 없으나 던지기만 하면 온갖 물건을 잘도 끼워 버리오.” 나타가 원망하며 말했다. “이 대성은 참으로 인정머리 없도다! 우리가 병기를 잃고 싸움에 져 몹시 번뇌하고 있는데, 그 모두가 그대 때문이거늘, 그대는 도리어 기뻐 웃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냐!”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번뇌한다 하나, 어찌 이 늙은 손이 번뇌하지 않겠소? 내가 이제 방도가 없어 울 수도 없으니, 그저 웃을 뿐이오.” 천왕이 “그러하면 어찌 결말을 내겠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대들이 다시 무슨 꾀를 내든, 다만 그 고리가 끼워 가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를 잡을 수 있소”라고 말했다. 천왕이 “끼워 가지 못하는 것으로는 오직 물과 불이 가장 유리하도다. 속담에 물과 불은 정이 없다 하느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옳은 말씀이오! 그대들은 우선 여기 편히 앉아 계시오. 이 늙은 손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오겠소”라고 말했다. 등화와 장번 두 공이 “또 가서 무얼 하시려 하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늙은 손은 이번에 옥황상제께 아뢸 것도 없이, 다만 남천문 안으로 들어가 동화궁에 올라가 형혹 화덕성군을 청하여 이곳에 와서 불을 놓아 저 괴물을 한바탕 태워 보려 하오. 혹 저 고리까지 재로 태워 버릴 수 있다면 요마를 잡을 수 있을 것이오. 한편으로는 병기를 찾아 그대들이 하늘로 돌아가게 하고, 둘째로는 내 스승의 재난을 풀 수 있소”라고 말했다. 태자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머뭇거릴 것 없도다. 청컨대 대성께서는 어서 갔다가 어서 오시라. 우리들은 다만 여기서 두 손 모아 기다리리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상서로운 빛을 타고 또 남천문 밖에 이르니, 저 광목과 네 장수가 맞이하며 “대성께서는 어찌하여 또 오셨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천왕이 태자를 내보내 싸웠는데, 단 한 판에 저 마왕에게 병기 여섯 개를 몽땅 빼앗겼소. 나는 이제 동화궁으로 가서 화덕성군을 청하여 진을 돕게 하려 하오”라고 말했다. 네 장수가 오래 붙들어 두지 못하고 그를 들여보냈다. 동화궁에 이르니 저 화부의 여러 신들이 보이는지라, 곧 들어가 아뢰었다. “손오공이 주공을 뵙고자 하옵니다.” 저 남방 삼매의 화덕성군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 밖으로 나와 맞아 들이며 “어제 가한사가 이 작은 궁을 조사하였거니와, 속세를 그리워한 자는 하나도 없었느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미 알고 있소. 그러나 이천왕과 태자가 싸움에 져 병기를 잃었사오니, 특별히 그대를 청하여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오”라고 말했다. 성군이 말했다. “저 나타는 삼단해회대신이니라. 그가 태어날 무렵에 일찍이 아흔여섯 굴의 요마를 항복받았고 신통이 광대하거늘, 그가 능하지 못하다면 이 작은 신이 어찌 감히 바라리오?” 행자가 “이천왕과 의논하매 천지간에 가장 예리한 것은 오직 물과 불이오. 저 괴물에게는 고리 하나가 있어 사람의 물건을 잘도 끼워 갔사온데 무슨 보배인지 알 수 없소. 그런 까닭에 불이 온갖 물건을 없앨 수 있다 하여, 특별히 성군을 청하여 화부를 거느리고 하방으로 내려가 불을 놓아 저 요마를 태워 내 스승의 재난 한 가지를 건져 주시라 하오”라고 말했다. 화덕성군이 그 말을 듣고 곧 자기 부서의 신병을 뽑아 행자와 함께 금두산 남쪽 비탈 아래로 가서 천왕과 뇌공 등을 만났다. 천왕이 “손대성이여, 그대가 가서 그놈을 또 불러내시오. 내가 그놈과 싸우다가 그놈이 고리를 꺼내 드는 것을 보면 내가 비켜 버릴 터이니, 화덕에게 무리를 거느리고 그놈을 태우라 하시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옳소이다. 내가 그대와 함께 가리다”라고 말했다. 화덕은 태자와 등화·장번 두 공과 함께 높은 봉우리 위에 서서 그들에게 도전하였다. 이 대성이 금두동 어귀에 이르러 “문 열어라! 어서 빨리 내 스승님을 내놓아라!” 하고 소리쳤다. 저 요괴가 또 급히 달려가 아뢰었다. “손오공이 또 왔사옵니다!” 그 마왕이 무리를 거느리고 굴에서 나와 행자를 보고 말했다. “이놈 원숭이야, 또 무슨 군사를 청해 왔느냐?” 이쪽에서 탑을 든 이천왕이 나서며 호통쳤다. “이놈 마두야! 나를 알아보겠느냐?” 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천왕이구나. 아마 네 자식의 원수를 갚고 병기를 도로 찾고자 하는 모양이로구나.” 천왕이 “한편으로는 원수를 갚고 병기를 찾는 일이요, 둘째로는 너를 잡아 당승을 구하는 일이니라! 달아나지 말고 내 칼을 받아라!” 그 괴물이 몸을 비켜 피하고는 긴 창을 비껴 쥐고서 손 가는 대로 맞섰다. 두 사람이 굴 앞에서 벌인 이 싸움도 참으로 볼 만하였도다. 보라, 천왕의 칼이 내리치고 요괴의 창이 받는구나. 칼이 내리치니 서리 같은 광채가 맹렬한 불을 뿜고, 창이 받으니 예리한 기운이 근심 어린 구름을 터뜨리는구나. 하나는 금두산에서 태어난 악한 요괴요, 하나는 영소전에서 파견된 하늘의 신이로다. 저쪽은 선의 성품을 업신여기며 위무를 부리고, 이쪽은 스승의 재액을 구하려 큰 도리를 펴는구나. 천왕은 법을 부려 모래와 돌을 날리고, 마괴는 강함을 다투어 흙먼지를 일으키는구나. 흙을 일으켜 능히 천지를 어둡게 하고, 모래를 날려 바다와 강을 흐리게 하는구나. 양쪽이 힘을 다하여 공적을 다투니, 모두 당승이 세존께 예배하게 하려 함이로다. 저 손대성은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곧 몸을 돌려 높은 봉우리로 뛰어올라 화덕성군에게 “삼매의 불을 마음을 다하여 쓰시옵소서!”라고 말했다. 보라, 저 요마와 천왕이 한창 잘 싸우고 있는데 또 고리를 꺼내는지라, 천왕이 보고는 곧 상서로운 빛을 돌려 싸움에 진 체 달아났다. 이 높은 봉우리 위에서 화덕성군이 급히 호령을 내려 여러 부서의 화신들에게 일제히 불을 놓게 하였다. 이 한바탕은 참으로 맹렬하고 사나웠도다. 훌륭한 불이로다. 경전에 이르기를 “남방은 불의 정기니라” 하였거니와, 비록 작은 불씨라도 만 이랑의 밭을 태울 수 있고, 이 삼매의 위엄은 온갖 가지의 불로 변할 수 있느니라. 지금 화창과 화도, 화궁과 화전이 있어 각 부서의 신들이 쓰는 바가 같지 않으니, 저 허공 한가운데에는 불까마귀가 날며 울고, 온 산마루에는 불말이 내달리는구나. 쌍쌍의 붉은 쥐와 대대의 불용이로다. 쌍쌍의 붉은 쥐가 맹렬한 불꽃을 뿜으니 만 리가 붉게 타오르고, 대대의 불용이 짙은 연기를 토하니 온 땅이 함께 검어지는구나. 불수레를 밀어 내고 불호리병을 펼쳐 놓으며, 불깃발이 흔들리니 하늘 가득 노을이요, 불몽둥이가 휘젓고 가니 땅에 넘치도록 타오르는구나. 영척이 소를 채찍질하던 일을 무어라 하리오, 주랑의 적벽보다 훨씬 뛰어나구나. 이는 하늘의 불이니 범상치 않고 참으로 사나워서, 활활 타오르는 붉은 불바람이로다! 저 요마는 불이 오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고리를 허공으로 던져 올렸다. 쉬익 하는 소리 한 번에 이 불용과 불말, 불까마귀와 불쥐, 화창과 화도, 화궁과 화전까지 고리 하나로 또 끼워 내려 버리고는, 본래의 굴로 돌아가 승리를 거두어 군사를 거두었다. 이 화덕성군은 빈 깃발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 천왕 등과 합류하여 산 남쪽 비탈 아래에 앉아서 행자에게 말했다. “대성이여, 이 사나운 마구니는 참으로 보기 드물도다! 내가 이제 불 도구를 잃었으니 어찌하면 좋으리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원망하실 것 없소. 여러분은 우선 편히 앉아 계시옵소서. 이 늙은 손이 또 갔다 오겠소.” 천왕이 “그대는 또 어디로 가려 하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저 괴물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틀림없이 물을 두려워하리다. 속담에 물은 불을 이긴다 하였소. 이 늙은 손이 북천문 안으로 가서 수덕성군을 청하여 물기운을 펴게 하여, 저놈의 굴 속으로 한꺼번에 들이부어 마왕을 빠뜨려 죽이고 물건을 찾아 그대들에게 돌려주겠소”라고 말했다. 천왕이 “이 계책은 훌륭하나, 다만 그대의 스승까지 함께 빠뜨려 죽일까 두렵도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시오! 내 스승이 빠져 죽더라도 내게 그를 살려 낼 방도가 있소. 이제 여러분을 지체하게 하니 몹시 마땅치 않소.” 화덕이 “그러하거든 우선 어서 가시라, 어서 가시라”라고 말했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또 근두운을 타고 곧장 북천문 밖에 이르렀는데, 홀연히 머리를 들자 다문천왕이 앞으로 나서 예를 올리며 “손대성께서는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말했다. 행자가 “오호궁에 들어가 수덕성군을 뵐 일이 있소. 그대는 여기서 무얼 하오?”라고 말했다. 다문이 “오늘은 순시할 차례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한창 말하는 사이에 또 방·유·구·필 사대천장이 보이더니 예를 올리며 차를 권하였다. 행자가 “수고 마시오! 수고 마시오! 내 일이 급하오!”라고 말했다. 드디어 여러 신에게 작별하고 곧장 오호궁에 이르러, 수부의 여러 신에게 즉시 통보하게 하였다. 여러 신이 아뢰었다. “제천대성 손오공이 왔사옵니다.” 수덕성군이 그 말을 듣고는, 사해와 오호, 팔하와 사독, 삼강과 구파와 각처의 용왕들을 조사하여 모두 물러가게 하고는, 관을 바로 쓰고 띠를 매어 궁문 밖까지 나와 맞이하여 궁 안으로 들이며 말했다. “어제 가한사가 이 작은 궁을 조사하였거니와, 혹 이 부서의 신이 속세를 그리워하여 괴이한 짓을 하는가 하여, 지금 이곳에서 강과 바다, 하천과 도랑의 신들을 조사하는 중이니라. 아직 끝내지 못하였느니라.” 행자가 “저 마왕은 강과 바다의 신이 아니외다. 이는 광대한 정기로다. 먼저 옥황상제께서 이천왕 부자와 뇌공 둘을 하계로 보내어 잡아 오라 하셨사온데, 그놈이 고리 하나를 부려 신병 여섯 개를 끼워 갔소. 이 늙은 손도 어찌할 수 없어 또 동화궁에 올라가 화덕성군을 청하여 화부의 여러 신을 거느리고 불을 놓게 하였사온데, 또 불용과 불말 따위를 고리 하나로 끼워 갔소. 내 생각에 이 물건이 불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필시 물을 두려워하리라 하여, 특별히 성군을 청하여 물기운을 펴시어 나와 함께 저 요정을 잡고 병기를 찾아 천장들에게 돌려보내고자 하오. 내 스승의 재난 또한 구할 수 있소”라고 말했다. 수덕이 그 말을 듣고 곧 황하의 수백신왕에게 명하였다. “대성을 따라 내려가 공을 돕도록 하라.” 수백이 옷소매 속에서 백옥 사발 하나를 꺼내며 “이 작은 신에게는 이 물건이 있어 물을 담사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이 사발에 얼마나 담기겠소? 요마를 어찌 빠뜨려 죽인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수백이 “속이지 않고 아뢰오리다. 이 사발에 담긴 것은 바로 황하의 물이옵니다. 반 사발이면 반 강이요, 한 사발이면 한 강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기뻐하며 “반 사발이면 넉넉하오”라고 말했다. 드디어 수덕에게 작별하고 황하의 신과 함께 급히 하늘 궁궐을 떠났다. 그 수백이 사발로 황하의 물을 반 사발 퍼 가지고 대성을 따라 금두산에 이르러, 남쪽 비탈 아래에서 천왕과 태자와 뇌공과 화덕을 만나 앞의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자세히 말할 것 없소. 우선 수백을 나와 함께 가게 하시오. 내가 그의 문을 열게 한 뒤에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곧 물을 문 안으로 퍼부어라. 그러면 저 괴물들이 한 굴 속에서 모두 빠져 죽을 것이니, 나는 스승의 시신을 건져 내어 다시 살려 내면 늦지 않소.” 그 수백이 명을 따라 행자를 바싹 뒤따라 산비탈을 돌아 곧장 굴 어귀에 이르러 “요괴야, 문 열어라!” 하고 소리쳤다.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그 소리가 손대성의 목소리임을 듣고 급히 또 달려가 아뢰었다. “손오공이 또 왔사옵니다!” 그 마왕이 그 말을 듣고 보배를 챙겨 들고는 창을 쥔 채 곧장 걸어 나가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돌문을 열었다. 이 수백이 백옥 사발을 안으로 기울였는데, 저 요괴가 물이 오는 것을 보자 긴 창을 내던지고 급히 고리를 꺼내어 둘째 문을 버티고 막았다. 보라, 그 물줄기가 부글부글 온통 밖으로 넘쳐 흘러나오니, 손대성이 급히 근두운을 타 수백과 함께 높은 봉우리로 뛰어올랐다. 저 천왕과 무리도 모두 구름을 타고 높은 봉우리 앞에 멈추어 바라보니, 그 물결이 넘실넘실 불어나 참으로 사나왔다. 훌륭한 물이로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한 국자에서 나온 것이 많고도 많으니, 참으로 헤아릴 수 없구나. 오직 신령한 공이 조화를 부려 만물을 이롭게 하고 온갖 내를 흐르게 하여 넘치게 하는구나. 다만 저 졸졸거리는 소리가 골짜기를 울리고, 저 도도한 기세가 하늘을 덮는구나. 위풍당당한 소리는 천둥이 내달리는 듯하고, 사납게 솟는 물결은 눈이 뒤집히는 듯하구나. 천 길 높은 물결은 길을 덮고, 만 겹 물결은 산바위를 넘실거리게 하는구나. 차가운 것은 옥을 헹구는 듯하고, 굴러 흐르는 것은 줄을 켜는 듯하구나. 돌에 부딪쳐 부서진 옥을 뿜고, 되돌아 흐르는 물은 아득히 소용돌이를 이루는구나. 낮고 움푹한 곳이 흐름 따라 흔들리고, 골짜기에 가득하여 도랑과 위아래가 잇닿았구나. 행자가 이를 보고 마음이 다급해져 “큰일이오! 물이 사방 들판을 덮어 백성의 밭을 잠겼소. 그놈의 굴 속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하였으니 어찌한단 말이오?”라고 말하고는, 수백을 불러 급히 물을 거두게 하였다. 수백이 “이 작은 신은 물을 놓을 줄만 알았사옵고 물을 거둘 줄은 모르옵니다. 속담에 엎질러진 물은 거두기 어렵다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아! 저 산 또한 높고 험하여, 이 물은 다만 낮은 곳으로만 흘러갔다. 잠깐 사이에 사방으로 흩어져 골짜기와 구렁으로 돌아갔다. 또 보니 굴 밖으로 작은 요괴 몇 놈이 뛰어나와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뻗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몽둥이를 휘두르고 창을 쥐고는, 여전히 즐겁고 신이 나서 장난을 쳤다. 천왕이 “이 물이 원래 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한바탕의 공을 헛되이 쓴 것이로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마음속에서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요마의 문 앞으로 쳐들어가 호통쳤다. “어디로 달아나느냐! 받아라!” 그 몇 놈의 작은 요괴가 놀라 창과 몽둥이를 내던지고 굴 속으로 달려 들어가 벌벌 떨며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때리러 쳐들어 왔나이다!” 마왕이 긴 창을 비껴 쥐고 문 앞으로 나와 맞서며 말했다. “이 망령된 원숭이놈이 참으로 게으르고 괘씸하도다! 너는 몇 번이나 나를 당해 내지 못하였고, 물과 불을 쓴다 해도 가까이 붙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또 쫓아와 목숨을 바치느냐?” 행자가 “이놈이 거꾸로 말하는구나! 내가 목숨을 바치는지 네가 목숨을 바치는지 알지 못하느냐! 이리 건너오너라. 이 늙은 외할아버지의 주먹을 받아라!” 그 요마가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놈이 억지로 들러붙는구나! 나는 창을 쓰는데 그는 주먹을 쓰다니. 저렇게 앙상하게 마른 주먹이 겨우 호두알이나 할 터인데, 어찌 망치 구실을 하겠느냐? 좋다! 좋다! 좋다! 내가 우선 창을 내려놓고 너와 권법 한바탕을 겨뤄 보이리라!” 행자가 웃으며 “옳은 말이오! 걸어 나오너라!”라고 말했다. 저 요괴가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앞으로 나서며 자세 하나를 취하고는 두 주먹을 들어 올렸는데, 참으로 기름 짜는 쇠망치 같았다. 이 대성이 발을 옮기고 몸을 움직여 재주를 펴 보이며, 저 굴 문 앞에서 마왕과 서로 권법을 주고받았다.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이로다! 아! 큰 사평 자세를 벌리고 쌍비각을 차올리며, 옆구리를 감추고 가슴을 쳐서 찍고, 염통을 파내며 쓸개를 따는구나. 신선이 길을 가리키고 노자가 학을 타며, 굶주린 호랑이가 먹이를 덮치니 가장 사람을 상하고, 교룡이 물에서 노니 능히 사나운구나. 마왕은 이무기가 몸을 뒤집는 자세를 쓰고, 대성은 사슴이 뿔을 푸는 자세를 부리는구나. 발뒤꿈치를 들고 땅의 용을 담그며, 손목을 비틀어 하늘의 자루를 잡는구나. 푸른 사자가 입을 벌리고 오고, 잉어가 등으로 넘어지며 뛰는구나. 정수리를 덮어 꽃을 뿌리고, 허리를 감아 밧줄을 꿰며, 바람을 맞아 부채를 붙이고, 급한 비가 꽃을 재촉하여 떨어뜨리는구나. 요정이 관음장을 쓰니 행자가 나한각으로 맞서는구나. 긴 장권은 넓게 펴져 저절로 느슨하니, 어찌 짧은 권법의 촘촘하고 빠름을 당하리오? 두 사람이 몇십 차례 서로 버티었으나, 솜씨는 한가지요 강하고 약함이 없구나. 두 사람이 저 굴 문 앞에서 서로 때리고 있는데, 이 높은 봉우리 위에서는 이천왕이 기뻐하며 큰 소리로 탄성을 내고 화덕성이 손뼉을 치며 칭찬하였다. 저 두 뇌공과 나타 태자가 여러 신을 거느리고 앞으로 뛰어나와 모두 돕고자 하였고, 이쪽에서는 요괴 무리가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며 칼을 휘두르고 칼을 돌려 일제히 지켰다. 손대성이 사태가 좋지 않음을 보고 털 한 웅큼을 뽑아 허공에 던지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서너 살에서 쉰 마리의 작은 원숭이로 변하여 한꺼번에 달려들어 저 요괴를 휘감았다. 다리를 끌어안는 놈은 다리를 끌어안고, 허리를 잡아당기는 놈은 허리를 잡아당기며, 눈을 할퀴는 놈은 눈을 할퀴고, 털을 뜯는 놈은 털을 뜯었다. 그 괴물이 당황하여 급히 고리를 꺼내 들었다. 대성과 천왕 등이 그가 고리의 술수를 부리는 것을 보고 구름머리를 돌려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 진을 빠져나갔다. 저 요괴가 고리를 위로 던져 올리자 훌라 하는 소리와 함께, 저 서너 살에서 쉰 마리의 털이 변한 작은 원숭이들이 본모습으로 거두어져 굴 속으로 끼워 들어갔다. 요괴는 승리를 거두고 군사를 이끌어 문을 닫아 걸고는 기뻐하며 돌아갔다. 이 태자가 말했다. “손대성은 역시 호걸이로다! 이 한바탕의 권법은 비단 위에 꽃을 더한 듯하였고, 분신법을 쓰니 바로 사람 앞에서 귀함을 드러낸 것이로다.” 행자가 웃으며 “여러분이 여기서 멀리 보고 계셨으니, 저 요괴의 솜씨가 이 늙은 손에 견주어 어떠하오?”라고 말했다. 이천왕이 “그는 주먹이 느슨하고 발이 느려 대성의 빠르고 날렵함만 못하도다. 그가 우리가 가는 것을 보자 곧 당황하였고, 또 그대가 분신법을 쓰는 것을 보고는 더욱 급해진 나머지 크게 고리의 술수를 부린 것이니라”라고 말했다. 행자가 “마왕은 다스리기 쉬우나, 다만 그 고리를 항복받기가 어렵소”라고 말했다. 화덕과 수백이 “이기려 한다면 그의 보배를 얻어 낸 뒤에야 잡을 수 있으리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그의 보배를 어찌 얻겠소? 훔쳐 오는 수밖에 없소”라고 말했다. 등화와 장번 두 공이 웃으며 “도둑질을 행하려 하신다면 대성 말고는 다시 능한 이가 없사옵니다. 생각하옵건대 지난날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실 적에 어주도 훔치시고 반도도 훔치시며, 용의 간과 봉황의 골수와 노군의 단약까지 훔치셨사온데 그때의 솜씨가 어떠하였사옵니까! 오늘 바로 이곳에 가져다 써야 할 때이옵니다”라고 말했다. 행자가 “잘 말하였소! 잘 말하였소! 그러하오면 여러분은 우선 앉아 계시옵소서. 이 늙은 손이 가서 알아보고 오겠소”라고 말했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봉우리 아래로 뛰어내려 몰래 굴 어귀에 이르러 몸을 한번 흔들어 변하니, 조그만 파리 한 마리가 되었다. 참으로 보기 좋구나! 보라. 깃과 날개는 대나무 껍질처럼 얇고, 몸집은 꽃술보다 작구나. 손발은 털보다 더 가늘고, 작은 눈구멍은 또렷또렷하구나. 향기를 맡고 기운을 좇는 데 능하여, 날 때에는 바람을 타고 빠르구나. 저울에 달아 보면 막 저울추를 누를 만큼이니, 사랑스럽고 조그마한 것이 쓰임이 있구나. 가볍게 문 위로 날아가 문틈으로 기어 들어가 보니, 저 크고 작은 요괴 무리들이 춤추는 놈은 춤추고 노래하는 놈은 노래하며 양쪽에 늘어서 있고, 늙은 마왕은 대 위에 높이 앉아 있었다. 앞에는 뱀고기와 사슴 포, 곰 발바닥과 낙타 혹, 산나물과 과일이 차려져 있고, 청자 술병 하나와 향긋한 양젖술과 야자술이 있어, 큰 사발로 마음껏 흐뭇하게 마시고 있었다. 행자가 작은 요괴 무리 속으로 내려앉아 또 오소리 머리 요정으로 변하여 천천히 대 가까이로 다가가 한참이나 살펴보았으나 보배를 어디에 두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급히 몸을 빼어 대 뒤로 돌아가 보니, 저 뒤청 높은 곳에 불용이 울부짖고 불말이 울며 매달려 있었다. 홀연히 머리를 들어 보니 그의 여의봉이 동쪽 벽에 기대어 있는지라, 기뻐서 마음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모습을 바꾸는 것도 잊은 채 앞으로 걸어가 쇠봉을 집어 들고는 본모습을 드러내어 재주를 펴며, 봉을 휘둘러 한 길을 뚫고 나갔다. 놀란 요괴 무리는 간담이 서늘하였고 늙은 마왕은 미처 손을 쓸 겨를이 없었는데, 세 놈을 밀어 넘어뜨리고 두 놈을 쓰러뜨려 피로 물든 길 하나를 열고는 곧장 굴문을 빠져나왔다. 이를 두고 이르는 것이로다. 마두는 교만하여 방비가 없었고, 지팡이는 도로 임자에게 돌아왔도다. 결국 길흉이 어찌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2회 오공대요금두동(悟空大鬧金兜洞) · 여래암시주인공(如來暗示主人公) 말하자면, 손대성은 여의봉을 되찾아 문 밖까지 쳐 나오더니, 높은 봉우리로 뛰어올라 여러 신을 마주하고는 마음이 가득 기뻤다. 이천왕이 “대성의 이번 한 판은 어떠하였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손이 변화하여 그놈의 굴 속으로 들어갔더니, 저 요물은 더욱 흥이 나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승전주를 마시고 있었소. 도무지 그 보배가 어디 있는지 알아낼 겨를이 없었소. 내 그 뒤편으로 돌아갔더니, 문득 말 우는 소리와 용 읊는 소리가 들려 화부의 물건인 줄 알았소. 동쪽 벽에 내 여의봉이 기대어 있길래, 이 늙은 손이 손에 쥐고는 줄곧 쳐서 빠져나왔소.” 여러 신이 “그대의 보배는 되찾았으니, 우리의 보배는 언제 손에 들어오겠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어렵지 않소!”라고 말했다. “어렵지 않소! 이 늙은 손이 이 쇠봉을 가졌으니, 무슨 수를 쓰든 그놈을 쳐서 쓰러뜨리고 보배를 되찾아 그대들에게 돌려주겠소.”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득 산비탈 아래에서 징과 북이 일제히 울리고 고함 소리가 땅을 흔들어 대니, 알고 보니 시대왕이 정령 무리를 거느리고 행자를 쫓아온 것이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는 외쳤다. “좋소! 좋소! 좋소! 바로 내 뜻에 맞는구나! 여러분은 자리에 앉아 계시오. 이 늙은 손이 다시 가서 그놈을 잡아 오겠소.”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쇠봉을 들어 얼굴을 향해 마주 나가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놈 요마야, 어디로 달아나느냐! 몽둥이를 받아라!” 그 요괴는 창을 들어 막아 내며 욕했다. “이 도둑 원숭이 놈아! 참으로 버릇이 없구나! 어찌하여 대낮에 내 물건을 털어 가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 죽을 줄 모르는 짐승 같은 놈! 네 놈이 도리어 올가미를 놓아 대낮에 내 물건을 빼앗았거늘, 어느 물건이 네 것이냐! 달아나지 말고 이 영감의 몽둥이를 받아라!” 그 요물은 창을 휘둘러 막아 냈다. 이 한 판의 통쾌한 싸움이여! 대성은 위엄을 사납게 떨치고, 요마는 순순히 굴복하지 않으며, 양편이 함께 용맥을 다투니 그 누가 기꺼이 물러서겠는가. 이쪽의 쇠봉은 용의 꼬리 같고, 저쪽의 긴 창은 구렁이의 머리 같구나. 이쪽의 몽둇발은 바람 소리처럼 울리고, 저쪽의 창 받침은 물결처럼 늠름하구나. 보라, 저 아롱진 채색 안개가 자욱하여 산등성이가 어둡고, 상서로운 구름이 빽빽이 끼어 숲이 근심에 잠겼구나. 하늘 가득 나는 새들이 모두 날개를 멈추고, 사방 들판의 승냥이와 벌레들이 모조리 머리를 움츠리는구나. 저쪽 진영에서는 작은 요괴들이 고래고래 소리치고, 이쪽에서는 행자가 기운을 떨치는구나. 쇠봉 하나를 당할 자 없어 서방 만 리를 두루 쳤거늘, 저 긴 창이 참으로 맞수가 되어 금두산을 길이 지키며 으뜸으로 꼽히는구나. 이 만남은 좋게 흩어질 수 없으니, 높고 낮음이 가려지기 전에는 맹세코 그치지 않으리라. 그 마왕과 손대성이 세 시진을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하늘이 저물어 갔다. 요마가 긴 창을 받쳐 들고 말했다. “오공, 그만두게. 하늘이 어둡고 땅이 캄캄하니 겨룰 때가 아니니, 서로 잠시 쉬었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그대와 승부를 겨뤄 보겠네.” 행자가 욕하며 말했다. “이놈 짐승아, 입 다물어라! 이 늙은 손의 흥이 이제 막 돋아났는데 무슨 날 저무는 게 대수냐! 반드시 너와 승부를 가리겠다!” 그 요물은 크게 한 소리 외치고는 창을 헛되이 한 번 휘둘러 목숨을 건져 달아나며, 요괴 무리를 거느리고 창과 방패를 거두어 굴 속으로 들어가 문을 꽁꽁 닫아 걸었다. 이 대성이 몽둥이를 끌고 막 돌아오니, 천신들이 언덕 위에서 축하하며 모두 말했다. “능력 있고 힘센 위대한 제천대성이시여, 한량없고 가없는 참된 재주로다!” 행자가 웃으며 “과찬이시오! 과찬이시오!”라고 말했다. 이천왕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말은 참으로 치켜세움이 아니오. 진정한 호한이오! 이번 한 판도 옛날에 천라지망을 펼치던 때에 못지않았소!” 행자가 말했다. “옛일은 거론하지 맙시다. 저 요마는 이 늙은 손에게 이 한 판을 당했으니 필시 지쳤을 것이오. 나도 고생을 말할 처지가 못 되니, 그대들은 모두 마음 놓고 앉아 있으시오. 내 다시 굴 속으로 들어가 그 고리의 행방을 알아내어, 기어이 그것을 훔쳐 그 요괴를 잡고 병기를 찾아 그대들에게 돌려주어 하늘로 돌아가게 하겠소.” 태자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편히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 가는 것이 어떠하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어린 도령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려! 어느 도둑이 대낮에 손을 쓰겠소? 이런 훔치기란 모름지기 밤에 갔다 밤에 와야, 남이 알아채지 못하는 법이라야 장사가 되는 것이오.” 화덕과 뇌공이 “삼태자께서는 말리지 마옵소서. 이 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바이오. 대성은 이런 일에 익숙한 노련한 분이시니, 이때를 놓치지 말고 가시라 하옵소서. 하나는 마두가 곤하여 지쳤고, 둘은 밤이 어두워 방비가 없으니, 어서 가시오! 어서 가시오!”라고 말했다.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히히 웃으며 쇠봉을 감추고 높은 봉우리에서 뛰어내려 다시 굴 어귀에 이르러,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귀뚜라미 한 마리가 되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입은 단단하고 수염은 길며 가죽은 검고, 눈은 밝고 발톱과 다리는 갈래졌더라. 바람은 맑고 달은 밝아 담장 가에서 울고, 밤이 고요하니 사람의 말소리 같구나. 이슬에 젖은 처량한 경치에,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가 자랑할 만하구나. 나그네의 창가에서 떠도는 시름에 그 소리 듣기 두렵건만, 공교롭게도 빈 섬돌과 침상 아래에서 우는구나. 굵은 다리를 벌려 서너 번 뛰어 문가에 이르러서는 문틈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리하여 안쪽 벽 밑에 웅크리고 앉아,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받으며 자세히 살펴보니, 크고 작은 요괴 무리가 하나하나 승냥이처럼 게걸스럽게 먹어 대며 한창 음식을 먹고 있었다. 행자가 귀뚜라미 소리로 끙끙거리며 한바탕 울어 대었다. 잠시 뒤에 그들은 그릇과 도구를 거두고는 또 자리를 펴고 각자 몸을 누였다. 대략 초경 무렵이 되어서야 행자가 그 뒤쪽 방으로 갔는데, 마침 늙은 마왕이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각 문의 졸개들은 잠을 조심하라! 손오공이 또 무슨 것으로 변하여 몰래 들어와 훔쳐 갈까 두렵다!” 또 당번을 서며 밤을 지키는 자들이 짤그랑짤그랑 북과 방울을 함께 울려 대니, 이 대성은 오히려 일을 하기가 좋았다. 방문을 파고들어 보니 돌침대 하나가 놓여 있고, 좌우에는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은 산정과 수귀 몇이 자리를 펴고 늙은 마왕을 모시며, 신발을 벗기는 자, 옷을 풀어 주는 자들이 있었다. 그 마왕이 옷을 헐렁하게 하니, 왼쪽 팔에 하얗고 번쩍이는 고리 하나가 끼워져 있었는데, 그 생김새는 마치 연이어 꿴 팔찌와 같았다. 보라, 그는 그것을 조금도 벗지 않고 도리어 위로 두어 번 쓸어 올려 팔에 단단히 조여 매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행자가 보고는 몸을 다시 변하여 누런 가죽의 벼룩이 되어, 돌침대로 뛰어올라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그 요괴의 팔로 기어 올라가 힘껏 한 입 물었다. 물린 요괴가 몸을 뒤치며 욕했다. “이 매 맞을 놈의 노비들! 이불도 털지 않고 침상도 쓸지 않아, 무슨 벌레가 나를 이렇게 물었단 말이냐!” 그리고는 그 고리를 다시 두어 번 쓸어 올리고는 여전히 누워 잤다. 행자가 그 고리 위로 기어 올라가 또 한 입 물었다. 그 요괴는 잠을 이룰 수 없어 또 몸을 뒤집으며 말했다. “가려워 죽겠구나!” 행자는 그놈이 방비를 단단히 하고 보배를 몸에 지녀 좀체 벗지 않으니, 훔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침상에서 뛰어내려 도로 귀뚜라미로 변하여 방문을 나서 곧장 뒤편으로 가니, 또 용이 읊고 말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층문은 굳게 잠겨 있고 불 용과 불 말이 모두 그 안에 매달려 있었다. 행자가 본래 모습을 드러내어 문 앞으로 다가가 자물쇠 푸는 법을 쓰고 주문을 외우며 손으로 한 번 쓸자,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물쇠의 양쪽 고리가 모두 빠져 버렸다. 문을 밀고 들어가 살펴보니, 그 안은 화기가 비추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았다. 문득 동쪽과 서쪽 양편에 병기 몇 개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것이 보였으니, 모두 태자의 요참검 등과 화덕의 불 활과 불 화살 등의 물건이었다. 행자가 불빛을 비추어 두루 한 바퀴 살펴보다가, 또 문 뒤에 있는 돌탁자 위에 대바구니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안에 털 한 줌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대성은 마음이 가득 기뻐 그 털을 집어 들어 뜨거운 입김을 두 번 불어넣으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서른에서 쉰 마리의 작은 원숭이로 변했다. 그는 그들에게 칼과 검과 절구와 밧줄과 공과 바퀴, 그리고 활과 화살과 창과 수레와 표주박과 불까마귀와 불쥐와 불말 등 끼워 갔던 온갖 물건을 들게 하고는, 불 용을 타고 불길을 일으켜 안에서 바깥쪽으로 불을 질러 나왔다. 다만 웅웅 콩콩, 펑펑 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니, 마치 우레와 연포가 잇달아 터지는 소리와 같았다. 놀란 크고 작은 요정들이 멍청하고 혼란한 가운데 이불을 걸치고 머리를 감싼 채, 외치는 자는 외치고 우는 자는 울며 하나하나 갈 곳을 잃어, 이 불에 타 죽은 자가 태반이었다. 미후왕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때는 바야흐로 삼경 무렵이었다. 한편 높은 봉우리 위에서 이천왕 일행이 홀연 불빛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보고는 한꺼번에 몰려와 보니, 행자가 용을 타고 호호 하호 소리치며 작은 원숭이들을 몰아 봉우리 위로 곧장 올라와서는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병기를 거두어라! 병기를 거두어라!” 화덕과 나타가 대답하자, 이 행자가 몸을 한 번 떨자 그 털 한 줌이 도로 몸에 붙었다. 나타 태자가 여섯 가지 병기를 거두고, 화덕성군은 화부 무리를 시켜 불 용 등의 물건을 거두게 하였으며, 모두들 싱글벙글 웃으며 행자를 칭찬하고 축하하였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한편 금두산 안에서는 불길이 사방으로 흩날려, 시대왕이 넋이 몸을 떠나게 놀라 급히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는 두 손으로 그 고리를 쥐고 동쪽을 밀자 동쪽 불이 꺼지고 서쪽을 밀자 서쪽 불이 사라졌다. 하늘 가득 연기가 솟고 불이 치솟는 가운데 보배를 들고 한 바퀴 달려가니, 사방의 불과 연기가 모조리 꺼졌다. 급히 요괴 무리를 거두어 보니 이미 불에 타 죽은 자가 태반이요, 남녀를 합쳐 백여 명도 거두지 못하였다. 또 병기를 감춘 곳을 살펴보니 갖가지 물건이 모두 없어졌고, 또 뒤편을 가 보니 저팔계와 사승과 장로가 아직 결박된 채 풀리지 않았고, 백룡마는 여전히 구유에 매여 있었으며, 행장 짐도 또한 방 안에 있었다. 요마가 이를 원망하며 말했다. “어느 졸개 놈이 부주의하여 불을 내 이 지경이 되게 하였단 말이냐!” 곁에 있던 가까이 모시는 자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 불은 본가의 일이 아니옵고, 필시 진영을 훔치고 진지를 터는 도적이 화부의 물건을 놓아 신병을 훔쳐 간 것이옵니다.” 늙은 마왕이 그제야 깨달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없도다. 단연코 손오공 그 도적 놈이로다! 괴이하다, 내 잠자리에 들 때 마음이 편치 않더니! 생각하건대 그 도적 원숭이가 변화하여 들어와 내 이 팔을 두 번 물었던 게로구나. 필시 내 보배를 훔치려 하였으나 내가 단단히 조여 매어 손을 댈 수 없자, 이 때문에 병기를 훔쳐 불 용을 놓아 이토록 독한 마음을 품고 나를 불에 태워 죽이려 한 것이로다. 이 도적 원숭아! 네 헛되이 계교를 부렸으나 내 본실을 모르는구나! 내 이 보배만 지니고 있으면 큰 바다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불 못으로 달려가도 타지 않느니라! 이번에 그 도적을 잡기만 하면, 살을 발라 등잔불을 켜는 형벌에 처해야 내 마음이 풀리리라!” 이런 말을 하며 한참이나 분해하다가, 어느새 닭이 울고 날이 밝았다. 높은 봉우리 위에서 태자가 여섯 가지 병기를 되찾고 행자에게 말했다. “대성이여, 날이 이미 밝았으니 더디게 굴지 맙시다. 우리가 저 요마의 예기가 꺾인 틈을 타서, 화부 무리와 함께 그대를 도와 다시 힘껏 싸우러 갑시다. 그러면 이번에는 잡을 수 있을 것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이 이치에 맞소. 우리 마음을 합쳐 한바탕 놀러 갑시다!”라고 말했다. 하나하나 위풍을 떨치고 무예를 뽐내며 곧장 굴 어귀로 갔다. 행자가 외쳤다. “이놈 요마야, 어서 나오너라! 이 늙은 손과 한 판 붙어 보자!” 알고 보니 그곳의 두 짝 돌문은 불기운에 타 재가 되었고, 문 안에는 졸개 요괴 몇이 막 재를 쓸어 모으고 있었다. 홀연 여러 성인이 한꺼번에 오는 것을 보고는 놀라 빗자루를 내동댕이치고 재 긁개를 내버린 채 안으로 달려가 아뢰었다. “손오공이 많은 천신을 거느리고 또 문 밖에서 싸움을 걸며 욕하고 있사옵니다!” 그 시 요괴가 그 보고를 듣고 크게 놀라, 이를 딱딱 부딪치며 쇠 같은 어금니를 깨물었고, 방울방울 굴리는 눈동자를 휘둥그레 뜨고 긴 창을 비껴 들고 보배를 지닌 채 문 밖으로 걸어 나와, 입을 함부로 놀려 마구 욕하며 말했다. “이 진영을 훔치고 불을 놓은 도적 원숭이 같으니! 네가 얼마나 큰 수단이 있기에 감히 이토록 나를 깔보느냐?” 행자가 웃는 낯으로 욕하며 말했다. “이놈 요물아! 내 수단을 알고자 한다면 앞으로 나서 보아라, 내 너에게 일러 주리라. 어려서부터 수단이 강하여, 건곤 만 리에 이름이 떨쳤느니라. 그때에 총명하여 신선도를 닦고, 예로부터 전해 온 불로방을 얻었느니라. 뜻을 세워 방촌산에 찾아들어 절하고, 정성을 다해 성인의 고향을 찾아 뵈었느니라. 변화를 이루니 한량없는 법이요, 우주 긴 허공에서 내 마음대로 날뛰었느니라. 한가할 땐 산 앞에서 호랑이를 굴복시키고, 답답할 땐 바다로 가 용을 항복받았느니라. 본래 화과산에 살며 왕위를 일컫고, 수렴동에서 강함을 뽐내었느니라. 몇 차례나 천계를 넘보려 하였고, 몇 번이나 무지하게 상방을 빼앗으려 하였느니라. 하사받아 제천이라 이름하고 대성이 되었으며, 칙봉으로 또 미후왕을 더해 주었느니라. 다만 반도연이 베풀어질 때, 청첩 없이 나를 부르지 않음에 내 성미가 사나웠느니라. 몰래 요지에 들어가 옥액을 훔치고, 몰래 빈 누각으로 다니며 경장을 마셨느니라. 용의 간과 봉황의 골수도 일찍이 훔쳐 먹고, 온갖 맛의 진귀한 음식도 내 남몰래 맛보았느니라. 천 년 반도를 마음대로 받아 쓰고, 만 년 단약도 내 배를 채웠느니라. 천궁의 기이한 물건을 가지가지 취하고, 성부의 진귀한 보배를 낱낱이 감추었느니라. 옥황상제는 내게 수단이 있음을 알고 즉시 천병을 내어 전장을 벌였느니라. 구요의 사나운 별들이 나에게 밀려났고, 오방의 흉한 별자리들이 내게 상하였느니라. 온 하늘의 신장들이 모두 나를 당할 수 없고, 십만 대군도 감히 막아서지 못하였느니라. 옥황을 위협하여 칙지를 전하게 하고, 관강의 소성이 병기를 일으켰느니라. 칠십이 가지 변화로 서로 버티며, 저마다 정신을 부려 하나하나 강하였느니라. 남해 관음이 와서 싸움을 돕고, 정병과 양류도 함께 거들었느니라. 노군이 또 금강탁을 써서 나를 사로잡아 상방으로 끌고 갔느니라. 결박된 채 옥황 장대제를 뵈었고, 조관이 죄를 따져 죄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즉시 역사를 시켜 칼을 들어 베게 하였으나, 칼이 두피를 내리쳐도 불꽃만 번쩍였느니라. 온갖 방도로도 죽일 수 없어, 나를 노군의 당으로 압송하였느니라. 육정의 신화로 화덕 속에서 단련하여, 온몸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느니라. 칠칠일 수가 다하여 솥을 열고 보니, 내 몸이 뛰쳐나와 또 사납게 날뛰었느니라. 여러 신이 문을 닫고 막을 길이 없었고, 뭇 성인이 의논하여 부처님께 청하였느니라. 참으로 여래는 법력이 많고, 과연 지혜가 한없이 넓었느니라. 손바닥 위에서 근두운을 굴려 내기를 하여, 산으로 나를 누르니 내가 강할 수 없었느니라. 옥황이 그제야 안천회를 베풀고, 서역이 바야흐로 극락의 터가 되었느니라. 이 늙은 손을 오백 년 동안 짓눌러 가두었으나, 차와 밥은 조금도 맛본 적이 없느니라. 금선장로가 범세에 내려오시어, 동토에서 그를 보내 불향을 참배하게 하였느니라. 진경을 얻어 상국으로 돌아가고자 함은, 대당 제주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를 건지려 함이니라. 관음이 나를 권하여 선에 귀의하게 하고, 가르침을 받들어 미치지 않게 하였느니라. 높은 산 아래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이제 서쪽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이니라. 이놈 요마야, 사슴과 여우의 꾀를 부리지 말고, 내 당승을 돌려보내어 법왕을 참배하게 하라!” 그 요괴가 이 말을 듣고 행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본래 하늘을 훔친 큰 도적이로구나! 달아나지 말고 내 창을 받아라!” 이 대성이 봉을 들어 맞섰다. 두 사람이 막 서로 버티고 있는데, 이쪽에서 나타 태자가 노기를 띠고 화덕성군이 이를 갈며, 곧 그 여섯 가지 신병과 화부의 물건들을 요마의 몸을 향해 던져 대니, 손대성이 더욱 기세를 떨쳤다. 한편에서는 또 뇌공이 쇠를 쓰고 천왕이 칼을 들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 마두는 꿈쩍도 않으며 냉소를 띠고, 소매 속에서 몰래 보배를 꺼내어 손을 놓아 허공으로 던져 올리며 “걸려라!” 하고 외쳤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여섯 가지 신병과 화부의 물건과 뇌공의 쇠와 천왕의 칼과 행자의 봉을 모조리 또 끼워 가 버리니, 뭇 신령은 여전히 빈손이요 손대성은 여전히 빈 주먹이었다. 요마가 승리를 거두고 몸을 돌려 외쳤다. “졸개들아, 돌을 날라 문을 쌓고 흙을 파서 집을 고치며, 방과 행랑을 새로 정비하라. 갖추어지거든 당승 세 사람을 잡아 토지신께 사례하고, 모두 함께 복을 나누어 누리자.” 졸개 요괴들이 명을 받들어 살피는 동안의 일은 더 말하지 않겠다. 한편 이천왕이 무리를 거느리고 높은 봉우리로 돌아왔는데, 화덕은 나타의 성급함을 원망하고 뇌공은 천왕이 억지를 부렸다며 탓하였으며, 오직 수백만이 곁에서 말이 없었다. 행자는 그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마음에 걱정이 얽혀 있음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원망을 품은 채 억지로 웃으며 여러 신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근심하지 마시오. 예로부터 이르기를, 승패는 병가의 상사라 하였소. 내가 그놈과 무예를 겨루어도 또한 이 정도일 뿐이오. 다만 그놈이 이 고리를 더 지녔으므로 해가 되는 것이니, 우리의 병기를 또 끼워 가 버린 것이오. 그대들은 우선 마음을 놓으시오. 이 늙은 손이 다시 가서 그놈의 행색을 알아보고 오겠소.” 태자가 “그대가 앞서 옥황상제께 아뢰어 하늘 가득한 세계를 조사하였으나 조금의 자취도 없다 하였거늘, 이제 또 어디로 가서 조사하겠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내 생각하건대 불법은 가없으니, 이제 서천으로 올라가 우리 부처님 여래께 여쭙고, 그분께 혜안으로 대지 사부주를 두루 살펴보게 하여, 이 요괴가 어느 곳에서 났으며 어느 고향에 살고 있는지, 그 고리가 무슨 보배인지 알아보게 하겠소. 무슨 일이 있든 기어이 그놈을 잡아 여러분의 분을 풀어 드리고, 그대들이 기뻐하며 하늘로 돌아가게 하겠소.” 여러 신이 말했다. “그런 뜻이 있다면 오래 머물 것 없소. 어서 가시오! 어서 가시오!”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가자고 말하자마자 근두운을 타고 어느새 영산에 이르러 상서로운 빛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니, 참으로 좋은 곳이로다. 영봉은 드높고, 겹친 봉우리는 맑고 아름다우며, 신선의 산 꼭대기는 푸른 은하에 닿았구나. 서천의 큰 진을 바라보니, 형세가 중화를 누르는구나. 원기가 유통하여 천지가 멀고, 위풍이 날아 퍼져 누대의 꽃에 가득하구나. 때때로 종과 경의 소리가 길게 들리고, 늘 경 읽는 소리가 밝게 들리는구나. 또 저 푸른 소나무 아래에서 우바새가 강론하고, 푸른 잣나무 사이로 나한이 거니는구나. 흰 학이 정을 두고 취령으로 오고, 푸른 난새가 뜻을 두고 한가한 정자에 서 있구나. 검은 원숭이가 쌍쌍이 선과를 받쳐 들고, 장수 사슴이 짝지어 자색 꽃을 바치는구나. 그윽한 새의 잦은 울음은 말을 하소연하는 듯하고, 기이한 꽃은 빛이 찬란하나 이름을 알 수 없구나. 구불구불 이어진 산등성이가 거듭 돌아보고, 굽이굽이 옛길이 곳곳마다 평탄하구나. 참으로 맑고 빈 영롱하고 수려한 땅이요, 장엄한 대각 불가의 집안이로다. 이 행자가 막 산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 “손오공,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알고 보니 비구니 존자였다. 대성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마침 일이 하나 있어 여래를 뵙고자 하오.” 비구니가 말했다. “이 장난꾸러기 같으니! 여래를 뵙고자 하면서 어찌하여 보찰로 오르지 않고 여기서 산이나 보고 있느냐?” 행자가 “처음 온 귀한 곳이라 감히 그리하였소”라고 말했다. 비구니가 “어서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했다. 이 행자가 바짝 뒤따라 뇌음사 산문 아래에 이르니, 또 저 팔대금강이 늠름하게 양쪽을 막고 서 있었다. 비구니가 “오공, 잠시 기다리시오. 내 그대를 위하여 들어가 아뢰고 오겠소”라고 말했다. 행자는 하는 수 없이 문 밖에 서서 기다릴 뿐이었다. 그 비구니가 부처님 앞으로 가 두 손을 모으고 아뢰었다. “손오공이 일이 있어 여래를 뵙고자 하옵니다.” 여래가 칙지를 전하여 들이라 하니, 금강이 길을 비켜 통과시켰다. 행자가 머리를 숙여 절을 마치자, 여래가 물었다. “오공, 앞서 듣건대 관음 존자가 그대의 몸을 해탈시켜 불법에 귀의하게 하고, 당승을 보호하여 이곳으로 와 경을 구한다 하였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홀로 여기까지 왔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 행자가 머리를 조아려 아뢰었다. “우리 부처님께 아뢰옵나니, 제자가 가르침을 받든 이래 당나라 스승님과 함께 서쪽으로 오다가 금두산 금두동에 이르렀사온데, 사나운 마두 하나를 만났사옵니다. 이름은 시대왕이라 하며 신통이 광대하여 스승님과 사제들을 굴 속으로 잡아들였사옵니다. 제자가 그에게 찾아가 돌려달라 청하였으나 호의가 없어 양편이 서로 겨루었사온데, 그놈이 하얗고 번쩍이는 고리 하나로 내 쇠봉을 빼앗아 갔사옵니다. 나는 그놈이 천장이 범심하여 내려온 것인가 두려워 급히 상계로 올라가 조사하였사온데 찾아내지 못하였사옵니다. 옥황상제의 은혜로 이천왕 부자를 파견하여 돕게 하였사온데, 또 그놈이 태자의 병기 여섯 가지를 빼앗아 갔사옵니다. 또 화덕성군을 청하여 불을 놓아 그놈을 태우게 하였사온데, 또 그놈이 화구를 빼앗아 갔사옵니다. 또 수덕성군을 청하여 물을 놓아 그놈을 빠뜨리게 하였사온데, 조금도 그놈을 빠뜨릴 수 없었사옵니다. 제자가 여러 정신과 기력을 들여 그 쇠봉 등의 물건을 훔쳐 내어 다시 싸움을 걸었사온데, 또 그놈이 앞의 물건을 도로 끼워 가 버려 항복시킬 방도가 없사옵니다. 이 때문에 특별히 우리 부처님께 아뢰오니, 굽어 살피시어 자비를 베푸시어 제자에게 보아 주시옵소서. 과연 무엇이 낳은 물건인지 알게 되면 제가 그놈의 가속과 사린을 잡아 이 마두를 결박하고 제 스승님을 구하겠사옵니다. 두 손 모아 정성을 다하여 바른 과위를 빌며 아뢰옵니다.” 여래가 이 말을 듣고 혜안을 멀리 두루 살펴보아 이미 알아차리고는 행자에게 이르되, “그 요물은 내 비록 알고 있으나 그대에게는 말할 수 없느니라. 이 원숭이 녀석은 입이 헤퍼서, 한 번 내가 말했다고 전해지면 그놈이 그대와 싸우지 않고 틀림없이 영산까지 와서 떠들어 도리어 내게 화를 끼치리라. 내 여기서 법력으로 그대가 그놈을 잡는 것을 돕게 하리라.” 행자가 거듭 절하며 감사하여 “여래께서는 무슨 법력으로 저를 도우시나이까?”라고 말했다. 여래가 즉시 십팔 나한에게 명하여 보배 창고를 열고 금단사 열여덟 알을 꺼내어 오공을 돕게 하였다. 행자가 “금단사가 무엇이옵니까?”라고 말했다. 여래가 이르되, “그대가 굴 밖으로 가서 그 요마를 불러 겨루어 보라. 그놈을 밖으로 유인해 내고는 나한에게 모래를 놓게 하여 그놈을 빠뜨려,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발도 빼지 못하게 한 뒤, 그대가 마음대로 잡아 때리면 되느니라.” 행자가 웃으며 “묘하외다! 묘하외다! 묘하외다! 어서 일찍 갑시다!”라고 말했다. 그 나한들이 감히 지체하지 않고 즉시 금단사를 가지고 문을 나서니, 행자가 또 여래에게 감사하였다. 가는 길에 헤아려 보니 나한이 열여섯 분뿐이라, 행자가 떠들며 말했다. “이게 어느 곳이라서 사람을 빼돌리시오!” 뭇 나한이 “누가 빼돌렸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본래 열여덟 분을 파견한다 하였거늘, 이제 어찌하여 겨우 열여섯 분뿐이시오?”라고 말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항룡과 복호 두 존자가 걸어 나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오공, 어찌하여 이다지도 억지를 부리시오? 우리 둘은 뒤에서 여래의 분부를 듣고 있던 것이오.” 행자가 “법을 너무 파는구려! 너무 파는구려! 조금만 늦게 떠들었어도 그대들은 감히 나오지 않았을 게 아니오”라고 말했다. 뭇 나한이 싱글벙글 웃으며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떠났다. 오래지 않아 금두산 경계에 이르렀다. 그 이천왕이 보고는 무리를 거느리고 마중하며 지난 일을 자세히 말했다. 나한이 “자세한 사연은 필요 없으니, 어서 그놈을 불러내라”라고 말했다. 이 대성이 주먹을 쥐고 굴 어귀로 가서 욕하며 말했다. “이놈 요물아, 어서 나와 네 손 외할아버지와 높낮이를 겨루어 보자!” 그 작은 요괴가 또 날듯이 달려가 아뢰었다. 마왕이 노하여 말했다. “이 도적 원숭이가 또 누구를 청하여 날뛰는 것이냐!” 작은 요괴가 “다른 장수는 없사옵고 그놈 홀로이옵니다”라고 아뢰었다. 마왕이 “그 몽둥이는 이미 내가 거두었거늘, 어찌하여 또 홀로 여기까지 왔느냐? 감히 또 권법을 쓰려는 게냐?” 하고는 곧 보배를 지니고 창을 손에 쥐고, 졸개에게 명하여 돌을 치우게 하고는 문을 뛰어나와 욕하며 말했다. “이 도적 원숭이야! 너는 몇 차례나 이득을 보지 못했거늘 마땅히 피해야 하련만, 어찌하여 또 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놈 요마가 좋고 나쁨을 모르는구나! 네 외할아버지가 오지 않게 하려거든, 네가 항복하고 예를 갖추며 내 스승님과 사제들을 내보내라. 그러면 내 너를 용서하겠다!” 그 요괴가 말했다. “너의 그 중 셋은 이미 내가 깨끗이 씻어 두었으니 오래지 않아 잡아 죽이려 하거늘, 너는 아직도 분별을 모르는구나! 어서 가거라!” 행자가 도살한다는 두 글자를 듣자, 뺨에서 불길이 이는 듯 성이 치밀어 마음속 분노를 누를 수 없어, 자세를 버리고 주먹을 휘두르며 비스듬히 걸어 엇걸음으로 요마를 향해 얼굴을 겨누어 후려쳤다. 그 요괴는 긴 창을 펴고 손을 쳐들어 맞섰다. 행자가 왼쪽으로 뛰고 오른쪽으로 뛰며 그 요마를 꾀어 내니, 요마는 그것이 계략인 줄 모르고 굴 어귀를 떠나 남쪽으로 쫓아왔다. 행자가 즉시 나한에게 외쳐 금단사를 요마를 향해 일제히 내리뿜게 하니, 함께 신통을 드러내는 저 모래여!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안개 같고 연기 같더니 막 흩어져 퍼지며, 분분히 자욱하게 하늘가로 내리는구나. 희뿌연 것이 곳곳에서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어두컴컴한 것이 날아갈 때는 길을 찾기 어렵구나. 나무하는 나무꾼은 짝을 잃고, 약 캐는 선동은 집을 찾지 못하는구나. 가늘고 고와서 밀가루처럼 가볍게 날리고, 굵고 거칠어서 뒤집히며 깨소금 같은구나. 세상은 몽롱하고 산꼭대기는 어두워지며, 긴 하늘이 흐려져 해가 가리는구나. 시끄러운 먼지가 준마를 따르는 것과 같지 않고, 가볍고 부드러운 것이 향수레를 받치는 것이라 말하기 어렵구나. 이 모래는 본래 무정한 물건이나, 땅을 덮고 하늘을 가려 요괴를 잡는구나. 다만 요마가 정도를 침범하였으므로, 아라한이 법을 받들어 호화를 떨치는구나. 손안에 곧 명주가 나타나니, 삽시간에 눈이 어지러워 꽃이 피는구나. 그 요마는 모래가 날아와 눈을 가리는 것을 보고 머리를 한 번 숙였는데, 발밑이 벌써 석 자 남짓 깊어졌다. 놀란 그가 몸을 한 번 솟구쳐 그 위 한 겹으로 뛰어올랐으나, 미처 발을 붙이기도 전에 잠깐 사이에 또 두 자 남짓 깊어졌다. 그 요괴가 다급해져 발을 빼어 내고는 급히 고리를 꺼내어 위로 한 번 던지며 “걸려라!” 하고 외쳤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금단사 열여덟 알을 또 모조리 끼워 가 버리고는, 걸음을 돌려 곧장 본굴로 돌아갔다. 그 나한들이 하나하나 빈손으로 구름 위에 멈춰 섰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여러 나한이여, 어찌하여 모래를 내리지 않으시오?” 나한이 “방금 소리 한 번이 나더니 금단사가 보이지 않게 되었소”라고 말했다. 행자가 웃으며 “또 그 물건이 끼워 간 게로구나”라고 말했다. 천왕 등 뭇 신이 “이토록 굴복시키기 어렵다니, 어찌 그놈을 잡을 수 있겠으며, 어느 날에야 하늘로 돌아가 무슨 낯으로 천제를 뵙겠소!”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항룡과 복호 두 나한이 행자에게 말했다. “오공, 내 둘이 문을 나설 때 늦어진 까닭을 아시오?” 행자가 “이 늙은 손은 그대들이 피하여 나오지 않는 것만 괴이히 여겼소. 무슨 말씀이 있었는 줄은 몰랐소”라고 말했다. 나한이 말했다. “여래께서 우리 둘에게 분부하시되, 그 요마는 신통이 광대하니 만약 금단사를 잃거든 곧 손오공을 이한천 도솔궁 태상노군에게로 보내어 그 행적을 찾게 하라 하시었소. 그러면 거의 한 번에 잡을 수 있으리이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원통하구나! 원통하구나! 여래께서도 이 늙은 손을 속이셨구나! 그때에 곧 내게 말씀해 주셨더라면 그대들을 멀리까지 오게 하지 않았을 것을!” 이천왕이 “여래께서 이런 밝은 가르침이 계시거든, 대성께서는 마땅히 일찍 떠나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가자고 말하자마자 근두운 한 줄기를 타고 곧장 남천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마침 사대원수가 주먹을 쥐고 두 손을 모으며 “요괴 잡는 일은 어떠하오?”라고 말했다. 행자가 걸으면서 답했다. “아직이오! 아직이오! 이제 근원을 찾을 곳이 생겼소.” 네 장수가 감히 붙잡아 막지 못하여 그를 천문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영소전으로 오르지도 않고 두우궁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곧장 삼십삼천 밖 이한천 도솔궁 앞에 이르렀다. 선동 둘이 시립하여 있는 것이 보이나 그는 성명도 통하지 않고 곧장 안으로 걸어가려 하니, 놀란 두 동자가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어디로 가려 하오?” 행자가 그제야 “나는 제천대성이오. 이 노군을 찾으러 왔소”라고 말했다. 선동이 “그대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거칠고 무례하오? 우선 멈추어 서서 우리가 통보하게 하시오”라고 말했다. 행자는 분별하는 말을 용납하지 않고 큰 소리로 한 번 호통치며 안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 홀연 노군이 안에서 나오다가 정면으로 마주 부딪쳤다. 행자가 몸을 굽혀 읍하며 “노인장, 오랫동안 뵙지 못하였소”라고 말했다. 노군이 웃으며 “이 원숭이 녀석이 경을 구하러 가지 않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경을 구하고 경을 구하느라 밤낮으로 쉬지 못하였소. 좀 막히는 일이 있어 여기까지 왔소.” 노군이 “서천 길이 막힌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서천이니 서천이니 하시며 그대는 잠시 말을 마시오. 자취를 찾아내면 그대와 얽어 보겠소.” 노군이 “이곳은 무상선궁이라 무슨 자취를 찾을 수 있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안으로 들어가 눈을 돌리지 않고 동쪽을 보고 서쪽을 살피며 층층의 회랑을 지나가는데, 홀연 저 우사리 곁에서 동자 하나가 졸고 있고 청우는 그 우사에 없었다. 행자가 “노인장, 소가 달아났소! 소가 달아났소!”라고 말했다. 노군이 크게 놀라며 “이 망할 짐승이 언제 달아났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한창 떠드는 사이에 그 동자가 막 깨어나 앞에 꿇으며 아뢰었다. “할아버지, 제자가 잠이 들어 몇 시에 달아났는지 모르겠나이다.” 노군이 욕하며 “이놈이 어찌하여 졸고 있었느냐?”라고 말했다. 동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제자가 단방에서 단약 한 알을 주워 그 자리에서 먹고는 이곳에서 잠이 들었나이다.” 노군이 말했다. “앞서 날에 단련한 칠반화단인데 한 알이 떨어져 이놈이 주워 먹은 게로구나. 그 단약은 한 알을 먹으면 이레를 자는 것이거늘, 이 망할 짐승이 네가 잠든 틈을 타 지켜보는 이가 없자 곧 기회를 엿보아 하계로 내려갔으니, 오늘이 또한 이레가 되는 날이로다.” 그리고는 무슨 보배를 훔쳐 갔는지 조사하였다. 행자가 “다른 보배는 없사옵고 다만 고리 하나가 있사온데 몹시 사납고 독하옵니다”라고 말했다. 노군이 급히 살펴보니 온갖 물건은 다 있었으되 금강탁만 보이지 않았다. 노군이 “이 짐승이 내 금강탁을 훔쳐 갔구나!”라고 말했다. 행자가 말했다. “본래 이 보배였구려! 그때에 이 늙은 손을 친 것도 이것이었소! 이제 하계에서 날뛰며 우리의 물건을 얼마나 많이 끼워 갔는지 모르오!” 노군이 “이 짐승이 어느 곳에 있느냐?”라고 말했다. 행자가 “지금 금두산 금두동에 살고 있소. 그놈이 내 당승을 잡아들였고 내 여의봉을 빼앗았소. 천병을 청하여 도움을 받았으나 또 태자의 신병을 빼앗겼소. 화덕성군을 청하였으나 또 그의 화구를 빼앗겼소. 오직 수백은 그놈을 빠뜨려 죽이지는 못하였으나 도리어 물건을 빼앗기지는 않았소. 마침내 여래를 청하여 나한이 모래를 내리게 하였으나 또 금단사를 빼앗겼소. 이런 노인장이 괴물을 놓아 주어 사람을 다치게 하고 물건을 빼앗게 하였으니 무슨 죄를 마땅히 받아야 하겠소?” 노군이 말했다. “내 그 금강탁은 내가 함곡관을 지나며 호인을 교화하던 그릇이요, 어려서부터 단련하여 이룬 보배니라. 무슨 병기이든 물과 불이건 모두 그것에 가까이할 수 없느니라. 다만 내 파초선까지 훔쳐 갔더라면 나도 그놈을 어찌할 수 없었으리라.” 대성이 그제야 기뻐하며 노군을 따라나섰다. 노군이 파초선을 들고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함께 길을 나서 선궁을 나와 남천문 밖에서 구름머리를 낮추어 곧장 금두산 경계에 이르니, 십팔 나한과 뇌공과 수백과 화덕과 이천왕 부자가 보였다. 노군이 지난 일을 한 번 자세히 말했다. 노군이 “손오공이 또 가서 그놈을 유인해 내면 내가 거두겠느니라”라고 말했다. 이 행자가 봉우리에서 뛰어내려 또 목청을 높여 욕했다. “북쪽의 이놈 짐승아, 어서 일찍 나와 죽음을 받아라!” 그 작은 요괴가 또 가서 알리니, 늙은 마왕이 “이 도적 원숭이가 또 누구를 청해 온 것인고?” 하고는 급히 창을 쥐고 보배를 들어 문을 나서 맞았다. 행자가 욕하며 말했다. “이놈 요마야, 이번에는 틀림없이 죽은 목숨이로다! 달아나지 말고 내 손바닥을 받아라!” 급히 몸을 솟구쳐 정면으로 뛰어들어 뺨을 후려치고는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그 요마가 창을 휘두르며 쫓아오는데, 다만 높은 봉우리 위에서 “그 소야, 어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느 날을 기다리느냐?”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요마가 머리를 들어 보니 태상노군이라, 놀라 간담이 서늘해지며 말했다. “이 도적 원숭이가 참으로 굴 속의 귀신이로구나! 그런데 어찌하여 내 주인을 찾아내었단 말이냐?” 노군이 주문을 외우고 부채로 한 번 부치니, 그 요괴가 고리를 던져 오는 것을 노군이 한 손으로 받아 쥐었고, 또 한 번 부치자 그 요물은 기운이 풀리고 힘줄이 풀려 본모습이 드러났으니, 본래 청우 한 마리였다. 노군이 금강탁에 선기 한 입김을 불어넣어 그 요괴의 코를 꿰고 도포 띠를 풀어 고리에 매어 손에 쥐었다. 이로써 오늘날까지 소 코를 꿰는 고삐가 남게 되었으니, 또 빈랑이라 이름하는 것도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노군이 뭇 신에게 작별하고 청우 등에 올라타 채운을 타고 곧장 도솔원으로 돌아가, 요괴를 결박한 채 이한천으로 높이 올라갔다. 손대성이 그제야 천왕 등 무리와 함께 굴 속으로 쳐들어가 그 백여 명의 졸개 요괴를 모조리 때려 죽이고, 각자 병기를 찾아 천왕 부자에게 감사하며 하늘로 돌려보내고, 뇌공은 부로 돌아가고 화덕은 궁으로 돌아가고 수백은 강으로 돌아가고 나한은 서쪽으로 갔다. 그런 뒤에야 당승과 저팔계와 사승을 풀어 주고 쇠봉을 들고 나왔다. 그 세 사람이 또 행자에게 감사하고 말과 행장을 수습하여, 사도가 굴을 떠나 큰길을 찾아 비로소 길을 떠났다. 한창 가고 있는데, 문득 길가에서 “당성승이여, 공양밥을 들고 가시오”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장로는 마음이 놀랐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3회 선주탄찬회귀잉(禪主呑餐懷鬼孕) · 황파운수해사태(黃婆運水解邪胎) 덕행은 팔백을 닦아야 하고 음공은 모름지기 삼천을 쌓아야 하느니라. 물아와 친원을 두루 평등하게 하여야 비로소 서천의 본래 서원에 들어맞느니라. 요마의 무소는 칼과 창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수화의 헛된 수고에도 허물이 없으며, 노군이 항복받고는 도리어 하늘로 올라가니, 웃으며 청우를 끌어 돌이키는구나. 말하자면, 저 큰길 곁에서 소리쳐 부르던 자는 누구이던가? 바로 금두산의 산신과 토지신이라, 자금발우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외쳐 말했다. “성승이시여, 이 발우의 밥은 손대성이 좋은 곳에서 빌어 온 것이옵니다. 그대들이 좋은 말을 듣지 않고 요마의 손에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대성으로 하여금 온갖 고초를 겪게 하였거늘, 오늘에야 비로소 구해 내었나이다. 우선 와서 밥을 들고 나서 길을 떠나소서. 손대성의 한결같은 공손하고 효성스러운 마음을 저버리지 마옵소서.” 삼장법사가 말했다. “제자야, 만 갈래로 네게 빚을 졌구나! 말로 사례하기가 다함이 없구나! 진작 그 원의 자국 밖으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어찌 이런 살신의 화가 있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 숨기고 아뢰지 않겠나이다. 다만 스승님께서 내 원을 믿지 않으신 탓에 도리어 스승님께서 남의 원을 받으셨소. 얼마나 많은 고초였는지, 탄식할 만하오! 탄식할 만하오!” 저팔계가 말했다. “어찌 또 원이 있다는 게요?” 행자가 말했다. “모두 너 이 죽일 놈의 입과 혀를 가진 무딘 놈 탓이로구나! 스승님을 이 한바탕 큰 난리에 빠뜨려 놓아, 이 늙은 손이 하늘을 뒤집고 땅을 엎으며 천병과 수화와 부처님의 단사를 청하였건만, 모두 그놈이 희고 으스스한 원 하나를 써서 뒤집어씌워 가 버렸소. 여래께서 나한에게 넌지시 일러 주시어 이 늙은 손에게 그 요괴의 근원을 말하게 하였기에 비로소 노군을 청하여 항복받았는데, 알고 보니 청우가 괴물을 부린 것이었소.”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감격이 다함이 없어 말했다. “어진 제자야, 이번에 이를 겪었으니 다음에는 정녕 네 분부를 따르리라.” 이에 그 네 사람이 그 밥을 나누어 먹었는데, 그 밥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이 밥은 꽤 오래되었거늘 어찌 아직도 뜨거우냐?” 토지신이 꿇어앉으며 말했다. “소신이 대성께서 공을 마치심을 알고서야 비로소 데워 가지고 와 모시었나이다.” 잠시 뒤 밥을 마치고 발우를 거두어 산신과 토지신에게 작별하였다. 그 스승님이 비로소 안장을 잡고 말에 올라 높은 산을 넘었다. 참으로 이러하니, 사려를 씻고 마음을 씻어 바른 깨달음에 귀의하고, 바람을 먹고 물에서 자며 서쪽으로 가는구나. 오래도록 걸어 가니 또 이른 봄철이라, 이런저런 소리를 들었는데, 자줏빛 제비는 지저귀고 꾀꼬리는 곱게 우누나. 자줏빛 제비 지저귀니 향기로운 부리에 피로가 깃들고, 꾀꼬리 곱게 울어 교묘한 가락이 잦구나. 땅에 가득 떨어진 붉은 꽃은 비단을 펼친 듯하고, 산에 두루 돋아난 푸름은 자리를 포개 쌓은 듯하구나. 고개 위 청매는 콩을 맺고, 벼랑 앞 늙은 잣나무는 구름을 머금었구나. 들이 촉촉하니 안개 빛이 옅고, 모래가 따뜻하니 햇빛이 붉게 물드는구나. 몇몇 동산의 꽃은 꽃술을 터뜨리고, 양기가 대지에 돌아오니 버들싹이 새롭구나. 바로 가고 있는데, 홀연 작은 강 하나를 만났으니, 맑고 또 맑은 푸른 물이요, 잔잔하면서도 찬 물결이었더라. 당장로가 말을 세우고 바라보니, 강 저편에 버들 그늘이 푸르게 드리워져 있고 초가집 몇 채가 살짝 비치는 것이 보였다. 행자가 멀리 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는 인가는 필시 나루를 놓는 집이오.” 삼장법사가 말했다. “나도 저쪽이 이와 비슷해 보이기는 하나 배가 보이지 않으니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노라.” 저팔계가 행장을 내려놓고 목청을 돋우어 크게 소리쳤다. “사공!” “배 저어 이리 오너라!” 몇 번을 연달아 부르니, 문득 그 버들 그늘 속에서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배 한 척이 저어 나왔다. 오래지 않아 이쪽 언덕 가까이 다가왔다. 사도가 그 배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짧은 노는 물결을 가르고 가벼운 삿대는 파도를 타며, 배 안은 기름칠하여 채색이 곱고 뱃전 널빤지는 창고를 가득 메웠구나. 뱃머리에는 쇠밧줄이 둥지를 틀고, 배 뒤편 키집은 환하게 빛나는구나. 비록 갈대 한 포기처럼 작은 배로되 호수에 띄우고 바다에 띄운 것에 못지않구나. 비단 밧줄과 상아 돛대는 없다 하나 참으로 소나무 말뚝과 계수나무 노를 갖추었구나. 진실로 만 리를 가는 신선의 배에는 미치지 못하되 참으로 한 강을 건너기에는 넉넉하구나. 오고 감이 다만 두 언덕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들고 남이 옛 나루터를 벗어나지 않는구나. 그 배가 잠시 뒤 언덕에 닿자 사공 하나가 외쳐 말했다. “강 건너려는 이, 이리로 오시오.” 삼장법사가 말을 몰아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 사공의 모습이 어떠하던가. 머리에는 비단 융단 수건을 둘렀고 발에는 검은 명주 신을 신었으며, 몸에는 백 조각을 이어 댄 솜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천 바늘을 박은 저고리와 치마를 두른 삼베 차림이더라. 손목은 가죽이 거칠고 힘줄이 억세며, 눈이 흐릿하고 눈썹이 찌푸려져 얼굴이 쇠잔해 보이더라. 목소리는 꾀꼬리처럼 가늘고 고와 가까이서 보니 바로 늙은 아낙이었더라. 행자가 배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당신이 사공이오?” 그 부인이 말했다. “그러하오.” 행자가 말했다. “사공 영감은 어찌 안 계시고 도리어 사공 아낙이 배를 젓는 게요?” 그 부인은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지 않고 손으로 널빤지를 끌어 올렸다. 사승이 행장을 메고 올라가고 행자가 스승님을 부축해 널빤지를 건넌 뒤에야 배가 나란히 다가왔으며, 저팔계가 백마를 끌어 올리고 널빤지를 거두었다. 그 부인이 배를 밀어 내고 노를 저어 삽시간에 강을 건넜다. 서쪽 언덕에 올라서자 장로가 사승에게 보따리를 풀라 하여 엽전 몇 닢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 부인은 많고 적음을 더 따지지도 않고 밧줄을 물가 말뚝에 매어 둔 채 싱글벙글 웃으며 곧장 농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삼장법사가 그 물이 맑은 것을 보고 갑자기 목이 말라 저팔계에게 분부했다. “발우를 가져다 물을 좀 떠 오너라. 내가 마시겠다.” 그 얼간이가 말했다. “나도 좀 마시고 싶었소.” 곧 발우를 가져다 한 그릇을 떠서 스승님께 드렸다. 스승님께서 절반 조금 못 되게 드시고 절반 남짓이 남았는데, 얼간이가 받아 들고 단숨에 들이켜 비우고는 삼장법사가 말에 오르도록 모셨다. 사도가 길을 찾아 서쪽으로 가는데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그 장로가 말 위에서 신음하며 말했다. “배가 아프구나!” 저팔계가 뒤따르며 말했다. “나도 배가 좀 아프단 말이야.” 사승이 말했다. “찬물을 마셔서 그런 게 아니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승님이 소리를 내어 말했다. “몹시 아프구나!” 저팔계도 말했다. “나도 몹시 아프단 말이야!” 그 두 사람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점점 배가 불러 왔다. 손으로 만져 보니 핏덩어리와 살점 같은 것이 있어 끊임없이 꿈틀꿈틀 마구 움직였다. 삼장법사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데, 홀연 길가에 농가 하나가 보였고 나뭇가지 끝에 짚으로 만든 표지 두 개가 걸려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잘되었소. 저기는 술 파는 집이오. 우리 먼저 가서 더운 국을 좀 빌어 스승님께 올리고, 약 파는 이가 있는지 물어 약 한 첩을 얻어 스승님의 배앓이를 고쳐 보겠소.”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백마를 채찍질하여 오래지 않아 그 농가 어귀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다. 그런데 문 밖에 늙은 할멈 하나가 짚방석 위에 단정히 앉아 삼을 잦고 있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합장하고 문안하며 말했다. “할머니, 빈승은 동토 대당에서 온 자옵고 우리 스승님께서는 당나라 폐하의 의동생이시오니다. 강을 건너다가 강물을 마셨는데 배가 아프시옵니다.” 그 할멈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저 강에서 물을 마셨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 동쪽에 있는 맑은 강에서 마셨나이다.” 그 할멈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구나! 재미있구나! 너희 모두 들어오너라. 내 자세히 말해 주마.” 행자가 곧 당승을 부축하고 사승이 곧 저팔계를 부축하니, 두 사람은 연신 신음 소리를 내며 배를 불쑥 내밀고 걸어가되 하나같이 아픔에 얼굴이 누렇게 뜨고 눈썹이 찌푸려져 초가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행자가 다만 외쳐 말했다. “할머니, 부디 더운 국을 끓여 우리 스승님께 올리게 하시고, 우리가 사례하겠나이다.” 그 할멈은 국을 끓일 생각은 않고 히히 웃으며 뒤편으로 달려가 소리쳐 말했다. “너희들 와 보아라! 너희들 와 보아라!” 그 안에서 신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나더니, 또 늙지도 젊지도 않은 부인 두세 명이 걸어 나와 모두 당승을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행자가 크게 노하여 한 차례 호통치고 이를 드러내어 보이니, 그 집 사람이 놀라 비틀비틀 넘어질 듯하며 뒤로 물러났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그 늙은 부인을 붙잡고 말했다. “어서 일찍 국을 끓이라! 그러면 내 너를 용서하마!” 그 노파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나리, 저더러 국을 끓이라 하셔도 소용이 없사옵고, 그 두 분의 배앓이도 고치지 못하나이다. 저를 놓아 주시옵소서. 제가 아뢰겠나이다.” 행자가 그를 놓아 주자 그가 말했다. “이곳은 바로 서량여국이옵니다. 우리 이 나라는 모두가 여자요 남자는 조금도 없사오니, 그런 까닭에 그대들을 보고 기뻐한 것이옵니다. 그대 스승님께서 잡수신 그 물이 잘못되었나이다. 그 강은 이름하여 자모하라 하옵고, 우리 국왕의 성 밖에는 또 영양관역이 하나 있사오며 그 역 문밖에는 조태천이 하나 있나이다. 이곳 사람은 무릇 나이 스무 살이 넘어야만 감히 그 강물로 가서 물을 마시나이다. 물을 마시고 나면 배가 아프며 아이를 가지게 되나이다. 사흘이 지나면 그 영양관 조태수 가에 가서 몸을 비추어 보나이다. 비추어 보아 그림자가 둘로 나타나면 곧 아이를 낳는 것이옵니다. 그대 스승께서 자모하의 물을 잡수셨으니 이로써 태기가 맺혀 머지않아 아이를 낳으실 터인데, 더운 국이 어찌 고칠 수 있사옵니까?” 삼장법사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제자야! 이 지경이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저팔계가 허리를 비틀고 다리를 벌리며 끙끙거렸다. “할아버지야! 아이를 낳아야 한다니 우리는 남잔데 어디다가 산문을 내겠단 말이냐! 어떻게 나온단 말이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외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진다 하였소. 그때가 되면 틀림없이 옆구리 밑에 구멍 하나가 터져 그리로 기어 나올 것이오.”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부들부들 떨며 아픔을 견디지 못해 말했다. “망했다 망했다! 죽었다 죽었다!”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비틀지 마시오! 잘못하여 아이 배는 자리가 어긋나면 태전병이 될까 두렵소.” 그 얼간이는 더욱 당황하여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는 행자를 붙잡으며 말했다. “형님! 이 할머니께 여쭈어 손이 가벼운 산파 할멈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시어 미리 몇 명 불러 두시구려. 이 한참 동안 진통이 점점 심해지니 산고가 시작된 게 틀림없단 말이야.” “얼마 남지 않았어! 얼마 남지 않았어!” 사승이 또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진통이 온 줄 이미 아시거든 몸을 비틀지 마시오. 자칫하면 양수주머니가 터질까 두렵소.” 삼장법사가 신음하며 말했다. “할머니, 이곳에 의원이 있소? 내 제자에게 낙태약 한 첩을 사 오라 하여 태기를 내려 보내고 싶소.” 그 노파가 말했다. “약이 있다 한들 또한 소용이 없나이다. 다만 우리 이곳 정남쪽 거리에 해양산이 하나 있고, 산중에 파아동이 하나 있으며, 그 굴에 낙태천이라는 샘이 하나 있나이다. 모름지기 그 우물의 물을 한 모금 마셔야만 비로소 태기가 풀리나이다. 그러나 이제는 물을 길을 수 없나이다. 지난해에 도인 하나가 와서 스스로 여의진선이라 일컫고는 그 파아동을 취선암으로 고쳐 놓고 낙태천 물을 지켜 두고는 사람들에게 선선히 베풀어 주려 하지 않나이다. 다만 물을 구하려는 자는 모름지기 꽃과 비단, 표문과 예물, 양과 술, 과일 쟁반을 정성껏 바치고 절하여 청하여야만 겨우 그에게서 물 한 그릇을 얻을 수 있나이다. 그대들 같은 걸식하는 중들이 어찌 그런 많은 재물을 장만할 수 있사오리까? 다만 목숨을 버티며 때를 기다려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가득 기뻐하며 말했다. “할머니, 여기서 그 해양산까지 얼마나 되는 길이오?” 그 할멈이 말했다. “삼십 리 되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좋소! 좋소! 스승님, 염려 마소서. 이 늙은 손이 물을 길어 오게 하여 스승님께 올리겠소.”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사승에게 분부하여 말했다. “너는 스승님을 잘 지켜보고 있거라. 만약 이 집안이 무례하게 스승님을 속여 넘기려 하거든, 너는 옛날의 수단을 내어 호랑이로 변해 그들을 겁주어라. 내가 물을 길어 오는 동안이다.” 사승이 명을 받들었는데, 그 노파가 질그릇 큰 발우 하나를 받쳐 내어 행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사발을 가져가시오. 부디 많이 길어 오시어 우리에게도 급할 때 쓰도록 남겨 주시구려.” 행자가 참으로 그 질그릇을 받아 들고 초가를 나서 구름을 타고 가 버렸다. 그제야 그 노파가 허공을 향해 절하며 말했다. “나리셔! 이 중이 구름을 타는구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그 부인 몇을 불러 내어 당승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모두 나한보살이라 불렀고, 한편에서는 국을 끓이고 밥을 장만하여 당승을 받들어 모셨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한편 그 손대성이 근두운을 타고 올라가니 잠시 뒤에 산머리 하나가 구름 끝을 가로막는 것이 보였다. 곧 구름빛을 낮추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좋은 산이로다! 보라, 저 그윽한 꽃은 비단을 펼치고 들풀은 쪽빛을 깔았구나. 골짜기 물은 서로 이어져 흐르고 시냇가 구름이 한결같이 한가하구나. 겹겹의 골짜기에는 등나무와 담쟁이가 빽빽하고, 아득한 봉우리에는 수목이 무성하구나. 새는 울고 기러기는 날아가며, 사슴은 물을 마시고 원숭이는 기어오르는구나. 푸른 산은 병풍과 장벽 같고, 푸른 벼랑은 쪽 올린 머리 같구나. 흙먼지가 자욱하여 참으로 이르기 어렵고, 샘과 돌에서 졸졸 흐르는 물은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구나. 선동이 약을 캐러 가는 것을 늘 볼 수 있고, 나무꾼이 지게를 지고 돌아오는 것을 늘 만나는구나. 과연 천태의 경치에 못지않고, 세 봉우리 서화산보다도 나으리라! 이 대성이 그 산의 경치를 아직 다 감상하지 못하고 있는데, 또 그늘진 곳에 장원 하나가 보이고 문득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성이 산을 내려가 곧장 그 집으로 가니 또한 좋은 곳이라, 보라, 작은 다리는 흐르는 물에 통하고 초가집은 푸른 산에 기대었구나. 마을 개가 울타리 곁에서 짖고, 그윽한 이가 스스로 오고 가는구나. 오래지 않아 문 앞에 이르러 보니 늙은 도인 하나가 푸른 잔디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있었다. 대성이 질그릇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 문안하자, 그 도인이 몸을 굽혀 답례하며 말했다. “어느 방면에서 오신 분이오? 이 작은 암자에 무슨 용건이시오?” 행자가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의 흠차로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자옵니다. 우리 스승님께서 잘못하여 자모하의 물을 드셨는데, 이제 배가 아프고 부어오름을 견디지 못하시나이다.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태기가 맺힌 것이라 하며 고칠 방도가 없다 하였나이다. 해양산 파아동에 낙태천이 있어 태기를 풀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기에, 이에 특별히 여의진선을 찾아뵙고 샘물을 조금 얻어 스승님을 구하고자 하오니, 번거로우시나 노도장께서 안내하여 주시옵소서.” 그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이 바로 파아동이오. 지금은 취선암으로 고쳐졌소.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여의진선 도사님의 큰 제자요. 그대는 무슨 이름이라 하오? “내 그대를 위하여 통보해 주겠소.” 행자가 말했다. “나는 당삼장 법사의 큰 제자요, 천한 이름은 손오공이라 하오.” 그 도인이 물어 말했다. “그대의 꽃과 비단, 술과 예물은 모두 어디 있소?” 행자가 말했다. “나는 길을 가다 들르는 걸식승이라 장만해 오지 못하였소.”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어리석구려! 내 스승 도사께서는 산샘을 지키시며 일찍이 남에게 거저 주신 적이 없소. 그대가 돌아가 예물을 장만해 오시오. 그러면 내 통보해 주겠소. 그렇지 않거든 돌아가시오. 바라지도 마시오! 바라지도 마시오!” 행자가 말했다. “인정이 성지보다 크다 하였소. 그대가 가서 이 늙은 손의 이름을 아뢰면, 그분은 필시 인정을 베풀 터이니, 혹 우물째 내게 주실는지도 모르오.” 그 도인이 이 말을 듣고 하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 통보하려 하니, 그 진선이 거문고를 뜯고 있는지라 그가 거문고 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말했다. “스승님, 밖에 중 하나가 있어 스스로 당삼장의 큰 제자 손오공이라 일컫고는 낙태천의 물을 구하여 제 스승을 구하고자 하옵니다.” 그 진선은 듣지 않았다면 그만이려니와, 일단 오공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곧 마음속에서 노기가 솟고 담 곁에서 악심이 생겨, 급히 몸을 일으켜 거문고 자리에서 내려와 흰 도포를 벗고 도복으로 갈아입고는 여의 갈고리 하나를 들어 쥐고 암자 문을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손오공 어디 있느냐?” 행자가 머리를 돌려 그 진선의 차림새를 바라보니, 머리에는 별무늬 관을 썼는데 채색이 나부끼듯 화려하고, 몸에는 금실을 수놓은 붉은 법의를 입었으며, 발에는 구름무늬 신을 신었는데 수가 포개진 듯 곱고, 허리에는 보옥 띠를 둘렀는데 영롱하게 감겼더라. 비단을 수놓은 물결무늬 버선 한 켤레에 치마자락이 반쯤 드러나며 수놓은 솜이 번쩍이고, 손에는 쇠로 된 여의 갈고리를 들었으되 자루는 길고 끝은 예리하여 구렁이 같더라. 봉황 같은 눈은 밝게 빛나고 눈썹은 치켜섰으며 강철 같은 이는 날카롭고 입술은 붉게 뒤집혔고, 턱 아래 수염은 맹렬한 불처럼 휘날리며 귀밑머리는 붉고 짧고 헝클어졌더라. 생김새가 사납기는 온원수와 같으되 다만 의관만은 같지 않더라. 행자가 보고는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며 말했다. “빈승이 바로 손오공이옵니다.” 그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참으로 손오공이냐, 아니면 이름을 속이고 성을 빌린 자이냐?” 행자가 말했다. “선생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시오. 늘 하는 말에, 군자는 가면서도 이름을 고치지 않고 앉아서도 성을 고치지 않는다 하였소. 내가 바로 오공이거늘 어찌 속여 사칭하는 이치가 있겠소?” 선생이 말했다. “그대는 나를 알아보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석가의 문하로 돌아와 승의 가르침을 받든 이래, 이 동안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느라 내 어릴 적 벗들조차 모두 소원해져 찾아뵙지 못하였으니 존안을 뵐 기회가 적었나이다. 방금 자모하 서쪽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그들이 선생께서 바로 여의진선이시라 하기에 이에 알게 되었나이다.” 그 선생이 말했다. “너는 네 길을 가고 나는 내 참됨을 닦거늘, 네가 어쩌자고 나를 찾아왔느냐?” 행자가 말했다. “우리 스승님께서 잘못하여 자모하의 물을 드시고 배가 아파 아이를 배셨기에, 특별히 선관을 찾아뵙고 낙태천 물 한 그릇을 얻어 스승님의 어려움을 풀어 보고자 하나이다.” 그 선생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네 스승이 바로 당삼장이더냐?”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오, 그러하오.” 선생이 이를 갈며 한스럽게 말했다. “너희가 일찍이 성영대왕을 만난 적이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는 호산 고송간 화운동의 홍해아 요괴의 별호이거늘, 진선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물으시나이까?” 선생이 말했다. “그는 내 사촌 조카이니라. 나는 곧 우마왕의 아우로다. 지난번에 형님 되는 이가 편지를 보내어 내게 알리기를, 당삼장의 큰 제자 손오공이 몹시 괴팍하여 그를 해쳤다 하더라. 나는 여기서 너를 찾아 원수를 갚을 길이 없던 참인데, 네가 도리어 나를 찾아왔으니 무슨 물을 내어 주겠느냐!” 행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선생께서 잘못 아셨소. 선생의 형님도 일찍이 나와 벗이 되어 주셨고 어린 시절에도 일곱 형제를 맺어 절하였소. 다만 선생의 존부를 알지 못해 찾아뵙지 못한 것뿐이오. 지금 조카께서는 좋은 곳을 얻어 관음보살을 따라 선재동자가 되셨으니 우리보다도 나으시거늘, 어찌 도리어 나를 원망하시나이까?” 선생이 호통치며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 놈! 아직도 교묘한 혀를 놀리느냐! 내 조카가 스스로 왕 노릇 하던 것이 좋으냐, 남의 종이 된 것이 좋으냐! 무례하게 굴지 말라! 내 이 갈고리를 받아라!” 대성이 쇠몽둥이를 들어 막으며 말했다. “선생은 때린다는 말씀을 거두시고 우선 샘물이나 좀 내주시구려.” 그 선생이 욕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놈! 죽고 사는 것도 모르는구나! 만약 세 합에 나를 당해 내면 네게 물을 주려니와, 당해 내지 못하면 너를 고기장으로 다져 내 조카의 원수를 갚으리라.” 대성이 욕하며 말했다. “이 분별도 모를 요망한 놈! 굳이 치려거든 올라와 내 몽둥이를 받아라!” 그 선생이 여의 갈고리를 들고 손을 비껴 맞받았다. 두 사람이 취선암에서 벌인 싸움이 참으로 대단하더라. 성승이 잘못하여 태기를 맺는 물을 들었고, 행자가 여의선을 찾아왔으나, 그 진선이 본래 요괴인 줄을 어찌 알았으랴. 힘을 믿고 낙태천을 지켜 두었는데, 서로 만나자 옛 원한을 따지고 들며 다투어 결코 순순히 넘겨 주려 하지 않는구나. 말이 오가며 근심이 쌓이고, 마음이 사나워지며 정이 흉포해져 원수를 갚으려 하는구나. 이쪽은 스승의 목숨이 위태로워 물을 구하러 왔고, 저쪽은 조카가 망한 일로 몸을 아끼며 샘물을 내주지 않는구나. 여의 갈고리는 전갈의 독보다 세고, 금고봉은 용이 솟구치는 듯 사납구나. 가슴을 향해 함부로 찔러 위풍을 떨치고, 발을 노려 비스듬히 걸어 묘한 변화를 펴는구나. 감춘 손에서 나온 몽둥이는 상처 난 곳을 무겁게 내리고, 어깨를 넘긴 갈고리는 머리 가까이로 채찍질하는구나. 허리를 겨눈 몽둥이 한 방은 매가 참새를 쥔 듯하고, 정수리를 내리누른 갈고리 석 번은 사마귀가 매미를 노린 듯하구나. 오락가락하며 승부를 다투고 되풀이하며 두어 차례 오가는구나. 갈고리가 휘감고 몽둥이가 내리쳐 앞뒤가 갈리지 않으니, 승패가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구나. 그 선생이 대성과 열 몇 합을 싸웠으나 대성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이 대성이 더욱 맹렬해져 쇠몽둥이 하나가 굴러가는 별똥처럼 마구 머리를 내리치니, 선생은 기력이 꺾여 여의 갈고리를 거꾸로 끌며 산 위로 달아났다. 대성이 그를 뒤쫓지 않고 도로 암자 안으로 들어가 물을 찾으려 하니, 그 도인이 벌써 암자 문을 닫아 걸어 두었다. 대성이 질그릇 발우를 들고 문 앞까지 달려가 있는 힘을 다해 한 번 걷어차니 암자 문이 깨져 그대로 뛰어들어 갔다. 그 도인이 우물 난간에 엎드려 있는 것이 보이는데, 대성이 한 차례 호통치며 몽둥이를 들어 치려 하자 그 도인은 뒤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제야 두레박을 찾아내어 막 물을 퍼 올리려 하는데, 또 그 선생이 앞쪽까지 달려와 여의 갈고리로 대성의 발을 걸어 한 번 넘어뜨려 낯이 땅에 박히게 하였다. 대성이 일어나 쇠몽둥이를 들어 치려 하니 그는 곁으로 피하며 갈고리를 쥐고 섰다. “네가 내 물을 길어 갈 수 있나 보아라!” 대성이 욕하며 말했다. “올라오너라! 올라오너라! 내 너 이 요망한 놈을 때려 죽이리라!” 그 선생은 앞으로 나아가 맞서지도 않고 다만 막아 서서 대성이 물을 퍼 올리지 못하게만 하였다. 대성이 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왼손으로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오른손으로 두레박을 들어 밧줄을 덜컹덜컹 내려보냈다. 그가 또 갈고리를 휘두르러 왔다. 대성이 한 손으로는 버티지 못하여 또 그의 갈고리에 발이 걸려 한 번 끌려 넘어지며 두레박 줄까지 함께 딸려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대성이 말했다. “이놈이 참으로 무례하구나!” 일어나 두 손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마구 위쪽으로 쳐 올라가니, 그 선생은 도로 달아나며 감히 맞서지 못하였다. 대성이 또 물을 길으러 가려 하나 두레박이 없거니와 또 갈고리에 걸려 넘어질까 두려워 마음속으로 은근히 생각했다. “가서 조수 하나를 불러 오자!”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구름머리를 돌려 곧장 농가 문 앞에 이르러 한 차례 불렀다. “사승!” 그 안에서는 삼장법사가 아픔을 참으며 신음하고 저팔계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는데, 그 부르는 소리를 듣고 두 사람이 기뻐하며 말했다. “사승아, 오공이 왔구나.” 사승이 급히 문을 나서며 맞이하여 말했다. “큰형님, 물을 길어 오셨소?” 대성이 문 안으로 들어가 당승에게 지난 일을 자세히 아뢰니, 삼장법사가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제자야, 이 지경이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대성이 말했다. “제가 사제를 불러 함께 가려 하옵니다. 그 암자 곁에 이르면 이 늙은 손이 그놈과 맞서 싸우는 사이에 사승으로 하여금 기회를 타 물을 길어 오게 하여 스승님을 구하게 하겠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너희 병 없는 둘이 다 가 버리고 병든 우리 둘을 남겨 두면 누가 모시란 말이냐?” 그 늙은 할멈이 곁에서 말했다. “늙은 나한이시여, 마음 놓으시고 그대 제자는 필요치 않나이다. 우리 집에서 자연히 살피어 모시겠나이다. 그대들이 아침에 오셨을 때 우리 진실로 가련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사오나, 방금 저 보살이 구름을 타고 오고 안개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서야 그대들이 나한보살이심을 알았나이다. 우리 집에서는 결코 다시 그대들을 해치려 하지 않나이다.” 행자가 퉁 하고 한마디 내뱉었다. “너희 같은 여편네들이 감히 누구를 해치겠느냐?” 그 노파가 웃으며 말했다. “나리셔, 그대들이야말로 복이 있어 우리 집으로 오셨나이다! 둘째 집으로 가셨더라면 그대들도 온전한 몸이 되지 못하셨을 게옵니다!” 저팔계가 끙끙거리며 말했다. “온전치 못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 할멈이 말했다. “우리 집 식구 네댓 명이 모두 나이가 좀 있는지라 그 풍월사를 모조리 끊어 버렸으므로 그런 까닭에 그대들을 해치려 하지 않는 게옵니다. 만약 둘째 집으로 가셨더라면 늙은이와 아이가 많고 무리가 크거늘, 저 어린 사람들 가운데 누가 그대들을 놓아 주려 하겠나이까! 곧 그대들과 정을 통하고자 할 게옵니다. 만약에 따르지 않으시면 그대들의 목숨을 해치고 몸뚱이의 살을 모조리 베어 향낭을 만들어 버릴 게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절대 무사할 게요. 그들은 모두 향기로운 이들이니 향낭 만들기에는 좋겠지만, 나는 누린내 나는 돼지라 살을 베어 간다 해도 또한 누린내가 날 터이니 그런 까닭에 무사할 수 있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넌 입을 놀리지 말고 힘을 아끼거라. 해산을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할멈이 말했다. “머뭇거릴 것 없이 어서 물을 구하러 가시구려.” 행자가 말했다. “댁에 두레박이 있소? 하나 빌려 쓰겠소.” 그 노파가 곧 뒤편으로 가 두레박 하나를 꺼내고 밧줄 한 가닥을 또 뭉쳐 사승에게 건네주었다. 사승이 말했다. “밧줄을 두 가닥 가져가시오. 혹시라도 우물이 깊어 쓸 일이 있을까 하옵니다.” 사승이 두레박과 밧줄을 받아 들고 곧 대성을 따라 농가를 나서 함께 구름을 타고 갔다.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곧 해양산 경계에 이르러 구름머리를 내리고 곧장 암자 밖으로 갔다. 대성이 사승에게 분부하여 말했다. “너는 두레박과 밧줄을 들고 한쪽에 숨어 있거라. 이 늙은 손이 나서서 싸움을 걸 터이니, 내가 그놈과 싸움이 한창 무르익을 때를 기다렸다가 네가 기회를 타 안으로 들어가 물을 길어 곧장 달아나거라.” 사승이 삼가 그 분부를 따랐다. 손대성이 쇠몽둥이를 뽑아 들고 문 가까이 다가가 크게 소리쳤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문을 지키던 자가 그것을 보고 급히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스승님, 저 손오공이 또 왔나이다.” 그 선생이 마음속에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 놈이 참으로 무례하구나! 예로부터 그놈에게 수단이 좀 있다고 들었거늘, 과연 오늘에야 그놈의 그 몽둥이가 참으로 당해 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겠노라.” 도인이 말했다. “스승님, 그놈의 수단이 높다 하나 스승님께서도 그에게 못지않으시니 바로 좋은 상대이시옵니다.” 선생이 말했다. “앞선 두 차례는 그놈에게 이기움을 당하였노라.” 도인이 말했다. “앞의 두 판은 그놈이 이겼다 하나 다만 사나운 성질의 한바탕일 뿐이옵니다. 뒤의 물을 길던 두 차례에는 스승님께서 갈고리로 그놈을 두 번 넘어뜨리셨으니, 어찌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지 않사옵니까? 앞서 어찌할 수 없이 돌아갔거늘 이제 또 다시 왔으니 필시 삼장의 태기가 이루어져 몸이 무거워지고 원망이 심해져 부득이 온 것이오니, 스승님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틀림없나이다. 관연코 우리 스승님께서 승리를 잡으시리라 의심 없나이다.” 진선이 그 말을 듣고 흐뭇하여 봄기운이 가슴에 가득하고 웃음이 어려 한바탕 위풍을 떨치며 여의 갈고리를 비켜 들고 문 밖으로 걸어나와 호통치며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 놈! 네가 또 무슨 일로 왔느냐?” 대성이 말했다. “내가 온 것은 다만 물을 길으러 왔노라.” 진선이 말했다. “샘물은 곧 내 집의 우물이니, 비록 제왕이나 재상이라도 모름지기 표문과 예물, 양과 술을 가지고 와 청하여야 겨우 조금 줄 뿐이니라. 하물며 너는 또한 내 원수이거늘 감히 빈손으로 와서 가져가려 하느냐?” 대성이 말했다. “참으로 주지 않겠다는 게냐?” 진선이 말했다. “주지 않느니라! 주지 않느니라!” 대성이 욕하며 말했다. “이 요망한 놈! 물을 주지 않겠거든 내 몽둥이를 받아라!” 자세를 하나 잡고는 가슴을 들이밀어, 말도 사양 않고 곧바로 머리를 향해 후려쳤다. 그 진선이 몸을 옆으로 빼어 피하고 갈고리를 급히 들어 맞받았다. 이 한 판은 앞보다 더욱 뛰어나니 참으로 대단한 싸움이로다. 금고봉이여, 여의 갈고리여, 두 사람이 분을 떨치며 저마다 원한을 품었구나.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니 천지가 어두워지고, 흙이 흩날리며 먼지가 일어 해와 달이 근심하는구나. 대성은 스승을 구하려 물을 길으러 왔고, 요선은 조카를 위하여 구함을 들어주지 않으려 하는구나. 두 집이 함께 힘을 다하고 한곳에서 승부를 겨루며, 이를 갈며 승부를 다투고 어금니를 물며 강함과 부드러움을 정하는구나. 기회가 더할수록 더욱 기운을 떨치니, 구름을 뿜고 안개를 토하여 귀신도 근심하는구나. 철썩철썩 쩍쩍 갈고리와 몽둥이가 울리고, 함성이 크게 외쳐져 산등성이를 뒤흔드는구나. 사나운 바람이 몰아쳐 수풀을 재촉하고 살기가 자욱하여 북두와 견우를 지나는구나. 대성은 다툴수록 더욱 기뻐하고 진선은 칠수록 더욱 끈덕져지는구나. 마음을 먹고 뜻을 두고 서로 다투어 싸우되, 죽고 삶이 정해지기 전에는 그치지 않으리라. 그 두 사람이 암자 문 밖에서 손을 겨루며 뛰고 춤추듯 하여 산비탈 아래까지 다투어 갔으니, 한스럽게 서로 버티는 동안의 일은 더 말하지 않겠다. 한편 그 사승이 두레박을 들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그 도인이 우물 곁을 막아서며 말했다.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물을 길으러 오느냐!” 사승이 두레박을 내려놓고 항요보장을 꺼내어, 말도 없이 도리어 머리를 향해 후려쳤다. 그 도인이 미처 피하지 못하여 왼쪽 팔이 꺾이고 땅에 넘어져 목숨을 부지하려 버둥거렸다. 사승이 욕하며 말했다. “내 이 요물을 때려 죽이려 하나, 네가 사람 몸인 것이 문제로구나! 내 오히려 너를 가련히 여겨 그냥 가게 하마! 물을 길게 하여라!” 그 도인은 하늘을 부르고 땅을 부르며 비명을 지르고는 뒤쪽으로 기어 가 버렸다. 사승이 그제야 두레박을 우물에 넣어 가득하게 한 통 물을 길어 올리고는 암자 문을 나서 구름과 안개를 타고 행자를 향해 외쳐 말했다. “큰형님, 물을 길었소! 그놈을 용서하시오! 용서하시오!” 대성이 그것을 듣고서야 쇠몽둥이로 갈고리를 받치며 말했다. “네 이 늙은 손의 말을 들으라. 내 본래는 모조리 베어 죽여 없애려 하였으나, 네가 법을 범한 적이 없는 것이요 그 다음은 네 형님 우마왕의 정을 보아서이니라. 앞서 왔을 적에 나는 갈고리에 두 번 걸려 물을 얻지 못하였고, 이번에 온 것은 바로 호랑이를 산에서 떼어 놓는 계교로 너를 꾀어 내어 싸우게 하고 그 사이에 내 사제로 하여금 물을 길어 가게 한 것이니라. 이 늙은 손이 참으로 본때를 내어 너를 치려 들면, 네가 무슨 여의진선이니 하는 자 하나뿐이랴, 몇이 더 있다 해도 모조리 때려 죽였으리라. 참으로 때려 죽이는 것이 살려 보내는 것만 못하니, 우선 너를 용서하여 몇 해를 더 살게 하노라. 뒷날에 다시 물을 길으러 오는 이가 있거든 결코 그를 못살게 굴지 말라.” 그 요선이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고 몸을 한 번 흔들어 내며 또 발을 걸려 하였으나, 대성이 갈고리 끝을 피하고는 앞으로 달려들어 호통치며 말했다. “달아나지 말라!” 그 요선이 미처 손을 쓸 새 없이 콰당 하고 한 번 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대성이 여의 갈고리를 빼앗아 두 토막으로 꺾고는 그것을 모아 쥐고 또 한 번 꺾어 네 토막으로 만들어 땅에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이 요망한 놈! 다시 무례하게 굴겠느냐?” 그 요선이 부들부들 떨며 욕을 참고 말이 없었고, 이 대성은 호호 웃으며 구름을 타고 떠올랐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참된 납을 단련하려면 모름지기 참된 물이 있어야 하나니, 참된 물이 조화를 이루면 참된 수은이 마르느니라. 참된 수은과 참된 납에 어미의 기운이 없어야 신령한 사와 신령한 약이 곧 선단이 되느니라. 갓난아이가 헛되이 태의 형상을 이루었으나 흙어미가 공을 베푸니 어려울 것 없느니라. 방문을 넘어뜨리고 바른 교를 받드니, 마음의 임이 뜻을 얻어 웃으며 돌아오는구나. 대성이 상서로운 빛을 타고 사승을 따라잡아 참된 물을 얻고는 기쁘고 즐거워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 구름머리를 내리고 곧장 농가로 가니, 저팔계가 배를 불쑥 내밀고 문설주에 기대어 끙끙거리고 있었다. 행자가 살그머니 앞으로 가며 말했다. “이 얼간이, 언제 해산을 치르려느냐?” 그 얼간이 당황하며 말했다. “형님, 놀리지 마시오. 물은 가져오셨소?” 행자가 아직 그를 놀려 먹으려 하는데 사승이 뒤따라 와 웃으며 말했다. “물 왔소! 물 왔소!” 삼장법사가 아픔을 참으며 몸을 일으켜 말했다. “제자들아, 너희를 고생시켰구나!” 그 할멈도 또한 기뻐하며 식구들이 모두 나와 절하며 말했다. “보살이시여, 참으로 얻기 어려운 물이옵니다! 얻기 어렵나이다!” 곧 꽃무늬 사기잔 하나를 가져다 반 잔을 떠서 삼장법사께 드리며 말했다. “늙은 스승님, 천천히 드시옵소서. 한 모금만 드셔도 곧 태기가 풀리나이다.” 저팔계가 말했다. “나는 잔이 필요 없소. 두레박째 내게 마시게 해 주구려.” 그 노파가 말했다. “나리셔, 사람 놀라 죽이시려는 게옵니다! 이 두레박의 물을 다 드시면 창자와 뱃속까지 모조리 녹아 없어질 게옵니다!” 놀란 그 얼간이는 감히 함부로 굴지 못하고 또한 겨우 반 잔을 마셨다. 밥 한 끼 먹을 사이도 되지 않아 그 두 사람의 뱃속이 뒤틀리듯 아프더니, 꼬르륵꼬르륵 서너 차례 뱃소리가 들렸다. 뱃소리가 난 뒤에 그 얼간이는 참지 못하여 대소변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당승도 참지 못하여 조용한 곳으로 가 볼일을 보려 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부디 바람 부는 곳으로 나가지 마소서. 두렵나이다. 자칫 바람을 맞으시면 산후병이 될까 염려되옵니다.” 그 할멈이 곧 요강 두 개를 가져다 그 두 사람이 볼일을 보게 하였다. 잠시 동안 각자 몇 차례씩 치르고 나서야 아픔이 멎는 듯하고 점차 부기가 가라앉으며 그 핏덩어리와 살점이 녹아 없어졌다. 그 할멈의 집에서 또 쌀죽을 조금 쑤어 그들의 허약함을 보하게 하니 저팔계가 말했다. “할머니, 내 몸은 튼튼하니 보할 것 없소. 우선 더운 물을 좀 끓여 주시어 내 목욕을 하게 해 주구려. 그래야 죽도 먹겠소.” 사승이 말했다. “형님, 목욕은 하지 마시오. 해산한 몸이 물기를 만나면 병이 된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나는 큰애도 낳지 않았고 하여튼 작은 유산일 뿐이니 무서울 게 뭐요? 씻어야 깨끗하지.” 참으로 그 노파가 물을 좀 데워 그 두 사람의 손발을 씻겨 주었다. 당승이 겨우 죽물 두 잔을 드실 때 저팔계는 열 몇 사발을 먹고도 또 더 달라고 졸랐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무딘 놈! 좀 적게 먹어라! 모래주머니 같은 배가 되어 꼴이 말이 아니게 되지 않도록 하여라.” 저팔계가 말했다. “괜찮소! 괜찮소! 나는 어미 돼지도 아닌데 그까짓 게 무섭단 말이오?” 그 집 사람이 참으로 또 음식을 장만하러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 늙은 할멈이 당승에게 말했다. “늙은 스승님, 그 물을 저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이 얼간이, 물 안 마시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내 배도 아프지 않고 태기도 이미 흩어진 듯하니 시원하게 아무 탈이 없는데, 또 물을 마셔 무엇 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그 두 사람이 모두 나았으니 그 물을 이 집에 드리겠소.” 그 할멈이 행자에게 사례하고 남은 물을 질항아리에 담아 뒤편 땅속에 묻어 둔 채 늙은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 항아리의 물이면 내 관을 마련할 밑천은 넉넉하겠구나!” 늙은이와 아이들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어 공양밥을 장만하고 상과 걸상을 벌여 놓으니 당승 일행이 그 공양을 들었다. 조용히 편안하게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사도가 그 할멈의 집에 사례하고 농가를 떠났다. 당삼장이 안장을 잡고 말에 올랐고, 사승이 행장을 메었고, 손대성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저팔계가 고삐를 감아 잡았으니, 바로 이러하였다. 입의 업을 씻어 내니 몸이 깨끗하고, 범속한 태를 녹여 버리니 몸이 자연스러워지는구나. 결국 나라의 경계에 들어서서 무슨 일을 겪게 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4회 법성서래봉여국(法性西來逢女國) · 심원정계탈연화(心猿定計脫煙花) 말하자면, 삼장법사와 그 사도가 농가 사람들과 작별하고 길을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는데, 삼사십 리도 못 되어 서량국 경계에 닿았다. 당승이 말 위에서 가리키며 말했다. “오공아, 앞에 성곽이 가까이 보이고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떠들썩하니, 짐작하건대 서량여국이로구나. 너희는 모름지기 마음을 가다듬고 법도를 삼가거라. 방탕한 마음을 풀어 법문의 가르침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세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엄한 분부를 삼가 받들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관의 저자 어귀에 이르렀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긴 치마에 짧은 저고리를 입고 분 바른 얼굴에 기름 바른 머리를 하였으니, 늙은이와 아이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녀자들이었다. 그들이 두 거리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있는데, 홀연 네 사람이 오는 것을 보자 일제히 손뼉을 치며 깔깔대고 얼굴을 고치며 즐겁게 웃어 말했다. “사람 씨가 왔다! 사람 씨가 왔다!” 당황한 삼장은 말을 세워도 나아갈 수 없었고, 잠깐 사이에 거리가 메워져 웃고 떠드는 소리만 들려왔다. 저팔계가 입을 함부로 놀려 마구 떠들어 대며 소리쳤다. “나는 거세한 돼지란 말이다! 나는 거세한 돼지란 말이다!” 행자가 말했다. “이 얼간이, 헛소리 말고 네 본래 그 낯짝을 내보이기나 해라.” 팔계가 머리를 두어 번 흔들고는 부채 같은 두 귀를 쫑긋 세우며 연밥 같은 처진 입술을 비틀고 크게 소리를 지르니, 그 부녀자들은 놀라 엎치락뒤치락하였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성승이 부처를 배알하러 서량에 이르니 나라 안은 음기뿐이요 세상엔 양기가 드물구나. 농사꾼도 선비도 장인도 상인이 모두 여자의 무리요, 고기 잡는 이와 나무 하는 이와 밭 가는 이와 짐승 치는 이가 모두 고운 단장이로구나. 어여쁜 아가씨들이 길에 가득하여 사람 씨를 부르고, 젊은 여인들이 거리에 넘쳐 분 바른 낭군을 맞이하는구나. 오능이 저 추한 꼴을 부리지 아니하였더라면 연화에 포위되어 그 고초를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이에 무리들은 모두 두려워하며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하나같이 손을 비비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며 머리를 젓고 손가락을 깨물고는, 벌벌 떨며 거리 옆길 아래로 줄지어 몰려 서서 모두 당승을 바라보았다. 손대성 또한 추한 꼴을 부려 길을 열었고, 사승도 범의 흉내를 내어 위세를 갖추었으며, 팔계는 말을 잡아 끌고 입을 내민 채 귀를 흔들어 대었다. 일행이 앞으로 나아가니 또 저잣거리의 집들이 가지런하고 가게들이 훤칠하였으며, 소금과 쌀 파는 집, 술집과 찻집이 있고, 북과 뿔피리를 울리는 누대에서 재화를 유통하며, 기 세운 정자와 객관에는 발을 드리웠더라. 사도가 길을 꺾어 도는데, 홀연 거리 아래에 여관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이더니, 높은 소리로 불러 말했다. “먼 곳에서 오신 나그네시여, 함부로 성문에 드실 수 없사옵니다. 관역으로 가셔서 성명을 장부에 올리시면, 하관이 그 이름을 받들어 임금님께 아뢰고 증명을 확인한 뒤에 통행을 허락하겠나이다.” 삼장이 이 말을 듣고 말에서 내려 관아 문을 살펴보니 현판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그 위에 영양역이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적혀 있었다. 장로가 말했다. “오공아, 그 시골집 사람들이 전하던 말이 참되구나. 과연 양을 맞이하는 역참이 있느니라.”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그대는 조태천 가에나 가서 한번 비추어 보고 그림자가 두 개인지 어떤지 살펴보시지오.” 팔계가 말했다. “날 놀리지 마라! 내가 저 낙태천 샘물 한 사발을 마신 뒤 이미 태기를 털어 내렸거늘, 또 비추어 무엇 하겠느냐?” 삼장이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 “오능아, 말을 삼가라! 삼가라!”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가 그 여관에게 예를 갖추었다. 여관이 길을 인도하여 그들을 모두 역 안 정청에 앉히고 즉시 차를 내오라 일렀다. 또 그 수하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세 가닥으로 땋고 옷은 위아래 두 동강이로 입은 무리들이니, 보라, 차를 내오는 여자마저 웃고 있었다. 잠시 뒤 차를 마치자 여관이 몸을 굽히며 물었다. “나그네께서는 어디서 오셨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우리는 동토 대당 임금님의 수하에서 서천으로 부처를 배알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흠차들이오. 우리 스승님이 바로 당왕 폐하의 의동생이시며, 법호를 당삼장이라 하시고, 나는 그분의 큰 제자 손오공이오. 이 두 사람은 내 사제 저오능과 사오정이니, 일행이 말까지 합쳐 다섯이오. 몸에 지닌 통관문첩이 있으니 살펴보시고 통행을 허락해 주시오.” 그 여관이 붓을 잡고 다 쓴 뒤에 내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감님, 죄를 용서하옵소서. 하관은 이 영양역의 역승이옵니다마는 상국에서 오신 대감님인 줄 알지 못하였사오니, 마땅히 멀리까지 마중하였어야 옳았나이다.” 절을 마치고 일어나 즉시 일 맡은 자에게 음식을 마련하라 명하고 말했다. “대감님들께서는 잠시 편히 앉아 계시옵소서. 하관이 성 안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께 아뢰어 관문을 바꾸고 지급품을 내어 드린 뒤에 대감님들을 서쪽으로 보내 드리겠나이다.” 삼장은 기꺼이 그대로 앉아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둔다. 한편 그 역승은 의관을 가지런히 다듬고 곧장 성 안으로 들어가 오봉루 앞에 이르러 황문관에게 말했다. “소신은 영양관의 역승이옵니다. 임금님을 뵐 일이 있어 왔사옵니다.” 황문관이 즉시 아뢰니 칙명이 내려 그를 대전으로 불러들였다. 임금이 물었다. “역승은 무슨 일로 아뢰러 왔느냐?” 역승이 아뢰었다. “미천한 신이 역에서 동토 대당 임금님의 의동생 당삼장법사를 맞이하였사옵니다. 제자가 셋이 있어 손오공과 저오능과 사오정이라 하며, 말까지 합쳐 다섯이온데 서천으로 부처를 배알하고 경을 취하러 가고자 하옵니다. 특별히 와서 주공께 아뢰오니, 저들로 하여금 관문을 바꾸어 받고 통행하게 허락하시겠나이까?” 여왕이 이 말을 듣고 한껏 기뻐하며 여러 문무백관에게 말했다. “과인이 어젯밤 꿈에 금병이 채색을 내고 옥거울이 광명을 펼치는 것을 보았으니, 이는 오늘의 좋은 징조로다.” 여러 여관들이 단지에 모여 절하며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어찌 그것이 좋은 징조라 하시나이까?” 여왕이 말했다. “동토 사내는 바로 당나라 임금님의 의동생이니라. 우리나라는 혼돈이 열린 이래 대대로 제왕을 이어왔으되 일찍이 사내 하나가 이 땅에 온 적이 없었느니라. 다행히 이제 당왕 폐하의 의동생이 내려오셨으니, 하늘이 내려 보내신 것이로다. 과인이 한 나라의 부로써 의동생을 임금으로 맞고 나는 왕후가 되어 그분과 음양이 화합하여 자손을 낳고 제업을 길이 전하려 하노니, 어찌 오늘의 좋은 징조가 아니겠느냐?” 여러 여관들이 절하며 춤추어 칭송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역승이 또 아뢰었다. “주공의 말씀은 만대에 가업을 전할 좋은 방도이옵니다. 다만 의동생의 세 제자가 흉악하고 생김새가 이루어지지 않았사옵니다.” 여왕이 말했다. “경은 의동생의 모양을 보았느냐? 그 제자들은 어찌 흉하고 못났더냐?” 역승이 아뢰었다. “의동생께서는 용모가 당당하고 풍채가 영준하시어 참으로 천조 상국의 사내요 남섬 중화의 인물이옵니다. 그 세 제자는 형용이 사납고 생김새가 정괴 같사옵니다.” 여왕이 말했다. “그러하다면 그 제자들에게 지급품을 주고 관문을 바꾸어 서천으로 떠나보내며 의동생만 머물게 하면 무슨 불가함이 있겠느냐?” 여러 관리들이 절하고 아뢰었다. “주공의 말씀이 지극히 옳사옵니다. 신들이 삼가 그대로 받들겠나이다.” “다만 짝을 맞추는 일은 중매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사옵나이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인연의 배합은 붉은 잎사귀에 달렸고 월로가 맺은 부부는 붉은 노끈에 매였다 하옵니다.” 여왕이 말했다. “경이 아뢴 대로 하리라. 당직 태사로 하여금 중매를 서게 하고 영양역의 역승으로 하여금 주례를 서게 하여, 먼저 역으로 가서 의동생에게 청혼하게 하라. 그가 허락하거든 과인이 수레를 갖추어 성 밖으로 나가 맞이하리라.” 그 태사와 역승이 칙명을 받들고 조정을 물러나왔다. 한편 삼장법사와 사도들이 역청에서 바야흐로 재공양을 들고 있는데, 바깥에서 사람이 달려와 아뢰었다. “당직 태사께서 우리 본관 할멈과 함께 오셨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태사가 오시다니 무슨 뜻이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여왕께서 우리를 청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청하러 오는 것도 아니라면 혼처를 말하러 오는 것이니라.”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만약 우리를 보내지 않고 강제로 혼인을 시키려 든다면 그때는 어찌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그저 허락하시기만 하옵소서. 늙은 원숭이에게 따로 처리할 방도가 있사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여관이 벌써 당도하여 장로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장로가 하나하나 답례하며 말했다. “빈승은 출가한 몸이라 무슨 덕과 능력이 있다고 감히 대감께서 머리를 조아리시나이까?” 그 태사는 장로의 용모가 훤칠하고 늠름함을 보고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생각하였다. ‘우리나라에 참으로 큰 복이 있구나. 이 사내라면 우리 임금님의 지아비가 되기에 넉넉하겠구나.’ 두 관리가 절을 마치고 일어나 좌우에 모시고 서서 말했다. “폐하의 의동생이신 대감님, 만 갈래의 경사가 겹쳤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나는 출가한 몸인데, 그 기쁨이 어디에서 오겠나이까?” 태사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이곳은 서량여국이옵니다. 나라 안에는 예로부터 사내가 하나도 없사옵니다. 이제 다행히 폐하의 의동생이신 대감님께서 내려오시니, 신이 우리 임금님의 뜻을 받들어 특별히 청혼하러 왔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좋도다! 좋도다! 빈승이 홀몸으로 귀한 땅에 왔사오매 자식이 따르는 것도 없고 다만 어리석은 제자 셋만 두었을 뿐이온데, 대감께서 구하시는 혼사가 어느 쪽이오이까?” 역승이 말했다. “하관이 방금 조정에 들어가 아뢰었더니, 우리 임금님께서 몹시 기뻐하시며 어젯밤 길몽을 꾸었노라고 하셨사옵니다. 꿈에 금병이 채색을 내고 옥거울이 광명을 펼치는 것을 보셨다 하옵니다. 그리고 의동생이 중화 상국의 사내이심을 아시고는, 한 나라의 부로써 대감님을 사위로 맞아들여 남면하여 임금이라 일컫게 하고 우리 임금님은 제후가 되기를 원하시옵니다. 칙명을 내려 태사로 하여금 중매를 서게 하고 하관으로 하여금 주례를 서게 하셨으니, 이 때문에 특별히 이 혼사를 구하러 온 것이옵니다.” 삼장이 이 말을 듣고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사가 말했다. “대장부는 때를 만나면 놓쳐서는 아니 되옵니다. 사위로 맞아들이는 일은 천하에 간혹 있다 하나, 나라를 맡길 만한 부는 세상에 드물옵니다. 청컨대 속히 허락하시어 좋은 회답을 올리게 하옵소서.” 장로는 갈수록 더욱 멍하고 벙어리가 되었다. 팔계가 곁에서 절굿공이 같은 주둥이를 내밀고 소리쳐 말했다. “태사여, 그대는 가서 국왕께 아뢰시오. 우리 스승님은 오래도록 도를 닦아 도를 얻은 나한이시니, 그대 나라를 맡길 만한 부도 임금님의 용모도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오. 어서 관문을 바꾸어 스승님을 서쪽으로 보내고, 나를 이곳에 남겨 사위로 삼으라 하시오. 어떠하오?” 태사가 이 말을 듣고 간이 서늘하여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역승이 말했다. “그대는 사내 몸이나 용모가 추하여 우리 임금님의 마음에 들지 않겠소.”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사정을 모르는구려. 흔한 말에 굵은 버들로 키를 만들고 가는 버들로 되를 만든다 하였으니, 누가 사내를 추다 하였더냐?” 행자가 말했다. “이 얼간이, 함부로 떠들지 마라. 스승님의 뜻에 맡겨 가야 할 때 가고 그쳐야 할 때 그칠 것이니, 중매 서는 수고를 지체시키지 말라.”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네가 좋을 대로 말해 보아라!” 행자가 말했다. “늙은 원숭이의 생각으로는 그대가 여기 계셔도 좋으니라. 예로부터 이르기를, 천 리 인연은 실에 매인 듯하다 하였거늘, 어디 다시 이처럼 맞는 곳이 있겠느냐?”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우리가 여기서 부귀를 탐하면 누가 서천에 가서 경을 취하겠느냐? 우리 대당 임금님의 바라심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태사가 말했다. “폐하의 의동생이신 대감님, 미천한 신은 감히 숨기고 아뢰지 않을 수 없나이다. 우리 임금님의 뜻은 다만 의동생께 청혼하는 것뿐이옵니다. 대감님의 세 제자에게는 친족 잔치에 참여하게 한 뒤에 지급품을 주고 관문을 바꾸어 서천으로 경을 취하러 가게 하라는 것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태사의 말씀이 이치에 맞소. 우리가 굳이 난처하게 굴 것 없으니, 기꺼이 스승님을 남겨 두어 그대 임금님의 지아비가 되게 할 것이니, 어서 관문을 바꾸어 우리를 서쪽으로 떠나보내 주시오. 경을 취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들러 부모님께 절을 올리고 노잣돈을 받아 대당으로 돌아가면 좋지 않겠소?” 그 태사와 역승이 행자를 향해 예를 갖추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아름답게 이루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하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태사여, 입에만 찬을 벌여 놓고 빈말만 하지 마시오. 우리가 이미 허락하였으니, 그대 임금님께 일러 상을 차리게 하고 우리에게 승락주나 한 잔 먹게 하시오. 어떠하오?” 태사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곧 잔치를 차리라 일러 두겠소.” 그 역승과 태사는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기뻐하며 여주에게 회주하러 돌아갔는데,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둔다. 한편 당장로는 행자를 단번에 와락 잡아당기며 꾸짖어 말했다. “어찌 그런 말을 하였느냐? 나로 하여금 이곳에 머물러 장가 들고 너희는 서천으로 부처를 배알하러 간다니, 나는 죽어도 감히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염려하지 마옵소서. 늙은 원숭이가 어찌 스승님의 성정을 모르겠나이까? 다만 이 땅에서 이런 사람을 만났으니 저들의 계략을 빌려 우리 계략을 삼아야 하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무엇을 계략을 빌려 계략을 삼는다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이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들은 관문을 바꾸어 주지 않고 우리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니라. 혹여 마음이 사납고 독하여 여러 사람을 시켜 스승님의 살을 베어 향낭을 만든다 하면, 우리가 어찌 좋은 보답을 바라겠나이까? 반드시 요마를 항복받는 신통을 부려야 하리라. 우리의 손과 발이 무겁고 병기가 흉하니,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이 나라 사람을 모조리 때려 죽이게 되리라. 저들이 비록 우리를 막기는 하나 괴물이나 요정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사람 몸이니라. 또 스승님은 평소 착하고 자비로운 분이라, 길 위에서 날짐승 하나 상하게 한 적이 없으셨거늘, 죄 없는 백성을 헤아릴 수 없이 때려 죽이면 스승님의 마음이 어찌 견디시겠나이까? 참으로 선하지 못한 일이 되느니라.” 삼장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오공아, 이 논의가 가장 좋구나. 다만 여주가 나를 불러들여 부부의 예를 행하자 하면, 어찌 원양을 잃어 불가의 덕행을 무너뜨리고 참된 정기를 흘려 본교의 인신을 떨어뜨리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오늘 혼사를 허락하시면, 저들은 반드시 황제의 예로 수레를 갖추어 성 밖까지 나와 스승님을 맞이하리라. 스승님께서는 더 사양하지 마시고 봉련 용차에 올라 보전에 오르시어 남쪽을 향해 앉으시옵소서. 그리고 여왕께 어보와 인신을 내오라 하시어 우리 형제를 조정에 불러들이게 하시고, 통관문첩에 도장을 찍으신 뒤 친필로 화압을 쓰시게 하여 우리에게 넘겨주게 하옵소서. 한편으로 잔치를 차리라 하시면 그것이 여왕과의 혼례를 대신하고 우리의 전송연도 되리라. 잔치가 끝나거든 다시 수레를 갖추라 하시되 우리 세 사람을 성 밖까지 배웅하게 하고 돌아오셔서 여왕과 화합하겠다 하시옵소서. 그 임금과 신하를 기쁘게 속여 두면 막으려는 마음도 사나운 생각도 없어지리니, 성 밖에 나왔을 때 스승님은 용차에서 내리시고 사승으로 하여금 모시어 백마에 오르시옵소서. 그러면 늙은 원숭이가 정신법을 부려 그 임금과 신하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에, 우리는 큰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리라. 하룻낮 하룻밤을 가거든 내가 주문을 외어 술법을 풀어 그들이 다시 깨어나 성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나는 저들의 목숨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스승님의 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니라. 이를 거짓 혼례로 그물을 벗어나는 계략이라 하거늘, 어찌 두 가지를 온전히 하는 아름다움이 아니겠나이까?” 삼장이 이 말을 듣고는 취한 데서 깨어난 듯 꿈에서 막 깬 듯하여 근심을 잊고 기뻐하며 사례를 다할 길이 없어 말했다. “어진 제자의 높은 견해에 깊이 감사하노라.” 네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의논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둔다. 한편 그 태사와 역승은 부르는 칙명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조정 문 안 백옥 섬돌 앞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주공의 아름다운 꿈이 가장 들어맞아, 물과 고기 같은 즐거움이 이루어졌나이다.” 여왕이 듣고는 구슬 발을 걷고 용상에서 내려와, 앵두 같은 입술을 열고 은 같은 이를 드러내며 싱글싱글 웃으며 고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진 경이 의동생을 만나 보니 무어라 하더냐?” 태사가 아뢰었다. “신 등이 역에 이르러 의동생을 뵙고 절을 마치자 곧 청혼의 일을 갖추어 아뢰었나이다. 의동생께서는 오히려 사양하셨사오나, 다행히 그 큰 제자가 흔쾌히 허락하여 자기 스승님을 우리 임금님의 지아비로 남겨 두어 남면하여 임금이라 일컫게 하겠노라 하였사옵니다. 다만 먼저 관문을 바꾸어 그 세 사람을 서쪽으로 떠나보내라 하였사오니, 경을 얻어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들러 부모를 뵙고 노잣돈을 받아 대당으로 돌아가겠다 하옵니다.” 여왕이 웃으며 말했다. “의동생이 다시 무슨 말을 하더냐?” 태사가 아뢰었다. “의동생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우리 임금님과 짝하기를 원하셨사옵니다. 다만 그 둘째 제자가 먼저 승락주 한 잔을 먹어야 한다 하였사옵니다.” 여왕이 이 말을 듣고 즉시 칙명을 내려 광록시에 잔치를 차리게 하는 한편 큰 수레 행차를 갖추어 성 밖으로 나가 지아비를 맞이하게 하였다. 여러 여관들이 곧 왕명을 받들어 궁전을 치고 뜰과 대를 꾸몄다. 잔치 차리는 무리는 불같이 서둘고, 수레 갖추는 무리는 별처럼 날래게 준비하였다. 보라, 저 서량국이 비록 부녀자의 나라이나 그 행차의 성대함은 중화에 못지않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여섯 마리 용이 채색을 뿜고 한 쌍의 봉황이 상서를 낳는구나. 용이 채색을 뿜어 수레를 받들어 나오고, 봉황이 상서를 낳아 가마를 몰고 오는구나. 그윽한 향기 자욱하고 서기가 펼쳐지며, 금붕어와 옥패식은 여러 관리가 옹위하고 보배 비녀와 구름 쪽은 여러 여자가 늘어섰구나. 원앙 부채가 수레를 가리고 비취 구슬 발에 봉황 비녀 비치며, 피리와 노랫가락 아름답고 줄과 관악이 고르게 어우러지는구나. 한 조각 즐거운 정이 푸른 하늘을 찌르고 끝없는 기쁜 기운이 영대에서 솟으며, 세 겹 비단 덮개가 하늘을 흔들고 오색 깃발이 임금의 섬돌에 비치는구나. 이 땅은 예로부터 합근례가 없었거늘, 여왕이 오늘 남자 재주꾼을 배필로 맞는구나. 오래지 않아 큰 수레 행차가 성을 나서니 이내 영양관 역에 이르렀다. 홀연 누군가 삼장법사와 사도에게 달려와 아뢰었다. “임금님 행차가 도착하였나이다.” 삼장이 이 말을 듣고 곧 세 제자와 함께 옷을 여미고 청사로 나가 행차를 맞이하였다. 여왕이 발을 걷고 가마에서 내리며 말했다. “어느 분이 당나라 임금님의 의동생이시냐?” 태사가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역관 문 밖 향안 앞에서 난의를 입고 계신 분이 바로 그분이옵니다.” 여왕이 봉황 같은 눈을 번쩍이고 눈썹을 모으며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보통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풍채는 영웅답게 늠름하고 용모는 훤칠하며 당당하구나. 이는 은을 쌓은 듯 희고 입술은 붉고 반듯하며, 정수리 평평하고 이마 넓어 천창이 가득하고 눈은 수려하며 눈썹 맑아 지각이 길구나. 두 귀에 테가 있으니 참으로 뛰어난 선비요, 온몸이 범상치 않으니 참으로 재주 있는 낭군이로다. 과연 좋구나, 꽃다운 나이의 총명하고 준수한 풍류객이여, 서량의 요조한 낭자와 짝할 만하구나. 여왕이 흐뭇하고 아름다운 데까지 이르자 저도 모르게 음정이 샘솟고 애욕이 일어나, 앵두 같은 작은 입을 벌리고 불러 말했다. “대당의 의동생이시여, 어서 오시어 봉황을 차지하고 난새를 타시지 않으렵니까?” 삼장이 이 말을 듣고 귀가 붉어지고 얼굴이 달아올라 부끄러워 감히 머리를 들지 못했다. 저팔계가 곁에서 입을 내밀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 여왕을 살펴보니 몸가짐이 아리따웠으니, 참으로 눈썹은 물총새 깃털 같고 살결은 희고 기름진 비계 같았으며, 얼굴은 복숭앗꽃 잎을 받친 듯하고 쪽진 머리는 금실로 땋은 비녀 같았구나. 가을 물결처럼 맑고 그윽한 요염한 자태요, 봄 죽순처럼 가늘고 여린 요사스러운 자태로다. 비스듬히 걸친 붉은 비단이 고운 빛을 날리고, 높이 꽂은 구슬과 비취가 광채를 드러내는구나. 무에 이른바 소군의 미모를 말하리오, 참으로 서시를 능가하는구나. 버들 같은 허리를 살짝 펴니 금패가 울리고, 연꽃 같은 걸음을 가볍게 옮기니 옥 같은 팔다리가 움직이는구나. 달 속의 항아도 이곳에 오기 어렵고, 구천의 선녀도 어찌 이에 견주리오. 궁중 화장의 교묘한 모습이 범상한 무리가 아니니, 참으로 서왕모가 요지에서 내려온 것일레라. 그 얼간이가 좋은 구경을 하자 참지 못하여 입에 군침이 흐르고 가슴에서 사슴이 부딪치듯 하여, 한동안 뼈가 물렁하고 힘줄이 저리더니 눈사자가 불을 향한 듯 스르르 녹아버렸다. 보라, 그 여왕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삼장을 단번에 잡아당기며, 고운 말로 교태로운 목소리를 내어 불러 말했다. “폐하의 의동생이신 오라버니여, 청컨대 용차에 오르시어 나와 함께 금란보전으로 올라가 부부의 연을 맺으시지요.” 이 장로는 벌벌 떨며 서 있지도 못하고 취한 사람 같고 미친 사람 같았다. 행자가 곁에서 일렀다. “스승님께서는 너무 사양하지 마시고 새사모님과 함께 가마에 오르시어 어서 관문을 바꾸시고 우리가 경을 취하러 가게 하옵소서.” 장로는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행자를 두어 번 쓸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부디 번뇌하지 마옵소서. 이토록 부귀를 누리지 않고서야 도리어 어찌하시렵니까?” 삼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눈물을 닦고 억지로 즐거운 얼굴을 지으며 걸음을 옮겨 여주와 더불어 하얀 손을 잡고 용차에 함께 올랐다. 저 여주는 즐겁고 흐뭇하여 부부가 되려 하는데, 이 장로는 근심스럽고 두려워 부처께 배알할 생각뿐이었더라. 하나는 동방에서 꽃과 촛불 아래 원앙의 짝을 사귀려 하고, 하나는 서역 영산에서 세존을 뵈려 하였느니라. 여제는 참된 정이요, 성승은 거짓 뜻이로다. 여제의 참된 정은 화합하여 함께 늙기를 바라지만, 성승의 거짓 뜻은 정을 감추어 원신을 기름이로다. 하나는 사내 몸을 보니 기뻐서 대낮에도 머리를 나란히 하여 강려가 되려 하고, 하나는 여색을 만나기가 두려워 이내 그물을 벗어나 뢰음으로 오를 궁리뿐이로다. 두 사람이 화합하여 함께 수레에 올랐으되, 어찌 당승이 각각 다른 마음을 품었을 줄이야! 그 문무 관리들이 주공과 장로가 함께 봉련에 올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것을 보고는, 하나같이 눈썹에 꽃이 피고 눈에 웃음이 어려 의장대를 돌려 세워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손대성이 비로소 사승에게 행장을 메고 백마를 끌게 하여 큰 행차의 뒤를 따라 함께 걷게 하였다. 저팔계는 앞을 향해 마구 달려가 먼저 오봉루 앞에 이르러 떠들어댔다. “흥, 편하구나! 흥, 다 되었구나! 이건 안 되겠다! 이건 안 되겠다! 희숫술이나 먹고 혼례를 치러야 옳지!” 놀란 그 의장과 인도를 맡은 여관들이 하나같이 수레 곁으로 돌아가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저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자가 오봉루 앞에서 희숫술을 먹어야 한다고 떠들고 있나이다.” 여주가 이 말을 듣고 장로와 향기로운 어깨를 기대고 복숭앗꽃 같은 뺨을 맞대며 단향 같은 입을 열어 고운 목소리로 불렀다. “폐하의 의동생이신 오라버니여, 저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이는 어느 제자이시냐?” 삼장이 말했다. “나의 둘째 제자이옵니다. 그는 밥통이 넓어 평생 입이 호사하기만 바라옵니다. 먼저 술과 음식을 그놈에게 먹인 뒤에야 일을 시작할 수 있사옵니다.” 여주가 급히 물었다. “광록시에서 잔치를 차리는 일이 끝났느냐?” 여관이 아뢰었다. “이미 끝났사옵니다. 훈찬과 소찬 두 가지를 동각 위에 차려 놓았나이다.” 여왕이 또 물었다. “어찌하여 두 가지이냐?” 여관이 아뢰었다. “신이 당나라 임금님의 의동생이신 대감님과 높은 제자들이 평소에 채식을 하실까 염려되어, 그러하옵나이다.” 여왕이 또 싱글싱글 웃으며 장로의 뺨에 기대어 말했다. “폐하의 의동생이신 오라버니여, 그대는 훈찬을 드시느뇨, 소찬을 드시느뇨?”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소찬을 들사옵니다마는, 아직 술을 끊지는 못하였사오니, 모름지기 소채에 곁들일 술 몇 잔을 얻어 내 둘째 제자에게 먹이게 하옵소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사가 아뢰었다. “동각으로 가시어 잔치에 드시옵소서. 오늘 밤이 길일이요 좋은 시각이니, 이 밤에 폐하의 의동생이신 대감님과 혼례를 올리시고, 내일 황도가 열리면 대감님께 보전에 오르시어 남면하시고 연호를 고쳐 즉위하게 하시옵소서.” 여왕이 크게 기뻐하며 곧 장로와 손을 잡고 서로 부축하여 용차에서 내려 함께 단문 안으로 들어가니, 그 광경 실로 이러하였다. 바람에 실려 신선의 음악이 누대에서 내려오고, 궁문 한가운데로 비취 수레가 들어오는구나. 봉궐이 크게 열려 빛이 자욱하고, 황궁은 닫지 않아 비단이 줄줄이 늘어섰구나. 기린전 안에서는 화로의 연기가 하늘거리고, 공작 병풍 곁에서는 방 그림자가 어른거리는구나. 정자와 누각이 우뚝 솟음이 상국과 같고, 옥당과 금마가 더욱 기이하구나! 동각 아래에 이르러 또 한 가닥 피리와 노랫가락이 아름답게 들려오고, 두 줄로 선 분 바른 여인들의 교태로운 모습이 보였더라. 중앙 당에는 성대한 잔치가 두 가지로 차려졌으니, 왼쪽 상석은 소찬이요 오른쪽 상석은 훈찬이요, 아래 두 줄은 홑상이었다. 그 여왕이 도포 소매를 거두고 가느다란 열 손가락으로 옥잔을 받들어 자리를 마련하러 왔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우리 사도는 모두 소채를 먹소. 먼저 스승님을 왼쪽 소찬 자리에 모시고 그 아래 세 자리를 좌우로 나누어 우리 형제들이 앉으면 좋겠소.” 태사가 기뻐하며 말했다. “옳소, 옳소. 스승과 제자는 곧 아비와 아들이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소.” 여러 여관들이 황급히 자리를 고쳐 놓았다. 여왕이 잔을 돌려 그 형제 세 사람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행자가 또 당승에게 눈짓을 보내어 스승님께 답례하라 일렀다. 삼장이 내려와서 또한 옥잔을 받쳐 들고 여왕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그 문무 관리들은 황은에 절하고 사례한 뒤에 품계에 따라 양쪽으로 나누어 앉고서야 음악을 그치고 술을 권하였다. 그 팔계는 좋고 나쁨을 따질 것 없이 배를 열어젖히고 마구 먹어 대기 시작했다. 무어라 할 것도 없이 옥가루 같은 쌀밥이며 찐 떡이며 설기떡이며 버섯이며 향버섯이며 죽순이며, 목이버섯이며 노란 꽃나물이며 우뭇가사리며 김이며 순무며 토란이며 무이며 마며 둥굴레며 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쓸어 넣어 모조리 비워 버리고, 술도 대여섯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입으로 떠들어댔다. “어서 더 갖다 내오! 큰 잔을 가져오너라! 몇 잔만 더 먹고 각자 일을 보러 가자!” 사승이 물었다. “좋은 잔치를 두고 먹지 않고 무슨 일을 더 하려느냐?” 얼간이가 웃으며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활 만드는 이는 활을 만들고 살 만드는 이는 살을 만든다 하였느니라. 우리가 이제 장가드는 이는 장가들고 시집가는 이는 시집가며, 경 취하는 이는 도로 경을 취하고 길 가는 이는 도로 길을 갈 것이니, 술잔만 탐하다가 일을 그르치지 말고 어서 일찍 관문을 내어 보내 주게. 장수는 말에서 내리지 않고 제각기 앞길을 달린다 하였네.” 여왕이 이 말을 듣고 즉시 큰 잔을 가져오라 명했다. 가까이 모시는 관리가 황급히 앵무배와 노자작과 금파라와 은착락과 유리잔과 수정 대접과 봉래 사발과 호박 종자를 여러 개 가져와서는, 옥 같은 술을 가득 채우고 좋은 술을 연달아 따르니, 과연 모두가 한 차례씩 돌아가며 마셨다. 삼장이 몸을 일으켜 여왕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폐하, 성대한 대접을 넉넉히 입었사옵니다. 이제 술도 넉넉하오니, 보전에 오르시어 관문을 바꾸어 주시고, 날이 밝기 전에 저 세 사람을 성 밖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여왕이 그 말대로 장로의 손을 잡고 잔치를 파한 뒤 금란보전에 올라 곧 장로에게 즉위하라 권했다. 삼장이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되옵니다! 방금 태사가 아뢰었사오니, 내일 황도가 열려야 빈승이 비로소 감히 즉위하여 임금이라 일컫겠나이다. 오늘은 곧 관문에 도장을 찍고 그들을 떠나보내게 하옵소서.” 여왕이 그 말대로 다시 용상에 앉아 금으로 된 교의 한 개를 가져다 용상 왼쪽에 놓고 당승을 앉게 한 뒤, 제자들에게 통관문첩을 올리라 하였다. 대성이 곧 사승에게 보따리를 풀라 하여 관문을 꺼내게 하고는 두 손으로 받들어 올렸다. 그 여왕이 자세히 살펴보니 위에는 대당 황제의 보인이 아홉 개, 아래에는 보상국과 오계국과 거지국의 인이 찍혀 있었다. 여왕이 다 본 뒤 교태롭게 웃으며 말했다. “폐하의 의동생이신 오라버니여, 그대는 또 진씨이시냐?” 삼장이 말했다. “속가의 성이 진씨이옵고 법명은 현장이옵니다. 당왕 폐하께서 은혜로 의동생을 삼으시고 당이라는 성을 내려 주셨사옵니다.” 여왕이 말했다. “관문에 어찌하여 높은 제자들의 이름이 없느뇨?” 삼장이 말했다. “세 어리석은 제자는 우리 당나라 사람이 아니옵니다.” 여왕이 말했다. “당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기꺼이 그대를 따라왔느뇨?” 삼장이 말했다. “큰 제자는 본적이 동승신주 오래국 사람이옵고, 둘째는 서우하주 오사장 사람이옵고, 셋째는 유사하 사람이옵니다. 그 세 사람이 모두 천조의 죄를 범하여 고초를 겪던 것을 남해의 관세음보살께서 건져 내시고 착한 마음으로 귀의하여 공로로 죄를 갚으라 하셨기에, 기꺼이 나를 보호하여 서천으로 경을 취하러 가는 것이옵니다. 모두 길 위에서 거둔 까닭에 법명을 문첩에 적지 못하였나이다.” 여왕이 말했다.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법명을 더 적어 넣으면 어떠하뇨?” 삼장이 말했다. “다만 폐하의 높은 뜻에 맡기옵니다.” 여왕이 곧 붓과 벼루를 가져오라 하여 향기로운 먹을 짙게 갈고 붓을 흠뻑 적신 뒤에, 문첩 끝에 손오공과 저오능과 사오정 세 사람의 이름을 써 넣고서야 어보를 꺼내어 반듯하게 도장을 찍고 친필로 화압을 그려 아래로 전해 내려보냈다. 손대성이 받아 들고 사승에게 보따리를 단단히 싸게 하였다. 그 여왕이 또 부스러기 금과 은 한 접시를 내리라 하여, 용상에서 내려와 행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너희 세 사람은 이것을 우선 노잣돈으로 삼아 서천으로 빨리 떠나라. 너희가 경을 얻어 돌아오면 과인이 다시 두텁게 사례하리라.” 행자가 말했다. “우리 출가한 사람은 금과 은을 받지 않소. 길 위에서 스스로 빌어먹을 곳이 있소.” 여왕이 받지 않는 것을 보고는 다시 능금 열 필을 꺼내어 행자에게 말했다. “너희가 길 떠나는 걸음이 바쁘니 만들 겨를이 없을 터, 이것으로 길에서 옷 한 벌 지어 추위를 가리라.” 행자가 말했다. “출가한 사람은 능금을 입지 못하오. 이미 몸을 가릴 베옷이 있소.” 여왕이 받지 않는 것을 보고 명했다. “임금님의 쌀 서 되를 가져오라. 길에서 한 끼 밥이 되게 하라.” 팔계가 밥이라는 말을 듣고 곧 받아 보따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행장이 벌써 무거운데 도리어 쌀을 메고 갈 기운이 있겠느냐?”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모르느냐? 쌀이 좋은 것은 하룻동안 없어지는 물건이라 한 끼 밥이면 그만이지.” 이에 두 손을 모으고 사례하였다. 삼장이 말했다. “감히 폐하께 번거로움을 끼치옵니다. 빈승과 함께 저 세 사람을 성 밖까지 배웅해 주시옵소서. 내가 그들에게 몇 마디 당부하여 잘 서쪽으로 가라 이른 뒤에 돌아와 폐하와 길이 영화를 누리며 난새와 봉황이 사귀는 즐거움을 함께하겠나이다.” 여왕은 그것이 계략인 줄 모르고 칙명을 내려 수레를 갖추게 하고는 삼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봉련에 올라 서쪽 성문으로 나아갔다. 온 성 안에서 잔에 맑은 물을 채우고 화로에 진향을 피우니, 하나는 여왕의 행차를 보려 함이요 둘째는 의동생의 사내 몸을 보려 함이었다. 늙은이나 어린이나 모두 분 바른 고운 얼굴에 머리카락을 구름처럼 쪽 찐 무리들뿐이었다. 오래지 않아 큰 행차가 성을 나서 서관에 이르렀을 때 행자와 팔계와 사승이 한마음이 되어 몸단장을 갖추고 곧장 수레를 마주하여 목청을 높여 외쳤다. “저 여왕은 멀리 배웅할 것 없소. 우리는 이만 작별하겠소.” 장로가 천천히 용차에서 내려 여왕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폐하께서는 돌아가시옵소서. 빈승이 경을 취하러 가겠나이다.” 여왕이 이 말을 듣고는 크게 놀라 낯빛이 변하며 당승을 붙잡고 말했다. “폐하의 의동생이신 오라버니여, 나는 한 나라의 부를 드려 그대를 지아비로 삼고, 내일 높은 보위에 올라 임금이라 일컫게 하며 나는 그 임금의 왕후가 되기를 원하였거늘, 혼례 잔치까지 이미 모두 치렀으니 어찌하여 또 변심하시나이까?” 팔계가 이 말을 듣고는 성깔을 돋우어 주둥이를 마구 비틀고 귀를 마구 흔들며 수레 앞으로 달려들어 떠들어댔다. “우리 중네가 그대 같은 분칠한 해골과 무슨 부부를 하겠느냐! 우리 스승님을 놓아 길을 가게 하라!” 그 여왕이 저토록 막되게 굴며 추한 꼴을 부리는 것을 보고는 혼백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져 가마 속으로 넘어졌다. 사승은 곧 삼장을 사람들 틈에서 채어 내어 모시고 말에 올렸다. 그때 길 가에서 한 여자가 홀연 튀어나오며 꾸짖어 말했다. “당나라 임금님의 의동생이여, 어디로 가느냐! 나와 함께 풍월이나 즐기러 가자!” 사승이 꾸짖었다. “도적 같은 놈, 무지하기 짝이 없구나!” 그리고는 보장을 빼어들어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여자가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당승을 빼앗아 가 버리니, 그림자도 없고 자취도 없어 어디로 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 바로 이러하였다. 연화의 그물은 벗어났거늘, 또다시 풍월의 마왕을 만났구나. 결국 그 여자가 사람인지 괴물인지, 스승님의 목숨이 죽을지 살지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5회 색사음희당삼장(色邪淫戱唐三藏) · 성정수지불괴신(性正修持不壞身) 말하자면, 손대성과 저팔계가 막 술법을 부려 그 부녀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려는데, 홀연 바람 소리 나는 곳에서 사승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삼장법사가 간 곳이 없었다. 행자가 말했다. “어느 놈이 와서 스승님을 빼앗아 갔느냐?” 사승이 말했다. “어떤 여자가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스승님을 휩쓸어 갔나이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휘파람을 길게 불며 구름 위로 뛰어올라, 손을 이마에 얹어 차양을 만들고 사방을 두루 살펴보니, 먼지 한 무더기가 바람을 타고 구불구불 굴러가며 서북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자못 사나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외쳐 말했다. “형제들아, 어서 구름을 타고 나와 함께 스승님을 뒤쫓아 가자!” 저팔계와 사승이 즉시 행낭을 말등에 얹고는 소리를 한 번 지르며 모두 허공으로 뛰어올라갔다. 놀란 서량여국의 임금과 신하와 여자들이 흙먼지 속에 꿇어앉아 모두 말했다. “대낮에 하늘로 날아오른 나한이옵니다. 우리 임금님께서는 놀라거나 의심하실 것 없사옵니다. 당나라 임금님의 의동생께서도 도를 갖춘 선승이시오니, 저희 모두가 눈에 눈동자가 없어 중화의 사내를 잘못 알아보고는 이 한바탕 정성을 헛되이 쏟았나이다. 청컨대 주공께서는 수레에 오르시어 조정으로 돌아가시옵소서.” 여왕이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여러 관리들이 모두 함께 도성으로 돌아갔는데,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둔다. 말하자면, 손대성 형제 세 사람이 허공을 날고 안개를 밟으며 그 회오리바람을 바라보고 줄곧 뒤쫓아갔다. 앞에 이르니 높은 산 하나가 솟아 있었는데, 그곳에 다다르니 먼지는 가라앉고 바람머리도 흩어져 괴물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더욱 알 길이 없었다. 형제들이 구름과 안개를 내려놓고 산기슭에 내려서서 길을 찾아 이리저리 수소문하는데, 홀연 한쪽 벼랑 아래에 푸른 돌이 환히 빛나는 것이 마치 병풍을 세워 놓은 모양 같았다. 세 사람이 말을 끌고 돌병풍을 돌아서니 병풍 뒤에 돌문 두 짝이 있고 문 위에 큰 글자 여섯 자가 새겨져 있었으니 곧 독적산 비파동이었다. 저팔계가 무식하게도 앞으로 나서며 쇠스랑을 휘둘러 문을 쪼으려 하자 행자가 급히 만류하며 말했다. “아우야, 서두르지 마라. 우리가 회오리바람을 따라 쫓아온 끝에 여기까지 왔고, 이리저리 한참을 찾은 끝에야 이 문을 만났으나 그 속이 깊은지 얕은지는 알지 못한다. 만약 이 문이 아니라면 괴물의 심술만 돋우지 않겠느냐? 너희 둘은 말을 끌고 도로 돌병풍 앞으로 가 잠시 서서 기다려라. 늙은 원숭이가 들어가서 알아보고 유무와 허실을 살펴본 뒤에야 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다.” 사승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좋나이다! 좋나이다! 좋나이다! 거친 속에 섬세함이 숨어 있으니, 과연 급한 때일수록 너그러우시옵니다.” 두 사람이 말을 끌고 돌아섰다. 손대성이 신통을 드러내어 손가락으로 결을 쥐고 주문 한 마디를 외운 뒤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꿀벌이 되었는데, 참으로 가볍고 날렵하였다. 보라,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날개는 얇아 바람 따라 부드럽고, 허리는 가벼워 햇살에 비쳐 가늘구나. 입은 달콤하여 일찍이 꽃술을 찾았고, 꼬리는 날카로워 두꺼비를 잘 굴복시켰도다. 꿀을 빚는 공이 어찌 얕다 하리오마는, 관아에 드는 예절은 스스로 겸손하도다. 이제 교묘한 계책을 부려 날아오르니 문의 처마로 들어가는구나. 행자가 문틈으로 파고들어 이층 문 안을 날아 지나가니, 한가운데 꽃정자 위에 여자 괴물 하나가 반듯이 앉아 있고 좌우에는 채색 비단옷에 수를 놓은 저고리를 입고 머리를 두 쪽으로 쪽져 올린 여자 아이 몇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즐거운 듯 웃고 떠들며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알 수 없었다. 이 행자가 가만히 날아올라 그 꽃정자의 격자에 딱 붙어 귀를 기울여 듣는데, 또 총각을 얹고 머리를 헝클어뜨린 여자 둘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밀가루 음식 두 쟁반을 받들고 정자로 올라와 말했다. “할머니, 한 쟁반은 사람 고기 소를 넣은 고기찐빵이옵고, 다른 한 쟁반은 팥 소를 넣은 채소찐빵이옵니다.” 그 여자 괴물이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당나라 임금님의 의동생을 부축하여 모셔 오너라.” 채색 비단옷에 수를 놓은 여자 아이 몇이 뒷방으로 가 삼장법사를 부축하여 이끌고 나왔다. 그 스승님은 얼굴이 누렇게 뜨고 입술은 창백하며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눈물을 방울방울 떨구고 있었다. 행자가 어둠 속에서 가슴을 치며 탄식하여 말했다. “스승님께서 독을 입으셨구나!” 그 괴물이 정자에서 내려와 봄 파처럼 가늘고 고운 열 손가락을 드러내며 장로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겨 말했다. “의동생 나으리, 마음을 놓으소서. 이곳이 비록 서량여국의 궁전은 아니라 부귀나 사치를 견줄 수는 없으나, 실로 한가하고 자유로워 부처를 염하고 경전을 보기에 더없이 알맞소. 게다가 시끄러운 손님이나 번거로운 일도 없으니, 내 그대와 도반이 되어 지낸다면 참으로 백 년을 화목하게 보내는 것이니라.” 삼장법사가 입을 열지 않자 그 괴물이 말했다. “우선 근심부터 거두소서. 그대가 여인국에서 잔치에 나갔을 때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아노라. 여기 고기 음식과 채소 음식 두 쟁반이 있으니, 마음대로 드셔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소서.” 삼장법사가 가만히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말도 아니 하고 음식도 먹지 않으려 하나, 이 괴물은 그 여왕과는 다르도다. 여왕은 그래도 사람의 몸이라 행동거지가 예의를 갖추었거니와, 이 괴물은 요신이니 해를 끼칠까 두렵구나. 어찌한들 좋으랴? 내 세 제자는 내가 이곳에 갇혀 있는 줄도 모르거늘, 혹여라도 나를 해친다면 목숨을 헛되이 잃는 것이 아니겠느냐?’ 마음으로 마음에 물어보아도 방도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입을 열어 말했다. “고기찐빵은 어떠하며 채소찐빵은 어떠하오?” 여자 괴물이 말했다. “고기찐빵은 사람 고기 소를 넣은 것이오, 채소찐빵은 팥 소를 넣은 것이니라.” 삼장법사가 말했다. “빈승은 채식을 하노라.” 그 괴물이 웃으며 말했다. “여자 아이야, 뜨거운 차를 가져오너라. 너희 집안 어르신께서 채소찐빵을 드시겠다.” 여자 아이 하나가 과연 향기로운 찻잔 하나를 받들어 장로 앞에 놓았다. 그 괴물이 채소찐빵 하나를 쪼개어 삼장법사에게 건네주었다. 삼장법사는 고기찐빵 하나를 통째로 집어 여자 괴물에게 건네주었다. 여자 괴물이 웃으며 말했다. “의동생이여, 어찌하여 나에게는 쪼개지 않고 주느냐?” 삼장법사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나는 출가한 몸이라 감히 고기를 깨뜨릴 수 없노라.” 그 여자 괴물이 말했다. “그대가 출가한 몸이라 감히 고기를 깨뜨리지 못한다면서, 어찌하여 그저께 자모하 가에서 물을 높이 마시고는 오늘 또 팥 소를 즐겨 먹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물이 높으면 배는 급히 가고, 모래가 깊으면 말은 더디 가느니라.” 행자가 격자 틈에서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것을 듣다가 스승님이 참된 성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하여 참지 못하고 본모습을 드러내어 여의봉을 뽑아 들고 꾸짖어 말했다. “업축이 무례하구나!” 그 여자 괴물은 이를 보고 입에서 연기와 빛을 한 줄기 뿜어 꽃정자를 온통 뒤덮고는 명령했다. “얘들아, 의동생을 거두어라!” 그리고는 세 갈래 강철 창 한 자루를 들고 정자 문을 뛰어나와 욕하며 말했다. “건방진 원숭이야! 감히 내 집에 몰래 들어와 내 얼굴을 엿보담! 달아나지 말라! 이 늙은 어미의 창을 받아라!” 이 대성이 여의봉으로 받아 막으며 싸우는 사이사이 물러났다. 두 사람이 굴 밖으로 치고 나가는데, 저팔계와 사승이 돌병풍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홀연 그 두 사람이 다투며 버티는 것을 보고는, 당황한 팔계가 백마를 끌어 넘기며 말했다. “사승아, 너는 행리와 말이나 잘 지키고 있어라. 늙은 돼지가 가서 거들고 오마.” 그 얼간이 두 손으로 쇠스랑을 치켜들고 앞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쳐 말했다. “형님은 물러나 계시오. 이 음탕한 계집은 내가 치겠소!” 그 괴물은 팔계가 오는 것을 보자 또 수단을 부려, 한바탕 소리를 지르며 코에서 불을 내뿜고 입에서 연기를 피어 올리고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더니, 세 갈래 창을 휘날리며 달려들어 맞받았다. 그 여자 괴물은 손이 몇 개인지도 알 수 없이 머리도 얼굴도 가리지 않고 굴러오듯 덮쳐 왔다. 이 행자와 팔계가 양쪽에서 에워싸고 공격했다. 그 괴물이 말했다. “손오공아, 너는 분수도 모르는구나! 나는 너를 알건만 너는 나를 모르느니라. 너희 뇌음사의 부처 여래도 오히려 나를 두려워하거늘, 너희 털 달린 인간 둘이 어디 감히 당해 내겠느냐! 다들 덤벼라, 하나하나 똑똑히 맞아 보아라!” 이 한판이 얼마나 잘 싸웠던가. 여자 괴물은 위풍이 자라고 원숭이 왕은 기개가 솟구치며, 천봉원수는 공적을 다투느라 쇠스랑을 함부로 휘둘러 재주를 뽐내려 하였다. 저쪽은 손이 많고 창이 바빠 연기 빛이 휘감기고, 이쪽은 성급하고 병기가 강해 안개 기운이 치솟는구나. 여자 괴물은 다만 짝을 구하려 하는데, 남승이 어찌 원정을 새게 하리오! 음양이 맞지 않아 서로 버티며 싸우니, 저마다 뛰어난 재주를 뽐내며 지독히 다투는구나. 음이 고요히 영화를 기르며 움직임을 생각하고, 양은 거두어 지키며 깨끗함을 사랑하도다. 마침내 두 곳에 화목이 없어 창과 스랑과 쇠몽둥이로 승부를 겨루는구나. 이쪽의 몽둥이는 힘이 있고 스랑은 더욱 능하니, 여자 괴물의 강철 창과 정정당당히 맞서는구나. 독적산 앞에서는 세 사람이 양보하지 않고, 비파동 밖에서는 두 편이 정이 없구나. 저 하나는 당승을 얻어 봉황의 짝을 이루려 하고, 이 둘은 반드시 장로를 따라 참된 경을 취하려 하도다.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들며 서로 싸우니,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자리가 바뀔 지경이로구나! 세 사람이 오래도록 싸웠으되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그 여자 괴물이 몸을 한 번 솟구쳐 도마독장을 써 보니, 어느새 대성의 머리 가죽을 한 번 찔렀다. 행자가 “고통스럽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참아 낼 수가 없어 아픔을 안은 채 진을 버리고 달아났다. 팔계는 일이 잘못되어 감을 보고 쇠스랑을 끌며 몸을 돌려 물러났다. 그 괴물이 승리를 거두고 강철 창을 거두었다. 행자가 머리를 감싸 쥐고 눈살을 찌푸리며 괴로운 얼굴로 “무섭다! 무섭다!” 하고 소리쳤다. 팔계가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형님, 한창 잘 싸우고 계시다가 어찌 갑자기 고통을 연발하며 달아나셨나이까?” 행자가 머리를 감싼 채 다만 “아파! 아파! 아파!” 하고 외쳤다. 사승이 말했다. “두통이 도진 것이 아니오이까?” 행자가 펄쩍 뛰며 말했다. “아니라! 아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상처를 입으신 것은 못 보았거늘 머리가 아프다 하시니 어찌된 일이오이까?” 행자가 끙끙거리며 말했다. “큰일이다! 큰일이다! 내가 그 계집과 한창 싸우는데, 내가 창의 형세를 깨뜨리는 것을 보고 그 계집이 몸을 한 번 솟구치더니 무슨 병기인지도 모를 것으로 내 머리를 한 번 찔렀거늘, 이토록 머리의 아픔을 견디기 어려워 그만 진을 버리고 왔노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 한가한 곳에서는 늘 자랑하시며 그대의 머리는 수련을 거친 것이라 하더니, 어찌하여 이 한 방을 견디지 못하시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노라. 내 이 머리는 수련을 이룬 이래 반도와 선주를 훔쳐 먹고 노자의 금단까지 먹었으며, 천궁을 크게 어지럽힐 때에는 옥황상제가 대력귀왕과 이십팔수를 보내어 두우궁으로 압송하여 곳곳에서 참하게 하였건만, 그 신장들이 칼과 도끼와 쇠망치와 검을 쓰고 천둥으로 치고 불로 태워도, 노자가 나를 팔괘로에 넣어 사십구 일을 단련하였을 때에도 조금도 상하지 않았노라. 그런데 오늘 이 계집이 무슨 병기를 썼는지 늙은 원숭이의 머리를 상하게 하였구나!” 사승이 말했다. “손을 놓으시고 나 좀 보게 하시옵소서. 터진 것은 아니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터지지 않았다! 터지지 않았다!” 팔계가 말했다. “내가 서량국에 가서 고약을 얻어다 붙여 드리리이다.” 행자가 말했다. “부지도 않고 터지지도 않았거늘 무슨 고약을 붙인단 말이냐?”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나는 산전산후 병은 앓아 본 적이 없거늘, 형님은 도리어 이마에 종기를 만들어 내셨구려.” 사승이 말했다. “둘째 형님, 그만 놀리시옵소서. 이제 날이 저물었거늘 큰 형님은 머리를 다치시고 스승님은 또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행자가 끙끙거리며 말했다. “스승님은 괜찮으시다. 내가 들어갈 때 꿀벌로 변하여 안으로 날아들어 가니 그 계집이 꽃정자 위에 앉아 있었다. 잠시 뒤에 계집종 둘이 찐빵 두 쟁반을 받들고 왔는데, 한 쟁반은 사람 고기 소를 넣은 고기찐빵이요 한 쟁반은 팥 소를 넣은 채소찐빵이었다. 또 여자 아이 둘에게 스승님을 부축해 나오게 하여 찐빵 하나를 들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라 하고는, 또 스승님과 무슨 도반이 되겠다고 하였다. 스승님은 처음에는 그 계집과 말도 섞지 않고 찐빵도 드시지 않으시다가, 나중에 그 계집이 감언이설을 늘어놓자 어찌된 영문인지 입을 열어 말씀하시며 채식을 하겠다 하셨다. 그 계집이 채소찐빵 하나를 쪼개어 스승님께 드리니, 스승님께서는 고기찐빵 하나를 통째로 그 계집에게 건네주셨다. 계집이 ‘어찌 쪼개지 않으시나이까?’ 하니 스승님께서 ‘출가한 몸은 감히 고기를 깨뜨릴 수 없노라’ 하셨다. 그 계집이 ‘고기를 깨뜨리지 못한다면서 그저께는 어찌 자모하 가에서 물을 높이 마시고 오늘은 또 팥 소를 즐겨 드시나이까?’ 하니, 스승님께서는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시고 두 마디로 답하시기를 ‘물이 높으면 배는 급히 가고 모래가 깊으면 말은 더디 가느니라’ 하셨다. 내가 격자 위에서 듣다가 스승님께서 성정을 어지럽히실까 두려워 곧 본모습을 드러내어 몽둥이를 뽑아 들고 쳤다. 그 계집도 신통을 부려 연기와 안개를 뿜으며 의동생을 거두라 외치고는 강철 창을 휘둘러 늙은 원숭이와 함께 굴 밖으로 치고 나왔노라.” 사승이 이 말을 듣고 손가락을 물며 말했다. “그 음탕한 계집이 어디서부터 우리를 따라왔는지 우리의 지난일을 모두 알고 있사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우리는 쉬지도 못한단 말이오이까? 무슨 황혼이건 한밤중이건 상관없이 그 문 앞으로 가서 싸움을 걸고 떠들썩하게 굴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여, 스승님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합시다.” 행자가 말했다. “머리가 아파 갈 수가 없노라.” 사승이 말했다. “싸움을 걸 필요가 없사옵니다. 하나는 형님의 머리가 아프신 탓이옵고, 둘째는 우리 스승님이 참된 스님이시라 결코 빛깔과 공으로 성정을 어지럽히지 않으실 것이니, 산기슭 아래 바람을 막을 만한 곳에서 이 밤을 앉아 지내며 정신을 기른 뒤 날이 밝거든 다시 의논하옵소서.” 이에 세 형제가 백마를 단단히 매어 두고 행리를 지켜 산기슭 아래에서 묵었는데,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둔다. 말하자면, 그 여자 괴물은 사나운 마음을 내려놓고 환희로운 낯빛을 새로이 가다듬어 명령했다. “얘들아, 앞문과 뒷문을 모두 단단히 닫아라.” 그리고 두 사람을 시켜 야경을 돌며 행자를 감시하게 하고, 문 소리가 들리거든 즉시 알려 오라 하였다. 또 명령했다. “여자 아이야, 침실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고 당나라 임금님의 의동생을 모셔 오너라. 내 그분과 즐거움을 나누겠노라.” 드디어 장로를 뒤쪽에서 부축해 이끌어 내었다. 그 여자 괴물이 온갖 교태를 다 부리며 당승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흔히 이르기를 황금도 귀한 것이 못 되고 편안함이 값진 것이라 하였소. 자, 그대와 부부의 연희를 한바탕 즐기러 갑시다.” 이 장로는 이를 악물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가지 않으려 하나 그 계집이 살해할 마음을 먹을까 두려워, 하는 수 없이 벌벌 떨며 그 뒤를 따라 향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벙어리가 되고 미친 사람이 된 듯하여 어디 감히 고개를 들어 눈을 들겠는가, 방 안에 어떤 침상과 휘장이 있는지도 살펴보지 않았고 어떤 궤짝과 화장 도구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으며, 그 여자 괴물이 늘어놓는 운우의 정취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들었다. 훌륭한 스님이로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눈으로는 나쁜 빛깔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도다. 그는 이 비단 같은 고운 얼굴을 거름과 흙으로 여기고, 금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티끌처럼 보는구나. 한평생 다만 참선을 사랑하여 반 걸음도 부처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며, 어찌 옥을 아끼고 향을 사랑할 줄 알겠는가, 오직 참됨을 닦고 성정을 기를 줄만 아는구나. 저 여자 괴물은 발랄하여 봄정이 끝이 없건만, 이 장로는 죽은 듯하여 선기가 그 속에 있도다. 하나는 부드러운 옥과 따뜻한 향 같고, 다른 하나는 죽은 재와 마른 나무 같구나. 저 여자 괴물은 원앙 이불을 펴며 음욕이 진하게 일고, 이 장로는 장삼을 여미며 붉은 마음이 굳건하도다. 저쪽은 가슴을 맞대고 다리를 얽어 봉황의 짝을 이루려 하고, 이쪽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산으로 돌아가 달마를 찾으려 하도다. 여자 괴물이 옷을 벗으며 살결의 향기와 살갗의 매끄러움을 뽐내지만, 당승은 옷깃을 여미며 거친 살과 투박한 가죽을 단단히 감추었도다. 여자 괴물이 말했다. “내 베개는 남고 이불은 한가한데 어찌 잠을 자지 않으시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내 머리는 민둥이요 옷은 다르거늘 어찌 함께 모시겠노라!” 저쪽이 말했다. “나는 전조의 류취취가 되기를 원하노라.” 이쪽이 말했다. “빈승은 월사리가 아니로다.” 여자 괴물이 말했다. “나는 서시만큼 아름답고 몸매도 요염하니라.” 당승이 말했다. “월나라 임금이 그 때문에 오래도록 시체가 묻혔느니라.” 여자 괴물이 말했다. “의동생이여, 꽃 아래에서 죽는들 무슨 상관이며 귀신이 되어도 멋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지 못하시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내 진양은 지극한 보배거늘 어찌 가벼이 너희 분골두에게 주겠노라.” 그 두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흩어 놓으며 깊은 밤까지 다투었으되 당장로는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여자 괴물이 잡아당기며 놓지 않는데 이 스승님은 늙은 듯 점잖은 듯 끝내 따르지 않았다. 한참을 늘어지게 끌다가 밤중이 지나자 그 괴물이 드디어 노하여 외쳤다. “얘들아, 밧줄을 가져오너라!” 가련하게도 마음에 사랑하는 사람을 밧줄 한 가닥으로 원숭이처럼 꽁꽁 묶어 방의 처마 밑으로 끌어다 버리고는, 은등을 불어 끄고 저마다 잠자리로 돌아갔다. 밤새 아무 일도 없이 지나고, 어느덧 닭이 세 번 울었다. 그 산기슭 아래에서 손대성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 머리가 한동안 아프더니 이제는 아프지도 저리지도 않고 다만 좀 가렵구나.”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가렵거든 그 계집에게 한 번 더 찔러 보라 하시겠나이까?” 행자가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그만둬! 그만둬! 그만둬!” 팔계가 또 웃으며 말했다. “그만둬, 그만둬, 그만둬! 우리 스승님은 이번 밤에 도리어 잘들 놀았겠구려!” 사승이 말했다. “말다툼은 그만 두시옵소서. 날이 밝았으니 어서 일찍 요괴를 잡으러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너는 여기서 말이나 지키고 몸을 움직이지 마라. 저팔계는 나를 따라오너라.” 그 얼간이 정신을 털어 내고 검은 비단 장삼을 단단히 여미어 행자를 따라 각각 병기를 지니고 산비탈로 뛰어올라 곧장 돌병풍 아래에 이르렀다. 행자가 말했다. “너는 우선 멈춰 서 있어라. 저 괴물이 밤사이 스승님을 해치지나 않았는지 두려우니, 먼저 내가 들어가서 알아보고 오겠다. 만약 스승님이 꾐에 빠져 원양을 잃으셨다면 참으로 덕행을 크게 잃은 것이니 그때는 우리 모두 흩어져 제 갈 길을 가는 수밖에 없고, 성정을 어지럽히지 않으시고 선심이 흔들리지 않으셨다면 힘을 다해 맞서 요괴를 때려 죽이고 스승님을 구해 서쪽으로 가면 되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은 어찌 그리 어리석고 둔하시외다! 속담에 마른 고기를 고양이의 베개로 줄 수 있겠느냐 하였거늘,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렇지 않다 해도 한 웅큼은 긁히고 말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함부로 의심하며 떠들지 말고, 내 다녀올 터이니 기다려라.” 훌륭한 대성이 돌병풍을 돌아 팔계와 헤어지고 몸을 흔들어 다시 꿀벌로 변하여 문 안으로 날아드니, 문 안에 계집종 둘이 북채와 방울을 베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꽃정자로 가 살펴보니 그 요정은 밤새 시달렸는지 모두 지쳐서 하나같이 날이 샌 줄도 모르고 아직 자고 있었다. 행자가 뒤쪽으로 날아가니 희미하게 삼장법사가 신음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홀연 고개를 들어 보니 그 복도 아래에 스승님이 사지를 한데 묶인 채 묶여 있었다. 행자가 살며시 삼장법사의 머리 위에 내려앉아 불렀다. “스승님.” 삼장법사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말했다. “오공이 왔느냐? 어서 내 목숨을 구하여라!” 행자가 말했다. “어젯밤 좋은 일은 어떠하셨나이까?” 삼장법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나는 죽을지언정 그런 짓은 하지 않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어제 보니 그 계집에게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뜻이 있더니, 어찌하여 오늘 그대를 이토록 괴롭히느냐?”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 계집이 나를 밤새도록 늘어지게 달라붙어 괴롭혔으나 나는 옷끈도 풀지 않았고 몸도 침상에 닿지 않았노라. 내가 따르지 않으려 하자 그제야 나를 여기에 묶어 두었느니라. 부디 나를 구하여 경을 취하러 가게 하여다오!” 그 사제가 바야흐로 문답을 주고받는데, 그만 그 요정이 잠에서 깨어났다. 요정이 비록 마음은 사나우나 오히려 미련을 두고 떨치지 못하는 정이 있어, 잠결에 몸을 뒤척이다가 “경을 취하러 가게 하여다오” 한마디를 듣고는 침상에서 굴러 내려와 사나운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좋은 부부를 하지 않고 무슨 경을 취하러 간단 말이냐!” 행자가 당황하여 스승님을 버려 두고 급히 날개를 펴 밖으로 날아가 본모습을 드러내고 “팔계야” 하고 불렀다. 그 얼간이 돌병풍을 돌아 나오며 물었다. “그 일이 이루어졌소이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되었다! 아니 되었다! 스승님이 그 계집의 농락을 받으시되 따르지 않으시니 그 계집이 노하여 스승님을 묶어 두었거늘, 막 나에게 지난 사정을 하소연하고 있는데 그 괴물이 잠에서 깨어나는 바람에 내가 놀라 나왔노라.”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디이까?” 행자가 말했다. “옷끈도 풀지 않았고 몸도 침상에 닿지 않았다 하시더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그래도 참된 스님이시오! 우리가 가서 구해 냅시다!” 그 얼간이 거칠게 사정을 따질 겨를도 없이 쇠스랑을 치켜들고 그 돌문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한 번 내리치니, 와르릉 소리를 내며 몇 조각으로 부서졌다. 놀란 나머지 북채와 방울을 베고 자던 계집종 몇이 이층 문 밖으로 달려나가 소리쳤다. “문을 여시오! 앞문이 어제 그 두 못생긴 사내에게 부서졌나이다!” 그 여자 괴물이 막 방문을 나서는데, 계집종 넷이나 다섯이 달려들어 아뢰었다. “할머니, 어제 그 두 못생긴 사내가 또 와서 앞문을 부수었나이다.” 그 괴물이 이 말을 듣고 즉시 명령했다. “얘들아! 어서 물을 데워 세수하고 단장하여라!” 그리고 명령했다. “의동생을 밧줄째 뒷방에 옮겨 간수하라. 내가 나가서 그들을 치겠노라!” 그 요정이 밖으로 나와 세 갈래 창을 치켜들고 욕하며 말했다. “건방진 원숭이와 멧돼지야! 철없는 놈들! 감히 내 문을 부수다니!” 팔계가 욕하며 말했다. “음탕하고 천한 계집아! 네가 우리 스승님을 가두었거늘 도리어 뻔뻔하게 말이 많구나! 우리 스승님은 네가 꾀어다 남편으로 삼으려 한 분이시니, 어서 모셔 내보내면 용서하리라! 감히 아니라는 말 반 마디라도 꺼낸다면 늙은 돼지의 스랑질 한바탕에 산까지 무너뜨려 버리리라!” 그 요정이 사정을 따질 새 없이 몸을 떨쳐 예전처럼 법술을 부려 코와 입에서 연기와 불을 뿜으며 강철 창을 들어 팔계를 찔렀다. 팔계가 몸을 비켜 피하며 스랑을 휘둘러 찍었고, 손대성이 여의봉을 들어 힘을 보탰다. 그 괴물이 또 신통을 부려서 손이 몇 개인지 알 수 없이 좌우를 막아 내며 서너 다섯 합을 겨루더니, 무슨 병기인지 팔계의 입술 위를 또 한 번 찔렀다. 그 얼간이 스랑을 끌고 입을 감싸 쥔 채 아픔을 안고 달아났다. 행자도 그 계집이 조금 두려워 헛되이 몽둥이 한 번 던지고는 진을 버리고 물러났다. 그 요정이 승리하여 돌아가 계집종들에게 돌을 옮겨 앞문을 단단히 쌓아 막게 하였는데,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둔다. 말하자면, 사승이 산기슭 앞에서 말을 풀어 먹이고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돼지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홀연 고개를 들어 보니 팔계가 입을 감싸 쥐고 끙끙거리며 오고 있었다. 사승이 말했다. “무슨 일이오이까?” 그 얼간이 끙끙거리며 말했다. “큰일이다! 큰일이다! 아파, 아파, 아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행자도 앞에 이르러 웃으며 말했다. “이 얼간아! 어제는 내가 이마에 종기가 났다고 저주하더니, 오늘은 도리어 입술이 부은 역질을 만들어 내었구나!” 팔계가 끙끙거리며 말했다. “참을 수 없다, 참을 수 없다! 몹시 아프구나! 무섭다, 무섭다!” 세 사람이 난처해하고 있는데, 문득 한 늙은 할멈이 왼손에 푸른 대나무 광주리를 들고 남쪽 산길에서 나물을 캐고 오는 것이 보였다. 사승이 말했다. “큰 형님, 저 할멈이 가까이 오시니 내가 가서 물어보아이다. 저것이 무슨 요정이고 무슨 병기이기에 이토록 사람을 상하게 하는지 알아보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너는 멈춰라. 늙은 원숭이가 가서 물어보고 오마.” 행자가 급히 눈을 부릅뜨고 보니 그 할멈의 머리 위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덮여 있고 좌우로 향기로운 안개가 몸을 감싸고 있었다. 행자가 알아보고는 즉시 외쳤다. “형제들아, 어서 와서 머리를 조아리지 못할까! 저 할멈이 바로 보살이시니라.” 당황한 저팔계가 아픔을 참고 절을 올리고 사승은 말을 끌고 몸을 굽히며 손대성이 두 손을 모으고 꿇어앉아 불렀다. “나무 대자대비하시고 고통을 구하시는 영감이 뛰어나신 관세음보살이시여.” 그 보살이 그들이 원광을 알아봄을 보시고 곧 상서로운 구름을 밟아 허공으로 올라가 참모습을 드러내니, 이는 물고기 광주리를 든 모습이었다. 행자가 공중까지 쫓아가 절하며 아뢰었다. “보살님, 제자가 영접을 소홀히 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희가 스승님을 구하려 애쓰다가 보살님께서 내려오신 줄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 마군을 만나 수습하기 어렵사오니 천만 번 부디 저희를 건져 주시옵소서!” 보살이 말했다. “이 요정은 몹시 사나우니라. 그 세 갈래 창은 본디 난 두 개의 집게발이요, 사람을 찔러 아프게 하는 것은 꼬리 위의 갈고리 하나이니 이름하여 도마독이라 하느니라. 본래 몸은 전갈정이니라. 앞서 뇌음사에서 부처가 경을 설하는 것을 듣는데 여래가 보고 그만 손으로 그놈을 밀쳐 냈거늘, 그놈이 갈고리를 돌려 여래의 왼손 가운뎃손가락을 한 번 찔렀더니 여래도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즉시 금강에게 그놈을 잡으라 하였으나 그놈은 여기에 있느니라. 당승을 구하려거든 다른 분께 청을 드려야 하리라. 나 또한 그놈에게 다가갈 수 없느니라.” 행자가 다시 절하며 말했다. “보살님께서 가르쳐 주시옵소서. 다른 어느 분께 청하러 가는 것이 좋사오리이까? 제자가 즉시 가서 모셔 오겠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동천문 안 광명궁으로 가서 묘일성관에게 청을 드리면 능히 항복받을 것이니라.” 말을 마치고는 곧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하여 곧장 남해로 돌아갔다. 손대성이 구름을 내려놓고 저팔계와 사승에게 말했다. “형제들아, 염려 마라. 스승님께 구원의 별이 나타났노라.” 사승이 말했다. “어디에 있는 구원의 별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방금 보살님께서 가르쳐 주시어 묘일성관께 청하러 가라 하셨으니, 늙은 원숭이가 다녀오마.” 팔계가 입을 감싸 쥐고 끙끙거리며 말했다. “형님, 그 성관께 아픔을 멎게 하는 약이나 좀 얻어 오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약은 쓸 것 없노라. 어제처럼 하룻밤 아프고 나면 저절로 나으리라.” 사승이 말했다. “군말은 그만 하시고 어서 빨리 가시옵소서.” 훌륭한 행자가 급히 근두운을 타고 잠깐 사이에 동천문 밖에 이르렀다. 홀연 증장천왕이 앞에서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성은 어디를 가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당승을 모시고 서쪽으로 경을 취하러 가다가 길에서 마장이 몸에 얽혔거늘, 광명궁으로 가서 묘일성관을 뵙고 오려 하오.” 홀연 또 도장신등 사대원수가 나타나 어디를 가느냐 물으니 행자가 말했다. “묘일성관을 찾아가 요괴를 항복받고 스승님을 구하려 하오.” 사대원수가 말했다. “성관께서는 오늘 아침 옥황상제의 칙지를 받드시고 관성대로 순찰하러 가셨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정말 그러한 말씀이오이까?” 신천군이 말했다. “소장들이 성관과 함께 두우궁을 내려왔거늘 어찌 감히 거짓을 말하겠나이까?” 도천군이 말했다. “이제 이미 오래되었으니 혹 돌아오셨을지도 모르나이다. 대성께서는 먼저 광명궁으로 가시고, 돌아오시지 않았거든 관성대로 가 보시면 되나이다.” 대성이 기뻐하며 그들과 작별하고 광명궁 문 앞에 이르니 과연 아무도 없어, 몸을 돌려 막 가려는데 저쪽에 병사 한 줄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 성관이 오고 있었다. 그 성관은 오히려 임금을 배알하는 조복 차림에 온몸에 금실을 두르고 있었으니, 보라,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관에 꽂은 오악이 금빛을 뿜고, 홀에 잡은 산하가 옥빛을 띠는구나. 도포에 걸린 칠성이 구름 속에 아스라이 빛나고, 허리에 두른 팔극의 보배 고리가 환하도다. 쟁그랑거리는 패옥 소리는 운을 두드리는 듯하고, 빠르게 스치는 바람 소리는 방울을 흔드는 듯하구나. 비취 깃 부채를 펴고 묘수가 나타나니, 하늘의 향기가 문 뜰에 가득 퍼지는구나. 앞서 가던 병사들이 행자가 광명궁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돌려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손대성이 여기 계시나이다.” 그 성관이 구름과 안개를 거두고 조복을 가지런히 여미며 의장 행렬을 멈추고 좌우를 갈라 놓고는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성은 어찌하여 오셨느뇨?” 행자가 말했다. “특별히 찾아와 스승님의 한 재난을 구해 주시기를 청하옵나이다.” 성관이 말했다. “무슨 재난이며 어느 지방이뇨?” 행자가 말했다. “서량여국 독적산 비파동이옵니다.” 성관이 말했다. “그 산과 굴에 무슨 요괴가 있기에 이 몸을 부르시느뇨?” 행자가 말했다. “관음보살께서 방금 모습을 드러내시어 전갈정이라 하시며, 선생께서만 능히 다스릴 수 있다고 특별히 천거하셨기에 이리로 청하러 왔나이다.” 성관이 말했다. “본래 옥황상제께 회주하려 하였거니와 대성께서 오셨고 또 보살의 천거까지 있으니 일이 늦어질까 염려되옵니다. 이 몸은 감히 차를 권하며 맞이할 겨를이 없으니, 우선 그대와 함께 가서 요괴를 항복받고 돌아와 회주하리다.” 대성이 이 말을 듣고 즉시 동천문을 나와 곧장 서량여국으로 향했다. 독적산이 멀지 않음을 바라보며 행자가 가리켜 말했다. “이 산이 바로 그러하옵니다.” 성관이 구름을 내려놓고 행자와 함께 돌병풍 앞 산기슭 아래에 이르렀다. 사승이 이를 보고 말했다. “둘째 형님, 일어나시옵소서. 큰 형님께서 성관을 모셔 오셨나이다.” 그 얼간이는 아직 입을 감싼 채 말했다. “용서하옵소서, 용서하옵소서! 몸에 병이 있어 예를 갖출 수 없사옵니다.” 성관이 말했다. “그대는 수행하는 몸이거늘 무슨 병이 있단 말이뇨?” 팔계가 말했다. “아침에 그 요정과 싸우다가 입술 위를 한 번 찔렸거늘, 지금까지 아프옵니다.” 성관이 말했다. “이리 올라오시오. 내 그대를 치료해 주리다.” 그 얼간이 그제야 손을 놓고 입으로 끙끙거리며 말했다. “천만 번 고쳐 주시옵소서! 나으면 반드시 사례하겠나이다.” 그 성관이 손으로 입술 위를 한 번 쓰다듬고 입김을 한 번 불어 넣으니 곧 아프지 않았다. 그 얼간이 기뻐하며 절을 올리고 말했다. “묘하외다! 묘하외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성관께 번거로우시더라도 내 머리도 한번 만져 주시옵소서.” 성관이 말했다. “그대는 독을 입지 않았거늘 어찌 만지라 하느뇨?” 행자가 말했다. “어제도 입었사옵니다만 하룻밤 지나고 나서야 아프지 않았고, 지금도 아직 좀 저리고 가렵사옵니다. 흐린 날이 되면 도질까 두렵사오니 부디 고쳐 주시옵소서.” 성관이 참으로 그 머리도 한 번 쓰다듬고 입김을 불어 넣으니, 남은 독이 풀려 저리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았다. 팔계가 이를 갈며 말했다. “형님, 가서 그 음탕한 계집을 칩시다!” 성관이 말했다. “옳도다, 옳도다. 그대 둘이 그 계집을 불러내거든 내가 항복받으리라.” 행자와 팔계가 산비탈로 뛰어올라 다시 돌병풍 뒤에 이르렀다. 그 얼간이 입으로 마구 욕을 퍼부으며 손을 갈고리처럼 휘저어 쇠스랑을 한바탕 휘둘러 굴 밖에 쌓아 둔 돌덩이를 헤집어 젖히고는 첫째 문까지 쳐들어가, 또 스랑을 한 번 휘둘러 둘째 문을 산산이 부수었다. 당황한 그 문 안의 작은 요괴들이 날아가듯 달려가 아뢰었다. “할머니! 그 두 못생긴 사내가 또 둘째 문까지 부수었나이다!” 그 괴물은 막 당승을 풀어 주고 채소 국수와 밥을 내어 드시라 하던 참이었는데, 둘째 문이 부서졌다는 소리를 듣고는 즉시 꽃정자에서 뛰어나와 창을 휘둘러 팔계를 찔렀다. 팔계가 쇠스랑으로 맞받아 막고 행자가 곁에서 또 여의봉을 휘둘러 쳤다. 그 괴물이 곁까지 달려들어 독수를 쓰려 하자 두 사람이 그 수법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그 괴물이 돌병풍 뒤까지 쫓아오자 행자가 외쳤다. “묘수는 어디 계시나이까?” 그때 그 성관이 산비탈 위에 서서 본모습을 드러내니, 본래 쌍관을 쓴 큰 수탉 한 마리였다. 머리를 쳐들고 있는 모습이 육칠 척이나 되었는데, 요정을 향해 한 번 울자 그 괴물이 즉시 본모습을 드러내니 비파만 한 크기의 전갈정이었다. 성관이 다시 한 번 울자 그 괴물은 온몸이 노곤해져 산기슭 앞에 쓰러져 죽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꽃 벼슬에 수놓은 목은 술처럼 둥글고, 발톱은 단단하며 뒷발톱은 길고 눈은 성난 듯 부릅뜬 눈이로다. 뛰어오르는 위엄이 다섯 덕을 온전히 갖추었고, 우뚝 솟은 장대한 기세는 세 번 우는 소리에 부럽구나. 어찌 범속한 새가 초가집에서 우는 것에 비하리오, 본래 하늘의 별이요 거룩한 이름을 드러낸 것이로다. 독전갈이 헛되이 인도의 수행을 닦았으나, 본바탕으로 돌아가 참모습을 드러내는구나.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한 발로 그 괴물의 가슴과 등을 밟고 말했다. “업축아, 이번에도 도마독을 쓸 수 있느냐!” 그 괴물은 꿈쩍도 하지 못하고 그 얼간이 휘두른 스랑질 한바탕에 진흙처럼 뭉개졌다. 그 성관이 다시 금빛을 모아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 행자와 팔계와 사승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사례하며 말했다. “폐를 끼쳤나이다, 폐를 끼쳤나이다! 다른 날 궁으로 찾아뵙고 사례하겠나이다.” 세 사람이 사례를 마치고 나서야 행리와 말을 거두어 모두 굴 안으로 들어갔는데, 크고 작은 계집종들이 양쪽에서 꿇어앉아 절하며 말했다. “어르신, 저희는 요사한 무리가 아니옵니다. 모두 서량여국의 여자들인데 앞서 이 요정에게 끌려 왔사옵니다. 스승님께서는 뒤쪽 향방에 앉아 울고 계시나이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요기라고는 보이지 않아, 뒤쪽으로 들어가 불렀다. “스승님!” 그 삼장법사가 모두 함께 온 것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어진 제자들아, 너희만 고생하였구나! 그 계집은 어찌 되었느냐?” 팔계가 말했다. “그놈은 본래 큰 암전갈이었사옵니다. 다행히 관음보살의 가르침으로 큰 형님이 천궁에 가서 묘일성관을 모셔 내려오시어 그놈을 항복받으셨나이다. 늙은 돼지가 그놈을 진흙으로 찧어 놓은 뒤에야 감히 깊이 들어와 스승님의 얼굴을 뵈옵나이다.” 당승이 사례를 다할 길이 없어 하였다. 또 채소 쌀과 채소 국수를 찾아 음식을 마련하여 한 끼를 먹고는, 그 끌려 왔던 여자들을 산 아래로 내려보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일러 주었다. 그리고 불을 한 바탕 지펴 몇 칸 되지 않는 방과 집을 모조리 태워 버린 뒤, 당승을 말에 올리고 큰길을 찾아 서쪽으로 나아갔다. 바로 그러하였다. 인연의 먼지를 끊고 색상에서 벗어나며, 금바다를 밀어 말리고 선심을 깨닫는구나. 결국 몇 해가 지나야 참됨을 이루는지를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6회 신광주초구(神狂誅草寇) · 도매방심원(道昧放心猿) 시에 이르기를, “영대에 물건이 없음을 일러 맑다 하니, 고요하고 고요하여 온통 한 생각조차 일지 않도다. 원숭이와 말을 튼튼히 거두어 방탕하게 놓아두지 말며, 정신을 삼가고 조심하여 뽐내지 말지어다. 여섯 도적을 없애고 삼승을 깨닫고 나면, 온갖 인연이 모두 끊어져 저절로 분명해지리라. 색의 사특함이 영영 사라져 참된 경계를 뛰어넘고, 앉은 채로 서방의 극락성을 누리리라.” 말하자면, 당삼장은 못을 깨물고 쇠를 씹듯 굳게 버티어, 죽음을 무릅쓰고서야 하나의 무너지지 않는 몸을 지켜 내었다. 다행히 행자 일행이 전갈정령을 때려 죽여 준 덕분에 비파동에서 구출되었던 것이다. 가는 길에 아무런 일도 없다가, 어느덧 주명 곧 여름철이 되었는데,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훈훈한 바람이 이따금 들난초 향기를 실어 보내고, 비로 씻긴 끝에 막 갠 새 대나무가 서늘하구나. 쑥잎은 산에 가득하건만 캐러 오는 이 없고, 부들꽃은 개울에 넘쳐 저마다 향기를 다투누나. 석류꽃은 요염하여 벌들이 기뻐 어슬렁거리고, 시냇가 버들은 그늘이 짙어 되새들이 미친 듯 날아다니는구나. 머나먼 길에서야 어찌 단오 찹쌀밥을 싸 가지고 갈 수 있으랴마는, 용선은 마땅히 멱라강을 조문해야 하리라.” 사부와 제자들은 단오의 경치를 즐기며 걸어, 중천의 명절을 한가로이 보내고 있었는데, 홀연 또 한 떼기 높은 산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장로는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는 고개를 돌려 불렀다. “오공아, 앞에 산이 있으니 또 요괴가 생겨날까 두렵구나. 모름지기 삼가고 조심하여라.” 행자 일행이 말했다. “스승님, 염려 마옵소서. 저희는 목숨을 바쳐 정성을 다하고 있사오니 무슨 요괴를 두려워하리이까!” 장로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채찍을 더하여 준마를 재촉하고 고삐를 늦추어 교룡처럼 내달리게 하였다. 잠시 뒤 산비탈에 올라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꼭대기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푸른 구름에 닿아 있고, 돌벽의 가시덤불에는 들넝쿨이 걸려 있구나. 만 길이나 우뚝 솟았고, 천 겹으로 깎아지른 듯 매달려 있도다.” “만 길 높이 우뚝한 봉우리는 험준하고, 천 겹 깎아지른 골짜기와 벼랑은 깊구나. 푸른 이끼와 비취빛 이끼가 그늘진 바위에 깔리고, 늙은 측백과 높은 회화나무가 큰 숲을 이루었도다. 숲 깊은 곳에서 그윽한 새소리가 들리니, 교묘한 울음 참으로 읊을 만하구나. 개울 안의 물은 옥을 쏟는 듯 흐르고, 길가에 떨어진 꽃은 금을 쌓아 둔 듯하구나. 산세가 험악하여 걸어갈 수 없으니, 열 걸음에 반 걸음의 평지조차 없도다. 여우와 사슴은 짝을 지어 마주치고, 흰 사슴과 검은 원숭이는 쌍을 이루어 맞이하는구나. 홀연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학의 울음은 귀를 울려 하늘 궁전까지 꿰뚫는구나. 누런 매실과 붉은 살구는 먹음직하고, 들풀과 한가로운 꽃들은 그 이름조차 알 수 없구나.” 네 사람이 산으로 들어가 한참이나 천천히 걸어 산마루를 넘어 서쪽 비탈을 내려가니, 그곳은 한바탕 평평하고 훤한 들판이었다. 저팔계는 기운을 뽐내며 사화상에게 짐을 지게 하고, 자기는 두 손으로 갈고리를 치켜든 채 앞으로 나서서 말을 몰았다. 그러나 그 말은 조금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 멍청이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아무리 몰아도 그저 천천히 걸을 뿐 조금도 속도를 내지 않았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네가 말을 몰아서 무엇 하겠느냐? 그냥 천천히 가도록 내버려 두렴.” 팔계가 말했다. “날이 저물어 가는데, 산에 오른 뒤로 온종일 걸었더니 배가 고프구나. 모두 좀 서둘러 움직여 인가를 찾아 공양을 좀 얻어먹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빨리 걷게 해 주마.” 금고봉을 한번 흔들며 크게 한번 호령하자, 그 말은 고삐가 풀린 듯 날아가는 화살처럼 평탄한 길을 따라 앞으로 내달렸다. 말이 팔계는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행자만 두려워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행자는 오백 년 전에 옥황상제로부터 대라천 어마감에서 말을 기르는 벼슬을 받았으니, 그 벼슬 이름이 필마온이었다. 그러므로 그 일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와, 무릇 말이라는 것은 모두 원숭이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그 장로는 고삐를 당겨도 말을 멈출 수가 없어, 안장다리만 꽉 부여잡은 채 말이 줄곧 고삐를 풀고 내달리도록 내버려 두었는데, 이십 리쯤 트인 밭이 나온 뒤에야 비로소 걸음을 늦추어 갔다. 막 가고 있는데, 홀연 징을 한번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길 양쪽에서 삼십여 명이 불쑥 나타나, 저마다 창과 칼과 몽둥이와 봉을 들고 길목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중 놈아! 어디로 가느냐!” 당승은 깜짝 놀라 부들부들 떨다가 앉아 있지도 못하고 말에서 떨어져, 길가의 풀숲 속에 웅크리고 앉아 계속 외쳤다. “대왕이시여, 목숨만 살려 주옵소서! 대왕이시여, 목숨만 살려 주옵소서!” 우두머리인 두 사내가 말했다. “너는 때리지 않을 터이니, 다만 노잣돈을 남기고 가거라.” 장로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그들이 한 무리의 강도임을 알았으나,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들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하나는 푸른 얼굴에 드러난 이빨이 태성을 능가하고, 하나는 튀어나온 눈과 둥근 눈이 상문을 능가하는구나. 귀밑의 붉은 털은 불꽃이 날리는 듯하고, 턱 아래 누런 수염은 바늘을 꽂아 놓은 듯하구나. 그 두 놈은 머리에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꽃무늬 두건을 쓰고, 허리에는 담비 가죽에 수를 놓은 치마를 둘렀으며, 하나는 손에 이리 이빨 몽둥이를 쥐었고, 하나는 어깨에 울퉁불퉁한 가시 등덩굴을 가로로 메었구나. 참으로 파산의 호랑이에 못지않고, 진실로 물에서 나온 용과 같구나. 삼장은 그들이 이토록 흉악한 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일어나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대왕이시여, 빈승은 동쪽 당나라 임금께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보내신 몸이옵니다. 장안을 떠나온 지 세월이 깊고 오래되어, 노잣돈이 조금 있었더라도 이미 다 써 버렸나이다.” “부디 대왕께서 너그럽게 봐주시어, 빈승을 지나가게만 하여 주옵소서!” 그 두 도적이 무리를 거느리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호랑이 같은 마음을 품고 중요한 길목을 끊어 놓고 오직 재물만을 요구하거늘, 무슨 봐준다는 말이냐! 네게 참으로 재물이 없다면, 어서 옷을 벗고 백마를 남겨 놓아라. 그러면 너를 지나가게 해 주겠다!” 삼장이 말했다. “아미타불! 빈승의 이 옷은 동네 동쪽 집에서 베를 얻고 서쪽 집에서 바늘을 얻어, 조각조각 시주받아 지어 낸 것이옵니다. 그대들이 이것을 벗겨 간다면 저를 해쳐 죽이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다만 이승에서는 호걸 노릇을 하여도, 저승에서는 짐승으로 태어날 것이옵니다!” 그 도적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큰 몽둥이를 빼어 들고 앞으로 나서며 곧바로 때리려 하였다. 이 장로는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 몰래 이렇게 생각했다. “가련하구나! 너는 네 몽둥이만 자랑하거니와, 내 제자의 몽둥이는 아직 모르고 있구나!” 그 도적은 무슨 변명도 들으려 하지 않고 몽둥이를 치켜들고 사정없이 내리쳤다. 장로는 평생 거짓말을 할 줄 몰랐으나, 이런 급한 곤경에 부닥치자 어쩔 수 없이 거짓말 한마디를 하였다. “두 분 대왕이시여, 우선 손대지 마옵소서. 나에게 어린 제자가 하나 있는데 뒤따라 곧 올 것이옵니다. 그의 몸에 은 몇 냥이 있사오니, 그것을 그대들에게 드리리이다.” 그 도적이 말했다. “이 중은 손해 보는 것도 못 견디는군. 우선 묶어 놓아라.” 무리의 졸개들이 일제히 손을 대어, 한 가닥 밧줄로 묶어 나무 위에 높이 매달아 놓았다. 말하자면, 세 명의 사고뭉치가 뒤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팔계가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가시는 걸음이 참 빠르구나. 어디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까?” 홀연 장로가 나무 위에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또 말했다. “스승님 좀 보게. 기다리는 것은 그렇다 치고, 이런 마음씨까지 있단 말인가. 나무에 기어 올라가 덩굴을 잡고 그네를 타며 노는구먼!” 행자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이 멍청아,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스승님께서 저기 매달려 계신 것이 아니냐? 너희 둘은 천천히 오너라. 내가 가서 좀 보마.”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급히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자세히 살펴보니 한 무리의 강도임을 알아차리고, 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횡재로다! 횡재로다! 장사가 문 앞으로 찾아왔구나!” 곧 걸음을 돌려 몸을 한번 흔들어 변신하니, 깨끗하고 말쑥한 어린 중으로 변했는데, 검은 승복 한 벌을 걸치고 나이는 겨우 십육 세쯤 되어 보였으며, 어깨에는 푸른 헝겊 보따리를 메고 있었다. 걸음을 크게 내디뎌 앞으로 나아가며 불렀다. “스승님, 이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이들은 모두 어떤 흉악한 자들이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어서 나를 구해 주지 못할망정, 무얼 묻고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무슨 짓을 하는 자들이기에 그러시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이 길을 막은 무리가 나를 가로막고 통행세를 요구하였단다. 몸에 지닌 것이 없다고 하니 나를 여기 매달아 놓고, 다만 네가 오기만을 기다려 의논하려 하느니라. 그리되지 않으면 이 말이나 그들에게 주어 버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참으로 무기력하옵니다. 천하에 중이야 많지만 스승님처럼 살이 헐렁한 이는 드물지요. 당 태종께서 스승님을 서천으로 보내 부처님을 뵙게 하셨거늘, 누가 이 용마를 남에게 주라고 하였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이렇게 매달려 맞기까지 하며 요구하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그자가 나를 몹시 때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너를 불어 놓았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참으로 어이가 없사옵니다. 어찌하여 저를 불어 놓으셨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네게 노잣돈이 조금 있다고 하고, 우선 나를 때리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한때 급한 어려움을 면하려는 말이었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스승님께서 높이 사주시니, 바로 이렇게 불어 놓으시옵소서. 한 달에 일흔여든 번쯤 불어 놓아 주신다면, 이 늙은 손오공은 장사가 더욱 잘 될 것이옵니다.” 그 무리의 도적은 행자가 스승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더니 대열을 펼쳐 에워싸며 올라와 말했다. “어린 중놈아, 네 스승이 네 허리춤에 노잣돈이 있다고 하였거든 어서 내놓아라. 그러면 너희 목숨을 살려 주겠다! ‘아니’라는 말을 반 마디라도 하면, 너희 잔목숨을 모조리 거두리라!” 행자가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러분 관장님, 떠들지 마옵소서. 노잣돈이 이 보따리 속에 좀 있사오나 많지는 않사옵니다. 말굽 금이 스무 덩이쯤, 가루 은 이삼십 덩이쯤 있고, 부스러진 것은 세어 보지도 못했나이다. 가지려거든 보따리째 가져가시되, 절대로 우리 스승님은 때리지 마옵소서. 옛 글에 이르기를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라 하였으니, 이는 말단의 일이옵니다. 저희 출가인은 스스로 시주받을 곳이 있사옵니다. 중에게 공양하는 어른을 만나면 시주돈도 생기고 옷도 생기려니와, 얼마나 쓴다 하시겠나이까? 다만 스승님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러면 저도 함께 바치겠나이다.” 그 무리의 도적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이 늙은 중은 인색한데, 이 어린 중은 도리어 시원스럽구나.” 그리고는 명령했다. “내려놓아라.” 그 장로는 목숨을 건지고 곧바로 말에 뛰어올라, 행자는 돌보지도 않은 채 채찍을 움켜쥐고 줄곧 왔던 길로 달려 되돌아갔다. 행자가 급히 외쳤다. “길을 잘못 가십니다!” 보따리를 들고 곧 뒤쫓아 가려 하자, 그 무리의 도적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어디로 가느냐? 노잣돈을 남겨 놓아라. 그래야 형벌을 면하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말을 하자면, 노잣돈은 모름지기 세 갈래로 나누어야 하오.” 그 도적 두목이 말했다. “이 어린 중이 몹시 약삭빠르구나. 스승을 속여 제 몫을 좀 챙기려는 게로다. 좋아, 내놓아 보아라. 많으면 너에게도 몇 푼 떼어 주어 남몰래 과일이나 사 먹게 하겠다.” 행자가 말했다. “형님들,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오. 나에게 무슨 노잣돈이 있단 말이오? 그대들 두 사람이 남의 금은을 약탈하였으니, 반드시 내게도 좀 나누어 주시오.” 그 도적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욕하며 말했다. “이 중이 죽고 사는 줄도 모르는구나! 네가 내게 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내게 달라 하느냐! 움직이지 마라! 얻어맞을 줄 알아라!” 하고 한 가닥의 가시 등덩굴 몽둥이를 휘둘러 행자의 민 머리를 겨냥하여 일고여덟 대를 내리쳤다. 행자는 못 느낀 체하며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말했다. “형님들, 이런 식으로 때린다면 내년 봄이 다 오도록 때린대도 참말로 여기지 않겠소.” 그 도적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 중의 머리가 참 단단하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천만에요, 칭찬이 과하시오. 그저 그런 대로 견딜 만할 뿐이오.” 그 도적이야 무슨 분별을 들으랴, 두세 명이 일제히 마구 때렸다. 행자가 말했다. “여러분, 노여움을 푸시오. 제가 꺼내 드리겠소.”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귓속을 한번 더듬어 수놓은 바늘 하나를 뽑아내며 말했다. “여러분, 저 출가인은 참으로 노잣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소. 다만 이 바늘을 드리겠소.” 그 도적이 말했다. “재수 없는 날이로구나! 부유한 중은 놓아 보내고 이 가난한 대머리 나귀를 잡았으니! 네가 재주가 좋다면 재봉이라도 하겠느냐? 내가 바늘을 해서 무엇 하겠느냐?” 행자는 바늘을 마다한다는 말을 듣고 손가락에 집어 쥐고 한번 흔들어 보이니, 사발만 한 굵기의 몽둥이 한 자루로 변하였다. 그 도적이 겁을 내며 말했다. “이 중은 생김새는 작더니 도술을 부릴 줄 아는구나.” 행자가 몽둥이를 땅에 꽂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들 수 있다면 드리겠소.” 두 도적이 앞으로 나서서 빼앗으려 하였으나, 가련하게도 잠자리가 석주를 흔드는 격이니 반 푼만큼도 움직여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 몽둥이는 본래 여의금고봉으로서 저울로 달아 보면 일만 삼천오백 근의 무게가 나가는 것인데, 그 무리의 도적이 어찌 알았으랴! 대성이 앞으로 걸어 나가 가볍게 들어 올리고는 구렁이가 몸을 뒤척이는 자세로 걸음을 비틀며, 강도들을 가리켜 말했다. “너희는 모두 운수가 사나워 이 늙은 손오공을 만났느니라!” 그 도적이 앞으로 달려들어 또 쉰예순 대를 때렸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너도 때리느라 손이 피곤하구나. 자, 이 늙은 손오공이 한 방 때리게 해 보아라. 그러나 참말로 여기지는 마라.” 보라, 그가 몽둥이를 펼쳐 한번 흔드니 우물 난간만 한 굵기에 일고여덟 장의 길이가 되었는데, 휘익 한 방으로 하나를 땅에 거꾸러뜨리니 입술을 흙에 묻은 채 다시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다른 하나가 입을 열어 욕하며 말했다. “이 대머리 놈이 몹시 무례하구나! 노잣돈은 없거니와 도리어 내 사람 하나를 상하게 하였느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천천히! 내가 하나씩 때려 주어, 아주 뿌리를 끊어 주겠다!” 휘익 하고 또 한 방으로 두 번째 놈을 때려 죽이니, 놀란 나머지 졸개들이 창과 몽둥이를 내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목숨을 구해 달아났다. 말하자면, 당승은 말을 타고 동쪽을 향해 줄곧 달리고 있었다. 팔계와 사승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스승님, 어디로 가십니까? 길을 잘못 드셨나이다.” 장로가 말을 세우며 말했다. “제자들아, 어서 가서 너희 사형에게 몽둥이 아래에서 인정을 베풀어, 저 강도들을 때려 죽이지 말라고 일러라.”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멈춰 계시옵소서. 제가 다녀오겠나이다.” 멍청이는 줄곧 앞으로 달려가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형님, 스승님께서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내가 언제 사람을 때렸느냐?” 팔계가 말했다. “그럼 강도들은 어디로 갔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나머지는 다 흩어졌고, 다만 두목 두 놈이 여기서 자고 있구나.”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이 재수 없는 놈들, 밤을 새웠는지 몹시 고단한가 보구나. 다른 데서 자지 않고 하필 여기서 자다니!” 멍청이가 곁으로 다가가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하고 한패가 된 모양이지. 입을 벌린 채 자더니, 끈적거리는 침을 흘렸구먼.”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이 몽둥이로 두부를 쳐 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사람 머리에 두부가 있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골수를 쳐 냈느니라!” 팔계는 골수를 쳐 냈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되돌아 달려가 당승에게 말했다. “흩어졌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착하고 착하도다! 어느 길로 갔느냐?” 팔계가 말했다. “때려 놓으니 발이 곧게 뻗었거늘, 또 어디로 가서 걷겠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네가 어찌 흩어졌다고 하느냐?” 팔계가 말했다. “때려 죽였사온데, 흩어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삼장이 물었다. “때린 것이 어떤 모양이더냐?” 팔계가 말했다. “머리에 큰 구멍이 두 개 뚫렸나이다.” 삼장이 명령했다. “보따리를 풀고 엽전 몇 닢을 꺼내어, 어서 가서 고약 두 장을 얻어다가 저 둘에게 붙여 주어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참으로 점잖지 못하십니다. 고약은 산 사람의 종기나 부스럼에나 붙이는 것이거늘, 어찌 죽은 사람의 구멍에 붙인단 말이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정말로 때려 죽였단 말이냐?” 그리고는 성이 나서 입으로 줄곧 중얼중얼, 원숭이니 잔나비니 하며 투덜거렸다. 말머리를 돌려 사승, 팔계와 함께 시체 앞에 이르러 보니, 피를 흘리며 산비탈 아래에 거꾸러져 있었다. 이 장로는 차마 볼 수가 없어 즉시 팔계에게 명령했다. “어서 쇠갈고리로 구덩이를 파서 묻어라. 내가 그들에게 염불 한 권을 외어 주겠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사람을 잘못 부리시는구려. 행자가 사람을 때려 죽였으면 마땅히 그를 시켜 묻고 불을 사르게 하시지, 어찌 이 늙은 돼지에게 인부 노릇을 시키시나이까?” 행자는 스승에게 욕을 먹어 노기가 나서 팔계를 호령했다. “이 게으르고 무딘 놈아! 어서 가서 묻어라! 조금이라도 늦으면 곧 몽둥이 한 방이니라!” 멍청이는 겁이 나서 산비탈 아래로 석 자쯤 파 내려갔는데, 아래가 온통 돌기둥과 돌뿌리라 갈고리 이빨을 버티고 있었다. 멍청이는 갈고리를 내던지고는 곧 주둥이로 파기 시작하여, 부드러운 곳까지 파 들어갔는데 한 입에 두 자 다섯 치, 두 입에 다섯 자 깊이가 되어, 두 도적의 시체를 묻고 흙을 둥글게 쌓아 무덤 하나를 만들었다. 삼장이 불렀다. “오공아, 향촉을 가져오너라. 내가 기도를 드리고 경을 외겠느니라.” 행자가 입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참으로 눈치가 없으십니다! 이 산중 한가운데는 앞에도 마을이 없고 뒤에도 주막이 없거늘, 어디에서 향촉을 구하시렵니까? 돈이 있다 한들 살 곳도 없사옵니다.” 삼장이 분을 삭이며 말했다. “원숭이 놈아, 비켜라! 내가 흙을 모아 향을 사르고 기도하리라.” 이는 삼장이 안장에서 내려 거친 무덤 앞에서 슬퍼하고, 성스러운 중이 선한 마음으로 황량한 무덤에 비는 것이니, 축문에 이르기를, “삼가 비옵나니, 호걸이여, 내 비는 까닭을 들으소서. 생각하옵건대 이 제자는 동쪽 당나라 사람이옵니다. 당 태종 황제의 뜻을 받들어 서방으로 경문을 구하러 가는 길이옵니다. 이곳에 이르러 그대 여러 사람을 만났사오니, 어느 부며 어느 주며 어느 현 사람인지는 알지 못하옵니다만, 모두 이 산속에서 무리를 지어 지내는 이들이옵니다. 나는 좋은 말로 간곡히 애걸하였거늘, 그대들은 듣지 않고 도리어 선의를 원망으로 갚았나이다. 그러다 마침내 행자를 만나 몽둥이 아래에서 몸을 다쳤나이다.” “간절히 생각하오니 시신이 드러나 있었기에, 내가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었나이다. 푸른 대나무를 꺾어 향촉을 삼았으니 빛은 없으나 정성이 간절하고, 완고한 돌을 가져다 공양물을 삼았으니 맛은 없으나 정성이 참되나이다. 그대가 삼라전 아래에 가서 송사를 일으켜 나무를 쓰러뜨리고 뿌리를 캐려 하여도, 그는 성이 손이요 나는 성이 진이니 저마다 다른 성씨를 지녔나이다. 원한에도 머리가 있고 빚에도 주인이 있거늘, 부디 경을 구하는 이 중을 고발하지 말아 주소서.”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깨끗하게 발을 빼시누나. 그가 때릴 때는 우리 둘은 없었사옵니다.” 삼장은 참으로 또 흙을 모아 빌며 말했다. “호걸이여, 고발하려거든 다만 행자만 고발하소서. 팔계와 사승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나이다.” 대성이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당신은 참으로 정이 없도다. 스승님을 위해 경을 구하느라고 내가 얼마나 많은 고생과 수고를 겪었는데, 이제 이 털 달린 도적 둘을 때려 죽였더니 도리어 그자에게 가서 이 늙은 손오공을 고발하라 하시는구나! 비록 내가 손을 대어 때렸으나, 또한 오직 스승님을 위해서였느니라. 스승님께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지 않으셨다면, 내가 스승님의 제자가 되지 않았을 터이니, 어찌 이곳에 와서 사람을 때려 죽일 일이 있으리오! 차라리 내가 그에게 빌어 주마.” 쇠몽둥이를 움켜쥐고 그 무덤을 향해 세 번 내리찍으며 말했다. “재수 없는 강도야, 잘 들어라! 네 놈에게 앞으로 일고여덟 방, 뒤로 일고여덟 방을 얻어맞았으나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거늘, 성질이 건드려져 그만 실수로 너를 때려 죽였노라. 네가 어디로 가서 고발하든 이 늙은 손오공은 참으로 두렵지 않느니라. 옥황상제도 나를 알고, 천왕도 나를 따르며, 이십팔수는 나를 두려워하고, 구요성관은 나를 무서워하느니라. 부와 현의 성황이 내게 무릎을 꿇고, 동악천제는 나를 두려워하며, 십 대 염군은 일찍이 내 종이 되었고, 다섯 길의 창신은 일찍이 내 하인 노릇을 하였느니라. 삼계와 다섯 관청을 막론하고 시방의 모든 재상이 다 나와 정이 깊고 얼굴이 익거늘, 네가 어디로 가서 고발하든 마음대로 해 보아라!” 삼장은 이런 사나운 말을 내뱉는 것을 보고 또 놀라며 말했다. “제자야, 내가 기도한 것은 너로 하여금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을 본받고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게 하려 함이거늘, 네가 어찌 그것을 곧이받아들이느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이것은 장난으로 할 일이 아니옵니다. 어서 스승님과 함께 묵을 곳을 찾아 갑시다.” 그 장로는 하는 수 없이 노기를 품은 채 말에 올랐다. 손대성은 마음속으로 불화가 있었고, 팔계와 사승도 질투하는 마음이 있어, 사부와 제자들이 모두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등져 있었다. 큰길을 따라 서쪽으로 곧장 가고 있는데, 홀연 길 북쪽에 장원 하나가 있는 것이 보였다. 삼장이 채찍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가서 하룻밤 묵어 가자꾸나.” 팔계가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마침내 장원 곁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다. 살펴보니 과연 머물 만한 곳이라,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들꽃은 오솔길에 넘치고, 잡목이 사립문을 가리었구나. 먼 언덕에는 산물이 흐르고, 평평한 밭두둑에는 보리와 해바라기를 심었구나. 갈대에 이슬이 촉촉하여 가벼운 갈매기가 깃들고, 버들에는 바람이 잔잔하여 지친 새가 깃드는구나. 푸른 측백과 소나무가 비취빛을 다투고, 붉은 다북쑥과 여뀌가 향기를 겨루누나. 마을 개가 짖고, 저녁 닭이 울며, 소와 양이 배불리 먹고 목동이 돌아오는구나. 부엌 연기가 안개를 이루어 누런 기장이 익으니, 바로 산골 집에 저녁이 드는 때로다. 장로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홀연 그 농가 문 안에서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왔으므로 즉시 마주 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 노인이 물었다. “중은 어디서 왔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동쪽 큰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라고 특별히 보내진 몸이옵니다. 마침 그대의 고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날이 저물어 가옵니다. 특별히 댁에 와서 하룻밤 묵기를 청하나이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고장에서 내가 사는 이곳까지 오는 길은 멀고도 아득하거늘, 어찌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홀로 여기까지 왔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빈승에게는 제자 셋이 함께 왔나이다.” 노인이 물었다. “그 높은 제자들은 어디 있나이까?” 삼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큰길 옆에 서 있는 자들이 그들이옵니다.” 노인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가 그들의 생김새가 추악한 것을 보고, 급히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삼장이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어르신, 부디 자비를 베푸셔서 하룻밤만 묵게 하여 주옵소서!” 노인은 부들부들 떨며 입을 다물고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저으며 손을 내저어 말했다. “아니, 아니, 사람의 꼴이 아니옵니다! 저것들은, 저것들은 몇 놈의 요정이옵니다!” 삼장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어르신, 조금도 두려워 마옵소서. 제 제자들은 원래 이런 생김새로 태어났을 뿐, 요정이 아니옵니다!” 노인이 말했다. “할아버지야! 하나는 야차요, 하나는 마면이요, 하나는 뇌공이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뇌공은 내 손자요, 야차는 내 증손자요, 마면은 내 현손이니라!” 그 노인은 이 말을 듣고 넋이 흩어지고 혼이 날아가 얼굴빛이 변하여, 그저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삼장이 그를 부축하여 함께 초당으로 들어가며 웃음을 띠고 말했다. “어르신, 그들을 두려워 마옵소서. 저 아이들은 모두 이렇게 거칠고 무뚝뚝하여 말을 할 줄 모르나이다.” 바로 달래고 있는데, 뒤쪽에서 할멈 하나가 다섯이나 여섯 살쯤 된 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오며 말했다. “영감, 무슨 일로 그리 놀라셨나이까?” 노인이 그제야 불렀다. “마누라, 차를 가져오너라.” 그 할멈은 참으로 아이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가 찻잔 두 개를 받들어 내왔다. 차를 마시고 나자 삼장이 몸을 돌려 할멈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빈승은 동쪽 큰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라고 보내진 몸이옵니다. 막 이곳에 이르러 댁에 하룻밤 묵기를 청하였사온데, 제 세 제자의 생김새가 추악하여 어르신께서 깜짝 놀라셨나이다.” 할멈이 말했다. “생김새가 추악한 것을 보고 그리 놀라다니, 호랑이나 승냥이를 보면 어찌하시려나이까?” 노인이 말했다. “마누라, 얼굴이 추악한 것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말씨가 더욱 사람을 놀라게 하옵니다. 내가 저들을 야차와 마면과 뇌공 같다고 하였더니, 그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뇌공은 제 손자요, 야차는 제 증손자요, 마면은 제 현손이라 하지 않겠소? 내가 이 말을 듣고 그만 겁이 났나이다.” 당승이 말했다. “아니외다, 아니외다. 뇌공을 닮은 이는 제 큰제자 손오공이옵고, 마면을 닮은 이는 제 둘째 제자 저오능이옵고, 야차를 닮은 이는 제 셋째 제자 사오정이옵니다. 그들이 비록 추악하나 또한 사문의 가르침을 받들고 선한 과보에 귀의하였사오니, 무슨 사악한 요괴가 아니오니 어찌 그들을 두려워하시나이까!” 노인 내외는 그들의 이름과 사문에 귀의하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놀란 것을 거두며 말했다. “들어오시라 하옵니다, 들어오시라 하옵니다.” 장로가 밖으로 나가 그들을 부르고는 또 당부했다. “방금 이 어르신께서 너희를 몹시 미워하셨느니라. 들어가 뵐 때에 결례하지 말고, 저마다 점잖게 굴어라.” 팔계가 말했다. “나는 준수하고 점잖소. 사형처럼 막되지 않았단 말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입이 길고 귀가 크며 얼굴이 추악한 것만 아니라면, 그 또한 훌륭한 사내일 게다.” 사승이 말했다. “말다툼하지 마라. 여기는 재주를 뽐내고 약을 쓰는 자리가 아니니, 어서 들어가라! 어서 들어가라!” 마침내 행낭과 말을 모두 초당으로 데려가, 함께 절을 올리고 자리를 정했다. 그 할멈은 어질고 슬기로워, 곧 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밥을 짓도록 분부하고는 소찬 한 끼를 차려 주어, 사부와 제자들이 먹었다. 차츰 날이 저물어 등불을 밝혀 들고 모두 초당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장로가 그제야 물었다. “어르신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옵니까?” 노인이 말했다. “성이 양이옵니다.” 또 나이를 물었다. 노인이 말했다. “일흔넷이옵니다.” 또 물었다. “아드님은 몇 분이시오?” 노인이 말했다. “하나뿐이옵니다. 아까 마누라가 데리고 있던 아이는 제 손자이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아드님을 만나 뵙고 절을 올리고 싶사옵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놈은 절을 받을 자격이 없나이다. 이 늙은이는 팔자가 사나워 그놈을 길러 내지 못하였거니와, 지금은 집에 없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어느 곳에서 생업을 하시옵니까?”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가련하옵니다! 가련하옵니다! 어디에서든 생업을 한다면 그것이 이 늙은이의 행운이려니와! 그놈은 오로지 나쁜 마음만 품고 본분에 힘쓰지 않으며, 오로지 남의 집을 털고 길목을 끊고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기를 좋아하옵니다! 사귀는 자들이 모두 여우와 개 같은 무리이옵니다! 닷새 전에 나간 뒤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이다.” 삼장은 그 말을 듣고 감히 입을 열지 못한 채 속으로 몰래 생각했다. “혹시 오공이 때려 죽인 것이 바로 그 아들이 아닐까?” 장로는 마음이 편치 않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착하고도 착하도다! 이토록 어진 부모에게서 어찌하여 악하고 패역한 자식이 났단 말인가!”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영감, 이처럼 불초하고 간사하며 도둑질과 음란을 일삼는 자식은 부모에게 누를 끼치니, 그런 자식이 있어 무엇 하겠소! 내가 대신 그놈을 찾아다가 때려 죽여 주리다.” 노인이 말했다. “나 또한 그놈을 없애 버리고 싶사오나, 다음으로 이을 사람이 없사옵니다. 비록 재주가 없다 한들, 반드시 그놈을 남겨 두어 이 늙은이의 무덤에 흙을 덮게 해야 하옵니다.” 사승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사형,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 마시오. 우리가 관가의 사람도 아니거늘, 그 집의 불초한 자식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오! 어르신께 여쭙건대, 짚단 한 묶음만 내어 주시어 저쪽에 자리를 펴고 자게 하시고, 날이 밝거든 길을 가겠나이다.” 노인이 즉시 일어나 사승을 시켜 뒷뜰에서 짚단 두 묶음을 가져오게 하고, 그들을 뜰 안의 초가 오두막에서 쉬게 하였다. 행자는 말을 끌고, 팔계는 행장을 메고, 장로와 함께 모두 오두막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말하자면, 그 무리의 도적 가운데 과연 늙은 양씨의 아들이 있었다. 아침 일찍 산 앞에서 행자에게 두 도적 두목이 맞아 죽은 뒤, 그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목숨을 구했는데, 사경쯤 되어 다시 한 무리로 뭉쳐 문 앞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노인이 문 소리를 듣고 즉시 옷을 걸치며 말했다. “마누라, 그놈들이 왔구려.” 마누라가 말했다. “왔거든 영감이 가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여보내요.” 노인이 막 문을 열자, 그 무리의 도적이 모두 떠들어 댔다. “배고파라! 배고파라!” 이 늙은 양씨의 아들이 급히 안으로 들어가 아내를 깨워 쌀을 푸고 밥을 짓게 하였다. 그런데 부엌에 땔감이 없어 뒷뜰로 가서 땔감을 부엌으로 가져온 뒤 아내에게 물었다. “뒷뜰의 백마는 어디서 온 것이오?” 그의 아내가 말했다. “동쪽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이오. 어젯밤에 이곳에 이르러 하룻밤 묵었는데,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저녁 공양 한 끼를 대접하시고는 초가 오두막에서 자게 하였소.” 그놈은 이 말을 듣고 초당으로 나가며 손뼉을 치고 웃어 말했다. “형제들, 횡재로다! 횡재로다! 원수가 내 집에 있구나!” 도적들이 말했다. “그 원수가 누구요?” 그놈이 말했다. “우리 두목을 때려 죽인 그 중이오. 우리 집에 와서 묵고 있는데, 지금 초가 오두막에서 자고 있소.” 도적들이 말했다. “잘됐구나! 잘됐구나! 저 대머리 나귀들을 잡아 하나씩 고기 다지듯 썰어 버리면, 하나는 저 행낭과 백마를 얻는 것이요, 둘은 우리 두목의 원수를 갚는 일이오!” 그놈이 말했다. “서두르지 말고, 너희는 우선 가서 칼을 갈아라. 내가 밥을 다 지으면 모두 배불리 먹고 일제히 손을 쓰자.” 참으로 그 도적들은 칼 가는 자는 칼을 갈고 창 가는 자는 창을 갈았다. 그 노인은 이 말을 듣고 가만히 뒷뜰로 걸어가 당승네 넷을 깨우며 말했다. “그놈이 무리를 거느리고 왔소. 너희가 여기 있는 줄 알고 해치려 하옵니다. 이 늙은이는 너희가 먼 곳에서 온 것을 가엾게 여겨 상해를 입히고 싶지 않사오니, 어서 행장을 챙기시오. 내가 너희를 뒷문으로 보내 주겠소!” 삼장은 이 말을 듣고 부들부들 떨며 머리를 조아려 노인에게 감사하고는, 즉시 팔계를 불러 말을 끌게 하고 사승에게 짐을 지게 하였으며, 행자는 아홉 고리 석장을 들었다. 노인이 뒷문을 열어 그들을 보내고는, 여전히 가만히 앞으로 돌아가 누웠다. 말하자면, 그놈들은 칼과 창을 날카롭게 갈고 밥을 배불리 먹은 뒤, 어느새 오경이 되어 일제히 뜰로 와서 살펴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즉시 등불과 횃불을 밝혀 한참을 찾아보았으나 사방에 자취가 없고, 다만 뒷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말했다. “뒷문으로 달아났다! 달아났다!” 하고는 함성을 한번 지르며 “뒤쫓아 가서 잡아라!” 하였다. 하나같이 날아가는 화살처럼 곧장 뒤쫓아 동쪽에 해가 돋을 무렵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당승이 보였다. 그 장로가 홀연 고함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보니, 뒤쪽에 이삼십 명이 창과 칼을 빽빽이 들고 오고 있었다. 그래서 불렀다. “제자들아, 도적 떼가 뒤쫓아왔구나. 어찌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옵소서! 염려 마옵소서! 이 늙은 손오공이 그들을 끝장내고 오겠나이다!” 삼장이 말을 세우며 말했다. “오공아, 절대로 사람을 상하게 하지 말고, 다만 위협하여 물리치기만 하여라.” 행자가야 어찌 그 말을 들으랴, 급히 몽둥이를 빼어 들고 고개를 돌려 맞서며 말했다. “여러분, 어디 가시오?” 도적들이 욕하며 말했다. “대머리 놈이 무례하구나! 우리 대왕의 목숨을 내놓아라!” 그놈들은 원형 진을 쳐서 행자를 가운데 에워싸고 창과 칼을 들어 마구 찌르고 베었다. 이 대성이 금고봉을 한번 흔들어 사발만 한 굵기로 만들어 그 무리의 도적을 쳐서 별이 떨어지고 구름이 흩어지듯 하였으니, 스치는 자는 곧 죽고 걸치는 자는 곧 망하며, 부딪치는 자는 뼈가 부러지고 스치는 자는 살갗이 다쳤다. 약삭빠른 몇은 달아나 빠져나갔으나, 어리석은 자들은 모두 염라대왕을 보러 갔다! 삼장은 말 위에서 많은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말을 몰아 서쪽으로 달렸다. 저팔계와 사화상도 등자와 채찍을 따라 바짝 뒤따라갔다. 행자는 죽지 않고 상처를 입은 도적에게 물었다. “늙은 양 영감의 아들이 어느 놈이냐?” 그 도적이 신음하며 아뢰었다. “할아버지, 저 누런 옷을 입은 놈이옵니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칼을 빼앗아 쥐고는 누런 옷을 입은 자의 목을 베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손에 들고 쇠몽둥이를 거둔 뒤, 구름 걷는 걸음으로 내달려 당승의 말 앞에 이르러 목을 내밀며 말했다. “스승님, 이것이 늙은 양 영감의 패역한 아들이옵니다. 이 늙은 손오공이 목을 베어 왔나이다.” 삼장이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당황한 나머지 말에서 떨어져 욕하며 말했다. “이 무례한 원숭이야, 나를 놀라 죽이는구나! 어서 치워라! 어서 치워라!” 팔계가 앞으로 나서서 그 사람의 목을 발로 차 길가로 굴려 버리고, 쇠갈고리로 흙을 파서 덮었다. 사승이 짐을 내려놓고 당승을 부축하며 말했다. “스승님, 일어나시옵소서.” 그 장로는 땅에 앉은 채 정신을 가다듬고는 마음속으로 《긴고아주》를 외우기 시작하여, 행자의 귀가 붉어지고 얼굴이 달아오르며 눈이 부어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워 땅바닥을 구르게 만들었으니, 다만 외쳤다. “외우지 마옵소서! 외우지 마옵소서!” 그 장로가 열몇 번쯤 외우고서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행자는 몸을 뒤집고 물구나무를 서며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다만 외쳤다. “스승님, 제 죄를 용서하옵소서! 하실 말씀이 있거든 하시옵소서. 외우지 마옵소서! 외우지 마옵소서!” 삼장이 그제야 입을 다물며 말했다. “할 말이 없느니라. 나는 너를 데리고 다니지 않겠으니, 너는 돌아가거라!” 행자는 아픔을 참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스승님, 어찌하여 저를 쫓아 보내시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이 무례한 원숭이야, 사납고 악함이 너무 심하니 경을 구할 사람이 아니로다. 어제 산비탈 아래에서 그 도적 두목 둘을 때려 죽였을 때, 이미 나는 너의 불인함을 괴이하게 여겼느니라. 저물어 노인의 집에 이르러서는 그가 공양을 베풀고 묵게 해 준 은혜를 입고, 또 그가 뒷문을 열어 우리가 목숨을 건져 달아나게 해 준 은혜를 입었거늘, 비록 그의 아들이 불초하다 한들 나와는 상관이 없거늘, 또한 그의 목을 베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니더냐! 하물며 또 많은 사람을 죽여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치고, 천지의 얼마나 많은 화기를 상하게 하였느냐! 여러 차례 너를 타이르되 털끝만큼의 선한 마음도 없으니, 너를 데리고 무엇 하겠느냐! 어서 가라! 어서 가라! 다시 진언을 외우지 않게 말이다!” 행자가 겁을 먹고 다만 외쳤다. “외우지 마옵소서, 외우지 마옵소서! 제가 가겠나이다!” 가겠다는 말과 함께 줄곧 근두운을 타고 그림자도 자취도 없이 사라져,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 이는 곧 이러하였다. “마음에 사나운 광기가 있으면 단약이 익지 않고, 정신이 자리를 정하지 못하면 도를 이루기 어렵도다.” 결국 그 대성이 어느 곳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7회 진행자낙가산소고(眞行者落伽山訴苦) · 가후왕수렴동등문(假猴王水簾洞謄文) 말하자면, 손대성은 속이 상하고 답답하여 견디지 못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화과산 수렴동으로 돌아가려 하니 본동의 작은 요괴들이 보고 비웃으며, 나갔다가 도로 들어왔다 하여 대장부의 그릇이 아니라 할까 두려웠고, 천궁으로 몸을 의탁하려 하니 천궁에서 오래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까 두려웠으며, 바다 위의 섬으로 가려 하니 또한 저 삼도의 여러 신선을 부끄럽게 마주하게 될 터였고, 용궁으로 달아나려 하니 또한 용왕에게 빌고 사정하는 것이 분하지 않았다. 참으로 기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어 괴로이 스스로 헤아려 보았다. “에라, 에라, 에라! 도로 스승님을 뵈러 가는 것이 바른 길이로다.” 마침내 구름을 내려뜨려 곧장 삼장의 말 앞에 이르러 서서 말했다. “스승님, 이번 한 번만은 제자를 용서하옵소서! 이제부터는 다시는 감히 행패를 부리지 않고, 하나하나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모시리이다. 부디 저를 도로 받아 주시어 스승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게 하옵소서.” 당승은 그를 보고는 더는 대답도 없이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운 채 곧 《긴고아주》를 외우기 시작하여, 이리저리 되풀이하여 스무 번 남짓이나 외우니 대성이 땅에 주저앉고 고리가 살 속으로 한 치 남짓 파고들어서야 입을 다물고 말했다. “너는 돌아가지 않고 또 와서 무엇 하려고 나를 귀찮게 하느냐?” 행자는 그저 간절히 청하여 말했다. “외우지 마소서! 외우지 마소서! 저는 갈 곳이 있는 몸이오니 스승님께서 저 없이 서천에 못 가실까 그것이 두렵지 않으시나이까.” 삼장이 성을 내어 말했다. “이 원숭이 같은 놈이 살생하고 목숨을 해쳐 나를 여러 번 누명에 빠뜨렸느냐! 이제는 참으로 너를 쓰지 않겠느니라! 내가 가든 못 가든 네 일이 아니니라! 어서 꺼져라, 어서! 조금이라도 더디면 내가 다시 진언을 외워 이번에는 결코 입을 다물지 않고 네 골수를 모조리 짜 내고야 말리라!” 대성은 아픔을 참기 어려웠으나 스승이 조금도 마음을 돌리지 않음을 보고 하는 수 없이 또 근두운을 타고 솟아올랐다. 그러다 홀연히 깨달아 말했다. “이 중이 내 마음을 저버렸으니, 내 저 보타암으로 가서 관음보살께 하소연이나 하리라.” 과연 훌륭한 대성이로다. 근두운을 돌려 타니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아 남양 대해에 이르렀다. 상서로운 빛을 내리고 곧장 낙가산 위로 올라가 자죽림 속으로 뛰어드니 홀연 목타행자가 맞은편에서 절하며 말했다. “대성은 어디로 가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보살님을 뵈러 가는 길이오.” 목타가 곧 행자를 이끌고 조음동 어귀에 이르니, 또 선재동자가 절하며 말했다. “대성은 어디서 오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보살님께 아뢰어 고할 일이 있소.” 선재는 ‘고한다’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웃으며 말했다. “말빨 좋은 원숭이로구나! 그때 내가 당승을 잡아두고 네게 속았던 일이 아직 남아 있는 게로구나! 우리 보살님은 크게 자비로우시고 크게 서원하시며 중생을 건지고 고난에서 구하시며, 가없이 넓고 크신 지극히 선하신 보살이신데 무슨 잘못이 있다고 네가 보살님을 고발하려 한단 말이냐?” 행자는 답답한 기운이 가득한데 이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치밀어, “이크!” 하는 소리와 함께 선재동자를 호령하여 뒷걸음질 치게 하고 말했다. “이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은 어리석은 놈아, 참으로 무식하고 우둔하구나! 네가 그때 요망한 짓을 부리며 정령이 되었을 적에 내가 보살님께 청하여 너를 거두어 주시게 하여 바른길로 돌아서게 하고 보호를 받게 하였거늘, 오늘에 이토록 극락의 장생을 얻어 자유로이 노닐며 하늘과 수명을 같이하면서도 이 늙은 원숭이에게 절하고 고마워할 줄은 모르고 도리어 업신여기느냐! 나는 일이 있어 보살님께 사정하러 온 것인데, 어찌 내가 말빨을 부려 보살님을 고발한다 하느냐?” 선재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여전히 성급한 원숭이로구나. 내가 너와 농담을 하였거늘 네가 어찌 곧 낯빛을 바꾸느냐?” 한창 이야기하는데 흰 앵무새가 날아왔다 날아가는 것이 보이니 보살님이 부르시는 줄을 알았다. 목타와 선재가 곧 앞장서서 보련대 아래로 인도하였다. 행자는 보살님을 바라보고 몸을 던져 절하며 샘솟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여 통곡하였다. 보살님은 목타와 선재에게 일러 그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말했다. “오공아, 무슨 서러운 일이 있거든 분명히 말하여라. 울지 말고 울지 말아라. 내 너를 위해 고통에서 건지고 재앙을 없애 주리라.” 행자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절하고 말했다. “옛적에 제자가 사람이었을 적에 그 누구에게 이런 욕을 받아 본 적이 있나이까? 보살님의 은혜로 하늘의 재앙에서 벗어나 사문의 가르침을 받들고 당승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 불경을 구하게 되었나이다. 제자는 몸을 버리고 목숨을 걸어 그의 마장을 풀어 주었으니, 이는 호랑이 입에서 연한 뼈를 빼앗고 교룡의 등에서 비늘을 벗기는 격이었나이다. 오직 바른길로 돌아가 정과를 이루어 업을 씻고 사특함을 없애려 하였거늘, 어찌 그 장로는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어 흑백조차 살펴주지 않으시는지요!” 보살이 말했다. “우선 그 흑백의 까닭을 내게 말하여 보아라.” 행자가 곧 산적들을 쳐 죽인 일의 앞뒤와 시종을 낱낱이 아뢰었다. 당승이 여러 사람을 때려 죽였다 하여 원망을 품고 흑백을 가리지 않고 《긴고아주》를 외워 몇 번이나 쫓아내니, 오를 하늘에도 길이 없고 들어갈 땅에도 문이 없어 특별히 보살님께 하소연하러 왔노라고 아뢰었다. 보살이 말했다. “당삼장은 황명을 받들고 서쪽으로 가는 몸이라, 한결같이 착한 마음으로 승려가 되려 하여 결코 가벼이 목숨을 상하게 하지 않느니라. 너처럼 한량없는 신통력을 가진 자가 무에 그리 아까워 산적을 많이 쳐 죽였느냐! 산적이 비록 좋지 못한 무리라 하나 결국은 사람의 몸이니 때려 죽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그것은 요망한 새나 괴상한 짐승, 귀신이나 정령과는 다르니라. 그런 것을 쳐 죽이는 것은 네 공적이거니와, 사람의 몸을 때려 죽이는 것은 네 불인함이니라. 다만 물리쳐 흩었다면 저절로 네 스승을 구하였을 터인데, 내가 공평히 헤아려 보건대 네가 잘못이니라.” 행자가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자가 잘못한들 또한 공으로 죄를 갚아 상쇄해야 할 것이거늘, 이처럼 쫓아내심은 마땅하지 않나이다. 부디 보살님께서 크신 자비를 베푸시어 《송고아주》를 외워 금고를 벗겨 바쳐 드리게 하시고, 저를 놓아 주시어 수렴동으로 돌아가 살게 하옵소서!” 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긴고아주》는 본래 여래께서 내게 전해 주신 것이니라. 예전에 나를 동쪽 땅으로 보내어 경을 구할 사람을 찾게 하실 적에 세 가지 보물을 내려 주셨으니 금란가사와 구환석장, 그리고 금과 긴과 금이라 이름한 세 가지 고리니라. 주문 세 편을 비밀히 내려 주셨으되 무슨 《송고아주》라는 것은 없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저는 보살님께 하직하고 가겠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네가 나에게 하직하고 어디로 가려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서천으로 올라가 여래를 뵙고 사정하여 《송고아주》를 외워 달라고 청하러 가겠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너는 잠시 머물러라. 내 너를 위하여 상서로움과 흉함을 살펴보아 주리라.” 행자가 말했다. “살펴보실 것도 없사오니, 다만 이만큼 불길한 것만으로도 넉넉하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나는 너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당승의 상서로움과 흉함을 보느니라.” 과연 훌륭한 보살이로다. 연대에 단정히 앉아 마음을 삼계에 두고 혜안으로 멀리 굽어살펴 온 우주를 두루 비추더니 삽시간에 입을 열어 말했다. “오공아, 네 스승은 잠깐 사이에 몸을 상할 액난이 닥치리니 머지않아 너를 찾아오리라. 너는 다만 이곳에 있거라. 내가 당승에게 일러 주어 그가 다시 너와 함께 경을 구하러 가게 하여 정과를 이루게 하리라.” 손대성은 하는 수 없이 귀의하여 감히 함부로 굴지 못하고 보련대 아래에 서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이쯤 해 두겠다. 말하자면, 당장로는 행자를 쫓아 보낸 뒤 팔계에게 말을 이끌게 하고 사승에게 짐을 지게 하여, 말까지 합쳐 넷이 서쪽을 향해 오십 리 남짓 가게 되었다. 삼장이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말했다. “제자들아, 새벽 오경에 마을을 떠나온 뒤 또 저 필마온에게 화를 돋우었더니, 이 반나절 동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구나. 누군가 공양을 좀 얻어 오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우선 말에서 내리시옵소서. 제가 이웃한 마을이 있는지 살펴보고 공양을 얻으러 가겠나이다.” 삼장은 그 말을 듣고 말에서 굴러 내렸다. 그 멍청이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 반공중에서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바라보는 곳마다 온통 산등성이뿐이어서 인가가 있을 리 없었다. 팔계가 구름을 내려 삼장에게 말했다. “공양을 얻을 곳이 없사옵니다. 바라다 보이는 동안에 마을이라곤 하나도 없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공양을 얻을 곳이 없다면, 우선 물이라도 좀 가져와 목을 축이는 것도 좋으리라.” 팔계가 말했다. “그러면 제가 남산의 골짜기 아래로 가서 물을 좀 떠 오겠나이다.” 사승이 곧 발우를 꺼내 팔계에게 건네니, 팔계는 발우를 받쳐 들고 구름과 안개를 타고 떠나갔다. 그 장로는 길가에 앉아 한참이나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으니, 가련하게도 입은 바싹 마르고 혀는 쓰라려 견디기 어려웠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정신을 지키고 기운을 기르는 것을 일러 정이라 하나니, 성정은 본래 한 가지 형질을 타고났도다. 마음이 어지럽고 정신이 흐리면 온갖 병이 일어나고, 형체가 쇠하고 정이 무너지면 도의 근본이 기울어지도다. 삼화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헛되이 애만 쓰고, 사대가 쇠잔하니 애써 다툼이 부질없도다. 흙과 나무에 공이 없고 쇠와 물이 끊어졌으니, 게으른 법신은 어느 때에나 이루어질꼬!” 사승은 곁에서 삼장이 굶주림과 목마름을 견디지 못하고 팔계마저 물을 길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행낭을 바로 놓고 백마를 단단히 매어 두고 말했다. “스승님, 편안히 계시옵소서. 제가 가서 물을 재촉하여 오겠나이다.” 장로는 눈물을 머금고 말이 없이 다만 고개를 끄덕여 답하였다. 사승이 급히 구름빛을 몰아 또한 남산으로 향해 갔다. 그 스승은 홀로 단련하며 견디어 내는데 곤궁함이 너무 심하여, 막 당황하는 즈음에 홀연히 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로가 놀라 몸을 일으켜 살펴보니, 이는 손오공이 길가에 꿇어앉아 두 손으로 사기 잔을 받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말했다. “스승님, 이 늙은 원숭이가 없으면 물 한 모금도 얻지 못하시느니라. 이 잘 식은 물을 우선 잡수시고 목을 축이소서. 그런 뒤에 제가 다시 가서 공양을 얻어 오리라.” 장로가 말했다. “나는 네 물을 마시지 않겠느니라! 당장 목말라 죽는다 한들 내가 명을 받들 일이로다! 너는 이제 필요 없느니라! 꺼져라!” 행자가 말했다. “저 없이는 스승님께서 서천에 가지 못하시느니라.” 삼장이 말했다. “가든 못 가든 네 일이 아니니라! “어찌하여 자꾸만 와서 나를 달라붙어 귀찮게 하느냐!” 그 행자는 낯빛을 바꾸며 화를 내고 성을 내어 장로를 호령하며 꾸짖어 말했다. “이 잔인한 마음을 먹은 파렴치한 중놈아, 몹시도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쇠몽둥이를 휘두르고 사기 잔을 내던진 뒤 장로의 등허리를 향해 한 번 내리쳤다. 그 장로는 땅에 기절하여 쓰러져 말도 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푸른 담요 보따리 두 개를 빼앗겨 그가 손에 들고 근두운을 타고 가니 종적을 알 수 없었다. 말하자면, 팔계는 발우를 받쳐 들고 산 남쪽 비탈 아래로 곧장 내려가는데, 홀연 산간 오목한 곳에 초가집 한 채가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 살펴볼 적에는 산이 높아 가려 보지 못하였거늘, 이제 가까이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가임을 알았다. 그 멍청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런 추한 낯짝으로 가면 그들이 나를 무서워할 터이니 애만 쓰고 공양은 얻지 못하리라. 모름지기 변신을 해야겠다! 모름지기 변신을 해야겠다!’ 과연 훌륭한 멍청이로다. 결을 외우고 주문을 읊조린 뒤 몸을 일곱여덟 번 흔들어 병들어 누렇게 부은 중으로 변하여, 입으로는 끙끙거리며 문 앞으로 다가가 소리쳐 말했다. “시주여, 부엌에 남은 밥이 있고 길에는 주린 이가 있나이다. 빈승은 동쪽 땅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몸인데, 우리 스승님이 길에서 시장하시고 목이 마르시나이다. 집에 누룽지나 찬밥이 있거든 제발 조금이라도 얻어 주시어 목숨을 살려 주옵소서.” 본래 그 집에는 사내들이 없고 모두 모를 심고 곡식을 심으러 밭에 나갔으며, 두 여자만 집에 있었는데 막 점심을 지어 두 그릇에 담아 밭으로 보내려다가 솥에 아직 밥과 누룽지가 조금 남아 퍼 내지 않은 참이었다. 그 여자들은 그의 병든 모습을 보고는 동쪽 땅에서 서천으로 간다는 말을 하니 병이 들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 여겼으며, 또 쓰러져 죽기라도 할까 두려워 하는 수 없이 달래듯 남은 밥과 누룽지를 발우에 그득히 담아 주었다. 그 멍청이는 되돌아서더니 본모습으로 돌아와 옛길로 향했다. 한창 가는데 누가 “팔계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팔계가 고개를 들어 보니 사승이 산벼랑 위에 서서 외치고 있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벼랑을 내려와 마주 선 사승이 물었다. “이 골짜기에 맑은 물이 그리 많은데 두고 너는 어디로 갔었느냐?”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여기까지 왔더니 산간 오목한 곳에 인가가 있길래, 가서 이 한 발우의 마른밥을 얻어 왔느니라.” 사승이 말했다. “밥도 쓰이기는 하지만 스승님께서 목이 몹시 마르시니, 물은 어떻게 구하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물이라면 쉬우니라. 네가 옷자락으로 이 밥을 받쳐 들게나. 그런 뒤에 내가 발우를 가지고 가서 물을 떠 오마.” 두 사람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길로 돌아왔는데, 삼장이 얼굴을 땅에 박은 채 먼지 속에 쓰러져 있고, 백마는 고삐가 풀린 채 길가에서 길게 울며 뛰어오르고 있으며, 짐보따리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팔계는 놀라 발을 구르며 가슴을 치고 크게 외치며 울부짖었다. “말할 것도 없다!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필시 저 손오공이 쫓아버린 나머지 무리들이 와서 스승님을 때려 죽이고 짐을 빼앗아 간 것이로구나!” 사승이 말했다. “우선 가서 말부터 묶어 두세!” 그러고는 그저 외쳤다.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이것이 참으로 이른바 도중에 폐하고 중도에서 그친다는 것이로구나!” 그러고는 “스승님!” 하고 부르며 두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을 떨구고 슬픔에 겨워 통곡하였다. 팔계가 말했다. “사제야, 우선 울음을 그쳐라. 이제 일이 이 지경이니 경을 구하러 가는 일은 당분간 입에 올리지도 말자. 네가 스승님의 시신을 지키고 있거라. 내가 저 말을 타고 저 부나 주나 현의 시골 장터로 가 은 몇 냥에 팔아 관 한 짝을 사다가 스승님을 묻어 드리고, 우리 둘은 각기 갈 길을 찾아 흩어지자.” 사승은 차마 떨어질 수 없어 당승의 몸을 돌려세우고 자기 얼굴로 그의 얼굴을 덥히며 통곡하여 말했다. “운명이 기구하신 스승님!” 그 장로의 코와 입에서 더운 김이 새고 가슴이 따뜻한 것이 느껴지자 사승이 연달아 외쳤다. “팔계야, 이리 오너라! 스승님께서는 아직 목숨을 잃지 않으셨느니라!” 그 멍청이가 그제야 앞으로 다가가 부축하여 일으켰다. 장로는 깨어나 한참이나 신음하다가 꾸짖으며 말했다. “이 포악한 원숭이 같은 놈, 나를 때려 죽이려 하느니라!” 사승과 팔계가 물었다. “어느 원숭이가 그런 짓을 하였나이까?” 장로는 대답하지 않고 탄식하다가 물을 찾아 몇 모금 마시고서야 말했다. “제자들아, 너희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오공이 도로 와서 나를 달라붙어 귀찮게 하였느니라. 내가 굳게 버티며 받아들이지 않자 그가 마침내 나를 몽둥이로 한 번 쳐서 푸른 담요 보따리를 모두 빼앗아 갔느니라.” 팔계는 그 말을 듣고 이를 뿌득뿌득 갈며 가슴에 불을 붙여 말했다.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이 원숭이 같은 놈이 어찌 감히 이토록 무례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고는 사승에게 말했다. “네가 스승님을 모셔라. 내가 그의 집으로 가 보따리를 찾아오겠다!” 사승이 말했다. “너는 우선 화를 내지 마라. 우리가 스승님을 부축하여 저 산간 오목한 곳의 인가로 가서 더운 차국물을 얻고 먼저 빌어 온 밥을 데워 스승님을 보살펴 드린 뒤 그를 찾으러 가자꾸나.” 팔계는 그 말대로 스승님을 말에 태우고 발우를 들고 찬밥을 옷자락에 받쳐 든 채 그 집 문 앞에 이르렀는데, 그 집에는 늙은 할멈만 있다가 그들을 보고 황망히 몸을 피하였다. 사승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노모님, 저희는 동쪽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가라고 파견된 몸이옵니다. 스승님께서 몸이 불편하시어 댁을 찾아뵙고 더운 차국물 한 그릇 얻어 그분께 밥을 올리려 하옵니다.” 그 할멈이 말했다. “방금 병들어 누렇게 부은 중 하나가 다녀갔는데 동쪽 땅에서 파견되었다 하며 공양을 얻어 갔거늘 또 무슨 동쪽 땅 사람이 있단 말이오. 집에 사람이 없으니 다른 데로 가 보시오.” 장로는 그 말을 듣고 팔계에게 부축받아 말에서 내려 몸을 굽히며 말했다. “할머니, 제게는 제자가 셋이 있어 한마음을 이루어 저를 보호하며 천축국 대뢰음사로 올라가 불경을 구하게 하였나이다. 다만 제 큰 제자 손오공이 평생 포악하여 착한 도를 따르지 않기에 제가 쫓아 보냈더니, 뜻하지 않게 그가 몰래 찾아와 제 등에 몽둥이를 한 번 쳐서 행낭과 의발을 빼앗아 갔나이다. 이제 한 제자를 보내 그를 찾아 달라고 하려 하나 저 빈 들길은 앉아 있을 곳이 못 되어, 특별히 할머니 댁을 찾아와 잠시만 쉬고자 하나이다. 짐을 찾아오거든 곧 떠나겠사오니 결코 오래 머물지 않겠나이다.” 그 할멈이 말했다. “방금 병들어 누렇게 부은 중 하나가 공양을 얻어 갔는데, 그도 동쪽 땅에서 서천으로 간다 하였거늘 어찌 또 한 무리가 있단 말이오?” 팔계는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접니다. 제가 생김새가 입이 길고 귀가 커서 댁에서 놀라 공양을 주려 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일부러 그런 모습으로 변하였나이다. 믿지 못하시겠거든 내 사제의 옷자락에 든 것이 댁의 누룽지밥이 아니고 무엇이겠나이까?” 그 할멈이 알아보니 과연 자기가 준 밥이었으므로 거절하지 않고 그들을 앉게 한 뒤 더운 차를 한 주전자 끓여 사승에게 건네어 밥을 말게 하였다. 사승이 곧 찬밥을 말아 스승님께 올렸다. 스승님께서 몇 술 떠먹고 한참이나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 말했다. “누가 짐을 찾으러 가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재작년에 스승님께서 그를 쫓아 보내셨을 적에 제가 한 번 그를 찾아간 일이 있어 화과산 수렴동을 아옵니다. 제가 가겠나이다! 제가 가겠나이다!” 장로가 말했다. “너는 갈 수 없느니라. 그 원숭이는 본디 너와 사이가 좋지 않고, 너는 또 말이 거칠어 한두 마디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가 곧 너를 때려고 하리라. 오정이를 보내겠느니라.” 사승이 받들어 대답했다. “제가 가겠나이다, 제가 가겠나이다.” 장로가 또 사승에게 당부하여 말했다. “네가 그곳에 이르거든 모름지기 형편을 살펴보아라. 그가 기꺼이 보따리를 네게 주겠다면 너는 감사하는 체하며 받아 가지고 오너라. 만일 내키지 않아 하거든 절대로 그와 다투지 말고, 곧장 남해의 보살님께로 가서 이 사정을 아뢰어 보살님께 청하여 그에게 가서 달라고 하여라.” 사승은 하나하나 그 말을 따르며 팔계에게 말했다. “내 이제 그를 찾아가려 하니, 너는 부디 스승님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잘 모시거라. 이 집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굴지 마라. 그들이 밥 주기를 꺼리게 될까 두렵구나. 내 갔다 곧 돌아오마.” 팔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알아서 하마. 그러나 네가 가되 얻어 오든 못 얻어 오든 다음 날 아침에는 돌아오너라. 뾰족한 지게로 땔나무를 지면 양쪽이 다 빠진다는 꼴이 되지 않도록 하여라.” 사승이 마침내 주문 결을 외우고 구름빛을 타고 곧장 동승신주를 향해 떠나갔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몸은 있는데 정신은 날아가 집을 지키지 않으니, 화로가 있어도 불이 없거늘 어찌 단약을 달이리오. 황파는 주인을 여의고 금로를 찾아가고, 목모는 스승을 모시건만 병든 낯빛을 어이하리오. 이번 가서 어느 날에 돌아올지 알 수 없고, 이 회에 몇 때나 지나야 올지 헤아리기 어렵도다. 오행의 상생과 상극이 뜻대로 순하지 않으니, 다만 심원이 다시 관문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로다.” 그 사승은 반공중에서 사흘 밤낮을 날아가서야 동쪽 바다에 이르렀는데, 홀연히 파도 소리가 들려 고개를 숙여 굽어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검은 안개가 하늘에 차올라 음기가 성하고, 아득한 바다가 해를 머금어 새벽빛이 차갑구나.” 그는 구경할 마음도 없이 신선이 사는 산을 바라보며 영주를 건넌 뒤 동쪽으로 화과산 경계에 닿았다. 바닷바람을 타고 물결을 밟아 또 한참 가니, 높은 봉우리가 창을 늘어세운 듯하고 험한 벽이 병풍을 걸어 놓은 듯 보였다. 곧 봉우리 머리에 이르러 구름을 내리고 길을 찾아 산을 내려가며 수렴동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서니 한바탕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고 산속의 무수한 원숭이 정령들이 떠들어 대는 것이 보였다. 사승이 다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손오공이 돌로 된 대 위에 높이 앉아 두 손으로 종이 한 장을 펴 들고 낭랑하게 읽고 있었다. “동쪽 대당 천자 이 황제는 어가 앞에서 칙명을 받든 폐하의 의동생이요 성스러운 승려인 진현장 법사가 서방 천축국 사바영산 대뢰음사로 올라가 여래불조를 뵙고 경전을 구하게 하였노라. 짐이 병이 급습하여 혼백이 저승을 노닐다가, 다행히 양수가 길어져 명군이 은혜를 베풀어 살려 보냈으므로 널리 선한 모임을 베풀고 죽은 이를 천도하는 도량을 세웠노라. 크신 은혜로 고난을 구하시는 관세음보살께서 금빛 몸을 나타내시어 서방에 부처님이 계시고 경전이 있어 죽은 혼백을 건져 초탈하게 한다고 가리켜 주셨기에, 특별히 법사 현장을 시켜 머나먼 천 겹의 산을 두루 겪으며 경전과 게송을 구하게 하였노라. 만일 서쪽 나라 여러 고을을 지나거든 선한 인연을 없애지 말고 이 첩에 비추어 시행할지어다. 대당 정관 십삼년 가을 길일에 어전에서 내린 문첩이로다. 큰 나라를 떠나온 이래 여러 나라를 지나며 도중에 큰 제자 손오공 행자와 둘째 제자 저오능 팔계와 셋째 제자 사오정 중을 거두었노라.” 다 읽자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사승은 그것이 통관문첩임을 알아차리고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소리를 높여 외쳤다. “사형, 스승님의 관문을 읽어서 어찌하시려 하시나이까?” 그 행자는 그 말을 듣고 급히 고개를 들었으나 사승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소리쳤다. “잡아라! 잡아라!” 원숭이들이 일제히 에워싸고 사승을 이리 끌고 저리 잡아당겨 앞에 끌어다 놓고 호령하여 말했다. “너는 누구기에 감히 나의 선동에 가까이 오느냐?” 사승은 그가 낯빛을 바꾸며 알아보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위를 향해 예를 올리며 말했다. “사형께 아뢰옵니다. 지난번에는 실로 스승님께서 성질이 급하시어 사형을 그릇 오해하시고 사형께 주문을 몇 차례나 외워 쫓아 보내셨나이다. 하나는 저희들이 미처 달래어 풀지 못한 탓이요, 또 하나는 스승님께서 주리고 목마르시다 하여 물을 찾고 공양을 얻으러 갔던 까닭이옵니다. 뜻하지 않게 사형께서 좋은 뜻으로 다시 오셨으나 스승님께서 법을 지켜 머물게 하지 않으신다 하여 괴이하게 여기시고, 마침내 스승님을 쳐 쓰러뜨려 기절하게 하시고 짐까지 빼앗아 가셨나이다. 뒤에 스승님을 구해 깨운 뒤 특별히 형님을 찾아뵙게 되었사오니, 만일 스승님을 원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옛날의 해탈 은혜를 생각하신다면 저와 함께 짐을 가지고 스승님께 돌아가 뵙고, 함께 서천으로 올라가 이 정과를 마치시옵소서. 혹 원한이 깊어 동행하지 않으시려 한다면 부디 그 보따리만 저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형님께서는 깊은 산에서 늦은 세월을 즐기시니 또한 두 가지가 다 좋으시니이다.” 행자는 그 말을 듣고 히히 하고 냉소하며 말했다. “현제여, 이 의논은 내 뜻에 전혀 맞지 않느니라. 내가 당승을 치고 짐을 빼앗은 것은 내가 서쪽으로 가지 않아서가 아니요, 또한 내가 이곳에 살기를 좋아해서도 아니니라. 나는 이제 첩문을 통독하였으니, 내 스스로 서쪽으로 올라가 부처를 뵙고 경을 구하여 동쪽 땅으로 보내어, 나 홀로 공을 이루어 저 남섬부주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조상으로 삼아 만 대에 걸쳐 이름을 전하게 하리라.”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사형의 말씀은 온당하지 못하옵니다. 예로부터 손오공이 경을 구한다는 말은 없었나이다. 우리 부처님 여래께서 삼장의 참된 경전을 지으시고, 본래 관음보살께 명하시어 동쪽 땅으로 가 경을 구할 사람을 찾게 하시어, 저희가 천 겹의 산을 고생스럽게 겪고 여러 나라를 두루 찾으며 그 경을 구하는 이를 보호하게 하셨나이다. 보살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경을 구하는 이는 곧 여래의 문생이라 이름을 금선장로라 하나이다. 다만 그가 불조의 설경을 듣지 않았기에 영산에서 쫓겨나 동쪽 땅에 다시 태어났으며, 그로 하여금 서쪽에서 정과를 이루어 도를 다시 닦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길에서 마땅히 이러한 마장이 있어 저희 세 사람을 해탈시켜 그의 호법이 되게 하였거늘, 형님께서 당승을 모시고 가지 않으시면 어느 부처님이 기꺼이 경을 전해 주시겠나이까? 그것은 한바탕 헛되이 애만 쓰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나이까?” 그 행자가 말했다. “현제여, 너는 본래 어리석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네가 당승을 모셨다 하나 나라고 어찌 당승이 없겠느냐? 나는 이곳에 따로 도가 있는 참된 승려를 뽑아 두었으니, 이 늙은 원숭이가 홀로 힘을 다하여 모시려 하는데 무슨 불가함이 있으리오! 이미 내일 떠나기로 정하였노라. 네가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불러다 네게 보이리라.” 그리고 소리쳤다. “녀석들아, 어서 늙은 스승님을 모셔 오너라.” 과연 원숭이들이 안으로 뛰어가더니 백마 한 필을 끌어내고 당삼장 하나를 모셔 나왔는데, 팔계가 뒤따르며 짐을 지고 사승 하나가 석장을 쥐고 있었다. 이 사승은 그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늙은 사승은 걸어갈 때도 이름을 바꾸지 않고 앉아 있을 때도 성을 고치지 않거늘, 어디에 또 다른 사화상이 있단 말이냐! 무례하게 굴지 마라! 내 지팡이를 받아라!” 과연 훌륭한 사승이로다. 두 손으로 항요장을 치켜들어 가짜 사승의 정통수를 내리쳐 한 번에 때려 죽였더니, 이는 본래 원숭이 정령 한 놈이었다. 그 행자가 노하여 여의금고봉을 휘두르며 원숭이들을 거느리고 사승을 포위하였다. 사승은 동으로 치고 서로 받으며 길목을 뚫고 나와 구름과 안개를 타고 도망치며 말했다. “이 원숭이 같은 놈이 이토록 뻔뻔하니, 내 보살님께 고하러 가리라!” 그 행자는 사승이 원숭이 정령 하나를 때려 죽이고 도망치도록 몰아댄 것을 보고 그를 뒤쫓지도 않고 굴로 돌아가 녀석들에게 명하여 죽은 요괴의 시체를 한쪽에 끌어다 놓고 가죽을 벗긴 뒤 고기를 집어 내어 볶고 굽고는 야자술과 포도주와 함께 여러 원숭이가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변화할 줄 아는 요괴 원숭이 하나를 뽑아 또 사화상으로 변하게 하고 새로이 도를 가르치며 서쪽으로 올라가려 하였는데, 그 이야기는 이쯤 해 두겠다. 사승은 한 번 구름을 타고 동해를 떠나 하룻밤낮을 가서 남해에 이르렀다. 한창 가는데 어느새 낙가산이 멀지 않아 급히 앞으로 나아가 낮게 구름과 안개를 멈추고 굽어보니, 좋은 곳이로다! 과연 이러하였다. “하늘의 깊음을 품고 땅의 구역을 아우르니, 온갖 내를 모아 해를 씻고 별을 넘치게 하며, 뭇 물길을 거두어 바람을 일으켜 달을 흔드는구나. 조수가 솟아오르고 큰 곤이 훨훨 날아오르며, 물결이 뒤집혀 거북이 헤엄치는구나. 물은 서북 바다로 통하고 물결은 정동 바다와 합치는구나. 사해가 이어져 지맥을 함께하고, 신선 섬마다 저마다 선궁이 있구나. 온 땅에 봉래가 가득하다 말고 보타의 구름 동굴을 보아라.” 좋은 경치로다! “산머리의 노을빛이 원기를 장하게 하고, 바위 아래 상서로운 바람이 달빛 결을 흔드는구나. 자죽림 가운데 공작이 날고, 푸른 버들가지 위에서 영험한 앵무가 말하는구나. 기화요초가 해마다 빼어나고, 보배 나무와 금연꽃이 해마다 피어나는구나. 흰 학이 꼭대기를 향해 절하고, 흰 난새가 산정에 이르는구나. 노니는 물고기도 참된 성품을 닦을 줄 알아 물결을 뛰어오르며 경전 설하는 것을 듣는구나.” 사승이 낙가산에 천천히 발을 옮겨 신선의 경치를 즐기며 구경하고 있는데, 목타행자가 맞은편에서 절하며 말했다. “사오정, 너는 당승을 모시고 경을 구하러 가지 않고 어찌 이곳에 왔느냐?” 사승이 예를 마치고 말했다. “일이 있어 보살님을 찾아뵙고자 왔사오니 안내해 주시옵소서.” 목타는 속으로 그가 행자를 찾으러 온 줄을 알면서도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곧 안으로 들어가 보살께 말했다. “밖에 당승의 작은 제자 사오정이 와서 절하며 뵙기를 청하나이다.” 손오공이 대 아래에서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이는 틀림없이 당승에게 액이 생겨 사승이 보살님을 모시러 온 것이로구나.” 보살이 곧 목타에게 명하여 문 밖의 이를 불러들이게 하였다. 이 사승이 몸을 던져 절을 올리고 고개를 들어 막 앞일을 아뢰려 하는데, 홀연 손오공이 곁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말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 없어 곧 항요장을 빼어 들어 행자의 낯을 향해 내리쳤다. 이 행자는 조금도 되받아 치지 않고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하였다. 사승은 입으로 마구 욕하며 말했다. “이 십악을 범하고 모반을 일으킨 원숭이 같은 놈! 네가 또 와서 보살님을 속여 가리려 하는구나!” 보살이 호령하여 말했다. “오정아, 손을 대지 말고 무슨 일인지 먼저 내게 말하여라.” 사승은 보장을 거두고 대 아래에 다시 절한 뒤 성이 나서 기운이 펄펄 끓으며 보살께 말했다. “이 원숭이는 가는 길마다 행패를 부린 것을 헤아릴 수 없나이다. 앞선 날에는 산비탈 아래에서 길을 막던 강도 둘을 쳐 죽여 스승님께서 그를 꾸짖으셨나이다. 뜻하지 않게 저녁 무렵 그 도적 떼의 우두머리 집에 묵게 되자 그 도적 떼를 모조리 때려 죽이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의 목 하나를 들어 스승님께 보여 드렸나이다. 스승님께서는 놀라 말에서 떨어지시고 그를 몇 마디 꾸짖으시어 돌아가라 하셨나이다. 헤어진 뒤 스승님께서 몹시 주리고 목마르시어 팔계에게 물을 찾으라 하였으나 오래 기다려도 오지 않아 저더러 그를 찾으라 하셨나이다. 뜻하지 않게 손오공이 저희 둘이 없는 틈을 타 도로 와서 스승님께 쇠몽둥이를 휘둘러 푸른 담요 보따리 두 개를 빼앗아 갔나이다. 저희가 돌아와 스승님을 깨운 뒤 특별히 그의 수렴동으로 가 보따리를 찾으러 갔더니, 뜻하지 않게 그가 낯빛을 바꾸며 저를 알아보려 하지 않고 스승님의 관문을 거듭 읽고 있었나이다. 제가 그것을 읽어 무엇 하려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당승을 모시지 않고 직접 서천으로 올라가 경을 구하여 동쪽 땅으로 보내고, 그것을 자기의 공과로 삼아 자기를 조상으로 세워 만고에 전하게 하려 한다 하였나이다. 제가 또 당승이 없으면 누가 기꺼이 그대에게 경을 전해 주겠느냐고 하였더니, 그는 도가 있는 참된 승려 하나를 뽑았다고 하였나이다. 불러 내니 과연 백마 한 필과 당승 하나요, 뒤에 팔계와 사승이 따르고 있었나이다. 제가 곧 사화상이거늘 어디에 또 다른 사화상이 있느냐 하며 달려들어 보장으로 한 번 쳤더니, 이는 원숭이 정령이었나이다. 그러자 그가 무리를 거느리고 저를 잡으려 하였으므로 제가 특별히 보살님께 와서 고하나이다. 그가 근두운을 부리는 줄은 저도 몰랐거니와 벌써 이곳에 와 있으며, 또 그가 무슨 교묘한 말로 보살님을 속여 가렸는지도 알 길이 없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오정아, 남을 모함하지 말아라. 오공이 이곳에 온 지 오늘로 벌써 나흘이 되었으되 내가 그를 돌려보낸 적이 없나니, 그에게 어찌 따로 당승을 모셔다 놓고 스스로 경을 구하러 가려는 뜻이 있겠느냐?” 사승이 말했다. “지금 수렴동에 손오공이 하나 있사오니, 어찌 감히 거짓을 아뢰어 보살님을 속이겠나이까?” 보살이 말했다. “그러하다면 너는 성급하게 굴지 말고 오공을 데리고 너와 함께 화과산에 가서 살펴보느니라. 참된 것은 없애기 어렵고 거짓된 것은 없애기 쉬우니, 그곳에 이르면 저절로 분별되리라.” 이 대성이 그 말을 듣고 곧 사승과 함께 보살께 하직하였다. 이번에 가서 이르니, “화과산 앞에서 흑백을 가리고, 수렴동 어귀에서 참됨과 사특함을 분별하리라.” 결국 어떻게 분별하게 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8회 이심교란대건곤(二心攪亂大乾坤) · 일체난수진적멸(一體難修眞寂滅) 이 행자와 사승은 보살에게 하직을 고하고 두 줄기 상서로운 빛을 타고 남해를 떠났다. 본래 행자의 근두운은 빠르고 사화상의 신선 구름은 느렸으므로, 행자가 먼저 가려 하였다. 사승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큰형님, 이렇게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내미실 것 없소. 먼저 가서 뿌리를 박으려 마시고, 아우와 함께 가십시다.” 대성은 본디 양심이 있었으나 사승은 의심을 품고 있었으니, 과연 두 사람이 함께 구름을 타고 갔다. 오래지 않아 과연 화과산이 보이기에 구름을 내려앉히고 두 사람이 굴 밖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한 행자가 높은 석대 위에 앉아 무리 원숭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대성과 털끝만큼도 다름이 없었다. 누런 머리털에 금 고리도 같았고, 금빛 눈동자에 불꽃 같은 눈도 같았으며, 몸에 걸친 비단 저고리도 같았고, 허리에 두른 호랑이 가죽 치마도 같았다. 손에 든 한 자루 쇠몽둥이도 같았고, 발에 신은 한 켤레 노루 가죽 신도 같았다. 털북숭이 얼굴에 뢰공 같은 입, 움푹한 뺨에 튀어나온 뾰루지, 벌어진 귀에 넓은 이마, 밖으로 삐져나온 송곳니까지 이러하였다. 이 대성이 노기가 치밀어 손을 뿌리치고 사화상을 내팽개친 채 쇠몽둥이를 뽑아 앞으로 나서며 꾸짖었다. “네가 무슨 요괴이기에 감히 내 모습으로 변하고, 감히 내 자손을 차지하고, 감히 내 신선 동굴에 살면서 이런 위엄과 복을 누리느냐!” 그 행자는 보고도 태연히 대답하지 않고 또한 쇠몽둥이를 들어 맞섰다. 두 행자가 한자리에서 다투니 참으로 진짜와 가짜를 가릴 수 없었다. 싸움이 볼 만하였으니, 두 자루의 몽둥이, 두 원숭이 정령, 이번 맞붙음이 실로 가볍지 않았다. 둘 다 당나라 임금님의 의동생을 보호하려 하며, 저마다 공을 세워 영웅의 이름을 세우려 하였다. 참된 원숭이는 사문의 가르침을 참으로 받았거늘, 가짜 요괴는 불제자의 정을 거짓으로 일컫는다. 신통이 변화를 거듭하니 참도 없고 거짓도 없어 양쪽이 팽팽하다. 하나는 혼원일기의 제천대성이요, 하나는 오래 단련한 천령의 축지정이다. 이것은 여의금고봉이요, 저것은 마음대로 휘두르는 쇠창 병장기다. 막고 가리고 해도 승패가 없고, 버티고 맞서도 승부가 없다. 처음에는 굴 밖에서 손을 겨루더니, 이윽고 다툼이 반공중으로 옮겨졌다. 그 두 놈이 각각 구름빛을 밟고 뛰어올라 구소운 속에서 싸웠다. 사승은 곁에서 감히 손을 댈 수 없었으니, 저들이 이렇게 한바탕 싸우는 것을 보니 참으로 진짜와 가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칼을 뽑아 돕자니 참된 이를 다칠까 두려웠다. 오랫동안 참고 있다가 몸을 날려 산비탈 아래로 뛰어내려 항요보장을 휘둘러 수렴동 밖으로 쳐들어가 요괴 무리를 흩어 놓고, 돌걸상을 뒤집고, 술 마시며 고기 먹던 그릇들을 모조리 부수었다. 그리고 그의 푸른 담요 보따리를 찾았으나 사방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본래 수렴동은 한 줄기 폭포처럼 쏟아지는 샘물이 굴 어귀를 가리고 드리워져 있어, 멀리서 보면 한 폭의 흰 베 발 같고 가까이서 보면 한 줄기 물줄기이므로 수렴동이라 불렀다. 사승은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이치를 알지 못했으므로 찾기가 어려웠다. 그대로 구름을 타고 구소운 속으로 쫓아가 보장을 휘둘렀으나 이번에도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대성이 말했다. “사승아, 네가 힘을 보태기 어렵거든 스승님께 돌아가 우리가 이러이러하다고 말하고, 늙은 손이 이 요괴와 함께 남해 낙가산 보살 앞으로 올라가 진짜와 가짜를 가려 보겠다고 전하여라.” 말이 끝나자 그 행자도 같은 말을 하였다. 사승은 두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가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아 흑백을 가릴 수 없음을 보고, 하는 수 없이 말을 따라 구름머리를 돌려 삼장법사에게 돌아갔다. 보라, 그 두 행자는 가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외쳐 대며 곧장 남해로 가 낙가산에 이르렀는데, 때리고 욕하며 고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일찍이 알아챈 호법 제천이 곧 조음동 안으로 달려가 아뢰었다. “보살이시여, 과연 손오공이 둘이 되어 쳐들어오나이다.” 보살이 목타 행자와 선재동자와 용녀와 함께 연대에서 내려 문 밖으로 나가며 호통쳤다. “이 못된 짐승아, 어디로 달아나려느냐!” 이 두 놈이 서로를 잡아끌며 말했다. “보살이시여, 이 놈이 과연 제자의 모습과 같나이다. 방금 수렴동에서 싸움을 시작하여 오래도록 겨루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나이다. 사오정은 육안이 어둡고 어리석어 분별하지 못하고 힘이 있어도 돕기 어려웠으므로, 제자가 그를 서쪽 길로 돌려보내 스승님께 회보하게 하였나이다. 제가 이 놈과 보산까지 싸워 왔으니 보살의 지혜로운 눈을 빌려 제자의 진짜와 가짜를 가려 주시고 사특함과 바름을 밝혀 주소서.” 말이 끝나자 그 행자도 같은 말을 한 차례 하였다. 뭇 제천과 보살이 모두 오래도록 살펴보았으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보살이 말했다. “우선 손을 놓고 양쪽에 서 있거라. 내가 다시 살펴보리라.” 과연 손을 놓고 양쪽에 버티어 섰다. 이쪽에서 말했다. “내가 진짜다!” 저쪽에서 말했다. “저놈이 가짜다!” 보살이 목타와 선재를 앞으로 불러 조용히 분부했다. “너희가 하나씩 하나를 붙잡고 있거라. 내가 몰래 《긴고아주》를 외울 터이니, 아파하는 놈이 진짜요 아파하지 않는 놈이 가짜니라.” 두 사람이 과연 각각 하나씩을 붙잡았다. 보살이 몰래 진언을 외우자 둘이 일제히 아프다고 외치며 머리를 감싸 쥐고 땅바닥을 구르면서 다만 외쳤다. “외우지 마시오! 외우지 마시오!” 보살이 외우기를 그치자 그 둘이 또 일제히 서로를 잡아채고는 여전히 외쳐 대며 싸웠다. 보살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제천과 목타에게 앞으로 나가 힘을 보태라 명하였다. 뭇 신은 진짜를 다칠까 두려워하여 역시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보살이 “손오공!” 하고 부르자 둘이 일제히 대답했다. 보살이 말했다. “네가 지난날 벼슬이 필마온이었고 천궁을 크게 어지럽힐 때 신장들이 모두 너를 알아보았느니라. 너희가 상계로 올라가 분별을 받고 회보하거라.” 이 대성이 은혜에 사례하였고 그 행자도 사례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잡아당기며 입으로는 줄곧 외쳐 싸우다가 곧장 남천문 밖에 이르렀다. 놀란 광목천왕이 마·조·온·관 네 대천장과 문을 지키는 크고 작은 뭇 신을 거느리고 각자 병기를 들어 막아서며 말했다. “어디로 가려느냐! 이곳이 어찌 다투는 곳이냐!” 대성이 말했다. “제가 삼장법사를 보호하여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다가, 길에서 도적을 쳐죽였더니 삼장이 저를 쫓아버렸나이다. 저는 곧장 보타암으로 가 관음보살을 뵙고 하소연하였나이다. 그런데 이 요괴가 언제 제 모습으로 변하여 삼장법사를 때려눕히고 보따리를 빼앗았는지 모를 일이나이다. 사승이 화과산에 이르러 찾아 물으니 이 요괴가 제 소굴을 차지하고 있었고, 뒤에 보타암으로 가 보살을 청하니 저는 대 아래 모시어 서 있었나이다. 사승이 거짓으로 제가 근두운을 타고 먼저 보살 처소에 와 꾸며 말한다고 하였으나, 보살께서는 바르고 밝으신 분이라 사승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저더러 그와 함께 화과산에 가 살펴보라 명하셨나이다. 본래 이 요괴가 과연 늙은 손과 같은 모습이라, 방금 수렴동에서 보타산까지 싸워 보살을 뵈었으나 보살께서도 알아보기 어려우셨나이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싸워 왔으니 제천의 눈을 번거롭게 하여 진짜와 가짜를 가려 주소서.” 말을 마치자 그 행자도 이러이러하게 한 차례 말하였다. 뭇 천신이 오래도록 살펴보았으나 역시 가릴 수 없자, 그 두 놈이 고함쳤다. “너희가 가려내지 못하겠거든 길을 비켜라. 우리가 옥황상제를 뵈러 가겠다!” 뭇 신이 막아내지 못하고 천문을 열어 주어, 마원수가 장·갈·허·구 네 천사와 함께 영소보전에 이르러 아뢰었다. “하계에 손오공이 하나같이 둘이나 있어 천문을 쳐들어오며 임금님을 뵙겠다 하나이다.” 아뢰기가 끝나기도 전에 둘이 곧장 외쳐대며 들어오니, 놀란 옥황상제가 즉시 보전으로 내려와 서서 물었다. “너희 둘이 무슨 일로 천궁을 함부로 어지럽히고 짐의 앞까지 떠들며 죽음을 찾으려 하느냐!” 대성이 입을 열어 아뢰었다. “만세! 만세! 신이 이제 목숨을 바쳐 사문의 가르침을 받들었으니 다시는 감히 마음을 속이고 윗전을 속이지 않나이다. 다만 이 요괴가 신의 모습으로 변하였을 뿐이나이다.” 하며 이러저러하게 앞의 사정을 낱낱이 아뢰고 나서 말했다. “바라건대 신의 진짜와 가짜를 가려 주소서!” 그 행자도 이와 같이 한 차례 아뢰었다. 옥황상제가 곧 명을 내려 탁탑이천왕을 불러 분부했다. “조요경을 가져와 이 놈들의 진짜와 가짜를 비추어 보아, 가짜는 멸하고 진짜만 남게 하여라.” 천왕이 곧 거울을 가져다 비추어 놓고 옥황상제와 뭇 신에게 함께 보시기를 청하였다. 거울 속에는 손오공의 그림자가 둘이었으니, 금고와 옷이며 터럭 하나까지 어긋남이 없었다. 옥황상제도 가려내지 못하여 전각 밖으로 쫓아냈다. 이 대성이 껄껄 웃어대고 그 행자도 하하 즐거워하며, 서로의 머리를 잡고 목을 쓸어내리며 다시 천문을 쳐서 빠져나와 서쪽 길 위로 내려앉으며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 스승님을 뵈러 가자! 내가 너와 함께 스승님을 뵈러 가자!” 말하자면, 사승은 화과산에서 그 두 사람과 헤어진 뒤 또 삼 주야를 걸어 본래 마을로 돌아와 지난 일을 삼장법사에게 낱낱이 아뢰었다. 삼장법사 스스로 뉘우치며 한탄하여 말했다. “그때는 그저 손오공이 나를 몽둥이로 한 대 때리고 보따리를 빼앗아 간 줄로만 알았거늘, 어찌 요괴가 행자로 거짓 변한 줄을 알았으리오!” 사승이 또 아뢰었다. “이 요괴는 또 장로 한 분과 백마 한 필로 거짓 변하였고, 저팔계 하나가 우리 보따리를 메고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저로 변해 있었나이다. 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팡이로 한 방에 때려 죽였더니 본래 원숭이 정령이었나이다. 그리하여 흩어져 도망하다 다시 보살 처소로 가 하소연하였나이다. 보살께서 저더러 형님과 함께 다시 가 알아보라 하셨는데, 그 요괴가 과연 형님과 같은 모습이었나이다. 제가 힘을 보태기 어려워 먼저 돌아와 스승님께 회보하나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했다. 저팔계가 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좋다 좋아! 이 시주 댁 할멈의 말이 맞아떨어졌구나! 경을 구하러 가는 이가 여러 무리라고 하더니, 이것이 또 한 무리가 아니냐!” 그 집 사람들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나와 사승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 며칠 동안 어디로 노잣돈을 구하러 갔었소?”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동승신주 화과산으로 큰형님을 찾아 행장을 받으러 갔다가, 남해 보타산으로 가 관음보살을 배알하고, 다시 화과산에 갔다가 비로소 이곳으로 돌아왔소.” 그 노인이 또 물었다. “왕복이 얼마나 되는 길이오?” 사승이 말했다. “이십여 만 리쯤 되오.” 노인이 말했다. “어이구야, 이 며칠 동안에 이토록 먼 길을 다녀오다니, 구름을 타야만 겨우 갈 수 있겠구려!” 저팔계가 말했다. “구름을 타지 않고서야 어찌 바다를 건너겠소?” 사승이 말했다. “우리가 어찌 걷는 축에 들겠소. 큰형님이라면 하루 이틀이면 왕복할 수 있소.” 그 집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모두 신선이라 하자 저팔계가 말했다. “우리가 신선은 아니지만, 신선이 오히려 우리 후배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문득 반공중에서 사람들이 떠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놀란 사람들이 모두 나와 보니, 두 행자가 싸우며 달려오고 있었다. 저팔계가 보고는 손이 근질거려 견디지 못하고 말했다. “내가 가서 알아보고 오겠소.” 이 멍청한 놈이 급히 몸을 날려 뛰어오르며 허공을 향해 크게 외쳤다. “형님, 떠들지 마시오. 내가 왔소!” 그 두 놈이 일제히 대답했다. “동생이여, 요괴를 치러 오시오! 요괴를 치러 오시오!” 그 집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말했다. “구름을 타고 안개를 밟는 나한 몇 분이 우리 집에 쉬러 오셨구나! 원을 세워 승려에게 공양하는 이라 해도 이런 좋은 분들께는 공양하지 못할 터인데!” 차와 밥을 아까워하기는커녕 더욱 정성껏 공양하며 또 말했다. “이 두 행자가 싸우다가 큰일이라도 내어 천지가 뒤집히는 화를 저기서 부리지나 않을까 두렵구려!” 삼장은 그 노인이 앞에서는 기뻐하면서 뒤로는 근심하는 것을 보고 곧 입을 열어 말했다. “노시주여, 마음을 놓으시고 근심과 탄식을 내지 마시오. 빈승이 제자를 거두어 복종시키고 악을 버려 선으로 돌아오게 하면 자연히 그대에게 사례하리다.” 그 노인이 연거푸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이외다! 천만의 말씀이외다!” 사승이 말했다. “시주여, 말씀을 마치시고 스승님은 여기 앉아 계시옵소서. 저와 둘째 형이 가서 한 놈씩 끌고 그대 앞에 오게 하리니, 그대가 그 주문을 외워 보시오. 아파하는 놈이 진짜요 아파하지 않는 놈이 가짜요.” 삼장이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이오.” 사승이 과연 반공중으로 올라가 말했다. “두 분, 손을 놓으시오. 제가 두 분과 함께 스승님 앞으로 가 진짜와 가짜를 가려 보겠소.” 이 대성이 손을 놓자 그 행자도 손을 놓았다. 사승이 하나를 붙잡아 세우고 외쳤다. “둘째 형, 그대도 하나를 붙잡으시오.” 과연 붙잡고는 구름을 내려 초가집 문 밖으로 곧장 이르렀다. 삼장이 보고는 곧 《긴고아주》를 외우자 두 사람이 일제히 괴로워하며 외쳤다. “우리가 이토록 고되게 싸우는데 그대가 어찌 우리를 주문으로 괴롭히시오? 외우지 마시오! 외우지 마시오!” 그 장로는 본디 마음이 자비로웠으므로 입을 다물고 더 외우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진짜와 가짜를 알아본 것도 아니었다. 그 두 놈이 손을 뿌리치고 나서는 여전히 다시 싸웠다. 이 대성이 말했다. “동생들이여, 스승님을 잘 모시거라. 내가 이 놈과 함께 염라대왕 앞까지 가서 따져 보겠다!” 그 행자도 같은 말을 하였고, 두 사람이 서로 잡아끌며 다투다가 잠시 후 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저팔계가 말했다. “사승, 네가 수렴동에 갔을 때 가짜 저팔계가 행장을 메고 있는 것을 보았거늘 어찌 빼앗아 오지 않았느냐?” 사승이 말했다. “그 요괴가 내가 보장으로 가짜 사승을 치는 것을 보더니, 놈들이 마구 에워싸며 나를 잡으려 하였기에 나는 목숨을 부지하여 달아났노라. 보살께 고하고 행자와 함께 다시 굴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그 두 놈이 공중에서 싸웠는데, 내가 가서 놈들의 돌걸상을 뒤집고 작은 요괴들을 흩어 놓았으나, 다만 한 줄기 폭포수가 흐를 뿐이어서 굴 문이 어디에 열렸는지 알 길이 없어 행장을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므로 빈손으로 돌아와 스승님의 명에 회보한 것이노라.” 저팔계가 말했다. “네가 본래 알지 못하는구나. 내가 지난해 그를 청하러 갔을 적에 먼저 굴 문 밖에서 만났는데, 뒤에 내가 말로 그의 비위를 건드렸더니 그가 뛰어내려 굴 속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 내가 그가 몸을 물속으로 잠깐 파고드는 것을 보았노라. 그 한 줄기 폭포수가 흐르는 곳이 바로 굴 문이노라. 틀림없이 그 요괴가 우리 보따리를 그 안에 거두어 두었을 것이노라.” 삼장이 말했다. “네가 그 문을 안다면, 놈들이 집에 없는 틈을 타 네가 먼저 그 굴에 가 보따리를 꺼내 오너라. 그러면 우리가 서천으로 가겠다. 그가 온다 해도 나는 그를 쓰지 않으리라.” 저팔계가 말했다. “제가 가겠나이다.” 사승이 말했다. “둘째 형, 그 굴 앞에는 작은 원숭이가 천여 마리나 되니, 그대 혼자서는 당해 내지 못해 도리어 일을 그르칠까 두렵소.”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겁내지 마시오! 겁내지 마시오!” 급히 문을 나서 구름과 안개를 타고 곧장 화과산으로 올라가 행장을 찾으러 갔다. 말하자면, 그 두 행자가 또 싸우며 떠들어 대다가 음산 등 뒤에 이르렀는데, 놀란 온 산의 귀신들이 벌벌 떨며 숨고 또 숨었다. 먼저 달아난 자들이 음사 문 안으로 뛰어들어 삼라보전에 올라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배음산 위에서 제천대성이 둘이나 싸우며 쳐들어오나이다!” 놀란 제일전 진광왕이 제이전 초강왕, 제삼전 송제왕, 제사전 변성왕, 제오전 염라왕, 제육전 평등왕, 제칠전 태산왕, 제팔전 도시왕, 제구전 오관왕, 제십전 전륜왕에게 전하여 알렸다. 한 전이 다음 전에 전하여 잠시 사이에 열 왕이 모두 모였고, 또 사람을 보내 지장왕에게 날려 알렸다. 모두 삼라전 위에 모여 음병을 점고하여 진짜와 가짜를 잡으려 기다렸다. 그때 센 바람이 굴굴 불고 참혹한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두 행자가 뒹굴고 나뒹굴며 삼라전 아래까지 싸워 왔다. 음군이 앞으로 나와 막아서며 말했다. “대성은 무슨 일로 우리 유명계를 어지럽히느냐?” 이 대성이 말했다. “내가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다가 서량국을 지나 어느 산에 이르렀을 적에 강도 떼가 우리 스승을 에워싸고 노략질하기에 늙은 손이 몇 놈을 쳐죽였더니, 스승님이 나를 꾸짖고 쫓아버렸노라. 나는 곧 남해 보살 처소로 가 하소연하였는데, 그 요괴가 어떻게 내 기운을 흉내 내어 내 모습으로 거짓 변하였는지 모를 일이로다. 반 길에서 스승님을 때려눕히고 행장을 빼앗았노라. 사제 사승이 내 본산으로 와 보따리를 찾으니, 이 요괴가 스승의 이름을 거짓으로 내세워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려 하였노라. 사승이 달아나 남해로 가 보살을 뵈었을 때 내가 곁에 있었는데, 그가 자세한 사정을 말하니 보살께서 나더러 그와 함께 화과산에 가 보라 명하셨거늘, 과연 이 놈에게 소굴을 빼앗겼더라. 내가 이 놈과 보살 처소까지 가서 다투었으나, 실로 모습이며 말씨가 모두 같아 보살께서도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어려우셨노라. 또 이 놈과 함께 천당까지 싸워 올라갔으나 뭇 신도 과연 가리지 못하였고, 내 스승을 만나니 스승님이 《긴고아주》를 외워 시험하시매 나와 똑같이 아팠노라. 그러므로 이곳 유명계까지 떠들며 왔으니, 바라건대 음군은 생사부를 열어 살펴 가짜 행자가 무슨 출신인지 알아내어 그 혼백을 속히 거두어 주시오. 두 마음이 어지러이 섞이는 일이 없게 하려 함이로다.” 그 요괴도 이와 같이 한 차례 말하였다. 음군이 그 말을 듣고 곧 부를 맡은 판관을 불러 하나하나 처음부터 조사하게 하였으나, 가짜 행자라는 이름은 전혀 없었다. 다시 모충 문부를 살펴보니, 그 원숭이 백삼십 조목은 이미 손대성이 어린 나이에 도를 얻었을 적에 음사를 크게 어지럽히고 죽음의 이름을 지워 한 붓으로 그어 버린 것이었다. 그 뒤로는 무릇 원숭이 무리에 속한 자는 모두 이름이 없었다. 조사를 마치고 전각에서 회보하자, 음군이 각각 홀을 쥔 채 행자에게 말했다. “대성이여, 유명계에는 이름과 호를 찾을 수 없으니 그대가 양간으로 돌아가 따져 보시오.” 바로 그때 지장왕보살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잠깐! 내가 체청을 시켜 그대의 진짜와 가짜를 듣게 하리라.” 본래 그 체청은 지장보살의 경안 아래 엎드려 있는 짐승의 이름이었다. 그 짐승이 땅바닥에 엎드리면 잠깐 사이에 사대부주의 산천과 사직, 동천과 복지 사이에서, 나충과 인충과 모충과 우충과 곤충이며, 천선과 지선과 신선과 인선과 귀선을 두루 살펴 선악을 비추어 보고 어질고 어리석음을 살펴 들을 수 있었다. 그 짐승이 지장의 균지를 받들어 삼라 뜰 가운데 땅바닥에 엎드렸다가 잠시 후 머리를 들어 지장에게 말했다. “요괴의 이름이 있기는 하나이다. 그러나 면전에서 말로 밝힐 수 없고, 또 힘을 보태어 그를 잡을 수도 없나이다.” 지장이 말했다. “면전에서 말하면 어찌 되느냐?” 체청이 말했다. “면전에서 말하면 요괴가 악을 내어 보전을 소란스럽게 하여 음부가 편치 못하게 될까 두렵나이다.” 또 물었다. “어찌하여 힘을 보태어 잡을 수 없다는 것이냐?” 체청이 말했다. “요괴의 신통이 손대성과 다름이 없나이다. 유명의 신들이 얼마나 힘이 있겠나이까. 그러므로 잡을 수 없나이다.” 지장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느냐?” 체청이 말했다. “불법이 끝이 없나이다.” 지장은 이미 깨달았으므로 곧 행자에게 말했다. “너희 둘은 모습이 하나 같고 신통이 둘이 아니니, 밝혀 내려면 뇌음사의 석가여래께로 가야만 비로소 분명해지리라.” 두 놈이 일제히 외쳤다. “옳소! 옳소! 내가 너와 함께 서천 불조 앞으로 가 따져 보자!” 그 열 전의 음군이 배웅하여 나오고, 지장에게 사례하고는 취운궁으로 돌아가 귀사에게 명하여 유명의 관문을 닫게 하였다. 보라, 그 두 행자가 구름을 날리고 안개를 헤치며 서천으로 싸워 올라갔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사람이 두 마음을 품으면 재앙이 생기고, 하늘 끝 바다 모퉁이까지 의심을 불러온다. 좋은 말과 삼공의 벼슬을 생각하다가는, 또 금란전 일품의 자리를 떠올린다. 남으로 정벌하고 북으로 토벌해도 쉴 새가 없고, 동쪽을 막고 서쪽을 물리쳐도 정해짐이 없구나. 선문에서는 모름지기 무심의 결을 배워, 영아를 고이 길러 성태를 맺어야 한다. 그 두 놈이 반공중에서 서로 잡아당기고 끌어당기며, 가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외쳐 대다가 마침내 대서천 영취선산 뇌음보찰 밖에 이르렀다. 일찍이 사대보살과 팔대금강, 오백 아라와 삼천 게제, 비구니와 비구승, 우바새와 우바이 등 큰 성중이 모두 칠보연대 아래로 모여 각기 여래의 설법을 듣고 있었다. 그 여래가 마침 이렇게 설하고 있었다. 있지 않음 가운데 있음이 있고, 없지 않음 가운데 없음이 있다. 색 아닌 가운데 색이 있고, 공 아닌 가운데 공이 있다. 유가 아닌 것이 유가 되고, 무가 아닌 것이 무가 된다. 색 아닌 것이 색이 되고, 공 아닌 것이 공이 된다. 공이 곧 공이요, 색이 곧 색이다. 색은 정해진 색이 없으니 색이 곧 공이요, 공은 정해진 공이 없으니 공이 곧 색이다. 공을 알면 공이 아니요, 색을 알면 색이 아니다. 이를 조요라 이름하니 비로소 묘음에 이른다. 뭇 대중이 머리를 조아려 귀의하고 유통하며 독송하는 즈음에, 여래가 하늘꽃을 내려 두루 흩날리게 하고는 곧 보좌에서 내려와 대중에게 말했다. “너희는 모두 한마음이거니와, 두 마음이 다투어 오는 것을 보라.” 대중이 눈을 들어 보니 과연 두 행자가 하늘과 땅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며 뇌음승경까지 싸워 왔다. 놀란 팔대금강이 앞으로 나서며 막아서서 말했다. “너희는 어디로 가려느냐?” 이 대성이 말했다. “요괴가 내 모습으로 변하여 보련대 아래로 오려 하니, 여래께서 나를 위하여 진실과 허위를 가려 주시기를 바라노라.” 뭇 금강이 막아내지 못하여 그대로 외쳐대며 대 아래까지 이르자, 불조 앞에 꿇어앉아 절하며 아뢰었다. “제자가 삼장법사를 보호하여 보산을 찾아와 진경을 구하려 하오니, 가는 길에 마귀를 단련하고 요괴를 결박하느라 얼마나 많은 정신을 썼는지 모르나이다. 앞서 중도에 이르렀을 적에 우연히 강도를 만나 노략질을 당하였는데, 실로 제자가 두 차례에 걸쳐 몇 사람을 쳐서 상하게 하였나이다. 스승님이 이를 꾸짖어 쫓아내며 여래의 금신을 함께 배알하지 못하게 하였나이다. 제자로서는 어찌할 수 없어 남해로 달려가 관음을 뵙고 하소연하였나이다. 뜻밖에도 이 요괴가 제자의 목소리와 모습으로 거짓 변하여 스승님을 때려눕히고 행장을 빼앗아 갔나이다. 사제 오정이 내 산으로 찾아왔다가 이 요괴의 교묘한 거짓말에 속아 참된 승려가 경을 구하러 간다는 까닭을 들었나이다. 오정이 몸을 빼어 남해로 가 자세히 말하니 관음이 이를 아시고 마침내 제자에게 오정과 함께 다시 내 산으로 가라 명하셨나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진짜와 가짜를 겨루어 남해까지 싸웠고, 또 천궁까지 싸웠으며, 또 삼장법사를 뵙고 명부까지 가 보았으나 모두 가려내지 못하였나이다. 그러므로 큰 뜻을 품고 가벼이 찾아왔사오니, 천번 간청하오니 방편의 문을 크게 여시고 자비로운 생각을 널리 내리시어 제자의 사특함과 바름을 밝혀 주소서. 그래야 삼장법사를 보호하여 친히 금신을 배알하고 경을 얻어 동토로 돌아가 큰 교법을 영원히 떨치겠나이다.” 대중이 그 두 입에서 같은 목소리로 한 차례씩 말하는 것을 들었으나 역시 가려내지 못하였고, 오직 여래만이 환히 알고 있었다. 막 밝혀 말하려 하는데 홀연 남쪽 하늘 채운 사이로 관음이 와서 내 부처님께 참배하였다. 내 부처님이 합장하며 말했다. “관음존자여, 그대는 저 두 행자 가운데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보이느냐?” 보살이 말했다. “지난날 제자의 황량한 경계에서는 참으로 가려낼 수 없었나이다. 그가 또 천궁과 지부에 이르렀으나 역시 모두 알아보기 어려웠나이다. 특별히 여래를 배알하러 와 간청하오니, 천만 부디 그들의 진짜와 가짜를 밝혀 주소서.” 여래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의 법력이 광대하여 두루 주천의 일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니, 주천의 사물을 두루 알지 못하고 주천의 종류를 널리 헤아리지도 못하느니라.” 보살이 다시 주천의 종류를 여쭙자 여래가 비로소 말했다. “주천 안에 다섯 신선이 있으니 하늘과 땅과 신과 사람과 귀신이요, 다섯 벌레가 있으니 나충과 인충과 모충과 우충과 곤충이다. 이 놈은 하늘도 아니요 땅도 아니며 신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며 귀신도 아니요, 또한 나충도 아니요 인충도 아니며 모충도 아니요 우충도 아니며 곤충도 아니다. 또 세상을 어지럽히는 네 원숭이가 있으니, 열 가지 종류에 들지 않느니라.” 보살이 말했다. “감히 여쭙나이다. 그 네 원숭이는 어떠한 것이니이까?” 여래가 말했다. “첫째는 영명석후이니, 변화에 통달하고 천시를 알며 지리를 알아 별을 옮기고 북두칠성을 바꾼다. 둘째는 적고마후이니, 음양을 깨닫고 인사를 알며 드나듦에 능하여 죽음을 피하고 목숨을 늘인다. 셋째는 통비원후이니, 해와 달을 잡고 천 산을 오그리며 길흉을 가리고 천지를 주무른다. 넷째는 육이미후이니, 소리를 잘 듣고 이치를 살필 줄 알며 앞뒤를 알아 만물이 모두 밝다. 이 네 원숭이는 열 가지 종류에 들지 않고 두 세상 사이의 이름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내가 보건대 가오공은 바로 육이미후니라. 이 원숭이는 한곳에 서 있으면 천 리 밖의 일을 알고, 사람들이 하는 말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소리를 잘 듣고 이치를 살필 줄 알며 앞뒤를 알아 만물이 모두 밝으니라. 참된 오공과 모습과 소리가 같은 자가 바로 육이미후니라.” 그 미후가 여래가 자기의 본모습을 밝혀 말하는 것을 듣고는 간담이 서늘하여 급히 몸을 날려 뛰어올라 달아나려 하였다. 여래가 그가 달아나려 하는 것을 보시고 곧 대중에게 손을 쓰라 명하니, 벌써 사보살과 팔금강, 오백 아라와 삼천 게제, 비구승과 비구니, 우바새와 우바이, 관음과 목타가 일제히 에워쌌다. 손대성도 앞으로 나서려 하자 여래가 말했다. “오공아, 손을 대지 말거라. 내가 너를 위해 그를 잡아 주리라.” 그 미후가 털끝이 곤두서며 벗어나기 어렵다 여기고 급히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여 꿀벌 한 마리로 변해 위로 날아오르려 하였다. 여래가 금발우를 던져 올리니 바로 그 벌을 덮고 떨어졌다. 대중은 알지 못하고 달아난 줄로 여겼으나 여래가 웃으며 말했다. “대중은 말하지 말라. 요괴는 달아나지 않았고 지금 내 발우 아래 있느니라.” 대중이 일제히 앞으로 나서 발우를 들어 올리니 과연 본모습이 드러났으니, 그것은 한 마리 육이미후였다. 손대성이 참지 못하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정통으로 내리쳐 때려 죽이니, 이제까지 이 한 종류가 끊겼다. 여래가 차마 견디지 못하여 말했다. “선재! 선재!” 대성이 말했다. “여래께서 그를 자비롭게 여기실 것이 아니외다. 그가 내 스승님을 때려 상하게 하고 내 보따리를 빼앗았으니, 법에 따라 재물을 취하고 사람을 상하게 한 죄와 대낮에 빼앗은 죄를 묻는다면 참형이 마땅하외다!” 여래가 말했다. “너는 어서 가서 삼장법사를 보호하여 이곳으로 와 경을 구하게 하여라.” 대성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례하여 말했다. “여래께 아뢰어 알게 하오니, 그 스승님은 틀림없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외다. 내가 이번에 가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또 한 차례 신경을 쓰게 하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바라건대 여래께서 방편을 베푸시어 송고아주를 한 번 외우시어 이 금고를 벗겨 여래께 돌려드리고 나를 속세로 돌려보내 주소서.” 여래가 말했다. “너는 어지러이 생각하지 말고, 결코 제멋대로 굴지 말라. 내가 관음에게 너를 데려다주라 하리니 그가 받아들이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라. 잘 보호하여 그를 가거라. 그때 공을 이루어 극락으로 돌아오면 너 또한 연대에 앉으리라.” 그 관음이 곁에서 그 말씀을 듣고 곧 합장하여 성은에 사례하고는 오공을 데리고 곧 구름을 타고 떠났으며, 뒤이어 목타 행자와 흰 앵무새도 함께 따라잡았다. 오래지 않아 중도의 초가집에 이르렀는데, 사화상이 보고 급히 스승님을 모시고 문에 나가 절하며 맞이하였다. 보살이 말했다. “삼장이여, 지난날 그대를 친 자는 가짜 행자 육이미후이니라. 다행히 여래께서 알아보시고 이미 오공에게 맞아 죽었느니라. 그대는 이제 모름지기 오공을 거두어 주어야 하느니라. 가는 길에 마장이 아직 가시지 않았으니 그의 보호를 받아야만 비로소 영산에 이르러 부처님을 뵙고 경을 얻을 수 있느니라. 다시는 꾸짖고 원망하지 말라.” 삼장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나이다.” 막 절하며 사례하는데, 문득 정동쪽에서 세찬 바람이 굴굴 불어오는 소리가 들려 뭇 사람이 눈을 들어 보니, 저팔계가 보따리 둘을 메고 바람을 타고 왔다. 그 멍청이가 보살을 보고 몸을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제자가 지난날 스승님과 헤어져 화과산 수렴동으로 가 보따리를 찾았더니, 과연 가짜 삼장과 가짜 저팔계가 있었는데 모두 제자가 때려 죽였사온데 본래 원숭이 몸이 둘이었나이다. 안으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보따리를 찾았고 그 자리에서 점검하니 한 물건도 빠지지 않았나이다. 바람을 타고 이리로 돌아왔사오나 두 행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하나이다.” 보살이 여래께서 요괴를 알아보신 일을 한 차례 말해 주었다. 그 멍청이는 몹시 기뻐하며 사례를 마지않았다. 사도들이 절하며 사례하자 보살은 바다로 돌아갔고, 모두 예전대로 뜻을 합하고 마음을 모아 원한을 씻고 노여움을 풀었다. 또 그 마을 사람들에게 사례하고 행장과 말을 정비하여 큰길을 찾아 서쪽으로 갔다. 바로 이러하였다. 중도에서 헤어져 오행이 어지러웠으나, 요괴를 항복받고 모여 원명을 합하였다. 신이 심사로 돌아오니 선이 바야흐로 정해지고, 육식을 물리쳐 항복시키니 단이 스스로 이루어진다. 결국 이렇게 떠났으니, 삼장이 어느 때에나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하게 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59회 당삼장로조화염산(唐三藏路阻火焰山) · 손행자일조파초선(孫行者一調芭蕉扇) 온갖 종성이 본래 한가지인데, 바다가 무한히 받아들이는구나. 천 가지 생각 만 가지 근심도 마침내는 허망이 되나니, 가지가지 온갖 형상이 서로 어우러진다. 어느 날 공이 이루어지고 행이 차면, 둥글고 밝은 법성이 높이 일어나리라. 차별을 시켜 동서로 달아나게 말고, 굳게 자물쇠 채워 가두어라. 거두어다 단로 안에 놓아두면, 금오와 꼭같이 붉게 단련되리라. 밝고 밝게 고운 빛이여, 드나들며 용을 타게 하여도 좋으니라. 말하자면, 삼장법사가 보살의 교지를 받들어 행자를 거두어들이고, 팔계와 사승과 더불어 두 마음을 끊어버리고 원숭이와 말을 채워 묶고서, 마음을 모아 힘을 합하여 서천을 향해 달려갔다. 이 이야기로 다 말할 수 없거니와, 세월은 화살 같고 해와 달은 북과 같아서, 여름의 뜨거운 나날들을 지나오니 어느덧 가을 서리의 경치에 이르렀다. 다만 보이는 것은, 가느다란 구름은 끊어지고 서풍은 매섭고, 학은 먼 산봉우리에서 울며 서리 맞은 숲은 비단이로다. 빛과 경치가 바로 처량한데, 산은 길고 물은 더욱 길구나. 기러기는 북쪽 변방에서 오고, 제비는 남쪽 들길로 돌아간다. 나그네 길은 외로움이 두렵고, 승복은 쉽게 차가워지는구나. 사부와 제자 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매, 점점 뜨거운 기운이 사람을 찌는 듯함을 느꼈다. 삼장법사가 말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지금은 바로 가을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뜨거운 기운이 있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은 본래 모르시는구려. 서쪽 길 위에 사합리국이라는 나라가 있사온데, 해가 지는 곳이요, 속되게 일러 하늘의 끝이라 하옵니다. 신유 시각이 되면 국왕이 사람을 성 위에 올려보내 북을 치고 뿔피리를 부니, 그 소리가 바다가 끓는 소리를 뒤섞을 만큼 장엄하옵니다. 해란 곧 태양의 참된 불이라, 서해 사이에 떨어질 때에 마치 불에 물을 끼얹듯 소리를 이어 굽이치며 끓는다옵니다. 만약 북과 뿔피리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지 않으면, 곧 성 안의 어린아이들이 진동하여 죽는다옵니다. 이곳의 뜨거운 기운이 사람을 찌니, 필시 해가 지는 곳에 이른 것이로소이다.” 대성이 이 말을 듣고는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함부로 떠들지 마라! 사합리국을 논하자면 아직도 한참 멀었느니라. 사부님께서 이리저리 마음이 흔들리시며 이렇게 지체하신다면, 어려서 늙고 늙어서 다시 어려져 늙고 젊음의 삼생을 겪는다 하여도 또한 도저히 이르지 못하리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형님 말씀대로라면 해가 지는 곳이 아니라 하오니, 어찌하여 이다지도 몹시 덥단 말이오?” 사승이 말했다. “아마도 천시가 바르지 못하여, 가을에 여름의 기운을 행하는 까닭이로소이다.” 그 세 사람이 바로 서로 다투어 말하고 있는데, 문득 길가에 한 채의 장원이 보이니, 붉은 기와를 얹은 집이요,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이며, 붉은 기름칠을 한 문짝과 붉은 칠을 한 널침상이니, 온통 하나같이 붉었다. 삼장법사가 말에서 내려 말했다. “오공아, 네가 저 인가에 가서 소식을 물어보고, 저토록 더운 까닭이 무엇인지 알아보아라.” 대성이 여의금고봉을 거두고, 의복을 가지런히 정비하며, 몸을 단정히 하여 사문의 기상을 지어 가지고 큰길을 벗어나 곧장 문 앞에 이르러 살펴보았다. 그 문 안에서 홀연 한 노인이 걸어 나왔는데,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누런 듯 누렇지 않고 붉은 듯 붉지 않은 갈포로 지은 긴 도포를 입고, 푸른 듯 푸르지 않고 검은 듯 검지 않은 대오리로 엮은 삿갓을 썼다. 손에는 굽은 듯 굽지 않고 곧은 듯 곧지 않은 마디가 불거진 대지팡이를 짚고, 발에는 새 것인 듯 새 것 아니요 헌 것인 듯 헌 것 아닌 끌어 신는 가죽신을 신었다. 얼굴은 붉은 구리 같고 수염은 흰 비단 같으며, 두 가닥 긴 눈썹이 푸른 눈을 가렸고, 벌어져 웃는 입은 금니를 드러내었다. 그 노인이 멍하니 고개를 들어 행자를 보고는 크게 놀라며, 대지팡이를 짚은 채 꾸짖었다. “너는 어디서 온 괴물이냐? 내 이 문 앞에서 무슨 짓이냐?” 행자가 예를 갖추어 답했다. “노시주께서는 저를 두려워 마옵소서. 저는 무슨 괴물이 아니옵고, 빈승은 동토 대당의 흠차로서 서방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자이옵니다. 사부와 제자 네 사람이 이제 막 보방에 이르렀사온데, 날씨가 몹시 뜨거움을 보고서, 하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옵고, 둘은 또한 이곳 지명을 알지 못하옵기에, 특별히 찾아뵙고 가르침을 여쭙고자 하옵니다.” 그 노인이 그제야 마음을 놓고 웃으며 말했다. “장로께서는 허물을 마옵소서. 늙은이가 잠시 눈이 어두워 존안을 알아보지 못하였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노인이 또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어느 길 위에 계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남쪽 큰길 위에 서 계신 분이 바로 그분이 아니옵니까!” 노인이 청했다. “어서 모셔 오시오, 어서 모셔 오시오.” 행자가 기뻐하며 손을 한 번 흔드니, 삼장법사가 곧 팔계와 사승과 함께 백마를 끌고 행장을 메고 앞으로 나아와, 모두 노인에게 예를 갖추었다. 노인은 삼장법사의 풍채가 빼어나고 팔계와 사승의 생김새가 기이하고 드묾을 보고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다만 안으로 들어와 앉기를 청하고, 아이들에게 차를 내오라 이르며, 한편으로는 밥을 마련하게 하였다.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고 몸을 일으켜 사례하며 말했다. “감히 공공께 여쭙거니와, 귀한 곳은 가을을 만나거늘 어찌하여 도리어 이리 뜨겁나이까?” 노인이 말했다. “폐지를 화염산이라 부르옵나니, 봄도 없고 가을도 없이 사계절이 모두 뜨겁나이다.” 삼장법사가 말했다. “화염산이 어느 쪽에 있기에 서쪽으로 가는 길을 막는단 말이오?” 노인이 말했다. “서쪽은 도저히 갈 수 없나이다. 그 산은 여기서 육십 리쯤 떨어져 있사온데, 바로 서쪽으로 가는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로되, 팔백 리에 걸친 불길이 있어 사방 둘레에 풀 한 포기도 나지 않나이다. 만약 그 산을 넘는다면, 구리로 된 두개골과 쇠로 된 몸이라도 또한 녹아 즙이 되고 말 것이옵니다.”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감히 다시 묻지 못했다. 그런데 문 밖에서 한 젊은 사내가 붉은 수레를 밀고 와 문 곁에 세워두고는 “떡 사시오!” 하고 외쳤다. 대성이 털끝 하나를 뽑아 구리돈으로 변하게 하여, 그 사람에게서 떡을 사려 하였다. 그 사람은 돈을 받고는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수레 위의 덮개를 걷어 올리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떡 한 조각을 꺼내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손에 받쳐 들자, 마치 화로 속의 타는 숯덩이요, 석탄 난로 안의 붉은 못과 같았다. 보라, 그는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꾸며, 다만 이리 말했다.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먹기 어렵다, 먹기 어렵다!” 그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더운 것이 무서우면 이리 오지 말지, 여긴 본래 이렇게 덥소.” 행자가 말했다. “이 사람아, 참으로 이치를 모르는구나. 속담에 이르기를,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으면 오곡이 여물지 않는다 하였거늘, 이곳이 이토록 뜨거운데 네 떡가루는 어디서 왔단 말이냐?” 그 사람이 말했다. “떡가루가 어디서 나는지 알려거든, 삼가 철선선에게 구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철선선이란 누구요?” 그 사람이 말했다. “철선선에게는 파초선 한 자루가 있소. 구해 오면 한 번 부치면 불이 꺼지고, 두 번 부치면 바람이 일며, 세 번 부치면 비가 내리니, 우리가 씨를 뿌리고 제때에 거두어들여 오곡으로 목숨을 기를 수 있소. 그렇지 않다면 참으로 풀 한 포기도 나지 않을 것이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급히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며, 떡을 삼장법사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부님, 염려 마옵소서. 우선 이르지도 않은 걱정은 마시고, 떡을 잡수신 뒤에 제가 말씀을 올리겠나이다.” 장로가 떡을 손에 받아 들고 이 집 노인을 향해 말했다. “공공께서도 떡을 드시오.” 노인이 말했다. “내 집의 차와 밥도 아직 대접하지 못하였거늘, 감히 그대의 떡을 먹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노인장, 차와 밥은 내려 주지 않으셔도 좋사옵니다. 다만 한 가지 여쭙겠나이다. 철선선은 어디에 삽니까?” 노인이 말했다. “그대는 그를 어쩌려고 묻는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방금 저 떡 파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 신선에게 파초선 한 자루가 있어 구해 오면 한 번 부치면 불이 꺼지고, 두 번 부치면 바람이 일며, 세 번 부치면 비가 내려, 이곳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거두어들여야 비로소 오곡으로 목숨을 기를 수 있다 하였사옵니다. 제가 그를 찾아가 부채를 얻어다 화염산의 불을 꺼서 지나가고자 하옵고, 또한 이곳 사람들로 하여금 때에 맞추어 씨 뿌리고 거두어들여 편안히 살게 하고자 하옵니다.” 노인이 말했다. “본래 그런 말이 있기는 하오. 그러나 그대들에게는 예물이 없사오니, 그 성현이 기꺼이 나서려 하지 않을까 두렵소.” 삼장법사가 말했다. “그는 무슨 예물을 바라옵니까?” 노인이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십 년에 한 번씩 찾아가 빌어올리나이다. 돼지 넷과 양 넷, 꽃과 붉은 비단의 겉과 안, 특이한 향과 제철 과일, 닭과 거위와 좋은 술을 차리고,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하여 그 신선이 사는 산에 이르러 절을 올리고, 그를 청하여 굴에서 나오시게 하여 이곳에 오셔서 시술하게 하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 산은 어디에 자리하옵니까? 무슨 지명이라 부르옵니까? 몇 리나 되옵니까? 제가 가서 그에게 부채를 달라 하겠나이다.” 노인이 말했다. “그 산은 서남쪽에 있사온데, 이름을 취운산이라 하오. 산중에 신선의 굴이 하나 있으니 이름을 파초동이라 하오. 이곳의 여러 신도들이 신선 산에 가서 절을 올리려면 오가는 데 한 달이 걸리고, 거리가 일천사백오륙십 리쯤 되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렵지 않소이다. 곧 갔다 오겠나이다.” 그 노인이 말했다. “잠깐, 차와 밥을 좀 들고, 마른 양식을 좀 마련하고, 반드시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가야 하오. 그 길에는 인가가 없고 이리와 범이 많아, 하루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장난으로 여기지 마시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필요 없소, 필요 없소, 저는 가겠나이다!” 하고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노인이 황급해하며 말했다. “오호라! 원래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몰고 다니는 신선이셨구려!” 이 집안에서 삼장법사를 갑절로 더 정성껏 공양하는 이야기는 잠시 두고, 저 행자가 삽시간에 곧장 취운산에 이르러 상서로운 빛을 누르고 바로 굴 어귀를 찾고 있는데, 문득 딩딩 하는 소리가 들리니, 이는 산림 속에서 나무꾼 하나가 나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행자가 곧 발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가니, 또 그가 읊는 소리가 들렸다. “구름 끝에 아스라이 옛 숲을 알아보나, 끊어진 벼랑과 거친 풀에 길을 찾기 어렵구나. 서산을 바라보니 아침에 비가 오려 하고, 남쪽 계곡에서 돌아올 무렵에는 건너는 곳이 깊었구나.”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나무꾼 형님, 문안을 올리옵니다.” 그 나무꾼이 도끼를 내려놓고 예를 갖추며 답했다. “장로는 어디로 가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감히 나무꾼 형님께 여쭙거니와, 여기가 취운산이옵니까?” 나무꾼이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철선선의 파초동이 있다 하던데, 어디에 있사옵니까?” 나무꾼이 웃으며 말했다. “파초동이 있기는 하오나, 철선선이라는 이는 없고 다만 철선공주가 있사온데, 또 다른 이름을 나찰녀라 하오.” 행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그에게 파초선 한 자루가 있어 화염산의 불을 끌 수 있다 하던데, 바로 그이 아니옵니까?” 나무꾼이 말했다. “옳소, 옳소. 이 성현이 이 보배를 지녔사온데 불을 잘 끄고 그 지방 사람들을 보호하므로, 이런 까닭에 철선선이라 부르는 것이오. 우리 이곳 사람들은 그를 쓸 일이 없어 다만 나찰녀라 부를 뿐이오니, 곧 대력 우마왕의 아내요.” 행자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속으로 이리 생각했다. “또 원수구나! 지난날 홍해아를 항복받았을 적에 이놈이 길렀다 하였지. 앞서 해양산 파아동에서 그의 숙부를 만났사온데 오히려 물을 주려 하지 않으며 복수할 뜻을 품더니, 이제 또 그 부모를 만났으니, 어찌 이 부채를 빌릴 수 있으리오?” 나무꾼이 행자가 깊이 생각하며 탄식하기를 그치지 않음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장로여, 그대는 출가한 몸이거늘 무슨 근심과 의심이 있사옵니까? 이 작은 길로 동쪽으로 가면 오륙 리도 되지 않아 바로 파초동이오니, 마음을 조급하게 먹지 마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나무꾼 형님께 숨기지 않고 말씀을 올리거니와, 저는 동토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당승의 큰 제자이옵니다. 지난해 화운동에서 일찍이 나찰의 아들 홍해아와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사온즉, 나찰이 원한을 품고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까닭에 근심과 의심이 생기나이다.” 나무꾼이 말했다. “대장부는 얼굴빛을 살펴 분별하는 법이오. 다만 부채를 비는 것을 명분으로 삼으시고, 지난날의 지나간 이야기는 꺼내지 마옵소서. 틀림없이 빌려 갈 수 있사올 것입니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깊이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나무꾼 형님의 가르침에 감사하옵니다. 저는 가겠나이다.” 드디어 나무꾼과 작별하고 곧장 파초동 어귀에 이르렀는데, 보니 두 짝의 문이 굳게 닫혀 단단히 잠겨 있고, 굴 밖의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참으로 좋은 곳이로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산은 돌로 뼈를 삼고, 돌은 흙의 정수가 되며, 노을과 안개는 묵은 이슬을 머금고, 이끼는 새파란 빛을 돕는다. 우뚝 솟은 형세는 봉래섬을 업신여기고, 그윽하고 고요한 꽃향기는 바다의 신선 세계와 같구나. 몇 그루 큰 소나무에는 기러기가 깃들고, 몇 그루 시든 버드나무에는 산 꾀꼬리가 노래한다. 참으로 천 년의 옛 자취요, 만 년을 내려온 신선의 발자취로다. 푸른 오동나무에는 봉황이 울고, 맑은 물에는 푸른 용이 숨었구나. 구불구불한 오솔길에는 쑥덩굴이 늘어져 걸리고, 돌계단에는 칡덩굴이 얽혀 감겼다. 원숭이는 푸른 바위에서 달이 오름을 기뻐하여 울고, 새는 높은 나무에서 맑은 하늘을 즐겨 우는구나. 두 숲의 대나무 그늘은 비 오듯 서늘하고, 한 오솔길의 짙은 꽃은 수놓은 융단을 파묻었구나. 때때로 흰 구름이 먼 봉우리에서 오는 것이 보이나니, 정해진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바람을 따라 가득 흐른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며 외쳤다. “소 큰형님,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앗 하는 소리와 함께 굴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털북숭이 계집아이 하나가 걸어 나왔는데, 손에는 꽃바구니를 들고 어깨에는 호미를 메었으니, 참으로 몸에는 남루한 옷을 걸쳐 꾸밈이 없으나, 얼굴 가득 정신이 넘쳐 도를 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마주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계집아이야, 수고롭지만 공주께 한마디 전해 주오. 나는 본래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이온데, 서쪽 길에서 화염산을 넘기 어렵사옵기에, 특별히 찾아와 파초선을 빌려 한 번 쓰고자 하옵니다.” 그 계집아이가 말했다. “그대는 어느 절의 중이오? 이름이 무엇이오? 내가 그대를 위해 알려 드려야 하지 않겠소.” 행자가 말했다. “나는 동토에서 왔거니와, 이름을 손오공이라 하는 중이로다.” 그 계집아이가 곧 몸을 돌려 굴 안으로 들어가 나찰녀 앞에 꿇어앉으며 말했다. “할머님, 굴 문 밖에 동토에서 온 손오공이라는 중이 있어 할머님을 뵙고자 하옵고, 파초선을 빌려 화염산을 넘는 데 한 번 쓰고자 하옵니다.” 그 나찰녀는 손오공이란 세 글자를 듣자마자, 마치 소금을 불에 뿌리고 불 위에 기름을 끼얹듯 하였다. 뼈 속에서부터 벌겋게 얼굴에 붉은빛이 솟고, 사납게 노여움이 가슴에서 치밀어 올라, 입으로 크게 욕하며 말했다. “이 천한 원숭이 놈! 오늘은 네가 왔구나!” 하고는 외쳤다. “계집종들아, 갑옷을 가져오고 병기를 가져오너라!” 즉시 갑옷을 갖추어 입고 푸른 칼날의 보검 두 자루를 들고 단정히 나섰다. 행자는 굴 밖으로 몸을 피해 숨어서 어떻게 차려입었는지 남몰래 살펴보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머리에는 둥근 꽃무늬 수건을 둘렀고, 몸에는 비단을 기워 만든 구름 무늬 도포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호랑이 힘줄 띠를 두 겹으로 매었는데, 치마가 삐져나와 비단이 살짝 드러났다. 봉황 부리 모양의 궁혜는 석 촌이요, 용 수염 무늬의 무릎바지는 금으로 장식하였다. 손에 보검을 들고 노여운 소리를 높이니, 그 사나움이 달 속의 노파를 닮았다. 그 나찰녀가 문을 나서며 크게 외쳤다. “손오공이 어디 있느냐?”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몸을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 “형수님, 이 늙은 원숭이가 여기서 절을 올리나이다.” 나찰녀가 퉁 하고 소리를 내며 말했다. “누가 네 형수냐! 누가 네게 절을 받으라 하더냐!” 행자가 말했다. “존댁의 우마왕께서는 일찍이 이 늙은 원숭이와 의형제를 맺었사오니, 일곱 형제의 친분이옵니다. 이제 공주께서 소 큰형님의 정실 부인이심을 들었사온즉, 어찌 형수라 부르지 않을 수 있사옵니까!” 나찰녀가 말했다. “이 천한 원숭이 놈! 형제의 정이 있다면서 어찌하여 내 자식을 구렁에 빠뜨렸느냐!” 행자가 모르는 체하며 물었다. “영감이 누구시옵니까?” 나찰녀가 말했다. “내 아들은 호산 고송간 화운동의 성영대왕 홍해아인데, 네가 그를 기울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네게 복수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네가 이제 문을 찾아와 목숨을 바치니, 내 어찌 너를 용서하리오!” 행자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말했다. “형수님은 본래 사리를 살피지 못하시고 이 늙은 원숭이를 잘못 원망하시는구려. 그대의 영감은 스승님을 잡아다 찌고 삶으려 하였사온데, 다행히 관음보살께서 그를 거두어 가시어 우리 스승님을 구해 내셨나이다. 그 아이는 지금 보살 처소에서 선재동자로 있사오니, 참으로 보살의 정과를 받아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아, 천지와 수를 같이하고 해와 달과 나란히 살고 있나이다. 도리어 이 늙은 원숭이가 목숨을 보전해 준 은혜에 사례는커녕, 도리어 이 늙은 원숭이를 원망하시니, 이것이 무슨 도리이옵니까!” 나찰녀가 말했다. “이 말 잘하는 천한 원숭아! 내 아들이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하나, 다시 어찌 내 곁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어느 때나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형수님께서 영감을 보고자 하시니 무슨 어려움이 있사옵니까? 우선 부채를 내게 빌려 주시어 불을 끄고 우리 스승님을 보내 넘겨주시면, 내가 남해 보살 처소로 가서 그를 모셔 와 형수님을 뵙게 하고, 곧 부채를 돌려드리겠나이다. 무엇이 불가하옵니까! 그때에 가서 보시옵소서, 그 아이가 터럭 한 올이나 상하였는지. 만약 조금이라도 상한 데가 있으면 형수님께서 원망하실 만한 이치가 있사옵거니와, 옛날처럼 잘생겼다면 도리어 나에게 사례하셔야 하옵니다.” 나찰녀가 말했다. “천한 원숭아, 말을 아끼거라! 머리를 내밀어 보아라, 내 몇 칼 내리쳐 보리라! 만약 아픔을 견디어 내면 부채를 네게 빌려 주리라. 만약 참아 내지 못한다면, 일찍 염라대왕을 만나게 하리라!” 행자가 두 손을 모으고 앞으로 나서며 웃으며 말했다. “형수님, 말씀이 너무 많으시옵니다. 이 늙은 원숭이가 민머리를 내밀 터이니, 뜻하시는 대로 몇 번이라도 내리치시옵소서. 다만 기운이 빠지면 그만이옵고, 부디 부채를 빌려 쓰게 하옵소서.” 그 나찰녀는 분별도 없이 두 손으로 칼을 휘둘러 행자의 머리를 향해 핑핑팡팡 열 몇 차례나 내리쳤으나, 이 행자는 조금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찰녀가 겁이 나서 고개를 돌려 달아나려 하자, 행자가 말했다. “형수님, 어디 가시옵니까? 어서 내게 빌려 쓰게 하옵소서!” 그 나찰녀가 말했다. “내 보배는 본래 가벼이 빌려 주지 않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빌려 주지 않겠다면, 네 늙은 숙부의 몽둥이 한 방을 받아라!” 과연 좋은 원숭이 왕이로다, 한 손으로 나찰녀를 붙잡고, 한 손은 귀 속에서 봉을 뽑아내어 한 번 흔들자 사발만 한 굵기가 되었다. 그 나찰녀가 손을 뿌리치고 빠져나와 칼을 들어 맞서니, 행자가 곧 봉을 휘둘러 때렸다. 두 사람은 취운산 앞에서 친정은 논하지 않고 다만 원한만을 이야기하였다.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이로다. 치마와 비녀를 꽂은 계집이 본래는 도를 닦아 이루어진 요괴이거늘, 자식 때문에 원한을 품고 사나운 원숭이를 미워하는구나. 행자가 비록 사나운 노여움을 일으켰으나, 스승의 길이 막힌 까닭에 여류에게 양보하는도다. 먼저 절하고 파초선을 빌리기를 말하였으니, 용맹함을 펴지 않고 성질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렸구나. 나찰은 무지하게 칼을 휘둘러 내리치고, 원숭이 왕은 뜻을 두어 친정을 설명하누나. 여류가 어찌 사내와 겨루리오, 끝내 사내의 강함이 여류를 누르는구나. 이쪽의 금고와 쇠몽둥이는 몹시 사납고, 저쪽의 서리 칼날 푸른 보검은 매우 조밀하구나. 면상을 내리치고, 머리를 겨누어 던지며, 한스럽고 괴롭게 서로 버티며 그칠 줄을 모른다. 왼쪽으로 막고 오른쪽으로 가리며 무예를 부리고, 앞으로 맞서고 뒤로 받치며 기이한 계책을 펴누나. 막 한창 흥겹게 싸우는 곳에 이르렀을 때, 어느덧 서쪽으로 해가 기울었다. 나찰이 급히 참된 부채를 꺼내어 한 번 휘두르니 귀신도 두려워하리라! 그 나찰녀는 행자와 버티기를 저녁까지 하다가, 행자의 몽둥이가 무겁고 또한 해수가 치밀함을 보고는 그를 당해 낼 수 없으리라 여겨, 곧 파초선을 꺼내어 한 번 흔들고 한 번 부치니 음풍이 일어, 행자를 그림자도 없고 형체도 없게 날려 보냈으니, 붙잡아 둘 방도를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 나찰은 승리를 얻고 돌아갔다. 그 대성은 붕 뜬 채 이리저리 떠돌아, 왼쪽으로 가라앉아도 땅에 내릴 수 없고, 오른쪽으로 떨어져도 몸을 붙일 수 없어, 마치 회오리바람에 지는 잎이 뒤집히고 흐르는 물에 남은 꽃이 떠내려가듯, 밤새도록 구르다가 날이 밝아서야 비로소 한 산 위에 떨어져, 두 손으로 봉우리의 바위 하나를 껴안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한참 동안 자세히 살펴보니, 그제야 소수미산임을 알아보았다. 대성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몹시 사나운 계집이로다! 어찌 이 늙은 원숭이를 여기까지 불어 보냈단 말이냐? 내 지난날 이곳에서 영길보살께 청하여 황풍괴를 항복받고 우리 스승님을 구한 일을 기억하노라. 저 황풍령에서 여기까지 곧은 남쪽 위로 삼천여 리요, 이제 서쪽 길을 돌아왔으니 동남쪽 모퉁이인데, 몇 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구나. 내려가서 영길보살께 한 가지 소식을 여쭙고, 옛길로 돌아가야겠다.” 망설이고 있는데, 또 종소리가 울려 퍼짐이 들려, 급히 산비탈을 내려가 곧장 선원에 이르렀다. 그 문 앞의 도인이 행자의 모습을 알아보고는 곧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전년에 보살을 청해 가서 황풍괴를 항복받게 한 그 털북숭이 대성이 또 오셨나이다.” 보살은 손오공임을 알고 급히 보좌에서 내려와 마주 나와, 안으로 들어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축하하노라! 경을 얻어 오는 길이냐?” 오공이 답했다. “아직 이르지도 못했소! 멀었소, 멀었소!” 영길보살이 말했다. “아직 뢰음사에 이르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황량한 산을 되돌아보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지난해 보살의 후한 뜻을 입어 황풍괴를 항복받은 이래,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이제 화염산에 이르러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어, 토인들에게 물어보니 철선선의 파초선이 있어 부치면 불이 꺼진다 하옵기에, 이 늙은 원숭이가 특별히 찾아가 보았더니, 원래 그 신선은 우마왕의 아내요 홍해아의 어미이옵니다. 그 계집이 말하기를, 내가 그 아들을 관음보살의 동자로 만들어 늘 보지 못하게 하였다 하여, 나와 원수가 되어 부채를 빌려 주지 않고 나와 다투었나이다. 그가 내 몽둥이가 무거워 견디기 어려움을 보고는 마침내 부채로 나를 한 번 부쳐, 이리저리 떠돌게 하여 바로 여기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떨어져 멈추었나이다. 이런 까닭에 가벼이 선원을 찾아뵙고 돌아갈 길을 여쭙나이다. 여기서 화염산까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영길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그 계집은 이름을 나찰녀라 하오. 또 철선공주라 부르기도 하지. 그의 파초선은 본래 곤륜산 뒤에서, 혼돈이 열린 이래로 천지가 만들어 낸 영물이니, 태양의 정묘한 잎이라 그런 까닭에 불기운을 끌 수 있느니라. 만약 사람에게 부친다면 팔만 사천 리를 날아가야 비로소 음풍이 그치느니라. 내 이 산에서 화염산까지는 다만 오만여 리뿐이니, 이는 또한 대성께서 구름을 붙잡아 두는 재주가 있으신 까닭에 멈추신 것이오. 만약 범인이라면 바로 멈출 수 없었을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사납고 사납구나! 우리 스승님은 어찌 저곳을 건너시겠소?” 영길보살이 말했다. “대성께서는 염려 마옵소서. 이번 일 또한 당승의 연법이니, 대성께서 공을 이루도록 되어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 공을 이룬다 하시옵니까?” 영길보살이 말했다. “내 지난날 여래의 교지를 받들어 정풍단 한 알과 비룡장 한 자루를 하사받았나이다. 비룡장은 이미 풍마를 항복받는 데 썼사오나, 이 정풍단은 아직 써 본 적이 없사온즉, 이제 대성께 드리리니, 틀림없이 그 계집이 그대를 부쳐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부채를 얻어다 불을 끄시오. 그러면 이 공을 세우는 것이 아니옵니까?” 행자가 머리를 숙여 절을 올리며 감사를 다하였다. 그 보살이 곧 옷소매 속에서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그 정풍단 한 알을 행자의 옷깃 안쪽에 넣어 두고, 바늘과 실로 단단히 꿰매어 주고는, 행자를 문 밖까지 배웅하며 말했다. “머물러 대접하지 못하옵니다.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바로 나찰의 산장이오.” 행자가 영길보살에게 하직을 고하고 근두운을 타고 곧장 취운산으로 되돌아가니, 잠깐 사이에 이르렀다. 쇠몽둥이로 굴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이 늙은 원숭이가 부채를 빌려 쓰러 왔노라!” 그 문 안의 계집아이가 놀라 급히 달려와 아뢰었다. “할머님, 부채 빌리러 온 이가 또 왔나이다!” 나찰녀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 말했다. “이 천한 원숭이 놈이 참으로 재주가 있구나! 내 보배는 사람을 부치면 팔만 사천 리를 가야 비로소 멈추거늘, 그가 어찌 갓 불려 가자마자 돌아왔단 말이냐? 이번에는 내가 잇달아 두세 번 부쳐서, 그가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라!” 급히 몸을 움직여 단정히 차려입고 두 손에 칼을 들고 문을 나서며 말했다. “손행자야! 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또 죽으러 왔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형수님, 인색하게 굴지 마옵소서. 부디 내게 빌려 쓰게 하옵소서. 당승을 보아 산을 넘기고 나면 곧 돌려드리겠나이다. 나는 정성이 남는 군자이옵고, 물건을 빌리고 갚지 않는 소인이 아니옵니다.” 나찰녀가 또 욕하며 말했다. “천한 원숭이 놈! 참으로 이치도 없고 분별도 없구나! 자식을 빼앗긴 원수는 아직 갚지 못하였거늘, 부채를 빌리려는 뜻이 어찌 네 마음대로 되리오! 도망가지 말라! 내 늙은 어미의 칼을 받아라!” 대성이 태연히 두려워하지 않고 쇠몽둥이를 들어 마주 맞섰다. 그 두 사람은 오락가락하며 다섯 일곱 합을 싸우니, 나찰녀는 손에 힘이 빠져 칼을 휘두르기 어렵고, 손행자는 몸이 강하여 잘 대적하였다. 그가 형세가 불리함을 보고는 곧 부채를 꺼내어 행자를 향해 한 번 부쳤으나, 행자는 꿋꿋이 움직이지 않았다. 행자가 쇠몽둥이를 거두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번은 지난번과 같지 않소! 네가 아무리 부쳐 보아라, 이 늙은 원숭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사내가 아니로다!” 그 나찰녀가 또 두 번 부쳤으나, 과연 움직이지 않았다. 나찰녀가 당황하여 급히 보배를 거두어 몸을 돌려 굴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단단히 닫아걸었다. 행자가 그가 문을 닫은 것을 보고는 곧 재주를 부려, 옷깃을 뜯어 정풍단을 입에 물고,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매미의 일종인 조요충으로 변하여 문틈으로 기어 들어갔다. 보니 나찰녀가 이리 외치고 있었다. “목이 마르다! 목이 마르다! 어서 차를 가져오너라!” 가까이서 모시는 계집아이가 곧 향기로운 차 한 주전자를 가지고 와서, 사각사각 소리가 나도록 사발에 가득 따라 올리니 찻물 거품이 술술 일어났다. 행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며, 앙 하고 한 번 날아올라 찻물 거품 아래로 들어갔다. 그 나찰녀는 목이 몹시 말라 차를 받아들이고는 두세 숨에 모두 마셔 버렸다. 행자가 이미 그의 뱃속에 들어가자,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소리를 높여 외쳤다. “형수님, 부채를 내게 빌려 쓰게 하옵소서!” 나찰녀가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며 외쳤다. “아이들아, 앞문을 닫았느냐?” 모두가 말했다. “닫았나이다.” 그가 또 말했다. “문을 닫았다면, 손행자가 어찌 집 안에서 외치고 있단 말이냐?” 계집아이가 말했다. “할머님 몸 위에서 외치고 있나이다.” 나찰녀가 말했다. “손행자야, 네가 어디서 술수를 부리고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원숭이는 평생 술수를 부릴 줄 모르고, 모두 참된 수단이요 실제의 재주이니, 이미 존형수의 뱃속에서 놀고 있사온즉 그 폐와 간을 이미 보았노라. 나도 그대가 시장하고 목마른 줄을 아노니, 내 먼저 그대에게 앉은 사발을 하나 보내어 갈증을 풀어 주리라!” 하고는 곧 발을 아래로 한 번 내리쳤다. 그 나찰녀는 아랫배 속이 견딜 수 없이 아파, 땅바닥에 주저앉아 괴로움을 외쳤다. 행자가 말했다. “형수님, 사양하지 마옵소서. 내 다시 그대에게 간식을 보내어 주린 배를 채워 주리라!” 하고는 또 머리를 위로 한 번 받쳤다. 그 나찰녀는 가슴이 견딜 수 없이 아파 다만 땅 위에서 뒹굴 뿐이었다. 아픔에 얼굴은 누렇게 되고 입술은 하얗게 되어, 다만 “손 숙부님, 살려 주시오!” 하고 외쳤다. 행자가 그제야 손과 발을 거두며 말했다. “이제야 숙부를 알아보겠느냐? 내 소 큰형님의 정을 보아 우선 네 목숨을 살려 주리니, 어서 부채를 가져다 내게 쓰게 하여라.” 나찰녀가 말했다. “숙부님, 부채가 있나이다! 부채가 있나이다! 그대가 나와서 가져가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부채를 내게 보여라. 그럼 나오겠노라.” 나찰녀가 곧 계집아이에게 파초선 한 자루를 가져다 곁에 들고 서게 하였다. 행자가 더듬어 목구멍 위까지 올라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형수님, 내가 이미 그대의 목숨을 살려 주었사온즉, 허리와 갈비 아래에 구멍을 뚫고 나오지는 않겠노라. 그대의 입으로 나가리라. 입을 세 번 벌려 보시오.” 그 나찰녀가 과연 입을 벌렸다. 행자가 다시 조요충으로 변하여 먼저 날아 나와 파초선 위에 붙었다. 그 나찰녀는 알지 못하고 잇달아 세 번 벌리며 외쳤다. “숙부님, 나오시옵소서.” 행자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부채를 들고 외쳤다. “내 여기 있지 않소? 잘 빌렸소! 잘 빌렸소!” 하고는 발을 떼어 앞으로 걸어가니, 아이들이 급히 문을 열어 그를 굴 밖으로 내보냈다. 이 대성이 구름머리를 돌려 곧장 동쪽 길로 되돌아오니, 잠깐 사이에 구름을 내려 붉은 벽돌 담장 아래에 섰다. 팔계가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스승님, 형님이 오셨나이다! 오셨나이다!” 삼장법사가 곧 이 마을 노인과 사승과 함께 문을 나서 마중하고,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파초선을 곁에 세워두고 말했다. “노인장, 바로 이 부채 맞소이까?” 노인이 말했다. “그러하오! 그러하오!” 당승이 기뻐하며 말했다. “어진 제자가 더없이 큰 공을 세워 이 보배를 구해 왔으니, 몹시 수고로웠구나.” 행자가 말했다. “수고로움은 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저 철선선이 누구인 줄 아시옵니까? 그 계집은 원래 우마왕의 아내요 홍해아의 어미이옵고, 이름을 나찰녀라 하며, 또 철선공주라 부르나이다. 내가 굴 밖을 찾아가 부채를 빌리려 하니, 그가 나와 원한을 이야기하며 나를 몇 칼 내리쳤나이다. 내가 몽둥이를 휘둘러 그를 위협하자, 그가 부채로 나를 한 번 부쳐 이리저리 떠돌게 하여, 곧장 소수미산까지 날려갔나이다. 다행히 영길보살을 뵙고 정풍단 한 알을 받아 돌아갈 길을 가리켜 주심을 입어, 다시 취운산에 이르렀나이다. 또 나찰녀를 만나니, 나찰녀가 또 부채를 부쳤으나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그가 굴로 돌아갔나이다. 이에 이 늙은 원숭이가 조요충으로 변하여 날아 굴 속으로 들어갔나이다. 그 계집이 마침 차를 달라 하여 먹고 있었사온데, 내가 찻물 거품 아래로 기어들어 그의 뱃속으로 들어가 손발을 놀렸나이다. 그가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를 숙부라 부르며 살려 달라 하고, 원하여 부채를 내게 빌려 주겠다 하였사옵기에, 내가 그를 살려 주고 부채를 가져왔나이다. 화염산을 넘고 나면 도로 그에게 돌려주겠나이다.”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고 감사를 다하였으며, 사부와 제자들은 모두 노인에게 하직 인사를 올렸다. 한 줄로 서쪽으로 오니, 사십 리쯤 가자 점점 몹시 뜨거워져 사람을 찌는 듯하였다. 사승이 다만 외쳤다. “발바닥이 지져지는구나!” 팔계가 또 말했다. “발톱이 데이는구나!” 말은 평소보다 더 빨랐으나, 다만 땅이 뜨거워 멈출 수 없어 매우 나아가기 어려웠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우선 말에서 내리시옵소서. 형제들은 걸으시 마옵소서. 내가 불을 끄고, 비바람이 지난 뒤 땅이 좀 식거든 산을 넘어 갑시다.” 행자가 과연 부채를 들어 곧장 불가에 이르러 힘껏 한 번 부치니, 그 산 위의 불빛이 훨훨 타올랐고, 다시 한 번 부치니 백 배나 더 붙었으며, 또 한 번 부치니 그 불이 족히 천 길이나 높아져 점점 몸에 붙어 탔다. 행자가 급히 되돌아왔으나 이미 두 가닥의 털이 깨끗이 타 버렸고, 곧장 당승 앞으로 달려가 외쳤다. “어서 돌아가시오, 어서 돌아가시오! 불이 온다, 불이 온다!” 그 스승님이 말에 올라타 팔계와 사승과 함께 다시 동쪽으로 이십여 리를 와서야 비로소 멈추어 말했다. “오공아, 어찌 되었느냐!” 행자가 부채를 내던지며 말했다. “잘되지 않소! 잘되지 않소! 그 계집에게 속았소!” 삼장법사가 이 말을 듣고 근심이 미간에 모이고 답답함이 마음에 더해져, 두 줄기 눈물을 멈추지 못하며 다만 말했다. “어찌하면 좋으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리 급히 서둘러 돌아가자 하신 것이 무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부채를 한 번 부치니 불빛이 훨훨 타올랐고, 두 번째 부치니 불기운이 더욱 성해졌으며, 세 번째 부치니 불머리가 천 길이나 날아오르더라. 만약 달아나는 것이 빠르지 않았다면 털이 모두 타 버렸을 것이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은 늘 벼락을 맞아도 상하지 않고 불에 타도 해를 입지 않는다 하시더니, 이제 어찌하여 또 불을 무서워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일을 전혀 모르는구나! 그때는 마음을 써서 방비를 하였으므로 상하지 않았거니와, 오늘은 다만 불빛을 끄려고 하였을 뿐이라 피화결을 외우지 않았고 또한 호신법을 쓰지 않았으므로 두 가닥의 털을 태운 것이로다.” 사승이 말했다. “이토록 불이 성한데 서쪽으로 통하는 길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팔계가 말했다. “불 없는 곳을 골라 걸어가면 그만이지.” 삼장법사가 말했다. “어느 쪽에 불이 없느냐?” 팔계가 말했다. “동쪽 남쪽 북쪽에는 모두 불이 없소.” 또 물었다. “어느 쪽에 경이 있느냐?” 팔계가 말했다. “서쪽에 경이 있소.” 삼장법사가 말했다. “나는 다만 경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구나!” 사승이 말했다. “경이 있는 곳에는 불이 있고, 불이 없는 곳에는 경이 없사오니, 참으로 진퇴양난이로소이다!” 사부와 제자들이 바로 이것저것 함부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성이여, 번뇌하실 것 없소. 우선 와서 공양이나 좀 드시고 의논하시옵소서.” 네 사람이 고개를 돌려 보니, 한 노인이 몸에는 바람에 나부끼는 창의를 걸치고, 머리에는 언월관을 쓰고, 손에는 용머리 지팡이를 쥐고, 발에는 쇠 장화를 신었으며, 뒤에 부리부리한 입과 아가미를 한 귀신 하나를 데리고 있었는데, 귀신은 머리에 놋쇠 동이를 이고 있었다. 동이 안에는 찐 떡과 미음, 누런 기장밥이 들어 있었고, 서쪽 길 아래에서 몸을 굽히며 말했다. “저는 본래 화염산의 토지이옵니다. 대성께서 성승을 보호하시나 나아가지 못하심을 알고 특별히 공양을 올리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공양 먹는 것은 작은 일이오. 이 불빛은 어느 때나 꺼지겠소? 우리 스승님을 지나가게 하여 주시오.” 토지가 말했다. “불빛을 끄려면 모름지기 나찰녀에게 파초선을 빌려야 하옵니다.” 행자가 길가에서 부채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것이 아니란 말이오? 그 불빛이 부칠수록 더 타오르니 어찌된 일이오?” 토지가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 부채는 참된 것이 아니오. 그에게 속으셨소.” 행자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참된 것을 얻겠소?” 그 토지가 또 허리를 굽히고 몸을 숙인 채 방긋이 웃으며 말했다. “참된 파초선을 빌리려 하신다면, 모름지기 대력왕을 찾아야 하옵니다.” 결국 대력왕에게 무슨 연고가 있는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0회 우마왕파전부화연(牛魔王罷戰赴華筵) · 손행자이조파초선(孫行者二調芭蕉扇) 토지가 말했다. “대력왕이란 곧 우마왕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이 산은 본래 우마왕이 불을 놓아 거짓 이름을 화염산이라 한 것이냐?” 토지가 말했다.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대성께서 기꺼이 이 미천한 신의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면, 바야흐로 감히 곧은 말씀을 올리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네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바로 말하여도 무방하니라.” 토지가 말했다. “이 불은 원래 대성께서 놓으신 것이옵니다.” 행자가 노하여 말했다. “내가 그곳에 있었느냐! 네가 어찌 이리 함부로 지껄이느냐? 내가 불 놓는 무리란 말이냐?” 토지가 말했다. “대성께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는구나이다. 이곳에는 본래 이 산이 없었사옵니다. 대성께서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실 때에 현성에게 사로잡혀 노군께 압송되어, 대성을 팔괘로 안에 넣어 단련한 뒤에 솥을 여시니, 그대가 단로를 걷어차 넘어뜨리는 바람에 벽돌 몇 개가 떨어졌사온데, 그 안에 남은 불이 이곳에 이르러 화염산이 되었나이다. 나는 본래 도솔궁에서 화로를 지키던 도인이었사온데, 그때 노군께서 내가 지키는 임무를 잃었다고 꾸짖으시어 이곳으로 내려보내시니, 곧 화염산 토지가 된 것이옵니다.” 저팔계가 이 말을 듣고 분해하며 말했다. “괴이하게도 네가 이런 차림이로구나! 원래 도사가 변한 토지였단 말이냐!” 행자가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너는 어서 말해 보아라, 일찍이 대력왕을 찾는 까닭이 무엇이냐?” 토지가 말했다. “대력왕은 나찰녀의 지아비이옵니다. 그가 요사이 나찰을 버리고 지금은 적뢰산 마운동에 있사옵니다. 만세호왕이라 하는 여우 임금이 있었는데, 그 호왕이 죽고 딸 하나를 남겼사온데 이름을 옥면공주라 하옵니다. 그 공주에게는 백만 금의 가산이 있으나 다스릴 이가 없어, 이 년 전에 우마왕이 신통이 광대함을 알아보고는 기꺼이 가산을 도리어 얹어 주며 사위로 들어와 남편을 삼게 하였나이다. 그 우왕은 나찰을 버리고 오래도록 돌아보지 않았사옵니다. 만약 대성께서 우왕을 찾아가시어 와 주시기를 절하며 청하신다면, 바야흐로 참된 부채를 빌리실 수 있사옵니다. 하나는 불길을 부쳐 끄시어 스승님을 보호해 나아가게 함이옵고, 둘은 불의 근심을 영원히 없애어 이곳의 생령을 보호함이며, 셋은 나를 하늘로 돌려보내 주시어 노군의 법지를 도로 바치게 함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적뢰산은 어디에 자리하옵니까? 그곳까지 가려면 얼마나 먼 길이옵니까?” 토지가 말했다. “정남쪽에 있사옵니다. 이곳에서 그곳까지는 삼천여 리가 되나이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곧 사승과 팔계에게는 스승님을 보호하라 분부하고, 또 토지에게는 곁에서 모시고 돌아가지 말라 이르고는, 이내 훅 하는 소리와 함께 아득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어느새 높은 산 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구름머리를 내려 뾰족한 봉우리 위에 서서 바라보니, 참으로 좋은 산이로다. 높다고 이를 것도 아니로되 정수리는 푸른 하늘을 문지르고, 크다고 이를 것도 아니로되 뿌리는 황천에 박혔구나. 산 앞은 햇볕이 따뜻하고 고개 뒤는 바람이 차가우니, 산 앞이 따뜻하여는 삼동에도 초목이 알지 못하고, 고개 뒤가 차가워는 구하에도 얼음과 서리가 녹지 않는구나. 용이 사는 못은 계곡물에 이어져 길이 흐르고, 범의 굴은 벼랑에 기대어 꽃이 일찍 피는구나. 물은 천 갈래로 흐르되 나는 옥과 같고, 꽃은 한마음으로 피되 비단을 펼친 듯하구나. 구불구불한 고개 위에는 구불구불한 나무요, 꺾이고 갈라진 바위 밖에는 꺾이고 갈라진 소나무로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니, 높은 산이요 험준한 고개며, 가파른 벼랑이요 깊은 계곡이며, 향기로운 꽃이요 아름다운 과일이며, 붉은 등넝쿨이요 자주빛 대나무며, 푸른 소나무요 비취 버들잎이로다. 여덟 절기와 사계절에도 빛깔이 바뀌지 않고, 천 년 만 년이 가도 빛이 용과 같구나. 대성이 한참을 두루 보고 나서 뾰족한 봉우리에서 걸어 내려와 깊은 산으로 들어가 길을 찾고 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던 차에 문득 소나무 그늘 아래 어떤 여자 하나가 손에 향기로운 난초 한 가지를 꺾어 들고 아양아양 걸어오고 있었다. 대성이 기이한 바위 곁에 몸을 숨이고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그 여자의 모습이 어떠하던가. 아리따운 것은 나라를 기울일 만한 자태요, 느릿느릿한 것은 연꽃을 옮기는 걸음이로다. 얼굴은 왕장과 같고 안색은 초나라 여인을 닮았구나. 꽃처럼 말을 알아듣고 옥처럼 향기를 내는구나. 그 여자가 점차 바위 곁으로 가까이 오자, 대성이 몸을 굽혀 예를 올리고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살님은 어디로 가시옵니까?” 그 여자는 미처 살펴보지도 않고 있다가 묻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드니, 문득 대성의 추한 생김새가 보이는지라 크게 놀라, 물러나기 어렵고 가기도 어려워 다만 바들바들 떨며 마지못해 답했다. “그대는 어느 곳에서 온 이냐? 감히 이곳에서 누구에게 묻느냐?” 대성이 깊이 생각했다. ‘내가 경을 구하러 부채를 빌리는 일을 말한다면, 이 녀석이 우왕과 친분이 있을까 두렵거니와, 우선 마왕을 청하러 왔다는 말로 답해야 옳으리라.’ 그 여자가 그가 말이 없음을 보고 얼굴빛을 바꾸며 노한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누구냐! 감히 와서 내게 묻다니!” 대성이 몸을 굽히며 웃고 말했다. “저는 취운산에서 왔사옵는데, 이제 막 귀한 곳에 이르러 길을 알지 못하옵니다. 감히 보살님께 여쭙거니와, 이곳이 적뢰산이옵니까?” 그 여자가 말했다. “그러하오.” 대성이 말했다. “마운동이라는 굴이 있다 하온데, 어디에 자리하옵니까?” 그 여자가 말했다. “네가 그 굴을 찾아 무얼 하려느냐?” 대성이 말했다. “저는 취운산 파초동 철선공주께서 우마왕을 모셔 오라 부탁하신 몸이옵니다.” 그 여자는 철선공주가 우마왕을 청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속에 크게 노하여 귀밑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며, 입을 함부로 놀려 욕했다. “이 천한 계집년아, 참으로 무식하기 짝이 없구나! 우왕이 우리 집에 온 이래 두 해도 되지 않았거늘, 그에게 구슬과 비취, 금과 은, 능라와 비단을 얼마나 보냈는지 알지도 못하리라. 해마다 땔감을 대고 달마다 쌀을 대어 주어 스스로 편안히 쓰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또 그를 청하러 오다니 어찌된 일이냐!” 대성이 이 말을 듣고 그가 곧 옥면공주임을 알아차리고, 일부러 쇠몽둥이를 빼어 들고 크게 외쳤다. “이 천하고 더러운 계집아, 가산으로 우왕을 사로잡아 두었으니 참으로 돈을 얹어 가며 사내를 얻은 것이로다! 너는 도리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면서 감히 누구를 욕하느냐!” 그 여자는 이를 보고 넋이 흩어질 듯 놀라, 금련을 어지럽게 구르며 바들바들 떨고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이 대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 뒤를 따라갔다. 알고 보니 소나무 그늘을 지나자 곧 마운동 어귀였는데, 여자가 달려 들어가며 탁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대성이 도리어 쇠몽둥이를 거두고, 헛기침을 하며 걸음을 멈추고 보니 참으로 좋은 곳이로다. 수풀은 빽빽이 우거지고 벼랑은 깎아지른 듯 솟았으며, 담쟁이덩굴 그늘은 아른아른하고 난초와 혜초의 향기는 그윽하구나. 흐르는 샘물은 옥을 헹구며 긴 대나무 사이로 스며들고, 기묘한 돌은 제 때를 알아 지는 꽃잎을 띠었구나. 노을과 안개는 먼 산봉우리를 감싸고, 해와 달은 구름 병풍을 비추누나. 용은 울고 범은 포효하며, 학은 울고 꾀꼬리는 노래하는구나. 한 폭의 맑고 그윽한 경치가 참으로 사랑스럽고, 기화요초의 경관은 늘 밝구나. 천태의 신선 굴에 지지 않고, 바다 위의 봉래와 영주보다도 나으리라. 행자가 이곳에서 경치를 구경하는 이야기는 잠시 두고, 저 여자는 분 같은 땀을 흘리며 놀란 가슴을 헐떡거린 채 곧장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우마왕이 바로 그곳에서 조용히 단서를 읽고 있었는데, 이 여자가 성난 김에 그의 품에 쓰러지며 귀를 긁고 뺨을 긁적이며 큰 소리로 울었다. 우왕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달랬다. “미인아, 번뇌하지 마라. 무슨 할 말이 있느냐?” 그 여자가 하늘로 뛰고 땅을 쓸듯 하며 입으로 욕했다. “이 더러운 요물아, 나를 해쳐 죽이려는구나!” 우왕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무슨 일로 나를 욕하느냐?” 여자가 말했다. “나는 부모가 없어 의지할 데가 없기에, 그대를 불러들여 몸을 보호하고 목숨을 기르게 하였노라. 강호에서 그대를 한낱 호한이라 하더니, 그대는 원래 아내를 두려워하는 용렬한 사내였단 말이냐!” 우왕이 이 말을 듣고 여자를 껴안으며 말했다. “미인아, 내게 무슨 잘못이 있거든 너는 우선 천천히 말해 보아라. 내가 너에게 사례하리라.” 여자가 말했다. “조금 전에 내가 굴 밖 꽃그늘에서 한가롭게 거닐며 난초를 꺾고 혜초를 뜯고 있는데, 문득 털보 얼굴에 뇌공 부리를 한 중 하나가 갑자기 앞으로 와서 예를 올리기에, 나는 깜짝 놀라 넋이 나갔노라. 정신을 가다듬고 누구냐 물으니, 그가 철선공주가 우마왕을 모셔 오라 부탁하였다 하더구나. 내가 한두 마디 하였더니, 도리어 그가 나를 한바탕 욕하고는 몽둥이 하나를 들어 나를 쫓아 때리려 하였노라. 조금 더 빨리 달아나지 않았더면 하마터면 그에게 맞아 죽을 뻔하였노라! 이것이 그대를 불러들여 화를 자초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나를 해쳐 죽이려는구나!” 우왕이 이 말을 듣고 얼굴을 바로잡아 사례하고, 오랫동안 부드럽게 달래니 여자가 그제야 분을 풀었다. 마왕이 도리어 이를 갈며 말했다. “미인이여, 윗자리에 계시니 감히 속이지 못하겠노라. 저 파초동은 비록 외지고 궁벽하나 맑고 그윽하여 자재하느니라. 내 본처는 어려서부터 수행을 쌓아 또한 도를 얻은 여선이거니와, 집안의 법도가 엄격하여 안에 한 자나 되는 아이 하나 없거늘, 어찌 뇌공 부리를 한 사내가 부탁을 받고 올 수 있겠느냐. 이는 어딘가에서 온 괴요이거나, 혹은 헛된 명성을 빌려 이곳까지 나를 찾아온 것이리라. 내가 나가 살펴보리라.” 과연 좋은 마왕이로다. 발걸음을 크게 떼어 서재에서 나와 대청으로 올라가 갑옷을 꺼내 갖추어 입고는, 혼철곤 하나를 들고 문을 나서며 크게 외쳤다. “어느 놈이 내 집에서 무례한 짓을 하느냐?” 행자가 곁에서 그의 모습을 보니 오백 년 전과는 또 크게 달랐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머리에는 물로 간 듯 은빛으로 번쩍이는 익은 쇠 투구를 쓰고, 몸에는 털실로 꿰고 비단으로 수놓은 금빛 갑옷을 걸쳤으며, 발에는 코가 말리고 흰 밑창을 댄 사슴 가죽 신을 신고, 허리에는 세 가닥 실을 꼬아 사자와 오랑캐를 새긴 띠를 둘렀다. 두 눈의 빛은 밝은 거울 같고, 두 가닥 눈썹은 붉은 무지개처럼 고우며, 입은 피를 담은 동이 같고 이는 구리판을 벌여 놓은 듯하구나. 포효하는 소리는 산신도 두려워하고, 움직이는 위풍은 악귀도 당황하누나. 사해에 이름을 떨쳐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라 하고, 서방에서 대력이라 일컬어 마왕이라 부르누나. 이 대성이 옷을 여미고 앞으로 나아가 깊이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장형님, 이 아우를 아직 알아보시겠나이까?” 우왕이 답례하며 말했다. “네가 제천대성 손오공이냐?” 대성이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줄곧 오래 헤어져 뵙지 못하였사옵니다. 조금 전에 이곳에 이르러 어떤 여자에게 물어보고서야 비로소 형님을 뵈었사온데, 풍채가 과연 예전보다 나으시니 참으로 축하할 만하옵니다!” 우왕이 꾸짖었다. “교묘한 혀놀림은 그만두어라! 내가 듣건대 네가 천궁을 어지럽히다가 부처님께 눌려 오행산 아래 갇혔고, 요즈음 천재에서 벗어나 당승을 보호하여 서천에서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한다 하더니, 어찌하여 호산 고송간 화운동에서 내 아들 우성영을 해쳤느냐? 바로 여기서 너를 노여워하고 있거늘, 네가 도리어 어찌 또 나를 찾아왔느냐?” 대성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장형님께서는 잘못하여 이 아우를 괴이하게 여기지 마옵소서. 당시에 영랑이 우리 스승님을 잡아다 그 고기를 먹으려 하였사온데, 이 아우가 그를 가까이할 수 없었사옵거늘, 다행히 관음보살께서 우리 스승님을 구하고자 하시어 그를 권하여 바르게 돌아오게 하셨나이다. 지금은 선재동자가 되어 형님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있사옵고, 극락의 문과 집을 누리며 소요의 영원한 수명을 받고 있사온즉 무엇이 불가하옵니까? 도리어 저를 괴이하게 여기시나이까?” 우왕이 욕하며 말했다. “이 말 잘하는 원숭이 놈! 자식을 해친 정을 네가 그럴듯하게 넘겼다만, 네가 내 사랑하는 첩을 욕보이고 내 문을 쳐들어온 것은 어찌된 일이냐?”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장형님을 찾아뵙지 못하여 그 여자에게 절하며 물었사온데, 그이가 둘째 형수님이실 줄은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이가 저를 몇 마디 욕하였사온즉, 이 아우가 한때 거칠게 굴어 형수님을 놀라게 하였사옵니다. 장형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우왕이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옛 정의를 보아 너를 용서하여 보내 주리라.” 대성이 말했다. “넓은 은혜를 입었사온즉 감사가 다함이 없사옵니다마는, 오직 한 가지 일로 번거롭게 해 드릴 것이 있사오니, 부디 천만 번 구제해 주시옵소서.” 우왕이 욕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놈이 분별도 없구나! 용서해 주었거늘 도리어 가지도 않고 되레 와서 나를 휘감느냐! 무슨 구제란 말이냐!” 대성이 말했다. “참으로 장형님께 속이지 않사옵나니, 이 아우가 당승을 보호하여 서쪽으로 나아가다가 화염산에 길이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옵니다. 토인들에게 물어보니 존형수 나찰녀에게 파초선 한 자루가 있다 하옵기에 한 번 쓰고자 청하려 하였사옵니다. 어제 옛 저택으로 가서 형수님을 뵈었사온데, 형수님이 굳세게 잡아 빌려 주지 않으셨사옵니다. 이런 까닭으로 특별히 장형님을 찾아뵙나이다. 형님께서 천지의 마음을 여시어 이 아우와 함께 큰 형수님 처소로 한 번 가 주시어, 천만 부디 부채를 빌려 불길을 부쳐 끄시고 당승을 보호해 산을 넘기게 하옵소서. 그 즉시 원래대로 돌려드리겠나이다.” 우왕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불이 일 듯 하여 강철 이를 갈며 욕했다. “네가 무례하지 않다 하더니, 네가 원래 부채를 빌리려는 까닭이었구나! 틀림없이 먼저 내 본처를 욕보였을 터인데, 본처가 아마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찾아온 것이로다! 게다가 또 내 사랑하는 첩을 쫓아 때렸단 말이냐! 속담에 이르기를, 벗의 아내는 욕보일 수 없고, 벗의 첩은 멸시할 수 없다 하였거늘, 네가 이미 내 아내를 욕보이고 또 내 첩을 멸시하였으니, 이 얼마나 큰 무례냐! 어서 올라와 내 몽둥이를 받아라!” 대성이 말했다. “형님이 때리자 하시니 이 아우도 두렵지 않사옵니다마는, 다만 보배를 구하는 것이 제 참된 마음이옵니다. 천만 부디 빌려 주시어 써 보게 하옵소서!” 우왕이 말했다. “네가 만약 세 합에 나를 대적해 낸다면 내 본처로 하여금 네게 빌려 주게 하리라. 만약 대적해 내지 못한다면 너를 때려 죽여 내 한을 풀리라!” 대성이 말했다. “형님 말씀이 옳사옵니다. 이 아우가 요사이 게을러 형님과 만나지 못하였사온즉, 이 몇 해 사이 무예가 지난날과 견주어 어떠한지 알지 못하옵니다. 우리 형제가 몽둥이를 한번 겨루어 보기나 합시다.” 이 우왕이 어찌 변명을 들으랴, 혼철곤을 빼어 들고 곧 머리를 내리쳤다. 이 대성이 여의금고봉을 들어 손 가는 대로 맞서 받았다. 두 사람의 이 한바탕 훌륭한 싸움이로다. 금고봉이요 혼철곤이니, 낯빛을 바꾸어 벗의 정으로는 논하지 않는구나. 저쪽이 말하기를 “바로 너 이 원숭이가 내 자식을 해친 정을 괴이하게 여기노라!” 하였고, 이쪽이 말하기를 “그대 영랑은 이미 도를 얻었거늘 노여움을 그치시오!” 하였으며, 저쪽이 말하기를 “너는 무식한 놈이어늘 어찌 감히 내 문에 올라왔느냐?” 하였고, 이쪽이 말하기를 “나는 까닭이 있어 특별히 와서 묻노라” 하였구나. 하나는 부채를 구하여 당승을 보호하려 하고, 하나는 파초선을 빌려 주지 않으니 몹시 인색하구나. 말이 오고 가는 사이에 옛 정이 사라지고, 온 집안이 의리를 잃어 모두 분노를 일으켰구나. 우왕의 몽둥이가 들리매 교룡을 업신여기고, 대성의 봉이 맞서매 귀신도 달아나누나. 처음에는 산 앞에서 다투더니, 나중에는 함께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올라갔구나. 반공중에서 신통을 드러내고, 오색 빛 가운데서 묘한 운용을 베푸누나. 두 몽둥이 소리는 하늘의 관문을 울리는데, 승부는 보이지 않고 모두 한 치를 다투는구나. 이 대성이 저 우왕과 백십여 합을 싸우도록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서로 풀기 어렵고 나누기 어려운 즈음에, 문득 산봉우리 위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 할아버님, 우리 대왕께서 거듭 문안을 올리시며 부디 일찍 오셔서 자리를 정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우왕이 이 말을 듣고 혼철곤으로 금고봉을 받치며 외쳤다. “원숭이 놈아, 너는 우선 멈추어라, 내가 어떤 벗의 집에 가서 잔치에 참석하고 오마!” 말을 마치고 구름머리를 내려 곧 굴 안으로 이르러 옥면공주에게 말했다. “미인아, 조금 전 그 뇌공 부리를 한 사내는 곧 손오공 원숭이 놈인데, 내가 몽둥이로 한바탕 때려 쫓아버렸으니 다시는 감히 오지 못하리라. 너는 마음 놓고 놀아라. 내가 어떤 벗이 있는 곳에 가서 술을 마시고 오마.” 그가 갑옷을 벗고 검푸른 털 저고리 한 벌을 걸치고는 문을 나서, 벽수금정수에 올라타고 아이들에게 문과 뜰을 지키라 이른 뒤, 반은 구름 반은 안개로 서북쪽을 향해 가 버렸다. 대성이 높은 봉우리 위에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늙은 소가 또 무슨 벗을 사귀었는지 알 수 없거니와, 어디로 잔치에 가는지 이 늙은 원숭이가 따라가 보리라.’ 과연 좋은 행자로다. 몸을 한 번 흔들어 맑은 바람으로 변해 쫓아가며 그 뒤를 따라 갔다. 오래지 않아 어느 산중에 이르렀는데, 우왕이 조용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대성이 본래 모습을 모아 산으로 들어가 찾아보니, 산중에 맑은 물이 괴어 있는 깊은 못 하나가 있고, 못가에 돌로 세운 비석 하나가 서 있었는데, 비석에 큰 글자 여섯이 있으니 곧 난석산 벽파담이었다. 대성이 속으로 생각했다. ‘늙은 소는 틀림없이 물 아래로 내려갔으리라. 물 밑의 정은 교룡의 정이 아니면 반드시 용의 정이나 고기의 정이요, 혹은 거북과 자라, 원과 악어의 정이리라. 이 늙은 원숭이도 내려가 한번 보리라.’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결을 쥐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게 한 마리로 변하였는데 크지도 작지도 않고 서른여섯 근이나 나갔다. 풍덩 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곧장 못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문득 영롱하고도 훤히 트인 누각 하나가 보이는데, 누각 아래에 그 벽수금정수가 매어 있었고, 누각 안으로 들어가니 도리어 물이 없었다. 대성이 기어 들어가 살펴보니, 저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거늘,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붉은 궁궐과 조개로 장식한 대궐이 세상과 다르지 않구나. 황금으로 기와를 삼고 백옥으로 문지도리를 삼았으며, 병풍은 대모의 등딱지를 펼쳤고 난간은 산호 구슬을 쌓았구나. 상서로운 구름과 길한 기운이 연꽃 자리를 비추니, 위로는 삼광에 닿고 아래로는 여덟 갈래 길로 통하누나. 천궁도 바다의 창고도 아니거늘, 과연 이곳이 봉호를 업신여기는구나. 높은 집에 잔치를 베풀어 손과 주인이 늘어섰고, 크고 작은 관리들은 면류관에 구슬을 꿰었구나. 옥녀를 불러 옥쟁반을 받들게 하고, 선녀를 재촉하여 음률을 고르게 하누나. 긴 고래는 울고 큰 게는 춤추며, 자라는 생황을 불고 악어는 북을 치니, 여룡의 턱 밑 구슬이 술잔과 제상을 비추는구나. 새 발자국 무늬의 글이 비취 병풍에 늘어섰고, 새우 수염 같은 발이 복도와 행랑에 걸렸구나. 여덟 가지 음이 번갈아 연주되어 신선의 음악이 섞이고, 궁과 상의 소리가 구름과 하늘을 막고 울리는구나. 푸른 머리 농어 기생은 옥슬을 어루만지고, 붉은 눈 말 총각은 옥피리를 부누나. 궐어 할멈은 사슴포를 이고 올리고, 용녀는 머리에 금봉황 비녀를 꽂았구나. 먹는 것은 천부의 여덟 보배 진미요, 마시는 것은 자부의 좋은 술을 오래 삭힌 감주로다. 그 위에 앉아 있는 이는 우마왕이요, 좌우에는 교룡의 정 셋 넷이 있고, 앞에는 늙은 용정이 앉아 있으며, 양쪽은 곧 용자와 용손과 용파와 용녀들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술잔이 오가며 잔치가 한창일 때에, 손대성이 곧장 걸어 올라갔는데 늙은 용이 보고는 즉시 명했다. “저 들게를 잡아라!” 용자와 용손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대성을 붙잡았다. 대성이 문득 사람의 말을 하여 외쳤다.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늙은 용이 말했다. “너는 어디서 온 들게냐? 어찌 감히 청당에 올라와 존귀한 손님 앞에서 가로질러 어지럽게 기어 다니느냐? 어서 바른대로 공술하여라, 그러면 너의 사죄를 면하게 하리라!”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꾸며 낸 말을 무리 앞에서 공술하였다. “호수에서 살아 생을 삼고, 벼랑에 기대어 굴을 파 임시로 깃들였나이다. 대개 오래도록 몸이 펴진 까닭에 벼슬을 받아 횡행하는 개사가 되었사옵니다. 풀을 밟고 진흙을 끌며 쓸쓸히 지내온 터라, 일찍이 예를 익히지 못하였나이다. 법도를 알지 못해 왕의 위엄을 범하였사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높으신 자비로 죄를 사하옵소서!” 자리 위의 여러 정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몸을 굽혀 늙은 용을 향해 예를 올리며 말했다. “개사가 처음 요궁에 들어와 왕의 예를 알지 못하오니, 높으신 어른께서 그를 용서하여 보내 주시옵소서.” 늙은 용이 사례하였다. 여러 정이 곧 이르렀다. “그놈을 놓아주고, 우선 매질은 적어 두었거니와 밖에서 대령하게 하여라.” 대성이 한마디 대답하고는 목숨을 걸고 달아나 누각 아래에 이르러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우왕이 여기서 술잔을 탐하고 있으니 어디 그가 파하기를 기다리랴. 파한다 한들 또한 부채를 내게 빌려 주려 하지 않으리라. 차라리 그의 금정수를 훔쳐 우마왕으로 변신하여 저 나찰녀를 가서 꾀어 부채를 속여 내고, 우리 스승님을 모셔 산을 넘게 하는 것만 못하리라.’ 과연 좋은 대성이로다. 곧 본래 모습을 드러내어 금정수의 고삐를 풀고는 훌쩍 뛰어 안장에 올라타 곧장 물 밖으로 나왔다. 못 밖에 이르러 몸을 우왕의 모습으로 변하게 하고는 짐승을 몰고 구름을 타니, 오래지 않아 취운산 파초동 어귀에 이르러 “문 열어라!” 하고 외쳤다. 그 굴 문 안에 계집아이 둘이 있었는데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보니 우마왕의 낮짝이라, 곧 들어가 아뢰었다. “할머님, 할아버님이 집에 오셨나이다.” 그 나찰이 이 말을 듣고 급히 구름 같은 쪽진 머리를 매만지고 다급히 연꽃 같은 걸음을 옮겨 문을 나와 맞이하였다. 이 대성이 안장에서 내려 금정수를 끌어들이고, 큰 담력을 부려 어여쁜 여인을 속여 넘겼다. 나찰녀는 살피는 눈이 육안이라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곧 손을 잡고 들어갔다. 계집종에게 자리를 마련하고 차를 내오라 이르니, 온 집안이 주인을 뵙자 공경하지 않음이 없었다. 잠깐 사이에 지난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우왕”이 말했다. “부인, 오래도록 소원하였구려.” 나찰이 말했다. “대왕께 만복이 있으소서.” 하고 또 말했다. “대왕께서는 새 장가를 총애하시어 이 몸을 내버리셨사온데, 오늘은 어느 쪽 바람이 대왕을 불어다 주었나이까?”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감히 내버렸으랴. 다만 옥면공주를 맞이한 뒤로 집안일이 번잡하고 벗들이 자주 찾아와 바깥에 머물게 되었거니와, 또한 가산 하나를 이루었구려.” 하고 또 말했다. “요즈음 듣건대 오공 그 녀석이 당승을 보호하여 화염산 경계에 가까이 왔으니, 그가 와서 부채를 빌리려 할까 두렵소. 나는 그 녀석이 자식을 해친 원수를 아직 갚지 못하였거늘, 그가 오거든 사람을 시켜 내게 알리오. 내가 그를 잡아 만 단으로 찢어 우리 부부의 한을 씻으리라.” 나찰이 이 말을 듣고 눈물을 떨구며 호소했다. “대왕, 속담에 이르기를, 사내는 아내가 없으면 재물에 주인이 없고, 여자는 지아비가 없으면 몸에 주인이 없다 하였나이다. 제 목숨이 하마터면 이 원숭이 놈에게 해를 입을 뻔하였나이다!” 대성이 듣고 일부러 노한 기색을 내며 욕했다. “그 더러운 원숭이는 언제 지나갔단 말이오?” 나찰이 말했다. “아직 가지 않았나이다. 어제 나에게 와서 부채를 빌려 가려 하였사온데, 내가 그가 내 아이를 해친 까닭으로 갑옷을 갖추고 보검을 휘둘러 문을 나서 곧 그 원숭이를 내리쳤나이다. 그가 아픔을 참으며 나를 형수라 부르고, 대왕께서 일찍이 그와 의형제를 맺으셨다 하였나이다.” 대성이 말했다. “오백 년 전에 일곱 형제로 사귀며 절을 올린 일이 있소.” 나찰이 말했다. “내가 욕하여도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내리쳐도 감히 손을 쓰지 못하더니, 나중에 내가 부채로 한 번 부치어 날려 보냈나이다. 그런데 어디서 정풍법을 찾아왔는지, 오늘 아침 또 문 밖에서 외치고 있더라. 내가 또 부채를 부쳤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나이다. 급히 칼을 휘둘러 내리치려 하니, 그가 도리어 나를 봐주지 않았나이다. 내가 그 몽둥이가 무거움을 두려워하여 굴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닫았나이다. 그런데 그가 또 어디서 내 뱃속으로 파고들어왔는지, 하마터면 그에게 목숨을 잃을 뻔하였나이다! 내가 그를 숙부님이라 몇 번 부르고서 부채를 주어 보냈나이다.” 대성이 또 거짓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애석하구려, 애석하여라! 부인이 잘못하였소. 어찌 이 보배를 그 원숭이에게 주었단 말이오? 나는 노여워 죽을 지경이오!” 나찰이 웃으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소서. 그에게 준 것은 가짜 부채이옵고, 다만 그를 속여 보내었나이다.” 대성이 물었다. “참된 부채는 어디 있소?” 나찰이 말했다. “염려 마옵소서, 염려 마옵소서! 내가 간직하고 있나이다.” 계집종을 불러 술을 차려 오신 이를 맞이하고 경사를 축하하게 하여, 이내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왕, 새로 화락한 혼인을 하셨사오나 천만 부디 결발의 정을 잊지 마옵시고, 우선 시골의 물 한 잔을 드시옵소서.” 대성이 감히 받지 않을 수 없어 다만 빙그레 웃으며 잔을 손에 들고 말했다. “부인이 먼저 배부르시옵소서. 내가 바깥 재산을 일구려 한 까닭에 부인과 오래 헤어져 있었사온데, 아침저녁으로 집안 문을 지켜 주신 은혜를 입었사오니, 잠시 답례하는 바이옵니다.” 나찰이 다시 잔을 받아 술을 따라 대왕에게 건네며 말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아내란 나란한 이요, 지아비란 몸을 기르는 아비라 하였거늘 무슨 답례를 말씀하시나이까.”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에 앉아 술을 돌렸다. 대성은 감히 육식을 깨뜨릴 수 없어 다만 과일 몇 개를 먹으며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나찰이 반쯤 취기를 느끼고 정욕이 살짝 동하여, 손대성에게 바싹 다가서며 어깨를 기대고 손을 잡고는 교태로운 말로 온화하게 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낮은 목소리로 몸을 기울였다. 한 잔의 술을 네가 한 모금 마시고 내가 한 모금 마시며, 또 과일을 입에 물려 주었다. 대성이 거짓으로 마음을 꾸며 함께 웃으며 하는 수 없이 그와 서로 기대었다. 과연 그러하도다. 시를 낚는 갈고리요 근심을 쓸어 내는 비로다. 만사를 없애는 데 술만 한 것이 없구나. 사내는 절개를 세워 품을 넓히고, 여자는 정을 잊고 웃는 입을 여누나. 얼굴은 복숭아꽃처럼 붉고, 몸은 연한 버들가지처럼 흔들리는구나. 줄줄이 이어지는 말이 많고, 꼬집고 다듬는 풍정이 있구나. 때때로 구름 같은 쪽진 머리를 쓸어 넘기고, 또 가느다란 손을 휘두르는 것이 보이는구나. 몇 번이나 늘 발을 꼬아 올리고, 몇 차례나 옷소매를 떨구나. 분칠한 목은 저절로 숙여지고, 가는 허리는 점차 비틀리는구나. 합환의 말은 일찍이 버리지 않고, 부드러운 가슴은 반쯤 드러나 금단추가 느슨해졌구나. 취하매 참으로 옥산이 무너지고, 흐릿한 눈을 비비며 몇 번이나 추태를 부리는구나. 대성이 그가 흠뻑 취해 있음을 보고는 속으로 마음을 두며 슬쩍 떠보았다. “부인, 참된 부채는 어디에 간직하였소? 아침저녁으로 조심하시오. 다만 손행자가 변화가 다단하여 또 와서 속여 갈까 두렵소.” 나찰이 히히 웃으며 입에서 뱉어 내니 살구잎만 한 크기였는데, 대성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것이 보배가 아니란 말이오?” 대성이 손에 받아 쥐고는 도리어 믿지 못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만 한 것이 어찌 불을 부쳐 끌 수 있으랴? 또 가짜가 아닌가 두렵구나.’ 나찰이 그가 보배를 보고 생각에 잠김을 보자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서서, 분 칠한 얼굴을 행자의 얼굴에 비비며 불렀다. “임이여, 보배를 거두시고 술이나 드시옵소서. 그저 넋을 빼고 무슨 생각을 하시나이까?” 대성이 그가 발을 꼬아 올린 틈을 타 한마디 물었다. “이토록 조그마한 물건으로 어찌 팔백 리의 불길을 부치겠소?” 나찰이 술에 참된 성정이 젖어 꺼릴 것 없이 곧 방법을 말했다. “대왕, 대왕과 이별한 지 두 해가 되었사온데, 대왕께서는 밤낮으로 환락을 탐하시느라 저 옥면공주에게 정신을 상하셨나 보옵니다. 어찌 자기 집 보배의 일마저 모두 잊으셨나이까? 다만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그 자루 위의 일곱 번째 붉은 실을 비비어 쥐고, 통허흡희취호 한 소리를 외우면 곧 한 길 두 자의 길이로 자라나나이다. 이 보배는 변화가 무궁하옵니다! 저 팔만 리의 불길이라 한들 한 번 부치면 사라지나이다.” 대성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에 새겨 두고는, 부채를 입에 물고 얼굴을 한번 쓸어 본래 모습을 드러내어, 사나운 소리로 크게 외쳤다. “나찰녀야! 나를 잘 보아라, 내가 네 친정 지아비냐! 나를 이만큼이나 추한 짓에 휘말아 놓고도 부끄럽지 않으냐! 부끄럽지 않으냐!” 그 여자는 손행자임을 보자마자 당황하여 술상을 밀어 엎고 땅바닥에 넘어져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며 다만 외쳤다. “나는 화가 나 죽겠노라! 화가 나 죽겠노라!” 이 대성은 그의 죽고 삶은 돌보지 않고 손을 뿌리쳐 벗어나 큰 걸음을 떼어 곧장 파초동을 나섰으니, 바로 미색을 탐할 마음이 없어 뜻을 얻고 웃는 낯으로 돌아가는도다. 몸을 한 번 솟구쳐 상서로운 구름을 밟고 높은 산으로 뛰어올라, 부채를 뱉어 내어 방법을 한번 시험해 보았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자루 위의 일곱 번째 붉은 실을 비비어 쥐고 통허흡희취호를 한 소리 외우니, 과연 한 길 두 자의 길이로 자라났다. 손에 쥐고 자세히 거듭 살펴보니 지난번의 가짜와는 과연 달랐으니, 상서로운 빛이 어른거리고 길한 기운이 자욱하며, 위에는 서른여섯 가닥의 붉은 실이 날줄을 꿰고 씨줄을 잇듯 겉과 속이 서로 이어져 있었다. 알고 보니 행자가 자라게 하는 방법만을 얻고, 작게 하는 비결은 얻지 못하였으므로, 어찌해 보아도 다만 그 길이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어깨에 걸쳐 메고 옛길을 찾아 돌아왔거니와 이 이야기는 여기서 두겠다. 말하자면, 저 우마왕이 벽파담 밑에서 여러 정과 잔치를 파하고 문을 나서 보니, 벽수금정수가 보이지 않았다. 늙은 용왕이 여러 정을 모아 물었다. “누가 우 어르신의 금정수를 훔쳐 달아나게 하였느냐?” 여러 정이 꿇어앉으며 말했다. “아무도 감히 훔치지 않았나이다. 저희는 모두 잔치 앞에서 술을 올리고 쟁반을 받들며,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하였사온즉, 한 사람도 앞에 있지 않았나이다.” 늙은 용이 말했다. “집안의 악공들은 결단코 감히 그러지 못하리라. 일찍이 무슨 낯선 이가 들어온 일이 있느냐?” 용자와 용손이 말했다. “조금 전 자리를 정하실 때에 게 정 하나가 이곳에 왔사온데, 그것이 바로 낯선 이로소이다.” 우왕이 이 말을 듣고 홀연 깨달아 말했다. “더 말할 것도 없구나! 아침에 어진 벗이 사람을 보내 나를 청할 때에, 손오공이라는 자가 당승을 보호하여 경을 구하러 가다가 화염산을 넘기 어려워 파초선을 빌려 달라 내게 청한 일이 있었노라. 내가 그에게 주지 않았더니, 그가 나와 한바탕 내기를 하며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았고, 나는 그를 버려 둔 채 곧장 성대한 잔치로 달려왔노라. 그 원숭이는 천 가지 영리함과 만 가지 기교가 있으니, 틀림없이 그 녀석이 게 정으로 변하여 이곳에 와 소식을 엿보고 내 짐승을 훔쳐 본처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 파초선을 속여 낸 것이로다!” 여러 정이 이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며 물었다. “그놈이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그 손오공이란 말이오?” 우왕이 말했다. “그러하노라. 여러 어르신들께서 서천 길에서 잘못된 일을 당하시거든 모름지기 그를 피하시오.” 늙은 용이 말했다. “그렇다면 대왕의 준마는 어찌한단 말이오?” 우왕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소, 괜찮소. 여러 어르신들은 흩어지시오. 내가 그를 쫓아가 보리라.” 드디어 물길을 헤치고 못 밖으로 뛰어나와 누런 구름을 타고 곧장 취운산 파초동에 이르니, 나찰녀가 발을 구르며 가슴을 치고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만 들렸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벽수금정수가 아래에 매어 있는 것이 보이거늘, 우왕이 크게 외쳤다. “부인, 손오공은 어느 쪽으로 갔느냐?” 여러 계집아이가 우마왕을 보고는 일제히 꿇어앉으며 말했다. “할아버님이 오셨나이까?” 나찰녀가 우왕의 옷을 붙잡고 머리를 조아리며 입으로 욕했다. “이 더럽고 천벌 받을 늙은이여! 어찌 이다지도 삼가지 못하여 저 원숭이 놈에게 금정수를 훔쳐 내어 네 모습으로 변하게 하고, 여기까지 와서 나를 속이게 하였느냐!” 우왕이 이를 갈며 말했다. “원숭이 놈이 어느 쪽으로 갔느냐?” 나찰이 가슴을 치며 욕했다. “그 더러운 원숭이가 내 보배를 속여 내고는 본래 모습을 드러내어 가 버렸단 말이오! 나는 화가 나 죽겠노라!” 우왕이 말했다. “부인은 몸을 보중하시오, 마음을 조급히 먹지 마시오. 내가 원숭이를 따라잡아 보배를 빼앗고, 그 가죽을 벗기고 그 뼈를 부수며 그 심장을 꺼내 놓아 부인의 분을 풀어 주리라!” 하고 외쳤다. “병기를 가져오너라!” 계집아이가 말했다. “할아버님의 병기는 여기 계시지 않나이다.” 우왕이 말했다. “그러면 네 할머님의 병기를 가져오너라!” 시비가 푸른 칼날의 보검 두 자루를 받들어 내왔다. 우왕이 잔치에 가려 입었던 검푸른 털 저고리를 벗고, 몸에 붙는 속옷을 단단히 동여맨 뒤 두 손에 검을 쥐고 파초동을 나서 곧장 화염산으로 달려가 쫓아갔다. 바로 그것이로다. 은혜를 잊은 사내는 어리석은 마음의 아내를 속였고, 성질 사나운 마왕은 목타인에게 가까이 가누나. 결국 이 길의 길흉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1회 저팔계조력패마왕(豬八戒助力敗魔王) · 손행자삼조파초선(孫行者三調芭蕉扇) 이야기는 이러하다. 우마왕이 손대성을 뒤쫓아가 보니, 그가 어깨에 그 파초선을 메고 얼굴에 흐뭇한 빛을 띤 채 걸어가고 있었다. 마왕이 크게 놀라 말했다. “원숭이 놈이 부챗질하는 법까지 알아내었단 말인가. 내가 면전에서 달라고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주지 않을 터이요, 만일 한 번 부쳐 대면 십만 팔천 리를 날려 가고 말 터이니, 그놈의 뜻을 들어 주는 꼴이 되지 않겠느냐? 삼장법사가 큰길에서 기다린다 하더라. 그의 둘째 제자는 돼지 정령이요 셋째 제자는 사류 정령인데, 내가 요괴로 지내던 시절에 일찍이 그들을 만난 적이 있으니, 그 돼지 정령의 모습으로 변해 도리어 그놈을 한바탕 속여 보자. 원숭이 놈은 뜻을 이룬 것을 기뻐할 터이니 틀림없이 자세히 경계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훌륭한 마왕이로다. 그에게도 일흔두 가지 변화가 있고 무예 또한 대성과 같았으나, 다만 몸집이 육중하고 민첩함이 모자라 날렵하지 못할 뿐이었다. 보검을 감추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곧 저팔계와 꼭 같은 얼굴이 되어 아랫길로 에돌아 대성을 마주 향해 가며 외쳤다. “사형, 내가 왔노라!” 이 대성은 과연 기뻐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이긴 고양이가 범처럼 기뻐한다 하였거늘, 제 재주만 믿고 온 사람의 속뜻은 살펴보지도 않은 채 저팔계의 모습을 보고 곧바로 말했다. “아우야, 너는 어디로 가느냐?” 우마왕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그대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매, 우마왕의 수단이 커서 그대가 그를 당해 내지 못하고 보물을 얻기 어려울까 염려하시어, 나를 마중 오라 하셨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수고할 것 없네, 내 이미 손에 넣었거든.” 우왕이 또 물었다. “그걸 어떻게 얻었단 말인가?” 행자가 말했다. “그 늙은 소가 나와 백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네. 그러다 나를 버려 두고 난석산 벽파담 밑으로 가서 교정과 용정 무리와 술을 마시더군. 내가 몰래 뒤따라가 게로 변해 그가 타던 벽수금정수를 훔치고는, 늙은 소의 모습으로 변해 곧장 파초동으로 가 나찰녀를 꾀었네. 그 계집이 노손과 한바탕 헛부부의 인연을 맺었으니, 노손이 꾀를 내어 속여 온 것이라네.” 우왕이 말했다. “참으로 고생이 많았구려. 형님께서 너무 애쓰셨으니, 부채를 내게 줘 보시구려.” 손대성은 참과 거짓을 어찌 알며 그리까지 미쳐 생각하지도 못하고, 마침내 부채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사실 그 우왕은 부채를 늘이고 줄이는 근본을 알고 있었다. 손에 받아 쥐고 무슨 결인지 외우니 부채는 도로 살구잎만큼 작아졌고, 본모습이 드러나자 입을 열어 꾸짖었다. “망할 원숭이 놈아! 나를 알아보겠느냐?” 행자가 보고서 속으로 뉘우치며 말했다. “내가 잘못했구나!” 한탄하며 발을 구르고 크게 외쳤다. “에잇! 해마다 기러기를 잡아 왔건만, 오늘은 도리어 어린 기러기에게 눈을 쪼였구나!” 분노가 천둥처럼 터져 철봉을 뽑아 들고 내리쳐 때리니, 마왕이 부채로 한 번 부쳐 댔으나, 그 대성이 앞서 초요충으로 변해 나찰녀 배 속에 들어갔을 때 정풍단을 입에 물었다가 모르는 사이에 삼켜 버렸으므로 오장이 모두 굳건하고 뼈와 살갗이 튼튼하여, 아무리 부쳐도 다시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왕이 당황하여 보물을 입에 넣고 두 손으로 검을 휘둘러 내리쳤다. 그 둘이 반공중에서 벌인 이 한판의 멋진 싸움이란! 제천 손대성이요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나운 우왕이라, 오직 파초선 때문에 서로 만나 저마다 힘을 뽐내누나. 마음이 거친 대성은 남을 속였고, 대담한 우왕은 부채를 가로챘구나. 이쪽은 여의봉을 들어 인정사정없이 휘두르고, 저쪽은 쌍날 푸른 칼로 지혜와 꾀를 부리누나. 대성이 위엄을 부리자 무지개 안개가 뿜어지고, 우왕이 사나움을 놓자 터럭 같은 빛이 뿜어 나온다. 함께 용맥을 다투나 둘 다 선한 자가 아니어라, 이를 갈고 어금니를 비비며 기세가 드높구나. 흙을 날리고 먼지를 일으켜 천지가 어둑해지고, 모래 날리고 돌 굴러 귀신조차 숨는구나. 이쪽이 말하기를 “감히 무지하게 나를 도로 속였느냐!” 하니, 저쪽이 말하기를 “내 아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하였노라!” 하였다. 말은 천하고 사나우며 성질은 세차고 굳세구나. 저쪽이 말하기를 “남의 아내를 꾀었으니 참으로 죽어 마땅하다! 관가에 고발하면 죄를 받으리라!” 하였다. 영리한 제천대성이요 흉포하고 완고한 대력왕이라, 오직 죽이기만을 원하여 다시 상의할 겨를도 없구나. 몽둥이 내리치고 검으로 받아 내며 함께 힘을 쓰니, 조금이라도 늦추면 염라대왕을 보리라. 그 둘이 싸우며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사이의 일은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는 삼장법사가 길가에 앉아 있는 데로 돌아간다. 하나는 불기운이 사람을 찌고, 둘째는 마음이 조급하고 목이 말라서, 화염산 토지에게 말했다. “감히 존신께 여쭙거니와, 저 우마왕의 법력이 어떠하옵니까?” 토지가 말했다. “그 우왕은 신통이 작지 않고 법력이 끝이 없어, 바로 손대성의 적수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은 걸음이 빠른 아이여서 평소라면 이천 리 길도 잠깐이면 돌아오는데, 어찌하여 이번에는 하루가 지났단 말이냐? 틀림없이 그 우왕과 겨루고 있으리라.” 그리고 불렀다. “오능, 오정아! 너희 둘 중에 누가 가서 사형을 마중하겠느냐? 혹시 적을 만나거든 힘을 다해 돕고, 부채를 얻어 와서 내 답답함을 풀고 일찍이 산을 넘어 길을 가게 하여라.” 팔계가 말했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사옵니다. 그를 마중 가고 싶은 마음은 있사오나, 다만 적뢰산 길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토지가 말했다. “소신이 알고 있사옵니다. 권렴장군을 사부님과 함께 있도록 하고, 제가 대성과 함께 가겠나이다.” 삼장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존신께 폐를 끼쳤사오니, 공이 이루어지거든 다시 사례하겠나이다.” 그 팔계가 정신을 가다듬고 검은 비단 직철을 단단히 동여매며 정파를 들고는, 곧 토지와 함께 구름을 타고 곧장 동쪽으로 돌아갔다. 가는 도중에 문득 함성 소리가 높게 들리고 미친 바람이 구름처럼 몰아쳤다. 팔계가 구름을 멈추고 내려다보니, 손행자와 우왕이 서로 치고받고 있었다. 토지가 말했다. “천봉께서는 어찌하여 나서지 않으시나이까?” 그 멍청한 놈이 정파를 뽑아 들고 목청을 높여 외쳤다. “사형, 내가 왔노라!” 행자가 원망하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내 큰일을 얼마나 그르쳤느냐!” 팔계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마중 오라 하셨는데, 산길을 알지 못해 한참을 의논하다가 토지더러 길을 인도하라 하여 이렇게 늦었거늘, 어찌 큰일을 그르쳤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네가 늦은 것을 탓하는 게 아니네! 이 망할 소가 몹시 무례하단 말이다. 내가 나찰에게서 부채를 얻어 왔는데, 이놈이 네 모습으로 변해 입으로는 나를 마중 왔다 하기에, 내가 한때 기뻐하며 도리어 부채를 그놈 손에 건네주었더니, 그놈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노손과 여기서 겨루고 있으니, 일이 이렇게 그르쳐진 것이라네.” 팔계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정파를 들어 면전에서 꾸짖었다. “이 피부 부푼 재앙받을 놈아! 네 어찌 감히 네 조상의 모습으로 변해 내 사형을 속여 우리 형제를 사이 나쁘게 만드느냐!” 보라, 그가 정파를 마구 휘둘러 사정없이 찍어 대니, 우왕은 하나는 행자와 하루 종일 싸워 힘이 지치고 정신이 피로한 탓이요, 둘째는 팔계의 정파가 흉맹하여 막아 낼 수 없어 진형을 이루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런데 화염산 토지가 음병을 거느리고 면전을 막아서며 말했다. “대력왕이시여, 잠시 손을 멈추시옵소서. 당삼장이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일은, 보호하지 않는 신이 없고 돕지 않는 하늘이 없어 삼계에 두루 알려지고 시방이 옹호하나이다. 어서 파초선을 내어 불꽃을 부쳐 끄시어, 그에게 재앙과 장애가 없게 하시고 일찍 산을 넘어가게 하옵소서. 그렇지 않으시면 하늘에서 그 죄를 물어 반드시 주살을 당하시리이다.” 우왕이 말했다. “이 토지야, 너는 이치를 살피지 못하는구나! 그 망할 원숭이가 내 아들을 빼앗고 내 첩을 욕보이고 내 아내를 속여 번번이 도리가 없으니, 나는 그놈을 통째로 삼켜 뱃속에 넣고 똥으로 만들어 개에게나 먹이고 싶을 지경인데, 어찌 기꺼이 보물을 빌려 주겠느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팔계가 달려들어 꾸짖었다. “이 속이 굳은 놈아! 어서 부채를 내놓아라, 목숨만은 살려 주마!” 그 우왕은 하는 수 없이 되돌아서서 보검을 들어 다시 팔계와 싸우고, 손대성이 몽둥이를 들어 거들었다. 그곳에서 벌인 이 한판의 멋진 싸움이란! 정령이 된 돼지요 괴물이 된 소요, 게다가 하늘을 훔쳐 도를 얻은 원숭이까지라. 선의 성품은 본래 싸움 속에서 단련되나니, 반드시 흙을 써서 근원의 이치에 맞아야 하느니라. 아홉 개 이빨의 정파는 날카롭기까지 하고, 쌍날 보검은 빠르면서도 부드럽구나. 철봉은 감기고 펴지며 주장이 되고, 토신이 힘을 보태어 단두를 맺누나. 세 집안이 형극으로 서로 다투며 저마다 뛰어난 재주를 펼쳐 꾀를 쓰누나. 소를 잡아 밭을 갈면 금전이 자라고, 돼지를 불러 화로로 돌리면 목기가 거두어지누나. 마음이 여기 없거늘 어찌 도를 닦으며, 정신이 늘 집을 지켜야 원숭이를 매어 둘 수 있느니라. 마구 떠들고 애써 서로 다투니, 세 가지 병기가 소리 높이 울리는구나. 정파로 찍고 검으로 상하게 함은 좋은 뜻이 없고, 여의봉을 듦에는 연유가 있느니라. 마침내 별은 빛을 잃고 달은 밝지 않으며, 하늘 가득 찬 안개가 캄캄하고 아득하기만 하구나! 그 마왕이 용맥을 떨치며 강함을 다투어, 싸우면서 나아가고 나아가면서 싸워 하룻밤을 싸웠으되 위아래를 가리지 못하고 어느덧 다시 날이 밝았다. 앞쪽은 그의 적뢰산 마운동 어귀였다. 그 셋과 토지의 음병이 또 소란을 피워 귀가 울리니, 그 소리에 놀란 옥면공주가 계집종을 불러 어디서 사람들이 떠드는지 보게 하였다. 문을 지키던 작은 요괴가 와서 아뢰었다. “우리 할아버님께서 어제 그 번개 부리 같은 입의 사내와, 긴 입 큰 귀의 중 하나, 그리고 화염산 토지 무리와 함께 치고받고 계시나이다!” 옥면공주가 이 말을 듣고 곧 바깥을 지키는 크고 작은 두목들에게 각각 창과 칼을 들고 돕도록 명하였다. 앞뒤로 점고하니 장단이 제각각인 백여 명이었는데, 하나하나가 정신을 뽐내며 창을 쥐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함께 아뢰었다. “대왕 할아버님, 저희는 할머님의 내지를 받들어 특별히 돕으러 왔나이다!” 우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잘 왔느니라! 잘 왔느니라!” 요괴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서 마구 내리쳤다. 팔계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정파를 끌며 진을 버리고 달아났고, 대성은 근두운을 타고 포위를 뚫고 나갔으며, 음병들도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늙은 소가 승리하여 요괴들을 모아 동굴로 돌아가 굳게 동문을 닫았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행자가 말했다. “이놈이 호걸이로구나! 어제 신시 전후부터 노손과 싸우기 시작해 오늘 밤까지 승부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네가 와서 힘을 보태는구나. 이토록 반나절과 하룻밤을 고생스레 싸웠어도 그는 조금도 지치지 않는다. 방금 그 작은 요괴 무리 또한 사납고 건장하더구나. 그가 동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대는 어제 사시에 사부님 곁을 떠났거늘, 어찌하여 신시에야 그와 싸우기 시작했단 말이오? 그 두세 시진 동안 그대는 어디에 있었소?” 행자가 말했다. “너와 헤어진 뒤 순식간에 이 산에 이르러 한 계집에게 길을 물었더니, 그가 바로 그의 애첩 옥면공주더구나. 내가 쇠몽둥이로 겁을 주었더니 그 계집이 동굴로 달려 들어가 그 우왕을 불러 내었지. 노손과 실랑이를 벌이며 한참 떠들다가 다시 맞붙어 한 시진을 싸웠다. 한창 싸우는데 누군가 그를 잔치에 초대하러 왔더군. 내가 그를 따라 난석산 벽파담 밑까지 가서 게로 변해 정탐하고, 그의 벽수금정수를 훔쳐 우왕의 모습으로 거짓 변신하여 다시 취운산 파초동으로 가 나찰녀를 속여 부채를 얻어 냈네. 문을 나서며 법을 시험해 보려 부채를 길게 늘였으나, 도로 줄일 줄은 몰랐지. 그래서 어깨에 메고 가는데 그놈이 네 얼굴로 거짓 변해 도리어 속여 가 버렸으니, 그 때문에 두세 시진이 지체된 것이라네.” 팔계가 말했다. “이야말로 속담에 이르기를, 바다에서 두부 배가 뒤집혔으니 국물에서 온 것은 물로 간다 하였거늘, 이제 그의 부채를 얻기 어려우니 어찌 사부님을 모시고 산을 넘겠소? 우선 돌아가서 길을 돌아 그만두어 버립시다!” 토지가 말했다. “대성께서는 조급해하지 마시옵고, 천봉께서도 게으르지 마시옵소서. 길을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곧 방문에 드는 것이니 수행하는 무리가 될 수 없사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길은 지름길로 가지 않는다 하였거늘 어찌 돌아갈 수 있사옵니까? 그대들의 사부님께서는 바른 길에 앉아 계시며 눈이 빠지게 그대들이 성공하기만을 바라고 계시옵니다!” 행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옳다, 옳다! 이 멍청한 놈아, 헛소리하지 마라! 토지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 우리가 바로 그와 승부를 겨루고 수단을 부려 보겠으니, 내가 지살 변화를 부리는 것을 보아라. 서방에 온 뒤로는 상대할 자가 없거늘, 우왕은 본래 심원의 변화로다. 이번에야말로 근원의 흐름을 만나게 되었으니, 끝까지 맞서 보배 부채를 빌려야 하리라. 서늘함을 타고 불꽃을 끄며, 완고한 공을 깨뜨리고 부처님의 얼굴을 참구하리라. 수행이 차면 극락천으로 초월하여 오르고, 모두 함께 용화회에 나아가리라!” 그 팔계가 이 말을 듣고 힘을 내어 정성스레 말했다. “옳소, 옳소, 옳소! 가세, 가세, 가세! 무슨 우왕이 어떠하건 상관없거늘, 목이 해에서 나면 돼지가 되어 소를 끌어 돌려 흙의 무리로 돌아가게 하리라. 신 아래서 금이 나니 본래 원숭이거늘, 형극도 없고 극함도 없어 온화한 기운이 많구나. 파초를 쓰면 물의 뜻이 되어 불꽃이 사라지고 이미 건넘을 이루리라. 밤낮으로 떠나지 말고 고생을 다하여 공을 쌓으면, 공이 끝나거든 우란회로 달려가리라.” 그 둘이 토지의 음병을 거느리고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 정파를 쓰고 철봉을 휘둘러, 펑펑 탕탕 소리를 내며 마운동의 앞문을 산산이 부수었다. 바깥을 지키던 두목들이 놀라 벌벌 떨며 안으로 뛰어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손오공이 무리를 거느리고 앞문을 부수었나이다!” 그 우왕은 옥면공주에게 그간의 일을 자세히 말하며 손행자를 원망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앞문이 부서졌다는 말을 듣고 몹시 분노하여, 급히 갑옷을 걸치고 쇠몽둥이를 들고 안에서부터 욕하며 나왔다. “망할 원숭이 놈아! 네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감히 이토록 문 앞에서 행패를 부리고 내 문짝을 부수느냐?”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마구 욕했다. “이 늙은 가죽 벗길 놈아! 네가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감히 그 크기를 헤아리느냐! 달아나지 마라, 정파를 받아라!” 우왕이 호통쳤다. “이 찌꺼기나 처먹는 멍청한 놈아, 별것 아니로구나! 어서 그 원숭이 놈을 올려보내라!” 행자가 말했다. “분별 없는 풀 뜯는 짐승아! 내 어제는 너와 형제를 논했거늘, 오늘은 곧 원수로다! 조심하여라, 내 몽둥이를 받으리라!” 그 우왕이 용맥을 떨치며 맞받았다. 이번 싸움은 지난번보다 더 치열하였다. 세 영웅이 한데 뒤섞여 싸우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정파와 철봉이 신위를 뽐내고, 음병을 함께 거느리고 늙은 희생을 치거늘, 희생은 홀로 흉포하고 강한 성질을 펼치고, 온 하늘에 법력이 두루 회복되누나. 정파로 찍고 몽둥이로 두드리며, 철봉을 든 영웅이 또 기이함을 내누나. 세 가지 병기가 쨍그랑 소리를 내니, 막고 가리며 받아 내는 누가 누구에게 양보하랴. 그는 자기가 으뜸이라 하고, 나는 내가 으뜸이라 한다. 병사들이 증인이 되어도 풀기 어렵고, 목과 토가 서로 달구며 위아래가 따르누나. 이 두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파초선을 빌려 주지 않느냐!” 하니, 저쪽이 말하기를 “네가 어찌 감히 마음을 속여 내 아내를 꾀였느냐! 첩을 쫓고 자식을 해친 원수를 아직 갚지 못했거늘, 문을 두드리고 집을 부수며 또 놀라게 하느냐!” 하였다. 이쪽이 말하기를 “내 여의봉을 조심하여 막아라, 조금만 스쳐도 가죽이 터지리라!” 하니, 저쪽이 말하기를 “정파의 이빨을 잘 피하여라, 한 번 상하면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흐르리라!” 하였다. 우마는 위엄과 사나움을 부려도 두려워하지 않고, 쇠몽둥이를 높이 들어 기회를 엿보누나. 구름을 뒤집고 비를 쏟으며 오고 가고, 안개를 토하고 바람을 뿜으며 제멋대로 휘두르누나. 한스럽고 괴로운 이 한판에 모두가 목숨을 걸었으니, 저마다 악한 마음을 품고 기꺼이 맞서누나. 틀을 벗고 높낮이를 양보하며, 앞에서 맞고 뒤에서 막으니 언제나 손해가 없구나. 형제 둘이 함께 힘을 쓰고, 홀로 몸으로 몽둥이 하나만을 부리누나. 묘시부터 진시가 지난 뒤까지 싸우다, 싸움을 마친 우마가 손이 묶인 듯 물러났다. 그 셋이 죽음을 무릅쓰고 삶을 잊은 채 다시 백여 합을 싸웠다. 팔계가 멍청한 기질을 내어 행자의 신통을 믿고 정파를 들어 마구 찍어 댔다. 우왕이 막아 내지 못하고 진을 버리고 되돌아서 동굴 문으로 달려갔으나, 토지의 음병이 동굴 문을 막아서며 호통쳤다. “대력왕이여, 어디로 가려 하느냐! 우리가 여기 있노라!” 그 늙은 소가 동굴로 들어가지 못하고 급히 몸을 빼는데, 팔계와 행자가 뒤쫓아 오는 것을 보고 다급해진 나머지 투구와 갑옷을 벗고 쇠몽둥이를 버린 뒤, 몸을 흔들어 변하여 한 마리 고니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행자가 보고 웃으며 말했다. “팔계야, 늙은 소가 도망쳤다!” 그 멍청한 놈은 아무것도 모르고 토지도 알아차리지 못하여, 하나같이 동쪽을 보고 서쪽을 살피며 적뢰산 앞뒤만 마구 뒤졌다. 행자가 가리키며 말했다. “저 하늘에 날아가는 것이 아니냐?” 팔계가 말했다. “저것은 고니 한 마리구려.” 행자가 말했다. “바로 늙은 소가 변한 것이라.” 토지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너희 둘은 이 문을 쳐부수고 들어가 요괴 무리를 남김없이 쓸어 버리고, 그의 소굴을 허물어 돌아갈 길을 끊어라. 노손이 그와 변화를 겨루고 오겠다.” 그 팔계와 토지가 말대로 동굴 문을 쳐부수고 들어갔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 대성이 여의봉을 거두고 결을 외우며 주문을 외우고는 몸을 흔들어 변하니, 한 마리 해동청이 되어 휙 소리를 내며 한 번 날개짓하여 구름 속으로 파고들더니, 거꾸로 날아 내려와 고니의 등에 내려앉아 목을 껴안고 눈을 쪼았다. 그 우왕도 손행자가 변한 줄을 알고 급히 날개를 털며 한 마리 황응이 되어 도로 해동청을 쪼아 댔다. 행자가 또 한 마리 오봉으로 변하여 오로지 황응만을 쫓았다. 우왕이 알아차리고 또 한 마리 백학으로 변하여 길게 울음소리를 내고 남쪽으로 날아갔다. 행자가 멈춰 서서 깃털을 털고 또 한 마리 단봉으로 변하여 높이 울었다. 그 백학은 봉황이 새의 왕임을 아는지라 온갖 날짐승이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여, 휙 하고 한 번 날개짓하여 산벼랑 아래로 꺾어 내려가 몸을 변해 한 마리 향장이 되어, 멍청한 듯 벼랑 앞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행자가 알아보고 곧 날개를 내려 한 마리 주린 호랑이로 변하여 꼬리를 자르고 발굽을 달려 그 향장을 쫓아 잡아먹으려 하였다. 마왕이 다급해진 나머지 또 한 마리 금전화반의 큰 표범으로 변하여 주린 호랑이를 해치려 하였다. 행자가 보고서 바람을 맞서며 머리를 한 번 흔들어, 또 한 마리 금안 준예로 변하였는데, 목소리는 벼락 같고 이마는 쇠며 머리는 구리였으며, 몸을 돌려 큰 표범을 먹으려 하였다. 우왕이 조급해져 또 한 마리 인웅으로 변하여 발을 뻗어 그 준예를 잡으려 달려들었다. 행자가 한 바퀴 굴러 한 마리 뢰상으로 변하였는데, 코는 긴 뱀 같고 이는 죽순 같아서 코를 펼쳐 그 인웅을 감아 말려 하였다. 우왕이 히히 하고 한 번 웃더니 원신을 드러내니, 한 마리 큰 백우였다. 머리는 험준한 고개 같고 눈은 번쩍이는 빛 같으며, 두 뿔은 두 개의 철탑 같고 이는 벼린 칼날을 늘어놓은 듯하였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천여 장의 길이요, 발굽에서 등까지 팔백 장의 높이였다. 행자를 향해 크게 외쳤다. “망할 원숭이 놈아! 네가 이제 나를 어찌하겠느냐?” 행자도 원신을 드러내고 여의봉을 뽑아 허리를 한 번 굽히며 크게 외쳤다. “길어라!” 몸이 길어져 키가 만 장이 되니, 머리는 태산 같고 눈은 해와 달 같으며 입은 피웅덩이 같고 이는 문짝 같았으며, 손에 쇠몽둥이 하나를 쥐고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우왕이 머리를 굳히고 뿔로 받아 왔다. 이 한판은 참으로 고개를 흔들고 산을 뒤흔들며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도는 한 자 높으나 마는 천 장이니, 기묘한 심원이 힘을 다해 항복받누나. 화산에 사나운 불꽃이 없게 하려거든, 반드시 보배 부채로 서늘함을 얻어야 하느니라. 황파가 뜻을 굳게 하여 원로를 돕고, 목모가 정을 두어 요괴를 쓸어 버리누나. 오행이 화목해져 바른 과보로 돌아가고, 마를 단련하고 때를 씻어 서방으로 오르누나. 그 둘이 신통을 크게 펼쳐 산중에서 겨루니, 지나가던 허공의 모든 신중과 금두게제, 육갑육정, 열여덟 분의 호교가람이 놀라 모두 몰려와 마왕을 포위하였다. 그 마왕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보라, 그가 동쪽으로 한 번 머리를 들이대고 서쪽으로 한 번 들이대며, 곧게 뻗고 번쩍이는 두 개의 쇠뿔로 오가며 받아 대고, 남쪽으로 한 번 들이받고 북쪽으로 한 번 들이받으며, 털이 삐죽삐죽하고 힘줄이 불거진 한 가닥 단단한 꼬리로 좌우를 휘둘러 흔들었다. 손대성이 면전에서 맞서고 여러 신이 사면에서 때리니, 우왕이 다급해져 땅에 한 바퀴 굴러 본모습으로 돌아가 곧 파초동으로 달아났다. 행자도 법상을 거두고 여러 신과 함께 뒤를 따라 추격하였다. 그 마왕이 동굴로 뚫고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니, 무리가 취운산을 물 한 방울 새지 않도록 빈틈없이 포위하였다. 모두 문 앞으로 나아가 공격하던 참인데, 문득 팔계와 토지의 음병이 떠들며 오는 소리가 들렸다. 행자가 보고 물었다. “그 마운동의 일은 어떠하냐?”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늙은 소의 계집이 내 정파 한 방에 찍혀 죽었는데, 옷을 벗겨 보니 본래 옥면이 정령이더구나. 그 요괴 무리는 모두 나귀와 노새와 송아지와 수소, 오소리와 여우와 너구리와 노루, 양과 호랑이와 사슴 따위였는데, 이미 모조리 쳐 죽이고 그 동굴과 방랑에 불을 질러 태워 버렸다. 토지가 말하기를 그놈에게 이 산에 사는 처자가 하나 더 있다 하여, 또 이리로 쓸어 버리러 온 것이라네.” 행자가 말했다. “아우가 공을 세웠으니 기쁘구나! 기쁘구나! 노손은 그 늙은 소와 헛되이 변화를 겨루었을 뿐 이기지 못하였다. 그놈이 크고도 크지 않은 백우로 변하였고, 나는 하늘을 본뜨고 땅을 본뜬 몸집으로 변하여 막 그놈과 뿔을 맞대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여러 신이 내려와 한참을 포위하니 그놈이 원신으로 돌아가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팔계가 말했다. “그곳이 파초동이란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나찰녀가 바로 그 안에 있다.” 팔계가 성을 내며 말했다. “그러할진대 어찌 쳐들어가 그놈을 쓸어 버리고 부채를 내놓으라 하지 않고, 도리어 그놈이 머물러 꾀를 키우고 두 내외가 정을 나누게 두느냐!” 과연 훌륭한 멍청이라, 위풍을 떨치며 정파를 들어 문을 향해 한 번 찍으니, 와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돌벼랑이 문과 함께 한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여동이 놀라 급히 아뢰었다. “할아버님! 어떤 사람인지 앞문을 모두 부수었나이다!” 우왕이 막 뛰어 들어가 헐떡거리며 나찰녀에게 손행자와 부채를 다투어 겨룬 일을 이야기하던 참이었는데, 그 보고를 듣고 속이 크게 뒤집혀 입에서 부채를 토해 내어 나찰녀에게 건네주었다. 나찰녀가 부채를 손에 받아 쥐고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 부채를 그 원숭이에게 보내어 병사를 물러가게 하옵소서.” 우왕이 말했다. “부인이여, 물건은 비록 작으나 한은 깊도다. 그대는 잠시 앉아 있고, 내가 다시 그와 겨루고 오리라.” 그 마왕이 다시 갑옷을 정비하고 보검 두 자루를 골라 문을 나서니, 마침 팔계가 정파로 문을 찍고 있는 중이었다. 늙은 소는 말도 없이 검을 뽑아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팔계가 정파를 들어 맞받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문 밖으로 나오니, 벌써 대성이 몽둥이를 휘둘러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 우마가 곧 미친 바람을 타고 동굴을 벗어나 뛰쳐나가니, 또 모두 취운산 위에서 맞붙었다. 여러 신이 사면을 에워싸고 토지의 병사가 좌우에서 공격하였다. 이 한판 또한 멋진 싸움이었으니, 구름이 세계를 어지럽히고 안개가 건곤을 덮누나. 쌔액쌔액 음풍에 모래와 돌이 구르고, 높고 높은 노기에 바다 물결이 흐려지누나. 칼 두 자루를 다시 갈고 갑옷을 온몸에 다시 걸쳤구나. 맺힌 원한은 바다보다 깊고, 품은 한이 커질수록 성을 내누나. 보라, 제천대성이 공적을 위하여 지난날의 옛 벗을 돌보지 않고, 팔계가 위엄을 부려 부채를 구하며, 여러 신이 법을 지켜 우군을 사로잡누나. 우왕의 두 손은 쉴 새 없이 왼쪽을 가리고 오른쪽을 막으며 정신을 부리누나. 마침내 지나는 새도 날기 어려워 모두 날개를 거두고, 노니는 물고기도 뛰지 못하여 모두 비늘을 숨기며, 귀신은 울고 신은 통곡하여 천지가 어둑해지고, 용은 근심하고 호랑이는 두려워하여 해빛마저 흐려지는구나! 그 우왕이 목숨을 걸고 몸을 던져 쉰여 합을 싸웠으나 더는 당해 내지 못하고 진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오대산 비마암의 신통광대한 발법금강이 일찍이 길을 막아서며 말했다. “우마야, 네가 어디로 가려 하느냐! 우리는 석가모니 불조께서 보내시어 천라지망을 펼쳐 놓고 여기서 너를 사로잡으러 왔노라!” 말하는 사이에 뒤이어 대성과 팔계와 여러 신이 쫓아왔다. 그 마왕이 다급히 몸을 돌려 남쪽으로 달아나다가, 또 아미산 청량동의 법력이 한량없는 승지금강과 부딪쳤는데, 그가 막아서며 호통쳤다. “내가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여기 있거늘, 바로 너를 잡으려 하는 것이로다!” 우왕이 마음이 다급하고 다리가 풀려 급히 몸을 빼어 동쪽으로 달아나다가, 수미산 마이애의 비로사문 대력금강과 마주쳤는데, 그가 길을 막으며 말했다. “이 늙은 소야, 어디로 가느냐! 내가 여래의 밀령을 받들어 너를 잡으러 왔노라!” 우왕이 또 소스라치며 물러나 서쪽으로 달아나다가, 또 곤륜산 금하령의 불괴존왕 영주금강과 맞닥뜨렸는데, 그가 막아서며 호통쳤다. “이놈아, 또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내가 서천 대뢰음사의 불노의 친언을 받들어 여기서 길을 끊고 있거늘, 누가 너를 놓아 주겠느냐!” 그 늙은 소는 가슴이 철렁하고 담이 떨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사방팔방이 모두 불병과 천장임을 보니, 참으로 그물이 높이 쳐진 듯하여 목숨을 벗어날 수 없었다. 황망한 사이에 또 행자가 무리를 거느리고 쫓아온다는 소리가 들리자, 그가 구름을 타고 위로 올라가 달아났다. 마침 탁탑 이천왕과 나타 태자가 어두약차와 거령신장을 거느리고 공중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천천히 오너라! 천천히 오너라! 내가 옥황상제의 뜻을 받들어 특별히 이곳에 너를 쳐부수러 왔노라!” 우왕이 다급해져 전과 같이 몸을 흔들어 변하여, 도로 한 마리 큰 백우가 되어 두 쇠뿔로 천왕을 받으려 하니, 천왕이 칼을 들어 내리쳤다. 뒤이어 손행자가 또 닿자, 나타 태자가 목청을 높여 외쳤다. “대성이여, 몸에 갑옷을 걸치고 있어 예를 갖추지 못하노라. 소자 부자가 어제 여래 부처님을 뵙고 격문을 띄워 옥황상제께 아뢰어 이르기를, 삼장법사가 화염산에서 길이 막히고 손대성이 우마왕을 항복받기 어렵다 하였더니, 옥황상제께서 뜻을 전하시어 특별히 나의 부왕에게 무리를 거느리고 힘을 보태라 하셨노라.” 행자가 말했다. “이놈의 신통이 작지 않구나! 또 이런 몸집으로 변하였으니 어찌한단 말이오?” 태자가 웃으며 말했다. “대성이여, 의심하지 마시오, 내 그를 사로잡는 것을 보시오.” 이 태자가 곧 “변하여라!” 하고 한 번 외치자, 세 머리 여섯 팔로 변하여 몸을 날려 우왕의 등에 뛰어올라 참요검을 목덜미를 향해 한 번 휘두르니, 어느새 소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천왕이 칼을 거두고서야 행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 우왕의 목구멍에서 또 머리 하나가 솟아 나왔는데, 입으로는 검은 기운을 토하고 눈에서는 금빛을 뿜었다. 나타가 또 한 번 내리치니 목이 떨어진 자리에서 또 머리 하나가 솟아 나왔다. 잇달아 열몇 번을 내리치자 곧 열몇 개의 머리가 자라났다. 나타가 화륜을 꺼내 그 늙은 소의 뿔에 걸고 참된 불을 불어 넣으니,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에 우왕은 미친 듯 포효하며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흔들었다. 막 변화하여 몸을 빼내려는데, 또 탁탑천왕이 조요경으로 본모습을 비추어 붙잡아 놓으니, 움직일 수도 없고 빠져나갈 꾀도 없어, 다만 “내 목숨만은 해치지 마시오! 원하건대 불가에 귀순하겠노라!” 하고 외쳤다. 나타가 말했다. “목숨이 아깝거든 어서 부채를 내놓으라!” 우왕이 말했다. “부채는 내 산처가 간직하고 있느니라.” 나타가 이 말을 듣고 묘요색을 풀어 그의 목덜미에 걸치고는 코를 한 웅큼 쥐어 그 끈을 콧구멍에 꿰어 손으로 끌고 왔다. 손행자는 사대금강과 육정육갑, 호교가람, 탁탑천왕, 거령신장과 팔계, 토지, 음병을 한데 모아 백우를 에워싸고 파초동 어귀로 돌아왔다. 늙은 소가 외쳤다. “부인이여, 부채를 내어 내 목숨을 구하시오!” 나찰이 그 외침을 듣고 급히 비녀와 귀고리를 풀고 화려한 옷을 벗어 검은 머리카락을 도고처럼 틀어 올리고 비구처럼 흰 소복을 입고서는, 두 손으로 한 장 두 자 길이의 파초선을 받들고 문을 나섰다가, 금강의 여러 성인과 천왕 부자를 보고 황망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말했다. “바라건대 보살이시여, 저희 부부의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이 부채를 받들어 손오공 숙부께 드려 성공하게 하겠나이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 부채를 받고, 대중과 함께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곧장 동쪽 길로 돌아갔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삼장법사와 사승이 서 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며 행자를 기다리건만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얼마나 근심이 되었겠는가! 문득 상서로운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서광이 땅에 가득하며, 펄펄 나부끼며 여러 신이 가까이 오는 것이 보이자, 이 장로가 놀라며 말했다. “오정아! 저쪽에서 오는 저 신병은 누구냐?” 사승이 알아보고 말했다. “사부님, 저들은 사대금강과 금두게제, 육갑육정, 호교가람과 지나가던 여러 신이옵니다. 소를 끄는 이는 나타 삼태자이시고, 거울을 든 이는 탁탑 이천왕이시며, 큰 사형께서 파초선을 쥐셨고 둘째 사형과 토지가 뒤따르며, 그 나머지는 모두 호위하는 신병이옵니다.” 삼장이 이 말을 듣고 비로모로 갈아쓰고 가사를 입고는, 오정과 함께 여러 성인을 맞아 절하며 사례하여 말했다. “저에게 무슨 덕과 능력이 있사옵기에 감히 여러 존성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시어 수고하시나이까!” 사대금강이 말했다. “성승이여, 기뻐하시오, 공행이 십분이나 거의 끝나가노라! 우리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그대를 돕도록 보내졌으니, 그대는 마음을 다해 수행에 힘쓰고 잠시라도 게을러서는 아니 되느니라.” 삼장이 이를 맞추고 머리를 조아리며 몸과 명을 받들었다. 손대성이 부채를 쥐고 산 가로 다가가 온 힘을 다해 한 번 부치니, 화염산의 불꽃이 잦아들고 빛이 조용히 사라졌다. 행자가 기뻐하며 다시 한 번 부치니, 솔솔하고 사각사각한 소리와 함께 맑은 바람이 가볍게 일었다. 세 번째로 부치니 하늘에 구름이 아득히 끼고 가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화염산은 팔백 정거장이나 아득하건만 불빛은 온 땅에 이름을 떨치누나. 불이 다섯 샘을 달여 단약이 익기 어렵고, 불이 세 관을 태워 도가 맑지 못하누나. 이때 파초를 빌려 비와 이슬을 베풀고, 다행히 천장이 신공을 도왔구나. 소를 끌어 부처께 돌아가니 사나운 고집이 그쳤고, 물과 불이 서로 이어지니 성품이 절로 평안해지누나. 이때 삼장법사는 조급함이 풀리고 답답함이 사라져 마음이 맑아지고 뜻이 트였다. 사중이 귀의하여 금강에게 사례하고 각기 보산으로 돌아갔다. 육정육갑은 허공으로 올라가 보호하고, 지나가던 신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천왕과 태자는 소를 끌고 곧장 불지로 돌아가 임무를 회고하였다. 오직 이 산의 토지만이 나찰녀를 감시하여 곁에서 시중들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이 나찰아, 너는 길을 가지 않고 여기 서서 무엇을 기다리느냐?” 나찰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만망컨대 대성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부채를 돌려 주시옵소서.” 팔계가 호통쳤다. “망할 천한 계집아, 분별도 없구나! 네 목숨을 살려 준 것만으로도 넉넉하거늘, 도로 무슨 부채를 달라느냐? 우리가 산을 넘어 가지고 가서 돈으로 팔아 다식을 사 먹지 못하겠느냐? 이토록 많은 정신과 힘을 들였거늘 또 기꺼이 너에게 주겠느냐! 비가 부슬부슬 내리거늘 어서 돌아가지 않고 무엇 하느냐!” 나찰이 다시 절하며 말했다. “대성께서 본래 불을 끄고 나면 돌려주겠다 하셨사옵니다. 이번 일은 참으로 후회해도 늦었사옵니다. 다만 시원스럽지 못한 탓에 군사를 수고롭게 하고 무리를 움직이게 하였사옵니다. 저희도 인도로 수행하여 사람의 몸을 얻었사오나, 다만 바른 과보로 돌아가지 못하였사온데, 이제 진신이 모습을 드러내어 서쪽으로 돌아가오니 다시는 감히 함부로 굴지 않겠나이다. 원하건대 본래의 부채를 내려 주시옵소서. 새로이 일어서 스스로 새로워지고, 몸을 닦고 목숨을 기르러 가겠나이다.” 토지가 말했다. “대성이시여! 이 계집이 불을 끄는 법을 깊이 아는 김에 불의 뿌리를 끊어 버리시고 부채를 돌려주시옵소서. 소신이 이곳에 살면서 편안히 지내며 이 지방의 백성을 구제하고, 얼마간의 혈식을 구하온즉 참으로 은혜롭고 편리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일찍이 이 고장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이 산은 불을 부쳐 끄면 한 해의 오곡만 거두고는 도로 불이 일어난다 하였거늘, 어찌 뿌리를 뽑아 고칠 수 있단 말이냐?” 나찰이 말했다. “불의 뿌리를 끊어 버리려거든 다만 마흔아홉 번을 잇달아 부치기만 하시면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사옵니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부채를 쥐고서 힘줄에 남은 힘까지 다하여 산머리를 향해 마흔아홉 번을 잇달아 부치니, 그 산에 큰비가 콸콸 쏟아졌다. 과연 보배로다. 불이 있는 곳에는 비가 내리고 불이 없는 곳에는 하늘이 맑았다. 사부와 제자들은 불 없는 이곳에 서 있었으므로 비에 젖지 않았다. 하룻밤을 앉아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야 말과 행장을 수습하여, 부채를 나찰에게 돌려주며 또 말했다. “노손이 너에게 주지 않는다면 남들이 내가 말에 믿음이 없다 할까 두렵도다. 너는 부채를 가지고 산으로 돌아가 다시는 일을 일으키지 마라. 네가 사람의 몸을 얻은 것을 보아 너를 살려 보내노라!” 그 나찰이 부채를 받아 주문을 외우고 살구잎만 하게 빚어 입에 물고는, 여러 성인에게 절하며 사례하고는 성을 숨기고 수행하여, 뒷날 또한 바른 과보를 얻어 경장 속에 만고에 이름을 남겼다. 나찰과 토지가 모두 감격하여 사례하고 뒤따라 배웅하였다. 행자와 팔계와 사승이 삼장법사를 모시고 이에 앞으로 나아가니, 참으로 몸은 서늘하고 발아래는 촉촉하였다. 참으로 이르기를, 감리의 기제를 이루어 참된 원기가 합하고, 수화가 고르게 평안해져 큰 도가 이루어지는구나. 결국 몇 해가 지나서야 동토로 돌아올는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2회 척구세심유소탑(滌垢洗心惟掃塔) · 박마귀정내수신(縛魔歸正乃修身) 열두 시 가운데서도 잊어서는 아니 되니, 백 각의 공행을 온전히 거두는구나. 오 년에 십만 팔천 주를 돌았으니, 신수를 말라 버리게 두지 말며 화광의 시름을 놓아 버리지 말라. 수화를 고르게 다스려 손상이 없는 곳, 오행이 갈고리처럼 서로 맞물렸구나. 음양이 화합하여 구름 누각에 오르니, 난새를 타고 자줏빛 선부에 오르고 학을 타고 영주로 달려간다. 이 한 편의 사는 곡패 이름이 《임강선》이니, 오직 당삼장 사부와 제자 넷이 수화가 이미 어우러져 본성이 청량하고, 순음의 보선을 빌려다 메마른 불길을 부쳐 산을 넘은 일을 읊은 것이다. 하루도 채 못 되어 팔백 리 길을 지나니, 사부와 제자들은 한가롭고 자유롭게 서쪽을 향해 갔다. 마침 가을 끝 겨울 초의 시절을 만났는데, 이런 것들을 보았다. 들국화는 지고 남은 꽃잎을 떨구고, 새 매화는 연한 꽃술을 틔운다. 마을마다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곳곳마다 향기로운 국을 먹는다. 평평한 숲에 나뭇잎이 지니 먼 산이 드러나고, 굽은 계곡에 서리가 짙어 그윽한 골짜기가 맑구나. 응종의 기운이요 동면하는 벌레가 진을 치니, 순음 순양의 달이라. 달의 임금은 그윽하고 깊으며, 물의 덕이 성하니 순임금의 해는 갠 하늘을 아끼는구나. 땅의 기운은 내려가고 하늘의 기운은 올라간다. 무지개는 숨어 그림자를 보이지 않고, 연못에는 차츰 얼음이 생긴다. 벼랑에 걸린 줄에 등꽃은 시들어도, 소나무와 대나무는 찬 기운을 머금어 빛이 더욱 푸르구나. 네 사람이 한참이나 걸어가는데, 앞에 또 성곽이 가까이 나타났다. 당승이 말을 붙잡아 세우고 제자를 불렀다. “오공아, 너는 저쪽 누각이 우뚝 솟은 것이 무슨 곳인지 보이느냐?” 행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이는 한 성곽이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용이 서린 형세요, 범이 웅크린 금성이로다. 사방에 드리운 화개가 가깝고, 백 번이나 굽은 자줏빛 빈 터가 평평하다. 옥돌 난간에는 교묘한 짐승이 늘어섰고, 황금 대좌에는 어진 이들이 벌려 앉았다. 참으로 신주의 도회요, 천부의 요경이로다. 만 리의 나라 터가 굳건하고, 천 년의 제업이 융성하다. 오랑캐가 공손히 복종하니 임금의 은택이 멀리 미치고, 바다와 산이 조현하니 성스런 모임이 넘친다. 임금의 섬돌은 깨끗하고, 수레 길은 맑고 평안하다. 술집에는 노랫소리가 떠들썩하고, 꽃 누각에는 기쁜 기운이 피어난다. 미앙궁 밖의 늘 푸른 나무는, 아침 햇살에 채색 봉황이 우는 것을 허락하리라.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저 성곽은 한 나라 임금이 사는 곳입니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천하의 부에는 부성이 있고 현에는 현성이 있는데, 어찌 그것만 보고 임금이 사는 곳이라 하십니까?”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임금이 사는 곳이 부나 현과 저절로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구려. 저것을 보시오. 사방에 열몇 개의 문이 있고, 둘레가 백십여 리나 되며, 누대는 높이 솟아 있고 구름과 안개가 어우러졌소. 제경의 나라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장려함이 있겠소?” 사오정이 말했다. “형님은 눈이 밝아 임금이 계신 곳임은 알아보셨지만, 그곳이 무슨 이름으로 불리는지는 아시오?” 행자가 말했다. “또 현판이나 깃발 같은 표식도 없으니 어찌 알겠느냐? 모름지기 성 안으로 들어가 물어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장로가 말을 채찍질하니 잠깐 사이에 문에 이르렀다. 말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문으로 들어가 둘러보니, 육가와 삼시가 재화를 유통하고 있었고, 의관이 융성하며 인물이 호화로웠다. 한창 가는데 홀연히 열몇 명의 중이 보였는데, 하나같이 칼과 쇠고랑을 차고 문마다 돌아다니며 밥을 빌고 있었으니, 참으로 누더기가 말이 아니었다. 삼장이 탄식하며 말했다. “토끼가 죽으니 여우가 슬프고, 만물이 제 무리를 다치게 함을 서러워한다.” 그리고 불렀다. “오공아, 네가 앞으로 나가 그들에게 한마디 물어보아라, 어찌하여 이런 죄를 뒤집어썼느냐고.” 행자가 그 말대로 곧 외쳤다. “저 중들아, 너희는 어느 절의 중이냐? 무슨 일로 칼과 쇠고랑을 찼느냐?” 중들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나으리, 저희는 금광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중들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금광사가 어디에 자리하였느냐?” 중들이 말했다. “모퉁이만 돌면 바로 이옵니다.” 행자가 그들을 당승 앞으로 데려다 놓고 물었다. “어찌하여 억울하게 되었는지, 너희가 나에게 말해 보아라.” 중들이 말했다. “나으리, 당신들이 어느 곳에서 오셨는지는 모르오나, 저희에게는 낯이 좀 익은 듯하옵니다. 이 사연은 감히 여기서 아뢰올 수가 없사오니, 황량한 산으로 가시어 고초를 낱낱이 말씀드리게 하옵소서.” 장로가 말했다. “그리하자. 우리가 저들의 절로 가서 연유를 자세히 물어보자.” 함께 산문에 이르니, 문 위에 가로로 일곱 개의 금빛 글자가 쓰여 있었으니, ‘칙건호국금광사’라 하였다. 사부와 제자들이 문을 들어서며 둘러보니, 과연 이러하였다. 옛 전각의 향등은 차갑고, 빈 회랑에는 낙엽이 바람에 쓸린다. 구름을 꿰뚫을 천 척의 탑, 성품을 기르는 몇 그루의 소나무. 땅에 가득한 낙화에도 지나가는 객은 없고, 처마 앞 거미줄은 마음대로 얽혔다. 북은 헛되이 걸렸고, 종은 부질없이 매달렸으며, 그림 벽에는 먼지가 많아 채색 코끼리 상이 흐릿하다. 강좌는 그윽한데 중은 보이지 않고, 선방은 고요하여 늘 새만 만난다. 처량하기가 탄식할 만하고, 적막하기가 괴로움 끝이 없구나. 불전 앞에 향로가 마련되어 있으나, 재는 차갑고 꽃은 시들어 모든 일이 헛되이 비었구나. 삼장이 마음이 아파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렸다. 중들이 칼과 쇠고랑을 찬 채 정전을 밀어 열고 장로를 청해 전각에 올라 부처님께 배례하게 하였다. 장로가 전각에 들어가 마음의 향을 올리고 이를 세 번 맞부딪쳤다. 그런데 뒤로 돌아가 보니, 그 방장 처마 기둥에 또 어린 중 예닐곱 명이 매여 있었으니, 삼장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방장에 이르자 중들이 모두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여러 나으리들의 용모가 서로 다르시온데, 혹시 동토 대당에서 오셨사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중들에게 무슨 앞일을 미리 아는 법이 있단 말이냐? 우리가 바로 그렇다. 너희가 어찌 알아보았느냐?” 중들이 말했다. “나으리, 저희에게 무슨 미리 아는 법이 있사오리까. 다만 억울하고 괴로운 일을 깊이 짊어진 채 하소연할 곳이 없어, 날마다 다만 하늘을 부르고 땅을 불렀을 뿐이옵니다. “아마도 천신을 놀라게 하였나 보옵니다. 지난밤에 저희 모두가 한 가지 꿈을 꾸었사온데, 동토 대당에서 온 성스러운 스님이 계셔서 저희 목숨을 구해 주시면 이 원한과 고통을 펼 수 있다 하였사옵니다. 오늘 과연 나으리들의 이와 같은 특이한 모습을 뵈었사오니, 그래서 알아본 것이옵니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너희가 있는 이곳이 어느 지방이냐? 무슨 원한이 있느냐?” 중들이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나으리, 이 성은 이름을 제새국이라 하오며, 서쪽 지방의 큰 고장이옵니다. 예전에는 사방 오랑캐가 조공을 바쳤사온데, 남쪽은 월타국이요 북쪽은 고창국이며, 동쪽은 양국이고 서쪽은 본발국이라, 해마다 아름다운 옥과 밝은 구슬, 고운 비빈과 준마를 진상하였사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창칼을 움직이지도 않고 정벌하러 나가지도 않았으나, 저희 나라를 상국으로 받들어 절하였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상국으로 받들어 절한다면, 너희 임금이 도가 있고 문무가 어질고 훌륭한 모양이로구나.” 중들이 말했다. “나으리, 문도 어질지 않고 무도 훌륭하지 않으며, 임금도 도가 있는 분이 아니옵니다. 저희 금광사는 예로부터 보탑 위에 상서로운 구름이 덮이고 서기가 높이 피어올라, 밤이면 노을빛을 뿜어 만 리 밖에서도 사람들이 보았사옵고, 낮이면 채색 기운을 내뿜어 사방 나라가 모두 우러러보지 않는 이가 없었사옵니다. 그러므로 천부의 신경이라 여겨 사방 오랑캐가 조공을 바친 것이옵니다. 다만 삼 년 전, 맹추 초하룻날 밤 자시에 피비 한 줄기가 내렸사옵니다. 날이 밝자 집집마다 두려워하고 호호마다 슬픔이 생겼사옵니다. 여러 공경들이 임금께 아뢰었사오나, 천공께서 무슨 일로 벌하시는지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때 도사를 청해 초제를 올리고 중을 불러 경을 보아 하늘에 답하고 땅에 사례하였사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사옵니까, 저희 절의 황금 보탑이 더럽혀져 이 두 해 동안 외국이 조공하러 오지 않는 것이옵니다. 임금께서 정벌하고자 하시매 여러 신하가 간하였사옵니다. ‘저 절의 중놈들이 탑 위의 보물을 훔쳤으니 상서로운 구름과 서기가 없어져 외국이 조공하지 않는 것이옵니다’ 하고 말이옵니다. 어리석은 임금은 더욱 살피지 않고, 그 탐관오리들이 저희 중들을 잡아다가 천 가지로 매질하고 만 가지로 추궁하였사옵니다. 그때 이곳에는 세 등급의 중이 있었사온데, 앞의 두 등급은 이미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사옵고, 이제는 저희 등급을 잡아다 죄를 묻고 칼과 쇠고랑을 씌웠사옵니다. 나으리시여, 저희가 어찌 감히 마음을 속이고 탑 속의 보물을 훔쳤사오리까! 부디 불쌍히 여기시어, 무리는 제 무리끼리 모이고 사물은 제 무리끼리 나뉜다 하옵거늘, 큰 자비를 베푸시어 널리 법력을 펴시어 저희 목숨을 구해 주시옵소서!” 삼장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해 말했다. “이 일은 어둡고 흐릿하여 밝히기 어렵구나. 하나는 조정이 정사를 잃은 탓이요, 둘은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 탓이니라. 이미 하늘이 피비를 내려 보탑을 더럽혔다면, 그때 어찌하여 글을 올려 임금께 아뢰어 이 고통을 받게 하였느냐?” 중들이 말했다. “나으리, 저희는 범인이라 어찌 하늘의 뜻을 알겠사옵니까? 하물며 앞사람들도 모두 밝히지 못하였사온데 저희가 어찌 처리하였사오리까!”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오늘은 어느 시각이냐?” 행자가 말했다. “신시쯤 되었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내가 임금을 뵙고 관문을 바꾸고자 하나, 이 중들의 일이 분명치 않아 임금께 아뢸 말씀이 어렵구나. 내가 장안을 떠날 때 법문사에서 원을 세웠느니라. 서방으로 가는 길에 사묘를 만나면 향을 사르고, 절을 만나면 부처님께 절하며, 탑을 보면 탑을 쓸겠노라고. 오늘 이곳에 이르러 억울한 일을 당한 중들을 만났으니, 이는 보탑의 누를 입은 탓이니라. 너는 나에게 새 비자루 하나를 마련해 다오. 내가 목욕한 뒤에 올라가 쓸어 보아 이 더러워진 사연이 어떠한지, 빛을 내지 못하는 까닭이 어떠한지 알아내어, 참된 실마리를 찾아야 비로소 임금을 뵙고 아뢰어 저들의 이 고난을 구해 낼 수 있느니라.” 이 말을 들은 칼과 쇠고랑 찬 중들이 황급히 부엌으로 가서 부엌칼 하나를 가져다가 저팔계에게 건네며 말했다. “나으리, 이 칼로 저 기둥에 매인 어린 중들의 쇠고랑을 열어 주시옵소서. 그를 풀어 재와 향탕을 마련케 하여 나으리께서 재를 들고 목욕하시도록 모시게 하옵소서. 저희는 저잣거리로 나가 새 비자루를 빌려 와 나으리께서 탑을 쓸게 하옵겠나이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쇠고랑 여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단 말이오? 칼이며 도끼도 쓸 것 없이, 내게 있는 저 털북숭이 얼굴 나으리께 맡기시오. 그는 쇠고랑 여는 일의 노련한 장인이오.” 행자가 참으로 앞으로 나아가 쇠고랑 푸는 법을 써서 손으로 한 번 쓸어 넘기니, 몇 개의 자물쇠가 모두 떨어져 내렸다. 그 어린 중들은 모두 부엌으로 달려가 솥과 부뚜막을 깨끗이 씻고 차와 밥을 마련하였다. 삼장 사부와 제자들이 재를 먹고 있으니 차츰 날이 어두워졌는데, 그 칼과 쇠고랑 찬 중이 비자루 두 자루를 가지고 들어왔으므로 삼장이 매우 기뻐하였다. 한창 이야기하는데 어린 중 하나가 등불을 켜 들고 와서 목욕하시기를 청하였다. 이때 하늘에는 별과 달빛이 온통 빛나고 망루 위에서는 경과 북이 함께 울려 퍼지니, 바로 이러하였다. 사방 벽에 찬 바람이 일고, 만 집의 등불이 밝구나. 육가에서는 문과 창을 닫고, 삼시에서는 뜰 문을 닫는다. 낚싯배는 깊은 나무 그늘로 돌아가고, 쟁기는 짧은 밧줄에서 벗어난다. 나무꾼은 자루 달린 도끼를 쉬고, 글 배우는 아이는 책 읽는 소리를 낸다. 삼장이 목욕을 마치고 작은 소매의 편삼을 입고 둥근 띠를 매고, 발에는 부드러운 헌신 한 켤레를 갈아 신고, 손에는 새 비자루 하나를 들고 중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편히 자거라. 내 탑을 쓸고 오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탑 위는 이미 피비로 더럽혀졌거니와, 또 오래도록 빛이 없어 흉악한 물건이 생겼을까 두렵나이다. 한편 밤이 고요하고 바람이 차며 또 짝이 없으니, 홀로 가시면 실수가 있을까 두렵나이다. 노손이 그대와 함께 올라가면 어떠하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매우 좋도다! 매우 좋도다!” 두 사람이 각각 하나씩 들고 먼저 대전에 올라가 유리등을 켜고 향을 사르며 부처님 앞에 절하고 말했다. “제자 진현장은 동토 대당의 명을 받들어 영산으로 가서 우리 부처님 여래를 뵙고 경을 얻으러 가는 길이옵니다. 이제 제새국 금광사에 이르러 본사의 중들의 말로 보탑이 더럽혀졌다 하옵고, 임금께서는 중들이 보물을 훔쳤다 의심하여 원한을 품은 채 죄를 받고 있사오니, 위아래로 밝히기 어렵사옵니다. 제자가 정성을 다해 탑을 쓸 것이오니, 우리 부처님의 위령으로 탑이 더럽혀진 까닭을 일찍이 보여 주시어 범부의 원통함이 없게 하옵소서.” 빌기를 마치고 행자와 함께 탑문을 열고 아래층에서 위를 향해 쓸어 올라갔다. 이 탑을 보니, 참으로 우뚝하여 은하에 기대었고 불쑥 솟아 허공을 찌를 듯하였다. 이름하여 오색 유리탑이요, 천금 사리봉이라. 층계를 돌면 굴을 꿰듯 하고, 문이 열리면 새장에서 나오듯 한다. 보병은 하늘가의 달을 비추고, 금탁은 바다 위의 바람 소리를 전한다. 저 빈 처마의 공두를 보라, 꼭대기에 구름이 머물렀구나. 빈 처마의 공두는 교묘한 돌로 꽃을 꿴 봉황을 만들었고, 꼭대기에 머문 구름은 부도를 안개 속 용이 감싸듯 이루었구나. 멀리 바라보면 천 리 밖을 볼 수 있고, 높이 오르면 구소 가운데 있는 듯하다. 층층 문 위의 유리등에는 먼지만 있고 불은 없으며, 걸음마다 처마 앞의 백옥 난간에는 때가 쌓이고 벌레가 날아다닌다. 탑 속 부처좌 위에는 향 연기가 끊어진 지 오래요, 창살 밖 신상 앞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다. 향로 속에는 쥐똥이 많고, 등잔 안에는 기름이 적다. 다만 가운데 보물을 잃었으므로, 중들이 괴로워 죽고 목숨이 헛되이 되었구나. 삼장이 발심하여 탑을 쓸었으니, 옛 모습을 다시 보게 하리라. 당승이 비자루로 한 층을 쓸고 또 한 층을 올라갔다. 이렇게 일곱째 층까지 쓸었을 때 벌써 이경 무렵이 되었다. 장로가 점차 피곤함을 느끼니 행자가 말했다. “피곤하시거든 그대는 잠시 앉아 계시오. 노손이 대신 쓸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이 탑은 층수가 몇이나 되느냐?” 행자가 말했다. “아마 십삼 층은 될 것이옵니다.” 장로가 고단함을 견디며 말했다. “모름지기 다 쓸어야 내 본원에 맞느니라.” 또 세 층을 쓸자 허리가 시리고 다리가 아파, 열째 층 위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오공아, 네가 나 대신 저 세 층을 깨끗이 쓸고 내려오너라.” 행자가 정신을 가다듬고 열한째 층에 올라가니, 잠깐 사이에 또 열두째 층에 이르렀다. 한창 쓸고 있는데 탑 꼭대기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행자가 말했다. “괴이하도다! 괴이하도다! “이 밤이 삼경쯤 되었거늘, 어찌 이 꼭대기에서 사람이 말하고 있단 말이냐? 틀림없이 사악한 물건이로다! 가서 살펴보자.” 과연 훌륭한 원숭이 왕이로다. 가만히 비자루를 겨드랑이에 끼고 옷자락을 걷어 올린 뒤 앞문으로 빠져나와 구름을 밟고 바라보니, 열세째 층 탑 속에 요괴 두 놈이 앉아 있었는데, 앞에는 반찬 한 접시와 사발 하나, 주전자 하나가 놓여 있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행자가 신통을 부려 비자루를 내던지고 여의봉을 뽑아 들고 탑문을 막아서며 호통쳤다. “이놈의 괴물들아! 탑 위의 보물을 훔친 것이 원래 너희였단 말이냐!” 두 괴물이 놀라 급히 몸을 일으켜 주전자와 사발을 마구 집어 던졌으나, 행자가 쇠몽둥이를 가로막아 세우며 말했다. “내가 너희를 때려 죽이면 자백할 자가 없느니라.” 다만 몽둥이를 바싹 들이대 밀어붙일 뿐이었다. 그 요괴가 벽에 들러붙어서는 요만큼도 몸부림칠 수가 없었고, 입으로는 다만 외쳤다.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저희가 한 일이 아니옵니다! 보물을 훔친 자가 따로 있사옵니다!” 행자가 붙잡는 법을 써서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곧장 열째 층 탑 속으로 끌고 내려갔다. 그리고 보고하였다. “사부님, 보물을 훔친 도적을 잡았나이다!” 삼장이 막 졸고 있다가 홀연히 이 말을 듣고는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말했다. “어디서 잡아 온 것이냐?” 행자가 괴물을 끌어다 앞에 무릎 꿇리고 말했다. “이놈이 탑 꼭대기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장난을 치고 있었사온데, 노손이 그 떠드는 소리를 듣고 구름을 한 번 타 올라가 꼭대기에서 막아섰사옵니다. 아직 힘을 쓰지는 않았사옵니다. 다만 한 방에 때려 죽이면 자백할 자가 없을까 두려워, 이처럼 가볍게 잡아 왔나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놈에게서 자백을 받아 보시어, 어느 곳의 요괴이며 훔친 보물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시옵소서.” 그 괴물이 바들바들 떨며 입으로 “살려 주시옵소서!” 하고 외치더니, 마침내 사실대로 자백하였다. “저희 둘은 난석산 벽파담의 만성용왕이 보내어 탑을 순찰하러 온 자들이옵니다. 그는 분파아패라 하고 저는 패파아분이라 하옵니다. 그는 메기 요괴요 저는 흑어 정령이옵니다. 저희 만성 노용왕이 딸 하나를 낳았사온데, 이름을 만성공주라 하옵니다. 그 공주는 꽃 같은 얼굴에 달 같은 모습으로 스무 가지나 되는 인재를 갖추었사온데, 부마 하나를 얻었사옵니다. 이름을 구두부마라 하며 신통이 광대하옵니다. 재작년에 용왕과 함께 이곳에 와서 큰 법력을 드러내어 피비 한 줄기를 내려 보탑을 더럽히고, 탑 속의 사리자 불보를 훔쳤사옵니다. 공주는 또 대로천 위 영소전 앞으로 가서 왕모낭랑의 구엽영지초까지 훔쳐다가 그 못 밑에다 기르고 있사온데, 금빛과 노을빛이 밤낮으로 밝게 빛나옵니다. 근자에 손오공이라는 자가 서천으로 경을 얻으러 간다 하옵고, 그 신통이 광대하여 가는 길마다 남의 잘못만을 찾아낸다 하기에, 이런 까닭으로 요사이 자주 저희를 이곳에 보내어 순찰하며 막게 하였사옵니다. 만일 그 손오공이 이르거든 미리 대비하려 함이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히히 웃으며 냉소하였다. “그 못된 짐승 같은 놈들이 이다지도 무례하단 말이냐! 괴이하다, 지난번에 우마왕을 청해 어디선가 회합에 간다 하더니! 원래 저놈이 이 무리의 망나니 마귀들과 결탁하여 오로지 좋지 못한 짓만을 하는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팔계와 어린 중 두세 명이 탑 아래서 등롱 두 개를 들고 올라오며 말했다. “사부님, 탑을 다 쓸었거늘 주무시러 가지 않으시고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사제야, 네가 오니 마침 잘되었다. 탑 위의 보물은 만성 노용왕이 훔쳐 간 것이니라. 지금 이 두 작은 요괴를 시켜 탑을 순찰케 하며 우리가 오는 소식을 엿듣게 하였는데, 방금 내가 붙잡았노라.” 저팔계가 말했다. “이름이 무엇이라 하며 무슨 요괴냐?” 행자가 말했다. “방금 자백을 받았느니라. 하나는 분파아패라 하고 하나는 패파아분이라 하며, 하나는 메기 요괴요 하나는 흑어 정령이니라.” 저팔계가 갈퀴를 뽑아 당장 치며 말했다. “요괴라면 자백을 받았으니, 때려 죽이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리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우선 산 놈을 남겨 두어야 임금을 뵙고 말하기가 좋고, 또 안내자로 삼아 도적을 찾고 보물을 쫓기가 좋으니라.” 과연 어리석은 자로다. 참으로 갈퀴를 거두고는 한 놈씩 하나씩 모두 움켜쥐고 탑 아래로 끌고 내려왔다. 그 요괴가 다만 외쳤다. “살려 주시옵소서!” 저팔계가 말했다. “마침 네놈 메기와 흑어로 맑은 국을 좀 끓여 억울한 일 당한 그 중들에게 먹이려 하노라!” 어린 중 두세 명이 기뻐하며 등롱을 들고 장로를 인도해 탑에서 내려왔다. 하나가 먼저 달려가 중들에게 알렸다. “좋소이다! 좋소이다! 우리가 푸른 하늘을 보게 되었소이다! 보물을 훔친 요괴를 나으리들이 벌써 잡아 오셨소이다!” 행자가 일렀다. “쇠사슬을 가져와 비파골을 꿰어 이곳에 단단히 매어 두어라. 너희가 지키고 있으면 우리는 자러 가겠노니, 내일 다시 처리하자.” 그 중들은 모두 빈틈없이 지키며 삼장 일행을 편히 잠들게 하였다. 어느덧 날이 밝자 장로가 말했다. “내가 오공과 함께 입궐하여 관문을 바꾸고 오겠노라.” 장로가 곧 금란가사를 입고 비로모를 쓰고 위의를 갖추어 걸음을 옮겨 나아갔다. 행자도 호피치마를 여미고 면포 직발을 정돈한 뒤 관문을 가지고 함께 갔다. 저팔계가 말했다. “어찌하여 이 요괴 도적 둘은 데리고 가지 않으십니까?”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아뢴 뒤에 저절로 가첩이 내려와 사람을 시켜 데려갈 것이니라.” 마침내 조문 밖에 이르니, 저 주작과 황룡, 청도와 강궐이란 것은 다 볼 수 없을 만큼 장려하였다. 삼장이 동화문에 이르러 각문대사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인께 번거로우시겠으나 전해 아뢰어 주시옵소서. 가승은 동토 대당에서 서천으로 경을 얻으러 가라고 파견된 자이온데, 임금님을 뵙고 관문을 바꾸고자 하옵니다.” 그 황문관이 과연 통보하고 섬돌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밖에 용모와 옷차림이 다른 중 둘이 있사온데, 자신들을 남섬부주 동토 당나라에서 서방으로 부처님께 절하고 경을 구하러 파견되었다 하옵고, 우리 임금님을 조현하여 관문을 바꾸고자 하나이다.” 임금이 그 말을 듣고 명을 내려 들이라 하니, 장로가 곧 행자를 이끌고 입조하였다. 문무 백관이 행자를 보고는 놀라지 않는 이가 없어, 혹자는 원숭이 중이라 하고 혹자는 뢰공처럼 입이 부리부리한 중이라 하며, 하나같이 두려워하여 오래 쳐다보지 못하였다. 장로가 섬돌 앞에서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르는 예법으로 절하였으나, 대성은 두 손을 포개고 곁에 비스듬히 서서 버젓이 움직이지 않았다. 장로가 아뢰었다. “신승은 남섬부주 동토 대당국에서 서방 천축국 대뇌음사 부처님께 절하고 진경을 구하러 파견된 자이옵니다. 보방을 지나는 길에 감히 제멋대로 넘을 수 없사와, 몸에 지닌 관문이 있사오니 바꾸어 주시면 가겠나이다.” 그 임금이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명을 내려 당나라 성스러운 스님을 금란전으로 올라오라 하고 수놓은 방석을 마련하여 앉으라 하였다. 장로가 홀로 전각에 올라가 먼저 관문을 받들어 올린 뒤에야 은혜에 사례하고 앉았다. 그 임금이 관문을 한 번 훑어보고는 마음이 기뻐 말했다. “그대 당나라 임금은 병이 있으면서도 높은 스님을 가려 뽑아 길이 아무리 멀어도 꺼리지 않고 우리 부처님께 절하여 경을 구하게 하였거늘, 과인의 이곳 중들은 오로지 도둑질만을 하여 나라를 망치고 임금을 기울게 하는구나!” 삼장이 그 말을 듣고 합장하며 말했다. “어찌 나라를 망치고 임금을 기울게 한다 하시나이까?” 임금이 말했다. “과인의 이 나라는 서역의 상국이라 늘 사방 오랑캐가 조공을 바쳤거니와, 이는 모두 나라 안에 금광사가 있고 그 절 안에 황금 보탑이 있으며 그 탑 위에 빛이 하늘을 찌르는 까닭이었노라. 그런데 근자에 본사의 도둑 중놈들이 그 가운뎃 보물을 몰래 훔쳐 삼 년째 빛이 없어졌고, 외국도 이 이 년 동안 조공하러 오지 않으니 과인이 몹시 아프게 여겨 한스럽게 생각하노라.” 삼장이 합장하고 웃으며 말했다. “만세, 터럭만큼 어긋나면 천 리를 잃는다 하옵니다. 가승은 어젯밤 천부에 이르러 성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칼과 쇠고랑을 찬 중 열몇 명을 보았사옵니다. 무슨 죄냐 물으니 그들이 이르되 금광사의 억울한 자들이라 하옵기에, 절로 가서 자세히 심문해 보니 조금도 본사 중들의 일이 아니옵니다. 가승이 밤에 탑을 쓸다가 그 보물을 훔친 요괴 도적을 이미 잡았나이다.”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요괴 도적이 어디 있느냐?” 삼장이 말했다. “지금 제자의 제자가 금광사에 묶어 두었사옵니다.” 그 임금이 급히 금패를 내리었다. “금의위로 하여금 빨리 금광사로 가서 요괴 도적을 데려오게 하라. 과인이 친히 심문하리라.” 삼장이 또 아뢰었다. “만세, 금의위가 있사오나 그래도 제자를 보내야만 하옵니다.” 임금이 말했다. “고도가 어디 있느냐?” 삼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옥 섬돌 곁에 서 있는 자가 바로 그놈이옵니다.” 임금이 보고 크게 놀라 말했다. “성스러운 스님은 이토록 풍채가 좋으신데, 고도는 어찌하여 저런 용모이오?” 손대성이 그 말을 듣고는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쳤다. “폐하, 사람은 용모로 헤아릴 수 없고 바닷물은 되로 잴 수 없나이다. 만일 풍채만을 아낀다면 어찌 요괴 도적을 잡을 수 있사오리까?” 임금이 그 말을 듣고 놀람을 거두어 기쁨으로 바꾸며 말했다. “성스러운 스님의 말씀이 옳소이다. 짐은 이곳에서 인재를 가리지 않겠노라. 다만 도적을 잡고 보물을 얻어 탑으로 돌려놓는 것을 으뜸으로 삼을 뿐이오.” 그리고 당가관에게 명하여 수레 덮개를 살피게 하고, 금의위에게는 성스러운 스님을 잘 모시고 가서 요괴 도적을 데려오라 하였다. 그 당가관이 곧 큰 가마 한 채와 황색 일산 하나를 마련하고, 금의위가 교위들을 뽑아 행자를 여덟 사람이 메는 가마에 태우고 큰 소리로 길을 외치며 곧장 금광사로 갔다. 이로부터 온 성의 백성이 놀라 움직여, 성스러운 스님과 그 요괴 도적을 보러 오지 않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저팔계와 사오정이 길을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임금이 보낸 관리인 줄로만 여겨 급히 나가 마중하였는데, 알고 보니 행자가 가마에 앉아 있었다. 어리석은 자가 면전에서 웃으며 말했다. “형님, 형님이 본분을 얻으셨구려!” 행자가 가마에서 내려 저팔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본분을 얻었다니 무슨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황색 일산을 쓰시고 여덟 사람이 메는 가마를 타셨으니, 그것이 원숭이 왕의 직분이 아니고 무엇이오? 그래서 본분을 얻었다 한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우선 웃지 말라.” 그리고 요괴 두 놈을 풀어 임금에게 압송해 갔다. 사오정이 말했다. “형님, 저도 좀 데려가 주시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여기 있으면서 행리와 말이나 지켜라.” 그 칼과 쇠고랑 찬 중들이 말했다. “나으리들은 모두 가서 황은을 받으시옵소서. 저희가 여기서 지키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거든 내가 가서 임금께 아뢰고 와서 너희를 풀어 주마.” 저팔계가 요괴 도적 하나를 움켜쥐고 사오정이 요괴 도적 하나를 움켜쥐니, 손대성이 여전히 가마에 앉아 행렬을 벌여 두 요괴를 조정으로 압송해 갔다. 잠깐 사이에 백옥 섬돌에 이르러 임금에게 말했다. “그 요괴 도적을 데려왔나이다.” 임금이 이에 용상에서 내려와 당승과 문무 여러 관원과 함께 눈을 모아 바라보니, 그 요괴 하나는 튀어나온 아가미에 검은 갑옷을 두르고 입이 뾰족하며 이가 날카로웠고, 또 하나는 매끈한 가죽에 배가 크고 입이 커다랗게 찢어졌으며 수염이 길었으니, 비록 발이 있어 걸어 다니기는 하나 대개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었다. 임금이 물었다. “너희는 어느 곳의 도적 괴물이며 어느 지방의 요괴냐? 몇 해나 우리 국토를 침범하였고 어느 해에 내 보물을 훔쳤으며, 한 통에 도적 무리가 모두 몇 명이고 무엇이라 불리느냐? 사실대로 하나하나 자백하라!” 두 요괴가 위를 향해 무릎을 꿇었는데, 목 안쪽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도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하며 자백하였다. “삼 년 전 칠월 초하룻날이옵니다. 만성용왕이란 자가 많은 친척을 거느리고 본국 동남쪽에 살고 있사온데, 이곳에서 백십 리쯤 떨어져 있사옵니다. 못 이름은 벽파요 산 이름은 난석이옵니다. 그곳에 고운 딸이 있어 요염하고 아름다운 미색을 지녔사온데, 구두부마란 자를 데릴사위로 들였사온데 신통이 무적이옵니다. 그가 임금님의 탑 위에 진기한 것이 있음을 알고 용왕과 짜고 도적질을 하였사옵니다. 먼저 피비를 한 차례 내리고 뒤에 사리를 모조리 훔쳤사옵니다. 지금은 용궁을 비추어 캄캄한 밤에도 대낮처럼 밝사옵니다. 공주가 재주를 부려 은밀하고도 조용히 왕모낭랑의 영지초까지 훔쳐다가 못 가운데서 보물을 따뜻이 기르고 있사옵니다. 저희 둘은 도적의 우두머리가 아니옵고 용왕이 보낸 하졸이옵니다. 오늘 밤에 붙잡혔사오니 자백한 바가 모두 사실이옵니다.” 임금이 말했다. “자백을 받았거늘 어찌하여 제 이름은 자백하지 않느냐?” 그 요괴가 말했다. “저는 분파아패라 하고 그는 패파아분이라 하옵니다. 분파아패는 메기 요괴요 패파아분은 흑어 정령이옵니다.” 임금이 금의위에게 명하여 잘 거두어 감옥에 가두라 하고, 명을 내리었다. “금광사 중들의 칼과 쇠고랑을 풀어 주어라. 빨리 광록사에 명하여 잔치를 베풀어 기린전에서 성스러운 스님이 도적을 잡은 공을 사례하고, 성스러운 스님께 도적의 우두머리를 잡아 주시기를 의논하여 청하라.” 광록사가 즉시 육식과 채식 두 가지 연회를 마련하니, 임금은 당승 사부와 제자 넷을 기린전으로 올라가 앉게 하고 물었다. “성스러운 스님의 존호는 무엇이오?” 당승이 합장하며 말했다. “가승은 속가의 성이 진이오며 법명은 현장이옵니다. 임금님께 성을 하사받아 당이라 하였사오니, 천한 호는 삼장이옵니다.” 임금이 또 물었다. “성스러운 스님의 고도들은 무슨 호가 있소?” 삼장이 말했다. “제자들에게는 모두 호가 없사옵니다. 첫째 이름이 손오공이요 둘째 이름이 저오능이며 셋째 이름이 사오정이옵니다. 이는 남해 관세음보살이 지어 주신 이름이옵니다. 가승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사온데, 가승이 또 오공을 행자라 부르고 오능을 팔계라 부르며 오정을 화상이라 부르게 하였사옵니다.” 임금이 듣고 나서 삼장을 윗자리에 앉히고, 손행자는 곁 왼쪽 자리에 앉히며, 저팔계와 사화상은 곁 오른쪽 자리에 앉히니, 모두 채소 과일과 채소 반찬과 채소 차와 채소 밥이었다. 앞쪽의 육식 한 상에는 임금이 앉고, 아래쪽의 육식 백여 상에는 문무 여러 관원이 앉았다. 여러 신하가 임금의 은혜에 사례하고, 제자들이 스승에게 죄를 사례한 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임금이 잔을 들자 삼장은 감히 술을 마시지 못하였고, 그 세 사람은 각각 자리 인사 술을 받았다. 아래쪽에서는 관현악이 일제히 울려 퍼졌으니, 이는 교방사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보라, 저팔계가 식성을 마음껏 펴니, 참으로 범처럼 삼키고 이리처럼 게걸스레 먹어 한 상의 과일과 반찬 따위를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잠시 뒤에 새로 갈아 올린 국과 밥이 또 나오자 그것도 털끝만큼도 남기지 않고 먹었으며, 술을 돌리는 이가 오자 또 잔마다 사양하지 않았다. 이 연회는 곧장 즐기어 정오가 지나서야 파하였다. 삼장이 성대한 연회에 사례하니, 임금이 또 붙잡아 두며 말했다. “이 한 상은 성스러운 스님이 괴물을 잡은 공을 조금이나마 표하는 것이오.” 그리고 광록사에 명하였다. “빨리 자리를 건장궁으로 옮겨 다시 성스러운 스님을 모셔 와 도적의 우두머리를 잡고 보물을 탑으로 돌려놓을 계책을 정하라.” 삼장이 말했다. “도적을 잡고 보물을 찾는 것이오니 다시 연회를 베푸실 것 없사옵니다. 가승 등은 이만 임금님께 하직하고 곧 요괴를 사로잡으러 가겠나이다.” 임금이 마다하고 꼭 건장궁까지 가자고 하여, 거기서 또 한 상을 먹었다. 임금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어느 성스러운 스님이 무리를 거느리고 출정하여 요괴를 항복받고 도적을 잡겠소?” 삼장이 말했다. “큰 제자 손오공을 시키겠나이다.” 대성이 두 손을 모아 받들어 응하였다. 임금이 말했다. “손장로가 가신다면 몇 명의 인마를 쓰며 언제 출성하시겠소?” 저팔계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무슨 인마를 쓴단 말이오! 또 무슨 시각을 따진단 말이오! 이제 술에 취하고 밥이 배부른 김에, 내가 사형과 함께 가서 손만 대면 사로잡아 오리다!” 삼장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팔계가 요사이 부지런하구나!”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거든 사오정 제자가 사부님을 보호하게 하고, 우리 둘이 가겠나이다.” 그 임금이 말했다. “두 장로께서 인마를 쓰지 않으신다면 병기는 쓰시겠소?”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네 병기는 우리가 쓸 수가 없소. 우리 형제에게는 제 몸에 지닌 병기가 있소이다.” 임금이 그 말을 듣고 곧 큰 술잔을 가져와 두 장로의 노자를 보냈다. 손대성이 말했다. “술은 마시지 않겠나이다. 다만 금의위에게 명하여 작은 요괴 둘을 데려오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그놈들을 데려다가 안내자로 삼겠나이다.” 임금이 명을 전하니 즉시 끌어내 왔다. 두 사람이 작은 요괴 둘을 겨드랑이에 끼고 바람을 타고 섭법을 부려 곧장 동남쪽으로 올라갔다. 아! 그들은 이러하였다. 임금과 신하가 한번 보매 바람과 안개를 타고 오르니, 사부와 제자가 성스러운 스님임을 비로소 알았도다. 결국 이 길로 나서 적을 어찌 사로잡을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3회 이승탕괴요용궁(二僧蕩怪鬧龍宮) · 군성제사획보패(群聖除邪獲寶貝) 각설하고 제새국 왕과 크고 작은 공경들은 손대성과 팔계가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몰며 두 작은 요괴를 붙잡아 들고는 훌쩍 떠나가는 것을 보고,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하나하나 하늘을 향해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리며 입을 모아 말했다. “참으로 헛된 소문이 아니었구나! 오늘에야 비로소 이런 신선과 살아 있는 부처가 계심을 알았도다!” 또 그들이 멀리 가서 자취조차 없어지는 것을 보고는, 당승과 사오정에게 절하며 고마운 마음을 올려 말했다. “과인은 범인의 육안이라, 다만 그대의 높으신 제자에게 힘이 있어 요적을 잡아 가두는 줄로만 알았거늘, 어찌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모는 상선이실 줄을 알았으리오.” 당승이 말했다. “빈승에게는 법력이 조금도 없사옵고, 길에서 내내 이 세 제자의 덕을 입었나이다.” 사오정이 말했다. “폐하께 숨기지 않고 아뢰옵나니, 맏사형은 제천대성이 귀의한 몸이옵니다. 그이는 일찍이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며 금고봉 하나를 휘둘러, 십만 천병 가운데 상대할 자 없이 태상노군이 겁먹고 옥황대제가 가슴을 떨게 하였사옵니다. 둘째 사형은 천봉원수께서 과위를 얻으신 몸이옵고, 일찍이 천하 팔만 수군을 거느렸사옵니다. 오직 이 제자만 법력이 없사오니 권렴대장이 계를 받은 몸이옵니다. 저희 형제가 다른 일에는 무능하옵나, 요괴를 잡아 묶고 도적을 잡으며 범을 굴복시키고 용을 항복받고, 하늘을 차고 우물을 희롱하는 따위라면 조금은 통하옵니다. 구름 타기를 비롯해 비바람을 부르고 북두를 바꾸며 산을 메고 달을 쫓는 것은 남는 재주일 뿐이오니, 어찌 족히 말하오리까!” 왕이 듣고는 더욱 공경을 더하여 당승을 윗자리에 앉히고 늙은 부처라 불렀으며, 사오정 등은 모두 보살이라 불렀다. 온 조정 문무가 기뻐하고 온 나라 백성이 절을 올렸으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손대성과 팔계는 거센 바람을 몰아 두 작은 요괴를 난석산 벽파담으로 이끌고 가서는 구름머리를 멈추어 세웠다. 행자가 금고봉에 선기 한 입김을 불어넣고서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그것이 계도 한 자루로 변하였다. 그리하여 흑어 괴물의 귀를 베고 메기 정령의 아랫입술을 베어 물속에 내동댕이친 뒤 크게 호통쳤다. “어서 가서 만성용왕에게 알리라. 제천대성 손 할아버지가 여기 계시니, 제새국 금광사 탑 위의 보배를 즉시 내어 보내라 하여라. 그리하면 그 집안의 목숨은 살려 주겠노라! 반 마디 아니라는 소리만 뱉어도, 내 이 못물을 말끔히 뒤집어 그 문중의 늙은이 젊은이 모조리 죽여 버리리라!” 두 작은 요괴는 목숨을 건지고 아픔을 안은 채 살 길을 찾아 달아나며 쇠사슬을 질질 끌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바람에 원과 자라, 거북과 별, 새우와 게, 물고기 정령들이 놀라 모두 달려와 둘러싸고는 물었다. “너희 둘은 어찌 밧줄을 끌고 사슬을 두르고 있느냐?” 하나는 귀를 가리고 머리를 흔들며 꼬리를 치고, 다른 하나는 입을 막고 발을 구르며 가슴을 쳤다. 그러고는 모두 떠들썩하게 용왕 궁전으로 올라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 화가 났사옵니다!” 그때 만성용왕은 마침 구두부마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둘이 오는 것을 보고는 곧 잔을 내려놓고 무슨 화냐고 물었다. 그 둘이 곧 고하였다. “어젯밤 순찰을 돌다가 당승과 손행자가 탑을 쓸 때 붙잡혀 쇠사슬로 묶였사옵니다. 오늘 아침 왕을 알현하고 나오는데, 또 그 행자와 저팔계가 저희 둘을 붙잡아 하나는 귀를 베이고 하나는 입술을 베인 채 물에 던져졌사옵니다. 그리고 저더러 와서 알리라 하였사옵고, 그 탑 꼭대기의 보배를 내놓으라 요구하옵니다.” 마침내 앞뒤 사정을 낱낱이 한 차례 이야기하였다. 늙은 용이 손행자 제천대성이라는 말을 듣고는 혼이 몸에 붙어 있지 않고 넋이 구천으로 흩어져, 부들부들 떨며 부마에게 말했다. “어진 사위야, 다른 이가 오면 그래도 꾀해 볼 여지가 있거니와, 정말 그 사람이라면 일이 좋지 못하구나!” 부마가 웃으며 말했다. “장인어른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소생은 어려서부터 무예를 조금 배웠사옵고, 사해 안에서도 일찍이 호걸 몇을 만나 보았사옵니다. 그를 무엇이 두렵사옵니까! 제가 나가 세 합만 겨루어 보겠나이다. 틀림없이 그 놈이 머리를 움츠리고 항복하여 감히 우러러보지 못하게 하겠나이다.” 훌륭한 요괴로다. 급히 몸을 솟구쳐 갑옷을 걸치고 월아삼이라 하는 병기를 들고 궁을 나서며 물길을 헤쳐 수면 위에서 외쳤다. “어느 놈이 제천대성이냐! 어서 올라와 목숨을 내놓아라!” 행자와 팔계가 언덕에 서서 그 요정의 차림새를 살펴보니 이러하였다. 머리에 쓴 은빛 투구는 빛이 흰 눈을 능가하고, 몸에 걸친 투구 달린 갑옷은 윤기가 가을 서리와 겨루었다. 그 위에 비단 정포를 덮었으니 참으로 채운이 옥을 감싼 듯하고, 허리에 무소뿔 무늬 띠를 둘렀으니 꽃구렁이가 금을 감은 듯하였다. 손에 쥔 월아삼은 노을이 날고 번개가 번쩍이며, 발에 신은 돼지가죽 장화는 물결을 갈랐다. 멀리 보면 머리 하나요 얼굴 하나인데, 가까이 보면 사방이 모두 사람이었다. 앞에도 눈, 뒤에도 눈이라 팔방을 두루 보고, 왼쪽에도 입, 오른쪽에도 입이라 아홉 입으로 말하였다. 한 번 고함치니 긴 허공이 울리고, 학이 울며 구천을 꿰뚫는 듯하였다.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음을 보고 다시 한 번 외쳤다. “어느 놈이 제천대성이냐?” 행자가 금고를 누르고 쇠몽둥이를 다듬으며 말했다. “이 늙은 손이 그놈이니라.” 요괴가 말했다. “네 집이 어디며 네 몸은 어디서 났느냐! 어찌 제새국에 이르러 그 왕과 함께 탑을 지키며, 내 부하를 잡아 가두고, 감히 내 보배로운 산에 올라와 싸움을 걸었느냐?” 행자가 꾸짖어 말했다. “이 도둑 요괴야, 네 손 할아버지도 몰라보는구나! 앞으로 나와 내 말을 들어라. 늙은 손의 조상은 화과산, 큰 바다 가 수렴동이로다. 어려서 닦아 불괴의 몸을 이루니 옥황께서 나를 제천성에 봉하셨느니라. 두우궁을 크게 어지럽혀 하늘의 여러 신이 당해 내기 어렵더라. 여래를 청해 묘한 법을 펴니 가없는 지혜가 범상한 쓰임이 아니더라. 근두운을 뒤집어 신통을 겨루니 손이 산이 되어 나를 무겁게 눌렀고, 오백 년이 지나서야 관세음이 권하여 겨우 목숨을 건졌느니라.” 오백 년이 지나 관세음이 권해 겨우 살아났노라. 대당 삼장이 서천에 올라 멀리 영산을 절해 불경을 구하네. 내 몸을 풀어 그를 보호하고 마귀를 다스려 수행을 따르네. 길에서 서역 제새성을 만나니 스님 삼대가 억울히 죽었더라. 우리가 자비로 옛 정을 물으니 탑에 빛이 없기 때문이로다. 스승이 탑을 쓸며 살피는데 밤이 삼경에 이르러 고요하더라. 물고기 정령을 잡아 자백을 받으니 네가 보배를 훔쳤다 하더라. 도둑질에 합세한 이 용왕, 공주는 만성이라 하더라. 피비를 뿌려 탑의 빛을 적시고 그 보배를 훔쳐 쓰더라. 전각 앞 공술에 거짓이 없으니 임금의 분부로 여기 왔노라. 그래서 찾아와 싸움을 청하노니 다시는 내 성을 묻지 말라. 어서 보배를 내어 돌려주라, 네 온 집안을 살려 주리라. 무지하게 날뛴다면 물 마르고 산 무너져 다 망하리라!” 그 부마가 그 말을 듣고는 빙긋이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본래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이면서,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어 참견하는구나! 내가 그의 보배를 훔쳤고 네가 부처의 경문을 취하니, 네게 무슨 상관이 있어 싸우러 왔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 도둑 요괴야, 참으로 이치를 모르는구나! 내가 비록 그 나라 왕의 은혜를 받은 것도, 그의 물과 곡식을 먹은 것도 아니니 그를 위해 힘쓸 까닭이 없다고 하겠다마는, 네가 그의 보배를 훔치고 그의 보탑을 더럽히며 여러 해 동안 금광사 스님들을 억울하게 고생시켰느니라. 그는 나와 한 문중의 같은 기운이라, 내가 어찌 그를 위해 힘을 쓰고 억울함을 밝혀 주지 않겠느냐?” 부마가 말했다. “네가 그리하려 한다면 승부를 겨루자는 셈이로다. 흔히 이르기를 무술은 착하게 굴 수 없다 하였나니, 다만 손을 쓰는 자리에서 정을 남기지 못하여 자칫 네 목숨을 상하게 하고, 네가 경을 구하러 가는 일을 그르칠까 두렵구나!” 행자가 크게 노하여 꾸짖어 말했다. “이놈의 도둑 요괴야, 무슨 큰 재주가 있어 감히 큰소리를 치느냐! 올라와서 이 영감의 몽둥이를 받아라!” 그 부마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월아삼으로 쇠몽둥이를 받쳐 막으니, 그 난석산 머리에서 벌어진 이 한 판의 싸움은 참으로 볼 만하였다. 요마가 보배를 훔쳐 탑이 빛을 잃고, 행자가 요괴를 잡아 왕에 보답하네. 작은 요괴는 살아 달아나 물속으로 돌아가고, 늙은 용은 간이 터져 서로 의논하네. 구두부마가 위풍을 떨치며 갑옷 걸치고 나서 평소의 힘을 펴네. 제천대성 손오공이 성을 내니 금고봉이 일어나 매우 강하도다. 저 요물은 아홉 머리에 열여덟 눈이라 앞뒤로 털끝 같은 빛을 뿜고, 이 행자는 한 쌍의 쇠팔에 천 근의 힘이라 자욱하게 상서로움이 함께하네. 삽은 초생달이 막 나타난 듯하고, 몽둥이는 만 리에 서리가 날리는 듯하네. 그는 “네가 무슨 상관으로 불평을 갚느냐!” 하고, 나는 “네가 보배를 훔쳤으니 참으로 나쁘다!” 하네. 이놈의 도둑아, 경망스레 굴지 말고 보배를 돌려주어 평안을 얻어라! 몽둥이가 맞서고 삽이 받치며 승부를 다투나, 승패는 보이지 않고 싸움터만 벌어지네. 그 둘은 이리저리 오가며 서른여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저팔계가 산 앞에 서 있다가 그들이 한창 신나게 싸우는 것을 보고는 쇠스랑을 들어 요정의 등 뒤에서 한 번 찔렀다. 그런데 그 요괴는 아홉 머리가 돌 때마다 모두 눈이라 훤히 보고 있었으므로, 팔계가 등 뒤로 오는 것을 보고 곧 삽 자루로 쇠스랑을 받치고 삽머리로 쇠몽둥이를 막아 냈다. 또 다섯 일곱 합을 버티더니, 앞뒤에서 함께 휘두르는 것을 당해 내지 못하고는 한바탕 구른 뒤 허공으로 뛰어올라 본모습을 드러내니, 바로 구두충이었다. 그 형상을 보니 몹시 사납고 그 모습을 보니 사람을 놀라 죽일 만하였다. 그 생김새는 이러하였다. 털과 깃은 비단을 펼친 듯하고, 몸은 솜을 뭉친 듯하도다. 너비는 한 장 두 자쯤 되고, 길이는 원과 자라의 모습과 같도다. 두 발의 끝은 갈고리처럼 날카롭고, 아홉 머리는 한곳에 모여 있도다. 날개를 펴면 날아오르기를 잘하여 큰 붕새라도 그 힘을 당하지 못하고, 소리를 내면 멀리 하늘가까지 울려 신선의 학보다 더 높이 우짖도다. 눈이 많아 번쩍이며 금빛을 흔들고, 기개가 높아 범상한 새와는 다르도다. 저팔계가 그것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형이여! 내가 사람이 되어서도 이토록 사나운 짐승은 일찍이 본 적이 없사옵니다!” “어떤 피와 기운이 이런 금수를 낳았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참으로 드물구나! 참으로 드물어! 내가 쫓아가서 쳐 보리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급히 상서로운 구름을 몰아 허공으로 뛰어올라 쇠몽둥이로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요물은 크게 몸을 드러내며 날개를 펴 비스듬히 날아올라, 쌩 하고 몸을 돌려 산 앞으로 스치더니 허리 가운데서 또 머리 하나를 내밀어 피 묻은 대접만 한 입을 벌리고는, 팔계를 갈기째 한 입에 물어 반은 끌고 반은 당겨 벽파담 물속으로 끌고 내려가 버렸다. 용궁 밖에 이르러서는 다시 전의 모습으로 변하여 팔계를 땅에 내동댕이치고는 외쳤다. “아이들아, 어디 있느냐?” 그 안에서 청어와 백어, 잉어와 쏘가리 따위 물고기 정령과 거북·별·원·자라 따위 껍데기 있는 요괴가 한꺼번에 몰려나와 “여기 있사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부마가 말했다. “이 중을 저기 묶어 두어라. 나의 순찰하던 병졸의 원수를 갚아 주겠노라!” 요정들이 밀치며 떠들썩하게 팔계를 들어 옮기고 있을 때, 그 늙은 용왕이 기뻐하며 마중 나와 말했다. “어진 사위가 공을 세웠구려. 어찌하여 그를 잡아 왔느냐?” 그 부마가 위의 사정을 한 차례 이야기하니, 늙은 용이 곧 술자리를 베풀어 공을 축하하게 하였으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손행자가 요정이 팔계를 사로잡은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 말했다. “이놈이 이토록 사납구나!” “내가 조정으로 돌아가 스승님을 뵙자니 그 나라 왕이 나를 비웃을까 두렵고, 입을 열어 싸움을 걸자니 나는 홀몸인 데다 물 위의 일에도 익숙지 않구나. 우선 내가 변신하여 들어가서 그 요괴가 이 멍청이를 어찌 다루는지 보고, 기회가 닿거든 그를 훔쳐 내어 일을 도모하리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주문을 외우고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다시 게 한 마리가 되어, 물속으로 뛰어들어 곧장 패루 앞에 이르렀다. 이 길은 그가 앞서 우마왕을 습격하여 금정수를 훔칠 때 익혀 둔 길이었다. 궁궐 아래까지 이르러 옆으로 기어 건너가니, 그 늙은 용왕과 구두충이 온 집안이 기뻐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행자가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고 동쪽 회랑 아래로 기어 가니, 새우 정령과 게 정령 몇이 어수선하게 떠들며 놀고 있었다. 행자가 한참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말투와 말씨를 흉내 내어 물었다. “부마 할아버지가 잡아 온 그 긴 주둥이 중은 이제 죽었느냐?” 요정들이 말했다. “죽지는 않았네. 서쪽 회랑 아래에 묶여 신음하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지.”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다시 살그머니 서쪽 회랑으로 기어 가니, 참으로 그 멍청이가 기둥에 묶인 채 신음하고 있었다. 행자가 다가서며 말했다. “팔계야, 나를 알아보겠느냐?” 팔계가 그 소리를 듣고 행자인 줄 알고는 말했다. “형님, 어찌된 일이오! 도리어 이놈에게 붙잡히고 말았소!” 행자가 사방에 사람이 없음을 살피고는 집게로 밧줄을 끊어 끊으며 어서 가자 하니, 그 멍청이가 손이 풀리자 말했다. “형님, 내 병기가 그에게 거두어졌으니 어찌하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디에 거두어 두었는지 아느냐?” 팔계가 말했다. “그 요괴에게 붙잡혀 궁전 위로 올라갔소.” 행자가 말했다. “네가 먼저 패루 아래로 가서 나를 기다려라.” 팔계는 목숨을 건져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행자가 몸을 돌려 궁전으로 기어 올라가 살펴보니 왼쪽 아래에 빛이 촘촘히 빛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팔계의 쇠스랑이 빛을 내고 있었다. 은신법을 써서 스랑을 훔쳐 내어 패루 아래에 이르러 외쳤다. “팔계야! 병기를 받아라!” 그 멍청이가 스랑을 얻고는 말했다. “형님, 형님이 먼저 가시오. 이 늙은 돼지가 궁전으로 쳐들어가겠소. 이기면 그 집안을 모조리 잡아 가두고, 지게 되면 패하여 나올 터이니 형님은 이 못가에서 구원하시오.” 행자가 크게 기뻐하며 조심하라고만 일렀다. 팔계가 말했다. “그놈이 무섭지 않소! 물속의 재주는 나도 조금은 있소.” 행자가 그를 놓아두고 물 위로 떠올랐으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이 팔계는 검은 직철 차림을 단단히 묶고 두 손에 스랑을 쥐고는 한바탕 고함치며 쳐들어갔다. 그 바람에 크고 작은 물족들이 허둥지둥 궁전으로 달려 올라가며 외쳤다. “큰일 났다! 긴 주둥이 중이 밧줄을 끊고 도로 쳐들어왔다!” 그 늙은 용과 구두충이 온 집안이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숨고 도망하였다. 이 멍청이는 죽고 사는 것을 돌보지 않고 궁전으로 뛰어올라 가는 길로 스랑을 휘둘러 문짝을 부수고 탁자를 깨뜨리며, 술 마시던 그릇 따위를 모조리 박살 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서 이르기를, 목모가 수괴에게 붙잡히니 심원이 차마 버리지 못하고 괴로이 찾아오네. 몰래 묘계를 써서 자물쇠를 열고, 크게 신위를 드러내니 노여움이 깊도다. 부마는 급히 공주를 이끌고 숨고, 용왕은 벌벌 떨며 소리를 잃었네. 수궁의 붉은 궁궐 문과 창이 부서지고, 용자 용손은 모두 넋을 잃었네. 이 한바탕에 팔계가 대모 병풍을 때려 가루로 만들고 산호 나무를 내동댕이쳐 시들게 하였다. 그 구두충은 공주를 안쪽에 숨겨 두고 급히 월아삼을 들어 앞 궁전으로 달려가며 호통쳤다. “이놈의 무식한 돼지야! 어찌 감히 마음을 속이고 내 권속을 놀라게 하느냐!” 팔계가 꾸짖었다. “이 도둑 요괴야, 네가 어찌 감히 나를 잡아 왔느냐! 이번 판은 내 일이 아니라 네가 나를 집으로 불러들여 맞게 한 것이니라! 어서 보배를 내어 나에게 돌려주고 왕을 뵙고 일을 끝내라. 그렇지 않으면 결코 네 집안의 목숨을 살려 두지 않으리라!” 그 요괴가 어찌 봐주겠느냐. 이를 악물고 팔계와 맞붙었다. 그 늙은 용이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용자 용손을 거느리고 저마다 창과 칼을 들고 일제히 공격해 왔다. 팔계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보고 스랑을 헛되이 한 번 휘두른 뒤 몸을 빼 달아나니, 그 늙은 용이 무리를 거느리고 뒤쫓았다. 잠시 뒤 물 밖으로 튀어 올라 모두 못 위에서 뒤집히며 날뛰었다. 각설하고 손행자가 못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이 팔계를 뒤쫓아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는 구름과 안개를 반쯤 밟고 쇠몽둥이를 빼어 “달아나지 마라!” 하고 외치며 단 한 번에 그 늙은 용의 머리를 흐물흐물하게 때려 부수었다. 가련하게도 피가 못 가운데 튀어 붉은 물이 넘실거리고, 시체가 물결 위에 떠오르며 부서진 비늘이 떠다녔다. 놀란 용자 용손이 각자 목숨을 걸고 달아나고, 구두부마는 용의 시체를 거두어 궁전으로 돌아갔다. 행자와 팔계는 더 뒤쫓지 않고 언덕으로 올라와 지난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팔계가 말했다. “이놈의 예기가 꺾였소! 내가 그 스랑을 휘둘러 쳐들어갈 적에 낙화유수로 두들겨 혼이 흩어지고 넋이 날아가게 만들었소. 막 그 부마와 싸우는데 늙은 용왕이 뒤쫓아 왔으니, 형님이 때려 죽인 덕을 보았소. 그놈들이 돌아가면 틀림없이 상을 치르고 상복을 입을 터이니 결코 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또 날이 저물었으니 어찌하면 좋소?” 행자가 말했다. “날이 저물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이 기회를 타서 네가 다시 내려가 공격하여, 반드시 보배를 꺼내야 조정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그 멍청이는 마음이 늘어지고 뜻이 흩어져 어기적거리며 핑계를 대니, 행자가 재촉하여 말했다. “아우야, 의심이 많을 것 없다. 아까처럼 그놈을 끌어내어 내가 때리게 하라.” 두 사람이 막 의논하고 있는데, 문득 거센 바람이 굴러오고 참담한 안개가 자욱하더니 갑자기 동쪽에서 곧장 남쪽으로 지나갔다. 행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이는 이랑현성이 매산육형제를 거느리고 매와 개를 부리며 여우와 토끼를 메고 노루와 사슴을 들쳐 멘 채, 저마다 허리에 굽은 활을 차고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든 모습으로 바람과 안개를 타고 씩씩하게 오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팔계야, 저들은 나의 칠성 형제들이니 마침 잘됐다. 그들을 붙잡아 청하여 나와 함께 싸움을 돕게 하자. 성공한다면 참으로 큰 기회가 되리라.” 팔계가 말했다. “형제라면 마땅히 모셔 청해야 하오.” 행자가 말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현성 형님이 계시니, 내가 일찍이 그에게 항복을 받았던 터라 그를 만나기가 쑥스럽구나. 네가 가서 구름머리를 막아서며 ‘진군이시여, 잠시 멈추시옵소서. 제천대성이 여기서 절을 올리옵니다’ 하고 외쳐라. 그가 나라는 말을 들으면 틀림없이 멈출 것이다. 그가 자리를 잡으면 내가 가서 뵙겠다.” 그 멍청이가 급히 구름머리를 몰아 산으로 올라가 길을 막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진군이시여, 수레를 잠시 멈추시옵소서. 제천대성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그 할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는 곧 명령을 내려 육형제를 멈추어 세우고, 팔계와 인사를 나눈 뒤 물었다. “제천대성이 어디 계신가?” 팔계가 말했다. “산 아래에서 부르시기를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이랑신이 말했다. “형제들아, 어서 가서 모셔 오너라.” 육형제란 곧 강과 장, 요와 리, 곽과 직이니, 저마다 진영에서 나와 외쳤다. “손오공 형님, 큰 형님이 청하십니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무리에게 인사를 올리고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이랑신 할아버지가 마중 나와 손을 잡고 부축하며 함께 만나 말했다. “대성이여, 그대가 큰 어려움을 벗어나 계를 받고 불문에 들어, 머지않아 공을 마치고 연꽃 자리에 높이 오르리니 축하할 만하구려! 참으로 축하할 만하구려!” 행자가 말했다. “감당치 못할 말씀이옵니다. 지난번에 크나큰 은혜를 입었사오나 잠시 동안도 갚지 못하였사옵니다. 어려움을 벗어나 서쪽으로 가고는 있사오나 공덕이 어떠할지 알 수 없사옵니다. 이번에 길에서 제새국을 지나다 스님들의 재난을 구하고 여기서 요괴를 잡아 보배를 찾고 있사옵니다. 마침 형님의 수레 행차를 뵙고는 감히 붙잡아 도움을 청하옵나니, 형님이 어디서 오시는 길인지 모르겠사옵고 기꺼이 받아 주시겠는지 알 수 없사옵니다.” 이랑신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한가하여 할 일이 없어 여러 형제와 사냥을 나섰다가 돌아가는 길이오. 다행히 대성이 버리지 않고 만나자 하니 옛 정이 넉넉히 느껴지는구려. 힘을 보태어 요괴를 항복받으라 하신다면 어찌 명을 어기겠소! 그러나 이곳이 어떤 요적의 소굴인지 모르겠구려.” 육성이 말했다. “큰 형님은 잊으셨소? 이곳이 난석산이오, 산 아래가 벽파담이니 만성용왕의 용궁이오.” 이랑신이 놀라며 말했다. “만성 늙은 용은 일을 일으키지 않는 이거늘, 어찌 감히 탑의 보배를 훔쳤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가 요즈음 부마 하나를 얻었는데 바로 구두충이 정기가 된 자이옵니다. 장인과 사위 둘이 도둑이 되어 제새국에 피비를 한 차례 내리고, 금광사 탑 꼭대기의 사리 불보를 훔쳐 왔사옵니다. 그 나라 왕은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스님들만 붙잡아 고문하고 있사옵니다. 저의 스승이 자비로이 밤에 탑을 쓸다가, 내가 탑 위에서 두 작은 요괴를 붙잡았사온데 그가 보내어 염탐하러 온 자들이었사옵니다. 오늘 아침 조정으로 압송하자 낱낱이 자백하였사옵니다.” 그 나라 왕이 곧 우리 스승에게 항복받아 주시기를 청하였고, 스승께서 우리에게 여기 오라 하셨사옵니다. 첫 판의 싸움에서 구두충이 허리에서 머리 하나를 내밀어 팔계를 물어 갔사옵고, 나는 또 변신하여 물속으로 내려가 팔계를 풀어 주었사옵니다. 그리고 막 크게 한 판을 싸워 내가 그 늙은 용을 때려 죽였사온데, 그놈들이 시체를 거두어 상복을 입고 가 버렸사옵니다. 우리 둘이 막 싸움을 청하려 의논하고 있는데 형님의 의장이 내려오시는 것을 뵙고, 이리 가볍게 외람된 청을 드린 것이옵니다.” 이랑신이 말했다. “늙은 용을 이미 상하게 하였으니 바로 그들을 쳐서 손을 쓸 틈을 주지 않는다면 그 소굴까지 모조리 없애 버릴 수 있지 않겠소?” 팔계가 말했다. “그러하오나 날이 저물었으니 어찌하오?” 이랑신이 말했다. “병가에서 이르기를 정벌은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였거늘, 날이 저무는 것이 무에 두렵소!” 강과 요, 곽과 직이 말했다. “큰 형님, 서두르지 마시오. 그놈의 처자식이 여기 있으니 달아날 데가 없을 것이오. 손 둘째 형님도 귀한 손님이시오, 저강렬도 바른 과위로 돌아왔으니, 우리 진영에 가져온 술과 안주가 있으니 아이들에게 불을 피워 여기에 차리게 합시다. 한편으로 두 분의 경사를 축하하고, 또 한편으로 정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이오. 이 밤 즐겁게 보내고 날이 밝아 싸움을 청해도 늦지 않소.” 이랑신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아우의 말이 매우 옳구나.” 그리고는 작은 군사에게 차리라 명하였는데, 행자가 말했다. “여러분의 후한 정을 감히 굳이 사양하지 못하겠사옵니다. 다만 중이 된 뒤로는 모두 재계하는 몸이라 육식과 채식이 불편할까 염려되옵니다.” 이랑신이 말했다. “채소와 과일이 있고 술도 소주이니라.” 여러 형제가 별빛과 달빛 아래에서 하늘을 덮고 땅을 자리 삼아 잔을 들어 옛정을 나누었다. 이야말로 적막하면 밤이 더 길고 즐거우면 밤이 짧다 하였거늘, 어느새 동쪽이 훤히 밝아 왔다. 그 팔계가 술 몇 잔을 마시고 신이 나서 말했다. “날이 밝아 오는구나. 이 늙은 돼지가 물속으로 내려가 싸움을 청하겠소.” 이랑신이 말했다. “원수는 조심하시오. 그놈을 끌어내기만 하면 우리 형제들이 손을 쓸 터이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오! 내가 아오! 보시오, 그가 옷을 여미고 스랑을 쥐고는 분수법을 써서 뛰어 내려가 곧장 그 패루 아래에 이르러 고함을 치며 전각 안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그 용자는 삼베를 걸치고 용의 시체를 보며 울고 있었고, 용손과 그 부마는 뒤에서 관을 거두고 있었다. 이 팔계가 욕하며 앞으로 나서니 손을 드는 곳마다 스랑머리가 무겁게 떨어져, 그 용자의 머리를 통째로 찍어 한 번에 아홉 개의 구멍을 내었다. 놀란 용파와 무리가 안쪽으로 우르르 달아나며 울었다. “긴 주둥이 중이 또 내 아들을 때려 죽였다!” 그 부마가 그 말을 듣고는 곧 월아삼을 들어 용손을 데리고 밖으로 쳐 나왔다. 이 팔계가 스랑을 들어 맞서며 싸우고 물러나기를 거듭하다가 물 밖으로 뛰어올랐다. 이 언덕에서 제천대성과 일곱 형제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창과 칼을 마구 찌르니, 그 용손을 몇 토막의 고기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부마가 일이 잘못됨을 보고는 산 앞에서 한바탕 구른 뒤 또 본모습을 드러내어 날개를 펴고 빙빙 날아올랐다. 이랑신이 곧 금활을 꺼내 은탄을 얹고 활을 가득 당겨 위를 향해 쏘았다. 그 요괴가 급히 날개를 접고 옆으로 스쳐 가며 이랑신을 물려 하였는데, 허리 가운데서 막 머리 하나를 내미는 순간 그날랜 개가 뛰어올라 왕 하고 한 입에 그 머리를 피칠갑이 되게 물어 뜯어 버렸다. 그 요물은 아픔을 참고 목숨을 걸고 달아나 곧장 북해로 가 버렸다. 팔계가 뒤쫓으려 하자 행자가 말렸다. “그놈을 쫓지 말라. 궁지에 몰린 적은 쫓지 않는 법이니라. 그놈이 날랜 개에게 머리를 물렸으니 틀림없이 죽을 확률이 크고 살 확률이 적으니라. 내가 그놈의 모습으로 변할 터이니, 네가 물길을 헤치며 나를 쫓아 들어가 그 공주를 찾아 보배를 속여 내자.” 이랑신과 육성이 말했다. “그놈을 쫓지 않는 것도 좋으나, 이런 종류를 세상에 남겨 두면 반드시 뒷사람의 해가 되리라.” 지금도 구두충이 피를 떨어뜨린다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 남겨진 종자이니라. 그 팔계가 말대로 물길을 헤치니 행자가 요괴의 모습으로 변하여 앞서 가고, 팔계가 고함을 치며 뒤쫓았다. 점점 용궁까지 쫓아가니, 그 만성공주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부마님, 어찌 그리 놀라십니까?” 행자가 말했다. “그 팔계가 이겨서 나를 쫓아 들어왔소. 그를 당해 낼 수 없을 듯하오. 어서 보배를 잘 감추어 두시오!” 그 공주는 급한 나머지 참과 거짓을 가릴 겨를이 없어, 곧 뒤채에서 순금으로 된 함 하나를 꺼내어 행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것이 불보이옵니다.” 또 백옥으로 된 함 하나를 꺼내어 역시 행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것이 구엽영지이옵니다. 그대가 이 보배를 가지고 가서 감추어 두고, 내가 저팔계와 두세 합을 겨루어 그를 막아 둘 터이니, 그대는 보배를 잘 간수한 뒤에 나와 함께 그와 싸우시오.” 행자가 두 함을 몸에 지니고는 얼굴을 한번 쓸어 본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공주여, 내가 부마로 보이느냐?” 공주가 당황하여 함을 빼앗으려 하는데, 팔계가 달려 올라가 등에 스랑을 한 번 찍어 땅에 쓰러뜨렸다. 또 늙은 용파 하나가 몸을 빼어 달아나려다가 팔계에게 붙잡혀 스랑을 들어 막 찍으려는 순간, 행자가 말했다. “잠깐! 그를 죽이지 말라. 산 것을 하나 남겨 두어야 나라에 가서 공을 보여 주기 좋으니라.” 마침내 용파를 물 위로 끌어내었다. 행자가 뒤따라 두 함을 받들고 언덕으로 올라와 이랑신에게 말했다. “형님의 위력에 힘입어 보배를 얻고 요적을 말끔히 쓸었나이다.” 이랑신이 말했다. “한쪽은 그 나라 왕의 큰 복이 하늘에 닿은 것이요, 또 한쪽은 그대 형제의 신통이 한량없는 것이니, 내게 무슨 공이 있겠소!” 형제들이 모두 말했다. “손 둘째 형님이 이미 공을 이루었으니 우리는 여기서 작별하겠소.” 행자가 끝없이 감사하며 함께 왕을 뵙고 가자고 붙잡았으나 여러분이 승낙하려 하지 않고 마침내 무리를 거느리고 관구로 돌아갔다. 행자가 함을 받들고 팔계가 용파를 끌며 반은 구름 반은 안개를 타고 잠깐 사이에 나라 안에 이르렀다. 그 금광사에서 풀려난 중들이 모두 성 밖에서 마중하고 있다가, 그 둘이 구름과 안개를 거두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성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때 왕과 당승이 전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곳에 먼저 가 있던 중이 담력을 내어 조정 문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만세, 손과 저 두 분이 도적을 잡고 보배를 얻어 오셨사옵니다.” 그 왕이 그 말을 듣고는 급히 전각에서 내려와 당승과 사오정과 함께 마중 나가 신령한 공을 끝없이 칭송하며 감사하고는, 곧 잔치를 베풀어 은혜에 보답하라 명하였다. 당삼장이 말했다. “아직 술을 내리실 것 없사옵니다. 작은 제자가 탑 가운데의 보배를 돌려놓은 뒤에야 잔치를 여셔도 늦지 않사옵니다.” 당삼장이 또 행자에게 물었다. “너희가 어제 나라를 떠났거늘 어찌하여 오늘에야 왔느냐?” 행자가 부마와 싸우고 용왕을 때려 죽이고 진군을 만나 요괴를 물리친 일과, 변신하여 보배를 속여 낸 일을 낱낱이 한 차례 이야기하였다. 당승과 왕, 크고 작은 문무가 모두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왕이 또 물었다. “용파가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느냐?” 팔계가 말했다. “용왕의 아내로많은한 용손을 낳았거늘 어찌 사람의 말을 모르겠소?” 왕이 말했다. “사람의 말을 안다면 어서 앞뒤로 도둑질한 일을 말하라.” 용파가 말했다. “불보를 훔친 일은 나는 전혀 알지 못하옵니다. 모두 내 지아비인 용왕과 그 부마 구두충이 당신네 탑 위의 빛이 불가의 사리자인 줄 알고, 삼 년 전에 피비를 내려 그 틈을 타 훔쳐 간 것이옵니다.” 왕이 또 물었다. “영지초는 어떻게 훔쳤느냐?” 용파가 말했다. “다만 내 작은딸 만성공주가 몰래 대라천 위 영소전 앞에 들어가 왕모님의 구엽영지초를 훔친 것이옵니다. 그 사리자가 이 풀의 선기를 얻어 온양되면 천 년을 상하지 않고 만 년을 빛을 내어, 땅에 가거나 논에 가서 한 번 쓸기만 하여도 만 갈래의 노을빛과 천 갈래의 상서로운 기운이 이는 것이옵니다. 이제 그대들이 빼앗아 간 바람에 내 지아비는 죽고 자식은 끊겼으며, 사위는 잃고 딸은 죽었사오니, 부디 천만 번 내 목숨만은 살려 주시옵소서!” 팔계가 말했다. “바로 용서하지 않을 터다!” 행자가 말했다. “집안이 모두 범을 짓지는 않았으니 내가 너를 용서하리라. 다만 너로 하여금 오래도록 나를 대신해 탑을 지키게 하려는 것뿐이니라.” 용파가 말했다. “좋은 죽음만 못한 것이 괴로운 삶이라 하였사옵니다. 내 목숨만 남겨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시키시는 대로 하옵니다.” 행자가 쇠사슬을 가져오라 하니 곁에 있던 관리가 쇠사슬 하나를 가져왔고, 용파의 비파골을 꿰어 사오정에게 일렀다. “왕을 청하여 우리가 탑을 안치하는 것을 보시게 하라.” 그 왕이 곧 수레를 갖추어 당삼장과 손을 잡고 조정을 나섰으며, 문무 여러 관원이 금광사로 따라 올라갔다. 사리자를 제십삼층 탑 꼭대기의 보병 가운데 안치하고, 용파를 탑의 중심 기둥에 묶어 두었다. 행자가 진언을 외워 본국의 토지신과 성황, 그리고 이 절의 가람을 불러내어 사흘마다 음식 한 끼를 보내 이 용파가 연명하게 하라 이르고, 조금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곧 참형에 처하라 하니 여러 신이 은밀히 명을 받들었다. 행자는 또 영지초를 가지고 십삼층 탑을 층층이 쓸어 병 안에 넣어 사리자를 온양하였다. 이에 이르러야 낡은 것이 새것처럼 가지런해져, 노을빛이 만 갈래요 상서로운 기운이 천 갈래가 되어, 여전히 팔방이 함께 보고 사방 나라가 함께 우러러보게 되었다. 탑 문을 내려와 왕이 감사하며 말했다. “늙은 부처와 세 보살이 여기 오시지 않았다면 어찌 이 일을 밝힐 수 있었겠소!” 행자가 말했다. “폐하, 금광 두 글자가 좋지 않사옵니다. 오래 머물 물건이 아니옵니다. 쇠는 흘러다니는 물건이요 빛은 번쩍이는 기운이옵니다. 빈승이 폐하를 위해 이 한바탕 수고하였사오니, 이 절을 복룡사로 고쳐 영원히 남게 하옵소서.” 그 왕이 곧 이름을 바꾸고 새 편액을 걸라 명하였으니, 이는 “칙건호국복룡사”이었다. 한편으로는 어연을 차리고, 한편으로는 화공을 불러 네 제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오봉루에 이름을 적었다. 왕이 수레를 갖추어 당승 사도를 전송하며 금과 옥을 내려 보답하려 하였으나, 사도들이 굳이 사양하고 한 톨도 받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 이러하다. 사악한 요괴를 잘라 내니 온 경계가 고요하고, 보탑이 빛을 되찾아 대지가 밝도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4회 형극령오능노력(荊棘嶺悟能努力) · 목선암삼장담시(木仙庵三藏談詩) 이야기는 이러하다. 제새국 국왕이 당삼장 사도들이 보물을 얻고 요괴를 사로잡아 준 은혜에 사례하였으나, 하사한 금옥은 털끝만큼도 받지 않고, 도리어 직숙 관리에게 명하여 네 사람이 늘 입던 옷을 본떠 두 벌씩, 신과 버선을 두 켤레씩, 띠와 고리를 두 개씩 만들게 하였다. 또 마른 양식과 볶은 먹을거리를 갖추어 통행 문서를 갈아 주고, 가마 행차를 크게 벌여 문무 여러 관원과 온 성 백성, 복룡사 승려들이 피리와 북을 불고 치며 네 사람을 성 밖으로 전송하였다. 이십 리쯤 가서 먼저 국왕에게 하직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또 이십 리를 배웅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복룡사 승려들은 오륙십 리를 배웅하고도 돌아가지 않으며, 어떤 이는 함께 서천에 가겠다 하고, 어떤 이는 수행하며 모시겠다 하였다. 행자가 모두 돌아가지 않음을 보고 수단을 부려, 털을 서른에서 마흔 가닥쯤 뽑아 선기를 한 입 불어넣고 “변해라!” 외치니, 모두 얼룩덜룩한 사나운 호랑이로 변해 앞길을 막고 포효하며 날뛰었다. 승려들이 그제야 두려워 감히 나아가지 못하니, 대성이 스승을 이끌고 말을 몰아 떠났다. 잠시 뒤 멀어지자 승려들은 목 놓아 울며 모두 외쳤다. “은혜롭고 의리로우신 나리시여! 저희는 인연이 없어 제도해 주지 않으시는구나!” 승려들이 통곡하는 이야기는 접어 두고, 사도 네 사람은 큰길로 올라서서 그제야 털을 거두고 줄곧 서쪽으로 갔다. 참으로 절기는 쉽게 옮겨 가는 것이라, 어느새 겨울이 저물고 봄이 닿아 따뜻하지도 춥지도 않으니 한가로이 길 가기에 알맞았다. 홀연히 긴 고개 하나가 보였는데, 고개 꼭대기가 바로 길이었다. 삼장이 말고삐를 당겨 살펴보니, 고개 위로는 가시덤불이 갈래갈래 뻗고 담쟁이와 덩굴이 휘감겨 있어, 길의 자취는 있으나 좌우가 모두 가시와 바늘뿐이었다. 당승이 외쳤다. “제자야, 이 길을 어찌 걸어가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어찌 가지 못하겠나이까?” 당승이 또 말했다. “제자야, 길 자취는 아래에 있고 가시덤불은 위에 있으니, 뱀이나 벌레가 땅에 엎드려 기는 수밖에 없겠구나. 너희가 걷자니 허리도 펴기 어려울 터인데, 나보고 어찌 말을 타란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걱정 마옵소서. 제가 쇠갈퀴로 가시를 헤쳐 놓을 터이니, 말 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마를 메고 가더라도 무사히 지나가게 해 드리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너에게 힘은 있으나 오랜 길을 견디기 어렵고, 얼마나 먼지도 모르는데 어찌 그리 많은 정력을 쏟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의논할 것 없사옵니다. 제가 가서 알아보고 오겠나이다.” 몸을 한 번 솟구쳐 반공중으로 뛰어올라 살펴보니, 바라보아 끝이 없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땅을 두르고 먼 하늘에 이어졌으며, 자욱한 연기가 비를 머금었구나. 길 좌우로 부드러운 풀잎 어지럽고, 온 산에 푸른 덮개 펼쳐졌네. 빽빽하고 겹겹이 막 잎을 틔우며, 서로 얽히고 걸리며 향기를 뿜는구나. 멀리 보면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고, 가까이 살피니 푸른 구름 아득한 듯하구나. 자욱하고 보송보송하며, 울창하고 푸르르네. 바람 소리 휭휭 날리고, 햇살 그림자 찬란히 비추는구나. 그 가운데 소나무도 있고 잣나무도 있으며 대나무도 있고, 매화도 많고 버드나무도 많으며 뽕나무는 더욱 많구나. 담쟁이와 덩굴이 늙은 나무를 휘감고, 칡넝쿨이 늘어진 버들을 둘렀네. 둘둘 뭉친 것은 시렁 같고, 서로 이어진 것은 평상 같구나. 어떤 곳은 꽃이 피어 참으로 비단 펼친 듯하고, 까닭 없이 풀이 돋아 멀리 향기를 보내네. 사람이 되어 누가 가시덤불을 겪지 않으리오마는, 서방에 가시덤불 자람을 어디서 보았던가! 행자가 한참 보고 구름머리를 내리누르며 말했다. “스승님, 이곳은 멀구려!” 삼장이 물었다. “얼마나 멀다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바라보아 끝이 없사오니, 천 리는 되는 듯하옵니다.” 삼장이 크게 놀라 말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느냐?”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근심 마옵소서. 저희도 황무지 태우는 이들 본떠 불을 질러 가시덤불을 모조리 태우고 지나가면 되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허튼소리 마시오! 황무지를 태우려면 시월이나 십일월쯤, 풀이 시들고 나무가 마를 때라야 불을 붙이기 좋소. 지금은 한창 무성한 때인데 어찌 태운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태운다 한들 사람 놀랄 일이오.” 삼장이 말했다. “그러면 어찌 건너간단 말이냐?”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건너가려거든 제 말을 따르소서.” 과연 멍청한 놈이로다. 결을 지으며 주문을 외우고 허리를 한번 굽히고는 “커져라!” 외치니, 곧 이십 장쯤 되는 키로 자라났다. 쇠갈퀴를 한 번 흔들며 “변해라!” 하자 삼십 장쯤 되는 갈퀴 자루로 변하였다. 발을 벌리고 두 손으로 갈퀴를 휘둘러 가시덤불을 좌우로 헤치며 말했다. “스승님, 저를 따라오소서!” 삼장이 보고 매우 기뻐하며 곧 말을 몰아 바짝 뒤따랐다. 뒤에서 사오정이 행장을 메고, 행자도 쇠몽둥이로 헤치며 나아갔다. 이날 종일 손을 놓지 않고 백여 리를 걸어, 날이 저물 무렵 탁 트인 빈터가 보였는데 길 한복판에 비석 하나가 서 있고 그 위에 큰 글자 세 자가 있었으니 “형극령”이요, 아래에 두 줄 열넷의 작은 글자가 있었으니 “가시덤불 얽혀 팔백 리를 뻗었으나, 예로부터 길이 있어도 가는 이 드물다”였다. 저팔계가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 늙은 돼지가 두 구절 보태리라. 이제부터 팔계가 뚫어 버리니, 곧장 서방 길 끝까지 평탄하리라!” 삼장이 기꺼이 말에서 내려 말했다. “제자야, 네가 고생이로구나! 우리 이곳에서 오늘 밤을 지내고, 내일 날이 밝거든 다시 가자.”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머무르지 마옵소서. 이 좋은 날씨에 저희도 흥이 났사오니, 밤을 새워 길을 헤치며 가 버립시다!” 그 장로는 하는 수 없이 따를 뿐이었다. 저팔계가 앞서 힘을 쓰니, 사도들은 손을 놓지 않고 말도 발굽을 멈추지 않아, 또 하룻낮과 하룻밤을 걸었는데 다시 날이 저물었다. 앞쪽은 빽빽이 얽혀 있고, 바람이 대나무 가락을 두드리는 소리와 소나무 소리가 사각거리며 들려왔다. 마침 또 빈터 한 구역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옛 사당 하나였고 사당 문 밖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름을 머금고 복숭아와 매화가 아름다움을 겨루고 있었다. 삼장이 말에서 내려 세 제자와 함께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바위 앞 옛 사당은 찬 물줄기를 베개 삼아 누웠고, 해 지는 거친 연기가 폐허의 언덕을 잠갔구나. 흰 학 무리 속에 세월이 깊고, 푸른 잡초 단 아래로 절로 봄가을이 흐르네. 대나무가 푸른 패옥을 흔들어 말소리인가 의심되고, 새가 남은 가락을 희롱하며 시름을 하소연하는 듯하구나. 닭과 개 소리도 닿지 않고 사람 자취 드물어, 한가로운 꽃과 들덩굴이 담장을 둘렀네. 행자가 살펴본 뒤 말했다. “이곳은 길한 기운이 적고 흉한 기운이 많사오니, 오래 앉아 있지 맙시다.” 사오정이 말했다. “사형께서 지나치게 의심하시는구려. 이처럼 인적이 아득히 끊긴 곳에 괴수나 요괴 새도 없다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이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홀연히 음풍이 일더니, 사당 문 뒤에서 노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머리에는 뿔 달린 두건을 쓰고, 몸에는 담박한 옷을 걸쳤으며, 손에 지팡이를 들고 발에 짚신을 신고 있었다. 뒤에는 푸른 얼굴에 이빨이 드러나고 붉은 수염을 늘어뜨린 적신귀사가 찐 떡 한 접시를 머리에 이고 꿇어앉아 말했다. “대성이시여, 소신은 이 형극령의 토지신이옵니다. 대성께서 이곳에 이르신 줄 알고 대접할 것이 없어, 찐 떡 한 접시를 마련하여 스승님께 올리오니 한 끼씩 드시옵소서. 이 사방 팔백 리에 인가가 없사오니, 조금 드셔 요기를 하옵소서.” 저팔계가 기뻐하며 앞으로 나서 손을 뻗어 곧 떡을 집으려 하였다. 그러나 행자가 이미 오래 유심히 살펴보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잠깐, 멈춰라! 이놈은 좋은 놈이 아니다! 무례하게 굴지 마라! 네가 무슨 토지신이냐, 이 늙은 손오공을 속이러 왔구나! 몽둥이를 받아라!” 그 노인이 그가 내리치는 것을 보고 몸을 한 번 돌리더니 음풍으로 화하여,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장로를 들어 올려 날려 버렸으니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 없었다. 크게 놀란 대성이 찾을 길이 없고, 저팔계와 사오정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낯빛을 잃었으며, 흰 말도 놀라 울기만 하였다. 세 형제와 말까지 넷이 황홀한 가운데 멀리 두루 살펴보아도 단서조차 없었으니, 앞뒤로 찾아다닌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말하자면, 그 노인이 귀사와 함께 장로를 노을 안개 속 돌집 앞으로 메어다 살그머니 내려놓고 손을 잡아 부축하며 말했다. “성승이시여, 놀라지 마옵소서. 저희는 흉악한 자들이 아니오며 이 형극령의 십팔공이로소이다.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이라, 성승을 모셔 와 벗을 만나 시를 논하며 정회를 풀고자 하였을 뿐이옵니다.” 그 장로가 그제야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떠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 실로 이러하였다. 아득한 연기와 구름이 머무는 곳, 맑고 맑은 선경의 인가로구나. 몸을 깨끗이 하여 수련하기에 알맞고, 대나무 심고 꽃 가꾸기에 마땅하네. 푸른 바위마다 학이 날아오고, 푸른 못에서는 개구리 우는 소리 들려오네. 천태산의 단조보다 더 나으니, 화악산의 밝은 노을을 기대하리라. 구름 밭 갈고 달 낚는다 말할 것 없거니와, 이곳의 은일이야말로 자랑할 만하구나. 오래 앉아 있으니 그윽한 회포가 바다 같고, 몽롱하게 달빛이 창에 걸친 비단 발에 오르네. 삼장이 살펴보는데 차츰 달이 밝고 별이 총총해지며,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더니 모두 말했다. “십팔공께서 성승을 모셔 오셨구려.” 장로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세 노인이었는데, 앞의 이는 서리 같은 자태에 풍채가 빼어나고, 둘째는 푸른 귀밑머리가 늘어져 있으며, 셋째는 속이 비고 검푸른 빛깔이었다. 저마다 얼굴과 옷차림이 모두 달랐으나, 다들 삼장에게 예를 갖추었다. 장로가 답례하며 말했다. “제자에게 무슨 덕행이 있다고 감히 여러 선옹께서 아껴 주시나이까?” 십팔공이 웃으며 말했다. “예로부터 성승께서 도가 있으시다 들었사옵고 오래 기다렸거늘, 오늘 다행히 뵙게 되었나이다. 아낌없이 좋은 말씀을 내리시어 편히 앉아 회포를 푸신다면 참된 선기의 정통을 보여 주시리이다.” 삼장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감히 선옹들의 존호를 여쭙겠나이다.” 십팔공이 말했다. “서리 자태는 호가 고직공이요, 푸른 귀밑머리는 호가 능공자이며, 속 빈 이는 호가 불운수이고, 늙은 이 몸은 호를 경절이라 하느니라.” 삼장이 말했다. “네 분 선옹의 존수는 얼마나 되시나이까?” 고직공이 말했다. “내 나이 천 년을 지나왔으니, 하늘을 버티고 잎 무성하여 사시절이 봄이로다. 향기로운 가지 울창하기가 용과 뱀의 형상이요, 부서진 그림자 겹겹이 서리와 눈의 몸이로다. 어려서부터 굳세어 늙음을 견디고, 이제껏 정직하여 진리 닦기를 즐겼네. 까마귀 깃들고 봉황 머무는 범상치 않은 무리요, 띄엄띄엄 빽빽하여 속세의 티끌과는 멀구나.” 능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나이 천 년이라 풍상을 업신여기고, 높은 줄기와 신령한 가지에 힘이 절로 굳세도다. 밤이 고요하면 소리 있어 빗방울 떨어지는 듯하고, 가을 갠 날 그늘 그림자는 구름 펼친 듯하구나. 뿌리를 얽어 이미 장생의 비결을 얻었거니와, 목숨을 받음에 더욱 불로의 방술이 마땅하도다. 학을 머물게 하고 용으로 화하는 범속한 무리가 아니니, 창창하고 상쾌하기가 선향에 가깝구나.” 불운수가 웃으며 말했다. “추위 속에 천 년을 헛되이 보냈거니와, 늙은 경치는 세속에 얽매이지 않아 맑고 그윽하구나. 시끄러운 티끌에 섞이지 않아 끝내 담담하며, 서리와 눈을 겪어 스스로 풍류가 있도다. 일곱 현인을 벗 삼아 함께 도를 논하고, 여섯 일사를 붕우로 삼아 함께 노래를 주고받네. 옥을 부딪고 쇠를 두드림이 자잘하지 않으니, 천성의 정취가 신선의 유희와 같구나.” 경절 십팔공이 웃으며 말했다. “내 또한 천 년이 남짓 되었거니와, 푸르고 늠름하게 곧고 빼어남이 언제나 그대로이로다. 가련하구나, 비와 이슬이 기른 힘이여, 하늘과 땅의 조화로운 기틀을 빌렸구나. 만 골짜기 바람과 연기 오직 나만이 성하고, 사시절의 소탈함은 나의 성긺을 양보하누나. 푸른 그림자 덮개를 펼쳐 신선 손님을 머물게 하고, 바둑 두고 거문고 타며 도서를 강론하노라.” 삼장이 사례하며 말했다. “네 분 선옹께서는 모두 장수를 누리시거니와, 경절옹은 또 천 년이 넘으셨나이다. 높은 연세에 도를 얻으시고 풍채가 맑고 기이하시니, 혹시 한나라 때의 사호가 아니시온지요?” 네 노인이 말했다. “과찬의 말씀이옵니다! 과찬이옵니다! 저희는 사호가 아니오며, 깊은 산의 사조이옵니다. 감히 여쭙건대 성승의 묘령은 얼마이시니이까?” 삼장이 두 손을 모으고 몸을 굽혀 답했다. “사십 년 전 모태에서 나왔사온데 태어나기 전부터 목숨이 재앙을 만났나이다. 목숨을 건져 물에 떨어져 물결 따라 굴렀거니와 금산사에서 만나 본래 뼈를 건졌나이다. 성을 기르고 경전을 보며 게으름이 없사옵고, 정성 다해 부처님께 절하며 어찌 잠시나마 미루었으리이까. 이제 황제의 분부를 받들어 서쪽으로 가는 길에, 선옹들의 아끼심을 만나 뵈었나이다.” 네 노인이 모두 칭송하며 말했다. “성승께서는 모태에서 나오신 이래로 곧 불법을 좇으셨으니, 과연 어려서부터 수행하신, 참으로 중정하고 도 있는 상승이시로소이다. 저희가 다행히 존안을 뵈었사오니 감히 큰 가르침을 청하옵나니, 선법을 한두 마디 가르쳐 주시면 평생의 소원을 위로하리이다.” 장로가 그 말을 듣고 개연히 두려움 없이 곧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선이란 고요함이요, 법이란 건너게 함이니라. 고요함 속의 건넴은 깨달음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깨달음이란 마음을 씻고 생각을 털어내어, 속됨을 벗고 티끌을 떠남이니라. 무릇 사람의 몸 얻기 어렵고 중토에서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을 만나기 어려우니, 이 세 가지를 갖추었다면 행운이 이보다 클 수 없느니라. 지극한 덕과 묘한 도는 아득하고 허무하며 묘하거니와, 육근과 육식을 마침내 쓸어 낼 수 있느니라. 보리는 죽지도 나지도 않으며 남음도 모자람도 없어, 공과 색을 아우르고 성인과 범부를 함께 보내느니라. 참됨을 찾아 원시의 집게와 망치를 밝혔거니와, 실제를 깨달아 모니의 수단을 얻었노라. 형상 없는 경지를 펼쳐 보이고 열반을 짓밟아 부수느니라. 모름지기 깨달음 속의 깨달음을 깨닫고 앎 속의 앎을 알아, 한 점 신령한 빛을 온전히 지켜야 하느니라. 사나운 불길을 놓아 사바세계를 비추면, 법계가 세로 가로로 홀로 드러나느니라. 지극히 그윽하고 미묘한 곳을 더욱 굳게 지키나니, 현관의 입으로 말하는 것을 누가 건네주리오. 나는 본래 원래 닦아 온 대각의 선이니, 인연 있고 뜻 있는 이라야 비로소 깨달음을 적어 두느니라.” 네 노인이 귀를 기울여 받아들인 뒤 한없이 기뻐하며, 하나하나 머리를 조아려 귀의하고 몸을 굽혀 절하며 사례하여 말했다. “성승께서는 선기의 깨달음 근본이시로소이다!” 불운수가 말했다. “선이 비록 고요하고 법이 비록 건네게 하나, 모름지기 성품이 안정되고 마음이 정성스러워야 하나니, 그렇지 않으면 대각의 참된 신선이 되더라도 마침내 무생의 도에만 머무르느니라. 저희의 현묘함은 또 크게 다르외다.” 삼장이 말했다. “도는 매우 다른 것이라, 체와 용이 하나로 합치거늘 어찌 다르다 하시나이까?” 불운수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태어나면서부터 굳건하니, 체와 용이 그대들과는 다르외다. 하늘과 땅의 감응으로 몸을 얻고, 비와 이슬의 은혜로 빛깔을 길렀노라. 풍상을 비웃으며 업신여기고, 세월을 깎아 넘기느니라. 잎 하나 시들지 않고, 천 가지에 절개를 지키노라. 이런 말이 허허로운 경지를 두드리지 못한다면, 그대는 범어만 붙들고 있구려. 도라는 것은 본래 중국에 자리하는데, 도리어 서방을 찾아 증명하려 하니 짚신만 헛되이 닳거늘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는구나. 돌사자에서 심장을 도려내고, 들여우의 침을 골수에 가득 부어 넣었구나. 근본을 잊고 참선하며, 망령되이 불과를 구하니, 모두 내 형극령의 칡덩굴 수수께끼 같고, 덩굴이 얽힌 횡설수설이로다. 이런 군자를 어찌 이끌어 주리오? 이런 규모에 어찌 인가하리오? 모름지기 앞에 나타난 본모습을 살펴야 하거니와 고요함 속에 절로 생애가 있느니라. 밑 빠진 대바구니로 물을 긷고, 뿌리 없는 철나무에 꽃이 피누나. 영보봉 머리에 발을 단단히 붙이고, 돌아와 아름다운 모임에서 용화를 만나리라.”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사례하니, 십팔공이 손으로 부축하고 고직공이 몸을 일으켜 세웠으며, 능공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불운수의 말은 분명히 새어 나왔구려. 성승이시여, 일어나시옵소서, 다 믿지는 마옵소서. 저희가 이 밝은 달빛을 타고 본래 수행을 강론하려 모인 것이 아니오니, 그저 시를 읊으며 소요하고 가슴을 활짝 펴 봅시다.” 불운수가 웃으며 돌집을 가리켜 말했다. “시를 읊으려거든 작은 암자에 들어가 차나 한잔 하심이 어떠하오니이까?” 장로가 참으로 몸을 일으켜 돌집 앞으로 나아가 바라보니, 문 위에 큰 글자 세 자가 있었으니 “목선암”이었다. 그리하여 함께 들어가 다시 자리를 정하였는데, 홀연히 적신귀사가 복령고 한 접시를 받쳐 들고 향기로운 탕 다섯 잔을 올렸다. 네 노인이 당승께 먼저 드시기를 청하거늘, 삼장이 놀라고 의심하여 감히 바로 먹지 못하였다. 네 노인이 일제히 즐겨 먹거늘, 삼장도 그제야 두 조각을 먹고 저마다 향탕을 마시고 거두어 가게 하였다. 삼장이 마음을 두고 몰래 살펴보니, 그곳이 영롱하게 빛나 달빛 아래와 같았다. “물은 돌 가에서 스스로 흘러나오고, 향기는 꽃 속에서부터 날아오누나. 자리에 가득한 맑고 허허로운 아취, 티끌은 털끝만큼도 없구나.” 그 장로는 이 선경을 보고 뜻을 이룬 듯 여겨 마음이 즐겁고 가슴이 트여 몹시 기뻐하며, 참지 못하고 한 구절을 읊었다. “선심은 달과 같아 아득히 티끌이 없구나.” 경절 노인이 웃으며 곧 이어 붙였다. “시흥은 하늘처럼 푸르고 새롭구나.” 고직공이 말했다. “좋은 구절을 함부로 비단을 뭉치듯 지었구려.” 능공자가 말했다. “아름다운 글은 점 하나 찍지 않고 기이한 보배를 뱉었구나.” 불운수가 말했다. “육조의 번화함을 씻어 버리니, 사시를 다시 가려 아송을 나누었구나.” 삼장이 말했다. “제자가 한때 입을 잘못 놀려 몇 자 떠들었으니, 참으로 이른바 반문롱부로소이다. 방금 여러 신선의 말씀을 들으니 맑고 표일하여 참으로 시옹이시옵니다.” 경절 노인이 말했다. “성승이시여, 한가로운 이야기는 그만두시옵소서. 출가인은 처음과 끝을 온전히 하느니라. 이미 첫 구절이 있거늘 어찌 맺는 구절이 없사오리이까? 부디 마무리하옵소서.” 삼장이 말했다. “제자는 못 하옵나니 십팔공께서 맺어 한 편을 이루심이 묘하리이다.” 경절이 말했다. “그대 마음도 좋구려! 그대가 낸 구절을 어찌 결실을 맺지 않으려 하시오? 좋은 구슬을 아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라.” 삼장이 하는 수 없이 뒤의 두 구절을 이어 말했다. “베개에 반쯤 기대니 솔바람에 차는 아직 덜 익었거니와, 시 읊는 회포가 소탈하여 가슴 가득 봄이로다.” 십팔공이 말했다. “시 읊는 회포가 소탈하여 가슴 가득 봄이라니, 좋구나!” 고직공이 말했다. “경절이여, 그대는 시의 맛을 깊이 알아 줄곧 음미하거니와, 어찌 한 편을 다시 짓지 않으시오?” 십팔공도 개연히 사양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침자로 시작하리라. 봄에는 영화롭지 않고 겨울에도 시들지 않으니, 구름 오고 안개 가도 다만 없는 듯하구나.” 능공자가 말했다. “나 또한 앞을 본떠 침자 두 구절을 짓노라. 바람 없어도 살랑이는 그늘 그림자요, 손님 있어 기뻐하며 아끼는 복수의 그림이로다.” 불운수도 침자로 말했다. “그림은 서산의 굳센 절개 노인 같고, 맑기는 남국의 마음 없는 사내 같구나.” 고직공도 침자로 말했다. “사내는 옆잎 덕분에 대들보라 일컬어지고, 누대는 가로 뻗은 가지로 감찰 까마귀의 자리가 되누나.” 장로가 듣고 감탄을 그치지 못하며 말했다. “참으로 양춘백설이로구려, 호연한 기운이 하늘을 찌르누나! 제자가 불초하오나 감히 두 구절을 다시 지어 보리이다.” 고직공이 말했다. “성승께서는 도 있는 선비요 크게 기르신 분이시니, 다시 연구를 주고받으실 것 없사옵고 한 편 전체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러면 저희도 힘겹게나마 화답하리이다.” 삼장이 못 이기는 체하며 웃으며 율시 한 수를 읊었다. “지팡이와 석장 짚고 서쪽으로 와 법왕께 절하였으니, 묘한 경전을 구하여 멀리 전하고자 하나이다. 금빛 불로초 세 번 피어나 시단에 상서롭고, 보배 나무에 천 송이 꽃이 연꽃술처럼 향기롭구나. 백 척 장대 끝에서도 한 걸음 나아가야 하거니와, 시방세계에 행장을 세우리이다. 옥 같은 코끼리의 장엄한 몸을 닦아 이루니, 극락 문 앞이 곧 도량이로다.” 네 노인이 다 듣고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십팔공이 말했다. “늙은 이 몸이 무능하오나 분수를 넘어 힘껏 한 수를 화답하리이다.” 시에 이르기를, “곧은 절개 홀로 높아 목왕을 비웃거니와, 신령한 늙은 참오동도 내 이름의 드날림만 못하구나. 산이 텅 비어 백 장의 용과 뱀 그림자요, 샘은 천 년을 스며 호박의 향기를 내누나. 하늘과 땅과 더불어 기개를 살리거니와, 비바람으로 말미암아 행장을 기꺼이 감추누나. 쇠하고 늙어 신선의 뼈 없음을 부끄러워하노니, 다만 복령고나 있어 장수의 자리를 맺을 뿐이로다.” 고직공이 말했다. “이 시는 첫 구절이 호탕하고 늠름하며 이어진 구절에 힘이 있으나 맺는 구절이 스스로 겸양하기 지나치시오. 부럽구려! 부럽구려! 늙은 이 몸도 한 수를 화답하리이다.” 시에 이르기를, “서리 자태는 늘 새의 왕을 머물게 하거니와, 사절당 앞에서 큰 그릇이 드날리누나. 이슬 무거우니 구슬 갓끈이 푸른 덮개에 덮이고, 바람 가벼우니 돌 틈에서 찬 향기 부서지누나. 긴 복도에 밤이 고요하니 읊는 소리 가늘고, 옛 전각에 가을 그늘이 옅은 그림자를 감추누나. 원일에 봄을 맞아 수를 올렸거니와 늙어서는 산마루에 기대어 오만을 부리누나.” 능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시여! 좋은 시여! 참으로 달의 옆구리요 하늘의 마음이로구나. 늙은 이 몸이 어찌 화답하리오마는 헛되이 보낼 수 없으니 또한 몇 마디 늘어놓아야 하리라.” 시에 이르기를, “대들보감은 제왕에게 가깝고 태청궁 밖에서 소문이 드날리누나. 갠 난간에는 푸른 기운이 오는 듯하고, 어두운 벽에서는 푸른 향기가 스미누나. 늠름한 절개가 천고에 빼어나고, 깊은 뿌리 얽혀 구천에 감추였구나. 구름을 넘는 기세가 파사한 그림자를 덮거니와 뭇 꽃의 화려한 자리에는 없누나.” 불운수가 말했다. “세 분의 시는 고아하고 맑고 담박하여, 바로 비단 주머니를 활짝 푸신 것이로소이다. 내 몸에 힘이 없고 내 뱃속에 재주가 없사오나, 세 분의 가르침을 얻어 막힌 생각이 단박에 트였나이다. 하는 수 없이 투박한 몇 구절을 지으리니 비웃지 마옵소서.” 시에 이르기를, “기욱의 동산에서 성왕을 즐겁게 하였거니와, 위천의 천 이랑에서 마음대로 나누며 드날리누나. 푸른 대나무는 상아의 눈물에 물들지 않고, 무늬 있는 대껍질은 한나라 역사에 향기를 전할 만하구나. 서리 맞은 잎은 예로부터 빛깔이 변하지 않거니와, 연기 낀 가지가 무슨 빛을 감추리오. 자유가 세상을 떠난 뒤로 지음이 드물어졌으니 한묵의 자리에 이름을 남기누나.” 삼장이 말했다. “여러 신선 노옹의 시는 참으로 봉황을 토하고 구슬을 뿜는 듯하오니, 유하라 해도 찬양하지 못하리이다. 두터우신 사랑과 높으신 정에 감격이 극진하옵니다. 다만 밤이 이미 깊었사온데, 어린 제자 세 놈이 어디서 저를 기다릴지 알 수 없나이다. 제자는 오래 머물 수 없사오니 감히 물러가 그들을 찾아보려 하옵니다. 하늘 같은 지극하신 사랑이시거니와 부디 돌아갈 길을 가리켜 주옵소서.” 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성승이시여, 염려 마옵소서. 저희 또한 천 년에 한 번 만날 인연이옵니다. 게다가 하늘이 맑고 상쾌하여 밤이 깊어도 달이 밝아 낮 같사오니 조금 더 편히 앉아 계시옵소서. 날이 밝거든 저희가 고개를 넘어 멀리까지 배웅하리이다. 높으신 제자들을 틀림없이 만나 뵈시리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돌집 밖에 푸른 옷 입은 여자 아이 둘이 붉은 사 등롱 한 쌍을 메고 서 있고, 뒤로 선녀 하나를 이끌고 있었다. 그 선녀는 살구꽃 한 가지를 집어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문 안으로 들어와 인사하였다. 그 선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러하였다. 푸른 자태에 비취로 단장하였고, 붉은 얼굴은 연지를 이기누나. 별 같은 눈동자에 빛이 어리고, 나방 눈썹이 곱고 가지런하구나. 아래에 오색 매화 수놓은 연분홍 치마를 걸치고 위에 연기 속 불꽃 같은 비갑 저고리를 입었구나. 굽은 신발은 봉황 부리처럼 휘었고 비단 버선에 수놓은 무늬 찬란하구나. 요염하고 아리땁기가 천태산 선녀 같거니와, 그때의 곱던 달희에도 지지 않누나. 네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행선은 어디서 오셨소?” 그 여자가 여러 사람에게 만복을 올리며 말했다. “이곳에 귀한 손님이 계셔 시를 주고받으신다 들었사옵기에, 찾아뵈러 왔사오니 감히 한번 뵙고자 하옵니다.” 십팔공이 당승을 가리키며 말했다. “귀한 손님이 여기 계시거늘 구태여 찾아 뵙기를 청할 것 있겠소!” 삼장이 몸을 굽히고는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 여자가 외쳤다. “어서 차를 올려라.” 또 노란 옷 입은 여자 아이 둘이 붉은 칠을 한 쟁반을 받쳐 들고 왔는데, 쟁반 안에 곱고 작은 자기 찻잔 여섯 개가 있고 잔 안에 몇 가지 진귀한 과일이 담겼으며 숟가락이 가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백철에 황동을 박은 찻주전자를 들고 왔는데, 주전자 속 찻물이 코를 찌를 듯 향기로웠다. 차를 따르자 그 여자가 파릇한 손가락을 살짝 드러내며 자기 잔을 받쳐 들고 먼저 삼장에게 올리고 다음으로 네 노인에게 올린 뒤, 그 한 잔을 스스로 들어 함께 곁들였다. 능공자가 말했다. “행선은 어찌 앉지 않으시오?” 그 여자가 그제야 가서 앉았다. 차를 마치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선옹들께서 오늘 밤 즐거운 자리를 여셨다 하오니, 좋은 구절을 한두 수 가르쳐 주심이 어떠하오니이까?” 불운수가 말했다. “저희 것은 모두 비속한 말들이오나, 오직 성승의 것만이 참으로 성당의 작품이라 가상하고 사모할 만하외다.” 그 여자가 말했다.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신다면 한번 보여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네 노인이 곧 장로의 앞 시와 뒤 시, 그리고 선법의 논을 모두 외워 들려주었다. 그 여자가 얼굴 가득 봄바람을 띠고 여러 사람을 향해 말했다. “첩신은 재주가 없사오매 추한 것을 드러내서는 아니 되려니와, 이 좋은 구절을 들으니 헛되이 할 수 없사옵니다. 힘겁게나마 뒤의 시에 화답하는 율시 한 수를 올리리니 어떠하오니이까?” 그리고 맑은 소리로 읊었다. “위로 덮어 이름을 남기니 한나라 무제왕이요, 주나라 때 공자께서 단을 세우셨구나. 동선은 나를 아껴 숲을 이루게 하였거니와 손초는 한식의 향기를 가련히 여겼누나. 비에 젖은 붉은 자태는 고우면서도 연하고, 연기에 쪄든 푸른 빛은 드러났다가 도로 감추누나. 너무 익어 새콤한 맛이 있으니 떨어지는 해마다 보리 타작하는 마당을 짝하누나.” 네 노인이 그 시를 듣고 저마다 축하하며 모두 말했다. “맑고 아아하여 티끌을 벗었거니와, 구절 속에 봄기운을 머금었구려. 좋구나, 비에 젖은 붉은 자태 고우면서도 연하다니, 비에 젖은 붉은 자태 고우면서도 연하다니!” 그 여자가 웃으며 조용히 답했다. “황공하옵니다! 황공하옵니다! 방금 성승의 시를 들으니 참으로 비단 같은 마음에 수놓은 입이시옵니다. 구슬과 옥을 아끼지 않으신다면 한 수를 가르쳐 주시겠나이까?” 당승은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 여자는 점차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 슬금슬금 다가와 자리 곁에 바짝 붙어 앉더니, 낮은 목소리로 살며시 불렀다. “귀한 손님이시여, 이 좋은 밤에 놀지 않고 어찌하시려 하시나이까? 인생의 세월이 얼마나 되겠나이까?” 십팔공이 말했다. “행선이 우러러 사모하는 정이 가득하거늘, 성승께서 어찌 굽어 받아들이실 마음이 없으시리이까? 아니쓰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취미를 모르시는 것이외다.” 고직공이 말했다. “성승께서는 도 있고 이름 있는 선비시니 결코 구차하게 행동하지 않으시리이다. 이런 거동은 저희가 죄를 짓는 일이외다. 남의 이름을 더럽히고 남의 덕을 무너뜨림은 멀리 내다보는 이의 일이 아니니라. 행선에게 뜻이 있다거든 불운수와 십팔공에게 중매를 맡기고, 나와 능공자가 혼사를 보증하여 이 인연을 맺게 하면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곧 낯빛이 변하여 벌떡 일어나 외쳤다. “너희는 모두 한 무리의 사악한 것들이로구나! 이리하여 나를 꾀다니! 애당초 갈고 닦는 말로 현묘한 것을 논하고 도를 이야기할 것이지, 어찌 미인계를 써서 가난한 중을 속여 해치려 하느냐! 이게 무슨 도리냐!” 네 노인이 삼장이 노하는 것을 보고는 하나하나 손가락을 물며 겁을 내어 다시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 적신귀사가 우레처럼 성을 내며 말했다. “이 중놈이 은혜를 모르기는! 내 이 누님이 어디가 나쁘단 말이냐? 인물이 준수하고 아아하며 옥 같은 바탕에 고운 자태거니와, 바느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시재주 하나만으로도 너에게 어울리거늘, 네가 어찌 이리 사양하느냐! 기회를 놓지 마라! 고직공의 말이 매우 옳거니와 구차하게 합할 수 없다거든 내가 다시 주혼을 서 주리라.” 삼장이 크게 놀라 낯빛을 잃었으나, 그들이 어떻게 떠들어 대든 끝내 따르지 않았다. 귀사가 또 말했다. “이 중놈아, 우리가 좋은 말로 타이르는데 네가 듣지 않거니와, 우리가 촌스럽고 거친 성질을 부린다면 너를 도로 들어다 버려 중도 못 되게 하고 아내도 얻지 못하게 하리니, 한평생 사람 노릇을 헛되이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장로는 마음이 쇠와 돌 같아 굳게 버티며 따르지 않았다. 속으로 “내 제자들이 어디서 나를 찾고 있을꼬!” 하고 한마디 하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렀다. 그 여자가 웃는 낯으로 곁에 바짝 다가와 푸른 소매 속에서 꿀색 비단 손수건을 꺼내 그의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귀한 손님이시여, 번민하지 마옵소서. 제가 그대와 옥에 기대고 향기에 몸을 붙여 함께 놀러 가리이다.” 장로가 “쯧!” 하고 큰 소리로 호통치며 벌떡 일어나 달아나려 하였으나, 그 무리에게 붙들려 끌리고 당겨지며 날이 밝도록 실랑이를 벌였다. 홀연히 저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스승님! 어느 곳에서 말씀하고 계시나이까?” 알고 보니 손대성과 저팔계, 사오정이 말을 끌고 짐을 메고, 밤새도록 발을 멈추지 않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동서로 찾아다니다가, 마침 반쯤 구름을 타고 반쯤 안개에 싸여 팔백 리 형극령 서쪽 아래를 지나고 있었는데 당승의 호통 소리를 듣고 곧 한마디 외친 것이었다. 그 장로가 문 밖으로 몸을 빼내며 외쳤다. “오공아, 내가 여기 있노라! 어서 와서 나를 구하거라! 어서 와서 나를 구하거라!” 그 네 노인과 귀사, 그 여자와 여자 아이들은 휙 하는 사이에 사라졌다. 잠시 뒤 저팔계와 사오정이 모두 곁에 이르러 말했다. “스승님, 어찌하여 이곳에 오시게 되었나이까?” 삼장이 행자를 붙잡으며 말했다. “제자들아, 너희가 많이 고생하였구나! 어젯밤에 본 그 노인이 토지신이 공양을 올린다 하였는데, 네가 호통치며 때리려 하자 그가 나를 이곳으로 들어 올렸느니라. 그는 내 손을 잡아 부축하며 문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또 세 노인을 보았는데 나를 만나러 와서는 모두 나를 성승이라 부르며 하나같이 말씨가 맑고 아아하고 시 읊기를 매우 잘하였느니라. 내가 그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사귀다 밤중이 된 듯하였는데, 또 미녀 하나가 등불을 들고 이리로 와 나를 만나며 시 한 수를 읊고는 나를 귀한 손님이라 불렀느니라. 내 용모를 보고 배필을 구하려 하기에 나는 그제야 깨달았느니라. 내 막 따르지 않으려 할 때 그들이 중매 서는 자는 중매 서고 보증하는 자는 보증하며 주혼하는 자는 주혼하였거늘, 내가 굳게 맹세하며 허락하지 않고 막 몸을 빼어 달아나려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데 뜻밖에도 너희가 온 것이니라. 하나는 날이 밝아서요 둘은 너를 두려워한 탓이라, 아직도 나를 잡아당기고 끌던 그들이 홀연히 사라졌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를 논하였거늘, 그 이름을 묻지 않았단 말이오?” 삼장이 말했다. “내가 그들의 호를 물었노라. 그 노인은 십팔공이라 불리며 호가 경절이요, 둘째는 고직공, 셋째는 능공자, 넷째는 불운수라 하였고, 그 여자는 사람들이 행선이라 불렀느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그것들이 어디에 있단 말이오? 방금 어느 쪽으로 갔소?” 삼장이 말했다. “간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시를 논하던 곳은 이리서 멀지 않으니라.” 세 사람이 스승과 함께 살펴보니, 돌벼랑 하나가 보였고 벼랑 위에 “목선암” 세 글자가 있었다. 삼장이 말했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니라.” 행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알고 보니 큰 향나무 한 그루, 늙은 측백나무 한 그루, 늙은 소나무 한 그루, 늙은 대나무 한 그루였고, 대나무 뒤에는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다시 벼랑 저쪽을 보니, 늙은 살구나무 한 그루와 납매 두 그루, 단목서 두 그루가 더 있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요괴를 보았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못 보았소.” 행자가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바로 이 몇 그루 나무가 여기서 정령이 된 것이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은 어찌 정령이 된 것이 나무인 줄 아시오?” 행자가 말했다. “십팔공은 소나무요, 고직공은 측백나무며, 능공자는 향나무요, 불운수는 대나무이며, 적신귀는 단풍나무고, 행선은 곧 살구나무며, 여자 아이들은 곧 단목서와 납매니라.”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갈퀴를 마구 휘두르고 긴 주둥이로 서너 번 파헤치고 후벼 파서, 납매 두 그루와 단목서, 늙은 살구나무, 단풍나무를 모조리 땅에 쓰러뜨렸더니 과연 그 뿌리 아래에서 모두 피가 뚝뚝 흘렀다. 삼장이 앞으로 나서며 붙잡고 말했다. “오능아, 그들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비록 도를 이루었으나 나를 해치지 않았거늘, 우리 길이나 찾아 가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그들을 아끼지 마옵소서. 뒷날 큰 요괴가 되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적지 않을까 두렵나이다.” 그 멍청한 놈이 아예 갈퀴를 마구 휘둘러 소나무와 측백나무, 향나무와 대나무를 모조리 찍어 넘어뜨리고 나서야, 스승을 말에 오르시게 하고 큰길을 따라 함께 서쪽으로 갔다. 결국 앞으로 가는 길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5회 요사가설소뇌음(妖邪假設小雷音) · 사중개조대액난(四衆皆遭大厄難) 이 회의 인과는 사람에게 권하노니, 선을 행하고 부디 악을 짓지 말지어다. 한 생각이 일어나매 신명이 비추어 살피시나니, 그 짓는 바를 그에게 맡겨 두느니라. 어리석고 둔하며 영특하고 재주 있음을 그대 어찌 배우려 하는고, 두 가지가 도리어 마음 없는 약이로다. 살아 있을 때 도가 있으니 바르게 마땅히 닦을 것이요, 헛되이 떠돌지 말지어다. 근원을 알아 본 껍질을 벗고, 장생을 찾으려거든 모름지기 붙잡을지어다. 늘 밝게 보아 감로를 음미하고, 삼관을 꿰뚫어 흑해를 메우면 능히 선한 자로 하여금 난학을 타게 하리라. 그 즈음에야 가련히 여겨 더욱 자비를 베풀어 극락에 오르리라. 이야기는 이러하다. 당삼장이 일념으로 정성스러운지라, 천신이 보호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초목의 영령까지도 와서 인도하여 보내 주어, 멋진 모임을 하룻밤 함께하고서 가시덤불의 찌름에서 벗어나니 다시는 덩굴이 얽어매지 않았다. 사부가 서쪽으로 나아간 지 여러 때가 되매 또다시 겨울 끝자락을 만났으니, 바로 저 삼춘의 나날이었다. 만물의 빛이 서로 사귀어 태평하고 북두의 자루가 인방으로 돌아왔다. 풀싹은 온 땅에 푸르고 버들눈은 언덕 가득 푸르렀다. 한 고개 복숭아꽃은 붉은 비단을 물들인 듯하고, 반 개울의 안개 낀 물은 푸른 비단처럼 밝게 빛났다. 몇 번이나 비바람이 지나갔는지 모르나 마음의 정취는 끝이 없었다. 햇볕이 꽃술을 비추니 곱고, 제비가 이끼 꽃술을 물고 가니 가벼웠다. 산빛은 왕유의 그림처럼 짙고 옅으며, 새소리는 계자의 혀처럼 종횡으로 들렸다. 꽃다움이 수를 펼쳐 놓았으나 감상할 이 없고, 나비는 춤추고 벌은 노래하여 도리어 정이 있었다. 사부도 또한 꽃을 찾고 푸름을 밟으며 말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가고 있었다. 바로 가는 사이에 문득 한 높은 산이 보이는데, 멀리 바라보니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삼장이 채찍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오공아, 저 산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가 없구나. 마치 푸른 하늘에 닿아서 푸른 은하를 꿰뚫을 듯하구나.” 행자가 말했다. “옛 시에 이르기를 하늘 위에만 있고 산과 나란할 것은 없다 하였으니, 산이 몹시 높아 더불어 견줄 것이 없다는 말일 뿐이거늘, 어찌 하늘에 닿는 이치가 있으리오!” 팔계가 말했다. “하늘에 닿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곤륜산을 천주라 일컫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예로부터 하늘은 서북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 곤륜산이 서북 건방의 자리에 있으므로 하늘을 이고 허공을 막는 뜻이 있어 마침내 천주라 이름하게 된 것이니라.” 사승이 웃으며 말했다. “큰 형님, 그런 좋은 말씀을 그에게는 하지 마옵소서. 그가 듣고 가서 또 남을 항복시킬 터이니, 우리 우선 길이나 가시지요. 저 산에 올라가 보면 높고 낮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멍청이는 사승을 쫓아 서로 장난하고 겨루는데, 늙은 스승의 말은 날듯 빨라 잠깐에 산벼랑 가에 이르렀다. 한 걸음씩 위로 올라가니 그 산은 이러하였다. 숲에는 바람이 쌩쌩 불고 골짜기엔 물이 졸졸 흘렀다. 까마귀와 참새도 넘지 못하니 신선도 어렵다 하였다. 천 길 벼랑과 만 골짜기, 억 굽이와 백 고비였다. 먼지가 뭉게뭉게 일어 사람이 이르지 못하고, 괴석이 빽빽하여 보아도 싫지 않았다. 어떤 데는 구름이 물처럼 넘실거리고, 나무 있는 곳마다 새소리가 잦았다. 사슴은 영지를 물고 가고 원숭이는 복숭아를 따 왔다. 여우와 오소리가 벼랑 위를 오가며 뛰고, 노루와 고라니가 고갯마루에서 드나들며 장난쳤다. 문득 호랑이의 포효가 들려 사람의 담력을 놀라게 하고, 얼룩 표범과 푸른 승냥이가 길을 막았다. 당삼장이 한번 보고 마음이 놀랐으나, 손행자는 신통이 광대한지라 그대 보라, 그가 금고봉 하나를 들어 포효 한 소리에 승냥이와 벌레, 호랑이와 표범을 놀라 물리치고 길을 열어 스승을 인도하여 곧장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고갯마루를 지나 서쪽 평평한 곳으로 내려가니, 문득 상서로운 빛이 자욱하고 채색 안개가 분분한 가운데 누각과 전각이 한 채 있어, 은은하게 종과 경쇠 소리가 멀리 울려 퍼졌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들아, 저것이 어떤 곳인지 보아라.” 행자가 고개를 들어 손으로 눈가리개를 만들어 자세히 바라보니, 그쪽이야말로 좋은 곳이었다! 참으로 이러하였다. 보배 누각과 보좌, 이름 높은 상등 사찰이었다. 골짜기가 비어 땅의 피리 소리 잦고, 경계가 고요하여 하늘의 향기가 흩어졌다. 푸른 소나무는 비를 띠고 높은 누각을 가리며, 푸른 대나무는 구름을 머금고 강당을 지켰다. 노을 빛 아득하여 용궁이 드러나고, 채색이 나부껴 모래 세계가 길게 펼쳐졌다. 붉은 난간과 옥 문, 그림 들보와 조각한 서까래였다. 경을 논하니 향기가 자리에 가득하고, 말씀을 적으니 달이 창에 걸렸다. 새는 붉은 나무 속에서 울고 학은 샘 곁에서 물을 마셨다. 사방에 꽃이 피어 기원이 빼어나고, 세 면의 문이 열려 사위의 빛이 났다. 누각은 우뚝 솟아 문이 봉우리를 마주하고, 종과 경쇠 소리 한가로이 운이 길게 울렸다. 창을 여니 바람이 가늘고, 발을 걷으니 연기가 아득하였다. 중은 정이 산만하고 담담하며, 속된 뜻이 없어 온화하고 창성하였다. 붉은 티끌이 이르지 못하는 참된 선경이요, 정토의 절이 좋은 도량이었다. 행자가 보고 나서 돌아와 말했다. “스승님, 그곳이 절이기는 하옵니다만, 선한 빛과 상서로운 기운 속에 또 흉한 기운이 섞여 있으니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나이다. 이 경치를 보니 뇌음사 같기도 하옵니다만, 가는 길이 엇갈려 있나이다. 우리는 그쪽에 이르거든 결코 함부로 들어가지 말아야 하옵니다. 자칫 독수를 당할까 두렵나이다.” 당승이 말했다. “뇌음의 경치가 있다면 혹 영산이 아니겠느냐? 내 정성을 그르치게 하지 말고 내 온 뜻을 지체시키지 말라.” 행자가 말했다.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영산으로 가는 길도 내 여러 번 지나보았거늘, 어찌 이 길이겠나이까!” 팔계가 말했다. “영산이 아니라 한들 반드시 착한 이가 살고 있을 터이니 들어가 봅시다.” 사승이 말했다. “의심이 많으실 것 없나이다. 이 길이 그 문 앞을 지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그런지 아닌지 한번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행자가 말했다. “오정의 말이 옳도다. 그 말대로 하자꾸나.” 그 장로는 말에 채찍을 더하여 산문 앞에 이르러, 뇌음사라는 세 큰 글자를 보고는 놀란 나머지 말에서 굴러 떨어져 땅에 엎드린 채 입으로 욕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놈아! 나를 죽일 셈이냐! 뇌음사가 있는데도 오히려 나를 속이느냐!” 행자가 웃음을 띠며 말했다. “스승님, 노하지 마옵소서. 다시 한번 보시옵소서. 산문 위에는 네 글자인데 어찌 세 글자만 읽어 내고는 도리어 저를 탓하시나이까?” 장로가 벌벌 떨며 일어나 다시 보니, 참으로 네 글자였으니 바로 소뇌음사였다. 삼장이 말했다. “소뇌음사인들 틀림없이 부처님이 계실 것이니라. 경에 삼천의 모든 부처가 있다 하였으니 한곳에만 계시지 않는 모양이로다. 관음은 남해에, 보현은 아미산에, 문수는 오대산에 계신 것처럼, 이곳은 어느 부처님의 도량인지 알 수가 없구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부처가 있고 경이 있으면 방소가 없어도 보배는 없다 하였으니, 우리 들어가 보자꾸나.” 행자가 말했다. “들어가면 아니 되옵니다. 이곳은 길함이 적고 흉함이 많사오니, 만일 화근이 생기더라도 저를 탓하지 마옵소서.” 삼장이 말했다. “부처가 없다 한들 반드시 부처의 상은 있을 것이니라. 이 제자의 소원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께 절을 올리는 것이거늘, 어찌 너를 탓하리오.” 곧 팔계에게 명하여 가사를 꺼내고 승모를 바꾸어 쓰게 하여 의관을 갖추고는,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산문 안에서 누군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당승아, 네가 동토에서 와서 내 부처님을 뵙겠다면서 어찌 아직도 이다지 태만하느냐?” 삼장이 그 말을 듣고 곧 절을 올렸고, 팔계도 머리를 조아리고 사승도 무릎을 꿇었으나, 오직 대성만은 말을 끌고 행장을 수습하며 뒤에 있었다. 막 이층 문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여래의 대전이 보였다. 전각 문 밖 보배 대 아래에는 오백 나한과 삼천 게제, 사금강, 팔보살, 비구니, 우바새와 무수한 성승과 도자가 늘어서 있어, 참으로 향꽃이 고우며 상서로운 기운이 분분하였다. 놀란 장로와 팔계와 사승이 한 걸음에 한 번 절씩 하며 영대 사이로 올라가 절하는데, 행자는 공공연히 절하지 않았다. 또 연화대 위에서 엄한 소리로 크게 외치는 말이 들렸다. “저 손오공은 여래를 보고도 어찌 절하지 않느냐?” 행자가 자세히 살펴보고는 가짜임을 알아차렸는지, 말과 행낭을 내던지고 봉을 손에 쥐고는 꾸짖어 외쳤다. “이 악축의 무리들아, 몹시도 담이 크구나! 어찌 부처의 이름을 가짜로 의지하여 여래의 맑은 덕을 더럽히느냐! 달아나지 마라!” 두 손으로 봉을 휘둘러 앞으로 나아가 곧 내리치려 하였다. 그때 반 허공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나며 한 벌의 금뇨가 내려져 행자의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금뇨 속에 합쳐 넣고 말았다. 놀란 저팔계와 사화상이 급히 갈고리와 지팡이를 휘둘러 보았으나, 아라한과 게제, 성승과 도자들이 한꺼번에 앞으로 몰려와 에워쌌다. 그 둘은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모조리 잡히고, 삼장도 붙들려 함께 모두 밧줄로 얽히고 노끈으로 묶여 단단히 결박당하였다. 알고 보니 저 연화대 위에서 부처로 가장했던 자는 요왕이요, 아라한들과 게제들은 모두 조그만 잡귀들이었다. 이에 부처의 체통과 모습을 거두고는 여전히 요괴의 몸을 드러내어, 세 사람을 뒤로 들어다 감추고 행자를 금뇨 속에 합쳐 둔 채 영영 열지 않고 보배 대 위에 걸어 두어, 사흘 낮과 밤을 한정하여 고름과 피로 녹여 버리려 하였다. 녹인 뒤에야 쇠우리에 그 셋을 쪄서 먹으려 하였다. 바로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 이러하였다. 푸른 눈의 원숭이는 참과 거짓을 알아보고, 선기는 모양을 보고 금빛 몸에 절을 올렸도다. 황파는 눈이 어두워 함께 예를 올리고, 목모는 마음이 어리석어 함께 담론하였도다. 사특한 요괴는 강포함을 부려 본성을 속이고, 마두는 악을 품고 하늘 사람을 속였도다. 참으로 도는 작고 마두는 커서, 잘못되어 곁문으로 들었으니 몸을 헛되이 버리는구나. 그 무렵 요괴 무리는 당승 세 사람을 뒤에 감추고, 말도 뒤에 매어 두고, 그의 가사와 승모는 행장 짐 속에 넣어 두어 또한 감추어 버렸으니, 한편에서 엄히 단속하는 일은 이쯤에서 말하지 않기로 하자. 한편 행자가 금뇨 속에 갇혀 있으니 캄캄하여 온몸에 땀이 흐를 만큼 더웠다. 왼쪽으로 밀치고 오른쪽으로 들이받아도 나갈 수가 없었고, 급한 나머지 쇠봉을 마구 두드려 보았으나 털끝만큼도 움직일 낌새가 없었다. 마음속에 꾀가 다하였으므로 몸을 바깥으로 한번 뻗어 그 금뇨를 깨뜨리려 하여, 이에 주문 하나를 외우니 곧 천백 장이나 커졌다. 그러나 그 금뇨도 그의 몸을 따라 함께 자라나 조금의 틈새나 빛도 없었다. 또 주문을 외워 몸을 아래로 줄이니 겨자씨만큼 작아졌으나, 그 뇨 또한 몸을 따라 작아져 조금의 구멍조차 없었다. 또 쇠봉에 선기 한 입을 불어넣고 “변해라!” 하고 외치니 곧 깃대처럼 변하여 금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러고는 뒤통수의 긴 털 두 가닥을 뽑아 “변해라!” 하고 외치니 곧 매화 머리 다섯 갈래 송곳으로 변하였다. 봉 아래에 바짝 대고 천백 번을 드릴하였으나 쌩쌩거리는 소리만 날 뿐 조금도 뚫리지 않았다. 행자가 다급해져서 주문을 외우고 “옴란정법계, 건원형리정” 하는 진언을 외우니, 오방게제와 육정육갑, 그리고 열여덟 분의 호교가람이 금뇨 밖으로 불려 나와 말했다. “대성이시여, 저희는 모두 스승님을 보호하여 요마가 상해하지 못하게 하고 있사온데, 또 저희를 불러 무슨 일을 시키시려 하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내 그 스승은 내 권고를 듣지 않았으니 죽임을 당해도 아깝지 않으려니와, 다만 너희가 어서 법술을 써서 이 뇨발을 들어 나를 나오게 하여 준 뒤에 처리하겠다. 이 속은 빛이 통하지 않고 온몸이 몹시 답답하니, 이러다가는 답답해서 내가 죽지 않겠느냐?” 여러 신이 참으로 뇨를 들어 보았으나 마치 원래 그렇게 붙어 있던 것 같아서 털끝만큼도 열릴 리가 없었다. 금두게제가 말했다. “대성이시여, 이 뇨발이 어떤 보배인지 알 수 없사오니, 위와 아래가 이어져 한 덩어리를 이루었나이다. 소신은 힘이 얕아 들어 올릴 수가 없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신통을 부렸는지 모르겠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제가 그 말을 듣고 곧 육정신에게는 당승을 보호하게 하고 육갑신에게는 금뇨를 지키게 하며, 여러 가람에게는 앞뒤를 살피게 한 뒤, 그는 상서로운 빛을 타고 잠깐 사이에 남천문 안으로 들어가,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영소보전 아래로 올라가 옥제를 뵙고 엎드려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신은 오방게제의 사자로소이다. 지금 제천대성이 당승을 보호하여 경을 취하러 가다가 길에서 한 산을 만났사온데, 이름이 소뇌음사이옵니다. 당승이 영산으로 잘못 알고 들어가 절을 올렸사온데, 알고 보니 요마가 꾸며 놓은 것이어서 그 사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대성을 한 벌의 금뇨 속에 합쳐 넣었사오니, 진퇴가 막혀 바야흐로 죽게 되었나이다. 이에 특별히 아뢰러 왔나이다.” 그러자 곧 전지가 내렸다. “이십팔수 성신을 보내어 속히 가서 액을 풀고 요괴를 항복받게 하라.” 그 성수들은 조금도 더딜 수 없어 게제와 함께 천문을 나와 산문 안에 이르렀다. 이경 무렵이었다. 크고 작은 요정들은 당승을 잡은 까닭에 늙은 요괴에게 모두 후하게 상을 받고는 제각기 자러 갔다. 여러 성수는 더욱 소란을 피우지 않고 모두 뇨발 밖으로 가서 아뢰었다. “대성이시여, 저희는 옥제의 분부로 온 이십팔수이옵니다. 대성을 구하러 이르렀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이르기를, “병기를 움직여 깨뜨려라. 그러면 내가 곧 나가겠다!” 하였다. 여러 성수가 말했다. “감히 때릴 수 없사옵니다. 이 물건은 통쇠로 된 보배라서 때리면 반드시 소리가 날 것이요, 소리가 나면 요마를 놀라게 하여 도리어 구해 내기 어려워지나이다. 저희가 병기로 그것을 쑤실 터이니, 대성께서는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빛이 보이는 데가 있거든 곧 빠져나가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옳거든.” 그대 보라, 그들은 창 쓰는 이가 창을 쓰고 검 쓰는 이가 검을 쓰며, 칼 쓰는 이가 칼을 쓰고 도끼 쓰는 이가 도끼를 썼다. 메는 이가 메고, 들어 올리는 이가 들며, 젖히는 이가 젖히고, 쑤시는 이가 쑤셔서 삼경 무렵까지 다루어 보았으나 묵묵히 움직이지 않고, 마치 통째로 주조해 낸 것만 같았다. 행자는 그 안에서 동쪽을 기웃거리고 서쪽을 바라보며 기어 가고 굴러 가 보았으나, 조금의 빛도 볼 수 없었다. 항금룡이 말했다. “대성이시여, 우선 조급해하지 마시옵소서. 이 보배는 반드시 마음대로 되는 물건이라 틀림없이 변화할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대성께서는 그 안에서 맞붙은 틈을 손으로 더듬고 계시옵소서. 소신이 뿔 끝을 밀어 넣을 터이니 대성께서는 몸을 변화하시어 느슨한 곳을 따라 빠져나가시옵소서.” 행자가 그 말대로 참으로 안에서 마구 더듬었다. 이 성수가 몸을 작게 하니 그 뿔 끝이 바늘 끝처럼 되어, 발이 맞붙은 틈을 따라 안으로 밀어 들어갔다. 가련하게도 천 근의 힘을 다 써서야 겨우 안쪽까지 뚫렸다. 그러고는 몸과 뿔에 법상을 부어 “자라라! 자라라! 자라라!” 하고 외치니, 뿔이 사발만한 굵기로 자라났다. 그런데 그 발의 입은 쇠를 부어 만든 것 같지 않고 살갗이 자라난 것 같아서, 항금룡의 뿔을 따라 단단히 물고 있어 사방에 털끝만큼의 틈도 없었다. 행자가 그의 뿔을 더듬으며 외쳐 말했다. “일이 되지 않는다! 위아래에 털끝만큼의 느슨한 데도 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그대 조금 아픔을 참고 나를 데리고 나가게.” 훌륭한 대성이로다. 곧 금고봉을 강철 송곳 하나로 변하게 하여 그 뿔 끝에 구멍 하나를 뚫고, 몸을 겨자씨만큼 작게 하여 그 송곳 구멍 속으로 파고들어 웅크리고 앉아서는 밖으로 이끌려 나갈 때만을 기다리며 외쳤다. “뿔을 빼내라! 뿔을 빼내라!” 이 성수는 또 얼마나 힘을 들였는지 모르나 간신히 그것을 뽑아 내고는, 힘이 다하고 힘줄이 늘어져 땅바닥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행자가 그 뿔 끝의 송곳 구멍으로 기어 나와 본래의 몸을 드러내고는, 쇠봉을 빼어 뇨발을 향해 쨍 하고 한 번 내리치니 구리 산이 무너져 내리는 듯 금뇨가 쩍 하고 갈라졌다. 애석하게도 불문의 그릇을 천백 조각의 흩어진 쇳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놀란 이십팔수는 기겁을 하고 오방게제는 머리카락이 곤두섰으며, 크고 작은 요괴 무리도 모두 꿈에서 깨어났다. 늙은 요왕은 잠자리에서 황급하여 벌떡 일어나 옷을 걸치고 북을 치며 요괴 무리를 모아 점고하고, 제각기 병기를 들었다. 이때 하늘은 막 밝아 오려는 참이었는데, 한꺼번에 몰려가 보배 대 아래에 이르러 보니 손행자와 여러 성수가 깨진 금뇨 밖에 둘러서 있었다.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고는 곧 명령하였다. “어린 놈들아! 앞문을 단단히 닫아 사람을 한 명도 내보내지 마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곧 성수들을 이끌고 구름을 타고 구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 요왕은 부서진 쇳조각을 거두고 요졸들을 벌여 세워 산문 밖에 진을 쳤다. 요왕이 한을 품었으나 어찌할 수 없어 갑옷을 걸치고 짧고 부드러운 늑대 이빨 봉 하나를 들어 진영에서 나와 크게 외쳤다. “손행자야! 사내대장부라면 멀리 달아나 높이 날아가지 말고, 어서 앞으로 나와 나와 세 합을 겨루어 보자!” 행자가 참지 못하고 곧 성수들을 이끌고 구름머리를 내려 그 요괴가 어떤 모습인지 바라보니, 그대 보라, 이러하였다. 머리는 헝클어져 납작하고 얇은 금테를 둘렀고, 눈은 번쩍이며 누런 눈썹 두 도랑이 치솟았다. 매달린 쓸개 같은 코에 콧구멩이는 벌름하고, 네모진 입에 이는 날카로웠다. 매듭으로 서로 이은 갑옷 한 벌을 입고, 생사로 땋아 술을 달은 띠 한 줄을 둘렀다. 발에는 검은 가죽신 한 켤레를 신고, 손에는 늑대 이빨 봉 하나를 쥐었다. 이 형상은 짐승 같으나 짐승만 못하고, 얼굴은 사람이 아니면서도 사람과 같았다. 행자가 쇠봉을 내밀며 꾸짖어 말했다. “이놈이 무슨 괴물이기에 감히 부처를 가장하고 산머리를 차지하여 헛되이 소뇌음사를 꾸며 놓았느냐!” 그 요왕이 말했다. “이 원숭이 놈은 내 성명을 알지 못하여 감히 선산을 범하러 왔도다. 이곳은 소서천이라 일컫나니, 내가 수행하여 정과를 얻자 하늘이 나에게 보배 누각과 진귀한 건물을 내려 주었느니라. 내 이름은 황미노불이거늘, 이곳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다만 나를 황미대왕, 황미할아범이라 부르느니라. 예로부터 네가 서쪽으로 가는 길에 수단이 좀 있다는 것을 오래 알고 있었으므로, 이에 모습을 꾸며 재주를 드러내어 네 스승을 꾀어 들였나니, 너와 내기 한 판을 하려 하노라. 만일 나와 겨루어 이기면 너희 사부를 살려 주고 너희가 정과를 이루게 하리라. 만일 이기지 못하면 너희를 때려 죽이고 내가 여래를 뵈러 가 경을 받아 중화에서 과위를 바루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요정아, 입을 크게 놀리지 말라. 내기를 하려거든 어서 올라와 내 봉을 받으라!” 그 요왕이 흐뭇해하며 늑대 이빨 봉으로 받아 막았다. 이 한바탕의 멋진 싸움이로다. 두 개의 봉이 같지 않으니, 말하자면 각각의 형상이 있도다. 하나는 짧고 부드러운 불가의 병기요, 하나는 단단하여 바다 깊은 곳에 감추인 보배로다. 모두 마음대로 변화하는 공력이 있어 이번에 서로 만나 강함을 다투는구나. 짧고 부드러운 늑대 이빨 봉은 비단으로 꾸몄고, 단단한 금고봉은 교룡의 형상이로다. 굵어져도 가늘어져도 참으로 자랑할 만하고, 짧아져도 길어져도 매우 알맞구나. 원숭이와 마귀가 함께 싸움을 하니 이번 판은 참으로 속임이 없도다. 길들인 원숭이는 가르침을 받들어 심원이 되고, 무례한 요괴는 하늘을 속여 거짓 모양을 부리는구나. 성내고 미워하며 서로 정이 없고, 사납고 흉악하여 모두 제 격식이 있구나. 저 하나는 머리 위로 손을 들어도 놓지 않고, 이 하나는 얼굴을 겨누어 막으면서도 양보하기 어렵도다. 구름을 뿜어 해를 가리니 어둑하고, 안개를 토하여 봉우리를 가리우는구나. 봉이 오고 봉이 가며 서로 맞서니, 죽음을 잊고 삶을 잊음은 삼장 때문이로다. 그대 보라, 둘이 쉰 합을 싸우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 산문 앞에서는 징을 울리고 북을 치며 요정 무리가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흔들었다. 이쪽에는 이십팔수 천병과 오방게제의 여러 성인이 제각기 병기를 어깨에 메고 한바탕 고함을 지르며 그 마두를 가운데 에워쌌다. 놀란 산문 밖의 요괴 무리는 북을 치기 어렵고, 벌벌 떨며 손에 힘이 풀려 징도 치지 못하였다. 늙은 요마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한 손으로 늑대 이빨 봉을 휘둘러 여러 병사를 막아 내며, 다른 한 손으로 허리에서 낡은 흰 베 주머니 인종대를 풀어 위로 한 번 던졌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손대성과 이십팔수, 오방게제가 한 주머니에 모조리 담겨 버렸다.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는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니, 여러 작은 요괴가 하나하나 기뻐하며 승리를 얻어 돌아왔다. 늙은 요괴는 어린 놈들에게 삼오십 줄의 삼끈을 가져오게 하고는 주머니를 풀어 하나를 꺼내 하나를 묶었는데, 하나하나 모두 뼈가 연하고 힘줄이 저리며 살갗이 쭈그러졌다. 묶어서는 뒤로 들어다 던졌으니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모두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요왕이 또 명하여 잔치를 베풀고 흐뭇하게 마시게 하니, 아침부터 저녁이 되어서야 파하여 제각기 잘 곳으로 돌아갔으니 이쯤에서 말하지 않기로 하자. 한편 손대성과 여러 신이 묶인 채 밤중에 이르러, 문득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여 들어 보니 그것은 바로 삼장의 목소리였는데, 울며 말했다. “오공아! 내 스스로 한하노니 그때 네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재앙과 위태로움을 만났구나. 금뇨 속에서 너를 다치게 하고 삼끈이 나를 묶었으니 그 누가 알아주리오. 네 사람이 재앙을 만남은 명이 고단한 탓이요, 삼천의 공행이 모조리 무너지는구나. 무슨 수로 이 준재의 난을 풀어서 서쪽 길을 탄탄히 가고 돌아오랴!”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가련하게 여겨 말했다. “그 스승은 비록 내 말을 듣지 않아 이제 이 독을 만났으나, 환난 속에서도 오히려 내 생각을 하시는구나. 이 밤이 고요하고 요괴가 잠들어 방비하는 이가 없는 틈을 타서 어서 여러 사람을 풀어 주고 살아 나가자.” 훌륭한 대성이로다. 둔신법을 써서 몸을 작게 하여 밧줄을 벗어 버리고는 당승의 곁으로 다가가 “스승님” 하고 불렀다. 장로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외쳐 말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행자가 가만히 지난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여 주니, 장로가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제자야! 어서 나를 구하여 다오! 뒤의 일은 모두 네 뜻대로 하마, 다시는 고집부리지 않겠다!” 행자가 비로소 손을 놀려 먼저 스승을 풀고 팔계와 사승을 놓아 주었으며, 또 이십팔수와 오방게제를 하나하나 풀어 주고, 말도 끌어다가 어서 먼저 걸어 나가게 하였다. 막 문을 나서려니 행장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또 찾으러 갔다. 항금룡이 말했다. “그대는 물건을 중히 여기고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구나! 네 스승을 구했으면 그만이거늘 또 무슨 행장을 찾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람이 긴요한 것은 물론이나 가사와 바리때가 더욱 긴요하니라. 보따리 속에는 통관문첩과 금란가사와 자금발우가 있으니 모두 불문의 지극한 보배거늘 어찌 가져가지 않으리오!”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대는 가서 찾으시오. 우리 먼저 길에서 기다리겠나이다.” 그대 보라, 여러 성수가 당승을 에워싸고 섭법을 부려 함께 신통을 다하여, 한바탕 바람으로 담장 밖을 벗어나 큰길로 달려 산비탈을 내려가서는 평평한 곳에 모여 기다렸다. 대략 삼경 무렵이었다. 손대성이 발을 가볍게 옮기며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겹 한 겹 문들이 몹시 굳게 닫혀 있었다. 그가 높은 누각으로 기어 올라가 보니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 내려가려 하였으나 창살이 울릴까 겁이 나서 감히 밀어 열지 못하였다. 주문을 외우고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선서 한 마리가 되었으니 속된 이름으로 박쥐였다. 그대 그가 어떤 모습인가 하면 이러하였다. 머리가 뾰족함은 쥐와 같고, 눈이 밝음 또한 그러하였다. 날개가 있어 황혼에 나오고, 빛이 없어 대낮에 머물렀다. 몸을 숨길 때는 기와 구멍을 꿰고, 먹이를 찾을 때는 모기를 쫓았다. 유난히 밝은 달을 좋아하고, 날아오를 때를 가장 잘 알았다. 그는 기와를 덮지 않은 서까래 밑을 따라 기어 들어가 문을 넘고 집을 지나, 가운데에 이르러 보니 그 제삼층 누각의 창 아래에서 번쩍번쩍하는 한 줄기 털끝 같은 빛이 났다. 등불과 촛불의 빛도 아니요 향불의 빛도 아니며, 날아가는 노을의 빛도 아니요 번갯불의 빛도 아니었다. 그가 반은 날고 반은 뛰며 그 빛 앞으로 다가가 보니, 이는 바로 보따리가 빛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요괴가 당승의 가사를 벗겨 놓고는 접지도 않은 채 마구 구겨서 보따리 속에 처박아 두었던 것이다. 그 가사는 본래 불보라서 그 위에 여의주와 마니주, 붉은 마노와 자줏빛 산호, 사리자와 야명주가 있어 그 빛깔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가 이 가사와 바리때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곧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어 그것을 들어 옮겨 오고는, 짐끈이 비뚤어졌든 바르든 상관하지 않고 어깨에 메고 아래로 곧장 걸어갔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한쪽이 빠져 탁 하고 누각 마루 위에 떨어지며 와르릉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아!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마침 늙은 요괴가 누각 아래에서 자고 있었는데, 그 소리 한 번에 놀라 깨어 벌떡 일어나 마구 외쳤다. “사람이다! 사람이 있다!” 크고 작은 요괴들이 모두 일어나 등불을 밝히고 횃불을 들어 한꺼번에 고함을 지르며 앞뒤로 가서 살펴보았다. 어떤 자는 와서 “당승이 달아났나이다!”라고 아뢰었고, 또 어떤 자는 와서 “행자와 여러 사람이 모조리 달아났나이다!”라고 아뢰었다. 늙은 요괴가 급히 호령하여 명하였다. “잡아라! 각 문에서 삼가 조심하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또 그물에 걸려 보따리를 메어 내지 못할까 두려워, 곧 근두를 타고 누각 창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그 요괴가 앞으로도 뒤로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당승 일행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또 하늘이 곧 밝아 오는 것을 보고는 봉을 챙겨 들고 요괴 무리를 거느리고 뒤를 쫓아 나섰는데, 이십팔수와 오방게제 등의 신들이 구름과 안개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산비탈 아래에 진을 치고 주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왕이 크게 한바탕 꾸짖듯 외쳤다. “어디로 가려 하느냐! 내가 왔다!” 각목교가 급히 소리쳐 불렀다. “형제들이여! 괴물이 왔노라!” 항금룡과 여토복, 방일토와 심월호, 미화호와 기수표, 두목해와 우금우, 저토맥과 허일서, 위월연과 실화저, 벽수유와 규목랑, 누금구와 위토체, 묘일계와 필월오, 자화후와 삼수원, 정목안과 귀금양, 유토장과 성일마, 장월록과 익화사, 진수인이 금두게제와 은두게제, 육갑과 육정 등의 신과 호교가람을 거느리고, 저팔계와 사승과 함께하였으되 당삼장은 거느리지 않았고 백룡마는 내버려 둔 채, 제각기 병기를 들고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구름을 타고 내려와 요괴 무리와 맞붙었으니, 하늘의 병사와 땅의 요괴가 서로 뒤엉켜 물러설 줄을 몰랐다. 요왕은 앞장서서 봉을 비껴 들고 달려들었고, 함성이 산을 뒤흔들며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이 요왕이 그것을 보고 껄껄거리며 냉소를 띠고 호각을 한 번 불자, 사오천의 크고 작은 요괴가 하나하나 위세가 강하고 힘이 세어 서쪽 산비탈에서 마구 뒤섞여 싸움이 벌어졌다. 멋진 싸움이로다. 마두가 포악하여 참된 성정을 속이고, 참된 성정이 온유하니 어찌 요마를 당하리오. 온갖 꾀를 써도 고통을 벗기 어렵고, 천 가지 묘한 술수로도 어울릴 수 없구나. 여러 하늘이 와서 옹호하고 뭇 성인이 창과 방패를 도왔다. 정을 두어 목모를 잃게 하고, 뜻을 굳게 하여 황파를 감동시켰구나. 마구 싸우니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들며, 억지로 다투어 그물을 치고 덫을 벌이는구나. 저쪽에서는 깃발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고, 이쪽에서는 북을 치며 징을 울렸다. 창과 칼이 빽빽하여 찬 빛이 넘실거리고, 검과 극이 어지러이 살기가 많았도다. 요졸은 흉하고 또한 용맹하니 신병이 어찌 하리오! 근심의 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고, 참담한 안개가 산하를 덮는구나. 괴로이 끌려다니며 서로 싸우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삼장이 미타불에게 절한 탓이로다. 그 요괴가 더욱 용맹을 더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가 덮쳐 죽였다. 바로 승패가 갈리지 않을 무렵, 문득 행자가 크게 한바탕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왔다!” 팔계가 마주 달려가며 물었다. “행장은 어떻게 되었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 목숨이 간신히 살아났는데 무슨 행장을 말하느냐!” 사승이 보장을 잡고 말했다. “수작은 그만두고 어서 요괴를 치러 가자!” 그 성수와 게제, 정갑 등의 신은 요괴 무리에게 에워싸여 한가운데서 마구 싸우고 있었는데, 늙은 요괴가 봉을 휘둘러 그 세 사람을 치러 왔다. 이 행자와 팔계와 사승이 몽둥이와 지팡이를 내던지고 갈고리를 휘둘러 맞받았다. 참으로 땅이 어둡고 하늘이 캄캄하여 이길 수가 없어, 다만 해가 서쪽 산기슭에 지고 달이 동쪽 바다 봉우리에 떠오르도록 싸웠다. 그 요괴가 날이 저물자 호각을 한 번 불어 요괴 무리에게 제각기 마음을 쓰게 하고는, 그가 보배를 꺼내었다. 손행자가 똑똑히 보니 그 요괴가 인종대를 풀어 손에 쥐었다. 행자가 외쳤다. “큰일이다! 달아나라!” 그는 팔계와 사승, 여러 하늘의 신들을 돌볼 겨를 없이 줄곧 근두를 타고 구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여러 신과 팔계와 사승은 그 뜻을 알지 못한 채 그에게 버림을 받고는 또 모두 그 속에 담겨 버렸으니, 다만 행자만이 빠져나갔다. 그 요왕은 병사를 거두어 절로 돌아가고는 또 명하여 끈을 가져오게 하여 전처럼 묶었다. 당승과 팔계와 사승은 대들보에 매달아 높이 매어 두고, 백마는 뒤에 매어 두며, 여러 신도 모두 묶어서 땅굴 속에다 들여다 놓고 뚜껑을 덮어 잠갔다. 뭇 요괴가 그대로 좇아 하나하나 거두었으니 이쯤에서 말하지 않기로 하자. 한편 행자가 구천으로 뛰어올라 목숨을 보전하고는, 요괴 병사가 깃발을 펴지 않고 되돌아가는 것을 보고 여러 사람이 사로잡혔음을 알았다. 그는 상서로운 빛을 내려 그 동쪽 산꼭대기에 내려앉아, 이를 갈며 괴물을 미워하고 눈물을 떨구며 당승을 그리워하다가,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슬피 탄식하다가 홀연 목이 메어 외쳤다. “스승님이시여! 그대는 어느 세상에서 이 준재의 난을 지어 놓으셨기에, 금생에는 걸음마다 요괴를 만나 이다지도 고초를 벗어나기 어렵단 말씀이십니까!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홀로 한 사람이 오래도록 탄식하다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마음에 물었다. “이 요마는 무슨 주머니인지 어찌 그리도 많은 물건을 담는 것일까? 이제는 천신과 천장 등 많은 사람까지 모두 담아 버렸으니, 내가 하늘에 구원을 청하려 하나 옥제가 괴이하게 여기실까 두렵구나. 내가 기억하기에 북방의 진무가 있으니 호를 탕마천존이라 하는데, 그가 지금 남섬부주 무당산에 있으니 내가 가서 그를 청하여 스승의 이 한 고난을 구해 내게 하리라.” 바로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 이러하였다. 선도를 이루지 못하여 원숭이와 말이 흩어지고, 심신에 주인이 없으니 오행이 마르도다. 결국 이 길이 어찌 될는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6회 제신조독수(諸神遭毒手) · 미륵박요마(彌勒縛妖魔) 이야기는 손오공이 아무 계책도 세울 수 없게 된 데서 이어진다. 그는 상서로운 구름을 일으켜 근두운을 타고 남섬부주의 무당산으로 가 탕마천존께 당삼장과 저팔계와 사오정과 천병들의 재난을 풀어 달라고 청하려 하였다. 공중에서 쉬지 않고 가니 하루도 안 되어 조사의 선경이 보였다. 살며시 구름을 낮추어 살피니 참으로 좋은 곳이었다. 동남을 누르는 큰 진산이요, 하늘 한가운데 솟은 신악이었다. 부용봉은 빼어나고 자개령은 웅장하였다. 아홉 강 물길 너머 형주와 양주가 아득하고, 백월의 산들이 익수와 진수까지 이어졌다. 위에는 태허의 보배 동굴과 주륙의 신령한 대가 있었다. 서른여섯 궁에는 금경쇠가 울리고 수많은 향객이 찾아왔다. 순임금이 순행하고 우임금이 기도했으며 옥간과 금서가 전해졌다. 누각에는 청조가 날고 깃발에는 붉은 자락이 나부꼈다. 땅의 명산은 우주에 웅장하고 하늘의 선경은 허공까지 트였다. 낭매나무에는 꽃이 피고 온 산의 요초는 빛을 펼쳤다. 용은 시내 밑바닥에 잠기고 호랑이는 벼랑 속에 엎드렸다. 그윽한 소리는 하소연 같고 길든 사슴은 사람 곁을 다녔다. 흰 학은 구름과 함께 늙은 회나무에 깃들고 청란과 단봉은 해를 향해 울었다. 옥허 사상의 참된 신선 땅이요, 금궐의 인자함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문이었다. 상제 조사께서는 본디 정락국 왕과 선승황후의 아들이었다. 황후가 꿈에서 햇빛을 삼킨 뒤 깨어나 잉태하여 열네 달 동안 배 속에 품었고, 개황 원년 갑진년 삼월 초하루 오시에 왕궁에서 낳았다. 그 어른은 어려서부터 용맹하였고 자라면서 더욱 신령스러웠다. 왕위를 잇지 않고 오직 수행에 힘썼다. 부모도 뜻을 막기 어려웠으므로 마침내 황궁을 버리고 떠났다. 현묘한 도를 참구하고 선정에 들어 이 산속에서 닦았다. 공덕과 수행이 원만해지자 대낮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옥황은 칙명으로 진무라는 존호를 내렸다. 현허의 기운이 위로 응하고 거북과 뱀이 한 몸으로 형상을 이루었다. 온 하늘과 상하 사방에서 모두 만령의 으뜸이라 일컬었다. 그윽한 곳도 살피지 않음이 없고 드러난 일도 이루지 못함이 없었다. 겁이 끝나고 겁이 시작될 때마다 마귀와 요정을 베어 없앴다. 손오공은 선경의 경치를 감상하며 어느새 첫째 천문과 둘째 천문과 셋째 천문을 지나 태화궁 밖에 이르렀다. 문득 상서로운 빛과 기운 사이로 오백 영관이 빽빽이 옹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영관이 앞으로 나와 맞으며 “오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했다. 손오공이 “나는 제천대성 손오공이오. 사상을 뵈러 왔소.”라고 말했다. 여러 영관이 그 말을 듣고 곧 안으로 알렸다. 조사는 즉시 전각에서 내려와 태화궁에서 그를 맞았다. 손오공이 예를 올리고 “한 가지 일로 수고를 끼쳐 드리고자 하나이다.”라고 아뢰었다. 조사가 “무슨 일이냐?”라고 말했다. 손오공이 아뢰었다. “제가 당승을 보호하여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다가 길에서 큰 재난을 만났나이다. 서우하주에 이르니 소서천이라는 산이 있고, 소뇌음사에는 한 요마가 있었나이다. 제 사부께서 산문으로 들어가 아라한과 게체와 비구와 성승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시고 참부처인 줄 알고 몸을 엎드려 절하자마자 그놈에게 붙잡혀 묶였나이다. 저도 경계를 소홀히 했다가 그자가 금요 한 쌍을 던지는 바람에 그 속에 갇혔는데, 털끝만 한 틈도 없고 아귀가 집게처럼 굳게 맞물렸나이다. 다행히 금두게체가 옥황께 주청하여 칙명으로 이십팔수를 내려 보내 주었으나, 그날 밤 여러 별도 금요를 들추어 열지 못하였나이다. 마침 항금룡이 뿔을 금요 안으로 밀어 넣어 저를 끌어내 주었고, 제가 금요를 깨뜨리자 괴물이 놀라 깨어났나이다. 뒤쫓아 싸우는 동안 그놈이 흰 천으로 된 자루 하나를 다시 펼쳐 저와 이십팔수와 오방게체를 모조리 담아 버리고 또 밧줄로 묶었나이다. 그날 밤 제가 빠져나와 별의 신들과 당승 일행을 구하였나이다. 뒤에 가사와 발우를 찾으려다가 또 그 요괴를 깨웠고 천병들과 함께 맞서 싸웠나이다. 그 괴물이 자루를 다시 꺼내어 다루는 순간 저는 앞서 당한 일을 알고 달아났으나, 나머지 무리는 여전히 그 속에 담기고 말았나이다. 이제 아무 계책도 없어 특별히 사상께 와서 한 번 힘을 보태 주시기를 청하나이다.” 조사가 말했다. “내가 예전에 위엄으로 북방을 누르고 진무의 자리를 맡아 천하의 요사한 무리를 베어 없앤 것은 옥황의 칙지를 받들었기 때문이니라. 뒤에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로 등사와 신귀를 밟았으며, 오뢰신장과 거대한 규룡과 사자와 사나운 짐승과 독룡을 거느리고 동북방의 검은 기운과 요사한 안개를 거두어 항복시켰으니, 그것은 원시천존의 부름을 받들었기 때문이니라. 오늘날에는 무당산에서 고요히 지내고 태화전에서 편안히 쉬는데, 줄곧 바다와 산악이 평안하고 하늘과 땅이 맑고 태평하도다. 내 남섬부주와 북구로주의 땅에서는 요마가 이미 베어지고 사귀가 자취를 감추었느니라. 이제 대성이 내려와 청하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으나, 상계의 뜻이 아직 없으므로 감히 멋대로 군사를 일으킬 수는 없도다. 여러 신을 법지로 보내자니 옥황께 죄를 얻을까 두렵고, 대성의 청을 단호히 물리치자니 인정에 어긋나는구나. 내가 헤아리건대 서쪽 길에 요사한 것이 있더라도 아주 큰 해악을 이루지는 못하리라. 이제 구사이장과 오대신룡을 보내 너를 돕게 하리니, 반드시 요정을 사로잡아 네 사부의 재난을 구하게 하리라.” 손오공은 조사께 절하여 사례한 뒤 구사이장과 오대신룡이 각각 거느린 정예 병사들과 함께 다시 서쪽 땅으로 향하였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소뇌음사에 도착하자 구름을 낮추고 곧장 산문 밖으로 가서 싸움을 청하였다. 말하자면 황미대왕은 여러 요괴를 보각 아래 모아 놓고 “손행자가 이틀 동안 오지 않으니 또 어느 곳으로 원병을 구하러 갔는지 모르겠구나.”라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문을 지키던 졸개 요괴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행자가 용과 뱀과 거북 모습을 한 장수 몇을 이끌고 문밖에서 싸움을 청하나이다!” 요마가 “그 원숭이가 어디에서 용과 뱀과 거북 모습을 한 자들을 얻었느냐? 저런 무리는 어느 곳에서 온 자들이냐?”라고 말했다. 곧 갑옷을 갖추어 입고 산문을 나서서 큰 소리로 “너희는 어느 길의 용신이기에 감히 나의 선경을 침범하느냐?”라고 외쳤다. 오대신룡과 구사이장은 우람한 모습에 정신도 씩씩하여 소리쳤다. “이 몹쓸 요괴야! 우리는 무당산 태화궁 혼원교주 탕마천존 앞의 오대신룡과 구사이장이시다. 이제 제천대성의 청을 받고 우리 천존의 부름을 받들어 이 요정을 잡으러 왔으니, 어서 당승과 천상의 별들을 내보내면 네 목숨만은 살려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이 산의 요괴들은 모조리 몸을 찢어 죽이고, 몇 칸 안 되는 집들은 불살라 재로 만들리라!” 그 요괴는 이 말을 듣자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이 짐승들이 무슨 법력이 있기에 감히 큰소리를 치느냐! 달아나지 마라! 내 방망이를 받아라!”라고 말했다. 다섯 용은 구름을 뒤집고 비를 부렸으며 두 장수는 흙을 날리고 모래를 일으켰다. 저마다 창과 칼과 검과 극을 들고 한꺼번에 덮쳐 들었고 손오공도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뒤를 따랐다. 이 싸움은 참으로 치열하였다. 사나운 마귀는 무예를 펼치고 행자는 원병을 구해 왔다. 사나운 마귀는 보배로운 누각을 제멋대로 차지하고 부처의 모습을 꾸며 무력을 떨쳤으며, 행자는 멀리 보배로운 선경을 찾아가 용신을 빌려 왔다. 거북과 뱀은 물과 불을 내뿜고 요괴는 병장기를 휘둘렀다. 다섯 용은 명을 받들어 서쪽 길로 왔고 행자는 사부가 뒤에 계시므로 끝까지 적을 몰아붙였다. 검과 극의 밝은 빛은 오색 번개처럼 흔들리고 창과 칼의 번뜩임은 무지개처럼 번쩍였다. 이쪽 낭아봉은 굳세면서도 짧고 부드럽게 움직였고, 저쪽 여의봉은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변하였다. 퍽퍽 부딪치는 소리는 폭죽이 터지는 듯하고 쨍쨍 울리는 운치는 쇠를 두드리는 듯하였다. 물과 불이 한꺼번에 몰려가 괴물을 치고, 온갖 병장기가 요정을 빽빽이 둘러쌌다. 죽이라는 함성은 이리와 범을 놀라게 하고 떠들썩한 소리는 귀신과 신령을 뒤흔들었다. 한창 뒤엉켜 싸우며 승부가 나지 않자 요마가 다시 진귀한 보물을 꺼냈다. 손오공이 오대신룡과 두 장수를 거느리고 반 시진 동안 요마와 싸웠을 때 그 요정이 허리에서 자루를 풀어 손에 들었다. 손오공은 그것을 보고 놀라 “여러분, 조심하시오!”라고 외쳤다. 그러나 용신과 구사이장은 무엇을 조심하라는 것인지 몰라 하나같이 병장기를 멈추고 가까이 다가가 막으려 하였다. 요정이 휙 소리를 내며 자루를 위로 내던졌다. 손오공은 오대신룡과 두 장수를 돌볼 겨를도 없이 근두운을 타고 구천으로 뛰어올라 달아났다. 요정은 용신들과 거북과 뱀 장수를 자루 한 번 펼쳐 모조리 담아 버렸다. 승리하여 절로 돌아온 요정은 그들 역시 밧줄로 묶어 지하 감옥에 던지고 뚜껑을 덮어 두었다. 보라, 손오공은 구름을 낮춰 산꼭대기에 비스듬히 기대어 풀이 죽은 채 “이 괴물이 참으로 지독하구나!”라고 한탄하였다. 눈을 감아 잠든 듯한데 누군가 “대성, 자는 체 말고 어서 구원을 청하시오. 사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소!”라고 불렀다. 급히 눈을 뜨고 일어나 보니 일직공조였다. 손오공이 꾸짖었다. “이 하찮은 신아, 어디서 제물이나 탐하느라 점호에도 오지 않더니 오늘은 나를 놀라게 하느냐! 무릎을 내밀어라. 몽둥이 두 대로 답답함을 풀겠다!” 공조가 황급히 예를 올렸다. “대성께서는 인간 세상의 기쁜 신선이신데 무슨 답답함이 있겠나이까! 저희는 보살의 명으로 당승을 남몰래 지키며 토지신들과 잠시도 곁을 떠나지 못했나이다. 그래서 늘 찾아뵙지 못했는데 어찌 도리어 꾸짖으시나이까?” 손오공이 말했다. “네가 보호하고 있었다면 지금 별의 신들과 게체와 가람과 내 사부 일행은 요정에게 어느 곳에 갇혀 무슨 고초를 겪고 있느냐?” 공조가 말했다. “사부와 사제들은 모두 보전 회랑 아래 매달려 있고, 별의 신들은 전부 지하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고 있나이다. 이틀 동안 대성의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방금 요정이 신룡과 거북과 뱀 장수까지 붙잡아 지하 감옥에 넣는 것을 보고서야 대성께서 청해 온 원병인 줄 알았나이다. 그래서 소신이 일부러 대성을 찾아왔나이다. 대성께서는 수고롭고 지쳤다 하여 마다하지 마시고, 부디 다시 급히 구원병을 청하러 가소서.” 손오공은 이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공조를 바라보며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했다. “나는 이제 천궁에 오르기도 부끄럽고 바다의 용궁을 찾아가기도 수치스럽구나! 보살께서 까닭을 물으실까 두렵고 여래의 옥 같은 모습을 뵙기도 걱정스럽다! 방금 붙잡혀 간 이들은 진무 사상께 속한 구사이장과 오대신룡의 성스러운 무리다. 이제 다시는 어디에 가서 구원을 청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어찌하면 좋으냐?” 공조가 웃으며 말했다. “대성께서는 마음을 놓으소서. 소신이 정예 병사를 둔 한 곳을 떠올렸는데, 그들을 청해 오면 틀림없이 요괴를 항복시킬 수 있나이다. 조금 전 대성께서 가신 무당산은 남섬부주의 땅이었나이다. 이 군사도 남섬부주의 우이산 빈성, 곧 지금의 사주에 있나이다. 그곳에는 신통이 광대한 대성국사왕보살이 계시나이다. 그분의 문하에는 소장태자라는 제자와 사대신장이 있는데, 옛날 수모낭랑을 항복시킨 적이 있나이다. 이제 그분께 청하러 가시면 은혜를 베풀어 도우실 것이며 반드시 괴물을 잡고 사부를 구할 수 있나이다.” 손오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너는 우선 내 사부를 보호하여 다치지 않게 하라. 이 손 어르신이 가서 청해 오겠다.” 손오공은 근두운을 일으켜 괴물이 있는 곳을 벗어나 곧장 우이산으로 달려갔다.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벌써 도착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참으로 좋은 곳이었다. 남쪽으로 강나루에 가까이 있고 북쪽으로 회수에 임하였다. 동쪽으로 바닷가 높은 산과 통하고 서쪽으로 봉부에 이어졌다. 산꼭대기에는 높고 웅장한 누관이 있고 산굽이에는 골짜기 샘물이 세차게 솟았다. 험준하고 기이한 바위들이 솟았으며 키 큰 소나무들이 굽이쳐 빼어났다. 온갖 과실은 철을 맞아 새로 익고 천 가지 꽃가지는 햇빛을 맞아 피어났다. 사람들은 개미 떼처럼 많이 오갔고 배들은 기러기 행렬처럼 넓은 물길로 돌아왔다. 위쪽에는 서암관과 동악궁과 오현사와 귀산사가 있어 종소리와 향 연기가 푸른 하늘까지 솟았으며, 또 유리천과 오탑욕과 팔선대와 행화원이 있어 산빛과 나무 빛깔이 빈성에 어리었다. 흰 구름은 가로놓여 건너지 못하고, 그윽한 새는 지쳤어도 다시 우네. 태산과 숭산과 형산과 화산이 빼어나다 말한들, 이곳 선경은 봉래와 영주와 같구나. 손오공은 구경하며 곧 회수를 건너 빈성 안으로 들어갔다. 대성선사 산문 밖에 이르자 웅장한 전각과 화려한 긴 회랑이 보였고 우뚝 솟은 보탑도 있었다. 참으로 이러하였다. 구름을 뚫고 은하에 기대어 천 길 높이 솟았고, 우러러보니 금빛 병이 푸른 허공을 꿰뚫었네. 위아래의 광채는 우주를 한데 응결하고, 동서로 그림자 없이 창과 난간에 비치네. 바람이 보탁을 흔드니 하늘 음악이 들리고, 햇빛은 얼음빛 규룡을 비추어 범궁과 마주하네. 날아와 깃든 신령한 새는 때때로 속삭이고, 멀리 바라본 회수는 아득하여 끝이 없네. 손오공은 구경하며 계속 걸어 이중문 아래에 이르렀다. 국사왕보살은 이미 알고 소장태자와 문밖에서 맞았다. 예를 나눈 뒤 손오공이 아뢰었다. “당승을 보호해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다가 소뇌음사에서 부처를 사칭한 황미 요괴를 만났나이다. 사부께서 진위를 모르고 절하다 그놈에게 붙잡혔나이다. 그자는 금요로 저를 가두었으나 다행히 별의 신들이 내려와 구했나이다. 제가 금요를 깨고 싸우자 그자는 천 자루로 천신과 게체와 가람과 사부와 사제들을 모두 담았나이다. 무당산 현천상제께 구원을 청해 오대신룡과 구사이장을 보내셨으나 그들마저 자루에 담겼나이다. 제자는 의지할 데 없어 보살께 간청하러 왔나이다. 수모를 거두신 신통과 백성을 구하시는 묘한 힘으로 제자와 함께 사부를 구해 주소서! 경을 얻어 돌아오면 중국에 영원히 전하여 불문의 지혜와 반야바라밀을 드날리겠나이다.” 국사왕보살이 말했다. “오늘 네가 하는 일은 참으로 우리 불교를 흥성하게 하는 것이니 내가 마땅히 몸소 가야 하느니라. 하지만 때마침 초여름이라 회수가 불어나는 철이고, 얼마 전에 수원대성을 붙잡았는데 그놈은 물만 만나면 곧 흉포해지느니라. 내가 떠난 틈을 타 그자가 못된 짓을 벌이면 다스릴 신이 없을까 염려되는구나. 이제 내 어린 제자에게 사대신장을 거느리고 너와 함께 가서 힘을 보태게 할 터이니, 마귀를 단련하여 항복시키도록 하라.” 손오공은 사례하고 사대신장과 소장태자와 함께 다시 구름을 타고 소서천으로 돌아가 곧장 소뇌음사에 이르렀다. 소장태자는 저백창 한 자루를 들었고, 사대신장은 곤오검 네 자루를 휘두르며 손오공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 싸움을 걸었다. 졸개 요괴가 다시 달려가 알리자 요왕은 여러 요괴를 거느리고 함성을 지르며 나와 “원숭이야! 이번에는 또 누구를 청해 왔느냐?”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장태자가 사대신장에게 앞으로 나서게 하고 소리쳤다. “이 몹쓸 요정아! 네 얼굴에는 살도 없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요왕이 “어느 곳의 어린 장수가 감히 와서 그자를 돕느냐?”라고 말했다. 태자가 “나는 사주 대성국사왕보살의 제자이며 사대신장을 거느리고 명을 받들어 너를 잡으러 왔다!”라고 말했다. 요왕이 웃으며 “이 아이야, 네게 무슨 무예가 있기에 감히 이곳에 와서 경박하게 구느냐?”라고 말했다. 태자가 말했다. “내 무예를 알고 싶다면 들어 보아라. 조상의 터전은 서쪽 땅 유사국이고, 내 부왕은 본디 유사국왕이셨다. 어려서부터 온몸에 병과 고통이 많았으니, 운명에 화개라는 흉성이 끼어 방해했도다. 스승께서 멀리서 장생의 비결을 흠모하시다가, 인연이 있어 약 처방을 버리고 서로 만났도다. 단사 반 알로 병을 몰아내어 낫자, 왕이 되지 않고 수행을 따르기를 원했도다. 불로의 법을 배워 하늘처럼 오래 살고, 얼굴은 영원히 소년의 모습이 되었도다. 일찍이 용화회에도 달려갔고, 구름을 타고 불당에도 이르렀도다. 안개와 바람을 잡아 물의 요괴를 거두고, 용을 사로잡고 범을 굴복시켜 산마루를 눌렀도다. 백성을 어루만지며 높은 불탑을 세우고, 바다를 잠재워 사리의 빛을 깊이 밝혔도다. 저백창의 날은 요괴를 묶을 수 있고, 엷은 검은빛 옷소매로 마귀를 항복시키도다. 이제 고요하고 즐거운 빈성 안에서, 온 땅에 소장이라는 이름을 드날리도다!” 요왕은 이 말을 듣고 희미하게 냉소하며 말했다. “태자야, 너는 나라를 버리고 그 국사왕보살을 따르면서 무슨 장생불로의 술법을 닦았느냐? 회수의 물 괴물을 잡는 데나 쓸 만할 뿐인데, 어찌 손행자의 거짓되고 허황한 말을 믿고 천산만수를 건너 이곳까지 목숨을 바치러 왔느냐! 네가 과연 오래 살며 늙지 않을 수 있는지 보자꾸나!” 소장태자는 이 말을 듣자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창을 휘감아 정면으로 찔렀다. 사대신장도 한꺼번에 에워싸고 공격했으며, 손오공도 여의봉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 후려쳤다. 뛰어난 요정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짧고 유연한 낭아봉을 돌려 왼쪽을 막고 오른쪽을 받으며 곧게 찌르고 가로로 돌진하였다. 이 싸움은 참으로 치열하였다. 어린 태자는 저백창을 쓰고 네 자루 곤오검은 더욱 강하구나. 손오공도 여의봉을 휘두르며 한마음으로 요왕을 에워싸고 치는구나. 요왕은 과연 신통이 커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좌우 공격을 막아 내네. 낭아봉은 불문의 보배라 검으로 베고 창으로 찔러도 상하지 않네. 사나운 바람이 우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흉악한 기운이 아득하게 뒤섞이는 모습을 보네. 저쪽은 뜻이 있어 온갖 재주를 부리고, 이쪽은 오로지 부처께 귀의하여 경을 얻는 일에 마음을 두네. 몇 차례 말을 달리듯 오가고 여러 번 사납게 날뛰는구나. 구름과 안개를 뿜어 해와 달과 별빛을 가리고, 분노와 성냄을 떨치니 어느 쪽도 온순하지 않네. 오랫동안 삼승의 위없는 법을 닦았으나, 이제 온갖 기예로 힘겹게 서로 맞서게 되었구나. 무리가 오랫동안 다투어 싸웠으나 승부가 갈리지 않자 그 요정이 또 자루를 풀었다. 손오공이 다시 “여러분, 조심하시오!”라고 외쳤다. 태자와 여러 장수는 조심하라는 말의 뜻을 몰랐다. 괴물이 휙 소리와 함께 사대신장과 태자를 자루 한 번에 또 담아 버렸다. 다만 손오공은 미리 알아차리고 달아났다. 요왕은 승리하여 절로 돌아가 그들마저 밧줄로 묶게 한 뒤 지하 감옥으로 보내 굳게 봉하고 단단히 잠갔다. 그 손오공은 근두운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괴물이 병사를 거두고 문을 닫는 것을 보고서야 상서로운 구름을 낮춰 서쪽 산비탈에 섰다. 그는 슬피 울며 서글프게 바라보고 말했다. “사부님! 내가 가르침을 받들어 선림에 들어간 뒤, 보살께서 깊은 재난에서 구해 주신 은혜를 입었나이다. 사부를 모시고 서쪽으로 와 대도를 구하며, 서로 힘을 합쳐 뇌음사로 향했나이다. 좁은 길이나마 평탄하리라고만 여겼거늘, 어찌 높고 험한 곳에서 괴물이 침범할 줄 알았겠나이까. 백 가지 계책과 천 가지 방법으로도 사부를 구하기 어렵고, 동쪽에 청하고 서쪽에 고해도 애쓴 마음만 헛되었나이다!” 손오공이 한창 처량한 마음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서남쪽에서 오색 구름 한 송이가 땅으로 내려오고 산꼭대기 가득 화려한 큰비가 흩날렸다. 누군가 “오공아, 나를 알아보겠느냐?”라고 불렀다. 손오공이 급히 앞으로 달려가 보니 그 사람의 모습은 이러하였다. 큰 귀에 넓은 턱과 반듯한 얼굴이요, 어깨는 솟고 배는 불러 몸집이 뚱뚱하네. 가슴 가득 봄기운이 기쁨으로 넘치고, 두 눈의 가을 물결에는 빛이 넘실거리네. 활짝 열린 소매는 나부껴 복된 기운이 많고, 짚신은 시원스러워 굳센 정신이 드러나네. 극락 도량의 첫째 존자이시니, 나무 미륵 웃는 화상이로다. 손오공은 그를 보자 얼른 엎드려 절하며 “동래불조께서는 어디로 가시나이까? 제자가 미처 피하여 예를 갖추지 못했으니 죄가 만 번이나 되나이다!”라고 아뢰었다. 불조가 “내가 이번에 온 것은 오로지 이 소뇌음사의 요괴 때문이니라.”라고 말했다. 손오공이 아뢰었다. “어르신의 크나큰 덕과 은혜를 입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나이다. 감히 여쭙건대 그 요괴는 어느 곳의 괴물이며 어디에서 온 요마이옵니까? 그 자루가 무슨 보배인지 알 수 없으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어르신께서 가르쳐 주소서.” 불조가 말했다. “그자는 내 앞에서 경쇠를 맡아 치던 황미동아이니라. 삼월 삼일에 내가 원시회에 참석하러 가면서 그자를 궁에 남겨 지키게 했는데, 그자가 내 보배 몇 가지를 훔쳐 와서 거짓 부처 노릇을 하며 요정이 되었느니라. 그 자루는 나의 후천대이며 세속에서는 인종대라고 부르느니라. 그 낭아봉은 경쇠를 두드리는 망치니라.” 손오공은 이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웃는 화상도 참 딱하구려! 당신이 이 동자를 놓쳐 그자가 부처를 사칭하여 이 손 어르신을 해치게 하였으니, 집안 단속을 엄하게 하지 못한 허물이 없다고 할 수 없소!” 미륵불이 말했다. “첫째로 내가 조심하지 않아 사람을 잃어버린 탓이고, 둘째로 너희 사제들의 마장이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니라. 그러므로 온갖 신령이 하계에 내려와 마땅히 재난을 겪게 된 것이니라. 이제 내가 너와 함께 그자를 거두어 가겠노라.” 손오공이 말했다. “이 요정은 신통이 광대한데 불조께서는 병기 하나도 지니지 않으셨으니 무엇으로 그자를 거두시겠나이까?” 미륵불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 산비탈 아래 초막 하나를 세우고 과일과 참외를 심은 밭 하나를 마련하겠느니라. 너는 가서 그자에게 싸움을 걸어라. 싸울 때에는 이기지 말고 반드시 져야 하며, 그자를 이 과전까지 꾀어 오너라. 내 밭의 다른 참외는 모두 설익었지만 너는 크고 잘 익은 참외 하나로 변하여라. 그자가 오면 반드시 참외를 먹으려 할 것이니, 내가 너를 참외와 함께 그자에게 먹이겠느니라. 그 뱃속에 들어간 뒤에는 네가 마음대로 그자를 주무르거라. 그때 내가 그자의 자루를 빼앗아 그자를 담아 돌아가겠노라.” 손오공이 말했다. “그 계책은 비록 절묘하지만 불조께서는 제가 변한 익은 참외를 어떻게 알아보시겠나이까? 또 그자가 어찌 곧장 저를 따라 이곳까지 오겠나이까?” 미륵불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세상을 다스리는 존자이며 혜안이 밝은데 어찌 너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네가 무슨 물건으로 변하든 나는 모두 알아볼 수 있느니라. 다만 그 괴물이 따라오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로다. 내 너에게 한 가지 술법을 가르쳐 주리라.” 손오공이 말했다. “그자는 틀림없이 자루로 저를 담으려 할 텐데 어찌 저를 따라오겠나이까! 무슨 술법으로 그자를 오게 할 수 있나이까?” 미륵불이 웃으며 “손을 내밀어라.”라고 말했다. 손오공이 곧 왼손을 펴서 내밀자 미륵불은 오른손 검지를 입속의 신령한 물에 적시고 손오공의 손바닥에 금할 금 자의 뜻을 지닌 글자 하나를 써 주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주먹을 꼭 쥐었다가 요정과 마주하면 손을 펴라고 가르쳤다. 그러면 그자가 반드시 뒤따라올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손오공은 주먹을 쥐고 기쁘게 가르침을 받들었다. 한 손으로 여의봉을 휘두르며 산문 밖에 가 외쳤다. “요마야, 네 손 할아버지가 또 왔다! 어서 나와 누가 위인지 겨루자!” 졸개 요괴가 황급히 알리자 요왕이 “그자가 또 병사를 얼마나 이끌고 왔느냐?”라고 물었다. 졸개가 “다른 병사는 없고 그자 혼자이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요왕은 웃으며 “그 원숭이는 계책과 힘이 다하고 사람을 청할 곳도 없어 목숨을 바치러 왔구나.”라고 말했다. 곧 차림을 갖추고 보배를 챙겨 가볍고 유연한 낭아봉을 들고 나와 외쳤다. “손오공아, 이번에는 벗어나지 못하리라!” 손오공이 욕했다. “몹쓸 괴물아! 내가 어째서 벗어나지 못하느냐?” 요왕이 말했다. “너는 계책과 힘이 다하고 구원을 청할 곳도 없이 혼자 버티러 왔구나. 이제 너를 잡으면 다시는 어떤 신병도 구해 줄 수 없으니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손오공이 말했다. “죽고 사는 것도 모르는 괴물이 큰소리치는구나! 잔말 말고 내 몽둥이를 받아라!” 요왕은 그가 한 손으로만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웃으며 “원숭이야, 잔꾀 부리는 꼴을 보아라! 어찌 한 손으로 나를 막겠느냐?”라고 말했다. 손오공이 말했다. “이놈아! 너는 내 두 손 공격을 못 견딘다! 자루를 쓰지 않는다면 너 같은 놈을 서넛이나 다섯 더 데려와도 내 한 손조차 이기지 못한다!” 요왕이 말했다. “좋다! 이제 보배를 쓰지 않고 제대로 맞붙어 암수를 겨루겠다.” 곧 낭아봉을 들고 나와 싸웠다. 손오공은 정면으로 맞서다가 주먹을 펴고 두 손으로 여의봉을 휘둘렀다. 요정은 금하는 술법에 걸려 물러날 생각 없이 과연 자루를 쓰지 않고 몽둥이만 휘두르며 쫓았다. 손오공은 허공에 한 번 거짓으로 휘두르고 패한 체 달아났으며 요정은 서쪽 산비탈 아래까지 추격했다. 손오공은 과전이 보이자 한 바퀴 구르며 그 안으로 파고들어 크고 잘 익은 참외 하나로 변하였다. 몹시 잘 익고 달콤한 참외였다. 요정은 몸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손오공이 어느 쪽으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초막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이 참외는 누가 심었느냐?” 미륵불은 참외를 심는 늙은이로 변하여 초막에서 나와 “대왕님, 이 참외는 소인이 심었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요왕이 “잘 익은 참외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미륵불이 “잘 익은 것이 있나이다.”라고 말했다. 요왕이 “잘 익은 것 하나를 따 오너라. 목을 축이겠다.”라고 명하였다. 미륵불은 곧 손오공이 변한 참외를 두 손으로 받쳐 요왕에게 건넸다. 요왕은 사정을 조금도 살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받아 입을 크게 벌리고 베어 물었다. 손오공은 이 기회를 타 데굴 한 번 구르듯 그자의 목구멍 아래로 파고들었다. 좋고 나쁨을 따질 겨를도 없이 손발을 마구 놀려 창자를 움켜쥐고 배를 할퀴었으며, 공중제비를 돌고 물구나무도 서면서 뱃속에서 마음대로 휘저었다. 요정은 너무 아파 이를 드러내고 입을 일그러뜨린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참외를 심어 놓은 땅을 밀 타작마당처럼 평평해지도록 이리저리 뒹굴면서 입으로 계속 외쳤다. “죽겠구나! 죽겠구나! 누가 나를 좀 살려 다오!” 미륵불은 그제야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으며 외쳤다. “이 몹쓸 짐승아! 나를 알아보겠느냐?” 요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황급히 땅에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배를 문지르면서 머리가 땅에 부딪히도록 거듭 절하며 계속 외쳤다. “주인님! 제 목숨을 살려 주소서! 제 목숨을 살려 주소서! 다시는 감히 그러지 않겠나이다!” 미륵불은 앞으로 다가가 한 손으로 그자를 움켜잡고 후천대를 풀어 빼앗았으며, 경쇠를 치는 망치도 거두고 외쳤다. “손오공아, 내 체면을 보아서라도 그자의 목숨을 살려 주어라.” 손오공은 쌓인 원한과 고통이 몹시 깊었으므로 뱃속에서 다시 왼쪽으로 주먹을 치고 오른쪽으로 발길질하며 마구 후비고 찔렀다. 괴물은 견디기 어려운 지독한 통증에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미륵불이 또 “오공아, 그자도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었으니 이제 그만 놓아주어라.”라고 말했다. 그제야 손오공이 “입을 크게 벌려라. 이 손 어르신이 나가겠다.”라고 외쳤다. 그 괴물은 배가 꼬이는 듯 아팠으나 아직 심장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이 심장을 상하지 않으면 죽지 않고 꽃이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은 뿌리가 말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괴물은 입을 벌리라는 소리를 듣고 아픔을 참으며 곧 입을 크게 벌렸다. 손오공은 그제야 뛰쳐나와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급히 여의봉을 뽑아 다시 때리려 했으나, 불조가 어느새 요정을 자루에 담아 허리에 비스듬히 메고 손에는 경쇠 망치를 든 채 꾸짖었다. “이 몹쓸 짐승아! 금요는 훔쳐서 어디에 두었느냐?” 그 괴물은 목숨만 살려 달라는 뜻으로 후천대 안에서 끙끙거리며 대답했다. “금요는 손오공이 깨뜨렸나이다.” 불조가 “금요가 깨졌다면 그 금 조각이라도 내게 돌려라.”라고 말했다. 괴물이 대답했다. “부서진 금 조각은 전각의 연화대 위에 쌓여 있나이다.” 불조는 자루를 들고 경쇠 망치를 잡은 채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오공아, 나와 함께 가서 금 조각을 찾아 돌려다오.” 손오공은 그 법력을 보았으므로 어찌 감히 명을 어기거나 지체하겠는가. 불조를 인도하여 산으로 올라 절 안에 돌아가 금 조각들을 거두었다. 산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불조가 망치로 한 번 가리키자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졸개 요괴들은 우두머리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이미 듣고 저마다 주머니 속 물건을 챙겨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려 하였다. 손오공은 하나를 보면 하나를 때려죽이고 둘을 보면 둘을 때려죽여 오백에서 칠백에 이르는 졸개 요괴를 모조리 없앴다. 그들이 제각기 본모습을 드러내니 모두 산의 정령과 나무 괴물, 짐승의 사악한 무리와 새의 마귀들이었다. 불조는 금 조각을 한곳에 모으고 신령한 기운을 한입 불어 넣으며 주문 한 마디를 외웠다. 그러자 즉시 본바탕으로 돌아가 다시 금요 한 쌍이 되었다. 불조는 손오공과 작별하고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곧장 극락세계로 돌아갔다. 그제야 손오공은 당승과 저팔계와 사오정의 결박을 풀어 주었다. 저팔계는 며칠 동안 매달려 굶주림을 견디지 못했으므로 손오공에게 사례하기도 전에 허리를 구부리고 부엌으로 달려가 먹을 것을 찾았다. 알고 보니 요괴가 마침 점심을 차리다가 손오공이 싸움을 청하는 바람에 아직 먹지 못한 것이었다. 저팔계는 음식을 보자 곧 반 솥이나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큰 바리 두 개에 음식을 담아 사부와 사제에게 가져다주어 저마다 두 그릇씩 먹게 한 뒤에야 손오공에게 감사하였다. 그들이 요괴의 내력을 묻자 손오공은 먼저 무당산의 조사를 찾아가 구사이장과 오대신룡을 청한 일, 뒤에 대성국사왕보살께 소장태자와 사대신장을 빌린 일, 끝으로 미륵불이 요정을 거두어 항복시킨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당삼장은 그 말을 듣고 끝없이 감사하며 하늘의 여러 신에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린 뒤 “제자야, 그 신성한 분들은 어느 곳에 갇혀 있느냐?”라고 물었다. 손오공이 “어제 일직공조가 이 손 어르신에게 말하기를 모두 지하 감옥 안에 있다고 했나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팔계야, 나와 함께 가서 그분들을 풀어 드리자.”라고 말했다. 저팔계는 음식을 먹어 힘이 솟자 정신을 가다듬고 구치정을 찾아 들었다. 곧 손오공과 함께 뒤쪽으로 가서 지하 감옥을 열고 여러 신의 밧줄을 풀어 보배로운 누각 아래로 모셔 나왔다. 당삼장은 가사를 걸치고 위를 향하여 한 분 한 분에게 절하며 사례하였다. 그제야 손오공은 오대신룡과 구사이장을 무당산으로 돌려보내고, 소장태자와 사대신장을 빈성으로 돌려보냈으며, 뒤이어 이십팔수를 천부로 돌려보냈다. 게체와 가람에게도 각자의 경계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사제들은 그곳에서 한나절 느긋하게 쉬면서 백마를 배불리 먹이고 짐을 정돈하였다. 이튿날 아침 다시 길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불을 한 차례 놓아 진귀한 누각과 보좌와 높은 전각과 강당을 모조리 태워 재로 만들었다. 이로써 비로소 이러하였다. 매인 것도 이끌린 것도 없이 재난을 피해 떠나고, 재앙과 마장을 없애어 몸을 벗어나 길을 가네. 결국 언제 대뇌음사에 이르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7회 구증타라선성온(拯救駝羅禪性穩) · 탈리예오도심청(脫離穢汙道心淸) 이야기는 이러하다. 당삼장 사부와 세 제자, 모두 네 사람이 소서천을 벗어나 흔쾌히 길에 올랐다. 한 달 남짓한 길을 지나는 동안, 마침 봄이 깊어 꽃이 피어나는 무렵이라, 여러 곳 원림이 모두 짙은 녹음으로 어두워진 것을 보았고, 한바탕 비바람이 지나가니 다시 또 황혼이었다. 삼장이 말고삐를 죄며 말했다. “제자들아,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 어느 길로 가서 하룻밤 묵을 곳을 구한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마음을 놓으시옵소서. 묵을 곳을 빌릴 데가 없다 하여도 저희 세 사람에게 재주가 조금씩은 있사오니, 팔계더러 풀을 베라 하고 사화상더러 소나무 가지를 꺾으라 하시면, 노손이 목수 노릇을 할 줄 아니 이 길 위에 초가 암자 하나를 얽어 세우겠나이다. 그리하면 족히 한 해 남짓은 머물 수 있사온데, 무엇을 그리 서두르시나이까?”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런 곳이 어찌 사람이 머물 자리란 말이오! 산에는 호랑이와 표범과 이리와 독충이 많고, 온 땅에는 이매망량이 들끓거늘, 대낮에도 오히려 가기 어려운데, 캄캄한 밤에야 어찌 감히 묵을 수 있겠소?”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이야, 갈수록 퇴보하는구나! 노손이 허풍을 떠는 게 아니니, 이 몽둥이 하나만 손에 쥐고 있으면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떠받칠 수 있느니라!” 사부와 제자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홀연 멀지 않은 곳에 산장 하나가 보였다. 행자가 말했다. “잘되었다! 묵을 곳이 생겼구나!” 장로가 물었다. “어디 있느냐?” 행자가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무 숲 속이 인가가 아니시오? 우리가 가서 하룻밤을 빌려 묵고, 내일 아침 일찍 길을 떠나면 되지 않소.” 장로가 흔쾌히 말을 재촉하여 장원 문 밖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다. 보니 섶으로 엮은 사립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장로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문 열어 주시오, 문을 열어 주시오.” 안에서 한 노인이 손에 명아주 지팡이를 끌고, 발에는 부들신을 신고, 머리에는 검은 두건을 쓰고, 몸에는 소복을 입은 채 문을 열고서 곧 물었다. “누가 여기서 큰 소리로 떠들며 부르느냐?” 삼장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몸을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 “노시주께서, 빈승은 동토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라는 분부를 받고 가는 자이옵니다. 마침 귀지에 이르렀사온데 날이 저물었으므로 특별히 존부를 찾아와 하룻밤을 빌려 묵고자 하오니, 부디 편의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노인이 말했다. “중이여, 그대가 서쪽으로 가려 한다지만, 이는 갈 수 없는 노릇이로다. 이곳이 바로 소서천이니, 대서천에 이르려면 길이 몹시 멀고, 앞으로 가는 일의 어려움은 말하지 않더라도, 이곳 하나만으로도 이미 넘기 어렵도다.” 삼장이 물었다. “어찌하여 넘기 어렵다 하시나이까?” 노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사는 이 마을에서 서쪽으로 삼십 리쯤 가면 희시동이라는 골짜기가 하나 있고, 그 산 이름이 칠절산이로다.” 삼장이 말했다. “무엇을 칠절이라 하시나이까?” 노인이 말했다. “이 산의 지름이 팔백 리나 되고, 산 가득 감나무 열매뿐이로다. 옛말에 감나무에는 일곱 가지 절묘함이 있다 하였으니, 첫째는 수명을 늘려 주고, 둘째는 그늘이 많고, 셋째는 새가 깃들지 않고, 넷째는 벌레가 없고, 다섯째는 서리 맞은 잎이 완상할 만하고, 여섯째는 열매가 훌륭하고, 일곱째는 가지와 잎이 크고 무성하다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칠절산이라 이름하였느니라. 내가 사는 이 누추한 곳은 땅은 넓되 사람은 드물어, 저 깊은 산은 예로부터 아무도 가 본 이가 없느니라. 해마다 익어 문드러진 감이 길 위로 떨어져, 바위 사이를 끼고 난 그 골목을 온통 메워 버리고, 또 비와 이슬과 눈과 서리를 맞아 곰팡이가 슬고 여름을 지나면서 길 따라 한바탕 오물을 만들어 내느니라. 이 고장 사람들은 속되게 희시동이라 부르느니라. 다만 서풍이 불면 더러운 냄새가 이는바, 동쪽 뒷간을 푼다 해도 이만큼 고약한 악취는 아니로다. 지금은 마침 봄이 깊어 동남풍이 크게 일고 있으니, 그 때문에 아직은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이로다.” 삼장은 마음이 답답하였으나 말이 없었다. 행자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영감은 심히 사리에 통하지 않는구려! 우리가 먼 길을 와서 묵으려 하는데, 그대는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아 사람을 겁주려 하시오! 설령 집이 비좁아 잘 곳이 없다 한들, 우리가 이 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지내면 이 밤을 넘길 수 있거늘, 어찌하여 이다지도 시끄럽게 떠드시오?” 그 노인은 그의 얼굴이 추하고 못생긴 것을 보자 입을 다물고 겁에 질린 채 간신히 배짱을 부려 크게 한 소리 꾸짖으며, 명아주 지팡이로 그를 가리켜 말했다. “이놈아, 뼈만 남은 얼굴, 툭 불거진 이마, 납작한 코, 움푹 팬 광대, 털 북숭이 눈에 털 북숭이 눈알, 폐병 귀신 같은 놈이 분수도 모르고 뾰족한 주둥이를 내밀고 감히 내게 와서 덤벼들다니!” 행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노관아, 너는 본래 눈은 있으나 구슬이 없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관상법에 이르기를, 생김새가 괴이하고 기묘하면 돌 속에 아름다운 옥이 감추어져 있다 하였느니라. 네가 말과 얼굴로 사람을 취한다면 완전히 잘못된 것이니라. 나는 추하면 추하지만 도리어 재주가 조금 있느니라.” 노인이 말했다. “그대는 어느 지방 사람이며,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이며, 무슨 재주가 있단 말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조상 대대로 동승대신주에 살았고, 화과산 앞에서 어려서부터 도를 닦았노라. 몸은 영대방촌의 조사께 절을 올리고, 무예를 배워 이루어 매우 두루 갖추었노라. 바다를 뒤집어 용모를 항복시키고, 산을 메고 해를 쫓는 재주에도 능하노라. 괴물을 결박하고 마귀를 사로잡는 일으뜸이라 하고, 별을 옮기고 북두를 바꾸어 귀신을 근심하게 하노라. 하늘을 훔치고 땅을 뒤집어 영웅의 이름이 크니, 나는 변화가 무궁한 아름다운 돌원숭이로다!” 노인이 그 말을 듣고 노여움을 거두고 기뻐하며, 몸을 굽히고 곧 분부하였다. “어서 누추한 내 집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으시오.” 이에 네 사람이 말을 끌고 짐을 멘 채 함께 들어가니, 보라, 가시덤불과 찔레가 양쪽에 늘어서 있고, 두 번째 문은 벽돌과 돌로 쌓은 담장인데 그 위를 또 가시덤불로 덮었으며, 안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기와집 세 채가 있었다. 노인은 의자를 끌어다 앉히고 차를 대접하고, 또 밥을 지으라 일렀다. 잠시 뒤 상을 옮겨다 놓으니, 밀글루텐, 두부, 토란 순, 무, 매운 겨자, 순무, 향기로운 쌀밥, 초로 끓인 아욱국 등 많은 음식이 차려졌고, 사부와 제자들은 모두 배불리 한 끼를 먹었다. 먹기를 마치자 팔계가 행자를 슬며시 끌어당겨 남몰래 말했다. “사형, 이 영감이 처음에는 묵어 가는 것을 마다하더니, 이제 도리어 이런 성대한 공양을 차려 주니 어찌된 일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것이 값으로 치면 얼마나 된다고 그러느냐! 내일이면 열 가지 과일과 열 가지 나물로 우리를 전송하게까지 할 터이니라!” 팔계가 말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군! 그대의 큰소리 몇 마디로 그를 속여 한 끼 밥을 얻어먹었으나, 내일이면 길을 떠나야 할 터인데, 그가 어찌 우리를 대접하여 전송하려 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서두르지 말아라, 내게 방도가 있느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차츰 황혼이 내리자, 노인이 또 등불을 켜라 일렀다. 행자가 몸을 굽히고 물었다. “공공의 높으신 성씨는 무엇이시니이까?” 노인이 말했다. “성이 이가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면 귀지가 이가장이란 말씀이시온지요?” 노인이 말했다. “아니로다, 이곳은 타라장이라 불리며, 모두 오백여 가구가 모여 사느니라. 다른 성씨도 많으나, 오직 나만 이가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이시주, 댁에 무슨 선한 뜻이 있사오기에 우리에게 이런 성대한 공양을 내리시나이까?” 그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방금 그대가 요괴를 잡을 줄 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사는 이곳에 요괴가 하나 있으니, 수고스럽지만 우리 대신 잡아 주시오. 그리하면 후한 사례가 있을 것이오.” 행자가 곧 윗쪽을 향해 읍을 올리며 말했다. “잘 부탁드리나이다!” 팔계가 말했다. “저것 봐, 저 원숭이가 화를 자초하는군! 요괴를 잡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친외할아버지를 만나도 저렇게 다정하지는 않을 터인데, 미리부터 읍을 올리다니!” 행자가 말했다. “현제야, 너는 모르는구나. 내가 읍을 올린 것은 계약금을 걸어 놓은 것이니, 그가 다시 다른 사람을 청하러 가지 않을 터이니라.”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 원숭이는 무슨 일이든 제 마음대로 하려 하는구나. 만일 그 요괴의 신통이 광대하여 네가 잡아 두지 못한다면, 이 출가인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나무라지 마시옵소서. 제가 다시 물어보고 나서 판단하겠나이다.” 그 노인이 말했다. “또 무엇을 물으려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그대의 이 귀한 고장은 지세가 청평하고, 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니, 더욱 궁벽한 지방이 아니지 않소. 무슨 요정이 감히 그대의 이 높은 문과 큰 집을 넘보겠소?” 노인이 말했다. “참으로 속이지 않고 말하리다. 이곳은 오래도록 강녕하였느니라. 다만 이 삼 년 전 유월에 홀연 한바탕 바람이 일었는데, 그때 사람들은 몹시 바빠서 보리를 타작하는 이들은 마당에 있고 모를 심는 이들은 논에 있다가 모두 겁에 질려 하늘이 변했다고들 하였느니라. 그런데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요괴 하나가 나타나, 사람들이 기르던 소와 말을 잡아먹고 돼지와 양을 잡아먹으며, 닭과 거위를 보면 통째로 삼키고 남자와 여자를 만나면 산 채로 집어삼켰느니라. 그때 이후로 이 이 년 동안 늘 와서 해치고 있느니라. 장로여, 그대에게 재주가 있다면 그놈을 잡아 이 땅을 쓸어 깨끗이 하여 주시오. 우리가 틀림없이 후하게 사례하리다, 감히 홀대하지 않으리다.” 행자가 말했다. “이놈은 잡기 어렵소.” 팔계가 말했다. “참으로 잡기 어렵고 어렵소! 우리는 떠돌이 중이라, 하룻밤을 빌려 묵고 내일이면 길을 떠날 터인데, 무슨 요괴를 잡는단 말이오!” 노인이 말했다. “너희는 본래 밥이나 속여 먹는 중이로구나! 처음 보았을 적에는 입을 자랑하고 혀를 놀리며 북두를 옮기고 별을 바꾸고 요괴를 항복시키고 결박할 줄 안다고 하더니, 이 일을 꺼내자 어렵다며 물러서려 하는구나!” 행자가 말했다. “영감, 요괴는 잡기 쉽소. 다만 이 고장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지 않으니, 그 때문에 잡기 어려운 것이오.” 노인이 말했다. “어찌하여 인심이 합하지 않는다고 보시오?” 행자가 말했다. “요괴가 삼 년이나 어지럽혔으니, 얼마나 많은 생령을 해쳤는지 알 수 없소. 내 생각에는 집마다 은 한 냥씩만 내면 오백 가구에서 은 오백 냥을 모을 수 있을 터인데, 어디든 가리지 않고 법관 하나를 찾아다가 요괴를 잡게 하면 될 터인즉, 어찌하여 삼 년이나 그에게 시달림을 달게 받았소?” 노인이 말했다. “돈 쓰는 일을 말하자면, 참으로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로다! 우리 가운데 어느 집인들 은 서너 냥에서 대여섯 냥쯤 쓰지 않은 곳이 있으리오! 재작년에 산 남쪽에 중이 하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여기 청해다 요괴를 잡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그 중은 어떻게 잡으러 왔소?” 노인이 말했다. “그 중이라는 자는 가사를 걸치고서, 먼저 공작경을 강론하고 뒤에 법화경을 외웠느니라. 향로에 향을 피우고 손에 방울을 쥐었느니라. 바야흐로 외우고 있는데 요사한 놈을 놀라게 하였는지, 바람이 일고 구름이 피어올라 곧장 마을로 왔느니라. 중과 요괴가 싸웠는데, 그 꼴이 참으로 자랑할 만하였느니라. 한 번 주고받으며 주먹으로 찧고, 한 번 주고받으며 손으로 할퀴었느니라. 중도 응수를 하였으나, 응수하다니 머리털이 다 뽑혔느니라. 잠시 뒤 요괴가 이겨서 곧장 연기와 노을 속으로 돌아갔는데, 알고 보니 말라붙은 딱지더라. 우리가 다가가서 보니, 민머리가 마치 썩어 터진 수박처럼 되어 있었느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손해를 본 셈이로구려.” 노인이 말했다. “그는 목숨 하나를 내던진 것뿐이었으나, 우리야말로 손해를 보았느니라. 그에게 관을 사 주어 장사를 지내고, 또 은자를 좀 그의 제자에게 주었느니라. 그런데 그 제자가 아직도 마음을 거두지 않고 지금까지 고소를 하겠다니, 깨끗이 끝나지를 않는구려!” 행자가 말했다. “그 뒤에 또 무슨 사람을 청해다 잡게 하였소?” 노인이 말했다. “지난해에 또 도사 하나를 청하였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그 도사는 어떻게 그놈을 잡으려 하였소?” 노인이 말했다. “그 도사는 머리에 금관을 쓰고 몸에 법의를 입었느니라. 영패를 두드려 울리고 부적을 태운 물을 뿌리며, 신을 몰고 장수를 부려 요괴를 불러 잡으려 하였느니라. 광풍이 휘몰아치고 검은 안개가 자욱하더니, 곧 도사와 두 사람이 맞붙어 싸웠느니라. 날이 저물 때까지 싸우자 요괴는 구름 속으로 돌아갔느니라. 하늘과 땅이 맑고 밝아지기에 우리 일동이 나와서 도사를 찾아보니, 산골 물에 빠져 죽어 있었느니라. 건져 올려 모두가 보니, 꼭 물에 빠진 닭 한 마리 같았느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이것도 손해를 본 셈이로구려.” 노인이 말했다. “그 역시 목숨 하나를 버린 것뿐이었으나, 우리는 또 억울한 돈과 양식을 넉넉히 써야 하였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시오, 염려 마시오. 내가 그대들을 대신하여 그놈을 잡아 주리다.” 노인이 말했다. “그대에게 참으로 재주가 있어 그놈을 잡을 수 있다면, 내가 이 마을의 어른 몇 분을 청해다가 그대와 문서를 쓰리다. 이긴다면 그대가 원하는 대로 은자를 얼마든지 사례하리다, 반 푼도 모자라게 하지 않으리다. 만일 손해를 보았다면, 부디 우리와 억지를 쓰지 말고 각자 천명에 맡기도록 하시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영감은 남에게 억지나 쓰는 데 겁을 먹었구려.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 어서 어른들을 청하러 가시오.” 그 노인은 마음이 몹시 기뻐하여, 곧 집의 하인에게 이웃 몇 분과 사촌 동생, 이모네 오라비, 사돈과 벗들을 청해 오라 하니, 모두 여덟아홉 분의 노인이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당승을 만나 보고 요괴를 잡는 일을 이야기에 올리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노인들이 물었다. “어느 높으신 제자가 가서 잡으시려 하오?” 행자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이 작은 중이 잡으러 가리다.” 노인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안 되오, 안 되오! 그 요정은 신통이 광대하고 몸집이 크고 육중하거늘, 그대 같은 장로는 바싹 마르고 자그마하여 그놈의 이빨 사이를 메우기에도 모자라 보이는구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노관아, 너는 사람을 헤아릴 줄 모르는구나. 나는 작으면 작되 단단하니, 모두 숫돌 물을 마신 놈이라, 수려한 기운이 속에 들어 있느니라!” 노인들은 그 말을 듣고 하는 수 없이 따르며 말했다. “장로여, 요정을 잡아 주시면 사례를 얼마나 원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사례를 얼마 받겠다는 말을 하리오! 속담에 이르기를, 금을 말하면 눈이 부시고, 은을 말하면 희멀겋고, 구리 돈을 말하면 비린내가 난다 하였거늘! 우리는 덕을 쌓는 중이니, 결코 돈을 바라지 않느니라.” 노인들이 말했다. “그리 말씀하시니, 모두 계를 받은 고승이로구려. 돈을 바라지 않는다 하니, 어찌 공연히 수고만 시키는 도리가 있으리오! 우리 각 가정은 모두 고기 잡는 물과 논으로 살아가니, 참으로 요얼을 항복시키고 이 고장을 깨끗이 해 주신다면, 우리가 집마다 좋은 논 두 마지기씩을 드려 모두 천 마지기를 한곳에 모아 드리리다. 그대들 사부와 제자가 그 위에 절을 짓고 앉아 참선을 하면, 사방으로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는 것보다 나으리다.” 행자가 또 웃으며 말했다. “점점 더 안 되겠구려! 논을 받는다고만 말해 보시오, 말을 기르고 부역을 져야 하고, 양식을 바치고 꼴을 마련해야 하며, 황혼에는 잠을 못 자고 새벽 오경에는 잠을 못 자니, 참으로 사람을 괴롭혀 죽이는 일이오!” 노인들이 말했다. “그 여러 가지를 마다하시니, 그러면 무엇으로 사례하리이까?” 행자가 말했다. “내 출가인이라, 다만 차 한 잔과 밥 한 그릇이면 그것으로 사례가 되느니라.” 노인들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오. 다만 그대가 어떻게 그놈을 잡을지 모르겠구려.” 행자가 말했다. “그놈이 오기만 하면 내가 곧 잡아 두리다.” 노인들이 말했다. “그 요괴는 크기가 장난이 아니오!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치며, 올 때는 바람이요 갈 때는 안개이거늘, 그대가 어찌 그놈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바람을 부르고 안개를 타는 요괴라면 내가 그놈을 손자로 삼을 터이요, 몸집이 크고 길다면 그놈을 칠 재주가 있느니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홀연 훠훠 하는 바람 소리가 들리자, 여덟아홉 노인이 놀라서 벌벌 떨며 말했다. “이 중의 입은 소금 간장을 두른 입이로구나! 요괴를 말하니 요괴가 곧 오는구려!” 그 노인 이씨가 쪽문을 열어 놓고 친척 몇 사람과 당승까지 모두 불렀다. “어서 들어오시오, 어서 들어오시오! 요괴가 왔소!” 놀란 팔계도 들어가려 하고 사오정도 들어가려 하였다. 행자가 두 손으로 두 사람을 붙잡으며 말했다. “너희는 너무 도리를 모르는구나! 출가인이 어찌 안과 밖을 가리지 않느냐! 멈춰라! 가지 말아라! 나를 따라 뜰로 가서 어떤 요괴인지 보자.”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들은 모두 겪어 본 이들인데 바람 소리가 곧 요괴가 오는 것이라 하였소. 그들이 모두 피하러 가는데, 우리는 그들과 친척도 아니요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요 사귄 옛 벗도 아니니, 보아서 무엇 하겠소?” 본래 행자는 힘이 센지라 말도 붙이지 못하게 하고 단번에 끌어당겨 뜰에 세워 두었다. 그 바람이 갈수록 더욱 거세졌으니, 좋은 바람이로다. 나무를 쓰러뜨리고 숲을 부수니 이리와 호랑이가 근심하고, 강을 뒤흔들고 바다를 젓으니 귀신이 근심하느니라. 화악산의 세 봉우리 돌을 뒤집어 엎고, 하늘과 땅의 사부주를 들어 올리느니라. 마을 집들은 모두 문을 닫고, 온 마을의 자식들은 모두 머리를 숨기느니라. 검은 구름이 아득히 은하를 가리고, 등불은 빛을 잃어 온 땅이 캄캄하느니라. 놀란 팔계는 벌벌 떨며 땅에 엎드려 주둥이로 흙을 파고 그것을 땅속에 묻어 버리니, 꼭 못을 박아 놓은 듯하였다. 사오정은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행자는 바람 냄새로 요괴를 알아보았다. 잠시 뒤 바람의 머리가 지나간 자리에, 반공중에 희미하게 등불 두 개가 떠오르는 것이 보이자, 곧 고개를 숙이고 외쳤다. “동생들아! 바람이 지나갔다, 일어나서 보아라!” 그 멍청이는 주둥이를 빼내어 흙과 티끌을 털어 내고 얼굴을 쳐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등불 빛 두 개가 보였다. 그가 홀연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말했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알고 보니 행실이 반듯한 요정이로구나! 그와 벗을 삼아야겠어!” 사오정이 말했다. “이렇게 캄캄한 밤에, 또 서로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는데, 어찌 좋고 나쁨을 아시오?” 팔계가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밤에 길을 갈 때는 등불을 쓰고, 등불이 없거든 멈추라 하였느니라. 보시오, 저놈이 등불 한 쌍을 들어 길을 비추고 있으니, 틀림없이 좋은 놈이오.” 사오정이 말했다. “잘못 보았소. 그것은 등불 한 쌍이 아니라 요괴의 두 눈이 번쩍이는 것이오.” 이 멍청이는 그만 겁을 먹어 키가 석 치나 줄어든 듯하며 말했다. “할아범이여! 눈이 이렇게 크다니, 입은 얼마나 큰지 모르겠구려!” 행자가 말했다. “현제야, 겁내지 말아라. 너희 둘은 사부님을 모시고 있어라. 노손이 올라가서 그놈의 입에서 기척을 좀 얻어 보고 무슨 요괴인지 알아보겠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우리를 팔아먹지는 마시오.” 훌륭한 행자로다. 몸을 솟구쳐 휘파람을 한 번 불고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쇠몽둥이를 쥐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천천히 오너라! 천천히 오너라! 내가 여기 있느니라!” 그 요괴가 보고는 몸을 곧추세우고 긴 창 하나를 휘둘러 어지럽게 흔들었다. 행자가 몽둥이 자세를 잡고 물었다. “너는 어느 곳의 요괴며 어디의 정령이냐?” 그 요괴는 더욱 대답하지 않고 다만 창만 휘둘렀다. 행자가 다시 물어도 또 대답하지 않고 다만 창만 휘둘렀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귀는 먹고 입은 벙어리인 모양이로구나! 달아나지 말아라! 몽둥이를 받아라!” 그 요괴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창을 어지럽게 휘둘러 막아 냈다. 반공중에서 한 번 오고 한 번 가며, 한 번 오르고 한 번 내리며, 삼경이 되도록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팔계와 사오정이 이씨 집 뜰에서 보고 있으니 분명하였다. 그 요괴는 다만 창을 휘둘러 막기만 할 뿐이고 조금도 공격하여 죽이려는 기색이 없었으며, 행자의 몽둥이는 줄곧 그 요괴의 머리 위를 떠나지 않았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사오정, 네가 여기서 모시고 있어라. 노저가 가서 좀 거들어 주어야겠다. 저 원숭이 놈이 홀로 그 공을 세워 첫 잔 술을 차지하게 두어서는 안 되지.” 훌륭한 멍청이로다. 곧 구름을 타고 뛰어올라 뒤쫓아가며 갈고리로 찍으니, 그 요물이 또 긴 창 하나를 들어 막았다. 창 두 개가 마치 나는 뱀과 번쩍이는 번개 같았다. 팔계가 칭찬하며 말했다. “이 요괴의 창법이 훌륭하구나! 산 뒤의 창도 아니요, 실을 감는 창이로구나. 마씨네 창도 아니니, 이를테면 부드러운 자루의 창이라 불러야겠어!” 행자가 말했다. “멍청아, 헛소리 말아라! 어디에 무슨 부드러운 자루의 창이 있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보시오, 저놈이 창끝을 내밀어 우리를 막고 있는데, 창자루는 보이지 않으니 어디에 감추어 두었는지 모르겠소.” 행자가 말했다. “아마 부드러운 자루의 창인가 보다. 다만 이 요물은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니, 인도에 아직 들지 못하여 음기가 무거운 모양이니라. 날이 밝아 양기가 성해지면 틀림없이 달아날 터이니, 달아날 때에는 반드시 뒤쫓아 놓쳐서는 안 되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옳소, 옳소!” 또 한참을 싸우다 보니 어느덧 동쪽 하늘이 밝아 오는데, 그 요괴는 감히 더 싸우려 들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행자와 팔계가 함께 뒤쫓아가는데, 홀연 오물의 더러운 냄새가 사람을 찌를 듯이 풍겨 오니, 바로 칠절산 희시동이었다. 팔계가 말했다. “어느 집에서 뒷간을 푸는 모양이오! 윽! 고약한 냄새를 맡기 어렵구려!” 행자가 코를 막고 다만 외쳤다. “어서 어서 요괴를 뒤쫓아라! 어서 어서 요괴를 뒤쫓아라!” 그 요물이 산을 넘어가자 본모습이 드러났으니, 곧 붉은 비늘을 지닌 큰 구렁이였다. 보라. 눈에서는 새벽 별을 쏘고 코에서는 아침 안개를 뿜느니라. 빽빽한 이는 강철 칼을 늘어놓았고, 구부러진 발톱은 금 갈고리를 굽혀 놓았느니라. 머리에는 살로 된 뿔 하나를 이었으니, 마치 천 개의 마노를 모아 이룬 듯하고, 몸에는 붉은 비늘을 온통 걸쳤으니, 꼭 만 개의 연지 조각을 쌓아 놓은 듯하느니라. 땅에 서려 있으면 비단 이불인가 의심되고, 허공을 날면 무지개로 잘못 보느니라. 쉬어 누운 자리에는 비린내가 하늘을 찌르고, 움직일 때에는 붉은 구름이 몸을 덮느니라. 큰 것이냐 하면 양쪽 사람이 동서를 보지 못하고, 긴 것이냐 하면 한 산을 걸터앉아 남쪽과 북쪽을 차지하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알고 보니 이런 긴 뱀이었구나! 사람을 먹자면 한 끼에 오백 명은 되어야 배가 부르겠구려!” 행자가 말했다. “그 부드러운 자루의 창이라는 것은 두 가닥의 혀니라. 우리가 그놈을 지치게 몰아붙여서 뒤에서 쳐 내보내자!” 이 팔계가 몸을 날려 뒤쫓아가며 갈고리를 들어 곧 찍었다. 그 요물은 머리부터 구멍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일곱여덟 자나 되는 꼬리만 밖에 남겨 두었다. 팔계가 갈고리를 내려놓고 손으로 움켜쥐며 말했다. “잡았다! 잡았어!” 있는 힘을 다해 밖으로 마구 잡아당겼으나, 털끝만큼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멍청아! 그놈을 들어가게 두어라, 내게 방도가 있느니라. 이렇게 뱀을 거꾸로 잡아당기지 말아라.” 팔계가 참으로 손을 놓자 그 요괴가 쏙 들어가 버렸다. 팔계가 원망하며 말했다. “아까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반 토막은 이미 우리 것이었소! 이렇게 들어가 버렸으니, 어찌하여 그놈을 나오게 한단 말이오? 이것은 뱀을 놓쳐 버렸다고 하는 것 아니오?” 행자가 말했다. “이놈은 몸집이 육중하고 굴이 좁으니, 틀림없이 몸을 돌릴 수가 없을 터이다. 분명 곧장 파고드는 놈이라, 반드시 뒤쪽에 나올 문이 있을 것이니라. 네가 어서 뒷문 밖으로 가서 막아라. 내가 앞문 밖에서 칠 터이니라.” 그 멍청이는 참으로 연기처럼 재빨리 산을 넘어가니, 과연 구멍 하나가 보였다. 그가 발을 딱 버티고 섰다. 아직 발을 단단히 디디지도 못했는데, 뜻밖에도 행자가 앞문 밖에서 몽둥이로 안을 향해 한 번 찌르자, 그 요물이 아픔을 피하려고 곧장 뒷문으로 튀어나왔다. 팔계는 미처 방비하지 못하여 그놈의 꼬리에 한 번 얻어맞고 넘어졌으며, 몸을 일으켜 버티지도 못한 채 땅에 누워 아픔을 참았다. 행자가 굴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몽둥이를 챙겨 들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며 요괴를 뒤쫓으라 외쳤다. 그 팔계는 외치는 소리를 듣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아픔을 참고 기어 일어나 갈고리를 마구 휘둘렀다. 행자가 보고 웃으며 말했다. “요괴가 달아났는데, 네가 무엇을 휘두른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노저가 여기서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하고 있소!” 행자가 말했다. “이 살아 있는 멍청아! 어서 뒤쫓아라!” 두 사람이 개울을 건너 뒤쫓아가니, 그 요괴가 몸을 동그랗게 감고 머리를 쳐들고 큰 입을 벌려 팔계를 삼키려 하였다. 팔계는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 행자는 도리어 앞으로 맞서 나아가다가 그놈에게 한 입에 삼켜졌다. 팔계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크게 외쳤다. “형님이여! 그대는 이제 끝장이오!” 행자가 요괴의 뱃속에서 쇠몽둥이를 버티고 선 채 말했다. “팔계야, 걱정 말아라. 내가 저놈에게 다리를 하나 놓게 하여 너에게 보이겠느니라!” 그 요물이 허리를 굽혀 일으키니, 꼭 동쪽 길에 걸린 무지개 한 줄기 같았다. 팔계가 말했다. “다리 같기는 하지만, 감히 건너려는 사람이 없겠구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저놈을 배 한 척으로 변하게 하여 너에게 보이겠느니라!” 뱃속에서 쇠몽둥이로 배 가죽을 받쳐 밀었다. 그 요물이 배 가죽을 땅에 붙이고 머리를 쳐드니, 꼭 커다란 배 한 척 같았다. 팔계가 말했다. “배 같기는 하지만, 돛대와 돛이 없어서 바람을 쓰기 어렵겠구려.” 행자가 말했다. “너는 길을 비켜라. 내가 저놈에게 바람을 쓰게 하여 너에게 보이겠느니라.” 또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쇠몽둥이를 등줄기로 한 번 찔러 내밀어 대여섯 장쯤 나오게 하니, 꼭 돛대 하나 같았다. 그놈이 아픔을 참으며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한 번 튀어나갔는데, 바람을 쓰는 것보다도 더 빨리 옛길로 되돌아가 산을 스무 리쯤 내려가서야 비로소 티끌 속에 거꾸러져 꿈쩍도 하지 못하고 오호, 목숨을 잃고 말았다. 팔계가 뒤따라 달려와서 또 갈고리를 들어 마구 찍었다. 행자가 그놈에게 큰 구멍 하나를 뚫고 빠져나오며 말했다. “멍청아! 그놈이 죽었으면 죽었지, 네가 어찌하여 또 찍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내 노저가 평생 죽은 뱀을 때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시오?” 이리하여 병기를 거두어 들이고 꼬리를 잡아 거꾸로 끌고 왔다. 그런데 이야기는 타라장으로 돌아간다. 이노자와 여러 사람이 당승에게 말했다. “그대의 두 제자가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틀림없이 목숨을 잃었구려.” 삼장이 말했다. “결코 탈이 있을 리 없소. 우리가 나가서 보도록 합시다.” 잠시 뒤, 행자와 팔계가 큰 구렁이 한 마리를 끌고서 소리치며 오는 것이 보이자, 사람들은 그제야 기뻐하였다. 온 마을의 노인과 아이, 남자와 여자가 모두 와서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할아범이여! 바로 이 요괴가 여기서 사람을 해쳤나이다! 이제 다행히 영감께서 법을 베풀어 요괴를 베시고 사악한 것을 없애시니, 우리들이야말로 제각기 편안히 살게 되었나이다!” 집집마다 모두 감격하여 동쪽에서 청하고 서쪽에서 맞이하며 저마다 사례하였다. 사부와 제자들은 닷새에서 이레쯤 붙잡혀 있다가, 간곡히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그제야 떠나 보내 주었다. 또 집집마다 그들이 돈과 물건을 사양하는 것을 보고, 모두 마른 양식과 과일을 마련하고 노새를 타고 말에 짐을 실으며 꽃과 붉은 비단, 오색 깃발을 들고서 모두 전송하러 왔다. 이곳 오백 가구에 칠팔백 명이나 되는 사람이 배웅하러 나왔다. 가는 내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어느새 칠절산 희시동 어귀에 이르렀다. 삼장이 그토록 고약한 오물을 맡고 또 길이 막혀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오공아, 이런 형편에 어찌 건널 수 있겠느냐?” 행자가 코를 막으며 말했다. “이건 어려운 일이오.” 삼장은 행자가 어렵다 말하는 것을 보고 곧 눈에 눈물을 떨구었다. 이노자와 여러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영감께서는 마음을 태우지 마시옵소서. 우리가 여기까지 배웅해 온 것은 이미 뜻을 정한 바가 있사옵니다. 높으신 제자께서 우리를 위해 요괴를 항복시키시고 온 마을의 화근을 없애 주셨사오니, 우리가 저마다 정성을 다하여 좋은 길을 새로 하나 열어 영감님을 건너 보내 드리겠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영감은 하는 말이 모두 온당하지 못하구려. 그대가 처음에 이 산의 지름이 팔백 리라 하였거늘, 그대들이 또 대우의 신병도 아닌데 어디서 산을 열고 길을 팔 줄 아시오! 내 사부님을 건너가게 하려면 도리어 우리가 힘을 써야 하니, 그대들은 모두 어렵소.” 삼장이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오공아, 어떻게 힘을 쓴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당장 산을 넘는 것도 어렵고, 길을 새로 내는 것도 또한 어려우니, 모름지기 옛 골목을 그대로 지나가야 하겠는데, 다만 밥을 대 줄 사람이 없을까 염려되오.” 이노자가 말했다. “장로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이까! 그대 네 분이 얼마나 오래 머물든 우리가 모두 먹여 드릴 수 있사온데, 어찌 밥을 대 줄 사람이 없다 하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그리하겠다면, 그대들이 가서 쌀 두 섬으로 마른밥을 짓고, 또 찐 떡과 만두를 좀 만들어 오시오. 내 저 긴 주둥이 중이 배불리 먹고 큰 돼지로 변하여 옛길을 파헤치게 하면, 내 사부님은 말에 타시고 우리가 곁에서 모시고 갈 터이니, 틀림없이 건너갈 수 있소.” 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형님, 그대들은 모두 깨끗한 것만 차지하려 하면서, 어찌하여 나 노저만 시켜서 냄새를 뒤집어쓰게 하시오?” 삼장이 말했다. “오능아, 네게 참으로 재주가 있어 골목을 파헤쳐 나를 이끌고 산을 넘는다면, 이번 일의 으뜸 공로를 네게 적어 주겠노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여러 시주들도 여기 계시니 비웃지 마시옵소서. 내 노저는 본래 서른여섯 가지 변화가 있사옵니다. 가볍고 날렵하며 화려하게 날아다니는 것으로 변하라 하시면 참으로 할 수 없사오나, 산으로 변하고 나무로 변하고 돌덩이로 변하고 흙무더기로 변하고, 코끼리와 멧돼지와 물소와 낙타로 변하라는 것이라면 참으로 모두 할 줄 아옵니다. 다만 몸이 크게 변하면 창자와 위가 더욱 커지니, 반드시 배불리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사옵니다.” 사람들이 말했다. “먹을 것이 있소, 있소! 우리가 모두 마른 양식과 과일과 구운 떡과 만두를 이리 가지고 있소. 본래 산을 열어 배웅하려던 것이니, 모두 꺼내어 그대가 마음껏 쓰시구려. 변화하여 움직일 때가 되면, 우리가 또 사람을 보내어 돌아가 밥을 지어 오게 하겠소.” 팔계가 몹시 기뻐하며 검은 장삼을 벗고 아홉 갈래 갈고리를 내던진 뒤 무리를 향해 말했다. “비웃지 마시오, 노저가 이 냄새나는 공을 부리는 꼴을 보시구려.” 훌륭한 멍청이로다. 주문을 외우고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과연 큰 돼지 한 마리로 변하였다. 참으로 그러하였으니, 주둥이는 길고 털은 짧으며 반은 기름진 비계요, 어려서부터 산에서 약초를 먹고 자랐느니라. 검은 얼굴에 둥근 눈은 해와 달 같고, 둥근 머리에 큰 귀는 파초 잎 같느니라. 단단한 뼈를 닦아 이루어 하늘과 수명을 같이 하고, 거친 가죽을 단련하여 쇠보다 단단하느니라. 막힌 콧소리로 꽥꽥 울어 대고, 요란한 목청으로 콸콸 소리를 뿜어 내느니라. 흰 발굽 네 개는 높이가 천 자요, 칼 같은 갈기와 긴 몸은 백 장이 넘느니라. 인간 세상의 살찐 돼지는 일찍이 보았거니와, 오늘의 늙은 돼지 도깨비는 아직 본 적이 없느니라. 당승을 비롯한 무리가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하며 천봉의 법력이 높음을 부러워하였느니라. 손행자가 팔계가 그렇게 변한 것을 보고, 곧 배웅 나온 사람들에게 마른 양식 따위를 한곳에 몰아 모아 팔계에게 먹으라 일렀다. 그 멍청이는 익고 설것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뒤, 앞으로 나서서 길을 파헤쳤다. 행자는 사오정에게 신을 벗고 짐을 잘 메라 하고, 사부님께는 조각 안장에 편히 앉으시라 청한 다음, 자신도 신발을 벗고 무리에게 돌아가라 분부하였다. “정이 있다면, 어서 일찍 밥을 좀 가져다 내 사제가 힘을 잇도록 해 주시오.” 그 사람 가운데 칠팔백 명이 배웅하며 함께 따라왔는데, 절반이 넘는 이들은 노새와 말을 타고 별처럼 달려 마을로 돌아가 밥을 지었고, 또 삼백 명은 걸어서 산 아래에 서서 그들이 가는 모습을 멀리 바라보았다. 본래 이 마을에서 산까지는 삼십 리가 넘고, 되돌아가 밥을 가져오는 데 또 삼십 리가 넘으니, 왕복으로 머무는 동안 백 리쯤 되는 먼 길이 걸렸다. 그동안 사부와 제자들은 이미 멀리 가 버렸다.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노새와 말을 재촉하여 골목으로 들어가 밤을 새워 뒤쫓아갔는데, 이튿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따라잡고는 외쳤다. “경을 구하러 가시는 영감님, 천천히 가시옵소서, 천천히 가시옵소서! 우리가 밥을 가져왔나이다!” 장로가 그 말을 듣고 다함없이 고마워하며 말했다. “참으로 선하고 믿음직한 사람들이로구나!” 팔계를 불러 멈추게 하고 다시 밥을 좀 더 먹어 기운을 돋우게 하였다. 그 멍청이는 이틀 동안 길을 파헤치고 있었으니 몹시 시장할 무렵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가져온 것이 어찌 일고여덟 섬의 밥뿐이겠는가. 그는 쌀밥이든 국수든 가리지 않고 모아 놓고는 모두 게걸스럽게 먹어 치워 한 끼를 배불리 먹고, 또 앞으로 나서서 길을 파헤쳤다. 삼장과 행자, 사오정이 여러 사람에게 고마워하며 서로 헤어져 갈라졌다. 바로 그러하였으니, 타라장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팔계는 산을 열어 길을 넘어 함께 오느니라. 삼장의 마음이 정성스러우니 신령한 힘이 옹위하고, 오공의 법이 드러나니 요괴와 마귀가 쇠하느니라. 천 년을 쌓인 감이 오늘 아침에 깨끗해지고, 칠절의 골목이 이날에 열리느니라. 여섯 가지 욕망과 티끌 같은 정이 모두 잘려 끊어지니, 평안하여 막힘이 없이 연대를 배알하리라. 이렇게 떠나가니 앞으로 얼마나 먼 길이 남았는지, 또 무슨 요괴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8회 주자국당승논전세(朱紫國唐僧論前世) · 손행자시위삼절굉(孫行者施爲三折肱) 선행이 바르면 온갖 인연이 거두어지고, 명예가 사부주에 두루 전파되느니라. 지혜의 광명이 저 언덕에 오르니, 바람 소리 쓩쓩, 뭉게구름이 하늘 가에 피어나는구나. 모든 부처가 함께 화답하여 요대에 길이 머무니 천만 가을이로다. 인간 세상의 나비 꿈을 깨뜨리고 나서, 휴휴, 속세의 티끌을 씻어 깨끗이 하니 근심이 끼지 않느니라. 이야기는 이러하다. 삼장 사부와 제자들이 더러운 골목을 씻어 버리고 소요의 길에 올랐는데, 세월이 빠르게 흘러 또다시 무더운 여름을 만났으니, 참으로 그리하니 해당화는 비단 탄환을 펼치고 연잎은 푸른 쟁반을 벌리는구나. 두 갈래 푸른 버드나무에 젖비둘기가 숨고, 행인은 더위를 피해 부채를 흔드는구나. 앞으로 나아가는 곳에 홀연 한 성곽이 가까이 보였다. 삼장이 말고삐를 죄며 외쳤다. "제자들아, 너희는 저기가 어느 곳인지 보이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은 본래 글자를 모르시는구려. 당왕의 칙지를 받들고 조정을 떠나오시다니, 그게 어찌 된 일이오?" 삼장이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승려가 되어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전적에 모두 통하는데, 어찌 내가 글을 모른다 하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글을 아신다면서, 어찌 저 성루 위 살구빛 노란 깃발에 큼직한 글자 셋이 똑똑히 쓰여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시고, 무슨 곳이냐고 물으시나이까?" 삼장이 꾸짖으며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가 수작을 부리는구나! 저 깃발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니, 글씨가 있다 한들 똑똑히 볼 수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노손은 어찌 보았겠나이까?" 팔계와 사승이 말했다. "사부님, 사형의 거짓말을 듣지 마시옵소서. 이다지도 멀리서 바라보는데 성곽조차 분명치 않거늘, 어찌 무슨 글자인 줄 보인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주자국 세 글자가 아니시오?" 삼장이 말했다. "주자국이라면 반드시 서쪽 나라의 왕위일 터이니, 통관문첩을 바꾸어야 하겠구나." 행자가 말했다. "더 말할 필요도 없사옵니다." 오래지 않아 성문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고 세 겹의 문 안으로 들어가니, 참으로도 훌륭한 황도였다! 보니 이러하였다. 문루는 높이 솟았고 성가퀴는 가지런히 늘어섰으며, 둘레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남쪽과 북쪽에는 높은 산이 마주하였느니라. 여섯 거리와 세 시장에는 물자가 많고, 만 집과 천 가구는 장사가 성하도다. 과연 제왕이 모여드는 곳이요, 하늘이 내린 큰 경성이로다. 머나먼 변방에서도 배와 수레가 이르고, 아득한 먼 지방에서도 옥과 비단이 넘치는구나. 지세는 산줄기를 이어 멀리 뻗었고, 궁성 담장은 은하에 닿아 맑구나. 세 관문은 자물쇠를 엄히 채웠으니, 만고토록 태평을 누리도다. 사부와 제자들이 큰 거리와 시장을 지나갈 때에 보니, 사람들의 풍채는 늠름하고 의관은 가지런하며 말소리는 맑고 밝아서 참으로 대당 세계에 뒤지지 않았다. 양쪽에서 장사하던 자들이 홀연 저팔계의 추한 얼굴과 사화상의 검은 낯과 긴 몸, 손행자의 털 난 얼굴과 튀어나온 이마를 보고는 장사를 내팽개치고 모두 다투어 구경하러 왔다. 삼장이 다만 외쳤다. "화근을 만들지 마라! 고개를 숙이고 걸어라!" 팔계가 그 말을 좇아 연밥 같은 주둥이를 품에 감추고 사승은 감히 우러러보지 못했으며, 오직 행자만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당승의 좌우를 바짝 따랐다. 그 사람들 가운데 사리를 아는 자들은 잠깐 보고는 돌아갔으나, 빈둥거리며 노는 자들과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웅성거리고 깔깔대며 모두 앞으로 나와 기와와 벽돌을 던져 팔계를 놀렸다. 당승은 식은땀을 쥐며 다만 일렀다. "일을 만들지 마라!" 그 멍청이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모퉁이를 돌아서니 홀연 문과 담장 하나가 보였는데, 그 위에 회동관이라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당승이 말했다. "제자야, 우리 이 관청으로 들어가자꾸나." 행자가 말했다. "들어가서 무엇 하시려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회동관은 천하가 두루 모여 서로 통하는 곳이니, 우리가 폐를 끼칠 수도 있느니라. 우선 안으로 들어가 쉬도록 하자. 내가 임금을 알현하여 관문첩을 바꾸고 나서, 다시 성을 나가 길을 가면 되느니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주둥이를 내밀어 따라 구경하던 사람 수십 명을 놀라 넘어뜨리고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사부님 말씀이 옳소이다. 우리 우선 안으로 들어가 숨어서, 이 무리의 놈들이 떠들어 대는 것을 면합시다." 드디어 관아로 들어가니, 그 사람들이야말로 점차 물러났다. 각설하고 그 관아에는 관사가 둘 있었으니, 하나는 정직이고 하나는 부직으로서 모두 청상에서 일꾼을 점검하며 어디론가 관리를 마중하러 갈 참이었다. 홀연 당승이 이르는 것을 보고는 저마다 가슴이 놀라 함께 말했다. "무슨 사람이오? 무슨 사람이오? 어디로 가는 길이오?" 삼장이 합장하며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자이옵니다. 이제 보방에 이르러 감히 사사로이 지나갈 수 없사오니, 관문첩을 바꾸어 살피시고 통행을 허락하시옵소서. 잠시 높은 관청을 빌려 쉬고자 하나이다." 그 두 관사가 그 말을 듣고 좌우를 물리친 뒤, 하나하나 관을 바로 쓰고 띠를 매어 청에서 내려와 마중 나와 인사를 하고는, 즉시 객방을 깨끗이 쓸어 묵게 하고 맑고 소박한 음식을 마련하라 명하였다. 삼장이 사례하였다. 두 관리가 일꾼을 거느리고 청을 나가 버렸다. 수하인들이 나으리를 객방으로 모셔다 쉬게 하니 삼장이 곧 걸어가는데, 행자가 노여워하며 말했다. "이놈들이 게으르고 무례하구나! 어찌하여 노손을 정청에 머물게 하지 않느냐?" 삼장이 말했다. "이곳은 우리 대당의 관할에 복종하지도 않고, 우리나라와 접경하지도 않느니라. 게다가 때때로 상관과 지나가는 과객이 오가니, 그런 까닭에 이곳에 머물며 대접하기가 어려운 것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는 일부러 그 대접을 받아야겠소!" 바로 말하는 사이에 일을 맡은 자가 음식을 가져왔는데, 흰쌀 한 접시, 흰 밀가루 한 접시, 푸른 채소 두 줌, 두부 네 모, 밀글루텐 두 개, 마른 죽순 한 접시, 목이버섯 한 접시였다. 삼장이 제자들에게 거두라 하고 일 맡은 자에게 사례하니, 일 맡은 자가 말했다. "서쪽 방에 깨끗한 솥과 부뚜막이 있고 땔감도 편하오니, 스스로 가서 밥을 지으시옵소서." 삼장이 말했다. "내 그대에게 한마디 묻겠노라. 국왕께서는 전각에 계시시오?" 일 맡은 자가 말했다. "우리 만세 할아버님께서는 오래도록 조회에 오르지 않으셨는데, 오늘이 황도 길일이라 바로 문무 여러 관원과 함께 황방을 내어낼 일을 의논하고 계시옵니다. 그대가 관문첩을 바꾸고자 하거든 이 기회에 급히 가시면 오히려 맞추실 수 있사오리다. 내일이면 불가하오니,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너희는 여기서 공양을 마련하여라. 내 급히 가서 관문첩을 검사받고 돌아와 먹고 길을 가겠노라." 팔계가 급히 가사와 관문첩을 꺼내었다. 삼장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조정으로 들어가며, 다만 제자들에게 분부하기를 절대로 밖으로 나가 일을 만들지 말라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오봉루 앞에 이르렀는데, 저 전각이 우뚝 솟고 누대가 장려함은 다 말할 수 없었다. 단문 밖까지 이르러 주사관에게 번거롭게 부탁하여 천정에 전달하게 하고, 관문첩을 바꾸어 검사받고자 하였다. 그 황문관이 과연 옥계 앞에 이르러 아뢰었다. "조문 밖에 동토 대당의 흠차 승려 한 사람이 있어, 서천 뢰음사로 가 부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려 하오며, 통관문첩을 바꾸고자 하여 선지를 기다리옵니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과인이 오래 병을 앓아 일찍이 조정에 나오지 못하였는데, 오늘 전각에 올라 방을 내어 의원을 구하니 바로 고승이 나라에 이르렀도다!" 즉시 전지하여 계단 아래로 불러들이니, 삼장이 곧 절하며 엎드렸다. 국왕이 또 금전 위로 올라와 앉으라 하고 광록시에 명하여 공양을 차리라 하니, 삼장이 은혜에 사례하고 관문첩을 올렸다. 국왕이 다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법사여, 그대네 대당은 몇 조의 임금이 바르고 몇 대의 신하가 어질었느냐? 당왕에 이르러서는 무슨 병을 앓고 소생하였기에, 그대를 시켜 산천을 멀리 넘어 경을 구하게 하였느냐?" 이 장로가 물음을 받고는 곧 몸을 일으켜 합장하며 말했다. "빈승의 그곳은 삼황이 세상을 다스리고 오제가 차례를 나누었사옵니다. 요순이 바른 자리에 있고 우와 탕이 백성을 편안케 하였으며, 주나라 자손이 번성하여 각각 천지를 세웠사옵니다. 강한 자를 의지하여 약한 자를 속이고 나라를 나누어 임금을 칭하니, 나라 임금이 열여덟이요 분야마다 변방의 티끌이 일었사옵니다. 뒤에 열둘로 이루어져 우주가 편안하고 순박해졌사옵니다." 거마가 없어진 탓에 도리어 서로 집어삼켰사옵니다. 일곱 웅거한 나라가 승부를 다투니 여섯 나라가 진나라로 돌아갔고, 하늘이 노나라와 패를 내어 각각 인정을 품지 않았사옵니다. 강산이 한나라에 속하여 약법을 삼가 받들었고, 한나라가 사마씨에게 돌아가니 진나라가 또 어지러웠사옵니다. 남북으로 열두 왕조에 송과 제와 양과 진이요, 열조가 서로 이어 대수가 참됨을 이었사옵니다. 꽃을 감상하며 도를 잃어 많은 백성이 도탄에 빠졌사옵니다. 우리 왕 이씨는 국호를 당이라 하시옵니다. 고조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지금은 세민이시니, 황하가 맑고 바다가 잔잔하며 큰 덕이 너그럽고 어지시옵니다. 이에 장안성 북쪽에 괴이한 물용신 하나가 있어 단비를 줄여 내려 마땅히 몸을 잃을 처지였사옵니다. 밤에 꿈을 빌려 왕에게 구원을 청하니, 왕이 사면을 윤허하시겠다 말씀하시고 일찍이 어진 신하를 불러들이시옵니다. 전각 안에 머무르게 하여 천천히 장기판을 벌이시는데, 때가 정오에 이르러 그 어진 신하가 꿈속에서 용의 몸을 베었사옵니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홀연 신음하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법사여, 그 어진 신하는 어느 나라에서 온 자이오?" 삼장이 말했다. "바로 우리 왕 전하의 승상이옵니다. 성은 위요 이름은 징이옵니다. 그는 천문을 알고 지리를 알며 음양을 분별하니, 나라를 편안히 세우는 큰 재보필이옵니다. 그가 꿈속에서 경하용왕의 목을 벤 까닭에, 그 용왕이 명부에 가서 고발하기를, 우리 왕이 구해 주겠다고 허락하고는 도리어 죽였다 하였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왕이 급병을 얻어 점차 몸이 위태로워지셨사옵니다. 위징이 또 편지 한 통을 써서 우리 왕께 명부로 가지고 가시게 하여, 풍도성의 판관 최각에게 부치게 하였사옵니다. 이윽고 당왕이 몸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사옵니다. 위징의 덕분이요, 최판관이 감동하여 문서를 고쳐 왕의 수명을 이십 년 더하게 하였사옵니다. 이제 수륙대회를 열고자 하시니, 그런 까닭에 빈승을 보내어 먼 길을 넘어 여러 나라를 두루 찾아 부처님께 예배하고 대승경 삼장을 얻어, 업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초도하여 하늘로 올려보내려 하옵니다." 그 국왕이 또 신음하며 탄식하여 말했다. "참으로 천조 대국이로다, 임금은 바르고 신하는 어질구나! 과인 같으면 오래 병을 앓아온 지 여러 해건만, 한 신하도 구해 내지 못하는구나." 장로가 그 말을 듣고 슬그머니 눈을 들어 보니, 그 황제는 얼굴이 누렇고 살이 말랐으며 몸이 쇠하고 정신이 쇠진해 있었다. 장로가 막 여쭈어 보려 하는데, 광록시 관원이 나와 당승의 공양을 올리기를 청하였다. 왕이 전지하여 일렀다. "피향전에 짐의 수라와 함께 차려 놓고 법사와 나란히 들라." 삼장이 은혜에 사례하고 왕과 함께 수라와 공양을 들었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두겠다. 각설하고 행자는 회동관 안에서 사승에게 차와 밥을 마련하고 채소도 갖추라 일렀다. 사승이 말했다. "차와 밥은 끓이기 쉬우나, 채소는 마련하기가 어렵소이다." 행자가 물었다. "어째서 그런 것이오?" "기름과 소금과 간장과 초가 모두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내게 시주받은 돈이 몇 푼 있으니, 팔계를 시켜 저잣거리에 나가 사 오게 하겠다." 그 멍청이가 게으름을 피우며 말했다. "나는 감히 가지 못하겠소이다. 얼굴이 못생겨 화근을 끌어들이면 사부님께서 나를 꾸짖으실까 두렵소이다." 행자가 말했다. "공정하게 장사를 하는 것이요, 남에게 동냥하는 것도 아니요 빼앗는 것도 아니거늘, 무슨 화가 있단 말이오!" 팔계가 말했다. "그대는 방금 보지 못하였소? 이 문 앞에서 주둥이를 내밀어 사람 열 명 남짓을 놀라 넘어뜨렸는데, 만약 저잣거리 한가운데로 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놀라 죽일지 알 수 없소이다!" 행자가 말했다. "너는 저잣거리 한가운데만 알지, 그 저자에서 파는 것이 무슨 물건인지 본 적은 있느냐?" 팔계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나더러 고개를 숙이고 화근을 만들지 말라 하셨으니, 참으로 본 적이 없소이다." 행자가 말했다. "술집과 쌀가게와 맷방, 그리고 비단과 잡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참으로 또한 좋은 다방과 국숫집에 큰 화병과 큰 만두가 있고, 음식점에는 또 좋은 국밥과 좋은 향신료와 좋은 채소가 있으며, 그 별미인 설탕떡과 찐단자와 다과와 권자와 기름음식과 꿀음식까지 좋은 것이 무수하니, 내가 가서 얼마쯤 사다가 너를 대접하면 어떠하냐?" 그 멍청이가 그 말을 듣고 입안에 침이 고이며 목구멍에서 꿀꺽꿀꺽 침을 삼키다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형님! 이번에는 내가 형님 신세를 지겠소이다. 다음번에 돈을 모으면 나도 형님을 초대하여 답례하겠소이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사승아, 밥을 잘 지어라. 우리가 가서 양념을 사 가지고 오마." 사승도 멍청이를 놀리는 줄 알면서도 하는 수 없이 입으로만 받들어 말했다. "그대들이 가거든 모름지기 많이 사서 배불리 먹고 오시오." 그 멍청이가 그릇과 잔을 챙겨 들고는 행자를 따라 문을 나섰다. 관아에 있는 사람 둘이 물었다. "장로님, 어디로 가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양념을 사러 가오." 그 사람이 말했다. "이 길을 서쪽으로 가서 모퉁이를 돌아 고루에 이르면 정가네 잡화점이 있소. 얼마든지 사시되 기름과 소금과 간장과 초, 생강과 후추와 찻잎이 모두 갖추어 있소."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이끌며 곧장 거리 서쪽으로 갔다. 행자는 다방 몇 곳과 음식점 몇 집을 지나면서도 사야 할 것은 사지 않고 먹어야 할 것은 먹지 않았다. 팔계가 외쳤다. "사형, 여기서 대강 좀 사다 쓰면 되지 않소?" 그 행자는 본래 그를 놀리는 터라 어찌 기꺼이 사겠는가, 말했다. "현아, 너는 참으로 장사할 줄 모르는구나! 좀 더 걸어가서 큰 것을 골라 사 먹자."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또 많은 사람이 따라오며 다투어 구경하였다. 오래지 않아 고루 가에 이르렀는데, 보니 그 누각 아래 수많은 사람이 떠들며 서로 밀치고 붙들어 거리를 메우고 길을 막고 있었다. 팔계가 보고 말했다. "형님, 나는 안 가겠소이다. 저기 사람들이 몹시 떠드니, 혹시 중을 잡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소이다. 게다가 낯이 설어 의심받을 만한 사람이니, 잡혀가면 어찌한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허튼소리! 중이 법을 어긴 것도 아닌데 나를 잡아간단 말이오? 우리가 지나가서 정가네 가게로 가 양념을 좀 사 오자." 팔계가 말했다. "됐어, 됐어! 나는 화근을 만들지 않겠소. 이렇게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면 귀가 짓밟히고 밟혀서, 놀란 사람들이 넘어지고 기어가다가 몇이 떨어져 죽으면 도리어 내가 목숨으로 갚아야 한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너는 이 담장 밑에 서 있어라. 내가 건너편에 가서 사 가지고 돌아와, 채소 국수와 화병을 사다 주마." 그 멍청이는 그릇을 행자에게 건네고는 주둥이를 담장 밑에 괴고 얼굴을 돌린 채 죽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행자가 누각 가로 걸어가니 과연 빽빽이 막혀 있었다. 곧장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들어보니, 그 황방을 누각 아래에 걸어 놓았으므로 많은 사람이 다투어 보고 있는 것이었다. 행자가 가까운 곳까지 밀고 들어가 화안금정을 번쩍 뜨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방에는 이러하였다. "짐은 서우하주 주자국 왕이라, 왕업을 세운 이래 사방이 평복하고 백성이 청안하였느니라. 근자에 국사가 불상하여 깊은 병으로 베개에 엎드린 지 오래 끌어왔으나 낫기 어렵도다. 본국 태의원이 여러 차례 좋은 처방을 골랐으나 다스리지 못하였느니라. 이제 이 방문을 내어 천하의 어진 선비를 널리 부르노라. 북에서 오나 동에서 오나, 중화이건 외국이건 가리지 아니하고 의약에 정통한 자가 있거든 보전에 올라 짐의 몸을 치료하라. 조금이라도 병이 나으면 사직을 절반으로 나누어 주겠노니, 결코 헛되이 보이지 아니하리라. 이런 까닭에 내어 걸어 두노니, 마땅히 방문에 이르는 자는 알지어다." 다 보고는 마음이 한없이 기뻐하며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움직이면 재물의 기운이 세 가지 있다 하였느니라. 일찍이 관아에 멍하니 앉아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로다. 이제 무슨 양념을 살 것도 없거니와, 우선 경을 구하는 일은 하루쯤 참아 두고 노손이 의원 노릇을 한번 해 보자." 훌륭한 대성이라, 허리를 굽혀 그릇을 내던지고 흙 한 줌을 집어 위로 뿌리며 주문 한마디를 외우고는 은신법을 부려, 가만히 앞으로 나아가 방문을 떼어 내고, 또 손 땅을 향하여 신선의 기운을 한 입 빨아 들이켜 불어 보내니, 그 회오리바람이 이는 곳에서 그는 몸을 돌려 곧장 팔계가 서 있던 곳에 이르렀다. 보니 그 멍청이는 주둥이를 담장에 괸 채 꼭 잠이 든 것만 같았다. 행자는 그를 놀라게 하지 않고 방문을 접어 가만히 그의 품에 찔러 넣고는 발길을 돌려 먼저 회동관으로 가 버렸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두겠다. 각설하고 그 누각 아래 있던 사람들은 바람이 일어날 때에 저마다 머리를 감싸고 눈을 감았다. 어느새 바람이 지나가고 나니 황방이 없어져, 모두가 두려워 떨었다. 그 방문에는 본래 환관 열둘과 교위 열둘이 딸려 있었는데, 조회 때에 받아 나와 걸어 놓은 지 세 시진도 되지 않아 바람에 불려 간 것이었다. 벌벌 떨며 좌우로 찾던 중, 홀연 저팔계의 품에서 종이 귀퉁이 하나가 삐져나온 것이 보이자,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네가 방문을 떼어 왔구나!" 그 멍청이가 홱 고개를 들어 주둥이를 한번 내밀자, 그 교위 몇이 놀라 비틀비틀 넘어졌다. 그는 몸을 돌려 가려 하는데, 앞에 있던 담 큰 자 몇이 붙들며 말했다. "네가 의원을 구하는 황방을 떼어 놓고도 어서 조정에 들어가 우리 만세의 병을 고치지 않고, 어디로 가려 하느냐?" 그 멍청이가 황급해하며 말했다. "너희 아들이 방문을 떼었느니라! 너희 손자가 의술을 할 줄 아느니라!" 교위가 말했다. "네 품에 찔러 넣은 것이 무어냐?" 멍청이가 그제야 고개를 숙여 보니 참으로 글자 적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펼쳐 보고는 이를 갈며 욕했다. "그 원숭이 놈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원망하는 소리를 한번 지르고는 찢어 버리려 하는데, 일찍이 여러 사람이 붙들며 말했다. "너는 죽었구나! 이는 지금 임금이 내신 방문이니 누가 감히 찢어 버리겠느냐? 네가 이미 품에 지녔으니 필시 나라를 고칠 의술이 있을 터, 어서 우리와 함께 가자!" 팔계가 꾸짖으며 말했다. "너희는 모르는구나. 이 방문은 내가 뗀 것이 아니라 나의 사형 손오공이 뗀 것이니라. 그가 몰래 내 품에 넣어 두고는 나를 버려 둔 채 가 버렸느니라. 이 일을 밝히고자 하거든 내가 너희와 함께 그를 찾아주마." 사람들이 말했다. "무슨 헛된 소리를 하느냐? 눈앞의 종은 치지 않고 주물러 둔 종을 친단 말이냐? 네가 지금 방문을 떼었거니와, 우리더러 누구를 찾으란 말이냐! 상관없다! 끌고 가서 임금님을 뵙자!" 그 무리들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멍청이를 밀고 당겼다. 이 멍청이가 발을 딛고 서니 꼭 뿌리가 내린 듯하여, 열 명 남짓이 달려들어도 그를 움직일 수 없었다. 팔계가 말했다. "너희는 높낮이를 모르는구나! 조금만 더 당겨 보아라, 내 멍청한 성질이 발동하면 너희는 원망하지 말라!" 오래지 않아 거리 사람들이 떠들어 그를 둘러쌌는데, 그 가운데 나이 든 환관 둘이 말했다. "너는 얼굴이 기이하고 목소리가 맞지 않으니, 어디서 온 자이기에 이다지도 촌스럽고 억센 것이냐?" 팔계가 말했다. "우리는 동토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이오. 우리 사부님은 당왕 폐하의 의동생이신 법사로서 방금 조정에 들어가 관문첩을 바꾸러 가셨느니라. 나는 사형과 함께 양념을 사러 왔는데, 누각 아래 사람이 많아 감히 가지 못하였고, 나의 사형이 여기서 기다리라 하였느니라. 그가 본래 방문이 있는 것을 보고는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떼어다가 몰래 내 품에 넣어 두고 먼저 가 버렸느니라." 그 환관이 말했다. "내 앞서 흰 얼굴에 살진 중 하나가 조문을 향해 곧장 가는 것을 보았는데, 생각하니 바로 너희 사부님이 아니냐?" 팔계가 말했다. "그러하오, 그러하오." 환관이 말했다. "너의 사형은 어디로 갔느냐?" 팔계가 말했다. "우리 일행은 네 사람이니라. 사부님은 관문첩을 바꾸러 가시고, 우리 셋과 행낭과 말은 모두 회동관에 쉬고 있느니라. 사형이 나를 놀리고는 먼저 관아로 돌아가 버렸느니라." 환관이 말했다. "교위여, 그를 잡아끌지 말라. 우리가 함께 관아로 가면 자초지종을 알 수 있으리라." 팔계가 말했다. "그대 두 할머님께서는 사리를 아시는구려." 여러 교위가 말했다. "이 중은 참으로 물건을 보는 눈이 없구나! 어찌하여 내시를 보고 할머님이라 부르느냐?"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 음양이 뒤집힌 놈들아! 그 두 분 늙은 어머님을 두고 할머님이라 부르지 않고, 도리어 내시라 부른단 말이냐!" 사람들이 말했다. "말장난하지 말고 어서 너의 사형이나 찾으러 가자." 그 거리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삼백오백 명이나 함께 관아 문 앞까지 몰려왔다. 팔계가 말했다. "여러분, 멈추시오. 나의 사형은 나와 달리 여러분이 희롱하는 것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그는 성미가 맹렬하고 진지한 선비니라. 여러분이 그를 보거든 모름지기 큰 절을 한번 올리고 손 노야라 불러 주시오. 그러면 그가 받아 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얼굴을 바꿀 터이니, 이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오." 여러 환관과 교위가 모두 말했다. "너의 사형이 참으로 재주가 있어 국왕의 병을 고쳐 낸다면 그도 강산의 절반을 가질 터이니, 우리가 마땅히 절을 올려야 하리라." 그 한가한 사람들은 모두 문 밖에서 떠들고, 팔계는 환관과 교위 일행을 이끌고 곧장 관아로 들어갔는데, 다만 행자와 사승이 객방에서 바로 그 방문을 뗀 일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그를 붙들고 마구 떠들었다. "그대가 사람 구실을 하느냐! 나더러 채소 국수와 화병과 만두를 사 먹으러 가라 해 놓고는, 알고 보니 모두 헛것이었구나! 또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무슨 황방을 떼어다 몰래 내 품에 찔러 넣고, 나를 내세워 허세를 부리게 하였구나! 이래가지고서야 형제라 할 수 있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아,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곳으로 갔던 모양이구나. 나는 고루를 지나 양념을 사고 급히 돌아와 너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내가 먼저 왔거늘, 어디에서 무슨 황방을 떼었단 말이오?" 팔계가 말했다. "지금 방문을 지키던 관리들이 여기 있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환관 몇과 교위들이 위를 향해 절을 올리며 아뢰었다. "손 노야시여, 오늘 우리 임금님께 인연이 있어 하늘이 노야를 내려보내셨사오니, 모름지기 경륜의 솜씨를 크게 펴시고 삼절굉의 재주를 조금만 베푸시어 우리 임금님의 병을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산을 나누어 가질 분이 있고 사직을 절반으로 나누게 되리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얼굴빛을 바로하여 팔계의 방문을 받아 들고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들이 바로 방문을 지키던 관리들이오?" 환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노비는 사례감의 내신이옵니다. 이 몇 사람은 금의교위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이 의원을 구하는 방문은 참으로 내가 뗀 것이니라. 그런 까닭에 내 사제를 보내어 인도하게 하였느니라. 이미 그대들 임금께 병이 있다 하나, 속담에 이르기를 약은 따라 팔지 않고 병은 의원을 찾아가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그대가 가서 그 국왕더러 몸소 나와 나를 청하라 이르게 하시오. 내게는 손이 닿으면 병이 낫는 공력이 있느니라." 환관들이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교위가 말했다. "큰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필시 도량이 있도다. 우리 가운데 절반은 여기서 조용히 모시고, 절반은 조정에 들어가 아뢰겠나이다." 마침내 환관 넷과 교위 여섯으로 나뉘어, 선지를 기다릴 것도 없이 곧장 조정에 들어가 계단 위에서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만천의 기쁨이옵니다!" 그 국왕이 바로 삼장과 함께 수라를 마치고 한담하고 있는데, 홀연 이 아뢰는 소리를 듣고 물었다. "기쁨이 어디서 온 것이냐?" 환관이 아뢰었다. "노비들이 일찍이 의원을 구하는 황방을 받아 나와 고루 아래에 걸어 두었는데, 동토 대당에서 경을 구하러 멀리 온 성승 손 장로 한 분이 그것을 떼었사옵니다. 지금 회동관 안에 있사오며, 임금님께서 몸소 가서 그를 청하시기를 바라옵니다. 그에게는 손이 닿으면 병이 낫는 공력이 있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특별히 와서 아뢰옵니다." 국왕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없이 기뻐하며 당승에게 물었다. "법사여, 고제가 몇 명이오?" 삼장이 합장하며 대답하였다. "빈승에게는 완고한 제자가 셋 있사옵니다." 국왕이 물었다. "그 어느 고제가 의술에 능하오?" 삼장이 말했다. "실로 폐하를 속이지 않고 아뢰옵니다. 그 완고한 제자들은 모두 산야의 용렬한 재주밖에 없는 자들이옵니다. 다만 짐을 지고 말을 끌며, 시내를 돌고 물결을 찾아 빈승을 인도하여 산을 오르고 고개를 넘는 일이나, 혹은 험하고 위태로운 곳에서 마귀를 굴복시키고 괴물을 잡으며 범을 붙잡고 용을 항복시키는 일쯤은 할 수 있사오나, 약성을 아는 자는 하나도 없사옵니다." 국왕이 말했다. "법사여, 어찌 그리 지나치게 겸양하시오? 짐이 마침 오늘 전각에 올랐는데 법사가 조정에 오시니 참으로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오. 고제가 의술을 모른다 하면, 그가 어찌 내 방문을 떼어 과인더러 몸소 맞으러 가라 하였겠소? 필시 나라를 고칠 능력이 있는 것이오." 그리고 외쳤다. "문무 여러 경이여, 과인은 몸이 허약하고 기력이 없어 가마를 탈 수 없노라. 그대들이 과인을 대신하여 모두 조정 밖으로 나가, 손 장로를 정중히 모셔 와 짐의 병을 보게 하라. 그대들이 그를 보거든 절대로 경히 여기지 말고, 그를 신승 손 장로라 부르며 모두 군신의 예를 갖추어 뵙도록 하라." 그 여러 신하가 명을 받들어 방문을 지키던 환관과 교위와 함께 곧장 회동관에 이르러 줄을 서서 절을 올렸다. 놀란 팔계는 곁방에 숨고, 사승은 담 아래로 비켜 섰다. 그 대성은 가운데 앉아 있는데, 보니 꼼짝도 하지 않고 태연하였다. 팔계가 속으로 원망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놈이 참으로 사람을 죽이려 하는구나! 어찌 이토록 많은 관리가 절을 올리는데 답례도 하지 않고 일어서지도 않는단 말이냐!" 오래지 않아 절을 마치고 반열을 나누어 아뢰었다. "신승 손 장로님께 아뢰옵니다. 신 등은 모두 주자국 왕의 신하이옵니다. 이제 왕의 명을 받들어 삼가 깨끗한 예로 신승을 모셔 와, 조정에 들어가 병을 보아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행자가 그제야 몸을 일으켜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들 임금은 어찌하여 오지 않았느냐?" 여러 신하가 말했다. "우리 임금께서는 몸이 허약하고 기력이 없어 가마를 탈 수 없사옵니다. 특별히 신 등에게 명하여 임금을 대신하는 예를 행하여 신승을 절하며 모셔 오라 하였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리 말한다면 여러분은 먼저 가시오. 내 마땅히 따라가겠노라." 여러 신하가 각각 품계에 따라 줄지어 걸었다. 행자가 옷을 여미고 일어서는데, 팔계가 말했다. "형님, 우리를 절대로 끌어내지 마시오." 행자가 말했다. "너를 끌어내지 않으마. 다만 너희 둘이 나를 대신하여 약을 받아 두어라." 사승이 말했다. "무슨 약을 받아 둔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누구든 약을 가지고 오거든 수량대로 받아 두어라. 내 돌아와서 쓸 것이니라." 두 사람이 승낙하였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두겠다. 이 행자가 여러 관리와 함께하니 잠깐 사이에 도착하였다. 여러 신하가 먼저 걸어가 그 국왕에게 아뢰니, 국왕은 주렴을 높이 걷고 용의 눈과 봉황의 눈을 번쩍이며 금 같은 입으로 어언을 열어 물었다. "어느 분이 신승 손 장로이오?" 행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노손이 바로 그 사람이니라." 그 국왕이 목소리가 사납고 흉포하며, 용모가 괴상하게 생긴 것을 보고는 벌벌 떨며 용상 위에 넘어졌다. 놀란 여관과 내시들이 급히 부축하여 궁중으로 모셔 가는데, 국왕이 말했다. "과인이 놀라 죽겠노라!" 여러 관리가 모두 행자를 원망하며 나무랐다. "이 중이 어찌하여 이다지도 거칠고 촌스러우며 무례하단 말이오! 어찌 감히 마음대로 방문을 떼었단 말이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나를 잘못 원망하시오. 이처럼 사람을 업신여긴다면 그대들 임금의 병은 천 년이 가도 좋지 않을 것이오." 여러 신하가 말했다.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겠소이까? 천 년이 가도 오히려 낫지 않는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는 지금 병든 임금이니, 죽으면 병든 귀신이 될 것이요, 다시 태어나도 또한 병든 사람일 터이니, 그렇다면 천 년이 가도 오히려 낫지 않는 것이 아니오?" 여러 신하가 노하여 말했다. "이 중은 예의를 전혀 모르는구나! 어찌 감히 이토록 입을 가득 채워 함부로 지껄이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 아니니, 여러분은 내 말을 들어 보시오. 의문의 이치와 법도는 지극히 미묘하고 현오하니, 요체는 마음속에 굴리고 돌릴 줄 아는 데 있느니라. 망문문절이라는 네 가지 일은 하나라도 빠지면 온전하지 못하느니라. 첫째는 그 신기와 안색을 바라보는 것이니, 윤택한가 마른가 살쪘는가 여위었는가와 일어나고 잠드는가를 살피고, 둘째는 소리의 맑음과 탁함을 듣는 것이니, 참된 말과 미친 말을 들어 보며, 셋째는 병의 근원이 며칠이나 지났는지 묻는 것이니, 음식을 어찌 먹고 대소변이 어떠한지 따져 보며, 넷째야말로 맥을 짚어 경락을 밝히는 것이니, 부침과 표리가 어떠한지를 보느니라. 내가 망문문절을 하지 않는다면, 금생에 편안하기를 바라지 말라." 그 양반 문무 관원 가운데 태의원 관원이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여러 사람에게 칭찬하며 말했다. "이 중의 말에도 이치가 있소이다. 신선이 병을 본다 하여도 또한 망문문절을 해야 하니, 신성공교에 삼가 들어맞는 것이오." 여러 관리가 이 말에 따라 가까이 모시는 자에게 전하여 아뢰게 하였다. "장로는 망문문절의 이치를 써야만 병을 알아보고 약을 쓸 수 있다 하옵니다." 그 국왕이 용상에 누운 채 거듭 소리쳐 말했다. "그를 가라 하여라! 과인은 낯선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노라!" 가까이 모시는 자가 궁에서 나와 말했다. "이 중이여, 우리 임금님의 뜻은 그대더러 가라 하시는 것이오. 낯선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다 하시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낯선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다면, 나는 현사진맥을 할 줄 아노라." 여러 관리가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현사진맥이라면 우리도 귀로 들었으나 눈으로 본 적은 없소이다. 다시 아뢰어 보시오." 그 가까이 모시는 자가 또 궁에 들어가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그 손 장로는 주공의 얼굴을 뵙지 않고도 현사진맥을 할 줄 안다 하옵니다." 국왕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과인이 병을 앓은 지 삼 년인데 일찍이 이것을 시험해 본 적이 없으니, 그를 불러 들이라." 가까이 모시는 자가 즉시 급히 나와 전하였다. "주공께서 이미 그에게 현사진맥을 허락하셨사오니, 어서 손 장로를 불러 궁에 들어가 진찰하라 하옵니다." 행자가 곧 보전에 올라가니, 당승이 마주 나오며 꾸짖었다. "이 건방진 원숭이야,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으신 사부님, 내가 도리어 사부님을 위해 위풍을 세워 드리는데, 도리어 내가 사부님을 망친다 하시나이까?" 삼장이 꾸짖으며 말했다. "너는 나를 따른 이 몇 해 동안, 일찍이 네가 누구의 병을 고치는 것을 보았느냐! 너는 약성도 모르고 의서도 읽지 않았거늘, 어찌 감히 이 큰 화를 저지르려 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은 본래 모르시옵니다. 내게 초두방 몇 가지가 있어 큰 병을 고칠 수 있사오니, 틀림없이 그를 낫게 할 수 있사옵니다. 설령 잘못 고쳐 죽인다 하여도 다만 용의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명을 물을 뿐이오니 또한 죽어 마땅한 일은 아니옵니다. 무엇이 두려우시나이까! 염려 마시옵소서, 염려 마시옵소서. 사부님은 우선 앉아서 내 맥리를 보시옵소서." 장로가 또 말했다. "너는 일찍이 '소문'과 '난경', '본초'와 '맥결'을 보았느냐? 무슨 장구이며 어찌 주석을 달았기에, 이토록 함부로 떠들며 무슨 현사진맥을 한다 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게 금선이 몸에 있사오나 사부님은 보지 못하셨소이다." 즉시 손을 아래로 뻗어 꼬리 위에서 털 세 가닥을 뽑아 한 줌 쥐고 "변하라!" 외치니, 곧 세 가닥의 실선으로 변하였는데, 각각 길이가 두 길 네 자씩이요 스물네 절기를 본뜬 것이었다. 그것을 손에 받쳐 들고 당승에게 말했다. "이것이 내 금선이 아니시오?" 곁에서 모시던 내시가 말했다. "장로님은 우선 말다툼을 그치시고 궁중에 들어가 진찰하시옵소서." 행자가 당승에게 작별하고 가까이 모시는 자를 따라 궁에 들어가 병을 보았다. 참으로 그리하니, 마음에 비방이 있어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속에 묘결을 품어야 장생을 적느니라. 필경 이번에 가서 무슨 병을 보아 내며 무슨 약재를 쓸지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69회 심주야간수약물(心主夜間修藥物) · 군왕연상론요사(君王筵上論妖邪) 이야기는 이러하다. 손대성이 근시 환관과 함께 황궁 안뜰에 이르러, 침궁 문 밖까지 곧장 나아가 서서 금실 세 가닥을 환관에게 건네어 안으로 가져가게 한 뒤 분부하였다. "내궁의 비빈이거나 근시 태감이거나, 먼저 성스러운 옥체의 왼손목 아래에, 촌과 관과 척 세 부위에 맞추어 매게 하되, 실 끝을 창살 틈으로 빼내어 내게 내어 주라." 과연 그 환관은 이 말대로 주자국 왕을 청해 용상에 앉히고, 촌·관·척에 따라 금실 한 끝을 매고 다른 한 끝은 창 밖으로 빼어 정리하였다. 행자는 실 끝을 받아 자기 오른손 엄지로 먼저 집게손가락을 받치고 촌맥을 보았으며, 다음에는 가운뎃손가락을 엄지에 얹어 관맥을 보았고, 또 엄지로 약손가락을 받쳐 고정하고 척맥을 보았다. 스스로 호흡을 고르고 조절하여 사기와 오울, 칠표와 팔리와 구후, 부중침과 침중부를 나누어 정하고 허와 실의 실마리를 분명히 가려 냈다. 또 왼손을 풀어 전과 같이 오른손목 아래 부위에 매게 하였다. 행자는 곧 왼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처음부터 다시 진찰하여 마치고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어 금실을 거두어 자기 몸에 붙인 뒤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쳐 말했다. "폐하의 왼손 촌맥은 강하고 긴박하며, 관맥은 삽삽하고 늘어져 있고, 척맥은 비어 있으면서 가라앉았사옵니다. 오른손 촌맥은 뜨면서 미끄럽고, 관맥은 늦으면서 맺혀 있으며, 척맥은 잦으면서 단단하옵니다. 무릇 왼쪽 촌맥이 강하고 긴박한 것은 속이 비어 가슴이 아픈 것이옵고, 관맥이 삽삽하고 늘어진 것은 땀이 나고 살이 저리는 것이옵고, 척맥이 비면서 가라앉은 것은 소변이 붉고 대변에 피가 섞이는 것이옵니다. 오른손 촌맥이 뜨고 미끄러운 것은 속이 맺혀 경맥이 닫힌 것이옵고, 관맥이 늦고 맺힌 것은 묵은 음식과 머물러 있는 음료가 있는 것이옵고, 척맥이 잦고 단단한 것은 번민과 그득함이 허하고 찬 것과 서로 버티고 있는 것이옵니다. 이 귀한 병을 진단하건대 놀라고 두려워하며 근심하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니, 이름하여 쌍조실군의 증세라 하옵니다." 그 주자국 왕이 안에서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몹시 기뻐하여 정신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응하여 말했다. "손끝이 밝도다! 손끝이 밝도다! 과연 이 병이로다! 어서 밖으로 나가 약을 쓰도록 하라." 대성은 그제야 느린 걸음으로 궁을 나왔다. 일찍이 곁에서 이 말을 들은 태감이 이미 먼저 여러 사람에게 알려 두었더라. 잠시 뒤 행자가 나오자 당승이 곧 어떠하냐고 물었는데, 행자가 말했다. "맥은 보았으니 이제 증세에 맞추어 약을 지을 참이오." 여러 관원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신승 장로시여, 조금 전에 두 마리 새가 무리를 잃은 증세라 하셨사온데, 그것이 무슨 뜻이오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암수 두 마리 새가 본래 한곳에서 함께 날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나운 비바람을 만나 놀라 흩어져, 암컷은 수컷을 보지 못하고 수컷은 암컷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암컷은 수컷을 그리워하고 수컷 또한 암컷을 그리워하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두 마리 새가 무리를 잃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이까?" 여러 관원이 그 말을 듣고 한목소리로 갈채하며 말했다. "참으로 신승이시로다! 참으로 신령한 의원이시로다!"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이에 태의관이 나서서 물었다. "병세는 이미 보아 내셨사오나, 무슨 약을 써서 고치실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꼭 처방에 얽매일 것 없이, 약을 보이는 대로 다 가져오라 하시오." 의관이 말했다. "경전에 이르기를 약에는 팔백여덟 가지 맛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백네 가지 병이 있다 하였사옵니다. 병이 한 사람의 몸에 모두 갖추어 있지도 않거늘, 약을 어찌 모두 쓴다는 이치가 있사오리까! 어찌하여 약을 보이는 대로 다 가져오라 하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약은 처방에 얽매이지 않고 마땅함에 맞추어 쓴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약품을 모두 징수하여 놓고 그때그때 더하고 빼는 것이니라." 그 의관은 다시는 말이 없었고, 곧 조정 문 밖으로 나가 자기 관아의 당직자에게 명하여 온 성 안의 생약방과 숙약방에 두루 알리게 하고, 즉시 약품을 맛마다 각각 세 근씩 마련하여 행자에게 보내게 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이곳은 약을 만들 자리가 못 되니, 여러 약의 분량과 약을 만드는 온갖 기물을 모두 회동관으로 보내어 내 사제 둘에게 맡겨 받아 두게 하시오." 의관이 명을 듣고 곧 팔백여덟 가지 약품을 맛마다 세 근씩과, 약을 갈아 부수는 연자매와 맷돌, 약을 치는 체와 절구, 그리고 유발과 유발 공이 따위를 모두 관중으로 보내어 하나하나 교부하여 거두게 하였다. 행자가 전각으로 올라가 사부님을 청하여 함께 관중으로 가서 약을 만들려 하는데, 그 장로가 막 일어나려는 참에 홀연 내궁에서 전지가 내려와, 법사를 머물게 하여 문화전에서 함께 묵게 하고, 내일 아침 약을 복용한 뒤 병이 나으면 후히 사례하고 관문을 바꾸어 전송하라 하였다. 삼장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제자야, 이 뜻은 나를 볼모로 잡아 두려는 것이로구나. 잘 고치면 기뻐하며 보내 주려니와, 잘 고치지 못하면 내 목숨이 끝장이로다. 너는 모름지기 마음을 세밀히 쓰고 정성을 다해 조제하도록 하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여기서 대접이나 받으시옵소서. 노손에게는 나라를 고칠 만한 솜씨가 있사옵니다." 훌륭한 대성이로다. 삼장과 헤어지고 여러 신하에게 작별을 고한 뒤 곧장 관중으로 갔다. 팔계가 마중을 나와 웃으며 말했다. "사형, 내가 그대 속을 알았소." 행자가 말했다. "네가 무엇을 안다는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경을 구하러 가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보았으니, 장사를 하려 해도 밑천이 없고, 오늘 이곳이 부유하고 풍족한 것을 보니 꾀를 내어 약방을 열려는 것이지요." 행자가 꾸짖으며 말했다. "헛소리 말아라! 주자국 왕의 병을 고쳐 놓고 뜻을 이룬 뒤에 조정에 작별하고 길을 떠날 터인데, 무슨 약방을 연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그럼 그렇지 않단 말이오? 이 팔백여덟 가지 약을 맛마다 세 근씩이면 모두 이천사백이십사 근이거늘, 한 사람만 고치는 데 얼마나 쓴다고 그러시오? 몇 해가 지나야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행자가 말했다. "거기 그렇게 많이 쓰겠느냐? 저 태의원 관원들이란 자들은 모두 어리석고 눈먼 무리니라. 그러므로 이 많은 약품을 가져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어림잡을 곳이 없게 하는 것이니, 내가 어느 몇 가지를 쓰는지 알지 못하게 하여 내 신묘한 처방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바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득 관사 두 사람이 면전에 꿇어앉으며 말했다. "신승 어른께서 저녁 공양을 드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아침에는 그다지도 나를 대하더니, 이제는 꿇어앉아 청하니 어찌된 일이냐?" 관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어른께서 오셨을 적에 하관은 눈에는 눈동자가 없어 존안을 알아보지 못하였나이다. 이제 어른께서 세 번 부러진 팔을 크게 펴시어 우리 한 나라 임금을 고치신다 하니, 만일 주상께서 병이 나으시면 어른께서는 강산에 분깁이 있으실 터이고, 우리들은 모두 신하가 되오니, 예로 마땅히 절하고 청하여야 하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흔쾌히 당에 올라 위쪽에 앉고, 팔계와 사오정은 좌우로 나뉘어 앉으니, 공양이 차려져 올라왔다. 사오정이 곧 물었다. "사형, 사부님께서는 어디 계시오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은 주자국 왕에게 볼모로 붙잡혀 계시니, 병을 고쳐 놓아야 비로소 사례하고 전송할 것이니라." 사오정이 또 물었다. "대접은 받으실 수 있겠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임금이 어찌 대접이 없겠느냐! 내가 올 때 이미 각로 세 분이 좌우에서 모시고 있어 문화전으로 모셔 들어간 참이니라." 팔계가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래도 사부님이 더 높으시구려. 사부님께는 각로가 모시고 있는데, 우리는 겨우 관사 둘의 치켜세움만 받는 판이니, 그만 두고 노저나 한 끼 배불리 먹어 보자." 형제들은 이에 스스럼없이 한바탕 즐겁게 먹었다. 날이 이미 저물자 행자가 관사를 불러 말했다. "그릇과 살림은 거두고, 기름과 초를 넉넉히 마련해 두시오. 우리가 밤이 고요해진 뒤에야 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라." 관사가 과연 기름과 초를 얼마쯤 가져다 주고 각자 흩어져 쉬게 하였다. 한밤중이 되어 천가의 거리가 고요해지고 온갖 소리가 그쳤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무슨 약을 만드시오? 일찍 일이나 끝내구려. 노저는 졸리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대황 한 냥을 가져다가 곱게 가루로 만들어라." 사오정이 이에 말했다. "대황은 맛이 쓰고 성질이 차며 독이 없고, 그 성질은 가라앉아 뜨지 않으며, 그 쓰임은 달려 나가되 머물지 않아 온갖 막힌 것을 빼앗되 막힘이 없게 하고, 화란을 평정하여 태평을 가져오니, 이름하여 장군이라 하느니라. 이는 곧 약을 달려 나가게 하는 것일 뿐이온데, 오래 앓아 허약해진 데에는 이 약을 쓰지 못할까 두렵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현제는 모르는구나. 이 약은 가래를 삭이고 기를 순하게 하여, 뱃속에 엉겨 머문 한열을 씻어 내느니라. 내 일에 참견하지 말고, 너는 가서 파두 한 냥을 가져와 껍질을 벗기고 막을 걷어 내고 두드려 기름의 독을 없앤 뒤 곱게 가루로 만들어 오너라." 팔계가 말했다. "파두는 맛이 맵고 성질이 뜨거우며 독이 있어, 단단히 쌓인 것을 깎아 내고 폐부에 가라앉은 한기를 씻어 내며, 막힌 것을 통하게 하고 물과 곡식이 지나는 길을 열어 주니, 이는 관문을 베어 문을 빼앗는 장수라, 가벼이 쓸 수 없소." 행자가 말했다. "현제, 너도 모르는구나. 이 약은 맺힌 것을 깨뜨리고 창자를 통하게 하여, 가슴이 부풀고 물이 찬 것을 다스릴 수 있느니라. 어서 만들어 오너라. 내가 좌사지맛으로 도울 약재가 따로 있느니라." 그 두 사람이 즉시 두 약을 곱게 갈며 말했다. "사형, 또 몇십 가지를 쓰시렵니까?" 행자가 말했다. "쓸 것 없다." 팔계가 말했다. "팔백여덟 가지에 맛마다 세 근씩인데, 겨우 이 두 냥만 쓴다면 참으로 사람을 놀려 먹는 것이오." 행자가 꽃무늬 자기 잔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현제는 말이 많구나. 너는 이 잔을 들고 가서 솥바닥 재를 반 잔 긁어 오너라." 팔계가 말했다. "그건 어디에 쓰시려고요?" 행자가 말했다. "약에 써야 하느니라." 사오정이 말했다. "소제는 약에 솥바닥 재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솥바닥 재를 백초상이라 이름하니 온갖 병을 조절할 수 있느니라. 너희가 모르는 것이니라." 그 멍청이는 참으로 반 잔을 긁어 와서 또 곱게 갈았다. 행자가 또 잔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너는 다시 가서 우리 말의 오줌을 반 잔쯤 받아 오너라." 팔계가 말했다. "그건 어디에 쓰시려고요?" 행자가 말했다. "알약을 빚아야 하느니라." 사오정이 또 웃으며 말했다. "형님, 이건 장난이 아니옵니다. 말 오줌은 비리고 고약한 냄새가 나거늘, 어찌 약재에 넣을 수 있사오리까? 소제는 초로 쑨 풀로 알약을 빚고, 묵은 쌀로 쑨 풀로 알약을 빚고, 꿀을 달여 알약을 빚고, 혹은 다만 맑은 물로 알약을 빚는 것만 보았사옵니다. 어느 때에 말 오줌으로 알약을 빚는 것을 보았사옵니까? 그 물건은 비리고 고약하여 비장이 허한 사람은 한 번 냄새만 맡아도 곧 토하거늘, 다시 파두와 대황을 먹이면 사람을 위로도 토하고 아래로도 설사하게 만드니, 이것이 장난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속사정을 모르는구나. 내 그 말은 범상한 말이 아니니 본래 서해의 몸을 지닌 용이니라. 만일 그놈이 기꺼이 오줌을 누어 주기만 한다면 무슨 병이든 먹기만 하면 곧 나으리라. 다만 급히는 얻기 어려울 뿐이니라." 팔계가 그 말을 듣고 참으로 말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말은 비스듬히 땅에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그 멍청이는 발로 한 차례 차서 일으켜 놓고 배 밑을 받치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전혀 오줌을 누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달려와서 행자에게 말했다. "형님, 임금님 병 고치러 갈 것 없이, 어서 말이나 고치러 갑시다. 그 죽을 놈이 말라붙었는지 오줌 한 방울 나올 성싶지 않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 가마." 사오정이 말했다. "나도 가서 보겠소." 세 사람이 모두 말 곁으로 갔는데, 그 말이 벌떡 일어나며 입으로 사람의 말을 뱉고는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쳐 말했다. "사형, 그대가 어찌 모르시나이까? 나는 본래 서해의 비룡이옵니다. 천조를 범한 죄를 지었거늘 관음보살께서 나를 구하시어, 뿔을 켜고 비늘을 벗기고 말로 변하게 하시어 사부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며 공을 세워 죄를 갚게 하셨나이다. 내가 물을 지나며 오줌을 누면 물속의 고기가 먹고 용이 될 것이요, 산을 지나며 오줌을 누면 산속의 풀머리가 맛을 얻어 영지로 변하고 선동이 캐어 가서 장수하리이다. 내가 어찌 이 속된 곳에서 가벼이 내버리려 하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아우는 삼가 말하라. 이곳은 서방의 임금 나라이니 속된 곳이 아니요, 또한 가벼이 내버리는 일도 아니니라. 상투적인 말에 이르기를, 여러 사람의 털을 모아 갖옷을 만든다 하였거늘, 본 나라 임금의 병을 고쳐야 하느니라. 잘 고쳐 내면 모두가 빛날 터이나, 그렇지 못하면 이 땅을 좋게 떠나지 못할까 두렵느니라." 그 말이 그제야 "기다리시오!" 하고 소리를 내었다. 보라, 그놈이 앞으로 한 번 몸을 내밀고 뒤로 한 번 웅크리더니, 입 가득한 이빨을 으드득으드득 소리가 크게 울리도록 악물고는 겨우 몇 방울을 힘주어 짜내고 나서 몸을 일으켜 섰다. 팔계가 말했다. "이 죽을 놈! 그것이 황금물이라면 좀 더 싸도 되지 않느냐!" 행자가 잔에 반 조금 못하게 찬 것을 보고 말했다. "됐다! 됐다! 가져가거라." 사오정이 그제야 기뻐하였다. 세 사람이 청사로 돌아와 앞서 마련한 약재를 한곳에 섞고는 큰 알약 세 개를 비벼 만들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들아, 너무 크구나." 팔계가 말했다. "겨우 호두알만 한데, 노저가 먹는다면 한 입에도 모자랄 것이오!" 이리하여 작은 합 하나에 담아 두고, 형제들은 옷을 입은 채로 누워 잠이 들었으니, 밤새 아무 일이 없었다. 어느덧 날이 밝았다. 그 주자국 왕은 병을 무릅쓰고 조회를 열어 당승을 청하여 만나 보고는, 곧 여러 관원에게 분부하여 빨리 회동관으로 가서 신승 손장로에게 절하고 약을 받아 오라 하였다. 여러 관원이 관중으로 따라가 행자를 향해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우리 임금께서 특별히 신하들에게 명하여 묘한 약제를 절하고 받아 오라 하셨나이다." 행자가 팔계에게 합을 가져오라 하여 뚜껑을 열고 여러 관원에게 건네주었다. 여러 관원이 여쭈어 물었다. "이 약의 이름이 무엇이오니까? 임금께 뵙고 아뢰어야 하겠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이 약의 이름은 오금단이니라." 팔계 두 사람이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솥바닥 재를 버무린 것이니 어찌 오금이 아니겠는가!" 여러 관원이 또 물었다. "약인자는 무엇으로 써야 하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약인자는 두 가지가 다 통하느니라. 그중 쉬이 구할 수 있는 것은 여섯 가지 물건을 달인 탕으로 넘기는 것이니라." 여러 관원이 물었다. "그 여섯 가지란 무엇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반공중에 나는 늙은 까마귀의 방귀, 빠른 물에 업힌 잉어의 오줌, 왕모낭낭이 얼굴에 바르는 분, 노군의 화덕에서 단을 단련한 재, 옥황이 쓰다 버린 두건 세 조각, 그리고 잠든 용의 수염 다섯 가닥이니라. 이 여섯 가지를 달인 탕으로 이 약을 넘기면, 그대들 임금의 근심병이 그 자리에서 가시리라." 여러 관원이 듣고 말했다. "이 물건들은 세상에 없는 것이오니, 다른 한 가지 약인자는 무엇인지 여쭙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무근수로 넘기면 되느니라." 여러 관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쉬이 구할 수 있겠소이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쉬이 구할 수 있다 보느냐?" 여러 관원이 말했다. "이 고장 사람들의 속된 이야기로는 무근수를 쓰려거든 사발 하나를 들고 우물가나 냇가로 가서 물을 푼 뒤 급히 걸음을 돌려, 땅에 닿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집에 가서 환자에게 먹이면 된다고 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우물과 냇물은 모두 뿌리가 있는 물이니라. 내가 말하는 무근수는 그런 것이 아니요, 하늘에서 내려 땅에 닿지 않은 채로 먹어야 비로소 무근수라 하는 것이니라." 여러 관원이 또 말했다. "이 또한 쉬운 일이오이다. 날이 흐려 비가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약을 드시면 그만이옵니다." 이에 행자에게 절하며 사례하고 약을 받아 임금에게 올렸다. 주자국 왕이 크게 기뻐하며 곧 근시에게 명하여 받아 올리고는 보고서 말했다. "이것이 무슨 알약이냐?" 여러 관원이 말했다. "신승께서 오금단이라 하셨사온데, 무근수로 넘겨 드시라 하였나이다." 주자국 왕이 곧 궁인에게 무근수를 가져오라 하니, 여러 관원이 말했다. "신승의 말씀에 무근수란 우물이나 냇물이 아니요, 하늘에서 내려 땅에 닿지 않은 것이라 하였나이다." 주자국 왕이 즉시 당가관을 불러 전지를 내려, 법관을 청하여 비를 빌게 하라 하였다. 여러 관원이 그대로 따라 방을 내걸었는데, 이는 뒤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이야기는 다시 이러하다. 행자가 회동관 청사에서 저팔계를 불러 말했다. "조금 전에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라야 약을 쓸 수 있다고 허락하였거늘, 이때가 급한데 어찌 빗물을 얻겠느냐? 내가 보니 이 임금도 자못 어질고 덕 높은 군주이니, 내가 너와 함께 비를 좀 도와 약을 내리게 하는 것이 어떠하냐?" 팔계가 말했다. "어떻게 돕는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내 왼쪽에 서서 보성이 되어라." 또 사오정을 불러 말했다. "너는 내 오른쪽에 서서 필숙이 되어라. 노손이 그에게 무근수를 좀 도와 주마." 훌륭한 대성이로다. 강두루의 결을 밟고 주문을 한 소리 외우자, 이내 정동쪽에서 검은 구름 한 떨기가 점점 머리 위로 다가왔다. 그 구름이 외쳐 말했다. "대성이시여, 동해 용왕 오광이 와서 뵈옵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일이 없으면 번거롭게 할 수 없거니와, 그대를 청한 것은 임금께서 약을 드실 무근수를 좀 도와 달라는 것이니라." 용왕이 말했다. "대성께서 부르실 적에 물을 쓴다는 말씀이 없으셨사오니, 소룡이 홀몸으로 왔을 뿐이옵고, 비 오는 기구를 가져오지도 못하였사오며, 또한 바람과 구름과 우레와 번개도 데려오지 못하였사온즉 어찌 비를 내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이번에는 바람과 구름과 우레와 번개가 쓰이지 않고, 또한 비가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다만 약을 넘길 조금의 물만 있으면 되느니라." 용왕이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내가 재채기를 두 번 하고 침과 콧물을 좀 토해 내어 그가 약을 먹게 하면 되겠나이다." 행자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가장 좋도다! 가장 좋도다! 더 망설일 것 없이 일찍 시작하라." 그 늙은 용이 공중에서 차츰 검은 구름을 낮추어 황궁 위에 이르러, 몸을 숨기고 모습을 감춘 채 입에 머금은 침을 한 입 뿜어내니, 이에 단비가 되었다. 온 조정의 관원들이 한목소리로 갈채를 보내며 말했다. "우리 임금께 만 번의 기쁨이로다! 하늘이 단비를 내리시는구나!" 주자국 왕이 곧 전지를 내려 분부하였다. "그릇을 가져다 담아 두라. 궁 안팎을 가리지 않고 관원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신선의 물을 받아 두어 과인을 구하라." 보라, 문무의 많은 관원과 삼궁육원의 비빈과 삼천의 채녀와 팔백의 교태로운 미녀들이 하나하나 잔을 들고 받침을 받치며, 사발을 들고 쟁반을 받쳐 들고 단비를 기다려 받고 있었다. 그 늙은 용은 반공중에서 침과 콧물을 부려 내어 왕궁 앞뒤를 떠나지 않은 채 한참 동안이나 그리하다가, 대성에게 작별하고 바다로 돌아갔다. 여러 신하가 잔과 그릇과 사발과 받침을 거두어 오니, 한두 방울을 받은 이도 있고 서너 방울에서 대여섯 방울을 받은 이도 있으며, 한 방울도 받지 못한 이도 있었는데, 모두 한곳에 합치니 사발 세 잔 남짓한 양이 되어 모두 어안에 올려 바쳤다. 참으로 그러하였으니, 기이한 향기가 금란전에 가득 스며들고, 아름다운 맛이 천자의 뜰에 훈훈히 퍼지더라! 그 주자국 왕은 법사에게 작별하고 오금단과 단비를 가지고 궁중으로 들어가, 먼저 한 알을 삼키고 단비 한 잔을 마셨으며, 다시 한 알을 삼키고 또 단비 한 잔을 마셨다. 세 번째에도 알약 세 개를 모두 삼키고 단비 세 잔을 모두 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뱃속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여, 도르래 소리처럼 끊이지 않았다. 곧 뒷간 통을 가져오게 하여 서너 차례에서 대여섯 차례까지 줄쌓아 내려가고는, 쌀 끓인 물을 조금 마시고는 용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웠다. 비빈 두 사람이 뒷간 통을 들어 살펴보니, 그 오물과 가래와 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는데 그 속에 찹쌀밥 덩이 한 뭉치가 있었다. 비빈이 용상 가까이로 나아와 아뢰었다. "병의 뿌리가 모두 내려왔나이다!" 주자국 왕이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또 찹쌀밥을 한 차례 더 들었다. 잠시 뒤 점차 가슴이 넉넉하고 편안해지며 기혈이 조화를 이루어 정신이 펄펄 살아나고 다리의 힘이 굳세어졌다. 용상에서 내려와 조복을 입고는 곧 보전에 올라 당승을 만나 보고는 몸을 던져 절을 하였다. 그 장로가 황급히 답례하였다. 절을 마친 뒤 임금이 어손으로 그를 부축하고는 각하에게 분부하였다. "어서 간찰을 갖추되, 그 위에 짐이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린다는 글자를 써서, 관원을 보내 법사의 높은 제자 세 분을 공손히 청하도록 하라. 한편으로는 동각을 크게 열고 광록시에서 잔치를 차려 사례하도록 하라." 여러 관원이 명을 받들어, 간찰을 갖출 이들은 간찰을 갖추고 잔치를 차릴 이들은 잔치를 차리니, 참으로 나라에는 산을 뒤엎을 만한 힘이 있어 잠깐 사이에 모두 끝났다. 이야기는 다시 이러하다. 팔계는 관원이 간찰을 전하는 것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말했다. "형님, 과연 좋은 묘약이었소! 이제 와서 사례하는 것은 형님의 공이시오."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님, 그게 무슨 말이오! 상투적인 말에 이르기를, 한 사람에게 복이 있으면 한 집을 끌어 준다 하였소. 우리가 여기서 약을 만든 것도 모두 공이 있는 사람이니, 그저 가서 대접이나 받고 다시는 말이 많지 마시오." 오호라! 보라, 그 형제들이 모두 환희에 넘쳐 곧장 조정으로 들어왔다. 여러 관원이 인도하니 동각에 올라가니, 벌써 당승과 주자국 왕과 각로가 모두 거기에 있어 잔치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 행자는 팔계와 사오정과 함께 사부님께 읍을 올리고, 뒤이어 여러 관원이 모두 이르렀다. 보니 위쪽의 채식 탁자 넷이 모두 보기만 해도 열 가지를 먹는 듯한 잔치요, 앞쪽의 육식 탁자 하나도 또한 보기만 해도 열 가지를 먹는 듯한 진수였다. 좌우의 단독 탁자 사오백 개도 참으로 가지런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진수는 백 가지 맛이요, 아름다운 술은 천 종이라 하였다. 옥처럼 빛나는 기름진 젓과 비단처럼 고운 붉은 고기, 보배처럼 꾸민 꽃은 채색이 곱고 과자의 맛은 향기로웠다. 사탕으로 늘어놓은 용과 사자와 신선의 형상, 화덕에서 끌어 낸 떡과 정과는 봉황의 짝을 벌였구나. 육식에는 돼지와 양과 닭과 거위와 물고기와 오리의 갖가지 고기가 있고, 채식에는 채소와 죽순과 목이버섯과 표고버섯이 있었다. 몇 가지 향기로운 국수와, 여러 차례 내놓은 투명한 사탕과, 미끄럽고 부드러운 기장밥과 맑고 신선한 줄풀 열매 죽이 있었다. 가지가지 가루국은 향기롭고 매콤하며, 모든 반찬은 아름답고 또한 달았다. 임금과 신하가 잔을 들어 자리를 정하고, 이름과 품계에 따라 차례로 술잔을 돌렸다. 그 주자국 왕이 어손으로 잔을 들어 먼저 당승에게 자리를 권하니,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술을 마실 줄 모르나이다." 주자국 왕이 말했다. "고기를 섞지 않은 맑은 술이니, 법사께서 이 한 잔을 드시는 것이 어떠하시오?" 삼장이 말했다. "술은 승가의 첫째 계율이옵니다." 주자국 왕이 몹시 미안해하며 말했다. "법사께서 술을 끊으셨거늘, 그러면 무엇으로 공경을 표한단 말이오?" 삼장이 말했다. "어리석은 제자 세 사람이 대신 마시게 하시옵소서." 주자국 왕이 그제야 기뻐하며 금잔을 돌려 행자에게 건넸다. 행자가 술을 받아 여러 사람에게 예를 갖추고 한 잔 마셨다. 주자국 왕이 그가 시원스럽게 마시는 것을 보고 또 한 잔을 올렸다. 행자는 사양하지 않고 또 마셨다. 주자국 왕이 웃으며 말했다. "삼보종을 한 잔 하시오." 행자는 사양하지 않고 또 마셨다. 주자국 왕이 또 따르게 하며 말했다. "사계배를 한 잔 하시오." 곁에 있던 팔계는 자기에게는 술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꿀꺽꿀꺽 침을 삼키며 참고 있었는데, 또 주자국 왕이 굳이 행자에게 권하는 것을 보고는 소리를 지르며 나섰다. "폐하, 그 약을 먹은 데는 나도 힘을 보탰소이다. 그 약 속에 말이 있으니—" 이 말을 들은 행자는 그 멍청이가 비밀을 누설할까 두려워, 손에 들고 있던 술을 팔계에게 건넸다. 팔계는 받아들고 곧 마시며 더는 말하지 않았다. 주자국 왕이 물었다. "신승께서 약 속에 말이 있다 하셨는데, 무슨 말이오이까?" 행자가 입을 받아 말했다. "제 이 동생은 입이 이다지도 헤퍼서,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좋은 방이 있으면 곧 남에게 말하려 하는 것이니라. 폐하께서 아침에 드신 약 속에는 마두령이 들어 있었나이다." 주자국 왕이 여러 관원에게 물었다. "마두령이 무슨 맛이며 무슨 증세를 고칠 수 있느냐?" 이때 태의원 관원이 곁에 있다가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마두령은 맛이 쓰고 차며 독이 없고, 천식을 가라앉히고 가래를 삭이는 데 큰 공이 있나이다. 기를 통하게 하여 피붙은 이를 없애는 데 가장 뛰어나고, 허한 것을 보하고 기침을 그치게 하며 또한 속을 편하게 하옵니다." 주자국 왕이 웃으며 말했다. "쓰기에 알맞도다! 쓰기에 알맞도다! 저장로도 한 잔 더 드시오." 그 멍청이는 역시 말없이 삼보종 한 잔을 마셨다. 주자국 왕이 또 사오정에게 술을 건네니 그도 세 잔을 마시고는 모두 자리에 앉았다. 잔치가 오래 이어지자 주자국 왕이 또 큰 잔을 들어 행자에게 올렸다. 행자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앉으시옵소서. 노손은 차례에 따라 마음껏 마실 것이니, 결코 사양하지 않겠나이다." 주자국 왕이 말했다. "신승의 은혜가 산처럼 무거워 과인이 사례해도 다함이 없사오니, 좋든 싫든 이 큰 잔을 드시옵소서. 짐에게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든 하시옵소서. 노손이 마셔야 하겠나이다." 주자국 왕이 말했다. "과인은 몇 해째 근심하고 의심하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신승의 영단 한 첩으로 뚫려 통하였으므로 곧 나았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노손이 폐하를 진찰해 보니 이미 근심하고 의심하는 병인 줄 알았사오나, 무엇을 놀라고 근심하셨는지는 모르겠나이다." 주자국 왕이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집안의 추한 일은 밖에서 말할 수 없다 하였거늘, 신승은 짐의 은혜로운 주인이시니 비웃지 않으실 터이라야 말씀드릴 수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 감히 비웃사오리까. 말씀하셔도 무방하옵니다." 주자국 왕이 말했다. "신승께서는 동쪽에서 오시며 몇 나라를 지나오셨는지 모르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지나온 것이 대여섯 곳이옵니다." 주자국 왕이 또 물었다. "다른 나라의 왕비는 무슨 칭호를 쓰는지 아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임금의 비는 모두 정궁과 동궁과 서궁이라 부르나이다." 주자국 왕이 말했다. "과인은 그런 칭호를 쓰지 않사옵니다. 정궁을 금성궁이라 부르고, 동궁을 옥성궁이라 부르고, 서궁을 은성궁이라 부르나이다. 지금은 은궁과 옥궁 두 왕비만 궁에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금성궁은 어찌하여 궁에 계시지 않사옵니까?" 주자국 왕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궁에 없는 지 이미 삼 년이 되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어느 쪽으로 가셨사옵니까?" 주자국 왕이 말했다. "삼 년 전 단오절이었사옵니다. 짐이 비빈들과 함께 어화원 해류정 아래에서 종자를 풀고 쑥을 꽂으며, 창포와 웅황이 든 술을 마시고 용주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나이다. 그런데 홀연 한바탕 바람이 불더니 반공중에 요정 하나가 나타나 스스로 새태세라 일컬으며, 자기는 기린산 해치동에 사는데 굴에 부인이 하나 부족하다 하고, 내 금성궁이 얼굴이 아름답고 자태가 고와서 부인으로 삼으려 하니, 짐에게 어서 빨리 내보내라 하였나이다. 만일 세 번 외치도록 내어 주지 않으면 먼저 과인을 잡아먹고, 뒤에 여러 신하를 잡아먹고, 온 성의 백성을 모조리 잡아먹어 버리겠다 하였나이다. 그때 짐은 나라와 백성을 근심하여 하는 수 없이 금성궁을 해류정 밖으로 밀어 내었거늘, 그 요물이 소리 한 번에 빼앗아 가 버렸나이다. 짐은 이 일로 놀라고 두려워한 나머지 그 종자가 속에 엉겨 머물고, 또 밤낮으로 근심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고통스러운 병이 삼 년이 된 것이나이다. 이제 신승의 영단을 먹고 나서 여러 차례 내려간 것이 모두 그 삼 년 전에 쌓이고 머물러 있던 물건이었으므로, 이제야 몸이 건강하고 가벼워져 정신이 예전과 같사옵니다. 오늘의 목숨은 모두 신승께서 주신 것이니, 어찌 태산처럼 무거울 뿐이겠나이까!"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기쁨에 가득하여 그 큰 잔의 술을 두 입에 들이키고는 웃으며 주자국 왕에게 물었다. "폐하께서 본래 이토록 놀라고 근심하셨던 것이옵니다! 이제 노손을 만나 다행히 나으셨사온데, 금성궁을 나라로 돌아오게 하고 싶으신지 모르겠나이다." 그 주자국 왕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짐은 간절하고 간절하게, 낮이고 밤이고 그리워하고 있사오나, 다만 그 요정을 잡아 낼 자가 하나도 없사옵니다. 어찌 그이가 나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을 이치가 있사오리까!" 행자가 말했다. "내 노손이 그대를 위하여 요사한 놈을 항복받으러 가리다. 그때에는 어떠하시겠나이까?" 주자국 왕이 꿇어앉으며 말했다. "만일 짐의 왕비를 구해 주신다면, 짐은 삼궁구빈을 거느리고 성을 나가 백성이 되어, 한 나라의 강산을 모두 신승께 바쳐 그대로 임금이 되시도록 하겠나이다." 곁에 있던 팔계가 이런 말을 하고 이런 예를 갖추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황제는 체통을 잃었구려! 어찌 아내 때문에 강산을 버리고 중에게 꿇어앉는단 말이오?" 행자가 급히 앞으로 나서서 주자국 왕을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폐하, 그 요정이 금성궁을 데려간 뒤로 이즈음에 또 온 적이 있사옵니까?" 주자국 왕이 말했다. "그놈은 재작년 오월 절에 금성궁을 빼앗아 간 뒤, 시월 무렵에 와서 궁아 둘을 달라 하였사옵니다. 낭낭을 모시게 한다 하였사온즉 짐이 곧 둘을 내어 주었나이다. 지난해 삼월 무렵에 또 와서 궁아 둘을 달라 하였고, 칠월 무렵에 또 둘을 데려갔으며, 올해 이월에도 또 둘을 데려갔사오니, 어느 때에 또 올는지 알 수 없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놈이 이토록 자주 오거늘, 그대들은 그놈이 두렵지 않사옵니까?" 주자국 왕이 말했다. "과인이 그놈이 여러 차례 오는 것을 보고 하나는 두렵고 둘은 해칠 뜻이 있을까 염려되어, 지난해 사월에 짐이 공장에게 명하여 피요루 하나를 세웠사옵니다. 바람 소리만 들으면 그놈이 온 줄 알고 곧 두 왕비와 아홉 비빈을 거느리고 누각으로 들어가 피하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폐하께서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노손을 데리고 그 피요루를 한 번 가서 보게 해 주시겠나이까?" 그 주자국 왕이 곧 왼손으로 행자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나서니, 여러 관원도 모두 일어났다.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대는 사리에 어둡구려! 이런 어주를 두고 마시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무엇을 보러 간단 말이오?" 주자국 왕이 그 말을 듣고 팔계가 입을 위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곧 당가관에게 명하여 채식 탁자 두 개를 메어다 피요루 밖에 차려 놓고 술을 대령하게 하였다. 그 멍청이는 그제야 떠들지 않고 사부님과 사오정과 함께 웃으며 말했다. "자리를 옮겨 가는구려." 문무관 한 무리가 앞에서 인도하고, 그 주자국 왕과 행자가 서로 부축하며 황궁을 지나 어화원 뒤로 갔으나, 누대와 전각은 보이지 않았다. 행자가 말했다. "피요루가 어디 있사옵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환관 둘이 붉은 칠을 한 장대 두 개를 들고 그 빈터로 가서 네모난 돌판 한 장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주자국 왕이 말했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외다. 이 밑으로 석 장이 넘는 깊이인데, 아홉 칸의 조전을 꾸며 놓았고, 그 안의 큰 항아리 넷에 맑은 기름을 가득 부어 등불을 켜 두어 밤낮 꺼지지 않게 하였나이다. 과인은 바람 소리를 들으면 곧 안으로 들어가 피하고, 밖에서는 사람을 시켜 돌판을 덮게 하느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요정이 아직은 폐하를 해치지 않는 것이외다. 만일 폐하를 해치려 한다면 이곳이 어찌 피할 수 있겠나이까?" 바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득 정남쪽에서 훠훠 하는 소리가 나며 바람이 불어 티끌을 날리고 흙을 뿌렸다. 놀란 여러 관원이 한목소리로 원망하며 말했다. "이 중의 입은 소금 간장을 두른 입이로구나! 무슨 요정을 말하니 요정이 곧 오는구려!" 놀란 주자국 왕은 행자를 버려 둔 채 곧 지하 굴로 기어들어 가고, 당승도 따라 들어갔으며 여러 관원도 모조리 숨었다. 팔계와 사오정도 숨으려 하였는데, 행자가 두 손으로 그 둘을 붙잡으며 말했다. "동생들아, 겁내지 말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 그놈을 알아보아 어떤 요정인지 보자." 팔계가 말했다. "웬 헛소리요! 그놈을 알아보아 무엇 하겠소? 여러 관원은 숨고, 사부님은 감추고, 임금은 피하였거늘, 우리도 가지 말고 그만둡시다. 누구 집안 자랑을 한답시고 나서는 것이오!" 그 멍청이는 왼쪽으로도 버둥거리고 오른쪽으로도 버둥거렸으나 손을 벗어날 수 없어, 행자에게 붙잡혀 한참을 끌려간 끝에 반공중에서 요정 하나가 번쩍 나타났다. 보라, 그놈의 생김새가 어떠하였는가. 아홉 자나 되는 긴 몸은 몹시 사납고 흉악하며, 한 쌍의 둥근 눈은 금등불을 번쩍이는구나. 두 쌍의 벌어진 귀는 부채를 펼친 듯하고, 네 개의 강철 어금니는 못을 박아 둔 듯하며, 귀밑털은 붉은 털로 휘감겼는데 눈썹은 불꽃을 세웠고, 코는 드리웠는데 콧구멍이 훤하게 열렸으며, 콧수염과 구레나룻 몇 가닥은 주사선 같고, 광대뼈가 불쑥 솟아 얼굴 가득 푸르스름하구나. 두 팔에는 붉은 힘줄이 서리고 손은 남빛 물을 들인 듯하며, 열 개의 뾰족한 발톱으로 창을 쥐었구나. 표범 가죽 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맨발에 헝클어진 머리를 보니 귀신의 형상이로다. 행자가 보고서 말했다. "사오정, 너는 그놈을 아느냐?" 사오정이 말했다. "소승은 일찍이 그놈과 안면을 튼 적이 없사온데 어찌 알겠나이까!" 행자가 또 물었다. "팔계, 너는 그놈을 아느냐?" 팔계가 말했다. "나는 그놈과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신 적도 없고, 또 손님이나 벗이나 이웃도 아니거늘, 내가 어찌 그놈을 알겠소!" 행자가 말했다. "그놈은 동악천제의 수하에서 문을 지키던 그 초면금정 귀신과 비슷하구나." 팔계가 말했다. "아니요! 아니요!"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그놈이 아니라고 아느냐?" 팔계가 말했다. "내가 어찌 모르겠소? 귀신이란 음령이라, 하루가 저물어 신유술해의 시각이 바뀔 때라야 비로소 나오는 것이오. 오늘은 아직 사시거늘, 어느 귀신이 감히 나올 수 있겠소? 설령 귀신이라 한들 구름을 탈 줄도 모르거니와, 바람을 부릴 줄 안다 한들 다만 한바탕 회오리바람뿐이거늘, 어찌 이런 광풍이 있겠소? 혹시 그놈이 바로 새태세가 아닌지 모르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자못 이치에 맞는 구석이 있구나! 그렇게 말한다면 너희 둘은 여기서 지키고 있어라. 노손이 가서 그놈의 이름을 물어, 주자국 왕을 위하여 금성궁을 구해 조정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팔계가 말했다. "그대는 가려거든 가되, 우리를 불어 대지는 마시오." 행자는 거만하게 대답도 없이 급히 상서로운 빛을 타고 위로 뛰어올랐다. 오호라! 바로 그러하였으니, 나라를 편안케 하려면 먼저 임금의 병을 물리쳐야 하고, 도를 지키려면 모름지기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야 하느니라. 필경 이렇게 가서 공중에 이르러 승패가 어떠하며, 어떻게 요괴를 사로잡고 금성궁을 구해 내는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0회 요마보방연사화(妖魔寶放煙沙火) · 오공계도자금령(悟空計盜紫金鈴) 이야기는 이러하다. 손행자가 신위를 떨쳐 내며 쇠몽둥이를 쥐고 상서로운 빛을 밟아 허공으로 솟아올라, 상대의 면전에서 큰 소리로 호통쳤다. “너는 어디서 굴러온 사악한 마물이기에, 어느 곳으로 가서 제멋대로 날뛰려 하느냐!” 그 괴물이 사나운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다. “우리 무리는 딴 누가 아니라, 기린산 해치동의 새태세 대왕님 수하의 선봉이니라. 오늘 대왕의 분부를 받들어 이곳에 이르러 궁녀 두 명을 데려가 금성궁낭낭을 모시게 하려는 길이다. 너는 누구기에 감히 나에게 묻느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제천대성 손오공이니, 동쪽 땅의 당승을 모셔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하는 길에 이 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너희 이 무리의 사악한 마물이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웅장한 재주를 펼쳐 나라를 다스리고 사악한 기운을 쫓으려 하는 길이다. 마침 너희를 찾아낼 길이 없던 판에, 네가 스스로 목숨을 바치러 온 것이로다!” 그 요괴는 이 말을 듣고 분별도 없이 긴 창을 뻗어 곧바로 행자를 찔렀다. 행자가 쇠몽둥이를 들어 정면에서 맞받아치니, 허공 한가운데서 이 한바탕의 통쾌한 격전이 벌어졌으니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몽둥이는 용궁에서 바다를 누르는 보배요, 창은 인간 세상에서 거듭 단련한 쇠로다. 무릇 범인의 병기가 어찌 감히 신선의 병기와 겨루려 하며, 조금이라도 스치면 신령한 기운이 새어 나가느니라. 대성은 본래 태을의 신선이요, 요정은 본래 사악한 마구니의 업보니라. 귀신 따위가 어찌 바른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 있으리오, 한 번 바름이 일어나면 사악함은 곧 멸하느니라. 저놈은 바람을 부리고 흙을 날려 임금을 겁박하고, 이놈은 안개를 밟고 구름을 타 올라 해와 달을 가리누나. 자세를 활짝 펴고 승부를 겨루니, 무능한 자 누가 감히 호걸을 자랑하리오! 그래도 제천대성이 유능하여, 쩡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몽둥이 한 방에 창이 먼저 부러졌다. 그 요정은 행자의 쇠몽둥이 한 방에 창을 두 토막 내이자, 다급히 목숨을 건사하느라 바람머리를 돌려 곧장 서쪽으로 패주하였다. 행자는 그를 서두르지 않고 구름을 내려 요괴를 피하던 누각의 지하 굴 밖에 이르러 외쳤다. “사부님, 폐하와 함께 나오시옵소서. 괴물을 이미 쫓아버렸나이다.” 그제야 당승이 임금을 부축하고 굴 밖으로 나와 보니, 하늘이 온통 맑고 개어 요사스러운 기운은 조금도 없었다. 그 임금이 곧 주석이 차린 자리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주전자를 들어 잔에 술을 가득 따라 행자에게 올리며 말했다. “신승이시여, 우선 감사의 뜻을 표하옵니다! 우선 감사하옵니다!” 행자가 술잔을 손에 쥐고 아직 대답도 하기 전에, 조정 문밖에서 관리가 달려와 아뢰었다. “서문 쪽에 불이 붙었사옵니다!” 행자가 이 말을 듣자 금잔을 술과 함께 허공으로 내던졌다. 쨍그랑 소리가 울리며 그 금잔이 땅에 떨어졌다. 임금이 당황하여 몸을 굽히고 예를 갖추며 말했다. “신승이시여, 용서하옵소서! 용서하옵소서! 이 몸이 잘못했나이다! 예라면 마땅히 전각에 모셔 올라가 절하며 감사드려야 하옵건만, 다만 이 자리에 이렇게 술자리가 마련되어 있사옵기에 그만 이 자리에서 올렸나이다. 그런데 신승께서 술잔을 내던지셨으니, 어찌 괘씸히 여기시는 뜻이 없으시겠나이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이 아니옵니다, 그런 말씀이 아니옵니다.” 잠시 뒤에 또 관리가 와서 아뢰었다. “참으로 반가운 비로소이다! 방금 서문 쪽에 불이 붙었는데, 한바탕 큰비가 내려 그 불을 껐사옵니다. 거리에는 물이 넘쳐흐르는데 온통 술 냄새가 진동하옵니다.” 행자가 또 웃으며 말했다. “폐하, 내가 술잔을 내던지는 것을 보시고 괘씸히 여기는 뜻이 있다고 의심하셨사온데, 그렇지 않사옵니다. 저 요괴가 서쪽으로 패주하였거늘 내가 그를 뒤쫓지 않았더니, 도리어 그가 불을 질렀나이다. 이 한 잔의 술은 곧 내가 요괴의 불을 끄고 서성 안팍의 인가를 구한 것이니,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나이까!” 임금이 더욱 크게 기뻐하며 존경하는 마음을 더하였다. 곧 당삼장 사부와 세 제자를 보전에 함께 오르도록 청하니, 자리를 내어 나라를 양보하고 싶은 뜻까지 비쳤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폐하, 방금 저 요정은 스스로 새태세의 수하 선봉이라 일컬으며 이곳에 궁녀를 받으러 왔사옵니다. 그가 이제 싸움에 져서 돌아갔으니, 틀림없이 그놈에게 이 일을 알릴 것이옵고, 그놈은 반드시 와서 나와 다투려 할 것이옵니다. 내가 염려하기는 그놈이 갑자기 군사를 일으켜 무리를 거느리면, 백성들이 놀라고 다치는 일을 면치 못할 터이고 폐하께 위협이 될까 두렵사옵니다. 그놈을 마중 나가 맞아 그 반공중에서 붙잡아 성후를 모셔 오고자 하옵니다. 다만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이곳에서 저 산의 굴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사온지 알지 못하옵니다.” 임금이 말했다. “과인은 일찍이 정찰병 군마를 그곳에 보내 정세를 엿보게 한 적이 있사온데, 오가는 데 오십여 일이 걸렸나이다. 자리는 남쪽에 있사오며 대략 삼천여 리쯤 되옵니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외쳤다. “팔계와 사오정은 이곳에서 잘 지키고 있어라. 노손은 잠깐 다녀오마.” 임금이 옷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신승이시여, 하루만 여유를 두시옵소서. 마른 양식과 볶은 간식을 마련하고 노자로 쓸 은자를 드리며 빠른 말 한 필을 고르게 한 뒤에야 떠나실 수 있지 않사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하신 말씀은 산을 넘고 고개를 도는 걸음에나 해당하는 말이옵니다. 속이지 않고 말씀드리건대, 이 삼천 리 길쯤이야 술잔에 술을 따라도 식지 않을 사이에 갔다 오겠나이다.” 임금이 말했다. “신승이시여, 내 하는 말을 괘씸히 여기지 마시옵소서. 존안을 뵈온즉 원숭이와 꼭 닮으셨사온데, 어찌하여 걷는 데 그런 법력이 있으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내 몸은 비록 원숭이 부류이오나, 어렸을 적에 생사의 길을 열어 젖혔나이다. 두루 명사를 찾아다니며 도를 전해 받고, 산 앞에서 아침저녁 없이 수행하였나이다.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화덕으로 삼아, 두 가지 약물로 해와 달을 뭉쳤나이다. 음양과 수화를 채취하여 교합시키니, 순식간에 현관의 이치를 깨달았나이다. 온전히 천강의 운반 공력에 힘입었고 북두의 자루가 옮겨가는 걸음에도 힘입었나이다. 불을 물리고 불을 밀어 넣되 때를 좇았고, 납을 뽑고 수은을 더하며 서로를 살폈나이다. 오행을 모아 조화를 일으키고 사상을 합하여 시절의 법도를 나누었나이다. 두 기운은 황도 사이로 돌아가고 세 집은 금단의 길에서 만났나이다. 법과 율을 깨우쳐 사지에 돌아가니, 본래 타고난 근두는 신의 도움과 같았나이다. 한 번 솟아오르면 태행산을 넘어가고 한 번 굴러가면 능운도를 건넜나이다. 가파른 고개 몇천 겹이야 무엇이 걱정이며, 장강의 백 개 열 개쯤이야 두렵지 않나이다. 다만 변화에 가로막힘이 없어, 한 번에 십만 팔천 리를 날아가느니라!” 그 임금이 이 말을 듣고 놀라우면서도 기뻐하여, 싱글거리며 어주 한 잔을 받들어 행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신승께서 먼 길을 수고하셨사오니, 이 한 잔을 드시어 뜻을 표하옵소서.” 이 대성은 오로지 요괴를 항복받으러 가려는 마음뿐이라 술을 마실 마음이 조금도 없어 다만 말했다. “우선 내려놓으시옵소서. 내 갔다가 돌아온 뒤에 마시겠나이다.” 과연 훌륭한 행자로다, 가마 하고 휘파람 소리 한 번 내더니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그 나라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놀라워한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둔다. 말하자면, 행자가 몸을 한 번 솟구치자 어느새 높은 산 하나가 안개 낀 시야를 가로막았다. 곧 구름을 내려 그 봉우리 꼭대기에 서서 자세히 살펴보니, 좋은 산이로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땅을 차지하고, 해를 가로막아 구름을 낳는구나. 하늘을 찌르는 곳은 뾰족한 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았고, 땅을 차지한 곳은 먼 산줄기가 아스라이 이어졌네. 해를 가리는 것은 고갯마루의 울창한 소나무요, 구름을 낳는 것은 벼랑 아래 울퉁불퉁한 바위로다. 소나무는 사시팔절 늘 푸르고, 바위는 만 년 천 년을 두고도 변치 않는구나. 숲 속에서는 밤마다 원숭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계곡 안에서는 요망한 구렁이가 지나는 소리가 늘 들린다. 산새는 목이 메어 울고 산짐승은 우렁차게 포효한다. 산 노루와 산 사슬은 쌍을 이루어 어지러이 뛰어가고, 산 까마귀와 산 까치는 무리를 지어 빽빽이 날아든다. 산 풀과 산 꽃은 다 볼 수 없고 산 복숭아와 산 과일은 철 따라 새롭구나. 험준함을 끼고 있어 다니기 어렵지만, 요괴와 신선이 숨어 사는 곳이로다. 이 대성이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 이제 굴 입구를 찾으려 하는데, 홀연 저 산등성이 오목한 곳에서 훅훅 불빛이 날아 나왔다. 삽시간에 하늘을 뒤덮는 붉은 불길이 치솟고, 그 붉은 불길 속에서 한 줄기 사악한 연기가 솟아났으니 불보다도 더 독하도다. 참으로 독한 연기로구나!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불빛은 만 점의 등불을 터뜨리고 불길은 천 가닥 붉은 무지개를 날린다. 그 연기는 부뚜막의 연기도 아니요 풀과 나무의 연기도 아니니, 연기에도 오색이 있어 푸름과 붉음과 희움과 검음과 누름이로다. 남천문 밖의 기둥을 그을리고 영소전 위의 대들보를 태우며, 굴 속의 짐승은 가죽째 문드러지게 태우고 숲 속의 새는 깃털까지 모조리 없애버린다. 이 연기가 이토록 사악하거늘 어찌 깊은 산에 들어가 괴물을 항복받으리오! 대성이 두려워하고 있는데 또 저 산중에서 한 줄기 모래가 터져 나왔다. 좋은 모래로다, 참으로 하늘을 가리고 해를 가리누나! 보아라. 어지럽고 자욱하여 하늘가에 가득하고 흐릿하고 탁하여 온 땅을 덮는구나. 고운 티끌은 닿는 곳마다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굵은 재는 골짜기마다 굴러 참깨처럼 뒹군다. 약 캐는 선동은 짝을 잃고 헤매고 땔감 하는 나무꾼은 집을 찾지 못한다. 손에 명주 같은 밝은 구슬을 쥐고 있어도 순식간에 눈에 꽃이 피어 아득하구나. 이 행자는 구경에만 정신이 팔려 모래와 재가 코속으로 날아드는 것도 모르고, 근질근질하여 재채기를 두 번 하였다. 곧 고개를 돌려 손을 뻗어 바위 아래에서 거위알만 한 돌 두 개를 더듬어 찾아 코를 막고, 몸을 한 번 흔들어 불을 헤치는 새매로 둔갑하였다. 그리하여 연기와 불길 한가운데로 날아들어 몇 번이고 휘저었더니 모래와 재는 사라지고 연기와 불길도 꺼졌다. 급히 본모습으로 돌아와 내려앉았다. 다시 살펴보니 뗑뗑똥똥 구리 징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혼잣말로 말했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이곳은 요정이 사는 곳이 아니로다. 징 소리가 역참 파수병의 징과 같으니, 나라로 통하는 큰길에서 파수병이 공문을 전하러 가는 모양이로다. 잠깐 노손이 가서 그에게 한번 물어보자.” 가고 있는데 홀연 한 작은 요괴가 노란 깃발을 메고 문서를 등에 지고 징을 치며 나는 듯이 급히 걸어오고 있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이놈이 징을 치고 있었구나. 무슨 편지를 전하는지 모르겠으니 내 그 말을 좀 들어보자.” 훌륭한 대성이로다, 몸을 흔들어 쇠파리로 둔갑하여 가볍게 날아가 그의 보따리 위에 앉았다. 그 요괴가 징을 치며 중얼중얼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대왕은 참으로 마음이 독하시구나. 삼 년 전 주자국에 가서 금성황후를 억지로 빼앗아 왔건만, 줄곧 인연이 없어 몸을 가까이하지 못하시니 오려고 했던 궁녀들만 억울하게 죽어 나왔지. 두 명이 와서는 해치워 죽이고 네 명이 와서도 해치워 죽였구나. 재작년에 요구하고 작년에도 요구하고 올해도 요구하고 올해 또 요구하시는데, 이번엔 상대를 잘못 만났구나. 궁녀를 요구하러 간 선봉이 무슨 손행자라는 자에게 패하였으니 궁녀를 보내지 않겠지. 우리 대왕이 그 때문에 노하여 저 나라와 싸우려 하시며 나에게 무슨 도전장을 전하라 하셨구나. 이번에 가서 그 임금이 싸우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싸우면 반드시 불리하리라. 우리 대왕이 불과 연기와 모래를 부리시니 그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은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그때 우리가 그 성을 차지하면 대왕은 황제가 되고 우리들은 신하가 되어 비록 크고 작은 벼슬은 얻는다 해도 천리가 용납하지 않을 일이로다!” 행자가 듣고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요괴 중에도 마음 착한 놈이 있구나. 저놈이 뒤에 한두 마디로 천리가 용납지 않는다 했으니 어찌 착한 놈이 아니겠느냐. 다만 금성황후가 줄곧 인연이 없어 몸을 가까이하지 못했다는 말은 그 뜻을 알 수 없구나. 내 그에게 한번 물어보자.” 웽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번 날개짓하여 요괴에게서 벗어나 앞길로 열 몇 리쯤 돌아 나가, 몸을 흔들어 이번에는 도동으로 둔갑하였다. 머리는 쌍상투를 틀어 올리고 몸에는 기운 도포를 걸쳤다. 손에는 물고기 가죽 북과 대쪽을 들고 입으로는 도정의 노래를 부른다. 산비탈을 돌아 나가며 작은 요괴를 마주 서서 읍을 하며 말했다. “장관이시여, 어디를 가시옵니까? 전하시는 공문이 무엇이옵니까?” 그 요물은 그를 아는 체하듯 징채를 멈추고 싱글거리며 답례하여 말했다. “우리 대왕이 나를 주자국에 도전장을 전하라고 보내셨소.” 행자가 말을 받아 물었다. “주자국의 그 여인은 대왕과 이미 짝이 되었소이까?” 작은 요괴가 말했다. “재작년에 데려온 그때 어떤 신선이 오채선의 한 벌을 보내 금성궁낭낭이 단장하게 하였소. 그 여인이 그 옷을 입은 뒤로는 온몸 위아래로 바늘 같은 가시가 돋아나 우리 대왕도 감히 한 번 만져 보지 못하시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손바닥이 아프니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소. 그 뒤로 오늘까지 아직 몸을 가까이하지 못하였소. 오늘 아침 선봉을 보내 궁녀를 데려와 모시게 하였는데 무슨 손행자라는 자에게 패하였소. 대왕이 분노하시어 나에게 도전장을 전하라 하셨으니 내일 그와 교전하리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대왕께서 그리 노하셨소?” 작은 요괴가 말했다. “지금도 그곳에서 노하고 계시오. 그대가 가서 도정의 노래나 불러 심심함을 달래 주시오.” 행자가 읍을 하고 몸을 돌려 가려 하니 그 요괴는 여전히 징을 치며 앞으로 갔다. 행자가 이번에는 흉을 내어 몽둥이를 빼어 들고 몸을 돌려 작은 요괴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가련하게도 머리가 으깨지고 피가 흐르며 골수가 튀어나오고 가죽이 갈라지며 목이 부러져 목숨이 끊어졌다! 몽둥이를 거두고 나서 스스로 후회하며 말했다. “너무 서둘렀구나! 그놈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 못했으니 하는 수 없지!” 그의 도전장을 꺼내 소매에 넣고, 노란 깃발과 구리 징은 길가 풀숲에 감추려 하는데,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춤에서 금을 박은 아패가 드러났다. 아패에 글자가 적혀 있으니 이러하였다. “심복 소교 한 명, 유래유거. 몸이 땅딸하고 얼굴은 울퉁불퉁하며 수염이 없다. 늘 차고 다니니 패가 없으면 가짜니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놈의 이름이 유래유거라더니, 이 몽둥이 한 방에 유거무래가 되었구나!” 아패를 풀어 허리에 차고는 주검을 숨기려다가 또 연기와 불의 독을 생각하니 감히 그 굴을 찾을 수 없었다. 곧 몽둥이를 들어 올려 작은 요괴의 가슴을 한 번 찔러 공중에 꿰어 매달고는 곧장 자기 나라로 돌아와 우선 머릿공 하나를 올리기로 하였다. 보아라, 그는 혼자 생각에 잠긴 채 휘파람 소리 한 번에 국경에 닿았다. 그 팔계가 금란전 앞에서 임금과 스승을 지키고 있다가, 홀연 고개를 돌려 행자가 반공중에서 요괴 하나를 꿰어 오는 것을 보고 투덜거렸다. “에잇, 별거 아닌 장사로구나! 진작 노저가 가서 잡아올 걸, 그랬으면 내 공로가 되지 않았겠느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행자가 구름을 내려 요괴를 섬돌 아래 내동댕이쳤다. 팔계가 달려가서 갈고리로 찍으며 말했다. “이건 노저의 공로다!” 행자가 말했다. “네 무슨 공로냐?” 팔계가 말했다. “속여 넘기려 하지 마라, 내게 증거가 있다! 내 갈고리로 아홉 개 구멍을 뚫은 것을 못 보느냐!” 행자가 말했다. “머리가 있는지 없는지 좀 보아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머리가 없었구나! 어쩐지 찍어도 꿈쩍을 않더라니.” 행자가 물었다. “사부님은 어디 계시냐?” 팔계가 말했다. “전각 안에서 임금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행자가 말했다. “네가 가서 모셔 오너라.” 팔계가 급히 전각에 올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당삼장이 곧 일어나 전각에서 내려와 행자를 마주하였다. 행자가 도전장 한 통을 삼장의 소매에 넣으며 말했다. “사부님, 잘 간직하시옵고 임금께는 보이지 마시옵소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임금도 전각에서 내려와 행자를 맞으며 말했다. “신승 손장로께서 오셨구려! 요괴를 잡은 일이 어찌 되었사옵니까?” 행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섬돌 아래 것이 요괴가 아니옵니까? 노손이 때려 죽였나이다.” 임금이 보고 나서 말했다. “요괴의 주검인 것은 옳사오나 새태세는 아니옵니다. 새태세는 과인이 친히 두 번이나 보았사온데,” “키가 한 길 여덟 자요 어깨가 다섯 자나 벌어졌으며, 얼굴은 금빛을 띠고 목소리는 벼락 같았사온데, 어찌 이토록 초라하고 왜소하겠사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보신 대로이옵니다. 과연 그놈이 아니옵니다. 이는 소식을 전하던 작은 요괴가 노손과 마주쳐 먼저 맞아 죽었사온데, 꿰어다 공로로 보고한 것이옵니다.” 임금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마땅히 머릿공으로 쳐야 하옵니다! 과인이 이곳에서 늘 사람을 보내 엿보게 하였사오나 실상을 얻지 못하였사옵니다. 신승께서 한 번 나가시자 곧 하나를 잡아 오셨으니 참으로 신통하옵니다!” 그리고 외쳤다. “따뜻한 술을 가져오너라! 장로의 공로를 축하하리라.” 행자가 말했다. “술을 마시는 일은 작은 일이옵니다. 폐하께 묻겠사옵는데 금성궁낭낭이 떠나실 때 무슨 기념물을 남기신 것이 있사옵니까? 그것을 내게 주시옵소서.” 그 임금이 기념물이란 두 글자를 듣자 마치 칼과 검이 가슴을 파내는 듯하여,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해 명절에 붉은 여름을 축하하던 때, 태세의 흉악한 요괴가 고함을 지르며,” “임금의 아내를 억지로 빼앗아 산채의 안주인으로 삼으려 하거늘 과인은 창생을 위하여 내어주었나이다. 이별의 말 한마디 나눌 겨를도 없었거늘 어찌 긴 정자와 짧은 정자가 있었으리오! 기념물도 향낭도 그림자조차 없거늘, 오늘날까지 나를 버려두어 외롭게 하누나!” 행자가 말했다. “폐하께서 가까이 계시거늘 어찌 그리 서러워하시옵니까? 그 낭낭께서 기념물이 없으셨다면 궁 안에 계실 때 아끼시던 물건이 있사온지 그것을 내게 한 가지만 주시옵소서.” 임금이 물었다. “그것을 어디에 쓰려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저 요괴 왕에게는 실로 신통한 재주가 있사옵니다. 내가 보니 연기를 뿜고 불을 뿜고 모래를 뿜는데 과연 거두어들이기 어렵사옵니다. 거두어들인다 해도 낭낭께서 내 얼굴을 낯설게 여겨 나를 따라 귀국하려 하지 않으실까 두렵사옵니다. 모름지기 평소에 아끼시던 물건 한 가지를 얻어야 그분이 나를 믿사올 터이니 내가 그분을 모셔 올 수 있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가지고 가려 하옵니다.” 임금이 말했다. “소양궁 안 단장하는 누각 위에 황금 팔찌 한 쌍이 있사옵니다. 본래 금성궁낭낭이 손에 차고 계시던 것인데, 그날 단오에 오색 실을 매려고 잠시 풀어두어 차지 못하였사옵니다. 이는 그분이 아끼시던 물건이오니 지금 단장함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사옵니다. 과인은 그분이 이런 이별을 겪은 뒤로는 차마 볼 수가 없사옵니다. 한 번 보면 그분의 옥 같은 얼굴을 뵙는 듯하여 병이 몇 분은 더 깊어지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 말씀은 그만 두시옵고 우선 금팔찌를 가져오시옵소서. 아끼지 않으시거든 둘 다 내게 주시옵고, 아끼시거든 하나만 가져가겠나이다.” 임금이 곧 옥성궁에 명하여 꺼내 오게 하니 꺼내자 곧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이 그것을 보고는 애틋하고 정겨운 낭낭을 몇 번이고 부르더니 곧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받아 팔뚝에 끼었다. 훌륭한 대성이로다, 공로주도 마시지 않고 근두운을 타고 휘파람 소리 한 번에 다시 기린산 위에 이르렀다. 경치를 구경할 마음은 없이 곧장 굴을 찾아 나갔다. 가고 있는데 사람들 말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려왔으므로 멈춰 서서 눈을 모아 살펴보니, 해치동 어귀를 지키는 크고 작은 두목이 대략 오백 명쯤 되었는데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빽빽이 늘어서 있고 촘촘히 다닥다닥 붙어 있구나. 빽빽이 늘어서서 창과 방패를 잡으니 해를 받아 빛나고, 촘촘히 다닥다닥 붙어 깃발을 펼치니 바람을 맞아 펄럭인다. 호랑이 장수와 곰 스승은 변화할 줄 알고 표범 머리와 표범 우두머리는 정신을 부린다. 늑대는 몹시 맹렬하고 수달과 코끼리는 더욱 굳세구나. 교활한 토끼와 얌전한 노루는 검과 창을 휘두르고 긴 뱀과 큰 구렁이는 칼과 활을 메었다. 성성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어 진을 치고 영채를 세우며 바람의 조짐을 아누나. 행자가 이를 보고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몸을 빼어 곧장 옛길로 돌아갔다. 그가 어찌하여 물러났겠느냐? 그들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그는 그 작은 요괴를 때려 죽인 곳으로 가서 노란 깃발과 구리 징을 찾아내고는, 바람을 맞으며 손가락으로 인계를 맺고 허공에 오르는 시늉을 하여 곧 몸을 흔들어 유래유거의 모습으로 둔갑하였다. 징을 쳥쳐 울리며 큰 걸음으로 곧장 앞으로 나아가 해치동으로 곧바로 쳐들어갔다. 이제 굴 안 경치를 둘러보려 하는데 성성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래유거, 네가 돌아왔느냐?” 행자는 할 수 없이 대답했다. “왔네.” 성성이가 말했다. “어서 가거라! 대왕 어르신께서 박피정에서 네 회답을 기다리시느니라.” 행자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재촉하며 징을 치고 곧장 앞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본래 깎아지른 절벽과 돌로 된 집과 텅 빈 집이었으되 좌우에는 기화요초가 있고 앞뒤로는 오래된 잣나무와 큰 소나무가 많았다. 어느새 두 번째 문 안에 이르러 홀연 고개를 들어 여덟 개 창이 훤히 밝은 정자 하나를 보니, 정자 한가운데 금을 박은 교의가 있고 그 의자 위에 마왕 하나가 단정히 앉아 있었으니 참으로 사악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정수리 위로는 아른아른 노을빛이 일고 가슴 앞에서는 위풍당당한 살기가 터져 나온다. 입 밖으로 삐져나온 사랑니는 날카로운 칼날을 벌여 놓았고 귀밑의 그을린 털에서는 붉은 연기가 피어난다. 입가의 콧수염은 화살을 꽂아 놓은 듯하고 온몸의 빳빳한 털은 겹겹이 깔린 담요 같구나. 튀어나온 두 눈은 구리 방울 같아 태세를 업신여기고 손에 든 쇠절구공이는 하늘을 어루만지는 듯하구나. 행자가 보고는 그 요괴를 대놓고 업신여겨 조금도 예를 차리지 않고 얼굴을 바깥으로 돌린 채 징만 치고 있었다. 요괴 왕이 물었다. “네가 왔느냐?” 행자가 대답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유래유거, 네가 왔느냐?” 그래도 대답하지 않으니 요괴 왕이 앞으로 나와 옷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집에 와서도 징을 치느냐? 물어도 대답하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 행자가 징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무슨 어찌된 일이오, 어찌된 일이오! 나는 가지 않겠다 하였거늘 그대가 가라 하였소. 그곳에 이르러 보니 셀 수 없는 인마가 진세를 갖추어 늘어서 있다가 나를 보자 모두 요괴를 잡으라, 요괴를 잡으라 하고 외쳤소. 나를 잡아끌고 밀치며 성안으로 끌고 들어가 그 임금을 만났는데 임금은 곧 목을 베라 하였소. 다행히 양쪽에 있던 모사들이 두 집안이 다투는 판에는 사신을 베지 않는다 하여 나를 살려 주고 도전장을 받아 두었소. 그리고는 성 밖으로 끌어내어 군사들 앞에서 정강이를 서른 대나 때리고 나를 돌려보내 회답하라 하였소. 그곳에서는 머지않아 이리로 와 그대와 교전할 것이오.” 요괴 왕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네가 손해를 보았구나. 물어도 더욱 말이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구나.”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지 않고 무엇이겠소. 다만 아픔을 참느라고 대답하지 못하였소.” 요괴 왕이 물었다. “거기에는 인마가 얼마나 되느냐?” 행자가 말했다. “나도 겁에 넋이 나갔고 매를 맞아 겁을 먹었는데 어찌 인마의 수를 헤아렸겠소! 다만 그곳에 빽빽하게 늘어선 병기를 보았을 뿐이오. 활과 화살, 칼과 창, 갑옷과 군복, 창과 검과 극과 깃발이요. 표창과 달 모양 삽과 투구와 갑옷, 큰 도끼와 둥근 방패와 쇠 마름쇠요. 긴 몽둥이와 짧은 방망이, 강철 창과 총과 대포와 투구로다. 신과 갑옷과 목을 가리는 투구와 솜옷을 갖추고 편채와 소매 속 탄환과 구리 망치까지 갖추었소.” 그 왕이 듣고 웃으며 말했다. “염려할 것 없다! 염려할 것 없다! 저런 병기쯤이야 불 한 번에 모조리 허사가 되느니라. 네가 먼저 금성궁낭낭께 가서 알려 노여워하지 않게 하여라. 오늘 아침 그분은 내가 이를 갈며 싸우러 가려 한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고 달가워하지 않았다. 네가 이제 가서 저곳 인마가 굳세어 반드시 나를 이길 것이라 말하여 그분의 마음을 잠시나마 편하게 해 드려라.” 행자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노손의 뜻에 꼭 들어맞는구나!” 보아라, 그는 길이 익숙한 듯 곁문을 돌아 들어가 청당을 꿰어 지나갔다. 그 안은 모두 높은 집과 큰 채인데 앞쪽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뒤쪽 궁에 이르러 멀리 채색 문이 장엄하게 보이니 이는 금성궁낭낭이 사는 곳이었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양쪽에 요괴 여우와 요괴 사슴이 한 줄씩 늘어서 있는데 하나같이 미녀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좌우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한가운데 그 낭낭이 앉아 있었는데 향기로운 뺨을 손에 괴고 두 눈에서는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과연 옥같이 고운 얼굴이요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로다. 단장하기 싫어 흩어진 머리카락이 까마귀처럼 쌓였고 치장하기 싫어 비녀와 고리도 걸지 않았구나. 얼굴에는 분이 없어 연지가 옅어졌고 머리에는 기름이 없어 구름 같은 귀밑머리가 부풀었구나. 앵두 같은 입술을 내밀어 은빛 이를 꽉 물고 나방 같은 눈썹을 찌푸려 별 같은 눈에 눈물이 잠겼구나. 한결같은 마음은 오직 주자국 임금만을 그리워하고 이 한때 천라지망을 벗어나지 못함을 한탄하누나. 참으로 그러하도다. 예로부터 고운 얼굴은 박명한 법이라, 병들어 시들어진 듯 말없이 동풍을 대하고 있구나!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합장하고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문안드리나이다.” 그 낭낭이 말했다. “이 무례하고 촌스러운 요괴야, 몹시 버릇이 없구나! 내가 저 주자국에서 임금과 영화를 함께 누리던 때를 생각하면 그 태사와 재상들도 나를 보면 먼지 속에 엎드려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거늘, 이 들것이 어찌 감히 문안을 올리느냐? 어디서 온 이토록 촌스럽고 무례한 놈이냐?” 여러 시녀가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마님,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이놈은 대왕 어르신의 심복 소교로 이름을 유래유거라 하옵니다. 오늘 아침 도전장을 전하러 간 것이 이놈이옵니다.” 낭낭이 이 말을 듣고 노여움을 누르며 물었다. “네가 도전장을 전하러 가면서 주자국 경계에까지 이르렀느냐?” 행자가 말했다. “소인이 편지를 들고 성안으로 곧장 들어가 금란전에 이르러 임금을 대면하고 회답을 받아 왔나이다.” 낭낭이 물었다. “네가 임금을 대면하였으니 임금이 무슨 말을 하더냐?” 행자가 말했다. “그 임금이 싸움에 맞서겠다는 말과 병사를 늘어놓을 일은 방금 대왕께 아뢰었나이다. 다만 그 임금께서 낭낭을 그리워하는 뜻이 있어 마음에 맞는 말씀 한마디를 특별히 아뢰러 왔사온데, 좌우에 사람이 많사와 말씀드릴 자리가 아니옵니다.” 낭낭이 이 말을 듣고 양쪽의 여우와 사슴 무리를 물러가라 하였다. 행자가 궁문을 닫고 얼굴을 한 번 쓸어 본모습을 드러내며 낭낭에게 말했다. “놀라지 마시옵소서. 저는 동쪽 땅 큰 당나라에서 큰 서천 천축국 뇌음사로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있는 중이옵니다. 제 스승은 당왕의 의동생이신 당삼장이시오 저는 그 큰 제자 손오공이옵니다. 그대 나라를 지나다 통행 문서에 도장을 받으려 할 때 그대 임금과 신하들이 방을 붙여 의원을 구한다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제가 가진 의술을 크게 베풀어 그분의 상사병을 고쳐 드렸나이다. 잔치를 베풀어 내게 감사할 때 술자리에서 그대가 요괴에게 납치되어 왔다는 말이 나왔사옵니다. 내가 용을 항복받고 호랑이를 굴복시킬 줄 안다 하여 특별히 나를 청하여 요괴를 잡고 그대를 구해 귀국시키라 하였나이다. 그 선봉을 패배시킨 것도 내요, 작은 요괴를 때려 죽인 것도 내외다. 그 굴 밖이 흉악하고 사나운 것을 보고는 내가 유래유거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목숨을 걸고 이곳에 와 그대와 소식을 통하는 것이옵니다.” 그 낭낭이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행자가 금팔찌를 꺼내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말했다. “믿지 못하시겠거든 이 물건이 어디서 온 것인지 보시옵소서.” 낭낭이 그것을 보자 눈물을 떨구며 자리에서 내려와 절하며 감사하여 말했다. “장로시여, 저를 구하여 조정으로 돌려보내 주신다면 그 큰 은혜를 죽는 날까지 잊지 않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낭낭께 묻겠사옵나이다. 저 요괴가 불과 연기와 모래를 뿜는다는 것은 어떤 보배이옵니까?” 낭낭이 말했다. “무슨 보배이겠사옵니까! 다만 금방울 세 개일 뿐이옵니다. 그놈이 첫째 것을 한 번 흔들면 삼백 길이나 되는 불빛이 일어 사람을 태우고 둘째 것을 한 번 흔들면 삼백 길이나 되는 연기 빛이 일어 사람을 그을리고 셋째 것을 한 번 흔들면 삼백 길이나 되는 누런 모래가 일어 사람을 어지럽히옵니다. 불과 연기는 오히려 염려할 것 없사오나 다만 누런 모래가 가장 독하옵니다. 사람의 콧구멍으로 파고들면 곧 목숨을 잃게 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무섭구나! 무섭구나! 나도 그것을 당하여 재채기를 두 번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그 방울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사옵니다.” 낭낭이 말했다. “그놈이 어찌 내려놓겠사옵니까. 다만 허리에 차고 있어 가나 머물거나 앉으나 누우나 몸에서 떼지 않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낭낭께서 주자국을 생각하여 임금과 다시 만나고자 하신다면 그 번민과 근심을 모두 잠시 거두시옵고, 풍류롭고 기뻐하는 얼굴을 지어 그놈과 부부의 정을 나누시어 그 방울을 낭낭께 맡겨 보관하게 하시옵소서. 내가 틈을 타 훔쳐다 그 요괴를 항복받으면 그때야말로 낭낭을 모셔 돌아가 난봉의 금실을 다시 잇고 편안함을 함께 누릴 수 있사옵니다.” 그 낭낭이 그 말을 따랐다. 이 행자는 다시 심복 소교의 모습으로 돌아가 궁문을 열고 좌우 시녀들을 불러들였다. 낭낭이 불렀다. “유래유거, 어서 앞 정자로 가 네 대왕을 모셔 오너라. 내 그와 이야기하겠다.” 훌륭한 행자로다, 대답 한마디 하고 곧 박피정으로 가 요괴에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성궁낭낭께서 청하시옵니다.” 요괴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낭낭이 늘 나를 꾸짖기만 하더니 어찌하여 오늘은 청하시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 낭낭이 주자국 임금의 일을 물으시기에, 내가 임금은 이제 그대를 찾지 않으시고 나라 안에 다른 황후를 세우셨다 하였나이다. 낭낭이 그 말을 듣고 생각을 접으시고서야 나를 보내 모셔 오라 하셨나이다.” 요괴 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너는 참으로 쓸 만하구나. 내 저 나라를 쳐부수거든 너를 조정을 따르는 태재로 봉하리라.” 행자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은혜에 사례한 뒤 재빨리 요괴 왕과 함께 뒤궁 어귀에 이르렀다. 그 낭낭이 기쁜 얼굴로 마중 나와 손을 내밀어 부축하려 하자, 요괴 왕이 연신 물러서며 말했다.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낭낭께서 내려주시는 사랑은 고맙사오나 나는 손이 아플까 두려워 감히 곁에 붙지 못하겠나이다.” 낭낭이 말했다. “대왕은 앉으시옵소서. 내 그대에게 할 말이 있사옵니다.” 요괴 왕이 말했다. “말씀이 계시거든 하시는 것이 좋소.” 낭낭이 말했다. “나는 대왕의 과분한 사랑을 입어온 지 이제 삼 년이 되었사오나 한 이불을 덮지 못하였으니, 전생의 인연으로 이 부부가 되었거늘 뜻밖에도 대왕은 나를 남처럼 여기는 뜻이 있어 부부로 대하지 않으시옵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주자국에서 황후로 있을 적에는 외국에서 보배를 진상하면 임금이 보신 뒤 반드시 황후에게 맡겨 보관하셨사옵니다. 이곳에는 무슨 보배가 있사옵니까. 좌우에 있는 자들은 담비 가죽을 입고 피와 고기를 먹거늘 어디서 능금과 비단과 금과 구슬을 보았사옵니까! 그저 가죽을 깔고 담요를 덮을 뿐이옵니다. 혹 보배가 있다 하여도 대왕께서 나를 남처럼 여기시어 내게 보이지도 않으시고 맡겨 두지도 않으시옵니다. 듣자니 대왕께 방울 세 개가 있다 하오니 그것이 곧 보배이려 하옵니다. 어찌하여 걸을 때도 차고 계시고 앉을 때도 차고 계시옵니까? 그것을 내게 맡겨 보관하게 하시고 쓰실 때 꺼내 쓰신들 무슨 불가할 것이 있사옵니까. 이 또한 부부가 된 이상 심복으로 서로 맡기는 뜻이 있어야 하옵거늘, 이렇게 맡기지 않으시니 나를 남처럼 여기심이 아니고 무엇이옵니까?” 요괴 왕이 크게 웃으며 사과하여 말했다. “낭낭의 말씀이 옳소! 옳소! 보배가 여기 있으니 오늘 당장 낭낭께 맡겨 보관하리다.” 곧 옷을 열고 보배를 꺼냈다. 행자가 곁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 요괴가 두세 겹의 옷을 걷어 올리는 것을 보니 몸에 붙여 방울 세 개를 차고 있었다. 그놈이 풀어내어 솜으로 입구를 막고 표범 가죽으로 보자기를 만들어 싸서 낭낭에게 건네며 말했다. “물건은 비록 보잘것없사오나 마음을 다해 간직하시옵고 절대로 흔들어서는 안 되오.” 낭낭이 받아 들며 말했다. “알겠사옵니다. 이 단장대 위에 두어 아무도 흔들지 못하게 하겠사옵니다.” 그리고 외쳤다. “얘들아, 술상을 차려라! 내 대왕과 즐겁게 어울려 몇 잔 기울이리라.” 시녀들이 이 말을 듣고 곧 과일과 채소를 차리고 노루와 사슴과 토끼 고기를 올리며 야자주를 따라 바쳤다. 그 낭낭이 요염한 태도를 지어 그 정령을 꾀었다. 손행자가 곁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슬금슬금 단장대 가까이 다가가 금방울 세 개를 가만히 집어 들고는 천천히 발을 옮겨 궁문을 빠져나와 곧장 굴을 벗어났다. 박피정 앞 인적 없는 곳에 이르러 표범 가죽 보자기를 펴고 보니 가운데 것은 찻잔만 하고 양쪽 두 개는 주먹만 하였다. 그는 그 위력을 알지 못하고 솜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쨍그랑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과 연기와 누런 모래가 꿀꿀꿀 터져 나와 걷잡을 수 없이 정자 안에 온통 불길이 치솟았다. 문을 지키던 정괴들이 놀라 일제히 뒤궁으로 밀려 들어가니 요괴 왕이 놀라 급히 외쳤다. “불을 꺼라! 불을 꺼라!” 나와 보니 유래유거가 금방울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요괴 왕이 앞으로 나와 호통쳤다. “이 천한 놈! 어찌 내 금방울 보배를 훔쳐 이곳에서 함부로 희롱하느냐!” 그리고 외쳤다. “잡아라! 잡아라!” 문 앞의 호랑이 장수와 곰 스승과 표범 머리와 표범 우두머리와 수달과 코끼리와 늑대와 얌전한 노루와 교활한 토끼와 긴 뱀과 큰 구렁이와 성성이가 요괴 무리를 거느리고 일제히 에워쌌다. 그 행자는 손발이 허둥거려 금방울을 내팽개치고 본모습을 드러낸 뒤 여의금고봉을 빼어 들어 온갖 기술을 펼치며 앞으로 마구 때렸다. 그 요괴 왕은 보배를 거두고 호령하여 명했다. “앞문을 닫아라!” 요괴들이 이 말을 듣고 문을 닫는 놈은 문을 닫고 싸우는 놈은 싸웠다. 행자가 빠져나갈 길이 없자 몽둥이를 거두고 몸을 한 번 흔들어 멍청한 파리로 둔갑하여 불이 닿지 않는 돌벽에 붙었다. 요괴들이 찾지 못하고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도둑이 달아났나이다! 도둑이 달아났나이다!” 요괴 왕이 물었다. “문으로 나갔느냐?” 요괴들이 모두 말했다. “앞문은 굳게 자물쇠로 잠가 두었사온데 나가지 않았나이다.” 요괴 왕이 말했다. “자세히 수색하여라!” 어떤 놈은 물을 길어 불을 끄고 어떤 놈은 자세히 수색하였으나 종적조차 없었다. 요괴 왕이 노하여 말했다. “어떤 도둑놈이기에 이리 대담하냐! 유래유거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들어와 내게 회답을 하고는 곁에 붙어 있다가 틈을 타 내 보배를 훔쳤구나! 다행히 밖으로 가져가지 못하였도다. 만약 산꼭대기로 가져가 하늘 바람을 쐬었다면 어찌되었겠느냐!” 호랑이 장수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대왕의 큰 복이 하늘에 닿았고 저희의 기운이 다하지 않았사옵니다. 그 까닭에 알아차렸나이다.” 곰 스승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 도둑은 다른 누가 아니라 틀림없이 그 선봉을 패배시킨 손오공이옵니다. 길에서 유래유거를 만나 목숨을 빼앗고 노란 깃발과 구리 징과 아패를 빼앗아 그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이곳에 와 대왕을 속인 것이옵니다.” 요괴 왕이 말했다. “옳다! 옳다! 네 말이 이치에 맞느니라!” 그리고 외쳤다. “얘들아, 자세히 수색하고 방비하여라. 절대로 문을 열어 놓아 달아나게 하지 마라!” 이것이야말로 그럴 만한 까닭이 있으니, 꾀를 부리다 도리어 서툴게 되고 장난을 치다 오히려 참이 되었구나. 결국 손행자가 어찌하여 요괴의 문을 벗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1회 행자가명강괴후(行者假名降怪犼) · 관음현상복요왕(觀音現象伏妖王) 색이 곧 공이라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였고, 공을 말하면 곧 색이니 또한 본래 그러하도다. 사람이 능히 색과 공의 선리를 철저히 깨우쳤거늘, 무엇에 단사로 단약을 달여 불리리오. 덕행을 온전히 닦으되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공부에는 고생을 무릅쓰고 달이고 삶는 수고를 겪을지어다. 때가 이르러 공행이 다 차면 비로소 하늘을 알현하리니, 신선의 얼굴이 길이 머물러 변하지 않으리라.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 새태세는 앞뒤 문을 굳게 닫아걸고 행자를 찾아다니며, 황혼 무렵까지 큰 소리로 떠들었으나 종적을 찾지 못하였다. 그는 박피정에 앉아 요괴 무리를 불러 모아 호령하되, 문마다 방울을 흔들고 북을 치고 목탁을 두드리라고 일렀다. 요괴들은 하나하나 활에 시위를 걸고 칼은 칼집에서 뽑아 들고, 경계를 서며 밤을 지새웠다. 알고 보니 손대성은 미련한 파리로 변해 문 곁에 붙어 있었는데, 앞쪽의 방비가 몹시 삼엄한 것을 보고 곧 날개를 펴고 날아 뒷궁 문 어귀로 들어가 살펴보니, 금성궁낭낭이 어안에 엎드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슬피 울고 있었다. 행자가 문 안으로 날아들어 가만히 그녀의 검은 구름처럼 흩어진 쪽진 머리 위에 내려앉아, 무엇을 울고 있는지 들었다. 잠시 뒤, 그 낭낭이 홀연 소리를 내어 말했다. “주공이시여! 저와 주공께서는, 전생에 절단 난 향을 사른 죄로 금세에 사나운 요괴 왕을 만났나이다. 봉황이 갈라진 지 삼 년인데, 어느 날에나 다시 만나리이까? 원앙이 두 곳으로 갈라져 슬픔만 더하나이다. 파견된 장로가 겨우 소식을 전했거늘, 아름다운 혼인이 흩어지며 한 목숨이 죽었나이다. 오직 금령을 풀어 낼 방도를 알지 못하니, 그리움이 다시 옛날보다 더 맹렬하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곧 몸을 옮겨 그녀의 귀 밑으로 가서 가만히 불렀다. “성궁낭낭이시여, 놀라지 마시옵소서. 저는 그대 나라에서 특별히 파견한 신승 손장로이옵니다. 아직 목숨을 잃지 않았사옵니다. 다만 제 성미가 급한 탓에 화장대 가까이 다가가 금령을 훔쳤나이다. 그대가 요왕과 더불어 술을 마실 때에 나는 몰래 앞 정자로 빠져나와, 참지 못하고 그것을 열어 보았사옵니다. 뜻하지 않게 그 입구를 막은 솜을 건드려, 그 방울이 한 번 울리며 불과 연기와 누런 모래를 뿜어내었나이다. 나는 그만 손발이 허둥거려 금령을 내버리고 본래 모습을 드러내어 쇠몽둥이를 휘둘렀으나 빠져나가지 못하고, 독수가 두려워 파리로 변해 문지도리에 붙어 지금까지 숨어 있었나이다. 그 요왕은 갈수록 경계를 더욱 삼엄히 하여, 좀처럼 문을 열려 하지 않나이다. 그대는 다시 부부의 예로 그를 꾀어 안으로 들어와 편히 잠자리에 들게 하시옵소서. 그러면 내가 몸을 빼어 일을 도모하고, 따로 방책을 마련하여 그대를 구해 내겠나이다.” 낭낭이 이 말을 듣자 부들부들 떨며 머리카락이 잡아 뜯기는 듯하고 가슴이 방아에 찧이는 듯하였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말했다. “그대는 이제 사람이시오이까, 귀신이시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나는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오. 지금은 파리로 변해 이곳에 있소. 겁내지 말고 어서 그 요왕을 청하러 가시오.” 낭낭이 믿지 못하여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낮은 소리로 가만히 말했다. “그대는 나를 홀리지 마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내가 어찌 감히 그대를 홀리겠나이까. 믿지 못하시겠거든 손을 펴시옵소서. 내가 내려앉는 것을 보시옵소서.” 그 낭낭이 참으로 왼손을 펴니, 행자가 가만히 날아내려와 그녀의 옥 같은 손바닥 위에 앉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러하였다. 연꽃 봉오리 끝에 검은 콩이 박힌 듯하고, 모란꽃 위에 노니는 벌이 앉은 듯하며, 수구심 속에 포도가 떨어진 듯하고, 백합 가지 곁에 검은 점이 짙게 찍힌 듯하였다. 금성궁이 옥 같은 손바닥을 높이 받쳐 들고 신승을 부르니, 행자가 앵앵거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신승이 변한 것이오.” 그제야 낭낭이 믿고서 가만히 말했다. “내가 가서 그 요왕을 모셔 오면, 그대는 장차 어떻게 행동하시렵니까?” 행자가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한평생을 망치는 것은 오직 술이라 하였고, 또 이르기를, 만사를 깨뜨림에 술만 한 것이 없다 하였소. 술의 쓰임은 여러 갈래이니, 그대는 다만 술을 마시는 일을 으뜸으로 삼으시오. 그대의 몸 가까이에서 모시는 시비 하나를 불러들여 내게 가리켜 주시오. 내가 곧 그의 모습으로 변하여 곁에서 시중들다가, 그 틈에 손을 쓰면 일이 이루어지겠소.” 그 낭낭이 참으로 그 말대로 하여 곧 불렀다. “춘교는 어디 있느냐?” 그 병풍 뒤에서 옥면호리 하나가 나와 꿇어앉으며 말했다. “낭낭께서 춘교를 부르시니 무슨 분부이시나이까?” 낭낭이 말했다. “너는 가서 그들에게 사등잔을 켜고 용뇌와 사향을 사르라 하고, 나를 부축하여 앞뜰로 올라가 대왕을 모셔 와 잠자리에 들게 하여라.” 그 춘교가 곧 앞쪽으로 돌아가 괴상한 사슴과 요호 일고여덟을 불러, 등롱 두 쌍과 손향로 하나를 들게 하고 좌우에 늘어섰다. 낭낭이 몸을 일으켜 두 손을 모으니, 그 대성은 벌써 날아가 버렸다. 훌륭한 행자로다. 날개를 펴고 곧장 그 옥면호리의 머리 위로 날아가, 털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 한 번 불어 넣으며 “변하라!” 하고 외치니, 그것이 졸음벌레 하나로 변하였다. 행자가 그것을 가만히 그녀의 얼굴 위에 올려놓았다. 원래 졸음벌레는 사람의 얼굴에 닿으면 콧구멍으로 기어들어가 곧 잠이 드는 법이었다. 그 춘교는 과연 점점 졸음이 쏟아져 발을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꾸벅꾸벅 졸다가, 급히 원래 자던 곳을 찾아가 머리를 떨어뜨리고는 줄곧 쿨쿨 잠이 들었다. 행자가 뛰어내려와 몸을 한 번 흔들어 그 춘교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고는, 병풍을 돌아 나와 무리와 함께 줄지어 섰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그 금성궁낭낭이 앞으로 곧장 걸어가고 있는데, 작은 요괴 하나가 보고 곧 새태세에게 달려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낭낭께서 오시나이다.” 그 요왕이 급히 박피정 밖으로 나와 마중하니, 낭낭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불과 연기는 이미 꺼졌고 도적은 이미 종적을 감추었사오니, 깊은 밤을 틈타 특별히 대왕을 모셔 자리에 드시게 하려 하나이다.” 그 요괴가 마음이 흐뭇하여 말했다. “낭낭께서 몸을 소중히 하시옵소서. 방금 그 도적은 바로 손오공이었소. 그는 내 선봉을 패배시키고 내 작은 병사들을 때려 죽이고는, 모습을 바꾸어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속였소. 우리가 이토록 샅샅이 뒤졌건만 그는 아무 종적도 없으니, 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소.” 낭낭이 말했다. “그놈은 아마 달아난 모양이오니, 대왕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우선 편히 잠자리에 드시옵소서.” 요정은 낭낭이 곁에 서서 공손히 청하는 것을 보고 감히 굳이 사양하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요괴 무리에게 분부하되, 저마다 불을 삼가 조심하고 도적을 엄히 경계하라 이르고는, 마침내 낭낭과 함께 곧장 뒷궁으로 갔다. 행자는 춘교로 거짓 변신하여 양쪽 시비들의 인도를 받아 들어갔다. 낭낭이 분부했다. “술을 차려 와 대왕의 노고를 풀어 드리게 하여라.” 요왕이 웃으며 말했다. “옳소, 옳소. 어서 술을 가져오너라. 내가 낭낭과 함께 놀란 가슴을 누르리라.” 가짜 춘교가 곧 요괴들과 함께 과일을 벌여 놓고 비린 고기를 마련해 탁자와 의자를 벌여 놓았다. 그 낭낭이 잔을 들자 이 요왕도 한 잔을 받쳐 올리고, 두 사람은 서로 잔을 바꾸어 마셨다. 가짜 춘교가 곁에서 술병을 들고 말했다. “대왕과 낭낭께서 오늘 밤 비로소 교배잔을 주고받으셨사오니, 청하옵건데 각자 비우시어 쌍희잔을 통하도록 하시옵소서.” 참으로 다시 각자 잔을 채우고는 또 비워 마셨다. 가짜 춘교가 또 말했다. “대왕과 낭낭의 기쁜 만남이오니, 여러 시비들 가운데 노래할 줄 아는 이는 노래를 올리고, 춤 잘 추는 이는 춤을 추어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바탕 노랫소리가 들려오며 일제히 음률을 맞추어, 노래하는 이는 노래하고 춤추는 이는 춤을 추었다. 그 두 사람은 또 술을 많이 마셨다. 낭낭이 노래와 춤을 그치게 하였다. 여러 시비들이 무리를 나누어 병풍 밖으로 나가 늘어섰고, 오직 가짜 춘교만이 술병을 들고 위아래로 술을 올렸다. 낭낭과 그 요왕은 오로지 부부간의 이야기만 나누었다. 보라, 그 낭낭이 자못 구름과 비 같은 정취를 띠며 꾀어 내니, 그 요왕은 뼈가 녹고 힘줄이 마비되는 듯하였으나, 다만 복이 없어 그녀의 몸에 닿지 못하였다. 가련하도다! 참으로 고양이가 오줌보를 물고 헛되이 기뻐하는 격이로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한동안 웃은 뒤에, 낭낭이 물었다. “대왕이시여, 보물은 상하지 않았사온지요?” 요왕이 말했다. “이 보물은 본디 하늘이 처음에 뭉쳐 부어 만든 물건이거늘, 어찌 상할 수 있으리오! 다만 그 도적 놈이 입구를 막은 솜을 잡아당겨 표범 가죽 보따리를 태워 버렸을 뿐이오.” 낭낭이 말했다. “어찌 거두어 두시렵니까?” 요왕이 말했다. “거두어 둘 것 없소. 내가 허리에 차고 있소.” 가짜 춘교가 이 말을 듣고 곧 털 한 웅큼을 뽑아 입 안에서 잘게 씹어 가루로 만든 뒤, 가만히 요왕에게 바싹 다가서서 그 털을 그의 몸에 놓고 선기 세 번을 불어넣으며 남몰래 “변하라!” 하고 외쳤다. 그 털들이 곧 세 가지 더러운 벌레로 변하였으니, 곧 옷니와 벼룩과 빈대였는데, 요왕의 몸 안으로 파고들어 피부에 붙어 마구 물어댔다. 그 요왕은 가려움을 견디지 못하여 손을 품에 넣어 더듬으며 긁적거리다가, 손가락으로 옷니 몇 마리를 집어내어 등 가까이 가져가 살펴보았다. 낭낭이 그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속옷이 해진 데다 오래도록 빨아 들이지 않아 이러한 벌레가 생긴 모양이옵니다.” 요왕이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나는 예로부터 이러한 벌레가 생긴 적이 없거늘, 하필 오늘밤에 망신을 당하다니.” 낭낭이 웃으며 말했다. “대왕께서 어찌 망신이라 하시나이까. 속담에 이르기를, 임금님 몸에도 옷니 세 마리는 있다 하였사오니, 우선 옷을 벗으시옵소서. 제가 대신 잡아 드리겠나이다.” 요왕이 참으로 띠를 풀고 옷을 벗었다. 가짜 춘교가 곁에서 유심히 그 요왕의 몸을 살펴보니, 옷마다 겹겹이 벼룩이 뛰놀고, 벌레 한 마리 없는 것이 없이 곳곳에 커다란 빈대가 줄지어 있었으며, 어미니와 새끼니가 빽빽하고 무성하게, 마치 개미가 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듯하였다. 어느새 세 번째 겹을 걷어 살갗이 드러나는 곳에 이르니, 그 금령 위에도 어지럽게 널려 있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가짜 춘교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방울을 내어 주시옵소서. 저도 대신 옷니를 좀 잡아 드리겠나이다.” 그 요왕은 부끄럽고도 당황하여 참과 거짓을 분간하지 못하고 방울 세 개를 가짜 춘교에게 건넸다. 가짜 춘교가 그것을 손에 쥐고 한참 자랑하듯 다루다가, 그 요왕이 고개를 숙이고 그 옷을 털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곧 금령을 감추고, 털 하나를 뽑아 방울 세 개로 변하게 하였으니,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을 등 가까이 가져가 뒤적거려 보더니, 또 몸을 아양스럽게 비틀거리며 한 번 털어, 그 옷니와 빈대와 벼룩을 거두어 제 몸에 붙여 버리고, 가짜 금령을 그 요괴에게 건넸다. 그 요괴가 손에 받아 쥐고는 더욱 어리벙벙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니, 어디 참과 거짓을 분간할 수 있으랴. 두 손으로 그 방울을 받쳐 들고 낭낭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대가 잘 간수하시오. 아무쪼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지난번처럼 되지 않게 하시오.” 그 낭낭이 받아 들고는 가만히 옷궤를 열어 그 가짜 방울을 넣고 황금 자물쇠로 잠갔다. 그리고는 다시 요왕과 함께 몇 잔의 술을 더 마신 뒤 시비에게 분부했다. “아상과 이불을 깨끗이 털고 비단 이불을 펴라. 내가 대왕과 함께 잠자리에 들겠노라.” 그 요왕이 연신 “복이 없소! 복이 없소! 감히 모시지 못하겠소. 나는 궁녀 하나를 데리고 서궁으로 가서 자겠소. 낭낭께서는 편히 주무시옵소서.” 하고 말했다. 마침내 각자 잠자리로 돌아갔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가짜 춘교가 손에 넣은 뒤 그 보물을 허리에 차고 본모습을 드러내며 몸을 한 번 털어 그 졸음벌레를 거두어들이고는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각다귀와 방울이 일제히 울리며 삼경이 급히 울렸다. 훌륭한 행자로다. 결을 쥐고 진언을 외워 은신법을 부리니 문가에 이르도록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또 그 문에 빗장과 자물쇠가 몹시 단단히 채워진 것을 보고는 금고봉을 꺼내어 문을 향해 한 번 가리키며 자물쇠 푸는 법을 썼다. 그 문이 스르르 열리자 급히 걸음을 옮겨 문 밖에 나가 서서, 높은 소리로 외쳤다. “새태세야! 내 금성궁낭낭을 내놓아라!” 두세 차례를 연달아 외치니 크고 작은 요괴 무리가 놀라 급히 살펴보니 앞문이 열려 있었다. 그들은 급히 등불을 밝혀 자물쇠를 찾아 문을 다시 그대로 잠그고는, 몇 놈을 안으로 달려가 보내어 아뢰게 하였다. “대왕이시여! 누군가 큰 문 밖에서 대왕의 존함을 부르며 금성궁낭낭을 내놓으라 하나이다!” 그 안쪽에서는 시비가 곧 궁문 밖으로 나와 가만히 전하며 말했다. “큰 소리로 외치지 말아라. 대왕께서 방금 잠이 드셨느니라.” 행자가 또 문 앞에서 크게 외쳤으나, 그 작은 요괴들은 감히 가서 깨우지 못하였다. 이렇게 서너 차례가 지나도록 모두 감히 가서 아뢰지 못하였다. 그 대성이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티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손에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 문을 두드렸다. 크고 작은 요괴들이 놀라, 문을 버티는 놈은 문을 버티고 알리는 놈은 알렸다. 그 요왕이 한잠에서 막 깨어나 시끌벅적한 소란만 들리고, 몸을 일으켜 옷을 입고는 곧 나장 밖으로 나와 물었다. “무엇을 그리 떠드느냐?” 여러 시비들이 그제야 꿇어앉으며 아뢰었다. “할아범이시여, 어떤 자인지는 모르옵니다만 굴 밖에서 반나절이나 욕하며 외치더니, 이제는 또 문을 두드리나이다.” 요왕이 궁문 밖으로 나가니, 그 몇몇 전보하던 작은 요괴들이 허둥지둥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밖에 누가 욕설을 퍼부으며 금성궁낭낭을 내놓으라 하나이다! 만약 안 된다는 말씀을 한마디라도 전하면, 그가 수많은 막된 말을 쏟아내는데 몹시 듣기 거북하옵니다. 날이 밝아도 대왕께서 나오지 않으시니, 다그쳐 문을 두드리는 것이옵니다.” 그 요괴가 말했다. “우선 문을 열지 말고, 네가 가서 저놈이 어디서 왔으며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어서 와서 보고하라.” 작은 요괴가 급히 나가 문을 사이에 두고 물었다. “문을 두드리는 자가 누구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주자국에서 예를 갖추어 청해 온 외할아버지니라. 성궁낭낭을 모셔 나라로 돌아가려 왔노라!” 그 작은 요괴가 듣고는 곧 이 말을 그대로 보고하였다. 그 요괴는 곧 뒷궁으로 가서 내력을 캐물었다. 알고 보니 그 낭낭이 막 일어나 아직 머리를 빗지도 않았는데, 일찍이 시비가 와서 아뢰었다. “할아범께서 오셨나이다.” 그 낭낭이 급히 옷을 여미고 검은 구름 같은 머리를 느슨히 틀어 올린 채 궁을 나와 마중하였다. 막 자리에 앉아 미처 묻기도 전에, 또 작은 요괴가 와서 아뢰었다. “그곳에서 온 외할아버지가 이미 문을 부수었나이다.” 그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낭낭, 그대 조정에는 장수가 얼마나 되오?” 낭낭이 말했다. “조정에는 마흔여덟 위의 인마가 있고, 훌륭한 장수가 천 명이며, 각 변방의 원수와 총병은 셀 수 없이 많사옵니다.” 요왕이 말했다. “그 가운데 성이 외자인 이가 있소이까?” 낭낭이 말했다. “저는 궁에 있으면서 다만 안에서 임금을 보필하고 아침저녁으로 비빈을 가르칠 뿐이오니, 바깥일은 끝이 없거늘 제가 어찌 이름과 성을 기억하겠나이까!” 요왕이 말했다. “이번에 온 자가 스스로 외할아버지라 일컫는데, 내가 생각하건대 《백가성》 위에는 성이 외자인 이가 아주 없소. 낭낭은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고 신분이 고귀하여 황궁 가운데 살았으니, 반드시 책을 두루 보았을 터인데, 어느 책에 이 성이 있는지 기억하시오?” 낭낭이 말했다. “다만 《천자문》에 외수부훈이라는 구절이 있사오니, 아마도 바로 그것이옵니다.” 요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틀림없소! 틀림없소!” 곧 몸을 일으켜 낭낭에게 작별하고 박피정으로 올라가, 갑옷을 단정히 갖추어 입고 요괴 병사를 점고하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갔다. 손에는 선화월부라는 큰 도끼를 쥐고서 높은 소리로 외쳤다. “주자국에서 왔다는 외할아버지가 어느 놈이냐?” 행자가 금고봉을 오른손에 쥐고 왼손을 뻗어 가리키며 말했다. “어진 생질아, 나를 불러 무엇 하려느냐?” 그 요왕이 보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놈아, 생김새는 원숭이요 얼굴꼴은 잔나비로구나. 칠 분은 참된 귀신인데 큰 담력으로 감히 사람을 속이는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임금을 속이고 위를 기만하는 사나운 요괴야, 네가 본래 눈이 없구나! 내가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던 때를 생각해 보아라. 구천의 신장들이 나를 보고는 하나같이 늙은이라는 낱말을 감히 쓰지 못하였거늘, 네가 나를 외할아버지라 불러서 어디 손해 볼 일이 있단 말이냐!” 요왕이 꾸짖었다. “어서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이며 무슨 무예가 있기에 감히 내게 와서 날뛰는지 말하라!” 행자가 말했다. “네가 이름을 묻지 않는다면 그만이려니와, 만약 내가 이름을 말하게 된다면 네가 설 자리가 없게 될까 두렵구나! 이리 올라와 똑바로 서서 내 말을 들어라. 나를 낳아 준 부모는 천지요, 해와 달의 정화가 성태를 맺었느니라. 선석이 품어 안아 나이를 셈할 수 없고, 영근이 잉태하여 기이함이 매우 크도다. 그해에 나를 낳을 때는 삼양이 태평하였고, 오늘 참됨으로 돌아오니 만 가지 모임이 화합하도다. 일찍이 요괴를 모아 우두머리라 일컬음을 받았고, 능히 무리를 항복시켜 붉은 벼랑에서 절을 받았노라. 옥황상제가 칙지를 전하고 태백금성이 조서를 받들어 왔느니라. 나를 청하여 하늘에 올라 직분을 잇게 하고, 벼슬을 비마온으로 내리니 마음이 편치 않았노라. 처음에 반란을 일으켜 산굴을 꾀하고, 크게 담력을 부려 군사를 일으켜 어가의 계단을 어지럽혔노라. 탑을 받쳐 든 천왕과 태자가 함께 교전한 한 판에 모두 기가 꺾여 비틀거렸노라. 금성이 다시 현궁의 임금께 아뢰니, 다시 초안하는 칙지가 내려왔느니라. 제천대성이라 봉하여 주니 그때에 비로소 동량의 재목이라 일컬음을 받았노라. 또 반도연회를 어지럽힌 탓에, 술을 믿고 단약을 훔쳐 재앙을 불렀노라. 태상노군이 친히 임금께 아뢰고 서지의 왕모가 요대에 절을 올렸노라. 내가 임금의 법을 속인 줄을 뻔히 알고서, 곧 천병을 점고하고 화패를 내렸느니라. 십만의 흉성과 악한 요성이, 창과 검과 창검이 빽빽하게 늘어섰노라. 하늘의 그물과 땅의 그물이 산을 덮고 두루 퍼졌고, 일제히 칼과 병기를 들어 크게 싸움판을 벌였노라. 사나운 한바탕 싸움에 승부가 없는데, 관음이 이랑을 천거하여 왔노라. 두 집안이 맞서 고하를 가르니, 그에게는 매산의 형제 무리가 있었노라. 각자 영웅을 뽐내며 변화를 부리니, 천문의 세 성인이 구름을 헤치고 열었노라. 노군이 금강 고리를 내던지고, 뭇 신이 나를 금계로 끌고 갔노라. 자세히 살펴 허가하고 공술을 받을 것도 없이, 죄는 능지처참의 참수 재앙이 되었노라. 도끼로 찍고 쇠망치로 두드려도 목숨을 해치기 어렵고, 칼을 휘두르고 검으로 내리쳐도 어찌 이 몸을 상하게 하리오! 불로 태우고 벼락으로 쳐도 그저 그러한데, 장수의 몸을 꺾을 방도가 없었노라. 태청도솔원으로 압송되어, 화로 속에서 단련하기로 모두 안배되었노라. 날짜가 다 차서야 솥을 여니, 내가 그 한가운데서 뛰어나왔노라. 손에 이 여의봉을 받쳐 들고, 몸을 뒤집어 옥룡대 위로 올라갔노라. 온갖 별과 온갖 상이 모두 숨어 버리고,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며 내 마음대로 날뛰었노라. 순시하던 영관이 급히 부처님을 청하고, 석가가 나와 재주를 겨루었노라. 손바닥 안에서 근두운을 뒤집어, 주천을 두루 돌아갔다가 다시 왔노라. 부처님이 미리 알고 속이는 법을 쓰시어, 나를 천애에 눌러 두었노라. 오늘에 이르기 오백여 년이 되었거늘, 미천한 이 몸이 풀려나 또 재주를 부리는구나. 특별히 당승을 보호하여 서역으로 가니, 오공행자가 매우 명백하도다. 서쪽 길에서 요괴를 항복시키니, 어느 요사한 놈이 두려워하지 않으리오!” 그 요왕은 그가 오공행자라 말하는 것을 듣고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본래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그놈이로구나. 네가 이미 몸을 빼어 당승을 보호하여 서쪽으로 가게 되었거늘, 네 갈 길을 가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일을 꾸며 간섭하여 저 주자국을 위하여 종이 되어, 도리어 내게 와서 죽음을 찾느냐!” 행자가 꾸짖었다. “이 사나운 요괴야! 말이 무지하구나! 나는 주자국이 예를 갖추어 청하며 바친 예물을 받았고, 또 그들이 나를 정중히 불러 대접해 준 은혜를 입었노라. 이 늙은 손가 그 왕위보다도 천 배나 높거늘, 그들은 나를 부모처럼 공경하고 신명처럼 섬겼거늘, 네가 어찌 감히 종이란 두 글자를 입에 담느냐! 이 임금을 속이고 위를 기만하는 요괴야, 달아나지 말라! 외할아버지의 몽둥이 한 방을 받아라!” 그 요괴는 손발이 허둥거리며 곧 몸을 피해 비켜서고는 선화 도끼를 들어 면상으로 맞받아쳤다.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이로다! 보라, 금고의 여의봉이요, 바람 칼날의 선화 도끼로다. 하나는 이를 악물고 사납게 덤비고, 하나는 이를 갈며 위풍을 부리네. 이는 제천대성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이요, 저것은 요괴 왕 노릇을 하러 하토로 내려온 것이로다. 둘이 구름을 뿜고 안개를 내뿜어 천궁을 비추니, 참으로 돌을 날리고 모래를 일으켜 하늘 궁궐을 가리네. 오고 감이 잦아 해수가 많고, 뒤집히고 되풀이되며 금빛을 토하네. 함께 재주를 부리고, 저마다 신통을 걸고 겨루네. 이는 낭낭을 모셔 황성으로 돌아가려 하고, 저는 황후와 함께 산속에 살기를 즐기네. 이 싸움은 모두 까닭 없는 일이로되, 죽음을 무릅쓰고 삶을 잊음은 임금 때문이로다. 그 둘은 쉰 합을 싸우도록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그 요왕은 행자의 수단이 뛰어나 이길 수 없으리라 여기고, 도끼로 그의 쇠몽둥이를 받쳐 막으며 말했다. “손행자여, 우선 그만두게. 나는 아직 조반을 먹지 않았으니, 내가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와서 그대와 승부를 정하리라.” 행자는 그가 방울을 가지러 가려는 줄을 알아차리고 쇠몽둥이를 거두며 말했다. “호걸은 지친 토끼를 쫓지 않는 법이니, 가라, 가라! 배불리 먹고 와서 죽음을 받으라!” 그 요괴는 급히 몸을 돌려 안으로 뛰어들어가 낭낭에게 말했다. “어서 보물을 내어 놓으시오!” 낭낭이 말했다. “보물은 어디에 쓰시려 하시나이까?” 요왕이 말했다. “오늘 아침에 싸움을 걸어 온 자는 곧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의 제자로, 손오공행자라 하는 놈이오. 스스로 외할아버지라 일컬었소. 내가 그와 이때까지 싸웠으되 승부가 나지 않았소. 내가 보물을 가지고 나가 불과 연기를 조금 놓아 저 원숭이 놈을 태워 버리겠소.” 낭낭이 그 말을 듣고는 마음이 울렁거렸다. 방울을 내어 놓지 않자니 그가 의심할까 두렵고, 방울을 내어 놓자니 또 손행자의 목숨을 해칠까 두려웠다.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 요왕이 또 다그쳐 말했다. “어서 내어 놓으시오!” 이 낭낭은 하는 수 없이 자물쇠와 열쇠를 열어 방울 세 개를 요왕에게 건넸다. 요왕이 그것을 받아 쥐고 곧 굴 밖으로 나갔다. 낭낭은 궁중에 앉아 비 오듯 눈물을 흘리며, 행자가 목숨을 건져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것이 가짜 방울인 줄은 알지 못하였다. 그 요괴는 문을 나서자마자 바람 위쪽에 자리를 잡고 외쳤다. “손행자여, 달아나지 말라! 내가 방울을 흔드는 것을 보아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네게 방울이 있으면 나는 없단 말이냐? 네가 흔들 줄 알면 나는 모른단 말이냐?” 요왕이 말했다. “네게 무슨 방울이 있거든 꺼내어 내게 보이라.” 행자가 쇠몽둥이를 수놓은 바늘로 뭉개어 귀 속에 감추고는, 허리에서 참보물 세 개를 풀어 내어 요왕에게 말했다. “이것이 내 자금령이 아니더냐?” 요왕이 보고는 가슴이 놀라 말했다. “기이하구나! 기이하여라! 그의 방울이 어찌 내 방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단 말이냐! 설령 한 틀에서 부어 낸 것이라 한들, 갈고 닦는 솜씨가 미치지 못하여 흠집이 더 있는가 하면 꼭지가 모자라는 법이거늘, 어찌하여 이토록 터럭만큼도 다르지 않단 말이냐?” 또 물었다. “그대의 그 방울은 어디서 났소?” 행자가 말했다. “어진 생질아, 그대의 그 방울은 도대체 어디서 났느냐?” 요왕이 솔직하게 곧 말했다. “내 이 방울은, 태청의 선군이 도의 근원이 깊고, 팔괘로 속에서 오래도록 금을 단련하였네. 방울을 맺어 지극한 보배라 일컫고, 노군이 남겨 두어 오늘에 이르렀노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늙은 손가의 방울도 또한 그때에 온 것이로다.” 요왕이 말했다. “어찌 나왔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 이 방울은, 도조가 도솔궁에서 단약을 불이고, 금령을 화로 속에서 뭉쳐 단련하였네. 이삼이 육이 되어 순환하는 보배이니, 내 것은 암놈이요 그대 것은 수놈이로다.” 요왕이 말했다. “방울은 금단의 보배이거늘, 또한 날짐승이나 길짐승도 아니니 어찌 암수를 분간한단 말이오? 다만 보배를 흔들어 나오기만 하면 좋은 것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말로만 하면 증거가 없고, 해 보면 곧 알 수 있으니, 우선 그대가 먼저 흔들어 보라.” 그 요왕이 참으로 첫째 방울을 세 번 흔들었으나 불이 나오지 않았고, 둘째 것을 세 번 흔들었으나 연기가 나오지 않았으며, 셋째 것을 세 번 흔들었으나 모래도 나오지 않았다. 요왕이 손발이 허둥거리며 말했다. “괴이하구나! 괴이하여라! 세상 인심이 변하였구나! 이 방울이 아내를 두려워하는 모양이니, 수놈이 암놈을 보고서 나오지 않는 게로구나.” 행자가 말했다. “어진 생질아, 손을 멈추고 나도 흔드는 것을 보아라.” 훌륭한 원숭이로다. 방울 세 개를 한 웅큼 쥐고 일제히 흔들어 대니, 보라, 붉은 불과 푸른 연기와 누런 모래가 일제히 굴러 나와서, 불꽃이 치솟으며 나무를 태우고 산을 불살랐다! 대성이 입으로 또 주문 하나를 외우고 손방을 향하여 외쳤다. “바람아, 오너라!” 참으로 바람이 불길을 재촉하고 불이 바람의 위세를 업으니, 붉은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연기가 자욱하여, 하늘 가득 불과 연기가 퍼지고 온 땅에 누런 모래가 덮였다! 그 새태세는 혼백이 흩어져 날아갈 듯 놀라며 갈 곳을 잃고서, 그 불길 한가운데에서 어찌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오! 그때 반공중에서 높은 소리로 부르는 것이 들렸다. “손오공아! 내가 왔노라!” 행자가 급히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니,알고 보니 관음보살이셨는데, 왼손에 정병을 받쳐 들고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쥐고서 감로를 뿌려 불을 끄고 계셨다. 행자가 황급히 방울을 허리에 감추고는 곧 두 손을 모아 몸을 던져 절을 올렸다. 그 보살이 버들가지로 감로를 몇 점 연달아 뿌리시니, 삽시간에 불과 연기가 모두 사라지고 누런 모래의 자취도 없어졌다. 행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자대비하신 이께서 인간 세상에 내리신 줄 모르고 피하여 뵙지 못하였나이다. 감히 여쭙건대 보살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이시니이까?” 보살이 말했다. “내 특별히 이 요괴를 거두러 왔노라.” 행자가 말했다. “이 요괴가 무슨 내력이기에 감히 금신께서 친히 내려오시어 거두시려 하시나이까?” 보살이 말했다. “그는 내가 타고 다니는 금모후이니라. 목동이 졸다가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에, 이 미련한 짐승이 쇠사슬을 끊어 물고 달아나 왔는데, 도리어 주자국 왕의 재앙을 덜어 준 셈이니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급히 몸을 굽히며 말했다. “보살께서 거꾸로 말씀하시는 것이옵니다. 그가 이곳에서 임금을 속이고 황후를 속여 풍속을 무너뜨리고 기풍을 해쳤사온데, 그 임금께 재앙을 일으켰거늘 도리어 재앙을 덜어 주었다 하시니 어찌된 일이니이까?” 보살이 말했다. “너는 알지 못하는구나. 당시 주자국 선왕이 재위할 때에, 이 왕은 아직 동궁태자로서 즉위하지 않았는데, 그가 어렸을 적에 사냥을 몹시 좋아하였느니라. 그가 인마를 거느리고 매와 개를 풀어 놓고 낙봉파 앞에 막 이르렀을 때, 서방 불모 공작대명왕보살이 낳은 두 마리 새끼가 있었으니, 곧 암수 두 마리의 어린 참새였는데, 산비탈 아래에 날개를 접고 앉아 있었다. 이 왕이 활을 당겨 쏘는 바람에 수공작이 상하고, 그 암공작도 화살을 맞고 서쪽으로 돌아갔느니라. 불모가 참회하신 뒤에 분부하여 그 왕으로 하여금 봉황이 갈라지는 삼 년을 겪고 몸에 질병을 앓게 하였느니라. 그때에 내가 이 후를 타고 함께 그 말을 들었는데, 뜻하지 않게 이 미련한 짐승이 그 말을 마음에 새겨 두었으므로 와서 황후를 속여 데려가고, 왕의 재앙을 덜어 준 것이니라. 지금 삼 년이 되어 원한과 죄업이 다 차고, 마침 네가 와서 왕의 병을 고쳐 주었으니, 내가 특별히 요사한 놈을 거두러 온 것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보살이시여, 이러한 사연이 있다 한들, 그가 황후를 더럽히고 풍속을 해치며 인륜과 법을 어지럽혔사오니, 이는 마땅히 사죄에 해당하는 일이옵니다. 이제 보살께서 친히 내리셨사오니 사죄는 용서하시옵소서마는 살아서 받을 죄까지 용서할 수는 없나이다. 제가 그를 스무 방 때려서 보살께 데려가게 하시옵소서.” 보살이 말했다. “오공아, 네가 내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줄 알거든 내 체면을 보아 이번 일 모두 용서하라. 그것도 네가 요괴를 항복시킨 한 차례의 공으로 치리라. 만일 몽둥이를 움직이면 그는 곧 죽고 말 것이니라.” 행자는 감히 말씀을 어기지 못하고 다만 절을 올리며 말했다. “보살께서 그를 거두어 바다로 데려가시거든, 다시는 사사로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해를 끼치게 하지 마시옵소서. 그 폐해가 적지 않나이다!” 그제야 그 보살이 한 소리 꾸짖었다. “미련한 짐승아! 어서 본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보라, 그 요괴가 한 번 데구르르 굴러 본모습을 드러내고 털옷을 털어 내니, 보살이 그 위에 올라탔다. 보살이 또 목 아래를 살펴보니 그 세 개의 금령이 보이지 않았다. 보살이 말했다. “오공아, 내 방울을 내놓아라.” 행자가 말했다. “늙은 손가는 알지 못하옵니다.” 보살이 꾸짖었다. “이 도둑 원숭이 같으니! 네가 이 방울을 훔치지 않았다면, 오공 하나가 아니라 열이라도 감히 몸을 가까이하지 못하였으리라! 어서 내놓아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본 적이 없사옵니다.” 보살이 말했다. “본 적이 없다 하니, 내가 《긴고아주》를 한번 외워 볼 참이로다.” 그 행자가 당황하여 다만 애원했다. “외우지 마시옵소서, 외우지 마시옵소서! 방울이 여기 있사옵니다!” 이는 곧 이러한 것이로다. 후의 목에 달린 금령을 누가 풀어 낼 것인가? 방울을 푸는 이가 도로 방울 매었던 이에게 묻는구나. 보살이 방울을 후의 목 아래에 걸어 주고 몸을 날려 높이 앉았다. 보라, 그 네 발의 연꽃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피어오르고, 온몸의 금실이 삼삼하게 뻗어 나오니, 대자대비하신 이가 남해로 돌아갔으니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손대성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해치동 안으로 쳐들어가서, 요괴 무리와 온갖 괴물을 남김없이 때려 죽이고 깨끗이 소탕하였다. 궁중에까지 이르러 성궁낭낭을 청하여 나라로 돌아가자 하니, 그 낭낭이 거듭 절을 올리며 감사해하였다. 행자가 보살이 요괴를 항복시킨 일과 봉황이 갈라진 연유를 빠짐없이 한바탕 이야기하고는, 부드러운 풀을 좀 찾아 풀용 한 마리를 묶어서 분부했다. “낭낭께서는 그 위에 올라타시고 눈을 감고 계시옵소서. 두려워하지 마시옵소서. 제가 모셔 조정으로 돌아가 임금을 뵙게 하겠나이다.” 그 낭낭이 분부를 삼가 따르니, 행자가 신통을 부리자 다만 귓속에서 바람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반 시진 만에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구름을 내려놓고 외쳤다. “낭낭, 눈을 뜨시옵소서.” 그 황후가 눈을 떠 살펴보니 봉각용루임을 알아보고 마음이 기뻐서, 풀용을 버리고 행자와 함께 보전에 올랐다. 그 주자국 왕이 보고 급히 용상에서 내려와 낭낭의 옥 같은 손을 잡아당기며 이별의 정을 나누려다가, 갑자기 땅에 넘어지며 외쳤다. “손이 아프다! 손이 아프다!” 저팔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저 꼴 보소! 복이 없어 받아 누리지 못하는구나! 한번 만나보자마자 쏘여 죽었구려!” 행자가 말했다. “멍청한 놈아, 네가 감히 그 손을 잡아당겨 보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잡아당겨 보면 어쩐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낭낭의 몸에는 독가시가 돋아나 있고, 손에는 찌르는 독이 있느니라. 기린산에 이르러 그 새태세와 삼 년을 지내는 동안, 그 요괴는 일찍이 몸을 가까이한 적이 없으니, 몸에 닿기만 하면 몸이 아프고 손에 닿기만 하면 손이 아픈 법이니라.” 여러 관리들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러하다면 어찌할 방도가 있겠나이까?” 이때 밖의 여러 관리가 근심하고 의심하며 안의 비빈이 두려움에 떠는데, 곁에 있던 옥성궁과 은성궁 두 궁이 임금을 부축해 일으켰다. 모두가 황망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홀연히 반공중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성이여, 내가 왔노라.” 행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보라,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숙숙 소리 내며 하늘을 찌르는 학의 울음이요, 펄펄 날려 조정 앞으로 곧장 이르렀도다. 상서로운 빛이 줄줄이 감돌고, 온화한 서기가 자욱이 어린다. 종려옷이 몸을 덮어 구름과 연기를 뿜고, 발에 신은 망혜가 보기 드물구나. 손에는 용수비로 쥐었고, 비단 띠를 허리 아래 두르고 있네. 건곤 곳곳에 인연을 맺고, 대지를 두루 노니는구나. 이는 곧 대라천상의 자운선이니, 오늘 인간에 내려와 마를 푸는도다.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 맞으며 말했다. “장자양은 어디 가시는 길이오?” 자양진인이 전 앞에 이르러 몸을 굽히며 예를 올리고 말했다. “대성이여, 소선 장백단이 인사를 올리나이다.” 행자가 답례하며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오는 길이오?” 진인이 말했다. “소선이 삼 년 전에 불회에 갔다가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주자국 왕에게 봉황이 갈라질 근심이 있음을 보았나이다. 내가 그 요괴가 황후를 더럽혀 뒷날 임금과 다시 합하기 어렵게 될까 염려하여, 낡은 종려옷 한 벌을 오채가 번쩍이는 새 저고리로 변하게 해 요왕에게 바치고 황후에게 입혔나이다. 그 황후가 몸에 걸치자 곧 온몸에 독가시가 돋아났는데, 그 독가시란 것이 곧 종려나무의 털이었나이다. 이제 대성이 공을 이룬 줄 알고 특별히 마를 풀러 왔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으니, 어서 빨리 풀어 주시옵소서.” 진인이 앞으로 걸어 나가 낭낭에게 손가락 한 번 가리키니 곧 그 종려옷이 벗겨지고, 그 낭낭의 온몸이 예전대로 돌아왔다. 진인이 옷을 한 번 털어 어깨에 걸치고 행자에게 말했다. “대성이여, 허물을 사양하오니 소선은 물러가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잠깐 머무르시오. 임금께서 사례하시도록 하시오.” 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수고로울 것 없소, 수고로울 것 없소.” 마침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몸을 날려 사라지니, 황제와 황후 및 크고 작은 여러 신하가 놀라 하늘을 우러러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치자 곧 동각을 크게 열어 네 승려에게 사례하라 명하였다. 그 임금이 무리를 이끌고 꿇어앉아 절을 올리니, 부부가 비로소 다시 화합하였다. 즐거운 연회가 한창일 때에 행자가 외쳤다. “사부님, 그 전서를 내어 주시옵소서.” 장로가 소매 속에서 꺼내어 행자에게 건네니, 행자가 그것을 주자국 왕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글은 그 요괴가 작은 병사를 보내어 보낸 것이옵니다. 그 작은 병사는 이미 내가 먼저 때려 죽여 공을 보고하러 보냈나이다. 그 뒤에 다시 산중으로 가서 작은 병사로 변해 굴에 들어가 회보하다가, 그로 말미암아 낭낭을 만나 금령을 훔쳐 낼 수 있었고, 거의 그에게 잡힐 뻔하였사옵니다. 또 모습을 바꾸어 다시 훔쳐 내어 그와 맞서 싸웠나이다. 다행히 관음보살을 만나 그를 거두어 가시고, 또 내게 봉황이 갈라진 연유를 말씀해 주셨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한바탕 이야기하였다. 온 나라의 임금과 신하와 안팎의 사람들 가운데 감사하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당승이 말했다. “하나는 어진 임금의 복이옵고, 둘은 이 어리석은 제자의 공이옵니다. 이제 성대한 연회를 받았사오니 지극하옵니다! 지극하옵니다! 이만 작별을 고하오니, 빈승이 서쪽으로 가는 길을 늦추지 마시옵소서.” 그 주자국 왕이 간곡히 만류하였으나 뜻을 이룰 수 없자, 마침내 관문을 바꾸어 주고 연가를 크게 벌여 당승을 용차에 앉히니, 임금과 왕비와 황후가 모두 수레바퀴를 받들고 밀며 전송하고 작별하였다. 참으로 이러한 것이로다. 인연이 있어 근심과 의심의 병을 씻어 내니, 생각을 끊고 근심이 없어 마음이 절로 편안하도다. 결국 이 길을 떠나 뒤에 또 무슨 길흉한 일이 있게 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2회 반사동칠정미본(盤絲洞七情迷本) · 탁구천팔계망형(濯垢泉八戒忘形) 이야기는 이러하다. 당삼장이 주자국 국왕과 작별하고 안장과 말을 추스려 서쪽으로 떠났다. 수많은 산과 언덕을 지나고 끝없는 물길을 다 겪는 동안, 어느새 가을이 가고 겨울이 저물어 다시 봄빛이 고운 때를 맞았다. 사부와 제자들이 길 위에서 봄 경치를 즐기며 구경하는데, 홀연 암자 숲 하나가 보이자 삼장이 말에서 굴러 내려 큰길 가에 섰다. 행자가 물었다. “사부님, 이 길은 평탄하고 사악한 기운도 없사온데 어찌하여 가지 않으시나이까?” 팔계가 말했다. “사형은 정말 사정을 모르시는구려! 사부님께서 말 위에 오래 앉아 계시느라 피곤하시니, 내려오시어 바람이나 좀 쐬시게 하는 것이오.” 삼장이 말했다. “바람을 쐬려는 게 아니다. 내가 보니 저곳이 인가이니, 몸소 가서 공양을 조금 빌려 먹고자 한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나이다. 공양을 하시려거든 제가 가서 빌려 오겠나이다. 속담에 하루라도 스승이면 평생 아버지라 하였거늘, 어찌 제자가 높이 앉아 있고 스승께서 몸소 공양을 빌러 가시는 법이 있사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그 뜻이 아니다. 평소에는 사방이 끝없이 트여 너희가 멀고 가까움도 없이 공양을 빌러 다녔으나, 오늘은 인가가 가까우니 불러 대답도 들을 수 있으니, 나더러 한 번 빌려 오게 해 주어라.” 팔계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주장이 없으시구려. 늘 하는 말에 세 사람이 바깥에 나가면 어린것이 고생이라 하였사온데, 사부님은 더욱이 어버이요 저희는 모두 제자이옵니다. 옛글에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를 맡는다 하였사오니, 이 늙은 돼지가 가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오늘은 날씨가 맑고 화창하여 그 비바람 치던 때와는 다르단다. 그런 때에는 너희가 반드시 멀리 가야 하겠지만, 이 인가는 내가 가서 공양이 있든 없든 곧 돌아와 길을 떠나면 되지 않겠느냐.” 사오정이 곁에서 웃으며 말했다. “사형, 더 말할 것 없소. 사부님의 성정이 원래 이러하시니 거스르지 맙시다. 만일 사부님의 심기를 건드리면 공양을 빌려 온다 한들 드시지도 않으실 것이오.” 팔계가 그 말을 따라 곧 발우를 꺼내어 사부님께 드리고 옷과 모자를 갈아입었다. 발걸음을 떼어 그 마을 앞까지 가서 살펴보니, 참으로 훌륭한 터였다. 보라, 이러하였다. 돌다리가 높이 솟았고, 고목이 가지런히 울창하였다. 돌다리가 높이 솟아 졸졸 흐르는 물이 긴 시내로 이어지고, 고목이 가지런히 울창하여 떠들썩한 깊은 새들이 먼 산에서 울어 댔다. 다리 저쪽에는 서까래 몇 개 얹은 초가집이 있어 맑고 아담하기가 선계의 암자 같고, 또 저기 창 하나가 있어 희고 밝기가 도관을 능가하였다. 창 앞에 홀연 네 미인이 보이는데, 모두 그곳에서 봉황을 수놓고 난새를 그리며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장로는 그 집에 사내가 없고 네 여자뿐이라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높은 숲 그늘에 숨었는데, 저 여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이러하였다. 규방의 마음은 돌처럼 굳건하고, 난초 같은 성정은 봄을 즐기는 듯하였다. 고운 얼굴은 붉은 노을을 받친 듯하고, 붉은 입술은 진홍 연지를 고루 바른 듯하였다. 나비 같은 눈썹은 비스듬한 초승달처럼 가늘고, 매미 날개 같은 귀밑머리는 새 구름을 포갠 듯 산뜻하였다. 꽃밭에 서면 노니는 벌이 참꽃으로 잘못 알 지경이었다. 반 시진쯤 머무르자 점점 적막해져 닭이나 개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혼자 속으로 헤아려 보기를, “내가 만일 재주가 없어 한 끼 공양조차 빌려 오지 못한다면 저 제자들의 웃음거리가 될 터인즉, 스승이 공양을 빌려 오지 못하는데 제자가 어찌 부처님께 절을 올리러 가겠느냐고 할 것이 아니냐.” 장로는 달리 방도가 없어 스스로 잘못되었다는 듯 발을 재촉하여 다리 위로 올라섰다. 몇 걸음 더 가니 초가집 안에 목향 정자가 있고, 정자 아래에는 또 세 여자가 있어 그곳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저 세 여자를 보라, 앞의 네 여자보다 더 다르게 생겼으니, 보라, 이러하였다. 펄럭이는 비취 소매, 흔들리는 담황 치마. 펄럭이는 비취 소매는 가는 옥순을 낮게 감싸고, 흔들리는 담황 치마는 좁은 금련을 반쯤 드러낸다. 몸짓과 자태가 온전히 갖추어지고, 움직임과 멈춤의 발놀림이 천 가지로다. 머리 넘김에 높고 낮음이 있고, 받쳐 보냄이 참되고 바르도다. 몸 돌려 담 넘는 꽃을 차고, 물러서며 큰 바다 건너기로 바뀐다. 가볍게 한 덩이 진흙 받고, 외창으로 급히 괴를 맞춘다. 밝은 구슬 불두에 오르고, 굳게 집어 뾰족한 신으로 받는다. 좁은 벽돌 도리어 잘 잡고, 누운 물고기로 발을 건다. 허리 펴고 무릎 굽혀 웅크리고, 목 비틀고 뒤꿈치 들어 밟는다. 걸상 당겨 요란히 펼치고, 어깨 드리움 몹시 훌훌하다. 사타구니 비틀어 제집처럼 오가고, 목을 걸어 흔들림을 따른다. 차는 꼴이 황하 물이 거꾸로 흐름이요, 금붕어가 여울에서 노니는 듯. 저쪽은 그것을 머리로 잘못 알고, 이쪽은 돌아서며 괴를 친다. 단정히 정강이에 받들어 올리고, 반듯하고 뾰족하게 뿜어 낸다. 뒤꿈치 들어 짚신에 뿜고, 거꾸로 꽂고 돌아서며 딴다. 물러서며 어깨 펴어 꾸미니, 갈고리는 한 번 비틀 뿐이다. 널판과 광주리 내려오니 길고, 곧 문 빼앗기를 품에 안는다. 흥겹게 찰 때에 이르러, 미인들이 일제히 환호한다. 땀 흘러 분 바른 살갗이 비단옷을 적시고, 흥이 가셔야 비로소 그친다. 다 말하기 어려워 또 시로 증명하거니와, 시에 이르기를, 공차는 마당은 삼월 하늘, 선풍이 흰 선녀를 불어 내렸네. 땀 젖은 분칠한 얼굴 꽃이 이슬 머금은 듯, 먼지 묻은 가는 눈썹 버들이 연기 띤 듯. 비취 소매 드리워 옥순을 감싸고, 담황 치마 비스듬히 끌어 금련을 드러낸다. 몇 번 차고 나니 고운 몸에 힘이 없어, 구름 같은 머리 헝클어지고 보배 쪽찌 비뚤어졌네. 삼장이 한참 오래 바라보다가 다리 머리로 올라가 소리를 높여 불렀다. “여보살이시여, 빈승이 여기서 인연 따라 공양을 조금 시주받고자 하옵니다.” 그 여자들이 듣고는 하나같이 기뻐하며 바느질을 던지고 공을 내팽개친 채, 모두 웃는 낯으로 문 밖까지 나와 맞으며 말했다. “장로시여,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였나이다. 오늘 이 황량한 마을에 오셨으니, 감히 길을 막고 중을 공양하는 예를 아니 할 리 있사옵니까. 안으로 드시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착하고 또 착하도다! 서방이야말로 참된 불지로다! 여염 여자마저 승려 공양에 마음을 쓰거늘, 사내들이야 어찌 간절히 부처를 향하지 않으리오?” 하고 생각했다. 장로가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올리고 여러 여자를 따라 초가집으로 들어가 목향 정자를 지나 살펴보니, 아! 알고 보니 그 안에는 방이나 회랑이 없었으니, 보라, 이러하였다. 산머리가 높이 솟았고, 땅의 맥이 아득히 길었다. 산머리가 높이 솟아 구름과 안개에 닿고, 땅의 맥이 아득히 길어 바다며 큰 산으로 통하였다. 문은 돌다리에 닿아 있어 아홉 굽이 아홉 만의 물이 돌아 흐르고, 동산에는 복숭아와 자두가 심겨 천 그루 천 송이가 고운 빛을 다투었다. 칡과 담쟁이가 서너 그루에 걸려 늘어지고, 지초와 난초 향기가 온갖 꽃에 흩어졌다. 멀리 동부를 바라보니 봉래섬을 능가하고, 가까이 산림을 살펴보니 태화산을 누른다. 참으로 요선이 은거할 만한 곳이요, 이웃 하나 없이 홀로 한 집안을 이루었다. 한 여자가 앞으로 나서서 돌문 두 짝을 밀어 열고는 당승에게 안으로 들어가 앉으라 청하였다. 그 장로는 하는 수 없이 들어가 홀연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벌여 놓은 것이 모두 돌탁자와 돌걸상이라 냉기가 음산하였다. 장로는 가슴이 철렁하여 속으로 “이곳은 길한 데 적고 흉한 데 많으니 단연코 좋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러 여자가 기뻐 웃으며 모두들 말했다. “장로시여, 앉으소서.” 장로는 어쩔 수 없이 앉았는데, 잠시 있으니 오싹하고 오한이 돋았다. 여러 여자가 물었다. “장로께서는 어느 보산에서 오셨사옵며, 무슨 연을 비시나이까? 다리를 놓고 길을 닦으시려 하옵니까, 절을 세우고 탑에 절하시려 하옵니까, 아니면 불상을 만들고 경전을 인쇄하시려 하옵니까? 연부를 내어 놓고 보게 하소서.” 장로가 말했다. “나는 연을 비는 중이 아니오.” 여자가 말했다. “연을 비시지 않는다면 이곳에 와서 무슨 일을 하시려 하옵니까?” 장로가 말했다. “나는 동토 대당에서 서천 대뢰음으로 경을 구하러 가도록 파견된 자이오. 마침 귀한 곳을 지나다 배가 고프므로 특별히 존부를 찾아와 한 끼 공양을 비오니, 빈승은 곧 떠나겠나이다.” 여러 여자가 말했다. “좋소! 좋아! 늘 하는 말에 먼 데서 온 중이 경을 보기 좋다 하였으니, 아가씨들! 소홀히 대하지 말고 어서 공양을 장만해 오너라.” 이때 세 여자가 곁에서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논하고 있었고, 그 네 사람은 부엌으로 가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불을 지피며 솥을 씻었다. 그들이 장만한 것이란 무엇이었겠느냐? 알고 보니 사람의 기름으로 볶고 사람의 고기를 달인 것으로, 검고 눅눅하게 졸여 밀글루텐 모양을 만들어 놓고, 파낸 사람의 골을 두부 조각처럼 부쳐 낸 것이었다. 두 접시를 받들어다 돌탁자 위에 놓고 장로에게 말했다. “잡수시오. 급히 서두르다 보니 좋은 공양을 갖추지 못하였사오니, 우선 이것으로 요기를 하소서. 뒤에 또 다른 것이 올 것이옵니다.” 그 장로가 냄새를 맡아 보니 비리고 누린내가 나서 감히 입을 대지 못하고, 몸을 굽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여보살이시여, 빈승은 모태에서부터 채식을 하는 자이옵니다.” 여러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장로시여, 이것은 소식이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아미타불! 이것이 소식이라면 내가 먹고 나서는 세존을 뵙고 경전을 얻을 생각도 못할 것이오.” 여러 여자가 말했다. “장로시여, 출가인께서는 시주를 가리지 마소서.” 장로가 말했다. “어찌 감히 그러리이까! 나는 대당의 뜻을 받들고 서쪽으로 오는 길에 작은 생명 하나 해치지 않고, 고통을 보면 곧 구해 주며, 곡식 낟알을 만나면 손으로 집어 입에 넣고, 실오라기를 만나면 꿰매어 몸을 가렸사온데, 어찌 감히 시주를 가리리이까!” 여러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장로께서는 시주를 가리시지는 않으나, 다만 문을 찾아온 이를 괴이하게 여기시는구려. 거칠고 담박하다 탓하지 마시고 좀 드소서.” 장로가 말했다. “참으로 감히 먹을 수가 없사오니 계를 깰까 두렵나이다. 보살께서 기르시는 것보다 살려 주심이 낫다 하시니, 이 중을 놓아 주소서.” 그 장로가 뿌리치며 나가려 하자 그 여자들이 문을 막아서며 어찌 놓아줄 리 있으랴, 모두들 말했다. “문 앞까지 온 장사를 도로 못 본 체한단 말이오! 방귀를 뀌어 놓고 손으로 가리려 하니, 그대는 어디로 간단 말이오?” 그들은 하나하나 무예를 조금씩 익혔고 손발도 민첩하여 장로를 잡아끌어 양을 끌듯 하여 퍽 하고 땅에 메어쳤다. 여러 사람이 눌러 놓고 밧줄로 묶어 대들보에 높이 매달았으니, 이렇게 매다는 데에도 이름이 있어 “선인지로”라 하였다. 알고 보니 한쪽 손을 앞으로 뻗어 실을 매달아 올리고, 다른 한쪽 손은 허리를 동여매고 밧줄로 매달고, 두 발은 뒤로 한 줄의 밧줄에 매달아, 세 가닥 밧줄로 장로를 대들보에 매달아 놓으니 등이 위로 향하고 배는 아래로 향하였다. 그 장로는 아픔을 참고 눈물을 머금은 채 속으로 원망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토록 팔자가 사납구나! 좋은 인가에서 공양 한 그릇 빌려 먹는 줄로만 여겼더니, 불구덩이에 빠졌을 줄을 어찌 알았으랴! 제자들아! 어서 와서 나를 구하라, 그래야 서로 얼굴을 다시 보리라. 다만 두 시진만 늦으면 내 목숨은 끝장이로다!” 그 장로는 괴로웠으나 그래도 마음을 한켠에 남겨 두고 저 여자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여자들이 장로를 매달아 놓기가 무섭게 곧 옷을 벗으려 하였다. 장로는 가슴이 덜컥하여 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이렇게 옷을 벗는 걸 보니 나를 때릴 작정이로구나, 혹 덜 익은 채로 나를 씹어 먹을 작정이라도 있는 게지.” 알고 보니 그 여자들은 다만 상의 비단 저고리만 벗어 젖어 배를 드러내고는 저마다 신통을 부렸다. 하나하나 허리 아래 구멍에서 실 같은 줄기가 솟아 나오는데 굵기가 오리알만 하고, 뽀글뽀글 솟으며 옥을 튀기고 은을 날려, 이윽고 마을 문을 온통 가려 버렸으니 이 이야기는 접어 둔다. 각설하고, 그 행자와 팔계와 사오정은 모두 큰길 가에 있었다. 둘은 말을 풀어 놓고 짐을 지키고 있었는데, 오직 행자는 장난꾸러기라 나무에 뛰어오르고 가지를 붙잡으며 잎을 따고 열매를 찾고 있었다. 홀연히 고개를 돌려 보니 한 줄기 빛이 번쩍였다. 놀란 나머지 나무에서 뛰어 내리며 크게 외쳤다.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사부님의 운수가 꺾였구나!” 행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저 마을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이느냐?” 팔계와 사오정이 함께 눈을 돌려 바라보니, 저 한가운데는 눈처럼 희면서 눈보다 더 밝고, 은과 같으면서 은보다 더 빛났다. 팔계가 말했다. “망했다, 망했어! 사부님이 요괴를 만났구나! 어서들 가서 사부님을 구하자!”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떠들지 마라. 너희가 어찌 된 영문을 알지 못하니, 내가 가 보고 오마.” 사오정이 말했다. “형님, 조심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내게 방도가 있느니라.” 이 훌륭한 대성이 호랑이 가죽 치마를 여미고 금고봉을 빼어 들고 발을 크게 떼어 두세 걸음에 앞쪽으로 달려가서 보니, 저 실줄들이 얽혀 있는 두께가 수백 수천 겹이나 되고, 겹겹이 줄줄이 이어진 것이 마치 날줄과 씨줄의 형세 같았다. 손으로 눌러 보니 끈적하고 부드러워 손에 달라붙었다. 행자는 그것이 무슨 물건인지 더욱 알 수 없었으나 곧 몽둥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한 방이면 수천 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만 겹이라도 끊어 버리리라!” 막 때리려다가 다시 손을 멈추고 말했다. “딱딱한 것이라면 끊어 낼 수 있겠으나, 이것은 부드러운 것이라 납작하게 두들길 뿐이로다. 자칫 놀라게 하여 이놈이 나를 휘감아 버리면 도리어 좋지 않으니, 내가 먼저 한 번 물어나 보고 나서 때리리라.” 그대는 그가 누구에게 묻는다 말하겠느냐? 곧 결을 하나 잡고 주문을 외우니, 토지신 영감이 사당 안에서 맷돌을 돌듯 빙빙 돌고 있었다. 토지 할멈이 말했다. “영감, 당신은 왜 그리 도시오? 양의 간질이라도 발작한 것이오?” 토지신이 말했다. “당신은 모르오, 당신은 모른단 말이오! 제천대성이 와 있는데 내가 그를 마중하지 않았더니, 저쪽에서 나를 부르고 있소.” 할멈이 말했다. “가서 만나 뵙기나 하시오, 어찌하여 여기서 빙빙 돌기만 하오?” 토지신이 말했다. “그를 만나러 가면 그의 몽둥이가 얼마나 무거운데, 좋건 나쁘건 닥치는 대로 때린다오!” 할멈이 말했다. “그이도 당신이 이다지 늙은 걸 보면 어찌 곧장 때리겠소?” 토지신이 말했다. “그는 평생 돈 안 드는 술을 즐겨 마시면서 늙은이만 골라 때리는 자요.” 두 늙은이가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하는 수 없이 밖으로 걸어 나와 바들바들 떨며 길 가에 꿇어앉아 외쳤다. “대성이시여, 이 지경의 토지신이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우선 일어나라, 바쁜 체할 것 없다. 내가 우선은 너를 때리지 않고 그 몫을 저쪽에 맡겨 두겠다. 내가 너에게 묻겠다, 이곳이 어느 곳이냐?” 토지신이 말했다. “대성께서는 어느 쪽에서 오셨나이까?” “나는 동토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이다.” 토지신이 말했다. “대성께서 동쪽에서 오셨사온데, 그 산등성이에 계셨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바로 그 산등성이에 있었고, 우리 행리와 말들도 모두 그 고개 위에 쉬어 있지 않으냐!” 토지신이 말했다. “그 고개를 반사령이라 하고, 고개 아래 있는 동굴을 반사동이라 하며, 그 동굴 안에 요괴 일곱이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수놈이냐 암놈이냐?” 토지신이 말했다. “여자 요괴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놈들의 신통이 얼마나 크더냐?” 토지신이 말했다. “소신은 힘이 얇고 위엄이 짧아 그놈들의 수단이 얼마나 큰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다만 아뢰올 것은 바로 남쪽으로 이곳에서 삼 리쯤 떨어진 곳에 탁구천이라는 샘이 하나 있사온데, 하늘이 낸 뜨거운 물이옵니다. 본래 상방의 일곱 선녀가 목욕하던 못이었사온데, 요괴들이 이곳에 와서 살게 된 뒤 그 탁구천을 차지하였고, 선녀들조차 그들과 다투지 않고 공연히 내어 주었사옵니다. 천선이 요마괴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저 요정들에게 큰 능력이 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 샘을 차지하여 무얼 하더냐?” 토지신이 말했다. “이놈들이 목욕탕을 차지하고는 하루에 세 차례씩 나와 목욕을 하옵니다. 지금 사시가 지났으니 오시가 오려 하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토지신, 너는 우선 돌아가거라. 내가 몸소 그놈들을 잡으리라.” 그 토지신 영감이 머리를 한 번 조아리고는 바들바들 떨며 자기 사당으로 돌아갔다. 이 대성이 홀로 신통을 부려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삼대 파리 한 마리가 되어 길 가 풀끝에 붙어 기다렸다. 잠시 뒤 후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누에가 뽕잎을 먹는 듯하고 바다에 조수가 이는 듯하였다. 찻잔 반 잔 마실 만한 사이에 실줄이 모두 걷히고, 마을이 다시 예전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립문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웃음소리가 떠들썩하고 일곱 여자가 걸어 나왔다. 행자가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보니, 그들이 하나하나 손을 잡고 서로 이끌며 어깨를 맞대고 소매를 잡은 채 이야기하며 웃으면서 다리를 건너오는데, 과연 아름다왔다. 보라, 이러하였다. 옥보다 향기가 더 뛰어나고, 꽃보다 말이 더 진실하였다. 버들 같은 눈썹은 먼 산봉우리를 비스듬히 그리고, 단목 같은 입은 앵두를 깨문 듯하였다. 비녀 머리에 비취가 치켜섰고, 금련은 붉은 치마 아래 번쩍였다. 마치 항아가 하계에 내려온 듯하고 선자가 속세에 떨어진 듯하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사부님이 몸소 공양을 빌러 오시겠다 하신 까닭이 있었구나, 알고 보니 이런 좋은 점이 있었노라. 이 일곱 미인이 내 사부님을 붙잡아 두었다 한들, 먹자니 한 끼도 넉넉하지 않고, 쓰자니 이틀도 넉넉하지 않을 터인즉, 손을 대어 돌아가며 한바탕 휘두르면 그것으로 죽고 마는 게지. 우선 내가 가서 그들이 무슨 꾀를 내는지나 한번 들어 보자.” 이 훌륭한 대성이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 앞서 걷는 여자의 쪽진 머리에 딱 붙었다. 다리를 건너오자마자 뒤쪽에 있던 이가 앞으로 나서며 불렀다. “언니들, 우리 목욕을 하고 나서 저 뚱뚱한 중을 쪄 먹으러 갑시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 괴물들 참 꾀가 없구나! 삶으면 땔감도 절약될 터인데, 어찌 도리어 쪄 먹으려 한단 말인가!” 그 여자들이 꽃을 따고 풀을 꺾으며 남쪽으로 오는데, 오래지 않아 목욕탕에 다다랐다. 보라, 담장과 문이 하나 보이는데 몹시 장엄하고 아름다웠으며, 온 땅에 들꽃이 향기롭고 곱게 피어 있고, 양쪽 가에 난초와 혜초가 빽빽이 우거져 있었다. 뒤쪽에 있던 여자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짝의 문을 밀어 열자, 그 가운데 과연 한 웅덩이의 뜨거운 물이 있었다. 이 물은 천지가 열린 이래로 태양성이 본래 열 개였는데, 뒤에 예가 활을 잘 쏘아 까마귀 아홉을 쏘아 떨어뜨리고 금오 한 별만 남았으니, 그것이 태양의 참된 불이니라. 천지에 아홉 곳의 온천이 있으니 모두 그 까마귀들이 변한 것이라. 그 구양천이란 향랭천과 반산천, 온천과 동합천, 만산천과 효안천, 광분천과 탕천이요, 이 샘이 바로 탁구천이니라. 시로 증명하거니와, 시에 이르기를, 한 기운에 겨울과 여름이 없고, 삼추에도 늘 봄을 담아 두었네. 타오르는 물결은 솥이 끓는 듯하고, 뜨거운 물결은 새로 끓인 탕과 같네. 갈래갈래 흘러 곡식을 적시고, 머물러 흐르며 속세의 티끌을 씻어 낸다. 줄줄 구슬 같은 눈물이 떠오르고, 굴굴 옥덩이 같은 물이 넘친다. 매끄럽고 윤택함은 본래 빚어 낸 것이 아니요, 맑고 평온함이 스스로 따뜻함을 머금는다. 상서로움은 본디 땅이 빼어난 까닭이요, 조화로움은 하늘이 참된 것이로다. 가인이 씻는 곳마다 살결이 얼음처럼 매끄럽고, 티끌과 시름을 씻어 내니 옥 같은 몸이 새로워라. 그 목욕 못은 너비가 대략 다섯 길 남짓하고 길이가 열 길이 넘으며, 안의 깊이가 네 자쯤 되었는데 물이 바닥까지 맑게 비쳤다. 밑에서는 물이 구르는 구슬과 떠오르는 옥처럼 뽀글뽀글 솟아 올라오고, 사방에 여섯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물이 통해 흘렀다. 흘러가기는 이삼 리나 멀리까지 이어져 논밭에 닿아서도 여전히 따뜻한 물이었다. 못 위에는 또 정자 세 칸이 있고, 정자 안 뒷벽 가까이에 다리가 여덟 개인 긴 걸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양쪽 산머리 쪽에는 금을 그리고 채색 옻칠을 한 옷걸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행자는 어둠 속에서 흐뭇하게 웃으며 날개를 한 번 펴 그 옷걸이 머리 위로 날아가 딱 붙었다. 그 여자들이 물이 맑고도 뜨거운 것을 보고 곧 목욕을 하려고, 일제히 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 함께 물로 내려갔는데, 행자가 보니 이러하였다. 단추를 풀어 젖히고, 비단 띠매듭을 풀었다. 보드러운 가슴은 은처럼 희고, 옥 같은 몸은 눈과 같았다. 팔뚝은 엉긴 연지를 이기고, 향기로운 어깨는 가루를 뭉친 듯하였다. 배는 부드럽고 솜 같고, 등은 매끄럽고 또한 깨끗하였다. 무릎은 반쯤 둥글게 감싸고, 금련은 세 치로 좁았다. 가운데 한 토막이 풍류의 구멍을 드러내었다. 그 여자들이 모두 물로 뛰어들어 하나하나 물결을 넘고 파도를 뒤집으며 물을 헤치고 장난을 쳤다. 행자가 말했다. “내가 그놈들을 치려 한들, 이 몽둥이를 못 속에 한 번 휘젓기만 하면 되니, 그것을 일러 끓는 물을 쥐 새끼에게 끼얹는다 하나, 한 굴이 모조리 죽고 마느니라. 가련하다, 가련해라! 때려 죽이기는 죽이되 내 명예만 깎일 터이니라. 늘 하는 말에 사내는 계집과 싸우지 않는다 하였거늘, 이런 사내가 계집애 몇을 때려 죽이면 참으로 보잘것없는 짓이로다. 때리지 말고 그놈들에게 뒤끝 없는 계책이나 하나 보내어,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물에서도 나오지 못하게 하면 얼마나 좋으냐.” 이 훌륭한 대성이 결을 잡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굶주린 매 한 마리가 되었는데, 보라, 이러하였다. 털은 서리와 눈 같고, 눈은 샛별 같았다. 요호가 보는 곳마다 넋이 모두 달아나고, 교활한 토끼가 만날 때마다 간담이 다 놀란다. 쇠 발톱은 날카롭고 예리하며, 늠름한 자태에 사나운 기운이 가로질렀다. 늙은 주먹을 써서 제 배를 채우고, 친히 날짐승을 쫓기를 사양하지 않는다. 만 리 찬 하늘을 오르내리고, 구름을 뚫고 물건을 살피기를 마음대로 하였다. 휘익 하고 한 번 날개를 쳐 앞으로 날아가고, 날카로운 발톱을 모아 그 옷걸이에 걸린 일곱 벌의 옷을 모조리 집어 갔다. 곧 고개머리로 돌아와 본모습을 드러내어 팔계와 사오정에게 보이며 말했다. “이것 좀 보아라.” 그 멍청이가 마주 나서며 사오정에게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은 알고 보니 전당포에 잡혀 가신 모양이오.” 사오정이 말했다. “어찌 그런 말이 나오오?” 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그 여자들 옷을 몽땅 빼앗아 온 게 보이지 않소?” 행자가 그것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것은 요괴들이 입던 옷이다.” 팔계가 말했다. “어찌하여 이렇게 많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일곱 벌이다.” 팔계가 말했다. “어찌하여 이리 쉽게 벗겼고, 또 이리 깨끗하게 벗겼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벗긴 적이 있느냐, 원래 이곳을 반사령이라 하고, 저 마을을 반사동이라 한다. 동굴 안에 여자 요괴 일곱이 있어 우리 사부님을 붙잡아 동굴에 매달아 두고, 모두 탁구천으로 목욕을 하러 갔다. 그 샘은 천지가 만들어 낸 한 웅덩이의 뜨거운 물이더라. 그놈들은 목욕을 하고 나면 사부님을 쪄 먹으려고 꾀하고 있었느니라. 내가 그곳까지 따라가서 그놈들이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치려다가도 몽둥이를 더럽힐까 염려되고 명예가 깎일까 두려워 몽둥이를 쓰지 않고, 다만 굶주린 매 한 마리로 변하여 그놈들의 옷을 집어 왔노라. 그놈들은 모두 치욕을 참으며 고개도 내밀지 못하고 물속에 쭈그리고 있는 게다. 우리가 어서 가서 사부님을 풀어 모시고 길을 가자.”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은 무슨 일을 하든 늘 뒷일을 남기시오. 요괴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그놈들을 때려 죽이지 않고 곧장 가서 사부님만 풀어 모시려 한단 말이오! 그놈들이 지금은 부끄러워 숨어 나오지 않는다 한들, 밤이 되면 틀림없이 나올 것이오. 그 집에 헌 옷이 남아 있으니 한 벌 걸치고 우리를 뒤쫓아올 터이고, 설령 뒤쫓지 않는다 한들 그놈들이 이곳에 오래 살고 있으니, 우리가 경을 얻고 돌아갈 때 또한 그 길로 지나게 될 것이오. 늘 하는 말에 길에서 쓸 돈은 적어도 되나 길에서 쓸 주먹은 적어서는 안 된다 하였소. 그때 가서 그놈들이 길을 막고 소란을 피우면 원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행자가 말했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무슨 방도가 있느냐?” 팔계가 말했다. “내 뜻대로라면 먼저 요괴들을 때려 죽이고 나서 사부님을 풀어 모실 터이니, 이것이 풀을 베어 뿌리까지 없애는 계책이오.” 행자가 말했다. “나는 그놈들을 때리지 않겠다. 네가 치고 싶거든 네가 가서 쳐라.” 팔계가 정신을 가다듬고는 기뻐 날뛰며 쇠갈퀴를 들고 발을 크게 떼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홀연 문을 밀어 열고 보니, 그 일곱 여자가 물속에 쭈그리고 앉아 입으로 그 매를 마구 욕하고 있었다. “이 납작 털 난 짐승 같으니라고! 고양이가 머리를 씹어 먹을 망할 놈 같으니! 우리 옷을 몽땅 집어 갔으니, 우리보고 어찌 손을 쓰란 말이냐!” 팔계가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여보살이시여, 여기서 목욕을 하시니 이 중도 좀 끼워 함께 씻어 주시겠소?” 그 요괴들이 성을 내며 말했다. “이 중놈아, 몹시 무례하구나! 우리는 시집살이하는 여자요, 그대는 출가한 사내 아니냐! 옛글에 일곱 살이 지나면 남녀가 자리를 함께하지 않는다 하였거늘, 감히 우리와 한 못에서 목욕을 하려 드느냐?” 팔계가 말했다. “날씨가 몹시 더우니 어찌할 수 없소. 좋게 좋게 나도 좀 씻게 해 주시오. 어디서 글귀니 자리니 하는 것을 따지고 있단 말이오, 같은 자리니 다른 자리니!” 멍청이는 말도 듣지 않고 쇠갈퀴를 내던지고 검은 비단 장삼을 벗어 던진 뒤 퐁 하고 물로 뛰어들었다. 그 요괴들은 속이 상하여 일제히 달려들어 때리려 하였다. 팔계가 물일에 몹시 익숙한 줄을 그놈들은 알지 못하였으니,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여 메기 정으로 변했다. 그 요괴들이 모두 물고기를 잡으려 달려들었으나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동쪽에서 더듬으면 어느새 서쪽으로 미끄러져 가고, 서쪽에서 더듬으면 어느새 동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미끌미끌한 것이 그저 다리 사이를 파고들며 마구 비비고 다녔다. 알고 보니 그 물이 가슴을 넘을 만큼 깊어, 물 위에서 한참 휘감고 놀다가는 또 물밑으로 파고들어 모조리 휘감아 놓았으니, 그놈들은 헐떡거리며 기운이 빠져 버렸다. 팔계가 그제야 물에서 뛰어 올라와 본모습을 드러내고 장삼을 걸쳐 입고는 쇠갈퀴를 잡고 크게 꾸짖었다.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너희는 나를 메기 정으로 알았느니라!” 그 요괴들이 보고는 간담이 서늘해져 팔계에게 말했다. “그대는 처음에는 중이더니, 물속에 들어가서는 메기로 변하고, 붙잡을 수 없게 되자 또 이런 차림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서 여기까지 온 자요? 모름지기 이름을 밝혀 주시오.” 팔계가 말했다. “이 무리의 건방진 요괴들이 참말로 나를 모르는구나! 나는 동토 대당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당 장로의 제자이며, 천봉원수 오능 팔계로다. 너희가 내 사부님을 동굴에 매달아 두고 그를 쪄 먹을 꾀를 부렸느니라! 내 사부님이 어찌 쉽게 쪄 먹히실 분이냐! 어서 머리를 내밀어라, 한 놈에 갈퀴 한 번씩으로 뿌리를 끊어 주마!” 그 요괴들이 이 말을 듣고 넋이 날아가고 혼이 흩어져, 물속에서 그대로 꿇어앉아 절하며 말했다. “나으리, 편의를 봐 주시옵소서! 저희는 눈동자가 없어 그대의 사부님을 잘못 잡았사오나, 매달아 두기는 하였어도 감히 형벌을 가하여 고통을 드리지는 않았나이다. 자비를 베푸시어 목숨을 살려 주시면, 기꺼이 노잣돈을 보태어 그대의 사부님을 서천까지 모셔 드리겠나이다.” 팔계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 마라! 속담에 사탕 장수 군자에게 속은 적이 있어 지금도 입이 단 사람은 믿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옳다면 갈퀴로 한 번씩 찧고 나서 각자 갈 길을 가자!” 멍청이는 오로지 거칠고 우직하게 재주를 뽐낼 뿐이니, 꽃을 아끼고 옥을 아끼는 마음이 어디 있으랴, 갈퀴를 들어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마구 찧었다. 그 요괴들은 손발이 허둥거려 수치를 돌볼 겨를도 없이 오직 목숨이 급할 뿐이라, 손으로 부끄러운 곳을 가린 채 물에서 뛰어나와 모두 정자 안으로 달려가 서서 법을 부렸다. 배꼽 구멍에서 실줄이 뽀글뽀글 솟아 나와 하늘을 가리고 커다란 실 덮개를 쳐서 팔계를 한가운데 씌워 버렸다. 그 멍청이가 홀연 고개를 들어 보니 해와 하늘이 보이지 않아 곧 몸을 빼어 밖으로 나가려 하였으나, 어찌 발을 떼어 놓을 수 있으랴! 알고 보니 발을 거는 밧줄을 풀어 놓아 온 땅이 모두 실줄이었으니, 발을 움직이면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왼쪽으로 가면 얼굴이 땅에 부딪치고, 오른쪽으로 가면 거꾸로 박히고, 급히 몸을 돌리면 또 입이 땅에 처박히고, 바삐 일어나면 또 물구나무를 서듯 넘어졌다. 얼마나 많은 넘어짐을 당했는지 알 수 없으니, 이 멍청이는 온몸이 저리고 다리에 힘이 풀리며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캄캄하여 기어서도 움직일 수 없었고, 다만 땅에 누워 신음할 뿐이었다. 그 요괴들은 그를 가두어 두고도 때리지도 않고 상하게도 하지 않은 채, 하나하나 문을 뛰어나와 실 덮개로 햇빛을 가리고 저희 동굴로 돌아갔다. 돌다리에 이르러 멈춰 서서 진언을 외우니, 삽시간에 실 덮개를 거두어 알몸이 된 채 동굴로 뛰어들어, 그곳을 손으로 가린 채 당승 앞을 싱글벙글 웃으며 지나쳐 갔다. 돌방으로 들어가 헌옷 몇 벌을 꺼내 입고는 곧장 뒷문으로 나가 서서 불렀다. “얘들아, 다 어디 있느냐?” 알고 보니 그 요괴들은 하나에 아들 하나씩을 두었으나, 제가 낳은 것이 아니라 모두 의형제를 맺은 양아들이었다. 이름하여 꿀벌, 말벌, 노봉, 반모, 우맹, 말랍, 청등이라 하였으니, 꿀벌은 꿀벌이요, 말벌은 말벌이며, 노봉은 노봉벌이요, 반모는 반모 벌레이며, 우맹은 쇠등에요, 말랍은 밀랍 벌레이며, 청등은 잠자리이었다. 알고 보니 그 요괴들이 하늘을 가리고 그물을 쳐서 이 일곱 가지 벌레들을 붙잡아 두고는 잡아먹으려 하였는데, 옛말에 새에게는 새의 말이 있고 짐승에게는 짐승의 말이 있다 하였거니와, 그때 이 벌레들이 목숨을 살려 달라 애걸하며 어미로 섬기기를 원하였으므로, 봄에는 온갖 꽃을 따다 요괴에게 바치고 여름에는 여러 풀꽃을 찾아 요괴에게 효도하게 되었다. 홀연 부르는 소리를 듣고 모두 앞으로 나와 물었다. “어머니, 무슨 분부이시옵니까?” 여러 요괴가 말했다. “얘들아, 아침에 우리가 당나라에서 온 중을 잘못 건드렸다가, 방금 그의 제자에게 못에서 붙잡혀 온갖 망신을 당하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느니라! 너희는 힘을 다하여 어서 문 앞으로 나가 한번 물리쳐 다오. 이긴 뒤에는 너희 외삼촌 집으로 와서 나와 만나자.” 그 요괴들은 한목숨을 건졌으니 저희 사형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입을 놀려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접어 둔다. 보라, 이 벌레들이 하나하나 주먹을 비비고 손바닥을 문지르며 나와 맞서 싸우려 하였다. 각설하고, 팔계는 넘어지고 또 넘어져 정신이 아득해졌는데, 홀연 고개를 들어 보니 실 덮개와 실 밧줄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제야 한 걸음씩 더듬어 일어나 아픔을 참으며 옛길을 되찾아 행자를 만나자 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형님, 내 머리가 부었소, 얼굴이 퍼렇게 멍이 들었소?” 행자가 말했다. “네가 어쩌다 이리되었느냐?” “내가 그놈들에게 실밧줄로 뒤집어씌워지고 발 걸이까지 당하여,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 알 수 없사오니, 넘어진 탓에 허리가 끊어지고 등이 부러져 한 걸음도 옮기기 어렵소. 방금 실 덮개와 밧줄이 모두 걷히고 나서야 겨우 목숨을 건져 돌아왔소.” 사오정이 이를 보고 말했다. “망했다, 망했어! 네가 큰 화를 불러왔구나! 그 요괴들이 틀림없이 동굴로 가서 사부님을 해치려 할 터이니, 우리가 어서 가서 구해 오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급히 발을 떼어 걸었고, 팔계가 말을 끌고 급히 마을 앞에 이르러 보니, 저 돌다리 위에 작은 요괴 일곱이 길을 막고 서서 말했다. “천천히 오너라, 천천히! 우리가 여기 있느니라!” 행자가 보고는 말했다. “우습구나! 모조리 조그만 것들뿐이로구나! 키가 큰 놈도 두 자 대여섯 치에 세 자가 못 되고, 몸이 무거운 놈도 여덟 아홉 근에 열 근이 못 되는구나.” 하고는 크게 꾸짖었다. “너희가 누구냐?” 그 요괴들이 말했다. “우리는 일곱 선녀의 아들이니라. 네가 우리 어머니를 능욕해 놓고도 무식하게 감히 우리 집 문을 두드리러 왔으니, 도망가지 말고 정신을 차려라!” 좋구나, 이 괴물들! 하나하나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마구 때려들었다. 팔계는 성이 나 있었으니, 원래 넘어져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는 판에, 저 무리의 벌레들이 작고 앙증맞은 것까지 보니 이를 악물고 갈퀴를 들어 찧으려 들었다. 그 요괴들이 멍청이가 사나운 것을 보고 하나하나 본모습을 드러내어 날아오르며 “변해라!” 하고 소리쳤다. 잠시 사이에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고, 백이 천이 되고, 천이 만이 되니, 낱낱이 헤아릴 수 없는 숫자로 변하였다. 보라, 이러하였다. 하늘 가득 밀랍 벌레가 날고, 땅 가득 잠자리가 춤추었다. 꿀벌과 말벌이 이마를 쫓고, 노봉벌이 눈을 찔렀다. 반모는 앞뒤에서 물고, 쇠등에는 위아래로 쏘았다. 낯에 덮치는 것이 아득히 검고, 휘익거리는 기세에 신과 귀신도 놀랐다.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형님, 경이나 얻기 쉽다 하였거늘, 서방 길에서는 벌레조차 사람을 괴롭히는구려!”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겁내지 말고 어서 앞으로 나가 쳐라!” 팔계가 말했다. “머리며 얼굴이며 온몸 위아래로 열 몇 겹씩 들러붙어 쏘는데, 어찌 때린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괜찮다! 괜찮다! 내게 방도가 있느니라!” 사오정이 말했다. “형님, 무슨 방도가 있거든 어서 내보이시오! 잠시 있으면 민머리까지 몽땅 부어 오르겠소!” 이 훌륭한 대성이 털 한 웅큼을 뽑아 잘게 씹어 품어 내니, 곧 노란 매와 마응, 익응과 흰 매, 조응과 물수리 매, 새매로 변하였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또 무슨 은어를 쓰시오, 누렇다느니 마느니 하면서?” 행자가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누런 것은 황응이요, 마는 마응이며, 익은 익응이요, 흰 것은 백응이며, 조는 조응이요, 어는 물수리 매이며, 요는 새매니라. 저 요괴의 자식들이 일곱 가지 벌레라면, 내 털은 일곱 가지 매니라.” 매는 벌레 잡는 데 으뜸이라, 부리로 하나씩 찍고 발톱으로 치며 날개로 두드려, 잠시 만에 모조리 때려 없애니, 하늘에는 자취조차 없고 땅에는 한 자 남짓이 쌓였다. 세 형제가 그제야 다리를 건너가 곧장 동굴로 들어가니, 늙은 스승이 그곳에 매달린 채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팔계가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사부님, 여기 와서 매달려 놀이를 하시려 하셨는지는 몰라도, 덕분에 제가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 아시옵니까?” 사오정이 말했다. “우선 사부님을 풀어 드리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행자가 곧 밧줄을 끊어 당승을 내려놓고 함께 물었다. “요괴들은 어디로 갔느냐?” 당승이 말했다. “그 일곱 요괴들이 모두 알몸으로 뒤쪽으로 가서 자식들을 불렀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동생들아, 나를 따라가 찾아보자.” 세 사람이 저마다 병기를 들고 뒷동산으로 가서 찾아보았으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복숭아와 자두나무 위를 모조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자 팔계가 말했다. “가 버렸군, 가 버렸어!” 사오정이 말했다. “그놈들을 찾을 것 없소. 내가 사부님을 부축해 모시고 갑시다.” 형제들이 다시 앞으로 와서 당승에게 말에 오르시기를 청하며 말했다. “사부님, 다음에 공양을 비실 때는 저희더러 가게 하옵소서.” 당승이 말했다. “제자들아, 뒷날에는 굶어 죽는다 한들 다시는 내 마음대로 나서지 않으리라.” 팔계가 말했다. “당신들은 사부님을 부축하여 가시오, 내가 갈퀴로 이 집을 모조리 헐어 버려 그놈들이 돌아와도 몸 붙일 곳이 없게 하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갈퀴로 헐자니 힘이 드니, 땔감이나 좀 구해다 그놈들에게 뿌리째 끊어지는 것을 보여 주는 게 낫겠다.” 이 훌륭한 멍청이가 썩은 소나무와 부러진 대나무, 마른 버들과 마른 덩굴을 좀 구해다 불을 붙이니, 활활 타올라 모조리 깨끗하게 타 버렸다. 사부와 제자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앞으로 나아왔다. 아! 이번 길에 그 요괴들의 길흉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3회 정인구한생재독(情因舊恨生災毒) · 심주조마행파광(心主遭魔幸破光) 이야기는 이러하다. 손오공이 당승을 부축하고 팔계와 사오정과 더불어 큰길로 올라서서 곧장 서쪽으로 나아갔다.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홀연 누각이 겹겹이 포개지고 궁전이 우뚝 솟은 곳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당승이 말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제자야, 저기가 어떤 곳인지 좀 보아라." 행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문득 이러하였다. 산이 누각을 두르고 시냇물이 정자를 감돌며, 문 앞에는 잡목이 빽빽이 우거졌고 집 밖에는 들꽃이 향기롭고도 곱구나. 버드나무 사이에 깃든 백로는 마치 연기 속에 든 티 없는 옥 같고, 복숭아나무 속에서 지저귀는 꾀꼬리는 불길 속에서 빛깔을 띤 금과 같구나. 쌍을 이룬 사슴은 시름을 잊고 한가로이 푸른 잔디를 밟고, 짝을 이룬 산새는 날아다니며 붉은 나무 끝에서 높이 우짖는구나. 참으로 유신과 완조가 머물던 천태산 동굴과 같고, 신선이 노니는 낭원의 집에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구나. 행자가 아뢰었다. "사부님, 저곳은 왕후의 저택도 아니요 호족의 부잣집도 아니옵니다. 도리어 암자나 도관, 절간과 비슷하오니 그리로 가 보시면 사정을 아시게 되시리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채찍질을 더하여 말을 재촉했다. 사부와 제자들이 문 앞에 이르러 살펴보니, 문 위에 돌판 하나가 박혀 있고 그 위에 황화관 세 자가 새겨져 있었다. 삼장이 말에서 내리자 팔계가 말했다. "황화관은 도사의 집이니 우리가 들어가 그와 한번 만나 보는 것도 좋겠소. 그들은 우리와 옷차림은 다르나 수행하기는 매일반이오." 사오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한편으로는 들어가 경치나 구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짐승에게 먹이나 먹이는 셈이지. 형편이 좋은 곳을 살펴 사부님께 올릴 공양을 좀 장만합시다." 장로가 그 말을 좇아 네 사람이 함께 들어가니, 이 문 위에 봄을 맞는 주련 한 쌍이 걸려 있었다. "누런 싹과 흰 눈이 신선의 집이요, 요지의 풀과 옥 같은 꽃이 도사의 집이로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풀을 태워 약을 만들고 화로를 부리며 단지를 드는 도사로구려." 삼장이 그를 꼬집으며 말했다. "입을 조심해라! 입을 조심해! 우리는 그와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요 친척도 아니니, 잠시 만나는 처지에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문 안으로 들어서니, 정전은 굳게 닫혀 있고 동쪽 행랑 아래에 도사 하나가 앉아서 환을 빚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차려입었는지 보라. 머리에는 붉고도 고운 금장식 관을 썼고, 몸에는 새까맣고 윤이 나는 검은 도포를 걸쳤다. 발에는 푸른 기운이 감도는 구름무늬 신을 신고, 허리에는 누르스름한 여공의 끈을 둘렀다. 얼굴빛은 박 속의 쇠처럼 검고 두 눈은 샛별처럼 밝았다. 콧날은 크고 높아 회회족을 닮았고, 입술은 뒤집힌 듯 벌어져 달달족 같았다. 도를 향한 마음 한 조각에 우레를 감추었으니, 범을 항복받고 용을 굴복시키는 참된 도사로다. 삼장이 그것을 보고는 목청을 높여 큰 소리로 불렀다. "늙은 신선이시여, 빈승이 문안을 올리옵니다." 그 도사가 홀연 고개를 들더니 한번 보고는 깜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약을 내던지고 비녀를 바로 꽂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섬돌을 내려와 맞이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오시는 줄 모르고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였나이다. 안으로 드시어 앉으소서." 장로가 기뻐하며 법당으로 올라가 문을 밀어 열고 보니, 삼청의 성상이 모셔져 있고 공양 탁자에는 화로와 향이 놓여 있었다. 곧 향을 집어 화로에 사르고 세 바퀴 절을 올린 뒤에야 도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객위로 가서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 급히 선동을 불러 찻물을 권하게 하니, 곧 어린 동자 둘이 안으로 들어가 찻받침을 찾고 찻잔을 씻고 찻숟가락을 닦고 다과를 장만하느라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렇게 바삐 어지러이 오가는 바람에 일찍이 저 원수 같은 놈들의 눈길을 끌고 말았다. 알고 보니 저 반사동의 일곱 여요괴는 이 도사와 한자리에서 함께 도술을 배운 사이였다. 헌 옷을 입고 아들들을 불러낸 뒤 곧장 이곳으로 왔던 것이다. 마침 안쪽에서 옷을 재단하고 있는데, 홀연 그 동자가 차를 내가는 것을 보고 물었다. "동자야, 무슨 손님이 오셨기에 이리들 분주하냐?" 선동이 말했다. "조금 전에 중 네 명이 들어오셔서 스승님께서 차를 내오라 하셨소." 여요괴가 말했다. "그중에 희고 살진 중이 있더냐?" "있소." 또 물었다. "주둥이가 길고 귀가 큰 이가 있더냐?" "있소." 여요괴가 말했다. "어서 차를 내다 주고 너의 스승님께 눈짓을 하여 들어오시게 하여라. 내 급히 할 말이 있노라." 과연 그 선동이 찻잔 다섯 잔을 받들고 나갔다. 도사가 옷을 여미고 두 손으로 한 잔을 받들어 삼장에게 드린 뒤 팔계와 사오정과 행자에게 주었다. 차를 마시고 잔을 거두자 어린 동자가 눈짓을 하니, 도사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여러분, 잠시 앉아 계시오." 그리고 일렀다. "동자야, 찻받침을 내려놓고 모시고 있거라. 내 잠깐 갔다 오리라." 이때 장로와 제자들, 그리고 어린 동자 하나가 법당 위로 나가 구경하는 이야기는 접어 둔다. 각설하고, 도사가 방장으로 들어가 보니 일곱 여자가 가지런히 꿇어앉아 외치고 있었다. "사형! 사형! 소매의 한마디를 들어 주시오!" 도사가 손을 들어 일으키며 말했다. "너희가 아침에 왔을 때 무슨 말을 하려 하더니, 마침 오늘 환을 빚는 날이라 이 약은 음기를 띤 이가 보면 안 되는 터라 대답하지 못하였다. 지금 또 바깥에 손님이 계시니 할 말이 있거든 천천히 하도록 하여라." 요괴들이 말했다. "사형께 아뢰옵니다. 이 일은 오직 손님이 오셨기에 감히 아뢰는 것이온데, 손님이 가시고 나면 아무리 말한들 소용이 없사옵니다." 도사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 말하는 꼴 좀 보아라. 어찌 손님이 와야만 말하려 하느냐? 그거야 미친 게 아니냐? 나야 맑고 고요히 신선의 도를 닦는 무리거니와, 설령 속세의 집안이라 처자식과 노소가 있고 집안일이 있다 한들 또한 손님이 가고 나서 처리할 일이지.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게 나를 망신시키려 드느냐! 우선 나가 보게 해 다오." 요괴들이 또 일제히 붙잡으며 말했다. "사형,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제가 묻겠사오니 앞쪽의 저 손님들은 어느 곳에서 오셨나이까?" 도사가 침을 뱉으며 얼굴을 돌리고 대답하지 않자 요괴들이 말했다. "조금 전 어린 동자가 들어와 차를 가져갈 때, 저의 듣기로는 중 네 명이라 하더이다." 도사가 성을 내며 말했다. "중이면 어쨌단 말이냐?" 요괴들이 말했다. "중 네 명 가운데 희고 살진 이가 하나 있고 주둥이가 길며 귀가 큰 이가 하나 있사온데, 사형께서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 보셨나이까?" 도사가 말했다. "그중에 그런 둘이 있기는 하더라. 너희는 어찌 아느냐? 어디서 그들을 본 일이 있느냐?" 여자가 말했다. "사형께서는 이 사정을 모르시나이다. 저 중은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도록 파견된 자이옵니다. 오늘 아침 우리 굴에 공양을 빌러 왔사온데, 과연 소매들이 당승의 이름을 듣고 그를 잡아 두었나이다." 도사가 말했다. "너희가 그를 어찌 잡았단 말이냐?" 여자가 말했다. "소매들이 예부터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당승은 열 세대를 수행한 참된 몸이라 그의 살 한 점을 먹는 이가 있으면 수명이 늘고 장생한다 하옵니다. 그 까닭에 그를 잡아 두었나이다. 그 뒤에 저 주둥이가 길고 귀가 큰 중이 우리를 탁구천에 몰아넣고는 먼저 옷을 빼앗고, 뒤에 재주를 부려 우리와 함께 목욕하기를 강요하되 또한 그를 말릴 수가 없었나이다. 그가 물로 뛰어들어 메기 한 마리로 변해서는 우리의 두 다리 사이를 들락날락하며 간음을 행할 뜻을 품었으니, 참으로 몹시도 파렴치하옵니다! 또 물 밖으로 뛰어나와 본모습을 드러내고는 우리가 따르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고, 아홉 살 갈퀴 하나를 휘둘러 우리의 목숨을 해치려 하였나이다. 만일 우리에게 약간의 지혜가 있지 않았더라면 거의 그의 독수에 죽었을 것이옵니다. 그 까닭에 벌벌 떨며 도망쳐 나와, 또 사형의 어리석은 생질을 시켜 그와 싸우게 하였사오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나이다. 우리가 특별히 형님을 찾아왔사오니, 형님께서는 옛날 같은 문하에서 함께 지낸 정을 생각하시어 오늘 저희의 원수를 갚아 주실 분이 되어 주시옵소서!" 그 도사가 이 말을 듣고는 노여움에 사무쳐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이 중이 원래 이다지도 무례하고 이다지도 파렴치하단 말이냐! 너희는 모두 마음을 놓아라, 내가 그를 골려 주리라!" 여자들이 사례하며 말했다. "사형께서 만일 손을 쓰시거든 저희도 모두 나와 도와 그를 칩니다." 도사가 말했다. "때릴 것 없다! 때릴 것 없다! 늘 하는 말에 한 번 때리면 세 푼은 떨어진다 하였느니라. 너희는 모두 나를 따라오너라." 여자들이 좌우에서 따랐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가 사다리를 가져다가 침상 뒤로 돌아가 지붕 대들보로 기어 올라가서 작은 가죽 상자 하나를 내렸다. 그 상자는 높이가 여덟 치쯤 되고 길이는 한 자쯤 되며 너비가 네 치쯤 되었는데, 위에는 작은 구리 자물쇠 하나가 걸려 있었다. 곧 소매 속에서 거위알빛 노란 능직 손수건 한 장을 꺼냈는데, 손수건 술에 작은 열쇠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자물쇠를 열고 약 한 꾸러미를 꺼냈으니, 이 약은 이러하였다. 산 속 온갖 새의 똥을 쓸어 모아 천 근을 쌓았네. 구리 솥에 넣어 삶되 불의 세기를 고르게 하여라. 천 근을 달여 한 국자를 얻고, 한 국자를 정제하여 세 리를 얻는다. 세 리를 다시 덖어야 하니, 여러 번 불리고 여러 번 훈제한다. 이리하여 만든 이 독약은 보물과 보배보다 귀하도다. 만일 그 맛을 보는 자는 입에 넣자마자 염라대왕을 보리라! 도사가 일곱 여자에게 말했다. "누이들아, 내 이 보배는 범인에게 먹이면 단 한 리만으로도 뱃속에 들어가자 곧 죽고, 신선에게 먹인다 한들 또한 세 리면 목숨이 끊어지느니라. 이 중들은 아마도 도력이 좀 있을 터이니 세 리는 써야 하겠다. 어서 저울을 가져오너라." 그중 한 여자가 급히 저울 하나를 가져오며 말했다. "일 푼 이 리를 달아 내어 네 몫으로 나누겠나이다." 그리고 붉은 대추 열두 개를 가져다가 대추를 조금 뜯어 그 틈에 한 리씩 박아 넣어 네 개의 찻잔에 나누어 담았다. 또 검은 대추 두 개로 찻잔 하나를 만들고 쟁반 하나에 받쳐 놓고 여러 여자에게 말했다. "내가 가서 그에게 물어보겠노라. 당나라에서 온 이가 아니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당나라에서 온 이라면 차를 바꾸라 하고, 그대들이 이 차를 동자에게 주어 내보내게 하시오. 한 번만 마셔 보면 낱낱이 몸이 망가질 터이니, 그대들의 이 원수를 갚고 시름을 풀어 주리라." 일곱 여자가 감격함을 마지않았다. 그 도사가 옷 한 벌로 갈아입고는 겉으로는 예를 갖추어 겸손하게 걸어 나와, 당승 일행을 다시 객위로 모셔다 앉히고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섭섭하게 여기지 마시옵소서. 조금 전 안으로 가서 어린 제자들에게 푸성귀와 무를 좀 골라 채식 공양 한 끼를 장만하라 일렀사오니, 그만큼 모시지 못하였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빈승이 빈손으로 찾아와 절을 올렸사온데, 어찌 감히 공양을 내리시는 수고를 끼치오리이까." 도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나 나나 다 출가한 사람이니, 산문을 보면 곧 봉록 삼 승이 있는 법이거늘 어찌 빈손이라 하시옵니까? 감히 여쭙건대 스승님께서는 어느 보산에서 오셨사오며, 이곳에 와서는 무슨 일을 하시려 하시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 황제의 분부를 받아 서천 대뢰음사로 경을 구하러 가는 자이옵니다. 마침 선궁을 지나다가 정성을 다해 찾아와 절을 올렸나이다." 도사가 그 말을 듣고는 얼굴 가득 화색이 돌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충성스럽고 덕이 큰 부처이시옵니다. 소도가 알지 못하고 멀리까지 나가 맞이하지 못하였사오니, 용서하시옵소서! 용서하시옵소서!" 그리고 외쳤다. "동자야, 어서 가서 차를 바꿔 오너라. 한편으로는 서둘러 공양을 장만하여라." 그 어린 동자가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여러 여자가 그를 불러 말했다. "여기 마련된 좋은 차가 있으니 내다 주어라." 그 동자가 과연 찻잔 다섯 잔을 받들고 나왔다. 도사가 황급히 두 손으로 붉은 대추가 든 찻잔을 받들어 당승에게 올렸다. 그는 팔계의 몸집이 큰 것을 보고 큰 제자라 여기고, 사오정을 둘째 제자라 여기고, 행자의 키가 작은 것을 보고 셋째 제자라 여겼으므로, 네 번째 잔에야 비로소 행자에게 올렸다. 행자는 눈치가 빨라 찻잔을 받아 들고서 벌써 쟁반 위의 다른 찻잔에는 검은 대추 두 개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선생, 나와 잔을 바꿉시다." 도사가 웃으며 말했다. "장로님께 숨기지 않고 아뢰옵니다. 산골의 가난한 도사라 다과를 미처 갖추지 못하였나이다. 조금 전에 몸소 안으로 가서 과일을 찾아 보았사온데, 붉은 대추 열두 개뿐이라 그것으로 찻잔 네 잔을 만들어 올렸나이다. 소도 또한 빈손으로 모실 수는 없어서 변변찮은 대추 두 개로 한 잔을 만들어 함께 모시는 것이니, 이는 가난한 도사의 공경하는 뜻이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시오? 옛사람이 이르기를, 집에 있을 때는 가난이 아니나 길 위에서는 가난이 사람을 죽인다 하였소. 그대는 집을 가진 사람이거늘 어찌 가난을 말하시오! 우리 같은 걸식하는 중이야말로 참으로 가난하오. 나와 바꿉시다, 나와 바꿉시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오공아, 이 선장께서는 참으로 손님을 아끼는 뜻이시니, 너는 마셔라. 바꾸기는 무엇 하러 바꾸느냐?" 행자가 하는 수 없이 왼손으로 받아들고 오른손으로 덮은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각설하고 저 팔계는 하나는 배가 고프고 둘은 목이 말랐는데, 본래 식성이 대단한 놈이라 찻잔 속에 붉은 대추 세 개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잔을 집어 들고 꿀꺽 삼켜 버렸다. 사부님도 드셨고 사오정도 먹었다. 잠깐 사이에 팔계의 얼굴빛이 변하고 사오정은 두 눈에 눈물이 그득하며 당승은 입에 거품을 물고는, 그들이 모두 앉아 있지 못하고 땅에 쓰러져 기절했다. 이 대성이 그것이 독임을 알아차리고는 찻잔을 들어 도사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도사가 도포 소매로 막아 내니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찻잔이 산산이 부서졌다. 도사가 노하여 말했다. "이 중놈아, 몹시도 천박하구나! 어찌하여 내 잔을 깨뜨리느냐?" 행자가 꾸짖어 말했다. "이 짐승 같은 놈아! 내 저 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좀 보아라! 나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네가 독약 탄 차로 내 사람을 쓰러뜨리느냐?" 도사가 말했다. "이 천박한 짐승아, 네가 저지른 화를 네가 어찌 모른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막 네 집에 들어와 앉는 차례를 정하고 고향을 이야기하였을 뿐인데, 또한 언성이 높았던 일도 없거늘, 어디서 무슨 화를 저질렀단 말이냐?" 도사가 말했다. "너희는 반사동에서 공양을 빈 일이 있느냐? 너희는 탁구천에서 목욕을 한 일이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탁구천에는 일곱 여요괴가 있었노라. 네가 이미 이런 말을 하였으니, 틀림없이 그놈들과 간통한 사이요, 틀림없이 너 또한 요괴로구나! 달아나지 마라, 내 몽둥이를 받아라!" 훌륭한 대성이 귀에서 금고봉을 꺼내어 한 번 흔들자 사발만한 굵기가 되었는데, 그것을 휘둘러 도사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그 도사가 황급히 몸을 돌려 피하고는 보검 한 자루를 가져다 맞받았다. 두 사람이 서로 욕하고 서로 때리는 통에 일찍이 안쪽에 있던 여요괴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일곱이 한꺼번에 뛰어나오며 외쳤다. "사형께서는 애쓰지 마시옵소서. 소매들이 그를 잡겠나이다." 행자가 보고는 더욱 분노가 치밀어 두 손으로 쇠몽둥이를 휘둘러 온갖 수단을 다하여 굴러 들어가며 마구 때렸다. 그런데 보라, 그 일곱이 옷을 활짝 벗어젖히고 눈처럼 흰 배를 내밀며 배꼽 구멍에서 법술을 부리니, 뽀글뽀글 실줄기가 마구 솟아올라 하늘 가리개를 쳐서 행자를 그 밑에 덮어 버렸다. 행자가 일이 잘못되어 감을 보고는 곧 몸을 뒤집어 주문을 외우고 근두운을 타고 펑 하고 가리개를 뚫고서 빠져나와, 성질을 누르고 울적하게 공중에 서서 바라보니, 저 요괴의 실줄기가 번쩍번쩍 빛나며 줄줄이 이어진 것이 곧 북을 오가는 날줄과 씨줄이었다. 삽시간에 황화관의 누각과 전각을 모조리 가려서 그림자도 형체도 없게 만들었다. 행자가 말했다. "맹렬하구나! 맹렬해라! 일찍이 그놈의 손에 걸려들지 않았으니 다행이로다! 괴물이라서 저팔계를 몇 번이나 넘어뜨렸단 말이로구나! 이 지경이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내 사부님과 사제는 또 독약에 당했구나. 이 요괴 무리가 한마음으로 뭉쳤으니 그 내력이 어떠한지 알 수가 없거니와, 내 그 토지신에게 다시 가서 물어보리라." 훌륭한 대성이 구름을 내려놓고 결을 잡고는 "옴" 자 진언을 외우니, 그 토지 영감이 또 끌려와서 바들바들 떨며 길가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사부님을 구하러 가셨다가 어찌하여 또 돌아오셨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아침에 사부님을 구하고 앞으로 얼마 가지 않아 황화관을 만났노라. 내가 사부님 일행과 함께 들어가 보니 관주가 맞이하더라. 막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그놈이 독약 탄 차로 내 사부님 일행을 쓰러뜨렸다. 나는 다행히 차를 마시지 않았으므로 몽둥이를 들어 곧 때렸더니, 그놈이 반사동에서 공양 빌던 일과 탁구천에서 목욕하던 일을 말하므로 내가 그놈이 괴물인 줄 알았다. 막 손을 들어 맞서려는데, 그 일곱 여자가 뛰어나와 실줄을 토하여 내놓는지라, 노손이 다행히 눈치가 있어 달아났노라. 내 생각에 네가 이곳에서 신 노릇을 하니 그 내력을 틀림없이 알 터이니, 무슨 요정인지 솔직히 말하여라. 때리지 않겠노라!" 토지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 요정이 이곳에 온 지 십 년이 되지 않았나이다. 소신이 삼 년 전에 살펴본 뒤에야 그 본모습을 보았사온데, 일곱 거미 정이옵니다. 그놈들이 토해 내는 저 실줄은 바로 거미줄이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네 말로 보면 그것은 작은 일이로구나. 그렇다면 너는 돌아가거라, 내가 법술을 부려 그놈을 항복받으리라." 그 토지가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갔다. 행자는 황화관 밖으로 나가 꼬리의 털 일흔 개를 뽑아내고는 입으로 선기를 한 번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자 곧 일흔 명의 작은 행자로 변했다. 또 금고봉에다 입으로 선기를 한 번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자 곧 일흔 개의 쌍갈래 쇠스랑으로 변했다. 작은 행자마다 하나씩 나누어 주고, 그 자신도 하나를 쥐고는 바깥에 서서 갈퀴로 그 실줄을 휘저으며 일제히 힘을 모아 구호를 외치고는 그 실줄을 모조리 끊어 버렸는데, 저마다 휘감긴 것이 십여 근씩이나 되었다. 안쪽에서 거미 일곱 마리가 끌려 나왔는데, 몸집이 족히 바가지보다도 컸다. 하나하나 손발을 움츠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만 외쳤다.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이때 일흔 명의 작은 행자가 일곱 거미를 누르고서 어찌 놓아줄 리 있으랴. 행자가 말했다. "우선 그놈을 때리지는 말고, 내 사부님과 사제를 돌려보내라 하여라." 그 요괴가 목청을 높여 외쳤다. "사형, 당승을 돌려보내시고 내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그 도사가 안쪽에서 뛰어나오며 말했다. "누이들아, 나는 당승을 먹어야 하겠노라. 너희는 구할 수가 없구나."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네가 이미 내 사부님을 돌려보내지 않겠다 하니, 네 누이들의 꼴을 좀 보아라!" 훌륭한 대성이 갈퀴 몽둥이를 한 번 흔들어 다시 쇠몽둥이 한 개로 되돌리고는 두 손으로 들어 올려 일곱 거미 정을 남김없이 때려 뭉개니, 마치 고기를 다진 자루 일곱 개처럼 고름과 피가 줄줄 흘렀다. 또 꼬리를 두어 번 흔들어 털을 거두어들이고는 홑몸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안으로 쫓아 들어가 도사를 쳤다. 그 도사가 그가 사매들을 때려 죽이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몹시 견디지 못하여 곧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맞받았다. 이 한바탕은 저마다 분노를 품고 하나같이 신통을 크게 펼쳤으니,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이로다. 요정은 보검을 휘두르고, 대성은 금고봉을 들어 올렸다. 모두 당나라 삼장을 위한 것이라, 먼저 일곱 여자가 죽음을 당하였노라. 이제 크게 경륜의 손을 펼쳐 위엄을 부리고 법술을 놀려 기세를 뽐내니, 대성의 신광은 장엄하고 요선의 담력은 거칠었다. 온몸의 수단은 꽃무늬 비단 같고, 두 손의 움직임은 도르래 같았다. 펑펑 검과 몽둥이 소리 울리고, 참담하게 들구름이 떠돌았다. 말을 주고받으며 꾀를 부려, 오고 가는 것이 그림 같았다. 싸움이 벌어져 바람 소리 나고 모래 날리니 이리와 호랑이도 겁을 내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캄캄해져 북두성조차 보이지 않았다. 으스스한 누런 안개, 눈부신 황금빛, 으스스한 누런 안개는 양쪽 옆구리에서 구름을 뿜는 듯하고, 눈부신 황금빛은 천 개의 눈에서 불을 쏘는 듯하구나. 좌우는 마치 황금 통 같고, 동서는 구리 종과도 같도다. 이는 요선이 법력을 베풀고 도사가 신통을 드러낸 것이라, 눈을 어지럽히고 하늘을 미혹시켜 해와 달을 가리며, 사람을 덮으니 답답하고 몽롱하여라. 제천대성 손오공을 그 금빛과 누런 안개 속에 가두어 두는구나. 행자가 손발이 허둥지둥하여 다만 그 금빛 그림자 속에서 빙빙 돌 뿐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걸음을 떼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려 해도 발을 옮기지 못하니, 꼭 통 속에서 도는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또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여 급해진 나머지 위로 힘껏 한 번 뛰어올랐는데, 금빛을 뚫고는 퍽 하고 거꾸로 넘어졌다. 부딪친 머리가 아픈 듯하여 급히 손을 뻗어 머리를 만져 보니 정수리 가죽이 모두 물렁하게 부딪쳐 버렸다. 스스로 속이 타서 말했다. "재수 없는 일이로다! 재수 없어! 이 머리가 오늘은 쓸모가 없구나! 평소에는 칼로 베고 도끼로 쪼개어도 능히 상하게 하지 못하더니, 어찌하여 이 금빛에 부딪쳐 살갗이 물렁해졌단 말이냐? 오래 지나면 틀림없이 고름이 생길 터이니, 낫는다 한들 또한 파상풍이로다." 한참 동안 답답함을 참기 어려웠으나, 또 스스로 꾀를 내어 말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으며, 왼쪽으로도 갈 수 없고 오른쪽으로도 갈 수 없으며, 위로 또한 부딪칠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아래로 가는 수밖에!" 훌륭한 대성이 주문을 외우고 몸을 한 번 흔들어 변하니, 천산갑이 되었으니 또 다른 이름은 능리린이라. 참으로 이러하였다. 네 개의 쇠발톱은 산을 뚫고 돌을 부수기를 가루를 빻듯 하고, 온몸의 비늘 갑옷은 고개를 뚫고 바위를 뚫기를 파를 썰듯 하였다. 두 눈의 빛나는 밝음은 마치 쌍성이 번쩍이는 듯하고, 하나의 뾰족한 주둥이는 강철 송곳과 쇠 송곳보다 뛰어났다. 약 가운데 성질 있는 것이 천산갑이라, 속된 말로 능리린이라 부르느니라. 그대 보라, 그가 머리를 단단히 하고 땅 아래로 파고드니 이십여 리를 파고서야 비로소 머리를 내밀었다. 알고 보니 저 금빛은 겨우 십여 리만 덮고 있었다. 나와서 본모습을 드러내니 힘이 풀리고 힘줄이 뻣뻣하며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눈물을 참지 못하고 홀연 소리를 내어 외쳤다. "사부님이시여! 일찍이 가르침을 받들어 산중에서 나와, 함께 서쪽으로 오느라 애써 공을 들였나이다. 큰 바다의 큰 물결에도 두려움이 없었거늘, 도랑 안에서 도리어 바람을 만났구나!" 미후왕이 비통해하고 있는데, 홀연 산등 뒤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몸을 일으켜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한 여인이 나타나 보였는데, 몸에는 상복을 단단히 입고 왼손에는 찬 물밥 한 그릇을 받들고 오른손에는 종이돈 몇 장을 들고서 저쪽에서 한 걸음 떼며 한 번씩 울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행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하여 말했다. "참으로 눈물 젖은 눈이 눈물 젖은 눈을 만났고, 애간장 끊는 이가 애간장 끊는 이를 만났구나! 저 여인이 무슨 일로 우는지 모르겠으니, 내 가서 한번 물어보리라." 그 여인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길 위로 올라서서 행자를 마주 섰다. 행자가 몸을 굽히며 물었다. "여보살이시여, 그대는 누구를 위해 우시옵니까?" 부인이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제 남편이 황화관 관주와 장대를 사고팔며 다투다가 그가 독약 탄 차로 죽였나이다. 저 종이돈을 불살라 부부의 정을 갚으려 하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자 눈에 눈물이 내렸다. 그 여인이 그것을 보고 노하여 말했다. "당신은 어찌 그리 무지하시오! 나는 남편 때문에 근심하고 슬퍼하는데, 당신은 어찌 눈물 젖은 눈에 근심 어린 눈썹을 하고는 마음을 속이며 나를 놀리려 하시오?" 행자가 몸을 굽히며 말했다. "여보살이시여,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저는 본래 동토 대당 황제의 칙명을 받든 어제 당삼장의 큰 제자 손오공 행자이옵니다. 서천으로 가는 길에 황화관을 지나다 말을 쉬었나이다. 그 관중의 도사가 무슨 요정인지 알 수가 없사온데, 그가 일곱 거미 정과 형제자매가 되었나이다. 거미 정이 반사동에서 내 사부님을 해치려 하였으나, 나와 사제 팔계, 사오정이 구해 내어 벗어났나이다. 그 거미 정이 그의 이곳으로 와서는 시비를 뒤집어씌워 우리가 속일 뜻이 있다 하였나이다. 도사가 독약 탄 차로 내 사부님과 사제 세 사람을 쓰러뜨리고 말까지 넷을 그의 관중에 가두었나이다. 오직 나만은 그의 차를 마시지 않고 찻잔을 내던져 부수었더니, 그가 나와 맞싸움을 하였나이다. 한창 다투고 있을 때 저 일곱 거미 정이 뛰어나와 실줄을 토하여 내놓아 나를 묶었으나, 내가 법력을 써서 벗어났나이다. 토지에게 물어 그 본모습을 알아내고, 나는 또 분신법을 써서 실줄을 모조리 끊어 버리고 요괴를 끌어내어 한바탕 몽둥이질로 때려 죽였나이다. 이 도사가 곧 그놈들의 원수를 갚으려고 보검을 들어 나와 싸웠나이다. 예순 회합쯤 싸우자 그가 진영이 무너졌고, 이내 옷을 벗고는 양쪽 옆구리 아래에서 눈 천 개를 내놓으며 금빛이 만 갈래나 되어 나를 덮어 꼼짝 못 하게 하였나이다. 그 까닭에 진퇴양난에 빠져, 비로소 능리린 하나로 변하여 땅속에서 파고 나왔나이다. 막 슬퍼하고 있는데 홀연 그대가 우는 소리가 들려 이에 여쭈어 본 것이옵니다. 그대가 남편을 위하여 저 종이돈으로나마 보답하는 것을 보니, 내 사부님은 목숨을 잃었거늘 갚을 물건 하나 없으므로 스스로 원망하고 슬퍼한 것이온데, 어찌 감히 그대를 놀리겠나이까!" 그 여자가 물밥과 종이돈을 내려놓고는 행자에게 사례하며 말했다. "서운하게 여기지 마시오, 서운하게 여기지 마시오. 당신이 어려움을 당한 이인 줄은 몰랐나이다. 방금 그대의 말을 들어 보니 그대는 그 도사를 알지 못하는구려. 그는 본래 백안마군이요, 또 다목괴라 불리느니라. 그대가 이미 이런 변화를 지녀 금빛을 벗어나고 오래도록 싸웠으니 틀림없이 큰 신통이 있을 터이로되, 다만 그놈에게 가까이 갈 수는 없을 것이오. 내 그대에게 성현 한 분을 모셔 오라 일러 주겠노니, 그이가 금빛을 깨뜨릴 수 있고 도사를 항복받을 수 있느니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황급히 읍하며 말했다. "여보살께서 이 내력을 아시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좀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성현이 어느 분이시온지 내 가서 청하여 내 사부님의 어려움을 구하고 그대 남편의 원수도 갚아 주리이다." 부인이 말했다. "내가 말해 주겠노니 그대가 가서 그를 모셔 와 도사를 항복받는다 한들 다만 원수를 갚을 뿐이요, 그대의 사부님은 구하지 못할까 두렵구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구하지 못하오리이까?" 부인이 말했다. "그놈의 독약이 가장 맹렬하니, 사람을 쓰러뜨리면 사흘 사이에 골수가 모두 문드러지느니라. 그대가 이리로 오고 가는 사이에 늦을까 두렵거니와 그러므로 구하지 못하리로다." 행자가 말했다. "나는 걸을 줄 아오니, 아무리 멀다 한들 천 리도 반나절이면 가리이다." 여자가 말했다. "그대가 걸을 줄 안다면 내 말을 들으시오. 이곳에서 그곳까지 천 리쯤 되오. 그쪽에 산 하나가 있는데 이름은 자운산이요, 산중에 천화동이 있나이다. 그 굴에 성현 한 분이 계시니 이름은 비람파라 하느니라. 그이가 이 괴물을 항복받을 수 있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 산은 어느 쪽에 자리하였사오며, 또 어느 쪽으로 가야 하옵니까?" 여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곧은 남쪽이 바로 그곳이오." 행자가 고개를 돌려 보니 그 여자는 벌써 보이지 않았다. 행자가 황급히 절을 올리며 말했다. "어느 보살이시옵니까? 제가 땅속을 파느라 정신이 아득하여 알아보지 못하였사오니, 부디 성함을 남겨 주시어 훗날 감사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그런데 저 반공중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성이여, 나로다." 행자가 급히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이는 본래 여산노모라. 공중으로 달려가 사례하며 말했다. "노모께서는 어디에서 오셔서 저를 가르쳐 주시나이까?" 노모가 말했다. "내가 막 용화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네 사부님이 어려움에 빠진 것을 보고, 효부로 가장하여 남편의 상을 빌려 그의 목숨을 면하게 하였느니라. 네 어서 가서 그를 모셔 오너라. 다만 내가 가르쳐 주었다고 말해서는 안 되느니, 그 성현은 좀 괴벽한 분이시니라." 행자가 사례하고 작별한 뒤 근두운을 한 번 타고 곧 자운산에 이르러 구름을 내려놓으니 바로 저 천화동이 보였다. 그 굴 밖은 이러하였다. 푸른 소나무가 빼어난 경치를 가리고, 푸른 잣나무가 신선의 거처를 에워쌌다. 푸른 버들이 산길에 가득하고, 기이한 꽃이 개울에 넘쳤다. 향기로운 난초가 돌집을 두르고, 아름다운 풀이 바위 굽이를 비추었다. 흐르는 물은 시냇물과 이어져 푸르고, 구름은 고목을 덮어 아득하였다. 들새 소리 떠들썩하고, 그윽한 사슴은 걸음이 느릿하였다. 가지가지 고운 대나무, 잎잎이 펼쳐진 붉은 매화였다. 겨울 까마귀는 고목에 깃들고, 봄새는 높은 가죽나무에서 울었다. 여름 보리는 들에 가득 넓고, 가을 곡식은 온 땅에 남았다. 사시로 잎이 지는 일이 없고, 여덟 절기에 꽃이 이와 같았다. 늘 상서로운 노을이 피어 올라 하늘에 닿고, 항상 상서로운 구름이 펼쳐져 태허에 이어졌다. 이 대성이 기뻐하며 걸어 들어가 한 구비 한 구비, 하늘가의 경치를 다 볼 수가 없었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 하나 없이 고요하고 조용하여 닭이나 개 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므로, 속으로 "이 성현께서는 아마 집에 안 계신 모양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 몇 리를 더 들어가 살펴보니 여자 도고 하나가 평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생김새가 어떠한지 보라. 머리에는 오색 비단 모자를 쓰고, 몸에는 금을 짠 도포 한 벌을 입었으며, 발에는 구름무늬 봉황머리 신을 신고, 허리에는 실을 모아 만든 두 술 띠를 둘렀다. 얼굴은 서리 내린 뒤의 가을빛처럼 늙었고, 목소리는 봄 제비가 사일 앞에 지저귀듯 고왔다. 뱃속에는 오래전부터 삼승법에 익숙하고, 마음에는 늘 사제를 닦아 넉넉하였다. 공공한 참된 과보를 깨우치고, 요요한 자재를 이루어 스스로 소요하도다. 참으로 천화동 속의 부처라, 비람보살이라 이름이 높도다. 행자가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가까이 나아가 불렀다. "비람파보살이시여, 문안을 올리옵니다." 그 보살이 곧 평상에서 내려와 두 손을 모아 답례하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였나이다. 그대는 어디에서 오셨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나를 대성인 줄 아시옵니까?" 비람파가 말했다. "그대가 그때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던 때에 온 세상에 그대의 형상이 퍼졌거늘, 누가 알지 못하며 그 누가 모르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참으로 좋은 일은 문을 나서지 않고 나쁜 일은 천 리를 전해진다 하더니, 내가 이제 불문에 귀의한 것은 그대는 모르시는구려!" 비람이 말했다. "언제 귀의하였소? 경사로다, 경사로다!" 행자가 말했다. "요즈음 겨우 목숨을 건져 당승 사부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던 중, 사부님이 황화관에서 도사를 만나 독약 탄 차에 쓰러지셨나이다. 내가 그놈과 겨루었더니 그가 금빛을 내어 나를 덮는지라, 내가 신통을 부려 벗어났나이다. 보살께서 그의 금빛을 없앨 수 있다 들었사오니 특별히 찾아와 모시러 왔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누가 그대에게 이야기하였느냐? 나는 우란회에 갔다 온 뒤로 삼백여 년이 되도록 문을 나선 일이 없느니라. 내가 성을 숨기고 이름을 감추어 아무도 아는 이가 없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알게 되었느냐?" 행자가 말했다. "저는 땅속의 귀신이올시다. 어디라 할 것 없이 제 스스로 다 찾아내옵니다." 비람이 말했다. "그러하거든 그러하려니 하겠노라. 나는 본래 가지 않으려 하였으나 대성께서 친히 내려오셨으니 경을 구하는 선행을 꺾을 수가 없어 그대와 함께 가리라." 행자가 사례하며 말했다. "제가 몹시 무지하여 함부로 재촉하였사오니, 다만 무슨 병기를 가져오셨는지 모르겠나이다." 보살이 말했다. "나에게 수화침 하나가 있으니 그것이 그놈을 깨뜨릴 수 있느니라." 행자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노모께서 나를 그르치셨구려. 일찍이 수화침인 줄 알았다면 그대를 수고롭게 할 것 없이 노손에게 물었어도 한 짐은 얻었을 것을." 비람이 말했다. "그대의 수화침이란 것은 강철과 쇠의 바늘일 뿐이니 쓸 수가 없느니라. 내 이 보배는 강철도 아니요 쇠도 아니며 금도 아니니, 내 아이의 눈 속에서 단련한 것이니라." 행자가 말했다. "자제분은 누구시옵니까?" 비람이 말했다. "내 아이는 바로 묘일성관이니라." 행자가 몹시 놀라 마지않았다. 멀리 금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것이 보이자 곧 비람에게로 돌아서며 말했다. "금빛이 있는 곳이 바로 황화관이옵니다." 비람이 곧 옷깃 속에서 수화침 하나를 꺼냈는데, 눈썹만한 굵기에 길이는 대여섯 푼쯤 되었다. 그것을 손에 집어 들고 허공을 향해 던지니, 잠시 뒤 소리가 한 번 나며 금빛이 깨졌다. 행자가 기뻐하며 말했다. "보살이시여, 훌륭하옵니다! 훌륭하옵니다! 침을 찾으시오, 침을 찾으시오!" 비람이 손바닥에 받쳐 보이며 말했다. "이것이 아니오?" 행자는 함께 구름을 내려 관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그 도사가 눈을 감은 채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행자가 꾸짖어 말했다. "이 괴물 놈아, 장님인 체하는구나!" 귀에서 몽둥이를 꺼내어 곧 때렸다. 비람이 붙잡으며 말했다. "대성이여, 때리지 말고 우선 그대의 사부님을 보러 가시오." 행자가 곧장 뒤편 객위로 가서 보니, 그 세 사람이 모두 땅에 누워 침과 거품을 토하고 있었다. 행자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비람이 말했다. "대성이여, 슬퍼하지 마시오. 내가 오늘 문을 나선 것도 한 차례 인연이니, 이참에 음덕을 쌓는 것이 마땅하겠구려. 내게 해독단이 있으니 세 알을 주겠노라." 행자가 몸을 돌려 절하며 청했다. 그 보살이 소매 속에서 해진 종이꾸러미 하나를 꺼내어 그 속의 붉은 알약 세 알을 행자에게 건네며 입에 넣으라 일렀다. 행자가 약을 그들의 이빨을 벌려 넣고 한 사람씩 한 알씩 삼키게 하였다. 잠시 뒤 약기운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곧 일제히 구역질을 하며 독기를 토해 내고 목숨을 건졌다. 그 팔계가 먼저 일어나며 말했다. "답답해 죽겠구나!" 삼장과 사오정도 모두 깨어나며 말했다. "어찔어찔하구나!"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그 차에 독이 든 것을 당한 것이니, 이 비람보살의 덕분으로 살아났거든 어서 모두 나와 절을 올려라." 삼장이 몸을 일으켜 옷을 여미고 사례했다. 팔계가 말했다. "사형, 그 도사가 어디 있소? 내가 가서 한번 캐어 물어보리다, 어찌하여 이다지도 우리를 해치려 하였단 말이오!" 행자가 거미 정에 관한 앞의 일을 죽 이야기하자 팔계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놈이 이미 거미와 자매가 되었으니 틀림없는 요괴로구려!" 행자가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전각 밖에 서서 장님인 체하고 있느니라." 팔계가 갈퀴를 들고 찌르려 하자 또 비람이 말리며 말했다. "천봉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대성께서 내 굴에 사람이 없음을 아시니, 내 데려다 문을 지키게 하리이다." 행자가 말했다. "큰 덕을 입었거늘 어찌 받들지 않겠나이까! 다만 그놈을 본모습으로 돌아오게 하여 우리가 좀 보게 하옵소서." 비람이 말했다. "쉽지요." 곧 앞으로 나아가 손가락으로 한 번 가리키니, 그 도사가 퍽 하고 먼지 속에 쓰러져 본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는 바로 일곱 자쯤 되는 큰 지네 정이었다. 비람이 새끼손가락으로 들어 올리고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곧장 천화동으로 돌아갔다. 팔계가 몸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 "이 할멈도 또한 맹렬하구려, 어찌하여 저런 흉물을 항복받았단 말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그에게 무슨 병기로 그의 금빛을 깨뜨리느냐 물었더니, 수화침 하나가 있는데 그의 아들이 해의 눈 속에서 단련한 것이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자제분이 누구냐 물었더니 묘일성관이라 하였느니라. 내 생각에 묘일성은 수탉이니, 이 늙은 할멈은 틀림없이 암탉이로구나. 닭이 지네를 가장 잘 항복받으므로 거둘 수가 있었느니라."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기를 마지않고 일렀다. "제자들아, 거두어 떠나자." 그 사오정이 곧 안에서 곡식 얼마를 찾아 공양을 장만하여 모두 배불리 한 끼 먹었다.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사부님을 모시고 문을 나섰다. 행자가 그 부엌에 불을 놓아 한 채의 도관을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고는 길을 재촉하여 떠났다. 바로 이러하였다. 당승이 목숨을 건져 비람파의 은혜에 감사하고, 본성을 밝혀 다목괴를 없앴도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4회 장경전보마두한(長庚傳報魔頭狠) · 행자시위변화능(行者施爲變化能) 정욕의 인연은 본디 모두 한가지이니, 정이 있고 욕이 있으면 저절로 그러하니라. 사문에서 닦고 익히는 많은 선비들이여, 욕심을 끊고 정을 잊으면 그것이 곧 선이니라. 마음을 기울여야 하며 뜻을 굳게 해야 할지니, 한 티끌도 묻지 않음이 곧 하늘에 걸린 달이로다. 공을 행하고 나아가는 데에 그르침을 가르치지 말라, 행이 차고 공이 다하면 크게 깨달은 신선이 되리라. 이야기는 이러하다. 당삼장 사부와 제자들이 욕망의 그물을 걷어 치우고 정념의 감옥에서 뛰쳐나와 말을 몰아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한참을 걸어가니 어느새 여름이 다하고 가을이 트는 무렵이라 새로워진 서늘함이 몸에 스며들었는데,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세찬 비가 남은 더위를 거두니 오동나무 잎새 하나가 놀라고, 반딧불은 사초 깔린 오솔길에 날아 저녁이 되며 귀뚜라미는 밝은 달빛 아래 우는구나. 노란 아욱은 이슬을 머금고 피었고 붉은 여뀌는 모래톱에 가득하며, 부들과 버들은 먼저 시들어 떨어지고 가을 매미는 절기를 따라 우는구나. 삼장이 한창 가고 있는데, 홀연히 높은 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봉우리는 푸른 허공을 찌를 듯 솟아 있어 참으로 별을 스치고 해를 가로막는 형세였다. 장로는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 오공을 불러 말했다. “너는 앞에 보이는 저 산을 보아라, 몹시 높이 솟아 있는데, 과연 길이 통하는지 통하지 않는지 모르겠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나이까. 예로부터 산이 높으면 길 가는 나그네가 있고 물이 깊으면 나룻배 모는 사람이 있는 법이온데, 어찌 통하지 않는 이치가 있사옵니까? 마음 놓고 앞으로 가시옵소서.” 장로는 그 말을 듣고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채찍을 들어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 곧장 높은 암벽 위로 올라갔다. 몇 리를 채 가지 않아 노인 하나가 보였다. 귀밑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흰 머리카락은 흩날리며, 수염은 성기고 듬성듬성한데 은빛 실이 흔들리는 듯하였다. 목에는 염주 한 꿰미를 걸쳤고 손에 쥔 지팡이는 용의 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멀찍이 저 산비탈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서쪽으로 가시는 장로시여, 잠시 준마를 멈추시고 옥 같은 고삐를 단단히 죄시옵소서. 이 산 위에는 요괴 한 무리가 있어 염부세상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었사오니, 앞으로 나아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다. 하나는 말발굽 아래 땅이 평평하지 않았고 둘은 조각 안장에 앉은 몸이 가누어지지 않아서, 그만 푹 하고 말에서 떨어졌다.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풀밭에 쓰러진 채 끙끙거렸다. 행자가 앞으로 다가가 부축하며 말했다. “겁내지 마옵소서, 겁내지 마옵소서! 저는 여기 있사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너는 저 높은 바위 위 노인이 이 산에 요괴 무리가 있어 염부세상 사람을 모조리 잡아먹었다고 알리는 소리를 들었느냐? 누가 감히 가서 참된 실정을 물어보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잠시 땅에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오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너는 생김새가 추하고 말씨가 거칠어 그를 거슬러 보이면 참된 소식을 캐낼 수 없을 터인데.”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좀 잘생긴 모습으로 변해 가서 물어보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너는 변해 보아라, 내가 보마.” 이에 훌륭한 대성은 주문을 외우며 몸을 흔들어 변신을 하였는데, 깨끗하고 말쑥한 어린 중으로 변하였다. 참으로 눈은 맑고 눈썹은 고왔으며, 머리는 둥글고 얼굴은 반듯하였다. 움직이면 스러운 기상이 있었고 입을 열면 속된 부류의 말씨가 없었다. 비단 장삼을 한 번 털고는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가 당승에게 말했다. “사부님, 제가 잘 변했사옵니까?” 삼장이 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잘 변했구나!” 팔계가 말했다. “어찌 잘되지 않았겠소! 다만 우리를 모두 눌러 버리는구려. 이 늙은 돼지가 두세 해를 굴러 본들 저렇게 잘생겨질 수는 없을 것이오!” 이에 훌륭한 대성은 그들을 피해 곧장 앞으로 나아가 그 노인에게 몸을 굽히며 말했다. “노공공, 빈승이 문안을 올리옵니다.” 노인은 그가 잘생기고 아담하며 나이 어리고 몸이 가벼움을 보고는, 대답할 듯 말 듯 답례를 하며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어린 중이여, 너는 어디서 왔느냐?” 행자가 말했다. “저희는 동토 대당에서 왔사옵니다. 특별히 서천으로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이옵니다.” “이곳에 이르러 공공께서 요괴가 있다고 알리시는 말씀을 들었사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마음이 여리어 겁을 내시기에, 저를 시켜 한마디 여쭈어 보라 하셨사옵니다. 참으로 어떤 요정이기에 감히 이렇게 길을 막고 약탈을 한단 말이옵니까? 번거로우시겠사오나 공공께서 자세히 일러 주시옵소서, 그래야 저희가 그자를 몰아내고 길을 떠날 수 있사옵니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 어린 중은 나이가 어려 좋고 나쁜 줄도 모르고 말도 거드는 구석이 없구나. 그 요마는 신통이 몹시 넓고 크니라. 어찌 감히 그를 몰아내고 떠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공공의 말씀을 들으니 그를 감싸 주려는 뜻이 있는 듯하옵니다. 필시 그와 인척이 있거나 가까운 이웃, 뜻이 맞는 벗이시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위풍을 키워 주고 그 기개를 북돋워 주며, 마음을 쏟아 그 내력을 속시원히 말해 주지 않으시겠나이까?” 공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 중은 혀놀림을 제법 하는구나! 아마 네 사부를 따라 곳곳을 떠돌며 법술을 좀 배웠거나, 요망한 것들을 묶어 쫓고 남의 집을 지켜 사악한 기운을 누그러뜨리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지. 아직 아주 사나운 요괴는 만나 보지 못하였구나!” 행자가 말했다. “어찌 사납다는 말씀이옵니까?” 공공이 말했다. “그 요정이 편지 한 통을 영산에 보내면 오백 아라한이 모두 나와 맞이하고, 종이쪽지 한 장을 천궁에 올리면 십일 대요가 하나하나 공경하느니라. 사해의 용왕은 일찍이 그와 벗이 되었고 팔동의 신선은 늘 그와 모임을 가지며, 십지의 염군은 형제로 불러 주고 사령과 성황은 빈객과 벗으로 서로 아끼느니라.” 대성이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하여 껄껄 크게 웃으며, 손으로 노인을 끌어당겨 말했다. “말씀하지 마옵소서, 말씀하지 마옵소서! 그 요정이 제 어린 하인과 형제 벗이 되어 보았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라옵니다. 제가 왔다는 것을 알면 그자는 밤을 새워 짐을 싸서 떠나 버릴 것이옵니다!” 공공이 말했다. “이 어린 중이 허튼소리를 하는구나! 사람 취급도 못 받을 소리로다! 어느 신성한 이가 네 어린 하인이란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옵건대, 저의 본가는 오래국 화과산 수렴동이옵니다. 성은 손이요 이름은 오공이라 하옵니다. 지난날 요괴 노릇을 한 적도 있고 큰일도 저질렀사옵니다. 일찍이 여러 요마와 모여 술을 몇 잔 너무 많이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두 사람이 나타나 영장을 걸어 저를 음사로 끌고 갔사옵니다. 그때 화가 치밀어 금고봉으로 귀판을 때려 상처를 입히고 염왕을 놀라 넘어뜨려 삼라전을 거의 뒤집어엎을 뻔하였사옵니다. 놀란 판관이 종이를 들고 열 염왕이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으며, 저더러 때리지를 말아 달라고 하면서 스스로 제 어린 하인이 되기를 원하였사옵니다.” 공공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아미타불! 이 중이 지나친 말을 하였으니, 다시는 몸이 자라지 못할 것이다.” 행자가 말했다. “어르신, 저도 이만하면 넉넉하옵니다.” 공공이 말했다. “너는 몇 살이냐?” 행자가 말했다. “어르신께서 한번 헤아려 보시옵소서.” 노인이 말했다. “일고여덟 살쯤 되었겠지.”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일고여덟 살이 만 개나 되옵니다! 제 원래 얼굴을 꺼내어 보여 드리리다, 보시거든 놀라지 마옵소서.” 공공이 말했다. “어찌 얼굴이 또 하나 있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저는 얼굴이 일흔두 가지나 되옵니다.” 공공이 사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꾸만 캐물었고, 행자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며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를 드러내고 입을 삐쭉 내밀며 두 볼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허리에는 호랑이 가죽 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금고봉 하나를 쥐고서 돌벼랑 아래 서 있으니, 마치 살아 있는 뇌공 같았다. 노인은 그것을 보고 얼굴빛이 잿빛이 되어 겁을 먹고, 다리가 저리고 마비되어 서 있지도 못하고 푹 하고 넘어졌다. 겨우 일어났다가 또 한 번 주저앉고 말았다. 대성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노어르신, 헛된 겁을 내지 마옵소서. 저희는 얼굴은 사나워도 마음은 착하옵니다. 겁내지 마옵소서, 겁내지 마옵소서! 아까는 어르신의 좋은 뜻으로 요괴가 있다고 알려 주셨사옵니다. 참으로 요괴가 몇이나 되는지 아울러 말씀해 주시옵소서, 그래야 제가 고마움을 표하겠나이다.” 노인은 벌벌 떨며 입을 열지 못하고, 귀가 먹었다는 핑계를 대며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행자가 그가 말이 없자 곧 몸을 빼어 언덕으로 돌아왔다. 장로가 말했다. “오공아, 네가 왔느냐? 물어 본 일이 어떠하더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대수롭지 않사옵니다, 대수롭지 않사옵니다! 서천에 가는 길에 요정 하나쯤 있는 법이오나, 다만 이곳 사람들이 겁이 많아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둘 뿐이옵니다. 일 없사옵니다, 일 없사옵니다! 저만 있으면 되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너는 그에게 이곳이 무슨 산이며 무슨 굴이고, 요괴가 몇이나 되며, 어느 길이 뇌음사로 통하는지 물어 보았느냐?” 팔계가 말했다. “사부님, 제가 하는 말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시옵소서. 변화를 겨루고 요령을 부려 사람을 골려 먹는 일이라면 저희 서너 명을 모아도 사형을 당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고지식한 것을 논하자면 사형 같은 이를 한 부대나 늘어놓아도 저만 못하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옳다, 옳다! 네가 참으로 고지식하구나.” 팔계가 말했다. “사형은 어찌 된 일인지 머리는 들이밀고 꼬리는 돌보지 않는 격으로, 두어 마디 물어 보고는 시원찮게 달려 돌아왔사옵니다. 이 늙은 돼지가 가서 참된 소식을 물어 오겠나이다.” 당승이 말했다. “오능아, 조심하거라.” 이 바보 같은 녀석, 구치파를 허리에 찔러 넣고 검은 장삼을 여미며 아양을 떨듯 몸을 흔들어 산비탈로 달려 올라가 노인을 향해 외쳤다. “공공, 인사를 올리옵니다.” 노인은 행자가 돌아간 뒤에야 지팡이를 짚고 겨우 몸을 일으켜 벌벌 떨며 가려 하는데, 홀연 팔계를 보자 더욱 놀라 겁을 먹으며 말했다. “할아버지나 맙소사! 오늘 밤에 무슨 악몽을 꾸었기에 이런 악인들을 만났단 말이오! 앞서 온 중은 추하기는 추해도 사람 꼴이 서푼어치는 남아 있었거늘, 이 중은 어찌 된 일로 이렇게 절구공이 같은 주둥이에 부채 같은 귀, 무쇠 조각 같은 얼굴에 털북숭이 목이라니, 사람 기운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구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이 공공은 마음이 상하셨는지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시는구려. 어찌 그리 저를 보시옵니까? 추하기는 추해도 볼수록 견딜 만하오니, 잠시만 기다려 보시면 곧 잘생겨질 것이오.” 노인은 그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어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팔계가 말했다. “저는 당승의 둘째 제자이옵니다. 법명을 오능 팔계라 하옵니다. 아까 먼저 여쭙던 이는 오공이라 하는 행자이옵니다. 저의 사형이옵니다. 사부님께서 사형이 공공을 거슬렀다 하여 꾸짖으시고 참된 소식을 얻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래서 저를 특별히 보내어 예를 갖추어 여쭙게 하셨사옵니다. 이곳이 참으로 무슨 산이고 무슨 굴이며, 굴 속에 참으로 무슨 요정이 있으며, 어디가 서쪽으로 가는 큰길이옵니까? 번거로우시겠사오나 공공께서 가리켜 주시옵소서.” 노인이 말했다. “고지식하느냐?” 팔계가 말했다. “저는 평생 털끝만큼도 거짓을 감히 부리지 않았사옵니다.” 노인이 말했다. “너는 방금 왔던 그 중처럼 물에 꽃을 띄우듯 허풍을 떨지 말아라.” 팔계가 말했다. “저는 사형 같지 않사옵니다.” 공공이 지팡이를 짚고 팔계에게 말했다. “이 산은 팔백 리 사타령이라 하고, 그 가운데 사타동이라는 굴이 있으며, 굴 속에 마두 셋이 있느니라.” 팔계가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이 노인은 걱정이 많기도 하시구려! 요마가 셋뿐인 것을, 애써 수고로이 와서 소식을 전하다니!” 공공이 말했다. “너는 겁나지 않으냐?” 팔계가 말했다. “속이지 않고 말씀드리옵건대, 이 요마 셋은 사형이 몽둥이 한 번에 하나를 때려 죽이고, 저는 갈퀴 한 번에 하나를 찍어 죽이며, 저에게는 사제도 하나 있사옵니다. 그가 항요장 한 번으로 또 하나를 때려 죽이면 그만이옵니다. 셋을 모두 죽이고 나면 우리 사부님께서 지나가시니, 무슨 어려움이 있사옵니까!”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 중은 깊고 옅음을 모르는구나! 그 마두 셋은 신통이 몹시 넓고 크니라! 그 수하의 작은 요괴가 남쪽 고개에 오천, 북쪽 고개에 오천, 동쪽 길목에 일만, 서쪽 길목에 일만이요, 순찰을 도는 자가 사오천이고 문을 지키는 자도 일만이며, 불을 때는 자는 셀 수 없고 땔감을 하는 자도 셀 수 없으니, 모두 합쳐 사만 칠팔천이 되느니라. 이들은 모두 이름이 있고 패를 차고 있는 자들로서, 오로지 여기서 사람을 잡아먹는다.” 그 바보는 이 말을 듣고 벌벌 떨며 달려 되돌아와 당승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갈퀴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았다. 행자가 보고 호통을 쳤다. “너는 대답도 하지 않고 거기 쭈그리고 앉아 무얼 하느냐?” 팔계가 말했다. “겁을 먹어 똥이 나왔소! 이제 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어서 일찍이 제각기 목숨이나 건사하러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한 녀석! 내가 물어 볼 때는 놀라지도 않았거늘, 네가 가서 물어보니 이리도 당황하여 넋을 잃는단 말이냐!” 장로가 말했다. “참으로 어떠하더냐?” 팔계가 말했다. “이 노인이 말하기를, 이 산은 팔백 리 사타산이라 하고 가운데 사타동이란 굴이 있으며, 굴 속에 늙은 요괴 셋과 작은 요괴 사만 팔천이 있어 오로지 거기서 사람을 잡아먹는다 하였소. 우리가 그 산자락을 조금이라도 밟기만 하면 그놈들 입 속의 먹이가 될 터이니, 갈 생각은 하지도 마시옵소서!”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벌벌 떨며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등골이 오싹하여 말했다. “오공아, 어찌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마음을 놓으시옵소서, 큰일은 아니옵니다. 이곳에 요정이 몇 명 있기는 하옵니다마는, 이곳 사람들이 겁이 많아 그놈들을 사람도 많다 크기도 크다 하고 말하여 스스로 놀라고 스스로 괴이하게 여기는 것이옵니다. 저만 있으면 되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저는 형님과 다르오. 제가 캐물은 것은 참된 것이어서 털끝만큼도 그릇되고 거짓된 말이 없소. 온 산과 온 골짜기가 모두 요마인데 어떻게 앞으로 나아갑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헛된 겁은 내지 말아라! 산과 골짜기에 가득한 요마라면 이 늙은 손오공이 몽둥이 한 번 휘둘러 반나절이면 모조리 쓸어 버릴 수 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부끄러운 줄 알아라, 큰소리치지 마시오! 저 요정들만 인원을 점검하는 데도 이레나 여드레는 걸릴 터인데, 어찌 모조리 때려 죽인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러면 네 말로는 어떻게 치느냐?” 팔계가 말했다. “잡아 넘기든지 묶어 넘기든지, 정신법을 써서 넘어뜨린다 해도 그만큼 빠를 수는 없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잡고 묶는 재주는 쓰지 않느니라. 내가 이 몽둥이를 양쪽으로 잡아당겨 길어라 하면 사십 장이 되고, 한 번 흔들어 굵어라 하면 여덟 장 둘레가 되느니라. 산 남쪽으로 한 번 굴러 오천을 굴려 죽이고, 산 북쪽으로 한 번 굴러 오천을 굴려 죽이며, 동에서 서로 한 번 굴러 사오만을 살점과 진흙으로 짓이겨 버릴 수 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그런 식으로 국수를 밀듯 쓸어 버린다면 이경쯤에는 다 끝이 나겠소.” 사오정이 곁에서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큰사형께서 그토록 신통이 있으시니 무엇이 두렵사옵니까? 어서 말에 오르시어 가시옵소서.” 당승은 그들이 재주를 늘어놓는 것을 보고 어찌할 수 없이 마음을 넓히고 말에 올라 길을 갔다. 한창 가고 있는데 소식을 전하던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사오정이 말했다. “저이는 바로 요괴이옵니다. 일부러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듯 위풍을 떨며 와서 전하고는 저희를 겁주려 하였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서두르지 말아라, 내가 가서 살펴보마.” 훌륭한 대성은 높은 봉우리로 뛰어올라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자취가 없었다. 급히 얼굴을 돌려 보니 반 허공에 채색 노을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곧 구름을 몰아 쫓아가 살펴보니 바로 태백금성이었다. 곁으로 다가가 손으로 붙들고는 입이 닳도록 그의 어릴 적 이름만을 불렀다. “이장경! 이장경! 너 참으로 게으르구나! 무슨 할 말이 있거든 면전에서 말하면 될 것을, 어찌 산림의 늙고 요망한 것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나를 속이느냐!” 금성이 황급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성이여, 소식을 전하는 것이 늦었사오니 부디 허물을 탓하지 마시옵소서! 부디 탓하지 마시옵소서! 이 마두는 참으로 신통이 넓고 크며 세력과 위풍이 드높으니라. 오직 그대의 변화와 이동, 재빠른 꾀와 기지만을 믿어야 지나갈 수 있으리라. 조금이라도 더디게 여긴다면 참으로 가기 어려우리라.” 행자가 사례하며 말했다. “고맙소이다, 고맙소이다! 과연 이곳은 가기 어렵사오니, 노성이여 상계에 올라가 옥제께 한마디 하시어 천병을 좀 빌려 이 늙은 손오공을 돕게 해 주시옵소서.” 금성이 말했다. “있느니라! 있느니라! 있느니라! 그대가 입으로 전하는 말만 가져가면 십만 천병이라도 있는 것이니라.” 대성이 금성과 작별하고 구름머리를 내려 삼장을 만나 말했다. “아까 그 노인은 본래 태백성이 저희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옵니다.” 장로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제자야, 어서 그를 쫓아가서 그곳에 딴 길이 있는지 물어보아라, 우리가 돌아가자꾸나.” 행자가 말했다. “돌아갈 수 없사옵니다. 이 산은 곧장 지나가기만 해도 팔백 리요, 사방으로 둘러 가면 얼마나 더 먼지 알 수 없사옵니다. 어찌 돌아갈 수 있사옵니까?”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멈추지 못하며 말했다. “제자야, 이처럼 어렵고 힘드니 어찌 부처님께 예를 올릴 수 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우시지 마옵소서, 우시지 마옵소서!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겁쟁이가 되옵니다! 그가 전한 소식에는 반드시 몇 푼의 거짓이 섞여 있사옵니다. 다만 저희더러 뜻을 두고 마음을 쓰라는 것이니, 참으로 이르기를 전하는 자가 지나치게 말한 것이라 하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선 말에서 내리시어 앉아 계시옵소서.” 팔계가 말했다. “또 무슨 의논거리가 있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별다른 의논은 없다. 너는 여기서 마음을 써서 사부님을 잘 모시고, 사오정은 행리와 말을 잘 지켜라. 이 늙은 손오공이 먼저 고개에 올라가 앞뒤로 요괴가 모두 몇이나 되는지 알아보고, 하나를 붙잡아 자세한 내막을 물은 뒤 그놈에게 보증서를 쓰게 하고 명단을 펴게 하여 늙은 놈 젊은 놈을 하나하나 밝혀 내어라. 그리고 굴 문을 닫아 두고 길을 막지 말라 명한 연후에, 사부님을 조용하고도 은밀하게 모셔 지나가게 하리라. 그래야 이 늙은 손오공의 재주가 드러나지 않겠느냐!” 사오정이 거듭 당부했다. “조심하시옵소서! 조심하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당부하실 것 없느니라. 내가 이번에 가면 동양 대해라도 길을 열어 헤치고, 쇠를 두른 은산이라도 문을 뚫고 들어가느니라!” 훌륭한 대성이 휘파람 한 번 길게 불고는 근두운을 타고 높은 봉우리로 뛰어올라, 칡넝쿨을 잡고 등나무를 짚으며 산을 평평히 굽어보니 산속은 고요하고 인적이 없었다. 홀연 탄식하며 말했다. “잘못되었다! 잘못되었다! 그 금성 노인을 그냥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가 본래 나를 겁주려 한 것이니 여기에 무슨 요정이 있겠느냐! 그놈들이 나와 바람을 일으키며 장난을 치고, 반드시 창을 들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무예를 익힐 터인데 어찌 하나도 없단 말이냐?” 스스로 헤아리고 있는데, 문득 산등성이 뒤에서 딩딩당당, 탁탁타닥 하는 딱따기와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어린 요괴 하나가 ‘령’ 자를 쓴 깃발을 어깨에 메고 허리에 방울을 차고 손에 딱따기를 들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몸집이 한 길 두 자나 되었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저놈은 필시 전령을 맡은 병졸이라, 공문을 보내고 통지서를 내리려는 모양이지. 내가 가서 그 소리를 좀 들어 보아라, 무슨 말을 하는지.” 훌륭한 대성이 주문을 외우고 몸을 흔들어 파리 한 마리로 변하여 가볍게 그의 모자 위로 날아가 귀를 기울여 들었다. 그 어린 요괴가 큰길로 올라서며 딱따기를 두드리고 방울을 흔들고 입으로 중얼거리기를, “우리 순산하는 자들은 저마다 삼가 손행자를 경계하라. 저놈은 파리로 변할 수 있다!” 하고 외쳤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놀라 의심하며 말했다. “이놈이 나를 보았단 말인가, 보지 않았다면 어찌 내 이름을 알고 또 내가 파리로 변하는 줄을 아느냐!” 본래 그 어린 요괴는 그를 보지 못한 터였다. 다만 그 마두가 어찌 알고 그놈에게 그런 말을 일러 두었을 뿐이니, 이는 곧 떠도는 소문이었고 그놈이 그렇게 마구 외우고 다니는 것이었다. 행자는 알지 못하고 도리어 그놈이 자기를 보았다고 의심하여, 당장 몽둥이를 꺼내어 그를 때리려다가 그만 멈추고 속으로 생각했다. “팔계가 금성에게 물을 적에 늙은 요괴가 셋이요 작은 요괴가 사만 칠팔천 명이라 하였지. 이런 어린 요괴쯤은 몇만이 더 있다 한들 대수롭지 않으나, 이 늙은 요마 셋이 얼마나 큰 재주를 지녔는지는 알 수가 없구나. 그놈에게 한번 물어본 뒤에 손을 쓰더라도 늦지 않으리라.” 훌륭한 대성이여, 그대는 그가 어떻게 물으러 갔는지 아는가? 그의 모자에서 내려와 나무 꼭대기에 붙어 있다가, 어린 요괴가 몇 걸음 먼저 가게 한 뒤 급히 몸을 돌려 어린 요괴 하나로 변하였다. 그와 같이 딱따기를 두드리고 방울을 흔들며 깃발을 메고 옷차림도 같았으나, 다만 그보다 서너 치쯤 더 컸고 입으로도 그와 같이 중얼거리며 앞서 달려가 외쳤다. “길 가는 이여, 나를 좀 기다려 주게.” 그 어린 요괴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사람 같으니라고! 한 식구도 못 알아보다니!” 어린 요괴가 말했다. “우리 집에는 너 같은 이가 없네.” 행자가 말했다. “어찌 내가 없단 말이냐? 잘 알아보게.” 어린 요괴가 말했다. “낯이 설구나, 알아볼 수 없네! 알아볼 수 없어!” 행자가 말했다. “낯설 만도 하지. 나는 불을 때는 놈이니 자네가 나를 만날 일이 적었을 걸세.” 어린 요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네! 없어! 우리 굴에 불을 때는 형제들 중에도 이렇게 주둥이가 뾰족한 놈은 없단 말이네.” 행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주둥이가 변한 것이 좀 뾰족해졌군.” 곧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문지르고는 말했다. “내 주둥이가 뾰족하지 않지 않느냐.” 참으로 뾰족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순산하는 자들은 한 반에 마흔 명이요 열 반이 모두 사백 명인데, 저마다 나이와 생김새가 다르고 저마다 이름과 등급이 다르네. 대왕께서 우리가 반과 차례를 어지럽혀 인원 점검이 어렵게 될까 염려하시어, 한 사람에게 패 하나씩을 주어 표를 삼게 하셨네. 자네는 패가 있나?” 행자는 그의 차림새와 보고하는 모습만 보고 그의 모양대로 변하였으므로 그의 패를 본 적이 없어 몸에 패가 없었다. 훌륭한 대성은 없다고는 말하지 않고 입이 무르도록 대답했다. “내가 어찌 패가 없겠느냐? 다만 방금 받은 새 패일세. 자네 것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 주게.” 그 어린 요괴가 어찌 이 속셈을 알겠는가. 곧 옷을 걷어 올리며 몸에 지니고 있던 금칠패 하나를, 털실 끈이 꿰인 채로 당겨 행자에게 보여 주었다. 행자가 보니 그 패의 뒷면은 온갖 요마를 위압한다는 금칠패였고, 앞면에는 참된 글자 세 자로 소찬풍이라 적혀 있었다. 행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말할 것도 없다! 순산하는 자라면 반드시 풍 자가 이름 끝에 붙는구나.” 그리고 말했다. “자네는 옷을 내리고 비켜 서 있게, 내가 패를 꺼내 보여 주리다.” 곧 몸을 돌려 손을 아래로 찔러 넣고 꼬리 끝의 잔털 하나를 뽑아 비비며 “변해라!” 하고 외치자, 금칠패 하나로 변하였다. 거기에도 푸른 털실 끈을 꿰고 참된 글자 세 자를 적어 총찬풍이라 하여 꺼내어 그에게 건네어 보였다. 어린 요괴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소찬풍이라 불리는데, 너는 도리어 무어라 하여 총찬풍이란 말이냐!” 행자는 일을 막힘없이 해내고 말도 알맞게 하였다. “자네는 참으로 모르는구나. 대왕께서 내가 불을 잘 때는 것을 보시고 나를 순풍으로 올려 주시며 새 패도 주셨는데, 총순풍이라 하시며 너희 이 반 마흔 명 형제를 다스리라 하셨네.”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 황급히 절을 올리며 말했다. “장관님, 장관님, 새로 뽑혀 나온이라 참으로 낯이 설고 말씨가 거슬렸사오니 탓하지 마시옵소서!” 행자가 답례를 하며 웃었다. “탓할 것은 탓하지 않으마. 다만 한 가지 있느니라. 인사돈은 내놓아야 하느니라. 저마다 은 다섯 냥씩 내놓게.” 어린 요괴가 말했다. “장관님, 서두르지 마시옵소서. 제가 남쪽 고개로 가서 이 반 사람들을 만나 모두 함께 내어 드리겠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거든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 그 어린 요괴는 참으로 앞서 걸었고 대성이 그 뒤를 따라갔다. 몇 리를 가지 않아 홀연 붓 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어찌하여 붓 봉우리라 하는가? 그 산머리에서 봉우리 하나가 자라 나와 사오 장쯤 솟아 있는 것이, 마치 붓을 필꽂이에 꽂아 둔 듯하였으므로 그리 이름한 것이다. 행자가 그 앞에 이르러 꼬리를 한 번 움츠리고는 뛰어올라 봉우리 꼭대기에 앉아 외쳤다. “찬풍들! 모두 이리 오너라!” 그 아래 있던 소찬풍들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장관님, 대령하였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대왕께서 나를 뽑아 내보내신 까닭을 아느냐?” 어린 요괴가 말했다. “모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대왕께서 당승을 잡아먹으려 하시나 손행자의 신통이 넓고 클까 두려워하시느니라. 그가 변화를 잘한다 하여, 그가 소찬풍으로 변하여 이리로 와 길을 밟고 소식을 엿볼까 염려하신 것이다. 그래서 나를 총찬풍으로 올려 너희 이 반에 가짜가 있는지 조사하라 하셨느니라.” 소찬풍이 연달아 대답했다. “장관님, 저희는 모두 진짜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네가 참으로 진짜라면 대왕께 무슨 재주가 있으신지 알고 있겠느냐?” 소찬풍이 말했다. “알고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안다면 어서 말해 보아라. 네 말이 내가 아는 것과 들어맞으면 진짜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가짜이니 내가 반드시 대왕께 끌고 가 처치하리라.” 소찬풍은 그가 높은 곳에 앉아 꾀를 부리며 호령을 하는 통에 어찌할 수 없어 사실대로 말했다. “우리 대왕은 신통이 넓고 크시고 재주가 높고 강하시어, 한 입에 십만 천병을 삼키신 적이 있사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입을 떼어 한마디 하였다. “너는 가짜로다!” 소찬풍이 당황하여 말했다. “장관 어르신, 저는 진짜이옵니다. 어찌 가짜라 하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네가 진짜라면 어찌 허튼소리를 하느냐! 대왕의 몸이 얼마나 크다고 한 입에 십만 천병을 모조리 삼키느냐?” 소찬풍이 말했다. “장관께서는 본래 모르시는구려. 우리 대왕께서는 변화를 하시옵니다. 커지려 하면 천당을 버티고, 작아지려 하면 겨자씨만 하게 되시옵니다. 그해 왕모낭랑이 반도 잔치를 베풀어 여러 신선을 초청하되 우리 대왕께 청첩을 올리지 않았사옵니다. 대왕께서 하늘과 겨루려 하시자 옥황께서 십만 천병을 보내 우리 대왕을 항복시키려 하셨사옵니다. 그때 우리 대왕께서 법신으로 변하시어 성문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힘껏 삼켜 버리시니, 놀란 천병들이 감히 맞서지 못하고 남천문을 닫아 버렸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한 입에 십만 군사를 삼켰다 하는 것이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하는 말이라면 이 늙은 손오공도 해 본 적이 있지.” 그리고 대답했다. “이대왕에게는 무슨 재주가 있느냐?” 소찬풍이 말했다. “이대왕께서는 키가 세 길이시고, 누에 누운 듯한 눈썹에 봉황 같은 눈, 미인 같은 목소리, 널빤지 같은 이빨, 코는 교룡 같으시옵니다. 사람과 싸우실 적에 코로 한번 감아 버리시면 무쇠 등과 구리 몸이라도 넋이 달아나고 혼이 흩어지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코로 사람을 감는 요정이라면 잡기도 쉽지.” 그리고 대답했다. “삼대왕께는 또 무슨 재주가 있느냐?” 소찬풍이 말했다. “우리 삼대왕께서는 범속한 세상의 괴물이 아니시오니, 이름은 운정만리붕이라 하옵니다. 움직이실 적에는 바람을 모으고 바다를 움직이며 북쪽을 떨치고 남쪽을 도모하시옵니다. 몸에 지니신 보배 하나가 있사온데 음양이기병이라 하옵니다. 만약 사람을 그 병 속에 넣으면 한나절도 못 되어 즙이 되어 버리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놀라며 말했다. “요마는 두렵지 않으나 다만 그 병만은 삼가 조심해야겠구나.” 그리고 대답했다. “세 대왕의 재주를 네가 제법 맞게 말하였구나, 내가 아는 바와 같도다. 그러나 어느 대왕이 당승을 잡아먹으려 하느냐?” 소찬풍이 말했다. “장관님, 그것을 모르시옵니까?” 행자가 호통하며 말했다. “내가 너보다 더 모르겠느냐! 너희가 속내를 알지 못할까 염려하신 대왕께서 나를 보내어 단단히 캐물으라 하셨느니라!” 소찬풍이 말했다. “우리 대대왕과 이대왕께서는 오래전부터 사타령 사타동에 사시옵니다. 삼대왕께서는 이곳에 계시지 않고 본래 계시던 곳이 이곳에서 서쪽으로 사백 리쯤 떨어져 있사옵니다. 그곳에 성 하나가 있사온데 사타국이라 하옵니다. 오백 년 전에 그 성의 국왕과 문무 관료를 잡아먹고, 성 안의 크고 작은 남녀까지 모조리 잡아먹어 버리시고는 그 강산을 빼앗으셨사옵니다. 이제는 모두 요괴들뿐이옵니다. 어느 해인가 동토 당나라에서 중 하나를 서천으로 보내 경을 취하러 간다 하는 소식을 들으셨사옵니다. 그 당승이란 자는 열 세상 동안 수행한 착한 사람이라, 그 살점 한 조각을 먹으면 수명이 늘어나 늙지 않고 장생한다 하옵니다. 다만 그 제자 손행자가 몹시 사나워 혼자서는 어찌하기 어려우니, 이리로 와 우리 두 대왕과 의형제를 맺고 뜻을 모아 함께 그 당승을 잡으려 하시는 것이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 무례한 요마 같으니라고! 내가 당승을 보살펴 바른 과위를 이루게 하거늘, 그놈들이 어찌 내 사람을 잡아먹을 궁리를 한단 말이냐!” 분노의 소리를 내며 강철 같은 이를 갈고 쇠몽둥이를 빼어 들고 높은 봉우리에서 뛰어내려 그 몽둥이를 어린 요괴의 머리 위로 눌러 짓이겼다. 가련하게도 그놈은 고기 덩어리 하나처럼 뭉개지고 말았다. 행자는 스스로 그것을 보고 차마 견디지 못하여 말했다. “어허! 이놈은 도리어 좋은 뜻으로 안팎의 사정을 내게 다 말해 주었거늘, 내가 어찌 이토록 단번에 끝장을 내었단 말이냐? 됐다 됐다, 이미 저지른 일을 어찌하리!” 훌륭한 대성이 오직 사부님의 길을 막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는 그놈의 패를 풀어 자기 허리에 차고 ‘령’ 자 깃발을 등에 메었으며, 허리에는 방울을 차고 손에는 딱따기를 들었다. 바람을 맞으며 주문을 외우고 입으로는 주문을 외고 몸을 흔들어 변하니, 꼭 소찬풍의 모습과 같아졌다. 걸음을 되돌려 그만 지름길로 옛길을 따라 굴을 찾아 그 늙은 요마 셋의 속내를 탐지하러 갔다. 이는 바로 이러하였으니, 온갖 변화를 부리는 아름다운 원숭이 임금이요, 만 가지로 몸을 날리는 참된 재주로다. 깊은 산으로 들어서며 옛길을 따라 한창 가고 있는데, 홀연 사람의 함성과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사타동 어귀에 수많은 어린 요괴가 창과 칼과 극을 늘어세우고 기치와 깃발을 펄럭이며 늘어서 있었다. 대성이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이장경의 말이 참으로 헛되지 않았도다! 참으로 헛되지 않았도다!” 본래 이 늘어선 데에도 법도가 있으니, 이백오십 명이 한 큰 부대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는 여러 빛깔의 긴 기가 마흔 개나 바람에 어지러이 나부끼는 것을 보고 인마가 만 명이나 됨을 알았다. 그리고 스스로 헤아리고 생각하며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이 소찬풍으로 변하여 이대로 들어가면, 그 늙은 요마가 나에게 순산을 하고 왔느냐고 물을 터이니 내가 반드시 그 자리에서 대답하리라. 그러나 만약 한순간 말이 어긋나 나를 알아보면 어찌 몸을 빼어낼 것인가? 밖으로 달아나려 해도 문을 지키는 무리가 막아서거늘 어찌 문을 나갈 수 있으랴! 굴 속의 요왕을 잡으려면 먼저 문 앞의 무리 괴물을 없애야 하느니라!” 그대는 그가 어찌 무리 괴물을 없앨 수 있었는지 아는가? 훌륭한 대성이 생각했다. “그 늙은 요마는 나와 만난 적이 없으면서도 내 명성을 알고 있느니라. 내 우선 이 명성을 기대어 위풍을 믿고 큰소리 몇 마디를 하여 그놈들을 한번 놀래어 보리라. 참으로 중토의 중들에게 인연과 분수가 있어 경을 얻어 돌아갈 사람이라면, 이번에 내 영웅적인 말 몇 마디로 문 앞의 수많은 요괴를 놀래어 물리칠 수 있으리라. “만약 중들에게 인연과 분수가 없어 참된 경을 얻지 못할 사람이라면, 비록 입으로 연꽃이 피어나게 말한다 한들 서쪽 굴 밖의 요정을 물리칠 수 없으리라.” 마음이 입에 묻고 입이 마음에 물으며 이 계책을 헤아린 그는 딱따기를 두드리고 방울을 흔들며 곧장 사타동 어귀를 향해 쳐들어갔다. 앞 진영의 어린 요괴가 막아서며 말했다. “소찬풍이 왔느냐?” 행자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로 걸어갔다. 두 번째 진영까지 걸어가자 또 어린 요괴가 붙들며 말했다. “소찬풍이 왔느냐?” 행자가 말했다. “왔느니라.” 요괴들이 말했다. “너는 오늘 아침 순풍을 나갔다가 손행자라는 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만났느니라. 지금 저기서 몽둥이를 갈고 있더라.” 요괴들이 겁을 먹으며 말했다. “그자가 생긴 모습이 어떠하더냐? 무슨 몽둥이를 갈고 있더냐?” 행자가 말했다. “그자가 그 물가에 쭈그리고 있는데도 길 트는 신장 같더라. 만약 일어서기라도 하면 십여 장은 넉넉히 될 터이니라! 손에 쇠몽둥이 하나를 들었는데 사발만큼 굵은 큰 몽둥이였다. 그 돌벼랑에서 물을 한 웅큼 떠서 갈고 또 갈며 입으로 중얼거리기를, ‘몽둥이야! 이즈음 너를 꺼내 신통을 드러내지 못하였는데, 이번에 가면 요정이 십만이 있다 해도 모조리 때려 죽여라! 내가 저 마두 셋을 죽여 너에게 제사를 지내마! 몽둥이가 밝게 갈리고 나면 먼저 너희 문 앞의 요정 일만을 쳐 죽이리라!’ 하더라.” 그 어린 요괴들은 이 말을 듣고 하나하나 가슴이 떨리고 담이 오그라들며 혼이 흩어지고 넋이 날아갔다. 행자가 또 말했다. “여러분, 그 당승의 살점이 몇 근이나 된다고 우리에게 돌아올 몫도 없을 터인데, 우리가 그를 위해 이 독을 뒤집어쓸 까닭이 무엇이오!” 차라리 우리가 각자 흩어지는 게 낫지 않소.” 요괴들이 모두 말했다. “옳은 말이오, 우리가 각기 목숨을 건사하러 갑시다.” 만약 이들이 군인이나 백성으로서 성스러운 교화를 받은 자들이라면 죽는 한이 있어도 감히 달아나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본래 이 무리란 것이 모두 이리와 벌레, 호랑이와 표범, 길짐승과 날짐승이라, 우 하는 소리와 함께 와 하고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이는 손대성의 몇 마디 허풍이 아니라, 마치 초나라 노랫소리가 팔천 군사를 흩어 놓은 격이었다! 행자가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좋도다! 늙은 요괴는 죽은 셈이로다! 말을 듣자마자 달아나니 어찌 감히 대면할 수 있으랴? 이대로 들어가서도 이런 말을 하면 좋으련만, 만약 말이 어긋나 방금 그 어린 요괴 중 한둘이 도로 들어가 이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소식이 새어 나가지 않겠느냐?” 보라, 그가 어떠하였는지. 마음을 품고 옛 굴로 오며, 담력을 믿고 깊은 문으로 들어가는구나.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5회 심원찬투음양규(心猿鑽透陰陽竅) · 마왕환귀대도진(魔王還歸大道眞) 각설하고, 손대성이 동굴 어귀로 들어서며 양쪽을 두루 살펴보니, 이러하였다. 해골은 산등성이를 이루었고 백골은 숲을 이루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밟혀 펠트 조각이 되었고, 사람의 살점은 썩어 흙먼지가 되었다. 사람의 힘줄은 나뭇가지에 감겨 말라 비틀어져 은처럼 번쩍였다. 참으로 시체의 산이요 피의 바다이며, 과연 비린내와 고약한 냄새가 견디기 어려웠다. 동쪽에서는 작은 요괴들이 산 사람을 붙잡아 살을 발라 내고, 서쪽 아래에서는 포악한 마왕들이 사람의 고기를 생것으로 삶고 생것으로 요리하였다. 만약 미후왕이 이토록 영웅다운 담력이 아니었다면, 두 번째 범부로는 그의 문을 들어설 수 없었으리라. 오래지 않아 두 번째 문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아! 이곳은 바깥과 사뭇 달랐다. 맑고 기이하며 그윽하고 우아하고, 수려하고 너르며 평탄하였다. 좌우에는 요지의 풀과 신선의 꽃이 있고, 앞뒤에는 큰 소나무와 푸른 대나무가 있었다. 또 칠팔 리쯤 가서야 비로소 세 번째 문에 이르렀다. 몸을 숨기고 눈을 훔쳐 살펴보니, 그 위에 세 늙은 요괴가 높이 앉아 있었는데 몹시 흉악하였다. 가운데 있는 자의 생김새는 이러하였다. 끌로 팬 듯한 이빨과 톱니 같은 어금니, 둥근 머리와 네모난 얼굴이었다. 울음소리는 우레 같고 눈빛은 번개 같았다. 코는 하늘을 향해 치켜들렸고 붉은 눈썹은 불꽃을 날렸다. 가기만 하면 온갖 짐승이 마음이 급하고, 앉기만 하면 뭇 마귀가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는 짐승 가운데의 왕이니, 푸른 털 사자 괴물이었다. 왼편 아래에 있는 자의 생김새는 이러하였다. 봉황 같은 눈과 황금빛 눈동자, 누런 어금니와 굵은 다리였다. 긴 코와 은빛 털, 머리를 보면 꼬리 같았다. 둥근 이마에 찌푸린 눈썹, 몸집은 우람하고 육중하였다. 가는 목소리는 요조한 가인을 닮았고, 옥 같은 얼굴은 소머리 악귀를 닮았다. 이는 이를 감추고 몸을 닦은 지 여러 해 된 누런 어금니 늙은 코끼리였다. 오른편 아래에 있는 자의 생김새는 이러하였다. 금빛 날개와 곤어의 머리, 별 같은 눈동자와 표범의 눈이었다. 북쪽을 떨치고 남쪽을 도모하니 굳세고 강인하며 용감하였다. 변화하여 창공을 날아오르니 메추라기가 비웃고 용은 맥을 잃었도다. 바람을 모은 깃에 백 가지 새가 머리를 감추고, 날카로운 발톱을 펴니 모든 날짐승이 간담을 잃었다. 이는 구만 리 구름 길을 가는 큰 붕새 조였으니, 곧 운정만리붕이라 일컫는 금시대붕조이었다. 그 양쪽 아래에는 크고 작은 두목이 백여 명이나 늘어서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무장을 온전히 갖추고 갑옷과 투구를 정연히 차려 입어 위풍이 늠름하고 살기가 등등하였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큰 걸음으로 곧장 문 안으로 들어가 방울과 방망이를 내려놓고는 위를 향해 불렀다. “대왕이시여.” 세 늙은 마왕이 히히 웃으며 물었다. “소찬풍, 네가 왔느냐?” 행자가 소리쳐 대답했다. “왔나이다.” “네가 산을 순찰하며 손행자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하였는데, 그 형편이 어떠하냐?” 행자가 말했다. “대왕님께서 계시니 감히 아뢰지도 못하겠나이다.” 노마가 말했다. “어찌하여 감히 말하지 못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소인이 대왕의 명을 받들어 방울을 두드리며 가고 있는데, 홀연 고개를 들어 보니 어떤 사내 하나가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커다란 장대를 갈고 있사온데, 생김새가 길을 여는 신장을 닮았고 일어서기만 하면 족히 열 몇 장은 되어 보였나이다. 그는 그 계곡 벼랑의 돌 위에서 물을 한 웅큼 떠서 갈고는, 입으로 또 한마디 중얼거리기를, 자기 장대가 이곳에 이르도록 아직 신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날카롭게 갈아서 밝히려 한다 하였나이다. 그리고 대왕을 치러 오겠다고 하였나이다. 소인은 이로써 그가 손행자임을 알고 특별히 알리러 왔나이다.” 그 노마가 이 말을 듣고 온몸에 땀이 솟으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말했다. “동생들아, 내가 당승을 건드리지 말자고 하지 않았느냐. 그의 제자가 신통이 광대하여 미리 준비를 갖추고 몽둥이를 갈아 우리를 치려 하니, 이제 어찌하면 좋으냐?” 그리고 명했다. “것들아, 동굴 밖의 크고 작은 놈들을 모조리 불러 들이고 문을 닫아 걸어, 그가 지나가게 하여라.” 두목 가운데 아는 자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문 밖의 작은 요괴들은 이미 다 흩어졌나이다.” 노마가 말했다. “어찌하여 다 흩어졌느냐? 필경 풍문이 좋지 않음을 들었으리라. 어서 빨리 문을 닫아라! 어서 빨리 문을 닫아라!” 뭇 요괴가 요란하게 앞뒤 문을 모조리 굳게 걸어 잠갔다. 행자는 속으로 놀라 생각했다. “이렇게 문을 닫아 버리면 그가 다시 집안의 자잘한 사정을 물었을 때 내가 대답하지 못하여 바람을 새게 하고 그에게 붙잡히지 않겠는가? 우선 한 번 더 그를 놀라게 하여 문을 열게 한 뒤 달아나자.”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그가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있사옵니다.” 노마가 말했다. “그가 또 무슨 말을 하였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가 말하기를, 대대왕은 잡아 가죽을 벗기고, 이대왕은 잡아 뼈를 발라 내고, 삼대왕은 잡아 힘줄을 뽑겠다고 하였나이다. 당신들이 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면, 그는 변화할 줄 아니 한때 파리로 변하여 문틈으로 날아 들어와 우리를 모조리 잡아갈 것이니, 그리되면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노마가 말했다. “동생들아, 조심하여라. 이 내 동굴에는 해마다 파리 한 마리 없었나니, 만일 파리가 들어오면 그것이 곧 손행자니라.”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파리로 변해 그를 놀라게 하여 문을 열게 하리라.” 대성이 옆으로 비켜서서 손을 뻗어 뒤통수의 털 하나를 뽑고는 선기운을 한 입 불어넣으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금빛 파리 한 마리로 변하여 날아가 노마의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그 늙은 요괴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동생아! 큰일 났다! 그놈이 문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놀란 크고 작은 뭇 요괴가 하나같이 갈퀴와 빗자루를 들고 앞으로 나서며 파리를 마구 쫓았다. 이 대성은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소리 내어 웃었다. 공교롭게도 웃어서는 안 될 판에, 이 웃음 한 번에 본래의 얼굴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그 세 번째 늙은 요괴가 뛰어나와 단번에 붙잡으며 말했다. “형님, 하마터면 그놈에게 속을 뻔하였나이다!” 노마가 말했다. “현제야, 누가 누구를 속였느냐?” 삼마가 말했다. “방금 대답하던 저 작은 요괴는 소찬풍이 아니오니, 그가 바로 손행자이옵니다. 틀림없이 소찬풍을 만나 그를 어떻게 때려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변화하여 우리를 속이러 온 것이옵니다.” 행자가 당황하여 속으로 말했다. “그가 나를 알아보았구나!” 그리고 곧 손으로 얼굴을 더듬으며 늙은 요괴에게 말했다. “내가 어찌 손행자이오리까? 나는 소찬풍이옵니다. 대왕께서 잘못 보셨나이다.” 노마가 웃으며 말했다. “동생아, 그는 소찬풍이니라. 그가 하루에 세 번씩 내 앞에서 점호를 받으니 내가 그를 아느니라.” 그리고 또 물었다. “너에게 패가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있나이다.”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패를 꺼내 보이니, 늙은 요괴는 더욱 확신하며 말했다. “동생아, 그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 삼마가 말했다. “형님, 형님은 그를 보지 못하셨나이다. 그가 방금 몸을 비스듬히 하고 한 번 웃었는데, 나는 그가 뇌공의 부리를 드러내는 것을 보았나이다. 내가 붙잡자 그는 또 이런 모습으로 변하였나이다.” 그가 소리쳐 말했다. “것들아, 밧줄을 가져오너라!” 뭇 두목이 곧 밧줄을 가져왔다. 삼마가 행자를 넘어뜨려 네 발을 한데 모아 묶어 놓고 옷을 들어 올려 살펴보니, 틀림없는 필마온이었다. 알고 보니 행자에게는 일흔두 가지 변화가 있어, 날짐승이나 길짐승, 꽃과 나무, 그릇이나 벌레 따위로 변할 때에는 몸까지 함께 굴려 버렸으나, 사람으로 변할 때에는 다만 얼굴만 변하고 몸은 변하지 못하였으니, 과연 온몸은 누런 털이요 두 쪽은 붉은 볼기요 한 가닥은 꼬리였다. 늙은 요괴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손행자의 몸에 소찬풍의 얼굴 가죽이니, 그가 틀림없느니라!” 그리고 명했다. “것들아, 먼저 술을 차려 너희 삼대왕에게 공을 세운 잔을 올려라. 손행자를 이미 넘어뜨렸으니 당승은 틀림없이 우리 입속의 먹이니라.” 삼마가 말했다. “술은 아직 마시지 맙시다. 손행자는 날래고 도망치는 법을 아니 도망칠까 두렵나이다. 것들에게 병을 메어 내게 하고 손행자를 그 병 속에 집어넣은 뒤에야 술을 마시겠나이다.” 노마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옳다! 옳다!” 곧 작은 요괴 서른여섯을 뽑아 안으로 들어가 곳간 문을 열고 병을 메어 내게 하였다. 그대는 그 병이 얼마나 크다고 여기는가? 겨우 두 자 네 치 높이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른여섯 명이 메어야 하였는가? 그 병은 음양이기의 보배로, 안에 칠보와 팔괘와 이십사기가 들어 있어 서른여섯 명이 천강의 수에 맞추어야만 비로소 메어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지 않아 보배 병을 메어 내어 세 번째 문 밖에 놓고 깨끗이 닦아 낸 뒤 뚜껑을 열고, 행자의 밧줄을 풀고 옷을 벗기니, 병 속의 선기운을 따라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뚜껑을 덮고 봉인을 붙인 뒤에는 가서 술을 마시며 말했다. “원숭이야, 이번에 내 보배 병 속에 들어갔으니 다시는 저 서방으로 가는 길을 꿈꾸지 말라! 만일 그래도 부처께 절을 올리고 경을 구할 수 있다면, 등이 돌아 요람을 흔들어 다시 태를 빌려 남의 몸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느니라.” 보라, 그 크고 작은 뭇 요괴가 하나같이 히히 웃으며 모두 공을 축하하러 간 동안의 일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대성이 병 속에 이르자 그 보배가 몸을 옥죄어 작게 만들어 버렸으므로 하는 수 없이 변화하여 그 가운데 웅크리고 앉았다. 한참 동안은 오히려 서늘하였으므로 홀연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이 요괴는 겉만 헛된 명성이요 속은 실속이 없구나. 어찌하여 사람들에게 이 병에 사람을 넣으면 한나절도 되어 고름과 피로 녹아 버린다고 일러 주었단 말인가? 이토록 서늘하다면 칠팔 년을 있어도 탈이 없겠구나!” 아! 대성은 본래 그 보배의 내력을 알지 못하였다. 만약 사람을 넣고 일 년 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일 년 동안 서늘하지만, 사람의 말소리를 듣기만 하면 곧 불이 일어나 태워 버리는 것이었다. 대성이 미처 다 말하기도 전에, 병 안 가득 온통 불꽃이 일었다. 다행히 그에게 재주가 있어 한가운데 앉아 불을 피하는 주문을 외우니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반 시진을 버티자 사방에서 뱀 마흔 마리가 기어 나와 물어뜯었다. 행자가 손을 휘둘러 잡아당겨 온 힘을 다해 한 웅큼 쥐어 비틀자 여든 토막이 났다. 잠시 뒤에는 또 불 용 세 마리가 나와 행자를 위아래로 휘감았는데 참으로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말했다. “다른 일은 견딜 만하나 이 불 용 세 마리가 어렵구나. 조금 더 지나 나가지 못하면 불기운이 심장으로 치받칠 터인데 어찌한단 말인가?” 그는 생각했다. “몸을 한번 길게 늘려 찢어 버리자.” 훌륭한 대성이 주문을 외우고 “길어져라!” 하고 외치니 곧 한 장 남짓한 높이로 길어졌는데, 그 병이 몸에 바싹 붙은 채로 따라서 길어졌다. 그가 몸을 아래로 움츠리니 병 또한 따라서 작아졌다. 행자가 놀라며 말했다. “어렵다! 어렵다! 어렵구나! 어찌하여 내가 길어지면 그것도 길어지고 내가 작아지면 그것도 작아지는가?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복사뼈가 좀 아파왔기에 황급히 손을 뻗어 만져 보니, 불에 타서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스스로 애가 타서 말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복사뼈가 타서 물러졌구나! 이러다 장애인이 되고 마는구나!” 그리고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어뜨렸으니,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마귀를 만나 고난을 겪으며 당삼장을 그리워하고, 위태로움에 처하여 성스러운 스님을 걱정하는도다. “사부님이시여! 예전에 바른 길로 돌아와 관음보살의 권선으로 천재를 벗어났사온데, 저는 사부님과 함께 여러 산을 고생하며 지나고 많은 요괴를 거두어 없애고 팔계를 항복받고 사오정을 얻었나이다. 온갖 고생을 하며 서방에서 함께 증명하고 함께 정과를 이루기를 바랐거늘, 어찌하여 오늘 이 사나운 마귀를 만나 이 늙은 손이 잘못하여 이곳에 들어와 목숨을 잃고 사부님을 산중에 버려 두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나이까! 생각하건대 내 지난날의 명성이 높았으므로 오늘의 이 재난이 있는 것이오리다!” 이토록 처연히 슬퍼하는데, 홀연 보살이 예전 사반산에서 내게 세 가닥의 구명호모를 내려 주신 일이 떠올라, 있는지 없는지 우선 한번 찾아보자 하였다. 곧 손을 뻗어 온몸을 훑어 보니 뒤통수에 털 세 가닥이 있었는데 몹시 뻣뻣하고 단단하였다. 홀연 기뻐하며 말했다. “몸의 털은 모두 저리 부드럽고 무른데 오직 이 세 가닥만 이처럼 단단한 창 같으니, 필시 내 목숨을 구할 것이로다.” 곧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털을 뽑아 선기운을 한 입 불고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한 가닥은 금강송곳으로, 한 가닥은 대나무 조각으로, 한 가닥은 솜끈으로 변하였다. 대오리로 활을 당겨 만들고 그 송곳을 매달아 병 밑바닥을 향해 휙휙 마구 뚫으니 구멍 하나가 뚫려 빛이 스며들었다. 기뻐하며 말했다. “재수로다! 재수로다! 이제야 나가겠구나!” 그제야 몸을 변화시켜 빠져나오자 그 병은 다시 서늘해졌다. 어찌하여 서늘해졌는가? 그가 뚫어 버려 음양의 기운이 새어 나갔으므로 그리하여 서늘해진 것이었다. 훌륭한 대성이 털을 거두고 몸을 작게 하여 매미보다 작은 벌레로 변하였으니, 몹시 가볍고 날렵하여 굵기는 수염과 머리카락 같고 길이는 눈썹만 하였다. 구멍으로 기어 나왔으나 곧장 가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노마의 머리 위에 앉아 붙었다. 그 노마가 한참 술을 마시다 홀연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삼제야, 손행자는 이번에 녹았느냐?” 삼마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그럴 때가 되었사옵니까?” 노마가 명령을 내려 병을 메어 올리라 하였다. 그 아래 서른여섯 작은 요괴가 곧 병을 메려 하니 병이 훨씬 가벼워졌다. 당황한 뭇 작은 요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병이 가벼워졌나이다!” 노마가 호통쳤다. “허튼 소리! 보배는 음양이기의 온전한 공이거늘 어찌 가벼워졌단 말이냐!” 그중 억척스러운 작은 요괴 하나가 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시옵소서, 이것이 가볍지 않사옵니까?” 노마가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니 속이 환히 비쳐 왔으므로 참지 못하고 소리쳐 외쳤다. “이 병이 빈 것이니, 텅 비었도다!” 대성이 그의 머리 위에서 또한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였다. “이놈아, 비었으면 나간 것이다!” 뭇 요괴가 듣고 말했다. “달아났다! 달아났다!” 그리고 곧 명령을 내렸다. “문 닫아라! 문 닫아라!” 그 행자가 몸을 한 번 떨고 벗겼던 옷을 거두어 본래 모습을 드러낸 뒤 동굴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욕하며 말했다. “요괴들아, 무례하게 굴지 말라! 병은 뚫려 사람을 담지 못하니, 거두어 뒷간이나 쓰거라!” 기뻐하며 떠들썩하게 구름을 밟고 곧장 당승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 장로는 그곳에서 흙을 모아 향을 삼아 하늘을 향해 축원하고 있었다. 행자가 구름을 멈추고 그가 무슨 축원을 하는지 들으니, 그 장로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말했다. “구름과 노을 속의 여러 신선이시며, 육정육갑과 모든 하늘이시여, 원하옵나니 어진 제자 손행자를 지켜 주소서. 신통이 광대하여 그 법이 끝이 없나이다.” 대성이 이런 말을 듣고 더욱 힘을 내어 구름빛을 거두고 앞으로 다가서며 불렀다. “사부님, 제가 왔나이다!” 장로가 붙잡으며 말했다. “오공아, 네가 수고로웠구나. 네가 먼 높은 산을 살피러 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니 내 몹시 근심하였다. 참으로 이 산중에 무슨 길흉이 있더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금번에 가 본 바 첫째는 동토의 뭇 승려에게 인연과 분복이 있어서요, 둘째는 사부님의 공덕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이며, 셋째 또한 제자의 법력을 입은 것이옵니다!” 앞서 소찬풍으로 꾸며 들어가고 병 속에 갇혔다가 빠져나온 일을 낱낱이 아뢰고 나서 말했다. “이제 존사의 얼굴을 뵈옵게 되었으니 실로 두 세상 사람이옵니다!” 장로가 감사를 다하며 말했다. “너는 이번에 요괴와 겨루어 싸우지 않았느냐?” 행자가 말했다. “싸우지 않았나이다.” 장로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데리고 산을 넘어가지 못하겠구나?” 행자는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소리쳐 말했다. “내가 어찌 사부님을 모시고 산을 넘어가지 못하겠나이까?” 장로가 말했다. “그와 승부를 겨루어 보지도 않고 다만 이렇게 얼버무리는데, 내 어찌 감히 앞으로 나아가겠느냐!”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도 너무 융통성이 없으시옵니다. 늘 하는 말에 외줄은 실이 되지 못하고 외손뼉은 울리지 못한다 하였나이다. 저 마귀가 셋이요 작은 요괴가 천만 명인데, 이 늙은 손에게 홀로 어찌 그들과 겨루어 싸우라 하시나이까?” 장로가 말했다. “소수가 다수를 당하지 못하니 너 홀로도 어려우리라. 팔계와 사오정도 다 재주가 있으니 그들을 모두 데려가 너와 힘을 합하여 산길을 쓸어 맑히고 나를 건너가게 하여라.” 행자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사부님 말씀이 가장 옳사옵니다. 사오정더러 사부님을 지키게 하고 팔계더러 저를 따르게 하옵소서.” 그 멍청한 놈이 당황하여 말했다. “형님은 보는 눈이 없구려! 나는 또 몸이 둔하고 재주라곤 없어, 걸어 다니며 바람이나 짊어질 뿐인데 형님을 따라간들 무슨 이익이 있겠소?”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네가 비록 재주는 없어도 좋게 말해 한 사람이로다. 속담에 방귀도 바람을 더한다 하였나니, 너도 내게 담력을 좀 북돋아 줄 수 있지 않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좋소, 좋소. 부디 나를 좀 데려가 주구려. 다만 급한 고비에는 나를 놀려먹지 말아 주오.” 장로가 말했다. “팔계야, 조심하여라. 나는 사오정과 여기 있겠다.” 그 멍청한 놈이 정신을 가다듬어 위풍을 떨치며 행자와 함께 거센 바람을 타고 구름과 안개를 타고 높은 산으로 뛰어올라 곧 동굴 어귀에 이르니, 동굴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없었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 쇠몽둥이를 잡고 소리를 높여 외쳤다. “요괴야, 문 열어라! 어서 나와 이 늙은 손과 한판 겨루어 보자!” 동굴 안의 작은 요괴가 들어가 아뢰니, 노마가 간담이 서늘하여 말했다. “몇 해째 원숭이가 사납다더니, 그 말이 헛되지 않고 과연 참이로구나!” 두 번째 늙은 요괴가 곁에서 물었다. “형님,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노마가 말했다. “그 행자가 아침에 소찬풍으로 변해 섞여 들어왔으나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였느니라. 다행히 삼현제가 알아보고 그를 병 속에 집어넣었거늘, 그가 재주를 부려 병을 뚫고는 옷까지 거두어 가지고 달아났느니라. 이제 밖에서 싸움을 걸어오는데, 누가 감히 그와 첫 싸움을 겨룰 테냐?”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고, 다시 물어도 대답하는 자가 없어 모두 귀먹고 벙어리인 척하였다. 노마가 노하여 말했다. “우리가 서방 큰길에서 추한 이름을 더럽히고 있는데, 오늘 손행자가 이토록 업신여기거늘 나가 그와 진을 맞대지 않는다면 명망만 떨어뜨리느니라. 내 이 늙은 목숨을 버리고 가 그와 세 합을 겨루어 보리라! 세 합에 이기면 당승은 여전히 우리 입속의 먹이요, 이기지 못하면 그때 문을 닫고 그가 지나가게 하면 되느니라.” 드디어 갑옷을 가져다 입고 문을 열고 앞으로 나갔다. 행자와 팔계가 문 곁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훌륭한 괴물이었다. 쇠 이마와 구리 머리에 보배 투구를 썼는데, 투구의 술이 휘날리며 몹시 빛났다. 번쩍거려 번개를 뽑는 듯한 두 눈이 밝고, 환하여 노을을 펼친 듯한 두 귀밑머리가 날렸다. 갈고리 발톱은 은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톱니 같은 어금니는 끌처럼 촘촘하고 가지런하였다. 몸에는 금갑을 걸쳤는데 실밥 하나 없고, 허리에는 용 무늬 띠를 둘렀는데 기미를 살피는 재주가 있었다. 손에 든 강철 칼은 번쩍번쩍하고, 영웅의 위무가 세상에 드물었다. 한 번 고함지르니 우레가 진동하는 듯하였고, 물었다. “문을 두드리는 자가 누구냐?” 대성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네 손 영감, 제천대성이로다.” 노마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손행자냐? 무엄한 원숭이로구나! 내가 너를 건드리지 않거늘, 너는 어찌하여 여기서 싸움을 걸어오느냐?” 행자가 말했다. “바람이 있어야 물결이 일고, 조수가 없으면 물이 절로 잔잔하느니라. 네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너를 찾아왔겠느냐? 다만 너희 여우 무리와 개 패거리가 한패로 뭉쳐 내 사부님을 잡아먹을 꾀를 하였으므로 이리로 와서 일을 벌인 것이니라.” 노마가 말했다. “네가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내 문 앞에서 떠들어 대니, 혹시 싸우려는 것이 아니냐?” 행자가 말했다. “그렇다.” 노마가 말했다. “너는 너무 날뛰지 말라! 내가 요괴 병사를 불러내어 진세를 벌리고 깃발을 흔들며 북을 울려 너와 맞서 싸운다면, 내가 집에 앉은 호랑이로 너를 업신여긴다고 보일 터이니, 내 그대와 하나씩 하나씩, 오직 단둘이 겨루리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외쳤다. “저팔계야, 비켜서서 그가 이 늙은 손을 어찌하는지 보아라!” 그 멍청한 놈은 참으로 한쪽으로 비켜섰다. 노마가 말했다. “너 이리 오너라. 먼저 나를 위해 말뚝이나 되어 보아라. 내 힘을 다해 네 중대가리를 세 번 내리치고 나면 네 당승을 건너가게 해 주리라. 만약 견디지 못하거든 어서 네 당승을 보내어 내 한 끼 반찬으로 삼아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요괴야, 네 동굴에 종이와 붓이 있거든 꺼내어 나와 계약서나 쓰자. 오늘부터 내년까지 찍어 댄다 해도 나는 진짜로 여기지 않으리라!” 그 노마가 위풍을 떨치며 두 발을 어긋나게 딛고 우뚝 선 채 두 손으로 칼을 들어 올려 대성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다. 이 대성이 머리를 위로 받쳐 올리니 다만 꽝 하는 소리만 들릴 뿐, 머리 가죽은 붉어지지도 않았다. 그 노마가 크게 놀라 말했다. “이 원숭이는 머리가 참으로 단단하구나!”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이 늙은 손은 이러하니라. 타고나기를 구리 머리 쇠 골통이니, 천지건곤에 세상에 둘도 없느니라. 도끼로 찍고 망치로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나니, 어린 시절 일찍이 노군의 화로에 들어갔느니라. 별자리의 성관이 내려와 감독하고, 이십팔수가 공을 들였느니라. 물에 몇 번을 담가도 상하지 않나니, 둘레에 널빤지처럼 힘줄을 깔았느니라. 당승이 오히려 견고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미리 자금고까지 씌웠느니라.” 노마가 말했다. “원숭이야, 말재간 부리지 말라! 내 이 두 번째 칼을 보아라, 결단코 네 목숨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행자가 말했다. “별수 없구나, 어차피 이런 식으로 찍어 대는 수밖에.” 노마가 말했다. “원숭이야, 너는 이 칼을 모르느니라. 금과 불의 화로 속에서 만들고, 신령한 공력으로 백 번 단련하여 달였느니라. 칼날은 세 가지 병략을 따르고, 강인함은 여섯 가지 병법을 좇았도다. 파리의 꼬리를 닮았기도 하고, 흰 구렁이의 허리를 닮았기도 하도다. 산으로 들어가면 구름이 넘실거리고, 바다로 내려가면 물결이 도도하도다. 갈고 닦은 횟수는 헤아릴 길 없고, 달구고 삶기를 몇백 번이었느니라. 깊은 산 옛 동굴에 두었다가, 진에 오르면 공로가 있느니라. 너 이 중의 정수리를 받쳐 보아라. 한 번 베어 넘기면 두 개의 바가지가 되느니라!”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이 요괴는 눈이 없구나! 이 늙은 손을 바가지 통으로 알다니! 좋다, 잘못 찍었거든 잘못 비켜 주마. 다시 한 번 찍어 보아라, 어찌되는지.” 그 노마가 칼을 들어 올리고 또 내리치니, 대성이 머리를 받쳐 올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쪽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땅 위에서 한 번 굴러 두 개의 몸으로 변하였다. 그 요괴는 그것을 보고 당황하여 칼을 내려놓았다. 저팔계가 멀리서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노마가 두 번 찍어 좋구나! 이제는 네 사람이 되었잖으냐?” 노마가 행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분신법을 쓸 줄 안다더니, 어찌하여 그 법을 내 앞에서 쓰느냐!” 대성이 말했다. “분신법이란 무엇이냐?” 노마가 말했다. “어찌하여 먼저 너를 한 번 찍었을 때는 움직이지 않더니, 이제 너를 한 번 찍으니 두 사람이 되었느냐?” 대성이 웃으며 말했다. “요괴야, 절대 겁내지 말라. 만 번을 찍어 대면 두만 명을 돌려주마!” 노마가 말했다. “이 원숭이야, 너는 분신만 할 줄 알고 거두지는 못하느니라. 네가 만약 하나로 거두어 모을 재주가 있거든 나를 몽둥이로 한 번 쳐 보아라.” 대성이 말했다. “거짓말은 사절이니라. 너는 세 번 찍겠다면서 나를 두 번만 찍었고, 나더러 한 번 치라 하였으니, 만약 몽둥이 반 번을 더 친다면 나는 성이 손도 아니니라!” 노마가 말했다. “옳다, 옳다.” 훌륭한 대성이 곧 몸을 움츠려 올리며 한 번 굴러 다시 하나의 몸이 되어, 몽둥이를 뽑아 들고 머리 위로 내리치니, 그 노마가 칼을 들어 막으며 말했다. “무례한 원숭이로구나! 무슨 상여 놈이나 든 몽둥이로 감히 남의 집 문 앞에 와서 사람을 치느냐?” 대성이 호통쳤다. “네가 이 몽둥이를 묻는다면, 하늘 위와 땅 아래에 다 명성이 있느니라.” 노마가 말했다. “어찌하여 명성이 있다는 것이냐?” 그가 말했다. “몽둥이는 아홉 번 갈아 낸 빈철을 단련한 것이요, 노군이 친히 화로 가에서 벼려 낸 것이니라. 우왕이 구하여 신진이라 이름 붙이고, 사해와 팔하가 그것을 증험하였느니라. 가운데에는 별자리를 은근히 펼쳐 놓았고, 양쪽 끝은 황금 조각으로 감싸 입혔느니라. 무늬가 빽빽이 박혀 귀신도 놀라거늘, 위에는 용 무늬와 봉황 전서를 새겼느니라. 이름은 영양봉 한 자루라, 바다 깊은 곳에 감추어져 사람이 보기 어렵더니라.형체를 이루어 변화하여 날아오를 제, 오색 노을 빛이 펄펄 날리며 나타나느니라. 이 늙은 손이 도를 얻어 가지고 산으로 돌아와, 무궁한 변화를 많이 겪었느니라. 때로는 독만큼 굵어지기도 하고, 혹은 가늘어져 쇠줄만큼 작아지기도 하느니라. 굵어지면 남악 같고 가늘어지면 바늘 같으니, 길고 짧음이 내 마음 따라 변하느니라. 가볍게 움직이면 채운이 생기고, 환하게 날아오름이 번개 같으니라. 으스스한 냉기가 사람에게 스며들어 춥고, 줄줄이 살기가 허공에 나타나느니라. 용을 항복받고 호랑이를 굴복시키며 몸에 지니고, 하늘 끝 바다 모퉁이를 두루 노닐었느니라. 일찍이 이 몽둥이로 천궁을 뒤집어, 위풍으로 반도연을 흩어 버렸느니라. 천왕도 겨루어 이기지 못하였고, 나타도 맞서 싸우기 어려웠느니라. 몽둥이에 맞은 여러 신은 숨 곳이 없고, 천병 십만이 모조리 달아났느니라. 벼락 같은 여러 장수가 영소를 지켰건만, 몸을 날려 통명전까지 쳐 올라갔느니라. 조정을 맡은 천사들이 모두 놀라고, 수라를 호위하던 신하들이 모두 어지러웠느니라. 몽둥이 들어 북두궁을 뒤집고, 고개 돌려 남극원을 흔들어 열었느니라. 금궐의 천황이 몽둥이의 흉포함을 보고 여래를 특별히 청하여 나를 만나게 하였느니라. 병가의 승패는 스스로 그러하거니와, 곤고와 재앙과 위험은 가릴 길이 없더니라. 오백 년을 꼬박 줄줄이 견뎌 내니 남해보살의 권유에 힘입었느니라. 대당에 출가한 중 하나 있어, 하늘을 향해 큰 서원을 세웠느니라. 왕사성에서 귀혼을 건지고, 영산회에서 경전을 구하려 하였느니라. 서방으로 가는 길에 요괴가 있어, 행동이 몹시 불편하더니라. 이미 이 쇠몽둥이가 세상에 둘도 없음을 알고, 길에서 나를 동무로 청하였느니라. 사악한 마귀는 닿기만 하면 저승으로 가고, 살은 홍진이 되고 뼈는 가루가 되느니라. 곳곳의 요정이 몽둥이 아래에서 죽어, 만을 논하고 천을 헤아려도 셈이 안 되느니라. 위로는 두우궁을 쳐 부수고, 아래로는 삼라전을 눌러 부수었느니라. 하늘의 장수가 일찍이 구요를 쫓아가고, 지부에서는 목숨을 재촉하던 판관을 때려 다쳤느니라. 허공에서 내리쳐 산천을 진동하니, 태세의 새 칼보다 나으니라. 오로지 이 몽둥이에 힘입어 당승을 지키니, 천하의 요마를 모조리 쳐부수었느니라!” 그 마왕이 그 말을 듣고 벌벌 떨며 목숨을 걸고 칼을 들어 내리쳤다. 원숭이 임금은 싱글싱글 웃으며 쇠몽둥이를 들어 앞으로 받아 나갔다. 그 둘은 먼저 동굴 앞에서 버티며 싸우다가, 이내 뛰어올라 모두 허공에서 치열하게 겨루었다.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이여. 천하의 바닥을 정한 신진봉이요, 몽둥이 이름은 여의라 세상에 높도다. 수단을 자랑하니 마두가 성을 내고, 큰 칼을 쥐니 법력이 호걸이로다. 문 밖에서 다투는 것은 가까이 볼 만하거니와, 허공에서 겨루는 어찌 서로 용서하리오! 하나는 마음 따라 얼굴을 바꾸고, 하나는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허리를 늘이도다. 싸움이 벌어져 하늘 가득 구름 기운이 무겁고, 들판 가득 안개가 펄펄 날린다. 저 하나는 몇 번이나 당삼장을 먹으려 뜻을 세웠거늘, 이 하나는 널리 법력을 펼쳐 당나라를 지키도다. 모두 부처가 경전을 전한 까닭이니, 사악함과 바름이 갈리매 한스럽고 괴로운 교전이로다. 그 노마가 대성과 스무여 합을 겨루어도 승부가 갈리지 않았다. 그런데 팔계가 아래에서 그 둘이 멋지게 싸우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갈퀴를 뽑아 들고 바람을 타고 뛰어올라 마왕의 얼굴을 향해 내리찍었다. 그 마왕이 당황하였는데, 팔계가 처음에만 기세 있고 끝이 없는 성질이라 엉겁결에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다만 입이 길고 귀가 크며 손이 억세고 갈퀴가 흉포하다고 여겨, 진을 버리고 칼을 내던진 채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대성이 호통쳤다. “쫓아라! 쫓아라!” 이 멍청한 놈이 위풍을 믿고 쇠갈퀴를 들어 올려 급히 요괴를 뒤쫓아 내려갔다. 노마가 그가 가까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비탈 앞에 우뚝 서서 바람을 마주한 채 몸을 한 번 흔들어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는 큰 입을 벌려 팔계를 삼키려 하였다. 팔계가 겁을 먹고 황급히 몸을 빼어 풀숲으로 파고들었으니, 가시덤불이 찌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긁혀 머리가 터지는 것도 돌보지 않은 채 벌벌 떨며 풀 속에서 방울 소리만 듣고 있었다. 뒤이어 행자가 쫓아오자 그 요괴도 입을 벌려 삼키려 하였는데, 도리어 그의 계략에 걸려들었다. 행자가 쇠몽둥이를 거두고 마주 나아가니 노마가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렸다. 그 멍청한 놈은 겁에 질려 풀 속에서 투덜투덜 중얼거리며 원망하여 말했다. “이 필마온놈은 분별이 없구나! 저 요괴가 너를 먹으러 왔거늘 어찌하여 달아나지 않고 도리어 마주 나아갔단 말이냐! 저 한 입에 배 속으로 넘어갔으니, 오늘은 그래도 중이거니와 내일은 큰 똥이 되고 말겠구나!” 그 마왕은 승리를 거두고 돌아갔다. 이 멍청한 놈은 그제야 풀을 파고 나와 옛길로 슬그머니 되돌아왔다. 각설하고, 삼장은 그 산비탈 아래에서 사오정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는데, 팔계가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삼장이 크게 놀라 말했다. “팔계야, 너는 어찌 이리 형편이 없느냐? 오공은 어찌 보이지 않느냐?” 멍청한 놈이 엉엉 울며 말했다. “사형이 요괴에게 한 입에 통째로 삼켜졌나이다!”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땅에 넘어져 한참 동안 발을 구르며 가슴을 치고 말했다. “제자야! 너만 요괴를 항복받는 데 능하여 나를 이끌고 서천에 가 부처님을 뵙게 하리라 하였거늘, 어찌 오늘 이 괴물의 손에 죽게 되었단 말이냐! 괴롭구나, 괴롭구나! 내 제자와 무리의 공로가 이제 모두 흙먼지로 화하였도다!” 그 사부님은 몹시 고통스러워하였다. 보라, 그 멍청한 놈은 사부님을 위로하러 오지는 않고 도리어 불렀다. “사화상, 짐을 가져오너라. 우리 둘이 나누자.”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 나누어 어찌하겠소?” 팔계가 말했다. “나누면 각자 흩어지는 것이오. 너는 유사하로 돌아가 또 사람을 잡아먹고, 나는 고노장으로 가 내 아내나 보리라. 흰 말은 팔아 사부님께 수의나 한 벌 사 드리고 장례를 치러 드리자.” 장로가 씩씩거리며 이 말을 듣고는 황천을 부르며 소리 높여 통곡하였는데, 그동안의 일은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그 노마는 행자를 삼키고 제 계략이 이루어졌다고 여겨 곧장 본동으로 돌아왔다. 뭇 요괴가 나와 맞으며 싸움의 공을 물으니 노마가 말했다. “하나를 잡아 왔느니라.” 이마가 기뻐하며 말했다. “형님께서 잡은 이가 누구시옵니까?” 노마가 말했다. “손행자니라.” 이마가 말했다. “어디에 잡아 두셨사옵니까?” 노마가 말했다. “내 한 입에 뱃속으로 삼켜 버렸느니라.” 세 번째 마두가 크게 놀라 말했다. “큰형님, 내가 그대에게 미리 일러 두지 않았소. 손행자는 먹을 것이 못 되오!” 그 대성이 뱃속에서 말했다. “몹시 먹을 만하오! 또 주림을 견디니 결코 배고프지 않소.” 그 바람에 작은 요괴가 당황하여 말했다. “대왕이시여, 큰일이옵니다! 손행자가 대왕의 뱃속에서 말을 하옵니다!” 노마가 말했다. “말하는 것이 두려우냐! 그를 먹을 재주가 있거늘 어찌 그를 다스릴 재주가 없단 말이냐? 너희는 어서 소금 탄 끓인 물을 좀 데워 오너라. 내 뱃속으로 들이부어 그놈을 게워 내게 한 뒤, 천천히 지져 술안주로 먹으리라.” 작은 요괴가 참으로 소금물 반 동이를 타 왔다. 늙은 요괴가 단숨에 들이켜고는 입을 벌린 채 있는 힘껏 한 번 게워 보았으나, 그 대성이 뱃속에 뿌리를 내린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또 목구멍을 막고 밖으로 게워 내니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하여 쓸개즙까지 다 터질 지경이었으나 행자는 갈수록 움직이지 않았다. 노마가 숨을 몰아쉬며 불렀다. “손행자야, 너는 나오지 않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아직 일러! 나가지 않고 있는 것이 딱 좋구나!” 노마가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나오지 않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 요괴야, 너는 참으로 융통성이 없구나. 내가 중이 된 이래로 몹시 검소하게 지내거든, 요즘 가을이 서늘하여 나는 아직 홑겹 장삼을 입고 있느니라. 이 뱃속은 오히려 따뜻하고 바람도 스미지 않으니, 겨울을 지내고 나서야 나오겠노라.” 뭇 요괴가 그 말을 듣고 모두 말했다. “대왕이시여, 손행자가 대왕의 뱃속에서 겨울을 나려 하옵니다!” 노마가 말했다. “그가 겨울을 나려 한다면 내가 참선에 들어가 옮기는 법을 써서 겨울 내내 밥을 먹지 않으면 그 필마온을 굶겨 죽일 수 있느니라!” 대성이 말했다. “이놈아, 너는 사정을 모르는구나! 이 늙은 손이 당승을 모시고 경을 구하러 오며 광동 땅을 지나올 때 접는 솥 하나를 가져왔노라. 들어와서 잡동사니를 삶아 먹으려 하니, 네 이 안의 간이며 창자며 위며 허파를 곱게곱게 음미하면 청명 때까지 노자도 넉넉하리라!” 그 이마가 크게 놀라 말했다. “형님, 이 원숭이는 정말 그럴 수 있는 놈이옵니다!” 삼마가 말했다. “형님, 잡동사니를 먹는 것은 그렇다 치고, 어디에 솥을 걸지 모르겠소.” 행자가 말했다. “세 갈래 뼈 위에 솥을 걸면 좋소.” 삼마가 말했다. “큰일 났소! 만약 솥을 걸고 불을 때어 연기가 콧구멍으로 올라가면 재채기를 하지 않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염려 마라! 이 늙은 손이 금고봉을 정수리로 찔러 넣어 구멍 하나를 뚫어 주마. 하나는 천창이 되고, 둘은 연기 구멍이 되리라.” 노마가 그 말을 듣고 겁내지는 않는다고 하나 또한 마음이 놀라, 하는 수 없이 간을 키워 외쳤다. “동생들아, 겁내지 말라. 내 그 약술을 가져오너라. 내 몇 잔 마셔 내려 보내어 그 원숭이 놈을 약으로 죽여 버리리라!”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 늙은 손이 오백 년 전 천궁을 크게 뒤집을 적에 노군의 단약, 옥황의 술, 왕모의 복숭아며 봉수의 골수와 용의 간까지, 그런 것들 중 내가 먹어 보지 않은 것이 있더냐? 무슨 약술이기에 감히 나를 독살하려 하느냐?” 그 작은 요괴가 참으로 약술 두 병을 걸러 한 잔 가득 부어 노마에게 드렸다. 노마가 손에 받아 들자 대성이 뱃속에서 곧 술 냄새를 맡고 말했다. “그에게 마시게 하지 말라!” 훌륭한 대성이 머리를 한 번 비틀어 나팔 같은 입으로 변하여 그의 목구멍 아래에 벌리고 있었다. 그 요괴가 꿀꺽 삼키니 행자가 꿀꺽 받아 마셨다. 두 번째 잔을 삼키니 행자가 꿀꺽 또 받아 마셨다. 줄곧 일곱 잔 여덟 잔을 삼켰으나 모두 그가 받아 마셨다. 노마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만 마시겠노라. 이 술은 평소 두 잔만 마셔도 뱃속이 불처럼 달아오르거늘, 방금 일고여덟 잔을 마셨는데도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는구나!” 알고 보니 이 대성은 술을 많이 못 마셨으므로 그의 일고여덟 잔을 받아 마시고는 뱃속에서 술주정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줄곧 틀을 잡고, 네 발로 엎드렸다 일어서고, 발길질을 해 대고, 간을 붙잡고 그네를 타고, 물구나무를 서고, 재주를 넘으며 마구 춤을 추었다. 그 괴물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땅에 쓰러졌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6회 심신거사마귀성(心神居舍魔歸性) · 목모동강괴체진(木母同降怪體眞) 이야기는 이러하다. 손대성이 노마의 뱃속에서 한참을 버티고 있는데, 그 마두는 먼지 속에 거꾸러져 숨소리도 기운도 없었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죽은 게로구나 싶어 손을 놓아 보기도 하였다. 그러자 마두가 겨우 숨을 되찾고는 한마디 불렀다. “대자대비하신 제천대성 보살이시여!” 행자가 그것을 듣고 말했다. “이놈아, 쓸데없는 수고 말고 글자나 몇 개 아껴서 그저 손외공이라 부르거라.” 그 요마는 목숨이 아까웠으므로 참으로 그리 불렀다. “외공! 외공! 제가 잘못하였나이다! 그릇되어 그대를 삼켰더니, 그대는 이제 도리어 나를 해치시는구려. 부디 대성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땅강아지나 개미도 목숨을 아끼는 마음을 가엾이 여기시어 내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스승님을 이 산 넘어 보내 드리겠나이다.” 대성이 비록 영웅이나 당승의 앞길을 몹시 아꼈으므로, 요마가 애걸하는 것을 보자, 본래 아첨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선한 마음으로 돌아서서 불렀다. “요괴야, 내가 너를 살려 주겠다만, 너는 내 스승님을 어찌 보내겠느냐?” 노마가 말했다. “이곳에는 금이나 은, 구슬이며 비취, 마노, 산호, 유리, 호박, 대모 같은 진기한 보물을 보내 드릴 것이 없사옵니다. 저희 형제 셋이 향등나무 가마 한 채를 메고 스승님을 이 산 넘어 모셔 드리겠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가마를 메어 보내 준다면 보물을 받는 것보다 낫구나. 입을 벌려라, 내가 나가마.” 그 마두는 참으로 입을 벌렸다. 그 삼마가 앞으로 다가와 노마에게 조용히 말했다. “형님, 그가 나올 때에 입을 아래로 꽉 물어 원숭이를 잘게 씹어 뱃속으로 넘기시면, 그가 다시는 형님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오.” 행자는 안에서 그것을 듣고는 먼저 나가지 않고 금고봉을 내밀어 그를 한번 시험해 보았다. 그 요괴는 과연 아래로 한 입 깨물었는데,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앞니가 모조리 부서져 버렸다. 행자가 봉을 거두며 말했다. “좋은 요괴로다! 내가 도리어 네 목숨을 살려 주고 나오는데, 네가 도리어 나를 물어 내 목숨을 해치려 하다니! 나는 나가지 않겠다. 산 채로 너를 골려 죽이겠다! 안 나간다! 안 나간다!” 노마가 삼마를 원망하며 말했다. “아우야, 네가 제 식구를 제 식구가 골탕 먹이는구나. 그를 나오게만 하면 될 것을, 네가 나더러 그를 물라 하였느니라. 그는 물리지도 않았건만 도리어 내 잇몸이 부어 터져 아프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삼마는 노마가 자기를 탓하는 것을 보고는 격장법을 하나 써서,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쳤다. “손행자야, 네 이름을 들으매 우레가 귀를 꿰뚫는 듯하다 하더니, 네가 남천문 밖에서 위세를 부리고 영소전 아래에서 세력을 뽐냈다고들 하더구나. 그런데 이제 서천 가는 길에서 요괴를 항복받고 괴물을 결박하는 것을 보니, 원래 별것 아닌 원숭이 놈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어찌 별것 아니란 말이냐?” 삼괴가 말했다. “호한은 천 리를 가는 나그네요, 만 리를 가서 이름을 전하는 법이니라. 네가 나와서 나와 겨루어야 비로소 호한이거늘, 어찌 사람 뱃속에서 짓을 하느냐! 그것이 별것 아니라면 무엇이 별것 아니겠느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옳다, 옳다, 옳지! 내가 지금 그의 창자를 끊어 뜯고 그의 간을 터뜨려 이 요괴를 골려 죽인들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마는, 참으로 내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로다. 좋다! 좋다! 입을 벌려라, 내가 나가서 너와 겨루마. 다만 네 이 굴 어귀는 좁아서 병장기를 쓰기 어려우니, 넓은 곳으로 가야 하겠다.” 삼마가 그 말을 듣고는 곧 크고 작은 요괴를 점고하니, 앞뒤로 삼만이 넘는 정괴가 모두 예리한 병장기를 잡고 굴에서 나와 삼재진세를 벌여, 오로지 행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려 일제히 싸움에 나서려 하였다. 그 이괴는 노마를 부축하여 굴 밖으로 곧장 나가 외쳤다. “손행자야! 호한이거든 나오너라! 여기가 곧 싸움터니, 한번 겨뤄 보자!” 대성은 그의 뱃속에서 까마귀가 울고 까치가 떠들며 학이 울고 바람 소리 나는 것을 듣고, 밖이 넓은 곳임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나가지 않으면 그에게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간다면 이 요정은 사람의 낯을 하고 짐승의 마음을 품은 자로다. 먼저 내 스승님을 보내 주겠다 하고는 나를 꾀어 내어 물려 하더니, 이제 또 여기 병사를 부리고 있구나. 좋다, 좋다, 그에게 양쪽이 다 좋은 수를 써 주마. 나가기는 나가되, 그의 뱃속에 뿌리 하나를 내려 두리라.” 곧 손을 돌려 꼬리의 털 하나를 뽑아 선기 한 입을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노끈 하나로 변하였다. 굵기는 머리카락만 한데 길이는 사십 장이나 되었다. 그 노끈을 밖으로 내밀자 바람을 만나자마자 굵어졌다. 한쪽 끝을 요괴의 심장과 간에 매어 묶고 살아 있는 고리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는데, 그 고리는 당기지 않으면 조이지 않고 당기면 곧 아팠다. 그리고 한쪽 끝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나가서 그가 내 스승님을 보내 주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보내 주지 않고 칼과 병장기를 함부로 휘두른다면, 나도 그와 싸울 겨를이 없으니 이 노끈만 잡아당기면 내가 그의 뱃속에 있는 것과 같으리라!” 또 몸을 아주 작게 줄여 밖으로 기어 나와 목구멍 아래까지 이르렀다가, 요괴가 네모진 입을 크게 벌리고 위아래 강철 같은 이빨을 벌린 칼날처럼 늘어놓은 것을 보고는 문득 이렇게 헤아렸다. “안 된다! 안 된다! 입으로 나가서 이 노끈을 당기면 그가 아파서 아래로 꽉 깨물 터인즉, 끊어져 버리지 않겠느냐? 이빨 없는 곳으로 나가야겠다.” 훌륭한 대성이로다, 노끈을 정리하여 그의 위턱을 따라 앞으로 기어 올라가 그의 콧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노마의 코가 근질거려 “에취” 하는 소리와 함께 재채기를 한 번 하니, 행자가 튀어 나왔다. 행자는 바람을 만나자 허리를 한번 펴더니 곧 삼 장이나 길어져, 한 손으로 노끈을 잡고 한 손으로 철봉을 들었다. 그 마두는 분별도 없이 그가 나오는 것을 보자 강철 칼을 들어 얼굴을 향해 내리쳤으나, 이 대성은 한 손으로 철봉을 휘둘러 맞받았다. 또 이괴는 창을 쓰고 삼괴는 극을 들어, 머리도 얼굴도 가리지 않고 마구 달겨들었다. 대성은 노끈을 느슨하게 하고 철봉을 거두어 급히 몸을 날려 구름을 타고 달아났으니, 본래 그 무리의 작은 요괴들에게 둘러싸이면 일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영 밖으로 뛰어나가 저 널따란 산마루에 이르러 구름을 내리고, 두 손으로 노끈을 힘껏 한번 잡아당기니 노마의 마음속이 비로소 아팠다. 그가 아파서 위로 한번 버둥거리자 대성이 다시 아래로 한번 당겼다. 여러 작은 요괴가 멀리서 그것을 보고 일제히 큰 소리로 외쳤다. “대왕이시여, 그를 건드리지 마소서! 가게 두시옵소서! 이 원숭이는 절기도 알지 못하고 청명절이 아직 이르거늘 저 아래에서 연을 날리고 있사옵니다!” 대성이 그 말을 듣고 힘을 주어 한번 걷어차니, 그 노마가 허공에서 퍼덕퍼덕 물레처럼 휘돌며 먼지 속으로 떨어져 내려, 산비탈 아래의 단단한 누른 흙에 이 척이나 파이는 구덩이를 만들었다. 이괴와 삼괴가 놀라서 함께 구름을 내려 앞으로 나서 노끈을 붙잡고 비탈 아래에 꿇어앉아 애걸하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그대는 도량이 넓고 바다 같은 신선이라 하더니, 뉘라서 쥐 배에 달팽이 창자를 지닌 무리인 줄 알았으리이까. 참으로 그대를 꾀어 내어 진을 마주하려 하였사온데, 그대가 우리 형님의 마음 위에 노끈 한 가닥을 매어 두실 줄이야 뜻밖이었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무리의 망된 요마들아, 몹시 무례하구나! 지난번에는 나를 꾀어 내어 곧바로 나를 물었고, 이번에는 나를 꾀어 내어 또 진을 벌려 나를 적으로 대하느니라. 저 몇만 요병이 나 하나를 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이니, 끌고 가마! 끌고 가서 내 스승님께 뵈이겠다!” 그 요괴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스승님을 이 산 넘어 보내 드리겠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목숨을 살리려거든 칼을 들어 노끈을 끊어 버리면 그만이지.” 노마가 말했다. “할아버지시여, 밖에 있는 것은 끊는다 한들 여기 안에 있는 것은 마음에 매여 있고, 목구멍은 또 메슥메슥하여 구역질이 나니,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거든 입을 벌려라, 내가 다시 들어가 노끈을 풀어 내마.” 노마가 당황하여 말했다. “이번에 들어가시면 또 나오지 않으려 하실 터이니, 난처하외다! 참으로 난처하외다!” 행자가 말했다. “나에게는 밖에서도 안쪽 노끈 머리를 풀 재주가 있느니라. 풀어 주면 참으로 내 스승님을 보내 주겠느냐?” 노마가 말했다. “풀어 주시기만 하면 보내 드리겠나이다.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나이다.” 대성이 참된 것을 밝혀내고는 곧 몸을 한번 떨어 털을 거두니, 그 요괴의 마음이 곧 아프지 않게 되었다. 이는 손대성이 모양을 감춘 법술이라, 털로 그의 마음을 매어 두었으니 털을 거두자 아프지 않게 된 것이었다. 세 요괴가 몸을 날려 일어나 사례하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돌아가시어 당승께 잘 아뢰시옵고 행장을 수습해 두시옵소서. 저희가 곧 가마를 메어 보내 드리겠나이다.” 여러 요괴가 창과 방패를 거두어 모두 굴로 돌아갔다. 대성이 노끈을 거두어 산 동쪽으로 곧장 돌아오는데, 멀리 당승이 땅바닥에 누워 뒹굴며 통곡하는 것이 보였고, 저팔계와 사오정은 보따리를 풀어 행장을 몫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행자는 속으로 몰래 탄식하며 말했다. “말할 것도 없구나. 틀림없이 팔계가 스승님께 내가 요정에게 잡아먹혔다고 일러바쳤을 터이고, 스승님은 나를 잃고 아파 우시는 터인데, 그 멍청이는 물건을 나누어 흩어지려 하는구나. 어! 과연 그런 뜻인지 모르겠으니, 내가 한번 불러 보자.” 구름에서 내려와 외쳤다. “스승님!” 사오정이 그것을 듣고 팔계를 원망하며 말했다. “너는 관 받침대인가, 오직 남만 해치는구나! 사형은 죽지도 않았는데 네가 죽었다고 하여 이곳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저기서 부르지 않느냐?” 팔계가 말했다. “나는 분명히 그가 요정에게 한 입에 삼켜지는 것을 보았소. 날짜와 시각이 좋지 않아 저 원숭이가 혼을 드러내러 온 게지.” 행자가 앞으로 다가가 팔계의 얼굴을 한 웅큼 쥐고 손바닥으로 한 대 쳐서 비틀거리게 하며 말했다. “이 둔한 놈아! 내가 무슨 혼을 드러내느냐?” 멍청이가 얼굴을 감싸 쥐며 말했다. “형님, 그대는 참으로 저 요괴에게 잡아먹혔소. 그대가, 그대가 어찌하여 다시 살아났소?” 행자가 말했다. “너처럼 쓸모없는 고름주머니 같으니라고! 그가 나를 삼켰기에 나는 그의 창자를 움켜쥐고 그의 허파를 비틀었으며, 또 이 노끈으로 그의 마음을 꿰어 매어 당기니 그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하나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하기에, 내가 그제야 그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 이제 가마를 메어 내 스승님을 이 산 넘어 보내 드리러 온다.” 그 삼장이 그 말을 듣고는 벌떡 일어나 행자에게 몸을 굽히며 말했다. “제자야, 네가 고생이 많구나! 오능의 말을 믿었더라면 나는 벌써 죽었으리라!” 행자가 주먹을 휘둘러 팔계를 때리며 꾸짖었다. “이 겨만 먹는 멍청아, 몹시 게으르고 나태하여 사람 구실을 못 한다! 스승님,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옵소서. 저 요괴가 곧 스승님을 보내 드리러 올 것이옵니다.” 사오정도 몹시 부끄러워하며 급히 얼굴을 가리고는 행장을 수습하고 말에 안장을 얹었으니, 모두 길 위에서 기다리는 동안의 일은 이쯤 해 두기로 한다. 각설하고 세 마두가 무리의 정괴들을 거느리고 굴로 돌아왔는데, 이괴가 말했다. “형님, 나는 손행자가 아홉 머리에 여덟 꼬리 달린 줄 알았더니, 원래 이런 조그만 원숭이었소! 형님께서 그를 삼키지 않으셨어야 하였소. 그저 그와 겨루었더라면 그가 어찌 우리를 당해 내었겠소! 굴 안의 이 몇만 요정이 침만 뱉어도 그를 죽이고도 남았을 터인데, 형님께서는 도리어 그를 뱃속에 삼키셨소. 그러자 그가 법술을 부려 형님을 고통받게 하였으니, 어찌 감히 그와 겨루려 하겠소? 아까 당승을 보내 드린다 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소. 실은 형님의 목숨이 급하였기에 그를 꾀어 낸 것이니, 결코 그를 보내지 마시옵소서!” 노마가 말했다. “아우가 보내지 말자 하는 까닭은 무엇이오?” 이괴가 말했다. “형님께서 나에게 작은 요괴 삼천만 주시어 진세를 벌리게 하시옵소서. 내게는 이 원숭이 놈을 사로잡을 재주가 있소!” 노마가 말했다. “삼천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예 본영을 일으켜 데려가도 좋으니, 그를 사로잡기만 하면 모두에게 공이 되느니라.” 그 이마가 곧 작은 요괴 삼천을 점고하여 큰길 가로 곧장 나가 진을 벌리고, 남기수 하나를 시켜 오가며 전하게 하였다. “손행자야! 일찍 나오너라. 우리 이대왕 할아버지와 싸우자!” 팔계가 그것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형님, 늘 하는 말에 거짓말은 고향 사람은 속이지 못한다 하였거늘, 와서 곧바로 헛것을 부려 귀신이나 부리는구려! 요괴를 항복받았다 하여 곧 가마를 메어 스승님을 보내 드린다더니, 또 와서 싸움을 청하니 어찌된 일이오?” 행자가 말했다. “노괴는 이미 내게 항복받았기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손 자 하나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 것이오. 틀림없이 이 요마가 우리를 보내는 것이 분하지 않아 싸움을 청하는 것이니라. 내 말이오, 아우여, 저 요정도 형제가 셋이라 이토록 의리가 있거늘, 우리 형제도 셋이거늘 어찌 의리가 없겠느냐? 내가 이미 대마를 항복받았으니 이마가 나오거든 네가 나가 그와 한번 겨루어 보는 것도 무방하지.” 팔계가 말했다. “그 따위가 무서우면 어쩌겠소! 내가 가서 한 판 때려 오겠소!” 행자가 말했다. “가려거든 가거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가기는 가겠는데 그 노끈을 내게 좀 빌려 주시오.” 행자가 말했다. “네가 어디에 쓰려느냐? 너는 뱃속으로 기어들 갈 재주도 없거니와 그의 마음에 매어 둘 재주도 없으니,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 팔계가 말했다. “나는 이 허리춤에 매어 목숨줄로 삼으려 하오. 형님과 사오정이 뒷부분을 잡고 나를 내보내 주면, 내가 나가 그와 겨루겠소. 이길 만하다 싶으면 형님이 노끈을 느슨하게 하여 나를 놓아 주시오, 내가 그를 사로잡을 터이니. 만일 그에게 지거든 나를 끌어당겨 주어 그에게 끌려가지 않게 하시오.” 행자는 참으로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멍청이를 한번 골려 주는 것도 좋겠구나!” 곧 노끈을 그의 허리에 매어 주고 그를 부추겨 싸움에 내보냈다. 그 멍청이는 갈고랑이를 들고 산비탈로 달려 올라가며 외쳤다. “요정아 나오너라! 너희 돼지 조상님과 한번 붙어 보자!” 그 남기수가 급히 보고하였다. “대왕이시여, 입이 길고 귀가 큰 중 하나가 왔사옵니다.” 이괴가 곧 진영에서 나와 팔계를 보자 말도 붙이지 않고 창을 비껴 들어 얼굴을 향해 찔러 왔다. 이 멍청이는 갈고랑이를 들어 앞으로 나서 맞받았다. 그 둘이 산비탈 앞에서 손을 맞대어 겨루었으나 칠팔 회합이 되기도 전에 멍청이의 손에 힘이 풀려 요마를 당해 내지 못하고, 급히 고개를 돌려 외쳤다. “사형, 큰일이오! 목숨줄을 당기시오, 목숨줄을 당기시오!” 이쪽에서 대성이 그 말을 듣고는 도리어 노끈을 느슨하게 하여 내던져 버렸다. 그 멍청이는 싸움에 져서 뒤로 물러나 달아났다. 본래 그 노끈은 끌려 갈 때에는 느끼지 못하였으나 되돌아올 때에는 느슨해진 탓에 도리어 발에 걸려, 제 발에 걸려 한 번 넘어지고 일어나 또 한 번 넘어졌다. 처음에는 비틀거리며 넘어지더니 나중에는 얼굴을 땅에 박고 넘어졌다. 요정에게 따라잡혀 코를 펼치니, 마치 교룡과 같아서 팔계를 코로 한 번 감아 버리고는 승리를 거두어 굴로 돌아왔다. 여러 요괴가 개선가를 함께 부르며 일제히 몰려 돌아갔다. 이 비탈 아래에서 삼장이 그것을 보고는 행자를 또 나무라며 말했다. “오공아, 오능이 네가 죽기를 바란다고 한들 어찌 그를 탓하랴! 너희 형제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오직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만 품었구나! 그가 저토록 목숨줄을 당기라 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당기지 않고 도리어 줄을 내던졌느냐? 이제 그가 해를 당하게 되었으니 어찌하려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도 지나치게 편드시고 지나치게 마음이 기우시옵니다! 그만두시옵소서. 늙은 손오공이 잡혀갔을 때에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시더니, 어차피 목숨을 버릴 재목이라 여기셨소? 이 멍청이가 이제 막 사로잡혔는데 스승님은 나를 탓하시옵니다. 그에게도 고초를 좀 겪게 하여야 경을 구하는 일이 어려움을 알 것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네가 갈 때에 내가 어찌 걱정하지 않았겠느냐? 네가 변화할 줄 아니 결단코 몸을 다치지는 않으리라 여겼느니라. 저 멍청이는 몸집이 크고 둔하며 또 날아오를 줄도 모르니, 이번에 가면 길한 일은 적고 흉한 일이 많을 터인즉, 네가 가서 그를 좀 구해 주어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원망하지 마시옵소서. 제가 가서 그를 구해 오겠나이다.” 급히 몸을 날려 산을 따라잡아 올라가며 속으로 미워하여 말했다. “이 멍청이가 내가 죽기를 빌었으니, 그에게 시원한 맛을 주지 말자! 저 요정이 그를 어찌 다루는지 따라가 보다가, 그가 죄를 좀 겪게 한 뒤에 가서 구해 주리라.” 곧 수인을 맺고 진언을 외우며 몸을 한번 흔들어 변하니, 곧 매미충으로 변하여 날아가 팔계의 귀밑에 붙어, 그 요정과 함께 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마는 작은 요괴 삼천을 거느리고 북과 나팔을 크게 울리며 굴 어귀에 이르러 진을 치고는, 스스로 팔계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며 말했다. “형님, 내가 하나 잡아 왔소.” 노괴가 말했다. “이리 가져와 보아라.” 그가 코를 느슨하게 풀어 팔계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이놈이 아니오?” 노괴가 말했다. “이놈은 쓸모가 없구나.” 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대왕이시여, 쓸모없는 놈은 놓아 보내시고 쓸모 있는 놈을 찾아 잡아 오시옵소서.” 삼괴가 말했다. “쓸모가 없다 하나 당승의 제자 저팔계이니라. 우선 묶어 뒷쪽 연못에 담가 두었다가, 털이 빠져 나가거든 배를 갈라 소금에 절여 말려 두고, 날이 흐린 날에 술안주로 삼자.” 팔계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망하였다, 망하였다! 절인 고기를 파는 요괴를 만났구나!” 여러 요괴가 일제히 손을 대어 멍청이를 사지를 묶어 꼼짝 못 하게 결박하고는, 메고 들고 하여 연못가로 실어 가 한가운데로 밀어 넣고는 모두 돌아가 버렸다. 대성이 날아올라 살펴보니, 그 멍청이는 사지를 위로 향한 채 주둥이를 내밀고 반쯤 뜨고 반쯤 가라앉아 입으로는 푸푸거리고 있었으니, 참으로 우스꼽스러워 마치 팔구월에 서리를 맞아 씨가 떨어져 나간 큰 검은 연밥송이 같았다. 대성이 그의 꼴을 보니 밉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여 말했다. “어찌하면 좋으랴? 그도 용화회에 속한 사람이로되, 다만 행장을 나누어 흩어지자 하고는 스승님을 부추겨 머리 띠를 조이는 주문을 외워 나를 괴롭히는 것이 밉구나. 내가 지난날 사오정에게서 들으니 그도 사재를 좀 모아 두었다 하는데,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니 내가 한번 겁을 주어 보자.” 훌륭한 대성이로다, 그의 귀 가까이 날아가 소리를 흉내 내어 불렀다. “저오능! 저오능!” 팔계가 당황하여 말했다. “재수 없는 날이로다! 내 이 오능이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께서 지어 주신 것이요, 당승을 따라온 뒤로는 또 팔계라 불리거늘, 이곳에서 어찌 누가 나를 오능이라 부르는 줄 아는고?” 멍청이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누가 내 법명을 부르느냐?” 행자가 말했다. “나다.” 멍청이가 말했다. “너는 누구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저승의 사자니라.” 그 멍청이가 당황하여 말했다. “장관이시여, 어디서 오셨소?” 행자가 말했다. “나는 오염왕이 너를 잡아가라 보낸 자니라.” 그 멍청이가 말했다. “장관이시여, 우선 돌아가시어 오염왕께 잘 아뢰시옵소서. 그분은 내 사형 손오공과 매우 친하시니, 나를 하루만 물러 주시고 내일 잡으러 오시라 하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허튼 소리! 염왕이 삼경에 죽으라 정하였거늘 누가 감히 사경까지 사람을 붙들어 두랴! 일찍 나를 따라오너라, 밧줄을 걸어 끌려 다니지 않게 하마!” 멍청이가 말했다. “장관이시여, 어디든 편한 데가 있지 않소이까? 내 이런 꼴을 보시고도 살고 싶겠소이까? 죽기는 반드시 죽을 터이니 다만 하루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이 요정이 내 스승님들까지 모조리 잡아 오거든 한번 만나 보고서 모두 끝장을 내는 게 좋겠소.”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좋다. 내 이 영장에 서른 명이 적혀 있는데 모두 이 일대에 흩어져 있으니, 내가 그들을 잡아다 너와 함께 데려가려면 하루쯤 지체가 되겠구나. 노잣돈이 있거든 내게 좀 내어 보아라.” 팔계가 말했다. “가련하구나! 출가한 사람에게 무슨 노잣돈이 있겠소?” 행자가 말했다. “노잣돈이 없거든 결박하여 끌고 가마! 나를 따라오너라!” 멍청이가 당황하여 말했다. “장관이시여, 결박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알기로 장관의 그 밧줄은 목숨을 쫓는 줄이라, 걸리기만 하면 곧 숨이 끊어진다 하옵니다. 있소, 있소, 있소! 있기는 있사오나 많지 않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어디에 있느냐? 어서 꺼내어라!” 팔계가 말했다. “가련하구나, 가련하여라! 내가 중이 된 이래로 지금까지 어떤 선한 신도 집에서 중들에게 공양을 베풀 적에, 내 먹성이 크다 하고 남들에게 주는 돈보다 조금 더 주었거늘, 내가 그것을 받아 이곳에 모아 두었더니, 자잘한 것이 모여 은 오 돈이 되었소. 간수하기가 어려워 지난번에 성 안으로 가서 은장이 하나에게 부탁하여 한 덩이로 녹여 달라 하였더니, 그놈이 양심이 없어 몇 푼을 떼어 먹는 바람에 은 네 돈 육 푼짜리 한 덩이만 남았소. 그것을 가져가시옵소서.”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이는 바지도 입지 못하면서 어디에 감추어 두었단 말이냐? 쯧! 네 은은 어디 있느냐?” 팔계가 말했다. “내 왼쪽 귀구멍에 쑤셔 박아 두었소. 내가 결박당하여 꺼낼 수 없으니 장관이 친히 꺼내 가시옵소서.”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곧 손을 뻗어 귀구멍 속에서 더듬어 꺼내니, 참으로 안장 모양의 은덩이 하나요, 무게가 넉 돈 대여섯 푼이나 되었다. 그것을 손에 쥐고는 참지 못하고 껄껄 크게 한 번 웃었다. 그 멍청이는 그 소리가 행자의 목소리인 줄 알아채고는 물속에서 마구 욕하며 말했다. “천벌을 받을 필마온 같으니라고! 이토록 고생스러운 판에 와서 재물을 뜯어 가려 하느냐!” 행자가 또 웃으며 말했다. “이 지게미나 먹는 놈 같으니! 늙은 손오공이 스승님을 모시며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데, 너는 도리어 사재를 모았구나!” 팔계가 말했다. “이 꼴 좀 보아라! 이것이 무슨 사재냐! 모두 이빨에서 긁어 모은 것이니, 내가 입에 넣어 먹기를 아끼고 베 한 필을 사서 옷 한 벌을 해 입으려 남겨 둔 것을 네가 겁을 주어 빼앗았구나. 얼마쯤 나에게 돌려 다오.” 행자가 말했다. “반 푼도 너에게 줄 수 없다!” 팔계가 욕하며 말했다. “목숨값은 너에게 양보하마. 어서 나를 꺼내 주기나 하여라.” 행자가 말했다. “성급히 굴지 마라, 내가 너를 구하마.” 은을 감추고는 곧 본모습으로 돌아와 철봉을 뽑아 멍청이를 곁으로 끌어 모으고, 손으로 발을 잡아 끌어올려 밧줄을 풀었다. 팔계가 벌떡 일어나 옷을 벗어 물기를 짜고는 털어서 축축한 채로 몸에 걸치며 말했다. “형님, 뒷문을 열고 달아납시다.” 행자가 말했다. “뒷문으로 달아난다면 그게 무슨 출세냐? 앞문으로 쳐 올라가자.” 팔계가 말했다. “내 발이 묶여 저려서 달릴 수가 없소.” 행자가 말했다. “어서 나를 따라오너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철봉을 휘두르는 온갖 재주를 다 펼치며 쳐서 나갔다. 그 멍청이는 저린 것을 참으며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붙었는데, 둘째 문 아래에 자기 갈고랑이가 기대어 있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작은 요괴들을 밀쳐 내고 갈고랑이를 움켜쥐어 앞을 향해 마구 찔러 대며, 행자와 함께 서너 겹의 문을 뚫고 나가니, 몇 명의 작은 요괴를 때려 죽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노마가 그것을 듣고 이마에게 말했다. “참으로 잘 잡아 왔구나! 잘 잡아 왔어! 손행자가 저팔계를 빼앗아 가며 문에서 작은 요괴들을 때려 다치게 하는구나!” 그 이마가 급히 몸을 날려 창을 손에 쥐고 문 밖으로 쫓아나와 소리치며 꾸짖었다. “망할 원숭이 놈! 이토록 무례하다니! 어찌 감히 우리를 얕보느냐!” 대성이 그것을 듣고 곧 소리에 응하여 멈춰 섰다. 그 괴물은 말을 붙일 새도 없이 창을 써서 곧 찔러 왔다. 행자는 본래 솜씨 있는 자라 서두르지 않고 철봉을 뽑아 얼굴을 향해 맞받았다. 그 둘이 굴 문 밖에서 벌인 이 한바탕의 멋진 싸움은 이러하였다. 누런 어금니 늙은 코끼리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의를 맺어 사자왕과 형제가 되었네. 대마가 와서 중재한 까닭에, 한마음으로 당승을 잡아먹을 꾀를 내었네. 제천대성은 신통이 넓어, 바른 것을 돕고 사악한 것을 없애려 정괴를 멸하네. 팔계는 재주 없어 독수에 걸렸으나, 오공은 구해 내어 문을 나서게 하였네. 요왕이 뒤쫓아와 영맹을 부리니, 창과 봉이 엇갈리며 각기 재능을 드러내네. 저쪽의 창은 숲을 꿰는 구렁이 같고, 이쪽의 봉은 바다에서 나온 용 같구나. 용이 바다 문을 나서니 구름이 자욱하고, 구렁이가 숲을 꿰니 안개가 자욱하네. 따져 보면 모두 당승을 위한 일이거늘, 원한을 품고 서로 버티니 너무도 정이 없구나. 그 팔계는 대성이 요정과 싸우는 것을 보고서도 산비탈 끝에 갈고랑이를 세워 놓고는 와서 돕지 않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요정은 행자의 봉이 무겁고 온몸의 재주에 빈틈이 전혀 없는 것을 보고는 창을 받쳐 놓고 코를 펼쳐 그를 감아 버리려 하였다. 행자는 그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두 손으로 금고봉을 가로로 들어 위로 한번 치켜들자, 요정이 코로 허리와 엉덩이를 감아 버렸으나 손은 감지 못하였다. 보라, 그가 두 손으로 요정의 코끝에서 꽃봉술을 부리며 장난을 치는 것을. 팔계가 그것을 보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어! 저 요괴는 재수가 없구려! 나처럼 둔한 놈을 감을 때에는 손까지 모조리 감아 버려 움직일 수도 없게 하더니, 저렇게 미끄러운 놈을 감을 때에는 도리어 손을 감지 못하는구려. 그가 두 손으로 봉을 쥐고 그저 코 속으로 한번 찔러 넣기만 하면 그 구멍이 아파 콧물이 흐를 터인데, 어찌 그를 감아 둘 수 있겠느냐?” 행자는 본래 그런 뜻이 없었는데 도리어 팔계가 그를 가르쳐 준 셈이었다. 그는 곧 봉을 한번 흔들어 닭알만 하게 줄이고 길이를 한 장 남짓 늘려, 참으로 그의 콧구멍 속으로 한번 찔러 넣었다. 그 요정이 겁을 먹고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를 풀어 놓으려 하자, 행자가 손을 돌려 한 웅큼 움켜쥐고 힘을 주어 앞으로 한번 잡아당겼다. 그 요정은 아픔을 견디려 손을 따라 걸음을 옮겨 따라왔다. 팔계가 그제야 감히 가까이 다가가 갈고랑이를 들어 요정의 사타구니를 향해 마구 찔러 댔다. 행자가 말했다. “안 된다! 안 된다! 저 갈고랑이의 이빨이 날카로워 가죽이 찢겨 피가 흘러나오면, 스승님께서 보시고 또 우리가 살생을 하였다 하실 터이니, 자루를 돌려서 때리도록 하여라.” 참으로 멍청이는 갈고랑이 자루를 들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한 번씩 때렸고, 행자는 코를 끌고 가니 마치 두 코끼리 몰이꾼 같아서, 비탈 아래까지 끌고 내려왔다. 삼장이 눈을 모아 기다리다가 그 둘이 떠들썩하게 오는 것을 보고는 곧 불렀다. “오정아, 저기 오공이 끌고 오는 것이 무엇이냐?” 사오정이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큰사형이 요정의 코를 움켜쥐고 끌고 오시니, 참으로 사랑스럽고도 우습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착하고 착하도다! 저렇게 큰 요정이라니! 저렇게 긴 코라니! 너는 그에게 물어 보아라. 그가 기꺼이 우리를 이 산 넘어 보내 준다면 그를 살려 주고 그의 목숨을 해치지 말라고 하여라.” 사오정이 급히 앞으로 나아가 마주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옵니다. 저 요괴가 참으로 스승님을 산 넘어 보내 드린다면 그의 목숨을 해치지 말라 하시옵니다.” 그 요괴가 그 말을 듣고 황급히 꿇어앉아 입으로는 우우 하고 대답하였으니, 본래 행자에게 코를 움켜잡혀 눌려 버려 마치 심한 감기에 걸린 사람 같았다. 그가 외쳤다. “당 노야시여, 목숨을 살려 주시겠다면 곧 가마를 메어 보내 드리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우리 사부와 제자는 모두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니라. 네 말대로 우선 네 목숨을 살려 주마. 어서 가마를 메어 오너라. 만일 다시 마음을 바꾼다면 잡아서 결코 다시는 살려 주지 않으리라!” 그 요괴는 손에서 벗어나 머리를 조아리고 가 버렸다. 행자가 팔계와 함께 당승을 뵙고 앞의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팔계는 몹시 부끄러워하며 비탈 앞에서 옷을 말리고 있었는데, 기다리는 동안의 일은 이쯤 해 두기로 한다. 그 이마는 벌벌 떨며 굴로 돌아왔는데, 미처 이르기도 전에 이미 작은 요괴가 노마와 삼마에게 이마가 행자에게 코를 움켜잡혀 끌려갔다고 알렸다. 노마는 두려워하며 삼마와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이제야 나오는데, 이마가 홀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모두 맞아 들여 놓고 풀려난 까닭을 물었다. 이마가 삼장의 자비롭고 너그러운 말을 무리에게 한번 이야기하니, 하나하나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이마가 말했다. “형님께서는 당승을 보내 드리시겠소이까?” 노마가 말했다. “아우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손행자는 인의를 널리 베푸는 원숭이라, 그가 먼저 내 뱃속에 있었을 적에 내 목숨을 해치려 하였다면 천 명이라도 골려 죽였으리라. 또 네 코를 움켜쥐고 끌고 가서 돌려보내지 않고 그저 코끝을 비틀어 터뜨렸어도 너는 두려웠으리라. 어서 일찍이 그를 보내 드릴 준비를 하여라.” 삼마가 웃으며 말했다. “보내자! 보내자! 보내자!” 노마가 말했다. “아우의 그 말은 도리어 성을 내는 듯하구나. 네가 보내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 둘이 보내 드리마.” 삼마가 또 웃으며 말했다. “두 형님께 아뢰옵니다. 저 중이 만일 우리가 보내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이대로 속여 넘기는 것이 그의 행운이려니와, 만일 보내 달라 한다면 모르게 내 호랑이를 산에서 떼어 놓는 계책에 꼭 들어맞는 것이오.” 노괴가 말했다. “호랑이를 산에서 떼어 놓는다 함은 무엇이냐?” 삼괴가 말했다. “이제 굴 안의 요괴 무리를 모조리 점고하여, 만 명 중에서 천 명을 뽑고 천 명 중에서 백 명을 뽑고 백 명 중에서 열여섯을 뽑고, 또 서른 명을 뽑으시옵소서.” 노괴가 말했다. “어찌하여 열여섯도 필요하고 서른도 필요하단 말이냐?” 삼괴가 말했다. “서른 명은 음식을 잘 삶고 끓이는 놈으로 뽑아, 그들에게 흰 쌀과 고운 밀가루, 죽순, 찻잎, 향버섯, 느타리, 두부, 밀글루텐을 주어 이십 리나 삼십 리마다 움막을 치고 차와 밥을 장만하여 당승을 대접하게 하시옵소서.” 노괴가 말했다. “또 열여섯은 어디에 쓰려느냐?” 삼괴가 말했다. “여덟은 가마를 메고 여덟은 길을 외치며 앞서 가게 하시옵소서. 저희 형제가 좌우에서 모시며 한 구간을 보내 드리겠나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사백여 리만 가면 곧 저의 성지이니, 그곳에는 저의 응원할 군마가 있사옵니다. 성 가에 이르거든 이러이러하게 하여 저 사부와 제자가 머리와 꼬리를 서로 돌보지 못하게 하시옵소서. 당승을 잡는 일은 오로지 이 열여섯 놈이 이루어 내는 데 달렸나이다.” 노괴가 그 말을 듣고 기뻐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참으로 취했다가 막 깨어난 듯,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하여 말했다. “좋다! 좋다! 좋다!” 곧 여러 요괴를 점고하여 먼저 서른을 뽑아 물건을 주고, 또 열여섯을 뽑아 향등나무 가마 한 채를 메게 하고 함께 문을 나서며, 여러 요괴에게 분부하였다. “모두 산 위로 한가롭게 돌아다니지 말라! 손행자는 마음이 많은 원숭이라, 너희가 오가는 것을 보면 반드시 의심을 품고 이 계책을 알아차리리라.” 노괴가 드디어 무리를 거느리고 큰길 가에 이르러 크게 외쳤다. “당 노야시여, 오늘은 붉은 모래를 범하는 날이 아니오니 노야께서는 일찍 산을 넘으시옵소서.” 삼장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오공아, 누가 나를 부르느냐?” 행자가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 늙은 손오공이 항복받은 요괴들이니, 가마를 메어 스승님을 보내 드리러 온 것이옵니다.” 삼장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착하고 착하도다! 어진 제자가 이처럼 능하지 못하였다면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랴?” 곧장 앞으로 나아가 여러 요괴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여러분의 사랑을 많이 입었노라. 내 제자가 경을 얻어 동쪽으로 돌아가면 장안에서 선한 과보를 널리 전하리라.” 여러 요괴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노야시여, 가마에 오르시옵소서.” 그 삼장은 육안의 범태라 계책인 줄 알지 못하였고, 손대성은 또 태을금선이요 충정한 성품이라, 오직 잡고 놓아 준 공으로 요괴를 항복받았다 생각하였으니, 어찌 그들이 모두 다른 음모를 품었으리라 기대하였으랴?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스승님의 뜻을 그대로 좇아, 곧 팔계에게 명하여 행낭을 말에 싣게 하고 사오정과 함께 바싹 뒤따르게 하였으며, 자신은 철봉을 휘둘러 앞에서 길을 열며 길흉을 살폈다. 여덟이 가마를 들고 여덟이 번갈아 소리를 외쳤다. 세 요괴가 가마 채를 부축하였고, 스승님은 기쁘고 즐거운 낯으로 가마 위에 단정히 앉아 높은 산에 올라 큰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번 길에, 어찌 기쁨 사이에 근심이 또 이를 줄 알았으랴. 경에 이르기를 태극이면 다시 불운이 생긴다 하였거늘, 시운이 참된 태세를 만나고 또 상문과 조객성마저 값쳤구나. 그 무리의 요마들은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좌우에서 모시며 아침저녁으로 은근히 정성을 다하였다. 삼십 리를 걸어 공양을 올리고 오십 리에서 또 공양을 올리고, 저물기 전에 쉬기를 청하니 가는 길이 가지런하고 정결하였다. 하루 세 끼니에 마음이 흡족하였고, 좋은 밤 하룻밤에 좋은 곳에서 몸을 편안히 하였다. 서쪽으로 사백여 리를 더 들어가니 홀연 성지가 가까워졌다. 대성이 철봉을 들어 가마에서 한 리쯤 떨어진 곳에 있다가 성지를 보고는 놀라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가 이토록 대담하거늘 어찌 이런 놀람을 당하였느냐 하면, 본래 저 성 안에 사악한 기운이 자욱한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니, 이러하였다. 빽빽이 모여든 요마와 괴물이요, 네 문이 모두 이리 정령이로다. 얼룩무늬 호랑이가 도감이 되고, 흰낯의 수컷 표범이 총병이 되었네. 가지 뿔 사슴이 문인을 전하고, 영리한 여우가 길을 나서서 다니네. 천 척의 큰 구렁이가 성을 두르고 돌며, 만 장의 긴 뱀이 길을 차지하였네. 누각 아래 푸른 이리가 영을 외치고, 대 앞의 얼룩 표범이 사람 소리를 내네. 깃발 흔들고 북 치는 자 모두 요괴요, 경을 돌고 자리 지키는 자 온통 산정이로다. 꾀 많은 토끼가 문을 열어 장사를 부리고, 멧돼지가 짐을 메어 생업을 하네. 예전에는 본래 천조의 나라였거늘, 이제는 도리어 호랑과 이리의 성이 되었구나. 그 대성이 바야흐로 두려워하고 있는데, 귀 뒤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삼마가 두 손으로 그림 봉이 달린 방천극을 들어 대성의 머리를 향해 내려치고 있었다. 대성이 급히 몸을 뒤집어 일어나 금고봉을 휘둘러 얼굴을 향해 맞받았다. 그 둘은 각기 노여움을 품고 성이 머리끝까지 나서 말도 붙이지 않았으며, 이를 악물고 서로 겨루려 하였다. 또 저 노마두가 소리를 전해 호령하며 강철 칼을 들어 팔계를 내리쳤다. 팔계는 놀라서 말을 버리고 갈고랑이를 휘둘러 앞으로 나가 마구 찔러 댔다. 그 이마는 긴 창을 휘감아 사오정을 향해 찔러 왔고, 사오정은 요괴를 누르는 지팡이를 써서 자세를 벌려 막아 냈다. 세 마두와 세 중이 하나가 하나를 맞아 저 산머리에서 죽음을 내걸고 사투를 벌였다. 그 열여섯의 작은 요괴는 명령을 좇아 저마다 힘을 다하였다. 백마와 행낭을 빼앗고 삼장을 한꺼번에 에워싸고는 가마를 메어 성 가로 곧장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대왕 할아버지께서 계책을 정하시어 이미 당승을 잡아 왔나이다!” 그 성 위의 크고 작은 요정들이 하나하나 달려 내려와 성문을 크게 열고 각 영에 깃발을 말고 북을 그치라 분부하며, 함성이나 징 소리를 내지 말라 하였다. “대왕께서 본래 앞서 명하시기를, 당승을 놀라게 하지 말라 하였노라. 당승은 겁을 주면 견디지 못하고, 놀라면 살이 시어 먹을 수 없게 된다 하였노라.” 여러 정괴가 모두 하늘이 기쁘고 땅이 기쁜 듯 삼장을 맞이하며,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어 주인 스승을 맞아들였다. 당승을 가마째 금란전으로 메어 올려 가운데 앉히고는, 한편으로는 차를 올리고 밥을 올리며 좌우로 빙 둘러섰다. 그 장로는 혼몽하고 침침하여 눈을 들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7회 군마기본성(群魔欺本性) · 일체배진여(一體拜眞如) 각설하고 당장로가 곤궁에 빠진 이야기는 이쯤 접어 두고, 저 세 마두가 마음을 한데 모으고 기력을 다하여 대성 형제 세 사람과 성 동쪽 반 산 안에서 있는 힘을 다해 맞서 다투는 이야기를 하겠다. 이 한바탕은 참으로 쇠 빗자루로 구리 솥을 문지르는 격이라, 집집이 다 억세고 단단하였다. 그 싸움이 어떠하였는지 보라, 이러하였다. 여섯 가지 몸집에 여섯 가지 병기요, 여섯 가지 형해에 여섯 가지 정이로다. 여섯 가지 악과 여섯 가지 감관이 여섯 가지 욕망을 인연 삼고, 여섯 문과 여섯 갈래 길에서 승부를 겨루는구나. 서른여섯 궁궐에 봄이 절로 머물고, 육육의 형태와 빛깔이 이름이 난 것도 한스럽도다. 이쪽의 금고봉은 온갖 재주를 부리고, 저쪽의 방천극은 백 가지로 우뚝 솟았도다. 팔계의 쇠스랑은 흉포하면서 더욱 매섭고, 이괴의 긴 창은 준수하면서 또한 능하구나. 작은 사승의 보장 또한 범상치 않아 단단히 때려 죽일 마음을 품었도다. 노마두의 강철 칼은 빠르고 예리하여 손을 들면 정이 없구나. 이 세 사람은 참된 승려를 호위하는 무적의 장수요, 저 세 놈은 법을 어지럽히고 임금을 속이는 막된 들요괴로다. 처음에는 참을 만하더니 뒤로 갈수록 더욱 흉포해졌다. 여섯이 모두 승공법을 부리니 구름 속에서 저마다 뒤척이는구나. 한순간에 안개를 토하고 구름을 뿜어 천지가 어두워지고, 으르렁거리며 포효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로다. 그들 여섯이 오래도록 싸우고 나니 차츰 날이 저물었다. 또 바람과 안개가 자욱이 끼더니 삽시간에 캄캄해졌다. 알고 보니 팔계는 귀가 커서 눈꺼풀을 덮고 있어 더욱 아득하고 몽롱하였고, 손발이 느려 막아 내지도 못하다가 쇠스랑을 질질 끌며 싸움터에서 패하여 달아났다. 그러자 노마가 칼을 들어 내리쳐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으나, 다행히 머리를 피한 탓에 칼날에 갈기 몇 올만 잘려 나갔고, 뒤쫓아 온 노마가 입을 크게 벌려 목덜미를 물어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가서는 작은 요괴들에게 던져 주며 금란전에 묶어 두라 하였다. 노요괴는 다시 구름을 타고 반 공중으로 솟아올라 힘을 보탰다. 사화상은 일이 잘못되어 감을 보고 보장을 허공에 휘두르며 몸을 돌이켜 곧장 달아났으나, 이괴가 코를 펼치며 요란한 소리 한 번에 팔째로 휘감아 붙잡아 성 안으로 끌고 가서, 역시 작은 요괴들에게 전각 아래 묶어 두라 분부한 뒤 또다시 허공으로 솟아올라 행자를 잡아 오라 호령하였다. 행자는 두 아우가 사로잡힌 것을 보고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티기 어렵다고 여겼으니, 참으로 고수라도 두 주먹을 당하지 못하고 두 주먹이 네 손을 당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가 소리 한 번 지르며 몽둥이로 세 요마의 병기를 쳐 내고는 근두운을 타고 구름 위로 달아났다. 삼괴는 행자가 근두운을 타는 것을 보자 곧 몸을 부르르 떨고 본모습을 드러내며 두 날개를 펼쳐 대성을 뒤쫓았다. 그대는 그가 어찌하여 뒤쫓을 수 있었다 하겠느냐? 옛적에 행자가 천궁을 소란시키던 때 십만 천병도 그를 붙잡아 두지 못한 까닭은 그가 근두운을 탈 줄 알아 한 번에 십만 팔천 리를 가 버리므로 모든 신장들이 뒤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요정은 날개를 한 번 치면 구만 리요, 두 번 치면 앞질러 버리니, 그래서 그의 손에 와락 붙잡혀 두 손 안에 들려 좌우로 아무리 버둥거려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달아날 생각을 하여도 벗어날 길이 없었고, 변화법과 둔법을 쓴다 한들 오가는 길조차 또한 어려웠다. 조금 크게 변하면 그놈이 잡은 손을 늦추었고, 조금 작게 변하면 그놈이 도로 움켜쥐었다. 그리하여 도로 사로잡혀 성 안으로 곧장 돌아왔고, 놈이 손을 놓자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으며, 요괴 무리에게 팔계와 사승을 묶어 둔 곳과 같이 묶어 두라 분부하였다. 그 노마와 이마가 함께 내려와 맞이하니 세 마두는 함께 보전으로 올라갔다. 아, 이번 일은 행자를 묶어 둔 것이 아니라, 분명히 그와 작별을 고하는 전송이었도다. 이때는 이경 무렵이라 요괴들이 일제히 서로 인사를 마치고 당승을 전각 아래로 밀어 내렸다. 그 장로는 등불 앞에서 홀연 세 제자가 모두 땅바닥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행자 곁에 엎드려 울며 말했다. “제자들아! 평소에 환난을 만나면 너희는 바깥에서 신통을 부려 어딘가에서 구원을 구하여 요마를 항복시키더니, 이번에는 너희마저 사로잡혔으니 내 가난한 중이 어찌 목숨을 건지겠느냐!” 팔계와 사승도 사부님이 이토록 고통스러워하시는 소리를 듣고는 역시 일제히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행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아우들도 울지 말아라. 저놈들이 어찌 하든 결단코 상함이 없을 것이니, 저 노마가 조용해지거든 우리가 길을 떠나면 되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또 엉터리 소리를 하시는구려! 삼줄로 묶여 있는데 헐렁한 데다 물까지 뿜어 대니, 형님처럼 여윈 사람은 모를까 이렇게 살진 몸은 재앙을 만난 셈이오! 믿지 못하겠거든 두 팔을 보시오, 살 속으로 이미 두 치나 파고들었소.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삼줄로 묶었다는 것만 말할 것 없거니와, 사발만 한 굵은 종려 밧줄이라도 그저 가을바람이 귀를 스치는 것뿐이니 어찌 대단하리오!” 사부와 제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노마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셋째 아우는 힘도 있고 지략도 있어 과연 묘한 계책을 이루어 당승을 잡아 왔구려!” 하고는 명령하였다. “어린 놈들아, 다섯은 물을 긷고 일곱은 솥을 씻고 열은 불을 때고 스무는 무쇠 찜통을 내오너라. 저 중 넷을 푹 쪄서 우리 형제들이 맛보고, 한 조각씩 어린 놈들에게 나누어 주어 저희마다 장생하게 하리라.” 팔계가 그 소리를 듣고는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형님, 들어 보시오. 저 요괴가 우리를 쪄 먹을 궁리를 하고 있소!” 행자가 말했다. “겁낼 것 없다. 내가 저놈이 풋내기 요괴인지 노련한 요괴인지 살펴보마.” 사화상이 울며 말했다. “형님! 부디 마음 느슨해지는 말씀은 마시오. 지금은 이미 염라대왕과 이웃이 되었소. 무슨 풋내기니 노련한이니 하는 소리가 다 필요하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이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팔계는 찌기에 좋지 않구나.” 팔계가 기뻐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어느 인덕 쌓은 분이 내가 찌기에 좋지 않다고 하였소?” 삼괴가 말했다. “찌기에 좋지 않거든 껍질을 벗겨 쪄라.” 팔계가 놀라 소리를 높여 외쳤다. “껍질은 벗기지 마시오! 거칠기는 거칠어도 국물이 끓으면 곧 무르니라!” 노괴가 말했다. “찌기 어려운 놈은 맨 아래 칸에 두어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팔계야 겁낼 것 없다. 풋내기요, 노련한이가 아니로다.” 사승이 말했다. “어찌 아시오?” 행자가 말했다. “무릇 음식을 찔 때에는 다 위쪽에서부터 익는 법이니라. 찌기 어려운 것은 맨 윗칸에 두고 불을 더 때어 김을 두루 돌리면 곧 되는 것이니라. 만일 아래에 두면 김이 한번 막혀 버려 반년을 불을 댄다 한들 김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느니라. 저놈이 팔계는 찌기 어렵다 하여 아래에 두었으니, 풋내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하시는 말씀대로라면 산 사람을 산 채로 죽이게 생겼소! 저놈들이 김만 올라오지 않으면 찜통을 들어 내어 나를 뒤집어 엎고 다시 불을 때어 양쪽이 다 익고 가운데만 설익게 만들려 한다면 어쩌란 말이오?” 바로 그때 작은 요괴가 달려와 아뢰었다. “국물이 끓었나이다.” 노괴가 명령을 내려 들라 하였다. 요괴들이 일제히 손을 대어 팔계를 맨 아래 칸에 들이고 사승을 두째 칸에 들였다. 행자는 이제 자기를 들려 오리라 짐작하고는 몸을 빼며 말했다. “이 등불 앞이야말로 손을 쓰기 좋구나!” 그는 털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후 하고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행자 하나로 변하여 삼줄에 묶여 있고, 진신은 혼을 빠져나가게 하여 반공중으로 뛰어올라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보았다. 요괴 무리가야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찌 알았으랴, 사람만 보면 번쩍 들어 올려 그 “가짜 행자”를 맨 위 세째 칸에 올려놓고, 그제야 당승을 잡아 엎어 묶어 네째 칸에 올렸다. 마른 장작을 걸쳐 놓니 맹렬한 불길과 김이 치솟았다. 대성이 구름 속에서 탄식하며 말했다. “내 팔계와 사승은 두 차례 끓어오르는 것쯤은 견디리라마는, 내 사부님은 한 번만 끓어올라도 곧 무르고 만다. 이번에 법술로 구해 내지 않으면 삽시간에 목숨을 잃고 말리라!” 훌륭한 행자로다, 허공에서 주먹을 쥐고 주문 한 마디를 외었으니, 곧 “옴람정법계, 건원형리정” 하는 주문이었다. 그 주문으로 북해 용왕을 불러내어 곧바로 달려오게 하였다. 바라보니 저 구름 속 한 떼 검은 구름이 응답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북해의 작은 용 오순이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 없이는 감히 번거롭게 할 수 없거니와, 오늘 당사부와 함께 이곳에 왔다가 독마에게 붙잡혀 무쇠 찜통에 올라가 찌게 되었노라. 그대는 가서 나를 좀 지켜 주어라, 찌어서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용왕이 곧 몸을 한 줄기 찬 바람으로 변하게 하여 솥 밑으로 불어 들어가 빙빙 돌며 두루 지키니, 불기운이 솥을 때는 일이 더는 없었다. 그 세 사람이라야 비로소 목숨을 잃지 않았다. 삼경이 다 되어 갈 무렵, 노마가 방침을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하 놈들아, 우리가 계책을 쓰느라 몸이 고생하여 당승 사부와 제자를 잡았거니와, 서로 배웅하느라 수고까지 하여 사흘 낮과 사흘 밤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제 이미 찜통 안에 묶어 두었으니 빠져나가기는 어렵다고 여겨지니, 너희는 마음을 다해 지키고 작은 요괴 열에게 번갈아 불을 때게 하여라. 우리는 궁으로 물러나 잠시 편히 자고자 하노라. 오경에 날이 밝아 오면 반드시 푹 무를 터이니, 다진 마늘과 소금과 식초를 마련해 두었다가 우리를 깨워 비어 있는 속으로 맛보게 하여라.” 요괴들이 저마다 명을 받들고 세 마두는 각기 침궁으로 돌아가 버렸다. 행자는 구름 속에서 이러한 분부를 똑똑히 듣고는 구름을 낮추어 보았으나 찜통 속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불기운이 위로 치솟으니 필시 뜨거울 터인데, 저들이 어찌 겁내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단 말인가? 흥, 설마 쪄서 죽었단 말인가? 내 앞으로 가서 다시 들어 보리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구름을 밟고 몸을 흔들어 변하니 검은 파리 한 마리가 되어 무쇠 찜통 겉에 붙어 엿들었다. 팔계가 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수 없어, 재수 없어! 답답하게 찌는 것인지, 김을 빼며 찌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사승이 말했다. “둘째 형님, 답답하게 찌는 것과 김을 빼며 찌는 것이란 무엇이오?” 팔계가 말했다. “답답하게 찌는 것은 찜통 뚜껑을 덮는 것이고, 김을 빼며 찌는 것은 덮지 않는 것이오.” 삼장이 맨 위층에서 목소리를 맞추어 말했다. “제자야, 덮지 않았다.” 팔계가 말했다. “천운이다! 오늘 밤에는 아직 죽지 않겠구나! 이것이야말로 김을 빼며 찌는 것이로다!” 행자는 세 사람이 모두 말하는 것을 듣고 아직 목숨이 상하지 않았음을 알자 곧 날아가 찜통 뚜껑을 살짝 덮어 버렸다. 삼장이 놀라며 말했다. “제자야! 덮었구나!” 팔계가 말했다. “망했다! 이것은 답답하게 찌는 것이니 오늘 밤에는 필시 죽었구나!” 사승과 장로는 흐느끼며 울었다. 팔계가 말했다. “우선 울지 말아라. 이제 불을 때는 놈들이 교대를 하였구나.” 사승이 말했다. “어찌 그것을 아시오?” 팔계가 말했다. “아까 올려질 때만 해더 정말 내 마음에 들었지. 나에게 한습한 기운의 병이 조금 있어 그 훈훈한 기운이 필요하였단 말이오. 그런데 이번에는 도리어 찬 기운이 올라오는구나. 어이! 불 때는 장관님, 땔감을 좀 더 넣으면 어떠하오? 당신 것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 행자가 그 말을 듣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속으로 말했다. “이 미련한 놈! 추운 것은 참을 만하거니와 만일 뜨거우면 곧 목숨을 상하리라. 두어 번만 더 지껄이면 반드시 바람이 새어 나가니 어서 빨리 구해 주어야겠다. 잠깐, 구하려면 반드시 본모습을 드러내야 하거니와, 드러내면 불을 때는 저 열 놈이 보고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노괴를 놀라게 할 터이니, 그렇지 않으면 또 일이 번거로워지지 않겠느냐? 내 먼저 저놈들에게 수단 하나를 보내리라.” 홀연히 생각이 났다. “내가 옛날에 대성으로 있을 적에 북천문에서 호국천왕과 씨름이며 술래잡기를 하며 놀다가 그놈에게서 졸음벌레를 따 온 적이 있는데, 아직 몇 마리 남아 있으니 그것을 보내 주리라.” 곧 허리춤 주머니 속을 더듬어 보니 열두 마리가 남아 있었다. “열 마리를 보내고 두 마리는 씨로 남겨 두리라.” 곧 벌레들을 던져 보내니 열 작은 요괴의 얼굴에 흩어져 콧구멍으로 파고들어 차츰 졸음이 오게 하여 모두 잠이 들어 쓰러졌다. 오직 쇠스랑 난로를 든 놈 하나만이 잠이 들지 않아 머리를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며 코를 이리저리 비틀어 대고는 연신 재채기를 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이놈이 수상함을 눈치챘구나. 이번에는 등불 심지를 훔치는 법을 하나 더 써 주리라.” 또 벌레 한 마리를 그놈의 얼굴에 던졌다. “벌레 두 마리가 왼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나오고 오른쪽으로 나가 왼쪽으로 들어가니, 필시 그중 하나는 자리를 잡으리라.” 그 작은 요괴는 큰 하품을 두세 번 하고 허리를 한번 쭉 펴더니 불 갈고리를 내던지고는 역시 퍽 하고 쓰러져 잠이 들어 다시는 몸을 뒤척이지 않았다. 행자가 말했다. “이 수단은 참으로 묘하고도 영험하구나!” 곧 본모습을 드러내고 앞으로 다가서서 “사부님!” 하고 불렀다. 당승이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오공아, 나를 구해라!” 사승이 말했다. “형님, 밖에서 부르시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밖에 있다면 도리어 너희와 함께 안에서 죄를 받고 있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눈치 빠른 사람은 빠져나갔고 우리는 모두 남아 대신 뒤집어쓰고 여기서 답답한 김을 맞고 있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아, 떠들지 마라. 내가 너를 구하러 왔노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구하려거든 뿌리째 구하시오. 도로 찜통에 올라가는 일은 없게 해 주시오.” 행자는 곧 찜통 뚜껑을 열어젖히고 사부님을 풀어 드리고, 가짜로 변했던 털을 한번 털어 몸에 거두어들인 뒤, 또 한 층씩 사승을 풀고 팔계를 풀었다. 그 멍청이는 풀리기가 무섭게 당장이라도 달아나려 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서두르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그러고는 다시 주문 한 마디를 외어 용신을 돌려보내고 나서야 팔계에게 말했다. “우리가 이대로 서천으로 가자면 아직 높은 산과 험한 고개가 남아 있고, 사부님께서는 발의 힘이 없으시니 걸어가기 어려우니, 내가 말을 가져오마. 그대는 보아라, 그는 살금살금 걸어 금란전 아래로 가서 크고 작은 요괴 무리가 모두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고삐를 풀되 조금도 놀라게 하지 않았다. 그 말은 본래 용마라, 낯선 사람이면 두 발을 날려 차며 몇 번 울어 대련마는, 행자는 일찍이 말을 기른 적이 있고 필마온의 벼슬을 받은 적도 있으며 더구나 한패니깐 뛰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 조용히 끌어다가 뱃대끈을 단단히 조이고 안장과 고삐를 가지런히 갖추어 사부님께 말에 오르시기를 청하였다. 장로가 바들바들 떨며 말에 올라 곧 떠나려 하자 행자가 말했다. “역시 서두르지 마라. 우리가 서쪽으로 가려면 아직 나라가 남아 있으니 반드시 관문이 있어야 갈 수 있거늘, 그렇지 않으면 무슨 증표로 가리오? 내가 가서 행리를 찾아오마.” 당승이 말했다. “내 기억으로 문에 들어올 때 요괴들이 행리를 금전 왼편 아래 두었고 짐 보따리도 그쪽에 있었단다.” 행자가 말했다. “알겠노라.” 곧 몸을 돌려 보전으로 뛰어올라 찾는데, 홀연히 빛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행자는 그것이 행리인 줄을 알았거니와, 어찌하여 곧 알았겠느냐? 당승의 금란가사에 야명주가 달려 있어 그 때문에 빛을 내는 것이었다. 급히 앞으로 가서 보니 짐 보따리가 봉한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황급히 들어 내려 사승에게 메게 해 주었다. 팔계는 말을 끌고 그는 길을 인도하여 곧바로 정양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북과 방울 소리가 어지럽게 울리고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으며 자물쇠 위에는 봉함 종이가 붙어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이토록 지키고 있으니 어찌 빠져나갈 수 있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뒷문으로 가자꾸나.” 행자가 길을 인도하여 곧장 후문으로 달려가니 말했다. “후재문 밖에도 역시 북과 방울 소리가 들리고 문에도 또한 봉한 자물쇠가 있으니, 이 어찌하면 좋으랴? 이번 일이 당승이 범인의 몸이기 때문이지, 우리 세 사람이라면 무슨 수로든 구름을 타고 바람을 부려 가 버릴 터이다. 다만 당승은 아직 삼계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행 가운데 머물러 있어 온몸이 부모에게서 받은 탁한 뼈이므로, 타고 오를 수도 없고 달아나기도 어려우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의논할 것 없소. 북과 방울 소리 없이 지키지 않는 곳으로 가서 사부님을 받쳐 담 넘어 가게 합시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좋지 않다. 지금은 하는 수 없이 그를 받쳐 넘기더라도, 경을 얻어 돌아오는 길에 너 이 멍청이가 입이 가벼워 온 동네에 우리가 담을 넘는 중들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지금은 행실 따위를 돌볼 겨를이 없소. 우선 목숨이나 건지고 봅시다.” 행자도 어찌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를 따라 깨끗한 담장 쪽으로 가서 넘어갈 궁리를 하였다. 아! 이런 일이 다 있단 말인가! 이것 역시 삼장의 재성이 아직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로다. 저 세 마두는 궁중에서 한창 자다가 홀연히 놀라 깨어났다. 당승이 달아났다고 하자 하나하나 옷을 걸치며 급히 일어나 황망히 보전으로 올라와 물었다. “당승은 몇 번이나 쪄졌느냐?” 불을 때던 작은 요괴들은 이미 졸음벌레가 들어가 모두 잠이 들어 버려 때린다 한들 하나도 깨우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밖에 직책이 없던 놈들 가운데 몇이 놀라 깨어나서는 덜렁덜렁 대답하였다. “일곱, 일곱, 일곱 번 끓었나이다!” 급히 솥 곁으로 달려가 보니 찜통 칸들이 어지럽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고 불을 때던 놈들은 여전히 모두 자고 있었다. 놀란 나머지 다시 달려와 아뢰었다. “대왕마마, 달아났나이다! 달아났나이다! 달아났나이다!” 세 마두가 모두 전각에서 내려와 솥 앞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찜통 칸들이 어지럽게 땅에 나뒹굴고 국물 솥은 식어 빠졌으며 불씨는 하나도 없는데 불을 때던 놈들은 진흙처럼 곯아떨어져 있었다. 놀란 요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모두 외쳤다. “어서 당승을 잡아라! 어서 당승을 잡아라!” 이 함성이 한바탕 일어나자 앞뒤 좌우의 크고 작은 요정들이 모두 놀라 일어났다. 칼과 창이 빽빽이 에워싸 정양문 아래에 이르렀으나 봉한 것은 그대로이고 북과 방울 소리는 끊이지 않으므로, 밖에서 야경을 도는 자들에게 “당승이 어디로 달아났느냐?” 하고 물으니 모두들 “사람이 나간 일은 없나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급히 후재문으로 달려가 보니 봉함과 북과 방울이 앞문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다시 우왕좌왕하며 등롱과 횃불을 밝혀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것이 대낮과 같았는데, 그 불빛에 네 사람이 담을 넘어가는 모습이 환히 비쳐 보였다. 노마가 가까이 달려들며 호령하였다. “어딜 가느냐!” 그 장로는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근이 늘어져 담에서 굴러 떨어졌고 노마에게 붙잡혔다. 이마는 사승을 붙잡고 삼마는 팔계를 거꾸러뜨려 잡았으며 요괴들은 행리와 백마를 빼앗았으되 오직 행자만은 달아났다. 그 팔계는 입 속으로 웅얼웅얼 중얼거리며 행자를 원망하여 말했다. “이놈의 천벌받을 놈! 구하려면 뿌리째 구한다더니 이제는 도로 찜통에 올라 쪄지게 되었구나!” 요마들은 당승을 사로잡아 전각 위로 끌고 갔으나 이번에는 찌지 않았다. 이괴는 팔계를 전각 앞 처마 기둥에 묶어 두라 분부하고, 삼괴는 사승을 전각 뒤 처마 기둥에 묶어 두라 분부하였으며, 오직 노마만이 당승을 껴안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삼괴가 말했다. “큰형님, 그를 껴안고 계시니 어찌 하시렵니까? 설마 산 채로 잡수실 셈은 아니겠지마는 그런들 무슨 재미가 있겠나이까? 이 물건은 저 어리석은 범부들과 같지 않아서 잡아다가 밥으로 삼을 수 있나이까. 이는 상방의 희귀한 물건이옵니다. 반드시 날이 흐리고 한가한 때를 기다려 그를 꺼내어 정결하고 정성스럽게 마련하고, 씨름이며 술령을 두루 벌이며 가늘고 고운 음악을 울리는 가운데 드셔야 옳나이다.” 노마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의 말이 옳기는 하나, 손행자가 또 훔치러 올 것이로다.” 삼마가 말했다. “이 황궁 안에는 금향정자라는 정자가 하나 있고, 정자 안에 쇠궤 하나가 있나이다. 제 뜻대로 한다면 당승을 궤 속에 숨기고 정자를 닫아 둔 채, 도리어 소문을 퍼뜨려 당승은 이미 우리가 덜 익은 채로 잡수셨다 하리라. 작은 요괴들에게 성 안 가득 떠들게 하면 저 행자가 필시 소식을 엿들으려 올 터이요, 이 말을 들으면 그는 반드시 단념하고 돌아갈 것이니, 사오 일쯤 와서 어지럽히지 않으면 그때 꺼내어 천천히 맛보면 어떠하겠나이까?” 노괴와 이괴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옳소, 옳소, 옳소! 아우의 말이 이치에 맞소!” 가련하게도 당승은 그날 밤으로 끌려들어가 궤 속에 감추어졌고 정자는 닫혔으며, 소문이 퍼져 나가 성 안이 온통 떠들썩하였으나 이 이야기는 접어 둔다. 각설하고 행자는 한밤중에 당승을 돌볼 겨를도 없이 구름을 타고 달아나 사타동으로 곧장 가서, 가는 길로 몽둥이를 휘둘러 그 수만의 작은 요괴를 모조리 쓸어 버렸다. 급히 되돌아오니 동쪽 하늘에 해가 떠오른 때라 성 가에 이르렀으나 감히 싸움을 걸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홑실로는 실을 꼬지 못하고 외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었다. 그는 구름에서 내려와 몸을 흔들어 변하니 작은 요괴 하나가 되어 성문 안으로 슬쩍 들어가 큰길이고 골목이고 가리지 않고 소식을 캐어 물었다. 성 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당승은 대왕마마께서 덜 익은 채로 그 어젯밤에 잡수셨다오.” 앞에서도 뒤에서도 모두 이런 말뿐이었다. 행자는 몹시 애가 탔다. 금란전 앞으로 가서 살펴보니 그 안에 많은 정령이 있어 모두 가죽에 금을 입힌 모자를 쓰고 누런 베로 만든 직신옷을 입고 붉은 칠을 한 몽둥이를 들고 상아 패를 허리에 차고, 이리 오고 저리 가며 끊임없이 어지럽게 오갔다. 행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필시 궁을 드나드는 요괴들이로구나. 내 이 모습으로 변하여 들어가 소식을 알아보리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과연 조금도 다름없이 변하여 금문에 섞여 들어갔다. 가다 보니 팔계가 전각 앞 기둥에 묶여 신음하고 있었다. 행자가 가까이 가서 “오능아.” 하고 불렀다. 그 멍청이가 소리를 알아듣고 말했다. “사형, 오셨소? 나를 좀 구해 주시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너를 구하마. 그런데 너는 사부님이 어디 계신지 아느냐?” 팔계가 말했다. “사부님은 돌아가셨소. 어젯밤에 요괴에게 덜 익은 채로 잡수셨단 말이오.” 행자는 그 말을 듣고 홀연 넋을 잃고 샘물처럼 눈물을 쏟았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울지 마시오. 나 역시 작은 요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니 직접 본 것은 아니오. 헛되이 그르치지 마시고 다시 가서 알아보시오.” 이에 행자는 겨우 눈물을 거두고 또 안쪽을 향해 찾아갔다. 홀연 사승이 뒤 처마 기둥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곧 가까이 다가가 그의 가슴을 더듬으며 “오정아.” 하고 불렀다. 사승도 소리를 알아듣고 말했다. “사형, 변신하여 들어오셨소? 나를 구해 주시오! 구해 주시오!” 행자가 말했다. “너를 구하기는 쉽다마는, 너는 사부님이 어디 계신지 아느냐?” 사승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형님! 사부님은 요괴들이 찌기를 기다리지 못하여 덜 익은 채로 잡수셨소!” 대성이 두 사람의 말이 서로 같은 것을 듣고는 마음이 칼로 저미는 듯하고 눈물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급히 몸을 솟구쳐 허공으로 뛰어올라 팔계와 사승은 구하지도 않은 채 성 동쪽 산 위로 돌아와 구름을 내리고는 목을 놓아 통곡하며 불렀다. “사부님! 원통하옵니다. 제가 하늘을 속이고 그물에 걸렸을 적에, 사부님께서 오시어 저를 구해 주시어 깊은 병에서 벗어나게 하셨사옵니다. 마음을 잠그고 뜻을 돈독히 하여 함께 불도를 참구하고, 힘써 몸을 닦으며 요마를 함께 단련하였사옵니다. 어찌 오늘 아침 이런 재앙을 만나리라 생각하였사옵니까. 사부님을 모시고 사바세계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나이다. 서방의 뛰어난 경계에 인연이 없어 이르지 못하고, 기운이 흩어지고 혼이 사라지니 어찌하리이까!” 행자는 처량하고도 참담한 나머지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마음으로 마음에 물으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부처님 여래가 저 극락의 경계에 앉아 일없이 한가하시니 괜히 그 삼장의 경전을 만들어 낸 탓이로다! 만일 참으로 권선할 마음이 있으시다면 마땅히 동토로 보내어 주심이 옳거늘, 그것이야말로 만고에 전해질 일이 아니겠느냐? 다만 보내기는 아까우니 우리더러 오라 하였거늘, 어찌 천산을 헤아리는 고생 끝에 오늘 이곳에 이르러 목숨을 잃을 줄을 알았으랴! 그만두자! 그만두자! 그만두자! 내 근두운을 타고 여래를 뵈러 가서 앞의 일을 갖추어 아뢰리라. 만일 경을 내어 동토까지 보내 주겠다 하시면 하나는 선한 과보를 널리 펴는 것이요, 둘째는 우리들의 원을 푸는 것이로되, 만일 내어 주지 않으시거든 송고아주를 외어 이 고리 벗겨 내어 도로 갖다 바치고, 나는 내 동굴로 돌아가 왕을 자처하며 즐겁게 놀다가 말리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급히 몸을 뒤집어 근두운을 타고 곧장 천축을 향하여 갔다.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어느덧 영산이 가까이 보였다. 잠시 뒤 구름을 내려 취봉 아래까지 이르러 홀연 고개를 드니 사대금강이 길을 막으며 말했다. “어딜 가느냐?” 행자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일이 있어 여래를 뵙고자 하옵니다.” 머리에 또 곤륜산 금하령 불괴존왕 영주금강이 호령하였다. “이 건방진 원숭이놈이 몹시 거칠고 오만하구나! 지난번에 우마왕을 크게 곤경에 빠뜨릴 적에 우리가 너를 위하여 힘을 다하였거늘, 오늘 얼굴을 마주하고도 예를 갖추지 않다니! 용건이 있거든 우선 아뢰고 부름을 받은 뒤에 갈지어다. 이곳은 남천문과는 달라서 네가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며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게 두지 않느니라. 쯧! 비키지 못하느냐!” 그 대성은 바로 근심이 쌓여 있던 판에 또 이런 면박을 당하니 분하기가 우레처럼 으르렁거려 참지 못하고 크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일찍이 여래를 놀라게 하였다. 여래불조는 마침 구품보련대 위에 단정히 앉아 열여덟 윤세아라한과 함께 경을 강론하고 있다가 곧 입을 열어 말했다. “손오공이 왔느니라. 너희는 나가 맞이하여라.” 여러 아라한이 불지를 받들고 두 갈래로 당번과 보개를 벌려 세우며 곧 산문으로 나가 응답하여 말했다. “손대성이시여, 여래께서 친히 부르신다 하시나이다.” 그 산문 어귀의 사대금강이 그제야 길을 비켜 행자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여러 아라한이 보련대 아래로 인도하니 행자는 여래를 보고 몸을 던져 절을 올리며 두 줄기 눈물로 슬피 울었다. 여래가 말했다. “오공아, 무슨 일로 그리 슬피 우느냐?” 행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제자는 여러 차례나 가르침의 은혜를 입사옵고 불야야의 문하에 몸을 의탁하온 뒤, 스스로 정과에 돌아와 당승을 보호하며 스승으로 받들어 섬겼사오나 그 길 위의 고생은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사옵니다! 이번에 사타산과 사타동과 사타성에 이르니 사자왕과 코끼리왕과 대붕이라는 세 독마가 있어 우리 사부님을 잡아 가고 제자까지 한꺼번에 재앙에 걸려들어 모두 찜통 속에 묶인 채 끓는 물과 불의 재앙을 받았사옵니다. 다행히 제자가 몸을 빠져나와 용왕을 불러 구하여 면하였사옵니다. 그 밤에 사부님 일행을 훔쳐 내어 빠져나왔으나 뜻밖에도 재성이 벗어나지 않아 도로 붙잡혀 돌아왔사옵니다. 날이 밝기에 이르러 성에 들어가 알아보니, 원통하게도 저 요마가 몹시 독랄하고 온갖 용맹을 부려 사부님을 바로 그 어젯밤에 덜 익은 채로 잡수셨으므로 이제는 뼈와 살조차 남아 있지 않사옵니다. 게다가 사제 오능과 오정이 저쪽에 묶여 있으니 멀지 않아 저희 목숨도 모두 기울고 말 것이옵니다. 제자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 특별히 이곳에 와 여래께 참배하옵니다. 바라옵건대 크신 자비를 베푸시어 송고주를 외우시고 제 머리 위 이 고리를 벗겨 여래께 도로 갖다 바치게 하시며, 이 제자를 화과산으로 돌려보내 주시어 한가로이 놀며 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샘물처럼 솟구치고 슬피 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여래가 웃으며 말했다. “오공아, 너무 번민하지 말라. 저 요정은 신통이 광대하여 네가 그를 이기지 못하니 그래서 네 마음이 그리 아프니라.” 행자가 아래에 꿇어앉아 가슴을 치며 말했다. “여래께 거짓을 아뢰지 않사옵니다. 제자가 옛날에 천궁을 소란시키고 대성을 자처하며 사람 구실을 한 이래로 일찍이 손해를 본 적이 없사온데, 이번에야말로 이 독마의 손에 걸려들고 말았나이다!” 여래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너는 우선 원망을 거두어라. 저 요정을 나는 알고 있느니라.” 행자가 홀연 소리를 버럭 내며 말했다. “여래시여! 제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저 요정이 여래와 친척이 되신다 하옵니다.” 여래가 말했다. “이 간사한 원숭이 같으니! 무슨 요정이 나와 친척이 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여래와 친척이 되지 않으신다면 어찌하여 아십니까?” 여래가 말했다. “내가 혜안으로 살피므로 그런즉 아느니라. 저 노괴와 이괴에게는 주인이 있느니라.” 여래가 아난과 가섭을 불러오게 하여 분부하였다. “너희 둘은 갈라서서 구름을 타고 오대산과 아미산으로 가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불러 오게 하라.” 두 존자가 곧 성지를 받들고 떠났다. 여래가 말했다. “이들이야말로 노마와 이괴의 주인이니라. 그러나 저 삼괴는 이야기하자면 역시 나와 조금 인척이 되는 처지니라.” 행자가 말했다. “친척이라 하시니 부계 쪽이옵니까, 모계 쪽이옵니까?” 여래가 말했다. “저 혼돈이 갈라지던 때를 말하자면, 하늘은 자시에 열리고 땅은 축시에 열리고 사람은 인시에 생겨났느니라. 천지가 다시 교합하니 만물이 모조리 생겨났고, 만물에 짐승과 날짐승이 있어 짐승은 기린을 우두머리로 삼고 날짐승은 봉황을 우두머리로 삼느니라. 그 봉황이 또한 교합의 기운을 얻어 공작과 대붕을 낳았느니라. 공작이 세상에 나올 적에는몹시 흉악하여 사람을 잡아먹되, 사십오 리 밖에 있는 사람도 한 입에 빨아들이느니라. 내가 설산 꼭대기에서 장륙금신을 이루어 수양할 적에 일찍이 그놈에게 빨려 뱃속으로 들어간 일이 있느니라. 내가 그의 뒤쪽 문으로 나오려 하였으나 진신을 더럽힐까 염려되었으므로 그의 등을 갈라 내고 영산으로 올라왔느니라. 그의 목숨을 해치려 하자 여러 부처가 말리며 권하기를, 공작을 다치게 하는 것은 내 어미를 다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므로, 그를 영산회상에 머물게 하고 불모공작대명왕보살로 봉하였느니라. 대붕은 그와 한 어미에게서 태어났으므로 그런 까닭에 인척이 되는 처지가 있느니라.”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여래시여, 그와 같이 따져 본다면 여래께서는 도리어 요정의 생질이 되시는 셈이옵니다.” 여래가 말했다. “저 괴물은 반드시 내가 가야 비로소 거둘 수 있느니라.” 행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여래께 아뢰었다. “부디 옥같은 발걸음을 한 번 내려 주시옵소서!” 여래가 곧 연대에서 내려와 여러 부처 무리와 함께 산문 밖으로 나오니, 아난과 가섭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인도하여 뵙고 있었다. 두 보살이 부처님께 예를 올리자 여래가 말했다. “보살의 짐승이 산에서 내려간 지 얼마나 되었느냐?” 문수가 말했다. “이레가 되었나이다.” 여래가 말했다. “산속에서 이레라는 것은 세상에서는 몇천 년이 되느니라. 그동안 어느 곳에서 얼마나 많은 생령을 해쳤는지 알 수 없으니, 어서 나를 따라 그놈을 거두러 가거라.” 두 보살이 좌우에서 따르며 무리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바라보니 이러하였도다. 하늘 가득 아득한 상서로운 구름이 갈라지고, 우리 부처님께서 자비로이 법문으로 내려오시네. 하늘이 열려 만물을 낳은 이치를 밝히 보이시고, 땅이 열려 화신으로 드러난 글을 자세히 말씀하시네. 앞에는 오백의 아라한이요, 뒤에는 삼천의 게제신이로다. 가섭과 아난이 좌우를 따르고,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요마의 기운을 쓸어 버리네. 대성이 이런 인정을 얻어 부처님과 여러 신을 모셔 오니, 오래지 않아 어느덧 성이 보였다. 행자가 아뢰었다. “여래시여, 저 검은 기운을 뿜고 있는 곳이 바로 사타국이옵니다.” 여래가 말했다. “네가 먼저 내려가 그 성 안에서 요정과 싸우되, 지는 것은 허락하나 이기는 것은 허락하지 않노라. 져서 올라오면 내가 몸소 거두리라.” 대성이 곧 구름을 내려 성 위에 이르러 여장 밟고 서서 욕을 하였다. “이 몹쓸 짐승들아! 어서 나와 이 늙은 손과 싸워 보아라!” 놀란 성루 위의 작은 요괴가 급히 성 안으로 뛰어 내려가 아뢰었다. “대왕마마, 손행자가 성 위에서 싸움을 청하고 있나이다.” 노요괴가 말했다. “이 원숭이놈이 두 사흘 동안 오지 않더니 오늘 아침에 도로 싸움을 청하니, 혹 원군을 데려온 것은 아니냐?” 삼괴가 말했다. “그까짓 놈이 무서우냐! 우리 모두 가서 보자꾸나.” 세 마두가 저마다 병기를 들고 성 위로 올라와 행자를 보자 말도 없이 병기를 들어 일제히 마구 찔러 대니, 행자는 쇠몽둥이를 휘둘러 손을 뻗어 맞받았다. 일곱여덟 합을 싸우고 나자 행자는 거짓으로 진 체하며 달아났다. 그 요왕이 큰 소리로 진동하며 외쳤다. “어딜 가느냐!” 대성이 근두운을 한 번 솟구쳐 반공중으로 뛰어오르니 세 요정이 곧 구름을 타고 뒤쫓았다. 행자는 몸을 한 번 피하여 불야야의 금빛 그림자 속에 숨으니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라보니 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삼존불상과 오백 아라한과 삼천 게제신이 좌우로 흩어져 서서 그 세 요왕을 에워싸니 물 한 방울 새어 나갈 틈도 없었다. 노마가 손발이 허둥거리며 외쳤다. “아우야, 큰일 났다! 저 원숭이는 참으로 땅속의 귀신이로구나! 어디서 주인을 모셔 왔단 말이냐!” 삼마가 말했다. “큰형님, 겁낼 것 없나이다. 우리가 일제히 달려들어 창과 칼로 여래를 찔러 넘어뜨리고 저 뇌음보찰을 빼앗자꾸나!” 이 마두는 분별도 없이 참으로 칼을 들어 앞으로 나서며 마구 내리찍었으나, 도리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진언을 외우며 호령하였다. “이 못된 짐승이 어찌하여 귀의하지 않고 무슨 일을 기다리느냐!” 노괴와 이괴는 놀라 감히 버티지 못하고 병기를 내던진 채 한바탕 뒹굴며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두 보살이 연화대를 그 요괴의 등 위로 내던지고 몸을 날려 걸터앉으니 두 요괴는 귀를 늘어뜨리고 귀의하였다. 두 보살이 청사와 백상을 거둔 뒤에도 오직 세째 요마만이 복종하지 않고 날개를 펼쳐 방천극을 내던진 채 바람을 타고 곧장 솟아올라,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원숭이 왕을 낚아채려 하였다. 알고 보니 대성이 빛 속에 숨어 있으니 그가 어찌 감히 가까이하겠느냐? 여래는 그 속셈을 알아차리고 곧 금빛을 번쩍이며 까치집처럼 머리에 얹힌 머리털을 바람에 한 번 흔들어 선홍빛 핏덩이 한 조각으로 변하게 하였다. 요정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그것을 낚아채자, 불야야께서 손을 위로 가리키니 그 요괴의 날개 힘줄이 땡겨 버렸다. 날아가지 못하고 다만 부처님 정수리 위에 머물며 멀리 달아나지 못한 채 본모습을 드러내니, 그것은 곧 큰 붕새인 금시조였다. 그놈이 곧 입을 열어 부처님께 응답하며 외쳤다. “여래시여, 어찌하여 큰 법력으로 나를 가두시나이까?” 여래가 말했다. “네가 이곳에서 많은 업장을 지었으니 나를 따라가거라. 그러면 공덕을 쌓는 이익이 있으리라.” 요정이 말했다. “여래의 처소에서는 채식만 하시며 지극히 가난하고 괴로우시되, 내 이곳에서는 사람의 고기를 먹으며 누리는 것이 끝이 없나이다. 그대가 나를 굶겨 죽인다면 그대에게 죄업이 있을 것이외다.” 여래가 말했다. “내가 사대부주를 다스리니 무수한 중생이 우러러보느니라. 무릇 선한 일을 할 때에는 내가 그들에게 먼저 네 입에 제사 지내라 하리라.” 그 대붕이 벗어나려 하여도 벗어날 수 없고 가려 하여도 어찌 가랴? 이리하여 어찌할 수 없이 귀의할 따름이었다. 행자가 그제야 빛 속에서 걸어 나와 여래께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불야야, 이제 요정을 거두시고 큰 화를 없애 주셨사오나, 다만 내 사부님이 없어졌사옵니다.” 대붕이 이를 악물며 원망하여 말했다. “이 건방진 원숭이 녀석! 이다지 사나운 사람을 데려다가 나를 가두다니! 네 그 늙은 중을 누가 언제 잡아먹었느냐? 지금 저 금향정자 철궤 속에 있지 않으냐?”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황급히 머리를 조아려 불조께 사례하였다. 불조는 대붕을 함부로 놓아 두지 못하여 다만 그를 광염 위에서 호법으로 삼게 한 뒤 무리를 이끌고 구름을 타고 보찰로 곧장 돌아갔다. 행자는 구름을 내려 성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그 성 안에는 작은 요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 참으로 뱀은 머리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고 새는 날개가 없으면 날지 못하는 법이었다. 불조가 요왕을 거두자 저희끼리 목숨을 건져 흩어져 도망친 것이었다. 행자는 그제야 팔계와 사승을 구출하고 행리와 말도 찾아내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사부님은 잡수시지 않았으니 모두 나를 따라오너라.” 그는 두 사람을 이끌고 안뜰로 곧장 들어가 금향정자를 찾아내어 문을 열고 보니 안에 철궤 하나가 있고 삼장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승이 요괴 항복 막대로 철물쇠를 쳐 부수고 궤뚜껑을 열어젖히며 “사부님!” 하고 불렀다. 삼장이 그들을 보고 목을 놓아 통곡하며 말했다. “제자들아! 어찌하여 요마를 항복받고 어찌하여 이곳에 이르러 나를 찾아내었느냐?” 행자가 윗일을 머리에서 꼬리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아뢰니 삼장은 감사를 다하지 못하였다. 사부와 제자들은 그 궁전에서 쌀과 양식을 조금 찾아내어 차와 밥을 장만하여 한 끼 배불리 먹고, 짐을 꾸려 성을 나서 큰길을 찾아 서쪽을 향하여 떠났다. 바로 이러하였도다. 참된 경전은 반드시 참된 사람이 취하나니, 뜻만 떠들고 마음만 수고로우면 언제나 헛되니라. 필경 이 길로 가서 언제나 여래를 친히 뵙게 될는지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8회 비구련자견음신(比丘憐子遣陰神) · 금전식마담도덕(金殿識魔談道德) 한 생각이 비로소 움직이매 온갖 마귀가 일어나니, 닦고 지키는 일이 가장 괴로워 그놈들을 어찌하리오. 다만 씻고 닦아 티끌과 때를 없애야 하고, 또한 거두어 매어 갈고 닦는 공이 있어야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을 쓸어 물리쳐 고요한 적멸로 돌아가고, 천 가지 괴이를 씻어 내되 세월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지어다. 반드시 그 새장의 올가미를 벗어나게 하리니, 공행이 차면 날아올라 대라천에 이르리라. 각설하고 손대성이 온갖 꾀를 다 기울여 여래를 청하여 여러 괴물을 거두게 하고 당삼장 사도의 재난에서 벗어나, 사타성을 떠나 서쪽으로 향하였다. 또 몇 달을 지나 어느덧 겨울이라, 고개의 매화는 옥을 깨뜨릴 듯하고 못물은 점차 얼음이 되어 갔다. 붉은 잎은 모두 떨어지고 푸른 소나무는 빛이 새로웠으며, 엷은 구름은 날아 눈이 내릴 듯하고 마른 풀은 산에 엎드려 평평하였다. 눈에 가득 찬 기운이 아득하고 음산한 냉기가 뼛속까지 시렸다. 사도들이 추위를 뚫고 찬 기운을 무릅쓰며 비를 맞으며 자고 바람을 먹으며 가던 길에 또 한 성을 보았다. 당승이 물었다. “오공아, 저쪽은 또 어떤 곳이더냐?” 손행자가 말했다. “가까이 가면 저절로 알게 되리다. 만일 서쪽 임금이 있는 곳이라면 관문을 바꾸어야 하고, 부나 주나 현이라면 곧장 지나가면 그만이다.” 사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성문 밖에 이르렀다. 당승이 말에서 내려 네 사람이 월성 안으로 들어가니, 볕이 드는 담장 아래에서 한 늙은 군사가 바람을 등지고 잠들어 있었다. 손행자가 앞으로 다가가 그를 한 번 흔들며 불렀다. “장관.” 그 늙은 군사가 홀연 놀라 깨어나며, 몽롱하게 눈을 떠 손행자를 보고는 황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할아버지!” 손행자가 말했다. “허튼소리 말고 놀라 괴이한 짓을 하지 마라. 나는 무슨 악신도 아닌데 네가 어찌 나를 할아버지라 부르느냐!” 늙은 군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당신은 뇌공 할아버지시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허튼소리! 나는 동토에서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승려다. 막 이곳에 이르러 지명을 알지 못하여 네게 한마디 물었을 뿐이다.” 그 늙은 군사가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가다듬고, 하품을 하고 일어나 허리를 펴며 말했다. “장로님, 장로님, 소인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이곳은 본래 비구국이라 불렸는데 이제는 소자성으로 고쳤나이다.” 손행자가 말했다. “나라에 임금이 있느냐?” 늙은 군사가 말했다. “있나이다! 있나이다! 있나이다!” 손행자가 몸을 돌려 당승에게 아뢰었다. “스승님, 이곳은 본래 비구국인데 이제 소자성으로 고쳤다 하옵니다. 그러나 이름을 고친 까닭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겠나이다.” 당승이 의심스러워하며 말했다. “이미 비구라 하였거늘 어찌 또 소자라 하는가?” 저팔계가 말했다. “비구국 왕이 붕어하고 새로 왕위에 오른 이가 어린아이라서 소자성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이런 이치가 있사오리이까! 이런 이치가 있사오리이까! 먼저 들어가서 거리에서 다시 물어보는 것이 좋사오리다.” 사오정이 말했다. “옳은 말씀이옵니다. 저 늙은 군사는 알지 못하는 데다 큰형님에게 겁을 집어먹어 허튼소리를 한 것이옵니다. 성에 들어가 물어보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또 세 겹의 문을 들어서 큰 저잣거리에 이르러 보니, 의관이 또한 단정하고 인물들은 맑고 수려하였다.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술집과 노래청은 말소리가 떠들썩하고, 채색한 가게와 찻집에는 발을 높이 걸었구나. 만 호와 천 문에 장사가 잘되고, 여섯 거리와 세 저자에 재물의 근원이 넓도다. 금을 사고 비단을 파는 이가 개미 같고, 이익을 다투고 이름을 겨룸은 다만 돈 때문이로다. 예모가 엄숙하고 풍경이 성하여, 강이 맑고 바다가 잔잔한 태평한 해로다. 사도 네 사람이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저잣거리를 한참 걸었으나 번영한 기세를 다 보지 못하였는데, 다만 집집마다 문 앞에 아롱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당승이 말했다. “제자들아, 이곳 사람들은 모두 아롱을 문 앞에 두었구나. 어째서이더냐?” 저팔계가 듣고 좌우를 살펴보니 과연 아롱이었고 오색 비단으로 가리개를 쳐 두었다. 그 멍청한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오늘은 혼인을 맺고 벗을 모으는 좋은 길일이라 모두 예를 올리는 것이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허튼소리! 어찌 집집마다 예를 행하겠느냐! 그 속에 틀림없이 까닭이 있을 터이니, 내가 앞으로 가서 좀 보고 오리다.” 당승이 붙잡으며 말했다. “너는 가지 마라. 네 얼굴이 추하고 괴이하여 사람들이 너를 괴이하게 여길까 두렵다.” 손행자가 말했다. “내가 무슨 모습으로든 변하여 갔다 오겠나이다.” 훌륭한 대성이로다. 결을 쥐고 주문을 외며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꿀벌 한 마리가 되어, 날개를 펴고 가까이 날아가 휘장 속으로 파고들어 보니, 그 안에 앉아 있는 것은 어린아이였다. 또 둘째 집 아롱 속을 가 보아도 역시 어린아이였다. 여덟아홉 집을 이어 보니 모두 어린아이였고, 그것도 모두 남자아이요 여자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어떤 아이는 아롱 속에 앉아 장난하고, 어떤 아이는 안에 앉어 울며, 어떤 아이는 과일을 먹고, 어떤 아이는 자거나 앉아 있었다. 손행자가 두루 보고 본모습으로 돌아와 당승에게 아뢰었다. “그 아롱 속에는 어린아이들이 들어 있사온데, 큰 아이는 일곱 살이 차지 않고 작은 아이는 겨우 다섯 살이옵니다.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나이다.” 당승이 듣고는 의심과 생각이 가닿지 않았다. 문득 거리를 꺾어 돌자 관청 하나가 보였는데 금정관역이었다. 장로가 기뻐하며 말했다. “제자들아, 우리가 이 역 안으로 들어가자. 하나는 이곳 사정을 묻기 위해서요, 둘은 말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요, 셋은 날이 저물어 묵기 위해서다.” 사오정이 말했다. “옳사옵니다, 옳사옵니다. 어서 들어가시옵소서.” 네 사람이 기꺼이 들어가니, 관아의 사람들이 과연 역승에게 알리고 문으로 맞아들여 각각 인사를 나누었다. 자리를 정하여 앉자 역승이 물었다. “장로님은 어느 곳에서 오시옵니까?” 당승이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에서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라는 분부를 받은 자이옵니다. 이제 귀한 고을에 이르렀으니 관문을 마땅히 조사받아야 하옵기에, 잠시 높은 관아를 빌려 하룻밤 쉬고자 하옵니다.” 역승이 곧 차를 내오라 명하고, 차가 끝나자 곧 지응을 마련하고 당직자에게 관대를 차리라 명하였다. 당승이 감사를 표하고 또 물었다. “오늘 입조하여 옥안을 뵙고 관문을 조사받을 수 있겠소이까?” 역승이 말했다. “오늘 밤은 어렵사옵니다. 내일 조회를 기다려야 하옵니다. 오늘 밤은 우선 이 천한 관아에서 편히 하룻밤 묵으시옵소서.” 잠시 뒤 마련이 끝나자 역승이 네 사람을 청해 함께 재공을 들게 하고, 수하에게 객방을 치워 쉬게 하라 일렀다. 당승이 끝없이 감사하였다. 자리에 앉자 장로가 말했다. “빈승에게 밝지 못한 일이 있어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번거로우시겠으나 일러 주시옵소서. 귀한 고을에서 아이를 기르는 데 어찌하여 대접하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역승이 말했다. “하늘에 해가 둘이 없고 사람에게 이치가 둘일 수 없나이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부친의 정기와 모친의 혈로 열 달을 태 속에 품었다가 때를 기다려 낳고, 낳아서는 삼 년을 젖을 먹여 점차 체격을 이루나이다. 어찌 그 이치를 알지 못할 리가 있사오리이까!” “존귀한 분의 말씀은 폐방과 다름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빈승이 성에 들어올 적에 거리의 인가마다 아롱을 차려 두고 그 속에 어린아이를 감추어 둔 것을 보았나이다. 이 일이 밝지 못하옵기에 감히 여쭈어 보옵니다.” 역승이 귀를 가까이 대고 낮게 말했다. “장로님은 그것을 상관하지도 마옵시고, 묻지도 마옵시고, 입에 올리지도 마옵소서. 부디 편히 쉬시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나시옵소서.” 장로가 그 말을 듣고 단번에 역승의 소매를 붙잡고는, 반드시 분명히 알고야 말겠노라고 우겼다. 역승이 머리를 저으며 손을 흔들고 다만 외쳤다. “조심하옵소서!” 당승은 더욱 놓지 않고 죽기를 작정한 듯 자세한 내막을 묻겠노라고 우겼다. 역승이 어쩔 수 없어 관아의 사람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홀로 등불 아래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까 물으신 아롱의 일은 지금 임금님의 무도한 일이옵니다. 장로님이 어찌 그것을 굳이 물으시려 하시옵니까!” 당승이 말했다. “무엇이 무도하다는 것이옵니까? 반드시 분명히 가르쳐 주셔야 저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나이다.” 역승이 말했다. “이 나라는 본래 비구국이옵니다만 근자에 민요가 퍼져 소자성으로 고쳐 불리옵니다. 삼 년 전 어떤 노인이 도사의 차림을 하고 어린 여자아이 하나를 데려왔는데 나이가 갓 열여섯 살이옵니다. 그 여아의 모습이 아리땁고 준수하여 얼굴이 관음과 같았사옵기에 지금 임금님께 진공하였더니, 폐하께서 그 미모를 사랑하시어 궁중에서 총애하며 미후라 불렀나이다. 요즈음에는 삼궁의 낭낭과 육원의 비빈들을 곁눈질도 하지 않으시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즐거움만 탐하시어, 정신은 수척하고 몸은 바싹 여위어 음식을 조금 드시니 목숨이 경각에 달렸나이다. 태의원이 온갖 좋은 처방을 다 살펴보았으나 고치지 못하였나이다. 그 여아를 바친 도사는 우리 임금님의 고봉을 받아 국장이라 불리옵니다. 국장에게 해외의 비방이 있어 수명을 늘리는 데 매우 능하다 하옵니다. 앞서 십주와 삼도에 가서 약을 캐어 왔으니 모두 갖추어졌나이다. 다만 약의 재료가 사납사옵니다. 천백십일 명의 어린아이의 심장만 달여 그 탕에 약을 타 먹으면, 복용한 뒤에 천 년을 늙지 않는 공이 있다 하옵니다. 이 아롱 속의 어린아이들은 모두 골라 뽑아 길러 둔 것이옵니다. 아이의 부모들도 왕법이 두려워 감히 울지도 못하옵고, 드디어 소문이 퍼져 이곳을 어린아이의 성이라 부르게 되었나이다. 이것이 무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장로님은 내일 아침 조정에 가시거든 관문만 바꾸시고 이 일은 입에 올리지 마옵소서.” 말을 마치고 몸을 빼어 물러났다. 장로는 뼈가 풀리고 힘줄이 저려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문득 소리를 놓아 외쳤다. “어리석은 임금이여, 어리석은 임금이여! 너는 즐거움을 탐하고 미색을 사랑하다가 병을 얻어 놓고서, 어찌하여 이 많은 어린아이의 목숨을 억울하게 해치려 하느냐! 괴롭도다! 괴롭도다!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는 이러하였다. 사악한 임금은 바름과 참됨을 잃고, 즐거움만 탐하여 깨닫지 못한 채 몸을 상하게 하였도다. 오래 사는 것을 구하려다 어린 목숨을 해치고, 하늘의 재앙을 풀겠다며 작은 백성을 죽이는구나. 승려는 자비를 일으켜 차마 끊지 못하고, 관리의 말은 사나워 차마 들을 수 없도다. 등불 앞에서 눈물을 뿌리며 탄식하니, 참선하여 부처를 향하던 이가 괴로움에 쓰러지는구나. 저팔계가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스승님, 어찌된 일이시옵니까? 남의 관을 굳이 우리 집에 메어다 놓고 우시니 말이옵니다! 걱정하지 마옵소서! 속담에 이르기를, 임금이 신하에게 죽으라 하면 신하가 죽지 않으면 불충이요, 부친이 자식에게 죽으라 하면 자식이 죽지 않으면 불효라 하였나이다. 그가 해치는 것은 그의 백성이옵니다. 스승님과 무슨 상관이 있사옵니까! 어서 옷을 벗고 주무시옵소서. 옛사람 걱정을 대신하지 마옵소서.” 당승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제자야, 너는 자비심이 없는 사람이로구나! 나는 출가한 사람이니 공을 쌓고 행을 닦되, 첫째로 방편을 베풀어야 하느니라. 어찌 이 어리석은 임금이 한결같이 제멋대로 행하는고! 예로부터 사람의 심장을 먹고 수명을 늘린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노라. 이 모두가 무도한 일이거늘, 나더러 어찌 슬프지 않으라 하느냐!” 사오정이 말했다. “스승님, 우선 슬퍼하지 마옵시고 내일 아침 관문을 바꿀 때 왕을 직접 대면하여 말씀해 보옵시다. 만일 따르지 않거든 그 국장이 어떤 인물인지 보시옵소서. 혹 그 국장이 요정으로서 사람의 심장을 먹으려고 이런 법을 꾸며 낸 것인지도 모를 일이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오정의 말이 옳사옵니다. 스승님, 우선 주무시옵소서. 내일 저 늙은 손이 스승님과 함께 입조하여 국장을 살펴보겠나이다. 만일 사람이라면 그가 방문으로 빠져 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고 약초 캐는 것만 참된 줄 아는 것이 두려우니, 저 늙은 손이 선천의 요지를 들어 그를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겠나이다. 만일 요사한 놈이라면 내가 그를 붙잡아 이 나라 왕에게 보여 주어, 욕심을 줄이고 몸을 기르게 하고 결코 그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해치지 못하게 하겠나이다.” 당승이 그 말을 듣고 황급히 몸을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 “제자야, 이 논의가 매우 훌륭하구나! 매우 훌륭하구나! 다만 어리석은 임금을 만나거든 곧 이 일을 물어서는 안 되리라. 그 어리석은 임금이 가까운 자와 먼 자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소문을 퍼뜨린 죄로 몰아세울까 두렵구나. 그러면 어찌 처리한단 말이냐?”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 늙은 손에게는 법력이 있사오니, 먼저 아롱 속의 어린아이들을 이 성에서 끌어내어 내일 그들에게서 심장을 취할 거리가 없게 하겠나이다. 지방 관원이 저절로 표를 올릴 터이니, 그 어리석은 임금이 반드시 뜻을 내려 국장과 의논하거나 따로 뽑아 올리라 할 것이옵니다. 그때에 그 일을 빌려 아뢰면 결코 죄가 우리에게 미치지 않을 것이옵니다.” 당승이 매우 기뻐하며 또 말했다. “그러면 이제 어찌해야 어린아이들이 성을 벗어나겠느냐? 만일 참으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면, 이는 참된 어진 제자의 하늘 같은 큰 덕이로다! 어서 그리 하여라. 조금이라도 더디면 미치지 못할까 두렵구나.” 손행자가 신위를 떨치며 곧 일어나 저팔계와 사오정에게 분부했다. “스승님과 함께 앉아 내가 재주를 부리는 것을 보아라. 음풍이 불어 움직이는 것이 보이면 그것이 어린아이들이 성을 나가는 것이다.” 그 세 사람이 일제히 염불했다. “나무 생명을 구하시는 약사불이시여! 나무 생명을 구하시는 약사불이시여!” 이 대성이 문 밖으로 나가 휘파람을 길게 한 번 불고 반공중으로 솟아올라, 손가락으로 결을 쥐고 진언을 외우며 “옴 정법계” 하고 크게 부르니, 성황과 토지와 사령과 진관, 그리고 오방의 갈제와 사치공조와 육정육갑과 호교가람 등의 무리가 모두 공중에 이르러 그에게 예를 올리며 아뢰었다. “대성이시여, 한밤중에 저희를 부르시니 무슨 급한 일이 있사옵니까?” 손행자가 말했다. “지금 비구국을 지나는 길인데 그 나라 왕이 무도하여 요사한 놈의 말을 듣고, 어린아이의 심장을 약의 재료로 삼아 장생하려 하옵니다. 우리 스승님이 매우 차마 두지 못하시어 그 생명을 구하고 요괴를 없애려 하시니, 이에 늙은 손이 특별히 여러분을 청하였나이다. 각기 신통을 부려 이 성안 여러 거리의 인가에 있는 아롱 속 어린아이들을 아롱째 성 밖의 산골이나 수풀 깊은 곳으로 옮겨, 하루나 이틀을 간직하되 과일을 주어 먹이고 굶주려 상하게 하지 말아 주시오. 또 은밀히 지켜 주어 놀라고 겁먹어 울지 않게 하시오. 내가 요사한 것을 없애고 나라를 다스려 임금을 바르게 권한 뒤에, 떠날 때에 도로 가져다 주시오.” 여러 신이 명을 듣고 곧 각기 신통을 부려 구름머리를 내리누르니, 온 성안에 음풍이 굴굴 일고 참혹한 안개가 자욱하였도다. 음풍은 하늘의 별을 어둡게 불어 가리고, 참혹한 안개는 천 리의 달을 가려 흐리게 하였도다. 처음에는 한가롭고 유유하더니 그 뒤로는 굉장하고 힘차게 일어났다. 유유히 저마다 문호를 찾아 어린아이를 구하고, 굉장하게 모두 아롱을 살펴 골수를 건졌다. 찬 기운이 사람을 엄습하니 어찌 머리를 내밀겠는가, 추위가 몸을 꿰뚫으니 옷이 쇠 같구나. 부모는 부질없이 허둥대고 형과 형수는 모두 슬퍼하였도다. 땅에 가득히 음풍이 휘감기니 아롱이 신에게 끌려갔도다. 이 밤에 비록 외롭고 서럽더라도 날이 밝면 모두 기뻐하리라.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는 이러하였다. 불교의 자비로운 마음은 예로부터 많았고, 바른 선행이 이루어짐을 마하에서 말하였도다. 만 성인과 천 진인이 모두 덕을 쌓고, 세 가지 귀의와 다섯 계율은 화합을 따라야 하느니라. 비구국 하나가 임금의 어지러움이 아니요, 아이 천 명의 운명이 그릇된 것이로다. 손행자가 스승을 위하여 함께 구호하니, 이 음덕은 바라밀보다 뛰어나도다. 그날 밤 삼경에 여러 신들이 아롱을 거두어 각처에 감추었다. 손행자가 상서로운 빛을 거두고 역의 뜰로 내려가 보니, 그 세 사람이 아직도 “나무 생명을 구하시는 약사불이시여” 하고 염불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기뻐하며 앞으로 다가가 외쳤다. “스승님, 제가 왔나이다. 음풍이 일어나는 것이 보이시옵니까?” 저팔계가 말했다. “좋은 음풍이로구나!” 당승이 말했다. “어린아이를 구한 일은 이제 어찌 되었단 말이냐?” 손행자가 말했다. “이미 하나하나 모두 구해 내보냈사오니, 우리가 떠날 무렵에 도로 갖다 주겠나이다.” 장로가 거듭 감사를 드리고서야 마음을 놓아 자리에 들었다. 날이 밝자 당승이 깨어나 단장을 갖추고 나서 말했다. “오공아, 내가 조회에 맞추어 관문을 바꾸러 가겠노라.”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이 홀로 가시면 일이 잘되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저 늙은 손이 함께 가서 그 국장이 바른지 사특한지 살펴보겠나이다.” 당승이 말했다. “네가 가서는 예를 갖추려 하지 않으니 왕이 괴이하게 여길까 두렵구나.” 손행자가 말했다. “제가 몸을 드러내지 않고 몰래 스승님을 따르기만 하여도 그것이 곧 보호가 되나이다.” 당승이 매우 기뻐하여 저팔계와 사오정에게 행리와 말을 지키라 분부하고서야 막 발을 떼려는데, 역승이 또 와서 뵈었다. 이 장로가 차려입은 모습이 어제보다 훨씬 달랐으니, 보라 이러하였다. 몸에는 금란으로 지은 보배로운 불가사를 걸치고 머리에는 금빛 꼭대기의 비로 모자를 썼으며, 아홉 고리 석장을 손에 쥐었고 가슴에는 한 점 신묘한 빛을 품었도다. 통관 문첩을 몸에 지니고 보따리 주머니에는 비단 싸개를 둘렀으니, 걸음은 아라한이 세상에 내려온 듯하고 참으로 살아 있는 부처의 용모로다. 역승이 인사를 마치고 귀를 대고 낮게 일렀으니, 남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승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였다. 대성이 문가로 비켜서서 주문을 외우고 몸을 흔들어 한 번 변하니, 작은 매미 같은 벌레가 되어 “앵” 소리와 함께 당승의 모자 위로 날아올라, 관역을 나와 곧장 조정으로 향했다. 조문 밖에 이르러 황문관이 보이자 곧 예를 갖추며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에서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라는 분부를 받은 자이옵니다. 이제 귀한 땅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관문을 바꾸어야 하옵니다. 옥안을 뵙고자 하오니 전달하여 주시옵소서.” 그 황문관이 과연 전달하여 아뢰니,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먼 곳에서 온 승려는 필시 도행이 있으리라.” 들여오라 분부하였다. 황문관이 다시 명을 받아 장로를 청하여 들였다. 장로가 섬돌 아래에서 조현을 마치자, 다시 전에 올라앉으라 청하였다. 장로가 또 은혜에 감사하고 앉아서 보니, 그 나라 왕의 용모는 바싹 여위었고 정신은 지쳐 있었다. 손을 들어 읍양하는 것도 어긋나고, 입을 열어 말할 때에는 소리가 끊겼다 이어졌다 하였다. 장로가 문첩을 올리니, 그 왕은 눈이 어둑하여 거듭거듭 살펴보고서야 보인을 가져다 화압을 찍어 장로에게 건네주었고, 장로가 받아 거두었다. 그 나라 왕이 막 경을 가지러 가는 까닭을 물으려 하는데, 당가관이 아뢰었다. “국장 어르신이 오셨나이다.” 그 왕이 곧 가까이 모시는 어린 환관에게 부축받아 용상에서 억지로 일어나 몸을 굽혀 맞이하니, 장로가 급히 일어서서 곁으로 비켜 섰다. 고개를 돌려 보니 늙은 도사 하나가 옥계 앞에서 흔들흔들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보라, 이러하였다. 머리에는 연한 황색의 아홉 번 하사받은 운금 사건을 쓰고, 몸에는 대나무 끝처럼 뾰족한 매화 침향 명주실 학창의를 걸쳤으며, 허리에는 쪽빛 세 가닥 털끈을 둘렀고 발에는 삼과 갈포로 엮은 구름 무늬 신을 신었도다. 손에는 아홉 마디 마른 등나무 반룡 지팡이를 짚고, 가슴에는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은 둥근 꽃무늬 비단 주머니를 걸었으며, 옥 같은 얼굴은 윤택이 넘치고 흰 수염은 턱 아래에서 나부끼는구나. 금빛 눈에는 불꽃이 날리고 긴 눈은 눈썹 끝을 넘었도다. 걸으면 구름이 발을 따르고, 향기로운 안개가 자욱하구나. 섬돌 아래 여러 관원이 모두 공손히 맞이하며 일제히 국장이 조정에 드신다 외쳤도다. 그 국장이 보전 앞에 이르러서는 예를 행하지도 않고 거만하게 곧장 전 위로 올라갔다. 왕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국장의 신선 같은 걸음이 오늘 일찍 내리시니 기쁘도다.” 곧 왼쪽 수놓은 방석에 앉기를 청하였다. 당승이 한 걸음 나서며 몸을 굽혀 예를 갖추어 말했다. “국장 어르신, 빈승이 문안드리옵니다.” 그 국장은 꼿꼿이 높이 앉아 답례도 하지 않고 얼굴을 왕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저 승려는 어디서 왔느냐?” 왕이 말했다. “동토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가지라 보낸 자이옵니다. 이제 관문을 확인받으려 하옵니다.”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서쪽 길은 캄캄하기만 한데 무슨 좋은 곳이 있단 말이냐!” 당승이 말했다. “예로부터 서쪽은 지극한 즐거움의 빼어난 경지이옵니다. 어찌 좋지 않다 하시옵니까?” 그 나라 왕이 물었다. “짐이 듣건대 상고에 승려는 불가의 제자라 하였는데, 참으로 알지 못하겠노라. 승려가 되면 죽지 않고 부처를 향하면 장생할 수 있단 말이냐?” 당승이 그 말을 듣고 황급히 합장하여 대답했다. “승려가 된 자는 만 가지 인연을 그만두고, 성품을 깨친 자는 모든 법이 다 공하나이다. 큰 지혜는 한가로워 나지 않는 가운데 담박하고, 참된 기틀은 적멸 가운데 노니나이다. 삼계가 공하므로 온갖 것이 다스려지고, 육근이 깨끗하므로 천 가지가 다하나이다. 만일 굳건하고 정성스럽게 깨닫고자 한다면 마음을 알아야 하니, 마음이 맑으면 외로운 밝음이 홀로 비추고 마음이 머물면 만 가지 경계가 모두 맑아지나이다. 참된 모습은 모자람도 남음도 없어 살아 있을 때에 볼 수 있거늘, 허깨비 모습은 형상이 있어 끝내 무너지나니 분수 밖에서 무엇을 구하리이까. 공을 닦고 좌선함은 입정의 근본이 되고, 은혜를 베풂은 수행의 근본이 되나이다. 큰 교묘함은 서툰 듯하니 모든 일이 무위함을 알아야 하고, 잘 꾀함은 꾀하지 않으니 모름지기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하나이다. 다만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행이 저절로 온전해지거늘, 음을 취하여 양을 보충한다 함은 그릇된 말이오, 단약을 먹고 장수한다 함은 헛된 말이옵니다. 오직 티끌 같은 인연을 모두 버리고 사물의 빛깔을 모두 공하게 하면, 순수하여 애욕이 적어지니 절로 누리는 수명이 무궁하옵니다.” 그 국장이 그 말을 듣고 웃어넘기며, 손가락으로 당승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 하! 하! 이 승려야, 입에 가득 헛소리만 담았구나! 적멸의 문에서 모름지기 성품을 알아야 한다 하거늘, 너는 그 성품이 어디에서 멸하는지도 모르는구나! 말라붙은 채 앉아 참선함은 모두 소경처럼 닦고 맹목적으로 단련하는 짓이니라. 속담에 이르기를, 앉고 앉고 또 앉으면 네 궁둥이가 터진다 하였으니, 불로 달구어 볶으면 도리어 화가 되느니라. 더구나 수도하는 이가 뼈가 굳세고, 도에 통한 이가 신령함이 가장 뛰어남을 알지 못하는구나. 표주박을 들고 산에 들어가 벗을 찾고, 온갖 약초를 캐어 세상에 임하여 사람을 구하느니라. 선화 한 송이를 꺾어 삿갓을 꾸미고 향기로운 혜초를 꺾어 자리를 펴며, 노래하고 손뼉을 치고 춤이 끝나면 구름 위에서 잠드노라. 도법을 열어 태상의 바른 가르침을 펴고, 부수를 베풀어 인간 세상의 요사한 기운을 없애며, 천지의 빼어난 기운을 빼앗고 해와 달의 정화를 채취하느니라. 음양을 운행하여 단이 맺히고, 수화에 따라 태가 굳어지나니, 이팔에 음이 사라짐이여 황홀하고도 아득하며, 삼구에 양이 자라남이여 깊고도 그윽하도다. 사시에 맞추어 약물을 채취하고, 아홉 번 돌려 단을 이루어 도를 닦아 이루느니라. 푸른 난새를 타고 자부로 올라가며, 흰 학을 타고 요경에 오르노라. 하늘에 가득한 채색을 참예하고 묘한 도의 정성을 드러내나니, 너의 저 고요한 선과 석가의 가르침, 적멸의 음신, 열반하여 남긴 썩은 껍데기와는 견줄 수 없고 범속을 벗어나지도 못하였느니라! 삼교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 없으니, 예로부터 오직 도만이 홀로 으뜸이라 일컬어졌노라!” 왕이 듣고 매우 기뻐하였으며 온 조정의 관원이 모두 탄성을 올려 외쳤다. “참으로 좋도다, 오직 도만이 홀로 으뜸이라니! 오직 도만이 홀로 으뜸이라!” 장로는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왕이 또 광록시에 분부하여 소재를 차려 먼 곳에서 온 승려가 성 서쪽으로 나가게 하였다. 당승이 감사하고 물러나 전을 내려와 막 밖으로 걷는데, 손행자가 모자 꼭대기에서 날아내려 귓가에서 불렀다. “스승님, 이 국장은 요사한 놈이옵니다. 왕이 요사한 기운을 받았사오니, 스승님은 먼저 역으로 가서 재공을 기다리옵소서. 저 늙은 손이 여기서 소식을 엿듣겠나이다.” 당승이 뜻을 알아듣고 홀로 조문을 나서는 이야기는 이쯤 접어 둔다. 저 손행자를 보라. 날개를 한 번 치어 금란전의 비취 병풍 속에 내려앉았는데, 반열 가운데서 오성 병마관이 나서며 아뢰었다. “저의 임금님, 오늘 밤 한바탕 찬 바람이 불어 여러 방과 여러 집의 아롱 속에 있던 어린아이들을 아롱째 모두 날려 보내어, 자취조차 없사옵니다.” 왕이 그 아룀을 듣고 놀라며 노하여 국장에게 말했다. “이 일은 하늘이 짐을 멸하는 것이로다! 여러 달째 병이 깊어 어의도 효과가 없었는데, 다행히 국장이 선방을 내려 주시어 오늘 낮에 칼을 대어 이 어린아이의 심장을 약의 재료로 삼고자 하였거늘, 어찌 찬 바람에 날려 가다니. 이것이 하늘이 짐을 멸하려 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폐하, 우선 근심을 거두시옵소서. 이 아이들이 날려 간 것은 바로 하늘이 장생을 폐하께 보내신 것이옵니다.” 왕이 말했다. “아롱 속의 아이들이 날려 간 것을 보았거늘, 어찌 도리어 하늘이 장생을 보냈다 하시옵니까?” 국장이 말했다. “제가 조정에 들어오며 아주 절묘한 약의 재료를 보았사옵니다. 그 천백십일 명의 어린아이의 심장보다 훨씬 나으옵니다. 그 어린아이의 심장은 폐하의 천 년 수명만 늘릴 뿐이옵니다마는, 이 재료는 제 선약과 함께 먹으면 만 년을 늘릴 수 있사옵니다.” 왕이 멍하니 무슨 약의 재료인지 알지 못하여 거듭 여쭈니, 국장이 비로소 말했다. “동토에서 경을 가지러 보낸 그 승려이옵니다. 제가 보니 기품이 맑고 얼굴이 단정하옵니다. 이는 열 세대를 수행한 참된 몸이옵니다. 어려서부터 승려가 되어 원양이 새지 않았으니, 저 어린아이보다 만 배나 낫사옵니다. 그의 심장을 얻어 탕을 달여 제 선약을 복용하시면 만 년의 수명을 넉넉히 보전하시옵니다.” 그 어리석은 임금이 그 말을 듣고 곧이들으며 국장에게 말했다. “어찌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만일 참으로 이렇게 효과가 있다면 아까 붙들어 두고 그를 보내지 않았을 터인데.” 국장이 말했다. “이것이 무슨 어려운 일이옵니까! 아까 광록시에 분부하여 재를 차려 대접하게 하였으니, 그는 반드시 재를 먹은 뒤에야 성을 나갈 것이옵니다. 지금 급히 명을 내리시어 여러 문을 굳게 닫고 병사를 점검하여 금정관역을 에워싸고 그 승려를 잡아 오되, 반드시 예를 갖추어 그 심장을 구하시옵소서. 만일 따른다면 곧 배를 갈라 꺼내고 그 시신을 어장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를 받들게 하시옵소서. 만일 따르지 않거든 무력으로 행할 수밖에 없사옵니다. 곧 결박하여 갈라 꺼내면 되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사옵니까!” 그 어리석은 임금이 그 말대로 곧 명을 내려 여러 문을 닫게 하고, 우림위의 크고 작은 관군을 보내어 관역을 에워쌌다. 손행자가 이 소식을 듣고 날개를 한 번 치어 관역으로 날아가 본모습으로 나타나 당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큰일 났나이다! 큰일 났나이다!” 그 당승은 막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어재를 받고 있었는데, 문득 이 말을 듣고 놀라 삼시신이 흩어지고 칠규에서 연기가 이는 듯하여, 먼지 속에 쓰러져 온몸에 땀을 흘리며 눈은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입은 말을 하지 못하였다. 다급해진 사오정이 앞으로 나서서 부축하며 외쳤다. “스승님,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스승님,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저팔계가 말했다. “무슨 큰일이냐? 무슨 큰일이냐? 좀 천천히 말하면 될 것을, 스승님을 이토록 놀라게 하다니!”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이 조정에서 나오신 뒤에 저 늙은 손이 돌아보니 그 국장은 요정이옵니다. 잠시 뒤에 오성 병마관이 와서 찬 바람에 어린아이들이 날아간 일을 아뢰었나이다. 왕이 막 노하고 있는데 그가 도리어 기뻐하게 만들며, 이는 하늘이 장생을 스승님께 보낸 것이라 하여 스승님의 심장을 약의 재료로 삼아 만 년의 수명을 늘리려 하옵니다. 그 어리석은 임금이 거짓된 말을 곧이듣고, 이에 정예 병사를 뽑아 관역을 에워싸고 금의관을 보내어 스승님을 청해 심장을 구하려 하는 것이옵니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잘도 자비를 베풀었구나! 어린아이도 잘 구하고 음풍도 잘 불었거늘, 이번에는 도리어 화를 불러들이고 말았구나!” 당승이 벌벌 떨며 일어나 손행자를 붙잡고 애원했다. “어진 제자야!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손행자가 말했다. “잘 되기를 바라신다면 큰 것을 작게 만드셔야 하옵니다.” 사오정이 말했다. “큰 것을 작게 만든다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손행자가 말했다. “목숨을 온전히 하려면 스승이 제자가 되고 제자가 스승이 되어야만 보전할 수 있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네가 내 목숨을 구해 준다면 기꺼이 너의 제자와 제자의 제자가 되어도 좋으니라.” 손행자가 말했다. “그렇게 하시겠다면 더디게 할 것 없사옵니다.” 그리고 분부했다. “팔계야, 어서 진흙을 좀 개어 오너라.” 그 멍청한 녀석이 곧 쇠스랑으로 흙을 파고, 밖에 나가 물을 떠 올 엄두를 내지 못하여 옷을 걷어 올리고 오줌을 누어 고약한 냄새 나는 진흙 한 덩이를 개어 손행자에게 건네주었다. 손행자가 어쩔 수 없이 그 진흙을 납작하게 펴서 제 얼굴에 한 번 붙여 원숭이 형상의 얼굴 가면을 만들어 내고는, 당승에게 일어서서 움직이지도 말고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이른 뒤에 당승의 얼굴에 붙이고 진언을 외우며 입으로 선기를 불어넣고 “변하여라!” 하고 외쳤다. 그 장로가 곧 손행자의 모습으로 변하자, 그의 옷을 벗기고 손행자의 옷을 입혔다. 손행자는 스승의 옷을 입고 결을 쥐고 주문을 외우며 몸을 흔들어 당승의 얼굴로 변하니, 저팔계와 사오정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마음에 맞게 꾸미기를 막 마치니, 문득 징과 북 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또 창과 칼이 빽빽이 에워싸는 것이 보였다. 원래는 우림위 관원이 삼천 병사를 거느리고 관역을 에워싼 것이었다. 또 금의관 하나가 역의 뜰로 걸어 들어오며 물었다. “동토 당나라 장로가 어디 있느냐?” 그 역승이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가리키며 말했다. “아래 객방에 계시옵니다.” 금의관이 곧 객방으로 가서 말했다. “당나라 장로님, 우리 왕께서 청하시옵니다.” 저팔계와 사오정이 가짜 손행자의 좌우를 호위하는데, 가짜 당승이 문을 나서며 예를 갖추어 말했다. “금의 대인이시여, 폐하께서 빈승을 부르시니 무슨 말씀이 있으시옵니까?” 금의관이 앞으로 나서며 단번에 붙잡고 말했다. “나와 함께 조정으로 들어가시오. 필시 쓰임이 있으리라.” 아!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요사한 무고가 자비를 이기고, 자비가 도리어 흉화를 불렀도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79회 심동금요봉노수(尋洞擒妖逢老壽) · 당조정주구영아(當朝正主救嬰兒) 각설하고 그 금의관이 가짜 당승을 관역에서 끌어내어 우림군과 함께 에워싸고 빙 둘러싼 채 조정 문 밖에 이르러 황문관에게 말했다. “우리가 당승을 모셔 여기까지 왔사오니, 번거롭더라도 전하여 임금께 아뢰어 주시오.” 황문관이 급히 조정으로 들어가 그 말대로 혼군에게 아뢰었고, 마침내 들어오시도록 청하였다. 뭇 관리가 모두 섬돌 아래에 무릎 꿇어 절을 올렸으나 가짜 당승만은 섬돌 한가운데 꼿꼿이 서서 입으로 크게 외쳤다. “비구국 왕이시여, 빈승을 청하시어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하시나이까?” 임금이 웃으며 말했다. “짐이 병을 얻어 오랫동안 끙끙 앓아도 낫지 않느니라. 다행히 국장이 한 처방을 내려 주어 약재는 모두 갖추었으나, 다만 인자 한 가지가 부족하니 특별히 장로를 청하여 약인자를 좀 구하고자 하노라. 병이 나으면 장로를 위하여 사당을 짓고 사시로 제사를 올려 길이 나라의 향화로 삼으리라.” 가짜 당승이 말했다. “소승은 출가한 몸으로 홀로 여기까지 왔사오니, 폐하께서 국장에게 무엇을 요구하여 인자로 삼으시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혼군이 말했다. “특별히 장로의 심장을 구하노라.” 가짜 당승이 말했다. “폐하께 숨기지 않고 아뢰옵건대, 마음이라면 몇 개쯤 있사오나 어떤 빛깔의 것을 원하시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그 국장이 곁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승려야, 네 놈의 검은 마음을 쓰겠다.” 가짜 당승이 말했다. “그러하오면 어서 칼을 가져오시오. 가슴과 배를 가르고 검은 마음이 있거든 삼가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 혼군이 기뻐하며 사례하고는 즉시 당가관에게 명하여 쇠귀 모양의 단도 한 자루를 가져오게 하여 가짜 승려에게 건네주었다. 가짜 승려가 칼을 손에 쥐고 옷을 풀어헤치며 가슴을 쑥 내밀고는, 왼손으로 배를 쓸어내리고 오른손으로 칼을 잡아 후릇 하는 소리와 함께 배 가죽을 갈랐다. 그 속에서 꿀럭꿀럭 한 무더기의 마음이 굴러 나왔다. 문관들은 얼굴빛을 잃고 무장들은 몸이 얼얼하였다. 국장이 전각 위에서 이를 보고 말했다. “저놈은 마음이 많은 승려로구나!” 가짜 승려가 그 마음들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하나하나 집어 벌려 놓고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었는데, 붉은 마음, 흰 마음, 누런 마음,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마음, 이익과 명예를 탐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셈을 따지는 마음, 지기를 좋아하는 마음, 높은 자리를 바라는 마음, 업신여기고 오만한 마음, 살해하려는 마음, 모질고 독한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삼가고 조심하는 마음, 사악되고 망령된 마음, 이름 없는 은밀하고 어두운 마음, 갖가지 착하지 못한 마음들뿐이요 검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그 혼군은 넋이 나간 듯 멍멍해져 입을 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거둬라! 거둬라!” 그 가짜 당승이 참지 못하고 법술을 거두어 본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혼군에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안목이 전혀 없도다! 우리 승려들은 모두 한결같이 좋은 마음이거늘, 오직 그대의 국장이야말로 검은 마음이니 약인자로 알맞으니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그대 대신 그놈의 것을 꺼내어 보이리라.” 그 국장이 듣고 급히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승려가 얼굴이 변하여 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아! 옛날의 손대성임을 알아보았으니, 오백 년 전부터 이미 이름이 난 자로다. 몸을 빼어 구름을 타고 떠오르려 하였는데, 행자가 근두운을 뒤집어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호통쳤다. “어디로 달아나느냐! 내 몽둥이를 받아라!” 그 국장이 곧 반룡 지팡이를 휘둘러 맞서 왔다. 두 사람이 허공에서 벌인 이 한바탕의 훌륭한 싸움이여. 여의봉과 반룡 지팡이가 허공 한가운데서 자욱한 구름 속에 어우러지는구나. 본래 국장은 요정이라 괴녀를 아리따운 미녀로 일컬었도다. 임금은 환락을 탐하다 병이 몸에 들었고, 요사한 무리는 어린아이를 도살하려 하였도다. 대성을 만나 신통을 드러내어 요괴를 잡고 사람을 구하니 어려움이 풀리는구나. 쇠몽둥이가 머리 위에서 참으로 흉포하고, 지팡이가 받아 나오니 탄성이 절로 나는구나. 싸움에 하늘 가득한 안개 기운이 성 못을 어둡게 하고 성 안 사람들의 얼굴빛이 모두 변하는구나. 문무의 많은 관리가 넋이 날아가고, 빈비와 수녀의 용안이 달라지는구나. 겁먹은 비구국의 어리석은 임금은 몸을 함부로 숨기고 부들부들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구나. 몽둥이가 들리니 범이 산에서 나오는 듯하고, 지팡이가 구르니 용이 바다를 떠나는 듯하구나. 이번에 비구성을 크게 떠들썩하게 하여 마침내 사특함과 바름이 분명히 갈리는구나. 그 요정은 행자와 스무여 합을 힘겹게 싸우다가 반룡 지팡이가 금고봉을 당해 내지 못하자 지팡이를 한 번 헛되이 휘둘러 몸을 한 줄기 찬 광채로 바꾸어 황궁 안뜰로 들어가, 공물로 바쳐진 요후를 궁문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함께 찬 광채로 변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대성이 구름을 내려 궁전 아래에 이르러 여러 관리에게 말했다. “너희의 훌륭한 국장이로구나!” 여러 관리가 일제히 절을 올리며 신스런 승려에게 감사하니, 행자가 말했다. “우선 절은 그만두고, 너희 어리석은 임금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 여러 관리가 말했다. “저희 임금께서는 싸움이 벌어진 것을 보시고 놀라 두려워 숨어버리셨으니, 어느 궁으로 가셨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행자가 즉시 명했다. “어서 찾아라! 미후에게 홀려 달아나지 않도록 하여라!” 여러 관리가 그 말을 듣고 안팎을 가리지 않고 행자와 함께 먼저 미후궁으로 달려갔으나 아무 흔적도 없었고 미후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궁과 동궁과 서궁과 육원의 모든 후비가 다 와서 대성에게 절하며 감사하였다. 대성이 말했다. “우선 일어나라, 아직 감사받을 때가 아니니라. 먼저 가서 너희 임금을 찾아라.” 잠시 뒤 환관 네댓 명이 그 어리석은 임금을 부축하여 근신전 뒤편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뭇 신하가 땅에 엎드려 한목소리로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주공이시여! 신스런 승려께서 이곳에 오셔서 참과 거짓을 밝혀 주셨나이다. 그 국장은 요사한 무리이옵고, 미후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나이다.” 임금이 그 말을 듣고 즉시 행자를 황궁 밖으로 모셔 나와 보전에서 절하며 감사하고 나서 말했다. “장로여, 그대가 아침에 왔을 때의 모습은 그토록 준수하고 훤칠하더니, 이때에 와서 어찌하여 용모가 변하였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 숨기지 않고 아뢰옵건대, 아침에 온 자는 제 스승이시니 당나라 황제의 어제이신 당삼장이옵니다. 저는 그분의 제자 손오공이옵고, 또 사제 둘이 있어 저오능과 사오정이 금정관역에 있사옵니다. 그대가 요사한 말을 믿고 제 스승의 심장을 약인자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늙은 손오공이 스승의 모습으로 변하여 특별히 이곳에 와 요괴를 항복받은 것이옵니다.” 그 임금이 듣고 즉시 각하 태재에게 명하여 빨리 관역으로 가서 스승 일행을 조정으로 모셔 오라 하였다. 그 당삼장은 행자가 본모습을 드러내어 공중에서 요괴를 항복받는다는 말을 듣고 넋이 날아갈 듯 놀랐으나, 다행히 팔계와 사오정이 보호하고 있었다. 그는 또 얼굴에 누런 진흙 한 덩이를 뒤집어쓰고 있어 마음이 답답하고 언짢았는데, 문득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법사시여, 저희는 비구국 왕이 보낸 각하 태재들이옵니다. 특별히 조정에 들어오셔서 은혜에 감사하시기를 청하옵니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겁내지 마시오! 겁내지 마시오! 이는 또 마음을 내어 달라는 청이 아니라, 사형이 승리를 거두어 스승님을 청하여 보답하려는 것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승리하여 청하러 온 것이라지만, 내 이 누런 얼굴로 어찌 사람들을 만난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어쩔 수 없사옵니다. 우선 가서 사형을 만나 뵈옵고 나면 저절로 풀리옵니다.” 참으로 그 장로는 방도가 없어 팔계와 사오정의 부축을 받으며 짐을 지고 말을 끌어 관역 뜰로 함께 나섰다. 그 태재가 보고는 겁을 내며 말했다. “할아버지야! 이들은 모두 요괴의 머리와 괴물의 골통 같은 부류로구나!” 사오정이 말했다. “조정 선비여, 추한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마시오. 우리는 본래 타고난 몸이오. 우리 스승님이 우리 사형을 만나 뵈오면 곧 준수해질 것이오.” 그들 세 사람이 여러 사람과 함께 조정으로 와서는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전각 아래에 이르렀다. 행자가 보고는 즉시 몸을 돌려 전각에서 내려와 마주 서서 스승의 진흙 얼굴을 잡아 벗기고 입으로 선기 한 입을 불어넣으며 “바로!”라고 외쳤다. 그 당승이 즉시 본래 몸으로 돌아왔고 정신은 더욱 상쾌해졌다. 임금이 전각에서 내려와 친히 맞이하며 입으로 “법사 노불이시여”라고 불렀다. 사도들은 말을 매어 두고 모두 전각에 올라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행자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그 요괴가 어느 곳에서 왔는지 아시나이까? 이 늙은 손오공이 가서 그대를 위하여 한꺼번에 사로잡아 뒷근심을 없애리이다.” 삼궁 육원의 여러 빈비와 무리 후비가 모두 그 비취 병풍 뒤에서 있다가 행자가 뒷근심을 없앤다는 말을 듣고는 안팎과 남녀의 꺼림칙함도 피하지 않고 일제히 나와 절하며 호소했다. “바라옵건대 신스런 승려시여, 큰 법력을 베푸시어 뿌리를 뽑고 그놈을 남김없이 없애 주시옵소서. 참으로 더없이 큰 은혜이옵고 마땅히 후히 보답하겠나이다.” 행자가 황급히 답례하며 다만 임금에게 그놈의 거처를 말해 달라고 말했다. 임금이 부끄러워하며 고했다. “삼 년 전 그가 왔을 때 짐이 일찍이 물었느니라. 그가 말하기를 성에서 멀지 않고 남쪽으로 칠십 리쯤 간 유림파 만화장이라는 곳에 산다고 하였느니라. 국장은 늙도록 자식이 없고 후처가 낳은 딸 하나만 있는데 나이 겨우 열여섯이요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으니 짐에게 바치겠다고 하였느니라. 짐은 그 여자의 모습이 아리따워 그대로 받아들여 궁에서 총애하였느니라. 뜻하지 않게 병을 얻어 태의가 여러 번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느니라. 그가 신선의 방도가 있다고 하였으니, 다만 어린아이의 마음을 달여 국물을 만들어 인자로 삼는다고 하였느니라. 짐이 재주 없이 그 말을 가볍게 믿어 민간의 어린아이를 뽑아 오늘 정오에 칼을 대어 마음을 꺼내기로 정하였느니라. 뜻밖에도 신스런 승려께서 내려오셨고, 마침 바구니들이 모두 사라지는 일까지 겹쳤느니라. 그가 말하기를 신스런 승려는 열 세상을 닦아 원양이 새지 않았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어린아이의 마음보다 만 배나 더 낫다고 하였느니라. 한때 잘못되어 범하였으니 신스런 승려께서 요마를 꿰뚫어 보실 줄은 몰랐느니라. 감히 크게 법을 베푸시어 뒷근심을 끊어 주시기를 바라나니, 짐이 나라를 기울일 재물로 보답하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속이지 않고 말하리이다. 바구니 속의 어린아이는 우리 스승의 자비로 나에게 감추라 하셨느니라. 그대는 무슨 재물로 보답하겠다는 말부터 꺼내지 말고, 내가 요괴를 잡고 나면 그것이 내 공행이니라.” 그리고 불렀다. “팔계야, 나를 따라오너라.” 팔계가 말했다. “형의 명을 삼가 따르겠나이다. 다만 뱃속이 비어 있어 힘을 쓰기가 어렵사옵니다.” 임금이 즉시 명하여 이르되 “광록시에서 어서 공양을 차리라” 하였다. 잠시 뒤 공양이 도착하자 팔계는 한 끼를 배불리 먹고 정신을 가다듬어 행자를 따라 구름을 타고 떠났다. 그 임금과 왕비 후비, 그리고 문무의 많은 관리가 모두 놀라 저마다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리며 말했다. “참된 신선이요 참된 부처가 범계에 내려오셨도다!” 그 대성이 팔계를 데리고 곧장 남쪽 칠십 리 되는 곳에 이르러 구름과 바람을 멈추고 요괴가 있는 곳을 찾았다. 다만 한 줄기 맑은 시내가 보이고 양쪽으로 언덕이 끼어 있었으며, 언덕 위에는 천만 그루의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청화장이 어디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바로 이러하였도다. 만 이랑의 들판은 다 보기 어렵고, 천 개 둑의 안개 낀 버들은 자취를 감추었구나. 손대성이 찾아도 찾지 못하자 즉시 결을 쥐고 “옴” 자 진언을 한 번 외워 당방 토지신 하나를 불러내었다. 토지신이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외쳤다. “대성이시여, 유림파 토지신이 머리를 조아리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겁내지 마라, 나는 너를 때리지 않느니라. 내가 묻겠다. 유림파에 청화장이 있다는데 어느 곳에 있느냐?” 토지신이 말했다. “이곳에는 청화동이 있을 뿐 청화장은 없사옵니다. 소신이 헤아려 보옵건대 대성께서는 비구국에서 오신 것이 아니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비구국 왕이 요정 하나에게 홀렸는데, 이 늙은 손오공이 그곳에 가서 요괴임을 알아보았느니라. 그때 그놈을 싸워 물리쳤더니 한 줄기 찬 광채로 변하여 종적을 감추었느니라. 비구국 왕에게 물어보니 미녀를 바칠 때였던 삼 년 전에 그 연유를 물었는데, 요괴가 성 남쪽 칠십 리 유림파 청화장에 산다고 말했다 하느니라. 이제 여기까지 찾아왔으나 숲과 언덕만 보일 뿐 청화장이 보이지 않으니 그대에게 묻는 것이니라.” 토지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성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비구국 왕 또한 이 땅의 임금이시니 소신이 마땅히 살펴야 하옵니다만, 요정의 신위와 법력이 커서 제가 그의 일을 누설하기만 하면 곧 와서 업신여기고 괴롭히므로 그리하지 못하였나이다. 대성께서 이제 오셨으니 저 남쪽 언덕의 아홉 갈래 버드나무 밑으로 가셔서 왼쪽으로 세 바퀴,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도신 뒤 두 손으로 나무를 함께 치며 열어라를 세 번 외치시면 곧 청화동부가 나타나옵니다.” 대성이 그 말을 듣고 즉시 토지신을 돌려보내고는 팔계와 함께 시내를 건너뛰어 그 버드나무를 찾았다. 과연 아홉 갈래의 가지가 하나의 뿌리에서 모두 나와 있었다. 행자가 팔계에게 분부했다. “너는 우선 멀찍이 서 있거라. 내가 문을 열어 그 요괴를 찾아 몰아내면 네가 맞아 주어라.” 팔계가 명령을 듣고 나무에서 반 리쯤 떨어진 곳에 섰다. 이 대성이 토지신의 말대로 나무뿌리를 돌아 왼쪽으로 세 바퀴,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돌고 두 손으로 그 나무를 함께 치며 외쳤다. “열려라! 열려라!” 삽시간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우르릉거리며 문 두 짝이 열리더니 나무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안은 밝고 노을빛이 어려 있었으나 인가의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행자가 신위를 타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그곳이야말로 좋은 곳이었으니, 연기와 노을이 환하게 빛나고 해와 달이 빛을 훔치누나. 흰 구름이 늘 동굴에서 나오고 푸른 이끼가 어지럽게 뜰을 덮는구나. 오솔길의 기이한 꽃은 아름다움을 다투고 섬돌 가득한 요초는 향기를 겨루는구나. 기운은 따스하고 경치는 늘 봄이니, 낭원과 다를 바 없고 봉영에도 뒤지지 않는구나. 미끄러운 걸상에는 긴 덩굴이 기어오르고 평평한 다리에는 어지러운 등나무가 걸렸구나. 벌은 붉은 꽃술을 물고 바위 굴로 오고, 나비는 그윽한 난초를 희롱하며 돌 병풍을 넘는구나. 그는 참지 못하고 돌 병풍을 뛰어넘어 살펴보니, 늙은 요괴가 품에 미녀를 안고 헐떡거리며 비구국의 일을 이야기하다가 함께 소리쳤다. “좋은 기회로다! 삼 년의 일을 오늘 마치려 하였거늘 그 원숭이 놈에게 깨졌구나!” 행자가 몸을 가까이 달려가며 몽둥이를 뽑아 들고 크게 외쳤다. “이 털뭉치 같은 놈들아, 무슨 좋은 기회냐! 내 몽둥이를 받아라!” 그 늙은 요괴가 미녀를 내려놓고 반룡 지팡이를 휘둘러 급히 막아 나왔다. 두 사람이 굴 앞에서 벌인 이 훌륭한 싸움은 앞보다 더욱 달랐으니, 몽둥이가 들리니 금빛이 터지고 지팡이가 구르니 흉악한 기운이 뻗치는구나. 요괴가 말했다. “네놈이 무지하게도 감히 내 문으로 들어오느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뜻을 두고 사악한 요괴를 항복받으러 왔느니라!” 요괴가 말했다. “나는 임금을 사랑하니 네놈과는 상관없거늘, 어찌 마음을 속이고 와서 훼방을 놓느냐?” 행자가 말했다. “승려가 정교를 닦는 것은 본래 자비이니, 어린아이가 산 채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느니라.” 말이 오가며 저마다 원수를 미워하고, 몽둥이와 지팡이가 맞부딪쳐 한가운데를 찌르는구나. 기이한 꽃이 짓밟혀 상하고 푸른 이끼가 미끄러워 찢기는구나. 싸움에 그 굴 속 노을빛이 흐려지고 바위 위 꽃향기가 모두 짓눌리는구나. 쩡쩡거리는 소리에 새는 날아가지 못하고, 고함 소리에 미녀는 흩어지는구나. 오직 늙은 요괴와 원숭이 임금만 남아, 휘몰아치는 땅바람이 불어오는구나. 굴문 밖으로 싸워 나오니 또 오능의 미련한 성질이 터져 나왔구나. 본래 팔계가 밖에서 그들이 안에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는 마음이 간지러워 견딜 수 없어 쇠스랑을 뽑아 들고 아홉 갈래 버드나무 한 그루를 파헤쳐 넘어뜨리고는 스랑으로 몇 번 찍었더니, 그 나무에서 붉은 피가 뚝뚝 솟고 앵앵거리며 소리가 나는 듯하였다. 그가 말했다. “이 나무가 도깨비가 되었구나! 이 나무가 도깨비가 되었구나!” 땅에 눌러 놓고 또 찍고 있는데, 마침 행자가 요괴를 이끌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멍청이는 말도 없이 앞으로 달려들어 스랑을 들어 찍었다. 그 늙은 요괴는 행자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당해 내기 어려웠는데 팔계의 스랑이 날아오자 더욱 마음이 다급해져 진을 패하고 몸을 한 번 흔들어 한 줄기 찬 광채로 바뀌어 곧장 동쪽으로 달아났다. 그 두 사람은 결코 놓지 않고 동쪽으로 쫓아갔다. 마침 함성을 지르며 죽이고 쫓는 때에, 또 난새와 학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상서로운 빛이 아른거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남극 노인성이었다. 그 노인이 찬 광채를 덮어 가두며 외쳤다. “대성이여 천천히 오시고, 천봉이여 쫓기를 그치시게. 늙은 도인이 여기에서 인사를 드리노라.” 행자가 즉시 답례하며 말했다. “수성 형제여,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살진 머리의 늙은이여, 찬 광채를 덮어 가두었으니 틀림없이 요괴를 잡았구려.” 수성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느니라, 여기 있느니라. 두 분께서는 그놈의 목숨을 살려 주시기를 바라노라.” 행자가 말했다. “늙은 요괴는 노형과 아무 상관이 없거늘 어찌하여 인정을 쓰러 왔느냐?” 수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놈은 나의 발이 되어 주는 짐승이거늘, 뜻하지 않게 달아나 와서 이 요괴가 되었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노형의 물건이라면 다만 그놈에게 본모습을 드러내 보이라 하시오.” 수성이 그 말을 듣고 즉시 찬 광채를 풀어 놓고 호통쳤다. “업축아! 어서 본모습을 드러내라, 그러면 사죄는 면해 주리라!” 그 요괴가 몸을 한 번 돌리니 본래는 흰 사슴 한 마리였다. 수성이 지팡이를 들어 말했다. “이 업축아! 내 지팡이까지 훔쳐 왔구나!” 그 사슴이 땅에 엎드려 입을 열지 못하고 다만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떨구었다. 그 모습을 보라, 한 몸은 옥과 같고 점은 얼룩덜룩하며, 두 뿔은 일곱 갈래로 어긋났구나. 몇 번이나 배고플 때 약밭을 찾고, 어느 날 목마를 때 구름 시내를 마셨구나. 세월이 깊어 비등하는 법을 배우고, 날이 오래여 변화하는 모습을 닦았구나. 이제 주인이 부르는 곳을 보고 몸을 나타내어 옥 같은 귀를 하고 속세에 엎드렸구나. 수성이 행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슴을 타고 가려 하였는데, 행자에게 소매를 붙잡히며 말을 들었다. “노형이여, 잠시 천천히 가시오. 아직 두 가지 일이 끝나지 않았소.” 수성이 말했다. “무슨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미녀를 아직 잡지 못하였는데 그놈이 무슨 괴물인지 모르겠소. 또 비구성으로 함께 가서 그 어리석은 임금을 만나 본모습을 보이고 회답을 해야 하느니라.” 수성이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잠시 참아 두리라. 그대와 천봉이 굴로 내려가 그 미녀를 사로잡아 오면 함께 가서 본모습을 보일 수 있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노형이여 조금 기다리시오, 우리가 갔다가 곧 돌아오리다.” 그 팔계가 정신을 가다듬어 행자를 따라 곧장 청화선부로 들어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요정을 잡아라! 요정을 잡아라!” 그 미녀는 부들부들 떨며 달아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또 고함 소리가 크게 진동하는 것을 듣고는 즉시 돌 병풍 안으로 몸을 돌렸으나 뒷문이라야 나갈 구멍이 없었다. 팔계가 호통치며 “어디로 가느냐! 이놈아, 사내를 홀리는 더러운 요정 같으니, 스랑을 받아라!” 하고 외쳤다. 그 미녀는 손에 무기가 없어 맞서 싸울 수 없었으므로 몸을 한 번 피하여 한 줄기 찬 광채로 바뀌어 밖으로 달아나려 하였다. 대성이 찬 광채를 막아서며 쾅 하고 몽둥이를 휘두르니 그 요괴는 발을 버티지 못하고 티끌 위에 거꾸러지며 본모습을 드러내었는데, 본래는 흰 얼굴의 여우 한 마리였다. 그 멍청이는 손을 참지 못하고 스랑을 들어 머리를 내리찍었다. 가련하게도 나라를 기울이고 성을 기울이던 온갖 웃음을, 털뭉치 여우의 형상으로 만들어 버렸구나! 행자가 외쳤다. “그놈을 때려 부수지 말고, 이 몸을 남겨 두어 어리석은 임금을 만나러 가자.” 그 멍청이는 더러운 것을 꺼리지 않고 꼬리를 한 움큼 잡아챙겨 질질 끌며 행자를 따라 문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수성 노인이 사슴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꾸짖는 것이 보였다. “이 업축아! 네가 어찌 주인을 배반하고 달아나 여기서 도깨비가 되었느냐!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손대성이 틀림없이 너를 때려 죽였으리라.” 행자가 뛰어나오며 말했다. “노형은 무슨 말을 하시오?” 수성이 말했다. “내 사슴을 타이르는 것이니라! 내 사슴을 타이르는 것이니라!” 팔계가 죽은 여우를 사슴 앞에 내동댕이치며 말했다. “이것이 네 딸이냐?” 그 사슴이 머리를 끄덕이고 흔들며 주둥이를 내밀어 몇 번 냄새를 맡고는 우느니 우느니 소리를 내어 정답게 아끼고 떠나기 아쉬워하는 듯하였다. 수성이 정수리를 내리치며 한 대 쥐어박고 말했다. “업축아! 네가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족하거늘 또 냄새를 맡기는 어찌하느냐?” 그리고 즉시 도포 띠를 풀어 사슴의 목에 걸어 묶고 끌어 일으키며 말했다. “대성이여, 나는 그대와 비구국에서 만나러 가겠노라.” 행자가 말했다. “잠시 멈추시오! 이참에 이곳을 모조리 깨끗이 쓸어 두어 훗날 요망한 재앙이 다시 생기는 일을 면하게 하리다.” 팔계가 그 말을 듣고 스랑을 들어 버드나무를 마구 찍었다. 행자가 또 “옴” 자 진언을 한 번 외워 여전히 당방 토지신을 불러내어 일렀다. “마른 땔감을 좀 찾아와 센 불을 붙여 이 지방의 요망한 근심을 없애 주어 괴롭힘을 면하게 하라.” 그 토지신이 즉시 몸을 돌려 음풍을 쌩쌩 일으키며 음병을 거느리고 영상초, 추청초, 요절초, 산예초, 누호시, 용골시, 노적시 등을 날라 왔는데, 모두 해를 넘겨 바싹 마른 타버릴 만한 물건이라 불을 만나면 기름을 끼얹은 듯하였다. 행자가 불렀다. “팔계야, 나무를 찍을 것 없이 이 물건들로 굴속을 메우고 불을 놓아 깨끗이 태워 버리자.” 불이 타오르자 과연 청화의 요괴 집 한 채를 불구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에서야 토지신을 물러가게 하고 수성과 함께 사슴을 끌고 여우를 질질 끌어 한꺼번에 전각 앞으로 돌아와 임금에게 말했다. “이것이 그대의 미후이니 이와 함께 놀아 보겠소?” 그 임금은 간담이 서늘하고 놀라 떨었다. 또 손대성이 수성을 인도하고 흰 사슴을 끌고 모두 전각 앞에 이르는 것을 보자, 나라 안의 임금과 신하와 왕비와 후비가 놀라 일제히 절을 올렸다. 행자가 앞으로 나가 임금의 팔을 붙잡고 웃으며 말했다. “우선 나에게 절하지 말고, 이 사슴이야말로 국장이니 그대는 그놈에게나 절하시오.” 그 임금은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라 하며 다만 말했다. “신스런 승려께서 나라의 어린아이를 구해 주시니 참으로 하늘의 은혜로소이다!” 즉시 명하여 광록시에 채식 연회를 차리라 하고 동각을 크게 열어 남극 노인과 당승 사부중을 모셔 함께 앉아 은혜에 감사하였다. 당삼장이 수성을 뵙고 절을 올리고 사오정도 예로 인사를 올렸으며, 모두 물었다. “흰 사슴이 늙은 수성의 물건이라면 어찌하여 이곳에 와서 해를 끼치게 되었소?” 수성이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동화제군이 내 누추한 산을 지나다가 내가 붙잡아 바둑을 두었느니라. 한 판이 끝나기도 전에 이 업축이 달아났느니라. 손님이 간 뒤에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기에 내가 손가락을 꼽아 헤아려 보니 이곳으로 달아난 줄 알고 특별히 찾아왔는데, 마침 손대성이 위력을 떨치는 것을 만났느니라. 만일 늦게 왔다면 이 짐승은 죽었으리라.”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아뢰는 이가 있어 “연회가 갖추어졌나이다”라고 아뢰었다. 훌륭한 채식 연회였으니, 오색이 문에 넘치고 이상한 향기가 자리를 가득 메웠구나. 상에는 수놓은 휘장이 걸려 비단 같은 고움이 피어나고, 땅에는 붉은 담요가 깔려 노을빛을 어른거리는구나. 보압 향로 안에서는 침단 향이 피어오르고, 어전 앞에서는 채소 품목이 향기롭구나. 보는 접시에 높은 과일은 누대를 쌓았고, 용이 휘감긴 두당은 달리는 짐승을 벌여 놓았구나. 원앙정과 사선당은 본뜬 듯 꼴을 갖추었고, 앵무배와 노자작은 모습과 형상이 그럴싯하구나. 자리 앞 과일 품목은 가지가지 성하고, 안상 위 채식 안주는 낱낱이 정결하구나. 큰 둥근 밤과 싱싱한 여지와 복숭아, 대추와 감말랭이는 맛이 달콤하고 잣과 포도는 향기롭고 걸쭉한 술이로구나. 몇 가지 꿀 과자와 몇 품목의 찐 다식, 기름에 튀기고 설탕을 끼얹어 꽃무더기 비단 쌓기 같구나. 금쟁반에는 큰 만두가 높이 쌓이고 은그릇에는 향기로운 쌀밥이 가득 담겼구나. 매콤하고 알싸한 국물에 당면이 길고, 향기가 코를 찌르며 잇달아 새로 나오는 맛이 좋구나. 버섯과 목이와 연한 죽순과 황정이며 열 가지 향기로운 채소와 백 가지 맛의 진미는 다 말할 수 없구나. 오가는 손길이 한시도 멈추지 않고, 나아오고 물러감에 온갖 것이 모두 성대히 차려졌구나. 이때 자리를 정하였는데 수성이 윗자리, 장로가 그 다음 자리, 임금이 앞자리, 행자와 팔계와 사오정이 곁자리였고, 곁에는 또 태사 두세 명이 좌우에서 곁들여 모셨다. 즉시 교방사에 명하여 음악을 울리게 하고, 임금이 자하배를 받쳐 들고 하나하나 술을 올렸으나 당승만은 마시지 않았다. 팔계가 행자에게 말했다. “사형이여, 과일은 사형에게 양보할 터이니 국과 밥 같은 것은 나에게 맡겨 주어 실컷 먹게 해 주시오.” 그 멍청이는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마구 달려들어 오는 것마다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한 차례 연회가 끝나자 수성이 작별을 고하였다. 그 임금이 또 앞으로 나아가 수성에게 무릎 꿇어 절하고 병을 물리치고 수명을 늘이는 법을 구하니, 수성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사슴을 찾으러 오느라 단약을 가져오지 못하였느니라. 수양하는 방도를 전해 주고자 하여도 너는 근육이 쇠하고 정신이 패하여 환단할 수 없느니라. 내 옷소매에 대추 세 알이 있을 뿐인데 동화제군께 차를 올리려던 것으로 내가 먹지 않았으니 이제 너에게 주겠노라.” 임금이 그것을 삼키자 차츰 몸이 가벼워지고 병이 물러갔다. 뒷날 장생을 얻은 자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느니라. 팔계가 보고는 곧 외쳤다. “노수성이여, 화조가 있거든 나에게 몇 개만 주어 먹게 하시오.” 수성이 말했다. “가져오지 못하였느니라. 훗날 내 너에게 몇 근을 보내 주겠노라.” 마침내 동각을 나와 감사의 뜻을 표하고는 흰 사슴에게 한 번 호통쳐 일으켜 등에 올라타 구름을 밟고 떠났다. 조정의 임금과 왕비 후비와 성 안의 백성들이 저마다 향을 사르고 절을 올린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둔다. 당삼장이 불렀다. “제자들아, 짐을 꾸려 임금께 하직을 고하자.” 그 임금이 또 간곡히 만류하며 가르침을 구하니, 행자가 말했다. “폐하시여, 이제부터 색욕을 적게 탐하시고 음덕을 많이 쌓으시오. 무릇 온갖 일에서 긴 것으로 짧은 것을 보태면 스스로 병을 물리치고 수명을 늘이기에 족하니 그것이 곧 가르침이니이다.” 그리고 흩어진 금과 부서진 은 두 쟁반을 내어 놓으며 노자로 받들었다. 당승은 완강히 사양하며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임금은 어쩔 수 없이 난가를 갖추어 당승을 봉련용거에 단정히 앉히고, 임금과 빈후가 모두 수레바퀴를 밀고 굴려 그제야 조정 밖으로 전송하였다. 육가삼시의 백성과 무리 서민들도 모두 잔에 맑은 물을 채우고 화로에 참된 향을 피워 또 성 밖까지 전송하였다. 홀연히 허공에서 바람 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길 양쪽으로 천백십일 개의 거위 바구니가 떨어졌고 그 안에서 어린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본래 그들을 지키던 성황과 토지와 사령과 진관과 오방 갈제와 사치 공조와 육정육갑과 호교 가람 등 무리가 응하여 크게 외쳤다. “대성이시여, 저희가 앞서 분부를 받들어 어린아이들이 든 거위 바구니를 거두어 갔사옵니다. 이제 대성께서 공을 이루고 떠나시는 줄 알고 하나하나 도로 보내 드리나이다.” 그 임금과 왕비 후비와 온갖 신하와 백성이 또 모두 절을 올렸다. 행자가 허공을 우러러 말했다. “여러분께 수고를 끼쳤소. 각자의 사당으로 돌아가시면 내가 민간에 제사를 지내어 그대들에게 보답하게 하리다.” 휘익 휘익 소스라치며 음풍이 다시 일어 그들이 물러갔다. 행자가 성 안 사람들을 불러 어린아이를 데려가게 하였다. 그때 소문이 퍼지자 모두들 와서 저마다 바구니 속의 아이를 알아보고 기뻐하며 안아 올려 오라비라 부르고 살점이라 부르며, 뛰는 이 뛰고 웃는 이 웃고 모두 외쳤다. “당나라 할아버지를 붙잡아 우리 집으로 모셔 가 아이를 구한 은혜에 감사드리자!” 큰이 작은이 할 것 없이 남녀 모두 그들의 추한 용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저팔계를 들쳐 메고 사화상을 어깨에 메며 손대성을 머리에 이고 당삼장을 받들어, 말을 끌고 짐을 지고 한꺼번에 성으로 돌아왔으니 그 임금도 금지할 수 없었다. 이 집에서도 연회를 열고 저 집에서도 자리를 마련하였다. 청하지 못한 이들은 승려의 모자와 승려의 신발과 편삼과 무명 버선이며, 속속들이 겉옷과 속옷, 큰옷과 작은옷을 지어 모두 와서 보냈다. 이렇게 한 달가량을 머물러서야 성을 떠날 수 있었다. 또 초상을 전해 두고 위패를 세워 예를 갖추고 향을 사르며 공양하였다. 바로 이러하였도다. 음덕이 높이 쌓여 은혜의 산이 무겁고, 천만 백성을 살려 내었도다. 필경 이 뒤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0회 차녀육양구배우(姹女育陽求配偶) · 심원호주식요사(心猿護主識妖邪) 각설하고 비구국의 임금과 신하와 백성들이 당승 사부제자 넷을 성 밖으로 배웅하며 이십 리나 따라나왔으나 차마 헤어지려 하지 않았다. 삼장은 마지못해 가마에서 내려 말에 올라 작별하고 길을 떠났으며, 배웅하던 이들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바라보다가야 돌아갔다. 사부제자 넷이 한참을 걸어가는 동안 겨울이 저물고 봄도 다 갔으니, 들꽃과 산의 나무가 끝없이 이어지고 경치가 향기로운데, 앞쪽에 또 높고 험준한 산이 나타났다. 삼장이 놀라 물었다. “제자들아, 앞의 높은 산에 길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모름지기 조심하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그 말씀은 오래 길을 걷는 이의 말씀이 아니옵니다. 도리어 공자나 왕손이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는 부류 같사옵니다. 예로부터 산이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길이 스스로 산으로 통한다 하였거늘, 어찌 길이 있고 없고를 말씀하시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산이 길을 막지 않는다 하나, 험하고 준엄한 사이에 괴물이 생기고 깊은 숲속에서 요정이 나올까 두렵구나.” 팔계가 말했다. “마음 놓으시옵소서, 마음 놓으시옵소서! 여기서 극락이 멀지 않사오니 태평하여 탈이 없을 것이옵니다!” 사부와 제자가 이야기하는 사이 어느새 산기슭에 이르렀다. 행자가 금고봉을 꺼내 돌벼랑 위로 올라가며 외쳤다. “사부님, 이곳이 산을 도는 길이오니 걸음이 몹시 좋사옵니다. 어서 오시옵소서, 어서 오시옵소서!” 장로는 하는 수 없이 마음을 놓고 말을 몰았다. 사오정이 일렀다. “둘째 형님, 짐을 한쪽 어깨에 메어 주게.” 참으로 팔계가 짐을 받아 어깨에 멨다. 사오정이 고삐를 거머쥐고, 늙은 사부님이 조각 안장에 얹혀 앉아 행자를 따라 모두 산벼랑 위의 큰길로 내달았다. 그 산의 모습을 보니 이러하였다. 구름과 안개가 봉우리 꼭대기를 감싸고, 졸졸 흐른 물이 골짜기에서 솟는구나. 온갖 꽃향기가 길에 가득하고, 일만 그루 나무가 빽빽이 우거졌도다. 매실은 푸르고 오얏꽃은 희며, 버들은 푸르고 복사꽃은 붉구나. 두견새 우는 곳에 봄이 저물고, 제비 재잘거리니 들제사도 이미 끝났도다. 높고 높은 바위요, 푸른 덮개 같은 소나무로다. 험한 고갯길이 불쑥 솟아 영롱하구나. 깎아지른 절벽이 준엄하고 등나무 덩굴과 초목이 무성하도다. 천 바위가 다투어 빼어나니 창을 늘어세운 듯, 만 골짜기가 흐름을 다투어 먼 물결이 넘치는구나. 늙은 사부님이 산경치를 느긋이 둘러보다 문득 새 우는 소리를 듣고 또 고향 그리는 마음이 일었다. 말고삐를 당기며 외쳤다. “제자들아! 나는 하늘의 패로 뜻을 전하고 비단 병풍 아래서 통행 문서를 받았노라. 정월 보름 등불 구경에 동쪽 땅을 떠나 비로소 당나라 임금과 천지로 갈라졌고, 이제야 용과 범이 바람과 구름으로 만날 인연을 이루었거늘, 또 사부와 제자가 말과 군사에게 어긋나는구나. 무산의 열두 봉우리를 다 지나왔으니, 어느 때에 임금님을 대하여 뵈올꼬?”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늘 고향만 생각하시니 전혀 출가인답지 않으시옵니다. 마음 놓고 걸으시옵소서, 근심을 너무 하지 마시옵소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살아서 부귀를 구하려거든 모름지기 죽을 공부를 하라 하였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말이 이치에 맞기는 하나, 서천의 길이 아직 어디쯤인지 모르겠구나!” 팔계가 말했다. “사부님, 우리 부처 여래께서 저 삼장경을 아까워하시어, 우리가 가지러 온다는 것을 아시고 아마 옮겨 두신 게지요. 그렇지 않다면 어찌 가고 또 가도 이르지 못하겠나이까?” 사오정이 말했다. “헛소리를 마시오! 그저 큰형님을 따라가며 공부로 그 길을 버티다 보면, 마침내 이르는 날이 있기 마련이오.” 사부와 제자가 이렇게 한가히 이야기를 나누는데, 또 한 줄기 검은 소나무 큰 숲이 나타났다. 당승이 겁을 내며 또 외쳤다. “오공아, 우리가 방금 저 험하고 구불한 산길을 넘었거늘 어찌 또 이 깊고 캄캄한 소나무 숲을 만났단 말이냐? 모름지기 마음을 쓰거라.” 행자가 말했다. “그깟 놈이 무에 무섭다오!” 삼장이 말했다. “무슨 소리냐! 곧은 이의 곧음을 믿지 말고 어진 이의 어질지 않음을 모름지기 조심하라 하였다. 나 또한 너와 소나무 숲을 여러 곳 지나왔으되 이 숲처럼 깊고 먼 데는 없었다. 보아라. 동서로 빽빽이 늘어서고 남북으로 줄을 이루었구나. 동서로 늘어선 것은 구름 하늘에 닿았고, 남북으로 줄을 이룬 것은 푸른 은하를 범하였도다. 촘촘한 가시덤불이 둘레를 얽고, 여뀌가 가지를 얽어 위아래로 휘감았구나. 등나무가 와서 칡을 감고, 칡이 가서 등나무를 감는구나. 등나무가 와서 칡을 감으매 동서로 가는 나그네가 걷기 어렵고, 칡이 가서 등나무를 감으매 남북을 오가는 장사꾼이 어찌 들어가랴. 이 숲에서 반년을 묵어도 낮과 밤을 분간하지 못하고 몇 리를 걸어도 북두칠성을 보지 못하리라. 저 그늘진 곳의 온갖 경치와 볕 바른 곳의 일만 송이 꽃을 보아라. 또 저 천 년 묵은 느티나무, 만 해 버틴 측백나무, 추위 견디는 소나무며, 산복숭아와 들작약, 가을 부용꽃이 한데 뭉쳐 층층이 쌓였으니 어지럽고 어수선하여 신선도 그려 내기 어렵구나. 또 온갖 새소리가 들리니, 앵무새는 휘파람을 불고 두견새는 울며, 까치는 가지를 꿰고 까마귀는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 주며, 꾀꼬리는 날아 춤추고 지빠귀는 음을 고르며, 자고새는 울고 제비는 지저귀는데, 구관조는 사람 말을 흉내 내고 휘파람새 또한 경을 볼 줄 아는구나. 또 저 큰 짐승이 꼬리를 흔들고 호랑이가 이를 갈며, 해묵은 여우가 아낙네로 꾸미고 오래된 잿빛 승냥이가 숲을 뒤흔들며 포효하는구나. 탑을 받쳐 든 천왕이 온다 한들 요괴를 항복받는 재주가 있다 해도 넋을 잃고 말리라!” 손대성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앞에서 큰길을 열며 당승을 이끌고 곧장 깊은 숲으로 들어갔는데, 한가롭게 반나절을 걸어도 숲에서 나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당승이 외쳤다. “제자들아, 서쪽으로 오며 험한 산과 숲을 셀 수 없이 지나왔으나 다행히 이곳이 맑고 아름다워 줄곧 태평하였구나. 이 숲의 기이한 꽃과 풀은 참으로 마음을 즐겁게 하는도다! 나는 여기 잠시 앉아 쉬려 하니, 하나는 말에게 쉼을 주려 함이요, 둘은 배가 고픈 까닭이다. 네가 어디 가서 공양을 얻어 오너라.”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에서 내리시옵소서. 제가 공양을 받아 오겠사옵니다.” 그 장로는 과연 말에서 내렸다. 팔계가 말을 나무에 매고, 사오정이 행장을 내려놓고 바리때를 꺼내어 행자에게 건네주었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편히 앉아 계시옵소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마시옵소서. 제가 갔다가 곧 오겠사옵니다.” 삼장이 소나무 그늘 아래 단정히 앉아 있고 팔계와 사오정은 바람을 쐬며 과일을 찾으러 놀러 갔다. 각설하고 대성이 근두운을 타고 반공중에 이르러 구름 빛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소나무 숲에 상서로운 구름이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좋은 기운이 자욱하였으므로, 그만 무심코 소리를 내어 외쳤다. “좋구나! 좋구나!” 그대는 그가 무슨 까닭으로 좋다고 외쳤다 하겠느냐? 알고 보면 당승을 칭찬한 것이니, 그를 금선 장로가 환생한 이요 열 세대를 수행한 착한 사람이라 여겼으므로 상서로운 기운이 머리를 덮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늙은 손오공 같은 경우, 오백 년 전 천궁을 크게 소란시키던 시절에 구름을 타고 바다 끝까지 노닐고 하늘가를 마음대로 떠돌며, 무리 지은 정괴를 모아 스스로 제천대성이라 일컫고 용을 항복받고 호랑이를 굴복시켜 죽음의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 버렸노라. 머리에는 세 폭 금관을 쓰고, 몸에는 황금 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금고봉을 쥐고, 발에는 구름 신을 신었으며, 수하에 사만 칠천의 무리 요괴를 거느려 모두 나를 대성 할아버지라 불렀으니, 참으로 사람 구실을 하였도다. 이제 와서 천재를 벗어나고자 남에게 굽히고 낮추어 너와 더불어 제자가 되었거니와, 사부님의 머리 위로 상서로운 구름과 좋은 기운이 덮여 굳어 있는 것을 보건대, 곧장 동쪽 땅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좋은 바가 있을 것이요, 늙은 손오공도 반드시 바른 과위를 얻으리라.” 바로 그렇게 스스로 자랑하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득 숲 남쪽 아래에서 검은 기운 한 줄기가 꾸역꾸역 솟아올라 오는 것이 보였다. 행자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저 검은 기운 속에 틀림없이 사악한 것이 있구나! 내 저 팔계와 사오정은 무슨 검은 기운을 내뿜을 줄 모르거늘.” 그 대성이 반공중에서 자세히 살펴보며 좀체 판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각설하고 삼장이 숲 속에 앉아 마음을 밝히고 본성을 보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외워 읽고 있는데, 문득 앙앙거리는 소리로 “살려 주시옵소서” 하는 외침이 들렸다. 삼장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착하고 착하도다! 이토록 깊은 숲속에 무슨 사람이 있어 부르짖는단 말이냐? 늑대나 벌레나 호랑이나 표범에게 놀란 모양이니 내 가 보리라.” 그 장로가 일어나 걸음을 옮겨 천 년 묵은 측백나무를 지나고 만 해 버틴 소나무를 헤치며 칡과 등나무를 붙잡고 타고 올라 가까이 살펴보니, 저 큰 나무에 여인 하나가 묶여 있었는데, 위쪽 반은 등나무 줄기로 나무에 묶여 있고 아래쪽 반은 흙 속에 묻혀 있었다. 장로가 발을 멈추고 그에게 한마디 물었다. “여보살이여, 무슨 일로 이곳에 묶여 계시오?” 아! 분명히 이놈은 요괴이거늘 장로는 범인의 눈과 속된 육신이라 도무지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요괴가 그가 와서 묻는 것을 보고 눈물을 샘솟듯 흘렸다. 그 모습을 보라, 복사꽃 같은 뺨에 눈물을 떨구니 물고기를 가라앉히고 기러기를 떨어뜨릴 용모요, 별 같은 눈에 슬픔을 머금으니 달을 가리고 꽃을 부끄럽게 할 자태로다. 장로는 참으로 가까이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여보살이여, 그대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그러하오? 내게 말해 주시오, 그래야 내 그대를 구할 수 있지 않겠소.” 그 요괴는 교묘한 말과 고운 말로 거짓 정을 꾸며 다급히 대답하였다. “스승님, 저의 집은 빈파국에 있사옵고 이곳에서 이백여 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며 몹시 착한 분들이시어 평생을 화목하고 벗을 아끼며 지내셨사옵니다. 때마침 청명절을 맞아 여러 친척과 본가 노소를 모시고 선영에 성묘하러 가려 하였사온데, 가마와 말이 한 줄기로 황량한 들판에 이르렀사옵니다. 무덤 앞에 이르러 제물을 차려 놓고 막 지전과 종이말을 태우는데, 징과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강도 한 떼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왔사옵니다. 놀란 나머지 저희는 넋이 날아가고 혼이 흩어졌사옵니다. 부모와 여러 친척은 말과 가마를 얻은 이들끼리 제각기 목숨을 걸고 달아났사옵니다. 저는 나이가 어려 달아날 수 없어 땅에 넘어졌는데 강도 무리에게 끌려 산속으로 들어왔사옵니다. 큰 두목은 저를 부인으로 삼으려 하고 둘째 두목은 아내로 삼으려 하며, 셋째와 넷째까지 모두 제 고운 얼굴을 탐내어 일흔이나 여든 집안이 한꺼번에 다투며 서로 양보하지 않았사옵니다. 그래서 저를 숲 사이에 묶어 두고 강도 무리는 흩어져 노닐다가 가 버렸사옵니다. 이제 닷새와 다섯 밤이 지나 목숨이 다해 가오니 머지않아 죽고 말겠사옵니다! 어느 세상의 조상이 덕을 쌓았는지, 오늘 스승님을 이곳에서 만났사옵니다. 부디 크나큰 자비를 베푸셔서 제 목숨을 구해 주시옵소서. 구천 아래에서라도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사옵니다!” 말을 마치고는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삼장은 참으로 자비로운 마음씨라, 그만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며 목이 메어 외쳤다. “제자들아!” 그때 팔계와 사오정은 숲 속에서 꽃을 찾고 과일을 따며 놀고 있는데, 문득 스승님이 처연하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멍청한 놈이 말했다. “사화상, 스승님께서 여기서 친척을 알아보셨나 보이.”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헛소리 마시오! 우리가 이토록 오래 걸어오며 착한 사람 하나도 만나지 못하였는데, 친척이 어디서 온단 말이오?” 팔계가 말했다. “친척이 아니라면 스승님께서 어찌 남과 함께 우시겠소? 나와 함께 가 보세.” 사오정이 참으로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앞에 이르러 물었다. “스승님, 어찌하시렵니까?” 당승이 손으로 저 나무를 가리키며 외쳤다. “팔계야, 저 여보살을 풀어 내려 그 목숨을 구하여라.” 멍청한 놈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도 않고 곧장 손을 대려 하였다. 각설하고 그 대성이 반공중에서 다시 보니, 검은 기운이 짙게 드리워 상서로운 빛을 모조리 덮어버렸으므로, 소리를 내어 말했다. “큰일이다, 큰일이다! 검은 기운이 상서로운 빛을 덮어 어둡게 하니, 요사한 놈이 내 사부님을 해치려는 것이 아닐까 두렵구나! 공양을 받는 것은 오히려 작은 일이니, 우선 내 사부님을 보러 가자.” 곧 구름머리를 돌려 숲 속으로 내려앉으니 팔계가 마구 노끈을 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행자가 앞으로 나가 귀를 와락 잡아챘다가 탁 하고 내동댕이쳤다. 멍청한 놈이 고개를 들어 보고 기어 일어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나보고 사람을 구하라 하셨거늘, 그대는 어찌 힘이 세다 하여 나를 이리 내동댕이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우여, 그를 풀지 말게. 저것은 요괴로서 술수를 부려 우리를 속이고 있네.” 삼장이 꾸짖었다. “이 몹쓸 원숭아,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어찌 이런 여인을 보고 그가 요괴임을 알아보았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본래 모르시는 것이옵니다. 이 모두는 제가 해 보았던 장사요, 사람고기를 먹고자 하는 수법이옵니다. 사부님께서 어찌 알아보시겠나이까!” 팔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사부님, 이 필마온이 사부님을 속이는 말을 믿지 마시옵소서! 이 여인은 이곳 사람이옵니다. 우리가 동쪽 땅에서 멀리 왔사오니 서로 다툴 일도 없고, 또 친척도 아니온데 어찌 그를 요정이라 하옵니까! 저놈은 우리를 앞서 가게 한 뒤에 근두운을 타고 신통한 법술로 되돌아와 그 여인과 교묘한 일을 벌이며 데릴사위로 들어가려는 것이옵니다!” 행자가 꾸짖었다. “이 멍청한 놈아!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내 늙은 손오공이 서쪽으로 오는 내내 어찌 무뢰한 짓을 한 적이 있더냐? 너처럼 여색을 중히 여기고 목숨을 가벼이 하며 이익을 보고 의리를 잊는 먹보야, 좋고 나쁨도 분간하지 못하여 남에게 속아 데릴사위가 되어 나무에 묶이느니라!” 삼장이 말했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팔계야, 네 사형이 늘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 그리 말하거든 그만 상관하지 말고 우리 가자.” 행자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잘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목숨을 건지셨도다! 말에 오르시옵소서, 소나무 숲을 나가면 인가가 있사오니 공양을 얻어 드리겠사옵니다.” 네 사람은 과연 한 줄기로 앞으로 나아가며 그 요괴를 버려 두었다. 각설하고 그 요괴는 나무에 묶인 채 이를 갈며 원통해하며 말했다. “몇 해째 사람들이 손오공의 신통이 광대하다는 말을 들었더니, 오늘 그를 보니 과연 헛된 소문이 아니로다. 저 당승은 동자 몸으로 수행하여 한 점의 원양도 새지 않았으니, 그를 잡아다 짝을 이루어 태을금선이 되려 하였거늘, 이 원숭이에게 내 법이 간파되어 그를 구해 가 버렸구나. 만일 노끈을 풀어 나를 내려주었다면 손이 닿는 대로 잡아갔을 터인즉, 내 사람이 되지 않았겠느냐? 이제 그의 어지러운 말 몇 마디에 이끌려 가 버렸으니, 수고만 하고 공은 없는 것이 아니냐? 다시 그를 두어 번 불러 보고, 그 결과가 어떠한지 보리라.” 훌륭한 요정이로다, 노끈은 그대로 둔 채 몇 마디 착하고 부드러운 말을 순풍에 실어 앙앙거리는 소리로 당승의 귀에 불어넣었다. 그대는 그가 무엇이라 불렀다 하겠느냐? 그가 외치기를, “스승님이여, 산 사람의 목숨을 두고도 구하지 않으시면서, 양심을 속이고 부처님께 예배하여 무슨 경을 취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 당승이 말 위에서 또 이런 부름을 듣고는 곧 말고삐를 당기며 외쳤다. “오공아, 가서 저 여인을 풀어 내려오너라.”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길을 가시면서 어찌하여 또 그를 생각해 내셨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그가 또 저기서 부르고 있지 않으냐.” 행자가 물었다. “팔계야, 네가 들었느냐?” 팔계가 말했다. “귀가 커서 가려 버려 듣지 못하였소.” 또 물었다. “사오정아, 네가 들었느냐?” 사오정이 말했다. “나는 짐을 메고 앞서 걸었사옵고 마음을 쓰지 않았사옵니다, 듣지 못하였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제도 듣지 못하였사옵니다. 사부님, 그가 무엇이라 하던가요? 하필 사부님만 들으셨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그가 이치에 맞는 말을 하더구나. 산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않으면서 양심을 속이고 부처님께 예배하여 무슨 경을 취하느냐 하였느니라. 사람의 목숨 하나를 구하면 일곱 층 부도를 쌓는 것보다 낫다 하였다. 어서 가서 그를 풀어 내리너라, 경을 취하고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착하게 굴기 시작하시면 약이 없사옵니다. 생각해 보시옵소서, 사부님께서 동쪽 땅을 떠나 서쪽으로 오시는 동안 여러 겹의 산을 지나고 많은 요괴를 만났사옵고, 늘 그 요괴들이 사부님을 잡아 굴속으로 끌고 들어갔사옵니다. 제가 와서 사부님을 구하려 쇠몽둥이를 휘둘러 천만 마리나 죽였사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요정 하나의 목숨이 아까우셔서 그를 구하려 하시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제자야, 옛사람이 이르기를, 착한 일이 작다고 하여 하지 말 것이 아니요, 악한 일이 작다고 하여 행하지 말 것이 아니라 하였다. 그래도 가서 그를 구하여 주렴무나.”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그리 하시겠다면 몰라도, 이 짐은 제가 메지 못하겠사옵니다. 사부님께서 그를 구하시겠다 하시니 제가 감히 굳이 말릴 수는 없사옵니다. 한참 말려 보았자 도리어 사부님만 노하실 터이니, 마음대로 구하시옵소서.” 당승이 말했다. “원숭이 녀석아, 말이 많구나! 너는 앉아 있고, 내가 팔계와 함께 가서 그를 구하마.” 당승이 숲 속으로 되돌아가 팔계에게 위쪽의 노끈을 풀게 하고 쇠스랑으로 아래쪽 몸을 파내게 하였다. 그 요괴는 신발을 털어 신고 치마를 여며 입고는 기뻐하며 당승을 따라 소나무 숲을 나와 행자를 보았는데, 행자는 그저 냉소만 거두지 않았다. 당승이 꾸짖었다. “몹쓸 원숭아! 네가 어찌하여 웃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때를 만나 좋은 벗을 만나시고, 운이 기울자 가인을 만나신 것이 우습사옵니다.” 삼장이 또 꾸짖었다. “몹쓸 원숭아! 헛소리 마라!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중이 되었노라. 이제 임금의 명을 받들고 서쪽으로 와 정성스레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거늘, 또 재물과 벼슬을 탐하는 무리가 아니거늘 무슨 운이 기운 때가 있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승려가 되셨사오나, 다만 경을 보고 염불하는 것만 아실 뿐 나라의 법과 조항을 본 적이 없으시옵니다. 이 여인은 젊고 곱게 생겼사온데, 사부님과 저는 출가인이옵니다. 그와 한길로 함께 걸어가다가 혹여 나쁜 사람을 만나 우리를 관아로 끌고 가면, 무슨 경을 구하고 부처님께 예배하는 일이든 상관없이 모두 간통으로 몰려 매를 맞을 것이옵니다. 그런 일이 없다 한들 또한 사람을 유괴한 죄를 물으려 하옵니다. 사부님은 도첩을 몰수당하고 가벼운 죽음의 매를 맞으실 것이옵고, 팔계는 군대에 충군되는 죄를 물을 것이며, 사오정 또한 역참에 배치되는 죄를 물을 것이옵니다. 제 또한 깨끗할 수 없사옵니다. 제 입이 아무리 능하다 한들 어떻게 변명한들, 또한 마땅하지 않은 죄를 물으려 하옵니다.” 삼장이 꾸짖었다. “헛소리 마라! 끝내, 내가 그의 목숨을 구하는 데 무슨 누를 끼침이 있겠느냐! 그를 데리고 가거라, 무슨 일이 있든 모두 내게 달렸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일이 모두 사부님께 있다 하시옵니다마는, 사부님께서는 그를 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를 해치시는 줄을 아시옵소서.” 삼장이 말했다. “내가 그를 숲에서 구해 내어 목숨을 건지게 하였거늘, 어찌 도리어 그를 해치는 것이 되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가 묶여 있던 때에도 사흘이든 닷새든, 열흘이든 보름이든 밥을 못 먹어 굶어 죽었더라면 온전한 몸으로 저승에나 돌아갔을 것이옵니다. 이제 그를 데리고 나오시매 사부님께서는 빠른 말에 앉으셔서 바람처럼 길을 가시옵고, 우리는 사부님을 따라갈 뿐이옵니다. 저 여인은 발이 작아 걸음을 옮기기 어려우니 어찌 따라올 수 있겠나이까? 어느 때 그를 버려 두게 되면 이리나 승냥이나 호랑이나 표범을 만나 한 입에 삼켜질 것이니, 도리어 그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옳은 말이다, 이 일은 네가 생각해 준 덕이로구나. 어찌 처리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를 안아 올려 사부님과 함께 말에 타고 가시옵소서.” 삼장이 깊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어찌 그와 한 말에 탈 수 있겠느냐! 그러면 그가 어찌 가겠느냐?” 삼장이 말했다. “팔계에게 그를 업고 가라 하자꾸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멍청한 놈에게 재물이 찾아왔구나!” 팔계가 말했다. “먼 길에 가벼운 짐이란 없거늘, 나보고 사람을 업으라 하니 무슨 재물이냐?” 행자가 말했다. “네 주둥이가 길지 않으냐. 그를 업고 주둥이를 돌려 사사로운 정다운 말을 주고받으면 오히려 편리하지 않겠느냐?” 팔계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을 치며 펄쩍 뛰며 말했다. “큰일이다, 큰일이다! 사부님께서 나를 몇 대 때리시려거든 차라리 아픔을 참으련다. 그를 업었다가는 결코 깨끗하지 못할 것이니, 사형은 한평생 남을 모함하는 데 능하오! 나는 업지 못하겠소!” 삼장이 말했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나 또한 몇 걸음은 걸을 수 있으니, 내가 내려서 천천히 함께 걷고 팔계에게 빈 말을 끌게 하자꾸나.” 행자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멍청한 놈이 도리어 장사가 생겼구나. 사부님께서 말을 끌라고 돌보아 주시는구나.” 삼장이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이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말이 천 리를 가도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가지 못한다 하였다. 가령 내가 길에서 천천히 걷는다면 네가 좋다고 나를 버리고 가겠느냐? 내가 느리면 너희도 느리게 가는 것이다. 모두 함께 이 여보살과 더불어 산을 내려가다가, 암자나 절이나 인가가 있는 곳에 이르면 그를 거기 머물게 하자. 그것이 또한 우리가 그를 구한 한바탕이 아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의 말씀이 이치에 맞사옵니다. 어서 앞으로 나아가시옵소서.” 삼장이 발을 떼어 앞서 걷고, 사오정이 짐을 메고, 팔계가 빈 말을 끌고, 행자가 몽둥이를 쥐고 그 여인을 인도하며 한 줄기로 나아갔다. 이삼십 리도 못 가서 날이 저물어 가는데, 또 누각과 전각 하나가 보였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들아, 저곳은 틀림없이 암자나 절이로구나. 이만치에서 묵고 내일 일찍 떠나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말씀이 옳사옵니다. 모두들 조금 걸음을 옮기시옵소서.” 삽시간에 문 앞에 이르렀다. 행자가 분부하였다. “너희는 조금 멀리 서 있거라. 내가 먼저 가서 묵을 곳을 빌리마. 편리한 곳이 있거든 사람을 보내 너희를 부르리라.” 무리가 모두 버드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데, 오직 행자만이 쇠몽둥이를 들고 그 여인을 곁에 붙들어 지켰다. 장로가 발을 옮겨 가까이 가니, 저 문이 이리 기울고 저리 비틀어 흐트러져 있었다. 밀고 들어가 보니 참지 못하고 마음이 처연해졌다. 긴 회랑은 고요하고, 오래된 절은 쓸쓸하였으며, 이끼가 뜰에 가득하고 쑥과 가시풀이 오솔길을 메웠구나. 다만 반딧불이가 등불처럼 날고, 개구리 소리만 물시계를 대신하는구나. 장로가 홀연 눈물을 떨구었으니 참으로 이러하였다. 전각은 쇠락하여 무너져 내리고, 회랑과 방은 적막하여 기울어졌도다. 깨진 벽돌과 부서진 기와가 열무더기니, 모두 기울어진 들보와 부러진 기둥이로다. 앞뒤로 푸른 풀이 무성하고 먼지에 묻힌 공양간은 썩어 문드러졌구나. 종루는 무너지고 북은 가죽이 벗겨졌으며, 유리 향등은 깨져 부서졌도다. 부처님의 금빛 몸은 빛을 잃고 나한들은 동서로 쓰러져 누웠구나. 관음상은 비에 젖어 무너져 진흙이 되고 버드나무와 정병은 땅에 떨어졌도다. 낮에는 드는 중이 없고 밤이면 여우가 자리를 잡으니, 바람 소리만 우레처럼 울려오는데 모두 호랑이와 표범이 숨는 곳이로다. 사방 담장이 모두 무너지고 닫아 둘 문짝 또한 없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로 이르되, 오래된 절 고치는 이 없어 형편없이 무너지고 쓰러져 도리어 끝장이로다. 사나운 바람 불어 가람의 얼굴을 찢고, 큰비 퍼부어 불상의 머리를 상하게 하였도다. 금강은 넘어져 부서진 채 빗물에 젖고 토지는 방이 없어 밤에도 거두지 못하는구나. 또한 두 가지 탄식할 곳이 있으니, 구리 종은 땅에 닿아 있으되 매달 종루는 없도다. 삼장이 담력을 돋우어 두째 문으로 들어가니 종루와 고루가 모두 무너지고 구리 종 하나만 땅에 박혀 있었다. 위쪽 반은 눈처럼 희고 아래쪽 반은 쪽빛처럼 푸르렀으니, 세월이 오래되어 위쪽은 비에 씻겨 희어지고 아래쪽은 흙기운이 올라온 동녹이었다. 삼장이 손으로 종을 어루만지며 크게 외쳤다. “종아! 너 또한 높은 누각에 걸려 울렸고, 채색 들보에 울려 멀리 소리를 보냈도다. 닭이 울면 새벽을 알렸고, 날이 저물면 황혼을 보내었도다. 구리를 녹이던 도인은 어디로 갔으며 구리를 부은 장인은 어디에 남았는고. 그 두 목숨은 저승으로 갔으려니, 그는 자취가 없고 너는 소리가 없구나.” 장로가 높은 소리로 감탄하자 그만 절 안의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그 안에 향불을 모시는 도인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의 말소리를 듣고 일어나 앉아 깨진 벽돌 한 조각을 주워 종을 향해 내리쳤다. 그 종이 땡 하고 한 번 울리자 장로는 놀라 넘어졌다가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탁 하고 또 한 번 넘어졌다. 장로가 땅에 쓰러진 채 고개를 들어 또 외쳤다. “종아! 내 막 너를 감탄하는데 갑자기 딩동 소리가 한 번 울렸구나. 서천 길에 오는 이가 없어 오랜 세월에 요정이 된 것이로구나.” 그 도인이 달려와 와락 붙들며 말했다. “대감께서 일어나시옵소서. 종이 요정이 된 일이 아니옵니다. 방금 제가 종을 쳐서 울린 것이옵니다.” 삼장이 고개를 들어 그의 생김새가 밉고 검은 것을 보고 말했다. “그대는 도깨비나 요사한 것이 아니냐? 나는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니, 나는 대당에서 온 사람이요, 내 수하에 용을 항복받고 호랑이를 굴복시키는 제자가 있다. 그대가 만일 그를 건드리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도다!” 도인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대감께서는 놀라지 마시옵소서. 저는 요사한 것이 아니옵니다. 저는 이 절에서 향불을 모시는 도인이옵니다. 방금 대감께서 착한 말씀으로 칭찬하시는 소리를 듣고 나와 맞이하려 하였사오나, 혹시 사악한 귀신이 문을 두드리는가 두려웠사옵니다. 그리하여 깨진 벽돌 한 조각을 주워 종을 한 번 쳐 놀람을 누그러뜨린 뒤에야 감히 나왔사옵니다. 대감께서는 일어나시옵소서.” 그 당승이 그제야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주지여, 하마터면 나를 놀라 죽일 뻔하였구나. 나를 데리고 들어가게.” 그 도인이 당승을 인도하여 세째 문 안에 이르러 보니 바깥과 매우 달랐다. 그 모습을 보니 이러하였다. 푸른 벽돌로 쌓은 채운 담이요, 녹색 기와로 덮은 유리 전이로다. 황금으로 성스러운 상을 장식하고, 백옥으로 섬돌을 만들었구나. 대웅전 위에는 푸른 빛이 춤추고, 비라각 아래에는 예리한 기운이 솟는구나. 문수전은 채색을 얽어 구름을 날리고, 윤장당은 꽃을 그려 비취를 쌓았도다. 세 겹 처마 위에는 보병이 뾰족하고 오복루에는 수놓은 덮개가 있구나. 천 그루 푸른 대나무가 참선 자리를 흔들고 만 가지 푸른 소나무가 불문을 비추는구나. 벽운궁에서는 금빛이 뿜어지고 자주 안개 속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이 떠다니는구나. 아침에는 사방 들판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저녁에는 산 높은 곳에서 그림 북소리가 울리는구나. 아침 볕에 해진 장삼을 깁는 이가 있으려니와 달을 대하고 남은 경을 마치는 이가 어찌 없으랴? 또 반쪽 벽의 등불이 뒤뜰을 밝히고 한 줄기 향기로운 안개가 가운데 뜰을 비추는구나. 삼장이 보고는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불렀다. “도인이여, 그대의 이 앞쪽은 몹시 형편없는데 뒤쪽은 이토록 정연하니 어찌된 일이오?” 도인이 웃으며 말했다. “대감께서, 이 산중에는 요사한 놈이며 강도가 많사옵니다. 날씨가 맑으면 산을 따라 노략질을 하고 날이 흐리면 절에 와서 몸을 숨기며, 불상을 밀어 넘어뜨려 걸터앉고 목재를 옮겨다 불을 때곤 하였사옵니다. 본사 승려들이 나약하여 그들과 따질 수 없었사옵니다. 그런 까닭에 이 앞쪽 부서진 방을 모두 저 강도들에게 내주어 묵게 하고 새로 시주를 얻어 저 한 채의 절을 지었사옵니다. 맑음과 흐림이 각각 나뉘었사옵니다. 이것이 서방의 일이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원래 그리하였구나.” 가는 도중에 산문 위에 큰 글자 다섯이 있으니, 진해선림사였다. 막 발을 들어 문 안으로 넘어드는데, 문득 중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가 어떠한 모습인지 보라. 머리에는 비녀를 꽂은 융단 비단 모자를 쓰고 한 쌍의 구리 고리가 귀밑에 드리웠구나. 몸에는 털실로 짠 옷을 걸쳤고 두 눈은 희어서 은처럼 빛나는구나. 손에는 발랑고를 흔들어 들고 입으로는 외국 경을 외우니 알아듣기 어렵도다. 삼장은 본래 알아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서방 길의 라마승이었다. 그 라마 중이 문 밖으로 걸어 나와 삼장을 보니 눈썹이 맑고 눈매가 수려하며, 이마가 넓고 정수리가 평평하고, 귀가 어깨에 닿고 손이 무릎을 지났으니, 나한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 몹시 준수하고 우아하였다. 그가 앞으로 걸어나와 붙들고는 얼굴 가득 싱글거리는 웃음으로 그의 손과 발을 어루만지고 코를 만지며 귀를 잡아당겨 친근한 뜻을 보였다. 방장으로 데리고 들어가 예를 마치고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어디서 오셨사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제자는 동쪽 땅 대당 황제의 명을 받들어 서방 천축국 대뇌음사로 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취하러 가는 자이옵니다. “마침 이 귀한 곳에 이르렀다가 날이 저물었사옵니다. 특별히 높은 절을 찾아와 하룻밤 묵고자 하오니 내일 일찍 떠나겠사옵니다. 부디 편의를 조금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 중이 웃으며 말했다. “실례되는 말씀이옵니다! 실례되는 말씀이옵니다! 우리는 좋은 뜻으로 출가한 것이 아니옵니다. 부모에게서 몸을 받았으나 운명이 화개를 범하여 집에서 기를 수 없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집을 끊고 출가하였사오니, 부처님 문하의 제자가 되었으면 부디 헛된 말씀은 마시옵소서.” 삼장이 말했다. “저는 참된 말을 하였사옵니다.” 중이 말했다. “저 동쪽 땅에서 서천까지 얼마나 먼 길이겠나이까! 길에는 산이 있고, 산에는 굴이 있으며, 굴 안에는 요정이 있사옵니다. 그대처럼 홀몸이요 몸이 연약한 이가 어찌 경을 취하러 가는 이 같사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원주께서 보시는 바가 옳사옵니다. 저 혼자라면 어찌 이곳에 이를 수 있었겠나이까? 내게 제자 셋이 있어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며 저를 지켜 주었사옵니다. 그 덕분에 높은 절에 이를 수 있었사옵니다.” 그 중이 말했다. “세 분의 높은 제자는 어디 계시오?” 삼장이 말했다. “지금 산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 중이 당황하며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이곳에 호랑이와 승냥이, 요괴 도적, 귀신이 사람을 해친다는 것을 모르시옵니다. 대낮에도 감히 멀리 나가지 못하고, 날이 채 저물기도 전에 문을 닫아 버리옵니다. 이 어두운 밤에 사람을 바깥에 두다니요!” 외쳤다. “제자들아, 어서 가서 모셔 오너라.” 두 어린 라마가 밖으로 달려 나가 행자를 보고는 놀라 넘어졌다가, 팔계를 보고 또 한 번 넘어졌다. 일어나 뒤로 날아가듯 달려가며 외쳤다. “할아버지! 재수가 없사옵니다! 스승님의 제자는 보이지 않고, 요괴 서너 개가 저 문 앞에 서 있사옵니다!” 삼장이 물었다. “무슨 모양이더냐?” 어린 중이 말했다. “하나는 뇌공의 주둥이요, 하나는 절구 공이 같은 주둥이요, 하나는 푸른 얼굴에 사나운 이빨이옵니다. 곁에 여인이 하나 있는데, 도리어 기름 바른 머리와 곱게 분칠한 얼굴이옵니다.” 삼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알아보지 못하였구나. 저 못생긴 세 명은 내 제자요, 저 여인 하나는 내가 소나무 숲에서 구해 온 이로다.” 그 라마가 말했다. “할아버지여, 이토록 잘생긴 스승님께서 어찌 이리도 못생긴 제자를 두셨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그들이 못생겼기는 못생겼으나 모두 쓸모가 있느니라. 어서 그들을 불러오너라. 조금이라도 더 늦으면 저 뇌공 주둥이를 한 놈이 사고를 칠 것이니, 사람의 부모가 낳아 기른 이가 아니라면 그가 쳐들어올 것이니라.” 그 어린 중이 황급히 달려 나가 바들바들 떨며 무릎을 꿇고 말했다. “여러 대감님, 당 대감께서 모셔 오라 하시옵니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 부르는 것까지야 그러려니와 어찌 저리 바들바들 떠는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못생긴 것을 보고 겁을 내는 게지.” 팔계가 말했다. “허튼 소리 마시오! 우리는 타고난 것인데, 누가 좋다고 못생기기를 바라겠소!” 행자가 말했다. “그 못생긴 것을 좀 거두어 보아라!” 멍청한 놈이 참으로 주둥이를 품에 찔러 넣고 고개를 숙인 채 말을 끌고, 사오정이 짐을 메고, 행자가 뒤에서 몽둥이를 들고 그 여인을 곁에 붙들어 한 줄기로 들어갔다. 무너진 집과 회랑을 지나 세째 문 안으로 들어갔다. 말을 매고 짐을 내려놓고 방장으로 들어가 라마 중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 그 중이 안으로 들어가 어린 라마 일흔이나 여든을 데리고 나와 예를 마치고는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하였다. 바로 이러하였다. 공덕을 쌓음은 모름지기 자비한 마음에 있어야 할 것이요, 불법이 흥할 때에 중이 중을 칭찬하는도다. 도대체 어떻게 그 절을 떠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1회 진해사심원지괴(鎭海寺心猿知怪) · 흑송림삼중심사(黑松林三衆尋師) 각설하고 당삼장 사부와 제자들이 진해 선림사에 이르니 승려들이 나와 인사를 나누고 재공을 차렸다. 넷이 먹기를 마치자 그 여인도 음식 기운을 조금 얻었다. 차츰 날이 저물어 방장실에 등불을 켜니, 승려들은 한편으로 당승의 취경 내력을 묻고 싶고 한편으로 그 여인을 넋 놓고 보고 싶어 모두 떼지어 몰려나와 등불 아래 줄줄이 늘어섰다. 당승이 처음 만난 라마승에게 말했다. “원주스님, 내일 이 보산을 떠나 서쪽으로 가려 하는데 그 길이 어떠하오이까?” 그 승려가 두 무릎을 꿇자 당황한 장로가 얼른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원주스님, 어서 일어나시구려. 내 그대에게 길이나 묻는 것뿐인데 어찌하여 큰절을 올리시오?” 그 승려가 말했다. “노사부님께서 내일 서쪽으로 가시면 길이 평탄하고 곧사오니 마음을 쓰실 것 없나이다. 다만 지금 한 가지 난처한 일이 있어 문에 들어서자마자 아뢰려 하였사오나 큰 위엄을 범할까 두려워하다가, 재를 마치고 나서야 바야흐로 감히 아뢰옵니다. 노사부께서는 동쪽에서 오시느라 길이 멀고 고생이 크셨사오니 모두 작은 중의 방에서 편히 쉬심이 매우 좋사오나, 오직 이 여보살님이 문제이오니 어디서 주무시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나이다.” 당승이 말했다. “원주스님, 의심하지 마시오. 우리 사부와 제자에게 무슨 사악한 뜻이 있다고 여기지 마시오. 아침에 흑송림을 지나다가 이 여인이 나무에 묶여 있는 것을 보았소. 작은 제자 손오공은 구해 주려 하지 않았으나 내가 보리심을 내어 그를 구하였으니, 원주스님이 보내시는 대로 따라가 어디든 자게 하면 되오.” 그 승려가 감사하며 말했다. “노사부께서 너그러우시니 천왕전으로 모시어 바로 천왕 할아버님 뒤에 짚자리를 펴고 주무시게 하사이다.” 당승이 말했다. “매우 좋소, 매우 좋소.” 이리하여 여러 작은 중들이 그 여인을 인도하여 전각 뒤로 가 재웠다. 장로는 방장실에서 여러 원주들에게 편히들 계시라 청하고는 각자 흩어졌다. 당승이 오공에게 분부했다. “고생하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그리고 모두 한곳에 모여 잠이 들었으니 감히 곁을 떠나지 않고 스승을 지켰다. 차츰 깊은 밤이 되었으니, 참으로 이러하였다. “옥토끼 높이 오르니 만 가지 소리 잠잠한데, 하늘 거리 고요하여 오가는 이 끊겼구나. 은하수 또렷하고 별빛 찬란한데, 망루에서 북소리 울려 나와 경을 재촉하며 바꾸는구나.” 각설하고 그 밤의 이야기는 이쯤 접어 둔다. 날이 밝자 행자가 일어나 팔계와 사오정에게 행낭과 말을 수습하라 하고는 스승을 모시고 길을 떠나려 하였다. 이때 장로는 아직 단잠에 빠져 깨지 않았는데, 행자가 가까이 다가가 “사부님” 하고 불렀다. 그 사부님은 머리를 한번 들어 올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행자가 물었다. “사부님, 어찌하십니까?” 장로가 신음하며 말했다. “내 어찌하여 이다지도 머리는 띵하고 눈은 부으며, 온몸의 살과 뼈가 다 아프단 말이냐?” 팔계가 이 말을 듣고 손을 뻗어 더듬어 보니 몸에 열이 조금 있었다. 그 얼간이가 웃으며 말했다. “알겠소. 어젯밥이 공짜라고 여러 그릇이나 더 먹고는 머리를 처박고 잤으니 체한 것이오.” 행자가 꾸짖었다. “허튼소리! 내가 사부님께 여쭙고 정확히 알아보겠다.” 당삼장이 말했다. “내가 한밤중에 일어나 볼일을 보러 가면서 갓을 쓰지 않았으니, 아마 바람을 쐰 모양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그 말은 그럴듯하오. 그런데 지금 길을 걸으실 수 있겠소?” 당삼장이 말했다. “지금은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데 어찌 말에 오르리오. 다만 길만 늦어질 뿐이오!”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속담에 이르기를 하루라도 스승이면 평생의 아버지라 하였소. 저희가 사부님의 제자가 되었으니 곧 아들이나 다름없소. 또 이르기를 자식을 기르는 데 금을 아끼고 은을 쏟을 것 없이 그저 보이는 형편에 마음을 쓰면 그만이라 하였소. 몸이 편치 않으시면서 무슨 일정이 늦어진다 하시리오. 며칠쯤 참고 견딘들 무슨 해가 되겠소!” 형제들이 모두 스승을 곁에서 모시는데 어느새 아침이 가고 낮이 와서 저녁이 이르렀으며, 좋은 밤이 막 지나가니 또 새벽이 찾아왔다. 세월이 빠르니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어느 날 스승이 몸을 일으키며 불렀다. “오공아, 이틀 동안 병이 깊어 너에게 묻지 못하였구나. 저 목숨을 건진 여보살에게 누가 음식을 좀 갖다 주었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이를 걱정하실 게 무엇이오. 먼저 사부님의 병이나 돌보시오.” 당삼장이 말했다. “옳소, 옳소. 그런데 나를 좀 일으켜 주고 내 종이와 붓과 먹을 꺼내고, 절에서 벼루를 하나 빌려 오너라.” 행자가 말했다. “어디에 쓰시려고요?” 장로가 말했다. “내가 편지 한 통을 써서 통행 문서와 함께 한곳에 봉하여, 네가 장안 임금님께 대신 올려 태종 황제를 한번 뵙게 하고자 한다.” 행자가 말했다. “그건 쉬운 일이오. 내 손오공은 다른 일에는 재주가 없어도 편지를 보내는 일이라면 인간 세상에서 제일이오. 편지를 단단히 꾸려 주시오. 내가 근두운 한 번에 장안으로 가 당왕께 전하고, 또 근두운 한 번에 되돌아오면 사부님의 붓과 벼루가 채 마르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런데 편지를 보내어 어찌하시려는 것이오? 편지의 뜻을 내게 읽어서 들려주시오. 들려주고 나서 써도 늦지 않소.” 장로가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내 이렇게 쓰겠다. 신하 된 중 머리를 조아려 세 번 절하옵니다, 만세를 외치며 성군께 절하옵니다. 문무 두 반열이 함께 굽어살피시고 공경 사백이 모두 알게 하소서. 당년에 성지를 받들어 동토를 떠나 영산에서 세존을 뵙고자 하였더니, 뜻밖에도 도중에 액난을 만났사옵고 반로에 재앙이 있을 줄 어찌 알았으리까. 중의 병은 깊어 나아갈 수 없고 불문은 아득하여 하늘 문에 닿았사옵니다. 경은 있으되 목숨이 없으니 헛된 수고일 뿐, 이제 임금께 아뢰어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행자가 이 말을 듣고는 참지 못하여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너무도 속이 좁으시오. 조금만 아프셔도 곧 그런 생각을 하다니요. 사부님께서 병이 위중하여 죽고 사는 일이라면 다만 내게 물으시오. 내 손오공에겐 제법 재주가 있으니, 어느 염라대왕이 감히 마음을 내며 어느 판관이 감히 영장을 내며 어느 귀사가 와서 잡아가려 하느냐 하고 묻는 것이오. 내 비위를 거스르면 내가 그 천궁을 크게 소란시키던 성질을 내어, 몽둥이를 휘두르는 대로 명계로 쳐들어가 십 대 염라대왕을 모조리 사로잡아 하나씩 힘줄을 뽑아도 성이 차지 않을 것이오!” 당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내 병이 위중하니 부디 이런 큰소리는 말아라.”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형님, 사부님께서 좋지 않다고 하시는데 형님은 자꾸 좋다고만 하시니 몹시 민망하오. 우리가 일찍 의논하여 먼저 말을 팔고 행낭을 전당 잡혀 관을 사서 장사를 지내고 헤어집시다.” 행자가 말했다. “이 얼간이가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사부님께서는 우리 부처 여래의 둘째 제자로서 본디 금선장로라 불리셨거늘, 다만 불법을 가벼이 여기신 탓에 이 큰 재난을 겪게 된 것임을 너는 모르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님, 사부님께서 불법을 가벼이 여겨 동토로 쫓겨나 시비의 바다와 구설의 한복판에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시어, 서천으로 가 부처께 절하고 경을 구하겠다는 원을 세우셨다가 요괴를 만나면 묶이고 마두를 만나면 매달려 온갖 고초를 겪으신 것만으로도 넉넉한데, 어찌하여 또 병까지 앓게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 알겠느냐. 사부님께서 부처의 설법을 들으실 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졸아 아래로 흔들리시며 왼발로 쌀 한 톨을 밟아 인간 세상에 떨어뜨리셨으니 이 사흘의 병이 마땅한 것이니라.” 팔계가 놀라며 말했다. “그러면 먹을 때마다 흘리고 떨어뜨리는 나 같은 놈은 몇 년 동안 병을 앓아야 한다는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부처께서는 너 같은 중생을 마음에 두지 않으신다. 너는 또 모르는구나. 사람들이 이르기를, 한낮에 김 매니 땀이 뚝뚝 논바닥에 떨어지는데 그 누가 알랴, 밥그릇의 밥알 하나하나가 다 고생인 줄을, 하지 않았느냐. 사부님께서는 오늘 하루뿐이니 내일이면 나으실 것이니라.” 당삼장이 말했다. “내 오늘은 어제와 다르구나. 목구멍이 몹시 타는구나. 네가 어디든 좀 가서 냉수를 찾아다 내게 먹여라.” 행자가 말했다. “좋았소! 사부님께서 물을 찾으시니 곧 나으실 징조요. 내 당장 가서 냉수를 떠다 드리겠소.” 즉시 바리때를 들고 절 뒤 향적주로 물을 길러 갔다. 문득 보니 그 승려들이 하나같이 눈이 붉게 충혈되어 슬피 흐느끼며 우는데, 감히 큰 소리로 통곡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 이 승려들은 참으로 속이 좁구나! 우리가 며칠 묵고 떠날 때 사례를 하리라. 장작값은 머문 날수대로 쳐서 갚아 주마. 그런데 어찌 이리도 못났느냐!” 승려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그러실 리가 없사옵니다! 천만에올시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감히요? 내 보기에 그 긴 주둥이를 가진 중이 밥통이 너무 커서 너희 밑천을 축내 버린 줄 알았던 것이냐?” 승려들이 말했다. “영감님, 이 황량한 산에 크고 작은 중이 백여 명이나 되옵니다. 한 사람이 영감님을 하루씩만 모셔도 백 열흘은 모실 수 있사옵니다. 어찌 감히 마음을 속여 먹을 것을 따지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따질 것 없다면서 너희는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승려들이 말했다. “영감님, 어느 산에서 온 요사한 놈인지 이 절에 있사옵니다. 우리가 밤마다 작은 중 둘을 보내 종을 치고 북을 치게 하였는데, 종과 북 소리가 그친 뒤에는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다시 볼 수가 없었나이다. 이튿날 찾아보니 중의 모자와 신발만 뒤뜰에 버려져 있고 해골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옵니다. 영감님네가 사흘을 묵으시는 동안 우리 절에서는 중 여섯이 사라졌나이다. 그리하여 우리 형제들이 두렵지 않을 수 없고 슬프지 않을 수 없나이다. “뵈오니 영감님의 스승님께서 자애로우시어 감히 전하여 말씀드리지 못하다가, 참지 못하여 눈물방울을 몰래 떨구었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놀라면서도 기뻐하며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요마가 여기 있어 사람을 해친 것이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그놈을 소탕해 주마.” 승려들이 말했다. “영감님, 요정은 정하지 않으면 영험하지 않아, 반드시 구름을 타고 명계를 드나들 줄 아옵니다. 옛 사람이 잘 이르기를, 곧은 자의 곧음만 믿지 말고 어진 체하는 자의 어질지 않음을 조심하라 하였나이다.” “영감님, 저희 하는 말에 노여워 마시옵소서. 영감님께서 그놈을 잡아 두실 수 있다면 이 황량한 산에서 이 화근을 없애 주시니 참으로 삼생의 행운이옵니다마는, 만일 그놈을 잡지 못하신다면 몹시 난처한 일이 생기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몹시 난처해지느냐?” 여러 승려가 말했다. “영감님께 조금도 속이지 않고 아뢰옵니다. 이 황량한 산에 백여 명의 중이 있사오나 모두 어릴 적에 출가한 자들이옵니다. 머리털이 자라면 칼을 찾아 깎고, 옷이 해지면 헐렁한 누더기를 기워 입나이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두 손을 모으고 몸을 굽혀 큰 도에 귀의하나이다.” 밤이 되면 향을 사르려 불을 살피고 정성을 다하여 이를 맞추며 아미타불을 외나이다. 머리를 들어 부처를 뵈오면 연꽃의 아홉 품계요 삼승의 가르침이라, 자비의 배와 법의 구름이 함께하여 구름 아른 동산의 세존을 뵙기를 원하나이다. 머리를 숙여 마음을 살피오면 오계를 받들고 대천을 건넨다 하여도, 만 갈래 법 가운데 나고 또 나면서 완공과 색공을 깨닫기를 원하나이다. 여러 시주가 오시면 늙은이나 젊은이나 키 큰이나 작은이나 살진이나 여윈이나 할 것 없이 저마다 목어를 두드리고 금경을 쳐대며 다닥다닥 붙어 앉아 법화경 두 권과 양왕참 한 책을 외우나이다. 그러나 여러 시주가 오지 않으시면 새로운이나 헌 것이나 낯선이나 익은이나 촌스러운이나 고운이나 할 것 없이 저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고요하고 아득하게 포단 위에서 입정하고 달빛 아래 문을 굳게 닫나이다. 꾀꼬리는 울고 새들은 지저귀며 한가히 다투어도 우리의 방편 자비의 큰 법승에는 오르지 않나이다. 그리하여 범을 항복시키지도 못하고 용을 항복받지도 못하옵니다. 괴물도 알지 못하고 요정도 알지 못하옵니다. 영감님께서 만일 그 요마를 건드리시면 우리 백여 명의 중이 그놈의 끼니 한 번에나 족할 것이옵니다. 하나는 저희 중생을 윤회에 떨어뜨리고, 둘은 이 선림의 옛 자취를 없애 버리며, 셋은 여래의 법회에 털끝만큼의 빛도 없게 되나이다. 이것이 곧 몹시 난처한 일이옵니다.” 행자가 여러 승려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곧 마음에서 노여움이 솟고 쓸개 곁에서 사악함이 생겨, 크게 한번 외쳤다. “너희 이 승려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 요정만 알고 내 손오공의 행적은 모르느냐?” 승려들이 조용히 대답하였다. “실로 알지 못하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내 오늘 대략 말해 줄 것이니 너희는 잘 들으라. 나도 일찍이 화과산에서 범을 항복시키고 용을 항복받았으며, 나도 일찍이 천당에 올라가 천궁을 크게 소란시켰느니라. 배가 고플 때는 노군의 단약을 대강 물어뜯어 두세 알쯤 먹었고, 목이 마를 때는 옥제의 술을 가볍게 들이켜 대여섯 잔 마셨느니라.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 한 쌍의 금정안을 뜨면 하늘은 참담해지고 달은 아득해지며,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금고봉 하나를 들면 올 때는 그림자 없고 갈 때는 자취 없느니라. 무슨 큰 요괴 작은 괴물을 말하랴, 그놈이 얄밉고 더러운들 겁이 나느냐! 한 번 쫓아가면 달아나는 놈, 떠는 놈, 숨는 놈, 허둥대는 놈이요, 한 번 붙잡아 오면 쪼개고 불사르고 갈고 방아로 찧느니라. 참으로 팔선이 함께 바다를 건너되 제각기 신통을 드러내는 격이니라! 여러 승려여, 내 그 요정을 붙잡아 너희에게 보여 주마. 그제야 너희가 내 손오공을 알게 되리라!” 승려들이 이 말을 듣고 슬몃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말했다. “이 놀라운 중이 큰 입을 열어 큰소리를 치니 아무래도 내력이 있는 모양이로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연달아 옳다고만 하였다. 오직 그 라마승이 말했다. “잠깐이오! 영감님의 스승님께서는 귀하신 몸이 편찮으신데 영감님께서 그 요정을 잡는 일이 급하지 않사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공자가 잔치에 오르면 취하지 않아도 이미 배부르고, “장사가 싸움터에 임하면 죽지 않으면 상한다 하였나이다. 그대들이 서로 겨루시는 그러한 때에 혹 영감님의 스승님께 누를 끼치게 되면 몹시 온당치 않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옳소! 옳소! 내 우선 스승님께 냉수를 갖다 드리고 오겠소.” 바리때를 들어 올려 냉수를 담고 향적주에서 나와 방장실로 가서 “사부님, 냉수 드시오” 하고 불렀다. 당삼장은 한창 답답하고 목이 마를 때라 머리를 들어 물을 받아 들고는 단숨에 들이켰으니, 참으로 목마를 때 한 방울은 감로수 같고 약이 알맞으면 병이 곧 낫는다 하였다. 행자가 장로의 정신이 점차 맑아지고 눈썹과 눈매가 펴지는 것을 보고 물었다. “사부님, 국수나 밥을 좀 드시겠소?” 당삼장이 말했다. “이 냉수가 영단과 같아 병이 절반은 줄었으니, 국수나 밥이 있다면 좀 먹을 수 있겠다.” 행자가 연달아 큰 소리로 외쳤다. “내 사부님이 나으셨다, 국수와 밥을 드시겠단다.” 그리고 그 승려들에게 바삐 차리라 하였다. 쌀을 일고 밥을 짓고 밀가루를 밀어 전을 부치고 만두를 찌고 당면국을 만들어서 네다섯 상을 차려 왔다. 당승은 겨우 미음 반 그릇을 먹었고 행자와 사오정은 한 상만 비웠으며, 나머지는 모두 팔계가 한 배에다 넣었다. 그릇을 치우고 등불을 켜니 승려들이 각자 흩어졌다. 당삼장이 말했다. “우리가 오늘 며칠째 이곳에서 묵고 있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사흘이 온전히 지났소. 내일 저녁 무렵이면 나흘째가 되오.” 당삼장이 말했다. “사흘이면 이미 많은 길을 놓친 셈이구나.”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 그것쯤이야 길이라 할 것도 없소. 내일 떠나시지요.” 당삼장이 말했다. “옳소, 병이 조금 남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행자가 말했다. “내일 떠나실 것이라면 오늘 밤에 내가 요정을 잡게 해 주시오.” 당삼장이 놀라며 말했다. “또 무슨 요정을 잡는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이 절에 요정이 하나 있으니 내가 대신 잡아 주겠소.” 당승이 말했다. “제자야, 내 병든 몸이 아직 온전치 않은데 네가 어찌하여 또 그런 생각을 하느냐! 만일 그 요괴에게 신통이 있어 네가 그놈을 잡지 못한다면 도리어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사부님께서 남의 위풍을 너무 꺾으시오! 내 손오공이 곳곳에서 요정을 항복받는데, 사부님께서는 내가 누구에게 진 것을 보셨소? 다만 손을 대지 않을 뿐, 손을 대면 반드시 이기오.” 당삼장이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제자야, 늘 하는 말이 참으로 좋다. 방편을 만나거든 방편을 행하고, 남을 용서할 수 있거든 너그럽게 하라 하였느니라. 마음을 쓰는 것이 어찌 마음을 간직하는 것만 같으며, 기를 내세우는 것이 어찌 기를 누그러뜨리는 것보다 높으랴!” 손대성이 사부님이 간곡히 말리며 요정을 항복받지 말라 하는 것을 보고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했다. “사부님, 실로 속이지 않고 아뢰오. 그 요괴가 여기서 사람을 잡아먹었소.” 당승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무슨 사람을 잡아먹었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머문 사흘 동안에 이미 이 절의 작은 중 여섯을 잡아먹었소.” 장로가 말했다. “토끼가 죽으니 여우가 슬퍼하고, 짐승도 제 무리를 다치게 함을 슬퍼하는 법이니라. 그놈이 절의 중을 잡아먹었으니 나 또한 중이로다. 내 너를 보내주리니 다만 마음을 쓰되 한결 조심하라.” 행자가 말했다. “말할 것도 없소. 내 손이 닿으면 곧 없애고 마오.” 너는 그가 등불 앞에서 팔계와 사오정에게 스승을 잘 지키라 분부하는 모습을 보아라. 그는 흐뭇한 얼굴로 방장실에서 뛰어나와 곧장 불전으로 갔다. 살펴보니 하늘에는 별이 있고 달은 아직 오르지 않아 그 전각 안은 캄캄하였다. 그는 곧 참불을 불어내어 유리등을 켜고는 동쪽에서 북을 치고 서쪽에서 종을 쳤다. 소리가 그치자 몸을 한번 흔들어 변화하니, 나이가 겨우 열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중이 되었는데, 누런 명주로 된 저고리를 걸치고 흰 베로 된 장삼을 입고서는 손으로 목어를 두드리며 입으로 경을 외우고 있었다. 초경이 되도록 아무 동정도 없었다. 이경 무렵에 이르러 그믐달이 막 떠오르는데, 문득 훅 하고 한바탕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좋은 바람이로다. “검은 안개가 하늘을 가려 어둡고, 수심에 찬 구름이 땅을 비추어 캄캄하구나. 사방은 먹물을 뿌린 듯하고 온통이 쪽빛으로 물든 듯하구나. 처음 불어올 때는 흙먼지를 일으키고 흙을 흩뿌리더니, 그 뒤로는 나무를 넘어뜨리고 숲을 꺾는구나. 흙먼지를 일으키니 별빛이 드러나고, 나무를 넘어뜨리니 달빛이 흐릿하구나. 부는 바람에 항아는 사라수를 꽉 껴안고, 옥토끼는 빙빙 돌며 약 그릇을 찾는구나. 구요의 성관은 모두 문을 닫고, 사해의 용왕은 모두 문을 걸어 잠갔구나. 사당의 성황은 작은 귀신을 찾고, 허공의 선자는 어찌 구름을 타랴? 명부의 염라는 마면을 찾고, 판관은 두건을 잡으려 어지러이 뛰는구나. 곤륜산 꼭대기의 돌을 불어 움직이고, 강호의 물결을 휘저어 흐려 놓는구나.” 그 바람이 막 지나간 곳에서 문득 난사향 내음이 물씬 풍기고 환패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아! 바로 한 미인이 곧장 불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행자는 입으로 웅얼웅얼 소리를 내며 그저 경만 외우고 있었다. 그 여인이 가까이 다가와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어린 장로님, 무슨 경을 외우고 계시오?” 행자가 말했다. “발원한 것이오.” 여인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방에서 편히 자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경을 외우시오?” 행자가 말했다. “발원한 것을 두고 어찌 외우지 않겠소?” 그 여인이 그를 껴안고는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와 함께 뒤로 가서 좀 놀자꾸나.” 행자가 일부러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모르는 게 많구려!” 여인이 말했다. “그대는 관상을 볼 줄 아시오?” 행자가 말했다. “조금은 아오.” 여인이 말했다. “그러면 내 관상이 어떠하다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보아하니 그대는 남몰래 아이를 낳고 익은 것도 서슴지 않다가 시부모에게 쫓겨난 모양이오.” 여인이 말했다. “보지 못하였소! 보지 못하였소! 나는 시부모에게 쫓겨난 것도 아니고 익은 것을 탐하고 아이를 낳은 탓도 아니라오. 다만 내 전생의 명이 박복하여 젊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더랬소. 동방화촉을 치르지 못하고 지아비를 피해 달아난 몸이라오. 지금 별빛이 밝고 달이 교교하니 이 또한 인연이 있어 천 리를 달려와 만난 것이라, 내 그대와 함께 뒤뜰로 가서 원앙의 짝이 되어 즐겨 보자꾸나.” 행자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저 어리석은 중들은 모두 색욕에 이끌려 목숨을 잃었거늘, 이 요괴가 이제는 또 나를 꾀려 하는구나.”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했다. “낭자, 나는 출가한 몸인데다 나이도 어려 무슨 남녀의 일인지 알지 못하오.” 여인이 말했다. “나를 따라오시오. 내 가르쳐 주리라.”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좋소. 내 그놈을 따라가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보리라.” 그 두 사람은 어깨를 감싸고 손을 잡고 불전에서 나와 곧장 뒤뜰로 갔다. 그 요괴가 행자에게 다리를 걸어 땅에 넘어뜨리고는 입으로 “내 사랑, 오라버니” 하고 마구 부르면서 손을 뻗어 그의 사타구니를 움켜쥐려 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이 녀석아, 참으로 내 손오공을 먹으려는구나!” 그러나 행자가 그 손을 잡아채어 조그만 비틀어 넘기기 법을 쓰니 그 요괴를 데굴데굴 굴려 땅에 내동댕이쳤다. 그 요괴는 입으로 여전히 “내 사랑, 오라버니, 그대는 제 어미를 넘어뜨릴 줄도 아는구려!” 하고 외쳤다. 행자가 속으로 계산했다. “이때 그놈을 치지 않고 언제 치랴! 참으로 먼저 손을 쓰는 자가 강하고 뒤에 손을 쓰는 자가 재앙을 만난다 하였느니라.” 그리고는 손을 벌리고 허리를 굽히며 한 번에 뛰어 일어나서 본래의 법상을 드러내고 금고철봉을 휘둘러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 요괴도 참으로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작은 중이 이토록 대단하구나!”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바로 당장로의 제자요 성이 손씨인 자였으나, 그놈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대는 이 요괴가 무슨 요괴인지 아느냐? “코는 쇠로 만들고 털은 눈을 펼친 듯하구나. 땅굴을 집과 방으로 삼으니 몸 붙일 곳마다 든든하구나. 삼백 년 전의 기운을 길러 두고 일찍이 영산을 몇 차례 다녀왔구나. 향화와 촛불을 한번 배불리 먹고서야 여래의 분부를 받들어 천조로 내려왔구나. 탁탑천왕이 사랑하는 딸이요, 나타 태자가 동포로 인정하는 이로구나. 바다를 메운 새도 아니요 산을 이고 선 자라도 아니로다. 뇌환의 칼도 두렵지 않고 여건의 칼도 두렵지 않구나. 오가고 또 오가며 강수와 한수가 넓은들 무슨 상관이리오? 오르고 또 내리며 태산과 항산이 높이 솟은들 어찌 따지랴? 저 달 같고 꽃 같은 고운 자태를 보아라, 누가 쥐 늙은이가 요괴가 되어 교활하고 호탕함을 뽐내는 줄 알랴!” 그 요괴는 제 신통이 광대함을 스스로 믿고는 곧 두 자루 겹칼을 들어 올려 쨍그랑쨍그랑 소리를 내며 왼쪽으로 막고 오른쪽으로 받고, 동쪽으로 기울며 서쪽으로 쓰러졌다. 행자가 좀 더 강하기는 하여도 그놈을 붙잡아 넘기지는 못하였다. 음풍이 사방에서 일고 그믐달은 빛을 잃었으니, 보라 저 두 사람의 뒤뜰에서의 한바탕 멋진 싸움을. “음풍은 땅에서 일고 그믐달은 희미한 빛을 흔드는구나. 고요하던 범왕의 처소요 쓸쓸하던 귀신의 회랑이로다. 뒤뜰이 온통 전쟁터가 되었으니, 손대사는 하늘 위의 성인이요, 털북숭이 아가씨는 여인 중의 왕이라, 신통을 겨루며 항복하려 하지 않는구나. 하나는 고운 마음을 비틀어 검은 중에게 성을 내고, 하나는 지혜로운 눈을 부릅뜨고 새 단장을 미워하는구나. 두 손에서 칼이 날리니 어찌 여보살을 알아보랴, 한 개의 몽둥이가 내리치니 몹시도 산 금강 같구나. 소리 나는 곳에 금고는 번개처럼 번쩍이고, 삽시간에 쇠창이 별빛처럼 빛나는구나. 옥루는 비취를 움켜쥐고 금전은 원앙을 부수는구나. 원숭이는 바 땅의 작은 달에 울고 기러기는 초 땅의 긴 하늘에서 우는구나. 열여덟 나한은 은근히 탄성을 내고 서른두 제천은 저마다 허둥대는구나.” 그 손대성은 정신을 크게 떨치고 몽둥이에 털끝만큼의 어긋남도 없었다. 요정은 저로서는 당해 낼 수 없음을 깨닫고 불현듯 미간을 찌푸리자 꾀가 떠올라 몸을 빼어 달아났다. 행자가 호령했다. “이 몹쓸 놈아! 어디로 달아나느냐! 어서 와서 항복하라!” 그 요정은 일부러 듣지도 않고 곧장 뒤로 물러났다. 행자가 다급히 뒤쫓을 때에 그 요정은 왼발에 신은 꽃신을 벗어 선기후 한 번을 불고 주문을 외우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그것이 제 본모습으로 변하여 두 자루 칼을 휘두르며 덤벼 오는 사이에 진신은 한번 흔들려 한 줄기 맑은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이것이 어찌 당삼장의 재성이 아니겠느냐. 그 요정은 곧장 방장실로 달려들어 당삼장을 붙잡아 구름 위로 채 갔으니, 아득하고 묘연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함공산에 이르러 무저동으로 들어가서는, 졸개들에게 채식 잔치를 차려 혼례를 올리라 분부한 이야기는 이쯤 접어 둔다. 각설하고 행자는 싸우느라 마음이 조급하고 성미가 거칠어져 한 번 빈틈이 생기는 바람에 몽둥이로 그 요정을 내리쳐 떨어뜨렸는데, 그것은 꽃신 한 짝이었다. 행자는 제가 계략에 걸렸음을 알고 황급히 몸을 돌려 스승을 살폈다. 그런데 스승이 어디 있단 말이냐? 다만 그 얼간이와 사오정이 입으로 웅얼웅얼 무언가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행자는 분노가 가슴에 가득 차 좋고 나쁠 것도 가리지 않고 몽둥이를 들어 쓸어치며 연달아 외쳤다. “너희를 때려 죽이겠다! 너희를 때려 죽이겠다!” 그 얼간이는 당황하여 달아날 길조차 없었으나, 사오정은 영산의 대장이었던 터라 겪은 일이 많아 부드럽고 온화하게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형님, 나도 알겠소. 형님께서 우리 둘을 죽이려 하시니 스승님도 구하러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시려는 게지요.” 행자가 말했다. “내 너희 둘을 죽이고 나 혼자 스승님을 구하러 가겠다!”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우리 둘이 없다면 참으로 외가닥 실로는 실을 꼬지 못하고 외손바닥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하오. 형님, 이 행낭과 말은 누가 돌보리이까? 차라리 관포가 재물을 나눈 것을 본받을 것이요, 손방이 지혜를 다툰 것은 본받지 말 것이니이다. 예로부터 호랑이를 잡아도 친형제가 낫고 싸움터에 임해서는 부자간의 병정이라 하였소. 형님께서는 부디 때리기를 그치시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우리와 힘을 합쳐 스승님을 찾으러 갑시다.” 행자는 신통이 광대하면서도 이치를 알고 형편을 살필 줄 알았으므로 사오정이 간곡히 애원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돌려 말했다. “팔계, 사오정, 너희 둘 다 일어나거라. 내일 스승님을 찾으러 가려면 온 힘을 다해야 하느니라.” 그 얼간이는 용서받았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하늘이라도 반쪽을 떼어 주고 싶은 심정으로 말했다. “형님, 이 일은 모두 이 늙은 돼지에게 맡기시오.” 형제들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어찌 잠을 이루었으랴. 차라리 고개를 끄덕여 부상에서 해를 불러내고 한 입으로 하늘의 별을 모조리 흩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 사람은 다만 앉아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다 짐을 싸서 떠나려 하니, 일찍이 절의 승려들이 문을 막고 물으러 왔다. “영감님, 어디로 가시려 하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말하기 민망하구나. 어제 여러 사람 앞에서 큰소리를 치며 요정을 잡아 주겠다 하였는데, 요정은 잡지 못하고 도리어 내 스승님을 잃어버렸소. 우리 스승님을 찾으러 가는 길이오.” 승려들이 놀라며 말했다. “영감님, 하찮은 저희 일이 도리어 스승님께 누를 끼쳤으니, 어디로 가서 찾으시려 하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찾을 곳이 있소.” 승려들이 또 말했다. “가시더라도 서두르지 마시고 아침 공양이나 좀 드시지요.” 그리고는 급히 국과 밥을 두어 그릇 차려 왔다. 팔계가 힘껏 먹어 말끔히 비우고는 말했다. “좋은 중들이로다! 우리가 스승님을 찾고 나면 다시 여기 와서 놀겠소.” 행자가 말했다. “그들의 밥을 또 먹으러 오겠다는 말이냐! 너희는 천왕전으로 가서 그 여인이 있는지 좀 보아라.” 승려들이 말했다. “영감님, 없사옵니다, 없사옵니다. 그날 밤을 하루 묵더니 이튿날부터는 보이지 않게 되었나이다.” 행자가 흐뭇하게 승려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팔계와 사오정에게 말을 끌고 짐을 지게 하여 곧장 동쪽으로 되돌아갔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이 잘못 보셨소. 어찌하여 또 동쪽으로 가시오?”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찌 알겠느냐! 지난번 그 흑송림에서 묶여 있던 여자를 내 불안진정으로 뚫어보아 다 간파하였거늘, 너희들은 모두 좋은 사람으로만 여겼지. 오늘 중을 잡아먹은 놈도 그년이요 스승님을 채 간 놈도 그년이니라! 너희가 참으로 훌륭한 여보살을 구하였구나! 이제 스승님이 끌려갔으니 옛길을 따라 되돌아가며 찾아 보자꾸나.” 두 사람이 감탄하며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참으로 거친 속에도 세밀함이 있소! 가세, 가자꾸나!” 세 사람이 급히 숲 속에 이르러 보니 이러하였다. “구름은 아련하고 안개는 자욱한데, 돌은 층층이요 길은 구불구불하구나. 여우의 발자국과 토끼의 자취가 어지러이 뻗고, 호랑이와 표범과 승냥이와 이리가 오가며 드나드는구나. 숲 안에는 요괴의 그림자조차 없으니 당삼장이 어느 끄트머리에 있는지 알 수 없구나.” 행자는 마음이 조급해져 몽둥이를 뽑아 들고 몸을 흔들어 변화하니 천궁을 소란시키던 본모습이 되어,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 되고 여섯 손에 몽둥이 세 개를 나눠 쥐고는 숲 속에서 마구 두들겨 대었다. 팔계가 이를 보고 말했다. “사오정, 형님이 화가 나더니 스승님을 찾지 못하자 그만 성깔병이 나고 말았소.” 알고 보니 행자가 한바탕 두들겨 대는 사이에 늙은이 둘을 쳐 내었는데, 하나는 산신이요 하나는 토지로서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성님, 산신과 토지가 뵈러 왔나이다.” 팔계가 말했다. “영험하기도 하여라! 한바탕 두들기니 산신과 토지 둘을 쳐 내었으니, 다시 한바탕 두들기면 태세까지 쳐 내겠구나.” 행자가 꾸짖어 물었다. “산신과 토지, 너희가 이토록 무례하구나! 여기서 한결같이 도적 떼와 어울려 도적이 손을 대면 돼지와 양을 사서 너희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고, 또 요정과 결탁하여 떼를 지어 내 스승님을 채 가다니! 지금 어디에 숨겨 두었느냐? 어서 사실대로 아뢰어라, 그러면 때리지 않으리라!” 두 신이 당황하여 말했다. “대성님, 저희를 잘못 꾸짖으시나이다. 그 요정은 저희 산에 있지도 않고 저희 관할 아래 있지도 않사옵니다. 다만 밤에 바람 소리가 나는 곳이라 저희가 대략이나마 알고 있을 뿐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안다면 하나하나 아뢰어라!” 토지가 말했다. “그 요정이 스승님을 채 간 곳은 바로 정남쪽 아래로 이곳에서 천 리나 떨어져 있사옵니다. 그쪽에 산이 하나 있어 함공산이라 불리오며, 산속에 굴이 있어 무저동이라 하옵니다. 그 산의 요정이 여기까지 와서 변화하여 스승님을 채 간 것이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놀라운 마음을 누르며 산신과 토지를 호령하여 물러가게 하고는 법신을 거두어 본모습을 드러내어 팔계와 사오정에게 말했다. “스승님이 멀리 가 버렸구나.” 팔계가 말했다. “멀다면 구름을 타고 뒤쫓아 가겠소!” 훌륭한 얼간이로다, 한바탕 광풍을 일으켜 맨 먼저 솟아오르고, 뒤이어 사오정이 구름을 탔으며, 그 백마는 본디 용의 아들로 태어난 몸이라 행낭을 등에 싣고서 역시 바람과 안개를 밟았다. 대성이 곧 근두운을 일으켜 곧장 남쪽으로 날아왔다. 오래지 않아 큰 산 하나가 구름의 발을 가로막는 것이 보였다. 세 사람이 말을 세우고 모두 구름 위에 자리를 잡고 그 산을 바라보니 이러하였다. “꼭대기는 푸른 은하에 닿았고 봉우리는 푸른 창공에 이어졌구나. 주변에는 잡목이 억만 그루요 오가는 날짐승은 떼지어 떠드는구나. 호랑이와 표범이 무리 지어 달리고 노루와 사슴이 떼 지어 다니는구나. 양지바른 곳에는 기화요초가 향기를 풍기고, 그늘진 곳은 섣달의 눈과 억센 얼음이 녹지 않는구나. 험준한 고개요 깎아지른 벼랑이로다. 우뚝 선 높은 봉우리요 굽이치는 깊은 계곡이로다. 솔은 울창하고 돌은 삐죽삐죽하니 길 가는 이가 보면 그 마음이 오싹하구나. 나무꾼은 그림자조차 없고 약 캐는 신동도 자취가 없구나. 눈앞의 호랑이와 표범은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온 땅의 여우가 어지러이 바람을 부리는구나.”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 산이 이토록 험준하니 반드시 요사가 있을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말할 것도 없소. 산이 높으면 본래 괴물이 있고 고개가 험하니 어찌 요정이 없겠느냐!” 그리고 말했다. “사오정, 나와 너는 여기 있기로 하고, 팔계가 먼저 산 아래 움푹한 곳으로 내려가 알아보게 하자. 어느 길이 걷기에 좋으며 과연 굴이 있는지, 또 어디에 문이 열렸는지 모두 세세히 알아오너라. 그래야 우리가 함께 스승님을 찾아가 구할 수 있지.” 팔계가 말했다. “이 늙은 돼지는 재수가 없구나! 먼저 나더러 솥을 뒤집어쓰란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젯밤에 모두 네게 맡기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이제 와서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느냐?” 팔계가 말했다. “떠들지 마시오, 내가 가겠소.” 그 얼간이는 쇠스랑을 내려놓고 옷을 털고 빈손으로 높은 산 아래로 뛰어내려 가 길을 찾았다. 이번 길에 과연 좋고 나쁨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2회 차녀구양(姹女求陽) · 원신호도(元神護道) 각설하고 저팔계가 산에서 뛰어 내려가 자그마한 길 하나를 찾아내어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는데, 오륙 리쯤 되는 거리에 이르러 문득 두 여요괴가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어찌하여 둘이 여요괴인 줄 알아보았겠는가? 그 머리에 한 자 두세 치쯤 되는 높이로 대오리로 엮어 올린 쪽진 머리를 쓰고 있는데, 몹시 시류에 맞지 않는 차림이었기 때문이었다. 멍청이는 앞으로 다가서서 요괴라고 불렀고, 그 말을 들은 요괴들은 크게 노하여 서로 주고받으며 말했다. “이 중놈 건방지구나! 우리가 그와 아는 사이도 아니요, 평소에 입을 놀려 본 적도 없는데, 어찌 감히 우리를 요괴라고 부른단 말이냐!” 요괴가 성이 나서 물 긷는 작대기를 휘둘러 머리 위로 내리쳤다. 이 멍청이는 손에 병기도 없어 막아 낼 도리가 없었고, 몇 차례 얻어맞고는 머리를 감싸 쥐고 산 위로 뛰어 올라와 말했다. “형이여, 돌아갑시다! 요괴가 사납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어떻게 사납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산골짜기 안에 여자 요괴 둘이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기에, 내가 그냥 한마디 불렀을 뿐인데 작대기로 서너 차례나 얻어맞았어!” 행자가 말했다. “네가 뭐라고 불렀기에 그러냐?” 팔계가 말했다. “요괴라고 불렀어.”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때린 것이 도리어 적구나.” 팔계가 말했다. “신세 많이 졌네! 머리가 퉁퉁 부었는데도 적다고 하다니!” 행자가 말했다. “이른바 ‘온유하면 천하를 두루 다닐 수 있고, 강포하면 한 걸음도 옮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저들은 이 지방의 요괴요, 우리는 먼 곳에서 온 중이니, 네 온몸이 손이라 해도 대접을 좀 부드럽게 해야 한다. 네가 가서 요괴라고 불렀으니, 그가 너를 치지 않고 나를 치겠느냐? 사람은 예악을 앞세우는 법이다.” 팔계가 말했다. “더욱 알 수가 없구나!” 행자가 말했다. “너는 어릴 적부터 산속에서 사람을 잡아먹었으니, 나무가 두 가지 있다는 것을 아니?” 팔계가 말했다. “모르겠는데, 무슨 나무냐?” 행자가 말했다. “하나는 버드나무요, 다른 하나는 단목이다. 버드나무는 성질이 매우 부드러워, 훌륭한 장인이 가져다 성스러운 형상을 조각하거나 여래를 새기고, 금칠을 하고 분을 바르며, 옥을 박고 꽃을 장식하면, 뭇 사람이 향을 사르며 예배하여 헤아릴 수 없는 복을 받는다. 그러나 단목은 성질이 굳고 억세어 기름 짜는 집에서 가져다 찧는 박을 만들고, 쇠테로 머리를 동여맨 뒤 쇠망치로 내리치니, 오직 강해서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다.” 팔계가 말했다. “형이여, 그런 좋은 말씀을 진작 내게 해 주었더라면 맞지 않았을 것을.” 행자가 말했다. “네가 다시 가서 그들에게 사정을 좀 캐물어 보아라.” 팔계가 말했다. “이번에 가면 나를 알아볼 거야.” 행자가 말했다. “변신하여 가거라.” 팔계가 말했다. “형이여, 내가 변한다 해서 어떻게 묻겠다는 거요?” 행자가 말했다. “변신을 해서 그들 앞에 가서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보아라. 우리와 비슷하면 아가씨라 부르고, 우리보다 좀 늙었으면 할머니라 불러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얄궂구나! 이다지도 먼 곳에서 무슨 친척을 알아본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친척을 알아보자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말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스승님을 잡아갔다면 곧 손을 쓸 수 있을 것이요, 그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다른 곳에서 일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옳은 말씀이오. 내가 다시 가 보겠소.” 과연 멍청이는 쇠스랑을 허리에 찔러 넣고 산골짜기로 내려가서 몸을 한 번 흔들어 변신하여, 새까맣고 뚱뚱한 중으로 변했다. 그리고 흐느적흐느적 요괴 앞으로 다가가 깊이 큰 절을 올리며 말했다. “할머니, 가난한 중이 절을 올리나이다.” 그 두 요괴는 기뻐하며 말했다. “이 중은 참 괜찮구나. 절도 할 줄 알고, 인사말도 할 줄 아는군.” 그리고 물었다. “장로님, 어디서 오셨소?” 팔계가 말했다. “어디서 왔소.” 또 물었다. “어디로 가시오?” 또 말했다. “어디로 가오.” 또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오?” 또 대답했다. “내 이름이 무엇이오.” 그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이 중은 훌륭하긴 한데 내력이 없어, 그저 입에 붙은 말만 하는구나.” 팔계가 말했다. “할머니, 물은 어디에 쓰시려고 길으시오?” 그 요괴가 말했다. “중이여, 너는 모르는구나. 우리 노부인이 오늘 밤에 당승을 굴 안으로 낚아채 와서 대접하려 하는데, 우리 굴의 물이 깨끗하지 않아 우리 둘을 이리로 보내 음양이 어우러진 좋은 물을 길어 오라 하였다. 그리하여 소과와 소채로 잔치를 차려 당승에게 먹이고, 밤에 혼례를 치르려는 것이다.” 그 멍청이는 이 말을 듣자 급히 몸을 빼어 산 위로 뛰어 올라가며 외쳤다. “사오정, 어서 짐을 가져오너라. 우리 나누어 갖자!”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님, 또 나누자는 게 무슨 뜻이오?” 팔계가 말했다. “나누면 그대는 유사하로 돌아가 사람을 잡아먹고, 나는 고노장으로 친척을 보러 가고, 형님은 화과산으로 가서 성인이라 일컫고, 백용마는 큰 바다로 돌아가 용이 되면 그만이오. 스승님은 이미 이 요괴 굴 안에서 혼례를 치르고 계시니, 우리 모두 각자 생업으로 돌아가세!”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이가 또 헛소리를 하는구나!” 팔계가 말했다. “네 자식이 헛소리를 한단 말이야! 방금 물 길던 두 요괴가 소찬 잔치를 차려 당승에게 먹이고 혼례를 치른다고 하였어!” 행자가 말했다. “그 요괴가 스승님을 굴 속에 가두었는데, 스승님은 애타게 우리가 구하러 오기만 바라고 계신다. 그런데 네가 여기서 그런 말을 하다니!” 팔계가 말했다. “어떻게 구한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너희 둘은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우리는 저 두 여요괴를 뒤따라 길잡이로 삼아 그 대문 앞까지 이르면 일제히 손을 쓰는 거야.” 참으로 멍청이는 하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행자는 멀리서 그 두 요괴를 표적으로 삼아 깊은 산으로 점점 들어갔는데, 십여 리쯤 되는 거리에서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팔계가 놀라며 말했다. “스승님은 대낮의 귀신에게 잡혀간 게야!” 행자가 말했다. “네 눈썰미 참 좋구나! 어떻게 그 본바탕을 알아보았느냐?” 팔계가 말했다. “저 두 요괴가 물을 메고 가다가 홀연히 사라졌으니, 그것이 대낮의 귀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굴 속으로 파고든 모양이니, 내가 가서 보마.” 과연 훌륭한 대성은 급히 화안금정을 부릅뜨고 온 산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과연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저 가파른 벼랑 앞에, 영롱하고 투명하게 꽃을 곱게 장식하고 오채를 쌓고 처마가 서너 겹으로 늘어선 패루 하나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팔계와 사오정과 함께 앞으로 다가가 살펴보니, 위에 큰 글자 여섯 자가 있었으니, 바로 함공산 무저동이었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들아, 이 요괴가 여기에 틀만 갖추어 놓았으니, 대문이 어디를 향해 열렸는지 알 수가 없구나.” 사오정이 말했다. “멀지 않소! 멀지 않소! 잘 찾아보시오!” 모두 몸을 돌려 살펴보니, 패루 아래 산기슭에 큰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둘레가 십여 리쯤 되었다. 한가운데에 항아리 입만 한 굴이 하나 있는데, 드나들며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팔계가 말했다. “형이여, 이것이 바로 요괴가 드나드는 굴이오.” 행자가 살펴보고 말했다. “이상하구나! 내가 당승을 모시면서 너희 둘에게 숨길 것도 없지만, 요괴도 적지 않게 잡아 보았으나 이런 동부는 본 적이 없다. 팔계야, 네가 먼저 내려가서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시험해 보아라. 그래야 내가 들어가 스승님을 구할 수 있지.” 팔계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어렵소! 이건 어렵소! 내 몸이 무겁고 둔해서,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밑바닥에 닿는 데 이삼 년이 걸릴지도 모르오!” 행자가 말했다. “그렇게나 깊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보시오!” 대성이 굴 가장자리에 엎드려 자세히 아래를 들여다보니, 아! 깊기도 하여라! 둘레가 족히 삼백여 리는 되었다. 고개를 돌려 말했다. “동생아, 과연 몹시 깊구나!” 팔계가 말했다. “그대는 그냥 돌아가시오. 스승님은 구할 수 없소!” 행자가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게으른 마음 내지 말고, 해이하고 방탕한 생각 일으키지 말고, 우선 짐을 내려놓고 말을 패루 기둥에 매어 두어라. 너는 쇠스랑을 쓰고 사오정은 지팡이를 써서 굴 어귀를 막고 있으면, 내가 들어가 알아보마. 만약 스승님이 과연 그 안에 계시면, 내가 쇠몽둥이로 요괴를 안에서 쳐 내어 문 앞까지 내달을 터이니, 너희 둘은 바깥에서 막아라. 이것이 바로 안에서 호응하고 밖에서 합세하는 것이니, 정령을 때려 죽여야 스승님을 구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명을 따랐다. 행자는 몸을 한 번 솟구쳐 굴 안으로 뛰어들었는데, 발아래로는 채운이 만 갈래로 일고 몸 곁으로는 서기가 천 겹으로 감돌았다. 오래지 않아 깊고 먼 곳에 이르렀는데, 그 안은 환하고 밝아 해빛도 있고 바람 소리도 있으며, 꽃과 풀과 과일나무도 있었다. 행자가 기뻐하며 말했다. “좋은 곳이로구나! 내가 세상에 나올 적에 하늘이 수렴동을 내려 주었는데, 이곳 또한 동천복지로구나!” 보고 있을 때, 또 물방울 무늬 두 개 달린 문루 하나가 보이는데, 빙 둘러 모두 소나무와 대나무요, 안에 방과 집이 많았다. 또 생각했다. “이는 필시 요괴의 거처일 터이니,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 알아보자. 잠깐! 이렇게 간다면 나를 알아볼 터이니, 변신해서 가자.” 몸을 흔들고 주문을 외우며 파리 한 마리로 변해, 가볍게 날아 문루 위에 앉아 엿들었다. 그 요괴가 풀 정자 안에 높이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소나무 숲에서 구해 낼 때나 절에서 잡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 더욱 곱게 치장하였으니 이러하였다. 머리는 구름 같은 쪽을 얹어 까마귀를 쌓아 둔 듯하고, 몸에는 초록 솜털 꽃무늬 비갑을 걸쳤도다. 한 쌍의 금련은 겨우 반 접힘이요, 열 손가락은 봄 죽순 돋듯 하구나. 둥글둥글 분 바른 얼굴은 은쟁반 같고, 붉은 입술은 앵두처럼 매끄럽도다. 단정하고 바르니 미인의 자태요, 달 속의 항아도 기뻐하리라. 오늘 아침 취경하는 중을 붙잡았으니, 곧 함께 베개를 나누며 즐기려 하도다. 행자는 말을 하지 않은 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었다. 이윽고 앵두 같은 입을 열고 기뻐하며 외쳤다. “녀석들아, 어서 소찬 잔치를 차려 오너라. 내가 당승 오라버니와 함께 먹고 혼례를 치르려 한다.” 행자는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정말 이런 말이 있었단 말이냐! 나는 그저 팔계가 장난삼아 지껄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먼저 안으로 날아 들어가 스승님이 어디 계신지 찾아보자. 그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구나. 만일 그가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면, 그를 이곳에 두고 가는 수밖에.” 곧 날개를 펴고 안으로 날아가 살펴보니, 저 동쪽 회랑 아래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운 붉은 종이 격자 안에 당승이 앉아 있었다. 행자가 단숨에 격자 눈을 뚫고 들어가 당승의 민머리 위에 앉으며 “스승님.” 하고 불렀다. 삼장은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외쳤다. “제자야, 내 목숨을 구하여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형편이 나쁘시구려! 그 요괴가 잔치를 차려 놓고 스승님과 함께 드시고 혼례를 치르려 한답니다. 혹 아들딸을 낳는다면 그것도 스승님의 중으로서의 후대가 될 터인데, 무엇이 걱정이십니까?” 장로가 그 말을 듣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제자야, 내가 장안을 떠나 양계산에서 너를 거두어 들인 이래 줄곧 서쪽으로 오면서, 어느 시각에 육식을 한 적이 있으며, 어느 날인들 무슨 그릇된 마음을 품은 적이 있었느냐? 이제 이 요괴에게 붙잡혀 배필을 요구받고 있으니, 내가 만약 진양을 잃는다면 곧 윤회에 떨어져 저 음산 등 뒤에 처박혀 영원히 몸을 뒤집지 못하리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맹세는 마옵소서. 진심으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실 뜻이 있다면, 내가 모시고 나가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들어온 길조차 내가 다 잊었구나.” 행자가 말했다. “잊었다고 말씀도 마옵소서. 이 굴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곳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뚫고 내려가는 곳입니다. 이제 스승님을 구하려면 밑에서 위로 뚫고 올라가야 합니다. 만약 조화가 높아 굴 어귀를 뚫어 내면 곧 나갈 수 있겠지만, 조화가 낮아 뚫지 못하면 갑갑하여 죽는 날이 있을 뿐입니다.” 삼장이 눈에 가득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처럼 어렵다면 어찌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괜찮소! 괜찮소! 그 요괴가 술을 차려 스승님께 드실 터이니, 못 이기는 척 한 잔 드시되 잔을 좀 급히 부으십시오. 그러면 거품이 이는 꽃이 일어날 터이니, 내가 노래기 벌레로 변해 술거품 아래 숨으면 그가 나를 한 입에 삼킬 것입니다. 그때 내가 그 심장을 터뜨리고 폐부를 끊어 늘어뜨려 그 요괴를 죽이면, 스승님이야말로 몸을 빼어 나가실 수 있지요.”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사람 도리가 아니로구나.” 행자가 말했다. “착한 일만 하시려 들면 스승님 목숨이 끝납니다. 요괴란 사람을 해치는 물건인데, 어찌 그것을 아끼십니까!” 삼장이 말했다. “좋다, 좋다! 너는 다만 내 곁을 따라다녀라.” 바로 그 손대성이 당삼장을 굳게 지키니, 경을 구하는 중은 온통 미후왕에게 기대는구나. 그 스승과 제자 둘이 아직 의논을 마치기도 전에, 그 요괴는 벌써 준비를 끝마치고 동쪽 회랑 밖으로 다가와 문의 자물쇠를 열고 “장로님.” 하고 불렀다. 당승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한 번 더 부르자 또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감히 대답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었겠는가? 입을 열면 신기가 흩어지고, 혀를 움직이면 시비가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버틴다면 그 마음이 사나워 잠깐 사이에 목숨을 해칠까 두려웠다. 참으로 나아가기도 물러서기도 어려워 마음이 입에 묻고, 세 번 생각하며 참아 입이 마음에 묻는 격이라, 망설이고 있을 때 그 요괴가 또 “장로님.” 하고 불렀다. 당승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대답하여 말했다. “마님, 여기 있소.” 그 장로가 이 한마디를 내놓자, 참으로 살이 천 근이나 떨어져 나가는 듯하였다. 사람들은 당승이 진심으로 서천에 불을 배알하며 경을 구하는 참된 중이라 하는데, 어찌하여 이 여자 요괴와 말을 주고받았겠는가? 그러나 이때야말로 위급하고 존망이 걸린 때라, 참으로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임을 모르는구나. 비록 겉으로는 대답하였으나, 실로 마음속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요괴는 장로가 대답하는 것을 듣고 문을 밀어 열고 당승을 일으켜 세운 뒤, 손을 잡고 등을 기대며 머리를 맞대고 귓속말을 하였다. 그 천 가지 교태와 만 가지 풍정을 부리는 모습을 보라. 그러나 삼장이 한 가슴 가득 품은 번뇌를 어찌 알겠는가! 행자가 몰래 웃으며 생각했다. “스승님이 저토록 꾐에 빠지시니, 한순간 마음이 움직이실지도 모르겠구나.” 바로 이러하였다. 참된 중이 마의 고난을 만나 고운 미인을 만났으니, 요괴의 아리따운 모습 실로 칭찬할 만하도다. 옅은 비취 눈썹은 버들잎을 가른 듯하고, 가득 찬 붉은 뺨은 복숭아꽃을 받친 듯하구나. 수놓은 신발에 살짝 드러난 봉황 두 갈고리, 구름 같은 쪽머리에 양쪽 귀밑머리 까마귀처럼 감겼도다. 미소 띠며 스승님과 손잡고 가는 곳에, 난사 향기 가사에 가득 퍼지는구나. 요괴는 삼장의 팔을 끼고 풀 정자로 다가가며 말했다. “장로님, 제가 술 한 잔 마련하였으니 그대와 함께 기울이려 합니다.” 당승이 말했다. “마님, 가난한 중은 본래 육식을 하지 않소.” 요괴가 말했다. “그대가 육식을 하지 않는 줄은 알고 있소. 굴 속의 물이 깨끗하지 못하여, 특별히 산마루에 올라 음양이 어우러진 맑은 물을 떠 오게 하고, 소과와 소채로 잔치를 차려 그대와 함께 놀려는 것이오.” 당승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과연 이러하였다. 문 아래에는 수놓은 비단을 얽어 채색 매듭을 달았고, 뜰 가득 향로에서 향기가 내뿜는구나. 벌여 놓은 것은 검은 옻칠에 자개 박은 상이요, 붉은 칠을 한 대오리 쟁반이로다. 자개 상에는 별난 진미가 오르고, 대오리 쟁반에는 희한한 소채가 담겼도다. 능금, 감람, 연밥, 포도, 비자, 내, 개암, 잣, 여지, 용안, 산밤, 물밤, 대추, 단감, 호두, 은행, 금귤, 향등이 있으니 과일은 산 따라 있거니와, 채소는 더욱 철마다 새롭구나. 두부, 밀가루 글루텐, 목이버섯, 생죽순, 버섯, 향버섯, 마, 둥굴레가 있고, 우뭇가사리와 황화채는 푸른 기름에 볶아 내고, 강낭콩과 동부콩은 익힌 된장으로 무쳤도다. 오이와 박, 은행과 순무가 있으며, 껍질 벗긴 가지는 메추리처럼 만들고 씨 뺀 동아는 모나게 썰어 이름났구나. 푹 삶은 토란은 설탕에 버무리고, 맹물에 삶은 무는 식초를 쳐 익혔도다. 고추와 생강은 맵고 알싸하여 가지가지가 맛있고, 짜고 싱거움이 고루 어울려 낱낱이 평이하구나. 그 요괴는 뾰족뾰족한 옥 같은 손가락으로 번쩍이는 금잔을 받쳐 들고 아름다운 술을 가득 부어 당승에게 건네며 입으로 불렀다. “장로 오라버니, 묘한 분이여, 교환주 한 잔 드시옵소서.” 삼장은 부끄러운 듯 술을 받아 들고 하늘을 향해 부어 올리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빌어 아뢰었다. “법을 지키시는 여러 하늘과 오방의 갈제와 사직공조시여, 제자 진현장은 동쪽 땅을 떠난 이래 관세음보살의 명을 입어 여러 신들께 몰래 보호를 받으며, 뇌음사에 가 부처님을 배알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길입니다. 이제 도중에서 요괴에게 붙잡혀 억지로 혼례를 강요받고 있는데, 이 술 한 잔을 내게 주어 마시라 합니다. 이 술이 과연 소주라면 제자가 억지로 마신다 해도 부처님을 뵙고 공을 이룰 수 있을 터이나, 만약 고기로 빚은 술이라면 제자의 계율이 깨져 영원히 윤회의 고통에 떨어지리이다!” 손대성은 몸을 가볍게 만들어 귓바퀴 뒤에 붙어 마치 귀에 대고 일러 주는 이처럼 되어, 그가 말하면 오직 삼장만 듣고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였다. 그는 스승님이 평소에 포도로 빚은 소주를 즐겨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술 한 잔을 마시라고 일렀다. 그 스승님은 하는 수 없이 마시고는 급히 술을 한 잔 가득 부어 요괴에게 돌려주었는데, 과연 거품이 이는 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행자는 노래기 벌레로 변해 가볍게 그 거품 꽃 아래로 날아들었다. 그 요괴는 잔을 받아 쥐고는 곧 마시지 않고 잔을 내려놓은 뒤, 당승을 향해 두 번 절을 하고 입으로는 애교 있게 몇 마디 정다운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 뒤에야 잔을 들었는데, 그 꽃이 이미 흩어져 벌레가 드러났다. 요괴는 그것이 행자가 변한 줄은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벌레인 줄로만 여겨, 새끼손가락으로 들어 올려 아래로 툭 튕겨 버렸다. 행자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그 배 속으로 들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곧 굶주린 매 한 마리로 변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옥 발톱에 금빛 눈이요 쇠 깃이라, 늠름한 자태와 사나운 기운이 구름을 휘감도다. 여우와 토끼는 그를 보면 정신이 아득하고, 천 리 산하가 가는 곳마다 숨는구나. 주릴 때는 바람 맞으며 참새를 쫓고, 배부르면 높이 하늘 문에 붙었도다. 늙은 주먹은 강철같이 억세어 사람을 가장 잘 다치게 하니, 뜻을 얻어 하늘로 치솟으면 가까운 것도 싫어하리라. 날아올라 옥 발톱을 펼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상을 뒤엎어, 그 소과와 소채며 쟁반과 접시와 살림살이를 모조리 박살 내고는 당승을 내버린 채 날아 나가 버렸다. 깜짝 놀란 요괴는 간담이 다 찢어지고, 당승은 뼈와 살이 다 풀렸다. 요괴는 부들부들 떨며 당승을 껴안고 말했다. “장로 오라버니, 저 물건은 어디서 온 것이오?” 삼장이 말했다. “가난한 중은 알지 못하오.” 요괴가 말했다. “내가 마음을 많이 들여 이 소찬을 차려 그대와 함께 놀려 하였거늘, 이 납작 털 달린 짐승이 어디서 날아와 내 살림살이를 박살 내다니!” 무리 작은 요괴들이 말했다. “부인이시여, 살림살이가 깨진 것은 그렇다 해도, 소채며 과일을 땅에 다 쏟아 흩어 더러워졌으니 어찌 쓰시려 하옵니까?” 삼장은 그것이 행자가 부린 법술임을 분명히 알았으나,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요괴가 말했다. “녀석들아, 내가 알겠구나. 필시 내가 당승을 가두어 두었더니 천지가 용납하지 않아 이런 물건을 내려보낸 게야. 너희는 깨진 살림살이를 치워 내고, 다시 주안상을 차려 오너라. 고기든 채소든 가리지 말고, 내 하늘을 가리켜 중매를 삼고 땅을 가리켜 혼약을 삼은 뒤에 다시 당승과 혼례를 치르려 한다.” 그리고는 여전히 장로를 동쪽 회랑으로 모셔다 앉혀 두었는데, 이쯤 해 두겠다. 각설하고 행자가 밖으로 날아 나가 본모습을 드러내고 굴 어귀에 이르러 “문 열어라.” 하고 외쳤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사오정, 형님이 오셨네.” 그 두 사람이 병기를 거두었다. 행자가 뛰어나오자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붙잡고 말했다. “요괴가 있던가? 스승님이 계시던가?” 행자가 말했다. “있어! 있어! 있어!”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이 안에서 고초를 겪고 계신 게야? 묶였나 결박됐나? 찌려는가 삶으려는가?” 행자가 말했다. “그런 일은 도리어 없고, 그저 소찬을 차려 놓고 그와 그 일을 하려는 참이야.” 팔계가 말했다. “그대 참 좋겠네, 참 좋겠네! 신랑 들러리 술을 마시고 왔구먼!”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아! 스승님의 목숨도 보전하기 어려운데, 무슨 들러리 술이냐!” 팔계가 말했다. “그대는 어떻게 곧바로 나왔느냐?” 행자는 당승을 만나 변화를 부린 앞의 일을 죽 이야기하고 나서 말했다. “동생들아, 다시는 쓸데없는 생각 말아라. 스승님은 이미 이곳에 계시니, 내가 이번에 들어가면 반드시 그를 구해 내겠다.” 그리고 몸을 뒤집어 안으로 들어가 또 파리로 변해 문루 위에 붙어 엿들으니, 그 요괴가 성이 나서 씩씩거리며 정자 위에서 분부하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아, 고기든 채소든 가리지 말고 가져와 종이를 사르거라. 번거롭지만 천지를 빌려 중매와 혼약을 삼을 터이니, 기어코 그와 혼례를 치르겠다.” 행자가 듣고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요괴는 염치라고는 털끝만큼도 없구나! 대낮에 중을 집 안에 가두어 놓고 휘두르다니. 서두를 것 없다. 내가 다시 들어가 보마.”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동쪽 회랑 아래로 날아가니, 스승님이 그 안에 앉아 뺨에 맑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행자가 파고들어 그 머리 위에 앉으며 또 “스승님.” 하고 불렀다. 장로는 목소리를 알아듣고 벌떡 일어나 이를 갈며 원망하여 말했다. “이 원숭이 같으니라고! 다른 이가 담이 큰 것은 담이 몸을 감싼 것이거늘, 네가 담이 큰 것은 몸이 담을 감싼 격이다! 네가 변화신통을 부려 살림살이를 박살 냈으니 그만한 값어치가 있더냐! 그 요괴의 음욕만 돋워 이제 고기든 채소든 가리지 않고 차려 놓고 기어코 나와 교구하려 하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 행자가 몰래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노여워 마옵소서. 구할 방도가 있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어디서 나를 구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제가 방금 한 번 날아오를 때 그 뒤편에 화원이 있는 것을 보았소. 스승님이 그를 꾀어 화원으로 놀러 가시면, 제가 스승님을 구하겠나이다.” 당승이 말했다. “화원에서 어떻게 구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그와 함께 화원에 들어가 복숭아나무 곁에 이르시면 더는 걸어가지 마옵소서. 제가 복숭아 가지로 날아올라 홍도로 변하겠나이다. 스승님이 과일을 드시려거든 먼저 붉은 것을 골라 따십시오. 붉은 것이 저입니다. 그도 반드시 하나 딸 터이니, 스승님은 붉은 것을 꼭 그에게 양보하십시오. 그가 한 입에 삼키면 저는 그 배 속에 있게 되니, 제가 그 가죽주머니를 찢어 발기고 간과 창자를 끊어 늘어뜨려 그를 죽이면 스승님은 몸을 빼내실 수 있소.” 삼장이 말했다. “네게 재주가 있다면 그와 겨루기만 하면 될 터인데, 굳이 그 배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사정을 모르십니다. 이 굴은 드나들기가 수월하다면 그와 겨룰 수 있겠지만, 드나들기가 불편하고 길이 구불구불하여 걸어 다니기 어렵소. 그 자리에서 손을 쓰면 이 굴의 늙은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한통속이 되어 나까지 붙들고 늘어질 터인데, 그러면 어찌하겠습니까? 모름지기 이렇게 손을 털듯 홀가분하게 해치워야 모두가 깨끗하게 끝납니다.” 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믿고 다만 말했다. “너는 나를 따라붙어라.” 행자가 말했다. “알았소! 알았소! 내가 스승님 머리 위에 있겠나이다.” 스승과 제자가 의논을 마치자, 삼장은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그 격자를 짚고 불렀다. “마님, 마님.” 그 요괴가 듣고는 히죽히죽 웃으며 앞으로 달려와 말했다. “묘한 분이여 오라버니,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시오?” 삼장이 말했다. “마님, 내가 장안을 나와 줄곧 서쪽으로 오면서 산 아닌 날이 없고 물 아닌 날이 없었소. 어제는 진해사에서 묵다가 우연히 상풍으로 중한 병을 얻었는데, 오늘 땀을 흘리고 나니 조금 나아졌소. 또 마님의 후한 정으로 선부에 이끌려 들어와 앉아 있은 지 하루가 되니, 다시 심신이 개운하지 않구려. 나를 데리고 어디든 좀 산책을 가서 심심풀이를 할 수 있겠소?” 그 요괴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묘한 분이여 오라버니도 흥취가 있으시는구려. 내가 그대와 함께 화원으로 놀러 가겠소.” 그리고 외쳤다. “녀석들아, 열쇠를 가져와 화원 문을 열고 길을 쓸어라.” 무리 요괴들이 모두 달려가 문을 열고 단장하였다. 이 요괴가 격자를 열고 당승의 팔을 잡아 이끌고 나왔다. 저 많은 작은 요괴들을 보라. 모두 기름 바른 머리에 분 바른 얼굴이요, 아리따운 자태라, 떼를 지어 당승을 에워싸고 곧장 화원으로 올라갔다. 훌륭한 중이로다! 그가 비단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다른 뜻이 없고, 금수 가운데 있으면서도 벙어리요 귀머거리로구나. 쇠로 다진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해 가지 않았다면, 두말할 것 없이 주색에 빠진 범부라면 경을 얻지 못하였으리라. 일행이 모두 화원 밖에 이르자, 그 요괴는 고운 목소리로 낮게 불렀다. “묘한 분이여 오라버니, 여기서 노시면 참으로 마음을 풀고 갑갑함을 씻을 수 있으실 게요.” 당승은 그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함께 화원으로 들어가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참으로 좋은 곳이었다. 그곳은 이러하였다. 구불구불 이어진 오솔길에는 어지러이 푸른 이끼가 점점이 박혔고, 깊숙하고 아담한 비단 창에는 곳곳에 수놓은 발이 어둑하게 드리웠구나. 산들바람이 막 일자 가벼이 펄럭이며 촉나라 비단과 오나라 능라를 펼치고, 가랑비가 막 그치자 애틋하게 얼음 같은 살결과 옥 같은 바탕을 드러내도다. 햇볕에 익은 생살구는 붉기가 선녀가 무지개 저고리를 말리는 듯하고, 달빛에 비친 파초는 푸르기가 태진이 깃부채를 흔드는 듯하구나. 흰 담장 사방에는 만 그루 버드나무에서 꾀꼬리가 지저귀고, 한가한 별관 주위에는 뜰 가득 해당화에 흰나비가 날도다. 다시 보니 응향각과 청아각, 해정각, 상사각이 층층이 걸려 비치고, 붉은 발 위에는 갈고리가 새우 수염을 걸었으며, 또 보니 양산정과 피소정, 화미정, 사우정이 낱낱이 우뚝 솟아, 화려한 편액 위에는 글씨를 새의 전서로 썼구나. 저 욕학지와 세상지, 이월지, 탁영지를 보라, 푸른 부평초와 녹조가 금빛 비늘을 빛내도다. 또 묵화헌과 이상헌, 적취헌, 모운헌이 있어 옥잔과 경옥 술잔에 푸른 술거품이 떠 있구나. 못과 정자 위아래로 태호석과 자영석, 앵락석, 금천석이 있고, 파랗게 호랑이 수염 부들이 심겼으며, 누각 동서에는 목가산과 취병산, 소풍산, 옥지산이 있어 곳곳에 봉황 꼬리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해당화 덩굴걸이와 장미 덩굴걸이는 그네 틀에 바짝 붙어 마치 비단 장막과 얇은 휘장 같고, 소나무 잣나무 정자와 신이 정자는 목향정과 마주하여 옥빛 성의 수놓은 휘장 같구나. 작약 난간과 모란 덤불은 붉고 붉으며 자주빛 자주빛으로 곱고 화려함을 다투고, 야합대와 말리 난간은 해마다 해마다 아리따움을 뽐내도다. 이슬 뚝뚝 떨어지는 자줏빛 함박웃음은 그려 볼 만하고 그려 낼 만하며, 하늘을 붉게 태우는 고운 부상꽃은 제목 붙일 만하고 읊을 만하구나. 경치를 논하자면 낭원이나 봉래를 자랑하지 말고, 꽃다움을 겨루자면 요황이나 위자를 꼽을 것 없도다. 만약 늦은 봄에 한가로이 꽃풀을 겨룬다면, 이 화원에는 옥경화 하나만 없을 뿐이로다. 장로는 그 요괴의 손을 잡고 화원을 거닐며 구경하였는데, 기이한 꽃과 별난 풀을 다 볼 수가 없었다. 많은 정자와 누각을 지나니, 참으로 점점 좋은 경치로 들어가는구나. 문득 고개를 드니 복숭아나무 숲 가에 이르렀고, 행자가 스승님의 머리를 한 번 꼬집자 그 장로는 곧 알아차렸다. 행자는 복숭아나무 가지 위로 날아가 몸을 한 번 흔들어 변신하여 홍도 하나로 변했는데, 참으로 사랑스럽도록 붉었다. 장로가 요괴에게 말했다. “마님, 그대의 이 동산에는 꽃향기 그윽하고 가지마다 과일이 익었소. 동산에 꽃향기 그윽하니 벌이 다투어 따고, 가지에 과일이 익으니 새가 다투어 무는구려. 그런데 이 복숭아나무에 달린 과일이 푸른 것과 붉은 것이 고르지 않으니 무슨 까닭이오?”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하늘에 음양이 없으면 해와 달이 밝지 않고, 땅에 음양이 없으면 초목이 자라지 않으며, 사람에게 음양이 없으면 남녀가 나뉘지 않는 법이오. 이 복숭아나무의 과일도 양지쪽에서 햇빛을 쬐는 것은 먼저 익어 붉고, 음지쪽에서 해를 보지 못한 것은 아직 덜 자라 푸르니, 이것이 음양의 도리라오.” 삼장이 말했다. “마님의 가르침 고맙소. 참으로 가난한 중은 알지 못하였소.” 그리고 앞으로 나서서 손을 뻗어 붉은 복숭아를 하나 땄다. 요괴도 가서 푸른 복숭아를 하나 땄다. 삼장이 몸을 굽혀 붉은 복숭아를 요괴에게 받들어 드리며 말했다. “마님, 그대는 고운 빛깔을 사랑하시니 이 붉은 복숭아를 드시고, 푸른 것은 내게 주시오.” 요괴는 참으로 바꾸어 받고는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착한 중이로구나! 과연 진실한 사람이야! 하루 부부도 되기 전에 벌써 이런 은애가 있다니.” 그 요괴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승을 친히 공경하였다. 이 당승은 푸른 복숭아를 받아들고 곧 먹기 시작했고, 그 요괴는 기쁘게 곁에서 받들어 주며 붉은 복숭아를 입에 대고 덥석 물었다. 붉은 입술을 열고 은빛 이를 드러내어 아직 씹기도 전인데, 원래 손행자가 몹시 성급한 터라 데굴 한 번 구르는 사이에 그 목구멍 아래로 굴러 들어가 곧장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요괴가 겁을 먹고 삼장에게 말했다. “장로님, 이 과일이 독하기도 하구려. 어찌 씹어 깨물 새도 없이 굴러 내려갔단 말이오?” 삼장이 말했다. “마님, 막 개원한 과일은 맛이 있어 빨리 넘어간 것이오.” 요괴가 말했다. “씨를 뱉어 내기도 전에 그만 넘어가 버렸구려.” 삼장이 말했다. “마님의 뜻이 아름답고 정이 좋아 몹시 즐겨 드신 나머지, 씨를 뱉을 겨를도 없이 넘어간 것이오.” 행자가 그 배 속에서 본모습을 되찾고 외쳤다. “스승님, 그와 말대꾸하지 마옵소서. 제가 이미 손에 넣었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좀 너그럽게 하여라.” 요괴가 듣고 말했다. “그대가 누구와 말하고 있소?” 삼장이 말했다. “내 제자 손오공과 말하고 있소.” 요괴가 말했다. “손오공이 어디 있단 말이오?” 삼장이 말했다. “그대 배 속에 있지. 방금 먹은 그 붉은 복숭아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요괴가 당황하여 말했다. “망했다, 망했다! 이 원숭이 놈이 내 배 속으로 파고들었으니, 나는 죽었구나! 손행자! 네가 천 가지 방도 백 가지 꾀로 내 배 속에 파고든 것은 어째서냐?” 행자가 안에서 분노하여 말했다. “별것도 아니다! 다만 그대의 여섯 잎 달린 간과 폐며, 세 터럭 일곱 구멍 달린 심장을 먹어 치우고, 오장을 모조리 긁어 내어 북통 같은 요괴로 만들어 버리려 할 뿐이다!” 요괴는 그 말을 듣고 혼백이 날아가 흩어질 듯 놀라 부들부들 떨며 당승을 껴안고 말했다. “장로님! 저는 다만 전생의 인연으로 붉은 끈이 묶여 물고 물이 어우러지듯 두 마음이 짙은 줄로만 알았소. 뜻밖에 원앙이 오늘 흩어지고, 난새와 봉황이 또 동서로 갈리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까! 남교의 물이 불어 일을 이루기 어렵고, 불당의 연기가 가라앉아 아름다운 만남이 헛되이 비었구나. 마음을 다한 한바탕이 이제 또 이별이 되니, 어느 해에 그대와 다시 만나리오!” 행자가 그 배 속에서 이 말을 듣고는, 장로의 자비로운 마음이 또 그에게 속을까 두려워 곧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구르며 자세를 잡고 사평을 벌여, 거의 그 가죽주머니를 찢어 발길 뻔하였다. 그 요괴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땅바닥에 쓰러진 채 한참 동안이나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 행자가 말이 없자 죽은 줄로 여기고 손을 조금 느슨하게 하였더니, 그가 다시 숨을 돌리며 불렀다. “녀석들아! 어디 있느냐?” 원래 저 작은 요괴들은 화원 문에 들어선 이래 제각기 눈치를 채고 모두 한곳에 있지 않고, 저마다 꽃을 꺾고 풀을 겨루며 마음 내키는 대로 놀고 있었으므로, 그 요괴와 당승 둘이 자유로이 정을 나누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모두 달려왔는데, 요괴가 땅에 쓰러져 안색이 변하고 입으로는 끙끙거리며 기어 오르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급히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고 둘러싸고 말했다. “부인이시여, 어디가 편찮으시옵니까? 급성 심통이 드신 게 아니옵니까?” 요괴가 말했다. “아니다! 아니다! 묻지들 말아라. 내 배 속에 이미 사람이 들어 있단 말이다! 어서 이 중을 밖으로 내보내고 내 목숨을 살려 다오!” 그 작은 요괴들이 참으로 모두 달려들어 메고 가려 하였다. 행자가 배 속에서 외쳤다. “감히 누가 메랴! 네가 친히 내 스승님을 모셔 내어 바깥으로 나가면 내가 네 목숨을 살려 주마!” 그 요괴는 방도가 없어, 다만 목숨을 아끼는 마음으로 급히 몸을 일으켜 당승을 등에 업고 성큼성큼 걸어 밖으로 나갔다. 작은 요괴들이 따라가며 물었다. “노부인이시여, 어디로 가시옵니까?” 요괴가 말했다. “오호의 밝은 달이 남아 있으면 금갈고리를 내릴 곳이 없음을 걱정할 게 무엇이냐! 이놈을 내보내고 내가 다른 놈을 찾으러 가겠다!” 과연 요괴는 구름 빛을 한 번 타고 곧장 굴 어귀에 이르렀다. 그때 쨍그랑쨍그랑 병기가 어지러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밖에서 병기 소리가 나는구나.” 행자가 말했다. “팔계가 쇠스랑을 휘두르는 소리요. 그를 한 번 불러 보옵소서.” 삼장이 곧 불렀다. “팔계야!” 팔계가 듣고 말했다. “사오정! 스승님이 나오시는구나!” 두 사람이 쇠스랑과 지팡이를 거두자 요괴가 당승을 업고 나왔다. 아! 바로 이러하였다. 심원이 안에서 호응하여 사악한 요괴를 항복받고, 토목이 문을 지켜 성스러운 중을 맞이하는구나. 결국 그 요괴의 목숨이 어찌될지는 뒷일이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3회 심원식득단두(心猿識得丹頭) · 차녀환귀본성(姹女還歸本性) 각설하고 당승이 요괴에게 이끌려 굴 밖으로 나오니, 사오정이 앞으로 다가서서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나오셨사온데, 형님은 어디 계시나이까?” 팔계가 말했다. “형님에게는 꾀가 있으니, 틀림없이 스승님과 바꾸어 내보내려는 게요.” 삼장이 손가락으로 요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 형님은 저 요괴의 뱃속에 있느니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더럽고도 지독하구나! 뱃속에 들어가서 무얼 한단 말이오? 어서 나오시오!” 행자가 그 속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입을 벌려라. 내가 나가마!” 그 요괴는 참으로 입을 크게 벌렸다. 행자는 몸을 아주 작게 줄여 목구멍 속에 숨은 채 있다가, 이제 막 나오려다가 또 요괴가 무례하게 덤벼들어 물어뜯을까 두려워서, 곧 쇠몽둥이를 꺼내어 신선한 입김 한 번 불어넣고 “변하여라!” 하고 외쳤다. 그 몽둥이는 대추씨만 한 못으로 변하여 그 요괴의 윗잇몸을 받쳐 버티게 하였고, 행자는 몸을 한 번 솟구쳐 입 밖으로 뛰어나오면서 쇠몽둥이도 손을 따라 끌어내고는, 허리를 한 번 굽혀 본래의 법상으로 돌아와 몽둥이를 들어 올려 곧바로 내리쳤다. 그 요괴도 손을 따라 보검 두 자루를 꺼내어 쨍그랑거리게 받아 막았다. 두 놈은 산마루에서 이처럼 훌륭한 겨룸을 벌였도다. 검 두 자루 날아들어 면전을 막고, 금고봉 솟아올라 머리를 내리치는구나. 하나는 하늘이 낸 원숭이 족속이요 심원의 몸이요, 다른 하나는 땅이 낸 정령이요 차녀의 해골이로다. 그 둘은 미움이 가슴에 치밀어, 기쁨 속에서 원한이 생겨 큰 판을 벌이는구나. 저쪽은 원양을 취하여 배필을 삼고, 이쪽은 순음을 쳐서 성태를 맺으려 하는구나. 몽둥이 들자 하늘에 찬 안개 자욱하고, 검 맞받자 온 땅에 검은 티끌 일어나는구나. 장로가 여래를 배알하려 하니, 원한으로 서로 다투어 큰 재주 드러내는구나. 물과 불 어울리지 못해 모도 손상되고, 음과 양 합하기 어려워 각기 갈라지는구나. 두 집안이 오래 싸우니 땅이 움직이고 산이 흔들리며 초목이 부러지는구나. 팔계는 그들이 겨루는 것을 보고 입으로는 중얼중얼 불평을 늘어놓으며 도리어 행자를 원망하여, 몸을 돌려 사오정에게 말했다. “동생이여, 형님이 쓸데없이 질질 끄는구나! 방금 전에는 저 요괴 뱃속에 있었으니, 주먹을 휘둘러 뱃속을 온통 붉게 한 방 먹이고 배를 찢고 기어 나왔더라면 일이 끝났을 것을, 어찌하여 또 그 입으로 나와서 요괴와 싸운단 말이오? 저렇게까지 기승을 부리게 두다니!” 사오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그러나 형님께서 깊은 굴 속에서 스승님을 구해 내시고 도리어 또 요괴와 싸우시니, 우선 스승님께서는 홀로 앉아 계시라 청하고, 그대와 내가 각자 병기를 들고 큰형님을 도와 요괴를 쳐부수러 갑시다.” 팔계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아니! 저놈에게는 신통력이 있지만 우리는 미치지 못하오.” 사오정이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오. 비록 미치지 못한다 해도 방귀를 뀌어 바람을 보태는 격이지.” 그 멍청이는 일시에 흥이 나서 쇠스랑을 뽑아 들고 “가자!” 하고 외쳤다. 그 둘은 스승님을 돌보지 않고 한꺼번에 바람을 타고 뒤쫓아가서, 쇠스랑을 휘두르고 보장을 써서 요괴를 향해 마구 내리쳤다. 그 요괴는 행자 하나와 싸우는 것도 이미 버거웠거늘, 또 그 둘을 보고서야 어찌 대적하겠는가. 급히 고개를 돌려 몸을 빼어 달아났다. 행자가 호통쳤다. “동생들아, 뒤쫓아라!” 그 요괴는 그들이 바짝 뒤쫓아오는 것을 보고, 곧 오른발에 신은 꽃신을 벗어 신선한 입김 한 번 불어넣고 주문을 외운 뒤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그것이 곧 자기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두 자루 검을 휘두르며 덤벼들게 하고, 자기 몸을 한 번 흔들어 맑은 바람 한 줄기로 화하여 곧장 돌아갔다. 이번에도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어 목숨만 건져 돌아간 것이거니와, 어찌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을 알았으랴! 이 또한 삼장의 재난의 별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탓이었다. 그 요괴는 굴 문 앞 패루 아래에 이르러, 당승이 거기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가까이 다가가 한 번에 껴안고 짐을 빼앗았으며, 고삐를 끊어 버리고는 사람과 말을 아울러 도로 채어 들어갔으니, 이 얘기는 여기에서 그친다. 한편 팔계는 빈틈을 노려 쇠스랑으로 요괴를 쳐서 땅에 떨어뜨렸는데, 그것은 꽃신 한 짝이었다. 행자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이 두 멍청이들아! 스승님이나 지켜보고 있었으면 그만이지, 누가 너희더러 와서 무슨 공을 돕라 하였느냐!” 팔계가 말했다. “사오정, 어떠하오! 내가 오지 말자고 하지 않았소. 이 원숭이는 좋기는 한데 좀 머리가 돈 모양이오. 우리가 대신 요괴를 항복받았더니 도리어 원망만 사게 되었소!” 행자가 말했다. “거기에서 요괴를 항복받았단 말이냐? 그 요괴가 어제 나와 싸울 때 신 버리기 계교를 써서 속인 것이다. 너희가 가 버린 사이에 스승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알 수 없으니, 우리가 어서 가서 보자!” 세 사람이 급히 돌아와 보니, 과연 스승님은 보이지 않았고 짐과 백마까지 아울러 자취가 없었다. 놀란 팔계는 이쪽저쪽으로 마구 뛰어다니고 사오정은 앞뒤로 찾아다녔으며, 손대성 또한 마음이 타고 성이 치밀었다. 찾아 헤매고 있는데, 길가에 고삐 반 토막이 비스듬히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한 번에 집어 들고는 눈물을 참지 못하여 소리 높여 외쳤다. “스승님이시여! “내가 떠날 적에는 사람과 말에게 작별을 고했거늘, 돌아와 보니 이 고삐만 보이는구나!” 이는 바로 저 안장을 보면 준마가 생각나고, 눈물을 떨구면 친한 이가 그립다는 것이었다. 팔계는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하늘을 우러러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행자가 꾸짖었다. “이 멍청한 놈아! 또 흩어지자는 소리를 하려느냐!” 팔계가 또 웃으며 말했다. “형님, 그런 뜻이 아니오. 스승님은 틀림없이 또 요괴에게 채여 굴 속으로 들어가셨을 것이오. 속담에 이르기를 일이란 세 번이 되어야 이루어진다 하였으니, 형님은 굴에 두 번 들어가셨으니 한 번만 더 들어가시면 틀림없이 스승님을 구해 내실 것이오.” 행자가 눈물을 닦고 말했다. “그러하마.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형세가 나를 용납하지 않는구나. 내가 다시 들어가마. 너희 둘은 짐과 말이 없어졌으니 그것을 걱정하지 말고, 굴 어귀를 잘 지키고 있거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곧 몸을 돌려 안으로 뛰어들며 변화를 부리지 않고 본래의 법상으로 나아갔으니, 참으로 이러하였다. 괴이하고 별난 뺨에 마음은 굳세고, 어려서부터 괴물이 되어 신력이 장대하구나. 높고 낮은 얼굴은 말안장을 닮았고, 눈에서는 불빛처럼 금빛 광채를 뿜는구나. 온몸의 털은 강철 바늘처럼 억세고, 호랑이 가죽 치마를 두르니 밝은 꽃무늬가 소리 나게 펄럭이는구나. 하늘로 올라가면 만 갈래 구름을 흩어 날리고, 바다로 내려가면 천 겹 물결을 뒤섞어 일으키는구나. 당년에 힘을 믿고 천왕을 때려 십만 팔천 장수를 물리쳤으며, 벼슬은 대성에 봉해진 아름다운 원숭이 정령이요, 손에는 금고봉을 익숙하게 부리는구나. 오늘 서천에서 능력을 마음껏 드러내며, 다시 굴 속으로 들어와 삼장을 돕는구나. 보라, 그가 구름 빛을 멈추고 곧장 요괴의 집 바깥에 이르러 보니, 문루의 문이 닫혀 있었다.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한 번에 열어젖히고는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 안은 고요하기만 하고 사람의 자취라고는 없었으며, 동쪽 회랑 아래에도 당승은 보이지 않았고, 정자 위의 탁자와 의자며 곳곳의 살림살이도 하나 없었다. 알고 보니 그의 굴은 둘레가 삼백여 리나 되어 요괴의 소굴이 매우 많았다. 지난번에 당승을 여기에 채어 두었다가 행자에게 들켰으므로, 이번에는 행자가 또 찾아올까 두려워 그 자리에서 이사해 버렸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노한 행자는 발을 구르고 가슴을 치며 소리 높여 외쳤다. “스승님이시여! 그대는 재수 없는 기운이 굳어져 만들어진 당삼장이요, 재앙이 주조해 낸 경을 구하는 중이로구나! 아! 이 길은 이미 익숙하게 다녀왔거늘, 어찌하여 계시지 않으십니까? 늙은 손오공더러 어디에서 찾으라 하십니까!” 이렇게 소리치며 성이 치밀어 오를 때, 홀연히 향 연기 한 줄기가 코를 찌르듯 풍겨 왔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 향 연기는 뒤쪽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니, 아마도 뒤편에 계신 모양이로구나.” 걸음을 재촉하여 쇠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뒤를 등진 방 세 칸이 보이고, 뒤쪽 벽에 가까이에는 용이 입을 벌린 문양을 새겨 칠을 한 공탁이 하나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금을 흘려 붙인 듯한 큰 향로가 있어 향로 안에서 향 연기가 그윽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큼지막한 금빛 글씨로 쓴 위패 하나가 모셔져 있었는데, 위패에는 “존부 이천왕지위”라 쓰여 있었고, 조금 아래쪽에는 “존형 나타 삼태자위”라 쓰여 있었다. 행자는 그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기뻐서, 요괴를 찾거나 당승을 수색하러 들지도 않고 쇠몽둥이를 수놓는 바늘만 하게 비틀어 귀 속에 찔러 넣고는, 손을 펴서 그 위패와 향로를 아울러 집어 들고 구름 빛을 되돌려 곧장 문 밖으로 나왔다. 굴 어귀에 이르러서는 히히 하고 하하거리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팔계와 사오정이 그 소리를 듣고 굴 어귀를 지키다가 행자를 마주 나와 말했다. “형님이 이토록 기뻐하시는 걸 보니, 스승님을 구해 내신 모양이지요?”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구하러 갈 것 없이, 이 위패더러 사람을 내놓으라 하면 그만이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이 위패는 요괴도 아니요 말을 할 줄도 모르는데, 어찌 그것더러 사람을 내놓으라 한단 말이오?” 행자가 그것을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희가 보아라!” 사오정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위에는 “존부 이천왕지위”, “존형 나타 삼태자위”라 쓰여 있었다. 사오정이 말했다. “이는 무슨 뜻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는 그 요괴의 집에서 모셔 놓은 것이로다. 내가 그가 사는 곳으로 쳐들어가 보았더니, 사람의 자취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이 위패뿐이었느니라. 필시 이천왕의 딸이요 삼태자의 누이동생일 터인데, 속세를 그리워하여 하계로 내려와 요사한 짓을 꾸미며 우리 스승님을 채어 간 것이로구나. 그에게 사람을 내놓으라 하지 않고 누구에게 내놓으라 하겠느냐? 너희 둘은 우선 여기에서 지키고 있어라. 늙은 손오공이 이 위패를 쥐고 곧장 천상으로 올라가 옥제 앞에 소장을 올려, 천왕 부자더러 스승님을 도로 내놓으라 하겠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속담에 이르기를 남을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고발하면 제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얻는다 하였으니, 모름지기 이치가 바르게 서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법이오. 하물며 임금께 올리는 소장인들 어찌 함부로 올릴 수 있겠소? 우선 나에게 말해 보시오, 어떻게 그를 고발하려는 것이오?” “소장에는 어떻게 쓰려 하시오? 우선 나에게 읽어 보시오.” 행자가 말했다. “고발하는 사람은 손오공이옵고, 나이는 첩에 적혀 있사오며, 동쪽 땅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중 당삼장의 제자이옵니다. 가짜 요괴가 사람을 채어 가둔 일로 고발하옵니다. 지금 탁탑천왕 이정과 그 아들 나타 태자가 규문을 삼가지 못하여 친딸을 빠져나가게 하여, 아래 세상 함공산 무저동에서 요사한 것으로 변하게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을 미혹하고 해치고 있사옵니다. 이제 우리 스승님을 굽고 깊은 곳에 채어 가두어 찾을 길이 아득하옵니다. 고발하지 않으면, 그 부자가 어질지 못하여 딸을 놓아두고 정령이 되어 뭇 사람을 해치게 둔 셈이 되옵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윤허하시고, 그들을 잡아 오게 하시어 요사한 것을 거두고 스승님을 구하시며, 그 죄를 밝히어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시면 더없이 은혜로우리이다. 이에 이처럼 고발하옵니다.” 팔계와 사오정이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형님, 고발하는 것이 이치에 맞으니 틀림없이 이길 것이오. 모름지기 일찍 오시오. 조금이라도 늦으면 요괴가 스승님의 목숨을 해칠까 두렵소.” 행자가 말했다. “내가 빠르다! 내가 빠르다! 아무리 오래 걸려야 밥이 익을 동안이요, 아무리 짧아야 차가 끓을 동안이면 돌아오마.” 훌륭한 대성이로다. 그 위패와 향로를 쥐고 몸을 한 번 솟구쳐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곧장 남천문 밖에 이르렀다. 이때 문을 지키고 있던 대력천왕과 호국천왕이 행자를 보고는 하나같이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어, 감히 막아서지 못하고 그를 들여보냈다. 통명전 아래에 이르자 장, 갈, 허, 구 네 분의 대천사가 마주 나와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성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행자가 말했다. “소장이 있으니, 두 사람을 고발하려 하오.” 천사가 놀라며 말했다. “이 무뢰한이 누구를 고발하려는지 모르겠구나.” 하는 수 없이 그를 영소전 아래로 이끌어 들어가 아뢰었다. 은혜로운 명으로 들어오라 하시자, 행자는 위패와 향로를 내려놓고 위를 향해 예를 마친 뒤 소장을 올렸다. 갈선옹이 받아 어안에 펼쳐 놓았다. 옥제가 처음부터 훑어보고는 이러한 이러한 사연임을 알고는, 곧 원래의 소장에 성지로 비답하여 서방 장경 태백금성을 불러, 성지를 받들어 운루궁으로 가서 탁탑이천왕을 불러 알현하라 명하였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아뢰었다. “천주께서는 잘 단속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사단이 생기겠나이다.” 옥제가 또 분부했다. “원고도 함께 가거라.” 행자가 말했다. “늙은 손오공도 가란 말씀이옵니까?” 네 천사가 말했다. “만세께서 이미 뜻을 내리셨으니, 그대는 금성과 함께 가거라.” 행자는 참으로 금성을 따라 구름을 타고 일찍 운루궁에 이르렀다. 원래 그곳은 천왕의 집이었으니, 이름하여 운루궁이라 하였다. 금성이 궁문 앞에 동자 하나가 시립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동자는 금성을 알아보고는 곧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태백금성 나으리께서 오셨나이다.” 천왕이 곧 나와 맞이하였고, 또 금성이 성지를 받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곧 향을 사르라 명하였다. 몸을 돌려보니 또 행자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으므로, 천왕은 곧 또 노기를 띠었다. 그대는 그가 어찌하여 노기를 띠었는지 아는가? 당년에 행자가 천궁을 크게 어지럽힐 때, 옥제는 일찍이 천왕을 항마대원수에 봉하고 나타 태자를 삼단해회의 신에 봉하여, 천병을 거느리고 행자를 거두어 항복받으라 하였으나 여러 차례 싸워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오백 년 전에 싸움에서 패한 원한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 그를 언짢게 여기는 터라, 이 때문에 노기를 띤 것이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노장경이여, 그대가 받들고 온 것이 무슨 성지요?” 금성이 말했다. “손대성이 그대를 고발한 소장이오.” 그 천왕은 본래 번민하고 있던 터라 “고발”이라는 말을 듣자 더욱 우레 같은 크나큰 노기를 발하며 말했다. “그가 나를 무어라 고발한단 말이요?” 금성이 말했다. “가짜 요괴가 사람을 채어 가두었다는 일로 그대를 고발하였소. 그대가 향을 사른 뒤에 직접 펼쳐 읽어 보시오.” 그 천왕은 성이 머리끝까지 나서 향안을 차려 놓고 하늘을 우러러 사례하였다. 절을 마치고 성지를 펼쳐 보니, 원래가 이러한 이러한 것이요 이러하고 저러한 것이었다. 분이 치민 그는 손으로 향안을 치며 말했다. “이 원숭이 놈! 나를 잘못 고발하였구나!” 금성이 말했다. “우선 노기를 거두시오. 지금 위패와 향로가 어전에 있어 증거가 되고 있으니, 그대의 친딸이라 하였소.” 천왕이 말했다. “내게는 아들이 셋과 딸이 하나 있을 뿐이오. 큰아들 이름은 금타이라, 여래를 받들어 모시며 앞쪽 부서의 호법이 되어 있고, 둘째 아들 이름은 목타이라, 남해에서 관세음보살을 따라 제자가 되어 있으며, 셋째 아들은 이름이 나타이라, 내 곁에서 아침저녁으로 조회를 따라 임금을 호위하고 있소. 딸 하나는 나이가 이제 일곱 살이요 이름은 정영이라, 인간 세상 물정조차 아직 깨우치지 못하였거늘, 어찌 요괴가 될 수 있단 말이오! 믿지 못하겠거든 데려다가 그대가 직접 보시오. 이 원숭이 놈이 참으로 무례하구나! 내가 하늘의 원훈으로서 먼저 베고 나중에 아뢸 수 있는 직책을 받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계의 보잘것없는 백성이라 한들 함부로 모함하여 고발하게 둘 수는 없는 법이오. 율에 이르기를 무고한 자는 죄를 세 등이나 더한다 하였소.” 그리고 수하를 불렀다. “박요색으로 이 원숭이 놈을 묶어라!” 뜰 아래에는 거령신과 어두장과 약차웅수가 늘어서 있었는데, 일제히 앞으로 달려들어 행자를 묶었다. 금성이 말했다. “이천왕이여, 화를 부르지 마시오! 나는 어전에서 그와 함께 성지를 받들어 그대의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오. 그대의 밧줄이 꽤 무거우니, 자칫 그를 묶어 상하게 하면 일이 커질 것이오.” 천왕이 말했다. “금성이여, 저토록 거짓을 꾸며 고발하여 어지럽히는 자를 어찌 용납할 수 있겠소! 그대는 우선 앉아 있으시오. 내가 참요도를 가져다가 이 원숭이 놈의 목을 벤 뒤에, 그대와 함께 임금을 알현하고 성지를 돌리겠소!” 금성이 그가 칼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떨리고 간담이 서늘해져, 행자에게 말했다. “그대가 일을 그르쳤소. 임금께 올리는 소장인들 어찌 가볍게 고발할 수 있는 것이오? 그대도 실상을 알아보지 않고 이렇게 함부로 굴다가 목숨을 잃게 되면 어찌한단 말이오?” 행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싱글거리며 말했다. “노관아, 걱정 마시오. 아무 탈 없을 것이오. 늙은 손오공의 장사란 본래 이렇게 하는 법이라, 반드시 먼저 지고 나서 이기는 것이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왕이 칼을 휘둘러 행자의 머리를 향해 곧바로 내리쳤다. 그런데 미리 삼태자가 앞으로 달려나와 참요검으로 그 칼을 받쳐 막으며 외쳤다. “부왕이시여, 노기를 거두시옵소서.” 천왕은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다. 아! 아버지가 아들이 칼로 제 칼을 막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호통쳐 물리쳐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단 말인가? 원래 천왕이 이 아들을 낳았을 때에, 아이의 왼손바닥에는 “나” 자가 있고 오른손바닥에는 “타” 자가 있었으므로 이름을 나타라 하였다. 이 태자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바다로 내려가 몸을 씻다가 화를 불러일으켜, 수정궁을 짓밟아 무너뜨리고 교룡을 붙잡아 힘줄을 뽑아 띠를 삼으려 하였다. 천왕은 뒷날의 화근이 두려워 그를 죽이려 하였다. 나타는 분노하여 칼을 쥐고 살을 베어 어머니께, 뼈를 발라 아버지께 돌려드려 부모의 정혈을 모두 갚고, 한 점의 영혼만으로 곧장 서방 극락세계로 가 부처님께 호소하였다. 부처님께서 마침 뭇 보살에게 경을 강설하고 계실 때에, 당번과 보개 사이에서 누군가 “살려 주시옵소서!”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처님께서 혜안으로 살펴보시고는 나타의 혼임을 아시고, 곧 푸른 연근으로 뼈를 삼고 연잎으로 옷을 삼아 주시고는 죽은 이를 살려 되돌리는 진언을 외우시니, 나타는 마침내 목숨을 얻었다. 신력을 부려 구십여 개 동굴의 요마를 법으로 항복받을 만큼 신통이 광대해지자, 훗날에는 천왕을 죽여 저 뼈를 발랐던 원한을 갚으려 하였다. 천왕은 어찌할 수 없어 우리 부처님 여래께 가서 구원을 청하였다. 여래께서는 화합을 으뜸으로 여기시어 영롱하고 투명한 사리자와 여의로 된 황금보탑을 내려 주셨는데, 그 탑에는 층층마다 부처가 있어 눈부시게 빛났다. 나타를 불러 부처를 아버지로 삼게 하여 원한의 매듭을 풀어 주셨다. 그러므로 탁탑이천왕이라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은 집에서 한가히 지내느라 그 탑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 나타가 원한을 갚으려 할까 두려웠으므로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였던 것이다. 곧 손을 돌려 탑좌 위에서 황금보탑을 집어 들고는 손에 받쳐 든 채 나타에게 물었다. “얘야, 네가 칼로 내 칼을 막아서니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나타는 칼을 버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부왕이시여, 하계에 딸이 하나 있사옵니다.” 천왕이 말했다. “얘야, 나는 너희 남매 넷만 낳았거늘, 거기에 또 딸이 하나 있다는 말이냐?” 나타가 말했다. “부왕께서는 잊으셨사옵니다. 그 딸은 본래 요괴이옵고 삼백 년 전에 괴물이 되어, 영산에서 여래의 향화보촉을 훔쳐 먹었사옵니다. 여래께서는 저와 부왕께 천병을 거느리게 하시어 그를 붙잡게 하셨사옵니다. 붙잡았을 때에는 마땅히 때려 죽여야 하였으나, 여래께서 분부하시기를, 물을 모아 고기를 기르면서도 끝내 낚지 않고, 깊은 산에서 사슴을 기르면서 장수하기를 바란다 하시어, 그때에 그의 목숨을 살려 주셨사옵니다. 이 은혜를 마음에 쌓아 부왕을 아버지로 받들어 절하고, 저를 오라비로 받들어 절하여, 아래 세상에 위패를 차려 놓고 향불을 받들어 모셨사옵니다. 뜻하지 않게 그가 또 정령이 되어 당승을 해치려 하였는데, 손행자에게 소굴을 샅샅이 뒤져 위패를 빼앗기고는, 그것을 명분 삼아 임금께 소장을 올리게 되었사옵니다. 이는 의형제를 맺은 은혜로운 딸이옵고, 제 친동기인 친누이동생은 아니옵니다.” 천왕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얘야, 내가 참으로 잊었구나.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태자가 말했다. “그에게는 이름이 세 개이옵니다. 본래 태어난 내력으로는 금비백모 쥐 요괴라 불렀사옵고, 향화보촉을 훔친 까닭에 이름을 고쳐 반절관음이라 불렀사오며, 이제 하계로 내려보내어 살려 주었으므로 또 고쳐서 지용부인이라 하옵니다.” 천왕은 그제야 깨닫고 보탑을 내려놓고는, 친히 행자를 묶은 것을 풀려 하였다. 행자는 곧 심술을 부리며 말했다. “감히 누가 나를 풀려 하느냐! 차라리 밧줄을 매인 채로 임금께 들려 가야 늙은 손오공의 송사가 이기는 것이니라!” 놀란 천왕은 손에 힘이 빠지고 태자는 할 말이 없었으며, 뭇 가장은 움츠러들어 물러났다. 그 대성은 구르며 떼를 써서, 오직 천왕이 임금을 알현하러 가기만을 요구하였다. 천왕은 도리가 없어 금성에게 사정을 봐 달라 애원하였다. 금성이 말했다. “옛사람이 모든 일은 너그럽게 하라 하였소. 그대가 일을 너무 급히 서둘러 그를 묶고 또 죽이려 하였소. 이 원숭이는 유명한 무뢰한이오. 그대가 이제 나더러 어찌하란 말이오! 그대의 아드님이 말한 대로 따져 보면, 은혜로운 딸이요 친딸은 아니라 하나, 늦게 맺은 친족이라 의리가 무거우니, 어떻게 변론하든 그대에게도 죄명이 하나 생길 것이오.” 천왕이 말했다. “노성이여, 어떻게 사정을 봐 주어야 죄가 없겠소?” 금성이 말했다. “나도 그대들을 화해시키고 싶지만, 달리 말할 실마리가 없소.” 천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그를 조안하여 벼슬을 내리자고 아뢰었던 일을 말해 보시오. 그러면 그도 그만둘 것이오.” 참으로 금성이 앞으로 나서서 손으로 행자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대성이여, 내 낯을 보아서 밧줄이나 풀고 임금을 알현하러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노관아, 풀 것 없소. 나는 구르는 법을 아니, 그냥 구르고 굴러서라도 갈 것이오.” 금성이 웃으며 말했다. “이 원숭이는 정말 정이 없구나. 내가 옛날에 그대에게 은의를 베푼 적이 있거늘, 이런 조그만 일로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나에게 무슨 은의를 베풀었단 말이오?” 금성이 말했다. “그대가 일찍이 화과산에서 괴물로 지내며 범을 굴복시키고 용을 항복받고, 죽은 자의 명부를 억지로 지워 버리고, 뭇 요괴를 모아 크게 기승을 부릴 때에, 하늘에서 그대를 잡으려 하였으나, 이 늙은이가 힘껏 아뢰어 조안의 성지를 내리게 하여 그대를 천상으로 불러 올려 필마온 벼슬을 내리게 하였소. 그대가 옥제의 선주를 마신 뒤에 또 조안할 적에도, 이 늙은이가 힘껏 아뢰어 제천대성에 봉하게 하였소. 그대가 또 본분을 지키지 않고 복숭아를 훔치고 술을 훔치며 노군의 단약을 훔치는 등 이러하고 저러한 일을 벌인 끝에야 비로소 멸함도 없고 남도 없는 몸이 되었소. 내가 아니었더라면 그대가 어찌 오늘에 이를 수 있었겠소?” 행자가 말했다. “옛사람의 말이 참 좋구나. 죽어서는 늙은이와 한 무덤을 쓰지 말라 하였으니, 남의 허물을 들추는 재주가 깨끗하게나 있구려! 나라고 해야 필마온을 지내고 천궁을 어지럽힌 것뿐이오. 다시 무슨 큰일이 있었단 말이오? 좋아, 좋아, 그대 노인장의 낯을 보아서, 그가 스스로 풀게나 하겠소.” 천왕은 그제야 감히 앞으로 나서서 결박을 풀고, 행자에게 옷을 갖추어 입고 윗자리에 앉아 달라 청한 뒤에, 하나하나 앞으로 나와 예를 올렸다. 행자가 금성을 향하여 말했다. “노관아, 어떠하오? 내가 먼저 지고 나서 이긴다 하였지. 장사란 본래 이렇게 하는 것이오. 어서 그를 재촉하여 임금을 알현하러 갑시다. 내 스승님을 그르치지 말란 말이오.” 금성이 말했다. “서두르지 마시오. 이만큼 애를 썼으니 차나 한 잔 마시고 갑시다.”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그의 차를 마시고 그의 뇌물을 받아 죄인을 놓아 보내며 성지를 가볍게 여기면, 그대가 무슨 죄를 얻겠소?” 금성이 말했다. “차는 안 마신다! 차는 안 마신다! 나까지 이렇게 억지를 쓰게 만드는구나! 이천왕,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천왕이야 어찌 감히 가려 하였겠는가. 없는 말을 있는 말처럼 지어내고 심술을 부려 입으로 함부로 지껄이면 어찌 그와 변론할 수 있으랴. 하는 수 없이 또 금성에게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금성이 말했다. “내게 할 말이 한마디 있으니, 그대는 내 말을 따르겠소?” 행자가 말했다. “밧줄로 묶고 칼로 내 목을 베려 한 일도 내가 그대의 낯을 보아 넘겼거늘, 무슨 말이 더 남았단 말이오? 말해 보시오! 말해 보시오! 말이 좋으면 그대를 따르겠고, 말이 좋지 않으면 탓하지 마시오.” 금성이 말했다. “하룻동안의 송사가 열흘의 매질이라 하였소. 그대가 소장을 올려 요괴가 천왕의 딸이라 하였으나 천왕은 아니라 하니, 그대 둘이 어전에서 변론만 되풀이하여 끝이 나지 않을 것이오. 내가 말하건대, 하늘의 하루는 하계에서 곧 일 년이오. 그 일 년 사이에 그 요괴가 스승님을 굴 속에 가두어 두고, 혼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들을 낳기라도 한다면 작은 중 하나쯤은 낳았을 터인데, 큰일을 그르치지 않겠소?” 행자가 고개를 숙여 생각했다. “옳소! 내가 팔계와 사오정을 떠날 적에는 아무리 늦어야 밥이 익을 동안이라 하였거늘, 지금 벌써 이만큼 끌었으니 늦지 않았단 말이오? 노관아, 그대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으니, 이 성지는 어떻게 돌리면 되겠소?” 금성이 말했다. “이천왕더러 병사를 점검하여 그대와 함께 내려가 요괴를 항복받게 하고, 나는 가서 성지를 돌리겠소.”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어떻게 돌리겠단 말이오?” 금성이 말했다. “나는 원고는 도망쳤고 피고는 잡아 올릴 것 없다 하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소! 내야 그대의 정을 본 것뿐인데, 그대는 도리어 내가 도망쳤다 하다니! 그더러 남천문 밖에서 병사를 점검하여 나를 기다리라 하고, 나는 곧 그대와 함께 성지를 돌리고 소장을 바치러 가겠소.” 천왕이 두려워하며 말했다. “그가 이렇게 가 버린 뒤에 무슨 말을 지어 낸다면, 이는 신하가 임금을 배반하는 일이 되지 않소.”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늙은 손오공을 어떤 사람으로 여기느냐? 나 또한 대장부로다! 한마디가 이미 입에서 나갔으면 네 마리 말이 달려가도 쫓아잡을 수 없는 법인데, 어찌 또 더러운 말로 그대를 들이받겠느냐?” 천왕은 곧 행자에게 사례하고, 행자는 금성과 함께 성지를 돌리러 갔다. 천왕은 본부의 천병을 점검하여 곧장 남천문 밖으로 나왔다. 금성이 행자와 함께 옥제를 알현하여 아뢰었다. “당승을 가둔 자는 금비백모 쥐가 정령이 된 것으로, 천왕 부자의 위패를 거짓으로 차려 놓았사옵니다. 천왕이 이를 알고는 이미 병사를 점검하여 요괴를 거두러 갔사오니, 천존께서는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옥제는 이미 이 사정을 아시고는 하늘의 은혜를 내리시어 묻지 않으셨다. 행자가 곧 구름 빛을 되돌려 남천문 밖에 이르니, 천왕과 태자가 천병을 벌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 신장들이여, 바람이 굼실굼실 불고 안개가 자욱하게 이는 가운데 대성을 맞이하여 일제히 구름을 내려놓으니, 어느새 함공산에 당도하였다. 팔계와 사오정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천병과 행자가 오는 것이 보였다. 멍청이는 천왕을 맞아 나서며 예를 갖추어 말했다. “폐를 끼쳤소! 폐를 끼쳤소!” 천왕이 말했다. “천봉원수여, 그대는 모르는 일이오. 우리 부자가 그 요괴에게 향 한 자루를 받은 탓으로 요괴가 무례를 부려 그대의 스승님을 가두게 되었으니, 늦게 온 것을 탓하지 마시오. 이 산이 바로 함공산이란 말이오? 그러나 그의 굴 문이 어느 쪽을 향해 열렸는지는 알 수가 없구려.” 행자가 말했다. “이 길은 내가 이미 익숙하게 다닌 길이오. 다만 이 굴을 무저동이라 하는데, 둘레가 삼백여 리요 요괴의 소굴이 매우 많소. 지난번에는 우리 스승님이 저 물방울 무늬 둘 달린 문루 안에 계셨는데, 이번에는 고요하기만 하고 귀신 그림자조차 없으니, 또 어디로 이사하였는지 알 수가 없소.” 천왕이 말했다. “그놈이 온갖 계교를 다 부린다 한들, 하늘의 그물과 땅의 올가미를 벗어나기 어렵도다. 굴 문 앞에 이르면 방도를 정하리라.” 모두 함께 걸었다. 아, 십여 리쯤 가니 곧 그 큰 바위 곁에 이르렀다. 행자가 항아리 입만 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바로 그곳이오.” 천왕이 말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서야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으랴! 누가 앞장서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가 앞장서마.” 삼태자가 말했다. “나는 성지를 받들어 요괴를 항복받으러 왔으니, 내가 앞장서겠소.” 그 멍청이가 덜렁 나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선두는 이 늙은 돼지가 서야지!” 천왕이 말했다. “떠들 필요 없소. 내가 나누어 배치하는 대로만 하시오. 손대성과 태자가 병장들을 거느리고 아래로 내려가고, 우리 셋은 어귀를 지켜 안에서 호응하고 밖에서 합세하는 형세를 만들어, 저 요괴가 오를 하늘도 없고 들어갈 땅도 없게 만든 뒤에야 비로소 내 솜씨를 좀 보이겠소.” 뭇 사람이 일제히 “예.” 하고 대답하였다. 보라, 그 행자와 삼태자는 병장들을 거느리고 굴 속으로 단숨에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구름 빛을 일으켜 번쩍번쩍하며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과연 훌륭한 굴이로구나. 여전히 해와 달이라는 두 바퀴가 비추고, 그와 같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천이로다. 구슬 못과 옥 우물에서 따스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더욱 부러울 것들이 많구나. 다닥다닥 붉은 누각과 그림 같은 정자, 높디높은 붉은 벽과 푸른 밭이로다. 봄의 버들과 가을의 연꽃이여, 참으로 보기 드문 동천이로구나. 어느새 구름 빛을 멈추고 곧장 요괴의 옛 집에 이르렀다. 문마다 닥치는 대로 샅샅이 뒤지며 고함을 치고, 한 겹을 지나 또 한 겹, 한 곳을 지나 또 한 곳을 훑어, 삼백 리 땅의 풀까지 모조리 밟아 버렸으나, 어디 요괴가 보이더냐? 어디 삼장이 보이더냐?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이 짐승은 틀림없이 일찍이 이 굴을 빠져나가 멀리 가 버린 게지.” 그러나 동남쪽의 컴컴한 구석에, 아래로 내려다보면 또 작은 굴이 하나 있는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굴 속에는 작은 문이 하나 달리고, 낮은 집이 한 채 있으며, 화분에 몇 가지 꽃을 심고 처마 곁에 대나무 몇 대를 붙여 두었는데, 검은 기운이 자욱하고 그윽한 향기가 감도는 곳에 늙은 요괴가 삼장을 채어다 옮겨 놓고 억지로 혼례를 치르려 하며, 행자가 다시는 찾지 못하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요괴의 목숨이 이제 마땅히 끊어질 때가 되었으니, 그 작은 요괴들이 안에서 하나같이 재잘재잘 지껄이며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중에 담이 좀 큰 놈 하나가 목을 빼고 굴 밖을 슬쩍 내다보다가, 그만 천병 하나와 정면으로 부딪쳐 “여기 있소!” 하고 크게 소리쳤다. 행자가 성이 치밀어 금고봉을 비틀어 쥐고 단숨에 쳐들어갔는데, 그 안은 좁고 작아서 요괴 한 떼가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었다. 삼태자가 천병을 일으켜 일제히 몰려들자, 그놈들이 어디로 피하겠는가. 행자는 당승과 저 용마와 저 짐을 찾아내었다. 그 늙은 요괴는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깨닫고는, 나타 태자만 바라보며 머리를 조아려 목숨을 빌었다. 태자가 말했다. “이는 옥제의 성지로 너를 잡으러 온 것이니,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로다. 우리 부자가 다만 향 한 자루를 받은 탓으로, 하마터면 중이 나무를 끌고 가 절을 지어 놓은 격이 될 뻔하였구나!” 그리고 소리쳐 외쳤다. “천병이여, 박요색을 내려 그 요괴들을 모조리 묶어라!” 늙은 요괴도 그쯤의 고초는 면하지 못하였다. 구름 빛을 되돌려 일제히 굴 밖으로 나왔다. 행자는 입으로 히히 하하거리고 있었다. 천왕이 굴 어귀를 열어젖히고 행자를 맞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그대의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구려.” 행자가 말했다. “고맙소! 고맙소!” 그리고는 삼장을 이끌어 천왕에게 절을 올려 사례하고, 그다음으로 태자에게도 절을 올렸다. 사오정과 팔계는 다만 그 늙은 요괴를 잘게 찢어 버리려 하였으나, 천왕이 말했다. “그는 옥제의 성지를 받들어 잡은 것이니 함부로 할 수 없소. 우리는 또 가서 성지를 돌려야 하오.” 한편으로는 천왕과 삼태자가 천병과 신장을 거느리고 요괴를 압송하여 천조에 아뢰고 처분을 기다렸으며, 한편으로는 행자가 당승을 모시고 사오정이 짐을 거두며 팔계가 말을 끌어 당승을 말에 태우고 함께 큰길에 올랐다.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실로를 끊어 금빛 바다를 말리고, 옥 자물쇠를 열어 새장에서 나오는구나.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4회 난멸가지원대각(難滅伽持圓大覺) · 법왕성정체천연(法王成正體天然) 각설하고 당삼장은 원양을 굳게 지켜 붉은 꽃의 고통스러운 올가미에서 벗어나, 행자를 따라 서쪽으로 길을 나아갔다. 어느덧 여름철이 되어 마침 훈훈한 남풍이 처음 일고 매화비가 가늘게 내리니, 참으로 좋은 경치였다. 우거진 녹음은 빽빽한데 바람은 가벼워 제비가 새끼를 이끈다. 새로 핀 연꽃은 못 위에서 뒤집히고, 늘씬한 대나무는 점점 무성해진다. 향기로운 풀은 하늘에 닿도록 푸르고, 산꽃은 땅에 가득 깔렸다. 시냇가의 부들은 칼을 꽂아 세운 듯하고, 석류의 붉은 불꽃은 길 떠나는 이의 그림을 북돋운다. 산과 들의 빛깔은 한 폭의 그림 같고, 바람에 이는 풀 냄새는 나그네의 옷깃을 적신다. 스승과 제자 네 사람은 땡볕의 더위를 견디며 묵묵히 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문득 길가에 두 줄로 늘어선 높은 버드나무가 보이고, 그 버드나무 그늘 속에서 한 노파가 오른쪽에 어린아이 하나를 끼고 걸어 나와 당승을 향해 크게 외쳤다. “스님, 더 이상 가지 말라. 어서 말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돌아가거라. 서쪽으로 들어가면 모두 죽을 길이니라.” 삼장은 깜짝 놀라 말에서 뛰어내려 합장하며 물었다. “노보살이여, 옛사람이 이르기를 바다가 넓으니 물고기가 뛰놀고, 하늘이 텅 비었으니 새가 날아다닌다 하였거늘, 어찌 서쪽으로 나아가면 길이 없다 하시나이까?” 그 노파가 손으로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오륙 리쯤 가면 멸법국이니라. 그 나라는 본래 이름난 곳이거늘 이제는 법을 멸하는 땅이 되었느니라. 그 나라 왕은 전생의 어느 세상에서 원한을 맺었는데 금생에 까닭 없이 죄를 짓고 있느니라. 밤낮으로 승려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 그 마음이 이미 굳어 버렸느니라. 이태 전에 하늘에 큰 원을 세워 승려 만 명을 죽이기로 하였는데, 이 두 해 동안 차례차례 이름 없는 승려 구천구백구십육 명을 죽였으니, 이제 이름 있는 승려 넷만 기다려 만 명을 채워 원만을 이루려 하느니라. 너희가 가서 성 안에 들어가면 모두 목숨을 바치는 왕보살이 되느니라!” 삼장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노보살이여, 깊으신 정의를 감사하고 또 감사하옵니다! 다만 여쭙건대 성에 들어가지 않고 돌아갈 편한 길이 있사온지요. 저 가난한 중이 그리로 돌아가겠나이다.” 그 노파가 웃으며 말했다. “돌아갈 수 없느니라, 돌아갈 수 없느니라. 날 줄 아는 자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느니라.” 팔계가 곁에서 입을 놀리며 말했다. “할머니, 헛소리 마시오. 우리도 다 날 줄 아오.” 행자의 불꽃 같은 눈은 참으로 좋고 나쁨을 알아보았으니, 노파가 끼고 있던 아이는 본래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였다. 그는 속으로 그제야 깨달으며, 우리가 어려운 고비에 이르렀으니 보살께서 몸소 길을 막아 알려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행자가 황급히 몸을 던져 절하며 외쳤다. “보살이시여, 제자가 영접이 늦었나이다! 늦었나이다!” 보살이 한 송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가볍게 떠오르니, 당장로는 놀라 발붙일 곳을 잃고 그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팔계와 사오정도 황급히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절했다. 잠시 사이에 상서로운 구름은 아스라이 멀어져 곧장 남해로 돌아갔다. 행자가 일어나 스승을 부축하며 말했다. “일어나시옵소서. 보살께서는 이미 보산으로 돌아가셨나이다.” 삼장이 일어나며 말했다. “오공아, 네가 보살인 줄 알았다면 어찌하여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께서 아직 말씀이 끝나지도 않으셨는데 내가 곧 절을 올렸거늘, 어찌 일찍이 아니라 하시나이까?” 팔계와 사오정이 행자에게 말했다. “보살께서 가르쳐 주신 덕분에 앞쪽이 틀림없이 멸법국이고 승려를 죽인다 하니, 우리는 어찌하면 좋겠소?”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겁낼 것 없다! 우리는 전에도 독한 마귀와 사나운 요괴, 범의 굴과 용의 못을 만났어도 조금도 다치지 않았거늘, 여기는 한 나라의 범인일 뿐이니 무서울 것이 무엇이냐? 요괴는 도술을 부려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였건만, 이 나라 사람들은 맨손으로 우리를 어찌하겠느냐? 다만 이곳이 머물 곳이 아닐 뿐이다. 날이 저물어 가니, 시골 사람들로서 성에 장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자들이 우리가 중인 것을 보고 소문을 퍼뜨리면 편치 않다. 스승을 모시고 큰길에서 벗어나 외진 곳을 찾아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 삼장이 참으로 그 말대로 하니, 일행이 모두 길에서 비켜 나와 한 구덩이 아래에 앉았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들, 너희 둘이 스승을 잘 모시고 있거라. 내가 변신하여 그 성 안을 가 보고 외진 길을 찾아 밤새 지나가겠다.” 삼장이 당부했다. “제자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저 나라 왕이 승려를 원수처럼 여기니 왕법이 용납하지 않을 터, 모름지기 조심하거라! 만일 황제의 군사에게 붙잡히면 내가 너를 구할 방도가 없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염려 마시옵소서! 염려 마시옵소서! 제게 방도가 있나이다.” 훌륭한 대성이여, 말을 마치고 몸을 한 번 솟구쳐 휘파람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기이하도다. 위에서는 줄이 당기지 않고 아래에서는 막대가 받치지 않았는데, 부모는 한결같이 같은데 그놈만 뼈가 가볍구나. 구름 속에 우뚝 서서 아래를 굽어보니 성 안은 기쁜 기운이 넘실대고 상서로운 빛이 넘쳤다. 행자가 말했다. “좋은 곳이로구나, 어찌하여 법을 멸한단 말인가?” 한참 보고 있으니 점점 날이 어두워지면서 또 이런 광경이 보였다. 십자 거리의 등불은 찬란하고, 구중전에서는 향내 자욱한 가운데 종이 울린다. 일곱 점의 밝은 별이 푸른 은하를 비추고, 팔방의 나그네가 발걸음을 푼다. 육군영에서는 희미하게 뿔나팔 소리가 막 불려 나오고, 오고루에서는 똑똑똑 물시계가 막 떨어진다. 사방에 밤안개는 아득하고, 세 저잣거리의 찬 연기는 자욱하다. 두둥실 부부는 수놓은 발 안으로 돌아가고, 한 바퀴 밝은 달이 동쪽 하늘에 오른다. 저잣거리의 인기척은 점차 잦아들고, 성루 위의 깃발은 바람에 부드럽게 나부낀다. 행자가 생각했다. “내가 내려가 거리에서 길을 살펴보자. 그런데 이런 몰골로 사람을 만나면 틀림없이 중이라 할 터이니, 내가 변신을 해야겠다.” 결을 쥐고 진언을 외우며 몸을 흔들어 변하니, 등불로 날아드는 나방이 되었다. 몸은 가늘고 날개는 얇아 가볍고 날렵하며, 등불을 끄고 촛불로 날아들어 빛을 좇는다. 본래의 면목이 화하여 생겨났으니 썩은 풀 속에서 영험하도다. 늘 불꽃을 사랑하여 불길에 닿으니 바삐 날아 돌며 잠시도 쉬지 않는다. 자줏빛 옷과 향기로운 날개로 흐르는 반딧불을 쫓으니, 밤이 깊어 바람 잦아듦을 가장 즐긴다. 보라, 그가 펄펄 날아 육가삼시로 향한다. 빙빙 돌며 날다가 잠시 기와 위에 앉았다가, 이내 다시 날개를 펴고 골목의 어둠을 헤쳐 나간다. 처마 곁을 지나고 집 모퉁이에 다가서는데, 바로 그때 문득 모퉁이가 굽은 곳의 한 무리 집이 보이고, 그 집 문 앞에 등롱이 걸려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 집은 정월 대보름을 지내는가? 어찌 줄줄이 등을 다 켜 놓았을까?” 날개를 빳빳이 펴고 가까이 날아가 자세히 보니, 한가운데 있는 집의 네모난 등롱에는 장사하러 다니는 나그네를 묵게 한다는 여섯 글자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또 왕소이의 여관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행자는 비로소 음식점을 하는 집임을 알았다. 또 머리를 내밀어 들여다보니 여덟아홉 명이 저녁을 먹고는 옷을 헐렁하게 하고 두건을 벗고 손발을 씻은 뒤 저마다 침상에 올라 잠들고 있었다. 행자가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스승께서 지나가실 수 있겠구나.” 그가 어찌 지나갈 수 있음을 알았겠는가? 좋지 않은 마음을 일으켜, 그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옷과 두건을 훔쳐 속인으로 변장하여 성에 들어가려 한 것이었다. 아, 이토록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구나!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왕소이가 앞으로 나서며 분부했다. “여러분, 조심하시구려. 내 집은 군자와 소인이 다르니, 제각기 옷과 행장을 모두 조심하시오.” 밖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어찌 조심하지 않겠는가? 또 주인의 분부를 듣자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들이 모두 일어나며 말했다. “주인장의 말씀이 옳소. 우리 길 가는 사람은 고단하니, 잠이 들어 깨지 못하는 바람에 잃어버릴까 두렵거든. 이 옷과 두건과 보따리를 모두 안으로 거두어 두고, 날이 밝으려 할 때 우리에게 건네 주어 길을 떠나게 하구려.” 그 왕소이는 참으로 그 옷가지들을 모조리 자기 방으로 옮겨 갔다. 보고 있던 행자는 속이 타들어 갔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 잠자리만 노려보았다. 행자가 성급하게 날개를 펴고 안으로 날아들어 가 두건 걸이에 붙었다. 또 왕소이가 문 앞으로 가서 등롱을 내리고, 걸쇠를 내리고 문과 창을 닫은 뒤에야 방에 들어가 옷을 벗고 누웠다. 그 왕소이에게는 늙은 아내가 있어 아이 둘을 데리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와와 떠들어대며 좀처럼 잠들지 않았다. 그 노파는 또 해진 옷 한 벌을 꺼내 등불을 가까이 당겨 놓고 한 땀 한 땀 꿰매고 기웠는데, 밤이 깊어도 자려 하지 않았다. 행자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파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손을 쓰자니 스승을 지체시키지 않겠는가?” 또 밤이 깊어 성문이 닫힐까 두려워, 참지 못하고 날아 내려가 등불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참으로 몸을 불꽃에 던지고 이마를 그을리며 목숨을 건 것이니, 그 등불은 이미 꺼져 버렸다. 그가 또 몸을 흔들어 변하니 쥐가 되어, 찍찍 깨갱거리며 두어 번 울고는 뛰어내려와 옷과 두건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노파가 당황하며 말했다. “영감! 큰일 났소! 밤쥐가 도깨비가 되었단 말이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또 수단을 부려 문을 막아 서서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왕소이, 네 아내의 헛소리를 듣지 말라. 나는 밤쥐가 도깨비가 된 것이 아니다. 밝은 사람은 남몰래 일을 하지 않는 법, 나는 제천대성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당승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자다. 너희 왕이 무도하여 승려를 함부로 죽이므로 특별히 이 의관을 빌려 내 스승을 꾸미는 것이니, 성을 지나가고 나면 곧 돌려주겠다. 네가 만일 떠들어 사람을 모으면 내 도리어 너를 겁주어야 하리니, 조용히 누워 있거라.” 그 왕소이가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났는데, 캄캄한 밤에 다급한 사람이라 바지를 웃저고리로 잘못 집어 들고는 왼쪽으로 입어도 입혀지지 않고 오른쪽으로 꿰어도 꿰어지지 않았다. 그 대성이 섭법을 써서 벌써 구름을 타고 나가 몸을 뒤집어, 길 아래 구덩이 곁으로 곧장 왔다. 삼장은 별빛과 달빛이 밝은 가운데 몸을 내밀어 바라보다가 행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입을 열어 불렀다. “제자야, 멸법국을 지나갈 수 있겠느냐?” 행자가 앞으로 나와 옷가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승이여, 멸법국을 지나가자면 중 노릇을 할 수 없나이다.” 팔계가 말했다. “형님, 누구를 희롱하시오? 중 노릇을 안 하는 것도 쉬우니, 반년만 머리를 깎지 않으면 털이 자라나오.” 행자가 말했다. “반년을 어찌 기다리느냐! 지금 당장 모두 속인이 되어야 한다!” 그 멍청한 놈이 당황하며 말했다. “형님 말씀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소. 우리가 지금 모두 중인데 당장 속인이 되자니 어찌 두건을 쓰겠소? 머리가 이렇게 번들번들한데 두건을 걸칠 곳이 있어야지요. 가를 동여매도 정수리를 거둘 끈이 없지 않소.” 삼장이 꾸짖었다. “농담하지 말고 정사나 하라! 끝내 어찌된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스승이여, 이 성은 내가 이미 살펴보았나이다. 왕이 무도하여 승려를 죽이기는 하나 도리어 참된 천자라 성 위에 상서로운 빛과 기쁜 기운이 있나이다. 성 안의 거리도 내가 알고, 이곳의 사투리도 내가 알아 말할 수 있나이다. 그러니 입을 열어도 남들이 의심할 틈이 없나이다. 조금 전 음식점에서 이 옷과 두건을 빌렸으니, 우리가 속인으로 변장하여 성에 들어가 하루 묵고, 사경천에 일어나 주인에게 공양을 차리게 하옵소서. 오경 때까지 버티다가 성문을 따라 나가 큰길로 서쪽으로 달아나면, 누가 만나 붙잡더라도 변명하기 좋사오니, 다만 상국에서 황제가 보낸 사신이라 하면 멸법왕도 감히 막지 못하고 우리를 보내 줄 것이외다.” 사오정이 말했다. “사형의 방도가 가장 옳사오니 그대로 하옵시다.” 장로는 참으로 어쩔 수 없어 한숨을 내쉬며 가사를 벗고 승모를 벗어던지고는 속인의 옷을 입고 두건을 썼다. 손으로 머리를 몇 번이나 쓸어 보며 볼멘소리로 중이 속인 행세를 하게 되었구나 하고 탄식했다. 사오정도 갈아입었다. 팔계는 머리가 커서 두건을 쓸 수 없자, 행자가 바늘과 실을 가져다 두건을 찢어 두 개를 하나로 꿰매어 그의 머리에 걸쳐 주고, 너른 옷을 골라 입혔다. 그런 다음 행자도 한 벌로 갈아입고는 말했다. “여러분, 이번 길에서는 스승과 제자라는 네 글자를 거두어 두시오.” 팔계가 말했다. “그 네 글자를 빼면 어떻게 부르리까?” 행자가 말했다. “모두 형제로 부르시오. 스승은 당대관이라 하고, 너는 주삼관이라 하고, 사오정은 사사관이라 하고, 나는 손이관이라 하시오. 주막에 들어가거든 너희는 절대 입을 열지 말고 나 혼자만 대답하게 하시오. 무슨 장사를 하느냐고 물으면 말 장수라 하시오. 이 백마를 본보기로 삼아 우리가 열 형제인데 우리 넷이 먼저 와서 여관을 빌려 말을 팔겠다 하시오. 그러면 주인이 틀림없이 우리를 잘 대접할 터이니 실컷 먹고 나서, 떠날 때에 내가 기와 조각을 주워 은덩이로 변하게 해서 고맙다고 주고 길을 가면 되오.” 장로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랐다. 네 사람이 부지런히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저쪽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태평한 경계라 초경이 되어도 아직 문을 닫지 않아 곧장 들어가 왕소이의 여관 앞까지 이르렀는데, 안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이는 “내 두건이 없어졌소!” 하고, 어떤 이는 “내 옷이 없어졌소!” 하였다. 행자는 모르는 체하며 그들을 이끌고 비스듬한 맞은편 집으로 가서 묵었다. 그 집은 아직 등롱을 거두지 않았으므로 곧 문 가까이 가서 불렀다. “주인장, 묵을 빈방이 있소이까?” 그 안에서 어떤 부인이 대답했다. “있고말고, 있사옵니다. 나리들, 위층으로 올라오시옵소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내 하나가 와서 말을 끌었다. 행자가 말을 넘겨주어 안으로 끌고 들어가게 하고는 스승을 이끌고 등불 그림자 뒤로 해서 곧장 위층 문으로 올라갔다. 그 위층에는 마련된 탁자와 의자가 있어 창살을 열어젖히고 달빛을 받으며 나란히 앉았다. 창밖으로는 저잣거리의 등불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고, 아래층에서는 아직 그릇 부딪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이가 등을 켜 가지고 오자 행자가 문을 막고 한입에 후 불어 끄며 말했다. “이런 달빛에 등은 필요 없소.” 그 사람이 막 내려가는데 또 계집종 하나가 맑은 차 네 그릇을 가져왔다. 행자가 받아 들자 아래층에서 또 부인 하나가 올라왔는데, 쉰일고여덟쯤 되어 보이는 모습으로 곧장 위층에 올라와 곁에 서서 물었다. “여러분, 어디서 오셨소이까? 무슨 보화를 지니셨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우리는 북쪽에서 왔는데, 굵은 말이 몇 필 있소.” 그 부인이 말했다. “말 장수 치고는 아직 젊으시구려.” 행자가 말했다. “이분이 당대관이고, 이분이 주삼관이고, 이분이 사사관이고, 저야말로 손이관이오.”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성이 다 다르구려.” 행자가 말했다. “바로 성이 다른 이들이 함께 사는 것이오. 우리가 모두 열 형제인데 우리 넷이 먼저 여관을 빌려 불을 쬐러 왔소. 나머지 여섯은 성 밖에서 묵고 있는데 말 한 떼를 끌고 있어서 날이 늦어 성에 들어오기 어려웠소. 우리가 방을 빌리면 내일 아침에 모두 들어와서, 말을 팔고 나서야 돌아갈 것이오.” 그 부인이 말했다. “한 떼가 몇 필이나 되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큰 것 작은 것 백 필 남짓인데, 모두 내 이 말만 한 몸집이오. 다만 털빛이 같지 않을 뿐이오.”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손이관 나리는 참으로 객강객기로구려. 일찍이 내 집에 오셨으니 망정이지, 다른 집에서는 감히 모시지 못했을 것이오. 내 집은 뜰이 넓고 구유가 갖추어져 있고 꼴도 넉넉하니, 몇 백 필이라도 다 기를 수 있소. 물 긷는 이와 꼴 썰 이도 있으니 나리들께서는 마음 놓고 주무시기만 하시오. 다만 한 가지, 내 집이 여기서 여관을 오래 하여 변변잖은 이름이 있소. 일찍이 세상을 떠난 내 남편의 성이 조이오. 그래서 내 가게를 조과부점이라 하오. 내 가게에서는 세 가지로 손님을 대접하오. 이제 먼저 소인이 되고 나중에 군자가 되어, 먼저 방값을 정한 뒤에 셈을 하기로 하지요.” 행자가 말했다. “옳은 말이오. 댁에서는 어느 세 가지로 대접하오? 속담에 이르기를, 물건은 높고 낮음에 세 가지 값이 있으나 손님은 멀고 가까움에 한결같이 본다 하였거늘, 어찌 세 가지로 대접한다 하시오? 내게 한번 말해 보시오.” 조과부가 말했다. “내 집은 상, 중, 하 세 가지요. 상등 것은 다섯 가지 과일과 다섯 가지 채소의 연회에, 사선의 사탕으로 장식한 상을 두 사람에 하나씩 놓고, 젊은 계집아이를 불러와 노래하고 함께 자게 하니, 한 사람에 은 오 돈씩이오. 방값도 그 안에 들어 있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싸구려! 내 고향에서는 은 오 돈으로는 계집아이를 부르기에도 부족하오.” 과부가 또 말했다. “중등 것은 합반탁에 과일과 뜨거운 술뿐이오. 술을 따라 스스로 알아서 술령 놀이를 하고, 계집아이는 쓰지 않으니 한 사람에 은 두 돈이오.” 행자가 말했다. “더욱 싸구려! 하등 것은 어떠하오?” 부인이 말했다. “존귀한 손님 앞에서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말해도 무방하니 우리가 알맞은 것을 골라 하겠소.” 부인이 말했다. “하등 것은 시중드는 이가 없고 솥에 편한 밥이 있으니 먹고 싶은 대로 퍼먹는 것이오. 상을 따로 차리지도 않고 술도 따로 내지 않소. 배가 부르면 짚을 가져다 땅에 자리를 깔고 편한 곳에서 자고, 날이 밝으면 밥값이나 몇 푼 주시오. 절대로 다투지 않소.” 팔계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횡재로구나, 횡재로구나! 내 장사가 왔구나! 내가 솥을 지켜보다가 밥을 배부르게 먹고 부엌 앞에서 자 버려야겠다!” 행자가 말했다. “동생, 무슨 소리냐! 너와 내가 강호에서 어디서 은 몇 냥을 벌지 못했더냐! 상등 것으로 차려 오라 하시오.” 그 부인이 몹시 기뻐하며 곧 외쳤다. “좋은 차를 내오라 하고, 부엌에서는 빨리 음식을 장만하라.” 그리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바삐 외쳤다. “닭 잡고 거위 잡고, 절인 것을 삶아 반찬을 만들어라. 국도 진하게 끓이고 안주도 푸짐하게 차려라.” 또 외쳤다. “돼지 잡고 양 잡아라. 오늘 다 못 쓰면 내일이라도 쓸 수 있다. 좋은 술을 내오고, 흰쌀로 밥을 짓고 흰 밀가루로 떡을 밀어라.” 삼장이 위층에서 이 소리를 듣고 말했다. “손이관, 어찌하면 좋겠느냐? 저이가 닭과 거위를 잡고 돼지와 양을 잡아서 만약 가져온다면 우리는 모두 장재인데 누가 감히 먹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내게 방도가 있소.” 그리고 층문 곁으로 가서 발을 구르며 말했다. “조마마, 이리 올라오시오.” 그 마마가 올라오며 말했다. “이관 나리, 무슨 분부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오늘은 살생하지 마시오. 우리가 오늘 재계를 하오.” 과부가 놀라며 말했다. “나리들은 장재이오이까, 월재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둘 다 아니오. 우리는 경신재라 하오. 오늘이 바로 경신일이라 하늘에 서약하고 마땅히 재를 지내야 하니, 삼경만 지나면 신유가 되어 재가 풀리는 것이오. 내일 살생하시오. 지금은 채소 음식을 좀 장만해 오시오. 값은 틀림없이 상등 값대로 올려 드리리다.” 그 부인이 더욱 기뻐하며 뛰어 내려가 일렀다. “잡지 말라! 잡지 말라! 목이버섯과 말린 죽순, 두부, 면근을 가져오고, 뜰에서 푸성귀를 뽑아 당면국을 만들고, 발효시킨 밀가루로 찐빵을 쪄라. 그리고 흰쌀밥을 짓고 향기로운 차를 끓여라.” 아! 부엌을 맡은 요리사들은 모두 날마다 익숙하게 하던 솜씨라, 칼질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눈 깜짝할 사이에 장만을 마쳐 위층에 차려 놓았다. 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선 사탕과 과자가 있어 네 사람이 마음껏 즐겼다. 또 물었다. “소주를 드시겠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당대관만 쓰지 않고 우리도 몇 잔 하겠소.” 과부가 또 따뜻한 술 한 병을 가져왔는데, 그 세 사람이 막 잔에 따르려는데 문득 빵빵 하는 널빤지 소리가 들렸다. 행자가 말했다. “마마, 아래에서 무슨 그릇이 넘어졌소이까?” 과부가 말했다. “아니오. 내 작은 농장의 일꾼 몇이 소작료로 쌀을 가져오다가 늦어져서 아래에서 재웠소. 손님이 오셨는데 부릴 사람이 없어 그들을 시켜 가마를 메고 뜰로 가서 젊은 계집아이를 모셔 와 손님을 모시게 하려 했더니, 가마 채가 마루 널빤지를 들이받은 소리인 모양이오.” 행자가 말했다. “일찍 말씀하시지 그랬소이까. 어서 데려오지 마시오. 하나는 재계하는 날이기 때문이고, 둘은 형제들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오. 아예 내일 들어오면 집마다 기생 하나씩을 불러 댁에서 놀다가, 말을 팔고 길을 떠나는 것이 좋겠소.” 과부가 말했다. “착한 분들이오, 착한 분들이오! 화기도 잃지 않고 정신도 기르시니 말이오.” 그리고 일렀다. “가마를 들여놓아라, 데려오지 말고.” 네 사람은 술과 밥을 먹고 그릇을 거두자 모두 흩어졌다. 삼장이 행자의 귀밑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어디서 자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바로 이 위층에서 자지요.” 삼장이 말했다. “편치 않소. 우리가 모두 고단하니, 자다가 이 집 사람이 다시 와서 치우다가 우리가 모자를 굴려 대머리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중인 줄 알아 소란을 피우면 어찌하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옳소!” 하고는 층 앞으로 가서 발을 굴렀다. 과부가 또 올라오며 말했다. “손관인께서 또 무슨 분부이오이까?” 행자가 말했다. “우리가 어디서 자오?” 부인이 말했다. “위층이 자기 좋소. 모기도 없고 남풍도 불고 창을 크게 열어 놓아 자기에 아주 좋소.” 행자가 말했다. “잘 수 없소. 내 이 주삼관은 한습기가 좀 있고, 사사관은 어깨바람이 좀 있고, 당대형은 꼭 어두운 곳에서 자야 하고, 나도 눈이 부셔 견디지 못하오. 이곳은 잘 곳이 못 되오.” 그 마마가 아래로 내려가 가게 탁자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 그에게 딸이 있어 아이를 안고 가까이 와서 말했다. “어머니, 속담에 이르기를, 열흘을 여울가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 아홉 여울을 건넌다 하였소. 지금은 더운 철이라 장사가 없더라도 가을이 되면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장사가 있을 터인데, 무엇을 한숨 쉬시오?” 부인이 말했다. “얘야, 장사가 없어 걱정하는 게 아니란다. 장사란 것이 오면 하는 것이고 가면 그만인 것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오늘 저녁 가게를 거둘 무렵, 초경 무렵에 말 장수 네 사람이 와서 방을 빌리며 상등 대접을 원했단다. 은 몇 돈을 벌어 볼 참이었더니 그들이 재를 먹는 바람에 돈을 벌 수가 없어서 한숨을 쉰단다.” 딸이 말했다. “그들이 밥을 이미 먹었으니 다른 집으로 가기도 어렵겠지요. 내일 고기와 술을 차리면 되는데 어찌 돈을 벌 수 없소이까?” 부인이 또 말했다. “그들은 다 병이 있어 바람을 무서워하고 빛을 부끄러워하여 모두 어두운 곳에서 자겠다지 않느냐. 집안이란 게 다 얇은 기와를 얹은 집뿐인데, 어디서 어두운 곳을 찾겠느냐? 차라리 밥 한 끼를 주어 먹이고 다른 집으로 가게 하는 게 낫겠다.” 딸이 말했다. “어머니, 우리 집에 어두운 곳이 있고 바람도 없으니 아주 좋소, 아주 좋소.” 부인이 말했다. “어디란 말이냐?” 딸이 말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 큰 궤짝 하나를 만들었소. 귀한 물건을 담아 두려고 튼튼한 나무로 짠 것이라 쇠못까지 단단히 박혔소. 그 궤는 너비가 네 자, 길이가 일곱 자, 높이가 석 자쯤 되어 안에 예닐곱 명은 잘 수 있소. 그들을 궤 속에 가서 자게 하지요.” 부인이 말했다.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내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마. 손관인, 제 집은 초라하여 어두운 곳은 없고 큰 궤짝 하나뿐이라 바람도 새지 않고 빛도 새지 않는데, 궤 속에 가서 주무시겠소이까?” 행자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그리고 일꾼 몇을 시켜 궤를 메어 내오고 뚜껑을 열어 그들을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했다. 행자가 스승을 이끌고 사오정이 짐을 들고 등불 그림자 뒤를 따라 곧장 궤 곁으로 갔다. 팔계는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배부터 집어넣으며 먼저 궤 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사오정이 행리를 넣고 당승을 부축하여 들어가게 한 뒤 사오정도 안으로 들어갔다. 행자가 말했다. “내 말은 어디 있소?” 곁에서 시중들던 이가 말했다. “말은 뒷방에 매어 두고 꼴을 먹고 있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끌어 오시오. 구유도 가져다 궤에 바짝 붙여 매어 두시오.” 그런 다음에야 들어가며 외쳤다. “조마마, 뚜껑을 덮고 빗장을 꽂고 자물쇠를 채우시오. 그리고 어디가 빛이 새는지 보시고 종이로 좀 발라 주시오. 내일 일찍 와서 열어 주시오.” 과부가 말했다. “너무 조심스러우시구려!” 이리하여 저마다 문을 닫고 자러 갔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그 넷이 궤 속에 들어갔는데, 가련하도다! 하나는 두건을 처음 써서이고, 둘은 날씨가 더워서이며, 또 기가 막혀 바람이 조금도 통하지 않으니, 그들은 모두 두건을 벗고 옷을 벗었다. 부채도 없어 승모로 펄펄 부채질할 뿐이었다.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숨은 턱에 닿을 듯 막혔다. 네가 나를 밀치고 내가 너를 비비대며 이경이 되어서야 모두 잠이 들었다. 오직 행자만은 일부러 사고를 칠 생각이라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손을 뻗어 팔계의 다리를 한번 꼬집었다. 그 멍청한 놈이 발을 움츠리며 입으로는 응응거리면서 말했다. “자자고! 고단한데 무슨 마음으로 손을 꼬집고 발을 만지며 장난이냐?” 행자가 거짓말을 꾸며 말했다. “우리 본전이 오천 냥이고, 앞서 말을 팔아 삼천 냥을 벌었으니, 지금 두 보따리에 사천 냥이 있고, 이 말 떼를 팔면 또 삼천 냥이니, 원금에 이익 하나가 붙어 넉넉하다! 넉넉하다!” 팔계는 자려는 사람이라 어찌 대답하겠는가. 그런데 이 여관의 심부름꾼과 물 긷는 이와 불 때는 이가 본래 도둑패와 한통속이라, 행자가 은을 많이 가졌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몇이 슬그머니 나가서 도둑 스무 명 넘게를 끌어 모아, 횃불을 들고 몽둥이를 잡고 말 장수들을 털러 왔다. 문을 부수고 들어오니 조과부 모녀는 부들부들 떨며 방문을 닫아걸고 밖에서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린 아이는 놀라 울음을 터뜨렸고, 어미는 그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채 숨을 죽였다. 알고 보니 그 도둑들은 여관의 살림살이를 원하지 않고 손님만 찾았다. 위층에 올라가도 흔적이 없어 횃불을 들고 사방을 비추어 보니, 뜰 한가운데 큰 궤짝 하나가 있고 궤 다리에 백마 한 필이 매여 있으며 궤 뚜껑은 굳게 잠겨 뒤집어도 꼼짝하지 않았다. 도둑들이 말했다. “강호를 떠도는 사람들은 다 수단이 있는 법, 이 궤가 육중하고 무거운 걸 보니 틀림없이 행낭과 재물이 안에 잠겨 있소. 우리가 말을 훔치고 궤를 메고 성 밖으로 나가 열어 나눠 가지면 좋지 않소?” 그 도둑들이 과연 밧줄과 상여 채를 구해다 궤를 메고 곧장 걸어가니 껄렁껄렁 흔들렸다. 팔계가 깨어나며 말했다. “형님, 잡시다. 무엇을 흔드오?” 행자가 말했다. “말하지 말라! 아무도 안 흔든다.” 삼장과 사오정도 홀연 깨어나며 말했다. “누가 우리를 메고 가는 것이냐?” 행자가 말했다. “떠들지 말라, 떠들지 말라! 메고 가게 두어라! 서천까지 메고 가면 걷지 않아도 되니 좋지 않으냐.” 그 도둑들은 손에 넣고도 서쪽으로 가지 않고 도리어 성 동쪽으로 메고 가서, 문을 지키던 군사를 죽이고 성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곧 육가삼시가 소란해지고, 각 점포의 화갑과 인부들이 모두 순성총병과 동성병마사에 보고했다. 그 총병과 병마는 자기 소관의 일이라 곧 인마와 궁병을 점검하여 성 밖으로 나가 도둑을 쫓았다. 도둑들은 관군의 기세가 크자 맞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큰 궤를 내려놓고 백마를 버린 채 제각기 풀숲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관군은 도둑을 반 명도 잡지 못하고 다만 궤를 빼앗고 말을 잡아 승리하여 돌아왔다. 총병이 등불 아래에서 그 말을 보니, 좋은 말이었다. 갈기는 은실을 나눈 듯하고 꼬리는 옥 조각을 늘어뜨린 듯하다. 팔준이며 용구를 무엇이라 하리오, 숙상과 관단을 능가하도다. 천금으로 뼈를 사고 만 리를 바람을 쫓는다. 산에 오를 때마다 푸른 구름과 어우러지고, 달을 향해 울부짖음은 흰 눈처럼 고르구나. 참으로 교룡이 바다 섬을 떠난 듯하고, 인간 세상에 옥기린이 있어 기쁘도다. 총병관은 자기 말은 타지 않고 이 백마에 올라 군사를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며 연신 훌륭한 준마라며 칭찬을 멈추지 않았는데, 궤짝을 총부로 메어 가게 하고 병마와 함께 봉함 종이를 써서 봉한 뒤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고, 날이 밝으면 아뢰어 황제의 뜻을 받들어 처리하기로 했다. 관군은 흩어졌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당장로가 궤 안에서 행자를 원망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새끼, 나를 죽이려는구나! 바깥이었으면 남에게 붙잡혀 멸법국 왕에게 보내진다 해도 변명할 여지가 있거늘, 이제 궤 속에 갇혀 도둑에게 빼앗겼다가 또 관군에게 빼앗겨 내일 왕을 만나면 그대로 목을 내밀어 죽음을 청하게 되니, 그 만 명의 수를 채워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밖에 사람이 있소! 궤를 열고 꺼내면 묶이거나 매달리게 될 터이니, 좀 참으시오. 묶이고 매달리는 것을 면하는 셈이오. 내일 그 어리석은 임금을 만나면 내게 대답할 방도가 있으니 터럭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리다. 안심하고 좀 주무시오.” 삼경이 되자 사방이 고요해져 개 짖는 소리마저 끊겼다. 그때 행자가 수단을 부려 봉을 꺼내고 신선한 기운을 한입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세 갈래 머리를 가진 송곳으로 변했다. 궤 다리 곁을 두세 번 쑤셔 구멍 하나를 뚫었다. 송곳을 거두고 몸을 흔들어 변하니 땅강아지가 되어 기어 나가 본래 몸을 드러내고 구름을 밟고 황궁 문 밖으로 곧장 들어갔다. 그 왕이 깊이 잠든 사이, 그가 큰 분신보회신법을 써서 왼팔의 털을 모두 뽑아 신선한 기운을 한입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모두 작은 행자로 변했다. 오른팔의 털도 모두 뽑아 신선한 기운을 한입 불며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모두 졸음벌레로 변했다. “옴” 자 진언을 한 번 외워 당방토지에게 명하여 무리를 이끌고 황궁 내원과 오부 육부, 각 아문의 크고 작은 관리의 집 안에 두루 흩뿌리게 하니, 품계와 직책이 있는 자는 모두 졸음벌레 하나씩을 받아 저마다 깊이 잠들어 몸을 뒤척이지 못했다. 또 금고봉을 손에 쥐고 한번 무게를 재어 보고 흔들어 대며 “보배야, 변하여라!” 하고 외치니, 곧 천백 개의 삭발칼로 변했다. 그가 하나를 들고 작은 행자들에게도 하나씩 들려 황궁 내원과 오부 육부, 각 아문으로 가서 머리를 깎게 했다. 작은 행자들은 칼을 들고 방마다 드나들며 자는 이의 머리털을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말끔히 밀어 버렸다. 아! 이것이야말로, 법왕이 법을 멸하니 법이 무궁하고, 법은 건곤을 꿰뚫어 큰 도가 통한다. 온갖 법이 인연을 따라 한 몸으로 돌아가니, 삼승의 묘한 모습이 본래 같구나. 옥궤를 뚫어 소식을 밝히고, 금빛 털을 흩뿌려 가리움을 깨뜨린다. 법왕이 정과를 이루게 하리니,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오고 감이 공하도다. 이 밤중에 삭발을 마치고 주문을 외워 토지신들을 물러가게 한 뒤 몸을 한 번 털자 두 팔의 털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삭발칼을 모두 모아 참된 것으로 뭉치니, 다시 본성을 되찾아 한 자루 금고봉이 작게 줄어든 모습으로 거두어져 귀 속에 감추어졌다. 다시 몸을 뒤집어 땅강아지가 되어 궤 안으로 기어 들어가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당승과 함께 곤경을 지켰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황궁 내원의 궁아와 채녀들이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없어졌다. 궁을 드나드는 크고 작은 환관들도 머리카락이 없어져, 한꺼번에 몰려와 침궁 밖으로 가서 음악을 연주하여 잠을 깨우며 눈물을 머금고 감히 말을 전하지 못했다. 조금 뒤에 삼궁의 황후가 깨어나서도 머리카락이 없어진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거울을 들어 비추어 보았으나 비취 빗질할 터럭은 털끝만큼도 없었으므로, 급히 등불을 옮겨 용상 아래를 살펴보니 비단 이불 속에 중 한 명이 자고 있었다. 황후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어 그만 왕을 깨우고 말았다. 왕이 급히 눈을 떠서 황후의 머리가 민둥민둥한 것을 보고 황급히 일어나며 말했다. “황후여, 그대가 어찌 이리 되었소?” 황후가 말했다. “주공께서도 그러하시옵니다.” 그 황제가 머리를 만져 보고는 놀라 혼이 빠져나갈 지경으로 말했다. “짐이 어찌된 일이냐!” 한창 당황하고 있는데, 육원의 빈비와 궁아 채녀, 크고 작은 환관들이 모두 민머리를 한 채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주공, 우리가 중이 되었나이다!” 왕이 이를 보고 눈에 눈물을 담으며 말했다. “짐이 승려를 해친 탓이로다.” 그리고 전지하여 분부했다. “너희는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 문무 여러 신하가 나라가 바르지 못하다고 비방할까 두렵다. 모두 전각에 올라 조회를 여는 것이 좋겠다.” 각설하고 오부 육부와 모든 아문의 크고 작은 관리들은 날이 밝기도 전에 왕을 알현하고 궁궐에 절하러 가야 했다. 그런데 이 밤중에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없어져, 저마다 표를 써서 이 일을 아뢰었다. 다만 이런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조용히 채찍이 세 번 울려 황제를 깨우니, 표를 올려 임금의 머리가 깎인 까닭을 아뢰는구나.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5회 심원투목모(心猿妒木母) · 마주계탄선(魔主計呑禪) 각설하고 그 나라 국왕이 이른 조회를 여니 문무의 여러 관원이 모두 표문을 받들고 나아가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신 등이 예를 잃은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옵소서.” 국왕이 말했다. “여러 경의 예모가 평소와 같은데 어찌 예를 잃었다 하는가?” 여러 경이 아뢰었다. “주공이시여, 어찌된 영문인지 신들의 머리털이 하룻밤 사이에 모조리 사라졌나이다.” 국왕이 그 머리털이 없어졌다는 표문을 들고 용상에서 내려와 여러 신하에게 말했다. “참으로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구려. 짐의 궁중에 있는 대소 인원들도 하룻밤 사이에 머리털이 모두 없어졌노라.” 임금과 신하들이 모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중들을 죽이지 않겠나이다.” 국왕이 다시 용좌에 오르고 여러 관원은 제각기 본래 반열로 돌아가 섰다. 국왕이 또 말했다. “아뢸 일이 있으면 반열에서 나와 아뢰고, 일이 없으면 주렴을 걷고 조회를 파하리라.” 그때 무관 반열에서 성을 순찰하는 총병관이 홱 걸어 나오고, 문관 반열에서 동성 병마사가 나와 섬돌 아래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신이 성지를 받들어 성을 순찰하다가 밤사이 도적의 장물인 궤짝 하나와 백마 한 필을 얻었나이다. 미천한 신이 감히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사오니 성지를 내리시어 결정하여 주옵소서.” 국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궤짝째 가져오너라.” 두 신하는 곧 본래 관아로 물러나 가지런한 군사들을 뽑아 들고 궤짝을 메어 내오게 했다. 삼장이 그 안에서 넋이 몸을 떠날 지경으로 말했다. “제자들아, 이대로 국왕 앞에 나가게 되면 무슨 말로 변명한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떠들지 마라! 내가 이미 모두 마련해 두었다. 궤짝을 여는 순간 그가 우리를 스승으로 받들어 모실 것이니, 팔계더러는 시비를 가리며 다투지 말라고만 하여라.” 팔계가 말했다. “죽이지만 면한다면 그것이 곧 한량없는 복인데 감히 다투겠소이까!”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궤짝이 조정 밖으로 메여져 나가 오봉루를 지나 단지 아래에 놓였다. 두 신하가 국왕께 열어 보시기를 청하니 국왕이 곧 열라고 명했다. 막 뚜껑을 걷어 내는데 저팔계가 참지 못하고 밖으로 툭 뛰어나왔으니, 놀란 여러 관원은 간담이 오그라들어 입도 열지 못하였고, 또 손행자가 당승을 부축하여 나오고 사오정이 행리를 들어 내는 것을 보았다. 팔계는 총병관이 말을 끌고 있는 것을 보고 앞으로 다가가 호통치듯 크게 소리쳤다. “이 말은 내 것이오! 이리 내오너라!” 그 관원은 놀라 나동그라지며 땅에 넘어졌다. 네 사람이 모두 섬돌 가운데 서자 국왕은 그것이 네 명의 중임을 알아보고 급히 용상에서 내려와 삼궁의 비빈들을 불러 모으고 금란보전에서 내려와 여러 신하와 함께 절하며 물었다. “장로는 어디서 오셨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동토 대당 천자의 명을 받들어 서방 천축국 대뢰음사로 가 살아 계신 부처님을 뵙고 참된 경전을 구하여 오라는 사명을 띤 자들이옵니다.” 국왕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먼 곳에서 오셨거늘 어찌하여 이 궤짝 속에서 잠을 주무셨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폐하께서 서원을 세워 중들을 죽이려 하신다는 것을 알고 감히 상국에 드러내 놓고 들지 못하여, 속인으로 변장하고 밤에 귀국의 객점으로 가서 하룻밤을 빌어 묵었나이다. 사람들이 본래 모습을 알아볼까 두려워하였으므로 그만 이 궤 속에서 잠을 잤나이다. 불행히도 도적에게 궤째 훔쳐 나와졌고 총병에게 붙잡혀 이리 메여 오게 되었사오나, 이제 폐하의 용안을 뵙게 되었으니 이른바 구름을 걷어 내고 해를 본 것이라 하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빈승을 용서하여 풀어 주옵소서. 바다처럼 깊은 은혜이옵니다!” 국왕이 말했다. “스승은 천조 상국의 고승이시거늘 짐이 영접하지 못하여 예를 잃었도다. 짐이 예로부터 중들을 죽이겠다는 원을 세운 것은 일찍이 어떤 중이 짐을 비방한 일이 있어, 짐이 하늘에 원을 걸고 중 일만 명을 죽여 원만을 삼으려 하였기 때문이니라. 뜻밖에도 오늘밤 귀의하여 짐 등으로 하여금 중이 되게 하였도다. 이제 임금과 신하와 후비의 머리털이 모두 깎여 떨어졌으니, 스승께서는 높은 어짊을 아끼지 마시고 저희를 문하로 받아 주시옵소서.” 팔계가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제자로 삼으시려 하니 무슨 폐백을 드리면 되겠나이까?” 국왕이 말했다. “스승께서 기꺼이 허락하신다면 나라 안의 재보를 모두 바치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재보 이야기는 그만하시오. 이 중들은 도가 있는 승려들이오. 그대는 다만 관문을 바꾸어 우리를 성 밖으로 보내 주기만 하시오. 그리하면 그대의 왕업이 길이 굳건하고 복과 수가 나날이 더해질 것을 보장하리라.” 그 국왕이 그 말을 듣고 곧 광록시에 명하여 큰 잔치를 베풀게 하고, 임금과 신하가 뜻을 모아 한마음으로 스승을 받들어 절을 올렸으며, 즉시 관문을 고쳐 주면서 삼장에게 국호를 바꾸어 주기를 청했다. 행자가 말했다. “폐하의 나라 이름인 ‘법국’은 매우 좋사오나 다만 ‘멸’ 자가 통하지 않으니, 저희가 지나간 뒤로는 국호를 ‘흠법국’으로 고치소서. 그리하면 바다가 잔잔하고 강이 맑아 천 대를 이어 흥하고, 바람이 고르고 비가 순하여 만방이 편안할 것을 장담하리라.” 국왕이 은혜에 사례하고 조란가를 가지런히 갖추어 당승 사부를 성 밖 서쪽까지 배웅하니, 임금과 신하들이 선을 받들어 참됨으로 돌아간 일은 더 말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장로가 흠법국 국왕과 작별하고는 말 위에서 흐뭇하게 말했다. “오공아, 이번 법이 매우 훌륭하니 큰 공로로구나.” 사오정이 말했다. “형이여, 어디서 저리도 많은 이발장을 구해 와 밤을 새워 저 많은 머리를 깎았단 말이오?” 행자가 변화를 부리고 신통력을 쓴 일을 차례대로 이야기하니 사부와 제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웃었다. 한창 기뻐하는데 홀연히 높은 산 하나가 길을 막고 서 있는 것이 보이자 당승이 말고삐를 당기며 말했다. “제자들아, 너희는 앞에 놓인 산세가 높고 험한 것을 보아라. 모름지기 조심하여야 한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라! 안심하라! 아무 탈이 없도록 해 주리라!” 삼장이 말했다. “탈이 없다 하지 마라. 내가 보니 저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멀리에서부터 사나운 기운이 이는 듯하며 포악한 구름이 날아 나오니, 점차 놀라고 당황하여 온몸이 저리고 마음이 편치 않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께서는 오소선사의 ‘다심경’을 벌써 잊으셨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기억하고 있다.” 행자가 말했다. “기억은 하시되 아직 네 구절의 게송이 있거늘 그것은 잊으셨소이다.” 삼장이 말했다. “그 네 구절이 무어냐?” 행자가 말했다. “부처는 영산에 계시니 멀리서 구하지 말라. 영산은 오직 네 마음속에 있느니라. 사람마다 영산탑이 하나씩 있나니 좋도록 영산탑 아래에서 닦으라.”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내 어찌 알지 못하겠느냐. 이 네 구절에 따른다면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법전도 다만 마음을 닦는 것일 뿐이로다.” 행자가 말했다. “더 말할 것도 없소이다. 마음이 맑으면 외로운 밝음이 홀로 비추고, 마음이 머물면 온갖 경계가 다 맑아지느니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게으름이 되어 천 년 만 년이 가도록 공을 이루지 못하리라. 다만 한 조각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뇌음은 바로 눈앞에 있느니라. 스승처럼 이토록 겁내고 당황하여 마음이 편치 않으면 큰 도는 멀어지고 뇌음 또한 멀어지느니라. 부질없이 의심하지 말고 나를 따르소서.” 그 장로는 그 말을 듣고 심신이 문득 상쾌해져 온갖 걱정이 모조리 사라졌다. 네 사람이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몇 걸음 되지 않아 산 위에 올라 눈을 들어 둘러보니 참으로 좋은 산이되 자세히 보니 빛깔이 얼룩덜룩하였다. 산꼭대기에는 구름이 떠돌고, 벼랑 앞에는 나무 그림자가 차갑구나. 날짐승은 쓸쓸히 울고, 달리는 짐승은 사납고 억세구나. 숲 속에는 소나무가 천 그루요, 봉우리에는 대나무가 몇 대런가. 으르렁대는 소리는 푸른 이리가 먹이를 빼앗는 것이요, 포효는 굶주린 호랑이가 밥을 다투는 것이로다. 들원숭이는 길게 휘파람 불며 신선한 과일을 찾고, 사슴은 꽃을 딛고 푸른 산기운으로 오르누나. 바람은 싸아하고 물은 졸졸 흘러, 때로 그윽한 새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누나. 여러 곳에서 칡덩굴이 서로 얽고 당기고, 시냇가에는 요초와 향기로운 난초가 섞여 있구나. 괴석은 반짝반짝하고 봉우리의 바위는 깎아세운 듯하구나. 여우와 오소리는 떼를 지어 달리고, 원숭이들은 무리를 이루어 장난하누나. 나그네는 험준함이 많음을 시름하는데, 어찌하여 옛길마저 이리 굽이치는고! 사부와 제자들은 겁을 집어먹고 놀라며 가고 있는데, 문득 후우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차례 바람이 일었다. 삼장이 겁을 내며 말했다. “바람이 일었구나!” 행자가 말했다. “봄에는 화풍이 있고 여름에는 훈풍이 있으며, 가을에는 금풍이 있고 겨울에는 삭풍이 있사옵니다. 사시사철에 모두 바람이 있거늘 바람이 일었다고 무엇이 두렵단 말이오?” 삼장이 말했다. “이 바람이 몹시 급하게 몰려오니 결코 하늘에서 온 바람이 아니로다.” 행자가 말했다. “예로부터 바람은 땅에서 일고 구름은 산에서 나오는 법인데, 어찌 하늘 바람이 따로 있겠나이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차례 안개가 이는 것이 보였다. 그 안개는 참으로 이러하였다. 아득하여 하늘에 이어 캄캄하고, 아슴하여 땅을 두르고 어둡구나. 햇빛은 그림자조차 없고, 새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누나. 완연하기가 혼돈과 같고, 방불하기가 나는 먼지 같구나. 산머리의 나무조차 보이지 않거늘, 어찌 약초 캐는 이라도 만나리오. 삼장이 더욱 놀라며 말했다. “오공아, 바람이 아직 잦아들지도 않았거늘 어찌하여 또 이토록 안개가 이는고?” 행자가 말했다. “우선 서두르지 마소서. 스승께서는 말에서 내리시고, 너희 두 형제는 여기서 스승을 지키고 있거라. 내가 가서 길흉이 어떠한지 보고 오리라.” 이 호걸 대성은 허리를 한번 굽히더니 곧 허공으로 솟아 올라가 손을 눈썹 위에 얹고 화안을 부릅뜬 채 아래를 굽어보니, 과연 깎아지른 바위 곁에 요괴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 생김새가 어떠하였는가 보라. 번쩍이는 무늬는 고와 화려하기 그지없고, 우뚝한 수컷의 기세는 몹시 늠름하구나. 단단한 이빨은 입 밖으로 나와 강철 송곳 같고, 날카로운 발톱은 굽 속에 감추어 옥 갈고리 같구나. 둥근 눈의 금빛은 날짐승과 짐승도 겁을 내고, 거꾸로 솟은 은빛 수염은 귀신도 시름하누나. 거칠게 으르렁거리며 사나운 위풍을 부리고, 안개를 토하고 바람을 뿜으며 꾀를 부리누나. 또 좌우 수하에 서른에서 마흔 명쯤 되는 작은 요괴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는 그곳에서 억지로 법술을 부려가며 바람을 뿜고 안개를 토해 내고 있었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스승께서도 조금은 앞일을 아시는구나. 스승이 하늘 바람이 아니라 하시더니 과연 아니요, 이곳에서 요괴가 떠들썩하게 재주를 부리고 있구나. 이 늙은 손오공이 쇠몽둥이를 휘둘러 내리치면 이를 일러 ‘마늘 찧듯 두들기기’라 하지만, 때려죽이기는 죽이되 이 늙은이의 명성만 깎이게 된다.” 그 행자는 평생을 호걸로 살아 남을 몰래 꾀어 칠 줄을 몰랐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먼저 돌아가 저팔계를 좀 돌보아 주어 그를 시켜 먼저 이 요괴와 한 판을 겨루게 하리라. 만일 팔계에게 재주가 있어 이 요괴를 쳐부수면 그것을 그의 공로로 쳐 주고, 재주가 없어 이 요괴에게 잡혀 간다면 내가 다시 가서 구해 준 뒤에라야 비로소 명성을 떨칠 수 있으리라.” 그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팔계는 좀 게을러 나서기를 꺼리지만, 다만 입이 걸쭉하여 먹을 것을 좋아하는구나. 내가 그를 한번 속여 보아 무어라 하는지 보리라.” 곧장 구름머리를 내려 삼장 앞에 이르렀다. 삼장이 물었다. “오공아, 바람과 안개 이는 곳의 길흉이 어떠하더냐?” 행자가 말했다. “이제는 맑고 깨끗해져서 바람이나 안개가 없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그렇구나, 조금은 물러간 듯하더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이시여, 저도 늘 볼 때는 잘 보았거늘 이번에는 잘못 보았나이다. 나는 바람과 안개 속에 요괴나 있을까 두렵다 하였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소이다.” 삼장이 말했다. “그러면 무엇이더냐?” 행자가 말했다. “앞으로 멀지 않은 곳에 마을 하나가 있사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선을 즐겨 흰쌀밥과 흰 밀가루 떡을 쪄서 중들에게 공양한다 하옵니다. 이 안개는 아마 그 사람들이 찜통에서 피어올린 김이니, 또한 선을 쌓은 응답이라 하겠나이다.” 팔계가 그 말을 듣고 참말인 줄로 여겨 행자를 슬며시 끌어당기며 말했다. “형이여, 형은 먼저 그 공양을 먹고 온 게요?” 행자가 말했다. “많이는 못 먹었다. 나물이 너무 짜서 즐겨 먹지 않았을 뿐이야.” 팔계가 말했다. “쯧, 아무리 짜다 한들 내야 배터지게 한껏 채워 먹고야 말지! 목이 몹시 마르면 돌아와 물을 마시면 그만이지.” 행자가 말했다. “네가 먹고 싶으냐?” 팔계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내 배가 좀 고파 먼저 좀 먹고 가려 하는데 어떻겠소?” 행자가 말했다. “아우야, 말도 꺼내지 마라. 옛 글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들이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하였다. 스승께서 또 여기 계시거늘 누가 감히 먼저 가겠느냐?”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이 가만히만 있으면 내가 가겠소.” 행자가 말했다. “나는 잠자코 있으리니, 네가 어떻게 갈는지 두고 보자.” 그 멍청이는 먹는 데에는 남다른 꾀가 있어 앞으로 나서서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스승이시여, 방금 사형이 말하기를 앞마을에 중들에게 공양하는 집이 있다 하였나이다. 보옵소서, 이 말이 남의 집을 번거롭게 하여 풀과 사료를 달라 하니 일이 되고도 남지 않사옵니까? 마침 지금 바람과 안개가 맑아졌으니 여러분은 좀 앉아 계시고, 내가 가서 연한 풀을 좀 찾아 먼저 말에게 먹인 뒤에 그 집으로 공양을 받으러 가겠나이다.” 당승이 기뻐하며 말했다. “좋도다! 네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리도 부지런해졌느냐? 어서 갔다 오너라.” 그 멍청이는 속으로 슬쩍 웃으며 곧 걸음을 옮겼다. 행자가 뒤따라가 붙잡으며 말했다. “아우야, 저기서는 중에게 공양하되 잘난 중에게만 하고 못난 중에게는 하지 않는다더라.” 팔계가 말했다. “그런 말이라면 또 변신을 하란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러니 한번 변해 보아라.” 이 멍청이에게도 서른여섯 가지 변화가 있었으니, 산골짜기로 걸어 들어가 손가락으로 결을 짚고 주문을 외우더니 몸을 한번 흔들어 키 작고 뚱뚱한 중으로 변하여, 손에는 목어를 쥐고 입으로는 흥얼흥얼 소리를 냈으나 경을 외지는 못하고 다만 “상대인”만 흥얼거릴 뿐이었다. 각설하고 그 괴물은 바람과 안개를 거두어들이고 무리 요괴에게 호령하여 큰 길목에 원진을 펼쳐 놓고는 지나가는 나그네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멍청이는 재수가 없어 오래지 않아 그 한가운데로 뛰어들었고, 요괴 무리에게 포위되어 이놈은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저놈은 띠를 잡아당기며 밀치고 떠밀며 일제히 손을 댔다. 팔계가 말했다. “잡아당기지들 마라. 내가 집집마다 차례로 먹어 줄 터이니.” 요괴들이 말했다. “중놈아, 너는 무얼 먹으려 하느냐?” 팔계가 말했다. “너희가 여기서 중들에게 공양한다기에 내가 공양을 먹으러 왔노라.” 요괴들이 말했다. “네가 이곳에서 공양을 받으려는 모양인데, 우리 이곳에서는 오히려 중을 먹는 줄을 모르는구나. 우리는 모두 산에서 도를 얻은 요선들로서, 오로지 너희 중들을 집으로 끌고 가 찜통에 얹어 푹 익혀 먹으려 하는 터인데, 너는 도리어 공양을 받으러 오다니!” 팔계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겁이 나서야 행자를 원망하며 말했다. “이 필마온 놈, 참으로 얄밉구나! 그가 나를 꾀어 이 마을에서 중들을 공양한다 하거늘 내가 그 말만 믿었는데, 이곳에 무슨 마을이 있단 말이며 무슨 중을 공양한단 말이냐! 알고 보니 요괴들이었구나!” 그 멍청이는 잡아당기다 못해 다급해지자 곧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허리에서 쇠갈퀴를 뽑아 들고 마구 찧어 대어 그 작은 요괴들을 물리쳤다. 작은 요괴가 급히 달려가 늙은 요괴에게 알리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큰일이 났나이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무슨 큰일이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산 앞에 중 하나가 왔는데 몹시 깨끗하게 생겼나이다. 내가 집으로 끌고 가 쪄서 먹고, 다 못 먹으면 흐린 날을 대비해 남겨 두려 하였는데, 뜻밖에도 저놈이 변화를 하는 줄 몰랐나이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더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어디 사람 꼴이 되었나이까! 입은 길고 귀는 크며 등 뒤에는 갈기가 있고, 두 손에 쇠갈퀴 하나를 휘둘러 머리도 낯도 가리지 않고 마구 찧어 대니, 놀란 우리가 달려 도망쳐 나와 대왕께 알리러 온 것이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겁낼 것 없다. 내가 가 보리라.” 쇠공이 하나를 휘두르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과연 그 멍청이가 흉측하게 생겼다. 그 생김새는 이러하였다. 방아 같은 주둥이는 갓 석 자요, 드러난 엄니는 은못을 뽐내누나. 둥글게 뜬 두 눈은 번개 같은 빛이요, 두 귀는 바람을 부치며 훠훠 소리를 내누나. 뒤통수의 긴 갈기는 쇠화살을 늘어세운 듯하고, 온몸의 거친 가죽은 부스럼투성이에 푸르기까지 하구나. 손에 든 괴이한 물건은 아홉 이빨 쇠갈퀴니 보는 이마다 놀라누나. 요정이 간을 단단히 다지고 호령했다. “너는 어디서 왔으며 이름이 무엇이냐? 속히 대라, 그러면 네 목숨을 살려 주리라!”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내 아들아, 네놈이 네 돼지 조상을 몰라보다니! 앞으로 오너라, 일러 주마. 큰 입과 드러난 엄니에 신력이 크니, 옥황상제가 나를 천봉원수로 올려 주셨느니라. 천하의 팔만 군사를 거느리고 천궁에서 즐겁고 자유로이 지냈노라. 다만 술에 취해 궁녀를 희롱하다가 그만 영웅을 팔아먹었노라. 한 번 주둥이로 두우궁을 들이받아 엎고, 왕모님의 영지 나물을 먹어 치웠느니라. 옥황상제가 친히 이천 방망이를 내리쳐 삼천 세계 아래로 쫓아내셨노라. 내게 뜻을 세워 원신을 기르라 일렀건만, 아래 세상에서는 도리어 요괴가 되었노라. 고장에서 혼인을 즐기려다 운이 낮아 손 형님을 만났노라. 금고봉 아래에서 항복을 받고 고개를 숙여 사문에 절을 하였노라. 말 등에 짐을 지고 궂은일꾼이 된 것은 전생에 당승의 빚을 졌기 때문이니라. 쇠발 천봉은 본성이 돼지요, 법명은 저팔계라 고쳤노라.” 그 요정이 그 말을 듣고 호령하며 말했다. “네가 알고 보니 당승의 제자로구나. 내가 늘 당승의 고기가 맛있다 하여 마침 너를 잡으려 하였는데, 네가 제 발로 찾아들었으니 내 어찌 너를 살려 주겠느냐? 달아나지 마라! 공이 받아라!” 팔계가 말했다. “이 몹새끼야, 네가 알고 보니 염색장이 출신이로구나!” 요정이 말했다. “내가 어찌 염색장이란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염색장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방망이를 쓰겠느냐?” 그 요괴는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다가들어 마구 쳤다. 그 둘이 산골짜기에서 벌인 싸움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아홉 이빨 쇠갈퀴와 쇠몽둥이 하나. 갈퀴가 재주를 펴니 미친 바람이 구르고, 공이가 꾀를 부리니 사나운 비가 날리누나. 하나는 이름 없는 악한 요괴로 산길을 막았고, 하나는 죄 지은 천봉으로 본성의 주인을 모시누나. 본성이 바르거늘 요괴와 마귀를 무에 걱정하리, 산이 높으나 흙이 금을 내지는 못하누나. 저 공이의 받침은 구렁이가 소를 나오는 듯하고, 이 갈퀴의 내리침은 용이 포구를 벗어나는 듯하누나. 고함과 호통이 산천을 뒤흔들고, 우렁찬 위풍은 저승까지 놀라게 하누나. 두 영웅이 제각기 재주를 뽐내며 목숨을 걸고 신통을 겨루누나. 팔계가 위풍을 돋우며 요정과 맞서 싸우는데, 그 요괴가 작은 요괴들에게 호령하여 일제히 팔계를 에워싸게 하였다. 각설하고 행자가 당승의 등 뒤에서 홀연 실소를 터뜨리자 사승이 말했다. “형이 저리 냉소를 터뜨리니 무슨 까닭이오?” 행자가 말했다. “저팔계가 참으로 멍청하구나! 중들에게 공양한다는 말만 듣고 꾐에 넘어가 간 지도 오래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구나. 만일 갈퀴질 한바탕으로 요괴를 물리쳤다면 틀림없이 이기고 돌아와 공로를 다투며 떠들고들 있을 터이요, 싸움을 이겨 내지 못해 요괴에게 잡혀 갔다면 이번에는 내가 재수 없는 놈이 되어 앞에서건 뒤에서건 필마온 타령을 얼마나 들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오정아, 너는 입을 열지 말고 있거라. 내가 가서 보고 오리라.” 이 대성은 장로에게 알리지도 않고 슬그머니 뒤통수에서 털 하나를 뽑아 신선의 기운을 입으로 불어넣으며 “변하라!” 하니 곧 제 본래 모습으로 변하여 사승과 함께 장로를 모시고 따랐다. 그의 진신은 혼을 빠져나가게 하여 허공으로 뛰어올라 굽어보니, 그 멍청이가 요괴들에게 포위되어 쇠갈퀴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점차 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행자가 참지 못하고 구름머리를 내리며 높은 소리로 크게 외쳤다. “팔계야, 서두르지 마라. 이 늙은 손오공이 왔노라!” 그 멍청이는 행자의 목소리를 듣고 기세를 빌려 더욱 위풍을 돋우며 쇠갈퀴를 한바탕 휘둘러 앞으로 마구 찧어 대니, 그 요정이 막아 내지 못하며 말했다. “이 중이 앞서서는 형편없더니 이번에는 어찌하여 사납게 나오는고.” 팔계가 말했다. “내 아들아, 나를 업신여기지 마라! 내 집안 사람이 왔노라!” 한층 더 앞으로 나가며 머리도 낯도 가리지 않고 찧어 대자, 그 요정은 더는 막아 내지 못하고 무리 요괴를 거느리고 패하여 달아났다. 행자는 요괴가 패해 달아나는 것을 보고서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은 채 구름머리를 돌려 곧장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 털을 한번 털어 제 몸에 거두어들였다. 장로는 육안 범태이거늘 어찌 알아보았겠는가. 오래지 않아 멍청이가 이기고 스스로 돌아왔는데, 지쳐서는 콧물과 침을 줄줄 흘리고 흰 거품을 물며 헐떡거리면서 걸어와 “스승이시여!” 하고 불렀다. 장로가 그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팔계야, 너는 말 꼴을 베러 간다더니 어찌하여 이다지 엉망이 되어 돌아왔느냐? 산 위의 인가에서 풀을 지키는 이가 있어 꼴 베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더란 말이냐?” 멍청이가 갈퀴를 내려놓고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고 말했다. “스승이시여, 묻지도 마옵소서! 말하자면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우냐?” 팔계가 말했다. “사형이 나를 골려먹었나이다! 그가 처음에는 바람과 안개 속에 요괴가 아니라 흉조도 없고, 마을 사람들이 선을 즐겨 흰쌀밥과 흰 떡을 쪄서 중들에게 공양한다 하기에 내가 참말로 여기고 배가 고프니 먼저 좀 먹고 가려다 풀을 벤다는 핑계를 댔나이다. 뜻밖에도 요괴 떼가 나를 에워싸고 한바탕 피 말리는 싸움을 벌였나이다. 사형의 몽둥이가 도와 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그물을 벗어나 돌아올 생각조차 못 하였을 것이옵니다!” 행자가 곁에서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이가 헛소리를 하는구나! 네가 도둑이라도 되었으면 옥에 갇힌 사람까지 끌어들이겠구나. 나는 여기서 스승을 모시고 있었거늘 어느 때 한쪽이라도 떠났더냐?” 장로가 말했다. “그렇다, 오공은 나를 떠난 적이 없다.” 그 멍청이가 펄쩍펄쩍 뛰며 떠들었다. “스승이시여, 모르시는구려! 저놈에게는 대신할 몸이 있단 말이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오공아, 참으로 요괴가 있더란 말이냐?” 행자가 더는 감출 수 없어 몸을 굽히고 웃으며 말했다. “작은 요괴 몇 놈이 있었으나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였소이다. 팔계야, 이리 오너라, 이번에는 너를 한껏 돕도록 하마. 우리가 스승을 모시고 험준한 산길을 지나는 것은 행군하는 것과 같으니라.” 팔계가 말했다. “행군이라면 어떻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네가 길 여는 장군이 되어 앞에서 길을 트너라. 그 요괴가 오지 않으면 그만이려니와, 오거든 너는 그와 맞서 싸워 요괴를 쳐부수면 그것을 네 공로로 쳐 주리라.” 팔계는 그 요괴의 수단이 자기와 비슷하려니 하고는 말했다. “내가 그놈 손에 죽는다 한들 어떠리오. 내가 먼저 가겠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멍청이가 먼저 재수 없는 소리를 하니 어찌 자라나겠느냐!” 팔계가 말했다. “형이여, 그대는 모르시오? ‘공자가 잔치에 오르면 취하지 않아도 배부르고, 장사가 전장에 임하면 죽지 않아도 상처를 입는다’ 하지 않소? 먼저 실없는 소리를 한마디 해 두면 뒤에 위풍이 서는 법이오.” 행자가 기뻐하며 곧 말을 등에 지고는 스승더러 타시기를 청하고, 사승이 행리를 지고 팔계를 따라 산으로 들어갔음은 더 말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그 요괴는 패하여 흩어진 작은 요괴 몇 놈을 거느리고 곧장 본래 동굴로 돌아와 석벽 위에 높이 앉아 말없이 있었다. 동굴 안에는 집을 지키는 작은 요괴들이 많이 있었는데 모두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대왕께서는 평소에 나가시면 기뻐하며 즐겁게 돌아오시더니 오늘은 어찌하여 근심하시나이까?” 늙은 요괴가 말했다. “녀석들아, 내가 평소에 동굴을 나가 산을 순찰하면 그곳이 어디든 사람이건 짐승이건 반드시 몇을 잡아다 너희를 먹여 살렸거늘, 오늘은 운이 나빠 상대할 적수 하나를 만났노라.” 작은 요괴가 물었다. “어떤 적수시나이까?” 늙은 요괴가 말했다. “중 하나인데 동토 당승이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의 제자라 하며 이름은 저팔계라 부르더구나. 내가 그에게 쇠갈퀴질 한바탕을 얻어맞고 패하여 쫓겨 왔노라. 참으로 분하도다! 내가 늘 사람들에게 듣자니 당승은 열 세상을 수행한 나한이라, 누구든 그의 고기 한 점을 먹으면 수명이 늘어 장생한다 하더라. 뜻밖에도 그가 오늘 내 산으로 오니 마침 붙잡아 쪄 먹으면 그만이려니 하였는데, 그의 수하에 이런 제자가 있을 줄이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열 가운데에서 작은 요괴 하나가 튀어나와 늙은 요괴를 향하여 흑흑 느껴 울기를 세 번, 깔깔 웃기를 세 번 하였다. 늙은 요괴가 호령하며 물었다. “네가 울다 웃다 하니 무슨 까닭이냐?” 작은 요괴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대왕께서 방금 당승을 잡아먹겠다 하셨는데, 당승의 고기는 먹을 것이 못되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사람마다 그의 고기 한 점을 먹으면 늙지 않고 오래 살아 하늘과 더불어 같은 수명을 누린다 하는데, 어찌하여 먹을 것이 못 된다 하느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먹을 만한 것이었으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하였을 것이옵니다. 다른 곳의 요괴들이 벌써 다 먹어 치웠을 것이옵니다. 그에게는 제자가 셋이나 있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너는 그 셋이 누구인 줄 아느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큰 제자는 손행자요 셋째 제자는 사오정이옵니다. 그리고 이 자가 둘째 제자인 저팔계라 하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사오정이 저팔계와 견주면 어떠하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거의 비슷하옵니다.” “그 손행자가 그와 견주면 어떠하냐?” 작은 요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차마 아뢸 수 없나이다! 그 손행자는 신통이 광대하고 변화가 무궁하옵니다! 오백 년 전에 일찍이 천궁을 크게 휩쓸었는데, 상방의 이십팔수와 구요성관, 십이원진과 오경사상, 동서의 성두와 남북의 두 신, 오악과 사독, 온 하늘의 신장들도 그를 당해 내지 못하였거늘, 대왕께서 어찌 감히 당승을 잡아먹으려 하시나이까?” 늙은 요괴가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그것을 그리 자세히 아느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저도 처음에는 사타령 사타동에서 그 대왕과 함께 살았나이다. 그 대왕이 분별 없이 당승을 먹으려 하다가 손행자가 금고봉 하나를 휘둘러 문을 부수며 쳐들어왔는데, 가련하게도 골패 이름에 걸리도록 얻어맞아 모조리 끊기고 여섯이 끊어졌나이다. 다행히 저에게 약간의 식견이 있어 뒷문으로 빠져나와 이곳까지 흘러들었고, 대왕께서 거두어 주신 덕분에 그의 수단을 알고 있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기색이 변하였으니, 이는 바로 ‘대장군도 예언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라, 제 식구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거늘 어찌 놀라지 않으랴. 모두가 두려워 떠는 즈음에 또 작은 요괴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성내지도 마시고 겁내지도 마옵소서. 늘 하는 말에 ‘일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하였나이다. 당승을 잡아먹고자 하시거든 제가 꾀 하나를 내어 그를 잡아 오겠나이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너에게 무슨 꾀가 있느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소인에게는 분판매화계라는 것이 있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어찌하여 그것을 분판매화계라 하느냐?” 작은 요괴가 말했다. “이제 동굴 안의 크고 작은 요괴들을 모두 불러모아 점고를 하여, 천 가운데에서 백을 고르고 백 가운데에서 열을 고르고 그 열 가운데에서 오직 셋만 고르되, 능력이 있고 변화를 할 줄 아는 놈이어야 하옵니다. 그리고 모두 대왕의 모습으로 변하여 대왕의 투구를 쓰고 대왕의 갑옷을 입고 대왕의 공이를 쥐고 세 곳에 매복하옵니다. 먼저 하나로 하여금 저팔계와 싸우게 하고, 또 하나는 손행자와, 또 하나는 사오정과 싸우게 하여, 작은 요괴 셋을 버리는 셈 치고 그 형제 셋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옵니다. 그러면 대왕께서는 허공에서 구름 잡는 손을 내리시어 저 당승을 잡으시면 되니, 주머니 속에서 물건을 꺼내듯, 물 담은 대야 속에서 파리를 집듯 하실 터인데 무에 어렵사옵니까!” 늙은 요괴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하여 말했다. “이 계책이 절묘하도다! 절묘하도다! 이번에 가서 당승을 잡지 못하면 그만이려니와, 당승을 잡기만 한다면 결코 너를 홀대하지 않고 곧 너를 전부 선봉으로 봉하리라.” 작은 요괴가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사례하고는 요괴들을 점고하라 외치며 곧 동굴 안의 크고 작은 요괴들을 소집하니, 과연 능력 있는 작은 요괴 셋이 뽑혀 모두 늙은 요괴로 변하여 제각기 쇠공이를 들고는 당승을 기다리며 매복하였다. 각설하고 이 당 장로는 걱정도 근심도 없이 팔계를 따라 큰길로 올라 한참을 가고 있었는데, 문득 길 곁에서 퍼덕 하는 큰 소리가 나며 작은 요괴 하나가 튀어나와 앞으로 달려들어 장로를 잡으려 하였다. 손행자가 소리쳤다. “팔계야! 요괴가 왔다, 어찌 손을 놀리지 않느냐?” 그 멍청이는 참과 거짓을 가리려 하지도 않고 쇠갈퀴를 뽑아 뒤쫓아가며 마구 찧어 대니, 그 요괴가 쇠공이를 들어 급히 받아 막았다. 그 둘이 산비탈 아래에서 한 번씩 오가며 한창 겨루고 있는데, 또 풀숲 속에서 소리가 한번 나더니 요괴 하나가 튀어나와 곧장 당승에게로 달려들었다. 행자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큰일입니다! 팔계의 눈이 어두워 요괴가 그대로 달려들게 되었으니, 이 늙은 손오공이 쳐 물리치고 오겠나이다!” 급히 몽둥이를 뽑아 앞으로 나서며 호령했다. “어디로 가느냐! 이 몽둥이 받아라!” 그 요괴는 한마디 말도 없이 공이를 들어 맞받았고, 그 둘은 풀 비탈 아래에서 서로 부딪치며 들이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또 산등성이 뒤에서 윙 하는 바람 소리가 나더니 요괴 하나가 튀어나와 곧장 당승에게로 달려들었다. 사승이 그를 보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스승이시여! 큰형과 둘째 형의 눈이 다 어두워져 요괴를 그대로 들여보내 스승을 잡으러 오게 하였나이다! 스승께서는 말 위에 앉아 계시고, 이 늙은 사오정이 가서 잡아 오겠나이다!” 이 중은 좋고 그름을 헤아릴 겨를도 없이 곧 지팡이를 뽑아 들고 맞은편에서 그 요괴의 쇠공이를 막아 내며 이를 악물고 버티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지럽게 뒤섞여 싸우다 보니 점차 멀어져 갔다. 그 늙은 요괴는 허공에서 당승이 홀로 말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다섯 발톱 달린 강철 갈고리를 내리뻗어 당승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 스승은 말을 놓치고 등자에서 벗어난 채 요괴에게 한 차례 바람에 실려 그만 끌려가고 말았다. 가련하도다! 이는 바로 참선하는 성품이 요마를 만나 정과를 어렵게 하고, 강류가 또한 괴로운 재앙의 별을 만났음이라! 늙은 요괴는 바람머리를 누르고 당승을 동굴로 데려가서 “선봉!” 하고 불렀다. 그 계책을 꾸며 낸 작은 요괴가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으며 아뢰었다. “송구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느냐? 대장군은 한 번 내뱉은 말이 흰 것에 검은 물을 들인 것과 같으니라. 그때 나는 당승을 잡지 못하면 그만이거니와 당승을 잡으면 너를 전부 선봉으로 봉하리라 하였노라. 오늘 네가 과연 묘한 계책으로 공을 이루었거늘 내 어찌 너에게 신의를 저버리겠느냐. 네가 당승을 끌어 오너라. 녀석들에게 물을 길어 솥을 씻게 하고 땔나무를 날라 불을 지피게 하여 그를 한번 쪄 내라. 너와 내가 함께 그의 고기 한 점씩을 먹어 수명을 늘리고 장생을 도모하자꾸나.” 선봉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잡수시어서는 아니 되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이미 잡아 왔거늘 어찌 먹어서는 안 된단 말이냐?” 선봉이 말했다. “대왕께서 그를 잡수시는 것은 대수롭지 않사오나, 저팔계가 찾아오고 사오정이 찾아오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손행자 그 주인이 몹시 독사납다는 것이옵니다. 그가 우리가 먹어 치운 것을 알게 되면 우리와 맞붙어 싸우러 오지도 않을 것이옵니다. 그저 저 금고봉을 산허리에 한 번 꽂아 구멍을 뚫고는 산까지 모조리 뒤엎어 버리면 우리가 몸 붙일 곳조차 없어지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선봉아, 네게 무슨 좋은 생각이 있느냐?” 선봉이 말했다. “소인의 뜻대로 하신다면 당승을 뒤뜰로 보내어 나무에 묶어 두고 이삼 일 동안 밥을 주지 마옵소서. 하나는 그의 뱃속이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그 세 사람이 문 앞으로 찾아오지 않기를 기다려 그들이 되돌아간 줄 알게 된 뒤에 우리가 그를 끌어내어 마음 놓고 즐기자는 것이니, 어찌 좋지 않사옵니까?” 늙은 요괴가 웃으며 말했다. “옳소, 옳소! 선봉의 말이 이치에 맞도다!” 한마디 호령과 함께 당승을 끌어다 뒤뜰로 들여보내니, 한 가닥 밧줄이 그를 나무에 얽어매고 작은 요괴들은 모두 앞으로 가 대령하고 있었다. 보라, 그 장로가 밧줄에 휘감기고 노끈에 매여 단단히 묶이고 굳게 결박된 채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며 외쳤다. “제자들아! 너희는 저 산 속에서 요괴를 붙잡고 어느 길에서 요괴를 쫓고 있느냐? 나는 이 못된 요마에게 잡혀 이곳에서 재앙을 만났으니 어느 날에나 다시 만나려나? 원통하여 견딜 수가 없구나!” 두 줄기 눈물이 흐르는데 문득 맞은편 나무 위에서 누군가 부르며 말했다. “장로시여, 당신도 끌려들어오셨소!” 장로가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누구냐?”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이 산의 나무꾼이오. 그 산주인에게 엊그제 붙잡혀 이곳에 묶인 채 이미 사흘이 되었으니, 셈으로 치면 이제 나를 먹어 치울 때가 되었소.” 장로가 눈물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나무꾼이여, 그대가 죽으면 한 몸뿐이라 얽매일 것이 없겠으나, 나는 죽어도 그리 깨끗하게 죽지는 못하겠구려.” 나무꾼이 말했다. “장로시여, 당신은 출가한 사람이라 위로 부모도 없고 아래로 아내와 자식도 없거늘, 죽으면 죽었지 무에 깨끗하지 않단 말이오?” 장로가 말했다. “나는 본래 동토에서 서천으로 경을 얻으러 가는 길이오. 당나라 태종 황제의 어지를 받들어 살아 계신 부처님을 뵙고 참된 경을 얻어 저 유명의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들을 천도하려 하였소. 이제 만일 목숨을 잃는다면 그 임금을 애태워 죽이고 그 신하들을 저버리는 꼴이 아니겠소? 저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성 안에 있는 무수한 원혼들이 크게 실망하여 영영 다시 태어나지 못하게 되지 않겠소? 한바탕의 공덕이 모조리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되어 버리니, 이것이 어찌 깨끗할 수 있겠소?” 나무꾼이 그 말을 듣고 눈에서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장로여, 당신이 죽어도 겨우 이만한데 내가 죽으면 한층 더 애달프오. 나는 어릴 적에 아비를 여의고 홀어미와 단둘이 지내 왔으며, 가업이라곤 없어 오직 나무를 해다 팔아 생계를 이으오. 늙은 어미가 금년에 여든셋인데 나 하나만이 봉양하고 있소. 만에 하나 내가 목숨을 잃기라도 하면 누가 그이의 시신을 묻고 노후를 보내드리겠소? 괴롭구나 괴로워라! 원통하여 견딜 수가 없구나!” 장로가 그 말을 듣고 목을 놓아 크게 울며 말했다. “가련하도다, 가련하도다! 산사람도 오히려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거늘, 부질없이 빈승더러 경을 잘 외운다 하는구나! 임금을 섬기는 것과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모두 한가지 이치니라. 그대는 어버이의 은혜를 위함이요, 나는 임금의 은혜를 위함이로다.” 이는 바로 눈물 흐르는 눈으로 눈물 흐르는 눈을 바라보고, 애간장 끊기는 사람이 애간장 끊기는 사람을 배웅하는구나! 삼장이 몸소 곤경에 빠진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고, 각설하고 손행자는 풀 비탈 아래에서 작은 요괴를 물리치고 급히 길 곁으로 되돌아왔으나 스승은 보이지 않고 흰 말과 행낭만 남아 있었다. 그는 황급히 말을 끌고 짐을 지고 산머리를 향해 스승을 찾아 나섰다. 아! 바로 그러하였다. 재난을 겪는 강류는 오로지 재난만을 만나고, 요마를 항복받는 대성 또한 요마를 만났구나.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6회 목모조위정괴물(木母助威征怪物) · 금공시법멸요사(金公施法滅妖邪) 말하자면 손대성이 말을 끌고 짐을 메고 온 산머리를 두루 찾아다니며 스승님을 불렀는데, 홀연히 저팔계가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말했다. “형님, 무엇을 그리 외치시오?”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이 보이지 않는데, 너는 보지 못하였느냐?” 팔계가 말했다. “나는 본디 당승을 따라나 중 노릇이나 하던 사람이오. 그런데 그대가 또 나를 놀려대어 무슨 장군을 시킨단 말이오! 나는 목숨을 내걸고 그 요괴와 한바탕 싸우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돌아왔소. 스승님은 그대와 사승이 지키고 있었으면서 도리어 내게 묻는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나는 너를 탓하지 않는다. 네가 어찌하여 눈이 어두워져서 요괴를 놓아 보내 스승님을 잡아가게 하였는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그 요괴를 치러 가면서 사화상더러 스승님을 지키라 하였거늘, 이제는 사화상마저 보이지 않는구나.”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사승이 스승님을 모시고 어디 용변을 보러 가신 모양이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오정이 오는 것이 보였다. 행자가 물었다. “사승아, 스승님이 어디로 가셨느냐?” 사오정이 말했다. “그대들 두 사람이 눈이 어두워져 요괴를 놓아 보내 스승님을 잡아가게 하고, 이 늙은 사승은 그 요괴를 치러 간 것이니, 스승님은 스스로 말 위에 앉아 계셨소.” 행자가 노가 나서 펄쩍펄쩍 뛰며 말했다. “그놈의 계략에 걸려들었다! 그놈의 계략에 걸려들었다!” 사오정이 말했다. “무슨 계략에 걸려들었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는 매화 꽃잎을 쪼개 흩어 놓는 계책이라, 우리 형제들을 갈라놓고 그 틈을 타 스승님을 낚아채 간 것이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하늘이여!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팔계가 말했다. “울지 마시오! 한 번 울면 겁쟁이가 되오! 어차피 멀지 않으니 이 산 안에 있을 터이니, 우리가 찾으러 갑시다.” 세 사람은 달리 방도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산으로 들어가 찾아다녔는데, 이십 리쯤 되는 거리를 걸어가니 그 가파른 벼랑 아래에 동부 하나가 나타났다. 깎아지른 봉우리가 서로를 가리고 기이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기이한 꽃과 아름다운 풀이 향기를 풍기고 붉은 살구꽃과 푸른 복사꽃이 곱게 빛났다. 벼랑 앞의 늙은 나무는 서리 맞은 껍질에 빗물을 머금어 둘레가 마흔 아름이요, 문 밖의 푸른 소나무는 검푸른 빛이 하늘을 찔러 이천 자나 되었다. 쌍을 이룬 들학은 늘 굴 어귀에 날아와 맑은 바람 속에서 춤추고, 짝을 이룬 산새는 가지 끝에서 대낮에도 우짖었다. 빽빽한 누런 등넝쿨은 드리운 밧줄 같고 줄줄이 선 버드나무는 늘어뜨린 금실 같았다. 네모난 못에 물이 고이고 깊은 굴이 산을 등졌다. 네모난 못에 고인 물에는 아직 변하지 못한 가난한 비늘의 교룡이 숨었고, 산을 등진 깊은 굴에는 여러 해 사람을 잡아먹은 늙은 요괴가 살았다. 참으로 신선의 경지에 못지않았고 진실로 바람을 감추고 기운을 모은 보금자리였다. 행자는 이를 보고 두세 걸음에 문 앞으로 뛰어가 살펴보니, 그 돌문은 굳게 닫혀 있고 문 위에는 돌판 하나가 가로로 얹혀 있었으며, 돌판 위에는 큰 글자 여덟 자가 있으니 바로 은무산 절악연환동이었다. 행자가 말했다. “팔계야, 손을 쓰자! 이곳이 요괴의 거처이니 스승님은 틀림없이 그 집에 계실 것이다.” 그 멍청이는 기세를 믿고 사납게 굴며 쇠스랑을 들어 힘껏 찍어 내려, 그 돌문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내고는 외쳤다. “요괴야! 어서 우리 스승님을 내보내라. 그러지 않으면 쇠스랑으로 문을 찍어 무너뜨려 너희 일가족이 모조리 죽게 되리라!” 문을 지키던 소요괴가 급히 달려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 화가 났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무슨 화냐?” 소요괴가 말했다. “문 앞에서 누군가 문을 부수고 떠들며 스승님을 내놓으라 하옵니다!” 늙은 요괴가 크게 놀라 말했다. “누가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구나.” 선봉이 말했다. “겁내지 마시옵소서! 제가 나가 보겠나이다.” 그 소요괴는 앞문으로 달려가 그 부서진 구멍 사이로 머리를 기울여 밖을 내다보니,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자가 보였다. 곧 머리를 돌려 크게 외쳤다. “대왕이시여, 그를 두려워 마시옵소서! 이는 저팔계라 재주도 별로 없고 감히 무례를 부리지도 못하옵니다. 그가 만약 무례를 부린다면 문을 열고 그를 잡아들여 찜통에 보태면 그만이옵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저 털북숭이 얼굴에 번개신 같은 주둥이를 한 중이옵니다.” 팔계가 바깥에서 이 말을 듣고 말했다. “형님, 그놈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만 두려워하는구려. 스승님은 틀림없이 그 집에 계시오. 어서 앞으로 나서시오.” 행자가 꾸짖으며 말했다. “이 몹쓸 짐승아! 너의 손외공 할아버님이 여기 계신다! 내 스승님을 내보내면 네 목숨은 살려 주마!” 선봉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일이 잘못되었나이다! 손행자까지 찾아왔나이다!” 늙은 요괴가 원망하며 말했다. “모두 네가 꾸민 그 무슨 꽃잎 쪼개기란 것 때문이다. 화가 문 앞에 닥쳤으니 어찌 수습하겠느냐?” 선봉이 말했다. “대왕이시여, 마음을 놓으시옵소서. 우선 원망부터 거두시옵소서. 제가 기억하기에 손행자는 도량이 넓고 아량이 큰 원숭이 놈이라, 신통이 광대하기는 하나 남의 비위를 맞추기를 좋아하옵니다. 우리가 가짜 사람 머리 하나를 내어다 그를 한번 속여 보고, 좋은 말 몇 마디로 띄워 주며 그의 스승님은 우리가 잡아먹었다고만 하옵시다. 만약 그를 속여 돌려보낼 수 있다면 당승은 여전히 우리가 차지하여 즐기는 것이옵고, 속지 않거든 그때 가서 다시 방도를 찾으면 그만이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가짜 사람 머리는 어디서 구하겠느냐?” 선봉이 말했다. “제가 하나 만들어 보겠나이다.” 과연 훌륭한 요괴라, 순강철 도끼 한 자루를 가져다 버드나무 뿌리를 사람 머리 모양으로 찍어 내고, 그 위에 사람 피를 좀 뿜어 얼룩덜룩하게 만든 뒤, 요괴 하나를 시켜 옻칠한 쟁반에 받쳐 문 아래로 가져다 놓고 부르짖게 하였다. “대성 할아버님, 노여움을 거두시옵고 아뢰올 말씀을 들어 주시옵소서.” 손행자는 과연 비위 맞추기를 좋아하는지라, 대성 할아버님이라 부르는 소리를 듣자 곧 팔계를 말렸다. “우선 손을 쓰지 말고, 그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 쟁반을 든 소요괴가 말했다. “그대의 스승님은 우리 대왕께서 굴 안으로 낚아채 오셨사옵니다. 굴 안의 소요괴들이 시골뜨기처럼 천하고 어리석어 분별을 못 하고, 이놈은 삼키려 하고 저놈은 뜯으려 하여, 할퀴는 놈 할퀴고 물어뜯는 놈 물어뜯는 통에 그대의 스승님을 먹어 버리고 머리 하나만 남았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먹었다면 그만이니, 그 사람 머리를 내어 보아라. 내가 참인지 거짓인지 보겠다.” 그 소요괴는 문 구멍으로 그 머리를 내던졌고, 저팔계는 그것을 보고 곧 울며 말했다. “가련하구나! 저런 스승님이 들어가시더니 이런 스승님이 되어 나오셨구나!” 행자가 말했다. “멍청아, 우선 참인지 거짓인지나 알아보고 울어라!” 팔계가 말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군! 사람 머리에 참과 거짓이 있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는 가짜 사람 머리다.” 팔계가 말했다. “어떻게 가짜인 줄 아시오?” 행자가 말했다. “참사람 머리를 내던지면 툭 하고 소리가 나지 않지만, 가짜 사람 머리를 내던지면 목탁 소리처럼 울리는 법이다. 네가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던져서 너 들어 보아라.” 머리를 집어 들어 바위 위로 내리치니 쨍 하고 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화상이 말했다. “형님, 소리가 났소!” 행자가 말했다. “소리가 났으면 그것이 가짜란 뜻이니, 내가 그 본바탕을 드러내 보이마.” 급히 금고봉을 뽑아 들고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내리쳐 부숴 버렸다. 팔계가 보니 그것은 버드나무 뿌리였다. 멍청이는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으며 말했다. “이 털북숭이 놈의 무리들아! 너희가 내 스승님을 굴 속에 숨겨 두고는 버드나무 뿌리를 가져다 돼지 조상을 속이려 하다니, 설마 내 스승님이 버드나무 정령이 변한 것이란 말이냐!” 쟁반을 들었던 그 소요괴는 놀라 부들부들 떨며 달려가 아뢰었다. “어렵사옵니다! 어렵사옵니다! 어렵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어찌하여 어렵다는 말이 그리 많으냐?” 소요괴가 말했다. “저팔계와 사화상은 속아 넘어갔사옵니다. 그러나 손행자는 고동장사를 하는 놈이라 물건을 알아보는 눈이 있사옵니다! 물건을 압니다! 그놈이 그것이 가짜 사람 머리임을 알아차렸사옵니다. 이제 참사람 머리 하나를 구해 그에게 주면 아마 그는 가 버릴 것이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참사람 머리는 어찌 구하겠느냐? 우리 그 가죽 벗기는 정자 안에 다 먹지 못한 사람 머리가 있으니 하나를 골라 오너라.” 뭇 요괴가 곧 정자 안으로 가서 신선한 머리 하나를 골라, 머리 가죽을 깨끗이 뜯어 먹게 하여 미끈미끈하게 만든 뒤, 또 쟁반에 받쳐 내가며 불렀다. “대성 할아버님, 앞선 것은 진실로 가짜 머리였사옵니다. 이번 것이야말로 참으로 당 노야님의 머리이옵니다. 우리 대왕께서 집을 지키는 보물로 남겨 두셨던 것을 이제 특별히 바치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 머리를 또 문 구멍으로 내던지니 피가 뚝뚝 떨어지며 이리저리 굴렀다. 손행자는 그것이 참사람 머리임을 알아보고는 하는 수 없이 울었으며, 팔계와 사승도 함께 목을 놓아 크게 울었다. 팔계가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형님, 우선 울음을 그치시오. 날씨가 좋지 않으니 금세 냄새가 날까 두렵소. 내가 가져다가 산 기운이 남아 있을 때 묻고 나서 울겠소.” 행자가 말했다. “그 말이 옳다.” 그 멍청이는 더러운 것을 꺼리지 않고 그 머리를 품에 안은 채 산벼랑으로 뛰어 올라갔다. 양지바른 곳에서 바람을 막고 기운이 모이는 자리를 찾아 쇠스랑으로 구덩이 하나를 파고 머리를 묻은 뒤, 다시 흙을 쌓아 무덤을 만들고 나서야 사오정에게 말했다. “그대는 형님과 함께 울고 있어 주오. 나는 가서 무언가 공양할 것을 좀 찾아 오겠소.” 그는 곧 개울가로 가서 버드나무 큰가지 몇 개를 꺾고 개울돌 몇 덩이를 주워 무덤 앞으로 돌아와, 버드나무가지를 좌우에 꽂고 개울돌을 앞에 쌓아 두었다. 행자가 물었다. “이건 무슨 짓이냐?” 팔계가 말했다. “이 버드나무가지는 잠시 소나무와 잣나무를 대신하여 스승님의 무덤 위를 가려 드리는 것이오. 이 돌멩이는 잠시 다과를 대신하여 스승님께 공양하는 것이오.” 행자가 호통치며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사람이 이미 죽었거늘 돌멩이를 갖다 바친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산 사람의 정성을 드러내고 잠시 효도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만 장난을 그치고! 사승더러 여기 있으라 하자. 하나는 무덤을 지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짐과 말을 지키는 것이다. 나와 너는 가서 그놈의 동부를 부수고 요마를 잡아 몸을 만 조각으로 찢어 스승님의 원수를 갚고 오자.” 사화상이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큰형님 말씀이 지극히 옳소. 그대 둘은 마음을 쓰시오. 나는 이곳에서 지키고 있겠소.” 과연 훌륭한 팔계라, 곧 검은 비단 장삼을 벗어 던지고 몸에 붙는 속저고리를 단단히 동여맨 뒤 쇠스랑을 들어 행자를 따랐다. 두 사람은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며 사정을 따질 겨를도 없이 곧장 그 돌문을 부수고, 하늘을 뒤흔드는 함성을 지르며 외쳤다. “우리의 산 당승을 내놓아라!” 굴 안의 크고 작은 뭇 요괴는 하나하나가 넋이 날아가고 혼이 흩어져 모두 선봉의 잘못을 원망했다. 늙은 요괴가 선봉에게 물었다. “이 중놈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데 어찌 처리하면 좋겠느냐?” 선봉이 말했다. “옛사람의 말이 옳으니, ‘손을 고기 광주리에 넣었으면 비린내를 피할 수 없다’ 하였사옵니다. 한 번 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이미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옵니다. 이제 집안 병졸을 거느리고 그 중놈들을 치러 갑시다!” 늙은 요괴는 이 말을 듣고 달리 방도가 없어 참으로 명을 내려 외쳤다. “녀석들아, 저마다 한마음이 되어 날카로운 병기를 들고 나를 따라 출정하자!” 과연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굴 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 대성과 팔계는 급히 몇 걸음 물러나 산 아래 평평한 곳에 이르러 뭇 요괴를 막아 세우고 호통치며 말했다. “저놈들 가운데 이름난 우두머리가 누구냐? 내 스승님을 잡아간 요괴가 누구냐?” 그 뭇 요괴가 진영을 치고 비단 수놓은 꽃 깃발 하나를 펄럭였는데, 늙은 요괴가 쇠절구공이를 들고 소리에 응하여 크게 외쳤다. “이 몹쓸 중놈아,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나는 곧 남산대왕이라, 수백 년을 이곳에서 방탕하게 지내 왔노라. 너희 당승은 이미 내가 잡아 먹었거늘 네가 감히 어쩌겠느냐?” 행자가 꾸짖으며 말했다. “이 간 큰 털북숭이 놈아! 네가 나이가 얼마나 된다고 감히 남산 두 글자를 일컫느냐? 이노군은 천지를 개벽한 조상이시건만 오히려 태청의 오른쪽에 앉아 계시고, 부처 여래는 세상을 다스리는 존자시건만 오히려 대붕 아래에 앉아 계시며, 공성인은 유교의 존자시건만 또한 겨우 부자라 불릴 뿐이거늘, 이 몹쓸 짐승이 감히 무슨 남산대왕을 일컫고 수백 년을 방탕했다 하느냐! 달아나지 말라! 너의 외공 할아버님의 몽둥이 한 방을 받아 보아라!” 그 요정은 몸을 비켜 피하며 절구공이로 쇠몽둥이를 막아 내고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너는 얼굴 생김이 원숭이 비슷한 주제에 감히 많은 말로 나를 누르려 하는구나! 네게 무슨 수단이 있기에 내 문하에서 날뛰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이름 없는 몹쓸 짐승아! 이 늙은 손오공을 알지 못하는구나! 너는 거기 서서 간을 단단히 먹고 내 말을 들어 보아라. 본래 동승대신주에 살았고, 천지가 품어 준 세월이 몇만 가을이런가.” 화과산 머리에 신령한 돌알이 있어, 알이 깨어져 나의 뿌리와 싹이 되었느니라. 태어날 때부터 범속한 무리와는 달라, 성스러운 몸은 본래 해와 달의 짝이었느니라. 본성을 스스로 닦은 것이 예사롭지 않고,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여 큰 단두를 얻었느니라. 벼슬을 받아 대성이 되어 구름 부처에 살며, 세력을 믿고 사나운 짓을 하여 북두성과 겨루었느니라. 십만 신병도 나를 가까이하기 어렵고, 하늘 가득한 별자리도 거두어들이기 쉬웠느니라. 이름이 우주에 떨쳐 곳곳에서 알리고, 지혜가 천지를 꿰뚫어 두루두루 남았느니라. 이제 다행히 불교에 귀의하여 장로를 모시고 서역으로 향하느니라. 산을 만나면 길을 열어 막는 이 없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요괴가 근심하느니라. 숲 속에서 위엄을 떨쳐 호랑이와 표범을 사로잡고, 벼랑 앞에서 손을 뒤집어 비휴를 잡느니라. 동방에서 바른 과실을 얻어 서역으로 오거니, 어느 요사한 놈이 감히 고개를 내미느냐! 몹쓸 짐승이 스승을 상하게 하니 참으로 가증스러워, 이 순간에 그 목숨을 거두어 주겠노라!” 그 요괴는 이 말을 듣고 놀라면서도 분노하여, 이를 악물고 앞으로 뛰어들며 쇠절구공이를 휘둘러 행자를 내리쳤다. 행자는 가볍게 몽둥이로 받아 내며 그래도 그와 말을 주고받으려 하는데, 저팔계가 참지 못하고 쇠스랑을 휘둘러 그 요괴의 선봉을 마구 찍어 댔다. 선봉이 무리를 거느리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 한바탕이 산속 평평한 곳에서 벌어진 혼전이니, 참으로 통쾌한 싸움이었다. 동토의 큰 나라에서 온 중이요, 서방 극락으로 참경을 취하러 가는 이로다. 남산의 큰 표범은 바람과 안개를 뿜고, 길을 막아 깊은 산에서 홀로 재주를 뽐내누나. 교묘한 계책을 부리고 영리한 재주를 부려, 무지하게도 대당의 승을 잘못 잡았도다. 행자를 만나니 신통이 광대하고, 팔계를 또 만나니 명성이 높구나. 뭇 요괴가 산의 평평한 곳에서 뒤섞여 싸우니, 흙먼지가 자욱이 날려 하늘이 맑지 않구나. 저 진영에서는 소요괴들이 고함치며 창과 칼을 마구 들어 올리고, 이편에서는 신승이 호통치며 쇠스랑과 몽둥이가 함께 세차게 일어나는구나. 대성은 영웅이라 대적할 자 없고, 오능은 기운이 세차 기쁜 힘이 솟는구나. 남산의 늙은 요괴와 그 부하 선봉이 모두 당승의 고기 한 점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버리게 되었구나. 손대성이 그 소요괴들이 용맹하여 거듭 쳐도 물러가지 않는 것을 보고, 곧 분신법을 써서 털을 한 웅큼 뽑아 입에 넣어 씹은 뒤 내뿜으며 “변하여라!” 하고 외쳤다. 털들이 모두 제 본래 모습으로 변하여 저마다 금고봉 하나씩을 휘두르고 앞쪽에서부터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 백에서 이백쯤 되는 소요괴들은 앞을 돌보면 뒤를 돌볼 수 없고 왼쪽을 가리면 오른쪽을 가릴 수 없어, 하나하나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패주하여 굴로 돌아갔다. 이 행자와 팔계는 진영 안에서 바깥으로 치며 나왔다. 가련하다, 분별 없는 그 요정들은 쇠스랑에 걸리면 아홉 구멍에서 피가 솟고 몽둥이에 휘둘리면 뼈와 살이 진흙이 되었다! 남산대왕은 겁을 먹고 바람을 일으키며 안개를 피워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쳐 돌아갔다. 그 선봉은 변화할 줄 몰라 행자의 몽둥이 한 방에 일찌감치 쓰러졌고, 본바탕을 드러내니 바로 철배창랑괴였다. 팔계가 앞으로 나서서 발을 잡아 뒤집어 놓고 살펴보며 말했다. “이놈은 어릴 적부터 남의 집 돼지 새끼며 양 새끼를 얼마나 훔쳐 먹었는지 모르겠구나!” 행자가 몸을 한 번 떨쳐 털을 거두어 올리며 말했다. “멍청아! 늦춰서는 안 된다! 어서 늙은 요괴를 뒤쫓아 스승님의 목숨을 찾으러 가자!” 팔계가 고개를 돌려 보니 그 작은 행자들은 보이지 않아 말했다. “형님의 법상이 다 사라졌소!” 행자가 말했다. “내가 이미 거두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묘하구나! 묘하구나!” 두 사람은 기뻐하며 승리를 거두어 돌아왔다. 각설하고 그 늙은 요괴는 목숨을 건져 굴로 돌아와, 소요괴들에게 돌덩이를 옮기고 흙을 지게 하여 앞문을 막아 버렸다. 목숨을 건진 그 소요괴들은 하나하나가 부들부들 떨며 문을 모두 막아 버리고는 다시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 이 행자가 팔계를 이끌고 문 앞까지 뒤쫓아 가 고함쳤으나 안에서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팔계가 쇠스랑으로 찍어 보았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행자는 이를 알아차리고 말했다. “팔계야, 헛된 힘 쓰지 마라. 그놈들이 문을 이미 막아 버렸다.” 팔계가 말했다. “문을 막았으면 스승님의 원수를 어찌 갚소?” 행자가 말했다. “우선 돌아가 무덤 앞에 있는 사승을 보러 가자.” 두 사람이 다시 그곳에 이르러 보니 사오정이 여전히 울고 있었다. 팔계는 더욱 서글퍼져 쇠스랑을 내던지고 무덤 위에 엎드려 손으로 흙을 두드리며 울어 말했다. “운명이 기구하신 스승님이여! 먼 고향에서 오신 스승님이여! 어느 곳에서 다시 그대를 뵈올꼬!” 행자가 말했다. “동생아, 우선 슬퍼하지 마라. 이 요정이 앞문을 막았으니 틀림없이 뒤문이 있어 드나들 터이다. 너희 둘은 다만 이곳에 있고 내가 다시 가서 찾아보마.” 팔계가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형님, 조심하시오! 형님까지 낚아채 가시면 우리는 울기도 어려우니, 스승님을 부르며 한 번 울고 형님을 부르며 한 번 울어 엉망이 되고 말겠소.” 행자가 말했다. “일 없느니라! 내게는 내 수단이 있느니라!” 과연 훌륭한 대성이라, 몽둥이를 거두고 치마를 단단히 동여맨 뒤 걸음을 옮겨 산비탈을 돌아가는데, 홀연히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그것은 개울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로 위쪽 물머리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또 개울 건너편에 문 하나가 보였는데, 문 왼쪽에 물이 빠져나가는 숨은 도랑 하나가 있어 그 도랑에서 붉은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말할 것도 없다! 저것이 바로 뒤문이로구나. 만약 본래 얼굴로 간다면 소요괴가 문을 열고 보다가 알아볼까 두려우니, 내가 물뱀으로 변해 지나가자. 잠깐! 물뱀으로 변하면 스승님의 혼령이 아시고, 출가한 사람이 뱀으로 변하여 몸이 길게 늘어진다 꾸짖으실까 두렵구나. 그럼 작은 게로 변해 지나가자. 그래도 좋지 않으니, 스승님이 출가한 사람의 발이 많다 꾸짖으실까 두렵구나.” 곧 물쥐 한 마리가 되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쌔게 지나가서, 물이 나오는 그 도랑을 따라 안쪽 뜰로 파고들어갔다. 머리를 내밀어 살펴보니 양지바른 곳에 소요괴 몇 놈이 사람고기 포를 꺼내어 한 조각씩 가지런히 펴서 말리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내 아들들 같으니라! 저것은 아마 스승님의 살이라, 다 먹지 못하여 날이 흐릴 것에 대비해 말려 두는 모양이로구나. 내가 본바탕을 드러내어 앞으로 달려가 몽둥이 한 방으로 쳐 죽이면 용맹은 있으되 꾀가 없는 듯 보일 터이니, 우선 다시 변신하여 들어가 그 늙은 요괴를 찾아 사정이 어떠한지 보자.” 도랑에서 뛰어나와 몸을 한 번 흔들어 또 변신하여, 날개 달린 개미 한 마리가 되었다. 그 모습 실로 이러하였다. 힘은 미약하고 몸은 작아 현구라 일컫거니와, 오래도록 숨어 닦아 날개가 돋아 날 수 있도다. 한가로이 다리 곁을 건너며 진세를 벌이고, 기쁠 때 침상 아래로 와 신선의 기틀을 겨루누나. 비가 올 줄 잘 알아 늘 굴을 막고, 먼지를 쌓아 올린 것이 많아 마침내 재가 되누나. 묘하고 가벼워 시원하고 날쌔니, 몇 번이나 사립문을 넘는 줄도 모르는구나. 그는 날개를 펴 소리도 그림자도 없이 곧장 중당으로 날아들어갔는데, 그 늙은 요괴가 근심스럽고 답답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요괴 하나가 뒤에서 뛰어나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만천의 기쁨이옵니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무슨 기쁨이냐?” 그 요괴가 말했다. “소인이 방금 뒤문 밖 개울머리에서 살펴보는데, 홀연히 누군가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렸사옵니다. 곧 봉우리 머리로 기어 올라가 바라보니 저팔계와 손행자와 사화상이 그곳에서 무덤에 절하며 통곡하고 있었사옵니다. 아마 저 사람 머리를 당승의 머리라 여겨 묻고는 무덤을 만들어 울고 있는 모양이옵니다.” 행자가 어둠 속에서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저런 말이 나왔으니 내 스승님은 아직 그 어딘가에 숨겨져 계시고 아직 잡아먹히지 않으셨구나. 내가 다시 찾아보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떤지 보고 나서 그와 이야기하리라.” 과연 훌륭한 대성이라, 중당을 날아다니며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곁에 작은 문 하나가 굳게 닫혀 있는 것이 보였다. 곧 문틈으로 파고들어가 보니 그곳은 큰 동산이었고 희미하게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장 깊은 곳으로 날아들어가니 큰 나무 한 떨기가 보이고 그 나무 아래에 두 사람이 묶여 있었으니, 한 사람이 바로 당승이었다. 행자는 이를 보고 마음이 근질거려 견디지 못하고 본바탕을 드러내어 앞으로 다가서서 “스승님.” 하고 불렀다. 그 장로는 알아보고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오공아, 네가 왔느냐? 어서 나를 좀 구하여라! 오공아! 오공아!”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자꾸 이름만 부르지 마시옵소서. 앞에 사람이 있어 소문이 새어 나갈까 두렵나이다. 스승님께서 목숨이 살아 계시니 제가 구해 드릴 수 있사옵니다. 그 요괴는 스승님을 이미 잡아먹었다고만 하고 가짜 사람 머리를 가져다 저를 속였기에, 우리가 그놈과 한스럽고 괴롭게 맞서 싸우고 있사옵니다. 스승님, 마음 놓으시옵소서. 우선 조금만 더 견디시옵소서. 제가 그 요정을 쓰러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구해 드릴 수 있사옵니다.” 대성이 주문 한 소리를 외우고는 몸을 흔들어 다시 개미로 변해 중당으로 들어가 대들보 위에 딱 붙어 앉았다. 아직 목숨을 잃지 않은 소요괴들이 빽빽이 모여 떠들썩하게 떠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가운데서 소요괴 하나가 불쑥 뛰어나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놈들은 문이 막혀 공격해도 열리지 않자 단념하고, 당승을 버리고 가짜 사람 머리로 무덤을 만들었사옵니다. 오늘 하루 울고 내일 또 하루 울며 모레 사흘째가 되면 아마 돌아갈 것이옵니다. 저놈들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승을 꺼내어 잘게 썰고 다져서, 향신료를 듬뿍 넣어 달여 향기로운 것을 모두 함께 한 점씩 먹고, 연년장수도 하자는 것이옵니다.” 또 소요괴 하나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런 말 마시오! 그래도 쪄 먹는 것이 맛이 있소!” 또 하나가 말했다. “삶아 먹으면 땔감도 절약되오.” 또 하나가 말했다. “그는 본래 희한한 물건이니, 소금을 좀 쳐서 절여 두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소.” 행자가 그 대들보 위에서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말했다. “내 스승님이 너희와 무슨 독한 원한이 있기에 이토록 계산을 하여 잡아먹으려 하느냐!” 곧 털을 한 웅큼 뽑아 입에서 잘게 씹은 뒤 가볍게 불어 내며 몰래 주문을 외워, 모조리 졸음벌레로 변하게 하여 뭇 요괴의 얼굴을 향해 날려 보냈다. 놈들이 하나씩 코 속으로 파고드니, 소요괴들은 점차 졸기 시작하여 오래지 않아 모두 쓰러져 잠들었다. 오직 그 늙은 요괴만은 잠이 들지 않고 두 손으로 머리를 비비고 얼굴을 문지르며, 줄곧 재채기를 하고 코를 쥐어 짜고 있었다. 행자가 말했다. “혹시 그놈이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그놈에게 쌍촛불을 하나 주자!” 또 털 한 가닥을 뽑아 본을 떠서 만들어 그의 얼굴로 날려 보내니 콧구멍 속으로 파고들었다. 벌레 두 마리가 하나는 왼쪽으로 들어가고 하나는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그 늙은 요괴는 몸을 일으켜 허리를 쭉 펴고 하품을 두어 번 하더니, 골아떨어져 그도 쓰러져 잠들었다. 행자는 속으로 기뻐하며 비로소 뛰어내려와 본바탕을 드러냈다. 귀에서 몽둥이를 꺼내어 한 번 흔들자 오리알만 한 굵기가 되었는데,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곁문을 부수고 뒷동산으로 달려가 크게 불렀다. “스승님!” 장로가 말했다. “제자야, 어서 밧줄을 좀 풀어다오, 묶여서 몸이 망가졌구나!”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서두르지 마시옵소서. 제가 요정을 쳐 죽이고 나서 다시 풀어 드리겠나이다.” 급히 몸을 돌려 중당으로 달려갔다. 막 몽둥이를 들어 치려다가 도로 손을 멈추며 말했다. “아니 될 일이다! 스승님을 풀어 드리고 나서 치자.” 다시 동산으로 돌아와서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쳐 죽이고 나서 구하자.” 이러하기를 두세 차례 하고서야 비로소 펄쩍펄쩍 뛰며 동산으로 들어갔다. 장로는 이를 보고 슬픔 속에서 기쁨이 솟아 말했다. “원숭이야, 아마 내가 목숨을 잃지 않은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그래서 저토록 춤을 추는 것이냐?” 행자가 비로소 앞으로 다가서서 밧줄을 풀고 스승님의 팔을 잡아 이끄는데, 맞은편 나무에 묶인 사람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노야님,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제 목숨도 살려 주시옵소서!” 장로가 걸음을 멈추고 불렀다. “오공아, 저 사람도 좀 풀어 주어라.” 행자가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옵니까?” 장로가 말했다. “그는 나보다 하루 먼저 잡혀 들어왔느니라. 그는 나무꾼인데 늙은 어머니가 있어 몹시 그리워하더구나. 도리어 효를 다하는 사람이니, 아예 그까지 함께 구하여 주어라.” 행자가 그 말대로 밧줄을 풀어 함께 뒤문으로 데리고 나와 돌벼랑으로 기어 올라가 가파른 개울을 건넜다. 장로가 고마워하며 말했다. “어진 제자야, 너 덕분에 그와 내 목숨을 건졌구나! 오능과 오정은 다 어디 있느냐?” 행자가 말했다. “그 둘은 저기서 스승님을 두고 울고 있사옵니다. 스승님이 한번 불러 보시옵소서.” 장로는 참으로 목청을 높여 크게 불렀다. “팔계야! 팔계야!” 그 멍청이는 정신이 아득하도록 울고 있다가 콧물과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사화상, 스승님이 집으로 돌아오셔서 혼령을 나타내시는구려! 저기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시오?” 행자가 앞으로 나서며 한마디 호통쳤다. “이 멍청한 놈아! 무슨 혼령을 나타내신단 말이냐? 이분이 스승님이 아니시고 누구시냐?” 그 사오정이 고개를 들어 보고는 급히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스승님,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으셨나이까! 형님이 어찌하여 스승님을 구해 오셨나이까?” 행자가 지난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팔계는 이 말을 듣고 이를 갈며 분을 참지 못하고 쇠스랑을 들어 그 무덤을 마구 찍어 무너뜨리고, 그 사람 머리를 파내어 마구 찍어 엉망으로 부숴 버렸다. 당승이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그를 찍느냐?”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그가 어느 집안의 죽은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나더러 그를 향해 울게 하였단 말이오!” 장로가 말했다. “그가 내 목숨을 구해 주었느니라. 너희 형제들이 그들의 문을 쳐부수고 나를 내놓으라 떠들었으니, 아마 그를 가져다 대충 넘기려 한 모양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나를 죽였으리라. 그래도 그를 도로 묻어 주어라. 우리 출가한 사람들의 뜻을 보이는 것이다.” 그 멍청이는 장로의 이 말을 듣고 곧 엉망이 된 살과 뼈 한 꾸러미를 묻고 무덤을 다시 쌓아 올렸다. 행자는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잠시 앉아 계시옵소서. 제가 가서 요괴를 소탕하고 오겠나이다.” 곧 또 돌벼랑으로 뛰어 내려가 개울을 건너 굴로 들어가, 당승과 나무꾼을 묶었던 밧줄을 챙겨 중당으로 가져갔다. 그 늙은 요괴는 아직도 잠들어 있었으므로 곧 그를 사지를 한데 묶어 넘어뜨리고, 금고봉으로 꿰어 어깨에 메고는 곧장 뒤문으로 나왔다. 저팔계가 멀리서 이를 보고 말했다. “형님은 머리를 메는 일을 참 잘하시오! 하나 더 찾아 양쪽에 짊어지는 것이 좋지 않겠소?” 행자가 앞에 이르러 내려놓자 팔계가 쇠스랑을 들어 곧 찍으려 했다. 행자가 말했다. “잠깐! 굴 안에 아직 잡지 않은 요괴들이 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있다면 저를 데리고 들어가 그놈들을 치게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쳐 죽이자니 또 품이 드니, 땔감이나 좀 찾아 그놈들의 뿌리를 끊어 버리는 것만 못하오.” 그 나무꾼이 이 말을 듣고 곧 팔계를 이끌고 동쪽 오목한 곳으로 가서 부러진 대나무 끝과 시든 솔잎, 속 빈 버드나무, 뿌리 끊긴 등넝쿨, 누런 쑥, 늙은 물억새, 갈대, 마른 뽕나무를 얼마간 주워다 뒤문 안으로 들여놓았다. 행자가 불을 붙이고 팔계가 두 귀로 바람을 일으켰다. 그 대성이 몸을 뛰어 올라 한 번 털자 졸음벌레로 변했던 털을 거두어들였다. 그 소요괴들이 깨어나 보니 불과 연기가 한꺼번에 타오르고 있었다. 가련하다! 절반이라도 목숨을 건질 놈은 없었다. 동부까지 모조리 타 버리고 나서야 돌아와 스승님을 뵈었다. 스승님은 늙은 요괴가 막 깨어나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불렀다. “제자야, 요정이 깨어났구나.” 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쇠스랑으로 한 번 찍어 그 늙은 요괴를 찍어 죽이니, 본바탕을 드러냈는데 본래 쑥잎 무늬에 꽃무늬 가죽을 한 표자정이었다. 행자가 말했다. “꽃무늬 가죽이 호랑이를 잡아먹더니 이제는 또 사람으로 변할 줄 아는구나. 이번에 쳐 죽여야 비로소 뒤에 남을 근심이 끊어졌느니라!” 장로는 고마움을 말로 다하지 못하고 안장에 올라 말에 탔다. 그 나무꾼이 말했다. “노야님, 서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이 곧 소인의 집이옵니다. 청하건대 노야님께서 소인의 집으로 가셔서 저희 어머니를 만나 뵈옵시고, 목숨을 살려 주신 은혜에 절하여 감사드리게 하옵소서. 그런 뒤에 노야님을 길에 올려 보내겠나이다.” 장로가 기꺼이 받아들여 마침내 말을 타지 않고 나무꾼과 함께 사부제자가 동행하여 서남쪽으로 구불구불 나아갔는데, 얼마 가지 않아 과연 보이는 것이 있었다. 돌길에는 이끼가 겹겹이 덮였고, 사립문에는 등꽃이 덩굴로 얽혔구나. 사방의 산빛이 서로 이어지고, 온 숲의 새들이 떠들썩하게 우짖누나. 빽빽한 솔과 대나무가 푸름을 나누고, 가지가지 기이한 꽃과 풀이 어우러졌구나. 땅이 외지고 구름이 깊은 곳에, 울타리와 초가집 한 채가 있구나. 멀리 바라보니 늙은 할멈 하나가 사립문에 기대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들아 아들아 하고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이 나무꾼은 그것이 자기 어머니임을 보고 장로를 내버려 둔 채 급히 먼저 사립문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불렀다. “어머니! 아들이 왔나이다!” 그 늙은 할멈이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얘야, 네가 이 며칠 동안 집에 오지 않기에 나는 산주가 너를 잡아다 목숨을 해쳤거니 하고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네가 이미 해를 입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이제야 오느냐? 너의 노끈과 지게와 도끼는 다 어디 있느냐?” 나무꾼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어머니, 아들은 산주에게 잡혀가 나무에 묶였사옵고, 참으로 목숨을 건지기 어려웠사옵니다. 다행히 이 어르신들 덕분이옵니다! 이 어르신은 동토 당나라에서 서천으로 경을 취하러 가시는 나한이시옵니다. 그 어르신께서도 도리어 산주에게 잡혀 나무에 묶이셨사옵고, 그분의 세 제자 어르신께서 신통이 광대하시어 산주를 단번에 쳐 죽이셨사옵니다. 그런데 그놈은 쑥잎 무늬에 꽃무늬 가죽을 한 표자정이었사옵니다. 뭇 소요괴는 모조리 불에 타 죽었사옵고, 그 어르신을 풀어 구해 내시어 아이까지 함께 구해 주셨사옵니다. 이는 참으로 하늘처럼 높고 땅처럼 두터운 은혜이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아들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옵니다. 이제 산이 태평해졌사옵고, 아들이 밤을 새워 걸어 다녀도 탈이 없사옵니다.” 그 늙은 할멈은 이 말을 듣고 한 걸음마다 한 번씩 절하며 장로 사부제자를 모셔 들어가, 모두 사립문 안 초가집에 앉았다. 어미와 아들이 둘이 머리를 조아리며 고마움을 다 말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채식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했다. 팔계가 말했다. “나무꾼 형님, 내가 보기에 그대 댁도 살림이 넉넉지 못하니, 그저 한 끼 대충 차려 주시오. 애써 크게 차리려 마시오.” 나무꾼이 말했다. “노야님께 숨길 것 없이 사뢰옵건대, 이 산간은 참으로 보잘것없어 향버섯이며 표고버섯, 천초며 향신료 같은 것은 없사옵니다. 다만 몇 가지 산나물을 올려 노야님을 받들 뿐이옵니다. 잠시 제 마음을 표하는 것이옵니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소란스럽게 굴지 말고 좀 서두르시오. 우리 배가 고프단 말이오.” 나무꾼이 말했다. “곧 나옵니다! 곧 나옵니다!” 과연 오래지 않아 탁자와 걸상을 닦아 차려 올리니, 과연 산나물 몇 접시였다. 그 모습을 보니 이러하였다. 연하게 데친 원추리꽃이요, 새콤하게 절인 흰 북정이로다. 물에 뜬 장미와 쇠비름이요, 강가의 냉이와 기러기 창자 같은 나물이로다. 제비가 오지 않아 향기롭고 연하며, 움튼 싹은 주먹만큼 작고 아삭하면서도 푸르구나. 푹 삶은 마람두와 희게 데친 개발자국이로다. 고양이 귀와 들쑥이요, 푸석하게 삶은 명아주도 먹을 만하며, 가위고사리와 우당나물, 거꾸로 담근 우렁이와 비로 쓸 냉이로다. 잘게 부순 냉이와 상추냉이, 몇 가지 푸른 향기에 미끈하고 부드럽구나. 기름에 볶은 오영화와 마름줄기는 자랑할 만하고, 부들뿌리 나물과 줄나물까지, 물 가까이서 나는 네 가지가 맑고 고와라. 보리나물은 곱고도 아름다우며, 해진 옷은 입지 않으니 쓴 삼대 아래 울타리 시렁이로다. 참새 홑이불과 원숭이 발자국, 기름에 지글지글 부쳐 내니 맛이 좋구나. 비스듬한 쑥과 푸른 쑥과 어미를 안은 쑥, 등에 나방이 판교교 위로 날아오르누나. 양의 귀머리와 구기자 순을, 기름 없이 푸른 잎을 더하였구나. 몇 가지 산나물로 한 끼 밥을 차리니, 나무꾼의 정성이 갚음이로다. 사부제자는 배불리 한 끼를 먹고 길을 떠날 채비를 했다. 그 나무꾼은 오래 붙잡아 두지 못하고 어머니를 밖으로 모셔 나와 거듭 절하며 거듭 감사드렸다. 나무꾼은 다만 머리를 조아리다가 대추나무 몽둥이 한 자루를 챙겨 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문 밖까지 배웅하러 나왔다. 사오정이 말을 끌고 팔계가 짐을 메며 행자가 좌우를 바짝 따르는데, 장로가 말 위에서 손을 모아 읍하며 말했다. “나무꾼 형님, 수고스럽지만 먼저 길을 인도해 주시오. 큰길에 이르면 작별하겠소.” 모두 함께 언덕을 오르고 비탈을 내려가며 개울을 돌고 고개를 찾아 나아갔다. 장로가 말 위에서 생각하며 말했다. “제자들아! 임금을 하직하고 서역으로 온 이래, 아득하고도 아득하여 가는 길이 멀기만 하구나. 물물산산에서 재난을 벗지 못하고, 요요괴괴한 놈들 틈에서 목숨을 지키기 어렵구나. 마음마음은 오직 삼장을 얻으려 함이요, 생각생각은 여전히 구소에 오르려 함이로다. 바쁘고 고단한 이 걸음이 어느 날에나 끝이 날꼬, 언제야 행이 다하여 당나라로 돌아갈 수 있으랴!” 나무꾼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노야님, 근심을 거두시옵소서. 이 큰길로 서쪽을 향해 천 리가 못 되면 바로 천축국 극락의 고향이옵니다.” 장로는 이 말을 듣고 몸을 돌려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큰길이거든 나무꾼 형님은 댁으로 돌아가시고, 노부인께 내 안부를 많이 전해 주시오. 아까 진지한 공양으로 두텁게 폐를 끼쳤는데, 가난한 중이 달리 갚을 것이 없소. 다만 아침저녁으로 경을 외워 그대 모자가 평안하고 백 년을 장수하시길 빌겠소.” 그 나무꾼은 연신 예를 갖추어 작별하고 본디 길로 돌아갔으며, 사부제자는 마침내 줄곧 서쪽을 향해 나아갔다. 과연 그러하였다. 요괴를 항복받고 원한을 풀어 고액에서 벗어났으니, 은혜를 입고 길에 올라 마음을 다해 가는구나. 결국 며칠을 더 가야 서천에 이를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7회 봉선군모천지우(鳳仙郡冒天止雨) · 손대성권선시림(孫大聖勸善施霖) 큰 도는 그윽하고 깊어 그 소식을 어찌 헤아리랴, 일러 버리면 귀신도 놀라느니라. 우주를 품어 감추고 현묘한 빛을 갈라 놓으니, 참된 즐거움은 세상에 견줄 것이 없도다. 영취봉 앞에서 보주를 집어 내니, 다섯 가지 고운 빛이 밝게 비치누나. 건곤 위아래의 뭇 생명을 두루 비추니, 깨달은 이의 수명은 산과 바다와 같으리라. 각설하고 당삼장 사부와 제자 넷은 나무꾼과 작별하고 은무산에서 내려와 큰길로 나아갔다. 며칠을 걸어가는데 문득 한 성곽이 가까이 다가왔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저 앞의 성곽이 보이느냐, 혹 천축국이 아니겠느냐?” 행자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여래께서 계신 곳은 극락이라 일컫지만 성곽은 없고, 다만 큰 산 하나가 있어 그 산중에 누대와 전각이 있으며 이름하여 영산 대뇌음사라 하오. 천축국에 이른다 하여도 그것이 여래께서 계신 곳은 아니니, 천축국이 영산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아직 알 수 없소. 저 성은 아마 천축국의 바깥 고을이니, 앞으로 가야 분명히 알게 될 것이오.” 이윽고 성 밖에 이르러 삼장이 말에서 내려 세 겹의 문 안으로 들어서니, 백성의 살림은 황량하고 거리는 쓸쓸하였다. 또 저자 어귀에 이르러 보니 푸른 옷을 입은 자들이 좌우로 줄지어 늘어서 있고, 관대를 갖춘 몇 사람이 처마 아래 서 있었다. 그들 네 사람이 거리를 따라 걸어가는데, 그 사람들은 조금도 물러서서 비켜 주지 않았다. 저팔계는 촌스럽고 어리석어서 긴 주둥이를 쑥 내밀며 소리쳤다. “길을 비켜라! 길을 비켜라!” 그 사람들이 홀연 고개를 들어 그 몰골을 보더니, 하나하나 뼈가 풀리고 힘줄이 저려 비틀비틀 넘어지며 모두 말했다. “요괴다! 요괴가 왔다!” 처마 아래 관대를 한 자들이 놀라 벌벌 떨며 허리를 굽히고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셨나이까?” 삼장은 그들이 화를 불러올까 염려하여 몸소 앞에 나서서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 황제의 명을 받자와 천축국 대뇌음사의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자이오. 보방을 지나다가 하나는 지명을 알지 못하고 둘은 아직 인가에 들지 못한 채 성안으로 들어왔으니, 피하여 물러서는 예를 크게 잃었사오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 관인이 그제야 예를 갖추며 말했다. “이곳은 천축국의 바깥 고을이요 지명은 봉선군이올시다. 해마다 가뭄이 들어 군후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 방문을 붙이고 법사를 널리 구하여 기우제를 지내어 백성을 구하게 하신 것이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대들의 방문은 어디 있소?” 여러 관원이 말했다. “방문은 여기 있사오나, 방금 처마를 쓸고 닦은 참이라 아직 걸지 못하였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가져오시오, 내 살펴보겠소.” 여러 관원이 즉시 방문을 펼쳐 처마 아래 걸어 두었다. 행자네 넷이 앞으로 나아가 함께 보니, 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천축국 봉선군 군후 상관은 이에 밝은 스승을 초빙하고 큰 법사를 구하는 방문을 내노라. 생각하건대 우리 고을의 땅은 넓고 넉넉하며 군사와 백성이 풍족하였으나, 해마다 가뭄이 극심하고 거듭된 해마다 메마른 흉년이 들어, 백성의 밭은 묵어 가고 군사의 땅은 척박해졌으며, 하천은 얕아지고 도랑은 텅 비었노라. 우물에는 물이 없고 샘 밑에는 샘물조차 없도다. 부유한 집은 간신히 목숨을 이어 가건마는, 가난한 백성은 살아갈 길이 막막하도다. 한 말의 곡식 값은 백 금이요, 한 묶음의 땔나무 값은 다섯 냥이로다. 열 살 난 딸은 쌀 서 되와 바뀌고, 다섯 살 난 아들은 남을 따라 팔려 가노라. 성안에서는 법을 두려워하여 옷을 전당 잡히고 물건을 저당 잡혀 겨우 목숨을 보전하고, 시골에서는 공법을 속이며 남을 때려 잡아먹고 목숨을 부지하노라. 이에 방문을 내어 온 사방의 어진 이들을 우러러 바라노니, 비를 빌어 백성을 구해 주시면 그 은혜를 무겁게 갚으리이다. 기꺼이 천 금을 받들어 사례하겠사오니, 결코 헛된 말이 아니로다. 이에 방문을 내는 바이니라.” 행자가 다 보고 여러 관원에게 말했다. “군후 상관이란 무엇이오?” 여러 관원이 말했다. “상관은 성씨올시다, 바로 우리 군후의 성이 그러한 줄 아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성은 참으로 드물구료.” 팔계가 말했다. “형님은 글을 배우지 못하셨소? 백가성 뒤에 상관과 구양이 함께 나오는 구절이 있사옵니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들아,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어라. 누가 기우를 할 줄 아는고? 그를 위하여 단비 한바탕을 빌어 백성의 고통을 건져 낸다면 이것이야말로 온갖 선행이니라. 만일 할 줄 모른다면 곧 떠나서, 길 가는 일을 그르치지 말라.” 행자가 말했다. “기우가 무슨 어려운 일이오! 내 늙은 손오공은 강을 뒤집고 바다를 휘저으며, 북두를 바꾸고 별을 옮기며, 하늘을 차고 우물을 희롱하며, 안개를 토하고 구름을 뿜으며, 산을 메고 달을 쫓으며, 비를 부르고 바람을 부르나니, 그 가운데 어느 것인들 어린 시절 장난으로 하던 일이 아니겠소! 무엇이 드물다고 하느냐!” 여러 관원이 그 말을 듣고 두 사람을 급히 군중으로 보내어 알리게 하였다. “영감님, 만 번의 큰 기쁨이 이르렀나이다!” 그 군후는 마침 향을 사르며 묵묵히 빌고 있다가 기쁨이 이르렀다는 보고 소리를 듣고 곧 물었다. “무슨 기쁨이냐?” 그 관원이 말했다. “오늘 방문을 받아 막 저자 어귀에 이르러 걸어 두었는데, 곧 중 넷이 나타나 스스로 동토 대당에서 천축국 대뇌음사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사이라 일컫고, 방을 보자마자 능히 단비를 빌 수 있다고 말하여 특별히 알려 드리러 왔나이다.” 그 군후는 즉시 옷을 여미고 걸어서, 가마와 말도 쓰지 않은 채 곧장 저자 어귀에 이르러 정중히 청했다. 홀연 누군가 달려와 알렸다. “군후 영감님께서 오셨나이다.” 사람들이 비켜서는데, 그 군후는 당승을 보자 그 제자들의 추하고 흉악한 모습도 두려워하지 않고 저잣거리 한복판에 몸을 던져 절하며 말했다. “하관은 봉선군 군후 상관씨올시다, 목욕재계하고 향을 사르며 스승님을 청해 모셔 와 기우하여 백성을 구하고자 하나이다. 부디 스승님께서는 크게 자비를 베푸시어 신통한 공력을 펴시어 건져 주시옵소서!” 삼장이 답례하며 말했다. “이곳은 이야기할 자리가 못 되오. 빈승이 저 사관에 이른 뒤라야 일을 행하기가 좋겠소.” 군후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작은 관아로 함께 가시옵소서, 깨끗한 곳이 마련되어 있사옵니다.” 사부와 제자들은 이에 말을 끌고 짐을 메고 관부로 가서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었다. 군후가 즉시 차를 내오고 채식을 차리라 명하였다. 잠시 뒤 공양이 들어왔는데, 저팔계는 굶주린 호랑이처럼 마음껏 게걸스럽게 먹어 대니, 쟁반을 든 사람들이 놀라 간담이 서늘하여 이리저리 뛰며 국을 붓고 밥을 더하기가 마치 주마등 같아서, 겨우 대어 올린 끝에야 배가 터지도록 먹고서야 그만두었다. 공양을 마치고 당승이 공양에 사례하고 나서 물었다. “군후 어르신, 귀하신 고을은 가뭄이 언제부터였소?” 군후가 말했다. “누추한 내 고을은 큰 나라 천축국이요, 봉선이란 바깥 고을을 내가 다스리나이다. 세 해를 줄곧 메마른 흉년을 만나, 풀씨조차 돋지 않고 오곡이 끊겼도다. 큰집 작은집 장사가 어렵고,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이 모두 우노라. 열에 둘은 굶어 죽고 남은 하나는 바람 앞의 촛불 같도다. 하관이 방문을 붙여 널리 어진 이를 구하더니, 다행히 참된 스승을 우리 고을에서 만났나이다. 만약 한 치의 비라도 내려 백성을 건져 주신다면, 기꺼이 천 금을 받들어 두터운 덕에 보답하겠나이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며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말 마오! 말 마오! 천 금으로 사례한다는 말을 꺼내면 반 점의 단비도 내리지 않을 것이오. 다만 공을 쌓고 덕을 쌓은 일을 논한다면, 늙은 손오공이 그대에게 큰비 한바탕을 보내 주리다.” 그 군후는 본래 매우 청렴하고 바르며 어질고 훌륭하여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른 사람이라, 즉시 행자를 윗자리에 모시고 절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과연 자비를 베푸신다면, 하관은 감히 그 덕을 거스르지 않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우선 말씀은 그만두시고 일어나시오. 다만 부디 내 스승님을 잘 보살펴 주시오, 늙은 손오공이 일을 벌이는 동안이오.” 사오정이 물었다. “형님, 어떻게 일을 하시려 하오?” 행자가 말했다. “너와 팔계는 이리 오너라, 그의 이 당 아래에서 나를 따라 보필이 되어라, 늙은 손오공이 용을 불러 비를 내리게 할 터이니.” 저팔계와 사오정이 삼가 그 분부를 따르니, 세 사람이 모두 당 아래에 자리하고 군후는 향을 사르며 예배하고 삼장은 앉아서 경을 읽었다. 행자가 진언을 외우고 주문을 송하니, 즉시 동쪽에서 검은 구름 한 떨기가 서서히 내려와 당 앞에 이르렀는데, 바로 동해의 늙은 용왕 오광이었다. 그 오광이 구름을 거두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앞으로 나아와 행자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성께서 작은 용을 부르셨사오니, 어느 곳에 쓰시려 하시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일어나시오, 멀리서 오느라 수고하였소, 다른 일은 아니오. 이곳은 봉선군인데 해마다 가뭄이 들었으니, 그대는 어찌하여 비를 내리러 오지 않았소?” 늙은 용이 말했다. “대성께 아뢰옵니다, 신이 비를 내릴 수는 있사오나 이는 상천의 부림을 받는 몸이올시다. 상천께서 보내지 않으셨는데 어찌 감히 스스로 이곳에 와서 비를 내리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내가 이곳을 지나다가 오랜 가뭄에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특별히 그대를 불러 이곳에 비를 내려 구제하게 하였는데 어찌 사양하오?” 용왕이 말했다. “어찌 감히 사양하겠나이까? 다만 대성께서 진언을 외워 부르셨으니 감히 오지 않을 수 없었나이다. 하나는 상천의 어지를 받든 적이 없고, 둘은 비를 내릴 신장을 데려오지 못하였사오니, 어찌 우부를 움직일 수 있겠나이까? 대성께서 건져 주실 마음이 있으시다면, 작은 용이 바다로 돌아가 군사를 점검하게 하시고, 대성께서 천궁에 올라가 아뢰어 윤허를 받으시어 강우의 성지 한 도를 청하시고, 수관에게 용을 놓아 달라 하시면, 신이 그때 지시의 수량대로 비를 내리겠나이다.” 행자는 그가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할 수 없이 늙은 용을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가 곧 강두에서 뛰어나와 당승에게 용왕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당승이 말했다. “그리하다면 네가 가서 그리하되,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행자가 즉시 팔계와 사오정에게 분부했다. “스승님을 잘 보필하여라, 나는 천궁으로 가겠노라.” 훌륭한 대성이로다, 가노라 말한 즉시 자취 없이 사라졌다. 그 군후가 간담이 서늘하여 물었다. “손 영감님은 어디로 가셨소?”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소.” 군후는 몹시 공경하여 급히 널리 알리기를 명하여, 성 안의 큰길과 작은 골목마다 공경과 사대부와 서민을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용왕의 위패를 모시고, 문 앞에 맑은 물독을 놓고, 물독에 버들가지를 꽂아 향불을 받들어 모시고 하늘에 절하게 하였으니, 그 일은 이만 각설한다. 각설하고 행자는 근두운을 타고 서천문 밖에 이르렀는데, 일찍이 호국천왕이 천정역사를 이끌고 나아와 맞이하며 말했다. “대성이여, 경을 구하는 일은 다 되었소?” 행자가 말했다. “거의 다 되었소. 이제 천축국 경계에 이르렀는데 한 바깥 고을이 있으니 이름이 봉선군이오. 그곳은 삼 년째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이 몹시 고통스러우니, 늙은 손오공이 비를 빌어 구제하려 하여 용왕을 불러 그곳에 이르게 하였더니, 그는 지시가 없으면 감히 사사로이 하지 못한다 하고, 특별히 옥제를 뵙고 지시를 청하러 왔소.” 천왕이 말했다. “그쪽은 아마 비가 내려서는 안 되는 곳이리다. 내 일찍이 들으니 그 군후가 제멋대로 굴며 천지를 모독하여 상제께서 죄를 물어 미산과 면산과 황금 큰 자물쇠를 세워 두고, 이 세 가지 일이 끝장이 나기를 기다려서야 비를 내리게 되어 있다 하오.” 행자는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옥제를 뵙고자 하였다. 천왕은 감히 막지 못하고 그를 들어가게 하니, 곧장 통명전 밖에 이르렀는데, 또 사대천사가 나와 맞이하며 말했다. “대성께서는 이곳에 무슨 일로 오셨소?” 행자가 말했다. “당승을 보필하여 천축국 경계에 이르렀는데 봉선군에 비가 내리지 않아 군후가 스승을 불러 기우하려 하오. 늙은 손오공이 용왕을 불러 비를 내리라 명하였더니, 그가 옥제의 지시를 받든 적이 없다 하여 감히 마음대로 행하지 못한다 하고, 특별히 지시를 청하러 왔으니 백성의 곤궁을 풀어 주고자 함이오.” 사대천사가 말했다. “그곳은 비가 내려서는 안 되는 곳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번거롭더라도 한번 아뢰어 보시오, 늙은 손오공의 인정이 어떠한지 보겠소.” 갈선옹이 말했다. “속담에 이르기를 ‘파리가 그물깔개를 둘렀다’ 하니, 면피가 참으로 크구료!” 허정양이 말했다. “함부로 떠들지 말고, 그를 데리고 들어갑시다.” 구홍제와 장도릉이 갈선옹과 허정양 두 진인과 함께 영소전 아래로 인도하여 아뢰었다. “만세, 손오공이 천축국 봉선군에 이르러 비를 내리고자 하여 특별히 지시를 청하러 왔나이다.” 옥제가 말했다. “그 놈은 삼 년 전 섣달 스무닷새, 짐이 만천을 두루 살피고 삼계를 떠돌다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 그 상관이 인하지 않아 하늘에 재계하여 올리는 소찬 공양을 넘어뜨려 개에게 먹이고 입으로 더러운 말을 내어 모독하는 죄를 짓는 것을 보았노라. 짐이 즉시 세 가지 일을 세워 피향전 안에 두었노니, 너희는 손오공을 데려다 보게 하여, 만약 세 가지 일이 끝장이 났거든 곧 지시를 내려 주고, 끝장이 나지 않았거든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지 말라.” 사대천사가 즉시 행자를 데리고 피향전 안에 이르러 보니, 미산이 하나 있어 대략 열 장쯤 되었고, 면산이 하나 있어 대략 스무 장쯤 되었다. 미산 곁에는 주먹만 한 닭 한 마리가 있어 그곳에서 한 입은 빠르게, 한 입은 느리게 그 쌀을 쪼아 먹고 있었다. 면산 곁에는 금빛 털의 바둑이 한 마리가 있어 그곳에서 혀를 길게, 혀를 짧게 내밀어 그 밀가루를 핥아 먹고 있었다. 왼쪽에는 쇠로 된 걸개가 걸려 있고 그 위에 금빛 자물쇠가 걸려 있는데, 길이는 한 자 서너 치쯤 되고 자물쇠 몸통은 손가락만 한 굵기였으며, 그 아래에 밝은 등불이 있어 불꽃이 그 자물쇠 몸통을 태우고 있었다. 행자는 그 뜻을 알지 못하여 고개를 돌려 천사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뜻이오?” 천사가 말했다. “그 놈이 상천을 범하였으므로 옥제께서 이 세 가지를 세워 두시고, 닭이 쌀을 다 쪼아 먹고 개가 밀가루를 다 핥아 먹고 등불의 불꽃이 자물쇠 몸통을 태워 끊어지기를 기다려야만 그때에야 비를 내리게 되어 있소.”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여 다시는 감히 아뢰지 못하고 전각을 나서니 얼굴에 부끄러움이 가득하였다. 사대천사가 웃으며 말했다. “대성이여, 번거로워할 것 없소, 이 일은 오직 선행을 지어야만 풀 수 있소. 만약 선하고 자비로운 마음이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 상천을 놀라게 하면, 그 미산과 면산은 즉시 무너지고 자물쇠 몸통도 즉시 끊어질 것이오. 그대가 가서 그를 권하여 선으로 돌아오게 하면 복이 저절로 올 것이오.” 행자가 그 말에 따라 영소전에 올라가 옥제께 하직을 고하지 않고 곧장 하계로 내려와 범부에게로 돌아왔다. 잠시 뒤 서천문에 이르러 또 호국천왕을 만나니, 천왕이 물었다. “지시는 어찌 되었소?” 행자가 미산과 면산과 금쇠의 일을 한바탕 이야기하고 나서 말했다. “과연 그대의 말대로 지시를 내리려 하지 않소. 방금 천사께서 나를 배웅하며 그 놈을 권하여 선으로 돌아오게 하라 하였으니, 그것이 곧 복의 근원이오.” 이에 서로 작별하고 구름을 내려 하계로 내려왔다. 그 군후가 삼장과 팔계와 사오정과 크고 작은 관리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모두 빽빽이 모여 들어 캐물었다. 행자가 군후를 향해 큰 소리로 한마디 꾸짖었다. “다만 이 놈이 삼 년 전 섣달 스무닷새에 천지를 모독한 탓으로 백성이 재난을 만났으니, 이제는 비를 내리려 하지 않는다!” 군후가 놀라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어찌하여 삼 년 전 일을 아시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그대가 하늘에 재계하며 올리던 소찬 공양을 어찌하여 넘어뜨려 개에게 먹였느냐? 참되이 사실대로 말하라!” 그 군후는 감히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삼 년 전 섣달 스무닷새에 공양을 올려 하늘에 재계하던 일이 이 관아 안에서 있었사옵니다. 아내가 어질지 못하여 서로 나쁜 말로 다투다가, 한때 화가 치밀어 분별을 잃고 공양상을 넘어뜨려 소찬을 쏟고말았사옵니다. 과연 그때 개를 불러다 먹였나이다. 그 뒤 두 해를 마음속에 담아 두었사오나 정신이 아득하여 풀어 낼 길이 없었는데, 상천께서 죄를 물으시어 백성에게 해를 끼치실 줄은 몰랐나이다. 이제 스승님께서 내려오셨으니 만 번 비옵건대 밝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상계에서는 어떻게 헤아리고 있사옵니까?” 행자가 말했다. “그날은 바로 옥황께서 하계로 내려오신 날이었소, 그대가 재계 공양을 개에게 먹이고 또 입으로 더러운 말을 내는 것을 보시고 옥제께서 즉시 세 가지를 세워 너를 적어 두셨노라.” 팔계가 물었다. “형님, 그 세 가지가 무엇이오?” 행자가 말했다. “피향전에 미산 하나를 세웠는데 대략 열 장쯤 되고, 면산 하나가 대략 스무 장쯤 되오. 미산 곁에는 주먹만 한 병아리 한 마리가 있어 그곳에서 한 입은 빠르게, 한 입은 느리게 그 쌀을 쪼아 먹고, 면산 곁에는 금빛 털의 바둑이 한 마리가 있어 그곳에서 혀를 길게, 혀를 짧게 내밀어 그 밀가루를 핥아 먹고 있소. 왼쪽에 또 쇠 걸개가 하나 있어 그 위에 황금 큰 자물쇠가 걸려 있는데, 자물쇠 몸통이 손가락만 한 굵기요, 그 아래에 밝은 등불 하나가 있어 등불의 불꽃이 그 자물쇠 몸통을 태우고 있소. 저 닭이 쌀을 다 쪼아 먹고 개가 밀가루를 다 핥고 등불이 자물쇠 몸통을 태워 끊어야만, 그곳에서야 비를 내리게 되어 있소.”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 없소! 걱정 없소! 형님이 나를 데려가기만 하신다면 법신으로 변신하여 단숨에 그의 쌀과 밀가루를 모두 먹어 치우고 자물쇠 몸통을 끊어 버리면, 틀림없이 비가 내릴 것이오.” 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헛소리 마라! 이는 상천께서 마련해 두신 계책인데 네가 어찌 볼 수 있겠느냐?” 삼장이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어찌하면 좋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어렵지 않소! 어렵지 않소! 내가 떠나올 무렵에 사대천사가 일러 주기를, 다만 선행을 지으면 풀 수 있다 하였소.” 그 군후가 땅에 엎드려 절하며 애걸하여 말했다. “스승님께서 가리키시는 대로 하겠사오니, 하관은 하나하나 모두 귀의하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네가 만일 마음을 돌려 선을 향한다면 일찍이 부처님을 염하고 경을 보아라, 내가 다시 너를 위하여 일을 꾸며 주리라. 네가 만일 전과 같이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풀어 낼 수 없고, 머지않아 하늘이 너를 벌할 것이니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리라.” 그 군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며 귀의할 것을 맹세하였다. 이때 그 지방의 승려와 도사를 불러 모아 도량을 열고, 각각 문서를 지어 발송하고 삼천에 아뢰어 올렸다. 군후가 무리를 이끌고 향을 집어 들고 우러러 예배하며 하늘에 답하고 땅에 사례하고 죄를 끌어안고 스스로를 꾸짖었으며, 삼장도 그를 위하여 경을 읽었다. 한편으로는 또 급히 널리 알리어, 성 안과 성 밖의 큰집 작은집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 향을 사르고 부처님을 염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한결같이 착한 소리가 귀에 넘쳐났다. 행자가 그제야 기뻐하며 팔계와 사오정에게 말했다. “너희 둘은 스승님을 잘 호위하여라, 늙은 손오공이 다시 그곳에 다녀오겠노라.” 팔계가 물었다. “형님, 또 어디로 가시려 하오?” 행자가 말했다. “이 군후가 늙은 손오공의 말을 듣고 과연 가르침을 받아들여 공경하고 선하고 자비로우며 정성껏 부처님을 염하니, 내가 이대로 가서 다시 옥제께 아뢰어 비를 좀 내려 달라 청하겠노라.” 사오정이 말했다. “형님이 가시려 한다면 망설이지 마시오, 우리가 길 가는 일이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비 한바탕을 구하시어, 우리의 바른 과위를 이루게 하시오.” 훌륭한 대성이로다, 또 구름 위로 솟아 곧장 천문 밖에 이르러 또 호국천왕을 만났다. 천왕이 물었다. “그대는 이제 또 무슨 일로 왔소?” 행자가 말했다. “그 군후가 이미 선으로 돌아왔소.” 천왕도 또한 기뻐하였다. 말하고 있는데, 일찍이 직부사자가 도가의 문서와 승가의 관첩을 받들어 천문 밖에 이르러 전달하는 것이 보였다. 그 부사가 행자를 보고 예를 갖추며 말했다. “이 뜻은 대성께서 선을 권하신 공이올시다.”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이 문첩을 어디로 보내려 하오?” 부사가 말했다. “곧장 통명전 위로 보내어 천사를 거쳐 옥황대천존 앞에 전달하려 하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오, 그대는 먼저 가시오, 나는 그 뒤를 따라 가겠소.” 그 부사가 천문으로 들어갔다. 호국천왕이 말했다. “대성이여, 옥제를 뵐 필요가 없소. 그대는 다만 구천응원부 아래로 가서 뇌신을 조금 빌려, 곧바로 우레를 울리고 번개를 치게 하면 곧 비가 내릴 것이오.” 참으로 행자가 그 말에 따라 천문 안으로 들어가, 영소전에 올라가 지시를 청하지 않고 구름을 돌려 곧장 구천응원부로 가니, 뇌문사자와 규록전자와 염방전자가 모두 나아와 맞이하며 예를 갖추어 물었다. “대성께서는 어디서 오셨소?” 행자가 말했다. “일이 있어 천존을 뵙고자 하오.” 세 사자가 즉시 전하여 아뢰니, 천존이 구봉단하의 자리에서 내려와 옷을 여미고 나와 맞이하였다. 서로 인사를 마치고 행자가 말했다. “한 가지 일이 있어 특별히 청을 드리러 왔소.” 천존이 말했다. “무슨 일이오?” 행자가 말했다. “내가 당승을 보필하여 봉선군에 이르렀는데 그 가뭄이 몹시 심하여 이미 그에게 비를 빌어 주겠노라 약속하였사오니, 특별히 귀부의 관장을 빌려 그곳에 가서 우레를 울리게 하려 하오.” 천존이 말했다. “나는 그 군후가 상천을 모독하여 세 가지 일이 세워진 것은 아노라, 그러나 비를 내려도 될는지 알 수 없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제 이미 옥제를 뵙고 지시를 청하였소. 옥제께서 천사를 시켜 나를 피향전으로 데려가 그 세 가지를 보게 하셨는데, 바로 미산과 면산과 금쇠이니, 다만 세 가지 일이 끝장이 나야만 비를 내리게 되어 있소. 나는 끝장이 나기 어렵다고 근심하였는데, 천사께서 나에게 군후와 무리를 권화하여 선행을 짓게 하라 하시며, 사람에게 착한 마음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따른다 하였으니, 그러면 하늘의 마음을 돌리고 재난을 풀 수 있을 것이라 하였소. 이제 이미 착한 마음이 문득 일어나 착한 소리가 귀에 넘치오. 방금 직부사자가 이미 행실을 고쳐 선을 따르는 문첩을 옥제께 아뢰어 올렸사오니, 늙은 손오공이 이에 특별히 존부를 찾아와 뇌부의 관장의 도움을 청하노라.” 천존이 말했다. “그리하다면 등·신·장·도 네 장수에게 번개 낭자를 거느리고 곧 대성을 따라 봉선군으로 내려가 우레를 울리게 하라.” 그 네 장수가 대성과 함께 오래지 않아 봉선 경계에 이르러, 곧 허공 한가운데서 법을 일으켰다. 다만 우르릉 우르릉 하는 우레 소리가 들리고, 또 줄줄줄 번쩍이는 번개가 보였으니, 참으로 그러하였다. 번개는 자줏빛 금빛 뱀이요, 우레는 뭇 벌레가 놀라 일어나듯 울리누나. 불꽃이 환하게 날아오르고 벽력이 산동네를 무너뜨리누나. 번갯불이 하늘을 환히 밝히고, 진동은 땅을 연이어 솟구치누나. 붉은 섬광이 한 번 번쩍이니 싹이 돋아나고, 만 리 강산이 모두 흔들리누나. 그 봉선군은 성 안과 성 밖의 크고 작은 관리와 군사와 백성이 꼬박 삼 년 동안 우레와 번개를 듣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레 소리와 번쩍이는 번개가 있음을 보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에는 향로를 이고, 어떤 이는 손에 버드가지를 쥐고서 모두 염하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 한마디의 착한 마음이 과연 상천을 놀라게 하였으니, 바로 그 옛 시에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천지가 모두 아노니, 선과 악에 응보가 없다면 천지에 반드시 사사로움이 있으리라” 하였다. 이만 각설하고, 손대성이 뇌장을 지휘하여 봉선군에서 번개를 치고 우레를 울리니 사람마다 선으로 돌아왔다. 각설하고 그 상계의 직부사자가 승가와 도가 양쪽의 문첩을 통명전에 보내니, 사대천사가 영소전에 전하여 아뢰었다. 옥제가 보고 말했다. “그 놈들에게 이미 착한 마음이 있으니, 세 가지 일이 어떠한지 보라.” 말하고 있는데, 홀연 피향전을 지키는 장관이 와서 아뢰었다. “세워 두었던 미산과 면산이 모두 무너져, 잠깐 사이에 쌀과 밀가루가 모두 없어지고 자물쇠 몸통도 끊어졌나이다.” 아뢰기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당가의 천관이 봉선군의 토지신과 성황과 사령 등의 신을 이끌고 함께 와서 절하며 아뢰었다. “본군의 군주와 성 안의 크고 작은 백성의 집이, 한 집도 한 사람도 선한 과보에 귀의하지 않은 이가 없사오며, 부처님께 예하고 하늘을 공경하나이다. 이제 자비를 굽어 살피시어 두루 단비를 내리시어 백성을 구제해 주시기를 비옵니다.” 옥제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지시를 내렸다. “풍부와 운부와 우부는 각각 호령을 받들어 아래로 내려가, 봉선군 경계에 맞추어 바로 오늘 이 시각에 우레를 울리고 구름을 펼치며 비 석 자에 마흔두 점을 내리라.” 이때 사대천사가 지시를 받들어 각 부에 전하여 곧바로 하계로 내려가니, 각각 신위를 떨치며 일제히 진작하였다. 행자가 등·신·장·도와 번개 낭자를 거느리고 허공에서 조롱하고 있는데, 문득 뭇 신이 모두 이르러 모였다. 그 사이에 바람과 구름이 만나고 단비가 쏟아졌으니, 좋은 비로다. 아득한 짙은 구름, 자욱한 검은 안개. 우레 수레는 우르르, 번개는 번쩍번쩍. 굴러가는 사나운 바람, 콸콸 쏟아지는 소나기. 이른바 한 생각이 하늘을 돌리니 만백성이 모두 우러러보누나. 모두 대성께서 원운을 베푸신 덕이니, 만 리 강산이 곳곳이 그늘에 잠겼누나. 좋은 비가 강을 쏟고 바다를 뒤엎으며, 들판을 가리고 하늘을 가누나. 처마 앞에는 폭포가 드리우고, 창 밖에서는 영롱한 소리가 울리누나. 만 호 천 문에서 사람이 부처님을 염하고, 여섯 거리 세 저자에는 물이 흘러넘치누나. 동서의 하천이 줄줄이 가득하고, 남북의 시내와 물굽이가 곳곳이 트이누나. 마른 모가 윤기를 얻고 죽은 나무가 다시 살아나누나. 밭에는 삼과 보리가 무성하고 마을에는 콩과 곡식이 늘어나누나. 나그네는 장사길이 트인 것을 기뻐하고, 농부는 밭갈이를 사랑하누나. 이제부터 기장과 피가 줄줄이 무성하고, 절로 농사가 풍년을 얻으리라. 바람이 고르고 비가 순하니 백성이 편안하고 즐거우며, 바다가 잔잔하고 하수가 맑으니 태평을 누리누나. 하루에 비가 석 자에 마흔두 점을 채우자 뭇 신이 차츰 거두어 돌아갔다. 손대성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사부의 뭇 신이여, 잠시 구름의 행차를 멈추어라, 늙은 손오공이 군후를 데려다 여러분께 절하며 사례하게 하겠노라. 여러분은 구름과 안개를 걷어 내고 각각 참모습을 드러내어, 이 범부들이 친히 눈으로 보게 하여야 믿는 마음으로 받들어 모실 것이오.” 뭇 신이 그 말을 듣고 하는 수 없이 모두 허공에 멈추었다. 이 행자가 구름을 내려 고을 안에 이르니, 삼장과 팔계와 사오정이 모두 나와 마중하고, 그 군후는 한 걸음마다 한 번 절하며 사례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내게 사례하기는 이르오, 내가 이미 사부의 뭇 신을 붙들어 두었소, 그대는 많은 사람을 불러 함께 사례하게 하시오. 그리하여야 뒷날에 와서 비를 내려 줄 것이오.” 군후가 즉시 급히 널리 알려 무리를 불러 함께 사례하게 하니, 모두 향을 집어 들고 하늘을 향해 절하는데, 문득 그 사부의 뭇 신이 구름과 안개를 걷어 내고 각각 참모습을 드러냈다. 사부란 곧 우부와 뇌부와 운부와 풍부이니, 문득 용왕이 모습을 나타내고 뇌장이 몸을 펴며, 운동이 나타나고 풍백이 참모습을 드리우누나. 용왕이 모습을 나타내니, 은빛 수염에 푸른 얼굴이 세상에 둘이 없누나. 뇌장이 몸을 펴니, 갈고리 주둥이에 위엄 있는 얼굴이 참으로 견줄 이 없누나. 운동이 나타나니, 옥 같은 얼굴에 금빛 관을 쓴 이 그 누가 그리하리오; 풍백이 참모습을 드리우니, 마른 눈썹에 둥근 눈이 일찍이 그러하였누나. 가지런히 푸른 하늘 위에 모습을 드러내어 보이고, 저마다 줄지어 성스러운 위의를 바라보누나. 봉선군 경계의 사람들이라야 비로소 믿고, 머리를 조아리고 향을 집어 드니 악한 성품이 돌아왔누나. 오늘 하늘의 장수를 우러러 뵙고, 마음을 씻어 선을 향하여 모두 귀의하누나. 뭇 신이 두 시간쯤 기다려 주었는데도 백성의 절이 그치지 않았다. 손행자가 또 구름 위로 올라가 무리를 향해 예를 갖추며 말했다. “수고하셨소! 수고하셨소! 여러분은 각각 본부로 돌아가시오. 늙은 손오공이 또 고을 안의 인가에 높은 신선을 받들어 모시고, 절기가 되면 초사를 올려 사례하게 하겠소. 여러분은 이제부터 닷새에 한 번 바람을, 열흘에 한 번 비를 내려 또 와서 구하여 주시오.” 뭇 신이 그 말에 따라 각각 본부로 돌아갔으니, 이는 각설한다. 각설하고 대성이 구름에서 내려와 삼장에게 말했다. “일이 끝났고 백성이 편안해졌으니, 짐을 꾸려 길을 떠나도 되겠소.” 그 군후가 그 말을 듣고 급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손 영감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이까! 이번 한바탕은 한량없고 가없는 은덕이올시다. 하관이 이곳에서 사람을 시켜 작은 잔치를 마련하여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겠나이다. 또 민간의 논밭을 사들여 절을 짓고, 영감님의 생사당을 세우며, 비석을 세워 이름을 새기고 사철로 제사를 받들게 하겠나이다. 비록 뼈를 새기고 마음을 새긴다 해도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려운데, 어찌 곧 떠나신단 말씀이오!” 삼장이 말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마땅하오나, 다만 우리는 서방으로 걸어 다니며 걸식하는 중이라 오래 머물 수 없소. 하루 이틀 사이에 반드시 떠날 것이오.” 그 군후가 어찌 보내려 하겠는가, 밤을 새워 여러 사람을 시켜 주석을 마련하고 사당을 짓게 하였다. 이튿날 크게 잔치를 베풀어 당승을 윗자리에 모시고 손대성과 팔계와 사오정이 나란히 앉으니, 군후가 본군의 크고 작은 관리와 부신들과 함께 잔을 들어 음식을 올리고,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하루를 대접하였다. 이 잔치는 과연 기쁘고 흐뭇하였으니,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도다. 오래 가문 밭에 단비를 만나고, 하천과 장사길이 곳곳이 트였누나. 신승이 고을 경계에 온 것을 깊이 느끼고, 대성께서 천궁에 오르신 덕을 크게 입었누나. 세 가지 일의 지난 악이 풀리고, 한 생각 귀의하니 선한 과보가 크누나. 이제부터 요순의 세상과 같기를 바라니, 닷새 바람 열흘 비로 만 년을 풍년이리라. 하루는 잔치요 이튿날은 연회요, 오늘은 사례요 내일은 답례라, 붙들어 머물게 한 것이 보름이나 되어, 다만 절과 생사당이 완비되기를 기다렸다. 하루는 군후가 네 사람을 청하여 가 보게 하니, 당승이 놀라며 말했다. “공사가 크고 넓은데 어찌 이리 빨리 이루어졌소?” 군후가 말했다. “하관이 인부를 재촉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급히 마치게 하였사오니, 특별히 여러 영감님을 모셔 보시라 청하였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과연 어질고 재주 있으며 유능한 훌륭한 어진 군후로다!” 즉시 모두 새 절에 이르러 보니, 전각이 우뚝하고 산문이 장엄하여 모두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행자가 스승에게 절의 이름을 남겨 주시기를 청하니, 삼장이 말했다. “있소, 이름을 남긴다면 감림보제사라 불러야 하오.” 군후가 칭찬하며 말했다. “매우 좋소! 매우 좋소!” 금으로 쓴 방을 널리 붙여 승려들을 모아 향불을 받들어 모시게 하였다. 전각 왼쪽에 네 사람의 생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사철로 제사를 지냈으며, 또 뇌신과 용신 등의 사당을 지어 신령의 공에 보답하였다. 보고 나서 즉시 행차를 재촉하여 떠나게 하였다. 그 고을 백성은 오래 머물지 못할 줄 알고 각각 전별의 예물을 마련하였으나,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이리하여 온 고을의 관리들이 북과 피리를 크게 울리고 깃발을 펼치며, 삼십 리쯤 되는 곳까지 전송하고도 차마 헤어지지 못하여, 눈물을 가리고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바라보다가야 돌아갔다. 이는 바로 그러하였다. 큰 덕을 지닌 신승이 널리 구제의 이름을 남기고, 제천대성이 은혜를 널리 베푸누나. 결국 이대로 가서 며칠이나 더 가야 여래를 뵙게 될는지는,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8회 선도옥화시법회(禪到玉華施法會) · 심원목모수문인(心猿木母授門人) 각설하고 당승은 매우 기뻐하며 군후와 작별하고서 말 위에서 행자에게 말했다. “어진 제자야, 이번에 맺은 선한 과보는 참으로 비구국에서 어린아이들을 구한 일보다 훌륭하구나. 모두 네 공이로다.” 사오정이 말했다. “비구국에서는 다만 천백열한 명의 어린아이만 구했을 뿐이온데, 어찌 이번 큰비에 견주겠나이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두루 젖어 드니 살려 낸 목숨이 헤아릴 수 없이 많사옵니다. 제자도 속으로 큰 사형의 법력은 하늘에 닿고 자비로운 은혜는 땅을 덮는다며 스스로 칭찬하였나이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의 은혜도 있고 선행도 있사오나, 다만 겉으로는 인의를 베풀면서 속으로는 화근을 품고 계시니이다. 늙은 저팔계와 함께 걸으시기만 하면 꼭 사람을 못살게 굴려 하시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내가 어디서 너를 못살게 굴었단 말이냐?” 팔계가 말했다. “됐소이다! 됐소이다! 늘 나를 묶어 주시고, 매달아 주시고, 삶아 주시고, 쪄 주셨소이다! 이제 봉선군에서 억만 명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니 마땅히 반년쯤 머무시며 나를 이끌어 편안하고 배부른 밥이나 몇 끼 먹게 하실 일이지, 어찌 다만 길만 재촉하시나이까!” 장로가 그 말을 듣고 꾸짖어 말했다. “이 어리석은 놈아, 어찌 늘 남의 음식을 얻어먹을 궁리만 하느냐! 어서 길을 가거라, 다시는 입씨름하지 말라!” 팔계는 감히 말을 잇지 못하고 주둥이를 쑥 내밀며 행낭을 메고 껄껄 웃으니, 사부와 제자들이 큰길로 내달렸다. 세월이 북처럼 흘러 또 깊은 가을이 되었으니, 보이는 바는 이러하였다. 물자국 걷히고 산마루 여위었도다. 붉은 잎 흩날리고 국화 필 무렵이로다. 서리 난 맑은 날 밤 길게 느껴지고, 밝은 달빛 창을 꿰뚫어 비치누나. 집집마다 석양에 밥 짓는 연기 많고, 곳곳마다 호숫빛 찬 물에 어리누나. 흰 마름 향기롭고 붉은 여뀌 무성하도다. 귤은 푸르고 등은 누렇고, 버들 시들고 곡식 익었도다. 거친 마을에 기러기 내려앉아 갈대꽃 부수고, 들가 주막 닭 울음에 콩 거두누나. 넷이 오래 걷다가 또 성곽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보고 장로가 채찍 들어 멀리 가리키며 불렀다. “오공아, 저곳에 또 성 하나가 보이느냐, 어느 곳인지는 알지 못하겠구나.” 행자가 말했다. “그대와 나 모두 일찍이 가 본 적 없거늘 무엇으로 알겠소? 우선 변두리에 이르러 사람에게 물어봅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득 수풀 속에서 늙은이 하나가 나오는데, 손에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몸에 가벼운 옷을 걸치고 발에 종려 신 한 켤레를 신고 허리에 납작한 띠를 둘렀다. 당승은 황급히 안장에서 굴러 내려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올렸다. 그 늙은이는 지팡이를 짚고 답례하며 말했다. “장로님께서는 어디서 오셨나이까?” 당승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빈승은 동토 당나라에서 뇌음사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자이온데, 이제 보방에 이르러 멀리 성곽을 바라보니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특별히 늙은 시주께 가르침을 청하나이다.” 그 늙은이는 그 말을 듣고 일렀다. “도 높은 선사시여, 이 누추한 내 고장은 천축국 아래 고을이온데 지명은 옥화현이올시다. 고을의 성주는 바로 천축 황제의 종친으로 옥화왕에 봉해졌나이다. 이 왕은 매우 어질어 승려와 도사를 공경하고 백성을 거듭 사랑하나이다. 늙은 선사께서 가서 뵈온다면 후한 대접을 받으시리이다.” 삼장이 사례하니 그 늙은이는 곧장 수풀을 꿰어 갔다. 삼장은 몸을 돌려 제자들에게 앞의 일을 일렀다. 세 사람은 기뻐하며 스승님을 부축하여 말에 올려드렸다. 삼장이 말했다. “먼 길도 아니니 말을 탈 것 없느니라.” 사부와 제자 넷은 마침내 걸어서 성 밖 거리에 이르러 두루 구경하였다. 본래 성문 밖 거리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팔며 인가가 밀집하였고 장사도 매우 번성하였다. 그들의 음성과 용모를 보니 중화와 다를 바 없었다. 삼장이 분부했다. “제자들아, 삼가고 조심하여라, 절대로 방자하게 굴지 말라.” 그 팔계는 머리를 숙이고 사오정은 얼굴을 가렸으며, 오직 손행자만이 스승님을 부축하였다. 양쪽 사람들이 다투어 구경하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고장에는 용을 항복받고 호랑이를 굴복시킨 고승만 있었거늘, 돼지를 항복받고 원숭이를 굴복시킨 중은 일찍이 본 적이 없도다.” 팔계는 참지 못하고 주둥이를 쑥 내밀며 말했다. “너희는 돼지 임금을 항복받은 중을 본 일이 있느냐?” 놀란 온 거리의 사람들이 비틀비틀 넘어지며 모두 양쪽으로 물러섰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리석은 놈아, 어서 주둥이를 감추고 맵시 부리지 말라, 발밑을 살펴 다리를 건너거라.” 그 어리석은 놈은 머리를 숙인 채 웃고만 있었다. 도개교를 건너 성문 안에 들어서니 큰 거리의 술 파는 누각과 노래하는 집들이 떠들썩하고 번화하여 참으로 중원의 도읍이로다. 이에 시로 증거하노라, 시에 이르기를, 비단 성은 쇠 독같이 만 년을 굳건하고, 물을 끼고 산을 의지하니 빛깔마다 곱누나. 온갖 물건이 호수를 통하여 배가 저자에 들어오고, 천 집이 술을 팔아 주막에 발을 드리웠도다. 누대는 곳곳마다 인가가 넓고, 골목길은 아침마다 객상이 떠드누나. 장안의 풍경 좋은 것에 뒤지지 않고,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또한 다를 바 없도다. 삼장이 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사람들이 서역의 여러 오랑캐 땅을 말하지만 나는 일찍이 여기까지 온 적이 없노라. 이 경치를 자세히 보니 내 대당과 무엇이 다르랴! 이른바 극락세계란 참으로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로다.” 또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쌀 한 섬이 은 네 푼이요 참기름 한 근이 여덟 푼이라니, 참으로 오곡이 풍성하게 익는 곳이로다. 오래 걸어간 끝에야 옥화왕부에 이르렀는데 부 문 좌우에 장사부와 심리청과 전선소와 대객관이 있었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들아, 여기가 부이니 내가 들어가 왕을 알현하고 첩을 검사받은 뒤에 가자.” 팔계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들어가시면 우리는 관아 문 앞에 서 있어도 되겠소이까?” 삼장이 말했다. “너희는 이 문 위에 대객관 세 글자가 쓰인 것을 못 보느냐! 모두 그리 가서 앉아라, 마초가 있거든 사서 말에게 먹이라. 내가 왕을 뵙고 혹 공양을 하사받거든 와서 너희를 불러 함께 먹으리라.”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마음 놓고 가시옵소서, 늙은 손오공이 마땅히 알아서 하겠나이다.” 사오정은 행장을 메고 대객관으로 들어갔다. 관을 지키는 인부들이 그들의 얼굴이 흉측하게 못생긴 것을 보고 감히 묻지도 못하고 나가라 하지도 못하여 다만 앉아 있게 할 뿐이었으니 이만 각설한다. 각설하고 늙은 스승님은 의관을 갈아입고 관문을 들어 곧장 왕부 앞에 이르렀는데, 일찍이 예례관이 나아와 맞이하며 물었다. “장로님께서는 어디서 오셨나이까?” 삼장이 말했다. “동토 대당에서 큰 뇌음사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러 온 중이온데, 이제 귀한 땅에 이르러 관문을 바꾸어 받고자 하오며 특별히 천세를 알현하러 왔나이다.” 예례관이 곧 아뢰어 전하니 그 왕자가 과연 어질고 밝아 즉시 명을 내려 불러들이라 하였다. 삼장이 전 아래 이르러 예를 올리니 왕자가 곧 전에 올라와 앉으라 청하였다. 삼장이 관문을 받들어 올리니 왕자가 보고 또 여러 나라의 인신과 수압이 있는 것을 보고는 기꺼이 보인을 찍고 화자를 눌러 접어 안에 거두었다. 그리고 물었다. “국사 장로님이시여, 그대의 대당에서 여기까지 이르러 여러 나라를 두루 지나왔으니 모두 얼마나 되는 노정이오?”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노정을 기록하지도 못하였나이다. 다만 지난해 관음보살께서 우리 임금님 어전에 몸을 나타내시고 송자를 남기시기를 서쪽이 십만 팔천 리라 하였사옵니다. 빈승이 길에서 이미 열네 번의 한서를 지냈나이다.” 왕자가 웃으며 말했다. “열네 번의 한서라면 곧 십사 년이로구려. 도중에 무슨 지체가 있었던 모양이외다.” 삼장이 말했다. “한마디로 다 말하기 어렵나이다! 만 번의 곤경과 천 가지 마귀를 겪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고초를 받았는지 알지 못하옵고서야 비로소 보방에 이르렀나이다!” 그 왕자는 매우 기뻐하며 즉시 전선관에게 명하여 채식을 차려 대접하게 하였다. 삼장이 말했다. “전하께 아뢰옵니다, 빈승에게는 어린 제자 셋이 있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사오니 감히 공양을 받지 못하옵고, 다만 노정이 늦어질까 두렵나이다.” 왕자가 분부했다. “당전관은, 어서 가서 장로님의 세 제자를 청하여 부에 들어와 함께 공양하게 하라.” 당전관이 곧 밖으로 나가 청하였으나 모두들 말했다. “본 적이 없소이다, 본 적이 없소이다.” 따르던 사람이 말했다. “대객관에 못생긴 중 셋이 앉아 있사온데 생각하건대 그들이옵니다.” 당전관이 무리와 함께 대객관에 이르러 관 지키는 자에게 물었다. “어느 분이 대당에서 경을 구하러 온 스님의 높은 제자시온지요? 우리 주상께서 명을 내리시어 공양을 청하시나이다.” 팔계가 마침 앉아 졸다가 공양이라는 한 글자를 듣자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대답했다. “우리가 그리하오! 우리가 그리하오!” 당전관은 그를 보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모두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돼지 도깨비로다! 돼지 도깨비로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팔계를 붙잡으며 말했다. “동생아, 점잖게 굴어라, 촌스럽게 굴지 말라.” 여러 관원이 행자를 보고 또 말했다. “원숭이 정령이로다! 원숭이 정령이로다!” 사오정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시옵소서. 우리 세 사람은 모두 당승의 제자이옵니다.” 여러 관원이 그를 보고 또 말했다. “부뚜막 신이로다! 부뚜막 신이로다!” 손행자가 곧 팔계에게 말을 끌라 하고 사오정에게 짐을 메라 하여 무리와 함께 옥화왕부로 들어갔다. 당전관이 먼저 들어가 아뢰니 그 왕자가 눈을 들어 그토록 흉측한 모습을 보고 속으로 두려움이 일었다. 삼장이 두 손 모으고 말했다. “천세께서는 마음을 놓으시옵소서, 어리석은 제자들이 비록 얼굴은 못생겼사오나 마음은 모두 착하옵니다.” 팔계가 위를 향해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빈승이 문안을 올리나이다.” 왕자는 더욱 놀라움을 느꼈다. 삼장이 말했다. “어리석은 제자들은 모두 산야에서 거두어 온 자들이온데 예를 행할 줄 모르오니 부디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왕자는 놀람을 누르고 전선관에게 명하여 여러 스님과 관원을 폭사정으로 청해 공양하게 하였다. 삼장은 은혜에 사례하고 왕에게 하직하여 전에서 내려와 정자 안에 이르러 팔계를 원망하여 말했다. “이 미련한 놈아, 예절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구나! 차라리 입을 열지 않았더라면 그만이거늘, 어찌 그리 거칠고 무례하느냐! 한마디 말이 태산을 넘어뜨리기에 넉넉하도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큰절을 올리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소이다, 힘도 좀 덜 들이겠구려.” 사오정이 말했다. “저이는 큰절을 올리면서도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미리 주둥이를 내밀어 고래고래 외쳤사옵니다.” 팔계가 말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로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로다! 스승님께서 지난날에 사람을 보거든 문안을 올리는 것이 예라 하시지 않았소이까. 오늘 문안을 올렸더니 또 좋지 않다 하시니, 내가 어찌 하란 말이오이까!” 삼장이 말했다. “내가 너에게 사람을 보거든 문안을 올리라 하였거늘, 언제 왕자를 보고서 그리 함부로 굴라 하였더냐! 늘 하는 말에 물건에도 몇 등급의 물건이 있고 사람에도 몇 등급의 사람이 있거늘, 어찌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느냐?” 바야흐로 말하는데 전선관이 인부들을 이끌고 의탁자를 벌려 공양을 차려 올리니, 사부와 제자들은 아무 말 없이 저마다 공양을 들었다. 각설하고 그 왕자는 전에서 물러나 궁으로 들어갔는데 궁 안에 어린 왕자 셋이 있다가 그의 얼굴빛이 변한 것을 보고 곧 물었다. “아바마마께서는 오늘 어찌하여 이토록 놀라시나이까?” 왕자가 말했다. “방금 동토 대당에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을 구하러 왔다는 중 하나가 관문을 바꾸러 왔는데 풍채가 범상치 않더구나. 내가 그를 붙들어 공양하게 하였더니 그가 제자들이 부 앞에 있다 하므로 내가 즉시 청하라 명하였다. 잠시 뒤 들어오는데 큰 예를 행하지 않고 문안만 올리니 내가 이미 불쾌하였고, 머리를 들어 볼 때에는 하나하나가 요마처럼 흉측하여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얼굴빛이 변한 것이니라.” 본래 그 어린 왕자 셋은 다른 이들과 달라 하나같이 무예를 좋아하고 강함을 좋아하였으므로 곧 주먹을 뻗고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혹시 저 산에서 내려온 요정이 사람의 모습을 거짓으로 꾸민 것이 아니겠소이까? 우리가 병기를 들고 나가 살펴보겠나이다!” 훌륭한 왕자들이로다, 큰아이는 눈썹에 닿는 몽둥이 하나를 들고 둘째는 아홉 발 달린 쇠스랑 하나를 휘두르며 셋째는 검고 번들거리는 기름칠한 몽둥이 하나를 쓰니, 기세가 늠름하고 위풍이 당당하여 왕부를 걸어 나오며 고래고래 외쳤다. “경을 구하러 왔다는 중이 어디 있느냐!” 이때 전선관원 인부들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린 전하, 그들은 이 폭사정에서 공양하고 있사옵니다.” 어린 왕자들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밀고 들어가며 꾸짖었다. “너희는 사람이냐 괴물이냐, 어서 빨리 말하라, 그러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 삼장은 놀라 얼굴빛이 사라지고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몸을 굽히고 말했다. “빈승은 당나라에서 경을 구하러 온 자이온데, 사람이옵니다, 괴물이 아니옵니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대는 그래도 사람 같사오나 저 못생긴 셋은 단연코 괴물이로다!” 팔계는 다만 밥만 먹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오정과 행자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오, 얼굴은 비록 못생겼으나 마음은 착하고 몸은 비록 둔하나 성품은 어질도다. 너희 셋은 어디서 왔기에 그리 입이 거칠고 경솔하게 구느냐?” 곁에 있던 전선관 등이 말했다. “세 분은 우리 왕의 아드님이신 어린 전하들이시옵니다.” 팔계가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린 전하들, 저마다 병기를 들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오이까? 우리와 싸우려는 것이오이까?” 둘째 왕자가 발을 떼어 놓고 두 손으로 쇠스랑을 휘두르며 곧 팔계를 치려 하였다. 팔계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네 그 쇠스랑은 내 이 쇠스랑의 손자 노릇이나 하기에 알맞구려!” 곧 옷을 걷어 올리고 허리에서 쇠스랑을 꺼내어 한번 흔들어 보이니 금빛이 만 갈래요, 재주를 펼치니 상서로운 기운이 천 가닥이라, 그 왕자를 놀라게 하여 손맥이 풀리고 힘줄이 저려 감히 휘두르지 못하게 하였다. 행자는 큰아이가 눈썹에 닿는 몽둥이 하나를 쓰며 깡충깡충 뛰는 것을 보고 곧 귀에서 금고봉을 꺼내어 한번 흔들어 보이니 사발만 한 굵기에 한 장 서너 자쯤 되는 길이라, 땅을 향해 한번 찍으니 석 자쯤 깊이 파이고 그 자리에 꽂혀 섰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이 몽둥이를 너에게 주겠노라!” 그 왕자는 그 말을 듣고 곧 자기 몽둥이를 버리고 가서 그 봉을 잡고 두 손에 힘을 다해 뽑아 보았으나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들어 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하였으나 뿌리를 내린 듯하였다. 셋째가 사나운 성질을 부리며 검은 기름칠한 몽둥이로 내리치려 하였으나 사오정이 한 손으로 쳐 갈라 버리고 항요보장을 꺼내어 잡아 쥐어 보니 고운 빛이 찬란히 살아나고 붉은 노을이 어지러이 빛나, 전선관들을 놀라게 하여 하나하나 멍하니 얼어붙어 입을 열지 못하였다. 어린 왕자 셋이 함께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신령한 스승님이시여! 신령한 스승님이시여! 저희 범인은 알아보지 못하였사오니 부디 재주를 펼쳐 주시옵소서, 저희가 받들어 배우겠나이다.” 행자가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그 봉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여기는 좁아 손을 펴기 좋지 않으니, 내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한바탕 놀아 너희에게 보여 주마.” 훌륭한 대성이로다, 휘파람 한 소리에 근두운을 타고 두 발로 오색 상서로운 구름을 밟아 반공중으로 떠올라 땅에서 삼백 걸음쯤 높이에 이르러, 금고봉을 펼쳐 꽃을 흩뿌려 정수리를 덮는 자세와 누런 용이 몸을 트는 자세로 위아래 오르내리고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았다. 처음에는 사람과 봉이 비단 위에 꽃을 더한 듯하더니, 뒤로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하늘 가득 봉이 구르는 것만 보였다. 팔계가 아래에서 크게 탄성을 지르며 손발도 참지 못하고 외쳤다. “늙은 저팔계도 가서 한바탕 놀아 보겠노라!” 훌륭한 어리석은 놈이로다, 바람을 타고 반공중에 이르러 쇠스랑을 펼치니 위로 셋 아래로 넷, 왼쪽으로 다섯 오른쪽으로 여섯, 앞으로 일곱 뒤로 여덟이라, 온몸의 재주를 다하니 바람 휭휭 우는 소리만 들렸다. 흥겹게 펼치는 판에 사오정이 장로에게 말했다. “스승님, 늙은 사오정도 가서 훈련해 보겠사옵니다.” 훌륭한 중이로다, 두 발 모아 뛰며 지팡이를 휘둘러 허공으로 떠오르니 예리한 기운 자욱하고 금빛 아른아른하였다. 두 손으로 항요보장을 휘둘러 붉은 봉황이 아침 해를 향하는 자세와 굶주린 호랑이가 먹이를 덮치는 자세를 펼치니, 급히 맞고 천천히 막으며 재빠르게 돌고 바삐 내질렀다. 형제 셋이 곧 신통을 펼치며 모두 반공중에서 함께 위풍을 떨치고 무용을 뽐내었다. 이야말로 이러하였도다. 참된 선의 경상은 범상치 않고, 큰 도의 연유는 온 우주에 가득하도다. 쇠와 나무가 위엄을 떨치니 법계에 넘치고, 단약과 흙이 굽이굽이 돌아 원통에 합하누나. 신병은 예리함을 때마다 드러내고, 단약 그릇의 꽃은 이르는 곳마다 숭상받도다. 천축은 비록 높으나 오히려 계율의 성품이요, 옥화의 왕자들은 마침내 중도로 돌아오리라. 놀란 어린 왕자 셋은 티끌 위에 무릎을 꿇었다. 폭사정의 크고 작은 인원이며 왕부의 늙은 왕자와, 온 성의 군사와 백성, 남녀와 승니도속 할 것 없이 모든 이가 집집마다 부처를 생각하며 머리 조아리고 호호마다 향 사르며 절하였다. 참으로 그러하였도다. 형상을 보고 참됨으로 돌아와 뭇 중을 제도하니, 인간에서 복을 지어 맑고 평안함을 누리도다. 이제부터 과보가 보리의 길을 바루니, 모두 참선하고 부처께 절하는 사람이로다. 그들 셋은 저마다 재주를 뽐내며 한바탕 펼치고 상서로운 구름을 내려 병기를 거두고는 당승 앞에 이르러 문안을 올리고 스승의 은혜에 사례한 뒤 저마다 앉았으니 이만 각설한다. 어린 왕자 셋은 급히 궁으로 돌아가 늙은 왕에게 아뢰었다. “아바마마께서는 만 번의 큰 기쁨이 있으시옵니다! 이제 더없이 큰 공이 생겼나이다! 방금 반공중에서 춤추는 것을 보셨사옵니까?” 늙은 왕이 말했다. “나는 방금 반공중의 노을빛을 보고 궁원 안에서 너의 어미를 비롯한 무리와 함께 향을 사르고 절을 올렸느니라, 더구나 어디서 신선이 내려와 모였는지도 알지 못하였노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디서 온 신선이 아니라 바로 경을 구하러 온 중의 못생긴 제자 셋이옵니다. 하나는 금고봉을 쓰고 하나는 구치정파를 쓰며 하나는 항요보장을 쓰는데, 우리 셋의 병기를 견주어 보니 털끝만큼도 비할 바가 없사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한바탕 휘둘러 달라 하였더니 그가 땅이 좁아 손을 쓰기 좋지 않다 하고는 우리가 허공에 떠오르기를 기다려 한바탕 휘둘러 보이라 하였사옵니다. 그들이 저마다 구름을 타고 온 하늘에 상서로운 구름이 아른아른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자욱하더니, 막 내려앉아 모두 폭사정에 앉아 있사옵니다. 자 된 자들이 매우 기뻐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 수단을 배워 우리 나라를 지키고자 하오니, 이는 참으로 더없이 큰 공이옵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옵니까?” 늙은 왕은 그 말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그 소원을 좇았다. 이때 부자 네 사람은 가마도 꾸미지 않고 일산도 펴지 않은 채 걸어서 폭사정에 이르렀다. 사부와 제자 넷은 행장을 수습하여 부에 들어가 공양에 사례하고 왕에게 하직하여 떠나려 하는데, 마침 옥화왕 부자가 정자에 올라와 몸을 던져 절하니 장로는 황급히 땅에 엎드려 답례하고 행자 등은 곁으로 비켜서며 빙그레 냉소를 띠었다. 무리가 절을 마치고 사부와 제자 넷을 청하여 부의 당 위에 앉게 하였다. 넷이 기꺼이 들어가니 늙은 왕이 몸을 일으켜 말했다. “당나라 스승님이시여, 과인이 한 가지 일을 청하오니 세 높은 제자께서 들어 주실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천세의 분부에 따르겠사오니 어린 제자들은 감히 어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늙은 왕이 말했다. “과인이 처음 여러분을 뵈었을 때는 당나라에서 멀리 온 행각승인 줄로만 여겼사오니, 실로 육안 범태라 경솔하고 모욕된 대접이 많았나이다. 방금 손 스승님과 저 스승님과 사 스승님이 허공에서 춤추는 것을 보고서야 선인이요 부처이심을 알았나이다. 과인의 개 같은 아들 셋이 평생 무예를 즐기기에, 이제 삼가 정성을 내어 문도가 되어 무예를 배우고자 하오니, 부디 스승님께서는 천지 같은 마음을 여시고 자비의 배를 띄우시어 어린것들을 전수해 주시옵소서. 반드시 온 성의 재물로 사례하겠나이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전하께서는 일을 참 모르시는구려! 우리 출가인은 제자 몇이라도 전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느니라. 그대의 영랑이 이미 선을 좇는 마음이 있거든, 털끝만큼의 이익도 입에 올리지 말고 다만 정으로 사귀면 그것으로 사랑이 족하니라.” 왕자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곧 큰 잔치를 베풀라 명하여 본부 정당에 차려 놓았다. 아! 한마디 명이 떨어지자 즉시 갖추어졌다. 보이는 바는 이러하였다. 채색 띠 나부끼고 향 연기 그윽하도다. 금 박은 탁자에 교초를 드리워 사람의 눈을 현혹하고, 채색 칠을 한 의자에 비단을 깔아 자리의 풍광을 더하누나. 나무 열매 신선하고 차는 향기를 내뿜도다. 서너 가지 간식은 맑고 달고, 한두 끼 만두는 넉넉하고 깨끗하도다. 찐 과자와 꿀 조림이 더욱 기이하고, 기름에 튀겨 설탕 끼얹은 것이 아름답도다. 향기로운 찹쌀 채주 몇 병은 따라 내면 옥 같은 술을 능가하고, 양선 신선의 차를 몇 차례 올리니 손에 받으면 향기가 붉은 계수를 능가하도다. 가지가지 물품이 모두 갖추어지고 낱낱의 차림이 기이하도다. 한편에서는 승응하는 이들을 불러 노래와 춤과 피리와 거문고를 연주하며 연희를 펼쳤다. 사부와 제자들이며 왕 부자는 하루를 다 즐겼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술자리가 파하니, 또 폭사정에 침상과 휘장을 펴고 스승님을 모셔 주무시게 하고 이튿날 아침 정성을 다해 향을 사르고 다시 절하여 무예 전수를 청하겠다 하였다. 무리가 모두 좇아 즉시 향기로운 목욕물을 마련하여 스승님께 목욕을 청하고는 물러가 잠들었다. 이때 그 모습은 이러하였다. 뭇 새 높이 깃들고 온갖 소리 가라앉으니, 시인은 침상에 누워 읊기를 그쳤도다. 은하수 빛을 드러내니 하늘 더욱 밝고, 들길 황량하여 풀 더욱 깊도다. 다듬이 소리 뚱땅뚱땅 다른 뜰을 두드리고, 아득한 관산은 고향 그리는 마음을 움직이누나. 찬 귀뚜라미 소리 맑아 사람의 뜻을 아는 듯하고, 머리맡 울음이 꿈속의 넋을 깨뜨리도다. 하룻밤의 저녁 경치는 이만 접어 두고, 이튿날 아침에 그 늙은 왕 부자가 또 이 장로를 만나러 왔다. 어제 만났을 때는 오히려 왕의 예였거늘 오늘은 곧 스승의 예를 행하였다. 어린 왕자 셋이 행자와 팔계와 사오정을 향해 면전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고 물었다. “높으신 스승님의 병기를 제자들에게 내어 주시어 좀 보게 해 주시옵소서.” 팔계는 그 말을 듣고 기꺼이 구치정파를 꺼내어 땅에 내동댕이쳤다. 사오정도 보장을 꺼내어 던져 담 곁에 기대어 놓았다. 둘째 왕자와 셋째 왕자가 뛰어가서 곧 잡으려 하였으나 마치 잠자리가 돌기둥을 흔드는 격이라, 하나하나가 얼굴이 붉어지도록 애를 썼건만 반 털끝만큼도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큰 왕자가 이를 보고 외쳤다. “동생들아, 힘을 쓰지 말라. 스승님의 병기는 모두 신령한 병기니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도다!” “내 쇠스랑도 그리 무겁지 않소, 다만 경 한 장의 수효라 자루까지 합쳐 오천 마흔여덟 근이니라.” 셋째 왕자가 사오정에게 물었다. “스승님의 보장은 무게가 얼마나 되시옵니까?”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오천 마흔여덟 근이로다.” 큰 왕자가 행자의 금고봉을 보고자 청하였다. 행자는 귀에서 바늘 하나를 꺼내어 바람을 맞으며 한번 흔들어 보이니 곧 사발만 한 굵기가 되어 곧게 앞에 꽂혀 섰다. 그 왕 부자는 모두 두려워하고 여러 관원은 하나하나 가슴이 철렁하였다. 어린 왕자 셋이 절하며 물었다. “저 스승님과 사 스승님의 병기는 모두 몸에 지녀 옷 아래 있으니 곧 꺼낼 수 있사옵거늘, 손 스승님께서는 어찌하여 귀에서 꺼내시고 바람을 보면 곧 자라나는 것이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내 이 봉이 범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는구나. 이 봉은 이러하니라. 홍몽이 처음 갈라질 때 녹여 빚은 쇠요, 대우 신인이 친히 마련한 바이니라. 호수와 바다와 강물의 얕고 깊음을 일찍이 이 봉으로 절실히 알았도다. 산을 열고 물을 다스려 태평하던 때에 흘러내려 동녘 바다의 해궐을 지켰느니라. 세월이 오래고 해가 깊어지자 채색 노을을 뿜으니,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고 빛나고 깨끗할 수도 있도다. 늙은 손오공이 인연이 있어 가져왔으니 변화에 방도가 없이 주결을 따르느니라. 커지기를 바라면 우주 사이에 가득하고 작아지기를 바라면 바늘 한 마디같이 되느니라. 봉의 이름은 여의요 호는 금고라, 하늘과 인간에서 첫째라 일컫도다. 무게는 마땅히 만 삼천오백 근이요, 굵거나 가늘거나 생하고 멸할 수 있느니라. 일찍이 나를 도와 천궁을 뒤집었고 일찍이 나를 따라 지궐을 쳤도다. 호랑이를 굴복시키고 용을 항복받음에 곳곳이 통하고, 마귀를 단련하고 괴물을 소탕함에 방방이 철저하도다. 머리를 들어 한번 가리키면 태양이 어두워지고 천지의 귀신이 모두 간담이 서늘하도다. 혼돈의 신선이 전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본래 범간의 쇠가 아니니라.” 그 왕자들은 그 말을 듣고 저마다 정례를 거듭하여 마지않았다. 셋이 앞으로 나아가 거듭 절하며 정성껏 가르침을 청하니 행자가 말했다. “너희 셋은 무슨 무예를 배우려느냐?” 왕자가 말했다. “몽둥이 쓰고 싶은 자는 몽둥이를 배우고, 쇠스랑에 익은 자는 쇠스랑을 배우며, 지팡이 좋아하는 자는 지팡이를 배우겠나이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가르치기는 쉬우나 너희에게 힘이 없어 우리 병기를 못 쓰니, 배워도 정밀하지 못해 호랑이를 그리다 도리어 개를 닮을까 두렵노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가르침이 엄하지 않으면 스승의 게으름이요 배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자의 죄라 하였느니라. 너희가 이미 정성이 있으니 가서 향을 사르고 천지에 절하여라, 내가 먼저 신력을 전한 뒤에야 무예를 전하리라.” 어린 왕자 셋이 그 말을 듣고 흐뭇하여 친히 향안을 메어다 놓고 손 씻고 향을 사르며 하늘에 절하였다. 절을 마치고 스승께 법을 전해 주시기를 청하니, 행자가 몸을 돌려 당승에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존경하는 스승님께 고하옵나니 제자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예전 양계산에서 스승님의 큰 덕으로 제자가 구출된 이래 사문의 가르침을 받들고 서쪽으로 오면서 비록 스승님의 은혜를 갚지는 못하였사오나, 물을 건너고 산을 오르며 힘을 다하였나이다. 이제 불국의 고장에서 어진 왕의 세 아들을 만나 우리에게 절하며 무예를 배우고자 하옵니다. 그들이 이미 우리 제자가 되었사오니 곧 스승님의 손제자이옵니다. 삼가 스승님께 아뢰어 허락을 받은 뒤에야 전수하옵겠나이다.” 삼장이 몹시 기뻐하였다. 팔계와 사오정은 행자가 예를 올리는 것을 보고 몸을 돌려 삼장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스승님, 저희는 어리석고 입이 무디어 말할 줄 모르옵니다. 부디 높은 법위에 앉으시어 저희 둘에게도 제자 하나씩을 거느려 놀게 하시옵소서, 그것 또한 서천 길의 추억이 되나이다.” 삼장이 모두 기꺼이 허락하였다. 행자가 비로소 세 왕자에게 분부하여 폭사정 뒤의 고요한 방 사이에 강두를 그리고 세 사람이 모두 그 안에 엎드리게 한 뒤 하나하나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게 하였다. 이쪽에서는 몰래 진언을 외우고 주문을 송하여 신선의 기운을 그들 세 사람의 심복 속에 불어넣고 원신을 본래의 집으로 거두어 들여 주결을 전하니, 저마다 만에 만의 완력을 얻고 화후를 더하여 마치 탈태환골하는 법과 같았다. 자오 주천을 두루 운행하고서야 어린 왕자 셋이 비로소 깨어나 함께 기어 일어나 얼굴을 쓱쓱 문지르니 정신이 맑게 깨어나고 하나하나 뼈가 굳세고 힘줄이 억세었다. 큰 왕자는 곧 금고봉을 들 수 있고 둘째 왕자는 곧 구치정파를 휘두를 수 있으며 셋째 왕자는 곧 항요보장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늙은 왕이 이를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또 채식 잔치를 베풀어 그 사부와 제자 넷에게 사례하였다. 바로 잔치 앞에서 저마다 전하고 저마다 배우니, 몽둥이를 배우는 이는 몽둥이를 펼치고 쇠스랑을 배우는 이는 쇠스랑을 펼치며 지팡이를 배우는 이는 지팡이를 펼쳤다. 비록 몇 번 몸을 돌리고 몇 가지 재주를 펼치기는 하되 마침내는 힘이 드는지라 한바탕 돌고 나면 숨을 헐떡거려 오래 견디지 못하였다. 대개 그 병기가 모두 변화가 있어 나아가고 물러서고 공격하고 들어올림이 줄어들고 늘어남을 따라 변화 자연의 묘함을 지녔거늘, 이런 무리는 마침내 범부라 어찌 갑자기 미칠 수 있으랴. 이날로 잔치가 파하였다. 이튿날 세 왕자가 또 찾아와 사례하며 말했다. “신령한 스승님께서 완력을 내려 주신 은혜를 입었사옵니다만, 비록 스승님의 신기를 휘두를 수 있다 하여도 다만 바꾸어 쓰기가 어렵사옵니다. 장인에게 명하여 스승님의 신기 본을 따라 무게를 줄여 똑같이 만들어 두고자 하오니, 스승님께서 허락하실는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팔계가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말이 되는구려. 우리의 병기는 하나는 너희가 쓰지 못하고 둘은 우리가 법을 지키고 마귀를 항복받아야 하니, 마땅히 따로 만들어야 하느니라.” 왕자가 또 철장인을 불러들이고 쇠와 강철 만 근을 사들여 왕부 안 앞뜰에 공장을 짓고 화로를 걸어 주조하게 하였다. 첫날에는 쇠와 강철을 달구어 익히고 이튿날에는 행자 세 사람을 청하여 금고봉과 구치정파와 항요보장을 모두 꺼내어 천막 공장 사이에 놓아두고 본을 보아 만들게 하였으니, 이리하여 밤낮으로 거두지 않았다. 아! 이 병기는 본래 그들이 몸에 지닌 보배라 한순간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라, 저마다 몸에 감추어 두면 저절로 많은 광채가 몸을 지켜 준다. 이제 공장 뜰에 며칠을 두었더니 그 노을빛이 만 갈래가 하늘을 찌르고 상서로운 기운이 천 가지로 땅을 덮었다. 그날 밤 요정 하나가 있었는데 성에서 겨우 칠십 리쯤 떨어진 곳이라 산은 표두산이라 불리고 굴은 호구동이라 불렸다. 밤에 앉아 있다가 문득 노을빛과 상서로운 기운을 보고 곧 구름을 타고 가서 살펴보았다. 본래 주성의 광채라 그가 구름을 내려앉히고 가까이 나아가 살펴보니 바로 이 세 가지 병기가 빛을 내고 있었다. 요정은 기쁘고도 사랑스러워하며 말했다. “좋은 보배로다! 좋은 보배로다! 이것이 어느 사람이 쓰는 것인데 이제 여기 두었단 말이냐? 이것 또한 나의 인연이니 가져 가자꾸나! 가져 가자꾸나!” 그의 탐내는 마음이 한번 움직이자 위풍을 부리며 세 가지 병기를 한꺼번에 거두어 들여 곧장 본래의 굴로 돌아갔다.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나니, 떠나는 것은 도가 아니니라. 신병이 모두 허공에 떨어졌으니 닦은 이의 수고 헛되도다. 이 병기를 어찌 찾을지 모르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89회 황사정허설정파연(黃獅精虛設釘鈀宴) · 금목토계요표두산(金木土計鬧豹頭山) 각설하고 그 뜨락에 있던 대장장이 몇 사람은 여러 날 고생한 탓에 밤이 되자 모두 저절로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아 일어나 벼려 보니 천막 아래에 세 가지 병기가 보이지 않으므로, 하나하나 넋이 나가고 혼이 놀라 사방을 뒤지며 찾았다. 그때 그 세 왕자가 궁에서 나와 보러 오니, 대장장이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어린 주공이시여, 신사님의 세 가지 병기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나이다!” 어린 왕자가 그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여 말했다. “아마도 스승님께서 오늘 밤 거두어 가신 모양이오.” 급히 포사정으로 달려가 보니 흰 말이 아직 처마 아래에 있어, 참지 못하고 소리쳐 말했다. “스승님, 아직 주무시옵니까!” 사오정이 말했다. “일어나셨소.” 곧 방문을 열어 왕자를 안으로 들어가 보게 하니 병기가 보이지 않으므로, 허둥지둥하며 물었다. “스승님의 병기를 다 거두어 오셨소?” 행자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거둔 적 없소!” 왕자가 말했다. “세 가지 병기가 오늘 밤에 모두 사라졌나이다.” 저팔계가 황급히 기어 일어나며 말했다. “내 갈퀴는 그대로 있소?” 어린 왕자가 말했다. “방금 저희가 나와 보니 여러 사람이 앞뒤로 찾아도 보이지 않기에, 제자가 스승님께서 거두신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다가 이제야 와서 여쭙나이다. 스승님의 보배는 모두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시니, 틀림없이 몸에 감추시고 제자를 속이시는 줄로만 아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참으로 거둔 적이 없으니 모두 찾아보세.” 함께 뜨락 천막 아래로 가니 과연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 저팔계가 말했다. “틀림없이 이 대장장이 놈들이 훔쳤소! 어서 내놓아라! 조금만 늦으면 모조리 때려 죽여 버리리라! 죽여 버리리라!” 그 대장장이들이 놀라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떨구고 말했다. “영감님! 저희는 여러 날 고생하다가 밤에 잠이 들었고, 날이 밝아 일어나 보니 그만 없어졌나이다. 저희는 한갓 범부이온데 어찌 그것을 옮길 수 있사오리까, 부디 목숨을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행자는 말없이 속으로 한탄하며 말했다. “이 또한 우리의 잘못이로다. 이미 본을 보였거든 마땅히 몸에 지녔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이곳에 내버려 두었던고! 그 보배가 아름다운 빛을 내어 필경 무슨 악한을 놀라게 하였으니, 오늘 밤 도둑맞은 게로다.” 저팔계는 믿지 않고 말했다.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시오! 이렇게 태평한 곳이요, 또 황량한 벌판이나 깊은 산도 아니온데 어찌 악한이 올 수 있겠소! 틀림없이 대장장이들이 속을 삭인 것이오. 그들이 우리 병기의 고운 빛을 보고 세 가지 보배임을 알아차려, 밤을 틈타 왕부를 빠져나가 몇 사람을 끌어모아, 메는 놈은 메고 끄는 놈은 끌어 훔쳐 간 것이오! 이리 데려와서 때리자! 때리란 말이오!” 여러 장인은 다만 머리를 조아리며 맹세할 뿐이었다. 한창 떠들어 대는데 늙은 왕자가 나와 앞의 일을 물었고, 그 또한 얼굴에 핏기가 없어진 채 한참을 잠잠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신사의 병기는 본디 범상한 것과 다르니, 백여 명이 있다 한들 어찌 움직일 수 있으리오. 하물며 과인이 이 성에 있은 지 이미 오대요, 큰소리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로되 과인도 밖에 꽤 어진 이름이 있으며, 이 성안의 군사와 백성과 장인 무리도 과인의 법도를 제법 두려워하니, 결코 감히 속을 삭이지 못하리이다. 부디 신사께서는 다시 생각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다시 생각할 것도 없고 대장장이들을 억지로 탓할 것도 없소. 내 전하께 묻겠소. 이 주성 사방에 무슨 산림이나 요괴가 있소?” 왕자가 말했다. “신사의 이 물음이 매우 이치에 맞나이다. 과인의 이 주성 북쪽에 표두산이 하나 있고, 그 산중에 호구동이 하나 있사옵니다. 늘 사람들이 굴 안에 신선이 있다 하고, 또 호랑이와 이리가 있다 하고, 또 요괴가 있다 하옵니다. 과인이 아직 자세히 알아본 적이 없어 과연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더 말할 것도 없소, 틀림없이 그쪽 악한이 모두 보배인 줄 알고 하룻밤 사이에 훔쳐 간 것이오.” 그리고 불렀다. “팔계와 사오정, 너희는 모두 여기서 스승님을 보필하고 성지를 지키고 있어라, 늙은 손오공이 찾아보고 오겠노라.” 또 대장장이들에게는 화덕의 불을 끄지 말고 하나하나 계속 벼려 내라고 일렀다. 훌륭한 원숭이 왕이로다, 삼장에게 하직을 고하고 휘파람 한 번 길게 불자 몸과 그림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어느새 표두산 위로 가 있었다. 원래 그 성과의 거리가 겨우 칠십 리라 눈 깜짝할 사이에 닿은 것이었다. 곧장 산봉우리에 올라 살펴보니 과연 요괴의 기운이 조금 있어, 참으로 그러하였다. 용맥은 아득히 길고 지세는 드넓도다. 뾰족한 봉우리는 꼿꼿이 솟아 하늘에 꽂히듯 높고, 가파른 계곡은 깊고 깊어 흐르는 물이 바쁘구나. 산 앞에는 아름다운 풀이 방석을 펴고, 산 뒤에는 기이한 꽃이 비단을 펼쳤도다. 높다란 소나무와 늙은 잣나무, 오래된 고목이 즐비한데, 까마귀와 산까치가 어지러이 날며 울고, 들 학과 들 원숭이가 모두 길게 울어 대누나. 벼랑 아래에는 사슴과 노루가 쌍쌍이요, 절벽 앞에는 오소리와 여우가 짝을 이루었도다. 한번 솟고 한번 잦아들며 용이 멀리서 오고, 아홉 굽이 아홉 물굽이에 땅의 맥이 숨었구나. 언덕머리는 옥화주와 이어져, 만고천추에 흥성한 곳이로다. 행자가 한창 보고 있는데, 홀연 산 등 뒤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이리 머리를 한 요괴 둘이 또렷또렷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북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행자가 속으로 헤아려 말했다. “틀림없이 산을 순찰하는 괴물이로구나, 늙은 손오공이 그 뒤를 따라가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리라.” 결을 쥐고 주문을 외우더니 몸을 흔들어 변하자, 나비 한 마리로 변하여 날개를 펴고 팔랑팔랑 곧장 따라붙었다. 과연 변한 모습이 제법 격식이 있었다. 한 쌍의 분홍 날개와 두 가닥의 은빛 수염이로다. 바람을 타고 급히 날아가고, 해를 받으며 천천히 춤추누나. 물을 건너고 담을 넘을 때는 날쌔고 재빠르며, 향기를 훔치고 버들개지를 희롱할 때는 몹시 즐거워하누나. 몸이 가벼워 꽃향기를 유난히 사랑하고, 고아한 자태와 향기로운 정취를 마음대로 펴고 접누나. 그는 그 요괴의 머리 바로 위로 날아가 빙빙 떠돌며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요괴가 별안간 소리쳐 말했다. “둘째 형님, 우리 대왕께서 요즈음 여러 날 운이 좋으시오. 지난달에는 미인 하나를 얻어 굴 안에서 함께 지내며 몹시 즐거워하셨는데, 어젯밤에는 또 세 가지 병기를 얻으셨는데, 과연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이올시다. 내일 아침에 연회를 열어 정파회를 경축하고 노래를 부른다 하시니, 우리 모두 덕을 보게 되었소.” 이것이 말했다. “우리도 제법 운이 좋소. 이 은자 스무 냥을 가지고 돼지와 양을 사러 가는 길인데, 이제 건방집에 닿거든 먼저 술 몇 병을 마시고, 물건값은 장부를 부풀려 적어서 은자 두세 냥을 제 주머니에 챙기고, 솜옷 한 벌을 사서 추위를 넘긴다면 어찌 좋지 않겠소?” 두 요괴는 이야기하고 웃으며 큰길로 올라서서 나는 듯이 급히 걸어갔다. 행자는 정파회를 경축한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몰래 기뻐하였으나, 그들을 때려 죽이고 싶어도 자기 일이 아닌 데다 손에 병기도 없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곧 앞으로 날아가 본모습을 드러내고 길목에 우뚝 섰다. 그 요괴들이 곁에 다다를 무렵, 그가 법술을 부린 침을 한 입 뱉으며 “옴훔타리” 하고 한 소리 외우고는 곧 정신법을 써서 이리 머리 정 둘을 꼼짝 못 하게 묶어 버렸다. 눈은 휘둥그레 뜨였건만 입은 열 수 없고, 몸은 꼿꼿이 뻗은 채 두 발로 서 있기만 하였다. 또 그들을 넘어뜨려 옷을 들추고 뒤져 보니 과연 은자 스무 냥이 있어, 보자기 하나에 싸서 허리치마 띠에 매달고 있었고, 또 저마다 분칠한 패쪽을 하나씩 차고 있는데 하나에는 “조참고괴”라 쓰여 있고 하나에는 “고괴조참”이라 쓰여 있었다. 훌륭한 대성이로다, 그들의 은자를 취하고 패쪽을 풀어 들고는 걸음을 되돌려 주성으로 돌아왔다. 왕부에 이르러 왕자와 당승을 비롯한 크고 작은 관리와 장인들을 만나 앞의 일을 낱낱이 말했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늙은 저팔계의 보배가 아름다운 빛을 내니, 그래서 돼지와 양을 사다 잔치를 차려 경축한다는 말이오. 다만 이제 어찌하면 그놈이 오겠소?” 행자가 말했다. “우리 형제 셋이 모두 가는 것이오. 이 은자는 돼지와 양을 마련하라고 준 것이니, 우선 이 은자를 장인들에게 상으로 주고 전하께 돼지와 양 몇 마리를 구하게 하시오. 팔계는 조참고괴로 변하고, 나는 고괴조참으로 변하며, 사오정은 돼지와 양을 파는 장사치로 꾸미게. 그리하여 그 호구동 안으로 들어가서 틈이 나는 대로 저마다 병기를 들고 그 요사한 놈들을 모조리 때려 죽인 뒤, 돌아와서 길을 떠날 채비를 하세.”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묘하오! 묘해! 묘하단 말이오! 늦추지 맙시다! 어서 갑시다!” 늙은 왕이 과연 이 계책대로 하여, 즉시 일을 맡은 자에게 명하여 돼지 일고여덟 마리와 양 네다섯 마리를 사 오게 하였다. 그들 세 사람은 스승님께 하직하고 성 밖에서 크게 신통력을 드러냈다.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나는 그 조참고괴를 본 적이 없는데 어찌 그놈의 모습으로 변한단 말이오?” 행자가 말했다. “그 요괴는 늙은 손오공이 정신법을 써서 그곳에 묶어 두었으니 내일 이맘때에야 깨어나리라. 내가 그놈의 생김새를 기억하니 너는 거기 서 있어라, 내가 변하는 법을 가르쳐 주마. 이러쿵저러쿵하면 곧 그놈의 모습이 되는 것이니라.” 그 멍청이는 참으로 입으로 주문을 외우고 행자가 선기운 한 입을 불어 넣자, 삽시간에 조참고괴와 조금도 다름없이 변하여 분칠한 패쪽 하나를 허리에 찼다. 행자는 곧 고괴조참으로 변하여 허리에 패쪽 하나를 차고, 사오정은 돼지와 양을 파는 장사치로 꾸몄다. 함께 돼지와 양을 몰고 큰길로 올라서서 곧장 산으로 달려갔다. 오래지 않아 산속 오목한 곳으로 들어서는데, 또 요괴 하나를 만났다. 그놈의 생김새 또한 몹시 흉악하여라! 보아라. 둥글고 둥글게 굴러가는 두 눈이 등불처럼 번쩍이고, 새빨간 머리털이 한 가닥 불처럼 빛을 날리누나. 술에 절은 붉은 코와 삐뚤어진 주둥이에 송곳니가 날카롭고, 벌어진 귀와 깎아 세운 이마에 푸른 낯이 물집처럼 부풀었도다. 몸에는 옅은 노란 옷 한 벌을 걸치고, 발에는 사초로 삼은 신 한 켤레를 신었구나. 늠름하고 위풍당당함은 흉악한 귀신 같고, 급급하고 바쁜 모습은 사나운 악귀 같도다. 그 요괴는 왼쪽 겨드랑이에 채색 칠을 한 청첩 함 하나를 끼고, 행자 세 사람을 마주 서서 소리쳐 말했다. “고괴조참, 너희 둘이 왔느냐? 돼지와 양을 몇 마리나 샀느냐?” 행자가 말했다. “이렇게 몰고 온 것이 보이지 않느냐?” 그 요괴가 사오정을 향해 말했다. “이분은 누구시오?” 행자가 말했다. “돼지와 양을 파는 장사치인데, 아직 은자 몇 냥을 덜 주었으므로 은자를 받으러 데리고 온 것이오. 너는 어디로 가느냐?” 그 요괴가 말했다. “나는 죽절산으로 가서 큰 대왕을 모셔 와 내일 아침 잔치에 참석하게 하려 하오.” 행자가 그놈의 말투를 흉내 내어 물었다. “모두 몇 사람을 청하느냐?” 그 요괴가 말했다. “큰 대왕을 상석에 모시고, 본산 대왕과 여러 두목들을 합하여 사십여 분쯤 되오.” 한창 말하는데 저팔계가 말했다. “가세, 가자고! 돼지와 양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네!” 행자가 말했다. “너는 가서 몰아라, 내가 그놈에게서 초대장을 받아 보마.” 그 요괴는 같은 집안 사람이라 여겨 즉시 함을 열어 꺼내어 행자에게 건넸다. 행자가 펼쳐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내일 아침 삼가 안주와 술을 마련하여 정파 가회를 경축하오니, 높은 걸음으로 산을 넘어 오셔서 한자리 함께하시옵소서. 부디 사양치 마시옵소서, 더없이 감사하겠나이다. 오른쪽에 올리나이다. 조옹이신 구령원성 노대인의 존전에. 문하손 황사가 머리 조아리고 백 번 절을 올리나이다.” 행자가 다 보고 나서 도로 그 요괴에게 건네니, 그 요괴는 함에 넣고는 곧장 동남쪽으로 가 버렸다. 사오정이 물었다. “형님, 초대장에 무슨 말이 쓰여 있었소?” 행자가 말했다. “정파회를 경축하는 청첩인데, 이름을 문하손 황사가 머리 조아리고 백 번 절을 올린다 하였고, 청하는 이는 조옹 구령원성 노대인이더라.”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황사는 필경 금빛 털의 사자가 정이 된 모양이나, 구령원성이란 것이 무슨 물건인지는 모르겠소.”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늙은 저팔계의 물건이오!” 행자가 말했다. “어찌하여 네 물건이란 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옴 앓는 암퇘지는 금빛 털 사자를 쫓는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늙은 저팔계의 물건인 줄 아오.” 그들 세 사람은 이야기하고 웃으며 돼지와 양을 몰고 가는데, 어느덧 호구동 문이 바라보였다. 그 문 밖을 보니 이러하였다. 둘레에는 산이 푸르게 둘러 있고, 한 줄기 기운이 성과 이어졌도다. 가파른 벽에는 푸른 덩굴이 붙잡고, 높은 벼랑에는 붉은 등나무가 드리웠구나. 새소리는 깊은 나무에 두루 감돌고, 꽃 그림자는 굴문을 마주 나왔도다. 도원동에 조금도 뒤지지 않으니, 세상을 피해 살기에 알맞은 곳이로다. 차츰 굴 어귀에 가까이 이르러 보니, 크고 작은 잡다한 요괴 한 무리가 꽃나무 아래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저팔계가 “하! 하!” 하고 돼지와 양을 몰고 이르렀다는 소리가 홀연 들리자, 모두 나와 맞이하여 돼지는 돼지대로 잡고 양은 양대로 잡아서 일제히 묶어 넘겨뜨렸다. 이내 안의 요왕이 놀라 나와, 요괴 십수 명을 거느리고 물었다. “너희 둘이 왔느냐? 돼지와 양을 얼마나 샀느냐?” 행자가 말했다. “돼지 여덟 마리와 양 일곱 마리를 샀으니 모두 열다섯 마리의 짐승이오. 돼지값은 열여섯 냥이요 양값은 아홉 냥인데, 앞서 은자 스무 냥을 받았으니 아직 다섯 냥이 모자라오. 이 사람이 바로 장사치인데 은자를 받으러 따라왔소.” 요왕이 그 말을 듣고 곧 불렀다. “아이들아, 은자 다섯 냥을 가져다가 그를 돌려보내라.” 행자가 말했다. “이 장사치는 한편으로는 은자를 받으러 왔고, 또 한편으로는 가회를 좀 보고 싶어 하오.” 그 요괴가 크게 노하여 꾸짖으며 말했다. “이 조참고괴 같은 놈,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네가 물건을 샀으면 그만이지, 어찌 남에게 잔치니 어쩌니 하고 말하였느냐!” 저팔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주인공께서 보배를 얻으셨으니 참으로 천하의 기이한 진품이온데, 그에게 잠깐 보이라고 하는 것이 무에 두렵소?” 그 요괴가 콧방귀를 꾸며 한마디 하였다. “이 고괴조참도 밉살스럽구나! 내 이 보배는 옥화주 성중에서 얻어 온 것인데, 만약 이 장사치가 보고서 그 주성에 가서 소문을 내어 사람들이 알게 되고, 그 왕자가 어느 날 찾아와 구하게 된다면 어찌하겠느냐?” 행자가 말했다. “주공, 이 장사치는 건방집 뒤쪽 사람이온데 주성에서 아주 멀고 또 그 성안 사람도 아니온즉 어디에 가서 소문을 낸단 말이오? 둘째로 그의 배가 고프고 우리 둘도 아직 밥을 못 먹었소. 집에 마련된 술과 밥이 있거든 좀 주어 먹이고 돌려보냅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요괴 하나가 은자 다섯 냥을 가져다 행자에게 건넸다. 행자는 그 은자를 사오정에게 건네며 말했다. “장사치, 은자를 받으시오. 내가 당신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서 밥을 좀 먹고 오리다.” 사오정이 담력을 내어 저팔계와 행자를 따라 굴 안으로 들어가 이층 넓은 청에 이르니, 한가운데 탁자 위에 아홉 갈래 쇠갈퀴 하나가 높이 모셔져 있었는데 참으로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동쪽 산머리에는 금고봉 하나가 기대어 있고, 서쪽 산머리에는 항요장 하나가 기대어 있었다. 그 요괴 왕이 뒤따라오며 말했다. “장사치, 저 한가운데서 빛을 뿜는 것이 바로 갈퀴요. 보기는 보되, 나가거든 천만 남에게 말하지 말라.” 사오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인사하였다. 아! 이것이야말로 물건이 주인을 만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이치니, 저팔계는 평생 멍청하고 우직한 사람이라 갈퀴를 보자 무슨 사정을 늘어놓을 것 있으랴. 달려 올라가 갈퀴를 집어 내려 손에 쥐고는 본모습을 드러내어 온갖 재주를 펴 보이며 요괴의 얼굴을 향해 마주 갈겨 댔다. 행자와 사오정도 두 산머리로 달려가 저마다 병기를 들고 원래의 몸을 나타냈다. 세 형제가 일제히 마구 때리니, 그 요괴 왕이 놀라 급히 몸을 빼어 피하고는 뒤쪽으로 들어가 사명삽 하나를 들고 왔는데, 자루는 길고 창 끝은 날카로웠다. 뜰 가운데로 달려 나와 그 세 가지 병기를 받아 버티며, 목소리를 높여 꾸짖어 말했다. “너희는 무슨 놈이기에 감히 속임수를 부려 내 보배를 속여 가려 하느냐!” 행자가 꾸짖어 말했다. “이 도둑털 뭉치 같은 놈아,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우리는 동토의 성스러운 승려 당삼장의 제자니라. 옥화주에 이르러 통행 문서를 바꾸는데, 어진 왕께서 그 세 왕자를 시켜 우리를 스승으로 모시고 무예를 배우게 하시며, 우리 보배를 본으로 삼아 그대로 병기를 만들게 하셨느니라. 그것을 뜨락에 두었더니, 이 도둑털 뭉치 같은 놈이 깊은 밤을 틈타 성안에 들어와 훔쳐 가 놓고, 도리어 내가 속임수를 부려 네 보배를 속여 갔다 하느냐! 달아나지 마라! 우리 이 세 가지 병기로 너에게 몇 방씩 맛을 보여 주리라!” 그 요괴가 곧 삽을 들어 맞섰다. 이 한바탕 싸움은 뜰 가운데에서 앞문으로 치달아 나갔다. 보아라, 중 셋이 요괴 하나를 에워싸고 싸우는 모습이여! 훌륭한 싸움이로다. 휘익 휘익 몽둥이는 바람 같고, 와글와글 갈퀴는 비처럼 쏟아지누나. 항요장이 들리자 하늘에 노을이 가득하고, 사명삽이 뻗자 구름에 비단 무늬가 피어나누나. 마치 세 신선이 큰 단약을 불리는 듯, 불빛이 찬란하게 번쩍여 귀신을 놀라게 하누나. 행자가 위력을 떨치니 재능이 뛰어나고, 요괴가 보배를 훔쳤으니 몹시 무례하도다! 천봉 저팔계는 신통을 드러내고, 대장 사오정은 영웅다움이 더욱 빼어나누나. 형제가 뜻을 모아 꾀를 부리니, 호구동에서 큰 싸움이 일어났도다. 저 요괴는 호걸이라 교묘한 재주를 부리고, 네 영웅은 서로 견주어 볼 만하누나. 이윽고 해가 서산에 기울도록 싸우니, 요사한 놈이 힘이 풀려 당해 낼 수 없더라. 그들이 표두산에서 오래도록 싸우는데, 그 요괴가 더는 당해 내지 못하고 사오정을 향해 “삽 받아라!” 하고 한마디 외쳤다. 사오정이 몸을 돌려 피하자 요괴는 틈을 얻어 동남쪽 손궁 방위로 바람을 타고 날아 달아났다. 저팔계가 걸음을 옮겨 쫓으려 하니 행자가 말했다. “우선 가게 두어라, 예로부터 궁지에 몰린 도적은 쫓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다만 그의 돌아올 길을 끊어 버리자.” 저팔계가 그 말을 따랐다. 세 사람은 곧 굴 어귀로 가서, 그 크고 작은 백여 명의 요괴를 모조리 때려 죽였는데, 알고 보니 모두 호랑이와 이리와 표범과 말과 사슴과 산양이었다. 대성이 수법 하나를 부려, 그 굴 속의 가벼운 재물과 때려 죽인 잡다한 짐승의 시체와 몰고 온 돼지와 양을 모두 밖으로 끌어냈다. 사오정이 곧 마른 땔감을 꺼내 불을 붙이고 저팔계가 두 귀로 바람을 부채질하니, 소굴 하나가 삽시간에 말끔히 타 버렸다. 그러고는 끌어낸 여러 물건을 가지고 곧 주성으로 돌아왔다. 이때는 성문이 아직 열려 있고 인가도 잠들지 않아, 늙은 왕 부자와 당승이 모두 포사정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퍼덕퍼덕 죽은 짐승과 돼지와 양과 값진 물건을 뜰 가득 내던지는 것이 보이더니, 일제히 소리쳐 말했다. “스승님, 저희가 승리하여 돌아왔나이다!” 그 전하가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고 당장로는 마음이 가득 기뻤으며, 세 어린 왕자가 땅에 엎드려 절하니 사오정이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아직 고맙다 하지 말고 모두 앞으로 와서 저 물건들을 보시오.” 왕자가 말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어디서 온 것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 호랑이와 이리와 표범과 말과 사슴과 산양은 모두 정이 든 요괴들이오. 우리가 병기를 되찾고 문 밖으로 쫓아내었소. 그 늙은 요괴는 금빛 털 사자인데 사명삽 하나를 써서 우리와 해 질 때까지 싸우다가, 진을 버리고 목숨을 건져 동남쪽으로 달아났소. 우리는 그를 쫓지 않고 그의 돌아갈 길을 쓸어 버리고 이 무리 요괴들을 때려 죽인 뒤, 저 물건들을 찾아내어 가지고 온 것이오.” 늙은 왕이 그 말을 듣고 기쁘기도 하고 근심스럽기도 하였다. 기쁜 것은 승리하여 돌아온 것이요, 근심되는 것은 저 요괴가 뒷날 복수하러 올 일이었다. 행자가 말했다. “전하는 마음을 놓으시오, 내가 이미 깊이 생각하여 마땅히 처리할 바를 정해 두었소. 반드시 전하를 위해 모조리 쓸어 없앤 뒤에야 떠날 것이니, 결코 뒷날에 해를 남기지 않으리다. 내가 낮에 갔을 때 푸른 낯에 붉은 털을 한 요괴 하나가 청첩을 전하는 것을 만났는데, 그 초대장에 ‘내일 아침 삼가 안주와 술을 마련하여 정파 가회를 경축하오니, 수레와 행차를 굽히시어 산을 넘어 오셔서 한자리 함께하시옵소서. 부디 사양치 마시옵소서, 더없이 감사하겠나이다. 오른쪽에 올리나이다. 조옹이신 구령원성 노대인의 존전에’라 쓰여 있었고, 이름은 문하손 황사가 머리 조아리고 백 번 절을 올린다 하였소. 방금 저 요괴가 싸움에서 졌으니 필경 그 조옹에게 가서 의논할 것이요, 내일 아침에는 틀림없이 우리를 찾아와 복수하려 들 터이니, 정성을 다해 전하를 위해 말끔히 쓸어 버리겠소.” 늙은 왕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저녁 공양을 차려 올렸다. 사부와 제자들은 공양을 마치고 저마다 잠자리로 돌아갔으니, 이 일은 각설한다. 각설하고 그 요괴는 과연 동남쪽을 향해 죽절산으로 달려갔다. 그 산중에는 신선이 사는 굴 하나가 있어 이름을 구곡반환동이라 하였거늘, 굴 속의 구령원성이 바로 그의 조옹이었다. 그날 밤 발이 바람을 멈추지 않고 달려, 오경 무렵에 굴 어귀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요괴 하나가 보고는 말했다. “대왕, 어젯밤에 푸른 낯의 아이가 청첩을 가지고 내려왔기에 할아버지께서 그를 붙잡아 오늘 아침까지 머물게 하시고, 그와 함께 대왕의 정파회에 가시려 하였는데, 어찌하여 또 이리 이른 새벽에 몸소 오셔서 청하시오?” 요괴가 말했다. “말도 마오, 말도 마오! 잔치는 열 수 없게 되었소!” 한창 말하는데, 푸른 낯의 아이가 안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대왕, 어인 일로 오셨소? 큰 대왕 할아버지께서 일어나시면 나와 함께 잔치에 가시려 하는데요.” 요괴는 몹시 당황한 나머지 다만 손을 내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늙은 요괴가 일어나 들어오라 불렀다. 이 요괴는 병기를 내던지고 몸을 던져 절하며,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였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어진 손자야, 너는 어제 청첩을 내려 보내고 오늘 아침 바로 잔치에 가려 하였거늘, 네가 또 몸소 왔으니 어찌하여 슬픔과 번뇌를 일으키느냐?” 요괴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작은 손자가 그저께 밤에 달을 대하며 한가롭게 걷다가, 옥화주 성중에서 빛이 하늘을 찌르는 것을 보았나이다. 급히 가서 보니 왕부 뜰안의 세 가지 병기가 빛을 뿜고 있었는데, 하나는 금이 배어든 아홉 갈래 정파요, 하나는 보장이요, 하나는 금고봉이었나이다. 작은 손자가 곧 신법을 부려 거두어 와서 이름을 정파 가회라 짓고, 아이들에게 돼지와 양과 과일 따위를 사 오라 하여 잔치를 베풀어 경축하고 조옹 할아버지를 모셔 감상하시게 하여 한바탕 즐기려 하였나이다. 어제 푸른 낯의 아이를 보내 청첩을 전한 뒤, 본래 돼지와 양을 사러 갔던 조참고괴 무리가 돼지와 양 몇 마리를 몰고 오면서 장사치 하나를 데리고 와서 은자를 찾는 것을 보았나이다. 그자가 꼭 잔치를 보러 가겠다 하기에, 작은 손자가 밖으로 소문이 퍼질까 두려워하여 보게 하지 않았더니, 그자가 또 배가 고프다며 밥을 좀 달라 하므로 안쪽으로 데려가 밥을 먹게 하였나이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 병기를 보더니 그것이 자기 것이라 하였나이다. 세 사람이 저마다 한 가지씩 빼앗아 들고는 본래의 몸을 드러내는데, 하나는 털 북슥한 낯에 벼락 귀신 같은 주둥이를 한 중이요, 하나는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중이요, 하나는 죽은 기색이 감도는 낯빛의 중이었사옵니다. 그들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한마디 외치며 마구 때려 댔나이다. 작은 손자가 급히 사명삽을 들어 쫓아 나가 맞서며, 무슨 놈이 감히 속임수를 부리느냐 물었사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동토 대당에서 서천으로 가는 당승의 제자인데, 주성을 지나다 통행 문서를 바꾸려다 왕자에게 붙잡혀 머물며 무예를 익히게 되었고, 그 세 가지 병기를 본으로 삼아 만들게 하여 뜰안에 두었더니 내가 훔쳐 왔다면서 분을 참지 못하고 맞섰나이다. 그 세 중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옵니다만 참으로 재주가 있사옵니다. 작은 손자 혼자서는 그들 셋을 당해 낼 수 없어, 이리 조옹 할아버지께 패하여 달려온 것이니이다. 부디 칼을 뽑아 도우시어 그 중들을 잡아 원수를 갚게 하시옵소서, 이것이야말로 조옹께서 손자를 사랑하시는 뜻을 보이시는 일이옵니다!” 늙은 요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묵묵히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놈들이었더냐. 내 어진 손자야, 네가 잘못하여 그를 건드렸도다!” 요괴가 말했다. “조옹께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아시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저 긴 주둥이에 큰 귀를 한 자는 저팔계요, 죽은 기색의 낯빛을 한 자는 사화상이니, 이 둘은 그래도 견딜 만하니라. 그러나 저 털 북슥한 낯에 벼락 귀신 같은 주둥이를 한 자는 손행자라 하는데, 이 사람은 참으로 신통이 광대하여 오백 년 전에 일찍이 천궁을 크게 어지럽히매 십만 천병으로도 잡아 둘 수 없었느니라. 그는 일부러 사람을 찾아다니는 자니, 산을 뒤지고 바다를 들추며 굴을 부수고 성을 치고 화를 불러들이는 우두머리가 바로 그놈이니라! 네가 어찌 그를 건드렸느냐? 좋다, 내가 너와 함께 가서, 그놈들은 물론 옥화 왕자까지 모조리 사로잡아다가 네 분풀이를 해 주리라!” 그 요괴가 이 말을 듣고 곧 머리를 조아리며 사례하였다. 이에 늙은 요괴는 노사와 설사와 준예와 백택과 복리와 단상 등 여러 손자를 점고하여, 저마다 날카로운 병기를 들게 하고 황사가 앞장선 채 각기 미친 바람을 일으켜 곧장 표두산 경계로 갔다. 다만 연기와 불 냄새가 코를 찌르고, 또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조참고괴와 고괴조참 두 놈이 그곳에서 주공을 부르며 주공을 곡하고 있었다. 요괴가 앞으로 다가가 꾸짖어 물었다. “너희가 참 조참고괴냐, 거짓 조참고괴냐?” 두 요괴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머금은 채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가 어찌 가짜이겠나이까? 어제 이맘때 은자를 받아 돼지와 양을 사러 가다가 산 서쪽 큰 고개 안에 이르렀을 때, 털 북슥한 낯에 벼락 귀신 같은 주둥이를 한 중 하나를 만났사옵니다. 그가 우리에게 침을 한 번 탁 뱉자 우리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입이 굳어, 말도 할 수 없고 걸음도 옮길 수 없었나이다. 그에게 넘어뜨려져 은자는 빼앗기고 패쪽은 풀려 갔으며, 우리 둘은 정신이 아득하여 이제야 깨어났나이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연기와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고 집과 방은 모조리 타 버렸으며, 주공과 크고 작은 두목들도 보이지 않사옵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슬피 통곡하고 있사옵니다. 이 불이 어찌하여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그 요괴가 이 말을 듣고 눈물이 샘솟듯 흐르는 것을 참지 못하며, 두 발을 함께 구르고 하늘을 울릴 듯 외쳐 원망하여 말했다. “그 삭발한 놈! 몹시도 악을 쓰는구나! 어찌 이런 독한 짓을 하여 내 동부를 모조리 태우고 미인을 불에 태워 죽이며, 가산과 늙은이 어린것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단 말이냐! 내가 분하여 죽겠도다, 분하여 죽겠도다!” 늙은 요괴가 노사를 시켜 그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어진 손자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부질없이 괴로워한들 무슨 이로움이 있으리오. 우선 예기를 온전히 길러 두고, 주성 안으로 가서 그 중을 잡으러 가자.” 그 요괴는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말했다. “할아버지! 저의 그 산터는 하루아침에 이룬 것이 아니온데, 이제 이 삭발한 놈에게 모조리 부서졌사오니, 제가 이 목숨을 지니고 무엇 하리이까!” 벌떡 일어나 바위 절벽을 향해 머리를 박고 박으려 하다가, 설사와 노사 등이 간곡히 만류한 끝에야 그쳤다. 이에 그곳을 버리고 모두 주성으로 달려갔다. 다만 바람이 굉굉 불고 안개가 자욱하게 이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니, 성 밖 여러 관문과 마을 사람들이 놀라, 아이를 끌고 딸을 안으며 집안 살림도 돌보지 못한 채 모두 주성 안으로 달려가, 성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아 버렸다. 어떤 이가 왕부 안으로 달려가 알렸다. “큰 화요! 큰 화요!” 그 왕자와 당승 등은 마침 포사정에서 아침 공양을 들고 있다가 화가 났다는 보고를 듣고 문 밖으로 나와 물었다. 여러 사람이 말했다. “요괴 한 무리가 모래를 날리고 돌을 굴리며 안개를 뿜고 바람을 일으켜 성 가까이 왔나이다!” 늙은 왕이 크게 놀라 말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모두 마음 놓으시오! 모두 마음 놓으시오! 이건 호구동 요괴들이 어제 싸움에서 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무슨 구령원성이란 놈을 끌어모아 온 것이오. 내가 형제들과 함께 나가겠으니, 네 문을 닫으라 분부하시고 그대들은 인부를 점고하여 성을 지키시오.” 그 왕자가 과연 명을 내려 네 문을 닫고 인부를 뽑아 성 위로 올려 보냈다. 그 부자와 당승은 성루 위에서 인원을 점검하고 조를 짜니, 깃발이 해를 가리고 포성과 불빛이 하늘에 닿았다. 행자 세 사람은 구름과 안개를 반쯤 타고 성을 나가 맞서 싸우러 갔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지혜의 병기를 잃은 것은 삼가지 못한 탓이요, 이에 마가 일어나 뭇 사악한 놈들이 흉포해졌도다. 필경 이 한바탕 싸움의 승패가 어떠할는지는 알 길이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0회 사사수수동귀일(師獅授受同歸一) · 도도전선정구령(盜道纏禪靜九靈) 각설하고 손대성이 저팔계와 사오정을 거느리고 성두 밖으로 나아가 서로 얼굴을 맞대니, 저 무리 요괴라는 것들이 모두 털이 뒤범벅된 사자들이었다. 황사정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산예사자와 단상사자가 왼쪽에, 백택사자와 복리사자가 오른쪽에, 유사와 설사가 뒤에 섰으며, 한가운데에는 구두사자 한 마리가 있었다. 푸른 낯의 그 요괴 청검아는 비단으로 수놓은 둥근 꽃무늬 보당을 하나 들고 구두사자 곁에 딱 들러붙어 있고, 조전고괴아와 고괴조전아는 붉은 기 두 개를 들었으니, 그들이 모두 감궁 터에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저팔계는 덜렁거려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욕을 퍼부었다. “보물을 훔쳐 간 도적 요괴들아! 네가 어디서 저 털뭉치들을 몇이나 끌어모아 여기까지 온 게냐?” 황사정이 이를 갈며 맞받아 욕했다. “더러운 대머리 놈아! 어제는 너희 셋이 나 하나를 치기에 내가 져서 물러났고 네 목숨만 살려 두었거늘, 네가 어찌 이리도 사나워 내 굴을 불사르고 내 산장을 망치고 내 권속들을 다치게 하였느냐! 나와 네 원한은 큰 바다보다 깊다! 달아나지 마라! 이 할아범의 삽이나 받아 보아라!” 훌륭한 팔계였다. 갈퀴를 들어 곧장 맞받았다. 두 놈이 이제야 손을 섞어 아직 높고 낮음이 갈리기도 전에, 저 유사정이 쇠로 만든 마름쇠 봉을 휘두르고 설사정이 세 모가 진 간을 들어 곧장 달려들어 치려 하였다. 팔계가 고함 한 번 지르며 말했다. “잘 왔다!” 보라, 그가 가로로 치받고 곧장 밀고 나가며 한자리에 섞여 싸웠다. 이편에서는 사승이 급히 항요장을 빼어들고 앞으로 나서 거들었는데, 또 저 산예정과 백택정이 단상과 복리 두 정과 함께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이쪽에서는 손대성이 금고봉으로 무리 요괴를 받아 막으니, 산예는 몽둥이를 쓰고 백택은 구리 망치를 쓰고 단상은 강철 창을 쓰고 복리는 큰 도끼를 썼다. 저 일곱 사자 정과 이 세 사나운 중이 벌인 싸움이란, 몽둥이와 망치와 창과 도끼에 세 모난 간이요, 마름쇠와 철퇴에 네 갈래 삽이로다. 일곱 사자의 일곱 무기가 몹시 예리하여 세 중을 에워싸고 함께 고함치며 싸웠다. 대성의 금고 쇠몽둥이는 흉포하고 사승의 보배 지팡이는 세상에도 드물며, 팔계는 바람을 휘잡아 기세가 늠름하고 갈퀴는 번쩍거려 그 빛이 참혹하도다. 앞을 가리고 뒤를 막으며 저마다 공을 부리고, 왼쪽을 괴고 오른쪽을 맞받으며 모두가 용맹하구나. 성두의 왕자가 위풍을 돕고 북을 치며 징을 쳐서 함께 간을 키웠다. 덤벼들고 빼앗으며 신통을 부려, 캄캄한 천지가 뒤집히도록 싸웠다. 저 한 무리 요괴들이 모두 대성 세 사람과 반 나절을 싸우고 나니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저팔계는 입에 끈적한 침을 토하며 다리가 풀리는 듯하더니 갈퀴를 헛되이 흔들고는 진영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를 보고 설사와 유사 두 정이 고함쳤다. “어딜 도망가느냐, 받아라!” 그 멍청이는 미처 피하지 못해 등줄기 한가운데를 얻어맞고 땅바닥에 쓰러져 그저 외쳤다. “이제 죽었다! 이제 죽었다!” 두 요괴가 갈기를 움켜쥐고 꼬리를 끌며 저팔계를 짊어지고 그 구두사자에게로 가 아뢰었다. “조옹이시여, 저희가 하나를 잡아 왔나이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승과 행자도 모두 싸움에 졌다. 무리 요괴가 일제히 몰려오니, 행자가 털 한 웅큼을 뽑아 씹어 부서뜨려 내뿜으며 “변하여라!” 외쳤다. 그러자 곧 백여 명의 작은 행자로 변해 빙 둘러싸고 그 백택과 산예와 단상과 복리, 그리고 금털 사자 요괴를 가운데 에워쌌다. 사승과 행자는 다시 앞으로 나서며 닥치는 대로 때렸다. 해가 질 무렵 산예와 백택은 사로잡았으나 복리와 단상은 놓치고 말았다. 금털 사자가 늙은 요괴에게 알리니, 늙은 요괴는 사자 둘을 잃은 것을 보고 분부했다. “저팔계를 묶어 두되 목숨은 해치지 말라. 저들이 내 사자 둘을 돌려보내거든 팔계를 그들에게 내주고, 만약 저들이 사리를 헤아리지 못해 내 사자 둘을 해치면 곧 팔계를 죽여 목숨으로 갚으리라!” 그날 밤 무리 요괴는 성 밖에서 편히 쉬었으니 여기서는 말하지 않는다. 각설하고 손대성이 사자 요괴 두 마리를 성 가까이 메어다 놓으니 늙은 왕이 이를 보고 곧 성문을 열라 명하고 교위 이삼십 명을 뽑아 밧줄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 사자 정을 묶어 성 안으로 메고 들어가게 하였다. 손대성은 법술로 낸 털을 거두고 사오정과 함께 곧장 성루 위로 올라가 당승을 뵈었다. 당승이 말했다. “이번 일이 참으로 위급하구나! 오능의 목숨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느니라.” 행자가 말했다. “염려 마시옵소서. 저희가 이 요괴 둘을 사로잡았으니 저쪽에서는 감히 상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온데, 우선 두 요괴를 단단히 매어 두었다가 내일 아침 팔계와 바꾸면 되나이다.” 세 작은 왕자가 행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스승님께서 앞서 싸우실 적에는 몸이 하나만 보이더니, 뒤에 지는 체하고 돌아오실 때는 어찌하여 문득 스승의 몸이 백여 개나 되셨나이까? 요괴를 사로잡고 성 가까이 오실 때에는 다시 몸이 하나이시니, 이게 무슨 법력이온지 말씀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 몸에는 팔만 사천 개의 털이 있어 하나로 열을 만들고 열로 백을 만들며, 백천만억으로 변하는 것이 모두 몸 밖의 몸을 내는 법이니라.” 그 왕자들이 하나하나 예를 올리고 곧 공양을 차려 올려 성루 위에서 먹었다. 또 각 성가퀴마다 등롱과 기치를 세우고 딱따기와 방울과 징과 북을 두어 경을 지키고 화살을 전하며, 포를 쏘고 고함을 질러 대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늙은 요괴가 곧 황사정을 불러 계책을 정하며 말했다. “너희는 오늘 행자와 사승을 힘써 잡아라. 나는 몰래 허공을 날아 성 위로 올라가 저들의 스승과 저 늙은 왕 부자를 잡아 먼저 구곡반환동으로 데려가겠노니, 네가 이기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황사는 계책을 받들고 곧 유사와 설사와 단상과 복리를 이끌고 저마다 병기를 잡고 성 아래로 나아가 바람을 일으키며 안개를 빚어 싸움을 청하였다. 이쪽에서는 행자와 사승이 성두로 뛰어올라 목청을 높여 욕했다. “이놈의 도적 요괴들아! 어서 내 사제 팔계를 도로 내놓아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 주마!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뼈가 가루가 되고 주검이 찢기게 하리라!” 그 요괴들이 어찌 변명할 새 있으랴, 일제히 몰려들었다. 휘휘 불어 땅을 할퀴는 미친 바람이 사납고, 캄캄하여 하늘 가리는 검은 안개가 짙구나. 돌을 굴리고 모래를 날리니 신과 귀신도 놀라고, 숲을 밀어내고 나무를 넘기니 범과 이리도 놀란다. 강철 창이 맹렬하고 큰 도끼가 번쩍이며, 몽둥이와 삽과 구리 망치가 너무나 독하구나. 원통하기 이를 데 없어 행자를 통째로 삼키고 싶고, 산 채로 생생하게 어린 사승을 사로잡고 싶어라. 이 대성의 한 자루 여의봉은 감고 펴고 거두고 놓음이 몹시 영묘하고, 사승의 그 한 자루 항요장은 영소전 밖에서도 이름이 높구나. 이번에 신통을 널리 굴려 서역에서 공을 베풀어 요괴를 쓸어버리리라. 이 다섯 털북숭이 사자 정이 행자와 사승과 더불어 한창 신나게 싸우고 있는데, 저 늙은 요괴가 검은 구름을 타고 곧장 성루 위로 솟아올라 머리를 한번 흔들었다. 그 바람에 성 위의 문무 대소 관원이며 성을 지키는 인부들까지 모두 성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그는 누각 안으로 뛰어들어 입을 벌려 삼장과 늙은 왕 부자를 한꺼번에 물어 나왔다가 다시 감궁 터로 내려가 저팔계까지 입에 물었다. 알고 보니 그의 아홉 개 머리에는 아홉 개의 입이 있어, 한 입에는 당승을 물고 한 입에는 팔계를 물고 한 입에는 늙은 왕을 물고 한 입에는 큰 왕자를 물고 한 입에는 둘째 왕자를 물고 한 입에는 셋째 왕자를 물었으니, 여섯 입이 여섯 사람을 물고도 오히려 입 세 개가 남았는데, 소리를 내어 외쳤다. “내가 먼저 가마!” 이 다섯 작은 사자 정은 조상이 이긴 것을 보고 하나하나 으레웠던 재주를 더욱 펼쳤다. 행자는 성 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의 계책에 빠졌음을 알아차리고 급히 사오정에게 조심하라 외쳤다. 그리고는 팔의 털을 모조리 뽑아 입에 넣어 질겅질겅 씹어 뱉어 내니, 수백 수천의 작은 행자로 변하여 일제히 공격해 올라갔다. 그 자리에서 유사를 끌어 넘어뜨리고 설사를 산 채로 잡고 단상사자를 붙들며 복리사자를 메어 엎었고, 황사를 때려 죽이고는 소란스럽게 떠들며 주성 아래에 이르렀는데, 도리어 청검아와 조전고괴아·고괴조전아 두 요괴는 달아나 버렸다. 성 위의 관리들이 이를 보고 다시 문을 열고 밧줄로 사자 정 다섯을 또 묶어 성 안으로 메고 들어갔다. 아직 처분하기도 전에 저 왕비가 울며불며 행자에게 예를 올리고 말했다. “신령하신 스승이시여, 제 전하 부자와 스승님의 스승께서 이제 목숨이 다하셨나이다! 이 외로운 성을 어찌하면 좋사오리까?” 대성은 법술의 털을 거두고 왕비에게 예를 갖추어 말했다. “현명하신 왕비시여, 근심 마시옵소서. 제가 저들의 사자 정 일곱을 사로잡았더니 저 늙은 요괴가 잡아가는 법술을 부려 제 스승과 전하 부자를 틀림없이 빼앗아 갔을 것이오나 상처는 입히지 않았을 것이니이다. 내일 이른 새벽에 저와 아우 둘이 그 산으로 가서 늙은 요괴를 틀림없이 잡아 왕자 네 분을 도로 돌려드리리이다.” 그 왕비와 한 무리 여인네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행자에게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바라옵건대 전하 부자가 살아서 돌아오시고 나라의 터가 굳건하기를 비나이다!” 절을 마치고 하나하나 눈물을 머금은 채 궁으로 돌아갔다. 행자가 여러 관리에게 분부했다. “때려 죽인 그 황사정의 가죗을 벗기고 살아 있는 사자 정 여섯은 단단히 매어 자물쇠까지 채워 두어라. 공양을 좀 가져오너라. 우리가 먹고 자고 갈 터이니, 너희는 모두 마음을 놓아라, 무사하도록 보장하리라.” 이튿날이 되자 대성이 사오정을 데리고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올랐는데, 오래지 않아 죽절산머리에 이르렀다. 구름머리를 낮추어 바라보니 참으로 훌륭한 높은 산이로구나. 보라, 봉우리는 불쑥불쑥 솟아 줄지어 있고 고개는 험하고 가파르며, 깊은 계곡 아래로는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가파른 벼랑 앞에는 꽃향기가 그윽하였다. 굽이굽이 겹친 산등성이와 구불구불 감긴 옛 길이 서로 이어졌다. 참으로 학이 날아드니 소나무에 짝이 생기고, 과연 구름이 걷히니 바위가 의지할 데 없구나. 검은 원숭이는 볕 좋은 곳을 바라고 과일을 찾고, 큰 사슴은 꽃을 찾아 따뜻한 햇살을 즐긴다. 푸른 난새는 소리가 맑게 울리고 노란 새는 노랫소리가 구슬프나니, 봄이 오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고움을 다투고, 여름이 이르면 버들과 회화나무가 무성함을 겨루며, 가을에 이르면 국화가 비단을 펼치고, 겨울이 닿으면 흰 눈이 솜처럼 날린다. 사시팔절의 좋은 풍경이 영주 선경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구나. 그 두 사람이 산꼭대기에서 경치를 보고 있는데, 문득 저 청검아가 짧은 몽둥이 하나를 들고 벼랑 골짜기 사이로 곧장 뛰어 나왔다. 행자가 호통쳤다. “어딜 도망가느냐! 이 늙은 손오공이 왔다!” 그 작은 요괴는 놀라서 한 번 구르고 한 번 뒹굴며 벼랑 골짜기 아래로 내달았다. 두 사람이 줄곧 뒤를 쫓아왔으나 다시는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고, 앞으로 몇 걸음 더 돌아가니 그것은 하나의 동부였다. 얼룩무늬 돌문 두 짝이 굳게 닫혀 있고, 문설주 위에 돌판 하나가 가로로 박혀 있는데 해서로 열 개의 큰 글자를 새겼으니 곧 만령 죽절산 구곡반환동이었다. 그 작은 요괴는 이미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 곧 동문을 닫아 버리고 가운데로 가서 늙은 요괴에게 아뢰었다. “할아범님, 밖에 또 중 두 놈이 왔사옵니다.” 늙은 요괴가 물었다. “너희 대왕과 유사와 설사와 단상과 복리는 왔느냐?” 작은 요괴가 아뢰었다. “못 보았나이다! 못 보았나이다! 다만 중 두 놈이 산봉우리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고 있었나이다. 제가 그들을 보고 곧장 되돌아 달렸는데 그들이 쫓아오기에 문을 닫고 들어왔나이다.” 늙은 요괴는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가 한참 만에 홀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탄식하여 말했다. “아, 괴로워라! 내 황사 손주가 죽었구나! 유사 손주들까지 모두 중들에게 잡혀 성 안으로 끌려갔으니, 이 원한을 어찌 갚으랴!” 저팔계는 곁에 묶인 채 왕 부자와 당승과 함께 한곳에 몰려 있다가 서글프고 두려운 고초를 겪고 있었는데, 늙은 요괴가 “내 손주들이 중들에게 잡혀 성으로 끌려갔다” 하는 소리를 듣고 속으로 슬며시 기뻐하며 말했다. “스승님, 두려워 마시옵소서. 전하께서도 근심 마시옵소서. 우리 사형께서 이미 승리를 거두어 요괴들을 모조리 사로잡고 여기까지 찾아와 우리를 구해 내실 것이니이다.” 말을 마치자 또 늙은 요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놈들아, 여기서 잘 지켜라. 내가 나가 저 중 두 놈을 잡아들여 한꺼번에 혼내 주겠노라.” 보라, 그는 갑옷도 걸치지 않고 손에 병기도 쥐지 않은 채 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으니, 그저 손행자가 고함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는 동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대답도 없이 곧장 행자에게로 달려들었다. 행자가 쇠몽둥이를 들어 정면에서 괴고 버티니 사오정이 보배 지팡이를 휘둘러 곧 때렸다. 그 늙은 요괴가 머리를 한번 흔들자 좌우의 머리 여덟 개가 일제히 입을 벌려 행자와 사오정을 가볍게 물어 동굴 안으로 끌고 가며 명했다. “밧줄을 가져오너라!” 저 조전고괴와 고괴조전과 청검이는 바로 어젯밤에 목숨을 건져 돌아온 놈들이라, 곧 밧줄 두 개를 가져와 그 두 사람을 단단히 묶었다. 늙은 요괴가 물었다. “이 몹쓸 원숭이야, 네가 내 아들과 손주 일곱을 잡아갔으니, 나는 이제 너희 중 넷과 왕자 넷을 사로잡았으니 이것으로 내 아들과 손주의 목숨을 충분히 갚을 만하리라! 어린 놈들아, 싸리나무 회초리와 버드나무 몽둥이를 골라 오너라, 우선 이 원숭이 놈을 한바탕 때려 내 황사 손주의 원한을 갚아 주겠다!” 그 세 작은 요괴가 저마다 버드나무 몽둥이를 들고 오로지 행자만을 때렸다. 행자는 본디 단련을 겪은 몸이라 저 조그만 버드나무 몽둥이쯤은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가 어찌 신음 소리라도 내었으랴. 아무리 두들겨 패도 조금도 개의하지 않았다. 저팔계와 당승과 왕자들이 이를 보고는 하나하나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오싹하였다. 잠시 뒤에는 버드나무 몽둥이가 부러져 나갔고, 그렇게 어두울 때까지 때린 횟수는 헤아릴 수도 없었다. 사오정이 매질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보고 몹시 마음이 편치 않아 말했다. “제가 대신 백여 대쯤 맞아 드리리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너는 좀 급해하지 마라, 내일이면 차례가 너에게로 넘어간다, 하나하나 차례대로 때려 갈 터이니라.” 저팔계가 다급해하며 말했다. “모레면 이 늙은 돼지 차례가 되겠구나!” 한참 때리고 나니 점점 어둠이 내렸다. 늙은 요괴가 말했다. “어린 놈들아, 잠시 그만두고 등불을 켜라. 너희는 음식을 좀 먹고, 나는 금운와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겠노라. 너희 셋은 모두 화를 당한 몸이니 마음을 써서 잘 지키고 있다가 내일 아침에 다시 때리리라.” 세 작은 요괴는 등을 옮겨 놓고 버드나무 몽둥이를 들어 다시 행자의 머리통을 때렸으니, 마치 딱따기를 두드리는 것 같아서 똑딱 똑딱, 똑똑 똑딱, 몇 대는 빠르게 몇 대는 느리게 두드렸다. 밤이 깊어 가자 모두 꾸벅꾸벅 졸며 잠이 들었다. 행자가 곧 둔법을 써서 몸을 작게 하여 밧줄에서 빠져나왔다. 털을 털고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귓속에서 몽둥이를 꺼내 한 번 흔들자 물동이만큼 굵고 두 길이나 길어졌다. 그는 세 작은 요괴를 향해 말했다. “이 몹쓸 짐승들아, 너희 제법 할아범을 여러 번 때렸구나! 할아범은 아무 탈이 없으니, 할아범도 이 몽둥이로 너희를 좀 눌러 보마, 어떠한지 두고 보자!” 세 작은 요괴를 가볍게 한 번 누르니 곧 고기 떡 세 개가 되어 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등불을 밝히고 사오정의 결박을 풀어 주었다. 저팔계는 묶인 지 오래되어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형님! 내 손발이 다 묶이어 부었는데 어찌하여 나를 먼저 풀어 주지 않으시오!” 그 멍청이가 목청껏 소리치자 그만 늙은 요괴를 놀라 깨우고 말았다. 늙은 요괴가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누가 풀어 주었느냐?” 행자는 이 소리를 듣고 입으로 후 불어 등을 끄고는 사오정 일행도 돌보지 않은 채 쇠몽둥이를 휘둘러 몇 겹의 문을 부수고 달아났다. 그 늙은 요괴는 가운데 방으로 나와 외쳤다. “어린 놈들아, 어찌하여 등불이 없어졌느냐? 혹 사람이 달아난 것은 아니냐?” 한 번 불러도 아무도 대답이 없고, 다시 한 번 불러도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등불을 가져다 비추어 보니 땅바닥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 떡 세 덩이가 있었다. 늙은 왕 부자와 당승과 팔계는 그대로 있는데 행자와 사승만 보이지 않았다. 불을 밝히고 앞뒤로 쫓아가 살펴보다가 문득 사오정이 여전히 낭하에 등을 붙이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단번에 움켜잡아 쓰러뜨리고는 예전처럼 도로 묶었다. 다시 행자를 찾아보니 여러 겹의 문이 모두 부서져 있었으므로, 행자가 부수고 달아난 줄을 알아채고도 뒤쫓지 않고 깨진 문을 기워 대고 가려 대며 집안을 굳게 지켰으니 여기서는 말하지 않는다. 각설하고 손대성이 구곡반환동을 나와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곧장 옥화주로 돌아오니, 성두 위에서 각 방의 토지신과 성황신이 허공에 나와 머리를 조아리며 맞이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어찌하여 이제야 밤에 와서 보이느냐?” 성황이 아뢰었다. “소신들은 대성께서 옥화주로 내려오신 줄 알았사오나 현명한 왕이 후하게 대접하고 머물게 하였으므로 감히 뵙지 못하였나이다. 이제 왕자들이 요괴를 만나고 대성께서 마귀를 항복시키신 줄 알고 특별히 엎드려 맞이하러 왔나이다.” 행자가 꾸짖고 있는데, 또 금두게제와 육갑육정 신장이 토지 한 분을 압송하여 앞에 꿇어앉으며 아뢰었다. “대성께옵서, 저희가 이 땅의 귀신을 잡아 왔나이다.” 행자가 호통쳤다. “너희는 죽절산에서 내 스승을 보호하지 않고 어찌하여 여기까지 떠들며 왔느냐?” 정갑 신장이 아뢰었다. “대성께옵서, 저 요괴는 대성께서 달아나신 뒤 권렴대장을 도로 붙잡아 예전처럼 묶어 두었나이다. 저희는 그의 법력이 너무나 크므로 죽절산 토지를 압송하여 이리로 데려왔나이다. 이 자는 그 요괴의 내력을 알고 있사오니 대성께서 한번 캐물어 보시옵소서. 그리하면 다스리기 쉬워져 성스러운 승려와 현명한 왕의 고통을 구해 낼 수 있나이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니, 그 토지가 바들바들 떨며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저 늙은 요괴는 재작년에 죽절산으로 내려왔나이다. 저 구곡반환동은 본디 사자 여섯 마리의 소굴이었는데, 그 사자 여섯 마리는 늙은 요괴가 온 뒤로 모두 그를 조옹으로 받들어 모셨나이다.” “그 조옹이란 자는 구두사자로 호가 구령원성이올시다. 그를 멸하려면 반드시 동극묘암궁에 가서 그의 주인을 청해 오셔야 비로소 항복을 받을 수 있사옵니다. 다른 누구는 그를 사로잡을 생각을 아예 하지도 못하나이다.” 행자가 이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동극묘암궁이라면 태을구고천존이로구나. 그의 자리 아래에 있는 것이 바로 구두사자이니라. 그렇다면——” 하고는 곧 명했다. “게제와 정갑은 토지와 함께 도로 가서 스승님과 사제, 그리고 주 왕 부자를 은밀히 보호하라. 이곳 성황은 성을 지키니 물러가라.” 뭇 신이 하나하나 명을 받들어 가 버렸다. 이 대성이 근두운을 타고 밤을 새워 앞으로 달려가니, 인시 무렵에 동천문 밖에 이르렀는데, 마침 광목천왕이 천정과 역사를 거느린 행렬과 마주쳤다. 모두가 멈추어 서서 두 손을 모시고 예를 올리며 맞이하여 말했다. “대성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행자가 여러 신에게 예를 마치고 말했다. “묘암궁에 가 볼까 하오.” 천왕이 말했다. “서천으로 가는 길을 두고 어찌 또 동천으로 오셨소?” 행자가 말했다. “옥화주에 이르러 주 왕의 후한 대접을 받았는데, 그가 세 아들을 보내 우리 형제를 스승으로 모시고 무예를 배우게 하였소. 뜻밖에 사자 요괴 한 무리를 만났소. 이제 알아보니 묘암궁의 태을구고천존이 그 요괴의 주인이시라, 그를 청해 나를 위하여 요괴를 항복시키고 스승을 구해 달라 하려 하오.” 천왕이 말했다. “그쪽에서 네가 남의 스승이 되려 하였기에 이 사자 한 굴을 불러들인 것이로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 때문이오! 바로 그 때문이오!” 뭇 천정과 역사가 하나하나 두 손을 모시고 길을 비켜 서 주었다. 대성이 동천문으로 들어가 얼마 안 있어 묘암궁 앞에 이르렀는데, 보라, 채운이 겹겹이 쌓이고 자줏빛 기운이 무성하며, 기와에는 금빛 물결이 일렁이고 문에는 옥으로 된 짐승이 높이 늘어서 있었다. 꽃은 쌍궐에 넘치고 붉은 노을이 감돌며, 해는 숲에 비치고 푸른 안개가 감싸니, 과연 만의 참된 이가 둘러 모시고 천의 성인이 흥왕하누나. 전각은 층층이 비단이요 창문과 난간은 곳곳이 통해 있으며, 청룡이 서려 감싸니 신광이 은은하고 황도의 광휘에 서기가 짙구나. 이는 곧 청화장락의 세계요 동극묘암궁이로다. 그 궁문 안에 무지개 빛 어깨걸이를 두른 선동이 서 있다가 문득 손대성을 보고 곧 궁 안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할아범님, 밖에 천궁을 뒤집어 놓았던 제천대성이 왔사옵니다.” 태을구고천존이 이 말을 듣고 곧 시위 뭇 신선을 불러 맞이하게 하였다. 궁중까지 맞아들어가니 천존께서 아홉 빛깔 연꽃 자리 높은 곳에 앉아 계셨는데, 백억의 서광 속에서 행자를 보시고 자리에서 내려와 서로 인사를 나누셨다. 행자가 위를 향해 예를 올리니 천존이 답례하여 말씀하셨다. “대성이여, 몇 해를 보지 못하였구나. 일찍이 네가 도를 버리고 부처께로 돌아가 당승을 모시고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갔다 하니 이제 공행이 다 끝난 모양이로구나.” 행자가 말했다. “공행은 끝나지 않았사오나 또한 이제 가까웠나이다. 다만 이번에 당승을 모시고 옥화주에 이르렀더니 왕자께서 세 아들을 보내 저희 늙은 손오공 등을 스승으로 모시고 무예를 배우게 하였나이다. 저희의 신병 세 가지를 본떠 새로 만들었는데, 뜻하지 않게 밤중에 도적에게 도둑맞았나이다. 날이 밝아 찾아보니 본디 성 북쪽 표두산 호구동의 금털 사자가 정기를 얻어 훔쳐 간 것이었나이다. 제가 꾀를 써서 도로 찾아내니 그 요괴가 곧 여러 사자 요괴를 끌어모아 저와 크게 싸웠나이다. 그 가운데 구두사자 하나가 신통이 광대하여 제 스승과 팔계, 그리고 왕 부자 넷까지 모두 물어 죽절산 구곡반환동으로 가 버렸나이다. 이튿날 저와 사승이 뒤를 따라 찾아갔다가 저희도 함께 물려 갔나이다. 저는 그놈에게 묶인 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두들겨 맞았으나 요행히 법술을 부려 빠져나왔사옵고, 그들은 지금 그곳에서 죄를 받고 있나이다. 그 지방 토지에게 물어보니 비로소 천존께서 그놈의 주인이심을 알았나이다. 특별히 청하여 항복시켜 구해 주시옵소서.” 천존이 이 말을 들으시고 곧 선장에게 명하여 사자방으로 가서 사노를 불러내어 묻게 하셨다. 그 사노는 깊이 잠들어 있어 뭇 장수가 밀고 흔들어서야 비로소 깨어났으며, 끌려가 가운데 청사에서 뵈었다. 천존이 물으셨다. “그 사자 짐승은 어디 있느냐?” 그 노자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머리를 조아리고는 그저 외쳤다. “살려 주시옵소서! 목숨만 살려 주시옵소서!” 천존이 말씀하셨다. “손대성이 여기 계시니 우선은 너를 때리지 않으리라. 너는 어찌하여 삼가지 못해 구두사자를 놓쳐 버렸는지 어서 말하라.” 사노가 아뢰었다. “할아범님, 제가 지난번에 대천감로전에서 술병 하나를 보고 그만 슬쩍 가져다 마셨나이다. 그만 취하여 깊이 잠이 들어 묶어 두었던 줄도 잊었으니 이 때문에 달아나 버렸나이다.” 천존이 말씀하셨다. “그 술은 태상노군이 보낸 것으로 이름하여 윤회경액이라, 네가 먹었으면 사흘을 깨지 못할 터인데, 그 사자 짐승이 달아난 지 이제 며칠이나 되었느냐?” 대성이 말했다. “토지의 말에 따르면 그놈이 재작년에 내려와 지금까지 이삼 년이 되었다 하옵니다.” 천존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러하리라! 그러하리라! 천궁의 하루가 속세에서는 한 해이니라.” 그리고 사노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먼저 일어나라, 사죄는 면해 주리니 나와 대성을 따라 아래 세상으로 내려가 그놈을 잡아 오자. 너희 뭇 신선은 모두 돌아가라, 따라올 것 없다.” 천존이 마침내 대성과 사노와 함께 구름을 밟고 곧장 죽절산에 이르니, 저 오방게제와 육정육갑과 본산 토지가 모두 나와 꿇어앉아 맞이하였다. 행자가 물었다. “너희가 보호하였으니 내 스승이 상처를 입지는 않았더냐?” 뭇 신이 아뢰었다. “요괴가 성만 내고 잠이 들어 버렸으니 다시는 무슨 형벌을 쓰지 않았나이다.” 천존이 말씀하셨다. “내 그 원성아도 또한 오래도록 닦아 도를 얻은 참된 영령이니라. 그가 한 번 소리치면 위로는 세 성인에게 통하고 아래로는 구천에 사무치나니, 예사로운 때에는 함부로 생명을 해치지 않느니라. 손대성이여, 그대가 그의 문 앞으로 가 싸움을 걸어 그를 끌어내라. 그러면 내가 거두어들이겠노라.” 행자가 이 말을 듣고 과연 몽둥이를 빼어들고 동굴 어귀 가까이로 뛰어가 크게 욕했다. “몹쓸 요괴야, 내 사람을 도로 내놓아라! 몹쓸 요괴야, 내 사람을 도로 내놓아라!” 몇 번을 연달아 외쳤으나 그 늙은 요괴는 잠이 들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행자는 성미가 급해져서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안으로 쳐들어갔고, 입으로는 줄곧 욕설을 퍼부었다. 그 늙은 요괴가 그제야 놀라 깨어나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여 벌떡 일어나며 “쫓아 싸우자!” 호령하고는 머리를 흔들어 곧 입을 벌려 물어 왔다. 행자는 고개를 돌려 밖으로 뛰어나갔다. 요괴가 바깥까지 쫓아가며 욕했다. “이놈의 도적 원숭이야, 어딜 도망가느냐!” 행자가 높은 벼랑 위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리도 크게 무례할 수 있구나! 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줄도 모르느냐! 저기 네 할아범의 주인께서 계시지 않으시냐?” 그 요괴가 벼랑 앞까지 쫓아갔을 때 천존께서 이미 주문을 외우시고 호령하셨다. “원성아! 내가 왔다!” 그 요괴는 주인인 줄 알아보고는 감히 버티지 못하고 네 발을 땅에 붙인 채 그저 머리를 조아렸다. 곁에서 사노가 달려들어 목덜미의 털을 단번에 움켜쥐고는 주먹으로 목을 백여 대나 때리며 입으로 욕했다. “이 몹쓸 짐승아, 어찌하여 훔쳐 달아나 나로 하여금 죄를 받게 하였느냐!” 그 사자 짐승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감히 몸을 흔들지도 못했다. 사노가 손이 피로하도록 때리고서야 그쳤다. 곧 비단 안장을 그의 등에 얹고 천존께서 올라타시어 호령하여 출발하라 하시니, 그는 소리를 길게 뽑으며 채운을 타고 곧장 묘암궁으로 돌아갔다. 대성이 하늘을 우러러 고마움을 사례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먼저 옥화왕을 풀고 다음에 당삼장을 풀었으며, 그 다음에 저팔계와 사승과 세 왕자까지 풀어 주었다. 그리고 동굴 안의 물건을 모조리 수색한 뒤 천천히 느긋하게 사람들을 이끌고 문 밖으로 나섰다. 팔계가 곧 마른 섶나무를 잔뜩 가져다가 앞뒤로 쌓아 올리고 불을 지르니, 구곡반환동 하나가 새까맣게 그을린 깨어진 기와 가마로 변하고 말았다! 대성은 또 뭇 신을 돌려보내고 토지에게는 이곳을 굳게 지키라 명하였으며, 저팔계와 사승에게는 저마다 법술을 부려 왕 부자를 업어 주성으로 돌아가게 하고 자신은 당승을 부축하였다. 오래지 않아 주성에 이르렀는데 날이 점점 저물었고, 왕비와 관리들이 모두 나와 맞이하여 인사를 올렸다. 공양 잔치를 차려 올려 함께 앉아 즐겼다. 장로 사부와 제자들은 그대로 폭사정에서 쉬고 왕자들은 궁으로 들어가 각자 잠이 들었다. 그 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이튿날 왕이 다시 명을 내려 채식 잔치를 크게 베풀었으니, 온 관청의 대소 관리가 하나하나 은혜에 감사드렸다. 행자가 또 백정들을 불러 그 산 채로 있던 사자 여섯 마리를 잡게 하고 황사자와 함께 모두 가죗을 벗긴 뒤 고기를 마련하여 올리라 하여 먹고 즐겼다. 전하가 몹시 기뻐하며 곧 잡으라 명하였는데, 한 마리는 본부 안팎의 사람들이 먹고, 한 마리는 왕부 장사 등의 관리들과 나누어 먹고, 다섯 마리는 모두 한두 냥 무게로 토막 내어 교위를 시켜 주성 안팎의 군민들에게 나누어 주어 조금씩이나마 먹게 하였다. 하나는 그 맛을 보게 하려 함이요, 둘은 놀란 가슴을 누그러뜨리려 함이었다. 그 집집마다 사람들로서 우러러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 대장장이들이 세 가지 병기를 다 만들어 가지고 와서는 행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할아범님, 저희 일이 모두 끝났나이다.” 무게가 얼마씩이나 되는지 물으니 대장장이가 아뢰었다. “금고봉이 천 근이요, 아홉 갈래 갈퀴와 항요장이 각각 팔백 근이올시다.” 행자가 말했다. “그만하면 되겠구나.” 그리고 세 왕자를 나와 각각 병기를 잡으라 청하였다. 세 아들이 늙은 왕에게 아뢰었다. “부왕이시여, 오늘 병기가 다 되었나이다.” 늙은 왕이 말했다. “이 병기 때문에 하마터면 우리 부자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노라.” 작은 왕자가 말했다. “다행히 신령하신 스승께서 법술을 베푸시어 우리를 구해 내시고, 또 요사한 무리를 쓸어 버려 뒷근심까지 없애 주셨으니, 참으로 이르기를 바다가 잔잔하고 강물이 맑아 태평한 세상이라 할 것이니이다!” 그 자리에서 늙은 왕 부자가 장인들에게 상을 내려 그 수고를 치하하고, 또 폭사정으로 가서 스승의 은혜에 절하며 감사드렸다. 삼장이 또 대성 등에게 속히 무예를 전하여 길 가는 일에 늦추지 말라 일렀다. 세 사람이 곧 저마다 병기를 휘두르며 왕부 뜰에서 하나하나 전수하였다. 며칠이 되지 않아 그 세 왕자가 연습을 거듭하여 모두 익숙하고 능숙해졌고, 그 밖에 공격하고 물러서는 방책과 빠르고 느린 법도 각각 일흔두 가지 갈래를 갖추었으니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하나는 저 여러 왕자의 마음이 굳건하였고, 둘은 손대성이 먼저 신통한 힘을 불어넣어 준 덕분이라, 이것이 곧 천 근의 몽둥이와 팔백 근의 갈퀴와 지팡이를 모두 들어 올리고 휘두를 수 있게 된 까닭이니라. 처음에 제 스스로 부리던 무예와 견주어 보면 참으로 하늘과 못의 차이로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그 시에 이르기를, 선한 경사가 인연이 되어 신령한 스승을 만났거늘, 무예를 익히는 일에 어찌 요사한 사자를 움직일 줄 알았으랴. 뭇 사악함을 쓸어 버려 사직을 편안케 하고, 한 몸으로 귀의하여 변방을 안정시켰구나. 구령이 원양의 이치에 들어맞고, 사면이 도의 열매에 통하였도다. 주고받음에 마음이 밝아 만고에 남기니, 옥화는 오래도록 태평하리라. 그 왕자가 다시 큰 잔치를 베풀어 스승의 가르침에 감사드리고, 또 금과 은을 큰 소반 하나에 가득 차려 내어 그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 하였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서 도로 들여가거라! 어서 도로 들여가거라! 우리 같은 출가한 사람이 그것을 어디에 쓰겠느냐?” 저팔계가 곁에서 말했다. “금과 은은 정녕 감히 받을 수 없사오나, 내 이 옷이 저 사자 요괴들에게 당겨 찢어졌으니 다만 우리에게 옷 한 벌로 바꿔 주신다면 그것으로 족히 사랑이라 여기겠나이다.” 그 왕자가 곧 바늘공에게 명하여 빛깔과 무늬를 그대로 본떠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과 갈색 비단을 몇 필씩 가져오게 하여 세 분에게 한 벌씩 지어 드렸다. 세 사람이 흔쾌히 받아 저마다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나니, 보라, 그 성 안팎에 큰이 작은이 할 것 없이 나한이 범속에 내려오고 산 부처가 세상에 강림하였다고 일컫지 않는 이가 없었다. 북과 피리 소리며 깃발의 빛깔이 거리를 메우고 길을 막으니, 참으로 집집마다 문 밖에서 향불을 사르고 곳곳마다 문 앞에 채색 등을 바치었다. 꽤 먼 곳까지 따라왔다가 돌아가고서야 그 사부와 제자 넷은 비로소 성을 떠나 서쪽으로 갈 수 있었다. 이번 떠남에 온갖 잡된 생각을 단박에 벗어 버리고 오로지 바른 과위에 마음을 두었으니, 이러하였다. 근심 없이 걱정 없이 불계로 오고, 정성을 다한 참된 마음으로 뇌음사로 올라가누나.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1회 금평부원야관등(金平府元夜觀燈) · 현영동당승공상(玄英洞唐僧供狀) 선을 닦는 공부를 어디에다 힘쓴단 말인가, 말이 거칠어지고 원숭이가 날뛰니 속히 잘라 낼지니라. 굳게 잡아 굳게 매어 두면 오색이 피어나고, 잠시 멈추고 잠시 머물면 세 갈래 길에 떨어지느니라. 제멋대로 두어 신령한 단약이 새어 나가게 하면, 조금만 늘어져도 옥 같은 성품이 말라 버리리라. 기쁨과 노여움과 근심과 생각을 말끔히 쓸어 버려야 하니, 현묘함을 얻고 오묘함을 얻고 나면 꼭 없는 듯하리라. 각설하고 당승 사부와 제자 넷은 옥화성을 떠나 길을 나섰는데 가는 내내 평안하기가 참으로 이른바 극락의 고장이라 할 만하였다. 닷새나 엿새쯤 가니 또 한 성곽이 눈에 들어왔다. 당승이 행자에게 물었다. “여기는 또 어느 곳이냐?” 행자가 말했다. “성곽이옵니다만 성 위에 깃대만 서 있고 깃발은 없사오니 어느 고장인지 알 수 없나이다. 가까이 가서 다시 여쭙겠나이다.” 동쪽 관문 밖 거리에 이르러 보니 양쪽 찻집과 술집이 떠들썩하고 쌀전과 기름방이 북적거렸다. 거리에는 한가로이 어슬렁거리는 한량 몇이 있었는데, 저팔계의 긴 주둥이와 사화상의 검은 얼굴과 손행자의 붉은 눈을 보고는 우르르 몰려들어 서로 다투어 구경하였다. 다만 감히 앞으로 다가와 묻지는 못하였다. 당승은 식은땀을 쥐며 그들이 화를 불러올까 두려워하였다. 또 골목 어귀 몇 개를 지났으나 아직 성 안에 이르지 못했는데 문득 산문 하나가 보였고 문 위에 자운사라는 세 글자가 걸려 있었다. 당승이 말했다. “여기 잠시 들어가 말도 좀 쉬게 하고 공양이나 한 번 받는 게 어떠하냐?” 행자가 말했다. “좋나이다! 좋나이다!” 사부와 제자 넷이 마침내 함께 들어갔다. 그 안을 보니 이러하였다. 보배 누각은 장엄하고 화려하며, 보좌는 높이 솟아 있었다. 불각은 구름 밖에 솟았고 승방은 달빛 속에 고요하였다. 붉은 노을 아스라이 부도탑이 우뚝하고, 푸른 나무 그늘 숲속에 윤장대가 맑았다. 참된 정토요 가짜 용궁이라, 대웅전 위로 자줏빛 구름이 감돌았다. 양쪽 행랑에는 한가한 이들의 희롱이 끊이지 않고, 탑 하나는 늘 열려 있어 객들이 올랐다. 화로의 향불은 때때로 피어오르고, 등잔의 불꽃은 밤마다 반짝였다. 문득 방장에서 금종 소리 울려 퍼지니 부처를 모시는 승려가 경을 소리 내어 외웠다. 넷이 한창 구경하고 있는데 행랑 아래에서 중 하나가 걸어 나와 당승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어디서 오셨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중화 당나라에서 온 사람이오.” 그 중이 몸을 던져 절하니 당승이 황급히 부축하며 말했다. “원주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큰례를 행하시나이까?” 그 중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이곳에서 선을 좇는 사람들은 경을 보고 부처를 외우며 모두 중화 땅에 가서 태어나기를 바라옵니다. 방금 스승님의 풍채와 의관을 뵈옵고 보니 과연 전생에 닦은 바 있어야 이런 수용을 얻는 것이라, 그만 절을 올렸나이다.” 당승이 웃으며 말했다. “황송하오! 황송하오! 내 제자는 걸식하며 다니는 중이라 무슨 수용이 있겠소! 원주께서 이곳에서 한가로이 몸을 편히 기르시는 것만 같지 못하리이다.” 그 중이 당승을 모시고 정전에 들어가 불상에 절을 올렸다. 당승이 그제야 불렀다. “제자들아, 이리 오너라.” 본래 행자 세 사람은 그 중이 스승과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는 모두 얼굴을 돌린 채 말을 끌고 짐을 지키며 한곳에 서 있었으므로 그 중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당승이 제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세 사람이 그제야 얼굴을 돌렸다. 그것을 본 그 중이 놀라 외쳤다. “어르신! 제자분들이 어찌 그리도 흉측하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흉하기는 흉해도 제법 법력이 있어 한길로 줄곧 그들의 보호를 크게 입었소.” 한창 말하는데 안에서 또 중 몇이 나와 예를 갖추었다. 먼저 본 그 중이 뒤에 온 이들에게 말했다. “이 스승님은 중화 대당에서 온 인물이시오, 저 세 분이 그 고제들이오.” 중들이 기뻐하면서도 두려워하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중화 대국에서 이곳에 와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당승이 말했다. “나는 당왕의 성지를 받들고 영산으로 가 부처께 절하고 경을 구하는 길이오. 마침 보방을 지나다가 특별히 상찰을 찾아왔으니, 하나는 지명을 묻기 위해서요, 또 하나는 공양 한 끼 얻어먹고 길을 가기 위해서요.” 그 승려들이 저마다 기뻐하며 다시 방장으로 모셨는데, 방장 안에는 인가에서 재를 올리는 중 몇이 또 있었다. 먼저 들어간 그 중이 또 외쳤다. “너희 모두 나와 중화 인물을 보아라. 중화에는 준수한 이도 있고 흉한 이도 있으니, 준수한 이는 참으로 그려 내기 어렵고 흉한 이는 몹시 괴상하구나.” 그 많은 중이 재주들과 함께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가 끝나자 저마다 자리에 앉았다. 차를 마시고 난 뒤 당승이 물었다. “귀향은 어느 지명이오?” 중들이 말했다. “이곳은 천축국의 외군인 금평부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귀부에서 영산까지는 아직 얼마나 머니이까?” 중들이 말했다. “여기서 도성 아래까지가 이천 리이옵니다. 그것은 저희가 걸어 본 길이옵니다. 서쪽으로 영산에 이르는 길은 저희가 걸어 보지 못하였사오니 얼마나 더 남았는지 알지 못하옵고 감히 함부로 대답하지 못하겠나이다.” 당승이 고마워하였다. 이윽고 공양이 차려져 올라왔다. 공양을 마치고 당승이 떠나려 하자 중들과 재주가 붙들고 간청하였다. “스승님, 마음 편히 하루나 이틀 더 머무시어 원소절을 지내고 구경이나 하시고 가셔도 무방하지 않사옵니까.” 당승이 놀라 물었다. “제자는 길 위에서 산과 물만 알았사옵고 요괴나 마귀를 만날까 두려워한 나머지 세월을 다 놓쳐 버렸사오니, 원소절 가절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옵니다.” 중들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부처께 절하고 선을 깨우치는 마음이 무거우시니 이런 것을 생각에 두지 않으신 것이외다. 오늘이 정월 열사흘이옵니다. 저녁이면 등을 시험해 켜고, 모레 보름이 상원이옵니다. 열여드레나 열아흐레가 되어서야 등을 거두어들이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잔치를 좋아하옵고 본부 태수 나으리께서도 백성을 사랑하시어, 각 지방마다 모두 등을 높이 걸고 밤새도록 피리와 퉁소를 불어대옵니다. 또 금등교라는 것이 있사온데 상고 때부터 전해 내려와 지금까지 성하옵니다. 나으리들께서 며칠만 너그럽게 머물러 주시옵소서, 이 황산에서도 넉넉히 대접해 올릴 수 있사옵니다.” 당승이 어쩔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모두 머물렀다. 그날 저녁 불전에서 종과 북 소리가 하늘을 울리는 것이 들렸으니, 이는 저잣거리의 신도들이 등을 가져와 부처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당승 일행은 모두 방장에서 나와 등을 구경하고는 제각기 자리로 돌아가 잠들었다. 이튿날 절의 중들이 또 공양을 올렸다. 먹기를 마치고 함께 뒷동산으로 나가 한가로이 거닐었다. 과연 좋은 경치라 이러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정월이요 해는 새봄에 이르렀다. 동산과 숲은 그윽하고 아담하며 경치와 사물은 아름답고 무성하였다. 사철 꽃과 나무가 기이함을 다투고, 온 산봉우리는 겹겹이 푸르름을포개었다. 섬돌 앞에 향초가 움을 틔우고, 늙은 매화 가지에서 향기가 피어났다. 붉은빛은 복숭아꽃의 여린 속으로 스며들고, 푸른빛은 버들빛의 새로움으로 돌아왔다. 금곡원의 부유함과 화려함을 자랑하지 말라 하고, 망천도의 유풍도 함부로 말하지 말라. 물줄기 하나 흘러가는데 물오리가 나타났다 숨었다 일정하지 않고, 대나무 천 그루 심겼거늘 묵객들이 시구를 다듬느라 아직 정하지 못하였다. 작약꽃, 모란꽃, 자미꽃, 함소화는 하늘의 기틀이 막 깨어나고, 동백꽃, 홍매화, 영춘화, 서향화는 고운 바탕이 먼저 피어났다. 그늘진 벼랑에 쌓인 눈은 아직 얼음을 머금었건만, 멀리 있는 나무에 떠오른 안개는 벌써 봄을 띠었다. 또 보니 사슴은 못가로 가서 그림자를 비추고, 학은 소나무 아래로 와 거문고 소리를 들었다. 동쪽에 몇 채 행랑, 서쪽에 몇 개 정자에는 나그네가 와서 묵어 가고, 남쪽에 몇 채 당, 북쪽에 몇 기 탑에서는 중이 고요히 좌선하였다. 꽃과 풀 가운데에는 성품을 기르는 누각 한두 채가 있어 처마를 겹으로 높이 들어올렸고, 산수 사이에는 마귀를 단련하는 방 세네 곳이 있어 책상이 깨끗하고 창이 밝았다. 참으로 천연으로 숨어 살기에 넉넉하거늘, 또 어찌 다른 곳에서 봉래와 영주를 찾으랴. 사부와 제자들은 하루를 즐기며 구경하고, 전각에서 등을 본 뒤에 또 모두 나가 등놀이를 구경하였다. 그런데 보니 이러하였다. 마노로 꾸민 꽃 성이요, 유리로 만든 신선의 굴이며, 수정과 운모로 된 여러 궁전이라, 겹겹이 수놓은 비단 같고 포개포개 영롱하였다. 별다리의 그림자가 흔들리니 하늘과 땅이 움직이고, 몇 그루 불꽃 나무가 붉게 흔들리는구나. 여섯 거리에는 피리와 북소리, 천 집 문에는 옥 같은 달, 만 호에는 향기로운 바람이라. 몇 군데 자라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고, 물고기와 용이 바다에서 나오고 난새와 봉황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등불과 달빛이 어우러져 화기롭기가 그지없었다. 비단 무리 속에서 사람마다 피리와 노래 듣기를 즐기고, 수레와 말이 우르르 굉장하였다. 꽃 같은 얼굴과 옥 같은 모습을 다 보지 못하겠고, 풍류와 호협한 이들, 아름다운 경치가 끝이 없었다. 일행은 이미 이 절에서 등을 구경한 뒤 또 동문 밖 거리마다 가서 놀았다. 이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당승이 중들에게 말했다. “제자는 본래 탑을 쓸겠다는 원이 있었사오니, 오늘이 상원 가절이니 원주께서는 탑문을 열어 주시어 제자가 그 원을 풀게 해 주시옵소서.” 중들이 곧 문을 열었다. 사오정이 가사를 꺼내어 당승을 따라 탑에 올라가 맨 아래층에서 가사를 걸치고 부처께 절하고 축원을 마친 뒤, 곧 빗자루로 한 층을 쓸고 가사를 벗어 사오정에게 건네고는 또 이층을 쓸어, 한 층 한 층 맨 꼭대기까지 쓸어 올라갔다. 그 탑은 층층이 부처가 모셔져 있고 곳곳에 창이 열려 있어, 한 층을 쓸고 나면 한 층을 감상하며 찬미하였다. 쓸기를 마치고 내려오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또 등을 밝혀 들었다. 이날 밤이 바로 정월 보름 원소절이라 중들이 말했다. “스승님, 저희는 그저께와 어젯밤에는 다만 이 황산과 관문 밖 거리에서 등을 보았사옵니다. 오늘 밤이야말로 정월 대보름이오니 성 안에 들어가 금등을 보시는 게 어떠하시옵니까?” 당승이 흔쾌히 따랐고, 행자 세 사람과 이 절의 중 여러 명과 함께 성에 들어가 등을 구경하였다. 이러하였다. 보름 좋은 밤의 가절이라, 상원의 봄빛이 화창하구나. 꽃등이 번화한 저자에 걸렸고, 태평가를 함께 부르는구나. 또 보니 여섯 거리 세 저자의 등불이 밝고, 반 허공에 거울 하나가 막 떠올랐다. 저 달은 마치 풍이가 은쟁반을 밀어 올린 듯하고, 이 등은 선녀가 땅에 깔 비단을 짜 낸 듯하였다. 등이 달에 비치니 광휘가 갑절이나 더해지고, 달이 등을 비추니 찬란함이 열 배는 더해졌다. 쇠사슬로 된 별다리와 등꽃 불나무를 다 보지 못하겠구나. 눈꽃등, 매화등은 봄얼음을 잘게 오려 낸 듯하고, 수놓은 병풍등, 그림 병풍등은 오색을 모아 만들었구나. 호두등, 연꽃등은 등루에 높이 걸렸고, 푸른 사자등, 흰 코끼리등은 등가에 높이 받쳐 들렸다. 새우등, 자라등은 휘장 앞에서 높이 흔들리고, 양등, 토끼등은 처마 아래에서 정신이 없다. 매등, 봉황등은 서로 이어지고 나란히 붙었으며, 호랑이등, 말등은 함께 걷고 함께 달린다. 선학등, 흰 사슴등에는 수성이 올라탔고, 금붕어등, 큰 고래등에는 이백이 높이 올라탔구나. 자라산등은 신선이 모여든 것이요, 주마등은 무장이 서로 싸우는구나. 온갖 집의 등불과 누대가 수만이요, 십여 리에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세계로다. 저쪽에서는 옥장식 발걸이가 쨍그랑 소리 내며 날아오고, 이쪽에서는 향기로운 수레가 데구르르 굴러 지나간다. 보라, 붉은 단장한 누각 위에서 난간에 기대고 발을 사이에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고 쌍쌍이 미녀가 즐거움을 탐하는구나. 푸른 물가 다리 곁에서는 떠들썩하고 비단처럼 빽빽하며 취해 있고 즐거워하며, 쌍쌍이 나그네가 채색을 희롱하는구나. 성 안 가득 피리와 북소리가 떠들썩하고, 밤이 새도록 생황 소리와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지은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비단 무늬 펼친 마당에서 채련을 부르고, 태평한 경내에 인가가 모였구나. 등은 밝고 달은 흰 원소절 밤이요, 비는 순하고 바람은 고르니 크게 풍년이 들 해로다. 이때는 바로 금오가 통행을 금하지 않는 밤이라, 떠들썩하게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춤추는 이, 목마 타는 이, 귀신 분장을 한 이, 코끼리를 탄 이가 동쪽에 무리, 서쪽에 떼를 지어 있어 다 볼 수가 없었다. 막 금등교에 이르렀을 때 당승과 중들이 앞으로 다가가 보니 그것은 금빛 등 세 개였다. 그 등은 독만 한 크기였는데, 위로는 영롱하게 아로새긴 이층 누각이 얹혀 있었고 그것은 모두 가는 금실로 엮어 만든 것이었다. 안쪽에는 유리 얇은 조각을 받쳐 두어 그 빛이 달을 흔들고 그 기름은 향기를 뿜어냈다. 당승이 돌아서서 중들에게 물었다. “이 등은 무슨 기름이오? 어찌 이토록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찌르는 게요?” 중들이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모르시옵니다만, 이 부의 뒤쪽에 현 하나가 있사온데 이름을 민천현이라 하옵니다. 그 현은 사방 이백 사십 리이옵니다. 해마다 요역을 조사하여 편성하옵는 데 등 기름을 대는 큰 집이 모두 이백 사십 집이옵니다. 부와 현의 여러 가지 요역은 그래도 견딜 만하옵니다마는, 오직 이 큰 집들이 몹시 시달리옵니다. 집마다 한 해를 맡으면 은자 이백 냥이 넘게 들어가옵니다. 이 기름은 예사 기름이 아니옵니다. 바로 소합향유이옵니다. 이 기름은 한 냥에 은 두 냥 값이옵고 한 근에 서른두 냥 은값이옵니다. 등이 셋이옵고 독마다 오백 근씩이니 세 독에 모두 천오백 근이옵니다. 모두 은자 사만 팔천 냥이 되옵니다. 그 밖에 잡다한 비용과 부대 비용을 합하면 오만여 냥이 넘사온데, 사흘 밤을 밝히는 데에만 쓰이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그 많은 기름을 사흘 밤에 어찌 다 태워 버린단 말이오?” 중들이 말했다. “이 독 안에는 독마다 큰 심지 마흔아홉 개가 있사온데, 모두 등심대로 묶은 다발에 명주솜을 감은 것이옵니다. 굵기가 달걀만 하옵니다. 다만 오늘 밤을 밝히고 나면 부처님께서 몸을 나타내시는 것을 뵙게 되옵니다. 이튿날 밤에는 기름도 없어지고 등도 흐려지옵니다.” 저팔계가 곁에서 웃으며 말했다. “부처님께서 기름까지 거두어 가시는 게로구나.” 중들이 말했다. “바로 그렇게들 말하옵니다. 성 안 사람들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모두 이런 전설을 믿사옵니다. 기름이 마르면 사람들은 모두 부처께서 등을 거두어 가신다고 하옵니다. 그리하면 저절로 오곡이 풍성해지옵니다. 만일 어느 해인가 마르지 않으면 곧 그해가 흉년이 들고 비바람이 고르지 못하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 이 공양을 바치려 하옵니다.” 한창 말하고 있는데 문득 허공에서 휘이잉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등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라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중들도 발을 붙이고 서 있지 못하며 말했다. “스승님, 돌아가시지요. 바람이 불어왔사옵니다. 부처님께서 상서를 내리시어 이곳에 오셔서 등을 보시는 것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어찌 부처께서 등을 보러 오신 줄 아시오?” 중들이 말했다. “해마다 이러하옵니다. 삼경이 되기 전에 바람이 불어오면 여러 부처께서 상서를 내리시는 줄로 알았사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피하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내 제자는 본래 부처를 생각하고 부처를 외며 부처께 절하는 사람이오. 오늘 좋은 경치를 만났사온데 과연 여러 부처께서 강림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절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좋겠소.” 중들이 거듭 청하였으나 돌아가지 않았다. 이윽고 바람 속에서 과연 부처의 몸 세 분이 나타나더니 등 가까이 다가왔다. 당승이 황급히 다리 위로 뛰어 올라가 몸을 던져 절을 하였다. 행자가 급히 끌어당기며 말했다. “스승님, 좋은 이가 아니옵니다. 틀림없이 요사한 것들이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등불이 캄캄해지더니, 휙 소리와 함께 당승을 안아 들고 바람을 타고 가 버렸다. 아, 어느 산 어느 굴의 참된 요괴인고, 오랜 세월 가짜 부처가 되어 금등을 보고 있었구나. 놀란 저팔계가 양쪽으로 찾아다니고 사오정이 좌우에서 불러댔다. 행자가 외쳤다. “동생들! 여기서 부를 필요 없소. 스승님께서 즐거움이 지나쳐 슬픔을 낳으셨소. 이미 요정에게 잡혀 가셨소!” 그 중 몇이 겁을 먹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어찌 요정에게 잡혀가신 줄 아시나이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너희 범인의 무리는 여러 해를 두고 알아차리지 못하여 요사한 것에게 홀려 참 부처께서 상서를 내리신 줄로만 여기고 이 등공양을 받게 하였구나. 조금 전에 바람이 불던 곳에 부처의 몸을 나타낸 자들이 바로 그 세 요정이었다. 우리 스승님도 알아보지 못하시고 다리 위로 올라가 절을 하셨다가, 그놈들이 등불을 어둡게 하고 그릇에 기름을 담아 우리 스승님까지 함께 잡아 갔느니라. 내가 조금 늦게 움직였더니 그 세 놈이 바람으로 변해 달아나 버렸노라.” 사오정이 말했다. “형님,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행자가 말했다. “망설일 것 없소. 너희 둘은 중들과 함께 절로 돌아가 말과 짐을 지키시오. 노손이 이 바람을 타고 뒤쫓아 가겠노라.” 위대한 대성이라, 급히 근두운을 타고 허공으로 솟아올라 그 비린내 나는 바람 기운을 맡으며 동북쪽을 향해 곧장 쫓아갔다. 날이 샐 때까지 쫓아가니 홀연 바람이 그치고 큰 산 하나가 보였는데 몹시 험준하고 참으로 우뚝 솟아 있었다. 좋은 산이로다. 겹겹이 골짜기요, 구불구불 샘물이라. 등나무와 칡이 깎아지른 벼랑에 드리웠고, 소나무와 잣나무가 허공에 선 바위 위에 우뚝 섰구나. 학은 아침 안개 속에서 울고, 기러기는 새벽 구름 사이에서 우느니라. 높고 높이 솟은 봉우리는 창을 벌여 세운 듯하고, 불쑥불쑥 울퉁불퉁 바위는 쌓아 올린 듯하구나. 산꼭대기는 만 길이나 높고 험한 고개는 천 굽이를 포개었구나. 들꽃과 아름다운 나무는 봄을 알고 피어나고, 두견새와 꾀꼬리는 경치에 어울려 고운 자태를 뽐내누나. 높고 빼어나며 참으로 험준한 바위라, 괴상하고 기이하여 험하고 또 어려웠다. 한참을 멈추어 구경하노라니 사람은 말이 없고, 다만 범과 표범의 코 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사향노루와 흰 사슴이 오가고, 옥토끼와 푸른 이리가 갔다가 돌아왔다. 깊은 계곡물은 천만 리를 흘러가고, 소용돌이가 바위에 부딪혀 철썩철썩 소리를 내누나. 대성이 산벼랑 위에서 길을 찾고 있는데, 문득 네 사람이 양 세 마리를 몰고 서쪽 비탈 아래에서 일제히 “개태”를 외치며 올라왔다. 대성이 불꽃눈을 번쩍이며 자세히 살펴보니, 연·월·일·시를 맡은 사값공조의 사자들이 모습을 감추고 형상을 바꾸어 온 줄 알아차렸다. 대성이 곧 쇠몽둥이를 빼어 들어 한 번 흔들자 사발만 한 굵기에 길이가 한 길 두 자가 되었다.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며 호통쳤다. “너희는 모두 머리를 감추고 목을 움츠린 채 어디로 가느냐!” 사값공조는 제 속을 들킨 줄 알고 황급히 양 세 마리를 호통쳐 흩어 버리고 본모습을 드러낸 뒤, 길옆으로 비켜 서서 예를 올리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용서하옵소서! 용서하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요새야 너희를 쓸 일이 없었더니, 노손이 너그러운 줄만 알고 하나같이 게을러져서 와서 얼굴 한 번 비치지도 않는구나!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너희는 그늘에서 우리 스승을 보호하지 않고 다 어디로 갔었느냐?” 공조가 아뢰었다. “스승님께서 선심이 느슨해지시어 금평부 자운사에서 즐거움을 탐하셨사옵니다. 그리하여 태극이 막히고 즐거움이 성하여 슬픔이 되었사옵니다. 이제 요사한 놈에게 잡히셨사옵니다. 그 곁에는 호법 가람이 지켜 주고 있사옵니다. 저희는 대성께서 밤을 새워 찾으실 줄 알았사옵니다. 대성께서 산과 숲을 모르실까 염려되어 특별히 와서 알려 드리옵니다.” 행자가 말했다. “알려 주러 왔다면서 어찌 이름을 감추고 양 세 마리를 몰고 가며 떠들썩하게 외치고 있었느냐?” 공조가 말했다. “이 양 셋을 마련하여 개태라는 말에 응하게 하였사옵니다. 이름하여 삼양개태라 하오니, 스승님의 막힌 운을 풀어 드리려는 뜻이었사옵니다.” 행자가 성이 나서 때리려다가 그 뜻이 있음을 알고는 그만두고, 몽둥이를 거두어 노여움을 거두고 기뻐하며 말했다. “이 산이 바로 요정들이 사는 곳이냐?” 공조가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이 산 이름은 청룡산이옵니다. 안에 굴이 있사온데 이름은 현영동이옵니다. 굴 속에 요정이 셋 있사옵니다. 큰놈 이름은 벽한대왕이요, 둘째는 벽서대왕이라 하고, 셋째는 벽진대왕이라 하옵니다. 이 요정이 이곳에 있은 지 천 년이 되었사옵니다. 놈들은 어려서부터 소합향유 먹기를 좋아하였사옵니다. 예전에 정기를 이룬 뒤 이곳에 와서 부처의 형상을 거짓으로 꾸며 금평부 관리들을 속여 금등을 세우게 하고 등 기름을 소합향유로 쓰게 하였사옵니다. 놈들은 해마다 정월 보름이 되면 부처로 변하여 기름을 거두어 갔사옵니다. 올해는 스승님을 만났사옵니다. 놈들이 성스러운 중의 몸인 줄 알아차리고 스승님까지 굴 안으로 잡아들였사옵니다. 머지않아 스승님의 살을 베어 썰어 소합향유에 지져 먹으려 하옵니다. 어서 힘을 쓰시어 구해 내시옵소서.”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사공조를 호통쳐 물러가게 한 뒤 산벼랑을 돌아 굴을 찾았다. 몇 리를 가지 않아 시냇가에 돌벼랑 하나가 보였고, 벼랑 아래에 돌집이 있었는데 문 두 짝이 반쯤 열려 있었다. 문 곁에 돌비석이 서 있고 그 위에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으니 바로 청룡산 현영동이었다. 행자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멈추고 서서 외쳤다. “요괴들아! 어서 우리 스승님을 내보내라!” 그곳에서 와장창 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소머리 정령 한 무리가 달려 나와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누구기에 감히 여기서 호통치느냐!” 행자가 말했다. “나는 본래 동토 대당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성스러운 중 당삼장의 큰 제자니라. 금평부를 지나다 등놀이를 구경하는데 우리 스승이 네 집 마두에게 잡혀 왔으니, 어서 빨리 돌려보내라. 그러면 너희 목숨은 살려 주마! 만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소굴을 뒤집어 엎어 너희 무리를 모두 고름과 피로 만들어 버리리라!” 그 작은 요괴들이 그 말을 듣고 급히 안으로 달려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 큰일 났사옵니다! 큰일 났사옵니다!” 세 늙은 요괴는 당승을 그 굴 깊은 곳에 잡아다 놓고, 무슨 시비를 가릴 것도 없이 작은 놈들에게 옷을 벗기고 여울의 맑은 물을 길어 깨끗이 씻게 한 뒤 잘게 썰고 곱게 다져 소합향유에 지져 먹으려고 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일”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몹시 놀라며 무슨 까닭인지 물었다. 작은 요괴가 아뢰었다. “대문 앞에 털북숭이 얼굴에 부리 같은 입을 한 중 하나가 와서 떠들며 하옵기를, 대왕께서 제 스승을 잡아왔으니 어서 내보내어 우리 목숨을 살려 달라 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굴을 뒤집어 엎어 우리를 모두 고름과 피로 만들겠다 하옵니다!” 그 늙은 요괴들이 그 말을 듣고는 저마다 놀라며 말했다. “이제 이놈을 잡아 놓고도 아직 성명과 내력을 묻지 않았구나. 작은 놈들아, 우선 옷을 입혀 데려와서 한번 심문해 보자. 과연 누구이며 어디서 온 놈인지.” 요괴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당승의 포승을 풀고 옷을 입혀 좌석 앞으로 밀어 넣었다. 겁에 질린 당승이 벌벌 떨며 아래에 무릎을 꿇고는 다만 외쳤다. “대왕이시여, 살려 주시옵소서! 살려 주시옵소서!” 세 요정이 입을 모아 말했다. “너는 어느 곳에서 온 중이냐? 어찌 부처의 형상을 보고 피하지 않고 내 구름길을 범하였느냐?” 당승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고 천축국 대뇌음사로 가서 부처께 절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중이옵니다. 금평부 자운사에 이르러 공양을 받다가 그 절 중들이 원소절을 지내며 등을 보라고 붙잡아 주었사옵니다. 금등교 위에 있는데 대왕께서 부처의 형상을 나타내시옵니다. 빈승은 속된 눈과 범인의 몸이라 부처를 보자마자 절을 올렸사옵니다. 그리하여 대왕의 구름길을 범하게 되었사옵니다.” 그 요정이 말했다. “네가 동토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이 몹시 머니, 일행이 모두 몇 명이며 이름은 무엇이냐. 어서 사실대로 불어라. 그리하면 내 너의 목숨을 살려 주마.” 당승이 말했다. “빈승의 속명은 진현장이옵니다. 어려서 금산사에서 중이 되었사옵니다. 뒤에 당 황제의 은혜를 입어 장안 홍복사에서 승관이 되었사옵니다. 또 위징 승상이 꿈에 경하의 늙은 용을 베고, 당왕께서 지부를 유람하시고 양세로 돌아오신 뒤 수륙대회를 열어 음혼을 천도하셨사옵니다. 그때 황제께서 빈승을 단주로 뽑아 주시어 도강을 크게 펴게 하였사옵니다. 마침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빈승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서천 대뇌음사에 삼장진경이 있어 망령된 이를 천도하여 승천시킬 수 있다 하시고 빈승을 보내어 가지러 오게 하셨사옵니다. 그리하여 삼장이라는 호를 내려 주셨사옵니다. 당나라를 따라 성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저를 당삼장이라 부르옵니다. 제자 셋이 있사옵니다. 큰아이는 성이 손이요 이름이 오공이옵니다. 행자라 하옵니다. 제천대성이 바른길로 돌아온 자이옵니다.” 요괴 무리가 그 이름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 제천대성이란 자가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그놈이냐?” 당승이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둘째는 성이 저요 이름이 오능이옵니다. 팔계라 하옵니다. 천봉대원수가 환생한 자이옵니다. 셋째는 성이 사요 이름이 오정이옵니다. 권렴대장이 범계에 내려온 자이옵니다.” 세 요왕이 그 말을 듣고 저마다 놀라며 말했다. “일찍이 그를 먹지 않았으니 다행이로다. 작은 놈들아, 우선 당승을 쇠사슬로 묶어 뒤편에 가두고, 그 제자 셋을 잡아다 함께 먹도록 하자.” 드디어 산소정·물소정·황소정 한 무리를 뽑아 저마다 병기를 들고 문을 나서서 나팔을 불고 깃발을 흔들며 북을 쳤다. 세 요괴가 갑옷과 투구를 단정히 갖추어 입고 모두 문 밖으로 나와 호통쳤다. “누가 감히 내 앞에서 떠드느냐!” 행자가 돌벼랑 위에 몸을 숨기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요정들의 생김새가 이러하였다. 채색한 얼굴에 둥근 눈이요, 두 뿔이 우뚝 솟았다. 뾰족뾰족한 네 귀, 영롱한 구멍에서 밝은 빛이 번쩍였다. 온몸의 무늬는 채색 그림 같고, 온몸의 비단 무늬는 날아오르는 꽃잎 같았다. 첫째는 머리에 여우 갖옷 꽃모자를 썼으니 따뜻하고, 얼굴 가득 솟은 털에서 뜨거운 김이 나며, 둘째는 몸에 가벼운 비단을 걸쳤으니 타오르는 불길이 날리고, 네 발굽 꽃무늬가 옥처럼 영롱하며, 셋째는 위풍과 울음소리가 우레처럼 울리고, 날카로운 엄니가 은바늘을 이겼다. 낱낱이 용맹하고 사나우니 손에 든 병기가 세 가지라, 하나는 월부를 쓰고, 하나는 큰 칼을 잘 쓰며, 셋째를 보건대 어깨에 글달등을 가로 메었다. 또 보니 키가 들쭉날쭉하고 살찐 놈 여윈 놈이 섞인 크고 작은 요괴들이 모두 소머리 귀신이라, 저마다 창과 몽둥이를 들었다. 큰 기가 셋이 있었는데 기에 분명히 벽한대왕, 벽서대왕, 벽진대왕이라 쓰여 있었다. 손행자가 한참을 보고는 참지 못하여 앞으로 나서서 크게 외쳤다. “무지한 도적 요괴야! 노손을 알아보겠느냐?” 그 요괴가 호통쳤다. “네가 그 천궁을 어지럽힌 손오공이냐? 참으로 이름은 들어 보았으나 얼굴을 본 적은 없더니, 얼굴을 보니 천신이 부끄러워 죽겠구나! 네가 원래 이런 원숭이 새끼였으면서 큰소리를 치다니!” 행자가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이놈, 등 기름이나 훔쳐 먹는 도적아! 기름 주둥이 요괴야, 헛소리 말고 어서 우리 스승님을 내놓아라!” 가까이 달려들며 쇠몽둥이를 휘둘러 내리쳤다. 그 늙은 요괴 셋이 세 가지 병기를 들어 급히 막아 맞받았다. 이 한바탕 싸움은 산골짜기에서 대단하였으니, 월부와 강철 칼과 글달등을 원숭이 왕이 홑몽둥이로 맞아 나갔구나. 벽한과 벽서와 벽진의 괴물들이 제천대성의 이름을 알아보는구나. 몽둥이가 오르니 귀신도 겁을 내고, 도끼와 칼이 날아들어 어지럽게 휘날리는구나. 훌륭하구나, 혼원한 법을 지닌 진공의 모습이여! 세 요괴의 가짜 부처 형상을 막아 내었구나. 저 기름을 훔쳐 코를 윤택하게 하던 세 놈이 올해는 걸려들어, 기어코 황제 폐하가 보낸 중을 잡으려 하누나. 이는 스승 때문에 먼 산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놈은 입 때문에 해마다 등공양을 차리게 하였구나. 쨍그랑 도끼 소리만 들리고, 퍽퍽 몽둥이 소리만 들리는구나. 서로 부딪치고 들이받으며 셋이 하나로 뭉치고, 막고 가리며 저마다 재주를 뽐내누나. 한바탕 싸워 날이 저물어 가니, 누가 지고 누가 이길는지 알 수 없구나. 손행자가 몽둥이 하나로 그 세 요마와 백쉰 합을 싸웠으나 날이 저물어 가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때 벽진대왕이 글달등을 한 번 휘둘러 진 앞으로 뛰어넘고는 기를 한 번 흔들었다. 그러자 소머리 괴물 무리가 앞으로 몰려들어 행자를 가운데 포위하고는 저마다 병기를 휘둘러 마구 내리쳤다. 행자가 일이 좋지 않음을 보고는 휙 소리를 내며 근두운을 타고 패하여 달아났다. 그 요괴들은 더 쫓아오지 않고 무리를 불러 모아 저녁밥을 차려 저마다 먹었다. 또 작은 요괴에게 당승에게도 한 그릇 갖다 주게 하였으나, 손행자 일행을 잡아 온 뒤에야 손을 보려 하였다. 그 스승님은 하나는 오래도록 재계하는 몸이요, 또 하나는 근심과 괴로움 때문이라, 울면서 감히 입술에 대지도 못하였으니, 이는 뒤에 다시 말하리라. 각설하고 행자가 구름을 타고 자운사로 돌아와 “아우들!” 하고 불렀다. 저팔계와 사오정이 그를 기다리며 의논하고 있다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일제히 나와 맞으며 말했다. “형님, 어찌 그리 종일 갔다가 이제야 돌아오십니까? 스승님의 행방은 대체 어떠하옵니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젯밤 바람을 따라 쫓아가 날이 샐 무렵 한 산에 이르렀으나 보이지 않더니, 다행히 사값공조가 소식을 전해 주었느니라. 그 산을 청룡산이라 하고 산중에 현영동이란 굴이 있더라. 굴 속에 요정 셋이 있거늘 벽한대왕, 벽서대왕, 벽진대왕이라 하더라. 본래 여러 해를 두고 이곳에서 기름을 훔치며 부처의 형상으로 거짓 변하여 금평부 관리들을 속여 온 것이더라. 올해 우리를 만나자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하고 도리어 스승님까지 잡아 갔느니라. 노손이 그 사정을 알아내고 공조들에게 은밀히 스승님을 보호하라 일러 두고, 가까이 문 앞으로 가서 욕을 퍼부었지. 그 세 괴물이 일제히 나왔는데 모두 소머리 귀신의 형상이더라. 큰놈은 월부를 쓰고, 둘째는 큰 칼을 쓰며, 셋째는 덩굴 몽둥이를 썼는데, 뒤에 소머리 귀신 떼를 끌고 기를 흔들며 북을 치고 노손과 하루를 싸웠으나 호각이었느니라. 그 요왕이 기를 흔들자 작은 요괴들이 모두 덤벼들고, 날이 저물어 이기지 못할까 염려되어 근두운을 타고 돌아왔노라.” 저팔계가 말했다. “거기는 풍도성 귀왕이 떠드는 게로구나.” 사오정이 말했다. “어찌 풍도성 귀왕이 떠든다고 짐작하느냐?”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 소머리 귀신이라 하시니 그러하려니 한 것뿐이네.” 행자가 말했다. “아니다! 아니다! 노손이 보기에 그 괴물들은 서우 세 마리가 정기가 된 것이니라.” 저팔계가 말했다. “서우라면 잡아다 뿔을 톱으로 잘라 내면 은자 몇 냥은 되겠네!” 한창 말하는데 중들이 물었다. “손 나으리께서는 저녁 공양을 드시겠나이까?” 행자가 말했다. “편하면 좀 먹고, 아니면 안 먹어도 좋소.” 중들이 말했다. “나으리께서 하루를 싸우셨으니 어찌 배가 고프지 않으시겠나이까?”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하루쯤이야 어찌 배가 고프겠소! 노손은 오백 년을 먹지 않고 지낸 적도 있소!” 중들은 그것이 사실인 줄 모르고 농담으로만 여겼다. 이윽고 음식을 가져오자 행자도 먹고는 말했다. “우선 잠자리를 마련하고 내일 우리 모두 함께 맞서 싸워 요왕을 잡아야 비로소 스승님을 구할 수 있소.” 사오정이 곁에서 말했다.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속담에 머물면 꾀가 는다 하였소. 그 요정이 만일 오늘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스승님을 해쳐 버린다면 어찌하겠소? 지금 당장 가서 놈들이 미처 손쓰지 못하게 떠드는 것만 못하오. 그래야 스승님을 구할 수 있소. 조금만 늦어도 잘못될 것이오.”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신위를 떨치며 말했다. “사 아우 말이 옳소! 우리 모두 이 달빛을 타고 마귀를 항복받으러 가세!” 행자가 그 말을 따라 절의 중들에게 분부했다. “행리와 말을 지켜 두시오. 우리가 요정을 잡아 와서 본부 자사 앞에서 가짜 부처임을 증명하고 등 기름을 면하게 하여 온 고을 백성의 고통을 덜어 준다면 좋지 않겠소?” 중들이 승낙하며 거듭 고마워하였다. 그 세 사람이 드디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성을 나서 멀리 갔다. 이러하였다. 게으르고 구속 없이 지내니 선심이 어지럽고, 재앙과 위태로움을 정해 두니 도심이 가리우는구나. 이 길의 승패가 과연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2회 삼승대전청룡산(三僧大戰靑龍山) · 사성협착서우괴(四星挾捉犀牛怪) 각설하고 손대성이 두 아우를 거느리고 바람을 굴리며 구름을 타고 동북 간방으로 향하니, 잠깐 사이에 청룡산 현영동 굴 어귀에 닿아 구름머리를 내렸다. 저팔계가 곧 문을 찍으려 하자 손행자가 말했다. “잠시 참게. 내가 먼저 들어가 스승님이 살아 계신지 어떤지 보고 나서 그놈들과 겨루는 게 좋겠네.” 사오정이 말했다. “이 문은 굳게 닫혔는데 어찌 들어간단 말이오?” 손행자가 말했다. “내게 법력이 있네.” 대성은 몽둥이를 거두고 결을 쥐어 주문을 외우고는 “변해라!” 하고 외치니 곧 불빛 벌레 한 마리로 변하였다. 참으로 영민하였다. 보라, 그의 모습이 어떠한가. 날개를 펴니 흐르는 별처럼 빛나고, 옛글에 썩은 풀이 반딧불이가 된다 하였도다. 신통한 변화가 결코 가볍지 않으니, 스스로 배회하는 성품을 지녔구나. 돌문 가까이 날아가 매달려 살피고, 곁의 틈새로 바람을 따라 들어간다. 몸을 한 번 솟구쳐 그윽한 뜰에 이르러, 요마의 동정을 엿보는구나. 그가 스스로 날아 들어가 보니 소 몇 마리가 비스듬히 드러누워 있고, 낱낱이 천둥처럼 코를 골며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다. 또 가운데 청사 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사방의 문은 훤히 트였으나 그 세 요정이 어디서 자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막 청사를 돌아 뒤쪽으로 비추어 보니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바로 당승이 뒷방 처마 기둥에 매여 울고 있는 것이었다. 손행자가 남몰래 그가 무슨 말을 하며 우는지 귀를 기울이니, 그가 이렇게 울며 말하였다. “장안을 떠난 지 십수 년,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며 온갖 고초를 겪었구나. 다행히 서역에 이르러 좋은 절기를 만나고 기쁘게 금평에 와 상원절을 맞이하였노라. 등불 속의 가짜 불상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모두 명 가운데 재앙이 있었기 때문이로다. 어진 제자가 위풍을 떨치며 쫓아오니, 바라건대 영웅이 큰 권능을 펼치기를.” 손행자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몹시 기뻐 날개를 펴고 스승 앞으로 날아갔다. 당승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 서방의 풍경이 다르구나. 이제 정월이라 겨울잠 벌레가 막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어찌 벌써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단 말이오?” 손행자는 참지 못하고 소리쳐 말했다. “스승님, 제가 왔나이다!” 당승이 기뻐하며 말했다. “오공아, 나는 정월에 어찌 반딧불이가 있을까 여겼더니 바로 너였구나.” 손행자가 곧 본모습으로 돌아와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지 못하시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길을 그르치고 얼마나 많은 마음을 쓰게 하였는지 모르나이다. 제가 줄곧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였건만 스승님께서는 절을 하셨고, 그 틈을 타 이 괴물이 등불을 어둡게 만들고 소합향유를 훔쳐 스승님까지 함께 데려가 버렸나이다. 저는 저팔계와 사오정에게 절로 돌아가 지키라 분부한 뒤 바람의 자취를 따라 이곳까지 쫓아왔사오나 지명을 알지 못하였는데, 다행히 네 분의 공조가 전해 알려 주어 이 산을 청룡산 현영동이라 하였나이다. 제가 낮에 이 괴물과 해가 질 때까지 싸우고서 돌아가 사제들에게 이 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사옵고는 잠도 들지 않고 그 둘과 함께 이리로 왔나이다. 밤이 깊어 싸우기가 불편할까 염려되고 또 스승님의 행방을 알지 못하여, 변신하여 들어와 스승님의 형편을 알아본 것이옵니다.” 당승이 기뻐하며 말했다. “저팔계와 사오정이 지금 밖에 있느냐?” 손행자가 말했다. “밖에 있나이다. 방금 이 늙은 손오공이 살펴보니 요정들이 모두 잠들어 있사옵니다. 제가 자물쇠를 풀고 문을 밀어 열어 스승님을 모시고 나가겠나이다.” 당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하였다. 손행자가 자물쇠 푸는 법술을 부려 손으로 한 번 쓸어 보니 그 자물쇠가 벌써 저절로 열렸다. 스승님을 이끌고 앞으로 막 걸어가는데, 문득 요왕이 가운데 청사 안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문을 굳게 닫고 불을 조심하여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어찌하여 경을 알리며 순라를 돌지 않고 방울 소리마저 들리지 않느냐?” 원래 그 무리의 작은 요괴들은 하루 종일 싸우느라 모두 지치고 고단하여 잠이 들어 있었는데,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제야 깨어났다. 방울 소리가 울리는 곳에 무기를 잡은 놈 몇이 있어 징을 두드리며 뒤쪽에서 걸어 나오다가 그만 사부와 사제 두 사람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작은 요괴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이놈의 중놈! 자물쇠를 비틀고 어디로 가려느냐!” 손행자는 말도 붙이지 않고 몽둥이를 빼어 한 번 휘두르니 사발만큼 굵어져 곧장 내리쳤다. 몽둥이가 올라가는 곳마다 두 놈이 맞아 죽고, 나머지는 무기를 버린 채 가운데 청사로 달려가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대왕이시여! 큰일 났사옵니다! 큰일 났사옵니다! 털부숭이 얼굴을 한 중놈이 집 안에서 사람을 때려 죽이나이다!” 그 세 괴물이 이 소리를 듣고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잡아라! 잡아라!” 하고 외쳤다. 당승은 놀라 손에 발에 힘이 다 풀리고 말았다. 손행자는 스승도 돌아보지 않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앞으로 굴러 나아갔다. 작은 요괴들은 당해 낼 수 없어 두세 놈은 쓰러지고 두세 놈은 밀려 넘어지는 사이에 여러 겹의 문이 열리고, 곧장 밖으로 나와 외쳤다. “동생들은 어디 있느냐?” 저팔계와 사오정이 막 갈고리와 지팡이를 들고 기다리다가 말했다. “형님, 일이 어찌 되었소?” 손행자가 변신하여 안으로 들어가 스승님을 풀어 함께 나오다가 요괴에게 들키는 바람에 스승님을 돌볼 겨를도 없이 때며 빠져나온 사정을 한 번 이야기하였으나,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그 요왕이 당승을 붙잡아 다시 쇠사슬로 묶어 두고는 칼을 쥐고 도끼를 휘두르며 등불을 환히 밝히고 물었다. “이놈아, 네가 어떻게 자물쇠를 열었고 그 원숭이는 어찌 들어왔느냐? 어서 빨리 불어라, 그러면 네 목숨을 살려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단칼에 두 토막을 내리라!” 당승은 황급해져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왕 할아버지! 제 제자 손오공은 일흔두 가지 변화를 할 줄 압니다. 방금 불빛 벌레로 변하여 날아 들어와 저를 구하려 하였사옵니다. 뜻밖에도 대왕께서 알아차리시고 작은 대왕들이 우연히 마주치는 바람에, 제 제자가 분별없이 두 놈을 때려 다치게 하였고,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무기를 들고 불을 밝히니 그만 저를 돌볼 겨를이 없어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나이다.” 세 요왕이 껄껄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일찍 알아차렸으니 아직 놓치지는 않았도다!” 그리고는 작은 요괴들에게 앞뒤 문을 단단히 닫아 걸라 이르고 또한 떠들지 못하게 하였다. 사오정이 말했다. “문을 닫아 걸고 떠들지 않는 걸 보니, 아마 스승님을 몰래 해치려는 모양이오. 우리가 먼저 손을 씁시다!” 손행자가 말했다. “옳은 말이오, 어서 문을 두드리세.” 그 바보는 신통력을 뽐내며 갈고리를 들어 힘껏 찍어 내려 그 돌문을 산산이 부수고는, 또 큰 소리로 욕하며 외쳤다. “기름을 훔쳐 먹는 도적 괴물아! 어서 우리 스승님을 내보내라!” 문 안의 작은 요괴들은 놀라 굴러 들어가며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큰일 났사옵니다! 큰일 났사옵니다! 앞문을 그 중놈들이 부수어 버렸나이다!” 세 요왕이 몹시 노하여 말했다. “이놈이 참으로 무례하도다!” 곧 갑옷을 가져다 갖추어 입고 무기를 저마다 들고는 작은 요괴들을 거느리고 문 밖으로 나가 맞서 싸웠다. 이때는 삼경쯤 되었고, 하늘 한가운데 달이 대낮처럼 밝았다. 나오자마자 말도 붙이지 않고 곧바로 병기를 휘둘렀다. 이쪽에서는 손행자가 큰 도끼를 막아내고 저팔계가 큰 칼을 맞아 막고 사오정이 큰 몽둥이를 받아 막았다. 이 얼마나 통쾌한 싸움이던가. 중 셋이 몽둥이와 지팡이와 갈고리를 들고, 세 요마도 담력을 더하였도다. 큰 도끼와 강철 칼과 등나무 몽둥이에, 다만 바람 소리와 흙먼지만이 들릴 뿐이로다. 처음 몇 합을 겨루자 근심 어린 안개가 뿜어지고, 그 뒤로 날아오르며 채색 노을이 흩어지네. 쇠갈고리는 갖가지 수법을 따라 몸이 굴러가고, 쇠몽둥이의 영웅다움이 더욱 자랑할 만하구나. 요괴를 항복받는 보장도 인간 세상에 드물거늘, 요괴의 완고한 마음은 그에게 지려 하지 않네. 도끼 날은 밝고 끝은 예리하며, 등나무 마디는 온몸에 꽃처럼 얽혔구나. 큰 칼은 문짝처럼 번쩍이나, 중의 신통력이 도리어 그를 이기네. 이쪽에서는 스승의 목숨 때문에 이를 갈며 매섭게 때리고, 저쪽에서는 당승을 놓아주지 않으려 얼굴을 할퀴네. 도끼가 찍어 내리고 몽둥이가 받아 올려 승부를 다투고, 갈고리가 휘둘리고 칼이 내리쳐 서로 맞부딪치네. 등나무 몽둥이가 괴물을 항복받는 지팡이를 치니, 뒤집히고 또 뒤집히며 사치스럽게 뽐내누나. 중 셋과 괴물 셋이 오래도록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때 벽한대왕이 한 소리 외쳤다. “이놈들아, 올라와라!” 여러 요정이 저마다 칼날을 들고 일제히 달려들어 순식간에 저팔계를 땅에 넘어뜨렸고, 몇 놈의 물소 정이 그를 잡아당기고 끌어당겨 굴 속으로 끌고 들어가 묶어 버렸다. 사오정은 저팔계가 사라진 것을 보고, 소 떼가 함성을 지르며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곧 보장을 빼어 벽진대왕에게 허술한 자세를 보이며 달아나려 하는데, 다시 요정 떼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비틀거리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급히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만 붙잡혀 묶이고 말았다. 손행자는 일이 어렵다고 여겨 근두운을 타고 몸을 빼어 달아났다. 그때 저팔계와 사오정을 당승 앞으로 끌고 갔다. 당승이 이를 보고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말했다. “가련하다, 너희 둘까지 독수에 걸렸구나! 오공은 어디 있느냐?” 사오정이 말했다. “사형께서는 우리가 붙잡히는 것을 보시고는 곧 가 버렸사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그가 갔으니 필시 어딘가로 구원을 청하러 갔을 게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날이나 되어야 이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지 못하는구나.” 사부와 사제들이 처량해하는 모습은 여기서 더 말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손행자가 근두운을 타고 다시 자운사로 돌아오니 절의 승려들이 맞아들이며 물었다. “당 노야를 구해 내셨사옵니까?” 손행자가 말했다. “구하기 어렵소! 구하기 어렵소! 그 요정의 신통력이 광대하여, 우리 형제 셋이 그놈 셋과 오래도록 겨루었건만 그놈이 작은 요괴를 불러 먼저 저팔계를 잡고 뒤이어 사오정을 잡았고, 이 늙은 손오공만 다행히 빠져나왔소.” 승려들이 겁을 먹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이토록 구름을 타고 안개를 밟으시는데도 잡지 못하셨으니, 아마 노사부께서는 이미 해를 입으셨을 게로소이다.” 손행자가 말했다. “괜찮소! 괜찮소! 우리 스승님은 가람과 게제와 정갑 같은 신들이 몰래 보호하고 계시고, 또 일찍이 초환단을 드신 적도 있으니 목숨은 상하지 않을 것이오. 다만 그 요정에게 재주가 있을 뿐이오. 너희는 말과 행리나 잘 지켜 두시오. 이 늙은 손오공이 하늘에 올라가 구원병을 청해 오리다.” 승려들이 주눅이 들어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또 하늘에도 오르실 수 있사옵니까?”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천궁은 본래 내 옛 집이었소. 예전에 내가 제천대성이었을 적에 반도회를 어지럽힌 죄로 우리 부처님께 항복을 받았고, 이제 하는 수 없이 당승을 모시고 경을 구하러 가며 공으로 죄를 갚고 있소. 가는 길마다 바른 것을 돕고 사악한 것을 없애는데, 우리 스승님이 이 재난을 겪어야 하는 까닭을 너희는 알지 못하는구나.” 승려들이 이 말을 듣고 또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렸다. 손행자는 절문을 나서며 휘파람을 한 번 길게 불고는 그 즉시 모습이 사라졌다. 훌륭한 대성이 일찍이 서천문 밖에 이르렀는데, 문득 태백금성이 증장천왕과 은, 주, 도, 허 네 분의 대영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손행자가 오는 것을 보고는 모두 황급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성께서는 어디로 가시나이까?” 손행자가 말했다. “당승을 모시고 천축국 동쪽 경계 금평부 민천현에 이르렀사온데, 우리 스승님이 그 고을 자운사 승려들의 청으로 원소절을 구경하러 가셨소. 금등교에 이르러 보니 금등 세 개가 있고, 등불을 밝히는 데 소합향유를 쓰는데 그 값이 흰 은 다섯만 냥이 넘었고, 해마다 여러 부처가 내려와 상서로움을 받으신다 하였소. 막 보고 있는데 과연 불상 세 분이 내려오시니, 우리 스승님께서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하시고 다리 위로 올라가 절을 하셨소.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하였건만, 그놈들이 등불을 어둡게 만드는 바람에 기름과 우리 스승님을 한바람에 함께 거두어 갔소. 나는 그 바람을 따라 뒤쫓아 날이 샐 무렵 한 산에 이르렀는데, 다행히 네 분의 공조가 알려 주어 그 산은 이름이 청룡산이고 산에는 현영동이 있으며 굴에는 세 괴물이 있어 벽한대왕, 벽서대왕, 벽진대왕이라 한다 하였소. 이 늙은 손오공이 급히 문을 찾아가 되찾으려 그놈들과 한바탕 겨루었으나 이기지 못하였소. 내가 변신하여 안으로 들어가 스승님이 묶여 있으나 다치지 않은 것을 보고 곧 풀어 나오려 하였는데, 또 그놈들이 알아차리는 바람에 나는 그만 가 버렸소. 그 뒤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힘겹게 싸웠건만 도로 그놈들에게 그 두 사람까지 붙잡혀 묶이고 말았소. 이 늙은 손오공이 이런 까닭으로 특별히 옥제께 아뢰어 그놈들의 내력을 조사하고 장수를 명하여 항복받고자 하오.” 금성이 껄껄거리며 냉소를 띠고 말했다. “대성께서 요괴와 맞서 싸우셨으니, 어찌 그놈들의 출신을 알아내지 못하셨나이까?” 손행자가 말했다. “알기는 아오, 한 무리의 소 정이오. 다만 그놈들에게 큰 신통력이 있어 급히는 항복받을 수가 없소.” 금성이 말했다. “그것들은 서우 세 마리의 정이니라. 천문의 기상을 타고났거니와 해마다 수행하여 참됨을 이루었으니, 구름을 타고 안개를 밟을 수도 있느니라. 그 괴물은 깨끗한 것을 몹시 사랑하여 늘 제 그림자와 몸을 더럽다 여기고, 늘 물에 내려가 목욕하려 하느니라. 그 명칭도 많도다. 시서가 있고 웅서가 있으며 고서가 있고 반서가 있으며, 또 호모서, 타라서, 통천화문서가 있으니, 모두 구멍이 하나요 털이 세 가닥이며 뿔이 둘이라, 강과 바다 가운데를 다니며 물길을 열 수 있느니라. 저 벽한과 벽서와 벽진이라는 것들은 모두 뿔에 귀한 기운이 있어서, 그걸로 이름을 삼아 대왕이라 일컫는 것이니라. 그놈들을 잡으려거든 사목금성이기만 하면 보는 즉시 항복하리라.” 손행자가 황급히 읍하며 물었다. “그 사목금성이란 누구이오? 장경 어르신께서 하나하나 분명히 일러 주시기를 바라오.” 금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 별은 두우궁 밖에서 천지를 두루 벌여 있느니라. 그대가 옥제께 아뢰어 보시오, 곧 분명히 알게 되리라.” 손행자는 두 손을 모아 읍하고 고마워한 뒤 곧장 천문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통명전 아래에 이르러 먼저 갈, 구, 장, 허 네 분의 대천사를 만났다. 천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오?” 손행자가 말했다. “요즘 금평부 지방에 이르렀사온데, 우리 스승님께서 선의 마음을 너그럽게 풀어 놓으시고 원야에 등불을 구경하시다가 요마에게 붙잡혀 가셨소. 이 늙은 손오공이 항복받지 못하여 특별히 옥제께 아뢰어 구원을 청하러 왔소.” 네 천사가 곧 손행자를 이끌고 영소보전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각각 예를 마치고 그 사정을 자세히 아뢰니, 옥제가 전지하였다. “어느 길의 천병을 뽑아 돕게 할까?” 손행자가 아뢰었다. “이 늙은 손오공이 막 서천문에 이르렀을 때 장경성을 만났사온데, 그 괴물이 서우가 정이 되었으매 오직 사목금성만이 항복받을 수 있다 하였나이다.” 옥제가 곧 허 천사에게 손행자와 함께 두우궁으로 가서 사목금성을 뽑아 하계로 내려가 거두어 항복받게 하라 명하였다. 궁 밖에 이르니 벌써 이십팔수 성신이 나와 맞이하고 있었다. 천사가 말했다. “내가 성지를 받들어 사목금성을 뽑아 손대성과 함께 하계로 내려가 요괴를 항복받게 하라는 분부니라.” 곁에서 각목교와 두목해와 규목랑과 정목간이 홱 나서며 소리쳐 말했다. “손대성이시여, 저희를 뽑아 어디로 가 요괴를 항복받게 하시나이까?”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대들이었구려. 이 장경 늙은이가 도리어 숨겨 두어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했소. 일찍이 이십팔수 가운데 사목이라 하였더라면 이 늙은 손오공이 곧장 와서 청하였을 것을, 또 어찌 성지까지 번거롭게 하였겠소?” 사목이 말했다. “대성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나이까! 저희가 성지를 받들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마음대로 자리를 뜨겠나이까? 정녕 어느 곳이오? 어서 빨리 갑시다.” 손행자가 말했다. “금평부 동북 간방 청룡산 현영동이오, 서우가 정이 되었소.” 두목해와 규목랑과 각목교가 말했다. “과연 서우의 정이라면 저희는 필요 없고 정목간만 가면 되나이다. 저이는 산에 올라가 호랑이를 잡아먹고 바다에 내려가 서우를 사로잡을 수 있사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그 서우는 달을 바라본다는 서우와는 달라서 수행하여 도를 얻어 모두 천 년의 수명을 지닌 놈들이오. 네 분이 함께 가셔야 좋겠소, 절대로 사양하지 마시구려. 만약 한 분이 그놈들을 잡아두지 못한다면 또 일이 번거로워지지 않겠소?” 천사가 말했다. “너희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성지가 너희 넷에게 내렸거늘 어찌 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서 빨리 날아가거라, 나는 회지하러 가겠노라.” 그 천사는 곧 손행자에게 작별하고 가 버렸다. 사목이 말했다. “대성께서는 더 망설이지 마시옵고 먼저 가서 싸움을 걸어 그놈들을 끌어내시옵소서, 저희가 뒤따라 손을 쓰겠나이다.” 손행자가 곧 앞으로 다가서며 욕하여 말했다. “기름 훔쳐 먹는 도적 괴물아! 내 스승님을 내놓아라!” 원래 그 문은 저팔계가 부수어 버렸기에 작은 요괴 몇 놈이 널빤지 몇 조각을 가져다 막아 두고 있었는데, 안에서 욕하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손오공이란 중놈이 밖에서 욕하고 있사옵니다!” 벽진이가 말했다. “그놈이 싸움에 져서 갔거늘 이 하루 만에 어찌 또 왔느냐? 필시 어디선가 구원병을 좀 데려온 모양이로다.” 벽한과 벽서가 말했다. “구원병이 무섭단 말이냐! 어서 갑옷을 가져오너라! 얘들아, 모두 마음을 다해 에워싸고 그놈을 놓치지 말아라!” 그 무리의 요정들은 죽고 사는 줄도 모르고 하나하나 창과 칼을 들고 깃발을 흔들며 북을 두드려 굴 밖으로 걸어 나와 손행자를 향해 호통쳤다. “이 매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원숭새끼야, 네가 또 왔구나!” 손행자가 가장 화를 내는 것은 바로 이 원숭이란 두 글자였다. 이를 악물고 성을 내며 쇠몽둥이를 들어 곧장 내리쳤다. 세 요왕은 작은 요괴들을 부려 동그란 원진을 치며 달려 손행자를 한가운데 에워쌌다. 그때 저쪽에서 사목금성이 하나하나 병기를 휘두르며 말했다. “악축아! 손을 멈추어라!” 그 세 요왕은 그 네 별을 보고 저절로 겁을 먹으며 모두 말했다. “큰일 났다! 큰일 났다! 저놈이 항복받을 자를 데려왔구나! 얘들아, 제각기 목숨이나 건져 달아나라!” 그러자 콧바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 헐떡이는 소리가 들리며 작은 요괴들이 모두 본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원래 그 산소 정과 물소 정과 누런 소 정이었다. 그들은 온 산을 어지러이 내달았다. 그 세 요왕도 본모습을 드러내고는 네 발을 내려놓았는데 마치 쇠로 부은 포처럼 동북쪽을 향해 곧장 달아났다. 이 대성이 정목간과 각목교를 거느리고 바짝 뒤쫓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오직 두목해와 규목랑만이 동쪽 산속 오목한 곳과 산마루와 산골 물가와 골짜기 안에서 소 정들을 쳐죽이거나 산 채로 잡아 모조리 거두어들이고는, 현영동으로 가서 당승과 저팔계와 사오정을 풀어 주었다. 사오정은 그들이 두 별임을 알아보고 함께 절하며 고마워하고서 물었다. “두 분께서는 어찌 이곳에 오시어 저희를 구하셨나이까?” 두 별이 말했다. “우리는 손대성이 옥제께 아뢰어 성지를 청하여 요괴를 거두고 너희를 구하러 온 것이니라.” 당승이 또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내 제자 오공은 어찌 들어오지 않느냐?” 두 별이 말했다. “그 세 늙은 괴물은 서우 세 마리니라. 그놈들이 우리를 보자 저마다 목숨을 건져 동북 간방으로 달아났느니라. 손대성이 정목간과 각목교를 거느리고 뒤쫓아 갔노라. 우리 두 별은 소 떼를 쓸어 버리고 이곳에 이르러 특별히 성승을 풀어 드리러 온 것이니라.” 당승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고마워하고 하늘을 향해 또 절을 올리니, 저팔계가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스승님, 예가 지나치면 도리어 꾸밈이 되나이다. 자꾸 절만 하시지 마시옵소서. 네 분의 성관께서 오신 것은 하나는 옥제의 성지요, 둘은 사형의 인정이옵니다. 이제 요괴 떼를 쓸어 버렸사오나 늙은 요괴를 어찌 항복받을지는 아직 알 수 없으니, 우리가 먼저 값진 것을 좀 챙겨 내어 이 굴을 뒤집어 뿌리를 끊고, 절로 돌아가 사형을 기다립시다.” 규목랑이 말했다. “천봉원수께서 옳은 말씀을 하셨도다. 그대는 권렴대장과 함께 스승님을 모시고 절로 돌아가 편히 쉬시고, 우리가 도로 간방으로 가 맞서 싸우겠노라.” 저팔계가 말했다. “옳소, 옳소, 두 분께서 도로 힘을 합해 한번 잡으시되, 모조리 쓸어 버리셔야 성지를 회지하기에 좋을 것이오.” 두 성관이 그 즉시 뒤쫓아 나섰다. 저팔계와 사오정은 그 굴 안의 값진 보물을 챙겼는데, 산호와 마노와 진주와 호박과 큰 조개와 보배와 아름다운 옥과 좋은 금이 많아 한 섬이나 되는 것을 찾아내어 밖으로 옮겨 두고, 스승님을 산벼랑 위에 앉혀 드린 뒤 또 들어가 불을 질러 굴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고서야 당승을 모시고 길을 찾아 금평 자운사로 돌아갔다. 바로 이러하였다. 경에 이르기를 태극이 극에 이르면 도리어 막힘이 생긴다 하였나니, 좋은 자리에서 흉을 만남이 실로 있는 법이로다. 등불 구경을 즐기니 선의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아름다운 경치를 기뻐하여 노니니 도의 마음이 흐려지는구나. 큰 단은 예로부터 오래 지켜야 하거늘, 한 번 잃고 나면 끝내 모자라게 되느니라. 굳게 닫고 단단히 매어 두어 방탕을 쉬어라, 잠깐이라도 게으르면 어긋남이 드러나느니라. 각설하고 그 세 사람이 목숨을 건져 절로 돌아간 일은 잠시 접어 두고, 두목해와 규목랑 두 성관이 구름을 타고 동북 간방을 향해 곧장 요괴를 쫓아간 사연을 들려주겠다. 두 사람이 반공중에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서양 대해까지 이르렀는데, 멀리 바다 위에서 손대성이 소리치는 것이 보였다. 그 두 사람이 구름머리를 내리며 말했다. “대성이시여, 요괴들이 어디로 갔소?” 손행자가 원망하며 말했다. “그대 둘은 어찌 뒤쫓아 항복받으러 오지 않았소? 이제 와서 황망히 무엇을 묻는단 말이오?” 두목해가 말했다. “우리가 보기에 대성께서 정목간과 각목교 두 별과 함께 요마를 싸움에서 이기고 뒤쫓으시니 필시 사로잡으시리라 여겼소. 우리는 그만 요정 떼를 쓸어 버리고 현영동에 들어가 스승님과 사제를 구해 내었소. 산을 뒤지고 굴을 불사른 뒤 스승님을 그대의 두 아우에게 부탁하여 부성 자운사로 모셔 가게 하였소. 그런데 오래도록 행차가 돌아오지 않기에 또 이리로 찾아온 것이오.” 손행자가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기뻐하며 고마워하고 말했다. “그랬다면 공이 있소, 수고 많았소! 수고 많았소! 다만 그 세 요마는 나에게 이곳까지 쫓기다가 바닷속으로 파고들어 갔소. 정목간과 각목교 두 별이 바짝 뒤쫓고 있고 이 늙은 손오공에게는 물가를 지키라 하였소. 그대 둘이 왔으니 물가를 막아 서 있으시오, 이 늙은 손오공도 다시 가 보겠소.” 훌륭한 대성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결을 쥐어 물길을 헤치며 곧장 물결 깊은 속으로 들어가니, 보라 그 세 요마가 물 밑에서 정목간과 각목교와 죽고 사는 것을 잊고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뛰어들며 외쳤다. “이 늙은 손오공이 왔노라!” 그 요정들은 두 성관을 막아내느라 손을 쓸 겨를이 없는 위급한 처지에서 문득 손행자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남은 목숨이나 건지려고 머리를 돌려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내달았다. 원래 이 괴물의 머리 위 뿔은 물을 가르는 힘이 뛰어나, 콸콸콸 소리를 내며 밝은 물길을 열어 젖혔다. 뒤에서는 두 성관과 손대성이 힘을 합해 그놈들을 뒤쫓았다. 각설하고 서해에는 바다를 엿보는 야차와 바다를 순찰하는 개사가 있었다. 그들이 멀리서 서우가 물길을 가르는 것을 보고 또 손대성과 두 천성을 알아보고는 곧 수정궁으로 달려가 용왕에게 황황히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서우 세 마리가 제천대성과 두 분의 천성에게 쫓겨 오고 있사옵니다!” 늙은 용왕 오순이 이 말을 듣고 곧 태자 마앙을 불렀다. “어서 수병을 뽑아라. 필시 서우 정 벽한과 벽서와 벽진 세 놈이 손행자를 건드린 모양이다. 이제 바다에 이르렀으니 어서 빨리 칼을 뽑아 도와라.” 오마앙이 명을 받들어 급히 병사를 뽑았다. 잠깐 사이에 거북과 자라와 큰 자라와 악어, 붕어와 잉어, 새우 병사와 게 졸개들이 저마다 창과 칼을 들고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수정궁 밖으로 뛰어나와 서우 정을 막아섰다. 서우 정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급히 뒤로 물러나려 하였으나, 또 정목간과 각목교 두 별과 대성이 가로막는 바람에 놀라 무리를 잃고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 바람에 벽진이는 늙은 용왕이 이끄는 병사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손대성이 이를 보고 마음이 즐거워 외쳤다. “천천히! 천천히! 산 놈을 잡으시오, 죽은 놈은 필요 없소.” 마앙이 명을 듣고 일제히 앞으로 달려들어 벽진이를 땅에다 짓누르고 쇠갈고리로 코를 꿰어 발을 모아 묶어 넘어뜨렸다. 늙은 용왕이 또 호령을 내려 병사를 나누어 남은 두 놈을 쫓아 두 성관을 도와 사로잡게 하였다. 그 즉시 어린 용왕이 무리를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가니, 보라 정목간이 본모습으로 돌아와 벽한이를 짓누르고는 크게 작게 뜯어 먹고 있었다. 마앙이 크게 외쳤다. “정목간! 정목간! 물어 죽이지 마시오, 손대성께서 산 놈을 원하시고 죽은 놈은 원하지 않으신다오.” 몇 번을 거듭 외쳤으나 그새 그놈이 목을 물어 끊어 버린 뒤였다. 마앙이 새우 병사와 게 졸개들에게 명하여 죽은 서우를 수정궁으로 메어 가게 하고는, 또 정목간과 함께 앞으로 달려갔다. 보니 각목교가 벽서이를 몰아 되돌려 보내는데 그만 정목간에게 정면으로 부딪쳤다. 마앙이 거북과 자라와 큰 자라와 악어를 거느리고 키처럼 펼친 진을 벌여 에워싸니, 그 괴물은 다만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하고 외칠 뿐이었다. 정목간이 가까이 다가서며 단번에 귀를 움켜쥐고 그의 칼을 빼앗으며 소리쳤다. “죽이지 않으리라! 죽이지 않으리라! 손대성에게 끌고 가 처리하게 하리라.” 그 즉시 무기를 거두고 도로 수정궁 밖으로 나와 아뢰었다. “모두 잡아 왔노라.” 손행자가 보니 한 놈은 머리가 잘린 채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져 있고, 한 놈은 정목간에게 귀를 끌린 채 밀려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고 말했다. “이 머리는 병기로 다친 것이 아니로구나.” 마앙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급히 외치지 않았더라면 몸까지 정목간 성관에게 잡혀 먹혔을 것이오.” 손행자가 말했다. “그리되었다면 하는 수 없지, 톱을 가져오너라. 이놈의 두 뿔을 톱으로 잘라 내고 가죽을 벗겨 가져가자. 서우 고기는 용왕 부자께서 잡수시도록 남겨 두리라.” 또 벽진이의 코를 꿰어 각목교에게 끌게 하고, 벽서이도 코를 꿰어 정목간에게 끌게 하며 말했다. “이놈들을 금평부로 끌고 올라가 그 자사관을 만나 그 연유를 밝히고, 여러 해 동안 부처를 사칭하여 백성을 해친 죄를 물은 뒤에 처결하리라.” 무리들이 그 말을 좇아 용왕 부자에게 작별하고 모두 서해를 나와 서우를 끌고 규목랑과 두목해 두 별과 합류하여 구름과 안개를 타고 금평부로 곧장 돌아왔다. 손행자가 상서로운 빛을 발에 밟고 반공중에서 외쳤다. “금평부 자사와 여러 좌이 낭관과 부성 안팎의 군민과 백성들은 들으시오. 나는 동토 대당에서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파견된 성승이오. 네 고을에서 해마다 금등을 공헌하며 여러 부처가 상서로움을 내린다고 속인 것이 바로 이 서우 괴물이었소. 우리가 이곳을 지나다가 원야에 등불을 구경하는데 이 괴물이 등유와 우리 스승님을 거두어 가는 것을 보았고, 내가 천신을 청하여 항복받았소. 이제 산의 굴을 깨끗이 쓸고 요마를 모조리 쓸어 버렸으니 다시는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오. 이후로 네 고을에서는 다시 금등을 공헌하여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허비하지 말라.” 그때 자운사에서 저팔계와 사오정이 막 당승을 모시고 산문에 들어서는데, 손행자가 허공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리자 곧 스승님을 놓아두고 짐을 내려놓은 채 바람과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 요괴를 항복받은 일을 물었다. 손행자가 말했다. “그 한 놈은 정목간 성관에게 물려 죽었는데 이미 뿔을 톱질하고 가죽을 벗겨 가져왔고, 두 놈은 산 채로 여기 잡아 두었소.” 저팔계가 말했다. “이 두 놈을 아예 이 성 아래로 밀어 내려 관원과 백성들에게 좀 보이게 합시다. 그래야 우리가 성인인지 신인지 알아보지 않겠소. 아무튼 네 분 성관의 수고를 끼쳐 구름을 거두고 땅으로 내려가 함께 부청으로 가서 이 괴물들을 처결합시다.” “이미 정황이 참되고 죄가 마땅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오!” 네 별이 말했다. “천봉원수께서 요즘 이치와 법률을 아시게 되었으니 참으로 좋구려!” 저팔계가 말했다. “이 몇 해 동안 중이 되어 살았더니 대강 조금은 배웠소.” 여러 신이 과연 서우를 밀어 내리고 한 무리의 채운을 타고 부청 위로 내려왔다. 놀란 그 부현의 관원과 성 안팎의 백성들이 집집마다 향안을 차리고 호호마다 천신을 배례하였다. 잠시 뒤 자운사 승려들이 장로를 가마에 태워 부문으로 모셔 들어왔는데, 손행자를 만나자 입에서 “고맙다”는 말을 놓지 않으며 말했다. “상숙하시는 성관들께서 저희를 구해 주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사옵니다. 어진 제자가 보이지 않아 늘 마음을 졸였사온데, 이제 다행히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셨구려! 그러나 이 괴물을 어느 방향으로 쫓아가야 붙잡을 수 있었나이까?” 손행자가 말했다. “그저께 존사를 하직한 뒤 이 늙은 손오공이 하늘에 올라가 조사하니 태백금성께서 요마가 서우임을 알아보시고 사목금성을 청하라 일러 주셨소. 그 즉시 옥제께 아뢰어 성지를 받들어 굴 어귀까지 가서 싸웠소. 요왕이 달아나자 또 두목해와 규목랑 두 성의 도움으로 존사를 구해 내었소. 이 늙은 손오공이 정목간과 각목교 두 성과 힘을 합해 요괴를 뒤쫓아 서양 대해까지 곧장 달렸고, 또 용왕께서 아들을 보내 병사를 거느리고 돕게 하신 덕분에 붙잡아 이곳까지 와서 심문하게 되었소.” 장로가 칭찬하고 고마워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또 그 부현의 정관과 좌이 수령들이 모두 그곳에서 보촉을 높이 밝히고 향로에 향을 가득 피워 놓고 위를 향해 배례하고 있었다. 잠시 뒤 저팔계가 성미를 부리며 계도를 빼어 벽진이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 내리고, 또 한 칼로 벽서이의 머리도 베어 내리고는 곧 톱을 가져다 뿔 네 개를 톱질해 내었다. 손대성이 더욱 주장을 내어 일렀다. “네 분 성관께서 이 서우 뿔 네 개를 상계로 가져가 옥제께 진공하고 성지를 회지하시오.” 그리고 자기가 가져온 두 개는 “하나는 부청의 창고에 두어 뒤로 등유를 면제받는 증표로 삼고, 하나는 우리가 가져가 영산의 부조께 드리겠소.” 네 별이 마음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그 즉시 대성에게 작별하고 홀연 채운을 타고 회지하러 가 버렸다. 부현의 관원들이 사부 사제 네 사람을 붙잡아 두고 채식 연회를 크게 베풀어 향관을 두루 청해 모셨다. 한편으로는 고시를 내어 군민과 백성들에게 알리기를, 이듬해부터는 금등을 설치하여 밝히지 못하게 하고 기름을 사들이는 큰 집들의 역을 영원히 면제한다 하였으며, 한편으로는 백정에게 서우의 가죽을 벗겨 무두질하고 훈제하여 말려 갑옷을 만들게 하고 고기를 두루 관원과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벌금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전량을 지출하여 민간의 빈 땅을 사서 네 별이 요괴를 항복받은 사묘를 지었고, 또 당승 사부 사제를 위하여 생사를 세우고 저마다 비석을 세워 글을 새겨 천고에 전하여 보답으로 삼았다. 사부 사제는 아예 마음을 넓게 먹고 그 대접을 받았으며, 또 그 이백사십 집의 등유를 대는 큰 집들이 이 집에서 대접하고 저 집에서 청하여 조금도 빈 틈이 없었다. 저팔계는 마음껏 만족하며 잘 먹고 마셨고, 굴에서 찾아낸 보물은 종류마다 조금씩 걷어 소매에 넣어 각 집의 재연에 대한 답례품으로 삼았다. 한 달 넘도록 머물러도 좀처럼 떠날 수가 없자 장로가 분부했다. “오공아, 남은 보물을 모두 자운사 승려들에게 보내어 답례품으로 삼아라. 그 큰 집 사람들께는 숨기고 날이 밝기 전에 떠나자. 자꾸만 즐거움에 탐닉하여 경을 구하는 일을 그르치고 부조의 죄를 불러 또 재액을 낳게 될까 염려되니 몹시 불편하구나.” 손행자가 그 즉시 앞의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였다. 이튿날 오경에 일찍 일어나 저팔계를 불러 말에 안장을 얹게 하였다. 그 바보는 편한 술과 밥을 먹고 잠이 덜 깬 채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이렇게 일찍 말에 안장을 얹는 것은 어찌된 일이오?” 손행자가 호통쳤다. “스승님께서 길을 떠나라 하시느니라!” 바보가 얼굴을 쓱쓱 문지르며 말했다. “또 이 장로가 버릇이 없다! 이백사십 집의 큰 집이 모두 청하는데 겨우 서른 몇 끼의 배부른 공양을 먹었을 뿐인데 어찌 또 이 늙은 돼지를 굶기려 하느냐!” 장로가 이 말을 듣고 꾸짖었다. “먹보 멍청이야! 헛소리 말고 어서 일어나거라! 다시 말대꾸를 하거든 오공에게 금고봉을 가져다 이빨을 치라 하겠다!” 그 바보는 때린다는 말을 듣고 손발이 허둥지둥하며 말했다. “스승님이 이번에는 변하셨구려. 늘 저를 아끼고 사랑하시고 제가 어리석고 둔하다 여겨 감싸 주시며 형이 때리려 할 때에도 도로 말리시더니, 오늘은 어찌 성을 내어 도로 때리라 하시느니이까?”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네가 입 때문에 길을 그르치는 것을 꾸짖으시는 것이니, 어서 행리를 수습하고 말에 안장을 얹어라, 매를 면하려면!” 그 바보는 정말로 매 맞기가 두려워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는 사오정을 불렀다. “어서 일어나라! 매를 맞게 되었다!” 사오정도 따라 벌떡 일어나 저마다 수습을 모두 마쳤다. 장로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조용히 조용히 하여라, 절의 승려들을 깨우지 말고.” 급히 말에 올라 산문을 열고 길을 찾아 떠났다. 이렇게 떠나니 바로 이러하였다. 은밀히 옥 우리를 열어 채색 봉황을 날려 보내고, 몰래 금 자물쇠를 열어 교룡을 놓아 주는구나. 필경 날이 밝을 때 보답하려는 집들의 사정이 어떠할지는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3회 급고원문고담인(給孤園問古談因) · 천축국조왕우우(天竺國朝王遇偶) 생각을 한 번 일으키면 단연히 애착이 생기고, 정을 남겨 두면 반드시 재앙이 일어난다. 영명한 마음이 무슨 일로 삼태를 분별하리오. 수행이 원만해지면 절로 원해로 돌아간다. 신선이 되든 부처가 되든, 모름지기 이 가운데서 안배해야 한다. 청청하고 깨끗하여 티끌을 끊어 내면, 과위가 바로잡혀 상계로 날아 오른다. 각설하고, 그 절의 승려들은 날이 밝자 삼장 사부가 보이지 않으니 모두들 말했다. “모셔 두지도 못했고, 작별 인사도 못 했고, 청을 드리지도 못했는데, 살아 계신 보살님을 맑고 맑게 그만 놓아 보내고 말았구나!” 바로 그때 남쪽 관문 마을의 큰 집 몇 곳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승려들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어젯밤에는 미리 막지 못했더니, 오늘 밤에는 모두 구름을 타고 가 버렸구나.” 사람들이 다 함께 허공을 우러러 절하며 감사를 드렸다. 이 말이 한 번 퍼지자 도성 안의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알게 되었고, 그 큰 집들에 오성과 꽃과 과일을 모두 갖추어 생사에 제사를 올리고 은혜에 보답하게 하였으나, 그 이야기는 여기서 더 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당승 사부는 바람을 마시며 물가에서 자고, 길은 줄곧 평안하여 반 달이 넘도록 갔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높은 산이 보이니, 당승이 또 겁을 내며 말했다. “제자들아, 저 앞 산등성이가 험하고 가파르니 모름지기 조심해야 한다!”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쪽 길은 부처님 땅에 가까워졌사오니, 결코 무슨 요사한 것이야 없나이다. 스승이시여, 마음을 놓으시고 염려하지 마옵소서.” 당승이 말했다. “제자야, 부처님 땅이 멀지 않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앞서 그 절의 승려가 천축국 도성 아래까지 이천 리라고 말했으니, 아직 얼마나 길이 남았는지 알 길이 없구나.”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그대는 또 오소선사의 《심경》을 잊으셨나이까?” 당삼장이 말했다. “《반야심경》은 내 몸에 지닌 의발이다. 오소선사에게 배운 뒤로 어느 날인들 외우지 않았으며, 어느 때인들 잊을 수 있었겠느냐. 거꾸로라도 외울 수 있는데, 어찌 잊었겠느냐!”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다만 외우실 뿐이지, 그 스승님께 풀이를 구하지는 않으셨나이다.” 당삼장이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 어찌 또 내가 풀이하지 못했다고 하느냐! 네가 풀이하느냐?” 손행자가 말했다. “소승이 풀이하나이다, 소승이 풀이하나이다.” 이리하여 당삼장과 손행자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곁에서는 저팔계 하나가 웃다가 넘어지고, 사오정 하나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저 꼴 좀 보아라! 나와 꼭같이 요정 출신이면서, 또 어디 선화자인가, 강경을 들었다고 하고, 어디 응불승인가, 설법을 본 적이 있다고? 허풍을 떨며 격식을 차려, 무엇을 안다느니 풀이한다느니 하고서 어찌 입을 다무느냐! 강론을 들려거든 풀이해 보라고!”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 형도 그 말을 믿소? 큰형님은 말을 길게 늘어놓아 스승님을 꾀어 걷게 하는 것뿐이라오. 그이는 몽둥이나 휘두를 줄 알지, 어디 강경을 안다고 하겠소!” 당삼장이 말했다. “오능, 오정아, 함부로 떠들지 말아라. 오공이 풀이한 것은 말과 문자가 없는 것, 곧 참된 풀이니라.” 그 사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줄곧 많은 길을 걸어 몇 개의 산등성이를 지나갔는데, 길가에 어느덧 큰 절 하나가 보였다. 당승이 말했다. “오공아, 앞에 절이 있구나. 저 절을 보아라, 크지도 작지도 않으나 유리 기와로 푸르고, 반쯤 새것 반쯤 헌것이나 붉은 담장이 여덟 팔 자로 벌어져 있구나. 은은히 푸른 소나무가 덮어 쓰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것이 몇천 몇백 년 전의 옛 물건이 오늘에 이른 것인지 알 수 없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거문고 줄을 울리는 듯하나, 또한 어느 왕조 어느 때에 산을 열어 남겨 둔 것인지 알 길이 없구나. 산문 위에는 포금선사라고 크게 쓰여 있고, 걸어 둔 편액에는 상고의 유적이라 적혀 있구나.” 손행자가 보니 과연 포금선사였고, 저팔계도 포금선사라고 말했는데, 당삼장은 말 위에서 깊이 생각하며 말했다. “포금, 포금, 이것이 사위국 경계가 아니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이상하옵니다! 제가 스승님을 몇 해 모셨으나 일찍이 길을 알아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길도 알아보시는군요.” 당삼장이 말했다. “아니다, 내가 늘 경전을 보고 외우며 읽었는데,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고 하였다. 이 동산은 급고독장자가 태자에게 청하여 산 것이라 하고, 부처님을 모셔다 강경하게 하였다 한다. 태자가 말하기를 ‘내 이 동산은 팔지 않는다. 그가 내 것을 사려거든, 동산 땅에 황금이 가득 깔리지 않는 한 안 된다.’ 하였는데, 급고독장자가 그 말을 듣고는 곧 황금으로 벽돌을 만들어 동산 땅에 가득 깔아서야 태자의 기원을 살 수 있었고, 세존을 모셔 설법하게 할 수 있었다 한다. 내 생각에 이 포금선사가 바로 그 이야기가 아니겠느냐?”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재수 좋은 일이옵니다! 만약 바로 그 이야기라면, 우리도 가서 벽돌이나 몇 장 만져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지요.” 모두 한참을 또 웃고 나서야 당삼장은 말에서 내렸다. 산문에 들어서니 산문 아래에는 짐을 진 이, 보따리를 멘 이, 수레를 미는 이가 온통 수레를 타고 앉아 있었으며, 자는 이는 자러 가고 이야기하는 이는 이야기하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부 네 사람을 보니 잘난 이는 더없이 잘났고 못난 이는 더없이 못났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좀 두려워하며 길을 비켜 주었다. 당삼장은 일을 끼칠까 두려워 입으로 쉬지 않고 “점잖게! 점잖게!” 하고 외쳤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사람들도 수습이 되었다. 금강전 뒤로 돌아가니 벌써 선승 하나가 걸어 나오는데, 위의가 범상하지 않았다. 참으로 이러하였다. 얼굴은 보름달 빛과 같고, 몸은 보리수와 같구나. 석장을 쥐고 소매는 바람에 날리며, 짚신으로 돌길을 걷는구나. 당삼장이 보고 인사를 올렸다. 그 승려가 급히 답례하며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오셨나이까?” 당삼장이 말했다. “제자 진현장은 동토 대당 황제의 명을 받들어 서천으로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길이옵니다. 보방을 지나다가 무례하게 문안을 드리오니, 하룻밤 묵어 가기를 청하옵니다. 내일 곧 떠나겠나이다.” 그 승려가 말했다. “황산은 시방상주라 모두들 마음대로 참배하실 수 있사옵니다. 하물며 장로님은 동토의 신승이시니, 모셔 공양만 할 수 있다면 더없이 다행이옵니다.” 당삼장이 고맙다고 하고, 곧 그 세 사람을 불러 함께 가게 하여 회랑과 향적을 지나 방장으로 곧장 들어갔다. 서로 인사를 마치고 주빈 자리를 나누어 앉으니, 손행자 세 사람도 두 손을 모으고 앉았다. 이야기하자면 이때 절 안에서는 동토 대당에서 경을 구하러 온 승려가 왔다는 말을 듣고, 절 안의 크고 작은 이들이 상주든, 잠시 머무는 이든, 장로든, 어린 행자든 하나하나 모두 찾아와 인사를 올렸다. 차를 마시고 나자 재공이 차려졌다. 이때 장로가 아직 개재를 하며 게송을 외우고 있는데, 저팔계는 벌써 조바심이 나서 만두와 소식과 분탕을 한꺼번에 휘저어 들이켰다. 이때 방장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아는 이들은 당삼장의 위의를 칭찬하고, 재미를 보려는 이들은 모두 저팔계가 밥 먹는 것을 구경했다. 그런데 사오정은 눈치가 빨라 속사정을 알아보고는 몰래 저팔계를 한 번 꼬집으며 말했다. “점잖게!” 저팔계가 당황하여 다급히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점잖게, 점잖게! 뱃속이 텅 비었단 말이오!”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 형은 모르는구려. 천하의 점잖은 이가 얼마나 많은데, 뱃속을 논하자면 바로 우리와 꼭같다오.” 저팔계가 그제야 그만두었다. 당삼장이 결재를 외우자 좌우에서 자리를 치웠고, 당삼장이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절의 승려가 동토에서 온 연유를 묻자, 당삼장이 고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포금선사라는 이름의 유래를 물었다. 그 승려가 대답하여 말했다. “이 절은 본래 사위국 급고독원사이며, 또 기원이라고도 하옵니다. 급고독장자가 부처님을 모셔 강경하게 하려고 금벽돌로 땅에 깔았으므로, 또 오늘날의 이름으로 바뀌었사옵니다. 내 절에서 바라보아 앞쪽이 바로 사위국이옵니다. 그때 급고독장자가 바로 사위국에 살고 계셨사옵니다. 내 황산은 본래 장자의 기원이었으므로, 그리하여 급고포금사라 이름하게 되었사옵니다. 절 뒤편에는 아직 기원의 터가 남아 있사옵니다. 요즘에도 때때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 금은과 구슬이 씻겨 나오는데, 복 있는 이는 늘 줍기도 하옵니다.” 당삼장이 말했다. “소문이 헛되지 않으니 과연 참이로구나!” 또 물었다. “막 보산에 들어서니 문 아래 양쪽 회랑에 노새와 말, 수레와 짐을 끌고 다니는 행상이 많던데, 어찌하여 여기서 쉬어 가옵니까?” 승려들이 말했다. “내 산은 백각산이라 하옵니다. “옛날에는 매우 태평하였사옵니다. 요즘은 천기가 순환하는 탓인지 어찌 된 일인지 지네 정기가 몇 마리 생겨, 늘 길 아래에서 사람을 해치옵니다. 목숨을 앗아가지는 않사오나, 실로 사람들이 감히 지나가지 못하옵니다. 산 아래에 관문이 하나 있는데 계명관이라 하옵니다. 닭이 울 때에야 비로소 감히 지나갈 수 있사옵니다. 그 행상들이 늦게 닿은 터라 불편할까 염려되어, 잠시 황산에서 하룻밤을 빌려 자고 닭이 울면 곧 떠나는 것이옵니다.” 당삼장이 말했다. “우리도 닭이 울기를 기다렸다가 가기로 하자.” 사부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또 재가 올라와 당승 등과 함께 먹고 나니, 이때 상현달이 환하였다. 당삼장과 손행자가 달빛을 밟으며 한가로이 거니는데, 도인 하나가 와서 아뢰었다. “우리 노사야께서 중화에서 온 인물을 뵙고자 하십니다.” 당삼장이 급히 몸을 돌리니, 늙은 승려 하나가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앞으로 나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이분이 바로 중화에서 오신 스승님이시옵니까?” 당삼장이 답례하며 말했다. “감당치 못할 말씀이옵니다.” 늙은 승려가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이윽고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연세가 얼마나 되시옵니까?” 당삼장이 말했다. “헛되이 사십오 년을 보냈사옵니다. 감히 묻사오니, 노원주께서는 연세가 얼마나 되시옵니까?” 늙은 승려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보다 어리석게 육십 년을 더 살았사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금년이면 백다섯 살이시로구나. 내가 몇 살로 보이옵니까?” 늙은 승려가 말했다. “스승님의 얼굴은 예스럽고 정신은 맑으신 데다, 달 밝은 밤에 눈이 침침하여 급히 보아서는 알 수가 없사옵니다.” 한참을 이야기한 뒤 또 뒤쪽 회랑을 둘러보았다. 당삼장이 말했다. “아까 급고원 터가 있다 하였는데, 과연 어디에 있사옵니까?” 늙은 승려가 말했다. “뒷문 밖이 바로 그곳이옵니다.” 재촉하여 문을 열게 하니, 빈 터 하나가 보이고, 깨진 돌로 쌓아 올린 담장 기초가 얼마간 남아 있었다. 당삼장이 두 손을 모으고 탄식하여 말했다. “옛날 단나 수달다를 생각하니, 일찍이 금과 보물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구제하였도다. 기원은 천고에 이름을 남겨 있는데, 장자는 어느 곳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고?” 그들은 달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 뒷문 밖 가까이 이르러, 대 위에 올라가 또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삼장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성스레 귀를 기울이니, 우는 소리는 부모를 알지 못하는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마음이 아파 가슴이 저리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돌아서서 승려들에게 물었다. “어느 사람이 어디서 슬피 우옵니까?” 늙은 승려가 묻는 말을 듣고는 곧 승려들에게 먼저 돌아가 차를 달이라고 명하고,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당승과 손행자에게 절을 올렸다. 당삼장이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노원주여, 어찌하여 이런 예를 행하시옵니까?” 늙은 승려가 말했다. “제자가 나이 백여 년을 살아 인사를 조금은 아옵니다. 선정에 잠길 때마다 일찍이 몇 차례 형상을 본 적이 있사옵니다. 노야 사부의 일은 제자가 조금은 아옵니다. 남들과는 다르옵니다. 슬피 우는 일을 말하자면, 이 스승님이 아니고서는 밝히 분별하지 못하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무슨 일인지 먼저 말해 보시오.” 늙은 승려가 말했다. “지난해 오늘, 제자가 바야흐로 성월을 밝히고 있을 적에, 갑자기 바람 소리가 한바탕 들리더니 비원의 소리가 들려왔사옵니다. 제자가 자리에서 내려와 기원 터에 올라가 보니, 아름답고 단정한 여자 하나가 있었사옵니다. 내가 그에게 물었사옵니다. ‘너는 어느 집 여자인데, 어찌하여 이곳에 이르렀느냐?’ 그 여자가 말했사옵니다. ‘저는 천축국 왕의 공주이옵니다. 달빛 아래서 꽃을 구경하다가 바람에 불려 왔사옵니다.’ 나는 그를 헐고 빈 방 하나에 가두고, 그 방을 감방 모양으로 쌓아 올렸사옵니다. 문에는 작은 구멍 하나만 남겨 겨우 사발 하나 드나들게 하였사옵니다. 그날 승려들에게 전하기를 요사한 것이라 하여 내가 결박하였사오나, 내 승가는 자비로운 이들이라 그의 목숨을 해치려 하지 않았사옵니다. 날마다 그에게 거친 차와 거친 밥 두 끼를 주어 먹고 목숨을 이어 가게 하였사옵니다. 그 여자도 영리하여 곧 내 뜻을 알아차리고, 승려들에게 더럽힘당할까 두려워하여 미친 척 괴상한 짓을 하며 오줌 속에서 자고 똥 속에서 누웠사옵니다. 낮에는 헛소리를 하며 멍멍히 있고, 밤이 고요해지면 부모를 생각하며 우옵니다. 내가 몇 번이나 성 안에 들어가 동냥하며 공주 일을 알아보았으나, 전혀 소식이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굳게 자물쇠를 채워 두고 더는 내보내지 않았사옵니다. 이제 다행히 스승님께서 나라에 오셨으니, 부디 나라에 이르러 법력을 널리 베푸시어 밝히고 또 밝혀 주옵소서. 하나는 착한 이를 구제하심이요, 둘은 신통을 드러내심이옵니다.” 당삼장과 손행자가 듣고 나서 절실히 마음에 새겼다.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린 승려 둘이 차를 마시고 자리에 들기를 청하므로, 드디어 돌아갔다. 저팔계와 사오정은 방장 안에서 투덜투덜거리며 말했다. “내일은 닭이 울 때 길을 떠나야 하는데, 이제 와서도 자러 오지 않는구나!” 손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한 녀석이 또 무슨 소리를 하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잠이나 자자. 이토록 밤이 깊었는데 무슨 볼거리를 본단 말이오.” 이리하여 늙은 승려는 물러가고, 당승은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그때 이러하였다. 사람은 고요하고 달은 지고 꽃의 꿈은 은은한데, 따뜻한 바람이 벽의 비단 휘장을 살며시 스며드누나. 동호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져 세 번 솟음을 보이고, 은하는 환하여 구화를 비추는구나. 이날 밤 잠이 아직 깊지 않은데 곧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앞쪽의 행상들이 와글와글 모두 일어나 등불을 켜고 밥을 지었다. 이 장로도 저팔계와 사오정을 깨워 말에 안장을 얹고 짐을 챙기게 하였으며, 손행자는 등불을 켜라고 말했다. 그 절의 승려들은 벌써 먼저 일어나 차와 탕과 다과를 마련하여 뒤에서 공손히 기다리고 있었다. 저팔계가 기뻐하며 만두 한 접시를 먹고, 행장과 말을 끌어냈다. 당삼장과 손행자가 여러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올리니, 늙은 승려가 또 손행자에게 말했다. “그 슬픈 일은 마음에 두고 또 두시오!”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삼가 받들겠소, 삼가 받들겠소! 내 성 안에 이르면 절로 소리를 듣고 이치를 살피며, 얼굴을 보고 빛깔을 분별하겠소.” 그 행상 무리도 떠들썩하게 함께 큰길로 올라섰는데, 인시가 될 무렵에 계명관을 지났다. 사시에 이르러서야 성벽이 보였으니, 참으로 철옹 금성이요 신주의 천부였다. 그 성은 이러하였다. 범이 웅크리고 용이 서린 형세가 높고, 봉황루와 기린각에 채광이 흔들리는구나. 어구의 흐르는 물은 띠를 두른 듯하고, 복된 땅은 산을 따라 깃발을 꽂았구나. 새벽 해에 기치가 천자의 길을 밝히고, 봄바람에 피리와 북이 시내 다리에 가득하구나. 왕에게 도가 있으니 의관이 빼어나고,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 준걸이 드러나는구나. 이날 동시가에 들어서니 행상들은 저마다 여관으로 흩어졌다. 그 사부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 걷고 있는데, 회동관역이 하나 있어 당삼장 등이 곧장 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 역 안의 일을 맡은 이가 곧 역승에게 아뢰었다. “밖에 모양이 다른 승려 네 분이 백마 한 필을 끌고 들어왔사옵니다.” 역승이 말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관가에서 보낸 이임을 알고, 청사로 나와 맞이하였다. 당삼장이 예를 갖추며 말했다. “빈승은 동토 당나라 황제의 칙명으로 영산 대뇌음으로 가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하는 자이옵니다. 몸에 관문을 지니고 있사오니, 입조하여 조험을 받고자 하옵니다. 대인의 높은 관아를 빌려 잠시 쉬었다가, 일이 끝나면 곧 떠나겠나이다.” 역승이 답례하며 말했다. “이 관아는 본래 사신과 나그네를 접대하는 곳이옵니다. 마땅히 후하게 맞이해야 하옵니다. 들어오시오, 들어오시오.” 당삼장이 기뻐하며 제자들을 모두 불러 인사하게 하였다. 그 역승은 그들의 얼굴이 추한 것을 보고 속으로 놀라며,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지 못하여 벌벌 떨면서 차를 올리고 재를 차릴 뿐이었다. 당삼장은 그가 놀라는 것을 보고 말했다. “대인께서는 놀라지 마옵소서. 내 제자 세 사람은 얼굴이 비록 추하오나 마음은 모두 착하옵니다. 속되게 이르기를 산이 험하면 사람은 착하다 하였으니, 무엇을 두려워하시겠나이까!” 역승이 그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국사여, 당나라는 어느 곳에 있사옵니까?” 당삼장이 말했다. “남섬부주의 중화 땅이옵니다.” 또 물었다. “언제 집을 떠나셨사옵니까?” 당삼장이 말했다. “정관 십삼년이옵니다. 이제 이미 십사 년을 지내며 온갖 산천을 고생스레 지나왔사옵니다. 비로소 이곳에 이르렀사옵니다.” 역승이 말했다. “신승이시오! 신승이시오!” 당삼장이 물었다. “상국은 천년이 얼마나 되었사옵니까?” 역승이 말했다. “내 비루한 곳은 대천축국이옵니다. 태조와 태종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미 오백여 년이 되었사옵니다. 지금 왕위에 계신 할아버님께서는 산수와 화초를 사랑하시어, 호를 이종황제라 하시고 개원하여 정연이라 하였사옵니다. 이제 이미 이십팔 년이 되었사옵니다.” 당삼장이 말했다. “오늘 빈승이 가서 알현하고 관문을 바꾸고자 하옵니다. 조회를 만날 수 있겠나이까?” 역승이 말했다. “좋소! 좋소! 바로 좋소! 요즘 왕의 공주마마께서 나이 스무 살 청춘이 되시어, 마침 십자거리에 채루를 높이 매달고 수구를 던져 하늘에 맡긴 혼인으로 부마를 뽑고 계시옵니다. 오늘이 바로 그 떠들썩한 때이옵니다. 생각하건대 우리 왕 할아버님께서 아직 조회를 파하지 않으셨을 터이오니, 관문을 바꾸고자 하시거든 이때를 타서 가시는 것이 좋소.” 당삼장이 기꺼이 가려 하는데, 재가 차려지므로 역승과 손행자 등과 함께 먹었다. 때가 이미 정오를 지났다. 당삼장이 말했다. “이제 가보겠노라.” 손행자가 말했다. “제가 스승님을 모시고 가겠나이다.” 저팔계가 말했다. “제가 가겠나이다.”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 그만두시오. 형의 얼굴이 볼 만한 것도 아니니, 조정 문 밖에 나가 뽐내지 말고 큰형님을 보내는 것이 좋겠소.” 당삼장이 말했다. “오정의 말이 옳구나. 이 멍청이는 거칠고 둔하고, 오공은 자세함이 있느니라.” 그 멍청이는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스승님을 빼고 나면, 우리 세 사람의 얼굴도 비슷하옵니다.” 당삼장은 가사를 걸치고, 손행자는 인경을 들고 함께 갔다. 저잣거리를 보니 사농공상이며 문인 묵객이며 어리석은 필부와 속된 이들이 다 함께 떠들며 말했다. “수구 던지는 것을 보러 가자!” 당삼장이 길가에 서서 손행자에게 말했다. “이곳의 인물과 의관, 궁실과 기물, 말씨와 담소가 나의 대당과도 같구나. 내 생각하건대 내 속가의 어머니도 수구를 던져 옛 인연을 만나 부부가 되었다 하였는데, 이곳에도 또한 이런 풍속이 있구나.” 손행자가 말했다. “우리도 가서 보는 것이 어떠하오니까?” 당삼장이 말했다. “안 된다! 안 된다! 너와 나는 옷차림이 마땅치 않으니 의심을 살까 두렵노라.”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그 급고포금사 늙은 승려의 말을 잊으셨나이까? 하나는 채루를 보러 가는 것이요, 둘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러 가는 것이옵니다. 이토록 바쁜 때에 그 황제는 반드시 공주의 기쁜 소식만 들을 터인데, 어디 조회를 열어 정사를 보시겠나이까? 우선 갔다가 오시지요!” 당삼장이 그 말을 듣고 참으로 손행자와 함께 가니, 온갖 사람들이 모두 거기서 수구 던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 뜻밖에도 이번 길에 어부가 낚싯바늘과 줄을 던져, 이로부터 시비를 낚아 올리게 되었구나. 이야기는 이러하였다. 그 천축국 왕은 산수와 화초를 사랑하여, 재작년에 후비와 공주를 데리고 어화원에서 달 밝은 밤에 완상하다가 요사한 것 하나를 건드렸다. 그 요괴가 참공주를 데려가고는 제가 가짜 공주로 변하였다. 당승이 금년 금월 금일 금시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는, 나라의 부를 빌려 채루를 높이 세우고 당승을 짝으로 삼아 원양의 참된 기운을 취하여 태을상선이 되고자 하였다. 마침 정오 삼각이 되어, 당삼장과 손행자가 사람 무리에 섞여 누각 아래로 가까이 가니, 그 공주가 비로소 향을 집어 사르며 천지에 축고를 올렸다. 좌우에는 연지 곱게 바른 시녀가 오륙십 명 있고, 가까이 모시는 이들이 수구를 받쳐 들고 있었다. 그 누각은 여덟 창이 영롱하였는데, 공주가 눈을 돌려 살피다가 당승이 아주 가까이 온 것을 보고는 수구를 가져다가 제 손으로 당승의 머리 위에 던졌다. 당승이 깜짝 놀라자 비로모가 비뚤어지고, 두 손으로 급히 그 공을 붙들었는데, 그 공이 데굴데굴 그의 옷소매 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누각 위에서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중 하나를 맞혔소! 중 하나를 맞혔소!” 아, 십자거리의 장사꾼과 행상들이 떼를 지어 와글와글 모두 달려들어 수구를 빼앗으려 하였다. 그러자 손행자가 한바탕 고함을 지르고, 이를 한 번 드러내며 허리를 한 번 굽히더니, 석 장이나 크게 자라나 신위를 부리고 추한 얼굴을 내보이니, 사람들이 넘어지고 기어 가며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흩어지자 손행자는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누각 위의 시녀와 궁아와 크고 작은 내관들이 모두 당승에게 내려와 절하며 말했다. “귀인이시오! 귀인이시오! 조정으로 들어가시어 경사를 축하하소서.” 당삼장이 급히 답례하고 사람들을 부축하여 일으킨 뒤, 고개를 돌려 손행자를 원망하며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이 또 나를 놀리는구나!”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수구가 스승님 머리 위에 떨어지고 소매 속으로 굴러 들어갔는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사옵니까? 무얼 원망하시나이까?” 당삼장이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우선 마음을 놓으시옵소서. 입조하여 알현하시면, 내 역으로 돌아가 저팔계와 사오정에게 알려 기다리게 하겠나이다. 공주가 스승님을 부마로 삼지 않으면 관문이나 바꾸어 떠나면 그만이옵니다. 만약 반드시 스승님을 부마로 삼으려 한다면, 스승님께서 왕께 내 제자를 불러 주시어 한마디 분부를 하게 해 달라고 하옵소서. 그때 우리 세 사람을 조정에 부르게 되면, 내 그 사이에서 절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겠나이다. 이것이 혼인을 빌려 요괴를 항복받는 계책이옵니다.” 당승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을 따랐고, 손행자는 몸을 돌려 역으로 갔다. 그 장로는 궁아들에게 둘러싸여 누각 앞으로 이끌려 갔다. 공주가 누각에서 내려와 옥 같은 손으로 그를 부축하여 함께 보련에 오르고, 의장 행렬을 벌려 조정 문으로 돌아왔다. 황문관이 미리 아뢰었다. “만세, 공주마마께서 중 하나를 부축하고 계시오니, 수구에 맞은 모양이옵니다. 지금 오문 밖에서 분부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 왕이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몹시 언짢아 내쫓고자 하였으나, 또 공주의 뜻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므로, 뜻을 감추고 들이라 명할 뿐이었다. 공주와 당승은 마침내 금란전 아래에 이르렀으니, 바로 한 쌍의 부부가 만세를 부르고, 두 문의 사정과 정도가 천추에 절을 올리는구나. 예를 마치고 또 전 위로 불려 올라가니, 왕이 입을 열어 물었다. “승려는 어디서 왔기에 짐의 딸이 던진 공에 맞아 당첨되었느냐?” 당승이 엎드려 아뢰었다. “빈승은 남섬부주 대당 황제의 명으로 서천 대뇌음사에 가 부처님께 절하고 경을 구하러 가는 자이옵니다. 먼 길의 관문을 지니고 있사오니, 특별히 왕을 알현하고 관문을 바꾸려 왔사옵니다. 십자거리 채루 아래를 지나다가 뜻하지 않게 공주마마께서 던지신 수구가 빈승의 머리 위에 떨어졌사옵니다. 빈승은 출가하여 다른 가르침을 받드는 몸이온데, 어찌 감히 옥엽금지와 짝이 되겠나이까! 부디 빈승의 사죄를 용서하시옵고 관문을 바꾸어 주시어, 속히 영산으로 떠나 부처님을 뵙고 경을 구하여 내 나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길이 폐하의 천은을 새기겠나이다!” 왕이 말했다. “너는 동토의 성승이니, 바로 천 리 인연도 실이 끌어당긴다 하였다. 과인의 공주가 이제 스무 살이 되도록 혼인하지 않았는데, 오늘의 연월일시가 모두 길하다 하여 채루를 매달고 수구를 던져 좋은 짝을 구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네가 던져 맞혔으니, 짐은 비록 달갑지 않으나 공주의 뜻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하노라.” 그 공주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부왕이시여, 늘 이르기를 닭을 따라가고 개를 따라간다 하였사옵니다. 소녀에게 먼저 서원이 있어 이 공을 매어 천지신명께 고하고 하늘에 맡긴 혼인으로 던졌사옵니다. 오늘 성승을 맞혔사오니, 곧 전생의 인연으로 금생의 만남을 얻은 것이옵니다. 어찌 감히 바꾸겠나이까! 원하옵건대 그를 부마로 삼게 하옵소서.” 왕이 그제야 기뻐하며 곧 흠천감 정대관을 불러 날짜를 가리라 명하고, 한편으로는 혼수와 화장함을 갖추게 하였으며, 또 칙지를 내려 천하에 알렸다. 당삼장이 그 말을 듣고도 은혜에 사례는커녕 다만 “용서하옵소서! 용서하옵소서!”만 외쳤다. 왕이 말했다. “이 중은 몹시 이치를 모르는구나. 짐이 한 나라의 부로 너를 부마로 삼으려 하는데, 어찌하여 여기 머물려 하지 않고 생각마다 경을 구하려 하느냐! 다시 사양하거든 금의관교에게 끌어내어 목을 베라 하리라!” 장로가 혼이 몸에서 떨어질 만큼 놀라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려 아뢰었다. “폐하의 천은을 감격히 입사옵니다. 다만 빈승의 일행 네 식구 중에 제자 셋이 밖에 있사옵니다. 이제 받들어 받아들이겠사오나, 다만 한마디 분부를 하지 못하였사옵니다. 부디 그들을 이곳에 불러 관문을 바꾸어 주시어 어서 떠나게 하시면, 서쪽으로 온 뜻을 그르치지 않겠나이다.” 왕이 드디어 청을 들어 물었다. “네 제자는 어디에 있느냐?” 당삼장이 말했다. “모두 회동관역에 있사옵니다.” 곧 관리를 보내 성승의 제자를 불러 관문을 받아 서쪽으로 가게 하고, 성승은 이곳에 머물러 부마가 되게 하니, 장로는 일어나 곁에 서 있을 뿐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큰 단약이 새지 않으려면 세 가지가 온전해야 하고, 고행은 이루기 어려우니 악연이 한스럽구나. 도는 성인이 전하고 닦음은 제게 있으며, 선은 사람이 쌓고 복은 하늘에서 오느니라. 육근이 탐욕을 부려 뽐내지 말고, 본래의 한 성품을 단박에 열어라. 사랑도 없고 생각도 없으면 절로 청정하리니, 해탈하여 초연해짐을 보장하리라. 이때 관리가 회동관역에 이르러 당승의 제자를 부르러 간 일은 여기서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손행자는 채루 아래서 당승과 헤어져, 두어 걸음에 두어 번 웃으며 기뻐하고 또 기뻐하며 역으로 돌아갔다. 저팔계와 사오정이 마주 나와 말했다. “형님, 어찌 그리 기뻐 웃으시오? 스승님은 어찌 보이지 않소?”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이 기뻐하셨다.” 저팔계가 말했다. “아직 목적지에도 닿지 않았고 부처님을 뵙고 경을 얻어 돌아온 것도 아닌데, 웬 기쁨이란 말이오?”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스승님과 함께 십자거리 채루 아래까지 갔는데, 공교롭게도 당조의 공주가 던진 수구가 스승님께 맞았소. 스승님은 궁아와 채녀와 내관들에게 밀려 누각 앞으로 이끌려 가, 공주와 함께 가마에 타고 입조하여 부마로 뽑혔소.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소?”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발을 구르며 가슴을 치고 말했다. “내가 갈 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모두 그 사오정이 게을러서야! 네가 나를 막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곧장 채루 아래로 달려가 한 수구가 내 이 늙은 저팔계에게 맞았을 터인데, 그 공주가 나를 부마로 삼았다면 아름답고도 묘하지 않겠느냐! 준수하고 빼어나며 어울리기까지 하여, 모두 재수를 보며 놀았을 터인데 얼마나 재미있었겠느냐!” 사오정이 앞으로 나서서 그의 얼굴을 한 번 쓸며 말했다. “부끄러운 줄 몰라! 부끄러운 줄 몰라! 잘난 입방아로구나! 은 세 낸으로 늙은 나귀를 사 놓고 제가 잘 탄다고 자랑한다! 만약 수구 하나가 너에게 맞았더라면, 밤새 퇴송지를 사르며 쫓아내도 늦다 할 텐데, 감히 이런 재수 없는 것을 집에 들이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이 검둥이는 재미도 모르는구나! 못생긴 것은 못생긴 대로 또 맛이 있지. 옛적부터 이르기를 살갗은 거칠어도 뼈대는 굳세니, 저마다 취할 만한 점이 하나씩은 있다 하였다.” 손행자가 말했다. “멍청한 놈아, 헛소리 말고 행장이나 챙겨라. 스승님께서 다급해지셔서 우리를 부르실까 두렵구나. 그때 조정에 들어가 보호해야지.” 저팔계가 말했다. “형님 또 틀린 말씀이오. 스승님이 부마가 되어 궁중에서 황제의 딸과 즐기시는 것이지, 산을 넘고 길을 걷다가 요괴나 마귀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형이 보호할 일이 무어 있소? 그만 나이에 이불 속의 일을 어찌 모르시겠소이까, 형이 가서 부축해 드려야 한단 말이오?” 손행자가 귀를 와락 잡아쥐고 주먹을 휘두르며 꾸짖었다. “이 음심이 끊이지 않는 둔한 놈아!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 한창 떠들고 있는데, 역승이 와서 아뢰었다. “성상께서 칙지를 내리시어, 관리를 보내 세 분의 신승을 청하라 하였사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도대체 우리를 청하는 까닭이 무엇이오?” 역승이 말했다. “노신승께서 공주마마를 행운처럼 만나 수구에 맞아 부마로 뽑히셨사옵니다. 그리하여 관리를 보내 청하라는 것이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관리가 어디 있소? 들어오라고 하시오.” 그 관리가 손행자를 보고 예를 올렸다. 예를 마치고도 감히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 채 혼잣말로만 외웠다. “귀신인가, 요괴인가? 뇌공인가, 야차인가?” 손행자가 말했다. “이 관리, 할 말이 있으면 말하지 않고 어찌 머뭇거리느냐?” 그 관리는 겁에 질려 벌벌 떨며 두 손으로 성지를 받들고 입으로 횡설수설 말했다. “우리 공주마마께서 회친을 청하십니다! 우리 주공께서 회친을 청하십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여기엔 형구도 없으니 너를 때리지 않겠다. 천천히 말해라, 겁내지 말고.” 손행자가 말했다. “설마 네가 때릴까 두렵겠느냐? 네 그 얼굴이 무서울까 보냐! 어서 행장을 꾸려 짐을 지고 말을 끌고 입조하여, 스승님을 뵙고 의논하러 가자!”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좁은 길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나니, 정든 사이가 도리어 원수가 되리라.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4회 사승연락어화원(四僧宴樂御花園) · 일괴공회정욕희(一怪空懷情欲喜) 각설하고 손행자 세 사람이 선조관을 따라 오문 밖에 이르렀다. 황문관이 즉시 전하여 아뢰고 들이라 하였다. 그 세 사람은 가지런히 서서 절을 하지 않았거늘, 천축국 왕이 물었다. “그대 셋은 성승 부마의 높은 제자냐? 성과 이름은 무엇이며 어디에 사느냐? 무슨 일로 출가하였으며 무슨 경전을 취하러 가느냐?” 손행자가 곧 앞으로 나아가 전각에 오르려 하자 곁에서 호가하던 이가 호통쳤다. “걷지 말라! 무슨 말이거든 거기 서서 아뢰어라.”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출가인은 한 걸음을 얻으면 곧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법이라네.” 뒤이어 저팔계와 사오정도 함께 앞으로 나섰다. 장로가 그들이 촌스럽고 거칠게 굴어 어가를 놀라게 할까 염려하여 일어나 불렀다. “제자들아, 폐하께서 너희의 내력을 물으시니 곧 아뢰어라.” 손행자가 자기 스승이 곁에 모시어 서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큰 소리로 한마디 외쳤다. “폐하께서는 남을 가벼이 여기시고 자신을 무겁게 여기시는구려! 이미 우리 스승을 부마로 삼으셨거늘 어찌 그를 모시어 서 있게 하시나이까? 세상에서 사위를 귀인이라 일컫거늘, 어찌 귀인이 앉지 못할 이치가 있사오리까!”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낯빛이 변하여 물러나려 하였으나 관람을 그르칠까 두려워, 할 수 없이 담력을 굳게 하고 근시에게 수둔을 가져오라 하여 당승을 청해 앉히었다. 손행자가 그제야 아뢰었다. “이 늙은 손오공은 본래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 수렴동에 살았사옵니다. 하늘이 아비요 땅이 어미이며 바위가 갈라져 이 몸이 태어났나이다. 일찍이 지극한 이에게 절하여 큰 도를 배워 이루었고, 다시 신선의 고향으로 돌아와 동천복지에서 무리를 불러 모았나이다. 바다로 내려가 용을 항복받고 산에 올라 짐승을 사로잡았으며, 죽음의 명부에서 이름을 지우고 삶의 호적에 올라 벼슬이 제천대성이 되었나이다. 경루를 완상하고 보각을 즐겨 노닐며 천선을 만나 날마다 노래하고 즐겼고 성경에 살며 아침마다 즐거웠사옵니다. 다만 반도연을 어지럽히고 천궁을 크게 거역하다가 부처께 사로잡혔사옵니다. 오행산 아래 억눌려 갇혀 배고프면 쇠탄을 먹고 목마르면 구리즙을 마시며 오백 년 동안 차나 밥을 맛보지 못하였사옵니다. 다행히 우리 스승이 동토에서 나와 서방을 배알하러 가실 때 관음께서 명하시어 천재를 벗고 큰 난을 떠나 유가문하에 귀의하게 하였나이다. 옛 휘는 오공이요, 이름은 행자라 하나이다.” 왕이 그 이름이 이토록 무거움을 듣고 놀라 용상에서 내려와 어필로 장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부마여, 이 또한 짐의 하늘 인연이니 그대 같은 신선의 인연과 신선의 권속을 만났도다.” 당삼장은 입이 마르도록 은혜를 사례하고 왕에게 자리에 오르시기를 청하니 왕이 다시 물었다. “저 사람이 둘째 고제냐?” 저팔계가 입을 내밀고 위풍을 떨치며 말했다. “이 늙은 저팔계는 전세에 사람으로 태어나 환락을 탐하고 게으름을 사랑하였사옵니다. 한평생 혼돈하여 성정을 어지럽히고 마음을 미혹케 하였으며, 하늘의 높음과 땅의 두터움을 알지 못하고 바다의 넓음과 산의 아스라함을 밝히지 못하였나이다. 한가로이 지내는 즈음에 홀연 한 진인을 만났사옵니다. 반 마디 말로 업의 그물을 풀고 두세 마디 말로 재앙의 문을 쪼개니, 그 자리에서 깨달아 스승을 찾아가 삼가 이팔의 공부를 닦고 삼삼의 전후를 단련하였나이다. 행이 차자 날아 올라 천부를 뛰어넘었고, 옥제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벼슬이 천봉원수가 되어 하수군을 거느리고 한궐에서 소요하였사옵니다. 다만 반도연에서 술에 취해 상아를 희롱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고 인간 세상으로 쫓겨났으며, 잘못 투탁하여 돼지의 형상에 의탁하였나이다. 복릉산에 머물며 한없이 악을 짓다가 관음을 만나 착한 도리를 가리켜 주심에 불교에 귀의하고 당승을 보호하게 되었나이다.” “서방으로 곧장 가서 묘한 경전을 예배하여 구하러 가나이다. 법휘는 오능이요, 팔계라 불리나이다.” 천축국 왕이 그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하여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이 얼간이는 점점 정신을 부리며 머리를 흔들고 입을 내밀고 귀를 쳐들고는 껄껄껄 크게 웃었다. 당삼장이 또 어가를 놀라게 할까 두려워 즉시 꾸짖었다. “팔계야, 거둬들여라!” 그제야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서서 억지로 점잖은 체하였다. 왕이 또 물었다. “세 번째 고제는 무슨 연고로 귀의하였느냐?” 사오정이 합장하고 아뢰었다. “이 늙은 사오정은 본디 범부로서 윤회가 두려워 도를 찾았사옵니다. 바다 끝을 구름처럼 떠돌고 하늘 가를 물결처럼 방랑하며, 늘 의발을 몸에 지니고 매양 심신을 집에서 갈고닦았나이다. 이처럼 정성스러웠기에 선려를 만났고, 아이를 길러 내어 사녀와 인연을 맺었나이다. 공부가 삼천을 채우고 네 가지 모습을 화합하였나이다. 천계를 뛰어넘고 현궁을 배알하여 벼슬을 권렴대장으로 받고 봉련과 용거를 모시며 장군의 봉호를 받았사옵니다. 또한 반도연에서 실수로 유리잔을 깨뜨려 유사하로 쫓겨나 머리와 얼굴을 바꾸고 죄업을 지으며 생명을 해쳤나이다. 다행히 보살이 동토로 멀리 노니러 오시어 권하여 귀의케 하시고 당조의 불자를 기다려 서천으로 경을 구해 과정을 이루라 하셨사옵니다. 이에 스스로 새롭게 일어서 대각을 다시 닦고 강을 가리켜 성을 삼았나이다. 법휘는 오정이요, 이름은 사승이라 하나이다.” 왕이 듣고는 놀람과 기쁨이 겹쳤으니, 기쁜 것은 딸이 산 부처를 사위로 맞이한 것이요, 놀란 것은 세 사람이 참으로 요신인 까닭이었다. 놀라고 기뻐하는 사이에 홀연 정대 음양관이 아뢰었다. “혼기는 금년 금월 십이일로 정하였사옵니다. 임자일이 길하고 주당이 통리하니 혼인을 배필하기에 마땅하나이다.” 왕이 말했다. “오늘은 무슨 날이냐?” 음양관이 아뢰었다. “오늘은 초팔일로 무신일이옵니다. 원숭이가 과일을 바치는 날이니 어진 이를 들이고 일을 받아들이기에 참으로 마땅하나이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당가관에게 명해 어화원의 관각과 누정을 소제하게 하고, 우선 부마와 세 고제를 모셔 편히 쉬게 하며, 뒤에 합근의 좋은 잔치를 차려 공주를 배필하게 하였다. 여러 이들이 삼가 받들어 왕이 조회를 파하고 여러 관원이 다 흩어졌거니와, 그 자세한 사정은 이만 접어둔다. 각설하고 당삼장 사부가 모두 어화원에 이르자 날이 저물어 가고 있어 소찬을 차려 내었다. 저팔계가 기뻐하며 말했다. “오늘 하루도 밥 먹을 때가 되었구먼.” 관판인이 곧 흰쌀밥과 국수 따위를 광주리에 가득 담아 메어 왔다. 그 저팔계는 먹고 또 덜고, 덜고 또 먹어 마침내 창자가 버티고 배가 불룩해져서야 비로소 그만두었다. 잠시 뒤에 또 등불을 켜고 자리를 깔아 각기 잠자리에 들었다. 장로가 좌우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손행자를 원망하며 성난 소리로 불렀다. “오공아! 이 원숭이야, 번번이 나를 해치는구나! 내가 관문만 바꾸러 가자, 채루 앞으로는 가지 말자 하였거늘, 네가 어찌하여 굳이 나를 끌고 가 보게 하였느냐? 이제 보니 좋으냐! 이런 일을 끌어내었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돌아가신 어머니도 수구를 던져 옛 인연을 만나 부부가 되었다 하시어 옛일을 사모하는 뜻이 있는 듯하였기에, 이 늙은 손오공이 스승님을 모시고 갔사옵니다. 또 그 급고포금사 장로의 말이 생각나 참과 거짓을 살펴보려 하였사옵니다. 마침 그 국왕의 얼굴을 보니 자못 흐리고 어두운 빛이 있사오나, 다만 공주가 어떠한지는 보지 못하였을 따름이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공주를 보면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손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의 화안금정은 한 번 보기만 하면 참과 거짓, 선과 악, 부귀와 빈천을 알아보나이다. 그리하면 시행하기도 좋고 사특함과 바름을 가려내기도 좋사옵니다.” 사오정과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 요즘 또 관상을 배웠군요.” 손행자가 말했다. “관상하는 선비쯤은 내 손자밖에 안 되네.” 당삼장이 꾸짖었다. “입놀림은 그만두어라! 다만 그가 이제 반드시 나를 사위로 삼으려 하니 참으로 어찌 처치한단 말이냐?” 손행자가 말했다. “우선 십이일에 잔치를 여는 때가 되면 반드시 그 공주가 나와 부모에게 참배하러 나올 것이니, 이 늙은 손오공이 곁에서 지켜보겠나이다. 만일 참된 여인이라면 스승님께서 부마가 되어 나라 안의 영화를 누리셔도 좋사옵니다.” 당삼장이 그 말을 듣고 더욱 성을 내며 꾸짖었다. “이 원숭이야! 네가 도리어 나를 해치려 하는구나! 그것은 오능이 한 말이거늘, 우리가 열 마디 가운데 아홉 마디쯤 이미 올라갔는데 네가 아직도 뜨거운 혀로 나를 찌르느냐? 어서 입을 다물고 그 더러운 입을 열지 말라! 다시 무례를 부리면 내가 곧 주문을 외워 너로 하여금 견디지 못하게 하리라!” 손행자가 주문을 외운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앞에 꿇어 말했다. “외우지 마옵소서, 외우지 마옵소서! 만일 참된 여인이라면 절을 올릴 때에 우리가 함께 황궁을 크게 뒤집어놓고 스승님을 모시고 가겠나이다.” 사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초경이 되었다. 참으로 이러하였다. 깊고 깊은 궁중의 물시계여, 그윽하고 그윽한 꽃향기로다. 비단 문에는 구슬 발이 드리웠고, 한가한 뜰에는 불빛이 끊겼구나. 그네 줄은 차갑게 빈 그림자만 남기고, 강적 소리는 잦아들어 사방이 고요하도다. 집을 두른 꽃은 달빛을 머금어 찬란하고, 멀리 트인 하늘에는 나무가 없어 별빛이 드러나는구나. 두견새는 울음을 그치고 나비의 꿈은 길어라. 은하는 하늘을 가로지르고 흰 구름은 고향으로 돌아가는구나. 참으로 이별하는 이의 정이 간절한 곳이라, 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버들이 더욱 처량하구나.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밤이 깊었사옵니다. 일은 내일 아침에 다시 의논하시고 우선 주무시옵소서, 주무시옵소서!” 사부는 과연 잠자리에 들었다. 하룻밤의 밤 풍경은 이미 읊었거니와, 어느덧 다시 금계가 새벽을 알렸다. 오경 삼점에 천축국 왕이 곧 전각에 올라 조회를 베풀었는데, 보라, 이러하였다. 궁전의 창이 열리니 자줏빛 기운이 높고, 바람에 어가의 음악이 불려 푸른 하늘을 꿰뚫는구나. 구름이 옮겨감에 표미의 깃발이 움직이고, 햇빛이 이두에 비치니 옥패가 흔들리는도다. 향기로운 안개는 가늘게 궁중 버들의 푸름을 더하고, 이슬방울은 촉촉히 원림 꽃의 고움을 적시는구나. 만세를 외치며 몸을 춤추니 수많은 관원이 줄지어 섰고, 바다는 잔잔하고 강은 맑아 온 천하가 하나로 통하는 조정이로다. 여러 문무백관이 조회를 마치니 왕이 또 광록시에 명하여 십이일 잔치를 차리게 하고 오늘은 우선 봄 술동이를 정비하여 부마를 어화원에서 놀게 하라 하였다. 또 의제사에 분부하여 세 어진 친첩을 데리고 회동관으로 가 잠시 앉게 하고 광록시에 명하여 소찬 세 자리를 차려 그리로 가져가 모시게 하였다. 두 곳에 모두 교방사에 명하여 음악을 연주하게 하며 봄 경치를 구경하며 긴 낮을 보내게 하였다. 저팔계가 그 말을 듣고 응하여 말했다. “폐하, 저희 사부는 서로 만난 뒤로 한순간도 떨어진 적이 없사옵니다. 오늘 어화원에서 연회를 여시거든 저희도 데리고 가 이틀 놀게 하옵소서, 그래야 스승님이 댁의 부마 노릇을 하실 수 있사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장사가 이루어지지 않사옵니다.” 천축국 왕이 그가 추하고 말이 거칠며, 또 목을 비틀고 입을 내밀고 귀를 흔드는 것을 보니 꼭 풍증이 있는 듯하여, 혼사를 깨뜨릴까 두려워 하는 수 없이 따르며 명하였다. “영진화이각에 두 자리를 차려 짐이 부마와 함께 앉겠노라. 유춘정에 세 자리를 차려 세 사람을 따로 앉게 하라, 그 사부가 자리 차례로 불편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니라.” 그 얼간이가 그제야 위를 향해 읍을 하며 고맙다 외치고는 각자 물러났다. 왕이 또 내궁관에 전지하여 잔치를 베풀게 하고, 삼궁 육원의 후비와 공주를 불러 올려 머리를 단장하고 화장을 더하며 혼수 예물을 마련하게 하여 십이일의 좋은 배필을 기다리게 하였다. 사시 무렵이 되자 천축국 왕이 어가를 베풀어 당승을 청하여 함께 어화원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였다. 좋은 곳이로다. 길은 채색 돌을 깔았고 난간은 조각을 새겼구나. 길에 채색 돌 깔았으니 길가 돌 섶에 기이한 꽃이 자라고 난간에 조각 새겼으니 난간 밖 섬돌에 다른 풀이 자라는구나. 고운 복숭아는 비취를 홀리고 연한 버들은 꾀꼬리를 번쩍이게 하는도다. 걸으면 그윽한 향기 소매에 가득 오고 다니면 맑은 기운 옷에 많이 묻어나는구나. 봉대와 용소, 죽각과 송헌이 있으니 봉대 위에서 피리를 불매 봉황이 날아와 예를 갖추고 용소에서 기른 물고기가 용으로 변해 떠나는구나. 죽각에는 시가 있어 흰 눈을 다듬느라 시구를 갈고닦았고 송헌에는 문집이 있어 구슬과 옥을 고르고 푸른 책에 주를 달았도다. 가짜 산과 주먹만 한 돌은 푸르고 굽이치는 물은 푸른 물결이 깊구나. 모란정과 장미 시렁은 비단을 포개고 융단을 깔았고 말리 섬돌과 해당 화단은 노을을 쌓고 옥을 쌓았도다. 작약은 다른 향기 풍기고 촉규는 기이하게 고우며 흰 배꽃과 붉은 살구꽃은 향기를 다투고 자란과 금훤은 고움을 겨루는구나. 여춘화와 목필화와 두견화는 활짝 피어 붉게 타오르고 함박꽃과 봉선화와 옥잠화는 살랑살랑 높이 솟았도다. 곳곳마다 붉게 스며 연지가 윤택하고 포기마다 향기 진해 비단 수를 두른 듯하구나. 더욱 기쁜 것은 동풍이 불어 날이 따뜻해지니 온 동산의 고운 자태가 빛을 뽐내는도다. 한 무리의 임금과 몇몇이 오래도록 구경하였다. 의제사 관원이 손행자 세 사람을 유춘정으로 청해 들이고 천축국 왕은 당승의 손을 잡고 화이각에 올라 각기 연회를 즐겼다. 가무와 취탄과 베풀어 차린 진설은 참으로 이러하였다. 창합이 우뚝 솟아 서광이 피어나고 봉각과 용루에 서기가 비끼는구나. 봄빛은 가늘게 풀꽃의 수를 펼치고 하늘빛은 아스라이 비단포에 비쳐 밝도다. 생황과 노래가 어우러져 신선의 잔치 같고, 잔이 날아다니며 옥 같은 술이 맑구나. 임금이 기뻐하고 신하가 즐거워 함께 구경하니, 화이가 길이 진압되어 세상이 강녕하도다. 이때 장로는 왕이 공경하고 중히 여김에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마지못해 따라 즐기는 체하였으니 참으로 겉으로 기쁘고 속으로 근심하는 것이었다. 앉아 보니 벽에 금병 네 폭이 걸려 있고 병풍에 춘하추동 네 경치가 그려져 있으며 모두 제영이 붙어 있었으니 한결같이 한림 명사의 시였다. 《춘경시》에 이르기를, “하늘의 한 기운 굴러 큰 도가 돌아가니 대지 화창하여 만상이 새롭구나. 복숭아와 자두가 고움을 다투어 만발하고 제비는 그린 들보로 날아와 향기로운 티끌을 포개는구나.” 《하경시》에 이르기를, “따뜻한 바람 살랑 불어 생각이 더디니, 궁원의 석류와 해바라기가 햇빛에 비치는구나. 옥피리 음조가 낮잠을 놀라게 하고 연꽃 향기 흩어져 뜰의 휘장에 이르는도다.” 《추경시》에 이르기를, “금정의 오동나무 잎 하나 누렇게 지고 구슬 발 걷지 않으니 밤이 되어 서리가 내리는구나. 제비는 사일을 알아 둥지 떠나가고 기러기는 갈꽃 꺾어 다른 고을 지나가는도다.” 《동경시》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비구름이 날려 흐려 차가운데, 삭풍이 불어 눈이 쌓여 천 산이 하얗구나. 깊은 궁에 붉은 화로 따뜻하니 매화 피어 옥이 난간에 가득하다 전하는도다.” 천축국 왕이 당승이 마음 내키는 대로 시를 보는 것을 보고 말했다. “부마가 시 속의 맛을 즐기니 마음이 틀림없이 읊기를 잘하리라. 만일 옥과 구슬을 아끼지 않는다면 운에 따라 각기 한 수씩 화답하는 것이 어떠하냐?” 장로는 경치를 대하면 정을 잊고 마음을 밝히는 이라 왕이 삼가 중히 여겨 앞의 운에 화답하라 명하니 그만 홀연 한 구절을 읊었다. “날이 따뜻해 얼음 녹으니 온 대지가 고르노라.” 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시위관을 불러 명하였다. “문방사보를 가져오너라. 부마에게 화답을 마쳐 적어 내리라 하여 짐이 천천히 음미하겠노라.” 장로가 기꺼이 사양하지 않고 붓을 들어 화답하였다. 《춘경시》에 화답하여, “날 따뜻해 얼음 녹으니 대지가 고르노라. 어원의 화훼 다시 새로워라. 온화한 바람과 고운 비에 백성이 은택을 입고 바다 잔잔하고 강 맑아 속된 티끌이 끊겼도다.” 《하경시》에 화답하여, “북두가 남쪽 가리키니 대낮이 길어라. 괴화 구름과 석류 불꽃이 빛을 다투는구나. 꾀꼬리와 자줏빛 제비가 궁중 버들에서 울고 교묘히 두 소리를 굴려 자주빛 휘장에 드는구나.” 《추경시》에 화답하여, “향기는 푸른 귤과 누런 등자에서 날리고 소나무 잣나무 푸르러 서리 내림을 기뻐하는구나. 울타리 국화 반쯤 피어 비단 수를 모았고 생황과 노래의 운이 물과 구름의 고을에 꿰뚫는도다.” 《동경시》에 화답하여, “상서로운 눈 개니 기운이 차갑고 기이한 봉우리와 교묘한 돌이 옥 산을 이루었구나. 화로에 짐승 모양 숯을 태워 향긋한 유락을 끓이고 소매에 손 넣고 높은 소리로 노래하며 비취 난간에 기대었노라.” 왕이 화답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였다. “참으로 좋구나, ‘소매에 손을 넣고 높은 소리로 노래하며 비취 난간에 기대었노라!’” 드디어 교방사에 명하여 새 시로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 온종일 즐기다 파하였다. 손행자 세 사람도 유춘정에서 실컷 대접을 받아 각자 술 몇 잔을 마시니 모두 취기가 좀 있었다. 막 장로를 찾아가려 하는데, 장로가 이미 천축국 왕과 함께 한 각에 있는 것이 보였다. 저팔계의 얼간이 기질이 발동하여 소리쳐 말했다. “좋구나, 즐겁다! 자유롭구나! 오늘도 이 한바탕을 누렸으니, 배부른 김에 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은 너무 수양이 없소. 이 기운이 배를 가득 막은 판에 어찌 잠을 잔단 말이오?” 저팔계가 말했다. “너는 어찌 알겠느냐, 속담에 밥을 먹고 나서 시체처럼 뻗지 않으면 뱃속에 기름이 붙지 않는다 하지 않았느냐!” 당승이 천축국 왕과 작별하고는 오직 입을 삼가고 또 삼가더니, 정자 안에 이르자 그 세 사람을 꾸짖어 말했다. “이 무거운 놈아, 점점 더 촌스러워지는구나! 이게 어느 곳인데 함부로 큰 소리로 떠드느냐? 만일 왕의 노여움을 산다면 그에게 목숨을 해치우지 않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괜찮소, 괜찮소! 우리는 그와 사돈 예절로 지내는 사이니 그가 함부로 괴이하게 여기지 못할 것이오. 옛말에 친척은 때려도 끊어지지 않고 이웃은 욕해도 끊어지지 않는다 하였소. 모두 함께 노는 것인데 그가 무엇이 두렵단 말이오?” 장로가 꾸짖어 명하였다. “이 얼간이를 끌어내어 선장으로 스무 대를 쳐라!” 손행자가 과연 단번에 잡아 넘어뜨리자 장로가 지팡이를 들어 치는데, 얼간이가 외쳐 말했다. “부마 할아버지! 용서하옵소서, 용서하옵소서!” 곁에서 잔치를 모시던 관원이 말리자 얼간이가 기어 일어나며 투덜투덜 말했다. “좋은 귀인이로다! 훌륭한 부마로다! 혼인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벌써 왕법을 들이대는구나!” 손행자가 그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헛소리 말라! 헛소리 말라! 어서 자러 가라.” 그들은 또 유춘정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여전히 연회를 즐겼다. 어느덧 사흘 나흘을 즐기다가 마침 십이일의 좋은 날이 되었다. 광록시 세 부의 각 관원이 돌아와 아뢰었다. “신 등이 팔일에 명을 받은 이래 부마부는 이미 수리를 마치고 오직 혼수의 진설만을 기다리옵니다. 합근 연회도 이미 갖추어져 훈과 소가 모두 오백여 자리이옵니다.” 왕이 마음이 기뻐 막 부마를 잔치에 청하려 하는데 홀연 내궁관이 어전에 아뢰었다. “만세, 정궁 황후께서 청하시옵니다.” 왕이 곧 내궁으로 들어가니 삼궁의 황후와 육원의 빈비가 공주를 인도하여 모두 소양궁에서 담소하고 있었다. 참으로 꽃무더기요 비단 송이라! 그 부유하고 화려하며 요염한 모습은 천당의 월전보다 뛰어나고 선부의 요궁에 못지않았다. 《희회가인》이란 새 노래 네 수가 증거로 있느니라. 《희사》에 이르기를, 기뻐라! 기뻐라! 기뻐라! 기쁘고 즐겁구나! 혼인을 맺으니 사랑이 아름다워라. 교묘한 궁중 화장, 상아가 어찌 견주리오. 용비녀와 봉잠이요 눈부시게 금실이 날리는구나. 앵두 입술과 흰 이에 붉은 얼굴이여 아리따운 꽃 같은 몸이로다. 비단은 겹겹이요 오색 무리 가운데로다. 향기 자욱한 천금의 대열이로다. 《회사》에 이르기를, 만남이여! 만남이여! 만남이여! 요염하고 아리따워라. 모장을 이기고 초나라 미녀를 능가하며 나라를 기울이니 꽃에 견주고 옥에 견주도다. 단장은 더욱 선명하고 비녀와 고리도 매우 화려하구나. 난초 같은 마음과 혜초 같은 성품이 맑고 높으며 분칠한 얼굴과 얼음 같은 살결이 영화롭고 귀하도다. 검은 눈썭은 먼 산처럼 옅고 요조한 자태가 비단 대열에 모였구나. 《가사》에 이르기를,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옥 같은 선녀요 신선의 아이로다. 깊이 사랑스럽고 자랑할 만하구나. 다른 향기 그윽하고 연지와 분이 어우러지는도다. 천태의 복지는 멀거늘 어찌 국왕의 집과 같으리오. 웃음과 말소리가 어지러이 교태를 띠고 생황과 노래가 어우러져 떠들썩하구나. 꽃과 비단 쌓은 천 가지 아름다움을 인간 세상 두루 보아도 어찌 같으리오. 《인사》에 이르기를, 인연이여! 인연이여! 인연이여! 난사향이 자욱하구나. 선녀의 진이요 미인의 무리로다. 빈비는 옷을 갈고 공주는 새 단장을 하였구나. 구름 같은 머리채는 까마귀 상투를 쌓고 무지개 치마는 봉황 치마를 누르는도다. 한 가닥 선율 맑게 울리고 두 줄의 붉은 자주빛이 어우러지는구나. 그해 일찍이 난새 탈 신표를 맺었거늘 오늘 아침 다행히 좋은 인연을 만나는구나. 각설하고 천축국 왕의 어가가 이르자, 후비들이 공주를 인도하고 채녀와 궁아가 모두 나와 맞이하였다. 천축국 왕이 기뻐하는 낯으로 소양궁에 들어가 앉았다. 후비들이 조배를 마치니 왕이 말했다. “공주는 어진 딸이로다. 초팔일에 채색을 매달고 구슬을 던져 성승을 만난 것이 다행이니, 생각건대 소원이 이미 이루어졌으리라. 각 아문의 관원들도 짐의 마음을 헤아려 갖가지 일을 모두 갖추었노라. 오늘이 바로 좋은 기약이니 일찍 합근 잔치로 나아가거라. 시각을 놓치지 말지니라.” 그 공주가 앞으로 나아가 몸을 던져 절하며 아뢰었다. “부왕이시여, 소녀의 만 가지 죄를 용서하옵소서. 한마디 아뢸 말이 있사옵니다. 이 며칠 동안 궁관의 전하는 말을 들으니 당성승에게 제자가 셋 있는데 그들이 몹시 추악하게 생겼다 하옵니다. 소녀는 감히 그들을 뵙지 못하겠사오니, 만일 보게 되면 반드시 두려움이 생길까 두렵사옵니다. 부디 부왕께서 그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약한 몸이 놀라 상하여 도리어 화가 될 것이옵니다.” 왕이 말했다. “아이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짐이 잊을 뻔하였구나. 참으로 몹시 추악하게 생겼더라. 여러 날 어화원 유춘정에서 대접하게 하였노라. 오늘 전각에 올라 관문을 내어주어 성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 마침 좋으리라. 그런 뒤에 잔치를 모시면 되겠노라.” 공주가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를 사례하니, 왕이 곧 어가를 내어 전각에 올라 전지하였다. “부마와 그 세 사람을 청하노라.” 원래 그 당승은 손가락을 꼽아 날을 세며 십이일을 견뎌 내었거늘, 날이 밝기도 전에 그 세 사람과 의논하며 말했다. “오늘이 바로 십이일이로다. 이 일을 어찌 처치한단 말이냐?” 손행자가 말했다. “그 국왕은 이미 조금 사나운 기운이 있음을 알아내었사오나 아직 몸에 붙지 않았으니 큰 해는 되지 않사옵니다. 다만 공주를 만나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만일 나오기만 한다면 이 늙은 손오공이 한 번 보고 참과 거짓을 알아낸 뒤에야 움직이겠나이다. 스승님께서는 마음 놓으시옵소서. 그가 이제 틀림없이 청하러 와서 우리를 성 밖으로 보낼 것이니, 스승님은 응하여 받아들이시고 두려워하지 마옵소서. 제가 몸을 감추고 곧 돌아와 스승님을 바싹 따라 지키겠나이다.” 사부가 막 이야기하는데 과연 당가관이 의제사와 함께 청하러 왔다.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가세, 가세! 틀림없이 우리를 전송하려는 것이니 스승님을 남겨두고 잔치를 하려는 게지.” 저팔계가 말했다. “전송하려면 틀림없이 천백 냥의 황금과 백은이 있을 테니 우리도 인사거리를 좀 사서 내 장인 집으로 가 다시 친척을 만나 놀 수 있겠구먼.”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은 입을 다물고 함부로 말하지 말게. 오직 큰형의 주장에 맡길세.” 드디어 행리와 말을 모두 그 관원들을 따라 단지 아래로 가니, 천축국 왕이 보고 손행자 세 사람을 가까이 오라 하여 말했다. “너희는 관문을 올려라. 짐이 마땅히 보화를 찍고 화압을 하여 너희에게 넘겨주리라. 그 밖에 노자도 넉넉히 준비하여 너희 세 사람을 보내니 일찍 영산으로 가 부처를 뵈어라. 만일 경을 취하여 돌아오면 후한 사례가 또 있으리라. 부마는 이곳에 머무르니 염려하지 말지니라.” 손행자가 사례하고 드디어 사오정에게 명하여 관문을 꺼내 올리게 하였다. 왕이 보고 즉시 인을 찍고 화압을 하였으며, 또 황금 열 덩이와 백은 스무 덩이를 가져와 친례를 삼았다. 저팔계는 본래 재물과 색을 탐하는 마음이 무거운지라 곧 나서서 받았다. 손행자가 위를 향해 읍하며 말했다. “폐를 끼쳤사옵니다! 폐를 끼쳤사옵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가려 하니, 당삼장이 황급히 벌떡 일어나 손행자를 붙들며 이를 갈며 말했다. “너희는 나는 생각지도 않고 가려 하느냐!” 손행자가 손으로 당삼장의 손바닥을 잡으며 눈짓을 하고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여기서 마음을 넓게 가지시며 즐거이 만나시옵소서. 저희가 경을 취하고 돌아와 스승님을 뵈러 오겠나이다.” 그 장로는 믿는 듯 못 믿는 듯하여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여러 관원이 다 보고는 참으로 서로 작별하고 가는 줄로 여겼다. 이윽고 왕이 또 부마를 전각에 오르라 청하고 여러 관원에게 명하여 세 사람을 성 밖으로 전송하게 하니 장로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놓고 전각에 올랐다. 손행자 세 사람이 무리와 함께 조문을 나와 각자 작별하였다. 저팔계가 말했다. “우리가 참으로 가는 것이냐?” 손행자는 말없이 다만 걸어 역 안으로 갔다. 역승이 맞아들여 차를 내고 밥을 차렸다. 손행자가 저팔계와 사오정에게 말했다. “너희 둘은 여기 있으면서 절대 나서지 말라. 역승이 무슨 일을 묻거든 대강 얼버무려 대답하고 나와 말하지 말라. 나는 스승님을 지키러 가노라.” 좋은 대성이여, 털 하나를 뽑아 입으로 선기한 기운을 불어넣고 “변해라!” 외치니, 곧 제 모습으로 변하여 저팔계와 사오정과 함께 역 안에 있었다. 참몸은 홀연히 반공으로 뛰어올라 꿀벌 한 마리로 변하였는데, 참으로 작고 교묘하였다. 보라, 그 모습이 어떠한가. 날개는 누렇고 입은 달며 꼬리는 날카로워라. 바람을 따라 날아오르며 미친 듯 춤추는구나. 꽃술을 따고 향기를 훔치는 데 가장 능하여, 버들 사이를 지나 꽃 사이를 파고들며 흔들리는도다. 몇 번이나 애써 물들여 오갔건만, 날아오고 날아가도 헛된 바쁨이로다. 진한 꿀을 빚어 놓고도 스스로 맛본 적이 있으랴. 다만 이름과 형상만 남겨 둘 뿐이로다. 보라, 그가 가만히 조정 안으로 날아들어갔다. 멀리 당승이 국왕 왼쪽 수둔에 앉아 눈썹을 찌푸리고 조바심을 품은 것이 보였다. 곧장 날아가 그의 비로모 위에 앉아 살며시 귀가에 기어 올라가 말했다. “스승님, 제가 왔사옵니다. 염려하지 마옵소서.” 이 말은 오직 당승만 들었고 그 무리 범인은 알아챌 리 없었다. 당승이 듣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오래지 않아 궁관이 와서 아뢰었다. “만세, 합근의 아름다운 잔치가 치작궁에 이미 차려졌사옵니다. 황후와 공주가 모두 궁에서 모시고 있사오니 만세와 귀인께서 함께 회친하시기를 바라옵니다.” 천축국 왕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곧 부마와 함께 궁으로 들어갔다. 참으로 이러하였도다. 사특한 임금이 꽃을 사랑하니 꽃이 재앙이 되고 선심이 움직이니 생각마다 근심이 생기는구나.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5회 가합진형금옥토(假合眞形擒玉兔) · 진음귀정회령원(眞陰歸正會靈元) 각설하고 당승이 시름에 잠긴 채 국왕을 따라 후궁으로 들어서니, 북과 풍악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고 이윽고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찔러왔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 감히 우러러 쳐다보지 못하였다. 손행자는 남몰래 흐뭇해하며 비로관 꼭대기에 딱 달라붙어 신령한 빛을 굴리고 불 같은 눈을 크게 떠 살펴보니, 두 줄로 늘어선 채녀들이 꽃봉오리 같은 선궁처럼 늘어서 있어 비단 휘장의 봄바람보다 훨씬 뛰어났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몸가짐이 아리따워 나풀거리고 살결은 옥 같고 얼음 같구나. 쌍쌍이 고와 초나라 여인을 능가하고 짝을 지은 미모는 서시를 이기네. 구름처럼 높이 틀어 올린 상투에 채색 봉황이 날아오르고, 가늘게 그린 눈썹에 먼 산의 낮은 봉우리가 아스라이 드러나누나. 생황과 피리가 섞여 울리고 퉁소와 북이 잇따라 불리니 궁과 상과 각과 치와 우의 음이 오르내림이 가지런하구나. 맑은 노래와 묘한 춤은 늘 사랑스럽고, 비단 섬돌과 꽃무더기의 빛깔마다 즐겁기만 하네. 손행자는 스승이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차며 탄복하여 말했다. “훌륭한 승려시여! 훌륭한 승려시여! 비단 수풀에 몸을 두어도 마음엔 애착이 없고, 옥 같은 자갈을 밟으면서도 뜻이 미혹되지 않는구나.” 잠시 뒤 황후와 여러 후빈이 공주를 에워싸고 치작궁에서 나와 함께 영접하며 저마다 입을 모아 아뢰었다. “상감마마 만세, 만만세옵나이다!” 그 소리에 놀란 장로는 벌벌 떨며 몸둘 바를 알지 못하였다. 손행자는 벌써 속내를 알아차리고 공주 정수리 위로 요사한 기운이 조금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으나 그것이 그리 흉악하지는 않았다. 서둘러 귓가로 다가가며 불러 말했다. “스승님, 저 공주는 가짜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가짜라면 어찌 저것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한단 말이냐?” 손행자가 말했다. “법신을 내어 이 자리에서 잡아 버리면 그만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안 되느니라! 안 되느니라! 임금님의 수레를 놀라게 할까 두렵구나. 군왕과 왕비가 물러간 뒤에 다시 법력을 쓰는 게 좋으리라.” 그 손행자는 평생이 급한 성미라 어찌 기다리겠는가. 큰 소리로 꾸짖으며 본모습을 드러내고 달려들어 공주를 붙들고 욕하며 말했다. “이 몹쓸 짐승아! 네가 이곳에서 거짓을 참으로 만들어 이만큼 향락을 누렸으면 넉넉할 터인데도 마음이 아직 모자라 우리 스승님까지 속여 참된 양기를 깨뜨리고 네 음탕한 욕심을 채우려 하느냐!” 놀란 국왕은 넋이 나간 채 멍해졌고 후비들은 넘어지고 기며 궁아와 채녀들은 동쪽으로 숨고 서쪽으로 피해 저마다 목숨만 보살폈다. 참으로 흡사하였다. 봄바람이 일렁이니 가을 기운이 쓸쓸하구나. 봄바람 일렁이어 동산을 지나니 온갖 꽃이 흔들리고, 가을 기운 쓸쓸히 정원에 드니 만 잎새가 흩날린다. 모란은 꺾여 난간 아래 비스듬히 쓰러졌고 작약은 비뚤어져 울타리 곁에 엎드렸네. 못가의 부용은 어지러이 흔들리고 섬돌 위의 국화술은 흩어져 쌓였구나. 해당화는 힘없이 티끌에 엎어지고 장미는 향기를 품은 채 시골길에 누웠네. 봄바람은 부들과 연꽃을 꺾어 놓고 겨울눈은 매화의 여린 꽃술을 비뚤이 눌렀구나. 석류 꽃잎은 안뜰 동서에 어지러이 떨어지고, 언덕 버들의 가지는 황궁 남북에 비스듬히 드리웠네. 좋은 꽃이 밤새 비바람의 광란을 당하니, 무수히 남은 붉은 꽃이 땅에 비단을 깔았구나. 삼장은 갈수록 떨려 국왕을 껴안고 그저 외쳤다. “폐하, 놀라지 마옵소서! 놀라지 마옵소서! 이것은 저의 어리석은 제자가 법력을 부려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것이옵니다.” 각설하고 그 요정은 일이 여의치 않음을 보고 손을 뿌리쳐 벗어나더니 옷을 벗어 젖히고 머리를 흔들어 비녀와 귀고리 따위를 떨어뜨리고는, 곧 어화원 토지묘로 달려가 절구 모양의 짧은 몽둥이 한 자루를 꺼내 급히 돌아서 손행자를 마구 내리쳤다. 손행자가 곧 뒤따라가 쇠몽둥이를 들어 정면으로 맞받으니, 둘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화원에서 싸우다가 이윽고 큰 신통력을 드러내어 저마다 구름과 안개를 타고 허공에서 맞붙었다. 이 한바탕 싸움이란. 금테 두른 쇠몽둥이는 명성이 자자하건만, 절구통 같은 짧은 몽둥이는 알아보는 이가 없도다. 하나는 참된 경전을 구하러 이 땅에 이르렀고, 하나는 기이한 꽃을 사랑하여 자취를 머물게 하였네. 그 요물은 오래전부터 당나라 성승을 알고 있어 원기를 나누어 합하고자 하였고, 지난해에는 진짜 공주를 납치해 두고 사람 몸으로 변해 귀히 여기며 아꼈네. 오늘 대성을 만나 요사한 기운을 들켰으니 목숨을 건지려 참과 거짓을 가리누나. 짧은 몽둥이는 흉을 부려 정수리를 겨누어 내려치고, 쇠몽둥이는 위풍을 떨쳐 낯을 향해 후려치네. 떠들썩하고 시끄럽게 서로 버티니 구름과 안개가 하늘을 덮어 흰 해조차 가리우누나. 두 놈이 허공에서 죽기를 걸고 겨루자 도성 안 백성이 모두 두려워하고 조정의 뭇 관리도 간이 콩알만 해졌다. 당승은 국왕을 부축하며 그저 외쳤다. “놀라지 마옵소서! 중전마마와 여러 분께 두려워 마시라 청해 주시옵소서. 폐하의 공주는 참된 모습을 거짓으로 꾸며 낸 자이옵니다. 제 제자가 저놈을 잡아 내고 나면 좋고 나쁨을 분명히 알게 되시옵니다.” 담이 큰 비빈들이 그 옷과 비녀와 귀고리를 황후에게 보이며 말했다. “이는 공주가 입던 옷이요 쓰던 장신구이옵니다. 그것을 모두 벗어 던진 채 알몸으로 저 중놈과 하늘에서 싸우고 있으니 필시 요사한 짐승이옵니다.” 그때에야 국왕과 후빈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았거니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그 요정은 대성과 반나절을 겨루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손행자가 몽둥이를 공중에 던져 올리며 한 소리 “변해라!” 하고 외치니,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며 백이 천이 되어 반 하늘이 뱀이 기어다니고 구렁이가 뒤엉키는 듯 어지럽게 요사한 놈을 내리쳤다. 요물은 겁이 나 몸을 한 번 비켜 푸른 바람으로 변해 푸른 창공으로 달아나 버렸다. 손행자는 주문을 외어 쇠몽둥이를 하나로 거두고 상서로운 빛을 타고 곧장 뒤쫓았다. 서천문에 가까워지니 깃발이 번쩍이며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손행자가 목청을 돋우어 크게 외쳤다. “천문을 지키는 자들아! 저 요괴를 막아라, 놈을 달아나게 두지 말라!” 참으로 그 천문 위에는 호국천왕이 방과 류와 구와 필 네 대원수를 거느리고 병기를 펼쳐 길을 막고 있었다. 요사한 놈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급히 머리를 돌려 죽기를 각오하고 짧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다시 손행자에게 맞섰다. 이 대성이 온 힘을 다해 쇠몽둥이를 굴리며 자세히 맞받아 살펴보니, 그 짧은 몽둥이는 한쪽 끝은 굵고 한쪽 끝은 가늘어 마치 봄철에 쓰는 절구의 공이처럼 생겼다. 큰 소리로 호령하며 꾸짖어 말했다. “이 몹쓸 짐승아! 네가 든 것이 무슨 병기이기에 감히 이 늙은 손오공과 맞서려 드느냐! 어서 빨리 항복하라, 이 몽둥이 한 방에 네 정수리를 부수지 않도록 하여라!” 그 요사한 놈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는 내 병기를 알지 못하는구나! 내 말을 들어 보아라. 선근은 한 덩이 양지고기 같은 옥이니 갈고 닦아 형상을 이룬 지 몇 해인지 헤아릴 수 없도다. 혼돈이 열릴 적에 내가 이미 얻었고, 홍몽이 갈라지던 판에 내가 앞섰느니라. 근원이 인간 세상의 물건과 비할 바 아니요,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 위에 있느니라. 한몸의 금빛이 네 모습에 화합하고 오행의 상서로운 기운이 삼원에 합하였네. 나를 따라 섬궁 안에 오래 살며 계수나무 궁전 곁에서 벗하였노라. 꽃을 사랑하다 세상 경계에 눈을 두었기에 천축국에 와 선녀를 사칭하였네. 그대와 함께 즐기려는 것 딴 뜻이 없고 당승과 짝하여 묵은 인연을 마치려 함이로다. 그런데 너는 어찌 마음을 속여 좋은 짝을 깨뜨리고 죽기로 덤벼들어 포악을 부리느냐! 이런 병기는 이름이 크니 네 금테 몽둥이보다도 크도다. 광한궁에서 약을 찧는 절구공이라 한 번 사람을 치면 목숨이 샘으로 돌아가느니라!” 손행자가 듣고 껄껄거리며 냉소하여 말했다. “좋은 몹쓸 짐승이로구나! 네가 이미 섬궁 안에 살면서도 이 늙은 손오공의 수단을 모른단 말이냐? 네가 감히 이곳에서 둘러대며 버티려 드느냐?” “어서 빨리 본모습을 드러내어 항복하라, 네 목숨은 살려 주마!” 그 요괴가 말했다. “나는 너를 알아보았노라.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필마온이지. 마땅히 너에게 양보할 터이로되, 남의 혼사를 깨뜨리는 것은 부모를 죽인 원수와 같으니 이 사정이 달갑지 않아 하늘을 속이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필마온 너를 때리려 하노라!” 그 대성이 무엇보다 성을 내는 것은 필마온 세 글자였다. 이 말을 듣자 가슴에서 큰 분노가 치밀어 쇠몽둥이를 들어 정면을 후려쳤다. 그 요사한 놈이 절구공이를 굴려 맞받으며 서천문 앞에서 이를 갈며 맞붙었다. 이 한바탕이란. 금테 몽둥이와 도약저, 두 가지 신선의 병기는 참으로 겨룰 만하구나. 저쪽은 혼인을 맺으러 인간 세상에 내려왔고 이쪽은 당승을 모시려 이곳에 이르렀네. 본래 국왕이 점잖지 못해 꽃을 사랑하다 요물을 불러들였네. 그 탓에 오늘 쓰라리게 다투며 양쪽이 다 고집을 부리누나. 부딪치고 들이받으며 승부를 걸고, 날카로운 말과 독설을 주고받네. 절구공이의 영웅됨이 세상에 드물거늘 쇠몽둥이의 신위로운 위풍이 도리어 더 아름답구나. 맑디맑은 금빛이 천문을 비추고 곱디고운 채색 안개가 땅끝까지 이어지네. 오가며 십여 합을 겨루니 요사한 놈의 힘이 약해져 당해 낼 길이 없구나. 그 요정은 또 손행자와 십여 합을 겨루다가 그의 몽둥이 세가 빈틈없이 몰아치는 것을 보고는 이기기 어렵다 여겨 헛되이 절구공이를 한 번 던지고는 몸을 한 번 흔들어 만 갈래 금빛을 일으키며 정남쪽으로 패주하였다. 대성이 뒤를 이어 추격하니 어느덧 큰 산 하나에 이르렀는데, 요정은 금빛을 거두고 산굴 속으로 파고들어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그는 또 놈이 몸을 숨겨 나라로 돌아가 당승을 몰래 해칠까 두려워 그 산의 생김새를 눈에 익혀 두고 구름머리를 돌려 곧장 나라 안으로 되돌아왔다. 이때는 이미 신시가 되어 있었다. 그 국왕이 바들바들 떨며 삼장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저 외쳤다. “성스러운 스님이시여, 저를 구해 주시옵소서!” 여러 후빈과 황후도 몹시 당황해하는데 그때 대성이 구름 속에서 내려오며 외쳤다. “스승님, 제가 왔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오공아, 거기 서라. 성스러운 용안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되느니라. 내가 묻겠다. 가짜 공주 일이 과연 어찌 되었느냐?” 손행자가 치작궁 밖에 서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말했다. “가짜 공주는 요사한 놈이옵니다. 처음에 저놈과 반나절을 겨루었는데 저놈이 저를 당해 내지 못하고 한 줄기 푸른 바람으로 변해 천문 위로 곧장 달아나기에, 제가 천신들에게 소리쳐 막게 하였나이다. 저놈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다시 저와 열 합 남짓 겨루다가 또 금빛으로 변해 정남쪽 산 하나로 패주하였사옵니다. 제가 급히 그 산까지 뒤쫓았으나 찾을 곳이 없어, 저놈이 이리로 와 스승님을 해칠까 두려워 특별히 되돌아왔나이다.” 국왕이 이 말을 듣고 당승을 붙잡으며 물었다. “가짜 공주가 요사한 놈이라면 나의 진짜 공주는 어디에 있단 말이오?” 손행자가 곧 대답하여 말했다. “제가 가짜 공주를 잡아 내면 폐하의 진짜 공주는 저절로 돌아오시옵니다.” 그 후비들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움을 풀며 하나씩 앞으로 나아가 절하고 간청하여 말했다. “바라옵건대 성스러운 스님께서 우리 진짜 공주를 구해 오시어 밝음과 어둠을 갈라 주옵소서. 그리되면 반드시 후히 보답하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이곳은 우리가 이야기할 자리가 아니옵니다. 청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저의 스승님과 함께 궁을 나와 편전으로 오시고, 중전마마 이하는 저마다 각자의 궁으로 돌아가시옵소서. 저의 사제 저팔계와 사오정을 불러 스승님을 보호하게 하시면 저는 요괴를 항복받으러 나서기 좋사옵니다. 하나는 안과 밖을 갈라 두는 것이요 둘은 저의 근심을 덜기 위함이니, 삼가 분명히 가려 내어 저의 한바탕 정성과 힘을 보이옵니다.” 국왕이 그 말을 좇아 거듭 고마워하며 당승과 손을 잡고 궁을 나와 편전에 이르렀고 뭇 후비는 저마다 궁으로 돌아갔다. 한편으론 소찬을 차리라 명하고 한편으론 저팔계와 사오정을 청하니 잠깐 사이에 두 사람이 벌써 당도하였다. 손행자가 앞일을 낱낱이 일러 주고는 두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스승을 보호하라 분부하였다. 이 대성이 근두운을 타고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니, 편전 앞 뭇 관리가 하나같이 하늘을 우러러 절을 올렸거니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손대성이 곧장 정남쪽 그 산으로 가서 뒤졌다. 알고 보니 그 요사한 놈은 싸움에 져 이 산에 닿아 굴 속으로 파고든 뒤 문을 돌로 막아 버리고는 겁에 질린 채 숨어 나오지 않았다. 손행자가 한참 찾았으나 아무 기척도 없자 마음이 초조하고 성이 나 결을 쥐고 진언을 외워 그 산의 토지와 산신을 불러내어 심문하였다. 잠시 뒤 두 신이 나타나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알지 못하옵니다, 알지 못하옵니다. 알았다면 멀리까지 마중 나갔사오리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손행자가 말했다. “너희를 때리지는 않겠다. 내 묻겠으니 이 산의 이름은 무엇이더냐?” 이곳에 요괴가 몇이나 있느냐? 있는 그대로 말하면 너희 죄를 용서해 주겠다.” 두 신이 아뢰었다. “대성이시여, 이 산은 모영산이라 하옵니다. 산에는 토끼 굴이 세 곳 있을 뿐이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요괴라곤 없사옵니다. 다섯 고리가 두른 복지이옵니다. 대성이 요괴를 찾으시려거든 서천으로 가는 길에나 있을 것이옵니다.” 손행자가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이 서천의 천축국에 이르러 보니 그 국왕의 공주 하나가 요괴에게 붙잡혀 거친 들에 버려졌고, 그놈이 공주 모습으로 변해 국왕을 속여 채루를 꾸미고 수놓은 공을 던지며 부마를 맞으려 하였느니라. 내가 당승을 모시고 그 누각 아래에 이르렀는데 그놈이 일부러 당승을 맞혀 짝을 삼고 참된 양기를 유인하여 빼앗으려 하였느니라. 내가 그것을 간파하고 궁중에서 몸을 드러내어 잡으려 하였더니 그놈이 옷과 장신구를 벗어 던지고 도약저라 하는 짧은 몽둥이를 들어 나와 반나절 겨루다가 푸른 바람이 되어 달아났느니라. 이 늙은 손오공에게 쫓겨 서천문에 이르러 다시 열 합 남짓 싸웠는데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고 또다시 금빛으로 변해 이곳까지 달아났거늘 어찌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두 신이 이 말을 듣고 곧 손행자를 이끌고 세 굴을 찾기 시작하였다. 산기슭 굴 곁을 살펴보니 풀 속의 토끼 몇 마리가 놀라 달아날 뿐이었다. 맨 꼭대기 굴을 살펴보니 큰 돌 두 개가 굴 입구를 막고 있었다. 토지가 아뢰었다. “이번 필시 요사한 놈이 급하게 파고든 곳이옵니다.” 손행자가 곧 쇠몽둥이로 그 돌을 걷어내자 그 요사한 놈이 과연 그 안에 숨어 있다가,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뛰어나오며 약 절구공이를 들어 내리쳤다. 손행자가 쇠몽둥이를 들어올려 받아 막으니 놀란 산신은 뒷걸음질 치고 토지는 급히 달아났다. 그 요사한 놈은 중얼중얼 투덜거리며 산신과 토지를 욕하여 말했다. “누가 너희더러 그놈을 이리로 이끌어 찾아오게 하였느냐!” 그놈은 버티며 쇠몽둥이를 맞받아 싸우면서 물러나 허공으로 내달렸다. 그야말로 위급한 판이었는데 그나마 날마저 저물어 갔다. 이 손행자는 독기를 띠며 독한 수를 써 단번에 몽둥이로 때려 죽이고 싶었으나, 문득 구소 높은 푸른 하늘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성이여, 손을 멈추게! 손을 멈추게! 몽둥이 아래 목숨을 살려 두게!” 손행자가 고개를 돌려 보니 이는 곧 태음성군이었으니, 뒤에 상아선자를 거느리고 채색 구름을 타고 눈앞에 내려와 있었다. 놀란 손행자가 쇠몽둥이를 거두고 몸을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 “노태음이시여, 어디서 오시는 길이옵니까? 이 늙은 손오공이 피신할 줄 모르고 실례하였나이다.” 태음성군이 말했다. “그대와 맞서 싸운 이 요사한 놈은 내 광한궁에서 검은 서리의 신선 약을 찧는 옥토이니라. 저놈이 사사로이 옥 관문과 금 자물쇠를 열고 궁을 빠져나온 지 이제 한 해니라. 내 헤아리니 저놈에게 지금 목숨을 잃을 재앙이 닥쳤기에 특별히 그 목숨을 건지러 왔노라. 바라건대 대성이여, 이 몸의 체면을 보아 저놈을 용서해 주게.” 손행자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송구하옵니다! 송구하옵니다! 그놈이 도약저를 부릴 줄 아는 까닭이 있었구려! 알고 보니 한 마리 옥토였구나! 노태음께서는 알지 못하시옵니다. 저놈이 천축국 국왕의 공주를 납치해 숨겨 두고는 거짓을 참된 형상에 합하여 우리 성스러운 스승님의 참된 양기를 깨뜨리려 하였사옵니다. 그 정상과 그 죄가 어찌 달갑겠나이까! 어찌 가벼이 용서하여 그냥 보내실 수 있겠나이까?” 태음성군이 말했다. “그대도 알지 못하노라. 그 국왕의 공주도 범인이 아니니라. 본래 섬궁 가운데 있던 소아였느니라. 십팔 년 전에 공주가 옥토를 한 번 때린 적이 있는데, 그 일로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며 하계로 내려왔노라. 한 점 영혼의 빛이 국왕의 정궁 황후 뱃속에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느니라. 이 옥토가 한 번 맞은 원한을 품고 지난해 광한궁을 빠져나와 소아를 거친 들에 내버렸느니라. 다만 당승과 짝하려 든 것은 잘못이니 이 죄는 참으로 벗어날 길이 없도다. 다행히 그대가 마음을 써서 참과 거짓을 알아보았고 그대 스승에게도 상처가 없었느니라. 간절히 바라노니 내 체면을 보아 그 죄를 용서해 주게. 내 저놈을 거두어 가리라.”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한 인과가 있다면 이 늙은 손오공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겠나이다. 다만 대성군께서 옥토를 거두어 가시면 그 국왕이 믿지 않을까 두렵사옵니다. 감히 번거로움을 끼치옵건대 태음성군께서 여러 선녀와 함께 옥토를 그곳으로 끌고 가 국왕 앞에서 분명히 증명해 주시옵소서. 하나는 이 늙은 손오공의 수단을 드러내는 것이요 둘은 그 소아가 내려온 연유를 밝히는 것이니, 그런 뒤 국왕으로 하여금 소아 공주의 몸을 거두어 오게 하시면 보답의 뜻이 드러나리이다.” 태음성군이 그 말을 믿고 손가락으로 요사한 놈을 가리키며 호령하여 말했다. “이 몹쓸 짐승아, 어서 참됨으로 돌아와 함께 오너라!” 옥토가 한 번 데굴데굴 구르자 본모습이 드러났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언청이에 뾰족한 이빨이요, 긴 귀에 성긴 수염이로다. 몸을 웅크리니 한 덩이 털이 옥 같고 발을 펴니 천 산을 달릴 제 굽이 나는 듯하구나. 곧은 코에 기름기 늘어져 서리꽃에 흰 가루 채운 듯 보드랍고, 붉게 비친 두 눈은 눈 위에 연지 찍은 듯 곱구나. 땅에 엎드리니 새하얀 한 무더기 흰 비단이요, 허리를 펴니 새하얀 한 벌 은실이로다. 몇 번이고 맑은 이슬 핥고 옥 같은 하늘 밝아 오니, 불로장생 약 찧는 옥 절구공이 기이하구나. 대성이 이를 보고 기뻐하며 구름빛을 밟고 인도하매 태음성군이 여러 상아선자를 거느리고 옥토를 데리고 천축국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마침 황혼이라 달이 오르는 것을 보며 성 가에 이르니 초루 위의 북 소리가 들려왔다. 그 국왕과 당승은 아직 편전 안에 있고 저팔계와 사오정과 뭇 관리가 모두 섬돌 아래에서 막 조회를 파하려 하는데, 문득 정남쪽 하늘에 한 조각 채색 노을이 대낮처럼 환히 빛났다. 무리가 고개를 들어 보는데 또 손대성이 목청을 돋우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천축국 폐하시여, 폐하의 황후와 후빈들을 나오게 하여 보시옵소서. 이 보당 아래 계신 이는 월궁의 태음성군이시오, 양쪽에 계신 선녀들은 달 속의 상아들이옵니다. 그리고 이 옥토야말로 댁의 가짜 공주니, 지금 참모습을 드러내었나이다.” 그 국왕이 급히 황후와 후빈, 궁아와 채녀들을 불러 모아 하늘을 향해 절을 올리게 하고는, 저 자신도 당승과 뭇 관리와 함께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며 절하였다. 도성 안 집집마다 향안을 차리지 않은 이가 하나도 없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염불을 외었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 저팔계가 욕심이 동하여 참지 못하고 허공으로 뛰어올라 예상선자를 껴안으며 말했다. “누님, 나와 그대는 옛날부터 아는 사이 아니오? 나와 함께 가서 좀 놀아 봅시다.” 손행자가 달려가 저팔계를 붙잡아 뺨을 두 대 치며 욕하여 말했다. “이 촌스럽고 몰염치한 멍청아! 이게 어떤 곳인데 감히 음심을 품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그저 한담하며 시름을 풀면서 노는 것뿐이오!” 그 태음성군이 선당을 돌리라 명하고 여러 상아와 함께 옥토를 거두어 곧장 월궁으로 올라가 버렸다. 손행자가 저팔계를 아래로 끌어당겨 땅에 떨어뜨렸다. 이 국왕은 편전에서 손행자에게 고마워하고는 또 앞의 내력을 물으며 말했다. “신승의 큰 법력으로 가짜 공주를 잡아 주시어 몹시 감사하오. 짐의 진짜 공주는 도대체 어느 곳에 있단 말이오?” 손행자가 말했다. “폐하의 그 진짜 공주도 범인의 몸이 아니옵니다. 바로 월궁의 소아선자이옵니다. 십팔 년 전에 그 선녀가 옥토를 한 번 때린 일로 인간 세상을 그리워하며 하계로 내려와 폐하의 정궁 뱃속에 잉태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사옵니다. 그 옥토가 옛 원한을 품고 있다가 지난해에 옥 관문과 금 자물쇠를 몰래 열고 내려와 소아를 거친 들판에 버리고는 제가 변신하여 폐하를 속였사옵니다. 이러한 인과는 태음성군께서 친히 제게 일러 주신 것이옵니다. 오늘 가짜를 물리쳤으니 내일 어가를 모시고 참된 이를 찾으러 가시옵소서.” 국왕이 이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이 부끄럽고 황망하여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치지 못하며 말했다. “내 딸! 나는 어려서 보위에 올라 성문조차 나가 본 적이 없거늘, 어디로 가서 너를 찾으란 말이냐!”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폐하의 공주는 지금 급고 포금사에서 미친 체하고 있나이다. 오늘은 우선들 흩어져 쉬시고, 날이 밝으면 진짜 공주를 데려다 드리겠나이다.” 뭇 관리가 또 엎드려 절하며 아뢰었다. “전하, 부디 마음을 넓게 가지시옵소서. 이 몇 분의 신승께서는 구름을 타고 안개를 밟으시는 신불이시오니 반드시 지나간 일과 앞일의 연유를 아실 것이옵니다. 내일 신승 네 분께 번거로움을 끼쳐 함께 가서 찾게 하시면 곧 자세한 내력을 아시게 되시옵니다.” 국왕이 그 말을 좇아 유춘정으로 모셔 가 재를 올리고 편히 쉬게 하였다. 이때는 이미 이경에 가까웠으니, 참으로 그러하였다. 놋쇠 시계 똑똑히 떨어지고 달빛 밝으며, 금 방울 딩동거리는 소리를 바람이 실어 가누나. 두견새 울어 봄이 반 가니, 진 꽃 갈 곳 없어 삼경이 가까웠구나. 어원엔 그네 그림자 쓸쓸하고, 푸른 하늘엔 은하수 비스듬히 걸렸네. 세 시장 여섯 거리에 나그네 끊기고, 하늘 가득 별들이 밤을 밝히누나. 그날 밤 저마다 잠자리에 들었거니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날 밤 국왕은 요사한 기운이 물러가자 갑자기 정신이 솟아올라, 오경 삼점에 다시 나와 조회에 임하였다. 조회를 마치고 당승 사부를 청해 공주 찾을 일을 의논하라 명하였다. 장로가 곧 따라와 예를 올리고 대성 세 사람도 함께 인사를 드렸다. 국왕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어제 공주 아이에 관해 아뢰었거니와 감히 신승들께 한 번 찾아 구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장로가 말했다. “빈승이 동쪽에서 오다가 날이 저물어 급고 포금사란 절을 보고 들어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였더니, 다행히 그 절 승려들이 후히 대접해 주었사옵니다. 그날 저녁 재를 마치고 달빛을 밟으며 한가로이 걷다가 포금의 옛 동산에 이르러 그 터를 둘러보는데, 문득 슬피 우는 소리가 귀에 들렸나이다. 그 연유를 물으니 본사에 백 살이 넘은 노승 하나가 있어 좌우를 물리치고 자세히 그 내력을 일러 주었사옵니다. 이르기를 ‘그 우는 소리는 지난해 늦봄의 일이었소. 내 성품을 밝히며 달을 대하는데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더니 비원하는 소리가 들려왔소. 자리에서 내려와 동산 터로 가 살펴보니 한 여자였소. 그 까닭을 물으니 그 여자가 이르되, 나는 천축국 국왕의 공주이오. 밤에 달을 구경하고 꽃을 즐기다가 바람에 불려 이곳까지 왔소, 하였소.’ 그 노승이 사람의 예법을 잘 알아 곧 공주를 외따른 방에 가두어 두고, 본사의 난폭한 승려가 더럽힐까 염려하여 다만 요괴를 내가 가두었다고만 일렀사옵니다. 공주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낮에 헛소리를 하며 차와 밥을 얻어먹고, 밤이 깊어 아무 없을 때는 부모를 생각하며 슬피 울었사옵니다. 그 노승도 나라에 와 몇 차례 들어 보았건만 공주가 궁에서 무탈한 것을 보고는 감히 소리 높여 아뢰지 못하였사옵니다. 그러다 내 제자에게 신통력이 있음을 보고 그 노승이 천 번 만 번 부탁하며 빈승에게 알아보라 하였나이다. 뜻밖에도 저놈이 본래 섬궁의 옥토가 요귀가 되어 거짓을 참된 형상에 합해 공주 모습으로 변하였고, 게다가 제 참된 양기를 깨뜨리려 하였사옵니다. 다행히 제 제자가 위풍을 떨쳐 참과 거짓을 알아보았으니 이제 저놈은 태음성군이 거두어 갔사옵니다. 어진 공주는 지금 포금사에서 미친 체하고 있나이다.” 국왕이 이 자세한 사연을 듣고 목청을 높여 통곡하였다. 이내 삼궁육원이 놀라 앞의 내력을 물어 왔으니 통곡하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한참 뒤에 국왕이 또 물었다. “포금사는 도성에서 얼마나 멀리 있단 말이오?” 삼장이 말했다. “예순 리 길밖에 되지 않사옵니다.” 국왕이 곧 전지하였다. “동궁과 서궁은 전각을 지키고 조정을 맡은 태사가 나라를 지키도록 하라. 짐이 정궁 황후와 뭇 관리, 네 분의 신승을 거느리고 그 절로 가 공주를 데려오겠노라.” 곧 수레를 갖추어 일행이 조정에서 나섰다. 보라, 그 손행자가 허공으로 뛰어올라 허리를 한 번 비틀더니 먼저 절에 당도하였다. 승려들이 황급히 꿇어앉아 맞으며 말했다. “영감님께서 가실 때는 여러 분과 걸어 가셨거늘 오늘은 어찌 하늘에서 내려오셨사옵니까?”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 그 늙은 스승이 어디 계시더냐? 어서 그이를 모셔 나오게 하여 향안을 차리고 어가를 맞이하여라. 천축국 국왕과 황후, 뭇 관리와 우리 스승님이 다 오셨느니라.” 승려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하면서도 곧 노승을 모셔 나오게 하니, 노승은 손행자를 보자 엎드려 절하며 물었다. “영감님, 공주 일은 어찌 되었사옵니까?” 손행자가 가짜 공주가 수놓은 공을 던져 당승과 짝하려 한 일과 쫓고 잡으며 겨룬 일, 그리고 태음성군이 옥토를 거두어 간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였다. 그 노승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절을 하자 손행자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절은 마시라, 절은 마시라. 어서 어가 맞을 채비를 하시라.” 그제야 승려들은 뒤방에 가둔 것이 여자임을 알고 하나하나 놀라고 기뻐하며 향안을 차려 산문 밖에 늘어놓고 가사를 입고 종과 북을 두드리며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어가가 벌써 당도하였으니, 참으로 그러하였다. 어지러이 흩날리는 상서로운 노을이 하늘에 향기를 가득 메우니, 한 채의 거친 산이 문득 상서로움에 싸였구나. 무지개 흘러 천 년간 강과 바다를 맑히고, 번개 감돌아 봄을 길게 이어 우와 탕을 능가하누나. 초목이 은혜를 입어 고운 빛을 더하고 들꽃은 윤택을 얻어 남은 향기를 품었구나. 예로부터 장자가 남긴 자취더니, 이제 밝은 임금이 보배로운 집에 내리시니 기쁘도다. 국왕이 산문 밖에 이르니 승려들이 가지런히 엎드려 맞이하여 절하는데 그 가운데 손행자가 서 있었다. 국왕이 말했다. “신승께서는 어찌 먼저 이르셨소?”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이 허리를 조금 비틀었더니 금세 왔거늘, 당신들은 어찌 반나절이나 걸었소?” 그 뒤를 이어 당승 일행이 모두 당도하였다. 장로가 어가를 인도해 뒤쪽 방 곁에 이르니 그 공주는 여전히 미친 체하고 있었다. 노승이 꿇어앉아 가리키며 아뢰었다. “이 방 안이 바로 지난해 바람에 불려 온 공주마마이옵니다.” 국왕이 곧 문을 열라 명하였다. 이내 쇠자물쇠를 따고 문을 열자 국왕과 황후가 공주를 알아보았다. 더러운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가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고생하는 내 딸아! 네가 어찌 이런 고초를 겪으며 이곳에서 죄받고 있느냐!” 참으로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정은 남다르기에 세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크게 울었다. 한바탕 운 뒤에 이별의 회포를 다 나누고 나서 곧 향기로운 물을 가져오라 명하여 공주에게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혀 수레에 태워 나라로 돌아왔다. 손행자가 또 국왕에게 두 손을 모아 읍하며 말했다. “이 늙은 손오공이 아뢸 일이 하나 더 있사옵니다.” 국왕이 답례하며 말했다. “신승께서 분부하실 일이 있다면 짐이 곧 따르겠소.” 손행자가 말했다. “이 산은 이름이 백각산이옵니다. 요즈음 지네가 정이 되어 밤마다 사람을 해쳐 오가는 나그네가 몹시 불편하옵니다. 제가 헤아리건대 지네는 오직 닭만이 항복받을 수 있으니, 아주 큰 수탉 천 마리를 가려 산에다 풀어 놓아 이 독충을 없애시옵소서. 그리고 이 산의 이름도 고쳐 놓으시옵소서. 봉하는 글월 한 통을 내려 이 절이 공주를 모셔 길러 준 은혜에 보답하는 셈으로 삼으시면 되옵니다.” 국왕이 몹시 기뻐하며 승낙하고 곧 관리를 도성에 보내 닭을 가져오게 하는 한편 산 이름을 보화산으로 고치고 공부에 재료를 마련하여 중수한 뒤 봉호를 내려 “칙건 보화산 급고 포금사”라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 노승을 “보국승관”에 봉하여 영원히 세습하게 하고 녹봉 서른여섯 섬을 내렸다. 승려들이 은혜에 감사하고 어가를 배웅하여 조정으로 돌아왔다. 공주가 궁에 들어가 모두와 만나 보고는 연회를 베풀어 시름을 풀고 기쁨을 축하하였다. 황후와 모자가 다시 머리를 맞대고 한자리에 모였으며 국왕과 신하들도 함께 기뻐하며 밤새 잔치를 즐겼거니와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튿날 아침 국왕이 전지하여 단청을 불러 신승 네 분의 모습을 그려 화이루에 모시고, 또 공주에게 새 단장을 갖추어 편전에 나와 당승 사부에게 구해 준 은혜를 갚게 하였다. 절을 마치고 당승이 국왕에게 작별을 고하며 서쪽으로 떠나려 하였으나 그 국왕이 어찌 보내 주려 하겠는가. 큰 잔치를 베풀어 닷새 엿새를 연달아 먹고 마시니 그야말로 그 멍청이만 신이 나서 배를 늘어놓고 실컷 먹었다. 국왕은 그들이 부처 향한 마음이 간절해 머물지 않음을 보고 금과 은 이백 덩이와 보배를 한 접시씩 가져다 바쳤으나 사부와 제자들은 털끝만큼도 받지 않았다. 난가를 갖추어 늙은 스승님을 수레에 오르게 하고 관리를 보내 멀리 배웅하게 하니 후비와 신민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하였다. 앞길에 이르러서는 또 승려들이 꿇어앉아 배웅하느라 서로 헤어지기를 아쉬워하였다. 손행자가 배웅 나온 자들이 돌아가려 하지 않자 결을 쥐고 손방향에 입으로 선기를 불어 어두운 바람을 일으켜 그들의 눈을 가리고서야 비로소 몸을 빼 떠날 수 있었다. 참으로 그러하였으니, 은혜 물결에 씻겨 본성을 되찾고, 금 바다 벗어나 참된 공을 깨달았도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6회 구원외희대고승(寇員外喜待高僧) · 당장로불탐부귀(唐長老不貪富貴) 색이란 본래 색이 아니요, 공이란 또한 공이 아니로다. 고요함과 떠들썩함, 말함과 침묵이 본래 한가지이니, 꿈속에서 어찌 수고로이 꿈을 말하리오. 쓰임 있는 가운데 쓰임 없음이 있고, 공 없는 가운데 공을 베푸는구나. 과일이 익으면 저절로 붉어지거늘, 어찌 닦는 법을 묻겠는가. 각설하고 당승 사부와 제자들이 법력을 부려 보금사 승려들을 막아 세웠다. 승려들은 검은 바람이 스친 뒤 그들 사부와 제자가 보이지 않자 살아 있는 부처가 강림한 줄로 여기고 머리를 조아리며 돌아갔으니,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그 사도들이 서쪽으로 가니 바로 봄이 저물고 여름이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날씨가 맑고 상쾌하며 못에는 부들과 연꽃이 돋아난다. 매실은 비 온 뒤에 익고 보리는 바람 속에서 여문다. 풀 향기로운 곳에 꽃이 지고 꾀꼬리는 늙어 버들가지가 가볍구나. 강 제비는 새끼를 데리고 날기를 익히고 산 꿩은 새끼에게 먹이를 물며 우네. 북두 남쪽에 해가 길어지니 만물이 광명을 드러내는구나. 아침에 밥 먹고 저녁에 묵으며 시내를 돌고 비탈을 찾는 일을 다 말할 길이 없구나. 그 평안한 길에서 보름을 지나니 앞에 또 성곽이 가까이 보였다. 삼장이 물었다. "제자들아, 이곳은 또 어느 곳이냐?" 손행자가 말했다. "모르겠나이다, 모르겠나이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이 길은 형님이 지나온 길인데 어찌 모른다 하시오! 무슨 괴이한 데가 있어 일부러 못 알아본 체하며 우리를 놀리는구려." 손행자가 말했다. "이 멍청한 놈이 사리를 모르는구나! 이 길을 몇 번 지나가긴 하였으나 그때는 구소 허공에서 구름을 타고 오고 갔을 뿐이니, 어느 때 이 땅에 내려온 적이 있었더냐? 일이 마음에 걸리지 않으니 알아볼 까닭도 없었느니라. 그런데 무슨 괴이함이 있어 너를 놀린단 말이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성곽 앞에 이르렀고, 삼장이 말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곧장 문 안으로 들어갔다. 긴 거리를 보니 처마 밑에 늙은이 둘이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삼장이 불렀다. "제자들아, 너희는 그 거리 한가운데 서서 고개를 숙이고 버릇없이 굴지 말라. 내가 저 처마 밑에 가서 지명을 물어보마." 손행자 등이 과연 그 말대로 서 있고, 장로가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모으며 불렀다. "노시주께서여, 빈승이 문안을 올리나이다." 그 두 늙은이는 그곳에서 한가롭게 흥하고 쇠함과 얻고 잃음, 누가 성인이고 누가 현인인지, 당시 영웅의 사업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말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큰 탄식이로다. 문득 문안의 소리가 들리자 예를 갖추며 말했다. "장로께서는 무슨 말씀이 있으시오?"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먼 곳에서 부처님을 뵙으러 오는 길에 막 이곳에 당도하였사온데 어느 지명인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어디 선을 즐기는 인가가 있어 공양 한 끼를 빌 수 있겠나이까?" 노인이 말했다. "내 사는 곳은 동태부이오, 부의 뒤에 한 고을이 있어 지령현이라 하오. 공양을 들려 하시면 빌러 다니실 것 없소. 이 패방을 지나 남북 거리에서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향한 집을 보시오. 범이 앉은 듯한 문루가 하나 있는데 바로 구원외의 집이오. 그 집 문 앞에는 만 명의 승려도 막지 않는다는 패가 걸려 있소. 그대 같은 먼 곳의 승려라면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가시오! 가시오! 가시오! 우리 이야기를 끊지 말아 주시오." 삼장이 사례하고 몸을 돌려 손행자에게 말했다. "이곳은 동태부 지령현이란다. 두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이 패방을 지나 남북 거리의 동쪽을 향한 범이 앉은 문루에 구원외의 집이 있고, 그 문 앞에는 만 명의 승려도 막지 않는다는 패가 있다'고 하시며, 그 집에 가서 공양을 들라 하셨느니라." 사오정이 말했다. "서방은 불가의 땅이니 참으로 승려에게 공양하는 이가 있구려. 이곳이 이미 부현이니 통행 문서를 검사받을 것 없이 우리가 공양을 좀 빌어먹고 곧 길을 가면 되겠소." 장로와 세 사람이 긴 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니, 또 저 저잣거리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겁을 먹으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바람에 둘러싸고 다투어 그들의 용모를 구경하였다. 장로는 입을 다물라 분부하고 다만 "버릇없이 굴지 말라! 버릇없이 굴지 말라!"고만 일렀다. 세 사람은 과연 고개를 숙이고 감히 쳐다보지 못하였다. 모퉁이를 돌자 과연 남북 큰 거리가 하나 보였다. 가는 도중에 범이 앉은 듯한 문루가 보였는데, 문 안쪽 그림자 벽에 큰 패 하나가 걸려 있고 거기에는 만 명의 승려도 막지 않는다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삼장이 말했다. "서방 불지에서는 어진 이나 어리석은 이나 다 속임이 없구나. 두 어르신이 말씀하실 때는 나도 믿지 못하였더니, 이곳에 이르니 과연 그 말씀대로로다." 저팔계는 촌스럽고 거칠어 곧장 들어가려 하였다. 손행자가 말했다. "멍청한 놈아, 잠시 서 있거라. 사람이 나와 묻거든 그때 가서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사오정이 말했다. "형님 말씀이 옳소. 자칫 안과 밖을 분별하지 못하여 시주를 번거롭게 할까 두렵소." 문 앞에서 말과 행리를 내려 놓았다. 잠시 후 머리센 하인 하나가 저울과 광주리를 들고 나왔다. 문득 그들을 보고는 놀라 그것들을 내동댕이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아뢰었다. "주인 어르신! 밖에 모습이 다른 승려 네 분이 오셨사옵니다!" 그 원외는 지팡이를 짚고 뜰에서 한가롭게 거닐며 줄곧 염불을 외우다가 아뢰는 소리를 듣고 곧 지팡이를 버리고 나와 맞이하며, 네 사람이 추하고 사나운 것도 두려워 않고 "어서 들어오시오, 어서 들어오시오." 하고 외쳤다. 삼장은 겸손하고 공손하게 모두 함께 들어갔다. 한 골목을 돌아 원외가 길을 인도하여 한 채의 집에 이르러 말했다. "이 윗쪽의 방들은 노야들을 모셔 대접하는 불당과 경당과 재당이오, 아랫쪽은 내 제자의 노소가 거처하는 곳이오." 삼장이 칭찬을 그치지 못하고 가사를 꺼내 입고 부처님께 절한 뒤 당에 올라가 살펴보니 이러하였다. 향 연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촛불이 빛나네. 온 당 안에는 비단이 뭉치고 꽃이 모였고, 사방에는 금이 펼쳐지고 채색이 찬란하구나. 붉은 칠을 한 걸이에는 자금종이 높이 걸렸고, 채색 칠을 한 촛대에는 꽃무늬 북이 마주 놓였네. 몇 쌍의 번기는 여덟 가지 보물로 수놓였고 천 분의 부처님은 모두 금을 입혔구나. 옛 구리로 된 화로와 옛 구리로 된 병, 조각 칠을 한 탁자와 조각 칠을 한 상자로다. 옛 구리 화로 안에는 침향과 단향이 늘 끊이지 않고, 옛 구리 병 속에는 매양 연꽃이 채색을 드러내네. 조각 칠한 탁자 위에는 오색 구름이 싱싱하고, 조각 칠한 상자 안에는 향 꽃잎이 쌓였구나. 유리잔에는 맑은 물이 고요히 맑고, 유리 등에는 향 기름이 환히 밝도다. 금으로 된 경쇠 한 소리, 울림이 한가롭고 여유롭구나. 참으로 속세의 티끌이 미치지 못하니 진기한 누각을 능가하고, 집안의 불당이 으뜸가는 사찰을 누르는구나. 장로가 손을 씻고 향을 사른 뒤 절을 마치고 몸을 돌려 원외에게 예를 갖추었다. 원외가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오! 경당으로 가서 뵙기를 청하오." 또 보니 이러하였다. 네모난 대와 세워 둔 찬장, 옥으로 된 상자와 금으로 된 함이로다. 네모난 대와 세워 둔 찬장에는 무수한 경문이 쌓여 있고, 옥 상자와 금 함에는 많은 간찰이 간직되었구나. 채색 칠을 한 탁자 위에는 종이와 먹과 붓과 벼루가 있으니 모두 정교하고 정결한 문방구요, 후춧가루를 바른 병풍 앞에는 글씨와 그림과 거문고와 바둑이 있어 모두 오묘하고 또 오묘한 참된 흥취로다. 옥처럼 가볍고 금을 띄우는 듯한 신선의 경쇠 하나가 놓였고, 바람을 걸치고 달을 두른 듯한 용의 수염 한 자루가 걸렸구나. 맑은 기운이 사람의 정신을 상쾌하게 하고, 재계한 마음이 스스로 도심이 한가함을 느끼네. 장로가 이곳에 이르러 막 예를 갖추려 하는데 원외가 또 부축하며 말했다. "불의를 벗으시기를 청하오." 삼장이 가사를 벗은 뒤에야 장로와 인사를 나누고, 손행자 세 사람도 불러 인사하게 하였으며, 말에게 여물을 주고 행리를 처마 밑에 둔 뒤에야 안부를 물었다. 삼장이 말했다. "빈승은 동토 대당 황제의 칙명을 받고 이 귀한 곳을 찾아 영산으로 올라가 부처님을 뵙고 참된 경을 구하는 자올시다. 존댁에서 승려를 공경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뵙고 공양 한 끼를 얻어 곧 떠나고자 하나이다." 원외가 얼굴에 기쁜 빛을 띠며 웃으며 말했다. "제자의 천한 이름은 구홍이오, 자는 대관이며 헛되이 예순네 살을 살았사옵니다. 마흔 살 적에 만 명의 승려에게 공양하기를 서원하였사온데 바야흐로 원만을 이루려 하는 참이올시다. 이제 공양한 지 스물네 해가 되었고 승려에게 공양한 장부가 한 권 있사옵니다. 요 며칠 한가하여 공양한 승려를 헤아려 보니 이미 구천구백구십육 분을 모셨사온데 오직 네 분이 모자라 원만을 이루지 못하였나이다. 그런데 오늘 하늘이 스승 네 분을 내려 보내시어 만 명의 승려 수를 채워 주셨사오니 존함을 남겨 주시옵소서. 한 달 남짓 너그럽게 머물러 주시면 원만을 이룬 뒤에 제자가 가마와 말을 갖추어 산으로 모시겠나이다. 이곳에서 영산까지 팔백 리뿐이오니 멀지도 않사옵니다." 삼장이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우선 그러마고 승낙하였으니,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크고 작은 하인 몇이 땔감을 나르고 물을 길으며 쌀과 밀가루와 채소를 가져다 공양을 장만하니, 원외의 마나님이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온 승려들이기에 이토록 서두르느냐?" 하인들이 말했다. "방금 고승 네 분이 오셨사온데 아버님께서 안부를 물으시니 동토 대당 황제께서 보내신 이들이라 하시며, 영산으로 가 부처 할아버지께 절하러 가는 길에 우리 집까지 왔으니 그 길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하였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분이라 하시며 어서 공양을 장만하여 모시라 분부하셨나이다." 그 늙은 부인도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계집종에게 이르렀다. "옷을 가져오너라, 내가 입고 가서 나도 좀 보아야겠다." 하인들이 말했다. "마나님, 한 분만 보실 만하고 저 세 분은 보실 수 없사옵니다. 생김새가 몹시 추하옵니다." 늙은 부인이 말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느니라. 생김새가 추하고 괴상하며 기이한 이는 반드시 하늘 사람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자니라. 어서 먼저 가서 네 아버님께 알리도록 하여라." 그 하인이 경당으로 달려가 원외에게 아뢰었다. "마나님께서 오셨사온데 동토에서 오신 노야를 뵙고자 하십니다." 삼장이 이 말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늙은 부인이 벌써 당 앞에 이르러, 당승의 용모가 훤칠하고 풍채가 영웅다움을 보았다. 얼굴을 돌려 손행자 세 사람의 모습이 보통이 아님을 보니, 하늘 사람이 내려온 줄 알면서도 몇 분은 두렵고 겁이 나 위를 향해 무릎 꿇고 절하였다. 삼장이 황급히 답례하며 말했다. "보살께서 잘못 공경하시느라 수고로우셨나이다." 늙은 부인이 원외에게 물으며 말했다. "스승 네 분이 어찌 나란히 앉지 않으시오?" 저팔계가 입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은 제자올시다." 아! 그의 이 한 소리가 깊은 산의 호랑이 울음소리와 같아서, 그 마나님은 더욱 겁을 먹었다. 이야기가 한창인데 또 하인 하나가 달려와 아뢰었다. "두 도련님도 오셨사옵니다." 삼장이 황급히 몸을 돌려 보니 원래 젊은 수재 두 사람이었다. 그 수재들이 경당으로 올라와 장로에게 몸을 던지듯 절을 올리니, 삼장은 놀라 급히 답례하였다. 원외가 앞으로 나서며 붙잡고 말했다. "이 아이들은 내 두 작은아들이올시다. 이름은 구량과 구동이라 하오. 서재에서 글을 읽고 막 돌아와 점심을 먹으러 오는 길에 스승께서 강림하셨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뵙는 것이오." 삼장이 기뻐하며 말했다. "어질구나! 어질구나! 참으로 문벌을 높이려면 모름지기 선을 행해야 하고, 자손을 훌륭하게 하려면 글 읽기에 달렸도다." 두 수재가 아버지에게 여쭈었다. "이 노야께서는 어디서 오셨사옵니까?" 원외가 웃으며 말했다. "오신 길이 머니라. 남섬부주 동토 대당 황제의 칙명을 받고 영산으로 가 부처 할아버지께 절을 올리고 경을 취하러 가는 이들이오." 수재가 말했다. "제가 사림광기를 보았사온데 천하에는 사대부주만 있다 하였사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서우하주라 하고, 또 동승신주라는 곳이 있사옵니다. 남섬부주에서 이곳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걸었을지 알 수 없사옵니다." 삼장이 웃으며 말했다. "빈승은 길에서 지체한 날이 많고 걸은 날이 적었느니라. 늘 독한 마귀와 사나운 요괴를 만나 온갖 고생을 겪었사온데, 내 세 제자가 보호해 준 덕에 열네 번의 겨울과 여름을 겪고서야 이 귀한 곳에 이를 수 있었나이다." 수재들이 이 말을 듣고 칭찬을 그치지 못하며 말했다. "참으로 신승이시로구나! 참으로 신승이시로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어린 하인 하나가 와서 청하였다. "공양 잔치가 차려졌사옵니다. 노야께서는 들어가 공양을 드시옵소서." 원외는 마나님과 아들들을 집 안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네 사람을 모시고 재당으로 들어가 공양을 들었다. 그곳의 차림새가 가지런하니 보라. 금칠한 탁자와 안상, 흑칠한 교의로다. 앞에는 오색 높은 과일이 있으니 모두 공교한 장인이 새로 만든 요즘 유행이오, 둘째 줄에는 다섯 접시의 작은 반찬, 셋째 줄에는 다섯 접시의 과일, 넷째 줄에는 다섯 개 큰 접시의 주전부리로다. 가지가지가 달콤하고 아름다우며 낱낱이 향기롭구나. 채소 국과 쌀밥, 찐 빵과 만두가 김이 펄펄 끓어오르니 모두 입에 맞고 배 채우기에 넉넉하도다. 일고여덟 명의 하인이 왕왕래래하며 받들고 서너 명의 요리사가 손을 놓지 않네. 국을 올리는 이는 국을 올리고 밥을 더하는 이는 밥을 더하며, 오고 가는 모습이 참으로 별이 달을 쫓아가듯 하구나. 이 저팔계는 한 입에 한 그릇씩, 마치 바람이 남은 구름을 걷어 가듯 하여 사부와 제자들이 한 끼를 마음껏 누렸다. 장로가 일어나 원외에게 공양을 사례하고 곧 길을 떠나려 하였다. 그 원외가 막아서며 말했다. "스승이시여, 마음 놓고 며칠만 머물러 주시옵소서. 속담에 시작은 쉬워도 마무리는 어렵다 하였나이다. 원만을 이루고 나서야 떠나 보낼 수 있사옵니다." 삼장이 그의 마음이 정성되고 간절함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머물렀다. 닷새에서 이레쯤 지나고서야 원외는 이 고장 응불승 스물네 명을 청해 원만 도량을 베풀었다. 승려들이 글을 짓고 불사를 마련하기를 사흘이나 나흘 걸려 좋은 시각을 택하여 불사를 열었는데, 그곳 풍경이 대당의 세상 인정과 같아 이러하였다. 큰 번기를 높이 달고 금빛 불상을 펼쳐 놓았으며, 일제히 촛불을 들고 향을 사르며 공양하네. 북을 치고 징을 두드리며 생황을 불고 피리를 부네. 구름 무늬 징과 가로로 부는 피리의 소리가 맑으니 모두 척공 자로 적은 음과 같구나. 한 차례 두드리고 한바탕 부니 소리 높여 한목소리로 경장을 펴네. 먼저 토지를 편안히 모시고, 다음으로 신장을 청하였도다. 문서를 발송하고 불상에 절을 올렸네. 공작경 한 부를 강론하니 구절마다 재앙의 장애를 없애고, 약사등 하나를 밝히니 불꽃이 환히 빛나네. 수참법에 절을 올려 원한의 허물을 풀고, 화엄경을 외워 비방의 죄를 없애는구나. 삼승의 묘한 법을 몹시 부지런히 닦으니 한두 사문이 모두 한가지로다. 이렇게 사흘 밤낮을 지내니 도량이 끝났다. 당승은 뢰음사를 생각하며 한마음으로 떠나려 하여 또 작별을 고하며 사례하였다. 원외가 말했다. "스승께서 작별을 서두르시니, 아마 요 며칠 불사가 바빠서 소홀히 대접한 것이 많아 섭섭하게 여기시는 뜻이 있으신 게지요." 삼장이 말했다. "존댁을 깊이 번거롭게 하였사온데 무엇으로 보답할지 모르거늘, 어찌 감히 섭섭하다 말하겠나이까! 다만 성군께서 나를 관문 밖까지 배웅하시며 언제 돌아오겠느냐 물으셨사온데 내가 잘못 답하여 삼 년이라 하였사옵니다. 뜻밖에도 길에서 지체하여 이제 십사 년이 되었나이다! 경을 얻을지도 모르는데 돌아가는 데 또 십이삼 년이 걸린다면 어찌 황제의 분부를 어기는 일이 아니겠나이까? 그 죄를 어찌 감당하겠나이까! 원로 원외께서는 빈승이 앞서 가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경을 얻어 돌아온 뒤에 다시 댁을 찾아와 오래도록 머물면 어찌 불가하겠나이까!" 저팔계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스승님은 참으로 남의 원도 들어주지 않으시고 인정에도 맞지 않으시는구려! 원로 원외께서는 대부호이시니 승려에게 공양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셨고 이제 원만을 이루었사온데, 머물러 달라는 정성도 지극하오니 한 해쯤 머물러도 무방할 터인데 어찌 그리 가시려만 하십니까? 이렇게 마련된 좋은 공양을 두고 남의 집에 가서 빌어먹으려 하시다니! 앞에 스승님의 무슨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이라도 있는 것이옵니까?" 장로가 버럭 소리치며 꾸짖었다. "이 어리석은 놈아, 먹을 생각만 하고 회향의 인연은 돌보지 않는구나! 바로 저 구유에서 먹고 위 속에서 가려움을 긁는 짐승이로다! 너희가 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탐하려 한다면, 내일은 나 홀로 가겠노라." 손행자는 스승이 얼굴빛을 바꾸는 것을 보고 곧 저팔계를 붙잡아 머리에 주먹을 한바탕 퍼부으며 욕했다. "이 멍청한 놈이 분별이 없어서 스승님이 우리까지 다 미워하게 만들었구나!"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잘 때렸소! 잘 때렸소! 이렇게 말도 안 하고 있어도 남의 미움을 사는데, 게다가 끼어들기까지 하였소!" 그 멍청이는 씩씩거리며 곁에 서서 다시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원외는 그들이 성을 내는 것을 보고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말했다. "스승이시여, 조급해하지 마시옵소서. 오늘은 우선 너그럽게 받아 주시옵고, 내일 내가 기와 북을 마련하고 이웃과 친척을 청하여 떠나보내겠나이다." 이야기가 한창인데 그 늙은 부인이 또 나와서 말했다. "스승이시여, 이미 저희 집에 오셨사온데 굳이 사양하실 것 없사옵니다. 오늘이 며칠째이옵니까?" 삼장이 말했다. "이미 보름이 되었나이다." 늙은 부인이 말했다. "이 보름은 우리 원외의 공덕으로 치시옵소서. 늙은 몸에도 바느질 품삯이 있사오니 그 또한 스승께 보름 동안 공양을 올리고자 하나이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동 형제가 나와 말했다. "노야 네 분이시여, 가친께서 스무 해 남짓 승려에게 공양하셨사온데 좋은 분을 만나 뵙지 못하셨거늘, 이제 원만을 이루어 네 분께서 강림하시니 초가집에 빛이 나나이다. 학생은 나이 어려 인과를 알지 못하옵니다만 늘 이런 말을 들었사옵니다. 지아비가 닦으면 지아비가 얻고, 지어미가 닦으면 지어미가 얻으며, 닦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하였나이다. 가친과 가모께서 각기 정성을 올리려 하시는 것은 저마다 인과를 얻고자 함이온데, 어찌 굳이 사양하시려 하시옵니까? 이 어리석은 형제도 아껴 모아 둔 푼돈이 조금 있사오니, 역시 노야들께 보름 동안 공양을 올려 드리고 나서야 배웅하고자 하나이다." 삼장이 말했다. "영당이신 노보살의 성의도 이미 감히 받지 못하거늘, 어찌 또 현곤옥의 두터운 사랑을 받겠나이까? 결단코 감히 받을 수 없나이다. 오늘 아침엔 반드시 떠나야 하옵니다.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황제께서 정하신 기한을 어겨 그 죄가 용서받지 못할 것이옵니다." 늙은 부인과 두 아들은 그가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을 보고 성이 나서 말했다. "좋은 뜻으로 머물라 하건만 저리 고집스레 가려 하니, 가려면 그냥 가도록 두시오! 무슨 말을 그리 자꾸 하시나이까!" 모자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팔계는 입을 참지 못하고 또 당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분수를 넘기지 마시옵소서. 속담에 머물러 주면 고맙다 하고 떠나면 원망을 산다 하였나이다. 우리가 우선 한 달쯤 머물러 그 모자의 원성을 이루어 드리면 될 것을, 어찌 그리 바삐 서두르십니까?" 당승이 또 버럭 소리를 지르며 꾸짖자, 그 멍청이는 스스로 제 입을 두어 번 때리며 "쯧! 쯧! 쯧!" 하고는 말했다. "말이 많다! 또 소리를 냈구나!" 손행자와 사오정이 곁에서 킥킥거리며 웃었다. 당승은 또 손행자를 나무라며 말했다. "네가 무얼 웃느냐?" 곧 결을 쥐고 긴고아주를 외우려 하니, 손행자는 놀라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스승님, 저는 웃지 않았사옵니다, 웃지 않았사옵니다! 천만부디 외우지 마시옵소서, 외우지 마시옵소서!" 원외는 또 그들이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보고 다시는 억지로 붙들지 못하고 다만 말했다. "스승이시여, 다투지 마시옵소서. 내일 아침에 배웅하겠나이다." 이에 경당에서 나와 서판에게 분부하여 간찰 백여 장을 써 이웃과 친척을 청해 내일 아침 당조의 스승이 서행하는 길을 배웅하라 하였고, 한편으로는 요리사에게 전별 연회를 차리게 하고, 맡은 이에게 채색 기 스무 쌍을 만들게 하며, 피리와 북 부는 악사 한 무리를 구하고, 남래사에서 승려 한 무리와 동악관에서 도사 한 무리를 청하되 내일 사시까지 모든 항목을 갖추라 하였다. 여러 집사가 명을 받아 떠나갔으며 오래지 않아 하늘이 또 어두워졌다. 저녁 공양을 들고는 저마다 잘 곳으로 돌아갔으니 바로 이러하였다. 몇 마리의 귀가하는 까마귀가 다른 마을로 지나가고, 누각 위의 종과 북 소리가 멀리서 들리네. 육가삼시의 인가가 고요하고 만호천문의 등불이 흐릿하구나.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꽃이 그림자를 희롱하고, 은하는 희미하게 별을 비추네. 두견새가 우는 곳에 밤이 이미 깊으니 하늘의 소리도 없고 대지 또한 고요하구나. 이때 삼경 사경 무렵 맡은 하인들이 모두 일찍 일어나 온갖 물건을 사다 마련하였다. 보라, 연회를 준비하느라 부엌이 바쁘고 채색 기를 마련하느라 당 앞이 떠들썩하며, 승려와 도사를 청하러 두 발이 뛰어다니고, 북과 피리를 부르며 급히 몸을 날리고, 간찰을 보내느라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달리고, 가마와 말을 준비하느라 위에서 부르고 아래에서 응하네. 이 밤새 떠들썩하여 사시께가 되자 모든 항목이 갖추어졌으니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었다. 각설하고 당승의 사도들이 일찍 일어나니, 또 그 무리가 공양을 올렸다. 장로는 행리를 수습하고 말을 갖추라 분부하였다. 멍청이는 떠난다는 말을 듣고 입을 삐쭉거리며 중얼중얼거리다가 할 수 없이 의발을 수습하여 어깨에 메는 지게를 챙겼다. 사오정은 말을 솔질하고 안장과 고삐를 얹어 대령하였다. 손행자는 아홉 고리 지팡이를 스승 손에 건네고, 자신은 통관문첩의 인경을 가슴 앞에 걸고는 모두 함께 떠나려 하였다. 원외는 또 그들을 뒤쪽 큰 사랑채로 청해 들였는데 그 안에 차려진 연회는 재당에서 대접하던 것보다 더욱 달랐다. 보라, 발과 장막이 높이 걸리고 병풍이 사방을 둘렀으며, 한가운데에는 수산복해의 그림 한 폭이 걸렸고 양쪽 벽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경치 네 폭이 나란히 걸렸구나. 용무늬 솥 안에서는 향기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까치 꼬리 모양 화로에서는 상서로운 기운이 생겨나네. 보는 접시마다 채색이 뭉쳐 있고 보물처럼 꾸민 과자가 낱낱이 선명하며, 벌여 놓은 탁자에는 금이 쌓이고 사자와 신선 모양의 사탕이 가지런히 놓였구나. 섬돌 아래에서는 북과 무용이 음률에 맞추고, 당 위에는 과일과 안주가 비단을 펼쳤네. 채소 국과 채소 밥이 몹시 맑고 기이하며 향기로운 술과 향기로운 차가 매우 아름답고 화려하구나. 비록 백성의 집이나 왕후의 저택에 못지않도다. 오직 한바탕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니 참으로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드는구나. 장로가 막 원외와 예를 나누는데 하인이 와서 아뢰었다. "손님들이 모두 오셨사옵니다." 청해 온 이들은 왼쪽 이웃, 오른쪽 이웃, 처남, 이모의 아들, 자형, 매부들이요, 또 같은 도를 닦는 재가 신자와 염불하는 선우들이 일제히 장로를 향해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치고 저마다 앉으니 당 아래에서는 거문고를 타고 생황을 불며 당 위에서는 현악과 노래에 술잔치가 벌어졌다. 이 성대한 잔치에서 저팔계가 마음을 두고 사오정에게 말했다. "아우야, 마음 놓고 배 터지게 좀 먹자. 구가를 떠나면 다시는 이토록 풍성한 것을 만나지 못할 걸세!"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시오! 속담에 진수성찬 온갖 맛도 한 번 배부르면 그만이라 하였소. 사사로운 길은 있어도 사사로운 배가 어디 있단 말이오!" 저팔계가 말했다. "자네도 참 형편없어! 형편없단 말이야! 내가 이 한 끼를 배 터지게 먹어 두면 사흘이 지나도 좀처럼 배고프지 않을 걸세." 손행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이 멍청한 놈아, 배 터지지 않게 하여라! 이제 길을 떠나야 하느니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해가 중천에 떴다. 장로가 윗자리에서 젓가락을 들고 게재경을 외웠다. 저팔계는 당황하여 밥을 더 가져다 한 입에 한 그릇씩 대여섯 그릇을 비우고, 만두와 권과 떡과 구운 과자를 가릴 것 없이 두 소매에 그득히 넣고서야 스승을 따라 일어났다. 장로가 원외에게 사례하고 또 여러 사람에게 사례한 뒤 함께 문을 나섰다. 보라, 문 밖에는 채색 기와 보개가 늘어서 있고 북 치는 이와 악사들이 있으며, 또 저 양편의 승려와 도사들이 막 당도하였다. 원외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늦으셨소. 스승께서는 떠나시기 급하시어 공양을 올릴 겨를이 없사오니, 돌아오실 때 사례하겠나이다." 여러 사람이 길을 양보하니 가마를 멘 이는 가마를 메고 말 탄 이는 말을 타고 걷는 이는 걸어가며, 모두 장로 네 사람이 앞서 가게 하였다.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기와 번기가 해를 가리며 인파가 모이고 수레와 말이 들어차 모두 구원외가 당승을 영송하는 광경을 보러 왔다. 이 한바탕의 부귀영화는 참으로 구슬로 두르고 비취로 감은 것을 능가하고, 참으로 비단 장막에 봄을 감춘 것에 못지않도다! 그 한 무리의 승려는 불곡 한 곡을 연주하고 그 한 무리의 도사는 현음 한 가락을 불며 모두 부성 밖까지 배웅해 나왔다. 십 리 길의 긴 정자에 이르자 또 밥과 술을 차려 놓고 잔을 들어 서로 마시고 작별하였다. 그 원외는 차마 헤어지지 못하여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스승이시여, 경을 얻어 돌아오시는 길에 반드시 저희 집에 들러 며칠 더 머물러 주시옵소서. 그래야 이 구홍의 마음이 채워지겠나이다." 삼장은 감격을 다 못하고 사례를 그치지 못하며 말했다. "내가 영산에 이르러 부처님을 뵙거든 맨 먼저 원외의 큰 덕을 아뢰겠나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문을 두드려 절을 올리겠나이다, 절을 올리겠나이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어느덧 이삼 리를 더 갔다. 장로가 간절히 작별을 고하니 원외는 큰 소리로 통곡하며 돌아갔다. 이는 바로 이러하였다. 서원 세워 승려에게 공양하니 묘각으로 돌아가고, 인연 없으면 부처 여래를 뵙지 못하도다. 우선 구원외가 십 리 길의 긴 정자까지 배웅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그 사도 네 사람은 사오십 리 땅을 걸어가니 하늘이 어두워지려 하였다. 장로가 말했다. "날이 저물었으니 어느 곳에서 묵어야 하겠느냐?" 저팔계가 짐을 메고 입을 삐쭉하며 말했다. "마련된 차와 밥을 두고 먹지 않고 서늘한 기와집을 두고 묵지 않으시며, 무슨 길을 그리 걸으려 하십니까. 마치 상여를 쫓아 넋을 좇는 것 같구려! 이제 날이 저물었는데 만일 비라도 내리면 어찌하시려구요!" 삼장이 꾸짖었다. "이 망할 놈의 짐승아, 또 불평을 늘어놓는구나! 속담에 장안이 아무리 좋다 한들 오래 머물 집은 아니라 하였느니라. 우리가 인연이 있어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참된 경을 얻거든, 그때 대당으로 돌아가 주공께 아뢴 뒤 저 어주방의 밥을 몇 해든 실컷 먹게 하여, 이 짐승을 배 터뜨려 죽여 배부른 귀신을 만들어 주마!" 그 멍청이는 히죽히죽 속으로 웃으며 다시는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손행자가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큰길 곁에 방 몇 채가 있어 급히 스승을 청하였다. "저기서 묵으시지요, 저기서 묵으시지요." 장로가 앞으로 가 보니 무너져 내린 패방이 하나 있고 그 위에 낡은 편액이 걸려 있는데, 편액에는 빛이 바래고 먼지가 쌓인 큰 글자 넷이 있으니 바로 화광행원이었다. 장로가 말에서 내려 말했다. "화광보살은 화염오광불의 제자였느니라. 독한 불의 귀신 왕을 쳐서 없앤 일로 벼슬이 강등되어 오현영관으로 화하였으니, 이곳에는 필시 사당을 지키는 이가 있으리라." 마침내 함께 들어가 보니 처마 밑의 방은 모두 무너졌고 담장이며 벽이 다 기울어졌으며, 사람의 자취는 아예 보이지 않고 다만 잡초와 덤불만 무성하였다. 몸을 빼어 나오려 하는데 뜻밖에도 하늘에 검은 구름이 머리를 덮고 큰비가 쏟아졌다. 하는 수 없이 그 무너진 집 아래에서 비바람을 가릴 만한 곳을 골라 몸을 피하였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감히 큰 소리를 내지 못하였으니, 요사한 마귀가 알아챌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앉은 이는 앉은 대로 선 이는 선 대로 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 참으로 그러하였도다. 태극에 막힘이 생기고 즐거움에 슬픔이 따르누나. 날이 밝으면 앞으로 어찌될지 알 수 없거니와,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7회 금수외호조마독(金酬外護遭魔毒) · 성현유혼구본원(聖顯幽魂救本原) 각설하고 당승 일행이 화광 행원의 부서진 집 안에서 밤비를 견디며 몸을 의탁하고 있는 사정은 잠시 접어 두자. 한편 동태부 지령현 성 안에는 한 떼의 흉악한 무리가 있었는데, 기생집을 드나들고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바람에 가산을 모조리 탕진하여 살아갈 방도가 막막해지자 십수 명이 한패가 되어 도둑질을 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본성에서 어느 집이 첫째가는 부자이고 어느 집이 둘째가는 부잔가를 헤아려 보고 금은을 좀 약탈해 쓸 요량이었다. 그중 한 놈이 말했다. "수소문할 것도 없고 꾀를 부릴 것도 없어. 오늘 그 당나라 중들을 배웅한 구원외네 집만 한 데가 없지. 우리가 이 밤비를 틈타거든 거리 사람들도 방비하지 않고 야경을 도는 순라꾼들도 돌지 않을 터이니, 이 틈에 손을 써서 저 자본을 털어 내고 다시 기생집과 노름판에서 실컷 놀아 보세. 이 어찌 멋진 일이 아니겠소!" 도둑놈들은 기뻐하며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는 저마다 짧은 칼과 쇠가시와 갈고리 몽둥이와 작대기와 삼 노끈과 횃불을 챙겨 들고 비를 맞으며 몰려와 구가의 대문을 부수고 함성을 지르며 쳐들어갔다. 그 집안의 큰아이 작은아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놀라 깨끗하게 숨어 버렸다. 할멈은 침상 밑으로 숨었고 늙은이는 문 뒤로 몸을 피했으며, 구량과 구동과 데리고 있던 친척의 자식 몇은 모두 벌벌 떨며 사방으로 흩어져 목숨이나 건지려고 달아났다. 그 도둑 떼는 칼을 쥐고 불을 밝혀 집 안의 궤짝과 상자를 모조리 열어 제치고 금은 보배와 패물과 의복과 그릇과 살림살이를 남김없이 뒤져 훔쳐 갔다. 구원외는 차마 아까워 견디지 못하여 목숨을 걸고 문 밖으로 뛰어나가 도둑들 앞에서 애걸하며 말했다. "여러 대왕 나으리, 쓰실 만큼 가져가시면 그만이옵고, 이 늙은이가 입고 묻힐 옷 몇 가지만 남겨 주시옵소서." 그 강도들이 어찌 사정을 들어 주겠는가, 달려들어 구원외의 급소를 걷어차 땅에 넘어뜨리니 가련하게도 세 혼은 아득히 저승으로 가 버리고 일곱 넋은 유유히 이승 사람과 작별하였다. 도둑들은 손에 넣고서 구가를 빠져나와 성벽 밑에서 밧줄 사다리를 만들어 성벽을 타고 하나씩 내려갔으며, 비를 맞으며 밤을 새워 서쪽으로 내달았다. 구가의 하인들은 도둑이 물러간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머리를 내밀었다. 살펴보니 늙은 주인이 이미 땅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으므로 소리를 높여 울며 말했다. "하늘이여! 주인 어른이 맞아 돌아가셨소!" 모두 시신에 엎드려 슬피 울며 구슬프게 흐느꼈다. 사경이 다 되어 갈 무렵, 그 할멈은 당승 일행이 자기의 공양을 받아 주지 않은 것을 원망스럽게 여겨, 화려하고 떠들썸하게 배웅한 탓에 이 재앙을 불러들였다고 생각하고는 시기하여 해치려는 마음을 품어 그 네 사람을 함정에 빠뜨릴 궁리를 하였다. 할멈은 구량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얘야, 그만 울어라. 네 애비는 오늘도 중을 공양하고 내일도 중을 공양하더니, 어찌 오늘 원만하게 공양을 마친답시고 그 목숨을 앗아 갈 중들을 공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그 동생이 말했다. "어머니, 그게 어찌 목숨을 앗아 간 중들이란 말이오?" 할멈이 말했다. "도둑의 기세가 사나워 방 안으로 쳐들어왔을 때 나는 침상 밑에 숨어서 벌벌 떨면서 등불 켠 쪽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누군지 아느냐? 불을 붙인 자는 당승이요, 칼을 든 자는 저팔계요, 금은을 나른 자는 사오정이요, 네 애비를 때려 죽인 자는 손행자였다." 두 아들은 그 말을 듣고 참말로 여겨 말했다. "어머니께서 분명히 보셨다니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 네 사람이 우리 집에서 보름을 머물며 집의 대문과 담장과 창살과 골목길을 모조리 익혀 두었으니, 재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이 밤비를 틈타 다시 우리 집으로 와서 재물을 약탈하고 아버지까지 해친 것이니 이 정이 얼마나 독하단 말이오! 날이 밝거든 관아로 가서 잃은 물건을 적은 고소장을 올려 이름을 박아 그들을 고발하세." 구동이 말했다. "고소장을 어떻게 쓰란 말이오?" 구량이 말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쓰면 되지." 그리고는 이렇게 적었다. "당승이 불을 붙이고 팔계가 사람 죽이를 외쳤다. 사오정이 금은을 훔쳐 가고 손행자가 내 아버지를 때려 죽였다." 온 집안이 떠들썩하게 시끄러운데 어느새 날이 밝았다. 한편으로는 친척을 청해 관을 마련하고, 한편으로는 구량 형제가 관아로 달려가 소장을 올렸다. 그런데 이 동태부 자사 정당 어른은 평생 마음이 곧고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착하였다. 젊어서는 눈 쌓인 책상에서 글을 읽었고 이른 나이에 금란전에서 책을 대었다. 늘 충의의 마음을 품고 언제나 인자한 생각을 간절히 하였다. 이름은 푸른 역사에 천 년을 퍼져 예의 어진 태수 공수와 황패가 다시 나타난 듯하고, 소리는 관청에 울려 만고에 전하니 탁무와 노공이 거듭 태어난 듯하였다. 이때 관청에 앉아 모든 사무를 처리하고 나서 고소장을 받는 패를 내걸게 하였다. 구량 형제가 그 패를 안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크게 외쳤다. "나으리, 저희는 강도가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다치게 하고 목숨을 해친 중대한 일로 고발하러 왔나이다." 자사가 소장을 받아 들고 이러저러하고 저러저러한 사정을 훑어보고는 물었다. "어제 어떤 이가 전하기를, 네 집에서 중 공양을 원만히 마쳐 동쪽 당나라에서 온 나한이라는 고승 네 분을 공양하고, 온 거리에서 북과 풍악을 울리며 화려하게 배웅했다 하더니, 어찌하여 이런 일이 생겼느냐?" 구량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나으리, 소인의 아비 구홍은 스물네 해 동안 중을 공양하였는데, 이 중 네 분이 먼 곳에서 온 덕에 꼭 만 명의 중을 채우게 되어 원만한 공양을 베풀고 보름을 묵게 하였나이다. 그런데 그들이 길과 문과 창을 모조리 익혀 두었나이다. 낮에 배웅하여 내보내고 그날 밤에 되돌아와, 캄캄한 밤과 비바람을 타서 횃불을 밝히고 몽둥이를 들고 방 안으로 쳐들어와 금은 보배와 의복과 패물을 약탈하고는 아비를 땅바닥에 때려 죽였나이다. 부디 나으리께서는 이 백성을 위해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자사는 그 말을 듣고 곧 기마와 보졸의 빠른 포졸과 민장의 인역 도합 백오십 명을 뽑아 저마다 날카로운 무기를 들리고 서문을 나가 곧장 당승 사부도를 뒤쫓게 하였다. 각설하고 그 사부들은 화광 행원의 부서진 처마 아래에서 날이 밝기를 버티다가야 비로소 문을 나서 서쪽을 향해 길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그 강도들은 그날 밤 구가를 털고 성 밖으로 빠져나와 역시 서쪽 큰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날이 밝자 화광 행원 서쪽으로 스무 리쯤 지나간 산골짜기에 숨어 금은 같은 물건을 나누고 있었다. 나누기를 다 마치지 못했을 때 홀연 당승 사부도가 길을 따라 오는 것이 보이니, 도둑들의 마음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아 당승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어제 배웅을 받던 중들이 오지 않소!" 그리고 무리들이 웃으며 말했다. "잘 왔소! 잘 왔단 말이오! 우리도 이런 천리 없는 장사를 하는 처지니, 이 중놈들이 길 따라 오는 데다 구가에도 오래 있었으니 몸에 지닌 것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소. 우리가 아예 길을 막아 노잣돈을 빼앗고 흰 말까지 뺏어 나누어 가지면 마음이 흡족한 일이 아니겠소?" 도둑들은 무기를 들고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큰길로 뛰어올라가 한 줄로 늘어서서 외쳤다. "중놈들, 가만 있어라! 어서 길 통행세를 내놓아라, 그러면 목숨은 살려 주마! 이빨로 '아니'라는 소리를 반 마디라도 내뱉으면 칼로 한 놈씩 찍어 절대로 살려 두지 않으리라!" 당승은 말 위에서 와들와들 떨었고 사오정과 저팔계도 겁이 나서 행자에게 말했다. "어쩌나! 어쩌나! 반나절이나 비 오는 밤을 견뎌 냈는데 또 강도를 만나 길이 끊겼으니 참으로 이른바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고 하는구려!"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걱정 마시고 동생들도 근심 마오. 이 늙은 손이 가서 한번 물어 보겠네." 대성은 호랑이 가죽 치마를 여미고 비단 저고리를 털어 내고는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말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시는 분들이오?" 도둑놈이 호통치며 말했다. "이 놈이 죽을 줄 모르고 감히 내게 묻는구나! 네 이마 아래 눈이 달렸으면 나를 대왕 나으리로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어서 길 통행세를 내놓아라, 그러면 지나가게 해 주마!" 행자가 그 말을 듣고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말했다. "원래 길을 끊는 노상 강도들이셨구려!" 도둑놈이 성을 내며 외쳤다. "죽여라!" 행자가 일부러 겁먹은 체하며 말했다. "대왕 나으리! 대왕 나으리! 저는 시골에서 온 중이라 말주변이 없사오니, 실례가 되었더라도 노여워 마시옵소서, 노여워 마시옵소서! 길 통행세를 원하신다면 저 세 사람에게는 묻지 마시고 저한테만 물으시옵소서. 제가 장부를 맡은 자라 경을 읽은 돈과 시주받은 돈이며 어디서 동냥하고 보시받은 것이건 모두 보퉁이 속에 들어 있어 출납을 전부 제가 맡고 있사옵니다. 저 말 탄 이가 비록 제 스승이오나 그는 경만 읽을 줄 알고 다른 일은 상관하지 않아 재물과 여색을 모두 잊어 털끝만큼도 없사옵니다. 저 검은 얼굴을 한 이는 제가 반길에서 거둔 젊은이인데 말이나 기를 줄 압니다. 저 긴 주둥이를 한 이는 제가 고용한 일꾼인데 짐이나 질 줄 압니다. 세 사람을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제가 노잣돈과 의발을 남김없이 바치겠나이다." 도둑들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이 중은 참으로 어수룩한 사람이로구나. 그렇다면 네 목숨은 살려 줄 테니 저 세 놈에게 짐을 내려놓게 하고 지나가라." 행자가 고개를 돌려 눈짓을 하자 사오정은 곧 짐 보퉁이를 내려놓고 스승님의 말고삐를 잡고 저팔계와 함께 곧장 서쪽으로 걸어갔다. 행자는 고개를 숙여 보퉁이를 열고 땅바닥의 흙을 움켜쥐어 위로 확 뿌리며 주문을 외웠으니, 이는 곧 몸을 묶는 정신법이었다. 행자가 "멈춰라!" 하고 크게 외치니 그 도둑떼 서른 명 남짓이 저마다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 채 두 손을 벌리고 꼿꼿하게 서서 말도 못 하고 몸도 움직이지 못하였다. 행자가 길 어귀로 뛰어나가 외쳤다. "스승님, 돌아오시오! 돌아오시오!" 저팔계가 당황하며 말했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형님이 우리를 불어 버렸단 말이야! 형님 몸에도 돈이 없고 보퉁이에도 금은이 없으니, 틀림없이 스승님께 말을 달라는 것이고 우리더러는 옷을 벗으란 것이지." 사오정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형님, 함부로 말 마오! 큰형님은 대단한 분이라 지난번 그토록 독한 마귀와 사나운 괴물도 거둬들였는데 이런 털보 도둇놈 몇을 두려워하겠소? 저기서 부르는 데는 틀림없이 할 말이 있을 테니 어서 돌아가 보세." 장로는 그 말을 듣고 흔쾌히 말을 돌려 곁으로 돌아와 외쳤다. "오공아, 무슨 일로 돌아오라 하느냐?"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이 도둑놈들이 어찌 되었는지 보아라." 저팔계가 앞으로 다가가 그들을 떠밀며 외쳤다. "이 도둑놈아, 너희는 어째서 꿈쩍도 않느냐?" 그 도둑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말 한마디 없이 가만히 있었다. 저팔계가 말했다. "참으로 벙어리가 되었구나!"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 손이 정신법을 써서 묶어 둔 것이네." 저팔계가 말했다. "몸은 묶었어도 입은 묶지 않았을 터인데 어찌하여 소리 한마디도 내지 않소?" 행자가 말했다. "스승님은 말에서 내려 앉으시지요. 속담에 잡는 데는 실수가 있어도 놓는 데는 실수가 없다 하였네. 동생들, 너희는 도둑놈들을 모조리 넘어뜨려 묶고 자백서를 받아 보세, 이놈들이 초보 강도인지 노련한 강도인지." 사오정이 말했다. "노끈이 없구먼." 행자가 곧 털을 몇 가닥 뽑아 입김을 불어넣어 서른 가닥의 노끈으로 만들고는 일제히 손을 놀려 도둑들을 넘어뜨려 네 발을 모아 꽁꽁 묶은 뒤 다시 주문을 풀어 외우니 그 도둑떼가 차츰 정신을 차렸다. 행자는 당승을 윗자리에 앉히고 나머지 세 사람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호통쳤다. "이 털보 도둑놈들아, 너희는 모두 몇 명이냐? 장사를 몇 해나 하였느냐? 털어 간 물건이 얼마나 되느냐?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인 일이 있느냐? 초범이냐, 재범이냐, 삼범이냐?" 도둑들이 입을 열어 말했다. "나으리, 살려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소리 지르지 마라! 사실대로 불어라!" 도둑들이 말했다. "나으리, 저희는 본래 도둑질을 업으로 삼던 자들이 아니옵니다. 모두 좋은 집안의 자제들이었사옵니다. 다만 재주가 없어 술을 마시고 돈내기를 하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노는 바람에 조상이 물려준 가업을 모조리 탕진하여 한동안 할 일이 없고 쓸 돈도 없게 되었사옵니다. 동태부 성 안의 구원외 댁이 재산이 넉넉하다는 것을 알아내고 어제 패를 이루어 그날 밤 캄캄한 비를 타고 곧장 털러 갔사옵니다. 털어 낸 금은과 의복이 조금 있는데 이 길 북쪽 산골짜기에서 막 나누고 있는데 홀연 나으리들이 오시는 것이 보였사옵니다. 그중에 구원외가 배웅하던 분들을 알아보는 자가 있어 몸에 틀림없이 물건이 있으리라 여겼고, 또 짐이 무겁고 흰 말이 빨리 달리는 것을 보고 인심이 부족하여 또 길을 막아섰사옵니다. 뜻밖에도 나으리들께 큰 신통과 법력이 있으시어 저희를 단단히 묶어 두셨사옵니다. 부디 나으리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그 약탈한 재물을 거두어 가시고 저희의 목숨만 살려 주시옵소서!" 삼장은 구가에서 털린 재물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황급히 일어서서 말했다. "오공아, 구원외 영감은 몹시 선한 분인데 어찌하여 이런 재앙을 만났단 말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를 떠나보내느라고 저리 채장과 꽃 당기를 치고 북과 풍악을 크게 벌여 사람들의 눈을 놀라게 한 탓에 이 무리의 건달들이 그 집에 손을 댄 것이지요. 이제 또 우리를 만나는 바람에 저 많은 금은과 의복을 빼앗게 되었구려." 삼장이 말했다. "우리가 보름이나 폐를 끼쳤으니 두터운 은혜에 감격하여 갚을 길이 없거늘, 이 재물을 그 집에 지켜 주어 돌려보내는 것만 못하겠느냐?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행자는 그 말에 따라 곧 저팔계와 사오정과 함께 산골짜기로 가서 그 장물들을 거두어 정리하여 말에 실었다. 또 저팔계에게 금은 한 짐을 메게 하고 사오정에게 자기 짐을 메게 하였다. 행자는 이 강도떼를 몽둥이로 모조리 때려 죽이려 하였으나, 당승이 사람의 목숨을 해쳤다고 꾸짖을까 두려워 몸을 한번 떨어 털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강도들은 손발이 풀려 일어나서는 저마다 풀숲으로 기어들어 목숨을 건져 달아났다. 이에 당승은 걸음을 돌려 재물을 원외에게 돌려주러 갔다. 이 한 번의 걸음이 마치 나방이 불로 날아드는 격이라 도리어 그 화를 입게 되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은혜를 은혜로 갚는 일은 인간 세상에 드물고, 도리어 은혜와 자비를 원수로 바꾸는구나. 물에 빠진 이를 건져 주면 끝내 허물이 생기나니, 세 번 생각하고 일을 행하면 근심이 없으리라. 삼장 사부도가 금은과 의복을 들고 되돌아가며 한창 걷고 있는데 홀연 창과 칼이 빽빽하게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삼장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제자들아, 저 무기들이 떼지어 다가오는 것을 보아라, 이게 무슨 조짐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재앙이다, 재앙이야! 저건 우리가 놓아준 그 강도들이라, 무기를 챙기고 사람들을 더 끌어모아 길을 돌아 우리와 싸우러 온 것이지!"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님, 저것은 도둑의 기세가 아니오. 큰형님, 자세히 살펴보시오." 행자가 사오정에게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의 재난 별이 또 이르렀구나, 이는 틀림없이 관군이 도둑을 잡으러 오는 뜻이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병졸들이 곁으로 다가와 원형 진을 펼쳐 그 사부들을 에워싸고 말했다. "이 중놈들아, 남의 집 물건을 털어 놓고도 여기서 느긋하게 활보하고 있구나!" 일제히 달려들어 먼저 당승을 말에서 끌어내려 노끈으로 묶고는 행자 세 사람도 함께 묶어 장대를 꿰어 두 사람이 하나씩 메고, 말을 몰고 짐을 빼앗아 곧장 부성으로 돌아갔다. 보라, 그 모습이 어떠한가. 당삼장은 벌벌 떨며 눈물만 뚝뚝 흘리고 말을 잇지 못하고, 저팔계는 중얼중얼 속으로 원망하며, 사오정은 입을 삐죽거리며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손행자는 싱글싱글 웃으며 수단을 쓸 궁리를 하였다. 병졸들이 떼지어 메고 가는 바람에 잠깐 사이에 성 안에 이르러 곧장 관청으로 압송하여 보고하였다. "나으리, 민쾌 인원들이 강도를 사로잡아 왔나이다." 자사는 당상에 꼿꼿이 앉아 민쾌들을 상으로 격려하고 도둑의 장물을 살펴보고는 구가에서 가져가게 한 뒤, 삼장 일행을 청사 앞으로 끌어다 놓고 물었다. "너희 이 무리의 중들은 입으로는 동쪽 먼 곳에서 와 서천의 부처를 뵈러 간다 하더니, 원래는 방도를 꾀하여 문로를 엿보고 집을 털고 약탈하는 도둑이었느니라!" 삼장이 말했다. "대감, 용납하시고 아뢰겠나이다. 가난한 중은 참으로 도둑이 아니옵고 감히 속일 생각도 없사옵니다. 몸에 지닌 통행 문서가 있사오니 대조해 보시옵소서. 다만 구원외 댁에서 반달이나 저희에게 공양을 베풀어 정이 깊고 뜻이 두터웠사옵니다. 저희가 길에서 강도를 만나 구가에서 털린 재물을 되찾아 구가에 돌려주고 은혜를 갚으러 가던 길에 민쾌 인원들에게 붙잡혀 도둑이라 오해를 받았사옵니다. 실로 도둑이 아니옵니다. 부디 대감께서는 자세히 살펴 주시옵소서." 자사가 말했다. "이 놈이 관군에게 붙잡히고도 교묘한 말로 은혜를 갚았다 하느니라. 길에서 강도를 만났다면 어찌하여 그놈들을 함께 잡아 관가에 알려 은혜를 갚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너희 네 사람뿐이란 말이냐! 보아라! 구량이 잃은 물건의 고소장을 올려 이름을 박아 너희를 고발하였거늘, 네가 어찌 감히 발뺌을 하느냐?" 삼장이 그 말을 듣고는 마치 큰 바다에 배가 삶기는 듯 넋이 날아가고 혼이 빠져 외쳤다. "오공아, 네가 어찌 나서서 변론하지 않느냐!" 행자가 말했다. "장물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무슨 변론이 필요하오!" 자사가 말했다. "옳도다! 장물과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감히 잡아떼느냐!" 자사가 아전들에게 외쳤다. "머리를 조이는 고리를 가져와 이 중놈의 민머리를 한번 조여 보고 나서 때려라!" 행자가 당황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스승님께 마땅히 이런 고난이 있다 하나 그래도 몹시 고통받게 할 수는 없다." 그가 아전들이 노끈을 정리하여 머리 고리를 엮는 것을 보고 곧 입을 열어 말했다. "대감, 저 중은 조이지 마시옵소서. 어젯밤 구가를 턴 것도 불을 붙인 이도 저요 칼을 든 이도 저요 재물을 턴 이도 저요 사람을 죽인 이도 저옵니다. 제가 바로 두목이오니 때리려거든 저만 때리시옵소서, 그들과는 상관이 없사옵니다. 다만 저를 놓아 주지만 마시옵소서." 자사가 그 말을 듣고 곧 명하였다. "먼저 이놈을 조여라." 아전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행자에게 머리 고리를 씌우고 바싹 당겨 한번 조이자 툭 하고 노끈이 끊어졌다. 다시 엮어 조이자 또 툭 하고 끊어졌다. 서너 차례나 조였으나 그의 머릿가죽은 조금도 구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노끈을 바꾸어 엮으려 할 때 누군가 와서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으리, 도성에서 진 소보 대감이 오셨사옵니다. 나으리께서는 성 밖으로 나가 영접하시옵소서." 자사가 곧 형방 관리에게 명하였다. "도둑들을 옥에 가두어 잘 살피도록 하라. 내가 상관을 영접하고 나서 다시 신문하겠느니라." 형방 관리가 곧 당승 사부도를 옥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저팔계와 사오정은 자기 짐을 몸에 지니고 들어갔다. 삼장이 말했다. "제자야, 이게 어찌하여 생긴 일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들어가시지요, 들어가시지요! 여기는 개 짖는 소리도 없으니 도리어 놀아 보기 좋겠구려!" 가련하게도 네 사람은 붙잡혀 들어가 저마다 형틀에 밀려 들어가 배를 누르고 머리를 조이고 가슴을 묶는 형구를 채웠으며, 간수들이 또 달려들어 마구 때렸다. 삼장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그저 외쳤다. "오공아! 어찌하면 좋으냐! 어찌하면 좋으냐!" 행자가 말했다. "저들이 때리는 것은 돈을 달라는 것이지요. 속담에 좋은 곳에 몸을 두고 괴로운 곳에서는 돈을 쓴다 하였지요. 이제 그들에게 돈을 좀 주면 그만일 것입니다." 삼장이 말했다. "내 돈이 어디서 나온단 말이냐?" 행자가 말했다. "돈이 없으면 옷가지라도 좋지요. 저 가사를 주어 버리시지요." 삼장이 그 말을 듣고는 마치 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하였으나, 한동안 매를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할 수 없이 입을 열어 말했다. "오공아, 네 뜻대로 하여라." 행자가 곧 외쳤다. "여러 어르신들, 이제 그만 때리시지요. 우리가 메고 들어온 저 두 보퉁이 속에 금란 가사 한 벌이 있사온데 값이 천금이나 되옵니다. 보퉁이를 풀어 가져가시옵소서." 간수들이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손을 놀려 두 보퉁이를 풀어 보았다. 베옷 몇 벌과 쇠로 만든 작은 종 하나가 들어 있었으나 모두 값어치가 없었고, 기름종이 몇 겹에 싸인 물건 하나가 노을빛처럼 번쩍거리는 것이 있어 좋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털어 펼쳐 보니 과연 이러하였다. 기묘한 밝은 구슬을 박아 놓고, 희한한 부처의 보물을 모아 놓았구나. 구불구불한 용을 수놓아 매듭을 펼치고, 나는 봉황을 비단 가장자리에 두렀구나. 모두가 다투어 구경하느라 이 감옥의 관리까지 놀라 달려와 호통치며 말했다. "너희는 여기서 무엇을 떠드느냐?" 간수들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르신, 방금 감옥에서 내려보낸 네 명의 중이 있사온데 큰 무리의 강도라 하였사옵니다. 저희가 몇 대 때리자 그들이 이 두 보퉁이를 저희에게 주었사옵니다. 저희가 열어 보고 이런 물건이 있는 것을 보았사오나 처리할 방도가 없사옵니다. 여러 사람이 찢어 나누자니 참으로 아깝고,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게 하자니나머지 사람들에게 이익이 없사옵니다. 마침 어르신이 오셨으니 어르신께서 판단하여 주시옵소서." 옥 관리가 보니 그것은 가사 한 벌이었고, 또 다른 의복과 작은 종을 모두 꺼내어 살펴보고, 주머니 속의 관문을 펼쳐 보니 여러 나라의 보배로운 도장과 화압이 찍혀 있었다. 관리가 말했다. "내가 와서 보기를 참으로 잘하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너희 모두 큰일을 저지를 뻔하였구나. 이 중은 강도가 아니니 절대로 그의 옷가지에 손대지 마라. 내일 대감이 다시 심문하면 비로소 실상을 알게 되리라." 간수들이 그 말을 듣고 보퉁이를 그에게 돌려주어 예전처럼 싸서 옥 관리에게 맡겨 거두게 하였다. 차츰 날이 저물어 누각에서 북소리가 들리고 야경꾼이 순찰을 돌았다. 사경 삼점이 되도록 버틴 끝에 행자는 그들이 모두 신음조차 하지 않고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스승님께 마땅히 이 하룻밥의 옥고가 있는 것이니, 이 늙은 손이 입을 열어 변론하지 않고 법력을 쓰지 않은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로다. 이제 사경이 다 되어 가니 재앙도 곧 찰 것이니 내가 가서 손을 좀 써 두어야겠다. 날이 밝거든 옥문을 나서기 좋도록 말이다." 보라, 그가 재주를 부려 몸을 조그맣게 줄여 형틀에서 빠져나와 몸을 한번 흔들어 작은 벌레 한 마리로 변하고는 처마의 기와 틈으로 날아 나갔다. 별빛이 총총하고 달이 밝아 참으로 맑고 화창하며 밤이 고요한 하늘이었다. 그는 방향을 잡아 곧장 구가의 집 문 앞으로 날아갔는데, 저잣거리 서쪽 아래의 한 집이 등불이 환하게 밝았다. 다시 그 집 문 앞으로 가까이 날아가 보니 원래 두부를 만드는 집이라, 늙은이 하나가 불을 때고 할멈 하나가 콩물을 짜고 있었다. 그 늙은이가 홀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구 대관은 자식도 있고 재물도 있지만 수명이 없었어. 나와 그는 어릴 적에 함께 글을 배웠는데 내가 그보다 다섯 살이 많았지. 그의 아비는 구명이라 하였는데 그때는 천 묘도 안 되는 논밭에다 조금씩 세를 놓고 있었지만 세조차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하였어.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그 구명 영감이 죽자 그가 집안 살림을 쥐었는데, 참으로 그의 한 걸음이 좋은 운이었지. 장가든 아내가 장왕의 딸인데 아명을 천침이라 불렀는데 도리어 남편을 잘 되게 하였어. 그 집에 들어온 뒤로는 농사를 지으면 거두어들이고 돈을 꾸어 주면 이자가 붙고, 사는 것마다 이익이 되고 하는 것마다 돈을 벌어서 지금은 십만의 가산을 벌어 놓았지. 그가 마흔 살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돌려 선을 행하여 만 명의 중을 공양하였는데, 뜻밖에도 어젯밤 강도에게 걷어차여 죽었어. 가련하지! 올해 예순넷이라 한창 누릴 나이인데, 어찌 이토록 선을 행하고도 좋은 보답을 받지 못하고 요절을 당하였단 말인가! 아, 안타깝구나! 안타까워!" 행자가 낱낱이 듣고 보니 어느새 오경 첫 점이었다. 그는 곧 구가 안으로 날아들어 갔는데, 큰방 안에 이미 관이 놓여 있고 관 머리맡에 등불이 켜져 있으며 향초와 꽃과 과일이 차려져 있고 할멈이 곁에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또 그의 두 아들이 와서 절을 하며 울고 두 며느리가 밥 두 그릇을 받들어 올리는 것도 보였다. 행자가 그 관 머리맡에 붙어 앉아 기침을 한번 하자, 두 며느리는 놀라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뛰어나갔고 구량 형제는 땅에 엎드려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다만 외쳤다. "아버지!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그 할멈이 담이 커서 관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며 말했다. "영감, 당신이 살아났소?" 행자가 구원외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말했다. "나는 살아나지 못하였노라." 두 아들은 더욱 겁에 질려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다만 외쳤다. "아버지!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할멈이 용기를 내어 또 물었다. "영감,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어찌하여 말을 하시오?" 행자가 말했다. "나는 염왕이 부린 귀차사에게 이끌려 집에 와 너희와 이야기하러 온 자니라." 그리고 말하였다. "장씨 천침이 헛된 말로 거짓을 꾸며 죄 없는 이를 빠뜨렸느니라." 할멈은 자기의 아명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놀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여보 영감! 이렇게 큰 나이에 오히려 내 아명을 부르시다니! 내가 어디서 헛된 말로 거짓을 꾸며 무슨 죄 없는 이를 해쳤단 말이오?" 행자가 호통치며 말했다. "어디에 무슨 당승이 불을 붙이고 팔계가 사람 죽이자를 외치고 사오정이 금은을 훔쳐 가고 행자가 네 아비를 때려 죽였다는 것이 있느냐? 네 거짓말 때문에 그 착한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였느니라. 당나라에서 온 네 분의 스승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재물을 되찾아 내게 고맙다고 가지러 왔으니 이 얼마나 좋은 뜻이냐! 그런데도 네가 거짓으로 고소장을 꾸며 아들들을 시켜 관가에 고발하게 하고, 관가에서도 자세히 심문하지 않은 채 그들을 옥에 가두어 두었으니, 그 옥신과 토지신과 성황신이 모두 놀라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염왕에게 보고하였느니라. 염왕이 도로 귀차사를 시켜 나를 집으로 압송하여 보내 너희에게 일찍 그들을 풀어 주라 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나를 시켜 집에서 한 달 동안 소란을 피워 문 안의 노인과 아이와 닭과 개 할 것 없이 하나도 남기지 않으리라!" 구량 형제가 또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하여 말했다. "아버지, 어서 돌아가시옵소서. 부디 노약자를 상하게 하지 마시옵소서. 날이 밝거든 곧 본부에 가서 고소를 취하하는 소장을 올려 잘못을 시인하고 거두어들이겠나이다. 다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편안하기만을 바라옵니다." 행자가 그 말을 듣고 곧 외쳤다. "종이를 태워라, 나는 가노라!" 그 온 집안이 다 나와 종이를 태웠다. 행자가 한 번 날개를 펴 날아올라 곧장 자사의 사저 안으로 날아갔다. 고개를 숙여 살펴보니 그 방 안에 이미 등불이 켜져 있고 자사가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가 중당으로 날아들어가 보니 가운데 뒷벽에 두루마리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는데, 벼슬아치 하나가 점박이 말 한 필을 타고 하인 몇이 푸른 양산을 받쳐 들고 접이식 의자 하나를 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행자는 그 가운데 달라붙었다. 홀연 자사가 방에서 나와 허리를 굽힌 채 세수를 하였다. 행자가 갑자기 기침 소리를 한번 내자 자사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방 안으로 들어가 세수와 머리 빗기를 마치고 큰 옷을 갖추어 입고는 곧 나와 그림을 향해 향을 사르고 축원하며 말했다. "큰아버지 강건일 어르신의 위패시여, 조카 강곤삼은 조상의 덕을 입사와 갑과에 급제하였사옵고, 이제 동태부 자사를 맡아 아침저녁으로 향불을 모시기를 그친 적이 없사옵니다. 어찌하여 오늘 소리를 내시옵니까? 부디 사특한 기운을 부리지 마시옵소서, 집안사람들을 놀라게 할까 두렵사옵니다." 행자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그의 큰아버지의 초상화로구나!" 그리고는 곧 지어 내어 외쳤다. "곤삼, 내 어진 조카야, 네가 벼슬을 함에 비록 조상의 덕을 이었으나 줄곧 청렴하였거늘, 어찌하여 어제 무지하게도 네 명의 성스러운 스님을 도둑으로 여겨 내력을 심문하지도 않고 옥에 가두었느냐! 그 옥신과 토지신과 성황신이 편치 못하여 염군에게 보고하였고, 염군이 귀차사를 시켜 나를 압송하여 보내 너에게 일러 주라 하였느니라. 정을 헤아리고 이치를 살펴 속히 그들을 풀어 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음사로 불러들여 대질하게 하리라." 자사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두려워 떨며 말했다. "큰아버지, 어서 돌아가시옵소서. 조카가 관청에 올라가 곧 풀어 드리겠나이다." 행자가 말했다. "그러하다면 종이를 태워라, 내가 염군을 뵈러 가서 회답하노라." 자사는 다시 향을 더하여 종이를 사르고 절을 올려 사례하였다. 행자가 또 밖으로 날아나와 보니 동쪽 하늘이 이미 훤하게 밝아 있었다. 지령현에 날아가 보니 온 고을의 관리들이 모두 관청에 모여 있었다. 그는 생각하였다. "작은 벌레가 말을 하는 것을 남이 보면 정체가 드러나 좋지 않다." 그는 공중에서 큰 법신으로 바뀌어 허공에서 발 하나를 아래로 뻗어 내려 고을 관청을 가득 밟고는 입으로 외쳤다. "여러 관리들은 들으라. 나는 옥황상제가 보낸 낭탕유신이니라. 너희 부의 감옥에서 경을 구하러 가는 불제자를 억울하게 때려 삼계의 모든 신이 놀라 편치 못하게 하였으므로, 나를 시켜 전하여 일러 주라 하였느니라. 일찍 그를 놓아 주어라. 만약 차질이 있으면 나를 시켜 다시 한 번 발을 내려 먼저 부와 고을의 관리들을 걷어차 죽이고, 다음으로 사방 경내의 백성을 밟아 죽이며 성과 못을 모조리 재로 만들라 하였느니라!" 온 고을의 관리와 아전들이 놀라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며 말했다. "높으신 신이시여 어서 돌아가시옵소서. 저희가 이제 부로 들어가 부의 대감께 아뢰어 곧 풀어 드리게 하겠사오니, 천만부디 발을 움직이지 마시옵소서. 놀라 죽을 지경이옵니다." 행자가 그제야 법신을 거두고 다시 작은 벌레로 변하여 감방 기와 틈으로 날아들어가 예전처럼 형틀 가운데로 파고들어 잠이 들었다. 각설하고 자사가 관청에 올라 막 투문패를 내걸었을 때 구량 형제가 패를 안고 문에 무릎을 꿇고 외치고 있었다. 자사가 들어오게 하여 두 사람이 고소 취하 소장을 올렸다. 자사가 보고 성을 내며 말했다. "너희는 어제 잃은 물건의 고소장을 올려 관가에서 도둑을 잡아 주고 장물도 찾아 갔거늘, 어찌하여 오늘 또 고소 취하 소장을 올리러 왔느냐?" 두 사람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나으리, 오늘 밤 저희 아버지의 혼이 나타나 이르기를, '당나라의 성스러운 스님들은 본래 도둑놈들을 붙잡아 재물을 되찾고 도둑은 놓아 보낸 뒤, 좋은 뜻으로 그 재물을 우리 집에 돌려주어 은혜를 갚으러 온 것인데, 어찌 도리어 그들을 도둑으로 여겨 옥에 가두어 고생을 시켰느냐! 옥의 토지신과 성황신이 모두 편치 못하여 염왕에게 보고하였고, 염왕이 귀차사를 시켜 나를 압송하여 보내 너더러 부로 가서 다시 고발하여 당승을 놓아 주게 하라 하였다. 그래야 재앙과 허물을 면할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늙은이와 아이가 모두 죽으리라.' 하였나이다. 이런 까닭으로 특별히 취하하는 소장을 올리러 왔사오니 부디 나으리께서 편의를 봐 주시옵소서! 편의를 봐 주시옵소서!" 자사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식지 않은 시신의 새로운 귀신이니 혼이 나타나 응보를 말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하나, 내 백부는 죽은 지 오륙 년이 되었거늘 어찌하여 오늘 밤에도 혼이 나타나 심문하여 놓아 주라 일렀단 말인가? 헤아려 보니 틀림없이 억울한 일이로다." 그가 막 생각에 잠겨 있는데 지령현의 지현을 비롯한 관리들이 급히 당상으로 뛰어올라와 소란스럽게 아뢰었다. "큰어르신, 큰일 났나이다! 큰일 났나이다! 방금 옥황상제가 낭탕유신을 인간 세상에 내려보내 감옥에 갇힌 착한 사람을 어서 놓아 주라 하셨나이다. 어제 잡아들인 그 중들은 강도가 아니옵고 모두 경을 구하러 가는 불제자들이옵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우리 관리들을 걷어차 죽이고, 성과 백성까지 모조리 밟아 재로 만들어 버리겠다 하였나이다." 자사도 크게 놀라 낯빛이 변하여 곧 형방 관리에게 명하여 급히 패를 써서 끌어내게 하였다. 이때 감옥 문을 열어 끌어내자 저팔계가 근심하며 말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때릴지 모르겠구먼."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한 대도 감히 때리지 못할 것이니 이 늙은 손이 이미 모든 일을 다 처리해 두었네. 관청에 올라가거든 절대로 무릎을 꿇지 말게, 그들이 도리어 내려와 우리를 윗자리에 앉히려 할 것이네. 그러거든 내가 그들에게 짐과 말을 달라고 할 터이니,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내가 그들을 때리는 것을 보게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당 어귀에 이르렀는데, 자사와 지현을 비롯한 부와 고을의 대소 관리들이 그들을 보자 모두 내려와 영접하며 말했다. "성스러운 스님들께서 어제 오셨을 때에는 하나는 상관을 영접하느라 바빴고, 둘째는 노획한 장물을 보고서 미처 자세히 사정을 묻지 못하였나이다." 당승이 두 손을 모으고 몸을 굽히며 지난 사정을 다시 한번 자세히 아뢰었다. 관리들은 입을 모아 잘못을 시인하며 모두 말했다. "잘못하였나이다, 잘못하였나이다! 노여워 마시옵소서, 노여워 마시옵소서!" 또 옥에서 무슨 허물이 없었는지를 묻자 행자가 앞으로 다가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사나운 소리로 크게 외쳤다. "내 흰 말은 관청 사람이 차지하였고 짐은 옥 사람이 차지하였으니 어서 내놓아라! 오늘은 도리어 내가 너희를 문초할 차례다! 죄 없는 백성을 도둑으로 잡아다 놓았으니 너희가 무슨 죄를 져야 하느냐?" 부와 고을의 관리들이 그가 사납게 구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어, 곧 말을 맡은 자에게 말을 끌어오라 하고 짐을 맡은 자에게 짐을 가져오라 하여 낱낱이 분명히 넘겨주었다. 보라, 그 세 사람이 저마다 사납게 굴자 관리들은 구가의 일로 변명할 뿐이었다. 삼장이 말려 이르기를, "제자야, 이래서도 분명해지지 않는구나. 우리가 구가로 가서 한편으로 조문도 하고, 또 그와 대질하여 누가 나를 보고 도둑질을 했다는 것인지 보자꾸나." 하고 하였다. 행자가 말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 늙은 손이 그 죽은 이를 불러 일으켜 누가 그를 때려 죽였는지 보게 하지요." 사오정이 곧 관청 뜰에서 당승을 말에 올려 세우고는 소리를 치며 일제히 몰려나갔다. 그 부와 고을의 여러 관리도 하나같이 구가로 갔는데, 구량 형제가 놀라 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그들을 청사로 맞아들였다. 그 상가 안을 보니 온 집안이 상장 속에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행자가 외쳤다. "거짓말을 지어 내어 죄 없는 이를 모함한 그 할멈은 잠깐 울음을 그쳐라! 이 늙은 손이 네 남편을 불러와 누가 그를 때려 죽였는지 말하게 하여 한번 부끄럽게 해 주마!" 관리들은 손행자가 하는 말을 농담으로만 여겼다. 행자가 말했다. "여러 어르신들, 잠시 제 스승님과 함께 앉아 계시옵소서. 팔계와 사오정은 잘 보호하여라, 내 갔다 오겠다." 대성이 문을 뛰어나가 허공을 향해 솟구치니, 온 땅에 채운 노을이 집을 감싸고 하늘 가득한 서기가 원신을 호위하였다. 무리들은 그제야 그가 구름을 타고 안개를 몰 줄 아는 신선이요, 죽은 이를 살려 낼 줄 아는 성인임을 알아차리고 저마다 향을 사르며 절을 올렸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두자. 그 대성은 근두운을 타고 한 길로 유명지계로 곧장 가 삼라전 위로 쳐들어가니, 십대의 염군들이 놀라 두 손을 모아 맞이하고 오방의 귀판이 머리를 조아려 영접하였다. 천 그루의 검 나무가 모두 비스듬히 기울고, 만 겹의 칼 산이 모조리 평평해졌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성에서는 도깨비들이 감화되고, 내하교 아래에서는 귀신들이 다시 살아났다. 참으로 그 신광이 한번 비추매 하늘의 사면과 같아, 캄캄한 저승 곳곳이 환하게 밝았다. 열 염왕이 대성을 맞아들여 서로 예를 마치고 어찌하여 무슨 일로 왔는지를 물었다. 행자가 말했다. "동태부 지령현에서 중을 공양하던 구홍의 귀신은 누가 거두었느냐? 어서 찾아 내게 내놓아라." 열 염왕이 말했다. "구홍이라는 선인은 귀차사가 그를 끌어온 일도 없이 스스로 여기 이르렀고, 지장왕의 금의 동자를 만나 그가 지장왕보살에게 인도하였느니라." 행자가 곧 작별하고 곧장 취운궁으로 가 지장왕보살을 뵈었다. 보살이 그와 예를 마치고 지난 사정을 자세히 아뢰니 보살이 기뻐하며 말했다. "구홍의 양수는 점괘의 수에 그쳐야 하였으니 목숨이 다하여도 자리에 눕지 않고 이승을 버리고 온 것이니라. 내가 그가 중을 공양한 선인이라 하여 선한 인연의 장부를 맡아보는 안장으로 삼았노라. 대성이 와서 데려가려 하니 내가 다시 그의 양수를 십이 년 늘려 주어 대성을 따라가게 하리라." 금의 동자가 곧 구홍을 데리고 나왔는데, 구홍은 행자를 보자 연거푸 외쳤다. "스승님! 스승님! 저를 한번 구해 주시옵소서!" 행자가 말했다. "그대는 강도에게 걷어차여 죽었소. 여기는 저승의 지장왕보살이 계신 곳인데 이 늙은 손이 특별히 그대를 이승으로 데려가 이 일을 밝히려 온 것이오. 보살의 은혜로 돌려보냄을 받았고 또 양수 십이 년을 더 얻었으니 십이 년 뒤에 그대가 다시 오게 되오." 구홍은 끝없이 절을 올렸다. 행자가 보살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를 입김으로 불어 기운으로 만들어 옷소매 사이에 넣은 채 함께 저승을 나와 도로 이승으로 돌아왔다. 구름머리를 몰아 구가에 이르러 곧 저팔계를 불러 관 뚜껑을 열어 젖히게 하고 그의 혼령을 본래 몸에 밀어 넣었다. 잠깐 사이에 숨이 터져 나오며 살아나자 구홍이 관 밖으로 기어나와 당승 사부도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 구홍이 요절을 당하였사옵는데 스승님께서 저승까지 오시어 살려 주셨으니 이는 다시 태어나게 한 은혜이옵니다!" 거듭 감사하며 고개를 돌려 여러 관리가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여러 어르신들은 어찌하여 모두 제 집에 계시옵니까?" 자사가 말했다. "그대의 아들이 처음에 잃은 물건의 고소장을 올려 성스러운 스님들의 이름을 박아 고발하기에 내가 곧 사람을 보내 잡아들였노라. 뜻밖에도 성스러운 스님들은 길에서 그대 집을 턴 도둑을 만나 재물을 빼앗아 그대 집에 돌려주러 가던 참이었는데, 내 아랫사람이 잘못 잡아 자세히 심문하지 못한 채 감옥에 가두어 두었노라. 오늘 밤 그대의 혼이 나타나고 내 백부도 집에 와 호소하며 고을에서는 낭탕유신까지 내려왔다 하니, 한꺼번에 이토록 많은 영험이 있기에 성스러운 스님들을 놓아 드렸거늘, 성스러운 스님들이 또 가서 그대를 살려 내었노라." 구홍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으리, 참으로 이 네 분의 성스러운 스님을 억울하게 하였나이다! 그날 밤 서른 명이 넘는 강도가 횃불을 밝히고 몽둥이를 들고 집안 재산을 털어 갔사옵니다. 제가 아까워 견디지 못하여 도둑에게 따지려 나섰다가 뜻밖에도 그놈이 급소를 걷어차는 바람에 죽었사오니 이 네 분과 무슨 상관이 있사옵니까!" 그가 아내를 불러놓고 말했다. "누가 나를 걷어차 죽였느냐, 너희가 어찌 감히 함부로 고발하였단 말이냐? 나으리께 죄를 정해 주시옵소서." 이때 온 집안의 노소가 다만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으나 자사가 너그럽게 은혜를 베풀어 그 죄를 면해 주었다. 구홍은 잔치를 마련하여 부와 고을의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려 하였으나 관리들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관아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중 공양 패를 내걸고 삼장을 또 붙잡아 머물게 하였으나 삼장은 결코 머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친척을 청하여 기와 당을 마련하고 전과 같이 배웅하여 떠나보냈다. 아! 이것이 바로 이러하였다. 땅이 열려 흉악한 일을 간직하나, 하늘은 높아 선한 마음의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구나. 한가롭게 여래의 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니, 곧 영산의 극락문에 이르리라.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8회 원숙마순방탈각(猿熟馬馴方脫殼) · 공성행만견진여(功成行滿見眞如) 각설하고 구원외가 다시 살아난 뒤에 당번과 깃발과 북과 피리를 도로 정비하고 승려와 도사와 친척과 벗들을 거느려 예전대로 배웅하는 사정은 잠시 접어 두자. 한편 당승 사부는 큰길에 올랐는데, 과연 서방의 불국 땅은 다른 곳과 같지가 않았다. 기이한 꽃과 요지의 풀, 오래된 측백과 푸른 소나무를 두루 보았고, 지나는 곳마다 집집이 선을 향하고 호호마다 승려에게 공양을 올렸으며, 산 아래에서는 수행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고 숲 사이에서는 경을 외는 나그네를 또한 보았다. 사부들이 밤에 묵고 새벽에 길을 떠나기를 또 육칠 일을 지내자 문득 높다란 누각 한 줄기와 층층이 쌓인 뛰어난 전각이 보였는데, 참으로 하늘을 꿰찬 백 척이요, 은하수를 찌를 듯 공중에 솟아 있었다. 고개를 숙이면 지는 해를 굽어보고, 손을 뻗으면 날아가는 별을 딸 듯하였다. 훤하게 트인 창과 난간은 온 우주를 삼킨 듯하고, 우뚝 솟은 들보와 처마는 구름 병풍에 닿아 있었다. 황학이 편지를 전해 오니 가을 나무는 늙었고, 채란의 글이 이르니 저녁 바람이 맑았다. 이곳은 바로 신령한 궁궐과 보배로운 누각이요, 옥 같은 집과 구슬 뜰이었다. 참된 당에서는 도를 이야기하고 온 누리에 경을 전하였다. 꽃은 봄이 오매 아름답고, 소나무는 비를 맞고 나니 푸르렀다. 자줏빛 영지와 신선의 과실이 해마다 빼어나고, 붉은 봉황이 의젓이 날아 만 가지 영험을 감응하네. 삼장이 채찍을 들어 멀리 가리키며 말했다. "오공, 좋은 곳이로구나!" 행자가 말했다. "사부께서는 저 거짓 경계와 거짓 불상이 있는 곳에서는 도리어 억지로 절을 내리려 하시더니, 오늘 이 참된 경계와 참된 불상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말에서 내리지도 않으시니, 이 어찌된 일이옵니까?" 삼장이 그 말을 듣고는 황망히 몸을 뒤쳐 뛰어내리니, 어느새 그 누각 문 어귀에 이르러 있었다. 바라보니 어떤 도동 하나가 산문 앞에 비스듬히 서서 부르며 말했다. "이리로 오시는 이는 혹시 동토에서 경을 얻으러 가는 분이 아니시온지요?" 장로는 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그가 비단 옷을 몸에 걸치고 손에는 옥으로 만든 부채를 흔들고 있었다. 비단 옷을 걸쳤으니 보배 누각과 요지의 잔치에 늘 참여하고, 옥 부채를 흔드니 단대와 자부에서 매양 티끌을 날려 버린다. 팔꿈치에는 신선의 부적을 차고 발에는 신발을 신었는데, 바람에 날릴 듯 참된 신선이요, 고우며 빼어나서 실로 기이할 따름이었다. 장생을 단련하여 이루어 빼어난 경계에 살고, 영원한 수명을 닦아 이루어 티끌 세상을 벗어났다. 성승이 영산의 나그네를 알아보지 못하니, 이는 곧 그해의 금정대선이 온 것이다. 손대성이 그를 알아보고는 곧 외쳤다. "사부, 이분은 바로 영산 기슭 옥진관의 금정대선이옵니다. 우리를 마중하러 오신 것이옵니다." 삼장은 그제야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었다. 대선이 웃으며 말했다. "성승께서 금년에야 도착하시다니, 나는 관음보살에게 속았구려. 그분이 십 년 전에 불조의 금지를 받들어 동토로 경을 구할 사람을 찾으러 가시면서, 본디 이삼 년이면 내 처소에 이른다고 하였거늘, 나는 해마다 기다렸으나 소식이 아득하기만 하더니, 뜻밖에도 금년에야 서로 만나 뵙는구려." 삼장이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대선의 두터운 뜻을 받들어 몹시 감격하옵니다! 감격하옵니다!" 이에 사부가 말을 끌고 짐을 메고 함께 관 안으로 들어가서는 차례로 대선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누었다. 대선은 곧 차를 내오고 채식을 차리라고 명하고는, 또 어린 도동을 시켜 향기로운 물을 데워 성승에게 목욕을 하게 하였으니, 불국 땅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러하니라. 공이 차고 행이 완전해졌으니 마땅히 목욕을 할 것이요, 본성을 단련하고 길들여 천진함에 합한다.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이제야 비로소 쉬게 되었으니, 아홉 가지 계와 세 가지 귀의가 이제야 새로워졌다. 마가 다하니 과연 불국 땅에 오르고, 재앙이 사라지므로 사문을 뵙게 되었다. 티끌을 씻고 때를 벗어 온통 물듦이 없으니, 근본으로 돌아가 본래의 모습을 찾아 몸이 상하지 않았네. 사부들이 목욕을 마치자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가므로 옥진관에서 묵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당승은 옷을 갈아입고 금란가사를 걸치며 비로모를 쓰고 석장을 손에 쥐고는 당에 올라 대선에게 절하며 작별을 고했다. 대선이 웃으며 말했다. "어제는 누추하더니 오늘은 환하게 밝으니, 이 모습을 보니 참으로 불자이구려." 삼장은 절하며 작별하고 곧 떠나려 하니 대선이 말했다. "잠깐 멈추시오. 내가 배웅을 하겠소." 행자가 말했다. "배웅하실 것 없소. 이 늙은 손이 길을 아니까." 대선이 말했다. "그대가 아는 것은 구름 길이오. 성승께서는 아직 구름 길에 오르지 않으셨으니 마땅히 본디 길로 따라 가셔야 하오." 행자가 말했다. "그 말이 옳소. 이 늙은 손이 몇 차례 다녀가긴 하였으나 그저 구름을 타고 오고 갈 뿐이라, 실로 이 땅을 밟아 본 적은 없소. 본디 길이 있다면 수고로우시더라도 배웅을 부탁하오. 우리 사부님이 부처님 뵙는 마음이 간절하시니, 늦추지 마시오." 그 대선이 빙그레 웃으며 당승의 손을 잡고 단단의 법문으로 인도하였다. 사실 이 길은 산문을 나가지 않고 곧 관의 중당을 거쳐 뒤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대선이 영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승, 저 하늘 가운데 오색 상서로운 빛이 있고 천 겹의 서기가 서려 있는 저곳이 보이시오? 바로 영취 고봉이요, 불조의 성지이오." 당승은 그것을 보고 곧 절을 하니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 아직 절하실 자리가 아니옵니다. 늘 하는 말에 산을 바라보면 말이 지쳐 쓰러진다 하였거늘, 여기서부터 아직도 먼데 어찌 벌써 절을 하시옵니까! 꼭대기까지 절하며 간다면 머리를 얼마나 찧어야 하옵니까!" 대선이 말했다. "성승께서는 대성과 천봉과 권렴 네 분이 이미 이 복지에 이르러 영산을 바라보셨으니, 나는 돌아가겠소." 삼장은 이에 절하며 작별하고 떠났다. 대성이 당승 일행을 인도하여 천천히 느긋하게 걸어 영산에 오르기를 오륙 리나 갔을까, 갑자기 한 줄기 흐르는 물이 보였는데 굽이치는 물결이 세차게 흘러 폭이 대략 팔구 리나 되었고 사방에는 사람의 자취가 없었다. 삼장이 놀라며 말했다. "오공, 이 길은 온 것이 잘못이구나. 혹시 대선이 길을 잘못 가리친 것이 아니냐? 이 물이 이토록 넓고 이토록 세차게 넘치는데다 배라곤 보이지 않으니 어찌 건널 수 있겠느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틀리지 않았소! 저쪽에 저기 큰 다리가 보이지 않소? 저 다리 위로 걸어 건너가야 바른 정과를 이룰 것이오." 장로 일행이 다시 앞으로 다가가 살펴보니 다리 곁에 편액 하나가 있고, 편액에는 능운도 세 글자가 씌어 있었는데, 본래는 외나무로 된 다리 한 개였다. 바로 이러하니라. 멀리 보면 하늘을 가로지른 옥기둥 같고, 가까이 보면 물을 끊는 마른 나룻배로다. 내를 건너고 바다에 다리를 놓는 것도 오히려 쉬우련만, 이 외나무 홀몸 다리를 사람이 어찌 밟으랴! 만 장이나 되는 무지개가 그림자를 평평하게 누였고, 천 길의 흰 비단이 하늘가에 닿았네. 몹시 미끄럽고 가늘어 저어 건너기 어렵나니, 신선이 채색 구름을 밟는 것뿐이로다. 삼장은 간담이 서늘해지며 말했다. "오공, 이 다리는 사람이 걷는 곳이 아니니, 우리 다른 길을 찾아 가세."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이 길이오! 바로 이 길이오!" 팔계가 당황하며 말했다. "이게 길이라니, 누가 감히 걷겠소? 물 면은 넓고 물결은 또 넘치는데, 홀로 뭍 하나가 가늘고 미끄러우니 어찌 발을 떼겠소?" 행자가 말했다. "너희는 모두 서 있거라. 이 늙은 손이 걸어가는 걸 보여 줄 터이니." 대성이 보아라 하고는 걸음을 크게 벌려 외나무다리 위로 뛰어올라 흔들흔들 비틀거리며 잠깐 사이에 저쪽으로 달려 건너가서는 그쪽에서 손짓하며 불렀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당승이 손을 내젓고 팔계와 사승이 손가락을 물며 말했다. "어렵소! 어렵소! 어렵소!" 행자가 다시 저쪽에서 달려와 팔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이 멍청아, 나를 따라오너라, 나를 따라오너라!" 팔계가 땅에 엎드린 채 말했다. "미끄럽소! 미끄럽소! 미끄럽소! 걸을 수 없소! 용서하시구려! 바람과 안개를 타고 건너게 해 주시오!" 행자가 눌러 붙잡으며 말했다. "이게 어떤 곳인데 네가 바람과 안개를 타기를 허락하겠느냐? 모름지기 이 다리 위로 걸어 지나가야 부처를 이룰 수 있느니라." 팔계가 말했다. "형님, 부처를 못 이루는 한이 있더라도, 실로 걸을 수가 없소!" 그 둘은 다리 곁에서 뒹굴고 기며 서로 잡아당기며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사승이 가서 말리므로 서야 겨우 손을 놓았다. 삼장이 고개를 돌리니, 문득 아래쪽 물살 가운데 누군가 배 한 척을 저어 오며 외치는 것이었다. "건너시오! 배에 오르시오!" 장로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자들아, 장난을 그만두어라. 저기에 나룻배 하나가 오고 있지 않으냐." 그 세 사람이 벌떡 일어나 가만히 서서 함께 눈을 모아 보니, 그 배가 아주 가까이 다가왔는데 본래 바닥이 없는 배였다. 행자는 불처럼 밝은 눈으로 일찍이 그가 접인불조임을 알아보았으니, 또 나무보당광왕불이라고도 일컬었다. 행자는 그러나 그것을 입에 담지 않고 다만 외쳤다. "이리로 오시오! 저어 대시오!" 삽시간에 언덕 가까이 저어 오자 다시 불렀다. "건너시오! 배에 오르시오!" 삼장이 그것을 보고는 다시 놀라며 말했다. "그대의 바닥 없는 낡은 배로 어찌 사람을 건네겠소?" 불조가 말했다. "내 이 배는 홍몽이 처음 나뉘던 때부터 이름이 있었고, 다행히 내가 저어 오는 동안 변함이 없느니라. 물결이 있고 바람이 있어도 스스로 안온하고, 끝도 비롯함도 없이 태평을 즐기느니라. 육진에 물들지 않아 하나로 돌아갈 수 있고, 만 겁을 편안히 지내며 자유로이 다니느니라. 바닥 없는 배라 바다를 건너기 어렵다 하나, 예로부터 오고 가며 뭇 생령을 건네 왔느니라." 손대성이 합장하며 감사하여 말했다. "저의 사부를 인도해 주시려는 두터운 뜻 감사하옵니다. 사부, 배에 오르십시오. 이 배가 비록 바닥은 없어도 안온하니, 바람과 물결이 일더라도 뒤집힐 리 없사옵니다." 장로가 여전히 놀라며 의심하는 사이, 행자가 팔을 꺾어 위로 밀어 올렸다. 사부는 발을 디디지 못하고 데구르르 물속으로 넘어졌으나, 이내 사공이 한 번에 잡아끌어 배 위에 서게 되었다. 사부는 옷을 털고 신발의 물기를 두드리며 행자를 원망하였다. 행자는 오히려 사승과 팔계를 이끌고 말을 끌고 짐을 메고 배에 올라 모두 배 바닥 위에 서게 하였다. 그 불조가 가볍게 힘을 주어 배를 밀어 내니, 문득 상류에서 시체 하나가 떠내려 왔다. 장로가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니,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 놀라지 마십시오. 저것이 바로 사부님이옵니다." 팔계도 말했다. "사부님이 맞소! 사부님이 맞소!" 사승도 손뼉을 치며 말했다. "사부님이 맞소! 사부님이 맞소!" 사공도 노를 저으며 후렴을 붙여 말했다. "저것이 그대라오! 경사로워라, 경사로워라!" 그들 세 사람도 일제히 목소리를 함께하였다. 배를 저어 얼마 안 되어 안온하게 능운도라는 신선의 나루를 건넜다. 삼장이 그제야 몸을 돌려 살며시 저 언덕으로 뛰어 올랐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에 이르기를, 태포와 뼈와 살로 된 육신을 벗어 던졌으니, 서로 친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은 원신이로다. 오늘 아침 행이 차서야 비로소 부처가 되었으니, 그해의 온갖 티끌을 깨끗이 씻었네. 이것이 참으로 이른바 광대한 지혜요, 저 언덕에 올라 무극에 이르는 법이라 하겠다. 사부가 언덕에 올라 고개를 돌려 보니 바닥 없는 배는 간 곳조차 알 수 없게 사라져 있었고, 행자가 그제야 그가 접인불조였다고 말했다. 삼장은 이제야 깨닫고 급히 몸을 돌려 도리어 세 제자에게 사례하니 행자가 말했다. "서로 사례할 것 없사옵니다. 피차 모두 서로 부축해 온 것이옵니다. 저희는 사부님을 힘입어 해탈을 얻고 문로를 빌려 공을 닦아 다행히 정과를 이루었사옵니다. 사부님께서도 저희의 보호에 힘입어 가르침을 받들고 도움을 입어 기꺼이 범태를 벗으셨사옵니다. 사부, 저 앞의 꽃과 풀, 소나무와 대나무, 난새와 봉황과 학과 사슴이 어우러진 저 빼어난 경계가, 저 요사한 무리가 나타나 흉내 내던 곳과 견주어 어느 쪽이 아름답고 어느 쪽이 추하옵니까? 어느 것이 착하고 어느 것이 흉하옵니까?" 삼장이 거듭 사례하며 감사를 마지 않았다. 하나하나 몸이 가벼워지고 발걸음이 빨라져 영산을 걸어 오르니 어느새 뇌음 고찰이 보였다. 꼭대기는 하늘 한가운데를 문지르고, 뿌리는 수미산의 맥에 이어졌네. 기묘한 봉우리가 줄지어 늘어서고 괴이한 바위가 들쭉날쭉하네. 벼랑 아래에는 요지의 풀과 기이한 꽃이요, 구불거리는 길 곁에는 자줏빛 영지와 향기로운 혜초라. 신선 같은 원숭이가 과일을 따려 복숭아 숲에 드니 불이 금을 태우는 듯하고, 흰 학이 소나무 가지 끝에 앉았으니 연기가 옥을 받든 듯하네. 채색 봉황이 쌍쌍이, 푸른 난새가 짝지어 있으니, 채색 봉황 쌍쌍이는 해를 향해 한 번 울면 천하에 상서가 되고, 푸른 난새 짝짝이는 바람을 맞아 춤추며 빛나니 세상에 드물구나. 또 저 노랗게 빛나는 금기와는 원앙을 겹쳐 얹었고, 환하게 번쩍이는 꽃벽돌은 마노를 깔았네. 동쪽으로 한 줄, 서쪽으로 한 줄 모두 꽃술 같은 궁궐과 구슬 대궐이요, 남쪽으로 한 줄기, 북쪽으로 한 줄기 보배 누각과 진기한 집을 다 볼 수 없구나. 천왕전 위에서는 노을빛을 내뿜고 호법당 앞에서는 자줏빛 불꽃을 내뿜네. 부도탑이 우뚝 솟고 우발화가 향기를 날리니, 이는 바로 땅이 뛰어나 하늘과 다름이 의심스럽고 구름이 한가하니 낮이 길어지는 곳이라. 속세의 티끌이 닿지 않아 온갖 인연이 다하였고 만 겁이 흘러도 모자람이 없는 대법당이로다. 사부들이 한가롭고 유유히 영산 꼭대기로 올라가니, 푸른 소나무 숲 아래에는 우바들이 늘어서 있고 푸른 측백 숲 속에는 선비들이 줄지어 있었다. 장로가 곧장 나아가 예를 갖추려 하니, 그 우바새와 우바이, 비구승과 비구니가 두 손을 모으며 황급히 말했다. "성승께서는 예를 멈추시옵소서. 모니존자를 뵙고 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이르옵니다! 아직 이르옵니다! 먼저 웃어른께 예를 올리러 갑시다." 장로는 손을 들고 발을 구르며 기뻐하는 기색으로 행자를 따라 뇌음사 산문 밖에 곧장 이르렀다. 그곳에는 사대금강이 나와 맞으며 말했다. "성승께서 오시었소?" 삼장이 몸을 굽히며 말했다. "제자 현장이 도착하였사옵니다." 대답을 마치고 곧 문을 들어가려 하니 금강이 말했다. "성승께서는 잠시 기다리시옵소서. 아뢴 뒤에 들게 하겠나이다." 그 금강이 하나를 시켜 산문을 돌아 이문 위의 사대금강에게 당승이 도착했다고 알리게 하고, 이문에서 또 삼문 위로 전하여 당승이 도착했다고 알리니, 삼문 안에는 본디 공양을 올리는 신승들이 있어 당승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 급히 대웅전 아래로 가서 여래지존 석가모니문불께 아뢰었다. "당나라의 성승이 보배 산에 이르러 경을 구하러 왔나이다." 불야야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곧 팔보살과 사금강, 오백 아라와 삼천 게제, 십일 대요와 십팔 가람을 불러 모아 두 줄로 늘어서게 한 뒤 금지를 내려 당승을 들라 하셨다. 그 안에서는 한 층 한 마디마다 부처의 뜻을 받들어 외쳤다. "성승께서 들어오시옵소서." 이 당승은 법도와 규칙을 지켜 오공과 오능과 오정과 더불어 말을 끌고 짐을 메고 곧장 산문으로 들어갔다. 바로 이러하니라. 그해에는 뜻을 떨쳐 임금의 명을 받들어, 첩지를 받아 왕에게 하직하고 옥 섬돌을 내려왔네. 새벽이면 산에 올라 안개와 이슬을 맞고, 황혼에는 돌을 베고 누워 구름 속에서 잠들었네. 선장을 메고 머나먼 삼천의 물을 건너고, 석장을 날려 만 리의 벼랑을 걸었네. 생각마다 마음에 정과를 구하더니,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여래를 뵙게 되었구나. 사부가 대웅보전 앞에 이르러 여래를 향해 몸을 던져 절을 올리고, 절을 마치고는 또 좌우를 향해 다시 절을 올렸다. 저마다 세 바퀴씩 두루 예를 마치고 다시 불조 앞에 길게 꿇어앉아 통관문첩을 받들어 올리니, 여래가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도로 삼장에게 건네주었다. 삼장이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제자 현장은 동토 대당 황제의 뜻을 받들어 머나먼 이 보배 산에 이르러 참된 경을 우러러 구하오니, 이로써 뭇 생령을 제도하고자 하나이다. 바라옵건대 불조께서 은혜를 굽어 내리시어 일찍이 귀국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래가 비로소 가련히 여기는 입을 열고 자비로운 마음을 크게 내어 삼장에게 이르기를, "너희 그 동토란 곳은 바로 남섬부주이니, 다만 하늘이 높고 땅이 두터우며 만물이 넓고 사람이 많아, 탐내는 일이 많고 죽이는 일이 많으며, 음탕함이 많고 거짓이 많고 속이는 일이 많고 사기치는 일이 많다. 불교를 받들지 않고 선한 인연을 따르지 않으며, 해와 달과 별을 공경하지 않고 오곡을 귀히 여기지 않으며, 충성롭지 못하고 효도롭지 못하며 의롭지 못하고 어질지 못하여, 마음을 속이고 자기를 속이며 되를 크게 하고 저울을 작게 하여 목숨을 해치고 짐승을 죽인다. 끝없는 죄업을 지어 죄가 넘치고 악이 가득하므로 지옥의 재앙을 불러들여 길이 유명에 빠져 저 숱한 절구 찧고 맷돌 가는 고통을 받고 축생으로 변화한다. 저토록 많은 털 두르고 뿔 달린 모습으로 몸으로써 빚을 갚고 살로써 사람에게 먹히는 것이니, 길이 아비지옥으로 떨어져 초탈하지 못하는 자가 모두 이 때문이니라. 비록 공씨가 그곳에 있어 인의예지의 가르침을 세웠고 제왕이 서로 이어받아 도형과 유배와 교수와 참수의 형벌을 다스리고 있으나, 어리석어 밝지 못하고 방종하여 꺼리는 것이 없는 무리들을 어찌하랴! 내 이제 경 세 가지가 있으니 괴로움에서 초탈하고 재앙의 허물을 풀 수 있느니라. 삼장이라 함은 법 한 장이 있어 하늘을 말하고, 논 한 장이 있어 땅을 말하며, 경 한 장이 있어 귀신을 제도하니, 모두 서른다섯 부요, 모두 일만 오천백사십사 권이니라. 참으로 진리를 닦는 길이요 바른 선의 문이라, 무릇 천하 사대부주의 천문과 지리, 인물과 새와 짐승, 꽃과 나무와 기물과 인사가 적히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너희가 멀리서 왔으니 모두 주어 가지고 가게 하려 하나, 다만 그 지방 사람들이 어리석고 사나워 참된 말을 비방하고 우리 사문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느니라." 하고는 불렀다. "아난과 가섭, 너희 둘은 저 사부를 인도하여 진루 아래로 가 먼저 채식으로 대접하라. 식사가 끝나면 보배 누각을 열어 내 삼장경 가운데 서른다섯 부 안에서 부마다 몇 권씩 골라 주어 저 동토에 널리 전하게 하여 길이 큰 은혜를 더하게 하라." 두 분 존자가 곧 부처의 명을 받들어 그 사부를 누각 아래로 인도하니, 저 기이한 보배가 끝없이 벌여 있는 것을 다 볼 수 없었다. 공양을 차린 여러 신들이 진수성찬을 벌여 놓았는데 모두 신선의 품목이요 신선의 안주, 신선의 차, 신선의 과일이라 진귀한 맛이 온갖 가지로 속세와는 달랐다. 사부들이 불은에 머리 조아려 예를 올리고 마음껏 즐겨 먹으니, 참으로 이러하였다. 보배 불꽃과 금빛이 눈에 비치어 밝고, 기이한 향기와 진귀한 품목이 더욱 정묘하네. 천 층의 금빛 누각은 아름다움이 끝이 없고, 한 가닥 신선의 음악이 귀에 들려 맑구나. 담백한 맛의 신선 꽃은 인간 세상에 보기 드물고, 향기로운 차와 진기한 음식은 장수를 얻게 하네. 지나오는 내내 온갖 고생을 다 겪더니, 오늘 영화를 누리며 도를 이룸이 기쁘구나. 이번에는 팔계가 운을 만나고 사승이 좋은 덕을 보았으니, 불조의 뜰에 바른 오래 삶과 장생을 주고 태를 벗고 뼈를 바꾸는 음식이었으므로 실컷 먹고 누리게 되었다. 두 존자가 사부의 식사가 끝나기를 모시고 나서 보배 누각으로 들어가 문을 열어 올려다보게 하였다. 그곳에는 노을 같은 빛과 상서로운 기운이 천 겹이나 두루 감싸고 있고, 채색 안개와 상서로운 구름이 만 갈래로 가득 덮고 있었다. 경전 궤 위와 보배 상자 겉에는 모두 붉은 표가 붙어 있어 또렷한 해서로 경전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열반경》 한 부 칠백사십팔 권, 《보살경》 한 부 천이십일 권, 《허공장경》 한 부 사백 권, 《수능엄경》 한 부 백십 권, 《은의경대집》 한 부 오십 권, 《결정경》 한 부 백사십 권, 《보장경》 한 부 사십오 권, 《화엄경》 한 부 오백 권, 《예진여경》 한 부 구십 권, 《대반야경》 한 부 구백십육 권, 《대광명경》 한 부 삼백 권, 《미증유경》 한 부 천백십 권, 《유마경》 한 부 백칠십 권, 《삼론별경》 한 부 이백칠십 권, 《금강경》 한 부 백 권, 《정법론경》 한 부 백이십 권, 《불본행경》 한 부 팔백 권, 《오룡경》 한 부 삼십이 권, 《보살계경》 한 부 백십육 권, 《대집경》 한 부 백삼십 권, 《마갈경》 한 부 삼백오십 권, 《법화경》 한 부 백 권, 《유가경》 한 부 백 권, 《보상경》 한 부 이백이십 권, 《서천론경》 한 부 백삼십 권, 《승기경》 한 부 백오십칠 권, 《불국잡경》 한 부 천구백오십 권, 《기신론경》 한 부 천 권, 《대지도경》 한 부 천팔십 권, 《보위경》 한 부 천이백팔십 권, 《본각경》 한 부 팔백오십 권, 《정률문경》 한 부 이백 권, 《대공작경》 한 부 이백이십 권, 《유식론경》 한 부 백 권, 《구사론경》 한 부 이백 권이었다. 아난과 가섭이 당승을 데리고 경전 이름을 모두 훑어 보고는 당승에게 말했다. "성승께서 동토에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우리에게 보낼 인사가 좀 있으시겠지요? 어서 내놓으시면 경을 전하여 가시게 하겠소." 삼장이 그 말을 듣고 아뢰었다. "제자 현장은 오는 길이 아득히 멀어 아무런 준비를 해 오지 못하였사옵니다." 두 존자가 웃으며 말했다. "좋소, 좋소, 좋소! 빈손으로 경을 전하여 세상에 잇게 한다면 뒷사람은 굶어 죽을 것이오!" 행자가 그들이 입을 놀리며 몸을 비틀어 경을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소리쳐 떠들며 말했다. "사부, 우리가 여래께 고하여 그분께서 친히 오시어 이 늙은 손에게 경을 주시도록 합시다." 아난이 말했다. "떠들지 말라! 이게 어떤 곳인데 네가 아직도 함부로 날뛰며 투정을 부리느냐! 이리로 와서 경을 받아라." 팔계와 사승이 성질을 누르고 행자를 말리며 돌아서서 경을 받았다. 한 권 두 권 보따리에 싸고 말에 싣고 또 두 짐을 묶어 팔계와 사승이 메게 하였다. 그리고 보배 자리 앞으로 가 머리를 조아려 여래께 사례하고 곧장 문을 나섰다. 부처 한 분을 만나면 두 번 절하고 보살 한 분을 뵈면 두 번 절하였다. 또 대문에 이르러 비구승과 비구니, 우바이와 우바새에게 절하고 하나하나 하직을 고한 뒤 산을 내려가 길을 재촉하는 이야기는 접어 두자. 한편 그 보배 누각 위에는 연등고불 한 분이 계셨는데, 누각 위에서 저 경을 전하는 일을 가만히 듣고 있으니 속마음이 훤히 밝았다. 본래 아난과 가섭이 글자 없는 경을 전해 보낸 것이었으므로 스스로 웃으며 말하기를, "동토의 뭇 승려가 어리석고 미혹하여 글자 없는 경을 알아보지 못할 터이니, 성승의 이 험난한 걸음을 헛되이 치르게 하는 것이 아니냐?" 하였다. 그리고 물었다. "자리 곁에 누가 있느냐?" 그때 백웅존자가 홀연히 나섰다. 고불이 분부하였다. "너는 신통한 위력을 일으켜 별처럼 날아가 당승을 따라잡아 그 글자 없는 경을 빼앗고, 그들이 다시 와서 글자 있는 진경을 청하여 가져가게 하여라." 백웅존자가 곧 사나운 바람을 타고 뇌음사 산문 밖을 굴러 벗어나 크게 위력을 떨치니, 그 바람의 좋음이 참으로 이러하였다. 부처 앞의 용사여서 손이풍신에 견줄 바 아니요, 신선의 굴에서 성내어 부르짖으니 취허소녀보다 훨씬 뛰어나네. 이 바람 한바탕에 물고기와 용이 모두 굴을 잃고 강과 바다가 물결을 거슬렀다. 검은 원숭이는 과일을 받들고 와서 바치기 어렵고, 황학은 구름을 되돌려 옛 둥지를 찾네. 붉은 봉황의 맑은 소리는 아름답지 못하고, 금계는 울어 대며 시끄럽게 우짖네. 푸른 소나무 가지는 꺾이고 우발화는 날리며, 푸른 대나무는 대마다 쓰러지고 금련은 송이송이 흔들리네. 종소리는 삼천 리를 멀리 실어 보내고 경 읽는 소리는 가볍게 만 골짜기 높이 날아간다. 벼랑 아래 기이한 꽃은 고운 빛이 상하고, 길 곁의 요지 풀은 싱그러운 싹이 눕네. 채란은 날개를 펴기 어렵고 흰 사슴은 산벼랑에 숨네. 넘실거리는 기이한 향기가 우주에 가득하고 맑고 청아한 바람 기운이 구름 하늘에 사무치네. 당 장로가 한창 가고 있는데 문득 향기로운 바람이 몰려오므로 부처의 상서로움이라 여겨 미처 방비하지 못하였다. 그때 요란한 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반공중에서 손 하나가 내려와 말에 실은 경을 살짝 빼앗아 갔다. 놀란 삼장은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팔계는 땅을 구르며 쫓아갔으며, 사화상은 경 짐을 지켰고 손행자는 급히 날아가듯 뒤를 쫓았다. 백웅존자는 행자가 바짝 따라붙는 것을 보고, 그의 몽둥이 끝에 눈이 없어 자칫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하고 몸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곧 경 보따리를 찢어 흙먼지 속에 내동댕이쳤다. 행자는 경 보따리가 찢어져 흩어지고 향기로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자 구름을 내려 경을 돌보느라 더는 뒤쫓지 않았다. 백웅존자가 바람과 안개를 거두고 고불에게 돌아가 아뢰는 이야기는 접어 두자. 팔계는 뒤쫓아 가다가 경책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행자와 함께 주워 메고 당승에게로 왔다. 당승이 눈에 가득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제자들아! 이 극락세계에도 오히려 흉악한 마귀가 있어 남을 속이고 해치는구나!" 사승이 안고 있던 흩어진 경을 받아 펼쳐 보니, 본래 눈처럼 희어 반 점의 글자도 없었으므로 황급히 삼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부, 이 권에는 글자가 없사옵니다." 행자가 또 한 권을 펼쳐 보니 역시 글자가 없었다. 팔계가 한 권을 펼쳐도 또한 글자가 없었다. 삼장이 말했다. "모두 펼쳐서 보아라." 두루마리마다 모두 백지였다. 장로가 짧게 탄식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동토 사람은 과연 복이 없구나! 이토록 글자 없는 빈 책을 가져가면 무엇에 쓰겠느냐? 감히 당왕을 어떻게 뵙겠느냐! 임금을 속인 죄는 참으로 용서받을 수 없느니라!" 행자는 일찍이 그 까닭을 알고 있었으므로 당승에게 말했다. "사부, 더 말할 것도 없사옵니다. 이것은 바로 아난과 가섭 그 놈들이 저에게 인사를 달라고 요구하였다가 얻지 못하자 이 백지 책자를 우리에게 준 것이옵니다. 어서 돌아가 여래 앞에 고하여 재물을 억지로 요구하고 속임수를 쓴 죄를 물읍시다." 팔계가 떠들며 말했다. "옳소! 옳소! 고하러 갑시다!" 사부가 급히 산으로 되돌아가 발걸음이 채 가다듬어지기도 전에 부산스럽게 다시 뇌음으로 올라갔다. 얼마 안 되어 산문 밖에 이르니 무리들이 모두 손을 모아 맞으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성승께서는 경을 바꾸러 오셨소?" 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례하니, 여러 금강도 막지 않고 그들을 들어가게 하여 대웅전 앞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행자가 떠들며 아뢰었다. "여래시여! 우리 사부들이 만 마리의 벌레 같은 괴로움과 천 가지 마귀의 시달림과 온갖 고초를 겪으며 동토에서 이곳까지 절하며 왔사옵니다. 여래의 분부를 입어 경을 전하게 되었사오나, 아난과 가섭이 재물을 억지로 요구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서로 짜고 속임수를 써서 고의로 글자 없는 백지 책자를 우리에게 주어 가게 하였으니, 우리가 그것을 가져다 무엇에 쓰겠사옵니까!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다스려 주시옵소서!" 불조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우선 떠들지 말라. 그 둘이 너희에게 인사를 요구한 내막을 나는 이미 알고 있느니라. 다만 경은 가볍게 전할 수도 없고 또한 빈손으로 가져갈 수도 없느니라. 지난날 뭇 비구 성승이 산에서 내려가 이 경을 사위국의 조장자네 집에서 그를 위해 한 차례 외어 주어 그 집 산 사람은 안전하고 죽은 사람은 초탈케 하였더니, 고작 그에게서 쌀알만 한 황금 석 되 세 되를 얻어 왔거늘, 나는 도리어 저들이 너무 헐값에 팔아 후대의 자손이 쓸 돈이 없게 되었다고 하였느니라. 너희가 이제 빈손으로 가지러 왔으므로 백본을 전한 것이니라. 백본이란 글자 없는 진경이라 도리어 좋은 것이니, 너희 그 동토의 중생은 어리석고 미혹하여 깨닫지 못하므로 오직 이것으로 전할 따름이니라." 그러고는 불렀다. "아난과 가섭, 글자 있는 진경을 부마다 몇 권씩 골라주고 이리로 와서 수를 아뢰라." 두 존자가 다시 사부를 인도하여 진루의 보배 누각 아래로 가서 다시 당승에게 인사를 좀 달라고 요구하였다. 삼장이 바칠 물건이 없으므로 곧 사승에게 자금발우를 꺼내어 두 손으로 받들어 올리며 아뢰었다. "제자가 진실로 가난하고 길이 멀어 인사를 마련해 오지 못하였사옵니다. 이 발우는 당왕께서 친히 내려 주신 것으로 제자에게 그것을 들고 가는 길에 동냥을 하라 하시었나이다. 이에 특별히 받들어 올리오니 자그마한 정성이나마 바치오며, 바라옵건대 존자께서는 가벼이 여기지 마시고 이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조정으로 돌아가 당왕께 아뢰면 반드시 후한 사례가 있사옵니다. 다만 글자 있는 진경을 내려 주시어, 흠차로 파견된 뜻과 먼 길을 걸어온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난은 그것을 받아들고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러자 진루를 맡은 역사들과 향적을 맡은 포정과 누각을 지키는 존자들이 너는 그의 뺨을 쓰다듬고 나는 그의 등을 치며 손가락을 튕기고 입술을 비틀면서 하나같이 웃으며 말했다. "부끄럽지도 않으냐! 부끄럽지도 않으냐! 경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인사를 달라니!" 삽시간에 낯가죽이 다 부끄러워 쭈글쭈글해졌으나 그저 발우를 쥐고는 놓지 않았다. 가섭이 그제야 누각에 들어가 경을 살펴 하나하나 삼장에게 넘겨주니, 삼장이 말했다. "제자들아, 너희는 모두 잘 살펴보아라. 지난번과 같아서는 안 되느니라." 그 세 사람이 한 권 받아 한 권 보니 모두 글자가 있었다. 오천사십팔 권을 전하였으니 한 장의 수효라서, 가지런히 정리하여 말에 싣고 남은 것은 또 한 짐에 넣어 팔계가 메었다. 자기 행낭은 사승이 메었다. 행자가 말을 끌고 당승이 석장을 들고 비로모를 바로 눌러 쓰고 비단 가사를 툭툭 털고 나서야 기뻐하며 우리 부처 여래 앞으로 갔다. 바로 이러하니라. 대장진경의 맛이 달콤하니 여래가 지어 낸 것이 몹시 정묘하고 엄밀하네. 모름지기 현장이 산에 오른 고생을 알아야 할 것이요, 아난이 도리어 돈을 탐함이 우습구나. 처음에는 자세히 살피지 못하여 고불 덕을 입었고, 나중에 참됨을 얻어서야 비로소 안온하였네. 지금껏 뜻을 얻어 동토에 전하니 대중이 고루 은혜를 입는구나. 아난과 가섭이 당승을 인도하여 여래를 뵙게 하니, 여래가 연꽃 자리 높이 올라 항룡과 복호 두 대라한에게 분부하여 운경을 쳐 울리게 하고, 삼천의 제불과 삼천의 게제와 팔금강과 사보살과 오백의 나한과 팔백의 비구승과 대중의 우바새와 비구니와 우바이와, 각 하늘과 각 동굴과 복지와 영산의 크고작은 존자와 성승을 두루 청하여 앉을 이는 보배 자리에 오르게 하고 설 이는 양쪽에 시립하게 하였다. 그 순간 하늘의 음악이 멀리 들려오고 신선의 음향이 맑게 울려 퍼지며, 온 하늘에 상서로운 빛이 겹겹이 쌓이고 서기가 층층이 이는 가운데 모든 부처가 다 모여 여래를 뵈었다. 여래가 물었다. "아난과 가섭, 얼마나 많은 경권을 그에게 전하였느냐? 하나하나 수를 아뢰라." 두 존자가 곧 아뢰었다. "이번에 보낸 것은 당나라의 《열반경》 사백 권, 《보살경》 삼백육십 권, 《허공장경》 이십 권, 《수능엄경》 삼십 권, 《은의경대집》 사십 권, 《결정경》 사십 권, 《보장경》 이십 권, 《화엄경》 팔십일 권, 《예진여경》 삼십 권, 《대반야경》 육백 권, 《금광명품경》 오십 권, 《미증유경》 오백오십 권, 《유마경》 삼십 권, 《삼론별경》 사십이 권, 《금강경》 일 권, 《정법론경》 이십 권, 《불본행경》 백십육 권, 《오룡경》 이십 권, 《보살계경》 육십 권, 《대집경》 삼십 권, 《마갈경》 백사십 권, 《법화경》 십 권, 《유가경》 삼십 권, 《보상경》 백칠십 권, 《서천론경》 삼십 권, 《승기경》 백십 권, 《불국잡경》 천육백삼십팔 권, 《기신론경》 오십 권, 《대지도경》 구십 권, 《보위경》 백사십 권, 《본각경》 오십육 권, 《정률문경》 십 권, 《대공작경》 십사 권, 《유식론경》 십 권, 《구사론경》 십 권이옵니다. 장에 있는 총경이 모두 서른다섯 부이온데, 부마다 골라 낸 것이 오천사십팔 권으로 동토의 성승에게 주어 당나라에 머물러 전하게 하였사옵니다. 이에 모두 정리하여 정돈하여 사람과 말이 메고 지는 짐 위에 올려두고 오직 사례만을 기다리나이다." 삼장 사부는 말을 매고 짐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두 손을 모으고 몸을 굽혀 위를 향해 절을 올렸다. 여래가 당승에게 이르기를, "이 경의 공덕은 헤아려 잴 수 없으니, 비록 우리 문의 거울이나 실로 삼교의 근원이니라. 너희 그 남섬부주에 이르거든 온갖 중생에게 보이되 가벼이 대하지 말며, 목욕하고 재계하지 않고서는 펼쳐 보지 말며, 보배처럼 아끼고 귀히 여길지니라! 대개 이 안에는 신선이 되어 도를 통하는 오묘함이 있고 만 가지 조화를 밝히는 기이한 방도가 있느니라." 하였다. 삼장이 머리를 조아려 은혜에 사례하고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다시 불조를 향해 두루 세 바퀴 예를 올리고 삼가 정성을 다해 받들어 경을 받들고 물러났다. 삼문에 이르러 일일이 또 여러 성인에게 사례하는 이야기는 접어 두자. 여래는 당승을 보내고 나서야 경을 전하는 모임을 파하였다. 그 곁에서 관세음보살이 나서며 두 손을 모으고 불조께 아뢰었다. "제자가 그해 금지를 받들어 동토로 경을 구할 사람을 찾으러 간 일이 이제 이미 이루어졌사옵니다. 모두 헤아려 십사 년이 되니 오천사십 일이옵니다마는 오히려 팔 일이 모자라 장수에 맞지 않사옵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성승이 동쪽으로 돌아가 전하고 다시 서쪽으로 돌아오는 것이 팔 일 안에 이루어져 장수가 다 채워지게 일찍이 허락하여 주시고, 제자가 금지를 도로 바치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래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말이 매우 마땅하니, 금지를 바치는 것을 허락하노라." 그리고 팔대금강을 불러 분부하기를, "너희는 빨리 신통한 위력을 써서 성승을 모셔 동쪽으로 돌아가게 하여 진경을 전하여 머물게 하고, 곧 성승을 인도하여 서쪽으로 돌아오되 팔 일 안에 이루어 한 장의 수효를 다하게 하라. 더디거나 어김이 없게 하라." 하였다. 금강이 곧 당승을 따라잡아 부르며 말했다. "경 얻으러 온 사람은 나를 따라오너라!" 당승 일행은 모두 몸이 가볍고 튼튼해져 넘실거리며 둥실 떠오르는 기분으로 금강을 따라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 이것이 바로, 성을 밝히고 마음을 환히 하여 불조를 참하였고, 공이 완성되고 행이 차니 곧 날아올라 신선이 되었네.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99회 구구수완마천진(九九數完魔剗盡) · 삼삼행만도귀근(三三行滿道歸根) 각설하고 팔대금강이 당승 일행을 본국으로 호송하여 돌려보낸 사정은 접어 두자. 그 무렵 삼층 문 아래에는 오방게제와 사치공조와 육정육갑과 호교가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관음보살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저희는 그간 보살님의 법지를 입어 남몰래 성승을 지켜 왔사옵니다. 오늘 성승의 수행이 가득 찼고 보살님께서 부처님의 금지를 도로 거두셨으니, 저희는 보살님께서 법지를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보살도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거두어도 좋다, 거두어도 좋도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저 당승 사부자가 가는 길 내내 마음과 행실이 어떠하더냐?" 여러 신들이 아뢰었다. "참으로 마음이 공경스럽고 뜻이 정성스러우니 보살님의 통찰을 벗어날 수 없사옵니다. 다만 당승이 겪은 고초는 참으로 말로 다할 수 없사옵니다. 그가 길에서 겪어 온 재앙과 근심과 환난을 제자들이 삼가 이곳에 적어 두었사오니, 이것이 그 재난의 장부이옵니다." 보살이 처음부터 한 번 훑어보았다. 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게제가 분부를 받들어 법지에 귀의하였사옵고, 당승의 고난 수효를 삼가 적었사옵니다. 금선이 강등된 첫째 고난이요, 낳자마자 죽을 뻔한 둘째 고난이요, 만월에 강에 버려진 셋째 고난이요, 친족 찾아 원한 갚은 넷째 고난이요, 성 나서 범 만난 다섯째 고난이요, 구덩이에 떨어져 종자 잃은 여섯째 고난이요, 쌍차령 위의 일곱째 고난이요, 양계산 머리의 여덟째 고난이요, 가파른 계곡에서 말 바꾼 아홉째 고난이요, 밤에 불에 탄 열 번째 고난이요, 가사 잃은 열한 번째 고난이요, 팔계 항복받아 거둔 열두 번째 고난이요, 황풍괴가 막은 열세 번째 고난이요, 영길께 청한 열네 번째 고난이요, 유사 건너기 어렵던 열다섯 번째 고난이요, 사승 거둔 열여섯 번째 고난이요, 네 성인이 나타난 열일곱 번째 고난이요, 오장관 안의 열여덟 번째 고난이요, 인삼 살리기 어렵던 열아홉 번째 고난이요, 심원 쫓아낸 스무 번째 고난이요, 흑송림에서 흩어진 스물한 번째 고난이요, 보상국에서 편지 부친 스물두 번째 고난이요, 금란전에서 범 된 스물세 번째 고난이요, 평정산에서 마귀 만난 스물네 번째 고난이요, 연화동에 매달린 스물다섯 번째 고난이요, 오계국에서 임금 구한 스물여섯 번째 고난이요, 마귀에게 몸 바뀐 스물일곱 번째 고난이요, 호산에서 괴물 만난 스물여덟 번째 고난이요, 바람이 성승 잡아간 스물아홉 번째 고난이요, 심원이 해 입은 서른 번째 고난이요, 성인 청해 요괴 항복시킨 서른한 번째 고난이요, 흑하에 가라앉은 서른두 번째 고난이요, 차지국에서 수레 민 서른세 번째 고난이요, 크게 내기해 승부 가른 서른네 번째 고난이요, 도사 물리치고 승려 일으킨 서른다섯 번째 고난이요, 길에서 큰 물 만난 서른여섯 번째 고난이요, 몸이 통천하에 떨어진 서른일곱 번째 고난이요, 물고기 바구니로 나타난 서른여덟 번째 고난이요, 금산에서 괴물 만난 서른아홉 번째 고난이요, 온 하늘 신도 못 굴복시킨 마흔 번째 고난이요, 부처님께 근원 물은 마흔한 번째 고난이요, 물 마시고 독 입은 마흔두 번째 고난이요, 서량국에서 혼인 권한 마흔세 번째 고난이요, 비파동에서 고초 겪은 마흔네 번째 고난이요, 심원 다시 쫓아낸 마흔다섯 번째 고난이요, 미후 분별 못 한 마흔여섯 번째 고난이요, 화염산이 길 막은 마흔일곱 번째 고난이요, 파초선 구해 얻은 마흔여덟 번째 고난이요, 마왕 묶어 거둔 마흔아홉 번째 고난이요, 제새성에서 탑 쓸은 쉰 번째 고난이요, 보물 취해 승려 구한 쉰한 번째 고난이요, 가시 숲에서 시 읊은 쉰두 번째 고난이요, 소뢰음에서 난 만난 쉰세 번째 고난이요, 여러 하늘 신이 갇힌 쉰네 번째 고난이요, 히시통 더러움이 막은 쉰다섯 번째 고난이요, 주자국에서 의술 행한 쉰여섯 번째 고난이요, 병든 이 구해 낸 쉰일곱 번째 고난이요, 요괴 굴복시키고 왕비 찾은 쉰여덟 번째 고난이요, 칠정에 빠진 쉰아홉 번째 고난이요, 눈 많은 괴물에 상처 입은 예순 번째 고난이요, 사타령이 길 막은 예순한 번째 고난이요, 괴물이 세 빛깔로 갈린 예순두 번째 고난이요, 성 안에서 재앙 만난 예순세 번째 고난이요, 부처님 청해 마귀 거둔 예순네 번째 고난이요, 비구국에서 아이 구한 예순다섯 번째 고난이요, 참과 사특함 가려 낸 예순여섯 번째 고난이요, 솔숲에서 괴물 구한 예순일곱 번째 고난이요, 승방에 누워 앓은 예순여덟 번째 고난이요, 무저동에 갇힌 예순아홉 번째 고난이요, 멸법국에서 어렵던 일흔 번째 고난이요, 은무산에서 마귀 만난 일흔한 번째 고난이요, 봉선군에서 비 빈 일흔두 번째 고난이요, 병기 잃은 일흔세 번째 고난이요, 정파 잔치 벌인 일흔네 번째 고난이요, 죽절산에서 난 당한 일흔다섯 번째 고난이요, 현영동에서 고초 겪은 일흔여섯 번째 고난이요, 서우 쫓아 잡은 일흔일곱 번째 고난이요, 천축국에서 혼인 권한 일흔여덟 번째 고난이요, 동대부에서 감금된 일흔아홉 번째 고난이요, 능운도에서 범태 벗은 여든 번째 고난이요, 십만 팔천 리를 지나왔으니 성승의 고난 장부가 분명하도다." 보살이 고난 장부를 한 번 더 훑어보고는 급히 소리를 전하여 말했다. "불문에서는 구구가 참됨으로 돌아간다고 하느니라. 성승이 여든 고난을 겪었으나 하나가 모자라니 수효를 채울 수 없도다." 곧 게제에게 명하였다. "금강들을 따라잡아 고난을 하나 더 생기게 하여라." 게제가 명을 받들어 구름을 타고 동쪽으로 왔다. 하룻낮 하룻밤 만에 팔대금강을 따라잡아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리이리하라고 하셨나이다. 삼가 보살님의 법지를 받드오니 어김이 있어서는 아니 되리라." 팔대금강이 이 말을 듣고는 휙 바람을 누르며 그들 사부자와 말과 경전까지 땅 위로 떨어뜨렸다. 아! 바로 이러하였다. 구구가 참됨으로 돌아가니 도행이 어렵고, 굳게 뜻을 세운 연후에야 현묘한 관문이 서느니라. 모름지기 애써 닦아야 사악한 마귀가 물러가고 바른 법을 지켜야 온전히 돌아오느니라. 경전 얻는 일을 결코 쉽다 여기지 말지니, 성승이 수많은 고비를 넘었느니라. 예로부터 참동계에 묘히 합하는 이치가 있어 터럭만큼 어긋나도 단을 맺지 못하느니라. 당승이 속세의 땅을 밟자 마음이 놀랐다. 저팔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좋아, 좋아, 좋아! 서두르다 늦었구나." 사오정이 말했다. "좋아, 좋아, 좋아! 우리가 조금 빨리 걸었더니 이곳에서 쉬어 가라는 뜻이로구나." 대성이 말했다. "속담에 이르기를, 열흘은 여울가에 앉아 지내고 하루에 아홉 여울을 지난다고 하였느니라." 당승이 말했다. "너희 셋은 우선 입씨름을 그치고 방향이나 가늠해 보아라, 이곳이 어디인지." 사오정이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바로 여기로구나, 여기란 말이옵니다! 스승님, 물소리를 들어 보시옵소서." 손행자가 말했다. "물소리가 들리니 네 본가가 가까운 모양이로구나." 저팔계가 말했다. "그의 본가는 유사하 아니냐." 사오정이 말했다.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이곳은 통천하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제자들아, 어느 강변인지 자세히 살펴보아라." 손행자가 몸을 솟구쳐 뛰어올라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자세히 살펴본 뒤 내려와 말했다. "스승님, 이곳은 통천하 서쪽 강변이옵니다." 당승이 말했다. "기억해 내었구나. 동쪽 강변에는 본래 진가장이 있었지. 그해 이곳에 이르러 네가 그 자녀를 구해 준 덕분에 그들이 우리를 고맙게 여겨 배를 지어 보내 주려 하였고, 다행히 백원이 엎드려 건네주었느니라. 내가 기억하기로는 서쪽 강변 사방에 인가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어찌하면 좋겠느냐?" 저팔계가 말했다. "범인들만 속임수를 부리는 줄 알았더니 부처님 앞의 금강들까지 속임수를 부리는구나. 그들이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를 동쪽으로 보내라 하였거늘, 어찌하여 이 반길에 우리를 내버려 두었단 말이냐? 이제 진퇴양곡이 아니냐! 어떻게 저쪽으로 건너간단 말이냐!"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님, 원망은 그만두시오. 우리 스승님은 이미 도를 얻으시어 앞서 능운도에서 범태를 벗으셨으니 이번에는 결단코 물에 빠지지 않으실 것이오. 형님과 그대와 나 모두 섭법을 일으켜 스승님을 모시고 건너가면 그만이오." 손행자가 거듭 속으로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모셔 갈 수 없다, 모셔 갈 수 없어!" 보아라, 그가 어찌하여 모셔 갈 수 없다고 하였겠느냐? 만일 신통을 내어 날아오르는 오묘한 이치를 털어놓으려 하였다면 사부 일행이 천 개의 강도 건너갔으련만, 마음속으로 훤히 알고 있으니 당승의 구구의 수효가 아직 차지 않아 마땅히 한 가지 고난이 더 있어야 하였기에 이곳에 붙들어 두었던 것이었다. 사부 일행은 입으로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발걸음은 천천히 옮겨 물가에 이르렀는데, 문득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당나라 성승이시여, 당나라 성승이시여! 이리로 오시오, 이리로 오시오!" 네 사람이 모두 놀라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사방에 인적은 없고 배 또한 없었으며, 다만 커다란 흰 대머리 자라 한 마리가 강변에서 머리를 내밀고 외치고 있었다. "노스님, 제가 스승님을 몇 해나 기다렸사옵니다. 이제야 돌아오시옵니까?"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노원아, 지난해에 네게 폐를 끼쳤는데 금년에 또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당승과 저팔계와 사오정이 모두 더없이 기뻐하였다. 손행자가 말했다. "노원아, 네가 참으로 맞이할 마음이 있다면 강 언덕으로 올라오너라." 그 자라가 곧 몸을 솟구쳐 강에서 기어 올라왔다. 손행자가 말을 끌어올려 그 등에 태우라 하니, 저팔계는 말 꼬리 뒤에 웅크리고 당승은 말 목 왼쪽에 서며 사오정은 오른쪽에 섰고, 손행자는 한 발로 노원의 목을 밟고 한 발로 노원의 머리를 밟은 채 외쳤다. "노원아, 부디 걷는 걸음을 안정하게 하여라." 그 노원이 네 발을 힘껏 저으며 수면을 평지를 걷듯 밟아, 사부 일행 넷과 말까지 모두 다섯을 등에 실은 채 곧장 동쪽 강변을 향하여 돌아왔다. 참으로 이러하였다. 불이문 가운데 법이 오묘하고 그윽하여, 모든 마귀를 물리치고 나서야 사람과 하늘을 아느니라. 본래의 면목을 이제야 비로소 보았고, 하나의 근원이 비로소 온전해졌느니라. 삼승을 증득하여 드나듦이 자유롭고, 아홉 번 구운 단이 이루어져 주선함에 맡기느니라. 짐을 메고 지팡이를 날리는 일은 모두 그만두고 말지니, 다행히 본원으로 돌아가며 노원을 만났느니라. 노원이 그들을 등에 업고 물결을 밟아 반나절이나 지났을 무렵, 날이 저물어 갈 즈음에 동쪽 강변이 가까워지자 노원이 문득 물었다. "노스님, 제가 지난해에 서방에 가시거든 부처님을 뵙고 저의 마침과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여쭈어 달라고 부탁드렸사옵니다. 과연 여쭈어 보셨사옵니까?" 사실 그 장로는 서천 옥진관에서 목욕하고 능운도에서 범태를 벗은 뒤 영산으로 걸어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여러 부처와 보살과 성승 무리를 참배하는 데만 마음을 쏟았으니, 뜻은 오로지 경전을 얻는 데에만 있었고 다른 일은 털끝만큼도 돌보지 않았던 터라 노원의 수명을 묻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대답할 말이 없었으나 속이거나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 한참이나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하였다. 노원이 곧 대신 물어 주지 않았음을 알아차리고는 몸을 한 번 흔들어 휘익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잠겨 버려, 그들 사부와 말과 경전까지 모두 물에 빠뜨렸다. 어라! 다행히 당승이 태를 벗고 도를 이루어서 전번 같았으면 이미 물밑으로 가라앉았으련만, 또 다행히 백룡마는 용이요 저팔계와 사오정은 물을 알며 손행자는 빙긋이 웃으며 큰 신통을 드러내어 당승을 물 밖으로 부축하여 동쪽 강변에 오르게 하였다. 다만 경전 보따리와 옷과 안장과 고삐가 모두 젖었을 뿐이었다. 사부 일행이 막 강변에 올라 짐을 추스르는데, 문득 또 한바탕 광풍이 일며 하늘빛이 어두워지고 우레와 연기가 함께 일어나며 돌이 굴러가고 모래가 날렸다. 살펴보니 이러하였다. 한바탕 바람에 천지가 흔들리고, 한 번 우레에 산천이 진동하며, 한 줄기 번개가 구름을 뚫고 불을 날리고, 하루도록 자욱한 안개가 대지를 덮었구나. 바람 기운이 몰아치고 우레 소리가 격렬하며, 번개가 붉은 비단을 찢고 안개가 별과 달을 가리누나. 바람이 일으킨 모래가 얼굴에 덮치고, 우레에 놀란 호랑이와 표범이 몸을 숨기며, 번개에 번쩍이는 날짐승이 울부짖고, 안개에 잠긴 나무가 자취를 감추누나. 그 바람은 통천하의 물결을 뒤집어 출렁이게 하고, 그 우레는 통천하의 어룡이 담력을 잃게 하며, 그 번개는 통천하를 속속들이 환히 비추고, 그 안개는 통천하 강변의 언덕을 캄캄하게 덮누나. 좋은 바람이로다! 산을 무너뜨리고 돌을 부수며 소나무와 대나무를 쓰러뜨리는구나. 좋은 우레로다! 겨울잠 자는 벌레를 놀라게 하는 위세가 호걸답구나. 좋은 번개로다! 하늘을 흐르고 들을 비추며 금빛 뱀이 달려가는구나. 좋은 안개로다! 뒤섞여 빈 하늘을 덮어 구천마저 가리누나. 놀란 당승이 경전 보따리를 눌러 잡고 사오정이 경전 짐을 누르며 저팔계가 백룡마를 붙들고 손행자는 두 손으로 쇠몽둥이를 휘둘러 좌우를 지켰다. 알고 보니 그 바람과 안개와 우레와 번개는 음마들이 부르는 소리로서, 얻어 온 경전을 빼앗으려는 것이었으니, 밤새 소란을 피우다가 날이 밝아서야 그쳤다. 장로는 젖은 옷을 입은 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오공아, 이게 어찌된 일이냐?" 손행자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스승님, 속사정을 모르시는구려. 저희가 스승님을 보호하여 이 경전을 얻은 것은 천지의 조화로운 공을 빼앗은 것이라, 천지와 함께 오래가고 해와 달과 함께 빛나며 수명은 긴 봄을 누리고 법신은 썩지 않을 것이니, 이 때문에 천지가 용납하지 않고 귀신이 꺼려 몰래 빼앗으려 하였소이다. 하나는 이 경전이 물에 흠뻑 젖었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스승님의 바른 법신이 눌러 주어 우레가 칠 수도 번개가 비출 수도 안개가 가릴 수도 없었거니와, 또 이 늙은 손이 쇠몽둥이를 휘둘러 순양의 성질로 지켜 낸 탓이오. 날이 밝아 양기가 다시 왕성해지니 빼앗아 갈 수 없었소이다." 당승과 저팔계와 사오정이 그제야 깨달아 저마다 거듭 감사하였다. 잠시 뒤 태양이 높이 비추자 경전을 높은 언덕으로 옮겨 보따리를 풀어 햇볕에 말렸으니, 지금도 그곳에 쇄경석이 남아 있다. 그들은 옷과 신발도 언덕 곁에 펴 놓고 말렸는데, 서 있는 이도 앉은 이도 뛰는 이도 있었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한몸이 순양이 되어 햇볕을 즐기니 음마가 감히 강포를 부리지 못하누나. 물이 이겨도 참된 경전은 굴복함을 알지니, 바람과 우레와 번개와 안개의 빛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이로부터 맑고 평안하게 바른 깨달음으로 돌아가고, 이제부터 편안하고 태평하게 신선의 고향에 이르누나. 쇄경석 위에 자취를 남겼으니, 천고토록 마귀가 이곳에 이르지 못하리라. 그들 넷이 경전을 살펴보며 하나씩 햇볕에 말리고 있는데, 일찍이 고기 잡는 이 몇이 강가를 지나다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는 그중에 아는 이가 있어 말했다. "노스님, 혹시 재작년에 이 강을 건너 서천으로 경을 구하러 가시던 분이 아니시옵니까?" 저팔계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너희는 어디 사람이기에 우리를 알아보느냐?" 어부가 말했다. "저희는 진가장 사람이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진가장이 여기서 얼마나 머냐?" 어부가 말했다. "이 골짜기를 지나 남쪽으로 스무 리쯤 가면 있사옵니다." 저팔계가 말했다. "스승님, 경전을 진가장으로 옮겨다 말리시지요. 그곳에는 묵을 곳도 있고 먹을 것도 있으니, 그 집에다 옷이나 풀먹여 달라고 하면 좋지 않사옵니까?" 당승이 말했다. "가지 말자. 여기서 말려서 거두어 길을 찾아 돌아가면 그만이니라." 그 어부 몇이 남쪽 골짜기를 지나가다 마침 진징을 만나 외쳤다. "둘째 어르신, 재작년에 댁에서 제사 지낼 자식 대신이었던 스승님들이 돌아오셨소." 진징이 말했다. "너희가 어디서 보았느냐?" 어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돌 위에서 경을 말리고 계시오." 진징이 곧 소작인 몇을 데리고 골짜기를 건너와 바라보고는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경을 구해 돌아오시어 공이 이루어지고 행이 가득 찼거늘, 어찌 소인의 집으로 오시지 않고 여기서 이러고 계시옵니까? 어서 오시옵소서, 어서 저희 집으로 드시옵소서." 손행자가 말했다. "경이 마르면 너와 함께 가리라." 진징이 또 물었다. "어르신의 경전과 의복은 어찌하여 젖었사옵니까?" 당승이 말했다. "지난해에는 백원이 강 서쪽으로 업어 건네준 덕을 보았고, 금년에도 또 그가 강 동쪽으로 업어 건네주었느니라. 강변에 거의 다 이르러서 그가 지난해 부처님의 수명을 물어 달라던 일을 내가 물어 오지 못하였다고 하니, 그가 물속으로 잠겨 버려 이리 젖었노라." 그리고 앞뒤의 사정을 자세히 한 번 이야기하였다. 진징이 절을 올리며 매우 간절히 청하니 당승이 못 이기는 척하며 경전을 거두었다. 뜻밖에도 돌 위에서 불본행경 몇 권이 들러붙어 경의 끝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니, 이 때문에 지금까지 본행경이 온전하지 못하고 쇄경석 위에 글자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당승이 뉘우치며 말했다. "우리가 소홀히 하여 살피지 못하였구나!"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오! 대개 천지는 온전하지 않으니 이 경전도 본래 온전하였는데 이제 들러붙어 찢어진 것은 온전하지 않음의 오묘함에 응한 것이거늘, 어찌 사람의 힘이 참여할 수 있으리오!" 사부 일행이 과연 거두기를 마치고 진징과 함께 마을로 갔다. 그 마을 사람들은 하나가 열에게 전하고 열이 백에게 전하며 백이 천에게 전하여,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 나와 마중하며 구경하였다. 진청이 소문을 듣고 문 앞에 향안을 차려 맞이하며 북과 풍악을 불라 명하였다. 잠시 뒤 일행이 도착하여 맞아들이니, 진청이 온 집안 식구를 거느리고 나와 절하며 지난날 딸을 구해 준 은혜에 사례하고 곧 차와 채식을 올리라 명하였다. 당승은 이미 부처님의 신선 과품과 안주를 받고 범태를 벗어 부처가 되었으므로 속세 음식을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두 노인이 간곡히 권하자 하는 수 없이 그 뜻만 조금 보였다. 손대성은 본래 불 먹은 음식을 먹지 않으니 그도 말했다. "되었소." 사오정도 그다지 먹지 않고 저팔계도 전번 같지 않아 곧 사발을 내려놓았다. 손행자가 말했다. "바보도 먹지 않는 것이냐?" 저팔계가 말했다. "어찌된 일인지 비위가 갑자기 약해졌소." 그리하여 채식 잔치를 거두고는 또 경을 얻은 사정을 물었다. 당승이 다시 먼저 옥진관에서 목욕하고 능운도에서 범태를 벗은 일, 뇌음사에 이르러 여래를 참배하고 진루에서 잔치를 하사받고 보각에서 경을 전하여 주신 일, 처음에 두 존자가 인사를 요구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여 글자 없는 경을 전하였고 뒤에 여래께 절하고 아뢰어서야 일장의 수효를 받은 일, 아울러 백원이 물속으로 잠긴 일과 음마가 몰래 빼앗으려 한 일까지 낱낱이 진술하고 곧 작별하려 하였다. 그 두 노인과 온 집안이 어찌 놓아 보내려 하였겠는가. 그들이 말했다. "그간 자식을 구해 주신 깊은 은혜를 갚지 못하여 절 한 채를 지어 이름을 구생사라 하였사오니, 향불을 모시며 끊이지 않게 하려 하옵니다." 그리고 옛날 제사 대신이던 자식 진관보와 일칭금을 불러내어 절하며 감사하게 하고 다시 절로 모셔 구경하기를 청하였다. 당승이 또 경전 보따리를 그 집 당 앞에 두고 그들을 위하여 보상경 한 권을 외워 주었다. 뒤에 절에 이르러 보니 진씨 집안이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있었다.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또 한 무리가 와서 청하고, 아직 젓가락을 들지도 않았는데 또 한 무리가 와서 청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니 다투어도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당승이 모두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조금씩 뜻만 보였다. 그 절이 과연 가지런하게 지어진 것이 이러하였다. 산문은 붉은 단청에 윤기가 흐르니 시주의 공이 크구나. 한 채의 누대가 이로부터 섰고, 두 줄기 회랑과 방이 이제 일어났구나. 붉은 칠을 한 미닫이는 칠보로 영롱하고, 향기는 은하수에 떠돌며 맑은 빛이 온 허공에 가득하구나. 몇 그루 어린 잣나무에는 아직 물을 주고, 몇 줄기 큰 소나무는 아직 숲을 이루지 못하였구나. 앞에는 흐르는 물이 통천하의 겹겹이 이는 물결을 맞이하고, 뒤에는 높은 언덕이 산맥이 겹겹이 땅의 용줄기에 닿았구나. 당승이 살펴보기를 마치고 높은 누각에 오르니 누각 위에는 과연 그들 넷의 모습을 조각해 두었다. 저팔계가 보고는 손행자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형님의 상이 몹시 닮았소." 사오정이 말했다. "둘째 형님, 당신 것은 더욱 닮았소. 다만 스승님 것은 너무 잘생겼을 뿐이오." 당승이 말했다. "좋구나, 좋구나!" 누각에서 내려오니 아래 앞전과 뒤회랑에는 채식을 차려 놓고 청하는 이들이 또 있었다. 손행자가 물었다. "지난날의 대왕묘는 어찌 되었느냐?" 여러 노인이 말했다. "그 묘는 그해에 헐었사옵니다. 어르신, 이 절을 세운 뒤로는 해마다 곡식이 익고 해마다 풍년이 드니 이는 어르신의 복된 가호이옵니다." 손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는 하늘이 내린 것이니 우리와 무슨 상관이리오! 다만 우리가 떠난 뒤로 이 마을 사람들의 자손이 번성하고 가축이 편안하며 해마다 바람과 비가 순하리라." 여러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여 감사하였다. 앞뒤로 과일과 채식을 올리는 집이 끝없이 있었다. 저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내 팔자야! 그때는 먹을 수 있었으나 열 번씩 연달아 청하는 집이 없더니, 오늘은 먹을 수 없는데 한 집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집이로구나." 기운이 가득 찼건만 조금 손을 대어 다시 채식 여덟아홉 접시를 먹고, 비록 위가 상하였건만 또 만두 서른 개쯤을 먹어 모두 배가 부른데도 또 사람이 와서 청하자 당승이 말했다. "제자가 무슨 능력이 있사옵기에 이토록 지극한 사랑을 입사옵니까! 부디 오늘 저녁은 멈추시고 내일 아침에 다시 받들겠나이다." 깊은 밤이 되자 당승은 참된 경전을 굳게 지켜 잠시도 떠나지 못하고 누각 아래에서 좌선하며 지켰다. 삼경이 가까워지자 당승이 조용히 불렀다. "오공아, 이 집 사람들은 우리가 도를 이루어 일이 끝났음을 알고 있구나. 예로부터 참된 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면 참된 이가 아니라고 하였느니라. 오래 머물다가 큰일을 그르칠까 두렵구나." 손행자가 말했다. "스승님 말씀이 옳소이다. 이 깊은 밤에 사람들이 모두 깊이 잠든 틈을 타 조용히 떠나갑시다." 저팔계도 또한 알아차렸고 사오정은 스스로 훤히 알았으며 백룡마도 뜻을 알아들었다. 그리하여 몸을 일으켜 가볍게 짐을 등에 얹고 메며 행랑을 따라 나왔다. 산문에 이르러 보니 문에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손행자가 또 자물쇠 여는 법을 써서 두 번째 문과 큰문을 열고 길을 찾아 동쪽을 향하여 갔다. 그런데 문득 반공중에서 팔대금강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망치는 자들아, 나를 따라오너라!" 그 장로는 향기로운 바람이 실실 이는 것을 느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바로 이러하였다. 단이 이루어져 본래 면목을 알았으니, 몸이 건강하여 여여히 주인을 배알하리라. 필경 당나라 임금을 어찌 뵙게 될지는 모르니, 뒷일이 어찌될지는 다음 회에서 들려주겠다. 제100회 경회동토(徑回東土) · 오성성진(五聖成眞) 각설하고 그 사부중이 몸을 벗어나 금강을 따라 바람을 타고 오른 사정은 잠시 접어 두자. 한편 진가장 구생사의 여러 사람은 날이 샌 뒤에 일어나 여전히 과일과 안주를 장만해 누각 아래로 바치러 왔다가 당승이 없어진 것을 보았다. 이 사람도 와서 묻고 저 사람도 와서 찾으며 모두 허겁지겁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늘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뻔히 두 눈으로 살아 있는 부처님을 놓쳐 버렸구나!" 한참 어찌할 도리가 없어 장만해 온 물건을 누각 위로 올려다 놓고 제사를 지내며 지전을 태웠다. 그 뒤로 해마다 큰 제사를 네 차례, 작은 제사를 스물네 차례 지냈고, 병을 고해 낸 이와 평안을 비는 이, 혼사를 구해 소원을 빈 이, 재물을 구하고 자식을 비는 이때문에 오지 않는 날 없이 향을 사르며 제사를 올렸으니, 금 향로의 천 년 불꽃 끊이지 않고 옥 잔의 만 년 등불 늘 밝았도다.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팔대금강은 두 번째 향기로운 바람을 일으켜 그 사부중을 하루가 채 못 되어 동토까지 실어 갔으니, 차츰 장안이 바라보였다. 원래 당태종은 정관 십삼년 구월 보름 사흘 앞에 당승을 성 밖까지 배웅하여 보낸 이래 십육년이 되던 해에 곧 공부 관원을 시켜 서안관 밖에 망경루를 지어 경전을 맞이하게 하고, 태종은 해마다 몸소 그곳에 나아갔다. 마침 그날 수레를 타고 다시 누각 위에 올라갔다가 홀연히 정서쪽 하늘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잇달아 이는 것을 보았다. 금강이 허공에 멈추어 서서 불러 말했다. "성승이여, 이곳이 바로 장안성이로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마땅치 않으니, 이곳 사람들이 영민하여 우리의 모습이 새어 나갈까 두렵도다. 손대성 세 사람도 함께 갈 것 없거니와, 그대 홀로 가서 그대 임금께 경전을 전한 뒤 곧 도로 오너라. 나는 창공에서 그대를 기다렸다가 그대와 함께 성지를 반납하리라." 대성이 말했다. "존자의 말씀 또한 옳사오나, 우리 스승이 어찌 경전 짐을 메시며 저 말을 끄시겠나이까? 저희가 함께 가서 배웅해야 하옵니다. 부디 공중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옵소서. 감히 늦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금강이 말했다. "지난번에 관음보살이 여래께 아뢰어 오가는 길이 오직 팔 일이라야 장수가 온전히 차도록 하였거늘, 이제 이미 사흘이 넘었으니 저팔계가 부귀를 탐내어 기한을 그르칠까 염려되는도다." 팔계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이 부처가 되시거늘 나 또한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데, 어찌 부귀를 탐낼 리가 있겠느냐! 이 괴팍한 사내 같으니! 모두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거나, 경전을 넘겨주고 곧 돌아와 너희와 함께 회향하마." 그 얼간이는 짐을 메고, 사승은 말을 끌고, 행자가 성승을 인도하여 모두 구름머리를 눌러 내리니 망경루 곁에 내려앉았다. 태종이 여러 관원과 함께 이를 보고 곧 누각에서 내려와 맞으며 말했다. "어제가 왔느냐?" 당승이 곧 몸을 굽혀 절을 올리니 태종이 일으켜 세우고 또 물었다. "이 세 사람은 누구인고?" 당승이 말했다. "길 가운데서 거둔 제자들이옵니다." 태종이 크게 기뻐하며 곧 시관에게 명했다. "짐의 어거마에 안장을 얹어 어제를 모셔 오너라. 짐과 함께 조정으로 돌아가리라." 당승이 은혜를 사례하고 말에 오르니 대성이 금고봉을 휘둘러 뒤따르고, 팔계와 사승은 말을 부축하고 짐을 메고 어가를 따라 장안으로 들어갔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예전 잔치에서 태평 즐기고 문무 편안히 뛰어난 인재 드러내었네. 수륙 도량에서 중이 법 펼치고 금란전 위에서 임금이 신하 보내었네. 통행 문서 칙으로 당삼장에게 내리고 경전 두루마리 본디 오행에 짝하였네. 흉악한 마귀 괴로이 단련해 멸하였으니 공 이루어 이제 즐거이 서울로 올라가네." 당승 일행이 어가를 따라 입조하니 도성 안에서 취경인이 왔음을 모르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각설하고 장안에서 당승이 예전에 머물던 홍복사의 대소 승려들은 몇 그루 소나무의 가지가 하나하나 모두 동쪽으로 향한 것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이상하도다! 이상하도다! 오늘 밤에 일찍이 바람이 불지 않았거늘 어찌 이 나무 가지들이 모두 비틀려 넘어왔단 말인가?" 그 가운데 삼장의 옛 제자가 말했다. "어서 옷을 가져오너라! 취경하러 가신 스승님이 돌아오셨다!" 여러 승려가 물었다. "너는 어찌 그것을 아느냐?" 옛 제자가 말했다. "당년에 스승님이 떠나실 적에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간 뒤에 혹 삼오 년, 혹 육칠 년이 되거든, 다만 송가지가 만약 동쪽을 향하면 내가 곧 돌아오리라' 하셨느니라. 우리 스승님은 부처의 입이요 성인의 말씀이시니, 이 까닭에 아노라." 급히 옷을 걸치고 나가 서쪽 거리에 이르렀을 때 이미 어떤 이가 전하기를 "취경하는 이가 방금 막 도착하였는데 만세 할아버지께서 성안으로 맞아들이셨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러 승려가 그 말을 듣고 또 급급히 달려오다가 마침내 마주쳤으나, 막상 큰 어가를 보고는 감히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고 뒤따라 조문 밖에까지 이르렀다. 당승이 말에서 내려 여러 사람과 함께 입조하였다. 당승이 용마와 경전 짐을 행자·팔계·사승과 함께 옥계 아래에 있도록 하였다. 태종이 전하여 불렀다. "어제는 전으로 오르라." 자리를 내리자 당승이 다시 사례하고 앉아서 경전 두루마리를 들어오게 하였다. 행자 등이 꺼내어 가까이 모시는 관원이 받들어 올리니, 태종이 또 물었다. "경전 수효가 얼마이며 어찌 취하여 왔는고?" 삼장이 말했다. "신승이 영산에 이르러 불조를 뵙고 아뢰었더니, 아난과 가섭 두 존자를 보내시어 진루에서 공양을 내리시고 보각 안에서 경전을 전하게 하셨사옵니다. 존자들이 인사를 요구하거늘 갖추어 둔 것이 없어 드리지 못하였더니 마침내 경전을 넘겨 주었사옵니다. 불조의 은혜에 사례하고 동쪽으로 가는데 홀연 요괴의 바람에 경전을 빼앗겼으므로 다행히 제자들이 약간의 신통으로 쫓아가 되찾았사오나 도리어 모두 내동댕이쳐져 흩어졌사옵니다. 펴서 살펴보니 모두 글자 없는 빈 책이었사옵니다." "신 등이 놀라 다시 가서 절하며 간절히 빌었더니 불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경전을 이루었을 적에 비구 성승이 산을 내려가 사위국 조장자의 집에서 한 번 외어 주어 그 집 산 이의 평안을 보우하고 죽은 이의 초탈을 얻게 하였으되, 다만 저에게 쌀 세 말 세 되의 좁쌀 같은 황금을 받았을 뿐이라 도리어 값을 싸게 판 것을 섭섭히 여겨 뒷날 자손들이 쓸 돈이 없게 되었느니라' 하셨사옵니다. 신 등이 두 존자가 인사를 요구함을 불조께서 밝히 아심을 알고, 다만 흠으로 내리신 자금 발우를 그에게 드려서야 비로소 글자 있는 진경을 전해 주었사옵니다. 이 경전은 서른다섯 부가 되옵고, 각 부 가운데서 몇 권을 가려 뽑아 보내었으니 모두 오천 마흔여덟 권이옵니다. 이 수효는 한 장수에 합하는 것이옵니다." 태종이 더욱 기뻐하며 분부했다. "광록시에 명하여 잔치를 베풀고 동각을 열어 후하게 답례하라." 홀연히 그 세 제자가 계단 아래에 서 있는데 용모가 비상하므로 곧 물었다. "고제들이 과연 외국 사람이냐?" 장로가 엎드려 말했다. "큰 제자는 성이 손이요 법명이 오공이온데 신이 또 그를 손행자라 부르옵니다. 그는 본디 동승신주 오래국 화과산 수렴동 사람이온데, 오백 년 전에 천궁을 크게 어지럽힌 죄로 불조께 서쪽 양계산 돌상자 속에 얽매어 눌려 있었사옵니다. 관음보살이 권하여 선을 따르게 하시니 원하여 귀의하였으므로 신이 그곳에 가서 구해 내었사오니, 이 제자의 보호를 매우 입었사옵니다. 둘째 제자는 성이 저요 법명이 오능이온데 신이 또 저팔계라 부르옵니다. 그는 본디 복릉산 운잔동 사람이온데 오사장 고로장에서 요괴 노릇을 하다가 곧 보살의 권선을 입고 행자에게 거두어졌사옵니다. 가는 길에 짐을 메는 힘이 있고 물을 건너는 공이 있었사옵니다." "셋째 제자는 성이 사요 법명이 오정이온데 신이 또 사화상이라 부르옵니다. 그는 본디 유사하에서 요괴 노릇을 하던 자이온데 또한 보살의 권선을 입고 사문의 가르침을 받들었사옵니다. 저 말은 주공께서 내리신 것이 아니옵니다." 태종이 말했다. "털빛이 같은데 어찌 아니 되겠느냐?" 삼장이 말했다. "신이 사반산 응수간에서 물을 건너다가 본래 말이 이 말에게 삼켜졌사옵니다. 행자가 보살께 청하여 이 말의 내력을 물었더니 본래 서해 용왕의 아들이온데 죄가 있어 또한 보살의 구제를 입어 신에게 벗노릇을 하라 하셨사옵니다. 당시에 본래 말로 변하였으므로 털빛이 같사옵니다. 다행히 산을 오르고 고개를 넘으며 험한 길을 건넜사오니, 갈 적에는 타고 올 적에는 경전을 실었으매 또한 그 힘을 많이 헤아렸사옵니다." 태종이 그 말을 듣고 칭찬을 마지않으며 또 물었다. "서쪽 먼 곳을 건넜으되 도대체 노정이 얼마나 되느냐?" 삼장이 말했다. "보살의 말씀을 총계하면 십만 팔천 리의 먼 길이옵니다. 도중에 일찍이 수효를 적지 못하고 다만 지내온 것이 열네 차례의 겨울과 여름인 줄만 아옵니다. 날마다 산이요 날마다 고개이며 만난 숲은 작지 않고 만난 물은 넓고 컸사옵니다. 또한 몇몇 나라 임금을 지났사오매 모두 조험의 인장이 있사옵니다." 당승이 불러 말했다. "제자들아, 통관 문첩을 가져오너라. 주공께 바치도록 하자." 하고 곧바로 올리었다. 태종이 보니 정관 십삼년 구월 보름 사흘 앞에 내어 준 것이었다. 태종이 웃으며 말했다. "오래도록 머나먼 길을 수고하였거늘 이제 이미 정관 이십칠년이로다." 첩문 위에는 보상국의 도장, 오계국의 도장, 거지국의 도장, 서량여국의 도장, 제새국의 도장, 주자국의 도장, 사타국의 도장, 비구국의 도장, 멸법국의 도장이 찍혀 있었고, 또한 봉선군의 도장과 옥화주의 도장과 금평부의 도장이 있었다. 태종이 훑어보기를 마치고 거두어 두었다. 일찍이 당가 관원이 연회를 청하므로 곧 전에서 내려 손을 잡고 걸으며 또 물었다. "고제들이 예법을 아느냐?" 삼장이 말했다. "소신의 제자들은 모두 산골 벌판의 요괴 몸이라 중화 성조의 예절을 익히지 못하였사오니, 부디 주공께서는 죄를 용서하소서." 태종이 웃으며 말했다. "허물을 묻지 않겠노라, 허물을 묻지 않겠노라. 모두 함께 동각으로 청하여 잔치에 가자꾸나." 삼장이 다시 은혜를 사례하고 그 세 사람을 불러 함께 각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니, 과연 중화의 대국이라 예사와는 달랐다. 저것을 보라. 문에는 채색 수를 놓은 휘장이 드리웠고 땅에는 붉은 담요를 깔았으며, 기이한 향기는 그윽하고 진귀한 물품은 싱싱하였네. 호박 잔과 유리 잔에는 금을 상감하고 비취를 점점이 찍었고, 황금 쟁반과 백옥 사발에는 비단을 박고 꽃을 얽었네. 무청을 푹 삶고 향기로운 토란에는 꿀을 끼얹었네. 버섯은 달콤하고 바다 나물은 맑고 기이하였네. 몇 차례 더하여 생강으로 매운 죽순을 내고, 몇 번씩 꿀에 무친 아욱을 차렸네. 밀가루로 만든 면근과 참죽나무 잎, 목이버섯과 두부 껍질이네. 돌꽃 선채, 고사리 가루와 말린 고비이네. 산초로 삶은 무, 겨자에 무친 오이 채네. 몇 접시 채소 음식은 오히려 그러려니와, 몇 가지 진귀한 과일이 으뜸을 다투네. 호두와 곶감, 용안과 여지이네. 선주 지방의 밤과 산동 지방의 대추, 강남의 은행과 토끼 대가리 배이네. 개암과 잣과 연밥은 크고 포도도 굵으며, 비자와 박씨와 마름 쌀이 가지런하네. 감람과 능금, 빈파와 사과이네. 어린 연근과 올미, 아삭한 자두와 산딸기이네. 갖추지 않은 것이 없고 빠진 물건이 없으며, 또한 찐 것 튀긴 것 꿀 과자에 좋은 안주를 겸하고 좋은 술과 향기로운 차와 기이한 별미가 있었네. 온갖 맛의 진수가 참된 상등품임을 다 말할 수 없으니, 과연 중화의 대국은 서쪽 오랑캐와 다르도다. 스승과 제자 네 사람과 문무 여러 관원이 모두 좌우에 모시고 태종 황제는 여전히 가운데 바르게 앉으니, 노래와 춤과 피리와 거문고가 가지런하고 엄숙하여 하루 즐거움을 다하였다. 바로 그러하였다. "임금의 아름다운 모임은 당요와 우순에 견줄 만하고, 진경을 취하여 복이 남음이 있네. 천고에 흘러 전하여 천고에 성하니, 불빛이 널리 비추는 제왕의 거처이네." 이날 날이 저물자 사례의 잔치가 파하였다. 태종은 궁으로 돌아가고 여러 관원은 집으로 돌아가며, 당승 등은 홍복사로 돌아오니 절의 중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맞이하였다. 산문에 막 들어서자 여러 중이 아뢰었다. "스승님, 이 나무 끝이 오늘 아침에 모두 홀연히 동쪽을 향하였나이다. 저희가 스승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 밖으로 나아가 맞이하였더니 과연 도착하셨나이다!" 장로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드디어 방장으로 들어갔다. 이때 팔계도 차와 밥을 달라 떠들지 않고 장난도 부리지 않으며, 행자와 사승도 하나같이 점잖았다. 다만 도의 과위가 이루어졌으므로 자연스레 조용한 것이었다. 그날 밤에 잠이 들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태종이 조정에 올라 여러 신하에게 말했다. "짐이 생각하건대 어제의 공이 지극히 깊고 지극히 커서 갚을 길이 없도다. 하룻밤을 잠들지 못하고 입으로 몇 마디 천한 말을 읊었으나, 다만 감사의 뜻을 잠시나마 표하였을 뿐 일찍이 글로 써 두지는 못하였노라." "중서관은 오너라. 짐이 불러 주리니 낱낱이 써라." 하고 그 글은 이러하였다. "대개 들으니 두 법도에는 형상이 있어 덮고 실어 목숨을 품음을 드러내고, 네 철에는 형체가 없어 추위와 더위를 젖게 하여 만물을 변화시키느니라. 이러므로 하늘을 엿보고 땅을 거울삼을 때 어리석은 이라도 그 단서를 알거니와, 음을 밝히고 양을 꿰뚫음에는 슬기로운 이도 그 수를 다함이 드물도다. 그러나 천지가 음양을 포괄하되 쉬이 아는 것은 그 형상이 있어서요, 음양이 천지에 놓이되 다하기 어려운 것은 그 형체가 없어서니라." 그러므로 형상이 드러나 징험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이라도 미혹되지 않거니와, 형체가 잠겨 보이지 않으면 슬기로운 이라도 오히려 미혹되느니라. 하물며 불도는 비움을 숭상하여 그윽함을 타고 고요함을 다스리며, 만 가지를 널리 건지고 시방을 다스리느니라. 위령을 들어올리면 그 위에 없고 신력을 누르면 그 아래 없으며, 크게 하면 우주에 가득 차고 작게 하면 터럭 끝에 거두어지느니라. 멸함도 없고 남도 없어 천 겁을 지내며 예로부터 이어오고, 숨는 듯 드러나는 듯 백 가지 복을 굴려 오늘을 길게 하느니라. 묘한 도는 그윽하게 엉겨 따라도 그 끝을 알지 못하고, 법의 흐름은 맑고 고요하여 떠보아도 근원을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매한 범부와 자질구레한 무리가 그 뜻에 뛰어들어 능히 의혹이 없을 자가 있으랴! 그렇다면 큰 교가 일어남은 서쪽 땅에 터를 두었도다. 한나라 조정에 솟아올라 밝은 꿈을 이루고 동쪽 땅을 비추어 자비를 흐르게 하였느니라. 옛적에 형체와 자취를 나누던 때에는 말이 달리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고, 늘 보이고 늘 숨던 세상에는 백성이 덕을 우러러 받들 줄 알았느니라. 그윽한 그림자가 진리로 돌아가고 세월이 옮겨간 뒤 금빛 얼굴이 빛을 감추어 삼천의 빛을 비추지 않게 되자, 아름다운 상이 그림을 열어 사팔의 모습을 헛되이 마감하였느니라. 이에 미묘한 말씀이 널리 입혀져 날짐승을 삼도에서 건져 내고, 남긴 가르침이 멀리 펴져 중생을 십지로 이끌었느니라. 부처께는 경이 있어 대승과 소승을 가를 수 있고, 또한 법이 있어 그릇됨과 바름의 방술을 전하느니라. 우리 중 현장 법사라는 이는 법문의 영수이니라. 어려서 삼가고 민첩함을 품어 일찍이 삼공의 공을 깨달았고, 자라서 신령하고 맑음에 맞아 사인의 행을 갖추었느니라. 솔바람과 물 위의 달이라도 그 맑고 화려함을 견주기 부족하거늘, 신선의 이슬과 밝은 구슬이 어찌 그 밝고 윤택함에 비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지혜가 통하여 얽매임이 없고 신령함이 형체 이루기 전을 헤아리며, 육진을 뛰어넘어 멀리 벗어나 천고에 향기를 전하였느니라. 마음을 안으로 모아 바른 법이 쇠퇴함을 슬퍼하였으며, 생각을 그윽한 문에 두고 깊은 글의 잘못을 탄식하였도다. 조목을 갈라 이치를 떨치며 예전의 들음을 넓히고, 거짓을 잘라 참을 이어 뒤의 배움을 열고자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마음을 정토에 두고 서역을 노닐며, 위태로움을 안고 멀리 떠나 지팡이를 짚고 홀로 갔느니라. 쌓인 눈이 새벽에 날려 길에서 땅을 잃고, 놀란 모래가 저녁에 일어나 하늘 밖에서 하늘을 잃었느니라. 만 리 산천에서 연기와 노을을 헤치며 걷고, 백 겹의 추위와 더위에 서리와 비를 밟아 앞길을 이었느니라. 정성이 무거우니 수고가 가벼웠고 구함이 깊으니 이르고자 하였느니라. 서쪽 땅을 두루 노닌 것이 십사 년이요, 이방 나라를 두루 겪으며 바른 교를 구하였느니라. 쌍림과 팔수에서 도를 맛보고 바람을 먹었으며, 녹원과 취두봉에서 기이함을 바라보고 우러렀으며, 앞선 성인에게 지극한 말씀을 받들고 위의 어진 이에게 참된 가르침을 받았느니라. 오묘한 문을 캐어 그윽한 업을 다하였느니라. 삼승과 율의 도가 마음 밭에서 달리고, 한 장수와 백 광주리의 글이 바다에서 파도치느니라. 지나온 나라는 끝이 없으나 얻은 경전은 수효가 있느니라. 얻은 대승의 요긴한 글은 모두 서른다섯 부요, 오천 마흔여덟 권이 되거늘 번역하여 중화에 펴고 빼어난 업을 떨치었느니라. 자비의 구름을 서쪽 끝에서 이끌고 법의 비를 동쪽 가에 부었느니라. 성교가 빠졌다가 다시 온전해지고 창생이 죄를 짓고도 복으로 돌아왔느니라. 불타는 집의 마른 불꽃을 적시어 함께 미혹한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금수의 어두운 물결을 밝히어 함께 저 언덕에 이르게 하였느니라. 이에 알거니와 악은 업으로 말미암아 떨어지고 선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오르느니라. 오르고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스스로 짓는 것이니라. 계수나무가 높은 고개에 나니 구름 이슬이라야 그 꽃에 이슬을 맺히게 되고, 연꽃이 푸른 물결 속에서 나니 날리는 먼지가 그 잎을 더럽히지 못하느니라. 이는 연꽃의 성품이 맑고 계수나무의 바탕이 곧아서가 아니라, 진실로 붙은 곳이 높으매 작은 물건이 누를 수 없고 의지한 곳이 맑으매 흐린 무리가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니라. 대저 풀과 나무는 앎이 없으나 오히려 선을 빌려 선을 이루거든, 하물며 사람이 앎이 있으니 어찌 경사로 경사를 이루지 않겠느냐? 바라건대 진경이 전해 펴져 해와 달과 더불어 다함이 없고, 큰 복이 멀리 펴져 하늘과 땅과 함께 길이 크기를 바라노라!" 글을 다 쓰고 곧 성승을 불렀다. 장로는 이미 조문 밖에서 사례하기를 기다리다가 부름을 듣고 급히 들어와 엎드려 절하는 예를 행하였다. 태종이 전에 오르기를 청하여 글월을 장로에게 건네어 두루 훑어보게 하였다. 다시 엎드려 사례하고 아뢰었다. "주공의 문사는 높고 예스러우며 이치의 취향이 깊고 미묘하오나 다만 어떠한 명목인지 알지 못하겠나이다." 태종이 말했다. "짐이 밤에 읊어 어제에게 답례하는 뜻을 지었으니 이름하여 성교서라 하는데 좋은지 모르겠노라." 장로가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마지않았다. 태종이 또 말했다. "짐의 재주는 규장에 부끄럽고 말은 금석에 부끄러우니라. 내전은 더욱 일찍이 들은 바 없느니라. 입으로 읊은 서문은 참으로 비루하니, 붓과 먹을 금간에 더럽히고 기와 자갈을 구슬 숲에다 표한 것이니라. 생각하니 얼굴이 붉고 부끄러울 뿐이로다. 일컬음에 부족한데 헛되이 사례하게 하였노라." 이때 여러 관원이 함께 축하하며 성교의 어제 글에 정례하고 안팎에 두루 전하였다. 태종이 말했다. "어제가 진경을 한 차례 펴외어 보는 것이 어떠하냐?" 장로가 말했다. "주공께서 진경을 펴보이려 하시거든 모름지기 불도를 찾아야 하옵니다. 보전은 외울 만한 곳이 아니옵니다." 태종이 매우 기뻐하며 곧 당가 관원에게 물었다. "장안성 절 가운데 어느 사찰이 깨끗하냐?" 반열에서 상대학사 소우가 나서며 아뢰었다. "성 안에 안탑사가 깨끗하옵니다." 태종이 곧 여러 관원에게 명했다. "너희는 진경 몇 권씩을 각자 공경히 받들고 짐과 함께 안탑사로 가서 어제께 경담을 청하자꾸나." 여러 관원이 드디어 저마다 받들고 태종의 어가를 따라 절 가운데로 가서 높은 단을 쌓고 자리를 가지런히 차렸다. 장로는 다시 분부했다. "팔계와 사승은 용마를 끌고 행장을 정리하고, 행자는 내 곁에 있거라." 또 태종을 향하여 말했다. "주공께서 진경을 천하에 전하여 흐르게 하려 하시거든 마땅히 부본을 등사해야 널리 펼 수 있사옵니다. 원본은 도리어 마땅히 잘 간직하시고 가벼이 더럽히지 말아야 하옵니다." 태종이 또 웃으며 말했다. "어제의 말이 매우 옳도다! 매우 옳도다!" 곧 한림원과 중서과의 여러 관원을 불러 진경을 등사하게 하고, 또 절 하나를 성의 동쪽에 세우니 이름하여 등황사라 하였다. 장로가 몇 권을 받들고 단에 올라 막 외우려 하는데, 홀연히 향기로운 바람이 감도는 가운데 허공에서 팔대금강이 몸을 나타내어 크게 불러 말했다. "경을 외우는 자여, 경전 두루마리를 놓아두고 나를 따라 서쪽으로 돌아가자꾸나." 이 아래에 있던 행자 세 사람은 백마까지 땅에서 솟아올랐고, 장로도 경전 두루마리를 내던진 채 단 위에서 구소로 솟아올라 서로 따라 허공으로 날아가니, 태종과 여러 관원이 놀라 허공을 바라보며 절을 올렸다. 바로 그러하였다. "성승이 힘써 경을 취하여 엮고 서쪽 땅을 두루 돌기 십사 년이었네. 괴로운 길을 겪으며 환난을 만나고 여러 산천을 지나며 곤액을 받았네. 공이 팔구에 찼으나 오히려 아홉을 더하고 행이 삼천에 차서 대천에 미쳤네. 대각의 묘한 긴 글이 상국으로 돌아왔으니 이제까지 동토에 길이 전하여 남아 있네." 태종과 여러 관원이 절을 마치고 곧 고승을 뽑아 안탑사 안에서 수륙대회를 베풀고 대장진경을 보고 외워, 유명의 업귀를 초탈하게 하고 널리 선경을 베풀었으며, 등록해 둔 경문을 천하에 전하여 펴니라.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둔다. 각설하고 팔대금강은 향기로운 바람을 몰아 장로의 사부중 네 사람과 말까지 모두 다섯을 이끌고 다시 영산으로 돌아왔으니, 가고 오는 것이 꼭 팔 일 안에 들었다. 이때 영산의 여러 신이 모두 부처 앞에서 설법을 듣고 있었다. 팔금강이 그 사부와 제자를 이끌고 들어가 여래께 아뢰었다. "제자가 앞서 금지를 받들어 성승 등을 모시고 당나라에 이르러 경을 넘겨 바치고서 이제 특별히 성지를 반납하러 왔나이다." 드디어 당승 등을 불러 앞으로 나아가 직을 받게 하였다. 여래가 말했다. "성승아, 너의 전생은 본래 나의 둘째 제자로 이름하여 금선자라 하였느니라. 네가 설법을 듣지 않고 나의 큰 교를 경솔히 업신여겼으므로 너의 참된 영혼을 내려보내 동토에 태어나게 하였느니라. 이제 기뻐 귀의하고 나의 가지를 받들며 또 내 교를 타고 진경을 취하여 갔으매 매우 공과가 있으니, 크게 밝혀 정과에 오르게 하였나니 너는 전단공덕불이 되느니라. 손오공아, 네가 천궁을 크게 어지럽혔으므로 내가 매우 깊은 법력으로 오행산 아래 눌러 두었더니, 다행히 천재가 차서 석교로 돌아왔고 또한 기쁘게 악을 숨기고 선을 드러내어 길에서 마귀를 단련하고 괴물을 항복시킨 공이 있으며 처음과 끝을 온전히 하였으니, 크게 밝혀 정과에 오르게 하였나니 너는 두전승불이 되느니라. 저오능아, 너는 본래 천하의 수신이요 천봉원수이거늘 반도회에서 술에 취해 선녀를 희롱한 탓에 너를 아래 세상에 내려보내니 몸이 축생 같았고, 다행히 네가 사람 몸을 사모하여 복릉산 운잔동에서 죄를 짓다가 기쁘게 큰 교로 돌아와 내 사문에 들었으며 길에서 성승을 보호하였으나 또한 장난기 많은 마음이 있어 색정이 가시지 않았느니라. 네가 짐을 멘 공이 있으므로 네 직을 밝혀 정과에 이르게 하여 정단사자를 삼노라." 팔계가 입으로 떠들며 말했다. "저들은 모두 부처가 되거늘 어찌 나를 정단사자로 삼으시나이까?" 여래가 말했다. "너는 입이 굳세고 몸이 게으르며 먹을 창자가 넓기 때문이니라. 대저 천하 사대부주에 내 교를 우러러보는 자가 매우 많으므로 무릇 모든 불사에 너로 하여금 단을 맑히게 하였으니, 이는 누릴 복이 있는 품계거늘 어찌 좋지 않으랴! 사오정아, 너는 본래 권렴대장이었는데 반도회에서 유리잔을 깨뜨린 탓으로 너를 아래 세상에 내려보냈고, 너는 유사하에 떨어져 살생을 하고 사람을 먹으며 죄를 지었으나 다행히 내 교에 귀의하여 가지를 성실히 받들고 성승을 보호하며 산을 오르고 말을 끈 공이 있으니, 크게 밝혀 정과에 올라 금신나한이 되느니라." 또 저 백마를 불러 말했다. "너는 본래 서양 대해 광진용왕의 아들이거늘 아비의 명을 거역하여 불효의 죄를 지었으되, 다행히 몸과 법에 귀의하고 내 사문에 들었으며 날마다 네가 성승을 실어 서쪽으로 오고 또 성경을 실어 동쪽으로 간 공로 또한 있으니, 네 직을 밝혀 정과에 이르게 하여 팔부천룡마를 삼노라." 장로와 사부중이 모두 각각 머리를 조아려 은혜를 사례하였다. 말도 또한 사례를 마치니, 다시 게제에게 명하여 말을 영산 뒤 벼랑의 화룡지 가로 이끌어 내려가 그 못에 밀어 넣게 하였다. 잠깐 사이에 그 말이 몸을 펴더니 곧 털가죽이 빠지고 머리와 뿔이 바뀌며 온몸에 금비늘이 돋고 턱 아래에 은빛 수염이 나며 온몸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리고 네 발굽에 상서로운 구름이 감도는 채 화룡지를 날아 나와 산문 안 하늘을 든든히 받든 화표 기둥에 감겨 올랐다. 여러 부처가 여래의 대법을 찬양하였다. 손행자가 또 당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이제 저는 이미 부처가 되어 스승님과 같사온데, 어찌 오히려 금고아를 쓰고 계시며 스승님은 또 무슨 긴고주를 외어 저를 옥죄려 하시나이까? 어서 송고주를 외어 벗겨 내어 부수어 버리소서. 다시는 저 무슨 보살이 남을 속여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옵소서." 당승이 말했다. "당시에 오직 너를 다스리기 어려우므로 이 법으로 제재하였느니라. 이제 이미 부처가 되었으니 저절로 없어졌거늘, 어찌 오히려 네 머리 위에 남아 있을 이치가 있으랴! 네가 한번 더듬어 보아라." 행자가 손을 들어 더듬어 보니 과연 없었다. 이때 전단불과 두전불과 정단사자와 금신나한이 모두 본위에서 정과를 이루었고 천룡마 또한 저절로 진리에 돌아왔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으니 시는 이러하였다. "한 몸의 진여가 굴러 먼지 가운데 떨어졌다가 사상을 어울려 합하여 다시 몸을 닦았네. 오행으로 색과 공을 헤아리니 도로 고요하고, 온갖 괴이한 헛된 이름을 모두 논할 것 없네. 전단의 정과로 대각에 귀의하고 품직을 이루어 침륜에서 벗어났네. 경이 천하에 전하여 은혜의 빛이 넓으니, 오성이 불이문에 높이 있네." 오성의 과위가 정해질 적에 뭇 불조와 보살과 성승과 나한과 게제와 비구와 우바이와 우바새와 각 산 각 굴의 신선과 대신과 정갑과 공조와 가람과 토지와 일체 득도한 스승 신선이 처음에는 모두 와서 설법을 들었는데 이에 이르러 각각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저것을 보라. "영취산 봉우리 머리에 노을빛이 모여들고 극락세계에 상서로운 구름이 모였네. 금룡은 편히 누웠고 옥호는 안연하였네. 까마귀와 토끼는 오가는 대로 맡기고 거북과 뱀은 감아 도는 대로 두었네. 붉은 봉황과 푸른 난새는 마음이 상쾌하고 검은 원숭이와 흰 사슴은 뜻이 즐겁네. 여덟 절기의 기이한 꽃과 네 철의 신선 과일이네. 큰 소나무와 늙은 측백과 푸른 잣나무와 큰 대나무이네. 오색 매화는 피기도 하고 열매 맺기도 하며, 만 년 복숭아는 익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네. 온갖 열매와 온갖 꽃이 빼어남을 다투고 온종일 상서로운 기운이 어지러이 일렀네." 대중이 합장하고 귀의하여 모두 염불하였다. "나무 연등상고불. 나무 약사유리광왕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과거미래현재불. 나무 청정희불. 나무 비로시불. 나무 보당왕불. 나무 미륵존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무량수불." 나무 접인귀진불. 나무 금강불괴불. 나무 보광불. 나무 용존왕불. 나무 정진선불. 나무 보월광불. 나무 현무우불. 나무 파류나불. 나무 나라연불. 나무 공덕화불. 나무 재공덕불. 나무 선유보불. 나무 전단광불. 나무 마니당불. 나무 혜거조불. 나무 해덕광명불. 나무 대자광불. 나무 자력왕불. 나무 현선수불. 나무 광주엄불. 나무 금화광불. 나무 재광명불. 나무 지혜승불. 나무 세정광불. 나무 일월광불. 나무 일월주광불. 나무 혜당승왕불. 나무 묘음성불. 나무 상광당불. 나무 관세등불. 나무 법승왕불. 나무 수미광불. 나무 대혜력왕불. 나무 금해광불. 나무 대통광불. 나무 재광불. 나무 전단공덕불. 나무 두전승불.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대세지보살. 나무 문수보살. 나무 보현보살. 나무 청정대해중보살. 나무 연지해회불보살. 나무 서천극락제보살. 나무 삼천게제대보살. 나무 오백아라대보살. 나무 비구이새니보살. 나무 무변무량법보살. 나무 금강대사성보살. 나무 정단사자보살. 나무 팔보금신나한보살. 나무 팔부천룡광력보살. 이와 같은 일체 세계의 모든 부처시여, 원하건대 이 공덕으로 부처의 정토를 장엄하소서. 위로는 네 가지의 무거운 은혜를 갚고 아래로는 세 가지 길의 고통을 건지소서. 만일 보고 듣는 이가 있거든 모두 보리심을 내어 함께 극락국에 태어나 이 한 몸을 다 갚으리라. 시방 삼세의 일체 부처와 모든 존귀하신 보살 마하살이시며, 마하반야바라밀이어. 서유기는 여기서 마친다.